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도 다른 길을 걷는다 주철환 교수가 말하는 웰메이드 예능의 조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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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도 다른 길을 걷는다 주철환 교수가 말하는 웰메이드 예능의 조건 한류의 1기를 이끌었던 것이 <겨울연가>와 <대장금> 등의 한국 드라마, 2기가 아이돌을 필두로 한 한국 가요였다면, 한류 3기는 한국 예능이 이끌고 있다. SBS의 <런닝맨>, MBC의 <나는 가수다>와 <무한도전> 등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중국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판권을 구입한 중국 방송국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만들면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은 국내에서도 교양 프로그램과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로부터 반향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영석(<삼시세끼>, tvN), 김태호(<무한도전>)와 같은 굵직한 예능 스타 피디들이 자리하고 있다. 인터뷰 윤호진 KOCCA 정책개발팀장 | 정리 김송희 | 사진 김창제 BROADCASTING TREND & INSIGHT 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2016. 06+07 VOL. 06 15 SPECIAL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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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도 다른 길을 걷는다

주철환 교수가 말하는

웰메이드 예능의 조건한류의 1기를 이끌었던 것이 <겨울연가>와 <대장금> 등의 한국 드라마,

2기가 아이돌을 필두로 한 한국 가요였다면, 한류 3기는 한국 예능이 이끌고 있다.

SBS의 <런닝맨>, MBC의 <나는 가수다>와 <무한도전> 등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중국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판권을 구입한 중국 방송국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만들면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은

국내에서도 교양 프로그램과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로부터 반향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영석(<삼시세끼>, tvN),

김태호(<무한도전>)와 같은 굵직한 예능 스타 피디들이 자리하고 있다.

인터뷰 윤호진 KOCCA 정책개발팀장 | 정리 김송희 | 사진 김창제

BROADCASTING TREND & INSIGHT 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2016. 06+07 VOL.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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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피디는 김태호 피디보다 먼저 MBC의 예능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1세대 스타 피디라고

불리는 이다. MBC에 17년간 근무했던 그의 손을 거친 인기 프로그램은 셀 수 없다. <장학퀴즈>

<우정의 무대>를 거쳐 기획부터 섭외와 음악 선곡까지 맡았던 <퀴즈 아카데미>, 그리고 MBC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대학가요제> <일요일 일요일 밤에> <테마게임>에 이르기까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웃음으로 무장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미까지 담았던 주철환 피디는 이후 김영희

와 김태호 피디가 뒤를 이은 MBC 예능의 초석을 다졌다.

MBC를 퇴사한 후 OBS 경인TV와 JTBC를 거쳐 지금은 아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

는 그를 만나 웰메이드 예능이 제작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물었다. 더불어 한국 예능 프로그

램의 역사부터 미래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어떤 기준으로 심사했는지 듣고 싶다.

주철환 올해 TV 예능 작품상은 MBC의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이 탔고

TV 대상은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탔다. 백상에서는 대중성과 시청률이 가장 중요한 요소

다. 백상을 통해 그해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시청자의 반

응이 없다면 그 작품은 대중의 취향을 반영할 수 없는 거다. 올해는 <시그널>과 <태양의 후예>

가 각축을 벌였다. 작품성만 두고 평가한다면 어느 것이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심사위원

단이 <태양의 후예>를 선정한 까닭은 대중의 선택을, 다시 말해 시청률이 높고 트렌드를 이끌었

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백상 영화 대상은 <사도> <동주>의 이준익 감독이 수상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 <암살> 같은 영화들에 비하면 그렇게 엄청난 성공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철환 TV와 영화는 조금 다르다. 나는 TV 방송 분야를 심사하는데, 영화 부문 심사위원들과는 평

가 기준이 다를 거다. 이준익이라는 감독이 꾸준히 해왔던 창의적인 시도, 영화적인 발걸음을 높

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백상은 인물에게 상을 주기도 하고 작품에 상을 주기도 하는데, 작년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출처: MB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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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6+07 VOL. 06 16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BROADCASTING TREND & INSIGHT

에는 TV 대상이 나영석 피디 개인에게 돌아갔다. 예능 피디 한 사람이 상을 탄다는 건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영석이라는 피디에게 상을 줌으로써 예능이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그 중심에는 피디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태양의 후예> 역시 시청률 외에 다양한 의미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드라마다.

