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멈추지 않는 인생, 일기 인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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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얼었던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도 지나고 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나면서 불어오는 봄바람 속 의 온기는 우리 곁에 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 다. 벌써 성큼 봄은 다가오고 있는데 연초에 세웠던 계획 들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연초가 되 면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그동안 하지 못 했던 운동을 한다든지 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를 한다든 지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계획했던 것을 꾸준 히 지켜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보통 계획을 세우고 사흘 이상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심삼일 (作心三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결심한 것이 사흘 이상 지켜지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사자성어 일 것이다. 그만큼 계획을 꾸준히 실천한다는 것은 어려 운 일이다. 새해의 계획조차도 지키기 어려운데 60년이 넘는 시 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다는 것이 가능한 일 일까? 일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래 서인지 이 일기가 1997년 대한민국 최장 일기 쓰기 기네 스북에 오르기까지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 르겠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학호 박래욱 선생이다. 일기 쓰 기와 더불어 시작된 그의 기록 인생은 일기를 비롯해서 금전출납부 그리고 한약처방전까지 이어져 왔다. 박래욱 선생의 집에는 커다란 금고가 있었다. 그 금고 에는 금이나 돈보다도 더 소중한 그의 인생이 들어 있었다. 금고 속에 있 던 55년간의 기록을 담은 일기와 금전출납부 그리고 한약처방전은 2006 년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흔쾌히 기증되면서 국가유물로 등록이 되었다. 그 후 2008년 ‘내 삶의 감초, 55년간의 일기’ 전시도 개최되었고, 일기와 관련하여 박래욱 선생의 생애사를 조사하여 기억, 기록, 인생이야기는 보고서도 발간되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된 일기 쓰기 처음 일기를 쓰게 된 동기는 어머니의 말씀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박래욱 선생이 1948년 10세가 되던 해에 ‘소년 열 살이면 세상에 흔적을 남기라’고 하면서 일기 쓰기를 권유하였다. 그 말씀에 따라 쓰기 시작한 일기는 3년이 지날 무렵 6·25전쟁으로 인해 불구덩이 속에서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 가운데 남은 일기 조각들을 찾아내어 후에 6·25전쟁 기간 만의 일기를 모아 학호일기라는 일기집을 펴내기도 하였다. 그 후 1954 년 가을부터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박래욱 선생 의 일기 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6·25전쟁 때 너무 사실적으로 써 온 일 기로 인해서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아궁이에 불살라 버린 시기를 제외 하고는 지금껏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있다. 6·25전쟁 때 경찰가 족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을 모두 잃고 난 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일기 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한다. 전쟁고아로 살아가는 힘겨운 때에도 멈추지 않은 일기 쓰기 초등학생인 박래욱이 전쟁이 끝난 후 젖먹이 어린 동생을 키우며 살아가 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험난했다. 월사금을 아끼기 위해 공립중학교로 전 학을 하고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고등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에 큰집 대 청에 널어놓은 몇 근의 고추를 훔쳐서 달아나기도 하였다. 배 두 개로 월사 금을 대신하면서 힘겹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도와주던 선생 님을 비롯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젖을 얻어 먹이면서 어린 동생을 키우며 학교를 다녔고 간장 한 종지에 오늘도 멈추지 않는 기록 인생, 일기 인생 글. 최명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01 박래욱 선생의 55년간의 기록을 담은 일기와 가계부, 한약처방전 02 기네스북 등재 인증서 기록의 발견 | 오늘도 멈추지 않는 기록 인생, 일기 인생 82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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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오늘도 멈추지 않는 인생, 일기 인생 - archives.go.krarchives.go.kr/archivesdata/upFile/palgan/1364862046046.pdf족보 1질 (5권) 계 14건 서기 1950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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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었던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도 지나고 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나면서 불어오는 봄바람 속

의 온기는 우리 곁에 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

다. 벌써 성큼 봄은 다가오고 있는데 연초에 세웠던 계획

들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연초가 되

면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그동안 하지 못

했던 운동을 한다든지 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를 한다든

지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계획했던 것을 꾸준

히 지켜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보통 계획을 세우고

사흘 이상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심삼일

(作心三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결심한 것이

사흘 이상 지켜지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사자성어

일 것이다. 그만큼 계획을 꾸준히 실천한다는 것은 어려

운 일이다.

새해의 계획조차도 지키기 어려운데 60년이 넘는 시

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다는 것이 가능한 일

일까? 일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래

서인지 이 일기가 1997년 대한민국 최장 일기 쓰기 기네

스북에 오르기까지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

르겠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학호 박래욱 선생이다. 일기 쓰

기와 더불어 시작된 그의 기록 인생은 일기를 비롯해서

금전출납부 그리고 한약처방전까지 이어져 왔다.

