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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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제31호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 공동체 귀촌으로 이곳에 정착한 이들과 더불어 주말마다 서울 수유에서, 산본 대야미에서 이곳을 찾아오는 친구들이 울력도 하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예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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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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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농도

상생

마을

공동

체를

구어

가는

2012

10

제31호

강원

도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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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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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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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린

다.

Page 2: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글 싣는 순서

* <아름다운마을신문>은 강원 홍천과 서울 수유를 오가며 농촌과 도시가 서로를 살리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삶으로, 시대적 과제 앞에 ‘소통’을 건네고 질문을 던지며 ‘대안’을 모색하려 합니다. 구체적 일상과 관계, 수련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봅니다. [청소년마당] [아이들세상]은 홍천과 수유 마을학교 아이들이 살아있는 배움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농(農)을 통해 문명과 삶 전체를 다시 살피고 재구성하는 [農생활]을 일구고 땀 흘려 [생태

건축]하는 모습을 담습니다.

2012 10 제31호

<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기자 김세진 김준표 김형우 임안섭 서아름 주재일 최소란 디자인 황지영

문의 02-999-9294, 010-2578-6050 누리편지 [email protected] 누리집 www.maeullo.net 후원 국민은행 487101-01-436510

3 [편집실에서] 도시문명을 넘어서는 128km

4 [소통과 대안] 울력, 서로를 살리는 즐거운 수고

6 [만나보기] 흙과 벗하며 사는 도시 직장인

9 시골버스가 젊은이들로 북적대길 꿈꾸다

11 [그림 이야기] 이사

12 [함께 산다는 것] 저녁이 있는 삶, 우리에겐 현실

13 해바라기가 반기는 마을구멍가게

14 [청소년마당] 저희 동아리를 소개할게요

16 [마을학교] “아름다운마을학교태권도!”

18 [아이들세상] “옷에서 형아 냄새가 나”

20 [農생활] 숲속 생명 버섯 이야기

22 [생태건축] 정성이 실력이다

최소란

최소란

권상원

길서영

김동언

김준표

하림, 성은, 해민, 다인

김태훈

이영미

장윤희

주재일

4

13

20

Page 3: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3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도시문명을 넘어서는 128km

2012 10 제31호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강원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과 서울 강북 북한산자

락 수유마을을 오가며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일굽니다. 홍천마을 사람들은 농

(農)생활의 가치를 담아 서울에서 보낸 밥상 부산물과 오줌 퇴비로 농사를 짓습

니다. 수유마을 사람들은 주말마다, 휴가 때마다 편도 128km를 기꺼이 달려 홍

천마을을 찾아갑니다. 도시문명 속에서 지치고 무기력해진 몸이 울력을 통해 생

명력을 회복합니다. 농촌사람, 도시사람이 함께 땀 흘려 일하며 자연과 사람이 조

화롭게 어우러지는 마을을 이루어갑니다.

농도교류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농촌은 아픔과 절망뿐일 겁니다. 농촌 땅에 뿌

리내리고 자라나는 모든 풀들에는 온갖 화학약품들이 뿌려집니다. 그래야 작물

의 상품가치가 높아지고 도시사람에게 잘 팔리니까요. 경치 좋은 산과 물 주변에

는 숙박업소와 골프장이 들어차 있습니다. 그래야 도시사람들이 찾아와서 돈을

펑펑 쓰니까요. 온갖 특산품이며 지역 명물 개발에 급급한 요즘 마을사업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농지에 축사가 들어서고, 송전탑과 고속도로가 농가를 밀어내

고 있습니다. 도시의 욕망을 채우려고 이렇게 농촌을 망가뜨리면서 농촌을 살리

자고만 말하는 건 공허한 립서비스에 불과합니다.

이번 호 마을신문은 농촌과 도시의 관계를 다시 잇는 이들의 땀방울을 담았습니

다. 마침맞게 기자들이 홍천에 가서 울력한 생생한 현장도 그렸습니다. 농촌을 일

방적으로 수탈하던 도시, 도시 자본의 시혜를 바라고 도시화를 흉내 내던 농촌,

128km 아니 달나라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친구가 이제 함께 서로를

살리는 감동 속에 풍덩 빠져보시길!

최소란 편집장

편집실에서

Page 4: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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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야, 엄마 내일 홍천 다녀올게. 아빠랑 잘 지내다 하룻밤 자고 다시 만나.” 금요일 저녁 짐을 꾸리

며, 아이와 인사를 나눴다. 1박2일 짐인데도 꽤 많다. 쌀이며 가서 밥해 먹을 재료들이며 이불도 챙긴

다. 강원도 산간 날씨에 대비해 잠바도 든든하게 입고, 작업복과 장갑도 있어야 한다.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어떤 시간이 될까 설렘과 긴장 속에 잠을 청했다.

토요일 아침 7시, 8인승 차에 7명이 앉아서 출발했다. 앉은 자리가 편치는 않아도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늘 오롯이 쉬기 위해 어제 야근을 해야 했던 직장인들은 잠시나마 눈을 붙인다. 창밖엔 팔 벌려

맞이하는 산 아래로 추수 때에 다다른 황금들판이 출렁이고 있었다.

땔감 나무 자르고 톱밥가루는 뒷간에

오전 10시 반,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에 도착했다. 여기 올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로 얼굴을 적시고 손에 받아 쭉 들이켜기. 이 물맛을 좋아하는 서울 친구들

이 꽤 많다. 물 한줌으로 피로가 싹 가시고 상쾌한 하루가 시작됐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목장갑을 끼

고 마을 총무님에게 생활과 울력 안내를 받는다. 이웃의 밭을 밟지 않도록 마을 안에서는 천천히 운전

하고, 다른 사람 생활공간에 무심코 들어가거나 서랍을 열어보지 않도록 주의하란다. 긴장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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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력, 서로를 살리는 즐거운 수고우리 몸으로 시도해보는 생생한 이야기들 가득

기자들이 홍천에 가서 한 울력 중 한가지. 땔감으로 쓸 나무들 잘라 옮기는 일. 꽤 무겁다.

소통과 대안

Page 5: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5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오늘 우리가 할 울력을 분배해 세 모둠으로 나눴다. 한 모둠은 농사를

지으시는 오빠네 밭으로 갔다. 다른 한 모둠은 땔감 나무를 톱으로 토

막 내는 일, 또 한 모둠은 남학생 생활관 물탱크를 청소하는 일을 맡았

다. 어떤 일을 할지 스스로 정하면 되는데, 나는 나무를 잘라 옮기는 일

을 했다. 가을과 겨울에 구들장 땔감으로 쓸 나무다. 마을 총무님은 산

더미같이 쌓인 나무를 가리키며 오늘 다 해놓고 가라더니, 한쪽에서 묵

묵히 나무를 자른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이, 땀

뻘뻘 흘리며 낑낑 대는 우리와 사뭇 비교된다.

장작 패고 땔감 모으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인 줄 알게 된 한 홍천 친구

가 이렇게 말했단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예전에는 선녀가 나무

꾼과 살아줬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나무꾼이 선녀와 살아준 거라

고. 나무꾼의 고된 노동을 경험해본 이들만 공감할 수 있겠다. 나무를

자를 때 잔뜩 떨어지는 톱밥과 가루도 버리지 않는다. 생태뒷간에서 똥

을 누고 톱밥이나 왕겨를 덮어 쌓아놓으면 냄새가 나지 않고 발효가 잘

된다고 한다.

