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8
- 1 -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조원표/ 경기 상도초 교사 첫째 날(2015년 1월18일) 2014년 여름 동북아역사 재단에서 역사교원 역량 강화 연수를 듣던 중 인상 깊게 들었던 손승철 교수님의 강의를 출국 전 부산 롯데 백화점 10층 문화 홀에서 다시 듣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이 번 한민족사 탐방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한 후 부산국제 여객터미널로 향하던 중 세관 담벽에 붙어 있는 조선통신사 행렬도를 보니 너무 반가워서 스마트폰을 꺼 내 한 컷의 사진을 찍었다. 종사, 부사, 종사관의 행렬도가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조선통신사 행렬도> 배안에서는 전국 8도에서 올라온 선생님들과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웃음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다. 지역이 다르고 학교급이 다르기에 다양한 의견과 교육에 관한 정보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 번 여행은 조선통신사가 갔던 길을 그대로 밟아본다는 측면 에서 의미가 있었다. 당시 조선 통신사는 3개월의 긴 여정을 우리는 하루만에 배로 도착할 수 있었다. 백제와 관련된 유물과 유적이 많았다. 손승철 교수님의 강의 내용 중에서 일본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그것은 신사, 고분, 절, 성으로 이것 은 일본 역사와 그대로 연결된다는 강의가 인상 깊었다. 또한 점, 선, 면의 역사로 연대나 사건은 점의 역사인데 어느 때 쯤에 점을 찍을까가 중요하고 연표를 만들면 선의 역사가 완 성된다고 했다. 이 번 여행은 이 점을 명심하여 탐방을 해보기로 했다. 손 교수님의 강의 중 ‘역사는 유적과 유물을 남기고 유적과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말에서 유적과 유물을 통해 후대들이 역사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소중한 유적과 유물 을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의 철저한 문화재 관 리가 부럽기까지 했다. 흔히 역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역시 내가 아는 만큼

Upload: others

Post on 26-Jun-2020

0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Page 1: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tour.chosun.com/review/201501-jwp.pdf ·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 1 -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조원표/ 경기 상도초 교사

첫째 날(2015년 1월18일)

2014년 여름 동북아역사 재단에서 역사교원 역량 강화 연수를 듣던 중 인상 깊게 들었던

손승철 교수님의 강의를 출국 전 부산 롯데 백화점 10층 문화 홀에서 다시 듣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이 번 한민족사 탐방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한 후 부산국제 여객터미널로

향하던 중 세관 담벽에 붙어 있는 조선통신사 행렬도를 보니 너무 반가워서 스마트폰을 꺼

내 한 컷의 사진을 찍었다. 종사, 부사, 종사관의 행렬도가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조선통신사 행렬도>

배안에서는 전국 8도에서 올라온 선생님들과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웃음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다. 지역이 다르고 학교급이 다르기에 다양한 의견과 교육에 관한 정보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 번 여행은 조선통신사가 갔던 길을 그대로 밟아본다는 측면

에서 의미가 있었다. 당시 조선 통신사는 3개월의 긴 여정을 우리는 하루만에 배로 도착할

수 있었다. 백제와 관련된 유물과 유적이 많았다. 손승철 교수님의 강의 내용 중에서 일본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그것은 신사, 고분, 절, 성으로 이것

은 일본 역사와 그대로 연결된다는 강의가 인상 깊었다. 또한 점, 선, 면의 역사로 연대나

사건은 점의 역사인데 어느 때 쯤에 점을 찍을까가 중요하고 연표를 만들면 선의 역사가 완

성된다고 했다. 이 번 여행은 이 점을 명심하여 탐방을 해보기로 했다. 손 교수님의 강의

중 ‘역사는 유적과 유물을 남기고 유적과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말에서 유적과 유물을

통해 후대들이 역사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소중한 유적과 유물

을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의 철저한 문화재 관

리가 부럽기까지 했다. 흔히 역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역시 내가 아는 만큼

Page 2: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tour.chosun.com/review/201501-jwp.pdf ·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 2 -

보인다는 것을 이 번 탐방을 통해 여실히 깨닫고 느꼈다. 초등에 있기에 역사를 전공한 중

등 선생님들이 부러웠지만 그만큼 더욱 더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도 느꼈다.

