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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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성덕의 빛 / 통권 제187호 聖紀61年 2012년 5월 1일 발행 Vol.187 ISSN 1228-1212 맑고 고요하고 바르고 둥근 마음을 찾아가는 _ 수양 전문지 05 +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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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격월간 성덕의 빛 / 통권 제187호 聖紀61年 2012년 5월 1일 발행 Vol.187

ISSN 1228-1212지우(知友)끼리 수백 리를 격하여 살아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더라도 그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수백 리 밖에 있어도 항상 곁에 있는 것처럼 가

까이 느껴지고, 수년 만에 만나도 항상 함께 있어 온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인 것이다. 서로를

믿어 주고, 지우로서의 따사로운 정의를 서로가 언제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천리를 격해 있

고 몇 해 만에 만나도 항상 지척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정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두터운 우정이랄까.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부부 사이의 경우에서의 한 예를 들어 본다. 부부 사이란, 이 세

상에서의 그 어떤 인간 관계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부부 사이에서도 거리

감이 생기는 수가 있다. 어쩌다 말다툼이라도 했을 경우, 또는 오해로 인한 원망 같은 것이 생

겼을 경우에는, 한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남처럼 여겨지고 만나기도 싫어지곤 한다. 그것이 일

시적인 현상이긴 해도, 어쨌든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기대감이 채워지지 않는

데서 온 신뢰감의 약화 때문이라 한다.

성훈에 말 하셨다. ‘정신행도 천리지척(正信궋道 千里咫尺), 불신불행 지척천리(겘信겘궋

咫尺千里).’바로 믿고 도를 행하면 천리 밖에 있어도 지척에 있듯 가까이 느껴지고, 믿지 아

니하고 도를 행하지 않으면 지척에 있어도 천리 밖에 있는 것처럼 멀게 느껴진다는 말 이다.

앞에서 두 가지 경우에서의 예를 들었지만, 이 말 을 종교 신앙 생활에서의 자세에 연결시

켜 생각해 보면, 그 뜻의 보다 깊은 일면을 깨닫게 되는 바 있게 한다.

종교 생활이란 곧 신앙 생활이다. 종교 생활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는 신앙심이다. 신앙심 없

는 종교 생활이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신앙심이 없으면, 아무리 진리 종교의 가르치심을 매일같이 배워도, 그 가르치심이 가슴에

와 닿질 않는다. 그냥‘좋은 말 이긴 한데…’라는 정도에서 그치고 만다.

신앙심이 없어 가르치심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을진댄, 사람으로서 그 가르치심대로 행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사명 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생활 모습에서도 개선이나

진취적인 변화가 있을 수 없게 되며, 종교 자체의 궁극적인 목적인‘구제 해탈’의 은혜도 못

입게 된다. 곧, 불신불행 지척천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중략〉

어떻든,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그 가르치심이 그만큼 가까이 느껴지게 되고, 또 그 가르치심

이 바로 자신이 필연적으로 행해야 되는 것임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정신행도 천리지

척’이 되는 것이다. 〈후략〉

—〈성덕의 빛〉제18호(1993년 6월호)에서

法文을 읽고

正信궋道 千里咫尺

맑고 고요하고 바르고 둥근 마음을 찾아가는 _ 수양 전문지

05+06

Page 2: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성덕의 빛’갤러리 36 서예

아람 굃 漢 順 Lee Han Soon

•한국미술협회 서예부문 운 위원, 심사위원

•세종한 서예 큰뜻모임 회장, 명예회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 갈물서가회장

•추사 김정희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 역임

•2002 한일월드컵기념 필묵정신전, 태묵전출품

•2003∼ 전북세계서예비엔날레 다수 출품

•2005, 2008 서울서예비엔날레 특별전 출품

•2006 하이서울세계서예축제 초대 출품

•2006 한국여성원로 5인초대전(물파스페이스)

•2007 국제태묵북경전, 태묵동경전 출품

•2008, 2010 북경국제서법비엔날레 출품

•2010 한 폰트이한순 서체 발간(이화출판사)

•2010 외솔(최현배)회 '외솔상'(실천 부문) 수상

•2010 가와바다문학관(오사카) 서예 국제대상

無量淸靜正方心

다善生됩시다

國家를살리는것이니라

家庭을살리는것이

한家庭을살리는것이요

내가나를살리는것이

내가나를살리는것이요

사람은準備와經濟하는것이

없으면經濟할수없느니라

없으면準備할수없고

있을때에經濟하고

있을때에準備하고

經濟굊致

봄꽃들의 향연 ⓒ 손선화

성덕명심 도덕경 27∼29면

<父母恩惠> 전문

(

自性反겛聖德明心道德經

-

面)

66×130cm, 2012년 작

47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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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제187호 (비매품)|聖紀61年 2012년 5월 1일 발행

발행인 淸香智(갏吉子)|편집처 本院 編輯室|편집인 恩善智(孫善和)

편집위원 英仁智(굃乙順), 善玉智(黃基潤), 仁景智(金香淑)

발행처 (재) 성덕도유지재단 / 경북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 산 1번지

편집 010-5110-2527|E-mail [email protected]

02 홍광연 강화:정의로운 마음가짐으로 풍요로운 삶을

03 고인수 심경대 166: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자성반성

05 문명인 학행일치

06 장효순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08 박숙현 괴로움 속에서 건진 진실 하나

10 서정희 아버지, 사랑합니다!

11 신필균 시:오월의 고향

12 박근배 사랑하는 어머니

14 김용석 사위로서의 도리 다하지 못했으니…

15 황세진 사랑해요!

16 박지 청주교화원의 자랑스런 도생 '갱생지 선생님'

17 하정숙 시:성산포에서 쓴 시는 바다가 읽는다

18 이수자 믿고 따르면 자연으로 풀린다는 것 깨달아

20 편집실 법문을 배워요!

21 김명자 팔악의 수 에서 팔선의 생방길로

24 이의수 성덕의 힘으로 새 삶 얻어

25 정복동 시:눈 속에 새봄이 오네

26 김경숙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며

28 이 미 자신과의 약속

29 서효일 성덕의 가르침 널리 알리는 도생 되게

30 편집실 교화원 소식

32 편집실 원고를 기다립니다

표지 사진 / 복사꽃 (경북 덕)

갏 一 昌1983 前경성대학교멀티미디어대학사진학교수

한국사진작가협회자문위원

1986 제9회현대사진문화상(創作賞) 수상

1987 도선사진문화상(創作部門) 수상

1996 교육부장관표창장(곐功賞) 수상

1998 대구광역시문화상(藝術部門) 수상외다수

국립현대미술관작품소장(10점), 개인전 10회

2012•05+06 Vol.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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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2·5 / 6

講話

正義로운 마음가짐으로 풍요로운 삶을

우리 도생이라면 언제나 수련에 정진하여 정의로

운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에 먹히는 대로 그냥 그렇게 내

버려두고 방치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것에

길들여지고, 그렇게 굳어져 왔습니다. 언제부터 그

렇게 살아왔는지조차 모르고 살았기에, 돌이켜 보

면 참으로 오래 전에 버릇된 것인 것같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잠이 깨어 도덕경을 읽다가

‘정의(正義)와 사리(邪利)’의 법문에 대해 한참 생

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혼자 조용히 법문을 거듭 외

어 보았습니다.

‘허공살림 그만 살고 내 살림 살아 보자. 내 일을

하지 않고 남의 것 먹고 빚지고 못 산다 말고, 내 일

을 내가 하면 잘 살 수 있노라. 욕궁달(榮辱窮達)

수가 있고 부귀흥망(富貴興亡) 때가 있다. 정의를

행하면 흥하고 사리를 행하면 망하나니, 사리 허욕

다 버리고 정의정행하여 보세. 무량청정정방심.’

‘아, 이렇게 정의로운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 쉽지

않구나.’여겨지며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습니다.

늘 도덕경을 봉독하며 수련을 해 오고 있고, 배운

바를 실천하겠노라 다짐하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수련 생활을 해 나가겠다는 그것만으로 수양심이

절로 쌓여 가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날이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항상 정의로운 마음으로 정의로운 삶을 살

고 있는 도생이고, 법문의 가르치심대로 잘 실천한

다고 여겨 왔는데, ‘참으로 옳은 마음’한번 제대로

먹어 보려고 몇 날 며칠을 두고 시도해 보아도, ‘옳

은 마음’만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

온 제 삶이 얼마나 허공살림이었는지! 남의 것 먹고

빚지는 삶을 살고 있었는지!

그동안 성스러운 덕화의 가르치심 받들어 제법

수련을 쌓았고, 또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며 보낸 세월을 어찌해야 할는지요. 참으로

많은 세월을 허공살림으로 보내고, 그러고도 허허

거리고 허풍을 떨며 살아온 자신의 삶은 또 어찌해

야 할는지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이 먹어야 할 정의로운

마음을 먹고 정의로운 말을 하는 것이야말로‘내 일

을 내가 하면 잘 살 수 있노라’라고 하신 가르치심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리 허욕(邪利虛慾) 다 버리고 정의 정행(正義

正궋)’하는 삶, 그 또한 자연스럽게 제 삶 안에서

더욱 생명력을 키워 나가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긴 세월 동안의‘허공살림’을 말끔히 청산

하고, 이제부터는‘내 살림’을 알뜰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수도자의 살림살이요, 그 살림이 불어

나서 풍요롭게 되면 우리들 도생은 본보기가 되어

도덕 사회 건설의 큰 역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대

성 대덕 대도의 길을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게 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洪 光 곞•晋州敎區 責任敎化師•玉良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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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성덕의 빛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안 된다”이 말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명구이다. 그런데 그 새는 스스로 알을 깨고나와야만 한 마리 생명력 있는 새가 될 수 있지, 남이 깨주면 1회용 계란 프라이밖에 되지 못한다.

자성반성 공부는 바로 알에서 스스로 깨고 나오는 부화의 과정이 아닐까?

사람들은, 눈에보이지는않지만무형의알속에갇혀서 살고 있다 할까. 고정관념, 과거의 관행,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과 독선, 편견, 자만, 이기 욕망 등—.

이런 것들이 모두 내 앞을 가리고 나를 컴컴한 어둠 속에 머무르게 하는 알껍데기이다. 한마디로 아상 자존의 껍질이다.

이 아상 자존의 껍질을 깨는 것이 자성반성 공부의 첫 번째 관문이요, 마지막 관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내 마음을 닦는 데 가장 경계해야 하고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아상 자존이다.

아상 자존의 껍질 속에 갇히면 내 그림자를 내가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살피는 데는 능하다. 나는 옳고 상대방은 틀린 것이라 여기기 쉽다. 정작 나의 잘못을 나만 모를 뿐, 세상 사람들은다 아는 격이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이것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문맹퇴치(文盲退治)이다.

그러면 아상 자존은 어떤 경우에 많은가? 나의 경험에 비추어 반성해 보면, 공교롭게도 많이 배울수록, 많이 가질수록, 지위나 명예가 높아 갈수록, 나이가 들어 갈수록 아상 자존이 많아진다. 모두가 다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머리가 좋은사람, 최고의 학부를 나왔다는 사람일수록 아상 자

존이 많다. 돈이 많은 부자가 될수록 아상 자존은많아진다.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 지위가 높은사람들일수록 아상 자존은 더 많아지는 것을 보게된다. 사람들은 그들 앞에서 고개 숙인다. 그러나실상은 그 사람의 돈과 권력과 명예에 고개 숙이는것일 뿐인데, 그것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쌓아 놓은 지식의 한계, 자신이 이루어 놓은 물질의 성, 권력의 감옥 안에 갇혀 있으니,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이 알 속에 갇혀 있는 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게 아닐까? 그속에서 느끼는 것은 결코 행복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느끼는‘행복감’, ‘포만감’일 뿐이다. 진정한 행복은 도덕을 앞세우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아상 자존을 어떻게 하면 버릴 수 있을까? 옛 선비의 교훈을 한번 배워 보자.