고추야, 너도 자라느라 애썼다

정오에는 흩어져서 일하던 이들이 모여 침묵으로 기도회를 하고 밥상

을 나눴다. 꿀맛이다. 특히 들깨가루와 효소로 맛을 낸 토란대나물 요

리가 인기였다. 도시락을 빠뜨리고 온 오빠도 십시일반 모아진 밥으로

배를 채웠다. 수유서 온 친구들은 홍천 소식을, 홍천 사는 친구들은 수

유 소식을 주고받느라 대화도 풍성했다. 이번에 하진 않았지만, 이곳에

는 다같이 드리는 밥상 기도문이 있다. “어우러져 살아가는 해, 물, 바

람, 흙, 벌레와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손길과 하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

사합니다. 천천히 정성으로 먹고 서로 살리는 밥의 삶 살겠습니다.” 처

음 홍천에 와서 이 기도를 드렸을 때, 삶이 기도요, 기도가 삶이 된 느낌

이었다.

해의 온기를 받은 서당 툇마루에 팔베개하고 누웠다. 눈이 막 감기려

는 찰나 오후 울력이 시작됐다. 나는 오후엔 밭에서 고추를 땄다. 빨갛

게 잘 익은 고추들 사이로 간간이 병든 고추를 따 버렸다. ‘너네도 농부

못지않게 한 해 동안 자라느라 치열했구나, 애썼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

다. 새참으로, 가지를 따서 한 입 베어 무니, 생각보다 속살이 상큼하고

촉촉했다. 하천부지에 있는 다른 밭으로 갔다. 내년에 농사 지을 수 있는

밭으로 개간하는 일이었다. 돌을 캐내고 풀을 베는데, 낫이며 쇠스랑 따

위 농기구가 손에 익지 않았다. 돌은 끝도 없이 나오고 풀은 뿌리를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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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돌을 골라 삼태기에 담아 날랐다.

서울에서 가져온 밥상 부산물은 퇴비로 잘 썩힌다.

소통과 대안

Page 6: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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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고 있었다.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 땅이었는

데, 내가 파헤친 땅은 고작 손바닥만 했다. 해질

녘 일을 마무리하자는 말에 막판 가속도라도 내

려는데, 이젠 삭신이 쑤셨다. 보람찬 하루였다고

말하려던 포부가 자연 앞에, 농부 앞에 고개를 숙

이는 시간이었다.

저녁밥상에선 각자 일하고 온 소감을 나누느라

왁자지껄했다.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물탱크 속

에 들어가 허리까지 차 있는 물을 퍼내고 수세미

로 박박 청소하고 다시 올라왔다는 모험담이 관

심을 끌었다. 전문가를 불러서 돈 주고 손쉽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서로 도와서 몸으로 직

접 시도해보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홍천에선 넘

쳐났다. 물탱크에서 물이 안 나와서 이튿날 아

침에야 문제를 해결하는 일 같은 시행착오들도

곁들여서.

사방이 깜깜한 밤 9시에 잠들고 이튿날 6시에

일어나 생태뒷간에서 시원스레 일을 보고 나왔

다. 이제 서울 가서 뭘 해도 다 잘 풀릴 것만 같

다. 컴퓨터 앞에서 머리만 쓰느라 몸이 굳어진

다고 느낄 때,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어질 때,

다시 이 땅에 찾아오리라.

최소란

흙과 벗하는 삶으로

일터를 가꾸는도시 직장인 이서원 님

서원 님은 일터에서 농촌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주말마다 홍천으로 간다. 서원 님은 일터에서 농촌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주말마다 홍천으로 간다.

생태뒷간 앞. 수유와 홍천에서 모은 오줌 액비는 밭 거름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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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그 남자의 신나는 이중생활

올 가을부터 홍천에서 주말학교 선생님을 하는 서원 님. 둘째 넷

째주 토요일마다 아이들 9명과 사진 수업을 하고 있다. 친구들에

게 사진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서원 님은 마을이나 직장에서 행사

사진을 맡아달라는 제의도 종종 받는다. 요즘엔 직장에서 지원받

아 퇴근 후 일주일에 이틀씩 사진학원을 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자

연 속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을 찍고 싶어 한다. 자신들이 바

라보는 사건을 사진 한 장에 천천히 담아내도록 하는 훈련을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오래된 필름카메라 9대를 구해서 아이들에

게 나눠줬다. 필름 한 통을 한 번에 다 쓰지 않도록 세 롤로 잘라

서 나눠주고, 서원 님이 손수 현상도 해볼 거란다.

서원 님 본업은 농어촌희망재단 복지팀 과장이다. 농어촌 여성, 아

동, 노인, 그리고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일을 한다. “제가 하는 일

이, 농촌사람들에게 필요한 복지를 제공해주는 일인데, 농촌의 목

소리를 듣지 않고 일한다면 기만적이 되기 십상이에요. 그동안 농

림부 장차관 중에 경제인 출신이 많다고 해요. 순수하게 손으로 흙

만지며 농사 지어본 사람이 장차관이 된 적은 없었어요. 농정책이

파행으로 가는 이유가 다 거기 있던 거지요. 올 초 농림수산식품

부 장관이 2014년까지 마을 단위 공동경영체 5000개를 육성하겠다

고 했는데, 농촌마을을 관행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라 할 수 있지요.

흙과 벗하는 삶으로

일터를 가꾸는

서원 님은 일터에서 농촌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주말마다 홍천으로 간다. 서원 님은 일터에서 농촌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주말마다 홍천으로 간다.

서울 사는 직장인 이서원 님(33)은 주말이면 강원 홍천으로 갔다가 월요일에 다시 와서 출퇴근하는 생

활을 한다. 지난해 8월부터였으니 어느덧 일 년이나 됐다. 처음 홍천마을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자신

을 부르는 호칭도 어색하게 여겨지고, 이곳 생활이 낯설어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주눅이 들었다. 밥상 앞

에서 말 한마디 안 하고 밥만 먹은 적도 있다. 이젠 아이들이 먼저 장난을 걸 정도로, 주말 농촌 일상이 자

연스러워진 게다.

서원 님은 금요일 업무를 마치면, 홍천으로 간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 5시 반쯤 나온다. 오전 7시 경기 과

천에 있는 일터에 도착해서 미숫가루로 속을 든든히 하고 도시의 한 주를 시작한다. 주말마다 시골로 가는

서원 님을 보고, 주위에서 농사지으러 가냐는 반응이 많았다. 물론 작은 텃밭을 얻어 친구와 같이 농사도

짓는다. 그렇다고 주말 내내 일만 하다 오는 건 아니다. 풀벌레 소리 들으며 온갖 시름 다 내려놓고 낮잠도

자고, 공부도 하고, 말씀 묵상도 한다. 단순하고 여유로운 농촌 일상이다. 밤이 되면 온 세상이 깜깜해진다.

뒷간에 갈래도 손전등이 있어야 한다. 보통 10시, 늦어도 11시면 잠이 든다. 직장일도 다 잊고, 직장 동료처

럼 강남으로 이사 가려고 어떻게 대출을 받아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만나보기

Page 8: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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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녹인 친구들 노래

한 달 전 서원 님이 몸담고 있는 기초공동체 친구들 9명이 그의 일터로 찾아왔다. 늘상 그가 홍천으로 가서

환영받고 대접받는 쪽이었는데, 이번엔 그가 과천에서 맞이하게 된 거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채비해서 먼 걸

음 나왔을 친구들을 기다리며 모처럼 사무실 자리도 청소했다.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친구들이 불러

준 노래에 그의 마음이 녹았다.

