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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평온의 숲 건립 문화재 시굴조사 약보고서 20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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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인 평온의 숲 건립 문화재 시굴조사 약보고서

    2013. 1.

    용 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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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조 사 개 요

    1. 조 사 명 : 용인 평온의 숲 건립 문화재 시굴조사 2. 조사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어비리 34번지 일원

    3. 허가번호 : 2012-0030호(2012. 01. 18)

    4. 조사 면적 : 5,442㎡

    5. 조사기관 : 재단법인 겨레문화유산연구원

    6. 조사기간 : 2012년 12월 24일 ~ 2013년 1월 22일(실조사일수 9일)

    7. 조사단구성

    조 사 단 장 : 신 창 수(겨레문화유산연구원 원장)책임조사원 : 김 기 태(겨레문화유산연구원 조사연구실장)조 사 원 : 서 봉 수(겨레문화유산연구원 조사연구부장)조사보조원 : 김 미 애(겨레문화유산연구원 연구원)보 조 원 : 변 수 호(겨레문화유산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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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 표 조 사 : 2007. 10.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박물관)○ 시굴조사의뢰 : 2008. 11. 19(용인시청 사회복지과)

    Ⅱ. 조 사 현 황1. 조사목적

    금번 조사는 용인시청에서 추진하는 용인 평온의 숲 건립과 관련한 사전 조사의 일환으로 건설 사업에 의한 문화재 훼손을 방지하여 건설 사업과 문화 유적 보존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함에 있다.

    2. 조사경위

    2007년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박물관(현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이 실시한 지표조사를 통해 용인 평온의 숲 건립 부지 내와 인접한 곳에서 유물산포지 6개소 및 표본시굴조사지역 2개소가 확인된 바 있다. 우리 연구원은 이 중 사업구역내에 포함되는 ‘유물산포지 1, 2, 3, 6’과 ‘표본시굴조사지역 1, 2’에 대하여 용인시의 의뢰를 받아 2010년 4월에 시굴조사를 착수하였다. 2010년 5월과 8월에 걸쳐 각각 ‘유물산포지 1, 2’와 ‘표본시굴조사지역 1’에 대하여 시굴조사를 완료하였고, ‘유물산포지 3, 6’은 토지보상협의로 인하여 조사를 중지하였다. 이후,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에서 2010년 11월부터 ‘유물산포지 1, 2’와 ‘표본시굴조사지역 1’에 대한 발굴조사와 함께 ‘유물산포지 6’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여 2011년 8월에 조사가 완료되었다. 금번 조사대상지역인 ‘유물산포지 3’은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지역으로, 조선시대 도기편 및 백자편이 수습되어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사 시행에 앞서 유적의 부존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굴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3. 조사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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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청허가 : 2009. 4. 21(제 2009-332호)○ 계 약 체 결 : 2010. 4. 8 (용인시)○ 시굴조사착수 : 2010. 4. 13(겨레문화유산연구원)○ 1차 지도위원회의 개최 : 2010. 5. 19(유물산포지1, 2)○ 시굴조사중지 : 2010. 5. 27(표본시굴조사지역 1 벌목요청)○ 시굴조사재착수 : 2010. 7. 19(표본시굴조사지역 1)○ 시굴조사중지 : 2010. 8. 11(사업부지내 토지보상협의)○ 2차 지도위원회의 개최 : 2010. 8. 16(표본시굴조사지역 1)○ 문화재청허가 : 2012. 1. 18(제 2012-0030호)○ 계 약 체 결 : 2012. 12. 24 (용인시)○ 시굴조사재착수 : 2012. 12. 24 (유물산포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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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1. 조사지역 및 주변 유적 분포도 (1:2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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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유 적 명 시 대 종 류 비 고1 화산리 유물산포지3 삼국 유물산포지2 화산리 유물산포지2 통일신라 유물산포지3 화산리 유물산포지1 삼국 유물산포지4 송전리 유물산포지3 청동기 유물산포지5 송전리 유물산포지2 청동기,삼국 유물산포지6 송전리 유물산포지1 삼국 유물산포지7 송전리 유물산포지4 미상 유물산포지8 묘봉리 유물산포지3 청동기 유물산포지9 묘봉리 유물산포지4 청동기 유물산포지10 묘봉리 유물산포지1 삼국~조선 유물산포지11 묘봉리 유물산포지2 고려~조선 유물산포지12 어비리 유물산포지 삼국 유물산포지13 어비리 유물산포지1 삼국~조선 유물산포지14 어비리 유물산포지2 고려~조선 유물산포지15 어비리 유물산포지4 미상 유물산포지16 어비리 유물산포지5 조선 유물산포지17 어비리 유물산포지6 조선 유물산포지18 화산리 요지1 조선 가마유적19 화산리 요지2 조선 가마유적20 화산리 요지3 조선 가마유적21 용덕사지 미상 사지22 용덕사 탑재 조선 불상23 용덕사석조여래입상 통일신라 불탑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11호(2002.9.16)24 송전리사지 미상 사지25 방아리 유물산포지 삼국 유물산포지26 창리유적 고려~조선 분묘군27 완장리 요지 조선 가마유적28 완장리 유물산포지3 조선 유물산포지29 완장리 유물산포지2 조선 유물산포지

