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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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06 2013 09 September 우리가 함께해요 www.cha.go.kr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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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vol 106

201309September

우리가함께해요

내일을

바라보다

어제의

혜안으로

wwwchagokr

편견과

차별이

아닌

존중과

배려로

소수자의

권리

| 본지에실린내용은저자의개인적인견해입니다

|본지에게재된글이나교육자료를문화재청의허락없이무단복사 전재하는것을금합니다

| lt문화재사랑gt은문화재청홈페이지에서웹진(e-book)으로도보실수있습니다

2013 09 September

사람들의건강하고안정된삶을위협하는일을사회가감당하는것

사회복지는한사회에살고있는모든사람들의행복을목표로하는

모든지원활동을의미합니다

고대로부터우리나라는아동노인장애인등을보살피고

가뭄이나홍수등천재지변으로인한피해로부터

백성들을구제하기위해다양한지원책을강구하였습니다

특히조선시대장애인에대한복지정책은오늘날에비해서도상당히선진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장애인에게도직업을가질수있도록기회를제공하였습니다

차별과편견보다는존중과배려로더불어살았던우리조상

그바른전통을되새기며오늘날우리가이룩해야할건강한사회를그려봅니다

존중과

배려로

소수자의

권리

편견과

차별이

아닌

특집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❶근대이전우리민족

복지제도의발자취|감정기

❷조선시대장애인

그들에게사회적장애는없었다|정창권

❸인권사각지대에방치된장애인

공존의길은없나|이동석

문화의숲을거닐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

잊힌것들을다시빛나게하다|김진희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관동찬가

고성청간정淸澗亭과왕곡마을|김진희

근현대의길목에서

수도서울水道와만나다|서일수

북녘의무형유산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서도소리산염불middot난봉가|황경순

선조들의음식보감

조상의삶희로애락과함께했던음식한과|함재묵

자연愛물들다

용암이물을만나만든용암굴뚝

제주비양도의호니토|손영관

문화재돋보기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안용락

Zoom In 무형유산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제기|김시덕

Design Heritage

아름다운우리의떡살|김규석

생동하는문화재현장

대한민국1문화유산절터|임석규

문화재사랑과만나다

백일홍이만발한8월의소쇄원瀟灑園 |박연근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불쏘시개가될뻔했던겸재의작품

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유환석

함께하는문화재청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김영은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성혜경

독자퍼즐middot독자의소리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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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t e n t s

cover story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은 나와 다른 사람 부족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는 장애인을 비 장애인과 구별하기

보다는 배려하고 지원하며 함께 어울려 살았습니다 또한 장애인이라 할지

라도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높은 관직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표지 이

미지는 우리 조상이 가졌던 소수자에 대한 편견 없는 관념과 그러한 인식이

반영된 사회문화를 일러스트로 표현했으며lsquo과거의 혜안으로 미래를 보는

창rsquo을이미지화했습니다

우측마크는시각장애인을위한음성변환보이스아이바코드입니다

발행일 2013년 9월 1일 창간일 2004년 10월 29일 발행처문화재청 발행인변영섭 편집대변인실 총괄기획윤순호 윤혜영 김수현

편집위원이종희 황경순 오춘영 장영기 김성도 임병천 임은경 김윤경 조은경 방인아 차금용 신동렬

주소 302-701 대전광역시서구청사로 189 문화재청대변인실 전화 (042)481-4677 팩스 (042)481-4679 이메일 chloveocpgokr

홈페이지wwwchagokr 기획middot디자인middot제작 (주)홍커뮤니케이션즈wwwhongcommcom

이 소식지의 구독은 무료입니다

사람들의건강하고안정된삶을위협하는일을사회가감당하는것을

사회복지라 할 수 있다 사회가 감당한다는 말은 각자의 역량이나

시장기능에맡기지않고국가가나서거나다양한민간수준의조직적

지원활동으로해결하려함을뜻한다이때민간수준의활동은국가

차원의그것에대해부차적인것에속한다고보는것이적절하므로

이 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공공적 성격의 접근사례들을

중심으로 다루려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것은삼국시대인것으로보는것이다수설인듯하다따라서

여기서는 삼국시대부터 전통적 요소의 단절middot왜곡middot변질을 경험

하게되는일제강점기전까지의시기에한정하여사회에대한영향

력이가시적이었다고보는주요사례들을중심으로살펴보고자한다

글 감정기 (경남대학교사회복지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숭실대학교한국기독교박물관

특집❶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4

삼국시대에서통일신라시대에이르는기간동안등장했던사회복

지관련제도는크게두가지로나누어볼수있다하나는어려움

에 처한 백성에게 무상으로 지원을 행했던 진휼賑恤제도이고 다

른 하나는 어려울 때 빌려주었다가 후일에 되갚게 했던 진대賑貸

제도이다전자는다시자연재해와같이일시적인재난을당해굶

주림에처하게된자들에대한지원과4궁四窮처럼상시적으로열

악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구집단에 대한 지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4궁이란lsquo아내가없는노인(환鰥)rsquolsquo남편이없는노인(과寡)rsquolsquo아버

지가 없는 아동(고 孤)rsquolsquo자녀가 없는 노인(독 獨)rsquo의 네 범주에 드는

사람들을가리킨다이러한4궁개념은맹자孟子가일찍이옛왕의

근대

우리

이전

민족

복지제도의

발자취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치적을 예거하며 가장 우선적으로 돌봐야 할 백성들임을 주장하면

서 제기하였던 것으로 우리 고대사회의 고유한 발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웃나라에 선행되고 있는 제도나 관념을 본뜨는 일은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제도의 확

산 혹은 전파(diffusion)라고 일컫는 이런 현상을 굳이 사대적事大的 발

상의 반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아무튼 4궁에 대한 지원은 오늘날

의 공공부조 내지 사회서비스를 연상하게 하는 제도로서 지원의

대상과정책목표가명료하다는장점이있는반면에장애인이제외

되어있는등그범위를너무한정되게잡고있다는단점도있다

이시기의진대제도의대표격이되는것은말할것도없이고구려

고국천왕 16년에 국상國相 을파소乙巴素의 건의에 따라 도입한 진대

법賑貸法이다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

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제도로서『삼국사기』

의 고구려본기 제4권에서 이를lsquo모든 백성이 크게 기뻐한(內外大悅)rsquo

법으로 칭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

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과 그를 알아보고 중용하

였으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고국천왕의 개방적 리더십이 역사적

인제도를만들어냈다는사실이다

이 밖에도 어려움에 처한 백성에게 세稅나 형刑을 감해주는 제도와

05

01국상 을파소 상상도 진대법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이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02 조선후기 김홍도가 그린 lt지팡이를 든 두 맹인gt 조선

태종은lsquo명통시(明通寺)rsquo라는 시각장애인 단체를 결성해 쌀과 베 등을 포상으로 내리는 등 시각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했다 03 『고려사』중 진대제도에 대한 기록 현종 3년(1012) 5월

왕이ldquo작년 서경에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겹치는 바람에 가격이 폭등해 민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니 짐은 자나 깨나 걱정을 하고 있다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창고를 열어 진휼하게

하라rdquo고 하교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가난한 유민流民들에게 공공사업 성격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고대국가의 복지제도 발달 동인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해볼수 있을 듯하다그하나는 백성에 대한 통치자의

자발적인선의善意 혹은책임감의발로로보는시각이다이런시각

은 토속적 샤머니즘과 함께 유교 불교 등의 종교적 영향을 받아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제할 책임이 통치자인 왕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인식한 데에서 제도발달이 비롯되었다고 본다 학계 일각

에서는 이러한 사고를lsquo책기責己rsquo개념으로 설명한다 책기란 동양

적 자연관인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과 유교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덕치德治의정신등이결합된것으로서이개념이서구사회의역사

적 경험을 근거로 한 제도발달이론들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고대사회의 제도발달 과정상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균1989)경청할만한주장이라고여겨진다

고대국가복지제도발달의동인에관한또하나의관점은복지시책

03

04 조선말기 행정법전인『육전조례』중 혜민국에 대한 기록 혜민국은 고려와 조선초기에 서민의

질병치료를 위해 설치한 의료기관으로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다 05기산

김준근의 lt판수경닉고gt에 나타난 맹인 신령을 위한 제삿상 앞에서 시각장애인 판수(判數)가

오른손으로 북을 두드리고 왼손으로 바닥에 있는 꽹과리를 쳐 가면서 경(經)을 읊고 있다 조선

시대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점복을 주업으로 삼았다 06 김준근의 lt소경문수gt 시각장애인이

어린이에게 길안내를 받고있다 손에는 시각장애인 용 장죽을 잡았다 07 lt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gt 중 벼타작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등 백성의 구휼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06

발전을 사회통제社會統制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고대사회 당시

사회구성의 근간이면서 주요 세원이었던 백성들의 신분을 지속시

키고 백성의 건강을 도와 국세國勢를 유지하며 왕권을 신장하고

안정적인 통치를 해야 할 정치적 필요가 작용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김종준 1992 천인석 1994 조법종 1996) 일종의 음모론적 시각을 반

영하는 이런 설명방식은 서구사회의 사회복지 제도발달 이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복지제도 발달배경을

이해하는데에도어느정도유용성을지닌다고본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빈곤구제의 제도가 좀 더

틀을 갖추게 된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공적인 제도 가운데 상설

기구로는 고구려의 진대법을 계승한 흑창黑倉과 미곡 및 포목으로

물가조절의 기능까지 겸했던 상평창常平倉 충선왕 때 의창곡 보충

과 재정개혁의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연호미烟戶米를 징수하여 만

든 유비창有備倉 궁민의 구호와 함께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겸

했던제위보濟危寶 등이있었다

공적인기구이면서비상설로운영되던구휼기관으로동서제위도감

東西濟危都監 구제도감救濟都監 구급도감救急都監 등이 있었다 이 가운

데 구제도감은 병자 치료의 역할도 맡았는데 특히 전염병 등으로

사망하여 매장되지 못하고 방치된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담당하기

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이 밖에도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들

이 있었다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던 혜민국惠民局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보호하고자

04

05 06

07

참고문헌

middot김병숙 2002 고려시대의노동시장특성과직업윤리『직업교육연구』21(2) 63-90

middot김상균 1989 제2장 사회복지사 연구와 사회복지학의 이론 하상락 편『한국사회복지사론』

서울박영사

middot김정기 2008 조선시대의정책결정과정에관한연구『한국행정사학지』23 161-186

middot김종준 1992 신라 사회통제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 특히 삼국시대를 중심으로『아시아문화』

8 223-266

middot소광섭 2007 진대법의사회복지적성격에관한연구『사회복지정책』31 63-78

middot조법종 1996 삼국시대 민middot백성의 개념과성격에 대한검토『백제문화』25 87-133

middot천인석 1994 삼국시대의 유학사상『한국학논집』21 35-49

middot최연식 2005 조선시대 사림의 정치참여와 향촌자치의 이념『한국정치외교사논총』27(1)

5-34

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등이있었다

이상의 사례들은 공공재원으로 빈궁자 및 빈궁한 환자들을 무상으

로 지원하고 보호하며 치료한 기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

복지 기관이라 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기관들이 제한된 궁핍한

인구집단만을대상으로하는잔여적殘餘的 성격을지녔다는점과일

부 지역에 국한하여 설치운영 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당시의 사회적 필요를 어느 정도 감당하였

는지에관한기록이없어그성과를평가하기는어렵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관리를 대상으로 한 독특한 실업대책과 함께

연금제도와 유사한 제도도 존재했었다 당시 고위관리의 정년을

70세로 하되 직무능력이 있으면 90세에도 임용하는 사례들이 있

었다 또 관리의 실업대책으로서 실업자들을 윤번제로 일하게 하

여 직무역량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재취업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

는가하면인종때에는나이70이되어정년퇴임하는소수의고위

관리들을 위한 일종의 연금제도인 치사관록致仕官祿 제도가 채택되

기도 했던 것이 그 예이다(김병숙 2002) 고위관리에 국한된 제도이긴

하나상당히흥미로운제도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종래의 제도들이 계승되거나 답습되는

가운데 이시기의 상황적 특성을 반영한 일부 제도들이 새로이도

입되는 양상을 띠었다 예컨대 의창과 상평창 제도는 계승되었는

가하면의창의변질에대응하여중국주희朱熹의사창법社倉法을본

뜬 사창제도가 신설되었던 것이다 4궁에 대한 보호제도 고려의

동서대비원을 이어받은 활인원活人院과 활인서活人署 고려의 제위보

와 같은 기능을 한 제생원濟生院 등이 계승된 예라면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구호를 규정한 자휼전칙字恤典則

흉년이나 재난시에 행걸인에게 식사를 제공했던 시식施食 흉년 시

에 이재민에게 세나 부역 혹은 환곡을 감면해 주었던 견감 減 등

은조선시대에발전한고유한제도의예라볼수있다

조선시대 정치및 행정 환경에 관한 일부 해석을 보면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에 대한 향촌 지주와 사림士林들에 의한 향촌의 자치권 강

화 내지 자율적 질서 확립을 위한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

로보는가하면(최연식2005)행정관료들이정책결정과정에참여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합리적이고 제한된 의미의 민주적 요소도 내포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김정기 2008)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강점당함으로 인하여 근대적 정치행

정 체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위에서 예거한 근대 이전의 제도들이

근대 자본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전적으로 계승될 여지도

마찬가지로 말살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얻을수있는교훈은무엇일까한가지만들라면공공복지

의 향방은 정치적 실세의 의지나 정치지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평

범한진리를꼽고싶다 이점은예나지금이나다를바가없다 다

만 오늘날은 정치적 실세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이 시민으로부

터나온다는점에서옛날과는차이가있을뿐이다

07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8특집❷

출근시간한장애인이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버스에오른다사람

들은 웅성거리며 이리저리 비켜서고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실

눈을뜨고혼잣말을한다ldquo바빠죽겠는데hellip그냥집에있을것이지

출근시간에나와피해를주는게야rdquo보통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

버스에올라장착하기까지는불과3~5분정도면충분하다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시간은 마치 몇 시간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이는장애인과비장애인이서로분리되어살다보니더불어사는

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장애인은

주로집안에서만살아갈것이라는선입견때문이다이것이바로우리

시대의 장애인관이다 그렇다면 전통시대에는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은 집 안팎이나 저잣거리 관청 궁궐 등에

서다양한일을하며비장애인과스스럼없이어울려살아갔다또한

오늘날과달리장애를한계나극복의대상으로보지않았고장애인

이라할지라도능력과의지만있다면종9품미관말직에서정1품정승

심지어왕노릇까지도얼마든지할수있다고생각했다

글 정창권 (고려대학교 교양교직부 초빙교수) 사진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운보문화재단

01 02

조선시대

장애

없었다

장애는

사회적

그들에게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09

선진적인장애인복지정책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상

당히 선진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장애인에게도 직업을 갖고 자립생

활을 하도록 권하였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인정

人政』에서어떤장애인이라도배우고일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도『담헌서』에서lsquo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문지키는데로돌리며심지어벙어리와귀머거리앉은뱅

이까지모두일자리를갖도록해야한다rsquo고말했다장애인을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면서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유폐시킨 채 장애 수

당만지급하면끝이라는오늘날과는사뭇대조적이었던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쳤다 장애인

에겐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하지

않고 면포로 대신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정侍丁 즉 부양자(활동보조인)를 제공하고 때때로 노인과 함께 잔치를

03

01세종대왕 초상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동안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

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 02순종 초상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있었던듯하다 얼굴에표정이거의없었고주변의일에도관심이없었는데 사물의형태나

이름에 대해선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03조선후기 서예가 조광진의 필적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당시의 명필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김정희에게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04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인정』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로 최한기는 이 책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4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하사했다 기타 동서활인원이

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

였다

장애를갖고있었던왕족

이처럼 선진적인 장애인식과 복지정책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 조

선시대에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하여뛰어난공적을이룬역사적인물들이대단히많았다

먼저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종친 등 왕족 중에서도 상당수의 장애

인이존재했다조선의제4대왕인세종은평생동안소갈증과풍

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

은 고생을 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안질 즉

눈에 병이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은 35세 무렵부터인데 45세부터는 더욱

심해져서 자주 온천에 가서 치료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종은 음침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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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 본지에실린내용은저자의개인적인견해입니다

|본지에게재된글이나교육자료를문화재청의허락없이무단복사 전재하는것을금합니다

| lt문화재사랑gt은문화재청홈페이지에서웹진(e-book)으로도보실수있습니다

2013 09 September

사람들의건강하고안정된삶을위협하는일을사회가감당하는것

사회복지는한사회에살고있는모든사람들의행복을목표로하는

모든지원활동을의미합니다

고대로부터우리나라는아동노인장애인등을보살피고

가뭄이나홍수등천재지변으로인한피해로부터

백성들을구제하기위해다양한지원책을강구하였습니다

특히조선시대장애인에대한복지정책은오늘날에비해서도상당히선진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장애인에게도직업을가질수있도록기회를제공하였습니다

차별과편견보다는존중과배려로더불어살았던우리조상

그바른전통을되새기며오늘날우리가이룩해야할건강한사회를그려봅니다

존중과

배려로

소수자의

권리

편견과

차별이

아닌

특집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❶근대이전우리민족

복지제도의발자취|감정기

❷조선시대장애인

그들에게사회적장애는없었다|정창권

❸인권사각지대에방치된장애인

공존의길은없나|이동석

문화의숲을거닐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

잊힌것들을다시빛나게하다|김진희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관동찬가

고성청간정淸澗亭과왕곡마을|김진희

근현대의길목에서

수도서울水道와만나다|서일수

북녘의무형유산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서도소리산염불middot난봉가|황경순

선조들의음식보감

조상의삶희로애락과함께했던음식한과|함재묵

자연愛물들다

용암이물을만나만든용암굴뚝

제주비양도의호니토|손영관

문화재돋보기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안용락

Zoom In 무형유산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제기|김시덕

Design Heritage

아름다운우리의떡살|김규석

생동하는문화재현장

대한민국1문화유산절터|임석규

문화재사랑과만나다

백일홍이만발한8월의소쇄원瀟灑園 |박연근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불쏘시개가될뻔했던겸재의작품

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유환석

함께하는문화재청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김영은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성혜경

독자퍼즐middot독자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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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t e n t s

cover story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은 나와 다른 사람 부족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는 장애인을 비 장애인과 구별하기

보다는 배려하고 지원하며 함께 어울려 살았습니다 또한 장애인이라 할지

라도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높은 관직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표지 이

미지는 우리 조상이 가졌던 소수자에 대한 편견 없는 관념과 그러한 인식이

반영된 사회문화를 일러스트로 표현했으며lsquo과거의 혜안으로 미래를 보는

창rsquo을이미지화했습니다

우측마크는시각장애인을위한음성변환보이스아이바코드입니다

발행일 2013년 9월 1일 창간일 2004년 10월 29일 발행처문화재청 발행인변영섭 편집대변인실 총괄기획윤순호 윤혜영 김수현

편집위원이종희 황경순 오춘영 장영기 김성도 임병천 임은경 김윤경 조은경 방인아 차금용 신동렬

주소 302-701 대전광역시서구청사로 189 문화재청대변인실 전화 (042)481-4677 팩스 (042)481-4679 이메일 chloveocpgokr

홈페이지wwwchagokr 기획middot디자인middot제작 (주)홍커뮤니케이션즈wwwhongcommcom

이 소식지의 구독은 무료입니다

사람들의건강하고안정된삶을위협하는일을사회가감당하는것을

사회복지라 할 수 있다 사회가 감당한다는 말은 각자의 역량이나

시장기능에맡기지않고국가가나서거나다양한민간수준의조직적

지원활동으로해결하려함을뜻한다이때민간수준의활동은국가

차원의그것에대해부차적인것에속한다고보는것이적절하므로

이 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공공적 성격의 접근사례들을

중심으로 다루려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것은삼국시대인것으로보는것이다수설인듯하다따라서

여기서는 삼국시대부터 전통적 요소의 단절middot왜곡middot변질을 경험

하게되는일제강점기전까지의시기에한정하여사회에대한영향

력이가시적이었다고보는주요사례들을중심으로살펴보고자한다

글 감정기 (경남대학교사회복지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숭실대학교한국기독교박물관

특집❶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4

삼국시대에서통일신라시대에이르는기간동안등장했던사회복

지관련제도는크게두가지로나누어볼수있다하나는어려움

에 처한 백성에게 무상으로 지원을 행했던 진휼賑恤제도이고 다

른 하나는 어려울 때 빌려주었다가 후일에 되갚게 했던 진대賑貸

제도이다전자는다시자연재해와같이일시적인재난을당해굶

주림에처하게된자들에대한지원과4궁四窮처럼상시적으로열

악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구집단에 대한 지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4궁이란lsquo아내가없는노인(환鰥)rsquolsquo남편이없는노인(과寡)rsquolsquo아버

지가 없는 아동(고 孤)rsquolsquo자녀가 없는 노인(독 獨)rsquo의 네 범주에 드는

사람들을가리킨다이러한4궁개념은맹자孟子가일찍이옛왕의

근대

우리

이전

민족

복지제도의

발자취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치적을 예거하며 가장 우선적으로 돌봐야 할 백성들임을 주장하면

서 제기하였던 것으로 우리 고대사회의 고유한 발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웃나라에 선행되고 있는 제도나 관념을 본뜨는 일은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제도의 확

산 혹은 전파(diffusion)라고 일컫는 이런 현상을 굳이 사대적事大的 발

상의 반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아무튼 4궁에 대한 지원은 오늘날

의 공공부조 내지 사회서비스를 연상하게 하는 제도로서 지원의

대상과정책목표가명료하다는장점이있는반면에장애인이제외

되어있는등그범위를너무한정되게잡고있다는단점도있다

이시기의진대제도의대표격이되는것은말할것도없이고구려

고국천왕 16년에 국상國相 을파소乙巴素의 건의에 따라 도입한 진대

법賑貸法이다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

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제도로서『삼국사기』

의 고구려본기 제4권에서 이를lsquo모든 백성이 크게 기뻐한(內外大悅)rsquo

법으로 칭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

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과 그를 알아보고 중용하

였으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고국천왕의 개방적 리더십이 역사적

인제도를만들어냈다는사실이다

이 밖에도 어려움에 처한 백성에게 세稅나 형刑을 감해주는 제도와

05

01국상 을파소 상상도 진대법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이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02 조선후기 김홍도가 그린 lt지팡이를 든 두 맹인gt 조선

