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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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음악논단 제40집 ⓒ 2018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2018년 10월, 105-141쪽 한양대학교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어쿠 마틱 ( dis-acousmatic ) 해석 * 서 정 은 (서울대학교) I. 들어가면서 소리는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 청지각의 대상물인 소리와 시각적 경험 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음악의 순수한 청취란 무엇을 뜻하는가? 얼핏 청각과 시각의 연계에 관한 지각인지적 접근처럼 보이는 이러한 질문들은 1960년대에 작곡가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가 제 안한 ‘어쿠스마틱’(acousmatique, acousmatic) 1) 이라는 개념을 통해 일 찍이 제시되었다. ‘소리발생의 원인이 보이지 않은 채 들리는 소리’를 뜻하 는 이 용어는 최근 다양한 학계의 관심분야로 떠오르기 시작한 소리연구 (Sound Studies)의 논제 중 하나로, 음악학 분야에서는 대표적인 연구자 로 브라이언 케인을 꼽을 수 있다. 2) * 이 글은 필자가 2018년 3월 30-31일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주최의 국제학술대회 “Rethinking Sound”에서 발표했던 원고를 토대로 발전시킨 논문이다. 1) ‘어쿠스마틱’이라는 용어는 우리말의 한두 단어로 번역되기 어렵고 아직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가 없기에, 이 글에서는 독음으로 표기한다. 이 용어의 의미에 대 해서는 Ⅱ장에서 살펴본다. 2) 케인의 대표적인 저술로 Brian Kane, “L’Objet Sonore Maintenant: Pierre Schaeffer, Sound Objects and the Phenomenological Reduction,” Organised Sound 12/1 (2007), 15-24; “Acousmate: History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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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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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5172음악논단985173 제40집 2018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2018년 10월 105-141쪽 한양대학교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서울대학교)

I 들어가면서

소리는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 청지각의 대상물인 소리와 시각적 경험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음악의 순수한 청취란 무엇을 뜻하는가 얼핏 청각과 시각의 연계에 관한 지각인지적 접근처럼 보이는 이러한 질문들은 1960년대에 작곡가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가 제안한 lsquo어쿠스마틱rsquo(acousmatique acousmatic)1)이라는 개념을 통해 일찍이 제시되었다 lsquo소리발생의 원인이 보이지 않은 채 들리는 소리rsquo를 뜻하는 이 용어는 최근 다양한 학계의 관심분야로 떠오르기 시작한 소리연구(Sound Studies)의 논제 중 하나로 음악학 분야에서는 대표적인 연구자로 브라이언 케인을 꼽을 수 있다2)

이 글은 필자가 2018년 3월 30-31일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주최의 국제학술대회 ldquoRethinking Soundrdquo에서 발표했던 원고를 토대로 발전시킨 논문이다

1)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용어는 우리말의 한두 단어로 번역되기 어렵고 아직 국내에서 통용되는 번역어가 없기에 이 글에서는 독음으로 표기한다 이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Ⅱ장에서 살펴본다

2) 케인의 대표적인 저술로 Brian Kane ldquoLrsquoObjet Sonore Maintenant Pierre Schaeffer Sound Objects and the Phenomenological Reduction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15-24 ldquoAcousmate History and

106 서 정 은

이 글에서는 1960년대 말 이후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독일의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을 탈어쿠스마틱3) 관점에서 고찰하려 한다4) 그런데 왜 락헨만인가 이는 비단 그가 20세기 후반 유럽 현대음악계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 중 하나로 거론되어 왔으며 다른 유럽국가나 북미권에 비해 진보적middot실험적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독일 음악계에서조차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온 문제적 인물이라는 사실 그러면서도 많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향을 끼쳐왔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첫째 어쿠스마틱 개념의 음악적 실현 방식이었던 쉐페르의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약 20년 후 lsquo기악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 strumentale)이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되살린 인물로서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쉐페르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

De-visualised Sound in the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ndash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등이 있다 케인은 최근 저서 Sound Unseen에서 어쿠스마틱 사운드에 대해 쉐페르가 제시한 현상학적 맥락을 넘어서서 고찰하며 주로 쉐페르와 벨에 의해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즉 음반 테이프 MP3 등 음향저장매체)에 한정되었던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미학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역의 논의로 확장한다

3) lsquo탈어쿠스마틱rsquo은 미셸 시옹의 용어인 lsquode-acousmatizationrsquo 또는 브라이언 케인의 lsquodis-acousmatizationrsquo을 형용사 형태로 한글 표기한 것이다 Michel Choin Audio-Vision Sound on Scree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72 130-131 Kane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148 157-159 국내 출간물로는 언론정보학자 이재현의 『디지털 시대의 읽기 쓰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의 10장에서 lsquo탈어쿠스마틱 청취rsquo라는 용어로 다루어진 바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ldquolsquo보이는 라디오rsquo의 듣기와 보기라는 독특한 미디어 경험 양식을 lsquo탈(脫)어쿠스마틱(disacousmatic) 청취로의 전환rsquo으로 규정rdquo하면서 lsquoacousmaticrsquo에 대한 대립개념을 lsquodis-rsquo라는 접두어로 설정하 다 본 논문에서는 번역어로 이재현과 동일한 lsquo탈어쿠스마틱rsquo을 사용하나 용어의 의미는 물론 전혀 다르다

4) 필자는 이전 논문(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서양음악학』 113 (2008) 67-116)에서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을 소개하며 이에 대한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을 시도한 바 있다 본 논문에서는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새로운 측면에서 이를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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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락헨만 스스로 언명한 바 없기에 의도적으로 쉐페르에 대립적 의식을 가졌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필자가 파악하는 락헨만은 바로 그 lsquo어쿠스마틱rsquo 개념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관점 즉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관점에서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점들이 존재함에도 락헨만 음악에 대한 여러 학자와 논평가들 또는 자신의 작품과 미학에 대해 많은 글과 인터뷰를 남긴 작곡가 스스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한 적이 없으며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초점을 두었던 lsquo들을 뿐 아니라 보는 연주rsquo의 개념이 탈어쿠스마틱 소리 및 청취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여러 면에서 분명해 보인다

이 글은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의 구체음악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공통점과 대조점의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탈어쿠스마틱 관점에서의 해석을 시도한다 물론 장르명으로서의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범주적으로나 시기적으로 한정되기에 이러한 논의가 한 명의 작곡가의 특정 시기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현대음악의 보편적인 장르가 아니며 다른 작곡가들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악구체음악은 1970년대 중반 새로운 작품미학의 도입 이후 다소간의 작법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지속되어온 락헨만의 인장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실현을 위해 사용된 락헨만 특유의 사운드(주로 소음으로 특징지어지는)와 주법들은 그로부터 향 받은 후대의 수많은 유럽 작곡가들에게서 여전히 나타난다 다만 후대 작곡가들은 락헨만 식의 미학적middot음악사적 함의가 아닌 자기 나름대로의 개념 하에 유사한 사운드를 사용한 것으로서 외피(즉 발생되는 음향)는 유사하나 내재된 미학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그러한 흐름의 선두 주자로서 독창적 개념을 발전시켰던 락헨만의 작품미학 즉 lsquo소리 산출의 과정과 상황에 대한 주목rsquo을 탈어쿠스마틱 개념 안에서 새롭게 독해하는 것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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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어쿠스마틱 보이지 않는 소리

21 lsquo어쿠스마틱rsquo의 의미와 적용

간략히 말해 lsquo소리발생의 원인이 보이지 않은 채 들리는 소리 또는 그러한 상황rsquo을 뜻하는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용어의 역사적 근원을 보자면 lsquo듣는 사람rsquo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lsquo어쿠스마티코이rsquo(ἀκουσματικοί listeners auditors)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원전 그리스의 피타고라스(c570ndashc495 BC)로 거슬러 올라간다6) 전승에 의하면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3년간의 수습기간에 이어서 5년 동안의 lsquo침묵의 기간rsquo을 거친 후 비로소 피타고라스의 핵심제자(mathecircmatikoi learned Esoteriker)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다소 비교(祕敎)적 성격의 이러한 훈련과정 중 침묵의 시기에 속한 제자들 즉 어쿠스마티코이는 스승이 베일이나 커튼 뒤에서 강연할 때 스승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음성만을 들어야 했고 모든 시각적 정보가 차단되었기에 lsquo청취rsquo 행위에 집중함을 통해서만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대의 전승이 20세기에 되살아난 것은 쉐페르와 피에르 앙리(Pierre Henry 1927-2017)가 한창 구체음악 작업에 몰두하던 1955년 프랑스의 작가 던 제롬 페뇨(Jeacuterocircme Peignot 1926- )를 통해서 는데

5) 이 글은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고찰이므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의 매체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또한 소리에 대한 지각인지적 접근도 어쿠스틱 음향과 전기적 음향의 분류와 발생에 관한 논의도 아님을 밝힌다

6) 피타고라스 전승에 관련된 lsquo어쿠스마틱rsquo 개념은 다음 저서들에서 거의 공통된 내용으로 다루어져 있기에 여러 출처를 한꺼번에 표기한다 Pierre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64 Franccedilois Bayle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81 183 Christoph von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Muumlnster LIT Verlag 2004) 192 Kane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4 46-47 54-57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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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lsquo구체음악그룹rsquo(Groupe de Musique Concregravete)의 방송이었던 lsquo뮈지크 아니메rsquo(Musique Animeacutee)에서 ldquo사전적 의미로 어쿠스마틱 소음은 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를 뜻한다rdquo라면서 lsquo어쿠스마틱 소음rsquo(bruit acousmatique)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다7) 페뇨가 피타고라스의 개념을 직접 인용한 것인지는 불명확하나 작가 던 그가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1913년 작 《되찾은 시들》(Poegravemes retrouveacutes)에 사용된 lsquoacousmatersquo란 단어를 쉐페르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최근 연구에서 케인은 피타고라스의 베일 자체가 그의 비유적 언어를 위한 수사법이며 그러한 일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하나9)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어쿠스마틱 개념의 시원은 위에 서술한 바와 같다 위와 같은 특별한 청취의 lsquo상황rsquo 또는 그러한 조건에서 듣는 lsquo소리rsquo를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형용사로 수식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중반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용 목적에서 상업용으로 확장 유행되기 시작했던 라디오 그리고 1913년 미래주의 선언(Futurist manifesto)을 필두로 한 소음예술(Larte dei Rumori)의 탄생은 쉐페르의 시대에 이르러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이어진다 구체음악middot전자음악에 관한 저술가이자 작곡가인 프랑수아 벨(Franccedilois Bayle 1932- )은 구체음악의 탄생을 ldquo라디오와 음악의 우연적 만남rdquo이라고 표현한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레지스탕스 시대에 비밀스러운 역할을 했던 라디오 청취의 중요성이 높았고 당시 라디오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대

7) Bayle ldquoGlossarrdquo 183 8) Franccedilois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9 Bayle ldquoGlossarrdquo 183 Kane Sound Unseen 74-78 케인은 종종 유의어로 간주되는 lsquoacousmatiquersquo와 lsquoacousmatersquo가 본래 분명히 구별되는 개념이라면서 그 근원과 의미를 설명한다 Kane Sound Unseen 75-77 Kane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Schaefferian Traditionrdquo 179ndash188

9) Kane Sound Unseen 45ndash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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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적이면서 문화적인 도구 다는 것이다10) 벨의 다음 말은 고대의 전승과 현대적 매체의 거리를 좁혀준다

ldquo스피커를 통해 라디오를 들을 때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의도를 2500년 후 다시 새롭게 만난다 쉐페르는 가시적인 행위자(actant Akteur)의 부재로 인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는 청각적 방사(Projektion)의 라디오폰 예술 라디오극(Houmlrspiel) 분야의 개척자 다 구체음악은 바로 그런 음악이었다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청취를 통해 [hellip] 구조적 의도를 발견함으로써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음악 그러므로 어쿠스마틱에 대한 질문은 완전히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rdquo11)

1940년대부터 구체음악을 통해 이 개념의 실현을 시도한 쉐페르가 그의 방대한 『음악적 대상에 관한 논서』(1966)12)에서 설명하는 어쿠스마틱은 ld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구별함)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perceptual reality)를 강조rdquo한다 그는 이 개념이 ldquo오로지 귀에만 지각의 전적인 책임을 부여했던 고대의 전통rdquo에서 비롯되었으며 ldquo옛적에는 커튼이 그 장치 으나 이제는 라디오와 전기음향전달의 모든 형태를 사용하는 사운드 재생시스템rdquo이 보이지 않는 음성을 전달한다면서 어쿠스마틱을 현대적 개념에 적용한다13)

쉐페르의 위 글이 쓰 던 시대적 맥락이 피타고라스의 때와는 전혀 다른 이미 전기통신과 라디오를 넘어서 TV 화 등의 매스미디어가 보편적으로 확산된 1960년대의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ls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를 강조rsquo할 수 있

10) Franccedilois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47

11)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1512) Pierre Schaeffer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필자

가 참고한 판본은 2017년에 발간된 문번역본으로 번역본의 서지사항은 각주6)에 있다

13)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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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어쿠스마틱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청지각(聽知覺) 자체는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구체음악뿐 아니라 한 발 늦게 태동했던 전자음악의 발전을 통해 현재까지도 여러 작곡가들이 이른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14)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앞서 언급했듯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개념을 공통으로 사용한 쉐페르와 락헨만의 대립적 해석이다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방식에 주목하게 하지 않고 오직 귀에 들리는 소리 자체에만 집중하게 한다rsquo는 것에서 어쿠스마틱 즉 자신의 구체음악의 의미를 포착했던 쉐페르에 대해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과정을 의식적으로 청중에게 노출 인식rsquo시키려 했던 락헨만은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ldquo어쿠스마틱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측정 가능한 것과의 어떠한 관계도 상징적으로 금지rdquo한다면서 ldquo보기(sight)와 듣기(hearing)의 분리는 다른 방식의 청취를 고무한다 더 잘 듣는 것 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는 소리형식의 청취rdquo15)라는 쉐페르의 말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대립을 발견한다 두 작곡가는 lsquo더 잘 듣기 위함rsquo이라는 유사한 목적 아래 lsquo새로운 방식의 청취rsquo를 공통으로 제시했으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했던 것이다 쉐페르와 락헨만의 해석적 대립과 공통성의 역설을 보여주는 이 두 가지 측면은 Ⅲ장의 논의로 연결된다

한편 쉐페르가 당시 자신의 실험적 창작물인 구체음악의 청취경험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어쿠스마틱이라는 용어를 음악에 처음 도입했다면 이후 몇몇 학자와 음악가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로 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몇 가지 해석과 적용의 예를 보자

우선 1974년 프랑수아 벨은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lsquo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음향저장장치를 통해 제작되고 재생되는

14) 대부분의 라이브 전자음악은 여기서 예외일 것이다 어쿠스마틱 작곡가 중 특히 프랑수아 벨 프란시스 도몽(Francis Dhomont 1926- ) 데니스 스몰리(Denis Smalley 1946- ) 등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5)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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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rsquo으로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자악기(옹드 마르트노 전기기타 신디사이저 디지털 실시간 프로세서 등)가 탄생한 이래로 lsquo전자음악rsquo에 라이브 연주가 포함되자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을 느낀 벨은 전자음악과 구별되는 의미의 어쿠스마틱 음악을 제안한 것이다16) 이는 연주 시 가시적인 라이브 연주자 또는 악기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고 따라서 전통적 어쿠스틱 음악과 라이브 전자음악은 제외된다 소리저장장치를 통한 저장과 재생이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본질적 요소가 아닌 라이브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테이프 CD 디지털음향파일 등의 음향저장매체만을 통해 생산되고 청취되는 모든 음악을 뜻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은 일정 매체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그런가하면 화이론가 미셸 시옹(Michel Chion 1947- )은 이 개념을 화에 적용하여 화에서 발생되는 두 가지 어쿠스마틱 상황을 설명한

다17) 하나는 사운드의 근원이 lsquo처음에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acousmatized) 되는 경우로 시옹은 이를 lsquo시각화된 사운드rsquo(visualised sound)라고 칭한다 이 경우 사운드는 처음에 보 던 특정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분류되며(classified) 구체화된다(embodied) 또 하나의 상황은 소리의 근원이 lsquo처음에 보이지 않다가rsquo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다 이때 소리의 근원은 당분간 베일에 가려 긴장을 높이다가 나중에 노출됨으로 인해 눈에 보이게 되는(de-acousmatizing) 효과를 갖는다

시옹과 같이 탈어쿠스마틱 상황을 lsquo탈신화화rsquo 또는 lsquo구체화rsquo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 논문 Ⅲ장의 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락헨만이 서양전통 클래식음악의 연주와 청취 상황을 이해한 관점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16)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한편 벨은 ldquo순수한 청취를 위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rdquo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8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어쿠스모니움(Acousmonium)이라는 소리전파시스템을 만들어 1974년 파리에서 처음 어쿠스모니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Groupe de Recherche Musicales)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209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75

17) Chion Audio-Vision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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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이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시각과 연관된다 케인 역시 어쿠스마틱 상황을 초월적이고 신성한 힘과 연관시켜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데니스 스몰리의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무의식적인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소리 내는 제스처(sounding gesture)에 대한 지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rdquo18)라는 서술도 전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Ⅲ장의 논의와 관련된다

