ꡔ철학사상 - naveraudio.dn.naver.com/audio/ncr/0850_1/20111213164044312... · 20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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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

    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 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이 선 일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3

  • 편집위원 : 백종현(위원장)

    심재룡

    김남두

    김영정

    허남진

    윤선구(주간)

  • 발간사

    2002년 8월부터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육성지원 아래 우리 연

    구소의 전임연구팀이 수행하고 있는 의 1차 년도 연구결과 총

    서를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으로 엮어낸다.박사 전임연구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의

    특별연구팀은 우리 사회 문화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 동서양 주요 철학

    문헌들의 내용을 근간 개념들과 그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

    고 있다. 우리 연구팀은 이 작업의 일차적 성과물로서 이 연구총서를 펴냄

    과 아울러, 이것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여러 서양어 또는 한문으로 쓰

    여진 철학 고전의 텍스트들을 한국어 표준판본이 확보되는 대로 디지털화

    하여 상식인에서부터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이를 쉽게 활용할 수 있

    도록 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연구 작업은 오늘날의 지식정보 사회에서 철

    학이 지식 산업과 지식 경제의 토대가 되는 디지털 지식 자원을 생산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초 연구라 할 것이다.

    우리 연구팀은 장시간의 논의 과정을 거쳐 중요한 동서양의 철학 고전

    들을 선정하고 이를 전문 연구가가 나누어 맡아, 우선 각자가 분담한 저작

    의 개요를 작성하고 이어서 중심 개념들과 연관 개념들의 관계를 밝혀 개

    념 지도를 만들고, 그 틀에 맞춰 주요 개념들의 의미를 상술했다. 이 같은

    문헌 분석 작업만으로써도 대표적인 철학 저술의 독해 작업은 완료되었다

    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획 사업은 이에서 더 나아가 이 작업의 성과

    물을 디지털화된 철학 텍스트들에 접목시켜 누구나 각자의 수준과 필요에

    따라 철학 고전의 텍스트에 접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대표적인 것으로 꼽는 철학 고전들은 모두 외국어나 한문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이를 지식 자원으로서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디지털화에 앞서 현대 한국어로의 번역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

    러나 적절한 한국어 번역이 아직 없는 경우에도 원전의 사상을 이루는 개

    념 체계를 소상히 안다면 원전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

    다. 우리 연구 작업의 성과는 우선은 이를 위해 활용될 수 있을 것이고,

  • 더욱이는 장차 한국어 철학 텍스트들이 확보되면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

    기 위한 기초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공동연구 사업의 성과물이 인류 사회 문화의 교류를 증

    진시키고 한국 사회 철학 문화 향상에 작으나마 이바지하는 바 있기를 바

    란다.

    2003년 5월 15일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소장․「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 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 연구책임자

    백 종 현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이 선 일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3

  • i

    머리말

    정보화 시대가 진척되면서 책의 개념에서도 하나의 혁명이 일어났다.

    기존의 책을 대체하는 전자책의 개념이다. 전차책은 기존의 책이 갖는 공

    간성을 제거할 뿐더러 기존의 책의 내용을 개념적으로 재조직하여 독자에

    게 이해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고전 작품이 젊은이

    들에게 점점 외면되는 현 세태를 감안한다면, 고전 작품의 디지털화는 시

    급히 요청되는 과제이다. 따라서 금번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는 한국

    학술진흥재단의 도움을 받아 철학 텍스트의 기초 개념의 내용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이 책은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출간되

    었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ꡔ존재와 시간ꡕ의 주요 기초 개념을 먼저 해설한 뒤 그러고는 해설의 근거가 되는 인용문을 충실히 제시해 놓은 책이다. 언뜻

    보면 아마 기존의 다른 책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책

    이 개념에 대한 해설과 인용문을 뒤섞어 놓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용문을

    논의의 전개를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한 반면, 이 책은 독자가 먼저 개념에

    대한 해설 부분을 읽고 또 필요에 따라 인용문을 참조하여 그 개념을 더

    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리함을 제공하였다. 또한 개념의 해설에

    서도 가급적이면 필자의 주관적 이해를 배제하면서 개념 상호간의 객관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모든 해설에는 자기의 해

    석이 수반되기 마련이므로 과연 필자가 이 점에서 어느 만큼의 성공을 거

    두었는지는 자신 할 수 없다. 또한 본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는 필자에게 ꡔ존재와 시간ꡕ의 상세한 개념 지도를 작성하도록 요구하였는데, ꡔ존재와 시간ꡕ의 성격상 그런 식의 작업이 용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필자는 분명히 이 점에 일정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이 책이 전자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이 책을 만드는 데는 여러 분의 도움이 필요했다. 먼저 필자의 은사님

    이시자 ꡔ존재와 시간ꡕ표준 번역본의 역자이시기도 한 소광희 교수님에게 감사드린다. 이 책의 표준 번역본은 소광희 교수님이 번역한 ꡔ존재와 시간ꡕ(경문사, 1998)이다. 아마 이 표준 번역본이 없었다면 ꡔ존재와 시간ꡕ

  • ii

    에 대한 필자의 이해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이 책에서처럼 그 많은 인용

    문을 충실하게 제시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광희 교수님이 최근 출

    간한 ꡔ하이데거의 강의ꡕ 및 ꡔ시간의 철학적 성찰ꡕ도 필자가 ꡔ존재와 시간ꡕ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또한 서울대학교 철학사상 연구소 소장님이신 백종현 교수님에게도 감사드린다. 백종현 교

    수님의 독려와 격려가 ꡔ존재와 시간ꡕ이라는 대저(大著)의 기초 개념을 정리한 이 책을 출간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또한 그 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

    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003년 5월 12일

    한내 마을에서 약천(藥泉) 이 선 일

  • iii

    목차

    제1부 하이데거와 ꡔ존재와 시간ꡕ ·························································· 1

    제2부 개념 체계도 ···················································································· 5

    제3부 ꡔ존재와 시간ꡕ의 주요 개념 분석 ··············································· 61. 존재물음 ······························································································ 6

    1) 존재 ······························································································ 7

    2) 존재물음의 근본 목표 ······························································· 10

    3) 존재물음의 필요성 ····································································· 13

    4) 존재물음의 형식적 구조 ···························································· 21

    5) 존재물음의 우위 ········································································ 26

    (1) 존재물음의 존재론적 우위 ··················································· 27

    (2) 존재물음의 존재자적 우위 ··················································· 31

    6) 존재물음의 방법 ········································································ 39

    2. 세계 ·································································································· 47

    1) 세계 일반의 세계성의 이념 ······················································ 48

    (1) 세계와 세계성 ······································································· 48

    (2) 세계와 자연 ·········································································· 49

    2) 환경 세계 안에서 만나는 존재자의 존재 ································· 52

    (1) 배려 ······················································································· 52

    (2) 도구 ······················································································· 54

    3) 용재자(用在者)의 세계 적합성 ·················································· 60

    4) 세계의 세계성 ············································································ 64

    (1) 적소성 ··················································································· 64

    (2) 유의의성 ················································································ 68

    5) 공간성 ························································································· 73

  • iv

    (1) 용재자의 공간성 ··································································· 74

    (2) 현존재의 공간성 ··································································· 78

    (3) 공간명도 ················································································ 85

    3. 세인(世人) ························································································ 88

    1) 타자 ···························································································· 90

    2) 공동 존재 ··················································································· 92

    (1) 현존재의 실존론적 규정으로서의 공동 존재 ······················ 93

    (2) 고려 ······················································································· 95

    3) 실존범주로서의 세인 ································································· 99

    4. 내-존재 ·························································································· 105

    1) 개시성 ······················································································ 107

    (1) 정상성(情狀性) ··································································· 109

    (2) 이해 ····················································································· 120

    (3) 말 ························································································ 139

    2) 일상적 개시성 ·········································································· 146

    (1) 빈 말 ··················································································· 147

    (2) 호기심 ················································································· 148

    (3) 애매성 ················································································· 150

    (4) 퇴락 ····················································································· 152

    5. 현존재의 존재: 마음씀 ·································································· 157

    1) 불안 ·························································································· 157

    2) 마음씀 ······················································································ 163

    3) 실재성 ······················································································ 167

    4) 진리 ·························································································· 174

