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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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91 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최 민 식 초록 엘레아 학파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에게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즉 우리는 오직 있는 것에 대해서만 사유할 수 있을 뿐이며, ‘없는 것은 있기 않기 때문에 사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유언을 어기 면서 부친살해범이 되었다. 플라톤은 그의 후기 작품, 소피스테스에서 파르메 니데스의 비존재상이성또는 타자성으로 환원시켰다. 플라톤은 거짓말 쟁이이며, 사기꾼인 소피스테스를 통해 운동만을 강조하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정지만을 강조하는 파르메니데스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2000년간 계속되어 내려온 주체성과 타자성에 관한 논쟁의 물꼬를 터놓을 수 있게 되었다. 주체의 개념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져 왔다. 특히 중세와 근대는 주체의 개념에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중세에는 주체가 곧 실체를 의미했지 , 근대에 와서는 자아의 개념으로 정착한다. 자아로서의 주체의 개념 안에는 이중적인 의미뫼비우스의 띠처럼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것은 먼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 나타난다. 근대의 문제는 자아 로서의 주체의 사유가 얼마나 보편성을 보증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헤겔은 변증법으로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단순한 감각경험에서부터 시작하여 무한자로 서의 절대지에 이르기까지 추적해 가면서 범신론이 되었다. ‘실존이 본질보다 선행한다고 선언한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부여되는 모든 형이상학 적 본질을 거부하고, 모든 결정론에서 벗어나 사물존재의 반대편에서 끊임없이 무화작용을 함으로써 보편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헤겔이나 사르트르 등이 속한 철학은 타자를 자기에게 환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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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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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91

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최 민 식

� 초록

엘 아 학 의 철학자 르메니데스에게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즉 우리는 오직 ‘있는 것’에 해서만 사유할 수 있을 뿐이며, ‘없는 것’은 있기

않기 때문에 사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라톤은 르메니데스의 유언을 어기

면서 부친살해범이 되었다. 라톤은 그의 후기 작품, 「소피스테스」에서 르메

니데스의 ‘비존재’를 ‘상이성’ 는 ‘타자성’으로 환원시켰다. 라톤은 거짓말

쟁이이며, 사기꾼인 소피스테스를 통해 운동만을 강조하는 헤라클 이토스와

정지만을 강조하는 르메니데스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2000년간 계속되어 내려온 주체성과 타자성에 한 논쟁의 물꼬를 터놓을

수 있게 되었다.

주체의 개념은 시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져 왔다. 특히 세와 근 는

주체의 개념에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세에는 주체가 곧 실체를 의미했지

만, 근 에 와서는 자아의 개념으로 정착한다. 자아로서의 주체의 개념 안에는

이 인 의미-뫼비우스의 띠처럼-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것은 먼 헤겔의

「정신 상학」에서 ‘주인과 노 의 변증법’으로 나타난다. 근 의 문제는 자아

로서의 주체의 사유가 얼마나 보편성을 보증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헤겔은

변증법으로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단순한 감각경험에서부터 시작하여 무한자로

서의 지에 이르기까지 추 해 가면서 범신론이 되었다. ‘실존이 본질보다

선행한다’고 선언한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선험 으로 부여되는 모든 형이상학

본질을 거부하고, 모든 결정론에서 벗어나 사물존재의 반 편에서 끊임없이

무화작용을 함으로써 보편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헤겔이나 사르트르 등이 속한 철학은 타자를 자기에게 환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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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 기독교철학 9호

동일성 철학, 는 존재론 철학으로 견지하게 된다. 비나스는 이러한 철학

을 거부하고 타자를 자기로 환원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타자에게 문을 열

어놓는 ‘성육신 ’인 철학, ‘타자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비나스는 존재론보다

윤리를 우선시하는 것은 “타인의 얼굴”에 의해 정당화되어 진다고 주장한다.

주제어: subjectum, 타자, 코기토, 뫼비우스의 띠,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무화, 타자의

윤리학

Ⅰ. 서 론

칼 야스퍼스는 B.C 500년경 세계사의 새로운 축으로 잡고, B.C 800

년과 B.C 200년 사이에 일어난, 가장 심오하게 일어난 정신 과정

을 ‘차축시 ’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 다.1) 동양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 제자백가 등의 출 이 있었고, 고 그리스에서는 탈 스, 르

메니데스, 헤라클 이토스, 라톤, 아리스토텔 스 등의 등장으로 세

계의 문명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인류 문화가 새롭게 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 로 평가했다.

차축시 의 문명발달을 새로운 정신문화 발달의 시작으로 볼 때,

지 까지의 시 발달을 마치 한 인간이 유아기를 거쳐 성인에 이르

는 단계를 밟아 오는 것과 같다는 유비해 볼 수 있다. 그것을 로이

트의 리비도 발달과정과 유비 계를 설정해 보면, 차축시 이 의

시기를 상징화된 언어 사용이 불가능한 유아기(0∼3세)로 볼 수 있

다. 이 시기에는 문명 인 발달은 없었지만, 그런 만큼 인류의 원형

인 것이 잘 보존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차축시 라고 불리워지는

B.C 5세기 후의 시기는 유아기를 넘어선 오이디푸스 시기(만 3-6

세에 해당)로 볼 수 있겠다. 이 시기에는 오이디푸스 콤 스 환

상으로 인해 부친 살해가 일어나는 시기이다. 라톤은 르메니데스

1) 칼 야스퍼스, 백승균 역, �역사의 기원과 목표�, (서울: 이화여자 학교 출

부), 1987년, 2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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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93

의 존재론을 부정함으로써 부친살해를 지르게 되고, 아리스토텔

스는 자신의 스승인 라톤의 이론을 정면으로 거부함으로써 제2의

부친살해가 일어난다. 그 이후에도 철학은 그 역사 속에서 오이디푸

스 콤 스를 극복하지 못한 채 세 를 거듭하면서 끊임없는 부친

살해는 철학역사의 오랜 통으로 철되어진다. 가이아가 자신의 아

들인 크로노스의 낫으로 거세를 당하듯이 철학의 아버지들은 아들에

의한 거세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가지는 거세 공포로 인해 아들에 한 경계가 강화되면

서, 일종의 반동형성의 형태로 아들에게는 아버지로 인한 거세공포가

극에 달하게 된다. 거세공포의 결과 자아가 형성되고, 더 이상 끔

스러운 거세공포에 시달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잠재기로 들어간다.

잠재기는 아버지를 5m 거인으로 이상화시켜 놓고 자신의 왜소함을

받아들이면서 능한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의지하는 시기

이다. 이러한 잠재기가 세시 에 해당한다. 아동이 자기 주체를 가

지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의존함으로써 아버지가 아동 자신의 주체

역할을 하듯이, 세시 의 능하신 하나님과 그 리인인 교황이

유일한 주체가 되는 시기를 보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 는 청소년기에 해당한다. 아버지의 능성을 무

뜨리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하는 시기로서, 주체를 찾아가

는 활동의 일환으로서 반항이 시작되는 때이다. 데카르트가 능한

신을 깎아 내리기 시작했고, 자아(Ego)의 사유가 모든 사유와 단의

최종 심 이 되는 치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주체는 자기 밖의 모

든 상을 객체로 놓는 이원론 사고를 발 시키면서, 객체의 가치

를 주체의 사유에 의해 결정하는 횡포를 지르면서 자아팽창이 일

어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기는 이러한 자아팽창으로 인해 울타리를

넘어서기를 좋아하고, 자기 경계를 넘어 다른 역으로 침범하기를

좋아하는 반항아이기도 하다. 그 게 해야 하는 당 성은 청소년의

성장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데, 곧 자아 정체성의 확립을 해서이다.

이런 사상 배경 하에서 서구 심의 선교활동이나 제국주의 팽

창, 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는 곧 주체철학에 의한 자아팽창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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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 기독교철학 9호

과라고 볼 수 있다.

헤겔로부터 시작된 자기 부정과 타자에 한 수용을 시작으로 하

여 후기 청소년기 내지는 청년기를 거치게 되고, 시 는 사르트

르의 「존재와 무」에서 보여 독보 인 타자성 개념이 본격 으로

수용되면서 성인으로의 성장의 정 에 도달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데리다, 들뢰즈 등은 가부장 권 주의와도 같이 경직된

근 성에 질식당할 것 같아 강박 인 근 권 주의에 도 하고

가출하는 청소년이 있어 주체를 부정하고 그 자리에 타자성이 신

들어오는 등의 분열증세를 앓고 있기는 하지만, 사르트르의 무신론

타자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비나스, 그리고 리꾀르를 통해 타자성을

자아 심 인격에서 자기(Self) 심의 인격으로 넘어가는 매개로

삼으면서 인격의 성숙과 사회 성숙 단계를 논할 수 있게 되었다.

Ⅱ. 플라톤, 친부를 살해하다 : 존재와 비존재

1. 플라톤-친부를 살해하다

라톤은 자신의 후기 서인 ‘소피스테스’에서 스스로를 ‘친부살

해범’(patraloias)2)으로 규정한다. 존재론 통에서 라톤의 친부는

르메니데스이다.

