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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토론회 | 201547(화) 16:00~18:00 | 경기도교육연구원 대강당 | 경기도교육청·(재)경기도교육연구원 5경기교육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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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토론회일 시 | 2015년 4월 7일(화) 16:00~18:00장 소 | 경기도교육연구원 대강당

    주 최 | 경기도교육청·(재)경기도교육연구원

    제5회경기교육포럼

  • 인 사 말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당시의 충격과 슬픔, 분노는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합니다.

    이제부터는 참사의 실체는 잊지 않되, 일상적인 실천을 고민하면서, 우리의 삶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토론회는 그런 고민의 차원에서 마련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교육을 조망하고, 새로운

    교육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고민하자는 취지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교육계에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참사 그 자체가 바로 교육적 텍스트입니다.

    따라서 참사에 함축된 의미를 날카롭게 읽고 새로운 교육질서를 고민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교육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 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사를 잊지 않는 일이고, 또 교육적인 치유가 될 것입니다.

    한국교육의 문제는 한 둘이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패배적인 인식도 넘칩니다. 그렇다고

    희망을 찾는 질문까지 접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복잡한 문제가 무기력과 무감각의 핑계일 수는

    없습니다. 반성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기력과 무감각은 교육적 역주행과 같습니다.

    따라서 ‘좋은 교육’이란 어떤 교육인지, 이런 교육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지를 되묻고 상상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새로운 교육형식을 그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가 질문하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 그리고 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 토론회가 그 출발점이 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인사 말씀에 가름합니다.

    2015년 4월 7일

    경기도교육청 이 재 정 교육감

  • 제5회경기교육포럼

    4·16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토론회

    • 일 시 | 2015. 4. 7(화) 16:00~18:00

    • 장 소 | 경기도교육연구원 대강당

    • 일정표

    16:00~16:10 [인사말] 이재정_경기도교육청 교육감

    - 좌장 : 윤승유_경기도교육연구원 정책기획부장

    16:10~16:25 [제1발제] 이수광_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세월호 참사가 던지는 교육적 질문과 조응 과제”

    16:25~16:40 [제2발제] 김성천_경기도교육청 정책기획관 장학사

    “4·16교육체제에 관한 고민과 제언”

    [토 론]

    16:40~16:50 ▪ 학생 양지혜_중산고등학교 3학년

    16:50~17:00 ▪ 학부모 박은진_혁신학교학부모네트워크 대표

    17:00~17:10 ▪ 교원 안순억_운중초등학교 교감

    17:10~17:20 ▪ 시민사회단체 이찬승_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17:20~18:00 [청중 토론 및 제안]

  • [제1발제] “세월호 참사가 던지는 교육적 질문과 조응 과제”

    이수광_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제2발제] “4·16교육체제에 관한 고민과 제언”

    김성천_경기도교육청 정책기획관 장학사

    [토 론 문]

    양지혜_중산고등학교 3학년

    안순억_운중초등학교 교감

    이찬승_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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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제1발제

    세월호 참사가 던지는 교육적 질문과 조응 과제

    이수광�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 무엇을 직시할 것인가?

    “세월호 앞에서는 모든 말길이 끊어진다. 묵묵히 그분들 곁에서 봉사하는 무명(無名)의 헌신만이 빛나거늘, 침묵이 예의다. 그럼에도 벌거벗은 대한민국, 이 야만의 시간을 직시하는 것도 살아남은 자의 피할 수 없는 책무”(최원식, 창비주간비평, 2014.4.30.)

    문학평론가의 표현이 적확하다. 세월호 참사는 말로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분노다. 그러기에 당대 20, 30, 40대들은 세월호 참사를 광복이후 최대 사건으로 꼽는다(한겨레신문, 2015). 그도 그럴 것이 세월호 참사의 충격은 상상을 훌쩍 뛰어 넘는다. 많은 이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사후에 ‘들은 것’이 아니다. ‘들은’ 게 아니라, ‘읽은’게 아니라, 앉아서, 서서, 실시간으로 ‘봤다’”(김애란, 2014). 그렇게 그 참사를 ‘봤던 사람들’의 분노와 원망, 무기력과 절망, 죄책감과 슬픔, 연민과 동정이 응축되어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사회적 재난으로 기억한다. 배에 탔던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의 보편성을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인다. 참사를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가 어딘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혹자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체제의 무력, 타자의 위험을 방관하는 세력의 비행, 죽음으로부터 약자를 구제하기에 애당초 너무나 무력한 국가의 공백을 목격했다”고 고백한다(전규찬, 2014: 152). 세월호를 체제 모순이 집약된 최악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일각에서 ‘뭔가 잘못된 줄은 알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말도 안 되게 망가져 있을 줄은 몰랐다’는 자책과 반성의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나라가 망했다. 둘러앉아 토론하자’며 사회재구성에 대한 강한 의지가 표현된 것1)도 이런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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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 맞닿아 있다(한겨레신문, 2014). 세월호 참사는 교육문제를 호출한다. 희생자 중 학생들이 절대 다수라는 점에서,

    특히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과 이를 따르던 학생들의 비극적 희생이라는 점에서 교육문제를 전면적으로 되짚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다양한 방식으로 또 각자의 처지에서 교육과 삶을 성찰했다. 제출된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는 학생들이 어떤 존재로 성장하길 기대했는가? 학생들에게 어떤 인생관을 심어주었는가? 어떤 삶을 ‘좋은 삶’이라고 가르쳐 왔는가?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를 강조했는가? 왜 그토록 경쟁하도록 몰아가는가? 왜, 학생들의 삶의 왜곡 문제에 대해 그토록 무감각한가? 이런 무감각을 당연하게 만드는 조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기성세대 교육 인식소(認識素)에는 어떤 시대착오가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단박에 정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질문의 대상이나 범위도 명쾌하기 쉽지 않다. 해법은 더더욱 그렇다. 교육계는 복잡계(complex systems)다. 교육은 전체 사회구조의 역학(力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물론 ‘역사사회적 자장’(磁場)도 교육에 크게 영향 미친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도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생존적 가치(survival values)나 민속적 지식(folk knowledge)을 중심으로 교육적 행위를 한다. 그렇기에 질문을 풀어가는 일이 간단치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이 질문들을 직시해야 한다. 새로운 교육을 열어가는 길이 치유이자 책무이다. 슬픔과 분노의 무게만큼 교육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질문하고 되짚어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사회적 이슈 이전에 교육적 텍스트다.

    2. 되짚고 싶은 몇 가지 질문

    세월호 참사는 모든 방면의 부실과 무책임과 한심함의 결정이다. 어느 한 영역의 파탄이 아니다. 각 영역이 얽히고 설켜서 공모한 ‘체제적 사고’의 성격이 짙다. 교육도 예외일 수 없다. 오랜 시간 누적돼 온 교육적 왜곡과 맞물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껏 교육은 특정 가치의 삶이 선호되도록 이루어져 왔다. 이런 문제의식에는 우리의 교육체제가 어떤 성격인지, 이대로 지속해도 좋은지에 대한 ‘큰’ 질문이 내재한다.

    1) 2014년 7월 18일 시민행동프로그램으로 ‘노란테이블’이 운영되었고, 이 자리에서 세대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함께모여 세월호의 진실이 무엇인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토론되었다. 이 자리에서 문제의 원인으로는 ‘공동체의식의 부족’, ‘돈과 물질에 대한 집착’, ‘부정부패’ 등이 지적되었다고 한다(한겨레 신문, 2014.7.20.)

