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way 09행정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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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여러분께 드리는 원순씨의 프러포즈 32 09 행정실천 ❶ 신중과 신속 사이 전광석화 또는 즉결처분 희랍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그 사이에 정책은 실종되기 마련입니다. 신중하게 검 토하고 다양한 의견을 거쳐 결정해야 하지만 의사결정은 때로는 신속하고 단 호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반대 여론이 적고, 예산부담이 적 으며, 신속성이 생명인 사안은 더욱 그러합니다. 중장기적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묵히면서 결정해야 하는 사안과 전광석화처럼 빨리 결정해야 하는 사안 을 구별하는 것은 행정가에게는 중요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많고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사안은 조금씩 미루고 많은 이해 관계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결정이 늦다는 여론이 일어날 정도로 푹 삭히 고 묵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리 신속하게 결정했다면 드러나 지 않았을 문제들이 미리 드러나기도 하고 점검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기를 놓치면 의미가 없어지거나 심각한 손해가 일어나는 일 들도 있습니다. 정책 결정은 타이밍의 예술입니다. 그런데 행정은 보통 이 시 기를 놓치기 일쑤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법령의 준수 여부, 선례의 연구, 복잡하고 다단계의 의사결정구조, 안일과 보신의 관 료사회 분위기 등등이 바로 신속한 결정을 막는 요인들이지요. 자신이 확신하면 과감하게 상사를 설득하고 결재가 떨어지면 곧바로 전광석 화처럼 처리해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결재 과정에서 경 험이 많은 상사가 문제를 많이 짚어주기 때문에 처음부터 너무 완벽한 안을 가져가서 결재받기보다는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빨리 결재에 올려보는 것도 그걸 보거나 듣고 돌아오면,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니까 그날 바로 정리를 해 버립니다. 전‘즉결처분주의자’입니다. 글도 생각날 때 그대로 써버리는 거죠. 메모를 많이 하지만 메모도 쌓이면 자기 자신도 다시 보기가 힘듭니다. 뭐든지 보면 그대로 쓰고 정리해 버리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 박원순, 글쓰기의 최소원칙, 룩스문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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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여러분께 드리는 원순씨의 프러포즈 32

09 행정실천

❶ 신중과 신속 사이

전광석화 또는 즉결처분

희랍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그 사이에 정책은 실종되기 마련입니다. 신중하게 검

토하고 다양한 의견을 거쳐 결정해야 하지만 의사결정은 때로는 신속하고 단

호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반대 여론이 적고, 예산부담이 적

으며, 신속성이 생명인 사안은 더욱 그러합니다. 중장기적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묵히면서 결정해야 하는 사안과 전광석화처럼 빨리 결정해야 하는 사안

을 구별하는 것은 행정가에게는 중요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많고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사안은 조금씩 미루고 많은 이해

관계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결정이 늦다는 여론이 일어날 정도로 푹 삭히

고 묵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미리 신속하게 결정했다면 드러나

지 않았을 문제들이 미리 드러나기도 하고 점검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기를 놓치면 의미가 없어지거나 심각한 손해가 일어나는 일

들도 있습니다. 정책 결정은 타이밍의 예술입니다. 그런데 행정은 보통 이 시

기를 놓치기 일쑤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법령의

준수 여부, 선례의 연구, 복잡하고 다단계의 의사결정구조, 안일과 보신의 관

료사회 분위기 등등이 바로 신속한 결정을 막는 요인들이지요.

자신이 확신하면 과감하게 상사를 설득하고 결재가 떨어지면 곧바로 전광석

화처럼 처리해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결재 과정에서 경

험이 많은 상사가 문제를 많이 짚어주기 때문에 처음부터 너무 완벽한 안을

가져가서 결재받기보다는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빨리 결재에 올려보는 것도

그걸 보거나 듣고 돌아오면,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니까

그날 바로 정리를 해 버립니다.

전‘즉결처분주의자’입니다.

글도 생각날 때 그대로 써버리는 거죠.

메모를 많이 하지만 메모도 쌓이면 자기 자신도

다시 보기가 힘듭니다.

뭐든지 보면 그대로 쓰고 정리해 버리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 박원순, 글쓰기의 최소원칙, 룩스문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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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라 봅니다. 저는 결재 과정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의견을 전달하

는 과정이 아니라 상호 협의하고 논의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어느 누군들

완벽하겠습니까?

한때, 동네 양복점이 전성시대를 이뤘던 때가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돈 좀 있는 집은 양복점에 가서 자기 체형에 맞는 옷을 맞춰 입고 멋을

냈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양복점이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기성복 전성시

대가 됐습니다. 거리엔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나기 시작했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패션을 알고, 패션을 누리는 최고 소비자층은 다

시 양복점, 요즘말로 하면 디자이너 부티크를 찾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자기 체형에 맞춰서, 결점은 커버해주고, 장점은 살려주는 디자이너들의 맞춤

옷이 최고의 상품 가치를 가지는 것이죠.

