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마을 40호(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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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를 일구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 2013 08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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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아름다운마을 40호(2013.08)

생 명 평 화 를 일 구 는 농 도 상 생 마 을 공 동 체

2 0 1 3 0 8 제 4 0 호

Page 2: 아름다운마을 40호(2013.08)

3 [ 편집실에서 ] 청춘답게 최소란

4 [ 空과 共 ] 책은 가볍고 삶은 묵직하고 김형우

6 [ 청춘답게 ] 다르게 사는 직장인이란 정재우

8 [ 청소년마당 ] 하나되는 우리. ‘하울’ 에서 살기 성은

10 [ 생태건축 ] 생명이 숨쉬는 흙집 장재원

12 [ 그리고 ] 마음을 드러내는 밭 길서영

13 [ 특집 ] 희망을 현재화하는 삶 김준표

16 [ 특집 ]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 다시 볼 날 온다 이만열

18 [ 이웃공동체 ] 이땅 곳곳에 뿌리내린 공동체들

22 [ 동구밖 ] 삶에 새겨진 만남 김주완, 설성호, 송영신

24 [ 마을학교 ] 한 학기 배움의 갈무리잔치

<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기자 김세진 김준표 김형우 임안섭 주재일 최소란 디자인 김준열 김준표 서아름

문의 02-999-9294, 010-2578-6050 누리편지 [email protected] 누리집 www.maeullo.net 후원 국민은행 487101-01-436510

<아름다운마을>은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과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을 오가며 농촌과 도시에서 농도상생마을공

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증언합니다. 시대 과제와 소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소통과 대안]에 담습니다. 일상과 관

계, 수련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봅니다. 마을밥상 지기들이 밥을 차리는 마음을 [밥상머리]에 모읍니다. 기

독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나는 20·30대 청년대학생들과 [청춘답게] 모험하는 활동을 나눕니다. [청소년마당]과 [마을학교] [아이들세

상]은 홍천과 인수 마을학교 아이들이 살아있는 배움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농(農)을 통해 문명과 삶 전체를 다시 살

피고 재구성하는 [農생활]과 건강한 주거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태건축] 현장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만나보기]에서는 당신과 우

리가 함께 만나고픈 사람을 찾아갑니다.

2013 08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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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8 40호

편집실에서

최소란 편집장

청춘답게

가슴을 뛰게 한 공부의 자리,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 풍경을 담은 표지사진으로

8월 인사를 드립니다. [특집]에 연수회 토론내용을 중심으로, 역사의 전환기에 주체적

으로 자각하고 창조의 영성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한 당찬 흐름을 재조명했습니

다. 그 흐름들이 곳곳으로 퍼져나가 여러 물줄기의 공동체들로 이어져, 소망하는 삶을

일상 속에 구현하고자 애써온 분들의 생생한 증언도 [이웃공동체] 지면에 담았습니다.

손전화를 안 쓴 지 4년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고 그해 여름 제주에

다녀오는 길에 잃어버렸습니다. 분실 습성을 고치고자 한번 안 쓰고 지내보기로 했습

니다. 막상 없어보니 살만했습니다. 그 제주기행은 손전화를 안 쓰게 된 것 말고 또 다

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함께 간 친구들이 대부분 대학 다니거나 갓 졸업한 20대들이

었는데, 제주에서 돌아오는 날 우리가 제주에서 함께 보고 느낀 것을 잘 곱씹어보자는

마음이 모아졌습니다. 드넓은 바다와 어우러진 구럼비바위를 애정서린 눈길로 보여주

시던 아저씨의 구수한 웃음, 해녀와 농가를 갈라놓은 국책사업으로 인해 오랜 벗과 멀

어지게 됐다며 안타까워하던 아주머니의 눈망울, 은어가 헤엄치는 맑은 강정천의 모습

을 기억하며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지켜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대학로에서 작은 캠

페인을 했습니다. 거침없음과 발랄함이 묻어나는 자리였습니다. 그 이후 학업에, 알바

에, 진로고민에 바빠진 청년들을 보며 이 시대가 청년들을 얼마나 압박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청춘들은 생의 의미도, 삶의 기술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잿빛

투성이인 세상에 내던져질 불안감에 바삐 살아갑니다. 이 시대 청춘들과 만나고, 현대

도시문명 속에서도 청춘답게 살아보자고,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들려주는 편지가 되는

것, 마을신문의 중요한 할 일이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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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과 共

보통 소유욕은 비난받기 쉽지만, 책으로 가득찬 집은 미덕의 대상이 된다. ‘OOO의 서재를 찾아서’, 종

종 마주치는 기사 제목이다. 서재는 그 사람의 취향이기도 하지만 ‘이런 책 정도는 내 책장에 있어야…’

하며 자신을 과시하는 지적 배경이 된다. 마치 책의 지식을 내가 소유한 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

놓고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거나, 어렵고 지루해서 덮어놓았던 책을 굳이 이사 다닐 때마다 책장에 꽂아

놓는 이유에는 이런 사회적 통념이 있었을 게다.

대부분의 소비재는 감가상각이 이뤄진다. 그러나 책은 낡아서 버릴 일이 없다. 묵은 대로 멋이 나는 게

책이다. 게다가 나날이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출판시장과 서점시장은 자꾸 책을 더 사라고 부추긴다. 책

소비가 퇴근길 직장인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된 세상이다. 책의 적정 재고량을 표준화하기란 불가능하

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그날을 위해 적절한 공간에 꽂아 놓으면 된다. 그러다보니 세간살이에서 갈수

록 책장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마을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를 했고, 자신이 공부한 책과 자료를 차곡차곡 간직했다. 그

러다 문득 결심을 했다. 책과 자료를 소유하지 말고 나눠야겠다고. 그의 결심은 과감했다. 책뿐만 아니

라 책장 째 마을의 공공 공간에 기증했다. 그에게 책은 마지막 남은 소유욕이었다. 쉽지 않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의 결심에 마을사람들도 자극을 받았다. 곧이어 집집마다 책의 행렬이 이어졌다. 물론 책장

도 따라왔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 즈음 나는 결혼 초였는데, 기운에 힘입어 대학 때부터 보관해왔던 책들을 정리

했다. 책장이 없어지니 집이 넓어졌다. 사실 꽤 넓어졌다. 넓어진 공간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 대견해했

고,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소유의 의미, 공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같이 본다고 생

각하니, 책이 더 잘 쓰임 받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당장 보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 책을 모았다. 마을사람들이 주로 공부하는 청년아카데미의 교재도

꽤 있었다. 책이 쌓일 만하면 어디선가 책장도 공수되었다. 인문사회과학 책들이 많아서 모아놓고 보니 하나

의 도서관이 되었다. 대출기록부를 만들어서 비치하고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빌려갔다가 다시 꽂아놓았고,

외부 사람들에게도 대여해주었다.

책은 가볍고 삶은 묵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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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도서관을 만들어 책을 공유하니 재미있는 효

과를 누렸다. 필요한 책이 있으면 먼저 도서관에 있

는지 확인하고 구매하는 습관도 생겼다. 수입이 많

지 않은 청년학생들은 따로 책을 사지 않고도 공부

하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빌려보며 틈날 때마다 마

을도서관을 지켰다. 누군가 어떤 책을 읽어 왔는지

엿볼 수 있었고, 풋풋한 20대 때 메모했던 가슴 찡한

글을 훔쳐(?)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린이책 비중도

컸다. 마을의 어린 동생들을 위해 형님들이 기증을

많이 했던 것이다. 이 책들은 지금 마을 어린이집과

마을 초등학교 내 작은 도서관의 씨앗이 되었다. 가

정마다 아이들 책을 많이 사놓을 필요가 없었다.

