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소식지 29호(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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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쟁없는세상소식지 29호(2010년 12월)
Page 2: 전쟁없는세상소식지 29호(2010년 12월)

Editorial 에디토리얼위기를 기회로 1

CO note 병역거부자 활동수기평화와 공존을 위해 군대대신 이태준 소견서, ... 2안지환 병역거부 선언문 5내가 총을 들 수 없는 이유 날맹 소견서... 7헌법재판소 재판관님께 11사람 사람들, 13우공의 출소인사 15은국의 출소인사 17그저 그렇게 살아요 18

Focus 시선집중

평화군축박람회 외2010 20

Experience 참가후기 집속탄반대 피스몹 참가기 23평화군축박람회 참가기 25

Special 기획기사기획 대체복무제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1 - , 28기획 대체복무에 대한 솔직한 좌담회2 - 34

Review 영화평서평․좀더 담대하게 평화와 마주하기 40

Series 기획연재가람이의 좌충우돌 세상읽기 제 화10 42나의 비정규직 이야기 감정노동자의 하소연2 - 43나름의 바다건너 일기 첫 번째 어떤 속죄- 46

Essay 평화에세이팔레스타인 그리고 여성, 49아름다워 더 슬픈 나라 라오스, 52내 나이는 스물하고도 세 살 56권력을 말하고 돈을 말하는 시대에 작가는 58경험을 통한 배움 일본여행, 59

Translation 번역콜롬비아 헌법재판소가 병역거부를 인정하다 63

Report 재정보고후원해주셔서 감사해요~ 64

매체편집팀

가리기획기사 섭외 표지디자인, , ,편집여옥기획기사 시선집중 재정정리, , ,편집 상우섭외 참가후기 번역, , 디에고섭외 참가후기 서평 , , 아즈섭외 번역 ,

인쇄기획 한울타리| 서울동대문구 제기동 130-062 2 137-69

TEL : 924-9641,2 FAX : 927-5104

발행처 전쟁없는세상: 발행일 년 월 일: 2010 12 19제 호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호 : 29연락처 : 02-6401-0514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번지 층: 422-9 3

우 ( ) 121-230http://withoutwar.org | [email protected]

World WITHOUTWARNewsletter No.29 CONTENTS

▶▶ Special대체복무제 이후의

병역거부운동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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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9 1

답답하다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여기 이 자리에서 이렇게 직접적인 전쟁의 . , 위기를 느끼고 전쟁날 것을 걱정해야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상황 자체가 . 당황스럽기도 하고 정말 전쟁이라도 하려는건지 감이 없는건지 정부의 대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머리도 아프고 여러모로 답답하고 무기력한 , 요즘이다.

그러다 생각해본다 이라크 사람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불안함 전쟁을 . . , 막기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자괴감 그동안 막연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감정에 좀더 깊이 공감. 할 수 있게 되었다 분단상황에서도 전쟁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게 했던 외교적 관계의 중. 요성도 절실하게 느끼고 그동안 쏟아부은 국방비로 개발하고 사들인 무기가 결국 우리의 평화와는 ,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도 절실하게 깨닫는다 평소라면 별로 감흥이 없을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 들이 이렇게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껴지다니 연평도에 실전배치된 다연장로켓시스템 때문에 . MLRS( ) 집속탄이 어떤 무기인지 언론에서 알려주고 있고 군대가 뭐하는 곳이고 군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 연스레 드러나는 요즘 이렇게 위기는 또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

이번 호 소식지를 만들기 위한 매체편집팀에는 뉴페이스가 많았다 함께 주제를 정하고 자료29 . 를 찾고 세미나를 하면서 기획기사를 만들어내는 매체편집팀의 특성상 모임도 잦고 준비할 것도 많

은 편인데 처음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모임을 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당연하게 , . 생각하고 진행하던 부분들에 대한 문제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대로된 계획이나 평가 준. , 비없이 알아서 해오던 방식에 대해 반성도 많이 했다 그런 이유들로 이번 소식지는 꽤 늦어졌고‘ ’ . , 그러다보니 지금 시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놓쳐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 조금더 체계적으로 소식지를 준비하는 과정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위기는 또 기회. 다.

하지만 위기가 절로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상황을 넘겨 보려는게 아니라 왜 위기인지 . , 생각해보고 극복을 위한 고민을 해야만 그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일반 시민인 나도 아는 이런 평. ‘ ’범한 사실을 우리 정부는 아직도 모르나보다 그래서 여전히 답답하다, . .

Editorial

위기를 기회로

여옥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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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공존을 위해, 군대가 아닌 다른 길을 걷겠습니다 이태준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지금껏 지녀온 양심과 행위를 모두 폐기하라.

침묵과 복종 그것이 제가 군대에 대해 내린 결론입니다 파병을 국익으로 포장해서 미화할 것을 . . 요구하는 조직 천안함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은 뒷전인 채 전쟁불사를 외치는 조직 저는 그 조직에서 , , 평화의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또한 불온도서를 지정하고 특정 신문조차 읽지 못하게 하는 검열 속. 에서 국방일보를 맹신하고 군대선전물을 낭독하며 국가주의를 습득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차별을 철. 폐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가 대학캠퍼스에서 바람개비인연맺기학교에서 대학생사람연대, , 에서 사회당에서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현장 속에서 지금껏 해온 모든 행동들이 반사회적 , , , 행위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곳에는 침묵과 복종만 있을 뿐 이성적 사유와 평화공존의 노력. , ․은 정지됩니다.

폭력과 정상남성이데올로기를 찬양하라.

또한 민중을 향해 겨누게 되는 총검술을 습득하거나 기본권을 요구하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 방패와 곤봉으로 찍어 누르는 기술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군대의 거대한 관료조직 안에서 내가 하는 . 모든 업무와 역할은 결국 국가폭력을 위한 합목적성을 갖습니다 성적 대상화와 마초적 문화에 적응하. 며 장단도 맞춰야 할 것입니다 기간은 왜 또 그렇게 긴지 사회와는 어째서 완전히 격리가 되어야 하. , 는지 납득할 수 없어도 그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모든 의문과 주장은 지워야만 하니까요 이런 군대. . 에 적응을 못해 혹 내 옆의 동료가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해도 저는 그를 능력없는 부적응자 정도로

생각하고 신속히 기억에서 지워야 합니다 한마디로 복종하는 법 침묵하는 법 눈치 보는 법을 군대를 . , ,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다 소통하는 법 질문을 던지는 법 저항하는 법은 아마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 , , 를 일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저는 한 명의 정상남성 전역증이라는 인증서를 가진 인간으로 생산. , 될 것입니다.

거부합니다.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 남성이 걷는 주류적 길이라고 한다면 이 모든 것이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 위해 필요한 길이라면 나는 흔쾌히 그 길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그 경험은 나의 존재와 의식 자체를 , ‘ ’ . 뒤바꿀 것을 폭력적으로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그런 기억과 경험이 사회 속에서 정상남성이. ‘데올로기의 형태로 주류타이틀을 획득함으로서 중 중으로 발생하게 될 폭력과 차별을 견딜 수 없습’ 2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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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9 3

니다.

공존을 위해

병영국가 대한민국 경찰국가 대한민국이란 딱지에서 결코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자유로울 수 없습, 니다 차별과 배제에 신음하는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여성에게 대한민국의 권력과 주류를 자임하. , , , , 는 사회적 문화는 폭력과 소통의 단절 침묵의 강요로 그들의 권리를 빼앗고 위험인물로 낙인찍는 법, 에 더 익숙합니다 그런 폭력과 침묵의 강요가 파생된 지점이 어디인지 추적해보았을 때 군대가 큰 축. 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평화를 위해

또한 침략전쟁에 동조한 대한민국 군대가 평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저는 , 그것을 묵인한 채 그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이어 얼마 전에도 대한민국 . , 군대는 아랍에미리트에 공병대 목적으로 파병을 강행했습니다 저는 평화를 목적으로 수행된 파병은 . 여지껏 없다고 봅니다 모든 파병은 지금껏 탐욕으로 파생된 전쟁을 지원하는 혹은 잠재적 적대와 전. , 쟁가능성을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진정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대와 평화를 지향하. 고자 한다면 당장 파병을 중단하고 국제원조나 식량지원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저. 는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는 평화적 수단으로만 쟁취될 수 있다고 믿는 지극히 상식적인 평화주의자입, , 니다.

우리 안에서부터 평화를 평화군축을 추구해야 합니다, .

군대가 공적 참여의무의 형식을 독점하고 국방이 공적참여의무의 테마를 독점해온 한국사회에서 , 군대문화와 정상남성이데올로기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 당연함의 전제는 이것입니다. . 모든 국민은 군인으로혹은 군사주의를 수용하는 인간 재생산되어야 한다 저는 이제 이 전제를 깨“ ( ) !” 뜨리는 도전을 할 때라고 봅니다 그 깨뜨림은 결국 군대가 점유하고 있는 과도한 사회적 지분을 축소. 하는 것입니다 그 깨뜨림은 자본주의적 폭력 전쟁 을 긍정하는 군대를 뿌리부터 바꾸는 과정입니다. - - . 그 깨뜨림은 국방의 미명하에 자행되는 기본권 탄압에 맞서 싸우는 일입니다 또한 그 깨뜨림은 군대. 에 국한되지 않은 새로운 공적 참여조건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자유의지와 평화를 전제로 한 사회복무제가 대안입니다.

대체복무제를 병역의무에 대한 예외 규정으로 인식하던 틀을 뒤바꿔봅시다 국방 패러다임에서 공. 적참여 패러다임으로 확대해보자는 말입니다 군사분야 외에 복지생태의료 등 많은 분야를 포괄‘ ’ . ․ ․하는 사회복무제 형태를 도입하는 것 그래서 군복무는 그 사회복무제 중 하나의 선택사항으로 존재하, 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꿈일까요 대체복무제 형태로 지금껏 거론되어온 분야들 외에도 군인이 꼭 수. 행하지 않아도 되는 수해복구 대민지원 등의 분야를 적극적으로 사회복무의 일부로 수렴함으로서 군, 대 자체도 효율화를 기하고 해당 분야의 가치도 더 증진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형태의 사회복. 무제는 여성과 남성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과 평화적 신념을 지닌 이들도 부담없이 참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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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가능케 합니다 그리고 신체검사로 결격을 판단 짓는 것이 아닌 개인의 자유의지 사회의 필요성으. , 로 공적 참여 방식이 결정됩니다 상업적이지도 않고 관료적이지도 않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사회가 . , 필요로 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복무제를 통해 기존 징병제가 갖고 있던 평화주의와의 충돌과 정상

남성이데올로기라는 편협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평화가 국민 공적 참여의무의 본체이고 . 불가피한 무력으로서 군대는 최소화시키고 부분으로 존재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저는 현재 한국징병, 제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재편되는 핵심사항이라고 봅니다.

과도한 복무기간과 격리적 복무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덧붙여 과도하게 긴 복무기간을 대폭 축소해야 합니다 현재의 복무기간과 격리조치적인 복무방식. 은 필요 이상의 기본권 탄압과 비효율성을 야기합니다 사회복무제를 설령 시행한다고 해도 현재 수준. 의 복무기간과 복무방식이라면 기본권 탄압의 성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징. 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전 세계 개국의 징병기간은 보통 개월 수준입니다 공적 참여를 보편적 83 4~12 . 의무로 규정해놓고 실상 내용과 형식은 전혀 보편적일 수 없는 형태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의무라기보

다는 강제동원의 타이틀을 붙이는 편이 더 나을 것 입니다 군대만이 유일한 공적 참여방식이어야 한. 다는 군사주의적 편견을 극복하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다른 공적 참여방식의 길을 ,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의 길을 만들어내고자 현재의 군대에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징. ‘ ’집영장을 받은 내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평화적이성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

평화와 공존의 의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참혹한 전쟁으로 죽어간 무고한 생명 빈곤과 차별이 상식처럼 벌어지고 있는 현실 우리에게 지금 , , 필요한 의무는 그 현실에 달려가 고통받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총과 . 칼 적대와 전쟁을 준비하는 예비적 무력의 확산이 아니라 고통받고 죽어가는 민중에게 달려가는 겸손, 한 마음과 평화와 공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 무기와 폭력 그것이 전제되는 의무가 아닌 평화와 공존이 실현될 수 있는 의무를 말입니다, , .

그 신념이 비록 지금 대한민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감옥에 가게 된다 해도 굽히거나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그 신념이야말로 나의 전부이니까요 그 신념이야말로 인간과 역사 앞에 가장 절실한 가치. . 라 굳게 믿습니다.

이태준

입영일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2010.11.09 , 경찰조사2010.12.13

현재 재판 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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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날 일인의 아나키스트로서 국가의 역 에 거부한다, ( ) .役

인간은 그 누군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가 되고자 하는 순간부터 그 존재가 된다 나는 어린 날에. 부터 아나키스트가 되고자 하였다 이는 서양의 신 지식에 감흥하여 그를 따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 내 나름의 선을 찾아가던 중에 내가 임의로 결론한 많은 것들이 선구의 아나키스트들이 주장한 것들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으로 어느 누군가에게서 당신의 이상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에 , , 편히 답하기 위해 아나키즘이라는 단어의 허울을 빌어 쓰고 있는 것이다 단어가 갖고 있는 설명과 ' ' . 지시를 가지고 내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여러 가지 것들을 다 전달할 수 없음에도 굳이 자신을 , 아나키스트로 소개하는 이유는 발언하는 것의 책임으로부터 도망하지 않기 위함이다 명백히 이야기 , . 하자면 그렇다 내가 아나키스트라고 자신을 명하는 일은 우스운 것이 사실이다 꼴도 우습기로서니, , . , 아나키스트란 도대체 무엇인가 당신이 주장하는 아나키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시작하게 , , 되자면 이야기는 길어지고 또 기다 아니다 결론지을 수도 없는 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 자신이 아나키스트라 밝히는 것은 눈 덮인 들판을 걷는 지금에 방향 삼을 별빛 찾는 마음에서이다, .

그러니 다시 한 번 명백히 이야기 하자면 아는 아나키스트 이전에 그저 일개 자유인으로서 아니, , , , , 일개 인간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할 따름이다 그에 있어 여러분과 국가의 , . 제재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일절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힘에 대항해야, , 만 하는 내가 방패삼아 내 새울 것이 아나키즘이라 할 수 있겠다.

이하 경어로 글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여러분에게 제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겠다고 선언 하는 데에 있어서 저의 양심의 기,

준이란 어떤 것인지 그 구성의 개인사적 과정과 내 양심의 진실함을 여러분께 증명할 필요는 법적으, 로도 도의적으로도 일체 없습니다 이는 치기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로 그러한 것입니다 제가 아. , . 침에 산을 오르고 비가 오면 바닷가에 나가보는 것 점심께 대청에 누워 잠을 자는 것 들에 핀 개망초, , , 를 꺾어다 방 안 화병에 꽂아놓는 것 그러한 일들을 그 누구의 허락 없이 할 수 있어야 하는 자유와 , 마찬가지로 군역을 치르지 않는 일 또한 일개인의 자유입니다 그 자유를 제지하고자 한다면 제지하는 , . , 측에서 그 사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 이치이지 내 쪽에서 개망초를 좋아하게 된 사연과 개망초를 꺾, 으면서 느낀 기쁨과 죄책감 따위의 심경 변화와 그것을 화병에 꽂아두고 바라보는 이유 따위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오늘 제가 이 선언을 하는 것에서 파생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선언 이후 지금부터 시작되는 , ,

일련의 법절차입니다 첫째로 양심의 선언을 하는 자에게 양심의 검증을 요구하는 것 둘째로 근본적. , , ,

병역거부 선언문

안지환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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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국가가아무리 좋게 이야기해도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침탈 하는 데에 그 개인이 납득할 만큼, ( ) 의 충분한 논의나 교섭 따위가 없었다는 것 이는 즉 국가의 폭력에 대한 부분입니다. , ( ) .

현재의자본주의 아래에서 법체제의 허구[1] ( )나의 아나키즘[2] 모든 권리에 대하여[4] 부탁의 말씀[5]

[8]어떤 이들은 삶에 싸우고 있는 우리를 허황된 몽상가쯤으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

니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그것들 그 현실들 혹은 현실이라 부르지도 못할 . . , ' ' , 적의 투사체들 그것들을 보았기 때문에 느꼈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 , .바닷사람이 다른 바닷사람을 보면 탄 배가 달라도 같은 바닷사람으로 뜨거운 애정을 느끼듯이 우, ,

리는 결국 우리가 같은 사람이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삶이 몰아간 자리에서 투사가 되어야만 했던 모든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동지 여러분 저들이 조소, .

하듯 우리가 서로에게 아무런 실용적인 힘이 되지 못해도 좋습니다 그들의 건조한 잣대를 안타깝다는 . 미소로 응대해줍시다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는 연대의 한마디 아무 힘 없을지 몰라도 사랑을 느낄 수 . , 있는 연대의 말 한마디 그 마음의 전달만으로 우리는 무쇠 갑옷보다 더 질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 니다.

우리가 모두 이어져 있음을 느낄 때에 우리의 승리는 시작할 것입니다 사랑과 분노와 안타까움, . , 애타는 연대의 마음 그것을 느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우리의 마음에서 마( ) . , 肝苦음으로 전달되어질 따뜻한 그 무엇이 우리를 끝까지 살게 할 것입니다.

살아남아 사랑합시다.

본문은 전쟁없는세상 페이지 참조.년 겨울의 초입에2010 .

안지환

입영일 병무청에 병역거부의사 밝힘2010.11.30 ,

현재 경찰조사 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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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9 7

내가 총을 들 수 없는 이유

날맹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1.군대 대신 감옥에 가는 것 이것은 제 삶에 있어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습니다 어느 특정한 시점, .

에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닙니다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를 짧고 간결한 말로 설명하는 것. 도 쉽지가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제가 병역거부라는 선택지를 처음 알게 된 년부터 지금에 . , 2003이르기까지 제 자신에게 군인이 되어 총을 들고 서있는 저의 모습을 납득시키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 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제가 병역을 거부하기까지 거쳐 온 고민의 여정을 보여주는 글이 될 . 것 같습니다.

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은 제가 국가와 전쟁 그리고 군대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게 된 첫 번째 2003계기였습니다 당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였던 저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집회에 다녀. 오면서 국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이익은 구체적으로 누구의 이익을 의미‘ ’ .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받아온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체력은 국력이라는 . ‘ ’식으로 저와 국가를 동일시하고 있던 제 가치관은 이때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민중의 지팡. ‘이라고 알고 있던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껏 내가 배우고 믿어왔던 세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역거부를 계속 고민하던 저는 미군기지확장이전 반대 투쟁이 벌어지던 년 평택 대추리에서 2006펼쳐진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저 자신이 살아오던 . 땅에서 계속 살고 싶어 했던 주민들에게 정부가 한 일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며 그들을 모두 몰아내

는 것이었습니다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 벌어지던 월 일 동틀녘 대추리에서 저는 군대와 경찰의 무. ‘ ’ 5 4자비한 폭력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내세운 국가폭력 앞에 사람들은 똑같이 폭. 력으로 맞서거나 혹은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악마와 싸우다가 악마가 되는 일을 피하기 . 위해 비폭력적인 대응방식을 고민했지만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군대가 자국 국민을 적으로 몰아 공격, 하는 모습을 보면서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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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있어 군대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을 내면화하는 공간입니다 평택 대추리 광우병 ‘ ’ . , 촛불집회 용산참사 때의 전의경을 보면서 저는 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 ·는지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동안 투하되는 미사일을 보면서 어떻게 . ,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미사일을 쏠 수 있는지 이해해보고자 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상대를 나와 . , 같은 감정과 욕구를 지닌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총구를 겨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에게 군인이 되는 것의 의미는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동원과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로봇이

되는 것이라는 점이 보다 명확해졌습니다.

2.병역을 거부하고 이제 아마도 감옥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제가 그동안 만났던 아이들 얼( ) ,

굴이 생각납니다 올 봄에 초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서 만난 아이들입니다 급식실로 가는 그 짧은 . . 길에서도 제 손을 서로 잡지 못해 아쉬워하고 밥 먹을 때도 서로 제 옆에 앉으려는 아이들을 보면서 , 제가 그들의 삶에 중요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에 행복했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달려와서 저랑 묵찌빠. 를 하면서 마냥 좋아하는 아이들 복도에서 걷다가 떨어진 필통을 주워줘서 고마웠다고 편지를 쓴 아, 이 자기도 커서 교생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아이, . 들 한명 한명의 얼굴을 보면서 각자가 지닌 기쁨과 고통에 기꺼이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공부한 교육학은 교육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한 질문

을 던져주었습니다 교육이 무언가에 대한 고민은 내가 사는 이유 그리고 내가 지금 중요시 여기는 가. 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교생실습기간을 거치며 제가 . 결론 내린 교육의 목적은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갈등을 겪으‘ ’ . 며 자신의 바닥을 경험하겠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주고 존재로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

해나간다고 믿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안보는 각자가 안전함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 ’ . 는 법을 배우고 살상훈련을 하는 것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 ’ . 다는 군대에서 서로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을 경험하게 될 제 자신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개. 인의 양심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명하달의 조직문화 남성중심의 위계질서와 같은 군사문화가 군대를 , 통해 사회전반에서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는 타협할 수 없는 . 제 내면의 진지한 목소리이며 이런 저의 신념을 도저히 속일 수 없었기에 기꺼이 병역거부의 길을 선

택하였습니다.

