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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재해와 일본인 일본비평 7114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고지라」와 「일본침몰」을 중심으로 김려실 4 (위) 영화 「고지라」(1954)의 한 장면 ▒▒ (오른쪽 페이지 위 왼쪽부터) 5후쿠류호, 『일본 이외 전부 침몰』 원작 소설의 표지, 「메가쓰나미의 뒤」( 大津波)와 「망치 소리」( 槌音)의 상영을 알리는 2011 년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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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14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 「고지라」와 「일본침몰」을 중심으로

    김려실

    4

    ▒ (위) 영화 「고지라」(1954)의 한 장면

    ▒▒ (오른쪽 페이지 위 왼쪽부터) 제5후쿠류호, 『일본 이외 전부 침몰』 원작 소설의 표지, 「메가쓰나미의 뒤」(大津波の後)와 「망치 소리」(槌音)의 상영을 알리는 2011년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포스터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15

    1. 재해와 일본영화

    일반적으로재해는천재(天災)와인재(人災)로나누어볼수있다.전자가가뭄,

    홍수,지진,쓰나미,화산폭발등의자연재해를말한다면후자는피할수있음에

    도인간의안전의식부족이나이기심때문에발생하는재해를말한다.환태평양

    조산대에위치한일본은지진과화산폭발의위험을언제나안고있다.20세기이

    후에도1923년의관동대지진,1995년의한신・아와지대지진,그리고2011년의

    동일본대지진(이하,‘3・11’로줄임)등대규모의진재(震災)가일본인의삶과일본

    의정치에막대한영향을미쳐왔다.한편,지난세기에일본은인재또한반복해

    왔다.20세기초동아시아에서유일하게근대화에성공한일본은주변국가를식

    민화하고제국주의전쟁을일으켰으며과거청산과전후처리를완수하지못한상

    황에서경제성장을가속화함으로써많은부작용을겪어왔다.태평양전쟁이막

    바지에이르렀던1945년4월3천명의승무원이수장당한전함야마토(大和)의

    침몰이나단일항공사로는최대의인원인520명이사망한1985년일본항공123

    편의추락은바로제국주의와고도성장이불러온인재에다름아니다.

    근대적재해의중요한특징은전지구적확산이다.2009년부터현재까지대

    * 지은이│김려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일본 교토대학 인간·환경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시나리오 및 희곡을 가르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의 전후문화와 미국화

    에 대해 연구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일본영화와 내셔널리즘』(책세상, 2005),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 1901년

    ~1945년의 한국영화사를 되짚다』(삼인, 2006), 『만주영화협회와 조선영화』(한국영상자료원, 201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문화냉전과 아시아 : 냉전 연구를 탈중심화하기』(소명출판, 2012) 등이 있다.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16

    유행중인신종플루처럼이제유행바이러스의방역은더이상국가단위에그치

    는문제가아니다.속도를중시하고유동적이며과밀화된현대인의생활조건은

    천재가인재로이어질가능성,전지구적으로확산될가능성을항시내포하고있

    는것이다.동일본대지진으로인한후쿠시마(福島)제1원전의폭발사고가바로

    최근의예이다.20세기최악의사고였던체르노빌원전사고때처럼후쿠시마원

    전에서누출된방사성물질은인접국가뿐만아니라바람을타고전세계로퍼져

    나갔으며방사능오염등의후발적인재해는아직도현재진행형이다.

    체르노빌과후쿠시마사이에는냉전의종결과미디어혁명이가로놓여있

    는데두재해의차이는후쿠시마의경우원전폭발후의‘정보의폭발’이재해의

    성격을형성했다는점에있을것이다.그런데두번째재해에서우리는무슨일이

    일어났는가를첫번째보다더잘알게되었지만그만큼사건의공포도빠르게잊

    어가고있는것이아닐까?미국학자들의용어를빌려‘역설적다큐멘터리효과’

    (PDPE,ParadoxicalDocumentaryProgramEffect)1)라고해야할지,언제어디에

    서나엄청난양의정보를실시간으로무한히쏟아내는미디어는오히려수용자

    를재해의공포에무뎌지게만드는것이다.

    대중의이목을끌기위해미디어는폭로성기사를쏟아내고있는듯보이지

    만진재경험의본질은제도내부에수용가능한것만으로제한하여다룸으로써

    후쿠시마라는대재앙은이제세속화를피할수없게되었다.예컨대일간지의경

    쟁적인재해보도는곧출판업계의3・11기획도서로이어졌다.동일본대지진발

    생삼개월여만에,진재지역의주민들이여전히생존권을위협받는가운데출판

    된이들도서는사건에대한반응을반영했다기보다는반응을만들어내기위해

    제작된것이아닌가하는의문을불러일으킨다.왜냐하면그속에서재해의공포

    는위안과미담속에서“마음”으로극복할수있는것으로추상화되고,2)국가적

    1) TV 다큐멘터리를 본 시청자들이 행동의 변화를 추구하는 다큐멘터리의 제작 의도와 반대로 행동하거나 부정적인 입장

    을 취하게 되는 현상을 일컬음.

    2) 池上彰·文芸春秋 編, 『心をつなぐニュ-ス』, 東京 : 文芸春秋, 2011. 이 책의 편집자는 진재 지역에서 발행된 신문 기사 중에서 주민들, 그들의 친인척들, 구조대, 순직자 등의 미담을 골라 재수록했다.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17

    위기는“일본인의미덕과불굴의정신”3)을증명하는계기로미화되기때문이다.

    이점에서영화라는미디어도예외는아닌듯하다.3・11이후일본은국민감

    정을고려하여쓰나미와지진관련영화(당산대지진을다룬펑샤오강의「대지진」,

    쓰나미를다룬클린트이스트우드의「히어애프터」)의개봉을연기했으나영화계의

    자숙분위기는1주기가지나면서적극적인언급으로변화했다.

    마찬가지로학계에서도3・11을키워드로한연구들이무분별하게쏟아져나

    오고있는가운데3・11관련영화에대한분석을더하기보다는이글에서는일본

    영화가재해를어떻게포착/표상해왔는가에우선주목해보고자한다.‘재난영

    화’에투영된내셔널리즘이어떻게변해왔는가를역사적으로기술하기위해이

    글에서는「고지라」시리즈와「일본침몰」(1973,2006)을중심으로논하기로한

    다.많은재난영화중에서도특별히이들영화를택한이유는영화속의재난이

    일본인의근원적이며일상적인공포와맞닿아있으며현실에서발생한재해의

    3) 別冊宝島編集部 編, 『世界が感嘆する日本人─海外メディアが報じた大震災後のニッポン』, 東京 : 宝島社新書, 2011, 3쪽.

    일본잡지의 3・11 1주기 특집

    선정적인 폭로성 기사가 주목을 끈다.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왼쪽 위] “거대 쓰나미 무시된 경고”(『文藝春秋』, 2012年 3月 臨時増刊号), [위] “3・11의 A급 전범”(『AERA』, 2012年 3月 12日増大号), [왼쪽] “최악 시나리오, 도쿄대지진으로 일본 괴멸”(『週刊女性』, 2012年 3月 13日号).

  •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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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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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118

    반영이라는점,반세기에걸친후속작과리메이크를통해내셔널리즘의이데올

    로기적변용을추적할수있다는점때문이다.

    덧붙여논의의전제로서재난영화라는장르는재난을소재로한모든영화

    를포괄하는것이아니라재난(disaster)과그것으로인한혼란(chaos)이내러티

    브의중심이되고그것들을피하거나극복하는인간군상을그린영화라는점

    을밝혀두고자한다.이장르는재난에대처하는인간의이야기를통해보편적

    인휴머니즘에호소하는동시에재난의스펙터클을통해관객의시각적쾌락에

    호소한다.이정의에따르면원폭을소재로한공통점이있다하더라도「고지라」

    (1954)는재난영화이지만「나가사키의종」(長崎の鐘,1950)이나「원폭의아이」

    (原爆の子,1952)는재난영화가아니다.

    2. 전전(戦前) 일본의 진재(震災)영화와 전쟁영화

    1장에서예로든전함야마토의침몰처럼넓은의미에서전쟁과테러가인재에

    일본의 3・11 관련 출판물들

    왼쪽 책의 제목은 『마음을 잇는 뉴스』, 오른쪽 책의 제목은 『세계가 감탄하는 일본인: 해외 미디어가 보도한 대진재 후의 일본』이다.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19

    포함되거나인재를유발하는요인이된다고가정한다면,역사적으로볼때일본

    인이카메라로포착한최초의재난은‘북청사변’(의화단농민투쟁)이될것이다.

