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소식지 21호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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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소식지 21 1 호 소식지에 대한 반응들이 좋아서 내심 기뻤습니다 사실 욕심은 많이 부렸지만욕심만큼의 좋은 20 . , 기사가 나오기에는 실 이 부 고 부 한 실 만큼의 노 도 하지 습니다 전쟁없는 . 세상 내부에서도 좋은 기획이라고 자부하 서도 이 좋은 기획을 우리가 살리지 못했 다는 자책감이 있었 습니다 부 들에 대한 정 비판 그리고 부 저희 소식지에 대한 넘치 극찬 모두 . 되었 습니다 그 다시 무리한 기획을 진행하게 되었 습니다 . ( ? ) . 소식지의 기획기사는 호소식지의 학교안의 군사주의를 심화시 전입니다 기 을 돌이 20 . 대 우리는 학교에서 평화를 경험하기보다는 폭력 을 경험하 습니다 하의 시 학교에서 . 모두 해야 하는 기 막힌 실이 안타 습니다 평화를 학습하지 하는 학교에 대 서 한 . 고들어보고 싶었 습니다 많은 측면 에서 접근 이 가 하지만 이 소식지에서는 교 서를 한 들여다 . 보기로 습니다 사실 교 서만 제대로 보기에도 벅찬 일이 습니다 . . ^^ 원래 는 도 혹은 국사 국어 이 세 과목 의 교 서를 석하고자 습니다 그 런데 보다 만 ( ), , . 작업 군요그 서 욕심을 리고 아니 욕심을 내서 한 제대로 보자그 서 이 . , ! 21 호 소식지에서는 도 서만 석을 하고 다 소식지에 국사와 국어를 다 기로 습니다 사실 세 . 나를 하다보니 한 에 다 만만 은 주제 라구요 ^^ 서에서 군사주의를 아내는 일은 생 만큼 수월하지 았습니다 아무 몰랐 문에 . 무 만만하게 덤벼 었던 나를 거 치면 서 도 서가 그리 어리석지 않음 고 도 . 에서 군사주의를 아내고자 하는 구 약간 수정하 습니다 번째 기사는 교 서제도 혹은 . 인 학교 부의 문제 에 대한 지 입니다 번째 는 도 서에 대한 기 비판 국가주의나 국 . - 수주의 집 주의 등등 을 정리하 서 교 서를 습니다 세 번째 는 도 서가 어 게 평화를 학습 . 하지 는지 평화보다는 폭력 을 아로 기는지 해봤 습니다 으로 똥떡 트를 진행 했던 , . 들의 을 실 습니다. 준비했 다고 자부 는 소식지입니다 러분 들의 많은 격려 비판 이 소식지를 . 알차 꾸려 가는 입니다. 욕심만큼 이 어지길 용석 | 전쟁없는세상 책 활동가 + stego @ j inb o.net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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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21호 (2008년 4월)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1 1

호 소식지에 대한 반응들이 좋아서 내심 기뻤습니다 사실 욕심은 많이 부렸지만 욕심만큼의 좋은 20 . , 기사가 나오기에는 실력이 부족하였고 부족한 실력을 극복할 만큼의 노력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전쟁없는. 세상 내부에서도 참 좋은 기획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이 좋은 기획을 우리가 잘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있었습니다 부족한 점들에 대한 정성어린 비판들과 그리고 부족한 저희 소식지에 대한 넘치는 극찬 모두 .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무리한 기획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

이번 소식지의 기획기사는 호소식지의 학교안의 군사주의를 심화시킨 버전입니다 기억을 돌이켜20 ‘ ’ . 보건대 우리는 학교에서 평화를 경험하기보다는 폭력을 경험하였습니다 유하의 시 학교에서 배운 것을 . ‘ ’

보면서 모두가 공감해야하는 기막힌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평화를 학습하지 못하는 학교에 대해서 한 번 . 파고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많은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지만 이번 소식지에서는 교과서를 한 번 들여다 .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교과서만 제대로 보기에도 벅찬 일이었습니다. .̂ ^

원래는 도덕혹은 윤리 국사 국어 이 세과목의 교과서를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만( ), , . 만찮은 작업이더군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아니 더 욕심을 내서 한 번 제대로 해보자 그래서 이번 . , ! 21호 소식지에서는 도덕교과서만 분석을 하고 다음 번 소식지에 국사와 국어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사실 세. 미나를 하다보니 한번에 다루기엔 만만치 않은 주제더라구요̂ ^

도덕교과서에서 군사주의를 찾아내는 일은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 너무 만만하게 덤벼들었던 거죠 세미나를 거치면서 도덕교과서가 그리 어리석지 않음을 알고 도덕교과서. 에서 군사주의를 뽑아내고자 하는 구성을 약간 수정하였습니다 첫 번째 기사는 교과서제도 혹은 근대적. 인 학교공부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입니다 두 번째는 도덕교과서에 대한 기존의 비판들 국가주의나 국. - 수주의 집단주의 등등을 정리하면서 교과서를 분석했습니다 세 번째는 도덕교과서가 어떻게 평화를 학습. 하지 않는지 평화보다는 폭력을 아로새기는지 분석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똥떡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 . ‘ ’

분들의 글을 실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소식지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와 비판이 소식지를 . 알차게 꾸려가는 밑거름입니다.

욕심만큼 이루어지길 용석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tego @ jinbo.net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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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혁명타랑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년 월에 출소 + 2008 1

벌써 이런 제목의 책자를 받은 지도 일 년이 다 되가네요 아님 그 이상일수도 있고요 확실하게 기. , . 억은 안 나지만 처음 이 책자를 받아들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누가 보냈을까 왜 보냈을까 무슨 내. ?! ?! 용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중에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몇 안 되었기 때문이죠 사실 지금은 ?!... . 누가 그리고 왜 보냈든 크게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꽤 익숙한 이름이 적힌 노란 책자에 대한 당혹감은 쉽게 가시질 않네요 암튼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은 지금 . “ .” .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심정과도 같을 것 같고요 출소인사라고는 하지만 그런 말이 너무 어색할 만큼 출. ‘ ’

소란 걸 해 버린 지도 어느덧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고 수신인이 정해진 손으로 쓰는 편지에 너무 익숙, 해져버린 탓인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가 너무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마치 급한 마음에 만원인 화장실. 에 소변을 보러 들어갔다가 비어있는 소변기를 바라보며 좌변기 앞에 줄을 서고 있는 심정이랄까 안에 ?! ‘ ’있을 때 사람들이 밖이라고 하는 곳에 막상 나와 보니 새삼스러워지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 . 2007년 월 일자 문화일보에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란 글을 보면 어느 시인이 자기가 앉아서 소변을 보는 12 1 ‘ ’ , 진짜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화장실이야말로 나의 수행공간이라는 글귀가 나와요 그분의 , ‘ ’ . 생각에 대해선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지만 화장실이 수행적이다라는 부분에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더라‘ ’

고요 노란 책자에서와 같이 움직이는 화장실처럼 화장실 자체가 수행적 인게 아니라 그 안에서 뭔가. ‘ ’ (?) ‘ ’

를 수행하는 내가 그럼으로써 나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요 제 작년 월 어느 날이었을 거예요 실형을 . 11 .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되던 날 수갑과 포승줄에 묶이고서 선 채로 소변을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습관이 . 하라는 대로 시도는 해봤지만 녹록치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랜 습관처럼 지퍼를 이용해 볼일을 볼 수밖. 에 없었어요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지요 지금은 안이 돼버린 곳에서도 그렇고 또 안에 있을 땐 밖이. . ‘ ’ ‘ ’

라고 했던 곳에서도 계속 앉아서 소변을 봅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그게 더 편해서라고 말 하는 . ‘ ’

게 속이 더 편해서 그래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안에 있을 때보다 왜 앉아서 소변을 보냐는 얘기를 자. 주 듣거나 그런 이유를 설명해야하는 상황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새삼스럽게 남자란 사실을 강조하. ‘ ’

며 본인이 앉아서 소변을 보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릴 정도로요 신기한건 얼마 전부. 터 일하고 있는 곳에서 사용하는 화장실이안에 있는 화장실과 구조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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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랑병역거부 2006.7.10

