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소식지 23호(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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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쟁없는세상소식지 23호(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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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에디토리얼년의 우리들 2009 1

CO note 병역거부자 활동수기오멜라스와 이사야 2꽃을 놓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여기 섭니다 4병역을 거부하며... 6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결심하며 9병역거부이유서 11

Focus 시선집중평화활동가대회 병역거부자 어떻게 할 것인+ 가 공청회 행복한 책읽기 국가는 폭력이( ) + 『다 평화수감자의 날 + 』

14

Experience 참가후기그들만의 잔치를 구경하다 17

Special 기획기사1전쟁없는세상의 한 해 간단정리2008 20

역사교과서 도덕교과서 다음엔 국어교과서를 , , 영어로?? 24이길준 농성장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27새로운 유형의 병역거부 그들을 만날 때, ... 32

Book review 서평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을 읽고‘ ’ 35믿음을 잃지 않고 물을 준다면, 39다시 떠올리는 병역거부 소견서 44

꽃섬고개 친구들 을 읽었습니다『 』 46

Series 기획연재채식 속으로 고고 다른 존재의 고통을 딛! ! - 고 선 삶을 돌아보며

48책 속에서 서울을 걷다 길상사에서 행복이 - , 아니라도 괜찮아 52두둥 평화교육 다음호에 시작됩니다! ~ 54

Essay 평화에세이내가 런던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 56

Report 재정보고후원해주셔서 감사해요~ 62

World WITHOUTWARNewsletter No.23 CONTENTS

▶▶ Special년 못다한 이야기 2008 .. 20

▶▶ Book review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꽃섬고개 친구들 .. 35

편집팀

용석

표지 편집 재정정리 기획기사 기획, , , , 연재 시선집중 섭외, , 여옥기획기사 참가후기 기획연재, , 현지 기획연재 기획기사 , 고동기획기사 서평, 조은 섭외

인쇄기획 한울타리| 서울동대문구 제기 동 130-062 2 137-69

TEL : 924-9641,2 FAX : 927-5104

발행처 전쟁없는세상: 발행일 년 월 일: 2009 1 31제 호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호 : 23연락처 : 02-6401-0514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 475-51

호 우 301 ( ) 121-826http://withoutwar.org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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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떠올리지 않으면 이제는 기억도 잘 안나는 저 철문을 나오던 날 나에게는 없는셈 치자 다짐. 했던 년이 저물어 가던 시절 년은 상상하기는 너무 벅차고 설레었다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이2007 . 2008 . 나 구상도 없이 성큼 다가왔던 년이 이렇게 빨리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 줄은 몰랐다 요새 들2008 . 어 인간이 간직할 수 있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거를 추억하는 일이 좀 부질없게 느껴지지만 누구에게나 년에 아직 다 못다 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2008 .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이야기들도 있었을 것이고 격한 감정을 추스르느라 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있을 테고 그 당시에는 차마 할 수 없던 이야기들이 담아두면 병될까봐 꺼내고 , 싶은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년의 정리를 해보고자 하였다 어느 언론의 기사처럼 불. 2008 . 남대문 화재 로 시작해서 불용산에서의 참사 로 끝난 이명박 정권 하의 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 ) ( ) 1

만 그 많은 사연들을 정리할 능력도 없거니와 이미 다른 많은 곳에서 그런 내용의 글들은 찾아볼 수 있, 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서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이 년 차마 못했던 이제는 말할 수 있2008 , 는 그리고 꼭 하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아내보고자 했다 살짝 민감한 주제들이기도 해서 글을 , . 쓸 때 자체검열을 피해갈 수 없었고 때문에 잘못 읽으면 오해하거나 이해가 안가는 이야기들 일 수도 있, 겠다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혹시나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듣고 싶으신 분들은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 언. 제라도 찾아오시면 진한 이야기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번 소식지에서 한 번 쉬었던 기획연재가 다시 부활했다 독특한 감성을 뽐내던 조은이 소재의 . 고갈로 빠지고 오현지가 새로운 필진으로 이번호부터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년에 출판 되었던 . 2008병역거부와 깊은 연관이 있는 두 책 꽃섬 고개 친구들 과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의 서평을 실을 , 『 』 『 』수 있어서 참 기쁘다 다시 한 번 글을 써주신 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년의 우리들에게는 또 어떤 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요새 즐겨듣는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가2009 . 사처럼 이룰 수 없는 꿈만 꾸던 년의 우리들로 년을 기억하게 될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2009 ’ 2009 ` , .

Editorial

년의 우리들 2009 용석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tego @ 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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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장면들로 가득한 아임 낫 데어 의 한 장면 닉슨의 베트남전쟁 종결 선언이 티비로 중계되< > . 고 이제는 더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독백이 깔린다 어제 정오뉴스에서 이스라엘의 휴전선포 소식을 , . 보면서 어쩐지 그 장면이 떠올랐다 연말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뒤이어 전해지는 그곳에, . , 서의 학살 소식들을 접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적잖이 무력감을 느끼고괴로워하는 요즈음이었다 그 , . 잔혹극이 어떻게든 멈춘건 다행이지만 그 불안하게 떨리는 결을 보면 마냥 좋아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인, 듯 하다 자리에 누웠는데 어쩐지 가스밸브를 열어놓은 느낌이랄까. , .

오늘 신문과 티비를 통해 그에 관련된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그 느낌은 한층 더해갔다군인들은 환호. 하며 신나게 개선인지 철수인지를 하고 있었고폐허 위에 멍하니 앉은 민간인들 치료받으며 소리지르는 , , 아이들이 있었다.

감상을 잠시 밀어두고 생각해보자 이번 공격으로 지금까지 적어도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1,300 , 그 중 분의 정도가 어린이이다 다친 사람이 천명 이상 부서진 집이 만채가 넘고 만명 가까이 되는 3 1 . 5 , 2 3사람들이 피난민이 되었다 군인들은 난민학교에 박격포를 쏘고 구호품을 태우고 병원과 의료진을 공격. , , 하고 사람들을 한 건물에 몰아넣은 뒤 포격하고 세 시간동안의 공격중단 시간에 먹을거리를 구하러 나선 , , 사람들을 총으로 쏘았다 이게 그냥 숫자이고 통계이고 텍스트일 수 있을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 ? 시체와 잔해와 울부짖음이 보일 것이다 그걸 그렇고 그런 비극의 한 장면일 뿐일 수 있을까. ?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대한 자위권을 이야기한다혹자는 곧 있을 이스라엘 .

총선을 이야기한다 어떻든 전쟁의 참화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

어슐러 르귄은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을 통해 어떤 이상향을 제시한다 지금 여기와 비교할 < > . 수 없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지내는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공동체 오멜라스 그 곳 사람들은 특정 나이, , . 가 되면 그곳을 지탱하고 유지되게 하는 하나의 비밀을 확인한다 그건 어느 더러운 지하실에서 한 아이. 가 온갖 학대와 고통 속에 버려져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잊으려 노력한다. .

오멜라스와 이사야이길준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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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나의 희생으로 유토피아가 유지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중에는 소수나마 그 곳을 .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폭력과 희생에 의해 유지되는 시스템이란 불완전하고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타인의 피를 흘리게 하고 그 위에 선 세계에선 피비린내가 나고 어딘가 균열이 있고 또 다른 , , 분노가 폐허를 품고 자라고 있게 마련이다 이 . 굴레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건 이 굴레는 만든 , 사람들 자신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딛고선 지하실을 인정하고 그 안의 아이를 구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 .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공개하고 사과하기를 바란다 또 앞으로 폭력적인 방법을 택하기도 거부하기를 바, , . 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스스로 떳떳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얘기가 가해자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듯 싶다 사람들은 도시락과 망원경을 싸들고 폭력을 구. 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런 시선이 어디 그곳에만 있을까 운좋게 그런 험악한 이웃. . 이랑 같이 지내지 않고 멀리 떨어져있다고 마냥 편한 마음일 수 있을까 방관은 동조다 희생을 묵인하고 . . 그에 바탕한 세계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면서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인이 병역거부자가. , , 성소수자가 장애인이 아니라고 눈을 감다보면 다음 차례는 우리가 아닐까특별한 감성이 필요한 것도 아, . 니다 다소 나른한 기분으로 이 글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도 한 곳에선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파괴되고 .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요새 읽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의 주인공 스밀라는 자신이 아는 한 아이 이사야의 죽음에 대해 < > , 남들과 다른 것을 보고 그 설명에 납득하지 못해 이런저런 난관 속에 수사를 진행하고 북극으로 향한다, .

지금 우리의 오멜라스는 어디에 있고 더러운 지하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우리의 이사야, . 는 어디서 무얼하며 기다리고 있을까.

2009. 1. 19. 안양교도소에서 이길준.

길준씨가 편지에 손수 그려 보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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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접견에서 처음 얘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싶었죠 이런 일 일 줄은 몰랐습니다. . . 오늘 신문으로 자세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머리가 무거워졌습니다 그저께 티비에서 용산 철거민들의 농. . 성 소식을 볼 때만 해도 솔직히 무심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다음날 일이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도 . 못했죠.

우선 몇 달 전 담당 검사와의 조사가 생각나더군요 그분은 집시법 위반에 대한 물리력 사용의 정당성. 을 역설하면서 법과 국가권력과 간접민주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그걸 의문시하고 따. 르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가 올 것이란 얘기였죠 뭐 상대방. , 이 그러는 한 저도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 저와 다르다는 이유로 깎아내릴 생각은 없지만 공권력의 불길, 이 사람들을 집어삼킨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이 자신의 말을 믿었다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싶습니다, . 저는 여기서 법은 우릴 지켜주어요 하는 노래를 듣는 게 일과지만 이게 꼭 그렇지 않다는 걸 혹은 그 ' ~' , , '

우리라는 게 생각과 조금 다르다는 걸 모두들 알지 싶습니다' .이번 일을 두고도 그 법치라는 말이 만리장성 밑에 사람을 묻던 그 시절처럼 끊임없이 옹알대고 있는' '

데 우선 그 사람들이 왜 골리앗에 올라 화염병을 들 수밖에 없었나를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성격파, ? 탄자라서 도심에서 테러를 일으키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을까요 평생 그 자리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안' ' ? 전과 행복을 보장하는 법의 테두리에서 빠져나와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테두리는 애초에 .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절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고 겨울에 강제철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깨고. , , 하루 만에 위험물질이 가득한 곳에 경찰력을 대거 투입하는 게 그토록 강조하던 법과 원칙이라면적극적, 으로 지키지 않으렵니다.

그들에게 무기를 들게 하고 사지로 내몬 건 바로 그 법과 원칙의 수호자들입니다 전철연이 예행연습. 을 했는지 화염병이 물대포를 맞고 떨어졌는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위협, . 받자 가느다란 줄 위에 올라섰습니다 지지받지 못하더라도 내려와 봐야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세계에선 . ,

꽃을 놓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여기 섭니다이길준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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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곳이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법과 원칙은 그런 그들을 흔들어 떨어뜨립니다 확인사살입니다 호흡기를 . . . 뗀 거죠.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못했을 겁. 니다 존중과 배려에 바탕한 대화와 소통은 인간 사회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기본적인 방법입니. 다 그런데 이게 없으니 사람들이 답답할 수밖에요 법과 원칙의 강조가 이젠 투정으로만 들립니다 대화. . . 같은 거 이해도 안가고 그저 모두 같은 뜻으로 오직 한 가지만 보고 일사분란하게 달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럼 전국민에게 로보트 시술을 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삽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봅시다 우린 개미도 아니. . 고 벌도 아니에요.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지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게 최소한 존재할 수 있게끔 하는 기본요, 건을 얘기하는 겁니다최소한 상대방을 인정하고 가야죠 인정될 수 있을 만큼의 자유로 보장되어야 하고. . 요 상대방의 생각을 박멸하고 정화할 박테리아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랑 공존이 될까요 뭐 공존할 생각. . , 이 없는 듯도 보이지만.

얼마전 그리스 시위를 보면서 이곳에도 저런 일이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내몰리고만 .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자 이제 우린 거리로 나가 화염병을 던지고 바리케이트를 쳐야할 때. , 가 온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죽음이라는 사실의 무게에 휩쓸리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분? , . 명한 목소리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냉정하고 신나게 분노를 드러내야죠 우리는 춤을 출겁니다 침묵을 부, . . 수고 폭력을 씻고 사람들 사이로 진동하며 세상을 뒤덮을 춤을 하지만 흥분해서 스텝이 엇갈려 넘어지, , , 면 안되겠죠.

여전히 답답한 마음입니다 그저 꽃을 놓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여기 섭니다. .

2009. 1. 21.안양교도소에서 이길준.

이길준전경복무 중 휴가를 나와서 양심선언 기자회견 후 농성 2008.7.25

성동구치소 이감 2008.8.14 년 월 일 심에서 년형 선고2009 1 23 2 2

현재 안양교도소에 수감중 상고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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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월 일 저의 나이 세입니다 년의 인생 중에 바로 지금 전 가장 두렵고 떨리는 그2008 11 11 , 28 . 28 , , 리고 가장 서글픈 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년 전 감리교신학대학을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 . 6 , .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평등과 평화를 말씀하시곤 자신의 종교적 양심과 정치적 신념에 의해 십자가에 일신이 못 박히셨습니다 언제나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셨으며 종교 권력자나 정치 권력자들에. , 게 항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모습 속에서 제가 평생을 아픔 속에서 몸서리치며 고민했던 것이 바. 로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논리 속에서 제가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또한 어떠한 종교적 이념을 넘어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이 땅의 권력 지향적 모순과 이 사회가 . , 만들어 놓은 권위주의적인 논리를 타파하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해방의 길을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라는 것 그것은 분명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가진 자들의 , . 논리 속에 그에 반대 되는 갖지 못한 자들의 집단 장애인이 그렇고 여성이 그렇고 성소수자가 그렇고 ... 빈민이 그렇고 노동자가 그렇고 농민이 그렇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권력 앞에서 죽어갈 .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제 자신이 바로 사회적 약자이며 저는 가진 자들의 논리에 저항하는 활동. , 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하려고 합니다.

저는 현재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장애인의 문제의 핵심은 군대가 병역의 의. 무를 부과하는 신체 건강한 남성의 정상성 규정과 일맥상통합니다 바로 신체 건강한 이라는 획‘ ’ . ‘ ’ 일적인 기준 획일적인 사고가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장애인 즉 비장애인 , . , , 중심의 사회 안에서 배제 된 사람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끊임없이 기준을 정해 정상과 비정상을 . , 나누고 그 기준에 맞추어 사람을 획일적으로 양성할 뿐입니다제가 활동하는 장애인 단체는 민들레장애인. 야학입니다 장애인 단체들 중에서도 최중증장애인들이 대부분인 곳입니다 이 사회가 이야기하는 신체적 . .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비장애인들과 , . , 마찬가지로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잘 하는 것도 있고 못 하는 것도 있는 또한 갖갖이 꿈을 갖고 , , ,

병역을 거부하며... 권순욱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불구속으로 재판진행 중 +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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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모두 무시당하고 이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 , 낙인 찍혀 시설과 골방에 버려진 채 삶에서 배제되어 살아왔습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기준을 만들어 그 . 기준에 맞게 사람을 만들어 내고 그 기준에 미달된 사람은 배제하고 사회에서 낙오 시킵니다 이렇게 정, . 상적이며 획일화된 남성 문화를 권위주의적이며 전체주의적으로 주입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군대라는 조직입니다.

군대는 바로 국가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전쟁이라는 것으로 약자를 비참. 히 짓밟고 그것으로 잡은 권력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기 위한 도구 그것을 위해 수많은 남성들을 권위주... 의적이며 전체주의적 사고를 주입해 양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군대 문화입니다 년 전 평택 대추. 3 , 리에서 보았던 군인들 집회를 나갈 때 보는 전의경들 그들은 이미 어떠한 이성적 사리판단도 전혀 할 수 , , 없는 상태의 권위주의적인 질서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로 보였으며 그것이 얼마나 군대의 문화가 권위주, 의적이며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양성하고 폭력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이 .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지를 군대문화라는 것이 그것을 받아드리는 사람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군대라는 조직은 인간을 획일화 시키고 권위주의적인 계급 문화를 경험하게 . 합니다또한 조직 내 계급 질서와 전쟁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개성은 인. , . 정 되지 않으며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를 주입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이러한 선택에 많은 이들은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논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 , 묻고 싶습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벗어난다면 군대를 없애는 데 동의할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 국가는 통일이 되던 안 되던 군대를 계속해서 유지하려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특수한 상황. 이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계속해서 특권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대다수의 힘없는 국민들. 의 희생으로 군대를 유지시키려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년 전 대학에 입학하고 아버지께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 년 전 바로 이곳 용산역6 . 50 , , 저의 할아버지께서 미군이 던진 폭탄에 맞아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버지는 여 년 동안 그 . 20아픔을 숨기고 철저히 권위주의적인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체제에 순응하고 이 사회가 . 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말입니다 아픔이 그대로 후대에 남아 저의 아버지는 평생을 고통 속에 . 살아가셨고 그것을 다시 저에게 되 물림 해주셨던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아픔은 끝나야 합니다 군대는 . . 사라져야합니다.