태종은lsquo명통시(明通寺)rsquo라는 시각장애인 단체를 결성해 쌀과 베 등을 포상으로 내리는 등 시각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했다 03 『고려사』중 진대제도에 대한 기록 현종 3년(1012) 5월

왕이ldquo작년 서경에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겹치는 바람에 가격이 폭등해 민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니 짐은 자나 깨나 걱정을 하고 있다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창고를 열어 진휼하게

하라rdquo고 하교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가난한 유민流民들에게 공공사업 성격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고대국가의 복지제도 발달 동인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해볼수 있을 듯하다그하나는 백성에 대한 통치자의

자발적인선의善意 혹은책임감의발로로보는시각이다이런시각

은 토속적 샤머니즘과 함께 유교 불교 등의 종교적 영향을 받아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제할 책임이 통치자인 왕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인식한 데에서 제도발달이 비롯되었다고 본다 학계 일각

에서는 이러한 사고를lsquo책기責己rsquo개념으로 설명한다 책기란 동양

적 자연관인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과 유교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덕치德治의정신등이결합된것으로서이개념이서구사회의역사

적 경험을 근거로 한 제도발달이론들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고대사회의 제도발달 과정상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균1989)경청할만한주장이라고여겨진다

고대국가복지제도발달의동인에관한또하나의관점은복지시책

03

04 조선말기 행정법전인『육전조례』중 혜민국에 대한 기록 혜민국은 고려와 조선초기에 서민의

질병치료를 위해 설치한 의료기관으로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다 05기산

김준근의 lt판수경닉고gt에 나타난 맹인 신령을 위한 제삿상 앞에서 시각장애인 판수(判數)가

오른손으로 북을 두드리고 왼손으로 바닥에 있는 꽹과리를 쳐 가면서 경(經)을 읊고 있다 조선

시대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점복을 주업으로 삼았다 06 김준근의 lt소경문수gt 시각장애인이

어린이에게 길안내를 받고있다 손에는 시각장애인 용 장죽을 잡았다 07 lt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gt 중 벼타작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등 백성의 구휼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06

발전을 사회통제社會統制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고대사회 당시

사회구성의 근간이면서 주요 세원이었던 백성들의 신분을 지속시

키고 백성의 건강을 도와 국세國勢를 유지하며 왕권을 신장하고

안정적인 통치를 해야 할 정치적 필요가 작용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김종준 1992 천인석 1994 조법종 1996) 일종의 음모론적 시각을 반

영하는 이런 설명방식은 서구사회의 사회복지 제도발달 이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복지제도 발달배경을

이해하는데에도어느정도유용성을지닌다고본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빈곤구제의 제도가 좀 더

틀을 갖추게 된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공적인 제도 가운데 상설

기구로는 고구려의 진대법을 계승한 흑창黑倉과 미곡 및 포목으로

물가조절의 기능까지 겸했던 상평창常平倉 충선왕 때 의창곡 보충

과 재정개혁의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연호미烟戶米를 징수하여 만

든 유비창有備倉 궁민의 구호와 함께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겸

했던제위보濟危寶 등이있었다

공적인기구이면서비상설로운영되던구휼기관으로동서제위도감

東西濟危都監 구제도감救濟都監 구급도감救急都監 등이 있었다 이 가운

데 구제도감은 병자 치료의 역할도 맡았는데 특히 전염병 등으로

사망하여 매장되지 못하고 방치된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담당하기

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이 밖에도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들

이 있었다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던 혜민국惠民局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보호하고자

04

05 06

07

참고문헌

middot김병숙 2002 고려시대의노동시장특성과직업윤리『직업교육연구』21(2) 63-90

middot김상균 1989 제2장 사회복지사 연구와 사회복지학의 이론 하상락 편『한국사회복지사론』

서울박영사

middot김정기 2008 조선시대의정책결정과정에관한연구『한국행정사학지』23 161-186

middot김종준 1992 신라 사회통제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 특히 삼국시대를 중심으로『아시아문화』

8 223-266

middot소광섭 2007 진대법의사회복지적성격에관한연구『사회복지정책』31 63-78

middot조법종 1996 삼국시대 민middot백성의 개념과성격에 대한검토『백제문화』25 87-133

middot천인석 1994 삼국시대의 유학사상『한국학논집』21 35-49

middot최연식 2005 조선시대 사림의 정치참여와 향촌자치의 이념『한국정치외교사논총』27(1)

5-34

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등이있었다

이상의 사례들은 공공재원으로 빈궁자 및 빈궁한 환자들을 무상으

로 지원하고 보호하며 치료한 기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

복지 기관이라 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기관들이 제한된 궁핍한

인구집단만을대상으로하는잔여적殘餘的 성격을지녔다는점과일

부 지역에 국한하여 설치운영 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당시의 사회적 필요를 어느 정도 감당하였

는지에관한기록이없어그성과를평가하기는어렵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관리를 대상으로 한 독특한 실업대책과 함께

연금제도와 유사한 제도도 존재했었다 당시 고위관리의 정년을

70세로 하되 직무능력이 있으면 90세에도 임용하는 사례들이 있

었다 또 관리의 실업대책으로서 실업자들을 윤번제로 일하게 하

여 직무역량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재취업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

는가하면인종때에는나이70이되어정년퇴임하는소수의고위

관리들을 위한 일종의 연금제도인 치사관록致仕官祿 제도가 채택되

기도 했던 것이 그 예이다(김병숙 2002) 고위관리에 국한된 제도이긴

하나상당히흥미로운제도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종래의 제도들이 계승되거나 답습되는

가운데 이시기의 상황적 특성을 반영한 일부 제도들이 새로이도

입되는 양상을 띠었다 예컨대 의창과 상평창 제도는 계승되었는

가하면의창의변질에대응하여중국주희朱熹의사창법社倉法을본

뜬 사창제도가 신설되었던 것이다 4궁에 대한 보호제도 고려의

동서대비원을 이어받은 활인원活人院과 활인서活人署 고려의 제위보

와 같은 기능을 한 제생원濟生院 등이 계승된 예라면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구호를 규정한 자휼전칙字恤典則

흉년이나 재난시에 행걸인에게 식사를 제공했던 시식施食 흉년 시

에 이재민에게 세나 부역 혹은 환곡을 감면해 주었던 견감 減 등

은조선시대에발전한고유한제도의예라볼수있다

조선시대 정치및 행정 환경에 관한 일부 해석을 보면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에 대한 향촌 지주와 사림士林들에 의한 향촌의 자치권 강

화 내지 자율적 질서 확립을 위한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

로보는가하면(최연식2005)행정관료들이정책결정과정에참여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합리적이고 제한된 의미의 민주적 요소도 내포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김정기 2008)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강점당함으로 인하여 근대적 정치행

정 체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위에서 예거한 근대 이전의 제도들이

근대 자본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전적으로 계승될 여지도

마찬가지로 말살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얻을수있는교훈은무엇일까한가지만들라면공공복지

의 향방은 정치적 실세의 의지나 정치지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평

범한진리를꼽고싶다 이점은예나지금이나다를바가없다 다

만 오늘날은 정치적 실세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이 시민으로부

터나온다는점에서옛날과는차이가있을뿐이다

07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8특집❷

출근시간한장애인이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버스에오른다사람

들은 웅성거리며 이리저리 비켜서고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실

눈을뜨고혼잣말을한다ldquo바빠죽겠는데hellip그냥집에있을것이지

출근시간에나와피해를주는게야rdquo보통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

버스에올라장착하기까지는불과3~5분정도면충분하다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시간은 마치 몇 시간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이는장애인과비장애인이서로분리되어살다보니더불어사는

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장애인은

주로집안에서만살아갈것이라는선입견때문이다이것이바로우리

시대의 장애인관이다 그렇다면 전통시대에는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은 집 안팎이나 저잣거리 관청 궁궐 등에

서다양한일을하며비장애인과스스럼없이어울려살아갔다또한

오늘날과달리장애를한계나극복의대상으로보지않았고장애인

이라할지라도능력과의지만있다면종9품미관말직에서정1품정승

심지어왕노릇까지도얼마든지할수있다고생각했다

글 정창권 (고려대학교 교양교직부 초빙교수) 사진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운보문화재단

01 02

조선시대

장애

없었다

장애는

사회적

그들에게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09

선진적인장애인복지정책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상

당히 선진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장애인에게도 직업을 갖고 자립생

활을 하도록 권하였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인정

人政』에서어떤장애인이라도배우고일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도『담헌서』에서lsquo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문지키는데로돌리며심지어벙어리와귀머거리앉은뱅

이까지모두일자리를갖도록해야한다rsquo고말했다장애인을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면서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유폐시킨 채 장애 수

당만지급하면끝이라는오늘날과는사뭇대조적이었던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쳤다 장애인

에겐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하지

않고 면포로 대신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정侍丁 즉 부양자(활동보조인)를 제공하고 때때로 노인과 함께 잔치를

03

01세종대왕 초상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동안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

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 02순종 초상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있었던듯하다 얼굴에표정이거의없었고주변의일에도관심이없었는데 사물의형태나

이름에 대해선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03조선후기 서예가 조광진의 필적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당시의 명필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김정희에게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04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인정』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로 최한기는 이 책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4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하사했다 기타 동서활인원이

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

였다

장애를갖고있었던왕족

이처럼 선진적인 장애인식과 복지정책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 조

선시대에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하여뛰어난공적을이룬역사적인물들이대단히많았다

먼저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종친 등 왕족 중에서도 상당수의 장애

인이존재했다조선의제4대왕인세종은평생동안소갈증과풍

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

은 고생을 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안질 즉

눈에 병이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은 35세 무렵부터인데 45세부터는 더욱

심해져서 자주 온천에 가서 치료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종은 음침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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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특집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❶근대이전우리민족

복지제도의발자취|감정기

❷조선시대장애인

그들에게사회적장애는없었다|정창권

❸인권사각지대에방치된장애인

공존의길은없나|이동석

문화의숲을거닐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

잊힌것들을다시빛나게하다|김진희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관동찬가

고성청간정淸澗亭과왕곡마을|김진희

근현대의길목에서

수도서울水道와만나다|서일수

북녘의무형유산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서도소리산염불middot난봉가|황경순

선조들의음식보감

조상의삶희로애락과함께했던음식한과|함재묵

자연愛물들다

용암이물을만나만든용암굴뚝

제주비양도의호니토|손영관

문화재돋보기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안용락

Zoom In 무형유산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제기|김시덕

Design Heritage

아름다운우리의떡살|김규석

생동하는문화재현장

대한민국1문화유산절터|임석규

문화재사랑과만나다

백일홍이만발한8월의소쇄원瀟灑園 |박연근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불쏘시개가될뻔했던겸재의작품

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유환석

함께하는문화재청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김영은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성혜경

독자퍼즐middot독자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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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t e n t s

cover story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은 나와 다른 사람 부족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는 장애인을 비 장애인과 구별하기

보다는 배려하고 지원하며 함께 어울려 살았습니다 또한 장애인이라 할지

라도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높은 관직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표지 이

미지는 우리 조상이 가졌던 소수자에 대한 편견 없는 관념과 그러한 인식이

반영된 사회문화를 일러스트로 표현했으며lsquo과거의 혜안으로 미래를 보는

창rsquo을이미지화했습니다

우측마크는시각장애인을위한음성변환보이스아이바코드입니다

발행일 2013년 9월 1일 창간일 2004년 10월 29일 발행처문화재청 발행인변영섭 편집대변인실 총괄기획윤순호 윤혜영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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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건강하고안정된삶을위협하는일을사회가감당하는것을

사회복지라 할 수 있다 사회가 감당한다는 말은 각자의 역량이나

시장기능에맡기지않고국가가나서거나다양한민간수준의조직적

지원활동으로해결하려함을뜻한다이때민간수준의활동은국가

차원의그것에대해부차적인것에속한다고보는것이적절하므로

이 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공공적 성격의 접근사례들을

중심으로 다루려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것은삼국시대인것으로보는것이다수설인듯하다따라서

여기서는 삼국시대부터 전통적 요소의 단절middot왜곡middot변질을 경험

하게되는일제강점기전까지의시기에한정하여사회에대한영향

력이가시적이었다고보는주요사례들을중심으로살펴보고자한다

글 감정기 (경남대학교사회복지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숭실대학교한국기독교박물관

특집❶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4

삼국시대에서통일신라시대에이르는기간동안등장했던사회복

지관련제도는크게두가지로나누어볼수있다하나는어려움

에 처한 백성에게 무상으로 지원을 행했던 진휼賑恤제도이고 다

른 하나는 어려울 때 빌려주었다가 후일에 되갚게 했던 진대賑貸

제도이다전자는다시자연재해와같이일시적인재난을당해굶

주림에처하게된자들에대한지원과4궁四窮처럼상시적으로열

악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구집단에 대한 지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4궁이란lsquo아내가없는노인(환鰥)rsquolsquo남편이없는노인(과寡)rsquolsquo아버

지가 없는 아동(고 孤)rsquolsquo자녀가 없는 노인(독 獨)rsquo의 네 범주에 드는

사람들을가리킨다이러한4궁개념은맹자孟子가일찍이옛왕의

근대

우리

이전

민족

복지제도의

발자취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치적을 예거하며 가장 우선적으로 돌봐야 할 백성들임을 주장하면

서 제기하였던 것으로 우리 고대사회의 고유한 발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웃나라에 선행되고 있는 제도나 관념을 본뜨는 일은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제도의 확

산 혹은 전파(diffusion)라고 일컫는 이런 현상을 굳이 사대적事大的 발

상의 반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아무튼 4궁에 대한 지원은 오늘날

의 공공부조 내지 사회서비스를 연상하게 하는 제도로서 지원의

대상과정책목표가명료하다는장점이있는반면에장애인이제외

되어있는등그범위를너무한정되게잡고있다는단점도있다

이시기의진대제도의대표격이되는것은말할것도없이고구려

고국천왕 16년에 국상國相 을파소乙巴素의 건의에 따라 도입한 진대

법賑貸法이다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

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제도로서『삼국사기』

의 고구려본기 제4권에서 이를lsquo모든 백성이 크게 기뻐한(內外大悅)rsquo

법으로 칭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

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과 그를 알아보고 중용하

였으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고국천왕의 개방적 리더십이 역사적

인제도를만들어냈다는사실이다

이 밖에도 어려움에 처한 백성에게 세稅나 형刑을 감해주는 제도와

05

01국상 을파소 상상도 진대법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이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02 조선후기 김홍도가 그린 lt지팡이를 든 두 맹인gt 조선

태종은lsquo명통시(明通寺)rsquo라는 시각장애인 단체를 결성해 쌀과 베 등을 포상으로 내리는 등 시각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했다 03 『고려사』중 진대제도에 대한 기록 현종 3년(1012) 5월

왕이ldquo작년 서경에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겹치는 바람에 가격이 폭등해 민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니 짐은 자나 깨나 걱정을 하고 있다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창고를 열어 진휼하게

하라rdquo고 하교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가난한 유민流民들에게 공공사업 성격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고대국가의 복지제도 발달 동인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해볼수 있을 듯하다그하나는 백성에 대한 통치자의

자발적인선의善意 혹은책임감의발로로보는시각이다이런시각

은 토속적 샤머니즘과 함께 유교 불교 등의 종교적 영향을 받아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제할 책임이 통치자인 왕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인식한 데에서 제도발달이 비롯되었다고 본다 학계 일각

에서는 이러한 사고를lsquo책기責己rsquo개념으로 설명한다 책기란 동양

적 자연관인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과 유교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덕치德治의정신등이결합된것으로서이개념이서구사회의역사

적 경험을 근거로 한 제도발달이론들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고대사회의 제도발달 과정상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균1989)경청할만한주장이라고여겨진다

고대국가복지제도발달의동인에관한또하나의관점은복지시책

03

04 조선말기 행정법전인『육전조례』중 혜민국에 대한 기록 혜민국은 고려와 조선초기에 서민의

질병치료를 위해 설치한 의료기관으로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다 05기산

김준근의 lt판수경닉고gt에 나타난 맹인 신령을 위한 제삿상 앞에서 시각장애인 판수(判數)가

오른손으로 북을 두드리고 왼손으로 바닥에 있는 꽹과리를 쳐 가면서 경(經)을 읊고 있다 조선

시대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점복을 주업으로 삼았다 06 김준근의 lt소경문수gt 시각장애인이

어린이에게 길안내를 받고있다 손에는 시각장애인 용 장죽을 잡았다 07 lt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gt 중 벼타작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등 백성의 구휼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06

발전을 사회통제社會統制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고대사회 당시

사회구성의 근간이면서 주요 세원이었던 백성들의 신분을 지속시

키고 백성의 건강을 도와 국세國勢를 유지하며 왕권을 신장하고

안정적인 통치를 해야 할 정치적 필요가 작용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김종준 1992 천인석 1994 조법종 1996) 일종의 음모론적 시각을 반

영하는 이런 설명방식은 서구사회의 사회복지 제도발달 이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복지제도 발달배경을

이해하는데에도어느정도유용성을지닌다고본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빈곤구제의 제도가 좀 더

틀을 갖추게 된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공적인 제도 가운데 상설

기구로는 고구려의 진대법을 계승한 흑창黑倉과 미곡 및 포목으로

물가조절의 기능까지 겸했던 상평창常平倉 충선왕 때 의창곡 보충

과 재정개혁의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연호미烟戶米를 징수하여 만

든 유비창有備倉 궁민의 구호와 함께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겸

했던제위보濟危寶 등이있었다

공적인기구이면서비상설로운영되던구휼기관으로동서제위도감

東西濟危都監 구제도감救濟都監 구급도감救急都監 등이 있었다 이 가운

데 구제도감은 병자 치료의 역할도 맡았는데 특히 전염병 등으로

사망하여 매장되지 못하고 방치된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담당하기

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이 밖에도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들

이 있었다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던 혜민국惠民局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보호하고자

04

05 06

07

참고문헌

middot김병숙 2002 고려시대의노동시장특성과직업윤리『직업교육연구』21(2) 63-90

middot김상균 1989 제2장 사회복지사 연구와 사회복지학의 이론 하상락 편『한국사회복지사론』

서울박영사

middot김정기 2008 조선시대의정책결정과정에관한연구『한국행정사학지』23 161-186

middot김종준 1992 신라 사회통제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 특히 삼국시대를 중심으로『아시아문화』

8 223-266

middot소광섭 2007 진대법의사회복지적성격에관한연구『사회복지정책』31 63-78

middot조법종 1996 삼국시대 민middot백성의 개념과성격에 대한검토『백제문화』25 87-133

middot천인석 1994 삼국시대의 유학사상『한국학논집』21 35-49

middot최연식 2005 조선시대 사림의 정치참여와 향촌자치의 이념『한국정치외교사논총』27(1)

5-34

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등이있었다

이상의 사례들은 공공재원으로 빈궁자 및 빈궁한 환자들을 무상으

로 지원하고 보호하며 치료한 기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

복지 기관이라 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기관들이 제한된 궁핍한

인구집단만을대상으로하는잔여적殘餘的 성격을지녔다는점과일

부 지역에 국한하여 설치운영 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당시의 사회적 필요를 어느 정도 감당하였

는지에관한기록이없어그성과를평가하기는어렵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관리를 대상으로 한 독특한 실업대책과 함께

연금제도와 유사한 제도도 존재했었다 당시 고위관리의 정년을

70세로 하되 직무능력이 있으면 90세에도 임용하는 사례들이 있

었다 또 관리의 실업대책으로서 실업자들을 윤번제로 일하게 하

여 직무역량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재취업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

는가하면인종때에는나이70이되어정년퇴임하는소수의고위

관리들을 위한 일종의 연금제도인 치사관록致仕官祿 제도가 채택되

기도 했던 것이 그 예이다(김병숙 2002) 고위관리에 국한된 제도이긴

하나상당히흥미로운제도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종래의 제도들이 계승되거나 답습되는

가운데 이시기의 상황적 특성을 반영한 일부 제도들이 새로이도

입되는 양상을 띠었다 예컨대 의창과 상평창 제도는 계승되었는

가하면의창의변질에대응하여중국주희朱熹의사창법社倉法을본

뜬 사창제도가 신설되었던 것이다 4궁에 대한 보호제도 고려의

동서대비원을 이어받은 활인원活人院과 활인서活人署 고려의 제위보

와 같은 기능을 한 제생원濟生院 등이 계승된 예라면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구호를 규정한 자휼전칙字恤典則

흉년이나 재난시에 행걸인에게 식사를 제공했던 시식施食 흉년 시

에 이재민에게 세나 부역 혹은 환곡을 감면해 주었던 견감 減 등

은조선시대에발전한고유한제도의예라볼수있다

조선시대 정치및 행정 환경에 관한 일부 해석을 보면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에 대한 향촌 지주와 사림士林들에 의한 향촌의 자치권 강

화 내지 자율적 질서 확립을 위한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

로보는가하면(최연식2005)행정관료들이정책결정과정에참여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합리적이고 제한된 의미의 민주적 요소도 내포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김정기 2008)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강점당함으로 인하여 근대적 정치행

정 체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위에서 예거한 근대 이전의 제도들이

근대 자본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전적으로 계승될 여지도

마찬가지로 말살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얻을수있는교훈은무엇일까한가지만들라면공공복지

