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학수 - 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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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about Freud's Moses and the discurse of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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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 변학수 201

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변 학 수 (경북대)

I. 들어가는 말

프로이트 연구는 일반적으로 개인적 차원의 억압이 문학/예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주제로 가장 많이 다루어졌다. 그 다음으로 문화적 차원의

프로이트 또한 많이 연구되었다. 그의 저작을 살펴보면 개인심리학을 넘어

강박을 집단 심리학, 즉 문화적 차원에 적용한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07년에 쓴 강박행동과 종교행위 , 1913년에 저술한 토템과 타부 , 1921년에

쓴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 , 그리고 1930년에 쓴 문명 속의 불만 이 대표적인

경우다.1) 그러나 이 문화이론들은 대부분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억압에 관한 이론이 구체적인 역사를 만난 경우는 프로이트의 원전이든

연구서든 드물다. 필자는 이 관계를 분명히 진술한 예루살미 Yosef Hayim

Yerushalmi의 프로이트와 모세,2) 얀 아스만 Jan Assmann의 이집트인 모세를계기로, 기억담론과 관계하는 프로이트의 저작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 와

미켈란젤로의 모세 를 재조명하면서, 프로이트의 집단 심리학이 실제 역사에

1) 개인심리학과 집단심리학을 통시적으로 보지 않고 토템과 타부 와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 를 종교적 차원의 문화이론으로 연결하는 시도에 대해 곽정연, 정신분석학과

문화분석 -낯선 것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중심으로, 독일문학 93집, 2005.3., 264면을

참조하라.2) 원전에는 Freud's Moses, 즉 프로이트의 모세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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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되면서 기억담론에 어떤 기여를 하였는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미셸 푸코는 담론을 특정 대상이나 개념에 대한 지식을 생성시킴으로써

현실에 관한 설명을 산출하는 언표들의 응집력 있고 자기지시적인 집합체로

보았다.3)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스만은 푸코가 제시한 담론의 의미보다

더 특수한 담론을 제시하는데, 그는 텍스트 서로 간에 관련을 맺으면서 공통된

연구주제를 다루는 연속적인 텍스트를 담론이라 규정한다. 즉, 아스만은 담론을

“주제적 틀을 가지고 선행하는 텍스트와 연구주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성문화되지 않은) 규칙”4)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프로이트의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 는 다양한 담론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 또한 그 다양성을 증명하고 있는데, 가령 예루살미의

프로이트와 모세는 프로이트가 왜 나치의 권력이 부상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썼나, 모세가 이집트인인가 아니면 히브리인인가와 같은 담론으로 이 책을

다루고 있다.5) 그리고 자기 민족의 창시자라 할 만한 모세를 왜 이집트인이라고

했고, 왜 성서(모세 오경은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들이 공유)가 왜곡되었다고

썼으며, 모세가 살해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관심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의 목적은 그런 담론을 상술하는 데 있지 않다. 우선 독문학자로

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잘못 알려진 프로이트의 저작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왜 그런 오류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성찰을 기억담론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하고

자 한다. 우선 논의를 프로이트의 저작 가운데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 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이 번역본을 보면 그 제목이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로 번역되어 있다.6)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해보아도 이 제목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 모세”란 표현은 모세가 신이냐 인간이냐의

3) 푸코의 담론 개념에 대해서는 Christopher Tilley(ed.) Reading Material Culture, Oxford: Blackwell, 1990, pp. 290-304을 참조하라.

4) Jan Assmann, Moses der Ägypter. Entzifferung einer Gedächtnisspur, München Wien 1998, S. 35. 얀 아스만, 이집트인 모세, (변학수 옮김) 도서출판 그린비 2010, 37면.

5) Yosef Hayim Yerusalmi, Freud's Moses: Judaism Terminable and Interminable,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and London 1991, pp.6.

6) 지그문트 프로이트,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열린책들, 1990, 7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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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 변학수 203

문제가 담론이 되었을 때7)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세가

유일신교의 창시자이자 신이라고 주장하는 담론도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도

열려 있으나 이 프로이트 저작의 내용 상 그런 것을 다루고 있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의문은 더해간다. 이 점에 대해 아스만의 저작 이집트인

모세는 새로운 인식을 제공한다. ha-'ish Mosheh를 번역한 구약성서 출애굽기의

‘그 사람 모세’(“또한 그 사람 모세는 그 땅 이집트에서 아주 위대하였다”)는

신약성서 사도행전 7장 22절(“이렇게 해서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학문을

배워 말과 행동이 뛰어나게 되었습니다”)에서 갑자기 등장하여 흔적의 신빙성과

공인된 기억의 왜곡 가능성을 대변해주게 되었다.

이런 기억 흔적8)에 대한 프로이트의탐구는 이미 필자가 보기에 미켈란젤로

의 모세 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기억이 역사적 사실 이상이라는 것을 미켈란젤

로가 바라본 모세상에서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다. 성경에서 서술하는 모세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세, 즉 화가 난 나머지 십계가 새겨진 돌판을 던져 부수는

모세가 아니라 그 분노를 억제하는 모세를 그리고 있는 모세상은 분명 현재에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회상)하는 미켈란젤로를 보여주고 있다. 프로이트가

미켈란젤로의 모세 와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 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집트인 모세나 히브리인 모세 등과 같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흔적 속에

묻혀 있는 반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는 토템과 타부 에서 시작된 부친

살해의 억압에 관한 생각을 토대로 위 두 작품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역사를

연구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억압된 것의 회귀라는 인식인데 이것이 우리의

기억담론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먼저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

교 의 기억담론을 기억과 흔적의 관계에서밝히고 억압과잠복의 원리를 살펴보

7) 가령 ‘인간 예수’라는 표제어는 담론으로서 가능하다. 왜냐하면 기독교 일반적으로 예수의

신성은 인정되기 때문에 다른 측면(담론)으로서 ‘인간 예수’라는 제목은 가능하다.8) 프로이트는 인지가 비로소 기억의 행위 속에서, 다시 말해 경우에 따라 몇 년이 지나거나

