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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 철학의 신학적 수용 알랭 바디우의『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제1저자: 김학철 연세대학교 조교수, 신약학 제2저자: 고형상 연세대학교 박사과정 I. 서언 이른바 유럽의 대표적 좌파 혹은 진보적 철학자들이 바울을 읽고, 그에 관한 작품들을 출판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신학계가 아니라 일반 인문학 계에서 우리말로 속속 번역되었다. 1) 마르크스주의 계열에 서 있는 그들이 왜 기독교 전통에 새삼스레 주목하는 것일까? 해방적 가치의 원천으로 간주되던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흔히‘보수’ , ‘권위’ , ‘여성차별’ , ‘인종주의’ , ‘복음의 순치’등의 단어와 관련되는 인물인 바울이 왜 그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을까? 그들은 바울을 비판하려고 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들의 이론적 돌파구를 바울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2) 이 상황은 현재 우리나라의 신학계 및 시민사회 의 정황을 감안할 때 특이한 사태이다.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며 기독교를 갱 1) Giorgio Agamben, Il Tempo Che Resta Un Commento Alla Lettera Ai Romani (Torino Bollati Boringhieri, 2000[ 강승훈 옮김, 『남겨진 시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관한 강의』 ( 서울 코나투스 2008)]). Slavoj Zizek, The Puppet and the Dwarf The Perverse Core of Christianity (Cambridge MIT. Press, 2003[ 김정아 옮김, 『죽은 신을 위하여 기독교 비판 및 유물론과 신학의 문제』 ( 서울 , 2007)]) 등등. 2) 외국 학계에서 그들의 작업에 대한 평가를 알기 위해서는 Paul J. Griffiths, Christ and Critical Theory, First Things 145(2004), 46 55; Alain Gignac, Taubes, Badiou, Agamben Reception of Paul by Non Christian Philosophers of Today,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eminar Papers 41 (2002), 74 110 등을 보라.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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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알랭 바디우의『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제1저자: 김학철 연세 학교 조교수, 신약학

제2저자: 고형상 연세 학교 박사과정

I. 서언

이른바유럽의 표적좌파혹은진보적철학자들이바울을읽고, 그에

관한작품들을출판하고있다. 이들의작품은신학계가아니라일반인문학

계에서우리말로속속번역되었다.1)마르크스주의계열에서있는그들이왜

기독교전통에새삼스레주목하는것일까? 해방적가치의원천으로간주되던

역사적예수가아니라흔히‘보수’, ‘권위’, ‘여성차별’, ‘인종주의’, ‘복음의

순치’등의단어와관련되는인물인바울이왜그들의연구 상이되었을까?

그들은 바울을 비판하려고 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들의 이론적 돌파구를

바울에게서찾으려고한다.2)이상황은현재우리나라의신학계및시민사회

의정황을감안할때특이한사태이다. 역사적예수를강조하며기독교를갱

1) Giorgio Agamben, Il Tempo Che Resta: Un Commento Alla Lettera Ai Romani (Torino: Bollati

Boringhieri, 2000[강승훈옮김, 『남겨진시간:로마인들에게보낸편지에관한강의』(서울

:코나투스 2008)]). Slavoj Zizek, The Puppet and the Dwarf: The Perverse Core of Christianity

(Cambridge: MIT. Press, 2003[김정아옮김, 『죽은신을위하여:기독교비판및유물론과

신학의문제』(서울:길, 2007)]) 등등.

2) 외국학계에서그들의작업에 한평가를알기위해서는 Paul J. Griffiths, “Christ and Critical

Theory,”First Things 145(2004), 46-55; Alain Gignac, “Taubes, Badiou, Agamben: Reception

of Paul by Non-Christian Philosophers of Today,”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eminar Papers 41

(2002), 74-110 등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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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려는일단의학자들은바울에게서혁명적이론의가능성을타진하는유

럽 좌파철학자들의 시도가 생소할 것이다. 기독교의 사회정치적 참여에 더

이상호의적이지않은진보계열의시민사회와지식인계층역시바울의서

신에호소하는유럽철학자들의이론이생경할것이다.

이 은바울과기독교전통에새롭게주목하는학자들가운데현재프

랑스철학의 표자격으로평가받는알랭바디우(Alain Badiou, 1937- )의철

학과그의『사도바울』(Saint Paul - La fondation de l’universalisme)을소개및

평가하고, 그의철학과바울해석의신학적수용을타진하려한다.3) 또그의

논의가신학적언어를신선하게해주는점이무엇이고, 신학적지평의확장

과농 함을어떻게도와주는지가이 에서논구될것이다. 이러한작업은

우리나라신학계에아직은생소한바디우철학이해에 한전체적인조감4)

과바울신학의현 적해석가능성을살피는데에일정부분기여할수있을

것이다.

II. 알랭 바디우의 사상적 배경

알랭 바디우는 프랑스령이었던 모로코의 라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정

치적입문은 21세무렵이루어졌다. 비교적이른나이에정치에참여하게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바디우는 일찍이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던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를추종하 고, 1958년당시프랑스와알제리사이에

전쟁이발발하 다. 전쟁에반 하던바디우는‘연합사회당’(PSU) 설립에주

도적으로참여하 다. 이후바디우의생애에서재차확인되듯철학과정치는

바디우삶을형성하는두축이되었다.

바디우는 1967년 파리고등사범학교의 루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와본격적으로교류하기시작했다. 스피노자연구를비롯하여알튀

58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3) Alain Badiou, Saint Paul: La fondation de l’universalisme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97). 이논문에서는독자들의편의를위하여특별한오역이없는한한국어번역

본을소개한다. 알랭바디우/현성환옮김, 『사도바울:‘제국’에맞서는보편주의윤리를

찾아서』(서울:새물결, 2008).

4) 바디우에관한김상일교수의연구서적이있으나그것은신학적평가와수용이라기보다

는동양학과의비교에주요관심이있다. 다음을참고하라. 김상일, 『알랭바디우와철학

의새로운모험 1, 2』(서울:새물결, 2008).

-58-

세르가주관한“과학자들을위한철학강의”에참가하 다. 그러나프랑스 68

혁명은알튀세르와바디우를갈라놓는사건이되었다. 정치적앙가주망에열

성적이었던바디우는구조주의적마르크스주의자로정치참여에미온적이었

던알튀세르에실망하 다. 그무렵전투적인마오이즘이바디우삶에알튀

세르등이차지했던철학의자리를 신했다.

문화 혁명의광풍이지난후‘마르크스-레닌주의와마오주의가현실

을적절히설명하거나변혁할수있는가’라는물음이제기되었다. 바디우는

새로운상황에처해교조적태도를보이지않았다. 그는자신의철학적주제

와정치적앙가주망의열정을적절히풀어낼새로운사고를형성해야했다.

지적고투의결실이그의 표작으로간주되는『존재와사건』5)에서집약적으

로나타났다. 그는이저작을통해포스트모더니즘의담론속에서마땅히해

체되어야할것으로여겨졌던‘존재론’과‘진리’의의미를다시금복원할것

을역설한다.

바디우의사상과활동은동시 의프랑스철학의유행과는거리가있

었다. 이‘거리’는그가거쳤던격렬한논쟁에서뚜렷이드러난다. 모더니즘

의성채이자급진좌파의요새로여겨졌던뱅센 학(파리제8 학)에교수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그는 동료교수 던 들뢰즈(Gilles Deleuze) 및 리오타르

(Jean-François Lyotard) 등과열띤학문적논쟁을벌 다. 바디우는들뢰즈사

후그에게보내는최후의서신과도같은『들뢰즈-존재의함성』6)을통해들

뢰즈와자신의철학적견해가어떠한점에서 척을이루었는지를명징하게

보여주었다.7) 또한때자신의스승이었던알튀세르의『자기비판에세이』8)에

해서도날선비평을시도했다. 바디우는알튀세르가자기비판이라는명목

하에서 중들이설자리를박탈했다고지적했다.