심 년 개월 선고 법정구속 2006.11.07 1 1 6 , 영등포구치소에서 가석방 출소 2008. 1.30

매우 흡사하다는 겁니다 크기는 물론이고 일명 쪼그려 변기와 수도꼭지가 하나씩 있는 것까지 방향이. ‘ ’ , 나 위치만 약간 다를 뿐 앉아있으면 으스스하게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공기가 차가운 것도 닮아있어요. 단지 자그마한 창문 하나가 없어서 불이 안 들어오면 눈을 감은 것처럼 까만 것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 는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오랜 노하우 앞에서는 변별력이 없어집니다 나보다 (?) . 좌변기가 훨씬 위생적일 것 같은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때나 가끔 앉기 싫을 정도로 화려한 흔적의 좌, 변기와 마주하여 투명한 오토바이를 타는 자세로 볼일을 볼 때나 그런 것도 하나의 수행이라 생각하고 , ‘ ’

바지춤을 내릴 때가 많은 저에겐 무엇보다 중요한건 그게 불편하지 않다는 걸 거예요 전혀 불편할 것 같. 은 상황이 편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안이란 곳에서 참는 . ‘ ’

법을 너무 많이 배워서 그런지 확실히 자세를 바꾸니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참고 있는 나를 발견할 ,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목욕을 할 때나 한적한 곳에 혼자 뚝 떨어져있을 때 급한 몸과 마음의 혼란처럼ㅋ. .ㅋ 이런 때일수록 화장실 을 이용하는 나에 대한혁명을 떠올려보지만 그게 말처럼 결코 쉽지 않네요‘ ( ) ’ . 결국엔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나나 그 시인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거겠죠 그래도 사찰의 화장실은 해?! ‘

우소 라고 부른다던데 모든 근심과 걱정을 털어버리듯 그 작은 공간 안에서 물에 젖은 비둘기를 ’( ) , 解憂所날리며 점점 가벼워지는 내가 그 만큼 세상의 이분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p.s개인적으로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라 매번 깨닫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누가 화장실 마니아 아니랄까봐 화장실 얘기하니까 금방 신호가 오네요. 다른 분들의 글을 받아볼 때 은근히 힘이 났던 기억이 나는데 갑자기 묘 해지는 이 기분(?) , !!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다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으쌰으쌰. !! 엄마아빠를 제외하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누구한테는/ . ‘ ’ ...그럼 전 늦기 전에 이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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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병역을 거부하는가안홍렬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년 월 병역거부+ 2008 1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 대부분이 군대를 다녀왔다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1. . 때 난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되고 진짜 남자가 된다던 어른들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상의 부, “ ‘ ’ ‘ ’ ” . 조리에 냉소를 보내고 부당한 권력행사에 저항하던 한 친구는 자신의 저항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 지 반성하며 나에게 세상사는 법을 설파한다 군 복무를 하던 어느 순간부터 그는 세상에 자신을 맞춰가, . 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제는 영혼 없는 관료가 되어 한낱 기계부품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은 그. ‘ ’ , 가 드디어 철이 들었다고 환영한다 어른들이 말하던 사람은 힘들어도 군소리하지 않고 명령에 따라 성. ‘ ’ , 실하게 작동하는 로봇이었던 것이다.

평소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다른 한 친구는 내가 알던 친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이 , 변해 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담배까지 입에 물고서 그가 내뱉던 말들은 담배 연기만큼이나 지독하고. , , 거북했다 여성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서 여성에 대한 얘기로 끝나던 그 지루하고 짜증나던 대화에서 여. , , 성은 그에게 단지 성적 소모품일 뿐이었다 성매매업소의 출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치 전리품을 얻은 . , 듯 당당히 말하는 그를 나는 이제 만나지 않는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그는 친구가 아닌 낯선 이방, . , 인이 되어버렸고 진짜 남자가 되어 가짜인 나를 하찮게 여기는 당당한 대한민국 국군장병 으로 살고 , ‘ ’ < >

있다.

처음 걸프전을 에서 보고 환호하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밤하늘을 수놓던 미사일의 불꽃과 지2. TV . 상에서 벌어지던 수많은 폭죽놀이 미국 무기의 이름과 성능을 달달 외우고 오늘은 또 어떤 무기가 새롭. , 게 선보일지 기대하던 그 시절 전쟁은 일종의 게임이었다 그러나 년 이라크 전쟁과 세계 각국의 내, . 2003전을 보던 나의 눈은 더 이상 미사일의 궤적을 좇지 않는다 폭죽놀이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람. 들의 주검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석유만큼이나 시커먼 정치꾼들. 의 속내가 보인다.

파병을 둘러싸고 국익 논란이 뜨거웠다 파병을 해야 그 지역의 사업이권을 챙길 명분이 생긴다는 ‘ ’ . ,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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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이라크 국민들이 흘리는 붉은 피는 정치꾼들에게 푸른 종잇조각으. 로 보인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국익보장을 약속하는 승전보로 들린다 그렇다 죽음은 중요치 않다 이. . . . 라크 국민들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파병군인들의 죽음도 중요치 않다 군인은 국익을 위한 일종의 투, . 자금일 뿐이다 그리고 투자금을 담아 보내는 가방에는 커다란 두 글자가 쓰여 있다 평화 투자금의 가. . ! 치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평화를 위해 오늘도 대한민국 국군장병 들은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연, , < > , 습을 한다.

내가 바라본 군대는 바로 이런 곳이다.

군대는 유무형의 폭력을 통해 조직의 억압적인 위계질서와 권위를 유지한다 그 안에서 한 명의 군인, . 으로 사는 순간부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성은 마비되고 명령에 대한 자동적인 육체적 응답만이 요구, 된다 그렇기에 군인 은 사라지고 오직 군번 만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군대다 그런데 군대에서 . ‘ ( )’ , ‘ ( )’ . 人 番요구되는 이러한 적응과 순응은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한국사회. 의 질서는 군대 내의 질서와 거의 똑같으며 부당한 명령에 대한 문제제기나 저항은 조직의 질서를 무너, 뜨리는 위험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반면 군대를 잘 다녀온 사람들이 보여주는 유연함은 조직의 원활한 운. 영을 도와주는 윤활유가 된다 그리고 이 유연함이 바로 견고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비결인 것이다 또. . 한 군대를 경험하거나 군대문화를 체득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진짜 사나이의 신화는 여성에 대한 성적 ‘ ’

대상화와 성폭력을 미화한다 사나이들의 우정을 경험하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남자들의 알 수 없는 우월. 감과 폐쇄된 공간에서 유포되는 왜곡된 성문화는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군대문화는 사회. 의 다양한 영역에서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고 그 속에서 여성들은 동등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남성들의 , , 성적 불만족을 충족시켜주는 한낱 대상으로서 간주될 뿐이다.

군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국방의 , , 의무를 지닌다 그런데 국방의 의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간단히 병역의무와 동일하게 여겨지고 총을 들. , 어야만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평화를 목적으로 삼고 있으면서 동시에 총을 들. 고 합법적으로 살인기술을 배우는 이율배반적인 곳이 바로 군대다 총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유. 지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총은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총을 든 자의 폭력성을 불러일으키. , 거나 만들어낸다 이라크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 중 하나는 무기나 무력은 평화를 위한 수단일 , . , ‘뿐이며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올바르게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환상이라는 사실이다 무기를 드는 , ’ . 순간부터 인간은 무기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누가 진짜 적인지도 모른 채 정치꾼들이 만들어낸. , ‘ ’ 적 또는 적일 것 같은 적을 해치우기 위해 총을 들 뿐이다 그러나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 ‘ ’ . 는 한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 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긴장감, , . 과 불안한 정적은 평화가 아니다 그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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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 육체에 가해질지도 모를 고통보다 내 정신에 찾아올지도 모를 안락함이 두렵다 무엇이 옳고 그른. 지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유보한 채 오로지 적응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한다는 게 두렵다 그리고 언젠, . 가 나에게 가해진 폭력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사할까 두렵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 는 게 두렵다 또 한 명의 마초가 될까 두렵다 국익이라는 이름하에 정치꾼들이 그려놓은 사업계획에 따. . , 라 꼭두각시처럼 춤을 추게 될까 두렵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쩌면 친구로 만날 수도 있었을 그런 사. , 람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어느 순간 명령에 따라 총을 쏴야 하는 순간이 닥칠까 두렵다 그리고 이 , . 모든 두려움은 다름 아닌 총을 들고 대한민국 국군장병 으로 살아야 한다는 나 자신이 동의하지도 ‘ < > ’ ― 않았고 동의할 수도 없는 또한 나 스스로 부여한 것도 아닌 병역 의무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 , . ― 대한민국 국민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 되고 싶다 이성을 가진 영혼을 지닌 한 명의 온전한 인간이 . , 되고 싶다.