이것이 제가 군대를 갈 수 없으며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비록 저의 가는 이 길이 다른 , . 사람들에게 어리석다 판단되어질지라도 저는 갈 것입니다저는 이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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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로 제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자신의 가슴이 허락하는 대로 자신의 심장이 가리키는 . , 대로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가려합니다 저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제 스스로 몸부림쳐 . . 느끼기 위해 말입니다 진정한 저를 뼈저리게 느끼고 가슴 깊이 알아가기 위해 말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 . 리에서 원하는 것은 이 아픔이 저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으면 하는 것이며 다양한 양심들과 신념들이 인, 정되는 사회가 속히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상아 사람들아 몸부림치며 외친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 ... ... ...내 가슴 뻥 뚫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담을 수 없을 지라도 나는 눈물을 뿌리며 외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나는 산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계속 죽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 ... 석다 손가락질 당해도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람인 것이다... ...난 나라는 사람을 한 사람으로서 증명해 보일 것이며 이 땅을 당당히 밟고 일어설 것이다...

년 월 일 권순욱2008 11 11

권순욱

국방부앞에서 기자회견 병역거부 선언 2008.11.11 경찰조사 2008.12.16

심 심리공판 변호사 선임으로 한달 연기 2009. 1.19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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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아프간을 부당하게 침공한 때부터 저는 대학에서 반전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년 월 일 . 2003 2 15서울 대학로에 모인 천여 명의 반전 시위대에 저도 끼어 있었습니다 월 일 미국이 끝내 이라크를 공3 . 3 20습한 날 저는 학교 민주광장에서 미국의 전쟁을 지금 당장 끝내길 바라는 여 명의 학생들 중의 하나, 100였습니다.

그러나 이 야만에 대해 한국의 지배자들이 보여 준 모습에 저는 적잖이 실망하게 됐습니다 노무현은 . 국민적 반대를 거스르고 한국군을 전쟁과 살육의 땅 이라크로 보냈지요 오무전기 노동자 명과 김선일 , . 2씨의 희생을 외면한 채 말입니다.

대기업들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년 전삼성동 코엑스에서 이라크 재건 사업 협의회가 열렸습니다. 4 , . 미국의 원청업체에게서 이라크 재건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자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 러나 이 날 설명회는 말 그대로 피 비린내 나는 자리였습니다 미군이 자국의 패권과 석유를 위해 이‘ ’ . 라크 양민을 학살하고 억누르고 있을 때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라크 민중의 피가 묻은 돈에 눈이 멀어 이, 리떼처럼 달려들고 있던 겁니다.

반전 운동을 경험하면서 그리고 한국의 힘 있는 자들과 가진 자들의 위선과 탐욕에 분노하면서 제 자, 신은 아주 많이 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게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 해 줬습니다 이제 제 눈에 한국은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평범한 자식들에게 이국땅의 양민을 . 억누르는 일을 맡기는 소 패권 국가로 보이게 됐습니다( ) . 小

불과 년 전에 한국군은 빛고을 광주에서 힘 있는 자들을 위해 총칼로 시민들을 짓밟았습니다 그리28 . 고 좀더 거슬러 올라가 베트남에서 한국군은 베트남 양민을 인간 사냥해 베트남 정글을 핏빛으로 물, ‘ ’들였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결심하며김영익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재판 대기중 +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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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민주화한 한국에서 더는 군대가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 눈에는 여전히 한국에서 군대는 서민의 자식을 끌어다 이 사회의 힘 있는 자들과 가진 자들에 대한 복종을 가르치고 다른 나라든 우리나라든 우리와 같은 처지의 민중에게 총을 들이대게 하는 비극을 강요, ‘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배자들은 매년 수십만의 청년들을 군대에 밀어 넣어 체제에 대한 복종과 약자에 대한 폭력을 강요하고 국토방위를 명분으로 수십조 원의 돈을 국방비로 쏟아 붓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인력과 자원을 , . 옳게 활용한다면 전 국민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

저는 이런 군대에서 복무하기를 거부합니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을 위한 군대에서 그들을 위해 일하는 . 것은 저는 단 한 순간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인정하고 대부분의 국가가 받아들이고 있는 시민

적 권리입니다 중국과 군사적 대치 중인 대만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 . 권리를 왜 우리는 누릴 수 없는 것입니까?

저는 언제나 제 양심의 울림에 따라 살고 싶습니다 그곳이 가시밭길이어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옳. . 다면 말입니다.

년 월 일 김영익2008 11 4

김영익

일 입영일 병역거부 2008. 11.4경찰조사예정 200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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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전쟁을 생산하는 기구입니다.

자유인이냐 수인 이냐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선택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질문입니( ) ? 囚人다 우리는 전지구적 전쟁이 항상 진행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년 월 초. . 2009 1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전쟁 중이라는 소식이 들립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를 전쟁의 세기로 . 20기억합니다 차 세계대전 이외에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국지적인 전쟁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 1,2 .

세기도 전쟁의 세기로 기억하게 될지 모릅니다 년 월 일 미국 무역빌딩에 대한 테러공격 이후 21 . 2001 9 11미국 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국내외 양심 있는 언론인 지식인문학인들이 이라크에 대한 미국전쟁. , , 의 참상을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끔찍한 전쟁입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전쟁에서 적 은 이라. . ( )敵크라는 국민국가나 테러행위를 한 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이 전쟁이 악에 대한 전쟁임을 분명히 . ‘ ’했습니다 악이라니요누가 무엇이 악인가요 악을 규정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그렇기에 어려운 일. . , ?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 정부가 전쟁을 일으킨 이후 미국 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람들이나 이. 슬람인들이 악으로 규정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악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 적으로 정의되는 순간 ‘ ’ . ‘ ’다른 국가와 국민뿐만 아니라 내국민도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적은 국민국가 안팎을 가리지 않고 존재. 하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언제라도 국민들이 정부가 규정한 적이 될 수 있는 전쟁의 시대에 살고 . ( ) ‘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이 전쟁의 당사자입니다 년 한국 정부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 2003되지 않았음에도 미국 정부가 일으킨 전쟁에 국익의 이름으로 파병을 결정했고 의회에서 이것이 통과되었습, 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 앞 도심에서 연일 집회를 열었지만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묵묵부답이었습. , 니다 정부는 고 김선일 씨가 납치되었음에도 파병 결정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국민들을 . ( ) . 故잠재적 테러행위자들로 여기며 지하철에서 쓰레기통을 치우고 도무지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사‘ ’ , ( ) ‘ ’ 람들을 신고하라며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습은 미국 정부가 내국민에게 ‘ ’ .

병역거부 이유서 우공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경찰조사 후 재판 대기중 +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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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 태도와 너무 흡사합니다.

저 또한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었으며 대학 학생회 집행부로서 전쟁반대 일, 일휴교 집회를 준비하고 연일 거리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군은 파병되었습니다 또한 이라크에 대. . 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되어 미국 정부의 거짓이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파병에 찬성. 한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분노할 일입니다군대는 이러한 . . 전쟁을 준비하는 국가기구입니다 실제 전쟁이 발생하지 않아도 군대는 전쟁이 발생했다는 가상의 전제 위에. 서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훈련을 실행합니다 그렇기에 군대는 전쟁을 막기 위한 기구가 아닙니다 군대. ‘ ’ . 는 전쟁을 생산하는 기구입니다 저는 이러한 군대에 입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쟁의 시대라는 감옥 . . ‘ ’속에서 수인 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절박하고도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 )囚人다.

전쟁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전쟁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전쟁은 민주주의의 즉각적인 유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조. . 5는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베트‘ .’ . 남에 대한 미국의 전쟁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쟁에 참여를 결정한 한국 정부는 모두 헌법을 위반했습니다왜냐하면 불가피한 최후의 방어가 아닌 전쟁은 모두 침략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라크에 대한 미. . 국의 전쟁은 예방과 선제 공격임을 명확히 했기에 더욱더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전쟁이 침략전쟁이 아‘ ’ . 니라면 무엇이 침략전쟁입니까 그럼에도 이 위헌 결정에 대한 책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 정부는 헌법을 위반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시켰음에도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잡히지 않는다면 한국의 헌. 법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항상 미뤄진 상태일 것입니다. . 저는 이렇게 침략전쟁에 참여했음에도 아무런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의미의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 ․ ․

않는 정부의 군대에 입영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선택입니다. .

민주주의는 제헌권력입니다.

지난 년 월 일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제 조 제항 제호 위헌제청의 판결과 년 월 2004 8 26 ‘ 88 1 1 ’ 2004 7일 대법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유예되었습15 ‘ ’

니다 저는 국방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국가주의적 판결에 . ‘ ’ ‘ ’깊은 상심에 빠졌습니다 이런 판결이 지속된다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자유는 항상 국가주의적 . 판단에 의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헌법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정되어 성문화된 헌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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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법을 만드는 국민들의 행위 아닐까요 한국의 헌법 제조 항은 대한민국의 주권? 1 2 ‘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명시하여 헌법을 만드는 원천으로서의 권력 즉 , .’ , 제헌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제정성문화된 헌법은 항상 이 제헌권력에 의해 변경( ) . 制憲 ․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요 재판부는 헌법 제 조 항이 모든 국민? 39 1 ‘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는 조항에 근거하여 이 점도 중시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도 국민의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국민이 존재하. ? 지 않는다면 국방의 의무도 국가도 사라지기 때문에 항상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국민의 의사가 아닌가요? 이것이 민주주의의 원리가 아닌가요?

최근 저는 또 한 번 참담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국방부의 발표입니다 년 월 일 국방부. . 2008 12 24는 실질적으로 대체복무제도 백지화 발표를 하였습니다 국방부는 헌법재판소 대법원 국가인권위원회‘ ’ . , , 의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가 충돌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권고도 무시한 채 대체복무제도 백지화 발표를 하였습니다 설문조사 과정을 거친 발표라고 하였지만 ’ . 최근 언론기사에 의하면 국방부는 설문조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을 , 알 수 있습니다 대체복무제도는 개헌을 하지 않고서도 추가 입법을 통해서만 도입할 수 있는 제도이며 외국. 의 다양한 대체복무제도와 그 도입 과정에 관한 사례들이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습니다 이런 기초적. 인 제도조차도 한국에서는 도입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아직 . ?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한편으로는 오늘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를 위해 더욱더 많은 고민과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할테지요.

이상이 부모님이 흘리시는 눈물에 제 가슴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아마 이 고통은 지난 수십년 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한 분들과 그들의 가족연인 친구 그리고 . , , 그밖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이겠지요 부모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수십년 간 . , 쌓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고통들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한 걸음이 민주주의로 가는 즐거운 . 한 걸음이라고 믿습니다.

년 월 일 우공2009 1 6

우공 오정민( )

입영당일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2009. 1.6 경찰조사 2009. 1.29

현재 재판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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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활동가대회

년 계절은 가을로 가득 차 나뭇잎 한 껏 2008알록달록 치장할 무렵 평화활동가대회가 열렸습, 니다 전쟁없는세상에서는 여옥과 용석과 고동이 . 함께 참여했습니다 여옥은 평화활동가 대회 준비. 팀으로 오래전부터 대회 준비와 기획을 함께 해오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넓은 의미인 평‘화를 주제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만큼 처’음 보는 평화활동가들도 꽤 많았습니다 직접 꾸. 민 패션쇼와 뒷풀이 등으로 서먹함을 해소하고 둘째 날 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들을 오고 갔습니다.

평화운동가로 살아남기 평화운동의 경계 허물, 기 등 각자의 관심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고 스윙댄스배우기 공동체 놀이 등 신나는 프로그램들이 쭈욱 이어졌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활동가들을 만나는 일

은 새로운 자극과 함께 그들의 경험에 대한 간접적인 공유가 되었고 마찬가지로 평화활동가들에, 게 전쟁없는세상이 하고 싶어 하는 평화운동과 병역거부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계절에 공기 좋고 풍경 좋은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짜릿한 경험은 아마 다음번 평화활동가대회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병역거부자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대 사회과학 ? -연구원 공청회

평화활동가대회 + 병역거부자 어떻게 할 것인가 공청회? ( ) + 행복한책읽기 국가는 폭력이다 평화수감자의 날 + 『 』

용석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평화활동가대회 참가자였던 오형윤씨가 찍은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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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도에 대한 병무청 용역 사업중 하나였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주최의 기획공청회가 년 월 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2008 10 28서 있었습니다 석이 넘는 좌석이 부족할 정도. 300로 많은 사람이 공청회에 크나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병무청 연구용역을 맡고 있는 진석용 교수대(전대 가 병역거부의 현황과 법리에 대해 발표를 )하고 한홍구 교수가 외국사례를 이재승 교수가 , 대체복무방안에 대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민준규 . 박사는 병역거부에 대해 종교경제학적인 접근이라는 조금은 새로운 내용을 발표를 했습니다.

곧이어 이어진 부에서는 서울대사회과학연구2원이 진행했던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전문가 의식조사 결과의 발표 정도가 대체복무제도 도입(85%을 찬성 에 이어서 지정 토론자들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 상담소장인 최. 삼경 목사의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뼈에 사무친 미움이렇게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의 ( )말들은 안타까웠지만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유승, 민의원조차도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이기는 했지만 대체복무를 찬성하는 이야기를 해서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책읽기 국가는 폭력이다『 』

오랜만에 행복한 책일기 오프모임이 열렸습니다 년 월 중순의 어느날 톨스토이의 책 . 2008 11 ,

국가는 폭력이다 를 읽은 여명 남짓의 사람20『 』

들이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책머리에 . 추천의 글을 쓴 하승우 선생님이 특별 게스트로 초대되었고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 인터넷 , , 보고 와본 사람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소설가가 아닌 다른 모습의 톨스토이를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래디컬하고 원. 칙적인 톨스토이의 삶에 대해서는 모두들 경의를 표하면서도 지나치게 직설적인 전달방식 때문에 , 아마 옆에 있으면 친구하기는 싫었을 거라는 말에 모두들 웃으며 동감했습니다.

톨스토이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촛불집회 등을 이야기하면서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기도 했고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폭력, 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적 약자가 기대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뒷풀이 자리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병역거부자들을 처음 만났던 몇 몇 , 사람들은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편견착하다는 이(미지 혹은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신념의 소유자)을 깰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마포 민중의 집에서 진행된 행복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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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수감자의 날

어느덧 하나의 전통처럼 자리잡은 평화수감자의 날 자전거타기 행사가 년에도 있었습니다2008 . 이번에는 코스를 조금 다르게 해서 국방부 앞에 모여서 국방부장관에게 보내는 항의서한을 작성하고 인사동 북인사마당까지 자전거행진을 했습니다.

이 날의 주인공은 단연 사람들의 눈길을 확 끌어 모은 인용 자전거였습니다 너무 추운날씨6 . 와 자전거타기 최악이 거센 바람으로 모두들 고생스러웠지만 처음 보는 인용자전거에 우리도 신기6해하고 바라보는 시민들도 재밌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주목했습니다 인용자전거를 각종 선전물로 . 6꾸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인사마당에서는 작은 문화제를 했습니다드. 럼서클이 북을 가져와서 참가자들 모두가 신나게 북을 두드리면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평화난장. 의 단골손님인 길바닥평화행동의 공연과 천상의 목소리 고동의 공연이 추운 날씨 인사동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습니다.

이어서 이길준에게 쓴 편지 곽재구 시인의 , 받들어 꽃 이라는 시 등을 참가자들이 낭독하「 」

고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다들 너무 추워서 코가 빨갛게 물들어있었습. 니다.