몇십년이 지난후에 그 의미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발견하고 이 개념을 사용하였다. 데리다 또한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Jacques Derrida, Grammatologie, Frankfurt a. M. 1974, S. 109: 눈에 보이지 않는 텍스트는 “늘 수정본일 뿐인 문서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모든 것은 재구성으로 출발한다. 무엇이 만들어졌든 간에, 즉 과거 어느 시점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던 어떤 의미가 만들어졌을 경우, 그것이 중요한 의미를 띤다면 그것은

곧 시간적으로 차후에, 그리고 보충되어 개작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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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난 뒤,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을 통해 재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로이트의 모세에 대한 얀 아스만의 기억담론을 논의할 것이다.

II. 기억 흔적과 반기억

우선 독자들에게 이 논문의 주제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

교 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고자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유일신교는 유대인

의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의 것이다. 아케나톤이라 불리는 파라오 아멘호테프

4세는 태양신 아톤(Aton)만을 숭배하는 유일신교를 국가 종교로 확립했다.9)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 종교는 유일신만을 믿으며 신인동형설의 개념, 마법,

주술, 내세 등을 모두 부정했다. 하지만 아케나톤이 죽자 그의 유일신교는

급격히붕괴했고 이집트인들은 다시 과거의 다신교로회귀했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이 아니라 이집트의 사제 혹은귀족이었으며 열렬한 유일신교옹호자였다.

아톤 종교가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세는 당시 이집트에 압박받으며 살고

있는 셈족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이들을 노예의 신분에서 구출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동시에 모세는 이들에게 정신적이며 우상을섬기지 않는 유일신

교를믿게 했다. 또 이들을 이민족들과 구분하기 위해 이집트의 습속인 할례속(割

禮俗)을 도입했다.10)

하지만 예전에 노예였던 우매한 민중은 유일신교의 엄격한 요구사항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민중은 반란을 일으켜 모세를 살해했고 그 살해의 기억은

억압되었다. 이어 이스라엘 사람들은 셈 부족인 미디언 족과 타협의 동맹을

이루었고 미디언 족의 화산신인 야훼를 그들의 민족신으로 삼았다. 그 결과

모세의 신은 야훼와 합쳐졌고, 모세의 업적은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미디언

사제의 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수세기의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종교(신앙)와 그 창시자의 억압된 전통은 충분한 힘을 다시 회복했고 마침내

9) Sigmund Freud, Der Mann Moses und die monotheistische Religion, in: ders. Gesammelte Werke XVI, Frankfurt a.M. 1981, S.119f.

10) A.a.O. 124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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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야훼는 모세가숭배했던신의 보편적이고 정신적인

특징을 부여받게 되었다. 하지만 모세를 살해한 기억은 유대인들에게 억압되었

고, 기독교가 탄생하면서 아주 위장된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이런 프로이트의 모세담론은 성서에서 출발하며 그 근거로 그는 모세 5경,

특히 출애굽기를 들고 있다. 출애굽기의 저자는 모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 구절 한 구절을 분석해보면 이에는 명백한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애굽기

11장 3절에 보면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파라오)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라고 기술되어 있다. 아스만은 그간 어떤

문헌에서도 프로이트의 저작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 라는 제목이 바로 성서의

이 구절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11) 문제는

이 제목의 유래만이 아니다. 출애굽기의 저자가 모세가 아닌 그 누구라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술이 이 지점에 와서 왜 갑자기 그 서술시점이 바뀌는지

하는 것이다. 전후의 맥락에서 독자들은 영웅이자 주인공인 (심지어 저자이기도

한) 모세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읽고 있는데 이 구절에 와서 뜬금없이 모세가

제 3자로(“그 사람”), 즉 독자의감정이입과는거리를둔방식으로묘사되고 있다.12)

우리는 비슷한 경우를 출애굽기 32장 1절과 32장 23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이런 자료가 어떻게 기억담론의 구성요소가 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기억담론의 본질을 살펴보아야 한다. 기억은 우선 저장기억과

활성기억으로 나눌수 있는데, 우리가 전자를 사료또는 역사 같은 기억 보관소로

생각한다면, 후자는 회상해 내고 상상하는 하나의 활동으로 생각할 수 있다.

환언하면, 기록된 것은 하나이나 그것을 해독해내는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뜻으로볼수 있다. 근대철학에서 이 개념을 집중적으로 다룬철학자는 로크다.

그는 저장기억의 전통에서 탈피하여 회상기억을 다룬 이론가로서 회상기억을

두고망각으로 옮겨가는 것을 건져내기 위한 하나의 기술로 보지 않는다. 다시

11) Jan Assmann, a.a.O., S. 219. 번역본 얀 아스만, 같은 책 269면.12) 우리는 이 지점에서 번역상의 차이를 살펴보고 나가야 한다. 원문을 보면 “Und der

Herr verschaffte dem Volk Gunst bei den Ägyptern, und Mose war ein sehr angesehener Mann in Ägyptenland vor den Großen des Pharao und vor dem Volk.”으로 달리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공동번역 성서에는 “그 어른 모세”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점에서는 한글 개역개정판 성경이 훨씬 원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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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면 그는회상과망각을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회상기억을

망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봄으로써 망각을 회상의 일부로 보았다. 그렇게

되면망각은회상의 필수 불가결한요소가 된다. 즉, 로크에따르면 회상기억은

망각의 흔적을 담고 있다.13) “우리의 모든 생각들은 지속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억에는 망각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생각들이

쇠퇴해지는 것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아 보인다. 그것은 아무리 좋은

기억으로 마음 깊이 각인된 생각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14)

이런 로크의 생각은 우리가 연구하려는 프로이트의 모세에 그대로 적용된다.