알튀세르나 들뢰즈 같은 향력 있는 철학자들과 립했지만 프랑스

학계는 바디우의 철학적 성과를 폄하하지 않았다. 특별히 바디우의 주체에

관한이론이평가를받았다. 이이론은라캉(Jacques Lacan)의위상학의 향

을받았는데, 이는『주체의이론』9)에자세히설명되어있다. 바디우는주체의

5) Alain Badiou, L’Étre et l’événement (Paris: Seuil, 1988)

6) Alain Badiou, Deleuze. La clameur de l’être (Paris: Hachette, 1997)/박정태옮김, 『들뢰즈-존

재의함성』(서울:이학사, 2001).

7) Jason Barker, Alain Badiou:A Critical Introduction (London: Pluto, 2002), 2.

8) L. Althusser, Essay in Self-Criticism, tr. by G. Lock (London: NLB, 1976).

9) Alain Badiou, Théorie du sujet (Paris: Seuil, 1982).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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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논리와주체자체의역사적해체라는시 적조류를정교하게분석함으

로써혁명적주체의설정문제를재조명하 는데, 그과정은철저하게라캉의

관점을따른것이었다. 그후 1988년에는칸토르(Georg Cantor)의집합론과마

르크스의혁명이론을바탕으로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라캉의체계를

완전새롭게구성해낸『존재와사건』을출간함으로써프랑스철학의한흐름

으로인정받았다.

주체를재구성하려는맥락에서바디우는사도바울에주목하 다. 1997

년에출간한『사도바울』은바울이시 를지배하는거 담론의틈속에서어

떻게자신에게일어난사건을선언했는지, 그리고그선언에따라주체를어

떻게구조화했는지를살핌으로써, 주체의해체라는포스트모더니즘의조류

속에서주체의의미를다시금복원시키고자하 다. 정치적참여와진리및

주체에관한철학적이론을통해바디우는‘후기-포스트모더니스트’10)라는

별칭을얻었다.11)

III. 바디우 철학의 주요 주제 - 진리와 사건 그리고 주체

모든철학은시 의산물이다. 철학은시 적‘조건’에의해구성된다.

바디우의출발점도여기서벗어나지않는다.

철학이모든역사적짜임새(configuration) 속에서항상존재하는것

은아니다. 철학의존재양식은시간과공간속에서의불연속성이다. 따라

서전제되어야하는것은철학이특수한조건들을요구한다는것이다. …

철학의조건들은횡단적이다. 이조건들은긴기간에걸쳐식별될수있는

한결같은 공정(工程, procédure)들이며, 사고에 한 이 공정들의 관계는

상 적으로불변적이다. 이불변성의이름은명백하다. 즉그이름은‘진

리’이다. 철학을조건짓는공정들은진리의공정들이다. 이공정들이진

리의공정들로식별되는것은자신들의반복속에서이다.12)

60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10) Christopher Morse,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 by Alain Badiou,”Theology

Today, 63(2006), 397.

11) 바디우의 저서『조건들』에 실린 프랑수아 발(François Wahl)의 서문“빠져나오는 것”(Le

soustractif)을보라. Alain Badiou, Conditions (Paris: Seuil, 1992), 9-54/이종 옮김, 『조건들』

(서울:새물결, 2006), 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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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우는 철학이 특수한 조건들에 의해서 구성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학과그조건들의관계속에불변적인요소가없다고보지않는다. 그는불

변적요소를‘진리’라고부른다. 진리는철학과그것의조건이되는다양한

사유들을관계짓는요소가된다. 철학은스스로진리를만들어내는것이아

니라, 진리를식별하고명명한다. 진리를생산하는것은철학이아닌, 네가지

의진리생산공정이다.

바디우는진리생산의공정을크게네가지로구분한다. 그것은‘예술’,

‘정치’, ‘과학’, ‘사랑’이다. 바디우에따르면네가지공정으로추린것은자

의적인결정이아니다. 그는철학사적맥락속에서이러한구분을하 는데.

‘정치’와‘과학’은철학사속에서언제나철학을가능하도록하 던동력이

었으며, 예술은철학사속에서철학과긴장관계를유지해왔던분야이고, 사

랑은플라톤에게서사유로상승하는지위를부여받은것이다. 철학의역할은

이러한네가지공정과정에서생산된진리를진리로서사유하는것이다.13)그

공정에의해생산된진리가철학의사유 상이다.

바디우의‘진리’는 원불멸한부동의진리, 과학적객관성으로파악되

는진리가아니다. 진리는‘사건’을통해서드러난다. 사건이일어나지않으

면진리도없다. 사건을통해드러나는진리는기존의지식체계로는파악될

수없는완전히새로운것이다. 따라서진리의드러남은 원불변한것이아

니라, 어디까지나상황의존적이며국지적이고, 또한복수이다. 진리는마치

화려하게꽃피우고이내사라져버리는검은하늘의불꽃과같은사건에서발

생한다.

바디우의‘주체’는그의진리와사건개념에서비롯된다. 사건에기

지 않은 진리가 없듯 진리에 근거하지 않는 주체도 없다. 주체는 순수하게

‘후(後)사건적’이다.14)우발적인‘사건’에근거하는주체역시우발성에기초

해있다. 바디우의‘주체’는근 철학적의미의절 적인주체, 이미결정되

어있는주체개념과날카롭게구분된다. 주체가사건과진리에의존해있다

는것은주체개념이더이상 상을지시하지않음을의미한다. 이러한주체

는 상없는주체이다.15)바디우는이를“ 면하고있는것이없는주체”(sans

12) 알랭바디우/이종 옮김, 『철학을위한선언』(서울:백의, 1995), 33-34.

13) 서용순, “바디우Badiou 또는 철학에 의해 다시 사유되는 정치”, 「진보평론」35(2008/봄),

57-58.

14) 바디우, 『철학을위한선언』(1995), 117.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61

-61-

vis-à-vis)16)라고불 다. 그가말하고자하는주체는하나의실체로고착화

될수없는작용으로서의주체이다.

바디우의주체이론은포스트모던과는다른사유의가능성을보여준다.

제1, 2차세계 전이후유럽의철학적담론들은‘이성적주체’에 해크게

두가지태도를취하 다. 한진 에서는주체개념자체가띠고있는억압성

을폭로하고, 이를폐기해야한다는견해를피력한다. 다른한편에서는전통

적주체를비판적으로수용하자는, 다시말해새로운주체의개념을설정하

자는주장을펼친다. 바디우는후자, 곧수정주의적흐름에속한다고할수있

다. 그는자신을합리주의전통에속한“다수에 한플라톤주의자”17)로규정

한다. 그러나그의시도는근 적합리주의로의무비판적회귀를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디우는모더니티비판에서주된표적이되었던전체주의와획일주

의, 또한포스트모더니티가갖고있는상 주의와회의주의를동시에지양하

고자한다. 그의작업은마르크스주의적기획이붕괴된이후등장한포스트

모던적형태들에서는발견할수없는강력한 안적사고로평가받았다.18)

또한 바디우는 철학이 상 성이나 주관성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 다. “철학은언재나체계성을가진시스템이다.”19)“체계성이란철학

에있어서불가피한것이며, 그체계성은철학에있어매우본질적인부분”20)

이다. 바디우가말하는체계란전기구조주의자들과같이선험적으로구성되

어있는폐쇄된체계가아니다. 그것은언제든지변화의가능성을수용하는

개방된체계이다. 철학의정합성과자명성을담보하기위한가장적절한방

법론은‘수학’이라고할수있다. 바디우는플라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칸

트에서와마찬가지로수학을철학의필수적인조건으로평가한다.21) 바디우

62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15)“ 상은지식의범주일수있고, 진리의후(後)사건적생산에방해물이된다. 탈정향화된

우리시 의열림의조건으로서의시적탈 상화는다음과같은철학적진술을그근본적

벌거벗음속에서허락한다. 모든진리는 상이없다.”앞의책, 117-118.