마지막 순서는 야심차게 준비한 평화수감자 구출 박터뜨리기 그런데 박이 너무 단단하게 붙!!! 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칼로 흠집을 내고 박안에 갇혀있는 평화수감자를 구출하고는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아마 다음번부터는 월 달에 있는 병역거. 5부자의 날에 자전거를 타고 월 평화수감자의 날12에는 그냥 실내에서 하는 행사를 하자고들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평화수감자의 날 인기 캐릭터 인용 자전거와 함께6

억지로 박을 터뜨리고 모두들 신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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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무기프로젝트 모임이 년 국정감사를 2008맞이하여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논의하던 차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와 함께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모니터링을 진행하게 되었다. 모니터링 준비를 위해 바쁜 일정을 쪼개어 국회 국방위원회에 올라온 주요현안자료를 바탕으로 쟁점들을 정리해서 여러 차례 세미나도 했고, 2008년 월 일부터 월 일까지 진행된 국정감사 10 6 10 23일정 중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대상기관에 따라 일간 직접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그동안 진행한 5 . 모니터링은 총 회에 걸친 글로 정리가 되었으며 5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국정감사 방청허가기준의 모호함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일정에 맞춰 방청할 날짜를 정하고 담당을 나눠 정리하는 글까지 쓰기로 했는데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방청허가를 받는 것부터가 쉽지가 않았다 예전에는 허가가 나면 국. 정감사 기간내내 참관이 가능했다던데 이번에는 , 매번 당일 아침까지 국방위 행정실에서 참관 허가가 나기를 기다리며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준비한

채 기다려야하는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 게다가 연대회의와 참여연대로 이름으로 낸 방청신청에서 참여연대만 허가가 나기도 했다 국방위. 원회 국정감사 첫째날에는 참여연대 이름으로 낸 방청만 허가가 나는 바람에 게다가 내 이름으로 , 신청이 되어있는데 검문이 까다로워서 본인이 와야할 거라는 급한 연락을 받아서 그날은 담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국방부까지 가야했다 국방부 민원실에서부터 여러 차례 검문을 . 거치고 신원확인 관문을 통과하며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를 계속 설명해야했는데 어렵게 허가까지 , 받고 왔지만 우리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국정감사모니터링단1)으로 착각하고 들여보내주는

1) 국정감사 모니터단은 법률소비자연맹 한국여성유궈자연맹 등 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합하여 대 국회때부 NGO , 270 15

그들만의 잔치를 구경하다국방위원회 국정감사 모니터링 후기-2008

여옥 | 매체편집팀 착한무기프로젝트+

국방부 국정감사실에서 모니터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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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았다 엄격한 듯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허. 술한 느낌이랄까 두 번째 갈 때는 대충 분위기를 . 파악하고선 나름 옷도 단정하게 입고 서류가방에 노트북까지 챙기고 갔더니혹자는 보험판매원 같(다고도 했다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신관층까지 ) 2한번에 통과할 수 있었다 그날은 의원실에서 나. 온 보도자료도 쉽게 얻었고 어떤 보좌관은 일부러 가져다주기까지 하는 걸로 봐서 얼마나 복장이 중요한 사회인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국방부와 국회 친절함의 차이,

국방부에서 있었던 국정감사와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에서 있었던 국정감사는 분위기에서부터 차이가 심했다 첫날 늦게 난 방청허가 탓에 여러 . 관문을 거치느라 국정감사가 이미 시작한 이후에 국방부 신관에 도착했는데 다행이도 오전회의는 , 비공개로 진행되어서 기자들과 다른 에서 모NGO니터링하러 오신 분들도 딱히 할 일 없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오전 감사를 끝나고 . 나오던 국방부 직원이 같이 점심을 먹자고 배려해줘서 맛있는 뷔페식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시민단체에서 모니터링을 하러 나왔다는 것에 엄청 신경을 쓰는 듯 했다 국방부 신관 층. 2에 마련된 국정감사실 앞에는 좌석배치도가 알아보기 쉽게 안내되어 있었고 내부에 마련된 커다, 란 의자는 각각 좌석표가 친절하게 붙어있었으며 지나칠 정도로 줄이 잘 맞춰져있었을 뿐만 아니라 의자 아래 오른편에는 생수통도 하나씩 놓여 있었다 감사 시작 전이나 점심시간에는 의자 줄을 다.

시 맞추고 계속 마이크의 음향상태를 점검하고 또 점검하던 국방부 직원들의 모습이나 바깥에 마련된 티테이블에는 군인들이 서서 직접 커피까지 타주는 모습 등 지나치게 친절한 국방부의 모습은 뭐라도 하나 흠잡히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검, 사받는 대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에 반해 국회는 정말 불친절했다 국회의사. 당 국방위원회 회의실에 가기 위해 국회 본청 건물에 들어가는 안내데스크에서부터 실랑이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국방위원회 회의실까지 갔지. 만 방청자리가 부족하니 로비에 있는 로 국회TV방송을 통해 보라는 것이었다바로전날 모니터링. 한 내용을 정리하고 글쓰느라 밤을 꼬박 새고 갔는데 어렵사리 방청허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모니터링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몹시 짜증이 났다 의원실에서 내는 보도자료도 얻을 수 없었. 다 로비는 국회를 구경온 아이들이 우르르 돌아. 다니고 회의실에 다 들어가지 못한 병무청 직원들도 많이 나와 있어서 정말 시끄러웠다 로는 . TV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고 카메라가 다 잡아내지 못하는 다른 의원들의 반응이나 분위기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회의실을 코 앞에 두고 방청허가까. , 지 받고 로비에서 그러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 분통이 터져서 국방위 행정실 직원에게 계속 항의했지만 별다른 조치도 어떻게 할 방법도 없었다. 국방부가 지나치게 신경썼다면 국회는 지나치게 무시하는 반응이라고나 할까.

현실과 괴리된 국정감사 그 실효성은,

터 모니터링을 진행해왔다 국정감사 한 달 전에 공개모집하여 교육을 진행한 후 국정감사 기간에 의정활동을 모니. , 터링하고 이후 우수국회의원을 선정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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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에서 나온 많은 이야기들을 다 언급하지는 못할 것이다매일매일 모니터링하고 글을 . 쓰면서도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나왔거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만 정리했다. 사실 도대체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막막할 정도로 의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냈고 자, 신들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는 호통치고 혼내는 것만 있다는 양 윽박지르는 모습은 정말 없던 기대마저도 저버리게 하기 충분했다 보좌관들은 . 매우 분주했고 의원들은 그들이 전해주는 내용에 감정을 실어 전달하는 배우같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발언시간에만 잠깐 왔다가는 의원들도 있었고 심지어 끝까지 나타나지 않은 의원도 있었다 그리고 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안보에 대한 시. 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정리한 의원. 들의 발언은 지금봐도 혹시 유머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추궁하던 내용들이 얼. 마나 시정될까 국정감사를 통해 제대로 감시가 ? 되는건지 의원들 요구내용이 반영되어 운영되는, 건지 몇 번의 큰소리와 화풀이로 끝나버리는 것, 은 아닌지 아니 오히려 그렇게 혼내는 척 해서 ,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고 넘어가려는 것은 아닌지 더 걱정된다 그래서 모니터링 하는 내내 이. 걸해서 뭐하나 싶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얻은 것. 을 생각해보자면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초반에는 대체복무제에 대. 한 언급이 일체 없어서 의원실에 직접 연락해 발언을 부탁해야하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상당히 많은 얘기들이 오고갔다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 대.

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사람들이 많아서 오히려 우리가 놀라기도 했다 그리.

고 모니터링 준비과정에서 국방현안과제에 대해 진행한 세미나는 국정감사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진행될 국방관련 사업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진행되는 사업들에 대해 . 대략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꾸준한 관심과 감시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매일 모니터링 후에 . 정리하는 글을 썼는데 연재기사를 내줄 언론을 컨텍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우리가 모니터링 정리. 글을 기사로 만들만한 능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우리만의 입장을 가지고 글을 쓰기에는 국정, 감사의 내용 자체가 애매하고 수준이하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차라리 딴지일보에 연재하는 것. 이 더 적절했을지도 우리가 꿈꾸는 평화는 제도. 나 현실정치 안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국회 국, 방위원회의 국정감사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직시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국정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국회 국방위원들과 취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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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의 한 해 간단정리2008

상반기 내내 총회 준비를 하며 전쟁없는세상의 향후 방향에 대해 논의.● 총회 이후 평화운동을 하는 활동가 중심의 단체로서 정체성을 밝힘.● 수감자지원활동으로 수감자우편물 격주 발송 명절과 성탄선물도 빠지지 않고 보냄, .●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 상담 수감자들 면회와 재판 방청, ● 행복한 책읽기 회 모임 월 월 월3 . 1 , 5 , 11● 소식지는 월 호 발송 월 호 발송 월에 호 발송 호는 월에 발송예정2 20 , 4 21 , 10 22 , 23 1 .● 뉴스레터는 월부터 총 회 발송2 12●

고동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보통 전쟁없는세상의 한 해를 정리하는 기사는 대뉴스를 뽑는 형식으로 실어왔다 이번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10 . 서 이야기를 나누고 기사로 정리해보자라는 의견이 나와서 월 일 여옥 용석 염창근 조은 재성 아침 고, 12 17 , , , , , , 동이 모였다 모임의 이유를 확실히 모른 채 와서 썰을 푸는 데 의욕이 확 떨어진 이도 있었지만 여옥의 한해 . , 요약정리로 모임은 시작되었다 기록은 고동이 했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에서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거나 년. . 2008을 보내며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기획기사에 담아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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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3 21

현재 회원이 명으로 올해 명 증가CMS 93 29 .● 월부터 책임활동가의 활동비 지급시작 재정증가에 따라 현재 만원씩 지급7 , 40 .●

정권이 바뀌면서 인권단체들과 연대활동이 증가.● 평화단체들과의 연대도 증가 평화활동가대회에 적극 결합, .●

운영의 안정화 그리고 관성화

지난 년이 어땠는지에 대한 질문에 염창2008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총회 때의 목표가 폭넓은 . 평화운동과 운영의 안정화라고 한다면 운영의 안, 정화는 이뤄진 반면에 그와 동시에 관성화가 너무 빨리 왔다는 것이었다 이에 책임활동가인 용석과 . 여옥은 활동비를 받게 되면서 책임활동가가 정말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느낀다‘ ’며 활동비를 받지 않고 활동하는 회원들에게 얼, 마만큼을 요구하고 기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조은은 자신이 개월 정도 쉬면서 사무실. 6에 많이 나오지 못했는데 책임활동가들이 다른 ,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 없이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며 적극적으로 불러주면 기꺼이 오, 겠다고 다짐했다 일정이 되는 것을 전제로.( .)……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용석, 이 평화바닥이나 다른 단체들은 어떤지를 물어봤다 염창근은 평화바닥도 처음에는 돈을 지급하는 . 것을 고려했다가 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 역할이 고정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봤다 그. 나마 구조상으로라도 위계가 없도록 팀제를 얘기했고 팀에는 자율성이 있고 전체가 그 팀을 지, , 원해주며 팀의 책임자가 일이 많아지면 유급을 ,

고려해볼 수 있는 것까지 얘기가 됐다고 한다.

전쟁없는세상에는 원래 매체편집팀 해외자료, 번역팀 수감자지원팀 등 팀제가 구성되어 있었다, . 그러나 용석에 의하면 그런 팀들이 해체되면서 팀들이 하던 일들이 책임활동가들에게 몰렸다고 한다 그리고 여옥은 다시 팀들을 꾸리려면 결국 책. 임활동가들이 조직을 위해 더 많이 뛰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걸 지적했다염창근은 그럼에도 . 책임활동가들이 팀을 다시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아침은 조금 다른 각도로 책임활동가들이 연대활동을 주로 하다보면 회원들의 활동이 줄어들 수 있다며 내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도 잘 챙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성은 현재 진행하. 고 있는 행복한 책읽기를 좀 더 목적의식이 있는 회원사업으로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년에 했던 세미나팀을 예로 들며 . 2003좀 더 오래가는 세미나팀을 꾸려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했다.

거부와 기피 사이?

이야기가 너무 한 해 평가를 하는 식으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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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되어 잠시 주위를 환기하는 차원에서 여옥이 이야기를 꺼냈다 올해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찾아온 . 사람들을 보면 이전의 병역거부자들과는 많이 달라서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대를 기피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 있었다고 한다 단순화시켜 얘기하자면 이전의 병. 역거부자들은 평화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요즘 만난 사람들은 평화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재성은 이를 병역거부의 영역이 확대되는 . 것으로서 당연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럴 수도 있지. 만 전쟁없는세상 차원에서 이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용석의 질문에 재성은 일단 평, 화주의가 아닌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원칙, 적으로 전쟁없는세상은 평화운동을 하는 단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병역거부자들과의 관계는 사례별로 접근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그 다음에는 대. 체복무제 도입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원점재검토 발표 이전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나름 행복한 고민들을 가졌던 것 같다.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

여옥은 이날 모임에서 자신은 대체복무제 도입이 잘 안 될 것 같다고 부정적으로 얘기했는데, 그 예언이 맞았다고 기뻐해야 하는지 원 재. ……

성은 대체복무제 도입이 거의 될 것으로 보고 다양한 방식의 병역거부 관련운동이 생겨날 것이라 예상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 되더라도 국방부는 . 홍보를 잘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체복무제를 알리는 활동이 필요할 것이고 여전히 존재하는 ,

대체복무제도의 징벌적 요소를 개선하는 운동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성은 그밖에 내. 년 초에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의 활동에 대해 내부토론회를 크게 열어보자는 제안도 꺼냈다 그러. 나 국방부의 선물 로 인해 위의 논의는 차후로 (?)미뤄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것 하고 싶은것, !

용석은 솔직히 출소 후 전쟁없는세상의 내부사업을 챙기고 싶었다며 그 핑계로 집회도 잘 안 (나갔다는 소식지의 격월간 발행을 가장 하.) ……

고 싶은 것으로 꼽았으나 현재 상황상 불가능하, 다고 판단하고 목표를 수정했다 그대신 매체편집. 팀을 다시 꾸려서 안정적인 소식지 발행을 꿈꾸고 있다 용석이가 소식지의 발행기간이 들쭉날쭉 하. 지만 내용에 대한 반응은 여전히 좋다고 이야기하자 어디선가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지는 격월간지, 였는데 이젠 계간지도 아니고 그저 개 간지 난다~는 말이 여옥은 개인 활동가의 업그레이드와 ^̂ ; …

평화교육의 활성화를 하고 싶은 활동으로 꼽았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제안거리를 내놓는 염창근, 내실을 좀 다질 수 있고 참여하는 한사람 한사람을 키울 수 있는 연구모임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잘될지 모르겠지만 염창근의 제안이 기대되. 기도 한다 용석이 아쉬웠던 점으로 한 가지 더 . 꼽은 것은 연대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계획이 없다는 재성의 비판이었다 염창근은 활동의 순위. 를 정해서 연대사업은 뒤쪽으로 미루는 게 필요하다고 봤고 아침은 연대활동을 확 줄이기보다는 , 플러스마이너스를 잘 따져서 조절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재성은 전쟁없는세상이 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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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없다기보다는 자기 영역은 있는데 활동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의견을 수정하고 구, 체적 계획이 있다면 최대한 달성해 나가보는 것으로 하자고 마무리했다 아침은 평화교육과 맞물려 . 전쟁없는세상에서 했던 것들을 프로그램화해서 대안학교들을 찾아다니면 그것들이 전쟁없는세상의 , 평화교육활동으로서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조은은 자원활동가들을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꼭 정기적으로 되지 않더라도 평화수감자의날이나 병역거부자의날을 준비할 때 술자리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함께 하자고 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이 날 모임의 성격을 개개인이 다르게 이해한 터라 이야기들이 잘 모이지는 않았지만 년 , 2008한해뿐만 아니라 지금의 전쟁없는세상이 고민하는 지점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년의 . 2009전쟁없는세상은 다시 처음의 마음을 가지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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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년이 흘러갔다 새로운 정권의 1 . 잃어버린 년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한풀이를 ‘ 10 ’봐주느라 정말 많은 나날 뒷골 잡았던 기억이다. 들쑤셔놓지 않은 분야가 없었고 어떤 특정 사건, 에 관심가지고 움직여달라 말하기 민망할만큼 모든 사람이 정신없이 여기까지 흘러왔다 전쟁없. <는세상 소식지에서는 년 년 동안 기획기사> 2008 1를 통해 교과서 분석을 시도했다 무지하면 겁이 . 없다고 무작정 덤볐다가 하는 내내 많은 후회와 아쉬움들을 뒤로 하며 겨우겨우 기획기사들을 낼

수 있었다 질적인 측면에서 아주 자신있게 . ‘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사들을 써내려가며 각자 학교 교육에 대해 많이 회상하고 고‘ ’ ‘ ’민하며 나름의 흔적들을 잘 정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몇 특정 과목들의 교과서를 보며 사. 실 처음엔 많이 놀랐다 생각보다 교과서는 많. ... 이 변해 있었다 여전히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좀 변하려고 노력을 했다는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면 될 것 같다 특히 역사 교과. 서들을 보면서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었다 물론 .