    연합군의일원으로일본군제5사단이출병하게되자도쿄의요시자와상회(吉沢

    商会)는베이징까지사원을파견하여「북청사변활동대사진」(1900)을촬영했고,

    사변종결2개월후에상영하여전국적으로흥행에성공했다.뒤이어요시자와상

    회는「러일전쟁활동대사진」(1904)도제작했는데이필름은“전국민으로부터공

    전의지지와감동으로받아들여졌”을뿐만아니라미국,동남아시아각지역에서

    도상영되었다.4)이들초기영화는전쟁의참혹함을일깨우기보다는일본의승리

    를기쁘게기록함으로써일본인의애국심을북돋우는계기가되었다.일본이총

    력전에나서기한참전인데도이시기신문에는벌써영화가어떻게하면국가에

    공헌을할수있는가라는논의가나타났다.5)

    또관동대지진이라는천재지변역시영화로기록되어오늘날까지도남아있

    다.닛카쓰(日活)에서제작한「관동대진재실황」(1923)은세트촬영중이던카메

    라맨다카사카도시미쓰(高坂俊光)가지진직후촬영소를빠져나가나흘간고

    군분투하여기록한영상이다.다른한편의기록영화「관동대진대화실황」(関東

    大震大火実況,1923)은문부성사회교육과의기획으로동경시네마상회(東京シ

    ネマ商会)가제작하고카메라맨시라이시게루(白井茂)가기록한필름이다.문부

    성은시라이의촬영분에육군성관계로촬영해두었던황태자(뒷날의쇼와천황)

    의시찰(摂政宮御巡視)장면을삽입하여이영화를공개했다.6)사토다다오(佐藤

    忠男)는후자의영화를전전일본기록영화에황실이어떤역할을했는가를상징

    하는에피소드로소개하고있다.7)이영화에서는전재민들의비참한현실을담은

    부분이없고(치안상좋지않다는이유로경찰이필름을몰수)황태자의시찰장면을

    삽입함으로써황실의인자함이대재앙의유일한희망인것처럼그려진다.이같

    4) 田中純一郎, 『日本教育映画発達史』, 東京:蝸牛社, 1979, 19쪽. 5) ピ-タ- B. ハ-イ, 『帝国の銀幕 ─ 十五年戦争と日本映画』, 名古屋:名古屋大学出版会, 1995, 4쪽.6) 田中純一郎, 『日本教育映画発達史』, 49~51쪽.7) 佐藤忠男, 『日本記録映像史』, 東京:評論社, 1977, 22~23쪽.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20

    은현상은3・11에서도반복되었는데8)오늘날일본우익은재해를천황이일본을

    수호하는이키가미(生神)라는전전의천황제내셔널리즘의상상력을현대에재

    생산하는계기로이용하고있는것으로보인다.

    위에서는기록영화를중심으로살펴봤지만극영화의경우에도전중(戦中)

    에는그것이인재이든천재이든내셔널리즘적인메시지를담지않을수없었다.

    전중일본의극영화는전쟁을다룰때의식적으로는성전에복무함으로써천황

    의은혜에보답한다는메시지를담았고,“무의식적으로는전쟁을공동체에대한

    귀속의식을확인하기위한행위”9)로그렸다.자연재해의경우도서민의피해와

    고통을사실적으로묘사하기보다는오히려세계에유래가없는일본정신을표상

    하는것으로신비화되었다.

    예컨대나치독일과의합작국책영화「새로운땅」(新しき土,1937)은자연재

    해와늘함께살아가야하기때문에그자연을닮은일본인의불굴의정신을표

    상하는데노력을경주한다.10)독일서유학한지식인청년야마토데루오(大和輝

    男)는선상에서만난독일여성겔다에게반해그녀를데리고귀국한다.그는부

    유한야마토가의무남독녀야마토미쓰코(大和光子)의약혼자로서양자로들어

    가아버지로부터갖가지은덕을입었지만일본의전통적인결혼관도순종적이기

    만한약혼녀도못마땅하다.데루오의변심에절망한미쓰코는결혼예복으로아

    껴두었던기모노를꺼내입고자결하기위해화산을오른다.폭발이임박하여용

    암이분출되는가운데데루오는극적으로미쓰코를구출해내고두사람은결혼

    에이른다.나치의초인주의와야마토민족의사무라이정신이만나일본의웅장

    8) 3・11 때도 피해자들을 위문하는 헤이세이 천황의 사진이 매스컴에 유통됨으로써 일본인의 잠재적 공포를 완화하는 역

    할을 했다는 점을 지적해 주신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의 남상욱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천황의 피해자 위문 사진은 일

    본 우익 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를 발행한 후소샤(扶桑社)의 자회사인 이쿠호샤(育鵬社)의 우익교

    과서에 다음과 같은 설명과 함께 실려 있다. “천황을 정신적인 중심으로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국가적인 위기를 넘긴 시

    기가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메이지유신이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초토화된 상태로부터의 부흥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

    다.”(川上和久 外, 『新しいみんなの公民』, 東京:育鵬社, 2011, 43쪽).

    9) 요모타 이누히코, 『일본영화의 이해』, 박전열 옮김, 현암사, 2001, 115쪽.

    10) 이 영화는 독일에서 「사무라이의 딸」(Die Tochter des Samurai)이라는 제명으로 개봉되었다.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과

    분석은 김려실, 『일본 영화와 내셔널리즘』, 책세상, 2005, 51~55쪽 참조.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21

    한자연과일본정신을강조하는이멜로드라마의무의식은전쟁영화의내셔널

    리즘적상상력과맞닿아있다.영화에서데루오가미쓰코와결혼하기로다시마

    음을바꾼내적계기는전혀설명되지않는다.그러나야마토라는성(姓)은일본

    민족을,미쓰코와데루오라는이름은태양(日)의제국일본을상징하기때문에11)

    이부자연스러운반전(どんでん返し)은내셔널리즘적인사고회로속에서자연

    화된다.서구화된사고에젖어있던데루오는미쓰코와의결혼을통해일본이라

    는‘공동체로귀속’한뒤에야신혼의단꿈을안고만주국,일본의‘새로운땅’으로

    향하게된다.그리고결말에서만주의옥토를경작하는일본인개척이민과그들

    을보호하는일본군의모습을보여줌으로써영화는의식적인전의앙양으로끝

    맺는다.

    3. 「고지라」에 반영된 핵 공포

    전후,더정확히말하면미군정이끝난시점부터일본영화는지난전쟁에대한피

    해의식을표상하는데열중했다.1952년부터일본영화는제2의황금기를맞이

    했고그동안연합군최고사령부(GHQ)의검열에서금기시되어왔던소재가속속

    영화화되었다.신도가네토(新藤兼人)감독은「원폭의아이」(1952)에서히로시

    마에투하된원폭을재현하기위해버섯구름을삽입하고비사실적이나마피폭자

    를보여줄수있었고,이마이다다시(今井正)감독은「히메유리의탑」(ひめゆり

    の塔,1953)에서오키나와에상륙한미군의공격으로몰살당하거나자결하는근

    로봉사대여학생들의비극을보여주었다.하지만이들영화에서는“‘히로시마’

    라고할때/‘아아히로시마’라고따뜻한대답이돌아오도록하기위해서는우리

    11) 태양을 신격화한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는 일본 황실의 조신(皇祖神) 중 하나이다. 따라서 태양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진 두 남녀가 만주국으로 간다는 설정은 일본 황실의 탄생신화에 빗대어 천황의 새로운 영토 만주국에서 일

    본민족의 번영을 기원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덧붙여 「새로운 땅」에서 미쓰코 역을 했던 하라 세쓰코(原節子)는 전

    후에 만들어진 「일본탄생」(1959)에서 아마테라스오미카미로 분한 바 있다. 한편 그녀는 「내 청춘 후회 없다」(我が青春に悔なし, 1946)를 비롯한 전후의 민주주의 앙양 영화에서는 ‘자유의 여신’과 같은 역할을 했는데 이 배우의 이중적 표

    상에 대해서는 일본 전후사의 맥락과 더불어 상세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22

    들의더러운손을깨끗하게해야한다”12)라는인식,전중에는일본본토의총알받

    이가됐고전후에는미국과일본의거래때문에이중적으로수탈당하고있는오

    키나와사람들의고통에대한인식은보이지않는다.이시기일본의전쟁영화는

    전쟁체험을감상적으로회고하는노스탤지어산업이었고거기에는피해자로서

    의일본인만존재할뿐,아시아인의피로물든손은감추어져있다.