안홍렬월 병역거부 2008.1

경찰조사 2008. 2.19 영장실질심사 불구속 2008.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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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민가협 목요집회700총대신 꽃을 평화행진 +‘ ’

조은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회 민가협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700 ( ) 목요집회

월 일 서울 종로 가 탑골공원 앞에서 3 13 2회째 민가협 목요집회가 열렸다 민가700 .

협 목요집회는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외치며 년 월 일 처음 1993 9 23시작하여 지금까지 한주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어 왔다 민가협은 목요집회에서 양심. 적 병역거부자와 관련되어 끊임없이 지지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 날 행사는 수십 명의 민가협 회원들과

출소한 병역거부자들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 등이 모인 가운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람들의 포스터 여점을 펼쳐놓10고 행사를 진행했다 이 날 참여한 병역거. 부자들은 회를 맞이한 목요집회에 꽃과 700함께 축하의 인사와 감사의 인사를 전달하였다.

올해 월 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가석방 1 30출소한 병역거부자 송인욱 씨는 출소인사를 한 후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밖에서 기다려준 가족들과 나를 믿어준 사람들 덕분 이라며 포스터에 있는 " "

사람들 모두 건강히 밖에서 다시 보길 바란다 고 말했다 이어 전쟁없는세상 활동." . 가 용석 씨가 현재 대체복무제도도입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발언했다.

집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궂은 날씨와 어려움 속에서도 한 번의 빠짐없이 년째 집15회를 이어온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고 앞으"

로 더 잘해보자 고 다짐하며 집회를 마쳤"

다.

목요집회에 참여중인 병역거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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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대신 꽃을 평화행진‘ ’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한 다양한 평화단체들은 월 일 인사동 북인사마당에서 총 3 22 ‘

대신 꽃을 평화행진이라는 길거리 평화행’

사를 열었다 총 대신 꽃을 평화행진은 미. ‘ ’ 국의 이라크 침공 년째를 맞이해서 우리5들의 삶을 둘러싼 전쟁과 폭력 그로인한 , 빈곤과 차별의 문제에 저항하기 위해 평화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행사다.

이 날 행사는 부 문화마당과 부 행진마1 2당으로 이뤄졌다.

문화마당에서는 루드의 상상력밴드 실버라, 이닝 판단력비판 바닥소리 등 공연팀의 , , 전쟁과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내용의 다양한 공연과 참가단체들의 전시회가 진행되었다 특히 개척자들에서 준비한 관타나모 . , 퍼포먼스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반인권적인 상황을 알리기 위해 관타나모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얼, 굴을 가리고 손이 묶인 채 맨발로 퍼포먼, 스를 진행하였다 문화마당 마지막에는 참. 가자들이 녹음된 총성과 폭격소리에 바닥에 쓰러졌다가 꽃을 받고 다시 살아나는 다이 인 퍼포먼스로 전쟁 희생자들을 애도-하였다.

이어 행진마당에서는 평화를 상징하는 꽃과 화분 피켓을 들고 인사동 거리를 지나 , 미 대사관 근처까지 평화행진을 하였다 행. 진 도중 참가자들은 돌아가며 평화와 관련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였고 행진 , 마지막에는 평화를 표현하는 느릅나무 춤을 추며 행진을 마무리 하였다.

총대신 꽃을평화행진에 참가중인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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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평화로총대신 꽃을 평화행진 참가기-‘ ’

답청 | [email protected]

내가 참 무심하기도 하지 거짓말 덩어리이기도 하지 년을 살아 왔고 살고 있는 중인데도 총 대신 . . 20 “

꽃을이란 집회가 내겐 처음 이었다 고등학교 학년을 기점으로 이 사회가 정상이 아니 구나 라는 ” . 3 “ .”……

생각을 했는데 지금에서야 한 곳에 참여를 했단다. 그 시절 친구들하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사회 부조리 현실의 벽 이라며 이러쿵저러쿵 많이 떠“ ” “ ” … …

들어 댔는데 왜 행동할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질 않았을까 우리들의 발목을 늘 옭아매는 수능이라는 . ‘ ’

가혹함 때문에 언론에서 보여 주는 집회는 늘 무섭고 가까이 하면 안 되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부? ? 모님한테 혼날까봐 나한테 당면한 과제가 아니었기에 온갖 핑계를 내 앞에 둘러 대며 알면서도 모른 ? ? 척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를 묶어 두었는지도 모른다. .

다행히도 첫 집회는 내게 좋은 기억으로 자리매김 해 주었다 언론에서 보았던 것처럼 피를 흘리며 . 쓰러지는 사람도 없었고 다들 잿빛얼굴들을 하고 고래고래 악을 쓰는 모습 또한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물론 그래야 하는 상황들이 많이 존재 하지만 거리에 앉아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 다들 다른 방식으로 ( ).

평화를 노래한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기타로 너는 청초한 목소리로 우리는 프리스타일 랩. 으로 다른 이는 글로 누구는 그 모습을 눈으로 카메라로 마음으로 담아 가면서 . ……

꽃 내 나는 모습들을 담아가는 입장에 있는 나는 꼭 몇 해 전 언니가 들려준 순 우리말 하나가 떠올랐다 딴 이름 한 소리 피아노 건반의 재미있는 속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도 샵과 레 플렛은 다른 . . ‘ ’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결국에는 같음 음을 낸다는 그 당시에는 내게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는데 다양. … 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고 다른 곳에서 다르게 왔지만 한 날 한 시를 함께 한 우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한 소리를 낸 것이 아닐까 억지인지 모르지만 딴 이름 한 소리라는 순 우리말에 . 내가 그 날 본 우리들의 모습을 내 방식대로 그려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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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청님이 보내준 사진들

행진을 하면서 느꼈던 것 인데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행진 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밖에서 보면 참 예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행진 하는 동안 즐거웠는지는 내가 장담 할 수 없지만 나는 . 적어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때로는 크게 노래도 부르며 길을 걸었다 그 순간이 즐거웠다 사람냄새 풀풀 . . 풍기는 이 대열 안에 나도 한자리 하고 있다는 것이 내겐 적지 않은 기쁨이었다.

그래 그렇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행진과 평화의 노래가 총 대신 꽃을 부르기에는 아직 턱 없이 . .

부족하겠지 물론 그렇겠지 그래 하지만 아직인 것이다. . . ‘ ’ .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앞으로 더 만나야 할 일들이 많이 남은 것 이라면 오늘처럼 산뜻한 느

낌으로 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 보자 우리들까지 무서워져서 서로 흘기며 개개인에게 책임. 을 돌리지 말고 평화를 평화로 맞이하자 똑같이 총과 아픔 피와 증오로 평화를 부르지 말고 당연한 분. , 노로 그 힘이 다시 평화가 되어 평화를 맞이하자 그래 그것이 좋겠다 는 생각이 헤어 질 때 즈음 들. . “ .” 었다.

내게 첫 집회였던 총 대신 꽃을은 희망을 노래하는 방식들을 보여주었다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난 “ ” .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게도 콘크리트 같은 숨 막히는 어른이 되어서 화를 내고 언성을 높여야 할 시간. 이 온다면 오늘의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야지 내 앞에서 한들한들 내음새를 풍겨주던 애플민트의 향수. 를 기억해야지 그래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주문을 외며 글을 점찍는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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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와 저항의 다이인 Die-in

이채 |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블로거의 모임

우리 다이인 해요" , die-in ."우리 액숀의 시작은 이 한 마디였다 녀름의 제안이었다 블로거 녀름은 우리를 위한 비폭력 교과. . <

서 라는 책에서 다이인을 접하게 됐다고 했다> .

다이인이 뭐야?다이인은 말 그대로 죽은 듯이 바닥에 누워있는 비폭력 저항 시위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주로 전쟁. "

이나 폭력에 반대하거나 어떤 분쟁이나 갈등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기술 발전을 거부하는 등의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메시지를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구호나 그림을 " . 들기도 하고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상처나 피 묻은 붕대를 사용하기도 한단다, .