22 어쿠스마틱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

어쿠스마틱 사운드나 청취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 관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lsquo보이지 않음rsquo(unseenness)과 lsquo식별되지 않음rsquo (unidentifiability)이 마치 동의어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앞서 살펴본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과 적용에서 여러 혼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견습생들이 가르침에 더 집중하도록 스승이 베일이나 스크린 뒤에서 강연할 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있도록 요구되었다는 전승의 경우에도 당시 녹음이나 통신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로서는 베일 뒤 스승의 현존 그리고 스승이 발화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middot식별middot인지 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lsquo시각rsquo을 통해 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lsquo보이지 않지만 식별 가능한rsquo 청취의 상황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혼용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바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에 관해 처음 제안한 두 사람 페뇨의 ldquo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rdquo와 쉐페르의 ldquo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소리rdquo19)는 동일한 의미가

18) Denis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한편 스몰리는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에서 쉐페르의 어쿠스마틱 개념을 lsquo공간 개념rsquo으로 확장middot적용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19)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7

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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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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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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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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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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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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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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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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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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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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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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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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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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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138 서 정 은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Lachenmann Helmut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28-235

ldquoThe Beautiful in Music Todayrdquo Tempo 135 (1980) 20-24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Pace Ian ldquoRecord Reviewrdquo Tempo New Series 197 (1996) 62-63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17

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06 서 정 은

이 글에서는 1960년대 말 이후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독일의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을 탈어쿠스마틱3) 관점에서 고찰하려 한다4) 그런데 왜 락헨만인가 이는 비단 그가 20세기 후반 유럽 현대음악계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 중 하나로 거론되어 왔으며 다른 유럽국가나 북미권에 비해 진보적middot실험적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독일 음악계에서조차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온 문제적 인물이라는 사실 그러면서도 많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향을 끼쳐왔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첫째 어쿠스마틱 개념의 음악적 실현 방식이었던 쉐페르의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약 20년 후 lsquo기악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 strumentale)이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되살린 인물로서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쉐페르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

De-visualised Sound in the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ndash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등이 있다 케인은 최근 저서 Sound Unseen에서 어쿠스마틱 사운드에 대해 쉐페르가 제시한 현상학적 맥락을 넘어서서 고찰하며 주로 쉐페르와 벨에 의해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즉 음반 테이프 MP3 등 음향저장매체)에 한정되었던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미학 문학 철학 등 다양한 역의 논의로 확장한다

3) lsquo탈어쿠스마틱rsquo은 미셸 시옹의 용어인 lsquode-acousmatizationrsquo 또는 브라이언 케인의 lsquodis-acousmatizationrsquo을 형용사 형태로 한글 표기한 것이다 Michel Choin Audio-Vision Sound on Scree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72 130-131 Kane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148 157-159 국내 출간물로는 언론정보학자 이재현의 『디지털 시대의 읽기 쓰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의 10장에서 lsquo탈어쿠스마틱 청취rsquo라는 용어로 다루어진 바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ldquolsquo보이는 라디오rsquo의 듣기와 보기라는 독특한 미디어 경험 양식을 lsquo탈(脫)어쿠스마틱(disacousmatic) 청취로의 전환rsquo으로 규정rdquo하면서 lsquoacousmaticrsquo에 대한 대립개념을 lsquodis-rsquo라는 접두어로 설정하 다 본 논문에서는 번역어로 이재현과 동일한 lsquo탈어쿠스마틱rsquo을 사용하나 용어의 의미는 물론 전혀 다르다

4) 필자는 이전 논문(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서양음악학』 113 (2008) 67-116)에서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을 소개하며 이에 대한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을 시도한 바 있다 본 논문에서는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새로운 측면에서 이를 논의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07

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락헨만 스스로 언명한 바 없기에 의도적으로 쉐페르에 대립적 의식을 가졌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필자가 파악하는 락헨만은 바로 그 lsquo어쿠스마틱rsquo 개념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관점 즉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관점에서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점들이 존재함에도 락헨만 음악에 대한 여러 학자와 논평가들 또는 자신의 작품과 미학에 대해 많은 글과 인터뷰를 남긴 작곡가 스스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한 적이 없으며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초점을 두었던 lsquo들을 뿐 아니라 보는 연주rsquo의 개념이 탈어쿠스마틱 소리 및 청취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여러 면에서 분명해 보인다

이 글은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의 구체음악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공통점과 대조점의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탈어쿠스마틱 관점에서의 해석을 시도한다 물론 장르명으로서의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범주적으로나 시기적으로 한정되기에 이러한 논의가 한 명의 작곡가의 특정 시기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현대음악의 보편적인 장르가 아니며 다른 작곡가들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악구체음악은 1970년대 중반 새로운 작품미학의 도입 이후 다소간의 작법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지속되어온 락헨만의 인장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실현을 위해 사용된 락헨만 특유의 사운드(주로 소음으로 특징지어지는)와 주법들은 그로부터 향 받은 후대의 수많은 유럽 작곡가들에게서 여전히 나타난다 다만 후대 작곡가들은 락헨만 식의 미학적middot음악사적 함의가 아닌 자기 나름대로의 개념 하에 유사한 사운드를 사용한 것으로서 외피(즉 발생되는 음향)는 유사하나 내재된 미학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그러한 흐름의 선두 주자로서 독창적 개념을 발전시켰던 락헨만의 작품미학 즉 lsquo소리 산출의 과정과 상황에 대한 주목rsquo을 탈어쿠스마틱 개념 안에서 새롭게 독해하는 것이다5)

108 서 정 은

Ⅱ 어쿠스마틱 보이지 않는 소리

21 lsquo어쿠스마틱rsquo의 의미와 적용

간략히 말해 lsquo소리발생의 원인이 보이지 않은 채 들리는 소리 또는 그러한 상황rsquo을 뜻하는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용어의 역사적 근원을 보자면 lsquo듣는 사람rsquo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lsquo어쿠스마티코이rsquo(ἀκουσματικοί listeners auditors)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원전 그리스의 피타고라스(c570ndashc495 BC)로 거슬러 올라간다6) 전승에 의하면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3년간의 수습기간에 이어서 5년 동안의 lsquo침묵의 기간rsquo을 거친 후 비로소 피타고라스의 핵심제자(mathecircmatikoi learned Esoteriker)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다소 비교(祕敎)적 성격의 이러한 훈련과정 중 침묵의 시기에 속한 제자들 즉 어쿠스마티코이는 스승이 베일이나 커튼 뒤에서 강연할 때 스승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음성만을 들어야 했고 모든 시각적 정보가 차단되었기에 lsquo청취rsquo 행위에 집중함을 통해서만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대의 전승이 20세기에 되살아난 것은 쉐페르와 피에르 앙리(Pierre Henry 1927-2017)가 한창 구체음악 작업에 몰두하던 1955년 프랑스의 작가 던 제롬 페뇨(Jeacuterocircme Peignot 1926- )를 통해서 는데

5) 이 글은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고찰이므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의 매체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또한 소리에 대한 지각인지적 접근도 어쿠스틱 음향과 전기적 음향의 분류와 발생에 관한 논의도 아님을 밝힌다

6) 피타고라스 전승에 관련된 lsquo어쿠스마틱rsquo 개념은 다음 저서들에서 거의 공통된 내용으로 다루어져 있기에 여러 출처를 한꺼번에 표기한다 Pierre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64 Franccedilois Bayle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81 183 Christoph von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Muumlnster LIT Verlag 2004) 192 Kane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4 46-47 54-57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09

그는 lsquo구체음악그룹rsquo(Groupe de Musique Concregravete)의 방송이었던 lsquo뮈지크 아니메rsquo(Musique Animeacutee)에서 ldquo사전적 의미로 어쿠스마틱 소음은 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를 뜻한다rdquo라면서 lsquo어쿠스마틱 소음rsquo(bruit acousmatique)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다7) 페뇨가 피타고라스의 개념을 직접 인용한 것인지는 불명확하나 작가 던 그가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1913년 작 《되찾은 시들》(Poegravemes retrouveacutes)에 사용된 lsquoacousmatersquo란 단어를 쉐페르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최근 연구에서 케인은 피타고라스의 베일 자체가 그의 비유적 언어를 위한 수사법이며 그러한 일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하나9)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어쿠스마틱 개념의 시원은 위에 서술한 바와 같다 위와 같은 특별한 청취의 lsquo상황rsquo 또는 그러한 조건에서 듣는 lsquo소리rsquo를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형용사로 수식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중반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용 목적에서 상업용으로 확장 유행되기 시작했던 라디오 그리고 1913년 미래주의 선언(Futurist manifesto)을 필두로 한 소음예술(Larte dei Rumori)의 탄생은 쉐페르의 시대에 이르러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이어진다 구체음악middot전자음악에 관한 저술가이자 작곡가인 프랑수아 벨(Franccedilois Bayle 1932- )은 구체음악의 탄생을 ldquo라디오와 음악의 우연적 만남rdquo이라고 표현한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레지스탕스 시대에 비밀스러운 역할을 했던 라디오 청취의 중요성이 높았고 당시 라디오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대

7) Bayle ldquoGlossarrdquo 183 8) Franccedilois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9 Bayle ldquoGlossarrdquo 183 Kane Sound Unseen 74-78 케인은 종종 유의어로 간주되는 lsquoacousmatiquersquo와 lsquoacousmatersquo가 본래 분명히 구별되는 개념이라면서 그 근원과 의미를 설명한다 Kane Sound Unseen 75-77 Kane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Schaefferian Traditionrdquo 179ndash188

9) Kane Sound Unseen 45ndash72

110 서 정 은

중적이면서 문화적인 도구 다는 것이다10) 벨의 다음 말은 고대의 전승과 현대적 매체의 거리를 좁혀준다

ldquo스피커를 통해 라디오를 들을 때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의도를 2500년 후 다시 새롭게 만난다 쉐페르는 가시적인 행위자(actant Akteur)의 부재로 인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는 청각적 방사(Projektion)의 라디오폰 예술 라디오극(Houmlrspiel) 분야의 개척자 다 구체음악은 바로 그런 음악이었다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청취를 통해 [hellip] 구조적 의도를 발견함으로써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음악 그러므로 어쿠스마틱에 대한 질문은 완전히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rdquo11)

1940년대부터 구체음악을 통해 이 개념의 실현을 시도한 쉐페르가 그의 방대한 『음악적 대상에 관한 논서』(1966)12)에서 설명하는 어쿠스마틱은 ld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구별함)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perceptual reality)를 강조rdquo한다 그는 이 개념이 ldquo오로지 귀에만 지각의 전적인 책임을 부여했던 고대의 전통rdquo에서 비롯되었으며 ldquo옛적에는 커튼이 그 장치 으나 이제는 라디오와 전기음향전달의 모든 형태를 사용하는 사운드 재생시스템rdquo이 보이지 않는 음성을 전달한다면서 어쿠스마틱을 현대적 개념에 적용한다13)

쉐페르의 위 글이 쓰 던 시대적 맥락이 피타고라스의 때와는 전혀 다른 이미 전기통신과 라디오를 넘어서 TV 화 등의 매스미디어가 보편적으로 확산된 1960년대의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ls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를 강조rsquo할 수 있

10) Franccedilois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47

11)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1512) Pierre Schaeffer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필자

가 참고한 판본은 2017년에 발간된 문번역본으로 번역본의 서지사항은 각주6)에 있다

13)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1

는 어쿠스마틱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청지각(聽知覺) 자체는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구체음악뿐 아니라 한 발 늦게 태동했던 전자음악의 발전을 통해 현재까지도 여러 작곡가들이 이른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14)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앞서 언급했듯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개념을 공통으로 사용한 쉐페르와 락헨만의 대립적 해석이다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방식에 주목하게 하지 않고 오직 귀에 들리는 소리 자체에만 집중하게 한다rsquo는 것에서 어쿠스마틱 즉 자신의 구체음악의 의미를 포착했던 쉐페르에 대해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과정을 의식적으로 청중에게 노출 인식rsquo시키려 했던 락헨만은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ldquo어쿠스마틱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측정 가능한 것과의 어떠한 관계도 상징적으로 금지rdquo한다면서 ldquo보기(sight)와 듣기(hearing)의 분리는 다른 방식의 청취를 고무한다 더 잘 듣는 것 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는 소리형식의 청취rdquo15)라는 쉐페르의 말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대립을 발견한다 두 작곡가는 lsquo더 잘 듣기 위함rsquo이라는 유사한 목적 아래 lsquo새로운 방식의 청취rsquo를 공통으로 제시했으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했던 것이다 쉐페르와 락헨만의 해석적 대립과 공통성의 역설을 보여주는 이 두 가지 측면은 Ⅲ장의 논의로 연결된다

한편 쉐페르가 당시 자신의 실험적 창작물인 구체음악의 청취경험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어쿠스마틱이라는 용어를 음악에 처음 도입했다면 이후 몇몇 학자와 음악가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로 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몇 가지 해석과 적용의 예를 보자

우선 1974년 프랑수아 벨은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lsquo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음향저장장치를 통해 제작되고 재생되는

14) 대부분의 라이브 전자음악은 여기서 예외일 것이다 어쿠스마틱 작곡가 중 특히 프랑수아 벨 프란시스 도몽(Francis Dhomont 1926- ) 데니스 스몰리(Denis Smalley 1946- ) 등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5)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12 서 정 은

음악rsquo으로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자악기(옹드 마르트노 전기기타 신디사이저 디지털 실시간 프로세서 등)가 탄생한 이래로 lsquo전자음악rsquo에 라이브 연주가 포함되자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을 느낀 벨은 전자음악과 구별되는 의미의 어쿠스마틱 음악을 제안한 것이다16) 이는 연주 시 가시적인 라이브 연주자 또는 악기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고 따라서 전통적 어쿠스틱 음악과 라이브 전자음악은 제외된다 소리저장장치를 통한 저장과 재생이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본질적 요소가 아닌 라이브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테이프 CD 디지털음향파일 등의 음향저장매체만을 통해 생산되고 청취되는 모든 음악을 뜻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은 일정 매체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그런가하면 화이론가 미셸 시옹(Michel Chion 1947- )은 이 개념을 화에 적용하여 화에서 발생되는 두 가지 어쿠스마틱 상황을 설명한

다17) 하나는 사운드의 근원이 lsquo처음에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acousmatized) 되는 경우로 시옹은 이를 lsquo시각화된 사운드rsquo(visualised sound)라고 칭한다 이 경우 사운드는 처음에 보 던 특정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분류되며(classified) 구체화된다(embodied) 또 하나의 상황은 소리의 근원이 lsquo처음에 보이지 않다가rsquo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다 이때 소리의 근원은 당분간 베일에 가려 긴장을 높이다가 나중에 노출됨으로 인해 눈에 보이게 되는(de-acousmatizing) 효과를 갖는다

시옹과 같이 탈어쿠스마틱 상황을 lsquo탈신화화rsquo 또는 lsquo구체화rsquo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 논문 Ⅲ장의 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락헨만이 서양전통 클래식음악의 연주와 청취 상황을 이해한 관점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16)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한편 벨은 ldquo순수한 청취를 위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rdquo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8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어쿠스모니움(Acousmonium)이라는 소리전파시스템을 만들어 1974년 파리에서 처음 어쿠스모니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Groupe de Recherche Musicales)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209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75

17) Chion Audio-Vision 7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3

통해 이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시각과 연관된다 케인 역시 어쿠스마틱 상황을 초월적이고 신성한 힘과 연관시켜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데니스 스몰리의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무의식적인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소리 내는 제스처(sounding gesture)에 대한 지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rdquo18)라는 서술도 전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Ⅲ장의 논의와 관련된다

22 어쿠스마틱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

어쿠스마틱 사운드나 청취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 관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lsquo보이지 않음rsquo(unseenness)과 lsquo식별되지 않음rsquo (unidentifiability)이 마치 동의어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앞서 살펴본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과 적용에서 여러 혼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견습생들이 가르침에 더 집중하도록 스승이 베일이나 스크린 뒤에서 강연할 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있도록 요구되었다는 전승의 경우에도 당시 녹음이나 통신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로서는 베일 뒤 스승의 현존 그리고 스승이 발화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middot식별middot인지 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lsquo시각rsquo을 통해 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lsquo보이지 않지만 식별 가능한rsquo 청취의 상황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혼용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바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에 관해 처음 제안한 두 사람 페뇨의 ldquo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rdquo와 쉐페르의 ldquo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소리rdquo19)는 동일한 의미가

18) Denis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한편 스몰리는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에서 쉐페르의 어쿠스마틱 개념을 lsquo공간 개념rsquo으로 확장middot적용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19)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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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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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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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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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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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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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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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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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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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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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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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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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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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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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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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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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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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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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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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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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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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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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07

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락헨만 스스로 언명한 바 없기에 의도적으로 쉐페르에 대립적 의식을 가졌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필자가 파악하는 락헨만은 바로 그 lsquo어쿠스마틱rsquo 개념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관점 즉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관점에서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점들이 존재함에도 락헨만 음악에 대한 여러 학자와 논평가들 또는 자신의 작품과 미학에 대해 많은 글과 인터뷰를 남긴 작곡가 스스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한 적이 없으며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초점을 두었던 lsquo들을 뿐 아니라 보는 연주rsquo의 개념이 탈어쿠스마틱 소리 및 청취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여러 면에서 분명해 보인다