  • [제1발제] 세월호 참사가 던지는 교육적 질문과 조응 과제 7

    당대 교육체제의 성격을 한마디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적 요소를 부각시키는 차원에서 살핀다면, ‘승자 지배체제’의 성격이 짙다. 장은주 교수는 이를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라 명명한다. 이 메리토크라시는 “부와 권력과 명예 등과 같은 사회적 재화를 어떤 사람의 타고난 혈통, 신분, 계급이 아니라 오로지 능력에 따라 사람들에게 할당하자는 이념”(장은주 외, 2014:15-19)이 작동하는 세계다. 한 마디로 사회전체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또 그런 식의 분배가 ‘정의롭다’고 정당화되는 사회체제다. 메리토크라시 패러다임이 작동하는 교육세계에서의 핵심 가치는 성적이나 학력이 된다.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 궁극적인 목표는 가능한 한 높은 학력을 얻는 것이 된다. 학교교육의 목표도 이에 맞춰지고, 그러자니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줄 세우게 된다. 대학서열화, 자사고 및 특목고의 입시학원화, 사교육 광풍 등도 표출되는 현상은 다르지만 맥락적으로는 동질이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점이다.

    ‘승자지배 체제’에서는 실제로 ‘허욕과 맹목과 몰주체’ 교육 프레임이 갈수록 공고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즉 학교가 세속적 욕망의 충족 기제로 기능하고(교육주체가 그렇게 인식하고), 교육 세례를 받는 다수는 ‘부자되기’의 진부한 꿈에 집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꿈꾸는 삶의 설계도도 단조롭다. 대개는 ‘열심히 시험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졸업한 후에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서 소비의 즐거움을 누리는 삶’을 꿈꾼다.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기에 사교육에 골몰한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남만큼은 시켜야 하고, 할 수만 있다면 남들보다 하나 더 시켜야 한다’는 자녀교육 지원 원리를 채택하게 된다.

    이런 맹목에 가까운 교육경쟁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하나는 ‘성적만 좋으면, 그리고 대학입시 실적만 좋으면 다른 나머지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경향’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즉 입시성적을 기준으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한다. 이런 허위의식으로 인해 학벌주의는 더욱 공공해 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 보니 대학이전 단계 학생들은 학교의 경쟁체제에 갇혀 산다. 대개 학교는 상급학교 진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을 관리·지시·통제한다. 학생들은 이런 조건에서 침묵, 복종, 순응 등과 같은 ‘부정적 미덕’에 익숙해진다. 그렇다보니 무감각해진다.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무감각해지기’를 채택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이런 승자 지배 교육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간 추진돼 온 신자유주의화 정책들로 인해 더욱 공고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기에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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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 참사를 기회로 교육의 대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이념이나 교육방식, 시스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승자만이 존재 의미를 찾는 체제가 아니라 ‘모두가 교육의 주체가 되는 교육’, 배제와 차별이 없는 교육, 제도적 폭력이 없는 교육, 모든 학생이 자긍심을 갖는 교육, 학생과 교사 간에 인격적 관계가 가능한 교육, 물질만능주의 왜곡을 조장하지 않는 교육, 학생들의 자율적 성장이 가능한 교육, 학생들이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끼는 교육 등등의 소망을 담은 교육체제로의 전환을 꿈꾸자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교육을 통해 어떤 삶을 안내할 것인가’의 질문이다. 대형 사회적 재난이 어디에서 오는지 뿌리를 캐보면, 결국 물질과 권력의 탐욕을 부추기는 거대한 체제가 나온다.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고,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유지되는 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켜야 유지되는 체제, 이 체제 안에 머무르는 한 재난은 반복될 것이다. 체제가 강제하는 삶이 그 체제를 지지하고 그 속에서 재난이 싹트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신자유주의 파국적 예외가 아닌 파멸적 상례에 불과하다’고 진단하는 것은 이런 인식과 맞닿아 있다(전규찬, 2014: 152). 재난에 대한 이런 인식은 결국 우리 삶과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전환에 대한 요청으로 이어진다. 시민사회에서도 이런 요구가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이에 대해 교육계는 어떻게 응답하고 어떤 실천을 구체화 할 것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박복선은 그 실마리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지금의 삶이, 사회가, 교육이 문제가 있다면 새로운 전망을 세워야 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실험해야 한다. 그 자체가 바로 교육과정이, 교육이 되어야 한다.…나에게 ‘혁신의 척도’는 우리 삶과,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밝히고 대안을 모색하는가다. 물론 그 수준이나 방식은 아주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빠진 교육을 혁신적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 공교육에서는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가?” 나는 이것이 세월호가 우리 교육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침몰하는 우리 삶과 우리 사회를 구해내는 것은 교육이기에, 그리고 그 교육은 삶과 사회의 전환을 절실하게 원하는 교육자들의 몫이기에(박복선, 2014: 25-28).

    학교교육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 가르치기’을 위해서는 전제적 질문이 필요하다. 바로 학교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갖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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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학교가 어떤 교육철학을 수립해야 하는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인격적 미성숙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공적 능력이 발현될 수 있는 학교문화는 어떻게 조성해야 할지 등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존재 재규정이 중요하다. 우선 학생을 ‘예비자’ 혹은 ‘공부할 존재’로 규정하기보다는 ‘자기 삶을 사는 존재’, ‘자신을 값있게 만들 수 있는 존재’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존재 규정은 학생들이 영적이고 정신적 존재라는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다. 학생 존재에 대한 재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면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은 지속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은 예외적인 특별한 상황에서만 발동되는 것이 아니다. 이 명령은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학생들은 이를 준거로 자신의 삶을 구성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가만히 있으라’는 은유다. 우리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학생은 순응자’라는 관점의 언어적 발현이다. 실제로 학생들은 일상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고 산다. 부모들로부터, 교사들로부터, 그리고 학교로부터도 그 말을 수시로 듣는다. 그리고 그 말의 버전도 다양하다. ‘안 된다’, ‘해라’, ‘해야 한다’, ‘하지 말라’, ‘참아라’, ‘나중에 해라’ 등등의 주문이 그 예다. 이러한 명령과 주문이 학생들에게 반복된다.

    “저는 학교에서 “세월호도 세월호지만, 너네 대학 가야하는데 공부에 더 신경써야 하는거 아니냐” 하시는 선생님도 계셔서 충격 받았어요. 아니, 저렇게 사람이 죽었는데 대학이 무슨 상관이냐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입학할 때부터 그런거 같아요. “인문계로 왔으면 대학을 가야 할 거 아니냐. 안 그러면 뭐 하러 여기 왔냐. 상고로 갈 것이지” 이렇게 나오니까요. 그리고 학교에서 생명보호, 교통안전 교육한다고 쓸데없이 영상 보여주고 그러는데, 차라리 그 시간에 이런 사건들을 다뤄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쓸데없는 거 진짜 많이 해요“(민들레』 제93호, 2014)

    “일반학교 학생들은 이런 일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아요. 사건 터지자마자 4월에 중간고사가 있었고, 모의고사 보고, 기말고사 보고 그런 식으로 계속 시험이 있어요. 학교에서는 좋은 대학교를 많이 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학생들이 뭔가 다른 걸 하려고 하면 무조건 막아요”(『민들레』 제93호, 2014)

    이제라도 학생들을 그들 삶의 주체로 인정하자. 학생들 스스로 자기 삶을 살면서 사유하고, 구성원들과 함께 공동의 문제를 숙의하는 존재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 10� � � � 4.16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토론회

