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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vita Bible Class by Somang Presbyterian Church SBC by SPC VIII I. 2018 년년 년년 년년 (Curriculum) 년년 년년 년년 1 월 24 월(4 th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1): 월 월월월 월 1:1-11 1 월 31 월(5 th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2): 월월 월월월 월 5:12-26 2 월 7 월(1 st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3): 월월월 월월 월 8:1-8 2 월 21 월(3 rd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4): 월월월 월월 월 10:17-33 3 월 7 월(1 st ) 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 월 13:1-12 3 월 21 월(3 rd ) 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 15:1-11 3 월 28 월(4 th ) 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월 월 18:1-11 4 년 4 년(1 st ) 년년, 년년년 년년년 년년년 년 21:1-16 II. 4 년 4 년 년년 년년 1. 월월 월월월월 월월월 월 (월월월 301 월) 2. 월월 3. 월월 월월 (월월 / 월월월 월월, 월 1:8 & 월 18:9) 4. 월월 월월 [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 21:1-16] 5. 월월 월 월월 (월월월월~!) 6. 월월월월 월월 7. 월월월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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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올랜도소망교회 · Web view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3): 장벽을 넘어 행 8:1-8 2월 21일(3rd)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4): 편견을 깨고 행 10:17-33

Solivita Bible Class by Somang Presbyterian Church

SBC by SPC VIIII. 2018 년도 교과 과정 (Curriculum)

일시 제목 성경

1 월 24 일(4th)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1): 땅 끝까지 행 1:1-111 월 31 일(5th)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2): 박해 속에서 행 5:12-262 월 7 일(1st)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3): 장벽을 넘어 행 8:1-8

2 월 21 일(3rd)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4): 편견을 깨고 행 10:17-333 월 7 일(1st) 성령, 선교의 문을 열다 행 13:1-12

3 월 21 일(3rd) 소통, 선교의 장벽을 허물다 행 15:1-113 월 28 일(4th) 동역, 선교의 장을 넓히다 행 18:1-114 월 4 일(1st) 사명, 선교의 가치를 말하다 행 21:1-16

II. 4 월 4 일 모임 순서

1. 찬양 지금까지 지내온 것 (찬송가 301 장)

2. 기도

3. 과제 점검 (예습 / 암기한 말씀, 행 1:8 & 행 18:9)

4. 성경 공부 [사명, 선교의 가치를 말하다, 행 21:1-16]

5. 다음 주 과제 (없습니다~!)

6. 기도제목 나눔

7.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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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과 복습]

1. 사도행전 중심 구절 (사도행전 1:8)

“오직 _________이 _________에게 _________ 너희가 _________을 받고 _________과 온

_________와 _________와 _________ _________까지 _________ 내 _________이 _________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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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난 주 암송 구절 (사도행전 18:9)

“_________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_________ 말며 _________ 말고

말하라”

3. 사도행전 기록 목적

This book is for every C_________ who wants to experience the p_________ of the H_________ S_________ and be a w_________ for J_________ C_________ “to the e_________ of the e_________” (1:8). Ask G_________ what part He wants you to play in taking the g_________ to the whole w_________, starting right w_________ you are. “Lord, what do You want me to do?” (9:6) - Warren W. Wiersbe, 『With the Word』, 1991,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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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1:25~30>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Conrad Gempf, 『New Bible Commentary』 (IVP 성경주석 신약), IVP, 2005, 360.

두로에서 만난 제자들은 스데반 사건 이후 베니게까지 퍼져 나간 신자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이사랴처럼 여기서도, 장차 바울에게 일어날 일이 ‘성령을 통해’ 알려진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두 경우에서 모두 신성하게 내려진 통찰에 대한 인간의 해석은 비록 이해할 만하긴 하지만 잘못된 것으로서 ‘그들은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바울이 자신에게 주어진 통찰을 의지한 것은 정당했으며, 다른 신자들은 자신의 예언적 통찰들을 거기에 맞게 재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령이 무엇인가 잘못되리라고 경고할 때, 그것은 반드시 그 일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F.F. Bruce, 『The Book of the Act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사도행전, 하)』, 아가페출판사, 2014, 248.

이러한 예언들이 두로에서 처음으로 그에게 주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행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한편,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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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계속하고자 하는 바울의 결심이 성령의 인도에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바울의 결심은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성령의 매임으로 인한 것이었다. (행 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의 환난과 투옥을 예언할 수 있었던 그의 친구들이, 그에게 여행을 중지하라고 권면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자신의 안전을 전혀 돌보지 않았던 바울은 그의 주님처럼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눅 9:51).