주철환 <태양의 후예>에는 특별한 요소들이 많았다. 100% 사전 제작으로 만들었다는 것, 중국

에서도 한국과 동 시간대에 본방송을 볼 수 있었던 것, KBS가 전사(全社)적으로 마케팅 하고 후원

했다는 것 등이 이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은숙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원안인 <국경 없는 의

사회>를 바탕으로 좋은 대본을 썼고, 톱스타 송중기와 송혜교가 캐스팅된 것이 성공의 요인이었

다. 예능 부문에서 <복면가왕>과 논의됐던 프로그램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

이었다. 그런데 <마리텔>보다는 <복면가왕>의 시청자층이 다양하다고 봤다. <마리텔>은 시도

가 참신했지만 <복면가왕>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예능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에 상을 준 거다.

예능, 세상을 담다

2016년의 예능 트렌드가 한눈에 보이는 것 같다. 한동안은 퀴즈를 푸는 예능도 많았다. 그 시발점이

1987년부터 방송된 <퀴즈 아카데미>였다. 당시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방송 끝난 다음 날이면 어떤

팀이 일등했는지를 가지고 친구들과 한참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주철환 나에게는 최초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다. <퀴즈 아카데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관

여했다. 프로그램 포맷부터 출연자 캐스팅, 문제를 뽑는 것까지. 일요일 오후에 방송이 끝나고 나

면 월요일 아침엔 온통 <퀴즈 아카데미> 이야기였다.

지적인 예능, 유익한 오락을 처음 시도한 프로그램이었다.

주철환 <퀴즈 아카데미>를 만든 계기는 내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피디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 교

사를 했던 탓에 예능에 교육 마인드를 넣고 싶었다. 요즘 ‘재미와 의미’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나는

그 두 말의 결합을 내가 처음 썼다고 생각한다(웃음). 재미와 의미가 결합된 방송을 만들고 싶어서

<퀴즈 아카데미>를 기획한 거다. 내가 그전에 3년 동안 <장학퀴즈> 조연출을 했다. <장학퀴즈>

가 고등학생들의 진지한 지적 다툼이었다면, 나는 그보다는 가볍게 ‘로망’과 ‘퀴즈’를 접합하고 싶

었다. <장학퀴즈>는 혼자 나와서 학교의 명예를 걸고 싸웠지만 <퀴즈 아카데미>는 두 친구가 함

께 나와서 1등을 하면 유럽 여행을 보내줬다. 문제를 만들 때에도 시의적인 뉴스를 많이 넣었다.

가벼운 퀴즈 프로그램이지만 거기서 세상과 시대를 읽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주철환 교수의 대표작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라고 할 수 있다.

그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코너를 많이 기획했다. 당시를 회상해줄 수 있을까?

주철환 <일밤>은 선배인 송창의 피디가 먼저 씨앗을 뿌린 방송이다. 송창의 피디가 ‘몰래카메라’

라는 코너로 히트를 쳤고 내가 뒤를 이었다. 나는 비교적 짧았던 송창의 피디의 ‘몰래카메라’에 서

사를 넣으려고 했다.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를 부여하고, 이경규라는 악동이 그것을 이끌어나가

는 식이었다. 그런데 후발 주자들이 우리 방송보다 자극적으로 만들다 보니 싸잡아서 욕을 많이

예능 피디 한 사람이

상을 탄다는 건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영석이라는 피디에게

상을 줌으로써 예능이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그 중심에는 피디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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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었다. 그래서 시청률은 좋았지만 과감하게 폐지하고 다른 코너를 만들었다. 아무리 재미가 있고

시청률이 높아도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건 의미가 퇴색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 ‘시네마

천국’이라는 코너를 만들어서 인기를 끌었고, 공익 코너도 많이 했다. 송창의 피디 시절 <일밤>에

연예인과 개그맨이 많이 나왔다면 나는 연예인이 아닌, 유명한 일반인을 많이 섭외했다. 천문학

자 고(故) 조경철 박사나 소설가 김홍신, 전 국회의원이나 장관 같은 사람들이 다수 출연했다. 출

연자의 외연이 넓어지면서 ‘국민 프로그램’이라는 느낌이 났던 것 같다.

피디의 조건

피디에게는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지금 후배들에게도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지.

