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大千 生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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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大千 生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 序 潤 (昌原文星大) Ⅰ. 序文 Ⅱ. 장대천 生前 二大 전시 1. 장대천 40년 회고전 2. 장대천 60년 회고전 Ⅲ. 장대천 死後 기념전시 1. 장대천 백년기념전시 2. 장대천 서거30주년기념전시 Ⅳ. 結論 Ⅰ. 序 文 장대천(張大千, 1899-1983)은 세계근대회화사의 위대한 화가, 20세 기 중국회화사의 영혼불멸의 인재이며 이웃나라에서 국보(國寶)라고 부른다. 서비홍(徐悲鴻, 1895-1953)은 장대천을 청조 오백년 역사에 한번 나타날 수 있는 마지막 대가(五百年來一大千)라고 청하였다. 1) 재 21세기의 오늘날 장대천의 명성은 전 세계인의 환호와 카니발축제 의 불꽃 속에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다.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2월 까지 장대천을 추모하는 단체와 양 안4지 박물관에서 장대천 서거 30주년 기념전시가 연이어 이루어졌 다. 동양의 피카소라 불리우는 장대천의 유명세는 아직도 위대하다. 장 1) 徐悲鴻: 現代畫家, 美術育家. 남경중앙대학예술학과교수. 李賢文, 雄獅中國 美術辭典 (臺北: 雄獅圖書公司, 1989),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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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張大千 生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 序 潤 (昌原文星大)

    Ⅰ. 序文

    Ⅱ. 장대천 生前 二大 전시

    1. 장대천 40년 회고전

    2. 장대천 60년 회고전

    Ⅲ. 장대천 死後 기념전시

    1. 장대천 백년기념전시

    2. 장대천 서거30주년기념전시

    Ⅳ. 結論

    Ⅰ. 序 文

    장대천(張大千, 1899-1983)은 세계근대회화사의 위대한 화가, 20세

    기 중국회화사의 영혼불멸의 인재이며 이웃나라에서 국보(國寶)라고

    부른다. 서비홍(徐悲鴻, 1895-1953)은 장대천을 청조 오백년 역사에

    한번 나타날 수 있는 마지막 대가(五百年來一大千)라고 청하였다.1) 현

    재 21세기의 오늘날 장대천의 명성은 전 세계인의 환호와 카니발축제

    의 불꽃 속에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다.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2월 까지 장대천을 추모하는 단체와 양

    안4지 박물관에서 장대천 서거 30주년 기념전시가 연이어 이루어졌

    다.

    동양의 피카소라 불리우는 장대천의 유명세는 아직도 위대하다. 장

    1) 徐悲鴻: 現代畫家, 美術教育家. 남경중앙대학예술학과교수. 李賢文, 雄獅中國美術辭典 (臺北: 雄獅圖書公司, 1989), p.259.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56대천 기념전시로 인해 대만과 중국의 위협관계도 완화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그 시대에 고국에 갈 수 없었던 장대천의 마지막 대만에서의 예

    술의 업적을 상기시키며 필자는 다시 한 번 장대천 예술세계에 감탄하

    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장대천 기념전을 서거30년 기념전이라고 표기하는 이유 중

    에 근거가 될 만한 사례를 들자면 장대천의 장례식은 거의 ‘국장’(國

    葬)에 가까웠다. 총통 장경국은 친히 서화에 ‘높은 인격과 굳은 절개’

    라고 편액을 써서 바쳤고, 참석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화장이

    끝난 뒤에 장대천이 생전에 다하지 못했던 뜻에 따라 그의 유골을 마

    야정사의 매화 언덕 큰 비석 아래 묻었다. 탁월한 예술가인 장대천은

    기나긴 예술 생애에서 마음과 몸이 고통스러웠다. 그는 예술의 고달픔

    에서 정신을 추구하고 더욱 높이 찬양하며 전통을 계승했으며 밖으로

    자연을 스승을 삼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얻어(外師造化, 中得心源

    得), 독특한 중국 예술의 풍격을 주조했다. 조국을 위해 창조와 연구를

    했으며 중국의 국보이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1983년 4월 2일, 신

    화사는 사람들이 미술계에 한 시대의 대가인 장대천에게 무한한 애도

    의 뜻을 표시했다고 발표했고, 유명한 신문들 모두 연달아 게재했다.

    양안(兩岸)이 함께 장대천을 애도했다. 애도 무리의 만련(挽聯)2)에

    는 장대천에 대한 해협 양안 친구들의 진실한 마음이 쓰여 있다. “반

    세기 동안 친구들과 우환을 함께 나누며, 예술 문화를 함께 감상하다

    가 황급히 영원히 이별하니 남은 눈물이 매화 언덕에 흐른다.”3) 큰 별

    하나가 떨어졌다. 장대천은 견줄 만한 것이 없는 예술의 빛으로 전세

    계에 밝게 빛나고, 영원히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2월 “양안4지”의 4개 박물관에서 공동

    개최한 장대천 서거 30주년이 되는 해로 이 위대한 예술가를 공동기

    념하기 위해 “양안4지”의 대북역사박물관ㆍ길림성박물원ㆍ사천박물원

    2) 죽은 이를 애도하는 문구나 시. 만사.

    3) 文歡, 行走的畫帝 -張大千泊的後半生 (北京: 花山文藝出版社, 2006), p.351.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57ㆍ심천박물관이 연합하여 “만리강산 빈입몽—양안 장대천 서거 30주

    년 기념전”이 진행되었다.4) 이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개최한 전시회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레벨이 가장 높은 장대천 회화작품 전시회이다.

    세계가 하나가 되려는 흐름을 주목할 수 있는 반면에 화합의 방법

    으로 힘을 기울여 마련한 작품들이다. Ⅱ장 Ⅲ장에서 장대천 生前ㆍ死

    後大展를 통해서 장대천의 발자취와 행적을 보다 실감나게 알아보았

    다. 장대천 회고전5)은 수없이 많은데 그 중 장대천의 생전에 개최하였

    4) 王怡文, 「장대천 진귀작품전시회, 길림성에서 개최」 (길림: 길림일보, 2014.6.10); 戈思明ㆍ巴東, 「由吉林ㆍ四川ㆍ臺北三博物館之典藏看張大千之繪畫分期發展 -兩岸張大千辭世三十週年紀念展」(萬里江山頻入夢-兩岸張大千辭世三十週年紀念展, 2014), p.17.

