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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권 제4호 ·5 테헤란로 오랜 연구원 생활을 접고 다시만난 가상현실 2015년 7월 31일 광주과학기술원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날 KAIST 8년부터 시작해서 거의 10년에 가까운 연구원 생활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내가 연구원 생활을 마감한 그 시점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가상현실(VR)이 붐을 일으키던 시점이었다. 뭔가 새로운 가상현실 일을 하고 싶었던 시점에 내 머 릿속에는 ‘디지털 청명상하도’가 떠올랐다. 이 그림은 중 국 북송(北宋) 말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있던 장택단(張 擇端)은 그림 그리기에 아주 능하여 배나 수레(舟車)· 다 리(市橋)· 주택 등을 교묘하게 잘 그린 화가로서, 특히 북송의 도성인 변경(開封)의 청명절을 그린 두루마리 그 림으로 일명 ‘청명상하도’라고도 불리운다. 이는 “청명절 강가에 나가”란 제목의 유명한 중국의 국 보급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는 북송 수도 카이펑(開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대작(大 作) 회화가 2010년 상하이 EXPO 중국관에서 선보인 적 이 있었다. 당시 중국관 최고의 볼거리로 꼽히는 이 작품은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그림 속 사람들이 마치 살아 움직 이는 것처럼 재현했다고 한다. 이 디지털 청명상하도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중국 송나라 시대 저잣거리에 나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중국 선조들의 삶과 지혜를 재현한 이 디지털 복원 작품은 중국 고대 도시 문명의 모 습을 여과없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가로 528.7㎝,세로 24.8㎝인 원작 그림을 높이 6.3m, 길이 130m의 첨단 영상물로 다시 재구성한 것이다. 원작 그림의 약 70배로 확대한 디지털 복원 작품이다. 시장의 좌판에서 물건을 사거나 술을 마시면서 손가락 을 내미는 게임을 하고, 가마와 말을 타는 장면 등이 왁 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관람객들을 1,000년 전 시대로 빠져들게 한다. 디지털 영상물의 스케일만큼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였다. 원작에는 약 600명이 있는데 이 디지털 영상 에는 주간에 691명,야간 풍경에는 377명이 등장한다. 사 실 밤 풍경이 장택단이 그린 원작에는 없다. 원작에도 없 는 청명상하도의 야간 모습은 디지털 복원 기술이기에 가능했다. 이 디지털 청명상하도의 제작의도는 중국 역사를 되 돌아봄으로써 당시 지혜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고대 중국도시 문명의 자 부심을 대외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다. 나 역시 이 걸작 디지털 작품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늦 었지만 지난 2012년 중국 대만의 두 번째 도시인 까오슝 박진호 前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선임연구원 前 광주과학기술원 CT연구소 선임연구원 前 서울대학교 융합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現 파란오이 Future Cinema Lab 연구소장 미켈란젤로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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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 제4호·5

    테헤란로

    오랜 연구원 생활을 접고 다시만난 가상현실

    2015년 7월 31일 광주과학기술원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날 KAIST 8년부터 시작해서 거의 10년에 가까운

    연구원 생활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내가 연구원 생활을

    마감한 그 시점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가상현실(VR)이

    붐을 일으키던 시점이었다.

    뭔가 새로운 가상현실 일을 하고 싶었던 시점에 내 머

    릿속에는 ‘디지털 청명상하도’가 떠올랐다. 이 그림은 중

    국 북송(北宋) 말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있던 장택단(張

    擇端)은 그림 그리기에 아주 능하여 배나 수레(舟車)· 다

    리(市橋)· 주택 등을 교묘하게 잘 그린 화가로서, 특히

    북송의 도성인 변경(開封)의 청명절을 그린 두루마리 그

    림으로 일명 ‘청명상하도’라고도 불리운다.

    이는 “청명절 강가에 나가”란 제목의 유명한 중국의 국

    보급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는 북송 수도 카이펑(開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대작(大

    作) 회화가 2010년 상하이 EXPO 중국관에서 선보인 적

    이 있었다.

    당시 중국관 최고의 볼거리로 꼽히는 이 작품은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그림 속 사람들이 마치 살아 움직

    이는 것처럼 재현했다고 한다. 이 디지털 청명상하도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중국 송나라 시대 저잣거리에 나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중국 선조들의 삶과 지혜를

    재현한 이 디지털 복원 작품은 중국 고대 도시 문명의 모

    습을 여과없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가로 528.7㎝,세로 24.8㎝인 원작 그림을 높이 6.3m,

    길이 130m의 첨단 영상물로 다시 재구성한 것이다. 원작

    그림의 약 70배로 확대한 디지털 복원 작품이다.

    시장의 좌판에서 물건을 사거나 술을 마시면서 손가락

    을 내미는 게임을 하고, 가마와 말을 타는 장면 등이 왁

    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관람객들을 1,000년 전 시대로

    빠져들게 한다.

