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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vita Bible Class by Somang Presbyterian Church SBC by SPC III I. 2018 년년 년년 년년 (Curriculum) 년년 년년 년년 1 월 24 월(4 th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1): 월 월월월 월 1:1-11 1 월 31 월(5 th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2): 월월 월월월 월 5:12-26 2 년 7 년(1 st ) 년년년 년년년 년년 년년(3): 년년년 년년 년 8:1-8 2 월 21 월(3 rd )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4): 월월월 월월 월 10:17-33 3 월 7 월(1 st ) 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 월 13:1-12 3 월 21 월(3 rd ) 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 15:1-11 * 3 월 28 월(4 th ) 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월 월 18:1-11 4 월 4 월(1 st ) 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 21:1-16 II. 2 년 7 년 년년 년년 1. 월월 월 월월월 월월 (월월월 420 월) 2. 월월 3. 월월 월월 (월월 / 월월월 월월, 월 1:8 & 월 5:19~20) 4. 월월 월월 [월월월 월월월 월월 월월(3): 월월월 월월, 월 8:1-8] 5. 월월 월 월월 (월월 / 월월월 월월, 월 3:7~9) 6. 월월월월 월월 7. 월월월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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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vita Bible Class by Somang Presbyterian Church

SBC by SPC IIII. 2018 년도 교과 과정 (Curriculum)

일시 제목 성경

1 월 24 일(4th)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1): 땅 끝까지 행 1:1-111 월 31 일(5th)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2): 박해 속에서 행 5:12-262 월 7 일(1st)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3): 장벽을 넘어 행 8:1-82 월 21 일(3rd)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4): 편견을 깨고 행 10:17-333 월 7 일(1st) 성령, 선교의 문을 열다 행 13:1-12

3 월 21 일(3rd) 소통, 선교의 장벽을 허물다 행 15:1-11* 3 월 28 일(4th) 동역, 선교의 장을 넓히다 행 18:1-11

4 월 4 일(1st) 사명, 선교의 가치를 말하다 행 21:1-16

II. 2 월 7 일 모임 순서

1. 찬양 너 성결키 위해 (찬송가 420 장)

2. 기도

3. 과제 점검 (예습 / 암기한 말씀, 행 1:8 & 행 5:19~20)

4. 성경 공부 [세상이 가두지 못한 복음(3): 장벽을 넘어, 행 8:1-8]

5. 다음 중 과제 (예습 / 암기할 말씀, 빌 3:7~9)

6. 기도제목 나눔

7.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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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과 복습]

1. 사도행전 중심 구절 (사도행전 1:8)

“오직 _________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_________을 받고 _________과 온 유대와

_________와 _________ 끝까지 이르러 내 _________이 되리라 하시니라”

2. 지난 주 암송 구절 (사도행전 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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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_________가 밤에 _________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_________에 서서 이

생명의 _________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3. 사도행전 기록 목적

This book is for every Christian who wants to experience the p_________ of the H_________ S_________ and be a w_________ for Jesus Christ “to the e_________ of the e_________” (1:8). Ask G_________ what part He wants you to play in taking the g_________ to the whole world, starting right where you are. “Lord, what do You want me to do?” (9:6) - Warren W. Wiersbe, 『With the

Word』, 1991, 705.

[이번 과 학습]

행 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 (Phoenicia)와 구브로 (Cyprus)와 안디옥 (Antioch)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men from Cyprus and Cyrene)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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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F. Bruce, 『Paul: Apostle of the Free Spirit (바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84~86.