르메니데스의 단편 2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자, 이제 내가 말할 터이니, 그 는 이야기를 듣고 명심하라. 탐구의 어떤

길들만이 사유를 해 있는지. 그 하나는 있다(estin)라는, 그리고 있지 않

을 수 없다 라는 길로서 페이토(설득)의 길이며(왜냐하면 진리를 따르기 때문

에), 다른 하나는 있지 않다 라는, 그리고 있지 않을 수밖에 없다 라는 길로

서, 그 길은 배움이 없는 길이라고 나는 그 에게 지 하는 바이다. 왜

냐하면 바로 이 있지 않은 것을 그 는 알게 될(gnoies) 수도 없을 것이고(왜

냐하면 실행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지 할(phrasais) 수도 없을 것이기에.3)

2) 라톤, 김태경 옮김, �소피스테스�, (서울: 한길사), 2008년, 150쪽(241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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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메니데스는 소 ‘사유와 존재의 일치’를 주장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오직 ‘있는 것’에 해서만 사유할 수 있을 뿐이며, ‘없는 것’

은 있지 않기 때문에 사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르메니데스는 ‘있

는 것’과 ‘없는 것’을 존재와 비존재로 확연하게 구분하는 것일 뿐,

그 사이에는 틈이 없다.

“하나는 온 하고 연속 이므로, 틈은 허용되지 않고 그래서 운동

은 인정되지 않는다. 하나만 있다고 하면, A에서 A, 즉 A가 A로 되

기 때문에, 결국 ‘A는 A이다‘라는 동어반복이 된다.”4) “A가 방향을

바꾼 ᗉ가 되려면, 어떤 탓(aitia)이,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게 한 탓

이 행 자인 사람에게 있듯이, 밝 져야 한다. 데모크리투스는 원자

의 본성 그 자체가 운동이고, 원자는 본디 운동한다고 말한다. 이

을 아리스토텔 스는 운동의 최 원인에 한 설명이 없다고 그를

비 했다.”5)

르메니데스가 ‘존재’에 한 충실은 인간의 사유능력에 해 높

이 평가를 한 반면, 감각에 해당되는 상계는 이름 뿐 인 것으로 치

부해 버렸다. 그래서 르메니데스 이후의 철학의 사명은 상을 구

제하는 것이었고, 발 벗고 나선 사람이 데모크리토스와 라톤이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 자체에 운동을 부과시키고 운동할 터로서 빈

공간을 인정함으로써 상을 구제하고, 라톤은 계 개념을 심에

치에 놓는 형태로 이를 구제한다.6)

라톤이 「소피스테스」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 에는 소피스

테스라는 인물을 규정하는 가운데 이미 들어있다.

우리는 참으로 매우 힘든 탐구를 하고 있네, 왜냐하면 사실은 그 지 않지

만 그 게 보이거나 그 게 생각되는 것, 그리고 어떤 것들을 말하지만 진실

3) 김인곤 외 옮김, �소크라테스 이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서울: 아카넷),

275-276쪽.

4) 송 , 「‘소피스테스’의 To m‾e on (Not-being) 논의를 통한 르메니데스의

비 」, (성균 학교 석사논문), 1992년, 10-11쪽 .

5) 같은 논문, 11-12쪽 요약.

6) 같은 논문, 16-17쪽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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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 기독교철학 9호

을 말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은 이 에도 지 도 언제나 어려움(aporia)으

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일세, 거짓말이나 거짓 단이 실제로 있어야(ontos

einai)한다고 말하는 이가 한 어떻게든 이것을 발설할 때 모순에 빠지지 않

기란 테아이테토스,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거든 (소피스테스 236e-237a)

있는 것에 립되는 to m‾e on을 르메니데스는 완 히 없는 것(to

medamos on)으로서만 이해해서 거짓의 가능성을 밝힐 수 없다. 거짓

은 to on을 to m‾e ̅ on으로, to m‾e ̅ on을 to on으로 말하거나 생각할

때 생긴다. 하지만 르메니데스처럼 이 둘의 극단 립만을 마음에

둔다면 거짓은 허용될 수 없다.7) 소피스테스라는 존재는 곧 라톤의

르메니데스에 한 재해석이다. 르메니데스가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 반면, 라톤은 르메니데스의 유언8)을 어기면서

부친살해범이 된다. “ 라톤은 소피스테스에서 르메니데스의 ‘비존

재’를 ‘상이성’ 는 ‘타자성’에로 환원시키는 것을 추구한다.”9) “비존

재는 상이한 것으로서 ‘존재’하며, 이 ‘비존재의 존재’는 ‘존재 자체’에

힘입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비존재가 ‘존재에 여함’으로서만 가능하

다. 비존재는 이 여를 통해서 상이한 것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존재

와 상이한 것으로 비존재는 한 ‘필연 으로 비존재’이다. 라톤은

‘비존재의 존재’와 ‘형상들의 상호결합 계’, 즉 여사상( 는 분여사

상)을 통해서 존재와 비존재의 계를 해명하려고 한다.”10)

라톤은 소피스테스에서 말하는 최상의 형상들이란, 존재, 운동,

정지, 동일성, 타자성(상이성, 비존재) 등 다섯 가지를 말하는데(251d),

이런 것들이 어떻게 서로 결합할 수 있는가를 보여 다. “그것은

어도 모든 것들은 결합하려(symmeignysthai) 한다거나, 는 아무 것

도 결합하려 하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어떤 것은 결합하려 하지만 어

7) 같은 논문, 19쪽.

8) “있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이 결코 입증되지 않도록 하라. 오히려 그 는 탐

구의 이 길로부터 사유를 차단하라”, 의 책 �소크라테스 이 ...�, 279쪽( 르

메니데스 단편 7).

9) 조종화, 「 라톤의 여의 변증법과 헤겔의 모순의 변증법」, �헤겔연구�(한국

헤겔학회), Vol. 24, 2008년, 85쪽 .

10) 같은 논문,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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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 것은 결합하려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세 가지 것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252e) “이처럼 어떤 상들은 서로 섞이되 어떤 것들은

서로 섞이지 않는지를, 어떤 형상은 모든 형상들과 결합하고 어떤

형상은 모든 것들을 통해 분리를 가져오는지를 식별할 아는 학문

이 변증설(변증법)이다.”11)

라톤은 거짓말쟁이며, 사기꾼인 소피스테스를 통해 운동만을 강

조하는 헤라클 이토스와 정지만을 강조하는 르메니데스를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써 2000년간 계속되어 내려온

주체와 타자성에 한 논쟁의 물꼬를 터놓을 수 있게 되었다.

Ⅲ. 근대성과 주체

1. 주체의 개념 : 실체와 주체

‘주체’라는 개념은 시 를 따라 무나도 다양하게 쓰여 왔다. 고

나 세시 시기에만 해도 ‘주체’라는 개념에는 ‘자아’라는 의미가

희박하 으며, 그러한 의미를 갖게 되는 데에는 근 에 와서야 가능

하게 되었다. 주체의 개념은 근 세계 에서 가장 요한 개념으

로서 아리스토텔 스의 존재론 실체의 개념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세에는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 스를 계승하 고, 데카

르트의 ‘코기토’ 명제를 통해 주체라는 개념은 근 철학을 새롭게

시작하는 담론이 되었다12). 세의 형이상학은 에 있는 이데아로부

터 발생하는 라톤의 존재론에 근원을 두고 있어 보편자를 추구하

는 것이기 때문에, 근 를 여는 데카르트는 이를 거부하면서 아래에

서 올라오는 개별자를 추구하는 아리스토텔 스의 존재론에서 주체의

개념을 가져오게 된다.

11) 의 책, �소피스테스�, 46쪽(해제).

12) 김종욱, 「실체의 원리와 코기토 그리고 무아」, �하이데거 연구� 제10집, 2004

년, 205쪽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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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 기독교철학 9호

“실체라는 말은, 아리스토텔 스는 ουσία라고 하 지만, 이것을 라

틴어로 번역하면 substantia로서, substantia라는 말은 “substare”( 에

있다)라는 뜻이며, 그것은 한 수반 변화의 기체로서 변화 에

있는 것(ύποκειμενον)으로 생각되는 개념이다. 이 게 변화 에 있

는 사물의 본질 기체로서 악된 실체개념은 변화가 없는 자,

필연자, 신존재 등에 용되기에 부 합한 이 있다 하여 실체의 본

질 개념을 “substare” 보다는 “subsistere-자립하다”로 사용하여 자

립 인 것이란 내용도 갖게 되었다.”13) “동사 substare( 에 있다)에서

유래한 substantia의 첫 번째 의미는 사물의 변화 에 있는 기체(基

體, substratum), 즉 변화 에서도 변하지 않는 주체라는 뜻이다. 이

것은 다른 것의 술어가 될 수 없는 최후의 주체(ύποκειμενον έʹσΚατ

ον)에 해당된다. … substare( 에 있다)로서의 실체(substantia)란 변화

하지 않는 주체로서, 우연 인 속성들의 에 놓여 있는 개별 인 존

재자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14) 토마스 아퀴나스도 아리스토텔 스

의 실체개념을 이어받아, 「주체」는 「그 에 있는 것」(substratum)에

한 진술이다.15)

substare로서의 실체는 변화 속에서도 지속하는 것으로서, 뒤바 는

규정들의 에 있는 것, 즉 우유의 기체이다. 어떤 주체에 속해 있는

성질들을 보통 속성이라고 하는데, 이 성질들 근본 인 규정은 속

성이 되고, 우연 이고 가변 인 규정은 우유가 된다.16) 세의 스콜

라 철학에서는 실체가 앞선 것(per prius)인데 반해, 속성은 뒤선(per

posterius) 것이라고 간주된다.17) 이처럼 스콜라 철학에서는 이처럼

실체를 직 자연스럽게 악할 수 있는 것으로 주장하지만, 데카르

트는 실체는 직 인식될 수 없고, 그것에 내재된 속성들을 지각함으

로써만 비로소 인식된다고 말한다18).

