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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공정 여행사 ‘트래블러스맵’(Traveler’s MAP) 변형석 대표를 만나다
문화 2019년 5월 27일 월요일 |
여행의 몫을 모두에게 공정하게여태까지의 여행 산업은 여행자의 즐거움에 초점
을 뒀다. 그러나 최근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으
로 폐쇄된 보라카이, 그리고 여러 개의 가방을 메고
맨발로 히말라야를 오르는 포터와 같은 관광 산업
의 이면은 여행자가 윤리적 여행을 고민하는 계기
가 된다. 이에 현지에도 여행의 수익을 나눠주는 동
시에 여행자에게는 일상적인 현지 체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정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2일(수), 10년 넘게 공정 여행에 대해 고민하는 사
회적 기업인 공정 여행사 ‘트래블러스맵’(Traveler’s
MAP)의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트래블러스맵은 ‘Travelers Make an Amazing
Planet’의 약자다. ‘여행자의 지도’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트래블러스맵은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여행
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마
음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정 여행의 ‘공정’이라는
단어는 국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뒀던 ‘공정 무역’에
서 비롯됐다. 2000년대 초반에도 제3세계 국가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대기업 위
주의 기성 패키지여행은 현지 경제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공정 여행을 통해
관광객은 마을을 최대한 많이 둘러보고 현지 주민
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다.
2008년 한국에서 공정 여행이라는 개념은 기존
여행에 대한 반성적 목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기업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더해져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 상당했다. 변형석 대표는 “한국
에도 공정 여행 사업이 시장성 있는 때가 올 것이라
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래블러스맵을
만들기 전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여행의 교
육적 가치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며 “공정 여행에
대한 관심과 체계적인 여행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트래블러스맵을 만든 계기”라고 덧붙였다.
트래블러스맵의 시작은 특별했다. 현재 트래블러
스맵은 여행사 경험을 가진 직원이 대다수다. 그러
나 창업 초기에는 영화 제작자나 잡지 편집장과 같
이 제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은 여행과 무관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여행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만든 기업”이라며 “모두 여행사 경험이 없다 보니
항공권 예매가 제때 되지 않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
기도 했다”고 미소지었다.
트래블러스맵은 관광객과 사회적 경제 기업을 연
결하는 가교 구실을 한다. 이에 공정 여행자는 환경
친화적인 숙소나 지역 특산물을 식자재로 사용하
는 식당 같은 사회적 기업을 이용하게 된다. 변형
석 대표는 “여행사의 역할은 잠을 자는 공간을 직
접 만들지 못하더라도 방문객이 편하게 머물 수 있
는 장소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
들이 직접 여행의 모든 일정을 계획하는 것은 아니
다. 공정 여행의 취지에 공감하는 현지 여행사가 마
을 주민의 의사가 반영된 상품을 제작하고, 트래블
러스맵은 이를 채택해 여행 상품 기획에 반영한다.
변 대표는 “현지 여행사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최
대한 그대로 수용하되 언어적 문제는 조율하고 한
국인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선정한다”며 여행 상
품을 기획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트래블러스맵은 관광지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
력하는 동시에 여행자가 현지를 있는 그대로 경험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인 가이드가 아니라 현지
인 가이드가 관광객과 동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
서다. 변 대표는 “지역 청년을 훈련시켜 현지인 가
이드로 고용하면 해당 지역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며 “동시에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관광객은
그 나라의 역사나 정체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 말했다. 현지인의 집에서 머무르는 홈스테이 프
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저소득 청소년의 직업 훈련
이 이뤄지는 음식점에 방문하는 것도 그 노력의 일
환이다. 변 대표는 “이 과정에서 관광객은 마을에
서 환대받는 경험을 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를 체험
했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공정 여행은 환경에 대한 고려도 빼놓지 않는다.
여행 중 이동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
다. 이에 공정 여행은 한 국가에서 오래 머무르거
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히
트래블러스맵은 관광객이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해
별도로 이동할 필요가 없도록 시내 중심에 있는 숙
소나 에너지 자립률이 높은 숙소를 선정한다. 변 대
표는 “현지를 훼손하거나 쓰레기를 남기는 것과 같
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공정 여행은 국내에서도 이뤄진다. 부산의 감천 문
화 마을이나 통영의 동피랑 마을이 대표적인 국내 공
정 여행지다. 이곳에서는 지역 주민이 직접 게스트하
우스를 만들거나 식당을 차리는 등의 도시 재생 사업
이 이뤄지고 있다. 변형석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
은 공정 여행지로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 해외를 떠
올리지만 국내에도 이에 못지않게 잘 개발된 공정 여
행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여행에 익숙한 관광객은 새로운 형태의
여행을 낯설어하기도 한다. 공정 여행 과정에서 관광
객은 전용 차량이 아닌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이
다. 이에 변 대표는 “이동 수단에 불편함을 토로하던
이들도 결국 공정 여행에 매력을 느껴 이동 과정까지
즐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존 여행 상품의 가