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다이인이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2003다 피 묻은 흰 천과 꽃을 덮고 죽은 듯이 누운 일군의 사람들은 그 자체로 전쟁의 참상과 슬픔이었고. , 모르긴 몰라도 전쟁을 남의 일로만 여기던 미국인들미국이 저지른 전쟁인데도 에게 꽤나 충격이었을 것( !)이다.녀름은 기름 유출 사고로 죽은 갯벌의 무수한 생명체들과 갯벌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의 막막함을 보면서 다이인을 떠올렸다면서 지금의 상황을 애도하고 사고 책임자들의 책임 이행을 촉" " , 구하는 뜻을 담아 다이인을 하자 고 제안했다" .블로거들의 호응이 잇따랐다 액숀은 블로그를 통해 다듬어졌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

이 이어졌고 벨리댄스를 추자거나 분필그림을 그리자는 등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속출했다, .

우리도 하자, !올해 초 녀름의 제안으로 시작된 다이인 논의는 점점 뜨거워졌다 돌을 끓이고 있다는 기막힌 소. -_-

문 사실이 아니었으면 했다과 돈을 벌기 위한 방제업체들의 꼼수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일 것 같다( ) ( -_-) 등을 전해 들으면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과 안타까움이 커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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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토대로 월 일 서울 홍대 근처에서 몇몇 블로거들과 네이버 태안 카페 회원들이 모여 오프라인 3 1모임을 가졌고 기름 유출 사고 일째인 월 일 서울 청계광장과 삼성 본관 앞 두 차례에 걸쳐 다이, 100 3 15인 액숀을 하기로 했다.

이날 모임에선 기발한 제안들도 여럿 나왔다 기름 덩어리가 뭉클뭉클 흘러나오듯 검은 피를 뿜자는 . 의견이 나와서 검은 피의 재료를 무얼로 하면 시각 효과와 미각 효과를 동시에 충족시킬지 한참동안 열 올려 토론하기도 했다 잘하면 해외토픽까지 나갈 수도 있겠다고 들떴으나 결국 실행되진 않았다 후보로. . 는 커피 가루와 춘장 등이 거론되었는데 언젠가 시도해 볼 만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_-).

기름 묻은 바위 묘를 상징하는 깃대나 조개무덤 비석 등등의 소도구를 활용하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 , 이것저것 얘기해보다 결국엔 다 귀찮다 는 결론에 도달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는 아름다운 변명으로 -_- , " "

없던 얘기가 됐다. 참가자 모두가 바다 생물로 분하자는 의견이 나와 제법 호응을 얻었으나 자칫하면 우스워질 수도 있

어 안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인어로 변신하라고 했다( -_-). 향이나 꽃을 준비하자는 제안도 나왔다가 향은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꽃은 비용,

도 많이 들거니와 나중에 쓰레기가 된다는 이유로 하지 않기로 했더랬다 그런데 액숀을 하는 당일 누군. 가 꽃집에서 시들어가는 흰 국화를 한 다발 얻어와 나누어 들었는데 애도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표현하는 데 꽤 효과적이었다.

애도와 저항의 다이인그리고 다이인 했다, . 나는 갑작스레 스케줄이 생기는 바람에 차 다이인부터 결합했는데 차 다이인은 청계광장에서 엄청2 , 1

나게 시끄러운 행사가 진행 중이어서 그닥 눈길을 끌지 못했다고 했다. 서둘러 걸었는데도 벌써 다이인을 시작한 모양이다 사람들이 주르륵 누워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 .

들이 정말 죽은 듯이 축 늘어져 누워있는 모습은 내게도 처음이었다 섬뜩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 한 뭔가가

삼성본관 앞에서 펼쳐진 다이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당신의고양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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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한다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드러누워 미리 그려온 저항의 그림을 펼쳐 들었다. . 어느 즈음엔가 태평소인지 늘어지듯 가슴을 찌르는 듯한 음색이 울려 퍼지고 그저 걸어 다니기만 하,

던 길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있자니 묘하게 나른하면서도 슬픈 감정들이 올라왔다. 거리낌 없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어서 그런지 해방감도 들었고 난 당신들에게 저항하고 있어라는 문, " "

장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비장해지기도 했다 바다에서 죽어간 게와 조개들 사람들의 잰 발걸음 소리 어. , , 느 날 갑자기 온 세상을 덮어버린 검은 기름 엄마 저 사람들 뭐야 라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물음 하나, " ?" , 씩 사라지는 내 친구와 가족들 버스가 오고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다시 출발하는 소리 죽을 지도 모른다, , 는 두려움 이 기름 덩어리에서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절망감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 그 모든 것들, , - 이 뒤죽박죽되어 내 머리를 내 뺨을 내 발목을 타고 흘렀다, , .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몸을 일으켜 잠시 휴식한 다음 거리행진을 마치고 들어오는 대오에 맞추어 다시

다이인을 시작했다 이때는 사람들 이라기보다는 취재진 의 카메라 세례를 받느라 처음처럼 내 감정. ( -_-)에 집중하긴 어려웠다 뭔가 요란스레 번쩍거리고 찰칵거리길래 눈을 살짝 떴더니 우리를 둘러싸다시피 . 늘어선 카메라들 카메라들 하도 열성적으로 찍어대셔서 누워있는 것에 의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봤. (자 어차피 보도하지도 않을 거면서 쳇 아저씨 몇 분이 함께 드러눕기도 했다 엄마 저 사람들 진짜 죽). . "었어 라는 아이의 물음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은 채 킥킥거렸다 아냐 나는 안 죽었어 바다도 완전히 ?" . , - 죽어버리거나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 거야 꼭 그럴 거야. .

고민은 계속되기를그렇게 우리의 저항과 애도의 다이인은 무탈하게잠든 사람 하나 없이ㅋ 마무리되었다 다이인을 ' ' ( ? ) .

끝내고 나자 대책위 쪽에서 마치 다이인을 자신들의 부속행사인양 정리 멘트를 날린 것에 이어 엄청난 수의 풍선을 불어 띄우겠다고 해서 우리를 기함시키긴 했지만 말이다. 저항과 애도의 다이인이라는 액숀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우리는 단순히 갯벌의 기름을 닦아내는 것' ' ,

죽어간 바다 생명체를 애도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 우리는 국민들의 자원봉사에 감동하는 분위기를 부추기면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려는 삼성과 정" "

부를 규탄하고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고자 했다 특히 서해안의 방제작업은 일종의 돈벌이가 되어 방, . 제업체들이 용품을 마구 쓰고 버린다든가 수당을 많이 받으려고 작업을 서두르지 않는다든가 하는 흉흉한 소문에는 무력감과 분노가 한꺼번에 일었다.

기름을 흩어내겠다고 알갱이를 쪼개거나 여름이 되어 수온이 높아지면 바닥에 가라앉았던 기름들이 (다시 떠오른다고 한다 젠장 돌을 끓이는 등의 일시적인 대응은 당장 그만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 -) , 태계를 살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시행하기를 바랐다. 더불어 우리 스스로도 석유 자원을 낭비했던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기를 끊임없이 더 많이 소,

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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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에너지 소비 구조 난 좀더 명시적으로 자본주의라고 명명하고 싶( -_-) ( " "

었지만 흣에 대해서도 성찰하기를 우리는 우리의 작은 액숀이 스스로에게 또 그것을 보거나 참여하게 ) - , 될 사람들에게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이런 몇 가지 공통된 지향이 있지만 그 무언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들은 너무 당연하게도 다종다( ) 양하다 이를테면 자원봉사를 계속 해야 하는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들어보면 제. , 각각일 거다 누군가는 꼭 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테고 나는 이런 의견에 조금쯤은 동의하지만 자원. , 봉사 우리나라 자꾸 이런 거 미화하는데 정말 별로다 로 풀 수 없는풀어서는 안 되는 구조적인 문제도 ( ) /있다고 생각한다엄청난 사람들이 자기 돈 써가며 금쪽같은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태안으로 몰려가는 걸 (보고 감동하기도 했지만 일종의 광기라는 생각에 가슴 한 쪽이 서늘했더랬다).

