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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FORMED UNIVERSITY 제 115호 개혁의 소리 발행일 Nov 30, 2016 책임편집 - 고지영 목차 조진성 학장님 칼럼 < Thank You Lord! > 박요한 총장님 칼럼 < 감사는 기억입니다 > *RU 소식* <학우들의 목소리> - 최윤찬 학우, 이범곤 학우 *알림* 강의평가서 <Give Thanks> 한 노인의 기도 감사의 제목이 부족하십니까? 추수감사절의 유래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감사기도 감사하는 방법 William Carey Korean Ph.D. 신입생모집 The Reformed University 신입생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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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REFORMED UNIVERSITY

    제 115호 개혁의 소리

    발행일 Nov 30, 2016 책임편집 - 고지영

    목차 조진성 학장님 칼럼 < Thank You Lord! >

    故 박요한 총장님 칼럼 < 감사는 기억입니다 >

    *RU 소식*

    - 최윤찬 학우, 이범곤 학우

    *알림*

    강의평가서

    한 노인의 기도

    감사의 제목이 부족하십니까?

    추수감사절의 유래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감사기도

    감사하는 방법

    William Carey Korean Ph.D. 신입생모집

    The Reformed University 신입생모집

  • 학장님 칼럼

    “Thank you Lord!”

    감사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도 추수감사절 감사

    예배를 드리며 학우들이 ‘감사 카드’를 만들어 예배를 드렸다.

    감사는 ‘발견’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듯 학생들의 감사 제목

    들을 보며 새삼 미주개혁대학교 공동체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

    의 은혜가 큼을 깨닫게 된다. 학우들은 좋은 학교, 좋은 교수님

    과 직원들 그리고 동료 학우들을 주심에 감사를 드렸다. 이처

    럼 학우들이 학교를 아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학업 할 수 있

    다는 것에 더욱 감사를 드린다. 한 학우는 이런 감사의 카드를

    적어 놓았다. “한 해 동안 건강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의를 전해 주시는 좋은 교수님들을 보내 주시고 저희 학우들

    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학교 운영진들을 허락하셔서 주님의 말씀과 은혜를 더 많이 알게 해주신 주님

    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어떤 학우는 학교를 통한 만남들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학교가 ‘행복’을 주

    는 장소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현실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학우들이 이민 초기의 가

    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속에 감사가 살아 있고 표현 될 수

    있음에 더욱 감사를 드리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이집트의 학정과 고통 속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로

    회복된 것에 감사하여 오늘날에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렇게 쓰고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해 어렸을 때부

    터 큰 소리로 읽게 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노예였다”라고 말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감사하는 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오늘 아침에는 모처럼 지인들과 집 근

    처의 산에 등산을 다녀왔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그 하늘이 얼마나 티없이 맑고 푸른지... 이처럼

    아름다운 하늘을 맘껏 느낄 수 있음에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더불어 웃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떤 학우는 가족들이 다시 함께 모여 행복한 웃음을 나

    누게 해주심을 감사한다고 하였다. 가족이 함께함의 소중함과 감사를 작은 갈등들로 인해 잊고 살 때

    가 많다. 그러나 막상 그 평범한 일상을 놓치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우리는 깨닫게 된

    다. 마치 팔을 잃게 되면 가지고 있는 팔이 얼마나 감사했던 지를 알게 되듯이… 혼자서 탈북한 한 여

    성의 가장 큰 소망은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밥을 한번 먹어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에게 또한 잊을 수 없는 감사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수 있는 것’

    에 대한 감사일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하듯 진리 없이 또 인생관 없이 확실한 목적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균적 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인식하는 존재

    가 되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닮기를 소망하게 하셨으니 이는 ‘감사 중의 감사’일 것이다.

    부패한 로마 카톨릭에 성직을 반환하고 결별한 칼빈(John Calvin)은 파리대학의 꼽(Nicolas Cop) 총장

    의 ‘연설문’과 마르꾸르(Antoine Marcourt)의 미사반대 벽보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고 난 뒤, 독일

    의 슈트라스부르트로 길을 떠나게 된다. 계획했던 이동의 길이 막히게 되고 제네바를 경유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그날 밤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이끌고 있던 파렐(William Farel)이 칼빈을 찾아와 제네바

    의 개혁운동을 도와달라고 부탁 한다. 그러나 칼빈은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는 자신의 성격

  • 에 맞지도 않고 경험도 없는 사람이라며 거절을 한다. 이때, 파렐은 "그대가 만약 하나님의 일보다 독

    서나 즐기는 고요한 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대를 저주하리라"라고 협박조의 설득을 한다.

    파렐의 이 설득은 칼빈의 마음을 움직이며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칼빈에게 들렸다고 한다. 칼빈은

    이 말을 통하여 제네바 개혁 운동에 참가하기를 결심하게 되었고 후에 그는 이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그의 손을 내 위에 강하게 펼치시고 나를 붙잡으시는 것 같았다.” 그 후

    다음의 이 고백은 칼빈이 험난한 종교개혁의 길을 가는 내내 그의 삶의 모토가 되었다: “Cor meum

    tibi offero, promote et sincere.” (즉시 그리고 신실하게, 나의 심장을 바칩니다) 그의 고백처럼 그는

    끝까지 주저함 없이 신실하게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을 위해 바쳤다. 그의 헌신은

    오늘날까지도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는 지표가 되고 있다.

    칼빈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겠는가? 그래서 그는 그토록 심장을 바치듯 헌신하였는가? 우리의

    삶 속에 베푸신 하나님 은혜는 얼마인가?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칼빈과 같은 고백이 샘솟길 바란다.

    “즉시 그리고 신실하게 나의 심장을 바칩니다. 주님!”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 감사, 평안, 기쁨 그리고

    불의에 대한 저항, 진리를 향한 열망이 넘쳐나길 바란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

    다. 감사합니다. 주님! Thank you Lord!

    RU에서

    조 진 성 학장

  • “감사는 기억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3-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

    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3-4절)

    1. 감사는 기억입니다.

