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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h a p t e r

0자본주의의 개념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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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자본주의의 개념과 역사 l 3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capitalism 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자본주의 초기의 유럽에서는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진행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이

자본가, 자본가적, 자본제적 등의 용어를 혼용하지 않았나 싶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프랑스의 초기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 Louis Blanc, 1811－1882 이 쓴 「노동의 조직L’Organisation

du travail, 1840」이라는 논문에서 “소수자가 배타적으로 자본을 독점하는 상태”를 자

본주의라고 부른 것이 처음 사용된 예라고 한다. 그 후 독일의 사회학자인 쉐플

레 A. Schäffle 의 저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서 다시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었

고,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대가 좀바르트 Werner Sombart, 1863－1941 의 『근대 자본주의

Der Moderne Kapitalismus』가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좀바르트가 선택한 용어가 자본주의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라는 점에 주목할 필

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용어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매우 신중히 고려한 것으로

서 그 배경에는 자본주의 일반과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적 구분이 놓여 있기 때

문이다.

4 l 역사와 쟁점으로 읽는 현대 자본주의

자주 사용하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독일의 유대계 경제학자 오펜하이머 Franz Oppenheimer, 1864－

1943 는 “자본주의란 자본 및 그 이익에 의하여 주로 지배되고 있는 사회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신역사학파의 좀바르트는 “영리추구와 경제적 합리주의 및 자본가의 노

동자에 대한 지배”를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했으며, 역시 신역사학

파 경제학자인 루요 브렌타노 Lujo Brentano, 1844－1931 는 “자본가를 움직이는 이기심”을

주장했다. 한편 페이비안 사회주의자 Fabian Socialist 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시드니

웹 Sidney Webb, 1859－1947 은 “생산수단의 사유제도와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지배”

가 자본주의라고 정의했으며, 『제국주의 연구 Imperialism：A Study 』의 저자인 홉슨 John A.

Hobson, 1858－1940 은 경영규모가 크다는 것을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주장

했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모리스 돕 Maurice H. Dobb, 1900－1976 은 자본주의라는 개

념을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로,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개념들 가운데 첫 번째는 좀바르트나 막

스 베버 Max Weber, 1864－1920 처럼 자본주의를 특정한 경제적 태도나 정신적 경향으로 간

주하는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좀바르트는 정신을 경제체제의 중요한 요소 가운

데 하나로 간주했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영리를 추구하고 합리적으로 이윤을 계산하

는 기업가들의 태도를 의미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특정한 시대에 한정된 것이 아

니라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현실에 등장하기 이전에도 먼 과거의 어느 시기에나 존재

했다. 같은 관점에서 막스 베버는 더 간단히 자본주의를 “인간의 집단욕구의 영리적

충동방식이 기업이라는 형식에 의해 행해지는 곳에서는 어디나 존재한다.”고 정의했

다. 베버의 유명한 ‘자본주의 정신’이란 바로 이러한 영리추구의 태도와 합리적 계산

의 능력을 의미했다. 베버나 좀바르트가 굳이 ‘근대’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말하자면 이들의 ‘근대 자본주의’는 그들의 동료였던 브렌타

노가 고대 지중해지역의 경제사회를 두고 이름 붙인 ‘고대 자본주의 ancient capitalism ’의

대응 개념이었던 것이다.

모리스 돕이 지적하는 자본주의 개념의 두 번째 의미는 원격지생산을 위한 생산조


직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가령 후기 역사학파의 대가인 슈몰러 Gustav von Schmoller, 1838－

1917 가 경제발전의 기준을 시장의 범위에서 찾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슈몰러

는 경제발전의 단계로 촌락경제, 도시경제, 연방경제, 국민경제, 세계경제를 주장했

다. 슈몰러의 동료로 역시 후기 역사학파 경제학자인 뷔허 Karl Bücher, 1847－1930 도 경제발

전의 단계를 구분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재화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기준, 정확하게

말하면 재화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이르는 경로의 길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뷔허는 유럽의 경제발전단계를 봉쇄적 가내경제, 도시경제, 국민경제로

구분했다. 돕은 자본주의를 이윤 동기에서 파악하려는 관점과 소득을 얻기 위한 투

자행위로 정의하려는 관점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평가했다. 두 견해는 모두

근대적 임금노동자계급의 형성과 같은 생산 측면이나 사회구조보다 화폐와 교환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 개념의 세 번째 의미는 바로 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1818－1883 와 그의 지

