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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06.11.10 18:49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1] 크루셜텍…원천기술의 힘, 세계 OTP(광학트랙패드)시장 95% 장악 크루셜텍 안건준 대표가 충남 아산의 공장에서 자 사의 광학트랙패드(OTP)가 들어간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안성식 기자> 이들이 어떻게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 시장 으로 진출하고 있는지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들어보는 기회를 10회의 시리즈를 통해 마 련합니다. 또 이들 기업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수출입은 행 심사역과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통해 알아봤 습니다. ‘이노패스트 15’와 ‘턴어라운드 - 위기 딛고 선 기업들’에 이은 ‘한국 기업을 말하다’의 세번째 시리즈입니다. "회사가 작을 뿐이지 사람이 작은 게 아닙니다." 휴대전화용 입력장치인 광학트랙패드(OTP)를 만드는 크루셜텍의 창업자 안건준(45) 대표의 말이다. 규모는 작지만 목표와 자세만은 중소기 업이 아니라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우린 부품 2010-08-02 ::: 미주 중앙일보ㆍ중앙방송 - The Bi… koreadaily.com/news/…/print.asp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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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Small Company but Great CEOs

기사입력: 06.11.10 18:49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1] 크루셜텍…원천기술의 힘, 세계 OTP(광학트랙패드)시장 95%장악

크루셜텍 안건준 대표가 충남 아산의 공장에서 자 사의 광학트랙패드(OTP)가 들어간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안성식 기자>

이들이 어떻게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 시장

으로 진출하고 있는지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들어보는 기회를 10회의 시리즈를 통해 마

련합니다. 또 이들 기업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수출입은

행 심사역과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통해 알아봤

습니다. ‘이노패스트 15’와 ‘턴어라운드 - 위기

딛고 선 기업들’에 이은 ‘한국 기업을 말하다’의

세번째 시리즈입니다.

"회사가 작을 뿐이지 사람이 작은 게 아닙니다."

휴대전화용 입력장치인 광학트랙패드(OTP)를

만드는 크루셜텍의 창업자 안건준(45) 대표의

말이다. 규모는 작지만 목표와 자세만은 중소기

업이 아니라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우린 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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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이긴 하지만 대기업의 하청업체는 아니

다"고 회사를 소개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주력제품인 OTP는 이 회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

한 것이다. 그것도 광마우스의 원천기술을 가지

고 있는 미국의 HP가 개발하려다 실패한 제품

이다. 안 대표는 이 분야에서 만큼은 크루셜텍

이 시장을 만들어 왔다고 자부한다. 안 대표는

"정밀한 광 나노 기술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산학협력으로 발돋움= 삼성종합기술원에서 나노 기술을 개발하던 그는 2001년 창업을 결

심하고 충남 아산의 호서대에 회사를 차렸다.

이때 산학협력의 덕을 톡톡히 봤다. 서울에서 비슷한 규모의 공장을 세우려면 땅값 등으로 30

억원 이상이 들었겠지만 호서대에선 한 푼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사업 초기엔 휴대전화로 사진촬영을 할 때 빛을 내주는 LED 플래시를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2006년부터는 OTP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상용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상하좌우 버튼을 쓰고 있는 휴

대전화 업체에 마우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OTP를 넣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

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문화를 팔아야 했습니다."

제품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OTP를 채택했을 때 고객이 얼마나 더 편리하게 사

용할 수 있겠는지를 설득해야 했다는 것이다. 마침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면서 휴대전화 화면의

커서를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OTP의 장점이 부각됐다. 2007년 삼성전자에 처음으로 OTP를

납품한 이후 해외의 휴대전화 제조업체에도 이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큰물에서 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애용하는 블랙베리로 유명한 리서치인모션(RIM)에

도 크루셜텍의 OTP가 들어간다.

삼성전자와 LG전자.노키아.모토로라.HTC 등 주요 휴대전화 업체 외에 일본의 샤프에도 전자사

전에 들어가는 OTP를 공급하고 있다.

주로 해외 메이커에 납품하다 보니 지난해 크루셜텍의 수출 비중(삼성.LG의 수출제품에 들어

간 것 포함)은 96%에 달했다.

글로벌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면서 크루셜텍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일본 샤프에 전자사

전용 OTP를 공급할 때였다.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데 정한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불량으

로 취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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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업체 특유의 까다로움이었다. RIM에 납품할 때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기준을 철저히

지켜야 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문업체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통해 회사와 직원들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2007년을 기점으로 회사의 매출액은 급성장했다. 52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이 2009년 622억원

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두 배 이상 불어난 13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 대표가 생각하는 OTP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IPTV(인터넷TV)가 더 많이 보급될 경우 리

모컨에도 커서를 움직일 수 있는 OTP가 채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OTP 분야에서 크루셜텍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95%에 달한다. 대만에도 OTP 메이커가 있

지만 원천기술이 없어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다른 회사들이 뛰어든다고 해도 원천기술은 크루셜텍이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우위

가 있다는 것이다. 크루셜텍이 보유한 특허 등 지적재산권은 235건에 달한다.

◆기술을 파고들다= 회사는 철저하게 광나노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중소기업으로서 경쟁력

을 확보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규직 직원 248명 중 연구인력이 120명에

달한다.

"2003년부터 100억원을 투자받아 연구원의 인건비로만 썼습니다. 지금 남은 것은 제품과 기술

입니다."

안 대표는 또 다른 중소기업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허팀을 뒀다. 직원만 7명이다. 외국의

대형업체들이 특허 공세를 펼 것에 대비해 방어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OTP 원천기술을 채용한 제품이 확산됐을 때 상대방 업체를 상대로 공격적인 특허 소송

을 내기 위한 것이다. 제품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다.

그가 꿈꾸는 크루셜텍의 미래는 광나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입력기기 분야의 히든챔피언이 되

는 것이다. 안 대표는 2008년 『히든챔피언』이란 책을 회사 임직원들에게 선물했다.

지난 3월 수출입은행으로부터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기업으로 선정됐지만 히든챔피언을 향

한 그의 꿈은 이미 2년 전 시작됐던 것이다.

◆철저히 집중하다= "대기업처럼 브랜드를 키우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우리가 다 하겠다고

나서기 보다는 글로벌 기업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겁니다."

안 대표가 말하는 글로벌 메이커와의 협력 이 또한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

이다. 크루셜텍은 OTP의 원재료를 미국의 HP에서 수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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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료를 직접 만들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글로벌 기업과 직접 경쟁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

다. 그보다는 가장 좋은 재료를 받아다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자"고 강조한다. 남이 간 길을 가면 쉽지만 먹을 게 없

다는 것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면 힘들긴 하지만 열매가 너무 달고 크다는 게 그의 지론

이다.