둘째 날(2015년 1월19일)

다자이후 궁성터에서 버스로 이동 중 좌우로 수성터가 보였고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는 마

치 어느 시골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삼평 비를 방문했을 때는 이삼평의 14대손

이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으며 현재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삼평은 일본에서 도자

기의 신으로 불리울 만큼 명성이 높다고 한다. 또한 도로 양 옆으로 삼나무가 울창하게 들

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삼나무는 피톤치드가 많고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 자연재해

를 대비하기 위해 심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꽃가루 알러지가 많아서 면역력을 높이는 음

식이 발달했다고 한다.

일본의 3대 성은 나고야성, 구마모토성, 오사카성인데 나고야 성은 현재 성터만 남아있었고

임진왜란 후 없어졌다고 한다. 나고야 박물관 기획보급 계장인 시로세 선생님께서 우리 일

행을 반겨주었는데 사모님도 부산여대 일본어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 분이라고 했다. 임

진왜란 당시 14만 명이 이곳에서 출병(침략)을 했다고 하는데 성터를 둘러보면서 왠지 씁쓸

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1년 2개월을 이 곳 나고야 성터에서 전쟁

을 진두지휘했는데 157,000명이 대마도를 거쳐 조선을 침략했고 당시 일본군은 20만명, 조

선군은 200만명이 사망을 했다고 하니 그 전쟁의 규모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았다. 다시는 우리 민족이 국력이 없어서 외세의 침략을 당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보

았다. 어제는 배로 왔기에 몸도 피곤하고 부담스러웠는데 오늘은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힐튼호텔에서 숙박을 한다니 마음이 설레고 한껏 기대가 되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야구

스타인 이대호 선수가 맹활약하는 후쿠오카 돔이 바로 앞에 위치에 있어 한국의 연예인 및

스포츠 스타가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고 하니 내가 괜스레 출세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언제 한 번 이런 고급스러운 호텔을 이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오늘 밤은

밤잠도 자지 말고 이 호텔을 마음껏 이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룸

메이트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셋째 날(2015년 1월 20일)

후나야마 고분은 전방후원분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그 화려한 출토유물로 유명해 1965

년에 일괄 출토품이 국보로 지정된 대단히 중요한 고분이며 분구(墳丘)는 변형이 심하지만,

방패형의 주호(周濠)에 둘려진 즙석, 원통형 하니와(埴輪) 열을 갖춘 전방후원분으로서 3단

으로 축성되었고 길이 63m, 후원부(後圓部) 직경 41m, 높이 10m이고, 전방부(前方部)는 남

서향이며 폭 40.1m, 높이 7.5m로 양쪽에 돌출부가 있었다. 널 뚜껑은 평탄면을 가진 기동

형으로 주변 돌대는 없으며 내부에는 붉은 칠(丹)이 발려있었다.

규슈 국립 박물관에서는 칠지도가 눈에 확 들어왔다. 칠지도는 일본 나라현(奈良縣) 덴리

시(天理市)의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소장된 철제 가지모양의 칼로서 백제가 일본에게

보내준 칼이라는 일본의 주장과 백제가 일본에게 하사한 칼이라는 우리 측 주장이 분분하다

고 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백제의 구저(久氐) 등이 천웅장언(千熊長彦)을 따라

와서 칠지도 하나와 칠자경(七子鏡) 하나, 그리고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을 바쳤다”는 기사

를 염두에 둔 입장이 있지만 『일본서기』의 신공기 기사가 왜곡된 것이라는 데에는 학자들

이 공감하고 있다고 한다. 칠지도는 최인호의 역사소설인 <잃어버린 왕국>에도 등장할 정

Page 3: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tour.chosun.com/review/201501-jwp.pdf ·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 3 -

도로 엄청 유명하다고 하기에 많은 유물 중에서도 눈여겨보았다.