주철환 훌륭한 피디는 창의와 협의, 이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 다른 부서들과 잘 논의하고, 후배들

과 잘 협의해야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그걸 비교적 잘했던 것 같다(웃음). 내가 지금도 고

마움을 표하는 후배가 <일밤>을 할 때 조연출이었던 김영희 피디다. 내가 아이디어를 낸다면, 김

영희 피디는 추진력의 황제다. 내가 그린 큰 그림을 추진력으로 채워주는 조연출이 있었다는 것,

그게 나의 행운이었고 <일밤>이 탄탄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피디가 방송에 직접 출연하는 것도 김영희 피디가 처음이었다. 당시 ‘쌀집 아저씨’라는 캐릭터로

방송에 자주 언급되고 얼굴을 비쳤다. 피디가 연출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출연도 한다는 게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주철환 나는 내가 연출한 프로그램에 직접 얼굴을 내민 적이 거의 없지만 이제는 피디들이 직접 프

로그램에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본다. <1박 2일> 유호진 피디가 연예인 출연자

<1박 2일>(출처: K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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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게 ‘오늘은 이런 게임을 합니다,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식으로 지시하지 않나. 이게 굉장히 영

향력 있다. 이런 기회들이 예능 피디의 존재감을 높여주었다. 방송을 만드는 과정까지도 예능으로

끌어들이면서 색다른 재미를 줄 수도 있고. 하지만 시청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방송 내에서 필요한 경우에만 나와야 하고 거기서 당위성 있는 확실한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대한민국 예능 오락 프로그램은 관찰 예능과 서바이벌 예능이 주를 이룬다.

이처럼 비슷한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철환 방송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창의성과 다양성이다. Mnet의 <슈퍼스타K>가 잘나갈 때

MBC와 SBS가 비슷한 방송을 만들었는데, 난 그게 좀 못마땅했다. 기획이 유사해도 무언가 다른

느낌의 방송을 만들었다면 몰라도, 내가 보기엔 심사위원만 바뀌었지 형식이 거의 똑같았다. 그

런 면에서 <나는 가수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본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가수가 심사를

당하는 거니까. <마리텔>도 훌륭한 시도다. 지상파의 위기라고 하는 시점에, 스마트폰이나 인터

넷으로 방송을 보는 사람들을 방송을 통해 포획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아예 새로운 시도, 전

에 없었던 것을 만들기는 사실 어렵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가 뭡니까, 라고 누가 물으면 <전

국노래자랑>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조금씩 바뀌면서 <복면가왕>까지 온 건데,

이렇게 비슷한 방송을 만든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적어도 조금은 새로운 시도가 나와야 한

다. 그래야 대중이 받아들이지, 만약 대중이 볼 때 거의 똑같다 그러면 생명력이 오래갈 수 없다.

예능이건 뭐건 나는 새로운 시도가 너무 중요한 것 같다. 모방과 답습으로는 한계가 있다.

새로움에 박수를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이 중요한 한류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예능 한류가 가능했던 이유,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주철환 중국에서 한국 예능이 인기가 있는 건 억눌린 채로 한 가지 색깔만 봐야 했던 사람들이 총

천연색처럼 다채로운 방송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각국에서 인기 있

는 방송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드라마를 예로 들어보자.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흥했는데, 중

국에서는 또 썩 잘되지 않았다. 반면 <사랑이 뭐길래>처럼 유쾌한 드라마는 중국에서 크게 성공

했다. <사랑이 뭐길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눌려 살던 어머니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가족 드라마인데, 이게 중국에서 인기 있었던 이유를 분석해보

면 그 나라의 시대적 배경과 취향이 나오는 거다. 그림이 예쁘

고, 부드러운 남성이 등장하고, 애틋하게 눈물을 짜는 <겨울연

가>는 중국에서는 그리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런닝맨>인데, 이것도 분석하면 신기한 점이 보인

다. 중국에서는 왜 유재석보다 김종국이나 이광수가 인기 있을

까? 어떤 민족이나 집단의 정서에서 유독 높은 호감을 사는 요

소가 있다면, 차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참고할 필요가 있

을 것 같다.

비슷한 방송을 만든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적어도 조금은 새로운 시도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받아들이지, 만약 대중이 볼 때

거의 똑같다 그러면 생명력이

오래갈 수 없다. 예능이건 뭐건

새로운 시도가 중요한 것 같다.

모방과 답습으로는 한계가 있다.

<런닝맨>(출처: SBS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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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6+07 VOL. 06 19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BROADCASTING TREND & INSIGHT

MBC와 OBS, JTBC를 거쳤다. 각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다른 생각이 있을 것 같다.