다이인 액숀에선 이런 세밀한 차이들은 무화되지 않았고 내 경우엔 오히려 다이인이 이런 고민들을 , 더욱 세심하게 풀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액숀에 함께 하고 우리를 지켜보았던 사람들의 가슴에도 작은 . , 씨앗 하나 심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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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헌법 조와 세계 평화9

여옥 |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최근 일본의 헌법개정을 둘러싼 일본 정치권의 움직임은 일본의 국민들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꽤나 큰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평화헌법 때문에 군대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실질적 군사집단인 자위. 대가 존재하고 있고 경제대국답게 엄청난 국방비지출을 자랑하는 일본이 전쟁을 포기하겠다는 헌법을 고치는 순간 그 이후에 일어날 전쟁위협이나 주변 국가들의 군비증대은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딱 , . 여기까지만 알고있던 나는 마침 일본에서 헌법 조 수호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기 위9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톨릭 공동체운동을 하는 예수살이공동체의 초청으로 마련. ‘ ’

된 이번 자리에 전쟁없는세상도 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간담회와 강연에 참석하다

월 일 토요일 오후 시 합정동 밀알의 집3 8 2에서 진행된 관련단체 간담회는 조회 한국위원9회를 비롯하여 나눔문화 전쟁없는세상 우리신학, , 연구소 한국 가톨릭정의평화위원회 등 평화에 ,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현재 자신들이 하고있는 활동들을 소개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평, 화헌법 수호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정적인 일본의 운동방. 식과 다이나믹한 한국의 운동방식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건의가 많았지만 통역을 거쳐야해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예수살이공동체에서 준비한 일본헌법 조와 세계평화‘ 9 ’ 강연을 알리는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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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헌법 제 조 9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권 발동인 전쟁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1. , ,

무력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이것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것을 인정하2. .

지 않는다.

간담회에 이어 시에 마리스타 교육관 강당에서 일본헌법 조4 ‘ 9 1)와 세계평화에 대한 주제로 강연이 ’

시작되었다 아직 한국에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꽤 사람들이 강연에 참석했다.

헌법 조만으로도 전쟁을 막다9

일본헌법은 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국제연합헌장을 적극 반영하여 만들어졌고 년 월에 2 , 1946 11공포된 이후 한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년에 일어난 한국. 2 1950전쟁에 일본은 헌법 조 때문에 전쟁에 관여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년 한반도는 긴장감이 고9 . 1994양되면서 전쟁 직전의 상황까지 가게 되었고 미국은 전쟁기지로서 일본의 협력을 요구했으나 당시 호소, 카와 수상이 헌법조를 이유로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의 계획에 차질을 주어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9고 한다 헌법 조만으로도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헌법 개정이 단지 일본만. 9 . 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일이기도 한 것이다, .

만약 일본 헌법 조가 개정된다면9 ?

일본의 헌법 조는 일본이 국제분쟁 해결수단으로 9전쟁과 무력행사를 영원히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헌법 조가 개정된다면 일본은 . 9군대를 만들고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가할 수도 있게 된다 지금 있는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전쟁에 . 직접 참여할 수 없을 뿐더러 일본이 만들거나 보유하고 , 있는 최첨단 무기들을 해외로 수출할 수 없는 것도 다 헌법 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마츠우라 주교는 말했다9 . 그는 헌법 조가 개정될 경우 일본은 현재 가지고 있는 9

기술능력을 이용해 무기산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뿐만 아니라 , 전 세계적으로 군비를 경쟁적으로 늘이게 되면서 그만큼 전쟁위협도 커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 회장 마츠우라 고로 주교 이라는 헌법조 개정반대 단체. ‘Peace 9’ 9를 만들어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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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개정은 년 국민투표에서 판가름2010

작년 일본 국회에서는 헌법개정에 대해 국민투표를 할 수 있는 국민투표법안이 통과되었다 국민투표. 법이 통과되고 년 후 헌법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3 . 평화헌법은 개정되는 것이다 일본정치의 우경화와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한때 찬성 비율이 까지 나오. 70%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이도 헌법 조를 지키기 위해 시민사회 종교계 등이 함께 활동을 하면서 헌법개. 9 , 정 찬성이 미만으로 떨어졌다 마츠우라 주교가 년 만든 이라는 단체는 회원 명 이40% . 2002 ‘Peace 9' 3상이 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현재 등록된 소모임만 해도 여개다 외에도 노벨문학상을 , 1060 . 'peace9'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 등의 주도로 결성된 평화 헌법 수호 모임 조회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헌법조 '9 ' . 9수호운동을 계기로 침체되어있던 일본의 사회운동이 다시 활기를 띤다고도 했다.

평화헌법 본래의 의미를 살려야

지금 당장은 개정을 막아내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헌법 조가 개정되지 않은 . 9지금에도 일본은 충분히 군사대국이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쟁에 가담하고 있다고 본다 헌법 조를 지. 9켜내는 것은 개정을 막는 것과 더불어 평화헌법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살려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의 운동이 헌법 조의 개정을 막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긴 하? 9다 침략 전쟁으로 다른 나라에게 많은 피해와 상처를 안겨주고 패전을 경험한 일본은 평화헌법이 어떻게 . 만들어졌는지를 기억하고 어떻게 하면 평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이 함께하길 바래본다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가 되살아나면 가장 큰 위협에 처할 이 나라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일. 본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지지와 연대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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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어떤 분은 그것만 생각하면 우울증 걸릴 것처럼 우울해지고 또 어떤 분은 그것만 생각하면 밤에 , 잠이 안 온다는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조명희의 소설 낙동강 이 떠오‘ ’ 《 》

른다 나는 오직 기가 막힐 뿐이고 우리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생각해보. , 게 되는데 결국 우리가 강으로부터 제 삶의 젖줄을 떼 놓음으로써 한반도 대운하라는 괴물 같은 , ‘ ’

발상이 싹틔워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년 전 지인들과 낙동강 물길을 따라 걷는 행사. 2 , 에 참여하였을 때 구포에서부터 낙동강이 끝나는 을숙도 마지막 구간까지 강변을 따라 고층 아파, 트들이 끝없이 도열해 있는 것을 보았다 강은 이제 풍경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마시는 물이 저 . . 강에서 온다는 것만 알아도 강바닥을 파 헤집고 거기에다 거대한 화물선을 띄우겠다는 생각은 할 수 없다 요컨대 우리는 지금 마시는 물이 어디에서 오는지조차도 잊고 있는 것이다 이계삼. , . ( ,

이명박 시대를 맞이하는 마음 녹색평론 호 년 월 , 99 , 2008 3-4 ).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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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교육을 넘어서는 새로운 학습론에 대하여-날맹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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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교육 과정에 따라 주된 교재로 사“

용하기 위하여 편찬한 책 국어사전에 제시된 교.” 과서의 정의이다 한국에서 공교육 년 과정을 . 12밟아본 사람들에게 교과서는 늘 함께 지내야만 했던 친숙한 존재이다 설령 고 때에는 대입 준비. 3를 위해 문제집을 더 주로 본다하더라고 결국 출제범위는 교과서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교과서와 동 떨어져진 청소년기를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위에 인용한 국어사전의 정의에도 언급이 되었지만 교과서는 근본적으로 학교라는 교육제도, 와 분리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 의 형성과 함께 학교교육이 시작되었을 때 교과, 서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담아내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물론 교과서는 크게 국가기관인 교육부. 이제는 교육과학기술부로 명칭이 바뀜에서 직접 ( )

집필을 하느냐 아니면 일종의 외주를 준 다음 검인정을 하느냐에 따라 국정교과서와 검인정 교과서로 구분될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국가가 구획해놓은 공교육과정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 )서 교과서에는 곧 그 국가의 철학이 담겨있다고, 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국가에서 국민들이 배. 워야만 할 것들을 교과와 학년별로 분화시켜놓은 구체적인 산물이 바로 교과서인 것이다 근대 공. 교육체제가 공고해질수록 교육은 이제 학교를 다‘

니고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으로 의미가 규정지’

어진다. 현재의 뭇 사람들은 교육 학교교육이라는 ‘ = ’

도식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그렇다,

면 근대의 산물인 학교가 존재하기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혹은 근대 ? 이전의 사람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학습의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우리에게 익숙한 ‘ ’ ? 조선시대 서당의 모습이라든가 중세 서양의 수도원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예전의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시. 대와 환경에 따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의미는 달라져왔으며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학교, 와 교과서는 근대 이후에 보편성을 획득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고. 각 시대에서 규정되는 교육의 의미와 이상적

인간상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운영원리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 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근대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관의 특징은 양성되는 인간들의 특징은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인용한 이계삼의 표현에 잘 드러나고 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가지고 학습을 . 마친 사람들은 지금 마시는 물이 어디에서 오는“

지조차도 잊고 강바닥을 파 헤집고 거기에다 거” “대한 화물선을 띄우겠다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근대 교육이 비단 한국에. 서만 있었던 것이 아닌데도 대운하를 파겠다는 ,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곳이 바로 이 곳 한국이다 그렇다면 구체적. 으로 우리는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무엇을 배운 것일까?

