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 · 2019-07-05 · 인문논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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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논총 492019.6. ISSN 2005-6222 pp.103~124 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 * 5 ** 6 . 머리말 . 부호주의 인지모형과 자아 개념 . 연결주의 인지모형과 분산된 자아 1. 연결주의 인지모형과 분산된 자아 2. 실제 자아와 자아 경험의 괴리 3. ‘아니라 했다? . 체화된 인지 설명모형과 역동적 자아 1. 체화된 인지 설명과 확장된 자아 개념 2. 확장된 자아 개념과 단일한 자아, 분산된 자아 개념과의 관계 . 남은 과제 [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인지과학의 대표적인 세 모형인 부호주의, 연결주의, 그리고 최 근에 제안된 체화이론을 통해 본 자아 개념을 검토하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설명 은 철학 뿐만 아니라 인지과학에서도 매우 다양하며, 접근 방법에 대한 합의가 없 . 이는 자아의 문제가 한 이론으로만 해결할 수없는 다차원적 문제라는 것을 의 미한다. 자아 개념을 뇌의 물리적 기반으로 환원되거나 제거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이 논문은 자아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보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검토한다. 인지과학의 설명 모형에서의 정보 표현은 행위자를 포함하는 맥락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자아를 검토하는 데 중요하 .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자아 개념은 신체의 개별성이나 기억의 정체성과 같은 전통적인 기준을 넘어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아에 대한 설명은 경험적, 학적, 철학적 분석에서 주로 의식을 중심으로 견지해왔던 설명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주제어: 부호주의, 연결주의, 체화이론, 자아 * 이 논문에 대해 상세하고도 건설적인 리뷰와 제안을 해주신 익명의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 한밭대학교 인문교양학부 조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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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 · 2019-07-05 · 인문논총 ‧ 제49집 ‧ 2019.6. ISSN 2005-6222 pp.103~124 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인문논총 ‧ 제49집 ‧ 2019.6. ISSN 2005-6222

pp.103~124

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5

김 효 은**6

목 차

Ⅰ. 머리말

Ⅱ. 부호주의 인지모형과 자아 개념

Ⅲ. 연결주의 인지모형과 분산된 자아

1. 연결주의 인지모형과 분산된 자아

2. 실제 자아와 자아 경험의 괴리

3. ‘내’ 가 아니라 ‘뇌’가 했다?

Ⅳ. 체화된 인지 설명모형과 역동적 자아

1. 체화된 인지 설명과 확장된 자아 개념

2. 확장된 자아 개념과 단일한 자아,

분산된 자아 개념과의 관계

Ⅴ. 남은 과제

[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인지과학의 대표적인 세 모형인 부호주의, 연결주의, 그리고 최

근에 제안된 체화이론을 통해 본 자아 개념을 검토하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설명

은 철학 뿐만 아니라 인지과학에서도 매우 다양하며, 접근 방법에 대한 합의가 없

다. 이는 자아의 문제가 한 이론으로만 해결할 수없는 다차원적 문제라는 것을 의

미한다. 자아 개념을 뇌의 물리적 기반으로 환원되거나 제거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이 논문은 자아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보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검토한다. 인지과학의 설명 모형에서의 정보

표현은 행위자를 포함하는 맥락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자아를 검토하는 데 중요하

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자아 개념은 신체의 개별성이나 기억의 정체성과 같은

전통적인 기준을 넘어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아에 대한 설명은 경험적, 과

학적, 철학적 분석에서 주로 의식을 중심으로 견지해왔던 설명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주제어: 부호주의, 연결주의, 체화이론, 자아

* 이 논문에 대해 상세하고도 건설적인 리뷰와 제안을 해주신 익명의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 한밭대학교 인문교양학부 조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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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인문논총|제49집|2019.6.

Ⅰ. 머리말

‘자아’1는 한 인간의 내적인 정신세계로부터 일상생활의 영위, 그리고 사회적, 문화

적, 종교적 삶에 지속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인격2의 동일성과 영속성을 보장해준

다. 자아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자아에 기반한 사회적 행동과 책임의 문제를 보는

관점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여러 연구들로부터 얻어지는 자아에 대한 함축들은 사회

적, 윤리적, 종교적 주체로서의 인간 개념뿐만 아니라 거꾸로 심리철학이나 인지과

학을 구성하는 제 분야들에서 다루는 의식, 감각질(qualia), 주관성, 경험의 개념을 재

검토하도록 도울 수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자아의 자리가 어떻게 확보되는지를 인지과학의 경험적 사례들

과 대표적인 세 가지 설명 모형인 부호주의(symbolism), 연결주의(connectionism), 그리고

최근에 제시된 체화이론(embodiment theory)를 통해 구성하는 것이다.3 자아에 관한 설

명은 철학에서 뿐만 아니라 인지과학 내에서도 매우 다양하며, 어떻게 자아의 문제

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도 없는 상태이다. 동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자아

의 문제가 한 차원의 설명이나 이론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다차원적인 문제라는 것

을 의미할 수 있고, ‘자아’라는 개념이 필요충분조건들의 집합으로 정의되기 어렵다

는 것을 보여준다.4 인간의 마음에 대한 학제간 연구인 인지과학이 자아에 관한 제반

1. 여기서 ‘자아’라는 개념에 대한 검토는 주로 분석철학과 인지심리학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의

미에 한정하려 한다. ‘자아’라는 표현은 종교나 정신분석에서도 ‘에고(ego)’로 표현되지만 이 논

문에서 다루는 대상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를 분명히 하는 데에는 익명의 심사위원의 지적이

도움이 되었음을 밝혀둔다.

2. ‘자아self’와 ‘인격person’은 대략적으로는 상호교환가능하게 사용되지만 구체적으로 ‘자아’는

개인적인 주체의 내면적 경험을, ‘인격’은 공적이고 사회적인 특성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3. 이 세 모형을 비교하는 대표적인 국내연구로는 이기흥(2004, 2007, 2009, 2012)이 있다. 그리고

체화이론과 관련하여는 ‘확장된 마음’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는 석기용(2016), 신상규(2011), 이

영의(2011)가 있다.

