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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진 구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부 교수. 한남 대학교대학원(Ph.D.). 공저로 감성세대의 영화 읽기가 있다. 한국 만화 시장에서 일본 만화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만화 대국 일본의다양한만화들은이미오래전부터한국만화독자들의마음을사로잡은 한국 만화의 제작과 소비에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한국 대중들이일본만화를보다손쉽게즐기도록만드는크게기여하고있는실정 이다. 최근한국젊은이들의시선을사로잡은일본애니메이션<진격의거인>은 한국대중들에게끼치는일본만화의영향력을고스란히보여주고있다. 일본의대표적인만화잡지<월간소년만화>의별책부록인<소년매거진>2009 10 월호부터연재를시작한<진격의거인>은최근단행본으로도출간돼2013 6 현재누계발행부수가2 , 000 부를돌파했다. 이사야마하지메 (諫山創) 작가의 만화를나카시마테츠야(中島哲也) 감독이애니메이션으로만든<진격의거인> 원작의특징들을훼손하지않고영화기법들을활용해만화고유의집중력 살렸다는평가를받고있다. 지난4 7 일부터스카이라이프의만화전문채널인‘애니플러스’를통해방영 이후 <진격의 거인>은 인터넷 검색어 1 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유튜브를 통해 각종패러디물을쏟아내고있다. 중국집배달원을무시하는치킨집의거인닭들 <진격의 거인>에게 사로잡힌 젊은 세대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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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와 진 단

강 진 구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부 교수. 한남

대학교대학원(Ph.D.). 공저로 《감성세대의 영화

읽기》가 있다.

한국 만화 시장에서 일본 만화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만화 대국

일본의 다양한 만화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만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채 한국 만화의 제작과 소비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한국

대중들이 일본 만화를 보다 손쉽게 즐기도록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실정

이다. 최근 한국 젊은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한국 대중들에게 끼치는 일본 만화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 잡지 <월간 소년만화>의 별책부록인 <소년 매거진> 2009년

10월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진격의 거인>은 최근 단행본으로도 출간돼 2013년 6월

현재 누계 발행 부수가 2,000만 부를 돌파했다.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 작가의 원

작 만화를 나카시마 테츠야(中島哲也)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진격의 거인>

은 원작의 특징들을 훼손하지 않고 영화 기법들을 잘 활용해 만화 고유의 집중력

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4월 7일부터 스카이라이프의 만화 전문 채널인 ‘애니 플러스’를 통해 방영

된 이후 <진격의 거인>은 인터넷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유튜브를 통해

각종 패러디물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집 배달원을 무시하는 치킨 집의 거인 닭들

<진격의 거인>에게 사로잡힌 젊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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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처단하는 내용의 “진격의 배달”이 있는가 하

면, 펩시 군단에게 처참히 당한 코카콜라의 복수

를 다룬 “진격의 콜라”도 있다. 취업준비생이 공

부에 대한 처절한 압박감과 싸우는 “진격의 취준

생”에 이르면 이 패러디가 단순한 만화에 대한 관

심을 넘어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표출시키는 소

통의 도구이자 문화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즉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인

간과 거인의 싸움이라는 단순한 내용 안에는 한

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느끼고 해석하는 이 시대

의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젊은층은 왜 <진격의 거인>에 열광하는가?

<진격의 거인>의 폭발적 인기의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기발한 상상력으

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이미

지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

다는 점이다. 둘째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 속에 끊임없이

전개되는 의문과 갈등 그리

고 해결의 묘미가 재미를 제

공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

를 담아 현실을 성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상상력의 중심에는 ‘거인’과 ‘성(城)’ 그리고 최일

선에서 거인과 싸우는 ‘조사병단’이라 불리는 병

사들이 있다. 거인은 정체 모를 의문투성이의 존

재다. 인간 모양을 한 거인의 크기는 작게는 6m에

서 크게는 50m 성벽 위로 얼굴을 내밀 수 있을 만

큼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인간을 위협하고 잡

아먹는 거인의 모티브는 이미 호머의 대서사시인

〈오디세이〉와 〈잭과 콩나무〉 동화에도 나온 바 있

지만, <진격의 거인>은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설

명을 통해 서구의 거인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그것은 이 거인들이 다른 먹잇감에는 전혀 관심

을 두지 않은 채 오직 인간만을 잡아먹으며,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다시

먹은 것을 토해내는 습

성이 있고, 생식 기관이

없는 까닭에 어떻게 번

식하는지가 의문이란 점

이다. 거기다 재생 능력

도 뛰어나서 웬만해서는

죽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무적의 존

재이며, 공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거인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이야기는 비록 판타지라 할지라도 그것이 매우

현실적인 인간과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

서 주목받는다. 거인으로부터 도피한 인간들이

머무는 성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작은 규

모가 아니다. 제일 외곽에 자리한 성벽인 ‘월 마

리아(Wall Maria)’의 전체 둘레 길이는 한반도 절반

이상을 포함할 만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성벽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원작(위).