경제학에서 언급되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

이 있다. 공동체 모두가 사용하는 공유 자원은 소유

권이 없어서 과잉소비되고 고갈된다는 것이다. 이

기적 개인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공유지의 비극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경제학의 주요 관심이자 딜

레마이다. 하지만 인수동 아름다운마을의 도서관은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공유지를 관리하는 야경국

가 같은 존재가 없어도 지금도 누군가는 책을 빌리

고 책을 기증하고 있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모두의 협동이다. 마

을도서관도 사적 욕망을 극복하고 공유를 늘려가는

실천이다. 도서관은 배움과 지식의 나눔과 공유를

나타내는 상징적이고 실제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부하는 과정으로써의 삶이 자연스레 몸으로 익혀

지는 공간이다.

책은 가볍다. 모이면 조금 무겁고, 책장과 함께라

면 많이 무겁다. 책의 무게보다는 책의 공유로 삶이

진중해지는 것이 책의 의미가 되겠다. 많은 책을 소

유한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공부한 만큼 살

아내는 삶이 서로에게 비춰지는 마을공동체이기 때

문이다.김형우 | 재사용나눔가게 활동가로 일하면서

일터에서 지향하는 사회적 경제의 가치가 구현되는 마을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

◀ 올 초에 마을사람들이 힘 모아서 도서관 책들을 꽂아놓을 수 있는 슬라이딩 책장을 직접 만들었다. 책장 가득 마을사람들의 땀과 마음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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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에 있는 제조회사에 다닌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크게 세 가지 제품에 참여하면서, 여

러 가지 직무를 맡아왔습니다. 그 사이 회사의 주력 제품도 조금씩 바뀌어서, 지금은 IT 제조업, 특히 디

스플레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라 하면 작게는 핸드폰에서 크게는 텔레비전이나 전자광고판까지 범위가 넓습니다. 화면을

보여주는 장치기술이 LCD(액정표시장치),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같은 평면제품으로 발전하면서,

추가되는 기능성 부품들도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저희 회사는 더 밝고 선명한 화질이 나오도록 도와주

고, 전자파 등 약점을 보완해주는 기능을 하는 필름제품을 만들어서 핸드폰이나 TV를 만드는 전자회사

들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시장이 계속 커지면서 다양한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고 그중에는 외국기업들도 많습니다.

또 원자재의 수입 비중도 크다 보니 환율변동, 외국의 경제정책에도 민감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처음 듣는 이름의 업체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는 더 직접적인데, 디

스플레이 분야도 매출의 대부분이 수출이기 때문에 미국, 유럽시장의 판매 부진은 실적 저하로 연결되기

도 합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거시경제, 외국경쟁사, 고객정보에 더 신경 쓸 것을 요구합니다. 최신기술 동향을 살

피고,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원자재를 검토하고, 생산성이 높은 설비를 도입하는 것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작년에는,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 종류와 기준점수를 상향조정했습니다. 커트라인에 도달하

지 못하면 진급과 연봉에도 불이익이 있게 되었지요.

청춘답게

다르게 사는 직장인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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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8 40호

직장에 다니다 보면, 만능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왜 하는지

도 모르고 수동적으로 일하거나,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마감에 쫓겨 허겁지겁 처리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업무가 주어지면 먼저 업무의 배경과 범위를 확인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지를 공유합니다. 물론 잘 소통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주체적이지 못하고 자기 이유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원인은 어쩌면 한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업무환경이

먼저인지도 모릅니다.

언론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직하고 싶은 이유로 ‘동료와의 관계 어려움’이 항상 1~2순위로 나옵니

다. 그중에서도 매일 얼굴 맞대고 이야기 나누고 함께 일하는 직속상사와 부하사원이지요. 직장에서도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입니다. 저희 회사도 몇 년 전부터 멘토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주로 신입

사원과 연차가 짧은 직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목적입니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밀린

숙제하듯 갖는 술자리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급한 문제가 생길 때 동원하려는 ‘수단’이나 ‘인맥’을 넓히기 위한 사교가 아니라, 함께 일

하는 ‘동지’로 진실하게 만나야 하는 건 치열한 직장현장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다양한 방법으로 꾸준히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간혹 흡연실에 놀러 가

는 이유도 그곳이 평소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컷 푸념만 늘어놓고 대안

이 없다고 체념하거나, 우리는 다 잘하는데 누구누구가 문제라는 편 가르기식 결론으로 가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지요.

거대 담론과 실적 압박에 불만이 들어도, 어느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기를 탓하며 순응하는 직장

인이 많은데, 아마 혼자서는 다른 생각이 쉽지 않고 어떤 공포를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전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의 마음을 잘 나눌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유도합니다. 텔레비전 관련 일을 하지만 정작 집

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는 제 삶을 나누면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얼마나 일상과 동떨어진 것인가 이야

기합니다. 삼성전자 휴대폰의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휴대폰의 수는 계속 줄고 있으

니, 10조가 넘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중 실제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을 주는 게 어느 정도일지 질문을 던

지기도 합니다.

후배들에게는 생활태도나 업무습관도 살피며 잔소리를 하며 지냅니다. 상사들에게는 차 마시다가도,

회의 말미에도 고민을 나누고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 물어봅니다.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진지한 대화

가 이루어지는 때도 경험했습니다. 의미 있는 직장인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 토론하며 때로는 얼굴을 붉

히기도 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서로를 향한 신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소통과 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 결국 사람과 사람의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의를 지키고, 의리 있게 만나고, 정

직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어렵지만, 제 삶을 지켜주는 공동체에서 배워가고 있는 것 그대로 노력하는 도

시직장인으로 지냅니다.

정재우 | 직장생활 13년차 과장. 날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천안으로 출근하고 저녁이면 다시 가슴 뛰게 하는 북한산자락 인수동마을로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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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마당

홍천에서 내가 살고 있는 중등 여학생 생활관 이

름은 ‘하울’이다. 하울은 ‘하나 되는 울타리’라는

뜻이다. 학기 초에 다같이 방 이름을 지으면서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떠올랐고, 새로 함께 하게

된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잘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의미를 담았다. 하울에는 방이 두 개가 있다. 바깥

방에는 중3 해민이언니, 주은이언니, 성은이언니

와 서영 선생님이 지내고, 나는 안쪽방에서 중3 하

림이언니와 중1 다인이, 그리고 지혜 선생님과 함

께 지낸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무섭고 깐깐해 보이셨다. 밤

에 수다를 떨고 싶어도 불을 끄고 빨리 자자고 하

시고, 아침 일찍 깨우셨다. 첫날부터 들리는 바깥

방의 웃음소리가 부럽기도 했다. 우리 방은 그때

까지 아직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불편했

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잠시였다. 우리도 바깥방 못

지않게 행복해졌다. 선생님도 첫인상과는 많이

달랐다.

중2인 나는 중2병에 걸렸는지, 엄마가 하는 말들

이 다 잔소리처럼 들리고 다 짜증났다. 그래서 주

말에 집에 가기만 하면 엄마와 싸울 수밖에 없었

다. 어느 날은 정말 크게 싸우고 생활관으로 돌아

와서 운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이 나한테 다가와

서, 밖으로 함께 나가자고 하시고 집에서 일어났

던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상담을 해주셨

다. 그리고 용기를 듬뿍 얹어주셨다. 난 엄마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초등학생 때까

지만 해도, 난 고민이 생기면 마음속에 쌓아두었

다. 혼자 힘들어하다가 마침내 공책에 날 힘들게

한 사람의 욕을 마구 적는 버릇이 생겼다. 그랬던

나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정말로

좋은 일이다. 욕을 적는 버릇도 많이 줄었다. 선생

님 덕분이다.