    감사가 무엇입니까? 우선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게

    고마움을 베풀어 주었는데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지만 아홉 명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사마

    리아 문둥병자 한 사람만 그 고마움을 예수님께 표현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고마움을

    기억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내가 받는 은혜만, 내가 받는 복만 감사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심지어 다른 사람의 감사까지도 본인의 감사처럼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데살

    로니가 교인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립

    보서 4장 6절에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

    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이처럼 기억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합시다.

    2. 감사는 수확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신 것 같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감사

    합니다”, “자꾸 복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우

    리에게 더욱 더 복을 주십니다. 이처럼 감사는 더 큰 수확의 비결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의

    설교를 보면 “별빛을 주시는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

    사하면 햇빛이 필요 없는 광명한 천국을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이래도 감사하지 않겠습니

    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감사하지 않는다면 참 믿음이 아닙니다.

    우산장사와 짚신장사의 두 자녀를 둔 어머니가 날마다 날씨 때문에 불평하다가 마음을 새

    로 고쳐먹고는 항상 감사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십시오. 그러면 감사가

    故 박요한 총장님 칼럼

  • 나옵니다. 감사하면 세상 모든 것들이 감사의 제목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3. 감사는 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는 표시가 있어야 합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한 소년이 감사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

    다.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표현 할 때 그 감사로 인해 역사가 물결치듯 일

    어나게 됩니다. 물질로 감사를 드린다는 것은 나에게 물질을 허락해 주신 분이 바로 하나

    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믿을 때, 그리고 감사의

    표시가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으로 맡기실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주님에 대한 감사로 그 분의 은혜를 기억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는 그냥 지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복과 수확을 얻는 비결이라

    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형제들을 향하여 그들의 믿음이 자라고 사랑함이 풍

    성하여짐에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숙한 신앙인의 감사하는 자세를 보여줍

    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주시며, 더 많은 물질을 맡기십니다. 감사가

    풍년인 우리의 인생을 만듭시다.

    고 박요한 총장님의 저서

    [당신은 개혁 대상입니까] 중에서

  • RU 소식

    2016 가을학기

    Thanksgiving Chapel에서는

    은혜로운 찬양과 더불어 성

    찬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풍

    성한 Potluck 만찬과 감사

    의 나눔이

  • 기도를 맡아주신 학우님, 찬양과

    반주로 예배를 섬기시는 학우님

    들 감사합니다.

    예배 후에는 각자가 정성스럽

    게 준비해 온 맛있는 음식들

    을 함께 나누며 하나님께 감

    사를 올려드리는 귀한 교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 2016년 가을학기도 끝을 향해 달

    려가고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강의

    하시는 교수님들, 배움에 매진하는

    학우님들 모두 축복합니다.

  •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며, 받을 자격도 없

    고, 갚을 능력도 없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우리 모두의 감사를 받아주십시오.

  • 사탄은 뛰어난 전략을 가지고 있다. 어둠의 왕국은 성경

    에 나와 있는 대로 세 가지 기능이 있는데, 정사와 권세

    와 능력이다.

    정사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의사를 뛰어넘어 발언권

    을 행사하거나 의지를 구현한다는 뜻과 관련이 있다. 마

    귀가 어떻게 사람의 의지를 뛰어넘어 자기의 의사를 이

    땅에 실현하는지 그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

    탄은 인간의 권위 구조 속에 교묘히 침투하여 이를 통

    해 지배하려고 획책한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사탄은 인간의 잘못된 판단과 이기적인 선택을 통하여 지

    배의 손길을 뻗쳐 왔다.

    권세는 흔히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영이라고 할 수 있다. 권세는 단지 사탄의 왕국에서 광범위한 지역

    에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다. 사탄은 세계지도에 따라 자기 세력을 배치시켜 놓았다. 되는 대로 아무렇

    게나 자기 군대를 흩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질서하게 돌아다니며 서로 좌충우돌하지 않는다.

    사탄은 자신의 전쟁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기 적도 잘 알고 있으며 싸움에 대비하여 잘 정비되어

    있다.

    능력은 악과 아주 밀접하고 죄를 조장하는 악령을 말한다. 또 이것은 악을 만연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이기적으로 사는 만큼 마귀는 우리 사회 속에서 활동하

    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반대로 살면서 마귀에게 넘겨준 권위만큼, 정확히 그만큼만

    마귀는 권세를 휘두르고 있다. 그리고 역사 대대로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서 이어 내려오는 유산을 통

    해 마귀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나님의 자유가 죄를 짓고 끊임없이 이기적으로 생활하는 우리 때문에

    도리어 마귀에게는 선물이 되고 있다. 사탄의 활동은 또한 우리의 죄 된 본성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것은 곧 죄를 통해서 마귀가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며 우리를 압제하도

    록 허용한다. 죄가 있는 만큼 죄의 권세가 있다. 악의 세력은 또한 가정에까지 침투하는데 가정이 특정

    학우들의 목소리 - 최윤찬 학우

  • 한 죄에 자신을 넘겨줄 때 그렇게 된다. 분열과 반목

    의 역사를 가진 교회에 분열과 반목의 악의 세력이 미

    칠 수 있다. 영적 전쟁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게 특정한 상황 속에 있는 능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보

    여 주실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행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악의 영향력을 피해야 한다. 다툼이 일어나는 가정 가운데 있다면 같이 다툼 속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우리가 진리를 나눌 때는 반드시 진리의 영으로 하여야 한다.

    둘째, 우리는 영적 능력에 대항하여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영향을 주는 영이 무엇인지 보여 주신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면 할수록 우

    리의 기도는 더욱더 효과적이 된다. 광범위한 지역을 덮고 있는 어떤 능력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합세해서 그 세력이 물러나도록 장기간 기도하면 될 것이다.

    셋째 우리는 반대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반대 정신으로 산다는 말은 우리에게 탐욕이 생길 때, 반대로

    관대하게 베푸는 것이다. 또한 침체되는 상황을 접할 때, 침체하는 대신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결심하고

    모든 일에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가 악의 세력에 반대되는 영향을 끼치는 반대 정신으로 생활한다면

    이내 이와 같은 대적의 세력들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 자신이 영적 전쟁에 치열하게 임하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싸워야 할

    대상을 정확히 알고 구체적인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에게 다가오는 마귀를 물리치고 내 삶에 만연해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스스로 물리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실제로는 더 견고

    한 세계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나쁜 사건들을 장악하기 위해

    있는 사탄의 조직과 전략도 알게 되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분열, 파괴, 분노 등의 감정으

    로 공격하고 우리 현실에 질병, 궁핍 등으로 공격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마귀를 대적하

    고 영적 전쟁을 맞이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강력한 무기인 찬양, 기도로써 사탄과 마귀의 공격과

    전략에 맞서야 한다. 기도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여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야 할 것이다.