4. 인지과학이 철학을 한 구성 분야로서 포함하지만, 엄밀히 말해 인지과학의 작업과 순수 심리철

학의 작업은 구분된다. 본고는 경험과학적 자료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포함하지만 자아에 대한

심리철학적 논증들이나 언어철학에서의 자기지칭에 대한 분석을 주로 다루지는 않는다. 즉 이

논문은 인지과학의 리뷰 논문의 성격을 가지며 철학적 분석 논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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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김효은 105

학문들의 연구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점은 자아에 관한 분석들이 최근 인지과학의 설

명이론이나 기억에 관한 인지심리학의 이론들, 그리고 신경심리학적 발견들에 의해

현대적으로 더 세밀하게 조명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이 논문은 자아가 뇌라는 물리적인 토대로 환원되거나 제거될 수 있다

는 함축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경험과학의 연구 자료들과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주

는 인지과학의 부호주의와 연결주의 패러다임을 통해 자아를 구성하는 최소조건들

을 검토함과 동시에 인지과학의 최근 설명 모형에서 정보를 표상하는 방식5이 기존

의 자아 개념을 어떻게 확장하는지를 살펴본다. 결론적으로 자아 개념은 몸의 개별

성이나 기억의 동일성과 같은 전통적인 자아의 근거들을 넘어서서 더 확장될 수 있

고, 자아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험과학적, 철학적 분석에서 초점을 맞추었

던 의식적 측면을 넘어서서 무의식적 측면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자아의 무의식적 측면과 의식적 측면이 중첩되는 연구영역을 천착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자아 개념에 대해 전통적으로 간주되어온 특성들을 스트로슨의 소

개를 빌어 살펴보겠다. 이 전통적 특성들은 인지과학의 첫 세대 모형인 부호주의와

일관되지만, 부호주의의 경쟁적인 후속 모형인 연결주의와 신경과학적 사례들의 검

토를 통해 일부분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4절에서는 인

지과학의 최근 설명 모형인 체화 이론이 가지는 ‘자아’에 대한 함축이 3절에서 다루는

경험과학의 자료들과 일관적이면서도 자아의 핵심적 특징들을 구성하게 한다는 것

을 보이겠다. 결론적으로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자아의 특성들을 축소하고

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아의 본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적인 인간을

넘어선 외부대상과의 상호작용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5. 인지과학의 설명 모형에서 표상이라는 것은 행위자(agent)를 포함하는 맥락에서 사용되기 때

문에 자아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다. 행위자는 당장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나타내기 위

해 부호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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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인문논총|제49집|2019.6.

Ⅱ. 부호주의 인지모형과 자아 개념

자아 개념은 전통적으로 내적인 심적인 실체로서 간주되어왔다. 자아에 관한 물음

은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하나는 자아의 본성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아에 관한 경험의 본성에 대한 현상학적 물음으로 자기의식, 자기자각

(self-awareness)의 측면을 포함한다. 자아 문제에 있어서는 후자의 물음이 곧 전자를 밝

혀주기 때문에 두 질문은 상호 독립적이지 않다. 이런 특성은 자아 문제와 밀접히 관

련된 의식과 주관성, 그리고 감각질의 문제에 있어서도 존재론과 현상론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사실과 상통한다.

자아 개념은 다음의 특성들을 가진다고 일반적으로 간주되어왔다.(Strawson 1999,

2000)

1) 경험의 주체

2) 실체

3) 심적인 것

4) 어떤 시점에서 단일한 것

5) 지속성을 가지는 것

6) 행위적 주체(agent)

7) 개성이나 특성을 가지는 것

이 특성들은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cogito)를 자아의 특성으로 간주

한 이래, 로크가 자아 동일성의 기준으로서 제시한 기억이라는 기준에도 적용된다.

물론 더 이상 자아를 데카르트적인 순수한 비물질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므로 세

번째 특성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가 물질적 기반

으로 환원되지 않는 특성을 가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섯 번째 지속성의

경우는 철학 이론에서 로크가 제시한 기억의 지속성이라는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사

례들이 있다는 반론들이 이미 제시되었다. 다섯 번째 특성을 미리 제외하더라도 전

반적으로 위의 일곱 가지 특성들은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이 인식

적 투명성(epistemic transparency)을 가진다는 데카르트적 자아 개념을 잘 보여준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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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김효은 107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가지는 지식은 명석판명하고 오류불가능하다.

자아의 이러한 전통적 특성들은 인지과학의 설명 이론 중 가장 먼저 등장한 부호주

의(symbolism)가 함축하는 자아 개념과 가장 유사하다. 부호주의의 핵심적 특성은 중

앙처리 장치가 가진 규칙을 통해 정보를 순차적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호

주의는 여러 부호들을 만들어내고, 조작하고,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는 과정을 통한

직렬적인 계산적 정보처리에 마음을 비유한다. 정보를 처리하는 주체는 중앙처리 유

닛(Central Processing Unit)으로,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컴퓨터에 하나씩 내장되어 있다.

이 중앙처리 장치가 부호들을 만들어내고 변형시키는 작업을 하며, 명료하게 정의된

컴퓨터 언어와 규칙들에 기반 해서 명제 형식으로 된 정보들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추론을 하게 된다.(Newell, 1980) 이러한 과정은 우리 인간의 사고과정에 비유될 수 있

다. 즉, 심적 상태는 구문론적 부호들을 규칙에 따라 조작하는 일종의 정보처리 상태

로 간주된다. 예컨대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

스는 죽는다”의 추론은 삼단논법의 규칙에 따라 그 정보가 처리된다. 이 정보처리 과

정에서는 사실상 세 명제의 의미나 진위 여부는 관련이 없으며, 규칙에 따라 목표하

는 결론만 이끌어내어지면 된다. 즉, “A는 B이다”, “B는 C이다”, “그러므로 A는 C이

다”라는 추론은 그 의미론적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추론 규칙만 따르면 단일하게 처

리가능하다. 또한 이 설명에서 추상적인 부호처리 상태만 만족시키면 이것을 실현시

키는 물리적 구현 토대는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자아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이고 단일

한 속성으로 표상된다.