우선 ‘이집트인 모세’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규범적 전통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모세는 반(反)기억(Gegenerinnerung)15)의 인물일 수밖에 없고 그런 반기억

의 흔적이 바로 로크의 “기억에는 망각의 흔적이 담겨있다”는 말로 설명될

수 있다. 반기억이란 일반적으로 정식 기억에서 잊히거나 잊힐 경향이 있는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는 일이다. 이런 반기억은 흔히 영화나 문학에서 종종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몬>이란 영화와 알랭

르네 감독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에서 살펴보듯이 주인공들은 상대들과

전혀다른 기억을 진술하고 있다. 그 모순적 원칙을 알라이다 아스만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너는 그렇게 기억하는가. 하지만 나는 다르게 기억한다.

그 이유는 나는 네가 잊어버린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You remember it this

way, but I remember it differently because I remember what you have forgotten..”16)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관객들은 그 주인공들이 발화한 것보다 그들의 행위나

13) 홉스에 의하면 기억과 상상력에는 부패의냄새가 배어 있다. 그는 이런맥락에서 “쇠락하는

감각 decaying sense”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영국의 계몽주의, 낭만주의에 있어서 상상에

관한 성찰의 역사에 대해서는 Wolfgang Iser, Das Fiktive und das Imaginäre. Perspektiven literarischer Anthropologie, Frankfurt a. M. 1991, 296 ff.을 참조하라.

14) John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Vol. Ⅰ, ed. by John W. Yolton, London 1964; deutsch nach: Locke, Versuch ber den menschlichen Verstand. Bd. I, bersetzt v. C. Winkler, 4., durchges. Aufl., Hamburg 1981, 170.

15) 영어 counter-memory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서 우리말로는 대항기억, 또는 대안기억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반기억으로 명명하고자 한다.16) Aleida Assmann, "The Sun at Midnight: The Concept of Counter-Memory and Its Changes,"

in: Commitment in Reflection. Essays in Literature and Moral Philosophy, ed. Leona Toker, New York 1994, p. 22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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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의 기표 자체에서 그 역사(이야기)의 흔적을 찾아 재구성해야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같은 맥락에서 ‘이집트인 모세’는 프로이트에게, 그리고

아스만에게 반(反)역사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기억의 구성 요소는 여기서 머물고 있지 않다. 성서는

모세가 히브리 출신이 아니라는 흔적을 많이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출애굽기

4장 10절의 “혀가 둔한 자”17)란 표현에서 보듯이 모세가 히브리말에 능통하지

못했다는 점과 이어지는 4장 11절에서 보듯이 그래서 모세가 자기형아론에게

의존하는 사건에서찾아볼수 있다. 나아가 프로이트는 히브리의 것으로 알려진

할례속(割禮俗)이 이집트로부터 온 것이며, 그것을 전한 사람이 바로 모세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성서의 일부분, 즉 할례속이 아브라함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만든 것은 조작된 것임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여러곳에서 모세가 그 비타협성

때문에 히브리인들에게 살해되었음을 주장한다. 이런방식의 기억 흔적에 대한

프로이트의 담론은 이미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 에 20년앞선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프로이트는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에 대한 논의도 기억

담론과 비슷한방식으로 추론해나간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은 성서에

서 서술한 모세와 일치하지 않으며, 성서의 모세에 대한 기술도 모순투성이라고

본다. 우선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은 성서에서 분을 못 이겨 율법판을 깨버리는

모세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다시 말해 그의 모세상은 그가 본 (또는 재구성한)

모세의 이미지이지 성서를 자구(字句) 그대로 옮겨놓은 모세가 아니다.18)

17) Sigmund Freud, Der Mann Moses und die monotheistische Religion, in: ders. Gesammelte Werke XVI, Frankfurt a.M. 1981, S. 132. 이윤기의 상기 번역서에는 모세가 <입이 무거웠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명백한 오역이다. 그리고 ‘모세에게는 언어장애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번역한 것도 오역이다. ’히브리말을 더듬거나 잘못했던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18) 지그문트 프로이트, 예술과 정신분석, (=프로이트 전집 17), 열린책들 1998, 14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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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기억담론에서 중요한 점은 명사로 사용되는 ‘기억’과 동사로 사용되는 ‘기억

(하다)’ 또는 ‘기억(되다)’의 차이이다. 우리가 성경을 역사기술로 볼경우 역사는

일차적으로 전자에 기댄다. 그러나 그것을 해석하는 입장에서 발생하는 후자,

즉 회상의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율리우스 2세의 장례기념물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되어 지금 바티칸 성당에 보존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은

프로이트가 보기에 단순한 미켈란젤로의 해석을 넘어회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미켈란젤로는 히브리 사람들의 우상숭배에 분노를 하여 석판을깨뜨

리는 모세가 아니라 분노를 억제하고 석판을 깨뜨리지 않는 모세를 묘사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곧 이 모세가 실제로 화를 내고 석판을 던져 부순

성경속의 모세가 아니라고 비난하고 나설 것이다. 이 모세는 아마도 예술가의 감성이

조각한 모세, 성서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신의 부름을 받은 남자의 성격을 왜곡한

모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미켈란젤로가 성경에 대한거의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있을까?

Nun wird man uns aber entgegenhalten: Das ist doch nicht der Moses der Bibel, der

wirklich in Zorn geriet und die Tafeln hinwarf, daß sie zerbrachen. Das wäre ein ganz

anderer Moses von der Empfindung des Künstlers, der sich dabei herausgenommen hätte,

den heiligen Text zu emendieren und den Charakter des göttlichen Mannes zu verfälschen.