<진격의 거인>의 한 장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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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는 인간 사회의 제일 하층민이 살고 있다.

두 번째 성벽인 ‘월 로제(Wall Rose)’와 가장 안쪽에

견고하게 서 있는 ‘월 시나(Wall Sina)’는 인간 생존

을 위한 보루이자 사회 신분에 따라서 거주지를

나누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거인을 죽이는 방법

을 훈련받은 병사들이 거인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자 권력의 핵심인 월 시나 안으로 들어

가기를 원하는 영화 속 장면은 왜곡된 인간세계

를 닮았다. 특히 거인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위협

을 자신의 통치 수단으로 악용하는 권력자들의

농간은 현실세계의 어려움에 직면한 젊은이들

로 하여금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

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11편, 우상: 트로스

트구 공방전 7〉 편에는 최후의 성(城)마저도 위태

로운 상황에서 남쪽 영토 최고 책임자인 사령관

도트 픽시스가 부하들에게 적극적으로 거인과

싸울 것을 독려하는 연설 장면이 나온다.

“월 마리아 탈환 작전은 다 아는 얘기지만, 핵심

은 정부가 다 끌어안을 수 없었던 대량 실업자의

입 덜기였다. 모두가 그 일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

은 그들을 벽 밖으로 내쫓은 덕분에 우리는 이 좁

은 벽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

함해서 인류 모두에게 죄가 있다. 월 마리아 주민

이 소수였기 때문에 다툼은 표면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떠냐. 이 월 로제가 부서지면

주민 20%를 입 덜기 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월 시

나 안만으로는 인류의 절반도 먹일 수 없다. 인류

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거인에게 다 잡혀 먹는 게

원인이 아니다. 인간끼리 서고 죽고 죽여서 멸망

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안팎으로 처해 있는 위기

상황을 영화는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장기화된

경제 침체 속에서 설상가상 고령사회로 치닫는

일본 사회는 젊은이들을 받아줄 곳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다. 생존을 위해 누군가가 올라서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떨어뜨려야 하는 제로섬

(zero-sum) 경쟁과도 같은 현실은 영화 속 비극과

닮은꼴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거인이라는 존재

의 압박 속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택한 곳은 안전

한 성벽 안, 즉 집 안이었다. 거칠고 위험한 성 밖

세상으로 나가기보다는 부모의 보호 아래서 안

주하고자 ‘둥지족’이 되기로 한 것이다. 젊은이들

은 자신을 공포에 떨게 하는 위협으로부터 맞서

싸우는 영화 속 미소년 전사들로부터 대리만족

을 느끼거나, 아니면 다시 한 번 세상과 부딪혀 볼

수 있게 하는 도전을 받고 있다.

선과 악이 모호한 세계관

거인과 인간의 대결을 다룬 <진격의 거인>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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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명은 “Attack on

Titan”으로 ‘거인을

공격하라’ 정도의 의

미를 담고 있다. 그

런데 일본 원제목은 거인에게 무게 중심을 둔 <진

격의 거인>으로 영어명과는 다소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영어 제목은 인간이 공격의 주체가 되고

거인과 맞서 싸운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만, 일본 제목은 인간을 공격하는 거인에게 초점

이 맞춰져 있다. 이것은 선악의 관점이 분명한 할

리우드산 영화와는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영화 <배트맨>에서 주인공은 선

을 대표한다. 인간 사회를 지키는 영웅 배트맨을

영화 제목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할리우드의

상식이다. 따라서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거인을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디즈니판 애니메이션에 익

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

괴물 거인을 전면에 내세운 <진격의 거인>이

란 제목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작가의 상상력의 중심에 괴물 거인

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인을 물리치는 인

간의 면모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

만, 대중적 호기심

을 불러일으키는 데

는 오히려 ‘거인’과

같은 평범하지 않은

이름을 제목으로

붙여놓는 것이 효

과적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1975)

와 같이 호러물이

나 스릴러 영화에는 인간과 적대적인 위치에 있

는 대상을 제목으로 쓰기도 한다. 인간에게 얼마

나 위협적인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영화 제

작의 목적이며 흥행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까닭이

다. 공포 뒤에 사회적 의미를 담아서 생각할 거리

를 남겨두는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인들에게서 도드라지게 나타

나는 선악관 때문이다. 원작의 연재가 아직 끝나

지 않은 시점에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 다소 위

험할 수 있지만, 영화의 전개 상황과 일본 만화 작

가들의 세계관에 나타나는 일련의 경향을 비춰

볼 때 과연 거인을 악으로 판단해 제거의 대상으

로 확신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은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들이 어디서 왔느냐 하는 문제로부터

제기된 것이다. 영화상으로 보자면 갑자기 100년

전부터 나타나 인간을 잡아먹는 극심한 공포의

<진격의 거인>의 한 장면(위).

