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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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873/tkl.2017. 77. 337> 한국문학논총 제77(2017. 12) 337~362‘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 손영목의 거제도 를 중심으로 1) 변 화 영 ** 차 례 1. 들어가는 말 2. 전쟁포로,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 망의 접점 4. 거제도, 망각된 기억들의 흔적 찾 5. 맺음말 국문초록 이 논문은 손영목의 거제도를 연구대상으로 하여 거제포로수용소에 서 이루어지는 전쟁포로들의 일상을 거주민들과 피란민들과의 관계 속 에서 살펴보는 한편, 기억과 흔적을 통해 그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존 재하지 않는 전쟁포로에 대한 존재를 규명해 보았다. 1950년대 거제도는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곳 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 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였다.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을 거제포로 * 이 논문은 한국문학회 주최 2015년 추계 전국학술대회(인제대학교, 2015. 12. 5) 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보완한 것임. ** 전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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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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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논총 제77집(2017 12) 337~362쪽

lsquo거제도rsquo의 쟁포로에 한 기억과 흔

-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를 심으로

1)변 화

차 례

1 들어가는 말

2 전쟁포로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

망의 접점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적 찾

5 맺음말

국문 록

이 논문은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를 연구대상으로 하여 거제포로수용소에

서 이루어지는 전쟁포로들의 일상을 거주민들과 피란민들과의 관계 속

에서 살펴보는 한편 기억과 흔적을 통해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금rsquo은 존

재하지 않는 전쟁포로에 대한 존재를 규명해 보았다

1950년대 거제도는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곳

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

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을 거제포로

이 논문은 한국문학회 주최 2015년 추계 전국학술대회(인제대학교 2015 12 5)

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보완한 것임

전북대학교

33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수용소를 접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과 복원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중요한 문학적

통로이다 총 18장의 장편소설 985172거제도985173의 서사가 거제포로수용소를 구

심점으로 하여 크게 세 갈래 이야기로 구성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lsquo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rsquo에는 전쟁포로가 남긴 유물들로 구성된

물질적 흔적만 파편적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이곳은 전쟁포로들의 저항

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

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는

괴리되어 있다 하지만 985172거제도985173에서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물질

적 혹은 비물질적인 흔적들로 아주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985172거제도985173에는 전쟁포로의 존재를 규명할 수 있는 비물질적인 흔적까

지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다 이는 작가 손 목이 자신의 경험기억뿐 아

니라 lsquo그때 그곳rsquo 1950년대 거제도에 살았던 거주민 피란민 전쟁포로들

의 경험기억들까지 사실적으로 서사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

사화 과정에서 공식 서술에서 망각되거나 왜곡된 친공포로 혹은 지나치

게 기억되거나 부각된 반공포로에 대해 균열을 낸 985172거제도985173는 포로수용

소를 단순한 소재나 배경으로 삼았던 다른 작품들과 변별되는 의미 있

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주제어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거제도 거제포로수용소 전쟁포로 기억

흔적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39

1 들어가는 말

한국현대사에서 거제도가 전면적으로 부각된 것은 한국전쟁 시기 거

제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부터 다 1950년 11월 27일 조성되기 시작

하여 1954년 유엔군 천백여 명과 북한군 십삼만여 명의 포로교환이 성

사될 때까지 존재해 있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제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건축물이다 반공포로들은 석방되고

친공포로들은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송환된 이후 거제포로수용소에는

전쟁포로들이 생활했던 막사 및 일부 유물들만 남았다 잔해만 남아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되

었으며 1997년에는 lsquo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rsquo이라는 이름으로 재단

장 되었다 1999년 개관한 이래 2015년 2월 13일 유료 관람객 천만 명을

돌파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명실 공히 거제시의 대표적인 lsquo관

광 명소rsquo가 되었다

포로수용소가 잔존 유적으로 지정된 뒤 2002년 11월에 준공되어 지금

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1) lsquo그때 그곳rsquo lsquo거제포

로수용소rsquo 던 자리에 파편화된 흔적 조각들을 모아 복원해서 lsquo지금 여

기rsquo lsquo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rsquo을 만든 것이다 물론 그 흔적들이란

파편 중의 파편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흔적들은 공식 역사에 의해 과거

의 의미 가운데 일부만 복원되었다 반공규율의 적합여부에 맞춰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탄생되었기 때문에 복원된 여러 흔적들은 기억

과 망각 사이를 조율한 결과이기도 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서는 유적관을 개설해 lsquo반공rsquo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교육장으로 활용2)

하고 있어 한국전쟁에 대한 공식 역사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조력하고

1)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학이론연

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72쪽

2)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233쪽

34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있다고 할 수 있다 흔적이 기억과 망각을 불가분하게 연결하는 이중의

기호3)라면 기념관뿐 아니라 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한 전후소설들4) 또한

이러한 흔적의 이중적 성격을 노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강용준5)의 「철조망」(1960)

과 이건숙의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985173(1989)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2006)를 꼽

을 수 있다 강용준의 「철조망」에 등장하는 반공청년 민수는 탈출을 시

도하다 철조망에 매달려 죽은 문제적 인물이긴 하나 친공포로의 잔혹성

을 고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 반공 성향이 강하다 이건숙의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985173는 해외 입양 소년 민구가 분단의 땅에서 아버지를 찾아 헤

매는 이야기가 그 주요 내용으로 거제포로수용소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와 달리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는 포로수용소 안에서 생활했

던 친공포로 혹은 반공포로의 성격이 기존의 공식 기억과 다르게 서술

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전쟁포로의 존재가 거주민 및 피란민들의 삶

과 긴 하게 얽혀 있음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1950년대 초반 lsquo그때rsquo 거제도에 있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첨예한 기억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않으려면 후세의 문화기억으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3)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 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학교출판

부 2003 287쪽

4) 1950년대 발표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일반적으로 친공포로들이

반공포로를 상대로 일으킨 대량 학살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데 초점이 있다 곽학

송의 「녹염」(1955) 장용학의 「요한시집」(1955) 오상원의 「죽음에의 훈련」(1955)

이호철의 「나상」(1956) 등은 친공포로의 잔혹성과 학살의 과정이 서술(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50-51쪽)된 소설들이다

물론 이 작품들이 반공을 국민국가 형성의 기본 틀로 삼았던 시기에 발표되었다

는 점에서 보면 이들 대부분은 반공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5) 강용준은 황해도 출신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다가 유

엔군의 포로가 되어 부산 거제 광주 등의 포로수용소에서 3년 간 수용소 생활을

한 작가이다(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

심으로」 985172작문연구985173 제12집 한국작문학회 2011 56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1

이때 개입되는 정치나 미디어가 경험기억이 지닌 진정성을 왜곡하기 때

문이다 생생하고 개인적인 기억이 인위적인 문화기억으로 이행되는 과

정에서 기억은 왜곡되거나 축소되거나 도구화 될 위험성이 다분히 있

다6) 하지만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러한 기억의 조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정치와 무관한 문학적 미디어이다 무엇보다도 저자 손 목은 거

제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7) 때문에 거제도와 관련된 그의 기억은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8)이다 집합기억이 형성될 때 가장 중요한 사회

적 틀이 장소라면9)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한 작가의 집합기억은 사회적

기억이기도 하다

과거에 이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통로란 유물 역사 기억이 서로 결

합될 때 마련된다10) 거제포로수용소가 존재해 있었던 1950년대의 과거

6) 알라이다 아스만 앞의 책 18쪽

7) 985172거제도985173의 작가 손 목은 분단이 되던 1945년 거제시 옥포동 팔랑포에서 태어

나 능포동(장승포 느태마을)에서 자랐다 어장주 던 아버지를 따라 선창이나 어

장으로 다니며 장승포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그는 6학년 때 가족을 따라 마산으

로 이사하기까지 12년 동안 거제도에서 살았다(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32-233쪽) 1982년에 발표된 최초의 장

편소설 985172풍화985173를 비롯하여 「빙화」 「잠수부의 잠」 「마목과 바가지」 「어장선」 「파

도의 노래」 「고향의 흙」 「닭죽」 「한류」 「형님」 등은 작가가 유년기에 살았던

거제도가 원공간이다(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 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54쪽) 즉 lsquo거제도rsquo는 손

목의 작품들을 이루는 토대이자 독자들이 손 목 소설들에서 만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8) 손 목은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연초면 송정리나 이모네가 사는 수월리를 오가

며 전쟁포로들이 노역을 하고 포로수용소 외곽 철조망을 통해 물물교환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를 집필하기 이전부터 작가 손 목은 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전쟁포로 던 사람들과 거제시민들 피란민들을 직접 만나

듣거나 혹은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손 목 「나의 거제

도」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 301-307쪽 참조)

9) 임은진 「6middot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

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9쪽

10)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원 2006

558쪽

34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유형의 유물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합의에 의해 성립되어 집단적 인식을 속시키기는 역사

에 의존할 수도 없다 유물과 역사는 기억과 상호 연결되어야 만이 비로

소 과거에 이르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다 작가 손 목의 경험기억뿐 아

니라 lsquo그때 그곳rsquo 1950년대 거제도에 살았던 거주민 피란민 전쟁포로들

의 경험기억들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물 및

역사와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수십 명의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

란민들의 기억과 목소리가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여진 985172거제도985173는 잔존

유물과 공식 기억의 역사가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던 전쟁포로들의 기억

과 흔적을 담아낸 중요한 문학적 통로라고 할 수 있다

985172거제도985173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거제도는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 그리고 흥남

철수를 계기로 려 내려온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졌던 장소 다 따

라서 거제도에 산재해 있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middot무형의 잔재들

은 전쟁포로를 알 수 있는 흔적11)이자 거주민 및 피란민의 물리적 세계

와도 연결되는 기억의 보고이다

본 연구는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 등장하는 전쟁포로들의 일상을 기억

과 흔적을 통해 접근하고 그 일상이 갖는 의미를 거제도에서 살아가는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985172거제도985173가 지

닌 문학적 의의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2 쟁포로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

985172거제도985173는 총 18장으로 구성된 두 권짜리 장편소설이다 985172거제도985173의

11)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

간호 문화과학사 2001 184쪽 참조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3

서사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최윤학윤석규진상

용이 배치된 64수용소를 중심으로 한 전쟁포로들 이야기 상동리 이장

옥치조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함흥 출신 임덕현을 주축으로 한 피란민

들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갈래 이야기 중에서도 거제포로수용

소에서 생활하는 전쟁포로의 일상이 중심핵이다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64수용소에 배치된 최윤학과

윤석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서로 다른 성

향의 공산포로들이다 일반적으로 공산포로는 남한이냐 북한이냐 하는

출신 지역의 차이와 친공이냐 반공이냐 하는 이념에 의해 구별되었다12)

최윤학은 남한(서울) 출신의 의용군이며 윤석규는 북한(성천) 출신의

인민군이다 최윤학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친공포로이지만 진중

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반면 윤석규는 민간억류자로 판정

받아 석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 섣부른 감정을 자제하는 인물

이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1951년 2월 초 부산에서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된

1진 포로들이다13) 북한의 전시동원령에 모집된 남한 출신 의용군들이

먼저 이송된 것은 북한 출신 인민군 가운데 섞여 있는 민간 억류자들을

12) 서은주 앞의 논문 47쪽

13) 거제포로수용소는 완전히 건설되지 못한 채 먼저 1951년 2월 4일 포로 3015명

이 이동했고 2월 말까지 53839명이 이송되었다 4월 중순에는 93776명이 수용

되어 인원이 초과되자 추가로 10만 명 규모의 수용소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과 운용 병력이 부족해 이 계획은 축소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수용소 본

부 제8137헌병단 제64병원 제6 7 8 9구역 및 특별 동으로 건설되었다 각 구

역은 60단위 70단위 80단위 90단위로 불렸다 60단위 수용소에는 남한 출신

의용군 포로들이 배치되었다(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선인 2010 80-81쪽)

제6구역인 60수용소에서 69수용소까지 평균 6000명의 포로가 수용되었으며 60

명 단위로 한 막사에 배치되었다 중공군 포로는 약 2만 명으로 그 중에서 매일

lsquo죽어도 장제스가 있는 타이완으로rsquo를 외치는 반공포로는 72수용소에 나머지 공

산 및 중도파 포로는 86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포로가 17만 명이 넘어서자 관리

당국은 포로관리가 쉽지 않아 포로자치제를 도입했다

34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분리해 내고 싶었던 유엔군사령부의 의도가 개입된 결과 다 유엔군의

미흡한 분류심사 과정을 파악하고 있던 윤석규는 고향을 경기도라고 속

여 포로 이송 1진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사실은 심사의 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던 그 다 심사관 앞

에 서면 자기는 형식만의 의용군이었을 뿐 완전한 민간인이라고 우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석방자 대열에 서고 말겠다는 각

오 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감정노출로 약점을 드러낼까봐 조심에 조심

을 거듭하고 있었다(1 65-66쪽)14)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반발하며 대항하는 아버지가 총살당한 이후로

공산당에 대한 증오가 깊어졌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군 정규 인민군으로 소속되어 전장에 참가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공 청년에 가까웠다 분류심사 때 경기도 출신

의용군으로 위장해 석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했으나 이북 억

양으로 인해 심사관에게 정체만 들통 나 결국 77수용소로 재배치되었다

77수용소가 위치해 있는 수월리 제7구역은 72중공군수용소만 제외하고

는 북한 인민군 포로수용소 다 친공포로가 대다수인 77수용소에는 민

간인 억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픈 아내를 친정에 맡기고 열 살

된 아들 동오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김병수가 대표적인 민간인 억류

자 다

남한 의용군으로 통칭되는 포로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출신과 사상은

물론 가치관과 환경에 따라 그 성향이 가지각색인데도 유엔군은 이들을

제대로 심사해서 분류하지 않았다 이에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되었다15) 뒤이어 포로 송환 문제가 발생하자 두 진

14)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본 논문의 인용문에 게재된 두 개의 숫자

중 왼쪽은 책의 권수를 오른쪽은 이 책의 쪽수를 나타냄)

15) 친공포로 수용소와 반공포로 수용소의 양극화 현상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

서 개최된 휴전협상 직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1951년 6월 18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5

사이에서 폭동과 학살이 자주 일어났다 친공포로 수용소 못지않게 이승

만 정권의 비호를 lsquo은 하게rsquo 받고 있던 lsquo대한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

로 수용소에서도 폭동을 주도했다

휴전회담이 무기한 지연되는 동안 자유송환을 요구하는 반공포로와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친공포로 간의 이념 전쟁이 매일같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기탑경쟁이나 투석전은 소일거리로 정착될 만큼 포로들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경쟁은 날이 밝으면서부터 이른바 lsquo기탑경쟁(旗塔競爭)이라는 희