그는 OTP 시장이 다소 늦게 활성화된 것을 빼면 사업을 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고

했다. 안 대표는 "사업 초기에 어려움을 느꼈다면 그 사람은 준비되지 않은 경영자"라고 단언했

다. 그의 회사는 올해 7월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원배 기자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s)= 세계시장 점유율이 1~3위이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매출액 40억 달러 이하의 기업을 가리키는 말.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히든챔피

언'에서 정의했다.

수출입은행은 한국 실정에 맞게 수출이 1억 달러를 넘고 세계시장 지배력을 갖춘 기업을 '한국

형 히든챔피언'으로 정하고 2019년까지 300곳을 육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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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07.30.10 17:20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8] 한농화성

한농화성 김응상 사장(왼쪽 둘째) 등 임직원들이 전북 군산공장에서 생산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군산공장에선 세정제 등에 들어가는 글리콜 에테르 등 화학제품을 생산한다.<오종찬 기자>

한국산 농약 유화제 만들기 위해     128명 직원 중 20명이 R&D 인력

농약 제조업체들이 뭉쳐 설립       IT제품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대기업 진입 힘든 틈새상품 발굴      글라임·모노머 등 속속 생산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경쟁 체급제한이 있는 경기가 아니

다. 무제한 경쟁에서 둘이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기는 어

렵다.

대규모 장치산업인 화학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력과

자금력에서 앞서는 대기업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중소기

업은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그럴 경우 중소기업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대개 두 가지

다. 고도의 기술력으로 진입장벽을 확실히 치든가 아니면

대기업이 하기엔 애매한 틈새시장을 발굴하는 것이다.

정밀화학업체인 한농화성은 후자를 주전략으로 전자를 부전략으로 삼는 기업이다. 이 회사 김

응상(58) 사장은 "우린 대기업이 하기 힘든 틈새 시장을 공략한다"고 말했다. 한농화성은 300여

가지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이 1484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품목이 많은 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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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소량 다품종 생산 전략이다.

주력 제품은 액정디스플레이(LCD)의 세정제 등으로 사용되는 글리콜 에테르. 현재 한국에서

이를 생산하는 업체는 한농화성이 유일하다. 한때 외국산이 한국 시장을 석권했지만 지금은 한

농화성의 점유율이 80%에 달한다. 1991년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군산 공장을 세웠고 95

년 군산 2공장 2005년에 대산 공장을 가동했다. 청출어람이랄까. 일본의 기술을 받아왔지만

2005년 완공한 대산공장의 생산성은 일본을 앞질렀다.

"일본 협력사에서 새 공장을 지을 때 우리 공장을 찾아와서 보고 갔을 정도예요. 그만큼 공정

기술에 강점이 있다는 것이죠."

또 다른 주력 제품은 세척제나 수지첨가제 등으로 사용되는 계면활성제(EOA)다. 세제.제지.섬

유.건설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된다. 한농화성은 일반적인 제품 뿐 아니라 고객

의 요청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품을 개발해 납품하고 있다. 그만큼 회사의 응용제품 개발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한농화성은 이 분야에서 3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한농화성은 1976년 농약에 들어가는 유화제(서로 다른 액체들이 잘 섞이게 하는 것) 개발업체

로 시작했다. 당시 해외에서 수입하던 유화제를 한국산화하기 위해 농약 제조업체들이 뭉쳐 설

립한 것이다. 84년까지 농약용 유화제를 100%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

제품을 계면활성제 쪽으로 넓혀 갔다.

그러나 95년 큰 어려움이 닥쳤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설비를 늘렸지만 판로가 막혀 버렸다. 최

대 고객사가 인수합병(M&A)에 휘말리면서 갑자기 거래처를 바꿨고 외국업체들은 저가 공세를

폈다. 2년 연속 적자가 났고 부채비율은 500% 이상으로 치솟았다. 이때 한농화성을 구해낸 것

은 역설적으로 97년 외환위기였다.

"외환위기 전에는 외국기업과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우리가 제품을 국산화하면 외국업체들이

덤핑을 했죠.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원화가치가 떨어지니 국내 시장에서 수입품이 설 땅

이 없게 됐죠."

원화약세로 경쟁력을 회복하고 흑자로 전환했지만 다시 어려움이 닥쳤다. 99년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지정된 계면활성제 분야에 대기업이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때 한농화성은 신규 투자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대형 화학업체에서 파이프라인으로 직접 원

료를 공급받아 원가를 낮추기로 결정한 것이다. 2001년 부지를 매입하고 당시 회사로선 큰 금

액인 180억원을 투자해 충남 서산에 대산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힘든 결정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과감하게 투자한 게 주효했습니다."

대산공장 건설을 계기로 생산 용량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한농화성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

작했다. 주력 제품은 콘크리트를 빨리 굳게 하는 콘크리트 혼화제 원료였다. 중국 전역에서 사

회간접자본(SOC) 투자 붐이 일면서 대중 수출이 크게 늘어났다. 2006년 76억원에 그쳤던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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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지난해 338억원으로 급증했다. 현재 중국 시장 점유율은 10% 정도다. 매출액도 2006년 803

억원에서 지난해 1484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1800억원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어려울 때 투자하라'는 격언에 따라 회사는 2008년 금융위기의 와중에도 새로운 투자를 했다.

충남 서산의 대죽에 새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늘어나는 콘크리트 혼화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대죽공장은 오는 8월 완공된다. 이 공장도 LG화학과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돼 원료를

직접 공급받는다.

회사는 2015년까지 수출을 지금의 두 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장기적으론 수출과 내수

의 비중을 절반씩 유지한다는 것이 김 사장의 구상이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 사무소를 내

는 것도 추진 중이다. 당장 선진국 시장을 공략하기 어려운 만큼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동

남아 시장에 주력하기로 했다.

중국에는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중국에서 생산되는 기초원료의 품질

이 아직 좋지 않아 시기를 보고 있다. 회사는 중국에 좋은 기초원료를 생산하는 공장이 생긴다

면 현지 진출도 검토할 계획이다.

대기업이 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한다고 해도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한농화성은 현재 128명의 직원 중 20명이 연구개발(R&D) 인력이다. 김 사장의 장기 목표는 첨

단 정밀화학 분야의 제품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가 기대를 거는 제품은 전자산업에 사용되는

용제인 글라임과 LCD 제조에 필요한 기능성 모노머다. 아직 시장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전자

산업 등에 꼭 필요한 화학제품이다. 이것도 국내에선 한농화성만이 생산하고 있다. 정보기술

(IT) 경기가 상승세를 타면서 수요도 계속 늘 전망이다.