    이상의영화들처럼일본인의피해자의식은일본을패배시키고점령했던미

    국과의역학관계,더직접적으로는원폭투하와관계가있는데1954년에그것을

    강화시키는사건이일어났다.1954년3월1일비키니섬근해에서실시된미국

    의수소폭탄실험으로일본어선제5후쿠류호의선원들이피폭당한것이다.원폭

    증에시달리다죽어간선원들은미국이투하한원자폭탄의기억을소환했고,게

    다가비키니섬주변이일본참치어선의어업구역이었기때문에이사건의여파

    로일본사회는거의패닉상태에빠지게되었다.490톤의참치가‘방사능참치’로

    불리며전량폐기되고참치소비도멈추었는데‘식탁에오른핵’때문에일본인들

    은원폭의공포를더직접적으로몸으로느끼게되었고,히로시마와나가사키에

    한정되어왔던피폭체험은‘국민적체험’으로확대되어갔다.13)

    이와중에일본최초의재난영화「고지라」(ゴジラ)가1954년11월에개봉되

    었다.전중에군부에협력하여국책영화를양산했던도호(東宝)가제작하고해

    상보안청이협찬한영화이다.나루세미키오(成瀬巳喜男)의조감독출신으로

    1949년에데뷔한혼다이시로(本多猪四郎)감독이연출을맡았고「새로운땅」

    과일본의진주만습격을그린선전영화「하와이말레이해전」(ハワイ・マレ-沖海

    戦,1942)등에서놀라운솜씨를보여‘특촬의신’(特撮の神)으로불렸던쓰부라

    야에이지(円谷英二)가특수촬영을맡았다.남태평양의심해속에잠들어있던

    쥐라기의공룡고지라가수폭실험으로깨어나방사능을뿜어내어일본어선을침

    12) 피폭자 시인 구리하라 사다코(栗原貞子)의 시 「히로시마라고 말할 때」. 이 시는 피폭 체험이 피폭 내셔널리즘으로 변질

    해 가는 것을 경계하고 일본인이 피폭을 말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전쟁 책임 역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보여

    준다. 권혁태,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교양인, 2010, 121쪽.

    13) 권혁태,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96~98쪽.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23

    몰시키고도쿄를무차별적으로파괴한

    다는내용인데,그럼에도일본인들은

    이가공할괴수와사랑에빠졌다.6개월

    뒤에속편「고지라의역습」(1955)이개

    봉된것을시작으로고지라는전국민

    의총애속에시리즈화되어쇼와(昭和)

    고지라(1955~1974),헤이세이(平成)

    고지라(1985~1995),밀레니엄고지라

    (1999~2003),파이널고지라(2004)에

    이르고있다.

    오늘날고지라시리즈는아동물로

    수용되는감이있지만1954년의「고지

    라」는일본어선제5후쿠류호의피폭재해를고발하려는의도로기획된재난영화

    였다.961만의관객을동원한일본최초의블록버스터이기도했던이영화는고

    지라의방사능화염에불타는일본어선을보여주면서제5후쿠류호의피폭을추

    체험시키는한편,거기에히로시마와나가사키의기억을결부시킨다.한쌍의엑

    스트라남녀가고지라의도쿄상륙을목전에두고지하철에서나누는만담을들

    어보자.

    여:원자참치니,방사능비니,게다가이번엔고지라라니…….도쿄만에올라오

    면대체어떻게되는거예요?

    남:우선제일먼저네가당할걸?

    여:아이싫어.나가사키원폭에서겨우건진소중한몸인데…….

    자위대의프리게이트함대가쏟아붓는폭격이가소롭다는듯고지라는유

    유히도쿄에상륙하고도시는고지라가뿜어내는방사능화염으로불바다가된

    다.전쟁을직접겪은세대라면불타는도쿄와갈팡질팡도망가는시민들의모습

    「고지라」 포스터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24

    을보고1945년3월10일의도쿄대공

    습의기억까지도소환했으리라.그런데

    흥미롭게도도쿄를무차별공격하던고

    지라는천황이사는고쿄(皇居)에이르

    자도쿄만으로물러가조용히몸을숨

    긴다.고지라의이상행동(?)을민속학

    적으로설명하려는시도에따르면이

    괴수는태평양전쟁때남쪽바다에서

    옥쇄하여고향으로돌아오지못한일본

    군의원령을상징하는존재이다.이해

    석은「킹콩대고지라」(1962)로뒷받침

    된다.이번고지라는빙하속에갇혀있

    다가지구온난화로빙하가융해되자일본으로향한다.즉,고지라는일본으로의

    귀소본능을가진토착동물인것이다!고지라는일본의영산(靈山)후지산기슭에

    서할리우드괴수킹콩과결투를벌이고킹콩을아타미바다로던져버린다음속

    편을기약하며사라진다.괴수의모습으로귀환한억압된원령이일본을지키는

    수호신으로등극한것이다.14)

    「고지라」는1956년에「고질라:괴수왕」(Godzilla:KingoftheMonsters)이

    라는제명으로미국에서공개되었다.일본과달리원폭에대해‘전쟁조기종결

    론’의시각이일반적인미국에서관객들은미국의핵실험이만든괴수를일본과

    학자가목숨을걸고퇴치하여전세계를구원한다는내러티브를어떻게수용했

    을까?수잔네이피어(SusanJ.Napier)는앤드류튜더(AndrewTudor)가『괴물

    과미친과학자:호러영화의문화사』(MonstersandMadScientists:ACultural

    14) 四方田犬彦, 『日本映画と戦後の神話』, 東京:岩波書店, 2007, 87~88쪽; 加藤典洋, 『さよなら、ゴジラたち』, 東京:岩波書店, 2010, 148~149쪽. 한편, 사토 겐지佐藤健志)는 『ゴジラとヤマトとぼくらの民主主義』(東京:文劇春秋, 1992)에서 고지라는 원래 원흉을 제공한 미국에 출몰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일본이 초대국인 미국에 좌지우지되

    는 상황에서 왜곡의 구조(ひがみの構造)가 개입하여 일본을 습격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왜 고지라

    가 반복해서 일본에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논리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킹콩 대 고지라」(1962) 포스터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25

    HistoryoftheHorrorMovie)에서논한“안전한공포”(securehorror)라는용어를

    빌려미국관객들은사이언스픽션(SF)의관습속에서「고지라」를수용했다고본

    다.15)SF장르는국민이외부로부터의위협에노출되지만정부와과학자의노력

    으로평화를되찾는다는관습을가진낙관적인장르로,당시미국인들은고지라

    를외부의위협으로규정함으로써이영화를즐길수있었다는것이다.이시기의

    미국영화는「화성의침입자들」(InvadersfromMars,1953),「신체강탈자의침입」

    (InvasionofBodySnatcher,1956)등의영화가외계인에게빼앗겨조종당하는

    육체를테마로하여외부로부터의핵공격과무자비하고감정없는칩입자(공산

    주의자)에대한공포를반영했다.그런맥락에서「고질라:괴수왕」이미국인의핵

    공포를반영하는동시에SF장르의관습으로그것을해소함으로써흥행에성공

    했다는분석은일면타당해보인다.

    그러나네이피어는1956년당시「고질라:괴수왕」이원본그대로가아니라

    수입사(EmbassyPicture)의요청대로테리모스(TerryO.Morse)감독에의해편

    집되었고,그나마일본계미국인극장에서만공개되었다는사실을간과했다.미

    국판에서는레이몬드버(RaymondBurr)가분한미국인뉴스리포터스티브마틴

    이화자로등장함으로써원본의이야기가마틴이도쿄에서보도하는뉴스로전

    환되었다.편집과더빙을통해미국의수폭실험이라는문맥은사라져버렸고고

    지라를퇴치한과학자세리자와의죽음뒤에마틴의마지막대사는미국SF장르

    에익숙한낙관적인전망을제시하며일본인의불안감(야마네박사의마지막대사

    는“수폭실험이계속되는한고지라는이세상어딘가에다시나타날것이다”이다)을

    불식한다.“골칫덩이는사라졌고영웅역시죽었다.그러나세상은다시깨어났고

    삶은계속되었다.”