전쟁없는세상은 년 호 소식지에 걸쳐서 한국의 공교육에서의 군사주의를 다뤄보고자 했다 능력부족2008 20~22 . 을 뼈져리게 느끼기는 했지만 나름대로의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학교안의 군사주의를 다루다가 교과서를 분석.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역사와 도덕교과서를 분석해봤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교과서가 좌편향 되었다. 며 대대적인 교과서 뜯어고치기에 들어서고 있다 소식지 기사가 나온 후 교과서들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 , 매체편집팀원 오현지가 년 소식지에서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기사로 쓰게 되었다2008 .

오현지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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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되지 않아서 역사교과서 내용 수정발표라는 소식을 접하게 됐지만 말이다.

역사 다음엔 도덕?

지난 월 일 교육과학기술부 이하 교과부는 1 6 ( )자료를 내 년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을 마“2007련했으나 국가사회적 변화에 따른 통일정책을 ·

반영할 필요가 있다 면서 집필 기준 수정을 발.”표하였다 교과부가 이야기하는 국가사회적 변. ‘ ․

화라는 것은 지난해 월에 나온 통일부의 통’ 5 ‘일교육 기본지침을 이야기 한다 이 지침은 이’ . 전과 달리 통일교육 목표에 북한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추가하고 학교 통일교육의 필요성에 ’ , 국가안보의 중요성 인식을 강조하겠다는 것이‘ ’다.2) 교과부가 발표한 주요 도덕교과서 집필기준 수정 내용은 북한 사회에 대해 객관적 사실을 “

기초로 균형 있게 기술하도록 집필방향을 유도”하고 평화의 가치와 갈등 해결 태도 및 기술을 , “중심으로 평화교육을 통일교육에 접목시킨다는 ”내용을 삭제한다는 것이다.

찰떡궁합일세 교육청의 움직임‘ ’ ~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방향을 발표한 이후에도 ․

교육감들이 일제히 알아서 편향된 시각을 지‘ ’닌 교과서들이 채택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더니 이번에도 역시 절대충성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 교육청은 통일교육의 방향을 국가관안보관 확‘ ․

립으로 바꾸고 금강산개성 등을 방문해 통일’ ·

을 주제로 글짓기와 포스터 그리기 등 행사를 벌였던 통일체험교육을 통일전망대 년 북‘ ’ , 2002한과의 서해교전 때 지휘부였던 평택 함대 사령2부 강화도 전적지 등을 견학하는 안보체험교, ‘육으로 바꾸기로 했다 자기 몸 사리기 바빠 서’ . 로 눈치만 보며 방만한 운영으로 욕먹던 공무원들이 스스로 이렇게 자발적으로 빨리 움직이는 ‘ ’ 것을 보니 웃음만 나올 뿐이다.

차라리 솔직해지려고?

사실 애초에 현행 도덕교과서에 평화교육‘ ’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도덕 . 또는 윤리라고 하는 것은 선이라고 하는 보편‘ ’적 가치에 대해 인간으로서 내릴 수 있는 판단과 행동이고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 때문에 바람직한 도덕교육은 자신의 욕망을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도덕교과서는 아랫사람으. 로서 윗사람에 대한 절대적 예절과 복종 국가를 , 향한 개인의 희생정신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3) 이렇게 어떤 대상을 향해 복종해야 ‘하는 의무만을 강조하는 교과과정에서 평화’ ‘ ’ 인권이란 개념은 모순적이었는지도 모른다‘ ’ . 그렇다면 도덕교과서 집필기준 수정 발표는 평‘화 인권이면 몸서리가 쳐지는 개발주의 정’ ‘ ’권의 솔직함이라고 봐줘야 하는 것일까?

2) 한겨레 신문 정부 안보교육 강화 받아쓰기 평화 교육 삭제 새 도덕교과서 김소연기자 2009.1.6 <MB ‘ ’ _ ‘ ’ > ( )

3) 현행 도덕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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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과서 집필방향 수정기준안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정권의 보수로의 회귀MB ‘ ’ 아니 말이 좋아 보수이지 독재정권의 야‘ ’ ‘ ’만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의 회귀에 대한 무‘한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기가 찼다’ . 무엇보다도 지난 정권들의 이념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교사들과 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던 교과서 집필방향을 그렇게 하루 아침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꿔치기 해 명령하듯 출판사로 공문을 보냈다는 것은 정말 불도저 정신을 가지지 않고서는 할 수 ‘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북한과의 외교정책 노선. 을 바꾸면서 평화교육은 북한과의 대화나 타‘ ’협을 강조하는 것이니 맘에 안 들고 그래서 평, ‘화교육부분을 삭제하겠다는 놀랍도록 유치한 발’상 또한 그들이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계속 . 되는 그들의 무개념 노매너의 행진은 마음 속‘ ’의 분노를 하루도 잠재우지 못하게 만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궁금해진다 그들은 과연 무엇이 . .... 그렇게 두려워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밀어붙이고 있는 것일까?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던 역사 도덕교과서의 수, 정 공고를 보며 이것이 오늘 한국교육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마음대로 선생님들을 . 해고해버리는데 그깟 교과서 하나 고치는게 뭐 그렇게 대수롭게 여겨졌을까 싶다 맘에 안 들면 뜯. 어고치고 해고하고 그래서 입맛에 쏙 맞는 교과서와 교사들을 배치하고 궁극적으로 말 잘 듣는 국민을 만드는 것이 이 정권의 교육목표‘ ’ ‘ ’인가보다.

역사교과서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객관‘ ’ ‘성을 학보하기 위해 북한사회를 객관적으’ , ‘ ’로 이해하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객관성으로 ‘ ’고쳐지고 있는 교과서들 영어수업은 확대한다 하. 고 다음은 국어교과서를 영어로 내자고 하는건 ,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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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을 돌아보며 촛불을 빼놓을 수 있2008 ‘ ’을까 거리에서 보낸 수많은 밤들과 거기서 만난 .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에서 던져, 진 수많은 이슈와 주제들 예측할 수 없이 역동.. 적이던 시민들은 가능성이었으면서도 한계였고 절망이면서도 희망이었다 그 거리는 나는 매일매일 . 나 자신의 부족함을 경험하는 시간이자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전의경제도라는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전혀 준비도 되지 않았고 아는 것도 없었지만 . 전의경들도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전의경제도에 대한 문제점과 선택. 적 병역거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촛불집회에 들고나갈 피켓과 유인물을 만들었다 손으로 직접 .

쓴 편지같은 유인물을 전경버스 안에 넣고 다녔는데 유리창을 열어 철망 틈으로 받아들고 손을 흔, 들어주는 전경을 만났을 때 어찌나 가슴이 뛰었는

여옥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피켓에는 명령을 잘 따르면 로봇 전경은 로봇이 아니‘ , 라 인간 전의경이 지킬 것은 이명박이 아니라 시민’, ‘입니다 진압의 도구에서 양심의 주체로 명령을 ’, ‘ ’, ‘어기는 것이 죄가 아니라 시민을 짓밟는 것이 죄입니다’ 라는 문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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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모른다 일부러 물대포 쏘는 근처에서 피켓을 . 들고 서있기도 했다 비닐로 꼼꼼하게 싼 피켓은 . 문제없었지만 정작 들고 있어야 하는 사람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피해야했던 기억도 난다.

이길준을 만난 것은 그 이후였다 촛불집회에. 서 진압명령을 받고 고민하는 전경이 있다는 얘기를 미리 전해 듣긴 했지만 그리고 우리도 그런 ,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막상 그런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은 그게 또 아니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

년 월 일 오후 민가협 목요집회에서 전2008 7 24 , 의경제폐지와 관련된 발언을 하고나서 평화박물관으로 향했다 처음 만난 길준이는 우리 주변에서 . 흔히 볼 수 있는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대 청20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지 하지만 결정을 한 이후에 겪게 될 , 고통은 또 어떨지 생각하니까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당장 기자회견을 하고 농성을 할 수 있는 공. 간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고 역할을 나눠맡았다 밤늦게 집. 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비에 잔뜩 젖어버린 신발만큼이나 무거웠다 농성기간동안 필요한 짐들을 . 싸고 사무실을 비우는 동안 처리해야하는 일들을 , 마무리하느라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일 금요일 길준이의 휴가가 끝나는 그날25 , 종로 가에 있는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기5로 예정되어 있던 시간은 시였다 사무실에서 모4 . 든 준비를 마치고 길준이가 기독교회관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시에 취재요청서를 뿌렸다2 . 메일이 발송되기가 무섭게 전화기는 울려대기 시

작했고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런데 .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께 미리 말씀드리고 싶었던 . 길준이가 기자회견 전에 연락을 드렸는데 급하게 달려오신 부모님이 강력하게 만류하시며 길준이를 회관 밖으로 데리고 나가버리신 것이었다 취재요.

청서가 나간 이후 기자들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소식을 듣고 기독교회관 주변에 쫙 깔린 상태였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장의 순간들이었다 기자들. 의 전화는 계속되었고 소식을 들은 촛불시민들의 전화도 끊이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 우리에게 와. 서 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고 부모님이 반, 대하실 게 뻔한데 연락을 하게 두면 어떡하냐고 다그치던 사람들이 있었다 예전에 강철민 농성 . 때를 생각하며 좀 더 말리지 못한 잘못도 있었겠지만 모든 결정은 길준이가 스스로 내려야한다고 ,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의 역할은 행동에 따라 예. 상되는 결과와 그에 대한 의견을 알려주는 것이고 옆에서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 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자기 스스로 삶의 주체. 가 되겠다는 사람에게 부모님과의 연락을 억지로 막고 기자회견을 강요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하지만 활동경력도 꽤 되고 나름 이 바닥에서 이

기독교협의회인권센터에서 열리지 못했던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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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정신없고 긴박한 상황에서 책임추궁을 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서운하기도 했다.

상황은 계속 위험하게 돌아갔다 기자회견 예. 정시간도 지나고 부대복귀시한도 지났다 사복경. 찰들은 기독교회관 안까지 돌아다녔다 길준이와 . 부모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은 기자회견과 농성을 준비하던 우리들 중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었고 극비리에 다른 안전한 곳을 찾던 상황이었다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무언가 그림이 필요. 했던 일부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며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기자들은 만약 위치가 . 노출되어 경찰한테 잡혀가게 되면 그 장면을 찍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냐며 자꾸만 장소를 물어봤다. 결국 기자회견 취소를 결정하고 아무도 모르게 장소를 옮겨야했다 기자들과 경찰들의 눈을 피하기 . 위해 집에 가는 것처럼 인사를 나누고 흩어졌다가 종로 가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비가 많이 왔3 . 고 농성을 하기위해 챙겨 나온 짐들은 무거웠고, , 마음은 그것보다 더 무거웠다 친구들을 만나서 . 어렵사리 신월동성당 사제관에 도착했다 나승구 . 신부님을 뵙는 순간 난 눈물이 났다 대학시절 , . 활동했던 단체의 지도신부님이셨던 나신부님은 내게 편안한 술친구이자 새로운 길이자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신 분이다 그때서야 하루 종일 아무것. 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고 배가 고팠다 갑자. 기 들이닥친 우리들은 사제관의 음식들을 바닥내며 다음날 기자회견에서의 역할분담을 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숨어있는 시간이 하루를 넘길 것이라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제관에서 숨어지. 낸 며칠 역시 또 다른 긴장의 연속이었다 부모님.

을 설득하지도 이해시키지도 못한 채 보낸 시간들은 무력감에 힘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은 월 일 일요7 28일 저녁 시였다 일 일요일 점심 때였다 배달7 . 28 . 해먹은 음식그릇을 내어놓으려고 문을 열었는데 어떤 사람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리곤 내게 물. 었다.

혹시 여기 이길준씨 계신가요 일보 기자“ . **인데 오늘 여기서 기자회견 할 거라고 그래서 왔는데...”

글쎄요 저는 여기 성당 청년부인데 지금 “ . 신부님이 안계셔서 모르겠어요본당 사무실로 내. 려가서 물어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순간 정말 .”당황했는데 나도 모르게 내뱉은 거짓말이었다 그. 렇게 기자를 돌려보내고 나서 난리가 났다 기자. 들이 알았다면 경찰들이 아는 건 시간문제이고 이대로 끌려가게 되면 길준이는 어떻게 되는 건지, 아직 경찰들이 알기 전에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야하는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도대체 , , 기자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낸 건지 무엇보다도 며칠간 정말 어렵게 조금씩 쌓.. 이고 있던 부모님과의 믿음이 무너져버렸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화가 나고 슬펐다 그래서 눈물. 이 마구 났다 그런데 울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기자회견과 농성준비에 들어갔고 어르신들이 , 부모님을 설득하는 마지막 시간을 가졌다 일요일 . 저녁 시 기자회견이라니 아무리 중대한 사안이7 . 라고 해도 이런 시간에 과연 누가 올까 걱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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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을 할 강당 셋팅과 농성장으로 쓸 요셉관 사이의 동선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벌써 기자들이 ,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경찰들도 들어왔다. . 앞에서 막아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한바탕 난리. 가 난 다음에 신부님의 퇴거요청으로 경찰들이 물러가고 나서야 기자회견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 자회견에는 정말 많은 기자들이 왔다 그런데 기. 자회견을 하는 도중에 기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혹시 사복경찰들인. 가 불안한 마음에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더니 인터넷에서 신월동성당에 있는 양심청년이 위험하다고 해서 바로 택시타고 달려온 촛불시민이라고 했다. 인터넷 생중계 아고라와 까페를 통한 연락망은 , 순식간에촛불시민들을 신월동으로 불러 모았다 . 그렇게 농성이 시작되었다.

비록 짧은 일이었지만 지면에서 이야기할 5 , 수 없을 만큼 정말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루하. 루 무사히 버티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하는 날들이었지만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았다 신월동성당은 애초에 양해를 구. 하지도 않고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간 곳인데

다가 바깥에는 경찰들이 계속 대기하고 있고 매, , 일매일 촛불시민들이 찾아와 날이 새도록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상황 때문에 성당 신자분들도 많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게다가 매일 밤 진행되는 촛. 불집회는 아무리 조용히 하려고 마이크와 엠프사용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택가 사이에 자리 잡은 공간이라서 동네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윗선에서는 계속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 연행되어 부대로 강제복귀 될 경우 반복되. 는 내부 징계로 징역보다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부대에서 바로 고발조치를 ,

하도록 하고 사법부로 넘어가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에 따라 고발이 이루어. 졌는데 곧바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성당에 공. 권력이 투입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시간들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하지. . 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길준이도 농성을 그렇게 빨리 끝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농성이 오래갈 .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 , 계속되던 지지방문과 정성과 마음에 놀라고 고마

신월동성당 마당에 걸었던 플랭카드

저녁마다 신월동성당에서는 이길준을 지지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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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하며 며칠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조금 떨어. 져서 지켜보면 무질서하고 불안하게만 느껴졌을 수도 있는 농성장이었지만 실제로 그 한가운데 , 있던 우리는 무질서 속의 자율을 볼 수 있었고 불안할수록 서로에게 더 의지가 되어주려 하던 배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현장. , 에서 실무를 맡고 있던 젊은 활동가들은 연륜과 경험과 능력이 있으신 분들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도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양 . 심청년을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스스로 규찰대를 조직해 경찰의 동태를 파악하고 농성장 사람, 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자며 식사준비를 해오시는 등 농성의 큰 부분을 차지지고 있는 촛불시민들에게 그들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결정되어버린 농성중단을 차마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몰라 정말 고민했다 하지만 그 결정을 존중해주시고 이. 후 길준이가 겪을 일을 더 걱정하며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에 또 한 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던 년 월 일 목요2008 7 31일 오전 농성 마무리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도 , 계속 눈물이 났다 이렇게 가슴 아파서 이 운동 . 어떻게 계속하나 싶을 정도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시 농성 마무리 기자회견이 열리고 길준. 11 , 이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자진출두 이후. 에도 계속 말을 바꾸고 치사하게 행동하는 경찰 때문에 짧은 농성을 아쉬워할 새도 없이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불구속 결. 정이 나자 부대로 강제복귀시켰고 다시 출동명령, 을 내리고 거부하자 명령불복종 죄까지 추가해서 다시 영장을 재청구했다 영장재심사에서 구속이 .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야할 징역이니까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최근 항소심 재판에서 , 형이 더 늘어나 년을 선고받은 것은 아무도 예상2치 못한 최악의 결과였다 지금까지의 병역거부자. 들 중에 가장 많은 지지와 후원을 받아서 징역형도 더 많이 받은 걸까 상고까지 가봐야겠지만 말. 이다 어쨌든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나와서 농성. 기간에 많이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술잔을 기울이며. .