    (1) 전통적 진리 개념: 일치 ····················································· 174

    (2) 전통적 진리 개념의 존재론적 기초 ·································· 177

    (3) 진리의 근원적 현상 ··························································· 181

    (4) 진리의 존재양식과 진리를 전제함 ···································· 186

    6. 현존재의 본래적 전체 존재 가능: 죽음과 양심 ··························· 189

  • v

    1) 죽음 ·························································································· 190

    (1) 죽음의 경험 불가능성 ························································ 190

    (2) 죽음에 이르는 존재 ··························································· 193

    (3) 죽음의 실존론적 존재론적 구조 ········································ 199

    (4) 죽음에 이르는 비본래적 존재 ··········································· 203

    (5) 죽음에 이르는 본래적 존재: 선구 ····································· 206

    2) 양심 ·························································································· 212

    (1) 부름 ····················································································· 213

    (2) 책임 ····················································································· 220

    (3) 결의성 ················································································· 232

    3) 선구적 결의성 ·········································································· 238

    7. 현존재의 존재의 의미: 시간성 ······················································ 242

    1) 마음씀의 존재론적 의미로서의 시간성 ·································· 244

    2) 본래적 시간성과 비본래적 시간성 ·········································· 255

    (1) 개시성 일반의 시간성 ························································ 257

    (2) 세계-내-존재의 시간성 ····················································· 273

    (3) 현존재적 공간성의 시간성 ················································· 286

    3) 통속적 시간 ············································································· 289

    (1) 현존재의 시간성의 일부(日附) 가능성 ······························ 289

    (2) 공공적 시간과 세계시간 ···················································· 294

    (3) 통속적 시간개념 발생 ························································ 301

    참고문헌 ································································································· 309

  • vi

    일러두기

    1. 이 책의 표준판본은 Martin Heidegger(1889-1976), Sein und

    Zeit, (Max Niemeyer, 비개정 제7판, 1953)이다.

    2. 이 책의 표준 영역본은 Being and Time, (John Macquarrie/

    Edward Robinson 공역, Blackwell, 2001)이다.

    3. 이 책의 우리말 표준 판본은 ꡔ존재와 시간ꡕ(소광희 역, 경문사, 1998)이다.

    4. 이 책에서 제시된 읽기자료는 우리말 표준판본에서 따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어가 한자(漢字)이기에 독자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경우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경우에 따라 그 번역어에 해당

    하는 한자를 [ ] 안에 보충해 넣었다. 그밖에도 보충할 사항은 [ ]

    를 이용하였다.

    5. 이 책은 각주를 모두 본문 안에 넣었다. 또 하이데거의 저작을 인용

    하는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을 생략했고, 나머지 저자의 경우에는 이

    름을 명기했다.

    6. 이 책에서 ꡔ존재와 시간ꡕ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 ) 안에 표준 판본과 우리말 표준 판본의 쪽수를 병기(倂記)하였다. 순서상 앞의 숫자

    가 표준 판본의 쪽수이고 뒤의 것이 우리말 표준판본의 쪽수이다.

  • 하이데거와 ꡔ존재와 시간ꡕ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이성 일변도로

    치닫던 서구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뒤흔든 20세기 철학의 거장이다. 1889

    년 9월 26일 독일 동남부 슈바르츠발트의 한 작은 마을 메스키르히에서

    카톨릭 교회지기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종교에 관심을 보여

    190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신학부에 입학한다. 그러나 2년 후 그는 심장

    에 관련된 질병으로 인해 그토록 열망하던 신학 공부를 포기하고 철학연구

    에 전념한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시절 하이데거의 사상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후설의 ꡔ논리연구ꡕ였다. 박사학위 논문인 ꡔ심리주의의 판단론ꡕ, 교수자격 취득논문인 ꡔ둔스 스코투스의 범주론과 의미론ꡕ은 물론, 초기의 대표작인 ꡔ존재와 시간ꡕ및 ꡔ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ꡕ도 기본적으로는 현상학적 시각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었다. 따라서 하이데거가 당시에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전문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지니고는 있었으

    나 그의 대한 세평은 후설의 추종자 정도였다.

    그러나 1927년 ꡔ존재와 시간ꡕ의 출판 이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 작품의 성과는 실로 대단했다. 그는 즉각 세인의 주목을 받았을 뿐더러 무

    엇보다도 20세기 철학자 중 아무도 대적하지 못할 만큼 비상한 영향을 끼

    치게 되었다. 그의 제자인 한나 아렌트(H. Arendt)는 하이데거의 사유의

    폭풍을 플라톤(Platon)에 비유할 정도였고, 이미 그의 생시(生時)에도 세

    계 철학계는 그를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주목하게 되었다.

    ꡔ존재와 시간ꡕ은 일거에 하이데거를 20세기 철학의 거장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이 작품은 너무도 비범했다. 이 작품은 고전적 인식론에서 논의되던 일

    련의 낡은 물음들을 자신의 사유 세계 안에서 새롭게 걸러 내었을 뿐 아

    니라, 신칸트학파로부터 가치철학에 이르는 당대의 철학적 문제를 모두

    껍데기로 처리했고, 번개 불처럼 철학의 아성들에게 철퇴를 내리쳐 플라

    톤으로부터 니체에 이르는 형이상학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더욱이 언어마

    저 독특하였기에, 이 작품은 동시대인들에게는 처음부터 생소하게 여겨졌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2

    다. 이미 20년간의 역사를 지닌 채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했던 현

    상학도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을 헌정받은 후설(Husserl)이 놀라움을 넘

    어선 실망감을 토로할 정도로 하이데거는 이미 후설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젊은 시절의 하이데거는 벌써 자신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언어로

    새로운 사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면 ꡔ존재와 시간ꡕ이 몰고 온 폭풍의 비밀은 무엇인가? 폭풍의 비밀은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이다. 언뜻 보면 간단한 듯한 이 물음이 우리

    를 인간 존재의 심연으로 안내한다.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을 제기하겠노라고 나선다면, 그것은 가히 놀

    랄 만한 일이다. 아무도 이 물음을 실존론적으로 해석한 예가 없기 때문이

    다. 물론 이 물음이 결코 새롭지 않다는 점을 하이데거도 솔직히 인정한

    다.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의 당혹감을 설파하는 플라톤의 ꡔ소피스트 대화록ꡕ은 이 물음이 형이상학 자체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하이데거는 우리를 철학적 전통에 얽매려

    고 했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이데거는 전통에 도전하는

    철학자이다. 그는 전통을 철저히 사유하여 전통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러

    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는 형이상학적 전통의 배후로 되돌아가 형이상학을

    가능하게 했던 근원적 영역에 대해 물음을 개진한다. 그러고는 그는 칠흑

    같은 어두움에 파묻혀 있던 존재의 의미를 우리에게 드러낸다. 존재물음

    은 궁극적으로는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한 비판적 대결이 된다.

    ꡔ존재와 시간ꡕ에서의 존재물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론으로 수행된다. 인간의 존재이해를 실마리로 하여 인간의 실존론적

    구조를 해명함으로써 존재 일반의 의미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ꡔ존재와 시간ꡕ의 근본목표이다. 이런 논의 과정에서 전통적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적 문제인 인간, 세계, 시간, 존재에 대한 물음이 이제껏 아무도 이르지 못한

    새로운 토대에 놓일 뿐더러, 종래 윤리학이나 종교의 차원에서 논의되던

    죽음과 양심의 문제가 새롭게 실존론적으로 정초된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관심은 단순히 인간의 실존론적 구조에 대한 이론적 천착만이 아니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일상적 세계에로 퇴락한 인간을 끄집어내어 가장 적

    나라한 본래적 자기 앞에 세워 놓고자 한다. 선구적 결의성을 통해 인간은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3

    비로소 자신의 허무한 실존을 떠맡아 본래적 자기로 변양한다. 이로써 인

    간은 전통 속에 매몰된 세인(世人)으로부터 벗어나 어떤 개념을 가지고 어

    떻게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지를 각성하게 된다. 아마도 당시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하이데거에게 열광한 이유는 여기에 있으리라.

    존재물음은 한 민족의 정신적 운명을 저울질하는 사건이다. 아마도 많

    은 이들은 이를 과장으로 여길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민족이 존재를 어떻

    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민족의 역사적 삶이 펼쳐진다면, 존재물음은, 비

    록 지극히 멀고 또한 지극히 간접적으로나마, 한 민족의 역사적 결단과 깊

    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을 제기

    했던 것이며, 이로써 형이상학적 위기에 처한 인간을 구제하기 위한 돌파

    구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아마도 바로 여기에 하이데거 사유의

    위대함이 있지 않을런지.