13) 정의채, �형이상학�, (서울: 성바오로출 사), 1981년, 209, 210쪽.

14) 김종욱, 논문, 209-210쪽.

15) 요하네스 힐쉬베르거, 강성 옮김, �서양 철학사� 상권, ( 구: 이문출 사),

2008년, 625쪽 참조.

16) 논문 「실체의 원리..」 212쪽 참조.

17) 조요한, �아리스토텔 스의 철학�, (서울: 경문사), 1988년, 1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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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99

데카르트는 ‘방법론 회의’를 통하여 이성 주체에 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cogito ergo sum」이라는 명제를 통해서 주체

이성이 최후의 심 자의 치를 확보하게 되고, 신 존재로부터

분여된 존재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라톤 사유에서 벗어나 자아를

최종 인 실체의 자리로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세계에 한 사

유뿐만 아니라 신 존재에 한 사유마 도 사유하는 주체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는 주체의 행 에 의해 새롭게 구성되

어야 하며, 신학도 주체의 사유에 의해 이성 으로 재정립되어야 하

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실체의 개념은 ‘인간인식의 원리들에 하여’

원리 5119)에 의하면, 자립 존재로서의 실체인 신과 신의 도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실체인 피조물로 구분한다. 원리 53에서는,

피조물 정신의 속성은 사유(res cogitans)이며, 물체의 속성은 연장

(res extensa)로 구분하 다.

“존재자 체를 스콜라철학의 방식에 따라 substantia infinita(무한한

실체)와 substantia finita(유한한 실체)로 분류할 수 있다. substantia

infinata는 Deus(신), 즉 summum ens(최고의 존재자), creator(창조자)

이다. substantia finita의 역은 ens creatum(피조물)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res congitans(사유하는 사물)와 res extensae(연장을 갖는 사물)

로 나 고 있다.”20)

2. 근대적 주체

세 신학의 형이상학에서 ‘존재자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요

한 문제 하나 다. 세 신학에서 ‘존재자’의 치는 분명했다.

18) 논문 「실체의 원리..」 213쪽 [재인용: Descartes, Objection and Replies G.R

T Ross 번역, The Philosophical Works of Descart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9), 114쪽].

19) 르네 데카르트, 원석 옮김, �철학의 원리� (서울: 아카넷), 2002년, 43쪽.

20) 마틴 하이데거, 박찬국 옮김, �니체와 니힐리즘� (서울: 철학과 실사), 2000

년,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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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기독교철학 9호

“기독교의 교의는 존재자란 그것이 무엇인지에 한 하나의 인식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의 진리는 어디까지나 구원을 한

진리 다. 개개의 불사의 혼의 구원을 확보하는 것이 요한 것이

다. 모든 지식은 구원의 질서에 계되어 있으며 구원의 확보와 진

에 기여한다. 모든 역사는 창조, 아담과 이 의 타락, 구원, 최후의

심 이라는 구원사가 된다. 이것에 의해서 인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규정하고 하는 유일한 방식이 정해진다.”21)

세시 의 인식은 오직 구원의 확실성에 진리의 기 을 두었다.

그래서 그 시 의 존재자는 구원받아야 가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

런데 근 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존재자에 한 가치 기 이 수정된

다. “형이상학의 주도 인 물음은 이제 더 이상 ‘존재자로서의 존재

자 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아니고 ‘존재자 체의 한 가운데에

서 그리고 존재자 체와의 련 내에서 인간의 의식과 행 를 한

하나의 무조건 이고 부동의 근거가 어떠한 길을 통해 확보될 수 있

는가’라는 것이 된다.”22)

근 주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사유하는 주체」이다. 세계는

사유하는 주체에 마주서 있는 「객체」이다. 사유하는 주체는 객체에

하여 있고, 이 둘 사이에는 확실한 경계가 제된다. “주체로서의

자아가 객체를 표상하는 것을 통하여 비로소 존재자가 근 가능하

게 된다고 생각한다.”23) 세 신학 형이상학에서 존재자를 구원의

상으로 규정되는 것과는 다른 기 을 가지고 있다. 사고하

는 주체에 의해 근될 때 객체로서 표상되어 지는 것이다.

세 구원과 근 구원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이다. 세 구

원은 신에 은총으로 구원받는 존재자 던 것이, 근 는 자력구원의

개념으로서의 존재자로 바 게 되는 것이다. “구원이란 이제 내세에

서의 생의 축복이 아니며, 그 구원에 이르는 길도 자기를 버림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인간이 지닌 독창 능력의 자유로운 자기 개

21) 같은 책, 187쪽.

22) 같은 책, 196쪽.

23) 같은 책,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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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01

속에서만 추구된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인간 자신에 의해 쟁취된

확실성을 정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 화 한 문제로 된다.”24) 이로

써 계시 진리에 의한 神 심 형이상학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

자원을 통해 진리를 확보하려는 새로운 형이상학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을 통한 구원의 확실성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 의한 자

기 확실성이다. 자기 확실성으로서의 앎이란 일종의 ‘자기 스스로 아

는 것’이다. 즉 표상하는 자 자신이 자기와 자기에 의해 표상된 것을

항상 그 자체로 보증해 주는 삶이다.”25)

“데카르트의 ‘구원’은 피안의 원한 지복이 아니며 그것에로 이르

는 길은 탈아가 아니다. 구원에로 이끄는 길은 오직 인간의 모든 창

조 인 능력의 자유로운 자기 개이다.”26) “인간 개개인의 불멸의

혼을 계시를 통해 구원하겠다는 기독교 인 구원의 확실성으로부터의

해방은 본질 으로 인간 자기 자신을 통해서 자신의 규정과 과제를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실성에로의 해방이다.”27)

3. cogito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

에서 보았듯이 세시 에 주체개념을 이야기할 때, 그리스어 ύπ

οκειμενον을 substantia로 번역하 다. 이때 주체는 아리스토텔 스가

말한 ουσία 으며, 그것은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근 로 오면서

주체의 개념은 ύποκειμενον을 형이상학 개념으로 번역을 하면서

subiectum으로 바 게 된다. 이 게 바 는 과정에서 세의 실체

에서도 사유하는 실체만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 주체는 더 이상

계시 신앙에 머무르지 않고, 구원의 신앙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립하여 세계의 다양한 상을 표상(Vorstellung)할 아

는 자로서의 주체라고 하이데거는 해석한다.

주체개념에 한 하이데거의 이러한 차별화는 데카르트의 명제

24) 김종욱, 논문, 「근 주체의 형성과 해체」, 147쪽.

25) 같은 논문, 148쪽.

26) 하이데거, 의 책, 188쪽.

27) 같은 책,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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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 기독교철학 9호

(Cogito ergo sum)를 매우 독특하게 해석해낸 데서 온다. “데카르트

가 cogito, cogitare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을 우리가 명확히 할 경우에

만 우리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cogitare

를 우리는 ‘사유한다’는 말로 번역하며, 그것으로 데카르트가 cogitare

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이 이미 명확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데카르

트는 cogitare를 자신의 앞에 세우는(Vor-sich-stellen) 방식으로 자신에

게로 가져온다(Sich-zu-stellen)는 의미로, 즉 표-상한다(Vor-stellen)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28)

여기서 존재자의 개념은 세시 에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의미

에서 이해할 때,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존재자는 같은 실체의 범주

에 들어와 있으며, 인간 주체는 존재자들에 해서 자신과 다른 차원

에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로서 연결되는 공통된 피조

물의 차원에 있기 때문에, 존재자에 한 경외와 존 과 사랑이 있었

던 것이다. 그것은 존재자에 한 명상은 곧 신에 한 사유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 로 오면서, 유일한 인간 주체가 자아성(Ichheit)

을 가지고 cogitare할 때, 존재자는 주체 앞에서 표상(Vorstellung)되는

객체의 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cogitare는 항상 회의(Be-denken)라는 의미에서의 ‘사유’, 더 나아

가 오직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만을 확실히 확보된 것으로서 그리고

본래 인 의미에서 표상된 것으로 간주하려고 하는 회의라는 의미의

‘사유’이다. cogitare는 dubitare(의심하다)이다. 의심한다는 것은 오히

려 의심할 수 없는 것, 확실한 것 그리고 그것의 확보와 본질 으로

련된 것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회의하는 사유에서 애 부터

그리고 항상 배려되고 있는 것은 표상(Vorstellung)된 것이 계산하는

처리의 범 내에 그때그때마다 확보되어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

는 어떤 것을 표상한다’는 것은 동시에 ‘나’, 즉 표상하는 자를 (내

앞에서, 즉 나를 내 앞으로 세우면서) 표상한다.”29)

“ego cogito, 즉 ‘나는 표-상한다’는 것이 고립된 자아 안에서 일

28) 하이데거, 의 책, 213쪽에서 요약.