Dürfen wir Michelangelo diese Freiheit zumuten, die vielleicht nicht weit von einem Frevel

am Heiligen liegt?19)

우리는 프로이트가 여기서 이미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왜곡”이나 “신성모

독” 또는 “상상력”이 아니라 하나의 기억(회상)형식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직접적으로 출애굽기 32장 7절 이하의

19) Sigmund Freud, Der Moses des Michelangelo, in: ders. Gesammelte Werke X, Frankfurt a.M. 1981, S.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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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 변학수 209

성경을 인용한다.

(7)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내려가거라. 왜냐하면네가 이집트에서 인도해

온 너의 족속이 모든 것을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8)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났구나. 그들은 송아지를 몰래 들여와, 그것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제사지내며 말한다. ‘이스라엘이여, 너를 이집트에서 인도해온 너의 신이 여기에

있다.’” (9) 주님은 또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목이 굳은 백성이다. (10) 그러니

이제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어라. 내 분노가 그들 위에 불길처럼 타오를 것이고

그들을 몰살하리라. 그리하여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11) 그러나

모세는 그의 하나님 주님께 호소하며 말했다. “주여 어찌하여 당신의 진노를 당신이

위대한 힘과 강력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내신 당신의 백성 위에 타오르게

하시나이까?”

여기서 보다시피 모세에게 유대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제작했음을

알리는 이는 “주님”(야훼) 자신이다. 이때 모세는 죄인들을 변호하고 중재에

나선다. 즉, 모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8절 이하에

가서 모세가 그 일을 모르고 있었다는듯이 우상숭배 장면을 보고 순간 분노에

사로잡힌다.

(18) 모세가 말하기를, 그것은 서로 싸우며 이긴 자와 진 자가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승리의 춤 소리라고 했다. (19) 그러나 그가 진에 가까이 다가가 송아지와

둥그렇게 모여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자 그는 분노의 불길에 휩싸였고 손에 들고

있던 판을 내던져 산 밑에서 부숴 버리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같은 곳의 서술을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14절에서 모세는

백성이 지은 죄에 대하여 이미 여호와께 용서를 구했는데 31절에 다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산으로올라간다. 그리고백성의 배교(背敎)행위를 여호와께전하고

응징을 연기하지만 35절에 가서 여호와가 백성에게 다시 응징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렇게 출애굽기의 텍스트는누군가에 의해 또는 세월의 변화앞에서

왜곡되어갔기 때문에 모순과 비논리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텍스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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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독일문학 | 제115집

적어도 성경 텍스트에 대한 비판을 상상할 수없었던르네상스 시대에는 기억의

이런 모순을 드러내는 데 그 어느 누구도 도전하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미켈란젤로가 모세의 성격을 묘사할 때 시도한 수정(修正)이

그가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 Wichtiger als

die Untreue gegen den heiligen Text ist wohl die Umwandlung, die Michelagelo

[...] mit dem Charakter des Moses vorgenommen hat.”20)고 말한다. 다시 말해

기억에 대한 담론을 무의식적으로 파악하려는 프로이트에게 왜곡의 사실보다

는 왜곡의 내용이 더 의미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 모세”21)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다혈질의 인간이었다. 출애굽기 처음에도 기술되어 있지만

한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이집트인을 때려죽인 것은 바로 이런 성격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화를 내며돌판을 부숴버린 것은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더욱이 이런 일이 성경의 진정성을 말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되었지 방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켈란젤로는 그런 모세와는 다르게 억제하는 모세를 기억(회상)

했을까? 이것이 우리의 주제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우선 그는

교황의 장례 기념물을 제작하면서 전해 내려오는 에피소드에서보다 훨씬위대

한 인물을 만들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하나의 에피소드 속에서 성격이 급하다

해서 그의 행동이항상급한 것은 아닐것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미켈란젤로가

“내던져부숴버린율법판이란 에피소드를 변형해서 모세가 화를 내어율법판을

부숴버리는 대신 율법판이 부서질지 모른다는 우려로 인해 자신의 분노를

삭이거나 적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억제하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Er hat das Motiv der zerbrochenen gesetzestafeln umgearbeitet, er läßt sie nicht

durch den Zorn Moses’ zerbrechen, sondern diesen Zorn durch die Drohung, daß

sie zerbrechen könnten, beschwichtigen oder wenichstens auf dem Wege zur Handlung

20) Ebd. 197.21) 같은 곳에서 프로이트는 분명 “Der Mann Moses(그 사람 모세)”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윤기와 마찬가지로 정장진도 “인간 모세”로 번역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성서에서

인용한 이 말을 각각의 문맥에서 거듭 사용하되 유의미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문맥상 어색하더라도 계속 사용할 것이다.

Page 11: 변학수 - 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 변학수 211

hemmen.”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기억이 있는 그대로, 즉 즉자적으로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회상을 통해 조작되거나 확장되거나 탈루될 수 있으므로 얼마든지 미켈란젤로

처럼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성경의 표절이나 왜곡의

증거가 흔적으로 인해 분명하게 되는 만큼, 기억 또한 흔적의 연구를 통해

재정립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위대한 모세의 인상 Eindruck

einer großen Persönlichkeit”이라는 표현은 결국 기억, 즉 회상 Erinnerung이 현재의

욕망의 관점에서 재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22) 그리고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시피 기억(회상)은 망각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망각의 기억술 또는 반기억이라 말할 수 있다.

