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가화 시대의 민족 정체성 · 2008-06-25 · 1) 최근 해외동포사회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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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초국가화 시대의 민족 정체성 권 숙 인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문화인류학 요즈음 새삼, 어느 나라 ‘국민’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이렇게 ‘운명적’ 적일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솔직히, 좀 더 합리적이고․ 투명하고․예측 가능한 안정된 사회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 도 한다. 하지만 운명이 괜히 ‘운명’일까? 국경에 점점 많은 구멍이 뚫 리고 국민국가-이후의 멤버쉽(postnational membership)이나 유연한 시 민권(flexible citizenship) 등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이 시대에도, 대부분 의 사람들은 여전히 민족과 국적이라는 ‘근대적’-최근엔 ‘구시대적’이란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정체를 운명으로 안고 산다. 다만 초국가화(trans-nationality)와 전지구화(globalization)의 소용돌이 속에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도 그 ‘운명’의 틈새와 모순에 조우할 기회가 좀 더 늘어났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지난 여름 접할 기회가 있었던 몇 가지 풍경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기에 민족 과 국적이 갖는 무게와 힘의 편린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새길논단 열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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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초국가화 시대의 민족 정체성 · 2008-06-25 · 1) 최근 해외동포사회에 대한 관심 증가 속에 한국문화인류학회는 1996년 이래 국립민속박물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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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가화 시대의 민족 정체성

권 숙 인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 문화인류학

요즈음 새삼, 어느 나라 ‘국민’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이 게 ‘운명 ’

일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솔직히, 좀 더 합리 이고․

투명하고․ 측 가능한 안정된 사회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기

도 한다. 하지만 운명이 괜히 ‘운명’일까? 국경에 많은 구멍이 뚫

리고 국민국가-이후의 멤버쉽(postnational membership)이나 유연한 시

민권(flexible citizenship) 등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이 시 에도, 부분

의 사람들은 여 히 민족과 국 이라는 ‘근 ’-최근엔 ‘구시 ’이란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정체를 운명으로 안고 산다. 다만

국가화(trans-nationality)와 지구화(globalization)의 소용돌이 속에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도 그 ‘운명’의 틈새와 모순에 조우할 기회가

좀 더 늘어났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 에서는 필자가 지난 여름 할

기회가 있었던 몇 가지 풍경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기에 민족

과 국 이 갖는 무게와 힘의 편린에 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새길논단 열린 문화

Page 2: 초국가화 시대의 민족 정체성 · 2008-06-25 · 1) 최근 해외동포사회에 대한 관심 증가 속에 한국문화인류학회는 1996년 이래 국립민속박물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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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4년 7월 멕시코 티후아나

7월 3일. 멕시코 한인 후손에 한 본격 인 지조사1) 첫날. 티후아

나(Tijuana)시 한인회장 페르민의 안내로 정에 없이 제7일안식일교회

배에 참석한다. 한인 후손들 제7일안식일교회 신자가 지 않으며,

마침 토요일이 배일이니 교회로 가면 한인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거

란 제안이었다. 연구진은 배 도 교회 앞문을 통해 제일 앞쪽 좌석

으로 안내 받는다. 배가 끝나고 담임목사의 소개가 있고, 한인 후손(3

세)인 펠리페 킹 씨가 부분 멕시코인인 신자들과 우리들에게 인사를

한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우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이 게 한국인이 멕시코의 우리를 방문하는 때가 오

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7월 7일. 한국음식을 만들어 연구진을 심에 한 에르난 킹(한인

3세)의 집. 에르난의 동생 이그나시오 씨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계속 간직해오던 서류 뭉치를 가져온다. 오래된 가족사진과 여러 서류

사이에 깨끗한 상태로 보 되어 있는 것은 두 형제의 할아버지가 한국

을 떠나면서 가져왔던 여권 원본이다. ‘光武九年三月十五日 大韓帝國外

部’ 발행으로, 한문․ 어․스페인어로 쓰인 여권에는 경상남도 동래군

우암동 출신의 28세 김덕기의 북미 묵서가(墨西哥)로의 여행 목 이 명

기되어 있고 아직 붉은 색 인이 선연하다. 연구진을 해 차려진 식

탁엔 흰 밥과 미역국, 김치, 고추장, 녹두(숙주나물), 콩자반, 장조림,

1) 최근 해외동포사회에 한 심 증가 속에 한국문화인류학회는 1996년 이래

국립민속박물 이 발주하는 해외한인동포사회 연구를 실시해 오고 있다.