    표 1. 조사지역 주변의 문화재 현황 (지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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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2. 조사지역 전체 현황도(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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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3. 조사지역 현황도(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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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Ⅲ. 유적의 위치와 환경1. 지리・자연적 환경1)

    용인시는 경기 남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시의 북쪽으로는 성남시와 광주시, 남쪽은 안성시와 평택시가 접하고 있고, 동쪽은 이천시, 서쪽은 수원시와 화성시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용인시는 산지와 하곡지, 침식지와 충적지가 비교적 복잡하게 분포하고 있는 곳이다. 지세를 보면 광주산맥에 속하여 남북으로 뻗은 네 개의 산줄기에 의해 크게 지형이 구분되며, 지형은 넓게 보면 동부와 서부의 지형이 다르다. 동부지역은 분지성 지형의 발달이 우세하고, 서북부는 구릉지와 저산지 그리고 하곡지의 발달이 탁월하다. 지질은 대부분 선캄브리아기의 호상편마암과 화강암질 편마암 등 주로 편암이 분포하고 있다. 토양은 적황색토와 암설토 등이 나타난다. 하천은 남북으로 발달한 단층선에 의해 신갈단층에는 북류하는 탄천과 남류하는 오산천이 흐르며, 용인단층에는 북류하는 경안천과 남류하는 진위천이 흐른다. 그리고 원천단층의 원천천 역시 남류한다. 주로 이들 하천을 따라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유적도 하천 주변으로 분포되어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 고고・역사적 배경

    1) 고고학적 배경 용인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는 국립중앙박물관2)을 필두로 서울대학교박물관3) 등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후 토지박물관에 의한 광역지표조사가 이루어졌다.4)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동백리유적,5) 평창리유적6) 등이 중요유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갈담리 갈월마을 유적,7) 원삼면 목신리 신촌마을 유적8) 등에서는 석영제 석기1) 용인시사편찬위원회, 2006,『龍仁市史1』.

    2) 국립중앙박물관, 1988,「용인군 지표조사」,『신암리Ⅰ』.

    3) 서울大學校博物館·용인시, 1996,『龍仁市의 文化遺蹟』.

    4)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용인시, 2003,『용인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韓國土地公社 土地博物館·龍仁市, 2007,『文化遺蹟分布地圖-龍仁市-』.

    5) 韓國文化財保護財團, 2005,『龍仁 東柏里·中里遺蹟Ⅲ-舊石器遺蹟-』.

    6)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경기도박물관, 2000,『용인 평창리 구석기 유적 시굴조사보고』.