    5) 1. 「中國繪畫展覽(Chinesische Malerei der Gegenwant)」 (普魯土美術館ㆍ德國士美術館, 1934.1.20-5.4); 2. 「大千畫展 -張大千」 (印度新德里: 全印美術會,1950.1.16-17); 3. 「張大千臨摹敦煌石窟壁畫展 -張大千」 (日本東京: 朝日新聞社, 1956.4.7-18); 4. 「張大千臨摹敦煌石窟壁畫及大千收藏古畫展」 (V. Elisseeff 編,巴黎: Cernuschi美術館,1956.6); 5. 「張大千臨摹敦煌石窟壁畫及大千收藏古畫展」 (V. Elisseeff 編,巴黎: 現代美術館(Musee D’art Moderne), 1956.7); 6. 「張大千畫展」 (臺北: 美國新聞處, 1960.1.25-31); 7. 「Les Lotus Ge`ants 巨荷四聯屏展」 (V. Elisseeff 編,巴黎: EUROS畫廊出版, 1961.5-6月); 8. 「八大山人ㆍ石濤: 張大千收藏展」 (張大千 編,法國: Huguette Beres, 1961.5.30-6.30); 9. 「張大千畫展 -Exhibition of paintings by Chang Dai-chien)」 (Introduction by James Cahill, New York: Hirschl & Ader Gallery, 1963.10.22-11.2); 10. 「Exhibition of Paintings by Chang Dai-chien」 (高嶺梅策劃, 張大千馬來西亞迴展, 1963; 高嶺梅策劃, 展出張大千百幅畫作, 於亞洲巡週通覽, 1963.4-6月; 星加展簣覽, 7-8月; 吉隆坡展覽, 10-11月; 怡保展覽, 檳城博物院展覽, 1963.12-1964.1); 11. 「張大千畫展 -Exhibition of Paintings by Chang Dai-chien)」 (泰國: 曼谷京華銀行, 1964); 12. 「Chang Dai-chien: Ausstellung Chinesische Tuschmalerei)」 (Preface by Werner Speiser, Koln: Editha Leppich Ostasiatische Kunst,

    1964.5.5-6.3); 13. 「張大千倫敦畫展 (Chang Dai-chien Paintings)」 (Foreword by Basil Gray, London: Grosvenor Gallery, 1965.8.10-9.4);

    14. 「張大千近作展覽 -香港」 (香港大會堂,1966.11.28); 15. 「張大千近作展覽」 (東方學會 主辦, 芝柏錶創立175週年紀念贊助, 香港大會堂八樓, 1966.12.30 -1967.1.4); 16. 「Trends in Twentieth Century Chinese Painting Stanford Museum」 (史丹福大學博物館, 1969.5.23-6.15), 展出齊白石ㆍ黃賓虹ㆍ張大千等人作品; 17. 「張大千四十回顧展」 (美國舊金山: 砥昂博物館, 1972.11.15 -12.17); 18. 「張大千形象」 (舊金山版畫製作中心(美國舊金山: W.B.Fountain),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58던 두 번의 대전시(大展示); 장대천 40년 회고전ㆍ장대천 60년 회고

    전, 사후(死後) 기념전시로는 장대천 백년전시ㆍ최근 장대천 서거30주

    년 기념전을 토대로 작품의 행방을 알 수 있다. 최근 이런 큰 행사와

    더불어 동ㆍ서양의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며, 동ㆍ서양 격이 없는 예술

    세계를 펼쳐 나아가며 국제적 위상을 높여가고 세계가 하나 되어 가길

    기원한다.

    본고는 장대천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기념전시를 논제로 역사와

    문화예술의 발전을 이해하는 논지이다.

    장대천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3분기는 첫째 1899년 5월 10일 출

    생, 둘째 1983년 4월 2일 타계, 셋째 1949년 12월 6일, 중국을 떠나

    외국에 거주하기 시작한 기나긴 세월이다.6)

    앞에서 예시한 3가지 중요한 3분기점으로 장대천의 전반 생애와 후

    반 생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장대천의 생애를 1949년 기준으로 전

    반 생애와 후반 생애로 나누어 중국에서의 전반 생애 50년, 중국 대륙

    을 벗어나 해외에 거주한 기나긴 세월 35년을 후반 생애로 나뉜다.

    본고는 장대천의 生前 기념전시와 死後 기념전시인 중국의 문화유

    산을 분석한다.

    Ⅱ. 장대천 生前 二大 전시

    1. 장대천 40년회고전

    1974.3.26-4.26); 19. 「血戰古人: 張大千畫展」 (美國華盛頓: Sackler畫廊, 1991.11.24-1992.4.5); 20. 「張大千的世界: 張大千先生百年紀念展」 (國立故宮博物院, 1998.9.26-1999.1.20); 21. 「張大千110: 書畫紀念特展」 (國立歷史博物館, 2009.4.10-6.14).

    6) 巴東, 張大千110歲 -書畫紀念特展 (台北: 國立歷史博物館, 2009), pp.284-28, 참고 년표 (Biography); 曾堉, 中國美術年表 (台北: 東大圖書, 1998), p.95 참고.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59장대천의 천부적 재능을 간략히 서술하자면 장대천은 1899년 5월

    10일 사천성(四川省) 내강현(內江縣)에서 출생했다. 열명의 형제 중 그

    는 여덟째였다. 초년 시절부터 어머니를 도와 목탄으로 묘화 등을 그

    리는 일을 하면서 그림에 대한 감각을 키워나갔다.

    장대천(1899-1983)은 금세기 중화민국이 낳은 최고의 화가로 그의

    타고 난 재질은 20세기 중국의 예술상의 공헌을 집약하고도 남음이었

    다. 장대천은 동양화 측면에서 강력하고도 놀라운 예술혼을 지녔기 때

    문이다.

    그가 태어난 중국 사천성은 주변의 환경이 온화한 자연과 우뚝한

    산, 흐르는 물에서 숭고함의 이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슬기를 타고나

    서 조물주의 조화를 보고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대자연을 능숙한 솜씨로 그려 놓아 생명력이 흘러넘치고 작품을 통

    해 심경까지 표출하는 장대천의 천부적 자질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생전 일생일대의 대전시회, 장대천 40년 회고전7)은 1972

    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드 영(砥昂) 박물관에서 고도의 학술성을 갖춘 40년의 창작 과정인 ‘40년 회고전’을 하기로 했다. 1972년 11월

    15일 개막하여 12월 17일까지 한 달간 프랑스인 다샹시(達祥西

    Lefebvre d′Argence′)8)가 기획한 장대천의 회고전이 어렵게 마련되었

    다. 그는 50세 이전에 중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작품은 모

    두 중국에 남아 있어 수집하기 어려웠다. 그가 70세이던 해, 고국을

    떠나온 지 벌써 20년, 그는 원래 서양 예술계로 나가기로 했던 원대한

    포부를 이미 이루었으므로 스스로 수묵 예술에 대한 노력과 성취에 대

    해 비교적 완전한 회고와 검토를 해야 했다. 이 전시는 장대천이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대체로 그의 예술 생애인 30세에서 70세까지 40년