  • 트레이시는 총체적인 혼란과 다원성과 모호성의 현실 속에서, 이

    에 대한 신학적 응답으로서 탈근대적인 신학방법론과 해석학적 대화

    로서의 신학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신학방법론: 탈근대적 수정주의 신학과 상호 비판적 상관관계 모

    그는 자신의 책 “질서를 향한 복된 열정”에서 기초 신학의 관점에

    서의 근대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탈근대적인 대안으로서 수정주의 신학 모델을 제시한다. 가능성

    을 향한 고전적인 이교주의의 억압된 합리적 태도를 근대적인 형태로 자유롭게 회복하려고 한다. 그는

    오늘날의 탈근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근대적인 실험에 대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 사이에서 딜레마를 경험하지만,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으며, 기독교가 우리의 공동의 삶을 위한

    참된 희망을 담지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부적절한 네 가지 모델 첫째는, 기독교 텍스트에 대한 무비판적인 충성에 기초한 정통

    주의 모델이다. 특정한 교회 공동체의 주요 신앙을 조직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모델을 발전 시킬 수 있

    다는 것이 이의 주요 강점인 반면, 다른 학문 분야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약점이

    다. 두번째는 자유주의(개신교) 또는 현대주의(카톨릭)로서 여기서는 문화와 개인적 경험이 진지하게

    고려되며, 이 빛 안에서 기독교의 텍스트가 읽혀지고 비판된다. 근대의 과학적 과업의 비전과 가치에

    따라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비전과 가치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하고자 한다. 여기서 신학은 더 이상

    교의학이 아니라 “신학자의 가설”이 된다. 세번째는 신정통주의로서 정통주의에서와 같이 신학의 가능

    성의 실존적 조건으로서의 신학자 자신의 신앙을 강조한다.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의 신앙은 철저하게

    경험적이며, 적응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정에 의해 근대성과 관계를 맺는다. 이는 인간 상황의 부정적

    요소(죽음, 죄책, 죄, 비극, 전쟁)에 관심을 기울인다. 네번째는 급진적인 세속화 신학-근대성에 대한 심

    판이 기독교의 텍스트에까지 확대되며 전통적인 종교적 언어와의 단절이 일어난다. 이 모델의 강점은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물음을 던졌다는 것이며, 약점은 하나님의 실재를 긍정할 길

    을 잃어버림으로써 기독교 신학의 과업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트레이시는 탈근

    대적 대안 신학으로서의 수정주의 신학 모델을 제시한다. 탈 신정통주의적이고 탈 자유주의적인 오늘

    학우들의 목소리 - 이범곤 학우

  • 날의 신학적 시도를 의미한다. 기독교의 신앙을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관심과 경험과 관련시키고, “공

    적으로 수용 가능한” 진리의 기준에 따라 기독교의 확신을 변호하려는 것이 수정주의 신학의 목적이다.

    트레이시에 따르면, 변화하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과거의 위대한 사건과 그것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성

    문서에 충실하는 유일한 길은 오늘날의 경험에 의해 제기된 새로운 물음의 빛 안에서 그것을 새롭게

    읽는 것이다. 트레이시의 수정주의 모델은 오늘날의 기독교 기초 신학이 공통된 인간 경험 안에 현존

    하는 의미와 기독교적 사실 안에 현존하는 의미에 대한 철학적 반성으로 가장 잘 기술될 수 있다고 주

    장한다.

    오늘날의 종교적 경험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 모든 인간 경험은 성문서와 비판적인 상관관계 안

    에 있어서, 트레이시는 기독교 텍스트와 공통된 인간 경험과 언어 모두에서의 질문과 답변 사이의 상

    호 비판적인 상관관계의 모델을 제안한다. 인간의 삶의 의미가 종교적 경험과 성서의 메시지에 의해

    조명된 후에는, 비로서 형이상학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고전적 기독교 텍스트와 전통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조직신학

    트레이시에게 있어서 기독교 조직신학은 기독교 전통이 진리를 담지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것을 현재를 위해 재해석하고 새롭게 적용하는데 초점이 있다. 오늘날의 모든 조직신학은 근본적으로

    해석학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조직신학에 있어서 의미와 진리는 일반적으로 해석학적 회복을 통하여 탈은폐된다. 모든 해석학적

    조직신학에 있어서 진리는 신학적 고전의 해석 안에 경험되는 탈은폐로서의 공적인 진리이다. 해석학

    적 접근은 곧 전통의 주제(궁극적 질문과 응답)과의 대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전적 텍스트, 사건,

    이미지, 인격, 상징의 주제에 집중함으로써 공공성을 향하여 나아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해석학적 이해

    는 진정한 대화의 모델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는 문화적 경험 속에서 실현된 진리로 경험된 고전적 규

    범적 요소를 인식한다. 해석을 통한 종교적 고전과의 대화는 전체성에의 실현된 경험을 약속하는 의미

    와 진리의 세계의 탈은폐를 가져다 준다.

    트레이시의 해석 과정은 첫째, 텍스트를 주로 한 최초의 이해, 둘째 텍스트의 의미의 구조와 형태에

    집중하는 해석 방법을 통한 설명, 셋째 해석자의 전유 또는 거부를 통해 새롭게 탈은폐되는 지시체와

    세계관에 대한 이해, 넷째 상충한 지시체와 세계관을 텍스트의 상대적 자율성을 희생시킴 없이 분별하

    고 판단해야 하는 윤리적 과제의 수행으로 요약한다. 그는 이해-

    설명-이해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리꾀르의 변증법적 모

    델을 지지한다. 이해와 설명은 적이 아니고 서로 경계하는 동맹자

    이다. 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건은 다른 모든 기

    독교의 고전을 판단하고 인도하는 규범적 고전이며, 하나님, 자아,

    타자, 사회, 역사, 자연 그리고 실재의 전체성을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기독교 고전의 초점이다.

