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의푼화마당 필#명푼효r 적널 제 14호 · 지역주민의푼화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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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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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주민의푼화마당

    필#명푼효r적널 광명문화저널 • 2004 - 제 14호

    특집제언 - 일직동 자경리마을의 유래 / 지역속으로 - 광명의 인물 - 이신장군 만납 - 타막광멸 / 칼럼 - 학교 부적응을 위한 지역사회 프로그램

    탐방 은빛자원봉사단/푸른소극잠 / 제언 - 기형도문학상 / 기고문 - 문화적 미래성항

    ‘ 、

    광명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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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명문화저널 - 제14호

    Contents

    • 표지사진 제 13회 오리문화제 를째날 많은 시민률에게 를꺼리와 즐거용율 안걱준 오리대강과 힘께 하는광영시민거리행엉

    굉명문화저녕 제 14 호

    발행처 | 뿜문화원

    발행인 | 안수님

    편 집 인 | 이종락

    기 획 | 서두원 /십명섭 /권효선

    • 객원기자 | 양철원 /최영자/김셰경 강 수 | 윤철 연집디지인 l 그래픽신화 나금숙 발행 일 | 2004. 09

    이잭에실린내용은

    본원의 입장과 다룰 수 있습니다

    2 쭉집제언 -일직동지경리마을의 유래

    지역속으로 12 오리문화제 | 제13회 오리문화제를돌아보며 13 내가본오리문화제 14 사진으로보는제 1 3회 오리문화제

    16 시민의 소리 | 거리에서의 오리문화제|

    오랜민에즐거운하루

    차려주는 밥상을 마음껏 즐기자

    20 경기도 지역축제 예산 및 실태

    -오리문화제와 비슷한 경기도 지역축제 현황

    22 지역속으로- 광명의 인물 - 이신장군 @。---。。N뼈녕F줄

    23 지금광명에선- 광명시 최첨단 맘모스형 중앙도서관 24 칼럼 | 부적응 정소년 26 만납 | 타악 그룹 r광명」을 만나다 27 만명

    맨 FK{뼈매 뿜 #

    탐방 28 은빛자원봉사단 29 푸른소극장탐방

    30 문화원탐방-군포문화원을 찾아서

    기획 32 잊혀져 가는 것들- 판혼상제와 성년식 35 우리문화 바로알기 - 미신

    제언 36 기형도 문학상을생ζ쩨 본다

    문화체험/캘프 및 탐방기

    38 가족테마여행 -「우리가족청주나들이」

    39 2004 청소년 갯벌 환쩔캠프

    40 동굴이와 별바라기의 자연캠프

    41 문화계소식

    43 기고문 | 문화적 미래성향과 웰빙문화 44 잭과비디오

    46 이야기만화 오리대감 50 시민글마당 56 전국축제일정 57 문화원소식

    • 이 책은 광명시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특집제언 | 일직동 자정리[]빌의 유래

    ι,;~Jc E 「강(-直洞)과 ~t첼라(덤京里)의

    깅뚫많;~ •1927년 2월 24일 생

    *서면공립보통학교 졸업 -

    ~1명유래(地名由來) *국립서울대학교 사범대학졸

    *광영시지영위원

    *서면(광명시) 향토사 집필 등 다수

    、、、 ~ 팡DJ 서 곳곳이 기l멜과 도시겨|획으로 관맹의 7- / 형。ii 급속한 떤화를 겪고었는 요즘, 영작동과 샤7~ 리

    으| 7- / 영유리1, 양객-문자어| 관한저|엔의 골。 | 들어왔다. 기고해 주샌분과어렵사리 7- I-리 를 함께만들어

    관영사와 향토사어| 관-l;J1 앞은 。t으| 。 | 야기를 나누였고, 8어| 가까운 。j룬어l도 황성한 활동을 보여

    주댔다 사진을 항께 성을 수 었도록 험조를 구하였으나 부담된다고 하시셔 간단한 약랙만 샌기로

    했다. 기-급석 을은 원문 그대로 성였으며,한자어|는 한골을 딩-아서 일기 수월하케 하였고, 붙。」자료

    가빙-대하여 다샌7- / 봇향을 밝혀둔다. -떤캡자주 -

    l풀볕펠.틀댐i i~”를I햄덩.

    *조선전기에는 금천현 서면(쩌川經 |띠面)

    * 영조(핫피[[) 41년 (1765) 금천현 서면 일직리 사견우리 (-直멍 따Lkl偶里) …---與地|폐펀 *정조CT테Jl) 19년 (1795) 금천현서면 일직리 자경리 (--直볕 디쩔l묘)

    *고종 8년 (1871) 끔천현서면 일직리 자경리 (-直里 白땐믿) ---- - -京織둠誌

    *고종 8년 (1871∼2) 금천현서면 일직리 자경리 (一힘l끄 디警빛) --- - --京鍵誌

    * 고종 32년 (1895) 금천현 서면 일직리 자경리 (一直 1-1}_ 디짝변) ---- --京織둠둡

    *굉-무 3년 (1899) 끔천현 서면 일직리 자경리 (一直빛 미딴_I]:!_) - -----써멋l部몹쉽、

    *읍지지도에도 일직리 자경리 사견우리 (一直 ljl_ 白警'~- V디λ;隔먼)로 표기되어 있다

    *고종 32년 (1911) 시흥군서면 일직리 자경리 (너直 'J:!. U 京~)

    * 1914년 시흥군서면 일직리 (| l 따 I j:!_) ------조선총독부 행정구역 통폐합

    *1930년시흥군서면일직리 ( LJ 따 'JlJ ------서면향토지

    *1964년 시흥군 서면 일직리

    *1981년 광명시 일직동 소하2동으로 되었으며 우리말 지명 (J:띠名)찾기로 일직동(|]直洞)을 일직동

    |데패)으로바꿔쓰고있다

    I 02 1 굉영저닐 14호

    -?/

  • φ l 직동을 지리잭으로 보면, 동으로 안양시 만안구 석수 3동, 서로 가학동, 낚으로 안양시 만안구 박 낱달동, 북으로 설똥이 각각 위치해 있다. 자연촌으로는 구석말 · 궁말 · 덕안 · 동촌 · 모덩1이 , 벌

    동네 · 새터말 · 양진말 · 자경리 · 호봉골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호봉골에 사지 (좋址)가 있고, 선현묘로는 덕안에 이성전(李性傳, 예조좌랑), 모탱이에

    이공무(李悲않, 상신군), 호봉골에 이순신(李純信, 충신, 향토유적 제4호) · 이산휘(李山輝, 완천군)등

    이있다

    집성은자경리에 광산김씨,모탱이 호봉골에 전주이씨가비교적 많이 살고있다

    역사적으로는자경꾀 출신 이연회(李써|뺑)와일직리 (10통) 출신 이범학(李範學)은 1904년 제 2 차시

    흥농민봉기 때 이곳주동자로참여해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했다.

    자경리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자력갱생(自力更生) 마을 194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4-H 구락부

    가조직되었으며 1960년대에는새마을운동의 모체가된모범부락으로선정되었다.

    근자에 국토발전계획에 따라자경리에 서해안고속도로 일직(-直) 인터체인지 (IC)가생겨 성채산을

    동서남북으로 분단되어 원래의 모습은 찾을길 없고, 동내 앞을 흐르는 안양천의 수백년된 유목정보(柳

    木停狀)는지취를찾아볼수 없다.천변의 밤나무숲은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마을도중소기업공장들

    이 들어서 옛풍경은볼수가없다.

    고속철도 광명역의 부지 선정으로 토지 수용령에 따라 일직동 지역은 대대로 물려받아온 농토를 버리

    고집단이기주의의 아픔을겪었으며 역과주변에 가가호호취락을형성히여 그 명백을남기고있다.서

    독산을 관통하는 서독터널이 개통됨에 따라 호봉골 서독산의 환경과 생태계도 일대변혁을 겪고 있다.

    이제옛문서나자료렐을살펴봐야일직동의자취를찾을수있게되었다,

    1) 구석말

    양진말과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 친목마을 사이에 있는데 서 · 남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고 동 · 북만 트

    였다.이마을은양진말에살던초계정씨가분가하여정착한후취락이형성되었다고한다.

    외딴 구석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구석말’이라 부르며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면 일직리였다가

    1964년 시흥군 서면 일직 2리에 속했다. 이에 1981년 시제가 실시되면서 광명시 일직동으로 개칭되었

    • 으며,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소하2동 10통 1반인데 호수는 8호에 이른다

    2) 궁망(宮村)

    동 · 서 · 북이 성채산에 둘러씨여 있고 남쪽만트인 마을로 덕안과자경리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굉영저닐 14호 I 03 I

  • 특집제언 | 일직동 자경리마을의 유래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중기로 알려지고 있다. 즉 소하통 영당말에 살던 전주 이씨 익녕군 후손들

    이분가를하면서이다.

    마을유래에 대하여는자세히 알려지지 않고있으나대체로이곳토질이 박토(행土)인데다가천수답이

    많아 주민들의 생활이 빈한해 ‘궁말’ (第村)이라 했다가 ‘궁촌’ (핑’村)으로 불례기 시작했디는 설이 있

    는가 하면, 조선후기에 정조가 수원에 있는 현융원(→융능)에 참배할 때 잠시 머물다 간 곳이라 하여

    ‘궁말’ 0표村)로불린디는설이 있으나신빙성은없다.

    3) 덕안(德、품)

    호봉골과소하동 70동 미을사이에 있다. 성채산을 주산으로 남향받이 마을이따.

    ‘덕안’ 이라는 마을명칭에 대한 유래는 서독산 위에 덕안(德뿜)이라 새긴 바위가 있어 덕안이라 했다.

    또미을이 바위 아래 위치하였기에 덕암이라부르다기-후대에 덕안으로비뀌었다는설이 있다.

    덕안은남 -북으로 길게 생겨 북쪽지역인 성채산밑을웃말, 남쪽지역을아랫말이라고칭하나보통웃

    말은 덕안, 아랫말은 새터말이라고 부른다.

    I 04 I 굉명저닐 14호

  • • 덕안에 최초로 정착한 성씨는 전주 이씨 익녕군파로 알려지고 있다. 즉 소히동 영당말에 살던 익녕군

    (이치)의 후손들이 분기를 하면서 부터인데 일직동 산 12-2에 5세손인 이성전(李性j專)의 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선조대부터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지 안았나 생각된다. 미을 내에는 황룡사(黃龍좋)가 있

    고,마을입구에는장승 2개가서 있다.그리고선현묘는이성전을비롯하여 이수함(춘추관편수관),이

    점환(李漸煥, 동지중추부사)의 묘가 있다.