    냉전기미국의슈퍼히어로무비와일본의괴수영화에는공통적으로핵전쟁

    이라는잠재적인재앙에대한공포가깔려있다.영웅과악당의구별이뚜렷한

    15) Susan J. Napier, “Panic Sites: The Japanese Imagination of Disaster from Godzilla to Akira”,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 19, no. 2, Summer 1993, p. 332.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26

    「슈퍼맨」이나「배트맨」16)에비해「고지라」의특징은괴수가인류의평화를위해

    반드시제거해야할악이아니라인간이초래한과오(“수폭이낳은사생아”)로그

    려진다는점이다.그런데이괴수가퇴치시켜도또돌아온다는것은무엇을의미

    하는가?나는고지라의귀환에는이중적의미가있다고생각한다.고지라와그

    의자손들이28번이나일본으로돌아온다는것은미국의핵우산아래있는일본

    인의잠재적공포가그만큼뿌리깊다는것을의미한다.이영화가일본인에게일

    반적으로“생태학적관점의반핵영화”17)로수용되었다는것이그점을증명한

    다.그러나그것은표면적이면서의도된이유18)이고근본적으로(때때로모순적일

    지라도)이괴수의끊임없는귀환은일본내부의해결되지않는문제에기인한다

    고본다.최초의「고지라」는전사한일본군의망령일뿐아니라전후일본이패전

    으로부터사회를재건하기위해억압하고배제했던자기안의괴물들,즉나가사

    키・히로시마의원폭피해자들,결핵환자들,‘제3국인’들등의총화가아니었을까?

    전후의재건이완수되고일본이경제대국으로성장한뒤에도,심지어오늘날까

    지도그괴물이거듭나타난다는것은내부의괴물을만들어내는억압과배제논

    리가일본사회에아직도공고하다는사실에대한반증일것이다.

    4. 「일본 침몰」의 디아스포라적 상상력?

    1960년대일본은경제적으로는전후의번영이정점을찍은시대였고정치적으

    로는변혁의시대였으며1968년에가와바타야스나리(川端康成)가노벨문학상

    을수상함으로써일본인의문화적자긍심도절정을이룬시기였다.영화예술에

    16) 미국식 슈퍼영웅의 원조격인 슈퍼맨은 1938년 『액션 코믹스』(Action Comics)라는 코믹북에 최초로 등장했다. 1941

    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영화는 1948년에 제작되었다. 베트맨은 1939년 미국의 코믹북 『디텍티브 코믹스』

    (Detective Comics)에 처음 등장했고 1943년에 영화화되었다.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직후에 만들어진 「배트맨」

    에서 적은 전쟁 첩보기관의 우두머리인 일본인 다카 박사로 설정되어 당시의 반일 분위기를 반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슈퍼 히어로들의 공공의 적은 나치나 일본군이었는데 전후 이 장르는 잠시 쇠퇴하는 듯하다가 냉전이 심화

    됨에 따라 부활했다.

    17) 요모타 이누히코, 『일본영화의 이해』, 167쪽.

    18) 앞서 논한 대로 피폭 재해에 대한 고발은 애초부터 영화제작자의 의도였는데 이후의 「고지라」 비평도 그것을 반복하는

    형태로 승인해 주고 있어 다른 해석을 가로막아 왔다.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27

    있어서도이시기에는정치적인발언과

    형식적실험이유행했다.급진적인전

    위파들의작품은기존의‘아름다운일

    본의’영화에강력한의문을제기하면

    서예술의다양성을추구했다.그렇다

    면70년대는어떤시대였나?일본경제

    는인플레이션과오일쇼크로위기에처

    했고학생들의반체제운동은고립화되

    어갔으며좌파영화인들은침묵하거나

    전향했다.TV의보급에따라영화산업

    은사양길로접어든것처럼보였고기

    존의스튜디오시스템은몰락했다.닛

    카쓰가1969년,다이에이(大映)가1971년에도산했고도호,쇼치쿠(松竹),도에

    이(東映)는인원감축과촬영소매각을통해긴축경영체제에들어갔다.

    이시기에일본의대표적인재난영화「일본침몰」(1973)이제작되었다.이

    영화의원작은같은해출판되어400만부가팔린전설적인베스트셀러SF『일

    본침몰』이다.일본열도전체가지각대변동으로가라앉는다는고마쓰사쿄(小松

    佐京)의기상천외한상상력은「고지라」를제작한도호의다나카도모유키(田中

    友幸)에의해스크린으로옮겨졌다.당시도호도경영난으로도호미술,도호영상,

    스튜디오로회사가나뉘어졌는데,도호영상의사장이된다나카는그해3월소

    설이간행되자마자히트를예감하고영화화를계획했다고한다.영화화뒤에는

    TBSTV드라마로제작한다는계약이맺어졌고드라마는영화세트에서동시진

    행으로촬영되었다.12월에공개된영화는650만명의관객을동원했다.영화와

    동시기에『주간소년챔피언』에서만화「일본침몰」이연재되었고마이니치방송

    (毎日放送)과분카방송(文化放送)의라디오드라마,TBS텔레비전드라마가동

    시에방영됨으로써‘침몰붐’은전국으로확산되었다.

    고마쓰가『일본침몰』을쓰기시작한것은신칸센개통과도쿄올림픽개최로

    「일본 침몰」(1973) 포스터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28

    전후일본의경제성장이절정에이른1964년부터였다고한다.일본도이제패전

    의그늘을완전히떨치고선진국대열에당당히들어섰다는자부심이넘치던시

    기였다.

    전쟁에서비참하게패하고겨우20년이지났을뿐인데도고도성장으로들떠있

    는일본에경종을울리고싶었다.국토를잃고모두가죽을각오를하였던일본

    인이(겨우20년이지난지금)마치전쟁조차없었던것처럼행동하는것이세계

    에어떻게비추어질것인가를생각했다.그래서‘픽션’을 통해 ‘나라’를 잃어버릴 수

    도 있다는 위기감을 일본인에게 다시 체험시키고 싶었다.19)

    고마쓰가의도했던것은나태해진전후세대의일본인에대한정신적인예

    비훈련이자국가적위기에대한시뮬레이션이었던셈이다.재해로파괴되는국

    토를묘사하며고마쓰는일본인이수백년간지진과화재와같은재난을겪음으

    로써형성해왔던“재해문화”(상권350)20)의상실에대해논평한다.전쟁전까지

    만해도재해에익숙히대처해왔던일본인은전후의평화속에서그능력을잃어

    버렸다는것이다.따라서대지진후의혼돈속에서사회를진정시키는역할을하

    는것은전시,전후의재난과궁핍을익히경험한“재난(災厄)세대”(상권382)로

    설정된다.

    1931년생으로그역시“재난세대”인작가는‘침몰’이라는비유를통해전후

    체제아래성립된기존의일본사회가붕괴할것으로예견했다.21)실제로이소설

    이출판된시점에일본은내우외환의위기에처했고전후의고도성장을지탱해

    19) 小松佐京・谷甲州, 「あとがき」, 『日本沈没 第二部』, 小学館, 2006. 권혁태,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265쪽에서 재인용. 강조는 인용자.

    20) 小松佐京, 『日本沈没』, 東京:小学館文庫, 2006, 350쪽. 앞으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권과 쪽수만 밝히기로 한다.

    21) 『일본 침몰』이 발표된 시점은 1973년이나 소설의 무대는 나리타국제공항(실제로는 78년 개항)과 간사이국제공항(실제

    로는 94년 개항)이 개항된 근미래이다. 등장인물인 와타리 노인의 나이로 추정해 보면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80

    년이다. 鳥羽耕史, 「小松佐京『日本沈没』とその波紋 ─ 高度成長の終焉から「回帰」まで」, 『日本文学』 11号, 2010. 2. 10, 18쪽. 이 논문을 소개해 주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조관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29

    온근간이흔들리고있었다.1972년8월15일닉슨대통령이금과달러의교환을

    정지함으로써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붕괴되고20여년동안1달러360엔의

    고정상장제를유지해온일본은달러의폭락으로다음해2월부터변동상장제로

    이행하게된다.또한1973년은경제위기에겹쳐자연재해도다발한불안한해이

    기도했다.1973년2월에는아사마야마(浅間山)가분화하고6월에네무로반도

    지진(根室半島沖地震)이발생했다.거기에10월에발발한제4차중동전쟁은전

    후체제붕괴의직격탄이되었다.석유가격이4배이상오르고물가가앙등했으

    며,주부들은화장지사재기에불이붙었다.이른바오일쇼크다.1935년생인사

    학자나카무라마사노리(中村政則)는오일쇼크당시에시부사와에이이치(渋沢

    栄一)22)의‘천벌론’(天譴論)을떠올렸다고회상한다.23)천벌론이란1차세계대전

    에승전한일본이전후의호황으로기고만장해져과욕을부린것에대한천벌로

    관동대지진이일어났다는,일종의자기반성적성찰이었다.나카무라가천벌론

    을떠올린것은오일쇼크가중동전쟁이라는외환(外患)때문만이아니라현실을

    직시하지못한수상다나카가쿠에이(田中角栄)의자연파괴적인‘일본열도개조

    론’정책에서비롯되었기때문이었다.