한한 기세싸움으로 시작되곤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태극기를

게양한 반공수용소 깃봉과 인공기를 게양한 공산수용소 깃봉 중에 어느

쪽이 높은가에 따라 한쪽은 득의의 함성이 커지고 다른 쪽은 분노의 탄

식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다란 깃봉을 장만하느라

혈안이 되고 깃봉 자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깃봉을 지지

하는 기탑을 한밤중의 작업으로 높게 개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

어졌다 그러다가 한쪽이 애국가와 반공청년단가로 기세를 올리면 다른

쪽은 인공애국가와 적기가로 대응하고 거기서 더 발전되면 투석전이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이런 일상들은 치열한 사상적 대립에서 오

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이미 소일거리의 하나일 뿐이었다(2 78쪽)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에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일대 균

일 72수용소에서의 식사 거부 사건을 들 수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8월 15

일에는 해방 기념일 노래 제창 9월 17일에는 송환을 위한 심사 거부 등이 발생

했고 이듬해 1952년 2월 18일에는 62수용소의 분류심사 거부와 여론 조작이 있

었다(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

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8-158쪽 참조)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가 1953년 6월에 비로소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포로 문제가 장기화된 데에는 포로의 송환 원칙을 둘러싸

고 유엔군 측과 북한 측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북한으로 송환을 거

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가 서로 극단적으로 맞서 유혈사

태를 빚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적게는 3~4 명에서 많게는 약 400명의 전쟁포

로들이 죽어나가는 학살로 이어졌다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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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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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2: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3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수용소를 접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과 복원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중요한 문학적

통로이다 총 18장의 장편소설 985172거제도985173의 서사가 거제포로수용소를 구

심점으로 하여 크게 세 갈래 이야기로 구성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lsquo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rsquo에는 전쟁포로가 남긴 유물들로 구성된

물질적 흔적만 파편적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이곳은 전쟁포로들의 저항

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

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는

괴리되어 있다 하지만 985172거제도985173에서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물질

적 혹은 비물질적인 흔적들로 아주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985172거제도985173에는 전쟁포로의 존재를 규명할 수 있는 비물질적인 흔적까

지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다 이는 작가 손 목이 자신의 경험기억뿐 아

니라 lsquo그때 그곳rsquo 1950년대 거제도에 살았던 거주민 피란민 전쟁포로들

의 경험기억들까지 사실적으로 서사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

사화 과정에서 공식 서술에서 망각되거나 왜곡된 친공포로 혹은 지나치

게 기억되거나 부각된 반공포로에 대해 균열을 낸 985172거제도985173는 포로수용

소를 단순한 소재나 배경으로 삼았던 다른 작품들과 변별되는 의미 있

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주제어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거제도 거제포로수용소 전쟁포로 기억

흔적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39

1 들어가는 말

한국현대사에서 거제도가 전면적으로 부각된 것은 한국전쟁 시기 거

제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부터 다 1950년 11월 27일 조성되기 시작

하여 1954년 유엔군 천백여 명과 북한군 십삼만여 명의 포로교환이 성

사될 때까지 존재해 있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제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건축물이다 반공포로들은 석방되고

친공포로들은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송환된 이후 거제포로수용소에는

전쟁포로들이 생활했던 막사 및 일부 유물들만 남았다 잔해만 남아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되

었으며 1997년에는 lsquo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rsquo이라는 이름으로 재단

장 되었다 1999년 개관한 이래 2015년 2월 13일 유료 관람객 천만 명을

돌파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명실 공히 거제시의 대표적인 lsquo관

광 명소rsquo가 되었다

포로수용소가 잔존 유적으로 지정된 뒤 2002년 11월에 준공되어 지금

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1) lsquo그때 그곳rsquo lsquo거제포

로수용소rsquo 던 자리에 파편화된 흔적 조각들을 모아 복원해서 lsquo지금 여

기rsquo lsquo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rsquo을 만든 것이다 물론 그 흔적들이란

파편 중의 파편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흔적들은 공식 역사에 의해 과거

의 의미 가운데 일부만 복원되었다 반공규율의 적합여부에 맞춰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탄생되었기 때문에 복원된 여러 흔적들은 기억

과 망각 사이를 조율한 결과이기도 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서는 유적관을 개설해 lsquo반공rsquo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교육장으로 활용2)

하고 있어 한국전쟁에 대한 공식 역사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조력하고

1)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학이론연

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72쪽

2)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233쪽

34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있다고 할 수 있다 흔적이 기억과 망각을 불가분하게 연결하는 이중의

기호3)라면 기념관뿐 아니라 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한 전후소설들4) 또한

이러한 흔적의 이중적 성격을 노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강용준5)의 「철조망」(1960)

과 이건숙의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985173(1989)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2006)를 꼽

을 수 있다 강용준의 「철조망」에 등장하는 반공청년 민수는 탈출을 시

도하다 철조망에 매달려 죽은 문제적 인물이긴 하나 친공포로의 잔혹성

을 고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 반공 성향이 강하다 이건숙의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985173는 해외 입양 소년 민구가 분단의 땅에서 아버지를 찾아 헤

매는 이야기가 그 주요 내용으로 거제포로수용소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와 달리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는 포로수용소 안에서 생활했

던 친공포로 혹은 반공포로의 성격이 기존의 공식 기억과 다르게 서술

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전쟁포로의 존재가 거주민 및 피란민들의 삶

과 긴 하게 얽혀 있음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1950년대 초반 lsquo그때rsquo 거제도에 있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첨예한 기억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않으려면 후세의 문화기억으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3)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 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학교출판

부 2003 287쪽

4) 1950년대 발표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일반적으로 친공포로들이

반공포로를 상대로 일으킨 대량 학살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데 초점이 있다 곽학

송의 「녹염」(1955) 장용학의 「요한시집」(1955) 오상원의 「죽음에의 훈련」(1955)

이호철의 「나상」(1956) 등은 친공포로의 잔혹성과 학살의 과정이 서술(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50-51쪽)된 소설들이다

물론 이 작품들이 반공을 국민국가 형성의 기본 틀로 삼았던 시기에 발표되었다

는 점에서 보면 이들 대부분은 반공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5) 강용준은 황해도 출신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다가 유

엔군의 포로가 되어 부산 거제 광주 등의 포로수용소에서 3년 간 수용소 생활을

한 작가이다(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

심으로」 985172작문연구985173 제12집 한국작문학회 2011 56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1

이때 개입되는 정치나 미디어가 경험기억이 지닌 진정성을 왜곡하기 때

문이다 생생하고 개인적인 기억이 인위적인 문화기억으로 이행되는 과

정에서 기억은 왜곡되거나 축소되거나 도구화 될 위험성이 다분히 있

다6) 하지만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러한 기억의 조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정치와 무관한 문학적 미디어이다 무엇보다도 저자 손 목은 거

제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7) 때문에 거제도와 관련된 그의 기억은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8)이다 집합기억이 형성될 때 가장 중요한 사회

적 틀이 장소라면9)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한 작가의 집합기억은 사회적

기억이기도 하다

과거에 이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통로란 유물 역사 기억이 서로 결

합될 때 마련된다10) 거제포로수용소가 존재해 있었던 1950년대의 과거

6) 알라이다 아스만 앞의 책 18쪽

7) 985172거제도985173의 작가 손 목은 분단이 되던 1945년 거제시 옥포동 팔랑포에서 태어

나 능포동(장승포 느태마을)에서 자랐다 어장주 던 아버지를 따라 선창이나 어

장으로 다니며 장승포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그는 6학년 때 가족을 따라 마산으

로 이사하기까지 12년 동안 거제도에서 살았다(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32-233쪽) 1982년에 발표된 최초의 장

편소설 985172풍화985173를 비롯하여 「빙화」 「잠수부의 잠」 「마목과 바가지」 「어장선」 「파

도의 노래」 「고향의 흙」 「닭죽」 「한류」 「형님」 등은 작가가 유년기에 살았던

거제도가 원공간이다(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 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54쪽) 즉 lsquo거제도rsquo는 손

목의 작품들을 이루는 토대이자 독자들이 손 목 소설들에서 만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8) 손 목은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연초면 송정리나 이모네가 사는 수월리를 오가

며 전쟁포로들이 노역을 하고 포로수용소 외곽 철조망을 통해 물물교환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를 집필하기 이전부터 작가 손 목은 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전쟁포로 던 사람들과 거제시민들 피란민들을 직접 만나

듣거나 혹은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손 목 「나의 거제

도」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 301-307쪽 참조)

9) 임은진 「6middot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

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9쪽

10)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원 2006

558쪽

34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유형의 유물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합의에 의해 성립되어 집단적 인식을 속시키기는 역사

에 의존할 수도 없다 유물과 역사는 기억과 상호 연결되어야 만이 비로

소 과거에 이르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다 작가 손 목의 경험기억뿐 아

니라 lsquo그때 그곳rsquo 1950년대 거제도에 살았던 거주민 피란민 전쟁포로들

의 경험기억들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물 및

역사와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수십 명의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

란민들의 기억과 목소리가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여진 985172거제도985173는 잔존

유물과 공식 기억의 역사가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던 전쟁포로들의 기억

과 흔적을 담아낸 중요한 문학적 통로라고 할 수 있다

985172거제도985173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거제도는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 그리고 흥남

철수를 계기로 려 내려온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졌던 장소 다 따

라서 거제도에 산재해 있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middot무형의 잔재들

은 전쟁포로를 알 수 있는 흔적11)이자 거주민 및 피란민의 물리적 세계

와도 연결되는 기억의 보고이다

본 연구는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 등장하는 전쟁포로들의 일상을 기억

과 흔적을 통해 접근하고 그 일상이 갖는 의미를 거제도에서 살아가는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985172거제도985173가 지

닌 문학적 의의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2 쟁포로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

985172거제도985173는 총 18장으로 구성된 두 권짜리 장편소설이다 985172거제도985173의

11)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

간호 문화과학사 2001 184쪽 참조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3

서사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최윤학윤석규진상

용이 배치된 64수용소를 중심으로 한 전쟁포로들 이야기 상동리 이장

옥치조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함흥 출신 임덕현을 주축으로 한 피란민

들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갈래 이야기 중에서도 거제포로수용

소에서 생활하는 전쟁포로의 일상이 중심핵이다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64수용소에 배치된 최윤학과

윤석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서로 다른 성

향의 공산포로들이다 일반적으로 공산포로는 남한이냐 북한이냐 하는

출신 지역의 차이와 친공이냐 반공이냐 하는 이념에 의해 구별되었다12)

최윤학은 남한(서울) 출신의 의용군이며 윤석규는 북한(성천) 출신의

인민군이다 최윤학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친공포로이지만 진중

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반면 윤석규는 민간억류자로 판정

받아 석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 섣부른 감정을 자제하는 인물

이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1951년 2월 초 부산에서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된

1진 포로들이다13) 북한의 전시동원령에 모집된 남한 출신 의용군들이

먼저 이송된 것은 북한 출신 인민군 가운데 섞여 있는 민간 억류자들을

12) 서은주 앞의 논문 47쪽

13) 거제포로수용소는 완전히 건설되지 못한 채 먼저 1951년 2월 4일 포로 3015명

이 이동했고 2월 말까지 53839명이 이송되었다 4월 중순에는 93776명이 수용

되어 인원이 초과되자 추가로 10만 명 규모의 수용소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과 운용 병력이 부족해 이 계획은 축소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수용소 본

부 제8137헌병단 제64병원 제6 7 8 9구역 및 특별 동으로 건설되었다 각 구

역은 60단위 70단위 80단위 90단위로 불렸다 60단위 수용소에는 남한 출신

의용군 포로들이 배치되었다(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선인 2010 80-81쪽)

제6구역인 60수용소에서 69수용소까지 평균 6000명의 포로가 수용되었으며 60

명 단위로 한 막사에 배치되었다 중공군 포로는 약 2만 명으로 그 중에서 매일

lsquo죽어도 장제스가 있는 타이완으로rsquo를 외치는 반공포로는 72수용소에 나머지 공

산 및 중도파 포로는 86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포로가 17만 명이 넘어서자 관리

당국은 포로관리가 쉽지 않아 포로자치제를 도입했다

34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분리해 내고 싶었던 유엔군사령부의 의도가 개입된 결과 다 유엔군의

미흡한 분류심사 과정을 파악하고 있던 윤석규는 고향을 경기도라고 속

여 포로 이송 1진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사실은 심사의 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던 그 다 심사관 앞

에 서면 자기는 형식만의 의용군이었을 뿐 완전한 민간인이라고 우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석방자 대열에 서고 말겠다는 각

오 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감정노출로 약점을 드러낼까봐 조심에 조심

을 거듭하고 있었다(1 65-66쪽)14)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반발하며 대항하는 아버지가 총살당한 이후로

공산당에 대한 증오가 깊어졌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군 정규 인민군으로 소속되어 전장에 참가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공 청년에 가까웠다 분류심사 때 경기도 출신

의용군으로 위장해 석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했으나 이북 억

양으로 인해 심사관에게 정체만 들통 나 결국 77수용소로 재배치되었다

77수용소가 위치해 있는 수월리 제7구역은 72중공군수용소만 제외하고

는 북한 인민군 포로수용소 다 친공포로가 대다수인 77수용소에는 민

간인 억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픈 아내를 친정에 맡기고 열 살

된 아들 동오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김병수가 대표적인 민간인 억류

자 다

남한 의용군으로 통칭되는 포로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출신과 사상은

물론 가치관과 환경에 따라 그 성향이 가지각색인데도 유엔군은 이들을

제대로 심사해서 분류하지 않았다 이에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되었다15) 뒤이어 포로 송환 문제가 발생하자 두 진

14)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본 논문의 인용문에 게재된 두 개의 숫자

중 왼쪽은 책의 권수를 오른쪽은 이 책의 쪽수를 나타냄)

15) 친공포로 수용소와 반공포로 수용소의 양극화 현상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

서 개최된 휴전협상 직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1951년 6월 18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5

사이에서 폭동과 학살이 자주 일어났다 친공포로 수용소 못지않게 이승

만 정권의 비호를 lsquo은 하게rsquo 받고 있던 lsquo대한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

로 수용소에서도 폭동을 주도했다

휴전회담이 무기한 지연되는 동안 자유송환을 요구하는 반공포로와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친공포로 간의 이념 전쟁이 매일같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기탑경쟁이나 투석전은 소일거리로 정착될 만큼 포로들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경쟁은 날이 밝으면서부터 이른바 lsquo기탑경쟁(旗塔競爭)이라는 희