    동안 들짐승과 벌레와 물고기 등을 포함한 모든 그림 소재를 선택해

    매년 최소한 한 개의 대표작을 출품했다. 기법상 세밀화의 화법, 寫意

    7) 舊香居, 張大千畫冊暨文獻圖錄 (臺北: 舊香居B1ㆍ文秀基金會, 2010), p.48.8) 샌프란시스코 드 영 박물관 아시아대륙 예술 센터 주임.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60그리고 눈병이 난 후의 發墨, 發彩山水도 그 안에 포함시켜 관람객이

    그의 작품이 경험한 기품의 전모를 엿볼 수 있다. 전시한 52점의 그림

    중에 절반이 대풍당에 사는 가족이 소장한 것 외에 대부분 예전에 세

    상에 선보인 적이 없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었으며 몇몇은 파리

    ㆍ런던ㆍ뉴욕ㆍ보스턴 등지의 박물관에서 빌려와 전시하였다. 당시 기

    자회견 취재 녹화는 전시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비가 오는데도 사

    전 전시회 파티에 참가한 귀빈만 2,236명이었다. 대중 매체 기자, 주

    샌프란시스코 중화민국 총영사, 여러 영사, 교포 지도자등 대천이 일

    일이 인사를 나눌 수가 없었다.9)

    이 전시의 특색은 장대천이 쓴 자서전 인데 장대천은 40년 회고전 자서 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고 있다: “20세 때 귀국하여 상해에 거주하며 형양(衡陽) 증부자(曾夫子) 농염(農髥)과 임천(臨川) 이부자(李

    夫子) 매암(梅庵)에게 사사받아 三代(삼대) 兩漢(양한)의 금석문자(金石

    文字)와 六朝(육조) 三唐(삼당)의 碑刻(비각)을 배웠다.”10) 장대천은

    上海에 계시는 증희(曾熙)와 이서청(李序淸) 두 분의 스승은 장대천에

    게 황산을 사생토록 권하였고11) 때맞추어 장대천은 황산에 오르는 숙

    원을 이루었다. 勝地를 찾기 위해 장대천은 세 번에 걸쳐 양식을 지니

    고 황산에 올라 소나무와 바위의 괴이함과 안개와 구름의 환상적인 변

    화를 모두 체득하였다. 장대천 40년 회고전 「自序」 중에서 장대천과 석도 사이의 인연관계 뿌리는 四十年代 회고전 「自序」에 의하면 그가 20세 때 일본에서 염직을 공부하고 돌아와 상해에 거주하며 衡陽(형

    양)의 증희와 임천(臨川)의 이서청문하에서 공부하던때 부터이다.12)

    두 분의 스승은 비록 書家 이지만 이서청은 화죽송석을 즐겨 그리면

    9) 王家誠, 畫壇奇才張大千(下) (臺北: 九歌文庫, 2006), p.706.10) 巴東, 「包立民, 張大千丁巳(1917年)拜師新證」 (歷史文物 227, 第二十二卷

    第六期 (臺北: 國立歴史博物館, 2012), p.13.11) 김서윤, 意境繪畫 理論에 따른 張大千의 藝術世界 分析 (원광대학교조형미

    술학박사논문, 2013), pp.55-56 재인용.

    12) 巴東, 「包立民, 張大千丁己(1917)拜師新證」 (歴史文物 227, 第二十二卷第六期 (台北: 國立歷史博物館, 2012), pp.12-14 참고.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61서 팔대산인을 선호했다. 반대로 증희는 산수, 송, 매를 그렸는데 석도

    를 선호했다. 장대천은 이들의 영향을 받아 팔대산인의 墨畫를 배웠고

    석도의 산수을 습득하였다.13) 두 스승이 그려놓은 경물들을 진품과 다

    를 바가 없을 정도라는 찬사를 받았다. 석도의 그림에 애착을 갖게 된

    후부터 석도의 필묵 비밀을 완전히 터득하기위해 구입하여 소장했다.

    그는 중국의 명산대천을 유람한 경험과 고국을 떠난 뒤 일본ㆍ인도

    ㆍ유럽의 여러 나라, 북남미와 브라질로 퍼져 나간 경로 등, 심지어는

    눈병이 그에게 가져다준 예술학도로서의 영향과 영감 등을 적었다.

    이 서문을 보면 장대천이 직접 쓴 자서전이 이번 전시회의 안내자

    라는 것을 말해줄 뿐 아니라, 장대천 본인의 예술 성장사 또는 그 예

    술 생애의 자서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직접 쓴 이 서문은 정교하고

    아름답게 제작된 화첩에 중문 영문 대조로 게재되어 이번 회고전의 예

    술사적 가치를 더 해주었다. 미국 전시회가 끝난 뒤에 다시 홍콩과 대

    만으로 옮겨 전시하여 중국 내외 예술계에 한때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전시의 첫 번째 작품은 1928년 장대천의 30세의 는

    당시에 찾은 초년작품이다.

    장대천 예술 생애는 20세부터 석도의 작품을 모방하면서부터 시작

    되었다. 이 전시에 특색인 장대천의 초상화 두 점이 있었는데, 하나

    는 1929년 장대천은 30세 때 그린 것이고, 또 하나는 1968년 장대천

    이 70세 때 그린 것으로 그의 40년 회고전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기에

    적당했다. 한 불세출의 예술 대가가 스스로 심혈을 기울이고 연구해

    훌륭한 경지에 이른 예술 생애를 위해 하나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어려움과 어둠 속에서도 신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

    대천은 모든 그림에 글을 남긴다. 이런 글을 통해서 장대천의 자화상

    (圖)14)의 연대를 알 수 있다.

    13) 張大千, 「四十年回顧展自序」 (張大千先生詩文集(下), 臺北: 故宮, 1993), 卷六 「文」, p.55.

    14) 王鵬, 張大千繪畫鑒賞 (北京: 中國輕業出版社, 2009), p.37.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62

    장대천,

    장대천,

    만약 장대천의 자화상에 시간이 표기되지 않았어도 글의 내용을 통

    해 작품의 연대를 파악할 수 있다. 장대천 30세의 자화상은 당시 49

    세로 수염이 가슴까지 길게 내려왔고, 두 눈은 생기 넘치게 빛났다.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몸에는 흰색 장삼을 걸치고 온화하고 정겨운 모

    습이었다.15) 장대천 자화상의 글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대부분

    이다. 70세의 자화상(圖)에서는 “풍경을 즐길 기분이 아니다. 고향이

    꿈 속에만 나타나 집이 없는 심정.” 그리고 자신이 늙어간다는 내용도

    있다.16) 장대천의 70세의 자화상은 30세의 자화상과는 다른 전통초상

    화의 전환점이며 그는 관심의 초점을 ‘타인’에서 자신으로 전환하여

    15) 許啟泰, 「張大千的八德園世界(1953-1989)」 (臺北: 商務印書館, 2003), pp.44-45.

