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의 신학들” · 복음주의 조직신학」에 발표하였습니다. 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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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신학탐구 시리즈 6> 우리를 둘러싸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리 이웃의 신학들”: 우리주변의다양한신학들에대한개혁신학적반응 이승구 나눔과 섬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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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를 둘러싸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리 이웃의 신학들”: 우리 주변의 다양한 신학들에 대한 개혁 신학적 반응

    이승구

    나눔과 섬김

    2014

  • Theologies Next Door:A Reformed Response to Various Theologies of Our Neighbours

    by

    Seung-Goo Lee

    Verbum Dei Minister

    B. A., M. Ed., M. Div., M. Phil., Ph. D.

    Professor of Christian Dogmatics

    Hapdong Theological Seminary

    ⓒ Seung-Goo Lee, 2014

    Nanum & Sumgim

    2014

  • 이 책은

    법무법인 성의(誠意) (대표 변호사 박영렬 님)의 후원으로

    출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개혁파적인 사상이 가득하기 위해

    개혁파적인 책들과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우리를 돌아보는 책들을 출간하도록

    귀한 도움을 주신

    법무법인 성의(誠意)의 박영렬 변호사님께

    감사드리면서

    이런 후원으로 이 땅에 개혁파적 사상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 차례 ◾ 7

    차 례

    들어가는 말_9

    감사와 인정의 말_15

    제 1 부 : 천주교 신학들과 그 영향들_19

    1. 헨리 나우윈에 대한 개혁신학적 한 성찰_21

    2. 관상 기도와 그 문제점_56

    3.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의화(義化)’ 이해와 개신교의‘칭의(稱義)’ 이해의 비교_91

    제 2 부 : 종교다원주의와 내포주의 신학_103

    4. 종교다원주의의 대변자 존 힉(John Hick)의 종교다원주의 주

    장과 그 문제점_105

    5. 복음주의적 내포주의자 클락 피녹(Clark Pinnock)의 신학과 문

    제점_141

  • 8 ◾ 우리 이웃의 신학들

    제 3 부 : 칼 바르트와 그 영향_153

    6. 계시와 역사의 관계에 대한 초기 바르트(Karl Barth)의 이해

    _155

    7. 챠일즈(B. S. Childs)의 정경적 성경신학과 개혁파 성경신학

    _191

    8. 피터 엔즈(Peter Ends)의 성경에 대한 성육신적 유비의 의의

    와 문제점_234

    제 4 부 : 매력적이나 먼 이웃의 신학들_267

    9. 우리는 존 요더(John Yoder)와 어디까지 같이 갈 수 있을

    까?_269

    10. 레슬리 뉴비긴(Leslie Newbegin) 신학에 대한 한 고찰_283

    11. 레슬리 뉴비긴의 교회 이해의 기여와 문제점_299

    12. 남미의 해방신학과 해방신학적 정향_312

    13. 톰 라이트(N. T. Wright)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_322

    제 5 부 : WCC 운동과 그 신학들_333

    14. WCC 제10차 부산 총회를 바라보면서_335

    15. 성경적 에큐메니즘을 지향하면서_364

    참고 문헌_381

  • 차례 ◾ 9

    들어가는 말

    영민(英敏)한 독자들은 이 책의 각 장의 제목들을 보면서 짐작하시겠

    지만, 이 책에서 다룬 신학자들과 사상들은 정통파 개혁신학과 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고, 그런 사상들이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생각이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깝게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우리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신학들을“우리 이웃의

    신학들”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우리들 주변에는 다양한“이웃의

    신학들”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 주변에 다양한

    “이웃의 종교들”이 있는 것과 상당히 유사(類似)하다.