한한 기세싸움으로 시작되곤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태극기를

게양한 반공수용소 깃봉과 인공기를 게양한 공산수용소 깃봉 중에 어느

쪽이 높은가에 따라 한쪽은 득의의 함성이 커지고 다른 쪽은 분노의 탄

식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다란 깃봉을 장만하느라

혈안이 되고 깃봉 자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깃봉을 지지

하는 기탑을 한밤중의 작업으로 높게 개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

어졌다 그러다가 한쪽이 애국가와 반공청년단가로 기세를 올리면 다른

쪽은 인공애국가와 적기가로 대응하고 거기서 더 발전되면 투석전이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이런 일상들은 치열한 사상적 대립에서 오

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이미 소일거리의 하나일 뿐이었다(2 78쪽)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에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일대 균

일 72수용소에서의 식사 거부 사건을 들 수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8월 15

일에는 해방 기념일 노래 제창 9월 17일에는 송환을 위한 심사 거부 등이 발생

했고 이듬해 1952년 2월 18일에는 62수용소의 분류심사 거부와 여론 조작이 있

었다(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

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8-158쪽 참조)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가 1953년 6월에 비로소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포로 문제가 장기화된 데에는 포로의 송환 원칙을 둘러싸

고 유엔군 측과 북한 측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북한으로 송환을 거

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가 서로 극단적으로 맞서 유혈사

태를 빚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적게는 3~4 명에서 많게는 약 400명의 전쟁포

로들이 죽어나가는 학살로 이어졌다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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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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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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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3: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39

1 들어가는 말

한국현대사에서 거제도가 전면적으로 부각된 것은 한국전쟁 시기 거

제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부터 다 1950년 11월 27일 조성되기 시작

하여 1954년 유엔군 천백여 명과 북한군 십삼만여 명의 포로교환이 성

사될 때까지 존재해 있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제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 건축물이다 반공포로들은 석방되고

친공포로들은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송환된 이후 거제포로수용소에는

전쟁포로들이 생활했던 막사 및 일부 유물들만 남았다 잔해만 남아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되

었으며 1997년에는 lsquo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rsquo이라는 이름으로 재단

장 되었다 1999년 개관한 이래 2015년 2월 13일 유료 관람객 천만 명을

돌파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명실 공히 거제시의 대표적인 lsquo관

광 명소rsquo가 되었다

포로수용소가 잔존 유적으로 지정된 뒤 2002년 11월에 준공되어 지금

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2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1) lsquo그때 그곳rsquo lsquo거제포

로수용소rsquo 던 자리에 파편화된 흔적 조각들을 모아 복원해서 lsquo지금 여

기rsquo lsquo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rsquo을 만든 것이다 물론 그 흔적들이란

파편 중의 파편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흔적들은 공식 역사에 의해 과거

의 의미 가운데 일부만 복원되었다 반공규율의 적합여부에 맞춰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탄생되었기 때문에 복원된 여러 흔적들은 기억

과 망각 사이를 조율한 결과이기도 하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서는 유적관을 개설해 lsquo반공rsquo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교육장으로 활용2)

하고 있어 한국전쟁에 대한 공식 역사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조력하고

1)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학이론연

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72쪽

2)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233쪽

34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있다고 할 수 있다 흔적이 기억과 망각을 불가분하게 연결하는 이중의

기호3)라면 기념관뿐 아니라 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한 전후소설들4) 또한

이러한 흔적의 이중적 성격을 노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강용준5)의 「철조망」(1960)

과 이건숙의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985173(1989)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2006)를 꼽

을 수 있다 강용준의 「철조망」에 등장하는 반공청년 민수는 탈출을 시

도하다 철조망에 매달려 죽은 문제적 인물이긴 하나 친공포로의 잔혹성

을 고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 반공 성향이 강하다 이건숙의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985173는 해외 입양 소년 민구가 분단의 땅에서 아버지를 찾아 헤

매는 이야기가 그 주요 내용으로 거제포로수용소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와 달리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는 포로수용소 안에서 생활했

던 친공포로 혹은 반공포로의 성격이 기존의 공식 기억과 다르게 서술

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전쟁포로의 존재가 거주민 및 피란민들의 삶

과 긴 하게 얽혀 있음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1950년대 초반 lsquo그때rsquo 거제도에 있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첨예한 기억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않으려면 후세의 문화기억으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3)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 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학교출판

부 2003 287쪽

4) 1950년대 발표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일반적으로 친공포로들이

반공포로를 상대로 일으킨 대량 학살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데 초점이 있다 곽학

송의 「녹염」(1955) 장용학의 「요한시집」(1955) 오상원의 「죽음에의 훈련」(1955)

이호철의 「나상」(1956) 등은 친공포로의 잔혹성과 학살의 과정이 서술(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50-51쪽)된 소설들이다

물론 이 작품들이 반공을 국민국가 형성의 기본 틀로 삼았던 시기에 발표되었다

는 점에서 보면 이들 대부분은 반공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5) 강용준은 황해도 출신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다가 유

엔군의 포로가 되어 부산 거제 광주 등의 포로수용소에서 3년 간 수용소 생활을

한 작가이다(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

심으로」 985172작문연구985173 제12집 한국작문학회 2011 56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1

이때 개입되는 정치나 미디어가 경험기억이 지닌 진정성을 왜곡하기 때

문이다 생생하고 개인적인 기억이 인위적인 문화기억으로 이행되는 과

정에서 기억은 왜곡되거나 축소되거나 도구화 될 위험성이 다분히 있

다6) 하지만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러한 기억의 조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정치와 무관한 문학적 미디어이다 무엇보다도 저자 손 목은 거

제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7) 때문에 거제도와 관련된 그의 기억은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8)이다 집합기억이 형성될 때 가장 중요한 사회

적 틀이 장소라면9)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한 작가의 집합기억은 사회적

기억이기도 하다

과거에 이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통로란 유물 역사 기억이 서로 결

합될 때 마련된다10) 거제포로수용소가 존재해 있었던 1950년대의 과거

6) 알라이다 아스만 앞의 책 18쪽

7) 985172거제도985173의 작가 손 목은 분단이 되던 1945년 거제시 옥포동 팔랑포에서 태어

나 능포동(장승포 느태마을)에서 자랐다 어장주 던 아버지를 따라 선창이나 어

장으로 다니며 장승포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그는 6학년 때 가족을 따라 마산으

로 이사하기까지 12년 동안 거제도에서 살았다(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32-233쪽) 1982년에 발표된 최초의 장

편소설 985172풍화985173를 비롯하여 「빙화」 「잠수부의 잠」 「마목과 바가지」 「어장선」 「파

도의 노래」 「고향의 흙」 「닭죽」 「한류」 「형님」 등은 작가가 유년기에 살았던

거제도가 원공간이다(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 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54쪽) 즉 lsquo거제도rsquo는 손

목의 작품들을 이루는 토대이자 독자들이 손 목 소설들에서 만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8) 손 목은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연초면 송정리나 이모네가 사는 수월리를 오가

며 전쟁포로들이 노역을 하고 포로수용소 외곽 철조망을 통해 물물교환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를 집필하기 이전부터 작가 손 목은 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전쟁포로 던 사람들과 거제시민들 피란민들을 직접 만나

듣거나 혹은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손 목 「나의 거제

도」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 301-307쪽 참조)

9) 임은진 「6middot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

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9쪽

10)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원 2006

558쪽

34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유형의 유물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합의에 의해 성립되어 집단적 인식을 속시키기는 역사

에 의존할 수도 없다 유물과 역사는 기억과 상호 연결되어야 만이 비로

소 과거에 이르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다 작가 손 목의 경험기억뿐 아

니라 lsquo그때 그곳rsquo 1950년대 거제도에 살았던 거주민 피란민 전쟁포로들

의 경험기억들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물 및

역사와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수십 명의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

란민들의 기억과 목소리가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여진 985172거제도985173는 잔존

유물과 공식 기억의 역사가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던 전쟁포로들의 기억

과 흔적을 담아낸 중요한 문학적 통로라고 할 수 있다

985172거제도985173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거제도는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 그리고 흥남

철수를 계기로 려 내려온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졌던 장소 다 따

라서 거제도에 산재해 있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middot무형의 잔재들

은 전쟁포로를 알 수 있는 흔적11)이자 거주민 및 피란민의 물리적 세계

와도 연결되는 기억의 보고이다

본 연구는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 등장하는 전쟁포로들의 일상을 기억

과 흔적을 통해 접근하고 그 일상이 갖는 의미를 거제도에서 살아가는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985172거제도985173가 지

닌 문학적 의의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2 쟁포로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

985172거제도985173는 총 18장으로 구성된 두 권짜리 장편소설이다 985172거제도985173의

11)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

간호 문화과학사 2001 184쪽 참조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3

서사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최윤학윤석규진상

용이 배치된 64수용소를 중심으로 한 전쟁포로들 이야기 상동리 이장

옥치조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함흥 출신 임덕현을 주축으로 한 피란민

들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갈래 이야기 중에서도 거제포로수용

소에서 생활하는 전쟁포로의 일상이 중심핵이다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64수용소에 배치된 최윤학과

윤석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서로 다른 성

향의 공산포로들이다 일반적으로 공산포로는 남한이냐 북한이냐 하는

출신 지역의 차이와 친공이냐 반공이냐 하는 이념에 의해 구별되었다12)

최윤학은 남한(서울) 출신의 의용군이며 윤석규는 북한(성천) 출신의

인민군이다 최윤학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친공포로이지만 진중

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반면 윤석규는 민간억류자로 판정

받아 석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 섣부른 감정을 자제하는 인물

이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1951년 2월 초 부산에서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된

1진 포로들이다13) 북한의 전시동원령에 모집된 남한 출신 의용군들이

먼저 이송된 것은 북한 출신 인민군 가운데 섞여 있는 민간 억류자들을

12) 서은주 앞의 논문 47쪽

13) 거제포로수용소는 완전히 건설되지 못한 채 먼저 1951년 2월 4일 포로 3015명

이 이동했고 2월 말까지 53839명이 이송되었다 4월 중순에는 93776명이 수용

되어 인원이 초과되자 추가로 10만 명 규모의 수용소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과 운용 병력이 부족해 이 계획은 축소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수용소 본

부 제8137헌병단 제64병원 제6 7 8 9구역 및 특별 동으로 건설되었다 각 구

역은 60단위 70단위 80단위 90단위로 불렸다 60단위 수용소에는 남한 출신

의용군 포로들이 배치되었다(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선인 2010 80-81쪽)

제6구역인 60수용소에서 69수용소까지 평균 6000명의 포로가 수용되었으며 60

명 단위로 한 막사에 배치되었다 중공군 포로는 약 2만 명으로 그 중에서 매일

lsquo죽어도 장제스가 있는 타이완으로rsquo를 외치는 반공포로는 72수용소에 나머지 공

산 및 중도파 포로는 86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포로가 17만 명이 넘어서자 관리

당국은 포로관리가 쉽지 않아 포로자치제를 도입했다

34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분리해 내고 싶었던 유엔군사령부의 의도가 개입된 결과 다 유엔군의

미흡한 분류심사 과정을 파악하고 있던 윤석규는 고향을 경기도라고 속

여 포로 이송 1진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사실은 심사의 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던 그 다 심사관 앞

에 서면 자기는 형식만의 의용군이었을 뿐 완전한 민간인이라고 우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석방자 대열에 서고 말겠다는 각

오 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감정노출로 약점을 드러낼까봐 조심에 조심

을 거듭하고 있었다(1 65-66쪽)14)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반발하며 대항하는 아버지가 총살당한 이후로

공산당에 대한 증오가 깊어졌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군 정규 인민군으로 소속되어 전장에 참가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공 청년에 가까웠다 분류심사 때 경기도 출신

의용군으로 위장해 석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했으나 이북 억

양으로 인해 심사관에게 정체만 들통 나 결국 77수용소로 재배치되었다

77수용소가 위치해 있는 수월리 제7구역은 72중공군수용소만 제외하고

는 북한 인민군 포로수용소 다 친공포로가 대다수인 77수용소에는 민

간인 억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픈 아내를 친정에 맡기고 열 살

된 아들 동오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김병수가 대표적인 민간인 억류

자 다

남한 의용군으로 통칭되는 포로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출신과 사상은

물론 가치관과 환경에 따라 그 성향이 가지각색인데도 유엔군은 이들을

제대로 심사해서 분류하지 않았다 이에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되었다15) 뒤이어 포로 송환 문제가 발생하자 두 진

14)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본 논문의 인용문에 게재된 두 개의 숫자

중 왼쪽은 책의 권수를 오른쪽은 이 책의 쪽수를 나타냄)

15) 친공포로 수용소와 반공포로 수용소의 양극화 현상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

서 개최된 휴전협상 직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1951년 6월 18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5

사이에서 폭동과 학살이 자주 일어났다 친공포로 수용소 못지않게 이승

만 정권의 비호를 lsquo은 하게rsquo 받고 있던 lsquo대한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

로 수용소에서도 폭동을 주도했다

휴전회담이 무기한 지연되는 동안 자유송환을 요구하는 반공포로와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친공포로 간의 이념 전쟁이 매일같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기탑경쟁이나 투석전은 소일거리로 정착될 만큼 포로들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경쟁은 날이 밝으면서부터 이른바 lsquo기탑경쟁(旗塔競爭)이라는 희

한한 기세싸움으로 시작되곤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태극기를

게양한 반공수용소 깃봉과 인공기를 게양한 공산수용소 깃봉 중에 어느

쪽이 높은가에 따라 한쪽은 득의의 함성이 커지고 다른 쪽은 분노의 탄

식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다란 깃봉을 장만하느라

혈안이 되고 깃봉 자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깃봉을 지지

하는 기탑을 한밤중의 작업으로 높게 개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

어졌다 그러다가 한쪽이 애국가와 반공청년단가로 기세를 올리면 다른

쪽은 인공애국가와 적기가로 대응하고 거기서 더 발전되면 투석전이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이런 일상들은 치열한 사상적 대립에서 오

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이미 소일거리의 하나일 뿐이었다(2 78쪽)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에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일대 균

일 72수용소에서의 식사 거부 사건을 들 수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8월 15

일에는 해방 기념일 노래 제창 9월 17일에는 송환을 위한 심사 거부 등이 발생

했고 이듬해 1952년 2월 18일에는 62수용소의 분류심사 거부와 여론 조작이 있

었다(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

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8-158쪽 참조)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가 1953년 6월에 비로소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포로 문제가 장기화된 데에는 포로의 송환 원칙을 둘러싸