    국민이지금가장간절히희구하는것은과밀과과소의폐해를동시에해소하

    고,아름답고살기좋은국토를만들어장차불안이없고풍요하게살아가는것

    이다.그러기위해서는도시집중의물결을과감하게막아서민족의활력과일본

    경제의늠름한여력을일본열도의전역에고루뿌리는일이다.공업의전국적인

    재배치와지적(知的)집약화,전국신칸센과고속자동차도로의건설,정보통신망

    의형성등을지렛대로잘활용만한다면도시와농촌,태평양임해지대와일본

    해임해지대의격차는반드시해소시킬수있다.24)

    22) 대장성 관료 출신의 실업가 시부사와는 ‘일본자본주의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인물로 사회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관동대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대진재선후회’(大震災善後会)의 부회장이 되어 기부금 모금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23) 中村政則, 『戦後史』, 東京 : 岩波新書, 2005, 147쪽.24)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열도개조론』, 황명수 옮김, 일신사, 1972, 2쪽. 실제로 집필한 것은 다나카 자신이 아니라 다나

    카 내각이 수립된 후 통상사무차관이 된 고나가 게이이치(小長啓一)라고 한다.

  • 특집

    : 재해

    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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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비평 7호130

    즉,일본열도개조론이란대도시에집중된인구를지방으로분산하고농촌을

    개발하기위해실시된전국가적인토목공사였다.그러나이정책은결과적으로

    개발예정지에대한땅투기를초래했고지가상승에연동한급격한인플레이션

    으로말미암아1974년도일본경제는전후처음으로마이너스성장을기록했다.

    고마쓰의『일본침몰』은바로전후개발주의의막다른골목이된“일본열도개조

    론에대한가장신랄한반론”25)이었다.작가는개발이라는미명아래잘리고깎여

    부자연스럽게변화된국토의모습을대지진으로인한파괴에비유함으로써더

    이상의무모한개발은국가의해체를불러올뿐이라는교훈을남기고자했던것

    이다.

    인간무시,인명경시의할복전설을본떠서가미카제같은경제적발전을계속해

    온일본은세계에서제일무모한,세계에서제일인명을무시한전함같은대도

    시를만들고,세계시장을향해칼을빼어들고돌격했지만...끝내저거함‘야마

    토’와같이수많은인명을희생시킨옥쇄로끝났다.대체로민족의습성은한두

    번의실패로고쳐지는것이아니라20세기초러일전쟁때의요새공방전에서부

    터제2차대전을거쳐오늘날까지아주‘똑같은형태의실패’를거듭하고있다.

    일본이이뼈아픈교훈에서진정무엇인가를배우려만앞으로오랜시간이걸리

    고또몇번이고같은실패를반복할것이다.(하권,22~23)

    전전의가미카제특공대처럼고도성장의산업전사로살아온동세대의일본

    인에게도무모한집단주의가유전자처럼박혀있다고보는고마쓰는“민족의습

    성”에서벗어난새로운세대에게내일에의희망을기탁하는것처럼보인다.심

    해잠수함파일럿으로D-1계획(일본의지각대변동에관한조사)을위해활약하

    는주인공오노데라(小野寺俊夫)는“일본인으로태어났으면서도나라와민족이

    라든지,국가라든지에대해서어둡고질척한숙명적인유대같은것을전혀느끼

    25) 鳥羽耕史, 「小松佐京『日本沈没』とその波紋 ─ 高度成長の終焉から「回帰」まで」, 19쪽.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31

    지않”(하권171)는개인주의자로그려진다.전후민주주의와경제적풍요속에

    서태어난이새로운유형의청년들은“자신들을일본인이라고느끼기보다는우

    선‘인간’으로느끼고있고…….일본에서밖에살수없다고생각하지않기”때문

    에“지구상의어디를가든지자기는살아갈수있다고생각하는”(하권172)존재

    로그려진다.

    그런데고마쓰는개인주의를일본밖에서살아가기위한필수적인생존능력

    이나,그것이민족보다우선하지않는다고상정한다.그리고개인주의에대한이

    런몰이해는텍스트에균열을가져온다.D-1계획을완수한오노데라는약혼녀

    레이코(安部玲子)와스위스로이민을갈예정이었지만그녀가화산폭발로죽자

    고통을잊기위해불면불휴로인명구조에나선다.즉,작가는레이코를죽임으로

    써오노데라가개인주의를포기하고D-2계획(일본민족과그자산의해외이전)

    에가담하게만들지만그가아이를낳기위해결혼을결심했던여성을죽임으로

    써일본민족의재생산을기대할수없다는모순에빠지게된다.

    작가는그모순을해결하기위해또다른여성으로레이코를대신하는데1부

    의끝26)에서오노데라가구출해낸소녀마야코(摩耶子)에게그역할이부여된

    다.심각하게부상을입어의식이혼미한오노데라를보살피면서마야코는무인

    도가된섬에서자신의아들과교접해서자손을불려간다나바(丹那婆)의신화를

    떠올린다.그리고“나역시섬의피를이은여자이니까만일모두가죽고혼자남

    았대도살아갈거야.그리고누구라도좋아,씨를받아아기를낳아서혼자서라도

    키워볼테야”(하권388~389)라는결의를다진다.시베리아로가는철도에몸을

    싣고서쪽을향해달려가는두사람이유럽에서가족을이룰것이암시되지만일

    본인디아스포라가모계혈족사회로간다면일본민족자체가재정의되어야한다

    는또다른딜레마에빠지게된다.

    이처럼국토는상실되었더라도민족은영원하다는고마쓰의민족관은전후

    26) 고마쓰는 제1부 출판 이전부터 일본의 침몰 이후 일본민족의 방랑을 다룬 『일본 침몰 제2부』를 기획하고 있었고, 제2

    부는 2006년에 출판되었다.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32

    일본의영토관념과결합되면서내셔널리즘으로수렴되고만다.침몰이역설적으

    로확인해주는것은일본이주장하는영토의범위와일본민족의정의인것이다.

    한국과중국은멀쩡한데홋카이도와오키나와를포함하여‘가라후토’(사할린남

    부)와‘지시마’(쿠릴열도)까지전후일본정부가영유권을주장해온영토가섬하

    나남겨놓지않고모두바다속으로침몰하며,일본내의소수민족,예컨대아이

    누족이나재일교포에대한문제는소설어디에도언급되지않는다.따라서전후

    일본사회의붕괴라는『일본침몰』의비판의식은영토와민족을본질적인것으로

    상정함으로써내셔널리즘의회로에갇히게되고뒤에발표된영화,만화버전등

    에서원작은위기극복의민족서사로변형되고만다.

    예컨대모리타니시로(森谷四郎)감독의영화버전(1973)을살펴보자.「일

    본침몰」의시나리오작가하시모토시노부(橋本忍)는장편소설을영화로압축

    하는과정에서많은부분을축약할수밖에없어야마모토총리대신의비중을원

    작보다늘렸다고한다.27)이영화에서총리대신은일본민족을구원하기위해멸

    사봉공하는영웅으로그려지고정계와제계는각자의책무를분담하며사심없

    이협조한다.그런데2006년의리메이크판에서야마모토총리는화산폭발로사

    고사하고총리임시대행은외국으로도피하는것으로설정된다.즉2006년판은

    현실정치를반영하여총체적인국난속에서정치적중심까지상실된다면일본은

    어떻게될것인가를묻고있는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두버전에서국난의극복방법은크게다르지않다.일본인

    은다른민족과결정적으로다르기때문에어떤위기도극복할수있다는논리가

    전개되기때문이다.73년판에는소설에없는흥미로운장면이있다.호주수상이

    안전모를쓴야마모토(山本)총리의얼굴사진에“일본인은역시가미카제인가?”

    라는표제가달린『뉴스위크』를본다.페이지를넘겨보니총리와오노데라의목

    숨을건구조활동이소개되어있다.레이코를구출하기위해구조활동에뛰어든

    27) 「1973年版 「日本沈没」特集記事再録 ─ 映画「日本沈没」のイメ-ジを探って」,『キネマ旬報』, no. 1462, 2006年 7月下旬特別号, 53쪽.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33

    오노데라는최후의한사람을구해낼때까지일본을떠나지않겠다는각오를피

    력한다.수상은보좌관에게묻는다.“왜일본총리가가미카제특공대처럼결사적

    인지이해를못하겠네.이청년은새로운타입의가미카제인가?”이것이야말로

    고마쓰가경계했던일본민족의무모한습성이지만영화에서는위기를헤쳐나갈

    일본인의저력으로역전된다.태평양전쟁말기에미국함대를향해자폭공격을

    감행한가미카제특공대는전후서구에서종종일본인의불가해한무모함을조

    롱하기위해서쓰이는비유로자리잡았다.그러나영화는일본인의불굴의정신

    에서양인이압도당한다는식으로조롱을찬사로변용하고오노데라에게가미가

    제의이미지를오버랩함으로써서구화된신세대를내셔널리즘의회로속에포섭

    한다.