    트레이시는 다양한 ‘작업 경전’을 위한 상대적 적절성의 기준들을 제시한다. 역사비평 방법은 양식비

    평과 편집비평을 통해 텍스트를 재구성하고, 문학비평 방법은 텍스트의 의미를 밝힘으로써 생산적인

    설명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오늘날의 다원주의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유비적 상상력을 제안하며

  • 모든 개인은 자신의 특정한 전통 안에 속해 있으면서 각자의 전통 안의 유비적 요소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트레이시는 오늘날의 상황의 다원성에 대한 적절한 기독교 조직신학적 응답을 위해 두 가지 아이디

    어를 제시한다. 첫째는 기독교 전통 안의 다원성을 숙고하는 것- 전체 기독교 전통의 고전들과의 폭넓

    은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 변화되도록 자신을 개방해야 한다. 두번째는 신학의 상황적 분석의 다원성의

    실재이다.

    -대화로서의 해석

    트레이시는 ‘언제나 이미’ 현존하는 철저한 다원성과 두려운 모호성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해석하기

    위한 우리의 최선의 희망은 지속적이고,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대화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대화의 태도

    는 질문이 인도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려는 태도이다. “대화란 질문 자체이다. 그것은 질문이 가는 곳

    으로 어디든지 따라가려는 태도이다. 그것은 대화이다.”

    그는 대화의 규칙을 제시한다. 오직 당신이 의미하는 것만 가장 정확하게 말하라. 어떠한 타자가 어

    떠한 다른 말을 해도 그의 말을 존중하라. 대화의 상대자에 의해 도전을 받을 때 기꺼이 당신의 의견

    을 수정하거나 변호해라. 필요하다면 논쟁하고, 요구된다면 충돌하고, 불가피한 갈등은 인내하고, 증거

    가 제시될 경우에는 기꺼이 당신의 생각을 바꾸어라.

    그에 따르면 진정한 대화로서의 해석은 창조적 활동이다. “텍스트 앞에 있는 의미를 우리의 지평 안

    으로 매개 번역, 해석하려고 할 때 창조성이 요구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트레이시의 확신은 그리스도인이 믿는 진리를 비그리스도인에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논증

    할 필요가 없으며 논증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 신학의 공공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바르트주의적인 린드

    벡의 입장과는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 2016년 가을학기 수업은 12월 14일까지 진행됩니다. 끝까지

    학업에 최선을 다하시어 좋은 결실을 맺으시길 바랍니다.

    겨울방학은 12월 19일부터 시작됩니다.

    다가오는 12월 12일 마지막 채플은 ‘성탄절 채플’로 드립니다. 각

    조별로 감사찬양을 하는 시간이 준비되어 있으며 채플 후 맛있는

    다과를 함께 나누며 한 학기를 마감하는, 은혜롭고 재미있는

    뒤풀이 및 선물교환의 시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12월 5일부터 미주개혁대학교 재학생들은 무기명으로

    “강의평가서”를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학우님들의 수업에 대한

    의견 표명은 궁극적으로 미주개혁대학에 발전에 이바지 할

    것입니다. 학우님들은 시간을 내셔서 수업 전 후 학교에서 직접

    작성하시거나, 첨부된 양식을 이용하셔서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Field Study 과목을 이수하시기 위해선 지도교수님이신 조진성

    학장님과 함께 마지막 개별면담을 12월 12일부터 15일 사이에

    가지셔야 합니다. 개별면담 시간마다 보고서도 제출하셔야 함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1월에 이어 계속해서 조국과 미국의 신실한 리더쉽을 위해서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미주개혁대학교는 학우님들을 위해 언제든지 활짝 열려 있습니다.

    개인적인 상담을 신청하고 싶으신 분들은 상담신청서를 작성하셔서

    제출하여 주시고, 기도제목이 있으신 분들 혹은 학교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분들은 복도에 배치되어 있는 건의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알림 *

  • 1918 년, 미국 미네소타 주 보베이(Bovey)라는

    작은 탄광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엔스트롬 (Eric Enstrom)입니다.

    어느 날 아주 백발이 성성하고

    세상사에 몹시 지쳐 보이는

    야위고 남루한 한 노인이

    보잘것 없는 신발 털개를 팔러 왔습니다.

    그 노인은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사진관에 들어와 잠깐 쉬고자 했습니다.

    몹시 시장했던지

    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소박한 빵과 스프를 앞에 두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진사인 엔스트롬 씨는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한 노인의 기도

    Give Thanks

  • 작은 것에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초라한 그 노인이 큰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엔스트롬 씨는 그 노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노인은 세상적인 것들을 많이 갖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구나.

    그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비록 그 노인은 가난하고 삶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의 소박한 감사기도 속에서

    그 노인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노인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흑백 사진을 보고

    엔스트롬 씨의 딸

    로다 나이버그(Rhoda Nyberg)도

    큰 감동을 받아 이 사진을 유화로 그렸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감사 기도하는 노인의 모습을 그린

    유화 작품입니다.

    그 그림이 위의 그림입니다.

    엔스트롬 씨는 이 사진을 통해

    당시 세계 제 1 차 대전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감사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을

    미네소타 사진전에 출품하였습니다.

    삶에 지친 노인이 빵 한 조각과 스프를 가지고도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 그림은

    미네소타 주의 사진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 너무나 유명한 이 그림의 제목은

    “The Grace”,

    바로 “은혜”또는 “감사의 기도”라고 합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는 작은 것에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가난해도 어려워도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 감사의 제목이 부족하십니까? - 김환중 작가

  • 본래 추수 감사절의 유래는 구약시대 맥추절부터이다.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은 5 월 중순에서 6 월 중순 밀(wheat)추수가 끝날 무렵, 우량품들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제이다(출 23:16, 34:22).

    그러나 그 근대적 유래는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로부터

    유래한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지의 북미 대륙으로 온 경건한

    신앙인들이었다(청교도란 영어로 Puritan 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purify; 정화하다, 깨끗하게 하다, 순결하게 하다에서 비롯됐다).