<규슈국립 박물관의 칠지도>

시모노세키로 이동하여 조선통신사의 숙소인 아카마 신궁과 청일강화기념관을 보았다. 아

카마 신궁은 여덟 살 나이로 죽은 안토쿠 왕을 모신 곳으로 안토쿠 왕은 헤이안시대의 무장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의 외손자로, 무사집단 겐지[源氏]와 헤이시[平氏]가 최후의 전

투를 벌인 단노우라[檀ノ浦]에서 헤이시 일파가 패하자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하

며 매년 5월 안토쿠 왕을 기리는 센테이사이[先帝祭]가 열린다고 한다.

Page 4: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tour.chosun.com/review/201501-jwp.pdf ·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 4 -

<아카마 신궁>

넷째 날(2015년 1월 21일)

아스카테라와 이시부타이, 호류지, 그리고 후지노키 고분은 일본 속 한민족사에 정말 딱

Page 5: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tour.chosun.com/review/201501-jwp.pdf ·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 5 -

맞는 곳 같았다. 이곳은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에도 대부분 등장하는 곳이라고 한

다. 아스카테라는 백제의 왕흥사를 모델로 한 절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인 아스카대

불이 있었다. 이시부타이는 소가노우마코라는 사람의 무덤으로 소가씨는 백제에서 건너 온

도래인이라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호류지는 아스카 문화의 중심지로서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목조 건축물이자, 중국과

한반도의 불교 건축과 예술이 일본에 건너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아시아 미술의 보

고란다.

법륭사(호류사)는 일본 나라현에 있는 절로 스이코 왕의 조카 쇼토쿠[聖德]가 601∼607년

에 세웠다고 하며 현존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라고 한다. 특히 백제인이 일본으

로 건너가 제작한 목조 백제관음상이 유명하며, 금당 내부의 벽화는 610년(고구려 영양왕

21) 고구려의 담징(曇徵)이 그린 것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 번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동대사(도다이지)였다. 나라 사슴 공원은 굉장히

넓은 부지로 조성되어있었는데 사슴들이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과 사슴이 하나

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사슴 센베를 사서 주었더니 여기저기에 있는 사슴들이 서로 먹겠다

고 달려와서 당황스러웠다. 이곳에 사슴이 많은 이유는 동대사를 지을 당시 후지와라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자기 조상신을 이곳으로 모시고 왔는데 신이 흰 사슴을 타고 왔다고 하

며 나라에서는 사슴을 귀한 동물로 여긴다고 한다. ‘사슴이 돌진한다. 사름이 물어뜯는다.’란

등의 문구가 씌여진 팻말이 보였다. 사슴은 신이 타고 온 동물이기에 더욱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나라사람들이 가장 부지런한데 사름이

죽으면 늦게 일어난 사람 집 앞에 사슴을 갖다 놓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해졌다고

한다.

<동대사의 귀여운 사슴들>

다섯째 날(2015년 1월 22일)

다음날은 오사카와 교토를 두 조로 나누어서 고류지(광륭사)와 이조성을 보았고 오사카 도

Page 6: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tour.chosun.com/review/201501-jwp.pdf ·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 6 -

톤보리에서 마음껏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고류지는 신라에서 건너온 하다노 카와카

쓰가 창건하였으며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과 똑같이 생긴 일본 국보 제1호인 미

륵보살상이 있는데, 이 불상을 만든 재료가 국내에서 나는 적송임이 밝혀지면서 한반도의

장인이 만든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역시 일본의 유물과 유적은 우리나라와 밀접히 관

련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민족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계기도 되었다.