다음 절에서 다룰 신경심리학의 여러 인지적 손상의 사례들은 자아에 대한 전통적

가정인 인식적 투명성, 즉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이 투명하다는 생

각이 사실이 아닌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이에 따라, 앞서 소개한 전통

적 관점에서의 자아의 특성들이었던 일곱 가지 중 몇 가지는 자아의 핵심적 특성이

아닌 것으로 제외될 것이다. 그리고 4절에서는 남은 특성들의 내용을 인지과학의 최

근 설명에 따라 구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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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결주의 인지모형과 분산된 자아

자아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 종종 거론되었던 기억이나 시공간적 동일성과 같은

기준들은 경험적 연구에서의 실제 사례들을 통해 현대적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근대시대 철학자 로크가 제시했던 자아 동일성에 대한 기준으로서의 기

억 개념(Locke, 1975)은 현대 인지심리학에서의 기억 개념에 비교하면 자아나 마음, 그

리고 기억의 여러 양상들을 반영하기에 구체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

자아에 관한 기존의 철학적 분석들이 적용되지 않는 인지과학의 경험적 사례들은 자

아 개념을 새로이 표현하거나 제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부호주의와 경쟁 이론인 연결주의 모형에서 보여주는 자아에 대한 함축

이 전통적 자아 개념이 설명하지 못하는 신경심리학적 사례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해

낸다는 점을 제시한다. 또 전통적인 자아 개념이 어떻게 축소되는지를 검토한다. 2절

에서 제시되었던 자아의 특성들에 적용되지 않는 사례들을 인지과학의 경험적 연구

들로부터 검토하여 두 종류로 나누어 구성해본다. 특히 구체적인 신경심리학적 사례

들은 개념 분석에 주로 의존하는 철학 논의를 더 세련되게 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고 사변적인 연구 대상으로만 간주되었던 자아나 자유의지 문제를 경험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 준다. 첫 번째 종류의 예는 자아에 대한 지식이 인식적으로 투명하지

않은 경우들이며, 두 번째 종류의 예는 자아의 의식적 측면이 존재하지 않는 예들이

다. 첫 번째의 자아에 대한 인식적 불투명성의 경우는 자아를 구성하는 측면들에 대

응하는 뇌 영역의 손상으로 기억의 시공간적 동일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사례들이다.

이로부터는 일곱가지 특성들 중 다섯 번째의 지속성이 부정될 것이다. 두 번째의 자

아의 의식적 측면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행위의 근거로서의 자유의지가 부정되는

경험적 사례로 전통적 자아 개념 중 특히 행위자의 개념이 축소된다고 할 것이다.

1. 연결주의 인지모형과 분산된 자아

연결주의는 뇌의 작동방식과 구조를 참고하여 많은 구성요소들이 병렬적으로

작동하여 분산된 정보처리를 하는 시스템의 관점에서 마음을 본다.(McClelland &

Rumelhart, 1986)6 이 특징을 잘 파악하기 위해 부호주의와 연결주의를 대조하여 보자.

부호주의와 연결주의의 핵심적인 대조적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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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김효은 109

부호주의Symbolism

(계산주의)

연결주의Connectionism

(병렬분산처리 혹은 혹은 인공신경망)

기본 아이디어

컴퓨터의 구성 두뇌의 작동방식

사고 기본단위

명제 신경세포

지식표현방식추론규칙에 따른 직렬적 부호처리중앙처리장치가 통제

인공신경망 병렬방식 중앙처리장치의 통제 없음

선구자 Turing 1937 McClulloch and Pitts 1943

발전1970년대에 주류가 됨1980년대에 밀려남

1960년대 PDP모형, 1970년대 밀려남,

1980년대 다층신경망 개발정보표상 고정적, 추상적이고 맥락 독립적 맥락에 민감하고 유연특징 사고와 같은 고차인지에 적합 지각과 같은 하위차원 인지에 적합

인간마음물리적인 기초조작 정보처리 체계

수많은 노드들의 네트워크

연결주의는 의식이나 자아가 뇌에 기반하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서

검토했던 신경학적 사례들과 일관적이다. 무수한 시냅스들과 그들의 연결들로 구성

된 뇌에 마음을 유비하여 설명하는 연결주의 인지 모형은 기억에 대해서는 정보들이

특정 장소들에 저장되지 않고 분산된 방식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또한 저

장된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도 부호주의와 다르다. 부호주의는 순차적 방식으로 정보

를 처리하고 그에 접근한다. 연결주의는 수많은 처리 유닛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부

터 나타나는 패턴들에 매칭이 되는 패턴을 찾아내는 병렬적 방식이다.7 이것이 어떻

6. 아래 표에 제시된 선구자와 다른 연구를 여기서 참고문헌으로 제시한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

다. 표에 제시된 선구자는 연결주의 모형을 처음 제시한 이들이며, 맥클랜드와 러멜하트는 초

기 모형을 발전시켜 PDP(Parallel Distributed Processing 병렬분산처리) 모형을 제시하고서야

비로소 인지에 대한 모형이나 산업응용의 도구로서 관심을 끌게 된다.

7.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러한 패턴이 인식되는지를 보자. 연결망 모형인 텐서곱망 모형(Smolensky

1990)에서는 개념은 벡터vector로 표시된다. 벡터란 정보들이 나열된 집합으로 각 정보들은 정

보처리 단위들의 활성화 정도를 나타낸다. 이 벡터들로 어떻게 정보가 처리될 수 있는지를 간

단히 보자. “영희는 철수를 사랑한다”는 문장을 표상한다고 할 때 먼저, 각 글자를 표상한 다음,

그 글자를 통해 낱말, 그리고 문장까지 표상해야 한다. 먼저, ‘영희’라는 낱말은 <f영*r1 + f희*r2>

로 표상될 수 있다. 이렇게 ‘영희’라는 낱말 표상이 만들어지면, ‘영희’는 전체 명제를 표상하기

위한 새로운 ‘점유자filler 유닛’이 된다. 전체 문장을 표상하려면, <f영희*r행위자>와 <f철수*r피

동자>, 이 두 벡터를 합 혹은 중첩superposition하면 전체 문장을 최종 표상할 수 있다. 이런 벡

터 연산 방법은 전체 문장과 부분 문장의 단순한 부분/전체 관계가 아니라, 전체 문장의 구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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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인문논총|제49집|2019.6.

게 가능한가? 부호주의 설명 모형에서는 정보가 명제 단위로 처리되므로 두 문장을

구별하려면 전체 문장의 의미를 대조해야 하지만 연결주의 설명 모형에서는 두 문장

을 구별할 때 <f영희*r행위자>인지, <f영희*r피동자>인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그 의미

를 대조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볼 때 무의식적으로 두 벡터 간의 연결 강도를 대조해

보면 된다. 부호주의의 중앙집권적 정보처리는 정보의 입력이나 출력, 외부 자극에

대한 행동을 중재하고 제어한다는 점에서 단일하고 보편적인 한 실체로서의 자아를

함축하는 반면, 연결주의 인지 모형은 다수의 정보 유닛들에 의한 연결망에서 나오

는 패턴으로서의 자아를 함축된다.