직장생활 7년, 스스로 세운 원칙대로 고집스럽게 타협하지 않고 일해온 그였지만,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회

사에서 쉽게 무너졌거나 동화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란다.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때에 따라 변

화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멀리 떨어진 직장에서도 친구들이 지켜본다는 마음으로 더 잘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홍천에서 받은 좋은 기운으로 지금 있는 일터에서 즐거운 꿈을 꾸고 새로운 시도도 한다. 그가 요즘 일하

면서 즐거운 분야는 이주여성 농업인 고용 지원이다. 제3세계에서 온 이주민, 농업인의 아내, 한국사회에서

가장 소외계층인 이주여성들이 농촌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여성농업인센터에서 방

과 후 교실을 열어 아이들에게도 좋고, 이주여성들도 일자리가 생긴다.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서 기쁘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서원 님 얼굴도 밝은 미소가 뜬다. 앞으로 농촌 사람들이 스스로

힘 모아 꾸리는 활기찬 마을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최소란

사람과 관계는 보지 못하고, 성과물과 수치만 보

는 겁니다. 제가 주말마다 홍천으로 가는 건 똑같

이 그런 패러다임에 갇히지 않기 위한 거에요. 땅

과 벗 삼아 지내는 삶이야말로, 일에서 농생활 가

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해요.” 우리

나라 농정을 안타깝고도 애정있게 바라보는 젊은

이의 쓴소리다.

만나보기

주말학교 사진수업으로 아이들과 만나는 서원 님

Page 9: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9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토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짐을 싼다. 나는 올해 3월

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다. 직장 동

료들은 내가 왜 강원도 홍천으로 가는지 궁금해한다. 부

모님이 계시는 고향도 아니고, 여자친구가 기다리는 것

도 아닌데 황금 같은 주말을 왜 그런 시골에서 보내느냐

는 거다.

2년 전 여름 처음 효제곡마을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

에 빠져 있었다. 그곳에서 2주간 건축일과 농사일을 도

우며 시간을 보내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강원도 한

농촌마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며 주소지를 먼저 강원도 홍천 서석면으

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출퇴근하며 직장생활

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세무공무원이 되어 인근에 있는 세무서에서 직장인으

로 살면서, 농촌마을에 뿌리내려야겠다고 계획을 세웠

다. 그리고 도전을 해서 공무원이 되는 것에는 성공을

했는데, 발령을 경기도 이천으로 받았다. 계획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지만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홍천으로 향했다.

효제곡마을을 마음에 품고 직장생활 고민하다

이천에서 첫 버스를 타고 원주터미널에 내려,

홍천 서석면으로 향하는 버스를 갈아탄다. 대

략 세 시간의 여행 끝에 버스에서 내려 하천 옆

둑길을 삼십 분간 걸어 들어가는 동안 내 자신

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병풍 같은 산들로

둘러싸인 논과 밭, 그리고 마을을 구경하며 폭

신한 풀밭을 걷다보면 어느덧 나는 농민이 되

고, 흙집 기술자가 되고, 아이들의 선생님이 된

다. 소나무숲을 지나 우리 마을에 들어서면 생

동중학교 친구들이 나를 반긴다. 그리고 나처

럼 주말이면 도시를 떠나 효제곡마을로 오는

직장인 형, 누나들이 있다.

가능성의 땅에서 생기 넘치는 젊은이들로 북적북적

시골버스가 젊은이들로 북적대길 꿈꾸다

농촌마을에 뿌리내린 직장인으로 활기차게 살아가는 상원 님

주말학교 사진수업으로 아이들과 만나는 서원 님

Page 10: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10

다들 주중에 바쁜 직장생활로 지쳐 있을 법한데도

그런 기운은 찾을 수 없다. 밭에 심은 고구마와 학

교 친구들이 한 주가 다르게 자라나는 생명의 신비

가 모든 피로를 잊게 만드나보다. 여름방학을 지내고

돌아온 아이들은 키가 쑥 커 있다. 중학교 친구들은

이제 마을 이모, 삼촌들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친구도 있다. 지난주에 아이들과 축구

를 했다. 아이들은 키만 자란 것이 아니라, 체력과 기

술 그리고 옆 친구들과 함께하는 능력이 놀랄 만큼

자라 있었다. 그렇게 늘 달라지는 청소년들과 함께

뛰놀며, 호흡하고 있으면 나도 그네들처럼 몸과 마음

이 새롭게 자라난다. 나이 서른에 아직도 자라고 있

다고 말하면 마음이 그렇다는 건 줄 안다. 하지만 나

는 몸도 아이들처럼 새로워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

고 있다.

내가 마을에서 즐겨 찾는 공간은 학교 서당이다. 주

중에는 그곳에서 아이들이 주로 수업을 듣고, 공부

를 한다. 서당은 흙과 나무와 돌로 만든 집이다. 작

년 가을 겨울 동안 생태건축 ‘흙손’ 형들과 함께 만들

었다. 살면서 망치질, 톱질을 거의 해본 적 없는 나

에게는 어려운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그렇게 땀 흘려

만든 공간이어서 그런지 더 깊은 애정이 간다. 서당

구들에 불을 지피고 누워 있으면 잠자리가 예민한

편임에도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한주간의 피곤과 걱정

을 사라지게 해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도심 속 일터에 생기를 주는 대자연

홍천으로 오가는 시골버스는 서울의 지하철과는 달

리 한적하다. 그리고 대부분 머리가 센 어르신들이

다. 나 같은 젊은 사람을 버스 안에서 마주하는 것

은 무척 드문 일이다. 버스를 타고 오갈 적마다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골버스 광경을 꿈꾼다. 주중에

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는 농촌마을

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친구들이 생겨나기를 기대

한다.

공무원연수원에 있을 때, 내가 강원도 홍천 근처 세

무서로 가고 싶다고 하니 선배들이 거기는 직장에서

사고치고 가는 유배지라고 비웃었다. 도시를 배경으

로 지내는 직장인들은 생계를 위해 차마 때려치우지

못하고 하루하루 버텨서 승진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꿈이 없다. 직장동료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주식이

오르는 것이다. 거대한 구조 속에 기계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직장인이 자기 일상에서 창조적인 꿈을 꾸

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대자연의 생기 속

에서 벗들과 함께 땀 흘리고 웃고 뛰노는 시간들은,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도심 속 일터에 영혼을 불

어넣을 용기와 상상력을 나에게 공급해준다.

다음 주말에는 유배지가 아닌 새로운 생명과 가능

성의 땅인 강원도 시골버스 안에서 당신을 만나면 좋

겠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향하는 직장인들로 농촌마

을은 새로운 생기를 얻고, 도시 속 일터는 농촌마을

에 뿌리내리고 있는 직장인들로 생명력이 꿈틀대는

세상을 그려본다. 권상원

Page 11: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11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마을구멍가게가 문을 열기 전, 학교 친구들은 아침에 먹을 빵이나 주말에 집으로 가는 동안 먹을 간식

등을 주문받아 배달해주는 자치모임 ‘하하 생협’을 꾸려오고 있었다. 한창 먹거리 소비에 대한 고민이 깊

어지는 친구들의 시기에 마침맞게 구멍가게가 생겨서 친구들이 자기 생각을 더 힘 있게 만들어갈 수 있

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구멍가게는 자율판매 방식으로 운영된다. 물건을 사는 사람이, 나무탁자에 놓인 작은 함에 스스로

값을 지불하고 장부를 적는다.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생협을 꾸려갈 때부터 해왔던 방식이라 낯설지 않다.

미리 적립금을 넣어두고 이용하는 친구도 있고, 필요한 물품을 예약했다가 받는 친구도 있다.

마을구멍가게 한 쪽에 있는 냉장고는 공동저장고 역할을 한다. 적극적인 이유로 집에 냉장고를 두지 않

해바라기가

반기는

마을구멍가게

마을구멍가게에 손수 그린 벽화 앞에 선 아이들

홍천 효제곡마을에 구멍가게가 생겼다. 학교 생

활관 건물 한쪽에 세 평 남짓 아담하게 자리한 진

짜 구멍가게다. 나무로 짠 진열장 위로 딸기웨하

스며 과일푸딩, 감귤주스 등 입맛 당기는 먹거리

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주인장 대신 벽에 그려

진 해바라기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한

다. 구멍가게를 가장 반가워한 학교 친구들이 손

수 그려넣은 것이다.