29) 같은 책, 215-216쪽 요약.

Page 13: 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03

어나는 하나의 개별 인 과정으로서가 아니고, 그 ‘나’는 표-상작용

자체가 본질 으로 귀환하는, 그리고 이러한 귀환을 통해 그 자신으

로서 존재하게 되는, 자기로서 이해되기 때문에 cogito sum은 어느

경우에도 본질 으로 그것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표-상작용 자체

안에서 확보되는 표-상하는 자의 존재는 표-상된 것의 존재에

한 척도이다. 이에 필연 으로 확보되고 자신을 확립하는 표-상되어

있음이라는 의미의 존재라는 이러한 척도에 따라 모든 존재자가 필

연 으로 측정된다.”30)

4. 근대적 의미의 「사유와 존재」

“‘주체’란 이름과 개념은 이제 이러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면서

인간을 표 하는 명사가 되고 인간의 본질을 표 하는 단어가 된다.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자는 이러한 주

체에 한 객체가 된다는 것이다.”31)

고 와 세 시 에 통용되었던 여러 실체들 에서 오로지 사유

하는 실체만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subiectum으로서의

인간주체는 진리와 존재에 해 근원이 되고, 존재자에 한 척도를

부여할 수 있게 되며, 존재자 체의 심이 된다는 의미에서 근

형이상학 개념을 지닌 subiectum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고 의 형이상학이 르메니데스의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에서 사유를 객 화시킴으로써 사유를 객 존재에 동화시킴으로써

둘의 동일성을 설명하려고 했다면, 데카르트의 사유를 주 화시킴으

로써 존재를 념이나 표상의 역에 가두게 됨으로써 사유에 한

고 이해에 해 마침표를 게 된다.32) “데카르트는 사유와 존재

가 근원 으로 일치하는 장소를 하늘 이데아의 세계로부터 나의

마음으로 옮겨 놓는다.”33)

30) 같은 책, 228쪽.

31) 같은 책, 255쪽.

32) 김상 , �자기의식과 존재사유�, (서울: 한길사), 1998년, 218-219쪽 참조.

33) 같은 책, 119쪽.

Page 14: 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104 ║ 기독교철학 9호

“‘나’는, 데카르트에 따르면, 결코 존재의 보편 지평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역시 하나의 실체 혹은 하나의 존재자 혹은 하나의 사

물(res)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유가 ‘나’에게 귀속되는 배

타 속성인 한에서, 그것 역시 존재의 보편 지 를 상실한다.”34)

라톤의 사유 속에는 이데아계를 제로 하 기 때문에 존재의 보

편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면, 데카르트는 사유작용을 나 개인의 사유

에 국한시킴으로써 더 이상 존재의 보편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되고,

하나의 표상작용에 국한하게 되는 것이다. 표상작용이라는 것은 사물

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보는 것이지 그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 존재는 사유 밖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존재는 이제 사유에 해 립 인 사물로서 경험된다. 그것은 생각

편에 그 자체로서 존립하는 사물(res)이 되어 버린 것이다.”35)

김상 은 칸트야 말로 존재의 보편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한 철학자

음을 강조한다. 즉 칸트는 데카르트 사유를 배척하지 않으면서 고

의 존재론을 끌어안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의 서 「순수이성비 」은

곧 이 두 가지 통을 통합하려고 하는 시도의 결과물이었다. 그 결과

존재는 단 으로 「나의 마음」의 일이며, 존재에 한 물음은 곧 나에

한 물음이 되는 것이다.36) “존재의 진리를 나 속에서 찾는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을 그것의 자기정립 활동성 속에서 악함을 뜻한다.(...)

자기를 주체성 속에서 정립하고 하나의 존재자로서 실 하는 살아있는

활동 그 자체로서 존재를 이해하고 악하는 것을 뜻한다.”37)

칸트에게 있어서 객체는 「직 의 다양」으로서 3인칭인 ‘그것’으로

의식되고 규정된다.38) ‘나’와 ‘그것’은 그 자체로서 주체와 객체로 고

정되어 결코 자기와 타자를 교환할 수 없다.39)

34) 같은 책, 122쪽.

35) 같은 책, 123쪽.

36) 같은 책, 126쪽.

37) 같은 책, 141쪽.

38) 같은 책, 354쪽.

39) 같은 책, 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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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05

5. 주체의 횡포

인간이 계시 진리에서 해방되면서, 더 이상 신에게 의존할 필요

성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의 내재 자원에 의존하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내재 자원을 창조 으로 활용하기 해 외부 세계

로 투사하여 개발하고 인간에게 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통제가능

한 세계로 만들어가게 된다. “인간은 그가 자신에게로 후퇴하고 세계

에 해서 벽을 쌓는 것에 의해서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발견, 세계의 정복, 세계의 탐구, 세계의 통치, 세계의 지배가 갈수록

더 순수하고 무조건 으로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에 의해서 주

체가 된다.”40)

이것은 데카르트의 cogito로써 근 주체가 시작되면서, 사유하는

주체 외에는 표상하는 객체로서 상호 립해 있게 되면서 구조화되

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본질 으로 subjectum이고 존재자성은 표

-상되어 있음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되었고, 진리는 확실성이 되었

기 때문에 인간은 여기서 본질 으로 존재자로서의 존재자 체를

장한다.”41) 이로써 자연은 더 이상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숨쉬는

경외의 상이 아니며, 더 이상 생명의 모태로서의 존재자가 될 수

없는 것이며, 자연은 이제 최종 심 인 「사유하는 주체」 앞에서 주

체의 처분만 기다리는 객체가 된 것이다.

“그때그때마다 자각 으로 정립된 지침들은 따라서 많은 형태와

장에 있어서 나타난다. 인간이성과 그것의 법칙(계몽주의) 는 그

러한 이성에 의해서 설계되고 질서 지어진 실과 사실(실증주의)이

지침이 될 수 있으며, 그의 모든 고양들에 있어서 조화롭게 결합되고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각인된 인류(고 주의의 인간성)가 지침이 될

수 있다.”42)

특히 계몽주의는 철학 사조로서만 작동한 이즘이 아니었다. 남아

40) 하이데거, 의 책, 237쪽.

41) 같은 책, 237쪽.

42) 같은 책,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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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 기독교철학 9호

리카의 탁월한 선교학자 데이비드 J. 보쉬가 강조하는 선교학과

련하여 계몽주의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거론하는데, 정리하자면 다음

의 세 가지로 특징으로 분류할 수 있다.43)

첫째, 계몽주의는 주체-객체 구조와 함께 기능했다. 이것은 계몽

주의가 인간을 환경에서 분리시켜, 인간이 과학 인 객 성의 치에

서 동물과 물계를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했다. res cogitans

는 res extensa를 연구의 상으로 보았다. 사람도 더 이상 체 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고 다양한 에서 연구되었다. 사고하는 존재로

서(철학), 사회학 인 존재로서(사회학), 종교 인 존재로서(종교학),

육체 인 존재로서(생물학, 생리학, 해부학과 유 과학) 등등.

둘째, 과학에서의 목 의 제거와 실재 이해의 단서로서의 직 인

인과율의 도입, 고 헬라와 세의 과학 인 반성은 활성화된 인과

율을 믿었으며, 목 을 물리학의 설명의 범주로 여겼다. 목 론은 고

인들에게는 필수 이었지만, 그러나 17세기부터 과학은 비목 론

이 되었다. 과학은 기계 인 인과율의 가정 에 근거하며, 원인은

결과를 결정한다. 인간의 지성은 모든 결과를 미리 계획하는 통제자

와 창시자가 되고, 모든 과정은 충분하게 악되고 통제될 수 있다.

임신, 출생, 질병과 죽음은 신비성을 상실했다.