하울에서 함께 사는 언니, 동생과는 정말로 마음

이 잘 통해서,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을 내기

가 어렵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낯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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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가렸던 내가 작년까지도 여러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어려워하고 특정 사람들과만 친했는데, 이젠 그

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 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왜 여태껏 친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제 밥을 먹고 나면 축구를 하러 나간다! 왜 나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 친해지고 싶어서? 나는

축구는 잘 못하지만 한번 나가니까 재밌어서 계속 나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늘 축구를 하는 해민이언

니와는 당연히 친해지고 함께 뛰었던 남자 친구들과도 훨씬 친해졌다. 또 잔칫날이나 학교에서 여는 다

른 행사들에서 만나는 마을 이모, 삼촌들과 아기들한테도 붙임성 있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낯가리고 힘

들어했던 모습을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학기 생활관에 살면서 내가 가장 크게 변한 모습은 용기가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생활관에 있으면서 재밌는 게 세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놀링'이다. 놀링은 한 달에 한 번씩 일요일에

노는 시간인데, 늘 공부하는 분위기인 우리 생활관의 쉬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한 달씩 돌아가는 빨래지

기가 이날 무슨 놀이를 할지 생각한다. 그러다 맛있는 것 하나씩 챙겨오라고 시킬 때도 있고, 먹을 걸 챙

겨 와서 먹으면 노는 시간이 줄기 때문에 먹을 걸 안 먹고 게임만 할 때도 있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한

달에 한번 있는 이 시간을 기다리는 눈치다.

두 번째는 아무것도 아닌 날인데 먹을 게 생겼을 경우다. 1층에서 먹을 것을 차려놓은 사람이 소리친다.

예를 들어 그 먹을 것이 과자면, “과자 먹을 사람~” 하고 말이다. 그러면 이를 닦다가도 칫솔을 팽개치고

나오고, 방청소를 하다가도, 이불을 깔다가도, 숙제를 하거나 책을 보다가도 다들 뛰쳐나온다. 그러다 한

명이 안 보이면 모두가 화음을 맞춰 노래로 그 사람을 부른다. 그럼 그 사람도 재빠르게 뛰어와 밥상 앞

에 앉는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외치는 순간, 접시 위는 순식간에 비게 된다. 그리고 아쉬워하며 다음

엔 무슨 음식이려나 하고 자리를 뜬다. 모두 바람같이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지켜보시는 선생

님들은 정말 웃길 것이다.

세 번째는 아침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른 아침 일어나서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운동을 제안해서 하는데

주로 축구, 피구, 발야구, 산책 같은 종목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들지만 아침에 하는 운동은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하루를 맑게 시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축구를 싫어하던 내가 축구를 좋아

하게 된 것은 하울에서 함께 하던 아침운동 덕분인지도 모른다. 생활관에서의 나는 행복하다. 여름방학

이 지나고 다음 학기에 있을 생활관 모습도 기대가 된다. 이제 새로운 것을 또 배우고 자라서 내가 어떻

게 변할지 궁금하다.

성은 | 참된 배움의 길을 찾아 생동중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2학년 학생.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비오는 날 축구하는 것이 새삼스레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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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흙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흙집에 대해 이

야기 나누다가 이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열에 한두 명 살 것 같다”

고 합니다.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사람들의 예상에 저도 공감합

니다. 우리가 흙집과 흙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별로 보지 못해서 그

런 것 같습니다. 도시는 물론이고 농촌에서도 흙집은 그리 많지 않

습니다.

그런데 지구인의 절반 이상이 흙집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시멘트가 보급되기 전에는 흙집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

지요. 흙을 구하기 쉽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보통 집을 땅 위

에 짓는데, 땅에는 흙이 깔려 있지요. 자연스럽게 쉽게 구할 수 있

는 재료를 이용하여 집을 지어오게 되었습니다.

흙에서는 생명이 자라납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아도 비가 오고 바

람이 불고 햇빛이 들면서 생명이 왕성하게 활동합니다. 물을 정화

시키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흙을 상처난 곳에 발라 낫게 하기도 하

고, 직접 먹는 약재로도 썼다고 합니다. 생명을 품고 치유하는 흙은

집으로 지어졌을 때도 많은 유익을 줍니다.

흙은 입자 사이에 공극이 있습니다. 그 공극으로 인해 온도와 습

도를 조절하며 환기도 시켜줍니다. 열을 오래 머금는 특성이 있어

서 낮의 태양열을 받아들였다가 저녁에 내뿜어줍니다. 이걸 계절

로 보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줍니다. 습도가

50%를 넘으면 습기를 흡수하고, 건조해지면 다시 습기를 배출하여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해줍니다. 흙으로 지은 집은 나중에 허물면

그 흙으로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흙이 살아있다

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 명 이 숨 쉬 는

흙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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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8 40호

생태건축

하지만 흙집에서 지낼 때는 손이 많이 가게 됩

니다. 흙가루가 떨어지고, 나무와 만나는 부분은

갈라지기도 하고, 물에 닿는 부분은 보수해주기도

해야 합니다. 덕분에 집에서 흙과 함께 살아간다

는 마음도 들게 합니다.

흙으로 집을 짓는 건 신기한 일입니다. 흙을 바

닥에 깔거나 벽에 쌓으려면 흙을 옮겨야하지요.

그러려면 흙은 가루가 되어 힘이 없어집니다. 흙

을 다시 단단하게 해주기 위해서 발이나 절구로

다지기도 합니다. ‘흙손’에서는 주로 흙을 물에 개

어서 질게 만들었다가 말려서 굳히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흙과 모래를 섞고, 물을 넣고 비빈 후 마

르면 굳어져서 벽도 되고 바닥도 되는 것, 할 때마

다 신기해보입니다.

흙으로 집짓기는 쉬운 일입니다. 동시에 힘이 많

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흙을 쌓는 것은 어렵지 않

아서 처음 하는 사람도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더라도 덧붙이거나 다시 하기가 쉬워서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흙의 무게가 꽤 나

가기 때문에 하다보면 상당히 힘이 들어갑니다.

특히 흙을 물에 비비고, 옮기는 작업이 만만치 않

습니다.

요즘 ‘흙손’에서는 ‘계란판 공법’으로 흙집을 짓

고 있습니다. 흙과 계란판을 번갈아가며 층층이

쌓는 것입니다. 전통건축물의 담벽 중에 기왓장

이 벽 사이사이에 꽂힌 흙담이 있습니다. 그걸 응

용하여 기왓장 대신 계란판을 사용하는 방법입니

다. 흙만 쌓으면 처질 수 있지만 계란판을 넣어주

면 그릇 역할을 하여 더 안정적으로 높게 쌓을 수

있습니다.

계란판을 사러갔는데, 가게에서 어디에 쓸 거냐

고 물었습니다. 집 짓는데 쓴다고 하니까 방음벽

으로 쓰는 것이냐고 하셨어요. 흙집 짓는데 계란

쌓듯이 흙을 쌓아 올릴 것이라고 하니 그렇게 집

을 짓기도 하냐면서, 보기와 달리 계란판이 튼튼

하니 이해된다고 하셨습니다.