IV. 아버지 살해, 그리고 억압과 잠복

그러면 왜 프로이트는 “그 사람 모세”라는 말에서 모세를 이집트인이라

추론하고 할례속을 이집트인의 것이라 보았을까? 아스만은 프로이트의 이런

생각 뒤에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정신분석 이론의 기획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이 주장은 프로이트 자신의 고고학적 근거에 의한 주장이 아니라

구약학자 젤린의 주장을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젤린이 그가 이 이론을취하기

22) 프로이트는 이 저작에서 여러 예술가들의 의견을 많이 인용하고 있지만 (Sigmund Freud, Der Moses des Michelangelo, in: ders. Gesammelte Werke X, Frankfurt a.M. 1981, S. 175ff. 그리고 한국어 번역본 지그문트 프로이트, 미켈란젤로의 모세상(=프로이트 전집 제17권),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 1998, 123면 이하를 보라.) 필자는 예술사적 의미에서 빙켈만

Johann Joachim Winckelmann의 라오콘 군상에 대한 레싱 Gottfried Ephraim Lessing의

반박 (Laokoon oder Über die Grenzen der Malerei und Poesie)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레싱은 고전고대의 예술에 대한 빙켈만의 견해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가성취된 라오콘 군상은 순간적인 면을 포착하기 때문에베르길리우스가 라오콘의 외침이

별에까지 이르렀다는 문학적 표현에 대해 표현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의 모세상도 성서의 기록처럼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다

담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분노를 억제하는 모세상을 조형예술의 특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해석 대신 아스만의 기억담론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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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독일문학 | 제115집

전에 모세가 살해되었다는 주장을 철회한 마당에 우리의 담론에서 그가 말한

모세 살해 담론은 역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다만 그가 주장하는

모세의 살해와 그것의 억압, 그리고잠복이 어떤 의미에서 프로이트에게 절실하

였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미 프로이트는 토템과 타부 에서 원시 유목민 집단에서 살해되는 아버지

의 가설을 주장한 바 있다.23) 아버지는 자식들 위에포악하게군림하고 여자들을

독점적으로 거느렸으며 그에 도전하는 아들들을 죽음과 추방으로 위협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아들들에 의해 살해되고 아들들은 그 죄의식의 묘지

위에 토템이라는 기념비를 세운다. 이런 아버지 살해의 원시적 경험은 인류의

무의식에깊은 흔적을남긴다. 그리고 그것은 반복을 통해 각인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원시 아버지 살해의 기억은 억압되었다가 강한 죄의식으로 변형되어

초기 종교에서 금기, 금지, 자제, 자기 징계, 잔인한 희생과 같은 두려움을

만들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의 신경증이 억압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빚어

진 것이라면, 이것을 종교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런 관점에서

모세와 유일신교를 바라보았다. 프로이트의 눈에는 유일신교 그 자체가 억압의

반복이었다. 결국 모세는허구적 인물로서, 살해된 아케나톤을 대신하는 기억의

인물이 되는셈이다.24) 다시 말해 모세의 유일신교는, 프로이트에따르면, ‘아버

지의 복귀’였다.

모세 살인자들에게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부정도 아무런

소용없이 자신들의 죄의식과 두려움만 강화할 뿐이었다. 이리하여 골드슈타인

에따르면 “프로이트는 그 인식되지 않은 양심의 가책에 대한 집착이 가해자와

그 후손들에게 더욱 더 신과 모세의 종교에 헌신하게 함으로써 자신들과 원시

조상들의죄를 보상하도록유도하였다”25)고 주장한다. 이 점이 바로 모세 담론을

23) Sigmund Freud, Totem und Tabu, in: ders. Gesammelte Werke IX, Frankfurt a.M. 1981, S.171ff.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템과 타부(=프로이트전집 제16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1998, 403면 이하를 참조하라.

24) 아케나톤은 원래 이집트 파라오였던 아멘호테프 4세를 지칭한다. 프로이트와 아스만은

모두 성서의 모세를 이 아케나톤의 다른 이름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프로이트는 모세가

여러 인물이 중첩된 것으로 보는데, 아멘호테프 4세는 모세이지만 사실은 이집트에서

보면 태양신 파라오다. 그리고 미디안인 모세는 화산신인 야훼를 섬겼다고 보고 있다. 25) Bluma Goldstein, Reinscribing Moses: Heine, Kafka, Freud, and Schoenberg in a Europ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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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 변학수 213

기획한 프로이트의확실한 동기처럼보인다. 그리고 그의 이같은 이론은 개인심

리학에서 집단심리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다만 개인심리학에서

의 의식적 기억과 억압(무의식적) 기억의 차이는 집단기억에서 역사(전승 또는

전통)와 (회상)기억의 차이로 나타난다. 역사나 전승된 것은 결코 논리적 성격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모세와 관련된 출애굽기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모순

되는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또 프로이트의 탁월한 판단처럼 “그것이

대중들에게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먼저 억압되어 무의식 속에

맴도는 운명을 겪어야 한다.”26)

양가성은 아버지에 대한 관계의 본질의 일부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적대성

또한 반드시 자극되는데 그것이 한 때 아들들이 존경하면서 두려워했던 아버지를

살해하게 만든다. 모세의 종교라는 틀에는 아버지를 살해할만한 증오에 대한 직접적

표현은 없었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것에 대한 강력한 반응, 즉 그런 적대감

때문에 생긴 죄책감, 신에게 죄를 지었고 죄를 멈추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다.27)

토템과 타부 라는 사전 작업이 없었다면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 라는

논문의 집필은 불가했겠지만 두 논문의 차이점 또한 명백하다. 전자는 역사

시대에벌어진 사건이 아닌 추상적 사건을 다루는 반면, 후자는 역사시대 내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토템과 타부 와는 다르게 과거를 구체적인

역사적 증거위에서 집필해야했던프로이트는 이제 정신분석의 이론을 뛰어넘

는 역사적 사실과 마주하게 되면서 증거를 필요하게 되었다. 1934년 11월 6일

그는 아르놀트 츠바이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진흙의 바탕 위에 구조물을 세워서 이 책 전체를

Wildeness (Cambridge, Mass.: Harvard UP, 1992), p.118.26) Freud, Standard Edition, vol.23. p.101. Bluma Goldstein, Reinscribing Moses, p.117, Yerusalmi,

Freud's Moses, p.30에서 재인용.27) Sigmund Freud, Der Moses des Michelangelo, in: ders. Gesammelte Werke X, Frankfurt a.M.