2005년의 멕시코 이민 100주년과 맞물려 2004년에는 멕시코의 한인사회에

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에서 인용하는 자료는 의 연구를 해

2004년 7월 2일부터 13일까지 멕시코에서 행했던 지조사를 통해 수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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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시오 씨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계속 간직해 오던 서류 뭉치를

가져온다. 오래된 가족사진과 여러 서류 사이에 깨끗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는

것은 두 형제의 할아버지가 한국을 떠나면서 가져왔던 여권 원본이다.

나물 등 멕시코 한인 후손들 사이에 남아 있는 표 인 한국음식이 즐

비하다.2)

2. 1905년 멕시코 유카탄 반도

1905년 4월 4일. 국 선박 일포드(Ilford) 호는 남자 702명, 여자 135

명, 어린이 196명, 총 1,033명의 한국인을 태우고 이들이 다시는 돌아오

지 못할 인천항을 떠나 멕시코로 향했다. 한국에서 단 한 차례 떠났던

에네 (henequén),3) 농장 노동이민자를 태운 배 다. 지 말로 하면

2) ‘한인 후손’이라 했지만 펠리페 씨나 에르난 씨 모두 ‘한국인’ 아버지와 ‘유카

탄 사람’( 개는 마야인 후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펠리페의 부인 아

마다 씨는 할아버지 에 멕시코로 이민 온 이탈리아 코르시카 출신이고,

에르난의 부인 후디트는 ‘유카탄 사람’이다. 그러나 두 부인 모두 즐겨 먹는

한국음식을 묻는 질문에 한국어로 “김치”, “미역국”, “콩자반”, “장조림”, “녹

두”, “만두”, “장국” 등을 들었다. 극소수만 생존해 있는 2세를 제외하곤, 사

실 멕시코 한인후손 사이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어는 음식 이름뿐이다.

3) 마야 원주민 말로서, 용설란과의 다육질식물이다. 이 식물로부터 추출된 섬

유질로 밧 이나 노끈, 선박용 로 등을 만든다. 19세기 후반 에네 의

주산지엔 멕시코 유카탄 반도는 늘어나는 국제 수요에 의해 경제 붐을

맞이했고, 에네 농장에서 일할 노동력의 부족으로 멕시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국, 일본 등에서도 노동자를 모집해 부리고 있었다. 다 성장한 에

네 잎의 길이는 2미터 이상이며 잎 꼭 기와 양 으로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들이 무수히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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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 로커’라고 할 수 있는 국인 존 마이어스(John G. Mayers)

가 일본의 이민회사인〈 륙식민합자회사〉와 , 국에 유포된 이민

모집 고를 보고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당시 이미 지 않은 이민 노

동을 보냈던 국은 에네 농장의 가혹한 조건을 알고는 더 이상의 이

민을 지한 상태 고, 일본 역시 이민 련법으로 공개 으로 노동자를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선인 모집 고에는 멕시코 땅을 황 밭

에서 떼돈을 벌 수 있는 지상낙원으로 묘사하고, 구든 가기만 하면

큰돈을 벌어 4년 계약기간 후에는 의환향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모집 고가 나가고 6개월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응모한 사람

들은 신분이나 출신지역도 매우 다양했다. 구 무군 출신과 부산출신

어부들이 지 않았다는 것이 이채롭다. 4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귀국

할 것을 계획하고 고향에 가족을 두고 홀로 이민신청을 한 경우도 많았

다.

그러나 한국인 이민자를 태운 배가 인천항을 떠난 지 반년 후, 한

제국은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국

권을 상실한다. 이에 덧붙여 태평양을 사이에 둔 지리 거리도 멕시코

한인들을 조국으로부터 멀리 단 되게 만들었다. 실제 일포드호를 타고

떠났던 한인 다시 한반도 땅을 밟을 수 있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

었고, 이들의 운명은 오랫동안 잊 진 역사로 남게 된다. 한제국 정부

는 일포드호가 떠난 직후 실상을 알고 멕시코 이민 지령을 내렸고, 노

같은 생활을 하던 이민자들의 상황을 악하고 구제하기 한 시도

를 하지만, 정부의 외교 역량 부족과 미숙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은 혼란스런 당시 상황 속에 단 한 차례만 떠나고

말았던 이민선을 탔던 사람들이다.