진격의 거인을 패러디한 학생들의 사진

과 모 CF(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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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어디서 출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직접적

인 언급이 초반부에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는 거인과 대적하는 주인공 엘렌 예거가 거

인으로 변해 인간의 편에서 싸우는 설정으로부

터 거인의 출현에 대한 단서를 유추해낼 수 있다.

주인공 엘렌 예거는 거인을 죽이는 훈련을 받

은 정예요원으로 성장하던 중 그만 거인에게 잡

아먹히고 만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거인과 일

체된 상태에서 자신의 정신으로 거인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며 생존 귀환하게 된다. 그

는 이제 다른 종류의 거인이 돼 식인 거인과 싸우

는 선의 역할을 해내는 존재로 변모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떻게 엘렌 예거에게만 가

능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 영화는 엘렌의 아버

지가 의사였다는 점과 지하실의 비밀스런 실험실

을 사전에 언급함으로써 모종의 약물이 엘렌에

게 투약된 결과로 일어난 일임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

른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식의 해석에서 멈춰서

는 곤란하다. 엘렌이 약물을 통해 거인으로 변신

가능하다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거인들이 지구

밖 외계에서 왔거나 기존 생물의 돌연변이 종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뜻하는 일인

까닭이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인간의 분열과 다툼에 따

른 스스로의 멸망을 경고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

과 한정된 재화는 인간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키

고 증오와 폭력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인류가 내부의 분란으로 인한 공멸을 막고 생존

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외

부의 적을 만드는 일이다. 이때 외부의 적은 강하

면 강할수록 좋다. 인간들이 일치단결해 거대한

적과 싸운다면 내부의 갈등은 줄어들기 마련이

기 때문이다. 만일 거인이 인류의 공멸을 막기 위

해 인간을 죽이는 존재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을

선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악으로 봐야 할까?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선악의 이분법적인 사

고를 넘어서는 일은 <진격의 거인> 이전에도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2000)

는 핵 전쟁 이후 미래의 암울한 인간세계를 그린

디스토피아적인 작품이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인

간의 자연 파괴에 따른 결과로 독가스를 뿜어내

는 곰팡이 숲 부해가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 전개된다. 인간은 이 숲을 없애버리고 싶

어도 이 숲을 지키는 ‘오무’라는 엄청난 위력의 괴

물 떼의 공격이 두려워 손대지 못한다. 신비한 능

수평적 문화가 공동체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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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을 가진 나우시카 공주는 타고난 자연과의 교

감 능력으로 부해와 오무와도 교감한다. 알고 보

니 독가스만 내뿜는 줄 알았던 부해의 밑바닥에

는 맑은 공기가 생성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영화

는 인간의 단순한 선악의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

선과 악이란 인간 중심적인 시선에서 자의적으

로 판단하는 것일 뿐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묻어

있다.

일본의 거인화를 경계하라

이렇게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모호한 입

장을 취하는 것을 서구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초

월하는 동양적이며 새로운 의식의 조류로 보는

경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태평양전쟁 이

후 세대에게는 잘못된 역사 의식을 심어주는 계

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분명한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과거의 잘

못도 필요에 따라 선으로 둔갑하기 쉬운 까닭이

다. 아베 신조 총리가 “침략에 대한 판단은 역사

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한 문제의 발언은 현재

의 객관적 입장에서 선악의 판단을 내리지 못하

는 잘못된 세계관의 결과일 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악에 대한 모호한 입장에 대해서

는 어떠한 여지도 남기고 있지 않다. “범사에 헤

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

리라”(살전 5:21-22)는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악에

대한 단호한 판단이다.

<진격의 거인>이 세상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맞서 싸우라는 용기를 주는

것으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거인이 되어 거인과

싸우는 영화 속 발상은 선악의 판단에 대한 오류

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거인을 단지 위협적인 존

재로 여기지 않고 거인이 되기를 원하고 그것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일본은 다시 한

번 군국주의의 세계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기 때

문이다. 이미 일본 정부는 군대를 갖지 못하도록

명시한 평화 헌법 개정에 착수했고,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영토 분쟁을 가속

화하고 있다. 거인이 되길 바라는 일본인의 열망

이 일본의 우익보수주의자들로부터 솟아나고 있

는 중이다. 앞으로 <진격의 거인>이 어떻게 전개

될지는 작가만 알 수 있지만, 인간을 거인으로 만

들어 세상을 평정하는 결말로 나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데스카 오사무의 만화 <아톰>에서 일

본인의 정체성과 긍정적인 발전을 봤다. 작은 아

톰이 거대한 외계 로봇을 물리치는 모습에서 환

호했다. 일본은 아톰처럼 작지만 강하고 아름다

운 민족으로 남아야 한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

면, 일본이 거인처럼 거대지향적 발상을 한다면

인류는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인간의 분열과 다툼에

따른 스스로의 멸망을 경고하고 있다. 인

간의 욕심과 한정된 재화는 인간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증오와 폭력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