    그리고 의미 재구성도 필요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학교를 ‘공부하는 곳’, ‘입시 준비하는 곳’ 의 의미로 읽는다. 따라서 공부해야 할 ‘교육과정’이 강조된다. 그러나 학교는 다의적 공간이다. 따라서 학교를 ‘삶을 익히는 공간’, ‘관계를 통해 긍정적 자아를 빚는 공간’, ‘사고실험과 상상이 조화되는 즐거운 공간’ 등으로 의미부여 하고, 그런 의미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공식화된 교육과정을 전달하는 곳 이전에 인간존재와 삶에 대한 보편적 의미를 성찰하고 사유하는 공간, 인간적 고귀함이 무엇인지, 충만한 삶의 본질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서로 묻고 답하는 공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셋째 질문은, 인간적 품성과 인간적 질감을 갖춘 공적 시민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의 질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면면을 보자. 직업윤리 부재, 탈법, 결탁, 무책임, 무능, 안일함이 쉽게 확인된다. 자기 일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노동철학도, 일에 대한 공적 감각도, 행동거지의 미학도, 최소한의 염치도, 공감 능력의 부재도 여러 장면에서 확인된다. 이런 장면들은 당사자 개개인의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의 이상은 전인(全人)육성에 있다. 그리고 학교교육의 원형(原形)은 바로 전인교육이 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행위는 세 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해 표출된다.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 사회사상을 해석할 수 있는 ‘지식’(개념과 논리), 그리고 실제 현상과 타자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인성),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특정 행위가 현상적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들 3요소는 인간 삶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가치’는 높은 수준이지만 ‘지식’이 부족하다면 ‘허풍 같은 삶’이 되기 십상이고, 역으로 ‘지식’은 높은 수준이지만 ‘가치’나 ‘마음’의 발달이 미약하다면 ‘창백한 삶’에 가까울 것이다. 이렇듯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불균형적으로 결합하는 경우, 삶이 분열적으로 구성될 개연성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지, 정, 의, 체의 조화로운 발달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학교교육의 실상은 원형(原形)과 거리가 멀다. 학교교육을 통해 지성과 감성, 덕성 교육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교가 전인교육 구호를 내세우지만 실제의 학교교육은 지식교육에 치중돼 있다. 그렇다보니 균형 있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지식중심 교육이 공고해지는 조건에서는 지·정·의·체의 여러 측면을 갖춘 다면적인 존재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도리어 성적은 좋으나 인정 없고 염치없고 예의도 모르고, ‘자아만 팽창된 독단적인 인간’이 길러

  • [제1발제] 세월호 참사가 던지는 교육적 질문과 조응 과제 11

    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보니 공적 능력, 즉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공존 능력을 갖춘 시민을 기대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이런 문제의 해법 중 하나는 학교를 좋은 민주적 공동체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학교구성원들이 함께 삶을 나누는 동료 관계를 맺는 일이다. 삶을 통해서, 서로간의 부대낌을 통해서 인간적 면모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 삶이 위축된 공간에서는 공부도, 마음 나눔도, 사유도 자리하기 어렵다.

    또 다른 질문은 바로 교사의 ‘교육적 권위’ 회복 문제다. 한 일간지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또래가 구조되지 못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고교 2학년생들 90.7%가 슬픈 감정을, 88.1%가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한겨레신문, 2014). 그리고 세월호와 같은 사고로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지를 묻는 질문에는 ‘내 판단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의견이 53.2%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친구들과 의논해서 함께 결정’을 하겠다는 응답은 22.4%였고, ‘인솔자인 교사의 말을 따를 것’은 15.9%, ‘현장 책임자의 지시에 따를 것’은 8.5% 차례였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결과는 고등학생의 주체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보다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불신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교육적 관계 맺음의 전제는 바로 신뢰다. 그런데 사회와 기성세대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이 심화된다면 이는 교사와의 교육적 관계 형성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허술함과 무능력을 생생하게 마주 본 상황인 만큼 일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던 국가에 대한 기대 혹은 기성세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체념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있다. 실제 학생들의 반응을 보면, 이런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다. 교사들 중에 세월호 이후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럽고 막막하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권재원은 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크레타섬의 역설’ 상황으로 묘사한다(한겨레신문, 2014). 즉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사회를 믿고 기성세대를 믿으라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거짓을 가르치는 상황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어떤 상황에서든, 교사들은 학생들을 만나야 한다. 수업을 매개로 한 단편적인 만남을 넘어서 인격적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그것이 교사의 본무다. 그러자면 교사들 스스로 ‘교육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입증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 12� � � � 4.16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토론회

    이는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권재원은 무겁지만 가장 적확한 대안을 제시한다. 교사로서 세월호 참사를 응시한다는 것, 세월호 참사 이후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이는 바로 자신의 삶의 체제를 직시하는 것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 세상이 무조건 침몰 위험에 처한 배는 아니며, 또 설사 그런 위험에 처하더라도 그런 배를 방치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님을 입증시켜야 한다. 교사가 사회를 비판하고 바로잡는 능동적 시민으로서 본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을 만한 어른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학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제 교사는 다음의 두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 첫째, 학생들이 스스로 믿을 만한 어른, 시스템, 권위를 가려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이 경험에는 교사 자신에 대한 비판도 포함돼야 한다. 둘째, 교사 자신이 학생들이 살아갈 사회를 믿을 만하게 개선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믿을 만한 어른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 …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교사에게는 이제 올바른 것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 책무가 추가됐다. 가르침을 바꿀 수 없다면, 그 가르침이 거짓이 되지 않도록 현실을 바로잡는 것까지가 교사의 책무가 되었다(한겨레신문,2014).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질문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학부모들의 집단적 각성을 어떻게 교육체제 전환의 동력으로 삼을 것인가의 질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모든 ‘학부모’들이다. 자식 둔 대개 학부모들은 참사를 보면서 제 일처럼 슬퍼하고 분노하고 자책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고백이 숱하게 이어졌다. 부모들은 지방선거 과정에서는 ‘앵그리맘’이 되어 새로운 교육 전환을 강조하는 진보교육감들에게 표를 주었다. 이는 부모들의 교육관점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한 일간지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조사대상 학부모의 50%는 ‘성적 좋은 아이보다 인간이 된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응답하였고, 40%의 학부모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조선일보, 2014). 또한 많은 학부모들이 ‘세월호 이후 명문대·엘리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학부모들은 교육에 대한 인식체계를 새롭게 정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아이를 특목고에 보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수 교육감이 좀 더 맞을 수도 있죠.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이어져온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는 진

  • [제1발제] 세월호 참사가 던지는 교육적 질문과 조응 과제 13

    보 교육감들의 주장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과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렇고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방향에 회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어요(주간경향, 2014).

    저는 여느 강남 엄마들처럼 학원가를 돌면서 아이 열심히 보좌해서 큰아이를 명문대에 보내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제가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었던 이유는 내 자식이 좀더 좋은 교육을 받아서 사회에 나가 훌륭한 지도층이 되고 우리 사회를 좀더 바람직한 사회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어요. 물론 자식의 성공과 부, 출세는 모든 부모의 바람이지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그렇게 명문대 나와서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를 포함한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 양육을 하면서 본인의 출세, 본인만이 잘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째에게 이제 공부보다는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좋겠다고 말해요(한겨레신문, 2014).

    부모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희생되는 장면들을 보면서, 자신이 어떤 관점의 교육관을 갖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교육가치가 의미 있는지, 왜 그 가치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자녀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가름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부모들의 이런 인식변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학부모들이 자발적·집단적으로 교육의 속화(俗化) 현상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자녀교육 지원 원리를 스스로 수정해가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학부모들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교육철학을 진단·수정하고, 자녀들에게 ‘성공하는 삶’이 아니라 ‘좋은 삶’을 안내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교육체제 전환의 호조건이다. 따라서 학부모들의 변화를 수용하는 정책들을 발굴하고, 정책실행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새로운 교육체제가 안착의 길을 찾게 될 것이다.