    덕안은시흥군서면 일직 1리였다가 1981년에 광명시 일직동으로되었다.행정상으로는광명시 소하2

    동 9통이며 호수는약 15호이다.미을에서는자경리 ’ 궁말주민틀과함께 해마다음력 10월초에 길일

    을택해성채산정상에서산신제를지낸다.

    4) 동촌(東村)

    동향받이 마을이므로 ‘동촌’ 찌잭J)이라 칭한다. 동으로 벌동네, 서로 새터말, 남으로 안양시 만안구 박

    달동친목마을,북으로호봉골인데 세거한성씨는남원 양씨로알려졌고, 이후전주최씨 · 안동권씨 둥

    이 오랫동안세거한성씨이다.

    동촌은 조선시대에눈 시흥군 서면 일직리였다가 1964년 시흥군 서면 일직 2리에 속했고, 1981년 시제

    가실시되면서 광명시 일직동으로 개칭되었다. 행정상으로는 광명시 소하2동 1C〕통 2반에 속한다.

    5) 모탱이(모테이)

    새터말 · 호봉골 · 양진말 · 구석말을 가려면 거쳐야 하는 모퉁이에 위치한 마괄이므로 ‘모탱이’ (또는

    모테이)라부른다. 이곳은조선중기에 우의정을지낸 이후원(李l힘原, 1598∼1660)의 묘를삼석산중턱

    에 쓴 후그의 후손(전주 이씨 광평대군파)들이 묘 아래인 호봉골에 살다가분가를 하면서 터를 잡고 살

    기 시작했다. 이후 남양홍씨 · 상주 이씨 둥이 세거해 현재는 8호에 이른다.

    양진말과 벌동네 사씨에 있는 모탱이 마을은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띤 일직리였다가 1964년 시흥군

    서면 일직 2리에 속했고, 1981에 시제 실시로 광명시 일직동으로 개칭되었다. 행정상으로 광명시 소히-

    2동 10통 5반이 되었다.

    마을 뒷산에는 이공무(李챈않, 尙111..(\으로 동지중추부사 역임) · 이흘(李吃, 보성군수 역임) · 이봉년

    (쭈펴年, 충좌위사직 역임) · 이종헌(李宗憲, 순강원수위관 역임) · 이효원(李孝源, 충좌위부사직 역

    • 임) 이명길(李命吉, 의금부도사역임) 등상주이씨 선현묘가있는데 이틀묘는서울응암동에 있다가 1965년에천장한것띠다.

    굉명저닐 14호 I 05 I

  • 특칩제언 | 일직동 자경리마을의 유래

    6) 벨동네

    소히동과안양시 만안구빅딜-동간도로아래로구석말 · 양진말 -동촌입구에 있다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벌동네’ 라 칭하는데 동으로는 안양시 석수 3동 히수종말처리장, 서

    로는모탱이, 남으로는 안양시 박달동 친목마을 북으로는 덕안이 있다. 이곳에 사람이 처음으로 살기 시

    직-한것은 1972년으로경북의성 출신 김창식(金昌植)이 농사를짓기 위해서였다.호수는 5호이다.

    별동네는 시흥군 서면 일직 2리였다가 1981년 시제 실시로 광명시 일직동이 된 후 행정상으로는 광명

    시 소하 2동 10통 5반에 속한다.

    7) 새터말(新꿇)

    호봉골과 모탱이 시아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호는 가학동 솔안과 경계하고 있다. 마을이 형성되기 이

    전에 대부분의 지역이 밤나무기-무성하던 곳이었는데, 안동권씨가새로터를잡고살기 시작하면서 동

    네가형성되었다고한다.

    삼석산을 주산으로 하고동 · 북만트였으며 동 -서로 길게 생긴 이 마을의 호수는 15호에 이른다. 새터

    말은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면 일직리였다가 1964년에 시흥군 서면군 일직 2리가 된 후 1981년 광명

    시 일직동으로 개편되었다. 행정상으로 광명시 소하 2동 10통 3반에 속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목축업이주업이다.

    8) 양진말(陽地便)

    새터말과구석말사이에 위치한남향받이 마을이라

    ‘양진말’ (陽地便)이라칭한다.

    예전에는 구석말 · 동촌 · 모탱

    이 · 새터말 · 호봉골을 통칭해 양

    진말이라고 불렀다. 미을의 지세는

    서북쪽은 산이고 남 · 동이 트였으

    며 동 · 서로길게 생겼다.

    오랫동안 세거한 성씨는 초져l 정 • 씨 안동 권씨 · 전주 이씨이며,

    조선시대에는 시흥군 서면 일직

    리라 했다가 1964년 시흥군 서

    I 06 I 굉영저닐 14호

  • • 이면 일직 2리에 속했고 이어 1981년 시제가 실시되면서 광명시 일직동으로 개칭되었다. 행정상으로

    는 광명시 소하 2동 10통 1반에 속하며, 호수는 30여 호이다,

    9) 자경리 (自京里, 自警里, 自澈里)

    성채산을 뒤로 하고 동 · 남 · 북

    이 환히 트인 마을로 성채산 내

    령을 따라 남 · 북으보 길게 생긴

    동향받이 마을이다. 씨곳은 광산

    김씨 직장공파(光山金民 直長公

    派)들이 처음 살기 시작한 이래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와 양녕대

    군파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

    했다.

    마을의 주산인 성채산은 광산

    김씨의 사패지로광산김씨 선현의 묘가있다. 이 마을명에 대하여 옛〈시흥읍지〉 에는자경리(自警里)

    로 광산 김씨 직장공파 족보에는 자경리(自敬里)로 기록되었으나, 현재 쓰고 있는 自京뿜는 1700년

    1800년 및 고종년대의 각 자료나 지도에도 명기되어 있으며 서님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호현고개

    를넘어 한양으로가늪길목이여서 조선시대서울의 경계로이제부터 서울이란뜻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옛 시흥군 영역이었고, 시흥군과 서울의 경계지역은 서울 한강이 되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구전에 따르면 이 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관악산이 서울의 답함f으로 ‘왕도님-방지

    화산’ (王都南方之火山)이라하여 불의 산(火山)이라재앙이 이곳까지 미치게 되므로성채산에 개가앉

    아 있는 형상을 조각하}여 관악산과 미주보게 하면 화기를 막아 마을의 무사를 기원했다고 한다. 이후부

    터 이 마을을사견우떠 (四大隔里 · 石t隔里) 또는 개가 앉아 있는 조각을 했다고 하여 좌견리 座大里)

    라 했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자경리 (自警里→自京里)로 되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에는 30여 호였으나해방직후부터 부흥되기 시작해 1948년경에눈시흥군청에 근무하던

    김희철(金熙喆)과 청년운동가 심정구(沈正求)가 주축이 되어 자경 4-H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4-

    H구락부로 알려지고 있다.

    • 자경 4-H의 정신은 계속 이어져 1960년대부터는 땀스를 이용한 원예작물이 재배되기 시작했고, 이 동조합(里洞組合)도크게발달되었으며새미을운동의모체가되기도했었다.

    서해안고속도로일책 인터체인지가마을앞에 건설되어 지금은옛정경을찾아볼수없다.

    굉명저닐 14호 I 07 I

  • 특집제언 ! 일직동 자정리마을의 유래

    10) 호봉골O꽁鳳용 · L틴111~유)

    구름산의 연봉인 삼석신-(三끼|」」)을 주산으로 서 · 남 · 북이 신-으로 에워싸여 있고 동쪽만 트인 미을로

    동 · 서가길게 생겨 서쪽지역을웃말 동쪽지역을아랫말이라고각각칭한다.

    이 마을은 효종 8년 (1657) 우의정을 지낸 이후원(李原源, 1598∼166이의 묘훨 삼석산 중턱에 쓴 후 그

    의 후손(전주 이씨 광평대군파)들이 묘 아래에 세거하면서부터 미을이 이루어졌다. 이후원은 김장생

    (金長生)의 문인으로 1623년 인조반정 후 정사공신(靖社功I표) 3동으로 완남군(完南君)에 봉해지고,

    병자호란 때는 척화(투和)를 주장하고 효종조에는 북벌계획 (北{J

  • • 산천 형승(山川形勝)편의 호암사(虎廳좋)조를 보면

    호암많嚴)

    在都之鎭山뿜호 ?頂狀始虎臨-{i펄道 漢陽定쐐詩 t볕石獅子於」t!~캘듀t四頭

    커5岩南欲使虎北異南憐 大也今縣」h十里휠獅子應 南七里휩V디t隔

    재군지진산검지절쟁장시호거전도한양정정시 매석사자어북매석견사두

    무암남욕사호북이남인 견야금현북십리 유사자암 남칠리유사견우

    호압사댐많좋)는시흥군동면 시흥리 검지산(짧호山)에 있다.

    시흥역에서 동님쪽즈로약삼시쇠분거리이고힌-우물(天井)에서 십오분거리다.

    이 호암산은원명이 검지산(默공山)으로그형상이 호렁이 같다하여 호암이란산이름이 생겼고그산

    세가호랑이 상이라고해서 李:t:Jf!Il (이태조)는검지산(顆쪼山)의 JJf!.山(호산)이 힌-양왕궁에 虎忠(호환)

    을미칠까겁을내어 虎壓춤(호압사)라하였다‘

    호압사 만으로도 불안(不安)하여 호랑이는 사지를 두려워한다는 설(說)에서 사자암細子應)을 또 세

    웠으며 남쪽 (7리)七里밖있는성채산위에 세워 네 마리의 사자상을세워 화n털 막도록하였다.

    성채산(城뽕山) 정상에 솟아있는 바위 형상을 보면 네 마리의 개모양 네 마리의 사자 형상을 한 바위들

    이 지금도 현존하고 있다.

    이 마을을 사견우리 · 석견우리 (따!*隔里 -김大隔里)라 하고 또는 좌견리 행;}(fil 개가 앉아 있는 형

    상)라고도부른다.

    관악산이 서울의 님팩산으로 왕도 남방지 화산(王都南方之火미이라하여 불씌 산(火山)이라 재앙이

    이곳까지 미치게 됨쓰로 성채산에 개가 있는 형상을 조각히여 관악산과 마주보게 하면 화기를 맞아 마

    을의무사를기원했다고한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G't1t門) 양편문전에 해태상이 있다. 조선말기 대원군- 집정시 경북궁을 중수

    할때 불이 지주일어난데자극받아대원군이 당대의 명인이세욱(李世旭)으로송배금조각케해} 궁전

    앞에 안치한 것이다. 일설에는 대원군이 경북궁 정문에 해태상을 안치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관악산 정

    상에다우물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8힘을 그 우물에다 넣어서 화기를 진압했다 하여 또 관악의 주봉인

    연주봉에 아홉 개의 방화부(防火符)를 넣은 물단지를 넣었다고 한다. 이러한 알련의 조치는 한양의 도

    • 성풍수에있어화기까등등한관악의기세로부터보호하71 위한풍수작업이라고한말의문헌인 ‘조선 근세정감’은기록하고있다.