더 나아가, 연결주의 모형에서 지식이나 개념은 패턴으로 표상되므로 다른 개념과

의 한계선이 불분명하며 이에 따라 타 개념들과 중첩되는 정보들을 허용한다. 그렇

다면, 연결주의가 함축하는 자아 개념도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데카르트적인 비신체

적인 실체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신체의 여러 부분에 퍼져있고

다른 정보와 혼합된 내용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연결주의 설명 모형에

서는 자아가 단일하고 보편적인 속성을 가지지 않고 입력되는 정보에 따라 활성화되

는 패턴이 달라지므로 맥락에 따라 다르게 표상될 수 있다.8 이는 다음에서 언급할 여

러 종류의 기억상실증의 경우 기억 정보에 대한 시간적인 불연속성을 가지는 경우로

상이한 정보의 입력에 따라 다른 패턴이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시

간적 불연속성에 따른 상이한 정보의 입력은 자아의 특성들 중 지속성은 유지하지

못할지라도 ‘어떤 시점에서 단일한 것’이라는 특성을 만족시킨다.

2. 실제 자아와 자아 경험의 괴리

기억이라는 기준으로 자아의 지속성을 설명하려 한 대표적 철학자 존 로크(Locke

반영하고, 이 문장의 표상과 “철수는 영희를 사랑한다” 표상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8. 자아에 대한 정해진 조건들을 찾기 보다는 맥락에 따라 자아와 비자아의 경계가 변하는 역동적

자아의 설명은 자아 동일성을 정도의 문제로 파악한 철학자 데렉 파핏(Derek Parfit 1971)의 견

해와 부분적으로는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파핏은 그의 현대적인 흄적 다발 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분할뇌 사례를 비롯한 여러 사고실험들을 경험적 연구에 맞지 않는 방식으

로 잘못 해석하고 있는 측면들이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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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김효은 111

1975)는 기억과 관련한 여러 증후군이나 현상들에 대해 포괄적 설명을 제공하지 못했

다. 로크가 제시했던 기억이라는 기준을 현대 인지이론에서 분류하는 기억적 지식의

측면에서 더 구체적으로 재해석해볼 수 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두 종류의 기억 지

식을 구분한다. 하나는 명제로 표현되는 서술적(declarative) 기억 지식이고, 또 다른 하

나는 명제로 표현하기 어려운 규칙이나 스킬들의 목록인 절차적(procedural) 기억 지식

이다. 서술적 지식은 다시 자기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사건들에 대한 자서전적 기억

인 일화적(episodic) 기억과 더 일반적이고 맥락과 무관한 의미론적(semantic) 기억으로

나뉜다. 여기서 먼저 자아 개념은 기본적으로 서술적 지식에 속하며, 더 상세히는 일

화적 기억이 우리의 경험이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이끄는지에 대한

자아에 대한 경험과 연관된다. 반면 의미론적 기억은 자아 이미지와 관련된다.

만약 로크의 기준대로 자아가 과거로부터의 지속적인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면 기억 상실증 환자들은 ‘지금 여기’라는 일시적 시공간에 대한 경험만 할 수 있고,

과거 시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자아가 없다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상실증 환자도 자아 의식을 가지고 있

다. 심지어 자신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자아분열을 보여주는 코타르병 환

자9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주장을 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는 주장하는 셈이 되는데, 로

크처럼 지속적 기억으로 자아를 설명하면 이러한 기억상실증 환자의 자아감을 설명

하기 어렵다. 뇌의 측두엽이 손상되어 선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에 걸려

유명해진 H.M.이라는 환자는 그의 중간 측두엽을 절제한 수술 이후의 경험을 기억

하지 못했다. 그의 자아에 대한 경험은 수술 이전의 기억들에만 국한되어 있었

다.(Milner et al., 1968) 즉, 그의 자서전적 기억은 불완전하지만 자신에 대한 전체 이미지

인 의미론적 기억은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K.C.라는 환자는 측두엽 뿐만 아니

라 전두엽 또한 손상되어 선행성 기억상실증 뿐만 아니라 역행성 기억상실증

(retrograde amnesia) 둘 다를 겪는다.(Tulving et al., 1991) 이 환자의 경우 어떤 자서전적 기

9. 감각질은 그 감각을 가지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의 질적인 측면이며, 동일한 자극에

의해 야기된 통증이나 냄새, 소리, 색감 등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이 감각질 없이는 자아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변연계의 손상으로 세계와의 모든 감정적 접촉이 상실된 코타르 환

자는 감각 작용과 지각을 할 때 어떤 감정도 일어나지 않아서 결국 자아분열을 일으킨다.(라마

찬드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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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자서전적 기억 없이도 자아 개념을 가진다는 사실은 실제 자아에 관한 내용과 나의

자아경험의 내용이 별개일 뿐만 아니라 자아 동일성의 기준이 더 세부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로크가 자아 동일성의 기준으로 제시했던 ‘기억’은

더 여러 차원으로 구분될 수 있고, 단일 차원이 아닌 여러 차원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여기서 살펴본 ‘기억상실증에 걸렸지만 자아감을 가지는’ 사례들은 2

절에서 제시된 일곱가지 특성들 중 지속성 기준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더라도 세 번

째의 ‘어떤 시점에서 단일한 것’의 특성은 있으므로 자아를 확보될 수 있다.

우리가 자아감을 가지기 위해 의존하는 최소한의 어떤 종류의 기억조차도 온전히

사실을 반영하는 경우가 사실상 드물고, 현재의 맥락에 맞추어 기억이 변형되는 경

우가 대다수이다.10 철학자 윌리암스(1973)는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기억 대신 공적이

고 인과적인 몸의 경험을 자아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공적이고 인과적인 몸을

어떻게 확보하고 정당화하는지는 여전히 문제가 된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의존하는

자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간주되는 것과는 달리 인식적으로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의 실제 상태와 자아의 경험이 극단적으로 분리

되는 경우는 환상사지통(phantom limb)11을 가진 환자들에 대한 신경과학자 라마찬드

란의 실험(Ramachandran 2000)에서 잘 볼 수 있다. 오토바이 사고로 왼팔이 마비되어 결

국 절단한 환자 필립은 존재하지 않는 팔의 손목과 손가락에 통증을 느꼈고 마비의

느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가상의 팔을 움직여서 통증을 해소하고 싶

어했다.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은 양손을 넣을 수 있게 구멍이 뚫린 상자를 만들고

가운데에 거울을 집어넣고 나서, 필립에게 건강한 오른팔을 구멍에 넣게 했다. 필립

은 상자 안에서 정상적인 오른팔 뿐만 아니라 왼팔 또한 (가상적으로 거울을 통해서) 보게

되었는데, 라마찬드란은 필립에게 두 팔을 동시에 똑같이 움직여보라고 지시했다.

10. 인지심리학자 다니엘 샥터의 <기억의 일곱가지 죄악>은 우리의 기억이 현재의 맥락에 유용하

도록 자아 개념에 최대한 맞추는 방식으로 변화하여 왜곡되는 여러 사례들을 보여준다.