의 향방은 정치적 실세의 의지나 정치지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평

범한진리를꼽고싶다 이점은예나지금이나다를바가없다 다

만 오늘날은 정치적 실세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이 시민으로부

터나온다는점에서옛날과는차이가있을뿐이다

07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8특집❷

출근시간한장애인이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버스에오른다사람

들은 웅성거리며 이리저리 비켜서고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실

눈을뜨고혼잣말을한다ldquo바빠죽겠는데hellip그냥집에있을것이지

출근시간에나와피해를주는게야rdquo보통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

버스에올라장착하기까지는불과3~5분정도면충분하다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시간은 마치 몇 시간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이는장애인과비장애인이서로분리되어살다보니더불어사는

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장애인은

주로집안에서만살아갈것이라는선입견때문이다이것이바로우리

시대의 장애인관이다 그렇다면 전통시대에는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은 집 안팎이나 저잣거리 관청 궁궐 등에

서다양한일을하며비장애인과스스럼없이어울려살아갔다또한

오늘날과달리장애를한계나극복의대상으로보지않았고장애인

이라할지라도능력과의지만있다면종9품미관말직에서정1품정승

심지어왕노릇까지도얼마든지할수있다고생각했다

글 정창권 (고려대학교 교양교직부 초빙교수) 사진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운보문화재단

01 02

조선시대

장애

없었다

장애는

사회적

그들에게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09

선진적인장애인복지정책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상

당히 선진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장애인에게도 직업을 갖고 자립생

활을 하도록 권하였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인정

人政』에서어떤장애인이라도배우고일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도『담헌서』에서lsquo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문지키는데로돌리며심지어벙어리와귀머거리앉은뱅

이까지모두일자리를갖도록해야한다rsquo고말했다장애인을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면서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유폐시킨 채 장애 수

당만지급하면끝이라는오늘날과는사뭇대조적이었던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쳤다 장애인

에겐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하지

않고 면포로 대신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정侍丁 즉 부양자(활동보조인)를 제공하고 때때로 노인과 함께 잔치를

03

01세종대왕 초상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동안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

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 02순종 초상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있었던듯하다 얼굴에표정이거의없었고주변의일에도관심이없었는데 사물의형태나

이름에 대해선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03조선후기 서예가 조광진의 필적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당시의 명필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김정희에게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04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인정』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로 최한기는 이 책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4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하사했다 기타 동서활인원이

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

였다

장애를갖고있었던왕족

이처럼 선진적인 장애인식과 복지정책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 조

선시대에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하여뛰어난공적을이룬역사적인물들이대단히많았다

먼저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종친 등 왕족 중에서도 상당수의 장애

인이존재했다조선의제4대왕인세종은평생동안소갈증과풍

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

은 고생을 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안질 즉

눈에 병이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은 35세 무렵부터인데 45세부터는 더욱

심해져서 자주 온천에 가서 치료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종은 음침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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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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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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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사람들의건강하고안정된삶을위협하는일을사회가감당하는것을

사회복지라 할 수 있다 사회가 감당한다는 말은 각자의 역량이나

시장기능에맡기지않고국가가나서거나다양한민간수준의조직적

지원활동으로해결하려함을뜻한다이때민간수준의활동은국가

차원의그것에대해부차적인것에속한다고보는것이적절하므로

이 글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공공적 성격의 접근사례들을

중심으로 다루려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것은삼국시대인것으로보는것이다수설인듯하다따라서

여기서는 삼국시대부터 전통적 요소의 단절middot왜곡middot변질을 경험

하게되는일제강점기전까지의시기에한정하여사회에대한영향

력이가시적이었다고보는주요사례들을중심으로살펴보고자한다

글 감정기 (경남대학교사회복지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숭실대학교한국기독교박물관

특집❶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4

삼국시대에서통일신라시대에이르는기간동안등장했던사회복

지관련제도는크게두가지로나누어볼수있다하나는어려움

에 처한 백성에게 무상으로 지원을 행했던 진휼賑恤제도이고 다

른 하나는 어려울 때 빌려주었다가 후일에 되갚게 했던 진대賑貸

제도이다전자는다시자연재해와같이일시적인재난을당해굶

주림에처하게된자들에대한지원과4궁四窮처럼상시적으로열

악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구집단에 대한 지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4궁이란lsquo아내가없는노인(환鰥)rsquolsquo남편이없는노인(과寡)rsquolsquo아버

지가 없는 아동(고 孤)rsquolsquo자녀가 없는 노인(독 獨)rsquo의 네 범주에 드는

사람들을가리킨다이러한4궁개념은맹자孟子가일찍이옛왕의

근대

우리

이전

민족

복지제도의

발자취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치적을 예거하며 가장 우선적으로 돌봐야 할 백성들임을 주장하면

서 제기하였던 것으로 우리 고대사회의 고유한 발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웃나라에 선행되고 있는 제도나 관념을 본뜨는 일은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제도의 확

산 혹은 전파(diffusion)라고 일컫는 이런 현상을 굳이 사대적事大的 발

상의 반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아무튼 4궁에 대한 지원은 오늘날

의 공공부조 내지 사회서비스를 연상하게 하는 제도로서 지원의

대상과정책목표가명료하다는장점이있는반면에장애인이제외

되어있는등그범위를너무한정되게잡고있다는단점도있다

이시기의진대제도의대표격이되는것은말할것도없이고구려

고국천왕 16년에 국상國相 을파소乙巴素의 건의에 따라 도입한 진대

법賑貸法이다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

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제도로서『삼국사기』

의 고구려본기 제4권에서 이를lsquo모든 백성이 크게 기뻐한(內外大悅)rsquo

법으로 칭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

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과 그를 알아보고 중용하

였으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고국천왕의 개방적 리더십이 역사적

인제도를만들어냈다는사실이다

이 밖에도 어려움에 처한 백성에게 세稅나 형刑을 감해주는 제도와

05

01국상 을파소 상상도 진대법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이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02 조선후기 김홍도가 그린 lt지팡이를 든 두 맹인gt 조선

태종은lsquo명통시(明通寺)rsquo라는 시각장애인 단체를 결성해 쌀과 베 등을 포상으로 내리는 등 시각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했다 03 『고려사』중 진대제도에 대한 기록 현종 3년(1012) 5월

왕이ldquo작년 서경에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겹치는 바람에 가격이 폭등해 민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니 짐은 자나 깨나 걱정을 하고 있다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창고를 열어 진휼하게

하라rdquo고 하교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가난한 유민流民들에게 공공사업 성격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고대국가의 복지제도 발달 동인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해볼수 있을 듯하다그하나는 백성에 대한 통치자의

자발적인선의善意 혹은책임감의발로로보는시각이다이런시각

은 토속적 샤머니즘과 함께 유교 불교 등의 종교적 영향을 받아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제할 책임이 통치자인 왕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인식한 데에서 제도발달이 비롯되었다고 본다 학계 일각

에서는 이러한 사고를lsquo책기責己rsquo개념으로 설명한다 책기란 동양

적 자연관인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과 유교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덕치德治의정신등이결합된것으로서이개념이서구사회의역사

적 경험을 근거로 한 제도발달이론들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고대사회의 제도발달 과정상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균1989)경청할만한주장이라고여겨진다

고대국가복지제도발달의동인에관한또하나의관점은복지시책

03

04 조선말기 행정법전인『육전조례』중 혜민국에 대한 기록 혜민국은 고려와 조선초기에 서민의

질병치료를 위해 설치한 의료기관으로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다 05기산

김준근의 lt판수경닉고gt에 나타난 맹인 신령을 위한 제삿상 앞에서 시각장애인 판수(判數)가

오른손으로 북을 두드리고 왼손으로 바닥에 있는 꽹과리를 쳐 가면서 경(經)을 읊고 있다 조선

시대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점복을 주업으로 삼았다 06 김준근의 lt소경문수gt 시각장애인이

어린이에게 길안내를 받고있다 손에는 시각장애인 용 장죽을 잡았다 07 lt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gt 중 벼타작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등 백성의 구휼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06

발전을 사회통제社會統制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고대사회 당시

사회구성의 근간이면서 주요 세원이었던 백성들의 신분을 지속시

키고 백성의 건강을 도와 국세國勢를 유지하며 왕권을 신장하고

안정적인 통치를 해야 할 정치적 필요가 작용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김종준 1992 천인석 1994 조법종 1996) 일종의 음모론적 시각을 반

영하는 이런 설명방식은 서구사회의 사회복지 제도발달 이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복지제도 발달배경을

이해하는데에도어느정도유용성을지닌다고본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빈곤구제의 제도가 좀 더

틀을 갖추게 된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공적인 제도 가운데 상설

기구로는 고구려의 진대법을 계승한 흑창黑倉과 미곡 및 포목으로

물가조절의 기능까지 겸했던 상평창常平倉 충선왕 때 의창곡 보충

과 재정개혁의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연호미烟戶米를 징수하여 만

든 유비창有備倉 궁민의 구호와 함께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겸

했던제위보濟危寶 등이있었다

공적인기구이면서비상설로운영되던구휼기관으로동서제위도감

東西濟危都監 구제도감救濟都監 구급도감救急都監 등이 있었다 이 가운

데 구제도감은 병자 치료의 역할도 맡았는데 특히 전염병 등으로

사망하여 매장되지 못하고 방치된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담당하기

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이 밖에도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들

이 있었다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던 혜민국惠民局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보호하고자

04

05 06

07

참고문헌

middot김병숙 2002 고려시대의노동시장특성과직업윤리『직업교육연구』21(2) 63-90

middot김상균 1989 제2장 사회복지사 연구와 사회복지학의 이론 하상락 편『한국사회복지사론』

서울박영사

middot김정기 2008 조선시대의정책결정과정에관한연구『한국행정사학지』23 161-186

middot김종준 1992 신라 사회통제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 특히 삼국시대를 중심으로『아시아문화』

8 223-266

middot소광섭 2007 진대법의사회복지적성격에관한연구『사회복지정책』31 63-78

middot조법종 1996 삼국시대 민middot백성의 개념과성격에 대한검토『백제문화』25 87-133

middot천인석 1994 삼국시대의 유학사상『한국학논집』21 35-49

middot최연식 2005 조선시대 사림의 정치참여와 향촌자치의 이념『한국정치외교사논총』27(1)

5-34

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등이있었다

이상의 사례들은 공공재원으로 빈궁자 및 빈궁한 환자들을 무상으

로 지원하고 보호하며 치료한 기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

복지 기관이라 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기관들이 제한된 궁핍한

인구집단만을대상으로하는잔여적殘餘的 성격을지녔다는점과일

부 지역에 국한하여 설치운영 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당시의 사회적 필요를 어느 정도 감당하였

는지에관한기록이없어그성과를평가하기는어렵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관리를 대상으로 한 독특한 실업대책과 함께

연금제도와 유사한 제도도 존재했었다 당시 고위관리의 정년을

70세로 하되 직무능력이 있으면 90세에도 임용하는 사례들이 있

었다 또 관리의 실업대책으로서 실업자들을 윤번제로 일하게 하

여 직무역량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재취업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

는가하면인종때에는나이70이되어정년퇴임하는소수의고위

관리들을 위한 일종의 연금제도인 치사관록致仕官祿 제도가 채택되

기도 했던 것이 그 예이다(김병숙 2002) 고위관리에 국한된 제도이긴

하나상당히흥미로운제도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종래의 제도들이 계승되거나 답습되는

가운데 이시기의 상황적 특성을 반영한 일부 제도들이 새로이도

입되는 양상을 띠었다 예컨대 의창과 상평창 제도는 계승되었는

가하면의창의변질에대응하여중국주희朱熹의사창법社倉法을본

뜬 사창제도가 신설되었던 것이다 4궁에 대한 보호제도 고려의

동서대비원을 이어받은 활인원活人院과 활인서活人署 고려의 제위보

와 같은 기능을 한 제생원濟生院 등이 계승된 예라면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구호를 규정한 자휼전칙字恤典則

흉년이나 재난시에 행걸인에게 식사를 제공했던 시식施食 흉년 시

에 이재민에게 세나 부역 혹은 환곡을 감면해 주었던 견감 減 등

은조선시대에발전한고유한제도의예라볼수있다

조선시대 정치및 행정 환경에 관한 일부 해석을 보면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에 대한 향촌 지주와 사림士林들에 의한 향촌의 자치권 강

화 내지 자율적 질서 확립을 위한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

로보는가하면(최연식2005)행정관료들이정책결정과정에참여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합리적이고 제한된 의미의 민주적 요소도 내포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김정기 2008)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강점당함으로 인하여 근대적 정치행

정 체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위에서 예거한 근대 이전의 제도들이

근대 자본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전적으로 계승될 여지도

마찬가지로 말살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얻을수있는교훈은무엇일까한가지만들라면공공복지

의 향방은 정치적 실세의 의지나 정치지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평

범한진리를꼽고싶다 이점은예나지금이나다를바가없다 다

만 오늘날은 정치적 실세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이 시민으로부

터나온다는점에서옛날과는차이가있을뿐이다

07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8특집❷

출근시간한장애인이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버스에오른다사람

들은 웅성거리며 이리저리 비켜서고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실

눈을뜨고혼잣말을한다ldquo바빠죽겠는데hellip그냥집에있을것이지

출근시간에나와피해를주는게야rdquo보통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

버스에올라장착하기까지는불과3~5분정도면충분하다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시간은 마치 몇 시간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이는장애인과비장애인이서로분리되어살다보니더불어사는

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장애인은

주로집안에서만살아갈것이라는선입견때문이다이것이바로우리

시대의 장애인관이다 그렇다면 전통시대에는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은 집 안팎이나 저잣거리 관청 궁궐 등에

서다양한일을하며비장애인과스스럼없이어울려살아갔다또한

오늘날과달리장애를한계나극복의대상으로보지않았고장애인

이라할지라도능력과의지만있다면종9품미관말직에서정1품정승

심지어왕노릇까지도얼마든지할수있다고생각했다

글 정창권 (고려대학교 교양교직부 초빙교수) 사진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운보문화재단

01 02

조선시대

장애

없었다

장애는

사회적

그들에게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09

선진적인장애인복지정책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상

당히 선진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장애인에게도 직업을 갖고 자립생

활을 하도록 권하였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인정

人政』에서어떤장애인이라도배우고일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도『담헌서』에서lsquo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문지키는데로돌리며심지어벙어리와귀머거리앉은뱅

이까지모두일자리를갖도록해야한다rsquo고말했다장애인을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면서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유폐시킨 채 장애 수

당만지급하면끝이라는오늘날과는사뭇대조적이었던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쳤다 장애인

에겐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하지

않고 면포로 대신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정侍丁 즉 부양자(활동보조인)를 제공하고 때때로 노인과 함께 잔치를

03

01세종대왕 초상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동안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

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 02순종 초상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있었던듯하다 얼굴에표정이거의없었고주변의일에도관심이없었는데 사물의형태나

이름에 대해선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03조선후기 서예가 조광진의 필적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당시의 명필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김정희에게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04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인정』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로 최한기는 이 책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4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하사했다 기타 동서활인원이

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

였다

장애를갖고있었던왕족

이처럼 선진적인 장애인식과 복지정책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 조

선시대에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하여뛰어난공적을이룬역사적인물들이대단히많았다

먼저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종친 등 왕족 중에서도 상당수의 장애

인이존재했다조선의제4대왕인세종은평생동안소갈증과풍

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

은 고생을 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안질 즉

눈에 병이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은 35세 무렵부터인데 45세부터는 더욱

심해져서 자주 온천에 가서 치료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종은 음침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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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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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5: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치적을 예거하며 가장 우선적으로 돌봐야 할 백성들임을 주장하면

서 제기하였던 것으로 우리 고대사회의 고유한 발상과는 거리가

있다 이웃나라에 선행되고 있는 제도나 관념을 본뜨는 일은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제도의 확

산 혹은 전파(diffusion)라고 일컫는 이런 현상을 굳이 사대적事大的 발

상의 반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아무튼 4궁에 대한 지원은 오늘날

의 공공부조 내지 사회서비스를 연상하게 하는 제도로서 지원의

대상과정책목표가명료하다는장점이있는반면에장애인이제외

되어있는등그범위를너무한정되게잡고있다는단점도있다

이시기의진대제도의대표격이되는것은말할것도없이고구려

고국천왕 16년에 국상國相 을파소乙巴素의 건의에 따라 도입한 진대

법賑貸法이다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

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제도로서『삼국사기』

의 고구려본기 제4권에서 이를lsquo모든 백성이 크게 기뻐한(內外大悅)rsquo

법으로 칭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

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과 그를 알아보고 중용하

였으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고국천왕의 개방적 리더십이 역사적

인제도를만들어냈다는사실이다

이 밖에도 어려움에 처한 백성에게 세稅나 형刑을 감해주는 제도와

05

01국상 을파소 상상도 진대법은 자신의 지적 역량을 궁핍한 백성을 위해 사용했던 을파소의

혜안이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02 조선후기 김홍도가 그린 lt지팡이를 든 두 맹인gt 조선

태종은lsquo명통시(明通寺)rsquo라는 시각장애인 단체를 결성해 쌀과 베 등을 포상으로 내리는 등 시각

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을 지원했다 03 『고려사』중 진대제도에 대한 기록 현종 3년(1012) 5월

왕이ldquo작년 서경에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겹치는 바람에 가격이 폭등해 민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하니 짐은 자나 깨나 걱정을 하고 있다 담당 관청으로 하여금 창고를 열어 진휼하게

하라rdquo고 하교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가난한 유민流民들에게 공공사업 성격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제도가 있었다 이러한 고대국가의 복지제도 발달 동인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해볼수 있을 듯하다그하나는 백성에 대한 통치자의

자발적인선의善意 혹은책임감의발로로보는시각이다이런시각

은 토속적 샤머니즘과 함께 유교 불교 등의 종교적 영향을 받아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제할 책임이 통치자인 왕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인식한 데에서 제도발달이 비롯되었다고 본다 학계 일각

에서는 이러한 사고를lsquo책기責己rsquo개념으로 설명한다 책기란 동양

적 자연관인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과 유교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덕치德治의정신등이결합된것으로서이개념이서구사회의역사

적 경험을 근거로 한 제도발달이론들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고대사회의 제도발달 과정상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균1989)경청할만한주장이라고여겨진다

고대국가복지제도발달의동인에관한또하나의관점은복지시책

03

04 조선말기 행정법전인『육전조례』중 혜민국에 대한 기록 혜민국은 고려와 조선초기에 서민의

질병치료를 위해 설치한 의료기관으로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다 05기산

김준근의 lt판수경닉고gt에 나타난 맹인 신령을 위한 제삿상 앞에서 시각장애인 판수(判數)가

오른손으로 북을 두드리고 왼손으로 바닥에 있는 꽹과리를 쳐 가면서 경(經)을 읊고 있다 조선

시대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점복을 주업으로 삼았다 06 김준근의 lt소경문수gt 시각장애인이

어린이에게 길안내를 받고있다 손에는 시각장애인 용 장죽을 잡았다 07 lt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gt 중 벼타작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등 백성의 구휼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06

발전을 사회통제社會統制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고대사회 당시

사회구성의 근간이면서 주요 세원이었던 백성들의 신분을 지속시

키고 백성의 건강을 도와 국세國勢를 유지하며 왕권을 신장하고

안정적인 통치를 해야 할 정치적 필요가 작용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김종준 1992 천인석 1994 조법종 1996) 일종의 음모론적 시각을 반

영하는 이런 설명방식은 서구사회의 사회복지 제도발달 이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복지제도 발달배경을

이해하는데에도어느정도유용성을지닌다고본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빈곤구제의 제도가 좀 더

틀을 갖추게 된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공적인 제도 가운데 상설

기구로는 고구려의 진대법을 계승한 흑창黑倉과 미곡 및 포목으로

물가조절의 기능까지 겸했던 상평창常平倉 충선왕 때 의창곡 보충

과 재정개혁의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연호미烟戶米를 징수하여 만

든 유비창有備倉 궁민의 구호와 함께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겸

했던제위보濟危寶 등이있었다

공적인기구이면서비상설로운영되던구휼기관으로동서제위도감

東西濟危都監 구제도감救濟都監 구급도감救急都監 등이 있었다 이 가운

데 구제도감은 병자 치료의 역할도 맡았는데 특히 전염병 등으로

사망하여 매장되지 못하고 방치된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담당하기

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이 밖에도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들

이 있었다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던 혜민국惠民局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보호하고자

04

05 06

07

참고문헌

middot김병숙 2002 고려시대의노동시장특성과직업윤리『직업교육연구』21(2) 63-90

middot김상균 1989 제2장 사회복지사 연구와 사회복지학의 이론 하상락 편『한국사회복지사론』

서울박영사

middot김정기 2008 조선시대의정책결정과정에관한연구『한국행정사학지』23 161-186

middot김종준 1992 신라 사회통제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 특히 삼국시대를 중심으로『아시아문화』

8 223-266

middot소광섭 2007 진대법의사회복지적성격에관한연구『사회복지정책』31 63-78

middot조법종 1996 삼국시대 민middot백성의 개념과성격에 대한검토『백제문화』25 87-133

middot천인석 1994 삼국시대의 유학사상『한국학논집』21 35-49

middot최연식 2005 조선시대 사림의 정치참여와 향촌자치의 이념『한국정치외교사논총』27(1)

5-34

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등이있었다

이상의 사례들은 공공재원으로 빈궁자 및 빈궁한 환자들을 무상으

로 지원하고 보호하며 치료한 기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

복지 기관이라 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기관들이 제한된 궁핍한

인구집단만을대상으로하는잔여적殘餘的 성격을지녔다는점과일

부 지역에 국한하여 설치운영 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당시의 사회적 필요를 어느 정도 감당하였

는지에관한기록이없어그성과를평가하기는어렵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관리를 대상으로 한 독특한 실업대책과 함께

연금제도와 유사한 제도도 존재했었다 당시 고위관리의 정년을

70세로 하되 직무능력이 있으면 90세에도 임용하는 사례들이 있

었다 또 관리의 실업대책으로서 실업자들을 윤번제로 일하게 하

여 직무역량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재취업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