    삼막사(三양츄) 본당에서 서쪽으로난오솔길을 5분정도걸어가면 느티나무가 있는공지에 이른다.

    지금은 매몰되어 그 자리만 있는 연못 서쪽 암벽에 삼귀암(三龜岩)이 있다. 거북 “귀” (龜j자가 글씨체

    굉영저널 14호 I 9 I

  • 특집제언 | 일직동 자경리마을의 유래

    를 달리하여 세글자가 음각되어 있어 그렇게 부른다. 이 글씨는 1920년 삼막사 주지로 있는 지운영 (池

    잉永)의 글씨라고 한다.

    @ 지-경리(「 I딴 lj!.)는성채산(싸쁨山 표고 136m)의 정상은규운암Cfit펴깜)의 돌신-으로바위의 끝이 송

    곳이나 칼날 같이 뾰족하게 서 있고, 그 형상이 네 마리의 개가 앉아 있는 모양 또는 사자 네 마리가 서

    있는모양같고,뾰략한바위가비바람소리에스스로소리를지르고놀랄만큼판소리로우는소리를낸

    디승}여 붙여진 이름이다.

    률릎뚫훨F뚫캘R 릎웰률첼릎뿔똘힘靈펠露屬l

    정상바위에음각된 첨운일 Cl따링||)은무슨뜻일까.

    우은(뿔않)은 누구일까.

    언제새겼을까.

    지금도 육안으로도 확실히 읽을 수 있고 볼 수가 있다.

    정상의 바위는 서쪽으로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지붕의 추녀 같이 솟아 있어 4∼5명이 어지간한 비도 피

    할수있는공간이 썼으며 석OJ:을받는아래쪽에상형(앓形)문자로음각되어 있으며 돌색깔이 적황색

    (써黃띤)이여서 음걱-에 붉은 물김-으로 줄을 그은 것처 럼 아름탑다.

    글자풀이를 하면 구름과 해를 우러러 쳐다본디-는 뜻인데 경주(잃州)의 첨성대(|따시!뀔)는 별자리를 보

    고천문학과지리 풍수를연구하였는데우은(많)은무슨돗으로이곳에다해와구름천문을쳐다보면 • 무슨생각을하고이 글씨를남겼을까

    경복궁(피페써’)과 핀-악산않ffh111) 호임-(J}2.Ji쌀)신-과 성채산(싸첸| lJ) 을 연관히-여 왕도와 왕조의 안위를

    걱정하였을까?그뒷을헤아랄수가없다.

    110 I 굉영저닐 14호

  • u11느二ul-7' '- E즈

    자경리(自京里) 뒷산인성채산(136m) 정상의 서쪽바위에 “廳雲日”(첨운일)이라고 (음각)陰刻된문

    자가있다 작자는 “愚隱”(우은)이라고새겨져 있다.

    글자대로풀이하면 “하늘과구름흘러가는것을우러러 본다.”는뭇이고號(호)는어리석은켠에다.

    村老(촌노)들이 전하는 바로는 조선후기 道增(도승)이 산 정상에서 도(道)를 닦으면서 새겼다고 하는

    데 시대는 200∼300년쯤 된다고 한다.

    광명시(光明市)에는 소하동땐下洞)에 뺨里(오리) 李元짧(이원익) 先生(선생)관련하여 彈琴岩(탄금

    암)이 금석문자(金石文字)로는 유일(唯一)하다. “愚隱(우은)”는 호(號) 인데 관련서적을 검토해보니 작

    자(作者)는達善(달선)이 아닌가推考(추고)할수도있을것이다.

    성채산정상의 바위꾀 모양새는사자(獅子)나개(大)들이 서있거나앉아있는모양을하고 있다. 또한

    성채산은 시홍의 호암산댐嚴山)의 남쪽 칠리(七里)에 있으며 자경리(自京里)의 지명인 사견우리(四

    *隔里), 사견화리(꽤大座里), 사견석리(四*石里) , 자경리(自警里)호칭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성채산의 정상은지끔많이 원형이 훼손되어 있다.개발과건축의 붐을타고몰지각한사람들이 건축자

    재나석축용으로사용하기 위해 마구채취해가서 원형을찾기 힘들정도가되어 가고있다.

    어떠한 연유로 해서 인지는 몰라도 바위에 陰刻(음각)된 文字가 이삼백년(2α〕∼300년)동안 保存(보

    존)되어 전래되어 오고 있는 것은 금석문자(金石文字)로서의 가치는 있다고 사료되기에 관계 당국이

    관심을가지고그가치를평가해} 향토유적으로서 보존되었으면 하고제언(提뜸)하는바이다.

    서기 2004년 7월

    성동수엮음

    굉명저닐 14호 111 1

  • 지역속으로 | 오리문와제

    제13회 오리문화제를 돌아보며 - -

    봄철 광명시의 대표적 축제인 오리문화제가 끝난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가을의 초입,광명시 곳곳에선평생학습축제를알리는홍보물이 게첨되고

    10월초엔기을의 대표적 축제인구름산예끓제가개막을준비하고있다.

    외에도크고 직은 공연과 행시들이 다가오는 까을의 정취에 흠빽 빠지도록

    시민들과만날시간을기다리고있다.

    축제는우리에게 무엇을남겨주는가? 준비로바쨌던나날들은땀속에묻혀지고,

    요란했던 행사의 순긴들은 이제 수 십장의 사진속에서만남아있다.

    관객들은 둑둑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축제의 장을 떠나지만

    무대속에 자신을 내던졌던 진행지들은 허무함속에 빠지기도 한다

    축제의 현장은또다른축제로채워지고시띤들은다음을기대하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올해 제13회 오리문화제의 흔적을 더듬으며

    기깝게는구름산예술제의 성공괴-2:005년 제14회 오리문화제의

    비상을꿈꾸어본다.

    (편집짜)

  • --

    내7~ 폴요려 권효선 | 광명문화원 간사

    하지딴오리문화제또한지역축제가갖고있는일률

    적인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 · 예술에 관한소규모 공연 및 체육 · 체험 활동

    의 행사가주를이루기 때문이다.즉그동안오리대감

    사회가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마찬가지로 문화도 변 선양과 광명문화축제라는 이분화된 컨셉으로 오리선

    하는 것이다. 우리가살고 있는 사회는 어제의 사회가

    아니며 그속에 살고 있는우리도어제의 우리가아니

    다 사회 속의 구성원인 우리가 생산해 낸 문화도 어

    제와다른오늘의 문화뜰보며 생활한다.

    관연의 오려운화처|!!

    지역문화축제는 대체로 문화제, 예술제, 시 · 군민의

    날 기념행사, 경연대회 등으로 대별되고 대부분의 지

    역축제의 특성은두가져로나쥔다.첫 번째는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축제를 복원하거나 이를 근

    거로발전시키는점과뚜번째는근래에 와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축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가

    운데 광명에는 오리문화제가 있다, 오리는 익히 알려

    진 대로광명이 낳은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 이원

    익 대감의호이다.

    ~1셔의 썩사션·| 7}조돼- 축체!

    광명의 역사를살린것이 바로오리문화제라할수있

    겠다.지역에서 배출한인물들의 위덕을기리고선양

    하는 형식이기는 하나, 이러한 요소로 지역민의 화합

    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민문화축제로까지

    활성화하였다. 이러한 꾀도로 1992년부터 시작하여

    현재 13회를 맞이하였다. 매년 5∼6월 경에 조선조의

    정승인오리 이원익의 청백리 정신을기리기 위한부

    분과 광명시민의 열린 문회욕구를 충족시키는 부분

    이복합된성격인것이다.

    하지만 근래의 지역축제 중에는 특정한 의도로 개발

    된 축제가 허다하다. 더욱이 홍보와 판매라는 상업성

    을 깔고 있는 형태 동의 타지역 축제 모습괴눈 달리

    오리문화제는 지역의 역사성과 찾아가는 시민 문화

    체험이라는의도변에서 높이 평가하고싶다.

    양의 색깔이 취약했고 규모나 예산 면에서 다수의 시

    민들이 함께즐기며참여할수있는대규모행사가부

    족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여타의 지역과 변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축제의 기획의도 및 성격과는

    동떨어진 레퍼토리로 전개되기도 했다.

    그러나수천만원에 불과한 예산으로 한지역을 대표

    하는 축제로 만들어내는데 한계는 여실히 드러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여건 속에서 오리문화제는 부족

    한 예산에 비해 시민들의 분화적 욕구에 충분히 부응

    했다는것이 일반적인평이기도하다.

    지역축제는 축제의 중심 내용을 해당 지역의 역사

    적 · 문화적 · 상업적 특성과의 관련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광명은 광명의 오리대감 선양과

    함께 지역의 특수성을 빨리 파악하고 고려하여 오리

    문화제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

    순위이다. 그리고 매년 연계되는 전문성을 찾아서 모

    든광명시민뿐만아니라타지역민들까지광명축제

    로 유도하여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필요

    하다.

    광명도분명 지리적 여건으로볼 때 다양한요소의 축

    제가 열릴 수 있으리라 본따. 전통과 현대, 놀이로서

    의 신명과 전통으로서의 정건함을 통합하여 특수성

    을 가질만한 요소를 개발하-고 동시에 광명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한 축으로 축제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는끊임없이 문화원이 연구해야할과제일 것이다.

  • 지역속으로 | 오리문와제

    ?웠l으김둔보뜯 홈ll ,,3훌I 포.121' 푼훌,l홈f I •

    77~∼∼∼∼

    I 14 I 굉엉저닐 14호

  • 와∼!! 관병에도 .거리행렬 of ∼!

    누까 저10J

    딸애울려요?

    뀐엉저닐 14호 I 15 I

  • 시믿의소리

    껴러예서의 오리문화제!