    이런상상력은2006년판에서도반복된다.이버전에서오노데라는일본침

    몰을막기위해D-3계획(N2폭탄28)을싣고잠수정과함께자폭)을감행한다.주변

    인들은그의죽음을국가와가족을위한어쩔수없는희생으로받아들이고본인

    도피할수없는자연재해의일부이기나한듯그것을당연히받아들인다.이같

    은발상이태평양전쟁말기일본인을강제적동원으로내몰았다는점을상기해

    볼필요가있다.2006년판에서는원작에묘사된오노데라의산뜻한개인주의는

    찾아볼수없고과거로회귀한듯“어둡고질척한숙명적인유대”가인물들을지

    배한다.이런점에서최신형잠수정이파괴되어오노데라가전시용퇴물이된생

    환이불가능한낡은잠수정으로D-3계획을완수한다는설정은이영화가복고

    적인내셔널리즘을조장하는불행한리메이크에지나지않는다는것을보여줄

    뿐이다.탑승원을위한구명장치가애초부터없었던가미카제전투기는자국의

    군인을확실히죽여주는역사상유래가없는무기였고결국그나라는전쟁에패

    하지않았던가.

    28) 시나리오에서 일본 침몰을 막을 유일한 수단은 핵폭탄으로 명시되었으나 제작비를 댄 TBS가 난색을 표명함에 따라

    가공의 병기 N2로 변경되었다.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34

    5. 우경화의 시대, 재난영화의 전방위적인 불안

    침몰붐으로부터33년이지난2006년에고마쓰사쿄는젊은SF작가다니코슈

    (谷甲州)와공동집필로속편『일본침몰제2부』를발표했다.여기에는전편에서

    전혀언급되지않았던‘다케시마’(독도)를기반으로‘일본해’(동해)위에‘메가플

    로트’라는인공섬을만들어일본을재건한다는이야기가전개된다.그런데청일

    전쟁이래의숙적이자,일본을앞지른경제대국중국이일본인의계획을방해한

    다.중국은동북아정세장악을위해북한을점령하고다케시마를탈취한다.출판

    뒤고마쓰는한라디오방송에서‘일본침몰제3부’의구상을언급했는데그내용

    은제2부에서살아남은일본인들이일본을재건하기위해우주개발을추진한다

    는것이었다.

    국토상실이라는가정은일본사회에경종을울린다는애초의취지를잃고

    속편에서는일본인의공격적인세계진출,우주개발을합리화해주는전제조건

    이된다.이같은변화는2000년대일본의우경화현상과맞물려있다.2001년에

    발족된고이즈미(小泉純一郎)내각은국제적으로,특히동북아시아와관련해서

    마찰을빚어왔고2006년은고이즈미수상이총재선거당시공약대로한국과중

    국정부의공식적인반대를묵살하고야스쿠니신사를참배한해이다.같은해도

    호에서「일본침몰」이리메이크되었고쓰쓰이야스타카(筒井康隆)의패러디소

    설「일본이외전부침몰」(日本以外全部沈没,1973)도영화화되었는데원작과

    30여년의시간차만큼이나두작품의각색은일본사회의이런변화와상관관계

    를보인다.

    먼저2006년판「일본침몰」을살펴보면,이영화는원작과73년판보다더자

    폐적이며적대적인내셔널리즘을보여준다.침몰을앞두고일본인난민을받아

    들이는각국의반응이텔레비전뉴스의보도화면으로스케치된다.원작과73년

    판에는한반도로의밀입국자는현지에서처벌받는다는해경의경고외에는한국

    과북한에대한언급이없다.그런데2006년판은“모든일본인이소멸할찬스다.

    무엇보다도사과와배상이먼저다”라고한글로쓴피켓을들고일장기를훼손하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35

    는한국인들의반일데모를보여준다.그리고엔화와일본국채를방기해버림으

    로써“일본을버린”미국과경제능력을잃은일본인의구제에소극적인유엔에

    대한분노가표출된다.

    히구치신지(樋口真嗣)감독은전작을“서민측에서본”침몰로각색했다고

    한다.29)영화에서침몰이공식화되자천황가는스위스로이주하고(원작에는있

    었으나73년도판에서는표현하지못했다)권력자와부자는해외로도피하지만서

    민들은정부의명령대로소개지를옮겨다니다가죽어간다.즉,이영화에표상된

    자폐적내셔널리즘은주변국가와국제사회로부터고립되는것에대한‘공포’뿐

    만아니라일본정부에대한‘불신’과양극화사회에대한‘불안’이뒤얽혀있다.

    이때히구치가대안으로제시하는것은가족이다.따라서원작과달리2006

    년판에서는레이코가고베지진으로부모를잃은소방구조기동부대(hyper

    rescue)대원으로나오고오노데라와함께어린소녀미사키를구출하여유사가

    족을이룬다는이야기가플롯의중심축이된다.그런데문제는가족애가보편적

    휴머니즘으로확장되는것이아니라기리(義理)와닌조(人情)의관습적인딜레

    마속에서내셔널리즘의자양분이된다는점이다.오노데라에게는미사키와레

    이코와함께유럽으로갈수있는기회가있지만레이코는그것을거절한다.그녀

    는고아인자신을키워준고모와피붙이같은동네사람들이라는대가족을남겨

    두고혼자서떠날수없기때문이다.오노데라는그녀를통해더큰사랑을깨닫

    고사랑하는사람들을지키기위해자폭하는것으로그려지는데그과정은매우

    감상적으로표현되지만그다지설득력은없다.이석연치않은결말을영화의결

    점으로평가한한평론가는오에겐자부로의말을빌려“친구나가족,국가를위

    해목숨을버려도좋다는발상이얼마나잔혹한강제를초래하는가”를비판한바

    있다.30)

    한편,「일본이외전부침몰」은TV,라디오,패러디영화등서브컬처방면에

    29) 増當竜也, 「樋口真嗣 監督 インタビュ-」, 『キネマ旬報』 no. 1462, 2006年 7月 下旬特別号, 40쪽.30) 樋口尚文, 「樋口の異常な愛情/または樋口はいかにして旧作への耽溺を越え新作を愛するようになったか」, 『キ

    ネマ旬報』 no. 1462, 2006年 7月下旬特別号, 47쪽.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36

    서활약해온가와사키미노루(河崎実)

    의감독,각색으로만들어진저예산영

    화이다.쓰쓰이의원작은전지구적인

    지각변동으로티베트고원과일본이외

    의모든육지가침몰하여외국인들이

    문명국인일본으로몰려온다는이야기

    이다.각국의정상들은일본수상에게

    영유권을달라고사정하나일본정부는

    3년이지나도일본에동화되지못한외

    국인을국외로추방하는극단적인방침

    을취한다.밀입국외국인은자위대와

    아이누의손을빌려학살되고이와중

    에도냉전은계속된다.일본이침몰을면한것은중국대륙에올라가있기때문이

    라는것이판명되자김일성은한반도도중국대륙지괴에있어서가라앉았다며영

    토권을주장한다.듣고있던박정희와인도네시아의수하르토,남베트남의구엔

    반티우,캄보디아의론놀이김일성에게달려든다.달표면의소련기지를미국

    우주비행사들이습격했다고격분하는브레즈네프에게닉슨은자기는절대로모

    르는일이라고잡아뗀다.그러나5억의인구가일본의자원을고갈시키고환경을

    오염시키는가운데일본이무사한것은다만일시적인현상일뿐이라는것이밝

    혀지고일본의침몰과함께인류는멸망하고만다.

    이처럼원작은냉전과환경오염,내셔널리즘이인류의멸망을불러올것이

    라는주제를담은패러디소설이지만“내셔널리스트적상상력에이르는수로(水

    路)를열었다고보는것도가능하다.”31)2006년,우경화된사회분위기속에서만

    들어진영화「일본이외전부침몰」의상상력은한층우편향되었다.가와사키감

    독은시간적배경을고이즈미수상과아베(安部晋三)관방장관의이름을합친듯

    31) 鳥羽耕史, 「小松佐京『日本沈没』とその波紋─高度成長の終焉から「回帰」まで」, 22쪽.