3. 얼마 전 집속탄금지협약 차 당사국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라오스에 다녀왔습니다 지금도 라오스에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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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9 9

서는 불발 상태로 남아있는 집속탄으로 인해 하루에 한 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 베트남전쟁 당시 라오스 전역에 투하한 수백만 개의 집속탄들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를 주고 40있는 것입니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비인도적인 무기로 낙인이 찍힌 집속탄에 대해 한국정부는 여전히 . 국가안보를 이유로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의 기업들 역시 집속탄을 생산하여 이윤을 챙기고 , 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된 연평도 사건에서 한국정부는 보다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뉴스에는 이. 에 맞춰 한국군이 자랑하는 다연장로켓포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토화되는 것은 북의 해안. 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 혹은 우리의 인간성입니다 포격을 한 북한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갈등국면을 . , 조장한 한국 정부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에서도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 지만 북한에서도 분명 한국의 공격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계속 서로에 . 대한 공포와 적개심을 키워나간다면 앞으로 눈물을 흘릴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죽어도 괜찮은 생명은 없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더 이상의 군비경쟁을 멈추. 어야 합니다 서로간의 적대를 조장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것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소수의 지배계급과 . 군수업체들뿐입니다 폭력은 또 다른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을 낳습니다 저의 병역거부는 이 악순환의 . . 고리 속에서 제가 택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선의 선택입니다.

4.제게 있어 병역거부는 저의 삶의 방식 자체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계기입니다 누군.

가의 병역거부 소견서에도 언급된 적이 있지만 저 역시 애초에 평화로워서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되었, 다기보다는 오히려 병역거부를 고민하면서 여성주의와 평화주의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킬 수 있었습니

다 전쟁없는세상을 통해 만난 사람들 덕분에 채식을 시작했고 자전거를 타게 되었습니다 적게 벌고 . ‘ ’ , . 덜 소비하며 세상에 가능한 해를 덜 끼치며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시작한 것입니다 돌이켜 . 보면 지금 제 삶의 할은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전쟁없는세상 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 만들어졌다8 < >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아직 닥치지 않은 수감생활을 미리 상상하는 것은 제게 스트

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할 때마다 제가 언젠가는 감옥에 가게 된다는 생각. 이 잊지 않고 찾아와 저를 괴롭힐 때가 있었습니다 감옥에 갔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느냐며 저의 . 결정을 만류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군대를 안 가고 감옥에 가. 는 것이 왜 꼭 저여야 하냐고 말하는 부모님과 싸우면서 그분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것에 슬프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기어이 부모님의 뜻을 거슬러야만 하는 사실에 대한 죄송한 마음도 여, 전히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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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가 병역을 거부하기까지의 고민과 결심에 자극과 영향을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 하고 싶습니다 병역거부는 분명 제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것이 결코 저 혼자만의 고민의 결과는 아니. 라고 믿습니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제가 병역거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완전하. 거나 잘 나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비폭력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도 많은 자극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의 저에게 병역거부는 어떤 특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제 삶의 맥락 속에. 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저의 병역거부가 군대의 존재이유에 대해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내 양. 심의 자유 네 양심의 자유라는 상대주의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 , 습니다 이번 병역거부가 저로 하여금 타인의 상처와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공감할 수 있는 존재. 로 살아갈 수 있도록 쉼 없이 깨우쳐주는 자극이 되었으면 합니다.

날맹

입영일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2010.12.14 ,

현재 경찰조사 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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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재판관님 안녕하세요 저는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년 월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현. ? ‘ ’ 1 6민이라고 합니다 가을의 손길을 느낄 새도 없었는데 어느덧 쇠창살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이 겨울. 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기세입니다 창살에 몸을 삐뚜름히 기대고 있으니 훗날 제게 년은 단풍잎을 . 2010보지 못한 해로 기억될거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뜬금없는 편지의 목적을 눈치채셨는지요 일면식도 없는 제가 재판관님께 편지를 보내는 까닭은 최. 근 헌법재판소에서 병역법 조 항 호 와 향토예비군설치법 조 항 의 위헌여부를 가리기로 했< 88 1 1 > < 15 8 >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기는 감옥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담장 바깥에서 어떠한 .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알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 . 와 관련해서 오래 고민을 했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병역 거부 당사자로서 저는 무슨 일이든 하지 ,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경험을 돌이켜보면 저는 병역거부를 하기 전까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가장 , 괴로웠습니다 대 내내 제 상상속의 미래는 입대를 하고 제 앞으로 총 한자루가 주어지는 순간에 멈. 20춰있었습니다 상영 도중에 영사기의 필름이 잘려나간 스크린처럼 그 이후의 미래는 연속적인 시간의 . . 흐름이 아니라 텅 빈 화면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군대가 하나의 경험이 아니라 . 사회적 삶의 입구를 차지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주지하듯이 한국사회의 대다수 남성에게 군. 대는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필수코스입니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군인됨을 설득시킬 수 없었던 저는 더. 불어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대를 구상할 능력도 잃어버렸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미래란 더욱 30 . 요원했습니다.

이런 고충을 털어놓으면 제가 너무 예민하다고 남들도 다 하는 걸 왜 못하냐고 그냥 눈 딱 감고 , , 다녀오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습니다 재판관님께도 이런 답변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 . 은 예비역들의 고생담이 증거하는 것처럼 군인되기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닐거라 짐작합니다 낯선 실. 탄의 감촉 개머리판의 반동 총구에서 흐르는 연기에 익숙해지려면 적잖이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순간, , 들이 있었으리라 마음 짚어봅니다 손바닥에 땀이 배고 손가락이 떨리고 눈동자가 흔들렸을 순간들입. , , 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앞서 언급했던 제 무능력은 저만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다른 예비역들과 잇. 닿는 기억이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님께

현민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현재 영등포교도소 수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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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의 경험과 예비역들의 경험은 좀처럼 소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사회가 이. 런 무능력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하나의 답변 극기하고 극복하라는 주문. , ‘ ’ ‘ ’만 외기 때문입니다 제가 재판관님께 드리고픈 말씀은 이런 머뭇거림과 주저함은 병적인 찌꺼기가 아. 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품고 있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순간들에는 무장한 . 건장한 남성을 보호자로 내세우고 그 밖의 사회성원들을 피보호자로 밀쳐두는 일방적인 안전에 대한

의문이 웅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타인의 생명에 연민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 는 갈망이 숨죽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가능성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의 . ( ) 전환은 매우 긴요합니다.

재판관님 지금 이 순간에도 저처럼 미래를 상상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젊은이들이 있을 줄로 압. 니다 병역법 조 항 호 와 향토예비군 설치법 조 항 에 대한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 < 88 11 1 > < 15 8 >들에게 사회성원으로서 미래를 부여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은 지금껏 한국사회가 제시한 하나의 답변 대신에 수많은 질문을 불

러일으킨 결정적인 계기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 수많은 질문을 통과해야만 미래의 한국사. , 회는 적대의 너비를 줄이는 한편 공존의 부피를 키우고 위계의 높이를 낮추는 한편 평등의 깊이를 더,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위헌판결 이후 대체복무제의 설계와 운영에 대한 논의겠지요 저는 국가. . 의 가치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데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다양한 관계를 맺도록 고무하는 데서 드러

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안보와 평화는 그런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

어쩌면 이 편지가 도착할 즈음에는 월 일이 지나버렸을지도 모르겠네요 헌법재판소에서 월 11 11 . 11일에 공개변론이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참고하셔서 현명한 판결을 11 .

내려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내년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봄내음이 실려올 무렵이면 감옥에 . 갇혀있는 여 명의 병역거부자들이 함께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그때를 기다리800 . 면서 저는 겨울징역 살 채비에 골몰하겠습니다 긴 편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

일요일2010. 11. 7. 병역거부자 현민 드림

현민

입영일 병역거부선언2009.11.10 . 경찰조사용산경찰서2009.12.11 ( )징역 년 월 선고2010.03.03 1 6

수감2010.03.12

현재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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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들, 조은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현재 서울구치소 수감 중+

수감된 지 두 달이 지났어요 월 일 법정구속 직전에 사람들과 나눴던 마지막 포옹이 아직도 생. 9 30 , 생한데 말이죠 그 사이 찬물로 몸을 씻어도 견딜만했던 날씨는 물을 따르면 그대로 컵 안에서 얼어버. , 릴 만큼 추워졌습니다 어찌 보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찰나같은 시간이지만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방. , . 을 세 번 바꿨고 구매에서 영치로 출역이 바뀌었죠 수십여명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소중, ‘ ’ ‘ ’ . , 한 인연을 쌓아갔습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안에서의 생활이나 출역일에 대한 소개는 다. 음 기회로 미루고 두 달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때론 악랄하고. , 때론 어린 아이처럼 순진무구하죠.

운동 시간에 외소외부 청소 출역장 한 분과 제가 속한 구매구매물을 분류운반하는 출역장 한 분( ) ( · ) 의 말다툼이 있었어요 구매 사람들은 하루에 분간 주어지는 운동시간에 족구를 하는데 외소 한 분이 . 50 , 족구 하는 곳으로 오셔서 지금 사용하는 공이 자기네 공이니 돌려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원래 우리 공이었다고요 공에는 외소라고 글씨가 쓰여 있잖아 우리 공이야 이리 줘 우리 공을 “ .” “ , .” “외소에서 빌려가 놓고 그 공에 외소라고 쓴 거에요 원래는 우리 공이라고요 이 새끼가 아니면 어쩔, .” “ , 래 뭐라고요 아저씨 지금 뭐라고 말했어요 다시 말해봐요.” “ , , .”

가죽이 다 벗겨진 낡아빠진 공이었어요 사회에선 길가에 굴러다녀도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을 누더. 기 같은 공이었죠 그런 공 하나의 소유권을 두고 꽤나 심각하게 다툼이 일어난 거예요. .

한편으로 그들은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어요 구매 사람들은 신입 재소자가 들어오면 구매가 쓰여진 . , ‘ ’명찰 귀퉁이에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구매의 일원이라는 의미죠 초등학생들이나 모을만한 . ‘ ’ . 빵 속의 부록 스티커 따위를 소중하게 모아요 저는 구매에 들어갔을 때 분홍장이라는 캐릭터가 새겨진 . ‘ ’스티커를 받았어요 그들이 모은 수십개의 포켓몬 스티커 중 제 이미지에 어울린다며 추천해줬죠 명. . 17의 구매 출역수들은 모두 어깻죽지에 달린 명찰에 포켓몬스터를 달고 다녀요, .

우리는 술래잡기도 해요 구매 출역장에서 하는 건 아니고 명이 같이 생활하는 평짜리 방에서 술. , 7 3래잡기를 합니다 술래는 눈에 안대를 쓰고 그 위에 마스크까지 덧써서 눈을 완벽히 가립니다 나머지 . , . 여섯 명의 사람들은 술래를 피해 도망다니죠 여긴 평이에요 명이 테트리스 게임하듯 빼곡빼곡 겹쳐. 3 . 7져야 겨우 잘 수 있는 공간에서 우린 술래잡기를 합니다 어떤 이는 쇠창살 위에 매미처럼 매달리고 어. , 떤 이는 방구석에 매달린 인치 밑에 쪼그려 앉아 숨어요 십구팔칠육오사삼이일제로 잡는다 벌칙15 TV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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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빵 세 개 연속으로 먹기를 피하기 위해 명의 아이들은 평 방을 훨훨 날아다닙니다‘ ’ 7 3 .

아이들은 출역일할 때 다시 악당이 되기도 합니다 일을 하는 동안 그들은 매우 예민해져있어요. . 의 과일상자가 슝슝 날아다니고 마촤아 를 외치며 가까이 되는 마차리어카를 끌고 언15kg , “ ~~!” 200kg ( )

덕을 오르내리는 고된 노동 때문이겠죠 그딴 식으로 물건 쌓지 말라고 했지 하차조트럭에서 물건 내. “ ! (리는 조 일을 그것밖에 못해 정신 못 차릴래 고성이 오고 갑니다 몇몇은 분에 못 이겨 손에 든 펜), ? !” . 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험한 말을 언어폭력을 주고받죠, - - .

어린 아이처럼 사소한 일에도 서로 즐거워했다가 때론 서로를 상처 입히기도 하는 곳이 징역이랍니, 다 좋든 싫든 서로를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공간인지라 감정과 감정이 공명하고 마찰하는 순간이 . , 반복됩니다 감옥이라는 이 특수한 공간은 우릴 어린 아이로 만들어버립니다. .

각기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지닌 개개인의 조합은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출역장마다 . 규칙과 문화가 다르고 방 마다도 다르죠 군대문화가 녹아들어있는 구매와는 달리 저 말고 구성원이 , . ‘ ’ , 전부 여호와의 증인인 영치재소자의 물건을 관리하는 출역소 는 나름 평등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어‘ ( )’요 어르신들이 많은 방은 설거지 같은 일거리를 평등하게 분담하고 조용히 책과 신문을 읽는 분위기인 . , 반면 젊은 사람들이 많은 방은 위계적이어서 일은 막내가 몰아서 하고 수다 떨고 게임하며 노는 분위, , 기랍니다.

눈이 내려요 이 글을 쓰는 순간 쇠창살 밖으로 올 해 첫 눈이 내리고 있어요 저는 눈을 보며 딱 . , . , 제 몸 사이즈만큼 이불을 깔고 과자박스로 만든 조그만 책상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채 이 글을 쓰고 , , 있어요 옆에 누워있는 형이 눈이 오니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하네요 그 말에 이 눈에 기분이 묘해집. , . , , 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징역의 경험들이 저에게 무엇을 남겨줄지 저로선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눈이 몇 번씩 쌓이고 녹는 동안 새로운 인연들도 또 다른 에피소드들도 같이 쌓여가겠지요 지금의 저, . 로선 제 모든 경험들을 밖의 사람들과 오랜 인연들과 공유하는 게 가장 의미있는 일입니다 기회가 닿, , . 으면 또 소식 전할게요 건강하시길. .

년 월 일 일요일2010 11 28서울구치소에서 조은

조은

입영일에 병역거부선언2010.06.15 경찰조사 성북경찰서2010.07.21 ( )검찰조사 중앙지검2010.08.17 ( )

심 선고공판 징역 년 월 선고 법정구속2010.09.30 1 , 1 6 ,

현재 서울구치소 수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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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 이냐 자유인이냐는‘ ( ) ’囚人질문 앞에 다시 서며

우공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년 월 일에 이 글을 쓰는 감회는 조금 복잡합니다 저는 년 월 일 다중지성의 정2010 12 1 . 2009 1 6 <원 에서 병역거부 기자회견을 한 이후 그 해 월 일에 수감되어 다음 해인 >(http://daziwon.net) 6 2 2010년 월 일에 가석방 출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월 일로 제 형기는 최종 마무리되었습니다 출소 이8 13 . 12 1 . 후 다중지성의 정원 의 활동을 지속하며 형기종료일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국가권력이 부여한 형기< > . 종료일은 한 개체의 삶에 새로운 시작도 끝도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바쁜 낮과 고단한 밤을 보. 내며 순간순간마다 생기는 길지 않지만 즐거운 여유와 함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속. 에서 강제 부여된 형기종료일보다는 오늘의 활동 시간 내일 갖게 된 우정의 시간을 생각하는 것만으, 로도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강제 부여된 시간이 제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면 그. 것은 이 시간들을 통해 사유되는 사건들과 사람들 때문입니다.

제 형기종료일과는 상관없이 이미 오래 전부터 월 일은 평화수감자의 날이었습니다 전쟁저항12 1 ‘ ’ . 자인터내셔널 은 년 월 일부터 이 날을 기념했으니 이미 년(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 1956 12 1 50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없는 세상 의 활동가들은 올해에는 수의 를 입고 프리허그를 하. < > ( )囚衣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비록 제가 이 퍼포먼스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수의를 입은 사람이 밝은 표정. 으로 거리에서 사람들과 포옹프리허그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감정의 요동을 느( )낍니다 그리고 수의가 특별한 날 입는 예외적인 옷이 아니라 항상 입어야 하는 평상복인 사람들을 떠. 올리게 됩니다 현민 님과 조은 님 하동기 님처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부터 소식지와 기사로 접. , 한 다른 병역거부자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타인을 만나는 일이 아닙니다 이 분들을 떠올리는 마음속 어딘가에는 저의 몇 개‘ ’ . 월 전 수감 생활 모습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현실 세계의 자본과 권력의 독점과 . 규율 통제로 인해 갇혀 있는 수많은 사회적 수인 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 ‘ ( )’ . 囚人집이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장애인에게는 감옥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 ’ ‘ ’ . 되지 않는 사회보호시설의 수용자들에게 시설은 감시통제시설이나 다름없겠지요 그리고 서울에서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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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지 않지만 서울을 떠나기도 쉽지 않은 대도시의 노동할수록 가난해지는 노동자들에게 서울은

거대한 도시감옥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처지의 사람들이 하나의 국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 ’ . 전세계적으로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감된 병역거부자수인와 사회적 수인이라는 이 경험된 인식이 출소 인사를 써야 하는 제 스스( ) ‘ ’ ‘ ’ 로를 버겁게 합니다 지난 월에 가석방 출소 소식을 듣고 난 후 구치소를 나가는 것출소이 다른 수. 7 , “ ( )인 사회로 들어가는 것입소은 아닐까 하는 고민으로 며칠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가석방 확정( ) ( ) ?” . 囚人의 기쁨과 함께 다가온 이러한 어려움이 출소 후 지난 몇 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 은 년 월 일 제가 발표한 병역거부 선언문의 첫 문장과 다시 마주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유2009 1 6 . “인이냐 수인 이냐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선택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질문입니( ) ? 囚人다 제가 던진 질문 앞에 제가 다시 서 있습니다.” .

미래를 예단하기보다 현실을 뚜렷하게 바라보는 것이 어려운 질문을 풀기 위한 한 방법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이 자유인이 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듯이 사회적 수인들이 자유를 ‘ ’ ‘ ’위해 노력하며 사회적 족쇄를 부시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자유인의 삶을 이미 .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현실의 자유인들의 삶을 발견하고 이 자유인들의 . , 연합을 창안하는 것 이것이 수인이 자유인이 되는 수인 사회에서 출소하는 엑소더스 의 한 . , ‘ ’ (exodus)가지 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공

입영일에 병역거부선언2009.01.06 경찰조사 2009.01.29 검찰조사 2009.02.23

선고공판에서 징역 년 월 선고 법정구속2009.06.02 1 6 ,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 출소201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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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9 17

저도 출소인사를 하게 되는군요 얼떨떨해요 출소한지 두 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는데 말이죠 출. . . 소인사를 써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어요 아 내가 출소했구나 하는 현실감이 갑자기 밀어왔. , 어요 아직까지도 출소 후의 꿈결같은 시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겠죠 예전에 감옥은 나가는 맛으로 . .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나가면 그 맛을 실컷 봐야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실제. . 로도 그렇게 지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믿어지지 않는 포옹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 그리. ! , 고 한 모금의 담배.

이런 이야기를 수감중인 들에게 한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희망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CO . 이것이 정말 현실인가요 저는 아직까지도 마치 미래를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렇게 때문에 꿈을 꾸. . 고 있는 느낌이겠죠 아 어떻게 해야하죠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 걸까요. , . .

그러고 보니 요사이 잠을 자면 감옥꿈을 자주 꾸게 되요 출소 직후에는 안 그랬는데 두 달이 지나. 고 나니까 감옥꿈을 꾸게 되네요 그래도 생각보다는 그리 우울한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마치 중고등학. . 교 때의 꿈을 꾸는 정도의 압박감이었어요 호접지몽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감옥에서 지금의 꿈을 꾸. . 는 건지 아니면 여기서 감옥꿈을 꾸는 건지 헷갈려요 지금은 뭔가 외면하고 싶은 게 있나봐요 꿈에서 . . 깨어나기 싫은 것 같아요 하지만 머지않아서 해가 뜨면 꿈에서 깨어나야겠죠 그래요 감사하게도 삶은 . . . 계속 되고 우리들은 그 시간 속에서 쉼없이 발버둥치면서 울고 웃을테니까요.

겨울이 왔어요 징역의 겨울은 더 쓸쓸하고 추울 것입니다 모두들 용기를 잃지마시고 뜨거운 청춘. . 으로 이 겨울을 이겨내시길 빕니다 부디 힘내세요. .

출소인사 은국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은국

입영일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2009.02.19 . 경찰조사2009.03.30 검찰조사2009.04.08

년 월 선고 법정구속 성동구치소 수감 22009.07.03 1 6 , , 화성직업훈련교도소로 이감2009.08.26

가석방 출소 201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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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렇게 살아요 승규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twitter.com/saenarae

쩌 억 쩌 억~~ ! ~~ !최근까지 제가 일했던 자리에 도착하면 늘상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무슨소리냐고요 바로 박스에 . ?