박래욱 선생의 집에는 커다란 금고가 있었다. 그 금고

에는 금이나 돈보다도 더 소중한 그의 인생이 들어 있었다. 금고 속에 있

던 55년간의 기록을 담은 일기와 금전출납부 그리고 한약처방전은 2006

년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흔쾌히 기증되면서 국가유물로 등록이 되었다.

그 후 2008년 ‘내 삶의 감초, 55년간의 일기’ 전시도 개최되었고, 일기와

관련하여 박래욱 선생의 생애사를 조사하여 『기억, 기록, 인생이야기』라

는 보고서도 발간되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된 일기 쓰기

처음 일기를 쓰게 된 동기는 어머니의 말씀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박래욱 선생이 1948년 10세가 되던 해에 ‘소년 열 살이면 세상에 흔적을

남기라’고 하면서 일기 쓰기를 권유하였다. 그 말씀에 따라 쓰기 시작한

일기는 3년이 지날 무렵 6·25전쟁으로 인해 불구덩이 속에서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 가운데 남은 일기 조각들을 찾아내어 후에 6·25전쟁 기간

만의 일기를 모아 『학호일기』라는 일기집을 펴내기도 하였다. 그 후 1954

년 가을부터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박래욱 선생

의 일기 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6·25전쟁 때 너무 사실적으로 써 온 일

기로 인해서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아궁이에 불살라 버린 시기를 제외

하고는 지금껏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있다. 6·25전쟁 때 경찰가

족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을 모두 잃고 난 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일기

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한다.

전쟁고아로 살아가는 힘겨운 때에도 멈추지 않은 일기 쓰기

초등학생인 박래욱이 전쟁이 끝난 후 젖먹이 어린 동생을 키우며 살아가

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험난했다. 월사금을 아끼기 위해 공립중학교로 전

학을 하고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고등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에 큰집 대

청에 널어놓은 몇 근의 고추를 훔쳐서 달아나기도 하였다. 배 두 개로 월사

금을 대신하면서 힘겹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도와주던 선생

님을 비롯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젖을 얻어 먹이면서 어린 동생을 키우며 학교를 다녔고 간장 한 종지에

오늘도 멈추지 않는

기록 인생, 일기 인생

글. 최명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01 박래욱 선생의 55년간의 기록을 담은 일기와 가계부,

한약처방전

02 기네스북 등재 인증서

82 기록의 발견 | 오늘도 멈추지 않는 기록 인생, 일기 인생82 82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Page 2: 오늘도 멈추지 않는 인생, 일기 인생 - archives.go.krarchives.go.kr/archivesdata/upFile/palgan/1364862046046.pdf족보 1질 (5권) 계 14건 서기 1950년 10월 15일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8584 84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8584 8584 85

밥 한 그릇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지만, 미래에 대해

희망과 꿈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매일 일

기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고등학

교를 졸업하면서 처음으로 제사공장에 취직을 하고 직장

인으로 살아가면서도 그의 일기 쓰기는 계속 되었다.

한약사로의 인생전환 한약처방전과

금전출납부 기록 더하기

그의 직업은 한약사이다. 무면허 한약사 시절까지 합

하면 40여 년 동안 한약사로 살아왔다. 제사공장 직공,

농사꾼, 화장품 판매원을 거치면서 아내의 권유로 한약

사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한약사로의 인

생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면허 한약업사

로 시작하였으나, 한약종상시험에 합격하면서 정식으로

한약사가 되었다. 한약사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무면허

생활을 접고 감초당한약방이라는 한약방을 개업하였고,

한약사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다. 일기장 이외에

도 1961년부터 기록한 약방 금전출납부가 10여 권에 이

르고, 1971년부터 기록한 한약처방전 또한 10권이 넘는

다. 일기 쓰기를 시작하면서 습관이 되어 점점 다른 것까

지도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50년 일기, 세상의 빛을 보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일이고 그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테니스

동호회에서 일기 이야기를 들은 방송

사 직원이 있었는데 방송에 나와 달라

는 요청에 출연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박래욱의 일

기를 통해 수많은 격려 전화와 더불어

많은 방송사와 언론사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수십 차례 방송과 언론에 홍보

가 되면서 일기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

었다. 그 당시 43년간 쓴 일기는 한국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되었다.

