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학 연구 · 2019-11-06 · 1) the roots of hinduism- the early aryans and the indus as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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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학 연구 제21호(2019년 4월) 한국요가학회 한국요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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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가학 연구제21호(2019년 4월)

    한국요가학회

    한국요가학회

  • Korean Society of Yoga Studies

    President Cho, Ok-Kyeong(Seoul University of Buddhism)

    The Journal of Yoga StudiesNo. 21. (April, 2019)

    Editor in Chief Park, Kwangsoo Wonkwang University

    Editors Kim, Hyoung jun Hankuk University of Foregin University

    Kim, Seong-Cheol Geumgang University

    Lim, Seung-Taek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Cho, Ok-Kyeong Seoul University of Buddhism

    Jung, Mi-suk Dongbang University

    Kwak, Mi-Ja Choonhae College of Health Sciences

    Professor Park, Kwangsoo

    Office of the Editorial Board, Korean Society of Yoga Study

    Kyohak College, Wonkwang University

    Iksandaero 460, Jeonbuk

    South Korea (54538)

    Office Tel.: +82-63-850-7169

    Cellular Phone: +82-10-9866-7974

    Email : [email protected]

    Homepage: www.k-yoga.org

    한국요가학회

  • 4

    │권두언┃

    개나리와 벚꽃이 한창이더니 눈처럼 꽃잎들이 떨어지고 진달래

    와 철쭉의 계절이 왔습니다. 세상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혼

    란스럽고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요가를 사랑

    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은 혼란의 중심에 서서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

    시키고 다독여야 할 때입니다.

    요가학 연구가 어느새 21호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도

    21세가 되면 청년이 됩니다. 요가학 연구도 매호 마다 조금씩 성장

    하여 이제 의젓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논문의 질도 현저

    하게 향상되었다는 점은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기에는 많은

    격동이 있기 마련입니다. 요가학 연구도 그런 격동을 맞이하듯 양질

    에 상응하는 논문 수의 팽창이 아쉽습니다. 요가학자와 전문가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번 호에는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자아 탐구를 중심으

    로”(김형준 교수), 아즈나 짜끄라의 뇌생리학에 관한 고찰(조옥경 교수),

    비하르요가 전통의 차크라 수련체계 및 원리(곽미자 교수)라는 제목

    으로 세 편의 옥고가 초대되었습니다. 두 편의 논문이 차크라에 관

    한 내용이라서 대중들도 많은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또한 요가와

    힌두의식의 관련성을 자아 탐구라는 주제로 풀어낸 논문 또한 흥미

    4

  • 5

    롭습니다.

    이제 대중들은 신체 위주의 요가에서 마음과 영혼 중심의 요가

    로 주의를 돌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자칫 오도되기 쉬운 주제

    를 학문적으로 탐구하여 대중들에게 올바로 알리는 것은 우리 전문

    인들의 당연한 의무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의 탄생은 더

    욱 뜻깊습니다.

    바쁘신 가운데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논문을 만들어주신 저자 분

    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호의 탄생을 위해 뒤에서 아낌없

    는 노고를 쏟아주신 편집위원장님을 비롯한 편집위원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 요가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노력해주신 여러

    교수님들과 전문연구원 분들, 그리고 학생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스승님들의 가피로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2019년 4월 25일

    한국요가학회 학회장

    서울불교대학원 대학교 조옥경 두손모음

    5

  • │목 차 (제21호, 2019년 4월)│

    ■ 권두언 / 조옥경(학회장)·4

    연구 논문

    김형준(한국외대)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자아 탐구를 중심으로 _9

    조옥경(서불교) 아즈나 짜끄라의 뇌생리학에 관한 고찰 _38

    곽미자(춘해대) 비하르요가 전통의 짜끄라

    수련체계 및 원리 _68

    한국요가학회 회칙 회칙과 규정 _99 심사 규정 _108

    투고 규정과 원고 작성 규정 _112 연구윤리규정 _122

    휘보 _128 후원금 현황 _130 기간호 목록 _131

    임원 _139

  • 연구 논문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자아 탐구를 중심으로*

    김형준(한국외국어대학교)[email protected]

    국문초록

    인도사상에서 자아에 관한 본격적인 탐구는 우빠니샤드에서 비롯되

    었다. 우빠니샤드 이전의 제식주의적인 브라흐마나스 시대에는 주어진

    명령(dharma)에 대한 준수가 주된 의무였다. 여기서는 명령과 금지의 규

    율만 잘 따르면 된다. 따라서 자아에 관한 철학적 물음은 그다지 중요하

    지 않았다. 하지만 지식중심의 우빠니샤드에 이르면 자아에 관한 물음

    이 주된 과제로 등장한다. 뿌루샤 혹은 아뜨만에 대한 개념에 대한 완전

    한 파악은 그 자체로 요가에서 말하는 깨달음 혹은 해탈과 일치한다.

    요가는 고대 인도에서 비롯된 육체적, 심적, 정신적 수행으로 그에 맞

    는 다양한 실천 수행을 통해 완전한 절대적 자유 또는 깨달음에 이르

    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다. 요가 수행의 접근방법은 크게 몸(śarīra) 마음

    (manas) 그리고 영혼(ātman)의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몸의

    * 이 논문은 2017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S1A6A3A02079749).

  • 10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요가는 아사나와 호흡등 주로 신체와 연관된 수행방법을, 다음으로 마음

    의 요가는 내면의 의식을 탐구하는 수행법을, 마지막으로 영혼의 요가는

    인간의 본질인 자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수행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요가는 대부분의 인도철학이 이론중심인데 비해 주로 실천 수행의

    측면을 강조한다. 그 때문에 실천 수행의 근간이 되는 이론은 기존의 사

    상을 따른다. 그와 같은 특징 때문에 요가는 기본적으로 초기에는 상캬

    그리고 후대에는 베단따 사상을 이론적 기반으로 삼는다. 상캬의 경우

    는 주로 육체적 고행을 의미하는 고행주의를 기반으로 육체와 정신 양

    자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로 육체가 아닌 정신 혹은 의식을 통해 해탈을

    추구한다. 이것은 뿌루샤가 아니라 쁘라끄리띠 혹은 육체가 그 활동을

    완전히 멈추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초기의 상캬의 사상이 후기의 베단따 사상으로 대체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한 딴뜨라에서는 역으로 몸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된

    다. 인간의 몸은 단순히 살로 이루어진 죽음과 고통의 산물이 아니라 불

    멸의 신체 또는 빛으로 이루어진 육체이다. 그러므로 몸은 상캬처럼 무

    시되어서는 안되는 해탈의 중요한 수단이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몸과 마음을 벗어난 궁극실재로서의 자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모든 것이 포괄된 때로는 그것조차 초

    월한 진정한 의미의 절대적 자아를 추구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주제어 : 요가, 상캬, 베단따, 딴뜨라, 아뜨만, 요가수뜨라.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11

    Ⅰ. 들어가는 말

    요가는 고대 인도에서 비롯된 육체적, 심적, 정신적 수행으로 그에 맞

    는 다양한 실천 수행을 통해 완전한 절대적 자유 또는 깨달음에 이르

    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다. 여기서 고대 인도라는 용어에서 고대는 베다

    이전의 인더스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더스 문명에 나타난 문자에

    대한 해독능력이 아직까지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자세하고 구체

    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1) 하지만 테라코타나 인장들에 들어있는 오늘

    날의 것과 유사한 몇 가지 아사나의 형상들과 쉬바 신상으로 유추되는

    모습의 유물들을 통해 우리는 그 당시에 요가가 존재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요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과 특

    징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와는 달리 베다문헌에 나

    타나는 무니(muni) 혹은 께쉰(keśin) 그리고 따빠스(tapas) 등의 용어들을

    1) Asko Parpola는 그의 저서 The roots of Hinduism- The Early Aryans and the Indus Civilization(2015)에서 고대 인도 언어에 대한 기원을 다른 언어들과 비교하면서 그 뿌리를 추적하고 있다. 아울러 고고학적 사료들을 통해 인더스문명에 대한 기원을 추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더스문자에 대한 해독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1. 들어가는 말

    2. 자아의식의 출발

    3. 요가에서 자아의 의미와 발전

    4. 자아탐구의 발전

    5. 나가는 말

    목차

  • 12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통해서도 요가의 기원의 한 부분이라고 불리는 비베다적 전통의 수행자

    와 수행방식을 더듬어 볼 수 있다. 그러한 비베다적 전통은 베다적 전통

    의 제식주의 또는 브라흐마니즘과는 다른 고행주의(ascetism) 또는 슈라

    마니즘(śramaņism)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2) 이와 같은 흐름은 후기 베다

    시대를 거치면서 양자의 사상과 수행방식이 서로 융합되고 이후 빠딴잘

    리(Patañjali)의 요가수뜨라(Yoga-Sūtra)를 통해 하나로 정리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요가의 기본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다면 요가의 궁극 목적으로서의 절대적 자유 또는 깨달음은 어

    떠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요가 수행의 접근방법은 크게 몸(śarīra)

    마음(manas) 그리고 영혼(ātman)의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몸의 요가는 아사나와 호흡 등 주로 신체와 연관된 수행방법을, 다음으

    로 마음의 요가는 내면의 의식을 탐구하는 수행법을, 마지막으로 영혼의

    요가는 인간의 본질인 자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수행방법이

    라고 볼 수 있다.3) 이 세 가지는 각기 독립된 방법으로 다루어지거나 그

    렇지 않고 몸─마음─영혼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방법으로 생각해도 아무

    런 문제가 없다. 만일 그것을 후자의 단계적 방식으로 간주한다면 궁극

    목적은 바로 영혼 혹은 자아에 대한 올바른 자각과 그에 대한 실현이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우빠니샤드에서 비롯되어 이후 인도사상과 요가

    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절대적 동일성으로 나

    2) 물론 슈라마니즘은 후기 베다 시대 불교 및 자이나교 그리고 짜르바까의 비정통 사상의 흐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인더스 또는 전기 베다 시대의 따빠스 고행자들과 반드시 일치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그것을 아타르바 베다에 나타나는 브라뜨야(vrātya)와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요가전통(김형준 옮김) pp.265-269을 참조할 것.