11. 환상사지통이란 상실된 사지의 부분에 대한 통증을 가리킨다. 이는 절단된 부위의 끝부분이

척수에 있는 감각이나 통증의 전달 경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 통증을 없애기는 의학

적으로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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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김효은 113

이 때 필립은 사고 이전처럼 왼팔이 움직임을 느꼈고 눈을 감으면 다시 왼팔에 마비

를 느꼈다.12 이 실험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단일한 ‘나’를 경험한다 해도 그것은

통합되고 지속적인 자아가 아니라 뇌가 만들어내는 여러 내용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3. ‘내’ 가 아니라 ‘뇌’가 했다?

마음에 대한 현대의 신경과학적 연구는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자유의지를 물리적으로 확인하려는 흥미로운 시도를 한다. 이는 2절에서 소

개된 자아의 일곱 가지 특성들 중 여섯 번째의 행위적 주체(agent)로서의 자아를 경험

적으로 확인해보려는 시도이다. 이런 작업은 우리가 가진다고 생각하는 자아나 자유

의지, 그리고 의식이 실재하는 것인지, 물리적 기반으로 환원되어 설명되는지, 혹은

제거되는지의 의문을 제기한다. 자아의 존재나 특성이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

다면 우리의 마음이나 자아, 그리고 자유의지는 증기기관차가 움직일 때 나는 증기

소리나 우리가 움직일 때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부수현상에 불과하게 될 것

(Wegner 2003)이다.

내가 나의 자유의지로 손가락을 움직여서 키보드를 누르고 있다면 이것은 과연 ‘나’

의 선택인가? 이 의문을 실험한 신경과학자 벤자민 리벳은 피실험자들에게 자기 의

지에 따라 손가락을 까닥거리게 하고 이 때 피실험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

반응(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을 뇌 전극을 통해 관찰했다. 그는 이 실험에서 사람이

자유의지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렸음을 의식하기 0.3~0.5초 전에 이미 뇌신경이 그

행동을 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3 자신이 움직이길 원한다는 것을

12. 팔이 절단되면 뇌중추의 명령에 따라 팔의 움직임이 잘 수행되었는지에 대하여 고유감각 수

용기들이 피드백을 줄 수 없는데, 이렇게 반응이 없으므로 뇌는 팔이 마비되었다고 결론을 내

린다. 거울 속에서 왼팔이 움직였을 때 그것에 대한 시각적 정보는 수용기들의 피드백을 회복

시켰다. 즉 자기 몸에 대한 의식적인 시각적 지각이 고유감각수용기의 무의식적 피드백을 대

신 수행하는 역할을 해준다. 이 실험에 대하여는 Phantoms in the Brain(번역: 라마찬드란 박사

의 두뇌실험실)을 참조하라.

13. 리벳의 실험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최근의 연구결과는 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독일 막

스플랑크연구소의 존-딜런 헤인스 박사 연구팀은 “Unconscious determinants of free dec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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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하기 이전에, 자발적 행위는 무의식적으로 두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Libet et

al., 1983; 2004)이 실험으로부터 리벳은 전통적인 자유의지의 의미를 재조정한다. 의지

를 의식하고 나서 근육이 움직이기까지는 약 150ms(ms는 1초의 100분의 1에 해당)의 시간

이 남는데, 이 시간은 최종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하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행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유의지적 힘의 발휘는 어떤 활동의 유발을 통해서가 아

니라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뇌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되고 수행되는 행위라 할지라도 의식을 통하여 제어가 가능

하며, 의식은 무의식적 결정이나 수행을 멈추거나 다른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14 따라서 자아는 어떤 것을 ‘할 자유’는 없다고 할지라도 어떤 것을 ‘하지 않을

자유‘는 있다고 할 수 있다. 거부권 행사라는 소극적 역할은 자유의지에 대한 전면적

인 부정은 아닐지라도 상식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지와 자아의 범위를 크게

제한한다.15 결과적으로, 자아의 특성들 중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특성들의 내용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좁게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범위가 축소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자아의 자리는 확보될 수 있다고 할 수

in the human brain” (Nature Neuroscience 11:5 May 2008)에서 의지에 따라 행동을 하기로 결정

을 내리기 10초 전에 뇌는 이미 그런 결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

은 피실험자 14명한테 두 손에 버튼 하나씩을 쥐고서 자기 의지에 따라 버튼 하나를 누르게 하

고, 동시에 피실험자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 반응을 뇌기능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관찰했다. 피실험자들이 ‘내가 어떤 버튼을 누를지 결정했다’고 생각하며 버튼을 누른 순간보

다 10초나 먼저 손가락의 움직임을 맡는 뇌 부위에서 신경 반응이 나타났다. 이 실험은 잘 알

려진 리벳의 실험보다도 더 긴 시간 간격을 보여준다.

14. 이러한 의식은 일종의 거부권(veto)를 행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리벳은 이러한 성격의 자유

의지는 여러 종교의 교리들이 ‘...하라’의 형태보다는 “...하지 말라”라는 부정문의 형태로 되어

있음과 상통한다고 한다.

15. 리벳의 실험과 이 해석 자체에 대한 반론들도 있다. 먼저, 실험과 관련된 자발적 의지의 측정

의 정확성 문제(예컨대 의지를 자각할 때 시계를 보는 측정에 있어서 시계를 보는 시각적 과정

이 망막으로부터 뇌에 이르는 과정까지도 시간 측정에 포함시켜야 한다)와 실험의 조건들을

인정하더라도 자유의지의 범위를 축소하는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는 반론들이 있다. 그러

나 이런 반론들은 리벳 자신의 뒤이은 후속 실험과 이론을 통해서 결정적 반론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의식적 의지가 무의식적인 신경적 원인을 가졌던 것처럼 거부권

의 행사 또한 무의식적인 원인을 가질 수 있다는 자유의지에 대한 더 심각한 위협이 제기될 수

도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위해서는 독립적인 논문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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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김효은 115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의 사례는 이렇게 좁게 해석된 행위적 주체(agent)로서의 자

아의 능력, 즉 리벳이 제한하여 이야기한 ‘하지 않을 자유’를 사용하는 능력까지도 손

상되는 경우이다. 이 사례를 통해서 행위적 주체로서의 자아의 특성이 뇌로 환원되

어 결국 제거되는지를 검토할 수 있다. 리벳의 실험으로부터 거론된 ‘하지 않을 자유’

의 능력을 가지는 자아는 특히 사회적 자아의 정상적 기능에 중요하다. 이런 특성을

가지는 자아가 파괴된 경우를 잘 보여주는 것이 특정 뇌영역과 마음의 관계를 밝혀

주는 데 큰 기여를 했던 피니어스 게이지(Pineas Gauge)의 사례이다. 피니어스 게이지

는 전 시대에 걸쳐 가장 잘 알려진 신경심리학 환자로, 1848년 열차길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폭발 사고로 쇠막대기가 머리를 관통했는데도 살아남았으나 뇌의 전두엽

부위가 손상되었다. 사고 후 그의 인격은 변해서 정상적인 억제 능력을 잃었고 부적

절한 사회적 행동을 보였다. 이 사례 이래로 신경과학자들은 전두엽이 정상적인 사

회적 행동에, 즉 리벳의 실험에서 발견된 ‘하지 않을 자유’를 사용할 능력을 관장한다

는 것을 발견했다.