교회를 핍박하는 자, 바울

스스로 고백하듯이 율법과 조상들의 유전에 대한 철저한 광신자였던 바울은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려는” 어떠한 움직임에도 강하게 반발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가말리엘은 인내와 관용을 가지라고 충고하겠지만, 바울이 보기에는 그런 식의 타협적인 조처를 취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심각했다. 스데반이 사도들보다 더 분명하게 사태의 추이를 볼 수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바울은 가말리엘보다 더 분명하게 사태의 추이를 볼 수 있었다. 스데반과 바울 모두의 눈에는 새 질서와 옛 질서는 양립할 수 없었다. 스데반이 “새 것이 왔다. 그러므로 옛 것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바울은 “옛 것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새 것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비타협적인 엄격한 태도로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바울은 한 가지 있을 법한 조건 아래서는 모세가 전하여 준 규례가 변경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했을 것이다. 바울은 메시아가 오셔서 규례들을 고치시고 율법을 폐기하실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오래된, 아마도 바울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기 구분법이 있었다. 그들은 세계사를 각각 이천 년의 기간을 가진 세 시기로 구분했다. – 혼돈의 시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계시를 주신 사건을 기점으로 한) 율법의 시대, 메시아 시대. 이 세 시기가 다 지나가면 영원한 안식(Sabbath rest)이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시기 구분법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라면, 율법은 메시아 시대가 동터 오기까지만 지속되는 한시적인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바울이 이 시기 구분법을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았다면, 그는 메시아가 오셔서 새로운 질서로 율법을 대처하시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주장하듯이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메시아라는 것은 바울에게 재고의 가치도 없는 엉터리 같은 주장이었다. 예수의 사회적 지위, 경력, 가르침은 바울이 생각하고 있던 메시아의 사회적 지위, 경력, 가르침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바울이 확정적인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바울에게 확실한 것은 단지 이것이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십자가에 못박힌 메시아라는 것은 말 자체가 모순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마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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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었다든가 사법상의 실수라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논쟁이었다. 핵심은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따라서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는 신명기 21:23 에 선포된 말씀에 해당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이 말씀은 범죄로 인하여 처형된 죄인의 시체를 나무로 만든 교수대에 해질녘까지만 매달아 놓도록 하는 규정이었는데, 해석하는 과정에서 살아서 나무에 달린 사람의 경우까지도 포함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고 추론하는 것은 정당했다. 실제로 정의에 의하면 메시아는 하나님의 축복을 한량없이 받는 분이었는데 반해 – “여호와의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 11:2) – 십자가에 매어 달린 자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부어진 것이 분명했다. 십자가에 못박힌 메시아라는 것은 모순되는 말 정도인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말을 입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신성모독이었다.

나중에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힌 메시아를 전하는 것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스칸달론’)” (고전 1:23)을 전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신명기 21:23 을 인용하면서 진정 메시아인 분이 왜 “율법의 저주” (갈 3:13) 아래서 죽어야 했는가를 성경을 토대로 드러내 보여야 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메시아라는 말을 공공연히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그가 취할 태도는 분명했다. 그들은 신성모독죄를 범했고, 따라서 그에 걸맞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들의 말이 맞다는 증거로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셨고, 그들에게 보이셨다는 사실을 제시했다는 것은 바울의 관심 밖이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이거나 스스로 속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들이 제시하는 어떤 논거도 다른 측면 즉, 십자가에 못박힌 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일 수 없다는 반박할 수 없는 논거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전 2: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빌 3:7~9>“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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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onsider everything a loss compared to the surpassing greatness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John Stott, 『The Message of Galatians: Only one way (갈라디아서 강해)』, IVP, 2007, 98~10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갈 3:13). 이것은 놀라운 말이다. 블런트(Blunt) 감독이 말하듯, “여기에 나온 단어는 놀라운, 거의 충격적인 말이다. 우리는 감히 그런 말을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바울은 한 마디 한 마디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이 나오는 전후 문맥에서 보면, 이 말은 단 한 가지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10 절과 13 절에 나오는 ‘저주’는 분명 같은 저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신 “율법의 저주”는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해 우리에게 임한 그 저주가 분명하다(10 절). 그리고 그 분 자신이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우리를 그 저주에서 구속하셨다. 그 저주는 우리에게서 그분에게로 옮겨졌다. 그분은 우리를 그 저주에서 구해 주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스스로 그 저주를 지셨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무시무시한 유기의 부르짖음(the awful cry of dereliction)을 외치신 것은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신”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십자가에 대해 방금 말한 것을 성경적으로 확증한다. 그는 신명기 21:23 을 인용한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3b 절). 모세 율법 아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 – 보통 돌로 쳐서 – 당한 모든 죄인은, 그런 다음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상징으로 말뚝에 고정되거나 ‘나무에 달렸다.’ 콜(Cole) 박사는 그 인용문이 “그 사람이 달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이 이스라엘에서는 이렇게 저주를 받은 사람을 외적으로 표시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로마인들이 나무에 달리지 않고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해도 별 차이가 없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나무에 달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나무에 달린’ 것으로 묘사된다(예를 들어, 행 5:30; 벧전 2:24).

유대인들이 처음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분인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아 다스리시는 대신 나무에 달리실 수가 있단 말인가? 그들은 도저히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마, 스티븐 닐(Stephen Neill) 감독이 제안하듯,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했을 때, 유대인들은 때로 ‘예수는 저주를 받았다!’라고 되받아 외쳤을 것이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12:3 에 언급된 무서운 외침이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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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그분이 담당하신 저주가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을 때까지는 그들에게 계속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위해 죽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속받았다는 의미인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13 절이 14 절 없이 읽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셨는데,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받으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야 한다.