맹사성(1360-1438)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특히 세종 때, 이조판서,우의정, 좌의정을 지냈고, 황희 정승과 함께 조선전기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 다. 효성이 지극하고 성품이 청백 검소하여 많은 일화를 남긴 분이기도 하다. 그는 평소 남루한 행색으로 소를 타고다녔으며 피리를 즐겨 불었는데, 그가 일국의 재상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 다.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公服)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아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고, 돌아갈 때에도 공손하게 대문 밖까지 배웅하 다. 무려 49년을 관직에서 벼슬살이를 했다.

전해 내려오는 일화에 의하면, 그가 열아홉에 급제하여 스무 살에 파주 현감에 부임하 던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학문과 덕망이 높기로 소문난 무명선사를 찾아갔다. 그런 분에게 인정을 받고 싶기도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自性反겛— 아상 자존에서 벗어나야

고 인 수•서울교구 서울원 / 誠秀智•서울교구 화목상조회 회장

心鏡臺 166

Page 6: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하고, 또 한창 혈기 왕성하던 때라 그의 학문을 시험해 보고도 싶어 객기를 좀 부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찾아가‘새로 부임한 현감인데 백성을 다스릴 가르침을 달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그러자 그가‘나쁜 일을 하지 마시오! 그리고 착한일을 많이 하시오!’라고 어린애를 가르치듯 말하는것이었다. 맹사성은 은근히 화가 났다. 화가 나서되돌아가려는 그에게 스님이‘기왕에 왔으니 차나한 잔 하고 가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자리에 않는데 차를 따르는 것이 좀 수상했다. 이미 넘치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차를 부어방바닥을 적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맹사성이 나무랐다. “이보시오,스님! 차가 넘쳐서 방바닥이 젖고 있지 않소!”그러나 스님은 들은 척도 않고 계속 찻물을 붓고 있었다.

맹사성이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일어섰다. 그러자 스님이 그의 뒤를 향해 한마디를 쏘아붙 다. “어찌 현감께서는 찻물이 넘치는 것은 알면서도,

자신의 지식이 넘쳐 일신을 망치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오!”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맹사성이 얼굴이 화끈거려 정신없이 일어나 도망치듯 나가려다, 그만 문에 이마를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또 그의 뒤에 대고 한마디 일갈을 하는 것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다니면 머리를 다치지 않는 법이지요!”이 일은 그의 일생에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아호‘고불(古佛)’이 여기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성훈의‘예의 도덕을 바로 행하자는 이치’에“일왈(一曰) 자(慈)요 이왈(二曰) 겸(謙)이요 삼왈(三曰) 불감위선(겘敢爲先)이라”하 다.

첫째가 사랑이요, 둘째가 겸손이요, 셋째가 불감위선이라 하신 말 이다. 또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서로서로 선생(先生)이라 하고, 서로서로 보생(保生)이라 하는 것이 의리에 당연함. 선생이라는의미는 나보다 낫다는 이치, 보생의 의미는 인자하자는 이치’라 밝혀 주셨다. 아상 자존을 없애는 공부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사랑, 겸손, 불감위선! 그중에 불감위선부터 실천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내가 뭘 좀 안다고 나서는것, 내가 좀 있다고 상대방 머리꼭지에 머물러 있는것, 내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것, 이런 것부터 고치는것이 불감위선일 것이다.

어로‘After you!’(당신 먼저!)와‘Understand!’(이해한다)라는 말이 있다. 남을 이해한다는 말 un-derstand를 분해해 보면, 남의 밑에(under) 선다(stand)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남을 이해하려면나를 낮추어야 한다. 철저히 나를 낮추는 데서 불감위선이 되고, 겸손이 되고, 사랑이 되는 게 아닐까?

고불(古佛)은 찻잔 넘치는 데서‘아상 자존이 가득 찬 나를 비우는 공부’를 하 고, 문에 이마를 부딪치면서‘나를 낮추는 공부’를 하 던가보다.

성경에‘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고한다. 그만큼 아상 자존이 많으니 착한 사람 되기가어렵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어찌 부자라고 천국을가지 못하겠는가! 선부(善富)되는 이치가 있는데!낙타만한 무형의 아상 자존을 바늘구멍에 들어갈만큼 줄이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 바로 자성반성 공부일 것이다!

이제 새로운 도덕 사회에서는 도덕을 앞세우고,누구든지 자성반성을 하면 아상 자존의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다.

성훈에“내 아상은 버리고 사람은 찾읍시다. 사람찾는 곳은 무량청정정방심이니 빌 곳도 없고 물을곳도 없도다”하 다. ‘무량청정정방심’즉 청심주를 열심히 부르라는 가르치심이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해도 어미닭이 따뜻하게 품어 주는 기운이 없으면 알을 깨고 나올 수 없다.

인간도 자연에서 품어 주시는 생기 명기의 도기,바로 청심주를 불러야만 그 따뜻한 기운을 연해 받을 수 있으니, 군말 말고 청심주 열심히 불러야겠다. 무량청정정방심…….

(www.kosoo.net)

4 2012·5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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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생으로서는 교화원에서 배운 대로 착함을 자신

의 실제 생활 속에서 마음과 몸으로 시현(示現)시켜

야 합니다. 그러나 저의 내면에는 겉으로 드러난 모

습과는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가르쳐 주신 대로, 배운 대로“학행일치(學궋一

致)”하지 아니한 점을 반성합니다.

특히 저에게는‘듣고 보고 이해 못 하는 가슴의

불평(겘平)’이 많았습니다. 남의 공격과 비난이 있

어도 고요 속의 침묵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

고, 변명과 자기 방어에 급급했습니다. 가슴 속의

사랑[慈]이 부족해서 남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했

으니, 불평을 내고 원망을 하 던 것입니다.

묵묵(默默)함은 남에게 해로움을 끼치지 아니하

고 화평심의 기초가 되어 주는데, 결국 자신을 보호

하게 되는 그 묵심(默心)의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

하 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화원에서 보이는 저의 모습과 집에서

하는 행동에는 차이가 많았습니다. 교화원에서는

친절한 모습을 보 지만 집에서는 불평과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님 은공(恩功)을 알고

깊은 공경심(恭敬心)으로 응대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너무 많았음을 깊이 반성합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위해 고생하시고 땀 흘리신 은

공을 생각하면, 그 크신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

을는지….

또한 허욕 탐물(虛慾貪物)로 인해 마음과 몸의 고

통도 겪었습니다. 언제나 착하게 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니….

마음과 몸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건강도 좋지 못하

습니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정리하지 않고

는 청정심(淸靜心)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연 법칙을 깨닫고 이치에 순행하는 가운데에 낙

락한 낙세계가 있는 것인데, 제 욕심대로 세상이 바

뀌고 인심이 바뀌기를 바랐으니 많이도 어리석었던

것입니다.

나[小我]를 버리지 않고는 진리에 다가가기 어렵

듯이, 아심(我心)에서 비롯된 그릇된 생각을 다 버

리지 못하니 성스러운 덕화의 길을 본받기 어려웠

던 것입니다. 착함을 풍부히 하면 식(食)과 복(服)은

따라오는 것인데….

‘사람의 원의이치(元義굊致) 따라 행하면 천지

부모님께서 나를 굶주리게 하시며 헐벗게 하시리

오’라는 말 을 명심하면서, 욕망심 버리고 순수한

마음 되찾는 데 더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게 마음 깊이 어질고 착하지 못한 소치 습

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성스러운 덕화의 길도 자신이 본받아 실천함으로써

더욱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학행일치(學궋一致)’하는 수양이 되기 위해서,

자성반성 깊이 하고 천성 근본 찾는 길을 따라 가도

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바른 수양으로 한사람

이라도 더 교화하는 데 정성을 들이겠습니다.

5성덕의 빛

學궋一致

文 明 仁•서울교구 서울원 / 仁有智

Page 8: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남원교화원에서 견습생으로 훈련받고 있던 1957

년 3월, 저는 도주님·법주님 하명에 의해 광스

럽게도 대구 서성로 본원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습

니다. 그곳에서 도주님·법주님 방 청소를 하고 다

락방 청소도 하 습니다.

다락방은 귀중품을 보관하던 곳으로 하루는 호두

를 통째로 까서 예쁘게 그릇에 담아 놓았는데, 어찌

나 먹고 싶던지, 그중에서 못난이들을 골라 집어먹

고는, 지금까지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지냈습니다. 감

히 생각지도 못할 큰 잘못을 저질 습니다. 그때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해 저는 17살이었지만 철부지 귀염둥이(?)로

선생님께서는 예뻐해 주셨습니다. 도주님께서는

‘순아’하시고 법주님께서는‘장 보생’하고 부르

셨던 그때의 옥안(玉顔)과 옥음이 지금도 생생하게

그대로 제 눈에 보이

고 귀에 들리는 듯합

니다.

그때는 잔심부름

을 주로 했기 때문에

자주 부르셨습니다.

을 쓰는 이 순간에

도 그때의 일이 생각

나서 감격의 눈물이

나옵니다. 법주님께

서는‘너희 아버지

호지(永浩智) 선

생은 성덕을 위해 많

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 공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수도해서 활인 성업에 열중해야지’하시며 누누이

경계해 주셨습니다.

한편 주방에서는 정화지(貞華智) 선생님께서 교

육을 시켜 주셨습니다.

얼마나 엄격하셨던지 우리 훈련생들 사이에서는

일명‘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불렸으며, 이 선생님

의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만 일선에 활인하러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정화지 선생님은 자상하시면서도 인정도

많으셨습니다. 평소에 특별한 것이 있으면‘이것은

법주님 댁에’, ‘이것은 원달군 선생님 댁에’하시며

보내 주시고, 앞집 대성지 선생님과 가까이 있는 인

화지 선생님 집에도 챙겨 주셨으며, 우리 훈련생들

에게도 보리밥에 된장국이라도 많이 먹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도주님과 법주님께 드릴 국 끓이는 것과 진짓상

보는 것은 장 보생이 해라’하시면서 저에게 책임을

지워 주셔서, 정성껏 해 놓으면 선혜지(善惠智) 선

생님께서 검사를 하시고 진짓상을 올렸습니다.

사주 인성지(仁盛智) 선생님께서는‘아버지 공도

모르고 멋만 내려 하고, 잘못한다’고 어찌나 경계하

셨는지, 그때는 너무나 서러워 눈이 붓도록 울기도

했습니다. 눈이 붓도록 울었는데 성당동 교화원에

심부름을 시키셔서, 저는‘선생님, 내일 가면 안 됩

니까?’말 드려도, ‘오늘 꼭 가라’명하셔서 버스

를 타고 성당동 교화원에 갔는데, 다녀오면서 선생

님께서 왜 기어이 갔다 오라 명하셨는지를 깨닫게

6 2012·5 / 6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본원에서의 수련 시절과 지난날 돌아보며

장 효 순•전주교구 남원원 / 孝恩智

Page 9: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되었습니다.