    3) 이것은 또한 까르마요가와 갸나요가로의 구별로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몸의 요가는 주로 까르마(karma) 요가, 마음의 요가 그리고 영혼의 요가는 각기 갸나(jñāna)요가에 적용시킬 수 있지만 특히나 후자의 경우 갸나가 순수한 지적 탐구에 한정되는 경우에는 주로 마음의 요가 그렇지 않고 지적 탐구 너머의 문제를 다룬다면 오히려 일종의 초월의 요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구체적인 구별과 그에 대한 명칭의 문제는 크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13

    타난다. 아드바이따 베단따 전통에서는 1) 쁘라갸나(Prajñāna)는 브라흐만

    (Brahman)이다4), 2) 아뜨만이 브라흐만이다5), 3) 네가 그것이다6), 4) 내가

    브라흐만이다7)의 네 가지 진술을 위대한 말씀(Mahāvākya)이라고 정리하

    면서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나타내는 핵심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절대

    적 일원론의 관점은 다시 학파에 따라 브라흐만은 실재이고, 현상계로서

    의 세계는 미혹이라고 간주하거나 아니면 양자가 모두 실재이거나 아니

    면 양자 모두를 초월하거나 하는 것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고대 인도에서부터 현대 인도에 이르기

    까지 요가의 발전은 바로 절대적 일자 혹은 자아에 대한 깨달음을 위한

    의식의 변화과정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또한 각 학파로의 분파 및 발

    전은 바로 그와 같은 자아에 대한 의식의 변화과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가 중심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요가 적어도 요가 사상의 발전과정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요가의 발전과정 속에서

    자아에 대한 의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그럼에도

    여기서는 모든 발전과정을 세세하게 모두 살펴볼 수 없기 때문에 크게

    상캬 사상이 토대가 되는 전반기의 요가와 베단따 사상을 이론적 근간

    으로 삼는 후기 요가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 자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다.8)

    4) Aitareya Upaniṣad 3.3; prajñānam brahma.5) Mandukya Upaniṣad 1.2; ayam ātmābrahma.6) Chāndogya Upaniṣad 6.8.7; tat tvam asi.7) Brihadaranyaka Upaniṣad 1.4.10: aham brahmāsmi. 8) 요가의 발전과정을 시기적으로 나누는 기준은 일반적으로 빠딴잘리의 요가수뜨

    라를 기준점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서 고전 요가의 근간인 요가수뜨라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전기 이후를 후기로 삼는 것이 일반적인 구분이다. 하지만 만일 사상적 이론적 관점에서 그것을 분류한다면 요가수뜨라를 기준점으로 삼는 데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왜냐면 그와 같은 관점에서는 크게 샹꺄와 베단따 중심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기준은 딴뜨라 요가를 기준으로 전후를 구분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관점을 따르도록 한다.

  • 14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2. 자아의식의 출발

    인도에서 자아에 관한 물음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까? 물

    론 우리의 추론에 의하면 멀리 인더스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비브

    라흐마니즘적 특성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문헌상 본

    격적으로 그것이 나타나는 시기는 후기베다시대로 이어지는 우빠니샤드

    (Upaniṣad)시대라고 할 수 있다. 찬도갸 우빠니샤드(Chāndogya Upaniṣad)

    에서 나라다(Nārada)는 스승을 찾아가 베다와 부속학문 등등 모든 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오직 자아인 아뜨만(ātman)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9) 실제로 우빠니샤드는 제사의식의 기술과 의미 파

    악을 주된 목적으로 두고 있던 이전의 베다문헌과는 달리 순수 자아로

    서의 아뜨만에 집중하는 의미있는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10) 그렇다면 자

    아로서의 아뜨만은 무엇을 의미할까? 블랙(Black)에 의하면11) 베다문헌에

    서 아뜨만이라는 용어는 몇 가지 다른 의미와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초의 베다적 자료에 의하면 아뜨만은 ‘자아’를 의미하는 재귀대명사였

    으며 계속해서 대명사로 사용되다가 후기 브라흐마나스(Brāhmaṇas)와 초

    기 우빠니샤드 시대에 와서 몸과 영혼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갖게 되

    고 때로는 모든 실재의 기저가 되는 존재론적 원리를 나타내기도 하였

    다. 우빠니샤드에 와서 아뜨만은 뿌루샤(Puruṣa)와 쁘라자빠띠(Prajāpati)

    의 우주적인 몸(cosmic body)의 특징을 나타내기도 한다.12) 만일 이와 같

    9) Chāndogya Upaniṣad 7.1.2-3 참조.10) Black Brian(2017), The Character of Self in Ancient India- Priest, Kings and

    Women in the Early Upanisads,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p.1 참조.11) Black Brian(2017), p.7.12) Black Brian(2017), p.8. 그는 이에 대해 Aitareya Upaniṣad에 있는 아뜨만이 뿌

    루샤의 몸으로부터 우주를 창조했다는 창조신화를 예로 들고 있다.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15

    이 아뜨만의 몸 혹은 신체의 의미로 본다면 후대의 자아로서의 의미와

    모순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만일 이것을 단순한 몸

    이 아니라 고대인의 사고방식 속에서 존재 혹은 핵심의 의미로 본다면

    아뜨만은 충분히 물질로서의 신체나 몸이 아닌 의식 또는 영혼의 특징

    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 있어서 몸이란 오늘 날

    형이상학적이고 이성적 또는 물리학적 의미의 물질로 이루어진 몸 그

    자체가 아니라 단순히 현존하는 몸을 의미하며 그것은 나의 모든 생각

    이나 감정이 표출되어 나오는 존재였다고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

    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아뜨만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몸 안에 거주하

    면서 육체가 죽음을 맞이해도 그것은 죽지 않고 윤회의 관점에서는 다

    른 신체의 몸으로 옮겨 거주하기도 하고 절대적 관점에서는 불생불멸의

    실체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찬도갸 우빠니샤드에서 웃달

    라까 아루니(Uddālaka Āruṇi)는 아뜨만이 모든 생명체들 속에 있는 핵심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13) 다른 한편으로 아뜨만은 호흡 혹은 생명력을

    의미하는 쁘라나(prāṇa)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기도 하는 데 이것은 아마

    양자가 모두 생명의 본질을 의미한다는 면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14) 자아로서의 아뜨만에 대한 우빠니샤드적 관점은 이 밖에

    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이후의 인도 사상의 흐름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빠니샤드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탐구되는

    자아에 관한 탐구과정은 깨어있는 상태, 꿈꾸는 상태, 깊은 숙면의 상태

    13) Chāndogya Upaniṣad 6.1-16참조.14) Black Brian(2017), p.9참조. 여기서 그는 우빠니샤드의 내용을 인용하여 아뜨만

    은 쁘라나로 구성되는 것으로(Taittirīya Upaniṣad. 2.2.1), 쁘라나와 아뜨만이 상호의존적인 것으로(Bṛhadāraṇyaka Upaniṣad 2.1.20) 나타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밖에도 실제로 고대 사회에서는 호흡, 피, 정액을 생명의 본질로 간주하기도 한다.

  • 16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때로는 turiya까지)의 세 가지 상태, 또는 몸에서 마음의 심층까지 연속적

    으로 이어지는 음식(몸)(annamayakośa), 호흡(prānamayakośa), 의식(mano-

    mayakośa), 지혜(vijñnamayakośa), 지복(ānandamayakośa)의 다섯 가지 껍질

    (5 kośa theory)의 이론15)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의식의 세 가지 상태에

    대한 이론은 만두꺄(Māndūkya) 우빠니샤드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서술

    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확실히 브라흐만이고, 이 아뜨만은 또한 브라흐만이

    다. 그 아뜨만은 네 개의 발을 가지고 있다(2).

    그의 영역이 깨어있는 상태이고, 외적 대상을 지각하며, 7개의 수족

    들과 19개의 입16)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크고 거친(sthūla) 물질적 대상

    들을 향유(경험)하는 바이슈와나라(Vaiśvānara)가 첫 번째이다(3).