고 유엔군 측과 북한 측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북한으로 송환을 거

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가 서로 극단적으로 맞서 유혈사

태를 빚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적게는 3~4 명에서 많게는 약 400명의 전쟁포

로들이 죽어나가는 학살로 이어졌다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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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4: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4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있다고 할 수 있다 흔적이 기억과 망각을 불가분하게 연결하는 이중의

기호3)라면 기념관뿐 아니라 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한 전후소설들4) 또한

이러한 흔적의 이중적 성격을 노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강용준5)의 「철조망」(1960)

과 이건숙의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985173(1989)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2006)를 꼽

을 수 있다 강용준의 「철조망」에 등장하는 반공청년 민수는 탈출을 시

도하다 철조망에 매달려 죽은 문제적 인물이긴 하나 친공포로의 잔혹성

을 고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 반공 성향이 강하다 이건숙의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985173는 해외 입양 소년 민구가 분단의 땅에서 아버지를 찾아 헤

매는 이야기가 그 주요 내용으로 거제포로수용소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와 달리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는 포로수용소 안에서 생활했

던 친공포로 혹은 반공포로의 성격이 기존의 공식 기억과 다르게 서술

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전쟁포로의 존재가 거주민 및 피란민들의 삶

과 긴 하게 얽혀 있음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1950년대 초반 lsquo그때rsquo 거제도에 있었던 거제포로수용소는 첨예한 기억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않으려면 후세의 문화기억으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3)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 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학교출판

부 2003 287쪽

4) 1950년대 발표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일반적으로 친공포로들이

반공포로를 상대로 일으킨 대량 학살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데 초점이 있다 곽학

송의 「녹염」(1955) 장용학의 「요한시집」(1955) 오상원의 「죽음에의 훈련」(1955)

이호철의 「나상」(1956) 등은 친공포로의 잔혹성과 학살의 과정이 서술(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50-51쪽)된 소설들이다

물론 이 작품들이 반공을 국민국가 형성의 기본 틀로 삼았던 시기에 발표되었다

는 점에서 보면 이들 대부분은 반공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5) 강용준은 황해도 출신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다가 유

엔군의 포로가 되어 부산 거제 광주 등의 포로수용소에서 3년 간 수용소 생활을

한 작가이다(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

심으로」 985172작문연구985173 제12집 한국작문학회 2011 56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1

이때 개입되는 정치나 미디어가 경험기억이 지닌 진정성을 왜곡하기 때

문이다 생생하고 개인적인 기억이 인위적인 문화기억으로 이행되는 과

정에서 기억은 왜곡되거나 축소되거나 도구화 될 위험성이 다분히 있

다6) 하지만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러한 기억의 조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정치와 무관한 문학적 미디어이다 무엇보다도 저자 손 목은 거

제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7) 때문에 거제도와 관련된 그의 기억은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8)이다 집합기억이 형성될 때 가장 중요한 사회

적 틀이 장소라면9)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한 작가의 집합기억은 사회적

기억이기도 하다

과거에 이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통로란 유물 역사 기억이 서로 결

합될 때 마련된다10) 거제포로수용소가 존재해 있었던 1950년대의 과거

6) 알라이다 아스만 앞의 책 18쪽

7) 985172거제도985173의 작가 손 목은 분단이 되던 1945년 거제시 옥포동 팔랑포에서 태어

나 능포동(장승포 느태마을)에서 자랐다 어장주 던 아버지를 따라 선창이나 어

장으로 다니며 장승포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그는 6학년 때 가족을 따라 마산으

로 이사하기까지 12년 동안 거제도에서 살았다(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32-233쪽) 1982년에 발표된 최초의 장

편소설 985172풍화985173를 비롯하여 「빙화」 「잠수부의 잠」 「마목과 바가지」 「어장선」 「파

도의 노래」 「고향의 흙」 「닭죽」 「한류」 「형님」 등은 작가가 유년기에 살았던

거제도가 원공간이다(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 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54쪽) 즉 lsquo거제도rsquo는 손

목의 작품들을 이루는 토대이자 독자들이 손 목 소설들에서 만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8) 손 목은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연초면 송정리나 이모네가 사는 수월리를 오가

며 전쟁포로들이 노역을 하고 포로수용소 외곽 철조망을 통해 물물교환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를 집필하기 이전부터 작가 손 목은 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전쟁포로 던 사람들과 거제시민들 피란민들을 직접 만나

듣거나 혹은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손 목 「나의 거제

도」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 301-307쪽 참조)

9) 임은진 「6middot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

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9쪽

10)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원 2006

558쪽

34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유형의 유물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합의에 의해 성립되어 집단적 인식을 속시키기는 역사

에 의존할 수도 없다 유물과 역사는 기억과 상호 연결되어야 만이 비로

소 과거에 이르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다 작가 손 목의 경험기억뿐 아

니라 lsquo그때 그곳rsquo 1950년대 거제도에 살았던 거주민 피란민 전쟁포로들

의 경험기억들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물 및

역사와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수십 명의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

란민들의 기억과 목소리가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여진 985172거제도985173는 잔존

유물과 공식 기억의 역사가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던 전쟁포로들의 기억

과 흔적을 담아낸 중요한 문학적 통로라고 할 수 있다

985172거제도985173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거제도는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 그리고 흥남

철수를 계기로 려 내려온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졌던 장소 다 따

라서 거제도에 산재해 있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middot무형의 잔재들

은 전쟁포로를 알 수 있는 흔적11)이자 거주민 및 피란민의 물리적 세계

와도 연결되는 기억의 보고이다

본 연구는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 등장하는 전쟁포로들의 일상을 기억

과 흔적을 통해 접근하고 그 일상이 갖는 의미를 거제도에서 살아가는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985172거제도985173가 지

닌 문학적 의의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2 쟁포로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

985172거제도985173는 총 18장으로 구성된 두 권짜리 장편소설이다 985172거제도985173의

11)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

간호 문화과학사 2001 184쪽 참조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3

서사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최윤학윤석규진상

용이 배치된 64수용소를 중심으로 한 전쟁포로들 이야기 상동리 이장

옥치조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함흥 출신 임덕현을 주축으로 한 피란민

들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갈래 이야기 중에서도 거제포로수용

소에서 생활하는 전쟁포로의 일상이 중심핵이다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64수용소에 배치된 최윤학과

윤석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서로 다른 성

향의 공산포로들이다 일반적으로 공산포로는 남한이냐 북한이냐 하는

출신 지역의 차이와 친공이냐 반공이냐 하는 이념에 의해 구별되었다12)

최윤학은 남한(서울) 출신의 의용군이며 윤석규는 북한(성천) 출신의

인민군이다 최윤학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친공포로이지만 진중

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반면 윤석규는 민간억류자로 판정

받아 석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 섣부른 감정을 자제하는 인물

이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1951년 2월 초 부산에서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된

1진 포로들이다13) 북한의 전시동원령에 모집된 남한 출신 의용군들이

먼저 이송된 것은 북한 출신 인민군 가운데 섞여 있는 민간 억류자들을

12) 서은주 앞의 논문 47쪽

13) 거제포로수용소는 완전히 건설되지 못한 채 먼저 1951년 2월 4일 포로 3015명

이 이동했고 2월 말까지 53839명이 이송되었다 4월 중순에는 93776명이 수용

되어 인원이 초과되자 추가로 10만 명 규모의 수용소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과 운용 병력이 부족해 이 계획은 축소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수용소 본

부 제8137헌병단 제64병원 제6 7 8 9구역 및 특별 동으로 건설되었다 각 구

역은 60단위 70단위 80단위 90단위로 불렸다 60단위 수용소에는 남한 출신

의용군 포로들이 배치되었다(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선인 2010 80-81쪽)

제6구역인 60수용소에서 69수용소까지 평균 6000명의 포로가 수용되었으며 60

명 단위로 한 막사에 배치되었다 중공군 포로는 약 2만 명으로 그 중에서 매일

lsquo죽어도 장제스가 있는 타이완으로rsquo를 외치는 반공포로는 72수용소에 나머지 공

산 및 중도파 포로는 86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포로가 17만 명이 넘어서자 관리

당국은 포로관리가 쉽지 않아 포로자치제를 도입했다

34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분리해 내고 싶었던 유엔군사령부의 의도가 개입된 결과 다 유엔군의

미흡한 분류심사 과정을 파악하고 있던 윤석규는 고향을 경기도라고 속

여 포로 이송 1진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사실은 심사의 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던 그 다 심사관 앞

에 서면 자기는 형식만의 의용군이었을 뿐 완전한 민간인이라고 우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석방자 대열에 서고 말겠다는 각

오 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감정노출로 약점을 드러낼까봐 조심에 조심

을 거듭하고 있었다(1 65-66쪽)14)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반발하며 대항하는 아버지가 총살당한 이후로

공산당에 대한 증오가 깊어졌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군 정규 인민군으로 소속되어 전장에 참가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공 청년에 가까웠다 분류심사 때 경기도 출신

의용군으로 위장해 석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했으나 이북 억

양으로 인해 심사관에게 정체만 들통 나 결국 77수용소로 재배치되었다

77수용소가 위치해 있는 수월리 제7구역은 72중공군수용소만 제외하고

는 북한 인민군 포로수용소 다 친공포로가 대다수인 77수용소에는 민

간인 억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픈 아내를 친정에 맡기고 열 살

된 아들 동오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김병수가 대표적인 민간인 억류

자 다

남한 의용군으로 통칭되는 포로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출신과 사상은

물론 가치관과 환경에 따라 그 성향이 가지각색인데도 유엔군은 이들을

제대로 심사해서 분류하지 않았다 이에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되었다15) 뒤이어 포로 송환 문제가 발생하자 두 진

14)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본 논문의 인용문에 게재된 두 개의 숫자

중 왼쪽은 책의 권수를 오른쪽은 이 책의 쪽수를 나타냄)

15) 친공포로 수용소와 반공포로 수용소의 양극화 현상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

서 개최된 휴전협상 직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1951년 6월 18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5

사이에서 폭동과 학살이 자주 일어났다 친공포로 수용소 못지않게 이승

만 정권의 비호를 lsquo은 하게rsquo 받고 있던 lsquo대한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

로 수용소에서도 폭동을 주도했다

휴전회담이 무기한 지연되는 동안 자유송환을 요구하는 반공포로와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친공포로 간의 이념 전쟁이 매일같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기탑경쟁이나 투석전은 소일거리로 정착될 만큼 포로들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경쟁은 날이 밝으면서부터 이른바 lsquo기탑경쟁(旗塔競爭)이라는 희

한한 기세싸움으로 시작되곤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태극기를

게양한 반공수용소 깃봉과 인공기를 게양한 공산수용소 깃봉 중에 어느

쪽이 높은가에 따라 한쪽은 득의의 함성이 커지고 다른 쪽은 분노의 탄

식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다란 깃봉을 장만하느라

혈안이 되고 깃봉 자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깃봉을 지지

하는 기탑을 한밤중의 작업으로 높게 개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

어졌다 그러다가 한쪽이 애국가와 반공청년단가로 기세를 올리면 다른

쪽은 인공애국가와 적기가로 대응하고 거기서 더 발전되면 투석전이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이런 일상들은 치열한 사상적 대립에서 오

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이미 소일거리의 하나일 뿐이었다(2 78쪽)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에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일대 균

일 72수용소에서의 식사 거부 사건을 들 수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8월 15

일에는 해방 기념일 노래 제창 9월 17일에는 송환을 위한 심사 거부 등이 발생

했고 이듬해 1952년 2월 18일에는 62수용소의 분류심사 거부와 여론 조작이 있

었다(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

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8-158쪽 참조)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가 1953년 6월에 비로소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포로 문제가 장기화된 데에는 포로의 송환 원칙을 둘러싸

고 유엔군 측과 북한 측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북한으로 송환을 거

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가 서로 극단적으로 맞서 유혈사

태를 빚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적게는 3~4 명에서 많게는 약 400명의 전쟁포

로들이 죽어나가는 학살로 이어졌다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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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5: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1

이때 개입되는 정치나 미디어가 경험기억이 지닌 진정성을 왜곡하기 때

문이다 생생하고 개인적인 기억이 인위적인 문화기억으로 이행되는 과

정에서 기억은 왜곡되거나 축소되거나 도구화 될 위험성이 다분히 있

다6) 하지만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러한 기억의 조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정치와 무관한 문학적 미디어이다 무엇보다도 저자 손 목은 거

제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7) 때문에 거제도와 관련된 그의 기억은 집합

기억(collective memory)8)이다 집합기억이 형성될 때 가장 중요한 사회

적 틀이 장소라면9) 거제포로수용소에 대한 작가의 집합기억은 사회적

기억이기도 하다

과거에 이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통로란 유물 역사 기억이 서로 결

합될 때 마련된다10) 거제포로수용소가 존재해 있었던 1950년대의 과거

6) 알라이다 아스만 앞의 책 18쪽

7) 985172거제도985173의 작가 손 목은 분단이 되던 1945년 거제시 옥포동 팔랑포에서 태어

나 능포동(장승포 느태마을)에서 자랐다 어장주 던 아버지를 따라 선창이나 어

장으로 다니며 장승포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그는 6학년 때 가족을 따라 마산으

로 이사하기까지 12년 동안 거제도에서 살았다(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32-233쪽) 1982년에 발표된 최초의 장

편소설 985172풍화985173를 비롯하여 「빙화」 「잠수부의 잠」 「마목과 바가지」 「어장선」 「파

도의 노래」 「고향의 흙」 「닭죽」 「한류」 「형님」 등은 작가가 유년기에 살았던

거제도가 원공간이다(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 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54쪽) 즉 lsquo거제도rsquo는 손

목의 작품들을 이루는 토대이자 독자들이 손 목 소설들에서 만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8) 손 목은 어린 시절 외가가 있는 연초면 송정리나 이모네가 사는 수월리를 오가

며 전쟁포로들이 노역을 하고 포로수용소 외곽 철조망을 통해 물물교환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를 집필하기 이전부터 작가 손 목은 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전쟁포로 던 사람들과 거제시민들 피란민들을 직접 만나

듣거나 혹은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손 목 「나의 거제

도」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 301-307쪽 참조)

9) 임은진 「6middot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

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9쪽

10)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원 2006

558쪽

34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유형의 유물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합의에 의해 성립되어 집단적 인식을 속시키기는 역사