    3. ‘더 이상 작은 선택은 무의미하다’

    우리 교육 현실의 한 단면을 날것 그래도 보자. 입시경쟁의 치열함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날이 갈수록 경쟁의 강도는 강화된다. 입시경쟁에 치여 목숨을 끊기도 하고 또 수많은 학생들이 경쟁에 밀려 절망하고 좌절한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 14� � � � 4.16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토론회

    문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14년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여론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의 81.5%가 학업이나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심각하다고 응답하였고, 학부모의 경우에는 83.2%가 심각하다고 응답하였다(김정민, 2004).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실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을 만큼 무감각도 깊을 대로 깊어졌다는 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또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는 것일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모든 교육주체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교육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유별난 주장이거나 화두가 아니다. 인간다운 삶과 행복한 교육에 대한 보편적인 인간 신념에 근거하는 것이다.

    새로운 교육체제, 즉 4·16교육체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연구가 필요하다. 소위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큰 틀의 그림은 자칫 현실감을 잃을 우려가 있다. 이런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현실의 문제 진단이 적확해야 한다. 현재적 과제가 미래 과제를 푸는 열쇠다. 높은 수준의 교육 이상(理想)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 이상(理想)이 미래의 현실로 오는 것이다. 따라서 4·16교육체제 수립 연구에서도 ‘지금 이곳’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두 가지 과제가 중요하다. 하나는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혁신교육 내실화 방안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혁신교육의 원리를 보편적인 교육문법으로 안착시킬 수 있는 정책 수단을 발굴하는 일이다. 교육주체들은 여전히 학교 민주주의에 목말라 한다. 각자가 학교의 답답함을 말한다. 학생들은 배움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무기력과 부모의 무례에 답답해한다. 물론 학부모도 학교의 권위주의와 교사들의 매너리즘을 지적한다. 주체 간에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미흡하다. 이런 학교현장의 문제의식을 간과하거나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 이런 현장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일상의 과제이지만 동시에 4·16교육체제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

    다른 하나의 과제는 학교를 감싸고 있는 영향세 중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교육행정청과 학교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교원들 중에는 행정청의 관료적 간섭이 여전하다고 항변한다. 상명하달식의 정책 추진에 대한 반감도 표출한다. 정책이 순간순간 변경되는 것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워 한다. 현장중심의 구호는 있는데, 현장의 주체들은 소통을 갈급한다. 학교거버넌스를 강조하면서도 행정청 차원의 거버넌스는 유명무실하다고 날을 세우기도 한다. 학교 현장의 이런 불만은 ‘사실’에 근거한 것도 있을 수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상’(印象)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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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의 경우가 교육청 혁신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라면 후자의 경우는 메시지 관리 차원에서 고민을 해야 할 문제다. 어떤 경우이든 문제해결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학교주체들의 공감을 얻어야 혁신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에 내심 옹호하면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표시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도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고, 가치를 추구하고,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다. 삶의 의미, 가치, 목적이 전도되는 상황이라면 큰 틀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작은 부분의 기술적 조정만으로는 ‘체제적 제약’을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이곳’의 핵심 문제로부터 출발해지만 지향은 전면적인 체제 전환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시인의 표현처럼, ‘더 이상 작은 선택은 무의미하다’. 교육을 다시 세우는 일, 이것이 바로 미래전략이다.

    당신들만의 천국에서 이제 우리는 내리겠다……선택하라, 새로운 시대의 향로를이 거리가 안전할지 저 거리가 안전할지이 집이 안전할지 저 집이 안전할지이 일자리가 온전할지 저 일자리가 안전할지이 줄이 안전할지 저 줄이 안전할지더 이상 작은 선택은 무의미하다선택하라, 이미 모든 세상의 평형이 기울었다선택하라, 이미 구시대는 침몰했다선택하라, 이미 저들은 5.18 광주에서처럼 모두 먼저 탈출해버렸다.선택하라, 이제 우리가 다시 이 시대 마지막 남은평형수로, 복원력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새로운 평화를, 새로운 평등을새로운 존엄을, 새로운 정치를새로운 국가를우리가 다시 세워나가야 한다.

    송경동(2014: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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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 1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민간인 77명이 살해됐다. 피

    해자의 대부분은 캠프에 참가했던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 참사 직후 노르웨이 총리 젠스 스톨텐버그는 “더 강한 민주주의, 더 큰 관용, 그리고 더 많은 인류애로 보복하겠다”고 연설한다. 또 당시 오슬로 시장 파비안 스탕은 “보안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큰 존경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다. 참사를 통해 교육적 질문을 찾는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세월호 참사와 교육 문제를 연관 짓는 논의 자체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세월호 참사를 안전교육 문제로만 한정지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이 노르웨이 사례를 꼭 들려주고 싶다.

    사족 2 한 주간지 보도에 따르면, 독일 쾰른의 한 김나지움(인문계 중등교육기관)에 재학

    중인 17세 여학생이 학교 교육을 비판하는 글 두 문장을 트위터에 올린 뒤 격렬한 교육 논쟁이 독일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소녀가 올린 두 문장은 다음과 같다.(시사IN, 2015.1.30.)

    “나는 곧 18세가 된다, 하지만 세금, 집세, 보험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시를 분석하는 데는 능하다. 그것도 4개국 언어(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공부와 삶이 분리된 학교교육 문제에 대한 하소연이다. 공부를 통해 지식을 배우지만 삶 자체를 배우지 않는 문제의 지적이다. 그런데 17세 소녀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고 정부와 국회·교사·학부모·학생 등이 광범위하게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니, 그 풍토가 부럽다. 우리에겐 이런 하소연과 비판이 오래 되었고 지금도 차고 넘친다. 그런데 왜 무덤덤할까? 학생들의 말을 정성스럽게 들어야 공감도 되고 문제의 해법도 보이는 법이다.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경청(敬聽)해보자. 그래야 어른이다.

  • [제1발제] 세월호 참사가 던지는 교육적 질문과 조응 과제 17

    참 고 문 헌

    김문주(2014). 청소년, 세월호를 말하다. 『민들레』 제93호, 37쪽.김애란 외(2014).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12,17쪽.김정민(2014).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 KEDI POLL 2014. 박복선(2014). 교육의 근본적 전환을 위하여, 교육혁신의 새 길을 묻다. 2014 전

    국 혁신교육 교사대회 자료집. 경기도교육청. 25-28쪽.이원형(2014). 청소년, 세월호를 말하다. 『민들레』 제93호. 37쪽송경동(2014). 당신들만의 천국에서 이제 우리는 내리겠다. 인문학의 향연. 2014

    제2호. 34-35쪽. 장은주(2012). 정치의 이동. 상상너머.전규찬(2014). 영원한 재난상태 : 세월호 이후의 시간은 없다. 눈먼자들의 국가.

    문학동네152쪽.

    시사IN, 2015.1.30주간경향. 2014.6.18.창비주간비평, 2014.4.30한겨레 신문. 2015.03.16. 한겨레 신문. 2014.5.3.한겨레 신문. 2014.7.20.

  • 제2발제

    4·16교육체제에 대한 고민과 제언

    김성천� (경기도교육청 정책기획관 장학사)

    1. 왜 4·16교육체제인가?