    「일본 이외 전부 침몰」(2006) 포스터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37

    한야스이즈미(安泉)수상이집권하는2011년의근미래로옮겼다.일본이외모

    든국가가침몰하자각국지도자들이일본으로몰려들어야스이즈미수상의비

    위를맞춘다.중국주석은“침략의역사,중국과함께가라앉았다”고하고한국대

    통령은식민지의과거는“물에흘려보냈다”(水に流しました,일본어로없었던것

    으로하자는뜻)고한다.언어유희를빙자한과거사왜곡은계속된다.미국인유엔

    사무총장은아메요코(アメ横)의‘아메’는아메리카를의미한다며우에노공원을

    미국령으로해달라고조르고총리는‘아메’는사탕을의미할뿐미국과관계가없

    다고대답한다.한편,일본에온할리우드스타들은일본에서일터를구하려고혈

    안이된다.방송사에서는그들을고용해외국인을뭉개버리는괴수시리즈를유

    행시킨다.일본사회전반에외국인혐오증이확산되고정부는GAT(GaijinAttack

    Team)를설치하여외국인범죄자를사냥한다.

    냉전이공식적으로종결된상황에서원작의주제는상당히희석될수밖에

    없는데영화는고이즈미총리집권이후서브컬처문학의유행주제가된북한때

    리기32)로그것을대신하려한다.김일성은테러를일으켜야스이즈미수상과각

    국정상들을인질로잡고점령을선언한다.동시에그의군대는GAT를접수하려

    하지만인질로잡고자했던방위청장관이“일본은일본만의것이다”라며자폭해

    버려실패한다.그러나중국대륙에올라가있던일본이침몰하게되자무의미한

    싸움도멈출수밖에없다.영화는“세계가가라앉기직전에처음으로평화가찾아

    온순간이었다”며추상적인평화주의로끝을맺는다.

    「일본이외전부침몰」에서일본영화의지성을본것같다는견해33)도있지

    만이영화의니찬네루34)적익살을일본사회에대한풍자로보는것은무리인듯

    하다.황당무계한코미디라는안전판을담보로쇼비니즘과제노포비아를마음껏

    배출하고있다고보는편이더사실에가깝지않을까?“다케시마,센카쿠쇼토,북

    32) 북한이 일본영토를 점령하거나 테러를 일으킨다는 내용의 후쿠이 하루토시의 『망국의 이지스』(亡国のイ-ジス, 1996)

    나 무라카미 류의 『반도에서 나가라』(半島を出よ, 2005) 등의 소설, 혐한 만화 등이 이 영화의 소스인 것으로 보인다.

    33) 四方多犬彦, 『日本映画と戦後の神話』, 288쪽.34) 니찬네루(2チャンネル)는 일본의 인터넷 익명 게시판으로 “2ちゃん”, “2ch” 등으로 표기된다. 넷우익(ネット右翼)의 온

    상지이자 일본의 대표적인 혐한 사이트 중 하나이다.

  • 특집

    : 재해

    와 일

    본인

    일본비평 7호138

    방영토는일본의영토이기때문에영화에서는침몰하지않는다”35)고했던가와

    사키감독은각국대사관에영화시사회초청장을보냈지만아무도참석하지않

    았다고우스갯소리를했다.36)그가무엇을확인하고싶었는지알수없지만적어

    도그일화는「일본이외전부침몰」의상상력이국제사회에서일본의고립이라

    는불안에대한반작용에지나지않다는점을확인해준다.

    6. 결론을 대신하여 : 3・11은 일본영화를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가?

    영화란기본적으로폭력적인미디어이다.37)재난영화에익숙해진오늘날의관객

    은단지진실을알기위해서가아니라공포와연민,비애와연대감같은감정을

    기대하며폴그린그래스의「플라이트93」(2006)나올리버스톤의「월드트레이

    드센터」(2006)를보는것이다.38)더욱이상업영화제작자들은아직도생생한인

    류의비극을관객앞에스펙터클로제공하는무신경과더불어각색이라는이름

    하에많은것들이용서된다고생각하는나름의직업관을갖고있다.

    따라서우리는재해의진실을알기위해서다큐멘터리작가들의양심에더

    욱기댈수밖에없는데,종종그들의초기대응은무의미에가까운결과를낳기도

    한다.동일본대지진이발생한지약2주뒤에피해지를촬영한모리모토슈이치

    (森元修一)의「메가쓰나미의뒤」(大津波の後),오쿠보유이(大久保愉伊)의「망

    치소리」(槌音)가바로그런예에해당한다.모리모토는영화적오브제로서비일

    상적인풍경이가진매력에빠져들지않도록“쓰나미로파괴된이장소에는사람

    이있었다”라고계속되뇌어야했음을고백했다.오쿠보역시도저히고향사람들

    35) 권혁태,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267쪽.

    36) 「日本以外全部沈没 DVD 特典 音声解説」, 東京 : 角川ヘラルド映画株式会社, 2007.37) 이에 대해서는 군사기술로서의 영화의 기원을 밝힌 폴 비릴리오의 『전쟁과 영화: 지각의 병참학』을 참조. 폴 비릴리오,

    권혜원 옮김, 『전쟁과 영화: 지각의 병참학』, 한나래, 2004.

    38) 기틀린은 9.11 테러 사건에서도 대중이 공포, 슬픔, 연민, 안심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이를 통해 연대감을 형성하는 제

    의에 참여하기 위해 TV를 시청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토드 기틀린, 남재일 옮김, 『무한 미디어: 미디어 독재와 일상의

    종말』, Human & Books, 2006, 17쪽.

  •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139

    과자기가족을인터뷰하거나그들에게카메라를들이댈수없어서마을을돌아

    다니며풍경만을촬영했다고한다.39)그같은고백에서우리는타인의고통을응

    시하는것을부적절한태도로여긴두다큐멘터리작가의윤리적고민을읽을수

    있다.그러나타인의고통을격리시키는카메라는결국우리의경험또한격리시

    키게된다.그리고우리는이런단절앞에서아무것도할수없다는무능함을느

    끼게될뿐이다.

    동일본대지진의일주기를넘긴올해에는다큐멘터리뿐만아니라극영화에

    서많은작품들이만들어졌고각종국제영화제에서도상영될예정이다.민감한

    주제를영화화하기엔너무이르다는반감이잔존하는가운데상업영화와TV쪽

    은3・11의그림자를재빨리거두어내고있다.그렇기때문에유래없는트라우마

    와휴유증을남긴이국가적인재해를일본영화가어떻게반영할것인가라는질

    문은더욱긴요해진다.아마도일본작가들은3・11이후에만들어진,그리고만들

    어갈모든영화에서그에대한대답을요구받을것이다.

    39) Shuichi Morimoto & Yui Okubo, 「映画 『大津波の後』『槌音』公式サイト」, http://fartheron.soragoto.net/intro.html 참조.

  • 일본비평 7호322

    ABSTRACT

    계엄령에 대하여 : 관동대지진을 상기한다는 것 | 도미야마 이치로

    투고일자 : 2012년 5월 21일 | 심사완료일자 : 2012년 6월 7일 | 게재확정일자 : 2012년 7월 31일

    구제의법을내걸고개입하는국가는동시에구제를신청하지않는사람들을감시하

    고진압하는국가이기도하다.전자는법의갱신으로,후자는그갱신을수행하는불

    합리한힘으로존재한다.위기란이러한힘이현세화되는사태가아닌가?이글에서는

    이러한틀을통해작년3월11일이후,대재해를계기로진행중인지금의위기와이른

    바‘오키나와문제’를중첩시켜논의하려했다.그러나그것은오성적으로그려진일본

    이라는국가시스템에서볼때오키나와와후쿠시마가같은희생자라는유사성의해

    설이아니다.법과관련된불합리한힘에대한감지력을통해획득된‘바뀔가능성이

    있는현재’(“atransformativepresent”,R.Solnit)로,굳이말하자면폭력의예감과함께

    발견되는미래로사람들을연결하는것을사고하기위해오키나와를문제삼는것이

    다.그와관련된논의의기점으로서1923년의관동대지진과거기에서등장했던계엄

    령을검토한다.이를위해우선,지진재해나계엄령과관련이없어보이는히로쓰가즈

    오의1926년의소설「떠도는류큐인」에초점을맞췄다.