자진출두하기 직전의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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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다보면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병역거부를 .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일단 무조건 말리고 본다 감옥생활이 얼마나 끔찍한지 살짝의 과. 장을 섞어서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가족관계라든, 지 병역거부를 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출소 후에 . 겪는 약간의 방황 과 사회생활에서의 곤란한 점(?)들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우리의 입장에서. 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병역거부를 하는 것이 당연히 더 좋지만 한 사람의 삶의 방향 전체를 좌우, 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은 아무리 신중해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우리의 .

충고 를 받아들여 병역거부를 단념하거나 혹은 (?) ,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기로 하는 사람들도 있고 왜 자신의 신념을 믿어주지 못하냐며 서운, 함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편차는 있겠지만 각자가 나름 진지한 고민을 했을 텐데 나, 는 단지 병역거부의 문턱에서 발길을 돌린 사람들에 비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여러 가지 정황상 . 병역거부를 할 수 있었을 뿐이라고 병역거부를 . 하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던 것일지도 그런데 년을 지나오면서 이. 2008런 생각들은 조금씩 흔들리게 되었다 평화와 군. 대 혹은 폭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여러 가지 상황이 허락되는 사람들이 병역거부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이 단순한 분,

용석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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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법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병역거부는 특별하거나 대단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굳이 평화주의자들만의 전유물도 아, 니라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낯선 병, 역거부자혹은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 들을 ( )만나는 일은 나에게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 사람들은 각자가 독특한 상황에 처해 . 있기 때문에 하나의 조류로 묶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전까지 병역거부운동에서 암. 묵적으로 동의되어 왔던 전제들 이를테면 대체복-무제도가 어쨌든 꼭 필요하다는 공통의 인식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반. 군사주의운동으로서 병역거부운동에서 대체복무가 가지는 한계점에 대해서는 우리 내부에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대체복무제도가 가지는 의, 미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군대가기도 싫고 대체복무하기도 , 싫고 감옥가기도 싫다는 의 이야기를 들었을 , A때 약간의 짜증과 어이없음이 밀려왔었다 우리, . 가 병역거부하러 오는 사람들을 말리는 가장 큰 이유는 어쨌든 스스로 많은 것을 책임져야만 하기 때문에 그만큼 스스로에게 진지한 질문과 막중한 책임감을 요구했던 것인데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는 이야기는 너무 무책임하거나 현실에서 괴리된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으로 들렸던 것이다 물론 병. 역거부자가 국가나 사회 혹은 병역거부운동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을 질 필요는 눈꼽만큼도 없다. 하지만 병역거부라는 행위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게 지워지는 책임 이를테면 평생을 병역거부자로, 서혹은 평화주의자로서 살아가겠다는 다짐 같은 ( )

것을 방기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스로 조차도 자신의 진심을 확인A 하는 데 시행착오를 거쳤다 자신을 드러내고 일. , 종의 소영웅으로서 병역거부자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의 표출은 우리는 물론이고 본인에게도 무척 혼란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비록 우리가 . A에게 어떤 식의 병역거부자를 연기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간 병역거부운동에서 형성되어, 온 병역거부자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고 사람들이 , 병역거부자를 대하는 방식이 에게 영향을 끼쳤A을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병역거부자들에게 . 건네는 당신의 용기를 지지합니다는 말이 누“ ”

군가에게는 정말이지 무서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 돌아봐야겠. 지만 의 방황은 우리에게도 그다지 좋은 경험은 A아니었다.

몸이 많이 아픈데 면제는 안되고 거듭된 신체검사에서 재검 판정만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고 찾아온 의 이야기도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B . 완치가 불가능한데 병무청에서는 계속 놔주지 않는다며 해결책을 물어보는 그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없었다 거칠게 말하면 우리는 군. 대를 거부하고 감옥에 가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군대도 감옥도 안가는 방법은 몰랐기 때문이, 다 하다 하다 안되면 병역거부까지도 생각하고 . 있다는 의 말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더 이상 B . 병역거부는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로만 ‘ ’통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불현 듯 깨달았다.

여전히 병역거부는 군사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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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으로 혹은 전쟁 시에는 전쟁을 막는데 일조 할 수 있는 직접행동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운동이 나. 름의 세월을 지니면서 병역거부는 군대에 대한 , 저항의 의미뿐만 아니라 군대가 아닌 다른 선택지로서의 의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년에 외국의 병역거부 활동가들과 함께 2005국제회의를 할 때 핀란드에서 누군가가 단순히 , 군대를 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핀란드에서 온 병역거부. 자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사회적인 운동은 아니지만 더 많은 사람이 군대를 안가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었고 나도 그 의견에 큰 고민없이 동감했었다. 사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냥 군대 가기 싫은 사람들이 병역거부를 진지하게 고민할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사람들이 전쟁. 없는세상에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랐다기 보다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었다.

머리로는 병역거부 운동이 한 가지 의미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꼭 사회운동적인 차원이 아, 니더라도 군대 안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그들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병역거부를 너무 구닥다리처. 럼 운동의 차원으로만 규정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이미 병역거부운,

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규정을 내리는 것이 일종의 권력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서적인 거리. 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병역거부가 무언가 숭고한 희생이거나 결연한 의지의 강력한 표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나의 단절되었던 시간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 공부하고 있는 진진의 말처럼4) 이미 병역거부운 동은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일지도 다만 년 동안 . 8똑같은 핑계만 되풀이하는 국방부에 맞서 싸우느라 우리 또한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다 보니 변화에 뒤쳐져 있는 것일지도 굳이 평화에 대한 머. 리 아픈 고민이 아니더라도 병역거부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병역거부가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현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무작정 변화를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병역거부가 어때야한다는 규정을 . 내릴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어 하, 는 병역거부운동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물음을 던져야한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으로서. 의 병역거부운동은 점점 외연이 넓어지고 그만큼 탈정치화 되어 가는 변화한 현실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 년이 나에게 남겨준 조, 2008금은 부담스런 숙제다.

4) 월간 평화연대 년 월호 변화하는 병역거부운동 2009 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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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 출간 되었을 때 나는 마침 꽃섬고개 친구들이란 청소년소설의 퇴고작업‘ ’ ‘ ’을 하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한길이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는 터라 총을 들지 않는 사람. “

들의 출간이 무척 반가웠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의 필자들은 종교적 이유뿐만 아니라 반전 평화” . “ ”

주의 신념에 따라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한 이들이었다 곧장 인터넷서점으로 책을 몇 권 주문했다 그러나 . . 곧바로 읽지 않았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에 실린 글들이 내가 만들어 낸 소설 속의 인물에 영향을 . “ ”

끼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탈고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자마자 책을 펴들었다 책 속에는 년 전 겨. . 7울 내 가슴에 죽비를 내리쳤던 불교신자 오태양의 글이 있었고 년 전 기독교회관에서 이라크파병반대를 , , 5외치며 농성을 한 강철민이병의 글도 있었다 책 속의 젊은이들은 내 소설 속의 한길이와 참 많이 닮아 . 있었다 그들이 총을 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된 배경은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똑 . . 같았다 양심 그리고 평화. . .

년 겨울 오태양씨가 불교신자로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한 뒤 나는 언젠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2001 , 를 주제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촌의 한 찻집에서 만난 오태양이 말하는 나는 전혀 낯설. ‘ ’지 않았다 그는 내가 년 동안 가난한 동네에서 만난 아이들과 똑 같은 아픔과 기억을 갖고 있었다 교. 15 . 사의 꿈을 꾸기 위해 교대에 진학했던 그는 불교도로서 불살생의 교리를 거스를 수 없어 교사가 되기를 포기했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의 미래를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과 세상에 걸었다 그는 총을 들기를 거. . 부했지만 단지 전쟁이 없는 평화만을 꿈꾸는 몽상가는 아니었다 그는 평화를 위해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 들을 찾아가고 산동네 허름한 공부방으로 수해를 입은 수재민에게로 인도의 불가촉천민에게로 내려갔다, , , . 그가 꿈꾸는 평화는 내가 간절히 바라던 평화와 같았다 그의 이야기는 내 작품의 누룩이 되었다 그리고 . . 그 누룩에 의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7 .

2.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학교 건물에 갇혀 탈출하지 못하는 악몽을 꾸었다 언젠가 남편은 내가 어쩌다 꾸.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을 읽고 ‘ ’김중미 | 꽃섬 고개 친구들 괭이부리말 아이들 작가 전쟁없는세상 회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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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악몽의 무대가 늘 학교라는 얘기에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학교가 그렇게 끔찍했어“ ?”나는 전역을 한 지 년이 된 지금까지도 입영통지서를 받는 악몽을 꾸는 남편에게 대답했다24 .응 우리 학교는 군대였거든“ . .”내가 년 동안 다닌 중 고등학교는 장군 출신의 군인이 이사장으로 있었다 학교는 년대 말 대한민국4 . . 70의 축소판이었다 나는 여고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 앞에서 입을 다문다 내게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 . 시절이 있다면 바로 그 시절이기 때문이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교련시간 여학생들이 반드시 이. , 수해야 했던 구급법 그리고 제식훈련 공설운동장에서 년에 한 번 씩 열렸던 교련대회 양 갈래로 땋은 , . 1 . 머리의 매듭수를 세고 추운 겨울에도 장갑을 끼거나 털신을 신으면 안 되고 교실에서는 코트를 입을 수 , , 없는 복장 규칙 교장서부터 학생들에게까지 내려오는 엄격한 위계질서 학생지도라는 명목으로 당연하게 . , 행해지는 교사들의 폭력 폭언 학생들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꼭두각시 같은 교사들 친구들은 그런 학교, . . 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친구들 말대로 나는 유별나게 마음이 여리고 . . 물렀고 힘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어려서부터 힘센 친구들이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면 괴로웠다. . 짓궂은 남자 아이들의 손에 죽은 땅강아지들을 보면 마치 내가 그렇게 한 것 같아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구걸을 하러 대문 앞에 선 한센씨병 환자를 내치는 동네 어른들을 보면 내가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 된 것 같아 괴로웠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고나서는 위협적이고 부당한 폭력 앞에서 당당하게 아니오. ‘ ’라고 말하지 못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한 젊은이들의 선택은 그런 나를 다시 일깨웠다. .

나는 약한 친구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면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전쟁이 끊이질 않는 세상. 을 보면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그 것이 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청. . 소년들이 폭력에 물들어가는 걸 봐도 제 탓인 것 것만 같았습니다 그 건 과도한 책임감이나 주제넘. 음과 다릅니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과 끊이지 않는 보복성 살인에 관한 이야기가 매일 뉴스를 통해 전해지면서 제가 짊어지길 두려워하는 십자가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김선일 씨. 가 이라크 저항세력들에게 무참히 살해되었을 때 그 죽음이 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진정한 생명과 평화의 문화가 퍼지려면 우선 나부터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지가 더욱 . 강해졌습니다 고동주. - -

고동주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강하고 센 젊은이들이 아니라 눈물 많고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 . 이 총을 들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끼는 연민 때문이었다 또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를 외면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평화와 생명을 지키. . 는 일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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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오태양씨가 병역거부 선언을 한 것은 하필 테러가 일어났던 그 해였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잡9.11 . 는다고 아프간을 초토화시켰던 그 때였다 그 뒤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이어졌고 그 사이 미선이 효. 순이가 미군의 무궤도차량에 깔려 죽었다 그리고 다음 해 기어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 때 나는. . , 내가 인간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한국의 몇몇 젊은이들이 인간방패가 되어서라도 이라크 아이들과 함께 하. 고 싶다며 이라크로 떠났다.

그 무렵 나는 우리 아이들과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전쟁반대와 파병반대를 외쳤다 날마다 공부방 한 . 구석에서 촛불을 켜고 아이들과 함께 이라크를 비롯한 전쟁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평화의 꽃을 접었다 그렇게 나는 폭력과 부당한 전쟁에 아니오라고 말하게 되었다. “ ” .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 육체에 가해질지도 모를 고통보다 내 정신에 찾아올지도 모를 안락함이 두. 렵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유보한 채 오로지 적응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한. , 다는 게 두렵다 그리고 언젠가 나에게 가해진 폭력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사할까 두렵. 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게 두렵다 또 한 명의 마초가 될까 두렵다 국익이라는 이름 . . . 하에 정치꾼들이 그려놓은 사업계획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춤을 추게 될까 두렵다 내가 알지도 못, . 하는 어쩌면 친구로 만날 수도 있었을 그런 사람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어느 순간 명령에 따라 , 총을 쏴야 하는 순간이 닥칠까 두렵다 그리고 이 모든 두려움은 다름 아닌 총을 들고 대한민국 국. 군장병으로 살아야 한다는 나 자신이 동의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는 또한 나 스스로 부여한 ,- , , 것도 아닌 병역의무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 되고 - . 싶다 이성을 가진 영혼을 지닌 한 명의 온전한 인간이 되고 싶다 안흥렬. , . - -

그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한 것은 군대가 두려워서 군대에서 보낼 년이란 시간이 아까워서 고생, 2 , 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에 따라 평화에 대한 신념에 따라 년만 고. , 2생하면 기꺼이 얻게 될 미래의 안정과 풍요를 포기했다 그리고 년 반이란 기간을 감방에서 보냈고 전과. 1 , 자가 되기를 무릅썼다 그들은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 . 총을 드는 대신 봉사자들의 일손이 절실히 필요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국가의 의무를 대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시사 주간지에서 국회에서 가장 오른 쪽에 있다는 이조차 까다롭고 구체적인 조건이 충족된“

다면 대체복무 도입에 원론적 찬성이다 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국회의원이나 이른바 사회 지도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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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대체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는 현 제도는 개선돼 한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 시“ ” . 행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체복무제 허용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여름 노무현 정부가 그나마 전향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던 대체복무제 허용이 국방부에 의해 원점. , 으로 돌려졌다 국방부는 대체복무연구용역 사업을 시행해 월 일 최종적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결정. 12 20하겠다고 했다 결론이 내려지려면 이제 딱 한 달이 남았다 더는 의 권고까지 무시하며 양심에 따른 . . UN병역 거부자를 계속 전과자로 만들 수 없다 국방부와 정부가 대체복무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종교적. 인 신념에 따라 평화적 신념에 따라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언제까지 그. 들의 삶을 외면할 수 있을까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늘어나고 평화적 병역 거부자들이 늘어날 것을 두? , 려워 전전긍긍하는 그들의 두려움과 의심이 안쓰럽다 폭력과 전쟁 뒤에는 의심과 두려움에 떠는 진짜 나. 약한 인간이 숨어 있고 탐욕이 숨어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허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 이제는 굳이 미국 독일 대만의 사례를 들지 않아도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 ?

아직도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두려움을 놓아야만 평화를 이루어 갈 것입니. . 다 저도 두려움이 많습니다.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 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 , . 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 .”- -

사방 콘크리트 벽과 창살 아래서 꽃 피우고 지고 썩어 다시 열매 맺고 꽃피우기를 반세기 선배들이 , 걸어갔던 도전과 희망의 길 따라 저도 결코 시들지 않는 꽃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오태양. - -

이 글은 민들레 호에도 실렸습니다+ 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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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 씨께

1.안녕하세요 글을 보내드리기로 약속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 겨우 이렇게 몇 자 끄적입니다 약속한 시간이 . . 많이 지났네요 용서를 빕니다. .

제게 전화를 주셨을 때 전쟁없는세상에서 일하는 이용석이라고 소개를 하시기에 어디서 들어본 듯한 , “ ”

이름이다 싶었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하 병역 거부로 수감 중일 때 녹색평론 에 보낸 독자 편지가 . , < >

언뜻 생각이 났어요 그때 읽은 용석 씨의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군대 없이 농사꾼은 살 수 있지만 농. . “ , 사꾼 없이 군대는 살 수 없다 농사꾼이 전쟁꾼에게 지는 날은 이미 지구상에는 아무도 승리한 자가 없는 . 날이다 아무도 세상에 살지 않는 날인 것이다 라는. .” .

남쪽을 여행하다 밀양을 지나면서 제가 일하는 학교로 전화를 하신 적이 있다고 하니 또한 반가운 마음이 되었지요 잠시 떠올려 보니 수업 마치고 나왔을 때 제 자리 위에 놓인 그런 메모를 본 것도 같네요 그래. . 서일까요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친구 같은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렇지요 친구가 된다는 건 이, , . . 렇게 쉬운 일이기도 하네요.

2.잠깐 먼저 짚어 볼게요 괭이부리말 아이들 거대한 뿌리 로 유명한 김중미 선생의 최근작 꽃섬고개 . < >, < > <

친구들 은 아마도 글쓴이 김중미 선생의 공부방 체험이 담겨 있는 듯해요 꽃섬고개라는 가난한 마을 공> . 부방을 중심으로 선경이와 한길이가 자라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네요 이 작품은 책 뒤에 작가 김중미 . 선생이 밝히고 있지만 폭력에 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아이들, ‘ ’ . , 과 아이들끼리의 폭력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 전쟁이라는 최대의 폭력 그 폭력의 고리를 어떻, , ,

믿음을 잃지 않고 물을 준다면 , 꽃섬고개 친구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을 읽고-『 』『 』

이계삼 |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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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끊을까를 고민하고 있네요.