는가하면인종때에는나이70이되어정년퇴임하는소수의고위

관리들을 위한 일종의 연금제도인 치사관록致仕官祿 제도가 채택되

기도 했던 것이 그 예이다(김병숙 2002) 고위관리에 국한된 제도이긴

하나상당히흥미로운제도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종래의 제도들이 계승되거나 답습되는

가운데 이시기의 상황적 특성을 반영한 일부 제도들이 새로이도

입되는 양상을 띠었다 예컨대 의창과 상평창 제도는 계승되었는

가하면의창의변질에대응하여중국주희朱熹의사창법社倉法을본

뜬 사창제도가 신설되었던 것이다 4궁에 대한 보호제도 고려의

동서대비원을 이어받은 활인원活人院과 활인서活人署 고려의 제위보

와 같은 기능을 한 제생원濟生院 등이 계승된 예라면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구호를 규정한 자휼전칙字恤典則

흉년이나 재난시에 행걸인에게 식사를 제공했던 시식施食 흉년 시

에 이재민에게 세나 부역 혹은 환곡을 감면해 주었던 견감 減 등

은조선시대에발전한고유한제도의예라볼수있다

조선시대 정치및 행정 환경에 관한 일부 해석을 보면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에 대한 향촌 지주와 사림士林들에 의한 향촌의 자치권 강

화 내지 자율적 질서 확립을 위한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

로보는가하면(최연식2005)행정관료들이정책결정과정에참여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합리적이고 제한된 의미의 민주적 요소도 내포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김정기 2008)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강점당함으로 인하여 근대적 정치행

정 체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위에서 예거한 근대 이전의 제도들이

근대 자본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전적으로 계승될 여지도

마찬가지로 말살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얻을수있는교훈은무엇일까한가지만들라면공공복지

의 향방은 정치적 실세의 의지나 정치지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평

범한진리를꼽고싶다 이점은예나지금이나다를바가없다 다

만 오늘날은 정치적 실세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이 시민으로부

터나온다는점에서옛날과는차이가있을뿐이다

07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8특집❷

출근시간한장애인이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버스에오른다사람

들은 웅성거리며 이리저리 비켜서고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실

눈을뜨고혼잣말을한다ldquo바빠죽겠는데hellip그냥집에있을것이지

출근시간에나와피해를주는게야rdquo보통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

버스에올라장착하기까지는불과3~5분정도면충분하다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시간은 마치 몇 시간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이는장애인과비장애인이서로분리되어살다보니더불어사는

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장애인은

주로집안에서만살아갈것이라는선입견때문이다이것이바로우리

시대의 장애인관이다 그렇다면 전통시대에는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은 집 안팎이나 저잣거리 관청 궁궐 등에

서다양한일을하며비장애인과스스럼없이어울려살아갔다또한

오늘날과달리장애를한계나극복의대상으로보지않았고장애인

이라할지라도능력과의지만있다면종9품미관말직에서정1품정승

심지어왕노릇까지도얼마든지할수있다고생각했다

글 정창권 (고려대학교 교양교직부 초빙교수) 사진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운보문화재단

01 02

조선시대

장애

없었다

장애는

사회적

그들에게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09

선진적인장애인복지정책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상

당히 선진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장애인에게도 직업을 갖고 자립생

활을 하도록 권하였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인정

人政』에서어떤장애인이라도배우고일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도『담헌서』에서lsquo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문지키는데로돌리며심지어벙어리와귀머거리앉은뱅

이까지모두일자리를갖도록해야한다rsquo고말했다장애인을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면서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유폐시킨 채 장애 수

당만지급하면끝이라는오늘날과는사뭇대조적이었던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쳤다 장애인

에겐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하지

않고 면포로 대신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정侍丁 즉 부양자(활동보조인)를 제공하고 때때로 노인과 함께 잔치를

03

01세종대왕 초상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동안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

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 02순종 초상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있었던듯하다 얼굴에표정이거의없었고주변의일에도관심이없었는데 사물의형태나

이름에 대해선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03조선후기 서예가 조광진의 필적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당시의 명필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김정희에게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04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인정』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로 최한기는 이 책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4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하사했다 기타 동서활인원이

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

였다

장애를갖고있었던왕족

이처럼 선진적인 장애인식과 복지정책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 조

선시대에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하여뛰어난공적을이룬역사적인물들이대단히많았다

먼저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종친 등 왕족 중에서도 상당수의 장애

인이존재했다조선의제4대왕인세종은평생동안소갈증과풍

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

은 고생을 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안질 즉

눈에 병이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은 35세 무렵부터인데 45세부터는 더욱

심해져서 자주 온천에 가서 치료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종은 음침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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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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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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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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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6: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04 조선말기 행정법전인『육전조례』중 혜민국에 대한 기록 혜민국은 고려와 조선초기에 서민의

질병치료를 위해 설치한 의료기관으로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다 05기산

김준근의 lt판수경닉고gt에 나타난 맹인 신령을 위한 제삿상 앞에서 시각장애인 판수(判數)가

오른손으로 북을 두드리고 왼손으로 바닥에 있는 꽹과리를 쳐 가면서 경(經)을 읊고 있다 조선

시대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점복을 주업으로 삼았다 06 김준근의 lt소경문수gt 시각장애인이

어린이에게 길안내를 받고있다 손에는 시각장애인 용 장죽을 잡았다 07 lt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gt 중 벼타작 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춘궁기에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관가의 곡식을 궁핍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하는 등 백성의 구휼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06

발전을 사회통제社會統制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고대사회 당시

사회구성의 근간이면서 주요 세원이었던 백성들의 신분을 지속시

키고 백성의 건강을 도와 국세國勢를 유지하며 왕권을 신장하고

안정적인 통치를 해야 할 정치적 필요가 작용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김종준 1992 천인석 1994 조법종 1996) 일종의 음모론적 시각을 반

영하는 이런 설명방식은 서구사회의 사회복지 제도발달 이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복지제도 발달배경을

이해하는데에도어느정도유용성을지닌다고본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빈곤구제의 제도가 좀 더

틀을 갖추게 된다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공적인 제도 가운데 상설

기구로는 고구려의 진대법을 계승한 흑창黑倉과 미곡 및 포목으로

물가조절의 기능까지 겸했던 상평창常平倉 충선왕 때 의창곡 보충

과 재정개혁의 명목으로 백성들로부터 연호미烟戶米를 징수하여 만

든 유비창有備倉 궁민의 구호와 함께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겸

했던제위보濟危寶 등이있었다

공적인기구이면서비상설로운영되던구휼기관으로동서제위도감

東西濟危都監 구제도감救濟都監 구급도감救急都監 등이 있었다 이 가운

데 구제도감은 병자 치료의 역할도 맡았는데 특히 전염병 등으로

사망하여 매장되지 못하고 방치된 시신을 매장하는 일을 담당하기

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이 밖에도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들

이 있었다 빈민 환자들에게 의약과 의복을 제공했던 혜민국惠民局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보호하고자

04

05 06

07

참고문헌

middot김병숙 2002 고려시대의노동시장특성과직업윤리『직업교육연구』21(2) 63-90

middot김상균 1989 제2장 사회복지사 연구와 사회복지학의 이론 하상락 편『한국사회복지사론』

서울박영사

middot김정기 2008 조선시대의정책결정과정에관한연구『한국행정사학지』23 161-186

middot김종준 1992 신라 사회통제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 특히 삼국시대를 중심으로『아시아문화』

8 223-266

middot소광섭 2007 진대법의사회복지적성격에관한연구『사회복지정책』31 63-78

middot조법종 1996 삼국시대 민middot백성의 개념과성격에 대한검토『백제문화』25 87-133

middot천인석 1994 삼국시대의 유학사상『한국학논집』21 35-49

middot최연식 2005 조선시대 사림의 정치참여와 향촌자치의 이념『한국정치외교사논총』27(1)

5-34

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등이있었다

이상의 사례들은 공공재원으로 빈궁자 및 빈궁한 환자들을 무상으

로 지원하고 보호하며 치료한 기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

복지 기관이라 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기관들이 제한된 궁핍한

인구집단만을대상으로하는잔여적殘餘的 성격을지녔다는점과일

부 지역에 국한하여 설치운영 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당시의 사회적 필요를 어느 정도 감당하였

는지에관한기록이없어그성과를평가하기는어렵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관리를 대상으로 한 독특한 실업대책과 함께

연금제도와 유사한 제도도 존재했었다 당시 고위관리의 정년을

70세로 하되 직무능력이 있으면 90세에도 임용하는 사례들이 있

었다 또 관리의 실업대책으로서 실업자들을 윤번제로 일하게 하

여 직무역량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재취업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

는가하면인종때에는나이70이되어정년퇴임하는소수의고위

관리들을 위한 일종의 연금제도인 치사관록致仕官祿 제도가 채택되

기도 했던 것이 그 예이다(김병숙 2002) 고위관리에 국한된 제도이긴

하나상당히흥미로운제도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종래의 제도들이 계승되거나 답습되는

가운데 이시기의 상황적 특성을 반영한 일부 제도들이 새로이도

입되는 양상을 띠었다 예컨대 의창과 상평창 제도는 계승되었는

가하면의창의변질에대응하여중국주희朱熹의사창법社倉法을본

뜬 사창제도가 신설되었던 것이다 4궁에 대한 보호제도 고려의

동서대비원을 이어받은 활인원活人院과 활인서活人署 고려의 제위보

와 같은 기능을 한 제생원濟生院 등이 계승된 예라면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구호를 규정한 자휼전칙字恤典則

흉년이나 재난시에 행걸인에게 식사를 제공했던 시식施食 흉년 시

에 이재민에게 세나 부역 혹은 환곡을 감면해 주었던 견감 減 등

은조선시대에발전한고유한제도의예라볼수있다

조선시대 정치및 행정 환경에 관한 일부 해석을 보면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에 대한 향촌 지주와 사림士林들에 의한 향촌의 자치권 강

화 내지 자율적 질서 확립을 위한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

로보는가하면(최연식2005)행정관료들이정책결정과정에참여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합리적이고 제한된 의미의 민주적 요소도 내포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김정기 2008)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강점당함으로 인하여 근대적 정치행

정 체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위에서 예거한 근대 이전의 제도들이

근대 자본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전적으로 계승될 여지도

마찬가지로 말살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얻을수있는교훈은무엇일까한가지만들라면공공복지

의 향방은 정치적 실세의 의지나 정치지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평

범한진리를꼽고싶다 이점은예나지금이나다를바가없다 다

만 오늘날은 정치적 실세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이 시민으로부

터나온다는점에서옛날과는차이가있을뿐이다

07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8특집❷

출근시간한장애인이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버스에오른다사람

들은 웅성거리며 이리저리 비켜서고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실

눈을뜨고혼잣말을한다ldquo바빠죽겠는데hellip그냥집에있을것이지

출근시간에나와피해를주는게야rdquo보통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

버스에올라장착하기까지는불과3~5분정도면충분하다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시간은 마치 몇 시간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이는장애인과비장애인이서로분리되어살다보니더불어사는

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장애인은

주로집안에서만살아갈것이라는선입견때문이다이것이바로우리

시대의 장애인관이다 그렇다면 전통시대에는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은 집 안팎이나 저잣거리 관청 궁궐 등에

서다양한일을하며비장애인과스스럼없이어울려살아갔다또한

오늘날과달리장애를한계나극복의대상으로보지않았고장애인

이라할지라도능력과의지만있다면종9품미관말직에서정1품정승

심지어왕노릇까지도얼마든지할수있다고생각했다

글 정창권 (고려대학교 교양교직부 초빙교수) 사진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운보문화재단

01 02

조선시대

장애

없었다

장애는

사회적

그들에게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09

선진적인장애인복지정책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상

당히 선진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장애인에게도 직업을 갖고 자립생

활을 하도록 권하였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인정

人政』에서어떤장애인이라도배우고일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도『담헌서』에서lsquo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문지키는데로돌리며심지어벙어리와귀머거리앉은뱅

이까지모두일자리를갖도록해야한다rsquo고말했다장애인을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면서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유폐시킨 채 장애 수

당만지급하면끝이라는오늘날과는사뭇대조적이었던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쳤다 장애인

에겐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하지

않고 면포로 대신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정侍丁 즉 부양자(활동보조인)를 제공하고 때때로 노인과 함께 잔치를

03

01세종대왕 초상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동안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

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 02순종 초상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있었던듯하다 얼굴에표정이거의없었고주변의일에도관심이없었는데 사물의형태나

이름에 대해선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03조선후기 서예가 조광진의 필적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당시의 명필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김정희에게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04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인정』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로 최한기는 이 책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4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하사했다 기타 동서활인원이

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

였다

장애를갖고있었던왕족

이처럼 선진적인 장애인식과 복지정책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 조

선시대에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하여뛰어난공적을이룬역사적인물들이대단히많았다

먼저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종친 등 왕족 중에서도 상당수의 장애

인이존재했다조선의제4대왕인세종은평생동안소갈증과풍

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

은 고생을 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안질 즉

눈에 병이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은 35세 무렵부터인데 45세부터는 더욱

심해져서 자주 온천에 가서 치료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종은 음침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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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7: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07

참고문헌

middot김병숙 2002 고려시대의노동시장특성과직업윤리『직업교육연구』21(2) 63-90

middot김상균 1989 제2장 사회복지사 연구와 사회복지학의 이론 하상락 편『한국사회복지사론』

서울박영사

middot김정기 2008 조선시대의정책결정과정에관한연구『한국행정사학지』23 161-186

middot김종준 1992 신라 사회통제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 특히 삼국시대를 중심으로『아시아문화』

8 223-266

middot소광섭 2007 진대법의사회복지적성격에관한연구『사회복지정책』31 63-78

middot조법종 1996 삼국시대 민middot백성의 개념과성격에 대한검토『백제문화』25 87-133

middot천인석 1994 삼국시대의 유학사상『한국학논집』21 35-49

middot최연식 2005 조선시대 사림의 정치참여와 향촌자치의 이념『한국정치외교사논총』27(1)

5-34

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등이있었다

이상의 사례들은 공공재원으로 빈궁자 및 빈궁한 환자들을 무상으

로 지원하고 보호하며 치료한 기관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

복지 기관이라 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기관들이 제한된 궁핍한

인구집단만을대상으로하는잔여적殘餘的 성격을지녔다는점과일

부 지역에 국한하여 설치운영 되었다는 점 등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으며 이들이 당시의 사회적 필요를 어느 정도 감당하였

는지에관한기록이없어그성과를평가하기는어렵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관리를 대상으로 한 독특한 실업대책과 함께

연금제도와 유사한 제도도 존재했었다 당시 고위관리의 정년을

70세로 하되 직무능력이 있으면 90세에도 임용하는 사례들이 있

었다 또 관리의 실업대책으로서 실업자들을 윤번제로 일하게 하

여 직무역량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재취업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

는가하면인종때에는나이70이되어정년퇴임하는소수의고위

관리들을 위한 일종의 연금제도인 치사관록致仕官祿 제도가 채택되

기도 했던 것이 그 예이다(김병숙 2002) 고위관리에 국한된 제도이긴

하나상당히흥미로운제도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종래의 제도들이 계승되거나 답습되는

가운데 이시기의 상황적 특성을 반영한 일부 제도들이 새로이도

입되는 양상을 띠었다 예컨대 의창과 상평창 제도는 계승되었는

가하면의창의변질에대응하여중국주희朱熹의사창법社倉法을본

뜬 사창제도가 신설되었던 것이다 4궁에 대한 보호제도 고려의

동서대비원을 이어받은 활인원活人院과 활인서活人署 고려의 제위보

와 같은 기능을 한 제생원濟生院 등이 계승된 예라면 흉년을 당해

걸식하거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구호를 규정한 자휼전칙字恤典則

흉년이나 재난시에 행걸인에게 식사를 제공했던 시식施食 흉년 시

에 이재민에게 세나 부역 혹은 환곡을 감면해 주었던 견감 減 등

은조선시대에발전한고유한제도의예라볼수있다

조선시대 정치및 행정 환경에 관한 일부 해석을 보면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에 대한 향촌 지주와 사림士林들에 의한 향촌의 자치권 강

화 내지 자율적 질서 확립을 위한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

로보는가하면(최연식2005)행정관료들이정책결정과정에참여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합리적이고 제한된 의미의 민주적 요소도 내포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김정기 2008)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강점당함으로 인하여 근대적 정치행

정 체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위에서 예거한 근대 이전의 제도들이

근대 자본제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전적으로 계승될 여지도

마찬가지로 말살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얻을수있는교훈은무엇일까한가지만들라면공공복지

의 향방은 정치적 실세의 의지나 정치지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평

범한진리를꼽고싶다 이점은예나지금이나다를바가없다 다

만 오늘날은 정치적 실세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이 시민으로부

터나온다는점에서옛날과는차이가있을뿐이다

07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8특집❷

출근시간한장애인이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버스에오른다사람

들은 웅성거리며 이리저리 비켜서고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실

눈을뜨고혼잣말을한다ldquo바빠죽겠는데hellip그냥집에있을것이지

출근시간에나와피해를주는게야rdquo보통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

버스에올라장착하기까지는불과3~5분정도면충분하다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시간은 마치 몇 시간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이는장애인과비장애인이서로분리되어살다보니더불어사는

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장애인은

주로집안에서만살아갈것이라는선입견때문이다이것이바로우리

시대의 장애인관이다 그렇다면 전통시대에는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은 집 안팎이나 저잣거리 관청 궁궐 등에

서다양한일을하며비장애인과스스럼없이어울려살아갔다또한

오늘날과달리장애를한계나극복의대상으로보지않았고장애인

이라할지라도능력과의지만있다면종9품미관말직에서정1품정승

심지어왕노릇까지도얼마든지할수있다고생각했다

글 정창권 (고려대학교 교양교직부 초빙교수) 사진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운보문화재단

01 02

조선시대

장애

없었다

장애는

사회적

그들에게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09

선진적인장애인복지정책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상

당히 선진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장애인에게도 직업을 갖고 자립생

활을 하도록 권하였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인정

人政』에서어떤장애인이라도배우고일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도『담헌서』에서lsquo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문지키는데로돌리며심지어벙어리와귀머거리앉은뱅

이까지모두일자리를갖도록해야한다rsquo고말했다장애인을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면서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유폐시킨 채 장애 수

당만지급하면끝이라는오늘날과는사뭇대조적이었던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쳤다 장애인

에겐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하지

않고 면포로 대신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정侍丁 즉 부양자(활동보조인)를 제공하고 때때로 노인과 함께 잔치를

03

01세종대왕 초상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동안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

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 02순종 초상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있었던듯하다 얼굴에표정이거의없었고주변의일에도관심이없었는데 사물의형태나

이름에 대해선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03조선후기 서예가 조광진의 필적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당시의 명필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김정희에게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04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인정』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로 최한기는 이 책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4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하사했다 기타 동서활인원이

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

였다

장애를갖고있었던왕족

이처럼 선진적인 장애인식과 복지정책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 조

선시대에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하여뛰어난공적을이룬역사적인물들이대단히많았다

먼저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종친 등 왕족 중에서도 상당수의 장애

인이존재했다조선의제4대왕인세종은평생동안소갈증과풍

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

은 고생을 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안질 즉

눈에 병이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은 35세 무렵부터인데 45세부터는 더욱

심해져서 자주 온천에 가서 치료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종은 음침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8: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08특집❷

출근시간한장애인이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버스에오른다사람

들은 웅성거리며 이리저리 비켜서고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실

눈을뜨고혼잣말을한다ldquo바빠죽겠는데hellip그냥집에있을것이지

출근시간에나와피해를주는게야rdquo보통전동휠체어를타고저상

버스에올라장착하기까지는불과3~5분정도면충분하다그럼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시간은 마치 몇 시간이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이는장애인과비장애인이서로분리되어살다보니더불어사는

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장애인은

주로집안에서만살아갈것이라는선입견때문이다이것이바로우리

시대의 장애인관이다 그렇다면 전통시대에는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인은 집 안팎이나 저잣거리 관청 궁궐 등에

서다양한일을하며비장애인과스스럼없이어울려살아갔다또한

오늘날과달리장애를한계나극복의대상으로보지않았고장애인

이라할지라도능력과의지만있다면종9품미관말직에서정1품정승

심지어왕노릇까지도얼마든지할수있다고생각했다

글 정창권 (고려대학교 교양교직부 초빙교수) 사진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운보문화재단

01 02

조선시대

장애

없었다

장애는

사회적

그들에게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09

선진적인장애인복지정책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상

당히 선진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장애인에게도 직업을 갖고 자립생

활을 하도록 권하였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인정

人政』에서어떤장애인이라도배우고일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도『담헌서』에서lsquo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문지키는데로돌리며심지어벙어리와귀머거리앉은뱅

이까지모두일자리를갖도록해야한다rsquo고말했다장애인을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면서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유폐시킨 채 장애 수

당만지급하면끝이라는오늘날과는사뭇대조적이었던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쳤다 장애인

에겐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하지

않고 면포로 대신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정侍丁 즉 부양자(활동보조인)를 제공하고 때때로 노인과 함께 잔치를

03

01세종대왕 초상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동안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

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 02순종 초상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있었던듯하다 얼굴에표정이거의없었고주변의일에도관심이없었는데 사물의형태나

이름에 대해선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03조선후기 서예가 조광진의 필적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당시의 명필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김정희에게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04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인정』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로 최한기는 이 책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4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하사했다 기타 동서활인원이

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

였다

장애를갖고있었던왕족

이처럼 선진적인 장애인식과 복지정책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 조

선시대에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하여뛰어난공적을이룬역사적인물들이대단히많았다

먼저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종친 등 왕족 중에서도 상당수의 장애

인이존재했다조선의제4대왕인세종은평생동안소갈증과풍

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

은 고생을 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안질 즉

눈에 병이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은 35세 무렵부터인데 45세부터는 더욱

심해져서 자주 온천에 가서 치료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종은 음침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9: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09