    그런데 기존의 ꡔ존재와 시간ꡕ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원래 이 작품을 두 부로 계획했었다. 제Ⅰ부는 ‘현존재를 시간성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시간을 존재에 대한 물음의 초월론적 지평으로서 해석한다’는

    주제 아래, 제Ⅰ편 ‘현존재의 예비적 기초분석’, 제Ⅱ편 ‘현존재와 시간성’,

    제Ⅲ편 ‘시간과 존재’를 기술할 예정이었다. 또 제Ⅱ부는 ‘존재시간성의 문

    제를 실마리로 한 존재론 역사의 현상학적 해체의 개요’라는 주제 아래,

    제Ⅰ편 ‘존재 시간성의 문제의 전(前) 단계로서의 칸트의 도식론과 시간이

    론’, 제Ⅱ편 ‘데카르트의 >cogito sumres cogitans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4

    수록되어 발표되었고, 제Ⅱ부 제Ⅰ편 ‘칸트의 도식론과 시간이론’은 단행

    본ꡔ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ꡕ(1929)로 발표되었으며, 또한 제Ⅱ편 ‘데카르트의 >cogito sum<’ 및 제Ⅲ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이론’은 ꡔ존재와 시간ꡕ 제3장 ‘세계의 세계성’ 및 81절에서 각각 이미 상술되었다. 또한 ‘시간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해서 존재론의 역사를 해체한다’는 과제는 비

    단 몇 저서에만 국한되지 않고 하이데거의 많은 저술에서 거론된다.

    ꡔ존재와 시간ꡕ 이후에도 하이데거는 철학사에 획기적인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ꡔ철학에의 기여ꡕ, ꡔ이정표ꡕ, ꡔ언어로의 도상ꡕ 등이 그의 후기 대표작이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그의 철학적 관건은 우리 시대를 정초

    하는 존재의 숨겨진 의미를 사유함으로써 현대 과학 기술문명을 대신할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열어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1933년 프라

    이부르크 대학의 총창에 취임함으로써 한 때 정치적 오점을 남기긴 바도

    있다. 그러나 그가 1976년 자신의 고향인 메스키르히에 조용히 잠든 이

    후에도 계속 발간되고 있는 100여권의 작품은 그의 존재사유가 오늘의

    우리에게 끼치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현대 철학의 과제는 하

    이데거 철학의 재해석이라 할 정도로, 지금도 우리는 하이데거와 더불어

    ‘숲길’을 따라 존재의 ‘이정표’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5

    개념 체계도

    개시성정상성

    (피투성) 말

    이해

    (기투)

    본래적 개시성정상성

    (불안)

    묵언

    (결의성)

    이해

    (선구)

    비본래적 개시성정상성

    (두려움)

    퇴락

    (빈 말)

    (피해석성)

    (도피)

    마음씀피투적 현사실성(이미 … 내에 있음)

    퇴락(…에 몰입해 있음)

    실존성(자기를 앞지름)

    시간성기존성

    (양심)현재

    장래

    (죽음)

    본래적 시간성 회복 순간 선구

    비본래적 시간성망각

    (상기)현전화

    예기

    (기대)

    (통속적 시간) (과거) (현재) (미래)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6

    ꡔ존재와 시간ꡕ의 주요 개념 분석1. 존재물음

    (독: Seinsfrage, 영: The question of Being)

    신에게 우리는 너무 늦게 왔고

    존재에게는 너무 일찍 왔네.

    존재에서 비롯된 시(詩)가 인간이라네.

    하나의 별을 향해 다가서는 것, 단지 이 것 뿐이네.

    사유는 마치 하나의 별처럼

    일찍이 세상의 하늘에 걸려 있는

    하나의 사상일 뿐이라네(ꡔ사유의 경험으로부터ꡕ, 7쪽).

    길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나간다. 물론 도중에 장애물이 있으면 우회

    하기도 하지만, 길은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의 목적지만을 갖는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사유의 길에도 해당한다. 그의 사유의 길은 비록 그때마다의

    필요에 따라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 존재의 진리에 관한 물음, 존재의

    장소에 관한 물음으로 전개되지만, 이 세 가지의 물음들은 존재에 이르는

    하나의 도상에 있다. 존재야말로 그의 사유의 길이 찾아가는 하나의 별이

    된다.

    하이데거의 사유를 꿰뚫는 하나의 사상(思想)은 존재에 관한 물음이다.

    그의 초기의 대표작인 ꡔ존재와 시간ꡕ은 그의 사유의 사태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밝혀준다. 이 작품의 제목이 시사하듯, 그의 관심은 존재“와” 시간

    의 공속적 관계를 통해, 다시 말해 시간을 근거로 하여 존재의 의미를 해

    명하려는 것이다. 존재가 하나의 별이라면, 시간은 별을 찾아가는 지평이

    된다.

    이제 우리는 하이데거와 더불어 존재“와” 시간의 모험을 감행하려 한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7

    다. 그런데 아무리 모험이라 해도 적막강산 안에서 감행될 수는 없다. 모

    험을 위해서는 몇 가지의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존재가 무

    엇인가?”에 대한 선행적 이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우리가 찾아가는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마저 없다면, 우리는 필경 어둠 속

    을 헤맬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어슴푸레 나

    마 가지고 있다.

    1) 존재

    (한: 存在, 독: Sein, 영: Being)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는 온갖 종류의 존재자와 더불어 살고 있

    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ꡔ존재와 시간ꡕ이란 제목이 붙은 책, 또 그 책의 번역서, 컴퓨터와 독서 보조대, 책상과 의자, 이 모든 것은 물론이고, 저

    문 밖에서 장난감을 갖고 노는 나의 아이, 이렇게 사유하는 나 자신, 또한

    나 자신을 구성하는 근본적 요소라고 내가 믿고 있는 영혼과 육체, 그리고

    이 뿐 아니라 항상 나의 사유 속에서 과연 존재하는가라고 의심받고 있는

    신까지도 분명히 존재자이다.

    앞서 열거한 존재자들은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존재자라고 명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모든

    것들을 굳이 존재자라고 부르는가? 즉 우리가 존재자라고 부르는 것의 공

    통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들은 존재하고 있기에, 나는 그것들을

    존재자라고 부른다. 즉 존재한다 혹은 존재란 우리가 존재자를 비로소 존

    재자로서 만날 수 있는 가능 근거이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자면,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규정하는 그것이다.”(6, 11) 즉 어떤 하나의 존재자

    에 대해 ‘그것이 있다’ 혹은 ‘그것은 … 이다’라고 말하기 이전, 즉 하나의

    존재자에 대해 ‘있음’과 ‘임’이라는 술어를 덧붙이기 이전, 나와 존재자와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선(先)술어적 조건이 존재이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존

    재가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가능하게 하는 생성의 원인이 아님은 물론이다.

    생성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창조주 역시 하나의 존재자에 불과하니까.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8

    존재는 존재자와 구별된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존재가 존재자와 떨

    어져 있는 어떤 것으로 사유되어서는 않된다. 존재는 존재자가 비로소 존

    재자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해의 기반’이다. 그러니까 “존재는 언제

    나 존재자의 존재이다.”(6, 12) 실로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는 서로 하나

    가 아니면서 둘도 아닌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라고나 할까? 여하튼

    존재는 존재자의 존재로서 존재자를 비로소 존재자로서 만날 수 있는 선

    술어적 조건이므로, 우리가 어떤 존재이해를 갖느냐에 따라 존재자에 대

    한 해석은 그 내용을 달리한다. 존재이해야말로 우리가 존재자를 비로소

    존재자로서 만날 수 있는 가능 근거가 된다.

    그런데 아마도 우리의 존재이해는 그 자체가 불투명한 것일지도 모른

    다. 존재이해는 선술어적 차원에서 전개된다. 따라서 존재이해는 의식에

    의해 개념적으로 명료화되기 이전의 막연한 이해에 해당한다. 더욱이 존

    재이해는 우리에게 의식적으로 반성되지도 않는다. 분명히 어떤 존재이해

    를 근거로 우리는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만나고 있으나, 우리는 존재자에

    게만 관심을 쏟을 뿐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는 되돌아보지 않으며, 솔직

    히 말하자면, 이러한 차원의 존재이해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건조차를 망

    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 물음 앞에서 당혹해 한다. 그

    러나 존재이해를 통해 존재자를 비로소 존재자로서 만나 존재자의 한 복

    판에서 존재자에게 의존한 채 삶을 영위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때, 이

    러한 당혹감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런지?

