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담소담_실비처럼 젖어들다, 흘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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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교육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교육, 소소하지만 소중한 삶의 경험들 말이지요. 교바사는 인터뷰프로젝트 '소담소담'을 통해 이러한 교육적 고민과 삶의 경험을 지니 사람들을 만나려 합니다. 이들과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나눈느 소박한 이야기들을 모으로 퍼뜨려 서로 공감의 에너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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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의 소담소담 _실비처럼 젖어들다, 흘러가다

비가 오락가락 내리던 7 월 어느 날 오전, 마포구 서교동 근처에서 공간 '릴라'에서 우리는

실비(본명: 황윤호성)를 만났다. 실비를 어떤 이라 설명해야 할까하고 물었더니 본인도

명확한 답을 내놓진 못했다. 지역주민과 소모임 활동을 하거나, 시를 쓰거나 아니면 아예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고 대답한다는 실비, 그는 누구일까?

실비는 성장학교 별(www.schoolstar.net/)에서의 자원교사를 인연으로 대안교육에 발을 담갔

다. 이어 성미산학교(www.sungmisan.net/)에서 길잡이 교사를 지내다가 올해 마음 맞는 동네

주민, 삐삐롱스타킹과 아난도를 만나 휴식과 치유의 문화 공간 릴라

(cafe.naver.com/spaceleela)를 차렸다. 골방 영화, 시낭송회, 티베탄 펄싱 요가, 우쿨렐레 배우

기 등 다양한 활동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실비(황윤호성). 그가 어디

에서부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실비의 이야기를 듣기 전 우리가 그에게 가졌던 오해부터 풀고 가자.

오해 하나, 실비란 이름을 처음 듣고 우린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실비는 파란 화면의 PC통신 시절부터 썼던 닉네임으로 가느다란 비란 뜻이다. 가랑비처럼

자작자작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붙였단다. (허나 학생들은 비실이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하던 날씨랑 제법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오해 둘, '사진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며 호들갑을 떠는 우리에게 '제 나이…, 그렇게 적지 않

아요.' 하고 말을 꺼낸다. 뭐? 국민 MC 유재석과 동갑이라구?

오해 셋, 참! 실비, 모범생이라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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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법학 전공'이라는 배경 탓인지 당연 모범생의 삶을 살아왔을 거라 착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때 얌전히 교실에서 수업만 듣진 않았다고. 대학도 학적에 이름만 올랐

을 뿐 동아리 활동에 전념했다. 어찌됐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어떻게든 한다는 느낌이다. 경

직된 모범생의 이미지는 절대 아니지만 심지 굳은 삶을 살아왔음은 확실하다.

#1 실비의 평생 꿈, 교사

"교생 실습 다녀오고 나서 이거 큰일 났다고 생각했어요."

법학도란 이름으로 대학 생활을 하던 순간에도 실비의 꿈은 교사였다. 아이들에게 문학의

낭만과 꿈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 낭만적이지 않은가? 꿈에 대한 망설임은 없었다. 서른 살

에 교원자격증을 따고 교생 실습을 나가기 전까진 말이다. 교문에서 규정을 어긴 아이들을

잡아 어색한 반말(?)로 혼을 낸 뒤 벌점을 매겨야 하고, 수업 때면 아이들 반 이상은 엎드려

자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뭘 해주고 있는 거지?

애들을 망치고 있는 거 아닌가?’

그 의문이 바로 대안교육의 시작이었다. 몇몇 야학이 10대들을 위한 도시형대안학교로 전환

하던 시절, 처음으로 연락하여 인연이 닿은 곳이 성장학교 ‘별’(당시 ‘치유적 대안학교 별’)이

었다. 전공인 국어 과목은 이미 강사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을 가르치게 되었다. (인연이 되

려고 했던 건지 실비는 음악도 아주 좋아했다.) 대안교육에서는 배우는 과목을 칼로 자르듯

이 구분하지 않기도 한다. 시가 곧 노래요, 노래가 시가 되니까. 그렇게 평생 교사를 꿈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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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는 여러 공간을 거쳐 현재도 여전히 공간 민들레(http://www.flyingmindle.or.kr/)에서 시

쓰기, 성미산 학교에서 노래 부르기를 가르치고 있다.

#2 ‘릴라’, 신의 놀이터

"모두들 이제 그만 워~워~ 하시라고요."

실비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간 공간 릴라, ‘신의 놀이’라는 뜻을 가진 마포지역 문화 공동

체다. 그래서 모자란 질문을 해봤다. '평생 교사를 꿈꾼다고 해놓고, 왜 놀아요?'