만물 만상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생존의

법칙을 알고 현명하게 대처해 가는데, 하물며 만물

의 장인 나는 왜 앞뒤도 제대로 분간 못 하고 경

거망동을 했다는 말인가. “신지신중 불금자금(信知

愼重 겘禁自禁)”, 곧‘믿음을 알고 신중히 하면 금

하려 하지 아니해도 절로 금해진다’하신 것처럼,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여‘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도덕 군자’가 될 것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깨달음 속에 열심히 수련하면서 도주님과

법주님 그리고 사주 선생님과 선혜지 선생님, 정화

지 선생님의 지도 하에 바쁘게 뛰어다니며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공부 열심히 한 결과 교화사 자격

을 배수하 고, 자격을 배수한 후 본원에서 처음으

로 일할 때의 감사한 마음과 행복한 기쁨은 마치 온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교육 수료 후 광스럽게도 효은지(孝恩智)라는

법명을 받고, 진주교구 재성지(在誠智) 선생님의 선

도 하에 삼천포교화원으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 후 남해, 북창, 고성, 천, 자양, 경주 교화원 등

으로 전근되면서 활인 성업에 이바지하다가, 선량

지(善良智) 선생님 중매로 충화지(忠華智) 선생님

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의 주례는 원달군(源達 ) 선생님

께서 해주시고 각 교화원에서 보내 온 축사는 신성

지(信誠智) 선생님께서 낭독을 해주셨는데, 지금 생

각하면 참으로 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는 정

말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축하 물품도 많았었지

만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것은“결혼해서 시부모

님 모시고 행복하게 잘살아라”하시면서 법주님께

서 비단 한복감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저희는 3남 2녀의 부

모가 되었습니다. ‘자식들만은 어떻게 해서라도 공

부를 제대로 시켜야 한다’는 굳은 신념 하나로 힘든

사업들을 마다 않고 열심히 하다 보니, 자식 사랑하

는 즐거운 마음으로 5남매 다 대학 졸업을 시키고

결혼도 다 시켰습니다. 아이들 모두 좋은 직장에 다

니며 아들딸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

습니다. 자식 중에 장남 인원(仁源)이와 차남인 주

원(珠源)이는 법주님께서 직접 이름까지 지어 주시

는 광도 누렸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그동안 힘드는 일과 어려움

도 많았었지만, 그때마다 기강심 놓지 않고 착하게

살아 보려는 의지로 행했기 때문에 성덕의 가호로

모든 일이 별다른 탈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확신이 들며, 대덕의 은혜에 그저 무한한 감사를 느

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성덕의 가르치심 받들어 실천하면서 깨달

은 바가 많습니다. 효은지(孝恩智)라는 법명을 주실

때에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효도를

행하라는 뜻인데도, 부모님 생존 시에 지극한 정성

으로 받들지 못했다는 것이 후회스럽고, 반성되는

바가 많습니다. 비록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이제부

터라도 효도하는 길은 성덕의 가르치심을 제대로

받들어 실천하는 것이요, 또한 건강한 몸으로 부화

부순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히 마음 닦아 많은 사람들에

게 선의 모범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성덕도의 공부는 진실한 마음으로 바로 믿

고 닦는 것이요, 억조창생을 살릴 수 있는 성스러운

덕화의 기운이 분명히 실존한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이 길을 창도하신 도주님과 법주님 은혜를 어떻

게 하면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겠습니까. 머리

카락을 뽑아 신을 삼은들 어떻게 다 갚겠습니까?

그동안 물질에 얽매여 수련에 나태했던 마음,

날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여 닦고 고치고, 항상

보은하는 마음으로 감사히 생각하면서 살아가겠

습니다.

7성덕의 빛

Page 10: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수년 전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그해는 유난히도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 힘들었

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도 쉴 새 없이 떠들고, 아

무리 조용히 하라고 시켜도 3분도 되지 않아 또 시

끄럽게 떠들기 일쑤 다. 자신들이 배우는 과목에

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더러, 가르치는 선생님에 대

한 예절 같은 것은 이미 사라져 버린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어느 한 반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전반적인

학교의 분위기 는데, 대부분의 선생님들은‘그저

그러려니!’하시는 것 같았다. 아마도 다른 선생님

들은 그러한 학생들의 모습에 체념하고, ‘여기 있다

다른 학교 가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1년을 보내고 있

던 중 1년이 끝나 갈 무렵, 어느 반 회장으로 항상

다른 학생들보다 더 떠들고 태도도 좋지 않아서 그

학생을 특별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학생의 반항적인 기색이 역력해져 갔다. 마침내

그 반에서 그 학생을 데리고 수업을 하기가 매우 힘

든 지경에 다다랐다. 수업이 끝나면 조용히 불러서

수차례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그때는 조금 알아듣

는 것 같으나 다음 시간에 가 보면 또 마찬가지로 선

생님들을 힘들게 했다. 그 학생의 행동에 화가 나는

바도 있었지만, 그보다도‘이러다가 정말 이 학생의

미래가 잘못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도 올라오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들도 잘 안 하는 학부모 면담을 과목

담당 교사가 하겠다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더

이상의 방법이 나에게는 없는 것 같아서, ‘올해가

가기 전, 더 이상 시간이 가기 전에 꼭 이 문제를 해

결하고야 말겠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누가 하겠는가?’하는

마음으로 결국 저녁 늦게야 학부모님과 면담을 갖

기로 했다. 학생의 어머니께서는 창피하다며 모든

교직원들이 다 퇴근한 후에야 오시겠다고 하여 할

수 없이 나도 저녁도 굶고 기다렸다.

처음 뵙는 분이라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

만, 학생의 어머님과 이야기를 한 시간여 나누다 보

니, 그 어머님께서 자녀에게 부담이 될 정도의 많은

기대를 하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학생이 반항적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또 그 어머

니는 학생이 잘못했을 때 무조건 야단을 많이 치시

는 편이셨다. 난 그 어머님께‘학생이 부담을 가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주시면 안 되고, 학생이 즐거워

서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한다.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말라. 학생을 이해해 주고, 야단보다는 용기를 주

라.’라는 요지의 말 을 드렸다. 마지막으로‘부모

님의 지나친 기대가 학생으로 하여금 반항심을 키

우게 한 것 같으니 부모님께서는 먼저 마음을 비우

고 순수한 눈으로 학생을 바라봐 달라. 오늘 일로

절대로 학생을 때리거나 야단치지 말라. 집에 가셔

서 당장 학생과 대화를 시도하라. 앞으로 자주 대화

를 통해 무슨 일이든 해결하시라.’는 등의 말 을

8 2012·5 / 6

괴로움 속에서 건진 진실 하나마음 속에 미움이 없을 때거기서의 진심이 남을 감동시켜

박 숙 현•서울교구 등포원 / 淨秀智•관악고등학교 교사

Page 11: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드렸다.

바로 다음날 놀랍게도 내가 그 학생의 반에 수업

을 하러 들어갔는데, 그 학생이 달라져 있었다. 반

항적인 눈빛은 거의 사라진 듯 보 고, 전보다 훨씬

조용하고 차분한 태도로 친구와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 있나?’

난 정말 놀라웠다. 일년 중 가장 편안한 수업을 하

고 교무실로 돌아오면서‘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

구나! 어젯밤에 면담한 보람이 정말 있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 학생과 겪은 일이 이후의 나의 교직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내가 가

르치는 모든 학생들에 대해 필요한 경우 꼭 그 학생

의 부모님과 면담을 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지금

까지 수년 동안 면담한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면담

한 바로 다음날 반드시 변화한다는 사실—.

누가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고 했던가? 난 대신,

도덕경 법문 66면의 말 , ‘오늘 반성(反겛) 내일

극락(極갪)’이 틀림없는 진리라는 것을 믿는다.

자신에게 이러한 깨달음을 주신 성덕의 가르치심

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린다. 만약 조금이라도 학생

에 대한 미운 마음이 남아 있을 때는, 면담은 제대

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도덕경 66면의‘행복(幸福)으로 사는 길은 무량

청정정방심(無量淸靜正方心)’이라고 하신 말 처

럼, ‘내 마음 속에 미움이 한 점도 없을 때, 오직 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무한한 신뢰, 그리고 미래에 대

한 가능성을 무한하게 열어 두었을 때만이 내 마음

속에서 진심이 우러나오고, 그 진심이 남을 감동시

킬 수 있고, 그 감동이 한 인간을 변하게 하는 것이

다.’라는 것을 나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 동안 도덕경의 말 을 배우며 그 가르치심 따

라 실천한다고 하면서 나의 그릇된 인간심으로 인

해 바르게 실천하지 못하고, 성덕의 말 대로 바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 얼마나 많았던가? ‘진정으로

착해진다는 것, 진정으로 어질어진다는 것이 이렇

게 힘든 일이구나!’라는 것을 실감하며, 착한 쪽으

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돌아선 적

이 또 얼마나 많았던가? 뉘우쳐 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순간

만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친 적나라한 현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착함이 참으로 부족하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성적표가 아닌, 나 자신이 나

자신에게 떳떳한 그런 성적표를 만들 수 있는 수양

을 이제는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나의 힘에 의해서

가 아니라 성덕의 은혜로써 나에게 온 것임을 생각

해 보면서, ‘만약 성덕의 가르치심이 아니었으면 지

금 나는 얼마나 어두운 뒷골목에서 헤매고 있을 것

인가?’라는 생각을 항상 잊지 않고, 성덕의 가르치

심 본받아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수련(修鍊)에 정진

하여 성덕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9성덕의 빛

<

聖德明心道德經에서>

道德生無惡

敎育生秩序

Page 12: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10 2012·5 / 6

處方孝法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고, 벚꽃이 온

대지를 환하게 밝혔다가 바람에 휘날립니다. 이 계

절이 지나면 이제‘가정의 달’5월입니다.

‘어버이날’을 앞두니 친정 아버지(淨浩智)께 감

사한 마음이 더욱 솟구칩니다.

아버지께서 입도하신 해가 1957년이니 어언 반세

기도 훌쩍 넘었습니다.

철부지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아버지의 향

으로 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들은 말들이‘성

덕도’, ‘교화원’, ‘○○○ 선생님’이란 단어 등이

었습니다. 저는 생소한 단어들의 뜻도 모른 채 귀에

익히며 성장을 했습니다.

저 또한 아버지를 따라 자연히 성덕도 공부는 했

으나, 지금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지만 그때

는 잘 알지 못하여 이해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반성이 많이 됩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일선 교직자의 길을 걸으

시겠다고 가방 하나 들고 집을 나서셨습니다. 그날

부터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몇 년이 지나도록 활인

성업에 이바지하시다가, 2004년도에 퇴임을 하시

고 지금은 안동교화원에 다니시면서 열심히 수양하

고 계십니다.

돌이켜보면 훌륭한 길을 걸으셨기에, 지금 구순

(九旬)을 넘기시고도 건강한 생활을 하신다고 생각

합니다.

요즘도 매주 일요일이면 직접 운전을 하셔서 교

화원 제성일(齊誠日) 공부에 참석하십니다. 연세가

높으신데 괜찮으실까고 자식들은 걱정을 하곤 하지

만, 아버지께서는 이내 안심을 시켜 주십니다. 틈틈

이 텃밭도 가꾸시며 푸성귀를 나눠 주기도 하시는

아버지!

아버지, 존경합니다!

오로지 한길로 깨달음의 길을 걸으신 아버지!

오늘 따라 6남 2녀를 훌륭하게 키워 주신 아버지

가 더욱 감사해집니다!

훌륭한 아버지가 계시기에 저희 자식들은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부족하고 모자람이

많은 자식들이지만, 대덕의 은덕과 아버지의 닦으

신 공덕으로 모두 제 앞가림들은 하고 산다 생각합

니다.

긴 세월 변함없이 성덕의 가르치심을 앞세우고,

그 가르치심대로 실천하시려는 아버지.

늘 6남 2녀 저희들에게, ‘열심히 수양해야 한

다!’, ‘게으름 피우면 안 된다’라고 강조하시는 아

버지십니다.

요즘은 가끔 아버지의 어깨가 무거워 보이고, 머

리에 내려앉은‘하얀 안개꽃’은 세월을 거스르지

아버지, 사랑합니다!서 정 희

•안동교구 안동원 / 교화사

Page 13: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11성덕의 빛

못하는 자연의 순리인가 생각해 봅니다.