지자들처럼 그것을 특정한 생산양식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실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

는 자본주의의 개념은 바로 여기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생산양식이라는 개념

독일의 경제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로와 축적을 옹호하

는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칼뱅주의 정신이 자본주의 윤리를 낳았고 이것이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주장했

다. 사람들이 자본주의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

나 마르크스는 정반대로 주장한다. 사람들이 자본주의적으로 행동하게 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으로 생

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막스 베버 칼 마르크스


은 생산조직이나 생산기술과 같은 좁은 의미에서의 생산방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

라, 그 사회의 생산력 수준에 조응하는 생산수단의 소유방식과 생산과정에서의 역할

에서 결과하는 사회적 관계들, 즉 생산관계를 포함한다. 생산이란 지배적인 사회조

직형태와 이에 대응하는 기술적인 조건에 의존하면서 다양한 형태나 양식을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적 활동인 만큼 역사상 여러 가지 생산양식이 존재한다. 마르크스

에 따르면 각각의 시대와 사회는 그 시대에 지배적인 생산양식을 가지는데, 역사적으

로 인류는 노예제생산양식과 봉건제생산양식을 거쳐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발전해

왔다.

요컨대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다양한 정의와 다양한 속성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것을 정확하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특수한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를 결정짓

는 본질적인 측면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가령 『경제사상사 History of Economic Thought：

A Critical Perspective, 1979』의 저자로 잘 알려진 경제사학자 헌트 Emery Kay Hunt, 1937－ 는 최근

의 저작에서 자본주의의 주요한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는 자

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금전적 거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둘째는 역시 자본

주의 사회라면 어디서나 네 가지 사회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유한 자

본가계급, 소규모 자영업자와 독립 전문직 종사자, 노동자계급, 그리고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으로 살아가거나 절도와 성매매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빈곤계급이다. 마

지막으로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누가 누구를 위해 생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모두

이윤 추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그저 자본주의의 주요

한 특징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어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정

작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헌트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결국 시장교

환의 보편성과 이윤 동기이다. 그리고 실은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특징들이기도 하다. 가령 세계체제론을 주장한 월러

스틴 Immanuel Wallerstein 이 『역사적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를 “만물이 상품이 되는 사

회 commoditification of everything ”라고 정의한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교환이 보편적

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만물이 상품이 된다고 이야기할 때 아마 월러스틴은 마르크스의 『자본 Das Kapital』을


의식하고 있었을 듯 싶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첫 장을 상품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이 지배적인 사회의 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

집적 ungeheure Warensammulung ’으로 나타나고, 하나하나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

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하나의 생산양식으로 분석하기 위해서

는 이 생산양식에만 필수적이고 독특한 특징들을 구별해 내야 한다. 자본주의가 이

전의 다른 경제체제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상품생산의 내부를 관통하는

자본과 임금노동이라는 특수한 사회관계이다. 자본주의 생산의 한편에는 토지, 기

계, 도구, 원료 및 화폐를 자본으로서 집적하고 있는 자본가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생산수단의 소유로부터 배제되어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서 판매하여 살아가야만 하

는 임금노동자가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바로 이 두 계급이 결합하여 시장을 위한

상품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본주의가 다른 경제체제들과 근본적으

로 다른 점은 바로 노동력 자체가 상품으로 시장에서 거래된다는 점에 있다고 해야

옳다.

물론 자본주의에는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라는 두 계급 이외에 다양한 중간계급들,

즉 헌트가 지적한 자영업자와 전문직 종사자들 그리고 최하층의 빈곤계급 등이 존재

한다. 그러나 여러 계급들을 무차별적으로 나열하다 보면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

과정에서 차지하는 여러 계급들의 서로 다른 역할들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을 방해

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된다는 월러스틴의 주장 또한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

기는 마찬가지다. 상품과 교환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거의 모든 사회에서 존재했기 때

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그 이전의 여러 사회들을 올바로 구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아니라, 오직 자본주의에서만 상품이 되는 특수한 상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

으면 안 된다. 많은 이들이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 상품에서 시작한 것이지 상품에서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상

품이라는 현상의 분석을 통해 그것의 본질이 가치이며, 또한 가치는 오직 인간의 노

동에 의해서만 생산된다는 점을 분석했다. 자본주의는 단지 시장을 위한 생산체제,

즉 상품생산체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노동력 그 자체가 상품이 되고’ 기타의 교환

대상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매매되는 체제다.