이 글은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의 구체음악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공통점과 대조점의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탈어쿠스마틱 관점에서의 해석을 시도한다 물론 장르명으로서의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범주적으로나 시기적으로 한정되기에 이러한 논의가 한 명의 작곡가의 특정 시기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현대음악의 보편적인 장르가 아니며 다른 작곡가들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악구체음악은 1970년대 중반 새로운 작품미학의 도입 이후 다소간의 작법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지속되어온 락헨만의 인장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실현을 위해 사용된 락헨만 특유의 사운드(주로 소음으로 특징지어지는)와 주법들은 그로부터 향 받은 후대의 수많은 유럽 작곡가들에게서 여전히 나타난다 다만 후대 작곡가들은 락헨만 식의 미학적middot음악사적 함의가 아닌 자기 나름대로의 개념 하에 유사한 사운드를 사용한 것으로서 외피(즉 발생되는 음향)는 유사하나 내재된 미학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그러한 흐름의 선두 주자로서 독창적 개념을 발전시켰던 락헨만의 작품미학 즉 lsquo소리 산출의 과정과 상황에 대한 주목rsquo을 탈어쿠스마틱 개념 안에서 새롭게 독해하는 것이다5)

108 서 정 은

Ⅱ 어쿠스마틱 보이지 않는 소리

21 lsquo어쿠스마틱rsquo의 의미와 적용

간략히 말해 lsquo소리발생의 원인이 보이지 않은 채 들리는 소리 또는 그러한 상황rsquo을 뜻하는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용어의 역사적 근원을 보자면 lsquo듣는 사람rsquo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lsquo어쿠스마티코이rsquo(ἀκουσματικοί listeners auditors)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원전 그리스의 피타고라스(c570ndashc495 BC)로 거슬러 올라간다6) 전승에 의하면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3년간의 수습기간에 이어서 5년 동안의 lsquo침묵의 기간rsquo을 거친 후 비로소 피타고라스의 핵심제자(mathecircmatikoi learned Esoteriker)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다소 비교(祕敎)적 성격의 이러한 훈련과정 중 침묵의 시기에 속한 제자들 즉 어쿠스마티코이는 스승이 베일이나 커튼 뒤에서 강연할 때 스승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음성만을 들어야 했고 모든 시각적 정보가 차단되었기에 lsquo청취rsquo 행위에 집중함을 통해서만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대의 전승이 20세기에 되살아난 것은 쉐페르와 피에르 앙리(Pierre Henry 1927-2017)가 한창 구체음악 작업에 몰두하던 1955년 프랑스의 작가 던 제롬 페뇨(Jeacuterocircme Peignot 1926- )를 통해서 는데

5) 이 글은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고찰이므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의 매체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또한 소리에 대한 지각인지적 접근도 어쿠스틱 음향과 전기적 음향의 분류와 발생에 관한 논의도 아님을 밝힌다

6) 피타고라스 전승에 관련된 lsquo어쿠스마틱rsquo 개념은 다음 저서들에서 거의 공통된 내용으로 다루어져 있기에 여러 출처를 한꺼번에 표기한다 Pierre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64 Franccedilois Bayle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81 183 Christoph von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Muumlnster LIT Verlag 2004) 192 Kane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4 46-47 54-57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09

그는 lsquo구체음악그룹rsquo(Groupe de Musique Concregravete)의 방송이었던 lsquo뮈지크 아니메rsquo(Musique Animeacutee)에서 ldquo사전적 의미로 어쿠스마틱 소음은 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를 뜻한다rdquo라면서 lsquo어쿠스마틱 소음rsquo(bruit acousmatique)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다7) 페뇨가 피타고라스의 개념을 직접 인용한 것인지는 불명확하나 작가 던 그가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1913년 작 《되찾은 시들》(Poegravemes retrouveacutes)에 사용된 lsquoacousmatersquo란 단어를 쉐페르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최근 연구에서 케인은 피타고라스의 베일 자체가 그의 비유적 언어를 위한 수사법이며 그러한 일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하나9)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어쿠스마틱 개념의 시원은 위에 서술한 바와 같다 위와 같은 특별한 청취의 lsquo상황rsquo 또는 그러한 조건에서 듣는 lsquo소리rsquo를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형용사로 수식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중반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용 목적에서 상업용으로 확장 유행되기 시작했던 라디오 그리고 1913년 미래주의 선언(Futurist manifesto)을 필두로 한 소음예술(Larte dei Rumori)의 탄생은 쉐페르의 시대에 이르러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이어진다 구체음악middot전자음악에 관한 저술가이자 작곡가인 프랑수아 벨(Franccedilois Bayle 1932- )은 구체음악의 탄생을 ldquo라디오와 음악의 우연적 만남rdquo이라고 표현한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레지스탕스 시대에 비밀스러운 역할을 했던 라디오 청취의 중요성이 높았고 당시 라디오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대

7) Bayle ldquoGlossarrdquo 183 8) Franccedilois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9 Bayle ldquoGlossarrdquo 183 Kane Sound Unseen 74-78 케인은 종종 유의어로 간주되는 lsquoacousmatiquersquo와 lsquoacousmatersquo가 본래 분명히 구별되는 개념이라면서 그 근원과 의미를 설명한다 Kane Sound Unseen 75-77 Kane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Schaefferian Traditionrdquo 179ndash188

9) Kane Sound Unseen 45ndash72

110 서 정 은

중적이면서 문화적인 도구 다는 것이다10) 벨의 다음 말은 고대의 전승과 현대적 매체의 거리를 좁혀준다

ldquo스피커를 통해 라디오를 들을 때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의도를 2500년 후 다시 새롭게 만난다 쉐페르는 가시적인 행위자(actant Akteur)의 부재로 인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는 청각적 방사(Projektion)의 라디오폰 예술 라디오극(Houmlrspiel) 분야의 개척자 다 구체음악은 바로 그런 음악이었다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청취를 통해 [hellip] 구조적 의도를 발견함으로써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음악 그러므로 어쿠스마틱에 대한 질문은 완전히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rdquo11)

1940년대부터 구체음악을 통해 이 개념의 실현을 시도한 쉐페르가 그의 방대한 『음악적 대상에 관한 논서』(1966)12)에서 설명하는 어쿠스마틱은 ld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구별함)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perceptual reality)를 강조rdquo한다 그는 이 개념이 ldquo오로지 귀에만 지각의 전적인 책임을 부여했던 고대의 전통rdquo에서 비롯되었으며 ldquo옛적에는 커튼이 그 장치 으나 이제는 라디오와 전기음향전달의 모든 형태를 사용하는 사운드 재생시스템rdquo이 보이지 않는 음성을 전달한다면서 어쿠스마틱을 현대적 개념에 적용한다13)

쉐페르의 위 글이 쓰 던 시대적 맥락이 피타고라스의 때와는 전혀 다른 이미 전기통신과 라디오를 넘어서 TV 화 등의 매스미디어가 보편적으로 확산된 1960년대의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ls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를 강조rsquo할 수 있

10) Franccedilois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47

11)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1512) Pierre Schaeffer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필자

가 참고한 판본은 2017년에 발간된 문번역본으로 번역본의 서지사항은 각주6)에 있다

13)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1

는 어쿠스마틱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청지각(聽知覺) 자체는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구체음악뿐 아니라 한 발 늦게 태동했던 전자음악의 발전을 통해 현재까지도 여러 작곡가들이 이른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14)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앞서 언급했듯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개념을 공통으로 사용한 쉐페르와 락헨만의 대립적 해석이다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방식에 주목하게 하지 않고 오직 귀에 들리는 소리 자체에만 집중하게 한다rsquo는 것에서 어쿠스마틱 즉 자신의 구체음악의 의미를 포착했던 쉐페르에 대해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과정을 의식적으로 청중에게 노출 인식rsquo시키려 했던 락헨만은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ldquo어쿠스마틱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측정 가능한 것과의 어떠한 관계도 상징적으로 금지rdquo한다면서 ldquo보기(sight)와 듣기(hearing)의 분리는 다른 방식의 청취를 고무한다 더 잘 듣는 것 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는 소리형식의 청취rdquo15)라는 쉐페르의 말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대립을 발견한다 두 작곡가는 lsquo더 잘 듣기 위함rsquo이라는 유사한 목적 아래 lsquo새로운 방식의 청취rsquo를 공통으로 제시했으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했던 것이다 쉐페르와 락헨만의 해석적 대립과 공통성의 역설을 보여주는 이 두 가지 측면은 Ⅲ장의 논의로 연결된다

한편 쉐페르가 당시 자신의 실험적 창작물인 구체음악의 청취경험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어쿠스마틱이라는 용어를 음악에 처음 도입했다면 이후 몇몇 학자와 음악가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로 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몇 가지 해석과 적용의 예를 보자

우선 1974년 프랑수아 벨은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lsquo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음향저장장치를 통해 제작되고 재생되는

14) 대부분의 라이브 전자음악은 여기서 예외일 것이다 어쿠스마틱 작곡가 중 특히 프랑수아 벨 프란시스 도몽(Francis Dhomont 1926- ) 데니스 스몰리(Denis Smalley 1946- ) 등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5)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12 서 정 은

음악rsquo으로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자악기(옹드 마르트노 전기기타 신디사이저 디지털 실시간 프로세서 등)가 탄생한 이래로 lsquo전자음악rsquo에 라이브 연주가 포함되자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을 느낀 벨은 전자음악과 구별되는 의미의 어쿠스마틱 음악을 제안한 것이다16) 이는 연주 시 가시적인 라이브 연주자 또는 악기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고 따라서 전통적 어쿠스틱 음악과 라이브 전자음악은 제외된다 소리저장장치를 통한 저장과 재생이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본질적 요소가 아닌 라이브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테이프 CD 디지털음향파일 등의 음향저장매체만을 통해 생산되고 청취되는 모든 음악을 뜻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은 일정 매체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그런가하면 화이론가 미셸 시옹(Michel Chion 1947- )은 이 개념을 화에 적용하여 화에서 발생되는 두 가지 어쿠스마틱 상황을 설명한

다17) 하나는 사운드의 근원이 lsquo처음에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acousmatized) 되는 경우로 시옹은 이를 lsquo시각화된 사운드rsquo(visualised sound)라고 칭한다 이 경우 사운드는 처음에 보 던 특정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분류되며(classified) 구체화된다(embodied) 또 하나의 상황은 소리의 근원이 lsquo처음에 보이지 않다가rsquo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다 이때 소리의 근원은 당분간 베일에 가려 긴장을 높이다가 나중에 노출됨으로 인해 눈에 보이게 되는(de-acousmatizing) 효과를 갖는다

시옹과 같이 탈어쿠스마틱 상황을 lsquo탈신화화rsquo 또는 lsquo구체화rsquo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 논문 Ⅲ장의 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락헨만이 서양전통 클래식음악의 연주와 청취 상황을 이해한 관점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16)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한편 벨은 ldquo순수한 청취를 위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rdquo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8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어쿠스모니움(Acousmonium)이라는 소리전파시스템을 만들어 1974년 파리에서 처음 어쿠스모니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Groupe de Recherche Musicales)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209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75

17) Chion Audio-Vision 7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3

통해 이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시각과 연관된다 케인 역시 어쿠스마틱 상황을 초월적이고 신성한 힘과 연관시켜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데니스 스몰리의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무의식적인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소리 내는 제스처(sounding gesture)에 대한 지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rdquo18)라는 서술도 전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Ⅲ장의 논의와 관련된다

22 어쿠스마틱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

어쿠스마틱 사운드나 청취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 관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lsquo보이지 않음rsquo(unseenness)과 lsquo식별되지 않음rsquo (unidentifiability)이 마치 동의어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앞서 살펴본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과 적용에서 여러 혼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견습생들이 가르침에 더 집중하도록 스승이 베일이나 스크린 뒤에서 강연할 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있도록 요구되었다는 전승의 경우에도 당시 녹음이나 통신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로서는 베일 뒤 스승의 현존 그리고 스승이 발화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middot식별middot인지 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lsquo시각rsquo을 통해 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lsquo보이지 않지만 식별 가능한rsquo 청취의 상황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혼용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바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에 관해 처음 제안한 두 사람 페뇨의 ldquo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rdquo와 쉐페르의 ldquo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소리rdquo19)는 동일한 의미가

18) Denis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한편 스몰리는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에서 쉐페르의 어쿠스마틱 개념을 lsquo공간 개념rsquo으로 확장middot적용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19)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7

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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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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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7

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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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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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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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4: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08 서 정 은

Ⅱ 어쿠스마틱 보이지 않는 소리

21 lsquo어쿠스마틱rsquo의 의미와 적용

간략히 말해 lsquo소리발생의 원인이 보이지 않은 채 들리는 소리 또는 그러한 상황rsquo을 뜻하는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용어의 역사적 근원을 보자면 lsquo듣는 사람rsquo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lsquo어쿠스마티코이rsquo(ἀκουσματικοί listeners auditors)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원전 그리스의 피타고라스(c570ndashc495 BC)로 거슬러 올라간다6) 전승에 의하면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3년간의 수습기간에 이어서 5년 동안의 lsquo침묵의 기간rsquo을 거친 후 비로소 피타고라스의 핵심제자(mathecircmatikoi learned Esoteriker)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다소 비교(祕敎)적 성격의 이러한 훈련과정 중 침묵의 시기에 속한 제자들 즉 어쿠스마티코이는 스승이 베일이나 커튼 뒤에서 강연할 때 스승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음성만을 들어야 했고 모든 시각적 정보가 차단되었기에 lsquo청취rsquo 행위에 집중함을 통해서만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대의 전승이 20세기에 되살아난 것은 쉐페르와 피에르 앙리(Pierre Henry 1927-2017)가 한창 구체음악 작업에 몰두하던 1955년 프랑스의 작가 던 제롬 페뇨(Jeacuterocircme Peignot 1926- )를 통해서 는데

5) 이 글은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고찰이므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의 매체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또한 소리에 대한 지각인지적 접근도 어쿠스틱 음향과 전기적 음향의 분류와 발생에 관한 논의도 아님을 밝힌다

6) 피타고라스 전승에 관련된 lsquo어쿠스마틱rsquo 개념은 다음 저서들에서 거의 공통된 내용으로 다루어져 있기에 여러 출처를 한꺼번에 표기한다 Pierre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64 Franccedilois Bayle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81 183 Christoph von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Muumlnster LIT Verlag 2004) 192 Kane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4 46-47 54-57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09

그는 lsquo구체음악그룹rsquo(Groupe de Musique Concregravete)의 방송이었던 lsquo뮈지크 아니메rsquo(Musique Animeacutee)에서 ldquo사전적 의미로 어쿠스마틱 소음은 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를 뜻한다rdquo라면서 lsquo어쿠스마틱 소음rsquo(bruit acousmatique)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다7) 페뇨가 피타고라스의 개념을 직접 인용한 것인지는 불명확하나 작가 던 그가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1913년 작 《되찾은 시들》(Poegravemes retrouveacutes)에 사용된 lsquoacousmatersquo란 단어를 쉐페르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최근 연구에서 케인은 피타고라스의 베일 자체가 그의 비유적 언어를 위한 수사법이며 그러한 일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하나9)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어쿠스마틱 개념의 시원은 위에 서술한 바와 같다 위와 같은 특별한 청취의 lsquo상황rsquo 또는 그러한 조건에서 듣는 lsquo소리rsquo를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형용사로 수식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중반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용 목적에서 상업용으로 확장 유행되기 시작했던 라디오 그리고 1913년 미래주의 선언(Futurist manifesto)을 필두로 한 소음예술(Larte dei Rumori)의 탄생은 쉐페르의 시대에 이르러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이어진다 구체음악middot전자음악에 관한 저술가이자 작곡가인 프랑수아 벨(Franccedilois Bayle 1932- )은 구체음악의 탄생을 ldquo라디오와 음악의 우연적 만남rdquo이라고 표현한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레지스탕스 시대에 비밀스러운 역할을 했던 라디오 청취의 중요성이 높았고 당시 라디오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대

7) Bayle ldquoGlossarrdquo 183 8) Franccedilois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9 Bayle ldquoGlossarrdquo 183 Kane Sound Unseen 74-78 케인은 종종 유의어로 간주되는 lsquoacousmatiquersquo와 lsquoacousmatersquo가 본래 분명히 구별되는 개념이라면서 그 근원과 의미를 설명한다 Kane Sound Unseen 75-77 Kane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Schaefferian Traditionrdquo 179ndash188

9) Kane Sound Unseen 45ndash72

110 서 정 은

중적이면서 문화적인 도구 다는 것이다10) 벨의 다음 말은 고대의 전승과 현대적 매체의 거리를 좁혀준다

ldquo스피커를 통해 라디오를 들을 때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의도를 2500년 후 다시 새롭게 만난다 쉐페르는 가시적인 행위자(actant Akteur)의 부재로 인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는 청각적 방사(Projektion)의 라디오폰 예술 라디오극(Houmlrspiel) 분야의 개척자 다 구체음악은 바로 그런 음악이었다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청취를 통해 [hellip] 구조적 의도를 발견함으로써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음악 그러므로 어쿠스마틱에 대한 질문은 완전히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rdquo11)

1940년대부터 구체음악을 통해 이 개념의 실현을 시도한 쉐페르가 그의 방대한 『음악적 대상에 관한 논서』(1966)12)에서 설명하는 어쿠스마틱은 ld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구별함)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perceptual reality)를 강조rdquo한다 그는 이 개념이 ldquo오로지 귀에만 지각의 전적인 책임을 부여했던 고대의 전통rdquo에서 비롯되었으며 ldquo옛적에는 커튼이 그 장치 으나 이제는 라디오와 전기음향전달의 모든 형태를 사용하는 사운드 재생시스템rdquo이 보이지 않는 음성을 전달한다면서 어쿠스마틱을 현대적 개념에 적용한다13)