    [읽기자료]

    우리는 그러한 것을 >존재있다있어 왔다있게 될 것이다그것은 있다그것은 있다있다있다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9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존재존재존재존재존재존재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10

    자를 그 자체로서 규정해 주는 그 무엇에 관해 탐구한다. 이 규정자는 자

    신의 규정활동의 방식에 맞게 인식되어 이러 이러한 것으로서 해석되어야

    한다. 즉 개념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나 존재자의 본질적 규정성을 존재를

    통해 개념파악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규정자 자신이 충분히 파악될 수 있어

    야 한다. 즉 먼저 존재자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존재 그 자체가 미리

    개념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존재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이 놓여 있다.: 저 물음에서 이미 선이해된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ꡔ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ꡕ, 222-223쪽)

    2) 존재물음의 근본 목표

    “존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를 당혹에 빠뜨린다. 당혹에서 벗

    어나는 첩경은 먼저 이 물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

    는 ꡔ존재와 시간ꡕ의 서언에서 존재물음의 근본 목표를 제시한다. 이 서언에서 특히 우리의 이목을 끄는 것은 플라톤 ꡔ소피스트ꡕ편(244a)에서 논의된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ΥιΥαντομακία περὶ τη̃ς οὐσίας)에 관한 인용문이다. ꡔ존재와 시간ꡕ 1절에서도 하이데거는 존재물음이 망각 속에 빠져 버린 세태를 비판한 뒤, 거인족의 싸움을 언급한다.

    거인족의 싸움에서 문제가 되는 존재는 우시아(ousia)이다. 우시아는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와는 다른 것이다.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가

    인간과 존재자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선술어적 조건임에 반해, 우시

    아는 본래적 존재자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를 둘러

    싼 거인들의 싸움”은, 참된 존재자를 가시적(可視的) 물체에 한정하려는

    거인족(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 원자론자, 유물론자를 비유함)과 참된 존

    재자를 비가시적인 형상에서 구하려는 올림포스 신들(피타고라스학파, 엘

    레아 학파를 상징함)간의 싸움이지,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싸움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ꡔ소피스트ꡕ 편의 구절은 존재물음의 길을 열어 놓기 위한 장식물에 불과한가? 우리는 이러한 물음 앞에서 머뭇거린다. 그러나 ꡔ소피스트ꡕ편의 구절은 결코 장식물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즉 본래적 존재자)를 둘러싼 거인족과 올림푸스 신들의 싸움을 통해 하이데거는 자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11

    신이 거론하는 존재의 의미를 해명할 단서를 마련한다.

    우시아란 근본적으로는, 직접적이고도 또한 항상 우리 앞에 현재하는 소

    유물을 의미한다. 우시아가 “직접적이고도 또한 항상 현재하는 소유물”을

    의미한다면, 우리가 우시아를 비로소 우시아로서 만날 수 있는 선술어적

    조건으로서의 존재는 “가까이 다가와 있는 가운데 지속함”을 의미하며, 따

    라서 존재는 “지속적인 지금”을 향해, 즉 시간을 향해 기투된 채 이해되고

    있다. 이처럼 본래적 존재자를 둘러싼 싸움에서는, 거인족과 올림푸스 신들

    이 의식했건 안 했건, 이미 존재가 시간을 근거로 이해된다. 그래서 하이데

    거는 “직접적인 존재이해는 존재를 시간을 향해 근원적이고도 자명하게 기

    투함 안에 전적으로 보유되어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시간을 향한 존재의 기투는 근원적이고도 자명한 기투이다. 이러한 기

    투를 통해 그들은 우시아를 비로소 우시아로서 만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러한 기투는 근원적 기투이다. 또한 솔직히 말해 이러한 기투가 그들의 사

    유 속에서 진행됨을 그들이 모를 정도였기에, 이러한 기투는 자명한 기투

    가 된다.

    그런데 시간을 향한 존재의 기투는 거인족의 싸움에만 한정되지 않는

    다. 오히려 이러한 기투는 전통적 형이상학의 존재이해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내적이고도 은밀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전통적 형이상학이 존재자를

    초시간적 존재자, 시간적 존재자, 무시간적 존재자로 분할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이 ꡔ존재와 시간ꡕ의 첫 머리에 화두로 등장한 까닭을 알게 되었다. 하이데거가 이러한 화두를 통해

    보고자 한 것은 존재와 시간의 공속적 관계였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물음

    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더 근원적으로 “이처럼 존재를 시

    간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또한 자명하게 이해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ꡔ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ꡕ, 241쪽)라고 반문한다. 그는 존재와 시간의 공속적 관계의 근거에 관한 물음을 제기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그 이후의 형이상학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논구된 시

    간의 본질은 이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준 바 없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

    는 시간의 “존재”를 “지금”으로부터 규정함으로써 존재“와” 시간이라는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12

    철학의 근본적 사태를 근원적으로 해명할 기회를 외면했다.

    하이데거의 시각에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의 근원적 본질을 놓

    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의 “존재”를 “지금”을 근거로 규정하나,

    “지금”이란 하이데거가 그리는 근원적 시간으로부터 파생된 하나의 시간

    성격에 불과하다. 즉 “지금”이란 ‘[근원적] 시간 안에 그때마다 또한 지속

    적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는’ 하나의 시간성격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가 존재“와” 시간의 공속이라는 철학의 근본적 사태를 놓치고 있음은 당

    연할 뿐더러,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ꡔ존재와 시간ꡕ이 추구하는 존재물음, 즉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근본 목표도 알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바

    로 시간의 근원적 본질을 해명함으로써 존재“와” 시간의 공속 관계를 근

    원적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아니 근원적 시간을 지평으로 하여 존재를 찾

    아 나서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에서 비롯된 시(詩)”인 인간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니라.

    [읽기자료]

    왜냐 하면 존재한다는 표현을 쓸 때 여러분이 본래 의미하려는 바를 여

    러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전에

    는 그것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당혹감에 빠져 있

    다.(플라톤, ꡔ소피스트ꡕ, 244a) 오늘날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의 본래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존

    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새롭게 제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늘날도 여

    전히 존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당혹감에만 빠져 있는가? 그렇지도

    않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 물음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다시 일깨

    우는 것이 필요하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것

    이 아래 논문의 의도이다. 시간을 모든 존재이해 일반의 가능한 지평으로

    서 해석하는 것은 이 논문의 당면 목표이다.(1, 1)

    우시아(οὐσία) 혹은 파루시아(παρουσία)로서의 본래적 존재자는 근본적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음(Anwesen)”, 즉 직접적이고도 또한 항상 현재

    하는 소유물, 다시 말해 “재산”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이해된다. 그렇다면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13

    이러한 사실에서는 무엇이 중요한가?

    이러한 기투가 누설하는 바는 이렇다. 즉 존재는 가까이 다가와 있는

    가운데 지속함(Beständigkeit in Anwesenheit)을 의미한다.

    이렇게, 즉 보다 정확히 말해, 존재에 대한 자발적 이해 안에는 시간규

    정들이 모여들지 않는가? 직접적인 존재이해는 존재를 시간을 향해 근원

    적이고도 자명하게 기투함 안에 전적으로 보유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존재를 둘러싼 모든 싸움은 처음부터 시간의 지평 안에서 움

    직이지 않는가?(ꡔ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ꡕ, 240쪽)

    우리가 존재자를 분할하면서, 즉 존재자를 그것의 존재를 고려하여 구

    별하면서, “자연스레” 존재자를 시간적 존재자, 무시간적 존재자, 초시간

    적 존재자로서 규정한다라는 사실은 단지 다소간 성공적이었던 혹은 언제

    어디서건 한번쯤은 성립했던 습관일 뿐인가?(ꡔ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ꡕ, 241쪽).