격에 익숙한 이들은 공정 여행 상품의 가격이 일반
패키지여행보다 훨씬 비싸다고 느낄 수 있다. 변 대
표는 “공정 여행사는 옵션과 쇼핑, 팁을 여행 상품에
포함하지 않는 3무(無) 원칙을 따른다”며 “이 원칙을
지키다 보면 가격 차이는 발생하지만, 공정 여행을
경험한 소비자는 대부분 이 가격이 공정 여행에 걸맞
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지역에는 최선의 기여, 환경에는
최소의 영향,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기회를 목표로
한다. 변 대표는 “셋 중에서도 여행자에게 최고의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정 여행의 모범이 되는 교본을 만들고 소
비자들의 윤리적 판단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
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트래블러스맵은 여행 산업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빈곤, 실업,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
능성을 보여준다. 공정 여행은 관광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동시에 관광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앞으로도 트래블러스맵이 여행 여정의 곳곳에서 발
생하는 소비자의 윤리적 판단을 도와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민주 기자
사진: 원가영 기자
‘여행’과 ‘공정’이 만나
공정 여행이 만드는 사회적 경제
트래블러스맵
윤리적 여행을 만들기 위해서
‘트래블러스맵’ 변형석 대표는 “어느 나라든 현지 주민은 그 지역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발굴하는 것이 공정
여행사가 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리뷰 | 인권사진전 ‘사람+사람에 들다’를 둘러보다
사람이 들어온다, 우리를 바라본다지난 13일(월)부터 23일까지 서울시민청 시민플라
자A에서 임종진 작가의 사진전 ‘사람+사람에 들다’
가 열렸다. 서울시 인권사진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전시에는 네팔·르완다·이라크·인도·인도네시아·캄
보디아·티베트·필리핀 8개국 주민들의 삶의 형태를
제시하고 인간 생명의 가치를 전하는 사진이 전시됐
다. 「한겨레신문」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던 임종진 작
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치유적 행위로서의
사진을 추구한다. 그는 국제구호기관에서 활동하는
한편 5·18 고문 피해자, 7~80년대 조작간첩 고문 피
해자 등 국가 폭력에 의해 상처를 입은 이들을 대상
으로 하는 사진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임종진 작가는 스스로를 ‘곁지기 사진가’라 지칭
하며 이 사진전을 ‘곁지기 시선전’이라 소개했다. 그
의 말에 따르면 곁지기 시선전은 ‘사진전’이 아니다.
사진을 찍은 자신은 ‘작가’가 아니라 개발도상국 주
민들의 곁에 가까이 들어가 ‘친구’로서 있는 사람이
기 때문이다. 그는 “국제개발협력분야의 많은 기관에
서 개발도상국 주민들에 대해 고통스럽고 가난하다
는 이미지를 통해 동정심을 유발하는데, 이는 사진을
폭력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사진을 통해서 사
람들이 개발도상국 주민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차별
적이거나 고정적인 관념을 내려놓고 ‘우리는 같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런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에도 잘 녹아있다.
“어느 한 사람을 바라봅니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내
그 사람 속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타자가 된 나를 바라
봅니다...(중략)...이제 그 한 사람을 다시 바라봅니다. 처
음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와 나라는 이등
분은 없어지고 경계와 구분도 무너집니다. 이제 ‘유일
한 나’는 사라지고 ‘무한한 나’가 생성됩니다.”
이번 전시는 마음을 품은 시선, 세월을 품은 시선, 미
래를 품은 시선, 풍경을 품은 시선, 웃음을 품은 시선,
삶을 품은 시선이라는 6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시민청
복도에 들어서면 정면에서 맞아주는 사진 속 소녀의
환한 미소는 사진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 오른편에는 가장 먼저 ‘미래를 품은 시선’에 대한 사
진이 보인다. 사진 속 아이들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시간을 가꾸기도 하고, 낯선 이방
인의 방문에 호기심 어린 미소로 관심을 보이기도 한
다. 이들도 우리처럼 미래를 꿈꾸고 세월을 맞이하고
삶을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삶’에 대한 이
야기로 이어진다. 신발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좌절
하지 않고 일과 사랑을 나누며 하루를 채워간다. 그들
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삶’의 맞은편
에는 ‘세월’이 있다. 세월은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여운
을 남긴다. 세월을 품은 시선은 사진이기에 순간의 기
록이지만 그 속에는 억겁의 시간이 담겨있다. 세월의
이면에는 풍경이 고요하게 존재한다. ‘풍경을 품은 시
선’에는 사진이 어느 지역인지에 대한 설명조차 없다.
임 작가는 “관객들이 개발도상국의 땅에 대해 척박하
다는 생각을 버리고 토양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충분히 상상하며 즐겼으면 좋겠다”고 작품
의 의도를 설명했다. ‘마음을 품은 시선’과 ‘웃음을 품
은 시선’에서도 임 작가는 그들의 고통을 부각하기보
다는 인간 생명의 가치와 존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
게 한다. 차창 유리 밖으로 마주한, 뜨거운 뙤약볕 아래
땀으로 범벅이 돼 숨을 헐떡이는 이를 생각하는 작가
의 마음은 프레임을 넘어 관객에게로 다가온다.
작가는 관람객이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연민의 시
선으로 내려다보기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인간으로서 수평적으로 보길 바랐다. 관람객 박성
훈 씨(50)는 “개발도상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월감
이나 동정심 둘 중 하나에 매몰되기 쉬운데 이 작가
는 여기서 벗어나 확실히 다른 시선을 가진 것 같다”
며 “사진만큼이나 작가의 마음도 밝은 것 같다”고 말
했다. 임종진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흔하게 듣지만, 사실은 사진
에 담기는 사람들이 따뜻한 것”이라며 본인의 역할
은 사진작가가 아닌 ‘사연 전달자’임을 강조한다. 그
의 사진은 단편적인 미(美) 이상의 많은 이야기를 담
고 있다. 이 이야기 속에는 동정을 받아야 하는 고통
도, 시혜를 바라는 가난도 없다. 그저 우리와 같은 삶
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이 담
겨있을 뿐이다.
최해정 수습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손유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