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거리, 동문사람”을 소개합니다€¦ · 홍콩 친구들 | 4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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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두번째 동문공감 2017 두 번째 삼양다방 박경자 매니저 “동문풍경”, 청년단체 소개 청년 문화기획 단체 / 문화통신사 동문거리 심층, 공감 인터뷰 전주 시의회 김남규 의원 심층인터뷰 이장호 감독 공감인터뷰 “동문거리, 동문사람”을 소개합니다 동문상가 풍원 / 박미라(풍남동 7통장) 동문예술거리의 역사를 찾아서,「문화공간편」 복합 문화공간 / 삼양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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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동문거리, 동문사람”을 소개합니다€¦ · 홍콩 친구들 | 4년 전에 홍콩에서 배낭여행 온 동네 친구들이 있었는데요. 저희 집에서 팔찌도

2017 두번째 동문공감

2017 두 번째

삼양다방

박경자 매니저

“동문풍경”, 청년단체 소개 청년 문화기획 단체 / 문화통신사

동문거리 심층, 공감 인터뷰전주 시의회 김남규 의원 심층인터뷰

이장호 감독 공감인터뷰

“동문거리, 동문사람”을 소개합니다 동문상가 풍원 / 박미라(풍남동 7통장)

동문예술거리의 역사를 찾아서,「문화공간편」 복합 문화공간 / 삼양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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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두번째 동문공감

풍원 중화요리

박미라 통장님

안녕하세요.풍남동 통장과 풍원 중화요리집을 하고 있는 박미라 입니다. 26년째 동문거리에 살면서 올해 통장이 되었는데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 통장일을 하지 않을 때도 돕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Q. 동문거리에서 기억에 남는 스토리

A. 기린봉아파트 어르신 | 예전에 배달을 할 때는 집까지 짐도 옮겨드리고 했던 어르신이 계셨는데요. 감사하게도 음식 하셨을 때 가져다주시고 하셔서, 계속 이어지는 소소한 나눔이 기억에 남아요. 지금은 배달을 안 하지만 꼭 여기 음식을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퀵서비스로 배달도 해드리고 있어요.

홍콩 친구들 | 4년 전에 홍콩에서 배낭여행 온 동네

친구들이 있었는데요. 저희 집에서 팔찌도 팔고 갔었거든요. 그때 여기서는 짜장면 주고 양꼬치 사장님이 꼬치도 주시고 하셨는데요. 최근에 그 중 한 친구가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사진도 인화해서 준 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요.

Q. 동문거리 주민 분들과 하고 싶은 것

A. 한옥마을 공영주차장이 생기기 전에는 시골에서 화전놀이 하듯이 음식도 준비하고 주민들이 모여서 즐기는축제를 딱 한 번 했었는데요. 풍원은 탕수육, 장가네는 족발, 지리산 청과는 수박 등 여러 가지 주민들 후원으로 진행되었어요. 함께 축제를 열었던 추진위원단 분들이 이사를 가시기도 하셔서 한 번으로 그쳤던 점이 아쉬워요. 동문거리에 오래 사셨던 분들과 새로 이사 온 분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Q. 동문예술거리에서 하는 행사들 알고 계신가요?

A. 요즘은 가게-집-시장만 다니다 보니 잘 모르고 있었는데, 바람골목 앞에서 동문예술장터를 하더라고요. 동문사거리 쪽에서만 진행되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어서, 토요일 오후에 1-2시간이라도 차량통제 하고 상인들도 나와서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깨비시장처럼 잠깐이라도 탕수육 가지고 나가서 컵에다가 천원 이렇게 팔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Q. 나의 동문친구를 소개합니다A. 노인정 | 어르신 분들이 평소에 재료 다듬는 것도

많이 도와주시기도 하셔서 항상 감사해요. 단체로 노인정 가셔서 어르신 분들 만나보시면 어떨까 생각해요.