    기독교가 전파되어 우리 조상들이 예수님을 믿고 우리들이 그 안

    에서 예수님을 믿는 한국 사회는 기독교 도입(導入) 당시부터 종교 다원

    적 사회(宗敎多元的 社會)였다. 이처럼 현상(現像)으로서의 종교 다원

    적 상황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낯선 것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러

    하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이웃의 어떤 분은 불교를 믿었고,

    어떤 분은 샤마니즘적 무속(巫俗)을 중시(重視)하며 살았고, 어떤 분들

    은 유교(儒敎)적 이념에 충실하게 삶 전체를 살았다. 우리들은 이러한

    종교 다원적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또 계속해서 믿어 오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 다원적 상황, 즉 현상으로

    서의 종교 다원성(宗敎多元性)은 낯선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

  • 10 ◾ 우리 이웃의 신학들

    리는 그 안에서 살았었고, 지금도 그런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이와는 달리 오랫동안 기독교의 영향 아래서 살던 서구(西歐) 그

    리스도인들은 자기 이웃에 여러 다른 종교들이 있다는 것을 아주 이상

    한 현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사실은 오랫동안 서구 사회가 그런 과정

    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도 잘 의식하고 있지 않다가, 주변에 다른 종교

    들의 영향력이 커지자 서구인들은 아주 새로운 상황 가운데 자신들이

    처한 것처럼 반응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래서“어느 날 깨어나 보니

    자신들이 종교 다원적 사회 속에서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인

    자신들이 그 사회 속에서 소수자(minority)가 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

    다”고 고백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2006년 저자가 화란 자유대학교

    신학부의 초청으로 한 한기 동안 화란에서 연구 할 때 그들이 개최한

    한 학술 모임의 주제가 바로“소수자가 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어

    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서구 신학이 종교 다원적 현상에 대해서 반

    응하는 신학적 작업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정황에서 나온 것이다. 그

    러므로 우리는 서구 신학자들이 종교 다원적 현상에 반응하면서 그것

    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인 양하며 그에 대해 반응해야 한다고 하는 주

    장을 그대로 따라 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 자신들이 처음부터 경

    험한 종교 다원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살 것인

    가를 성경을 통해 배우고 실천한 그것을 잘 제시해 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처음부터 종교다원주적 사회 속에서 종

    교적 소수자(minority)의 위치에서 사는 경험을 상당히 오랫동안 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가 처음부터 경험한 종교 다원적 상황은 이상

    한 일이거나 새로운 일이 아니고, 신약 교회가 시작될 때의 그 상황과

    같은 상황이다. 바울이나 다른 사도(使徒)들과 그들을 따라 다른 신실

  • 차례 ◾ 11

    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선포

    (宣布)할 때, 그들은 종교적 진공(眞空) 상태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

    니다. 수 없이 많은 종교들과 사상들이 주변에 있고 사람들이 그것이

    삶의 길이라고 따르고 있는 그 정황 가운데서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여

    그 부조리하고 쓸데없는 것을 다 버리고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선포하였다. 이렇게“참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만”예수 그

    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우신‘이 땅에 이미 임해 왔으나 우리

    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에 모든 사람 앞에 현저하게 드러날 그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된다고

    선언하고 가르쳤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

    는 기독교의 선포 내용[使信, message]이다. 사도 시대에나 오늘날의

    서구 사회에서나 우리 사회에서도 달리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초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신앙적 배경 가운데서 이 복

    음의 내용을 듣고 비록 온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1) 십자가에서

    죄를 위해 구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

    다는 것과 (2) 그렇게 예수님을 믿을 때는 이전에 자신들이 추구하던

    다른 종교적 추구(追求)를 온전히 다 버려야 한다는 것과 (3) 교회 공

    동체를 통해서 성경을 계속해서 배워가야 한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해

    왔다.

    그래서 한국 성도(聖徒)들은 상당히 부족하기는 하지만, (1) 십자

    가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구속에 대한 믿음과 (2) 우상숭배와 그와 관

    련된 것에 대한 절연(絶緣, 다른 종교와 제사, 토정비결 등등과의 절

    연), (3) 기독교적 모임에 열심히 참여함, (4)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

    님의 말씀으로 믿고 열심히 배우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 12 ◾ 우리 이웃의 신학들

    그러므로 (1) 이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철저화하고, (2) 성

    경이 가르치는 바를 더 깊이 있게 파악하고, 그 심오한 사상을 자기 것

    으로 하여 누리면서, (3) 그 가르침을 잘 실천하고, (4) 동료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에게 이“유일한 살 수 있는 길”을 잘 제시하여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 21세기 초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우리의 경험을 종교 다원적 상황을