    1. 청교도들이 북미로 오게 된 역사적 배경: 헨리 8 세의 박해

    헨리 8 세(Henry 8, 1491-1547, 재위 1509-1547)는 자기 아내 캐터린(Catherine)과

    이혼하고(1527), 앤 보레인(Anne Boleyn)과 재혼했다(1533). 청교도들은 정당하지 못한

    이혼과 재혼을 반대했다.

    헨리 8 세는 그 일로 로마가톨릭으로부터 파문(성찬참여 정지 등)은 당했으나, 생애

    동안 천주교 교리를 신봉했다. 그는 또 1534 년 자신(영국의 왕인 동시에 수장(首長)이

    된다)을 영국 교회의 머리(the head of the Church of England)라

    주장하면서, 로마가톨릭의 교황청과 행정적 관계를 단절해버렸다.

    동시에 영국교회는 캔터베리(Canterbury)와 요크(York) 회의에서 헨리 8 세를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모실 것을 결의하고, 교황은 영적 문제에 권리가 없음을 선언했다. 메리

    추수 감사절의 유래

  • 여왕(Queen Merry, 재위 1553-1558)은 헨리 8 세와 그의 첫 아내

    캐터린(Catherine) 사이에 태어난 딸로, 고집불통의 잔인한 여왕이었다. 그녀는

    폴(Pole) 추기경의 도움으로 천주교 회복을 도모했다.

    그때 개신교 지도자들인 토마스 크램머(Thomas

    Crammer), 라티머(Latimer), 리들리(Ridley) 등 약 200 명의 감독들, 학자들 그리고 남녀

    성도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화형(火刑)시켰다. 그때 청교도들은

    제네바, 취리히,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망명하게 됐다.

    엘리자베스(Elizabeth 1, 1533-1603)는 메리 여왕에 이어 1558 년 11 월 17 일 왕위에

    즉위한 후, 1559 년 4 월 29 일 수장령(The Act of Supremacy)을 공포했다.

    엘리자베스 1 세는 헨리 8 세와 둘째 부인 앤 볼레인(Anne Boleyn)의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수장령이란 왕이 종교와 정치에 유일한 통치자임을 공포한 법령이다. 그리하여

    왕이 국가의 머리도 되고 동시에 (영국)교회의 머리도 됐다.

    영국교회(Anglican church)는 왕이 교회의 머리요, 교회의 감독들은 왕을 대신하여

    교회를 다스리기 때문에 감독교회(Episcopal Church)라고도 부른다. 영국 정부와 영국

    교회는 상호 결탁하여 정교분리 원칙을 반대하는 청교도들을 반대·탄압·투옥·고문 등

    심한 핍박을 가하였다. 그리하여 헨리 8 세, 제임스 1 세(1600-1649), 찰스 1 세(1625-

    1649) 때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로 많이 떠났는데, 1620-1640 년대까지 북미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약 22,000-50,000 명에 달한다.

    그들은 영국을 떠나기 전, “나라는 있어도 왕이 없는 곳, 교회는 있어도 교황이 없는

    곳,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곳, 기름진 땅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도록” 기도했고, 그러기 위해 북미 대륙으로 건너갔다.

    2. 102 명의 청교도들과 메이플라워호(102 Puritans and Mayflower Ⅱ)

    북미 대륙을 발견한 것은 스페인의 콜럼버스(Columbus, A.D. 1446-1506)였고, 북미로

    처음 이주한 사람들은 영국 청교도들이었다. 이들을 가리켜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s

    Fathers)이라 부른다.

    이들은 1600 년대 초기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Atlantic Ocean)을 건너 미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102 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이주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청교도들은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Plymouth) 항구에서 1620 년 8 월 5 일(지금

    달력으로 8 월 15 일) 스피드웰(Speedwell)과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美 대륙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초반에 배가 고장 나 물이 새 다시 귀항했다. 한 달

  • 후인 1620 년 9 월 6 일, 결국 메이플라워호만 25 명의 선원과 102 명의 청교도들이

    승선하여 미국 동해(대서양) 중부지방 버지니아(Virginia)를 목적지로 삼고 재차

    출발했다. 남자 78 명과 여자 24 명 등 전체 102 명이 출발했으나, 항해 도중 1 명이

    사망하고 1 명이 탄생했다.

    그들은 그 해 11 월 11 일 버지니아 대신 미국 동북부 메사츄세츠 케이퍼 카드(Cape

    Cod) 해안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5 일간 주위를 답사한 후 11 월 16 일 현재의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했다. 63 일간 3400 마일(5,440km)의 멀고도 긴, 그리고

    위험한 항해 끝에 돛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은 영국을 떠날 때 항구 이름을

    따라, 그곳을 플리머스라 명명했다.

    미국 동해안은 항상 북서풍이 불기 때문에, 남쪽 버지니아로 가려던 배는 북쪽

    메사추세츠에 도달했다. 그들은 토요일에 도착했지만, 주일을 지키기 위해 길고도

    지루하고도 위험한 항해를 거쳤음에도 주일을 배 안에서 보냈다.

    그들은 항해 동안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가? 그들은 찬송을 많이 불렀다. “우리는

    대부분 시편을 찬송으로 불렀다. 주일은 모두가 찬송만을 불렀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청교도 개척자들)은 도착한 후 형언할 수 없이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다.

    11 월 중순에 도착한 그들은 강풍과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 거할 집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결국

    그 해(1620-1621) 겨울, 2-3 개월 이내에 102 명 중 절반 이상이 운명을 달리했다.

    특히 1-2 월의 혹독한 겨울에는 하루에 2-3 명씩

    죽어나갔다. 생존자는 50 명뿐이었고, 그들 중 다수도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지고

    질병으로 신음했다. 그러나 6-7 명의 건장한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 입히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여 고기를 조달하는 등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이들 경건한 청교도는 굳건한 믿음 위에 마음을 하나로 통일한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 엄동설한도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자, 생존한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여름과 가을 기대 이상에 넘치는 추수를 하게 됐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 126:6)”. 엄동설한에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것,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여

    주신 것, 미 대륙 개척자들로 삼아주신 것 등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깊이 감사

    드렸다.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로 건너 온 다음 해인 1661 년 가을,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식들과 채소들 중 최고 우량품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기도 중에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나이다” 라고 기도했다.