법문에도“부모지봉명(父母志奉命) 자연행복생

(自然幸福生)”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모님

의 뜻을 잘 받들어 나감으로써 자연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해 봅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이 잘살 수 있도록 성덕의 말

으로 이렇게 이끌어 주셨으니, 저희들도 법문의

말 항상 가슴에 바로 새기며 바르게 살겠습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오월 어버이날에 아버지의 가슴에 예쁜 카네이션을

곱게 달아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늘 마음 편안히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여식 정희 드림

오월의 고향

■ 시

신 필 균•서울교구 인천원/永晟智

저 산 너머 파란 하늘

고향 마을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와 같이

보리밭 풀 메며

일을 했던 시절이

추억으로 남아…

저녁노을

붉게 물들고

피어오른 뽀얀 안개

산허리 휘감으니

여기가 무릉도원…

녹색으로 변하는

오월의 산야

싱그러운 산 내음

내 마음도 싱그러워지네

▲ 강릉‘허균 생가’솔숲 벚꽃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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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12·5 / 6

處方孝法

산과 들이 푸른 빛으로 가득해지는 5월입니다.

나무들이 연한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여기저

기에서 고운 빛깔의 꽃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계절

입니다.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보니,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등 가족 기념일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5월은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가

정의 달’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고마운 사람이

가족입니다. 그런 가족 중에서도 항상 저에게 무한

한 사랑을 주시고,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시는 저의

어머님(寶英智)에 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외할머니의 향으로 20대 초반 결

혼하시기 전부터 성덕도와 인연을 맺으셨고, 결혼

하신 후에는 저희 삼남매를 키우시는 바쁜 가운데

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그리고 일요일에는 꼭 교화

원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도덕경을 낭독하시고, 일상 생활 속

에서 도덕경의 말 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

다. 또 최근까지 교화원 상조회 회장으로 활동하셨

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아버지의 건강 회복을 바라

시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교화원에 가셔서 공부

하고 오십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부부의 연을 맺으신 지 47

년이 되었습니다. 요즘에도 가끔 어머니께서는 두

분이 처음 만나신 날 군복을 입으신 아버지의 늠름

하고 멋진 모습을 말 하시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

으십니다(아버님은 ROTC 장교 출신으로 당시에 군

복무 중이셨음).

결혼 후 두 분은 삼남매를 낳으셨고, 우리 삼남매

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고 있습

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키우시는 동안에도 시골

에서 대구로 공부하러 온 시가의 사촌들과 조카들

뒷바라지를 하셨고, 학구열이 높은 아버지께서 공직

생활을 하면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으시기까지 많

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사셨지만 주

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힘든 내색을 하

시거나 힘들다고 말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가족들을 위하여 많은 희생

을 하시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밝고 긍정적

인 마음으로 생활하셨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상

위에 어머니께서 써 놓으신 작은 편지가 놓여 있는

적이 많았습니다. 편지에는‘바르고 밝게 자라라’

는, 그리고‘사랑한다’는 말 이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써 주신 작은 편지를 읽으면서, 방황하

기 쉬운 사춘기 시절, 공부로 지치고 힘들었던 그

시절에 마음을 다잡고 큰 힘을 얻곤 하 습니다.

요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아침 식사 후 매일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두 분이 함께‘가사가 좋은 노

래’한 곡을 부르시며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십니다.

그러시곤 아버지는 도덕경을 읽으시고(매일 도

덕경을 완독하심), 어머니는 교화원에 오전 공부를

사랑하는 어머니!

박 근 배•대구교구 대구원 / 교화사•대구시 달서구청 경제과 근무

Page 15: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13성덕의 빛

하러 가십니다. 자칫 조금 가라앉을 수 있는 집안

분위기에서 노래를 부르시며 기분 전환도 하고, 열

심히 도덕 공부를 하심으로써 매일매일 새로운 기

운을 받고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하십니다.

이런 어머니의 부단한 노력으로 아버지의 건강도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언제나 우리 집의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우리 어

머니!

작년은 어머님의 칠순이 되는 해 습니다.

우리 삼남매는 어머님의 칠순에 즈음하여, 그동

안 훌륭하게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신 정성에 감사

드리며 작은 패를 만들어 드리자는 것으로 뜻을 모

았습니다. 사회에서도 어떤 분야에 큰 도움을 받으

면 그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감사패를 주는 것처럼,

어머니께서 우리 가족을 위해 큰 노력과 희생으로

우리 가정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신 고마

움을 감사패에 담아 드리기로 하 습니다.

아버지와 삼남매가 함께 의논하여 감사패 문구를

작성하고, 감사패 제작을 의뢰하 습니다.

감사패의 내용은‘어머니께서는 헌신적인 노력

과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 가족을 훌륭하게 이끌어

주셨고, 특히 대명교화원 상조회 회장으로서 13년

이란 오랜 기간 열의와 성의를 다하여 교화원 발전

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또한, 깊은 도심으로써 아

버지의 건강 회복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셨습

니다. 저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어머님

의 칠순연을 맞이하여 만수무강하시길 기원 드리

며, 그 공을 기리어 우리 가족 모두의 뜻을 담아 이

감사패를 드립니다.’라고 정하고, 문구를 원형 크

리스털 패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었지만 따뜻했던 작년 2월, 경치

좋은 호텔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 삼남

매와 조카들까지 모두 모여서 어머님의 칠순을 기

념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미리 준비해 간 꽃목걸이를

걸어 드리고, 감사패를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어머

니는 이런 공로패를 받을 자격이 있을지 모르시겠

다고 하시면서, 수줍게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우리 모두 큰 박수로 축하해 드렸습니다.

항상 흐트러지지 않는 바른 자세로 아내, 어머니,

할머니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시는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앞으로도 아버지와 함께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

하게 성덕의 품 안에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저도 어머니의 훌륭한 모습을 닮아 가고자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Page 16: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14 2012·5 / 6

處方孝法

아버님! 저 막내 사위입니다. 아버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뒤 첫 휴일을 맞아 집에서 혼자 점심

을 차려 먹다, 아버님 생각에 목이 메어 펜을 들었

습니다.

아버님! 장모님께서 돌아가신 뒤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저는 아내가 불과 2박 3일

간 성덕도 본원 교육에 참석하러 간 사이에도 집안

이 썰 함을 느끼고 있는데, 아버님께서는 하루하

루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아버님 연세가 여든아

홉이시라 걱정을 하면서도, 형편이 좀 더 나아지면

저희 집에서 모셔야겠다고 생각하며 미뤘던 것이

한없이 후회됩니다. 지난해 가을, 백화점에서 사서

보내 드린 점퍼와 스웨터가 마지막 사 드린 옷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자식이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해

도 부모님께서는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는 옛 어르

신들의 말 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버님께서 건강

이 좋으신 편이라서 더 기다려 주실 거라고 기대했

던 이 어리석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 날씨가 하루하루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길가에 오가시는 연로하신 어르신들께 자꾸만 눈길

이 갑니다. 이제는 저희 집에 오시라고 해도 오실

수가 없으시군요.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이 다

가옵니다. 한 송이 카네이션조차 달아 드릴 부모님

이 계시지 않는 이 불효자식은 벌써부터 가슴이 미

어지는 듯합니다. 금방이라도 아버님의 전화가 올

것 같습니다. 저희가 더 자주 안부 전화를 드렸어야

했는데, 아버님께서 저희보다 더 자주 전화를 하셔

서, “김 서방, 잘 있나?”하고 물으시곤 하셨죠. 아

내가 교육받으러 가기 전에 미리 챙겨놓은 국과 반

찬을 제대로 삼킬 수가 없습니다. 이런 국과 반찬을

아버님께 드렸어야 했는데…. 맛있는 음식 사 드시

라고 저희가 다달이 보내 드린 몇 푼 안 되는 용돈

도 모아 두셨다니, 평생 8남매 대학까지 보내며 뒷

바라지에 온갖 정성 다 쏟으시고도, 이 세상 떠나시

는 순간까지 자식 걱정 하셨습니까?

이제야 아버님께 알려 드립니다만, 저는 지난 2월

19일부로 성덕도 도생으로 광스럽게 교화생 자격

을 배수했습니다. 아직은 성덕도의 가르침을 충분히

깨치지 못했지만, 도덕경에서는 부모님께의 효도를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

에 더욱 회한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성덕의 가르

침을 모른 채 잘못 걸어가던 삶을 바로잡아 진정으

로 사람의 도리를 실천해야겠다고 성법전에서 다짐

했는데, 자식의 인연을 맺은 사위로서 자식된 도리

를 다하지 못했으니, 어떠한 반성을 한들 더 이상 무

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께서

는 제가 결혼하기 전에 돌아가셔서, 그 후 30년 가까

이 장모님, 장인어른을 친부모님처럼 느끼며 의지해

왔습니다. 저한테 사랑도 많이 안겨 주셨죠. 그러한

장모님, 장인어른이신데, 회사 일을 앞세우고 제 자

식 뒷바라지를 먼저 하고 두 분 모시는 일은 뒤로 미

루며 성덕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했으니, 자식 되

사위로서의 도리 다하지 못했으니…— 하늘나라로 가신 장인어른께

김 용 석•서울교구 등포원 / 교화생•KBS 지역정책부장

Page 17: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處方孝法

15성덕의 빛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 은혜에 감사 드리

며 진심으로 축하 드려요!

언제나 저와 동생, 그리고 우리 가정을 위해 노력

하시는 우리 아빠! 엄마!

열심히 일하시는 노고에, 크신 은혜에, 오늘 더욱

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중학생이 되어 이번 중간 고사 시험을 잘 치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그런데 국어 점수가 낮게 나와서

많이 속상하셨죠?

저도 정말 속상해요. 엄마께서 국어 공부를 하라

고 하실 때, 싫다고 한 것, 많은 반성이 됩니다. 엄마

말 을 듣지 않은 제 잘못이예요.

어린 동생과도 사이좋게 놀지 못하고 싸우기도 해

서정말죄송해요. 앞으로는동생과도잘지내고공부

도 열심히 해서, 엄마와 아빠를 기쁘게 해 드릴게요.

학원 다닌다고 일요일 도우회 공부를 가끔 소홀

히 하기도 했지만, 성덕도에서 가르쳐 주신 말 깊

이 새기고 반성도 한답니다.

‘부모님께 효행하고, 착하고 바른 마음을 가지고

생활해야 된다’고 가르쳐주신 말 을, 오늘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다시 되새기려고 합니다.

도덕경 27면의‘부모 은혜’를 읽을 때 가슴이 뭉

클했어요. 앞으로는 성덕도 도우회 공부에 자주 나

가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서, 효도하는 세진이가

될 것을 약속 드려요.

엄마! 아빠! 오늘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일은 많

이 하지 마세요.

언제나 건강한 모습으로 행복을 이끌어 주세요.

저도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할

게요. 그리고 성덕도를 위해서 힘을 보탤 수 있는

인재도 될게요.

엄마! 아빠!

오늘,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한 날로 기억되

게 하세요!

♡사랑해요!

어버이날에 세진 드림

어 이보다 더한 불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버님! 지금 계시는 곳은 장모님 바로 곁입니다.

아버님 고향 마을 바로 앞 야트막한 언덕 아래 아시

죠. 이제 더 이상 외로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

식·손자들 걱정도 내려놓으십시오. 8남매 자식과

사위들, 어머님·아버님께 다 하지 못한 효도, 형제

자매 우애 깊게 지내는 걸로 보답하겠습니다. 어머

님·아버님께 못 해 드린 효도, 주위의 어르신들께

더 잘 해 드리는 걸로 보답하겠습니다. 뒤늦게 찾은

성덕의 길, 한눈팔지 않고 따르겠습니다.

막내 사위 올림

사랑해요!— 어버이날, 엄마·아빠께 황 세 진

•진주교구 진주원 / 도우회•진주남중 2학년

Page 18: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임진년을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꽃샘

추위를 거쳐 완연한 봄기운을 띠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분은 올해 91세 되신

우리 교화원의 갱생지(更生智·류근수) 선생님으

로, 선생님에 대해서 느낀 대로 말 드리고자 합

니다.

선생님께서 입도하신 해가 1956년이라 하십니

다. 성덕도가 이 땅에 탄생한 해가 1952년이니 4

년을 뺀 수많은 세월을 성덕도와 함께하신 분이십

니다.