    세월호 참사는 한국전쟁 이후 우리의 교육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사건을 다시 복기해보면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세월호에 그대로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교육 가족들은 세월호 비극의 상주(喪主)로서 슬픔, 상처와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세월호가 침몰되기 전, 배의 안정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전 점검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안전 인식의 결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운영 방식과 문화, 시스템의 ‘비정상성’으로 설명해야 한다. 비정상의 핵심에는 돈을 최우선시 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똬리를 틀고 있다. 선박 회사는 고객의 안전이 아닌 회사의 이익을 우선했다. 결국, 안전과 생명이라는 가치를 등한시했다. 여기에 국가의 점검과 사전 예방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이후 구난 시스템 역시 최악이었다. 문서상의 매뉴얼이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만들어냈다.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만 믿다가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렸다. 직업 윤리 의식 내지는 소명 의식의 실종은 일부 승무원들이 최소한의 생명 구조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승객들을 버리고 떠나게 만들었다. 무책임한 어른과 무능한 시스템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누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냈는가?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쉽게 잊어서는 안된다. 다시 그 슬픔과 고통을 곱씹으면서 근본적인 치유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근본적인 치유는 성찰과 반성, 다짐과 실천에서 비롯된다. 경기교육은 슬픔을 넘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을 2)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4·16교육체제에 관한 두 편의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4월초에 기초 연구가

    나오고, 4월부터 9월 사이에 심화된 과제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두 편의 과제 연구 이후 추진단을 구성하여 정책 의제를 추출하고, 별도의 정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따라서 발제자의 원고는 경기도교육청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4·16교육체제를 함께 모색하는 차원에서 본고를 구성하였으며, 논의를 위한 기초 자료 성격 내지는 시론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제2발제] 4·16교육체제에 대한 고민과 제언 19

    바꾸어야 한다. 이를 모색하기 위한 체제를 우리는 『4·16교육체제』라고 명명한다. 그러나 4·16교육체제의 개념과 원리는 간단하지 않다. 이는 마치 민주주의라는 용어처럼 포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지향점과 방향 설정을 명확히 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앙정부가 아닌 교육청 차원에서 시작된 담론이기 때문에 그 확장성과 적용 가능성에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4·16교육체제의 의미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성찰과 반성, 나아가 혁신과 개혁을 내포한 상징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는 크고 작은 시도가 역대 정부에서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5·31 교육개혁안이다. 우리나라의 교육기조는 1995년에 발표된 5·31 교육개혁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5·31 교육개혁안을 평가하고 새로운 교육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5·31 교육개혁안의 추진 배경은 세계화와 정보 사회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당시에도 주입식·암기식 교육의 양상에서 우리 교육은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산업 시대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특성이 학교 교육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보면서 개인의 수요와 필요에 답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모색했다. 5·31 교육개혁안은 나름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큰 기조를 보면 획일성에서 창의성으로, 공급자 중심 교육에서 수요자 중심교육으로, 닫힌교육에서 열린교육으로, 규제에서 자율로, 한국 교육의 변화를 시도했다. 주요 개혁안을 보면 대학설립준칙주의, 자립형사립고, 학교운영위원회 설치, 학교장 초빙제, 종합생활기록부 도입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제시된 정책들은 지금도 우리 교육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5·31 교육개혁안은 국가 수준에서 제시한 교육 개혁 방안을 많이 담고 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기조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2015년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그 기로점에 서있다. 5·31 교육개혁안은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립형사립고와 같은 신자유주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학교운영위원회 도입과 같은 공동체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31 교육개혁안의 적용 이후 우리 교육에 본질적인 변화가 나타났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기능적·부분적 개선이 이어졌지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학교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교육은 경쟁 교육과 입시 교육의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국가 수준의 교육 개혁이 갖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역 단위 수준의 혁신 모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31 교육개혁안이 발표될 당시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큰 차이가 있다면 주민직선교육감을 통한 지방교육자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동시에 혁신학교의 태동과 확산, 성숙을 통해 현장에서 시작되는 단위학교의 변화 가능성을 엿보았다. 교육청이 교육부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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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학교의 터미널 역할에서 벗어나서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여 일정한 변화 전략을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상황 조건이다. 지방교육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5·31 교육개혁안의 공과를 바탕으로 이제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모색해야한다. 5·31 교육개혁안의 내용 중에서는 의미있는 시도들도 있지만 문제가 확연히 드러난 정책도 있다. 자립형사립고 등의 정책은 사교육비 증가와 고교 서열화 심화, 교육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기본적으로 시장 선택과 경쟁력 강화의 관점에서 구성된 개혁안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4·16교육체제는 교육 목표와 철학, 정책, 개혁 추진 방식 등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검토하면서 혁신교육의 질적인 성숙을 도모하면서 혁신교육을 방해했던 구조적 조건들을 걷어내기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단위학교와 교육청, 교육부 수준에서 추진해야할 과제를 모색한다. 교육 철학과 비전, 방향은물론 학교 내부의 교육과정과 평가, 학교 밖 운영과 지원, 행정 시스템, 고교 체제와 대입 제도 등을 총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분절적·파편적 접근을 넘어 종합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성격을 지닌다. 교육청 수준에서 4·16교육체제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교육체제는 중앙 정부의 몫으로만 둘 수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한다. 현장에서 느낀 갑갑함을 정책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현장의 시선에서 중앙 정부과 교육청의 정책을 다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내놓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패러다임 제공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2. 우리 교육의 현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전쟁의 폐허에서 오늘날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은 교육이 갖는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존 자원이 아닌 인적 자본의 힘을 키운 결과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이어졌던 교육 에너지가 전환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역동성이 만들어졌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열심히 살아서 계층이 상승된 모델을 제법 볼 수 있었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났다”는 표현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사회의 역동성이 약화되면서 계층 불평등 내지는 사회적 불평등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부모의 계층 배경에 따라 자녀의 학력, 고교와 대학, 직업의 수준이 결정된다. 교육 불평등과 교육양극화 현상이 오히려 심화되면서 사회의 역동성이 막히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계층의 통풍 구조’가 막히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질 것이다. 어찌보면 보이지 않는 현대판 음서제도가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외현상으로는 형식적인 기회 균등의 조건이 부여되는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 [제2발제] 4·16교육체제에 대한 고민과 제언 21

  • 22� � � � 4.16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토론회

  • [제2발제] 4·16교육체제에 대한 고민과 제언 23

    입시에 종속된 교육은 사교육과 공교육의 차별성을 찾지 못하게 만든다. 변별력 중심의 대입 체제는 공교육 정상화를 방해하며 입시위주의 교육 체제에 여전히 머무르는 저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역대 정부에서도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대입 제도를 개선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풍선효과가 발생하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바꿀 것인가? 3. 4․16 세월호 참사의 교훈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울분에 찬 글을 썼다. 그리고 한국 사회를 성찰했으며 통렬히 비판했다. 그리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4․16 교육체제도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슬픔과 분노를 넘어 성찰로, 그리고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의 상징체로서 4․16 교육체제를 이해할 수 있다. 언론과 블로그를 중심으로 4․16 세월호를 성찰한 글들을 몇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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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 진단과 방향 제시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문제제기가 강력하게 드러난다. 국가 시스템과 정신적 토대, 삶의 자세와 태도를 문제 삼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참회와 성찰을 바탕으로 교육과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많은 이들이 하고 있다. 우선은 가치와 철학의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 거울이다. 황금만능주의와 배금주의, 천민자본주의에 입각한 삶의 원리가 세월호 참사에서 작동했고, 그 과정에서 직업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길러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은 사회의 종속변수인가 아니면 독립변수인가?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이러한 사회를 바꾸려면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결국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착하고 순응하며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몰입하는 존재만으로는 안된다. 공공성의 관점에서 교육 목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인성을 넘어 시민 교육을 실현해야 한다. 문서에만 고시된 시민교육이 아닌 삶의 원리가 학교와 교육 체제를 통해 구현된 시민교육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밝히고 있다. 이 의미는 참정권 보장을 넘어 평등성과 정의, 복지 국가 등을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지향해야할 삶의 모습을 시사한다. 조직 혁신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문서와 매뉴얼은 무용지물이었다. 국민을 지원하는 국가 시스템의 취약성과 무능이 그대로 드러났다. 청와대, 재난방재청, 해양수산부, 해경, 해군 등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관료주의와 칸막이 문화, 무사안일, 보신주의, 인맥 중심의 업무 처리 등의 총체적 문제가 발생한 셈이다. 결국, 사회적 책무성을 다하지 못한 공적 기관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성찰이 필요하다. 비난의 화살을 다른 쪽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권한과 역할이 큰 조직부터 1차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예컨대, 교육부, 교육청, 교육지원청, 학교의 시스템을 살펴보면서 현장과 학생 중심의 기조를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저해 요인이 무엇인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우리 교육에 대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삶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과 민주 공화정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입시를 위한 학습에서 행복과 자아실현에 기여하는 학습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래 생존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감수하는 교육이 아니라 오늘 행복한 아이들이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관점을 성숙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내부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들여다봐야 한다. 교장, 교감과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현장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저해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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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4·16 교육 체제