쉐페르의 위 글이 쓰 던 시대적 맥락이 피타고라스의 때와는 전혀 다른 이미 전기통신과 라디오를 넘어서 TV 화 등의 매스미디어가 보편적으로 확산된 1960년대의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ls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를 강조rsquo할 수 있

10) Franccedilois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47

11)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1512) Pierre Schaeffer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필자

가 참고한 판본은 2017년에 발간된 문번역본으로 번역본의 서지사항은 각주6)에 있다

13)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1

는 어쿠스마틱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청지각(聽知覺) 자체는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구체음악뿐 아니라 한 발 늦게 태동했던 전자음악의 발전을 통해 현재까지도 여러 작곡가들이 이른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14)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앞서 언급했듯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개념을 공통으로 사용한 쉐페르와 락헨만의 대립적 해석이다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방식에 주목하게 하지 않고 오직 귀에 들리는 소리 자체에만 집중하게 한다rsquo는 것에서 어쿠스마틱 즉 자신의 구체음악의 의미를 포착했던 쉐페르에 대해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과정을 의식적으로 청중에게 노출 인식rsquo시키려 했던 락헨만은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ldquo어쿠스마틱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측정 가능한 것과의 어떠한 관계도 상징적으로 금지rdquo한다면서 ldquo보기(sight)와 듣기(hearing)의 분리는 다른 방식의 청취를 고무한다 더 잘 듣는 것 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는 소리형식의 청취rdquo15)라는 쉐페르의 말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대립을 발견한다 두 작곡가는 lsquo더 잘 듣기 위함rsquo이라는 유사한 목적 아래 lsquo새로운 방식의 청취rsquo를 공통으로 제시했으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했던 것이다 쉐페르와 락헨만의 해석적 대립과 공통성의 역설을 보여주는 이 두 가지 측면은 Ⅲ장의 논의로 연결된다

한편 쉐페르가 당시 자신의 실험적 창작물인 구체음악의 청취경험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어쿠스마틱이라는 용어를 음악에 처음 도입했다면 이후 몇몇 학자와 음악가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로 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몇 가지 해석과 적용의 예를 보자

우선 1974년 프랑수아 벨은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lsquo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음향저장장치를 통해 제작되고 재생되는

14) 대부분의 라이브 전자음악은 여기서 예외일 것이다 어쿠스마틱 작곡가 중 특히 프랑수아 벨 프란시스 도몽(Francis Dhomont 1926- ) 데니스 스몰리(Denis Smalley 1946- ) 등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5)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12 서 정 은

음악rsquo으로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자악기(옹드 마르트노 전기기타 신디사이저 디지털 실시간 프로세서 등)가 탄생한 이래로 lsquo전자음악rsquo에 라이브 연주가 포함되자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을 느낀 벨은 전자음악과 구별되는 의미의 어쿠스마틱 음악을 제안한 것이다16) 이는 연주 시 가시적인 라이브 연주자 또는 악기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고 따라서 전통적 어쿠스틱 음악과 라이브 전자음악은 제외된다 소리저장장치를 통한 저장과 재생이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본질적 요소가 아닌 라이브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테이프 CD 디지털음향파일 등의 음향저장매체만을 통해 생산되고 청취되는 모든 음악을 뜻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은 일정 매체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그런가하면 화이론가 미셸 시옹(Michel Chion 1947- )은 이 개념을 화에 적용하여 화에서 발생되는 두 가지 어쿠스마틱 상황을 설명한

다17) 하나는 사운드의 근원이 lsquo처음에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acousmatized) 되는 경우로 시옹은 이를 lsquo시각화된 사운드rsquo(visualised sound)라고 칭한다 이 경우 사운드는 처음에 보 던 특정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분류되며(classified) 구체화된다(embodied) 또 하나의 상황은 소리의 근원이 lsquo처음에 보이지 않다가rsquo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다 이때 소리의 근원은 당분간 베일에 가려 긴장을 높이다가 나중에 노출됨으로 인해 눈에 보이게 되는(de-acousmatizing) 효과를 갖는다

시옹과 같이 탈어쿠스마틱 상황을 lsquo탈신화화rsquo 또는 lsquo구체화rsquo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 논문 Ⅲ장의 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락헨만이 서양전통 클래식음악의 연주와 청취 상황을 이해한 관점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16)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한편 벨은 ldquo순수한 청취를 위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rdquo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8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어쿠스모니움(Acousmonium)이라는 소리전파시스템을 만들어 1974년 파리에서 처음 어쿠스모니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Groupe de Recherche Musicales)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209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75

17) Chion Audio-Vision 7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3

통해 이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시각과 연관된다 케인 역시 어쿠스마틱 상황을 초월적이고 신성한 힘과 연관시켜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데니스 스몰리의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무의식적인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소리 내는 제스처(sounding gesture)에 대한 지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rdquo18)라는 서술도 전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Ⅲ장의 논의와 관련된다

22 어쿠스마틱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

어쿠스마틱 사운드나 청취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 관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lsquo보이지 않음rsquo(unseenness)과 lsquo식별되지 않음rsquo (unidentifiability)이 마치 동의어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앞서 살펴본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과 적용에서 여러 혼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견습생들이 가르침에 더 집중하도록 스승이 베일이나 스크린 뒤에서 강연할 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있도록 요구되었다는 전승의 경우에도 당시 녹음이나 통신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로서는 베일 뒤 스승의 현존 그리고 스승이 발화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middot식별middot인지 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lsquo시각rsquo을 통해 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lsquo보이지 않지만 식별 가능한rsquo 청취의 상황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혼용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바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에 관해 처음 제안한 두 사람 페뇨의 ldquo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rdquo와 쉐페르의 ldquo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소리rdquo19)는 동일한 의미가

18) Denis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한편 스몰리는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에서 쉐페르의 어쿠스마틱 개념을 lsquo공간 개념rsquo으로 확장middot적용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19)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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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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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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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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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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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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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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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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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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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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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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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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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09

그는 lsquo구체음악그룹rsquo(Groupe de Musique Concregravete)의 방송이었던 lsquo뮈지크 아니메rsquo(Musique Animeacutee)에서 ldquo사전적 의미로 어쿠스마틱 소음은 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를 뜻한다rdquo라면서 lsquo어쿠스마틱 소음rsquo(bruit acousmatique)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다7) 페뇨가 피타고라스의 개념을 직접 인용한 것인지는 불명확하나 작가 던 그가 시인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1913년 작 《되찾은 시들》(Poegravemes retrouveacutes)에 사용된 lsquoacousmatersquo란 단어를 쉐페르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최근 연구에서 케인은 피타고라스의 베일 자체가 그의 비유적 언어를 위한 수사법이며 그러한 일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하나9)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어쿠스마틱 개념의 시원은 위에 서술한 바와 같다 위와 같은 특별한 청취의 lsquo상황rsquo 또는 그러한 조건에서 듣는 lsquo소리rsquo를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라는 형용사로 수식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중반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군용 목적에서 상업용으로 확장 유행되기 시작했던 라디오 그리고 1913년 미래주의 선언(Futurist manifesto)을 필두로 한 소음예술(Larte dei Rumori)의 탄생은 쉐페르의 시대에 이르러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이어진다 구체음악middot전자음악에 관한 저술가이자 작곡가인 프랑수아 벨(Franccedilois Bayle 1932- )은 구체음악의 탄생을 ldquo라디오와 음악의 우연적 만남rdquo이라고 표현한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는 레지스탕스 시대에 비밀스러운 역할을 했던 라디오 청취의 중요성이 높았고 당시 라디오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대

7) Bayle ldquoGlossarrdquo 183 8) Franccedilois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9 Bayle ldquoGlossarrdquo 183 Kane Sound Unseen 74-78 케인은 종종 유의어로 간주되는 lsquoacousmatiquersquo와 lsquoacousmatersquo가 본래 분명히 구별되는 개념이라면서 그 근원과 의미를 설명한다 Kane Sound Unseen 75-77 Kane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Schaefferian Traditionrdquo 179ndash188

9) Kane Sound Unseen 45ndash72

110 서 정 은

중적이면서 문화적인 도구 다는 것이다10) 벨의 다음 말은 고대의 전승과 현대적 매체의 거리를 좁혀준다

ldquo스피커를 통해 라디오를 들을 때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의도를 2500년 후 다시 새롭게 만난다 쉐페르는 가시적인 행위자(actant Akteur)의 부재로 인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는 청각적 방사(Projektion)의 라디오폰 예술 라디오극(Houmlrspiel) 분야의 개척자 다 구체음악은 바로 그런 음악이었다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청취를 통해 [hellip] 구조적 의도를 발견함으로써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음악 그러므로 어쿠스마틱에 대한 질문은 완전히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rdquo11)

1940년대부터 구체음악을 통해 이 개념의 실현을 시도한 쉐페르가 그의 방대한 『음악적 대상에 관한 논서』(1966)12)에서 설명하는 어쿠스마틱은 ld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구별함)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perceptual reality)를 강조rdquo한다 그는 이 개념이 ldquo오로지 귀에만 지각의 전적인 책임을 부여했던 고대의 전통rdquo에서 비롯되었으며 ldquo옛적에는 커튼이 그 장치 으나 이제는 라디오와 전기음향전달의 모든 형태를 사용하는 사운드 재생시스템rdquo이 보이지 않는 음성을 전달한다면서 어쿠스마틱을 현대적 개념에 적용한다13)

쉐페르의 위 글이 쓰 던 시대적 맥락이 피타고라스의 때와는 전혀 다른 이미 전기통신과 라디오를 넘어서 TV 화 등의 매스미디어가 보편적으로 확산된 1960년대의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ls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를 강조rsquo할 수 있

10) Franccedilois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47

11)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1512) Pierre Schaeffer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필자

가 참고한 판본은 2017년에 발간된 문번역본으로 번역본의 서지사항은 각주6)에 있다

13)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1

는 어쿠스마틱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청지각(聽知覺) 자체는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구체음악뿐 아니라 한 발 늦게 태동했던 전자음악의 발전을 통해 현재까지도 여러 작곡가들이 이른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14)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앞서 언급했듯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개념을 공통으로 사용한 쉐페르와 락헨만의 대립적 해석이다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방식에 주목하게 하지 않고 오직 귀에 들리는 소리 자체에만 집중하게 한다rsquo는 것에서 어쿠스마틱 즉 자신의 구체음악의 의미를 포착했던 쉐페르에 대해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과정을 의식적으로 청중에게 노출 인식rsquo시키려 했던 락헨만은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ldquo어쿠스마틱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측정 가능한 것과의 어떠한 관계도 상징적으로 금지rdquo한다면서 ldquo보기(sight)와 듣기(hearing)의 분리는 다른 방식의 청취를 고무한다 더 잘 듣는 것 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는 소리형식의 청취rdquo15)라는 쉐페르의 말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대립을 발견한다 두 작곡가는 lsquo더 잘 듣기 위함rsquo이라는 유사한 목적 아래 lsquo새로운 방식의 청취rsquo를 공통으로 제시했으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했던 것이다 쉐페르와 락헨만의 해석적 대립과 공통성의 역설을 보여주는 이 두 가지 측면은 Ⅲ장의 논의로 연결된다

한편 쉐페르가 당시 자신의 실험적 창작물인 구체음악의 청취경험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어쿠스마틱이라는 용어를 음악에 처음 도입했다면 이후 몇몇 학자와 음악가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로 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몇 가지 해석과 적용의 예를 보자

우선 1974년 프랑수아 벨은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lsquo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음향저장장치를 통해 제작되고 재생되는

14) 대부분의 라이브 전자음악은 여기서 예외일 것이다 어쿠스마틱 작곡가 중 특히 프랑수아 벨 프란시스 도몽(Francis Dhomont 1926- ) 데니스 스몰리(Denis Smalley 1946- ) 등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5)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12 서 정 은

음악rsquo으로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자악기(옹드 마르트노 전기기타 신디사이저 디지털 실시간 프로세서 등)가 탄생한 이래로 lsquo전자음악rsquo에 라이브 연주가 포함되자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을 느낀 벨은 전자음악과 구별되는 의미의 어쿠스마틱 음악을 제안한 것이다16) 이는 연주 시 가시적인 라이브 연주자 또는 악기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고 따라서 전통적 어쿠스틱 음악과 라이브 전자음악은 제외된다 소리저장장치를 통한 저장과 재생이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본질적 요소가 아닌 라이브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테이프 CD 디지털음향파일 등의 음향저장매체만을 통해 생산되고 청취되는 모든 음악을 뜻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은 일정 매체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그런가하면 화이론가 미셸 시옹(Michel Chion 1947- )은 이 개념을 화에 적용하여 화에서 발생되는 두 가지 어쿠스마틱 상황을 설명한

다17) 하나는 사운드의 근원이 lsquo처음에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acousmatized) 되는 경우로 시옹은 이를 lsquo시각화된 사운드rsquo(visualised sound)라고 칭한다 이 경우 사운드는 처음에 보 던 특정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분류되며(classified) 구체화된다(embodied) 또 하나의 상황은 소리의 근원이 lsquo처음에 보이지 않다가rsquo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다 이때 소리의 근원은 당분간 베일에 가려 긴장을 높이다가 나중에 노출됨으로 인해 눈에 보이게 되는(de-acousmatizing) 효과를 갖는다

시옹과 같이 탈어쿠스마틱 상황을 lsquo탈신화화rsquo 또는 lsquo구체화rsquo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 논문 Ⅲ장의 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락헨만이 서양전통 클래식음악의 연주와 청취 상황을 이해한 관점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16)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한편 벨은 ldquo순수한 청취를 위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rdquo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8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어쿠스모니움(Acousmonium)이라는 소리전파시스템을 만들어 1974년 파리에서 처음 어쿠스모니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Groupe de Recherche Musicales)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209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75

17) Chion Audio-Vision 7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3

통해 이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시각과 연관된다 케인 역시 어쿠스마틱 상황을 초월적이고 신성한 힘과 연관시켜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데니스 스몰리의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무의식적인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소리 내는 제스처(sounding gesture)에 대한 지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rdquo18)라는 서술도 전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Ⅲ장의 논의와 관련된다

22 어쿠스마틱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

어쿠스마틱 사운드나 청취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 관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lsquo보이지 않음rsquo(unseenness)과 lsquo식별되지 않음rsquo (unidentifiability)이 마치 동의어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앞서 살펴본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과 적용에서 여러 혼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견습생들이 가르침에 더 집중하도록 스승이 베일이나 스크린 뒤에서 강연할 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있도록 요구되었다는 전승의 경우에도 당시 녹음이나 통신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로서는 베일 뒤 스승의 현존 그리고 스승이 발화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middot식별middot인지 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lsquo시각rsquo을 통해 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lsquo보이지 않지만 식별 가능한rsquo 청취의 상황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혼용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바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에 관해 처음 제안한 두 사람 페뇨의 ldquo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rdquo와 쉐페르의 ldquo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소리rdquo19)는 동일한 의미가

18) Denis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한편 스몰리는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에서 쉐페르의 어쿠스마틱 개념을 lsquo공간 개념rsquo으로 확장middot적용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19)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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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120 서 정 은

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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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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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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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10 서 정 은

중적이면서 문화적인 도구 다는 것이다10) 벨의 다음 말은 고대의 전승과 현대적 매체의 거리를 좁혀준다

ldquo스피커를 통해 라디오를 들을 때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의도를 2500년 후 다시 새롭게 만난다 쉐페르는 가시적인 행위자(actant Akteur)의 부재로 인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는 청각적 방사(Projektion)의 라디오폰 예술 라디오극(Houmlrspiel) 분야의 개척자 다 구체음악은 바로 그런 음악이었다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청취를 통해 [hellip] 구조적 의도를 발견함으로써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음악 그러므로 어쿠스마틱에 대한 질문은 완전히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rdquo11)

1940년대부터 구체음악을 통해 이 개념의 실현을 시도한 쉐페르가 그의 방대한 『음악적 대상에 관한 논서』(1966)12)에서 설명하는 어쿠스마틱은 ld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구별함)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perceptual reality)를 강조rdquo한다 그는 이 개념이 ldquo오로지 귀에만 지각의 전적인 책임을 부여했던 고대의 전통rdquo에서 비롯되었으며 ldquo옛적에는 커튼이 그 장치 으나 이제는 라디오와 전기음향전달의 모든 형태를 사용하는 사운드 재생시스템rdquo이 보이지 않는 음성을 전달한다면서 어쿠스마틱을 현대적 개념에 적용한다13)

쉐페르의 위 글이 쓰 던 시대적 맥락이 피타고라스의 때와는 전혀 다른 이미 전기통신과 라디오를 넘어서 TV 화 등의 매스미디어가 보편적으로 확산된 1960년대의 상황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lsquo소리를 그 생산middot전달 방식으로부터 떼어냄으로써 소리의 지각적 실제를 강조rsquo할 수 있

10) Franccedilois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Berlin LIT Verlag 2007) 147

11) Bayle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1512) Pierre Schaeffer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필자