셋째, 진보의 개념이다. 서양 국가들이 온 땅을 횡단하고 제3세계의

나라를 식민지화하는 ‘개발계획’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계획들의 목

표는 주로 물질 인 향유, 소비증 와 경제 인 발 의 범주로 표 되

는 서양의 기술 인 발달 모델이었다. 서양 국가들이 부(富)를 소외된

자들에게 확 하고 나 고자 하는 것은 허구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상은 보쉬가 계몽주의의 특징으로 거론하 지만, 계몽주의가 근

성의 결과물이고 보면, 이러한 특징들은 「사유하는 주체」가 자기

밖의 것을 객체로 간주할 때 제반 분야에 미친 향력에 한 서술

43) 데이비드 J, 보쉬, 김병길ㆍ장훈태 공역, �변화하고 있는 선교�, (서울: 기독교

문서선교회), 2000년, 408-412쪽 압축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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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07

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객체에 하여 자행하는 횡포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유하는 주체」와 객체와의 계는 서양 국가와 제3의

국가와의 계로 유비 계를 가지고 있다. 「사유하는 주체」의 가

치 단에 의해 자연이 개발될 때, 그 자연은 혜택을 받는 것이고 가

장 큰 가치를 얻게 된다는 주체 일방 인 사유의 틀이 국가들과의

계 속에서도 그 로 용되었던 것이다. 서양 국가들은 「사유하는

주체」가 되고, 미개발 상태에 있는 국가들을 객체화 시킨 후, 마치

제3세계는 서구 시각에 의해 계몽되어야 마땅하며, 주체우 의 가

치 단을 함으로써, 세계를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나 는 근 성 특유

의 이분법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분법의 결과

는 양자 계 속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갈등 계로 치닫게 되며, 주체

는 우월하기 때문에 열등한 상을 교화시켜야 하는 것이 보편 인

진리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 말로 존재의 동일성의

을 고수하여 직 의 다양을 차이로 인정하지 않고, 동일성의 테

두리 안으로 흡수 내지는 융합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는 집단의 온

갖 탐욕과 욕망과 불의함과 무자비함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 「

사유하는 주체」의 시각은 고정되어 있어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

양성과 변화와 차이들을 획일화시키는 우를 범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함으로써 미개한 조선이 스스로 할

수 없는 문명개화를 일본에 의해 가능하게 된 것을 자랑하게 되는데,

마치 고양이가 먹이감인 쥐를 배려해주는 듯한 이러한 일본의

은 바로 근 주체의 에서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환상에 젖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6. 근대적 주체의 이중성 : sub-jectum

“주체란 subiectum인데, 그 의미는 ‘무엇의 에 깔려 있다’ ‘떠받

치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사유하는 주체」란, 주체 주변의 객체

는 상들에게 근거가 되어주는 것과 주체는 상을 장악하고 지

배하고 이용할 때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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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 기독교철학 9호

그리하여 주체개념은 여러 분야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는데, 과학, 기

술, 술, 문화, 종교 등의 제반 역에 인간 주체가 근거가 되어주

고, 인간 주체의 자기표 범 의 확 로 말미암아 실지배가 가능

해지게 된 것이다.”44)

‘subjectum’라는 단어가 근 의 부를 보여주는 부분으로서의 개

념을 담고 있다. 이정우에 의하면45), ‘sub-jectum’(subject)에는 이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즉 ‘아래로 던져진 것’이면서 동시에

‘주체’라는 뜻인데, 이것을 이 정우는 ‘역동화된 뫼비우스 이율배반

의 구조의 형성’이라고 보며, 인간 세상에는 이런 이 체들의 드라마

(사건, 상황)들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잠깐 언 했지만, “subjectum은 아리스토텔 스철학의 ύποκ

ειμενον(휘포 이메논)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념이다. 아리스토텔

스 이후부터 이 말은 논리 인 의미와 존재론 의미를 동시에 가지

고 있었다. 논리학에서 subjectum은 술어를 통해 무엇이라고 진술되

는 문법 주어의 의미를 갖는다. 술어에 의해 서술되고 규정되는 것

은 술어 규정에 종속되기 때문에 subjectum은 ‘종속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46)

이와 같이 근 의 주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요한 특징 하나

가 이 성, 는 이원론이다. 사유하고 연장이 없는 실체로서 사유,

연장이 있으나 사유가 없는 실체로서 물질로 나 며, 자아의 개념도

정신 자아와 신체 자아로 이분화 된다. 한 사유주체는 모든

단의 최종 심 이 되어 세계와 이분화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이분화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양면 이고 이율배반 구조를 형성

하게 되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은 직선으로 된 띠를 한번 꼬아서 양끝을 연

결하게 되면, 어느 쪽이 안이고 어느 쪽이 밖인지 알 수 없게 되고,

한 바퀴를 돌면 반 의 치에 오게 되고, 다시 한바퀴를 돌게 되면

44) 강 안, �강교수의 철학 이야기�, (서울: IVP), 2003년, 49쪽에서 참조.

45) 이정우, �주체란 무엇인가�, (서울: 그린비), 2009년, 77쪽 참조.

46) 강 안, �타인의 얼굴�,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5년,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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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09

제자리에 오게 되는 것이다. sub-jectum이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로 도 겉으로는 주체(subject)이지만, 속으로는 신하(subject)

이다. sub-jectum 안에는 주인과 노 . 주체와 객체, 지배자와 피지배

자,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등의 사회 내용이 립항들의 모양

으로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립항이 이데올로기화 될 때

동 의 양면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뫼비우스의 띠의 구별할

수 없는 안과 밖을 구별해냄으로써 지배와 피지배의 구속 권력구

조를 형성하는 것이 근 성의 특징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주체의 나

르시시즘의 문제로 귀결된다. 주체는 개 지배의 자리, 권력의 자리

에 오른 자들인데 오늘날에도 그들의 나르시시즘으로 말미암아 개발

논리로 주도권을 행사하게 됨으로써 객체에 한 억압 인 지배를

강화하게 됨으로써 격한 산업화를 불러 오지만, 결과 으로는 뫼비

우스의 띠의 원리에 의해 그러한 나르시시즘 인 억압 지배구조로

인해 주체 자신을 태롭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근 는 갈수록 리얼리즘과 실증주의를 숭상하면서, 사회 이데올

로기를 만들어내고 빈부의 격차와 계 간극을 벌어지게 만든다.

리얼리즘이란, 실을 보이는 그 로 보자는 것인데, 근 성은 이러

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에 보이기만 하는 것으로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구체 인 형태를 만들어내고, 분류하고 종합하는 형태로 개

입을 함으로써 에 보이는 것의 효율성을 높이는 형태로 변형을 가

하게 된다. 그래서 근 성은 해체와 통합을 그 과제로 한다. 그 결과

로 사회가 효율 으로 질서를 찾아가고 정비되어가고 있지만, 그러한

동일성에 합류하지 못하는 다양한 차이들, 특히 열등하고 소외된 차

이들은 사회의 몸체에서 배제되는 비극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

한 근 성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지배계층의 개발논리로 해체ㆍ

통합하여 가고 있고 있지만 그것은 반드시 부메랑효과로서 언젠가는

반격을 당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것은 1960년 부터 두되기 시

작한 개발논리는 아직도 간척사업, 4 강 개발, 신도시 개발, 세종시

문제 등이 정당성을 확보해 가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근 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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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 기독교철학 9호

Ⅳ. 근대성의 극복 : 타자성의 수용

1. 헤겔에게서 시작된 타자성 개념 :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뫼비우스의 띠가 주는 의미는 ‘안과 밖’이 ‘하나’라는 것이다. 그것

을 근 사고에 입하게 되면, ‘주체와 객체’는 ‘하나’라는 것이다.

근 사고 안에 이미 이러한 이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으나, 주

체의 나르시시즘으로 인해 자신의 이면을 보지 못했다.

“주체는 ‘술어 주체’이다. 즉 주어로서의 주체로서, 자신에게 붙

은 술어들을 통해서 성립하는 주체이다(‘철수는 머리가 검다.’ ‘나타

샤는 키가 180cm이다.’ 등). 서술되는 주체는 이런 술어들/규정성들을

통해서 타자들에게 드러나지만, 다시 타자들의 인식을 내면화함으로

써 스스로를 인식하게 된다.”47) “스스로를 의식하는 개체 즉 주체는

자기와 타자를 가름으로써 주체가 된다. 일 이 헤겔이 심오하게 분

석해 주었듯이, 타자성 없이는 주체성도 없다. 나를 나 ‘이다’라고

정하는 것은 반드시 내가 아닌 타자를 내가 ‘아닌’ 존재로서 나로부

터 구분해야만 가능하다.”48)

칸트에게도 타자의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상 에 의하면 칸트

에게서 타자의 개념을 나를 제약하는 자이며, 그것은 한 사물 자체인

것이다49).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주체」를 세계와 분리시켜 내기는 하

지만, 자기 밖의 타자 세계는 내 안에서 정립이 잘 되어 있는 세계가

아니었고, 오히려 “데카르트는 세계에 한 나의 생각의 진리성을 하나

님에 한 종교 신앙을 통해 근거 짓는다.”50) 그러나 칸트는 “객 이

란 것은 주어진 직 의 다양이 결합되어 개념화 한 것을 의미한다. 그

런데 표상들의 모든 결합은 표상들의 종합에 있어서의 「의식의 통일」

을 요구한다.”51) 외부 세계가 주어져 있지만 개념들의 활동으로 인해

47) 이정우, 의 책, 16-17쪽 요약.

48) 같은 책, 18쪽.

49) 김상 , 의 책, 134쪽 참조.

50) 같은 책, 219쪽.