마르크스의 정의와 그의 역사연구방법론에 기초해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징을 요약

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품생산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품생산이란 일

정한 사회적 분업의 조건 아래서 개별 생산자들이 노동생산물을 상호 교환함으로써

맺는 사회적 관계를 가리킨다. 여기서 생산자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욕망

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산한다. 따라서 상품생산은 사회적 분업의 진전과 생산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상품생산은 자본주의 사

회에서 나타난 것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도 상품생산은 얼마든지 이

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들에서의 생산은 대체로 소생산자에

의한 단순 소상품생산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경우 상품은 대부분 토지소유농민의

가내부업이나 수공업자에 의해서 단순소상품생산의 형태로 생산되었는데, 이러한 생

산형태에서는 아직 경영을 지배하는 자, 즉 자본가와 생산자, 즉 노동자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형태는 서유럽의 봉건제가 해체되던 과도기에 독립

소생산자의 존재를 기반으로 나타났는데, 그나마 당시의 전체 생산에 비하면 일부분

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생산이 일반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본

적으로 자급자족을 위한 생산체제가 완전히 붕괴되어 자본가와 임금노동자가 분리

된 생산관계 위에서 상품이 생산된다. 즉 단순상품생산이 아니라 소생산자들이 완전

히 분해한 이른바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생산 및

교환은 경제외적 강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기구를 통한 대등한 교환, 즉 가치법

칙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이런 이

유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경제

라고도 불리게 된다. 자본주의 경

제를 흔히 무정부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처럼 통일적인 계획 없이

오로지 시장에서의 균형가격을 매

개로 생산과 교환이 이루어지기 때

문이다. 자본주의란 상품생산이다.


자본주의 생산의 두 번째 특징은 인

간의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것이다.

가령 봉건사회에서의 주요 생산 관계

는 지주－소작 혹은 영주－농노 관계로

서 직접생산자와 생산수단의 결합을

전제로 하여 사회가 구성되었다. 그러

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들은

신분적 예속으로 해방되었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자유이며, 일체의 생산수

단으로부터 유리되어 생산수단으로부

터도 자유로운 존재이다. 이같이 ‘이

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존재인 노동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서 자본가에게 판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노동력의 판매는 노동자 자

신의 노동력에 대한 소유권 자체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며, 시간계약으로 자본가가 노

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파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력은 상품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보통의 상품과는 달라서 인격과 결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또 그것이 팔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상품이다. 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그것을 사들인 자본가 혹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동력을 최대

한 효과적으로 사용하고자 하지만, 그것을 파는 입장에서는 그 효율에 응한 가격을

기준으로 하여 임의로 공급을 증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

에 자본가와 노동자 간에는 대립적인 경제적 이해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세 번째 특징은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가는 ‘잉여가치 surplus value ’를 획득하기 위해서 생산에 자본을 투하한다. 직접생산자

의 노동의 결과 생산된 생산물은 자기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필요생산

물과 그것을 초과하는 잉여생산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노동자의 하루 노동도 필요

생산물을 얻는 데 들어가는 필요노동시간과 그것을 초과하는 잉여노동시간으로 구분

된다.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기본적으로 필요노동시간에 생산한 필요생산물의

자본주의란 노동력이 상품으로 팔리는 사회이다.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 나머지 잉여노동시

간에 생산된 잉여생산물은 자본가에게 귀속

되는데, 이것이 잉여가치이다. 자본가가 생

산된 생산물을 판매하면 잉여가치는 이윤의

형태로 자본가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는 생산과정에서 생산된 잉여

가치의 무한한 축적을 목적으로 생산을 계

속하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은 상품사회의 분석으로부터

노동력의 상품화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

며, 상품화된 노동력이 잉여가치를 생산하

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

자본주의 이행논쟁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역사적 이행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경

제사학자들 간에 국제적인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를 ‘자본주의 이행논쟁’이라 부르

는데, 가장 주요한 당사자는 스위지 Paul M. Sweezy 와 돕 Maurice H. Dobb 이었다. 이 논쟁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바로 봉건제를 해체로 이끌어 간 원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점

과, 자본주의 이행의 두 가지 길, 그리고 절대왕정의 성격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

한 논의들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발생과 발전에서 시민혁명이 갖는 역사적 의미

에 대한 평가로 연결되었다.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촉발시킨 모리스 돕의 비판이 제기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학

자들은 14~15세기에 서유럽에서 나타났던 ‘봉건제의 위기’를 상업의 성장에 따라

교환과 상인들의 활동이 자급자족적 장원에 침투하면서 생기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자본주의란 자본가를 위한 생산이다.