1905년 인천항을 떠난 배는 요코하마를 거쳐 항해 한 달 반 뒤 멕시

코의 태평양 연안에 치한 살리나 크루즈(Salina Cruz) 항에 도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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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포드호를 타고 떠났던 한인 중 다시 한반도 땅을 밟을 수 있었던 사람

은 한 사람도 없었고, 이들의 운명은 오랫동안 잊혀진 역사로 남게 된다.

다. 항해 두 사람이 병으로 사망하여 태평양에 수장했다는 이야기도

해진다. 살리나 크루즈에서부터 다시 기차로 멕시코를 횡단하여 베라

크루즈(Veracruz)의 코앗사코알코스(Coatzacoalcos) 항으로 이동하 고,

이곳서 다시 배로 갈아타고 유카탄 반도의 로그 소(Progreso)항에

내려 유카탄 주의 주도(州都) 메리다(Mérida)에 도착하 다. 이곳에서

이들은 약 25개의 에네 농장으로 분산되었다. 에네 농장에서 한인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혹독한 노동과 비참한 생활, 물설고 낯 선 땅

에서 응해야 했던 1세들의 고 와 비극은 지 은 먼 조상의 설로만

기억되고 있다.4)

에네 농장으로 흩어진 한인들은 개 4년 이상 지속된 계약노동에

묶여 있었고, 계약이 끝난 뒤에도 언어장애와 에네 농사 외에는 별다

른 기술이 없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에네 농장을 떠나지 못했다.

일부가 인근의 도시로 나가 냄비 땜질 등의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

다. 그러던 멕시코 명 과정에서 부분 해방되어 일부는 유카탄에

남고, 일부는 멕시코시티, 티후아나, 과테말라, 쿠바 등으로 흩어지기도

하 다. 한반도에서 어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항구도시 코앗사코알코

스 등으로 이주해 다시 고기를 잡기도 했다. 이들은 잡은 생선으로 회

4) 그동안 에네 농장 한인이민자들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는〈애니깽〉이라는

제목의 희곡, 하소설, 화 등이 만들어진 이 있었고, 2003년에 나온 김

하의 소설『검은 꽃』도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표 인 연구물로는

멕시코로의 한인이민사를 개 한 재미 작가 이자경의『한국인 멕시코 이민

사』(지식산업사, 1998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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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떠서 멕시코 고추로 만든 고추장과 함께 생선회를 즐겼는데, 이걸

보고 생선회를 먹을 모르던 주변의 멕시코인들도 생선회를 먹게 되

었다는 다른 ‘ 설’도 들린다.

멕시코 한인 후손은 ‘한인’이라고 하나 사실 인종 으로 매우 다양하

다. 워낙 한인 커뮤니티 수가 었기 때문에 지 사람들과의 혼인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한인 이민자의 성(姓)도 개 변형된 상태로 이어지

고 있다. 김은 보통 킴(Kim), 킹(King), 킨(Kin) 등으로, 양은 야네스

(Llanes), 고는 코로나(Corona), 장은 찬(Chan), 이는 리아스(Lias), 리사

마(Lizama), 이(Y) 는 디아스(Díaz) 등으로 바 었다. 이민자들이 멕

시코에 와서 등록을 할 때 멕시코 담당자들이 한국 성을 잘 알아듣지

못해 표기 과정서 잘못 기록되거나, 경우에 따라선 완 히 다른 성을

당히 붙여주기도 하 다. 같은 이유로 1세의 이름 엔 멕시코서 가

장 흔한 이름인 호세(José)와 마리아(María)가 아주 많다.