서울시의 행정도 기성복이 아니라 양복점, 디자이너 부티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정책의 수혜자가 되는 사람들의 요구와 현실에 맞는 맞춤형 정책이 추진되어

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이 다양성과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서울시에 있는 노인 복지관을 몇 곳 둘러봤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모두 다 비

슷비슷 합니다. 어르신들 화사하게 느끼시라고 그런 건지 핑크색과 파란색을

많이 쓴 것도 똑같고 사교댄스, 단전호흡 등 교양 프로그램의 내용도 다 비슷

합니다. 지역에 따라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도 다르고, 나이에 따라 원하는 교

육 내용도 다를 듯 싶은데, 그런 다양화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고급 문화와

❷ 행정, 다양하고 유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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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자주 접하고, 소득 수준도 높은 강남의 노인들은 탁구나 수영보다는

골프나 요트 등의 고급 스포츠를 배우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비록 세상에선

‘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났지만, 아직 몸도 마음도 건강한 젊은 노인들은,

단순히 즐기는 게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유연한 행정이 펼쳐져야 합니다. 디자이너 부티크

의 옷이 그 사람의 체형과 취향, 스타일에 딱 맞고 디자이너 부티크의 옷이 시

대의 유행과 아름다움을 대변하듯이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의 수혜 대

상인 시민들을 단순히 수혜자로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정책의 아이디어를 내

고, 입안하고, 집행하는 데 그들을 참여시켜야 합니다.

시민의 위치에서

시민의 눈높이로, 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면, 행정은 당연히 천편일률적일 수가

없습니다.

진정 시민에게 필요한 행정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유연하게 집행되는 행정입

니다.

저는 겉치레와 형식, 외관과 모양내기를 아주 싫어한답니다. 그런 것을 지나

치게 따지다 보면 본질과 내용, 기본을 놓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겉

모양은 그럴듯한데 내용을 뒤집어보면 엉터리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말

합니다. 형식적 숫자놀음이나 실적같은 것을 앞세우지 말라고요. 그리고 상식

과 기본, 합리와 원칙을 바로 세우라고 말이지요.

그런 반면에 저는 카피, 모양, 디자인, 겉페이지, 슬로건, 캐치프레이즈 -

이런 것을 엄청 따진답니다. 왜냐 하면 그 모든 내용을 한마디로 드러내주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니까요. 겉과 속이 가득차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아무리 우리가 고생해서 만든 정책과 땀 흘려 실천한 내용도 때로는 묻

혀있는 보물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카피 한마디와 포스터

한 장으로 맛깔나게 표현해 온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고 칭찬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아무리 흙 속에 파묻혀 있는 보물이라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겠지요.

스스로 잘낫다고 떠드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지요. 그런 기본자세는

❸ 서울 보물, Story-telling으로 빛난다

마지막 1%가 때로는 전체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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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의 시정과 정책은 시민들의 지

지를 받아야 추진력이 생기고, 더 힘들고, 어려운 결정들을 내리고 시민들의

동의와 설득이 가능해지는 것이잖아요.

뿐만 아니라 서울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자원들을 제대로 드러내고 꾸밈으

로써 서울시민은 물론이고 외국의 관광객들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입니다. 지난번에 한강의 교량이나 순환고속도로 등을 방문하여 안전점검도

해 본 적이 있고, 또한 상수도사업본부의 정수장 등을 방문해 보기도 했지요.

이런 시설들이 주 5일 수업제 실시에 따라 우리 청소년들의 놀토 방문과 체험

프로그램 대상지로 아주 훌륭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상당한 견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막상 들여다보면 세부적인 스토리텔

링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설 입구에서부터 나올

때까지 하나하나의 시설에 사연과 의미를 재미있게 설명하는 문구를 붙이고,

재미난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집에 가져가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실

제 생활에 이용할 만한 캐릭터 상품까지 판매하는 간이가게를 만들어둔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렇게 보면 서울시에는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보고 즐기고 감동받을 수

있는 장소, 인물, 건축물, 물건, 조직, 업소 등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일 수도 있고, 재능, 생태, 사연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저는 ‘Attraction

Seoul 1,000’ 이라는 것을 구상해보고 있습니다. 서울의 자랑거리 1천 개,

아니면 서울의 명소 1천 개라고나 할까요?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서울시청 청사도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소재이지요.

시장실에 와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기에는 몇 시간이라도 손님들에게 안내

할 재료들로 그득하답니다.

취임식 때 이미 제가 간단히 소개한 것 들어보셨지요? 기울어진 책장, 대안학

교 아들이 만들어준 그림, 보도블록, 3단계로 진행되는 저의 대머리 현상, 포

스트잇벽 등등.

스토리텔링 - 이제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