우리는 수천 년 전에 돌아가셨고, 수백만 km 떨어진 곳에 사시는 멀리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그리스도, 죽었다가 다시 사셨으며 이제 우리의 동시대인이 되신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개인적으로 생명력 있게 그분께 연합하여, ‘그분 안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셨고, 우리가 그 저주로부터 구속받기 위해 ‘그분 안에’ 있어야 한다면, 어떻게 우리는 그분과 연합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믿음으로’다. 바울은 이미 하박국을 인용한 바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11 절). 이제 그가 그 말을 한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14 절).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붙잡는다. 거기엔 아무 공로도 없다. 그것은 또 하나의 ‘행위’가 아니다. 믿음의 가치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대상인 그리스도 예수에 있다. 루터가 말하듯이, “믿음은 귀한 보석인 그리스도 예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붙잡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이다. 믿음은 그분을 먹고 산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높이 올리우셨다. 믿음은 거기 계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Faith is laying hold of Jesus Christ personally. There is no merit in it. It is not another ‘work’. Its value is not in itself, but entirely in its object, Jesus Christ. As Luther put it, ‘faith... apprehendeth nothing else but that precious jewel Christ Jesus.’ Christ is the Bread of life; faith feeds upon Him. Christ was lifted up on the cross; faith gazes at Him there.)

John Stott, 『The Message of Acts: To the ends of the earth(사도행전 강해)』, IVP, 1992, 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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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로서는 빌립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이 얼마나 담대한 것이었는가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대감은 천 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전 10 세기에 열 지파가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아 이탈해 버리고 오직 두 지파만 계속 예루살렘에 충성을 바쳤던 왕국 분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감정은 주전 722 년 앗수르에 점령당하여, 수많은 주민들이 추방당하고 이방인들이 그 땅에 들어와 살게 되었을 때 점점 더 악화되었다. 주전 6 세기에 유대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성전 재건에 사마리아인들의 도움을 거부했다 그러나 주전 4 세기에 이르러 사마리아 분파가 그리심 산에 유대인에 맞서 성전을 세우고 모세 오경을 제외한 구약 성경을 거부하자 그 분파는 비로소 완전히 굳어지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인종과 종교 양면에서 잡종이라고, 즉 이교도이며 또한 분파주의자라고 멸시했다. 요한은 ‘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상종하지 않았다’ (요 4:9)는 간략한 진술을 함으로서 이러한 상황을 잘 요약해 주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호의는 누가복음에 이미 명백하게 나와 있다. 이제 사도행전 8 장에서 누가는 분명 사마리아인들의 복음화와 그들이 메시아적 공동체에 합류한 것으로 인해 흥분하고 있다.

<요 4:19~26>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히 10:8~10, 쉬운성경>이 말씀에서 그리스도는 먼저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번제와 속죄제도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이 명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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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들입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려고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제도를 세우시려고 첫 번째 제사 제도를 폐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몸을 드리신 제사를 통해 거룩함을 입었습니다.“First he said, 'Sacrifices and offerings, burnt offerings and sin offerings you did not desire, nor were you pleased with them' (although the law required them to be made). / Then he said, 'Here I am, I have come to do your will.' He sets aside the first to establish the second. / And by that will, we have been made holy through the sacrifice of the body of Jesus Christ once for all.”

Raymond Brown, 『The Message of Hebrews: Christ above all (히브리서 강해)』, 2000, 222.

구약 시대의 율법의 기능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죄의 죄 됨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대속죄일은 인간이 정결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매년 기억나게 하는 것이었다. 율법과 제사는 죄를 드러냈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죄를 얼마나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인지를 보여 주었다. 새 언약 아래서 그리스도께서 한 번 드리신 제사도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죄인인지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제사는 죄의 성격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죄를 옮겨 버리는 효력을 발휘한다.

도덕적인 기준이 급속히 떨어지고 윤리적인 가치가 계속 냉혹한 비판을 받고 있는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구원의 광대함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경건의 시간에 우리의 눈을 갈보리로 돌리고, 빈 무덤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의 죄가 그분을 갈보리로 끌고 갔으며, 그분은 거기서 나로 인해 정죄 당하셨다. 그분의 죽음으로 나는 정결케 되었을 뿐 아니라 성별케 되었다. 나는 오늘 하루의 기회가 주어진 동안, 그분을 섬기기 위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의 복된 삶을 위해 구별되었다.”