3. 2004년 7월 유카탄 반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유카탄 반도는 끝없이 이어지는 정 벌

이다. 백색도시 메리다. 계약 노동기간이 끝난 후, 미국과의 국경도시

티후아나로 빠져나가기 까지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도시이자

한인 결집의 심지 다. 재 메리다시 한인회회장 울리세스 박. 올해

84세인 그의 노모는 몇 분 생존해 있지 않은 2세 할머니다. 텔마 리. 한

국 이름 이덕순. 그 이웃에 사는 할머니 같은 얼굴에 렷한 한국말

이 그분의 인생이 거쳤을 역사에 한 사색을 잠시 멈추게 한다.

집 에 있는 한인회 건물. 여러 가지 기록 사진이 려 있다. 메리

다의 한인회는 오랫동안 거의 명맥이 끊겼다가 90년 말 울리세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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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이 멕시코에 와서 등록을 할 때 멕시코 담당자들이 한국 성을 잘

알아듣지 못해 표기 과정서 잘못 기록되거나, 경우에 따라선 완전히 다른 성을

적당히 붙여주기도 하였다. 같은 이유로 1세의 이름 중엔 멕시코서 가장 흔한

이름인 호세와 마리아가 아주 많다.

과 몇몇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재조직되었다. 재 이름이나 주소

가 확보된 메리다 인근 유카탄 지역 한인 수만 해도 400명이 넘는다

고 한다. 2003년 삼일 행사 때에는 500명이 넘는 한인이 모 다고 한

다. 함께 갔던 연구원에 의하면, 80년 반에만 해도 메리다에서 서로

계를 맺고 있는 한인 가족은 불과 열 가족 정도 다고 하니 놀라운

변화다. 멕시코 이민 백주년이라는 역사 동기와, 올림픽, 월드컵 개최

로 인한 한국의 상 강화, 그리고 멕시코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한국 기업의 상이 이런 재 결집에 역할을 했을 것이다. 2005년

멕시코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정부의 액지원으로 메리다 시에

건립하기로 한 병원 소식 등도 이곳 한인들로 하여 ‘핏 ’을 다시 기

억하게 했을 터 다. 최근 한국정부가 해외 한인에 한 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울리세스 박 한인회장은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

었다. 한 1970년 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한국인 개신교 목회자들도

자신들의 방식으로 ‘민족의 끈’을 다시 잇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한인 후손 김씨 형제가 에네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는 마을을 찾

아 나선다. 메리다시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정 속으로 난 길

을 달려 몇 번을 물어 도착한 윤쿠(Yuncu) 마을. 마을엔 사람들 모습보

다 어슬 거리며 돌아다니는 개, 칠면조, 닭, 말 등 동물 천지다. 밖에

나와 앉아 있는 한 부인에게 우리가 찾는 ‘한인 김씨’를 묻자 바로 자기

남편이란다. 김씨 10형제의 여섯째인 식스토 킴. 올해 72세. 이제는 그

만이 홀로 고향을 지키고 있다. 3명은 세상을 떠나고 나머지 형제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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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나 메리다 등으로 이주하 다. 한국인 모습이 완연히 남아

있는 식스토 킴은 자식이 없었고, 마야인 부인과 함께 정부가 지원하는

잡화 을 운 하고 있다. 이제 에네 농장은 남아 있지 않고 에네 을

가공하던 공장도 일부 폐허로만 남아 있었다. 신 그가 지키고 있는

조그만 가게 벽에 붙은 고포스터에는 크노르(Knorr), 폰즈(POND'S),

스 (Snuggle) 등 여러 외국/다국 랜드들이 외진 마야 마을까지

침투해 있는 지구화의 수를 느끼게 한다.

4. 다시 2004년 7월 멕시코 티후아나

7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에서 남쪽으로 불과 20km. 샌디

에고 시내서 편도에 2.5달러를 주고 트롤리를 타니 40여분 만에 멕시코

와의 국경에 도착한다. 물론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훨씬 빠르다. 아무런

제재 없이 건 는 국경. 이곳 다수의 사람들에게 국경 넘기는 매일의

일상이다. 조선소 노동자로, 정원사로, 혹은 청소부로 하루 일을 마치고

미국 할인 비닐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여기에 값싼

휴식과 쇼핑을 해 가벼운 차림으로 국경을 넘는 미국인들이 합쳐진

다. 물론 반 방향의 국경 넘기엔 긴장과 기다림, 선망과 좌 이 넘친

다.