    주제어 :계엄령,오키나와문제,폭력,관동대지진,히로쓰가즈오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 : 「고지라」와 「일본침몰」을 중심으로 | 김려실

    투고일자 : 2012년 5월 15일 | 심사완료일자 : 2012년 6월 8일 | 게재확정일자 : 2012년 7월 31일

    이글에서는일본영화가재해를어떻게포착/표상해왔는가에주목하여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변용을「고지라」시리즈와「일본침몰」(1973,2006),「일본이외모두침

    몰」(2006)을중심으로논한다.특히이영화들은현실에서발생한재해를반영하면서

    일본인의근원적이며일상적인공포를표상한다.전후일본의괴수영화에는표면화되

    지않은경우라해도핵전쟁이라는잠재적인재앙에대한공포가깔려있다.예를들면

    1954년제5후쿠류호사건을반영한「고지라」(1954)는일본인에게“생태학적관점의

    반핵영화”로수용되어왔다.그러나이괴수가퇴치시켜도또돌아온다는것은미국의

    핵우산아래있는일본인의잠재적공포가그만큼뿌리깊다는것을의미한다.한편인

    플레이션과오일쇼크로일본경제가위기에처한70년대는일본영화계의스튜디오시

    스템이몰락한시기와겹친다.「일본침몰」(1973)은‘침몰’이라는비유를통해전후체

    제아래성립된기존의일본사회가붕괴할것으로예견한고마쓰사쿄의전설적인베

    스트셀러SF를원작으로한다.그러나원작의비판의식은영토와민족을본질적인것

  • 국문초록

    323

    으로상정함으로써내셔널리즘의회로에갇히게되고뒤에발표된영화,만화버전등

    에서원작은위기극복의민족서사로변형되고만다.「일본침몰」은일본인은다른민

    족과결정적으로다르기때문에어떤위기도극복할수있다는논리로서구화된신세

    대를내셔널리즘의회로속에포섭한다.2006년에리메이크된「일본침몰」과패러디

    「일본이외전부침몰」(2006)은일본의우경화현상과맞물려더자폐적이며적대적인

    내셔널리즘을보여준다.이들영화에는주변국가와국제사회로부터고립되는것에

    대한‘공포’뿐만아니라일본정부에대한‘불신’과양극화사회에대한‘불안’이뒤얽혀

    있다.3・11동일본대지진의1주기가지난시점에서그것을재현한영화가생산되는

    가운데이국가적위기가일본영화를어떻게변모시킬것인지주목된다.

    주제어 :재난영화,내셔널리즘,고지라,일본침몰,일본이외전부침몰

    ‘지진 예보’의 꿈과 현실 : 일본의 지진 예측 연구에 관한 역사적 고찰 | 김범성

    투고일자 : 2012년 5월 20일 | 심사완료일자 : 2012년 5월 29일 | 게재확정일자 : 2012년 7월 31일

    이글에서는,역사적인관점에서일본의지진예측연구에대해살펴본다.지진의발생

    을예측하여이로인한피해를줄이고자하는것은일본지진학의여명기부터존재한

    희망이었으나이를실현하는것은쉽지않은일이었고,오히려이로인해사회적인문

    제가발생하기도하였다.한편1923년의관동대지진을계기로물리학자들을중심으

    로지진연구가재편되는과정에서지진예측보다는기초연구가중시되게되었다.그

    러나지진예측에대한열망이사라진것은아니었고,지진학자들이1962년에발행한

    보고서를바탕으로1965년도부터는지진예측이국가적인사업으로추진되기시작하

    였으며,1978년에는이와관련한법률도제정되었다.한편일부과학자들은일찍부터

    지진예측에대해과학적인근거가박약하다고비판을거듭해왔고,결국1995년의고

    베지진이계기가되어30년간전개되어온사업에대한재검토가이루어졌다.그러나

    현재에도일본사회에는지진의발생을조금이라도빨리포착하고자하는희망이남아

    있으며,시민의생활과밀접한관련을지닌지진예측의문제는과학과사회,정치가

    얽혀있는영역을가로지르고있다.

    주제어 :지진예측,지진학,일본,과학과정치

    3・11 이후의 일본의 원자력과 한국 | 전진호

    투고일자 : 2012년 5월 30일 | 심사완료일자 : 2012년 6월 18일 | 게재확정일자 : 2012년 7월 31일

    3・11이후일본은원자력정책의전면재검토를선언하였고,독일등유럽국가들도원

  • 일본비평 7호330

    ABSTRACT

    I paid attention to the martial law that appeared in the aftermath of the

    1923 Great Kanto earthquake as the starting point for the discussion. The

    focal point of the study is Hirotsu Kazuo’s novel, Samayoeru Rukyujin,

    published in 1926, which seems to have little relevance to the earthquake

    or the martial law itself.

    Keywords : Martial Law, Okinawa Issue, Violence, Great Kanto Earthquake,

    Hirotsu Kazuo

    Nationalistic Changes of Japanese Disaster Movies : Focusing on Godzilla and Japan Sinks_ KIM Ryeo Sil

    In this paper, I examine nationalistic changes of Japanese disaster

    movies, Godzilla(1954), Japan Sinks(1973, 2006), and The World Sinks

    Except Japan(2006) focusing on how Japanese cinema has captured

    and represented disasters. These movies especially represent Japanese

    fundamental and ordinary fear reflecting actual disasters. Japanese monster

    film is involved with fear for the potential catastrophe, a nuclear war

    even if it does not come to surface. For example, Godzilla reflecting the

    Fifth Hukuryumaru incident of 1954, an incident of radiation exposure, is

    accepted as “anti-nuclear movie in the ecologic point of view.” However,

    the impossible eradication of Godzilla and its return mean that Japanese

    potential fear is deep-rooted under American nuclear umbrella. On the

    other hand, inflation and the first oil shock caused the economic crisis in

    1970’s and it led to the crash of studio system. Japan Sinks is based on

    the bestselling science fiction written by Sakyo Komatsu, who predicted

    existing Japanese society established under the postwar system would be

    collapsed, by using “sinking” as a metaphor. However, by positing that

    the land and the people have the intrinsic value, the critical consciousness

    of the original is stuck in the nationalistic circuit. In the film version and

    comic version, the original is changed into an ethnic narrative of how to

    overcome the national crisis. Japan Sinks turns westernized young people

    over to the nationalistic circuit through the logic that the Japanese can

    overcome whatever the crisis is because the Japanese is crucially different

    from other people. Remake version of Japan Sinks and The World Sinks

    Except Japan based on a parody of the original fiction, made in 2006, show

  • 영문초록

    331

    more autistic and hostile nationalism. In the movies, ‘fear’ for being isolated

    from its neighbouring state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 deep

    ‘distrust’ of the government, and ‘anxiety’ over the polarized society are

    interwoven. Since the first year anniversary of 3.11 the great east Japanese

    earthquake has passed by, we already have several films which reflect it.

    Now it is time to think over how this national crisis has changed and will

    change Japanese cinema.

    Keywords : disaster movie, nationalism, Godzilla, Japan Sinks, The World

    Sinks Except Japan

    A Historical Review of Earthquake Prediction in Japan_ KIM Boum Soung

    This paper takes a historical approach in its review of the scientific quest

    for earthquake prediction in Japan, and the socio-political terrains where

    these investigations were deployed. When seismology was established

    in Japan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problem of earthquake prediction

    interested some forerunners of the newborn science. However, as

    seismicity is located underground, investigations proved difficult and

    predictions could sometimes cause social panic. In the aftermath of the

    Great Kanto Earthquake of 1923, a methodological turn to geophysics led

    Japanese scientists to make basic rather than practical investigations. It was

    in the 1960s that the desire for prediction was revisited, promoting a new

    national project crossing boundaries between scientific and socio-political

    realms. While criticisms of the “inability” to realize the goal have continued,

    Kobe’s tragedy of 1995 stimulated critics of this branch of science to

    emphasize basic research, similar to what their predecessors had argued

    seven decades ago. Thus, the history of earthquake prediction in Japan

    elucidates how scientific and socio-political cultures have interacted on the

    subject of natural disasters and their mitigation.

    Keywords : earthquake prediction, seismology, Japan, science and politics

    Japan’s Nuclear Energy Policy and Korea after 3.11 _ JEON Jin Ho

    Japan after 3・11 has declared a comprehensive re-examination of the

    nuclear energy policy, and European nations like German are also making

    일본 재난영화의 내셔널리즘적 변용1. 재해와 일본영화2. 전전(戦前) 일본의 진재(震災)영화와 전쟁영화3. 「고지라」에 반영된 핵 공포4.「일본 침몰」의 디아스포라적 상상력?5. 우경화의 시대, 재난영화의 전방위적인 불안6. 결론을 대신하여 : 3·11은 일본영화를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