새롭게 문을 연 마을구멍가게 전경

는 가정이나, 자연스레 저장고가 필요했던 주민들이 이용한다.

생협에서 배달 온 물품을 보관하기도 하고, 밭에서 수확하고 냉

장·냉동 보관이 필요한 것들을 두기도 한다. 마을사람들이나

손님들 누구나 일정 비용을 내면 공동저장고를 이용할 수 있다.

“마을의 필요를 요긴하게 채워주는 가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가게지기 김진숙 님의 바람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하다. 올해 4월

홍천으로 이사 온 진숙 님은 마을밥상의 먹거리에 대한 생각과

기준을 이어받아 구멍가게에서도 건강한 먹거리로 마을사람들

을 만나가고 싶다고 전한다.

김준표

Page 12: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12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시 퇴근을 한다.

일터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루

내내 달렸다. 마음은 벌써 2번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퇴근길엔 누굴 만날까? 생각만

해도 설렌다. 야근을 수시로 하는 직장인의

삶이 쉬이 바뀔 수 없는 건 이런 설렘이 사

라져서인지도 모른다.

버스에서 내리니 어느새 해는 져서 어둡고,

마을밥상 불빛이 환하게 반겨준다. 먼저 와

서 밥을 먹고 있던 친구들로 밥상에 이야기

꽃이 만개했다. 직장생활, 살림과 육아, 세

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이 이 주제 저 주제를

넘나든다. 오늘 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머릿속도 뱃속도 편안해진다. 내가 먹

은 그릇을 말끔히 설거지하고, 밥상을 뒤로

하려니 왠지 아쉽다.

삼삼오오 마을찻집으로 발길이 이어진다.

“안녕히 가세요, 동언삼촌!” 마을 아이들이

꾸벅 배꼽인사하고 집에 들어가는 모습에,

잘 자라고 손도 흔들어준다. 마을길을 돌고

돌아 상쾌한 저녁공기를 들이마시니 이게

바로 산책이다. 마을찻집에서 마주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는 아까 밥상서 하던 얘기의 심화과

정이다. 저녁 9시면 마을찻집도 문을 닫기에 집으로 향하

지만, 아직 저녁 일과가 끝난 건 아니다.

공동체방에 들어서니, 먼저 와서 책을 보고 있던 동생이

맞아준다. 대학을 졸업해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동생에

게 힘든 일은 없는지 물어본다.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공

부하고 늦게 들어온 친구, 하나둘씩 집에 들어오는 식구

들과 빨래도 개고 걸레를 들고 이 방, 저 방 나눠 닦는다.

이불을 펴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한 명씩 코고는 소리

가 멀어져 간다.

‘저녁이 있는 삶’이 매력적인 대선슬로건으로 꼽힐 만큼

우리 시대 직장인들 삶이 고단해졌다. 정책으로 노동시간

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할 방법들이 실현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각자 몫일 게다. 좋

은 저녁을 누리는 삶이 누군가에겐 5년 만에 맞는 대선에

서 걸어보는 기대이지만,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들

에겐 이미 누리는 현실이다.

김동언 /

환경활동가로 일하며

수유마을 형제공동체방에서 알콩달콩 사는 청년

저녁이 있는 삶

우리에겐 현실

함께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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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그림 이야기

길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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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저희 동아리를 소개할게요(1)

오락가락은 다섯 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밴드다.

오락가락의 뜻은 다섯 명이 즐기는 가락이다. 가락

을 즐기기 위해 기타, 건반, 베이스, 드럼, 목소리로

연주한다. 다섯 명이 한 곡을 완주하기까지는 서

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하는 과정에

서 마음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너무 들떠서 흥분하

기도 한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원하기도 한

다. 힘들기도 했지만,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정성

껏 선곡한 노래 한 곡, 한 곡이 즐겁고 신난다.

드럼이라는 부담스러운 악기가 우리 동아리의 간

절한 바람이 된 후로는 ‘자연드림’이나 ‘드럼세탁기’

‘드럼통’ 소리만 들어도 귀가 번쩍 뜨였다. 처음에는

기타 몇 대와 피아노, 목소리만 가지고 하다가 베이

스기타와의 만남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그리고 이

번 가을학기부터는 드럼과 음향시설이 갖춰진 옆

마을 청량교회로 가서 드럼과 기타, 베이스, 건반을

함께 연주한다. 그 덕분에 오락가락이 한층 아름다

워졌다. 기타도 베이스도 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이

정도 한다니 대단하다. 꾸준히 연습해서 한 곡씩 완

성해가는 우리 동아리, 오락가락이 자랑스럽다.

해민 / 생동중학교 2학년

내가 오락가락을 하면서 좋았던 사건 두 가지를

꼽아보겠다. 우리는 5월 5일 마을잔치 때 열심히 연

습해서 ‘나는 나비’와 ‘왼손잡이’를 공연했다. ‘나는

나비’는 내가 피아노, 해민언니가 드럼, 상원오빠는

기타, 규민오빠는 베이스, 주원오빠는 노래를 해서

만족스럽게 됐다. 연습할 때 드럼이 없어서 옆 동네

청량교회에 가서 드럼과 같이 연습하고 몇 번이고

수정하고 수정해서 한 공연이었다. 그래서 공연하는

날 울컥했다. 두 번째 곡 ‘왼손잡이’는 주원오빠가 기

타를 치고, 자욱선생님이 초대손님으로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주셨다. ‘왼손잡이’는 급하게 편곡하고

아주 어렵게 무대에 올린거여서인지 더욱 떨렸다. 그

래도 모두들 잘했다.

마을학교 들살이를 갔을 때, ‘노래가 있는 밤’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오락가락’에서 진행도 하

고 공연도 하려고 한 달 넘게 열심히 연습했다. 그런

데 그날 너무 피곤한 나머지 공연은 못하고 그 다음

날 한증원에 가서 그 앞 개울가에서 공연했다. ‘흐르

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

럼’을 했다. 연습을 계속 순조롭게 못한 티가 좀 났

지만, 그래도 뭐 ‘오락가락’이니까…. 이번 학기에서

계속 열심히 해야겠다.

다인 /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6학년

음악동아리 오락가락 밴드

수없이 연습하고 개울가 공연도 하고

홍천터전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와 생동중학교 친구들에게

동아리는 학교 생활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만남입니다.

배우고 싶은 것을 스스로 정하고, 마을의 이모 삼촌들이 스승

이 됩니다. 동아리는 늘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때 그때 필요

에 따라 바뀌고 새롭게 생겨납니다. 올해는 실뭉치, 오락가락

밴드, 텃밭, 표현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친구들이 소개

하는 신명나는 동아리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청소년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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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저희 동아리를 소개할게요(1)

우리 동아리는 실뭉치 동아리. 귀여운 느낌의 이

름이다. 우리는 이름에서 말하는 것처럼 실과 천으

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천과 바늘로 간단히 옷가

지를 만들거나 재봉틀로 주머니 같은 것도 만들고,

뜨개질로 목도리나 모자 따위를 뜬다.

손을 대기 전에는 그냥 실뭉치이고 그냥 천 조각이

던 것들이 옷이 되고 소품이 되는 것을 보면 마법 같

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바늘 한 땀 한 땀 정성들

이는 과정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만들어진다. 그러

니까 우리 동아리는 마법을 거는 동아리다. 그러나 우

리는 아직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배울 것이 참 많다.