교과서와 자본론 을 대하는 자세의 공통점『 』

현재와 같이 형편없는 수준의 사지택일형 시험공부만 하다보면 학생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교과서 안에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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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현실과 관련이 없는 외울 수 있는 그러면서 점수 차이를 낼 수 있는 단“ , , 편적 지식들을 요약 정리하고 출제자가 기대하는 정답을 찾아내기에 급급해진다 달리 말해서 ” . 문명의 대 발상지는 하고 질문이 떨어지면 퀴즈의 답을 맞추듯 답을 재빨리 찾아내는 훈련을 “ 4 ?”

누구 못지 않게 받게 되며 이때 이들은 문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본다든가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상상해 보지 못한다 중략 공. . ( ) ‘부를 위한 말과 생활을 위한 말은 일찍부터 분리되며 삶과 따로 노는 지식이 공식적지식으로 ’ , ‘ ’

군림하게 된다 조혜정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 쪽. ( , 164-165 ) 《 》

위에 인용한 조한혜정의 언급은 근대적 교육의 결과를 잘 보여준다 입시교육의 현실에서 자. 유롭지 못한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교과서에 나온 지식들을 하나의 진리로 여기고 그것을 외워야만 한다 가령 도시에 사는 학생들과 농촌에 사는 학. 생들의 삶의 맥락은 서로 상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데 한 개인이 공교육의 틀 안으로 포섭되는 순간 모두에게 동일한 교육내용이 담긴 교과서를 가지고 똑같은 내용을 학습하게 된다 이렇게 학. 생들의 삶과 활자화된 교과서 사이에서 이미 한번 벌어진 간극은 객관식 문제로 이루어져 있는 대입 시험의 과정을 거치면서 또 한번 비틀어지고 왜곡된다. 모두에게 보편타당한 진리가 존재하는가에 대

한 답을 일단 유보하더라도 진리라고 여겨지는 ,

것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어서는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듣는 표현인 비판적 사고의 과정을 통해야만 한다 백번 양보하여 국가가 표준교육과정을 . 이미 정해놓은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교과서에 서술된 내용들이 하나의 정답이 되어 ‘ ’

다른 무수한 오답들을 배제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 ’

정당화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현실. 에서는 국가가 정해준 교육과정과 내용들이 하나의 미리 고정되어 있는 진리로 여겨지면서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능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소위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이미 정해. 진 정답에 대해 의심을 품지 말고 일단 외워야만 ‘ ’

하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에 길들여진 개인들의 . 책읽기 방식에 대해 조한혜정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근대적 사고의 기본이 의심의 제도화에 있다고 기든스가 지적했듯이 사실 절대주의적 사고를 넘어‘ ’ , 서서 상대주의적으로 보는 것 곧 주어진 진리를 끊임없이 의심해보고 새로운 진리를 추구하는 것, ‘ ’

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태도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그 동안 학생들이 길러온 태도와 너무나 . 다르다 입시 위주 교육제도에서 길들여진 학생들은 정답이 없는 질문을 매우 싫어하며 혼돈 상태를 . 참아내지 못한다 성급하게 근원주의 본질주의로 빠지는 것이라든가 어떤 거창한 이론에 완전히 기. , 대버리고 싶어하는 것도 바로 그 동아네 길들여진 사고 경향과 관련이 깊다 중략 정답과 오답을 . ( ) 분명히 가르듯 정통과 비정통을 구분하고 자신들의 경전에는 교과서에서처럼 반드시 해답이 있으리, 라고 믿으며 정통에 들지 않는 듯한 애매한 말에 대해서는 꼬투리를 잡아 거부해 버리면 그만이다, . 조혜정 앞의 책 쪽( , , 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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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자신의 삶에서 경전의 자리를 차지하던 교과서를 독해하던 버릇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대학에 들어온 다음에는 이전의 교과서의 자리에 맑스의 자본론 을 앉혀놓는다. 『 』

자기 삶의 미세하고 다양한 억압들을 잡아내지 못하고 단순명쾌하게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혹은 민족해방을 외치는 순간 자신의 가치판단에 있어 , 선과 악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운동가로서의 자기 삶은 훨씬 편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사람과 ,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게 된다 왜냐하면 보통 그런 사람과는 대화가 잘 .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소위 반미주의자들이 . 말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도

평화적 삶의 한 측면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평화를 구성하는 전부는 아닐 것이다 분명한건 당. 장 자기 삶에서 미군보다도 예컨대 부모님으로부터의 억압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결론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사. 실은 상대적인 가치들이지만 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마치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진리인양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하여 공부하는 학생. 들의 사고를 심히 단순화시킨다 더 큰 문제는 교. 과서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길들여진 독해방식이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근대교육 삶과 분리된 지식을 배우다-

나는 자라면서 몸 공부를 제대로 못 했다 몸은 그냥 있는 것 그 이상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 ’ . , . 몸에 대해 이런저런 공부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교과서에 나오는 몸 이야기는 몸 일반에 대한 지. 식이었다 대부분 생물학적 의학적 지식이다 뇌를 공부하면 뇌하수체 시상하부 어쩌구저쩌구. , . , . 영양소도 나오고 똥오줌에 대해서도 배운다 소장 대장 직장 신장, . , , , . ……

그렇게 배워도 똥을 누고는 똥을 돌아볼 줄도 몰랐다 똥이 얼마나 소중한지 똥이 곧 내 몸을 보, . , 여준다는 것도 몰랐다 대 영양소는 배웠지만 정작 내 몸에 맞는 영양은 모른다 몸을 배우되 자. 3 . 기 몸과 동떨어지게 배우다 보니 몸이 아프지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장영란김광화 아이, . ( ,․ 《

들은 자연이다 쪽200 )》

자신이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며 한정된 커뮤니, 티 안에서 완결적자급자족적 속성을 갖는 농경 ‧

사회에서는 일상의 삶과 교육이 따로 구분되지 않았다 자신이 땅에서 직접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 자연과 교감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학습이요 자기 자신을 풍요롭게 가꾸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자. 연 안에 속한 존재로서 주어진 섭리에 만족하며 자신의 삶을 넘어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자.

신과 타인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 성찰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타인에 대한 군림도 자연에 대한 지배도 생겨날 수가 없다, .

그러나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이 보편화되면서 농경사회는 급속도로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토지. 와 생산수단을 빼앗긴 개인들에게 이제 남겨진 것은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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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 노동력뿐이고 이 노동력을 자본가에(= )게 팔아서 얻은 임금화폐을 가지고 다시 자기에( )게 필요한 재화를 소비하게 되는 생활양식이 시작된 것이다 생산과 유통과 소비라는 과정이 분화. 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총체적 세계로서의 관계망에 대한 인식능력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제 몸‘ ’ 하나 챙기기에 급급해졌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교‘육의 의미 역시 일상의 삶터와 분리되어서 앞서 ’

주지했다시피 학교라는 공간에서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획득하는 것으로 재규정되었다 사회적으로 직업이라고 하는 개념이 놀. ‘ ’

라울 정도로 미분화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

의를 기반으로 하는 근대 학교 교육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찾아 임금을 벌수 있게 도와주는 직업훈련이라는 특성을 다분히 지닌 교육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 교과를 통해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을 쌓을 수 있‘ ’

는 기회가 보장된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현재 한국현실을 떠올려본다면 교과 학습이 실제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어지진 않는 것 같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관계망을 인식하지 못한 채 교육의 목표가 특정 방향의 전문가들을 키우는 것으로 한정되는 것, 이는 곧 근대인을 양성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 ‘ ’ , 니체가 말한바 전도된 불구자들이 무수히 생겨나‘ ’