    디지털 영상물의 스케일만큼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였다. 원작에는 약 600명이 있는데 이 디지털 영상

    에는 주간에 691명,야간 풍경에는 377명이 등장한다. 사

    실 밤 풍경이 장택단이 그린 원작에는 없다. 원작에도 없

    는 청명상하도의 야간 모습은 디지털 복원 기술이기에

    가능했다.

    이 디지털 청명상하도의 제작의도는 중국 역사를 되

    돌아봄으로써 당시 지혜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고대 중국도시 문명의 자

    부심을 대외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다.

    나 역시 이 걸작 디지털 작품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늦

    었지만 지난 2012년 중국 대만의 두 번째 도시인 까오슝

    박 진 호 前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선임연구원前 광주과학기술원 CT연구소 선임연구원前 서울대학교 융합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現 파란오이 Future Cinema Lab 연구소장

    미켈란젤로 가상현실

  • 6·공학교육

    테헤란로

    에 가서 직접 이 작품을 보기도 했다.

    서양판 청명상하도 ‘미켈란젤로 성시스티나 성당벽화’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여러 VR관련 일에 도전한 끝에

    마침내 2016년 4월에 꿈을 이루었다. 이것은 문화체육관

    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의 2016년도 융복

    합콘텐츠제작지원에 선정되었다.

    총 14억 3천만원의 예산으로 진행중인 대형 ICT 융복

    합 프로젝트이다.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성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소재로 VR·AR·프로젝션 매핑 콘텐츠를 제작

    하는 사업이다. 내가 이 미켈란젤로 VR프로젝트의 총괄

    PM을 맡았다.

    사실 이 같은 기획을 구상하기전 중국 그림인 청명상

    하도와 유사한 우리나라의 김홍도나 신윤복과 같은 전통

    조선시대 회화를 소재로도 고민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 소재로 나가기에는 보편성이 부

    족하기 때문에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인 미

    켈란젤로 회화를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미켈란젤로 VR이

    최종 정부 지원작에 당선되었다. 처음 생각했던 김홍도의

    회화보다 서양 르네상스의 걸작인 미켈란젤로를 선택하

    상하이 EXPO 화제작 ‘디지털 청명상하도’ 전시실 모습, 2012년 필자 촬영

  • 제23권 제4호·7

    미켈란젤로 가상현실

    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켈란젤로 VR이 성공

    하면 그 뒤에 우리나라 전통회화를 소재로한 VR이 뒤를

    이을 것이기 때문이다.

    브이알텔링(Vrtelling : VR + Storytelling)

    디지털스토리텔링이란 단어1는 디지털이라는 기술환경

    에서 멀티미디어라는 툴을 활용해 창조되는 모든 이야기

    행위로 정의한다.

    U.C. 버클리 대학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센터의 공동창

    1 의 디지털스토리텔링 정의에서 인용함. https://ko.wikipedia.

    org/wiki/%EB%94%94%EC%A7%80%ED%84%B8_%EC%8A%A4%E

    D%86%A0%EB%A6%AC%ED%85%94%EB%A7%81

    립자인 Joe Lambert는“오래된 이야기 기술을 새로운 미

    디어에 끌어들여 변화하고 있는 현재 삶에 맞게 가치 있

    는 이야기들로 맞춰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국문화

    콘텐츠진흥원과 아젠다리서치그룹이 발행한 CT기술동

    향보고서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란 “디지털 기술을 환

    경으로 삼거나 표현 수단으로 활용하여 이루어지는 스토

    리텔링 기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인문

    사회과학부 최혜실 교수2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란 “컴퓨

    터 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서사행위, 웹상의 상호작용적

    인 멀티미디어 서사 창조들”이라 표현하고 있으며 여기에

    는 텍스트 뿐 아니라 이미지, 음악, 목소리, 비디오, 애니

    메이션 등을 포함한다고 한다.

    2 최혜실, 《디지털스토리텔링》, 정보과학회지, 2003.

    미켈란젤로의 대표 작품들

    가상현실로 체험하는 로마 바티칸 박물관의 성시스티나 성당 벽화

    로마 바티칸박물관 성시스티나 성당 벽화 모습

  • 8·공학교육

    테헤란로

    이렇듯 디지털스토리텔링이란 단어가 창안된 이후, 다

    양한 형태의 디지털스토리텔링이 선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가상현실(VR)이라는 매체에 걸맞는 디지

    털스토리텔링의 출현은 없었는데, 가상현실 환경하에서

    도 디지털스토리텔링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공식적인 용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미켈란젤로 가상현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낀 것은 종

    래 가상현실 작품들이 스토리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순히 360도 몰입감 가지고는 VR의 특성을 다 드러냈

    다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향후 VR에서

    는 스토리텔링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겠구나 라는 판단하

    여 ‘그럼 가상현실에서의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정의할까?