    두 번째 영역은 그이 영역이 꿈꾸는 상태이고, 내적 대상들을 의식

    하며, 7개의 수족과 19개의 입을 가지고 있고 미세한 대상들을 경험하

    는 따이자사(taijasa)이다(4).

    잠에 빠져 그것이 무엇이든 어떠한 욕구도 갖지 않고 어떠한 꿈도

    꾸지 않는 것이 깊은 숙면이다. 이 세 번째가 그의 영역이 깊은 숙면의

    상태이고 일자가 되며 진실로 의식이고 지복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지

    복을 향유하며 그의 얼굴이 생각인 쁘라갸(prājña)이다(5).17)

    15) Taittirīya Upaniṣad. II. 7 참조.16) 여기서 19개의 입은 5개의 감각기관, 5가지 운동기관, 5가지 호흡형태, 의식

    (manas), 지성(buddhi), 아함까라(ahamkara) 그리고 마음(citta)이다. 이렇게 본다면 5개의 감각기관과 운동기관 그리고 의식 지성 아함까라는 말 그대로 상캬의 이론과 정확하게 일치하며 5개의 호흡 기관과 마음은 빠딴잘리의 요가 수뜨라의 이론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내용전개는 적어도 이 시기까지 상캬와 요가가 오늘 날 우리가 인도 정통철학에서 알고 있는 것처럼 아직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는 상태임을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17) Māndūkya Upaniṣad 2-5.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17

    이처럼 깨어있는 상태의 바이슈와나라, 꿈꾸는 상태의 따이자사 그리

    고 깊은 숙면의 상태인 쁘라갸를 통해 자아의 존재가 각각의 상태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브라흐만과 하나인

    아뜨만이 그 자체로는 지각과 반성을 통해 알려질 수 없지만 각각의 상

    태 속에서 발현되는 상태를 통해 그것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의

    미한다. 만두꺄 우빠니샤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네 번째 단계의 뚜리야

    (turīya)를 통해 위의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뚜리야는 내적대상을 인식하지도 않고 외적 대상을 인식하지도 않

    으며 그들 양자를 인식하지도 않고 인식 그자체도 아니며, 인지하지도

    않고, 인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으며,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으며, 구별되는 특징이 없고, 생각할 수 없으

    며,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일자인 자아의 지식의 핵심이며, 그 곳으로

    세상이 용해되는 것이고, 평화로운 것이며, 상서롭고, 둘이 아닌 그와

    같은 것이 네 번째 영역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것이 아뜨만이고 그

    와 같이 알려지는 것이다(7).18)

    위의 진술은 말 그대로 아뜨만의 특성을 통해 그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아로서의 아뜨만 그 자체는 감각적 지각이나 이

    성적 추론과 같은 현상적 인식수단을 통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존재를 부정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과

    정을 통해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앎을 통해 그것의 기저 또는 발현 토대

    로서의 아뜨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사상의 흐름은 크게 전반기의 상캬의 이원론을 그리고 8세기 이

    18) Māndūkya Upaniṣad 7.

  • 18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후 후반기를 베단따 사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빠니샤드의 사

    상은 전반적으로 상캬 사상의 이론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

    악된다. 그렇다면 후반기의 베단따 사상으로 이행은 어떻게 해서 이루

    어지는가? 하지만 베단따에서의 자아개념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 중

    간 단계로서의 불교 사상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불

    교는 시기적으로 상캬에서 베단따로의 이행의 바로 중간 지점에 위치하

    며 베단따의 논지전개 역시 중관학(Mādhyamika)의 방법론에 영향을 받

    은 흔적이 상당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자아에 대해 기본적

    으로 무아설(無我說, anātman)을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자아의 무실체성

    을 의미하는 불교의 이와 같은 관점은 이후 인도 정통사상 특히나 우빠

    니샤드와 연관하여 후대 학자들의 다양한 논란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

    해서 자아가 없다는 의미의 무아개념에서 해당되는 자아가 개별적 자아

    (jīva)인지 아니면 보편적 자아(Ātman)인지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자아가

    없다는 의미에서 없다는 것이 존재론적 의미인지 아니면 인식론적인 의

    미인지에 따라 다른 견해가 주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반적

    으로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의 존재론적 의미는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뜻하지만 일상적으로 없음이 눈과 같은 감각기관에 의해 지

    각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존재(being)와 눈에 보임 또는 나타남(appearance)이

    서로 혼용될 경우 ‘없다’는 것은 때로는 ‘아니다’라는 개념을 의미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로 우빠니샤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

    다. “만일 없음(asat)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브라흐만을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없음(無)으로 알게 된다. 그렇지 않고 있음의 관점에서 본다면

    브라흐만은 존재하는 것이 된다. ……”19). “태초에 진실로 이 세상은 없

    19) Taittirīya Upaniṣad. II.6.1; asad vāidam agra āsīt tato vai sad ajāyate tad āt-mānam svayam akuruta tasmāt tat sukrtam ucyate. Taittirīya Upaniṣad. II.6.1;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19

    음(asat)이었다. 그로부터 존재가 생겨났다”20) 이에 대해 샹까라를 포함한

    고대 학자들의 해석은 이때의 없음은 존재로서의 없음이 아니라 인식

    상 눈에 보이지 않음 나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함으로써 그것이 존

    재가 아닌 인식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의 없음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무가 아니라 다만 인식 상에 아직 나타나지 않

    았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때의 무는 아직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

    러나서 지각의 대상이 되지 않은 미현현의 상태로 일종의 씨앗 즉 가능

    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있음은 그것이 가능태에서 현실태

    로 또는 씨앗에서 구체적으로 발아한 상태로 현현한 것을 의미한다. 이

    를 통해 후반기 베단따 사상은 바로 불교의 무실체적 자아의 이론을 인

    식상의 문제로 전환함으로써 다시금 자아의 실체성을 확보하지만 그 속

    성과 내용에 있어서는 전반기 우빠니샤드 혹은 상캬 사상과는 다른 해

    석을 낳는다.

    다른 한편 인도 사상을 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전반기의 브라흐마

    니즘에서 굽타왕조이후의 후반기를 힌두이즘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에 따라 후반기의 자아에 대한 개념은 전반기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힌두이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구분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Asko Parpola에 의하면 힌두의 어원

    은 페르샤의 다리우스 대왕이 인더스 계곡을 그의 왕국에 합병했던 기

    원전 5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21) 이에 반해 힌두이즘이라는 단어는

    동인도회사의 상인이고 복음주의 기독교인 찰스 그랜트(Charles Grant)

    에 의해 1787년 초에 초기의 힌두 종교(Hindoo religion) 또는 힌두교리

    (Hindoo creed)를 위하여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asad vāidam agra āsīt tato vai sad ajāyate tad ātmānam svayam akuruta tasmāt tat sukrtam ucyate.

    20) Taittirīya Upaniṣad. II.7.1; asad vāidam agra āsīt tato vai sad ajāyate.21) Parpola Asko(2015), p.3

  • 20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후 19세기 들어 힌두이즘은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를 제외한 인도의 토

    착 종교를 위한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다.22) 그렇다면 근세 들어 영국에

    의해 사용된 힌두이즘은 초기 베다의 브라흐마니즘과 어느 정도 연관성

    을 갖고 있을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본다면 힌두이즘 역시 베다 브

    라흐마니즘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넓은 의미에서 단순히 인도 종교라는

    의미에서는 그 용어를 통해 전체 인도 종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

    이다. 그러나 초기의 베다에 나타난 브라흐마니즘이 엄밀한 의미에서

    브라흐마 중심의 종교이며 이후 비브라흐마나이외의 대중 종교로서의

    바이슈나비즘과 샤이비즘이 이후 브라흐마니즘과 통합되면서 새로운 종

    교 형태를 드러낸 것으로 판단한다면 힌두이즘과 브라흐마니즘은 분명

    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23) 어쨌든 앞에서의 사상적 부분에서와 마찬가

    지로 종교적 관점에서의 구별에서도 자아로서의 아뜨만의 개념은 전반

    기의 관점에 대한 수정과 비판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이론적 전개를 드

    러내고 있음은 명백하다.

    3. 요가 사상 속에서 자아의 의미와 발전

    2장에서 우리는 자아의식의 의미와 전개를 주로 철학적이고 종교적

    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인도의 또 다른 특징인 요가적 관점

    22) Parpola Asko(2015), p.3 참조. 그는 또한 힌두스탄(Hindusatan)이라는 용어는 페르샤어를 사용하는 무갈인(Mughal)들이 16세기에 북인도를 점령한 국가를 힌두스탄(Hindustan)으로 그리고 그 민족을 힌두(Hindu)라고 부르면서 형성된 것으로 말한다.