테이프를 붙일 때 나는 소리이지요 뭐 하나 둘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십여 명이 동시에 박스붙이는 . , 일을 한다면 밖에선 좀 소음으로 들리지요, .

제가 수감을 당하고 지문을 찍지 않는 걸로 인해 징역살이의 대부분을 불편함으로 채운 채 교도소

측에서 떠밀리듯 가석방을 받고 바깥세상을 보게 되었어요 이후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며 쉬었고(?) . , 잠깐 어느 인권단체에서 머물며 그 당시 한미 반대투쟁에 거리로 나오기도 하였지요 물론 연행당FTA . 해서 남은 형량을 채울까봐 두려웠지요 그런데 제 수중에는 몇 십 만원뿐이었고 집안 살림살이도 별. , 로 좋지 않아서 일단 내 입이라도 풀칠 좀 하자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다 올 월 말까지 일하던 곳에, 6서 밥벌이를 하게 되었지요.

제가 했던 일의 주업은 임산부나 아기가진 어머니에게 분유 기저귀 약간 등을 하나의 작은 박스에 , 넣어 택배로 발송하는 일이었어요 거기서 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도 자재를 DM(Direct Mail) . 옳겨 작업장으로 이동시키거나 자재나 상품이 입고되면 검수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어요 그와 더불어 , . 저 이외에는 나이 많은 여성들이 많아서 조금 무거운 거라면 제 손을 요구하기도 하였지요.

제가 일을 하게 되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일터의 모습이 징역살이의 반 이상을 보낸 곳과 이상하

게 비슷했었고 작업과정도 감옥에서 쇼핑백을 만들듯 박스를 포장하는 가내수공업식이라서 이상하게 , 적응이 좀 빨랐지요 그리고 남성들끼리 있었던 곳과는 달리 여성이 다수라서 편안했고 아들 같이 잘 . (?)대해주었는데 한편 가족적이란 걸로 막 대하기도 하였지요, .

그리고 부업도 했는데 이 회사의 주 생산품이 분유인 만큼 그걸 판매하려고 임산부 대상으로 하는 , 강의와 각종 공연 후에 선물과 기념품을 주는 행사를 하는데 거기에도 지원을 했었지요 주로 수도권 . 대상이었고 일정이 잡히면 밖으로 나가서 음향장비를 설치하고 기념품과 선물 준비를 하며 부스를 정

렬하다가 행사가 끝나면 그동안 설치했던 것들을 철수하는 일을 하였고요 아마 수도권에서만 사시는 .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 의외의 지역에서 방송에서 임신육아교실이라는 걸 보신다면 제가 , MBC ‘ ’ , 하는 일이 그거라고 생각하시면 딱 맞을 겁니다 그리고 거기 협찬사가 제가 일하는 곳이기도 하였죠. .

이렇게 일을 하면서 처음엔 재미가 있었어요 제 신분이야 월차휴가는 커녕 보너스도 안보이고 이. 른바 그저 만원만 쥐어주었지만 나머지 노동조건은 딱히 나쁘지 않았고 알바신분이라 애사심 이‘88 ’ , ‘ ’딴 것은 없지만 제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올 월 말에 박스테이프를 놓으면서 나름 아쉽긴 했었거든. 6요.저는 잠깐 방황을 하던 주일을 빼고 년여 동안 일을 하면서 앞서 말했듯이 재미가 있다고 하면1 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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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9 19

서도 이 위계구조가 철철 넘치면서 최저임금에 도전하는 일터에서 일하다보니 점차 힘 빠지는 일이 , 생기더라고요 우선 외근을 병행하게 되니까 다른 노동자들이 제 업무를 어느 정도 커버해주어야 하는. 데 인원이 모자라고 숙련도가 떨어지니 외근다녀오면 정리가 안되고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서 그런 상, 태를 바로잡는데 하루종일 걸리고 오래 일하게 되면서 여기저기 작업지시하는 것 때문에 정작 제가 , 해야할 일은 미루어지고 그럼에도 퇴근시간을 생각해야 하니 쉬는 시간을 건너뛰기도 했죠 뭐 다른 . 직장인들도 경험했을법한 타 부서 직원과의 갈등까지 심지어 인사팀장 왈 백팩 매고 가지 말고 행... ‘ , 사 때는 복장을 단정하게 하라는 말을 들으며 노동의 유연화라고 외치면서 실제로는 정원을 늘릴 생’각은 안하고 비정규직까지 간섭하며 그저 백여만원이라도 아끼려는 저 자본들의 작태를 여기서 보니까

환장할 노릇이지요.여기 일터에서도 군사주의가 많이 보였지요 수직적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저를 관리하는 직원이 .

밀리터리 매니아였고 알바 다수가 전역한 이들이라서 그런지 무슨 군대얘기만 그렇게 해서 제가 말하‘ ’ 는데 좀 소외되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리고 이 직장이 대단히 마피아적 느낌에 보수 성향이 곁들어져. 서 제 정체를 말하면 몰매를 맞는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아직 절 면제자로는 알고 있어도 병역. 거부를 하였다는 걸 모르고 있지요.

그렇게 오랫동안 일했던 저는 올 여름부터 쉬면서 아니 그 이전부터 저의 수요일 저녁은 수원역 , 광장에서 보내고 있어요 바로 수원촛불 잃어버린 년을 되찾았다는 월산명박 가카가 푸른기왓집에 . ! ‘ 10 ’서식하면서 를 외치며 촛불이란 이름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섰고 제가 사는 수원에도 하나둘씩 anti-MB ‘ ’시민들이 촛불을 들며 협상무효고시철회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저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었지‘ / ’요.

비록 전 병역거부를 선언했을 때와는 달리 사회운동에선 빠진 직장인이 되었지만 촛불이 되어 지‘ ’금까지 년 넘게 수요일엔 수원역으로 출근 하고 있고요 미국산 쇠고기부터 대강 삽질까지 시간이 2 (?) . 4지나면서 주제는 바뀌었지만 저를 포함한 촛불시민들은 수원역을 지나시는 시민들에게 가카가 하는 짓

거리를 설명하고 있지요 물론 지치기는 합니다만 이것이라도 안하면 끝이라는 분위기 때문이었고 지. , 금은 연례행사처럼 주어진 역할에 맞춰 열심히 하는 것이죠 그리고 소위 말하는 활동가도 있지만 수. 원에서 사는 민주시민 들도 같이 하니까 재미도 나죠(?) .

그동안 입에 풀칠하며 가끔 데모질이나 했으면서 지나왔던 삶에 비해 너무 조급해지고 힘도 들다 , 보니까 뭔 독기가 찬 말들을 하게 되네요 더욱이 지금 휴식을 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는. 데 보이지 않는 장벽이 느껴져 답답하기도 합니다 미래도 안 보이는. ...

그럼에도 내가 선택한 정체성에 후회없이 천천히 걸어가려고 노력을 하렵니다 그리고 평화를 실천. 하려는 마음도 조금씩 해보려고 하고요 물론 전 한국의 일반 시민에 가깝게 살려는 좀 다른 사람이지. , 만 어쨌든 잘 먹고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잘 살려는 것의 일부를 지금도 힘들게 활동하는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고 그렇게 하고 싶‘ ’ , 어요 왜냐하면 제가 수감시절에 아무런 대가 없이 받아온 것들이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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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박람회 외2010

여옥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email protected]

평화군축박람회<2010 >

매년 국군의날 즈음하여 거대한 행사를 진행하고 국산무기를 자랑스레 전시하는 대규모 방위산업전시회가 열리곤 한다 이미 한국은 세계 순위권의 . 무기 수입수출국이기도 하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 '․해 더 강한 군사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 군비경쟁과 군사력에 힘쓰기보다는 평화공존을 위해 교류를 확대하고방위산업보다 더 가치있는 사회적 , 투자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개의 평화단체들이 모여 월 일 이틀간 13 10 2, 3

평화군축박람회 지금 평화를 이야기하자<2010 “ ”>를 개최하였다.

평화군축박람회에서는 군사적 긴장과 군비2010 경쟁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의 무기 개와 관련 이슈 7개를 선정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7

는 총 여개의 판넬을 중심으로 전시마당 을 구60 < >성했다 그 외에도 길거리에서 이야기하는 평화 .

강연마당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평< >, 화운동의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 및 관련 영화를 상영하는 영상마당 직접 그리고 만들고 읽으면< >, 서 평화감수성을 키워하는 체험마당 을 준비했다< > . 그리고 저녁에 열리는 공연마당 은 인권영화제와 < >함께하는 영화영상과 원폭피해자 세와의 대화 평2 , 화를 노래하는 문화제를 마련하여 다양한 차원에서 평화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행사기. 간 내내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등 궂은 날씨 속에서 진행되었지만 평화를 바라는 많은 시민들이 함, 께 모여 평화와 군축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후 국회전시회와 함께 정책제. 안을 위한 정책자료집을 별도로 제작해서 국회의원들에게 배포했고 대학로에서 열린 생명평화, ‘2010 환경농업대축제에서도 시민들을 만났다앞으로도 ’ . 일반 시민들을 더 많이 만나기 위한 거리 지역순회, 전시 등을 추진하고 있고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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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9 21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

월 일 목요일 시 헌법재판소에서 병역법 11 11 2조 항 호와 향토예비군설치법 조 항에 대88 1 1 15 8

한 위헌제청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렸다 예상대로 . 방청을 하려고 아침부터 법원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 전에 오신 분들도 방청권을 2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방청권을 얻지 . 못한 분들은 기자출입증을 얻거나 브리핑룸에서 화면을 통해 시청했다 공개변론은 약 시간 반에 걸. 2쳐 소수자의 인권보호 양심의 자유 인간의 존엄, , 성 대체수단마련에 관심없는 정부 안보의 특수성 , , 등에 대한 주장이 오고갔고 분위기는 상당히 좋은 , 편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 . 올라와있는 공개변론 동영상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평화수감자의날<2010 >

월 일은 가 정한 평화수감자의날로 한12 1 WRI , 국에서도 년부터 꾸준히 행사를 진행하고 있2003다올해는 신촌 거리에서 수의죄수복를 입고 감. ( ) "옥에 갇힌 평화를 안아주세요 프리허그를 진행했" 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 이후 악화된 분위기에 거. 리캠페인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라를 ,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던 군사훈련이 상대방에겐 위협이 되고 도리어 우리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전쟁훈련을 거부하고 군인이 되기를 거부한 ,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평화를 위한 소중한 한걸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수의를 입고 거리로 나갔다걱정했던 것만. 큼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남북관계처럼 경직, 된 사람들은 프리허그에 쉽게 호응해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은 탈옥한 것처럼

신촌 거리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피켓팅을 이어갔다.

집속탄금지협약 차당사국회의 보고회< 1 >

지난 월 일에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11 9~12인 집속탄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집속탄금지협(약 이행을 위한 첫 번째 당사국 회의가 열렸,CCM) 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이번 회의는 올해 . 8월 일 발효된 협약에 따른 첫 번째 회의이며1 , 개국 정부 대표단 여명과 세계의 시민사회 121 500여명이 함께 집속탄 금지를 실천하기 위한 결500

의의 장이었다 한국에서는 날맹과 염창근이 참가. 를 했고 이번 회의에서 참가하며 보고 듣고 느낀 , 이야기를 자리를 가졌다 더불어 최근 연평도에 집. 속탄을 사용하는 를 배치한 한국에서 집속탄 MLRS반대운동을 어떻게 해나갈지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당사국 회의 전반적인 설명은 염창근. 이 당사국 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날맹이 보고했고, , 한국의 현재 상황과 이후 활동에 대해 여옥이 발표했다 지금처럼 안보논리가 우세한 시기를 걱정하. 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럴때일수록 전쟁은 안되고, 집속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 사람이 살고있고 우리가 사용하려는 폭탄에 죽어, 갈 사람들을 생각하게끔 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업의 투자자 감시 영상제작캠페인 등 보고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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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나눈 이야기들은 무기제로 모임을 통해 좀더 < > 구체화될 예정이다.

전쟁없는세상 성명< >끊임없는 전쟁의 시대 살상을 거부할 권리를, !

문명진날맹 의 병역거부를 지지하며- ( ) -

연평도 사태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매우 악화되었고 우리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 때문에 불, 안해하고 있다 더 심해지고 있는 전쟁위기와 군비증강의 악순환 속에서 오늘 월 일이 입영일인 문명. , 12 14진은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자 군인되기를 거부하며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해. 온 문명진날맹은 이라크전쟁 파병반대운동과 평택투쟁촛불집회의 경험을 통해 국가폭력의 맨얼굴을 마주( ) , 하면서 군인이 된다는 것은 국가의 동원과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고 군대라는 곳은 폭력을 가능케 하기위해 ,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않는 것을 내면화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다특히 최근 연평도 사태 이후 정부의 . 강경대응을 보면서 계속 이런 방식으로 공포와 적개심을 키워간다면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을 끊기위해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서 병역거부를 결정했, 다 오랜시간 활동과 고민 끝에 병역거부를 선택한 그의 결정을 지지한다. .

역사적으로 병역거부 행위가 가장 많이 일어났던 때는 전쟁시기였다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이 된다는 것의 . 의미는 전쟁 상황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군대는 전쟁을 수행하는 조직이고 이기기 위해서는 적. , ‘ ’으로 간주되는 상대방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의미를 자각한 사람들이 병역거부라는 행위를 통. 해 군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전쟁에 동참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전쟁을 수행하는 군. 인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과 실천은높아져만 가는 전쟁의 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 평화를 위한 노력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지금전쟁훈련을 거부하고 군인이 되기를 거, 부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평화를 위한 소중한 한걸음이 될 것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한 군사력이 아니다 그동안 엄청난 돈을 국방비로 쓰면서 무기들을 만. 들고 사들였지만우리의 안전과 평화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전쟁의 위기만 높아졌다 오히려 연평, . 도에 최고화력무기를 전면배치하고 대규모 군사훈련이 계속되는 등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전쟁준비가 자연스러워진 우리 사회의 군사주의가 전쟁을 긍정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전쟁. 에서 이기기 위해 훈련을 하고 준비하는 것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없이 군사력에만 의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전쟁위협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 다끊임없는 전쟁과 무력분쟁을 멈추기 위해서는 먼저 총을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느리더라도 가장 확실한 . 방법이다.

년 월 일2010 12 14전쟁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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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속탄반대 피스몹 참가기

상우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죽음의 비라 불리우는 집속탄은 산탄형 폭탄으로, ‘ ’서 불발탄이 많고 피해자 대부분이 민간인인 이유로 문제시되고 있는 대인살상 무기이다 년 월. 2008 12에 집속탄의 인도적 피해를 막기 위해 개국이 집속탄금지협약에 서명한 바 있으나 집속탄을 생산94 , , 수출하고 있는 한국은 남북 대치 상황을 이유로 협약에 가입하길 거부하고 있다 무기제로팀은 이 사. 실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한국 정부의 협약 가입을 촉구하기 위해 작년 월 일 집속탄금지협약 주12 3 1년 기념 평화행동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이미 여러 차례 캠페인을 벌여 왔다.

비록 무기제로팀 활동에 참여한 전과는 없었지만 나는 운좋게도 지난 여름과 가을에 있었던 피스몹(?) 에 두어 차례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두 번의 행사 모두 다 집속탄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두 . 한국 기업인 한화그룹과 풍산그룹이 소재한 종로 지역의 회사 빌딩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풍산 앞에서. 의 행사가 일반적인 플랫카드를 이용한 시위적 퍼포먼스였다면 여름에 있었던 한화 앞 행사의 경우 , 한화그룹 사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회사 밖으로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피스몹 참여자들이 땅바닥에 죽

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 피스몹으로 진행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좀 더 끌었다 시체들 중간에는 die-in . (?) 한화그룹의 집속탄 생산을 비판하는 플랫카드가 기다랗게 펼쳐져 있었고 각각의 시체들은 집속탄 피, 해자들의 사진이 담긴 조그만 판넬들을 배 위에 부착한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반. 응을 세심히 관찰하기에는 내가 가진 시체로서의 의무감이 컸기에 나는 그냥 눈을 감고 내가 맡은 역

할을 즐기기로 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집속탄이 뭐지 한화에서 집속탄을 만든대같은 대화들 외. “ ” “ ”에는 오직 오고가는 행인들의 구둣발 소리와 서늘한

시멘트 바닥의 촉감 따뜻한 여름 햇살의 기운만이 내, 가 느낀 전부였고 오랜만에 시내 한복판에서 편안함, 을 느낄 수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는

아비정전의 아비와도 같은 느끼한 다짐을 했었던 기억

이 난다 한 인터뷰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관례적인 읽. 기 방식을 뛰어넘는 전복적 실천에 대해 언급하며 예

로 든 의 다이인 피스몹을 인상적으로 기억하Act Up고 있는 나로서는 글로만 읽고 얘기로만 듣던 이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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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직접 참여하면서 관람자들에게 던져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 추측하며 이것을 어떻게 향상

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도 있었을텐데 어찌보면 시체 아닌 시체로써 내가 경험한 감각들에만 집, 중한 채 행사의 본연 목적을 망각한 것 같아서 판넬 사진 속 집속탄 피해자들이나 행사에 참여한 다른

친구들에게 일종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지난 월에 있었던 한화 앞 행사는 내용을 바10꿔 차디찬 길바닥에 눕는 대신 첫 평화행동 때

벌이기도 했던 신호등 퍼포먼스를 통해 집속탄

금지협약의 존재를 알렸다 우리는 외계인 가면. 을 쓰고 검은 망토를 두른 채 빨간불일 때는

집속탄금지협약 찬성하면 멈추세요 피켓을“ ” , 파란불일때는 집속탄금지협약 찬성하면 건너“세요 피켓을 들며 횡단보도를 지나는 행인들” 의 관심을 유도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판넬의 내용을 관심있게 쳐다보며 지나가는 이들도 있었고 이따금 집속탄, 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분들도 있었다 빨간불일 때 횡단보도를 무단횡단하면서 자기는 반대한다며 귀. 엽게 뛰어가던 분도 있었지만 집속탄금지협약이라는 낯선 용어에 의도치 않게나마 찬성 혹은 반대의 ‘ ’선택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됨으로써 집속탄의 존재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된 분들이 조금

더 늘어나지는 않았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얼마 전 연평도 포격 사건이 국내 뉴스를 뒤흔들었다 거대한 몸집의 불발탄이 p.s. . 평범하게 보아왔던 아스팔트 도로에 꽂혀진 사진을 접하고 해외 분쟁 지역들의 난민들을 촬영하는 프, 레임이 연평도 주민들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바라보며 전쟁 가능성에 공포감을 느껴본 기억이 없는

나조차도 실로 오랜만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어떤 무력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집. 속탄을 사용하는 다연장 로켓 시스템가 연평도에 실전배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가안보MLRS( ) . 논리를 이용하여 국방부 예산 증액을 주장하고 무기산업의 팽창을 욕망하는 이들이 정작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안보 현재의 생존과 미래의 평화로운 삶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집속탄을 배치하는 광경을 ‘ ’, 보니 불길한 상상이 마구 든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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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박람회 참가기

디에고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사실 난 당일 봉사를 자원했을 뿐이고 준비와 진행 등 궂은 일을 맡은 분들은 따로 있다는 것을 먼저 , 언급하고 싶다 근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 글을 내가 쓰고 있다는 이런 걸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으니. . 까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좀 난해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흐흐 .

평화활동가라는 직업은 정말 너무나도 많은 일을 요구한다 동시에 한국이 워낙 평화액티비티의 불모. , 지이다 보니 유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ㅠㅠ임 할 수 있는 일도 완전 무궁무진하( : .) 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평화활동가가 할 일이 많다. , . 는 이야기는 정말 현실이 슬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유유 개가 훨씬 넘는 평화활동관련 시민단체.. ( ) 10들이 모여서 조직한 평화군축박람회 조직위원회는 지난 월 양일간 평화군축박람회 지금 10 2,3 2010 , 「평화를 이야기하자 를 개최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남북간의 긴장이 점차 살벌해지고 지금은 정말 유. (」유 국군의 날을 맞아서 대박 시끄러웠던 공중 비행이 있고 난 며칠 뒤였다) .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세월은 흘러갔는데 아직도 무서운 군사주의는 공고히 남아 그 위세를 떨치고 있

다 그 나이 때는 순수하게 뛰놀기만 했으면 하는 고교생들에게 군인이 찾아와 무기의 위용을 자랑한. 다 대학생이 참가하는 병영체험도 계속되고 있으며 회사들은 여전히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해병대식 . , 극기훈련을 시키며 유사 군사 문화를 전파한다 방과 서점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방면으로 확산되. PC고 있는 밀리터리즘 그리고 집속탄으로 대표되는 비인도적인 살상 무기 자본과 연결된 무기 장사 방, , 위산업 그리고 수혜를 입는 장사치들 총체적 난국이다 지금 상황은 조용히 한가로이 살고 싶은 너무, . . . , 나 당연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불편하

고 지겨운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밀리터. 리즘의 전파에 대응하여 평화 문화를 널리 퍼뜨리고

목소리를 모으고자 하는 취지 맞지요 에서 기획한 ( ?)이번 행사는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

일 오전 시 즈음하여 도착한 나는 아직 준비위원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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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에서 열과 성을 다해 셋팅 하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였다 이젤이라는 것의 설치를 거들었다 이젤(!) . . 에 전시할 판넬은 다양한 주제를 모두 담았다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에 관련된 합리적인 의혹 얼어. , 붙은 남북관계와 불필요한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 무기산업에 대한 지적 외국군 기지 주변에서 , ,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커다란 문제점 지적 비인도적인 무기의 치명성 지적 등등 문구와 자료첨부, . 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지만 전시되어서 손님을 맞는 판넬을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 도 잠시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몰아닥친 저 무시무시한 바람의 휘몰아침은 연약하기 그지없. 는 이젤과 판넬을 쓰러뜨리기 충분하였다 쉬시식 떨어지는 이젤과 판넬을 보고 준비위원회는 경악했. 고 후다닥 달려가 그것을 붙들어 매기 시작했다 이어서도 한두어 시간 뒤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안습, . 인 상황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그 광경 덕택인지 주변의 손님들께서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 .