16) 앞의책, 119.

17) 바디우, 『조건들』(2006), 43; 바디우는자신이합리주의전통, 즉미신적이고불합리한것들

에 항하는과학적계몽주의에서있다고거리낌없이말한다. 앞의책, 217-222 참고.

18) Peter Hallward, “Generic Sovereignty: the Philosophy of Alain Badiou,”Angelaki: Journal of

the Theoretical Humanities 3(Dec/1998), 88.

19) Alain Badiou, “Being by Numbers,”Interview with Lauren Sedofsky, Artforum 33/2(Oct/1994),

85.

20) Alain Badiou, “L’Entretien de Bruxelles,”Les Temps modernes 526(1990), 25, quoted in Hallward,

“Generic Sovereignty”(1998),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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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신의이론을위해채택한수학이론은칸토르와폴코헨(Paul J. Cohen)으

로이어지는현 집합이론이었다.22)그이론을통해바디우는존재의질서와

그질서에서비롯되는사건의돌발적우연성을설명한다.23)“사건의돌발을

수학적합리성으로부터도출함으로써바디우는혁명적사유와합리적사유

의통합이라는어려운과제를달성하는동시에이전의합리주의와는전혀다

른방식으로진리와주체를사유한다.”24)

바디우의이론은또한라캉의정신분석학에상당부분빚을지고있다.

라캉에 한바디우의수사적헌사는25), 그의철학에서라캉이가진중요성을

단박에알려준다. 바디우는라캉을반철학자로규정하면서, 반철학과철학의

공가능성(共可能性)이라캉에서부터비롯한다고주장한다.26)또주체에관하

여서도바디우는라캉에게빚지고있다.27)

바디우는사건, 진리, 주체를보편성과우발성이라는 립적인두축의

긴장관계로부터해명하면서바울이라는기독교의사도를발견하 다. 바디

21) 앞의책, 88.

22) 공리적집합이론은바디우의철학에있어서기초적토 의역할을한다. 바디우는집합론

을통해“진리이론의새로운단계, 즉하나(통일적원리, l’Un) 없는배수(倍數)의이론, 또

는 무한하고 식별불가능하고 파편화된 총체성의 이론으로 진입”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바디우, 『철학을위한선언』(1995), 72. 이에 한보다자세한논의는앞의책, 54를참고하

라.

23) 칸토르에서 폴 코헨에 이르는 현 집합 이론은“식별 불가능한 다수성(multiplicité

indiscernable)에 한 개념을 수립해낸다. 이로써 집합이론은 존재-로서의-존재(Etre-

en-tant-qu’être)에 한합리적사유와언어사이의문제에 한해결책을제시한다. 식

별불가능한다수성의존재를증명함으로써, 기존의지식체계를규정하는언어체계를

벗어난, 즉기존의언어로규정할수없는존재가있음이드러난것이다. 바로진리가이러

한존재형태를갖는다고바디우는역설한다.”서용순, “철학의조건으로서의정치: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진리철학을중심으로”, 「철학과현상학연구」27(2005/11), 107.

24) 서용순, “바디우철학에서의공백(vide)의문제”, 「라캉과현 정신분석」8/2(2006/12), 98.

25)“나의주인자크라캉”, Badiou, Conditions(1992), 85:“(라캉은) 모든철학의스승이다. 나

는현 철학자들을어떠한머뭇거림도없이라캉의반(反)철학을그냥지나치려는용기

를가진사람이라고부른다.”Ibid., 196; “우리의고인(故人)들중에서가장위 했던라캉”,

바디우, 『철학을위한선언』(1995), 22.

26) 앞의책, 106 참고.

27)“주체는실체를가지고있지않으며또한본성을갖고있지도않다. 우리가‘인간존재’에

한개념을발견할수있는어떠한규범도존재하지않는다.”Alain Badiou, L’Ethique. Essai

sur la conscience du mal (Paris: Hatier, 1993), 8, quoted in Hallward, “Generic Sovereignty”

(1998), 89.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63

-63-

우에따르면바울은자신의철학을위한하나의우화로서채택될만하다. 바

울을선택하면서바디우는“기독교신앙전통의세세한내용에서해방과평

등을향한보편적개별성을추출”하려기보다는“바울이어떻게자신에게일

어난사건을선언했고, 그선언에따라주체를구조화했으며, 이에헌신하

는지의과정을해부”28)하려한다. 진리와주체, 그리고사건을동시에해설하

기에바울이적합하 던것이다.

IV. 바디우의 철학적 기획과『사도 바울』

1. 바울이라는 우화

이미살펴본 로바울에 한바디우의관심은종교적관심에서비롯

되지않았다. 바디우가바울을해석할때우선적으로고려하는것은기독교

신앙이나교회전통이아니라고통속에놓여있는현 인이다.29)

1990년 사회주의체제의붕괴이후바디우는좌파의몰락과시장자본

주의체계의전지구적활개를목도하 다. 또한그는‘시장자본주의’라는보

편에맞선다는특수주의, 곧일련의종교와문화, 그리고지역을기반으로하

는공동체주의가거짓된보편인시장자본주의와공모관계에있다는것도발

견한다. 두적 적세력과의공모속에세계는신음하고있다. 이에바디우는

고통이보편화된세계에바울을불러들여, 그를우리시 의우화로서활용

하려한다. 바울은기독교인을핍박하는유 인이었지만다마스쿠스에서부

활하신예수그리스도와만나는‘사건’이후, 자신의모든생애를걸고기독

교의‘진리’를전파한‘주체’이다. 바디우는바울을“사건의사상자=시인인

동시에투사의모습이라고부를수있는것의한결같은특징들을실천하고

진술하는사람”으로평가한다. 바디우의바울은“20세기초레닌과볼셰비키

에의해확립된투사의모습을뒤이을새로운투사의모습”30)을띠고있다. 그

64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28) 김학철, “현 철학, 투사바울을초청하다”, 「기독교사상」604(2009/3), 259.

29)“기본적으로나는바울을결코실제로종교와결부시킨적이없다. 내가오랫동안그에게

관심을가졌던것은종교에관심이있어서이거나아니면어떤신앙, 또는심지어반-신앙

을증언하기위해서가아니었다.”바디우, 『사도바울』(2008), 12.

30) 앞의책, 13.

-64-

투사는 새로운 보편적 개별성, 혹은 새로운 주체를 보여준다. 그렇다면‘진

리-사건’체험 이후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바디우의 바울이 추구하고자

했던바는무엇인가?

2. 구획된 담론의 틈 사이로

바울이다마스쿠스에서체험한‘진리-사건’은기존의담론으로는설

명될수없는완전히새로운것이다. 바울은이를알리기위해새로운담론이

필요하 다. 바디우에의하면, 바울은당 를지배하는거 담론을크게두

가지로구분하 는데, 그것은‘그리스인의담론’과‘유 인의담론’이다. 그

가당 에다양한양태의담론들이있었음에도불구하고, 오직두개의집단

으로양분하고있는것은그것이주체적성향의전부, 곧담론체계의전부라

고여겼기때문이다.31)

그리스인의담론과유 인의담론이란무엇인가. 바디우는각각의담

론들에의해구성되는주체적형상을‘현인(賢人) 형상’과‘예언자의형상’

으로파악하 다. 그리스담론은지혜를중심으로하는총체성의담론으로

서, “지혜란로고스를존재와짝지음으로써세계의고정된질서를전유하는

것”32)을의미한다. 그리스담론은“주체를자연적총체성의이성안에위치”

시킴으로써우주적질서곧퓌시스(존재의정돈되고도완결된전재로서의자

연)를파악하고자한다. 그리스담론이본질적으로총체성의담론인이유가

바로이때문이다.