입도했던 젊은 시절에는 위장 장애로 속이 아파

서 밥은 물론 물도 제대로 드시지 못할 정도로 위중

하여, 자식들은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도 갱

생지 선생님이 회복하지 못하실까 염려할 정도 다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도움으로 성덕도에 입도하게

되어 자성반성 성덕명심도덕경을 읽어 보고 무량청

정정방심 청심주를 독송하게 되었는데, 뜻을 잘 알

지 못하면서도‘이 길만이 자신이 살길’이라는 느

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날부터 정성을 다해 공부를 하시다 보니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물도 편하

게 마실 수 있었고, 소화시키지 못하던 음식도 드실

수 있었다 하십니다.

그때 느꼈던 감개무량한 성덕의 은혜를 잊지 않

으시고 오늘날까지 흐트러짐 없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공부 자리에 참석하시는 갱생지 선생님을 뵐

때마다, 실천에 미진한 저 자신을 다시금 돌이켜 보

게 되고 선생님을 우러러보게 됩니다.

항시‘성덕의 은혜에 감사 드린다’, ‘성덕도가 아

니었다면 옛날에 이 세상을 떠났을 사람’이라 말

하십니다. 그러시며 교화 발전에 정성을 다하시니,

작년에‘갱생지(更生智)’라는 법명도 배수하셨겠

지요.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91세라는 많은 연세에도 청아한 목소리로 청심주

부르시고, 반성 시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알

뜰히 반성 공부를 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도 선생님

의 연세가 되도록 건강하게 그리고 저렇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까 스스로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항상 교화원 살림을 자신의 살림과 같이 알뜰히

살피시는 선생님을 보며, 부족한 저 자신도 조금이

나마 뒤따르려 다짐을 해본답니다.

56년이란 긴 세월을 흔들림 없이 오직 믿음으로

못난 성질을 고쳐 나가니 감기를 모르는 건강을 유

지하셨는데, 이번에 호되게 감기를 앓으셨다며 반

성하시니, 젊은 저 자신의 나약함에 부끄러워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16 2012·5 / 6

자랑스러운 도생

청주교화원의 자랑스런 도생‘更生智 선생님’

박 지•청주교구 청주원 / 교화사

Page 19: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저 자신 이제부터라도 갱생지 선생님의 모범적인

수양 생활을 본받아 팔악의 마음을 버리고 팔선의

개량 종자 되어, 성덕에 누가 되지 않는 참된 제자

가 될 것을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성덕도의 참 뜻이 한량없이 맑고 고요하고 바르

고 둥근 마음 찾아서 천성 근본으로 살게 함이라 밝

혀 주셨으니, 그 깊으신 뜻 바로 받들어 갱생지 선

생님과 같이 일정 정심으로 도덕을 앞세워 생활하

는 도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을 쓰는 이 순간의 마음이 변함없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청심주 독송하고 팔악의

마음은 뿌리 뽑겠습니다.

이렇게 짧은 로써 수십 년 동안 수양해 오신 갱

생지 선생님의 공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좁은

식견에 아쉬움을 느끼며, 이 을 마감할까 합니다.

갱생지 선생님! 지금도 건강하시지만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세요. 그리하여 나이 어린 후배들의 든

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세요.

17성덕의 빛

■ 시

하 정 숙•금오공고 국어교사

· 남 수필문학회 회원

한번쯤은

가슴에쌓인이야기

쓰고싶었다

한번쯤은

누군가가읽어주었으면

하고바랐었다

그이야기를성산포에서쓴다

파란물빛이가슴에쌓여

파랗게파랗게채색될때

하얀포말을거품삼아

바다를마시며편지를쓴다

성산포에서쓴편지는바다가읽는다

답장은파도가하얗게전해준다

파란사연, 하얀답장이

성산포바람따라일 이면

그래도다못실은

동백꽃처럼붉은마음한조각

성산포자락에서훨훨태워보낸다

바다가하늘이고

하늘이바다인성산포에서

나는바다를쓰고

바다는나를읽는다

Page 20: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머나먼 나라 미국에 살게 되면서 저 자신이 성덕

도의 특별 공부에 참석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성덕의 크나크신 은혜로‘교화사 자

격 특별 공부’에 참석할 수 있었던 점 진심으로 감

사 드립니다.

특별 공부에 참석하겠다는 결심이 서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주변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제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습

니다.

교화원이 없는 이곳에서 과연 저 혼자 도심을 꿋

꿋이 지키며 공부를 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

장 어려운 저의 고민이었습니다.

한국을 떠나 일가친척 하나 없는 미국에서 11년

동안 생활하면서, 성덕의 기강줄을 놓지 않고 항상

청심주를 가슴 속에 품고는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이민 사회이다 보니 대부분

의 사람들이 교회나 성당에 다녔고, 만나는 사람들

마다 타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외로운 타국

생활에서 교회에 나가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고 오

히려 의아해하곤 하 습니다. 특히, 교회 다니는 사

람들끼리만 서로 위해 주며 감싸 안고, 교회 안에서

아이들이 도움을 주고받으며 커 가는 것을 보면서,

‘왜, 하나님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교

회 품 안의 사람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겐 사귐의

기회도 안 주는 걸까’를 생각하게 되고, 종교적으로

저 자신 많이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환경 속에서 특별 공부에 참석

하겠다는 결심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

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기는 했지만, 성덕의 기강줄

을 놓지 않았고, 도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상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때는 한국에 계시는

친정 어머니(信淑智)께서 오셔서 몇 달 계시면서

교화 말 을 해주셔서 기강심을 세울 수 있게 도와

주셨고, 또 어느 때는 오실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이

모님(和淑智)께서 오셔서 흔들리는 제 마음에 도심

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하루, 이틀 계시는 시간이

부족하고 아까워 잠을 아껴 가면서까지 기운을 연

해 주시고, 믿음을 굳건히 할 수 있게 도와 주셨습

니다.

또 막내 이모(괋善智)께서는, 한동안 본원에서 특

별 공부를 시행하지 않다가 몇 년 만에 실시했을

때, ‘너도 오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제 마음 속 밑

바닥에 도심의 싹을 심어 주셨습니다.

물론 그때는‘말도 안 된다’고 일언지하에 없던

걸로 했지만, 그때의‘너도 오면 좋겠다’가 싹이 되

어, 1년이 흐르면서 잎이 나고 또 1년이 흐르면서

꽃이 피었고, 결국은 이번 공부에 참석하게 되었습

18 2012·5 / 6

해외에서

믿고 따르면 자연으로 풀린다는 것 깨달아— 미국에서 귀국하여 특별 공부에 참석하고

이 수 자•부산교구 부산원 / 교화사•미국 LA 거주

Page 21: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19성덕의 빛

니다.

또 항상 곁에서 도심을 잃지 말라고 격려해 주신

시누님(春生智)께서, ‘엄마 얼굴 한 번 더 본다’는

마음으로 나오라고 하신 말 이 가슴에 와 닿았습

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었습니다. 마음먹기가

어려웠지, 한번 결심하고 나니 저를 둘러싼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언제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 좋으며, 들어가서는

며칠 동안 있을지 등을 여러 여건을 종합하여, 특별

공부 2주 전에 한국에 도착할 수 있게 날을 잡고, 그

동안 부산원에서 응시생을 위한 특별 훈련 공부를

하기로 정하고 비행기표를 샀습니다. 또 제가 없는

동안 혼자 집에 남겨질 남편이 걱정이 되었는데, 그

것도 때맞춰 아들이 집에 있겠다 하여 홀가분한 마

음으로 올 수 있게 되었고, 제가 다니는 한국 학교

에도 강사 선생님을 정하고 교장 선생님과 아이들

에게도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주 편한

마음으로 특별 공부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여 부산원에 공부하러 나가니, 그

동안 십오 년이나 흘 는데도 그때의 선생님들이

한결같은 반가움으로 대해 주셔서, ‘고향이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참으로 마음이 편안했

습니다.

옛날에 부모님 따라다니던 예쁜 아이가 그동안

자라 다 큰 숙녀가 되어 있는 것에서 세월의 흐름은

느껴졌지만, 낯익은 강당의 공부 자리, 그리고 부산

원의 건물 어느 곳 하나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그리

고 먼 곳에서 왔다고 이것저것 세심하게 배려해 주

시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하나라도 더 열심히 닦고

고칠 수 있게 해주신 책임 선생님, 온화한 웃음으로

공부 잘 하라고 격려해 주신 담임 선생님, 저와 제

딸에게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도생

님들—. 이분들의 격려와 관심이 있었기에 이번 특

별 공부를 잘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본원에 도착하여 계단을 오르며 바깥 풍경들을

바라보니,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건물을 신축하시

느라, 성도사님을 위시한 여러 선생님들과 전국 도

생님들의 노력과 수고가 얼마나 컸을까’느낄 수 있

었으며, ‘나는 이런 좋은 곳에 본원 건물이 완공되

었는데도 어떤 힘도 보탬도 되지 못했구나’싶어 많

은 반성이 되었습니다. ‘나도 이곳에 살고 있었다면

몇 번은 자원 봉사를 하러 오지 않았을까’하는 생

각도 해 보았습니다.

특별 공부 응시생들이 강당에 모여 앉아 청심주

를 부르는데, 그렇게 눈물이 흐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한마음이 되어 무량청정정방심을 같이 부른다

는 그 자체가 좋아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 습니다.

‘그동안 나 자신의 마음이 너무나 나약해져 있었구

나’, ‘이렇게 좋은 도덕 공부를 항상 간절히 그리워

하고 있었구나’, ‘이제야 알았으니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마음 다잡아 열심히 살 길 찾아야겠

구나’하는 마음과, ‘아, 좋구나. 참 좋구나’, ‘이제

는 할 수 있어’, ‘혼자서도 기강심 세워 도덕 가운

데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하는 마음으로 온 정성

을 모았습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이제는 이역 만리 타국에서

혼자가 아니고 딸(교화생 자격 시험에 응시)과 같이

공부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좋아서 눈물 흘리고,

반성하다 보면 눈물이 흐르고, 이렇게 걷잡을 수 없

이 흐르는 눈물은 성도사님 앞에 서서 반성할 때도

끊임없이 흘러 내려, 손을 눈에 대고 반성을 해야만

했습니다.

참으로 좋았습니다. 저 자신의 약한 마음을 부드

러움으로 어루만져 주시고,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자

신감을 갖게 해주시고, 그동안 잊고 있던 성덕의 크

나크신 은혜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시어 참으로

Page 22: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20 2012·5 / 6

좋았습니다.

또한 이렇게 좋은 공부를 딸과 같이 한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렇게도 그리워한 청심주

독송을 하며, 많은 반성거리들을 찾아 반성을 하고

또 반성을 하고, 그러다 감사 드리고, 이러기를 반

복했습니다.

그 후 성법전에 엎드려 진심으로 반성을 하고 나

니, 저의 약한 마음자리가 강함으로 자리바꿈되었

다는 게 느껴졌으며, 그 마음으로 성도사님 앞에 다

시 섰을 때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도사님 앞에 섰을 때 제 몸에 전해지는 후

끈한 기운과 등 뒤로 줄줄 흘러내리는 땀 줄기를 통

해 신비로운 성덕의 기운을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이번 공부를 통하여 진심으로 믿고 따르면 모든

것이 자연으로 풀린다는 걸 깨달았으니, ‘신심이 생

방이다’는 법문의 말 가슴 속에 깊이 새기고, 시

시때때로 오르내리는 마음속의 적을 물리칠 수 있

게 도덕으로 무장하도록 하겠으며, 바로 믿고만 닦

는다면‘깨달으면 알 것이요 알고 보니 행복이네’

라고 하셨으니, 제 부족한 마음 열심히 닦고 고쳐서

화목한 가정 이루고, 나아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교

화 말 나눌 수 있는 성덕의 선인종이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法文을 배워요!

修心覺善 수심각선

知궋一致 지행일치

풀이‘마음을 닦아 착함을 깨달으면 아는 것과 행함이 일치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래 빈칸에 써 보시기 바랍니다.