교환경제의 출현으로 자연경

제가 분해되면서 위기가 왔다

는 해석이었다. 이러한 해석

에 대해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돕은 이론과 실증

의 양면에서 비판을 했다. 이

론적 측면에서 돕은 상업이

구질서에 미친 분해작용은 그

제도의 성격에 의존하는 것이

지 상업의 충격에 의해 직접

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변화의 동인이나 방향은 내부에 있지 외부에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실증의 면에서도 돕은 다양한 자료를 제시했다. 상업의 중심지였던 런던에 가장 가

까운 곳, 즉 영국의 남동쪽에서 오히려 부역이 가장 큰 비중을 점하고 있었고, 상업

의 발달지에서 먼 북서쪽에서 부역의 비중이 낮았다. 또한 16세기 동유럽에서는 시장

을 위한 생산이 성장하는 시기에 구제도, 즉 농노제가 부활되는 일이 일어났다. 역사

학에서는 이를 재판농노제 second serfdom 또는 봉건반동 feudal reaction 이라 부르는데 발틱,

보헤미아,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는 16세기에 들어와 곡물 수출의 기회가 증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은 안으로부터의 계급투쟁인가 밖으로부

터의 충격인가?

모리스 돕 Maurice Herbert Dobb, 1900~1976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

고, 런던대학과 모교에서 강사로 재직했다. 근대 경제학과 마

르크스 경제학에 걸친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론 경제학,

경제사, 후진국문제 등의 다방면에 걸친 저작을 발표했다. 주

요 저서로는 『정치경제학과 자본주의(Political Economy and

Capitalism, 1937)』, 『자본주의 발전의 연구(Studies in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1946)』 등이 있다.


대하는 시기에 농노노동이 부활 내지 강화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에서도 12세기

에는 지대금납화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다가 13세기에는 다시 부역의 증대와 농민

에 대한 억압이 강화되었다. 이 13세기가 바로 상업과 도시의 성장기였다.

따라서 시장과 화폐경제의 발달이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봉건제를 해체시킨다든가

봉건제 쇠퇴의 결정적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물론 부역 노동이 화폐 지불로 바뀌고

직영지 경작에서 직영지를 대여하거나 고용노동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 시장과 화폐

경제의 발달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상업의 발달은 봉건제의 해체와 강화의 두 경향

모두와 함께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봉건제의 쇠퇴는 시장이라는 외부충격과 이 제

도의 내부관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 다루어져야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후

자라는 것이다. 이를 돕은 “지배계급의 증대하는 수입욕구와 생산체계로서의 봉건

제의 비효율성”이라고 서술했다. 봉건지배층의 수입욕구 증대는 수탈을 가중시켜 체

제를 지탱해 온 노동력의 고갈과 소멸을 가져와 위기를 몰고 왔다. 즉 가신의 수요증

대, 전쟁, 상업 등은 수탈을 가중시켜 농노들의 장원이탈과 반란을 초래했다. 또 흑

사병 이전부터 인구는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수탈강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흑사병이 겹치면서 영주수입이 감소하는 봉건제의 위기가 유럽에서는 14세기

에 일어났던 것이다.

봉건위기에 대한 귀족들의 대응의 차이에서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유럽 각지에서는

서로 다른 역사가 전개되었다. 서유럽에서는 농노제가 약화된 반면 동유럽에서는 봉

건반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차이를 낳게 된 요인으로는 농민의 저항하는 정도, 지방영

주의 정치군사적 힘의 크기, 그리고 왕권의 향배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 요인들 가운

데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역시 경제적 요인이었다. 풍부한 노동력이 존재하여 값싸게

고용할 수 있는 곳에서는 농노노동 대신 고용노동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유인이 나타

났을 것이며, 직영지를 대여하고 생산물이나 화폐로 지대를 받는 것도 토지에 비해 노

동이 풍부하여 높은 지대로도 기꺼이 경작하려 할 때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돕의 설명에 대해 전면적인 비판을 가한 사람이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

제학자인 폴 스위지다. 스위지는 돕과 달리 봉건제를 사용을 위한 생산체제 production

system for use 라고 보았다.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용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생산은


욕구에 의해 제한된다. 그리하여 기술과 조직은 관례에 의해 이루어지고 생산방법에

대한 개선 압력도 없다. 이처럼 보수적이고 변화에 저항적인 성격의 서유럽 봉건제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상업의 발달이었다.