    1) 구성 원칙

    4·16교육체제는 몇 가지의 구성 원칙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사회 변혁의 원칙이다. 우선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를 바꾸어야 한다. 교육만으로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총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어디에 머물러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근본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 담론과 사회 담론을 내포한다. 교육 담론을 사회 담론으로 연결·확장해야 한다. 둘째는 참여의 원칙이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만드는 체제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현장의 아우성과 함성을 포착하고 그것을 정책으로 승화해야 한다. 현장과 정책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셋째, 구조 개선의 원칙이다. 단위학교의 혁신을 넘어 교육청과 교육지원청, 나아가 중앙 정부 수준의 교육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 성찰과 반성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단위학교에 화살이 돌아갈 수 있다. 단위학교의 불만족스러운 현상에 주목하지만 그러한 현상을 만들어낸 구조와 제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넷째, 학생과 현장 중심의 원칙이다. 이해 관계의 문제가 발생할 때는 학생과 현장 중심의 가치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교육 분야에는 해결해야 할 무수히 많은 과제가 있다. 어찌보면 해답은 이미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해법에 따른 복잡한 이해관계와 계산이 먼저 작동하면서 학생과 현장의 목소리를 덜 고려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혁신교육 심화의 원칙이다. 4·16교육체제는 혁신교육과 별개의 개념이 아닌 심화의 개념이다. 학교 현장은 새로운 용어와 개념의 피로증을 호소하고 있다. 4·16 교육 체제는 기존의 혁신 교육의 추진 원리와 별개가 아니다. 다만, 단위학교 내지는 지역 수준의 실천이 구조의 벽에 막혔던 경험이 적지 않았다. 구조와 장벽을 제거하면서 혁신 교육의 질적 심화를 이루어야 한다. 혁신교육의 계승과 보완, 성장과 완성의 개념을 4·16 체제는 내포한다. 2) 패러다임의 전환