    23) 이것은 쉬바와 비슈누가 베다에도 나타난다는 의미와는 다른 문제이다. 베다에서 두 신의 명칭이 드러나지만 그 역할이 미미했다는 것은 브라흐마니즘의 관점에서 그들을 흡수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브라흐마니즘이라는 종교가 쉬바와 비슈누를 함께 포함한 오늘 날의 삼신일체(trimurti)로서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는 분명히 아니다.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21

    에서는 자아의식이 어떻게 발전되었을까? 이것은 요가의 사상적 토대인

    이론적 관점과 수행이라는 실천적 특성 두 가지를 나누어 고려하는 것

    이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요가의 시원으로서의 인더스 문

    명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기에 이 시기의 요가를 구체적으로 살

    펴보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리그베다 또는 아타르바베

    다에 나타난 구절을 더듬어 그것의 흔적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는 있

    지만 결국은 추상적인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정리한다면 베다를 근거로 해서 살펴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베다에 나타난 요가는 크게 브라흐마나스(Brāhmaṇas)

    중심의 전반부의 까르마(karma) 요가와 우빠니샤드 중심의 후반부의 갸

    나(jñāna)요가로 구별될 수 있다. 이것은 베다를 크게 둘로 구분하는 방

    법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에 따르면 베다는 구성상 본집(Saṁhitā), 브라

    흐마나스, 아란야까(Āraṇyaka), 우빠니샤드의 네 부분으로 구별되며 다시

    금 그들은 전반부의 행위부(karma-kāṇḍa)와 지식부(jñāna-kāṇḍa)로 구별된

    다. 또한 여기서 전반부는 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사회생활의

    부분을 그리고 후반부는 인간 본래 존재의 핵심을 집중적으로 파악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구분은 또한 삶의 네 단계 가운데 학습기와

    가정 생활기를 전반부, 그리고 은둔기와 유랑기를 후반부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까르마 요가는 베다에 나타난 행위규범(dharma)에 대한 준수를 다루

    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규범에 대한 실천은 크게 주어진 다시 말

    해서 베다에 규정된 명령에 대한 이행여부에 달려있다. 베다에서의 규

    범은 하라는 명령과 하지 말라는 금지 두 가지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규범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행위(karma)이다. 이렇게 본다면 다르마에

    대한 올바른 행위가 원래 까르마 요가의 시작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타

  • 22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당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요가의 시원이 인더스문명의 비베다적인 또

    는 비브라흐마니즘에 있다고 한다면 까르마 요가가 반드시 베다적 규범

    의 준수에서 출발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명백하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브라흐마니즘에서의 까르마가 반드시 베다 규율과 일치한다

    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들의 까르마는 따빠스와 같은 육체

    적 고행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이와 같은 추론

    이 가능하다면 까르마는 브라흐마니즘과 비브라흐마니즘 양자의 관점이

    서로 융합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바가바드기따에서 끄리슈나의 말을 통해 알고 있는 구체적인 행

    동, 말, 그리고 생각을 포함하는 까르마에 대한 정의를 떠올리게 한다.24)

    베다 시대의 요가라는 용어는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는 다

    르게 단순히 일반적인 실천적 행위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와 같

    은 사실은 바가바드기따에서 ‘지혜의 요가를 하는(지혜의 길을 따르는) 사

    람을 상캬라고 하고, 까르마요가를 하는(행위의 길을 따르는) 사람을 요기

    라고 한다’이라는 구절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25) 이에 따르면 요기는

    까르마를 실천하는 다시 말해서 구체적으로 행위를 실천하는 사람을 가

    리킨다. 그러므로 여기서 요가는 분명 실천적 행위를 그리고 까르마요

    가는 다르마에 대한 실천 행위를 포함한 모든 행위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까르마는 위의 베다의 구분을 따르면 베다의 명령규범

    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까르마의 실천은 요가수뜨라의 아슈땅가

    (aṣṭāṅga)에서 금지하는 행위인 야마(yama)와 권하는 행위인 니야마(niya-

    ma)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

    24) 바가바드기따에서 말하는 행위는 불교의 신체적 행동(身), 말(口), 생각(意)의 삼업(三業)과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끄리슈나는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행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행위 속에서의 무행위라는 무욕의 행위(niṣkāmakarma)를 주장한다.

    25) Bhagavadgita 3.3; jñānayogena sāṃkhyānām karmayogena yoginām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23

    고 융합된 것으로 판단한다면 아슈땅가 전체가 까르마 요가라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 제의서의 모음인 브라흐마나스(Brāhmaṇas)를 기초로 한 까르

    마 요가에서는 자아에 관한 물음은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베다가 하

    라고 명령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말라고 규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선한 행위이고 그렇지 않고 그러한 규범을 어기는 것이 악한 행위이다.

    그리고 베다의 규범을 지키면 그 선에 대한 결과는 현세에서는 자손이

    나 가축 등과 같은 부를 얻는 행복이고 죽어서는 천상에 이르는 결과를

    얻는다. 이에 반해 그것을 어기면 선의 결과에 반대되는 불행을 초래한

    다. 그것은 슈루띠(Śruti)로서 신이 우리에게 의무지운 규범이다. 여기서

    왜 우리가 그것을 지켜야 하며 그렇게 명령한 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물

    음은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26) 우리는 그저 신이 우리에게 지시한 것

    을 잘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로서의 아뜨만에 대한 탐

    구 역시 크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이 누구인지에 대

    한 물음이 크게 중요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

    음도 신의 지시를 잘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관점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다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아에 대한 물음은 우

    빠니샤드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불교의 시대와 일정부분 중복되는 초기 우빠니샤드의 시대27)는 요가

    26) 학자들에 따르면 리그베다에 이미 우주와 신에 대한 의문이 나타나며 아타르바베다에서는 자아에 관한 물음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 베다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본 논지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아타르바 베다의 경우 그것이 명확하게 브라흐마니즘적인 것이 아니라 비브라흐마니즘적인 특성이 강하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적어도 브라흐마니즘의 베다에서의 일반적 특성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27) 여기서 초기 우빠니샤드는 샹까라의 주석이 포함된 것들을 포함하여 기본이 되는 고전(principal) 우빠니샤드들을 의미한다. 이들 고전 우빠니샤드 가운데 후반부에 속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시기상 불교의 시대와 일정부분 공유된다.

  • 24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의 중심이 행위중심의 까르마요가에서 지적성찰에 몰두하는 갸나요가

    로 이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아울러 이 갸나요가에 이르러 자아인 아

    뜨만에 대한 내적 성찰은 외적 절대자인 브라흐만과의 일자로서의 합일

    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에 따라 요가 역시 자아의 탐구에 전념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실천적 행위 중심의 까르

    마 요가가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요가의 발전과정에서 본

    다면 앞에서 언급했던 바가바드기따의 예처럼 행위의 범주를 다시 설정

    함으로써 행위를 여전히 이어가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 결과 행

    위는 종래의 다르마의 준수를 벗어나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8)

    그렇다면 우빠니샤드의 이러한 특성은 어떻게 비롯되었을까? 이에 대

    해서는 후기베다 시대의 특징인 브라흐마니즘과 슈라마니즘의 융합을

    지적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나 두드러지는 것은 우빠니샤드의

    사상적 기저를 이루고 있는 상캬(Sāṃkhya)사상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요가와 상캬를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것으로 간주하는 다

    스굽따(S.N. Dasgupta)는 마이뜨라야니(Maitrāyaṇī), 슈웨따슈와따라(Śvetāś-

    vatara), 까타(Kaṭha) 등 주로 흑야주르베다 계열의 우빠니샤드들 속에서

    요가와 상캬의 사상이 비록 구체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밀접한 연관관계

    를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9) 요가와 밀접한 연관

    을 이루고 있는 상캬사상은 뿌루샤(puruṣa)와 쁘라끄리띠(prakŗti)의 이원

    론을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한다. 학자들에 따라서 그것이 비브라흐마니

    즘의 산물인지 아니면 브라흐마니즘의 산물인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

    지만 적어도 그 모습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이 우빠니샤드라는 사실에

    28) 아울러 딴뜨라 이후 근세로 올수록 요가는 몸에 대한 강조를 통해 행위의 부분을 더욱 강조하는 특징을 드러낸다.

    29) S.N. Dasgupta(1988), A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Vol 1, p.227.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25

    대해서는 양자 모두 인정한다. 상캬의 뿌루샤 개념은 형식상 다시 말해

    서 각각의 개별자들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개별적 자아(jīva)로서의

    뿌루샤이지만 본질적 특성으로 살펴보면 보편적 자아로서의 아뜨만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상캬에서의 이 자아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상캬의 25

    원리에 의하면 모든 전개는 쁘라끄리띠를 통해 이루어지며 뿌루샤는 완

    전한 수동적 존재로 그저 존재할 뿐이다. 뿌루샤는 쁘라끄리띠의 세계

    창조에 쁘라끄리띠가 그렇게 함으로써 뿌루샤가 만족할 것이라는 일종

    의 미혹에서 비롯된 간접적 원인은 될 수 있어도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신체, 감각, 마나스, 지성 등과는 다르다.