"글리콜 에테르 전자제품 세정제 코팅제 항공유 첨가제 등은 세계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

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꾸준히 제품 개발을 하고 공정기술을 개량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도

산업에 꼭 필요한 특정 화학제품 분야에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남을 겁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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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07.23.10 17:39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7] 스틸플라워

김병권 스틸플라워 사장(가운데)과 직원들이 후육강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후육강관은 다른 강판보다 두꺼워 만들기가 훨씬 어렵지만 설립 10년이 안 돼 세계 시장이 주목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10cm 철판 말아 만든 파이프        매출 92%가 수출서 나와

심해유전·송유관 등에 사용        극지유전개발 될수록 수요 급증

한국보다 해외시장 공략 주효        특수관 용접기술 등 개발 나서

후육강관(厚肉鋼管). 일반 강관보다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파이프다. 일반 강관과 후육강관을

가르는 두께 기준은 2㎝. 경우에 따라선 14㎝ 두께의 철판을 써야 할 때도 있다. 이쯤 되면 거의

쇳덩이다. 용처가 따로 있기에 이렇게 단단하게 만드는 거다. 심해 유전을 뚫는 파이프 극지를

가로지르는 송유관 대형 운동장의 기둥 등에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히 철판을 둘둘 말아 만드는 관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철판이 두꺼워질수록 둥글게 말

기도 어렵거니와 원통 안쪽과 바깥쪽의 둘레가 달라 갈라지기 십상이다. 철강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이지만 1990년대까지는 전량 수입해 썼다. 지금도 일반 강관을 만드는 곳은 100곳이 넘지

만 후육강관 생산업체는 10여 개에 불과하다. 이런 고난도 사업에 비교적 늦게 뛰어든 스틸플

라워는 한국보다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회사를 세운 지 8년 만에 이미 세계시장 점유율 3

위를 달성했으니 꿈은 슬슬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시작-순진한 낙관= 꽃과 철.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이 이름은 김병권(47) 사장의

첫 직장인 포스코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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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입사해 스테인리스 사업부에 배치됐는데 그곳 현관에 '스테인리스는 철강의 꽃이다'라

는 표어가 있었습니다. 나도 언젠가 철강의 꽃을 피우겠다고 다짐했죠."

꿈이 이뤄지는 데는 약간의 우연도 필요하다. 외환위기

당시 그는 독립해 조그만 대리점을 차렸다. 포스코에서

마케팅 엔지니어로 있을 때 대우전자를 상대로 하던 영업

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대우그룹이 어려워지자 포스코

도 납품을 중단했지만 그는 '대우그룹은 망해도 대우전자

는 살아남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모험은 보기좋게 성

공했다. 여직원 한 명과 세 평짜리 사무실에서 시작한 대

리점이 2년 만에 연매출 100억원을 달성한 것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후육강관 사업이었다. 당시 후육

강관 업계 1위였던 S사에 우연히 들른 게 계기였다. 현대

중공업 같은 조선사와 플랜트 사업을 하는 건설사들이 물건을 받아가려고 줄을 서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는 "블루오션이 따로 없다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2002년 부산 진영공단에 프레스 설비를 들

이고 공장 문을 열었다. 정문 앞 간판에는 오랫동안 가슴에 묻었던 이름이 내걸렸다. '스틸플라

워'의 싹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장을 짓기만 하면 당장 주문

을 줄 것처럼 말하던 수요처들이 막상 공장을 돌리기 시작하자 싸늘하게 돌아선 것이다. "경험

없는 회사에 물건을 맡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 업계에선 레퍼런스(납품이력)가 필요하고 그게 진입장벽이라는 사실을 공장을 세우고 나서

야 알게 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다. 후육강관을 쓰는 한국 대형 조선.건설

사는 물론이고 해외 수요처의 대리점에도 시제품을 깔았지만 창업 후 1년이 다 되도록 단 한 건

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200억원 넘게 투자한 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할 판이

었다.

◆반전-세계 시장으로= 더 이상 시제품을 만들 돈마저 떨어질 무렵 꿈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카타르에서 주경기장인 칼리파 스타디움을 짓는 데 시제품을 보내보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김 사장은 "시제품이어서 물량은 50t에 불과했지만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서

있던 터라 지극정성을 다해 만들어 보냈다"고 말했다.

정성이 통했을까. 품질에 만족한 카타르 측에서 1500t을 추가 주문했고 이어 올림픽 스타디움

기둥과 지붕에 쓸 강관 1700t의 주문도 왔다. 이게 실적으로 잡히면서 영업은 탄력이 붙기 시작

했다. 기사회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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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후육강관 업체의 역할은 임가공에 불과했다. 일단 대형 조선사나 플랜트 시공사의

납품업체로 등록만 되면 물량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원자재인 철판도 알아서 공급해 줬다.

사실 김 사장도 그걸 믿고 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 발을 못 붙인 스틸플라워는 세계시장을 직접 공략해야 했다. 그게 스틸플

라워의 경쟁력을 키워줬다. 후육강관을 쓰는 석유 메이저나 엔지니어링 회사를 직접 접촉하면

서 현장의 요구사항을 알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디고 수천m 심해에서 시추공을 뚫기 위해선 특수 재질의 파이프가 필요

하다. 스틸플라워는 앉아서 주문을 기다리지 않고 극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특수강관을 먼저

개발해 수요처에 제시했다. 김 사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업체인 포스코가 곁에 있어 공동

연구를 한 결과"라고 공을 돌렸다.

결국 엑손모빌.BP.셰브론 등 모든 석유 메이저들을 고객으로 확보했고 시장점유율은 단숨에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코스닥 상장도 성공리에 마쳤다.

◆도약-팽창하는 시장= 2005년 510억원에 불과하던 스틸플라워의 매출은 지난해 1689억원으

로 뛰었다. 이 중 92%가 수출에서 나왔다. 앞으로도 한동안 이런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김 사

장은 자신한다.

"유가가 오르면서 전에는 경제성이 없던 유전까지 개발하는 추세입니다. 심해나 극지의 유전이

개발될수록 더 고급 품종의 후육강관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지요."

그에 맞춰 기술개발도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겉은 탄소강이고 안쪽은 비탄소강인 특수관을

만들 수 있는 용접 기술에도 도전하고 있다. 이런 관은 t당 2만 달러가 넘지만 현재 세계시장 1

위인 독일의 EEW만 생산기술을 갖고 있다.