풍전콩나물국밥 | 다른 사람들 잘 도와주시고 묵묵히

동네 어른으로써 자리를 지켜주시는 분

서울철물점 | 손재주가 좋으시고 지식도 많으신 동문

거리 터줏대감

보람닭집 | 손수 손질도 하시고 식용유도 자주 갈아

서 깨끗하고 정직하게 장사하시는 분

|“동문거리, 동문사람”을 소개합니다.

동문주민 이어가기, 두 번째

2017 두번째 동문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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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두번째 동문공감

“동문거리, 동문공간”을 소개합니다. |

안녕하세요. 올해 6월부터 삼양다방을 운영하게 된 박경자입니다. 삼양다방이라는 공간만이 아니라, 동문예술거리라는 문화거리에 와서 일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평소에 차와 커피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 실제로 일 해보니까 천직처럼 잘 맞는 것 같아요.

다방이라는 공간은 자기의 시간을 소비하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차와 차끼리 부딪히면서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추억에 이끌려 오신 어르신 분들은 이 곳에서 옛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며 과거의 퍼즐을 맞춰 가시고요. 유명한 문화공간으로 알고 찾아오는 관광객들, 학생들은 사진도 찍고 이야기하며 추억을 쌓아간답니다. 단순히 차만 마시고 돌아가는 다방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드나들면서 다양한 세대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동문예술거리의 가장 오래된 복합 문화공간, “삼양다방”

-삼양다방 박경자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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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두번째 동문공감

|동문풍경 청년단체소개

동문예술거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단체

“문화통신사”

안녕하세요. 문화가 순환하는 도시를 꿈꾸는 문화예술기획자 김지훈입니다. 문화통신사는 문화를 전달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단체입니다. 전주는 예술적으로 특색 있고 순수예술 자원도 많은 지역임에도, 정보를 모른다는 이유로 문화혜택을 누리고 사는 소비자가 많이 없는데요. 전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공연들을 소비자에 맞게 전달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문화통신사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Q.문화통신사 공간에 대해 소개

A. 삼양다방 지하에 영화소품창고라는 공간이 있는데요. 이 곳은 삼양다방을 지키면서 지하는 문화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공간이고요. 누구나 와서 구경 할 수 있고, 현재는 전주에서 촬영했던 다양한 영화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시도되고 있고, 최근에는 청년예술가네트워킹을 진행 1달에 1번씩 진행하고 있어요. 이번 달에는 11번째를 맞이하면서 '창조적 공간 만들기' 라는 주제로 지역의 청년예술가들이 모여 모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Q.문화통신사의 대표적인 활동

A. 전주형 인터파크 홈페이지|공연을 홍보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의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있어요. 단순히 포스터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 이야기부터 티저영상을 확인하고 예매까지 가능한 홈페이지인데요. 금액을 받고 홍보를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회원으로 가입하면 편하게 직접 게시할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청년위크축제 |전라북도에서 주관하는 청년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전북지역의 축제이지만 장소도 전주이고 전주사람들만 참여한다는 한계점이 있었는데요. 먼저 사전 순회단을 꾸려서 지역의 청년문화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보고 있어요. 본 행사는 구 KT&G 건물에서 8월 26일(토)에 진행되고,'욜로(YOLO)와 청년'이라는 타이틀로 전라북도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Q.동문예술거리에서 해보고 싶은 문화기획

A. '동문쌀롱 프로젝트' 기획을 준비하고 있어요. 유럽에서 커피 2잔 값을 내고 1잔을 마시면, 나머지 1잔은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는 운동이 있는데요. 이 아이디어에서 착안하여 지역의 청년예술가를 응원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삼양다방과의 협약으로 진행 될 예정이고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지역예술가 응원 프로젝트라서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면 더욱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김지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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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두번째 동문공감