    위엽민(광영 6동) | 수원과학대 1 년 • ~ 제 명에서 매년 5월 Z음에 열리는 오리문화 이동을 한 초등학생은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점 를금년에도어김없어 볼수있었다. 잖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실제의 이원익 대감은

    올해에는 좀 색다뜬 맛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도 해보았다. 그리고 뒤

    흥겨운 거리 축제, 오리대감을 비롯한 거리행렬 를 이은 많은 악단들! 각종 전통 악기를 틀고 연주

    이었다. 몇 해 전에도 거리행렬을 한번 볼 수 있었 하는 행렬대는 북, ~구, 랭과리, 단소, 대금 등을

    지만이번은더 많은볼거리와큰규모의 행렬이 배우고 다뤄 왔던 나로서 는 그 주위를 더 맴돌았

    었다. 다. 이렇게 행사를 이끊어 가는 무리들 뒤로는

    사전에 나는 홍보책자를 통해 거리행렬을 알게 초 · 중 · 고교생 그리고 은빛봉사단의 노인분들

    되어 출발점에서의 대열정비 모습부터 철산동파 까지 자신의 몫을 다하며 뒤를 이었다. 도착지점

    보레 앞도착점까지 행렬과나란히 하였다 인 파보레 앞까지 가면서 몇몇 시민들은 거리행

    이날거리행렬에는 많은경찰들의 거리확보와교 렬의 취지나 배경을 묻기도 하였는데 그때마다

    통안전을 해주는 모습이 보였고 기마경찰대의 늠 오리문화제의 일부인데 광명지역축제로서 오리

    늠한모습부터 어련이 오리대감선발대회에서 장 이원익 대감의 위덕을 기리며 이러한 요소를 시

    원한 어린이오리대감 행렬, 동별기수단, 취타대, 민문화축제로나타내는 것이라고대략설명해주

    청소년과 성인 무홉단, 풍물패, 코스프레와 캐리 었다. 그중 어떤 분들은 행사의 의미를 나보다 더

    커쳐 피켓 등의 퍼포먼λ팀들, 그리고 각종 광명 잘 아시는 분도 계셨다. 행렬이 도착지점에 다다

    시 동아리 및 지역;주민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거리 랐을 때는 8차선을막은 넓은광장같은도로에서

    행렬이었다. 또한 구경하던 시민들까지 그 뒤를 각종행렬들이 피날레를-보여주며 마무리하였다.

    합세하여 꼬리에 꼬리를물었고시민과함께했던 김L해의 오리문화제는크고작은공연과 체험

    거리행렬은 더욱뜻깊은 행사가되지 않았나하 E즈 프로그램 속에 열린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

    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보았다. 또 그 모습은 대 다. 많은 시민들이 찾아가는 행사가 아니라 시민

    단히 웅장하면서도 멋있었다. 특히 명예경찰단의 들 앞으로 찾아옹 행사료서 나를 비롯한 많은 시

    말과 기수들은 시띤들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말 민들의 머릿속에 더 깊은 감동과 인식을 자아내

    을몇 번도보지 못한나로서도정말멋졌다. 었다.또이런 대대적인 행사는지역의 축제가아

    니면 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도 하였다. 내년에 또 • 二£리뭉 그 뒤를 인은 취딴의 노란색 정통복 이 행사를볼수있을지는모르지만다음을기약 입고 쁨는 소리τ 웅장함을 더했다. 해본다.

    오리 이원익 대감으로 분정승}여 가마 위에 타고

    I 16 I 굉명저닐 14호

  • 오랜만여! 즐꺼운 하루 ••

    김준절 | 하안주공 11 단지

    외줄타기의묘미렐보았다외줄하나에앞것을맡겨버리고아래의소리꾼과웃으며보여주는여

    유로운모습은 가히 많은사람을 긴장하게 했다. 혹시 떨어지면 어떡하나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을

    뒤로하며 한참을멍하니 쳐다보고있었다.

    지 난 5월 16일 시민들을 위한 여러 찌 공연과 체험의 축제가 있다고 해서 실내체육관을 찾았다

    | 정말다양한볼거리와놀거리 먹을거리 그리고광명시민들로가득차있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안내방송으로 축제의 장은 무르익어 갔다. 나도 보물을 찾아보겠다고 열심히 다녀보기는 했지만 어디에

    도 보물은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온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밝은 모습으로, 자기 얼굴도 그려

    보고, 말도타보고, 오퍼대감과사진도찍으며 즐거운시간들을보내고 있었다.

    ; 1 험마당이나사진찍기 퉁이 어느정도마무리 되자야외무대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태권묘기와 / ‘ | 감미로운이국젝 음악그리고무용등다채로운공연이 이어졌다.관람객으로기득찬공연장에서

    한바탕웃고나니 오달히루가어떻게 지났는지도모른채 축제에 빠져있었다.혹시나해서 마지막경품

    추첨까지 남아 보았다. 나의 기대를 아주 저버리지는 않았다. 조그마한 선물을 받았다고, 아내와 아이가

    어찌나 좋아동}는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자리를 털고

    집으로 향하는 우리 가족 뒤로 축제의 풍성함과 하루

    동안내 아이에게 보여준다양한경험들이 소중하게 느

    껴졌다

    ol 러한 축제가우리 집 가째에서 X뮤 있었으면

    | 좋겠다. 오늘도 사실은 늦잠이나 자고 있었을

    텐데 아내와아이들이 너무좋아하니 덩달아

    서 피곤함도잊어버렸다.광명시에거주하

    는 우리 가족에게 보다 더 다양한 문화들

    과 앞으로도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

    굉명저닐 1 4포 117 I

  • 시믿의소리

    차려주는 밥상슬 마음껏 즐ll자

    저 국의 상훈객들。l 꽃구경을 떠나는

    1」5월에 나와 가족들을 광명시에 붙

    들어 놓는 까닭이 두가지 있으니 하나는,

    벚꽃잎이 흩날리는 황홀경이 끝나갈 무럽

    여지없이 펼쳐지는 시민운똥장 담장아래

    믿k수터와 작은 연옷가의 꽃잔치고, 다른

    하니는 광명 문호댄。l 매년 주최히는오리

    문화제이다

    신혼살림을 광명시에서 시작해서 아이 둘

    을 낳고 타지에서 2년정도 살다가 다시 돌

    아온광명시! 예선엔어린따이틀을핑계

    로 둥한시하던 시행사에 이페는 이리저리

    날짜를 셰맞춰가며 아이들과 함께 종횡무

    진, 씩씩하고부지런하게, 될 수 있는 한 많

    이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불때우며 참여한

    다 그중에서도 오리문화제한 절대로 절대

    로놓치지 아니 놓칠수없는 최고가족축

    제다

    아이들과 이윈익 기념관도 관람하고, 충현

    서원 답사도 해보고 묘소도 참배했었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이윈익 대감은 이순

    신 장군보다더 친근한위인으로 인식되어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청백리였디는 것

    을 많이 강조해줬는데 청백리가무슨뜻인

    지는알고있겠지?

    예전의 오리 문화제를 기억해보니 시민마

    라톤 대회에 옹 기족이 신챙해서 띈 적도

    있고, 연극을 본 적도 있고, 띨요일에는 아

    침부터 하루종일 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하고 놀다가 밤에 집에 옹 적

    I 18 I 굉염저널 14포

    도있다.

    그러나무엇보다도 나의 최대 관심사는 유

    명가수가 나오는 개막공연과 야외 공연이

    다 작년 비가 엄청 내리던 날에는 양희은

    과목이 터질듯 열창하던 안치환을 만났었

    고‘ 이동병의 펀지의 김현성도, 낮고 힘있

    는 목소리의 정태춘도 모두 시민회관에서

    만났었다. 앵콜곡까지 세곡 정도만 들을

    수있는아쉬옵은마지막날실내체육관야

    외무대에서 펼치는 라이므공연에서 훨훨

    날려버렸다 광명시에서 나를 위해서 마련

    해준 잔치에 수저만 들고 맛있게 먹기만

    하면되는것이다

    일단참。1했으면 적극적으로즐겨야지 아

    이들을먼저 맨잎에 가서 앉게 한뒤에 나

    도 무대쪽으로 접근한다 양파와 자두(가

    수이름인거 알죠?)가 노래하고 춤추는것

    」 가까이서 봤고, 하쌓고 긴 손가락으로

    기타를 연주했던게 인상적이었던 야다, 실

    제로 헤드뱅잉하는걸 처음 봤던 노 브레

    인. 지긍도 생각하떤 가슴이 뛰는 윤도현

    밴드의 공연 그날 나와 아이들은 염칭나

    게 많이 모인 어린 인피들을뚫고 맨앞줄

    에서 시종일관 손가락을 내지르며 두말로

    뛰연서 같이 노래했다 뛰는 관중중에선

    내가 제일 띤장자인듯 싶었고 내 아들은

    제일 어린 것 같았다 그러나그게 무슨 대

    수이며 그게 부슨 문제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우뚱하면서도 흥에져워 엄마와

    함께 뛰는아이들과학창시절엔 절대 해보

    지 봇했던 임을 30대 후반이 되어 하고

    있는데

    강숙 | 광명 4동

    이런내가어찌오리문화제를기다리지않

    을수있겠는가.

    올해도 5월은 꽃들과 함께 아니지. 오리문

    화제와 함께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다 행

    사내용씨 횟수를거듭할수록더욱풍성해

    지고 축제의 연모를 갖춰감을 느끼게 했

    다. 올해 개막공연은 한영애, 유열과 함께

    하는 팝페라였다 시작시간 전에 갔는데도

    자리가 없어서 통로에 앉아서 보았다. 광

    명시 청소년 교향악단이 협연하고 광명시

    오페라I간이 주관하여 처음으로치러낸 개

    막공연 광명시에 시는 자부심을 갖게한

    뿌듯한 공연이었다 광명시 오페라단 정기

    공연때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영애의 카리스마, 유열의 감미로움

    도 두말할 필요없는 감동이었고. 그러나

    세곡씩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나

    를목마르게한다

    오-해 오리문화제 행사에서는 철산역 E즈 삼거리 중앙로를 차링L통제한 뒤 무 대를 설치하여 제1회 광명월드뮤직축제

    락의 발지취를 이틀동안 열렀었다 음악도

    시 광명의 미래를열어가는음악축제라고

    하는데 어떤건지 사실 감을 옷 잡고 있는

    와중에도, 출연진을 보면 이건 차려준 밥

    상 정도가 아니라 아예 뷔페다 건아들, 마

    야. 샌E페블즈 이치현 거기다가 이숭칠,

    봄여름까을겨울까지, 많아도 너무 많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얘들아 가자 내 -,

    눈으로 직접 확인 해보자.