가 참고한 판본은 2017년에 발간된 문번역본으로 번역본의 서지사항은 각주6)에 있다

13)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1

는 어쿠스마틱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청지각(聽知覺) 자체는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구체음악뿐 아니라 한 발 늦게 태동했던 전자음악의 발전을 통해 현재까지도 여러 작곡가들이 이른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14)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앞서 언급했듯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개념을 공통으로 사용한 쉐페르와 락헨만의 대립적 해석이다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방식에 주목하게 하지 않고 오직 귀에 들리는 소리 자체에만 집중하게 한다rsquo는 것에서 어쿠스마틱 즉 자신의 구체음악의 의미를 포착했던 쉐페르에 대해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과정을 의식적으로 청중에게 노출 인식rsquo시키려 했던 락헨만은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ldquo어쿠스마틱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측정 가능한 것과의 어떠한 관계도 상징적으로 금지rdquo한다면서 ldquo보기(sight)와 듣기(hearing)의 분리는 다른 방식의 청취를 고무한다 더 잘 듣는 것 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는 소리형식의 청취rdquo15)라는 쉐페르의 말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대립을 발견한다 두 작곡가는 lsquo더 잘 듣기 위함rsquo이라는 유사한 목적 아래 lsquo새로운 방식의 청취rsquo를 공통으로 제시했으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했던 것이다 쉐페르와 락헨만의 해석적 대립과 공통성의 역설을 보여주는 이 두 가지 측면은 Ⅲ장의 논의로 연결된다

한편 쉐페르가 당시 자신의 실험적 창작물인 구체음악의 청취경험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어쿠스마틱이라는 용어를 음악에 처음 도입했다면 이후 몇몇 학자와 음악가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로 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몇 가지 해석과 적용의 예를 보자

우선 1974년 프랑수아 벨은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lsquo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음향저장장치를 통해 제작되고 재생되는

14) 대부분의 라이브 전자음악은 여기서 예외일 것이다 어쿠스마틱 작곡가 중 특히 프랑수아 벨 프란시스 도몽(Francis Dhomont 1926- ) 데니스 스몰리(Denis Smalley 1946- ) 등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5)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12 서 정 은

음악rsquo으로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자악기(옹드 마르트노 전기기타 신디사이저 디지털 실시간 프로세서 등)가 탄생한 이래로 lsquo전자음악rsquo에 라이브 연주가 포함되자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을 느낀 벨은 전자음악과 구별되는 의미의 어쿠스마틱 음악을 제안한 것이다16) 이는 연주 시 가시적인 라이브 연주자 또는 악기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고 따라서 전통적 어쿠스틱 음악과 라이브 전자음악은 제외된다 소리저장장치를 통한 저장과 재생이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본질적 요소가 아닌 라이브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테이프 CD 디지털음향파일 등의 음향저장매체만을 통해 생산되고 청취되는 모든 음악을 뜻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은 일정 매체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그런가하면 화이론가 미셸 시옹(Michel Chion 1947- )은 이 개념을 화에 적용하여 화에서 발생되는 두 가지 어쿠스마틱 상황을 설명한

다17) 하나는 사운드의 근원이 lsquo처음에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acousmatized) 되는 경우로 시옹은 이를 lsquo시각화된 사운드rsquo(visualised sound)라고 칭한다 이 경우 사운드는 처음에 보 던 특정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분류되며(classified) 구체화된다(embodied) 또 하나의 상황은 소리의 근원이 lsquo처음에 보이지 않다가rsquo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다 이때 소리의 근원은 당분간 베일에 가려 긴장을 높이다가 나중에 노출됨으로 인해 눈에 보이게 되는(de-acousmatizing) 효과를 갖는다

시옹과 같이 탈어쿠스마틱 상황을 lsquo탈신화화rsquo 또는 lsquo구체화rsquo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 논문 Ⅲ장의 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락헨만이 서양전통 클래식음악의 연주와 청취 상황을 이해한 관점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16)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한편 벨은 ldquo순수한 청취를 위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rdquo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8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어쿠스모니움(Acousmonium)이라는 소리전파시스템을 만들어 1974년 파리에서 처음 어쿠스모니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Groupe de Recherche Musicales)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209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75

17) Chion Audio-Vision 7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3

통해 이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시각과 연관된다 케인 역시 어쿠스마틱 상황을 초월적이고 신성한 힘과 연관시켜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데니스 스몰리의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무의식적인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소리 내는 제스처(sounding gesture)에 대한 지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rdquo18)라는 서술도 전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Ⅲ장의 논의와 관련된다

22 어쿠스마틱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

어쿠스마틱 사운드나 청취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 관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lsquo보이지 않음rsquo(unseenness)과 lsquo식별되지 않음rsquo (unidentifiability)이 마치 동의어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앞서 살펴본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과 적용에서 여러 혼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견습생들이 가르침에 더 집중하도록 스승이 베일이나 스크린 뒤에서 강연할 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있도록 요구되었다는 전승의 경우에도 당시 녹음이나 통신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로서는 베일 뒤 스승의 현존 그리고 스승이 발화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middot식별middot인지 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lsquo시각rsquo을 통해 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lsquo보이지 않지만 식별 가능한rsquo 청취의 상황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혼용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바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에 관해 처음 제안한 두 사람 페뇨의 ldquo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rdquo와 쉐페르의 ldquo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소리rdquo19)는 동일한 의미가

18) Denis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한편 스몰리는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에서 쉐페르의 어쿠스마틱 개념을 lsquo공간 개념rsquo으로 확장middot적용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19)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7

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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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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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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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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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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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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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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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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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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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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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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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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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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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7: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1

는 어쿠스마틱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청지각(聽知覺) 자체는 특정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구체음악뿐 아니라 한 발 늦게 태동했던 전자음악의 발전을 통해 현재까지도 여러 작곡가들이 이른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14)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앞서 언급했듯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개념을 공통으로 사용한 쉐페르와 락헨만의 대립적 해석이다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방식에 주목하게 하지 않고 오직 귀에 들리는 소리 자체에만 집중하게 한다rsquo는 것에서 어쿠스마틱 즉 자신의 구체음악의 의미를 포착했던 쉐페르에 대해 lsquo소리의 생산middot전달 과정을 의식적으로 청중에게 노출 인식rsquo시키려 했던 락헨만은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이뿐만 아니라 ldquo어쿠스마틱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측정 가능한 것과의 어떠한 관계도 상징적으로 금지rdquo한다면서 ldquo보기(sight)와 듣기(hearing)의 분리는 다른 방식의 청취를 고무한다 더 잘 듣는 것 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는 소리형식의 청취rdquo15)라는 쉐페르의 말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대립을 발견한다 두 작곡가는 lsquo더 잘 듣기 위함rsquo이라는 유사한 목적 아래 lsquo새로운 방식의 청취rsquo를 공통으로 제시했으나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했던 것이다 쉐페르와 락헨만의 해석적 대립과 공통성의 역설을 보여주는 이 두 가지 측면은 Ⅲ장의 논의로 연결된다

한편 쉐페르가 당시 자신의 실험적 창작물인 구체음악의 청취경험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어쿠스마틱이라는 용어를 음악에 처음 도입했다면 이후 몇몇 학자와 음악가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로 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몇 가지 해석과 적용의 예를 보자

우선 1974년 프랑수아 벨은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lsquo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음향저장장치를 통해 제작되고 재생되는

14) 대부분의 라이브 전자음악은 여기서 예외일 것이다 어쿠스마틱 작곡가 중 특히 프랑수아 벨 프란시스 도몽(Francis Dhomont 1926- ) 데니스 스몰리(Denis Smalley 1946- ) 등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15)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12 서 정 은

음악rsquo으로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자악기(옹드 마르트노 전기기타 신디사이저 디지털 실시간 프로세서 등)가 탄생한 이래로 lsquo전자음악rsquo에 라이브 연주가 포함되자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을 느낀 벨은 전자음악과 구별되는 의미의 어쿠스마틱 음악을 제안한 것이다16) 이는 연주 시 가시적인 라이브 연주자 또는 악기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고 따라서 전통적 어쿠스틱 음악과 라이브 전자음악은 제외된다 소리저장장치를 통한 저장과 재생이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본질적 요소가 아닌 라이브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테이프 CD 디지털음향파일 등의 음향저장매체만을 통해 생산되고 청취되는 모든 음악을 뜻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은 일정 매체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그런가하면 화이론가 미셸 시옹(Michel Chion 1947- )은 이 개념을 화에 적용하여 화에서 발생되는 두 가지 어쿠스마틱 상황을 설명한

다17) 하나는 사운드의 근원이 lsquo처음에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acousmatized) 되는 경우로 시옹은 이를 lsquo시각화된 사운드rsquo(visualised sound)라고 칭한다 이 경우 사운드는 처음에 보 던 특정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분류되며(classified) 구체화된다(embodied) 또 하나의 상황은 소리의 근원이 lsquo처음에 보이지 않다가rsquo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다 이때 소리의 근원은 당분간 베일에 가려 긴장을 높이다가 나중에 노출됨으로 인해 눈에 보이게 되는(de-acousmatizing) 효과를 갖는다

시옹과 같이 탈어쿠스마틱 상황을 lsquo탈신화화rsquo 또는 lsquo구체화rsquo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 논문 Ⅲ장의 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락헨만이 서양전통 클래식음악의 연주와 청취 상황을 이해한 관점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16)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한편 벨은 ldquo순수한 청취를 위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rdquo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8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어쿠스모니움(Acousmonium)이라는 소리전파시스템을 만들어 1974년 파리에서 처음 어쿠스모니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Groupe de Recherche Musicales)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209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75

17) Chion Audio-Vision 7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3

통해 이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시각과 연관된다 케인 역시 어쿠스마틱 상황을 초월적이고 신성한 힘과 연관시켜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데니스 스몰리의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무의식적인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소리 내는 제스처(sounding gesture)에 대한 지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rdquo18)라는 서술도 전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Ⅲ장의 논의와 관련된다

22 어쿠스마틱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

어쿠스마틱 사운드나 청취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 관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lsquo보이지 않음rsquo(unseenness)과 lsquo식별되지 않음rsquo (unidentifiability)이 마치 동의어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앞서 살펴본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과 적용에서 여러 혼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견습생들이 가르침에 더 집중하도록 스승이 베일이나 스크린 뒤에서 강연할 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있도록 요구되었다는 전승의 경우에도 당시 녹음이나 통신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로서는 베일 뒤 스승의 현존 그리고 스승이 발화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middot식별middot인지 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lsquo시각rsquo을 통해 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lsquo보이지 않지만 식별 가능한rsquo 청취의 상황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혼용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바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에 관해 처음 제안한 두 사람 페뇨의 ldquo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rdquo와 쉐페르의 ldquo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소리rdquo19)는 동일한 의미가

18) Denis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한편 스몰리는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에서 쉐페르의 어쿠스마틱 개념을 lsquo공간 개념rsquo으로 확장middot적용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19)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7

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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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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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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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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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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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8: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12 서 정 은

음악rsquo으로서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전자악기(옹드 마르트노 전기기타 신디사이저 디지털 실시간 프로세서 등)가 탄생한 이래로 lsquo전자음악rsquo에 라이브 연주가 포함되자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을 느낀 벨은 전자음악과 구별되는 의미의 어쿠스마틱 음악을 제안한 것이다16) 이는 연주 시 가시적인 라이브 연주자 또는 악기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고 따라서 전통적 어쿠스틱 음악과 라이브 전자음악은 제외된다 소리저장장치를 통한 저장과 재생이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본질적 요소가 아닌 라이브 음악과는 대조적으로 테이프 CD 디지털음향파일 등의 음향저장매체만을 통해 생산되고 청취되는 모든 음악을 뜻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은 일정 매체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그런가하면 화이론가 미셸 시옹(Michel Chion 1947- )은 이 개념을 화에 적용하여 화에서 발생되는 두 가지 어쿠스마틱 상황을 설명한

다17) 하나는 사운드의 근원이 lsquo처음에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acousmatized) 되는 경우로 시옹은 이를 lsquo시각화된 사운드rsquo(visualised sound)라고 칭한다 이 경우 사운드는 처음에 보 던 특정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분류되며(classified) 구체화된다(embodied) 또 하나의 상황은 소리의 근원이 lsquo처음에 보이지 않다가rsquo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다 이때 소리의 근원은 당분간 베일에 가려 긴장을 높이다가 나중에 노출됨으로 인해 눈에 보이게 되는(de-acousmatizing) 효과를 갖는다

시옹과 같이 탈어쿠스마틱 상황을 lsquo탈신화화rsquo 또는 lsquo구체화rsquo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 논문 Ⅲ장의 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락헨만이 서양전통 클래식음악의 연주와 청취 상황을 이해한 관점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16)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한편 벨은 ldquo순수한 청취를 위한 또 하나의 유토피아rdquo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8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어쿠스모니움(Acousmonium)이라는 소리전파시스템을 만들어 1974년 파리에서 처음 어쿠스모니움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Groupe de Recherche Musicales)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209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75

17) Chion Audio-Vision 7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3

통해 이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시각과 연관된다 케인 역시 어쿠스마틱 상황을 초월적이고 신성한 힘과 연관시켜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데니스 스몰리의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무의식적인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소리 내는 제스처(sounding gesture)에 대한 지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rdquo18)라는 서술도 전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Ⅲ장의 논의와 관련된다

22 어쿠스마틱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

어쿠스마틱 사운드나 청취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 관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lsquo보이지 않음rsquo(unseenness)과 lsquo식별되지 않음rsquo (unidentifiability)이 마치 동의어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앞서 살펴본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과 적용에서 여러 혼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견습생들이 가르침에 더 집중하도록 스승이 베일이나 스크린 뒤에서 강연할 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있도록 요구되었다는 전승의 경우에도 당시 녹음이나 통신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로서는 베일 뒤 스승의 현존 그리고 스승이 발화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middot식별middot인지 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lsquo시각rsquo을 통해 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lsquo보이지 않지만 식별 가능한rsquo 청취의 상황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혼용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바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에 관해 처음 제안한 두 사람 페뇨의 ldquo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rdquo와 쉐페르의 ldquo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소리rdquo19)는 동일한 의미가

18) Denis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한편 스몰리는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에서 쉐페르의 어쿠스마틱 개념을 lsquo공간 개념rsquo으로 확장middot적용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19)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7

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120 서 정 은

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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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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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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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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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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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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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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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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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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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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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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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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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9: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3

통해 이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시각과 연관된다 케인 역시 어쿠스마틱 상황을 초월적이고 신성한 힘과 연관시켜 서술함으로써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또한 데니스 스몰리의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무의식적인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소리 내는 제스처(sounding gesture)에 대한 지식은 문화적으로 매우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rdquo18)라는 서술도 전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개념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Ⅲ장의 논의와 관련된다

22 어쿠스마틱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

어쿠스마틱 사운드나 청취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 관해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하나는 lsquo보이지 않음rsquo(unseenness)과 lsquo식별되지 않음rsquo (unidentifiability)이 마치 동의어처럼 혼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구별되어야 할 것으로 앞서 살펴본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과 적용에서 여러 혼용의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의 견습생들이 가르침에 더 집중하도록 스승이 베일이나 스크린 뒤에서 강연할 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있도록 요구되었다는 전승의 경우에도 당시 녹음이나 통신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므로 제자들로서는 베일 뒤 스승의 현존 그리고 스승이 발화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추론middot식별middot인지 가능했을 것이다 단지 lsquo시각rsquo을 통해 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즉 lsquo보이지 않지만 식별 가능한rsquo 청취의 상황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이러한 혼용은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바 어쿠스마틱 개념을 음악에 관해 처음 제안한 두 사람 페뇨의 ldquo원인을 모른 채 듣는 소리rdquo와 쉐페르의 ldquo원인을 보지 못한 채 듣는 소리rdquo19)는 동일한 의미가

18) Denis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한편 스몰리는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에서 쉐페르의 어쿠스마틱 개념을 lsquo공간 개념rsquo으로 확장middot적용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19)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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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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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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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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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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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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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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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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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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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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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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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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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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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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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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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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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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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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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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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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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14 서 정 은

아니다 전자는 lsquo식별할 수 없다rsquo는 것을 후자는 lsquo볼 수 없다rsquo는 것을 가리킨다 페뇨와 쉐페르 이후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도 두 개념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어쿠스마틱 음악에 대해 ldquo소리산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대개 식별되지도 않는 음악rdquo20)이라는 벨의 애매한 정의에서도 이러한 혼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개념의 혼용은 또 하나의 연관된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lsquo보지 못하는rsquo 것을 마치 lsquo식별할 수 없는rsquo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상 구체음악은 대부분 일상이나 자연의 소리 또는 악기소리를 녹음하여 가공middot변형한 것이므로 소리들의 출처를 상당 정도 연상시킨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쉐페르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구체음악의 어쿠스마틱 성격은 부분적 제한적인 데 그친다 소리의 원인을 연상시키고 식별 가능한 출처들을 가지면서 단지 가시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인해 어쿠스마틱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그리 엄밀한 사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벨의 ldquo스튜디오에서 생산되고 연주회장에서 재생되는 음악rdquo21)이라는 어쿠스마틱 음악의 정의는 어쿠스틱악기나 전자악기가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라이브 전자음악 즉 lsquo보이는 음악rsquo과 구별하려는 의도를 반 한 것으로 오로지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지는 음악 그래서 청자에게 lsquo보이지 않는 음악rsquo을 뜻한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생산되는 구체음악과 전자음악에도 근원을 추측할 수 있는 음향재료는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단지 소리발생 근원이 가시적이지 않다는 기준만으로 어쿠스마틱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의 쉐페르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단순하며 나이브한 사고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저술들에서는 어쿠스마틱 개념 안에 음악적middot음악외적인 소리와 함께 식별 가능middot불가능한 출처의 모든 음향들이 포함되며 어떠한 장르나 매체middot형식을 가진 소리 결과물이 들려오는지는 그리 중요하