    주입식·암기식·경쟁식 교육의 한계를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이러한 요구를 우리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명명한다. 그렇다면 어떤 패러다임의 전환인가? 몇가지 요소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 교육은 한마디로 개인과 학교, 가정의 경쟁 체제로 볼 수 있다. 뜨거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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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은 곧 경쟁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경쟁은 학습량과 학습속도, 투자비용과 연동된다. 이는 선망하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 체제 가속화를 의미한다. 경쟁 체제는 한국 교육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인데, 많은 이들이 한계점에 이른 듯 하다. 모두가 지쳐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협력 체제로 전환할 수는 없는가? 우리 교육은 평등성과 수월성의 긴장 상태에서 정책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고교와 대학의 서열화는 곧 획일적 교육을 만들어냈다. 고교 체제는 다양했지만 내용은 획일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진로의 방향이 360도로 각자에게 다르게 펼쳐져야 하는데 한가지 방향으로 모든 학생들을 몰고갔다. 교육과정은 수능과 입시에 종속된다. 입시는 고등학교에 그치지 않고 중학교와 초등학교, 심지어는 유아 교육에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학교 교육의 피동성 역시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온갖 지침과 규제는 학교로 하여금 시키는 일만 하게 만든다. 이런 과정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자아효능감은 바닥에 이르게 된다. 단위학교의 역동성을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 중요한 과제이다. 궁극적으로 국가주도의 “지침교육”에서 지역주민주도의 “자치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권한을 교육청으로, 교육청은 교육지원청으로, 교육지원청은 학교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 교육자치의 핵심은 학교 자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의 자율성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예컨대, 공동체와 거버넌스, 리더의 성숙이 담보되지 않으면 오히려 교육의 공공성과 혁신을 담보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비민주적인 학교라든지 일부 사학의 부정 부패, 입시에 올인하는 학교 모델 등은 자율성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의 역동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율과 자치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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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교육개혁방식은 ‘위에서 아래로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국가 수준에서 위원회를 꾸려서 방안을 발표했는데 반면, 혁신교육은 ‘아래에서 위로’ ‘중간에서 위로, 아래로, 옆으로’ 개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혁신학교는 교사와 학부모의 자발성에 의해 시작되었고 교육청 수준에서 정책으로 추진되었다. 동시에 타시도교육청으로 확산되었다. 정책이 만들어지고 현장으로 적용되는 방식이 아니고 자발적 실천들을 모아서 정책으로 연결시키고 이것이 수평적 네트워크에 의해서 확산됐다. 현장 중심의 교육 정책 내지는 개혁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5·31 교육개혁안에서 볼 수 있는 인간상은 분명하지는 않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적응하는 인간 내지는 선택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수요자로서 상정한 듯 하다. 4·16교육체제는 ‘가만히 있지 않는 인간’을 먼저 그려야 한다. 민주 공화국을 구성하는 시민으로서 비판적 사고와 사회 참여 의지와 실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공공선과 공공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시민이다. 자기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해석하며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동적인 시민이다. 개혁 방향을 달리 접근해야 한다. 중앙 정부 수준에서 학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교육청과 중앙정부를 바라봐야 한다. 무엇이 학교를 힘들게 하고 옥죄고 있는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5·31 교육개혁안은 자립형사립고(현행 자율형사립고)를 좋은 학교 모델로 생각했다. 4·16교육체제는 다르다. 선발효과가 아닌 학교효과를 강조한다.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뽑아서 일류학교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교육의 가치를 두지 않는다. 어떤 수준의 학생이든 학교에 들어오면 학생을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자신의 진로 특성에 맞추어 혹은 교육과정에 맞추어 학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학교 선택의 기준이 굳이 입시 성적일 필요는 없다. 혁신학교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선발권을 갖지 않으면서도 학생을 성장시키기 위한 여러 층위의 해법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교육목적도 결국은 생존에서 행복으로 전환해야 한다. 오늘 행복한 아이가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면 좋지만 용이 되지 않아도 행복한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로 교육의 가치를 중시해야 하고, 각 분야에서 인재 채용의 기준과 선발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어찌 보면 노동 시장에서 이러한 변화가 이미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육 분야는 명문대 진학의 관점을 중시하면서 다른 가치를 희생시키고 있다. 9시 등교는 생존이 아닌 행복의 관점에서 시작한 정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교육의 핵심 가치는 경쟁에서 협력과 협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원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평가의 원리가 바뀔 수 있다. 서열화를 위한 평가, 결과를 위한 평가에서 피드백과 과정 중심 평가로 전환이 가능해진다. 개인의 경쟁을 넘어 학교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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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을 넘을 수 있다. 경쟁 상대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수업과 교육과정, 평가 역시 이러한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 개인과 학교간 협력 모델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는 학교의 작동 원리를 바꾸게 만든다. 일류학교와 이류, 삼류학교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각 학교가 지닌 장점과 실천 사례를 함께 공유하며 동반 성장할 수 있다. 대입의 기조도 바뀌어야 한다. 대입 제도 혁신에서 가장 많이 고려하는 가치는 선발의 편의성과 객관성, 공정성이었다. 이러한 가치에서는 수능과 같은 국가 수준의 평가 시스템을 중시하게 된다. 그러나 수능이 공교육을 제대로 살렸는가? 오히려 교육과정과 수능의 이원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교과서와 교육과정만 충실하면 수능 고득점이 가능한 시스템인가? 예컨대, 교과서에 제시된 영어 단어 수준과 수학 문제를 충실히 풀면 수능 고득점이 가능한가? 별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사교육이 개입된다. 고등학교는 수능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의 전인적 삶을 기획할 수 있는 여유를 사장시킨다. 대입 제도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 대학이다. 선발의 편의성과 효율성만 중시한 나머지 공교육 정상화의 가치는 여전히 고사상태이다. 단위학교의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를 혁신하면 대입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을 현장이 갖게 만들어야 한다. 교육과정 역시 변화해야 한다. 현행 교육과정을 보면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와 대학교 학문 편제와 논리 체계를 여전히 많이 따르고 있다. 학생의 삶과 무관한 지식 체계가 많다. 예컨대, 수학의 경우 적지 않은 학생들이 수학 포기자를 자처한다. 소수의 학생들의 대입 변별력을 위해 대다수 학생들로 하여금 수학에 공포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을 만나면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교육과정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누가 만들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학생의 삶을 중심에 놓고 교육과정의 구성 원리와 운영 방식에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비용도 사부담에서 공부담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상급식(교육급식)은 그 신호탄이었다. 자율형사립고의 경우, 전형적인 사부담 정책을 펴고 있다. 돈을 받지 않는만큼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돈을 지원하고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단, 공공성과 책무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 교육 비용의 공부담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현행 재정 시스템에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제시된 내용을 구체적인 정책과 연결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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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가치는 국가에서 지역이다.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정책을 교육부와 교육청 수준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우선은 교육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지나친 규제를 완화하거나 교육청이나 단위학교로 권한을 위임할 필요가 있다. 각종 정책들을 보면 지나치게 세세하게 정책을 교육부에서 쥐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법률과 시행령, 규칙, 규정, 지침, 공문으로 정책 방향을 교육부 수준에서 쥐고 있다. 이로 인해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은 학교 사이에서 공문과 예산의 터미널 기능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앙정부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청과 단위학교에 자율성을 대폭 부여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는 정책을 대강화해야 하고 정책 추진의 왜곡이 발생하는지 여부만 체크하고 점검하면 된다. 자사고와 특목고 평가만 해도 교육부의 승인 없이는 사실상 평가를 통해 문제가 있는 학교에 대해 재지정을 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일은 교육청이 실제로 다하고 있지만 판단은 교육부가 하는 형국이다. 예컨대, 교원임용고사의 경우도 지역별로 특색있게 진행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시험 과목과 시험 배점, 점수 합산 방법, 가산점 영역까지도 세부적으로 정하고 있다. 시도교육청 평가 역시 지역의 특색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한다. 이처럼 예산, 인사, 교육과정, 행정, 평가 등에 관해서 여전히 교육부가 너무 많은 권한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교육청과 단위학교의 역동성을 기대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 교육청에서는 교육부만 탓할 수는 없다. 교육지원청 평가 방식의 변화라든지 주어진 여건에서 기획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예컨대, 신규교원의 경우 특정 지역에 대거 발령을 받고, 2-3년 뒤에 빠져나오는 경향이 있다. 해당 지역 주민과 학부모, 학생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역의 인재들이 특정 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교육전문직에도 이러한 원칙을 전면 도입할 수는 없어도 부분 도입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교육전문직에서도 특정 지역을 잘 알고, 관련 네트워크가 풍부한 사람들이 임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적어도 5년 이상 일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인사에서도 지역의 가치를 보다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지역의 가치를 중심으로 각종 정책들을 다시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분권화와 자율화, 지역성의 가치는 한국 교육을 새롭게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소수를 위한 수월성에서 모두를 위한 다양성이다. 교육부 차원에서는 특목고와 자사고의 거품을 빼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특목고와 자사고로 인해 일반계고의 슬럼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행 전후기 고교 선발 체제는 일반계고에 대단히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전후기 고교 선발 체제를 없애고 동시 선발 체제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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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야 한다. 따라서 현행 고교 체제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외고의 경우 과연 특수 목적고로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언어는 사실 보편 교육의 범주이지 특수 목적의 범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외국어에 관심이 많고 이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면 교육과정 특성화 학교로 충분하다. 외고가 존재해야한다고 하더라도 별도의 선발권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추첨형 선발도 가능하다고 본다. 소수를 위한 수월성 교육은 자칫 선발 권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다양성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선발 권한이 아니라 교육과정 특성화와 다양화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이런 관점에서 특목고와 자사고의 거품을 빼야한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불가피하게 존재해야한다면 그것은 선발 효과를 통한 차별성이 아니라 일반학교를 견인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상상력과 실천력으로 시너지와 자극을 주기 위한 목적이면 충분하다. 중학교에서도 선택 교과의 폭을 보다 확장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공통교육과정의 범주로 이해한다고 해도 선택 교과에 관한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 창의체험활동으로 일정하게 극복할 수 있겠지만 이미 창의체험활동도 의무적으로 규정한 시간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시간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중학교에서는 자유학기제를 전면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한학기의 체험이 아니라 중학교의 성격과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자유학기제의 가치가 중학교 교육 목표와 내용, 교과에 의미있게 반영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만 가르치기보다는 교육청과 단위학교에서 학생의 필요를 반영한 교과목과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는 흐름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도 교육청과 단위학교 차원에서 교과목 개설을 할 수는 있지만 일선학교에서는 그런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교육청과 단위학교의 교과 개설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정의 다양화라는 가치가 구현되고, 동시에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학교 밖 스펙 만들기가 아닌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실현할 수 있게 된다. 통제에서 지원이다. 현장에서는 교육청을 원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수히 많은 공문과 정책을 현장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교육청과 교육부 정책을 구분하지 못한다. 교육청의 공문을 보면 절반 이상이 교육부에서 내려온 사업을 집행하고 있다. 사업 선택제를 제안한다. 교육부에서는 모든 정책을 교육청과 학교에 다 쏟아주기보다는 사업 선택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 정책 중 교육청과 단위학교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대폭 부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특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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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 예산을 대폭 줄여야 한다. 예산이 있는 만큼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특별교부금 예산을 보면 몇 년간 지원을 하다가 예산을 슬그머니 없애고 교육청 부담으로 넘긴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업을 끊임없이 추진한다. 이러한 모습은 교육청과 단위학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기존의 업무를 안으면서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연구시범학교라는 이름으로 약간의 예산을 주고 학교를 움직이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현장의 필요를 먼저 파악하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고 선택권을 교육청과 단위학교에 부여하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교육청 수준의 혁신도 계속되어야 한다. 2010년 시군교육청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현실적으로 단위학교에서는 지원을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의 불만 중 하나는 정책은 교육부나 교육청이 만들고 뒷감당은 결국 단위학교가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장의 어려움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교육지원청이 과거에는 행정 중심의 기능별 접근을 했는데 부분적으로 위센터 운영 등 대상별 지원 기능이 접목되었다. 현장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 기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를 모색해야 한다. 교육지원청이 명실상부한 교육지원센터의 역할과 기능을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방과후학교, 돌봄교실, 체험활동, 기초학력부진학생(배움찬찬이), 진로교육 등은 단위학교의 인적자원과 인프라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필요하지만 단위학교만의 힘으로 버거운 영역을 찾아서 이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비영리단체를 육성하고 이를 지원하면 민관이 함께 윈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지원청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시스템도 있지만 제3의 민간기구 또는 반관반민 기구를 설치하여 실질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제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교육공동체는 어찌 보면 단위학교의 고민을 지역과 함께, 또는 지역의 고민을 단위학교와 함께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실천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살아난다면 교사들은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에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학교 환경 개선이 가능해지리라 본다. 성적에서 성장이다. 입시를 위한 목적으로 교육의 가치가 귀결되면 안된다. 성적은 학생 성장의 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대입 제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수능의 비중과 역할을 줄이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의 질적인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 수능의 절대 평가 전환을 추구하면서 질높은 내신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간극 현상이라든지 변별력을 이유로 과도한 학습량을 요구하는 수능 체제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다. 평가에 관한 권한이 보다 많이 교사들에게 이양되어야 한다. 교육과정과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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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에 관한 권한을 많이 가져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권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가라는 이름의 잘못된 관행들을 우리는 바꾸어야 한다. 시험을 위한 학력에서 삶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참된 학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한 평가 체제를 교육청과 단위학교에서 모색해야 한다. 이를 참학력 내지는 역량 중심 평가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편의를 위해 가치 중심의 접근을 정책 영역으로 재구조화하면 다음과 같다.