교역의 발달은 교환을 위한 생산체계 production system for exchange 를 창출했다. 그 결과

도시의 교환을 위한 생산체계와 농촌의 사용을 위한 생산체계가 병존하게 되었고, 이

는 자연히 서로 영향을 주었다. 이 영향은 먼저 장원이라는 생산조직의 비효율성을

현재화시켰다. 도시의 물품을 구입하는 것은 손수 만들 때보다 저렴했다. 또한 도시

의 물품을 사기 위한 판매에 대한 압력이 생기면서 봉건 영지도 교환경제 속으로 밀

려들어갔다. 이렇게 되자 생산성이 낮은 농노노동을 더 이상 존속시킬 이유가 없어졌

다. 시장을 위한 생산체계에 장원은 부적절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이다. 교환경제의 승리에 따른 봉건제 해체의 일반적 경향에 역행하는 재판농노제는

일시적 반전에 불과할 뿐이다. 스위지는 재판농노제는 교환경제의 중심에서 멀리 떨

어져 있어 농민들이 도망갈 곳이 없는 곳에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스위지의 비판으로 촉발된 논쟁에는 이후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와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다. 일본의 다카하시 高橋幸八良 를 비롯해 르페브르 G. Lefebvre, 프로가치 G. Procacci,

힐튼 R. Hilton 등이 그들인데, 르페브르를 제외한 논평자들은 대체로 스위지에 비판적

인 입장에 있었다. 스위지에 대한 비판은 그가 봉건사회의 추진력을 내부에서 찾지

폴 스위지 Paul Malor Sweezy, 1910~2004

《Monthly Review》의 표지에 나온 폴 스위지는 하버드대학에서 경

제학자 조지프 슘페터 밑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나, 졸업 후 런던

정경대학(LSE)에 유학하면서 경제공황과 파시즘의 대두에 큰 영

향을 받아 마르크스주의에 눈을 뜨게 됐다. 진보적 저널 《Monthly

Review》의 편집자로서 활발한 평론활동을 전개했다. 주요 저서

로는 『자본주의 발달이론(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

1942)』, 『사회주의(Socialism, 1949)』, 『역사로서의 현대(The

Present as History, 1953)』, 『독점자본(Monopoly Capital,

1966)』 등이 있다.


않고 외부적 요인에서 찾는 비역사적인 방법론

에 집중되었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봉건제의

해체와 자본제로의 이행에 대해 총괄적이고 체

계적인 견해를 제시한 것이 미국의 역사학자 로

버트 브레너 R. Brenner 이다. 브레너에 의해 촉발된

이 논쟁을 브레너 논쟁 또는 신자본주의 이행논

쟁이라 부른다.

브레너가 비판하는 것은 특히 스위지의 방법

론에 대해서이다. 그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분

업이 장원의 생산을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봉건

제의 해체를 가져왔다는 스위지의 견해를 정면

으로 비판했다. 브레너에 의하면 중세의 시장에

나온 상품은 본질적으로 잉여 surplus 였다. 즉 생산수단과 생존수단은 기본적으로 자급

하기 때문에 재생산이 시장의 교환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시장에서 이윤을 남길 수 있느냐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지는 못한다.

오히려 영주가 확보할 수 있는 잉여의 양은 농노에 대한 지배력에 좌우되었다. 그러

한 점에서 영주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생산방법의 개선이 아니라 농노에 대

한 지배력의 확대였다. 따라서 상업이 발달하면 효율성의 향상을 위해 바로 노동형태

와 생산방법을 바꾼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의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도시가 성장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껏 해

야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했다. 이 정도의 규모로는 농촌의 봉건제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는 없다. 우선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도망친 농노들을 도시는 충분히 흡

수하지 못한다. 게다가 도시는 길드 질서에 의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외부에 대해 폐

쇄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수공업자들도 농촌으로부터의 이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수공업자들이 노동시장을 통제하자 길드 규제를 피해 자유로운 임금노동을 찾아 오

히려 농촌으로 이동하는 직인들도 많았다.

브레너는 농민층의 상대적으로 약한 저항력과 영주계층의 상대적으로 강한 지배력

영국의 힐튼이 편집한 『자본주의 이

행논쟁』의 표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의 필독서 가운데 한

권으로 꼽혔다.