    16) 邢捷, 張大千古畫鑑定 (天津: 天津古籍出版社, 1997), pp.121-122.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63전통 초상화의 돌파구로 삼았다.

    산수 인물화의 북종 같은 깨우침과 공허, 대범, 담백하며 아주 빼어

    난 은둔자 마음을 깨닭게 한다. 회화전시회는 크게 성공하여, 장대천

    은 LosAngles “명예시민”상을 받았다. 또한 1974년 11월 미국 캘리

    포니아 퍼시픽대학에서 장대천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17)

    2. 장대천 60년 회고전

    장대천 생전 2번째 대전시인 장대천 60년 회고전은 미국 워싱턴 새

    클러(Sackler)미술관에서 1991년 11월 24일 개막식 후 1992년 4월

    5일까지 전시18)가 거행되었다. 1972년 미국 수도 워싱턴의 샌프란시

    스코 드 영 박물관에서 거행한 ‘전시’의 확대와 연장이다.

    60년 회고전 그림 전시를 주최한 곳은 새클러 미술관이다. 당시 미

    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최신 설립한 동양 미술관으로 행정 시스템상 세

    계적으로 유명한 프리어 미술관에 소속되어 있으며, 미국 유일의 국립

    아시아주 미술관이다. 그래서 전시회 활동을 개최하면서 숭고한 명망

    과 풍부한 자원을 갖게 되었다. 전시품의 수집은 새클러 미술관 자체

    소장품뿐만 아니라 미국ㆍ유럽 8개국 국가급 박물관과 상의하여 빌린

    것도 있으며, 심지어 대영 박물관에서도 전시품을 대여해 주었다.

    앞에서 선택한 원칙에 3ㆍ4년의 노력을 들여 동ㆍ서양 각 대륙 여

    러 나라에 두루 돌아다니며 힘들게 110점의 회화 작품을 모았다. 그

    중 족자, 액자, 병풍, 서화첩 87개 목록이 전시되었는데 옛것을 모방

    한 것이 창작한 것보다 수량이 더 많았다.19)

    이외에 30여 명의 개인 소장가들이 전시품을 제공하여 함께 성대한

    17) 文歡, 行走的畫帝 -張大千泊的後半生 (北京: 花山文藝出版社, 2006), p.306.

    18) 舊香居, 張大千畫冊暨文獻圖錄 (臺北: 舊香居B1ㆍ文秀基金會, 2010), p.144.

    19) 黃天才, 張大千的後半生 (台北: 羲之堂文化出版, 2013), p.113.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64행사를 하게 되었다. 이후에 다시 뉴욕 아시아주 협회 미술관과 미국

    중부 도시 세인트 루이스로 옮겨져 드물게도 거의 1년에 달했던 전시

    기간이 1992년에 모두 끝났다. 장대천의 그림 전시회는 국외에서 거

    행된 가장 성대하고 장중한 전시이다. 이 전시에서 부신(傅申) 교수는

    황천재가 소장하고 있는 장대천이 26세 때 만든 4폭의 선면 그림을

    빌려 전시회에 출품했다.

    지금까지 구미 여러 큰 미술관의 진귀한 소장품인 일부 전시품은

    장대천의 전후 어떤 전시회에서 한 번도 없었다.

    이 전시품에서 가장 특색 있고, 가장 흡인력이 큰 것은 장대천이 위

    조한 ‘고화’이다. 명가의 예리한 안목을 속인 고화 7점, 부신(傳申) 교

    수가 원본을 빌려오는 방법을 취하여 전시에 참가했다.

    사실 이 두 번의 전시가 내용과 의미에 큰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최소 하나의 원칙이 아닌 어떤 시기, 어떤 ‘풍격’으로 표준을 선

    택한 것이다.

    이 전시에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의 위치에 선 장대천의

    위작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위조품의 위상을 알 수 있으며 소장가들

    이 위작인걸 알면서 귀중품으로 소장가치를 더한다.

    전시된 작품은 연도에 따라 배열한 것이기는 해도 복잡한 예술 발전을 나타낸 것이며 인생의 전반은 ‘옛날로 들어가’ 격전을 벌였고, 후반은 ‘옛것에서 나와’ 격전(혈전고인 血戰古人)을 벌였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작품은 옛것을 모방한 것이 많고, 말년에는 창작을 많이 했다.

    장대천은 서화를 배울 때에는 반드시 임모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전인의 작품을 임모할 때는 안보고도 임모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되어야 하며 사람들이 진위를 분별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0)

    장대천의 옛날 그 시대의 고화를 임모하는 본연의 목적은 고대 유명 서화가들의 작품을 학습하는데 있다. 20) 채홍기, 「진위대비 작품해설」 (中國書畫鑑定 -명ㆍ청ㆍ근대기의 진작ㆍ위작

    대비 (서울: 예술의 전당, 2001), p.93.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65

    장대천,

    장대천의 고대 명가 서화 위조는 1920년에서 1922년 간에 석도의

    작품을 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1929년에서 1932년간에는

    전문적으로 팔대 ‧ 석도 ‧ 금농 등의 명가 작품과 송 ‧ 원대 명화를 위조하였으며 또한 서화 감상 저술에 보이는 일련의 감상가의 소장인도

    배합하여 위조하였다. 장대천의 자신만의 독특한 위조 방법은 오래된

    종이들을 구입하여 비교적 연한 색으로 염색

    을 하여 그림을 그리고 배접을 여러 번하고

    표구를 한다. 불과 다리미로 그슬리는 기묘한

    방법을 쓰며 낡아 보이도록 두루마리로 종이

    를 말아 갈라진 잔주름이 생기게 한다. 낙관

    을 찍을 때 장대천은 절대 자신이 위조한 고

    화에 大風堂 낙관을 찍지 않는다.21) 장대천의

    고화 위조는 상당히 높은 예술 수준을 가지고

    있다. 원작과 대비해보면 원작의 정신과 감정

    까지 담아낸 작품이다.

    이 전시에 장대천의 고화 7점 중에서 양해

    (梁楷)의 는 필묵과 구도 및

    낙관이 거의 진품과 다를 게 없을 정도이다.

    두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한 작품은 장대천이

    방한 양해의 수원도이며 이 작품에는 장대천

    의 친구인 시당(詩塘) 엽공조(葉恭綽)가 오호

    범(吳湖帆)을 위해 쓴 「천하제일의 양해의 풍자수원도(天下第一梁風子畫)」라는 제자(題字)

    가 있다.22) 또 하나 작품은 장대천이 방한 양해의 수원도는 부심여의

    시구가 있는 양풍자의 ‘수원도’인데,23) 지금은 뉴욕의 Myron S. Falk

    21) 이동천, 「中國 書畵僞造의 類型」 (中國書畫鑑定 -명ㆍ청ㆍ근대기의 진작ㆍ위작 대비), pp.18-19.