제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대목은 한길이와 한길이 아버지 이야기였어요 월남전에서 얻은 병으로 내가 . ‘아닌 삶을 살다 결국 비참하게 죽고 마는 한길이 아버지와 초등 교사의 꿈을 접고 결국 병역 거부를 선’택하는 아들 한길이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용석씨도 혹시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권정생 선생님의 . , 초가집이 있던 마을 이라는 소년소설이 있어요 그 엄혹한 년대에 병역 거부를 다룬 작품이랍< > . 1980 ‘ ’

니다 월북한 아버지를 둔 복식이라는 소년이 분단과 전쟁에 대해 고민하다가 징집 영장을 받은 뒤 결국 . 자살을 택하고 마는 이야긴데 꽃섬고개 친구들 에서 권정생 선생님의 그 마음을 읽은 듯해요 그리고 한, < > . 길이에게서 불교도로서 최초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공론화시킨 오태양 씨가 겹쳐지기도 했지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은 그 병역거부를 직접 실천한 사람들이 옥중에서 쓴 서신들을 모은 책입니다< > . 이 글을 읽는 것은 두루 마음도 힘들고 아프고 그래서 편치 않은 기분이었어요 아마도 제가 별 생각 없, , . 이 군에 입대를 하고만 죄책감 때문일 거예요 저 또한 년대 초반 나름대로는 학생운동권에서 활동. 1990 , 을 했다지만 병역 거부는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막연하게 군대 가기 싫다 그래서 계속 연기에 연기를 , . , , 거듭하다 우리 과 남자 동기들 중에 거의 꼴찌로 학년 말에 군대를 갔던 정도지요4 .

저는 주간 훈련을 마치고 육본 헌병감실 상황실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이었지요 전군에서 10 . .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밤새 모아서 사고 사례를 만들어 지휘부에 보고하고 예하 부대에 전파하는 속보‘병 노릇을 했습니다 낮과 밤이 바뀌는 맞교대 근무에다 상황실에서 겪은 군대의 실상이나 속보 만들면’ . , 서 보았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의 끔찍한 폭력들 이런 것들이 저를 몹시 힘들게 했지요 아마도 그 시절의 , . 경험이 반면교사가 되어 평화에 대한 제 의식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 같습니다 물론 비싼 수‘ ’ . 업료를 치르긴 했지만 말이죠 특히 제대를 얼마 앞두고 터진 이른바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그 . ‘ ’, 사건으로 거의 두어 달 비상 근무를 했지요 저는 언론에 보도된 것과는 전혀 다른 그 사건의 속살을 알. 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몇 주씩 계속되는 야전 근무에 지친 소령이 중령에게 대들고 병사들은 매복근무 . , , 중에 공포에 절어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방아쇠를 당기고 우리끼리 교전을 하고 그래서 자신들의 상, , 관이 벌집이 되어 죽고 그리고 수백발 총탄을 맞은 공비의 비참한 최후까지 제가 유일하게 겪은 . ‘ ’ . …

준전시 상황이지만 이 군대란 곳은 너무나 한심했고 사람 목숨이 끊어지는 비참한 모습은 큰 상처가 ‘ ’ , 되었습니다 그 무렵이었을 거예요 간디 자서전 을 읽고 녹색평론 을 읽기 시작하고 평화에 대해 고. . < > , < > , 민을 하게 된 것이 그리고 저는 군대를 제대하고 지금껏 대한민국의 상징 태극기 앞에서 단 한 번도 가. 슴에 손을 올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 입대하기 전 용석 씨처럼 혹은 오태양씨처럼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들어 알게 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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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을 읽으며 내내 했더랬습니다 아 그건 솔, , < > . , 직히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부끄럽고 이 책에 나오는 수십명의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 , .

3.용석 씨 평화는 어디에서 올까요 그건 다름 아니라 누구나 안고 있는 제 몫의 책임을 응시하는 것. . , ‘ ’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이 책에서 용석 씨도 채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 걸 보니 비슷한 생각을 . ‘ ’하고 계신 듯해요 저는 자발적으로는 육식을 하지는 않으려는 편입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혼자 학교 . . 앞 청국장 집에서 점심을 먹구요 아침 저녁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고기 반찬은 해 먹질 않지요 그렇게 , . 하다보니 인간관계가 힘들어지더군요 이번 주에는 전교조 분회 모임 학년부 회식 지난 주는 전체 교사 . , , 회식 이래저래 연말에는 일주일에 최소 두 세 번 회식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회식은 대부분 고기를 , . ‘ ’먹지요 이곳에서는 아예 염소 한 마리를 통째로 주문해서 육회부터 시작하는 코스 요리를 즐기기도 해요. . 몹시 불편하지만 한 번 두 번 그 속에 지내다보면 어느새 긴장은 다 풀어지고 고기 말고 다른 거 먹, , ‘어요 이런 소리 하기가 참 힘들어서 묵묵히 따르게 되더군요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거기 가담하는 ’ . 것은 손바닥 뒤집듯 쉽지만 꼬장꼬장하게 비폭력을 실천하는 것은 정말로 고난이라는 거 이 책을 읽으, . 니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맨 뒤에 실린 한홍구 교수의 글 한국의 징병제와 병역 거부의 역사 를 아주 잘 < > < >

읽었습니다 많은 공부가 됐지요 특히 이런 이야기는 쓴웃음이 나오더군요 일제 시대 끝까지 신사참배. . . , 를 거부하고 병역 거부를 실천한 여호와의 증인과 신사참배와 친일의 대열에 동참한 주류 기독교계 ‘ ’ 중에 누가 떳떳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런데 작년 국방부의 대체복무 허용 방침에 대해 주. , ‘류 기독교계는 여호와의 증인을 두고 이단에 대한 특혜라고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기분이 묘합니다’ “ ” . 성서가 가르치는 평화를 실천하는 일에 관한 한 주류 기독교계는 여호와의 증인 앞에서 닥치고 있어‘ ’ 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4. 이 두 권의 책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직접 다룬 소설로서 당사자들의 솔직한 육성을 들을 수 있는 몇 , 안 되는 예로써 귀한 책들이 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쉬움도 몇 줄 써 보고 싶네요 꽃섬고개 친구들. . < >

은 선경이 한길이 영미 태욱이 같은 공부방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이 날줄이고 그 아이들이 겪는 가, , , , 난과 폭력 그리고 우정들이 씨줄이 될 텐데 그 두 결이 잘 맞아 떨어지도록 엮어지지는 못한 것 같아요, , . 한길이는 마치 병역 거부라는 예정된 운명을 향해 성장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아이들이 가난과 폭력‘ ’ , 으로 겪는 갈등들이 갈등해소의 단선적인 과정을 반복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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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은 병역거부자들의 서신들이 단순 취합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그 분들이 < > ‘ ’ . 글을 쓸 상태가 비슷해서였겠지만 평화가 무엇일까 왜 병역 거부를 해야 했는가 에 대한 각자, “ ?”, “ ?”의 답들이 좀 비슷했다는 거 그래서 읽는 이들에게 호소하는 힘이 약해지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 . 용석 씨 지금 우리들에게 평화가 뭘까요 전 평화는 고통에 대한 연민과 응전이라고 생각했어요 지, ? , ‘ ’ . 난 주말에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책을 다시 훑어보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케이블 에서 반딧불의 묘TV < >

를 방영하더군요 이 작품 명성도 익히 들었지만 몇 번 시도했다가 끝까지 보는 일에는 실패했어요 마. , , . 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에요 이번에 겨우 성공 했습니다 차 대전 말기 해군 장교로 전장에 나간 . (?) . 2 , 아버지는 전사하고 어머니는 폭격으로 잃은 남매가 지독한 가난과 주림 주위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 서서, , 히 죽어가는 과정을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었지요 아 저건 아마도 전쟁이 벌어진 곳에서는 어디. , , 건 있기 마련일 어린 죽음들의 형상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금도 이라크에서 아프간에서 어린 반딧불이들. 은 저렇게 반짝이다가 뼈가 앙상해진 채로 스러져가겠지요 잠시나마 남매를 돌봐주던 못돼먹은 숙모는 입. 버릇처럼 너희도 이제 국가를 위해서 뭐든 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하지요 국가를 위해서 전장“ ” . “ .” …에 나간 아버지를 둔 두 아이를 굶겨 죽이고 영양실조에다 이가 들끓어 빨갛게 발진이 된 아이에게 줄 , 약도 하나 없이 전쟁에 미쳐 있는 나라가 말이죠.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작은 것부터 가르치고 있어요 국가를 위해서 우리 학교를 위해서. ‘ ’, ‘ ’, 우리 반을 위해서 이런 소리 하지 말자고 가르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너 자신‘ ’ . ‘ , ’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에서부터 평화를 실천할 수 있는 일들 자동차와 육식이 얼마나 폭력적인 . ,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애를 씁니다 특히 공장식 사육의 실상을 접한 아이들은 많이 놀라곤 하지요. , .

5. 이제 이 두 권의 책을 우리 반 교실 뒤에 있는 학급 문고에 꽂습니다 몇 놈이 읽을 지는 모르지만 이 . . 녀석들도 내년에 졸업하면 당장 군대 문제를 고민하게 되겠죠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입대 영장을 받아 . , 두고 병역 거부를 고민하는 청년이 분명 있겠지요 이들에게 하느님의 위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총을 . . <들지 않는 사람들 을 읽으며 여러 대목에서 감동했지만 지금도 생각나는 한 구절을 같이 읽으면서 이 글> , , 을 맺을까 해요.

년 월 일자로 군 입영 통지서가 나오고 수없이 갈등했습니다 감옥 전과자 미래에 대한 2003 4 23 . , , 불확실성 부모님 그 모두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들로 다가왔습니다 낮에는 군대를 거부할 것을 결, . 심했지만 저녁이 돌아오면 그냥 잘 다녀와야지 하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 갈등이 사라지게 된 , . 계기가 있었습니다 봄날 산에 심어놓은 나무에 가뭄이 들어 이틀에 한 번 물을 주는 일을 하게 되. 었습니다 하루는 물통에 물을 채워 낑낑 대며 산에 올라 물을 주는데 나뭇가지 마디에서 순이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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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 나무도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는 토양과 물. . , 해의 도움을 받아 살고 또 무엇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찌나 경이롭던지 나무와 나가 한 생. ‘ ’명이라는 불교의 연기의 가르침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산이 온통 내 생명의 은인으로 느껴졌습니. 다 그러고 나자 군대의 고민도 자연히 풀렸습니다. .

병역거부자 김도형 님의 글 나에게로 와 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중에서“ ” ―

우리가 이렇게 물을 주고 가꾸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이 화탕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평화의 나무는 언젠, 가 이렇게 새순을 맺을 것입니다 전 비록 군대를 다녀왔지만 한국 교육이라는 거대한 폭력의 체제를 . , ‘ ’굴리는 일익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 믿음만은 잃지 않고 물을 주겠습니다, . 용석 씨도 내내 평안하기를 빕니다 전쟁없는세상의 벗들에게도 김중미 선생님께도 평화의 인사를 올. ‘ ’ , 립니다.

년 월 밀양에서 이계삼 올림2008 12 ,

이 글은 서울 민들레교회에서 발행하는 샘 에도 실렸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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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고개 친구들 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사회의 폭력 속에서 살아간다 그 폭력은 주로 차이를 그대< > . 로 인정하지 않고 그 차이를 구실로 차별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가난하다고 무시하고 학업성적이 떨어진, . , 다고 쓰레기 취급하고뚱뚱하다고 무시하고 동성애자라고 멸시한다 그런 고통을 겪어서 서로의 아픔을 , , . 아는 친구들끼리 서로 아껴주며 성장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한명인 한길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결심한다 한길은 불교신자인 오태양의 병역거부 . 선언에 큰 충격을 받고 베트남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자신도 병역거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한길, . 이 병역거부를 하게 된 원인을 여기서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폭력이란 무엇인지 평화는 어떻게 살아. , 갈 수 있는 것인지를 꽃섬고개에서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체득해갔던 것이다 동물원에 가서도 갇. 혀있는 동물들의 고통을 느끼고 학교에서 수치스런 체벌을 받는 친구의 모습에 선생님께 항의를 하기도 , 한다 공부방에서의 경험은 한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꽃섬고개 친구들 은 . . < >

여러 주인공들의 이야기이지만 한길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자신이 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게 되었는, 지를 자세하게 풀어 쓴 소견서라고도 할 수 있다.

나도 년에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간략하게 소견서라는 걸 썼다 대체복무제도 입법을 바라면서 조금2005 . 은 도식적으로 썼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지금의 나를 만든 어릴 적의 체험들이 있을. 까 생각해 보았다 이미 많이 희미해져버린 어릴 적 기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

나는 살에서 살까지 서울 성수동의 뚝섬에서 살았다 가구 정도가 모인 마당을 낀 다세대 주택에서 7 20 . 8살았는데 공동화장실이 단 개밖에 없었다 추운 겨울에는 변비라는 걸 모를 정도로 잽싸게 다녀와야 했, 2 . 다 덕분에 대학에 들어가서 여름농활을 가는데 화장실에는 아주 잘 적응을 했던 기억이 난다. , .

우리가 사는 집 근처에 프라도 수녀원이 있었는데 수녀님들이 맞벌이 자녀들을 모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

다시 떠올리는 병역거부 소견서고동주 |병역거부자 매체편집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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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갖게 해주었다 그곳에서 캠핑을 가기로 했는데 캠핑을 떠나기로 한 날 오전의 일이다 같이 가기. , . 로 한 친구들 명과 함께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다가 슬슬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데 같은 반 친구 한명이 2 , 우리들 중 한명을 보고 따라오라는 것이다 당연히 나와 나머지 한 친구는 덩달아 따라갔는데 우리보고 . , 따라오라던 친구가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돈은 캠프 회비였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 돈을 줄 수는 없었고 그 친구는 처음에 불렀던 친구의 얼굴에 주먹을 던졌다 친구의 입에서 피가 났고, . , 나는 두려움에 떨다가 주먹을 휘두르는 친구를 붙잡았다 자신의 입에서 피가 나는 걸 보고 흥분한 친구. 는 내가 붙잡은 친구의 얼굴을 자신의 머리로 받아버렸고 바닥에서 벽돌을 들기까지 했다 우리를 협박하. 던 친구는 사색이 되어 잘못을 빌었고 도망을 쳤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 .

벽돌을 들었던 내 친구는 정말 심성이 여리고 겁이 많았던 친구였다 그래서 만날 협박하는 친구에게 끌. 려 다니곤 했는데 캠프 내내 놀란 가슴을 어떻게 진정시켜야할지 몰랐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부르게 , .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 그 때 크게 느꼈다.

어릴 적에 느꼈던 감정들이 분명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옛날의 풍성한 감성들을 잊고 사는 요즘. , 다시금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감성을 돋우는 꽃섬고개 친구들 이 고맙다< > .

이 글은 우리신학연구소의 갈라진 시대 기쁜 소식 에도 실렸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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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초반부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화에서든 소설에서든 폭력이 나오는 장면을 만나면 눈물이 . 나옵니다 왜 울게 될까요 슬퍼서 끔찍해서 아니면 끔찍해서 슬픈 것일까요 화가 나는 감정을 어쩔 줄 . . . . . 몰라 울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길이의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는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는 아내. 를 의심하고 때릴 때 한길이와 동생에게 윽박지를 때 참 속상하고 화도 나고 슬펐습니다 후에 나오는 내, . 용이지만 한길이 아버지의 알콜의존증과 폭력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얻게 된 병의 증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병 때문이었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폭력의 흔적은 한길이네 가. 족의 의식 밑바닥에 가라 앉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꼭 기억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한길이네 가족의 이야기를 읽어도 그리고 선경이 태욱이 영미 . , 보라의 이야기를 모두 읽어도 한결같은 사실입니다 꽃섬고개 친구들의 어려움이나 고민은 그 친구들만의 .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빈틈에서 시작되어 개인을 괴롭히고 있는 일이라는 점이지요 아시다. 시피 주먹과 총과 칼을 휘두르는 것만 폭력이 아니라 말로도 사람을 해칠 수 있고 마음을 다치게 하는 , 일도 폭력이라는 것을 포함해서 이러한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입니다 이, . 것이 지금 내가 편안하다고 해서 꽃섬고개 친구들을 외면할 수 없고 또 같이 아파지는 이유입니다 교사, , . 든 학부모든 학생이든 모두 같은 인간일진대 그것을 마치 깜빡 잊기라도 한 듯이 학생들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학교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진 것일 텐데나이 어린 사람이라고 해. , 서 함부로 부리는 나이 많은 사람들 자신과 다른 점을 이상한 점으로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우리들 사이. , 의 드러나거나 감춰진 시선 이것들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요. .