계란판 공법의 방법은 먼저 기초 바닥면 위에

2~3cm 정도 흙을 올립니다. 계란판을 얹고 그 위

에 흙을 7~8cm 가량 놓습니다. 7~8cm가 적절하

다고 보는 이유는 그보다 얇으면 계란판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그만큼 흙이 적게 사용됩니다. 그

보다 두껍게 쌓으면 흙 무게에 의해 벽이 흘러내

리거나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또 쉽고 재미있다

고 해서 하루에 너무 많이 쌓으면 역시 문제가 생

길 수 있기에 60~70cm 정도만 쌓는 게 적당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해본 흙집 짓는 방식 중에서, 또 알고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쉬운 방식입니다. 흙은 그

저 올리기만 하면 되고, 계란판은 종이로 만들어

서 가벼운데다 원하는 대로 쉽게 찢을 수 있어 편

리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건 ‘

비벼놓은 흙이 있다’는 것입니다. 흙을 물과 섞는

작업이 힘들기 때문에 이 공법은 널리 퍼지지 않

고 있습니다. 저희도 진작 계란판 공법을 알았지

만 비비는 작업이 어려워서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10톤 분량의 흙도 2~3시간이면 홀로 다 비벼주는

홍실이(굴착기)의 등장으로 도전해보게 됐습니

다. 앞으로도 계속 적절한 공법을 연구하고 시도

해볼 계획입니다.

장재원 | 낮에는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에서 함께 일하고, 저녁에는 홍천마을학교 생활교사로 학생들과 함께 생활관에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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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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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8 40호

최철호 교회개혁운동의 담론은 교회가 돌아갈 근원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생

명력을 경험한 그 시기의 전거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교회사 전체 흐름 속에서 초대성령공

동체는 마치 박물관 유물처럼 치부되고, 너무 쉽게 망각되고 배제되는 것 같습니다.

망국의 현실 앞에 조선 500년 역사와 문명에 대한 성찰을 거쳐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받아들

인 분들의 주체적 자각이 창조적 사상과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통전적 영

성이 한국교회에서 급격히 사라져버린 게 위기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주체적 자각

과 창조적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재순 한국근현대사는 동서 문화의 만남으로 전개된 창조적, 역동적 역사였습니다.

동서 문화가 만나 정신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그 맥락에서 씨알사상이 나왔지요. 실학, 개

화파, 동학, 독립협회, 만민공동회까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자각시켜 주체로 깨워 일

으키는 구도자적 과정이 한국근현대사였습니다. 그 맥락에서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

석헌 선생이 나왔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신민회를 조직해 민중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우는 교

육입국운동을 일으킨 분입니다. 이승훈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오산학교를 설립했는

데 섬기는 지도력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유영모 선생은 이승훈 선생의 교육입국운동을 이어 살면

서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 ‘나’의 뿌리를 파고듭니다. 본인이 동양문명의 뼈에 서양문명의 골

희망을 현재화하는 삶

특집

인생 전체를 걸고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여 희망을 현재 삶으로 이루어가는 이들이 있다. 예수사건으로

모이게 된 초기 교회공동체가 그러했고, 구한말 조선 500년 역사와 문명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복음을

받아들여 새로운 자치 공동체를 일구던 사람들이 그러했다. 지금 급격한 몰락과 도덕적 가치 상실의 위

기에 놓인 한국기독교가 거듭나려면 어떤 토대를 복원해야 할까? ‘희망을 현재화하는 성령의 은총, 근

원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로 7월 15∼17일 2013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가 약 200명이 참석한 가

운데 열렸다. 이땅에서 일어난 주체적 자각과 창조의 영성,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들을 박재순(씨알사상

연구소), 오세택(두레교회), 이영재(전주화평교회), 최철호(아름다운마을공동체) 목사의 토론으로 살펴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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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넣으며 살았다 하셨지요. 함석헌은 오산학교에서 유영모를 선생님으로 만났고 십자가 신앙을

고난 받는 민족의 역사에 적용했지요. 이분들이 씨알사상을 만들었습니다. 씨알사상은 나를 창조

하고, 나와 너의 관계를 창조하고, 전체가 하나 되게 하는 주체적 사상입니다.

저는 70년대 초반, 대학 4학년 때부터 함석헌 선생을 따랐습니다. 민주화운동 선봉에 서신 스승들

언저리에 있다 보니까 저도 학생운동으로 3년 감옥에서 살면서 바닥공부를 했지요.

오세택 김용기 장로는 일제 수탈로 인한 농촌과 농민의 피폐한 삶을 직시하면서 경

기도 봉안에서 17년 동안 이상촌(마을공동체)운동을 펼쳤습니다. 해방 뒤 다시 ‘삼각

산농장’을 세웠고, 한국전쟁 와중에는 27명의 동기와 함께 ‘에덴향’을 개척합니다. 버

려진 땅을 일구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옥토로 만들고 나면,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다시 버려진 땅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리더십의 갈등문제를 겪고 에덴향을 떠난 실패 경

험으로 공동체를 이뤄가는 대신 1954년 경기도 광주의 황무지 1만 평에 가나안교회를 설립하고 교

회 중심의 느슨한 협의체로 전환합니다. 신앙에 바탕을 둔 농촌, 농민교육이야말로 민족의 주권회

복이라고 생각해온 김용기 장로는, 53세인 1962년 가나안농군학교를 개교하여 기독교 농촌지도자

교육에 매진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방문하면서 새마을운동 태동에 깊이 관

여되기도 합니다. 김용기 장로는 처음에는 새마을운동을 긍정적으로 보셨지만, ‘새마음’이 더 중요

하다면서 군사정부의 새마을운동이 급격히 산업화되는 모습에 비판적이었습니다. 1988년 김용기

장로가 떠나시면서 가나안농군학교는 가족주의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가나안의 교육이념

인 자기비움과 희생정신이 구체화되지 못한 점이 과제로 남았습니다.

이영재 대천덕 신부는 한국에 들어와서 성공회 소속으로 있다가 강원 태백으로

정하고 예수원을 설립했습니다. 하나님나라로 가는 길은 소유욕을 버리는 것이라며

토지사유를 반대하시고 희년의 가치를 담은 토지정의를 주창하시고 일생 기도하셨

습니다.

동광원 수도공동체 영성의 토대가 된 이현필 선생은 예수의 뜻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수도하셨고,

말씀을 실천하는 데 삶을 바쳤습니다. 기도하고 수도하고 고아들, 병자들 보살피면서 본인은 육신

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52세에 결핵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제자들과 동냥, 탁발하면

서 고통당하는 이웃을 섬기면서 사셨습니다.

선생은 아주 철저한 수도를 하다가 아주 가벼운 몸으로 행복한 환호를 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평생 엄격한 채식을 지켰는데,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 삶의 규율을 파계해버리셨

어요. 이현필이라는 존재를 추대, 숭배하는 것을 경계하고 오직 예수만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 스

스로 파계, 범죄하시고 돌아가신 겁니다. 제자들이 나는 누구 제자다 하면서 스승의 허명에 기대어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격려, 경고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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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8 40호

15 아름다운마을 201210 31호

최철호 교육입국운동과 신앙에 토대한 마을공동체운동은, 당시 일제 통치를 받고 있지만, 통치

를 거부하고 자치에 근거한 공동체를, 해방 이후가 아니라 지금 일제 현실에서 이루려는 것이었습

니다. 해방을 현재화하는 것이지요. 일제시대에 마을공동체운동을 시작했던 김용기 장로는 에덴

향 실패 이후 깊이 있는 공동체적 사귐이 어렵겠다고 판단하셨는데, 예기치 않게 가나안농군학교

가 활성화되면서 최초의 소명을 놓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합니다.