1981, S.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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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독일문학 | 제115집

위태롭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28)

한 달 뒤에는 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개인적으로는 불확실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건 이미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진흙 바탕 위에 그처럼 당당한 조각상을 세운 바람에 바보라도 그 상을

무너뜨릴까 걱정됩니다.29)

우리가 ‘진흙 위의 청동상’이라는 비유를 그저 프로이트의 심리적 일면으로

그냥흘려보낼수도 있지만 이것은 프로이트의 이전 작업에 비추어볼때 의미심

장한 성격을띤다. 이미 프로이트가 1914년에 집필한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에

서 그는 이 위대한 조각가와 의견일치를 보았었다. 미켈란젤로나 프로이트

두사람 다 성경의 해석자라는입장에서, 그리고 텍스트를벗어나 아주 과도하게

해석한 해석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차이

또한 간과할 수없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 상상력의소산인 데 반하여 프로이

트는 역사소설을 지나 역사적 현실에서의 모세를 다뤘다.

V. 아스만의 기억담론과 프로이트의 모세

1997년에 출판된 이집트인 모세30)에서 아스만은 모세라는 인물을 중심으

로 기억사를 논한다. ‘그 사람 모세’라는 작은 구절과 함께 시작된 기억사는

현재의 (아스만의) 관심에서 출발한다. 즉 “모세구별”로 시작된 유일신교는

서구를 넘어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가령, 중동전이나 나치,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 모두 모세구별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한다. 그래서 아스만은

28) Sigmund Freud, und Arnold Zweig, Briefwechsel, hrsg. Ernst L. Freud, Frankfurt a. M. 1968, S. 108.

29) Ebd. 109.30) 이 책은 독일어보다 영어로 Harvard University Press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독일어본은

이듬해 많이 변형․보완되어 Carl Hanser Verlag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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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 변학수 215

그 모세구별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어떻게 모세가 기억되었는지를 짚어간

다. 아스만은 모세가 성서적 의미에서 그 형식은 히브리인(유대인)이지만, 실체

는 이집트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가설이긴 하지만, 역사적 의미에 있어서 형식은 율법판을 받은 ‘모세’가

역사적 실체에 있어서 아마르나혁명을 만든파라오 아멘호테프 4세 ‘아케나톤’일

수 있다. 그러므로 아스만은 모세구별의 영역, 또는 이 공간에서는 역사적 인물

모세와 기억의 인물 모세가 서로 같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기억사의

산물로 본다. 그래서 그는 “기억사는 [...] 기억의 산물들이자 후세의 해석의

관점에서만 드러나는 의미와 중요성의 관점들만 전적으로 탐구한다. Sie

[Gedächtnisgeschichte: HB] konzentriert sich auf jene Aspekte der Bedeutung oder

Relevanz, die das Produkt der Erinnerung [...] sind und die nur im Licht späterer

Rückgriffe und Lektüren hervortreten.”31)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이집트인 모세를 역사적으로 파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 어떤 특정한

관점(여기서는 서유럽)들로 기억되었는가, 즉 모세가 어떻게 (회상)기억되었는

가를 파악하겠다는 뜻이다.

성경에 따르면 모세는 유일신교의 창시자다. 야훼가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

나타난 이후 그는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었다.

이것이 출애굽의 역사다. 모세가 십계명을 야훼로부터 받아 공표할 때부터 참

종교와 거짓 종교의 구별이 시작되었는데, 이 구별로 인해 최초로 만들어진

문화적 공간이 유대-기독-이슬람의 유일신교였다. 이 세 종교의 역사적영향력은

바로 모세와 더불어 시작된 이 구별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구별로 인하여

세 종교의 정체성과 정향성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갈등과 비관용, 폭력의근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모세에 대해 이집트인 모세에서 아스만이 제시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모세는 과연 역사적 실존인물이었나? 우리는 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2) 그의 실존여부와 상관없이 모세는 문화적 기억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3) 모세라는 인물은 기억사에서 어떤 변화과정을 겪었나?

4) 그리고 그 변화과정은 각각의 시대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가?32)

31) Jan Assmann, a.a.O., S.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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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독일문학 | 제115집

아스만은 역사의 모세는 없고 기억의 모세만 있다고 결론짓는다. 아스만이

이 책에서 추적하는 모세기억의 저자들 중마네톤, 스트라본, 톨런드, 프로이트는

모세를 민족적·문화적 의미에서 진정한 이집트인으로 보았고, 스펜서, 커드워

스, 워버턴, 라인홀트, 그리고 실러는 모세가 규범에충실한 유대인이지만 이집트

의 지혜와 신비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보고 있다. 아스만은 모세구별로

인해 이렇게 기억담론에서도 많은 갈등이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유럽과 오리엔트

사이에(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지속적으로 있어왔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모세에 대한 기억을

담론으로 삼은 학자들 중 특별히 프로이트에 대해서만 탐구해보겠다.

아스만은 서구 역사에서 ‘이집트인 모세’ 담론이 다양한형식으로 지속되었으

나 프로이트의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 에 와서 결정적 전기를 맞았다고

판단한다. 프로이트는 모세 텍스트에는 억압과 망각의 기제로 만들어진, 말하지

않은 텍스트가 있는데, 그것이 위에서 언급한 ‘그 사람 모세’라는 표현에서

실천되었다고 본다. 문화적 기억은 전통의 구어문화에서끊임없이 재작업되었는

데회상의 현재에 상응하지 않는 부분은폐기되고망각되었다. 그리고 구어문화

는 폐기되고 망각된 기억을 보존할 저장수단이 없었다. 다만 우리가 다룬 성서

텍스트는 문어문화가 시작되면서 남긴 구어문화의 흔적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읽은망각, 잠복, 왜곡으로서의 모세 이야기는 성서의 것과는 다르다.