    그것은 세계의 대상들 가운데 하나도 아니고 두뇌도, 신경조직도, 의식

    상태의 집합도 아니다. 자아는 언제나 지식의 주체로서 결코 지식의 대

    상이 될 수 없는 인식하는 정신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의식을 속성

    으로 지닌 어떤 실체라고 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순수인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30) 뿌루샤는 그것을 감각적 지각(pratyakṣa)이나 추론(anumāņa)

    또는 경전이나 믿을만한 사람의 증언(śabda)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뿐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또한 그것조차 상캬의 25전

    개원리를 역순으로 더듬어 올라갔을 때 어느 정도 간접적인 파악이 가

    능하다.31) 이처럼 역순으로 더듬어 올라가는 방법이 빠딴잘리 요가 수

    뜨라의 아슈땅가이다. 이 요가의 수행방법은 고대의 금욕주의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다른 변화를 갖는다.32) 이러한 금욕주의는 뿌루샤와 쁘라끄

    30) 김형준옮김(1999), p.267참조.31) 이것은 요가수뜨라(1.2)에서 말하는 요가는 의식 작용의 멈춤이다(Yogas vṛtti

    nirodhah)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32) 그것은 아마도 요가의 발저과정에서 브라흐마니즘의 제식주의와 비브라흐마니

    즘의 고행주의 전통이 융합한 결과라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요가의 근원으로 간주되는 따빠스(tapas)라는 용어에 대한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알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금욕주의 또는 고행을 의미하는 따빠스는 고행

  • 26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리띠 또는 육체와 정신의 이원론을 토대로 본다면 양자의 완전한 분리

    를 전제로 하며 여기서 전자인 쁘라끄리띠 혹은 육체는 그 활동을 완전

    히 멈추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캬까리까에서는 ‘몸과 분

    리된 후 그리고 자연의 사라짐 이후 정신은 궁극의 해탈을 얻는다’33)고

    말한다. 이것은 당시의 해탈로서의 자아추구는 몸의 문제가 아니라 바

    로 자아로서의 정신에 대한 깨달음을 궁극목적으로 삼고 있음을 알려준

    다. 우빠니샤드에서도 이러한 관점은 계속 유지되지만 초기의 금욕주의

    (tapas)가 육체적 고행과 도덕적 금욕의 두 가지 면을 함께 갖추고 있는

    데 비해 우빠니샤드에서는 육체적 고행 보다는 도덕적 금욕을 더욱 강

    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특징은 앎과 자각을 중심으로 하는 갸

    냐요가가 까르마요가가 아닌 우리가 오늘 날 말하고 있는 명상과 연관

    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특성은 불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상캬의

    25원리의 역순이 요가의 수행방법이라는 사실은 실제로 요가의 근거가

    상캬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34) 이에 대해 학자들은 고

    대 상캬와 요가는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체계였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요가의 고전으로 간주되는 바가바드기따나 요가수뜨라는 시기

    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것이 상캬적 관점에서의 이해가 우선적이어

    야 하며 오늘 날의 베단따적 해석과는 분명하게 구별될 필요가 있다. 또

    한 요가에서 나타나는 자아에 관한 관점은 분명 상캬적 이해와 일치하

    주의자들의 수련을 통한 종교적 또는 영적인 자발적 자기 수행의 노력에 적용되며 리그베다의 찬가에서는 자연적 또는 심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베다 시대의 결론적 시기에는 정신적 의미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김형준옮김(2008), 요가전통 p.165참조).

    33)Sāṁkhya Kārikā 68. 34) 호이에르슈타인은 고전 상캬와 고전요가 양자를 방법론, 신학, 존재론 그리고 용

    어론의 네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비교분석하면서 양자는 깨달음을 향한 방법론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김형준옮김(2008) pp.487-8참조). 이러한 주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양자를 검토했을 때 타당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가의 이론이 상캬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27

    며 단지 그 자아를 파악하는 실천적 방법론 즉 수행방식에서 요가의 특

    징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요가의 수행방식은 이

    론적 토대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자아탐구의 발전

    요가는 적어도 힌두이즘의 삶의 네 단계인 아슈라마(Āśrama)에서 전

    반부의 사회생활기가 아닌 후반부의 은둔기에 주로 행해지는 것으로 보

    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에 대한 철저한 탐구는 세속

    적인 사회생활 속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베다의 규범만을 철저

    하게 지켜나가면 되기 때문에 크게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고 생각되

    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다시 한 번 변혁을 겪

    는다. 전통적인 브라흐마니즘 사회가 후기베다 시대에 이르러 슈라마니

    즘과의 융합을 통해 까르마와 갸냐의 요가 방식으로 전개되었지만 그것

    은 아무래도 대중적이기보다는 수행자 또는 지식인 중심의 특정 소수그

    룹에 국한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보다 대중적으로 확산된 것은 아마

    도 쉬바와 비슈누를 주신으로 한 토속적인 일반 대중종교가 브라흐마니

    즘에 흡수되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힌두이즘화된 영향 때문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학자들이 비브라흐만적 전통에서 비롯된 토속 혹은 민

    중종교라고 판단하는 양자의 종교가 슈라마니즘과 융합한 브라흐마니

    즘 속에 유입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힌두이즘이 형성된다.35) 이 힌두

    35)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힌두이즘(Hinduism)이라는 용어는 영국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명칭이다. 그것은 넓은 의미로는 고대의 브라흐마니즘을 포함하지만 보다 현대적 의미로는 위에서 언급한 브라흐마니즘이 변형 발전된 결과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28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이즘을 통해 요가는 특정한 그룹중심에서 보다 대중적인 모습으로 확산

    된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 등장하는 것이 딴뜨라(Tantra)이다. 하층계급

    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딴뜨라는 이제 고대의 금욕주의 전통에 대한 또

    다른 변혁을 요구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금욕은 아슈라마전통에 따르면

    가정생활기를 포함하는 전반부에서는 절대적 금욕이 될 수 없다. 왜냐

    하면 가정생활을 통해 자손을 얻는 것이 힌두사회에서는 필수적이기 때

    문에 절대적 금욕은 숲속으로 은둔한 이후에나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

    다.

    일반적으로 딴뜨리즘은 A.D 5세기경에 비롯된 샥띠(Śakti)종파에서 비

    롯된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그 기원은 베다시대에 이미 나타나는 것으

    로 간주하지만 적어도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으로서의 딴뜨라와

    는 다르다. 크게 보면 쉬바 종교에 속하는 샥띠종파의 경전인 딴뜨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요가로서보다는 종교의 모습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

    다. 그것은 여성의 정신우주적 원리인 샥띠에게 바쳐진 작품들인 딴뜨

    라를 통해 구체화되었다.36) 그것이 요가로서의 딴뜨라로 나타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대략 기원 후 10세기 이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딴뜨라가 주로 샤이비즘에 의해 형성되었다면 바이슈나비즘은 박띠

    사상을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주로 남인도 따밀지역의 알바

    르(Ālvār)의 작품들 속에서 나타나는 박띠문헌과 바울(Baul) 운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박띠는 초기 딴뜨리즘과 마찬가지로 하층계급에서

    비롯되면서 초창기에는 브라흐마나계급에 의해 배척되었다. 하지만 비

    슈누 종파이면서 한정적 불이론의 주창자인 라마누자 등에 의해 점차

    브라흐만 계급 속으로 흡수되면서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박띠 사상

    으로 정립되었다.37) 이에 비해 딴뜨리즘은 대략 10세기 이후 인도에 관

    36) 김형준옮김(2008), p.680.37)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김형준 옮김(2018) pp.131-138과 pp.147-154을 참조할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29

    념적이기 보다는 실용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이슬람의 유입과 샹까라

    (Śaṅkara) 중심의 베단따(Vedānta) 사상이 상캬 사상을 대치하면서 커다란

    변혁을 겪는다. 여기서 전자는 플라톤의 말처럼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에서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후자는 해탈과 해탈 아닌 것에 대한 구

    분이 불교의 공(空)처럼 의식의 작용일 뿐임을 제시함으로써 자아에 대

    한 의식추구에 대전환을 꾀한다.

    Chatterjee와 Datta에 의하면 샹까라는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관점(Vy

    āvahārika, aparaāvidya)과 초월적이고 실체적인 관점(pāramārthika, para-

    vidya)으로 구별한다. 여기서 전자의 관점은 세계를 실재로 존재하는 것

    으로 간주하는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의 관점이고 그에 반해 후자는 세

    계가 현상이며 신(브라흐만 또는 아뜨만)이외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자각한 깨달은 사람의 관점이다.38) 샹까라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깨달음과 번뇌가 단지 인식상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라는 아드

    바이따(advaita, 不二論)를 주장함으로써 딴뜨리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다. 따라서 호이에르슈타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딴뜨라는 아드바이따

    베단따의 가끔은 추상적인 접근법에 대한 변증법적 반응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전자가 힌두 엘리트의 유력한 철학인 반면 딴뜨라는 인도의 하

    층계급의 풀뿌리 운동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고 말한다.39) 다시 말

    해서 딴뜨라는 아드바이따 베딴따의 사상을 통해 그들의 현실적 관점이

    요가의 수행관점과 융합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아울러 이를 통해

    자아 역시 고대의 몸을 벗어난 인식 혹은 정신성 중심에서 몸과 정신이

    하나로 어우러진 자아관념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다.

    딴뜨라는 그것이 시대적 요구이든 아니든 이전과는 변화된 사상적

    것.38) 김형준 옮김(1999), p.73참조.39) 김형준 옮김(2008), p.683참조.