    7) 서울大學校博物館·용인시, 1996, 앞의 책,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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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 등이 수습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상갈리유적9)과 죽전동유적,10) 고매리 유물산포지11) 등에서 단순 유물포함층과 지표에서 빗살무늬토기조각과 간돌도끼 등이 수습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상하리와 중리 등에 33기의 고인돌이 있고, 사암리 등에 10기의 선돌이 분포하고 있다.12) 한편 죽전동13)과 봉명리14)에서 구멍무늬토기가 출토되는 집터가 발굴된 바 있으며, 보라리 유물산포지15) 등에서도 민무늬토기조각들이 수습되었다. 이외에도 매장문화재 신고로 알려진 유물로는 초부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동검의 거푸집 등이 있다.16) 역사시대 유적은 선사시대에 비해 유적과 유물들이 상당이 많은 편이다. 먼저 삼국시대 유적은 수지 풍덕천동유적17)과 구갈리유적18), 죽전동19) 및 보정리 소실유적20) 및 주거유적21), 청덕리유적22), 마북리 백제 토광묘23) 등의 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역사문화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들이 확인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유적은 대부분 구성읍 내에서 확인되었다. 보정리 고분군에는 굴식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이 확인되었으며,24) 언남리 통일신라 생활유적에서는 여러 유구에서 다수의 철기들과 토기들이 출토되었다.25) 마북리유적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층이 확인된 바 있고,26) 그 밖에 토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와 숯을 굽던 가마가 성복동에서 조사되었다.27) 고려시대 유적은 분묘유적이 주로 확인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분묘유적으로는

    8) 서울大學校博物館·용인시, 1996, 앞의 책, 39~40쪽.

    9) 명지대학교박물관·한신대학교박물관, 1998,『기흥 상갈지구 문화유적 시굴조사 보고서』.

    10) 기전문화재연구원·한국토지공사, 2003,『용인 대덕골 유적』.

    11)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용인시, 2003, 앞의 책.

    12) 경기도박물관, 2007,『경기도 고인돌』.

    13) 기전문화재연구원·한국토지공사, 2003, 앞의 책.

    14) 畿甸文化財硏究阮, 2005,『수원 율전동Ⅱ 유적』.

    15)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용인시, 2003, 앞의 책.

    16) 국립중앙박물관, 1988, 앞의 책.

    17) 한신大學校博物館, 1998,『龍仁 水枝 百濟住居址』.

    18) 畿甸文化財硏究阮·京畿地方公社, 2003,『龍仁 舊葛里 遺蹟』.

    19) 기전문화재연구원·한국토지공사, 2003, 앞의 책.

    20) 畿甸文化財硏究阮, 2005,『龍仁 寶亭里 소실遺蹟 試發掘調査報告書』.

    21) 기전문화재연구원, 2006,「용인 삼막곡-연수원간 도로개설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22) 畿甸文化財硏究阮, 2006『龍仁 淸德里 百濟 竪穴遺構』.

    23) 畿甸文化財硏究阮, 2005,『龍仁 麻北里 百濟 土壙墓』.

    24) 한신大學校博物館, 2002,『용인 보정리 고분군 지표조사 보고서』

    25) 한신대학교박물관, 2007,『龍仁 彦南里-統一新羅 生活遺蹟-』.

    26) 한신대학교박물관, 2004,「용인 마북리 근린생활시설 신축부지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27) 한신大學校博物館, 2004,『龍仁 星福洞 統一新羅 窯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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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북리 정광지구28)와 단국대 신축부지지구29) 등에서 돌덧널무덤과 움무덤이 조사되었으며, 좌항리유적에서 고려시대 분묘 16기와 숯가마 1기가 발굴조사 되었다.30) 또한 창리유적에서는 고려시대 덧널무덤 10기, 태호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31) 분묘유적 외에도 마북리에서 절터32)와 중세건물지33)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유적은 각종 가마터와 산성, 봉수 등의 관방유적, 건물지, 고분 등이 있다. 마북리유적에서는 집터 2기, 삼가마 및 탄재구덩이가 각 1기 조사되었다.34) 또한 구갈리유적에서도 집터가 4기 확인되었다.35) 용인 지역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인 점에서 많은 관방유적들이 축조되어 왔다. 관방유적으로는 보개산성,36) 임진산성,37) 할미산성,38) 처인성,39) 행군이토성40) 등이 있다.