20) Blumroumlder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Acousmatiquerdquo 192 Bayle ldquoGlossarrdquo 181

21) Bayle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153 Bayle ldquoGlossarrdquo 18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7

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120 서 정 은

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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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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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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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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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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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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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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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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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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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5

지 않게 다루어진다 단순히 말 그대로 lsquo눈에 보이지 않는다rsquo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하고 보다 정교한 어쿠스마틱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서 어쩌면 다음과 같은 재분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22)

∙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면서 식별가능한 소리 (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지만 식별가능한 소리 (unseen amp

identifiable)∙ 소리발생 원인이 보이지 않고 식별되지도 않는 소리 (unseen amp

unidentifiable)

또 하나의 문제는 이어지는 Ⅲ장의 논제 중 하나로 쉐페르가 이른바 lsquo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을 주창하면서 그 방법론으로 lsquo어쿠스마틱rsquo 소리와 청취를 택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소리 혹은 원인을 식별할 수 없는 소리는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disembodied) 소리 즉 비구체적인 소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쉐페르의 개념은 모순적이다 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반면 락헨만에 있어서 그가 택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embodied) 소리 구체성을 띤 소리로 연결되어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의 논리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

22) 그밖에 부수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 벨이나 스몰리가 말하는 lsquo어쿠스마틱 음악rsquo 개념에 관해서도 질문이 제기된다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닌 경우에도 어쿠스마틱 청취가 가능하고 우리는 이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예컨대 음반 라디오 기타 기기를 통해 lsquo어쿠스틱rsquo 음악을 듣는 경우가 그렇다 즉 어쿠스마틱 음악과 어쿠스마틱 청취middot사운드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으로 전자는 음향저장매체를 통해서만 생산되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인 반면 후자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단적인 예로 어쿠스마틱 개념의 기원인 피타고라스의 강연 역시 목소리 즉 어쿠스틱 사운드 다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연관해 볼 때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분명히 어쿠스마틱 음악이 아니다 Ⅲ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전통 서양악기를 사용하기에 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음악이나 전통적 매체를 통해 lsquo보는 행위rsquo에 주목하는 탈어쿠스마틱 사운드middot청취를 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7

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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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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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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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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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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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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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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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16 서 정 은

서는 Ⅱ장에서 제기된 몇 가지 논점들과 함께 서양 클래식전통의 연주 및 청취 쉐페르의 lsquo어쿠스마틱rsquo 락헨만의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사이의 해석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Ⅲ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 해석

쉐페르가 전통적 서양음악의 연주와 청취를 비(非)어쿠스마틱 개념으로 이해하여 구체음악을 통해 어쿠스마틱 미학을 실현하려 했다면 락헨만은 전통 서양음악과 구체음악을 모두 어쿠스마틱한 것으로 파악하여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을 통해 lsquo탈어쿠스마틱rsquo 음악을 구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앞서 밝혔듯이 락헨만 자신이 어쿠스마틱 또는 탈어쿠스마틱이라는 개념을 언급한 적은 없으나 그가 추구했던 작품세계에 내재된 정신은 탈어쿠스마틱 개념으로 매우 적합하게 해석된다 우선 기악구체음악의 작품미학에 대해 살펴본다23)

31 기악구체음악의 미학적 의도

스탠리 카벨이 ldquoMusic Discomposedrdquo(1965)라는 글에서 총렬주의를 옹호하는 크셰네크(Ernst Krenek 1990-1991)의 글을 인용하며 ldquo그러한 작품[총렬주의 작품들]은 철학 없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런 작품의 생산과 소비는 그런 작품의 생산활동에 정당성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 안에서만 만족될 수 있다rdquo24)고 풍자적으로 말한 것은 비단 총렬주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꽤 많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음악이론적 정당화를 넘어서 미학적 철학적

23) lsquo기악구체음악이 무엇인가rsquo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하 기에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축약해 서술한다 다만 이 글의 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용문(락헨만의 글과 인터뷰 비평가들의 논평)에 한해 이전 논문에 실렸던 필자의 번역을 부분적으로 재인용한다

24) Stanley Cavell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18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7

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120 서 정 은

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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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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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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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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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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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7

정당화의 노력을 기울 고 그러한 개념적 울타리의 보호 안에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측면은 락헨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아서 1960년대 이래 그는 작곡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많은 저술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해 왔다 지속적으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곡가 기에25) 그의 글과 말은 주목할 만했고 그의 음악에 대한 미학적 해명으로서 적잖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락헨만의 작품미학은 그가 처했던 음악사적 배경과의 깊은 연관 안에서 사회middot정치적 함의를 가졌던 한편 1968년 이후 유럽의 문화적 변혁을 자신의 음악적 사고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초 조성의 해체 이후 제2빈악파의 세 작곡가 그리고 에드가 바레즈와 미래주의 신고전주의 등이 굵직한 흐름을 보 다면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까지는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하계현대음악강좌를 중심으로 부상한 총렬주의 우연성 구체음악과 전자음악 등 좀 더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경향이 나타난다 이어 1960년대 리게티와 펜데레츠키의 음층적 사고 리게티의 미크로폴리포니 베리오의 음악적 인용과 극한적 비르투오소에 대한 실험 등은 또 한 번 변화된 음악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매우 다양했던 양상들 중 일부이다 락헨만은 그들의 다음 세대로 1970년대 이후의 대단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여러 흐름들 중에서도 다시 한 번의 새롭고 충격적인 변혁을 보여준 대표적 작곡가에 속한다 1960년대 말부터 주요

25) 락헨만 음악의 수용에 있어서의 논란은 그의 주요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과 70년대뿐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어 2005년 파리에서 열린 탄생 70주년 기념음악제에 대한 경험을 술회했던 2006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스캔들에 가까운 연주회 경험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 무렵 프랑스 뮐루즈(Mulhouse)에서 있었던 음악회에서 청중들이 첼로독주곡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연주를 들으며 고의로 웃고 기침하는 소란이 있었으며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자신이 직접 연주했던 피아노독주곡 《어린이유희》(Ein Kinderspiel 1980)의 연주 중 청중들의 웃음과 고함으로 연주를 중단하기까지 했다면서 이런 일들을 노년에 이른 그 시기까지도 여러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했다고 술회한다 Abigail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332-333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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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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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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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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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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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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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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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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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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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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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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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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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4: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18 서 정 은

무대에 등장한 그는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하나로 늘 꼽히는 동시에 오랜 세월동안 가장 논란이 되어온 작곡가 중에서도 줄곧 앞자리를 차지해왔다

기악구체음악은 자신이 지난 40년간 (2006년 인터뷰 기준) 추구했던 특별한 사운드 개념이라는26) 그의 작품미학은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가졌던 lsquo실험적rsquo 예술정신뿐 아니라 그의 특별한 사회middot정치적 인식에 토대한 고유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다름슈타트를 ldquo유토피아 사회적인 기대를 위한 lsquo익숙한 청취관습의 부정(거부)rsquordquo27)으로 파악하는 락헨만은 총렬주의에 관해 ldquo전통적인 lsquo미rsquo의 개념에 대해 많은 작곡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던 시대에 [hellip] 기존의 사회구조와 부르주아적인 미적 장치의 기존 소통규칙에 대한 반작용rdquo을 이루며 이에 대해 ldquo수사적(rhetorical)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actual) 저항rdquo을 했다고 해석한다28) 특히 그는 1950년대 말 스승이었던 루이지 노노의 음악적 변혁과 사회적 변혁 사이의 평형에 대한 사고 그리고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깊은

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노와 달리 ldquo락헨만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음악의 음들의 사운드의 그 조합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에 힘썼다rdquo29)는 평가는 그의 작품 전반을 잘 설명해주는 한 문장이다

동시대의 음악을 위와 같은 관점으로 파악했던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 나아가 그의 작품전반의 기저에는 전통과 인습에의 부정(또는 거부 Verweigerung rejection)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과

26) Heathcote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334

27)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4

28) Helmut Lachenmann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7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29) Ian Pace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0에서 재인용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120 서 정 은

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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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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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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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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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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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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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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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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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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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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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19

도한 사용으로 ldquo낡았을 뿐 아니라 타협되어 온 음악의 관습적 모델들을 극복rdquo30)하려 했던 그는 1973년 lsquo부정rsquo의 개념을 처음 언급하며 ldquo정상적인 음을 주로 도발(provoke)할 부정의 대상으로 규정rdquo한다31) 이후 이른바 lsquo미적 장치rsquo(aesthetic apparatus)라는 개념을 통해 서양음악사 전통과 일종의 화해를 시도하는데 이는 그의 개인적 변화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새로운 음향과 작곡기법 나아가 작품개념에 대한 끝없는 실험을 통해 소위 음악적 진보를 시도하던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다시금 옛 음악재료와 정신으로 다양한 관심이 돌아서던 70년대의 음악사적 맥락에 락헨만도 어느 정도 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에 자신의 부정의 개념을 lsquo익숙한 청취습관rsquo에 대한 거부로 다시 설명함으로써 거부의 대상을 조금 변경하기도 하나 그의 사고 근저에 있는 저항정신은 평생 견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32)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의 청각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다양한 소음과 극한에 다다른 악기 주법에 대한 한 가지 해명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어떤 연결고리를 끌어오려 했던 것일까 그가 말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연관성 또는 차이점은 (탈)어쿠스마틱 측면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이나 소리를 사용하는 구체음악적 사고를 서양 악기의 잠재성에 적용하려 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적 의미를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소리근원들을 찾아야 했고 이것은 lsquo인습적이고 아름다운 필하모닉 사운드가 아닌rsquo 사운드 다고 말한다33) 그러나 이 말을 그가 lsquo일상의 소음을 악기를 통해 묘사하려 했

30) Paul Griffiths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198

31) Elke Hockings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에서 재인용

32) 그의 다음 글들에서 초기의 lsquo부정의 미학rsquo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엿보게 된다 Helmut Lachenmann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Musik-Konzepte 6162 eds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120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211-212

33) David Ryan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120 서 정 은

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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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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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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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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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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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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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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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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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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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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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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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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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디지털 시대의 읽기 쓰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Adorno Theodor W In Search of Wagner Translated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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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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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20 서 정 은

다rsquo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소음을 포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서양음악사에서 정상적인 음으로 간주되어 온 인습적 악음에 대한 부정 그리고 lsquo소리 발생의 구체적 원인과 상황을 부각rsquo한다는 그의 기악구체음악 모토의 실현을 위한 도구 던 것으로 이해된다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 소리발생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ldquo연주기법의 단계화된 낯설게 함rdquo(die abgestufte spielthechnische Verfremdung)34)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Ⅱ장에서 언급한 쉐페르의 관점과 대립되나 필자가 파악하는 기악구체음악과 구체음악의 관계는 앞서 지적했듯이 ldquo구체음악이 소리들의 출처 즉 소리들이 태어난 본래의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점 즉 소리생산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특징적인 관련성을 작품 안에 내재한다는 점rdquo에서 기악구체음악과 공통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악구체음악은 ldquo음악외적 원인이 아니라 소리를 구체적으로 발생시키는 순수하게 음악내적인 조건에 연관된다는 점rdquo에서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35)

기악구체음악의 대표적 작품인 《테마》(temA 1968) 《에어》(Air 1969) 《프레시온》(Pression 19692010 lt예 1gt 참조) 《구에로》(Guero 1970)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lt예 2gt 참조) 《그란 토르소》(Gran Torso 1971 rev 1976 1988)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을 통틀어 lsquo기악구체음악rsquo은 명칭으로서보다는 위에 서술한 미학적 지향으로서 락헨만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New Series 210 (1999) 21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34) Helmut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ol legno WWE 31863 (1994) 16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7

35)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7

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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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7: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1

lt예 1gt 헬무트 락헨만 한 명의 첼리스트를 위한 《프레시온》(Pression 1969 rev 2010) 첫 부분36)

copy 1972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6) Helmut Lachenmann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692010)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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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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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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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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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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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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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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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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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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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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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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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8: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22 서 정 은

lt예 2gt 락헨만 한 명의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Dal niente 1970) 첫 부분37)

copy 1974 by Musikverlage Hans Gerig Koumlln1980 assigned to Breitkopf amp Haumlrtel Wiesbaden

32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쉐페르와 락헨만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이른바 lsquo구체적rsquo(concrete)이라는 동일한 개념을 자신의 음악의 모토로 세웠던 대표적인 두 명의 작곡가

37) Helmut Lachenmann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7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7

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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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19: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3

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로를 대립적으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추구한 음악과 미학은 어떤 측면에서 대척적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지향성이 포착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 문학 연극 화 등의 예술장르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나 서사가 가능한 것과 달리 음악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성이 강한 예술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구체음악이나 기악구체음악의 lsquo구체적rsquo이라는 수식은 과연 무슨 뜻인가 락헨만의 구체성은 쉐페르의 구체성과 어떻게 다른가

우선 쉐페르가 자신의 구체음악에서 의미한 구체성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상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음향들을 음원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었다 동시대(1940년대 말-1950년대) 독일 쾰른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발전된 lsquo전자음악rsquo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음악 음원의 lsquo구체적rsquo 성격은 뚜렷하다 순전히 전기적 음향장비를 통해 발생된 소리로만 구성되던 당시의 전자음악과 달리 구체음악에 포함된 음향은 녹음에 의한 lsquo직접적인 음원 채취rsquo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근원이 식별될 수 있는 성격 즉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쉐페르의 구체음악은 그가 주창한 어쿠스마틱 개념과의 모순을 드러낸다 직접적middot구체적 음원을 사용하면서 그 전달방식과 추구하는 미학이 어쿠스마틱하다는 것은 상호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옹 스크루턴 케인이 어쿠스마틱에 관한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lsquodisembodiedrsquo38) 즉 육체에서 분리된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형체를 갖추지 않은 다시 말해 구체성이 제거된 어쿠스마틱 사운드 개념은 구체성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쉐페르가 전통 서양음악을 추상적이라고 거부하며 새로운 구체음악을 시도했으면서도 구체성을 잃은 형체를 잃은 즉 비구체적인 소리와 청취를 추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38) Chion Audio-Vision 72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3 Kane Sound Unseen 6 8 74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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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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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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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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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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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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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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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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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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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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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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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24 서 정 은

어쿠스마틱을 의도했다면 구체음악이 아니라 구체성이 제거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구체음악을 의도했다면 탈어쿠스마틱 개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쉐페르에게서 소리의 lsquo내용rsquo과 lsquo존재형식rsquo은 상호 불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뒤에서 살펴볼 쉐페르의 lsquo환원된 청취rsquo(reduced listening)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어 결국 어쿠스마틱 개념에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락헨만와 쉐페르의 작품미학은 부분적으로 상통하고 부분적으로 대척하는 서로 묘한 관계에 놓인다

반면 락헨만이 추구한 lsquo보이는 소리rsquo는 형체를 지닌 육체와 결합된(embodied) 소리 즉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는(dis-acousmatic) 구체성을 띤(concrete) 소리로 연결되어 결국 기악구체음악과 탈어쿠스마틱 개념 사이에 논리적 등식이 성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리의 생성방식도 전달방식도 lsquoembodiedrsquo하기에 기악구체음악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정합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락헨만은 쉐페르의 구체음악으로부터 명칭을 따온 기악구체음악을 쉐페르와 전혀 공유되지 않는 반대편 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것인가 락헨만이 파악하는 구체성은 어떤 의미의 것인가

락헨만은 자신의 기악구체음악에서 lsquo소리발생의 상황rsquo과 그에 대한 lsquo시청각적 관찰rsquo을 구체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용어를 읽는다 언뜻 볼 때 이것은 그와 쉐페르의 작품이 실제 음악적으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에도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반대되는 관점으로 구체성을 해석한다

ldquo나는 사운드의 에너제틱한 측면을 가지고 작업한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C음은 단지 C장조에서의 협화적 사건 또는 C장조에서의 불협화적 사건만은 아니다 이것은 위쪽으로 들린 후 지판을 향해 튕겨지는 특정한 긴장을 가진 현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에너제틱한 과정(energetic process)으로서 듣는다 이러한 지각방식은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만약 두 대의 차가 충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아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7

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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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5

마 어떤 리듬이나 주파수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lsquo아 얼마나 흥미로운 소리인가rsquo라고 하지 않는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고 한다 lsquo무슨 일이 난 거지rsquo라는 관점에서 음향사건을 관찰한다는 측면이 내가 기악구체음악이라고 칭하는 것이다rdquo39)