  • 대학 친구 가족들과 우리가족 모두 8명은 이숭철도 실컷 봤을텐데 ... 70년대 대학가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그러나 아이

    일찌감치 의자에 자리잡고 앉아서 공연시 요제수상곡들과 80년대 헛트콕을 내가사 들이 잠이 드는 바람에 눈물을 머긍고 마

    작을 기다렸다. 앉아있는 인원보다 서 있 는 광명시 그것도 길거리에서 직접 듣고 야를 못 기다리고 중도에 일어섰다. 무대

    는 인원이 몇배는 많다 중앙로가 이렇게 따라 부른 날이 올 줄이야 샌드페블즈, 건 앞쪽 가끼어 빠져 나가며 보니 생각 이상

    넓고 길었구나. 무대는 너무 멀고 그나마 아들 장남들, 라이너스, 이치현과 벗님들 으로사람들이 많았다. 무대뒷쪽에는꽃과

    • 서있는 사람들에 가려져서 이승철의 모습 이 나와서 노래할때마다우린 목이 터지도 선물을 될고 가수들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은잘보이지 않았지만따라부르고열광하 록,행여 저 멀리 무대까 많았다. 멀리에서 온듯 보였다. 문득 광명

    며 무려 l시간을 이숭철 단독 콘서트에 열 지내목소리가들 ‘칫 시민만의 행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광했다 역시 라이브의 황제답다. 이어진 리도록크게 따라 ; 집에 돌아오는데 웬지모를 서운힐L이 스물

    봄여름가을겨울의 콘서트는 다소 열기는 부르고소리쳤다, iilJ 스물 올라왔다. (이게 무슨 서운힐L이지?) 가라앉았지만 고급스러운 감동의 무대였 2002년에 펼쳤던

    다. ”부라보 부라보 마이 라잎 월드컵 야외웅원* n뽑 it .~‘ ; 다음날푸대앞쪽에서 사람들사이에 끼어 광명시∼” 전때의 서 오도가도못하고서서 보았다는 아는 염

    열기가다시 마의 얘길 들어보니 사고날까조마조마했

    느껴진다. 그 단다. 또 70,80년대 그룹이 나외서 노래할

    때도우린굉병 때마다 그만하고 들어가라는 학생들 야유

    시에있었지. 에 무안했었다고 했다. 뒤에서는 젊은 그

    룹이 나오자 자리틀을 었는데’‘세대가 극

    식사를 일찍 먹고 돌아 와보니,

    세싱에나세상에 팀 나광명시가 4꽉패 생긴이래이렇게

    많은사람들이 한자리에 모띤 적이

    있었을까 싶게 많은 인파들이 무대

    앞의 스탠드석은 물론이고, 무대양 뜨거운 태양과 탁트인 바다가 있는 여름,

    옆 인도, 주변건물 옥상까지 발디딜 세상을 온통 하쌓게 뒤덮는 겨울에 비해

    틈이 없게 꽉 들어갔다. 이 상태로는 미지근히게만 여기던 봄을 나는 언제부터

    도저히 공연시작을 못한다고, 사고를 염려 인가 감딴하기 시작했다. 봄의 부드러웅,

    하는장내방송이 연신 나왔다 내 주위의 띠풋함, 여기에 오리문화제가주는 열정이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30대에서 40대의 나에게 뜨거올 여름날, 스산한 가을날, 시

    사람들로, 대부분이 。에들과 가족동반해 린 겨울달을 버틸 수 있는 힘을 모아준다.

    서 구경옹 사람들이고, 무대 가까이는 옹 오필숭광명시 1 짜잔싼싼잔 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써 봄을 그리워하

    통 10대들이다. 1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경 고 하고 있다 오리문화제를 기다리고

    찰병력이 동원되고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一호마야통는재라 이어지는 무대공연 사실 있다. 뒤겨우공연이시작됐다 알겠는데 이숭열, 버즈, 러브 후훗 조용필 오빠 나훈아 아저씨 (실제로 • 홀릭은 누구란 말인가, 앞에는 10대들의 둘은 동i'.I이라더만)가 오리문화제때 공연 이날은 전날과 달리 무대뒤로. 멀티비전이 함성으로 열광의 도가니인 반면 우리 주변 하는 그달까지 이사가지 말。}。):Al ! 설치되어 멀리에서도 가수들의 모습을 볼 의 의자들은 텅텅 비워져 갔다. 그래도 우

    수 있도록 배려해췄다. 진날도 그댔으면 린 마야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버렸다. ”나 **********

    굉명저닐 14호 I 19 I

  • 경기도 지억죽제 예산 및 싫태

    심명섭 | 광영문화원 과장

    2005년은 “경기방문의 해”다 31 개 시 군을 이루고 있는 경기도는 양과 질적인면에서 지역 축제의 많은 발

    전을 가져왔다 일칩수준의 규모 있는 행사만 하더라도 150여개가 넘어간다 광명의 지역축제는 오리 이원

    익 대감(1 54끼을중심으로문화행사를진행한다 지난5월에는오리대감과함께하는광명시민 거리행렬을통

    해서 시민들에게 화응을 얻기도 했다 많은 축제 중 이천 세계도자기축제, 과천 한미-당축제, 안성 남사당바

    우덕이축저| ,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 등 그 지역만의 고유의 특색있는 형태로 자리 잡은 경기도내의 축제

    는 일단 접어 두고, 오리문화제와 비슷한 지역축제들 중에서 지방문호}원이 주최 , 주관하는 축제들을 중심으

    로살펴보았다-

    OJ-안λ1 성‘호 운호f깨

    조선시대 실학의 중시조로 안산의 첨성촌에서

    실시구시, 경세제민,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을 연

    구하고 실천했던 성호 이익선생의 실학정신을

    계승하여 전통문헥 및 애향심을 함양하여 시민

    들에게 정주의식을 심어주고자 매년 개최하고

    있다.

    전통문화예술행시를주제로성호이익선생숭모

    제, 성호백일장, 성호시정학술대회, 청소년국악

    경연대회, 웃다리품 ox놀이경연대회, 전통민속

    놀이한마당 큰잔치, 테마가 있는 향토유적답사,

    문화기족작품전시회와 외부 대형 전통문화이벤

    트행사를진행한다.

    매년 5월에 진행되

    며,전체 예산은

    약8천만원이다

    냥양수λ1 i:t안 윤-호f꺼I

    조선 후기 대 실학자인 다산 정익h용 선생의 업적

    과 실학사상을 기리는 지역축제이다. 내용으로

    는 관내 유치원, 초 중 고교생 및 일반인을 대상

    으로 미술, 백일장, 휘호, 사진촬영대회를 개최하

    여 인재를 발굴하고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관내 유관기관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민에

    봉사하는 E낸 목민대상을 선정, 수여송써 다산

    의얼을받들고있다.

    또한 다산사상강연회를 개최하여 지역민에게 다

    산의 실학사상을 전파하고 시민축제로 승화시켜

    전통예술공연, 각종 전시회 등 다양한 장르의 문

    화예술을접할수있는기회를제공하고있다.

    매년 10월에 진행되며, 전체 예산은 대략 l억 5 천만원이소요된다.

  • 끄}수 λ1 율곡 운호f제 로칭하여 오늘에 이E끼 있다.주요행사로는민 속대동제를 비롯하여 우리가락 한마당, 우리고장

    •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며 경세가인 대현 사진전, 민속무용 및 국악공연, 향토음식 축제 등 이율곡 선생의 유덕을 추앙하고 피주시민 화합 다채로운행사로진행한다. 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피주시의 향토문회축제 로,이 행사기간동안에는 율곡선생추향제례를 매년 10월에 진행되며, 전체예산은약8천만원이다.

    비롯하여 문화행사, 경축행사, 공연예술행사, 전 ** 수웬 호f성 운호i-~n 시행사둥이 다채롭게 펼쳐져 시민들의 문화 예 술에 대한진수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개회식전 제례 행사에는 융콕 선생 시가 행렬 재 시민 상호간의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여 전래 미

    현 및 길놀이 행사,자운서원 경내에서 펼쳐지는 풍%똑을 숭상, 향토계발에 이바지하고, 수원시

    한시 백일장, 사생 대회, 농믿ι놀이, 서예, 백일장 시민의 날을 경축하는 수원 회성 문화제가 열린

    등이이어진다. 다. 수원시 전역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되 는

    수원의 대표적인 문화 예솔 행사로 정조대왕 맞

    매년 9월에 진행되며, 전체예산은 약 1억 2천만 이 전야제(경축타종, 불꽃대축제, 제등행렬 등),

    원이다. 정조대왕 화성거동 행사(능행차 연시, 융릉제

    향), 혜경궁 홍씨 회갑연 및 전통 무예 (24반무예

    Al 홍 λ1 컨성 운호f게 재연)와 더불어 레이져 및 영상쇼, 효행상 시상 등도진행되고있다.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자

    인 강희맹 (1424∼1483)선생이 세조 9년 (1463) 매년 10월에 진행되며, 전체예산은 약 6억 가까

    에 중추원부사로 진헌부사가 되어 중국 사신으 이된다

    로돌아쏘는길에 전당지에서 연꽃씨를 ** 각껑부Al 펙룡 운호f제 가지고 귀국하여 시흥시 하중동

    208번지에 소재한 관곡지에 심은

    후- 널리 퍼져 나가면서 3년 뒤인 의정부시의 문화제인 회량문화제의 회룡이라는

    세조 12년부터 이곳을연성 말은 의정부내에 회룡사가 있고 또한 태조인 이

    이라불렸다 선조의 성계에 얽힌 설화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색

    체취와횡탤이 깃든 있는 행사로는 태조 · 태똥의 왕실 행차 재현이

    연성을통해 시민 다. 약 3Km정도를 400여명의 행차 행렬이 당시

    의 애향심은물론 의 고증을 거쳐 전통의 방식대로 그대로 재현한

    • 훨뚝f f 껴| ·때'll ~ 시민들이 함께 화합 다 이외에각종전시회,국악의향연등이이어진다 ‘ ii 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 위하여 연성문화제 매년 10월에 진행되며 예산은 약 1억 8천만원이 소요된다.