국책과제로 진행 중인 3차원 곡면 성형기술도 회사의 비 병기다. 대형 선박 앞부분의 굴곡면

이나 운동장 지붕에 얹는 유선형 구조물은 현재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를 기계화하는 기

술을 확보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최현철 기자

2010-08-02 ::: 미주 중앙일보ㆍ중앙방송 - The 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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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07.16.10 17:52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6] DSR제강

세계 100여 곳에 수출하고 있는 DSR제강은 2015년 매출 목표를 지난해의 4배 이상인 1조원으로 잡았다. 내년부터 특수 와이어로프인 극태물로프의 생산에 기대를 걸고 있는 까닭이다. 전남 순천의 DSR제강 2공장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한국 저가제품 경쟁 치열해        특수 섬유 로프 한국화 성공 등

세계시장 진출로 성장한계 극복      고객 맞춤 '다품종 생산력' 갖춰

시장 다변화로 안정적 수익        저가시장 지키며 고가시장 진입

"세계시장에서 1등이 돼야만 회사 규모를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세계 챔피언이 된다는 것 DSR제강 홍하종(48) 대표에겐 무리한 욕심이 아니었다. 회사를 키우

기 위해 세워둔 '합리적'인 목표다.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는 이 회사의 수출국은 100여 곳 매출액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이른다. 미국의 비중이 35% 유럽이 20% 정도다. 한국 2위 업체지만 북미 시장에서

는 1위다. 미국에는 매달 1500~2000t(250만 달러)의 제품을 수출한다. 수출 비중이 큰 데다 시

장을 다변화한 덕에 세계 금융위기 속에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환율 효과도 봤다. 지난해가 그랬다. 생산능력 대비 60%만 가동해 매출은 줄었지만 오히려 이

익이 났다.

와이어로프는 조선이나 어업 유전개발 부두 크레인 등에 사용되는 산업자재다. '밀고 당기고

지지해 주는' 작업이라면 어디에서나 사용한다. 항구에 정박한 배를 묶어 놓을 때나 컨테이너

터미널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에도 쓰인다. 섬유로프와 STS 로프를 생산하는 자회사 DSR은 합

성로프 부문의 세계 1위다.

지금은 와이어로프 생산에서 한국의 비중이 가장 크지만 DSR제강이 이 업종에 뛰어든 1971년

(당시는 천기제강)에는 유럽과 미국이 주요 생산국이었다. 이후 일본과 한국으로 생산기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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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2: Small Company but Great CEOs

이동하며 80년대 들어서 세계 시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저가제품 위주로 물량 공세에 치중했다.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졌다. 레드오션에선 희

망이 보이지 않았다. 홍 대표는 "기존 시장에 머물러서는 성장이 한계에 직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00년대 이후 와이어쇼 등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와이어로프와 섬유로프는 '보수적'인 상품이다. 가격이 조금 싸다고 납품 업체를 쉽게 바꾸진

않는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물체의 이동이나 지지 등에 사용되는 제품에

서 비롯한 특성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역시 기술력이다. DSR제강은 차근차근 기술력을 쌓아갔다. 97년에는

국내 최초로 로프 길이를 측정하는 장치(마크 로프)를 개발해 특허를 따냈다. 98년에는 기술연

구소를 세웠다. 세계 각국의 선급협회 공장 승인도 확보했다. 선급협회는 선박검사와 선박 관

련 제품 품질 인증 등을 담당하는 단체다. 나라마다 요구 사항이 조금씩 달라 이를 충족시키는

데도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자회사인 DSR은 2000년 초강력 특수섬유로 제작한 특수 섬유 로프인 수퍼맥스의 한국산화에

성공했다. 수퍼 섬유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DSM사의 아시아 독점 공급권을 확보하면서다. 수퍼

맥스는 똑같은 굵기의 와이어로프와 강도는 동일하지만 무게는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무

게가 가벼워 다루기 쉬운 까닭에 운반하거나 설치할 때 산업재해를 줄일 수도 있다.

문제는 역시 보수성이었다. 잘 만들었다고 잘 팔리는 제품이 아니었다. 한국산화에 성공한 뒤

미국과 유럽 제품을 주로 사용하던 한국내 조선소와 해운사를 찾아가 설명도 하고 갖가지 시연

도 해 봤다. 하지만 제품 알리기도 만만치 않았다. 고가의 기존 시장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는 바람을 타고 왔다. 2003년 태풍 '매미'가 거제도 조선소를 강타했을 때였다. 대

우조선해양에서 액화천연가스(LNG)선 1척이 좌초하고 3척이 표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반

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기록된 '매미'가 남해안을 뒤흔들었지만 몇 척의 배는

안전했다. 기존의 와이어로프 대신 DSR의 수퍼맥스로 묶어둔 배였다.

최민환 재무이사는 "다른 와이어로프로 묶어둔 배들은 떨어져 나갔지만 수퍼맥스로 정박시킨

배는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며 "제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DSR제강은 타워크레인 로프 분야에서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 파나마 운하 터미

널이 2005년 납품 등록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와이어로프 내구성

테스트에서 6개 회사 중 마지막까지 남은 2개에 포함된 것이다. 중국의 주요 컨테이너 터미널

도 품질을 인정했다. 중국 터미널의 인증을 받은 업체는 전 세계 5개에 불과하다.

홍 대표는 "상하이와 선전.칭다오 등 주요 항구에서 주로 우리 제품을 쓰고 있다"며 "터미널 협

회의 평가에서 2003년과 2004년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기술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다품종 생산력'이다. 같은 로프라도 조선이나 운송 원유개발 등

용처가 다양해 고객의 요구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는 D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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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강과 섬유로프 및 STS 로프를 생산하는 DSR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가격대별로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는 전략도 진행 중이다. 2006년 설립한 중국 칭다오 공장은

저가 상품 생산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 순천.광양 공장에서는 타워크레인용 와이어로프와 수퍼맥스 등 특수 고가제품을 생산한

다. 홍 대표는 "한국에서 저가제품까지 생산할 때는 원가를 맞추느라 허덕였지만 중국.한국으

로 생산을 이원화하면서 수익구조가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원화 전략은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한 것이다. 홍 대표는 저가시장과 고가시장을 모두 선점해

규모와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유명한 로프 제조업체가 저가 제품을 기피해 규모를 줄이며 고가 제품에 주력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회사 규모가 줄면서 사세도 약해지더군요. 기존에 우위를 점했던

저가 시장을 지키면서 고가 제품 시장을 치고 들어가는 전략으로 합성로프 외에 다른 분야에서

도 세계 1위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세계 1위 말처럼 쉽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조직원들 사이의 공감대 형성이라고 그는 강조했

다. "직원 한두 명의 수준만 높아져서는 발전이 없고 혼자 해봐야 무너진다"고 했다. 비전을 공

유하고 전략을 투명하게 공개해 전체적인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매달 초 월례조회에

서 회사 전략 등을 설명하고 알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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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on J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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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공단의 상신브레이크 생산라인에서 김효일(왼쪽) 사장이 자동차 브레이크 마찰재(패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기사입력: 07.09.10 17:15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5] 상신브레이크

35년간 보수적 경영으로 성장 느렸지만 재무 탄탄…금융위기도 무사히 넘겨

고마진 해외시장 공략 성공…중국에 생산설비 수출까지, 신기술 '풍력 브레이크' 개발

공장 내부를 안내하던 직원이 2층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

렸다. 문을 열자 갖가지 원료들이 담겨 있는 커다란 통

과 자루들이 눈에 띄었다.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생산 현장과는 달리 늘 22도가 유지돼 서늘한 기운이 뿜

어져 나왔다. 흡사 와인 저장고 같은 분위기다.