51) I. 칸트, 최재희 역, �순수이성비 �, (서울: 박 사), 2005년, 147쪽(B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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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11

직 의 다양들이 표상의 형태로 종합될 때 객 이 되고, 상이 되는

것이다. 칸트는 ‘나’와 직 의 다양으로 이루어진 ‘타자’로 구성되어 있

는 것인데, 이 둘은 다만 「표상」으로서만 연결될 수 있는 계이기 때

문에, 부버나 가다머가 제시하는 「나와 thou」의 계와 같은 인격 인

계가 되지는 못하고, 「나와 그것」의 계에 불과하게 된다.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주체」로서 다른 실체들로부터 독립한 개별

주체가 어떻게 보편 인 진리를 확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최 의

문제, 즉 르메니데스의 「사유」와 「존재」의 일치를 어떻게 보장하느

냐 하는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일치를 밝 내어야만 진리의

객 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요한 문제가 된다. 데카르트는 문제만

제기해 놓고 종교 신앙으로 빠져나감으로써 직면하기를 거부했고,

칸트는 데카르트의 과제를 수행하 지만 객 세계를 사물로써 한정

함으로써 표상하는 인식에 그쳐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헤겔

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해 동원한 방법이 바로 「변증법」이었다.

「정신 상학」에 의하면, 헤겔의 이성은 칸트의 선험 이성과 같은

것이 아니라, 감각과 지각, 오성의 변증법 활동의 과정을 통해 발

달하면서 이성을 향하는 가운데 발생하게 되는 이성이다. 이성의

상 역시 자기와 같은 이성을 가진 타자이다. “타자의식과의 면은

변증법 이성으로 하여 타자와의 형식 통일성의 기능이 있지만,

내용의 차이로 인한 립을 확인시킴으로써 자기 안에 내재한 부정

의 힘을 자극한다. 변증법 이성은 변증법 으로 자기를 실 하기

해서 거쳐야만 하는 실재의 세계와 타인이 수많은 차이들을 보유

한 존재들로서 자신과 립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실성을 획득

할 수 있는 것이다. 타자는 자기 동일 진리로서의 자기의식의 입장

에서 볼 때 자기와 립하는 차이로서 존재한다. 그런 상태에서 타자

와 계하는 자기의식은 타자에 속한 차이들을 자기 동일 인 것으

로 만듦으로써 자기와 타자의 동일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자기의식과

타자의 자기의식에 의해 자기의식과의 통일성을 확인받지 않으면 공

허한 운동일 뿐이다.”52)

「정신 상학」에 나타나는 ‘지배와 속의 변증법’에서 「주인과 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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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 기독교철학 9호

의 인정투쟁은, “한쪽이 독자성을 본질로 하는 자립 인 의식이고, 다른

한쪽은 생명, 즉 타자에 한 존재를 본질로 하는 비자립 인 의식이다.

여기서 자가 ‘주인’(der Herr)이고, 후자가 ‘노 ’(der Knecht)이다.”53)

헤겔이 다루는 인정투쟁의 부분에서, 주인은 노 를 매개로 하여 사물

과 계한다. 노 는 사물을 폐기할 수 없고 가공하지만, 주인은 사물

을 마음껏 향유한다. 주인의 의식에서 욕망에 해당되는 것이 노 의 의

식에서는 노동이 되는 셈이다. 노동하는 의식은 사물의 자립성을 곧 자

기 자신의 자립성으로 직 하기에 이른다. 노 는 주인에게 사하는

의식으로 반성 인 자기 복귀를 이루는데, 그것은 주인에 한 공포와

함께 사물의 형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자신의 상(주인)을 압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정투쟁의 결과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의 입장이 뒤바 게 된

다는 것이다. 주인은 사물을 가공하거나 통제해 본 이 없기 때문에

세계에 해 자기 소외가 일어나지만, 노 는 사물을 가공하고 주인

에게 공포를 가지고 사하 기 때문에 세계뿐만 아니라 주인을 극

복하게 된다. 주인은 사물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하 기 때문에 사물

을 다룰 아는 노 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는

의존 상태가 되어 버림으로써 뫼비우스 역 이 일어나는 것이다.

칸트가 발견한 근 는 타자를 객체화시켜 버리는 것이었다면, 헤겔

이 발견한 근 는 타자의 인격 인 면을 수용하게 되는 면에서는 진

일보하 지만, 변증법 부정을 거치는 동안 타자를 자기 동

일성에로 타자를 무화시켜 버리는 것을 보면, 헤겔 역시 주체의 완고

함이라는 근 의 맥을 이어가면서 근 의 비극 상황의 문을 열어

주고 있는 셈이다.

52) 김성균, 「헤겔의 변증법 이성과 인정투쟁 이론에 한 비 고찰」, (숭실

석사논문), 1998년, 19-20쪽 요약.

53) G.W.F. 헤겔, 임석진 옮김, �정신 상학 1�, (서울: 한길사), 2008년,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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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13

2. 사르트르의 타자성 개념 : 즉자존재-대자존재-대타존재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통하는 가장 요한 개념 가운데 하

나는 ‘우연성(contingence)’일 것이다.”54) 이것은 그의 유명한 명제 「실

존은 본질에 선행 한다」와 직 인 련이 있다. 모두 사르트르의

무신론 사고와 련되는데, “이 우연성이라는 개념과 사르트르의

무신론은 표리 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55)

사르트르의 주체개념 속에는 칸트와 같은 ‘선험 자아’와 같은 것

은 완 히 부정된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어떠한 필연성도 필요하지

않은, 우연하게 존재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존재는 창조자나 설계자

에 발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목 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아래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존재는 즉자존재, 자존재 그

리고 타존재로 구성된다.

즉자존재란,

존재는 있다. 존재는 그 자체로[즉자로] 있다. 존재는 그것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존재 상에 한 잠정 검토에 의해서 상의 존재로 귀착될 수 있

는 세 가지 특징이다.56)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즉자존재란 인간의 의식과 무 하게 존재하는

사물과도 같은 것이다. “ 요한 것은 사르트르에게 의식은 존재가 아

니라는 이다. 사물존재와는 달리 의식은 그 자체로는 독립 인 존재

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은 무(無)라고 할 수 있다. 그 다고

해서 의식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의식은 내부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이다.”57) 즉 의식이라는 것은 외부에 있는 무엇

인가를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후설의 의식의 「지향

성 개념」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54) 변 배, �존재와 무�, (서울: 살림), 2007년, 116쪽.

55) 같은 책, 118쪽.

56) 사르트르, 정소성 옮김, �존재와 무� (서울: 동서문화사), 2009년, 42쪽.

57) 변 배, 의 책,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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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 기독교철학 9호

의식이 무엇인가‘에 한’ 의식이다. 그것은 월이 의식의 구성 구조라

고 하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은 그 자체가 아닌 존재의 ‘도움을 받

아’ 발생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우리는 존재론 증명이라고 부른다.58)

의식이 무언가를 지향함으로써 더 이상 ‘즉자존재’가 아니라, ‘ 자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존재로서 외부의 무언가를 지향함

으로써 외부의 것으로 자신을 내면화시킬 수 있는 것인데, 자존재

가 그 상태에 머물러 안주하게 될 때, 즉자존재가 되는 것이며 이것

이 ‘無’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자존재는 즉자존재 상태에 머무르

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즉자존재의 상태를 끊임없이 무화시킴으로

써 세계는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식은 자신을 월하면서 자기 외부에 있는 사물존재에 해 정

립 태도를 취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 해서도 비정립 태도를

취한다.”59) 이처럼 자존재는 외부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

을 향하는 존재이다. 자존재는 재 상태에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

이 재상태를 무화시키면서 외부에 있는 상을 지향하는 일을 반복

한다. 이것은 에서 언 한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주체」로서 연약한

개별 주체가 어떻게 보편 인 진리를 확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

문에 해서 헤겔이 변증법 반복을 통해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면,

사르트르는 끊임없는 무화작용으로써 취약한 주체로 하여 보편성을

찾아가는 답으로서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죽음’을 ‘자기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완

히 박탈된 상태로 규정한다. 이것은 즉자존재의 상태이기도 하다.

‘ 재 아니 있는 것으로 있는 존재’와 동시에 ‘ 재 있는 것이 아닌

존재’로 규정되는 자존재는 ‘가능성’이며 나아가서는 그 자체로 ‘자

유’이다.”60)

사르트르는 모든 형이상학 결정론을 거부하고, 인간이 우연 인

존재로서 실존한다는 것은 곧 선택과 책임 앞에 서면서 자신의 존재

58) 사르트르, 의 책, 34쪽.

59) 변 배, 의 책, 152쪽.

60) 같은 책, 160쪽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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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15

의 미래 가능성을 자유로써 끊임없이 열어가면서 자신의 본질을

형성해 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신으로부터 아

무런 본질을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그러니까 실존을

통해 자신에게 결여된 본질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생각이다.”61) 무신론 인 그의 발상은 인간이란 기본 으로 미래를

향한 존재론 인 불안을 감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해 인들이 선택하는

것은, 즉자화된 가치들62), 즉 돈, 명 , 권력 등이다.