    22) 舊香居, 張大千畫冊暨文獻圖 (臺北: 舊香居B1ㆍ文秀基金會, 2010), p.59.23) 王家誠, 張大千傳奇 -五百年來第一人 (臺北: 九歌文庫, 2007), p.34.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66씨 개인소장가 소장품이다. 이 전시에는 명가의 예리한 안목을 속인

    장대천의 고화 7점, 거연ㆍ양해ㆍ석도ㆍ석계ㆍ매청 등등 명화 작품이

    명가의 눈에 들어, 호놀룰루 미술관, 예일대 미술관의 개인 소장가가

    간직하고 있다. 향방이 불투명했는데 몇 차례 교섭 후에야 빌려 순조

    롭게 전시할 수 있었다. 장대천 위작은 하나만이 아니라 그래서 이 그

    림은 원본이 아니지만 감쪽같이 원본과 다를 게 없어, 노련한 장대천

    의 위작 서화는 마침내 황빈홍(黃賓虹) 선생에게 청상 노인이 ‘평생 정

    성을 들인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전시회에 출품한 것은 모두 87편, 앞의 반수 이상의 작품은 그가

    ‘옛사람과 격전을 벌인’ 전적이고 후반부는 창작이 많은데, 장대천이

    ‘필사적으로 옛것을 드러낸’ 성과이다.24) 장대천 본인도 옛 선인의 발

    자취가 서려있는 장대천의 60년 회고전은 옛 전통의 중요함과 장대천

    의 천재적인 기교에 실로 감탄과 찬탄이 절로 나며 진품의 우수성과

    비교해 이미 그것을 따를 것이 없을 정도로 위작도 너무 훌륭해 소장

    가들이 위작인 걸 알면서도 고이 간직하며 귀중히 소장하고 있다는 사

    실에 더욱 감탄사를 금할 수 없다.

    Ⅳ. 장대천 死後 기념전시

    1. 장대천 백년기념전시

    장대천 백년기념전시는 장대천의 사후(死後)의 전시중 성대한 기념

    전시 중 하나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998년 9월 26일 개막하여

    1999년 1월 20일25)까지, 하늘이 내린 기회, 지리적 우세, 화합의 3대

    유리한 조건이 모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시’가 진행되었다. 참으로

    24) 黃天才, 張大千的後半生 (台北: 羲之堂文化出版, 2013), p.126.25) 舊香居, 張大千畫冊暨文獻圖錄 (臺北: 舊香居B1ㆍ文秀基金會, 2010),

    p.145.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67만나기 힘든 시간과 공간, 인위적 요소가 한데 모여 세기를 뛰어넘는

    백 년의 성대한 행사가 거행되었다.

    장대천 노산도(盧山圖)1982년 180公分 X 1080公分

    필자는 장대천 백년기념전시의 준비 과정에 고난이 많았다는 사실

    을 알게 되었고 이 국보급 노산도(盧山圖)가 일본으로 소장될 뻔 했던

    과정을 알고 무척 노심초사 했다. 사전 준비부터 기획까지의 어떤 단

    계를 거쳐 어렵고 힘든 과정을 알 수 있었으며 성공적인 전시를 이루

    려면 첫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10년 정도의 긴 시간이 필요로 했다.

    간략히 그때의 상황을 알아보았는데 일단 노산도의 구매자가 누군

    가 알아보았다. 일본 요코하마에 거주했던 화교 거상 이해천은 장대천

    이 생전에 마음이 통하는 친한 친구로 장대천 최후의 유작 ‘노산도’

    구매자이다. 뜻밖에 장대천은 그림에 서명하고 낙관을 찍지 않은 상태

    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장대천이 생전 1980년 5월, 일본에 거주

    하는 오래된 친구, 황천재(黃天才)와 화교상인 이해천(李海天) 선생이

    마야정사에 찾아 왔다. 이해천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유명한 화교 상인

    으로 원래 하북(河北)성 사람이다. 1980년 봄에, 이해천은 미국에서

    유명한 Holiday Hotel과 협력하여 요코하마에 체인 호텔을 열었다. 화

    려한 호텔이 준공되고, 1층 로비의 1.6미터 높이, 9미터 넓이의 벽에

    전시할 그림이 필요했던 이해천은 장대천을 불러 산수화 4폭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장대천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그림을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68그리겠다고 대답했고, 본인의 나이와 건강에 대한 도전이었다. 장대천

    은 황천재에게 부탁해 일본에서 서화에 쓰이는 비단을 맞춤 제작했

    다.26) 그 이후, 1983년 초에 그림을 완성했다. 당시 사회와 대중은 장

    대천 최후의 큰 작품이 대만에 남을 수 있기를 바랬고, 또한 오랫동안

    국외에 정착해 머물렀지만 장대천 대가가 ‘결국에는 고향으로 돌아 온

    다’는 소망에 부합하기를 바랬다. 장대천 생전에 세운 유언대로 ‘노산

    도’의 소유권은 장대천 가족에게 돌아갔으나 장대천 가족은 모두 국외

    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노산도’는 대만에 남을 가능성이 아주 낮았

    다. 게다가 그림을 샀던 이해천이 장대천 생전에 이미 일부 그림값을

    지급했고 ‘노산도’가 대만에 남는 데 동의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그

    후 장대천을 ‘형님’으로 모시는 장악군(張岳軍)이 나서서 장대천 가족

    에게 ‘노산도’를 대만에 남겨 마야정사에서 장기간 전시하고 이해천이

    지급한 그림값을 ‘환급’하도록 설득했다. 장대천부인 서문파는 ‘노산도’

    그림이 사람이 살지 않는 마예정사에 오랫동안 전시되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뜻밖에 황천재는 장악군의 부탁으로 이해천에게 가서

    이 일이 처리되는 경위를 설명하게 되었는데 이해천은 장대천의 가족

    에게 환급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노산도’ 그림이 중국에 오랫동안 남

    아 전시되는데 이의가 없다고 했다. 이해천은 이 위대한 예술 작품의

    ‘최초 그림 구매자’의 명분과 지위가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랬기 때문

    이다. 1993년 4월 초, 고궁 원장인 진효는 장대천 부인 서문파, 이해

    천과 臺北에서 화합하여 ‘최초 그림 구매자’ 이해천이 ‘노산도’ 그림을

    고궁에 기증하고 어떻게 적절하게 보관할지에 대해 함께 상의했다. 거

    의 10년 동안 ‘대신 관리’되었다가 장대천 부인, 장보라와 이해천의

    명예 훈장 수여를 1996년 6월 21일에 고궁에서 거행하도록 결정되었

    고 1996년 6월 진 원장은 장대천 사모님이 대만에 온 김에 이해천과

    함께 기자회견을 마련해 고궁에서 1998년 거행하게 될 전시 소식을

    정식으로 발표했다.27) 결국 이 ‘노산도’ 그림의 귀속 문제로 이미 모

    26) 傳申, 張大千的世界 (臺北: 羲之堂文化出版, 1998), p.368.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69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1998년 8월 24일, 빌려온 그림 105점이 臺北 이외에 미국ㆍ프랑스

    ㆍ캐나다ㆍ파리ㆍ일본ㆍ홍콩에서 와서 실로 장대천 예술 창작이 집대

    성 되었다.28) 소장가들에게 흡인력이 큰 것은 먼저 감식 전문가인 부

    신(傅申)교수가 전시품마다 모두 자세하고 엄격하게 분석했기 때문이

    다.