    그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추수 감사예배를 드렸다. 첫날인 주일에는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찬송 부르고, 말씀 받아 묵상했다. 둘째 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고, 셋째 날에는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 등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친교했다. 90 명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pumpkin pie)를 가져와 같이 친교를 나눴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를 먹게 됐다.

    청교도들은 통나무들을 잘라 먼저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지은 다음에야 자기들의 집을

    지었다. 그들이야말로 북아메리카의 개척자들이요, 믿음의 선조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주일 성수, 십일조, 경건생활을 했다.

    3. 감사절의 공식 법제정 공포(公布)

    1) 윌리암 브래드포드 메사추세츠 행정수반 감사절 공포 (Governor, William Bradford

    made an official Proclamation of the day of Thanksgiving)

    윌리암 브래드포드 메사추세츠 주지사는 1623 년 7 월 30 일, 감사절을 3 일간 지킬 것을

    공포했다.

    “여러분 모든 청교도들(Pilgrims)이여! 우리의 위대하신 아버지(Father)께서 금년

    우리에게 인디안 옥수수와 밀, 완두콩과 호박, 그리고 채소들을 풍성하게

    주셨고, 산림을 울창하게 하시고, 바다의 물고기들과 조개들을 풍성하게

    주셨고, 야만인들의 습격에도 우리를 보호하셨고, 온갖 유행병과 질병으로부터 우리

    생명을 살려주셨고, 우리 양심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유를 허락하여

    주셨나이다.

    지금 여러분의 총독인 나는 모든 청교도들이 그대들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1623 년 11 월 29 일 오전 9 시부터 12 시까지 회관에 모여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하며 이 모든 축복을 내려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라”고

    공포(선포)하노라.

    2)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 감사절 공포(President George Washington issued

    a National Day of Thanksgiving Proclamation on Oct. 3, 1789)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은 1789 년 10 월 3 일, 전 국민이 감사절을 지킬 것을

    공포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것,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 그의 축복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의 보호하심과 호의를 겸손히 간구하는 것은 모든 나라들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들 미합중국 백성들은 오는 11 월 26 일

    목요일을(추수감사절로) 헌신하기를 추천하며 이에 서명한다.

  • 조지 워싱턴 대통령, 감사절을 국경일로 재차 공포(President George Washington

    issued another National Thanksgiving Proclamation)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1795 년 1 월 1 일, 재차 감사절을 선포했다.

    “…나 조지 워싱턴 미국 대통령은 모든 종교적 단체들과 교파들, 그리고 미 연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오는 2 월 19 일 목요일을 감사와 기도의 날로 정하고 지키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3) 아브라함 링컨 미국 제 16 대 대통령의 제의-의회 가결(President Abraham Lincoln

    issued a formal Proclamation, passed by an Act of Congress, initiating the first

    annual National Day of Thanksgiving)

    아브라함 링컨 미국 제 16 대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매년 정기 감사절로 지킬 것을

    제안, 의회는 이를 가결했다.

    “… 그러므로 나는 미국 각처에 있는 나의 동료 시민들과 외국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매년 11 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감사절로(the last Thursday of November as a day of

    Thanksgiving) 정하여 지키며 천국에 계신 은혜로우신 아버지(Father)께 찬양을

    드리기를 요청한다. …” 그 이후 해마다 11 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세계교회문제연구소

  • 신앙생활 중 대부분은 기도생활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기도하는 법입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 그렇게 서툴게

    기도하는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을 보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내용도

    다르고 형식도 다르고 법도 다 다릅니다. 기도하는

    것도 들어보면 거기에 버릇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서 가장 성숙한 기도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감사는 가장 성숙된 정신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 자체가

    없습니다. 말에도, 마음에도, 생각에도, 도무지

    감사의 정신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고 기도에도

    감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 전체에 응답해

    달라는 애원만 있습니다. 미성숙한 기도라서

    그렇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몇 번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몇 번 아주 특별한 경우에

    깊이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모두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후에는

    반드시 응답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예수님의 감사기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상가에서의 감사기도

    요한복음 11 장 38 절을 보면 예수님이 초상집에 가서 기도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초상집은

    나사로의 집입니다.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3 남매가 조용하게 살았습니다. 아주 다복하게 생활하는

    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가며 자주 그 집에 들러 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3 남매들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비통해 했습니다. 이미

    무덤에 뭍인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뒤늦게 소식들 듣고 찾아오신 예수님은 나사로가 묻힌 무덤으로 가십니다. 가셔서 하늘을 우러러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감사

  • 보시며 “아버지여 내 말을 들어주심을 감사하나이다”하고 기도했습니다. 아주 특별한 기도입니다. 그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돌을 옮겨놓으면서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하고 말합니다. 그 말은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돌을 굴려 보았자 헛수고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서 감사의

    기도부터 하십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죽은 사람 앞에서, 가족들 앞에서, 죽음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죽음의 현장에서도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기도가 응답되어 죽은 나사로가 살아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의 초상집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침묵과 침침함입니다. 모두 침울하고 말이

    없고 침묵합니다. 웃음이 없고 어두움이 짙게 갈려 있습니다. 그래서 초상집에는 모두 한결같이 꽃을

    꽂아놓습니다. 꽃을 꽂아 놓는 것은 그 분위기가 음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위기를 중화시켜

    보려는 뜻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꽃도 밝고 화려한 장미꽃이 아니고 한결같이 흰 국화꽃입니다.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또 촛불을 켜 놓습니다. 옛날 전기가 없던 시절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겨우 호롱불을 켜 놓은 침침한 분위기의 초상집, 그 분위기가 얼마나 으스스합니까. 그래서

    옛날 동네에 초상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문밖출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온 동네가 어둡고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상집에는 집안이나 집밖을 모두 더 밝게 하려고 촛불을 켜 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촛불이 상관없는데도 초상집에 가 보면 으레 그렇게 하는 줄 알고 누구나 촛불을 켜

    놓습니다. 옛날 결혼식을 밤에 했습니다. 그래서 한자로 결혼의 혼(婚)자가 어두울 혼자입니다.