이 사례들로부터 자유의지를 수행하는 자아가 특정 뇌의 작용에 불과하다면, 행동

을 수행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는 결국 ‘할 자유’ 뿐만 아니라 ‘하지 않을 자유’를 관장

하고 있는 뇌의 기능으로 환원될 수 있다.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진 예들은 역사적으

로 뇌손상이나 정신 분열을 이유로 범죄를 저지른 피고들이 무죄 방면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다. 이 예들은 자아가 자신에게 인식적으로 불투명할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주체로서의 자아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서, 비록 자아의 나머지 특성들 -1)에서 4)까지-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착각이

며 부수현상일 뿐이라고까지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사례들로부터 자아가 물리적 상태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철

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먼저, 자아와 뇌의 대응관계

(correspondence)와 동일성(identity)은 완전히 다른 관계이다. 자아가 뇌의 상태라고 하려

면 단순히 자아-뇌의 대응관계가 아닌 동일성을 밝혀내야 하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도 아직 달성하지 못한 작업이다. 즉, 동일한 뇌 상태나 동일한 뇌 활성 패턴이 뇌영상

을 통해 밝혀졌다고 해서 동일한 행동을 보일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뇌 과학의

연구 결과들은 뇌-마음 간의 대응관계를 보여줄 뿐 동일성은 확보하지 못하며, 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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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결과들은 말 그대로 뇌 기능을 읽을 뿐 마음이나 행동을 읽어내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과학자들 자신들도 의식의 신경상관자(neural correlate of consciousness)를 발견하

려는 자신들의 시도가 심적 상태-뇌 간의 대응관계만 보여준다고 한다(Chalmers 2000).

실제로도, ‘할 자유’나 ‘하지 않을 자유’가 뇌의 특정 상태로 환원되고 자아의 자리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아가려면, 범죄행동을 한 이들의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되었다는

증거만으로는 부족하다. 뇌의 특정 영역과 범죄 행동을 대응시키려면 더 나아가 그

러한 뇌 상태를 가진 이들 모두가 범죄행동을 필연적으로 행해야 하고, 범죄자들 모

두가 빠짐없이 동일한 뇌 발화 패턴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 연구 결과 뇌손상을

입은 사람이나 정신분열증 환자 모두가 범죄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범죄자 중에는

뇌 손상이 없이도 그런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으므로(Gazzaniga 2005) 자아의 발휘인 자

유의지의 역할이 뇌로 환원된다고 자아의 자리를 더 좁히거나 제거하는 것은 아직 이

르다.16 또한 리벳의 실험으로부터 의식적인 자아의 자리가 좁혀질 수는 있으나 의지

를 발휘하게 하는 무의식적 측면은 고려되지 않았으므로 자아가 부수현상이라고 결

론짓기에는 이르다.

따라서, 인지과학의 경험적 연구들을 통해 자아와 뇌의 상태를 동일시하는 것은 논

리적으로도 비약이며 경험적으로 연구가 더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펴본 경험적 연구들은 일곱 가지 특성들 중 5)지속성을 가지는 것 6)행위적 주체

(agent)는 더 이상 자아의 특성으로서 유지되지 못하거나 그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수정된 자아 개념은 부호주의와 전통적 자아 개념에서의 단일하고

지속적인 자아의 특성은 가지지 않지만 맥락에 따라 변화하고 무의식적인 요소들까

지도 고려되어야 하는 자아의 특성을 보여준다.

다음 절에서는 인지과학의 새로운 설명 패러다임이 2절과 3절을 거쳐 수정된 후에

도 남아 있는 자아에 관한 최소한의 특성들까지도 수정하게 함으로써 인지과학의 발

전을 통해 자아 개념이 새롭게 조명된다는 것을 보이겠다.

16. 리벳 류의 실험 자료나 게이지 류의 경험적 증거들은 예컨대 범죄 행위를 한 주체가 ‘나’인지,

‘뇌’인지의 문제를 제기하며, 이는 단순히 자아와 자유의지에 관한 학문적인 논의 수준을 넘어

서서 자유로운 행위자로서의 자아의 존재를 가정하는 법 체계의 의사결정 과정을 뇌과학, 인

지과학과 연계하여 재검토하게 만든다. 이를 다루는 학제간 영역인 ‘신경윤리(neuroethics)’ 분

야가 최근 대두되었다. 이 신생분야에 관하여는 Gazzaniga(2005)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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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김효은 117

Ⅳ. 체화된 인지 설명모형과 역동적 자아

1. 체화된 인지 설명과 확장된 자아 개념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을 몸 안에서 공간적으로 통합된 주체로 생각한다. 이

러한 생각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뇌 손상이나 인위적인 뇌 자극으로 유체이탈과

같은 환시나 착각이 유발되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런데 인지과학에서 새롭게 대두

된 패러다임인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설명은 우리의 마음이나 자아가 실제

로 우리 몸 안에 제한되지 않고 확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아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인 ‘심적인 것’의 범위에 대한 기존의 가정--즉 물질적인 뇌를 기반으로 하는

심적인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17는 인지과학에서

부호주의와 연결주의 설명 모형을 비판하고 제 3의 패러다임으로서 등장했다.18 부

호주의와 연결주의 양자는 그들이 함축하는 자아 개념은 다를지라도 외부대상에 대

한 표상이 뇌 안에서 정적으로 발생한다는 공통 가정을 가지고 있다. 체화된 인지는

한 유기체의 감각자동(sensorimotor) 능력과 몸 그리고 환경이 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

다는 기존의 견해에 더하여, 그런 요소들의 상호작용 방식이 특정한 인지 능력의 본

성을 결정하고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19

17. 이 설명은 그 특성의 강조점에 따라 ‘확장된 인지’, ‘분산된 인지’, ‘구현 이론’, ‘상황지워진 인지’

등 여러 명칭과 함께 사용된다. 이에 따라 자아 개념도 ‘확장된 자아’, ‘상황지워진 자아’ 등으로

부를 수 있다.