    실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시간분석은 하나의 존재이해에 의해

    주도된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이해는 ― 은밀한 행동방식으로 ― 존재를 지

    속적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음(beständige Anwesenheit)으로 이해하며,

    또한 이로써 시간의 “존재”를 “지금”으로부터, 즉 시간 안에 그때마다 또

    한 지속적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는, 다시 말해 고대적 의미에서는 본래적

    인 그러한 시간성격으로부터 규정한다.(ꡔ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ꡕ, 241쪽)

    3) 존재물음의 필요성

    20세기 초 독일 철학계를 지배하던 것은 신칸트학파였다. 당시 신칸트

    학파는 헤겔학파의 몰락과 실증과학의 눈부신 성장으로 인해 자신의 명성

    을 상실하였던 형이상학에게 ‘칸트로의 복귀’를 통해 다시금 학문적 본질

    을 회복시켜주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시각에서 볼 때 신칸

    트학파는 하이데거 자신이 생각하는 철학의 근본적 사태인 존재물음을 놓

    치고 있었다. 즉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후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14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도, 비록 은닉된 채로나마, 여하튼 은

    밀히 전개되고 있던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새로이 부활한 형이상학

    안에서는 망각되고 있었다. 더욱이 이러한 망각은 비단 신칸트학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형이상학이 걸머진 운명이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형이상학은 철학을 형이상학, 자연학, 윤리학, 논리

    학, 인식론 등으로 분과화한 뒤 그렇게 분과화된 한 영역으로서의 형이상

    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말하는 형이상학은 그러한 분과

    화와는 무관하게 서구 철학 전체를 철저히 지탱해 왔던, 이제까지 우리가

    전수받은 독특한 존재이해의 영역을 가리킨다. 돌아보면, 전통적 형이상학

    의 역사 속에서는 실로 다양한 존재개념이 등장한다. 우리가 앞서 언급했

    던 “있음”과 “임”, 그러니까 존재사실(Daβsein)과 무엇존재(Wassein),

    즉 중세철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현존(existentia)과 본질(essentia)은 물

    론이거니와, 진리존재(Wahrsein), 가능존재(Möglichsein), 현실존재

    (Wirklichsein), 필연존재(Notwendigsein) 등 서로간 차별적인 존재개념

    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 다양한 존재개념들은, 우리가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받아들이고 난 이후, 즉 존재자가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인 한에

    서, 이미 존재하는 것의 존재함을 구성하는 개념일 뿐, 하이데거가 거론하

    는 존재, 즉 존재자를 비로소 존재자로서 만날 수 있는 선술어적 조건으로

    서의 존재와는 구별된다. 그래서 후기 하이데거는 자신이 거론하는 존재와

    구별되는 형이상학적 존재개념을 존재자성(Seiendheit)이라고 명명하여

    차별화하기도 한다.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는 형이상학적 존재개념들이 자라 나올 근본

    적 원천이 된다. 형이상학적 존재개념들은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의

    다양한 파생태이다. 이러한 존재의 파생태를 하이데거는 존재자성이라 명

    명한 것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존재자성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다. 형

    이상학은, 은밀하게 전개되고 있는 존재이해의 사건을 망각한 채, 존재자

    를 향한 시각과 존재자에 입각한 시각으로부터만 존재를 사유한다. 그러

    기에 형이상학은 존재자성의 구조적 다양성을 포착하고 그것을 존재범주

    로 개념화할 뿐, 존재자성이 비롯된 근원적 영역에 대해서는, 즉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물음도 던지지 못한다. 형이상학적 물음은 이 물음에 선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15

    행하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형이상

    학의 주도적 물음은 “존재자란 무엇인가?”로 규정된다. 형이상학의 주도

    적 물음은 존재를 존재자성의 차원에서만 해석한 뒤 존재자의 생성원인을

    최고의 존재자로 소급하여 해명함으로써 우리가 존재물음에 이를 최소한

    의 통로마저 봉쇄한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적 전통의 배후로 되돌아가 형이상학을 가

    능하게 했던 근원적 영역에 대해 물음을 개진한다. 그의 존재물음은 궁극

    적으로는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한 비판적 대결이 된다. 하이데거의 탁월

    한 해석가인 폰 헤르만(F.W. von Hermann)은 이러한 상황을 다음처럼

    생생히 묘사한다.

    하이데거의 극단화된 존재물음이 캐어묻는 존재의 의미는 존재자성과

    전승된 존재범주의 울타리 안에서는 탐구될 수 없다. 오히려 하이데거의

    존재물음은 존재자성과 존재범주들의 배후로 되돌아간 뒤, 그러고는, 존재

    자의 무엇존재, 존재사실, 진리존재, 가능존재, 현실존재, 필연존재 등 존

    재자성의 다양한 방식들이, 또한 존재범주들 안에서 개념화된 존재자의 존

    재구조들이 궁극적으로 규정되었던 그 곳, 즉 가장 극단적인 근원적 차원

    을 향해 물음을 던진다.(Friedrich-Wilhelm von Herrmann, Subjekt

    und Dasein, Vittorio Klostermann Frankfurt am Main, 1985. 25쪽)

    이 인용문에서 언급된 “가장 극단적인 근원적 차원”이 하이데거가 거론

    하는 존재, 즉 존재 그 자체, 즉 존재로서의 존재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

    으리라.

    그렇다면 형이상학이 망각해 버린 존재는 어떠한 형세일까? 비록 존재

    가 형이상학에 의해 명시적으로 주제화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인간이 존

    재자와 관계하는 이상, 존재이해의 최소한의 흔적은 남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존재에 대한 선입견이라도 남아 있지 않겠는가? 이제 하이

    데거는 존재에 대한 선입견을 3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존재는 가장 보편적 개념이다. 하이데거도 존재에 대한 이 첫 번

    째 선입견에 형식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보편성의 의미를 어떻게 파

    악하느냐에 따라 동의의 여부는 전혀 달라진다.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 역시 존재자의 영역을 추상화함으로써 도달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16

    하는 유적 보편성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다. 하이데거의 존재는 존재자의

    유적 보편성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하이데거

    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개념의 유비적(類比的) 통일을 높이 평가한다.

    존재개념의 유비적 통일은 사태내용적 최고 유개념의 다양성에 머물지 않

    고, 적어도 각 존재자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 존재의 명목상의 통일은 추구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시각에서 볼 때, 존재의 유비적 통일이

    하이데거 자신이 추구하는 존재의 보편성을 충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존

    재의 유비적 통일은 명목적 보편성에 불과했다.

    잠시 앞서의 논의로 돌아가자. 하이데거의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로

    서 규정하는 그것이다.”(6, 11) 여기에서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가 존

    재자를 존재자로서 생성하는 궁극적 원인이 아님은 물론이다. 오히려 존

    재란 존재자를 비로소 존재자로서 “이해하는 기반”(6, 11)이다. 즉 존재

    는 우리가 존재자를 비로소 존재자로서 받아들이는 선술어적 조건이다.

    그러기에 존재는 “그 자신 존재자가 아니면서”(6, 11) 동시에 언제나 “존

    재자의 존재”(6, 11. 혹은 9, 16)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존재 혹은 범주는 물론, 모든 형이상학적 존

    재개념들은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선술어적 조건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이

    해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하이데거가 거론하는 존재는, 형이상학의 다양

    한 존재개념들을 지배하는 존재의 단일한 규정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

    한 점에서 존재의 보편성은 성립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적 존재개념 상호간의 형식적이며 명목상의 통일만을 말했을 뿐 이 다양

    한 형이상학적 존재개념들이 비롯되는 존재의 보편성은 밝혀내지 못한다.

    즉 그는 존재의 유비적 통일만을 말하고 있다. 그는 존재라는 동사의 상이

    한 쓰임이 실체를 기반으로 하여 어떻게 서로 관련되는지를 설명할 뿐, 범

    주들의 다수성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의 단일한 규정에 관해서는 아

    무런 말도 한바 없다. 더욱이 그 이후의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

    터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채 존재를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여 존재는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공허한 개념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존재는 가장 보

    편적 개념이로되, 가장 불명료한 개념이다.

    둘째, 존재에 대한 두 번째 선입견은 존재의 정의불가능성이다. 이에 대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17

    한 하이데거의 태도는 앞서와 같이 이중적이다. 존재는 존재자와 구별되

    는 보편적 개념이다. 존재의 보편성은 존재자의 모든 유적 보편성을 넘어

    선다. 따라서 존재자를 정의하는 전통적 방식이 존재의 정의에 적용될 수

    는 없다. 하나의 존재자를 우선은 그것이 속한 최근류(最近類) 안에 위치

    시켜 놓고 그러한 류 안에 속한 종들 사이에서 그 존재자가 갖는 종차(種

    差)를 덧붙여 존재자를 정의하려는 방식이 존재의 정의에 적용될 리 만무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확인시켜 주는 것은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라

    는 점뿐이다. 따라서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이 면제될 수 없다. 존재자

    의 차원에서는 존재가 정의될 수 없으므로, 오히려 존재자를 넘어선 차원

    에서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은 더욱 더 요구되는 것이다.