    필자는 백년기념전시인 대전(大展)이 잘 개최되어 장대천은 아마도

    저 먼 하늘에서도 흡족해 하며 지인들과 여러인사들의 도움으로 이런

    큰 행사가 이루어져 감개무량하며 어떤 아쉬움도 남지 않았을 것이라

    는 생각이 든다.

    2. 장대천 서거30주년 기념전시

    지금까지 생전‧사후 대전시와는 다른 박물관소장작품 순회 전시로 이는 지금까지 국내외 개최한 전시 중 규모가 가장 큰 기념전시이다.

    2013년-2014년 장대천 사망 30주년이 되는 해로 이 위대한 예술

    가를 공동기념하기 위해 “양안4지”의 대북역사박물관, 길림성박물관,

    사천박물관, 심천박물관은 연합하여 “만리강산빈입몽—양안 장대천 사

    망 30주년 기념전”을 개최했다. 이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개최한 전

    시회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레벨이 가장 높은 장대천 회화작품 전시회

    이다.

    공동 개최한 장대천(張大千) 진귀작품이 4개의 소장한 박물관에 소

    장 초ㆍ중ㆍ말 시기 서로 다른 풍격의 예술을 장대천 생전의 각 시기

    에 창작했던 회화작품 105점을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장대천은 일생

    동안 화풍을 개척해 나갔다.

    장대천의 회화발전을 제3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초년기에는 明‧淸의

    27) 黃天才, 張大千的後半生 (台北: 羲之堂文化出版, 2013), p.134-137.28) 黃天才, 張大千的後半生, p.137.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70문인수묵 寫意畫 풍격, 중년기에는 唐‧宋 직업화가의 참신한 풍격, 말년에는 發墨發彩 풍격의 현대 수묵화의 화풍을 개척해 냈다. 중국 역

    사의 名家畫風의 표현 특색을 종합하여 “중국고서화를 집대성”하였

    다.29) 금번 전시회에는 4개 박물관의 소장품 중 105점을 선정하여 선

    보였으며 6개 부분으로 나누어 장대천의 다원화한 예술 풍격과 전설

    색채가 짙은 창작의 궤적을 보여주었다. 대북역사박물관ㆍ길림성박물

    관과 사천박물관ㆍ심천박물관은 지금까지 장대천 회화 작품을 가장 많

    이 소장하고 있는 기관으로서 소장품에 각자 특색을 가지고 있다.

    길림성박물관: 1930년 전후 문인 수묵사의화 풍격, 1부분인 “초시

    제성참로두각(初試啼聲崭露頭角)”에서는 장대천이 젊은 시절에 그린 여러 폭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이때의 화풍은 수려하고 재능이 뛰어난

    동시에 장대천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2부분인 “시녀: 완저미부(仕

    女:腕底美婦)”에서는 장대천 인물화의 대표적 소재인 미인도 여러 폭

    을 전시했는데 장대천이 그린 미인도는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청아하고

    기운생동하다. 특히 돈황석굴 모사의 영향을 받아 이 시기의 작품은

    독특한 미감과 예술적 경지를 드러내었다. 길림성박물관에서 소장한

    장대천 회화작품 100여 점은 대부분이 장대천이 중년 이전에 창작한

    작품이며 일부 작품은 1950년대에 수집한 것이다.

    사천박물관: 1940년 시작해서 감숙성 돈황석굴 면벽고증, 북위수당

    의 화려하고 정교한 벽화의 풍격; 3부분인 “돈황: 비월천고(敦煌:飛

    越千古)”에서는 장대천이 중년시기에 모사한 돈황 벽화를 전시했는데

    그의 화풍이 청아하고 수려하며 웅장하고 힘 있는 필력의 변화를 보여

    주었다. 사천박물관에서 소장한 장대천 작품 중에 돈황 벽화 모사 작

    품이 가장 대표적인데 이는 장대천 가족이 1955년에 기증한 것이다.

    29) 戈思明ㆍ巴東, 「由吉林ㆍ四川ㆍ臺北三博物館之典藏看張大千之繪畫分期發 展 -兩岸張大千辭世三十週年紀念展」 (萬里江山頻入夢-兩岸張大千辭世三十週年紀念展 (臺北: 國立歴史博物館, 2014), p.17.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71

    국립역사박물관: 1960년 이후 말년의 사의화 풍격과 발묵발채의 새

    로운 현대수묵 풍격; 5부분 “구미: 천애유종(歐美:天涯游踪)”에서는

    그가 브라질에 거주하는 동안과 구미를 여행하는 기간에 창작한 작품

    들로 이 시기의 창작 풍격은 성숙된 사의(寫意)에서 發墨畫로 변화하

    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장대천이 구미와 대만 지역을 여행 거주하는

    동안에 창작한 150여 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대부분이 1970년

    장대천 본인이 기증한 것이다.

    심천박물관: 6부분인 “화훼: 천지취정(花卉:天地聚精)”에서는 그가

    창작한 연꽃, 작약, 매화 등 꽃 작품을 전시했는데 작품들은 기세가

    드높은 동시에 우아하며 생동하다. 심천박물관에는 장대천 작품 1점이

    소장되어 있다.