    2) 역사적 배경41) 용인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삼한시대에는 한강문화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성격은 역사시대로 들어오면서 삼국의 각축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일찍이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서 즉위한 이후 계속 백제의 영토에 속하였다. 용인지방이 용구현(龍駒縣)이란 명칭으로 최초로 기록상에 나타난 것은 475년(장수왕 63)이다. 이 해에 장수왕은 3만 대군을 이끌고 남정하여 백제의 왕도인 한성을 점령하고 아단산성에서 백제 개로왕을 죽였다. 이때 고구려는 새로운 점령지역인 용인지방을 중앙집권적 군현 제도에 따라 구성현(駒城縣)으로 명명하고 자국의 영토로 귀속시켰다. 삼국이 신라에 의해 통일되면서 용인지역은 757년(경덕왕 16)에 1주(州), 1소경(小京), 28군(郡), 46현(縣)을 한주(翰注, 現 廣州)의 영현(領縣)으

    28) 京畿道博物館, 2001,『龍仁 麻北里 高麗 古墳』.

    29) 단국대학교 한국민족학연구소,1997,『龍仁 麻北里 遺蹟』.

    30) 명지대학교 박물관, 1994,『용인 좌항리 고려고분군 발굴조사 보고서』.

    31) 中央文化財硏究阮, 2005,『龍仁 倉里·貢稅里·文村里遺蹟』.

    32) 한신대학교박물관,2003,『龍仁 麻北里 寺址』.

    33) 世宗大學校博物館, 2003,『龍仁 麻北里』.

    34) 畿甸文化財硏究阮, 2005, 앞의 책.

    35) 畿甸文化財硏究阮·京畿地方公社, 2003, 앞의 책.

    36) 용인시·용인문화원,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재연구소, 1999, 앞의 책.

    37) 京畿道博物館, 2000,『龍仁 壬辰山城』.

    38) 京畿道博物館, 2005,『龍仁 할미산성』.

    39)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재연구소, 2002,『龍仁 處仁城 試掘調査報告書』.

    40)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용인시, 2007, 앞의 책, 286~287쪽.

    41)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용인시, 2003,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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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 할 때 용인을 이에 속하게 하였고, 구성을 거서(巨黍)로 고쳤다. 그 후 신라가 망하고 고려 태조가 즉위하자, 광주를 대도독부로 한 전국의 주(主), 부(府), 군(郡), 현(縣)의 명칭을 고칠 때 용구현이라 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전국을 8목(牧), 56지주군사(知州郡事), 28진장(珍藏), 20현령(縣令)으로 개편할 때 용인을 광주목(廣州牧) 임내(任內)에 두었다. 이로부터 154년이 경과한 1172년(명종 2)에 와서야 광주에서 분리하여 감무(監務)를 두고 현감(縣監)으로 보직(補職)되었다. 한편 양지현(陽智縣)은 본래 수주(水主, 現 水源)였다가 1399년(정종 2)에 양지현으로 승격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광주부(廣州府) 관할구역인 추계향(秋溪鄕)으로 치소를 옮겼다. 그 후 세종 때까지 광주진(廣州鎭)의 관할구역으로 계속되었는데 방면(方面)이 6방(坊)에 불가하였으므로 당시 현감(縣監) 양원(兩院)이 상계(商界)하여 1470년(성종 1년) 죽주(竹柱)의 고안(考案), 대곡(大哭), 목악(木岳), 제촌(蹄村) 등 4부곡(部曲)을 영현(領縣)으로 하고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속하게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 아문(衙門)의 칭호를 부(府)로 고치는 지방관제(地方管制)의 개혁에 따라 용인현(龍仁縣)이 용인군(龍仁郡)으로 개칭되었고, 다음해인 1896년 경기도의 4등군(等郡)이 되었다. 또한 1895년 지방관제(地方管制)의 개편에 따라 양지군(陽智郡)으로 되었다가 1914년에는 용인군으로 바뀌었다. 그 후 1996년에 용인군에서 도농복합형태의 시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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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Ⅳ. 조 사 내 용