이 재판농노제를 가져왔던 것으로 본

다. 봉건영주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

할 수 있는 것은 농민조직이었는데

서유럽에서는 농민들이 공동지와 개

방경지의 보존 등 관습적 권리의 보

호를 위해 투쟁하여 강한 공동체적

조직과 유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동유럽은 식민지 개척사업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공동체적 유대가

약했다. 이것은 영주와의 투쟁에서

조직적 투쟁을 어렵게 했다. 브레너의 해석은 생산관계의 변화는 결국 계급들 사이의

힘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인식을 철저히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계급관계에 지

나치게 중심을 둠으로써 계급관계의 자율성을 너무 강조하는 결과를 빚었다. 중요한

것은 계급관계의 변화가 왜 다른 시기가 아니라 14~15세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는가

를 밝혀줄 수 있어야 한다. 계급관계의 변화를 계급관계 자체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

은 경제적 조건과의 관련을 잘 밝혀 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난점은 실제 역사의 진행에 대한 해석에서도 한계를 드러낸다. 사실 봉건적

반동기에는 어디에서나 격렬한 농민저항이 일어났다. 그리고 서부유럽의 농민저항이

더욱 격렬했던 것도 사실이고 또 이 지역의 영주권이 상대적으로 동부독일에 비해 약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농민저항을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약했던 것은 아니었다.

농민들의 저항은 영주에 대한 약탈과 폭행 그리고 방화 등 무수한 반항형태로 나타

났지만 영주의 무력조직에 의해 예외 없이 진압되었다. 그런데 14세기에 극에 달했던

농민저항은 모두 진압되었지만 그 저항에서 제시되었던 농민들의 요구는 15세기에

와서 대부분 실현되었다. 농노제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사라져 부역은 금납화되었으

며 지대는 인하된 수준에서 고정되었다. 영주직영지의 대부분은 화폐지대 지불의 조

건 아래 농민보유지로 편입되었다.

계급투쟁이라고 하면 혁명, 봉기, 반란, 가두시위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임금상승에 대응하여 자본

가가 기계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도 계급투쟁의 한 형태이다.


자본주의의 변화

처음 봉건사회 안에서 태동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

을지라도 그 현상 형태는 몇 번의 변화와 발전을 거쳐 왔다. 자본주의 발전의 첫 번

째 단계는 상업자본주의, 혹은 중상주의 단계로 1600년에서 1770년경까지의 시기이

다. 이 시기와 바로 직전의 시기에 유럽에서는 아메리카로부터 귀금속의 대량유업으

로 인해 화폐경제 monetary economy 가 널리 보급되었다. 그 결과 등장한 국제기업의 초기

형태는 I5세기부터 유럽의 여러 지역에 걸쳐 금융거래 네트워크를 지배하고 있던 이

탈리아와 독일에서 처음 출현했다. 그러나 17세기와 18세기 초에 와서 자본축적의

주요 원천은 국제무역으로 바뀌게 된다. 상인들은 선대제 putting－out system 를 통해 축적

한 자본을 무역에 투입했다.

중상주의 시기를 가장 잘 특징짓는 국제적 기업형태는 무역상사 trading company 였다.

이들은 대개 국가가 부여한 독점적 지위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상인계급은

국민국가 nation－state 의 출현과 함께 급성장했다. 이전에는 각각 독립성을 지니고 있던

도시와 봉건적인 여러 지역들이 모두 절대주의체제 아래로 통합되어 갔다. 국가는 각

종 지원과 보호장벽을 통해 자국의 무역과 산업을 성장시켰다. 국가의 이러한 정책은

외국과의 경쟁에서 자국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그 대가로 상인들은 점차 팽창해

가고 있던 관료기구와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자금

을 제공했다. 절대주의 국가들은 특정 개인이나 무

역상사들에게 무역과 생산에 관한 독점권을 부여

했다. 또한 제조업자들에게 보조금과 조세감면을

제공했으며, 그들을 위해 해외로부터 경험이 풍부

한 장인들 master craftsmen 을 데려 오기도 했다. 그러

는 가운데 국제무역의 중심축은 이탈리아와 한자

의 도시들로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 다음으로 네

덜란드, 그다음에는 영국으로 옮겨 갔다.

이윤은 상인도 바다를 건너게

한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초판본

에 실린 삽화.