오세택 김용기 장로는 에덴향 실패 후 느슨한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강원도로 갔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하려 했는데, 막사이상까지 받고 소문이 너무 났습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약화되고 가나안농군학교에 집중한 것 같아요. 치솟는 인기를 내려놓고 지

역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제가 열아홉 살 때 장로님을 뵙고 그 영

향 때문에 복민주의(형제애적 가치를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봉사하되 자기를 희생하기까지 섬

긴다) 관점으로 성경을 보게 되고 공동체 영성을 실현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교회 목회현장에

서 실천해보고 있습니다. 한 팀이 홍천마을에서 배우려고 가 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배운

게 지역교회에서 실현되는 것 같아 감사하고 있습니다.

최철호 지금 두레교회 청년들이 공동체에 대한 꿈을 품고 목사님과 조율하고 교회 전

체 차원의 비전으로 모색해가고 있어, 좋은 모델이 되겠다 생각합니다. 기독교세계관 논

의가 추상적, 원론적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데 비해, 김용기 장로는 기독교세계관을 ‘농(

農)’이라는 구체적, 대안적 가치를 갖고 전개하셨습니다. 또한 배우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것을 지조와 정절을 가지고 지켜갈 수 있는 수도적 영성이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북

아·조선시대의 붕괴 현실 앞에서 선각자들이 희망을 예수 신앙에서 찾았다면, 지금 기독교의 급

격한 몰락과 도덕적 가치 상실의 현실에서는 이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지혜, 영감, 창조성이

우리에게서 복원되어야 하고, 그 접점에 ‘농’과 ‘수도적 삶’이 매개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영재 농(農)은 노래 곡(曲)에 별 진(辰)입니다. 별들의 움직임, 창조 질서에 따라 부르는 노래,

창조의 하나님 숨결 따라 사는 것이 농의 삶이지요. 그런데 성경 창세기에 죄를 지은 자가 농사짓

는 자였더라고 나와요. 흙을 잘못 다룬 거예요. 《채식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 흙을 살리면서

올라온 채소를 먹어야 한다, 흙을 죽이고 올라온 채소는 사람도 죽인다 합니다. 그런데 흙을 살리

면서 올라온 채소가 있느냐, 없다고 보는 거예요. 농의 핵심은 ‘어떻게 흙을 살리는 일에 종사할까’

입니다. 지금은 농사가 도시 종속형이 되어서 도시사람들 먹을 걸 생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습니다. 타락한 농입니다. 교회는 그런 농과 절연하고 다시 살리는 농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

다. 꼭 농촌에서 해야 한다고 보지 않아요. 생활 속에서 수도하면서 자력갱생 공동체를 만들어 세

상에 도전할 수 있지요.

유영모, 함석헌, 이현필, 김용기 생전에 깊이 교류하고 영적 교감을 나눈 분들이었지만, 지금 한국교

회의 기억에선 잊히거나 파편화되어 있다. 신앙의 선배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조명한 이 자리를 계

기로, 통전적 영성을 닮아 진중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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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역사

다시 볼 날 온다”

고려시대 ‘망이·망소이의 난’은 지배자 입장에서 천

민의 난이지만, 신분해방, 민주화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역사입니다. 역사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시대

마다 재해석,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자

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 역사를

볼 때 역사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

세기 말까지 한국사의 주류사관이었던 유교적 역사관으

로 인해 지배자에게 거슬리는 역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1894년 반상차별을 없애고 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토지를 주라고 일어난 동학혁명은 인

간평등을 외친 것입니다. 이후 동학도들은 반봉건뿐 아

니라 반외세를 위해 싸웁니다. 우리 역사 전체에서 보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과거 지배층과 일제는 동학난이

라고 했지만, 1960년대부터 국사학계에서 토론을 거쳐

서 동학혁명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민족주의 역사학이 일어나던 즈음에 먼저

활개를 친 것이 식민주의사관입니다. 1910년 일제가 한

국을 강점한 것을 정당화하려고 만들어낸 역사관입니

다. 그 요점이 뭐냐? 첫째는 한국 역사가 외세의 침략과

지배에 의해서 피동적으로 전개되었다는 타율성 이론입

니다. 고대사부터 훑기 시작해서, 중국에서 와서 왕 노

릇했다는 기자·위만을 주장하고 우리 조상 단군 역사

를 지우려 했습니다. 고구려가 수·당과의 싸움에서 이

긴 것도 다루지 않고, 얼마나 외세의 침략을 받았냐만 부

특집

각합니다. 임진왜란도 완전히 실패한 걸로 가르쳤지만,

이순신 해전과 의병활동이 일본사람들 운신의 폭을 확

줄여놓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주체성을 인

정하지 않고 민족성 자체가 스스로 독립할 능력이 없다

고 역사관을 주입했습니다. 일제 때 학교 다닌 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의타적이고 사대주의적이어서 남의 나라에

복속되었다고 맨날 얘기합니다. 식민주의사관의 전형적

인 모습입니다.

둘째는 우리 역사가 정치적 변동은 있었지만 사회경제

면에서는 발전이 없었다는 정체성 이론입니다. 후쿠다

란 사람이 러일전쟁 직전인 1903년 <한국의 경제조직과

경제단위>라는 논문을 써서, 20세기 초의 한국이 8세기

후지와라시대와 같은 고대말 단계로, 일본보다 1200년

뒤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이나 서양은 내적인 진

통과 노력에 의해서 스스로 중세봉건사회로, 근대 자본

주의사회로 갈 수 있었지만, 조선은 자기 힘으로 못 가니

까 결국 일본이 와서 조선을 근대화시켜줘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그 논리를 오늘 그대로 주장하는 집단이

바로 오늘날 뉴라이트입니다. 식민지통치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식민지 근대

화론을 일본사람도 아닌 한국에 있는 머리 좋은 사람들

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연계된 복잡한 뭔가가 있

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셋째는 과거 일본과 조선은 같은 조상, 같은 뿌리, 같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역사’를 믿는 분이다. 민(民)이 한반도 민족사의 긴 여정 속에

서 역사의 주체로 등장해간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다시 역사의 변혁을 추동하고 있다.

평생 한국사와 한국교회사를 연구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온

이 원로사학자는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 기조강연에서 공동체를 하는 사람들이 고민

해야 한다며 민족공동체의 과제를 당부했다. 남북한 역사를 후대 사람들이 통합적으로 평

가하게 될 날을 내다보며 통일사관으로 역사를 풀어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미래 내다보며 나눠진 역사 통합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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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8 40호

은 지역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둘로 나눠져서 서로 다투

고 했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입니다. 일제가 한국

을 강점한 건 본래 하나였던 그 상태로 환원시키는 쾌거

다, 그러면서 침략을 호도하는 것이지요. 총독부를 통해

서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다)를 강조하고 황국

신민화정책으로 우리 역사, 우리 언어를 없애고 신사참

배와 창씨개명을 강요합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건

민족말살정책입니다.

남북한 사학계가 식민주의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문명이 한반도에서 건

너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증거를 찾아 ‘고대

조일관계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해방 이후에

도 정체성 이론은 잘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

학시대에 관한 연구를 철저히 했습니다. 17세기 후반부

터 농업과 상업, 광업활동에서 자본주의의 맹아가 보이

고, 신분제사회가 붕괴되고 있는 모습을 밝혔습니다. 혈

통, 신분과 상관없이 인민의 평등을 얘기하는 단계가 근

대사회인데, 조선시대에 그런 싹이 보였습니다. 숙종 때

호적을 보면 노비가 42%, 양반이 6%, 나머지가 일반평

민, 양민인데, 120년 지난 철종 때 노비는 1.7%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양반이 40%, 양민이 50% 넘었습니다. 호적

을 고쳐나간 것입니다. 이걸 우리 자체 내에서 발전이 있

었다고 해서 내재적 발전론이라고 합니다.