    셋째, 존재에 대한 세 번째 선입견은 존재의 자명성이다. 그러나 존재가

    존재자의 유적 보편성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 하고, 그리하여 존재

    자 차원에서의 정의가 적용될 수조차 없다면, 어떻게 존재가 자명한 개념

    일 수 있는가? 아마도 우리는 여기서의 자명성을 반어적(反語的)으로 읽

    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철학은 자명성에 대한 도전이다. 일찍이 소크

    라테스가 소피스트에게 그들의 무지를 자각하게 하여 진리를 향한 대도

    (大道)를 열었듯이.

    우리는 모든 인식과 언표에서, 존재자에 대한 태도에서, 자기 자신에 대

    한 태도에서 존재라는 낱말을 사용함은 물론이거니와, 또한 존재라는 낱

    말이 표현된 문장도 그야말로 군말 없이 이해한다. “하늘은 푸른 빛이

    다.”, 혹은 “나는 기뻐하고 있다”라는 문장을 재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

    는 아마도 없으리라. 어느 누구도 이런 문장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고 호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존재개념의 자명성을 확인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차원에서의 자명성이 참다운 의미에서의 자명

    성일까?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이런 문장들을 이해하면서 알고 있는 존

    재란 과연 무엇인가? 혹시 어쩌면 우리는 존재개념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도 알고 있다라는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존재의 자명성을 낱말 그대로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자명성은

    하나의 선입견에 불과하다. 오히려 존재자에 대한 우리의 모든 태도와 존

    재에는 아프리오리하게 하나의 수수께끼가 놓여 있다. 그러한 수수께끼란,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18

    우리가 존재자와 관계하는 한 이미 어떤 존재이해를 가지고 있건만 존재

    이해 자체가 망각되고 있으며 또한 따라서 존재가 이해되는 ‘거기’ 즉 존

    재의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채 어둠에 묻혀 있다라는 현실이다. 따라서 우

    리의 평균적 존재이해는 자명하기는커녕 오히려 막연하다. 우리의 평균적

    존재 이해가능성은 몰이해가능성을 드러낼 뿐 인 것이다. 이로써 존재물

    음의 필요성은 확인된 셈이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ꡔ형이상학 입문ꡕ에서 존재물음의 필요성을 다시 거론한다. 아마도 존재 역사적 지평에서 존재물음의 필요성을 새롭게 각인

    하려 했던 것이 하이데거의 의도인 듯 하다. 이 논의는 존재물음의 필요성

    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도와준다. 단 우리는 이 논의를 보론(補論)으로 돌

    려 살펴보고자 한다.

    [읽기자료]

    우리 시대에 형이상학을 다시 수긍하게 된 것을 진보라고 간주한다 하

    더라도, 앞에서 언급한 존재에 대한 물음은 오늘날 망각 속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ΥιΥαντομακία περὶ τη̃ς οὐσίας[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 을 새로 불붙이려는 노력을 안 해도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된 물음은 결코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이 물음은 플라

    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를 숨가쁘게 하였으나, 그 이후로는 ― 실제적

    탐구의 주제적 물음으로서는 ― 침묵해 버리고 말았다. 이 두 사람이 이룩

    한 성과는 여러 가지 첨삭과 덧칠을 거쳐 헤겔의 ꡔ논리학ꡕ에까지 일관되어 왔다. 그리하여 일찍이는 사유의 최고의 긴장 속에서 비록 단편적이고 초

    보적일 망정 현상들로부터 쟁취되었던 것이 오랫동안 진부한 것으로 되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존재 해석을 위한 그리스적 단초들의 지반 위에서 하

    나의 독단, 즉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선언할 뿐

    아니라 더욱이 이 물음은 등한히 해도 좋다고 시인하는 독단이 형성되었

    다.(2, 5-6)

    전통은 전래된 것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근원적 원천, 즉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19

    전승적 범주들과 개념들이 부분적으로는 진정한 방식으로 거기에서 나온

    그 근원적 원천으로 가는 통로를 막아버린다. 더욱이 전통은 그러한 유래

    를 일반적으로 잊어버리게 한다. 전통은 원천으로의 그런 귀환의 필요성

    을 이해하는 것조차 불필요하게 만든다.(21, 33)

    1. 존재는 가장 보편적 개념이다 . (…) 제일 먼저 인지되는 것은 존재

    이며, 존재의 이해는, 사람들이 존재자에 있어서 파악하는 모든 것 속에

    그 때마다 이미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존재의 보편성은 유(類)의 보편성

    이 아니다. 존재는, 존재자가 유와 종(種)에 따라 개념적으로 분절되는 한,

    존재자의 최고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 οὔτε τὸ ὄν Υένος[존재는 類가 아니다]. 존재의 보편성은 모든 유적 보편성을 넘어선다. 존재는 중세 존

    재론의 명칭에 따르면 초월자이다. 사상적[事象的] 최고 유개념의 다양성

    과 구별되는 이 초월적 보편자의 통일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유비(類

    比)의 통일로서 인식하였다. 플라톤의 존재론적 문제제기에 전적으로 의

    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유비의 통일을 발견함으로써

    존재의 문제를 원칙적으로 새로운 지반 위에 세웠다. 그러나 그도 물론 이

    범주적 연관들의 어두움을 밝히지는 못하였다.(3, 6-7)

    2. 존재 개념은 정의할 수 없다. 이것을 사람들은 이 개념의 최고의 보

    편성에서 추론하였다. 만약 정의는 最近類와 種差에 의해 이루어진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옳다. 사실 존재는 존재자로서 파악될 수는 없다. (…) 존

    재에는 어떤 성질도 덧붙일 수 없다. 존재에 존재자를 귀속시키는 방식으

    로는 존재는 규정될 수 없다. 존재는 정의를 통해 상위개념으로부터 도출

    될 수도 없고, 하위개념에 의해 서술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존재가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서 귀결되는 것은 존재는 존재자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뿐이다.(4, 8)

    3. 존재는 자명한 개념이다. 모든 인식과 언표에서, 존재자를 대하는 태

    도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에서, 존재 [있다 ; 이다]가 사용되거니와,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20

    그때 그 표현은 군말 없이 이해되고 있다. 하늘은 푸른 빛이다 ; 나는 기

    뻐하고 있다 따위는 누구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균적 이해

    [가능성]는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 줄 뿐이다. 그러한 이해는 존재자

    로서의 존재자에 대한 모든 태도와 존재에는 아프리오리하게 하나의 수수

    께끼가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그 때마다 이미 존재이해를 가지고

    살고 있건만 존재의 의미는 동시에 어둠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은, 존재

    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반복해야 할 원칙적인 필요성을 보여 준다.(4, 8)

    [보론]

    오늘날 존재는 어떤 형세인가? 존재자의 유적 보편성을 넘어서 있으나

    그 보편성이 해명되지 않았고, 오히려 정의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으

    며, 그러기에 결국에는 망각되어 버린 존재는,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닉된 채로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존재는 어떤 형세일까? 아마도 형이상

    학 시대의 마지막 대변자인 니체야말로 존재 망각 시대의 마지막 증인이

    아닐는지. 이제 우리는 이러한 논의를 통해 존재물음의 원칙적 필요성

    (Notwendigkeit)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존재의 공허함을 니체는 >

    증발하는 실재성의 최후의 연기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21

    재가 아지랑이처럼 공허한 개념으로 치부되어 버린다면, 즉 존재이해가

    망각되어 버린다면, 그러한 현실은 하나의 곤경(Not)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새로운 필요성(eine neue

    Notwendigkeit)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한다. Notwendigkeit, 즉 필요성

    이란 “곤경”(Not)에 “대처함”(wendigkeit)이다. 더욱이 이러한 필요성은

    이제까지 서구의 역사를 지배해왔던 “가까이 다가와 있는 가운데 지속함”

    으로서의 존재, 다시 말하면, 서구 역사의 시원을 열고 마침내는 존재자를

    눈앞의 것으로 지배하는 현대 과학 기술로 완성된 존재이해를 극복하는

    사건이기에 “새로운” 필요성인 것이다.