Rick Warren, 『Purpose Driven Life (목적이 이끄는 삶)』, 디모데, 1998, 136~137.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이 때의 영은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영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몸에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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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하고 있는 영이고, 하나님은 그 영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에 우리의 영이 반응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네 마음(heart)과 영혼(soul)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예배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셨다. 바른 말을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찬양은 찬양이 아니다. 그것은 가치 없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를 보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R. C. Sproul, 『Practical Christianity (기독교 교양)』, 규장, 2007, 283.

예배를 빈약하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은 예배에 합당한 태도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예배에 합당한 태도를 가지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을 어떻게 제대로 예배하겠는가? 하나님에 대하여 피상적으로 아는 사람은 피상적인 예배밖에 드리지 못할 것이다.

<행 8:26~39>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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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37. (없음)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John Stott, 『The Message of Acts: To the ends of the earth(사도행전 강해)』, IVP, 1992, 244~246.

누가는 빌립의 복음 전도에 기울인 노력에 대한 두 가지 예를 우리에게 한데 모아서 보여 주었으며, 그 둘을 비교해 보고 대조해 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유사점은 명백하다. 두 경우 모두 빌립은 똑 같은 개척자 정신을 보여 처음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최초로 아프리카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다. 두 청중 모두에게 똑 같은 메시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었는데(12, 35 절), 그것은 오직 한 복음만이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두 상황에서 모두 똑 같은 반응이 나왔다. 듣는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12, 36~38 절). 그리고 두 경우 모두 똑 같은 결과, 즉 기쁨이 기록되어 있다(8, 39 절)

차이점 역시 두드러진다. 빌립이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인종과 사회적 계층과 종교 면에서 서로 달랐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 인종으로서 반은 유대인이고 반은 이방인이었으며 아시아 사람(Asiatic)이었다. 한편 에디오피아인은 비록 태생으로나 혹은 개종함에 의해서나 유대인이긴 했지만 (though probably a Jew by birth or a proselyte), 아프리카 흑인이었다. 사회 계층 면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아마도 평민들이었음에 반해 에디오피아인은 왕실에 고용된 고위 공무원이었다. 그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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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는 숭배했지만 예언자들은 거부했다. 최근 들어, 그들은 마술사 시몬과 그의 마술적 능력에 홀려 있었다. 그들은 빌립의 말을 듣기 전에 시몬의 말을 들었다. 다른 한편, 에디오피아인은 아마도 회심자로서 유대교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고, 그로 인해 예루살렘 순례 여행길에 올랐으며 또 사마리아 사람들이 거부한 바로 그 예언서들 중 하나를 읽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불안정하고 속아 넘어가기 쉬운 사람들이었던데 반해, 그 에디오피아 사람은 신중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인종적 혈통, 사회적 신분, 그리고 그들이 이미 갖고 있던 종교적 성향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그들 모두에게 똑 같은 예수의 복음을 전했다.

다음으로 빌립이 사용한 방법들을 생각해 보자.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그의 선교는 ‘대중 선교’에 대한 초기 표본이었다. 왜냐하면, ‘무리’가 그의 메시지를 들었고, 그가 일으킨 기적을 보았으며, 그의 말에 한마음으로 귀를 기울였고, 믿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6, 12 절). 그러나 빌립과 에디오피아인의 대화는 ‘개인 전도’에 있어 눈에 띄는 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 곁에 앉아 성경을 놓고 개인적으로 끈기 있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복음 전도자가 두 가지 방법, 즉 공적 선포와 개인적 증거를 사용할 만큼 충분히 융통성을 발휘했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빌립은 그의 방법을 바꿀 수는 있었지만, 그의 기본적인 메시지를 바꾸지는 않았다. 빌립이 교회에 남겨 준 영속적인 유산은 변화(상황과 방법에 관한)와 불변함(복음 자체에 대한)을 이같이 결합한 것과 그것들을 구분한 능력이다. It is this combination of change (in relation to contexts and methods) and changelessness (in relation to the gospel itself), together with the ability to discern between them, which is one of Philip’s abiding legacies to the church.

[행 8:1-8]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And Saul was there, giving approval to his death. On that day a great persecution broke out against the church at

Jerusalem, and all except the apostles were scattered throughout Judea and

Samaria.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Godly men buried Stephen and mourned deeply for him.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But Saul began to destroy th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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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from house to house, he dragged off men and womenand put them in prison.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Those who had been scattered preached the word wherever they

went.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Philip went down to a city in Samaria and proclaimed the Christ there.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When the crowds heard Philip and saw the miraculous signs he did, they all paid close attention to what he said.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With shrieks, evil spirits came out of many, and many paralytics and cripples were healed.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So there was great joy in that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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