선진적인장애인복지정책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상

당히 선진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장애인에게도 직업을 갖고 자립생

활을 하도록 권하였다 예컨대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인정

人政』에서어떤장애인이라도배우고일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도『담헌서』에서lsquo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문지키는데로돌리며심지어벙어리와귀머거리앉은뱅

이까지모두일자리를갖도록해야한다rsquo고말했다장애인을무조건

사회적 약자로 여기면서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유폐시킨 채 장애 수

당만지급하면끝이라는오늘날과는사뭇대조적이었던것이다

이밖에도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쳤다 장애인

에겐 조세와 부역 및 잡역을 면제하고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하지

않고 면포로 대신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다 또한

시정侍丁 즉 부양자(활동보조인)를 제공하고 때때로 노인과 함께 잔치를

03

01세종대왕 초상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평생 동안 소갈증과 풍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

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은 고생을 했다 02순종 초상 순종은 자폐증을

갖고있었던듯하다 얼굴에표정이거의없었고주변의일에도관심이없었는데 사물의형태나

이름에 대해선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03조선후기 서예가 조광진의 필적

조광진은 언어장애인으로 당시의 명필 신위(申緯) 김정희(金正喜) 등과 교분이 두터웠는데

김정희에게까지 찬사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04 조선후기의 실학자 최한기가 저술한

『인정』 인사 행정에 관한 이론서로 최한기는 이 책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04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하사했다 기타 동서활인원이

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

였다

장애를갖고있었던왕족

이처럼 선진적인 장애인식과 복지정책을 갖고 있었던 탓인지 조

선시대에는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하여뛰어난공적을이룬역사적인물들이대단히많았다

먼저 조선시대엔 왕실이나 종친 등 왕족 중에서도 상당수의 장애

인이존재했다조선의제4대왕인세종은평생동안소갈증과풍

습병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안질眼疾 곧 시각장애로 많

은 고생을 했다 참고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시각장애를 안질 즉

눈에 병이 있어서 그러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종이 본격적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은 35세 무렵부터인데 45세부터는 더욱

심해져서 자주 온천에 가서 치료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종은 음침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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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0: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10

그래서계속세자에게왕위를물려주겠다고호소하였다

제19대왕인숙종도56세부터시각장애를입게되었다왼쪽눈은

거의실명에가까웠고오른쪽눈은보이기는하나뚜렷하게보이

지않았다이후숙종의시각장애는더욱심해져서왼쪽뿐만아니

라 오른쪽 눈마저도 전혀 물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숙

종 44년(1718) 세종 때의 전례에 따라 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하게

하였다

조선의마지막왕인순종은자폐증을갖고있었던듯하다얼굴에

표정이라곤 거의 없었고 주변의 일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물의

형태나이름에대해선놀라운기억력을갖고있었다고한다

장애인에게도열려있었던벼슬길

조선시대엔 장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오늘날의 장

관이나국무총리에해당하는벼슬까지오를수있었다세종대의정

치사에서 황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조

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 1369~1439)였다 이후 허조는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큰신임을받았는데그는원래어려서부터체격이왜소하고어깨와

등이구부러진곱추즉척추장애인이었다

권균(權鈞 1464~1526)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

고 영창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후에도 그는 좌찬성 이조판서 우

의정에 임명되고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러한 권균에게도 한가

지고질병이있었으니바로간질장애인이었던것이다

윤지완(尹趾完 1635~1718)은 숙종대의 문신으로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

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이후 풍증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지체장애인이

되었다하지만벼슬은더욱현달하여우의정이되고청백리에뽑혔

다그래서사람들이lsquo일각정승(한쪽다리의정승)rsquo이라불렀다

이외에도영정조때의명재상이었던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또한 이덕수

(李德洙 1577~1645)는 영조 때의 문신으로 내직으로는 대사성과 대제

학대사헌이조판서공조판서형조판서등을지냈고외직으로는

05『근묵(槿墨)』이란 서첩에 실려 있는 윤지완의 필

적 윤지완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청렴 검소하여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다 06 보물 제1477호

채제공 초상 일괄 채제공은 한쪽 눈이 사시이자 앞

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영 정조 때의 명재

상이었다 07 조선후기의 화가 최북이 그린 lt표훈

사도(表訓寺圖)gt 최북은 한쪽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

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08 조선중기의 화가 이

정이 그린 lt묵죽도gt 이정은 임진왜란 때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대나무 그림에서 새

로운 경지를 개척한 묵죽화의 대가였다 09 강이천

의 시문집『중암고』 저자가 13세 무렵 왕명에 의해

지은「이동몽피선입대우창덕궁지성정각승명제진(以

童蒙被選入對于昌德宮之誠正閣承命製進)」을 포함해

폭 넓은 소재의 운문(韻文) 작품이 고루 실려 있다

05

06

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하

였다

제14대 왕인 선조는 계속 심질 혹은 광질 다시 말해 정신장애 중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선조의 심질은 37세인 1588년부터 본격

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의 심질은 더욱 악화된다 급기야 전광증 곧 광인이 되어 가는데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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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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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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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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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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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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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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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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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1: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07

11

개성유수를 지냈다 심지어 그는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었다

장애를딛고예술혼을불태웠던장애인

사람들은장애인예술가라하면대개호메로스나이솝손자세르반

테스베토벤등동서양의유명한예술가들만떠올리지만조선시대

에도문인이나서화가음악가등장애인예술가가대단히많았다

장애인 문인으로는 조선후기 시각장애인 시인 유운태(劉雲台 ~)와

강이천(姜彛天 1768~1801) 척추장애인 시인이자 소설가 및 학자였던 조

성기 시각장애인 시인 부부였던 김성침과 홍씨 지체장애인 시인

강취주중복장애인지여교지체장애인시인이자출판인아동교육

자였던장혼등을들수있다

장애인 서화가로는 묵죽화가 이정(李霆 1554~1626)과 최북(崔北 1720~)

조광진(曺匡振1772〜1840) 등이있었다이정은조선중기왕실의종친이

자서화가로임진왜란때오른팔에부상을입었으나이를극복하고

대나무그림에서새로운경지를개척한묵죽화의대가였다

최북은 영조 때 한쪽 눈의 시각장애인 화가였는데 중인의 자식으

로 태어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 팔아서 먹고 산 직업화가였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여기저기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은정조와순조헌종때의유명한언어장애인

서화가였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자 비평가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까지찬사를받을정도로명필이었다

조선시대엔 별도로lsquo관현맹인rsquo제도를 두어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였다그래서시각장애인음악가가대단히많았을뿐아니라

그가운데에서유명한사람들도상당수출현하였다대표적으로조

선전기엔 이반과 정범김복산이마지 등이 있었고기타 민간에서

는백옥과김운란이자못유명하였다조선후기에도관현맹인출신

의시각장애인음악가가계속출현했는데숙종대의하효달과홍석

해 김석명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이들

보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음악을 들려주고 먹고 사는 시각장애인 08 09

음악가가 많았는데 백성휘와 윤동형 손봉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었다

이처럼 조선시대만 해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오늘날에 비해

훨씬덜하였다그래서장애를갖고있음에도불구하고자신의능력

을 발휘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룬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다시 말

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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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2: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장애인은 교육 고용 의료 보험 결혼 등 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비

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2011년 한국보건

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lsquo2011년 장애인 실태 조사rsquo를 보면 현재

장애란이유로장애인본인이차별을받고있다고느끼는지에대해서

장애인들의 399는lsquo장애란 이유로 차별을 항상 내지는 가끔 받고

있다rsquo고 느끼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lsquo약간 많다rsquo483lsquo매우 많다rsquo

324lsquo별로없다rsquo185lsquo전혀없다lsquo08로우리나라에서장애

인에대한차별이대체적으로lsquo많다rsquo는경우가807였다한인권의

가장기본이라할수있는신체적자유를침해하는경우가종종언론을

통해보도되고있다근래에만해도특수학교내에서벌어진폭력및

성폭력 사건인 일명 도가니 사건 목사를 사칭해 장애인들의 수급비

를 착복하고 장애인을 학대하고 짐승처럼 취급한 원주 장목사 사건

등이 있었다 너도 나도 인권을 말하는 인권의 시대에 왜 장애인의

인권은 이토록 짓밟혀지고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에 따라 장애인 인권

침해의원인을살펴보고대안을모색해보고자한다

글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위원) 사진 국가

인권위원회 연합콘텐츠

특집❸ 어제의혜안으로내일을바라보다 12

방치된

길은

없나

공존의

인권사각지대에

장애인

01

02

소수자의권리편견과차별이아닌존중과배려로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3: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13

01 2010년 7월 26일 열린 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

령이 방문객과 악수를 하고 있다 02 2012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

븐 호킹 박사가 참석했다 이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03 2013년 1월 31일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인권세미나

발달장애인인권향상방안과장애인인권증진방안에대한논의가이루어졌다

기존노력들의한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으로서 태어나면서 누

구나갖게되는당연한권리이다1948년유엔총회에서채택된lsquo세계

인권선언rsquo제 1조는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서로형제애의정신으로처신해야한다rsquo고규정하고있다또한우리

나라도 2008년 12월 국회비준을 함으로써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

게된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on 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도장

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향유하도록

촉진하는것을목적으로하고있다또한우리나라헌법에서도인간의

기본권을다양하게인정하고있으며사회적차별과배제를극복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2001)되고 장애인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

법률(2008) 인신보호법(2008) 등이 제정되고 지역별로 장애인인권센터

설립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제도적 성

취가있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성숙

하고무능력한존재로규정되어일방적인보호와배제의대상이되어

온 장애인은 생존middot교육middot노동middot참여 등 모든 권리를 누리는 과정에

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아예 배제되는 등 여전히 이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낮은 교육수준은 고용의 기회를 제한

하고 이것은 다시 소득이나 주거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장애인의삶은점점더열악해지고있다더욱이인권

의 가장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에 대한 학대 방임 폭력이

지역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다 결국 그 동안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장

애인인권신장노력들이실질적인구체적인성과를가져오는데역부

족이었음을알수있다

03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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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4: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14

사람으로 여겨지고 결과적으로 돌보아져야할 대상이고 수동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설에 감금되

기도 하고 방에 틀어박혀 지내게도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의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에 따라 더

욱 취약한 존재가 되고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가니 사태에 대한 대책도 장애인을 어떻게 잘 보호

할것인가에만초점을맞추고있었다

해결방안인권의주체에대한인식전환에서부터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

고인권개념의확장을요구하게되었다장애인인권은인권의주체

가 되는lsquo인간rsquo을lsquo비장애인-육체적으로 완전한 사람 특히 남성rsquo으

로 바라보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적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신체적 손상에 대해 사회가 적절한 지원을 하

지못함에따라장애인의완전한사회참여를가로막는사회환경과의

장벽에의해장애가발생하게되는것이다장애인이직면한차별배

제의문제들을포괄하는방향으로인권개념을다시정의함과동시에

장애인 인권의 상황을 감시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법적 제도적

04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lsquo세계인권선언rsquo제 1조는

lsquo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rsquo고 규정하고 있다

05 장애인 투표소 모델 대부분의 투표장들이 정상인 중심으로 설치돼 장애인들의 투표참여

에 불편을 초래함에 따라lsquo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본부rsquo는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 모델을 제안했다 06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한 2007년 4월

3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장애인교육인권연대 회원들이 기뻐하며 퇴장하는 의원들을 향해 박수

치고 있다04

차별의원인lsquo인권rsquo을바라보는시각의차이

이처럼 인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장애인 차별

및인권침해가벌어지는이유는무엇일까이루헤아릴수없는원인

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인권을 바라보는 계층 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인권이란 매우 보편적인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middot사회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역동성을 갖

는다인권의개념에서부터인권의주체인권의내용과범주는늘지

배세력과피지배세력간의긴장관계속에서변화되어왔으며인간의

존엄성과자유와평등을구현해나가는노력속에서새롭게정의되고

확장되어 왔다 인권의 내용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시각은

각자가 속한 계급이나 경제middot사회middot정치적 지위에 따라 달라질 수밖

에 없다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동 장애인과 비장

애인 기득권을 장악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는 인권을 해석하

고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지배세력및지배세력에의해이념을공유해온국민들은장애인의인

권은 기본적인 생존권만을 유지하면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lsquo시혜rsquo와lsquo자선rsquo을 제공함으로서 장애인 인권

은 충족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인은 위험에 처한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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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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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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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5: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15

장치를마련할필요가있다

또한인권을확보하기위한구체적인수단즉사회적지원이없는것

도 차별로 보아야 진정한 차별의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장애인 인권

의확보를위해서는인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도 장애인에게 참정권을 부

여하고있다그럼에도장애인들은참정권을박탈당하고있다고주장

한다그이유는참정권이라는추상적목표를달성하기위한수단예

를들어거소투표방법의편리성시설에의투표소설치편의시설이

갖추어진투표소설치이동이불편한장애인을위한이동서비스지

적장애인을 위한 후보 안내서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

국 인권이라는 것은 추상적 목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목

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 즉 사회적 지원의 완벽한 제공까

지를포괄하여야한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도 국가나 민간에 의한lsquo시혜rsquo

나lsquo자선rsquo이 아닌lsquo권리rsquo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서비스를 단순히

제공만받는객체가아니라자기결정에따른사회적지원에의해포

괄적권리가보장되는사회생활을향유할수있어야할것이다따라

서장애인과장애단체들은복지서비스의전개과정및전달체계에전

적으로참여하여선택하고통제할수있어야한다이럴경우에만장

애인들은 역량이 강화되고 자선의 객체가 되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장애인권의 개념을 시혜의 제공이 아닌 구체적인 권리의 실현

으로 정립하고 장애인 인권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가아니라이사회에서더불어사는존재임을인식하여야한다한편

정책을담당하는국회행정부등은인권을구체화할수있는적극적

인지원정책을마련하여야한다이런노력에의해장애인과비장애

인 소수자와 다수자가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을것이다

05 06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6: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진옥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

문화의숲을거닐다 16

전통이라불리는것들도언젠가한시대를풍미한대중문화였다전통은

사라지고잊히는것이아니라간직되고지켜져야하는것들이다

그안에우리네고유한정서가들어있고우리네할머니할아버지들의

삶이들어있다현대의대중문화는너무빠르게변하고있고다양한

문화들이유입되어한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전통의자리도반드시

변하지않는대중문화중하나로자리잡아야할것이다아마그렇게

될것이다전통을열렬히사랑하는사람진옥섭예술감독이있기

때문이다

글김진희 사진김병구연합콘텐츠

01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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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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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7: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담양하늘에흩날린육자배기

오래된 흑백 풍경 속에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다 징용에서 목숨을

잃은남편을잊지못하고매일기다렸던할머니였다할머니와꼬마

는새벽녘논의물꼬를보고집으로돌아오는길이다한걸음한걸

음 길 위에 발자국을 수놓는데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동

네에서유일하게전축을가지고있는집에서전축의볼륨을가장크

게 틀어 놓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가

끝날때까지귀를돋우고있다흘러나오는육자배기소리가지겨운

꼬마 녀석은 해찰을 떨면서도 할머니 곁에 함께한다 이것은 꼬마

17

01 전통공연기획자 진옥섭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으로 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등을올려대중에게명인들의판을선사했다 02 2010년무대에올렸던lsquo춤추는

바람꽃상쇠rsquo의한장면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나금추명인이부안농악을공연하고있다

다시

빛나게

하다

노름마치를

사랑한

잊힌

것들을

02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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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8: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18

어린시절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자배기 소

리는 훗날 꼬마 녀석의 영혼을 매료시킨 추억의 소리이자 매일 들

어도 또 듣고 싶은 소리가 되었다 그 꼬마는 진옥섭 예술감독이다

그는한국문화재보호재단한국문화의집예술감독으로lt유랑광대전gt

lt팔무전gt lt시나위gt 등을 올려 대중에게 명인들의 판을 선사했다

할머니와의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사는 그에게 전통예술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잊히고 사라져가는 명인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일에몰두한다그것은그의사명과도같은일이다

ldquo전통을품은명인의공연은아릿한과거를불러일으키는힘이있어

요매번공연이애틋한것은그분들에겐마지막일지모르는공연이

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분들을 더 잘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빛나게

해드리고싶어요아마어린시절함께했던할머니에대한진한추억

이오늘의나를만들었는지도모르겠어요rdquo

노름마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진감독의 눈에서 빛이 난다 그의

사랑은진짜였다그리고사무치도록절절한사랑이었다

청중그리고노름마치

전통예술공연에서 진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lsquo청중rsquo이다

아무리 좋은 고수가 있더라도 청중 없는 공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좋은공연은좋은고수와소리꾼그리고많은청중들이함께호흡하

며 서로 에너지를 전달받는 공연이다 그는 보통 무료로 제공되는

전통예술공연이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서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온 혼을 바쳐 공연하는 명인

들의 공연을 청중들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아무리비싸도연일매진행렬이다

ldquo예컨대예기들의춤은철저하고처절한직업의식에서나오는하나

의예술입니다lsquo생계rsquo자체와바로연결이되었던터라더욱더절대

적인직업의식속에서예술의극한을보여주는춤이탄생되고있죠

저는그모습속에푹빠져있습니다이것은다른사람이흉내낼수

없는 명인의 고유한 것이죠 이 소중한 것들을 보아도 그만 안보아

도그만인무료공연으로만들고싶지는않았습니다노름마치와청

중모두에게소중한시간을만들고싶을뿐입니다rdquo

한때시대를풍미했던예인들은사실역사의뒤안길에서소리없이

세월을 낚고 있었다 진감독은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내 다시금 빛

가운데로드러나기위해먼지가붙어있을새가없도록발로뛰었다

노인정이건옛날다방이건무작정예인들을찾기시작해그들을판위에

03 04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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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19: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19

올려놓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예인들과 소통하며

마치 자신의 할머니를 대하듯 아니 한 여자를 대하듯 소중히 예인

을 대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삶을 이야기 해주었고 어디서도 들을

수없는교훈들을전해주었고다시금무대위에설수있게해준것

에 대한 고마움을 닳도록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니 그들을 향한 진

감독의무한사랑은어쩌면당연한일이다

노름마치를사랑한그의꿈

진감독이맨처음꾸었던꿈은연극배우였다포스터만붙혀대던진

감독은배우에서연출자의길을걸었고머지않아극장에몸을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기도 하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오

기까지 여러 과정들을 겪었지만lsquo전통 과lsquo노름마치rsquo들에게 푹 빠

져버린그의지금꿈은오직하나이다전통의힘을보여줄수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판에올라와주었던많은명인들에보답을하는길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전통예술무대는 이 시대에 반드시 알려져야 할 감동의 판이

라고 생각한다ldquo 명인들을 알리기 위해 다부진 각오로 만들었던 책이

lsquo노름마치rsquo입니다 그것과 더불어 앞으로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05

06

섞인영화를만들어보고싶어요물론주제는전통의아름다움입니다

노름마치 이후 정말 바쁘게 지내느라 글을 더 쓰지 못했지만 이제

글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통의

힘을보여줄수있는것을만들어보려고합니다rdquo

매공연마다노름마치의선율속에빠져들어노름마치와하나가되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드는 진감독 그가 만들어내는 전통예술

공연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우리네 소중한 것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전통예술공연을

향한그의열정은명인들에게도고마운일이지만그의공연이있기에

전통예술문화를 향유하며 감동을 선사받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고 잊혀 가는 것들을 끄집

어내계속해서감동의판을만들어내는진감독의다음작품이기다려

진다

03 04 3~4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 그가 직접 만든 책상과 선반 그리고 가구를 만들 때 쓰는

공구들이 보인다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입 선 굵은 얼굴에 자신의 업(業)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뚜렷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05진옥섭이 만난 명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노름마치』 이책은기녀 무당 광대등의출신으로세상으로부터스스로를감추어야했던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예인들을 하나하나 무대에 세우고 그 찰나를 사진 컷처럼 되살려냈다 06정동

극장에서의lsquo노름마치rsquo책풀이 공연 사물놀이 그룹lsquo노름마치rsquo의 연주 속에 진옥섭 씨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사를 지내고 있다『노름마치』출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공연에는 가수 장사익

광대 강준섭(진도 다시래기 보유자) 등이 출연해 전통춤과 노래를 선사했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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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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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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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0: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바람의여행문화의숨결

QR코드를스캔하면고성청간정과왕곡마을을

더자세하게만날수있습니다

고성청간정淸澗亭과

왕곡마을

관동찬가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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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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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1: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강원도여행은언제나설레면서도가슴한켠이아리다아름다운관동의

절경에설레지만눈으로는보아도손으로는닿을수없는북녘땅이가까이있기

때문일것이다관동8경중하나인청간정옛역사를그대로간직한왕곡마을

그리고그사이에만난송지호의억새풀어느것하나잊을수없는절경들을만나

아린마음을달래고언젠가이북강원도의절경을만날그날을꿈꾼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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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2: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가을바람에춤추는억새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

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

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

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올라보아야참맛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

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

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

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

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

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

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

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

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

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

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

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

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

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

와창간자가뚜렷하지않다기록상으로는조선명종10년(1555)에간

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있다따라서창간시기는그전으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

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

열이금강산에머물다가이곳에들려친필로lsquo청간정rsquo의현판을걸었

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

다또한최규하대통령이쓴한시현판도함께걸려있다

청간천과천진천이합류하는지점인바닷가에세워져있는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

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

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

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

맙게느껴진다

22

01

02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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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3: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23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보이는송지호의반짝이는물결이어우러져한폭의그

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

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

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

로새겨졌다

01 강원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 양양 낙산사나 강릉 경포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들과

같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02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로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03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돌담 아래 핀 꽃들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바라보면유선형의배가동해바다와송지호를거쳐마을