이 공장의 생산품인 브레이크 마찰재(패드)의 원료가 배

합되는 곳이다. 동행한 수출입은행 담당자는 "공장에 자

주 들렀지만 이곳은 처음 와 본다"고 말했다. 이곳은 상

신브레이크의 자부심이 응축돼 있는 곳이다.

실제 어떤 원료를 얼마의 비율로 섞는지는 '며느리에게

도 안 가르쳐 주는' 1급 비밀이다. 현장 직원은 "배합 비

율이 1%만 차이가 나도 제품의 제동 능력과 수명과 소

음 등 품질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상신브레이크

는 독자 기술로 만든 원료로 제품을 생산하는 비중이 높

다. 그렇다 보니 기술료(로열티)로 나가는 돈이 적고 제

품의 원가 경쟁력에서 타 업체들에 앞선다. 이 기술로

자사 브랜드를 붙인 고급 제품도 내놓고 있다. 한국 시

장 점유율 1위의 저력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브레이크 '한 우물' 35년= 브레이크 제품을 만드는

회사여서일까. 이 회사의 성장사는 '질주'와는 다소 거

리가 있다. 1975년 정도철(76) 회장이 창립해 35년간 브

레이크 '한 우물'을 파왔다. 현대자동차의 초기 모델이

었던 포니에도 상신브레이크의 제품이 들어갔다. 지난

해 기준으로 한국 브레이크 마찰재 시장 점유율은 44%다.

하지만 그 연륜을 감안하면 기업의 외형이 크거나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정 회장의 아

들인 정성한 부사장이 창업한 듀오가 오히려 일반인들에는 낯익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창

업 이후 차량은 빠르게 늘었지만 브레이크 제품의 수요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품질 향상이

가져온 역설이다. 브레이크 제품의 내구성이 높아지면서 그만큼 자주 갈아야 할 필요가 없어

졌다.

2010-08-02 ::: 미주 중앙일보ㆍ중앙방송 - The 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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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5: Small Company but Great CEOs

상신브레이크를 비롯한 '빅3'가 장악한 한국 시장도 거의 포화상태다. 무엇보다 외형 성장을

가로막은 건 보수적인 경영이다. 비슷한 연륜을 가진 업체들이 이런저런 제품으로 상품 구성

을 확대하고 사업 다각화로 외형을 키워갈 때 이 회사는 브레이크 하나에 승부를 걸었다. 산

도브레이크.산도테크. 상신이엔지(제조용 기계) 등 계열사들도 모두 브레이크 관련 기업이다.

◆위기 넘기니 기회가= 차가 잘 달리려면 우선 잘 멈

춰야 하는 법이다. 유명 수퍼카를 만드는 회사들이 엔진

뿐 아니라 브레이크 성능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

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과욕을 부리다간 멈춰야 할 곳

에서 제대로 멈추지 못해 파국을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그런 면에서 상신브레이크는 잘 멈췄다. 여환열

상무(CFO)는 "보수적 경영으로 성장이 느렸던 측면은

있었지만 재무구조가 안정돼 금융위기를 비교적 큰 어

려움 없이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채비율이 동종 업계는 200%에 달하지만 우리는

80%대"라며 "외환 파생상품 등도 최소한으로 활용하고

그것도 제때 처분해 거의 손실이 없었다"고 말했다. 매출처를 다각화해 놓은 것도 위기를 순

탄히 넘기는 데 도움이 됐다.

자동차 회사에 납품해 신차에 장착하는 물량이 대부분인 다른 회사와는 달리 이 회사는 자체

브랜드 상품을 비롯해 교체용으로 시판하는 제품의 매출 비중이 41%에 달한다. 김효일 사장

은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물량을 줄이면서 지난해 초에는 일부 휴업까지 했지만 그나마 우리

는 매출처가 분산돼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했다"고 말했다. 올 들어 터진 '도요타 리콜 사태'도

상신에는 득이 됐다. 안전과 직결되는 브레이크와 같은 부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이다.

한국 자동차 업체들의 해외 생산을 늘리며 부품도 현지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브레이

크 부품만은 가급적 한국 업체 제품을 쓰려 한다는 것이다.

◆"이젠 달릴 때"= 이 회사도 고민이 있다. 매출은 매년 꾸준히 늘지만 이익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지난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3.5%로 전년의 4.4%에서 오히려 줄었다. 한국 차

업계의 '원가 절감' 요구에 많이 팔아도 정작 남는 게 그리 많지 않다.

김 사장은 "결국 승부는 해외에서 봐야 한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2006년 해외사

업부를 독립시키고 조직도 키웠다. 때마침 2002년 설립한 중국 법인도 지난해 이후 안정 궤도

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덕이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자동차 업체 뿐 아니라 중국 토종 자동차 업체들도 품질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한국

업체 제품을 찾고 있다. 김 사장은 "현지 생산품의 40%가 중국 업체들에 공급되고 있는데 곧

한국 업체 공급 물량을 추월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찰재 원료 제조 기술에 이어 생산 설비 수출도 시작했다. 김 사장은 "중국 업체 사장이 자동

화된 우리 생산라인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사겠다고 나서더라"면서 "설비 수출은 이익 폭이

기존 제품보다 커 앞으로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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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신성장 동력' 찾기에서도 '한 우물 경영'이라는 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산학

협동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는 풍력 발전기용 브레이크가 대표적이다. 박세종 기획실장은 "풍

력이 미래의 에너지로 부각되고 있는 데다 풍력기용 브레이크는 단가가 3000만~4000만원에

달해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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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07.02.10 18:49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4] 나노신소재

충북 청원 부용공단의 나노신소재의 연구원들은 지분 1% 안팎을 가진 회사의 ‘주인’이다. 주인의식이 발동된 것일까. 밤새워 연구해 전 세계 경쟁업체보다 한발 앞서 기술을 개발한 경우가 많다. 사진은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제자들에 일자리 만들어 주자"        터치스크린·유리코팅 용액 등

교수가 기술력 바탕으로 창업         원천기술 응용 제품들 급성장

브랜드 이미지 낮아 한때 시련        전체 매출 90%가 수철서 나와

교수는 대학원 제자들의 처진 어깨가 안쓰러워 보였다. 외환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99년. 제자들은 석사 과정을 마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교수가 백방으로

힘을 써봤지만 허사였다. 마침내 교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한테도 기술이 있지 않은가. 회사를 세워 제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자."