멕시코 쪽 국경도시 티후아나. 1950년 까지 인구 6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농업도시에서 소 “미국의 뒷마당”으로 성장한 도시다. 제2차

세계 , 한국 쟁, 베트남 쟁 때에는 샌디에고에 주둔했던 미군들을

한 휴양지로, 1942년부터 64년까지 실시된 미국의 라세로(Bracero)5)

5) 2차 을 치르며 미국의 많은 은이들이 징병제로 쟁터로 떠나자 농

지역은 심각한 노동력부족을 겪게 되었다. 이에 미국정부는 한시 으로 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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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모습이 완연히 남아 있는 식스토 킴은 자식이 없었고, 마야인 부인과

함께 정부가 지원하는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에네켄 농장은 남아 있지

않고 에네켄을 가공하던 공장도 일부 폐허로만 남아 있었다.

정책에 따라 미국을 드나들기 해 멕시코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의

체류지/거주지로, 1970년 이후엔 미국시장을 겨냥한 외국계 기업의 멕

시코 지공장 마킬라도라(maquiladora)6)의 본거지로, 그리고 반복되는

경제 기 속에 미국으로의 (불법)입국기회를 찾아 멕시코 역에서(그

리고 세계 각지로부터) 끊임없이 려드는 사람들로 매일같이 꿈틀 는

도시다. 국경 양쪽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상 로 한 서비스업과 마킬

라도라의 제조업이 ‘기회의 땅’ 티후아나를 뒷받침하고 있다. 재 인구

120만. 그러나 구도 정확한 인구를 알 수 없다. 실제 우리가 들은

답만도 150만에서 300만 사이를 오갔다.

티후아나의 성장기는 멕시코 한인들이 본격 으로 티후아나로 이주

한 시기이다. 한인들이 최 로 정착했던 메리다에서 비교 여유가 있

는 사람들은 그 로 남았고, 주로 경제 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던 사람

들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티후아나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국

시코 노동력을 받아들여 농업과 철도건설 등에 활용하 다.

6) 1964년 라세로 정책이 종료되면서 미국에서 돌아오는 사람과 미국에서 일

자리를 알아보기 해 멕시코 남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멕시코 국경

지 는 인구가 팽창하고 실업률이 상승한다. 이를 해결하기 해 멕시

코는 1965년 ‘국경산업화정책’을 발표하고, 세혜택과 각종 편의시설을 제

공하며 국경지 에 외국계 기업을 유치하 다. 이 게 해서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수출용 상품을 생산하는 지공장 마킬라도라가 국경지

역에 많이 세워졌다. 티후아나에는 , 삼성 등 한국계 마킬라도라도 많이

있는데, 이곳에 근무하는 한국인은 개 미국에 살면서 출퇴근하고, 멕시코

이민자 후손들과는 연결 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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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 증하는 내국인을 상 로 상업, 특히 식료품 (abarrote)을

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성공하면 메리다 등지의 친인척을 불러들

다. 이런 식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오늘날 티후아나 한인사회를 구

성하는 주체가 되었다. 재 티후아나에는 1,000~1,500명 정도의 한인

후손이 살고 있어 실질 으로 한인 후손의 심커뮤니티가 메리다에서

티후아나로 옮겨진 상태이다. 한 이제는 티후아나의 한인 후손들이

메리다나 멕시코시티의 한인들보다 훨씬 경제 형편이 좋고, 자녀들의

교육수 도 매우 높다. 좋은 교육을 받은 한인들은 의사, 변호사, 교사

등 다양한 문직종에 진출해 있고, 상업을 할 경우도 자동차 매업

등 이주 기세 보다 자본력이 필요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1970년 한인들이 사재를 모아 구입했다는 커다란 한인회 건

물. 정면엔 큰 씨로〈바하 칼리포르니아 한인회 〉이란 씨와 태극

기가 그려져 있다. 최근에는 돌보지 않아 엉망이라는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한인회 내부는 비교 깨끗했고 3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홀을 갖추고 있었다. 출입문 에 걸린 역 한인회장의 로필