이 단계의 유럽 각국이 이룩했던 자본축적의 주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는 식민지 무

역이었다. 무역상사들은 부분적으로 그들이 지닌 독점적 지위 덕분에 식민지에서 싸

게 구입한 상품이나 원료를 유럽시장에서 비싸게 판매할 수 있었다. 상인들은 한편으

로 확대된 가내공업 판매망의 조직과 통제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암스테르담이나

런던과 같은 금융의 중심지를 통해, 국제무역에서 축적한 자본을 수출을 위한 산업

생산에 투자했다. 유럽에서는 화폐경제가 등장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 전통적인

길드 수공업자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전통적 수공업자들의 대부

분이 상인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선대제적 지배를 통한 가내공업

의 발전이 증진되었다.

상인들은 때때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생산을 조직했다. 최초의 국제적

인 생산조직은 이탈리아의 은행 가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은

16~17세기의 특권 무역상사에 비하면 사소한 수준이었다. 인구의 국제적 이동은 자

본과 기술의 확산을 수반했으며, 많은 산업들이 이러한 인구의 이주에 따라 지역적으

로 확산되었다.

자본주의 발전의 두 번째 단계는 1770년에서 1890년 사이의 시기로 산업혁명을 일

찍 겪은 나라에서 제조업이 크게 발달한 산업자본주의 단계이다. 이때는 매뉴팩처가

크게 성장했던 시기였으며, 이어서 기계제 공장제도가 등장했다. 이 단계의 국제적

생산은 전형적으로 개인적 혁신가, 즉 슘페터 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 가 말한 기업

가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이들은 특정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로 나갔으며, 자

원기반형 무역회사 resource－based trading company 들은 점점 늘어나는 원료의 수요를 충당해

주었다.

주지하듯이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오늘날의 선진 공업국가들로 확산

되었다. 이 시기 자본축적의 주요한 원천은 바로 철도와 수송체계의 성장과 연계되어

등장한 제조업이었다. 산업의 발달과 시장 확대는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한편으로

자본재산업의 발달을 수반했고, 이에 따른 기술혁신으로 기업들 간의 경쟁이 점차 격

화되어 갔다 새로운 산업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자본재 산업들이 확고히 지위를 획

득함으로써, 사회적 분업과 산업내 분업이 증진되었으며, 공장제도의 보급과 함께 기


업 내부의 조직적인 기술분업도 심화되어 갔다. 공장생산에서 기계의 집약적 이용은

노동생산성을 급격히 향상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기업들은 자원이나 최종생산

물 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려던 노력으로부터 혁신을 통해 생산비용을 절

감하려는 노력으로 그 자세를 전환하게 되었다. 무역의 증대에 따라 기업경영에서 수

출의 비중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대체로 이 시기의 기업들은 후발국의 추격이 있기까

지는 국내생산의 기술적 우위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해외활동은 생산보다는 판매

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1890년대까지 국제생산은 해외 식민지에서 원료를 가져

오는 특정 무역회사나 이와 연계되어 있던 관련기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

었다.

자본주의 발전의 세 번째 단계는 1890~1945년까지의 기간으로 금융자본주의가 여

기에 해당한다. 이때 나타난 몇몇 특징들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이

시기에 강력한 은행 및 금융 제도가 등장했으며, 기업들은 독점적 지위를 안정시키고

이윤을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국내적인, 때로는 국제적인 카르텔 Kartel 을 맺었다. 이와

함께 가장 급속하게 성장한 것은 산업자본이 아니라 금융자본이었으며, 현대 다국적

기업의 기원은 이 기간에 금융자본과 결합하여 등장하기 시작한 대기업 활동에서 찾

을 수 있다.

세기가 바뀔 무렵에 등장한 공업국가들의 거대은행들은 산업의 집중 그리고 카르

텔의 확산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이윤은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올릴 수 있었고,

주식회사에서 나오는 창업자 이윤 promoter’s profit 의 증가는 은행들의 몫이었다. 거대은

행들은 더 많은 창업자 이윤을

요구했다. 마찬가지로 거대 주식

회사들도 많은 은행 자본의 동원

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산업 집

중, 생산의 합리화, 카르텔 운동

은 대량생산 기술과 생산물의 표

준화 및 수송통신 수단의 발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 초기의 공장 모습.


산업의 집중이 더욱 진전되면서, 금융기구가 이윤을 수취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이는 대규모 주식회사나 거대은행에서 특히 그러했다. 주식회사는 주식가치의 절상

을 통해 그들의 이윤 몫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이들 두 제도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

던 영국에서조차도 금융이 자본축적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처음에는 자본이 주로 상

인들에 의해 축적되었고, 그 후에는 생산활동의 확장을 통해 기업가에 의해 축적되었

지만, 이 단계에서는 거대한 제도에 의해 금융자본의 형태로 축적되었던 것이다.