    VR에 환경에 걸맞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

    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가상현실 상황안에서의 스토리텔링을 상정한

    소위 ‘브이알텔링3 ’을 착안하게 되었다.

    3 브이알텔링(Vrtelling : VR + Storytelling)은 아직까지 학문적으로 정립

    된 단어는 아니다. 그러나 기존 미디어에서 쓰이던 디지털스토리텔링

    이란 의미가 가상현실(假想現實) 환경하에서는 종래 문법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설파하기 수단으로서 이런 신조어(新造語)를 명명하게

    된 것임을 밝힌다.

    이젠 단순한 VR을 넘어 가상관광(假想觀光)으로 확장

    유럽 중세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 회화 뿐만아니라

    동서양 공희 모든 회화(繪畵) 가상현실 콘텐츠는 기존의

    전통적인 감상 방식에서 벗어나 360도 공간화(空間化)

    체험이라는 새로운 감상 기법에 직면했다.

    이렇듯 21세기 가상현실(VR) 기술은 기존에 익숙해왔

    던 예술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시키고 있다. 미켈란젤로

    프로젝트와 같이 기존 회화의 영역에 VR기술을 접목시

    킴으로써 새로운 체험 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

    는 것이다.

    전통적인 회화가 디지털 공간에서 생동감 넘치는 360

    도 화면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90도 평면 화면이 360도 전방위(全方位) 화

    면으로의 전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90도 디스플레이에서 횡행해오던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법이 아닌, 360도 가상공간(假想空間)에 걸맞는 디지

    털스토리텔링이 적용되야 하는 것이다. 이를 브이알텔링

    (Vrtelling : VR + Storytelling)이라고 필자는 앞서 글

    에 명명한 바 있다.

    앞으로 가상현실이라는 360도 몰입공간에서 브이알텔

    링을 통해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아트(Art)의 경

    미켈란젤로 프로젝트가 표방했던‘현실’과 ‘가상’의 세계 컨셉

  • 제23권 제4호·9

    미켈란젤로 가상현실

    험을 혹은 콘텐츠(Contents)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켈란젤로 VR프로젝트는 그 시작이 되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는 VR HMD 기술을 응용 인류역사상 수천 수백년동

    안 화석화(化石化)된 회화 감상법에 대한 혁신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렇듯 미켈란젤로 가상현실 콘텐츠는 “가상현

    실(Virtual Reality)” 기술을 근간으로, 특히 상호작용적인

    인터렉티브(User Interface)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래 문화재 체험이 일방적인 영상 시청에 치

    우쳤다면, 가상현실 콘텐츠는 사용자의 자율성을 부여

    하여 대상 문화재를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이렇듯 VR체험은 지역과 시간을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 실제 유적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 디지

    털 가상관광(假想觀光: Virtual tour) 가능성 까지도 제

    시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 프로젝트인 성시스타나 성당 가상현실의

    최종목표는 VR 기술을 통해 제한적 접근에 의존해왔던

    문화유산에 대한 보다 자유로운 디지털 문화체험(文化體

    驗)을 주자는 데 있었다.

    이로써 전통적인 관광과 독립적인 ICT기술이 상호보

    완(相互補完)이 가능한 디지털 융합형 가상문화재체험

    (假想文化財體驗)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

    는 것이다.

    이젠 실크로드 VR을 통해 시공(時空)을 넘고 싶어

    나는 서양 르네상스 회화 VR에 힘입어 이제는 실크로

    드를 소재로한 가상현실을 만들고 싶어졌다. 동(東)과 서

    (西)를 잇는 인류 역사 5천년을 도도히 이어온 실크로드

    의 상징성은 디지털 시대가 추구하려는 교류와 소통이라

    는 아이덴티티와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저 멀리 중앙아시아에서 화려하게 꽃핀 이슬람의 건축 문

    화에 황홀해지고, 이란에서는 오리엔트 문명의 정화를 응축

    한 중동 최대의 문명유적 페르세폴리스를 체험해 볼 수 도

    있으며, 1500여 년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조로아스터교의

    성화 앞에서 숭엄한 감회에 젖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실크로드의 십자로인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 거룩한 발자국을 남긴 탈라스 전쟁터를

    가상(假想)으로 밟아 볼 수 도 있고, 사마르칸트 아프라

    시압 궁전 벽화 속의 고대 한국인 사절을 통해 1300년전

    그들의 발자취를 찾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실크로드 공간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여행을 이제는 가

    상현실(VR)이 가능하게 해 줄 것을 믿으며 2017년을 새

    롭게 맞이해 본다.

    2017년을 맞이한 VR의 새로운 도전‘실크로드(Silkroad)’ 가상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