    1. 조사지역의 위치 및 현황

    용인 평온의 숲 건립 부지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어비리 34번지 일원으로, 용인시와 안성시의 경계부에 위치한 송전저수지에서 동쪽으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조사지역은 서쪽으로 빈양산, 남쪽으로 장자봉, 동쪽으로 묘봉이 둘러싸고 있으며 산수낚시터를 중심으로 곡간부가 형성되어 있다. 이번 시굴조사는 2007년도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물산포지와 표본시굴조사 지점 가운데 민가의 보상문제와 벌목문제로 인해 조사가 진행되지 못했던 ‘유물산포지 3’에 대한 것이다. 조사 대상지역인 ‘유물산포지 3’은 산수낚시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접해 있는 구릉의 곡간부에 해당한다. 펜션과 수목이 심어져 있는 밭으로 이용되었고, 구릉의 사면부는 계단식으로 절토가 되어있었다.

    2. 조사내용

    조사대상지역인 ‘유물산포지 3’의 면적은 5,442㎡로, 지형에 따라 총 4개의 시굴 트렌치를 설치하였다. 조사는 폭 2m의 시굴 트렌치를 등고선과 직교하도록 설치하였으며, 길이와 간격 등은 조사지역의 지형과 현장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조절하였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트렌치 벽면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계단식으로 확장하여 문화층과 유구의 분포범위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조사 결과, 구릉의 사면은 민가와 밭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구릉의 사면부를 절토한 후 복토가 이루어진 것이 확인된다. 전체적으로 최근에 복토되어 지반이 약한 상태이며 곡간부가 지나는 곳은 복토층이 깊어 조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층위 양상은 트렌치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표토 아래에서 크게 복토층(Ⅰ층)-황색 사질토+암편혼입(Ⅱ층)-풍화암반층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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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Tr. 3 서벽 층위 사진 2. Tr. 4 남벽 층위 조사지역 대부분이 이미 훼손되어 원지형이 남아있지 않고 모든 트렌치에서 30㎝에서 3m가량의 복토층이 확인되었으며 복토층 아래에서 바로 풍화암반층이 확인되었다. 표토경작층에서 풍화암반층까지 면밀히 문화층의 유무를 확인하였으나 유구와 유물의 징후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진 3. 조사전 전경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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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4. Tr. 1 조사완료 전경 (남→북)

    사진 5. Tr. 2 조사완료 전경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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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 Tr. 3 조사완료 전경 (남→북)

    사진 7. Tr. 4 조사완료 전경 (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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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8. 조사지역 전경 항공촬영(남→북)

    사진 9. 조사지역 전경 항공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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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Ⅴ. 조 사 성 과 이번 시굴조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어비리 34번지 일원의 용인 평온의 숲 건설공사의 일환으로서, 추후 공사로 인해 훼손될 가능성이 있는 매장문화재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나아가 개발과 보존의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데 목적이 있다. 2007년 실시된 지표조사에서 유물산포지 6개소와 표본시굴조사지역 2개소가 확인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 12월 24일부터 해당지역인 ‘유물산포지 3’에 대한 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시굴조사에 대한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사대상지역의 퇴적층 양상은 지표에서부터 30㎝~3m내외로 복토층이 형성되어 있으며, 바로 아래에서 풍화암반층이 확인되었다. 원지형이 훼손되어 자연퇴적층은 확인되지 않았고, 사면 말단부는 곡간부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둘째, 조사대상지역에 대해 4개의 트렌치를 설치하여 조사를 진행하였으나 관련 유구 및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