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양근함씨와강릉최씨의집성촌왕곡마을에서멈춰있는시간

속으로세번째여행을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

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lsquo골rsquo형태의

분지를이룬다왕곡마을은이런지형적인특성과풍수지리적요인으

로지난수백년간전란과화마의피해가없었던길지이다그래서19

세기전후에건립된북방식전통한옥과초가집군락이원형을유지한

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고그것들을체험할수있게해주는고마운마을이다

왕곡마을은마을을가로질러흐르는개울을따라이어진길을중심으

로가옥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으며앞마당의넓은텃밭이가옥

들의경계선역할을하고있다집뒤편에둘려있는돌담의모습은포

근한가을의정취와어우러진다왕곡마을의집은대부분온돌중심의

겹집평면에마루가도입된형태로지어져부엌안방도장사랑방

외양간등으로구성이되어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자리잡은집들의모습으로이루어져있다이런풍경은도

심의모습과달리낯설고도부러운풍경이다이곳은어떻게보면시

간이멈춘옛집들의전시장같지만여전히사람들의온기가서려있

는삶의터전이다불과몇십년전에는이런삶이일상이었던때를상

상해보며북방가옥구조를통해북녘땅의삶들을상상으로나마그려

보며지는해를뒤로하고왕곡마을의옛길을정처없이걸어본다좀

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이들과함께사는것이아닐까

03

04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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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4: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근현대의길목에서 24

조선왕조500년의도읍이었던서울은일제가이땅을강점한이후에도여전히수위도시로서그면모를

유지하였다 일제는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은행middot병원middot학교middot방송국 등 각종 근대적 시설이

이에발맞추어들어섰다일제강점기서울에는많은일본인들이몰려들었다서울은청계천을경계로

전통적으로한국인들이많이살았던lsquo북촌rsquo과일본인들이거주하게된lsquo남촌rsquo으로나누어졌다이주해

온일본인들을대상으로상수도시설이보급되기시작하면서수도서울은수도水道와만나게되었다

글middot사진 서일수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수도서울

水道와만나다

01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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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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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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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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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5: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으로상징되는1920~30년대서울의새로운문화공간또한상수도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깨끗한 물을

쉽게쓸수있게된새로운시대상황이자리하고있었다

수도보급에나타난수도서울의이중구조

고종황제 때 수도 급수가 시작됐지만 일제의 침탈로 인해 정작 한국

인은그혜택을누리기어려웠다도로middot전기middot가스를비롯한각종사

회기반시설은진고개(泥峴지금의충무로일대)를중심으로한남촌의일본인

거주 지역에 우선 집중되었다 수도시설 보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

촌-북촌이라는 민족별로 차별화된 공간 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

에따라서울수도의제1차확장이끝난1922년당시서울의상수도보

급률은호수대비40인구대비39였는데1925년을기준으로한국

인급수호수는290로평균에미치지못하고있었던반면일본인급

수호수는899로평균을훨씬넘어서고있었다수요에비해급수량

이 부족한 상황에서 급수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에게 있었음은 당연한

이치라하겠다

한국인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만이 수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살던 한국인들 대다수는 각 가정의 우물물이나 공동우물을 사용했다

물을 길어다 배달하거나 판매하던 물장수는 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지

역주민들에게생활용수를얻는거의유일한수단이었다지대가높은

동대문 뒤나 사직동에는 공용수도가 마을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장수에게물을사다썼다4대문밖은해방후1960년대까지도우물

이나지하수를식용수로사용했다

25

경성상수도시설의설치와확충

서울에서 상수도의 시작은 1903년 12월 9일 고종황제가 미국인 콜브

란(C H Collbran)과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의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주면서부터였다 이후 특허권을 양도받은 대한수도회사

는1906년8월초뚝도정수장공사에착수 1908년8월준공하고9월

1일부터하루1만2천500씩급수를시작했다당시한강물을시내로

끌어들이고자수도관을묻는모습은한국인들에게lsquo실로오백년역사

에서처음보는일rsquo이었다 1910년강점직후잠시일본인재벌회사로

넘어갔던 상수도 경영권은 조선총독부 경기도를 거쳐 1922년 3월

31일경성부에속하게되었다

서울의 상수도 시설은 3차에 걸쳐 확장이 이루어졌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된 제1기 확장에서는 인천부가 경영하던 노량진정수

장의 설비를 확충하고 한강에 송수관을 가설하여 경성부에도 급수하

게했다1929년부터1933년까지경성부의인구증가와위생생활의요

구에따라이루어진제2기확장에서는뚝도정수장확장공사가진행되

었다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된 제3기

확장은뚝도정수장의시설개량과노량진정수장의확장구의정수장의

신설을 계획하였다 1939년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인해일부만준공되었다

수도보급으로인한일상생활의변화

고종황제의 승인을 받아 서울에 점차 보급된 상수도 시설은 일상생활

에큰변화를몰고왔다가장큰변화는수도가콜레라와같은수인성

전염병방지에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는점이다당시서울에서는

우물 바로 옆에서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많았다한강등주변하천에서길어다쓰던물은상류에서흘

러들어간각종오물로인해식수로는부적합했다수도의보급으로먹

는물의위생적관리가가능하게되면서주민들의건강상태가크게좋

아지게되었다

또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 목욕탕에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주택

생활의 합리화와 편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발소와 대중목욕탕도 생겨

나주민들의청결도는더욱높아졌다lsquo남촌의카페rsquolsquo북촌의빙수집rsquo

01 취수관을 통해 한강물을 정수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시 한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이고자

수도관을 묻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lsquo실로 오백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rsquo이었다 02 구의정수

장의 침전지와 여과지 시설 구의정수장은 경성부 행정구역 확대에 대응하고자 1936년부터 진행

된제3기확장의일환으로신설되었다

02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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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6: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소리꾼의일침

ldquo남의 음악에는 목청을 돋우면서 우리 민요가 나오면 입도 뻥끗하

지 못하는 그런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요rdquo황해도 벽성군

고산면에서 태어난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가 일침을 놓는다 서양

음악에 비해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낮은 요즘 세태를 두고 그는 여

러가지로맘이편치않은모양이다그가이야기를이어간다ldquo평안

도와 황해도에 전승되는 노래들을lsquo서도소리rsquo라고 합니다 예로부

터lsquo북北에는수심가남南에는육자배기rsquo라는말이있을만큼서도소

리에는 남도소리에 내리지 않은 소리들이 많았어요 산염불과 난봉

가는 서도소리 중에서 일부에요rdquo작년 말lsquo아리랑rsquo이 유네스코 인

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lsquo우리

북녘의무형유산 26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물림되던 우리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도소리 박기종

보유자그가70여년간끊임없이불러온서도소리는통일을불러

오는희망가希望歌였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국립문화재연구소무형문화재연구실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서도소리lsquo산염불middot난봉가rsquo

황해도무형문화재제2호박기종보유자

소리꾼희망을노래하다

0201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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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7: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01 놀량사거리 난봉가 산염불 선소리산타령 등 다양한 곡이 모두 서도소리이다 02 박기종

보유자는lsquo박기종의 서도소리 세상rsquo등 1996년부터 꾸준히 발표회를 가지며 서도소리 전파에

앞장서고있다 03 서도소리박기종보유자가발매한서도민요전집앨범 04서도소리창법은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뒷덜미로당겨서음을사용하는것이특징이다

27

소리를 지켜내는 일이 민족의 자존심rsquo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

고든다

오랜소리여행의흔적

열한살때부터해주의민형식평양의이정근등내로라하는명창들

에게서도창의진수를배웠고광복이후월남하여30세무렵에는서

울에서 최경명과 이반도화와 같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사사 받은

박기종 보유자 이처럼 서도소리 경륜이 대단하지만 뭇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한의 서도소리 전승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악곡과 가사

를그가적지않게보유하고있다는사실을알게된것은그가교단을

03

정년퇴임한이후본격적으로소리꾼의삶을시작한이후였다ldquo중학

교 국어교사로 36년간 봉직했어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스승님들께

사사받은 많은 종류의 악곡들과 가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남몰래 목청을 갈고 닦았습니다rdquo2009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2호서도소리의보유자가되기전에이미그는수차례의발표회와

제자들을위해발간한여러권의교육교재를세상에내놓았다서도

소리전승을위해기울인그간의정성과노력이남달랐음을쉽게짐

작할수있다

소리꾼의희망가希望歌

서도소리가소위lsquo제대로소리하기가어렵기로소문난민요rsquo이기때

문일까묵묵히배운끝에맛볼수있는소리의참맛을접하기도전에

그의 곁을 잠시 머물다 간 제자들이 적지 않다 야윈 몸을 지탱하며

그가고향의소리를여전히내려놓지못하는이유가궁금해졌다ldquo서

도소리의 탄생지인 북에는 지금 서도소리의 맥이 끊어 졌다고 해요

남북이통일되면본고장사람들에게우리가서도소리를가르쳐야할

지도 모릅니다rdquo그는 그저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

기위해고향의소리를이어온것이아니었다통일이되면자신이기

울인노력이소리의맥을잇는데도움이될것이라는희망과기대가

그의 소리 인생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도소리는 통일을

불러오는lsquo희망가rsquo의또다른이름이었다

04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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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8: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선조들의음식보감 28

한과

0101 매작과 봄 다과상에는 꽃을 소재로 분홍 노란색으로 물들인

매작과나 쌀강정이 좋다

함께했던

음식

조상의

희로애락과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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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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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8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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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29: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한과의유례와변천

우리민족은삼국시대때부터한과를만들어먹었던것으로전해진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품목으로 쌀 꿀 기름 등 과

자에 필요한 재료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이미 과자류

를만들었다고추정할수있다뿐만아니라차마시는풍습이성행했

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과자가 만들어

졌음을의미한다

고려시대로오면 불교를 숭상하는 의식이한층 고조되어살생이 금지되

고육식이절제됨에따라차를마시는풍속과함께과자류가한층더발

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밀과油蜜果가 발달되었는데 이는 황

필수의『명물기략』 성현의『용재총화』 이익의『성호사설』 정약용의

『아언각비』등에 잘 나타나 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크고작은행사에반드시고임상으로올려졌으며특히

왕공王公 귀족들의 집안이나 사원에서 성행하였다

29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과자를lsquo과정류rsquo라고

하는데lsquo과정rsquo은과자를이르는한자어로곧곡물에꿀을섞어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과자는 생과일과 비교 가공하여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란 의미로서lsquo조과造菓rsquo라고 하며 근래에는 양과자와 구분

하여 약과 강정 엿강정 다식 정과 과편 등을 통틀어lsquo한과rsquo라고

한다 또한lsquo수로왕조首露王祖 제수祭需에 과果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제수로쓰인과는본래과일이었다그러나과일이없는계절

에는곡식가루로과일의형태를만들어대신사용했으며helliprsquo라고적고

있다

글middot사진 함재묵 (한가원실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한편유밀과를만들기위하여곡물꿀기름등을허실함으로써물가가

오르고민생이어려워지자금지령까지내려지게된기록은이시기에

유밀과의성행을뒷받침해주고있다

다채로운한과의종류

유밀과는밀가루로만든과자를이르며한과중가장사치스럽고최

고급으로 꼽는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

들어기름에튀긴다음다시즙청(과줄이나주악따위에꿀을바르고계핏가루를뿌려

재워둠)한 과자이다 중국에는 고려의 유밀과가 고려병高麗餠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유과油果는찹쌀을가루내어술로반죽하여시루에찌거나삶아꽈리

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고물을 묻힌 과자이다 유과는 크게 강정 산자 빙사

과 연사과 요화과 등으로 나뉘며 다시 모양에 따라 네모나게 만든

산자누에고치모양을한손가락강정동글동글한모양의방울강정

네모지게 썬 빙사과 등으로 나뉜다 또한 묻히는 고물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달리 불리기도 한다 유과 중에 강정은 예부터 과자 중에 으뜸으

로써입에넣으면바삭하게부서지면서사르르녹는맛이특징이다

다식油果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송화 녹두녹말 등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가루로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낸 과자로

녹차와 함께 먹으면 차 맛을 한층 높여준다 유밀과처럼 일반화되지

는 않았으나 국가 대연회에 사용했으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빠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과수의 열매나 식물의 뿌리

를 익혀 꿀이 조린 숙실과 견과류나 곡식을 조청 엿물에 버무려 굳

힌 엿강정 주로 궁중이나 결혼 회갑연 등 잔칫상에 고

임새로올렸던당속류등이있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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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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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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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0: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절식에서의한과

우리 조상은 정월대보름 날 음식을 깨물어 소리를 내면 나쁜 귀신이 놀라 달

아난다고믿어산자나엿강정을먹었으며이월중화절은농사의시작을알리

는날로볶은콩을엿에넣어콩엿을만들어먹었고만물이활기를띄는삼월

삼짇날에는 녹두녹말로 과편을 만들어 먹었고 오미자로 쌀강정이나 매작과

에 색을 내었다 불가의 최대 행사인 초파일은 검정콩을 넣은 콩설기를 해먹

었고단오는양기가가장왕성한날로으깬앵두를삶아녹두녹말과꿀을넣

어 과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유월보름인 유두에는 보리 밀 햇것으로 전병을

부쳐먹었다삼복더위가기승을부리는칠월에는몸을보신하는음식을많이

먹는데 과자로는 채소에 꿀을 넣어 달게 조린 정과를 건조시킨 건정과를 먹

는다 팔월 한가위에는 햇곡으로 율란 조란 밤초 대추초 같은 숙실과와 정

과를만들어먹고구월중구(9월9일)는양수가겹친날로정과모과편을만들어

먹었다시월(상달)은한해농사를마무리하는달로집안의경사나명절에쓸유

과바탕을만들어말려두거나엿을고아단지에담아두었다십일월동지날엔

팥죽을 쑤어 집안곳곳에 뿌려 나쁜 액을 막았다 섣달 납일은 일년의 마지막

날로 특별한 절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설맞이 음식이 장만되는 때라 엿강

정유과약과다식등먹을것이가득했다

통과의례에서의한과

혼례에는사례라하여의혼납채납폐친영의절차가있는데납폐에는유밀

과가 빠지지 않는다 또한 신랑에게 해주는 고배상에는 각색편과 강정 약과

산자 다식 숙실과 생실과 정과 등과 찬품을 차려준다 그리고 그 후행이나

상객이 돌아갈 때 이바지 음식을 가져가는데 대개 인절미나 절편 등의 떡과

유과를 푸짐하게 담아 보낸다 또한 제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약과와

유과이다 특히 유밀과를 많이 진설하는데 그중 약과와 매작과 강정 산자

등도 많이 쓴다 그러나 무채색에 가까운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쌀 다식만을

올린다

불교의례 초기 불교의 제상 차림에는 차와 다식 약과나 유과가 주로 올려졌

다 생과와 조과는 가짓수대로 굽이 높고 큰 그릇에 놓는데 그 높이가 일반의

두세 배나 된다 특히 잣 은행 등을 껍질째 색을 들여 불교 관련 문양과 글씨

를새기면서고이고사탕도여러종류를써서색색으로갖가지문양을만들어

가며높이올려쌓는다

30

02약과 유과와더불어제례상차림에빠지지않는과자류이다 03 김규흔

명인이 한가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한과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김규흔

명인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방식의 한과 제조기술을 계승middot발전시키고

대중화와 산업화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00년 아셈 서울

회의 때 각국 정상 만찬 디저트로 김규흔 명인이 만든 한과가 제공되기도

하였다 04 한과는 조상의 차 마시는 풍습과 연관이 있다 다도가 성행

했던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 시대부터였고 과자가 흔히 차에

곁들이는 음식이었다 05 유과 찹쌀을 가루 내어 술로 반죽하여 시루에

찌거나삶아꽈리가일도록치댄후반대기를만들어여러가지크기로잘라

말렸다가기름에튀겨서고물을묻힌과자이다

03

02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1: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ldquo한과는궁중에서나

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재료를얻는데서부터

상에올릴때까지

오롯한정성이따르는

음식이다

31

회갑례부모가예순한살이되는생일에자손들이연회를베풀어고배

상을 차리는데 상차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다 큰상에는 떡

과자생과숙실과와숙육편육류전유어건어물육포등여러가지

찬물들을높이쌓아차리는데보통약과중박계요화과숙실과정과

다식등을축祝복福수壽 등의길상문자를넣어고여올린다

궁중한과

궁중 일상식의 내용은 정조 19년에 행해졌던 혜경궁 홍씨 진찬연을 상

세히기록해놓은『언행을묘정리의궤』를통해잘알수있다이에의하

면아침점심저녁밤으로다소반과와다별반과라는다과상이나오는

데 8일간의 일정 중에 다소반과는 하루 한두 번이 차려졌고 과자류는

어느 상에나 같은 것이 올려졌다 궁중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빈번하게

있었다 이런 궁중연회 때 왕이 받는 상을 진어상進御床이라 하는데 왕

과왕족에게는많은가짓수의음식을높이고인고배상을올리고친척

명부제신등손님에게는사찬상을내린다음식에따라고이는높이가

다른데 떡류와 각색당 연사과 강정 다식 등의 과자류와 생과류는 높

이고이고숙실과와각색정과는이보다낮게고인다나이많은문신들

을위해국가에서베풀어주는기로연耆老宴의잔칫상에는계절과절기에

따라한과가풍성하게차려지는데상사에는오미자과편오미자쌀강정

오미자매작과등이올려졌고중앙에는유자나모과로만든정과와과편

으로흥취를더했다

이와같이한과는궁중에서나민가에서나즐겨먹었던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기호식품으로 무엇보다 재료를 얻는 데서부터 상에 올릴 때까

지오롯한정성이따르는음식이다농사를짓는다는것은농부가아흔

아홉번의손길을주어탄생하는것인만큼농부의정성은이루말할수

없다우리한과는그러한귀중한농산물로만들어졌고한과또한만드는

과정을보더라도한과정한과정온갖정성을담아만든다는점에서는

농사짓는농부의마음과다를것이없다

04

05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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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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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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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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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2: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땅덩이다 그것도 바다

에잠긴대륙붕위로화산이솟아올라만들어진화산섬이다한반도의

땅덩이대부분이수억년에서수십억년의나이를가진오래된암석으

로이루어진반면제주도지표의돌들은그나이가대부분수만년에서

수십만년에불과하다크기로보면막내동생뻘로보이는화산섬독도

도제주도보다몇배나나이가많다우리가제주도에가면이곳이한

때화산이었구나하고느낄수있게해주는수많은오름들이아직까지

도원형을유지한채남아있는것도제주도의화산활동이최근까지일

어났기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성산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분출하였고 제주 남서부의 송악산은 약 4천 년 전에

자연愛물들다 32

분출하였다 분명 우리의 선사시대 선조들은 두 분출을 생생히 목격

하였으리라왜냐하면그목격의증거가제주남서부사람발자국화석

(천연기념물 464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서도화산분출을일으켰는데그때가서기1002년과1007년이며분

출이일어난장소는비양도로추정되고있다앞서제주도가우리나라

에서가장나중에만들어진땅덩이라하였는데비양도는제주도내에

서도가장나중에만들어진화산섬으로중요한의미를지닌곳이다

비양도는 이처럼 최근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화

산암의여러구조들이아주신선하게드러나있을뿐아니라타지역에

서는볼수없는특이한구조들을간직하고있다그중대표적인것이

바로lsquo애기업은돌rsquo로불려온특이한용암구조다lsquo애기업은돌rsquo은높이

섬 속의 섬 제주 비양도는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꼬마

화산섬이다 비양도는 워낙 최근에 만들어진 섬인데다가 바닷가에

위치해있어끊임없이파도에씻긴탓에화산분출로만들어진여러

지형과지질구조가제주의어느곳보다도잘드러난지역이다그중

lsquo애기업은 돌rsquo로 불려온 굴뚝 모양의 구조는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용암 구조다lsquo호니토rsquo로 알려진 이

용암굴뚝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왜 비양도의 바닷가 한편에

홀로서있게된것일까

글middot사진 손영관 (경상대학교지구환경과학과교수) 사진 문화재청

지정번호middot천연기념물 제439호

소재지middot제주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27

지정일middot2004년 4월 9일

물을

만나

만든

용암이

용암굴뚝

제주

비양도의

호니토

01 02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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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3: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33

3m의돌기둥처럼바닷가에우뚝서있는데더욱신기한것은그속이

텅비어있다는것이다

물처럼낮은곳을따라흐르는성질이있는용암이어떻게돌기둥을만

들었을까 그것도 속이 텅 비어있는 돌기둥을 필자는 분석구로 이루

어진 비양도가 만들어진 후 마지막에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로 흘러듦

에 따라 용암과 바닷물이 만났기 때문에lsquo애기업은 돌rsquo이 만들어졌다

고 생각한다 학계에서는lsquo애기업은 돌rsquo과 같은 용암구조를lsquo호니토

(hornito)rsquo라고부르는데호니토는용암이흘러가던중지표면의식물이

나물기를머금은퇴적물등을덮쳐식물이연소되거나물이끓어생긴

연기와수증기가용암을뚫고표면밖으로뿜어져나오며생긴구조로

알려져있다

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경우 식물이나 물기가 머금은 퇴적물보다는 얕은

바닷가로 용암이 흘러듦에 따라 용암 밑바닥의 바닷물이 끓어 용암

위로수증기가뿜어져나오며생겼을것으로생각한다lsquo애기업은돌rsquo

이현해안선가까이에나타나고있으며약천년전의해수면은현재와

같았기때문에용암이바닷물을만났음이확실해보이기때문이다만

약비양도가해수면이낮았던오래전의빙하기에생겼다면용암이바

닷물을만나호니토를만들기어려웠을것이다

성산일출봉을비롯한제주도의여러화산들이마그마가물을만나폭

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水性火山들이며 제주도도 오랜 기간에 걸친

마그마와 물이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

져 있다 비양도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자그마한 용암굴뚝을 보며 화

산작용에 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리고lsquo애기업은 돌rsquo에 대해lsquo불과 물이 빚어낸 자연의 조각품rsquo이란

이름을붙여주고싶다는생각을해본다

01 호니토(hornito)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 호니토의 내부구조 호니토

는 굴뚝과 같이 내부가 비어 있으며 표면에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고

드름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02 비양도는 1002년 1007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03 호니토(hornito)

로 알려진 제주 비양도lsquo애기업은 돌rsquo의 전체 모습

03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4: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문화재돋보기 34