바디우는그리스담론과 비되는담론으로유 담론을다루고있는

데, 그에의하면유 담론은‘예외의담론’이다. 이는“예언적표징, 기적, 신

에의한선택이란자연적총체성을넘어선초월성을가리키기때문”33)이다.

유 인들은스스로를신에의해특별한선택을받은예외적존재들로생각

하며, 자신들에게만그러한특권을보증하는표징들이주어졌다고생각한다.

“유 민족자체가표징인동시에기적이며선택”34)이라는것이다. “그리스

31) 롬 3:9, 10:12; 고전 1:22; 10:32; 갈 3:28, 골 3:11 등에서살필수있듯이, 바울은그리스

인과유 인이모든인종의 표인것처럼청중을오직두그룹으로환원하고있다.

32) 앞의책, 83.

33) 앞의책, 84.

34) 앞의책,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65

-65-

담론은우주적질서에기반한채그러한질서에부합하려고하는반면유

담론은그러한질서에 한예외에기반한채신적인초월성을표징으로바

꾸려한다.”35)

바디우에따르면, 바울은적확한통찰력으로그리스담론과유 담론

이동일한형상의서로다른두측면으로서, 모두가‘지배담론’임을갈파하

다. 그리스담론은본질적으로총체성의담론이지만유 교의예외적표징

의등장으로결여를갖게되고, 더이상세계질서를총체적으로담아낼수없

게된다. 반면에, 유 담론의예외적표징의논리는오직그리스적인우주질

서의총체성을상정할때에만가능하다. 곧유 담론은그리스담론의예외

로서만존재하는것이다. 이렇듯한쪽의담론이다른쪽의담론을전제하고

있는한, 두담론은모두보편적인것이될수없다. 결국총체적질서의담론

과그것에 한예외의담론은하나의형상에 한서로다른측면에불과하

다.36)그것은지배를위한담론이다. 그리스담론은철학자들에게권한을부여

함으로써유사보편적법의지배가성립하도록하며, 유 담론은예언자들

에게권한을부여함으로써예언적특권을통한전능한입법자의지배가성립

하도록한다. 두담론에의해구성되는세계는하나의법적상태로나타나게

된다. 그러나객관적현실로서정립된법은자신의지배하에서일단의존재

들을 궁극적으로 소외시킨다. 또한 그 속에서 새로움이나 변혁이 발생하지

못하도록만든다.37) 바디우가이해한바울은이와같이법이갖는제한성을

벗어나려한다.

바울의계획은보편적인구원론은어떠한법-사유를코스모스에

66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35) 앞의책.

36) 바디우는지배담론과그에 비되는보편적평등의담론을각각‘아버지’와‘아들’로은

유한다. 바디우에게아버지의담론은공동체를어떤복종의형식에묶어놓는위계적인

것을의미하는반면에, 아들의담론은모든특수주의에서벗어나보편적인것이될수있

는잠재력을의미한다. 이러한맥락에서바디우는기독교에서말하는신이아들을보냈다

는도식을하나의은유로이해하는데, 그것은기존의담론체계를깨뜨리고아들이역사

속으로개입함으로써아들들의평등, 곧보편성을드러냈음을보여주는것이다. 앞의책,

85-86.

37)“법이불평등의해소를지향하는데서그치지않고모든개별자들의자연적및현실적차

이를적극적으로동일하게만들려는의지로나타날때, 법은결과적으로강자의폭력으로

나타나게된다.”김상봉, 『서로주체성의이념:철학의혁신을위한서론』(서울:도서출판

길, 2007), 156.

-66-

연결짓는법이든아니면 [신의] 예외적선택의결과들을고정시키기위한

법이든상관이없다-과도화해가불가능하다는것을보여주는것이다.

전체가출발점일수도, 또이전체에 한예외가출발점일수도없다. 총

체성도 표징도 맞지 않다. 오히려 사건 그 자체로부터, 비-우주적이며

탈-법적인사건, 어떤총체성에의통합도거부하며, 어떤것의표징도아

닌사건그자체로부터출발해야한다. 하지만사건으로부터출발한다는

것은어떠한법치도, 어떤형태의지배-현자의지배든아니면예언자의

지배든-도가져오지않는다.38)

바울은지배담론인그리스/유 담론을모두지양하는새로운담론, 곧

기독교 담론을 제시한다. 기독교 담론은 법이라는 고착화된 상태적 실재가

아닌‘사건’에정초해있다. 바울에게사건이란다마스쿠스에서부활한그리

스도와의만남이다. 이사건은기존의담론이나조건들로부터어떠한연속성

도갖지않는순수한것, 곧비존재적인것이다. 사건은기존담론의연속성이

나 전통의 축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은 순수한 주어짐이며 그러기에

현재상황을규정하고조절하는법과질서로부터단절하고, 그것들을중단시

킨다. 사건은법과질서의상태로고착되지않는다. 그것은이내사라져버린

다. 단지사건은그것을체험한자를주체로소환하여그사건의의미가지속

되게한다. 사건에적극적으로응답하는자는사건의‘주체’가된다. 바울은

다마스쿠스에서불현듯도래한사건을경험하 고, 그러한사건의부름에신

실하게응답함으로써그리스담론, 혹은유 담론을모두지양하는새로운

담론의주체, 곧기독교적주체인‘사도’가되었다.39)

3. 새로운 주체의 기획

‘진리-사건’의부름을받은주체는이전에한개인에게정체성을부과

하던성, 계급, 인종등과같은것에의해구속되지도설명되지도않는다. 바울

이선언하는‘사건’은자신을이전과는전혀다른존재, 곧새로운주체로바

38) 바디우, 『사도바울』(2008), 85.

39) 그리스/유 담론에서각각의주체의형상이현자(철학자)와예언자인것처럼, 바디우가

말하는기독교담론의형상은바로‘사도’이다. 바디우에게서사도란, 오직사건의은총에

만의존한채죽음을이길수있다는전 미문의가능성을선언하는자이다. 앞의책, 87,

90.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67

-67-

꾸었다. 바디우가주체화라고부르는것은‘진리-사건’이주체를부르는일

련의과정이다. “주체는결코과정이전에존재하지않는다. 주체는사건‘이

전’의상황속에서있는절 적인비존재이다. 우리는진리의과정이주체를

야기한다고말할수있다.”40)진리과정을확증하는확신은충실성으로부터비

롯한다. 무수한방해와반 에직면하여바울은사건에 한신실함을지속

하고유지한다. 충실성이란진리가사건화되는것을방해하고가로막는모

든것에 항하는주체적확신이다. 순수한사건에의해태어나는주체는오

직사건그자체에충실함으로써진리과정을지속할수있다. 바디우는사건

이후 부름에 응답하여 사건에 하여 지속적으로 충실한 주체를‘투사’(鬪

士)라고부른다. 그는바울에게서이러한투사적면모를발견한다.