에 의존할 수도 없다 유물과 역사는 기억과 상호 연결되어야 만이 비로

소 과거에 이르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다 작가 손 목의 경험기억뿐 아

니라 lsquo그때 그곳rsquo 1950년대 거제도에 살았던 거주민 피란민 전쟁포로들

의 경험기억들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물 및

역사와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수십 명의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

란민들의 기억과 목소리가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여진 985172거제도985173는 잔존

유물과 공식 기억의 역사가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던 전쟁포로들의 기억

과 흔적을 담아낸 중요한 문학적 통로라고 할 수 있다

985172거제도985173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거제도는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 그리고 흥남

철수를 계기로 려 내려온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졌던 장소 다 따

라서 거제도에 산재해 있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middot무형의 잔재들

은 전쟁포로를 알 수 있는 흔적11)이자 거주민 및 피란민의 물리적 세계

와도 연결되는 기억의 보고이다

본 연구는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 등장하는 전쟁포로들의 일상을 기억

과 흔적을 통해 접근하고 그 일상이 갖는 의미를 거제도에서 살아가는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985172거제도985173가 지

닌 문학적 의의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2 쟁포로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

985172거제도985173는 총 18장으로 구성된 두 권짜리 장편소설이다 985172거제도985173의

11)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

간호 문화과학사 2001 184쪽 참조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3

서사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최윤학윤석규진상

용이 배치된 64수용소를 중심으로 한 전쟁포로들 이야기 상동리 이장

옥치조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함흥 출신 임덕현을 주축으로 한 피란민

들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갈래 이야기 중에서도 거제포로수용

소에서 생활하는 전쟁포로의 일상이 중심핵이다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64수용소에 배치된 최윤학과

윤석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서로 다른 성

향의 공산포로들이다 일반적으로 공산포로는 남한이냐 북한이냐 하는

출신 지역의 차이와 친공이냐 반공이냐 하는 이념에 의해 구별되었다12)

최윤학은 남한(서울) 출신의 의용군이며 윤석규는 북한(성천) 출신의

인민군이다 최윤학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친공포로이지만 진중

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반면 윤석규는 민간억류자로 판정

받아 석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 섣부른 감정을 자제하는 인물

이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1951년 2월 초 부산에서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된

1진 포로들이다13) 북한의 전시동원령에 모집된 남한 출신 의용군들이

먼저 이송된 것은 북한 출신 인민군 가운데 섞여 있는 민간 억류자들을

12) 서은주 앞의 논문 47쪽

13) 거제포로수용소는 완전히 건설되지 못한 채 먼저 1951년 2월 4일 포로 3015명

이 이동했고 2월 말까지 53839명이 이송되었다 4월 중순에는 93776명이 수용

되어 인원이 초과되자 추가로 10만 명 규모의 수용소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과 운용 병력이 부족해 이 계획은 축소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수용소 본

부 제8137헌병단 제64병원 제6 7 8 9구역 및 특별 동으로 건설되었다 각 구

역은 60단위 70단위 80단위 90단위로 불렸다 60단위 수용소에는 남한 출신

의용군 포로들이 배치되었다(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선인 2010 80-81쪽)

제6구역인 60수용소에서 69수용소까지 평균 6000명의 포로가 수용되었으며 60

명 단위로 한 막사에 배치되었다 중공군 포로는 약 2만 명으로 그 중에서 매일

lsquo죽어도 장제스가 있는 타이완으로rsquo를 외치는 반공포로는 72수용소에 나머지 공

산 및 중도파 포로는 86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포로가 17만 명이 넘어서자 관리

당국은 포로관리가 쉽지 않아 포로자치제를 도입했다

34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분리해 내고 싶었던 유엔군사령부의 의도가 개입된 결과 다 유엔군의

미흡한 분류심사 과정을 파악하고 있던 윤석규는 고향을 경기도라고 속

여 포로 이송 1진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사실은 심사의 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던 그 다 심사관 앞

에 서면 자기는 형식만의 의용군이었을 뿐 완전한 민간인이라고 우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석방자 대열에 서고 말겠다는 각

오 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감정노출로 약점을 드러낼까봐 조심에 조심

을 거듭하고 있었다(1 65-66쪽)14)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반발하며 대항하는 아버지가 총살당한 이후로

공산당에 대한 증오가 깊어졌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군 정규 인민군으로 소속되어 전장에 참가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공 청년에 가까웠다 분류심사 때 경기도 출신

의용군으로 위장해 석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했으나 이북 억

양으로 인해 심사관에게 정체만 들통 나 결국 77수용소로 재배치되었다

77수용소가 위치해 있는 수월리 제7구역은 72중공군수용소만 제외하고

는 북한 인민군 포로수용소 다 친공포로가 대다수인 77수용소에는 민

간인 억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픈 아내를 친정에 맡기고 열 살

된 아들 동오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김병수가 대표적인 민간인 억류

자 다

남한 의용군으로 통칭되는 포로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출신과 사상은

물론 가치관과 환경에 따라 그 성향이 가지각색인데도 유엔군은 이들을

제대로 심사해서 분류하지 않았다 이에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되었다15) 뒤이어 포로 송환 문제가 발생하자 두 진

14)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본 논문의 인용문에 게재된 두 개의 숫자

중 왼쪽은 책의 권수를 오른쪽은 이 책의 쪽수를 나타냄)

15) 친공포로 수용소와 반공포로 수용소의 양극화 현상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

서 개최된 휴전협상 직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1951년 6월 18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5

사이에서 폭동과 학살이 자주 일어났다 친공포로 수용소 못지않게 이승

만 정권의 비호를 lsquo은 하게rsquo 받고 있던 lsquo대한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

로 수용소에서도 폭동을 주도했다

휴전회담이 무기한 지연되는 동안 자유송환을 요구하는 반공포로와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친공포로 간의 이념 전쟁이 매일같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기탑경쟁이나 투석전은 소일거리로 정착될 만큼 포로들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경쟁은 날이 밝으면서부터 이른바 lsquo기탑경쟁(旗塔競爭)이라는 희

한한 기세싸움으로 시작되곤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태극기를

게양한 반공수용소 깃봉과 인공기를 게양한 공산수용소 깃봉 중에 어느

쪽이 높은가에 따라 한쪽은 득의의 함성이 커지고 다른 쪽은 분노의 탄

식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다란 깃봉을 장만하느라

혈안이 되고 깃봉 자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깃봉을 지지

하는 기탑을 한밤중의 작업으로 높게 개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

어졌다 그러다가 한쪽이 애국가와 반공청년단가로 기세를 올리면 다른

쪽은 인공애국가와 적기가로 대응하고 거기서 더 발전되면 투석전이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이런 일상들은 치열한 사상적 대립에서 오

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이미 소일거리의 하나일 뿐이었다(2 78쪽)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에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일대 균

일 72수용소에서의 식사 거부 사건을 들 수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8월 15

일에는 해방 기념일 노래 제창 9월 17일에는 송환을 위한 심사 거부 등이 발생

했고 이듬해 1952년 2월 18일에는 62수용소의 분류심사 거부와 여론 조작이 있

었다(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

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8-158쪽 참조)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가 1953년 6월에 비로소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포로 문제가 장기화된 데에는 포로의 송환 원칙을 둘러싸

고 유엔군 측과 북한 측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북한으로 송환을 거

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가 서로 극단적으로 맞서 유혈사

태를 빚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적게는 3~4 명에서 많게는 약 400명의 전쟁포

로들이 죽어나가는 학살로 이어졌다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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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6: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4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있는 유형의 유물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합의에 의해 성립되어 집단적 인식을 속시키기는 역사

에 의존할 수도 없다 유물과 역사는 기억과 상호 연결되어야 만이 비로

소 과거에 이르는 통로가 생기는 것이다 작가 손 목의 경험기억뿐 아

니라 lsquo그때 그곳rsquo 1950년대 거제도에 살았던 거주민 피란민 전쟁포로들

의 경험기억들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물 및

역사와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수십 명의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

란민들의 기억과 목소리가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여진 985172거제도985173는 잔존

유물과 공식 기억의 역사가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던 전쟁포로들의 기억

과 흔적을 담아낸 중요한 문학적 통로라고 할 수 있다

985172거제도985173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거제도는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 그리고 흥남

철수를 계기로 려 내려온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졌던 장소 다 따

라서 거제도에 산재해 있는 거제포로수용소와 관련된 유middot무형의 잔재들

은 전쟁포로를 알 수 있는 흔적11)이자 거주민 및 피란민의 물리적 세계

와도 연결되는 기억의 보고이다

본 연구는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 등장하는 전쟁포로들의 일상을 기억

과 흔적을 통해 접근하고 그 일상이 갖는 의미를 거제도에서 살아가는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985172거제도985173가 지

닌 문학적 의의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2 쟁포로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

985172거제도985173는 총 18장으로 구성된 두 권짜리 장편소설이다 985172거제도985173의

11)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

간호 문화과학사 2001 184쪽 참조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3

서사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최윤학윤석규진상

용이 배치된 64수용소를 중심으로 한 전쟁포로들 이야기 상동리 이장

옥치조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함흥 출신 임덕현을 주축으로 한 피란민

들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갈래 이야기 중에서도 거제포로수용

소에서 생활하는 전쟁포로의 일상이 중심핵이다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64수용소에 배치된 최윤학과

윤석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서로 다른 성

향의 공산포로들이다 일반적으로 공산포로는 남한이냐 북한이냐 하는

출신 지역의 차이와 친공이냐 반공이냐 하는 이념에 의해 구별되었다12)

최윤학은 남한(서울) 출신의 의용군이며 윤석규는 북한(성천) 출신의

인민군이다 최윤학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친공포로이지만 진중

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반면 윤석규는 민간억류자로 판정

받아 석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 섣부른 감정을 자제하는 인물

이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1951년 2월 초 부산에서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된

1진 포로들이다13) 북한의 전시동원령에 모집된 남한 출신 의용군들이

먼저 이송된 것은 북한 출신 인민군 가운데 섞여 있는 민간 억류자들을

12) 서은주 앞의 논문 47쪽

13) 거제포로수용소는 완전히 건설되지 못한 채 먼저 1951년 2월 4일 포로 3015명

이 이동했고 2월 말까지 53839명이 이송되었다 4월 중순에는 93776명이 수용

되어 인원이 초과되자 추가로 10만 명 규모의 수용소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과 운용 병력이 부족해 이 계획은 축소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수용소 본

부 제8137헌병단 제64병원 제6 7 8 9구역 및 특별 동으로 건설되었다 각 구

역은 60단위 70단위 80단위 90단위로 불렸다 60단위 수용소에는 남한 출신

의용군 포로들이 배치되었다(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선인 2010 80-81쪽)

제6구역인 60수용소에서 69수용소까지 평균 6000명의 포로가 수용되었으며 60

명 단위로 한 막사에 배치되었다 중공군 포로는 약 2만 명으로 그 중에서 매일

lsquo죽어도 장제스가 있는 타이완으로rsquo를 외치는 반공포로는 72수용소에 나머지 공

산 및 중도파 포로는 86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포로가 17만 명이 넘어서자 관리

당국은 포로관리가 쉽지 않아 포로자치제를 도입했다

34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분리해 내고 싶었던 유엔군사령부의 의도가 개입된 결과 다 유엔군의

미흡한 분류심사 과정을 파악하고 있던 윤석규는 고향을 경기도라고 속

여 포로 이송 1진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사실은 심사의 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던 그 다 심사관 앞

에 서면 자기는 형식만의 의용군이었을 뿐 완전한 민간인이라고 우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석방자 대열에 서고 말겠다는 각

오 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감정노출로 약점을 드러낼까봐 조심에 조심

을 거듭하고 있었다(1 65-66쪽)14)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반발하며 대항하는 아버지가 총살당한 이후로

공산당에 대한 증오가 깊어졌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군 정규 인민군으로 소속되어 전장에 참가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공 청년에 가까웠다 분류심사 때 경기도 출신

의용군으로 위장해 석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했으나 이북 억

양으로 인해 심사관에게 정체만 들통 나 결국 77수용소로 재배치되었다

77수용소가 위치해 있는 수월리 제7구역은 72중공군수용소만 제외하고

는 북한 인민군 포로수용소 다 친공포로가 대다수인 77수용소에는 민

간인 억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픈 아내를 친정에 맡기고 열 살

된 아들 동오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김병수가 대표적인 민간인 억류

자 다

남한 의용군으로 통칭되는 포로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출신과 사상은

물론 가치관과 환경에 따라 그 성향이 가지각색인데도 유엔군은 이들을

제대로 심사해서 분류하지 않았다 이에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되었다15) 뒤이어 포로 송환 문제가 발생하자 두 진

14)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본 논문의 인용문에 게재된 두 개의 숫자

중 왼쪽은 책의 권수를 오른쪽은 이 책의 쪽수를 나타냄)

15) 친공포로 수용소와 반공포로 수용소의 양극화 현상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

서 개최된 휴전협상 직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1951년 6월 18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5

사이에서 폭동과 학살이 자주 일어났다 친공포로 수용소 못지않게 이승

만 정권의 비호를 lsquo은 하게rsquo 받고 있던 lsquo대한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

로 수용소에서도 폭동을 주도했다

휴전회담이 무기한 지연되는 동안 자유송환을 요구하는 반공포로와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친공포로 간의 이념 전쟁이 매일같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기탑경쟁이나 투석전은 소일거리로 정착될 만큼 포로들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경쟁은 날이 밝으면서부터 이른바 lsquo기탑경쟁(旗塔競爭)이라는 희

한한 기세싸움으로 시작되곤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태극기를

게양한 반공수용소 깃봉과 인공기를 게양한 공산수용소 깃봉 중에 어느

쪽이 높은가에 따라 한쪽은 득의의 함성이 커지고 다른 쪽은 분노의 탄

식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다란 깃봉을 장만하느라

혈안이 되고 깃봉 자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깃봉을 지지

하는 기탑을 한밤중의 작업으로 높게 개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

어졌다 그러다가 한쪽이 애국가와 반공청년단가로 기세를 올리면 다른

쪽은 인공애국가와 적기가로 대응하고 거기서 더 발전되면 투석전이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이런 일상들은 치열한 사상적 대립에서 오

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이미 소일거리의 하나일 뿐이었다(2 78쪽)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에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일대 균

일 72수용소에서의 식사 거부 사건을 들 수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8월 15

일에는 해방 기념일 노래 제창 9월 17일에는 송환을 위한 심사 거부 등이 발생

했고 이듬해 1952년 2월 18일에는 62수용소의 분류심사 거부와 여론 조작이 있

었다(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

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8-158쪽 참조)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가 1953년 6월에 비로소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포로 문제가 장기화된 데에는 포로의 송환 원칙을 둘러싸