John Stott, 『The Message of Acts: To the ends of the earth(사도행전 강해)』, IVP, 1992, 510~512.

성령의 인도

이렇게 여러 주간에 걸친 여행과 정지 끝에, 그리고 무서운 경고들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바울은 그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에게 계획을 단념하라고 애원한 친구들을 떨쳐 버린 것은 옳은 것이었는가?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성령의 메시지는 어떠한가? 우리는 바울의 황소고집을 비난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의 흔들리지 않는 결심을 칭찬해야 하는가?

얼핏 보기에 성령의 메시지들은 직접적으로 상충했던 것처럼 보인다. 밀레도에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같은 성령이 그에게 ‘결박과 환난’에 대해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20:22-23,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그러나 두로에서 어떤 신도들이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말한 것(미완료시제인 elegon 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라는 의미다, JBP)은 ‘성령의 지시’로 인한 것이었으며(21:4), 한편 가이사랴에서 아가보는 ‘성령이 말씀하시되’라는 공식으로 예언을 시작했다(21:11). 그러나 바울은 그 두 메시지들을 모두 무시했다. 단념하라는 설득에 굴하지 않고(21:14), 그는 계속 그의 길을 갔다(21:5).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성령이 바울에게 20 장에서는 가라고 말씀하시고 21 장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명령을 하셔서 그것을 철회하심으로 모순된 말을 하셨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중략) 나는 우선 누가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단언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는 19:21(“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의 결심과 20: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의 충동을 둘 다 성령으로 인한 것으로 보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둘 다 ‘엔 토 프뉴마티(en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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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eumatic), 성령 안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가가 바울의 예루살렘 여행을, 제자가 그의 선생이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으로 본다는 것은 이미 시사한 바 있다.

그렇다면 21:4 과 11 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은 그 말하는 사람이 반드시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이 감동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성령에 대한 다른 언급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모호하게 해석해야 한다. 그보다 더 나은 해결책은 예언과 금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분명 아가보는 단지 바울이 묶여서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했을 뿐이다(21:11). 그 다음에 나오는 바울에 대한 간청은 성령으로 인한 것이 아니며, 성령의 예언을 인간적으로 부정확하게 (실로 잘못) 추론한 것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바울이 친구들의 간청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아가보의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21:4 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렵다. 왜냐하면 ‘간곡히 말한’ 것 자체가 ‘성령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누가의 진술은, 경고는 성령이 하신 것이었지만 간곡히 말한 것은 인간적인 것이었음을 압축해서 말한 것일 것이다. 결국 바울에 대한 성령이 하신 말씀은, 가라는 충동과 그 결과에 대한 경고가 결합된 것이었다(20:22-23).

그러므로 누가는 분명 우리로 하여금 바울의 용기와 참을성을 칭찬하게끔 하려 하고 있다. 이전에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는 확고부동하게 예루살렘 쪽을 향하여 가며,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고난이 있으리라는 성령의 예언도 그를 제지하지는 못했다.

바울의 여정에서 그의 기운을 북돋아 준 것은 그와 그의 동행들이 항구에서마다 경험한 그리스도인의 교제였다. 두로에서 그들은 신도들을 만나 함께 이레를 머물렀다(21:4). 돌레마이에서 그들은 형제자매들에게 인사하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지냈다(7). 가이사랴에서 그들은 전도자 빌립의 집에 숙소를 정하고 ‘여러 날’ 그와 함께 머물러 있었다(8, 10). 그러고 나서 가이사랴에서 온 신도들이 친히 바울과 그의 일행을 예루살렘에 데려다 주어, 거기에서 그들은 오래 전에 회심한 구브로 사람 나손의 집에 머물렀으며(16),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자매들이 ‘기꺼이 그들을 영접했다’(17). 이것을 바울의 예루살렘 ‘개선 입성식’이라고 부른다면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받은 따뜻한 영접은 며칠 후 무리가 ‘바울을 없애 버리라’고 외치는 것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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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Watson, 『Discipleship』 (제자도), 두란노, 2004, 16~23. (E Book)

The Call to Discipleship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경악스러운 진술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자 제자로서 갖춰야 할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본질이 내포되어 있다. 확실히 죽음의 형태는 아주 다양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본회퍼가 그랬던 것처럼 문자적인 순교에로 부름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순교자로서 부름받은 제자들임에는 틀림없다.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말이다. (“When Christ calls a man, he bids him come and die” - Bonhoeffer)