학자의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이 꽤 보였다 달려가 안내할까 생각도 했는데 이분들의 공부를 . 방해할 듯싶어 가만히 있었다 아마 많은 것을 배우고 가셨으리라 평화를 알릴 때는 많은 대중들에게 . .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알리는 것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판넬로 채우지 못한 호기심은 , . 위원회가 엄선해온 영상들과 훌륭한 강연들로 충족되었다 일본 오키나와 지방을 비롯한 해외 미군 기. 지가 있는 지역에서의 평화운동을 연구해오신 학자분의 강연 생활 속 평화운동의 어려움에 대한 강연, 과 함께 국방부의 천안함 조사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점 제기에 관해 들었는데 한국은 너무나 평화에 , 관련한 아젠다를 이야기하기에 척박하고 눈치 보이는

환경이 아닌가 한다 이 강연들에서 공유된 내용에서. 도 소위 선진국이라는 영국의 예를 들어 그곳은 평화, 운동이 시민운동의 당당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어느

정도 지분을 확보한 나라라면 한국은 그렇지 못해서 , 겪고 있는 비애가 확연히 드러났다 이런 어려운 상황. 에서도 어떻게 해야 최소한 영국의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더 발전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각자의 생, 각과 고민지점을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상영은 에서 방영한 집속탄의 문제점 무차별 공습을 받고 있는 분쟁지역 소개 등이었다 슬픈 MBC W , . 현실은 어린이들이 너무나도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소식지의 서평에서도 썼지만 아비규. , 환의 아이티에서도 진흙쿠키를 손에 쥔 어린이들이 있고 레바논과 이라크 등지에서도 팔을 잃고 울고 , 있는 어린이들이 있다 잘못된 부의 분배가 어린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역시 전쟁도 어린이에게 커다란 . . 피해를 준다 왜 이들이 고통받아야 하는가 해답은 간단하지 않을까. ? .

원폭 피해 후손의 증언을 들어보는 시간도 있었다 그 기나긴 세월을 절절히 살아가시며 누구에게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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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하소연 못해보신 심정을 생각해봤다 우리는 항상 핵은 위험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듯 직간접적인 . .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지구상의 비핵화가 얼마나 소중한 작업인지 절름발이 , , 비핵화가 절대로 아니라 강대국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그 리더십으로 다른 나라들의 동참을 이끌, 어 내는 비핵화가 왜 필요한지를 절감해야 한다고 본다. 다음날 나는 본격적으로 시민참가자들과 시간을 가지는 , 일에 착수하였다 특히 많은 어린이들이 몸소 평화가 . “소중한 것이에요를 실천하려고 나서서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히히 나무팻말을 만들고 기념품을 직접 조각하. . , 고 책을 읽어보고 열띤 토론을 벌이던 어린이들의 모, , 습은 무지 능동적이었다 이제 학교 정규 과목에 평화. “ ”를 신설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교육 당국자들은 제발 . 현명히 판단해 주기를.

모든 활동은 고민해보는 단계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언제나 항상 어려운 것은 . , 바로 실천이다 평화운동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알릴까 이 고민을 하게 되고 적당한 것을 매번 기획‘ ’ . . . , 하여 해오고 있다 더욱 발전하기 위해 하고 있는 고민에 그 치열함에 꾸준함까지 더하고 있다 흐흐. , , , . . 준비하신 분들 수고 많이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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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에서 - 대체복무제를 이야기하는 이유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겨울이다 연평도에 대한 .  북한의 포격으로 군사 대결 분위기가 형성되고 강

력한 군사력에 대한 옹호 여론이 팽배하기 시작하

기까지 불과 주도 남지 않았던 지난 월 일2 11 11 , 헌법 재판소에서는 병역거부에 관한 공개 변론이

열렸다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었지만 막상 방. , 청을 하고 보니 재판장들의 분위기도 호의적이고, 어쩌면 이 사회도 이제는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은 생기기 시작한다 대체복.  무제가 도입되면 이제 병역거부운동은 어떤 방향

으로 나아가야할까 그동안은 어떻게든 병역거부. 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일만큼은 그만두기 위해 원

칙적이고 정치적인 구호로 대체복무제를 이야기해

왔는데 이젠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를 고민해봐야 ,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 안 우리가 병역거부에 대한 인정을 이야기하면서

도 정작 사회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받아

들일 대체복무제에 대해 병역거부운동 안에서 논

의해오지 못했다는 반성도 들고 조금 성급하게 . 보일지 모르더라도 이번 기획을 대체복무제로 잡, 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련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고민해야할 부분이 많지만 우선은 대체복무제 자, 체에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 는 외국에서의 대체복무제 도입과정과 그것이 어

떻게 시행되고 변화되어왔는지를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고 국방부가 지난 정권에서 내놓았었던 대, 체복무제 추진 방안을 짚어보면서 앞으로의 대체

복무제가 어떤 모습으로 시행될지를 고민해 보려

한다 대체복무제가 시행될 모습을 예상하면 자연. 스레 우리가 그로부터 우려해야할 부분이 어떤 것

이며 우리는 어떤 대체복무제를 상상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지가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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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기간 군복무에 비해 가혹한 성격은 없을- 까

지금까지 국방부에서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재판부에서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손쉬운

논리가 바로 취지는 인정하나 아직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져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제 대체복” . 무에 대한 반대여론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정부, 나 군대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방부 쪽에서도

대체복무의 도입을 인정해야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이렇게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퍼져나가는 것에는 무엇보다 지금도 수많은 병역

거부자들이 징역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가고 있고, 이것은 사회적인 낭비이자 인권에 대한 심각한 피

해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바탕이 되고 있는 것 같

다 문제는 이렇게 대체복무제가 병역거부자들이 . “감옥에 가는 것을 막는 것에만 집중할 경우 대” , 체복무제가 군대와 감옥을 대신하는 곳의 의미로

서 과도한 복무기간과 여러 제약들을 부과 받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국방부가 지난 정권에 내놓은 병역이행 관련 <  「소수자 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 만 봐도 >」그와 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것 같은 조짐이 보인

다 이 보고서에서 대체복무자는 타 사회복무자보. 다 난이도가 높은 분야에서 현역의 배 수준의 ‘ ’ ‘ 2기간동안 합숙 근무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현’ , ‘ ’ . 역병의 두 배 수준 군 복무 기간이 개월로 동, 21결된 지금을 기준으로 보면 개월 년 개월의 42 , 3 6기간이다 단순히 숫자로만 봐도 꽤 긴 기간이다. . 굳이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안을 언급하지 않더라

도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을 떠올, 려 보거나 그게 아니면 단순히 상상해보기만해도

년 개월의 합숙생활이라는 것은 징벌적인 성격3 6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자 전쟁 반대 집회에서의 그리스 병역거부자들

 

징벌적 대체복무제 운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 는 것이 그리스이다 그리스는 유럽연합 국가 중 . 가장 늦게 대체복무제를 도입했을 뿐 아니라 절, 차적으로도 복잡하고 복무기간도 현역병의 두 배, 로 시작했으며 대체복무제를 거부할 경우 이전보, 다 더 가혹한 징역형을 부과한다 이러한 그리스. 의 대체복무제는 끊임없이 국내외 기구들의 비판

의 대상으로서 권고를 받아왔다 단순히 제도를 . 도입한다고 해서 병역거부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외부인의 시선에서 더 잘 보여 진

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 뿐 아니라 대체복. 무제 도입 이후에도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에서 차

별 대우를 받으며 많은 징집 대상자들이 해외이, 주나 미친 척 하기 학업연장 등의 방식으로 병역 , 자체를 면제 받으려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고민. 이 없는 제도의 도입은 이렇듯 병역거부를 둘러싼

사회적 해결에 있어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문제로 인해 그리스에서도 대체복무의 복무

기간이 현역보다 긴 정도로 개정되었다 다른 30% . 국가들의 사례가 있음에도 단지 최초로 시도한다

는 이유만으로 징벌적 요소가 분명한 방식을 채택

해야만 할까.국방부 보고서에서 복무기간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로 이야기하는 것이 본인이 선택한 사회복무‘라는 점 국민정서 현역병의 사기이다 사실 이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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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야기는 대체복무 도입에 대한 반론으로 지

겹도록 들어온 이야기들이다 그 정체를 알 수 없. 는 형평성이라는 녀석은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괴롭히고 차별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일

까 그런 대체복무를 감당할 병역거부자들이 자신. 들의 친구이거나 아들 혹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 는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이, 런 방식을 쉽게 당연시할 수 있을까.사회적 인식에의 변화 노력은 제도적 규정 마련 과 병행되어야한다 그런데 그 사회적 인식이라는 . 게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변하는 걸까 둘은 상. 호적인 관계에 있다 어느 한쪽이 정착되고 변화. 되어 가면서 다른 한쪽 또한 변화되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제도를 도입할 때 그런 상존하, 는 인식에 대한 고민 의식이 있어야한다 그런 면. 에서 볼 때 단순히 대체복무를 운영하는 것에 있

어 현역 군인보다 복무기간을 늘린다는 식으로 간

다는 건 그런 고민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결과일 뿐

이다 그건 그저 병역거부에 반대하는 여론은 당. 연하고 그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거. 기에는 병역거부자들이 병역거부를 통해 사회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고민과 문제의식이 담길 자리

가 없다 징벌적 제도운용 속에서 여전히 대체복. 무자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소수자의 입장에

서고 반전평화니 불복종이니 하는 가치들은 그들, 만의 자위적 구호로 남게 된다 단순히 대체복무. 제가 도입되었다 이제 병역거부자들이 반드시 감, 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닌 것이

다.

심사절차 양심을 누가 판정하는가-

대체복무제가 어떤 식으로 운용될 것인가에 있 어 또한 중요한 것이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정과

분류의 문제이다 사실 자신의 신념에 의한 결정. 을 판단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소통한다는 면에선 의미 있

는 일일 수 있다 문제는 그럴 때에 누가 어떤 방. 식으로 사회를 대신해 병역거부자와 소통할 수 있

는가 하는 문제이다.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지금은 사법부가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정을 내린다 국방부가 병역. 거부자를 법 위반자로 고발하고 나면 사법부에서 , 그에 대한 결론을 내려 병역거부에 대해 호의적, 이든 그렇지 않든 보통 년 개월의 형량이 부과1 6된다 재판관으로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 왜 없겠냐만 어떻게 보면 지금의 절차는 관련당, 국의 입장에선 편리하게 느껴질 부분들이 있다.대체복무제가 도입되고 나면 아마 지금 군대의 ?  다양한 병과를 지원하는 것과 비슷하게 대체복무

쪽도 지원 가능하다고 소개가 될 것이고 규정에 , 따라 구비해야할 서류를 제출하고 나면 그것을 심

사하는 위원회가 구성되어 지원자들을 심사하고

어느 일에 배치할 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 . 과정은 한 인간의 양심에 대한 사회적인 해석판(정이란 말에는 어폐가 있다을 내리는 과정이기에 )결코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것이 아니다 과연 어. 떤 방식으로 홍보하고 접수에는 어떤 것들이 필, 요하며 심사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 그리스에서는 대체복무 이행 절차가 투명하지  못하고 관련 정보에 대한 홍보가 미비해서 많은

징집 대상자들이 자신들에게 병역거부권이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대체복무 . 한번 하려면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 우선 지원 . 가능한 자격에도 제한이 많아서 현역 군인은 병역

거부권을 인정받지 못하며 사냥 허가증을 가지고 , 있거나 폭력 등으로 기소된 경우잘못된 기소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과 관련이 ) .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정부기관에서 이런저

런 증명서들을 발급받아야한다 물론 여기에다가 . 군인이 포함된 위원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양심“을 형성하는 종교에 기초한 삶에 대한 일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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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 스스로 거스를 수 없는 철학적 또는 도덕적 , 신념과 이에 부응하는 행동 등 그들의 거부 배경” 과 관련된 사례를 입증하는 자료를 제시해야하고. 재심 청구도 일 안이다 이러 식이라면 대체복무5 . 가 있다고 해서 그게 대상자들에게 얼마나 효용성

이 있을 것이며 재판 과정과 다를 게 무언가, .

지난해 그리스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단체에 대한 수류탄 테러가 벌어졌었다고 한다 그에 항의하는 병. 역거부자들의 시위

지금은 대체복무가 잘 정착되고 모병제 전환 이 야기도 나오는 독일의 경우에도 제도가 시작될 때

에는 심사절차가 굉장히 엄격했다 우선 심사 위. 원회를 주관하는 것이 국방부 담당자였고 그런 , 만큼 국방부와 병역 거부에 부정적인 정당 소속원

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을 . 설득시키는 게 어렵기 때문에 한동안 병역거부자

의 숫자는 계속 적은 수치를 맴돌았다고 한다 무. 엇보다 문제는 과연 병역거부를 가능하게 할 양심

은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판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

었다 양심을 규정짓는 것이 어렵다보니 정치적 . 동기를 양심으로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도 논란이

되고 정당방위를 거부할 만큼의 순교자적 입장을 , 강요받기도 하고 선한 인상 같은 애매모호한 판, ‘ ’ 단이 기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엄격한 심. 사절차는 혁명 이후 급증한 병역거부자에 대한 68심사 인정이 급감하면서 병역거부를 억압하게 된

다거나 심사 과정 이후 자살한 사람이 생겨나거,

나 양심을 인정 받기위한 이유로 대체복무 기간, 이 늘어난다거나 하는 부작용을 불렀다.모든 인간이 그렇듯 병역거부자 또한 다층적이 고 복잡한 측면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 의 내면에서 생겨난 양심 또한 쉽게 규정내릴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양심에 대한 엄. 격한 판정은 그 판정이란 게 가능하지도 않을뿐, 더러 제도적인 복잡함만 불러와 오히려 병역거부

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

다 병역거부에 있어서 사회적인 논의와 병역거부. 자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문제이

다 하지만 그것은 경직된 판정제도로 담보되는 .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적 책임을 그 제도에 전, 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내면의 양심은 개인만이 . 알 수 있는 영역이며 이후의 삶을 지켜보고 응원, 하며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민주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이 아닐까 대체복무제를 이야기할 . 때에 그 판정 절차가 얼마나 억압적이지 않고 투, 명하며 국방부와 같은 군사집단의 주도로 그 논, 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까에 대해 경계하고 고, 민하고 더 나은 방법을 강구해야하는 이유가 여, 기에 있다 그것이 곧 이 사회에서의 병역거부를 . 자리매김하는 출발점이 될 테니까.

복무형태 군대 아닌 군대에 가는 일은 없을까-

대체복무제의 도입에 있어 고민해야할 부분으로  과연 어떤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게 될 것

인가도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국방부 안을 보. 면 복무분야에 대해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분야정‘ ·신적 심리적 불편을 수반하는 분야위험도가 높은 ·분야 라면서 단지 그 난이도에 대해서만 고려하’ 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형평성 논란을 우려하

는 안일한 대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체복무는 . 벌 받으러 가는 게 아니다 단순히 얼마나 군대만. 큼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줄 수 있는가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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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할 게 아니라 대체복무로 일하게 될 곳이 얼마

나 사회에 보탬이 되고 그것을 통해 대체복무자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어야 대체

복무의 의의도 살아나게 될 것이다.한국과 비슷한 안보환경에 놓여있어 대체복무의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대만의 경우를 보면 대체, 복무로 일할 수 있는 곳은 사회치안분야경찰역( , 소방역 사회서비스분야사회역환경보호역 의료), ( , , 역 교육서비스역 및 기타 문화서비스 사법행정, ) , , 외교 토지측량 경제안전 체육 공공행정 관광서, , , , , 비스역 등으로 다양하다 대만 역시 처음 대체복. 무제를 도입할 때에는 이런저런 우려가 많아 인원

등 여러 면에서 제약을 가지고 있는 대체복무제를

준비했으나 시행되어가면서 차츰 대체복무의 성, 과가 사회 전체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서 대체복무에 대한 인식도 좋아지고 기간도 현역

병과 비슷한 수준으로 단축되었다고 한다 대체복. 무제가 정착하는 것에는 사회적 인식의 변환이 필

수적이고 그러기 위해선 대체복무자들이 성실한 , 태도를 보이는 것물론 다들 그러겠지만도 효과적( )이지만 그에 앞서 대체복무의 분야가 사회적 공공

성을 우선 가치로 여겨 정해져야한다.

병원에서 치료 받고 귀가하는 노인을 돕는 대만의 대체복무자들

또한 우려가 되는 것은 대체복무는 분명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일 텐데 그것이 결국

군대를 유지하는 것에 복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현재의 방위산업체 복무와 비슷하게 무기. 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일이나 군대 내의 비전투

분야처럼 직접적으로 군대와 관련된 일에 투입될

수도 있고 간접적으로 군대를 지원하는 곳에 투, 입될 수도 있다 그렇게 드러내고 배치되지 않는. 다 해도 기준을 명확히 세우지 않으면 언제고 사

회적 갈등이 대립되는 곳에 쉽게 투입되거나 군사

문화와 관련된 곳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 명확. 한 기준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분야의 정립과 함

께 요구되는 것이 대체복무제도에 있어서의 국방

부의 전횡에 대한 견제가 가능한 시스템의 마련이

다 실제로 국방부가 병역거부과정에 있어 주도적. 인 그리스의 경우 대체복무자들이 법률상으로 민

간인 신분이면서도 준 병력으로 간주되는 모순적

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대체복무에 있어서 논의되고 고려되어야하 는 것은 이것이 군대의 대체제가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인 기반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방식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야 . 대체복무가 군대 대신 고생하는 곳이라는 기형적

인식이 사라지고 병역거부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 회의 일원으로 수용될 수 있는 대체복무제가 정착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 도입 이후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끝이 아- 니라 시작이다

독일에선 냉전 시대에 이미 병역거부권이 헌법 에서 인정을 받았다 차 대전에서의 나치 군국화. 2에 대한 염증으로 생겨난 반군대 정서로 인해 자

연스레 병역거부에 대한 의식이 자리 잡은 덕분이

지만 막상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고 실행되는 과정, 은 순탄치 않았다 오랜 진통 끝에 병역거부 관련.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대체복무에 있어서 양심에 , 대한 법적 판단 문제 등을 둘러싸고 수십 년 동안

의 논의가 지속되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병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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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에 대한 법적사회적 태도가 달라지고 나아질 ·수 있었다.아직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도 않은 한국에서는  갈 길이 멀다 그렇기에 관련법 제정 단계에서부. 터 치열한 논의를 거쳐야하며 무수한 입장이 얽, 혀있는 사회 상황을 고려해보면 병역거부 운동 내

부에서부터 그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이뤄져야할

필요가 있다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 정부의 행정적 절차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고 나

면 새로 고민해야할 부분들이 많아질 것이다 대, . 체복무제가 그 업무나 내부 문화의 성격에 있어

결국 또 다른 군대가 되는 것은 아닐지 또 다른 , 억압으로 작용할 여지는 없는지 국방부의 논리에 , 따라 쉽게 움직이지는 않을지 고민할 부분들은 . 많다.일단 국방의 추진 방안만 봐도 대체복무제 추,  진은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

무제도 안의 하나의 복무분야로서 사회복무를 허

용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바로 이 부분에. 서부터 대체복무에 대한 시각 차이가 나고 있다. 병역거부의 고민의 깊이에 대한 성찰 없이 시혜적

성격으로 이뤄지는 대체복무는 병역거부운동에 또

다른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대체복무제 또한 거부할 완전거부자 

들이 나올텐데 이들에 대한 준비는 얼마나 되어있

을까 대체복무제가 시행되고 나면 이들에 대한 . 사법적 처벌은 더 강력해지지 않을까 대체복무로 . 병역거부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

그들의 언어가 설 자리가 있을까 병역거부에 대. 한 논의가 행정적 절차로서의 대체복무제에 집중

되면 그만큼 병역거부운동이 움직일 폭이나 그 의

미도 축소될 것이다 그런 만큼 대체복무제에 대. 한 논의는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위치를 정립하

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둔 채로 이뤄져야하고 운동, 에서 완전거부자들과도 함께 할 수 있고 그들이 ,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도와줄 준비가 여러모로 되

어있어야 한다.대체복무제의 입법은 분명 여년의 병역거부운10 동에 있어 전환점이 되겠지만 새로운 전기의 시, 작점일 뿐이다 그것의 시행과정에서 수많은 논의. 들이 오고 갈 것이고 그 과정에서 병역거부는 다, 층적 의미로서 확장되어가며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계속되는 논의와 소통의 과정을 통. 해 이뤄질 수 있다 아직 한국에서 군대의 의미는 . 절대적이고 최근 들어서 그 벽을 넘기가 더 절망, 적으로 보이지만 운동 내부에서라도 현재에 안주, 하지 않고 이런 논의가 활발하게 지속되길 바란다.