    옛날에는 결혼식을 밤에 했기 때문에 촛불을 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대낮에 결혼식을 하면서도

    촛불을 켜 놓습니다. 그 모습이 웃을 일입니다. 그런데도 누구도 웃지를 않습니다.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때로 무지할 때 용기가 있고 형식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이 상당한 의식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뒤로 침묵과 음침함만 있어야 할 초상집에서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하고 찬송을 부릅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그리고 “이 영혼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부모가 죽은 자리에서 부름

    받은 것을 감사하며 감사의 기도를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이 터부시되던 의식이 엄청나게 뒤바뀌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떡을 들고 감사기도를

    요 6 장을 보면 아주 보잘 것 없는 떡을 들고 감사기도를 하십니다. 광야에 5 천명이 모였습니다. 모두

    굶주렸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어린 아이가 가지고 온 도시락이 5 병 2 어입니다.

    아주 보잘것없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11 절을 보면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침내 그곳에

    모인 5 천명이 먹고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음식을 놓고 감사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조그만 음식을 앞에

  • 놓고 자연스럽게 감사의 기도를 하십니까? 차 한 잔을 놓고도 감사할 수 있음이 복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주 기초적인 모습인데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음식이

    나왔을 때 진지하게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는 감사의

    기도를 하지만 음식점에서 집에서 음식을 앞에 놓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할일 전폐하고 나가서

    전도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전파하고 증거하는 삶이 일상화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증거하는 삶은 반드시 나가서 전도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음식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식사할 때 식사가 나오면 모두 숟가락 들기 바쁜데 조용히 머리 숙여

    잠시라도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자세라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기도의 모습을

    통해서 내가 증거되고 간증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시간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생각나게 해 주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간증의 삶이고 증거의 삶이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하는 삶입니다.

    만일 그곳에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음식이 나왔을 때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다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떠먹던 사람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그 마음속에 상당히 자책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 그곳에 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금 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다시 불러일으켜 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 그곳에

    “저 사람은 뭔지 삶의 태도가 달라, 그리고 뭔가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 같아”. 하고 남다른 느낌을

    가지고 보아오던 사람이 있다면 그때 진지하게 감사의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그 의문을 거기서 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조그만 일입니까? 그것이 증거의 삶이고 간증의

    삶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진지한 신앙인의 태도입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평소의 태도,

    정신, 생각, 삶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3 초도 안 되는 시간에 누가 볼까 잠깐 눈을 감았다 뜨는 그런

    기도하는 태도에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겠습니까. 그런 소신 없는 태도에서는 사람들이 아마 역겨움을

    느낄 것입니다. 음식을 앞에 놓고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인의 가장 순수하고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빨리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급했던 것이

    아니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모두 만족하고

    흡족하게 먹고도 남게 되는 기적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의 감사기도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십니다. 그 만찬에서 예수님은 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 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잔을 가지 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하고 나누어 주십니다. 이 감사의 기도는 죽음 직전 전날 밤에 하신 감사의

    기도입니다. 내일이면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전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하시던 중 “이

    떡을 받아먹으라, 이 떡은 나의 살이니라, 또 이 포도주를 마시라, 이 포도주는 나의 피니라”.하고

  • 나누어 주십니다. 얼마나 비장한 모습입니까? 이것이 기도의 묘미입니다. 신앙생활의 깊음은 감사의

    삶에 있습니다. 감사도 그냥 일상적인 감사가 아니고 정말 극한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 감사의

    기도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이렇게 극한 상황에서 나타납니다.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놓고

    감사하는 기도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다가 며칠 만에 음식을 먹을 때의 감사의 차원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감사는 극한 상황에서 연출되는 것입니다.

    어느 불구자가 팔다리를 모두 잃었습니다. 몸통만 남았습니다. 이 불구자가 붓글씨를 쓰는데 입으로

    붓을 물고 글씨를 썼습니다. 한참 글씨를 쓰다가 벅차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입을 남겨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묘미입니다. 거기에 얼마나 깊이가 있습니까? 얼마나 뜻이 큽니까? 사람들은 생이 어쩌고 하면서

    못살겠다고 자살하고 그러지만 그런 불구의 몸을 가지고 살면서도 누구도 할 수 없는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삶이고 믿음이 만들어내는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상황이 전혀 감사할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은 정신적으로 극한 상황입니다. 이 만찬을

    마치고 곧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가서 밤새워 철야 기도해야 합니다. 내일새벽이면 체포됩니다.

    그리고 아침 9 시면 십자가에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죽음의 순서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룟 유다가 와 있습니다. 천연스럽게 와서 주는 대로 받아먹습니다. 발을 씻겨주니까

    아무 거리낌 없이 내 발도 씻겨 달라고 발을 내 맡깁니다. 그러니 그 모습을 보는 예수님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예수님은 떡을 들고 포도주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시며 먹고 마시라 이것은 나의 살이고 피라 하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진정한 기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이 어려움 중에서 드릴 수 있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운명하시며 감사하심

    또 요 19:30 절을 보면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다 가고 십자가에서 6 시간동안 신음하시다가 마침내

    운명하십니다. 사람들은 마지막 죽을 때 모습이 가지각색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기는 말 한마디도

    가지각색입니다. 호스피스에 종사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지막 죽어갈 때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안돼, 죽으면 안돼”. 그러면서 죽어간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 많은 돈을 두고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점에서 보면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것도 축복입니다. 얼마나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안돼,

    이대로 죽으면 안돼”. 하고 중얼거리다 죽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죽을 준비가 안돼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죽으면 심판 받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 준비도 없이 살다 갑자기 죽게

    되니까 그렇게 부르짖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임종 때 무슨 말로 인생을 마치려

    합니까?

    예수님은 6 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고난 받으시다가 마침내 운명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서

    마다 예수께서 마지막 운명하시는 모습을 달리 표현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은 마지막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더라(마 27:50, 막 16:37)고 표현했습니다. 그 크게 소리 지르던

    소리는 왜 나를 버리십니까 하는 소리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 부탁하나이다”(23:46)하고 운명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면 아주 극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19 장 30 절을 보면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말을 무슨 말로 남기려고 하십니까? 이 마지막 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평소 유서를

    써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길 유언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엄숙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 “다 이루었다”하는 말은 아주 만족하다는 말입니다. 또 이 말은 “아버지께서

    잘 감당하고 마치도록 도와주심을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입니다. 모두 극한 한계상황에서

    감사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교 훈

    여기서 우리들의 기도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들의 기도내용과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늘 나 자신을 위한 기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기도 내내

    나를 강조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축복하시고, 나를 알아주시고, 나를 평안하게 해

    주시고, 형통하게 하시고 성공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때로 원망의 기도도 합니다. “왜 나를

    버리십니까, 왜 나에게 이런 시험을 주십니까”.