    길림박물관에서 순회전시 장대천 서거 30년 기념전시 기자 회견장

    에 주최측인 역사 편찬소장 장예등(張譽騰)ㆍ사원(四院) 서기 및 노월

    (盧越)부원장ㆍ길원(吉院) 서기 및 조영실(趙聆實) 부원장ㆍ중화해협

    양안 문화 자산 교류 추진회 강유신(江裕信) 이사장ㆍ산예술문화교육

    기금회 임명철(林明哲) 이사장을 포함한 인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

    다. 사람들이 모두 현장에 도착하고, 대만총통 마영구(馬英九)도 특송

    으로 축전을 보냈다. 이 외에 장대천아들 장보라(張葆蘿)ㆍ딸 장심서

    (張心瑞)ㆍ장심한(張心嫻)도 멀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전시의 개

    막식을 위해 서둘러 달려왔고, 장보라는 인사말에서 장대천 가족을 대

    표하여 작품을 역사관에 기증한다고 했다.30) 이번 전시는 다시 볼 수

    없는 경우는 아니지만, 이런 전례가 없어 한데 모아 한 번에 대가의

    30) 王怡文, 장대천 진귀작품전시회, 길림성에서 개최 (길림: 길림일보, 2014.6.10); 戈思明ㆍ巴東, 「由吉林ㆍ四川. 臺北三博物館之典藏看張大千之繪畫分期發展 -兩岸張大千辭世三十週年紀念展」 (萬里江山頻入夢 -兩岸張大千辭世三十週年紀念展 (臺北: 國立歴史博物館, 2014), pp.17-18.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72일생 변화를 볼 수 있어서 선풍을 일으켰고 이 전시는 1년의 시간을

    들여 4개 박물관에서 순회 전시하는 동안 30만 인파가 몰려들었고 상

    당히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세기 60년대에 작품 일체를 모아 간직하

    여 장대천과 한 가닥 인연으로 양안 사지를 순회하는 대전시를 거행할

    수 있었다.

    주최측은 이번 기회를 빌어 양안 4지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학술

    연구 수준을 향상시키며 중화 전통 문화를 널리 알려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통해 전통 문화의 무궁한 매력을 체험하도록 하였다.

    2014년 장대천을 기념하는 순회 전시가 여러 박물관에 열리면서 세

    계평화와 동ㆍ서간 격이 없는 회화 교류ㆍ화합ㆍ발전이 되고 더 나아

    가 장대천의 예술 정신이 널리 알려지고 이 문화유산이 길이 보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Ⅴ. 結 論

    장대천(1899~1983)은 세계근대회화사의 위대한 화가, 20세기 중국

    회화사의 영혼불멸의 인재이며 이웃나라에서 국보(國寶)라고 부른다.

    현재 21세기의 오늘날 장대천의 명성은 전 세계인의 환호와 카니발

    축제의 불꽃 속에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다.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장대천을 추모하는 단체와 양

    안4지 박물관에서 장대천 서거 30주년 기념전시가 연이어 이루어졌

    다.

    본고는 장대천의 생애를 1949년 기준으로 전반 생애와 후반 생애로

    중국에서의 전반 생애 50년, 중국대륙을 벗어나 해외에 거주한 기나긴

    세월 35년을 후반 생애로 나누어 장대천의 생전에 개최하였던 두 번

    의 대전시(大展示), 장대천 40년 회고전, 장대천 60년 회고전, 사후 기

    념전시로는 장대천백년전시, 장대천 서거 30주년 기념전시를 분석하여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73예술 생애의 가치를 알 수 있다.

    21세기 중국 미술계에서 전설의 인물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회화

    대가인 장대천은 회화, 서예 등 영역에서 많은 거작을 내놓았다. 그는

    조예가 깊고 예술 풍격이 독특하며 그가 창조해 낸 예술성과는 줄곧

    세인들에게 연구 가치가 높은 풍부한 보물고이다.

    2013년 장대천 서거 30주년이 되는 해로 이 예술가를 공동 기념하

    기 위해 “양안4지”의 대북역사박물관, 길림성박물관과 사천박물관, 심

    천박물관이 연합하여 ‘만리강산빈입몽 -양안 장대천 서거 30주년 기

    념전’을 개최되었다. 지금까지 장대천 회화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

    고 있는 기관으로서 소장품에 각자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는 지금까

    지 국내외에서 개최한 전시회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레벨이 가장 높은

    장대천 회화 작품 전시회이다.

    장대천 서거 30주년 기념전은 4개 박물관의 소장품 중 105점을 선

    정하여 선보였다. 길림성박물관: 1930년 전후 문인 수묵사의화 풍격과

    돈황벽화 모사, 사천박물관: 1940년 시작해서 수당 돈황석굴 면벽 고

    증, 북위 수당의 화려하고 정교한 벽화의 풍격, 대만국립역사박물관:

    1960년 이후 말년의 사의화 풍격과 발묵발채의 새로운 현대수묵 풍

    격, 심천박물관: 장대천이 창작한 연꽃, 작약, 매화 등 꽃 작품이 전시

    되었고 작품들은 기세가 드높은 동시에 우아하며 생동하다.

    본 논문에서 생전사후 100년 전시의 장대천 대표 걸작

    의 제작 현황과 전시 준비 과정을 자세히 본문에서 알아보았는데 참으

    로 힘든 시간과 공간, 인위적 요소가 한데 모여 세기를 뛰어넘는 성대

    한 행사가 거행되었다 본다. 또한 2014년 장대천 서거 30년 기념전은

    4개 박물관 사이의 교류를 개척하고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심천(深圳)이라는 도시의 매력을 높이고 문화적 활력을 불어 넣었다는 점에서 더

    욱 의미 있다. 대체로 예술은 본래 옛 사람의 것이다. 장대천이 말하

    기를 옛사람의 것을 계승하면서 나의 것을 합치면 옛 사람의 것과 내

    것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경지에 이른 예술이 탄생한다.31) 옛 선인

    들의 내면 세계를 세밀히 탐구하고 현재의 미간을 잃지 않기 위해 노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74력하여 고금을 융합시키며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 옛것의 의미를 품은

    자신만의 미를 탄생시켰다.

    장대천 서거 30주년 기념전은 지금까지 여러 곳을 둘러 본 화가의

    뛰어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뛰어난 서화

    가 장대천이 남긴100개의 유묵은 해외를 유람하면서 만년까지 고풍스

    러우면서도 소박한 멋을 그림에 담았고, 동ㆍ서양 서화의 정수를 그림

    에 담아냈다.

    필자는 장대천의 예술 작품을 통해 고금을 융합하여 예술의 문화성

    을 높이고 세계 평화를 상징하며 전세계가 하나 되어가며 장대천의 예

    술세계는 길이 빛이 날 것이며 또한 세계가 하나로 화합하여 중국과

    대만의 위협 관계가 완화될 수 있도록 한국ㆍ중국ㆍ대만ㆍ세계각국에

    서 함께 전시 교류를 하여 세계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는 소망을 담아

    본다.