해방 후의 역사학은 분단사학으로 치닫습니다. 민족사

의 긴 여정에서 볼 때 이 시대 우리 민족에게는 대외적으

로 자주적, 대내적으로 민주적, 민족 전체 입장에서 통일

의 과제가 주어져 있습니다. 남북간에 있는 역사의 과제

를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학의 단계로 나아가려면, 식민

주의사학과 유교사학이 보였던 사대주의적 시각을 극복

하고, 민족주의사학의 과잉된 민족자주성 인식도 비판

적으로 계승해야 합니다. 민족자주성의 기반을 왕이나

제후에 둘 것이 아니라 민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고려시

대 몽고가 침략했을 때, 충주성에서 김윤후라는 장군이

노비문서를 전부 불사르고 “앞으로 너희는 노비가 아니

다”라고 함으로써, 그들이 죽을힘을 다해 싸워서 충주성

을 지켰습니다. 민에 대한 자각, 민에 대한 권리부여가

호국, 나라의 자주성과 연관되는 걸 보여줍니다. 한말

에도 일부 양반들이 의병의 지도자를 맡았지만 그걸 이

끌었던 사람들은 다 일반 민중들입니다. 과거에는 왕후

장상 몇 사람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러

나 모든 분야에서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

고 사회적으로 더 평등한 관계로 나아가는 게 역사의 발

전입니다. 역사가 발전한다는 신념을 가지면 역사의 발

전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한국사에서

민, 인민은 지배층 존립을 위한 기반으로 역할을 하다가

삼국시대, 고려시대에 오면 몽고침략 등 대외항쟁 주역

으로 나서고 조선말기에 오면 봉건사회를 개혁하는 주

역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사회를 개혁하는 주역으로,

인민이 역사의 주체로 점차 등장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봐야 합니다.

분단극복과 민족통일을 위해 분단사학의 극복이 중요

합니다. 제가 북쪽에 있는 혁명박물관에 가봤는데, 주

로 김일성 활약을 다루고, 3·1운동과 임시정부는 자세

히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민족통일의 역사시각

을 갖기 위해서는 왜 다루지 않느냐고 요구해야 합니

다. 이쪽에서도 김일성의 무장활동, 연안파활동을 연구

해야 합니다. 아직도 이런 걸 공부하면 종북좌파로 몰

아버리니까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남한 역사, 북

한 역사를 통합적으로 풀어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한

쪽만 제껴놓고 우리 민족사라고 얘기할 순 없습니다. 당

대 사람들은 제껴놓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후대 사람

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대로 축적해놓아야 합

니다. 그래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시대에 가서 남

북한 역사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북회

담이 열리면 서로 팔이 안으로 굽지만, 100년 뒤에는 세

계보편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이걸 따질 것입니다. 남북

이 나눠져 있는 역사를 앞으로 어떻게 공평하게 쓸 수

있을 것인가 공동체를 하는 사람이 고민해야 할 문제입

니다. 지금부터 민족통일의 관점을 갖고 고민해야 합니

다. 혹시 이 가운데서 자극을 받아서 연구자들이 나오

면 좋겠습니다.

Page 18: 아름다운마을 40호(2013.08)

18

이웃공동체

이땅 곳곳에 뿌리내린 공동체들

사랑방공동체는 1982년 사랑방성서모임을

통해 공동체로 부르신 소명을 확인하는 모임을 가

졌고, 1984년 서울 종로에서 교회공동체, 사랑방교

회를 시작하였다. 사랑방공동체 안에는 사랑방교

회, 사랑방공동체학교, 사랑방생활공동체와 부속

기관들이 있다. 정태일 목사는 사랑방 창립정신과

삼무(三無)정신을 소개했고, 이 정신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근본이 된다고 이야기 한다. 삼무정신은 사

람, 돈, 건물 없이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교회

를 개척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하는 세 가지

요소가 없는 대신, 하나님이 교회의 중심에 있으며

다른 그 무엇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뜻이

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소중히 간

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에 둔 삶의 양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

기 위해 ‘공동체성서연구’, ‘공동체(지도력)훈련’ ‘공

동(체)생활’ ‘공동체학교’ ‘공동생활피드백’‘공동체

운동’ 등을 한다고 이야기 했다. 교회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으로 다니는 곳이 아니라, 함께 성서연구를

하고, 아이들을 길러내는 교육의 장이며, 대안적인

삶을 만들어 내는 공동의 생활공간이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공동생활을 위해서는 피드백 과정이 중

요하다. 피드백은 ‘다른 공동체나 사람을 통해 나의

속사람을 들여다보게 하는 과정’을 뜻하며, 이 성찰

을 통해 피상적인 관계를 넘어 진정한 사귐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땅 곳곳에서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일구어온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7월 15~17일 열린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연수회에서

개척자들, 디아코니아 자매회, 사랑방공동체, 디아코니아자매회, 민들레공동체, 한결공동체,

헤세트힐링센터, 새터마을공동체, 개척자들, 아름다운마을공동체 등

한국에 있는 다양한 공동체들의 삶과 활동을 나누었다.

공동체에 주어진 사명과 과제 앞에서 부단히 길을 찾으며 나아가고 있는 이들의 생생한 현

장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가슴마저 뜨거워지게 했다.

이날 기조강연에서 “공동체운동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생명운동”이라고 한

정태일 목사(사랑방공동체)는 “한국 공동체운동들은 부르심에 응답해 탄생한

자생적 공동체들이라는 데 의미가 있으며, 공동체들이 영성수련에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을 살았으며, 삶에서는 약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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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8 40호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는 예수의 가르침

을 철저하게 살기를 원하는 이들이 전남 무안에서

결핵환자들을 돌보며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시작

된 개신교 수도원적 여성공동체다. 20년간 무안 농

촌지역 보건의료활동, 목포 빈민지역 노인복지활

동 등 이웃과 더불어 사는 현장에 있다보니 공동체

의 기본생활(기도, 학습, 노동)을 미루고 달려가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98년 충남 천안으로 본원과 수

련원을 옮겨 현장으로부터 분리하기로 했다. 천안

에서는 현장에서 영적, 육적 재충전을 필요로 하는

회원들의 쉼과 재충전을 위한 모원과, 젊은 수련자

들을 키우기 위한 수련원의 기능을 하고, 기도생활

에 전념하면서 일반 신자들을 위한 피정의 집도 운

영해오고 있다. 천안 본원에서 6년의 수련생활을

마치면 정회원이 된다. 이들은 독신과 무소유를 서

약하고 노동, 기도, 학습을 중심으로 섬김과 봉사

를 실천하고 있다.

82년부터 살고 있는 이영숙 언님은 “마르다야, 너

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는 성서를 들며 “활동 중에 기도하고 기도 중에 활

동하는, ‘하나(one thing)’에 주목하는 영성을 배우

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또한 “온 몸과 마음과 정성

을 다해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고, 또한

자기를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상대를 보고 조화

롭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고 했다.

민들레공동체는 경남 산청 지리산 초입의

산골마을에 자리한 농촌 생활공동체이자 국내외

농촌선교를 주된 사역으로 감당해온 선교공동체

이다. 1991년 예수와 제자들의 공동체 생활양식을

본받아 청년대학생들과 농촌선교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교공동체 민들레하우스’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서부경남지역 농촌전도에 주력했고, 점

차 농촌이 가진 구조적 모순을 발견하면서 기독농

학도를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사역이 중심

이 되면서 공동체 내에 재정문제, 결혼가정에 대한

책임, 리더의 부담과 의사결정, 사역과 삶의 균형

등 과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공동체생활과 선교

사역이 갈등을 일으키는 구조가 아니라 공동체가

선교를 지원하고 선교가 공동체영성으로 통합되는

‘공동체선교’라는 방향으로 전환해왔다.