    크게는 학교 안과 학교 밖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학교 안은 교육과정과 학교민주주의가 핵심이다. 교육과정은 “이해 관계”에서 “학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행과 같이 “얕게 많이” 가르치는 방식에서 “깊게 조금” 가르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당장 영어와 수학의 교육과정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수학의 경우 학생들의 삶과 무관한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면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학 포기자로 전락한다. 현행 교육과정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고등학교의 경우, 진로와 연계한 경로형 교육과정을 강화하여 수학 분야를 보다 많이 배워야하는 학생들은 심화 과정으로 공부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기초나 기본 수학을 익히면 된다. 지역과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자율성을 확대하면서 특색 교과를 많이 개설할 필요가 있다. 중학교에서도 선택 교과의 폭을 현행보다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학교 민주주의는 여전히 중요하다. 권위주의와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학교를 민주공동체의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 학생자치회 활성화와 학생 자치 문화 구축은 대단히 중요하다. 학교장 1인에 의한 판단이 아닌 구성원들의 숙의를 통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함께 책임지는 문화와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인성 교육을 넘어 민주시민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의 일상 자체가 민주주의에 관한 가치와 태도, 지식을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효능감도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자발성도 나타날 것이다. 학교폭력이나 일부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와 같은 문제는 공동체의 논의를 통해 해결하며, 분쟁조정관과 같은 별도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작동하면 된다. 학교 내에 존재하는 불필요한 관행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도 학교 문화와 관련하여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주제이다. 교육 구성원 각자에게는 익숙해진 모습이 다른 주체 내지는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한 익숙해진 관행을 낯설게 보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조직 혁신의 첫걸음이다.

    학교에 대한 행정 지원 체제와 거버넌스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

  • 34� � � � 4.16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토론회

    의 사업 진행 방식도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사업 선택제 등을 모색해야 하며 특별교부금의 비율을 낮추어야 한다. 교육부의 교육청 평가 방식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 결국, 학교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를 중심에 놓고 시스템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교육지원청을 교육지원센터로 기능을 개편하면서 관행 탈피, 일하는 방식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정책에 대한 현장 반응 평가를 바탕으로 사업을 조정해야 한다.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의 거버넌스와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공교육에서 학생의 학습을 책임져줄 수 있는 학습 안전망 구축도 반드시 필요하다. 인사 혁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연공서열에서 역량으로 전환해야 한다. 임용고사, 전문직, 교장 임용 방식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 학교장 임용방식이 학교 구성원들의 심사권과 선택권이 보다 보장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교원임용고사도 지필 고사 위주의 선발 관행에서 인성과 역량, 교육관과 교육 철학 등을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모든 직위의 승진과 중임 심사 과정에서는 구성원들의 민주적 평가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 고교 체제는 서열화에서 특성화로 개편해야 한다. 전기와 후기 고교 체제를 일원화하고, 외고는 자율학교 성격의 교육과정 특성화 학교로 전환해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색깔과 빛깔이 발현되는 일반계고를 만들어야 한다. 자사고는 추첨형으로 전환하고, 교육과정에 관한 자율학교 성격을 보장한다. 궁극적으로 자사고는 점진적으로 줄이거나 폐지해야 한다. 학교별 선택 교과가 진로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개별 학교를 넘어 지역 단위 수준의 공동 교육과정(교육과정 클러스터)를 확장해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주어진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필요시 인근의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대안학교 등의 교육과정도 들을 수 있는 공유와 호환 시스템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학점형 체제는 단위학교 교육과정에 생기를 더욱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입체제는 변별력에서 공교육 정상화의 관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서 당분간 원점수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신 학생부 종합 전형을 확대해야 한다. 서울대학교부터 공공성과 공교육 정상화의 관점에서 기여할 수 있는 대입 제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경기도에서는 진로진학지원센터를 확대 개편하고,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의 성장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일반계 고교 활성화 전략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모델이 집중된 혁신학교를 고등학교로 보다 확장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 [제2발제] 4·16교육체제에 대한 고민과 제언 35

    5. 한국 교육의 체계를 다시 세우자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와 행복, 정의, 복지는 우리 사회와 교육이 다시 품어야 할 핵심 가치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교육은 국가에서 지역으로, 소수를 위한 교육에서 모두를 위한 교육으로, 피동적인 교육에서 능동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크게는 학교 내부(수업과 교육과정, 평가, 학교 민주주의)와 학교 밖 시스템(학습안전망, 지원과 행정, 거버넌스, 인사혁신)를 모색해야 한다. 더 큰 상위의 영역으로 학제와 대입제도, 평생교육 등을 모색할 수 있다. 정책의 층위는 교육청과 교육부로 나누어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해법 찾기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느끼는 고통에 주목하면서 시작된다. 이를 위해서 많은 주체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세우고 이를 다시 현장에 묻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4․16 교육체제는 지역 단위로 시작하지만 다시 지역을 넘어 국가 수준의 담론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한 긴 여정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

  • 토론 양지혜� (중산고등학교 3학년)

    1. 우리는 어떤 공간에 있는가

    2014년 4월 16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날은 영어 듣기 평가가 있던 날이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평가’의 대상으로써 학교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중간고사를 목전에 두고 모두들 마음이 급했다. 누군가 말했다. “바다에서 사고가 났대.” 세월호. 순간 그 배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곧이어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모두들 그 배에서 눈길을 거뒀다. 전부 다 구조되었으니 별 일 아니겠거니 했다. 설마 야자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까지 뉴스에 그 배가 나오고 있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368명이었다가 164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174명, 175명, 다시 174명……. 구조자 수는 참사 이후 일곱 번이나 번복되었다. 뉴스에서는 연신 구조 작업으로 떠들썩했지만, 막상 바다는 조용했다. 304명이 죽었다. 그 배에서 ‘탈출’한 사람은 있었지만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가라앉는 배를 목격해야 했다. 국가는 그들을 책임지지 않았다. 언론은 각종 오보와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냈고, 경찰은 유가족 앞을 막아섰다. 우리는 세월호가 무리하게 수명연장‧증축된 선박임을 알게 되었고, 단 얼마만큼의 화물이, 경제가, 돈이 생명보다 중요한 우리 사회를 확인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목격해야만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빨리 잊어야만 했다. 학교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했다. 세월호는 일상에 미적지근하게 떠 있었다. 몇 분간의 쑥덕임 끝에 우리는 그 배를 묻어두고 수업을 들었다. 입시경쟁의 교육제도 속에서, 공부가 아닌 다른 것들은 모두 무가치한 일로 여겨졌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책상에 고립당한 채, 오직 공부만을 하기를 요구받았다. 인격을 지닌 주체가 아닌, ‘평가’의 대상으로만 남아있어야 했다. 세월호는 어느 날 급작스레 터진 사고가 아니라,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우리

  • [토론] 양지혜 37

    사회의 예정된 참사였다. 우리 사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월호였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배 안에서 살아왔고,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풍경들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세월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외쳤고,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를 냈다. 교육문제에 대한 목소리도 커졌다. 세월호 선내방송이었던 “가만히 있으라”는 입시경쟁체제, 승자독식체제 속에서 맹목적으로 학벌만을 추구하게 하고,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