성서의 모세는 동일인의 역사가 아니며, 동일한 저자에 의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이스라엘사람들이 모세에게 반기를 들고 그를 살해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적용, 원시적 아버지의 살해에 대한 그의 문화이론을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할 순 없다 하더라도 텍스트에 감추어진, 또는 흔적으로

남겨진 억압된 것의회귀개념에 대해서는 진지하게검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

면 오늘날프로이트로거슬러올라가는 흔적과망각을 중심으로 한 기억담론에

32) Vgl. Gerhard Kaiser: War der Exodus der Sündenfall? Fragen an Jan Assmann anläßlich seiner Monographie „Moses der Ägypter“. In: Zeitschrift für Theologie und Kirche 98 (2001), 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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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 변학수 217

는 아스만이 말한 소위 “문화적 망각”33)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료로서의 아케나톤의 아마르나 혁명이 소실되었고, 그것이 ‘그 사람 모세’의

텍스트에 침묵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억압, 즉 망각이라는

형식의 기억술이 된다는 사실이다. 모세가 많은 이집트인의 규범을 포함하고

있는데도 히브리인으로서의 모세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규범전도34)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규범전도에서는 거절되고 부정된 것만이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규범전도는 타자의 기억을 생생하게 보존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권력자

의 것이고 권력자에 의한 규범전도는 반드시 반기억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아스만의 이런견해는 텍스트에 대한 많은 새로운 생각을 가져왔음에 틀림없

다. 그러나 그의 이론이 수용이론이나 담론이론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은 비판받아야한다. 그가 모세에 대한 기억에 기여한 학자들을 다룬방식이

프로이트의 텍스트와는 성격 상 다르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때문에 필자는

이 논문에서 그의 모든 텍스트가 아니라 기억의 특성에따른담론에만 국한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프로이트가 진지하게 생각한 것처럼문화적망각은 분명한

억압이 잠복되어 있었다는 가설을 통해서만 정당화된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

기억이론은 수용이론, 담론이론과 구별된다.

VI. 마치는 말

성경 텍스트의 흔적,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작업에서 찾을 수 있는 흔적이

우리는 프로이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았다. 이미 그것은 프로이트가

33) 문화적 망각이란 문화적 기억에 대한 대비 개념으로서 구어적 전통사회에서 일어난다. 현재의 관심사에 더 이상 의미 있게 상응하지 못하는 기억들은 폐기되고 망각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폐기된 지식을 저장할 수단을 갖추지 못한 구어사회와는 달리

프로이트가 바라본 ‘성서’ 같은 문어문화에서 그런 폐기된 지식은 그의 이론으로 볼

때 보관될 수 있다. Jan Assmann, a.a.O., S. 278. 아스만, 같은 책 380면을 참조하라.34) 규범전도란 마이모니데스가 제일 먼저 규명한 성서의 이집트 유래에 관한 견해로서,

이집트 다신교의 많은 것을 유대교가 받아들이고 난 후, 그 규범과 반대 되게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이집트인의 다신교는 유대교에서 우상숭배가 된다. 아스만, 이짐트인

모세, 63면 이하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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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독일문학 | 제115집

쓴 다른논문들에서도발견되고 있다. 프로이트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이 제목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화적 기억의 핵심어다. 그는 이 말 ‘그 사람 모세’를

히브리 성경에서 차용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인간 모세’라는 번역을 택할

수는없다. 설령 그것이영어 스트레이치 Strachy판의 제목에서 번역한 것일지라

도 분명한 프로이트의 의도를 읽기 위해서는 ‘그 사람 모세’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는 이 저작을 기억사나 담론사에 대한 관점으로 작업하

지는 않았다. 이미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토템과 타부에서 그려낸 ‘아버지 살해’의

개념을 역사에서 찾으려했던 것이 그의 의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업적이

모세에 대한 기억사의 일부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버지 살해와 억압에 대한 연구나 모세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 우리가

신뢰할 수 없지만 과거에 대한 관점, 즉 기억담론의 일부분으로서 프로이트의

억압과 잠복이론은 문화적 기억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담론의 특성을 아스만은 “과거는 현재에 의해 만들어지고, 창안되

며, 재창안 되거나 재구성 된다”35)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기억담론은 객관적

증거와 대조해보지 않고는 역사적 자료로 유효하지 않으며, 주어진 기억의

진실은 그 ‘실제성’보다는 ‘현실성’에 더 큰 무게를 둔다. 왜냐하면 기억은 어떤

집단에서 살아남지 않는 한소멸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펴본 ‘그 사람 모세와

유일신교’가 오늘날기억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모세라는 인물

이, 또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모세구별이 서구의 문화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또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세가 이집트인인

가 아닌가라는 실제적 사실보다,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파악하려 하는 현실적인

담론이 더 중요하게 부상하는 것은 변화하는 현실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프로이트의 모세담론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규범전도를 통해 억압되어망각된 부분은 텍스트에 강한 인상을남긴다는

것이다. 즉, 기억된 것은거절된 것이고 나아가 부정된 것이라는 역설적 해석방법

이다. 모세가 히브리인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규범전도에는 모세가 이집트인의

강한 규범을갖고 있다는 반기억의 이론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가 과거에 부여하

35) 아스만, 이집트인 모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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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 변학수 219

는 중요성이 부각할수록특정한 기억은 타자의 기억, 즉 반기억을 강하게망각하

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이트와 아스만의 기억담론은 기억에 대한 접근을

대단히 선택적으로 만드는 규범에 대한 연구라고 할 것이다. 아버지 살해에

대한 억압된 의식을 연구하여 토템과 타부의 이론을 입증하려던 프로이트의

모세 담론이 모세에 대한 기억사로, 망각의 기억술을 담론으로 삼은 이론으로

발전한 것을 계기로 필자는 이런 생각들이 특정한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반화할 수 있는 토대로 정립되고 그 연구범위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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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mund Freud, Totem und Tabu, in: ders. Gesammelte Werke IX, Frankfurt a.M.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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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mund Freud, Der Mann Moses und die monotheistische Religion, in: ders., Gesammelte We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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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mund Freud, und Arnold Zweig, Briefwechsel, hrsg. Ernst L. Freud, Frankfurt a. M. 1968.