  • 30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기반을 가지고 더욱 발전된 변혁기를 맞이한다. 그 결과 딴뜨라 이전 시

    대에는 그노시스적 성향 속에서 육체는 종종 오염의 원천이며 영혼의

    적으로 간주되었지만 딴뜨라의 마스터들이 열망했던 것은 변화된 몸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금강석(vajra)같은, 또는 신성한(daiva)

    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단순히 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불멸의 신체

    또는 빛으로 이루어진 육체이다. 이처럼 육체를 병과 죽음에 희생되도

    록 운명지워진 괴로움의 요소로 간주하는 대신 신이 거주하는 장소 또

    는 영적 완성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보았다. 따라서 그들에게 깨달음

    이란 온몸의 사건이다.40) 호이에르슈타인에 의하면 이처럼 육체를 긍정

    적으로 보는 사고는 딴뜨라의 전체주의적 형이상학이 이루어낸 직접인

    결과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며 육체가 있으므로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41) 그렇다고 해

    서 육체 그자체가 바로 해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전 시기의 상

    캬 철학에서처럼 몸이 아닌 의식을 통해서만 해탈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벗어나 육체로서의 몸의 모든 기능과 역할 역시 해탈에 충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딴뜨라의 근본의식이다. 이와 같은 육체에 대한 변화

    된 의식은 명백하게 베단따 특히나 브라흐만과 아뜨만, 물질과 정신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론적 베단따 사상에서 비롯된 구체적 실천운동이라

    고 볼 수 있다.

    딴뜨라의 이러한 의식은 전통적인 몸, 마음, 영혼의 구별에서 그것들

    이 다시금 무구별의 완전한 일자의 다른 양태일 뿐임을 밝힘으로써 요

    가 수행에서 몸과 더불어 일상생활 전반의 삶 자체를 해탈과 일치시킬

    수 있도록 만든다. 비록 딴뜨리스트들이 수행 속에 일반적으로 금기시

    40) 김형준 옮김(2008), pp.752-753참조.41) 이태영 옮김(1998), pp.85-90참조.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31

    되었던 대상들42)을 포함시킴으로써 사회적 전통의 규범을 파괴했다는 비

    판을 받을지라도 적어도 그것에 내포된 사상적 기반은 베단따 특히나

    아드바이따의 불이론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샤이

    비즘의 관점에서 보면 불이론의 사상을 통해 상캬의 쁘라끄리띠와 뿌루

    샤라는 두 가지 실재는 현대물리학이나 스피노자, 라이프니쯔처럼 일자

    의 양면성에 불과하게 된다. 이러한 양면성 혹은 상대성의 통합으로서

    의 사구나(saguņa)적 속성은 사다쉬바(Sadaśiva)로 나타난다. 사디쉬바는

    한걸음 더 나아가 양면성의 단순한 결합으로서의 통합이 아닌 양면성

    자체의 무구별성까지 나아가면서 니르구나(nirguņa)로서의 빠라쉬바(Para

    śiva) 혹은 빠라브라흐만(Parabrahman)에 이른다.

    5. 나가는 말

    이제 딴뜨라를 통해 자아는 더 이상 반대의 속성을 허용하지 않는 것

    이 아니라 모든 상대성 자체를 초월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일자의 모

    습을 확보한다. 이러한 관점은 자아 탐구를 위한 요가에서도 전환점을

    마련한다. 이러한 발전은 초기의 상캬 중심의 이론에서 베단따 사상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뚜렷하게 변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만일

    여기서 베단따가 단순히 상캬의 반발로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본다면 후자는 분명 전자의

    흡수이면서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딴뜨라가 베단따의 사상을 흡

    수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전자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불교의

    42) 예를 들어 5가지 M의식(panchamakara)에서 술, 육류, 술, 익힌 음식 그리고 성이라는 5가지 세속적 요소들. 이와 같은 것들은 전통적인 요가 수행자에게는 당연히 피해야할 금기에 속한다.

  • 32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영향아래 후자의 힌두이즘과 동화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딴뜨라가 5세기 샥띠파의 부

    흥과 함께 새롭게 시작된 것으로 본다면 딴뜨라는 오히려 힌두이즘 속

    으로 흡수된 것이 아니라 역으로 힌두이즘이 딴뜨라 속으로 흡수된 것

    으로 볼 수도 잇을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는 앞으로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초기의 자아는 후대의 발전과정에서 우선 우빠니샤드와

    초기 불교적 관점에서 개별적 의식을 떨쳐낸 완전하고 절대적인 자아

    로 나아간다. 따라서 만일 이러한 절대적 관점을 획득할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상대적 세계는 자연히 그 환영을 거두고 사라진다. 하지만 그렇다

    고 해서 상대적 세계가 그자체로 없음의 세계는 아니다. 그것은 비록 실

    체를 갖지 않는 현상의 영역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의 존재는 적어도 절

    대적 세계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존재를 지속한다. 물론 이

    런 지속성이 동일성의 지속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불교적 개념에서

    처럼 내외적 변화를 끊임없이 겪고 있는 일종의 유사성의 연속에 의한

    지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는 딴뜨라에 이르면

    다시 한 번 변혁을 겪는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만일 그헉게 현

    상이 궁극적으로 환영에 불과하다면 샥띠의 창조력은 무의미한 것인가?

    그렇다면 절대자로서의 쉬바는 그의 창조력을 무엇 때문에 자신의 속성

    으로 가지고 있을까? 딴뜨라는 그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창조력을

    실재와 더불어 또다른 존재의 양태로 간주하면 그것이 단순히 환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긍정적 존재의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

    과 개별성 자체가 일자의 생명력 창조력인 샥띠의 한 현상으로 간주되

    고 또한 그것이 일자의 또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면서 자아의식은 이전

    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결국 딴뜨라 요가를 통해 드러난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33

    자아의 개념의 확장은 힌두의식의 확산을 꾀하게 되면서 현대에 이르게

    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몸과 마음을 벗어난 궁극실재로서의 자아를 추

    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모든 것이 포괄된 때로는 그것조차 초월

    한 진정한 의미의 절대적 자아를 추구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이를 통해

    요가 수행자는 더 이상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이 그저 있는 그자체로의

    무한한 절대적 자유를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아울러 그러한 자유를 누

    리기 위해 특별히 고요한 장소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저 그것이 세속이든 아니면 탈세속이든 주어진 그 곳에 머물

    면서 주어진 상황을 자유롭게 누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딴뜨라의 이 같은 이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술과 마술적

    요소의 포함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몸 중심의 경향으로 인해 요가의 본

    래목적에서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

    가가 본래의 목적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며 진정한 요가

    의 길을 추구하는 수행자라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그 목적으로 다가가

    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34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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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śra, Sri Ramakrishna Math, Mylapore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35

    [Abstract]]

    Spread of Hindu consciousness through yoga

    ─ Focusing on self-exploration

    Kim, Hyoung jun

    Hankuk University of Foregin University

    An authentic research for self in Indian thought originated

    from Upani ads. In the ear of ritualristic Br hma as, the

    primary duty is adherence to dharmas given by Veda. In this

    case, we only follow the given rules of order(ought to) and

    prohibition(should not). Therefore, the philosophical question

    about the self was not so important. But when it comes to the

    ear of jñana-based Upaniṣ, the question of self comes up as

    the main problem. A complete realization of the concept of the

    Puruṣa or Ātman is in itself consistent with the enlightenment

    or liberation in Yoga.

    Yoga is ultimately aimed at achieving absolute freedom

    or enlightenment through various practicing exercises in

    accordance with physical, mental and spiritual performances

    derived from ancient India. The approach of yoga practice can

    be roughly divided into three parts: the body (śarīra), the mind

  • 36 요가학연구 제21호(2019.4)

    (manas), and the soul (ātman). First, the yoga of the body is

    performed mainly by the methods related to the bodily practice,

    such as asana and prāṇāyāma. Next, the yoga of the mind is

    the method of exploring the inner consciousness. Finally, the

    yoga of the soul directly explores the self itself,

    Yoga emphasizes the sādhana(practice), while most Indian

    philosophy is aimed at theoretical knowledge. Therefore, the

    theory that is the basis of yoga sādhana follows the existing

    thought. Because of these characteristics, in the beginning,

    yoga bases on the Sāṁkhya theory and later on the idea of

    Vedānta. In the Sāṁkhya theory based on asceticism, which

    means primarily physical asceticism, it aimed at liberation

    through spirit or consciousness, not physical. It presuppose the

    complete separation of body and mind. It is Prakṛti as a body,

    not Puruṣa as the self, that stops the activity completely.

    After this early Sāṁkhya theory was replaced by the later

    Ved nta philosophy, Tantrism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the body. The human body is understood not merely a product

    of death and suffering, but an immortal one or the body of the

    light. Therefore, the body is an important means of liberation

    that should not be ignored like S khya.

    As a result, we are no longer pursuing the self as ultimate

    reality beyond body and mind, but sometimes seeking the

    absolute self, which is transcendent, even when it is all

    encompassed.