반구대암각화가전해주는

고래이야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에발굴되어세상에처음알려졌다태화강의지류인대곡천의절벽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최소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다양한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을 비롯하여 인간의 수렵활동이나 도구

등을매우사실적으로묘사한점이높이평가되어1995년국보제285

호로지정된자랑스러운유물이다너비약10m높이약3m의평평한

암면에는약290여점의그림이새겨져있는데현재의고래연구자가

보더라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잘 묘사한 고래 그림들이 포함

되어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그림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들을

잘살렸음을알수있다

글middot사진 안용락 (국립수산과학원고래연구소연구사)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01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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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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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8

1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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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5: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반구대암각화는선사시대야생동물분류도감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관심을 갖고 있

는생물의종을정확히구분하는것이다20세기후반유전학의발달

로이제는유전학을곧분류학으로인식하는학자들도많아졌지만그

래도아직까지생물을분류하는기본은형태학적차이를구별하는것

이다이런시각에서볼때반구대암각화는인류최초의야생동물분

류도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라생각된다반구대암각화에는개별

적으로구분이가능한그림이총296점이새겨져있는데이중193점

이 다양한 동물을 표현한 그림이다 동물 그림에서 다시 고래를 묘사

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추려보면 58점이나 된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 분류군 중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고래란 뜻이다

이렇게 많은 고래 그림을 들여다보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이 눈에

띈다물론형태학적특징만으로정확히어떤종류인지파악하기어려운

그림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이 선사시대 기록자(혹은 예술가)

는행동이나생태학적특징까지표현하여부족한형태학적설명을잘

메우고있어고래종류를구별하는데큰어려움이없었다

북방긴수염고래느린행동으로일찌감치남획된고래

고래는약5000만년전육상의조상으로부터진화하여수중생활에

완벽하게적응한포유동물이다오랜진화과정을통해고래는차가운

바다에서체온을유지하기위해두꺼운지방층이발달하였고덩치가

커지게되었다대신유영할때저항으로작용하는털과가죽은퇴화

하여 사라졌고 체형은 매끈한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보다 매끈한 체

형을이루기위해뒷다리는퇴화하여골반만체내에남았으며앞다리

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형태로 변형되었다 유영 시 균형을 잡아주는

등지느러미와 유영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꼬리지느러미가 생겨 마치

물고기와같은모습을갖게되었다고래는허파로대기중의공기를

호흡해야하는포유동물이므로짧게는몇분에서길게는수십분호흡

을 참고 물속으로 잠수하였다가 호흡을 위해 해수면 위로 올라와서

숨을 내쉬고 다시 새로운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한다 이때 콧구멍을

통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체내의

공기와 차가운 바깥 공기가 만나 응결되면서 생긴 일종의 콧김이다

마치우리가겨울철입이나코를통해숨을내쉴때생기는입김이나

콧김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호흡을 할 때 머리를

높이들지않고도호흡을쉽게할수있게끔고래의콧구멍은정수리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데 공기를 내뿜는다고 하여 특별히 분기공(blow

hole噴氣孔)이라고부르며공기를내뿜는행동을분기라고한다이분

기는고래의종류에따라모양이나크기가제각각이다대왕고래(blue

whaleBalaenolpteramusculus)참고래(finwhaleB physalus)보리고래(seiwhale

B borealis) 브라이드고래(Brydes whale B edeni) 밍크고래(minke whale B

acutorostrata) 혹등고래(humpback whale Megaptera novaeangliae) 등의 분기는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긴수염고래(northern

right whale Eubalaena japonicus) 북극고래(bowhead whale Balaena mysticetus)

귀신고래(graywhaleEschrichtiusrobustus) 등은두갈래로갈라진하트모양

을하고있다이제반구대암각화의왼쪽아래에비슷한모양을하고

있는고래세마리를살펴보자머리위에양쪽으로갈라진고리같은

문양이 보인다 세 마리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고래는 입술 선이

주둥이에서넓고뭉툭한가슴지느러미의기저부로이어진다그리고

세 마리 모두 등지느러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을 조합해

35

01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전경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

동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02 반구대암각화왼쪽아래에그려진세마리고래

그림의 특징을 조합해봤을 때 북방긴수염고래로 추정된다 03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있는데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

지는것으로보아혹등고래일가능성이높다

02 03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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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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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6: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36

04

보면 분명 북방긴수염고래로 보인다 지금도 북반구의 고위도 해역

에서관찰되는북방긴수염고래의사진과비교해볼때도분기의모양

이나 등지느러미가 없는 형태학적 특징이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개체와잘일치한다

유영 속도가 매우 느리고 연안에 가까이 접근하여 서식하는 긴수염

고래는 일찍부터 고래잡이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지방층이 두껍

고 죽은 후에도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포획하기에lsquo알맞다rsquo혹은

lsquo좋다rsquo는뜻으로영어로도lsquorightrsquo라는단어를붙여rightwhale이라

고 한다 미국의 고래잡이가 번성했던 19세기에는 New Bedford나

Nantucket과같은미국북동부연안의포경기지에서출발한포경선

들이 우리바다까지 진출하여 많은 북방긴수염고래를 포획하는 바람

에 현재는 북태평양에 2~300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있

다우리바다에서는1974년동해남부에서한마리가마지막으로포

획된뒤자취를감추었다

혹등고래날개같은긴지느러미를가진고래

북방긴수염고래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옮겨보면 머리를 아래로 하고

복부가 주름으로 가득한 고래 한 마리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

진 모든 고래 그림이 옆모습이나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하고 있는

데 이 개체는 유달리 뒤집힌 채 복부의 주름을 강조하여 표현하였다

복부의 주름이 항문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혹등고래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몸길이의13정도로긴가슴지느러미를가지는것이혹등

고래의 형태학적 특징 중에 하나임을 내세워 이 그림은 가슴지느러미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어서 혹등고래라고 단정 짓기가 애매하

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참고래과에 속하는 대왕고래 참고래 보

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밍크고래 등도 복부에 주름이 많다 특히 대왕

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는 혹등고래 못지않게 긴 복부 주름을 가

지고 있다 따라서 대왕고래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혹등고래로 후보

군이 좁혀진다 이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종류인지 선사시대 사

람들의배만드는기술과고래의생태학적특성을고려해보자반구대

암각화를만든선사시대사람들이사용한배라고해봐야동물의가죽

을덧붙이거나통나무를깎아만든조그만배나나무몇개를이어만

든 뗏목 정도였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배나 뗏목으로는 거칠고 먼

바다로나가서유영속도가빠른고래를따라다니며관찰한다는것은

불가능했을것이다

고래의 생태학적 특성을 보면 북방긴수염고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혹등고래는천천히유영하며육상가까이접근하기때문에관찰이쉬

운반면대왕고래참고래브라이드고래등은주로먼바다에분포하

며빠르게유영하기때문에관찰하기가더욱어렵다또이그림은복

부를 강조하였는데 혹등고래는 고래뛰기 가슴지느러미치기 꼬리지

느러미치기등다양한행동을보여주며복부를하늘로향하게하여드

러눕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대왕고래나 참고래 또는 브라이드고래

가이러한행동을하는경우는매우드물다따라서이그림은신체부

위의비율이나형태가명확하지는않지만당시사람들의선박기술이

나고래의생태및행동특성을고려해볼때혹등고래를표현한것일

가능성이매우높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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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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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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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7: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37

0605

과거 포경 기록을 보더라도 우리바다에서는 혹등고래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것으로추측된다현재북태평양에는약22000마리의혹등고

래가서식하는것으로추정하고있는데대부분하와이와알래스카사

이를회유하면서동부태평양에분포하고우리바다를포함한서부태

평양에는 일부가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혹등고래는 우리바

다에서2~3년에한마리정도연안에설치된그물에걸려잡히는경우

가 있으나 아직까지 필자가 수행했던 현장 조사에서 산 채로 관찰된

적은없다

귀신고래이름과달리한없이온순한고래

혹등고래꼬리지느러미좌측에는목부분에다섯개의줄을그려놓은

고래가있다머리끝부분에는삼각형의눈과입을새겨놓았다 복부

의주름측면의입과눈을한평면에동시에묘사한것이이그림의특

징이다 이렇게 짧은 주름을 가진 종류로는 귀신고래밖에 없다 밍크

고래와보리고래가귀신고래보다약간더긴주름을가지고있지만주

름의숫자가 5〜60개로2〜7개인귀신고래보다훨씬많기때문에이

그림은귀신고래일가능성이매우높다귀신고래역시유영속도가느

리고 연안에 가까이 분포하지만 밍크고래와 보리고래는 대왕고래나

참고래및브라이드고래처럼먼바다에서식하며빠르게움직이는종

류들이므로이그림은귀신고래로봐도무방하다

지금도 러시아 북극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수 백 년 전에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귀신고래를 사냥

하고있는데이들의사진을보더라도이그림이귀신고래에가깝다는

것을쉽게확인할수있다귀신고래는북태평양에만서식하고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에 이르는 연안에 서식하는 집단(동부계군)은

현재약19000마리로개체수가점차증가하고있으나한국일본러

시아등동북아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서부계군)은 19세기에서20세

기초에걸쳐이루어진남획으로인하여현재120마리정도만남아있

다 우리나라 정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 보존의 중요성을 강

조하기위해귀신고래가회유하던연안해역을천연기념물제126호로

지정하였다(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귀신고래 ) 그러나 귀신고래 역

시1977년겨울을마지막으로우리바다에서는더이상관찰할수없는

고래가되고말았다

반구대암각화가있는울주군대곡리는과거바닷물이접하는해안선

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고래가 육지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추측된다따라서선사시대사람들이굳이위험을무릅쓰고먼

바다까지나가지않더라도쉽게고래를관찰할수있었고고래의형태

뿐만 아니라 생태나 행동 특성을 잘 살린 그림을 바위에다 새겼을 것

이다그만큼우리바다에많은고래가서식하고있었다는증거가바로

반구대암각화다18세기이후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등의남획으

로 인해 우리바다에서 사라진 북방긴수염고래나 귀신고래가 반구대

암각화가 만들어졌던 선사시대처럼 우리 바다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을다시볼수있기를기대해본다

04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반구대암각화 3D 실측 그림 05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그림 중 고래

를 묘사한 그램이 58점이나 되며 이 중에는 어떤 종류의 고래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몇몇

그림도 눈에 띈다 06 귀신고래는 북태평양에만 서식하고 있는데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시아연안에서식하는집단은현재 120마리정도만남아있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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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8: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제기라는문화유산을창조한제사라는무형유산의역사는인류의역

사와함께하지만오늘날과같은제도와형식으로정착된것은조선

시대이다제사의문화적전통은조선시대에확립되었다는뜻이다

제사는공공의목적으로지내는국가제사와일반가정집에서지내는

가정제사 혹은 집안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제사가 왕조의 조상

뿐만 아니라 산천山川등 자연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라면 가정제사

는집안의조상신에한정된다이글에서다룰내용이바로가정제사

의제기이다

국가제사의제기에는공적인권위를강조하려고음양陰陽하늘과땅

권위등의상징문양을사용하여가정제사의제기와는모양이나크기

가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질 역시 청동 등 일반인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가정제사의 제기는 일반 그릇과는 구분하

지만국가제사처럼문양이나상징이크게드러나지않는다

가정제사의 제기 역시 도구와 그릇으로 나눌 수 있다 도구로는 신

위神位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 제기를 놓는 제상 신위의 뒤쪽을

가리는병풍합문闔門을할때사용하는휘장揮帳향로와향탁축문을

Zoom In 무형유산 38

제사지내는이의정성을담는

제기

제기祭器란제사를지낼때사용하는도구이다그런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제기는제사음식을담는그릇과제사를지낼때사용되는기구인

제구祭具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자(신사 神社)에서 사용되는 제기를 제구라고 했던 모양이지만 우리말의 제기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지낼때사용되는도구전체를지칭하는용어였음을기억해두자『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제기도설祭器圖說』에도제사에사용되는모든도구를설명

하고있어제기의원뜻을알수있다 글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전시운영과과장 학예연구관) 사진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1

02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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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8

11

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39: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받치는축판촛대수저등이있다

그릇은제사에올리는음식을알면좀더쉽게이해할수있다한국

의제사절차는전통적인손님접대순서와같다손님이오면먼저주

안상酒案床을 내어 손님에게 술을 권한다 이어 식사를 대접하고 차

혹은숭늉으로마무리한다제사역시먼저술을3잔올리는삼헌三獻

을하고유식侑食이라고하여숟가락을밥에꽂고젓가락을가지런히

한다 이어 합문闔門이라는 절차에서 조상신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식구반一食九飯이라 하여 9숟가락을 떠먹을 정도의 시간 동

안기다린다이를 마치면문을여는계문啓門을하면서숭늉을올리

는헌다獻茶를한다우리나라에서는차를쓰지않기때문에이때차

대신숭늉을올리는것이다

첫번째절차인술을올리는데에필요한그릇을보자술잔은반드시

잔받침이있는것이어야하고각기하나씩준비한다안주를담는그

릇으로특이한것은굽고지진고기를쌓은적炙을담는적대炙臺와떡

을 담는 편대 가 있다 이 두 그릇은 낮은 굽에 윗면이 평평하고

네모지게만들어다량의적과떡을고일수있도록고안되었다

식사의 절차에 사용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기燕器와

유사하지만굽이높거나반드시뚜껑이있는것이특징이있다

『국조오례의』의 반발飯鉢이 밥을 담는 주발(사발)과 닮았고 국을 담는

그릇은대접형태로서『국조오례의』의갱접 과같은것이다탕湯을

담는그릇은요즘의밥공기크기정도의굽이높은탕기를사용한다

채소나 부침개 등을 담는 그릇은 대접이나 접시를 사용한다 숭늉그

릇은 국그릇을 사용하고 과일이나 과자류 식해食醯를 담는 제기는

굽이높은접시를사용한다간장그릇은『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장기

醬器라고하였으나종지鐘子를말한다

『국조오례의』나『사례편람』에서는 각 제물에 그릇 이름을 붙였으나

그릇형태가모두다르지는않다오히려제물의형태에따라연기와

유사한주발대접쟁첩종지굽접시탕기등을사용하였다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다른 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유기(鍮器 놋그릇)

는파손의위험이적고온기를잘보존하기때문에주로겨울에사용

한다사기(자기)는음식이잘쉬지않도록하기때문에주로여름에사

용한다요즘제기의대명사처럼되어있는목기木器는가벼워운반하

기편하므로묘제墓祭에사용하려고만든것이다

『예기禮記』에는살림을장만할때가장먼저제기를마련하고연기를

39

04

사용하거나빌려서사용하거나제기를팔아서는안된다고주의시키

고있다그러나가난하여제기를별도로장만하지못할경우연기를

사용한들 해될 일은 없다 하지만 제기는 조상제사에 사용되는 신성

한그릇이기때문에만들때부터일반그릇과는다른공정을거친다

국가제사의 제기는 전문적인 장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한다 가

정제사의 제기(사기)에는lsquo제祭자를 문양으로 새겨 연기와 구분하기도

한다제기는연기와달리전문적인지식을요구하기에장인역시제

기를만들때에는특별한정성을쏟는다고한다

제기는그집안의품격을가름하기도한다그래서집안에따라굽이

낮은것을사용하기도하고계절을가리지않고반드시유기만을사

용한다든가모든그릇에뚜껑을갖추는등특별하게하기도한다더

불어제사를지내는후손의정성을담기에제기역시예사로다루지

않는문화는길이보존할문화적전통이다

03

01 교의(交椅)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 형태의 받침대이다

02 제상(祭床) 제기를 차려놓는 상으로 격식에 따라 제물을 진설하는데 그 방법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03 석전제의 제기 보 멥쌀과 좁쌀 담는 그릇으로 쓰인다 04 가정에서

제사를지내는모습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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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0: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Design Heritage 40

아름다운우리의떡살

[Design Heritage]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 즉 문양紋樣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살이 뼈가되고 무심한 흰떡에 어떤 의미를 지닌

무늬를 놓아 그 골격을 형성한다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를 찍는 것을lsquo살 박는다rsquo고 했다 재료는 나무를 주로 쓰나 사기나 자기로도

만들며 형태는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다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장방형 떡살은 단면 양면 사면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처럼다양하고체계적인문양을만들어낸조상의예술성과창의성에감탄하지않을수없다

글middot사진 김규석 (목산공예관관장)

01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1: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41

우리음식문화의격조를대변하는떡살문양

떡살의 문양에는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

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천도 석류 박쥐 포도 모란 국화

송죽매란민화문뇌문파문완자거치문기하학문와문십

장생 칠보문 태극문 수레차문 격자문 창살문 석쇠문 길상문양

등을 많이 쓴다 단오 날은 수레문양 물고기눈문양 잔치에는 꽃문

양길상문양기하학적인문양등을많이사용하였다사돈이나친지

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는 길한 문양을 넣어 기름하게 만들었다 큰

잔칫날에여러사람이모여떡을만들때나남의집떡살을빌려다가

사용할 때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름이나 주

소를새겼다

문양이 뜻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거치문(톱니모양) 문양은 부귀와

길경吉慶 다손多孫을 뜻하며 이화문은 줄기를 옆으로 늘어뜨린 형태

의배꽃모양으로이씨집안에서많이사용하였다목단은부귀국화

는 장수 파도는 조정朝庭 물고기 학 거북 사슴 복숭아는 장수長壽

박쥐는오복五福과다산多産나비는기쁨이나금슬琴瑟물고기눈과길

상화문吉祥花紋은 만사여의萬事如意를 비는 의미를 가진 문양이다 신년

을 의미하는 문양으로는 차꽃茶花 소나무 매화나무가 있고 축복과

극락정토를뜻하는연꽃자손의번영과부귀를상징하는포도좋은

친구관계를의미하는세한삼우(송죽매)다산을의미하는석류문거

치문와문등이있으며축수(천수)를의미하는대나무효를상징하는

01 양면원형떡살 떡살에는 형태에 따라 원형 장방형 따위가 있는데 원형 떡살은 다시 단면

양면 육면 등으로 다시 분류된다 02 까치모양원형떡살 03 장방형떡살

精巧美

죽순문자로는부귀富貴다多남男수壽복福강康영寧길상여의吉祥

如意 등떡살과다식판에다양하게나타난다

기하학문幾何學紋은 이른바 알 무늬라 불리며 장생과 더불어 도야(陶冶

훌륭한인격과재능을갖추려고몸과마음을닦음을이룸)를상징하며자연숭배사상

에충효사상까지생각하였다선문線紋원문(태양과태양숭배)을기본으로

뇌문雷紋태극문太極紋만자문萬字紋파문芭紋 등이있고떡살무늬의대

부분이 선문線紋이다 또한 문자문文字紋에는 경사로움을 강조하기 위

하여 쌍희(囍)를 아亞 용用 전田 병餠 미米자는 만대만년을 뜻하며 완

자(卍) 무늬는기쁨이거듭되길기원하여연속적사방무늬로도안적욕

구를 충족시키면서 영원불멸의 회전하는 태양太陽의 상징이나 종교적

02

03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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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2: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42

04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상징적인 동물인 현

무 주작 봉황 용은 사신四神의 의미로 먹는 음식에 등장하지 않으며

호랑이 또한 산신山神의 의미로 떡살과 다식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이러한무늬들은산신제나용왕제의제물로사용하였다

기념명문으로는결혼에는석류나포도나비박쥐원앙등으로아들

딸많이낳고복받기를기원하는무늬를백일에는파초파문잉어를

회갑에는수복문자나국화나비박쥐국수빗살십장생팔괘무늬

를새긴좋은의미를지닌예쁜떡살을만들었을것으로보인다이렇

게기념으로선물한것에는문양외에도선물한사람의이름을새겨넣

기도하고예전에는혼수품에떡살과다식판을준비하여보내기도하

였다무심한흰떡에살을박아넣은것은단순히떡으로배를채우는

것보다 한 걸음 나아가 먹는 음식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의지혜와미적감각에기인한것으로보인다길흉사시에참기름

바른절편을요철의성형으로미끄러지지않게높이고일수있고무

늬의분류선에따라먹기좋은분량으로자를수있도록하는의도도

있겠지만 또 다른 절실한 의미가 그 기반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식판규칙이담긴정교한문양

다식은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다담상茶啖床에 올리거나 잔칫상에 색을

맞추어예쁘게쌓아올린채등장한다관혼상제등의행사가있

을때는으레다식을만들었으며이들용구는대를물리면서보관사

용하였다다식판은다식茶食의재료를조합하여박아낼때쓰는판을

말하며 길이는 30~60 넓이 5~12 두께 5~6의 크기로 위 아

래두쪽의판으로나뉜다아래쪽판에는20~28가량의둥근모

양이5~30여개정도볼록하게솟아있고표면에는수복강영또

는 완자문 꽃 등의 문양을 음각으로 새긴다 둥근 원은 우주를 의미

하며 원의 가장자리에 올록볼록한 모양은 지구 주위의 15개의 별자

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도장처럼 만들어 다식

을박을때위에서눌러찍어양쪽에문양이새기도록하여다식을괼

때 서로 붙지 않도록 하였다 물고기와 차 잎 모양의 다식은 다식을

괸양옆으로장식하였다

한편다식판과떡살의겸용형태도있는데한개로두가지의역할

을 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인지 대체로 전문적인 조각들도 보이고

어떤 것은 급한 김에 떡살에 다식판 몇 개를 파 넣은 듯한 느낌을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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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3: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04 19세기 조선시대의 떡살 뒷면에 계유시월조작영구물실(癸酉十月造作永久勿失)과 같이 소재

지와 제작연대가 음각된 점으로 미루어 마을에서 서로 돌려가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05달떡손잡이떡살lsquo떡살rsquo이라는 말과 함께lsquo떡손rsquo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는데lsquo떡손rsquo이라고 할 때는

원형 떡살에 손잡이가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06 거북이모양다식판

서울지방은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많았으므로 차문화가 발달하여 다식판이 많았고 영남지방은