참고한 자료들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 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 국방부/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해 사회복무제 도입 국방부 결정에 대한 연대회의 설명서 양심에 따른 병역/ 2007.9.19. 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존을 위한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의 숙제 대만의 대체복무를 중심으로 오리- / 그리스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현황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WRI)그리스의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이재승/ 전후 서독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 문수현/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입영거부자 사회복무체계 편입방안 연구 진석용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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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옥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정권교체와 함께 제도도입 문턱까지 갔다가 뒤 집혀버린 대체복무제는 이번 정권 내에서는 불가

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얼마전 헌법재판소는 , 그동안 잠시 접어두었던 대체복무의 가능성에 대

한 기대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헌법재판소는 . 년 합헌결정 이후 년만에 다시 위헌여부를 2004 6

판단하기위한 공개변론을 열어서 의견을 들었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권고도 계속되었고 사회분위

기도 많이 변했으며 무엇보다 정부에서 제도를 ,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

가 나오지 않겠냐는 예측도 조심스레 해본다 헌. 법재판소가 언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모

르지만 덜컥 위헌결정이라도 내리면 우리는 어, 떻게 해야할까 지금 병역거부를 하고 수감생활? 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하지 대체복? 무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병역거부? 자들의 감옥행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대체복

무의 기회를 달라고 주장해왔지만 군대와 감옥, 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해봤어도 대체복무에 대한

고민은 그리 깊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 우리가 생각하는 대체복무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

기를 나누기 위해 모였다 년 월 일 화. 2010 11 30요일 오후 시 망원동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는 2 , 최근에 병역거부를 선언한 안지환 이태준 상우, , , 병역거부를 준비중인 날맹당시에는 선언하기 (전 이미 수감생활을 마친 경수 김도형 매체편), , , 집팀 정명 그리고 여옥이 모였고 거의 시간이 , , 3넘는 수다가 이어졌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

소견서에 다 담을 수 없는 병역거부의 이유들

지환 병역거부 소견서를 쓰는 과정이 많이 힘들: 었다 대부분 병역거부를 하기까지의 자기의 삶. 을 나열하면서 지금의 결정을 설명하는데 그런 , 설명을 해야하나 고민했다 나는 국가가 군대에 . 가라고 강제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인

데 사실 하기 싫다는걸 주장하는데 다른 설명이 , 더 필요하지 않은거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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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소견서에 나를 온전히 드러내기가 쉽지 :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쓰면서 발가벗겨진 기분. 이 들었지만 소수자로서 이해받고 싶은 마음도 , 있었다 분량도 남들만큼만 써야하는줄 알았다. . 장을 쓴 지환씨나 장을 쓴 현민씨를 보면11 10 ,

그때 내가 얼마나 융통성이 없었는지 알 수 있다. 태준 그동안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 : 들의 고민과정이 이미 많이 알려져있고 나의 고, 민과정도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쓰. 는게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결국 소. 견서에는 군대문제와 의무에 대한 고민을 담았는

데 대체복무제가 실시된다면 양심을 검증하는 , 과정은 지금보다 더 심해질지도 모르겠다.상우 내 영화 백서 를 소견서 영화라고들 하는 : < >데 정확히 소견서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어쨌든 , . 그 영화를 경찰조사 때 제출하기는 했다 소견서. 를 쓰려고 했지만 다들 했던 얘기를 반복하게 되

서 쓰기가 힘들었다. 도형 나는 이라크 전쟁의 영향이 컸다 전쟁을 : . 목격하면서 전쟁이 몹쓸 것이라는 고민 중에 영

장이 나왔고 내가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할 수 ,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감. 옥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병역거부를 했다. 경수 나도 절실함이 있었다 사회문제를 접하면 : . 서 자연스레 보게된 것은 아프간 이라크 미선이, , 효순이 대추리 내가 살고있는 시대에 계속되는 , .. 전쟁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전쟁을 드러내고 막아

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싶었다 전쟁 이후 무기. 력감과 패배감에 젖어있다가 내가 할 수 있는 마

지막 선택이 병역거부였다.

대체복무의 의미

태준 최근 연평도 사태를 보면서 징병과 군인 : 이 주는 의미 전쟁에 대한 무감각 평화에 대한 , ,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문화와 체. 제가 어디서부터 왔나 생각해보면 군대 현재의 , 징병제라는 것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사고방식을 바꾸어서 국민이 각자 공동체

에 헌신할 수 있는 형태 중 하나로 병역과 대체

복무가 이야기되고 그러면서 군축을 이야기할 ,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경수 당시에는 군복무대신 평화복무를 하는 상 : 상을 해보곤 했다 한국의 평화단체에서 대체복. 무를 하는 독일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복, 잡한 심정이 들었다 평화를 위해 애쓰는 일로 . 대체복무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여옥 대체복무제가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체복무제가 생긴다. 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고민들이 시작될 것이

다 누구나 다 가야하는 군대가 선택의 문제가 . 되었을 때 우리사회의 공고한 군사주의는 조금, 씩 틈이 생겨날 것이다.

대체복무는 시작일 뿐

태준 대체복무제가 된다면 지금 병역거부자들 : , 인원만큼 한해 명 정도로 한정지어서는 우리700의 목표로 나아갈 수 없다 대체복무 역시 국가. 가 강제하는 의무 중 하나이긴 하지만 당장 사, 회에서 필요로 하는 영역들이 있고 점차 그 영, 역을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대체복. 무 참여인원수를 늘려가고 군 인원을 줄여나가, 는 것도 중요하다. 정명 대체복무가 주어진다고 해서 지금 군대가 : 가진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비대하고 문제많은 군대를 변화. 시키는 노력도 동시에 필요하다 군개혁이나 군. 축 등이 대체복무제도와 함께 이루어지고 추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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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군대에 가지 않는 것만으로 군사주의를 : 약화시켜나갈 수 있을까 대체복무제 말고 다른 ?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군인들에게 정당한 대. 가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병역거부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동등한 의무를 지우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긍정적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강화되는 국가주의에 대한 우려

지환 국가가 제공하는 대체복무는 결국 군대의 :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원론적으. 로는 그것도 반대해야하지 않을까? 경수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 점수가 생각난다 : . 모든 국민이 국가에 봉사해야한다는 관념 자체가

무섭다 국가와 사회에 봉사해야한다는 관념 속. 에서 국가주의가 더 공고해지는 것은 아닐까 봉. 사가 의무가 되고 이것은 결국 여성의 참여문제, 까지 확산될 것이다.

대체복무 할까 말까, ? ?

태준 나는 년 국방부가 제시한 안의 형태 : 2007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 대체복무가 징벌과 예외. 라는 사고방식을 바꾸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각자 참여할 수 있는 부분 공동체에 헌신할 수 ,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래서 복무형태는 상관이 없는데 징벌적 규정, , 강도나 기간 등이 문제가 된다고 본다.경수 그래도 대체복무제가 생기면 해야한다는 :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를 가시화해내는 역할을 병역거부자들이 해오고

있는 것처럼 대체복무제나 그 너머의 문제를 풀, 기 위해서는 기꺼이 대체복무제를 하는 것이 필

요하지 않나.

지환 대체복무 법안이 나오고 입법이 되는 과 : 정이 길어질텐데 그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는 불확실함도 견디기 힘들고 제도도입 초기라, 서 보란듯이 힘든 일을 오래도록 하게될거고 여, 전히 좋지 않은 시선 속에서 힘든 일을 하며 비

난을 감수해야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감. 옥행은 신념을 지킨 것으로 봐주지만 대체복무, 는 어떤 평가를 받게될지도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막상 현실적으로 지금 대체복무제가 생긴

다면 망설여진다.날맹 대체복무 할거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것: ,  도 거부하면 얼마나 징역을 살아야하나 하는 생

각부터 든다 년이나 되는 대체복무를 누가 하. 3-4겠냐 싶지만 개인의 자유를 이유로 대체복무마, 저 거부한다고 하면 한국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긍정적인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징병제를 .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대체복무제에 대한 고민과

이런 고민이 대체복무 거부와 연결되는 논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 도형 내가 병역거부를 했던 초창기에는 사회적 : 인 합의를 위해 년이든 년이든 대체복무를 하5 10겠다는 말을 했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대체복. , 무에 대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기간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기 때문에 조정이

가능하다.태준 하지만 개월 대체복무라면 다시한번 생 : 42 , 각해보게 된다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도 병역거. 부자들에게 개월을 시키는건 징벌적이다 사실 42 . 대체복무의 의미를 따진다면 기간이 더 짧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할 사람이 있다면 말리. 지는 않겠지만 개월은 난 할 생각이 없다 년 , 42 . 3개월동안 같은 일을 한다면 그 분야 전문가가 6되는건데 이쯤되면 직업으로 받아주어야 하는거 , 아닌가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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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체복무인지가 중요

도형 지금 사회복지쪽에 사회적 일자리사업이 : 있는데 복지도 돈으로 해결해버리겠다는 생각이 ,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

가 많다 대체복무를 사회적 비용절감 차원에서 . 복지영역에 투입할 경우 역효과가 날 가능성도

있다.태준 사회복지예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체복 : 무인력을 활용한다면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로 대체복무인력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게 여기. 저기 이용되는 방식의 대체복무제도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비영리 공적. , 인 영역이라는 원칙은 명확해야 한다. 경수 최근 군인들의 사병화 문제가 논란이 되 : 고있다 사대강공사 동원이나 파병과 같이 . UAE 군대의 성격이 변하는 것처럼 대체복무인력을 , 정권의 필요에 따라 사회적 갈등현장에 투입한다

면 오히려 더 심각한 사회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재건사업으로 공사에 동원한다거나 파업현. , 장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운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용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서 대체복무제의 . 성격을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 군사훈련을 받지 . 않는다는 이유로 더 오랜시간 마음껏 부려먹는

용병이 될지도 모른다‘ ’ .날맹 그래서 어떤 부서가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 를 담당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국방부에서 관리. 하면 안되고 민간영역의 통제와 감시도 필수적, 이다.

합숙복무 격리수용,

경수 대체복무에 대한 여론을 보면 합숙복무를 : 강조한다 따져보면 병역특례나 상근예비역 등 . 모든 군인들이 합숙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

유독 합숙복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가가 자. 원을 동원하는 방식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게 바

로 합숙복무이다.태준 이것은 격리수용문제이다 군대에 대한 고 : . 민을 하면 그 기간동안 사회와 격리된다고 생각

한다 어쨌든 군대와 동시에 해결해야하는 문제. 이다 거기에 대체복무는 예외적인 선택의 문제. 로 더 징벌적인 요소를 추가하려는 사고방식도

문제다 이스라엘은 군복무를 주일복무로 한다. 5고 들었다. 경수 정해진 기간동안 그 사람의 삶 자체를 통 : 제하는 것과 부여한 노동에 대해서 통제하는 것

은 매우 다른 문제이다 합숙은 국가에 노동력을 . 제공하는 것 외에도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회와의 단절감 이것은 감옥에서 . , 느꼈던 자아의 상실과도 비슷하다 문제제기하는 . 것이 꼭 필요하다. 날맹 국가 차원에서는 비용문제 때문에 합숙복 : 무가 골치아프지 않을까 지금 있는 사회복지시. 설에 수용하는 것도 불가능할테고 새로운 합숙, 시설을 마련해려면 돈이 들기 때문이다. 여옥 합숙복무 때문에 사회복지시설에 대체복 : 무가 집중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고 탈시, 설화와 지역통합에 역행하는 시설중심의 복지가

이루어질 것에 대한 우려 역시 존재한다 대체복. 무를 하는 병역거부자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나 노

인 등 사회적 약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형

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어떤 대체복무인지는 중. 요한 문제이고 그 대체복무가 자신의 신념과 맞, 지 않다면 개선을 요구하며 거부할 수 있어야 한

다.태준 기간과 격리수용 복무방식 등 대체복무의 : , 모든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 좀더 평화적이고 개인의 인권이 보장되는 방식으

로 제도가 도입되도록 주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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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징집대상자들을 불복종하게끔 만드는 것

도 필요하다.

대체복무를 거부한다면

지환 대체복무를 거부할 경우 지금처럼 통상 : 1년개월 형이 나올까 괘씸죄로 형량이 더 길어6 ? 질까 걱정이다.정명 대체복무가 도입된다는 것은 어쨌든 사회 : 가 진일보하는 것인데 수감기간이 더 길어진다, 는 것은 아이러니하다.여옥 나는 처벌조항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본 : 다 군복무기간의 배라면 개월인데 감옥생활 . 2 42 , 개월로 면제시켜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감18 . 옥과 군대 대체복무를 비교한다는 생각 자체가 , 웃기지만 분명 제도 악용을 차단하기 위해 엄중, 처벌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스의 사례를 봐도 맨. 처음 억지로 제도를 도입하면서 대체복무 년4 , 감옥 년 중에 택하라고 했다 대체복무를 거부4 .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말 힘든 길이 될 것이, 라 걱정이 많이 된다.경수 년 발표 이후 우리는 대체복무 거부 : 2007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 나는 감옥행의 대다수가 여호와의증인이고 그들, 은 대체복무가 생기면 충실하게 할 것이기 때문

이다 우리는 소수이고 그중에서 대체복무 거부. , 를 고민하는 사람은 더욱 소수일 것이다.날맹 외국의 경우는 완전거부자도 많다 영국에 : . 있을 때 병역거부 이야기를 하면 이런 상황자체

를 이해못하고 아직까지 한국같은 나라에서 징, 병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놀란다 대체복무 뿐만 . 아니라 징병제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전반적

으로 문제제기를 해야한다 스페인의 병역거부운. 동단체는 대체복무를 주장하지 않고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을 년대부터 지금까지 일관성을 70

지키면서 하고있고 결국엔 대체복무를 넘어 모, 병제까지 갔다.지환 지금 병역거부를 하고 재판을 기다리고 :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새로운 상황이 닥치

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만약 재판 받는 중에 위. 헌결정이라도 난다면 지금 년월 형집행 받겠, 1 6다는게 안될테니까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 고.여옥 지금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헌법재판 : 소의 결정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그 심정도 , 충분히 이해가 간다 농담이긴 하지만 지금 이분. , 들 합헌요청 탄원서를 쓰는거 아닐까 웃음, . ( )

그렇다면 우리의 역할은

여옥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제도의 유무나 : , 처벌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병역거부자는 계속 생

겨날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무엇에 집. , 중해야하는지는 항상 고민이다. 도형 우리보다는 나는 무얼할까로 접근했으면 : 좋겠다 감옥이든 대체복무든 대체복무 거부든 . , , 모두 자신의 선택이고 고민하는 사람들 각자의 , 다양한 모습들이 드러났으면 한다 초창기의 병. 역거부는 너무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당위적인 , 접근보다는 즐겁게 하고싶은걸 찾아서 하다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여옥 분명 그렇게 되어야하지만 내 입장에서 : , 조금 다르다 병역거부운동은 병역을 거부한 당. 자사의 목소리에 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 막상 병역거부자들은 출소 이후에 이 운동에 관

심이 별로 없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제도도입과 . 시행에 있어서도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고 대체, 복무 거부에 대한 준비도 해야하고 보다 근본적, 이고 급진적인 평화운동도 해야하고 갈수록 운. 동에게 요구되고 감당해야 하는 몫은 늘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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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그것을 다 감당해낼 역량은 안된다.경수 병역거부를 선언할 때는 활동가의 정체성 : 이 강했다 병역거부자로 산다는 것은 매순간 그 . 느낌이 달라진다 지금은 종종 빚 같다는 기분도 . 든다 그래서 빚을 갚아야하지만 끔찍했던 감옥. , 의 기억과 자꾸 마주하게 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더더욱 감옥행이 얼른 해결되었으면 한다. 발목을 잡고 있는 기분이랄까. 태준 솔직히 대체복무 기간에 따라 간다 안간 : 다는 별로 중요한거 같지는 않다 병역거부자로. 서 요즘의 정세를 보고 입장과 대안을 얘기하고

싶다 대체복무에 한정짓는 것보다는 군대나 평. 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야한다. 상우 군대에 대한 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거 : 부는 따로 보기보다는 국가의 동원에 거부하는

시민불복종 차원으로 접근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이해하기도 쉽고 설득하기도 쉬운 것 같다.도형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그것을 :

직접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더라 조직과 운동을 . 내려놓고 정말 내가 바라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 하면 좋겠다 그래서 더 다양한 이유로 병역거부. 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요즘 아이들을 만나보면 . 알겠지만 조직화 자체를 거부한다 이 아이들이 , . 자라면 아무리 국가주의가 강해도 넘어설 수 있

을 것 같다. 여옥 병역거부운동이 감옥을 넘어 군사주의에 : 저항하는 평화운동으로 나아가려는 것은 확실하

다 예전에는 대체복무제 도입되면 전쟁없는세상 . 문닫는 거냐는 질문을 받곤 했었는데 오히려 대, 체복무는 출발점이다 대체복무를 단순히 감옥문. 제 해결차원으로만 생각한다면 예외적이고 징벌

적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 좌담회를 통. 해 대체복무에 대한 여러 고민지점들이 이야기되

었다 이번 자리를 계기로 막연하던 생각과 고민. 들이 구체화되고 더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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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에게 불순한 질문 하나 평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전쟁이 없는 상태 사전적 의(?) . ? ? 미에서 볼 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인간은 존엄한 존재임을 생각할 때 단순히 전쟁. , ‘이 없는 상황이라고 간단히 대답하기에는 불편하다 너무도 불편하다 왜일까 대다수의 심리학자들은 ’ . . ? 인간은 본성이 결코 이기적이지 않은 존재라고 결론을 짓는다 비록 야만적인 모습을 적잖게 보이는 “ ” . 인간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며칠 전 필자가 읽. 은 심리학자 김태형의 불안증폭사회 에서 저자 역시 사람은 사실 피말리는 경쟁보다는 안정감을 원< > , 하고 상호간의 신뢰감 사랑을 더 갈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이기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세, , . 상이 그대를 술푸게 할지라도 그대는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하고 소중한 관계를 결코 포기할 생각이 ‘ ’ ,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추구하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 반대 너머의 본질적인 그 무엇이다 이“ ” . 기적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본인이 누리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다른 상대방도 누리는 것을 침해하

는 것에 반대한다 인간적인 환경에서 더불어 공존하려는 본능이 강하게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런 . “ ” . 의미에서 평화는 전쟁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각종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 “답게 살아갈 권리를 반드시 포함하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가치가 심하게 위태로운 땅에 살고 있는 ” . 우리로써는 절실히 요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 토다 키요시는 사회학과 환경학에서 한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개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국가, 정치 집단 국제 기구 등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행동들이 얼마나 평화와 충돌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여, . 기에는 미국 부시 정권이 자행했던 이라크 민중의 학살로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개인이나 국가에 의, 해 수반되는 전쟁 행위뿐 아니라 절반이 넘는 인구가 굶주려야 하고 각종 질병이나 천재 가 아닌 , ( )天災인재 로 인해 죽어가는 현실이 지적되어 있다 저자는 전쟁범죄직접적 폭력와 못지않게 수많은 ( ) . ( )人災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바로 지역사회 국민사회 세계사회 모두에서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 , 등 빈부의 격차구조적 폭력라고 말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의사결정과정에서 개개인의 의견이 배제되, ( ) . 고 정보의 격차를 낳으며 권위주의와 긴밀히 연결된다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들이 목도. 하는 현실이다.

가령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일부 문제아 국가들에 대한 경제 , ‘ ’

좀 더 담대하게 평화와 마주하기 토다 키요시 환경학과 평화학 을 읽고- ,「 」

디에고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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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를 보자 이라크에서는 지금까지 이것으로 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절반 이상은 어린이들로 . 100 . 추정된다 미국 영국 등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강행하는 제재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될 수도 . , ‘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이 가해 의사를 가지지 않았다지만 결과로서 발생하는 수많은 죽. 음에 대해서는 독재정권이 나쁘다는 이유 무관심 어쩔 수 없었다 등으로 회피할 뿐이다 이것을 저자, , . 는 미필적 고의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으로 대변되는 국제 질서 역시 누적“ ” . 채무국에 강요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환경파괴 복지예산 삭감 군사비의 삭감을 권하는 일은 없다, (고 한다 등으로 막대한 아이들이나 여성들의 피해를 불러오므로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 . 최근에 아이티에서 난 참혹한 자연 재앙만큼이나 무서웠던 것은 강대국의 탐욕과 과실로 인해 아이티

를 비롯한 이른바 저개발국들은 구조적으로 국민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 ’이었다 전쟁과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해도 전쟁과 마찬가지로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들은 생. , 물적 약자이거나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 폭격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는 교전 지역의 민간인들과 다. 르지 않다.