예수님이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부르셨을 때, 제자도의 일반적인 개념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가가 되다’(manthano)라는 동사는 신약성경에 겨우 25 회(복음서에는 6 회) 정도 나오지만, ‘제자’(mathetes)라는 명사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만 무려 264 회 이상이나 등장하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헬라어에서 ‘제자’라는 단어는 견습 직공, 학생 또는 생도를 의미했다. 신약성경 시대에는 ‘모세의 제자’(요 9:28)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세속적 의미와 동일했다. 즉 모세의 제자는 스승인 모세의 율법을 배우는 학생들이었다. ‘바리새인의 제자’(막 2:18)는 기록된 토라(Torah-구약성경)와 구전으로 전해진 토라(조상들의 유전 또는 전승)등 유대 전승들에 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지식을 배우기 위하여 몰두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제자들은 랍비(Rabbi)들에게 완전히 헌신했으며, 랍비들이 성경을 해석해 주지 않으면 연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제자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개념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들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에게 자신을 완전히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따르는 스승을 따라 함께 기도하고 금식했으며(막 2:18, 눅 11:1), 유대 지도자들에게 당당히 맞서는가 하면(요 3:25), 세례 요한이 투옥되고(마 11:2), 죽음에 이르기까지(막 6:29) 단 한 순간도 그를 향한 충성은 변하지 않았다. 모세나 바리새인의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는 데만 그친 반면 그들은 스승에게 자기들의 삶을 완전히 헌신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제자도의 기본 개념이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신 주위로 사람을 모으실 때, 아주 평범한 사람들부터 시작하셨다. 주님은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가르침이 아닌 당신 자신을 따르라고 명하셨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복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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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으며, 그들이 치르게 될 고통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아주 독특한 형태의 제자도를 만드신 것이다.

Called by Jesus

랍비들의 세계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선택해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를 부를 때 자신이 주도권을 전적으로 행사하셨다.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레위, 빌립 등 모두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를 따른 것이다.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로 달려와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질문했을 때, 그때도 예수님은 제자도가 요구하는 전인적인 희생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저 ‘오라, 나를 따르라’고만 말씀하셨다. 그의 완전한 인격과 고귀한 가르침과 기적에 이끌려 온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에게 헌신을 약속하며 그의 제자가 되기를 끊임없이 간청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간청을 뒤로하고 당신의 제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제시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얼마 안 가 ‘말씀이 너무 어렵다. 누가 들을 수 있겠느냐?’(요 6:60)라며 하나 둘 예수님을 떠나갔다. 그런 일이 거듭되면서 마침내 오직 열둘, 바로 예수님이 밤새워 기도하며 손수 부르신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특별한 자들이었다(요 17:9). 열두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만의 독특함을 지녔으면서도 이들을 하나로 묶어 흔들리지 않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들의 삶을 주도하시고, 또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힘입어 모였다는 사실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요 15:16)

이 말씀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우리 자신이 선택받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하게 되면, 예수님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참가한다면 관중과는 전혀 다른 자세로 올림픽에 임할 것이다. 선수들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상당히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로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의식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수 있으려면 예수님이 우리를 선택했고, 우리가 부름을 받았으며 명령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중략)

둘째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나눔의 제자로 부르신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을 사랑 안에서 서로 나누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요한복음 15:16 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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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여 세웠나니’라는 말씀 직후에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는 명령이 뒤따르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 13:34 이하). 그리고 그를 섬김으로 열매를 맺고, 또 기도의 응답을 받을 것이다(요 15:16 참조, 마 18:19).

제자도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아픔과 눈물이 따를 것이고,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순간 가슴 속에서 세상적인 가치와 야망이 고개를 들 것이다.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와 싸우라고 부름받지 않았다. 하나님은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다시 일어서는 체험을 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다른 제자들을 사랑하며 섬기기를 원하신다.