善意正義궋 선의정의행

天下無難事 천하무난사

풀이‘착한 뜻(마음)을 가지고 정의롭게 행하면 하늘 아래에서 어려운 일 없이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래 빈칸에 써 보시기 바랍니다.

Page 23: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제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 감사의 눈물이 주

르르 흐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성덕의 공부

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팔악의 수 에 빠져 허

우적대며 살았을 것입니다.

기억 속으로만 남아 있는 지난날로 거슬러 가봅

니다.

저의 아픔의 시작은 시동생의 결혼식을 치르면서

습니다. 시동생을 결혼시킨 이튿날, 신혼 여행을

가 있을 거라 여겼던 시동생이 카바레에서 놀고 있

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남편은 몹

시 화를 내었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은 결혼식에 쓴

비용을 다 계산하여 놓고, 논어(論語)를 들고 와 공

자님 말 을 한 구절 읽어 주며, ‘좋은 말 이니 올

겨울에는 다 배우겠다’는 말을 하곤 잠이 들었습니

다. 그날 밤 남편은 잠을 자다 그대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과 별 어려움 없이 지내던 저는 시동생 내외

때문에 제 인생이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고, 그 억

울함과 분함, 거짓말 같은 그 현실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모두가 밉기

만 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 속에 빠져 허덕일 때 시아버님께서

교화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덕도에 첫발을

들여놓았고, 며칠 교화원에 다녔지만 처음에는 청

심주 부르는 것도 쑥스럽고, 반성하라고 할까봐 겁

도 났습니다.

제성일이 되면 어슬 어슬 하다가 담임 선생님

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가고, 아버님께서‘너 안 가

냐’하시면 가고, 그렇게 몇 주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님께서 쌀과 반찬거리를 챙겨 주시

며, ‘주일 공부를 하니 공부를 끝내고 오라’고 하셨

습니다. 그 당시 저는 주일공부는 한문 공부를 가르

쳐 주시는 공부인 줄로만 알았는데, 계속 청심주 독

송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이라 지루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 지만, 일주일이 거의 되어 가

니 부족한 저에게도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아버님을 생각하니 줄다리기 줄의 맨 끝을 잡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떠한 눈보라나 비바람이

몰아쳐도 제 마음에 튼튼한 기둥을 세워 열심히 살

아가겠노라고, 저는 이 줄다리기 줄을 많이많이 늘

어뜨려 드려, 부모 형제는 물론이요 다른 사람에게

까지 같이 잡고 가게 하겠노라고. 저는 처음으로 반

성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의 반성을 계기로, 열심히 다녀 보리라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열심히 교화원에 다니면서 어느

날인가 저를 돌아다보니, 찔끔찔끔 울던 눈물이 없

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먹고 사는 것은 걱정이 되

지 않지만 네 명의 아이들 공부시킬 생각만 하면 눈

앞이 깜깜해졌는데,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21성덕의 빛

팔악의 수 에서 팔선의 생방길로— 이제는 사방팔방 둘러봐도 고마운 사람들뿐

김 명 자•안동교구 주원 / 교화사

Page 24: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참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이 길이로구나.’, ‘그

래, 이 길을 가야만 똑바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 길을 가려

면 마음 가운데 미움이란 단어조차 지워 버려야 되

는데, 참으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마음과 씨름도 많

이 하 습니다. 혼자서도 마음으로도 미워하지 않

으리라고 다짐하여 보았지만, 딱 마주치면 또 올라

오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내가 가야 할 길에 장애

물이며 걸림돌이라며 반성하고 또 했지만 참으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온 집안이 살얼음을 딛고 살아가는 것과도 같았

습니다. 시동생 내외는 안 올 수는 없고 집에 오면

제 방 곁에는 얼씬도 못했습니다. 시동생 아들애가

참으로 잘생기고 예쁘지만 제 눈치 보느라 한 번 안

아 주지도 못했고, 안고 있다가도 저만 보면 얼른

내려놓았습니다. 둘째 동서는‘형님, 저는 저 아이

백일에 가야 될지 안 가야 될지 모르겠어요’하며,

제 눈치를 보곤 했습니다. 저로 인하여 참으로 살얼

음판 디디듯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이해하려다 다시 미워지는 마음 속

씨름이 반복되었습니다.

하루는 회장 선생님께, ‘선생님, 저의 이런 마음

을 가지고 교화원에만 나오면 뭐하겠습니까?’라고

하니, 회장 선생님께서‘그러면 기계가 고장이 나야

만 고치러 가지. 고장 안 난 기계 가지고 고치러 가

는 것 봤습니까’하셨습니다.

그 말 에‘아, 맞는 말 이로구나. 고쳐야겠구

나. 힘들고 공이 들더라도 꼭 고쳐야겠구나’생각되

었습니다.

이렇게 몇 해 동안 속으로의 씨름을 되풀이하다

가 특별 공부 준비를 교화원에서 하고 있는데, 그렇

게 밉기만 하던 시동생 내외 생각이 나면서, ‘그 사

람들인들 무슨 죄가 있겠는가. 본의 아니게 빚어진

불행으로 인하여, 남들은 신혼생활에 깨가 쏟아진

다 하는데, 참으로 안되었구나’생각이 들고, 저의

온 몸에 짜릿한 기운이 전하여지던 것입니다.

‘아, 선생님들께서 도법이 실존한다 하시더니 맞

구나. 내 입으로 말을 한다 하여도 저 사람이 들어

야만 알 수 있는 일인데…. 생각만 하 을 뿐인

데….’그때부터 저는 더 열심히 닦고 고쳐야겠다고

각오가 섰습니다.

그렇게 저 나름대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

간다고 했지만 네 아이를 홀로 키우기란 참으로 힘

들고 어렵기만 하 습니다. 남자가 하는 일, 여자가

하는 일 가리지 않고 살았지만, 때로는‘고생만 한

이 집에서 돌아서 버릴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

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제가 돌아선 상태에서 지지

리도 고생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에는 우연히 그런 꿈이 꾸 겠지 하 었는데, 같은

자리 같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두 번 세 번 꿈 속에

서 얼마나 힘이 들던지, 꿈에서 깨어나 무릎을 꿇고

앉아 줄줄이 반성하 습니다.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습

니다. 그때“수원막결( 怨莫結) 거래난피(去걐難

避)”란 법문이 생각나며 깨달아지던 것입니다. 자

신의 숫자는 도망간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풀

어 나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힘이 들어도

세 가지 목표를 세워 놓고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첫째는 아이들을 어질고 착하게 키워 다른 사람

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키워 놓을 것, 둘째는 이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신 시부모님께 효다운 효

행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셋째는 바르게 살도

록 이끌어 주신 성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교화 중

생 활인할 것.

22 2012·5 / 6

Page 25: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그 세 가지 목표를 세워 놓고 때로는 제 몸과 마

음이 흔들릴 때마다‘이래서는 안 된다’고 채찍질

하면서, 저의 목표를 실천하기 위하여 마음을 다시

다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때인가는 저 자신이 산 중턱에 서서‘내려가

려 해도 힘이 들고 올라가려 해도 힘이 들지만, 내

목표가 저 정상이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목적지

를 향해 올라가리라’생각했습니다. 너무너무 힘이

들 때면, ‘바로 믿고 행한다면 못 이룰 것이 없다고

하셨고, 난관지돌파(難關之突破)면 평화지대도(平

和之大道)라고도 하셨으니 이겨내자’다짐하면서,

때로는 누구에겐가 기대고도 싶고 의지하고도 싶지

만 입술을 깨물면서 견뎌내었습니다.

때로는‘꼭 이렇게 살아야 하겠는가’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건강을 주시니 이렇게 할

수가 있지’하며 저 스스로를 위로하고, ‘나 한 사

람이 노력해서 네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후회하지 않으리라’다짐하면서 살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

습니다. 제 어깨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제는 첫째 딸아이는 간호사로, 둘째 딸아이는

유치원 선생으로, 셋째인 아들은 모 회사 대리로,

넷째인 아들은 체육 교사로 각각 제 일자리를 찾아

서 잘 살고 있습니다. 저의 첫째 목표대로 어질고

착하게 성장해 주어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는 아이

들로 커 주었습니다.

대덕의 은혜로 이렇게 잘 키워 주셨으니, 이제 부

모님께 효행하는 것과 교화 중생 활인하는 것이 저

의 남은 목표인데, 부족한 저 자신 효다운 효를 못

하고 있습니다.

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하시는 것을 보면서

마음에서 삐죽이 올라올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은

저의 근본임을 잘 알면서도, 또 자식은 그 열매임을

잘 알기에 반성하고 또 하여 보지만 잘 되질 않습니

다. 이것이 저의 숙제인가, 시험인가 생각도 하여

봅니다.

심지 밭을 옥토로 만들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팔

악지심이 많습니다. 자꾸자꾸 그 뿌리를 뽑아 버려

서, 꼭 저의 두 번째 목표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겠

습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제가 되겠습

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성덕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시

동생 내외와도 맺고 또 맺으면서 살았을 테고, 그러

면 제 자식들한테까지도 그 악함을 심어 주지 않았

겠는가 싶습니다. 제가 그들을 미워한다고 죽은 남

편이 돌아올 리도 없는데 말입니다. 성훈의 가르치

심대로 인간고를 풀고 나니 시동생 내외가 저한테

잘하여 주어서 좋고, 가정이 화목해져서 좋고, 아이

들을 악이 아닌 선으로 가르쳐 좋습니다. 성덕이 아

니었더라면 이런 인간 고애를 어떻게 풀 수 있었겠

습니까.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지만, 제가 원하는 하

나하나가 다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명절이 되면 여러 남매가 모이니 집이 작아서 큰

집을 원하 는데, 그것도 자식들과 시동생 형제들,

친정 아버지까지 도와 주셔서, 집을 리모델링하여

이층집으로 고쳐서 필요한 것 갖춰 놓고 보니, 이제

는 부러울 것이 없답니다.

제 주변에 그렇게도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뿐이던

것이, 이제는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뿐이랍니다.

팔악의 수 에서 허우적대며 살았을 저 자신에게

팔선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신 성덕의 은혜에 진심으

로 감사 드리며, 이제 저 자신도 이 땅에 성덕의 가

르치심을 펼치시는 그 대열에 서서 주어진 한 몫을

단단히 하며 살고 싶습니다. 도덕으로 성공할 수 있

는 수양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닦고 고치겠습

니다.

23성덕의 빛

Page 26: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제가 입도하여 수양한 기간은 30여 년 되었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는, 시가와

친가 어느 한 쪽도, 그리고 친구 중에도 한 명의 도

생이 없는 환경 속에서 혼자만이 외롭게 공부를 시

작하 습니다. 그러던 중에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가정 경제에 어려움이 생겨, 십여 년 간 공

부를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대문 밖 세상을 잘 모르던 제가 발바닥이 닳도록

뛰면서 살아야 했던 시간들…. 그런 지난날을 뒤돌

아보면서, 어리석은 생각과 탐욕을 부리며 살아온

것을 참으로 많이 반성하 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기강줄을 놓지 않고 시간을

내어 공부 자리에 참석을 하 는데, 그즈음 부부가

함께 공부하는 도생님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

는지 모릅니다. 자신에게는 언제 그런 날이 올까 하

고 수없는 물음표를 던지면서….