책을 읽으면서 꽃섬고개 친구들은 제게 어떻게 살아야할 지 일러주는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 . 그리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팠던 이들에게 어떻게 대했었는지 사과는 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 . 의 친구들 중 한명인 한길이는 다른 이의 마음을 속 깊게 헤아리는 한편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폭력이 더 심각한 폭력을 낳을 수 있으며 그것에 똑같이 맞서려고 하면 싸움이 끊. , 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그리고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의 길을 선택합니다 한길이가 자신. .

꽃섬고개 친구들 을 읽었습니다. 『 』시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뮤지션 + www.withsi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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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의지를 무기력하게 만들려 하는 세상의 파도에 많이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파도를 잠. 재우는 일은 한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만이 감당해야할 일이 아닐거에요 나 자신과 내 옆의 사람들과 이. 야기를 나누어 보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작은 한걸음 내딛어 봅니다 세상의 많은 . 꽃섬고개 친구들에게 손 내밀어 봅니다 그 속에는 나도 있고 당신도 있습니다. .

이 글은 민언련 소식지 시민과 언론 에도 실렸습니다+ .「 」

이 책의 주제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임에도 우리가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 바로 폭력 이다 폭력의 얼굴은 너무, " " . 나 다양하다 폭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계급 사회의 총체적 . 현실의 다른 이름이라 봐도 좋을 만큼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다 폭력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우리 모두를 폭력의 . ? 공포로부터 해방시킬 자기 양심에 대한 복종 그리고 체제에 , 대한 불복종이 큰길이 아닐까 박노자 ? -

김중미 지음 검둥소, , 2008

이 책에서 우리는 내부 망명자의 길을 택한 인간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묵묵히 포승줄을 받고 감옥을 향했지만 . 그들의 목소리는 비장한 대신 속삭이며 그들의 바람은 거창한 대신 작고 아름답다 하염없이 자연과 벗하겠다는 목소리 아. , 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다소곳한 욕망 성적 정체성에 따른 , 나지막한 성찰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따스한 연대의 정이 소담히 담겨 있다 이 목소리를 들은 이는 외칠 것이다. . 다시는 감옥에 가두지 말라 이웃을 마음껏 사랑하게 하라“ . .”홍세화 선생님의 추천사 중에서 -

전쟁없는세상박노자한홍구 지음 철수와영희, , ,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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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채식을 한지 일년이 조금 넘었다 아 정말 얼마 안되었구나 느끼는 것보다는 훨씬 짧은 . , . 기간이다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같이 고기를 먹자는 제안도 많았고 실제로 많은 유혹에 끌. . , 리기도 하고 부끄럽지만 어쩌다가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다, .

제때 밥을 챙겨먹지 않는 이상한 식습관 탓에 내가 먹는 밥은 식사 때가 아닌 애매한 시간의 군것‘ ’질로 대신 채워지곤 했다 사무실의 컵라면 시장의 떡볶이 편의점의 김밥 등 그래서 그동안 쌓인 채. , , . 식의 노하우라고는 어디 편의점의 어떤김밥에 햄이 안들어가는지 아는 것 정도가 전부이다 같이 사는 . 친구도 사무실에서 보는 친구들도 다 채식을 하니까 메뉴선정에 있어서의 과정들은 나보다 더 오래 , 채식을 한 그들이 알아서 처리해주는 경우가 더 많고 왜 고기를 안먹는지 설명해야하는 일도 없다 익, . 숙해지면 그저 관성처럼 흘러가버려서 내가 선택한 즐거운 불편함도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를 지켜내는 뿌듯함도 느끼지 못하고 의식하지조차 못하게 되버렸다 먹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다보니 채식도 더 이상 내 삶에 별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었다.

채식과 가죽

얼마 전 계획에 없던 소득이 좀 생기는 일이 있었다 돈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는지라 어디에 썼는지. 도 모르게 다 써버리기 전 무언가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쌔끈한 겨울부츠가 눈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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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왔다 이쁜 가죽부츠 하나 사려고 맘을 먹고 돌아다닐 때마다 눈여겨보며 이것저것 따져보던 어느 . 날 내가 입고있던 가죽자켓을 보고 친구가 물었다 이거 진짜 가죽이야 너 채식하잖아. . " ? ."

이 옷은 내가 채식을 생각하기 한참 전부터 있었을 뿐이고 고기 안먹는다고 가죽옷 입으면 안되는 것, 도 아니고 너는 채식도 안하면서 왜 그러냐고 어쩌고저쩌고 나도 당황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 , .. 말도 안되게 더듬거리며 늘어놓고 있는데 친구는 다시 얘기했다 그치 병역거부자가 스타크래프트 할 . " . 수도 있지." 쿵 충격이었다 내가 신뢰하는 친구가 하는 얘기라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 하나 가죽. . . 옷 안입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다고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안 입는 것도 좀 그렇다 그래도 , , 고기는 안먹으려고 노력하니까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잠시 이런저런 이유를 떠올려보다가 몹시도 부끄.. 러워졌다 내가 떠올린 이유들은 모두 변명이었으니까 내가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말리던 사람들이 . . 했던 얘기와도 너무나 닮아있는 그런 변명들이었으니까 집에 와서 옷장을 보니 토끼털 패딩도 보이고 . 가죽장갑도 보이고 맙소사 왜 난 그동안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했으면서 가죽옷에 대해.. . 서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던 걸까 내가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존재의 피부? ‘ ’ 때문이었던 걸까 그래서 가죽부츠를 장만하려던 계획을 전면수정하여 운동화를 하나 장만했다 가죽? . 옷에 대해서 별다른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내게 그 친구의 이야기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채식의 의미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내 삶이 어떤 고통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지 직면하는 것은 . 결코 쉽지않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살아가면서 다른 존재의 도움없이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다른 존재의 고통과 희생 없이 이루어지. , 는 것들이 있을까 매일아침 나의 잠을 깨워주는 커피는 제. 세계 농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생산된 것이고 그동안 3 , 엠티에서 분위기메이커로 큰 역할을 해왔던 내 기타는 콜트 노동자들의 피눈물과 한숨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합성섬유, 로 만든 옷은 전쟁의 원인이 되는 석유에서 나온게 대부분이고 공짜로 받아서인지 가끔 잘 되지도 않는 내 핸드폰은 , 삼성이고 내가 쓰고있는 물건 어느것 하나 노동자들의 피. 와 땀을 착취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 있을런지 그럼 난 .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일까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남에게 . 피해를 주는 일일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 .

콜트콜택 노동자들을 후원하기 위한 문화예술인들의 콘서트를 알리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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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세상에 덜 피해주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내가 딛고 서있는 많은 고통들 중에 그나마 쉽게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 육식이었기 때문에 혹시 이것마저도 너무 쉽게 선택해버린 것은 아니었을지 반성해본다 계속 긴. . 장하지 않으면 고민하며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하려고 하는 채식도 지향하는 가치도 결국 살아, , 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다 결국 삶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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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조선시대 읍성의 성벽보다도 높은 담 사이로 난 조용한 길을 걸어 올라간다 고요하다 뚜벅뚜벅 . . . 내 발바닥이 땅과 만나는 소리만이 높다란 담에 부딪힌다담 너머에 거대한 저택들 저런 집에 한 번 살아. .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중학교 때 아파트에 살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나의 방을 가져본 적이 . 없어서 저런 넓은 집이라면 친구들 불러서 놀 수 있을 정도의 방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

발길이 멈춘 곳은 길상사 한적한 거리에 비하면 이곳은 사람들이 제법 북적이는 곳이었지만 부처님 계신 . , 곳이라서 그런지 요란스럽지는 않다 길상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시와의 노래를 통해서다 벌써 년 전. . 3 ,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시와를 처음 봤다 기타하나를 어깨에 매고 그저 목소리 . 하나 기타하나로 과장되지 않게 부르는 노래는 묘한 위로가 되었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눈을 내리감고 . 온 마음을 다하여 부르는 노래는 진심이 담은 창작만이 가질 수 있는 편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시와의 노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길상사에서 였다 성북동에 위치한 작고 조용한 사찰 . 「 」

길상사에서 만들었다는 그 노래는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수다스럽지 않은 위로가 내 맘을 그저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길상사를 꼭 찾아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언제나처럼 다짐은 그저 . 맘 속을 맴돌았고 차일피일 미루던 다짐은 병역거부로 인한 구속과 함께 출소 후로 연기되었다, .

감옥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단절이었고 그 중에 나에게 크게 다가왔던 것은 노래와의 단절이었다 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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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적인 독재정권이 있다면 가장 먼저 노래를 금지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창살 너머 멀리 하늘. 을 바라보며 정확하지 않은 음정과 박자로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어쩌다 점심시간에 잠깐 틀어주는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나오는 날에는 세상이 나와 같은 심장으로 숨쉬고 있는 것 마냥 들뜨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 와의 길상사는 그 당시에는 감옥 안에서 들을 수 없었다 지금은 라디오에서 들을 수는 있다 당신이 아주 ( . 정성스럽게 신청을 한다면 그저 나는 내 기억에 의존한 가사와 멜로디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

길상사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극락전이 보인다 서방극락. 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을 것이다. 느티나무 밑에 벤치에 앉아서 극락전 안의 풍경을 바라본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괜. . ‘찮아 괜찮다는 말은 무기력한 회피로 사용되는 경...’ 우가 많다 하지만 종종 거부할 수 없는 진심이 담겨있. 는 괜찮다를 만날 때는 형용할 수 없는 위로를 받‘ ’게 된다 이를테면 내리는 눈밭속에서 에서 서정주가 . 「 」

묘사한 눈 내리는 소리 괜찮다 괜찮다 그리고 시‘ . .’ 와의 길상사에서 의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 「 」

이 아늑하고 고요한 그래서 이 세계가 아닌 것 같은 곳에서 마치 저편의 지옥같은 나날들이 경찰과 깡패에, 게 철거민이 죽어가는 일상에 대해서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다독여준다 그것은 끔찍한 현실에 대한 , . 무기력한 인정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대한 긍정이리라 정태춘의 노래가락처럼우린여기 , . , 이렇게 살고 있지 않나저들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저 불의한 한 세상과 거, . 기에 빌붙어 사는 우리의 기막힌 처세술이지 우리의 삶 자체는 아닐 것이다 행복이 아니라도 우리는 삶을 .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아미타부처님이 살고 있는 서방극락정토가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호리호리한 석상이 하나 있다 다가가서 얼핏 보면 성모상처럼도 생긴 관세음보살님. 이다 도시에 있는 절이라서 그런지 제법 세련된 모습이다 여기 관세음보살님은 비 눈 다 맞으면서 바깥에 . . 사시는구나대웅전의 웅장하고 근엄한 석가모니부처님도 좋지만 살짝은 장난기 품은 듯 한 미륵부처님도 . , 좋지만 절에 들렸을 때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 분은 관세음보살님이다 중생들을 돌보기 위해 천개의 눈과 , . 천개의 손을 가졌다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 고운 곡선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 관능적인 육체를 한 번 쓸. 어내리고 싶다는 불경스런 생각을 해왔었다 이 곳의 관세음보살님은 관능적이기보다는 수줍은 여학생 같은 . 표정을 하고 있다 싯다르타 시대가 아니라 세기의 관세음보살님은 저런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 21모르겠다고 생각해본다.

길상사 극락전 안을 들여다보면 아미타부처님이 두 . 분의 보살님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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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님 보기가 살짝 민망해져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린다 극락전의 왼편으로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하고 육중한 .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현판을 보니 지장전이다 부처가 될 . ‘ ’ . 수 있음에도 스스로 명부에 머무르면서 마지막 남은 한 명의 중생을 위해 울어서 눈이 퉁퉁부었다는 지장보살이 모셔진 곳이다. 지장보살님은 과연 저런 거대한 집에서 살고 싶을까 그러고 보? 니 이곳 길상사도 올 때 마다 절의 규모가 조금씩 커지는 것 같다 시주쌀 한 번 안낸 입장에서 말하기는 뭐하지만 조금은 안. , 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국의 교회와 사찰들은 왜 그리 겉으로 . 보이는 거대함에 커다란 노력을 쏟는지예수님과 석가모니 부처님은 내가 알기로는 언제나 거대한 집이 아. 니라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고행을 했는데 말이다 거대한 종교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들고 . 막대한 돈을 마련하려면 나쁜 짓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거다.

기분을 바꿔보려고 자리를 살짝 옮겨 본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어느새 시와의 랄랄라 가 들려온다. . 「 」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 / / 단 거기에 있었을 땐 볼 수 없었지 언젠가 시와가 이 노래도 길상사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 ’ 있다 나도 시와처럼 옮겨온 자리를 바라본다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 한 발 짝 옮기고 나. . . 서야 보여지는 것들 문득 지나간 시간들이 떠오른다 언제나 한박자 늦게 알아차린 것들 그래서 나는 또 . . .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고 흐르는 물소리 떨어지는 꽃잎 발소리 내는 것도 조심스럽게 노래하는 ... ‘ / / ’ 사람의 착한 마음씨가 내 마음을 울린다 참 고맙다. .

천천히 길상사를 나선다 절 바로 앞에 고급차가 서있고 운전기사로 보이는 아저씨가 누군가를 기다리며 차. 를 닦고 있다 아마도 길상사에 들린 어느 부유하신 분이리라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떡하니 정면을 가로막. . 고 있는 차가 눈에 거슬린다 이곳은 부처님 세계와는 거리가 먼 년 월의 서울이다 거짓말 같은 일. 2009 1 . 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슬퍼할 사이도 없이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일을 걱정하기도 바쁜 일상을 살아내고 , 있다 이런세상 살면서 때로는 조용한 위로도 필요할 때가 있다 아니 사실은 더욱 자주 삶에 대한 긍정이 . . 필요하다 현실의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불의에 분노할 줄 알면서도 인간이라는 수치심을 가지. , , 면서도 그럴 때 마다 길상사를 찾게 된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못내 아쉽다. . .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들 흘러가는 저 물 소리도 어쩌나 두고 떠나기는 아쉬워 ‘ / / /

한걸음 입맞추고 돌아서네요’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는 어느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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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말하는 모든 낱말 하나하나는 평화를 말로 드러낸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나 자신에게 상기시키게 될 것입니다 내게는 한 인간사회가 누리는 평화는 그 사회 구성원이 향유하는 시.

만큼이나 개성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의미를 번역한다는 것은 시를 번역하는 ( ) . 時것만큼이나 힘든 일인 것입니다 문화는 늘 평화에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중국어 화평. . ‘ ’… …

은 하늘의 위계질서 속에서 부드럽고 고요한 조화를 의믜하는 것인 반면에 인도의 샨티는 친밀, ‘ ’하고 개인적이면서도 우주적이고 비위계적인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간단히 말해서 평화에는 . , 동일화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결코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평화는 옮. . …

겨 가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평화의 이전 은 전쟁을 의미합니다 평화 연구가 이러한 자명한 . ( ) . 移轉인종학적 사실을 무시할 때 그것은 평화 유지를 위한 테크놀로지로 전환됩니다 너무도 많은 역, . …사가들이 이 사실을 간과해 왔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전쟁이야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들 새로. . …운 역사가들도 너무나 빈번히 가난한 사람의 평화보다도 폭력에 대해서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 , 2002

사교육의 공간이기는 하지만 년째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처음으로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5 ‘ ’ . 리고 평화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사는 평화교육으로 흘러가게 ‘ ’ ‘ ’되었다 하지만 평화라는 말이 워낙 광범위하고 누가 쓰느냐에 따라 천지차이가 되듯이 평화교육에 대. ‘ ’해서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역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그 지역의 공부방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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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평화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할 때의 평화교육과 전쟁같은 일상에서 피상적 관계들 속에 자‘ ’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평생교육의 개념 속에서 이야기하는 평화교육은 또 다른 것이‘ ’다 평화가 다양하게 정의되어지는 것처럼 평화교육도 지향하는 바와 구체적 내용에 따라 매우 다. ‘ ’ ‘ ’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지금까지 평화교육 통일교육이라고 인식되어 왔. ‘ = ’다 통일교육의 중요성을 넘어서서 평화의 범위나 주제에 대해 좀 더 확장시킬 필요성은 분명 존재한. ‘ ’다.