이조성(니조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건립하였는데 동서로 500m, 남북으로 400m 규모

의 성벽을 쌓고, 그 둘레에는 해자를 축조하였다. 일본의 다른 성들과 달리 내부가 화려하

였고 여러 건물 가운데 성의 중심인 니노마루[二の丸]가 가장 훌륭한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

었다. 성에는 '우구이수바리'라는 마루가 있는데, 마루 위를 걸으면 새 울음소리가 나서 외

부에서 적이 침입할 경우 알아차리기 쉽다고 한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해자와 마루를

보면서 아주 오래전에도 어떻게 그러한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번 탐방 중 은근히 기대했던 것이 자유 시간이었다.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신사이바시

상점가를 걷다보니 우리나라의 명동과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세점에서 쇼핑도

하고 일본의 미소(된장)라멘과 오코노미야끼와 다코야끼를 먹어보기도 했다. 라면 맛이 깔

끔하지 않고 맹맹해서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여행을 할 때는 그 나라의 음식에 적응하는 것

도 좋을 것 같아 아주 맛있게 국물까지 깔끔하게 해치웠다. 일본 녹차가 좋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지인들에게 줄 선물로 녹차와 오카시(일본과자) 몇 개를 샀다. 지인들이 과연

선물을 좋아할지 걱정이 되었지만 나의 진정성을 이해해줄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자동판매기에서 따뜻한 녹차를 서너병씩 사먹었는데

과음을 한 후 따뜻한 녹차 한 잔에 지친 몸이 눈 녹듯 사르르 풀렸는데 이 번 기회에 커피

만 마셨던 습관을 녹차로 한 번 바꾸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마지막 날(2015년 1월 23일)

오사카성은 오사카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이 번 탐방의 마지막 코스여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오사카성의 천수각에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토요토미 히데요리의

자결터를 보았다. 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Page 7: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tour.chosun.com/review/201501-jwp.pdf ·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 7 -

<오사카성 천수각>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아마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주용태 조선일보 문화사업단장님의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라

는 말이 공감이 되었다.

금강학원 방문은 탐방단 모두가 교사이기에 많은 관심과 기대가 되었던 것 같다. 금강학

원을 방문하여 5박 6일간의 모든 일정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잠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

는데 어느 여선생님은 이 번 역사 탐방으로 엄청난 보물이 쏟아질 것 같다는 인터뷰를 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의 사물놀이 공연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고

일본 속에서 한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학생들이 진지한 모습이 자랑스럽고 고

맙기까지 했다. 더구나 동작 하나하나가 통일성이 있고 박진감이 넘치며 자신감이 충만한

모습은 더욱 감동 그 자체였다. 다른 선생님들도 나와 동일한 감정을 느꼈는지 힘찬 환호성

과 박수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특히 1년에 한 번씩 인근 일본 초등학교 학생들을 초청

해서 한국의 세시풍속과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이 공연을 보고 감

격을 하여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성시열 교장은 학교까지 무려 2시간 넘게 버

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오는 초등학생도 있다고 했다. 박성길 교사는 모든 수업을 일본어

Page 8: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던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tour.chosun.com/review/201501-jwp.pdf ·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4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 8 -

로 진행하는데 독도문제나 우리나라 역사 수업을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이 있다고 했다.

<금강학원>

금강학원에서 설명을 듣고 귀국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미처 우측 방면에서 오는 차를 발

견하지 못하고 건너다가 큰 화를 당할 뻔 했다. 차량의 운전석도 우리나라와 달리 우측에

있고 우측통행을 하는 일본의 교통문화를 모르고 좌측만 보고 급히 건너려는데 정말 간만의

차이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일본은 웬만하면 차량의 크랙션을 누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당황을 했던지 “빵빵”을 연거푸 눌렀다. 나도 순간 깜빡 놀라서 한 순간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지금도 그 때의 순간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이 번 한민족사 탐방에

서 fp드캡 투어 7호차 배혜원 가이드에게 꼭 감사드리고 싶다.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얼마나 열심히 설명하는지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분

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나도 교직에 대해 그러한 투철한 교육관을 가지고 임해야겠다는 도

전을 받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번 한민족사 탐방은 일본 속 한민족의 문화 흔적을 직접

확인하고 한국인의 진취적인 개척 정신을 재발견하고 향후 역동적인 한 ‧ 일 관계의 주역이

될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

의가 있었다. 그동안 우리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으며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우리역

사를 현장에 돌아가서 올바르게 가르쳐야할 사명도 느꼈다. 마지막으로 현장교사들에게 일

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조선일보와 신한은행 그리고 GS그룹에 진

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