김인수 선생은 “한 세대 가까운 삶과 사역을 통해

서 농촌마을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선교야말로 인

류문명 회복의 첫 단계임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했

다. 96년부터 지금의 터전인 산청 갈전리에 뿌리 박

고 여덟 가정과 비혼남녀, 학교 학생들이 더불어 살

고 있다. 현재 민들레학교, (사)대안기술센터, 민들

레아트세터, 민들레베이커리, 민들레농장 등을 통

해 공동체가 지향하는 자립과 협력의 원칙을 이루

면서 식량자급, 에너지자급, 경제자급, 신앙자급의

토대 하에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키워나가고 있으

며 대안대학도 준비하고 있다.

Page 20: 아름다운마을 40호(2013.08)

20

한결공동체는 1990년 교회를 하나님나라로

살고 싶은 이들이 모여 시작했으며, 대구시내 중심

가에서 교회로 모이고 젊은이들을 부르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그 젊은이들이 가정을 이루게 되면서

점차 공동생활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 대구 인

근의 산골마을에서 매실과수원과 밭을 일구며 아

이들과 어른들이 한몸살이하고 있다.

김태룡 목사는 “우리가 처음 출발할 때부터 서

로를 붙들어주기 위해 맺은 교회와의 약속이 있다

며, 이 약속을 매주 예배 때 함께 암송하며 창립기

념일 때마다 그 뜻을 풀이하며 나눈다”고 했다. 또

“우리 세대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살고자 공동

체를 일구며 살고 있듯이 공동체에서 자란 다음세

대 아이들도 이러한 공동체의 삶을 지속하며 살아

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협동조합이 요즘 유행하

는데 그것은 성경의 원리와는 차이가 있으며 수도

원장의 예를 들며 형식적인 민주성이 아니라 구성

원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모두에게 필요한 최적의

판단을 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이며 이것이 진짜 민

주라고 했다. 한결공동체의 교육은 통합교육이 기

본이다. 아이들이 자라감에 따라 아이들이 뛰어놀

고 공부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게 되어, 경북

상주를 공동체의 새로운 터로 정하고 이전을 준비

하고 있다.

헤세드힐링센터의‘헤세드’는 택한 백성

을 구원하신다는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사랑, 자

비, 인애를 뜻한다. 헤세드힐링센터는 상한 마음

을 가진 이와 그 가족의 치유 및 예방, 상담사역으

로 내적치유, 가족치유, 부부치유, 부모자녀 관계

치유, 태아교육 등 위기에 처한 많은 사람과 가정

을 섬겨왔다. 특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분들

에 대한 많은 안타까움에 ‘길르앗’이라는 이름

으로 회복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사회나 교

회,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소외된 상태로, 이들의

문제는 단지 그들 자신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가

족의 문제이기도 한 경우가 많다. 건강하지 못하고

병든 가족관계에서 이들의 문제가 더 드러나게 되

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들의 스스로에 대한

문제인식과 해결의지가 있지 않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서 건강한 대체가족이 필요함을 절감하

게 되었고 치유공동체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되었다.

깨어지고 상처받은 한 사람, 혹은 가족이 회복되

는 데 한 사람의 역할이 크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

과 깨어진 틈에서 기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낼 통로가 될 한 사람이 있다면 깨어진 사람이

나 가정은 더욱 빨리 회복될 수 있다. 헤세드힐링

센터는 앞으로 건강한 대체가족 공동체로서 치유

공동체로서 중보적 가족치유의 역할을 감당해가

려고 한다.

정리 | 김세진, 박민수, 김종성, 서아름, 장철순, 조기성

Page 21: 아름다운마을 40호(2013.08)

21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8 40호

새터민과 함께하는 한반도 평화공동체, 새터마을에 대한 소개는 25000과 5000이라는 숫자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지금 여

기 우리의 현실은 그동안의 대북관계를 지나 이 숫

자에서 멈췄다. “25000이라는 숫자는 무엇일까

요?”, “5000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

일까요?”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 2013년 5월까

지 남한의 품에 안긴 새터민의 수, 25,210명. 그 중

남한의 현실, 그 멸시와 천대를 견딜 수 없어 2차

망명을 택해 남한을 떠난 새터민의 수, 5000명. 그

들은 목숨을 걸고 만난 동족을 다시 뒤로 하고 스

스로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탈북자'에서 '새터민'

으로 껍데기는 바뀌었지만, 그들을 대하는 남한의

속살은 그간 바뀐 게 거의 없었다. 통일 후 북한 주

민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될 이들, 네 이웃(민족)

을 네 몸처럼 사랑했는지를 누구에게 물으실까 하

는 안타까움과 아픔, 새터마을은 이 질문을 안고,

공동체를 통해 북한선교를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

이 모였다. 2005년, 5년간의 생활 정리 기간을 두

고, 복음 안에서 북한을 품고 여주에 모여 함께 살

기로 결의했다. ‘하나님나라와 생명의 푯대’ 아

래, 땅에서 하늘나라를 살려고 모인 실험 공동체,

여주라는 변두리에서 새터를 일구어 새터민과 더

불어 사는 공동체. 준비된 통일, 그 날을 기다리며

꿈을 꾸듯 오늘 여기의 하루하루를 산다는 그들의

고백이 여전히 귓가에 아스라하다.

개척자들은 1999년부터 분쟁지역에서 평화사

역에 관심있는 청년들이 모여, 사역을 위해 함께 살

면서 시작되었다. 동티모르 평화캠프를 위해 활동가

들이 한남동 반지하, 군용텐트, 무허가 건물을 전전

하다가 2003년 송강호 간사의 집을 공동체 공간 ‘샘

터’로 증축하면서 경기도 양평에 자리를 잡았다. 샘

터는 묵상과 훈련, 교육, 공동체적인 삶을 통하여 서

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소명을 따라 살도록 돕는 등

대 같은 역할을 해왔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세계를

위한 기도모임을 하고, 르완다, 동티모르, 아프가니

스탄, 이라크,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스리랑카, 파키

스탄, 아이티, 말레이시아, 일본 등 전쟁이나 재해를

겪은 현장에 달려가 긴급구호를 돕고 평화사역을 해

왔다. 매년 여름 청년들을 훈련해서 한 달 동안 현장

활동을 돕는 평화캠프를 열었으며, 1년 동안 평화복

무를 하는 월드서비스도 진행했다. 2011년부터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형우 간사는 “분쟁 현장에서 화해하게 하는

활동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이들

에게 평화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까?’ 분쟁 지역

어린이의 눈빛에서, 나와 내 옆에 있는 지체들의 모

습에서 평화를 경험합니다. 또 우리의 연약함이 공

동체를 통해 드러날 때 자신에게 더 솔직하고 하나

님 앞에 겸손하게 됩니다. 공동체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지속하게 합니다. 옆에 있는 이들을 품고

‘사랑으로 직접 말하라’는 원칙을 지킨다면, 그

리고 공동체를 이끄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면 공동체가 꿈꾸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고 말했다.