직접적 폭력의 장을 펼쳐 보자 테러의 개념으로 현대 전쟁을 이해하고 있다 비전투원의 사망이 급. ‘ ’ . 격히 증가하는 상황은 전쟁이 테러화되었기 때문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죽이는 기술이 늘어나면‘ ’ . ‘ ’ 서 전쟁은 평범한 나와 이웃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소위 전략폭격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는 . ‘ ’이 대규모 살인 행위는 바로 테러 그 자체인 것이다 이것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국가 혹은 그 ‘ ’ . 유사 행위자이다 국가란 또 무엇인가 합법적으로 모든 폭력 수단을 장악한 존재이다 폭력을 독점한 . . ‘ ’ . 국가가 견제받지 않는다면 전쟁에서 민간인이 오폭으로 죽고 무수한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상황이 발, 생할 것이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바로 인간안보와 환경권 인권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 행위자는 국. , . 가일 수도 거대 기업체일 수도 있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생태계 파괴 위험 폭탄으로 집이 날아가는 공, , , 포와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평화인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환경을 악화시키는 일에 군인을 동원하고. , 역시 군인을 교전 지역의 민간인을 겨냥할 파병 행위에 참가시키는 상황에서는 대강 문제가 바로 평‘ ’ 4화 문제이고 민중의 생활을 시시각각으로 위협하는 행위들에 저항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시작인 것이, 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구조적 폭력을 이야기한다 학계에서 자주 지적되는 사항처럼 정책 실행자들‘ ’ . , 이 일련의 문제들에 봉착했을 때 가능한 모든 선택지 가운데 가장 호전적이고 위험하며 충동적이고 , 군사적인 것을 고르게 되는 사회적 환경에서는 복지 문제 평등의 문제 여성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논, , 의들은 심각하게 후퇴하며 구성원들 간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인 격차는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실, . ․ ․제로 우리는 이러한 비극을 경험해 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깔려 있는 땅에서 살고 분배의 잘못 국제 질서의 심각한 왜곡으로 인해 , , 질병과 기아로 죽어가는 어린이를 비롯한 약자들의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이 단 한 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 기업 등 권위자의 행위를 감시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캠페인 조약 체결개. , , , ․정 운동 등으로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는 데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은 단 한 가지 인간의 존엄성이다 바로 그것을 지키는 것이 평화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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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문다 오늘은 사람이 밀려드는 통에 주문을 깜빡 잊어버린 테이. 블의 손님으로부터 살벌한 말을 들었다 난 마냥 굽실거리면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 습관적으로 먼 곳에 시선을 던진다 맞은편 카센터에는 고급 승용차가 방금 수리를 마친 듯 시동을 걸. 고 있고 엔지니어는 연방 허리를 굽실거리며 인사를 한다 그도 나처럼 을인 모양이다 하지만 만약 , . ‘ ’ . 그가 내가 일하는 가게에 와서 밥을 먹는다면 나는 그의 비위를 맞춰야할 것이고 나 역시 그가 일하는 , 카센터에 차를 고치러 간다면 그는 나에게 허리굽혀 인사를 할 것이다.

갑과 을이 무한히 교차하는 오묘한 세계 이곳은 바로 자본주의 소비사회다 소비가 소비를 낳고 사람이 . . 사람을 부리는 소비의 달콤함과 무자비함이 공존하는 곳 봉건제 사회에서 농노는 경작할 땅을 얻는 대, . 신 수확물의 대부분을 영주에게 바쳤다 나는 사장이 돈을 들여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 고 손님이 준 돈을 받아서 캐셔에 집어넣는다 시급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오천원 손님들이 주문해서 삼. . 십분 안에 먹고가는 한 끼 밥값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하지만 사실 또다른 왕은 손님이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말 손님은 왕이다는 간단명료하게 이곳의 법, . ‘ ’칙을 설명한 내가 이제껏 보아온 최고의 표어다 왕궁에서 하인들이 왕을 떠받들고 시중을 드는 것처럼, . , 알바생들은 손님의 어떠한 요구에도 고분고분 응해야 한다 오늘 날씨가 흐리기 때문에 내는 왕의 짜증. 도 하인들은 묵묵히 받는다 역시 같은 이유로 점심먹으러 오기 전 상사 때문에 불쾌한 차에 알바생이 . , 기본 반찬을 조금 적게 줘서 짜증을 낸다면 그건 고스란히 나의 잘못으로 돌아온다 하인에게는 화를 . 낼 권리는 없고 화를 받아줄 의무만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당하고 모욕적인 요구를 하더라도 겉으로. 는 웃으며 속으로 참을 인자를 백 번 쯤 새긴다‘ ’ . 그들이 시킨 음식을 놓을 때도 우리는 실례합니다를 말하며 양해를 구해야하고 도대체 뭐가 고마운지‘ ’ , 도 모르겠지만 말끝마다 감사합니다를 되뇌어야 한다 안녕히가세요는 언제나 대답없는 메아리다‘ ’ . ‘ ’ . 고무장갑을 낄 틈도 없이 정신없이 매일 설거지를 해서 갈라진 손끝 무거운 그릇을 하도 들어서 망가, 진 엄지손가락 쉴새없이 허리를 숙여서 쑤시는 삭신 이런 것들보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그들이 . . 하는 말 한마디와 나를 대하는 태도다 타인 인격 경시 풍조야 이곳뿐이겠냐만은 식당이나 술집만큼 노. , 골적으로 드러나는 곳도 흔치 않을 듯하다.

한 번은 중년남성 두 명이 식사를 하러 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반말로 뭐가 맛있냐고 묻더니. , 열심히 메뉴를 설명하는 나의 말을 끊고 국물 있는걸 찾았다 일본식 라면을 권했다 술을 같이 마실건. .

나의 비정규직 이야기 ②감정노동자의 하소연 -

여은 | 대졸 후 현직 웨이트리스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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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술안주로 라면이 뭐냐며 타박한다 우동을 찾지만 이 가게에는 그러한 메뉴가 없다 식사를 두 개 주. . 문한 뒤 그럼 술이나 빨리 줘 라며 자신들의 대화에 집중한다 술과 함께 식사가 나오고 나니 술안주, . , 로 이것들은 너무 부실하다면서 다시 타박한다 그리고는 또 다시 국물타령이다 재차 라면을 권하니 하. . 나 줘보란다 뒤돌아서자마자 표정이 굳어버린 나는 주방으로 가서 그들이 시킨 술을 따를 때 유난히도 . , 술잔에 격한 기침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런 유형의 손님들은 필요한게 있을 때 굳이 에너지를 낭비하며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까딱까딱거

린다 나는 혹시 전생에 강아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커리어우먼의 포스를 폴폴 . . ‘ ’풍기는 젊은 여성들은 커리어 쌓기가 많이 힘든지 무척이나 쌀쌀맞다 작은 의문사항도 따지듯이 묻고, . , 부탁의 화법을 쓰지만 명령하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나를 상처주는 근본적인 원인이 오로지 그 사람들에게만 있지는 않다 인권 오름에 실린 청소노. ‘ ’동자 관련한 기사에서 본 구절은 이에 대한 설명으로 상당히 설득적이었다 노동의 위계가 관계의 위. “계로 이어지면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차별이 발생하는 원인은 구조적인 문제와 맞닿아있지만 현실. 에서 차별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개인적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우석훈씨의 표현을 빌어서 굳이 따지자면 나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은 거대한 개미지옥의 거의 밑바닥, ‘ ’에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일회용품처럼 취급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곳 역시 . . 대 초중반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돈을 받으며 값싸게 소모된다 노동법의 사각20 .

지대인 자영업자의 사업장에서는 사장의 말이 곧 법이므로 끊임없이 그 사람의 눈치를 봐야하고 아무, ‘나 할 수 있는 서빙을 하는 점원은 손님들이 공공연히 드러내는 무시를 견뎌야한다 까다로운 요구와 ’ . 불평불만을 참고 들어야 하는 것은 점원들이 응당 해야할 일이라고 여겨진다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 자신이 낸 돈 안에는 밥이나 술에 대한 가격뿐만 아니라 서빙을 하는 점원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 권리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은 정당하게 돈을 냈으니 내가 시중을 드는 것이 당. 연하다는 생각이 은연 중에 묻어난다. 한국사회가 특히 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회에서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서빙을 하는 사람에 대, 해서 대체로 얕보는 경향이 있다 굳이 예의를 갖출 필요도 없고 쉽게 막 대해도 되는 존재로 여긴다는 . , 것을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심지어 내 친구는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엄. . 마로 추측되는 여성이 떼를 쓰는 아이에게 했던 말은 너 자꾸 이렇게 말 안 듣고 멋대로 하면 나중에 , “커서 저 언니처럼 저런 일 하게 되는거야.”

무엇보다 섬뜩한 건 일을 하면 할수록 인격적 모욕과 언어적 폭력에 점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가게에 , .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는 순간 항상 예의주시하며 그들이 느낄 조그만 불편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반

해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는 짐짓 무감해지는 과정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의 반말에도 발끈하. ‘ ’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반말 정도는 그러려니 하게 되었고 왠만한 짜증에도 별 느낌이 없어지는 지, 경에 다다랐다 얼굴을 정색한 채 갑자기 냉정한 말을 뱉는다거나 예상치 못한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 . 이상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나에 대한 하대의 태도에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매 , . 순간마다 분노 짜증 화를 느낀다면 안정적으로 일을 해나가기가 불가능해지므로 익숙해지는 것은 어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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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계속 일을 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필수적인 단계일지도 모른다. 한 번 익숙해지면 감정노동을 하는 나와 진짜 감정을 느끼는 나는 서서히 분리된다 노동이 무수히 ‘ ’ ‘ ’ . 반복될 때 노동자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는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 에서 훌륭하게 표현한 < >바 있다 나사를 조이는 채플린은 공장에서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까지 자신도 모르게 나사를 조이는 . 흉내를 내게 된다 기계의 일부분으로 부품화되는 인간은 채플린이 일하던 공장에서 이제는 대의 많. 20은 젊은이들이 일하는 식당 술집 카페로 점점 확대된 것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사 조이는 기계, , . 로 변한 것처럼 짜증에도 미소로 화답하는 기계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자동적이고 일방적인 미소를 상, . 대방에게 홀로 보내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할 때 스스로가 적잖이 낯설어진다 그러나 분명히 손님으로 .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을 향해 안녕히가세요 를 외치고 싶은 충, ‘ !’동을 느끼게 된다거나 누군가 저기요를 외치면 네 라는 대답이 입 안에서 맴도는 경험은 나와 비슷한 ‘ ’ ‘ !’일을 하는 이들에게 드문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나 역시 다른 곳에서는 손님이자 소비자가 되고 우리들은 , 이러한 역할들을 끊임없이 왕복한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소비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소비는 평등하. ‘ ’지도 동일하지도 않다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역학들이 작동. 하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하는 주체는 소비하는 순간만큼은 절대적. , 인 권력을 쥐게 된다는 것이다 위대한 소비의 순간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당하는 은밀한 시. 각적 언어적 폭력도 대가를 받았으므로 합리화된다· , ‘ ’ , . 그래서 일찍이 라이트 밀스는 이렇게 말했나보다 서로 비밀리에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려고 애쓰는 C. . “사이 사람은 서로 소외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완벽한 순환이 일어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도구, . 로 이용하게 되고 자기 자신에게도 소외된다 이렇듯 나는 나의 감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소외되어있다, .” .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과 뒤에서 진상 손님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지만 그 푸념이 체념으로 이어지는 ‘ ‘ , 것은 한순간이다 노동의 대가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게 되는 구조에서 시급 오천원에 대. 한 대접은 딱 이 만큼인 현실에 대해서 자조 섞인 말을 몇 마디 붙인 후 내리는 결론은 대체로 이러하

다 나는 어디 가서 절대로 저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모두가 역지사지를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 . 그리고 누군가의 감정과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똑같은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눈길을 던진다 그리고 . 매일 출근을 하고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던지는 눈길이 없는지 수시로 살핀다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 .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간혹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밀스가 한 말처럼 인간과 도구의 관계가 아니라 인. , ‘ ’간과 인간의 관계로 맺어지는 인간다운 소비에 대해서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게 아니라 웃는 게 . ‘ ’ , 진짜 웃는 것일 수 있는 그런 노동 안타깝게도 너무나 요원해보이긴 하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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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정말로 미안합니다" " …용기를 내서 찾아온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녀로 인해 누. . 명을 써야 했고 연인과 떨어져야 했고 감옥에 가야 했으며 전쟁터에까지 끌려갔다 어렵게 살아돌아온 , , , .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그 무엇도 보상해줄 수 없다 그래도 누명을 벗게 된 것은 다행 그는 연인과 다. . 시 행복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 결말은 허구다 그와 그 연인은 다시 만나지 못했고 둘다 전쟁 중에 죽. , . , 었다 하지만이 모든 것을 초래했던 그녀가 작가가 된 뒤 자신의 마지막 소설에서 사과를 하고 그에게 . , ' '행복을 안겨준 것이다 영화 어톤몬트속죄 는 제목처럼 속죄를 둘러싼 고뇌와 회한을 그리고 있다. < ( )> .

스웨덴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온 지금 뜬금없지만 속죄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 , . … 많이 게을러지고 시간도 많이 허비했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그 비교대상은 어디까지나 예전의 나 자신. ( ) 이고 밖에서 보여지는 나는 좀 다를 수 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 자신이 , . , 참으로 한심하여 마구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쳐야 할 일들을 조금씩 미루고 하루하루를 점점 늦. , 게 시작하고 특히나 몇 년 전 바다를 건너오면서부터 가져온 생각 곧 최대한 시간을 아껴 열심히 살아. , 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그런 나를 너그럽게 봐주지 못 했다 한편으론 게으르다라는 표현 자체에 대해 . '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문제일 수도 있을 듯싶다 일정 부분 그것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 , ( ) 강요하고 있는 생산성효율성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튼 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이 / . . 풍요롭고 여유로운 북유럽 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의 하나인가.

공짜 과일의 의미

그렇다 여기에서 그다지 오래 머문 것도 아니고 또 이곳을 미화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내가 보기에 . , , 이곳은 풍요와 여유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또 다른 유럽 땅에서 여기 스웨덴에 처음 도착하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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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마중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학교에서 주선해준 기사분이 나오신 것이다 그런데 내가 , . 탈 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는 고급 외제 승용차라고만 알아왔던 볼보였다 세상에 학생 하나. ' ' ' ' . 가 오는 것뿐인데 이런 고급차를 보내주시다니 너무나 황송했다그런데 이 차는 스웨덴에서 만드는 것이, (라 여기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길을 가며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갓난아기들). , '이었다 이곳에 유난히도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닐진대스웨덴 인구는 천만 명도 되지 않는다 이' . ( !), 상하게도 아기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공원에서도 전철에서도 이런저런 거리에서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 , . , 그만큼 이 사회는 아기들을 낳아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엄마아빠한부모의. ( / / ) 출산휴가를 포함한 복지제도부터 다양한 시설들이 잘 마련된 것이다.

또 적어도 내가 속해 있는 공간에서는 많은 것들이 공짜다 학교에 도착한 다음날 어느 선생님이 점심을 . , 같이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따라갔는데 내가 먹은 것을 계산하려고 하니 말리셨다 나는 학생의 . , . 입장에서 가끔 그래왔던 것처럼 아 선생님이 내 점심까지 사주신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 , . 아니란다 이 식사는 공식적으로 학과 차원에서 환영의 의미로 대접하는 거라고 했다 내가 놀랐던 것은. . , 그 비용이 선생님 개인이 아니라 학과 차원에서 준비되었다는 것이다그렇다고 내가 어떤 특별히 중요한 (자격으로 온 것도 아니다 더불어 내가 있는 학과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건강 챙길 일이 생긴다 휴게). . 실에 정기적으로 과일들이 들어오는 것이다 사과 배 바나나 귤 키위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동안 돈을 . , , , , . 주고 사먹어왔던 것들을 그냥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적응이 안 됐다 곧 있을 크리스마스 행사도 그렇. 다 멋진 여객선 위에서 뷔페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신청을 하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일단 비용이 걱. . 정이 되어 아쉽지만 건너뛰기로 했다 그러다 혹시나 하여 물어보니 글쎄 이것도 공짜란다. , .

물론 따지고 보면 이 풍요에서 오는 공짜는 어디까지나 나 같은 외국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수 있다, . 이 모든 것이 스웨덴 사람들이 내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은 세금 덕분이니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 , 곳에서 대학원 교육은 국적에 상관없이 무료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시( ) ' ' , 민권자들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고 그 세금이 교육과정에 쓰이기 때문이다참고로 년 , ( , 2011가을부터 유럽연합 이외 지역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야 한다 다시 말해 조금 과장하자면 내가 휴게실에). , , 서 집어든 과일에는 지난 여 년 간 어느 정도 퇴색되었다고 하긴 하지만 골고루 잘사는 사회를 지향( 10 , ) 하는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가 봐온 현지 사람들 얼굴에는 여. , 유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그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에는 뭔가 넉넉한 그런 . , , 게 있다 이런 환경에 있다 보니 그동안 바짝바짝 움직여왔던 나의 삶에 나도 모르게 저항심이 생겼는지 . , 모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게을러졌다는 느낌이 드는 것일지도. .

유럽의 백인 친구들' ' ' ' …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나의 변명을 뭔가 고상한 데서 찾으려고 하는 발악일 수도 , 있겠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말해 친구들과 파티에 가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일상의 리듬이 깨지기 시작했. , 기 때문이다 보통 파티에 가면 새벽 시 시 때로는 시까지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다음날 아침 문제가 . 1 -2 , 3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비교적 일찍 일어나왔던 나로서는 당연히 문제였다 이런 일이 한 두 번도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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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 꽤 많은 기간 동안 반복되다 보니 내가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까지 생겼, 다 내가 이제껏 놀아왔던 시간 또는 앞으로 몇 년 간 놀 시간을 한꺼번에 압축적으로 쓰고 있다는 생각. , 이 들 정도였다 사실 이것은 탈식민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데 유럽의 백인 친구들이 나에게 살갑게 . ' ' , ' ' ' ' 다가오는 것 그리고 나를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주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영광스러웠던 것이다 그, ( ) ' ' . 래서 친구들이 나의 손을 잡아끌 때마다 쉽게 거부할 수가 없었다말그대로 파티에 끌려다녔는데 물론 ( ' ' , 어울리는 것 자체가 즐겁기도 했다 내가 스스로 한심하다고 느꼈던 것은 일상의 리듬이 깨졌기 때문이). , 기도 했지만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기도 했다 게다가 곳곳에서 고생하고 있을 누군가들을 생각하며 나만 , . 이렇게 지내도 되는가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을까 우여곡절이 좀 있었지만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기처벌 의 형식을 . , ' '(?)빌리기로 했다 학교에서 이틀 정도 잠을 잔 것이다 마쳐야 할 일이 있기도 했었지만 아침에 또 늦게 . . , 일어날 것이 두려워 아예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약간은 추운 공간에서 시간 잠을 자며 이, . 2-3런저런 생각을 했다 몸이 불편했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다그쳤다 글을 쓰. , ' ' . 면서 잠시 생각해보니 마치 엄숙주의를 신봉하는 신도가 된 기분이다 웃음이 난다 그래도 좋다 상황이 , . . . 나아졌기 때문에 물론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제도 새벽 시 넘게 친구들과 어울렸으니 다만 이번에. . 1 . 는 끌려간 게 아니었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다 결국 공짜는 없는 걸까 조금 억지를 부려 말한다면 지. . , 금까지의 우여곡절은 새로운 일상관계에서의 풍요와 여유를 위해 나 자신에게 내야했던 자기세금이 / , ' '아니었을까 이번 주에도 공짜 과일은 어김없이 들어왔다. .

나름대로 스웨덴소식[ ]

북한 스웨덴에 빚을 가장 많이 진 국가스웨덴 국영라디오 국제# , ( , 2010. 11. 20)보도에 따르면 세계에서 스웨덴에 빚을 가장 많이 진 곳은 북한이라고 한다 년대 스웨덴은 북에 자동차를 비, . 1970롯한 여러 장비를 제공했는데 여기에 이자가 더해져 현재까지 억 달러 정도를 돌려받지 못 한 것으로 되어 있다, 37 . 한편 스웨덴은 북쪽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몇 안 되는 서구 국가 중 하나로 특별한 위치에 있다 예컨대 북미관' ' . , 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미국 시민권자가 연루될 경우 미국 대사관을 대신해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이 깊이 관여( ) 하기도 한다.