    새롭게 경험하는 서구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이 일을 제대로 감당하는 일에 여러 복

    병(伏兵)들을 만난 것 같다. 그 하나는 모든 것에 대한 최종적 대답을

    성경의 가르침에서만 찾아야 한다는 것(sola scriptura의 원리)에 동의

    (同意)하지 않으면서“성경과 전통 모두를”(both-and) 다 중시(重視)해

    야 한다고 하면서 성도들로 하여금“오직 성경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하려는 시도들”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중에 은밀하게 우리들 가운데서 번져가는 반(半)-펠라기우스주의

    (semi-Pelagianism, 결국 천주교 사상)의 영향이고, 한편으로는 성경 이

    외의 계시가 지금도 계속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신사도 운동과 같

    은 것들의 영향이다. 이 문제를 이 책의 제1부에서 다루었다.

    또 하나는 서구에서 나온 규범적인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와 내포주의(內包主義, inclusivism)의 영향을 받은 이웃의 신

    학들이 있고, 이것이 우리들 가운데 알게 모르게 널리 퍼져 나가고 있

    는 현상이다. 이를 제2부와 4, 5부에서 다루었다.

    또 하나는 성경을 매우 존중하면서 신학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면

    서도 그와의 관계를 절연(絶緣)하지 않고 동시에 끌어 안으려고 하는

    칼 바르트(Karl Barth)와 성경 신학 연구에서 그와 유사한 접근을 하는

    챠일즈(B. S. Childs)와 (조금 지나치게 말하는 느낌은 들지만 결국 그

  • 차례 ◾ 13

    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피터 엔스(Peter Enns) 교수 같은 입장을 표

    명하는 분들의 신학적 작업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3부에서 다루었다.

    또 아주 매력적이고 우리의 동감(同感)을 많이 자아내면서도 우

    리들로 하여금 끝까지 그들과 동행(同行)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래서

    안타까운 존 요더나 레슬리 뉴비긴 같은 분들의 생각이다. 이 분들은

    참으로 우리들의 가까운 이웃이다. 그러나 그 분들과 끝까지 같이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음이 늘 안타깝다. 이에 대해서는 제4부에서 다

    루었다.

    이런 점에서 칼 바르트나 존 요더나 레슬리 뉴비긴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WCC 운동의 방향과 그 사상적 내용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작업을 하는 우리들의 매우 당연한 과제이다.

    앞에서 명백히 말한 것과 같이, 이 책에서 다룬 신학자들과 운동

    들의 생각은 정통 기독교회의 가르침과 다르고, 특히 개혁파 정통주의

    와는 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상들이 이런저런 모

    양으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학

    을 하지 않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간접적으로 상당히 영향을 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분들의 사상이 과연 어떤 것인지 우

    리들도 심각(深刻)하게 검토(檢討)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결국 이런

    사상의 영향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 이 책의 작업이 이 일을 위해서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란다.

    부디 주께서 우리들을 더 성경에 충실한 교회가 되게 하여 이 땅

    가운데서 바르게 생각하고 사는 일에 이 책을 사용하여 주시기를 앙기

    (仰祈)한다.

    2014년 4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연구실에서

  • 14 ◾ 우리 이웃의 신학들

  • 차례 ◾ 15

    감사와 인정

    이 책의 각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전에 발표되었음을

    밝히면서, 각 기관 관계자들과 출판물의 경우에는 편집인들에게 이 내

    용을 묶어서 이 책에 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심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제 1장 헨리 나우윈에 대해서는 그 기초가 되는 간단한 글이 두란

    노 「빛과 소금」 편집부 요청으로 「빛과 소금」 2009년 10월호에“천주교 사제 헨리 나우윈, 그의 영성과 우리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게재되

    었고, 그 내용은 나의 블로그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http://blog.daum.net/wminb/13718730). 이로부터 확대된 현재의 논문

    은“헨리 나우윈에 대한 개혁신학적 성찰”, 「신학정론」 29/2 (2011년 11월): 567-98로 발표된 바 있습니다.

    제 2 장 관상 기도와 그 문제점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신) 신학

    위윈회의 요청으로 발제된 글로서“관상 기도의 문제점”, 「신학정론」 29/1 (2011년 6월): 121-55에 실렸었습니다.