는 것이다.2) 여기서의 전도된 불구자는 곧 근대 적 지식을 학습한 인간들이며 이때의 근대적 지식은 근대의 산물인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교과를 학습함으로써 얻어진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 12년에 걸쳐 수많은 교과목을 학습하며 방대한 지식의 양을 접한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분과학문. 을 전공하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하지‘ ’ . 만 이러한 근대적 교육시스템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조망하고 성찰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특정 분야의 도구적 지식만을 습득하게 되기 쉽다 생물학적 지식에는 빠삭하지만 정작 지금 . 내 몸이 건강한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장영란김광화 아이들은 자연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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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이보다 더 고약한 것을 이미 보았으며 아직 보고 있다 그런 것들 가운데서 많은 것은 너무나도 역겨워 하나 “ . 하나를 열거해가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며 어떤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이를테면 하나를 너무 , . 많이 갖고 있는 대신에 그 밖의 다른 것은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자들이 있는데 이런 자들은 하나의 커다란 눈이거나 , 커다란 주둥이거나 커다란 배 아니면 또다른 커다란 어떤 것을 뿐 그 이상이 아니다 나 이런 자들을 일컬어 거꾸로 , . 된 불구자라 부른다 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쪽” (F. Nietzsche( ), 2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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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제 학교에서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한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교. 육의 문제는 그들이 교과공부를 통해 얻어낸 박식함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긁어모은 지식들 모두가 그들의 것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이런 맥락. 에서 니체는 근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 스스로 자신의 앎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고병권 쪽 그들이 무언가를 창.( , 2004;240 )

조하려 했다면 그 많은 지식들은 기꺼이 귀한 재료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창조 속에서라면 그 지. 식들도 하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재료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 모르는 근대인들은 그저 낡은 틀들 속에서 몇 가지 지식들을 훔쳐와 제 몸에 두른 그저 커다란 ‘

눈일 뿐이거나 커다란 주둥이일 뿐인 존재가 되, ’

고 말았다.

탱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지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인이 무엇인지를 알 듯했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 걸 보면서 진달래꽃에서 꿀을 따먹는 걸 보면서. , , 사람이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게 전인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 거. . 기서 주는 풍요로운 영감을 느끼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해내는 게 전인의 기본이리라 장, .(영란김광화 앞의 책 쪽, , 156 )․

학습 삶의 방식의 총체적 변화 평화= =

‘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우리는 소나 도깨비가 아닌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사람이 , . , 되자 는 개교 정신이 잘 살아 있는 교실이 바로 실습지입니다 일을 통해 추상적이지 않은 살아 .’ . 있는 지식을 배우고 성취감을 얻으며 참을성을 기릅니다 그리고 직업 세계를 탐색하고 자연과, , . , 의 위대한 만남을 가지며 학교공동체 생활을 실현합니다 홍순명 홍순명 선생님이 들려주는 풀, . ( ,《무학교 이야기 첫째 묶음- )中》

교육과정이 교수자와 학습자 사이의 의사소통과정으로 정의된다면 이 사이에서의 의사소통은 , 두 사람 모두의 변화를 초래한다 한숭희.( , 2004) 이런 맥락에서 어느 특정 공동체가 내부의 교육적 효능을 잃어버리는 때는 오직 틀에 부은 듯이 고정된 방식으로 학습자와 환경이 조응하는 경우이다 의사소통은 누군가 누구에게 정보를 주고받고 . 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에서 서로의 경

험이 공동소유가 될 때까지 경험에 참여하고 경험을 변화시킴으로써 관계를 소통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교육 혹은 학습이 . 촉발되었다면 그것은 양자의 생각의 구조가 동일, 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서로의 경험과 가치관의 차이를 확인한 후 서로 타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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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협상하는 과정을 거쳐 공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실 이 세상에 완벽한 의사소통이 이. ( ‘ ’ 루어지는 곳은 군대밖에 없을 것이다 그 곳에서.

는 모든 의사소통이 예아니오로 명확하게 종결“ / ”

되기 때문이다.)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경험하게 되면 다시는 알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자기 변태는 , . 너무나 어렵다 변태는 기존의 나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며 미래에 오는 것이기 때. , 문에 알 수 없어 두려운 것이다 어렵지만 모든 변태는 의미를 생산한다 의식화는 변절이나 전. , . ' ' '

향이 가능하지만 변태는 형태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의식화 이전의 과거로 돌' , 아가는 변절이 불가능하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 . ( , )中《 》

학습만을 놓고 보자면 이는 매우 사적인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실은 어떠한 개인도 독, 립된 실체로서는 존재할 수 없고 늘 자신을 둘러싼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미가 발생되기에 인간 행동의 어떤 부분도 완전하게 사적인 것, 은 없으며 그 의미는 사회적 맥락과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나와 너 나와 그것이 분리되지 않. , 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경합하는 과정 속에서 학습의 의미를 찾는다고 했을 때 이때의 학습은 , 의식화가 아닌 변태의 과정이라 말할 수 있을 ‘ ’ ‘ ’

것이다.

평화는 나와 동떨어진 거대담론의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평화는 갈등이 없는 무미건. 조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 . 나에게 주어지는 자극과 조건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내 자신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매 순간 새로운 의미를 파생하는 것이 평화적 삶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학습자로부터 하. 나의 고정된 진리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교과서와 앞서 언급한 평화적 삶 사이에는 쉬 건너기 힘든 강이 존재한다.

요컨대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 존재의 변이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것 거기가 바로 공부가 혁명과 조우하는 지점, 이다 혁명에 대한 공부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공부하건 공부는 그 자체로 혁명이라는 뜻. . 이다 중략 공부하는 이에게 매너리즘이란 있을 수 없다 단숨에 고봉정상을 오르는가 하면 저. ( ) . , 자거리에서도 아무런 끄달림 없이 살아간다 순간 아수라가 되어 분노를 폭발하기도 하고 홀연 . , , 자비의 광명을 두루 펼치기도 한다 갖가지 인간들의 수준에 맞추느라 흙투성이가 되는 건 물론. ! 한마디로 인연조건에 따라 자유자재로 얼굴을 바꾸면서 매순간 충만한 삶의 장을 연출하는 존재, 가 되는 것이다 고미숙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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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를 넘어서는 교육적 상상력을 고민해보자

년에 전교조 교사들이 당시 교육법 제1989조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적이 있157

었다.3) 당시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교과서제도가 국가의 관리 하에 놓여있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 역시 국가의 입김에 좌우받고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제기했었다 이에 정부측에서는 교과서 국정제. 가 교육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제도이며

년에 있었던 일본 교과서 검정제에 대한 합1986헌 판결을 사례로 들어 반박논리를 펼친바 있다. 그리고 년 헌법재판소는 어느 정도 예상할 1992 , (수 있듯이 결국 당시 교육법 제 조가 합헌이) 157라는 판결을 내렸다.4)

교과서제도에 대한 헌법소원청구가 있은 지 거의 년이 지나오는 동안 교육과정도 계속 변20화를 거듭하여 내년부터는 이른바 차 교육과정8

이 실시된다 교육부에서는 여느 때처럼 시대의 . 변화에 부합하는 교육과정을 편성한다고 말을 하겠지만 우리가 이 글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학교, 교육 그리고 교과서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성을 가진 자유로운 개인을 기반으로 . ‘ ’

하는 근대의 산물이 바로 학교 교육이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현실의 학교 교육은 자본과 국가 이데올로기의 파고 속에서 이상적 의미의 자유로운 ‘

개인들을 만들어내지 못한 측면이 존재한다’ .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담아내는 활자화된 매체

로서 우리로 하여금 삶의 맥락과 동떨어진 하나의 정형화된 진리를 전파해온 교과서 좀 더 세련되. 고 암묵적인 방식으로 특정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현재의 교육체제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이 더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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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당시의 사건의 자세한 쟁점과 논의 진행과정은 이인규 의 글을 참조할 것 (1990) .4) 헌재 판결의 자세한 내용은 교육법 제 조에 관한 헌법소원전원재판부 헌마 을 참조할 것 157 ( 1992. 11. 12. 89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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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도덕과 윤리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와는 첫 페이지부터 다르다 교과서를 펼치면 국기에 대한 . 맹세로 시작하는 것이 바로 그것 태극기와 함께 !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큼”

지막하게 쓰여 있다 도덕윤리란 인간으로써 지. ( )

켜야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기준을 뜻하는데 그, 것과 국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자유롭고 ? 주체적인 인간을 국가와 민족이라는 틀 안에 가둘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며 중학교 도덕 1, 2, 권과 고등학교 전통윤리 윤리와 사상 시민윤리 3 , ,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자신을 위한 도덕이 아닌 남을 위한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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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옥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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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도덕 또는 윤리라고 하는 것은 선이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인간으로‘ ’

서 내릴 수 있는 판단과 행동이고 그런 결정을 , 하는 것은 자기자신이기 때문에 도덕교육은 자신의 욕망을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교과서에.