나노신소재 2000년 2월 그렇게 세워진 기업이다. 충북 청

원 부용공단에 자리를 잡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LCD.태

양전지.터치스크린 등의 원료인 나노 물질을 만들어 미국

3M 등 세계 유수기업에 공급하는 회사가 됐다. 제품의

90%를 수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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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8: Small Company but Great CEOs

지금도 사장은 '그때 그 교수'가 겸하고 있다. 한밭대 박

장우(응용화학과) 교수다. 사업은 당시 대학원 석사과정

을 갓 마친 제자 3명과 함께 교내 창업보육센터 안에서 시

작했다. 브라운관 TV나 모니터 표면에 뿌리는 '전자파 차

폐액'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전자파를 막아주는 눈에 보

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물질(나노 물질)이 든 용액

이었다.

당시는 일본 업체만 차폐액을 만들었다. 한국 전자업체들이 차폐액을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썼

음은 물론이다. 이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는 제품이란 사실 박 교수가 한밭대에 오기 전 기업

연구소에 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나노 물질이 든 '분산액'의 가격이 L당 150달러. 하지

만 원료비는 1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일본산의 반 값에 팔아도 떼돈을 벌 수 있지 않습니까. 개발만 하면 '대박'이라는 생각에 이걸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던 겁니다."

기술에는 웬만큼 자신이 있었다. 이미 견본 제품을 만들 정도의 기술은 학교 실험실에서 개발

했고 양산 기술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학교 안의 실험기기를 사용할 수 있었고 학교가 이전하

면서 옛 부지 안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한 터라 큰돈도 들지 않았다.

창업 1년 만에 양산에 성공했다. 제품을 갖고 한국 브라운관 모니터 제조업체를 찾아갔다. 반응

이 쌀쌀했다. 제품의 품질이 아니라 제조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먼저 따졌던 것이다.

"성능 시험도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벤처 제품을 어떻게 믿느냐는 투였

죠."

그저 연구만 해오던 아마추어 기업가로서 잘 만들면 팔릴 줄로만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고 박

사장은 회고했다. 다행히 세계 3위 브라운관 모니터 제조업체인 대만의 중화영관에 판로가 트

였다.

"견본을 보냈는데 시험해보니 성능이 일본 제품 못지않다는 거였습니다. 그쪽은 우리가 갓 만

든 벤처인 줄 모르고 시험을 했던 것 같아요."

또 다른 고객도 생겼다. 일본의 경쟁업체였다. 자신들에게 제품 원료 물질을 대달라고 했다. 한

국의 브라운관 업체를 놓고 출혈 경쟁을 하지 말고 나노신소재가 만든 원료 물질을 자신들이

괜찮은 값에 사서 가공해 완제품으로 팔면 누이 놓고 매부 좋지 않느냐는 설명이었다. 알고 보

니 한국 브라운관 회사들이 "한국에도 당신네 경쟁업체가 생겼다. 거기는 싸게 주겠다는데 당

신들도 값을 내려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일본 회사와 계약했다. 생산량을 늘려야 해 공장을 증설했다. 연구원과 생산 인력도 더 뽑았다.

다른 신제품도 개발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표면을 곱게 갈아주는 나노 물질 유리에 덧씌우면

자외선과 열을 차단해주는 나노 물질(TRB페이스트) 등이었다. 제품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나노

물질을 골고루 뿌려주는 '나노 분산 기술'이란 큰 줄기에서 곁가지를 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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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던 때 난관이 닥쳤다. 2002년 한국 경쟁업체가 생겨 제일 큰 고객

이던 중화영관을 놓고 가격 경쟁이 벌어졌다. 공장 증설까지 했는데 판매량은 줄고 수익성도

급격히 나빠졌다. 임원은 급여의 50% 직원은 15%를 깎고도 모자라 2003년에는 박 사장의 집을

잡혀 대출까지 받았다.

2003년은 마침 교수로서 안식년이기도 했다. 강의 부담이 없어진 박 사장은 미국으로 가 3M.듀

폰 등의 연구 책임자를 만났다.

"어차피 한국에서 판매가 안 되니 아예 세계로 눈길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기술은

자신 있었으니까요. 연락처가 나와 있는 고객서비스 센터부터 접촉했죠. 끈질기게 연구.기술

담당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해서는 제품과 기술을 설명했습니다."

그게 먹혔다. 3M이 그때 유리 코팅 물질인 TRB페이스트의 고객이 됐다. 다른 고객사도 많이 확

보했다. 그 덕에 지금도 전체 매출의 60%를 미국에서 올리고 있다.

2003년 가을 박 사장은 귀국해 한국수출입은행을 찾았다. 3M 등에 수출을 하기 위해 당장 필요

한 원료 구매 대금 등을 빌리려는 것이었다. 심사를 맡았던 당시 대전지점 이현정 차장은 그때

를 이렇게 말했다.

"몹시 뜨거운 전등을 켜놓고 TRB페이스트가 열을 차단하는 실험을 해 보여 주더군요. 얇은 막

인데도 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건 되겠다 싶었죠."

자금이 지원되고 본격적인 수출이 시작됐다. 터치스크린용 원료 나노 물질 등을 계속 개발해

제품도 다양화했다. 2003년 15억원이던 매출은 이듬해 51억원 지난해엔 2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52억원. 영업이익률이 25%를 넘는 알짜배기 장사다. 박 사장은 "1달러 원료

로 150달러짜리 제품을 만들던 예전의 전자파 차폐액과 비슷한 기술이라 이익률이 높다"고 설

명했다.

한국 대기업들도 이젠 나노신소재의 기술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는 은나노 물질을 이용해 아주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기술을 한국 굴지의 대기업과 공동 개발하고 있다. 터치스크린과 태양전

지 등에 쓰일 기술이다.