바디우에 따르면, 진리-사건에 한 투사로서의 충실성은 세 가지의

차원, 즉‘믿음’, ‘사랑’, ‘희망’의차원에서이루어진다. 믿음은‘피스티스’

(pistis)로서, 진리사건이자신을주체로세웠다는것에 한전적인‘확신’을

의미한다. 이러한‘확신’을다른이들에게전투적으로건낼때, ‘사랑’곧‘아

가페’(agape)가발생한다. 진리가보편화될수있는것은바로사랑때문이다.

또한진리과정이완성을향해나아갈때주체는전위의힘을필요로하게되

는데, 여기서‘희망’곧‘엘피스’(elpis)가발생한다. 진리를선언하고그것을

보편화하기위한전달의과정은일종의투쟁이다. 투쟁은필연적으로시련과

고통을수반한다. 하지만주체는‘희망’을통해이러한시련을극복하며진리

에 한충실성을계속해서유지한다. 요컨 , 진리과정이란기존의담론과

질서를모두거부하는사건을통해주체를세우고, 그주체가사건으로부터

비롯한확신을가지고다른이들에게투쟁적으로말을건네며, 그확신의완

성된성격을가정하고전위(轉位)를투사처럼행하는일련의과정이다.41)

바디우는이러한투사적주체에의한진리과정이통일성이아닌, 분열

을드러냄으로써전개된다고주장한다. 앞에서언급했듯이사건은기존의상

황에 한완전한단절인동시에새로운지평의열림이다. 주체는이러한분

열속에서등장한다. 바울은이러한분열을‘…이아니라…임’이라는정식으

68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40) 알랭바디우/이종 옮김, 『윤리학:악에 한의식에관한에세이』(서울:동문선, 2001),

56

41) 바디우는믿음, 희망, 사랑을다음과같이정리한다. “믿음이란참된것에 한열림일것

이고사랑은그러한여정을보편화하는실질성일것이며, 마지막으로희망은그러한여정

속에서의확고부동함이라는준칙일것이다.”바디우, 『사도바울』(2008), 180.

-68-

로써구조화하 다.42)바디우에의하면, “새로운시 의주체는일종의‘…이

아니라…임’이다.”이는주체가“하나의상태가아니라도정”43)가운데있음

을의미한다. 또한분열을전제로하고있음을보여준다.

우리는사건을통한단절이주체를항상‘…이아니라…임’의분열

된형태로구성하며, 바로그러한형식이보편성을담보한다고주장할것

이다. 왜냐하면, ‘…이아니라’는폐쇄적특수성들(‘율법’이그것의이름

이다)에 한잠재적인해체인반면, ‘…임’은사건(‘은총’이그것의이름

이다)에의해열린이과정의주체들이동역자로서임해야하는과업과충

실한수고를가리키기때문이다.44)

여기서‘…이아니라’가기존담론체계에 한단절을의미한다면, ‘…

임’은새로운진리에 한가능성을제시한다. 진리-사건은고착화된어떠한

상태일수없으며, 끊임없이새로움을재생산해내는일련의과정이다. 또한

기존의언어체계로는완전히설명될수없는예측불가능성이다. 도리어“주

체의가능성들이문제가될때안다고상상하는것은협잡”45)에불과하다. 사

도는진리에 해설명하는사람이아니며, 오직사건의홀연한체험을명명

하고그것을선언하는자이다. 바울은그리스도와의만남의사건을복음으로

명명하 고, 진리로서선언하 다. 진리는인간의삶과무관하게고색창연한

것으로존재하지않는다. 바디우에의하면진리는전적으로주체적이다. 그리

고이러한주체는사건이전부터존재하는것이아니라, 사건을통해출현한

다. 그러므로진리는인간의삶을일방적으로통과하는완료시제로서의계시

일수없다. 단지삶의자리에서끊임없이생성되고개방되어있는하나의과

정이다. 마찬가지로구원도하나의과정이지상태가아니다. 바디우에의하

면, 진리-사건을선언하는충실성의과정, 그자체가바로구원이다.

그러나 확고부동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불안을 의미한다. 과정으로

서의진리와구원은언제나깨어지기쉬운불안속에서드러난다. 이것이바

디우가사도-주체를‘약함’의주체성으로규정하는까닭이다. “불안정하기

42) 표적으로로마서 6:14(여러분은율법아래있지‘않고’, 은혜아래‘있으므로’)가이러

한구도에해당한다.

43) 앞의책, 124.

44) 앞의책, 124-125.

45) 앞의책, 90.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69

-69-

짝이없는진리가전개되기를지속하느냐아니냐의여부는오로지주체의약

함에달려있다.”46)바울이고린도후서 12:5에서자신의약함을자랑하고있

듯이, “그리스도교담론은기적의담론이되는것을단호히거부하고자체내

의약함을감수하는확신의담론이되어야”47)한다. 동일한맥락에서바디우

는“주체가자신의약함을낱낱이알리는곳에서실재는오히려모든자리들

의찌꺼기”임을강조하며“찌꺼기의주체성을수용”48)해야함을역설한다. 결

국기독교주체란세상속에서현시되기를스스로거부하고, 삶의안락한자

리를마다하며, 기꺼이찌꺼기에위치하기를결단함으로써진리를선언하는

자이다.

4. 차이의 횡단을 통한 보편성의 건설

바디우의작업을다시한번정리해보자. 바디우는현 자본주의로

변되는‘거짓된보편성’과형식적으로는그것에저항하는것처럼보이지만

여전히특권적폐단을향유하는‘공동체적특수주의’사이의내적인유사성

을드러내고은 한공모관계의전모를밝힘으로써, 이에맞서는새로운‘보

편적개별성’을찾고자한다. 이때바디우에게바울당시의시 적배경은현

적상황과매우 접하게 비된다. 바디우에따르면, 바울은로마제국의

법제와로마시민권을위시한법적권리와관련된‘국가적일반성’, 그리스인

들의철학적∙정신적담론들로 표되는‘이데올로기적일반성’, 그리고유

율법의보수적시각과유 주의로 변되는‘공동체적특수주의’의요구

들과맞서는새로운‘보편적개별성’을강조한다.

그렇다면, 바디우가궁극적으로지향하고자하는‘보편적개별성’이란

어떤의미인가. 참된사건은모든‘공동체주의적개별주의’와결별한다는점

에서보편적이다. 또진리역시특정한공동체나정체성에의해서제한되지

않고, 모든것을향하여개방되어있다는점에서보편적이다. “개별성은보편

성이존재하는한에서만존재한다. 그렇지않으면진리를벗어난특수자[특수

성]만이존재할수있을뿐이다.”49)그런데여기서보편성이란, 바울이갈라디

70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46) 앞의책, 107.

47) 앞의책, 102.

48) 앞의책, 111.

49) 앞의책, 187.

-70-

아서 3:28에서“유 사람이나그리스사람이나, 종이나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차별이없습니다. 그것은여러분이그리스도예수안에서다하나이

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차이들을 무시하고 동일성을 인식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바디우가 말하는 보편주의가 차이들에 한

해체와일자로의일방적인획일화를의미하는것은아니다. 바디우에따르면

바울은차이와개별성자체를부정하지는않는다. ‘그리스도예수안에서모

두가하나’라는표현이유 인이나그리스인이, 남자나여자가실제로존재

하지않는다는것을의미하지않는것처럼말이다. 그러한차이가존재하는

것은부인할수없는자명한사실이다. 우리는“모든진리공정이차이를폐

기하고순전히총칭적인하나의다양성을무한히전개시킨다고해서상황(이

것을세상이라고부르기로하자) 속에차이들이있다는것을망각해서는안

된다.”50)

바디우의보편주의는, 그것이긍정적이든부정적이든, 차이들이어떠한

의미를가지고있지않다는것에초점이맞추어져있다. 결국차이는보편성

의건설을위해포기되거나하나의가치로환원되어야하는것이아니라, 횡

단되고초월되어야한다. 횡단과초월은차이를억압하고, 소멸시켜버리는것

이아니며그에 해관용적무관심으로써차이그 로를받아들이는것, 곧

차이들의위계를점하지않고차이들사이를논쟁하지않으며, 그저무관심

하게지나치는것이다. 그러므로바디우가주장하는보편성은모든차이들을

망각하는폭력적이고억압적인획일성일수없다. 도리어차이를폐기하고자

하는거 담론의획일적횡포에삶의안정성을담보로“순응하려는심원의

욕망”이곧“죽음의길”51)이라고바디우는일갈한다.