    제 3 장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의화 이해와 개신교의 칭의 이해의

    차이는 한국 세계 선교 협의회(KWMA)에서 간행하는 「한국 선교」(Korea Missions Quarterly) 45 (2013년 봄): 21-29에 실렸었습니다.

    제 4 장 힉(Hick)에 관한 글은 오래 전에 기독교 학문연구소 학술지

  • 16 ◾ 우리 이웃의 신학들

    인 「신앙과 학문」 22 (2001년 6월호)에 실렸었고, 그 불어 번역본은 프랑스 남부 악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 있는 개혁파 신학교인 칼빈

    신학교(la Faculté Jean Calvin)의 신학지(La revue de théologie)인 La Revue réformée 249 (Jan 2009)에 "Pluralisme religieux et christianisme"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었습니다(available at:

    http://larevuereformee.net/articlerr/n249/pluralisme-religieux-et-christianisme). 그

    리고 영어 번역본은 "Religious Pluralism and Christianity," in Take Root

    Downward, Bear Fruit Upward, edited by Johnson T. K. Lim (Hongkong:

    Asia Baptist Graduate Theological Seminary, 2008), 123-46에 발표된 바

    있습니다.

    제 5 장은 이전에 발표되지 않은 새로운 글입니다.

    제 6 장 바르트에 대한 글은 필자의 신학석사 학위(M. Phil.) 논문

    의 한 부분으로 이전에 한국 복음주의조직학회에서 발제하고 「한국 복음주의 조직신학」에 발표하였습니다.

    제 7 장 Childs에 대한 글은 한국 성경신학회에서 2008년 2월에

    발제하고 성경신학회 학술지인 「교회와 문화」 21 (2008년 여름): 7-49에 발표되었었습니다.

    제 8 장 피터 엔스에 대한 글은 합동신학 대학원대학교에서 매 학

    기 한번 씩 열리는 교수 연구 모임에서 발제하였었고(2010. 5. 26.), 한

    국개혁신학회 학술지인 「한국개혁신학」28 (2010): 225-53에“영감과 성육신 개념 연결의 의의와 문제점"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하였습니다.

    제 9 장 존 요더에 대한 글은 에서

    내는 「월드뷰」 141 (2012년 3월호): 52-57에 실렸었습니다.제 10 장 레슬리 뉴비긴에 관한 글은 「목회와 신학」에, 그리고 제

  • 차례 ◾ 17

    11장 서평은 에서 내는 「월드뷰」 141 (2011년 6월호)에 실렸었습니다.

    제 12 장 남미에 해방 신학에 대한 글을 2014년 6월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월드컵과 관련하여 「목회와 신학」에서 6월호를 남미 특집으로 기획하는 중에 남미신학에 대한 글로 기고했던 것임을 밝힙니다.

    제 13 장 톰 라이트에 대한 글을 한국 「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2014년 4월호를 미국판의 톰 라이트 특집을 그대로 실은 것에 대하여

    톰 라이트를 비판적으로 읽는 글도 실어 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에 따

    라 편집장인 김은홍 기자께서 요청하셔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70 (2014년 5월호): 58-63에 실렸던 글임을 밝힙니다.

    제 14 장은 WCC 10차 총회가 개최되는 동안 저의 페이스 북과 블

    로그인 이승구 교수의 (http://blog.daum.net/wminb/13719155)를 통해서 전했던 내용입니

    다.

    제 15 장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학술원은 38회 강연회(2010년 6월

    28일)에서 이형기 교수의 발제에 대한 논찬으로 작성된 것을 더 확대

    하여 이동주 교수님께서 편집하여 내신 책인 WCC의 에큐메니칼 신학 비판 (서울: CLC, 2013), 172-88에“성경적 에큐메니즘을 지향하며”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 18 ◾ 우리 이웃의 신학들

  • 제 1 부

    천주교 신학의 영향들

    1. 헨리 나우윈에 대한 개혁신학적 한 성찰

    2. 관상 기도와 그 문제점

    3.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의화(義化)’ 이해와 개신교의 ‘칭의(稱義)’ 이해의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