그러나 마음으로 다짐을 했지요. ‘내가 열심히 공

부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고 많은

세월이 지난 후, 기대 이상으로 가정 경제가 회복되

었고, 잃었던 꿈과 희망을 다시 찾았으며, 바라고

바라던 공부 자리에 자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천보의 은혜(교화사 자격 배수)를 받던 해에는 처

음으로 새집을 마련하여 온 가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 고, 남편도 승진을

하고, 딸들은 취업을 하거나 대학에 진학하는 등,

좋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야속하다 할 만큼 상상

도 못한 일이 있었으니, 최신의 의술로도 장담할 수

없는 무거운 티끌로 고생을 했던 일입니다. 그것도

13년 동안에 한 번도 아닌 두 번을…. 참으로 참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은혜는 참으로 컸습니

다. 처음 티끌로 고생 중일 때는 병간호를 하던 남편

과 두 딸이 입도를 하 고, 참으로 감사하게도 저는

건강을 회복하여 13개월 동안에 세 딸을 결혼시켰

습니다. 그리고 제가 교화원 화목상조회 일을 4년

간 맡아 보는 동안, 남편은 교화사 자격을 배수하

고, 두 딸은 교화생 자격을 배수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대덕의 은혜가 감사하 습니다.

그런데 그 후 건강 검진을 하러 갔다가 두 번째로

티끌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자신감

을 잃은 채 그 상실감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성도사님께서 전화 통화로‘포기하지 마라’는 교화

말 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 한 말 은 제게 참으

로 큰 힘이 되어 다시 마음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24 2012·5 / 6

성덕의 힘으로 새 삶 얻어— 법명을 배수하고

이 의 수•대전교구 대전원 / 義恭智

Page 27: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그 후로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티끌과 싸우는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그리고 깊

은 반성을 하 습니다.

그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의 힘 즉 사람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위대

한 성덕의 힘’이었습니다. 그 깨달음을 얻었을 때,

새롭게 신비로운 느낌과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났습

니다.

지난해 사주입법일 행사 때 법명을 내려주신다는

소식을 책임 선생님으로부터 듣는 순간 꿈만 같았

습니다. 평소에 그러한 기대를 전혀 해본 일도 바란

일도 없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동짓달 스무닷샛날, 법명 하달식 때 도주님 법주

님 존 을 모신 성법전에서‘법명 의공지(法名 義

恭智), 본명 이의수(本名 굃儀壽)’라고 호명하시는

순간,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듯한 기운을 느꼈으며,

참으로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귀한 법명을 배수하 으니, 내려놓을 것

내려놓고 가질 것만 꼭 가지고, 법을 신중히 여기고

실천 잘하여, 성덕을 빛낼 수 있는 도생이 되도록

수양 잘 할 것을 마음 깊이깊이 다짐합니다.

25성덕의 빛

■ 시

정 복 동•대전교구 청양원/교화사

핏기도없는마른가지마다

봄을알리는열림이있다

뼛속에힘이있는가

땅속에심장이있는가

코없는데숨을쉬는가

딱딱한문을이고어둠속에서

연하디연한머리로

철문을깬다

하얀눈속에서

수선화어린새싹이

봄을열고나온다

해님은봄을안고오는데

바람은쌩쌩

겨울을업고가기싫은가보다

늙은이솜잠바언제벗길까

Page 28: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봄꽃이 방긋방긋 웃는 듯 고개를 내 고, 생동감

을 느끼게 해주는 나무들이 연초록의 싹을 틔웠습

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제 눈으로 다시 보게 되

고 제 코로 향기를 맡으며 온 몸으로 환희를 느낄 수

있는 현실에서, 또다시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아 납

니다.

저기 꽃들도, 저기 새싹들도 지난해 피고 졌다가

새봄이 오니 다시 피는데, 한 번 떠난 사람은 다시

는 곁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있을 때 잘 하라는 지

극히 평범한 말 또한 다시 새겨 보게 됩니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월!

자연이 선사해 주신 이 아름다운 봄의 향연을 마

음에 가득 담으며, 몇 년 전 일을 떠올려 봅니다.

6년 전 이맘때쯤의 일입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과 산에 나물을 뜯으

러 가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봄의 향기를

흠뻑 마시면서, 모두들 소녀 같은 마음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한적한 시골길을 신나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떻게 손을 써 볼 사이도 없이

우리가 탄 차는 낭떠러지 아래 깊은 물 속으로 떨어

지고 있었습니다. 저수지로 빠진 차 속에서 저와 동

행했던 지인들은 살기 위해 아우성을 쳤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물 속에서 허

우적거리며, 구조가 될 때까지 정신을 잃지 않으려

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다행히도 지나다니는 차에 발견되어 구조되었고,

긴급하게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렇게 목숨을 부지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함께 했던

지인들은 회생하지 못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불가항력의 일이었지만 저는 혼자만 살아남았다

는 죄책감과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힘

들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먼저 가신 고인들의 몫까

지 열심히 살아야 하고, 앞으로의 시간은 저에게 주

어진 제2의 삶이라 생각하며 지금에 이르 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성덕의 은혜가 계셨기에 오늘

의 제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살려 주신

크신 은혜를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평생을 보은하며 살겠다는 그 간절함도 시간에

묻혀 무디어 갈 때쯤인, 작년 사주입법일 행사를 앞

둔 때 습니다.

26 2012·5 / 6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며— 법명을 배수하고

김 경 숙•대구교구 대구원 / 昌蘭智

Page 29: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법명 하달식이 있을 예정이니 행사에 참석하라’

는 책임 선생님의 말 을 듣고 바쁘게 준비를 해서

본원으로 향하면서, ‘내가 과연 법명을 받을 만큼

신심과 성심을 다해 열심히 공부하 는가’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6년 전 다시 살려 주신 이 목숨,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성덕 받들면서 열심히 공부하겠노라 하 지

만, 은혜에 비해 늘 실천이 부족한 제 모습이 부끄

러워 죄송한 마음만 가득 차올랐습니다.

성법전에서 청심주 독송을 하며 반성을 하고 있

는데, 순간 제 머리에 무엇이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설 수도 없고

손을 대기도 어려워서 가만히 앉아 마음을 모으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느낌은 사라지고 신

비스러운 기운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참으로 감

사했습니다.

교구별로 줄을 서서 제 차례가 되어 법명을 받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많은 반성과 많은 다짐

들이 교차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법명 배수에 대한 연락을 받은 후 남편에게 와 줄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남편은 흔쾌히 승낙

하 고, 법명 배수일에는 축하 꽃다발을 사가지고

와서도, 다른 도생님들에겐 꽃다발이 없는데 혼자

가져가면 피해 준다며 차 속에 두고 온 배려심 많은

저의 남편입니다.

본원에 도착하여 서로 만나는 순간 제 마음은 참

으로 기뻤습니다. 남편은 같이 수련 공부를 하지 않

습니다만, 늘 저에게 공부 잘 하고 청심주 많이 불

러야 한다며 저를 응원해 줍니다. 남편과 기념 촬

도 함께 하며 축하를 받으니, 20대 청춘에 만나 40

년이 지나도록 함께한 시간들이 생각나 흐뭇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음력으로 11월 26일은 사주입법일 행사일이자 제

가정사로는 시어머님 기일입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머님 임종 시에 제 손을 꼭 잡으시며 하시

던, ‘도덕 공부 열심히 하라’는 유언을 되새겨 보았

습니다.

그날 밤 정성스레 제사를 지내며 남편과 친지들

의 양해를 얻어, “어머니! 제가 오늘 창란지(昌蘭

智)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라며 잔을 올렸습니다.

또다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신 성덕의

은혜!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 열심히 닦고

고쳐서 후회하지 않는 자신이 되기 위해 수양 잘 하

겠습니다.

대덕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27성덕의 빛

▲ 본원 낙성 축하 휘호작가 노상동 / 기증 허노목 변호사

Page 30: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어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교화원에 다니면서, 학

창 시절엔 수련 강좌에 다니면서 자연스레 성덕도

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두 아

이 엄마로서의 결혼 생활과 직장 생활로, 또 저의

게으름 때문에, 그리고 간절함이 없다는 이유로, 제

마음에 뿌리내리지도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습

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는 어머니가 공부하러 다니시는 동안 묵묵히 뒤에

서 어 주셨습니다. 평생을 성실하게 농사지으며

6남매 키우시다가 일흔의 연세가 되어서야 겨우 여

유를 갖고, 제성일이면 오토바이 뒷자리에 어머니

를 태우시고 다정하게 공부하러 다니셨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요즘은 정말 행복하다’고 하

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가장 행복

해하셨던 그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아버지

의‘말기 암’이라는 진단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돈독하셨던 두 분이었기에‘3개월

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도,

항암 치료와 어머니의 정성 어린 간호를 받으시며

아버지는 3년을 더 사셨습니다. 자식인 저는 아버

지께 아무 것도 해 드릴 게 없었지만, 성덕의 기운

은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암의 고통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없애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그동안 고마웠다’는 말

을 남기시고, 성덕이 있으니 외롭지 않을 거라 믿

으시며 편안히 눈을 감으시는 것을 보며, 저는 대덕

의 큰 은혜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금년 특별 공부에 참석하기 위해 도덕경을 외우

고 법문을 배우면서 참으로 많은 뉘우침이 있었습

니다. 그리고 2박 3일 본원 특별 공부 자리에서, 부

모님의 은공으로 맺어 주신 성덕과의 인연을 소중

하고 감사하게 여기지 못했던 점, 아버지께서 돌아

가실 즈음에야 뒤늦게 깨닫게 되어,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좀 더 표현하

지 못한 것이 깊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또한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바쁘게

달려온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니, 물질에 이끌려 욕

심으로 지낸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성법전에서 지

난날들의 잘못된 점을 깊이 반성하 습니다.

이번 특별 공부에서는 연세 높은 도생님들도 많

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의 반성 공부를 보면서, 한평

생 성덕의 진리와 함께하신 그분들의 공덕에 참으

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그런 도생님 한 분 한 분

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날 성도사님께서‘마산교화원의 젊은

도생님들이 힘을 합쳐서, 교화원에서 더 많은 도생

님들이 활기차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

의 말 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결심을 하 습니다. ‘특별 공부를

통해서 깨닫고 느끼게 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

기’, ‘교화원의 여러 선각 선생님들과는 성덕으로

맺은 인연 소중하게 여기기’, ‘제성일에는 다른 무

슨 일보다 교화원에 나가서 공부자리 지키기’, ‘성

덕 발전을 위한 일에는 정성을 다하기’등입니다.

자신과의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28 2012·5 / 6

자신과의 약속

이 미•마산교구 마산원 / 교화생

Page 31: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먼저, 많이 부족하지만 성덕의 은혜와 가호로 이

번 특별 공부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진심

으로 감사 드립니다.

2박 3일 동안 진정성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교화

말 을 해주신 성도사님, 도무원장님, 여러 선각 선

생님들, 그리고 자원 봉사를 해주신 선생님들께 진

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3년 전 그 자리에서 자신이 교화생의 자격을 배수

할 때, ‘더욱더 수양에 매진하며 마음의 천보를 소

중히 잘 가꾸고, 더욱더 깨끗하고 빛나게 각자의 믿

음을 지켜 나가라’하신 가르침을 잊을 수 없었습니

다. 아니,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저의 속성인 아상

과 인간심에 다시 이끌려, 하루하루를 후회하며 어

리석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특별 공부를 통해서 뒤돌아보니, 그 보배 지

키기를 너무나도 소홀히 했다는 것에 스스로 깊은

반성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경계 말 으로 다시 한번 귀한 가르

침을 주시고, 앞으로 제가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할

수양하는 마음 자세와 성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

신,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성스러운 덕화의 이 길을 몰랐다면, 저 자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어리석음으

로 죄를 짓는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자

신을 생각해 보면….

깨끗했던 마음이 티끌 묻은 마음으로 변하는 것

은 한순간이요, 한번 더러워진 마음을 천성(天性)의

착한 성품으로 되돌리는 데는 엄청난 힘이 들고, 그

만큼의 고통도 따른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잠시도 기강심(紀綱心)을 흩트리지 말고 자성반

성(自性反겛)과 청심주(淸心呪) 독송을 생활화해

야 된다는 것을, 이번 특별 공부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되새길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습

니다.