    굉엉저널 14호 121 I

  • • o ‘l 깐광눈

    (1570 ∼ 1634)

    씨바 생짜r徵

    줬‘h꼈 ?∼·@{냈

    ·i

    빽흐로 | 굉輪물 +앓군 ~、j철 쫓 맺 . *‘ 、예 )~‘ ~ ~~~ 4쫓

    • 4擁

    ’----

    앙철원 | 광명시청 흐뼈|사

    였다. 먼저 이들이 도착한곳은 지산떻‘山)이었다. 이곳에서

    이괄을따라같이진군하던 일행중이신징L군을비롯한중

    군, 별장 4명은 야심한 삼경에 포를 터트려 숙영지를 이수

    라장으로 민들고 휘하의 부대원 600명을 이끌고 탈출을 하

    였다

    二;1‘안l동 도덕산은 많은 시민들이 찾는 아담한 공간이

    ) 「다. 도덕산 정상에서 보면 동으로는 관악산, 북으로는

    북한산, 서로는 부평과 소래, 남으로는 수리산이 한눈에 를

    어용다. 히-안 5딘지 방띤으포 올라기-다보면 우람 베드민턴

    장과 익야터가 나옹다. 익E수떼를 돌아 올라가면 큰 무덤 두

    곳이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네 대의 화살을 맞아 유혈이 닝자한 가운데도

    원수 장만의 진영까지 탈촬을 하였다. 이신 징L군은 이 상황

    에서 정부군의 중군이 되어 이괄 일행이 진을 치고 있는 서

    울 근교 마제에서 이괄군뀔 크게 격퇴하니, 난이 평정되고

    정국은 안정을 찾게 되었마.

    난의 평정 후 진무공신 3뜯과 전풍군(쪼뿔君)에 봉해졌다.

    이후 인조 5년 (1627)일어난 정묘호란 시에는 유흥형 등과

    함께 전진 (l'j~뻐I) 에 익숙한 경험자로 발탁되어 훈련도감제

    조에 제수되었다 이 때 화의 성립 후 청군이 철수하면서 약

    탈행위가 심해지자 정예병 3천명을 이끌고 정충신 ~군 휘

    하에서 백성을 보호하는데 최선을다하였다.

    이 묘소는 조선 중기의 무샌 전풍군 이신(李植)의 묘소이

    다 이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영유 지방에서 베풀어진 무과

    시험에 급제하여 관직을 시싹한 인물이다 그가 살았던 시

    대는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등 굴곡이

    심한시기였다.그가거친관직은평안도안주,강계판관을

    비롯 주로 평안도 지방의 수령으로 복무하였다. 그의 이효

    이 주로 나오는 시기는 인조반정 후인 1624년(인조2년) 이

    괄의난시기였다.

    --r 후 도총부도총관(정2품) 경성부사, 함경북도 병마절 -」-도시를 거쳐 황해병마절도사, 영흉부사를 역임하고

    가의대부에 봉해졌다. 1632년(인조10년)에 별세하니 정부

    에서증자헌대부에추서하였다. -

    공은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로 공의 무덤이 이 곳에 있게 환

    이유는도덕산기숨이 봉토호공의 일가에주어진봉토이기

    에 쓰게 된 것이다. 무덤 앞의 비문은 현대에 와서 후손들이

    새로세운것이고문인석이 님아있다.

    이괄의 난은 인조반정 후논꽁행상에 불만을 품은평안병사

    겸 부원수이괄이 군시를이끌고거병한사건이었다 난의

    여파로집권한지 얼마안되는r 인조로서 도성을버리고공주

    로피신하는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고, 정권은심각한위

    기를겪게되었다.

    이 당시 이신 죠L군은 이괄 휘하의 행 우후(行 慮候 ; 군영의

    부책임자)로 복무하던 중 빈란에 가담하지 않고 정부군에

    투항하니 정세를 비꾸는데 코게 기여하였다.

    당시 이괄 휘하의 군사는 약 1만명으로 평안도 영변을 출비

    도원수 장만이 주둔하고 있는 평 OJ:-을 피해# 서울로 진군하

    I 22 I 굉명저닐 14호

  • 지급굉엉에신 '* 광명시 최첨만 맘모스현 중앙도서판 lo휠 채관 예청 저 국 초|초로 최첨단 시스램을 갖춘 광명시 중앙도서관01 오는 댐 중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단쟁| 한

    L」 장이다. 중앙도서관은 광명동 산115-12에 종 193억9600만원을 들여 지상 5층 지하1증 연건면적

    9,965m’로 1,730석 규모의 최첨단시스램을 갖춘 명실상부한 맘모스형 도서관으로 2002년 1월 19일 착공, 8

    월 준공해 오는 10월 품 개관을 앞두고 있다

    도서관은 지하1층에 주차장을 비롯해 전기실, 기계실, 도서정리실, 서고, 중앙감시설, 숙직실 등이 자리 잡게

    되며 1층은 꿈나무들(〕l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어린이 열람실을 특별히 마련해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했다.

    또 1층은 사무실과 강의실 강당이 있으며, 2층은 향토자료실 연속간행물실, 휴게싫, 복사실l 3층은 인문 ·

    자연과학실, 어문학실 , 4증 전자도서관, 청소년열람실, 5층 일반열람

    실,식당매점등이있다.

    E三 히 층별로 휴게실을 마련했는가 하면 각종 자료를

    --, 복사 할 수 있는 복사실도 층별로 준비해 놓고 있

    어 이용자들이 한 곳에 몰려드는 혼잡성을 줄여 신속하

    고펀리하게 이용할수있도록했다

    광명문화의 요람 광명문화원사 한창 먼립 중* 부지선정 등 많은 어려움을 겪은 끝에 광명문호}원사 건립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광명문호}원사 건립은 지역문화의 디딩돌 역할을 하고 있는 광명문호맨의 오랜 숙웬사업으로 하안2동 시립

    도서관옆 부지에 지하1 층, 지상2층 등연건평 7백여 명의 문호}공간으로 이루어진디-

    지 난 7월22일 안젠기원제를 시작으로 착공된 광명문호맨사는 내년 3월말 완굉예정으로 다양한 문화강 | 좌와 상설 공연, 생활 속의 문화체험 등을 적극 추진하여 지역주민들의 삶의 띨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

    고있다

    굉영저닐 14호 I 23 I

  • 칸2:1 I t::::l Xi으 원A L~ 늠므 C그 I -「-「U O...L 」」

    동1-:;, 닙 ;체」L으 이πL 기」.r_-「 '0 2. 쥐얀

    • 광영시청소년문화의집 관장 | 윤철

    M고 1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 지영이(가명년 학교에서 샘| 몽사 명령을 받고 우리 호|맨|서 봉A밸동을 하

    고 있다. 지영이는 학교가 무조건 싫단다. 학교가기가 싫고 선생님이 싫고 친구들도 별로 없어서 정말 학교

    가 싫다고 한다 지쩡이는 학교 그만 두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면 핸드폰도 바꾸고, 남자 친구와 놀러 다니

    고 싶다고 말하면서 배시시 웃는 모습이 뱃되고 초롱초롱 빛나 보인다. 지영이는 이혼 가정의 자녀였으며 아버지

    와 단둘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한두번씩 무단 결석을 하니까 담임 선생님께서 자신을 이상하게 대하는 것 같아

    서 기분이 정말나빠학교으| “학”자도싫을지경이라고고백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아니지만 우리 회표뻐|는 중3 또래의 남학생 3명이 학교를 그만 두고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있

    다 이 친구들은 아침에 갈 곳이 없어서 이곳에 들러 인터넷을 하다가 슬그머니 빠져 나간다. 한 친구와 자주 대면

    하면서 여러 이야기델 나누게 되었는데 우선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단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자신의 생활을 이

    야기 해준다 “저는요 친구들과 어울려 밤에 배고프면 슈퍼마켓을 털기도 하고, 애들한테 썽도 뜯고 그랬어요 그

    동안 학교는 저에게 아픔만 준 것 같아요. 학교가면 무슨 도난 사건이나 문제가 있으면 저희들부터 닥달을 하고,

    학생부나상담실에서 불려가서 경위서나 쓰고, 반성문만쓰다보니 학교 다니고싶겠어요. 그래서 그만두었죠. 다

    른 애들도 처지가 비슷해요”

    이 처럼 학교 부적응 문제는 학생들으| 다양한 부적응 행동01 학교 생활이라는 하나으| 영역에서 나타나는 것을

    | 으|미한다 그러므로학교부적응이란학교생활의 적응과정에 있어서 욕구품만이나갈등이 심하여 이로인

    한 긴장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 학교 생활에서 이탈하려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의 학교 부적응의 원인은

    매우복합적으로나타난다. 또한다른부적응원인과결합되어심각한부적응행동을유발하기도하는것이다

    학생들의 부적응의 원인은 주로 개인적 원인 , 가정적 원인 , 학교 환경적 원인 , 지역사회적 원인 등이 있다. 특히 우

    리 나라으| 학교 교육은 획일적인 입시 중심의 교육으로 학생들의 인성과 특성을 소흘히 또는 가볍게 다휘 지면서

    무단 가출, 믿탤 남용, 자살, 소외 등 심리적 문제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학교 부적응 학생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만족스런 학교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 , 부모, 교사, 학교, 지역사회의 모든 자원

    이 학생들의 정서적 , 신체적 , 지적 능력을 개발하고 문제 해결과 학교 생흘뻐| 잘 적응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체계

    가필요한데 우리의 -면실은그렇지 못하며 매우척박한것이 사실이다.

    I 24 I 뀐엉저닐 14호

  • 브저으-*}새혹 • 1 「· 「。 a

    위한 관샘댔는 표료그랭 oJ 켈성 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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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리 나라의 학교 부적응 학생은 6만명이 훨씬 넘어서고 있다 광명시에도 다수의 부적응 학생이 나타나고

    있지만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대책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 두고 방황하는가 하면 대

    안학교로옮기기도하고형편에 따라또는 ‘알아서 긴다’ 라는표현이 적절할정도로 다른대안이 없다. 간혹시민

    단체나교육기관에서 진행따는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소수가혜택을받을뿐이다.

    현재 광명지역에는 청소년 상담실과 정소년 전용시설인 청소년문화의집이 운영되고 있JCI 만 학교 부적응 문제에

    대한사업을제대로 진행시셀 여력이나역량이 부족한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랜나현실이 어렵다고 해

    서 이 문제를방치 할수도없는일이다.

    i\I 역 사호|에서 이 문제에 대한대책을협의하고 지역적 댄으| 대안을모색하71 위해서라도교육 당국, 시당국,

    | 청소년단체 등이 모여 부적응학생들에 대한지원과관리시스템을구축하는 일이 우선적으로검토되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부적응문제는 단순히 학교에서만해결할수 있는 문제가아니고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내의 협력체계를통해 해야할일은?