방송에서 사람들은 독특한 인생이야

기에 관심을 가졌다. 12살 때 한국전

04 한약처방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자료 목록

일기(1950~2005년) 98권

금전출납부(1961~2003년) 10권

처방전(1971~2002년) 16권

각종 영수증 및 신변자료 18권

기타 자료 7점

앨범 6권

벼루 1점

나침판 1점

전대 1점

약저울 1점

가위 1점

명찰 1점

지압기 1점

족보 1질 (5권)

계 14건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서기 1950년 10월 15일 일요일 구름, 비

아침에 등에 업힌 동생은 더욱 울어댔다. 마침 아주머니가 오

셨다. 어린아이가 딸린 아주머니는 동생에게 젖을 물려주셨

다. 동생은 한번 쳐다보더니 배가 고팠던지 꿀꺽꿀꺽 잘도 빨

아댔다. 할머니께서는 이 새끼는 살려내야 할 터인데 하시며

걱정을 하셨다. 딸이 많은지라 큰 집 두래는 제 명에 맡기자

포기하신 것 같았다. 동생에게 젖을 먹이고 눈치를 보면서 달

아나듯이 나가버렸다. 앞길에서 전달꾼의 목소리만 계속 들

렸다. 할머니는 아랫집 샘알댁에게 가서 동생 젖을 먹이라고

하셨다. 할머니께서 식량을 주고 부탁해 놓으셨다. 오늘도 울

며불며 하루를 보냈다.

1970년 10월 16일 금요일 맑음

간헌이 화장품 판매만 해야 할 것인가. 시간이 많은 이 장사

그 공허한 시간을 무엇으로 메꾸느냐. 그래서 6시 30분에 일

어나 체육관에 나가 수련을 하고 10시부터 화장품 장사를 하

고 밤 10시 이전까지 시간을 이용하여 일인 일기의 소유가

되게 하련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한의기술을 터득해 보려고

노력중이며 H여사와 타협했다. 학원이라도 특강이라도 받아

서 71년 말까지만 화장품 장사하고 71년 말까지 밤의 시간을 이용해 한의 강습

수료 후 72년 초부터는 유명한 한약방에서 종업원 생활을 하면서 종업원 생활

몇 년 후 면허증 시험이나 응시를 하여 합격 후 40세 후나 기반 잡혀나가면 개업

이나 해 본다는 것이다. 왜 한의를 택하느냐하면 간헌의 체격, 묵직한 태도, 차분

한 성격, 깨끗이 정돈하는 마음가짐, 깊이 연구하는 마음, 잊어버리지 않은 기억

력으로 미루어 적격한 직종이 아닐까. 구수한 고담 사극을 좋아하고 말이다. 그

리고 현재하고 있는 이 직업은 몇 년 후는 나이로 보아서 할 수 없으며 한의는

늙어 사망하기 전까지는 만년 직업이 아니겠냐 말이다.

1971년 5월 20일 목요일 맑음

간헌 합격통지를 받아들고 먼저 부모님께 성묘를 드렸다. 꾸벅꾸벅 두 번 인사

드리옵고 경건히 꿇어 앉아서 아버지 어머니 음덕으로 이렇게 합격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제가 인술을 어떻게 치할 것인지가 큰 숙제입

니다. 앞으로도 간헌께 영험을 내려주시옵소서 빌었다. - 후략 -

03 금전출납부

03

04

기록의 발견 |

Page 3: 오늘도 멈추지 않는 인생, 일기 인생 - archives.go.krarchives.go.kr/archivesdata/upFile/palgan/1364862046046.pdf족보 1질 (5권) 계 14건 서기 1950년 10월 15일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8786 86 8786 8786 87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은 역사를 재구성한다. 기록

은 역사의 사실적인 면을 알려주는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일기는 한 사람의 인생이면서 한 개인의 역사이다. 또

한 일기 속에는 개인의 역사 뿐만 아니라 시대상과 사회

상이 담겨 있다. 1년 365일의 날씨를 비롯해서 1956년

당시 돼지고기 반근이 100환, 목욕 50환, 영화 30환 등

의 생활 물가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담겨 있어 한국 사회

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시대상과 사회상을 쉽게 이

해할 수 있다. 또한 자료의 집적으로 인해 후대 사람들에

게 각 분야별로 시대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檀紀 4293年(1960년) 4月 20日 水曜日 晴

會社에 出勤하여 여론에 의하면 앞으로의 국가의 사태는 극

도로 험악하여 국가의 存亡之秋가 처했다.

10時 項 밖에 나가본즉 四方에서 데모隊 學生을 저지하느라

고 총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學生들은 山모롱이에서 연좌 대

모을 하고 있다. But 키티는 作業에 매인 몸이라 꼭 合새 해주

어야 할 태모에 合새 못한 것이 통분스럽다.

点心때 月級을 준다. 쥐꼬리만한 돈 9,000환에 120환을 제하

고 8820환이다. 상당쿠나. 왜 그럴까. 二月에는 四日間의 결

근이 있었는데 아마 키티의 級料가 인상되었나 보다.