스웨덴 중도보수당 사회민주당 앞질러 스웨덴 영문뉴스 로컬# , ( < >, 2010. 12. 8)스웨덴 정치사에서 긴 기간 동안 지지율 위를 기록했던 사회민주당이 최근 통계조사에서 중도보수당에게 밀려났다1 , . 스웨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도보수당은 사회민주당은 의 지지를 얻었다 이처럼 사회민주, 32.4% 29% . 당이 위에서 밀려난 것은 년 공식기록이 집계되기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참고로 사회민주당은 지난 1 , 1972 . 월 일에 있었던 총선에서 좌파당 녹색당과 함께 적녹연합을 이루어 정권교체에 나섰으나 중도보수당 주도의 연9 19 - ' ' ,

합세력에게 졌다 결국 사회민주당 이외의 정당세력이 두 번 연속 집권하게 되었는데 이는 스웨덴 현대사에서 처음 . , 있는 일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말씀[ ]안녕하세요 이번 호에서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이전 소식지 글들과 흔적들을 나름대로 살펴보았는데요 함께해오신 모든 . . , 분들께 따뜻한 인사를 전합니다 부족한 저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년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 20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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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그리고 여성,

반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 [email protected]

몇년전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어느 작은 도시 어딘가를 걷고 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산하던 , . 거리에서 대 중후반의 팔레스타인 남자 아이들을 떼로 만났다 그 아이들은 동양인 여자가 혼자서 10 .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지루한 일상의 구경거리였는지 걷는 내내 내 뒤를 따라 오면서 히히덕거렸다. 친니 친니 중국인을 의미하는 말 젝키 첸 성룡 이러면서 까무러치게 웃기도 했다 처음에 서너 명, !( ) !( ) . 이던 아이들은 어느새 열 명 넘게 불어났고 의미를 알고나 하는 것인지 모를 영어 욕설 단어가 귀, 에 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귀여움과 장난으로 넘길 나의 인내심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고 슬슬 심기. , 가 불편해지던 무렵 몇몇의 아이들이 내가 지나 가려던 길을 막고서는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비. . 켜 달라고 몇 번이나 실랑이를 벌였지만 아이들은 막무가내였다 나를 사방으로 둘러싸고서 내가 , . , 머리에 쓰고 있던 히잡을 잡아당겨 벗기려고 시도하고 나보다 몇 뼘이나 큰 키를 하고선 내 얼굴을 , , 향해 느끼한 눈빛을 쏟아내며 어깨와 얼굴로 손을 뻗어 오던 팔과 손 순간 불쾌감과 손발이 차가워. 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불안감 동시에 엄습했다 나의 기억은 아직도 그 순간에 고착되어 있는 것 . 같다 그 이후에 뭔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여차 저차 그 상황을 빠져나왔던 것 같긴 한데 정. , 확한 기억은 이제 남아있지 않다.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시 내 몸을 관통하던 불안감과 소름끼쳤던 그 느낌 그리고 , . 나는 이내 오십여 미터 정도 거리에 있던 검문소와 이스라엘 군인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 그 순간 이스라엘 군인에게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면 이 아이들이 도망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 했다.1) 그 때 나의 몸에 엄습하던 불쾌감과 불안감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이 이스라엘 군 ‘ ’ , , 인이었다는 생각에 대한 죄책감 은 몇 년 동안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십대들(?) . 에게 이스라엘 군인은 자신의 땅을 점령한 점령민인 동시에 자신의 친구나 가족을 죽인 살인자이기

도 하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팔레스타인 대 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인 이스라. 10엘 군인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그 생각은 비겁한 짓인거 아닌가 내가 어떤 것을 . . 떠올렸다면 비겁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던 걸까 불안한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 나의 궁여지책은 그들을 보호 하는 것과 충돌하고 있었다‘ ’ .

1) 사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의 치안이나 안전에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에는 . 그랬었다 여전히 군인은 우리를 보호하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나는 깊게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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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된 땅. 수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건설하고 있는 고립 장벽에 의해 하늘 없는 감옥에 갇혀 가는 곳 길거리, 에서 만나는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 누구와 이야기를 해봐도 친구나 가족 중에 이스라엘 군인에 , 의해 살해 되거나 감옥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어렵지 않은 곳이다.

또한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내려져 있는 땅. 여성들이 하루에 여러 번 집 밖을 출입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집 앞의 채소가게를 가는 것일지라도 가

족의 명예에 이롭지 못한 행동이라는 정서가 여전히 강고한 곳 히잡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 로부터 비난과 이웃의 쑥덕거림을 감수해야 하는 곳 남성으로부터 청혼을 받지 못한 여성들은 결혼. 하지 못 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나이를 먹을수록 가족의 명예에 반하는 존재로 혹은 집안‘ ’ , ‘ ’ 의 소리 없는 오래된 먼지 같은 존재로 취급되는 곳이기도 하다‘ ’ .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 만행과 반인권적 행태를 알리고 가자지, 구 봉쇄에 항의 하는 집회나 고립장벽 건설 반대 등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행동을 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점령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무게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여성에 대한 억압 방식 자체가 다르

게 발현되기도 하는데 우리는 아직 그런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발언을 하고 의제화한 적이 없다, .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해온 활동은 팔레스타인의 여성 억압적 현

실에 침묵으로 공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문제를 잘 , 풀어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내부적으로 긴 호흡을 갖고 변변한 토론도 그닥 많이 진행하지 못했. 다.

팔레스타인의 여성 억압적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 사회에서 풀어내 보고자 할 때 자주 갈피를 잡

지 못하는 지점은 이슬람이나 아랍 사회를 공격하기 위해 여성 차별 문화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 의 언어와 어떻게 다르게 읽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를테면 부시가 아프가니스‘ ’ . 탄을 침공하면서 이라크의 여성 인권을 들먹였던 것이나 한국의 기독교 선교단체들이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 일부다처를 명시한 글귀를 두고 종교적 미개함으로 공격하는 것처럼 이미 이슬람이나 아랍 , 사회를 공격하기 위한 기제로서 여성 차별 문화를 강조하는 주장들이 퍼져있다 물론 그런 주장을 . 하는 이들은 사실상 젠더 억압 문제에 별 관심이 없고 단지 공격의 기제로 활용할 뿐이지만 그것을 , 이 사회가 받아들이고 읽어 낼 때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를 어떻게 명확하게 둘 수 있을 것 인지에 , 대한 전략과 관점을 아직은 잘 고민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 작가인 사하르 칼리파가 한 인터뷰에서 여성작가로서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 자체를 반민족 반혁명 친서방 친이스라엘로 규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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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이겨내는 일이었다’2)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팔레스타인의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것은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 ‘진영이 보이는 어떤 모습들과 충돌하기도 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안에서 여성과 남성을 비롯한 여러 ’ . 정체성들은 단일하게 이스라엘의 점령과만 충돌하고 있는 게 아니므로 이를테면 내가 몇 년 전 팔. 레스타인 대 남자아이들의 괴롭힘에 못 이겨 이스라엘 군인을 떠올렸던 것처럼 때로 무엇이 대안10 . 일지 아득한 질문을 하거나 자괴감에 시달리거나 우리를 공격하는 상대의 안전도 동시에 염려해야 , ‘ ’하면서 말이다.

아직 팔연대의 운동이 위에 이야기한 내용을 담아내며 가고 있지 못하지만 언젠가 이 고민을 잘 안고 , 풀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난해한 주제로 쓰기 시작한 글을 맺는다 성글게 풀어낸 이야기가 읽는 이. 들에게 잘 전달이 될런지 불안하다.

사족>작년에 팔레스타인 여성 억압의 현실에 대한 글을 썼다가 아랍사회는 역시 미개하다는 덧글을 보게 된

이후로는 팔레스타인 여성에 대한 글을 쓸 때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소심한 마음에 짧지 않은 글 . 밑에 몇 줄 더 보탠다.

나는 한국도 팔레스타인도 가부장제가 강고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하르 칼리파가 어. 느 글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딸만 넷 있는 집에서 또 다시 딸인 자신을 낳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는

이야기를 쓴 적 있다 나의 어머니도 딸 셋을 낳고 또다시 딸인 나를 낳아서 사흘 밤낮을 울었다 우. . 리의 차이는 사하르 칼리파는 대 중반의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나는 대 중반의 한국 사람이라는 60 , 30것이다.

여성의 몸은 팔레스타인이나 한국이나 극도로 성애화 되고 통제의 대상이 된다 팔레스타인에는 히잡, . 에 대한 자유가 없고 한국에는 브래지어에 대한 자유가 없다 팔레스타인은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 . 아처럼 히잡을 착용할 법적 강제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 경박한, ‘ , 천박한 개념 없는 등의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마치 한국에서 노 브라로 다니는 여성에 대해 그렇, ’ . 듯이.

2) 송경숙 팔레스타인 여성 하위주체의 삶에 대해 말하기 사하르 칼리파의 소설 읽기 여성이론 호 년 , ‘ : ’, < / >, 9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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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 더 슬픈 나라 라오스,

염창근 | 평화바닥 무기제로팀 활동가 , + [email protected]

라오스 개발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이유 ,

라오스는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순수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늘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중 하나라고 손꼽힌다 뉴스위크가 꼭 가봐야 할 . . ‘ ’나라 위로 선정한 바도 있지만 라오스는 이미 세계의 배낭여행자에게 낙원처럼 청정과 순수를 간직한 1나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렇게 라오스는 문명국의 시민에게 가쁜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안식처가 . 되어 왔다.

라오스 사람들에 대해서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절대다수의 라오스인은 아무런 기계 없이 자그마한 땅을 . 일구며 사는 농부 현대 문명의 소모품이라곤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이들에겐 밥그릇 하나 옷 한 벌도 . . 소모품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새벽 시면 그 없는 살림에서도 먹을거리를 준비해 길가에 무릎을 꿇고 . 5앉아 탁발하는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곳의 자연을 닮아서 그런지 느리고 잔. 잔하다 라오스 사람들의 심성은 문명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과는 아주 다를 수밖에 없다. .

그러나 현대 문명의 척도에 따라 라오스를 말할 때면 언제나 세계 최빈국이며 정부와 국민은 무능할 뿐

만 아니라 교육받지도 못했으며 국제사회의 원조나 기다리기만 한다고 이야기된다 라오스는 국민의 .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중 하나여서 물질의 풍요와 행복이 그리 상관없다는 진실을 말해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의 가난함은 실로 너무 심각해 누구라도 안쓰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비엔티안이나 몇몇 주요 관광 도시의 시내를 제외하곤 제대

로된 도로조차 깔려 있지 않고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버

스는 겨우 하루 대 수준이고 이조차도 온종일 시간을 1~2들여야 갈 수 있다 자동차나 툭툭 같은 이동수단 역시 . 모두 일본이나 태국 등지에서 건너온 중고 수입산이다. 사회기반시설은 빈약하기 짝이 없고 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전기나 수도는 말할 것도 없다. . 오로지 외국 기업들이 벌이는 사업만이 라오스 경제를

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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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속탄 껍데기로 만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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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이를 라오스의 문제로 돌릴 수 있을까 라오스는 오랜 식민지 시기와 내전 그리고 우리에겐 ? 베트남 전쟁으로 알려져 있는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른 후 다른 인도차이나 국가들처럼 사회주의를 택

했다 그것은 가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곧바로 미국과 태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했으며 긴 시간 동안 . . 발전은커녕 내륙에 갇힌 채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이나 중국 같은 주변 사회주의권 나라들의 . 원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원래 원조라는 게 그렇듯 새로운 동력이 될 수는 없었다 소련 등 사회, . 주의권이 붕괴되기 시작한 년대에 들어서야 경제제재는 해제되었고 세계 최빈국으로 아무런 개발1990 , 도 되지 않은 나라로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계의 여행자들에게 참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각광받게 되었지만 도리어 , 그 관광객 때문에 라오스 사람들은 문명을 접하게 되고 갈구하기 시작했다 풍족히 소비하는 여행자들. 을 보며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점 물질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곳이 수도라고 할 수 .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그마한 도시 같은 비엔티안을 비롯해 라오스의 많은 지역이이 농촌 마을에서 외

국인을 상대하는 관광마을로 변모해 갔다 그렇지만 자그마한 비엔티안 국제공항이 말해주듯 문명을 . 추구할수록 다른 나라들에 비교당하며 최빈국이라는 자리만을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라오스가 이렇게 된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집속탄 클러스터폭탄 이다 라오스는 지금까지 한( ) . 번도 집속탄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어떻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다만 미국이 라오스 산천 전역에 뿌린 집속탄. 만을 경험했을 뿐이지만 그 피해는 년이 지난 지금까40지도 너무 크게 남아 있다 라오스는 이 폭탄과 아직도 . 처절하게 전쟁 중이다 미국은 년부터 년까지 . 1964 1973

만 개 이상의 집속탄을 전폭기로 투하했고 여200 B-52 기에 들어 있던 억 천만 개 이상의 소폭탄이 라오스 2 6전역에 뿌렸다 이는 차 세계대전 시기 투하된 전체 . 2폭탄량을 넘어서는 분량이었다.

그리고 이 폭탄의 즉 천만 개가 불발탄으로 이 땅에 심어졌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무기 오염이 라30%, 8 . 오스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불발탄들은 충격을 받으면 터지는데 이렇게 불발탄으로 인한 라오스 사상. 자는 만 명이 넘는다 불발탄은 상시적인 위험을 줄 뿐만 아니라 땅으로의 접근을 봉쇄한다 그러나 5 . . 대다수의 라오스 사람들이 농민이라는 점 그리고 이미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점은 라오스에 잔인한 비극을 끊임없이 낳고 말았다 외세가 뿌려놓. 은 폭탄 속에서 농사를 짓는 라오스 사람들에게 과연 최빈국의 책임을 돌리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라오스의 슬픔 세계 최대의 집속탄 피해국이자 생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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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을 폭격한 미국 전폭기와 투하된 집속탄을 보여주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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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정부는 개 지역 중 개 지역이 심각히 오염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일본은 년의 조사에17 10 . 2002 서

라오스 농토의 평방킬로미터가 불발탄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집속탄 불발탄 제거 노력이 236 . 계속되고 위험 교육이 라오스 전역에서 실시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한 해 명 이상이 불발탄으로 사300망하는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조차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에 한정한 것이므로 실제로는 배 가. 2까운 사상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엔개발계획 의 년 보고에 따르면 라오스는 인당 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집속탄의 피(UNDP) 2008 1해가 큰 곳이다 고통의 범위에서도 단연 세계 최고라고 규정했다 불발탄은 농토 학교 집 길 공터. . , , , , , 둔덕 강 곳곳에 숨겨져 있다 국토 전역에 묻혀 있는 불발탄이 언제 터질지 알 수가 없다, . .

또한 불발 집속탄을 제거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열악한 라오스 국가경제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되어

왔다 집속탄으로 오염된 경작지 학교 마을에만 제거 작업을 진행하더라도 최소 년이 걸릴 것으로 . , , 16예측된다 년까지 개의 불발탄이 제거되었지만 이는 불발탄 전체량의 에 불과하다 면. 2009 40,499 0.05% . 적으로 봐도 오염지역의 만 제거작업이 종료되었을 뿐이다1% .

오랜 기간 이런 사실은 무시되어 왔었다 년대 대인지뢰 문제에 대해 세계적 관심이 생겨나고 평화를 . 1990향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커지면서 라오스에 묻힌 집속탄 문제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희생자와 피. 해자가 보였고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순수의 나라 라오스에는 현대의 대표적 비인도무기, 인 집속탄이 지천에 깔려 있다 라오스의 수많은 마을들은 불발탄과 더불어 살아간다 아무것도 가진 . . 것이 없는데 무기와 함께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라오스 사람들은 집속탄 껍데기를 집 기둥으로 쓰.

고 배로 만들어 타고 다닌다 화분과 상자텃밭이 되기도 한다. . 소폭탄 탄피는 호롱불이 되기도 하고 장난감이 되기도 한다.

일상 깊숙이 집속탄이 있다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아직 터지지 . 않은 불발탄인지 평범한 사람들은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땅. 에서 농사를 짓고 강에서 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대부분의 농촌

마을 라오스 사람들에게 집속탄 불발탄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쟁기질을 하다가 땅속에서 갑작스럽게 폭탄이 터진다 집속탄은 . 삶을 앗아가는 장본인이 된다.

국제적 차원의 지원은 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되었다 그때서야 1990 . 라오스 마을에 집속탄 위험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 여전히 사상자는 계속 발생한다 라오스 정부는 자신의 힘으로 .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없는 건 당연했다 할 수 있는 일. . 이라곤 더 많은 원조를 요청하는 일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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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속탄 탄피로 만든 집속탄 폭발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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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라오스는 원조에 기대고 있다 원조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오스가 원조를 받아서라도 불. . 발탄을 제거하고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라오스의 어려움. 은 라오스 스스로에게서 파생한 것이 아니며 대규모 폭격으로 경제제재로 불발탄으로 생겨났던 것이, , 다 그 땅의 자원을 이용할 수 없는 나라에게 경제발전의 척도를 운운하는 것은 성립할 수 있는 . 물음

이 아니다 라오스는 여전히 전쟁 속에 있다 따라서 그 책임은 최소한 가해자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 . 하지만 미국 정부는 라오스를 폭격할 때는 하루에 만 달러당시로 환원하면 만 달러 의 돈을 300 ( 1700 )폭격을 위해 썼지만 현재 라오스에 원조하는 돈은 년에 고작 만 달러다1 300 . 월 일에 발효된 역사적인 군축 협약인 집속탄금지협약에8 1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당사국 회의를 라오

스가 주최했다 이 회의에서 라오스 정부가 국민과 함께 . 보여준 리더십은 집속탄 종식을 향한 행동을 더욱 의미

깊게 만들었다 집속탄을 없애려는 라오스의 의지는 명. 확했고 회의에 참석한 전 세계 각국 정부 대표부는 집속

탄을 더 이상 용인할 여지가 없다는 분명한 목소리를 함

께 냈다 집속탄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회의에 . 공식 참관한 여개의 국가 대표부도 집속탄 피해 마을 30현장을 방문한 후 지속적으로 민간인에 위해를 가하는 “집속탄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협약의 정신을 존중하며

할 수 있는 노력들을 검토하겠다고 동조했다” .

라오스가 하루 빨리 이 아름다운 땅에서 폭탄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그래서 더 많은 지치고 상처받

은 영혼들을 보듬는 곳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동시에 이처럼 국제사회가 규탄하고 금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집속탄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 한국이 회의에 참관조차 하지 않은 것은 씁쓸했다 게다가 한반도에 이 집속탄이 주력 무기로 배치되. 어 있다 분쟁이 발생해 한반도 산천은 라오스처럼 불발탄으로 뒤덮힐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 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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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서 열린 집속탄금지협약 차 당사국회1의 개 나라의 대표부와 시민사회 활동가들. 121이 천여명이 함께 집속탄 금지를 위한 행동을 1논의하고 결의하는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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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는 스물하고 세 살 공현 | 청소년인권활동가 + [email protected]

내 나이도 어느새 대 중반 스물하고도 세 살이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볼 때마다 군대는 언제 20 . . 가느냐 혹은 어떻게 하느냐 라고 묻곤 한다 심지어 청소년인권에 관한 강연을 나가도 그런 질문이 꼭 . 한 번씩 들어온다 좀 떨떠름해하면서도 아마도 병역거부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반응은 삼분된다. . 용감하다 대단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리 그래도 징역 사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고 하“ ”, “ ” , 며 걱정하고 다른 대체복무를 찾아보라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부류는 병역거부가 뭔지도 잘 몰라서 . 군대 안 갈 수도 있어요 라거나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데 라고 묻는 사람들 주로 군대 문제를 잘 “ ?” “ ?” (모르는 청소년들이라거나이다) .

병역거부의 불이익?