박 사장은 "운이 좋아서인지 갖고 있는 원천기술을 응용한 제품들이 스마트폰이나 태양광 발전

처럼 요즘 쭉쭉 뻗어나가는 사업에 활용되고 있다"며 "올해 매출은 지난해의 두 배인 405억원

이 목표"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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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0: Small Company but Great CEOs

김강희 회장(맨 오른쪽)이 직원들과 함께 신제품 개발에관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동화엔텍의 다음 목표는 육·해·공을 아우르는 글로벌 열교환기 전문업체로 도약하는 것이다. <송봉근 기자>

기사입력: 06.25.10 18:58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3] 동화엔텍

일본서 어깨너머로 기술 배워…이젠 미쓰비시 등에

납품

'조수기' 한국화 성공…세계 시장 점유율 3위 차지

"그땐 일본이 하늘 같았는데 이젠 선박용 열교환기에선

우리를 따라올 데가 없어요."

동화엔텍 김강희(76) 회장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그때'란 동화정기란 이름으로 부산 영

도에 직원 3명의 회사를 세웠던 1980년을 말한다. 당시

김 회장은 별도로 '종합해사'라는 작은 선박 수리회사를

동업으로 꾸려 가고 있었다.

열교환기 수출을 위해 한국에 드나들던 일본 기업인에

게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열교환기

는 선박 엔진의 열을 차갑게 식혀 주는 장치다.

배가 운항하는 데 꼭 필요한 부품이지만 기술이 없어 국

내에서는 만들지 못했다. 조선사는 100% 일본 제품을

수입할 수 밖에 없었다.

김 회장은 당시만 해도 몹시 가능성이 작았던 이 분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엔지니어를 3개월 동안 일본

에 연수 보냈다. 지금의 박갑순 동화엔텍 사장과 다른

직원이 가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혔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설계 같은 핵심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돌아온 엔지니어들이 종합해사 옆 허름한 창고

에서 열교환기를 만들었다. 당연히 성공할 리 없었다. 1

년여 동안 수없이 실패를 반복했다.

"도저히 안 되는 건가 낙담도 많이 했죠. 하지만 한길을

파니 결국 성공하더라고요."

운도 따랐다. 마침 82년 6월 쌍용중공업이 국산 선박 엔진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한국산 열교

환기가 필요했다. 동화엔텍 열교환기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시운전도 성공이었다. 김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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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 기대에 부풀었다. 바로 당시 한국 1위 조선사 현대중공업의 문을 두드렸다. 시운전도 문

제없었으니 이제 수주가 봇물처럼 터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돌아온 건 퇴짜였다.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한 외국 선주들이 한국 중소기업의 기술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

다. 그렇게 주저앉나 싶었다. 지극한 정성은 통하는 법이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퇴짜를 놨던 현대중공업이 다시 동화엔텍을 찾았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우린 배의

껍질만 만들고 알맹이는 다 유럽이나 일본 거다. 내가 책임질 테니 국산 부품을 쓰라"는 지시

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84년 현대중공업 선박에 동화엔텍이 만든 열교환기가 처음 들어갔다. 성능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대우.삼성중공업 등 다른 국내 조선사에도 자동으로 길이 열렸다.

"정주영 회장이 모험을 걸었던 거죠. 84~85년이 조선 불황이었는데 현대중공업 덕분에 명맥

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동화엔텍은 현재 미쓰비시.미쓰이.히타치 등 주요 일본 조선업체에도 열교환기를 납품한다.

눈칫밥 먹어 가며 기술을 배웠던 기업이 이제는 기술을 가르쳐 준 일본 기업을 압도하고 있

다. 창고에서 시작한 회사는 이제 녹산공단에 번듯하게 자리 잡았다.

동화엔텍은 열교환기에 이어 93년 조수기 한국화에 성공하며 시장을 키웠다. 조수기는 바닷

물을 담수로 바꿔 주는 부품으로 큰 배엔 없어선 안 되는 장치다.

현대중공업과의 기술 협력으로 개발한 조수기는 이제 세계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이은 한국화 성공에 한국 조선업이 빠르게 커 가면서 동화엔텍도 덩치를 키웠다. 95년 수출

1000만 달러 탑을 받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회사에는 시련이 더 필요했나 보다. 성장을 위한 시련 말이다. 바로 97년 외환위기의

충격이다. 800원대였던 달러당 원화 값이 폭락하며 회사가 휘청했다. 미리 수주는 받아 놨는

데 원자재 값이 배로 뛴 탓이다. 납품 주문을 했던 한라중공업이 부도 처리되면서 위기감이

커졌다.

이때 회사를 살리겠다며 나선 게 노조였다. 자진해 월급을 10%씩 반납하기로 결의하고 야간

작업에 나섰다. 다행히 회사는 1년여 만에 정상화됐다.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 월급 반납분만

큼 회사 주식을 나눠 줬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직원들의 헌신적 노력을 모른 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화엔텍 지분

16.3%가 직원들에게 돌아간 이유다. 이렇게 차곡차곡 노사 간 신뢰를 쌓아 간 덕분에 동화엔

텍에선 한 번도 분규가 없었다.

"88년 처음 노조가 생겼을 땐 무작정 화가 났는데 생각해 보면 직원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

었던 거예요. 이젠 '가족사랑위원회'로 이름을 바꾼 노조 덕에 든든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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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엔텍은 선박 엔진용 열교환기(공기냉각기)에선 세계 1위(점유율 27%)다. GEA(독일)나

베스타스(덴마크) 같은 유럽의 큰 기업보다 앞선다. 한국 업체가 든든한 후원자가 돼 준 덕도

컸다. 하지만 기술 전파가 워낙 빠른 분야여서 한국 조선업체만 믿고 방심할 순 없다. 김 회장

은 "남들이 따라올 수 없도록 끊임없이 페달을 밟고 있다"고 말했다. 이 페달이 바로 연구개발

이다. 2007년 4400㎡ 규모의 독립 연구개발센터를 지었다. 열교환기 성능 실험을 위해 고가의

실험장비를 갖췄고 석.박사급 연구 전담인력 11명이 일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때부터 집무실을 본사에서 연구개발센터로 아예 옮겼다. 그의 사무실 벽엔 연구

개발 스케줄 표가 여러 장 붙어 있다.

당장 돈이 되는 기술은 아니지만 연구소에서 개발이 착착 진행되는 걸 확인하는 게 김 회장의

낙이다. 이 연구개발센터에서 선박용 MGO(마린가스오일) 냉각기 같은 특허 상품들이 탄생했

다.

지금은 조선산업의 불황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산업 전체가 불황에 빠졌다.

수주 취소로 동화엔텍도 어려웠다. 한 번도 뒷걸음친 적 없었던 매출이 지난해 12%나 줄었다.

그래도 김 회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활기차다.

"이것도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우리가 너무 조선산업에 치우쳐 있던 게 문제였는

데 이제 다른 쪽을 찾아야죠."

김 회장은 인재 욕심이 많다. 중소기업이어서 인재를 구하기 어렵기는 동화엔텍도 마찬가지

다.