    1. 김서윤, 意境繪畫 理論에 따른 張大千의 藝術世界 分析 (원광대학교조형미술학 박사논문, 2013)

    2. 李賢文, 雄獅中國美術辭典 (臺北: 雄獅圖書, 1989)3. 文歡, 行走的畫帝 -張大千泊的後半生 (北京: 花山文藝出版社, 2006)4. 王怡文, 장대천 진귀작품전시회, 길림성에서 개최 (길림: 길림일보, 2014) 5. 戈思明ㆍ巴東, 「由吉林ㆍ四川ㆍ臺北三博物館之典藏看張大千之繪畫分期發展 -

    兩岸張大千辭世三十週年紀念展」 (萬里江山頻入夢 -兩岸張大千辭世三十週年紀念展, 2014)

    6. 巴東, 張大千110歲 -書畫紀念特展 (台北: 國立歷史博物館, 2009)7. 曾堉, 中國美術年表 (台北: 東大圖書, 1998)8. 舊香居, 張大千畫冊暨文獻圖錄 (臺北: 舊香居B1ㆍ文秀基金會, 2010)9. 王家誠, 畫壇奇才張大千(下) (臺北: 九歌文庫, 2006)10. 巴東,「包立民, 張大千丁巳(1917年)拜師新證」(歷史文物 227 第二十二卷

    第六期, 臺北: 國立歴史博物館, 2012)

    31) 戈思明, 「葉楊, 深圳博物館館長的序」 (萬里江山頻入夢 -兩岸張大千辭世三十週年紀念展 (臺北: 國立歴史博物館, 2014), p.10.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7511. 國立故宮博物館, 張大千先生詩文集(下) (臺北: 故宮, 1993)12. 王鵬, 張大千繪畫鑒賞 (北京: 中國輕業出版社, 2009)13. 許啟泰, 張大千的八德園世界(1953-1989) (臺灣: 商務印書館, 2003)14. 邢捷, 張大千古畫鑑定 (天津: 天津古籍出版社, 1997)15. 예술의 전당, 中國書畫鑑定 -명ㆍ청ㆍ근대기의 진작ㆍ위작 대비 (서울: 예

    술의 전당, 2001)

    16. 黃天才, 張大千的後半生 (台北: 羲之堂文化出版, 2013)17. 王家誠, 張大千傳奇 -五百年來第一人 (臺北: 九歌文庫, 2007)18. 傳申, 張大千的世界 (臺北: 羲之堂文化出版, 1998)19. 장대천기념회사이트 dechen.co.kr, 2004.

  • 中國史硏究 第95輯 (2015. 4)276(中文提要)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與逝去30周年紀念展示

    金 序 潤

    張大千(899-1983), 舉世聞名的近現代繪畫大師, 20世纪中國繪畫史上靈魂不滅的人才, 被鄰國稱為國寶.

    21世紀的今天, 張大千的名聲在全世界的歡呼和狂歡節的烟花中如同夜

    空閃爍的明星. 從2013年12月起2014年12月此展為兩岸四地博物館聯合主辦追慕張大千辭世30週年紀念展. 本稿將通過分析張大千逝世30周年纪念展示来了解藝術生涯的價值. 張大千的人生歷程來分析, 以1949年為分隔點, 可以看出張大千前半生與後半生的分隔點, 則他在中國大陸的前半

    生是50年, 寄跡海外的後半生是35年分隔來看, 張大千生前開二個大展-

    張大千四十年回顧展ㆍ張大千六十年回顧展, 死後大展-張大千百年紀念大

    展ㆍ張大千辭世30週年紀念展示來分析理解張大千藝術人生的價值.21世纪在中國美術界被稱為傳說人物的有名繪畫大師-張大千在繪畫ㆍ書畫等領域留下了許多巨作. 他的造詣極深, 藝術品位十分獨特, 他創造的藝術成

    果對世人來說一直是具有高度研究價值的了寶庫. 2013年適逢張大千辭世30週年紀念展, 兩岸合作策辦兩岸四地;吉林省

    博物館ㆍ四川博物館ㆍ台北歷史博物館ㆍ深圳博物館「萬里江山頻入夢」-兩岸張大千辭世30週年紀念展. 這今為止, 兩岸四地博物館各地都有不同的收藏張大千古代和近現代書畫作品地成為體現這一特色 而且目前沒有國內外舉行最大的張大千繪畫作品展, 具有重大藝術和研究價值的經典繪畫展覽. 匯集了此4館博物館所藏的張大千繪畫精品105組件, 吉林省博物館

    所典藏1930年前後;早期文人書畫風格和敦煌面壁臨摹, 四川博物館所藏的

    是張大千於1940年開始;遠赴甘肅敦煌面壁考古, 臺北的國立歷史博物館所

  • 張大千 生前ㆍ死後大展 및 서거30주년 기념전시 (金序潤) 277藏的是60年代以後, 成熟的大寫意風格和開創出潑墨潑彩畫風, 深圳博物館所藏的是花卉作品;張大千創造荷花ㆍ牡丹ㆍ紫薇ㆍ梅花作品精美動人而

    明豔亮麗ㆍ高雅大方的氣質. 本論文將詳細地了解生前死後100年展示的張大千代表的傑作的製作現況展示淮備過程, 艱難的時間和空間,

    以及人為的要素聚集在一起, 舉行超世纪的盛大活動. 此外, 2014年張大千逝世30年纪念展不僅開拓和强化化了4個博物館之間的交流, 而且提高了深圳這座城市的魅力, 賦予了文化的活力, 這點具有深刻的意義. 大體上藝術本來屬於古人. 張大千說;‘大抵藝事,最初純有古人,繼則溶古人而有

    我,終乃古人與我俱亡,始臻化境’. 為了细致地探求古代先人的内面世界, 不失現在的眉宇而努力, 融合古今, 蕴含自己的獨創思想, 創造融入昔日意義的屬於自己的唯美. 張大千逝世30周年纪念展史無前例地將各地畫家的優秀作品匯聚一堂. 優秀的書畫家張大千留下的100個遗墨流傳至海外, 將萬年的古風素朴之美融入畫中, 並將東西洋書畫的精髓融入畫中.

    筆者旨在通過張大千的藝術作品融合古今, 提高藝術的文化性, 象徵世

    界和平, 使全世界逐漸而為一, 張大千的藝術世界將令萬路生輝, 且讓全世界合而為一, 為了缓解中國和台湾的威脅關系, 融入韓國ㆍ中國ㆍ台灣ㆍ世界各國共同進行展示交流, 開啟世界和平之路的夙愿.

    주제어 : 장대천, 회고전, 서거30주년기념전시

    關鍵詞: 張大千, 逝世30周年纪念展, 兩岸4地博物館, 回顧展, 藝術世界, 世界和平

    Keywords: Chang Ta-Chien's, the 30th Anniversary of His Death,

    Retrospective, World of Art, World peace, YanganSaji Museum.

    (원고접수: 2014년 12월 31일, 심사완료 및 심사결과 통보: 2015년 2월 12일,

    수정원고 접수: 4월 2일, 게재 확정: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