양반가 격조를 갖춘 떡살과 다식판이 많이 발견된다 07 다양한 문양의 떡살 선 원 꽃 초문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은 우리 음식문화

의격조를대변한다

43

05 06

주는것도있다장인의손으로만든훌륭한떡살과다식판도있지만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소박하고 어설픈 떡살이나 방망이에다 빗살

무늬나국수무늬를새긴것도보인다

떡살의현대적가치와가능성

산업화와기계화로치닫고있는현대사회에서는손으로만든생활도

구들은 자취를 감추어가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 갖춘 대량생산품들

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음식조차도 인스턴트식품들이 등장

하여 일일이 찌고 떡메로 쳐서 만드는 수고를하지 않아도 백화점에

서포장된떡을사먹을수있다그나마떡은그맥을잇고있지만다

식은거의찾아보기어렵다

떡살과 다식판에는 전통문양에서 다루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문양들

이나타날뿐아니라다양한변용變用과탁월한조형성造形性으로전통

문양연구의근간을제공해줄수있을뿐만아니라거의미로상태

에있는문양의연구가선사시대의암각岩刻이나벽화기와동경銅鏡

능화판陵花板 자수刺繡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문양이 발견되는 떡살

문양을통하여종합되고완성되어가리라믿는다

精巧美

떡살과 다식판의 문양들은 한민족의 심성을 꿰뚫어 흘러온 것으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심성으로 다가온다 비록 떡살과 다식

판의기능은미미해졌지만요즘에와서많은공예작품으로서의관심

과생활도구로서의사용이늘고있다그문양들을응용미술이나디

자인에 채택하여 현대화된 문양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으리라 생각

한다

07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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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4: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lsquo대한민국 1rsquo는 평범한

일반인은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것이lsquo매우 귀한 것rsquo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lsquo문화유산rsquo에

대한또다른정의가될수도있다그만큼우리의문화유산은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절터가 대한민국 1라고 물론 누군가는 절터가

문화유산답사최고수를위한대상지라고말하기도했다우리문화

유산 안내서 중 절터에 대한 자료는 근래에 들어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이는그만큼우리국민의문화적수준이높아졌다는것을방증

하는것이아닐까

우리나라의 국가지정 문화재 중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과반수를

넘는다 그런데 절터는 어떨까 2010년에 당시까지 알려진 절터를

한번 모두 모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때 확인된 절터는 총 5393개

소이다 그런데 그 중 현재lsquo사적rsquo또는lsquo기념물rsquo등의 명칭을 통해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받는 절터는 총 103개소로 19에 해당한

다 그렇다 여기서 절터가 대한민국 1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은 단

순히lsquo매우 귀한 문화유산rsquo으로의 뜻이 아니라 아직도 99 정도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절터가 방치되어 있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

다는 뜻이다 그럼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절터는 지금 어떤

생동하는문화재현장 44

대한민국1문화유산

절터寺址

글middot사진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유적연구실실장)

01 02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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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5: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45

모습일까우리가접하는절터관련안내서에언급된곳에는하나같

이너무나아름다운경치와문화욕구를충분히채워줄훌륭한문화

재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당시의

웅장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곳에서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면 마치 그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도하

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터가 좁아도 그 느낌은 결코 부족하지 않

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절터는 이곳과 다르

다 이미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건물 초석이나 심지어 불상

석탑이여기저기깨진채밭두렁에널려있거나계단디딤돌로재사

용된다마을정자밑누군지잘모르는사람의묘상석에서도절터와

관련된 문화재가 자주 보인다 법당과 불전이 있던 곳은 그 흔적도

보이지않는다그래도그나마사람의손길이닿는곳은그렇게라도

손상된 문화재를 찾을 수도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절터는 누군가

이미문화재를어디론가들고가버려도저히찾을수없다깊은산속에

있는 곳은 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방치된 절터는 보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절터를 조사하

기 위해 방문하면 해당 절터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푸대접받

기 일쑤이다 논과 밭 주인들은 자신들 생활 터전 운영에 하나도 도

움주지못할뿐만아니라오히려방해되는돌덩이들이널려있는것

으로생각한다

우리가 잊고 살던 전국 절터에 대한 전수조사는 2009년『문화재보호

기금법』이 제정된 후 불교문화재 전문 조사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

소에서 2010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010년(서울 인천

경기) 2011년(광주 제주 부산 전남) 2012년(대구 경북) 조사를 거쳐 2013년

현재 울산 경남 강원 전북지역을 현장조사하고 있다 2014년에는

대전충남충북지역이예정되어있다실로남한전체에있는절터에

대한명실공이최초의전수조사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매해조사지역에대한현장조사를통해얼마나

현황이바뀌었는지직접확인한다그리고조사결과를정리하여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절터 중 당장 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을

정도로중요한곳에대한자료를확보하고동시에행정처리가시급할

정도로훼손이심한절터에대해문화재청과관계지자체와함께정

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해 조사가 완료된 절터 관련 자료는 보고서

를 통해 해당 지자체 국공립도서관을 포함한 관련 기관에 배포 공

개되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홈페

이지 간행물 코너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중

요한 절터에 대해서는 정밀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조사 필

요성이제기됨에따라2013년부터경주미탄사지를그첫대상지로

선정하였다 이곳은『삼국유사』에 언급된 곳으로 조사결과 길이 약

37m에 정면 8칸 측면 4칸의 대형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매해 절터

에대한현황조사를통해자료를구축하고정리할수록이미대다수

의절터는이제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있다는사실을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덩치 큰 중장비들이 개발을 명목으로 대지

정비에적극활용되면서이러한상황은더욱가속화되고있다

그럼우리가잊고지낸그많은절터는이제포기해야하는걸까이

에 대한 대답은lsquo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rsquo라고 생각된다

이제나머지99절터에대한올바른인식과합리적처우가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

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우리모두의관심과고민이지금부터라도필요하다

01 경작지내절터문화재(경북문경생달리사지) 이미대다수의절터는lsquo터rsquo조차찾기힘들어지고

있는실정이다 02 산속절터의문화재(인천강화군흥왕사지) 깊은산속에있는절터는등산로

없이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질러 그냥 올라가야 한다 03 마을 정자 초석(전남 함평 해보리

사지) 대부분의 절터는 논이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불상 석탑이 여기저기 깨진 채 널려 있거나

정자등다른건물초석이나디딤돌등으로재사용되고있다

03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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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6: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나는담양의소쇄원을두번다녀왔다현직에있을당시조선시대대

표적인궁궐전통정원인창덕궁과인연이있어조선시대의민간전통

정원으로알려진소쇄원은어떨까싶어서다백일홍이만발한8월중

순그야말로소쇄원일대는가로수도백일홍소쇄원은물론근처의

식영정환백당명옥헌등모두백일홍이만발하여장관인데마치주

변넓은마을이하나의 정원인느낌이다백일홍이만발한때의풍경

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국가지정 명승 제40호로

2004년처음나들이때는사적이었는데올해두번째찾았을때는명

승이라니 변경 지정된 사실도 모르고 찾은 셈이다 소쇄원은 문화재

적가치를새겨보는것도좋겠지만그저옛선비들의풍류를즐기던

기분으로돌아가경관을즐기는것도좋을듯하다붉은백일홍과흰

백일홍이 어우러진 풍경이며 경사면을 잘 정리하여 윗단은 제월당

霽月堂이라는 주인의 거처로 담으로 경계를 친 아랫단은 광풍각光風閣

이라는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지었다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단출한집이다옛선비의소탈함이배어있는구조이다lsquo제월광

풍霽月光風rsquo창덕궁 후원 규장각 건물 오른쪽 뒤에도 제월광풍관이란

건물이있는데본래천석정이라했는데규장각에서신하들넓고시원

시원한 인품을 쌓으라는 뜻으로 후에 편액을 바꿔 단 부속 독서실

이다 소쇄원을 꾸미던 양산보梁山甫는 소쇄원의 풍경을 표현한 것일

까아니면칩거하며풍류를즐기던자기의심기를표현한것일까하

여튼문자그대로비온뒤의맑은달과시원한바람을생각하면참으

로시원한풍경이다언젠가제월당에서하늘에뜬달을보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모르겠다황토와자연석을적당히섞어쌓은담도아

름답다담을그대로두고밑에계곡물이흐르게한아이디어도대단

하려니와 대나무를 이용한 유수로도 재미있다 온 사방 붉은 백일홍

분위기를흰백일홍으로조화한것도좋아보인다소쇄원의조성내

력이나의의는무지한내가여기글로적을일이아니다현장을보고

안내문도보고기회가된다면그곳에서애쓰시는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들어야소쇄원의진정한의미와참맛을느끼고올수있다까

딱 잘못하면 10여분에 돌아보는 한적한 계곡 누정을 훑어보는 것으

로끝낼수도있다내가소쇄원을백일홍이피는8월에가보기를권

하는것은봄에갔을때와여름에갔을때의차이는역시백일홍이만

발한8월의소쇄원이인상깊었기때문이다소쇄원의대밭에서부는

소슬바람이더위를식혀주는맛도말그대로제월광풍아닐까

더구나 이곳은 이웃에 조선 가사문학의거두 정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환벽당식영정등백일홍과어우러진멋진풍경을가볍게걸어서

글middot사진 박연근 (경기김포시고촌읍)

백일홍이만발한

8월의소쇄원瀟灑園

01

문화재사랑과만나다 46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광주역에서육교로철길건너광주역뒤육교정류장에서담양행시내

버스를 탈수있다 소쇄원 일대가 광주 경계로 광주가 생활권이라는

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47

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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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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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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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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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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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7: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역사적 명성은 없는 사람들이라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백일홍 고목

이어우러진원림은아무데서나볼수없는환상적인풍경이다소쇄

원을대중교통으로찾을때는담양으로가지말고광주로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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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다 담양으로 갔다간 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

을겪을수있다

01 명옥헌의 백일홍 원림 8월 중순 소쇄원 일대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석영정 환백당 등 지천에 백일홍이 만발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02 소쇄원의 광풍각 손님을 위한 사랑채로

모두 단칸방을 들이고 마루가 깔린 단출한 집이다 03 제월당 너머로 보이는 마당의 낮은 굴뚝이 앙증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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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점도 있다 소쇄원 못미처에 있는 가사문학

관을 들르면 정철의 성산별곡을 비롯한 가사문학 작품은 물론 가사

문학속의사연을표현한화가그림도전시되어있다 이곳에서문학

관해설을하시는분은소프라노 가곡창흥겨운춤사위를구사하

는등많은장르의예능을넘나들며해설을하시는데그야말로프로

페셔널이다 꼭 해설을 청해보기 바란다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주

차장옆에붙은식영정은정철 고경명임억령김성원등이산수를

노래한 곳으로 이 시들이 성산별곡의 근원이 되었다는 가사문학 유

적이다 조촐한 정자가 두 채 있는 데 식영정은 김성원이 장인 임억

령을 위해 지었고 그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서하당이다 이곳에서 내 하나를 건너면 환백당 그야말로 백일홍이

수놓는풍경이일품이다 이처럼걸어서소쇄원일대를보고나면다

리도아프고 출출해지며식당간판을두리번거리게된다 깔끔한식

당들도꽤있어좋은경치보고맛난남도음식을즐길수있다금강

산도식후경걸을수있는거리가아니고좀떨어진명옥헌鳴玉軒을빼

놓을수없다승용차로오지않았다면택시를이용해야하는불편함

이 있다 그러나 백일홍이 필 무렵에 방문하였다면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조선중기 오희도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가꾼 정원이다

02 03

lsquo문화재사랑과만나다rsquo코너는독자여러분이만드는코너입니다 여행

에서만난문화재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우리역사의흐름을알수

있었던박물관기행등문화재와관련된독자여러분의기고를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

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보내주시면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

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

보내주세요

middot원고분량 A4용지 기준 1장(10pt)

middot사진 해당 여행 관련 사진 5매 이상

middot보내실 곳 문화재청 대변인실 김수현

(nicosiakoreakr)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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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

10

1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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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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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8: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장형수라 하는 골동상인이 여행 중에 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실례하겠소만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겠소

주인나리께서 허락하셨소

이리 따라 오시오

고맙소 그런데

실례지만 주인께선

어떤 분이시오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만화] 48

이야기가있는역사기행 ❾

뭔가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던것일까

변소로가던장형수는수상한광경이보이는곳으로

발길을돌렸다

그곳에는한머슴이웬문서

뭉치를아궁이속에마구

처넣고있었다

그옆에는초록색비단으로정성스럽게꾸민책이놓여있었다

잠시만

동포들은일본인들에게수탈당하고온갖

고초를겪고있는데이런으리으리한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있다니hellip

송병준의집에서묵어가게된장형수는

밤중에변소에가려고방을나선다그나저나변소가어디에있나hellip

아니그런데저이들은

이시간에뭘하는거지

장형수가 머물게 된 집은

친일인사 송병준의

집이었다

송병준은 오위도총부도사 사헌부감찰을 거쳐 흥해군수

양지현감까지 지낸 인물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전쟁의

형편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일본군을 배경으로 정치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글middot그림 유환석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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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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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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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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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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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49: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뭔지 몰라도 불쏘시개로 쓰기엔

아까워 보이는데 내게 주면 안 되겠소

이튿날 장형수는 날이 밝자마자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를 찾아간다 서화집을 손에 넣은 장형수는 서울로 올라와

한남서림으로 가지고 갔다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백두용이 문을 연 서점으로 고서

고서화를 취급했으며

1932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인수해 문화재 수집 창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lt해악전신첩gt은 겸재가 1712년 37세 때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화첩으로

lt금강내산(金剛內山)gt을 비롯한 그림과 시 21점이 실려 있다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우리 산천을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이러쿵저러쿵

이차저차해서helliphellip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전형필은 첫눈에 서화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겸재 정선(1676~1759)의

서화집 lt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gt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거참 성가시게hellip

정 갖고 싶으면 주인나리께

여쭤보시오

49

잠시만

멈춰보시오 왜 그러시오

묘사하는 새로운 필법과 흙산과 바위산을

음양대비로 표현하는 기법을 창안하여 남겼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lsquo제2회국외소재한국문화재포토에세이공모전rsquo

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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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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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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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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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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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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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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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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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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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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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50: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함께하는문화재청 50

해외에서 우리 문화재를 조우하고 반가웠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을 감동이 담긴 사진

과에세이로함께나누어보면어떨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

리고자 9월 30일(월)까지lsquo제2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포토에세

이공모전rsquo을실시중이다

최근2년이내에방문했던한국문화재혹은한국관련역사유적

지의 사진과 함께 A4 3장 이내의 감상문(에세이)을 제출하면 심사

를 통해 총 14명에게 문화재청장상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

장상각100만원등400만원의상금을수여한다

접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에서

온라인으로진행된다

공모전에제출할사진은총3장으로제한되며우리문화재혹은

유적지를담은사진과함께응모자본인의방문을증명할수있는

사진을 반드시 1장 제출해야 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응모할 수

있으며 감상문도 영문과 일문으로 제출이 가능하다 수상작은

10월15일(화)에발표될예정이다(수상자개별연락)

자세한 사항은 재단 홈페이지(wwwoverseaschforkr)를 참고하면

된다

해외에서만난우리문화재

그벅찬감동을담아나누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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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글 김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

문의국외소재문화재재단활용홍보실02-6902-0756 okchf0727gmailcom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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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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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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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선비들

14 일정한목적으로여러사람이한데모임

lt문화재 사랑gt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lt문화재사랑gt을읽고느낀점이나편집

실에 바라는lsquo독자의 말씀rsquo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

해 드리는 것은 물론 향후 lt문화재 사랑gt 편집에

반영하도록노력하겠습니다

당첨8월호(통권제105호)

발표20139월호(통권제106호)

바로잡습니다

2013년도8월호 lt특집2gt코너의 10번사진은본문내용에서다룬황상과는연관이없음을바로잡습니다

15

1

5

6

3

10

13

2

8

11

4

7

12

14

15

9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51: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51 한문화재한지킴이

내손으로지키는

우리국토

함께하는독도사랑

지난7월1일부터5일까지LG하우시스와문화재청의주최로lsquo독도

사랑청년캠프rsquo가4박5일일정으로열렸다이번캠프에는대학생과

임직원등28명이참가해천연기념물제336호독도의역사와자연

생태에 대해 학습하고 독도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LG하우시스가독도지킴이활동을시작한것은지난2008년독도

를보호하기위해당사의친환경제품을활용독도거주자들의주

거환경 개선과 순찰로의 안전펜스 설치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후2009년4월14일보다체계적인독도지킴이활동을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과lsquo한 문화재 한 지킴이rsquo협약을 맺고 활발한 문화

재보호활동을펼치고있다

LG하우시스의독도지킴이활동은lsquoGreen독도공간가꾸기rsquo활동

과lsquo독도사랑 청년캠프rsquo로 구성되어 있다lsquoGreen 독도 공간가꾸

기rsquo는 매년 3~5월 사이 독도에 거주하는 경비대 서도 주민숙소

등대 내부의 건축내장재를 교체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

순찰로에 자사 제품인 우젠(천연 목칩과 합성수지를 혼합한 고강도 목재)으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등 독도지킴이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한편매년5월중에대학생을대상으로독도사랑아이디어

공모전을실시하여선발된인원을대상으로7월울릉및독도지역

에서진행하는lsquo독도사랑청년캠프rsquo를진행하고있다

LG하우시스는향후에도기존활동을지속적으로진행하면서보다

내실화 해나갈 계획이다 한편 매년 선발된 대학생 청년 지킴이들

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자발적인 독도사랑

실천활동을꾸준히할수있도록유도할예정이다또한향후독도

와관련된좋은활동을하고있는개인및다른단체들과연계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LG하우시스

임직원들은독도를지키는데일조하고있다는것에많은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독도 지킴이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 행사

에그치지않고지속적인기업의문화로정착시킴으로써더욱책임

감을가지고전개해나갈계획이다

글 성혜경 사진 LG하우시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퍼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독자의

소리

middot장희지 대구북구고성동3가

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바뀌었으면좋겠습니다

middot최경희 서울강동구암사동

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쇼rsquo를읽으며독립유공자중에외국인도있다는사실을처

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편에서준외국인이있었기에오늘날세계속의대한

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middot이용호 경남사천시향촌동

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삶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평상 속에 그렇게 다양한

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뉴스나신문을통해유물발굴소식을전해들어왔지만이

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이룬 김유신 장군 부모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아이들에

게설명해주었습니다

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산성전투 행주대첩등에서승리했다

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15 강원도에서대관령동쪽에있는지역영동이라고도함

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8 찹쌀이나찹쌀가루를시루에쪄서절구에찧어적당한

크기로 잘라 고물을 묻힌 떡 잔칫상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대중적이며동시에품위있는떡이다

9 해와달의운행을재어책력을만드는기술

11 고구려고국천왕 16년에진대법제정을건의한인물

12 조선중기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유교를 닦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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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

5

6

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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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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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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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복지를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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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52: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독자퍼즐독자의소리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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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를 기다립니다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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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소중한 만남 스승과 제자gt 기사의 여러 사례에서 보여준

스승과제자의관계를통해서로돕고발전하며각자의인

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바람직한 관계가 진정한 스승

과 제자의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본받아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하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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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압박에서 나라를 되찾는 데는 수많은 독립유공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lsquo한국독립운동을 도운 외국인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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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구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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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이 있게 된 것을 아닐까요 늘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신의있는나라가되었으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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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평상rsquo에 관한 글을 읽으며 모처럼 추억 여행을 했습니다

하늘을 다 삼킬 듯 동리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아

래엔 늘 큼직한 평상이 있었고 거기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부터 어르신들의 구수한 입담까지 싱그럽고 맛깔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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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가 녹아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추억을

되새겨준기사에감사드립니다

middot권미란 부산해운대구좌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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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힘들게 잠수병 같은 어려움을 무릅쓰며 누리안호에

유물을 찾고자 수고하고 계신 조사단이 계시다니 정말 대

단합니다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수있는귀한자료로활용되길바라며다음번발굴

현장인 진도에서는 진짜 거북선이나 그 시대의 유물을 찾

는제1과제가꼭성공하길기원해봅니다

middot선아영 광주남구주월동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속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

펴보면서 유구한 반만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시어 정말 기

쁘답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기행을 가장 먼저 보게

됩니다 이번에도 신분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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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열쇠

1 고려시대 때 서민의 의료구제를 위한 기관 중 하나로

배고프고 헐벗었거나 병들어 갈 데 없는 사람을 수용middot

보호하고자개경의동편과서편에세웠던기관이다

3 벼슬아치들이나랏일을보던집

4 떡의문양을찍는도구

6 골짜기라불리는좁고길게움푹들어간지형

8 무기나 전술보다 인력의 수적인 우세로 적을 압도하는

전술

10 조선 중기의 명장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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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선고종32년(1895년)에일본자객들이경복궁을습격

하여명성황후를죽인사건

13 경치나고적 산물따위로널리알려진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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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열쇠

2 대사가주재국에서공무를처리하는기관

4 낚시미끼의하나 쌀겨에콩가루나번데기가루따위를

섞어반죽하여조그마하게뭉쳐서만든다

5 1948년 12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보인선언이다

7 유럽남동부와아시아사이에있는내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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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

5

6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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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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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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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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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복지를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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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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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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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Page 53: 문화재 9 천 내지최종2(8.28)cha.go.kr/love/ebook/106/pdf/201309.pdf · 통일신라를거쳐고려시대에이르러서는빈곤구제의제도가좀더 틀을갖추게된다.빈민을구제하기위한공적인제도가운데상설

우리나라는고대로부터

공공의복지를위해

여러제도를시행했습니다

그리고그속에는약자를보살피고

소수자를존중하는

배려와이해의정신이깃들어있습니다

lsquo널리인간을이롭게한다rsquo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철학을근간으로삼았던

고조선의통치이념은

역사를관통해오늘까지전승되고있으며

나아가후손에게물려주어야할

소중한전통입니다

스마트폰을통해서도

문화재사랑을만날수있습니다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