동문거리 심층 인터뷰 |

골목 골목마다 |30여 년 전만 해도 고사동, 경원동 등 이른바 전주 시내권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밤늦게까지 상가들의 불은 켜졌고, 골목골목 선술집은 막걸리를 마시는 손님들로 부산했다. 어느 날 상권은 사라지게 됐고 사람들도 덩달아 줄어들었다. 오후 9시만 되면 상가들 불은 하나 둘 꺼지고 이내 조용한 거리가 된다. 전북대 구정문 앞, 전주대 정문 근처, 전북도청 앞과 비교하면 무척 대조되는 현상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전주 동문거리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은 빠져나가고 거리는 휑해졌다. 비단 전주 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으로 동문거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전주시는 지난 2012년부터 동문거리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왔다. 예술인과 시민의 문화 활동을 활성화하고 이를 위해 문화거점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동문거리 활성화 사업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 전주시의회 김남규 의원이다. 시간만 나면 이곳을 찾아 쓴 소리 단 소리를 거침없이 뱉었다. 전주의 문화발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리라. 동문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위해 김남규 의원을 만난 이날도 단 소리보다 쓴 소리가 먼저 나왔다. 예상했던 일이다.

"한옥마을의 영향을 받아 상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정체성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120년 전 조성된 근대거리를 기본으로 한 대구 북성로는 명소화로 성공했지만 전주는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동문은 전주의 인문학거리|전주시민이라면 동문거리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많다. 김남규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1970년대 중반 신흥고등학교를 다녔다. 이곳이 통학길이었다. 오후엔 서적 구입 때문에 자주 들렀다. 고등학생 신분으로도 휴식처 같은 곳이었다. 당시 아리랑제과점을 중심으로 학원도 많았다. 지금은 출향인사 정도나 동문거리를 떠올리지만 누구나 동문거리에 대한 추억이 있다. 1970년대 당시 풍남동과 경원동이 최고 주거단지였다. 하숙생들이 엄청 많았다. 인근에 학교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하숙집들이 나중에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했다.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기 위해선 새로 신축보다 하숙집 개조가 더 쉬웠기 때문이다. 이곳에 게스트하우스가 많은 이유다.

"과거 1960년대, 1970년대 전주는 교육도시였다. 전국에서 8대 도시 중 하나일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학생들이 동문거리로 통학을 하면서 헌책방이 성행했다. 한창일 때는 40여개가 넘었지만 지금은 서너 개로 줄어들었다."

굳이 숫자를 세지 않아도 헌책방은 눈에 띄게 줄었다. 전주의 유일한 음악감상실도 슬그머니 문을 닫았다. 헌책방의 향수가 느껴지는 곳이며 지금도 이곳에서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당시 식자층에게 동문거리는 전주의 인문학거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동문거리는 근대거리도 아니고 책방거리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됐다. 인근에 한옥마을과 한국전통문화전당이 있지만 그럼에도 동문거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예술인의 생태계 조성|아직도 많은 예술인들이 살고 있고, 이들이 있는 한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이 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동문거리 조성에 대한 충분한 사전조사가 없었고, 건물 중심의 조사가 실패의 원인이란 것이다. 사람과 인프라가 결합되지 못했다. 기존에는 행정주도로 사업을 추진했다. 행정이 주도한 대표적 실패사례다. 한옥마을 개발하듯이 같은 방법을 사용해선 안된다. 전주시민놀이터나 창작지원센터 등 거점시설은 만들었으나 네트워크가 형성이 안 돼 고여 있는 공간이 됐다. 예산마저 뒷받침이 되지 않아 동호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하드웨어보단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시설 보강보단 콘텐츠 확충으로 시선을 전환해야 함을 강조했다. 사람 중심에 옛 정취가 느껴질 수 있는 인문학거리를 조성해야 만 젊은 사람들도 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동문거리는 작가와 예술인과 상업인들이 결합해 일종의 메세나 활동까지 연계될 수 있는 충분한 요건이 있다. 예를 들어 콩나물국밥 왱이집의 경우 문화예술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선각사의 경우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전주 최대 서점인 홍지서림도 이곳에 있다. 좋은 인프라가 다 갖춰진 셈이다. 이들이 유기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움직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행정은 이들이 움직일 수 있는 발판만 마련하면 된다."