  • 요가를 통한 힌두의식의 확산 37

    Key words: Yoga, Sāṁkhya, Vedānta, Tantra, Ātman, Yoga-

    Sūtra.

    투고일자 : 19. 3. 15

    심사일자 : 19. 3. 18~4. 8

    게재확정 : 19. 4. 15

  • 조옥경(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email protected]

    국문초록

    제 3의 눈으로 알려진 아즈나 짜끄라는 많은 부분 신비에 싸여 불필

    요한 환상과 왜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대중들은

    점점 더 아즈나 짜끄라의 각성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만연하는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경전에 근거한 올바른 정

    보와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 아즈나 짜끄라가 각성되면 종종 무아경

    과 더불어 강렬한 빛을 체험할 뿐 아니라 인과에 속박된 개별자에서 우

    주적 보편자로 재탄생한다. 대표적인 하타요가 경전 하타요가 쁘라디삐

    까, 게란다 쌍히따, 쉬바 쌍히따에서는 아즈나 짜끄라 수행이 완성되면

    환희심이 일어나고, 죽음을 초월하며, 창조주 브라흐만과 같아지며 삼매

    를 증득해서 최고의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뇌해부학에서 볼 때 아즈나 짜끄라는 뇌 기저부에 위치한 0.5그램 정

    도 나가는 콩알 크기의 내분비선인 송과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송과

    체는 낮의 길이를 알려주고 포유류의 생식에도 관여하며 일주기 리듬을

    아즈나 짜끄라의 뇌생리학에 관한 고찰

  • 아즈나 짜끄라의 뇌생리학에 관한 고찰 39

    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낮에는 세로토닌을 밤에는 멜라토닌을

    분비한다. 송과체에 관한 최근의 뇌 전기생리학적 연구는 송과체 안에

    는 압전효과를 일으키는 크리스털이 존재하며 이것이 자극되면 초월경

    험을 일으키는 DMT라는 대사산물이 생성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연

    구 결과는 반다 행법이 구체적으로 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관

    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즈나 짜끄라의 생리학을 송과체의 구조와 기능과 관련지어 고찰한

    본 연구는 하타요가 수행이 갖는 뇌생리학적 의미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제어: 아즈나 짜끄라, 아즈나 짜끄라의 생리학, 송과체, DMT, 반다

    1. 들어가는 말

    2. 아즈나 짜끄라의 각성

    3. 하타요가 경전에 기술된 아즈나 짜끄라

    4. 아즈나 짜끄라와 송과체

    5. 송과체의 구조와 기능

    6. 아즈나 짜끄라의 현대 생리학

    7. 나가는 말

    목차

  • 40 요가학연구 제21호(2019. 4)

    1. 들어가는 말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짜끄라는 여기에 쏟아지는 관심만큼이

    나 왜곡과 오해를 일으키는 주제이기도 하다. ‘움직이다’ ‘가다’를 의미

    하는 어근 √car에서 파생된 짜끄라는1) 오감으로 감지되는 대상이 아닌

    정묘한 신체로서 현재로서는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

    에 대한 개개인의 경험도 다양해서 대다수 과학자들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에서 이를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통합사상가 켄 윌버(Ken Wilber)

    는 「짜끄라는 실재하는가 Are the chakras real?」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매

    듭(granthi)을 의미하는 짜끄라는 의식이 해방을 향해 상승할 때 경험되

    기는 하지만 짜끄라의 단계를 반드시 거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2) 또한

    짜끄라에 어떤 신비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것을 비밀에 부칠 필요도

    없는데, 왜냐하면 기쁨이나 공포, 흥분 같은 감정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분명 이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짜끄라는 “거기에” 있고 “실재한다.” 왜냐하면 (1) 각각의 주된 짜

    끄라에서 특정한 지복과 자각의 상태나 변형을 느낄 수 있고 (2) 이런

    느낌이나 에너지는 신체의 다른 영역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는 예를 들어 보통 무릎에서 오르가즘을 느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다.3)

    1) 김재민(2016). p 10.2) Khalsa 외 (2009), p.196.3) Khalsa 외 (2009), pp.202-203.

  • 아즈나 짜끄라의 뇌생리학에 관한 고찰 41

    요가에서는 척추를 중심으로 보통 7개 짜끄라가 일렬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짜끄라나 짜끄라와 유사한 인체 에너지 시스템을 가정

    하는 다수의 종교 및 영적 전통들은 그 수를 달리 보기도 한다. 힌두 딴

    뜨라는 7개의 짜끄라를 언급하고 있고, 불교 딴뜨라에서는 5개의 짜끄

    라를, 기공에서는 짜끄라 대신 단전을 언급하면서 상단전, 중단전, 하단

    전으로만 구분하고 있다(wikepedia. 검색일, 2018.8.20.). 고전 요가를 살펴보

    아도 경전에 따라 짜끄라 수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네뜨라딴뜨

    라(Netratantantra)4), 바가바따뿌라나(Bhāgavatapurāṇa)5), 꾸브지까마따딴뜨

    라(Kubjikāmatatantra)6)는 6개의 짜끄라를, 까울라즈냐나니르나야(Kaulan-

    jñānanirṇaya)7)는 11개 짜끄라를, 헤와즈라딴뜨라(Hevajratantra)8)는 4개의

    짜끄라를, 싯다시단따빠닷띠(Siddhasiddhāntapaddhaati)9)는 9개 짜끄라를

    언급하였다.10)

    이렇듯 종교 전통에 따라, 또한 경전에 따라 달리 기술되고 있는 짜

    끄라 시스템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 간에 공통점이 있다

    면 그것은 현대의 해부학이나 생리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본 논문에서는 흔히 제 3의 눈으로 알려져 여러 종교 및 영적 전통에서

    비밀리에 전수되었던 아즈나 짜끄라(ājñā cakra) 각성과 관련된 내용을 뇌

    해부생리학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다루고자 하였다. 짜끄라

    4) 9-11세기에 걸쳐 카시미르와 네팔 지방에 퍼졌던 딴드라 경전5) 기원 후 약 1000년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힌두 경전으로 비슈누 신의

    아바타들에 대한 헌신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6) 12세기에 정점을 이루었으며 꾸브지까를 숭배대상으로 삼았던 종파들의 딴뜨라

    경전.7) 요기니 까울라의 비전적 가르침을 전수한 경전으로 마첸드라나타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8) 8세기 초에서 10세기 초에 걸쳐 인도 동부에서 탄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요기니

    위루빠를 숭배하는 딴뜨라 경전.9) 싯다 시단따는 고락샤나타 샤이비즘으로도 불리며 인도의 최초 금욕주의 계열에

    속해있다. 고락샤나타가 저술한 책을 말한다.10) Mallinson, J. & Singleton(2017). pp. 203-213.

  • 42 요가학연구 제21호(2019. 4)

    시스템은 흔히 인체의 내분비계와 관련되어 설명되었지만11) 최근에는 명

    상의 뇌과학과 더불어 정묘체 모델(the subtle body model)이 제안되어 신

    경학적 망과도 연결짓고 있다.12)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인체 해부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즈나 짜그라에 상응하는 뇌해부학적 부위는 송과체이

    다. 물론 송과체는 거친체(sthūla)이고 아즈나 짜끄라는 정묘체(sūkṣma)이

    기 때문에 일대일로 정확하게 대응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송과체의 구조와 기능과 관련해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이 밝혀지

    고 있으므로 경전에 서술된 내용과 과학적 사실들을 관련지어 보는 일

    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대표적인 하타요가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즈나 짜끄라에 관한 내용과 아즈나 짜끄라를 각성시킬 수 있는 방법

    들을 기술하고, 송과체의 구조와 기능과 더불어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여 고대와 현대와의 조우를 꾀하고자 하였다. 또한 송과체의 미

    세구조들에 대한 뇌생리학적 연구 결과들은 아즈나 짜끄라 각성을 위해

    하타요가 경전들이 권장하는 수행방법들이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아즈나 짜끄라와 송과체의 관련성에 초

    점을 둔 본 논문은 요가의 과학화라는 과제를 수행하려는 노력의 일환

    이다.

    2. 아즈나 짜끄라의 각성

    정신과 의사이자 안과 전문의였던 리 사넬라(Lee Sannella)는 쿤달리니

    각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했던 선구자이다. 그는 아즈나 짜끄라가 각성된

    11) Mumford(2001). p.95.12) Loizzo(2016). pp.78-95.

  • 아즈나 짜끄라의 뇌생리학에 관한 고찰 43

    경험의 예를 두 사람을 들어 설명하였다.13)

    고피 끄리슈나: 내가 나의 정신적인 눈을 나 자신에게 돌릴 때마다

    나는 내 머리의 안팎에서 정묘하게 진동하는 상태로 밝게 빛나는 것을

    항상 지각했다. 이것은 극도로 묘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물질이 등뼈를

    통해 솟아올라 고속으로 분출되어 두개골에 퍼지면서 형언할 수 없는

    빛으로 두개골을 가득 채우고 둘러싸는 것 같다.

    스와미 묵타난다: 나는 주위를 모두 둘러보았다. 거대한 큰 불길이

    사방으로 맹위를 떨치면서 우주 전체를 불태우고 있었다.…… 나는 내

    머리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것을 보았고 두려움을 느꼈다.