Yosef Hayim Yerusalmi, Freud's Moses: Judaism Terminable and Interminable, Yal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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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Iser, Das Fiktive und das Imaginäre. Perspektiven literarischer Anthropologie, Frankf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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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Freuds Moses und Gedächtnisdiskurs

BYUN Hak-Su (Kyungpook National-Uni)

Diese Studie nimmt sich vor, an den Gedächtnisspuren in den Bibelausgaben, an der

Moses-Rezeption bei Michelangelo und nicht zuletzt an Freuds Auffassung des Moses

als Ägypter die Relevanz des Gedächtnisdiskurses aufzuzeigen. Es wird hier auch versu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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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모세와 기억담론 | 변학수 221

anhand der Freudschen Texte die Beziehung seiner Verdrängungstheorie zur

Mnemotechnik des Verdrängten zu behandeln. Ferner untersucht sie die Kontinuitäten

und Diskontinuitäten an der Textüberlieferung der Vergangenheit, die von der Gegenwart

rekonstruiert, modelliert und unter Umständen auch erfunden werden. Der Wert der

Arbeiten Freuds an den psychoanalytischen, kulturtheoretischen sowie

gedächtnisgeschichtlichen Fragestellungen besteht für uns nicht darin, die mögliche

Wahrheit von Überlieferungen herauszufinden, sondern diese als Phänomene des

Gedächtnisdiskurses bzw. kulturellen Gedächtnisses im Assmanschen Sinne zu studieren,

da sich Erinnerungen als verfälscht, verzerrt, erfunden oder künstlich implantiert

erweisen.

Freuds Modell der Bibellektüre beruht auf dem Prinzip der erfolgreichen Verdrängung

und Wiederkehr des Verdrängten. Freud impliziert, an der Gedächtnisspur nicht den

Inhalt der biblischen Traditon zu lesen, vielmehr hat er festgestellt, der Mord am Urvater

sei wieder an der Moses-Episode subsumiert. Der Konflikt der Bibellektüre entsteht mit

der Wiederkehr des Verdrängten, die in Schüben und Wiederholungen vor sich geht.

Moses, auch gegebenenfalls die (historische) Lehre Echnatons als des Einen Vatergottes

weckte die im Ägyptischen, vergrabenen Erinnerungen an die Herrschaft des Urvaters.

Ich vermag weder an Freuds in Totem und Tabu geschilderte Theorie noch an seine

Vorstellung vom Mord Moses von seinen Völkern zu glauben. Trotzdem halte ich seine

Idee der kulturellen Latenz für eine wichtige Einsicht für das kulturelle Gedächtnis. Er

hat uns nachhaltig darauf aufmerksam gemacht, dass es auch auf der Ebene der Kultur

Phänomene von Erinnern, Vergessen und Verdrägen gibt, zu deren Erklärung nach

Assmann die herkömmlichen Begriffe wie Tradition und Rezeption nicht ausreichen.

Das kulturelle Gedächtnis wird in mündlicher Tradition fortwährend umgearbeitet.

Das Gedächtnis, d.h. die Elemente der Vergangenheit, die zu der sich wandelnden

Gegenwart nicht mehr in irgendeiner bedeutungsvollen Beziehung stehen, werden

ausgeschieden und vergessen. Schriftlose Gesellschaften verfügen über keinerlei

Speicherungsmedien für unbrauchbares Wissen. Ebensowenig kennen sie Techniken

bewusster Gedächtnisverformung und -vernichtung. Das alles beginnt erst mit 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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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chriftung des kulturellen Gedächtnisses. Die Untersuchung, die hier an ‘dem Mann

Moses’ durchgeführt wird, zeigt, dass man hier nicht nur vom Vergessen, sondern vom

historischen Trauma und der Verdrängung sprechen muss. Der bestimmte

Geschichtsinhalt geriet für einen bestimmten Zeitraum in Vergessenheit. Dieser lässt sich

heute aufgrund seiner Spuren als Gegenerinnerung nur zusammensetzen.

Was man noch am Freudschen Text zu lesen vermag, ist die normative Inversion, die

andere Technik der Erinnerung. An den Textspuren wird das Verworfene und damit das

Vergessene weder verdrängt noch verschwiegen, sondern im Gegenteil in Erinnerung

behalten: nicht um seiner selbst willen, sondern als Gegenerinnerung der eigenen

Erinnerung. Entsprechend der Assmannschen Auffassung sind wir dem Motiv der

normativen Inversion in den außerbiblischen Texten begegnet, die sich auf Moses den

Ägypter beziehen und seine Gesetzgebung als Inversion ägyptischer Sitte denunzieren.

Man versteht nur, wer man ist, wenn man weiß, gegen wen man sich abgrenzt und was

man hinter sich gelassen hat. Diese Form der Erinnerung ist die Mnemotechnik des

Vergessens. Und sie stellt sich den Bestandteil des Gedächtnisdiskurses dar, den Freud

schon zu seiner Zeit vorweggenommen hat.

주제어: 기억, 반기억, 기억담론, 흔적, 문화적 기억, 억압

Schlüsselbegriffe: Erinnerung, Gegenerinnerung, Gedächtnisdiskurs, Spur, Kulturelles

Gedächtnis, Verdrängung

필자 이메일 주소: [email protected]

투고일: 2010. 07. 10 | 심사일: 2010. 08. 05 | 심사완료일: 2010. 0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