이러한 막연한 고민들 속에서 고병헌 선생의 평화교육사상 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면서 문득 무언가 정리해< >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한국사회의 맥락을 담아내는 평화는 무엇인지 이 주제는 똑똑한 다른 분들. ‘ ’ (이 정리한 내용을 참고하기로 하고 평화교육이 어떤 내용으로 얼마만큼 진행되고 있는지외국은 어떤^̂ ;;), , 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짧은 소견이나마 내가 생각하는 평화교육에 대해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 ’었다.

책과는 인연이 없었던 교육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지한 내가 이런 내용을 준비해봐야겠다고 생각할 때, ‘ ’엔 많은 용기와 무모함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를 끌어줄 수 있는 조금의 강제성도 필요해서 소식지 기. ‘ ’획연재의 지면을 찾아왔다 어쩌면 많은 정보들의 요약판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얕은 밑천이라도 누군가. . 에게는 흥미로움과 정보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획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연재하려고 하는 기본내용은 평화교육의 정의와 종류 외국의 평화교육 한국의 평화교육가능하다면 현1) 2) 3) (장에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것으로 정도이다 지금은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계획하고 ) . 있지만 시작되는 순간 더 많은 내용과 도전들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떨리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간직하고 힘껏 해볼랍니다 다음 소식지에 만나요 . (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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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겨울

런던의 겨울은 생각보다 더 추웠다 요즘 이 곳 런던은 아침 시나 되어야 비로소 동녘이 밝아온다 며칠 . 8 . 전 칠흙처럼 짙은 새벽 일본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길에 문득 지, 난 여름 런던에 막 도착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럽연합 소속 시민권자들과 유럽연합 이외 시민권. 자들을 따로 분류하여 심사를 하던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들게 만들던 히드로 공항 입국 심사, 장의 분위기는 러브 액츄얼리 를 보고 기대했던 히드로 공항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다 년 전 년< > . 1 2008을 막 맞이하던 무렵엔 내가 이렇게 년의 마지막을 지구 건너편에서 보내고 있을 줄이야 상상도 2008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여기서 더 보낼 개월 여의 기간 동안 머물 집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연. 3말을 보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하다.

군중 속 평화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자유로운 세계 에서는 런던에서 하루 벌어 하루 생활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 >

엿볼 수가 있다 내가 개월 정도 머물렀던 헤이스팅스라는 런던 남부 해안의 조그만 도시에는 동유럽 . 6쪽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이들은 적어도 피부색은 하얗기에 유색인종의 범주에는 들지 않는들은 꽤( " " )나 많이 존재하지만 이슬람 국가나 아시아 계통의 나와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유색인종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길을 지나가는 일군의 틴에이저들이 유색인종 학생들에게 . ' '

야유나 괜한 시비를 거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고 특히나 금요일 밤의 펍에 나가면 꼭 한 번씩은 술에 취해 외국 학생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동네 청년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이런 경험들에 대. , 한 내면화된 불쾌함 혹은 불안함들이 런던에 오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런던에는 . 소위 토종 영국인보다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는 나도 그냥 " " . 평범한 눈에 띄지 않는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외부의 시선에 ' ',

내가 런던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젠더와 인종 사이의 역학에 대한 단상-

날맹 현재 인턴 | WRI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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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긴장감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을 군중 속. " 의 고독에 빗대어 대충 군중 속의 평화쯤" ' '

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이 두려워 하는 것 비 백인: ( )非

어느 책에선가 미국 사회의 인종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을 읽은 기억이 난다 흔히 우리는 인. 종갈등이라고 하면 백인과 흑인이라는 두 가지 범주만을 떠올리게 되지만 청교도 앵글로 색슨 출신 " - " 백인을 최정점으로 하는 인종의 위계 안에는 예컨대 유태인 아프리칸 캐러비안 연안 출신 이태리 출, , , 신 동구권 출신 중국계 등등이 더 높은 지위를 놓고 경합을 벌인다는 것이다 년대 초에 에서 , , . 90 LA있었던 한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공격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읽었던 것 같다 인종주의라는 . 큰 틀 안에서 억압받는 각각의 다른 인종들이 서로 간의 경쟁 아닌 경쟁을 벌이는 행위가 결과적으로는 인종주의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된다는 요지였다 사실 이와 같은 분석은 군 가산점 폐지를 두고 뭇 여성. 계을 싸잡아 비난하는 예비역 집단으로부터 야기되는 갈등이나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에 대한 냉대와 무관심 등 다른 사안들에도 동일한 논리적 틀 속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어학연수를 준비하며 이것저것 알아보던 시절특정 어학원을 평가하는 한국인들의 비공식적인 그러, 나 꽤나 영향력을 발휘하는 준거 중에 하나가 아랍권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었다 마치 한국 영어학원에. 서 흑인 영어 강사를 찾아보기 힘든 것처럼 유학 시장에서 특정 문화 혹은 인종에 대한 편견은 어학원 , 선택의 과정에서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이 편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가에 대해서 자신 . 있게 말하기가 어려운데 왜냐하면 나도 막상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한 남학생과 같은 반에서 수업을 , 들으며 다른 학생들에게 초면에 느끼는 일반적인 마음의 벽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에 대한 문명인의 반응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그 학생은 유난히 여성을 밝혔다 툭하면 자신에게 뽀뽀를 해달라고 했고 주변에 . , 있는 여학생들의 어깨나 허리를 감싸안는 식의 행동을 좋아했다 사실 이러한 행동은 그 사람이 누구이. 냐에 상관없이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어학원에 있던 리비아 출신 다른 학생은 사. 람들에게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 거칠어서 웬만한 경험과 내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다음에는 다시 인사를 하고 싶지 않게끔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한 때 나는 그들이 세련되지 못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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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반 여성적인 모습을 보여서 나의 혹은 사람들의 호감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출( ) 反신배경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덜 관용적으로 대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했다 마치 집회에서 욕하고 담배 뻑뻑 피워대고 으스대는 노동자 남성들에게 비호감을 느끼. 는 것처럼 무슬림 학생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출신배경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행동이 나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 벽을 세우게 된거야 하는 생각도 하면서 난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스스로 선언을 하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이로써 인종 혹은 문화간의 역학에 대한 고민을 한동안 접고 지내다가 다시금 같은 고민을 떠올리게 된 순간이 있었다 지난 여름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어학원에서 만났던 피렌체 대학교 학생을 다. , 시 만났다 그 친구가 자기 대학을 구경시켜준다고 해서 좋다고 따라갔는데 마침 그 날이 토요일이어서 . 대학 입구의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돈을 내지 않으면 화장실을 쓰기 어려운 여행지에서 대학 구경도 . 하고 화장실도 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대학이 개방되어 있지 않으리란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대학 바깥 주변만 서성이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나를 가이드 해준 이 여학생 친구 말에 따르. 면 최근 년간 대학 건물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자들의 숫자가 날로 증가를 해서 대학 측에서, 2,3는 수업이 없는 날에는 대학 문을 아예 닫아버리기로 했다고 한다 이 친구는 안 씻고 청결하지 못한 . 노숙자들이 학생들에게 큰 위협감을 주는 존재였다고 말하면서 대학의 그러한 결정을 지지한다는 말을 했다.

여기서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문화적 습속 개념을 인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 ) . 의 이런 경험들을 반추하다 보니 노숙자나 아프리칸 아랍권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그들의 거칠고 세련, '

되지 못한 이미지와 결합되어 작동한다는 것을 느꼈다 초기 근대 학교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 . 중의 하나가 바로 위생에 대한 관념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서구인들에게 타자였던 타인종들이 , '

매너를 모르고 지저분한 존재로 묘사되어 왔던 인식방식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남아있'

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경제적으로도 약자이지만 문화적으로도 약자인 존재들. .

페미니즘과 근대성?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지나치다 보면 가끔씩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가치관과는 별개로 내 몸이 먼저 움츠려들며 반응을 하던 경험이 떠오른다 어쩌다가 술에 취한 아저씨가 보통은 지. 나가는 여성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을 볼라치면 무섭거나 불쾌하거나 짜증이 나기도 하는 것이 내 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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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심정일 것이다 나는 헤이스팅스에서 동양인으로서의 자각을 심각하게 하다가 런던의 다양한 유색인. 종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편안함마저 느꼈지만 보통 더 공격적인 행동을 많이 보이는 것으로 여겨지는 , 아프리칸이나 무슬림들에 대해 두려움과 비호감을 느끼는 내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나도 여성들의 느낌과 경험을 공감할 수는 있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그런 여성들의 편. , 에 서는 것이 앞서 말한 근대적 인종주의와 협조적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저의 내용 중에는 여성운동진영에서 제기하는 성적자기결정권주장이 내포한 < >( ) ' ' 딜레마에 대한 논의가 나온다 가부장 질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차별을 문제제기. ' ' 하면서 해결책으로 성 적 자기결정권을 제시하는 하는 것은 여성의 성을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 ) ' ' , 性문제의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는 남성중심적 자유주의 사상에 도리어 해결책을 호소하는 앞뒤가 안 맞는 논리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길들여지지 않은남성들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공포심이 기존 . , ' ' 사회에 존재하는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과 결합하면서 일면 결과적으로 여성이 넘어서야 할 근대적 인식론에 오히려 협조하게 되어버리는 양상을 띠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 근대성과 페미니즘 김영찬 옮김 을 보면 서구 제세대 페미니즘 진영에서 식민지 사람들< >( , 1998) 1에 대한 편견들이 쉽게 발견되었다고 하니 여성으로서 느끼는 공포와 인종에 근거한 사회적 배제사, ' ' ' ' 이의 묘한 관계에 대한 나의 의심이 완전히 생뚱맞은 고민만은 아니라는 안도감도 살짝 든다 그렇다고 . 해서 내가 인종에 대한 편견과 여성적 두려움을 구별해서 판단할 줄 아는 현명한 여성이 되자는 식의 계몽적인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우자는 논의 때에도 느꼈지만 무. 언가 하나의 가치만이 정당화되면서 다른 가치가 도리어 배제되어 버리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머릿속에 떠다니는 복잡한 생각과는 별개로 당장 내 친구가 어느 날 두려움을 느꼈다면 나는 그 느낌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두려움이 사실은 나에게도 똑같이 작동하는 두려움이기 때문. 이다.

나가며

런던에서 개월 정도 머물 플랏자취방을 찾다 보니 예전에는 생소하기만 하던 지역들이 이제는 이름만 3 ( )들어도 대충 위치와 이미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국인들이 올리는 플랏 정보 사이트를 가면 심심. 치 않게 이 동네는 흑인 비율이 낮아서 안전하다는 식의 멘트들을 발견하곤 한다 여기 사람들과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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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나누다 보면 한국 혹은 한국인에 대한 존재감은 같은 아시아권 안에서도 중국이나 일본 다음에야 인식되는 수준인데 그런 존재인 한국인들이 다른 그룹들에 대해서 차별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그 발화, 에 담긴 의미를 열심히 분석해 보려다가도 한편으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어찌됐든 이렇게까지 써놓고 나니 새삼 나는 어느 안전한 지역에 집을 구할 수 있게 될 것인지 궁금해진' ' 다 이상은의 노래처럼 삶은 여행이라지만 일정한 주거 없이 계속 여기 저기 머물다 보니 이젠 어. ‘ ’ , 딘가에 빨리 정착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생긴다 지금의 나에겐 방 따뜻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 , 에 이왕이면 큰 마트가 있는 그리고 일하는 곳까지 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만족, 30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역시 충족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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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여론핑계 그만두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라

월 일 국방부의 정례브리핑에서 병무청이 대전대학교 진석용정책연구소에 의뢰했던 연구용역결과의 발표가 있었12 24 ‘ ’다 연구용역결과는 대체복무제도에 부정적인 여론조사 결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 편 국방부는 지난 월에 국민적. . 7 “

인 합의를 바탕으로 대체복무제도의 시행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힌바 있어서 년 월에 정부가 발표한 병역거부자에 ” 2007 9대한 대체복무가 전면 백지화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양심상의 이유로 군대를 갈 수 없어서 스스로 전과자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젊은이들이 해방이후 만천명에 달1 3하며 특히나 이 문제가 사회이슈로 부각된 년 이후에도 여 명의 젊은이들이 감옥으로 향했다 그동안 국가인권, 2001 4800 . 위의 권고라든지 유엔인권이사회의 수차례에 걸친 권고 미국무부의 세계종교자유보고서 등 국내외에서 대체복무도, , ‘2008 ’ 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국방부는 국민여론을 핑계로 스스로 약속한 대체복무에 대한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번 병무청의 용역연구결과에서는 비록 대체복무에 대한 반대의견이 많았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설문조사도 많이 있었다 병무청의 용역으로 진행된 지난 월 국회공청회에서는 사회지도층의 이상이 대체복무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 10 80%오기도 했었고 년 월에 실시된 리얼미터와 의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복무 찬성이 반대를 앞서기도 했었다, 2008 9 961sample리얼미터 찬성 반대 찬성 반대 이처럼 사회적으로 첨예한 사안이기 때문에 설문( 44.3% 38.7%, 961sample 55.9% 38.9%). 조사의 시기나 질문에 따라서 찬반이 뒤바뀌는 만큼 하나의 여론조사 사례가 정책결정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소수자 인권의 문제를 여론조사 등을 이용하여 해결하려는 방식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소수자는 사회의 . 보편적인 잣대와는 다른 생각이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수자인데 보편성의 잣대로만 소수자들에 대해 판단하고 , 보편적인 기준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며 소수자들에게 거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 여론조사는 사람들의 인식을 파악하는 하나의 유용한 수단일 뿐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국방. 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국방부는 더 이상 국민여론을 핑계삼아 대체복무제도를 백지화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년 월에 국민과 약속한 2007 9대체복무제도 시행을 준비해야한다 국민여론 형성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국민여론을 핑계삼는 것은 비겁한 변. 명일 뿐이고 국방부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국방부가 어영부영하고 있는 사이에도 현재 여명의 젊은이들이 평화에 대한 , . 450소박한 양심 때문에 감옥에 갇혀있고 만약 국방부가 대체복무제도를 전면 백지화 하여 그동안 대체복무를 기다리며 입영, 을 연기해오거나 재판이 미뤄진 사람들이 감옥에 가게 되면 병역거부 수감자의 숫자는 명을 넘어서게 될 것이며 이는 1000국제사회의 크나큰 망신이 될 것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서 신뢰에 금이 간 국방부가 될 것인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 , 한 노력을 통해서 떳떳한 국방부가 될 것인지 신중하게 판단하기를 바란다.

년 월 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2008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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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지 오정록 우완 우지연 유현미 윤지환 보라 이선아 이선화 이승규 이영롱 이용석 이은주 이정은 이조은 이지은 이현옥 인정환 임성환 임재성 장성희 장정혜 참새 조정의민 정재우 정현진 정현채 정혜윤 조명래 주창언 채승우

아키오 최영균 오리 최지선 아침 편설란 한주훈 홍수봉 홍창욱 황명규 황예랑 이선옥 박아름 정주열 시와 하승우 햄 이선영 정홍조 수하 김민영

전쟁없는세상 재정보고 년 월 일 년 월 일>> (2008 9 4 ~ 2009 1 12 )자세한 수입과 지출 내역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운영실 재정보고 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후원인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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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수 여주교도소에서 출소:: : 김치수씨가 년 월 일 여주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2008 11 28 .

보쳉김석민 서울구치소에 수감:: ( ) : 년에 병역거부선언을 했던 보쳉이 년 월 일에 법정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2004 2008 11 14 .

권순욱 심 재판 진행 중:: : 1권순욱씨의 첫 재판이 월 일에 있었고 다음 재판은 월 일 오전 시 분 인천지법 호에서 열립1 19 , 2 18 10 30 318니다.

우공 오정민 경찰조사 후 재판 대기 중 :: ( ) : 올해 월 일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을 했던 우공이 월 일 경찰조사를 받고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1 6 1 29

다.

김영익 병역거부선언 후 경찰조사 대기 중:: : 년 월 일 병역거부를 한 김영익씨가 월 일 시 강서경찰서에서 경찰조사를 받을 예정입니다2008 11 4 2 4 4 .

이길준 항소심에서 년 선고 상고 준비 중 :: : 2 , 지난 월 일 심 선고공판에서 년월을 선고받은 후 쌍방항소로 항소심이 진행되던 중 월 일 선고11 14 1 1 6 , 1 23공판에서 년형을 받아 현재 대법원 상고를 준비 중입니다 항소심 때 안양교도소로 이감되었는데 조만간 서2 . 울구치소로 이감될 예정입니다.

현재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오승록경기도 여주군 여주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30 809 (469-800)

안홍열경북 청송군 진보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5 1144 (763-710)

이길준 경기도 안양시 안양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101 2656 (431-600)

김석민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20 1289 (43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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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