작가의 다양성 확보와 젊은 청년의 유입|1년 단위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행정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예산 자체가 단기예산으로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철저한 조사가 뒷받침되어도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사업의 연속성 확보가 안되는 주된 이유다.

"동문거리의 사업 대상조사가 시급하다. 청년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 예술가를 중심으로 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부산의 또따또가는 만화가, 작가, 화가 등 예술인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들의 협업과 융합이 있다. 우리는 이런 다양성이 없이 예술의 거리 조성 실패의 큰 원인이 된다. 작가의 다양성 확보와 젊은 청년들 유입이 매우 시급하다."

거점상업공간과 예술가의 만남. 동문거리는 이런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홍지서림이 책을 지원하고 작가는 이를 작품에 반영한다. 왱이집은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제공하고, 기타 유휴공간이 제공되면 작가의 작업공간이 변하게 되고 개선된다. 동문거리는 이런 자그마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젊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동문거리만의 고유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촬영: 청년작가손하원

전주시의회

김남규 의원대담

"동문거리를 사람중심의 인문학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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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두번째 동문공감

동문거리 공감 인터뷰 |

이장호 감독님이 동문네거리를 다시 찾은 것은 아마도 10여년의 세월이 족히 흐른 후가 아니었을까..물론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동문거리 가맥 집을 두루두루 둘러 보신 것이 올해였을 수도 있고 작년이었을 수도 있다.그런데 이장호 감독님이 찬찬히 동문거리에 (그것도 해가 떠 있을 적에) 발길을 옮기고, 그의 영화 제목을 딴 술집‘별들의 고향’건물 1층 “삼양다방”에 오신 것은 분명 10여년만의 일일 것이다. 전주를 떠난 지 오래인 이장호 감독님을 굳이 삼양다방에 모신 것은 내 열망이 더 컸다. 감독님과의 인연은 방송프로그램 MC와 담당 작가로서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는데, 매주 금요일 아침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말로만 듣던 “이장호의 외인구단”그 영화의 감독님을 만났고...감독님과 나는 전주의 술집에서 방송국에서 서울의 영화관에서 나의 20대와 30대,그의 50대와 60대를 보냈다.우리는 때로는 친구 같았고, 부녀지간 같았고, 사제지간 같았다.

감독님과 내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남들은 나를 퍽 싸가지 없게 보기도 하였으나 어쨌든 감독님 스스로 젊은 사람들과 격 없이 지내는 것을 좋아하신지라 나는 지금도 감독님과 친구라고 서슴지 않고 얘기한다. 하여 내가 “삼양다방”을 통해 문화지기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꼭 감독님을 “삼양다방”에 모시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의 영화제목을 본 땄던 “별들의 고향” 그 술집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그 아래 “삼양다방”은 참으로 꿋꿋하게 동문네거리를 지키고 있노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1952년에 개업한 이후 수많은 영화인들이 오고가고, 예술가들의 격론의 장이었던 삼양다방..이곳에서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영상위원회의 기초가 된 노장이 강론을 펼친다....

삼양다방 그리고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진경은 전주 KBS 방송작가

별들의 고향에 찾아온

이장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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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두번째 동문공감

동문거리 심층 인터뷰 |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감독님 역시 매우 감회어린 목소리로 전주 영화를 말하기 시작했다.“내가 처음 전주에 왔던 것이 1999년이었는데, 그때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시작됐었지..”