고 유엔군 측과 북한 측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북한으로 송환을 거

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가 서로 극단적으로 맞서 유혈사

태를 빚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적게는 3~4 명에서 많게는 약 400명의 전쟁포

로들이 죽어나가는 학살로 이어졌다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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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7: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3

서사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최윤학윤석규진상

용이 배치된 64수용소를 중심으로 한 전쟁포로들 이야기 상동리 이장

옥치조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함흥 출신 임덕현을 주축으로 한 피란민

들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갈래 이야기 중에서도 거제포로수용

소에서 생활하는 전쟁포로의 일상이 중심핵이다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64수용소에 배치된 최윤학과

윤석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서로 다른 성

향의 공산포로들이다 일반적으로 공산포로는 남한이냐 북한이냐 하는

출신 지역의 차이와 친공이냐 반공이냐 하는 이념에 의해 구별되었다12)

최윤학은 남한(서울) 출신의 의용군이며 윤석규는 북한(성천) 출신의

인민군이다 최윤학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친공포로이지만 진중

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반면 윤석규는 민간억류자로 판정

받아 석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를 때까지 섣부른 감정을 자제하는 인물

이다

최윤학과 윤석규는 1951년 2월 초 부산에서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된

1진 포로들이다13) 북한의 전시동원령에 모집된 남한 출신 의용군들이

먼저 이송된 것은 북한 출신 인민군 가운데 섞여 있는 민간 억류자들을

12) 서은주 앞의 논문 47쪽

13) 거제포로수용소는 완전히 건설되지 못한 채 먼저 1951년 2월 4일 포로 3015명

이 이동했고 2월 말까지 53839명이 이송되었다 4월 중순에는 93776명이 수용

되어 인원이 초과되자 추가로 10만 명 규모의 수용소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행정과 운용 병력이 부족해 이 계획은 축소되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수용소 본

부 제8137헌병단 제64병원 제6 7 8 9구역 및 특별 동으로 건설되었다 각 구

역은 60단위 70단위 80단위 90단위로 불렸다 60단위 수용소에는 남한 출신

의용군 포로들이 배치되었다(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선인 2010 80-81쪽)

제6구역인 60수용소에서 69수용소까지 평균 6000명의 포로가 수용되었으며 60

명 단위로 한 막사에 배치되었다 중공군 포로는 약 2만 명으로 그 중에서 매일

lsquo죽어도 장제스가 있는 타이완으로rsquo를 외치는 반공포로는 72수용소에 나머지 공

산 및 중도파 포로는 86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포로가 17만 명이 넘어서자 관리

당국은 포로관리가 쉽지 않아 포로자치제를 도입했다

34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분리해 내고 싶었던 유엔군사령부의 의도가 개입된 결과 다 유엔군의

미흡한 분류심사 과정을 파악하고 있던 윤석규는 고향을 경기도라고 속

여 포로 이송 1진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사실은 심사의 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던 그 다 심사관 앞

에 서면 자기는 형식만의 의용군이었을 뿐 완전한 민간인이라고 우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석방자 대열에 서고 말겠다는 각

오 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감정노출로 약점을 드러낼까봐 조심에 조심

을 거듭하고 있었다(1 65-66쪽)14)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반발하며 대항하는 아버지가 총살당한 이후로

공산당에 대한 증오가 깊어졌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군 정규 인민군으로 소속되어 전장에 참가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공 청년에 가까웠다 분류심사 때 경기도 출신

의용군으로 위장해 석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했으나 이북 억

양으로 인해 심사관에게 정체만 들통 나 결국 77수용소로 재배치되었다

77수용소가 위치해 있는 수월리 제7구역은 72중공군수용소만 제외하고

는 북한 인민군 포로수용소 다 친공포로가 대다수인 77수용소에는 민

간인 억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픈 아내를 친정에 맡기고 열 살

된 아들 동오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김병수가 대표적인 민간인 억류

자 다

남한 의용군으로 통칭되는 포로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출신과 사상은

물론 가치관과 환경에 따라 그 성향이 가지각색인데도 유엔군은 이들을

제대로 심사해서 분류하지 않았다 이에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되었다15) 뒤이어 포로 송환 문제가 발생하자 두 진

14)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본 논문의 인용문에 게재된 두 개의 숫자

중 왼쪽은 책의 권수를 오른쪽은 이 책의 쪽수를 나타냄)

15) 친공포로 수용소와 반공포로 수용소의 양극화 현상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

서 개최된 휴전협상 직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1951년 6월 18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5

사이에서 폭동과 학살이 자주 일어났다 친공포로 수용소 못지않게 이승

만 정권의 비호를 lsquo은 하게rsquo 받고 있던 lsquo대한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

로 수용소에서도 폭동을 주도했다

휴전회담이 무기한 지연되는 동안 자유송환을 요구하는 반공포로와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친공포로 간의 이념 전쟁이 매일같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기탑경쟁이나 투석전은 소일거리로 정착될 만큼 포로들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경쟁은 날이 밝으면서부터 이른바 lsquo기탑경쟁(旗塔競爭)이라는 희

한한 기세싸움으로 시작되곤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태극기를

게양한 반공수용소 깃봉과 인공기를 게양한 공산수용소 깃봉 중에 어느

쪽이 높은가에 따라 한쪽은 득의의 함성이 커지고 다른 쪽은 분노의 탄

식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다란 깃봉을 장만하느라

혈안이 되고 깃봉 자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깃봉을 지지

하는 기탑을 한밤중의 작업으로 높게 개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

어졌다 그러다가 한쪽이 애국가와 반공청년단가로 기세를 올리면 다른

쪽은 인공애국가와 적기가로 대응하고 거기서 더 발전되면 투석전이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이런 일상들은 치열한 사상적 대립에서 오

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이미 소일거리의 하나일 뿐이었다(2 78쪽)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에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일대 균

일 72수용소에서의 식사 거부 사건을 들 수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8월 15

일에는 해방 기념일 노래 제창 9월 17일에는 송환을 위한 심사 거부 등이 발생

했고 이듬해 1952년 2월 18일에는 62수용소의 분류심사 거부와 여론 조작이 있

었다(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

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8-158쪽 참조)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가 1953년 6월에 비로소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포로 문제가 장기화된 데에는 포로의 송환 원칙을 둘러싸

고 유엔군 측과 북한 측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북한으로 송환을 거

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가 서로 극단적으로 맞서 유혈사

태를 빚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적게는 3~4 명에서 많게는 약 400명의 전쟁포

로들이 죽어나가는 학살로 이어졌다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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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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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8: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4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분리해 내고 싶었던 유엔군사령부의 의도가 개입된 결과 다 유엔군의

미흡한 분류심사 과정을 파악하고 있던 윤석규는 고향을 경기도라고 속

여 포로 이송 1진 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사실은 심사의 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다리던 그 다 심사관 앞

에 서면 자기는 형식만의 의용군이었을 뿐 완전한 민간인이라고 우길

작정이었다 그래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석방자 대열에 서고 말겠다는 각

오 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감정노출로 약점을 드러낼까봐 조심에 조심

을 거듭하고 있었다(1 65-66쪽)14)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반발하며 대항하는 아버지가 총살당한 이후로

공산당에 대한 증오가 깊어졌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군 정규 인민군으로 소속되어 전장에 참가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공 청년에 가까웠다 분류심사 때 경기도 출신

의용군으로 위장해 석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했으나 이북 억

양으로 인해 심사관에게 정체만 들통 나 결국 77수용소로 재배치되었다

77수용소가 위치해 있는 수월리 제7구역은 72중공군수용소만 제외하고

는 북한 인민군 포로수용소 다 친공포로가 대다수인 77수용소에는 민

간인 억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픈 아내를 친정에 맡기고 열 살

된 아들 동오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김병수가 대표적인 민간인 억류

자 다

남한 의용군으로 통칭되는 포로들 사이에서도 개인의 출신과 사상은

물론 가치관과 환경에 따라 그 성향이 가지각색인데도 유엔군은 이들을

제대로 심사해서 분류하지 않았다 이에 친공포로와 반공포로의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되었다15) 뒤이어 포로 송환 문제가 발생하자 두 진

14)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동서문화사 2006(본 논문의 인용문에 게재된 두 개의 숫자

중 왼쪽은 책의 권수를 오른쪽은 이 책의 쪽수를 나타냄)

15) 친공포로 수용소와 반공포로 수용소의 양극화 현상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

서 개최된 휴전협상 직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1951년 6월 18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5

사이에서 폭동과 학살이 자주 일어났다 친공포로 수용소 못지않게 이승

만 정권의 비호를 lsquo은 하게rsquo 받고 있던 lsquo대한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

로 수용소에서도 폭동을 주도했다

휴전회담이 무기한 지연되는 동안 자유송환을 요구하는 반공포로와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친공포로 간의 이념 전쟁이 매일같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기탑경쟁이나 투석전은 소일거리로 정착될 만큼 포로들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경쟁은 날이 밝으면서부터 이른바 lsquo기탑경쟁(旗塔競爭)이라는 희

한한 기세싸움으로 시작되곤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태극기를

게양한 반공수용소 깃봉과 인공기를 게양한 공산수용소 깃봉 중에 어느

쪽이 높은가에 따라 한쪽은 득의의 함성이 커지고 다른 쪽은 분노의 탄

식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다란 깃봉을 장만하느라

혈안이 되고 깃봉 자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깃봉을 지지

하는 기탑을 한밤중의 작업으로 높게 개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

어졌다 그러다가 한쪽이 애국가와 반공청년단가로 기세를 올리면 다른

쪽은 인공애국가와 적기가로 대응하고 거기서 더 발전되면 투석전이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이런 일상들은 치열한 사상적 대립에서 오

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이미 소일거리의 하나일 뿐이었다(2 78쪽)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에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일대 균

일 72수용소에서의 식사 거부 사건을 들 수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8월 15

일에는 해방 기념일 노래 제창 9월 17일에는 송환을 위한 심사 거부 등이 발생

했고 이듬해 1952년 2월 18일에는 62수용소의 분류심사 거부와 여론 조작이 있

었다(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

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8-158쪽 참조)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가 1953년 6월에 비로소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포로 문제가 장기화된 데에는 포로의 송환 원칙을 둘러싸

고 유엔군 측과 북한 측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북한으로 송환을 거

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가 서로 극단적으로 맞서 유혈사

태를 빚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적게는 3~4 명에서 많게는 약 400명의 전쟁포

로들이 죽어나가는 학살로 이어졌다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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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9: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5

사이에서 폭동과 학살이 자주 일어났다 친공포로 수용소 못지않게 이승

만 정권의 비호를 lsquo은 하게rsquo 받고 있던 lsquo대한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

로 수용소에서도 폭동을 주도했다

휴전회담이 무기한 지연되는 동안 자유송환을 요구하는 반공포로와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친공포로 간의 이념 전쟁이 매일같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기탑경쟁이나 투석전은 소일거리로 정착될 만큼 포로들의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시위경쟁은 날이 밝으면서부터 이른바 lsquo기탑경쟁(旗塔競爭)이라는 희

한한 기세싸움으로 시작되곤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태극기를

게양한 반공수용소 깃봉과 인공기를 게양한 공산수용소 깃봉 중에 어느

쪽이 높은가에 따라 한쪽은 득의의 함성이 커지고 다른 쪽은 분노의 탄

식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다란 깃봉을 장만하느라

혈안이 되고 깃봉 자체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그 깃봉을 지지

하는 기탑을 한밤중의 작업으로 높게 개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

어졌다 그러다가 한쪽이 애국가와 반공청년단가로 기세를 올리면 다른

쪽은 인공애국가와 적기가로 대응하고 거기서 더 발전되면 투석전이

시작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이런 일상들은 치열한 사상적 대립에서 오

는 경쟁의식이 아니라 이미 소일거리의 하나일 뿐이었다(2 78쪽)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에 매일 되풀이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일대 균

일 72수용소에서의 식사 거부 사건을 들 수 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8월 15

일에는 해방 기념일 노래 제창 9월 17일에는 송환을 위한 심사 거부 등이 발생

했고 이듬해 1952년 2월 18일에는 62수용소의 분류심사 거부와 여론 조작이 있

었다(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

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8-158쪽 참조) 포로

문제는 휴전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1년 이상 지연되었다가 1953년 6월에 비로소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포로 문제가 장기화된 데에는 포로의 송환 원칙을 둘러싸

고 유엔군 측과 북한 측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북한으로 송환을 거

부하는 반공포로와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가 서로 극단적으로 맞서 유혈사

태를 빚기도 했다 이 시기 동안 적게는 3~4 명에서 많게는 약 400명의 전쟁포

로들이 죽어나가는 학살로 이어졌다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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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0: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4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열이 일기 시작했다 1952년 5월 7일 76수용소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

돗드를 납치한 것이다

76수용소는 lsquo해방동맹rsquo(일명 용광로)이 결성된 곳으로 공산포로의 대

표자 이학구 총좌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학구는 77수용소에 하전사 전문

일로 위장 잠입한 박사현의 지시를 받아 돗드 준장을 납치하 다 돗드

준장 납치 후 새로 포로수용소에 취임한 보트너는 포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을 분산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또한 공산포로 총지휘

부인 76수용소를 진입해 이학구 등 지도부를 체포하는 한편 포로들의

분산작전을 적극적으로 감행했다

북송에 찬성한 최윤학은 분산작전 종료 후 실시된 재분류심사 결과

온건파 공산포로로 분류되어 500명 단위의 소규모 수용소에 재배치되었

다 심신이 쇠약해져 64병원에 있던 최윤학은 상병포로 우선 송환의 협

의에 따라 북송 대상자가 되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송되는 도중 그는

군함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인간임을 철저히 박탈당한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비롯된 자기 회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친공포로 수용소인 77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해 반공포로 수용소인

73수용소에 재배치된 윤석규는 석방을 하루 앞두고 애인 조양숙을 찾아

가다가 제64병원 경비대 초소병의 총에 맞아 lsquo저세상 사람rsquo이 되고 말았

다 강성파 공산주의자로 구분되어 통 의 봉암도로 이송된 진상용만이

희망한 대로 북송되었다 제6구역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감찰대장이었

던 진상용은 여순사건 때 빨치산으로 활약한 전력이 있다

63수용소에 lsquo함께rsquo 수용되었지만 소속된 대대와 막사가 달라 단 한 번

도 마주친 적이 없는 최윤학과 윤석규는 결국 lsquo사망자rsquo가 되었으며 남원

출신의 진상용은 북한으로 이송되어 lsquo이산자rsquo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 출신 의용군 상당수가 북송을 희망했던 것처럼16) 많은 수의 북한