정리 | 김세진, 박민수, 김종성, 서아름, 장철순, 조기성

이웃공동체

Page 22: 아름다운마을 40호(2013.08)

22

이번주 월~화요일 아름다운마을공동체와 함께 한 김주완입니다. 울력으로 인한 후유

증이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지난 1박의 시간을 돌아봅니다. 평소 몸 쓰는 일을 하지 않다가 해서 그런

지 몸이 반응을 하네요. 그래도 오랜만에 땀 흘리며 함께 일한 시간이 보람되고 좋았고요, 특히 홍천에

서 짓고 있는 학교 강당건물 한쪽 벽 50cm 정도 쌓아 올린 것은, 후에 완성된 모습을 볼 때 저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 같아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인수동과 홍천에서 여러 분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그리고 대화에서 나온 내용들이 삶 속에서 고백되

고 삶으로 보이는 것들을 통해 제 마음에 깊은 여운이 남겨집니다. 만났던 분들에게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공통된 이야기들이 삶에 담겨 있음을 보았어요. 그동안 공동체의 중요성을 많이 가르쳐왔지만, 실

제로 그러한 삶을 살아내고 있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제 삶에서 당연히 여

기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현실 가운데 합리화되고 있었음을 보게 되네요. 꿈꾸는 삶을

현실 가운데 구체적으로 살아내려는 노력들이 도전이 되면서 한편으로 격려가 됩니다. 먼저 그렇게 살

아내고 있는 모습이 고맙습니다.

자녀양육과 교육에 대해 어떻게 할까 막연히 고민만 하던 것들이, 홍천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삶

을 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정리되기도 하고, 생명을 배우는 것이 교육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

으로 돌아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함께 소망하게 되고, 또 한편으

로 새로운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지만, 공동체로 살

아가는 삶에 대한 비전을 더욱 품게 된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제 저의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작은 실천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과제가 남았네요. 또 기회를 만들어 아내와 함께

다시 찾도록 할게요.

삶에 새겨진 만남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생 다섯 분이 지난 7월 1~2일 현장 실습으로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인수터전과 홍천터전을 탐방했습니다. 이틀 동안 몸 쓰는 일도 하시고, 공

동체방에서 하룻밤 주무시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시고 홍천마을도 둘러보시고는, 각자

삶으로 돌아가서도 소중하게 새겨진 만남을 떠올리며 글도 남겨주시고, 이후에는 가족

들 손을 잡고 함께 또 오셨습니다. 귀한 만남에 감사하며, 써주신 글을 함께 나눕니다.

동구밖

Page 23: 아름다운마을 40호(2013.08)

2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8 40호

다들 잘 지내시죠? 지난주에 방문했던 설성호입니다. 공동체운동에 대한 고민과 관심을

갖고 있던 제게 아름다운마을공동체와의 만남은 참 감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1박2일에 걸쳐 인수터

전과 홍천에서 여러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막연했던 고민들이 정리되고, 제가 꿈꾸던 삶

을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모습을 보면서 많은 도전과 격려가 되었답니다.

공동체가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구성원들 간에 유기체로 서로

호흡하면서 이어져 있는 듯했고, 공동체 내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스스로 그것을 고민하며 정화해가

는 자정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치밀한 조직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되 그러기에 오히려 인위적

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민감하게 소통하려는 모습이 참 소중해보였고, 제가

속한 공동체도 그러하길 소망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어른, 아이 모두가 시대의 흐름에 생각 없이 따라

가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서 삶의 방식을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면서 고백대로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스스로 돌아보게 되고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었답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나누었더니, 아내도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고 방문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리

고 집을 옮겨서 사는 것까지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공동체 내에 흐르는 공통의 삶의 고백

과 하나됨을 느끼며 새로운 소망을 마음에 품고 격려받고 돌아올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질문에 성심

성의껏 답해주셨던 분들과 맛있는 식사로 섬겨준 밥상지기, 잠자리 제공과 아침식사로 섬겨준 공동체

방 ‘아침마루’ 형제들, 서툰 울력에도 친절히 설명해준 ‘흙손’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족들과

함께 또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송영신입니다.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기억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뵙는

분들마다 소개글을 미리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말을 걸어주셔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인수에서

홍천에서 여러 분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놀라웠던 것은 한 분 한 분 공동체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생생하게 체화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끌어가는

공동체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는 신앙하는 삶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한가, 얼마나 살아내고자 노력하는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삶으로 살아내시는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인수터전에서 울

력으로 학교 앞마당을 정리할 때 ‘나무버스’를 치워도 괜찮은지 아이들의 허락을 구하며 존중하시는 모

습이 인상적이었고, 홍천에서도 생명을 귀히 여기며 가치를 좇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감명 받았

습니다.

마을밥상도 아주 맛있었어요. 운치 있는 마을찻집도, 홍천에서 짓고 계신 생태건축 건물도 정말 아름

다웠습니다. 하룻밤 재워주신 자매공동체방에서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기억

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평안하시고 건강하세요!

Page 24: 아름다운마을 40호(2013.08)

24

아름

다운

마을

교육

공동

체 홍

천터

전 갈

무리

잔치

를 했

습니

다. 봄

, 여름

을 지

내며

공부

하였

던 것

, 만들

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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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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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

다. 이

번 갈

무리

잔치

는, 어

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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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건

강하

게 잘

지을

수 있

을까

고민

하며

새로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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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에서

열렸

습니

다. 미

완성

이지

만, 강

당에

들어

서니

흙담

과 나

무 지

붕이

눈에

들어

오고

기분

이 좋

아집

니다

.

“두둥

두둥

두둥

둥둥

둥” 초

등친

구들

의 경

쾌한

난타

소리

로 잔

치 문

을 활

짝 열

었습

니다

. 어깨

가 들

썩일

정도

로 신

나고

, 한 여

름의

더위

도 날

려버

릴만

큼 시

원한

공연

었습

니다

. 차분

하게

노래

하며

, 생동

중 학

생들

이 등

장했

습니

다. 음

악시

간에

배우

고 익

힌 곡

들을

아름

다운

화음

으로

노래

했습

니다

. 호흡

을 가

다듬

고, 자

리를

잡더

니 서

로의

목소

리에

귀를

기울

이며

하나

의 합

창을

만들

어냈

습니

다. 화

려한

밴드

공연

이 이

어졌

습니

다. 잔

잔한

듯하

면서

신나

는 노

랫말

이 귀

에 감

기던

도중

랩퍼

가 깜

짝 등

장하

자 한

바탕

파안

대소

물결

이 일

렁입

니다

. 넋을

잃고

빠져

드는

기타

연주

가 이

어지

고, 추

억의

팝송

도 이

어졌

습니

다. 체

크무

늬 남

방의

깃을

세우

고, 청

바지

를 입

고,

목수

건을

두른

복고

풍 복

장을

한 깜

찍한

모습

에 환

호성

을 지

르기

도 했

답니

다. 경

쾌한

춤사

위도

인상

적인

초등

학생

들의

무대

가 계

속 이

어졌

습니

다.

마지

막으

로, '마

술의

손'이

라는

연극

이 무

대에

올라

왔습

니다

. 중학

교 3학

년생

들이

소설

한 편

을 읽

고는

고심

하고

고심

해서

대본

을 만

들었

고 그

대본

에 중

학교

2, 3학

년생

들이

화려

한 연

기로

옷을

입혔

습니

다. 능

청스

런 연

기에

폭소

가 터

져 나

옵니

다. 한

쪽에

선 학

생들

이 그

린, 생

활이

담긴

그림

과 마

음이

느껴

지는

공예

품이

전시

되었

습니

다. 함

께하

기 위

해 바

쁜 시

간을

쪼개

어 달

려온

부모

님, 이

웃이

있었

기에

기분

좋게

갈무

리를

할 수

있었

습니

다.

마을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