사진이 인상 이다. 연구진들의 방문을 기해 소집된 한인회 모임에는 4

에 걸친 50여명의 사람들이 모 다. 지난 8월에도 ‘팔월 십오일’을 기

념해 모임을 가졌단다. 다양한 얼굴의 이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민족’이

라는 끈. 물론 이 경우 ‘민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명료

한 건 아니다. 자신은 “피는 100% 한국인인데, 가슴은 멕시코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티후아나 한인들은 국가화와 지구화가 제공하는 기회에도 민감하

다. 티후아나로 이주해서 경제 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이미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주해 나갔고, 형제나 자식 한 두 집쯤은 미국에 거주하

는 경우가 흔하다. 한인회 모임에 타고 온 미국 랜드 자동차에는 주로

캘리포니아 번호 이 선명하다. 열심히 일해 벌은 돈은 더 안 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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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역사를 어느 한 시점에서 봉인한 채 살아 온 이들. 마찬가지로 지극히

정형화된 한국음식의 몇 가지와 조리법으로 민족문화공동체의‘입맛’을 이어

가고 언어의 조각을 기억하고 있다.

계 은행에 치하고, 미국 내 부동산 투자도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요

한 항목이다. ‘원정출산’으로 샌디에고에서 낳은 아이를 매일 국경을 넘

어 등하교 시키고 있는 은 부모. 한편 백화 가장 좋은 자리에 치

한 삼성과 엘지 랜드, 국경 쪽으로 진출해 있는 많은 한국계 기업들

을 보며 이제 조상의 나라 한국도 가시권 안에 들어오고 있다. 샌디에

고의 국계 조선소에 출퇴근하는 멕시코인 이람은 한인 4세인 부인과

함께 한국에 가서 멕시코 음식 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보기 시작했

다. 4세 페르민, 자녀를 한국 학으로 유학 보낼 수 있는 방법에 해

연구진들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한국어도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할아버

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배웠으면 좋았을 걸 새삼 아쉬워하기도 한다.

설날이나 추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 지만 ‘삼월 일일’(삼일 이

란 말은 알지 못한다)은 가장 요한 연 행사로 얼마 까지도 크게

기념해왔다. ‘삼월 일일’만큼은 아니지만 ‘팔월 십오일’( 복 이란 말도

역시 알지 못한다)도 요한 명 로 남아 있다. 민족의 역사를 어느 한

시 에서 인한 채 살아 온 이들. 마찬가지로 지극히 정형화된 한국음

식의 몇 가지와 조리법으로 민족문화공동체의 ‘입맛’을 이어가고 언어의

조각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올림픽, 월드컵, 태권도, 개신

교 선교단체,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기업 랜

드를 통해 기억으로만 해져 왔던 조상의 나라에 해 새삼 구체 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조상에 해 남아 있는 기억과 그동안 간직해온

Page 12: 초국가화 시대의 민족 정체성 · 2008-06-25 · 1) 최근 해외동포사회에 대한 관심 증가 속에 한국문화인류학회는 1996년 이래 국립민속박물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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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유품을 들고 와 한국에서 온 인류학자7)에게 가계도 복원을 부

탁하는 한인 후손 최 의 여의사 닐다. 국경을 넘어 샌디에고의 한국

수퍼에서 하는 상품을 통해 새로 추가되는 민족음식의 항목들. 메리

다 한인회 에 걸린 사진 속엔 최근 선교단체를 통해 유입된 한복을 입

은 모습이 에 띈다. 새롭게 활기를 띠기 시작한 한인커뮤니티의 열기

속에 유카탄 정 속에 살아 온 ‘한인 김씨’는 한인회에서 보내 온 택시

를 타고 메리다에서 개최된 삼일 행사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민

족과 국 의 무게와 구속은 국가화와 지구화에 의해 가벼워지고 약화

되기도 하는 한편(모 일간지에서 최근 ‘국 도 쇼핑하는 시 ’라는 기자

칼럼을 본 이 있다), 오랫동안 동면하고 있던 새 순을 다시 키우며

지구 곳곳에서 새로운 역사와 이야기를 쓰고 있다.

7) 그러고 보면 선교사와 인류학자도 국가 연결망에 나 지 이나 요한

조연으로 등장한다. 최근엔 다큐멘터리 제작 스탭이나 미디어 일반이 인류

학자를 체하고 있는 추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