나는 용감하다고 말하는 분들이나 걱정하는 분들에게는 군대에서 년이나 감옥에서 년 개월이나 징“ 2 1 6 … 역이나 징병이나 뭐 비슷하지 않겠어요 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농담이나 위안이 아니라 진담이다 병?” . . 역거부가 나한테 그렇게 큰 불이익이나 피해가 될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징역에는 휴가가 없다는 것. , 그리고 전과자가 된다는 게 문제일 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뭐 일반적인 기업에 취직해서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국가공무원이라거나 변호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병역거부 경력이 그렇게 결격사유가 . ,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편의점이든 식당이든 병역 미필의 전과자는 기피할. 테니 좀 어려울 듯한데 병역거부를 하기 전에 그런 문제에 관해서 운동을 미리미리 해둬서 좀 바꿔둬, 야 할지 어떨지 고민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운동 같은 것에 좀 짬이 나면 해볼텐데 모. . 든 병역거부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나처럼 병역거부가 그 이후의 삶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삶을 설계하고 있던 사람에게는 병역거부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 약간은 가벼운 문제로 느, ( ) 껴진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반대의 문제이다 내가 지금의 신념과 생각대로 병역거부를 하고 징역을 받고 감옥살. 이를 하다가 나온다고 가정하면 그 이후에 오히려 걱정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병역거부가 일종의 훈, 장이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하고 있는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든 다른 사회운동을 하든 아니면 작가가 ? , 되든 병역거부라는 나의 부가속성을 팔고 싶은 욕망이 계속 따라다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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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겠다고 한 내 말을 여러 차례 들었던 부모님이 이미 설득하는 건 포기하심 그런 게 니( ) “가 하는 운동 뭐 그런 거에서는 명예로운 일이니 라고 물어보셨다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 , 나는 그런 것이 특별하게 명예로운 일로 대접받지는 않는 운동이 건강한 운동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전과자라고 하니까 생각난 게 어차피 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관련해서 광화문 거리 인도에서 분간 , 3멈춰있는 플래시몹을 하다가 청소년이 체포되는 것에 저항해서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일단 경찰의 체포가 부적법했다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도 유죄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그러면 나

는 어차피 전과자다 이명박 정부에서 인권운동한다는 게 다 이렇지 뭐 싶기도 하고 어차피 빨간 줄 . , 그은 거 병역거부도 좀 부담이 적겠군 싶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려나?…

인생의 터닝포인트

어쨌든 요즘은 병역거부 문제를 생각하면 갑갑하기만 하다 병역거부가 그냥 군대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 . 대학 생계 가지 문제가 엮여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자퇴하고 병역거부를 3 . 하고 싶어 하는 나와 대학은 졸업하고 병역거부를 하라는 부모 사이의 갈등이고 좀 더 자세하게 보면 , , 대학과 군대에 매여서 단체 상근이든 뭐든 자유롭게 하지도 못하고 독자적으로 경제력을 갖추지도 못

하고 있는 꼬인 상황의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그래도 병역거부는 받아들이신다니 좋은 부모님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병역거부는 네 뜻대로 하게 , “해줬으니 대학은 우리 뜻대로라는 식으로 내 삶을 가지고 흥정을 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만 하다” . 대학과 군대를 따로 떼어놓고 풀 수 있으면 더 쉬우련만 이미 나이가 차버린 나는 대학을 그만두거나 , 졸업하는 즉시 병역거부의 결단을 내려야하니까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당장 뭔가 경제력이 있으. 면 부모님과 싸워서라도 마음대로 해버릴텐데 경제력이 생기려면 대학과 군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니

아놔 이거 어쩌란 건지.

올해 들어서는 돈도 없고 갑갑한 마음에 아 ㅆㅂ 답이 안 보이는데 그냥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며 “ ”한두 번 자살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살면서 못 먹어본 게 많고 애인도 있고 청소년. 운동에서도 할 일이 많고 등등의 변명을 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생각. 에는 변함이 없지만 병역거부를 대체 언제 할 것이고 대학은 어떻게 하고 할 것이냐 등등이 발목을 , ‘ ’ 잡고 있는 상황 이 상황이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내 나이는 스물하고 세 살이고 병역거. . , 부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 다음에야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그런 게 좀 구체적으로 보일 것 같다. 그래서 병역거부는 내 인생 설계에서 일종의 터닝포인트로 설정되어 있다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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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말하고 돈을 말하는 시대에 작가는유채림 | 작가 두리반에서 강제철거에 맞서 농성 중 +

년 가을 프랑스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를 점령한 로즈 제독에게 조선의 기보순무사 이경하1866 , 機輔巡撫使 장군은 서한을 보낸다 서두는 이렇다. .李景夏

우리는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두말할 나위 없이 정의다 이를 어기는 자는 용서의 여지가 없다 따? . . 라서 정의를 부정하는 자는 제거하고 이를 침해하는 자는 참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러서지 말고 머리를 숙여 복종하라, !동치 오년 구월십일일.同治

강화읍을 점령한 프랑스 함대는 약탈과 학살을 자행한다 내 땅을 빼앗는 자들 내 땅의 사람들을 살육하고 . , 서슴없이 약탈을 감행하는 자들 그들은 부정의하다 그들을 잡아 징치하고 나라 밖으로 내쫓는 일 이경, . , 하 장군은 그게 정의라고 말한다. 여 년이 지난 오늘날과는 정의의 시각이 사뭇 다르다 오늘날은 내 땅 내 생계터전을 빼앗고 무차별 약150 . , 탈을 감행하는 건설시행사들의 만행이 법이라는 미명하에 정의롭다 쫓겨날 수 없다고 단애절벽에서 발. 버둥치는 철거민들이 부정의하다 하여 검은 유니폼에 검은 모자까지 눌러쓴 건설시행사의 철거용역들이 . 부정의한 철거민들을 묵사발 낸다 각목을 휘두르고 칠십 노인네의 뺨을 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 , 을 퍼붓지만 철거용역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롭다 그들이 난장을 치는 동안 정의로운 경찰은 우스워. 서 웃는지 울고 싶어서 웃는지 여하튼 웃느라 정신줄을 놓고 있다 멀리 용산 참사현장까지 갈 것도 없, , . 다 사당동 정금마을 철거농성장에서 경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 성남시 단대동 철거농성장에서 경찰. . 은 돌아선 채 웃었다 아마 앞으로도 부정의한 철거민들에게 가하는 정의로운 철거용역들의 폭력을 두고. , 정의로운 경찰은 계속 뒷짐을 지거나 다리를 한껏 벌린 채 하냥 웃을 것이다 법을 어기고 법에 맞서는 . 철거민들 그들은 부정의하므로 그렇게 얻어맞거나 그렇게 쫓겨나야만 한다 그게 법이고 그게 오늘의 , . 정의 아닌가?

그러니 철거민들에게 법이 무슨 대수인가 생계터전을 하루아침에 박살내도 군소리조차 달 수 없는 법 그? , 게 무슨 대수인가 설령 그런 개떡 같은 법에 의해 정의가 규정지어질지라도 불행 중 다행히 법보다 상? , 위에 있는 윤리원칙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 말이다 법을 빙자하여 땅을 빼앗는 자들 법을 무기. , 삼아 삶을 박탈하는 자들 법보다 상위에 있는 윤리원칙은 그들이야말로 부정의하다고 선언한다 작가는 , . 부정의를 선언하는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왜냐면 작가는 언제나 그렇듯 삶을 말해야 하며 그 삶이 . , 부정의에 맞서는 핍진한 삶일수록 더더욱 작가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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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통한 배움 일본여행,

여옥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email protected]

일본여행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건 올해 봄이었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언니와 내년초 결혼을 . 하게된 동생 때문에 세자매 도쿄상봉 프로젝트를 기획하긴 했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 좀더 복잡한 이유들이 있었다 전쟁없는세상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게 년 벌써 햇수로는 . 2006 , 5년이지만 여전히 마음만 앞서는 운동을 하고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물론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 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런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 을 하곤 했다 이런저런 제안들도 있었지만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활동가로서의 나의 성장과 발전에 . 더 도움이 된다는 나름의 생각도 있었고 지난 호 소식지를 준비하며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 28책과 자료를 찾아보면서 일본은 꼭한번 다녀와야겠구나 싶어서 결단을 내렸다 한가한 일정을 찾다보. 면 절대 못간다는걸 알기 때문에 일단 비행기표부터 끊었다 나중에 수수료 내고 열흘이나 앞당겨야했.(지만 예상했던대로 여행준비는 거의 못했고 갑작스레 생겨나는 일 때문에 지금 여행을 가는게 맞는건) , 지 매일밤 고민하면서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월 일부터 월 일까지 일간 일본여행을 . 10 16 11 10 26다녀오게 되었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 언니를 위한 반찬선물이 가득한 트렁크는 너무 무거웠고 일본의 전철은 너무 . , 복잡했다 그러는 와중에 면세점에서 산 물건이 든 쇼핑백 봉투를 공항의 카트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 다 역무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공항으로 되돌아갔지만 이미 쇼핑백은 보이질 않았다 말이 잘 안통하는. . 데도 정말 친절하게 챙겨주던 사람들이 고맙긴 했지만 가방, 도 아니고 상품만 담긴 쇼핑백을 찾는건 애초에 무리였다는

생각에 기분은 착잡했다 그렇게 되돌아가는 길 전철 입구. , 에서 분실물센터 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찾은 것 . 같아서 뛰어왔다고 세상에 그렇게 극적으로 물건을 찾아서 . ! 언니네 집으로 가는 길에 동생이 그랬다 언니 일본은 참 . “ , 좋은 나라인거 같아 이것이 일본의 첫인상이었다.” .

도쿄에 머무는 일주일동안은 정말 관광객처럼 지냈다 언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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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디즈니랜드행 모노레일을 탄 세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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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함께 하라주쿠 시부야 아사쿠사, , , 신주쿠 지브리박물관 디즈니랜드 등 유명한 곳을 돌아다니, , 고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바, , . 로 교토로 이동했다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설레임도 있었지만 일본어를 못하는 내가 야간버스를 타. , 고 혼자 돌아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긴장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정말 드물게 버스가 연착. 되는 상황이 생겨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기도 하고 가게들 문도 열지않은 새벽에 엄청 넓은 교토역을 , 트렁크를 끌고 헤매기도 하고 버스비를 어떻게 내야하는지 몰라서 기사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 하고 버스에 따라 버스비 내는 방법이 다르다는 그렇게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 .

교토에서 일행을 만나 오키나와에 갔다 오키나와 나하공항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후덥지근한 공기와 파. 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은 꼭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는데 오키나와에서도 만나기 힘들다던 , , 10월말의 태풍이 하루만에 우리를 반겼다 단체방문도 하고 야스쿠니합사 반대소송 판결과 관련한 사전. , 행사와 사전집회 기자회견에도 참석했다 전쟁협력자, . ‘ ’1)처럼 처음 알게되는 내용도 많아서 보고들은 , 것들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구경하는 수준이었지만 환갑이 넘으신 활동가 선생님들의 열, 정은 말이 안통해도 느낄 수 있었다 태풍이 가장 심했던 날 남쪽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 다녀왔다. . 비바람이 너무 강해서 우산은 쓰지도 못하고 자료관을 제외한 평화의 초석이나 기념비는 제대로 살펴

보기도 힘들었지만 고생한만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남쪽절벽 . 끝의 성난 파도는 억울한 원혼들의 절규처럼 보이기도 했다 군인들. 에 의해 자결을 강요받은 마을 사람들의 죽음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미군에게 밀리고 밀려 이곳 남쪽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던 군인들

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들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일까 일본에서 . .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이고 그만큼 전쟁의 상처가 컸지만 지, 금은 미군기지문제가 심각한 오키나와 미리 준비를 좀 하고 왔더라. 면 더 많이 보고배울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교토로 돌아와 리츠메이칸대학 국제평화박물관을 방문했다 비오는 일. 요일 오후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공습관련 특별전시회까지 둘러보, 는 반나절동안 다른 관람객은 단 한명도 마주칠 수 없었다 덕분에 . 눈치도 안보고 사진도 마구 찍으며 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평화박. 물관답게 전쟁시기 국민총동원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여러 방

법들과 식민지 강제동원 항일운동과 반전움직임 그리고 탄압에 대, ,

1) 전쟁이 끝난 이후 피해자의 가족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신청을 했는데 그렇게 원호법에 의해 보상을 받은 사람들을 , 전쟁에 협력한 사람으로 분류해 야스쿠니 신사에 모시고 있다고 한다 구 해군사령부 방공호 전시관에 나와있는 사. 상자 통계에도 민간인전쟁협력자군인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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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메이칸대 국제평화박물관 입구에 있는 와다쓰미상 전쟁에 끌려. 가 죽은 학도병들의 죽음을 기리며 만들어져 평화를 상징했었지만 전, 공투 학생들이 파괴하면서 그것이 상징하는 평화의 의미에 대해 논‘ ’란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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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록은 물론이고 전후 책임있는 처벌과 피해자보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부분도 지적하, 고 있었다 하지만 윗층에 등장하는 세계평화는 유난히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일본사람들. ‘ ’ . 에게는 가해

자로서의 일본이 어떻게 느껴질까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지만 번역된 말투는 . , 일본어로는 어떤 뉘앙스로 설명하고 있을지 더 궁금하게 했다 피스오사카라고 부르는 오사카 국제평. ‘ ’화센터는 아쉽게도 한국어서비스가 되지 않았다 번역된 한국어도 아쉬웠는데 영어와 한문만으로 보려. 니 이게 그래도 영상자료가 많아서 다행이었다 일본의 전쟁은 주로 공습의 모습으로 기억되는데 일.. . , 본이 침략한 나라들에 대해 나와있는 부분은 조금 충격이었다 그곳에서 벌어진 학살과 만행의 적나라. 한 모습들은 천황을 위해 목숨바쳐 싸우는 이들이 만들어낸 전쟁의 실상이었다 그런 모습 앞에서 전. ‘쟁 앞에서는 누구나 다 피해자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텐데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공개’ , 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살공격을 감행한 군인들은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 억지로 혹은 속아서 전쟁에 동원된 것이라면 전쟁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걸까 이런저런 고민. 을 하다가 갑자기 마주한 아우슈비츠 사진 때문에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히로시마에도 다녀왔다 야간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 근처 미야지마. 를 잠시 구경하고 와서 원폭돔과 평화기념공원의 여러 기념비 기념관, 과 기념자료관을 둘러보았다 원폭피해의 처참함과 끔찍함을 자세하게 . 묘사하고 있지만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없이 무조건

반전과 평화만 이야기한다는 비판은 너무 많이 들어온 이야기라서 패

스하고 내눈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공원 가득히 단체관광을 , 온 교복입은 학생들 그리고 공원 한가운데 거대한 히노마루였다 세, . 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의 참

상을 어릴 때부터 보고자란 아이들은 강한무기가 평화를 지켜줄 거라

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고 하면 일본은 한국보다 더 평화로운걸까. , . 원폭희생자위령비와 원폭돔 사이에 보이는 거대한 일장기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한계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 공원의 강변에서 잔잔한 조명이 들어오는 원폭돔을 보며 앉아있었다.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보았던 도시의 모형 위 지금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그날 원폭이 투하된 지점의 하늘을 자꾸면 올려보게 되고 강물 위 야경은 잔잔하고 아름다, , 웠지만 살점이 녹고 타버린 시체들로 가득한 핏빛강물이 자꾸만 오버랩 되었다 역시 실물이 주는 힘. 은 좀 다른 것 같다 그리고 히로시마의 오코노미야키는 절대 잊지 못할거다. , .

다시 도쿄에 와서는 야스쿠니 신사와 유슈칸 쇼와관 쇼케이관을 방문했다 그동안 평화기념관을 다니다, , . 가 전쟁기념관을 가려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유슈칸은 입장료가 엔이나 돼서 잠시 망.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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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돔을 관람온 학생들. 연령대도 다양하고 정말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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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기도 했다 티비로만 보던 야스쿠니 신사와 군국 . 주의의 상징처럼 보여지는 유슈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더 우리의 전쟁기념관과 비슷했다 이미 올여름에 . 전쟁기념관에서 충격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 놀랄 것도

없었지만 가미카제, 2) 특별전을 둘러보면서는 교토 오 , 사카와의 기억 때문에 좀 혼란스럽기도 했다 일본 역. 시 같은 전쟁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몰래 . 사진을 좀 찍긴 했지만 관람을 온 어르신들이 많아서

눈치가 보였다 쇼와관은 전쟁이 있었던 쇼와 천왕시. 대 당시의 생활상을 전시한 곳이고 쇼케이칸은 전쟁

때 다친 병사들과 관련된 기록을 전시한 곳이었는데, 두 곳 모두 평화박물관 목록에 들어가있지만 왜 평화

박물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에는 전쟁을 기억하는 공간이 참 많은데 이렇게 몇 군데만 잠깐 들러. , 보고 평가할순 없겠지만 다양한 기억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전쟁에 대한 다른 물음들이 가능하, 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를대로 오른 엔화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않아서 뭐든 곱하기 로 계산하다보니 멈칫대는 순간이 많았14다 교통비가 워낙 비싼데다가 오키나와 교토 히로시마 등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잦았던 나에게 교통. , , 비는 여행경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언제 일본에 올까 싶어서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숙박비를 거의 안들이고 다닐 수 있었던 축복 이 없었다면 여행자체가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맥주 매일매일 새로운 종류의 . , ! 맥주를 맛보는 재미와 감동적인 맥주의 맛은 여행도중 틈틈이 써서 보내야했던 발제문의 스트레스와 ,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 때문에 로밍 핸드폰으로 계속 연락해야했던 우울함을 날려주었다 한국에 돌. 아오자마자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언제 여행을 다녀왔나 싶기도 하지만 여행하면서 직접 보고 듣, 고 느낀 것들 급하게라도 찾아본 책과 자료들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은 내게 충분히 자극이 되, , 었고 이후 활동에 있어 더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여행을 하며 혼자 또 함께 보낸 시간과 여행, . , 이 아니면 결코 누릴 수 없는 여유는 내안의 나를 한뼘더 크게 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이런저런 . 사정상 당분간 여행을 떠나긴 힘들겠지만 활동을 하며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여행, 계획을 꾸준히 세워볼 생각이다 벌써 다음 여행지도 정해두었으니 말이다. .

2)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차대전 때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자살공격을 한 특공대를 일컫 ( ) ‘ ’ , 2神風かみかぜ는다 특별전에는 전투기뿐만 아니라 배와 잠수함의 형태도 전시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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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슈칸 입구에 있던 특공용사의 상 이 사. 特攻勇士람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을까, . 이 죽음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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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헌법재판소가 병역거부를 인정하다

이번 호의 번역글은 업데이트 호 년 월 에 나와있는 콜롬비아 헌법재판소의 WRI CO 52 (2009 11-12 )소식입니다 콜롬비아 .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얼마전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병역거부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했을 때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 . 따끈따끈한 소식은 아니지만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싣게 되었습니다. (번역 아즈 검토 상우: / : )

원본출처 * http://www.wri-irg.org/node/9188 Colombia : Constitutional Court recognises conscientious objection

지난 년 월 일 콜롬비아 헌법재판소는 콜롬비아의 몇몇 인권단체들이 년 월에 제소한 위2009 10 14 , 2009 3 “헌 제청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놀랍게도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콜롬비아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는 ” .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콜롬비아 의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률을 통과시킬 것을 당면 과제로 제시. 했다.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원 문서에서 청구인들은 병역법 조 항 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예48 27 (1993)외 조항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위헌적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결을 . 내렸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는 인정하였다 헌법재판소 재판장 닐슨 피닐라 판사는 군대가 각 사, . “례를 개별적으로 검토해야만 하며 만일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판단할 경우 보호 영장을

신청함으로써 주장을 피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법원의 이번 판결을 통해 년대부터 계속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콜롬비아 헌법에 의해 보장되지 않(1990 ) 는다고 명시된 기존 판례가 뒤집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이는 굉장히 진일보한 판결이라 할 . 수 있다.

이번 재판 결과는 지난 년 월 재판에서 국선 변호사의 긍정적 진술에 따른 것이다 당시 변호사는 2009 8 .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권고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년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위원회 또한 콜롬비아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사례 두 건을 평가하면서 강2008

제 군 징집이 자의적 구금을 구성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년 월 업데이트 호 참조. (2008 10 , CO 42 )

이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콜롬비아 의회에 달려있다 그러나 과반수가 보수. 적인 의회를 고려해볼 때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어떠한 입법도 매우 제한적이며 국제 기준을 준수하

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염려된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군대의 반응 또한 미지수이다 강제 징집이 광범위한 군 모집 방식으로 존재하는 . 한 병역거부자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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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영등포교도소로 이감:: : 영등포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김영배는 월 일 영등포교도소로 이감을 갔습니다8 31 .

우공 서울구치소에서 출소:: :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우공은 월 일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8 13 . 은국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출소:: :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은국은 월 일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9 30 .

조은 서울구치소에 수감 :: : 월 일 선고공판에서 징역 년 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9 30 1 6 .

장임마누엘 심 재판 진행 중 :: : 1월 일 병역거부를 선언한 장임마누엘은 월 일 심리공판을 받았고 선고공판은 월 일입니다8 31 11 24 , 12 22 .

상우 재판 대기 중:: : 월 일에 병역거부를 선언한 상우는 월 일 경찰조사를 받았고 년 월 일 첫 재판이 열립니다10 19 11 18 , 2011 1 6 .

이태준 재판 대기 중:: : 월 일이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태준은 월 일 경찰조사를 받았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11 9 12 13 , .

안지환 병역거부 선언:: : 월 일이 입영일이었던 안지환은 병무청에 입영의사를 밝혔고 현재 경찰조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11 30 , .

날맹 병역거부 선언:: : 월 일이 입영일이었던 날맹은 국방부 앞에서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을 했고 저녁에 축하파티를 열었습12 14 , 니다 현재 경찰조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현재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하동기 경기도 군포시 군포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20 1905 (435-050)

백승덕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164 1107 (153-600)

이정식 충남 논산시 성동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1 244 (320-941)

박현민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165 1216 (153-600)

김영배 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165 1314 (153-600)

이조은 경기도 군포시 군포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20 3956 (435-050)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9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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