18. 체화된 인지 설명을 옹호하는 이들은 기존의 부호주의와 연결주의 패러다임과의 대조를 강조

하나, 연결주의의 발전이 체화된 인지 패러다임을 포괄하는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더 나아가 기존 설명의 내적 표상과 체화된 인지의 역동적 표상이 반드시 상치될

필요는 없다고도 한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는 실제로 부호주의나 연결주의 그리고

체화된 인지 모형이 필요에 따라 사용되고 있으므로 어느 한 모형이 마음을 모의(simulation)

하기에 완전히 부적절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어느 설명 모형이 다른 설명모형보다 더

포괄적일 수 있는가가 설명 모형들을 비교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19. 이 설명은 또한 의식에 대한 두 상반되는 연구 방법인 일인칭적 접근이나 삼인칭적 접근 모두

를 비판하게 한다. 체화된 인지 설명의 접근은 두 접근 방식 모두 마음을 정적인static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역동적인 실행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이인칭적 접근 방식을 취한다

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는 Thompson 2001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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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의 배경은 우리가 실제로 세계에 대한 정보처리를 하고 표상을 형성할 때

부호주의나 연결주의에서 상정하는 것처럼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시간을 들여서

내적 모형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관찰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우리

가 대상의 어떤 특징을 인식하고 그것에 기반하여 행동할 때에는 외부의 모든 정보

들을 처리하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만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경제적인 정보

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부호주의와 연결주의에서의 가정과는 대조적으로, 우리의 뇌

안에서 세계를 상세하게 오랜 시간에 걸쳐 표상하지 않고, 외부 세계가 우리의 정보

처리와 행동을 실시간적으로(on-line)가능하게 하는 역동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호주의나 연결주의가 인지작용의 목표는 세계에 대한 올바

른 표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상호구성이 된다. 마음의 작용은 뇌라는 개별적 자아의

생물학적 기반을 벗어나 뇌와 몸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유기체의 외부환경에

로 확장되어 수행되고 작동될 수 있다.(Clark 1997)

마음이나 자아가 뇌, 몸,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구성된다는 주장에는 의견을

달리하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체화된 인지에서 주장하는 마음이나 자아의 확장이 어디까지 합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가 쟁점이 된다. 즉 마음은 마구잡이로 세계의 임의의 부분에로 확장되는 것

이 아니라, 마음이나 자아 개념에 대한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 한에서 그렇게 될 것이

다. 그렇다면 정당하게 인지적 확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는 어떻게 구

별할 수 있는가? 자아의 이런 확장 가능성은 다음 예에서 잘 보여진다. 다음의 세 가

지 경우의 인지 작용과 실행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본다. ㄱ) 복잡한 산술 작업을

머리로 계산한다. ㄴ) 복잡한 산술작업을 연필과 종이를 사용해서 계산한다. ㄷ) 복

잡한 산술 작업을 계산기를 통해서 한다. ㄹ) 복잡한 산술작업을 모니터에 떠오른 가

상적 메모지와 뇌 안에 이식된 실리콘 칩을 작동시켜서 한다.20 이 네 작업은 그것이

행해진 장소만 다를 뿐 그 실행 과정과 작동결과가 동일하다. 여기서 그 작업이 뇌 안

에서 이루어지는가, 뇌 밖에서 이루어지는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런 작

업을 가능하게 하는 자아나 마음의 개념에 ㄴ), ㄷ), ㄹ)과 같은 환경적인 항목들을 포

함할 수 있다는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내용을 주장하는 입장이 체화된 인지의 설명

20. 이 예는 차머스와 클락의 예(1999)를 필요에 맞게 약간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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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김효은 119

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공지능과 함께 발전해 온 인지보철학(cognitive prosthetics)21에서, 예

컨대 사지마비 장애인이나 정상인이 뇌파로 마우스를 움직이게 하는 사례들에서 그

경험적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마음과 관련된 이러한 테크놀로지는 마음, 의식, 자아가

나 자신의 몸을 넘어선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실현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자아는 단순히 나의 두뇌나 몸을 토대로 하는 내적 상태가 아니라 이를 넘어서 외부

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나오는 역동적 상태이다.22

인지과학의 새로운 설명 패러다임인 체화된 인지를 통해 함축된 ‘역동적 자아’ 개념

은 자아에 관한 일곱 가지 특성들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그 특성들이 모두 가정

하는 ‘정적인 자아’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특성들의 내용을 대폭 수정하고 확장한다고

할 수 있다.

2. ‘확장된 자아’, ‘단일한 자아’, ‘분산된 자아’ 개념 간의 관계

체화된 인지 설명이 기존의 부호주의와 연결주의 설명모형이 파악하지 못했던 실

제의 직접적이고 역동적인 인지 작용을 잘 설명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인공지능의

작업에서 유용하게 사용된다는 점은 체화된 인지 설명이 부호주의나 연결주의를 대

21. 여기서 논의되는 인간의 인지기능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은 기존에 논의되던 컴퓨터 기반의 인

간-컴퓨터 인터페이스가 아닌 뇌 과학의 발전에 기반한 (컴퓨터를 보조도구로 사용하기는 하

지만 그 의미는 문자 그대로 최소한의 보조에 그친다)새로운 양상의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논문에서 다루는 체화된 인지 설명 모형이 함축하는 역동적이고 확장된 자아 개념은 기존에

많이 논의되었던 인간의 몸과 인공물이 결합된 상태인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나 사이버 자아

를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 기반의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이 구분에 관하여는 김선희

(2004)를 참조하라)와도 구분되는 뇌 그 자체를 직접적 기반으로 하는 ‘뇌-환경 인터페이스’라

할 수 있다.

22. 이렇게 수정가능한 자아 개념은 더 나아가 인간 이외에 무생물적 개체인 로봇에게도 자아를

부여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몸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단순한 수준이

지만 자아 모델을 형성해나가는 로봇을 만들기도 하였다.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http://ccsl.mae.cornell.edu/research/selfmodels 이 로봇을 설계한 연구자들은 4절에서 다루

는 확장된 마음 인지 설명 모형을 그들의 이론적, 철학적 토대로 삼고 있다. 이러한 로봇 자아

의 가능성은 실용적 측면에서는 인공지능을 질적으로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이론적이고 철학

적 측면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자아라는 내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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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할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이고 더 설득력 있는 대안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필자는 인지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체화된 인지 설명이 기존 이론들의 가정과

정 반대의 가정--내적이고 정적인 표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을 가지고 있다고 해

서 그 이론들 자체가 양립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체화된 인지가 우리의 실

제적 인지과정이나 자아 개념을 보여주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

호주의나 연결주의 모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완벽한 이론인가의 문제는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근거는 실용적 측면에 있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도구

를 설계할 때 부호주의, 연결주의, 확장된 인지 모형을 필요에 따라 모두 사용한다.