실비에게 놀이는 또 다른 배움이다. 새로운 길이 보이는 대로 걸어 왔다던 실비, 그 길에서

동네 주민 삐삐롱스타킹과 아난도를 만났고, 뜻을 모아 릴라를 만들었다. 실비는 이곳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쉬고, 배우고, 그러면서 놀고 있다.

성미산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도 지역 안에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해왔던 실비. 이

제 그는 행동반경을 아예 커뮤니티 단위로 넓혔다. 왕성한 공동체 활동을 하는 지역 사람들

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가정집 구조의 릴라, 방 한 켠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 오

는 사람들만 오는, 지역 커뮤니티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간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걱정에 실비

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은 릴라를 찾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데로 가서 놀면 되지 않을

까요?’라고 답한다. 아하!

그럼에도 릴라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성미산 마을 공동체 중심으로 운영되리라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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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에게 성미산 마을 주민이란 '성미산 마을과 그 공동체가 하는 일

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였다. 실제로 특정 지역 기반의 사람들보다는 온라인 카페를 통해 다

양한 곳에서 혼자, 혹은 짝을 이뤄 찾아온다. 찾아와서 수줍게 시간을 보내더라도 이 공간의

문을 두드리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용기다. 용기 있는 자가 릴라의 휴식을, 배움을, 놀이를

차지한다.

사진출처 : 릴라_healing&art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spaceleela)

#3 실비, 음악을 들려줘

"우리만의 음악회를 즐기자!"

그는 현재 릴라에서 우쿨렐레 강습을 소모임으로 진행하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학원 강습

처럼 진도에 맞춰 숙제를 내주고 연습하는 식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세

달, 그러니까 딱 12번, 그들만의 음악회를 '같이' 만들어 보자는 것. 그것이 실비가 꿈꾸는

이상적인 소모임이다. 멤버들이 칠 수 있는 코드가 두 가지뿐이라면 그 두 개의 코드로 가

능한 노래를 실비가 편곡해 오고 힘께 차 마시며 연주하고, 노래도 불러보는 식이다. 물론

음악회와 학원 수업 사이의 줄타기를 할 때도 있다. 배우는 사람의 욕구와 수준은 제각각

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실비가 추구하는 음악은 완벽한 마스터피스가 아니다. 생활에 쫓겨

지친 사람들에게 주말마다 모여 같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휴식, 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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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의 소담소담 _실비처럼 젖어들다, 흘러가다

#4 실패를 담담하게 외치는 교사 실비에게 교육을 묻다

"실패는 실패다"

실비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절대 강제로 시키지 않는다. 아이의 ‘하기 싫어’라는 말에는 생

각지 못한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고 믿는다. 칭찬 받을 만하지 않는데 칭찬하면 오히려 아

이의 동기가 꺾인다. 대신 열심히 했다고, 과정에 대한 사실적인 칭찬을 한다. 한편 무리하

게 결과물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즉 실패로 인정하고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의 실패 선언에 우는 아이도 더러 있

다. 하지만 실비는 본인이 도와줌으로써 그 일을 어떻게든 성사시키는 것보다 학생들 스스

로 일군(!)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이 더 값지다고 믿는다. 한번은 실패라고 공언한 책 만들

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야 학생들끼리 따로 책을 만들어냈다는 연락을 받은 적도 있었

다. 실비에겐 이게 바로 성공이다. 늦더라도 지켜 낸 약속 말이다. (그럼에도 학교의 중점이

프로젝트라면 그에 대한 타협이나 조정도 필요하다. 교사-학생-학교의 균형과 융통성 또한

실비에겐 중요하다.)

'진정한 배움’에 대한 질문이 실비를 교사의 자리로 이끌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시작과 끝엔 ‘민주교육’이 있다고 했다. 민주교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기만의

자연스러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민주교육은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하나는 남에게 피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 두 번째는 혼자가 아닌 모임에서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비율로 의사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죠."

교육에 관한 한 새로운 길이 보이면 보이는 대로 걷겠다던 실비. 역시 실비는 아니라고 말

해도 그는 모범적이다. 동시에 자유롭다.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며 원하는 것도 못 찾은 이

들, 열심히 활동해도 즐겁게 쉬는 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잡이'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이런 사람이, 이런 공간이 우리 사무실과 지척이니, 너도

나도 발걸음을 재촉할 일이다. 쉼과 놀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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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와의 소담소담 _실비처럼 젖어들다, 흘러가다

실비의 영상 인터뷰는 http://vimeo.com/2757146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