    첫째, 부적응 학생의 문제를 명확히 규정하고 학생, 가족, 학교제도, 지역사회 환경에 대판 정보를 수집하여 문제

    의 원인을 시정하는 시스템01 필요하며 학교 부적응 학생에게 개별상담 집단상담 가족치료 등의 심리치료와 지

    역사회의 지원을 활용하기 뚜|해서는 지역 사회내 유관기관 간의 협조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 학생, 학교, 지역 사회의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학교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지역 사회에 인식시키고 지역사회의 요구를 학교에서는 수용하여 대책을 수립하

    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 부적응 문제는 개인의 노력 여i뻐| 따라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사회 , 지역사회가 통합적인 접끈을 통해서 문제에 접근

    해 나갈 때 학교 부적응의 원인을 발견하여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그 효과

    를높일 수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학교 적응을 잘하기 위한 지역 차원의 다~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할것이다.부적응학생가족을위한프로그램의개설과부

    적응 학생을 위한 캠프와 다~한 청소년 육섣프로그램을 계획적으로

    배치하여 청소년기를 바르게 보내고, 학창시절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이제는 지역사회가 움직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굉엉저닐 14호 I 25 I

  • E남 | 타익굉명

    Lt I i! 『~t~n~f악 그룹 ., O』을 쁜f다

    21세기 문회장품으로 빚어낸 타악 퍼포먼스!

    처음 그들의 공연을 보았을 때 독특한 악기과 음색의 조

    화, 그리고 이와 어울어친 다양한 퍼포먼스는 결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공연의 모습은 아니었다. 모든 관중들이 그

    러했다는 듯이 시선을 높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타악

    그룹r광명j은 어떻게 활동하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잇인지

    박흥식 감독을 만나보았다.

    초감각 비트 퍼포먼스『광명』

    타악퍼포먼스r광명』은 무형문화재 제20호 광명농악을 바

    탕으로 새롭게 각색한 총합적인 예술의 모습이다, 광명시

    의 많은 예술/공연단 중 새룹게 도입한 타악 장르로써 광

    명을 대표하고자 하는 프로의식과 함께 오랫동안 농악과

    전통악기를접했던친구들이하나가되어이루어져있었다

    단장 임웅수. 김독 박흥식, 기획 권정찬, 그리고 강큐탁, 박

    종수, 선소희, 함희선‘ 배건석, 김종미 등의 단원들이 r굉명」

    을 이팔어 가고 있었다, 이들은 자기역힐이 분명한 l인 l악

    기의 형태가아니라모븐악기를잘소화해 낼수있는능

    력, 그리고 악기뿐만 아니라 노래, 퍼포먼스까지 떨티플레

    이를 구사할 수 있는 집합체! 이것이 타악 퍼포먼스r광명j

    만의 매력인 것이다.매일 2∼3시간씬의 연습. 광명에서는

    연습 공간 및 시설조차 없는 설정이지만 타악이 있어 즐겁

    I 26 I 굉명저닐 14호

    권효선 | 광명문호}원간사

    기만 하다고 한다 또한 넌 간 2회씩 2박3일의 합숙을 통. 해 모든 단원들의 생활이 하나가 되어 같이 음악연출, 작

    품구성, 그리고 창의적인 연기 및 손동작 동의 세부적인

    것과 더불어 공연 관리, 스케줄 조정 동의 전체적인 모습

    까지 그려본다고 한다 늘 그러송}듯 자신의 내연과 외면의

    다짐까지도…

    2004년 2월에 창단한 『광명j은 천년의 소리, 리듬파이-,

    리듬파노라마. 소리의 환상, 팍춤, 삼오장 둥 많은 창작품

    을 통해 광명 정월대보름 축제, KTX 개통기념 축제, 명동

    축제 축하공연, LG시-원 축제공연, 환경연합 거리공연, 8월

    의 강릉 해변축제 공연까지 관내, 외로의 많은 활동을 통

    해명성을높이고있었다‘

    전통은 전통으로서의 맥블 이을 수 있도록 보존해야 되고

    창작은 새로운 음익장르 넬굴과 시대에 따라 시시각각 변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히는 것이 타악퍼포먼스r광명j이

    나아7]-o]:할 방향이다. “예술활동가로서 관중들과 함께하

    는 호홉이 좋고 박수갈채에 항상 보람을 느낌니다. 특기

    타악은 스스로 두들겨서 울리는 소리만람의 감동을 받습

    니다. 공연할 때 울리는 소리와 관중의 호흠이 하나가 될

    때 가장 뿌듯하고 많은 보람괴 즐거움을 느낌니다.” 라는

    말과 함께 현실적으로는 팀 운영 및 공간과 시설에 대한

    부족 동 열악한 환경에 상당수 많은 아쉬움을 표했다

    타악r광명』이 활동한지 엘마 안돼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한다. 딘순하게 두드리는 음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단지 두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창의적인 손동작, 창의

    적인 음악, 창의적인 퍼포먼스, 창의적인 소리의 악기를 모

    두 접복시켜서 또i::.]-픈 작품괴 시도를 통해 시대에 발맞출

    것이라는 멋진 포부와 함께 광명안의 r광명』이 아닌 대한

    민국의 대표가 될 것을 다짐히였다 더 밀리 내다보며 힘 • 차게 발구름판을 내딛는 타악 퍼포먼스 r광명j의 끝없는

    발전을기대해본다.

  • - 이종락 •

    • 。/카즐에 •

    • 톱뀔 냐는 어디에 았을까 -- -굉염저닐 14호 I 27 I

  • ------를£”Ill밑원잉i퍼E흘~a;링 훌훌톨-----

    숱삐£ 차울린뽕사r.t •

    문화저널 편집팀

    지난 2003년 광명시에서 발행한「주민만족도설문조사결과보고서」(광명시 발행/'2!.〕03년 10월)를보면 연령별로

    일반적인 광명시에 대한세대별 만족도를 볼 수 있다‘

    20대 보다는 삼대적으로 5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호감도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은 것으로 나와 있다.

    과연 그럴까하고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는데 그럴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만남이 있었다.

    이러한 마음으로 철산복지관(구 광명복지관)을 찾게 되었다.

    처음 방문을 하니 여러 어르신들이 계E뻐|서 내려오며 정겹

    게 담소를 나누시며 나까시는 광경을 목격했다 프로그램에

    죠뼈하신후귀가하는모습이였다-

    은빛 자원봉사단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

    다 1998년 상반기에 칠산2동 단독필지 경로당만을 대상으

    로 광명은빛봉사단활동이 있었고, 1999년 경기도의 민간단

    체 지원사업에 선정된 껏을 계기로 대한노인회 광명시지회

    와 철산복지관이 공동 주최히어 광명시 경로당을 대상으로

    700여명의 어르신이 참석한가운데 창단되었다

    2〔)()()년 이후에 지속적으로 활동하여 현재 400여명 가까이

    어르신들이 함께 하고 있다 노인정에서 화투놀이와 담배연

    기로 보내시던 분들이 (〕|제는 스포츠먼스나 노래교실 등을

    효뼈하며 건강도 다지고 문호}생활도 하시게 되었다.

    이 분들의 활동을 살펴 보면 방과후 교실로 한자 및 예절 지

    도, 우리 고장 문호}재인 영회원을 정기적으로 관리하기도 하

    시며 , 지역내 환경정화 활동은 물론 정소년 선도 활동, 교통

    지도, 유휴 경작지 개간 활동 등 다양한 지역내 사회 활동을

    하고 계신다 어른신들의 이러한 지역내 활동은 어느새 지역

    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 계신 것이다‘

    회원간의 친교와 서로에 대한 관심들과 더불어서 문화소비

    자어|서 생산자로 탈바꿈한 경우도 볼 수 있다 방과후 어린

    학생들에게 한문과 예절을 가르치기도 하시고, 스포츠 댄스

    강사도하신다.

    I 28 I 굉영저닐 1 4호

    많은 이들이 무관심해 하고 심지어는 귀찮다며 자식들에게

    까지 외면 당하는 소식들을 신문지S뻐|서 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세상이다. 은빛 자원봉사단의 활동은 어르신들

    에게자그마한행복을가져다주고있다.

    어르신들의 이러한 활동 뒤에는 복지관내의 숨은 일꾼들이

    있었다. 이 사업에 대한 ;i~1원금을 얻기 위한 활동이나, 경노

    당을 방문하여 바쁘게 움진인 흔적들을 여러곳에서 볼 수 있

    었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어르신들이 무슨 사심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반감도 있고. 어설퍼 하기도 히셨다고 한다‘ 혹

    시나 딴 마음으로 방문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으|아해 하셨지

    만 이런 분틀에게 꾸준히 취지를 설명하고 자원봉사 학교를

    운영하여 교육하며 , 함께 하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주자

    조금씩 변화해 가셨다고 딴다 이제는 복지관에 오지 않으면

    무료해 하시는 어르신들이 더 많아 졌다고 하니 소중한 것들

    을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제 노인분들의 활동이 [걱욱더 빛이 나고 중심이 되는 모습

    들을 기대해본다. 옛부터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 이라

    히여 칭송했던 시절을 떠 올리며 우리 지역내의 어르신들이

    더욱더 우리시에 대한 만족과 기뽑으로 더 행복해 지시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

  • -를섣셰톨를들.흩튿i:I를힘헤-

    흩l

    소측증f 톱}행F

    • 문화저널편짙팀

    변변한 문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못한 광명시에 어린이 전

    용 소극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길

    을 지나가다 포스터 게첨대를 관심있게 보는 분들이라면 푸

    른소극장의 포스터를 본 기억(〕| 있을 것이다. 영화 포스터 옆

    으로 늘 붙어 있는 친근한 포스터가 1994년 4월 이후부터 오

    늘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눈낄을 붙잡고 있다.