바디우가주장하는보편주의는총체성의위계적헤게모니를해체하며,

어떠한특수한정체성에의거한특권적예외도폐기하는‘평등’의이념을핵

심으로한다. 또한진리-사건은‘아버지’의위계적담론이해체하고, ‘아들

들’의 평등함이 담보되는 것을 의미한다.52) 부활하신 예수와의 만남이라는

‘진리-사건’이바울에게의미하는바역시도, 그리스도안에서모든인류가

평등한한형제라는사실에있다. 바디우는유 인이나그리스인이나, 종이

나자유인이나, 남자나여자나, 그어떤종류의특수성이나정체성을넘어서

50) 앞의책, 189.

51) 앞의책, 214.

52) 앞의책, 84-85.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71

-71-

서“아들들의평등을정초”53)하기위하여사도바울을우리의동시 인으로

불러낸다.

V. 바디우의 바울 읽기의 신학적 평가

1. 『사도 바울』에 한 성서학적 평가

바디우의『사도바울』은일부신약성서학자들에게비교적호의적인평

가를받았다. 예컨 시카고 학교의한스디터베츠(Hans Dieter Betz)는54)그

의작업을파스칼, 키에르케고르, 끌로델, 헤겔, 콩트,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

거, 료타르등의역사적연구와함께언급한다. 베츠에따르면바디우의결론

은 하이데거와 불트만에게 가깝다. 에페하이머(Trevor Eppehimer)는 바디우

연구의도전적측면을강조한다.55)그는바디우의연구가칼바르트의로마서

주석에비견할만한충격을던져주었다고평가한다.

기본적으로 바디우가 사도 바울을 새로운 시좌에서 읽도록 도왔다는

데에는이론의여지가없다. 좌파철학자가읽은바울은그간신약학자들이

그려오던바울스케치와사뭇달랐다. 익숙한바울을낯설게하여바울을다

시보게하는것은결코쉽지않은작업이다. 바디우는확실히이면에서성공

하 다. 그러나그의근본논지가운데몇은쉽게납득되지않는다. 먼저사

건이가져온다는, 기존의지배담론과는완전히다른새로운‘진리’에관해

서이다.

바디우는바울이다메섹으로가는길에거듭나서기존의지배담론과

완전히다른새로운종류의담론을요구하게되었다고해설한다. 그러나바

울자신이밝히는바는그렇지않다. 가령바울서신중친서로평가받는고린

도전서 15:1-11에서바울은자신이복음을‘전해받고’그것을‘전해주는’

일을했다고말한다. ‘전해받다/주다’는바리새인들이조상들의전승을‘주

72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53) 앞의책, 117.

54) Hans Dieter Betz,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 (review),”Journal of Religion

85/2(2005), 304-305.

55) Trevor Eppehimer, “Saint Paul: the Foundation of Universalism,”Union Seminary Quarterly

Review 59/3-4(2005), 187-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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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받을’때에쓰던전문용어이다. 다시말해사도바울은예수그리스도에

관한것을이전의선배기독교인들로부터전해받고, 그것을다시고린도교

회에전해준다. 이것은단절이아니라계승자혹은전승전달자로서이른바

‘보수적’인모습이다.

바울은자신의자의식역시완전히새로운것으로설정하지않는다. 도

리어기존의‘사도’들과자신이같은‘사도’임을강조하는데에많은지면을

할애한다. 바울의복음이해역시구약성서와초 교회의전승에상당부분

기 어있다. 바디우가생각한것이상으로바울은구약을계승하고, 유 주

의의풍부한유산에서떠나지않으려한다. 하여바울에게예수그리스도는

유 교율법의완성이었다. 따라서우리는바울이유 적담론이나그리스적

담론과완전히단절되어있다는바디우의주장이과장되었다고생각한다. 이

러한종류의‘과장’은바디우의‘사건’해설에서도나타난다.

바디우는‘사건’의독특성을자못강조하지만, 서신서에서바울이자신

에게일어난‘사건’을설명할때사용할수있는유일한언어는구약과초

교회의전승이었다. 바울에게일어난그사건을 X라고하자. 그가그것을풀

어놓을때, 풀어놓는언어는구약의예언서곧이사야서와예레미야서에게서

온것이었다. 바디우의주장 로순수한사건은 X일뿐이다. 그것은언어를

입을때비로소우리앞에존재하게된다. 이때바울이자신에게일어난 X에

게언어를입혀다른이들앞에존재하게할때그것은전적으로유 적담론

안에서이해될수있는언어 다. 아니, 더나아가바울은자신에게일어난돌

발적인 X를‘인식’해야할때그것을가능케하는언어는구약의언어 다.

그러나성서학적비판이바디우의『사도바울』에 한평가의전부일수없

다. 우리는『사도바울』의신학적기여또한온당하게수용할필요가있다.

2. ‘우발적 사건’과 하나님의 자유

바디우에의하면, 보편적이고 원한진리는사건에기 어드러난다.

사건은과학적법칙이나필연성에의해지배받지않는우발적인것이다. 우

발적사건은진리를생산함으로써기존의지식망을교란시키고교조화된담

론체계를전복시킨다. 사건이갖는예측불가능성과우발성으로인하여, 진리

는어떠한하나의상태로고착화될수없으며, 완전하게파악될수도없다. 새

로운진리는과학적탐구나개념적분석에의해서밝혀지는것이아니라, 우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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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적사건을통해서제한적으로주어진다.

바디우가주장하는사건의우발성은신학적으로중요한함의를가진다.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사건의우발성을신학적개념으로발전시

킨 표적인인물이다. 그는이세계가합법칙적질서만으로설명될수없는

어떠한여백이있음을통찰하 고, 그여백을‘우발성’으로파악하 다. 바디

우와마찬가지로, 판넨베르크가사건의우발성을강조하는이유는인간의실

재에 한경험이주로우발성, 특히역사적사건들이지닌우발성에의해주

어진다고보았기때문이다. 그는“역사의통일성을유지하기위해우발성을

배제해서는안된다”56)고하면서, 오히려“역사의통일성은개별사건들의우

발성과그사건들의연속성이공통된근원을가지고있다는것을보여줌으로

써가능하다”57)고밝혔다. 즉판넨베르크는우발성을역사의근본적인성격으

로규정하고있는것이다.

판넨베르크가역사에서특별히사건의우발성에주목하고있는까닭은

결정론적∙기계론적가치관이만연한무신론의세계안에서하나님의활동

역을확보하기위한것이다.58)합법성그자체를하나님이창조하 다는관

점을견지한다할지라도, 일단이것이보편적질서로고정되고나면, 하나님

의역할은사라진다. 이러한논리적맹점을극복하기위해그는‘우발성’개

념을도입함으로써하나님의지속적활동을보장하려한다. 하나님은자유로

운분이시기때문에새롭고예기하지못한상황을얼마든지나타내실수있

다. 그러한하나님의자유로운활동을우리는제한된시공간속에서우발성

으로경험하는것이다.