    [읽기자료]

    그러나 존재는 거의 무(無)와 같은 정도로 혹은 궁극적으로는 완전히

    무처럼 찾아낼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존재최고의 개념증발하는 실재

    성의 최후의 연기사실 이제까지 존재가 오류라고 하는 것 이상으로 더 소박한

    설득력을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존재< - 하나의 아지랑이 그리고 하나의 착오? (…)

    니체는 진리를 말하는가? 아니면 그 자신은 단지 오랜 착오와 태만의

    마지막 희생자일 뿐이며, 이러한 희생자로서 또 다른 새로운 필요성(eine

    neue Notwendigkeit)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증인인가?(ꡔ형이상학 입문ꡕ, 39-40쪽)

    존재는 하나의 단순한 낱말에 불과하고 그것의 의미는 아리랑이 정도인

    가, 아니면 >존재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22

    우리 각자가 어떤 존재이해를 갖느냐에 따라 존재자에 대한 해석이 달

    라진다면, 또한 존재가 우리에게 전수된 형이상학적 존재개념을 가능하게

    하는 감추어진 원천적 근원이라면,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우리 시대

    의 운명을 결정짓는 기초적 물음이 된다. 존재물음은 기초적 물음으로서

    의 당위성을 확보한다. 이제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존재물음도 하나의 물음인 이상, 존재물음이 하나의 두드러진 물

    음으로 제기되기 위해서는, 우선은 물음 일반의 형식적 구조에 대한 해명

    이 요구된다.

    우리는 어떤 사태가 문제될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음을 제기한

    다. 물음은 일종의 탐구로서, 인간의 하나의 태도이다. 그런데 탐구는 진

    공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탐구는 문제가 되는 사태로부

    터 즉 그 탐구 주제로부터 선행적으로 방향을 규정받는다. 우리는 이러한

    선이해에 입각해 탐구 대상을 선택하며, 또한 마찬가지로 탐구 대상에 대

    한 선이해에 입각해 해당 탐구 대상을 철저히 파헤쳐 탐구 주제에 관해

    우리가 밝혀내고자 했던 본질을 규명한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의 탐구 주제는 인간 복제이다. 아직 인간 복제가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복제의 비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선이해는

    갖고 있다. 이러한 선이해에 따라 우리는 인간과 신체구조가 유사한 특정

    동물을 탐구 대상으로 선택한다. 그러고는 또한 마찬가지로 그 특정 동물

    에 대한 선이해에 입각해 그 특정 동물을 각종 실험을 통해 철저히 파헤

    쳐 인간 복제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시도한다.

    그러니까 탐구로서의 물음의 형식적 구조는 3마디로 구성된다. 첫째,

    탐구로서의 물음에는 탐구 주제가 있다. 탐구 주제가 그 물음에서 ‘물어지

    는 것’이다. 둘째, 탐구로서의 물음에는 탐구 주제를 해명하기 위해 선택

    된 탐구 대상이 있다. 탐구 대상이 그 물음에서 ‘물음이 걸리는 것’이다.

    셋째, 탐구로서의 물음에는 탐구를 통해 밝혀내고자 하는 탐구 주제의 본

    질(혹은 비밀)이 있다. 탐구 주제의 본질이 그 물음에서 ‘물어서 밝혀지는

    것’이다. 따라서 물음 일반의 형식적 구조는 ‘물어지는 것’, ‘물음이 걸리

    는 것’, ‘물어서 밝혀지는 것’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물음이라 칭하는 것은 ‘존재자에 관한 물음’이다. 그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23

    런데 우리의 관건은 존재물음이다. 존재물음은 기초적 물음이다. 존재물음

    은 존재자에 고정된 시각을 넘어서, 존재자에 관한 물음을 근거 짓는다.

    존재물음은 인간과 존재자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선술어적 조건인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이다. 그러니까 존재물음도 물음인 이상 물음 일반의 형

    식적 구조를 공유하되, 그 형식적 구조의 내용은 달라진다.

    존재물음도 허공에서 수행되지 않는다. 마치 존재자에 관한 물음이 존

    재자에 대한 선이해를 전제하듯, 존재물음도 존재에 관한 선이해를 전제

    한다. 만약 우리가 존재에 관한 선이해를 갖고 있지 않다면, 존재의 의미

    에 관한 물음이 명시적으로 제기되지 않을 뿐더러, 하물며 존재의 의미를

    개념화하려는 어떠한 의도도 약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히 어떤 존재이해 속에서 움직인다. 우리가 존재자와 관계 맺는 한, 존재

    이해는, 은닉된 채로나마, 생생하게 전개된다. 따라서 비록 존재이해가 아

    직은 의식적으로 반성되지 않았고, 또한 전승된 형이상학의 존재개념들과

    뒤섞여 있고, 또한 형이상학의 역사를 통해 망각되어 있기는 하나, 여하튼

    우리가 갖고 있는 “평균적이고 막연한 존재이해”는 하나의 “현사실”로서

    존재물음을 재촉하는 적극적 현상이 된다.

    이러한 현사실을 실마리로, 우리는 존재를 겨냥하여 물음을 던져 존재

    의 의미를 밝혀내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제 존재물음의 형식적 구조는 명

    료하게 정식화된다. 존재물음에서 “물어지는 것(Gefragtes)”이 “존재”(6,

    11)라면, “물어서 밝혀지는 것(Erfragtes)”은 “존재의 의미”(6, 12)이며,

    또한 “물음이 걸리는 것(Befrates)”은 존재를 막연하게나마 이해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개념화하려고 물음을 시도하는 우리들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 자신”(6, 12)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존재자에 관한 물음과 존재물음의 극명한 차이점을 보

    게 된다. 존재자에 관한 물음에서 “물음이 걸리는 것(Befrates)”은 존재

    자이다. 아마 이제까지의 모든 과학은 그것의 탐구 주제를 해명하기 위해

    존재자에게 물음을 걸어 왔다. 여기에서는 물음의 주체와 물음의 객체가

    이원화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그럴뿐더러, 인간의 생명의 신비를 풀

    어내고자 하는 유전공학이나 의학도 마찬가지다. 거기에서도, 즉 설령 인

    간이 인간에 대해 물음을 걸었을 때조차도, 묻는 자로서의 인간과 물음이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24

    걸리는 자로서의 인간은 분명히 이원화된다. 그러나 존재물음에서는 묻는

    자로서의 인간이 바로 묻는 자인 자기 자신에 대해 물음을 걸고 있다. 여

    기에서는 묻는 자와 물음이 걸리는 자가 동일하다. 존재물음에서는 물음

    의 주체와 물음의 객체가 일원화된다. 존재물음에서는 묻는 자로서의 인

    간이 탁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우리는 묻는 자로서의 인간을 다른

    존재자와 구별하기 위해 특정한 술어를 선택한다. 그 술어가 바로 현존재

    (Dasein)이다.

    Dasein을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거기에(Da) 있음’이다. 그런데 여기

    서의 Da는 단지 공간적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오로지 인간에게만

    존재가 개시(開示)되어 있음을 말하는 동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 Da이다.

    막연하게나마, 즉 전(前) 존재론적으로나마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인

    간의 존재양상이다. Da는 인간에게만 존재가 현시(現示)되고 있음을 나타

    내는 전문적 술어이다. 그러기에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을 제기할 때 물

    음이 걸려야 할 존재자는 바로 현존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의 의미

    에 관한 물음을 묻기에 앞서 우리는 우선 현존재를 물음의 대상으로 확립

    해야 한다. 현존재를 그것의 존재(구조)에 있어서 물어, 이를 근거로, 궁극

    적으로는 존재의 의미를 해명하려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 된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두고 순환논증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

    한 비판은 존재물음을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순환논증은 연역적 논리에

    나 해당한다. 그러나 존재물음에는 아무런 연역도 없다. 우리의 전략은 막

    연한 평균적 존재이해를 지닌 현존재의 존재(구조)를 분석하여 현존재에

    게서 존재이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밝혀냄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증시하

    고자 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전략은 연역이 아니라 현상학적으로 있는 그

    대로의 것을 밝혀내고 증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물음은 철저히 현존

    재 분석론으로 수행된다. 즉 존재물음은 현존재의 막연한 전(前) 존재론적

    이해를 철저히 규명하여 존재의 의미를 읽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읽기자료]

    물음은 ‘ … 에 대한 물음’으로서 물어지는 것을 가지고 있다. ‘ … 에 대

    한 물음’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 에 [조회해서] 물음을 거는 것이다. 따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25

    라서 물음에는 물어지는 것 이외에 물음이 걸리는 것[존재자]이 속해 있

    다. 연구적 물음, 즉 특수한 이론적 물음에 있어서는 물어지는 것이 규정

    되고 개념화되어야 한다. 물어지는 것에는 따라서 본래 지향되는 것, 즉

    물어서 밝혀지는 것이 있으며, 물음이 여기까지 도달하면 그 목표는 달성

    되는 것이다.(5, 9-10)