지난 학기 동안 만든 것 중에서 완성품이라고 자

부할 만한 것이 없었다. 열심히 만들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고, 만든 것을 누군가에게 주었다가

너무 쉽게 튿어지는 바람에 쓰지 못했던 일도 있다.

무척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열심히 만들

자고 다짐했다. 더 꼼꼼히, 더 예쁘게, 더 즐겁게. 바

늘 한 땀 정성은 마법을 거는 것이다. 그 말을 기억

해야겠다.

하림 / 생동중학교 2학년

실뭉치 동아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뭘 해야 할

지 막막했다. 게다가 시작부터 너무 큰 꿈을 잡았

다.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만들어야 하는데 어려운

것부터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이다. 손바느질에 서툴

러서 한 작품 완성하는 데 한두 달은 걸렸다. 고무

줄바지에 민소매티, 고무줄치마를 만들었던 건 죄다

허술했다. 그 세 개를 만드는 동안 한 학기가 지나

있었다. 아쉬웠다.

그러나 가을학기가 시작되니, 재봉틀을 배울 기

회가 왔다. 솜씨 좋은 마을 이모가 세 번 오셔서 가

르쳐주시기로 한 것이다. 학교에서도 재봉틀을 두

개 샀다. 천도 두 보따리나 왔다. 양면주머니와 작은

파우치를 만들었다. 이제는 허술하지 않았다. 잘 뜯

어지지 않는다. 양면주머니는 찾을 때마다 가방 속

을 뒤적거려야 해서 불편했던 자잘한 물건들을 넣어

뒀다. 홍천과 서울을 오가느라 짐이 많은 나에게는

정말 편리하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엄마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작은 파우치를 선물했다. 엄마의 입에서는

끝없는 감탄이 새어나왔다. 나도 뿌듯해졌다. 재봉

틀 연습을 많이 해서 선물도 당당하게 주고 내 것도

많이 만들고 싶다.

성은 / 생동중학교 1학년

정성의 마법 ‘실뭉치 동아리’

재봉 배워 당당히 선물할 수 있어요

15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청소년마당

Page 16: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16

“아.름.다.운.마.을.학.교.태.권.도!”자기 몸의 한계를 넘어서는 몸수련

나른해지기 쉬운 오후 2시, 아이들이 우렁찬 기합과

더불어 힘차게 몸통 지르기를 한다. 아름다운마을

초등학교 수유터전에서는 매주 목요일 ‘태권도와 몸

놀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날씨와 여건에 따라 마

을학교 앞마당, 마을서원, 한신대 운동장 등을 넘나

들면서.

인내, 예의, 백절불굴

우리나라 고유의 무예인 태권도의 기본정신은 ‘인

내, 예의, 백절불굴’이다. 한창 뛰어 다니고 마음껏

활발하게 움직이고 싶어 안달나 있는 아이들에게 그

런 정신을 요구하기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첫

수업은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차분히 한 뒤 호흡을

깊게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덕인지 그 후부터 집

중을 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본동작인 앞서기부

터 지르기, 막기, 발차기, 품세, 겨루기까지 수준과 속

도에 맞춰서 한 단계씩 차근차근 익혀가고 있다.

배웠던 동작을 복습하거나 한 동작을 오래 반복하

면 아이들은 지루하고 힘들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

한다. 이럴 때 거듭 환기하는 것이 태권도의 기본 정

신은 ‘인내’라는 것! 그러면 아이들도 한번 참아보자

는 깜냥으로 그 순간을 넘어보려 애쓴다. 또 옆에 있

는 친구들이 잘 하면 은근한 경쟁의식이 발동하여

더욱 잘 견뎌보려고 힘을 내기도 한다.

‘예의’는, 태권도 수업은 물론 다른 마을학교 수업시

간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강조되는 덕목이다.

수업을 시작할 때면 선생님이 “공수”라고 말하고, 아

이들은 공손하게 손을 모아 배에 올려놓은 후 허리

를 굽혀 “정성껏 배우겠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수업

마칠 때 역시 공수한 채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

니다”라며 리듬감을 살려 인사한다.

하기 싫은 것이나 잘 안 되는 것을 피하지 않고 부

딪혀보면서 ‘백절불굴’의 정신도 훈련한다. 아이들에

게 가장 쉽지 않은 훈련이었다. 아이들은 멋쩍은 표

정을 짓기 일쑤였고 몸체가 맥없이 흔들거리거나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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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어지는 모양새가 더 자연스러워 보일 지경이었

다. 하지만 절도 있는 동작을 해보려고 노력했

다. 우선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 눈에 힘을

바짝 주면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움직임

을 딱딱 끊어서 취한다. 처음에는 장난기 가득

품고 째려보는 것 같았으나 이제는 모두 눈빛에

힘이 있고 다소 진지한 표정이 묻어나며 동작에

도 제법 절도가 느껴진다.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낸 아이도 있다. 발차

기를 하려면 일명 ‘가랑이 찢기’가 필수인데 처

음 그 아이는 발이 딱 90도 직각만 벌어졌다. 이

상하다 싶어서 한쪽 발을 들어 좀 더 넓게 억지로 벌렸더니 직각을 유지한 채 다른 쪽 발이 그대로 따라왔

다. 웃음을 참으며 ‘이 아이에게는 90도가 한계구나’ 싶었는데,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수시로 다리 스트레칭

을 하더니 이제는 120도를 거뜬히 넘겨 벌린다. 친구의 놀라운 변화를 지켜본 아이들은 너도나도 열심히 유

연성을 키우고 있다.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몸이 허락하는 한에서 서로 힘차게 당겨주고 쭉쭉 늘려주면서.

반복을 통해 한 몸 되는 수련

태권도 품세는 상대방이 사방에서 공격해올 것을 상상하며 그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어와 공격하는 동작으

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이 자기의 몸을 친구에게 비추는 경험은 자신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해 준다. 지금

까지 마을학교 수업에서 유급 품세인 태극 1, 2장을 배웠고 요즘은 태극 3장을 배운다. 이미 품세를 잘 아는

아이들은 동작의 완성도를 엄격하게 높이는 데에 목표를 두고,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품세를 정확히 외우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품세를 집단이 동시에 할 때에는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 과정에서 서로 호흡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시

작해서 같이 끝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여러 번 반복하며 앞 뒤 옆의 친구들을 의식해서 속도를 조절하다

보면 마지막 동작을 동시에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아이들 표정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성취

감이 느껴진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지 않고 가까이 있는 친구 몸에 비추면서 ‘나는 어떻게 다른

지, 친구는 얼마나 잘하는지’ 등을 가늠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을

거다. 그러면서 덩달아 한 몸 되는 경험을 누리리라.

한 몸은 하나의 몸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큰 몸이라는 뜻도 있다.

다른 이들과 하나의 몸이 되어보는 경험과 자신의 몸 한계를 넘

어서 새로운 존재로 확장되는 수련은 언제나 유쾌하다. 사랑하고

친근한 마을학교 친구들과 함께하니 더더욱.

김태훈 /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수유터전 '태권도와 몸놀이' 자원교사

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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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아이들 세상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계절이 들어서는 시기에는 마을 아이들 옷 꾸러미들이 어린이집으

로 속속 모입니다. 집집마다 장롱을 정리하면서 안 입게 된 아이들 옷이지요. 한 해 사이 훌쩍

자라 옷이 금세 작아지니 동생들에게 물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아름다운마을 어린이집에서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맞춰 집집에서 모인 옷들로 옷 잔치를 연답니다.