앞으로 깨끗하고 빛나게 닦아 온 마음의 보배를

다시는 더럽히지 않고, 항상 기강을 세워서 수양할

것을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 좋은 공부,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 되는 이 소중한 공부, 성덕의 가르침의 이 공부

를 세상에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그런 도생이 되도록,

온 힘을 다해 실천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29성덕의 빛

성덕의 가르침 널리 알리는 도생 되게— 특별공부 다녀와서

서 효 일•서울교구 등포원 / 교화사

Page 32: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30 2012·5 / 6

壬굪年春享大祭奉궋

본원에서는 지난 3월 24일(음 3월 3일) 임진년 춘

향대제(春享大祭) 봉향례를 올렸습니다.

이날의 제례에는 전국의 교직자와 도생님들 350

여 명이 참례하 는데, 月根 선생님과 法海 선생님

께 올리는 초헌례(헌관 : 聖道師님)에 이어, 네 분

사주 선생님께 올리는 차헌례(헌관 : 敬英智 선생

님), 교화 중생 활인에 이바지하신 교직자 및 도생

님들께 올리는 차헌례(헌관 : 香玉智 선생님)의 순

으로 봉행되었습니다.

2012년도상반기본원교육모두마쳐

2012년도 본원 상반기 교육을 모두 마쳤습니다.

지난 3월 12일∼15일의 일선교직자 교육을 시작

으로, 3월 30일∼4월 1일까지 상조회 회장·부회

장·총무 교육이, 4월 6일∼8일에는 교화사 1차 교

육이, 4월 13일∼15일에는 교화사 2차 교육이, 4월

20일∼22일에는 교화생 교육이 있었습니다.

상조회 회장·총무 교육에는 300여 명, 교화사 1

차 교육에는 350여 명, 교화사 2차 교육에는 130여

명, 교화생 교육에는 120여 명의 도생님들이 참석

하 으며, 교육 프로그램은 청심주 독송 위주의 공

부, 도덕경 봉독, 성도사님과 책임 선생님의 강의,

소감문 작성, 소감 발표 등의 시간으로 진행되었습

니다.

2012년도특별공부모두마쳐

지난 2월 17일부터 시작된 2012년도 본원 특별

교육은, 3월 4일까지 열린 3차 교육으로 모두 마치

게 되었습니다.

1차, 2차 교육에 이어 지난 3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린 3차 교육에는, 본원·대구·대전·마산·진

주·전주교구에서 참가하 으며, 교화사 22명, 교

화생 13명이 각각 자격을 배수하 습니다.

3차 교육에서의 자격 배수자 명단은 아래와 같습

니다.

▶ 3차(본원·대구·대전·마산·진주·전주 교구)

① 교화사 자격 배수자(22명)

·갏保賢(대구·대구) ·갏惠仙(대구·대구)

·南相姬(대구·대구) ·갏榮玉(대구·대명)

·徐宣敏(대구·경산) ·갏會允(대구·하양)

·崔潤恩(대전·대전) ·宋順德(대전·금당)

·굃厚根(대전·청양) ·갏在괟(마산·마산)

·굃允淑(마산·마산) ·갏順禮(진주·진주)

▲ 예를 올리는 성도사님과 도생님들

▲ 교화생 교육 수료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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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성덕의 빛

·姜任壽(진주·진주) ·갏永喜(진주·곤양)

·朱順子(진주·진교) ·갏福곸(진주·진교)

·徐仁順(진주·남해) ·高今곸(진주·남해)

·愼겵淑(전주·거창) ·갏順善(서울·인천)

·갏平淇(부산·구포) ·괤順南(광주·광주)

② 교화생 자격 배수자(13명)

ㆍ갏곝姬(본원) ·曺元子(대구·대구)

·趙美玉(대전·대전) ·朴尙俊(마산·마산)

·黃点곞(마산·마산) ·굃永美(마산·마산)

·諸銀永(마산·마산) ·괤貞熙(마산·합천)

·괤美姬(진주·진주) ·굃明淑(전주·전주)

·갏次男(전주·남원) ·朴壬順(전주·거창)

·高昌韓(서울·서울)

안동교구합동공부

—권기창 교수의‘종교 타운’브리핑도

안동교구(책임교화사 : 淸香智·金吉子) 안동원

에서는 3월 4일 교구 내 도생님들이 모여 합동공부

를 하 습니다.

이날 공부에는 많은 도생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강당에서 열렸는데, 책임 선생님께서는 법문의

말 “일인정각(一人正覺) 만인교화(萬人敎化)”의

뜻을 풀이해 주시면서, ‘우리는 막연히 성덕도의 발

전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도덕경의 가르치심대로

잘 실천하고 교화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라는

요지로 교화해 주셨고, 이어서 본원 특별 공부에서

교화사·교화생 자격을 배수한 도생님들의 소감 공

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날의 공부에서는 특히 안동대학교 권

기창 교수님(안동원 도생)께서 안동교화원 인근

에 조성될‘종교 타운’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에

대해 브리핑을 해주시어, 도생님들의 이해를 돕고

교화 사업 발전을 위한 의지를 드높이기도 하 습

니다.

(안동교구기자 : 서정희)

후원에 감사 드립니다

성덕도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후원 기금 마련을 위한 계좌를 개설한 이래, 그동안 정성을 다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향후 기금이 더 확보되면 실질적인 보양원 후생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오니, 아래의 방법으로

후원금 조성에 동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 방법 : 무통장 입금 또는 계좌 이체

•계좌 번호 : 우체국 310813-01-006607(예금주:성덕도 보양원)

농 협 417-12-210057(예금주:장세림)

聖德道 道務院 福祉部

Page 34: 2012 Light Of Seongdeok (May-Jun)

32 2012·5 / 6

(비매품)

1⃞ 논단·시론·칼럼·수양 소감·생활 체험기 등

2⃞ 문예 창작 : 시·시조·수필·기행문·편지·일기 등

3⃞ 제언 : 도덕 정신 앙양을 위한 제언·의견

4⃞ 교화원 소식 : 각 교화원 행사 동정 및 청소년도우회 소식

(성덕도 본원 및 교구별 취재기자)

745-802 경북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 산1번지 성덕도(편집실)

TEL : (054)559-2005∼7, FAX : (054)559-2008

E-mail : [email protected]

보내실 곳

교구별 취재 기자 연락처

본 원 英仁智 054-559-2005

서울교구 和곞智 010-2003-0594

부산교구 有生智 011-593-2841

대구교구 이석장 010-3542-1270

광주교구 배병옥 010-8432-5721

대전교구 조현수 011-435-6851

마산교구 한경신 010-5087-8191

청주교구 박지 010-5191-6617

전주교구 조득철 011-9644-5546

진주교구 제두상 010-3131-4687

강릉교구 善景智 010-3024-8705

안동교구 서정희 010-5767-1423

월교구 조유자 010-9555-6302

중앙도우회 권대현 010-8854-9284

『성덕의 빛』창간 20주년을 축하합니다

■ 다음호인 188호(2012 7/8호)에는 도덕

경의 법문‘自心自戒 自性自覺(p77)’과

‘ 心 (둥근마음) 찾읍시다(p43)’를 주제

로하며, 그외‘자유주제’의다양한원

고를 기다립니다. 교직자와 도생님들의

많은 투고 바랍니다. — 편집실

天 安 院 굟 갏 順 天 安 院 金 錦 日釜 山 院 黃 琇 珍

釜 山 院 姜 大 浩 龜 浦 院 鄭 榮 淳龜 浦 院 黃 慧 映

龜 浦 院 굃 鍾 元 龜 浦 院 이 하 림 龜 浦 院 黃 斗 珍

龜 浦 院 최 나 래 仁 川 院 全 珍 秀 仁川院 和睦相助會

(貞良智) (忠現智)

(春善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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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의 빛’갤러리 36 서예

아람 굃 漢 順 Lee Han Soon

•한국미술협회 서예부문 운 위원, 심사위원

•세종한 서예 큰뜻모임 회장, 명예회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 갈물서가회장

•추사 김정희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

•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 역임

•2002 한일월드컵기념 필묵정신전, 태묵전출품

•2003∼ 전북세계서예비엔날레 다수 출품

•2005, 2008 서울서예비엔날레 특별전 출품

•2006 하이서울세계서예축제 초대 출품

•2006 한국여성원로 5인초대전(물파스페이스)

•2007 국제태묵북경전, 태묵동경전 출품

•2008, 2010 북경국제서법비엔날레 출품

•2010 한 폰트이한순 서체 발간(이화출판사)

•2010 외솔(최현배)회 '외솔상'(실천 부문) 수상

•2010 가와바다문학관(오사카) 서예 국제대상

無量淸靜正方心

다善生됩시다

國家를살리는것이니라

家庭을살리는것이

한家庭을살리는것이요

내가나를살리는것이

내가나를살리는것이요

사람은準備와經濟하는것이

없으면經濟할수없느니라

없으면準備할수없고

있을때에經濟하고

있을때에準備하고

經濟굊致

봄꽃들의 향연 ⓒ 손선화

성덕명심 도덕경 27∼29면

<父母恩惠> 전문

(

自性反겛聖德明心道德經

-

面)

66×130cm, 2012년 작

47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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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성덕의 빛 / 통권 제187호 聖紀61年 2012년 5월 1일 발행 Vol.187

ISSN 1228-1212지우(知友)끼리 수백 리를 격하여 살아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더라도 그

사이에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수백 리 밖에 있어도 항상 곁에 있는 것처럼 가

까이 느껴지고, 수년 만에 만나도 항상 함께 있어 온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인 것이다. 서로를

믿어 주고, 지우로서의 따사로운 정의를 서로가 언제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천리를 격해 있

고 몇 해 만에 만나도 항상 지척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정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두터운 우정이랄까.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부부 사이의 경우에서의 한 예를 들어 본다. 부부 사이란, 이 세

상에서의 그 어떤 인간 관계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부부 사이에서도 거리

감이 생기는 수가 있다. 어쩌다 말다툼이라도 했을 경우, 또는 오해로 인한 원망 같은 것이 생

겼을 경우에는, 한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남처럼 여겨지고 만나기도 싫어지곤 한다. 그것이 일

시적인 현상이긴 해도, 어쨌든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기대감이 채워지지 않는

데서 온 신뢰감의 약화 때문이라 한다.

성훈에 말 하셨다. ‘정신행도 천리지척(正信궋道 千里咫尺), 불신불행 지척천리(겘信겘궋

咫尺千里).’바로 믿고 도를 행하면 천리 밖에 있어도 지척에 있듯 가까이 느껴지고, 믿지 아

니하고 도를 행하지 않으면 지척에 있어도 천리 밖에 있는 것처럼 멀게 느껴진다는 말 이다.

앞에서 두 가지 경우에서의 예를 들었지만, 이 말 을 종교 신앙 생활에서의 자세에 연결시

켜 생각해 보면, 그 뜻의 보다 깊은 일면을 깨닫게 되는 바 있게 한다.

종교 생활이란 곧 신앙 생활이다. 종교 생활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는 신앙심이다. 신앙심 없

는 종교 생활이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신앙심이 없으면, 아무리 진리 종교의 가르치심을 매일같이 배워도, 그 가르치심이 가슴에

와 닿질 않는다. 그냥‘좋은 말 이긴 한데…’라는 정도에서 그치고 만다.

신앙심이 없어 가르치심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을진댄, 사람으로서 그 가르치심대로 행해야

한다는 필연적인 사명 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생활 모습에서도 개선이나

진취적인 변화가 있을 수 없게 되며, 종교 자체의 궁극적인 목적인‘구제 해탈’의 은혜도 못

입게 된다. 곧, 불신불행 지척천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중략〉

어떻든,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그 가르치심이 그만큼 가까이 느껴지게 되고, 또 그 가르치심

이 바로 자신이 필연적으로 행해야 되는 것임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정신행도 천리지

척’이 되는 것이다. 〈후략〉

—〈성덕의 빛〉제18호(1993년 6월호)에서

法文을 읽고

正信궋道 千里咫尺

맑고 고요하고 바르고 둥근 마음을 찾아가는 _ 수양 전문지

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