    이러한 평균적이고 막연한 존재이해는 하나의 현사실이다.(5, 11)

    수행되어야 할 물음에서 물어지는 것은 존재이다. 존재는 존재자를 존

    재자로서 규정하는 그것이다. 존재자가 어떻게 설명되든 존재자는 존재를

    기반으로 해서 그 때마다 이미 이해되고 있다. 존재자의 존재는 그 자신

    존재자가 아니다. 존재문제의 이해에 있어서 최초의 철학적 진보는 옛날

    얘기를 하지 않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진보는 마치 존재가 존재자일

    수도 있는 성격을 가진 양, 존재자를 다른 또 하나의 존재자로 소급해서

    그 [발생적] 유래에 좇아 규정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러므로 물어지는 것

    으로서의 존재는 존재자의 발견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독특한 증시방

    식(證示方式)을 요구한다. 따라서 물어서 밝혀지는 것, 즉 ‘존재의 의미’도

    고유한 개념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개념성은 다시 존재자를 의미상으

    로 규정하는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6, 11-12)

    존재가 ‘물어지는 것’이고 또 존재가 존재자의 존재를 의미하는 한, 존

    재물음에서 물음이 걸리는 것은 존재자 자신이다. 이 존재자는 말하자면

    자기의 존재를 겨냥해서 캐물음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존재자가

    자기 존재의 성격들을 왜곡되지 않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면, 그 존재자

    는 자기측에서 미리부터 있는 그대로 접근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야 한다.

    존재물음은 물음이 걸려지는 것을 고려해서 존재자에 이르는 올바른 접근

    방식의 획득 및 그 접근방식의 선행적 확보를 요구한다.(6, 12)

    존재에 대한 물음이 명시적으로 제기되고 물음 자체가 완전히 투명하게

    수행되어야 한다면, 이 물음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제까지 밝힌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26

    바에 따라 존재를 겨냥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올바른] 방식의 구명과 본보기가 되는 존재자를 올바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고, 그 존재자에 이르는 방식을 찾아내는 일이다. 겨냥,

    이해, 개념, 파악, 선택, 접근은 물음을 구성하는 태도들이며, 이것들은 그

    자체 특정한 존재자, 즉 묻는 자인 우리들 자신이기도 한 바로 그 존재자

    의 존재양상(存在樣相)들이다. 존재물음의 수행은 따라서 존재자 ― 묻는

    존재자 ― 를 그 존재에 있어서 통찰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물음을 묻는 것

    은 존재자 자신의 존재양상으로서, 그 존재자에 있어서 ‘물어지는 것’, 즉

    존재에 의해 본질적으로 규정된다. 이 존재자, 즉 무엇보다도 묻는다는 존

    재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자를 우리는 현존재(現存在)라고 술어화(術

    語化)한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분명하게 통찰할 수 있도록 제기하

    기 위해서는, 어떤 존재자(현존재)를 그 존재의 점에서 선행적으로 적합하

    게 구명하는 것이 요구된다.(7, 13)

    존재 일반의 의미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는 순환논증이 있을 수 없다.

    존재의 물음에 대답하는 데 문제가 되는 것은 연역적으로 근거를 대는 일

    이 아니라, 근거를 증시(證示)하고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8, 14)

    존재의미의 해석이 과제가 될 때, 현존재는 일차적으로 물음이 걸려져

    야 할 존재자일 뿐 아니라, 또한 이 물음 속에서 물어지고 있는 그것에 대

    해 그 때마다 이미 자신의 존재에 있어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존재자이다.

    그렇다면 존재물음이란 현존재 자신에 속하는 본질적 존재경향, 즉 전

    [前] 존재론적 존재이해의 철저화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14-15. 23)

    5) 존재물음의 우위

    존재물음은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이다. 이러한 존재물음은 고작 가

    장 일반적인 보편성 따위나 논하는 허공에 뜬 사변적 물음이 아니다. 오히

    려 존재물음은 “가장 원리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물음”(9, 16)으로서 실증

    과학 및 전승된 존재론에 대해 존재론적 우위와 존재자적 우위를 갖는다.

    ‘존재자적(ontisch)’이란 존재자와의 관련을, ‘존재론적(ontologisch)’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27

    이란 존재자와의 관련을 가능하게 하는 차원을 의미한다. 그래서 통상적

    으로는 ontisch를 ‘존재적’으로 번역한다. 이 번역어는 ‘존재론적

    (ontologisch)’과 쌍을 이뤄 양자의 관계를 선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존

    재적’이란 번역어는 마치 존재와의 관련을 의미하는 듯한 오해를 사기 쉬

    우므로, 여기에서는 ‘존재자적’이라 옮기기로 한다. ‘존재자적’과 ‘존재론

    적’의 의미를 다시 한번 명확히 한정하면 이렇다.

    “존재[자]적(ontisch)과 존재론적(ontologisch)의 구별은 소박하게 말

    하면 사실(事實)과 논리(論理)의 그것이다. 존재자를 묘사, 서술, 취급, 연

    구하는 것은 ‘존재[자]적’이고, 존재자를 그것에 고유한 존재를 겨냥해서

    해명, 해석하는 것은 ‘존재론적’이다. 존재자를 대상으로서 연구하는 과학

    은 ‘존재[자]적’이고, 그 과학의 가능근거를 탐구하는 철학은 ‘존재론적’이

    다. 이 점에서 보면 ‘존재론적’은 ‘초월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론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승적 존재론은 존재자론에 머물렀다는 것이 하이

    데거의 지적이다.”(표준번역본, 15, 역주 h)

    (1) 존재물음의 존재론적 우위

    존재물음의 존재론적 우위란, 존재물음이 존재자의 본질적 구조를 탐구

    하는 실증과학은 물론, 실증과학의 토대를 근거 짓는 종래의 전승된 존재

    론에 대해 존재론적 우위를 지님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실증과학,

    전승된 존재론(혹은 영역존재론), 그리고 존재물음이 맺고 있는 정초(定

    礎)의 연관을 보게 된다.

    앞에 놓여 있는 것 자체(Positum), 즉 존재자를 다루는 과학은 실증과

    학이다. 실증과학은 존재자의 특정한 사상영역(事象1域, Sachgebiete)을

    탐구대상으로 설정한다. 정확히 말하면, 실증과학의 탐구대상은 존재자의

    특정한 사상영역 안에 놓여 있다. 예컨대 자연, 역사, 공간, 생명, 현존재,

    언어 등등이 존재자의 특정한 사상영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어떤 사상영

    역을 대상화하느냐에 따라, 실증과학은 자연과학, 역사학, 기하학, 생물학,

    인간학, 언어학 등으로 분류된다. 또한 실증과학이 물음의 방향을 더 세분

    화함에 따라, 특정한 사상영역은 특정한 구역(Bezirk)들로, 특정한 구역들

    은 개별적 분야(Feld)들로 나뉘어진다. 예컨대 자연이라는 사상영역은 물

  • ꡔ철학사상ꡕ 별책 제2권 제12호28

    리적-물질적 무생물적 자연과 생물적 자연이라는 구역으로 나뉘어지고 또

    생물적 자연의 구역도 식물계와 동물계라는 개별적 분야로 나뉘어진다.(ꡔ현상학의 근본문제ꡕ, 17쪽 참조)

    우리는 흔히 실증과학의 진보를 그 과학이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사상

    영역 안에서 이룩한 성과를 보고 판별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은 실증과

    학의 진정한 진보를 잘못 이해한 단견(短見)이다. 오히려 수학에서의 형식

    주의와 직관주의의 싸움, 물리학에서의 고전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의 대립,

    생물학에서의 기계론과 생기론의 갈등, 그리고 역사학에서의 문헌사(文獻

    史)와 문제사(問題史)의 대결에서 그렇듯, 실증과학의 참된 진보는 그 실

    증과학이 대상화하는 사상영역의 근본 틀에 대한 물음에서 성취된다. 즉

    실증과학의 참된 진보는 각 실증과학이 자신의 토대에 대한 >정초위기

    정초위기

  • 하이데거 ꡔ존재와 시간ꡕ 29

    초하기 위해 과학의 사상영역 자체를 선행적으로 연구한다. 이를 통해 존

    재론은 개별과학의 사상영역 자체를 선행적으로 근거 짓는 기본개념을 창

    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