해마다 철마다 옷 잔치를 해왔으니, 우리 아이들도 옷 잔치를 모를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평소 언니

나 오빠가 입고 온 옷이 마음에 들면, “언니, 그 옷 작아지면 나 줘~” 하고 먼저 살짝 찜해놓기도 한답니

다. 어린이집 한쪽에 하루하루 옷 꾸러미가 쌓일수록 아이들은 언제 옷 잔치를 할지 점점 더 기다리고,

드디어 다같이 둘러앉아 옷을 나누는 잔칫날! 옷들 사이로 아이들의 눈빛도 이리저리 오고갑니다.

이 옷 임자를 찾아라

옷이 나올 때마다 “저 입고 싶어요!” 하고 손을 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마음에 드는 옷이 나올 때까

지 진득하게 기다리는 친구도 있지요. 같은 옷에 여러 친구들 마음이 동해서 가위바위보로 옷의 임자를

찾기도 합니다. 선생님도 옷을 고른 친구한테 그 옷이 맞을지 안 맞을지 대보기도 하고, 눈으로 가늠이

형님들 입던 옷 물려받고 으쓱해지는 옷 잔치

옷에서형아 냄새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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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아이들 세상

어려우면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직접 입어보

기도 하지요. 옷이 꼭 맞으면 벗기 싫어져서 그대로

입고서는 즐거운 표정이 내내 떠나질 않는답니다.

동생이 받아간 옷이, 자기에게 익숙한 옷인 걸 발견하면, “그 옷 내가

아주 아끼던 건데…” 하며 아쉬워하는 마음과 소중히 입어줄 것을 바라는 마음

을 내비치기도 하지요. 옷을 받고는 “옷에서 형아 냄새가 나” 하고 형아를 보면서 옷

을 꼭 끌어안고 좋아하는 친구도 있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함께 나누는 옷 잔치 속에는 마을 형님들의 향기가 있고, 옷 속에 담긴 이야기가 있어

서 더 소중해집니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은 더 정겹고 더 으쓱한 마음으로 옷을 입게 되지요. 선생님들

도 “아, 이 옷, ○○가 입었던 옷인데, ○○가 입으니까 또 다른 느낌이네.” “예전에 ○○도 입었었어.”

“그렇게 오래된 옷이야? 와~” 하며 옷의 깊은 역사를 얘기하며 평범하게 보였던 옷을 더 사랑스럽게 보

게 되지요.

함께 자라는 좋은 기운도 이어받죠

누군가 입다가 준 헌 옷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옷 잔치에서 선물 받은 ‘새 옷’입니다. 옷 잔치는

언제 형님만큼 클 수 있을까 궁금해하던 아이들이 쑥쑥 자라가고 있다고 서로 확인해주는 자리입니다.

마을 아이들은 옷만 물려받는 게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자라는 좋은 기운도 이어받고 있겠지요. 내 것

을 또 아우들에게 물려줄 것을 생각하면 더 잘 입을 수도 있지요.

요즘은 많은 것이 풍요롭고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필요하면 바로 사고, 필요 없어지면 쉽게

버릴 수 있지요.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필요 이상의 것들을 만들어내고 버리고 있습니다. 옷을 물

려주고 물려받음으로 가볍게 버리지 않아서 좋고, 입으면 입을수록 옷에 있던 화학물질들이 날아가니

일석삼조나 되는 셈입니다.

아이들과 옷 잔치를 하면서도, 옷이 너무 많이 모이면 억지로 다 나누지 않습니다. 내 것을 내 안으

로 쌓아두지 않고 두루 나누려는 옷 잔치를 통해 또다시 많은 옷이 우리 안에 쌓이지 않도록 알맞게 나

누고 남는 것은 또 다른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요. 옷 잔치를 하고 나서 새 옷을 입은 동생들을 마을 이

곳저곳에서 만나는 형님들은 “어? 내 옷 입었네!” 하고 좋아합니다. 새로운 옷 주인을 만난 옷들은 또

재미난 이야기가 덧입혀지겠지요! 이영미 / 아름다운마을어린이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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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農생활

1년 6

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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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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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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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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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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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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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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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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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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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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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

면서

언제

쯤 버

섯이

나려

나 유

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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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했다

.

얼마

전 산

책하

러 산

에 오

르다

가 멀

리서

희미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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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버

섯을

보고

깜짝

놀랐

다.

두근

거리

는 가

슴을

안고

가까

이 가

보니

표고

버섯

이었

다.

심장

이 뛰

었다

.

올 봄

, 여

름 가

뭄이

심할

동네

분들

이 표

고목

에 물

을 줘

야 한

다고

했을

때에

비가

오기

만을

간절

히 바

라면

서 보

냈다

.

하늘

에 의

지해

표고

목을

키우

는 동

안,

‘과연

표고

버섯

이 나

올 수

있을

까?’

하는

걱정

어린

마음

이 없

지는

않았

다.

함께

농사

짓는

언니

가 표

고버

섯이

많이

나오

는 꿈

을 꿨

단 얘

기를

듣고

나도

꼭 나

오면

좋겠

다는

마음

이 들

었던

지라

표고

버섯

이 더

반갑

고 놀

라웠

다.

기적

같았

다.

가는

표고

목부

터 표

고버

섯이

올라

오기

시작

한다

.

작은

종균

안에

서 표

고버

섯이

나오

는 것

이 신

기할

따름

이다

.

숲속

생명

, 버

섯 이

야기

가을

이 여

물어

간다

. 김

장채

소는

부지

런히

이슬

먹고

자라

고, 웃

거름

에 김

도 매

놓았

다.

가을

햇살

에 이

삭과

땅속

채소

들이

익어

가는

동안

잠시

농한

기다

.

분주

했던

마음

을 가

다듬

고 숲

속 생

명들

을 만

나러

간다

.

숲에

들어

가니

밭에

익숙

해진

몸과

마음

이 분

주해

진다

.

발과

폐와

심장

과 눈

이 오

래된

가족

을 만

난 듯

신선

한 기

운으

로 요

동친

다.

여름

의 습

을 머

금고

그늘

진 땅

에서

축축

한 부

엽토

의 냄

새가

나고

,

그곳

에 보

이지

않는

많은

생명

의 활

동이

일어

나고

있다

.

버섯

, 그

신비

하고

멋있

는 자

태와

향기

는 사

람의

발길

을 멈

추게

하고

혹,

생명

을 살

리기

도 죽

이기

도 한

다.

싸리

버섯

은, 모

르면

독이

되고

알면

약이

된다

.

하얗

고 노

랗고

빨갛

게 물

든 것

은 독

이다

.

잘 구

분해

서, 날

것보

다는

데치

고 물

에 우

려서

무쳐

서 먹

어야

한다

.

송이

는 귀

하다

. 낙

엽에

가려

잘 안

보인

다.

잘 나

는 자

리도

모르

고 숲

에서

허둥

지둥

하다

가 엉

겁결

에 바

위 옆

에 난

송이

를 보

았다

.

동송

이다

. 갓

태어

난 아

기 머

리처

럼 미

끈거

린다

.

진한

향이

뭔가

를 이

야기

하는

것 같

은데

, 처

음 느

껴보

는 것

이다

.

벌레

는 뭔

가를

알고

있다

는 듯

이 유

유히

송이

를 먹

고 갔

다.

노루

가 사

람 인

기척

에 궁

뎅이

를 빠

뜨리

고 도

망갔

다는

예쁜

노루

궁뎅

이버

섯.

털이

뽀송

뽀송

한 듯

보이

지만

축축

하다

.

사람

을 살

리는

상황

버섯

.

뽕나

무에

들러

붙어

한참

을 자

라야

한다

. 뽕

나무

에서

노란

진액

이 빠

져나

오는

것 같

다.

떨어

진 갈

잎을

먹고

자라

는 갈

버섯

.