당시 대전 중부대학교 교수였던 감독님은 우연히 전주 벤처기업과 인연을 맺었는데..그것이 단초가 되어 전주대학교 영화학과 교수로 오게 되었다. 당시 전주대학교에 영화학과가 설립되긴 했지만 이렇다 할 영화 전문교수가 없었던 터라 그의 등장은 모두에게 환영받는 일이 되었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시작되고, 전주 영상위가 발족되면서 이장호 감독님은 초대 전주영상위원장을 맡게 된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전주영상위원장이 돼서 전주국제영화제에 알고 지내던 감독들도 초대하고 배우들도 초대했는데, 전주국제영화제가 다른 영화제들하고 좀 더 다른 색깔을 가졌으면 하는 게 바람이었어" 그래서 자유와 소통, 독립을 강조한 전주국제영화제가 지금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와 함께한 이장호 감독님의 일생...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을까?"나는 영화가 뭔지를 몰랐어, 연출이라는 것도 몰랐지.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감독이 되었어"그가 고백한 이 한마디는 영화감독이란 하늘이 만들어준 대단한 존재인줄 알았던 우리들에게 뜨악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어떻게 한국영화의 한 획을 그은 감독에게서 영화감독조차 몰랐다는 말이 나왔을까..이장호 감독님은 학창시절 얘기를 꺼내며 당신의 삶이 참으로 고마운 인생임을 조용히 술회했다. 홍대 건축학과를 들어갔지만 수업은 고사하고 아침부터 술 마시는 일에 몰두했던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신 필름에 들어간다. 당시 영화검열관이었던 감독님의 아버지는 공부에 별 뜻 없는 감독님을 배우로 만들고자 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감독님은 "너 영화판에서 뭐하고 싶냐" 는 신상옥 감독님의 물음에 "배우 하겠어요" 라는 말을 못하고 "연출을 하겠다" 고 한다.잘생긴 당신의 얼굴을 보고 당연히 배우 하라고 할 줄 알았건만...

신상옥 감독님은 감독님의 얼굴에 별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장호 감독님은 신필름의 조감독이 되었고,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인생역작 “별들의 고향”을 연출하게 된다.“최인호가 말이야..정말 인물이야. 그 친구가 초등학교 때 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쭈욱~ 내 동창이었는데, 나는 그 친구를 잘 알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를 알지 못했지. 왜냐하면 나는 별 볼일 없지만, 그 친구는 초등학교때 부터 글 잘쓰는 천재로 유명했거든...중학교 때 연애소설 썼는데, 담임조차 정말 최인호가 그 글을 썼는지 믿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최인호 작가의 원작“별들의 고향”은 당시 유명 영화감독들이 서로 연출을 하겠다고 눈독을 들이던 화제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초짜 중에 초짜 이장호 감독님에게 그 영광이 돌아갔을까. 그 과정은 감독님의 기억 속에 꽁꽁 묻어둔 것으로 결말을 짓는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아마도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 아니었을까...감독님은 자신의 영화인생 기반을 만들어준 친구, 최인호를 추억하며 잠시 눈물을 짓기도 했다. 어쨌든 "별들의 고향" 이후 그의 영화인생은 승승장구였다. 46만 동원이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최인호원작의 "어제 내린 비" 를 필두로 "너 또한 별이 되어"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등의 영화를 발표하며 이른바 청년영화 시리즈를 이어갔다.

이장호 감독님의 말을 빌자면 그때는 무서울 게 없었다고 한다. 29살에 감독이 됐고, 장가도 갔고 딸도 있었던 그...그러다보니 어리석게도 교만해지고 교활해지기도 했다는 젊은 이장호는...대마초흡연사건으로 활동정지를 당하게 된다.

“내가 인생이 말이야...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올 때도 있는데 말이야. 그때는 그런 것을 잘 몰랐어.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인생의 정석이야.”

잠시의 암울한 시간을 보낸 후 이장호 감독님은 또 다시 영화판에 돌아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가 다시 메가폰을 잡기 시작한 1980년대는 검열의 시대였다.

"어둠의 자식들" 이라는 작품을 하면서도 그는 수없이 시나리오 검열을 당했고, 3개월 안에 작품을 만들라는 제작사 사이에서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영화를 놓아버려야겠다는 것 밖에 없었다. 감독님은 다시는 자신을 찾지 못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영화를 망치기로 한다. 그래서 멋대로, 생각나는 대로 찍은 영화가 "바보선언” 이었다.