16) 그리운 가족의 품과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이유의 북한군 출신들보다도

의용군 출신들 특히 최윤학처럼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공산포로들의 월북 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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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1: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7

출신 인민군은 북송에 반대했다 한반도에 lsquo남한rsquo(대한민국)과 lsquo북한rsquo(조

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국가가 성립되면서 lsquo북한 출신rsquo 인민

군 대다수가 남한으로 lsquo남한 출신rsquo 의용군 상당수가 북한으로 이주하여

대량의 이산자가 양산되었다 포로의 성격을 지시하는 lsquo의용군rsquo이나 lsquo인

민군rsquo 앞에 관형어처럼 따라 다니는 lsquo남한 출신rsquo 혹은 lsquo북한 출신rsquo은 분단

의 논리가 개입된 용어이다 한반도에 lsquo휴전선rsquo17)이 건재해 있는 이상 이

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된 전쟁포로는 분단된 양국에서 기억되고 복원되

어야 할 흔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서사를 이루는 중심 이야기는 포로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일상의 기간이란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어 포로 이송이 시작

된 1951년 2월 초순부터 정전이 체결된 1953년 7월 초순까지이다 985172거제

도985173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2년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시위

와 폭동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로 보고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 분단에서 파생된 이산과 학살에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또

한 서술자는 친공포로들을 폭동과 학살의 주범으로 기록했던 공식 기억

과 달리 반공포로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폭동과

학살을 주도적으로 전개했음을 폭로하 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국가 사이의 경계에 있던 전쟁포로들은 분류심

사와 포로송환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류심사와 포로송환

문제란 포로들에게는 가족으로의 귀속과 사상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거나 흩어진 전쟁포로 즉 윤석규 최윤학

진상용과 같은 인물들이 호명됨으로써 985172거제도985173는 이산과 학살의 희생

와 열정이 더 뜨거웠다 사상무장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2 274쪽)

17) 분단과 더불어 생긴 lsquo삼팔선rsquo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lsquo휴전선rsquo이 되었다 군

사분계선에 해당되던 lsquo삼팔선rsquo이 국가 간의 분리를 나타내는 국경선이 된 것이

다 남북의 휴전선과 같이 몇 겹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장벽과 가시철망 수 킬로

미터에 달하는 지뢰밭을 안고 있는 국경선은 지구상에서 거의 드물다(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23-24쪽)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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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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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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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2: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4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양이 된 전쟁포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3 거제포로수용소 거제사회 연계망의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건립되면서 거주민과 피란민들의 삶은 판이하

게 달라져 버렸다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lt폭풍과 보리gt의 첫 장면은 1951

년 2월 초순 폭풍을 뚫고 고현만 앞바다에 정박한 미국해군수송함선을

불안스럽게 바라보는 거주민들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파도는 거대한 짐승의 무리처럼 허연 이빨을 세워 끊임없이 달려와

벼랑을 물어뜯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폭풍은 아우성치며 온 바다 위

를 쓸어 내닫고 암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거센 바람을 타고 높이 튀어오

른 물보라가 빗발처럼 산지사방 흩날렸다 바위섬의 나무와 풀은 부러

지거나 뽑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hellip) 1951

년 2월 초순의 아침이 밝아왔다 구름이 해를 가렸다 틔웠다 하고 겨울

의 끝자락 바람이 쌀쌀한 날씨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알파벳 소문자 y

처럼 생긴 거제도의 북쪽 해안 중간을 깊숙이 파고 들어간 고현만 앞바

다에 미국해군 수송함선 LST 한 척이 출현한 것은 그날 오전 10시쯤이

었다 ldquo와 저기이 뭐꼬rdquo ldquo군함은 군함인 것 같은데 생긴 기 우째 요상

하네rdquo ldquo그런데 군함이 가왁중에 여기는 뭐하러 들어올꼬rdquo ldquo포로수용

소하고 관계가 있는갑지 뭐rdquo ldquo포로수용소 아니 그기이 무신 소리요rdquo

ldquo이 사람 보게 일본 갔다 왔는갑네 소식이 절벽인 거를 보니 여기다

포로수용소 짓는다는 말 몬 들었나rdquo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날씨가 쌀쌀

한데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밖에 나와 서서 불안감 섞인 호기심으로 군

함을 바라보며 쑤군거리고 있었다(1 11-12쪽)

포로수용소가 들어서기 전의 거제도는 인구 10만 명이 사는 반농반어

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사회 다 이런 곳을 미8군은 최소 인력과 비용으

로 포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활용수가 풍부하며 식량 자급의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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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3: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49

경작지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포로수용소 건립의 최적지로 확정

했다18)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알 리 없는 거주민들은 미군함선의 갑작

스런 등장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거주민들은 지난 연말에 흥남철수로

대거 남하한 10만여 명의 함경도 피란민들을 지원하느라 이미 큰 부담

을 떠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공병대가 포로수용소를 조성하기

위해 농토와 임야를 불도저로 갈아엎으며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19)

일운면 상동리 이장인 옥치조는 lsquo천금 같은rsquo 자신의 논이 포로수용소 부

지로 들어가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춘궁기를 이겨낼 보리들이 눈앞에서

불도저로 짓이겨지자 그의 아내 옥례는 충격으로 실성기를 보이기 시작

했다 그녀의 실성기는 양공주와 흑인 병사가 성매매를 하는 장면을 목

격한 뒤로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포로수용소 때문에 보리농사 망치고 농토마저 빼앗긴 절망과 슬픔으

로 정신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옥례지만 결정적 요인은 어느 날 밭일

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와 흑인병사의 정사장면이

었다 되통스럽고 매사에 민감하여 감정의 낭비가 심한 성격이 그 뜻밖

의 사건에서 의외로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는 자나 깨나 그 고약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입버릇이 된 lsquo밭에 갔다 오다가rsquo

는 괜히 튀어나오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거기에다 집안의 기둥인 큰아

18) 1950년 9월 15일 진행된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세가 역전되자 9월 하순부

터 수많은 전쟁포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미8군사령부는 포로 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대규모의 포로를 수용할 적지로 거제도를 선정하 다(거제시지

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646쪽 참조) 이에 14만 명에 달하는 전쟁포로

를 수용할 수 있는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들어섰다

19) 1951년 2월 1일부터 미국의 공병부대는 포로수용소가 들어설 자리에 정지작업

을 시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지역은 섬의 중앙에 해당되는 일운면 고현리

를 중심으로 용산리 장평리 문동리 양정리 수월리 저산리와 연초면의 임정리

와 송정리 등을 포함해 360만 평에 이르 다 포로수용소 부지로 책정된 약

110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를 빼앗긴 거제도 사람들은 전쟁 중이고 포로

수용소 건립을 미군이 주도하고 있어 항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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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4: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5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애지중지하던 딸이 직업전선에 나섰다가

추문의 주인공이 된 사건은 lsquo미칠 수 있는 소질rsquo의 싹이 제대로 자라도

록 물을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2 169쪽)

일명 lsquo모포부대rsquo20)라고 불리는 양공주가 담요 한 장만 깔아놓고 미군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옥례는 예전의 정신을 회복할 수 없

게 되었다 양공주와 미군의 성매매는 일부종사하며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온 옥례에게 잊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큰아

들이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고 생계를 떠안은 딸이 피란민 임덕현과

동거한다는 소문은 옥례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거제포로수용소가 들어서자 그 주변에 기지촌이 조성되기 시작했으

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자로 양키시장도 형성되었다 기지촌과 양키

시장이 건립되어 거제사람들은 lsquo급격한rsquo 생활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

었다 함경도 피란민들은21) 포로수용소에서 필요로 하는 민간노동력을

제공하거나 포로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을 양키시장에 판매하여 목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한 미군 상대의 매춘

20) 포로수용소와 군부대가 들어선 마을 주위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 조성되었다

거제도에서 활동한 3000여 명의 양공주들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팔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일부 미군들은 산으로 올라가 양공주와 성행위를 하 다 이

때 양공주들은 성 판매에 필요한 lsquo모포rsquo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lsquo모포부대rsquo(담요부대)라고 불 다 성매매 고객 중에는 수용소의 개구멍을 통하

거나 반출입되는 물품 속에 몰래 숨어서 밖으로 나와 양공주와 접촉한 포로

도 극소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양공주들이 벌어들이는 달러와 거기에서 파생되

는 경제효과는 실로 대단했다(2 66쪽)

21) 평양철수에 따라 발생된 피란민은 한국군의 보호 아래 육로로 남하해 대구 부

산 등지에 집결하 고 청진 흥남 함흥 등 동해안의 피란민은 어선을 이용하거

나 미리 준비한 미국해군수용선(LST)으로 남하해 제주도와 거제도에 집결하

다 이때 거제도에 수용배치된 피란민은 약 10만 명이었다 뒤이어 5만여 명

이 더 들어와 피란민은 약 15만 명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의 거제도민들은 피

란민들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 다(거제시지편찬위원회 앞의 책

66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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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문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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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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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 秘史985173 북산책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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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45-367쪽

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심으

로」 985172작문연구985173 한국작문학회 제12집 2011 43-75쪽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제23권 2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67-97쪽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5: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1

사업과 군용품 유출 사업 또한 호황을 이루었다22)

연초면 죽토리 관암마을 일대의 양키시장은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고

나서야 개설되었으면서도 불과 몇 개월간의 경기호황과 규모 확대가 놀

라울 정도여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서 그럴싸한 도시 하나가

불숙 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미국군 PX를 거쳐 흘러나온 이

른바 lsquo양키물건rsquo과 포로들의 물물교환에 의해 철조망 너머로 또는 밑으

로 거래된 보급품이 더미더미 쌓 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떠들

썩한 목소리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쳐흘 다 시장사람들은 거의 피란

민이었다 (1 199쪽)

상술에 능하고 생활력이 강한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부정 유출

된 다량의 군수품과 풍부한 PX물품을 거래하면서 단시일 내에 거제도

의 상권을 장악했다 피란민연락처장인 임덕현 또한 성공한 피란민 중

한사람이었다 구호양곡이 피란민 통반을 단위로 해서 일괄적으로 배급

되던 것이 가구당 개별배급제로 바뀌자 더 이상 양곡을 빼돌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약삭빠르게 피란민연락처장 자리에서 물러

나 버스사업에 뛰어들었다 임덕현은 미군부대에서 폐차된 GMC(제너

럴포터스의 상용차)를 불하받아 버스로 개조해 운행하여 큰돈을 벌었다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나 군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거

나 양키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미군과 포로를 상대로 매춘사업을 해서

경제력을 확보했다 반면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거주민들은

포로수용소를 상대로 하는 장사에도 서툴 다 게다가 포로수용소장 돗

드가 납치된 후 소개령이 내려지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집을 떠나

야 했다 피란민들 또한 소개령에 분노했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연초

면 죽토리에 양키시장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 다

1950년대 거제사회는 포로수용소의 건립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

22)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174-175쪽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12권 동서문화사 2006

2 논문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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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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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6: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5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다 거제포로수용소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거주민과 흥

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게 살던 옥치조 가족은 농토를 빼앗기고 강제 이주를 당했던 반

면 생계조차 어렵던 피란민들은 포로수용소의 미군이나 전쟁포로를 상

대로 장사를 하여 자립하 다 이렇듯 거제포로수용소는 거주민과 피란

민 전쟁포로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의 근원지이자 거제사회의 연

계망을 알 수 있는 접점이었다

거제포로수용소라는 장소는 아주 복잡한 흔적들(traces)로 구성되어

있다23) 포로들의 생활에 의해 남겨진 유물들은 물질적 흔적이지만 또

한 그것은 포로들의 저항과 배신 폭동의 활동은 물론 거주민의 고통스

런 희생과 강제 이주 그리고 피란민들과의 생계유지를 위한 피나는 노

력 등 비물질적인 흔적과도 연계되어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를 흔적이라는 징표를 통해 읽어내야24) 하는 것

은 흔적이란 굉장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가 거제도라는 지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킨 중요한 장

소임에도 불구하고 985172거제도985173의 제1장 첫 장면과 제18장 마지막 장면은

옥치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옥치조와 그 이웃을 중심으로 사건

이 전개되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거제사회를 움직이는 사

람들은 거주민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된 전쟁포로

나 월남한 피란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뿌리

내릴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은 무엇보다도 거주민과의 관계 속에

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3)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17쪽

24)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 제23권 2

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72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12권 동서문화사 2006

2 논문 단행본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간호 문화과학사 2001 173-216쪽

거제시지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28-235쪽

김태일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 秘史985173 북산책 2011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1-

178쪽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45-367쪽

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심으

로」 985172작문연구985173 한국작문학회 제12집 2011 43-75쪽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제23권 2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67-97쪽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7: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3

4 985172거제도985173 망각된 기억들의 흔 찾기

985172거제도985173는 전반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세

갈래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옥치조 가족 중심의 거주민 이야기

와 임덕현 중심의 피란민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자제된 반면 포

로 중심의 수용소 이야기에는 서술자의 논평이 의도적으로 개입되는 서

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포로 중심의 이야기에 서술자의 논평

이 일률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산포로의 지휘부가 있는

76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의 서술자는 대개 중립적인 어

조를 유지하면서 설명 위주의 lsquo말하기rsquo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최윤학

진상용 윤석규가 수용된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달할 때는 인

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lsquo보여주기rsquo 방식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차이는 전쟁포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76수용소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공식 역사나 기록에 크게 의존할 수밖

에 없다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이학구나 박사현처럼 실재 인

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4수용소에서 일어난 사건들에는 개연성 있

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서술자는 인물들에게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

고 생각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준다 그 권한이 가장 많이 부여된 인물

이 윤석규이다

평남 성촌의 지주집안 출신의 윤석규는 토지개혁에 대항하다 아버지

가 총살을 당하고 어머니마저 울화병으로 죽자 반공적인 정치 성향을

품게 되었다 남한 출신 의용군에 섞여 64수용소에 편입되었으나 분류심

사 때 심사관이 공산포로로 판정하는 바람에 좌익 성향의 77수용소로

옮겨졌다 강경파 공산포로들에게 고문과 폭행을 당한 후 간신히 그곳에

서 빠져나온 윤석규는 연합정보대 박중렬 중위의 도움으로 우익 성향의

73수용소에 재배치되었다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12권 동서문화사 2006

2 논문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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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28-235쪽

