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실업그리고 개인의행복 · 노동, 실업그리고 개인의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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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실업 그리고 개인의 행복 이승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108_ << 최근 정부가 장기구직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할 예정이라는 계획(노동 부, 2007)을 발표하자 예상대로 찬성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스스로 일자리를 그만두는 행동 선택의 이면에는 자신의 만족 이 적어도 이전보다 떨어지지 않거나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하였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반대 의견의 주요 논리이다. 이는 경제학에서 흔히 여가(leisure)와 소득(income)이 경제재(goods)로서 개인의 효용(utility)을 증대시키나 노동(labor)은 비경제재(bads)로서 효용을 감소시 킨다는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실업은 소득의 감소와 여가의 증대라 는 상쇄 효과가 작용하므로 이전보다 자신의 효용을 감소시킬 수도 있는 실 업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업이 개인의 행복(happiness)을 줄이는 것인가, 반대로 늘리는 것인가? 실업이 개인에게“중요하고도 실질적인 부정적 영향(significant and substantial negative impact)”이있음을Winkelman and Winkelman(1998)은 독일 사회경제패널(German Socio-Economic Panel) 1984�1989년 자료 분 석에서 증명하였다. 게다가 실업의 부정적 영향은 소득의 감소에 따르는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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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 실업 그리고

    개인의 행복

    이승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108_

  • >> _109

    전적인(pecuniary) 요인보다 비금전적인(non-pecuniary) 요인이 크게 작용함으로써 나타난다는 것이

    다.1) 이러한 연구 결과에 따를 때, 실업정책은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를 동시에 고려하여야

    함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개인의 심리적 상태는 구직행동을 결정하는 전략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

    며, 아울러개인의생산성에도파급효과를초래할수있기때문이다.

    ■개인의 행복이 경제학의 연구 주제로서 적절한가?

    그렇다면 철학이나 심리학의 영역이라 생각하였던 개인의 만족이나 행복에 경제학자가 관심을 가지

    게된까닭은무엇일까? 이른바‘경제학제국주의’가이제철학의영역을침범하려는것인가? 이물음에

    Frey and Stutzer(2002)가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에게 행복이란 삶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 이해이다. 이러한 이해를 전제로 할 때, 경제성장, 실업, 인플레이션 그리고 거버넌스와 같은 제

    도적 요인 등이 개인의 안녕(well-being)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경제학이 개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한미 FTA의 체결과 같이 어떤 경제정책이 시행되면, 어느 개인에게는 득을 가져오

    나 반드시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정책에는 상충(trade-off)을 수반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상충의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개인의 행복 함수(happiness functions)를 추

    정하고, 이 추정에 기초하여 피해자에게 어느 정도의 보상이 필요한지를 정책당국자가 판단할 수 있게

    된다고 Frey and Stutzer(2002)는 보았다. 말하자면, 행복 연구(happiness research)는 경제정책 결정에 유

    용한정보를제공하는의의를지닌다는것이다.2)

    1) Darity and Goldsmith(1996)에 따르면, 심리학자였던 Eisenberg and Lazarsfeld(1938)가 실업이 개인의 심리

    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하였다고 한다. Eisengberg, Phillip and Paul F.

    Lazarsfeld, “The Psychological Effects of Unemployment,”Psychological Bulletin, Vol. 35, 1938, 358~390.

    2) 이 밖에 행복 연구가 개인의 주관적 안녕(subjective well-being)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

    이 된다든가, 제도적 요인이 개인의 안녕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를 Frey and Stutzer(2002)는 들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 ■실업자는 불행한가?

    다시 얘기를 실업 문제로 돌리면, Winkelman-Winkelman(1998)의 연구 결과를 Clark(2003)이 지지하

    고 있다. Clark(2003)은 영국가계패널조사(British Household Panel Survey) 자료를 이용하여 과 같

    은 결과를 얻었다. Clark(2003)은 정신적 안녕(mental well-being)으로서 GHQ-12 측도(measure)를 이용

    하였다. GHQ-12 측도란 의학, 심리학, 사회학 분야에서 개인의 심리적 상태를 측정하는 데 널리 이용

    된 General Health Questionnaire를 말한다. 이는 긴장 상태, 의기소침, 불면증 등 12가지 항목에 대한 설

    문으로서 응답내용은 4점 척도로 이루어지며, 점수가낮을수록 좋지않은상태임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Clark(2003)은 낮은 심리적 안녕 상태를 0으로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를 1로 하여 합산하였다. 따라서

    12항목모두낮은심리적안녕상태를보이면0이되고, 최고의심리적상태에있는사람은12가된다.