“나 참...기가 막혀서..어떻게 보면 바보선언은 한국영화계의 사생아야..그런데 그냥 영화를 그만두려고, 아주 이상하게 영화를 찍었는데..그게 또 히트를 쳤어“

기존의 영화구도와 촬영방식을 뒤엎은 “바보선언”사람들은 독특한 영화전개에 열광했고,이장호 감독님은 또다시 한국영화의 한 획을 그은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감독님은 이러한 입지를 바탕으로 “판영화사”를 설립하게 된다. 하지만 또다시 시련이 다가왔는데, 영화사가 별다른 히트작을 내지 못하고 도산하고 만 것이다. 이후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명자,아끼고, 쏘냐” 등을 발표하지만 이장호 영화감독은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조금은 화려해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특별해 보이기도 한 이장호 감독님의 영화인생, 그는 최고의 자리에서 인생의 단맛을 보기도 했고, 낭떠러지와 같은 쓴맛을 보기도 했다. 70넘은 노장이 60넘은 공간에서 회고하는 마지막 말에서 그의 영화와 인생이 압축 된다

“내가 74년, 73년에 영화를 시작했으니 영화인생이 44년이야..그런데 일하는 시기가 13년에 불과해.. 그러니까 30년 은 논 셈이지. 일안한 것은 즉 내리막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그 내리막길이 나를 되살아나게 하는 힘이 됐지..

그래서 나는 그 내리막길을 축복의 슬럼프라고 얘기하고 싶어..

그러니 당신들도 슬럼프를 두려워 하지마”

이장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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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두번째 동문공감

전주도시 이야기 수집가 모집

" 꿈틀 꿈틀 동문동행" 소식을 알립니다

겉 과 속 outside And Inside

전주문화재단은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 중 시민소통 프로그램으로 전주시민놀이터에서

동문그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꿈틀꿈틀, 동문동행”을 슬로건으로 3월 첫 선 보인

동문그림가게는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과 지역 예술가들이 직접 그리고 만든 다양한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날짜 : 2017.04.03. ~ 12.29.

이용시간 : 평일 오전9시~오후9시 / 주말 오전9시~오후5시

장소 : 전주시민놀이터 1층 갤러리(완산구 경원동 현무2길 38)

문의 : 063-287-2012

날짜 : 2017. 7. 1. ~ 9. 30.

장소 : 한옥마을아트홀

예매 : 홍지서림 / 티켓예매 인터파크, 쿠팡, 옥션

문의 : 063-282-1003

'저명한 정신과의사에게 이상하게 변해버린 약혼자 때문에 찾아온 여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매료된 정신과의사는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고 ....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날짜 : 2017.07.29. ~ 08.19.

이용시간 : 오전10시~오후6시(일요일휴관)

장소 : 동문길 60(풍남동1가 18-1)

문의 : 010-2726-9626 / 010 7534 3727

모집기간 : 6월~10월 매월 셋 째주 금요일 수시접수

장소 : 삼양다방

문의 :063-231-2238

전주의 도시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다음 세대로 이어갈

전주를 사랑하는 이야기 수집가를 모집합니다.

사람들의 겉 즉 우리가 사람을 봤을 때 보여 지는 것은 단순하고 알기 쉽다. 하지만 사람들

의 속 즉 내면은 알기가 쉽지 않고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겉모습은 밖으로 들어나기 때문

에 사람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내면은 자신의 진실 된 모습인데

도 불구하고 숨기고 겉으로 번지르르 한 모습만 보여준다.이러한 사람의 내면과 외면에 대

한 나의 이야기를 내 작품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동문그림가게’

으스스한 코믹 스릴러, “The Cat”

발행인 : 정정숙 | 발행처 : 전주문화재단 | 발행일 : 2017. 8. 16.총 괄 : 생활문화팀 | 취재 및 디자인 : 동문기자단 전화 : 063-287-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