김태일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 秘史985173 북산책 2011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1-

178쪽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45-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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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985172작문연구985173 한국작문학회 제12집 2011 43-75쪽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제23권 2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67-97쪽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8: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54 한국문학논총 제77집

포로수용소 개편작업 제1단계를 실행하기 전 유엔사령부는 포로들을

심사해 분류하기로 결정하 다 이에 73수용소를 포함한 대한반공청년

단 지부가 결성되어 있는 각 단위수용소에서는 사전 모의심사를 거쳐

송환희망자를 분류해 이들을 상대로 회유하기 시작했다 감찰조장이자

반공청년단 지부단 조장이 된 윤석규는 송환희망자들을 심문하는 책임

자가 되어 lsquo공산당 프락치 혐의를 씌우거나 또는 회유와 압박 차원에서rsquo

이들을 모질게 고문하고 잔인하게 구타해 죽이기까지 했다

ldquo네 이 새끼 기왕에 맞아둑을 거 솔딕히 대답하라우 네 공산당 프락

치디rdquo ldquo아니오 절대 아닙니다rdquo ldquo거짓부 마 반공청년단이 어더케 움

딕이고 있나 염탐하러 위장 잠입한 공닥원 아니가rdquo ldquo절대 그렇지 않습

니다 난 빨갱이라면 누구보다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제발 믿어 주시

오rdquo (hellip) 어깨 등 다리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 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의자는 처음에 몽둥이가 자기 몸에 작열하는 순간

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러댔으나 차츰 꿈틀거림과

신음으로 반응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한낱 피범

벅 고깃덩이로 변해 갔다 ldquo새끼 그 덩도 맞고서helliphellip 약골이로군rdquo 감

찰대원은 싱겁다는 듯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기절한 피의자를 질질 끌

어다 구석 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반죽음이 되거나 아예 절명한 피의자

가 이미 대여섯 명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hellip) 그러나 자책감이나 동정

심 따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 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은 몸뚱아리들

은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일상사일 뿐이다(2

86-87쪽)

휴전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 윤석규는 더

많은 송환거부자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를 구타하고 죽이는 시간 속에서

잔악한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송환거부자 수가 많을수록 전쟁의 이

념적 승리와 체제의 정당성을 보증 받을 수 있기에25) 윤석규는 한 명이

25)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미화

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51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12권 동서문화사 2006

2 논문 단행본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간호 문화과학사 2001 173-216쪽

거제시지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28-235쪽

김태일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 秘史985173 북산책 2011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1-

178쪽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45-367쪽

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심으

로」 985172작문연구985173 한국작문학회 제12집 2011 43-75쪽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제23권 2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67-97쪽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19: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5

라도 송환희망자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동료 포로들을 지독하게 심문하

다 그는 lsquo애국반공청년단rsquo 산하의 반공포로 수용소에서 송환희망자 77

명이 죽어나가듯 lsquo해방동맹rsquo 산하의 친공포로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숫자

의 송환거부자가 학살되겠다며 하루에 죽어나가는 전쟁포로 수를 계산

하 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지금 자신의 행동은 lsquo살아남기 위한 부득

이한 선택rsquo이었지만 공산포로 심문자의 살인은 lsquo유희와 재미에 지나지

않는 일rsquo(2 116쪽)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폭력과 살인은 공산포

로의 전유물로 치부하 다 잔악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윤석규는 어느 날

심사를 마치고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가는 송환거부자의 행위에 경악을 금

치 못했다

석규의 날카로워진 신경줄을 잡아당기는 성가신 일은 그뿐이 아니었

다 ldquo아니 저런 저런rdquo ldquo야 저건helliphelliprdquo 여럿이서 탄성을 지르는 바람에

웬일인가 하고 보니 정문을 나가는 포로 가운데 팔뚝의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자기 입으로 물어뜯는 자가 있었다 팔에도 입에도 피가 시뻘

건 모습은 흡사 무슨 악귀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석규는 날카

로운 고드름이 잔등에서 가슴속으로 꽉 박히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소

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간으로서 어쩌면 저럴 수가 석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도 움직임

도 딱 멎어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나는 저 포로와 어디가 얼마나 다를

까 하는 의문이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었다(1

120-121쪽)

일부 반공포로 수용소의 간부들은 송환희망자가 상당수 속출되면 곤

란하다는 생각에 이탈자를 막기 위해 포로들의 팔에 lsquo반공rsquo 또는 lsquo멸공rsquo

이라는 문신을 새기자는 방안을 냈다26) 반공청년단 단원들의 살의가

느껴지는 강압적 분위기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던 포로들은 눈치를 보면

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개별심사

26)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47쪽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12권 동서문화사 2006

2 논문 단행본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간호 문화과학사 2001 173-216쪽

거제시지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28-235쪽

김태일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 秘史985173 북산책 2011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1-

178쪽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45-367쪽

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심으

로」 985172작문연구985173 한국작문학회 제12집 2011 43-75쪽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제23권 2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67-97쪽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20: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56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당일 한 포로가 lsquo정문rsquo을 나가면서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lsquo반공rsquo 문신을

없애려고 이빨로 물어뜯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얼굴과 팔이 피 범벅

이 된 채 lsquo정문rsquo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송환희망자의 모습을 목격한

윤석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lsquo반공rsquo이라는 글자를 없애려고 악착같이

살점을 떼어내고 있는 포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감찰부와 반공청년단의 열혈 간부가 된 그는 수많은 동료 포로들을 희

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몸에 새겨진 lsquo친공rsquo(북한 출신 인민군)의 문신을

지워왔던 것이다 과거를 지우고 오직 현재의 잔악한 행동을 통해 미래

의 석방을 준비하던 윤석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 형성

의 결정적인 의식27)임을 간과했던 인물의 한 전형이다

윤석규가 포로들을 구타하고 학살하는 심문 장면은 공산포로의 전유

물과 같은 잔혹성이란 반공포로에게도 나타나는 성질이며 반공포로 역

시 공산포로처럼 심문과정에서 폭행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제시

되어 있다 공식 역사에서 망각된 기억들에 대한 복원이 바로 윤석규라

는 인물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수용소의 이전과 반공

청년단 간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윤석규의 생활이 포로들의 일상과 적

극적으로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산과 학살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윤석규의 흔적을 담은 985172거제도985173는 lsquo반공포로rsquo를 인간적으로 미화하거나

lsquo공산포로rsquo를 잔혹한 살인마로 부각했던 공적 기억들에 균열을 내는 대

항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맺음말

손 목의 985172거제도985173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전쟁포로뿐 아니라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주민과 피란민의 일상이 형상

27) 데이비드 로웬덜 앞의 책 448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12권 동서문화사 2006

2 논문 단행본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간호 문화과학사 2001 173-216쪽

거제시지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28-235쪽

김태일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 秘史985173 북산책 2011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1-

178쪽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45-367쪽

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심으

로」 985172작문연구985173 한국작문학회 제12집 2011 43-75쪽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제23권 2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67-97쪽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21: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7

화되어 있다 전쟁포로와 거주민 피란민은 1950년대 초반 거제도에 존

재해 있었던 세 층위의 구성원들로 현재의 거제사회를 형성한 주체들이

다 이에 전쟁포로의 일상을 통해 거주민과 피란민과의 사회적 관계를

밝혀 보았고 동시에 전쟁포로들이 이산과 학살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lsquo반공포로에 대한 망각된 기억rsquo을 윤석

규라는 인물을 통해 회상함으로써 lsquo공산포로에 대한 만들어진 기억rsquo도

점검할 수 있었다

거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이산과 학살의 대상이 된 포로들의 일상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거주민과 흥남철수를 통해

유입된 피란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던 장소 다 lsquo그때rsquo는 있었지만 lsquo지

금rsquo은 존재하지 않는 전쟁포로 거주민 피란민들을 거제포로수용소를 접

점으로 하여 호명한 985172거제도985173는 이름 없이 살다가 죽거나 사라진 혹은

흩어진 이들을 기억하거나 복원해야 할 대상으로 끌어올린 의미 있는

기억의 매개체이다 총 18장으로 구성된 985172거제도985173에서 전쟁포로들의 일

상 거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피란민들의 일상을 거제도라는 장소를 통

해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lsquo거제포로수용소rsquo가 남긴 유middot무형의 흔

적들이 잔재해 있기에 가능하 다

985172거제도985173는 서사 내용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 손 목의 노력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서술자의

개입이 심한 몇몇 장면에서는 반공규율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모습이 투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985172거제도985173에는 거제포로수

용소가 고립된 그들(전쟁포로)만의 세상이 아니라 거제도라는 지역사회

에 변화를 이끈 장소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전쟁포로들의 이산과 학살

의 원인이 분단에 있으며 그 희생양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양자에 해

당되어 있음을 밝힌 점 그리고 lsquo망각되고 조절된rsquo 반공포로에 대한 기억

을 진정성 있게 되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동안의 분단문학

이 지닌 공식 기술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또한 전쟁포로의 일상이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12권 동서문화사 2006

2 논문 단행본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간호 문화과학사 2001 173-216쪽

거제시지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28-235쪽

김태일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 秘史985173 북산책 2011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1-

178쪽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45-367쪽

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심으

로」 985172작문연구985173 한국작문학회 제12집 2011 43-75쪽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제23권 2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67-97쪽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22: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58 한국문학논총 제77집

란 거주민과 피란민들 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서

술한 985172거제도985173는 한편으로는 1950년대 거제도의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지방사 소설로도 볼 수 있다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12권 동서문화사 2006

2 논문 단행본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간호 문화과학사 2001 173-216쪽

거제시지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28-235쪽

김태일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 秘史985173 북산책 2011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1-

178쪽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45-367쪽

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심으

로」 985172작문연구985173 한국작문학회 제12집 2011 43-75쪽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제23권 2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67-97쪽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23: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59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손 목 985172거제도985173 12권 동서문화사 2006

2 논문 단행본

강내희 「흉내내기와 차이 만들기―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985172흔적985173 창간호 문화과학사 2001 173-216쪽

거제시지편찬위원회 985172거제시지985173 상 2002

김귀옥 985172이산가족 lsquo반공전사rsquo도 lsquo빨갱이rsquo도 아닌985173 역사비평사 2004

김용만 「장편소설 lsquo풍화rsquo의 작가 손 목 씨」 985172북한985173 통권 제146호 1984

228-235쪽

김태일 985172거제도 포로수용소 秘史985173 북산책 2011

김행복 985172반공포로 석방과 휴전협상985173 백년동안 2014

김학재 「전쟁포로들의 저항과 반공오리엔탈리즘―한국전쟁기 유엔군

포로수용소 내 사건들을 중심으로」 985172사림985173 제36호 2012 141-

178쪽

이동헌 「한국전쟁 기념의 주변인들―한국전쟁 반공포로」 985172기억과 전쟁

―미화와 추모 사이에서985173 휴머니스트 2009 345-367쪽

서은주 「한국전쟁의 기억과 글쓰기―거제도 포로수용소 체험을 중심으

로」 985172작문연구985173 한국작문학회 제12집 2011 43-75쪽

심혜련 「도시 공간 읽기의 방법론으로서의 흔적 읽기」 985172시대와 철학985173제23권 2호 한국철학사상연구 2012 67-97쪽

알라이다 아스만 변학수백설자채연숙 옮김985172기억의 공간985173 경북대

학교출판부 2003

연초면지편찬위원회 985172연초면지985173 2008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24: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60 한국문학논총 제77집

유한근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손 목 소설의 경우」 985172한국문화연구985173제2집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5 349-365쪽

유학 9851721950년대 한국 전쟁전후 소설 연구985173 북폴리오 2004

데이비드 로웬덜 김종원한명숙 옮김 985172과거는 낯선 나라다985173 개마고

원 2006

임은진 「625전쟁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장소」 985172문화역사지리985173 제24권

2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12 155-166쪽

전갑생 985172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1

조성훈 985172한국전쟁과 포로985173 도서출판 선인 2010

존 앤더슨 이 민이종의 옮김 985172문화장소흔적985173 한울 2013

차민기 「포로수용소 소설에 나타나는 lsquo포로체험rsquo의 기억 양상」 985172현대문

학이론연구985173 제48집 현대문학이론학회 2012 155-183쪽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25: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lsquo거제도rsquo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361

ltAbstractgt

Memories and Traces of the Prisoners of War

in Geojedo

- Focused on Son Yeong-mokrsquos Geojedo

28)Byun Hwayeong

This study examined the daily life of prisoners in prison camps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ivilians living and the refugees

in the island with the aim of studying Geojedo of Son Yeong-mok

And also this defined the existence of prisoners of war who were in

the past but do not exist now through memories and traces In the

1950s Geojedo(that is Geoje-Island) was a kind of crossing or

meeting place where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s who came in

through the withdrawal of Hungnam and the life of civilians of the

island as well as the daily life of prisoners who were subjected to

disaster and massacre

In the novel Geojedo the prisoners civilians and refugees were

remembered or restored through the place of Geoje Island So the

novel Geojedo is an important literary passage to remember those

who scattered or died without name It was for this reason that the

narratives of the 18 full-length novels Geojedo are largely composed

of three stories mainly taking place in Geoje prison camp

Historic Park of Geoje POW Camp only reveals the side of material

traces such as materials left at the prison camp from lives of the

Chonbuk National University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

Page 26: ‘거제도’의 전쟁포로에 대한 기억과 흔적* 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는 시대의 증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기억 이 미래에 상실되지

362 한국문학논총 제77집

prisoners And fails to reveal the side of immaterial traces such as

resistance and inevitable treachery among the prisoners the riots the

civiliansrsquo painful sacrifices and deportation and prisonersrsquo desperate

behaviors to survive However in the novel Geojedo the Geoje Island

prison camp is complexly composed of material and immaterial traces

Geojedo vividly captures immaterial traces which can define the

existence of prisoner of war This was possible not only due to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author Son Yeoung-mok but also due

to the realistic description of the memories of experiences of the

civilians refugees and prisoners who lived lsquoat that place at that timersquo

which is Geoje Island in the 1950s That is through the narrating

process the novel Geojedo tries to break the concept of the prisoners

who were neglected or distorted in the formal records and who were

overly remembered or highlighted Therefore the novel is meaningful

in a way that it is different from other works which mainly use Geoje

Island prison camps as themes or backgrounds

Key Words Son Yeong-mok Geojedo Geoje-Island Prison Camps

War prisoner Memory Traces

논문 수 2017년 11월 20일

심사완료 2017년 12월 3일

게재확정 2017년 1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