바울이 다마스쿠스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사건의 우발성을 통해 우리

는일상속에서일상과구별되는특별한진리체험, 즉하나님의직접적인활

동에 한체험이가능하게된다. 합법칙성을넘어서는우발성은이미주어

진담론체계를전복시킬수있는예외가능성을우리에게가져다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기존의진리체계에가두어지지않는자유로운분임을, 그것을넘

어서서여전히활동하는분임을보여준다. 우발성으로설명되는하나님의자

74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56) Wolfhart Pannenberg, “Redemptive Event and History,”Basic Questions in Theology. vol. 1, tr. by

H. Kehm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1), 74.

57) 앞의책, 같은쪽.

58) 장회익, “판넨베르크의 과학사상: 우발성과 마당개념을 중심으로”, 「과학사상」

37(2001/5), 118-119 참고.

-74-

유는기독교가교리주의로부터거리를유지하도록돕는다. 하나님은인간의

교리적그물망안에갇히지않는바람과같다. 하나님은고착화된교리체계

에제한되지않고자유롭게자신을드러내는분이며, 기존의담론체계를일

각에무너뜨림으로써불현듯도래하시는분이기때문이다.

바디우에의하면, ‘명명될수없는것을명명하는것’은악의형상중

하나이다. 즉악은하나의진리를전능한힘으로간주할때발생한다는것이

다.59)“진리가전능한힘을갖지않는다는사실이종국적으로뜻하는바는, 진

리과정의생산물인주체적언어가상황의모든요소들을명명할수있는권

력을갖지않는다는것”60)을의미한다. 교리주의적기독교는교리적언어가

진리를직접적으로지시하는것으로왜곡함으로써, 특정한교리체계에권력

을부여하고있다. 우발적사건이드러내는진리성을거부하고기존의진리

체계로사건의의미를환원시킴으로써, 그진리체계에절 적인권한을부여

하는것은고착화된종교언어를우상화시키는것과다름아니다. 진리는언

어적으로완전히표현되기를포기하는데서부터그의미를드러낸다.

우리는 바디우의 우발적 사건개념을 하나님의 자유를 강조하고, 교리

주의적기독교의병폐를경계하는데에전용할수있다. 기독교는스스로사

건에기댄역사적실체임을인정하면서자신에게일어난진리의절 성과보

편성에 한성실함에보다큰관심을두어야한다. 삶의다양한사건들속에

서예측불가능성으로다가오는살아계신하나님의진리를겸허하게기다리

도록하는신앙적성찰을하는데에사건개념이도움을줄수있다.

3. 보편적 진리: 그리스도 예수가 여는 보편적 공간

바디우가사건의우발성을말한다하더라도, 그의논의는진리의상

성과국지성을논하는이른바포스트모더니즘식의사유로나아가지않는다.

바디우는포스트모더니즘이가하는보편적진리에 한날선비판을외면하

지않으면서도, 그비판이후에도성립가능한‘보편적’진리를정립하려한

다. 그러나이때바디우가말하는‘보편성’은통상적쓰임과그의미가다소

다르다. 바디우가주장하는진리의보편성은근 철학에서논의되는진리의

보편성이아니다. 그가추구하는보편성은과학적객관성에의해파악되거나,

59) 이에 한보다자세한논의는다음을참고하라. 바디우, 『윤리학』(2008), 98-106.

60) 앞의책, 104.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75

-75-

인간의구체성을초월하여존재하는어떤것이아니다. 그것은개별성과차

이에 해특별한의미를부여하지않는것이며, 횡단하고초월하는보편성

이다. 보편성은어떠한특권적담론으로구획된질서를거부하고, 그질서밖

에서모색될수있는평등의이념을앞세운다. 평등의이념을가지고개별성

과차이를넘어서서개별자들의연 가가능하도록하는지평으로서기능하

는것이바디우가기획하는보편성이다.

개별자들의연 를가능케하는, 이를위해개별자들의특성을없애지

는않으나부차적인것으로돌리는보편성은이론적이라기보다는실천적요

구에부응하는개념이다. 이러한종류의보편성을바디우는바울의이방선

교사역에서찾아낸다. 사도바울은“유 사람이나그리스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여자나차별이없습니다. 그것은여러분이그리스도예수

안에서다하나이기때문입니다”라고선언한다. 이선언에서유 사람과그

리스사람을나누는인종, 종이나자유인을나누는사회적지위, 남자와여자

를가르는성별차이가모두‘그리스도예수’라는사건이만들어놓은보편적

공간에서부차적인것이된다. 실상인종, 사회적지위, 성별의차이는매우근

본적이며, 더욱이인종과성별은자연으로부터온것이다. 그러나바울은‘그

리스도예수’라는사건이창조한새로운보편공간속에근원적차이가횡단

되는보편성을역설한다.

무신론자바디우가애써외면했지만, 우리는‘그리스도예수’가열어놓

은공간에의로운하나님과죄인인간사이의구별조차부차적인것이된다

고고백한다. 이른바 속론은예수그리스도를통한하나님과인간의화해

를말한다. 화해의공간에서의로운하나님은죄인인간을자신의자녀로받

아들이고, 죄인인간은거룩한하나님을자신의아바아버지로부른다.

‘그리스도예수’라는보편적공간은나아가오늘날문제가되는생태계

문제에 한성찰에도도움을준다. 그리스도예수라는보편적공간은인간

과자연이라는근원적차이도부차적인것으로돌린다. 인간과자연은열린

보편의공간속에서서로얽혀있음을발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개별성과

차이를부각시킴으로써근 적인위계구조를무너뜨리는데는중요한공헌

을하 지만, 이러한개별성과차이에 한일방적인강조가모든생명이함

께연 해있다는보편적구조를설명하는데에는방해가되었다. 생태학자

인캐서린켈러(Catherine Keller)는다음과같이말한다. “일반적으로차이와

독특성에 한강조와해체적포스트모던담론이인간의차이에 한해방과

76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76-

인식에있어서그리고실재에 한위계적해석을해체하는데있어서유익

한반면에, 포괄적인생태학적자각의발전에있어서는방해가된다.”61)나아

가‘그리스도예수’라는차이를가로지르는‘보편’에 한착상은선교학에

도일정한통찰을주리라생각한다.

4. 충실한 주체: 욕망의 투사를 넘어선 참된 신앙

사건을통해드러난진리는주체를소환함으로써진리에충실하게되

도록한다. 나타났다이내사라지는사건의진리는충실한주체를세움으로

써지속된다. 모든존재가주체로부름받는것이아니듯, 주체는그러한충

실성을거부하고진리의수행을포기할수도있다. 예컨 바디우가몸소경

험했던, 프랑스의 68혁명과중국의문화 혁명은많은주체들을진리로호출

하 지만, 이들은진리에 한충실성을쉽게망각하여버렸고, 종국에는진

리를배반하 다. 또한욕망의발현을사건으로착각하여이를진리로오독

함으로써거짓진리에충실한경우도있다. 표적으로나치즘과파시즘이그

러하 다.

위에서언급한두가지중 한오류, 즉사건에 한충실성을배반하는

행위, 그리고사건으로오도된욕망에충실한행위는교회의정황에 한반

성을촉구하도록돕는다. 오늘날에도기독교의진리-사건은지금의현실적

한계를돌파하도록우리를주체로서소환한다. 그러나사건에 한충실함은

수많은방해와반 에부딪히기때문에충실한주체가된다는것은결코쉬

운일이아니다. 시련과고통을감내할수있는계속되는결단을통해서만이

진리의증인으로서주체가된다. 바디우가충실한주체를세상에서현시되기

를거부하는약함의주체, 혹은찌꺼기로규정하고있는것도이와같은이유

에서이다. 그러므로신앙의본질은‘자기비움’을통해진리를드러내는데

있다. 진리-사건을체험한사람이여전히자신이세상속에서현시되기를원

한다면, 그는사건에 한충실한주체이기를포기하는것이며, 진리를스스

로배반하는것이다. 요컨 참된신앙의핵심은진리-사건을체험하는것

그자체에있는것이아니라, 사건의진리성을드러내기위해자신을불안정

한삶의실존속으로내던짐으로써, 약함의주체성을수용할수있는지여부

61) Heather Eaton∙Lois Ann Lorentzen, ed., Ecofeminism and Globalization (New York: Rowman

& Littlefield Press, 2003), 32.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77

-77-

에달려있다.