Called to Jesus

유대 랍비와 헬라의 철학자들은 제자들이 특정한 가르침이나 일정한 주장을 무조건 따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름은 사뭇 달랐다. 예수님을 따라야 했고, 함께 있어야 했으며, 전심으로 그에게 헌신해야 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가져야 했으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중략)

예수님은 제자를 직접 부르셨고, 자신의 삶도 함께 나누셨다. 열두 명의 제자들과 더 깊이 있게 나누셨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주셨다. 그에게는 속임수나 사특함이 전혀 없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격으로 마음을 활짝 열어 우리를 당신 몸처럼 아끼고 돌봐 줌으로써 사람들은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사랑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완전한 사랑의 삶이 십자가 위에서 산산조각 나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끔찍한 사건 이후, 예수님과 제자간의 믿음과 헌신을 회복하는 데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시 부드럽게 찾아가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사랑과 용서, 그들과 함께 있음을 개인적으로 확인해 주셨다. 몇몇 제자들에게는 육체적이 모습으로 홀로 나타나셨는데, 이로써 그들은 가르침에 대한 증인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증인이 된 것이다. 이후 제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 예수님의 삶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시작했다.

석가모니가 죽을 때 그의 제자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석가를 잘 기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석가는 그들에게 애써 자기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다. 모든 것은 예수님 자신에게 모아진다. 제자도란 예수님 자체를 아는 것이며,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으며, 헌신하는 것이다.(Discipleship means knowing him, loving him, believing in him, being committed to him.)

Juan Carlos Ortiz, 『Disciple』 (제자입니까), 두란노, 2003, 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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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 회원

현대 교회에서 교인이 되려면 어떤 자격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거의 모든 지역 교회는 세 가지 요건을 내세운다.

(1) 집회에 참석해야 한다.(2) 헌금을 해야 한다.(3) 인격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군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다들 좋은 회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유수한 친교 단체 회원과 같다. 모임에 참석하고, 회비를 상납하며, 모임에 방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을 때,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요건의 근거를 찾으려고 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사실, 회원이라는 단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초대 교회의 모든 행적 가운데서, 그 어디에도 교회에 회원들을 받아들였다든지 무슨 특별한 의식을 치렀다든지 하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삶과 교회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만한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제자’라는 단어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문하였다. “제자란 무엇인가?” 제자는 회원과 다르다. 제자란, 스승의 삶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 그 다음에 스승이 했듯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삶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제자도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홍보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제자도는 ‘생명’의 교류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하셨던 것이다. (중략)

교육의 일반적인 형태는, 아침에 아내와 다퉜다 하더라도 그날 교회에 가서 가정에서의 사랑에 대해 설교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자 삼는 일에는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제자는 스승과 많은 면에서 함께한다. 제자는 스승의 집에 머물며 스승의 삶을 보고, 나아가 스승을 모방한다. 어떤 사람이 나와 함께 일주일 동안 여행하고서 이렇게 부탁한다고 가정해 보자. “후안 카를로스 씨, 교사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시간을 좀 내셔서 제게 무엇이든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난 칠 일 동안 저와 함께 있으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따로 가르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제자도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행 21:1-16]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After we had torn ourselves away from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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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vita Bible Class by Somang Presbyterian Church

we put out to sea and sailed straight to Cos. The next day we went to Rhodes and from there to Patara.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We found a ship crossing over to Phoenicia, went on board and set sail.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After sighting Cyprus and passing to the south of it, we sailed on to

Syria. We landed at Tyre, where our ship was to unload its cargo.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Finding the disciples there, we stayed with them seven days. Through the Spirit they urged Paul not to go on to Jerusalem.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But when our time was up, we left and continued on our way. All the disciples and their wives and children accompanied us out of the

city, and there on the beach we knelt to pray.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After saying good-by to each other, we went aboard the ship, and they returned home.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We continued our voyage from Tyre and landed at Ptolemais, where we greeted the brothers and stayed with them for a day.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Leaving the next day, we reached Caesarea and stayed at the house of Philip the evangelist, one of the Seven.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He had four unmarried daughters who prophesied.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After we had been there a number of days, a prophet named Agabus came down from Judea.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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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vita Bible Class by Somang Presbyterian Church

Coming over to us, he took Paul's belt, tied his own hands and feet with it

and said, "The Holy Spirit says, 'In this way the Jews of Jerusalem will bind

the owner of this belt and will hand him over to the Gentiles.'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When we heard this, we and the people there pleaded with Paul not to go up to Jerusalem.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Then Paul answered, 'Why are you weeping and breaking my heart? I am ready not only to be bound, but also to die in Jerusalem for the name of the Lord Jesus.'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When he would not be dissuaded, we gave up and said, "The Lord's will be done."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After this, we got ready and went up to Jerusalem.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Some of the disciples from Caesarea accompanied us and brought us to the home of Mnason, where we were to stay. He was a man from Cyprus and one of the early dis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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