    이들이 직접 술회한 경험과 더불어 전 세계 종교 및 영적 전통의 비

    교문화 연구를 통해 사넬라는 꾼달리니가 정수리에 도달하면서 “무아경

    의 환상에 수반되는 강렬한 빛의 경험”14)이 수반된다고 보고하였다.

    아즈나 짜끄라의 각성을 통해 소위 제 3의 눈이 열리면 어떤 일이 일

    어날까? 알렉스 맥켄나(Alex McKenna)는 개안 후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

    인 경험을 아래와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하였다.15)

    1) 당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감지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물질세계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을 예

    언하고 그 잠재력을 지각할 수 있다.

    2) 눈을 감으면 온갖 시각적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미지들

    13) Sannella(1997). p.91.14) Sannella(1997), p.90.15) McKenna(2015). pp.34-38.

  • 44 요가학연구 제21호(2019. 4)

    이 희미하다는 것은 영적 힘이 약하다는 증거로서 그 힘이 강해지

    면 이미지도 선명해진다.

    3) 행복감, 감사, 사랑, 평화의 감정이 수반되는 고차원의 사고 진동을

    가질수록 평화로운 비전이 펼쳐져 당신의 혼에게 충족감과 안도감

    을 선사한다.

    4) 당신 주변 사람들의 에너지에 더 민감해져서 좋은 에너지와 나쁜

    에너지를 더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다.

    아즈나 짜끄라와 송과체가 협응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

    난다.16)

    1) 실재와 환상을 구분할 수 있다.

    2) 영적으로 진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3) 자신의 직관을 믿고 직관에서 오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4) 지성을 높일 수 있다.

    짜끄라를 심리영적 측면에서 조망한 스와미 아자야(Swami Ajaya)는

    이 차원의 의식에 머물면 “우주의 숨겨진 법과 원리의 정묘함을 들여다

    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해는 평범한 지적 지식을 넘어선다.”17)고 하

    였다. 아즈나 짜끄라에 안착한 의식은 중립적으로 관찰하는 자기관찰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명상 중에 부지불식 간에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무심하게 주시하는 습관을 익힌다. 이런 태도를 익히는 것은 비이원의

    사하스라라(sahasrāra) 짜끄라로 의식이 이동하기 위한 교량역할을 한다

    는 것이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16) Jordan(2015). p.75.17) Ajaya(2015). p.231.

  • 아즈나 짜끄라의 뇌생리학에 관한 고찰 45

    아즈나 짜끄라에서 양극 세계는 완전히 초월되었다. 주시하는 의식

    은 관찰되는 분별과 양극성의 세계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여전히 다양

    성을 자각하지만 그 저변에 깔린 단일성도 인식하고 있기에 거기에 반

    응하지 않는다. 이는 비슛디 짜끄라의 이원 의식과 일곱 번째 짜끄라인

    사하스라라의 비이원 의식 사이의 과도기적인 상태다.18)

    대표적인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도 꾼달리니 현상을 분석심리적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아즈나 짜끄라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인간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관점과 인도인의 관점을 대비시키면서, 서양인들은

    물라다라(mūlādhāra)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지만 인도인들은 아즈나 관

    점, 즉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한다고 하였다. 다음은 그의 글을

    직접 인용한 것이다.

    인도인들은 위대한 빛의 관점에서 사고한다. 그의 사유는 개인적인

    아즈나가 아니라 우주적 아즈나에서 출발한다. 그들의 사유는 브라흐

    만에서 시작하지만 우리의 사유는 에고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사유는

    개인에서 시작해서 일반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힌두인들은 일반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개인으로 내려온다. 정묘체의 측면에서 보면 모든 것

    이 역전된다.19)

    칼 융에 따르면 아즈나 짜끄라의 각성은 개인에서 우주로 관점이 이

    동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제 한 개인은 인과의 세계인

    물라다라에 속박된 현상적 존재가 아니라 우주적인 보편자로서 재탄생

    하는 것이다.

    18) Ajaya(2015), p.243.19) Jung(1996). p.67.

  • 46 요가학연구 제21호(2019. 4)

    임병학과 최구원은20) 아즈나는 하위 짜끄라를 통합하여 빛으로 통합

    시키는 짜끄라로서 이곳이 계발되면 직관력과 창의력, 통찰력이 탁월해

    진다고 하였다. 또한 짜끄라 명상 시의 두뇌 영역별 뇌파 특성을 연구한

    김종상과 심준영은21) 아즈나를 넘어 사하스라라로 집중 부위를 이동할

    수록 깊은 명상 수준에서 일어나는 20~40Hz의 감마파가 미세하게 증가

    한다는 사실을 보고하면서 이는 이완된 집중이 깊어짐을 의미한다고 하

    였다. 하타요가 문헌을 개괄한 김재민은22) 아즈나는 ‘감로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생각되며, 이 짜끄라가 각성되면 ‘세속의 삶에도 걸림이 없고 해

    탈의 성취에도 장애가 없게 해주는 초자연력’을 획득한다고 하였다.

    3. 하타요가 경전에 기술된 아즈나 짜끄라

    짜끄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경전은 14세기에 저술된 것

    으로 추정되는 쉬바 쌍히따(Śiva Saṃhitā)이다. 이 경전에서는 5장 77-208

    절까지 짜끄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23). 이태영의 번역에서는 짜끄라 명

    상이라는 소제목을 붙여 5장 78-214절까지를 다루고 있지만24) 맬린슨

    (Mallinson)의 번역에서는 짜끄라 대신 연꽃(lotu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짜끄라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던 경전은 9세기 초에 저술된 것

    으로 추정되는 카시미르와 네팔 지방에서 전파되었던 딴뜨라 경전 네뜨

    라딴뜨라(Netratantra)이다. Netratantra란 “눈의 딴뜨라 Tantra of the eye”라는 의미로 눈의 주인인 쉬바신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눈이란 제 3의

    20) 임병학, 최구원(2017). p.20.21) 김종상,심준영(2015). pp. 315-31622) 김재민(2016). pp.27-28.23) Mallinson(2007), pp.122-154.24) 이태영(2000), pp.320-334.

  • 아즈나 짜끄라의 뇌생리학에 관한 고찰 47

    눈일 수 있다. 이 경전에서는 생식기 부위, 배꼽 부위, 가슴 부위, 구개,

    이마 부위, 나다(nāda)에서의 6개 짜끄라를 소개하고 있다.25)

    이제 하타요가의 대표적인 경전에 속하는 하타요가쁘라디삐까(Haṭha-

    yogaPradīpikā), 게란다 쌍히따(Gheranda Saṃhitā), 쉬바 쌍히따에서 언급하

    고 있는 아즈나 짜끄라와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자.

    1) 하타요가 쁘라디삐까

    하타요가 쁘라디삐까에서는 아즈나 짜끄라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

    만 무드라(mudrā) 수행을 통해 아즈나 짜끄라를 개발하는 방법이 소개되

    어 있다. 다음은 문을식의 번역을 통해26) 관련 내용들을 수집한 것이다.

    3. 52. 메루(=척추, 수슘나)의 정상에 소마가 저장된 동굴이 있다. 현자

    는 그 속에 진리(=참자아)가 있다고 말한다. 그곳에는 흘러내리는

    [관]의 배출구가 있다. 그곳의 달로부터 아름다운 몸의 정수인 감

    로가 흘러내려서 없어지면 사람은 죽게 된다. 그러므로 [케짜리 무

    드라와 같은] 뛰어난 무드라 수행을 해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완전한 신체를 얻을 수 없다.

    4.37. 요가수행자가 내부의 대상에 마음과 쁘라나를 몰입시킬 때 몸

    을 움직이지 않고 눈을 뜨고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이 미간 응시

    무드라이다. 이 무드라는 스승의 은총으로 얻어진다. 허공과 허공

    아닌 상태를 벗어나면 진정한 ‘미간 응시 무드라’의 실체가 나타난

    다.

    25) Mallinson, J. & Singleton(2017). p.203.26) 문을식(2015), pp.139-271.

  • 48 요가학연구 제21호(2019. 4)

    4.38. 미간 응시 무드라와 공중비행 무드라는 그 상태와 위치가 각각

    다르나, 자아의 본성인 허공 속에 마음이 몰입되는 환희심이 일어

    난다.

    4.48. 미간에 쉬바의 자리가 [있다]. 마음이 미간에서 사라지는 경지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그 단계는 제 4위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는

    시간(죽음)이 없다.

    2) 게란다 쌍히따

    다음은 게란다 쌍히따에서 아즈나 짜끄라와 관련된 내용들로서 맬린

    슨27)의 번역을 참고하였다.

    3.53. 미간을 바라보고 자아(아뜨만)의 환희를 보라. 이것이 샴바비 무

    드라이며 모든 딴뜨라에서 비밀로 간직되어 있다.

    3. 55. 샴바비 무드라를 아는 사람은 아디나타이자 나라야나이며, 창

    조주 브라흐만이다.

    3. 56. 마헤슈바라는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샴바비 무드라를 아

    는 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