위 인용문의 현악기 피치카토와 차의 충돌에 관한 예시에서 (락헨만이 중시하는 에너지의 흐름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주목해볼 것은 그가 말하는 lsquo구체성rsquo에 대한 시사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소리에 대해 조성적 맥락에서 또는 리듬이나 주파수의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것은 비구체적middot추상적 인식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음악청취가 아닌 일상에서 소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듣지 않고 lsquo무슨 일rsquo 즉 구체적인 관점에서 듣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지각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아니 관찰하는 것이 락헨만이 말하는 기악구체음악의 청취이고 청자에게 이러한 청각적 관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작곡가로서 작품을 생산하는 주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의 lsquo구체성rsquo이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구체성이 쉐페르의 구체성과 얼마나 다른 범주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래 쉐페르의 말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를 보여준다

ldquo소리대상물(sound object)이란 울리는 몸체(sound body) 소리의 근원(sound source) 악기(instrument)를 비롯하여 어떠한 원인 참조로부터도 독립적인 것으로 [hellip] 소리대상물은 소리의 효과와 내용에 대한 블라인드(blind) 청취의 상황에만 존재한다rdquo40)

ldquo더 잘 듣기 위함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어렵다

39)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6 여기서 lsquosound objectrsquo에 대한 적확한 번역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데 통용되는 우리말이 아직 없어 우선 필자의 임의대로 번역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lsquo블라인드 청취rsquo는 어쿠스마틱 청취로 이해될 수 있다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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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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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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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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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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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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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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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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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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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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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26 서 정 은

[hellip] 내가 소리대상물에 주의할 때에도 나의 청취는 우선 참조적 청취(referential listening)가 되기 쉽다 [hellip] 나는 여전히 사운드에 대해 lsquo말(馬)이 뛰는 소리rsquo lsquo문이 삐걱대는 소리rsquo lsquo클라리넷의 G음rsquo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리지표(sound indicators)를 더 리하게 해석할수록 소리대상물을 듣기는 더 어려워진다 언어를 잘 이해할수록 귀로 지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참조적 청취와 비교할 때 소리대상물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의식을 필요로 한다 lsquo [hellip]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이 뛰는 소리를 묘사할 수 있는가 나는 정확히 무엇을 들었는가rsquo라는 의식 말이다 나는 말이 아니라 소리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위해 청각적 경험으로 돌아가야 한다rdquo41)

소리지표의 맥락 언어의 내용적 맥락을 제거한 사운드로서의 lsquo소리대상물rsquo이라는 쉐페르의 개념은 락헨만에게서 대응하는 것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순수한 사운드의 측면에서 듣는 것 즉 익숙한 청취를 지양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정확히 듣는 것을 의도한다는 점은 두 작곡가 공통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lsquo익숙한 청취rsquo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상이함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된다 한 사람은 이를 lsquo참조적 청취rsquo로 보고 다른 사람은 이를 lsquo관습적 청취rsquo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측면에서 쉐페르의 지향은 락헨만과 정확히 반대가 된다 참조적 청취로부터 모든 종류의 참조를 제거하는 것은 쉐페르가 자주 인용한 후설(Edmund Husserl) 식으로 말하자면 lsquo환원적rsquo(reduced) 청취이자 lsquo에포케rsquo(epocheacute 판단중지)의 요청이며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중지를 요청하는 것이다42) 즉 쉐페르는 구체음악을 생산하면서도 lsquo구체적 음원으로부터 환원된 청취rsquo를 지향했던 것이고 이를 위해 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이다 사실 참조를 제거한 lsquo소리대상물rsquo의 청취를 위해 lsquo환원적 청

41)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211-21242) 후설의 lsquo환원rsquo lsquo에포케rsquo lsquo자연적 태도rsquo의 개념에 대해서는 Edmund Husserl 『순

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93 122-128 200-204 209 324-325를 참조하시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7

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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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7

취rsquo를 지향하고 이로써 어쿠스마틱 청취를 실현한다는 사고과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아이러니하게도 lsquo구체음악rsquo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혼란을 준다

반면 락헨만은 앞선 인용문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려 한다 쉐페르와 달리 참조적 청취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 그는 소리발생의 맥락이 주목받는 lsquo참조적 상황rsquo을 곧 lsquo구체적 상황rsquo으로 간주한 것이며 lsquo생각 없는 부주의한 음악청취rsquo로 그가 규정하는 관습적middot인습적 청취를43) 탈피하기 위해 탈어쿠스마틱 청취를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쉐페르가 말하는 소리대상물의 청취는 락헨만이 추구한 비관습적 청취와 연관되는데 이 중 후자를 필자는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rsquo 청취로 이해한다 비관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관점을 좀 더 알기 위해 lsquo들리는 대로 듣는rsquo 것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필자의 이전 논문을 인용한다

ldquo조성시대의 작품 또는 현대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을 들을 때 우리는 lsquo실제로 무엇이 들리는지rsquo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lsquo무엇을 의도했는지rsquo를 듣는다 즉 관습적 음악청취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음악 안에 포함되어 있고(또는 포함되어야 하고) 무엇이 제외되어 있는지(또는 제외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설령 연주자가 틀린 음을 연주하더라도 조성음악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음이 들렸어야(연주되었어야) 하는지를 안다 비록 더블베이스 주자가 연주할 현이 아닌 다른 현이나 악기몸체를 건드려 작은 소음이 발생되더라도 또는 호른 주자가 호흡에 실수하여 불필요한 소리를 내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소리들을 lsquo소음rsquo이라 간주하고 음악작품에서 배제하며 듣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리들은 음악에 포함되지 않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hellip] 그러나 락헨만의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악음을 비(非)악음으로부터 인식해내고 구별해낼 수 없다 우리는 말 그대로 lsquo실제로 들리는 것rsquo을 들을 뿐이다 작

43) Ⅱ장에서 언급했듯이 ldquo악기에 대한 청중의 청취경험은 오랜 세월의 lsquo무의식적인rsquo 시청각 훈련에 기초해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과정rdquo이라는 스몰리의 말은 인습적 청취에 대한 락헨만의 견해와 상통한다 Smalley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12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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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4: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28 서 정 은

곡가가 의도한 소리가 무엇인지 어떠한 소리가 맞고 틀린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습적인 청취습관으로서는 혼란을 느끼며 (락헨만의 의도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소리의 모든 요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rdquo44)

요컨대 익숙한 지각방식에서 벗어나 lsquo실제 들리는 대로 듣는다rsquo라는 점은 락헨만과 쉐페르에게 공통되나 lsquo참조rsquo에 대한 관점은 서로 반대된다 들리는 것을 정확히 듣기 위해 쉐페르는 참조적 청취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 반면 락헨만은 서양음악전통에 토대한 관습적 청취에서 탈피하기 위해 소리를 lsquo자연적 사건rsquo으로 보기를 관습적으로 lsquo은폐rsquo되었던 것까지 면밀하고 정확히 참조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락헨만이 생각하는 또 다른 구체성은 위에서 논의한 것보다 좀 더 음악내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다 ldquo악기 음향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소리의 물리적 생산의 흔적인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작품에 융합시키고 작품의 음향구조와 형식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총렬주의의 부동성(immobility)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rdquo는 그는 총렬음악의 구조주의적 성격을 ldquo잘못된 추상성rdquo으로 이해한다45) 소리가 생산되는 물리적 과정이 그 결과만큼 중요했던 그에게는 소리발생을 위한 연주자와 악기의 에너지와 그 흐름 즉 lsquo소리의 물성(物性)rsquo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수학적 치환의 원리에 근거한 총렬음악이 지극히 추상적으로 여겨졌고(그것도 잘못된 추상성으로) 이와 대조되는 자신의 음악을 lsquo구체적rsquo이라고 성격규정 하는 데 이른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락헨만의 구체성은 lsquo그러한 구체성을 실현하는 데 왜 전통 서양악기만을 사용했는가rsquo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그의 사고의 태동이라 할 쉐페르의 구체음악이 전적으로 악기연주를 배제했기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럽다(녹음된 음원으로서의 악기소리는 논외로 한다) 이에 대한 락헨만의 말은 그가 상정한 또 다른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

44)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10545) Lachenmann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4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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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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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29

는 자신의 작품전반에 걸쳐 전자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ldquo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은 신호뿐rdquo이며 ldquo가장 흥미로운 사운드도 스피커를 통해 들리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rdquo라는 말로 설명한다46) 어떠한 내용의 소리를 듣느냐와 무관하게 스피커를 통해서는 신호 즉 전기적 신호만을 듣는다는 말은 그가 전자음향 자체를 lsquo비구체적rsquo이며 lsquo추상적인rsquo 것으로 파악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특정 음악양식이나 음원이 아닌 lsquo스피커rsquo에 방점을 두었다는 것은 전기적 매체를 통해서 음향이 발생되는 전자음악middot구체음악을 통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쉐페르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통적 악기만을 사용한다는 락헨만의 말은 다음 3절의 논의로 연결된다

33 소리발생상황의 은폐 또는 노출 정치middot사회적 함의

락헨만은 근본적으로 소리의 가시성(visibility)과 비가시성(invisibility)의 대립개념을 쉐페르의 구체음악에서와 완전히 다른 지평 위에 놓는다 lsquo소리발생의 근원이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rsquo의 문제가 쉐페르에게 있어서는 청각 외 다른 지각middot감각의 향을 받지 않는 lsquo순수한 청취rsquo(pure listening)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면47) 락헨만은 이를 정치middot사회적 관점에서 읽는다 그에게 전통 서양음악은 무대 위 조명 아래 청중들의 눈앞에서 연주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lsquo보이지 않는rsquo 것이었다 그에게 서양예술음악의 관습적 청취현상과 청취형태는 어쿠스마틱한 것이었다 소리발생의 시각적 측면이 연주와 청취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46) Paul Steenhuisen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1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8에서 재인용

47) 순수한 청취에 관해 설명하면서 ldquo종종 놀랍게도 종종 불확실하게도 우리가 lsquo들었다rsquo고 생각한 많은 것들은 실제로 단지 lsquo보 던rsquo 것이고 맥락에 의해 lsquo설명된rsquo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rdquo는 쉐페르의 말이 이를 잘 나타낸다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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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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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30 서 정 은

이러한 락헨만의 관점은 사운드의 경험을 lsquo본질적으로 어쿠스마틱rsquo하다고 정의하면서 ldquo어쿠스마틱 경험은 소리의 원인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음반과 방송에 의해 강화된다 소리 원인으로부터의 소리의 단절은 이미 연주회장에서 시작되었다rdquo고 말한 로저 스크루턴(1944- )과 일면 통한다48) 시기적으로 락헨만의 사고가 스크루턴(1997)보다 훨씬 앞섰고 두 사람이 교류한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락헨만과 달리 지독할 만큼 보수적인 입장을 지녔던 스크루턴이지만49) 이 부분에서는 공유되는 면이 있다 이제 살펴볼 락헨만의 생각은 스크루턴의 순수한 음악 존재론적 사고에 사회middot정치적 의미를 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제기인 것이다

ldquo소리원인의 은폐는 어쿠스마틱 상황을 위한 전제조건rdquo50)이라면서 자신의 음악에서 원인의 은폐를 필수적으로 여기는 쉐페르와 정반대로 락헨만은 보이지 않는 소리는 소리생산의 도구를 lsquo위장rsquo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기악구체음악에서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한 소리발생의 과정과 상황은 은폐되는 대신 의식적으로 노출되며 작곡가는 여기에 주목하기를 의도적으로 요청한다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주목을 통해 연주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제스처는 연주의 본질적 부분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를 통해서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과정을 들을 뿐 아니라 lsquo보는rsquo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은 첼로독주를 위한 《프레시온》 악보의 서문에서도 드러난다 가능하면 연주자가 암보로 연주할 것을 지시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ldquo악보가 악기와 활을 가리지 않도록rdquo51)이라고 할 정도로 연주자의 행위와 청중의 시각적 관찰을 중요

4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349) 그는 1997년 출간된 위 저서에서까지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sation

1930) 조지 크럼의 《어느 여름날 저녁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1974)을 음악의 범주에 넣기 꺼려할 정도며 존 케이지의 lsquo악명 높은rsquo 《4분 33초》(1952)가 음악학연보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에 탄식한다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16-17

50) Schaeffer Treatise on Musical Objects 6451) Helmut Lachenmann ldquoVorwortrdquo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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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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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136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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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Originally published Versuch uumlber Wagner Frankfurt Suhrkamp 1952)

Bauer Amy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ited by Arved Ashby 121-152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Bayle Franccedilois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2-31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46-179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0-197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Blumroumlder Christoph von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7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Edited by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6-213 Muumlnster LIT Verlag 2004

Cavell Stanley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167-196 Update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Chion Michel Audio-Vision Sound on Screen Edited and Translated by Claudia Gorb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Originally published Laudio-vision Son et image au cineacutema Paris Nathan 1990)

Griffiths Paul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Heathcote Abigail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331-348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Hockings Elke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1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4-10 12-14

Husserl Edmund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Kane Brian ldquoLrsquoObjet Sonore Maintenant Pierre Schaeffer Sound Objects and the Phenomenological Reduction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15-24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138 서 정 은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Lachenmann Helmut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28-235

ldquoThe Beautiful in Music Todayrdquo Tempo 135 (1980) 20-24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Pace Ian ldquoRecord Reviewrdquo Tempo New Series 197 (1996) 62-63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17

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7: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1

하게 간주하는 것이다자신의 이러한 의도를 ldquo사회적middot미학적으로 당연시되던 것들과의 의식적

인 단절rdquo이며 ldquo미의 조건의 위장(토대가 되는 물리적 조건과 에너지의 억압 즉 숨겨진 작업)을 벗김으로써 미를 시도하고 제공하는 것rdquo52)으로 설명하는 락헨만에게서 연주자의 행위는 연주결과인 사운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의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볼 때 연주자의 lsquo행위rsquo를 lsquo노동rsquo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리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앞서 Ⅲ장 1절에서 시사되었듯이 그는 루이지 노노의 향 하에 진보주의적 사회의식으로 전통과 현대의 음악사를 바라보았고 이러한 사상적 바탕이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상당한 향을 끼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청취에서 연주자의 행위가 주목되지 않는 것은 소리발생과정의 은폐일 뿐 아니라 연주자의 노동의 은폐 나아가 노동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맥스 패디슨이 lsquo상품(commodity)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의rsquo(『자본론』 1권 1867)를 인용하며 마르크스가 ldquo상품의 판타스마고리적(phantasmagorical) 성격rdquo에 대한 강조와 함께 ldquo상품형태(Warenform commodity-form)의 규정적 특징을 lsquo생산물 속으로 사라져버린 은폐된 노동rsquo으로 설명rdquo했다는 해석은53) 락헨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연주자의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 즉 연주의 결과물인 사운드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연주된 결과물은 상품이 되어 환 (幻影)과 같이 되어버린다 즉 은폐된 노동이 낳는 상품에 대한 비판 노동의 소외에 대한 저항이 락헨만의 사고 근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물론 아도르노와도 연결된다 다음 문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나 락헨만의 탈어쿠스마틱 미학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토대가 될 것이다

(Wiesbaden Leipzig Paris Breitkopf amp Haumlrtel)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98

52) Helmut Lachenmann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30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72

53) Max Paddison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2010) 262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136 서 정 은

참고문헌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서양음악학』 113 (2008) 67-116

이재현 『디지털 시대의 읽기 쓰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Adorno Theodor W In Search of Wagner Translated by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Originally published Versuch uumlber Wagner Frankfurt Suhrkamp 1952)

Bauer Amy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ited by Arved Ashby 121-152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Bayle Franccedilois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2-31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46-179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0-197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Blumroumlder Christoph von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7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Edited by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6-213 Muumlnster LIT Verlag 2004

Cavell Stanley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167-196 Update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Chion Michel Audio-Vision Sound on Screen Edited and Translated by Claudia Gorb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Originally published Laudio-vision Son et image au cineacutema Paris Nathan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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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cote Abigail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331-348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Hockings Elke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1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4-10 12-14

Husserl Edmund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Kane Brian ldquoLrsquoObjet Sonore Maintenant Pierre Schaeffer Sound Objects and the Phenomenological Reduction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15-24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138 서 정 은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Lachenmann Helmut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28-235

ldquoThe Beautiful in Music Todayrdquo Tempo 135 (1980) 20-24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Pace Ian ldquoRecord Reviewrdquo Tempo New Series 197 (1996) 62-63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17

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8: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32 서 정 은

ldquo꿈이 가장 고양되는 곳에 상품은 가장 가까이 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단순히 구매지망자의 기만된 소원성취로서가 아니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으로써 사라져버린 노동을 숨기기 위해 꿈을 향한다 그것은 주체를 스스로의 노동생산물과 맞서게 함으로써 그러나 사라져버린 노동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반 한다rdquo54)

매체는 전혀 다르지만 구체음악도 이러한 의미에서 판타스마고리적이다 물성 육체성을 띠지 않는 연주자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 환 과 같은 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개념과 통한다 락헨만에게는 서양전통음악이나 구체음악 모두 보이지 않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의 노출에 대한 의식은 또다시 음악감상의 확장된 개념으로 이끈다 청취라기보다는 일종의 lsquo관찰rsquo인 청중의 행위는 청각과 시각을 포괄하는 다원적 청취이며 탈어쿠스마틱 청취가 된다 이로써 음악은 lsquo보이는rsquo 것이 되고 더 이상 판타스마고리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Ⅱ장에서 언급했던 lsquo탈신화화rsquo(脫神話化)에 연결된다 미셸 시옹이 lsquo처음에 소리근원이 스크린에서 보 다가rsquo 이후 보이지 않게 되는 사운드에 관해 말한 lsquo탈신화화되고(demythologized) 구체화된(embodied) 사운드rsquo는 락헨만의 의식과 연관된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전승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소리는 신화화될 수 있기에 시옹은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리에 대해 탈신화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소리발생의 물리적 조건 그리고 연주자의 신체적 노동에 주목하는 락헨만의 관점은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읽힌다 클라리넷 주자를 위한 《달 니엔테》에 대한 프로그램 노트에서 그는 ldquo소리발생의 조건은 일종의 육체적(koumlrperliche) 경험으로서 구조적 사건 안으로 포함된다 다시 말해 lsquo악기rsquo가 lsquo장비rsquo(Geraumlt)가 되는 것이다rdquo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간다