분홍

빛과

자줏

빛이

섞여

있다

. 약

간의

독을

간직

하고

있는

버섯

.

독이

없는

표고

, 느

타리

, 상

황, 송

이를

잘 구

별할

수 있

으면

좋겠

다.

부슬

부슬

가을

비가

내리

자 숲

은 나

를 내

보낸

다.

능선

을 지

나는

살모

사가

더 재

촉한

다.

밭엔

없는

숲 생

명들

이 조

용히

서로

를 살

리고

죽이

고 그

렇게

살아

가며

존재

한다

.

조시

형 /

홍천

용오

름마

을에

귀촌

하여

새댁

으로

불리

는 아

내와

네 살

배기

딸과

지내

면서

뚜벅

뚜벅

자연

농법

으로

농사

짓는

3년

차 농

습을

품은

균 보

물찾

표고

버섯

잣나

무 아

래 참

나무

기둥

에는

지난

넣어

놓은

종균

이 있

다.

올 가

을 1

6개월

만에

표고

가 얼

굴을

내밀

었다

.

農생

Page 21: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21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農생활

지난

해 3

월 참

나무

에 표

고버

섯 종

균을

넣었

다.

종균

을 넣

은 다

음, 잣

나무

숲에

따로

물을

주거

나 하

지 않

고,

오로

지 자

연이

주는

나무

그늘

, 나

무그

늘 사

이로

잠깐

씩 들

어오

해, 안

개, 비

로 표

고버

섯을

키웠

다.

거기

에 덧

붙이

자면

, 산

에 오

며 가

며 한

번씩

살펴

주는

것 정

도였

다.

종균

을 넣

고 이

르면

그 이

듬해

봄에

나오

기도

하는

데, 보

통은

이듬

해 가

을에

나온

다고

해서

최근

자주

산에

오르

면서

언제

쯤 버

섯이

나려

나 유

심히

살피

기도

했다

.

얼마

전 산

책하

러 산

에 오

르다

가 멀

리서

희미

하게

보이

는 표

고버

섯을

보고

깜짝

놀랐

다.

두근

거리

는 가

슴을

안고

가까

이 가

보니

표고

버섯

이었

다.

심장

이 뛰

었다

.

올 봄

, 여

름 가

뭄이

심할

동네

분들

이 표

고목

에 물

을 줘

야 한

다고

했을

때에

비가

오기

만을

간절

히 바

라면

서 보

냈다

.

하늘

에 의

지해

표고

목을

키우

는 동

안,

‘과연

표고

버섯

이 나

올 수

있을

까?’

하는

걱정

어린

마음

이 없

지는

않았

다.

함께

농사

짓는

언니

가 표

고버

섯이

많이

나오

는 꿈

을 꿨

단 얘

기를

듣고

나도

꼭 나

오면

좋겠

다는

마음

이 들

었던

지라

표고

버섯

이 더

반갑

고 놀

라웠

다.

기적

같았

다.

가는

표고

목부

터 표

고버

섯이

올라

오기

시작

한다

.

작은

종균

안에

서 표

고버

섯이

나오

는 것

이 신

기할

따름

이다

.

가을

이 여

물어

간다

. 김

장채

소는

부지

런히

이슬

먹고

자라

고, 웃

거름

에 김

도 매

놓았

다.

가을

햇살

에 이

삭과

땅속

채소

들이

익어

가는

동안

잠시

농한

기다

.

분주

했던

마음

을 가

다듬

고 숲

속 생

명들

을 만

나러

간다

.

숲에

들어

가니

밭에

익숙

해진

몸과

마음

이 분

주해

진다

.

발과

폐와

심장

과 눈

이 오

래된

가족

을 만

난 듯

신선

한 기

운으

로 요

동친

다.

여름

의 습

을 머

금고

그늘

진 땅

에서

축축

한 부

엽토

의 냄

새가

나고

,

그곳

에 보

이지

않는

많은

생명

의 활

동이

일어

나고

있다

.

버섯

, 그

신비

하고

멋있

는 자

태와

향기

는 사

람의

발길

을 멈

추게

하고

혹,

생명

을 살

리기

도 죽

이기

도 한

다.

싸리

버섯

은, 모

르면

독이

되고

알면

약이

된다

.

하얗

고 노

랗고

빨갛

게 물

든 것

은 독

이다

.

잘 구

분해

서, 날

것보

다는

데치

고 물

에 우

려서

무쳐

서 먹

어야

한다

.

송이

는 귀

하다

. 낙

엽에

가려

잘 안

보인

다.

잘 나

는 자

리도

모르

고 숲

에서

허둥

지둥

하다

가 엉

겁결

에 바

위 옆

에 난

송이

를 보

았다

.

동송

이다

. 갓

태어

난 아

기 머

리처

럼 미

끈거

린다

.

진한

향이

뭔가

를 이

야기

하는

것 같

은데

, 처

음 느

껴보

는 것

이다

.

벌레

는 뭔

가를

알고

있다

는 듯

이 유

유히

송이

를 먹

고 갔

다.

노루

가 사

람 인

기척

에 궁

뎅이

를 빠

뜨리

고 도

망갔

다는

예쁜

노루

궁뎅

이버

섯.

털이

뽀송

뽀송

한 듯

보이

지만

축축

하다

.

사람

을 살

리는

상황

버섯

.

뽕나

무에

들러

붙어

한참

을 자

라야

한다

. 뽕

나무

에서

노란

진액

이 빠

져나

오는

것 같

다.

떨어

진 갈

잎을

먹고

자라

는 갈

버섯

.

분홍

빛과

자줏

빛이

섞여

있다

. 약

간의

독을

간직

하고

있는

버섯

.

독이

없는

표고

, 느

타리

, 상

황, 송

이를

잘 구

별할

수 있

으면

좋겠

다.

부슬

부슬

가을

비가

내리

자 숲

은 나

를 내

보낸

다.

능선

을 지

나는

살모

사가

더 재

촉한

다.

밭엔

없는

숲 생

명들

이 조

용히

서로

를 살

리고

죽이

고 그

렇게

살아

가며

존재

한다

.

조시

형 /

홍천

용오

름마

을에

귀촌

하여

새댁

으로

불리

는 아

내와

네 살

배기

딸과

지내

면서

뚜벅

뚜벅

자연

농법

으로

농사

짓는

3년

차 농

장윤

희 /

2년 전

귀촌

하고

결혼

해서

홍천

마을

에 살

면서

농사

짓는

마을

학교

밥상

선생

님.

동송

노루

궁뎅

이버

다양

한 색

깔의

싸리

버섯

.알

면 약

이고

, 모

르면

독인

버섯

집 뒤

란 피

나무

에는

타리

버섯

이 자

라고

있다

.

Page 22: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22

생태건축

정성이 실력이다지난해 봄 두 칸짜리 너와집을 만들고서 자신

감이 붙었습니다. 작은 집이라도 짓는 데 들

어가는 웬만한 기술력은 다 동원됩니다. 그래서 두

번째 건물도 우리 손으로 지어보기로 했습니다. 규

모가 딱 다섯 배입니다. 방 다섯 칸을 일렬로 배치

하는 단순한 구조지만,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았

습니다. 방 뒤쪽으로 다목적 공간을 붙여줘야 하

고, 모든 방에 들어가는 구들은 함실과 굴뚝을 같

은 쪽으로 내야 합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설계도를 그렸다 지

웠다 했습니다. 유난히 비 오는 날이 길었던 지난해

여름은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었습니다. 이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동선에 맞게 공간을

배치하려 했습니다. 뒷산으로 올라가는 능선도 되

도록 깎지 않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의 흐름도

그대로 살리려 했습니다.