    시험은 자기가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에 힘이 없고 응답이 없고

    기도하면서도 내 자신이 감동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를 한번 마음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서에 몇 번 안 되는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기도는 모두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모두 극한 상황인데도 예수님은 감사의

    기도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십니다. 그러니까 그 기도가 있은 후에는 반드시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출처/박요한 목사 설교 중에서

  •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할까? 감사는 받은바 은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an expression

    of appreciation)이다. “우리가…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How can we thank

    God(살전 3:9)?”.

    감사는 영어로 ‘thanksgiving’이다. 즉 감사는 드리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은혜, 형언할 수 없는 은혜, 우리 언어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들(생명·건강·신앙의 자유·의식주 등)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무엇으로 보답할꼬?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① 마음으로 감사(골 3:16)

    ‘하나님께 마음으로 감사’에서 ‘마음(heart)’은 지·정·의(knowledge ·

    emotion · will)의 중심좌소(center seat)이다. 마음은 속 중심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감사는 진정으로, 참으로, 진실로 감사

    드리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겉으로 형식과 외식으로가 아니라 속 중심으로, 말로만 아니라 행위로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한다.

    ② 찬송으로 감사(골 3:16)

    골로새서 3 장 16 절에서는 시, 찬미와 신령한 노래(psalm, hymn, spiritual song)로 감사 드리라고

    했다. 찬송가 가사대로 ‘밝을 때에 노래며 어둘 때에 기도’를 항상 드리자! 내 입에 호흡이 있는 동안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하심과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찬양해야 한다.

    ③ 예물(물질)로 감사(잠 3:9)

    ‘네 재물과 네 소산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그에게 줄지니라(신 15:14)’

    ‘각 사람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신 16:17)’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있다. 사람이 은혜를 입으면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감사의 표시를 드린다. 하물며 형언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하나님 자녀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로

    예물을 드리는 것은 마땅하다. 시편 136 편은 26 절까지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절마다 감사하라고

    권면했다.

    ④ 몸, 시간, 재능으로 감사(롬 12:1)

    감사하는 방법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우리의 몸, 시간, 재능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함으로 하나님께 배은망덕했던 죄를 회개하고, 감사 생활하면서 참회와 결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 많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더 많은 복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하겠다.

    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범사(凡事)’란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나, 어떤

    방식으로나’ 하는 의미이고, 부사적 의미를 보면‘어느

    모로나, 반드시, 절대적으로’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평탄한 길을 걷든지, 자갈밭이나

    가시밭길을 걷든지 어떤 경우라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이야 어떻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것뿐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할수록 더 많은

    복, 더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기 때문이다(고후 9:6).

  • 윌리엄캐리대학 코리안 박사학위 프로그램 모집

    ▶ Program information

    1. 박사학위 취득에 총 46 학점이 요구됩니다.

    a. Required Courses (18 units)

    b. Concentration Courses (22 units)

    c. Dissertation (6 units)

    2. 1 학기는 3 개월로 운영됩니다.

    3. 1 년에 4 학기가 운영됩니다.

    4. 한 학기에 보통 2 과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5. 6 개월 (2 학기)에 최소 8 학점을 취득해야 하며 최대 14 학점까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6. 박사학위를 받으시려면 평균 3-4 년의 기간이 걸리게 됩니다.

    7. 학비는 unit 당 $295 입니다.

    8. 46 학점 이후 논문을 마치지 못했을 시, 1unit 씩 1 년에 총 4unit 을 듣게 되며, 학비는

    학기마다 1unit $295 씩만 추가됩니다.

    9. 1 년에 $60 Curriculum Fee 있습니다.

    ▶ 공부계획:

    Year 1: Required Courses (18 units)

    5과목: 2 units = 10 units

    2과목: 4 units = 8 units

    1학기: Cultural Anthropology (2 units)

    Foundations of the World Christian Movements (2)

    2학기: Intl Dev 565: History and Trends in Intl Dev (4)

    Intl Dev 530: Introduction to Research methods (2)

    3학기: Inter Cultr 580A: Introduction to mentoring (2)

    Inter Cultr 580B: Mentoring Practicum (2)

    4학기: Intl Dev 573: Research Desig (4)

    Year 2: Individualized Courses (22 units)

    본인이 관심있는 분야에서 22학점의 수업을 담당교수님과 함께 개발해서 공부합니다.

    3 과목: 6 units = 18 units

    1 과목: 4 units = 4 units

    Areas of Concentration:

    1. Intercultural Studies

    2. Christian Education

    3. Global Leadership

    Year 3: 논문 (6학점)

  • 윌리엄캐리대학교 박사학위 과정

    (총 46학점)

    Year

    학기

    Year 1

    (18 units)

    Year 2

    (22 units)

    Year 3

    (6 units)

    Year 4

    1

    • Cultural Anthropology (2 Units)

    • Foundations of the World

    Christian Movements (2)

    Concentration course (6)

    Dissertation

    Dissertation

    2

    • Intl Dev 565: History and

    Trends in Intl Dev (4)

    • Intl Dev 530: Introduction to

    Research methods (2)

    Concentration course (6)

    Dissertation

    Dissertation

    3

    • Inter Cultr 580A: Introduction

    to mentoring (2)

    • Inter Cultr 580B: Mentoring

    Practicum (2)

    Concentration course (6)

    Dissertation

    Dissertation

    4

    • Intl Dev 573: Research Desig

    (4)

    Concentration course (4)

    Dissertation

    Dissertation

    “William Carey International University is pleased to join The Reformed University in offering

    collaborative graduate degree programs. We value the opportunity to share the insights

    and innovations of missiologist Ralph D. Winter with the Korean community”

    Dr. Beth Snodderly (윌리엄캐리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