이 점은 확장된 인지 이론이나 연결주의 설명 모형이 부호주의보다 더 포괄적이거나

대체 이론이라기보다는 양립 가능한 이론들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자아에 대한

설명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과 인지과학이 세 모형들에 의

해 수정되고 확장되는 자아 개념들 또한 관련되는 여러 양상이나 맥락에 따라서 함

께 사용될 수도 따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근거는 부호주의가 함축하는 단일하고 추상적인 자아 개념과 연결주의가

함축하는 구체적이고 분산된 자아 개념 또한 여러 종류의 인지 기능들이나 행위들의

포괄적 설명이 되기보다는 다소 역할 분담적이라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부호주의

의 추상적이고 단일하고 보편적인 자아 개념은 보다 추상적인 논리적 추리와 같은

개념 작업(하향적top-down 작업)이나 그에 기반한 행위의 근거를 더 잘 설명해내고, 반

면 연결주의의 구체적이고 분산된 패턴으로서의 자아 개념은 추상적인 사고과정 보

다는 구체적이고 몸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하위인지적인 지각(perception) 작용(상향

적bottom-up 작업)과 그와 관련된 행위를 더 잘 설명해낸다.

인지과학 이론가들이나 인지심리학자, 그리고 인공지능 제작자들 모두에게 지금

까지 풀기 어려운 문제는 이 두 작업, 즉 하향적 작업과 상향적 작업을 어떻게 통합하

여 효율성 있는 정보처리 시스템을 만들고 모형화하는가였다. 하나의 가능성은 두

작업 간의 상호작용의 어려움은 체화된 인지 모형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되는 부분

이 있고, 이 가능성은 구체적으로 연결주의의 발전된 모형을 통해서 구체화될 수 있

다는 것(Tani 1999)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연결주의 이론이 모든 인공지능이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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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의 세 패러다임에서 본 자아 개념|김효은 121

음을 모형화 하는데 전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세 설명간의 관계는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의견의 불일치는 마음에 대한 연구가 여러 차원의 설명을 필

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체화된 인지 설명은 지금도 발전되고 있는 설명 모형으

로서, 현재는 낮은 수준의 인지 절차는 설명하거나 모형화하기 쉽지만, 고차적 인지

절차가 어떻게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즉 역동적 체계에 의해 정보 처리되는

지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인지과학의 세 이론들이 함축하는 ‘자아’ 개

념도 인간과 자아의 본성을 구성하는 다차원적인 현상들에 구체적인 맥락에서 다르

게 적용될 것이다. ‘자아’는 역동적인 체화과정을 구성하기 쉬운 저차적 인지과정 뿐

만 아니라 고차적 인지과정으로도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체화된 인지 모

형뿐만 아니라 기존의 부호주의와 연결주의 설명 모형 모두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Ⅴ. 남은 과제

‘자아’를 어떻게 파악하고 설명할 것인가의 질문은 그 개념을 구성하는 여러 차원들

과 요소들의 복합체인만큼 여러 제반 연구들의 협동 작업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인지과학의 경험적 사례들과 대표적인 세 이론들은 어느 한 이론이 다른 이

론보다 ‘자아’에 대한 더 포괄적 설명이라기보다는 자아의 문제가 그만큼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설명들 간의 연결 지움 또한 새로운 과제가 됨을 재확

인시켜 준다.

앞서 살펴보았던 경험 과학적 연구들은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현상을 주로 그 대상

으로 하며 철학적 작업은 언어분석과 개념분석을 주된 작업으로 하므로, 경험과학과

철학 양자에 모두 그 연구대상은 비인지적 현상보다는 의식에 떠오르기 쉬운 인지적

현상들에 제한되어 왔다. 이런 사실은 자유의지에 관한 실험들이나 자아동일성에 대

한 철학자들의 전통적 기준이나 특성을 규정짓는 데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연결주의

가 자아 개념에 대해 가지는 함축에서 보았듯이, 부호주의 설명 모형이 함축하는 ‘의

식하는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나’ 역시 자아를 형성하는 데 일조한

다. 또한 최근 많은 연구 성과를 내기 시작한 뇌 과학이나 인공지능, 그리고 인지과학

의 체화된 인지 설명 모형은 기존에 환경을 배제하고 개별적 인간의 내적 인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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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만 중점을 두었던 연구 방향을 재검토할 필요성 그리고 ‘나’에 대한 것은 나의 뇌나

몸이라는 개별자의 범위를 넘어선 외부환경과 인공물, 그리고 그와의 관계 또한 고

려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기존의 마음 분석이 다루는 인지나, 의식적 자

유의지 등을 넘어서 자아를 구성하는 무의식적인 부분과 관련된 감정(르두 2005)이나

동기, 감각질은 자아를 구성하는 신체적/비신체적 측면, 그리고 의식적/무의식적 측

면, 그리고 이 논문에서 마지막으로 다루어졌던 역동적 측면이 함께 관련되는 영역

으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자아의 새로운 측면들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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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Concept of Self from the Views of Three Paradigms

HYO-EUN KIM***23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how the concept of self is constructed through three

representative models of cognitive scientific explanation: symbolism, connectionism, and recently

proposed embodiment theory. The description of the self is very diverse not only in philosophy

but also in cognitive science, and there is no consensus on how to approach the problem of self.

The lack of consent means that the problem of self is a multi-dimensional problem that cannot

be solved only by one level of explanation or theory. This study examines the empirical scientific

studies that seem to have the implication that the self can be reduced or eliminated to the

physical basis of the brain. On the other hand, This study examines the way in which information

is represented in the recent explanatory model of cognitive science. Representation in the

explanatory model of cognitive science is also important in dealing with the self, because it is

used in contexts involving agents. In conclusion, the self-concept can be extended beyond the

traditional self-basis such as the individuality of the body or the identity of the memory. In

order to elucidate the self, it is necessary to go beyond the conscious side of the existing

experiential scientific and philosophical analysis, Research is needed.

Key words: Symbolism, Connectionism, Embodiment theory, Self

논문투고:2019년 4월 15일 논문심사:2019년 5월 15일~5월 31일 게재확정:2019년 6월 7일

*** HANBAT NATIONAL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