    전국 최초의 어린이 전용 소묶장이 우리 광명시

    에 있다. 처음 시작훌빽만해도 주위의 분들

    이 다회의적인 반응을보였지만늘한마

    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태훈 대

    표가 있다. 처음으로 얼굴을 대하니 소

    박하기 그지 없어 보이고, 사전 찍는것

    조차도쑥쓰러워하셨다

    이런 문이 이렇게 오랜세월 될안 이 자리

    를 지키고 계신다 푸른소극장은 광명에서도

    조금은 외진 곳인 철산 12단지 교육관 건물에 자리를

    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부자가 되신 것도 아니어서 직원

    들 급여 줄 걱정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더 알려진 「두부 기획」(www. idubu.co.kr)

    의 일을 병행하며 , 지방공연도 많이 소화하고 있다

    관내 어린이들의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년 16회 정도의 새

    로운 테마와 주제로 상설 공연월 진행하고 있다. 한달에 1 ∼2

    작품정도를 올린다는 얘기인데 ,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기

    획공연도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을 찾은 한어머니를

    통해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를 뀔으니 , 살아있는 사람들의 교

    훈과감동을주고싶어서 어린아이를데려 온다고했다‘ 너무

    나 많은 정보와 넘치는 문화속대|서 분별없이 섭취하고 있는

    우리 어린이들을 생각하니 이곳을 꼭 추천해 주고 싶어진

    다- 더 나아가서는 문화민프라가 부족한 우리시에서

    이러한 문화공E뻐| 조금의 지원이 가능하다면 서로

    윈윈 (Win-Win)할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한다 더불

    어서 청소년들을 위해 무료 연극지도를 해 주기로

    하셔서 우리 문호}원을 통해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왜 이 일을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젊어서 연극

    이 너무 좋아서 시작하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극장은많은시간더욱더 연극과어린이들에게 문호}적 향

    수와 소g떨 주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더불어서 소극

    IA:장의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이 공간은 라이던 공연을 하기에

    ..._,.,는 너무나 좋은 어린이 전용픽장으로 다른 기획공연사에서

    도 처녀 공연을 이곳에서 많이들 한다고 한다 같은 작품이라

    도 이곳에서 했을때 맛이 난다고 한다. 한번 공연장을 들어

    가보니 정말 아담하고 어린이들을 위해 정말 좋은 공간임을

    확인할수있었다.

    민간차원의 문화 공연들이 활성화되는

    것이 정필 중R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공연 하나가 무대에 올려지기

    위해 많은 인고와 진정한 마음을 담

    아 연습하고 또 연습하여 무대에 올

    려 지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에 앞으

    로도 더 많은 시민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고본다,

    언제 시간이 되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공연관람을 가 보자

    소박한 행복, 살아있는 삶의 모습을 배우와 함께 하며 , 교감

    을 나눠보는 것도 올 가을을 보내는데 정말 소중할 것이다 .

    • 푸른소극장공연일정

    • 9월 14일∼9월 26일 사랑에 빠진 개구리 • 10월 5일∼10월 24일 토끼와 자라 • 10월 26일∼ 11월 14일 개와고앙이

    굉영저닐 14포 I 29 I

  • -광j랩를빠힘*떨빠 김끌「죠·아서

    ;놓훌훌걷폴j맡흩'흩 현to~A-f"' 를를 •• 룰- 틀 r、

    아직까지 햇볕이 따가운 늦여름 40여분쯤 넓직한 도로를 따라 안양시내홉 지나고 군포에 들어서자

    디딩돌문화원이 위꽉하는 군포문호}센터 5층에 자리 잡은 군포문화원을 찾을 수 있었다. 주변의 아파

    트 및 주택 밀집지역으로 둘러져 있는 군포문화원에선 두 명의 여성이 반갑게 안내해 주었다.

    l 대담;이증락 사무국장 l정리;권효선 간사

    21반의 사밴를화릎 위한샌터!!

    자연과전통이 살아있는지역,그리고 703이상의 시민이 모여 문화와산업이 발전하는복합적 위성도시!’

    군포시민은 유동적이기도 하지만 군포에 뿌리와 역사를 가진 시민들도 많다. 이렌 각색의 모든 시민들이 문화

    를 향유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1994년부터 이어온 군포문화원의 다짐은 2003년 8월 문혜영 사무국

    장과 노율래 간사를 새식구로 맞이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그리고 송윤석 원장님도 의제21과 YMCA

    이사장을 지냈으며 군포문화원의 이사, 부원장에 이어 2004년 1월에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또한 원장, 부원장

    이하 25명의 문화예끓인으로 결성된 이사들과 10여개 부분의 문예단체회원으로 구성된 군포문화원은 매년

    총회와 매월 이사회활 통해 운영되어 진다.

    사무국의 새로운 분위기는 문화원 내실화라는

    2004년도의 목표아래 군포시 자체 내에서 시민이

    원하는 문화내용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의

    전통과 자연환경이 아우르는 내용으로 발걸음을 내

    딛으려하였다.

    따라서 2004년 과거의 전통과 새로운 시도가 결합 -‘ 된 크고 작은 행사와 사업이 즐비하였다. 수리산 산 -’ 신제와 청소년을 위한 휘호대회, 사생대회 , 예절교

    실, 유적답사, 성년례뚫 비롯하여 전통문화특강 및

    I 30 I 굉염저닐 1 4호

  • 조사연구/편찬 등의 문화육성기금사업을 상반기에 걸쳐 진행하였고, 지역 제려1행사들과 다양한 전시회, 유적

    답사, 각종 발간사업 등으로 하반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러한 설명과 함께 사업에 관련된 자료들을 검토하던

    - ( 훌 I IS*:'~ J! I 톨 | , 、 중 노율래 간사가 디자인한 포스터들을

    볼 수 있었다‘ 미술을 전공했던 솜씨로 빚

    어진 세련된 포스터들은 사업에 대한 이

    미지를 한 눈에 부각시켜주었고 내용의

    질을 더욱 향상시켜주는 듯한 느낌을 받

    았다.

    “젊은 여성 사무국장님|! 보람과 즐거움

    그리고 어려움띈 무엇입니까?” 라는 질

    문에 “실질적으로 문화와 관련된 모든 나

    의 생각과 기획과 진행을 순수하게 표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익단체와 연계

    되거나 수익을 위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제 자신의 한계는 연륜 및 경험 부족으로 인한 타 단체

    나 기관과의 연계성입니따. 앞으로 많이 노력하면서 한계를 극복해야겠죠.”라는 말씁과 덧붙여 군포시민의 특

    성에 맞는 강좌개발을 비롯한 발 빠르고 다양하며 특성화된 문화향유 제공이라는 포부를 내세웠다.

    문화원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는 곳이다. 5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도 지

    역향토자료가소장되어 있고,보관되어 있어 시민들의 발걸음이 계속되는곳이기도테다.

    군포문화원도 지역사의 모든 흐름에 대한 뿌리를 가지고 군포역사의 자리매김과 미패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

    는 의지가 넘쳐보였다. 지금은 공간상의 협소함으로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지만 신선한 여성파워의 군포

    문화원이 가을철에만 느낄 수 있는 풍성한 콕식과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있길 기대하며 예상보다 길어진 탐방

    을마쳤다 .

    굉명저닐 1 4호 I 31 I

  • 뿔 | 잊여져 가는 것털 - 핀포상제외성넌식

    관폰삼πW와 성 노렐 랙| .5C.5C.5C.!퍼~ •

    “국민Of ~f커Of 닮 법은 민법01~ 시람이 ~,커Of 필 법은 어l법이다.--

    예법에는 관려|, 흔례, 삼례, 제례의 네 가지로 크게 나누는데

    이것을 줄여 관혼상제라 한다. 의미는 여전히 중요한 것으

    로 우리 생활에 갚이 뿌리내리고 있지만 예전과는 달리

    그형태와진행방식이 많이 간소화된 관혼상제-성년이 되고

    혼례를 올리고 사람이 죽어서 장사를 지내는 상례와 조S뻐|

    대한 숭앙심과 추모의 뜻을 두고 기념하는 제례를 치루는

    사람의 일생을 큰 단란으로 분류한 한국 예법의 대종이다

    직티1적인 왼성, 밀l:i r작먼 직이를 실언이는 딘게.

    근대획의 따도 속에서 이느 애인기 시략적긴

    전통문찍관려I!!

    삼한시대 이전에 유래되어 조선시대까지 면면이 이어져 온

    관례는남자나이 20세와여자나이 15세가되면 딸아내렸

    던 머리를 걷어 올려 넙자는 상투를 틀고 여자는 쪽을 지는

    외형적 변화와 함께 , 예의를 지키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책

    임과 의무가 주어졌음을 인식하면서 어른으로 대접받는 의

    례였다- 옛사람들은 이 관례를 혼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

    했으며 , 미혼이더라도 관례를 마치면 완전한성인으로서의

    대우를 받고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었지만, 갓을 쓰지 못한

    자는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언사에 있어서 하대를 받곤

    하였다‘ 그러나 요사이는 딸아내린 머리도 없거니와 상투를 트는

    남자나쪽을 지는 여자도 없으니 관을 씌우는 관려|와 비녀를

    꽂는다는 계례 또한무용론이 되어버렸다 할 수 있다

    I 32 I 굉엉저닐 14호

    엣 관력}의 모습을 보직!!

    음력 정월 중의 기일을 잡아 행하였는데 , 관자는 예정일 3

    일 전에 사당에 술과 과닮을 준비하여 고하고, 당일이 되

    면 관자와 빈과 찬(빈을 뚫는 사람)과 그 밖의 슨님들이 모

    여 첫 번째로 3가지 관건을 차례로 씌우는 초가/재가/삼가

    의 의식을 행하고 두 번째로 초례라 하여 저|사에 참가할

    수 있고 친구와 사궐 수 있으며 정도를 배우며 성인으로 대

    접한다는 의미의 술을 마시는 의식을 행한다, 세 번째로 빈

    이 관지어|게 인생을 이렇께 살아라 하는 스승적 의미를 부

    여하고 부모으| 바램 , 그리고 자신의 바램이 담겨진 자를 지

    어준다 예식이 끝나면 주인이 관자를 데리고 사S뻐| 고한

    다음 부모와 존ε뻐|게 인사를 하고 빈에게 예를 행하였다

    한다

    온고"'I신의워미가담:Ji있는먼돼의섣넌려I!!

    성인으| 역할을 준비하기 뚜|한 심리학적 대기기앤|서 자아 •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과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은 여느

    때나마찬가지이다

  • 현대에 이르러서는 만 20세까 된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민

    족의 장래를 젊어질 성인으렬서 자부심과책임을 부여하는

    날로,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을「성년의 날」로 정하였고, 엣

    가족단위로 치러지던 의례오|는 달리 현재 사회단체나학교

    .에서 행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의정부, 천안, 대

    전 , 대구, 연천, 김제 등의 사회단체에서 행하는 지역단위

    의 성년의례 및 성균관대학교나 숙명여자대학교 등에서 만

    20세인 성년이 되는 학생에게 성년의 의미를 인식시켜주

    고 있다 이는 각기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간소화되고

    집단적인 형태로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의식행사로 먼저「·삼가려|」라 하여 옛 관 대신 의

    복을 차례로 갈아입음으로써 자신의 희망을 표현하고 훌륭

    한 사람이 되도록 바라는 외견상의 변화를 뜻하는 의식과

    다음으로는 전통의 의미를 살린「초려|」로 차 또는 술을 마

    시는 의식과 마지막으로는「수훈려|」라 하어 옛 자를 지어주

    는 전통과는 달리 교훈을 지머주고 맹세하는 의식 등이 전

    통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빈맞이 , 삼가례축

    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