국제적 카르텔의 형성은 관세장벽의 확대로 더욱 강화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모든 공업국가에 타격을 가한 1930년대의 공황은 이러한 관세장벽을 널리 확산시켰

다. 무역장벽과 외국인 소유가 갖는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독점적 기업들은 세계 여

러 지역의 지배적인 기업들과 결합함으로써 국제적 카르텔을 형성해 나갔다. 이와 함

께 기업들 간의 수직적 통합과 분업이 확산되었는데, 이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다

국적기업들 간의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가능했다. 다국적기업의 활동에서 해외투자

가 그 의의를 갖게 된 것은 1870년대였으며, l914년 이전에는 주로 수직적으로 통합

된 자원기반 투자가 중심이었다. 초기 제조업투자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주로 식민지

를 주요대상으로 했다. l9세기 말경에 등장한 금융자본주의가 국제생산의 제도적 양

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을 때 미국과 독일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과 함

께 해외투자국가의 대열에 참가했다. 이때의 주요한 조직형태는 주식회사 joint stock

company 였다.

오늘날의 많은 다국적기업들은 그 기원을 이 시기에 두고 있으며, 이들이 성장할

당시의 국제경제적 환경은 경쟁보다 협조가 우세했다. 더구나 초기 제조업에서 다국

적기업의 성장은 특별한 기술 또는 그 관련된 국한된 기술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여

러 산업부문의 국제생산을 목표로 한 독립적 전략을 추구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기 때

문에 비록 이 시기에 주식회사들이 일정한 범위의 기술우위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다국적기업을 탄생시켰지만, 다국적기업들 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경쟁이라기보다

는 국제적 카르텔과 협정을 주요한 특징으로 했다.

영국 다국적기업의 국제활동은 식민지에서 시작되었거나 무역과 관련된 활동에

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의 가장 큰 제국이었던 영국이 다국적기업의 원류국


가 source country 이기는 했지만, 국제생산이 성장해 갈 수 있는 조건은 경쟁적 환경에 기

반을 둔 미국기업들에게 유리했다. 현대 다국적기업의 기술적·조직적 툴이 이룩된

것도 바로 미국에서였다. 이에 반해 유럽의 기업들이 글로벌 네트워크와 분업적 구조

에서 미국의 기업들보다 훨씬 뒤떨어진 이유는 바로 그들이 협상과 카르텔을 주요수

단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발전의 마지막 단계는 1945년부터 현재까지로 글로벌 자본주의 시기라

부를 수 있다. 1945년 이후 전 지구적 규모로 확대된 교역망 networks 속에서 공업국가

들 간의 무역과 금융 그리고 제조업생산이 세계화되어 왔다. 그러한 연결망은 전형적

으로 다국적기업들에 의해서 조직되었으며, 국제적 과점이 일반적인 경쟁 형태였다.

다국적기업들의 국제적 연결망은 국내 활동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그 속에서 자

본축적은 급격히 진행되어 왔다. 국제경제의 상호의존성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 끝

난 이후 매우 빠르게 증가했다. 이제는 어떤 국민 경제도 글로벌한 환경으로부터 자

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국제생산과 교역은 제조업에서 가장 빠르게 확대되어 왔으

나, 최근에는 서비스업에서 더욱 빠르게 성장하여 자원기반형 해외투자가 가졌던 이

전의 지배적 지위를 서비스업이 대체해 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시기는 기술발전의 급격한 진보, 미국의 헤게모니, 국제통

신수단의 개선 및 안정된 환율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유럽 국가들과

미국 사이의 기술격차로 인한 달러의 부족과 결부되어, 서유럽에서는 국제생산을 크

게 자극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미국 다국적기업의 기술이전에

뒷받침된 것이었다. 1960년부터

미국에서는 다국적기업이 일반

적인 기업형태로 되었으며, 이

에 따라 유럽과 북미에서 기업

내 무역과 생산은 더욱 보편화

되었다. 이를 통해 유럽 국가들

은 경쟁적 지위를 강화했으며, 전쟁인가 부인가? 금융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참모습.

자본주의의 개념과 역사 - sigmapress.co.kr · 제1장 자본주의의 개념과 역사 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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