    의 결과를 보면, 임금근로자와 비교할 때, 평균적으로 실업자의 심리적 안녕 상태가 낮음을 확

    인할 수 있다. 특히 안녕 상태가 낮은 사람의 비율(이는 항목별 결과를 합산한 수치가 10 미만인 경우)은

    실업자의경우에37.6%에 이른다. 하지만Clark(2003)은심리적안녕상태가좋지않을수록실업에서빨

    리 탈출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도 확인하고 있다. 이는 Clark-Oswald(1994)에서 이미 확인되었던 사

    실이다. 곧 실업이 불만족(disutility)을 초래하나 장기실업자보다는 실업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에게실업의고통이더심하다는것이다.

    최근미국과일본의패널조사결과에기초하여분석한佐野∙大竹(2007)의결과도재미를더한다. [그

    림1]은미국과일본에서2005년에동일한설문항목으로조사한내용의결과이다. 조사는“귀하는보통

    110_

  • >> _111

    어느정도행복하다고느끼십니까?”라는질문에대해서매우행복한경우를10점, 매우불행한경우를0

    점으로해서 응답하도록하였다. 결과를 보면, 실업자가미국과 일본모두 가장낮은 행복도를보이고있

    다. 이와는 달리 경제활동에 참가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높은 행복도를 보인

    다. 이결과에서여가(leisure)가실업자와비경제활동인구에게다른가치를가짐을추측해볼수있다.

    미국과 일본 모두 공무원은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이 사실이 한국의 경우에도 동

    일하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이와는 달리 양국의 경우에 상이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임금근로자를

    기준으로 하였을 때 자영업과 파트타임근로자의 경우, 미국은 임금근로자보다 높은 행복감을 보이나 일

    본은그렇지못하다. 이사실은 양국노동시장의 차이를명확히보여주는예라하겠다. 이결과를남녀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더라면, 유용한 정보를 얻었을 법도 하다. 결과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1] 취업형태별 행복도

    8.00

    7.00

    5.00

    6.00

    3.00

    4.00

    1.00

    2.00

    0.00

    자료 : 佐野∙大竹(2007).

    임금근로자 공무원 자영업 파트타임 실업자 비경제활동인구

    6.94

    6.35

    7.196.87

    7.02

    6.20

    7.28

    6.21

    5.56 5.67

    7.12

    6.68

    미국 일본

  • ■일하는 사람은 행복한가?

    그렇다면 일자리가 있는 사람의 경우에 근로시간은 고통으로 작용하는가도 궁금해진다. 글머리에서

    말하였듯이 노동은 효용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림 2]를 보면, 미국의

    경우에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당 근로시간이 증가할수록 낮은 행복감을 보인다. 일본

    의 경우도 주당 근로시간이 90시간 이하인 근로자는 유사한 성향을 보인다. 그러나 주당 근로시간이 90

    시간이상인근로자는가장높은행복감을보인다. 이들은이른바‘일중독(workaholic)’상태에빠진경우

    로추측된다.3)

    佐野∙大竹(2007)는 근로시간이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데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곧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근로시간에 따라 행복도는 어떻게 다른지를 조사하였다. [그림 3]의

    112_

  • >> _113

    결과를 보면, 미국과 일본 양국 모두 근로시간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가장 높은 행복도를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근로시간만큼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반대로 너무 많이 일하고 있다는 사람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도

    보인다. 이 연구 결과에 더하여 근로시간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의 평균 근로시간을 추정하였더라

    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근로자들이 일하고자 하는 평균 근로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이러한

    평균근로시간이양국에상이한지를살펴보는것도유용하다고보기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한가?

    2004년 현재 한국의 자살률이 OECD 회원국 가운데 3위라는 사실에서 우리의 행복지수는 결코 높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사회학이나 심리학에서 행복을 주제로 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노동경제학자나 정책 연구자의 주요한 관심 분야라 하기는 어렵다. 글머리에서 예로 든 장기구

    직자에게 필요한 지원 정책이 어떠한 성질의 것이어야 할지 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에게 어떠한 노동-

    [그림 3] 바람직한 노동시간에 따른 행복도

    8

    7

    5

    6

    3

    4

    1

    2

    010시간 이상 줄이고 싶다 1~10시간 줄이고 싶다 바꿀 필요 없다 1~10시간 늘이고 싶다 10시간 이상 늘이고 싶다

    6.726.21

    7.03

    6.44

    7.18

    6.46 6.48

    6.14

    6.73

    5.94

    미국 일본

  • 114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