주철환 전국 지상파 방송, 지역 방송, 종편을 다 겪어본 건데, 내 일관된 철학은 경험한 것에 랭킹을

매기지 않는다는 거다. 다 나름대로 즐거웠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시대가 달라진 것 같긴 하다. 적

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프로의 시대가 된 거다. 집단의 영향력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존

중받는 시대 말이다. 조직에 대한 충성보다는 개인의 명예를 걸고 자기 방송을 만드는 거고, 그게

잘되면 방송국도 좋고 개인도 좋은 거다. <무한도전>이 이만큼 이어지고 있는 것도 MBC에 김태

호 피디를 믿고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재능 있는 사람이 주도적으

로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판을 짜주고, 간섭하지 않고, 지원해주면 결국은 좋은 게 나온다. 의인불

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 의심나면 애초에 쓰지 말고 일단 쓰기로 했으면 믿어라. 방송에

도 이게 통용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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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6+07 VOL. 06 20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BROADCASTING TREND & INSIGHT

당신이 생각하는 웰메이드 예능 오락의 조건은 무엇인가.

주철환 아까도 말했듯이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재미와 의미’가 결합된 것이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웰메이드가 되려면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재능과 열정과 돈과 시간이다. 재

능 있는 사람이 의욕을 가지고 방송을 만들어야 하고, 옆에서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쓸데

없이 폄훼하고 끈질기게 음해하면 열정이 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요한 제작비가 지원되

어야 하고, 방송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태양의 후예>를 만들면서 돈을 무

조건 아껴 쓰라고 했다면 그런 아름다운 풍광을 담을 수 없었을 거고, 그런 배우를 섭외할 수도 없

었을 거다. 지금 부족한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과도한 경쟁’ 때문이라고 본다.

채널이 너무 많이 생겨서 지나치게 경쟁적인 구도가 된 거다. 편성 시간을 즐겁게 채우는 게 아니

라 가까스로 때우고 있다. 창의를 위해 즐거운 경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데 즐거운 경쟁이 되려

면 사실은 오리지널 아이디어, 즉 저작권이 중요하다. 그 아이디어를 최초에 누가 생각해냈는지,

사람들이 물심양면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전에 <아빠! 어디

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줘야 한다는 뜻이다.

창의성과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성공한 예능들의 공통점은

남들과 다른 창의성인 것 같다.

주철환 JTBC가 다른 종편보다 돋보였던 것은 ‘색깔을 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만 봐서는 어떤 채

널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방송국이 많다. 한 군데서 만든 것과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다른 데서

도 우후죽순으로 하고 있으니까. 예능 프로그램도 개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저작권이 중요한

거다. 창의적인 사람의 이름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누가 기꺼이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겠

는가.

그렇다면 지금처럼 한국 예능이 높은 ‘질’을 유지하면서 웰메이드의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주철환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그리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즐거움을 만들려고 하

는 사람을 응원하는 문화적 풍토가 중요하다. JTBC의 <비정상회담>을 예전 프로그램인 <미녀

들의 수다> 남성 버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이건 아예 다른 방송이다. <미녀들의 수

다>가 미시적인 수다에 그쳤다면, <비정상회담>은 세계의 문화, 그리고 사회적이고 국제적인 이

슈들을 가지고 깊이 있는 토론을 한다. 따라서 좋은 프로그램이다, 라고 전문가들이 북돋아줄 필

요도 있다. 잘하는 피디와 작가, 제작진이 있다면 지원하고 보상도 해줘야 한다. 시청자가 정말 웰

메이드라고 느낀다면 살아남을 거고, 시청자로부터 외면 받은 쓰레기는 분리수거될 거다. 웰메이

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창의적 인재들이 충분한 지원을 받으면서 기운을 낼 수 있어야 한국

콘텐츠가 풍요로워진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본떠서 만드는 게 아니라 조금 다른 것, 재미있는

것, 신선한 것을 찾으려 불면의 밤을 지새는 젊은 제작진들이 세계를 누비는 시대가 빨리 오면 좋

겠다.

지금 부족한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과도한 경쟁’ 때문이라고

본다. 채널이 너무 많이 생겨서

지나치게 경쟁적인 구도가

된 거다. 편성 시간을 즐겁게

채우는 게 아니라 가까스로

때우고 있다. 창의를 위해

즐거운 경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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