숙소에 오면서 곤노 1300환, 밤그릇 700환, 1볼 냄비 400환,

고기 두부 300환, 自治生活 처음으로 숙소에서 맛있게 해 먹

고도 곗돈 3,000환을 넣었다.

기쁘구나. 매월 무엇이든지 해볼 生覺이로다.

- 중략 -

계엄령은 선포. 계엄사령관은 송요찬 장군이시다.

통금 時間은 밤 7時 아침 5時로다.

우리 會社도 5時 30分에 作業中止로다.

일찍 숙소로 가는 판이지요.

10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이미 일흔을 훌쩍 넘

어선 그에게는 일기가 아니라 또 하나의 인생이다. 살다

보면 간혹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곤란에 빠지는 일이 생

기기도 한다. 하지만 박래욱 선생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

기를 쓰고 기록을 해온 덕분에 그 일기와 기록 자료들이

근거가 되어 오해와 갈등에서 벗어나기도 하였다.

박래욱 선생은 지금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감

초당한약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일기를

쓴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하루의 시작을 일기 쓰기로 했

기 때문에 습관적인 일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매일 같

은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철저한 자

기 관리가 없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철저한 자기 관

리를 통해 지금껏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성실함을 충분히 인정받아 마땅할 것이다.

박래욱 선생은 앞으로도 계속 일기를 쓸 거라고 하였

다. 아마도 그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기를 성찰하고 새로운 하루를 설계하면서 살아가는 그

성실함이야 말로 우리가 다시 한 번 새겨봐야 할 것이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있어서 일기 쓰기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필자 소개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석사(구비문학)와 문학박사(민속학) 학위를 받

았으며, 목포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육학석사(국어교육)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

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설화의 꿈화소 연구」

(1995), 「한국세시풍속의 변화와 콘텐츠화 연구」(2003), 「고등학교 구비문학 교육의

연구」(2005), 「문을 둘러싼 의례와 신앙」(2008)과 주요 저서로는 「기억, 기록, 인생이

야기」(2008), 「교과서와 함께하는 민속여행 1」(2011) 등이 있다.

쟁으로 고아가 되었다는 것, 제대로 된 한약방이나 한의

원에서 하루도 근무한 적이 없고 자독으로 한약업사 시

험에 합격했다는 것, 50년 일기가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것 등 특히 일기가 기네스북에 오르고 난 후 방송국과 언

론사에서 일기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면에 초점을 맞춰서 방송과 언론에 인생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 후 그 자료적 가치가 있어 55년간의 일

기 98권을 비롯해서 금전출납부, 처방전 등의 자료를 국

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였고 그 자료들은 국가유물로 등

록되었다.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한 기록을 생애사라고 한다. 생애

사는 경험에 대한 역사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생애사는 개인의 과

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을 담고 있으며 경험에 대한 역

사의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생애사는 사(史)이기

때문에 시간성을 전제로 한다. 생애사는 한 개인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함께

다루게 된다. 박래욱 선생의 한평생이 담긴 일기는 한 사

람의 일생에 대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개인의 역사이

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쓰는 습관 덕분인지 박래

욱 선생의 기억은 또 하나의 기록이다. 기록 자료인 일기

의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기억

이 저장되어 있다. 기록이 기억이고 기억이 기록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일치하였다. 심지어 일부 날짜와 시간

까지도 정확하게 기억 속에 저장해 놓았다.

이와 같은 기억과 일기라는 기록 자료를 토대로 국립

민속박물관에서는 2008년에 일기와 관련된 그의 생애를

조사하여 『기억, 기록, 인생이야기』라는 보고서를 발간

하였다. 기억을 통한 구술 자료와 기록을 통한 일기 자료

를 토대로 박래욱 선생만의 특별한 인생이야기를 재구성

하였다. 그 속에는 한평생을 동반한 일기 인생이 담겨 있

다. 박래욱 선생에게 일기는 곧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구술을 통한 기억과 일기를 통한 기록은 한 개인 뿐만 아

니라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까지 엿볼 수 있는 역사읽

기를 가능하게 한다.

박래욱 선생은 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가리켜 키티, 간

헌, 학호 등 다른 이름으로 적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일

기를 가리켜 ‘학호일기’라고 부르고 있다. 박래욱의 학호

일기는 1954년부터 현재까지 해방 후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반

세기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의 내용은 중요한 사회적 현상

과 역사이기도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록’은 역사를 만들어 가는 또 하나의

05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한약 관련 유물들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기억, 기록, 인생이야기」에 담긴

한평생의 일기 인생

학호일기의 기록적 의미와 가치

기록의 발견 |

05 일기, 또 하나의 역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