장마가 그치고 불볕더위가 찾아올 즈음 집터를 잡

고 기초작업을 했습니다. 한옥의 무거운 나무가 아

닌 대략 4*9센티미터 두께의 나무를 쓰기로 했습니

다. 가벼운 나무를 쓰니까 경량식 목구조라고 합니

다. 한옥이 기둥을 중심으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

는 도리와 보를 결구해 뼈대를 만드는 방식이라면,

경량식 목구조는 얇은 나무를 30센티미터 가량 간

격을 두고 세웁니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하중을 기

둥이 아니라 벽 전체로 받는 방식입니다.

집짓기 참여하면 애정도 쑥쑥

가벼운 나무를 쓰니까 큰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

아도 되었습니다. 동일한 크기의 나무를 수십에서

수백 개 재단하는 일은, 기술이 없는 사람도 힘이

세지 않은 사람도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덕분에 도시 사는 친구들이 수시로 찾아와 함께 땀

흘리며 집을 짓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뭐든지 그렇

지만 집짓기도 꼭 전문가만의 전유가 아닙니다. 집

짓는 과정에 조금씩이라도 참여하면 집에 대한 애

정이 커집니다. 이 공간을 주로 쓰게 될 생동중학

교,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학생들도 목공수업 시

간을 통해, 뼈대를 만들고 지붕을 얹고 흙벽을 치

는 일 등 집짓기의 전 과정에 동참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일손 하나가 아쉽고 고마울 때는

흙벽을 칠 때입니다. 기둥재로 쓴 나무의 두께만큼

단열재로 왕겨숯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안팎에서

흙을 쳤습니다. 전날 미리 이웃 동네 아저씨가 굴착

기를 가져와 흙을 비벼주었습니다. 흙과 모래, 볏짚

을 알맞은 비율로 섞고 물로 반죽합니다. ‘적당’한

흙 작업 하는 날. 밖에서는 흙을 둥근 공모양의 알매흙을 만들고. 생동중학교 친구들도 집짓는 작업에 참여했다. 자기가 흙벽을 칠한 부분은 집이 완성된 뒤에도 또렷이 기억한다.

Page 23: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23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더 불 어 지 은 서 당 , 손 질 하 며 사 는 것 도 재 미

비율을 찾는 데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어떤 흙이냐

에 따라 혹은 모래의 굵기에 따라, 볏짚을 넣느냐

안 넣느냐에 따라 비율은 달라집니다.

수십 명이 집 곳곳에 달라붙어 흙을 치는 장면은

장관이었습니다. 모둠별로 나눠 운반하기 쉽게 야

구공보다 살짝 큰 크기로 알매흙을 만들고, 누군

가는 나르고, 건물 안에서는 벽에 쳤습니다. 여럿이

함께 하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손발이 맞

아갔습니다. 일을 오래하면 지치기 마련인데, 해가

기울어갈수록 작업 속도는 더 올라갔습니다.

불편한 게 건강해

흙집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대신, 사람

손이 많이 갑니다. 다 짓고 나서도 손질하면서 살

아야 합니다. 흙이 마르면서 갈라지면 다시 문질러

주고 매워줘야 합니다. 때로는 덩어리 채 떨어져 나

가기도 합니다. 흙집에 살려면 보수하는 걸 귀찮아

하면 안 됩니다. 특히 구들집이라면 더욱 그렇습니

다. 시멘트를 발라버리면 연기가 샐 일이 없지만,

흙은 상황이 다릅니다. 조금이라도 갈라진 틈을 타

고 연기는 새어 나옵니다. 그러면 문질러주기를 여

러 번 반복해야 합니다. 이 정도 정성은 있어야, 쓰

레기로 만든 시멘트가 아니라 먹을 수도 있는 흙의

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은 집은 전문 미장장이들이 지은

집이 아니기에 흙벽과 바닥이 모두 울퉁불퉁했습

니다. 그러면 사기그릇 등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갈

아야 했습니다. 벽을 문지르면서 가끔씩 예수님의

길을 평탄하게 했던 세례 요한을 떠올렸습니다. 하

염없이 문지르고 문지르면 더 곱게 그리고 반듯하

게 길이 잡혀갑니다.

아참, 겨울이 오기 전에 흙일을 끝내야 합니다. 흙

이 마르기 전에 얼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에

는 얼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지만 봄이 되면 얼었

던 흙이 녹으면서 들뜨고 떨어집니다. 그래서 흙일

에 힘을 보탰던 이들이 더욱 고마웠습니다. 다행히

얼기 전에 외벽이 말랐으니까요. 흙손과 친구들과

함께 지은 건물은 올 봄부터 생동중학교와 아름다

운마을초등학교 친구들의 서당으로 사용하고 있습

니다.

흙집은 지을 때고 살 때고 불편합니다. 콘크리트

건물에 익숙해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생각을 바꾸면, 불편해진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콘크리트 대신 흙과 나무와 더불어 살면

서 자연과 친해지는 일입니다. 더 건강해지고 사람

다워지는 일입니다.

주재일

생태건축

완성된 서당 전경 함께 지은 구들 흙집에서 이제 더불어 공부

Page 24: 아름다운마을신문 31호

2013년 신입생 및 편입생을 모집합니다!

모집대상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서울수유터전) | 2013년 7살~10살(7살~초등3학년)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강원도홍천터전) | 2013년 11살~13살(초등4학년~6학년)

생동중학교(강원도홍천터전) | 2013년 14살~16살(중학교1~3학년)

모집일정

2012년 10월 15일(월) ~10월 28일(일) 입학신청서 접수

아름다운마을교육공동체 누리집(http://cafe.daum.net/maeulschool) 입학안내 게시판에서

입학신청서 다운로드하여 작성한 후 대표메일 ([email protected])로 접수

2012년 11월 3일(토-수유), 11월 4일(일-홍천) 가족면접

2012년 11월 5일(월) 2013년 편입학예정자 개별통보

2012년 11월 11일(일)까지 입학금 납부

2012년 11월 12일(월) 2013년 편입학예정자 확정

문의전화ㅣ 홍천 033-433-9290, 010-5514-1979, 수유 02-999-9132, 010-9094-1031

가을 주말학교와 들살이학교에 초대합니다

2013년 편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이

아름다운마을 교육공동체를 미리 만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편입학을 지원할 친구들은 꼭 참여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배움 길을 준비해가면 좋겠습니다.

[강원홍천터전-주말학교]

일시 | 2012년 9월 ∼ 12월 매달 2, 4주 금,토,일요일

대상 | 2013년 초등학교 4학년~중3학년 예정자

장소 | 효제곡 마을, 생동중학교

문의 | 033-433-9290, 010-3215-4586

[서울수유터전-들살이학교]

일시 | 10월 15일(월)~18일(목)(하루학교와 2박3일 들살이)

대상 | 2013년 7살 ~ 초등학교 3학년 예정자

장소ㅣ수유터전과 홍천터전

주제ㅣ친구와 함께 맛보는 홍천의 가을 들살림 산살림

문의ㅣ02-999-9132, 010-9094-1031

[강원홍천터전-들살이학교]

일시 | 10월 16일(화)~19일(금)(3박4일)

대상 | 2013년 초등학교 4학년~중3학년 예정자

장소 | 충청북도 충주~단양

주제ㅣ남한강을 따라 삼국 중원의 땅으로

문의 | 033-433-9290, 010-3215-4586

* 9월 24일부터 전화로 신청을 받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누리집(http://cafe.daum.net/maeulschool) 주말계절학교 게시판으로

삶이 있는 학교 살림이 있는 교육을 꿈꾸는 아름다운마을교육공동체와 함께

2013년 배움의 길을 걸어갈 친구들을 모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