사르트르의 타자의 개념은 그의 서 「존재와 무」 에서 제3부에

나오는 「 타존재」에서 큰 비 으로 다룬다.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

에서 다루고 있는 타자의 문제는 후일 여러 철학자들, 를 들어 라깡

이나 비나스 등에게 커다란 향을 끼치게 된다.”63) 사르트르는 타

자에 한 이해를 시선과 연결시키기 해 수치심을 제시한다. 수치심

은 ‘타자 앞에서의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무슨

짓을 해도 수치심이라는 것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수치심은 자신의

행동이 타자에게 보여 졌을 때 결정되는 감정이다. “ 가 구를 바라

보든 간에 바라보여지는 존재는 바라보는 존재의 입장에서 볼 때 사물

존재와 같이 즉자화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즉자화된 모습에 해 바

라보여지는 자는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64)

사르트르는 타자와의 구체 인 계들을 두 가지의 태도로서 구별

한다. 타자에 한 첫 번째 태도로 ‘사랑’, ‘마조히즘’, ‘언어’를 제시

한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은 타인을 그 자신의 사실성에 감염시

키는 일이며, 복종하고 자기를 구속하는 하나의 자유[타자의 자유]의

조건으로서 끊임없이 우리를 재창조하도록 타인을 강제하려고 하는

일이다.”65) 그래서 사르트르에게 ‘사랑’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헤겔

61) 같은 책, 169쪽.

62) 같은 책, 176쪽.

63) 같은 책, 179쪽.

64) 같은 책, 189쪽.

65) 사르트르, 의 책, 6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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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 기독교철학 9호

의 주인과 노 와의 계와는 달리, 사랑하는 사람은 상 방이 자유

의 상태에 있기를 원하지만 상 방의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사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정한 계는 실패하고야 마는 것이다.66) 오직

언어만이 가능한데, 언어는 거리를 둔 행동이며(사르트르, 같은 책

621쪽), 방이 서로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나 주체의 자유를 포기

하고 자발 으로 상 방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 ‘마조히즘’이기 때

문에 이 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타인에 한 첫 번째 태도의 좌 로 인해 두 번째 태

도를 취할 기회를 상정하지만, 이 두 번째 태도는 ‘무 심’, ‘욕망’,

‘증오’, ‘사디즘’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상을 즉자화시키는 태

도에 불과하므로 어느 것도 성공할 수 없다.

즉자존재를 자존재로써 극복하고, 자존재의 문제를 타존재로

써 극복해야 할 것이지만, 사르트르의 타존재의 두 가지 태도는 실

패하고 만다. 그럼으로써 사르트르는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사르트르는 사랑마 도 타자가 스스로 자유롭고 월 인 주체를 가

지지 못한 채 주체에 환원되지 못하는 것을 실패로 규정함으로써 동

일성 철학의 선상에 있게 되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한계는 그의 무신론 사상에 기인한다. 인간이 실존이

본질에 선행함으로써, 인간의 기본 인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 최 의

무화작용이며,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의 행 로써 상황을 선택하는 실

존의 상태를 인간 존재의 출발 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기본

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과 욕망과 이기심과 본성뿐만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목 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에 ‘인성의 깊이(depth)’에 해서는 외면하고 끊임없는

무화작용을 통하여 ‘인성의 높이(height)’만 쌓아올리는 헤겔의

정신의 그림과 유사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사르트르에게 사랑의 계가 실패로 끝나는 것은 그 계의 표상에

만 이 멈춰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66) 같은 책, 6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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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17

고 하는 스스로 세운 제로 인해, 사랑의 계의 본질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표상의 에 이 멈출 수밖에 없다. 남녀가 사랑을

나 는 육체 계는 상호 성욕을 채우는데 목 이 있는 것이 아니

라, 서로가 깊은 계를 욕망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젖을 먹

는 아기와 어머니와의 계에서도 그런 본질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

기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자 함은 표상 으로는 배고픔을 채우기 해

서이지만, 본질 으로는 어머니와 계를 욕망하는 것이다. 만일 아기

가 유아기에 충분한 젖을 먹지 못하게 될 때, 어머니가 젖을 주지 않

았다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기

억이 무의식 속에 남는다. 그리하여 그 아이는 일생동안 계에 한

욕망이 구보다 더 갈 해 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르

트르의 사랑에 한 사례에 한 분석은 계라는 인간 내면 본질이

빠져 있다. 사람은 사랑을 나 고자 함은 육체 인 쾌락에 최종 인

목 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계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그의 무신론 한계는 계속 인 무화작용에서도 볼 수 있다. 오늘

날의 세상은 사르트르가 살던 시 와 다른 이 있다면 바로 세상이

빠르게 변화되어가는 속도의 측면일 것이다.오늘날과 같이 사회의 변

화 속도가 빠를 경우, 그 속도만큼 자존재의 무화작용이 계속된다

면, 그것은 하나의 정신 분열과 불안을 가져올 수도 있다. 성취

주의 결과를 낳게 되어 결국 다시 근 성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의 사상 구조 속에는 깊이의 계가 없고, 높

이의 성과만을 올리고자 함이다. 기 를 다지기 한 토 없이 건물

을 쌓아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3. 레비나스의 타자성 개념 : ‘존재론’에서 ‘윤리학’으로

비나스는 서양철학사에서 일 되게 지켜 온 일원론 통의 폭

력성을 경고하면서, “일원론 사유 통은 헤겔의 변증법 념철학

이나 하이데거의 동일성의 철학의 정 에 이른다. 헤겔에게서 보편화

와 객 화의 작용으로 개되는 정신은 개인의 의지 측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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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 기독교철학 9호

익명 인 변증법 총체화 과정으로 화시킨다. 그러나 윤리 자아

의 단독성과 고유성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개인성에 근거한 ‘의지

의 진실’이다. 변증법 념론은 필연 으로 개체의 고유성과 단독

성을 말살하면서 윤리학의 부재상태를 래한다.”67)

“ 비나스는 존재론 세계구성에 앞서 다른 존재와의 계가 선행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재론은 윤리학의 근본문제를 존재론 문제

로 다루지만, 윤리학은 존재과정에 한 문제가 아니라 존재보다 더 선

한 것에 한 것을 문제 삼는다”68) “ 비나스는 자아와 타자의 월

계야말로 윤리 계이자 형이상학 계로 본다. 타자를 자기 안

으로 통합시키지 않고 타인의 존재, 타자성과 만나려는 사람은 존재론

을 월해 갈 수 밖에 없다. 나의 자아 밖에서 다름을 드러내는

타자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타자로 향한 운동, 타자에로 향함, 월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는 존재론과 인식론의 역을 벗어난다.”69)

비나스의 윤리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요한 것은 고통의 의미

이다. 고통은 주체성의 핵심이며, 그 주체는 타인을 해 고통을 받

을 수 있고, 고통을 통해 타인을 향해 열려있다. 타인의 고통에 해

서 주체가 함께 고통 받을 수 있는 공감능력이 비나스의 윤리학의

핵심인 것이다.70) 비나스의 고통의 의미는 그가 살았던 시 상

황이 신정론71)의 종말을 가져 온데서 더욱 심각한 물음을 제기한다.

67) 김연숙, � 비나스 타자윤리학�, (고양: 인간사랑), 2001년, 97쪽.

68) 같은 책, 59쪽 요약.

69) 같은 책, 60쪽 요약.

70) 강 안, �타인의 얼굴�,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6년, 211쪽 참조.

71) “신정론” 한국 리태니커 온라인 <http://premium. britannica.co.kr/bol/topic.asp?

article_id=b13s3000a>

[2010, 1.15자 기사] 본 사 에서 악의 문제(신정론)을 세 가지 명제를 심으

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① 신은 능하다 ② 신은 으로 선하다 ③ 악

은 존재한다는 3가지 명제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만일 악이 존재한다면,

신은 악을 없애기를 바라지만 없앨 수 없거나(그 다면 신의 능이 부정됨),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나 없애려 하지 않는다(그 다면 신의 선함이 부정됨.)

( 략) 17세기의 독일의 철학자 라이 니츠는 신은 논리 으로 가능한 것에 제

한받기 때문에 악의 존재는 ‘최선의 가능한 세계’에 필연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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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19

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는 근 인 객체도 아니고, 주체로 환원할

수 있는 객체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타자는 수용 불가능한 고통 받

는 자에 한 주체의 책임과 윤리가 련된다. “가진 것이 없는 자,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 는 이방인, 요컨 고통 받는 사람의

호소에 응답한다는 것은 그를 해 책임을 진다는 것, 그의 짐을

신 들어 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비나스는 순수한 의미에서 ‘윤

리 ’인 것으로 이해한다. 윤리 인 것, 는 윤리 이 된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과 고난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다.”72)

“타인의 수용, 타인의 짐을 신 짊어짐이 주체성의 핵심이라고

비나스는 생각한다. 수 툼sub-jectum, 즉 주체는 타인의 고통과 잘

못을 짊어짐으로써 이 세계를 아래에서 떠받치고 지탱한다. 다시 말

해 존재의 고통과 잔인성을 신 속죄하고 짊어지는 존재가 곧 ‘주

체’라는 것이다.”73) 그래서 비나스에 있어 수 툼sub-jectum이라

는 ‘뫼비우스의 띠’는 더 이상 립항으로서의 양면성이 아니라, 타

인의 고통을 책임지는 주체로 변환됨으로써, 근 주체의 나르시시

즘에서 벗어나 성숙한 주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비나스는 얼굴로 나타나는 타인에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

면서 다음과 같이 언 한다.