그래서 김 회장이 직접 다리품을 팔고 다닌다. 대학 특강도 열심히 한다. 김 회장이 "부산 대

학가에서 나 모르면 촌놈"이라고 말할 정도다. 대기업만 보는 대학생들이 동화엔텍 같은 중소

기업으로 눈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돈 많이 버는 회사보다는 직원들이 나중에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

드는 게 목표예요. 그러려면 작지만 탄탄한 강소기업으로 회사를 키워 내야죠."

그래서 김 회장 집무실 문에는 '회장실'이 아닌 '인재 육성의 방'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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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06.18.10 17:22

[세계를 지배하는 작은 기업-2] 이녹스

일감이 밀려들면서 이녹스의 공장은 요즘 24시간 가동된다. 장경호 사장(왼쪽)이 방진 작업복을 입고 작업장에서 직원들과 첨단 소재 생산 방법을논의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한솥밥 먹던 연구팀 8명이 집 팔고 전세금 빼서 창업

2년간 매출 한 푼도 못 올려…컬러폰 보급으로 기회 잡아

친환경 소재 개발로 재도약…한국시장 점유율 50% 넘어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갔습니다."

2001년 초. 당시 새한기술연구소 장경호 연구원

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식을 들었다. 불

길한 소문이 돌긴 했지만 설마 했었다. 의욕적

으로 뛰어들었던 반도체 접착테이프의 개발이

거의 완료 단계였다.

"그래도 회사는 살 수 있을 거야 기술도 우수하

기 때문에 걱정 없어…."

그는 회사의 워크아웃 발표를 접한 뒤에도 긴가민가했다. 반도체 접착테이프란 반도체 리드프

레임을 칩에 고정하는 소재다. 당시만 해도 이 작은 테이프를 한국 기업은 만들 줄 몰랐다. 모

두 일본에서 수입했다. 연구진은 한국산화를 위해 밥 먹듯 밤샘을 하며 연구에 매달렸다. 고생

끝에 거의 과실을 따 먹으려던 순간이었다. 이미 기계까지 발주한 상태였다. 그래서 회사가 포

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회사는 더 이상 투자를 할 수 없다고

연구진에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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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캄캄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장 연구원과 같은 연구팀의 장철규 연구원 기획관리팀 박정진 과장 필름영업팀 김신성 과장 등

8명이 모였다. 회사에서는 내로라하는 인재들이었지만 추진하던 사업을 접자 좌절이 컸다. 난

상토론이 벌어졌다. 회사에 남을 것인가 뛰쳐나갈 것인가. 각자 진로에 대해 고민을 털어놨다.

그리고 결론을 냈다. "나가서 도전하자"고.

한국 소재 분야의 신기원을 개척한 '8총사'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퇴직금을 다 쏟아부었지

만 창업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대표를 맡은 장경호 사장은 아파트를 팔았다. 재무를 담당한

박정진 상무도 집을 내놨다. 다른 이들도 전세금을 뺐다. 이렇게 모은 6억원으로 2001년 11월

회사를 설립했다. 이녹스의 탄생이다(창립 당시엔 새한마이크로닉스였다가 2005년 상호를 바

꿨다).

경기도 안성 동항산업단지에 땅 800평을 샀다. 여기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연구실 겸 공장이

다. 가까운 오산엔 아파트를 한 채 빌렸다. 8명이 모두 합숙에 들어갔다.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이녹스도 다른 초창기 벤처기업과 다를 바 없었다. 연구에 매달리고 여기저기 거래처를 뚫는

데 주력했지만 2003년까지 매출은 한 푼도 생기지 않았다. 반도체 접착테이프 기술을 개발했지

만 무명회사의 제품을 쓰겠다는 곳은 없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를 찾아 갔지만 문전

박대가 일쑤였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걱정이 커졌다.

"이러다 꿈이 허망하게 날아가는 게 아닐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 했나. 그해 컬러 휴대전화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기회

가 왔다. 컬러 휴대전화기에는 연성회로기판(FPCB)이 2장 들어간다. 종전의 흑백 휴대전화기

를 만들 때보다 두 배가 더 필요했다. 반도체 접착테이프 기술을 활용하면 FPCB 접착시트를 쉽

게 개발할 수 있었다. 회로를 PCB에 붙여 주는 기술이다. 사업 방향을 돌렸다. 이 시장도 일본

산이 독점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소재 공급이 여의치 않자 PCB 제조업체들이 이녹스의 제품에

도 관심을 가졌다.

"기술력은 자신 있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저희 제품의 성능을 시험해 본 뒤 바로 납품을 요구했

습니다."

이때부터 순풍에 돛 단 듯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됐다. 최종 수요자인 휴대전화 생산업체도 이

녹스 제품의 성능에 만족을 표시했다. 2006년에 상장을 했다. 드디어 '꿈은 이뤄진다'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강철은 쉽게 단련되는 게 아니다. 기쁨은 잠시였다. 이 시장이 커지면서

대기업들이 속속 뛰어들었다. 한화.SKC.두산.코오롱에다 대만 기업도 한국에 진출했다. 시장

을 장악하던 일본 기업의 위세는 여전했다. 춘추전국시대로 돌아갔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2008년까지 소재 값이 무려 70%나 떨어졌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고생을 해서 이제 자리 좀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강한 기업은 위기 때 실력이 나타나는 법이다. 이녹스가 그랬다. 다시 대열을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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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이 환경보호를 중시하면서 브롬(Br)을 사용한 제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브롬은 인체

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쇄회로기판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성분이다. 이녹스의

연구진이 다시 한번 일을 냈다. 브롬을 뺀 친환경 소재를 개발한 것이다. 더구나 가격을 30%나

낮출 수 있었다.

장 사장은 "성능은 좋으면서 가격도 싼 제품을 내놓으면서 업계에서 챔피언 소리를 듣게 됐

다"고 말했다.

2008년 하반기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오면서 이녹스도 고전했지만 오히려 이게 약이 됐다. 친환

경 제품을 앞세워 일본의 경쟁사를 어낼 수 있었다. 이녹스는 드디어 한국 시장 점유율 50%

의 강자가 됐다. 지난해에는 수출입은행의 무역금융을 받아 수출에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물량

이 많지는 않지만 샤프.소니.히타치 같은 일본 기업에도 수출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창업 때부터 목표였던 반도체용 접착테이프 시장에서도 히트작을 내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이미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7%까지 늘렸다.

올해 말에 충남 아산에 총 3만3000㎡ 규모의 신규 공장을 준공한다. 창업 동지 8총사는 지금까

지 한 명도 회사를 떠나지 않고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를 반도체용 접착테이프 시장에

서도 챔피언이 되는 원년으로 삼고 새로운 도전에 들어갔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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