54) Theodor W Adorno In Search of Wagner trans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9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136 서 정 은

참고문헌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서양음악학』 113 (2008) 67-116

이재현 『디지털 시대의 읽기 쓰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Adorno Theodor W In Search of Wagner Translated by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Originally published Versuch uumlber Wagner Frankfurt Suhrkamp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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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yle Franccedilois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2-31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46-179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0-197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Blumroumlder Christoph von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7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Edited by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6-213 Muumlnster LIT Verlag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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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4-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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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138 서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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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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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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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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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29: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3

ldquo악기는 작품과 그 해석에 의해 컨트롤되는 연주자의 호흡을 위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 필터가 된다 그러므로 손가락 위치의 독립적인 변화 어택의 유형 공기압력의 아티큘레이션의 형태는 폴리포닉한 다층구조로서 식별 가능해진다rdquo55)

또한 첼로독주곡 《프레시온》에 대해서도 ldquo각 음이나 소음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재료들로 어떤 에너지로 어떤 저항에 부딪혀 발생하는지를rdquo 듣는 작품으로 ldquo예컨대 활대 위로 손가락 끝을 미끄러뜨리며 커다란 압력을 가하는 경우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음향결과가 최대한의 힘의 소비로부터 발생한다rdquo56)라고 설명하는 작곡가의 미학적 시선은 연주자의 행위 연주자의 노동에 가 있다 이처럼 연주자의 행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lsquo소음rsquo 사용의 이유로 또 다시 연결된다 《프레시온》에 대한 작곡가의 아래 노트는 연주자와 악기의 몸체와 행위에 대한 집중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dquo작품 전반에 걸쳐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같은 음향들 명확한 음고를 인식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진동의 음향들이 등장한다 줄받침 아래 또는 위에서의 활긋기(bowing) 악기의 몸체나 튜닝 핀 등 현이 아닌 다른 부분을 활로 긋기 활의 프로그 부분으로 긋기 과도한 활의 압력 왼손가락으로 현을 아래위로 문지르기 등 전통적으로 고착되어 지침화된 현악기 주법보다는 악기의 모든 부분을 통해 산출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사용한다rdquo57)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음의 범주에 속했던 소리세계로 악기의 음향재료를

55) Lachenmann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382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0-81

56)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3

57) Lachenmann ldquoPressionrdquo 8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84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136 서 정 은

참고문헌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서양음악학』 113 (2008) 67-116

이재현 『디지털 시대의 읽기 쓰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Adorno Theodor W In Search of Wagner Translated by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Originally published Versuch uumlber Wagner Frankfurt Suhrkamp 1952)

Bauer Amy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ited by Arved Ashby 121-152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Bayle Franccedilois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2-31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46-179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0-197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Blumroumlder Christoph von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7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Edited by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6-213 Muumlnster LIT Verlag 2004

Cavell Stanley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167-196 Update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Chion Michel Audio-Vision Sound on Screen Edited and Translated by Claudia Gorb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Originally published Laudio-vision Son et image au cineacutema Paris Nathan 1990)

Griffiths Paul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Heathcote Abigail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331-348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Hockings Elke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1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4-10 12-14

Husserl Edmund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Kane Brian ldquoLrsquoObjet Sonore Maintenant Pierre Schaeffer Sound Objects and the Phenomenological Reduction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15-24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138 서 정 은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Lachenmann Helmut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28-235

ldquoThe Beautiful in Music Todayrdquo Tempo 135 (1980) 20-24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Pace Ian ldquoRecord Reviewrdquo Tempo New Series 197 (1996) 62-63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17

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3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34 서 정 은

확장하는 것은 락헨만의 작품전반에 걸친 특징으로 이것이 단지 새로운 음향재료의 발굴을 위한 실험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은폐되고 터부시되었던 소리발생의 상황과 과정에 대해 청중으로 하여금 주목하고 자각하도록 요청한다는 데 락헨만 작품미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하겠다

Ⅳ 나가면서

lsquo실존적 경험으로서의 음악rsquo 락헨만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그의 미학의 많은 부분을 대변한다 스스로를 지각하고 재발견하는 실존적 탐구라는 새로운 청취의 개념 그러나 그는 청중을 쾌적하기보다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청취상황으로 초대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청취경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청취의식을 도발한다

락헨만이 말하는 lsquo새로운 청취rsquo는 스크루턴의 ldquo총렬음악 안의 질서는 들릴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rdquo58)라는 말에 내포된 lsquo구조적 질서를 듣는 청취rsquo라는 의미도 에이미 바우어가 논의하는 현대음악의 lsquo청취가능성rsquo(listenability)59) 여부에 관련된 의미도 아니다 즉 청취를 통한 음악구조의 새로운 인지가능성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도한 것은 부주의한 인습적 청취에 대한 lsquo저항적rsquo 성격의 것이며 소리발생의 물리적 상황과 연주자의 행위가 은폐되었던 전통적 어쿠스마틱 청취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하기 위한 탈어쿠스마틱 청취다 수동적인 청취를 지양하는 락헨만에게 음악은 청취라기보다는 시청각적 관찰의 대상이며 이는 쉐페르의 구체음악과 그의 기악구체음악을 구분 짓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

58) Scruton The Aesthetics of Music 29459) Amy Bauer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 Arved Ashby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121-12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136 서 정 은

참고문헌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서양음악학』 113 (2008) 67-116

이재현 『디지털 시대의 읽기 쓰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Adorno Theodor W In Search of Wagner Translated by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Originally published Versuch uumlber Wagner Frankfurt Suhrkamp 1952)

Bauer Amy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ited by Arved Ashby 121-152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Bayle Franccedilois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2-31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46-179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0-197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Blumroumlder Christoph von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7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Edited by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6-213 Muumlnster LIT Verlag 2004

Cavell Stanley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167-196 Update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Chion Michel Audio-Vision Sound on Screen Edited and Translated by Claudia Gorb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Originally published Laudio-vision Son et image au cineacutema Paris Nathan 1990)

Griffiths Paul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Heathcote Abigail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331-348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Hockings Elke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1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4-10 12-14

Husserl Edmund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Kane Brian ldquoLrsquoObjet Sonore Maintenant Pierre Schaeffer Sound Objects and the Phenomenological Reduction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15-24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138 서 정 은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Lachenmann Helmut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28-235

ldquoThe Beautiful in Music Todayrdquo Tempo 135 (1980) 20-24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Pace Ian ldquoRecord Reviewrdquo Tempo New Series 197 (1996) 62-63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17

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31: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5

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연주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또 소음은 단순히 새로운 소리탐구의 시도로서 다루어진 것도 아니며 본질이나 목적도 아니었다 그에게 소음은 미학적 실현을 위한 도구의 일부 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인용한 카벨의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의 글에서 시사된 바 있는 현대음악의 lsquo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rsquo 나아가 이러한 정당화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적잖은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발견한다 음악작품에 대한 미학적middot철학적 정당화의 정당성은 존재하는가 이는 락헨만에게도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ldquo그의 작품은 대개의 경우 청중에게 lsquo친숙한 것의 거부rsquo로서 충격을 준다 그러나 한번 그의 새롭고 낯선 음향세계로 들어가면 그의 작품은 습관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미적 경험의 기회 즉각적이고 그래서 자유를 주는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rdquo60)라는 호킹스의 말을 이 글을 통해 필자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락헨만의 미학적middot철학적 해명이 그의 음악의 미적 수용과 이해까지 청중에게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식적 청취를 소개하려는 락헨만의 음악이 그의 미학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탈어쿠스마틱 음악과 청취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한글검색어 어쿠스마틱 탈어쿠스마틱 피에르 쉐페르 헬무트 락헨만 기악구체음악 참조적 청취

영문검색어 Acousmatic Dis-acousmatic Pierre Schaeffer Helmut Lachenmann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Referential Listening

60) Elke Hockings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0

136 서 정 은

참고문헌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서양음악학』 113 (2008) 67-116

이재현 『디지털 시대의 읽기 쓰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Adorno Theodor W In Search of Wagner Translated by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Originally published Versuch uumlber Wagner Frankfurt Suhrkamp 1952)

Bauer Amy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ited by Arved Ashby 121-152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Bayle Franccedilois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2-31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46-179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0-197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Blumroumlder Christoph von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7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Edited by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6-213 Muumlnster LIT Verlag 2004

Cavell Stanley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167-196 Update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Chion Michel Audio-Vision Sound on Screen Edited and Translated by Claudia Gorb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Originally published Laudio-vision Son et image au cineacutema Paris Nathan 1990)

Griffiths Paul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Heathcote Abigail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331-348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Hockings Elke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1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4-10 12-14

Husserl Edmund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Kane Brian ldquoLrsquoObjet Sonore Maintenant Pierre Schaeffer Sound Objects and the Phenomenological Reduction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15-24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138 서 정 은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Lachenmann Helmut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28-235

ldquoThe Beautiful in Music Todayrdquo Tempo 135 (1980) 20-24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Pace Ian ldquoRecord Reviewrdquo Tempo New Series 197 (1996) 62-63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17

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32: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36 서 정 은

참고문헌

서정은 ldquo헬무트 락헨만의 lsquo기악적 구체음악rsquo(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과 그 음악사적middot미학적 해석rdquo 『서양음악학』 113 (2008) 67-116

이재현 『디지털 시대의 읽기 쓰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Adorno Theodor W In Search of Wagner Translated by

Rodney Livingstone London Verso 1981 (Originally published Versuch uumlber Wagner Frankfurt Suhrkamp 1952)

Bauer Amy ldquolsquoTone-Color Movement Changing Harmonic Planesrsquo Cognition Constraints and Conceptual Blends in Modernist Musicrdquo In The Pleasure of Modernist Music Edited by Arved Ashby 121-152 Rochester University of Rochester Press 2004

Bayle Franccedilois ldquoPrinzipien der Akusmatik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2-31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Die akusmatische Musik oder die Kunst der projizierten Klaumlnge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46-179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ldquoGlossarrdquo In Komposition und Musikwissenschaft im Dialog IV (2000-2003) Edited by Imke Misch and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0-197 Second Edition Berlin LIT Verlag 2007

Blumroumlder Christoph von ldquoFranccedilois Bayles Musique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7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Edited by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6-213 Muumlnster LIT Verlag 2004

Cavell Stanley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167-196 Update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Chion Michel Audio-Vision Sound on Screen Edited and Translated by Claudia Gorb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Originally published Laudio-vision Son et image au cineacutema Paris Nathan 1990)

Griffiths Paul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Heathcote Abigail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331-348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Hockings Elke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1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4-10 12-14

Husserl Edmund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Kane Brian ldquoLrsquoObjet Sonore Maintenant Pierre Schaeffer Sound Objects and the Phenomenological Reduction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15-24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138 서 정 은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Lachenmann Helmut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28-235

ldquoThe Beautiful in Music Todayrdquo Tempo 135 (1980) 20-24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Pace Ian ldquoRecord Reviewrdquo Tempo New Series 197 (1996) 62-63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17

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33: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7

Acousmatiquerdquo In Kompositorische Stationen des 20 Jahrhunderts Debussy Webern Messiaen Boulez Cage Ligeti Stockhausen Houmlller Bayle Edited by Christoph von Blumroumlder 186-213 Muumlnster LIT Verlag 2004

Cavell Stanley ldquoMusic Discomposedrdquo In Must We Mean What We Say A Book of Essays 167-196 Update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Chion Michel Audio-Vision Sound on Screen Edited and Translated by Claudia Gorb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Originally published Laudio-vision Son et image au cineacutema Paris Nathan 1990)

Griffiths Paul Modern Music and Aft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Heathcote Abigail ldquoSound Structures Transformations and Broken Magic An 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331-348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Hockings Elke ldquoA Portrait of Helmut Lachenmannrdquo Tempo New Series 185 (1993) 29-31

ldquoHelmut Lachenmannrsquos Concept of Rejectionrdquo Tempo New Series 193 German Issue (1995) 4-10 12-14

Husserl Edmund 『순수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Ideen zu einer reinen Phaumlnomenologie und phaumlnomenologischen Philosophie) 이종훈 역 파주 한길사 2009

Kane Brian ldquoLrsquoObjet Sonore Maintenant Pierre Schaeffer Sound Objects and the Phenomenological Reduction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15-24

ldquoAcousmate History and De-visualised Sound in the

138 서 정 은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Lachenmann Helmut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28-235

ldquoThe Beautiful in Music Todayrdquo Tempo 135 (1980) 20-24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Pace Ian ldquoRecord Reviewrdquo Tempo New Series 197 (1996) 62-63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17

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34: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38 서 정 은

Schaefferian Traditionrdquo Organised Sound 172 (2012) 179-188

Sound Unseen Acousmatic Sound i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Lachenmann Helmut ldquoDie gefaumlhrdete Kommunikation Gedanken und Praktiken eines Komponistenrdquo Musica 283 (1974) 228-235

ldquoThe Beautiful in Music Todayrdquo Tempo 135 (1980) 20-24

ldquoFragen und Antwortenrdquo In Musik-Konzepte 6162 Edited by Heinz-Klaus Metzger and Reiner Riehn 116-133 Muumlnchen edition text+kritik 1988

ldquoPressionrdquo Helmut Lachenmann Allegro Sostenuto Pression Dal niente Inteacuterieur I CD booklet col legno WWE 31863 1994

ldquoOn Structuralism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121 (1995) 93-102

Musik als existentielle Erfahrung Schriften 1966-1995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1996

ldquoComposing in the Shadow of Darmstadt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4 (2004) 43-53

Pace Ian ldquoRecord Reviewrdquo Tempo New Series 197 (1996) 62-63

ldquoPositive or Negative 1rdquo The Musical Times 1391859 (1998) 9-17

Paddison Max ldquoMusic and Social Relation Towards a Theory of Mediationrdquo In Contemporary Music Theoretical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Edited by Iregravene Deliegravege and Max Paddison 259-276 Farnham Ashgate Publishing 2010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39

Ruzicka Peter ldquoToward a New Aesthetic Quality On Helmut Lachenmannrsquos Aesthetic of Material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7-102

Ryan David and Helmut Lachenmann ldquoComposer in Interviewrdquo Tempo New Series 210 (1999) 20-24

Schaeffer Pierre Treatise on Musical Objects An Essay across Disciplines Translated by Christine North and John Dack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 (Originally published Traiteacute des objets musicaux Paris Le Seuil 1966)

ldquoAcousmaticsrdquo In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Edited by Christopher Cox and Daniel Warner 76-81 New York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4

Scruton Roger The Aesthetics of Music Oxford Clarendon Pres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Smalley Denis ldquoSpectromorphology Explaining Sound-Shapesrdquo Organised Sound 22 (1997) 107ndash26

ldquoSpace-form and the Acousmatic Imagerdquo Organised Sound 121 (2007) 35ndash58

Steenhuisen Paul ldquoInterview with Helmut Lachenmann Toronto 2003rdquo Contemporary Music Review 233 (2004) 9-14

lt악보gt

Lachenmann Helmut Dal niente fuumlr einen Solo-Klarinett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ISMN 979-0-004-14016-1 1970

Pression fuumlr einen Cellisten Wiesbaden Breitkopf amp Haumlrtel EB 9221 ISMN 979-0-004-18431-8 19692010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36: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140 서 정 은

국문초록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헬무트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에 대한

탈어쿠스마틱(dis-acousmatic) 해석

서 정 은

이 글은 독일의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의 핵심개념 중 하나인 기악구체음악을 lsquo탈어쿠스마틱 소리와 청취rsquo라는 측면에서 해석한다 lsquo어쿠스마틱rsquo이란 용어를 도입한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구체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와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기악구체음악은 어쿠스마틱 음악의 반대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락헨만의 기악구체음악은 쉐페르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자적 매체에서 전통적 악기로의 단순한 매체변화뿐 아니라 음악의 lsquo작품rsquo 개념과 lsquo청취rsquo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탐색으로 이해된다 락헨만이 파악한 lsquo구체성rsquo의 의미 그리고 관습적 청취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탈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이 그 정치middot사회적 함의와 함께 논의된다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

Page 37: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mrc.hanyang.ac.kr/wp-content/jspm/40/jspm_2018_40_04.pdf · 2020. 8. 27. · 현대 작곡가 헬무트 락헨만(Helmut Lachenmann, 1935-

보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 141

Abstract

Sound Unseen or Sound Seen Dis-acousmatic Meanings of Helmut Lachenmannrsquo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Seo Jeong-Eun

In a previous paper on the contemporary German composer Helmut Lachenmann (2008) I discussed a music-historical and aesthetic interpretation of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which was among the kernel concepts of his aesthetics In this paper I attempt to interpret his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in terms of lsquodis-acousmatic sound and listeningrsquo Paradoxically the musique concregravete instrumentale can be observed as an antonym of acousmatic music even though that was derived from and related to musique concregravete of Pierre Shaeffer who introduced the term lsquoacousmaticrsquo in music

〔논문투고일 2018 8 31〕

〔논문심사일 2018 9 06〕

〔게재확정일 2018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