타자 존재의 외재성은 항으로 표명되어진다. 그것은 에

의해서 나의 힘에 항한다. 얼굴의 은 단순히 감성 이고 지성 인 빛

안에서의 형상의 환 이 아니다. 그것의 로고스는 ‘살인하지 말라’이다.74)

여호수아서 9장을 보면, 기 온 거민들과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온

다. 기 온 거민의 속임수가 탄로가 난다. 이 장면을 비나스의 윤

리학으로 해석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나안의 여섯 부족에

해서 훼렘 쟁(멸 쟁)을 명하셨는데, 그들이 거짓으로 멀리서 온

72) 강 안, 의 책, 225쪽 .

73) 같은 책, 228쪽.

74) 김연숙, 의 책, 121쪽(재인용: Emmanual Levinas, “Philosophy and the Idea

of Infinity”, (Netherlands: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5), p.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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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 기독교철학 9호

부족처럼 거짓 행세를 하면서 여호수아와 언약을 맺게 된 것이 거짓

으로 탄로가 났지만 멸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얼굴을 마주

하 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율법의 핵심사상은 「약자 보호법」이다. 율법에서 가장

요한 부분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섬기는 것이다. 히 리서의 해

석에 의하면, 이들이 바로 고난 받는 그리스도이며, 메시야인 것이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 하고 도리

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

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 이라.(히11:24-26)

마태복음 25장에서, 인자가 양의 무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 고 나

그네 되었을 때에 하 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 략) 희가 여기 내 형제 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35-40)

성경 타자의 개념과 비나스의 타자 개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성육신 incarnation 사상이다. 강력한 주체의 주체성으로 타자를 주체

로 환원하는 존재론이 아니라 약자의 연약함에 하여 같은 차원으

로 낮아져서 체휼하는 그리스도 윤리학이다. 서구의 존재론 통

은 동일성 철학으로 일원화시킴으로써 주체의 주체성을 강화하는 것

으로 몰아가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비나스의 윤리학은 서구의

존재론을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안으로 제시된다.

Ⅴ. 나가면서

르메니데스 이후 동일성을 기반으로 한 사상 흐름은 서양의

통 인 사고방식에 주류를 이루어 왔다. 르메니데스의 후 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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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21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동일성 철학으로 일 하여 온 셈인데, 이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헤겔이었다. 헤겔의 변증법은 데카르트 이후

주체 심의 일방 인 주도권에 휘둘러 온 동일성 철학에 타자성을

받아들이면서 흔들어 놓았지만, 결과 으로는 그의 변증법 역시도 동

일성 철학에 일조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의 「주인과 노 의 변증법」

은 이 의 자기 부정을 통해서 주체와 객체 자체에 괴가 일어나고,

그 결과 주인과 노 의 치가 뒤바 는 상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근 성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지 그 자체가 근 성을 극복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헤겔은 변증법 반복을 통해 이성이 무한히

발달하여 정신으로 이르게 될 것으로 자신의 논리를 개해 나

갔지만, 결과 으로는 주체로 돌아감으로써 타자를 주체로 환원시킴

으로써 동일성 철학으로 회귀하게 된다. 주체와 타자 사이에서 발생

하는 차이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성의 축으로 흡수되는 과정

을 보여주는 것이 「주인과 노 」의 담론이다.

그러한 결과의 극단 인 상이 나치 독일에서 나타났다. 헤겔의

변증법 이성의 발달이 정신에까지 이르게 되리라는 측은 빗

나가게 되었고, 근 성은 오히려 극을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유한성을 제했던 칸트와는 달리 헤겔은 인간을 무한한 존재로

제한 후, 변증법 반복을 통해 무한성이라는 형식에 그 내용을 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치즘의 체주의 횡포는 곧 유한

한 존재에게 무한성을 제로 한 정신이 부여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존재론 한계 던 것이다.

김연숙은 「 비나스 타자의 윤리학」(44쪽)에서 사르트르는 존재를

즉자존재와 자존재, 타존재로 구분한 후, 헤겔의 「정신 상학」의

기본개념인 주노 계의 상호승인을 한 필사 투쟁으로서 노 의

변증법을 수용하여 자신의 이론을 개해 나가는 것으로 보았다. 그

래서 김연숙은(46쪽) 사르트르는 주노변증법을 수용하 기 때문에 세

계 내에 던져진 우리는 타인과 평화로운 공존을 리기보다는 필사

투쟁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르

트르에게 타자는 자신의 지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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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기독교철학 9호

트르에게는 사랑마 도 기만에 불과하지만, 비나스에게 있어서 타

자는 여성 인 신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비나스는 주체의 낮아짐의 방식으로 타자성 이론을 정립하고 있

다. 그러나 비나스의 타자성 개념의 단 이 있는데, 그것을 두 가

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그가 상정하는 타자는 특수한 상황에

서 마주칠 수 있는 타자이기 때문에 보편 인 타자가 아니라는 이

다. 둘째로 비나스는 타자를 무한자로 규정하는데, 무한자란 신

인 개념과도 같은 것으로서 인간의 인식 밖에 있는 것이 틀림이 없

음에도 불구하고, 주체의 에 포착되는 형태로 상정하는 것은 데카

르트의 연약한 주체가 무한자인 신을 사유의 상의 치에 놓는 것

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이다.75)

앞으로 타자에 한 연구는 사르트르의 주체와 타자의 역동성과

비나스의 타자를 주체로 환원하지 않고 성육신함으로 낮아지는 타자성

을 수용하고 이 두 사람의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근 성을 보다 온 한

모양으로 극복하는 형태의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지면

계상 후속 연구로 미루고자 한다. 그 연구는 마땅히 리꾀르의 타자

성에 한 내용이 될 것이며, 그에게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아(ego)

심의 인격에서 자기(self) 심의 인격을 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숭실대학교)

75) 박인철, 「타자성과 친숙성」, �철학과 상학 연구� 제24집, 2005년, 17-18쪽을

참조하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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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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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타자성 이해를 통한 근대성의 극복에 관하여 / 최민식 ║ 125

<Abstract>

On Recovery of Modernity through Understanding

Subject and Other

Min-Sik Choi

(Soongsil University)

To the philosopher Parmenides of Elea, while only Being exists,

Not-Being is not and can never be. That is, we can think on Being,

and cannot think on Not-Being because there is not. Platon became

patricide, disobeying Parmenides’ will. Platon substituted Parmenides’

‘Not-Being’ for ‘difference’ or ‘otherness’ on Sophistes, one of his

later writings, who was a liar and cheater so that he could come

and go between Heracleitos who gave stress on movement and

Parmenides on stillness. By doing this, he made a way for the argument

on ‘the subject and the otherness’ which had been descended down

for over 2000 years.

The concept of subject has been diversified according to situation

of each era. Especially, there turned out to be definite distinctions

upon concept of subject between the Middle Age and the Modern

Age. In the Middle Age the subject means the very substance itself,

but in the Modern Age it had settled the meaning of ego. The

concept of subject as ego has implied the dual meaning, like Mobius

strip, which first appeared on ‘the Master and Slavery dialectic’ of

Hegel’s 「Phenomenology of Spirit」.

The issue of the Modern Age depends on whether thinking of

subject as ego can guarantee the universality. Hegel was intended to

ensure the universality by using dialectics so that his system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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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 기독교철학 9호

thinking became pantheistic, tracing the development of the human

spirit from a mere sense experience to ‘the absolute knowledge’ as

the infinite. While Sartre who declared ‘the existence proceeds to the

substance’ had rejected every metaphysical substance and escaped all

determinism endowed a priori, he had tried to capture the universality

by continuous nothingness in oppositition to thingness.

So to speak, the philosophy to which Hegel and Sartre, etc, belongs

maintains ontology or identity philosophy which others should be

reduced into the subject. Levinas who repudiates this kind of philosophy

suggests 「Ethics for the Other」, ‘incarnation philosophy’, which does

not reduce the Other into the subject and made the opening to the

Other with responsibility. Levinas holds that the primacy of ethics

over ontology is justified by the “face of the Other.”

Key Words: subject, the Other, cogito, Mobius strip, the Master and Slavery

dialectic, nothingness, ethics for the Other

투고자 및 투고자 약력

최민식: 고려대학교 중문학과 졸업, 총신신대원 졸업(M-Div과정),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 졸업(석사, 목회상담), 현재 숭실대 일반대학원 기독학과 박사과정(철학

전공), 한영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강사역임, 한국대상관계협회 이사역임, 정신분

석 심리치료사로 활동 중. 남서울양강교회 담임목사

이메일: [email protected]

투고일: 2009년 9월 20일. 심사일: 2009년 10월 20일. 게재확정일: 2009년 1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