또다른신앙의오류로서, 오늘날많은기독교인들은욕망에의해추동

된환 을사건으로오도하여그것에충실하기도한다.62)그리고이를신실한

믿음인것인양착각하기에이른다. 그러므로우리는우리에게도래한진리-

사건이욕망의투사에의한환 은아닌지성찰해야한다. 진리-사건의자리

에는세속적욕망이버젓이자리를잡고있으며, 그욕망에 한헌신을마치

진리에 한 헌신인 것처럼 왜곡시켜버린다. 거룩한 의로 포장되어 있는

종교적희망도별반다를것없이자기욕망의또다른변주에지나지않는다.

그결과진리의보편성과평등성을전해야할교회는이와는정반 로하나

님의이름을빙자하여타자를억압하고지배하는욕망의집단으로전락하고

말았다.

진리의보편적전달에충실한주체는욕망으로부터근원적으로거리를

둔다. 충실성은진리그자체에 한충실함일뿐, 어떠한 가나보상을바라

지않는다. 바디우는“‘바쳐야하는’신앙보다는‘받아야하는’구원에더욱

관심을갖는인간의원초적종교성의통속적발현을거부”하며. 종교적희망

의의미를다음과같이역설한다.

희망은‘시련을이겨내는충실성’이며이시련을관통하는사랑의

끈기이지, 결코보상이나벌에 한비전이아니다. 희망은승리한충실성

의주체성, 이충실성에 한충실성이지일어날결과에 한표상이아니

다. …희망은결국보상되는이상적정의에 한상상[적인것]이아니라

실재에 한시련을통해진리에 한인내를동반하는것또는사랑의실

천적보편성을동반하는것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63)

바디우에게서 희망은 종말론적 심판이나 고난에 한 적절한 보상을

의미하는“객관적승리에 한희망이아니라”64)‘시련을이겨내는충실성’

78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62) 종교적이유에서벌어지는테러를예로든다면, 테러범들의행동은목숨을초개처럼내던

지는‘충실성’을동반하고있다. 하지만바디우에게서테러는‘악’이다. 생명까지도불사

하는테러는진리가아니라, 진리의모사, ‘시뮬라르크’에서나타나는양상이다. 시뮬라르

크는사건과진리의외양을갖고있지만, 실제로는보편적진리성이아닌, 특수한실체에

매달리는것이다. 바디우, 『윤리학』(2008), 88-95 참고.

63) 바디우, 『사도바울』(2008), 183-184.

64) 앞의책, 183.

-78-

이자‘시련을관통하는사랑의끈기’이다. 그러므로충실한주체는어디까지

나‘희망’하는주체이지‘욕망’하는주체가아니라고할수있다. 어떠한

가와보상도기 하지않고현실의불안을인내하는충실한주체야말로, 우

리가지향하는참신앙의표상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 이런의미에서바디

우의『사도바울』을무신론자의신앙고백이라부를만하다.

VI. 결어

이제까지바디우의생애및그의철학의주요개념을살피고, 그가철학

적기획을위해사도바울을어떻게불러냈는지를분석하 다. 또그의『사도

바울』을성서학적으로평가하면서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을논하 다.

바디우의철학이신학의전모를바꾸리라기 할수는없다. 초기기독

교시기부터현 에이르기까지신학은철학을비롯한여러학문을빌어신

앙을학문적으로표현하 는데, 공정하게말하면바디우를소개하고평가하

며전유하려는이 역시여러이론에기 어신학적사고와명제를명료히

하고실천의동력을얻으려한기존의시도들에서벗어나지않는다. 그러나

바디우의『사도바울』과그에관한논의는부분적인오해나왜곡에도불구하

고몇가지점에서적지않은의의를갖는다.

첫째, 바디우는기독교전통이기독교밖에서도유의미하고풍성한지

적자원임을분명히해주었다. 바디우는이른바마르크스주의전통에서있

는급진적인철학자이다. 사도바울과기독교에관한그의연구는기독교인

들을회유하거나기독교에공개적인호의를보여지지층을확 하려는의도

에서비롯되지않았다. 그는자신의철학이기독교의사도를통해 (부분적으

로나마) 선취되었음을발견하 다. 이를통해신학이나성서의의미가한종

교집단내부에서나소통될만한국지적범위를갖지않는다는것이다시한

번드러났다. 둘째, 사건, 진리, 주체에관한바디우의이론과그의바울읽기

는신학의경직성을완화하고신선한언어로주요한신학주제및바울서신

을접근하도록도왔다. 바디우의성서해석은성서학자들이나조직신학자들

의것과는달리바디우자신의의미에서‘철학적’이었다. 신학자들은그의해

석에서성서를새롭게보도록자극받을뿐아니라신학의언어가다른분야

로‘번역’될가능성과‘번역’의모범답안가운데하나를찾아볼수있다. 셋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79

-79-

째, 바디우는설득력있게역사적예수뿐만이아니라사도바울도이른바진

보적진 의의제, 곧해방과평등을위한이론적근원이될수있음을밝혔

다. 이는보수화되는한국기독교를특정세력과일치하려는여타의시도들

을 이론적으로 저지하고, 한국 기독교의 욕망과 신앙의 충실성을 구분하고

성찰하는데에도움을준다. 또한한국기독교에 한지적폄하, 나아가기독

교자체에 한섣부른비판을제어하는데에도기여할수있을것이다.

*접수일: 2010년 1월 14일, 심사완료일: 2010년 3월 5일, 게재확정일: 2010년 3월 27일

80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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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진리, 사건, 주체(Alain Badiou, Paul the Apostle,truth, event,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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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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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heological Reflection on the Philosophy of Alain Badiou

Hak Chol Kim

Assistant Professor

Hyong Sang Ko

Ph.D. Candidate.

Yonsei University

Seoul, Korea

This study explores Alain Badiou’s philosophy and work (Saint Paul - La

fondation de l’universalisme) in order to evaluate his understanding of Paul, and to

embrace his theory critically in the current state of Korean churches.

According to Badiou, a prominent French Marxist philosopher, the truth that

breaks the existing interpretation systems only comes in an ‘event,’and one is

summoned as a witness (that is, as a ‘subject’) to the truth in an event. Believing

and proclaiming the truth in an event, a reborn subject breaks through false

universalism and fraud particularism and makes an egalitarian solidarity among

individuals.

Badiou chose Paul as a ‘fable’for explaining his concepts such as event, truth,

subject, and so on. A Pharisaic Paul became a Christian subject (that is, an apostle) in

an event revealing the truth. Paul the apostle as a witness to the truth traversed the

contemporary Greek and Jewish interpretation systems, and founded churches in

which not only all differences among believers were overlooked but also a new

equal and universal identity was created in Christ Jesus.

Badiou’s Paul is not similar to the portraits of Paul that New Testament scholars

have painted. Insights from Badiou, however, help Christian thinkers and activists in

korean churches to make their understanding of Paul clearer, to participate in

liberating movements, and to deliver the depressed from the current dominion

systems of the world.

알랭바디우철학의신학적수용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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