서는 자기자신이 아닌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도덕만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의 자아실현에 대한 언. 급조차 공동체의 발전과 복지증진에 기여하는 것만이 올바른 삶이며 진정한 자아실현이라고 가르친다.

개인이나 집단 간에 가치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서로 더불어 살아가기가 힘들어질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까 첫째 문제점에 . ? , 대하여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의 이해 관계를 중심. 으로 사물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다섯째 사회 규범을 준수하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적으. , … 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합리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면 더 큰 이익을 위하. …여 자신의 작은 이익을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중학교 도덕 쪽- 3, 61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할을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분담하여 ,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때만이 진정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다.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쪽- , 32

남을 위한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 자기자신에 대한 존중과 성찰없이 오로지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사는 게 옳다는 것은 무엇이 , 더 나은지 결정하고 실행해야하는 주체자의 판단이 결여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더 높고 위대한 주인을 따르는 것 즉 노예와 같은 사람을 , 키워낸다 김상봉은 한국의 도덕교육이 여러 외관. 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변화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참된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를 기르, 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5) 노예가 아무리

착하다 하더라도 노예적 삶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보다 타인을. ,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도덕교육은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가능케 하, 는 기반을 마련한다 실제로 교과서에서 아예 노. 골적으로 국가를 위한 희생을 심지어 전 재산이, 나 목숨까지 내놓는 희생을 본받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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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상봉 도덕교육의 파시즘 도서출판 길 쪽 , , , 2005, 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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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들 중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일찍이 홀몸이 되어 삯바느질과 식당 운영, …

으로 고생하며 모은 재산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할머니 일제 강점기 운동 당시 종로 경찰서에 , 3.1 , 근무하면서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보고하지 않고 나중에 체포되자 독약을 먹고 자살한 한국인 형사 그리고 전쟁 중에 조국과 겨레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친 수많은 , 6.25 전몰장병들..

중학교 도덕 쪽- 1, 37-38

위는 삶의 의미와 도덕 도덕적인 사람의 모‘ -습이라는 단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도덕적 ’

삶의 전형을 제시해야하는 위치에 나와있는 예이다 조국과 겨레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을 도. ‘ ’ 덕적인 삶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를 .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고 찬양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집단적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희생에 대한 요구는 더욱 정당화되며 그로 인해 생명의 존엄성은 더더욱 손상될 수밖에 없다 특‘ ’ . 히 교과서는 자신이 남에게 행할 수 있는 악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말하면서도 남이나 집단 공, 동체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악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타인에 대한 희생. 을 강조하면 할수록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은 도덕적이지 않은 자아실현에 죄책감을 가지‘ ’ 게 되고 공동체나 타인에 의해 자신의 권리가 침, 해당해도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며 드러내기를 꺼리는 문화가 형성된다 예전 식민지시절부터 시작되어 박정희 시대 . 반공도덕을 거치며 지배집단의 정당성과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도구로 전락한 도덕교육의 모습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인류가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한 도덕

교과서에서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데 그 공동체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어렵지 ,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공동체는 전 인류 모든 . , 생명이 아닌 바로 국가와 민족이다 선을 위한 . ‘ ’

바람직한 행동기준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라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어떤 행동이라도 도덕적, 이 될 수 있을까?

자기 나라와 자리 겨레에 대한 사랑을 애국애족이라고 한다 이는 자신을 나라와 겨레의 한 구성‘ ’ . ․

원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 개, . , 인이나 집단의 이익에 앞서 나라와 겨레를 먼저 생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 개인이나 집단의 희생까지도 감수하는 것이다.

중학교 도덕 쪽- 2,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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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국가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국가라는 기구를 통해 필요한 일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서는 국가를 어떤 도덕적이고 선한 절대

적 실체인 것처럼 나타낸다 이것은 공동체를 위. 한 희생을 강조하는 도덕과 결합하여 국민은 국가의 번영을 위한 도구와 수단이 되어 버린다.

한 나라의 보전과 융성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국가가 스스로 개척하고 노력해야 한다, . 여기에는 국민 각 개인의 책임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뒤따른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한 나라의 , . 국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나를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만을 생각하고 .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국가를 위하여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해, , 야 한다.

중학교 도덕 쪽- 2, 199

국가존속에 필요한 조건으로 개인의 지나친 이기주의나 자기 중심주의의 절제를 들 수 있다. … 국가가 존속하는 데에는 일정 수준의 희생 정신이 필요하고 이기주의적 행동의 자제가 필요하다. 그 예로 국가 공동체 안에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병역 의무나 납세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시민들을 들 수 있다 만일 국민들 사이에 나 하나쯤이야하는 사고와 행위가 만연하게 되면 누구도 . , ‘ ’ , 군대를 가거나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국가는 존속이 어려워질 것이다.

고등학교 시민윤리 쪽- , 212

교과서에 나오는 국가는 절대적인 선이자 가장 최상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국가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 되고 지나치게 의, 무만 주어지더라도 그 책임을 다해야하며 학생일 때부터 나라를 위해 무엇을 기여할지 고민해야만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 성실하게 체제에 순응하‘ ’ . 는 인간을 양성해내는 것이다 국가와 개인의 관. 계에 대한 성찰이나 둘 사이 갈등상황이 발생할 , 때 기준이 되어줄 수 있는 윤리와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애국 애족하는 마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 자신이 국가와 민족에 대해 애착을 느끼는 마? 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에 어머니 품에 안겨서 느꼈던 포근함. , 이나 안도감처럼 자연스러운 사랑의 느낌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나라와 겨레라는 것을 . 생각할 때마다 자신이 어떤 강력하고 절대적인 것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에서 생겨나는 편안함과 이처럼 나를 지켜주는 나라와 겨레에 대해 느끼는 자랑스러움 같은 것이다, .

중학교 도덕 쪽- 2,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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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애족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국가로부터 ․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포근함을 받기 때문이라고 ‘ ’

하는데 논리적으로 전혀 설득력이 없을뿐더러 그 ,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정과 정서에‘ ’ 만 호소하고 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나.

머지 그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조차 없게 한다. 역사적으로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임보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책임이 훨씬 컸던 우리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비도‘ ’ ‘

덕적인 행동이 되어버린다’ .

대표적인 애국애족 활동에 따라 그 유형과 사례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형은 국가와 . , ․

민족의 독립과 생존이 위험에 빠졌을 때 국가의 보전과 국토의 수호를 위해 자기의 몸과 마음을 , 다바쳐 싸우는 것이다 둘째 유형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여 국가의 부를 쌓는 데 공헌하고 국민 . , 복지와 환경을 개선하여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 인 사례로는 년대에 우리나라 농어촌을 중심으로 조국 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범국민적으1970 , 로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 아래 우리 국민들을 오랜 가난과 구습에서 벗어나게 한 새마을 운‘ ’, ‘ ’, ‘ ’ , 동의 추진에 참여한 사람들의 노력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반대와 난관을 무릅쓰고 국토의 대. …

동맥에 해당되는 경부고속국도의 개통을 이루어낸 국가 통치자 기업인 근로자들 또한 그 좋은 , ,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도덕 쪽- 2, 231-233

교과서의 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은 많은 문제점을 불러일으켰다 경제발전이라. 는 미명아래 많은 피해자들이 생겨났으며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짓밟혔다. 하지만 다른 교과서도 아니고 도덕 교과서에서 이를 애국애족의 좋은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어‘ ’ ․

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주입시키려는 의미로서 도덕교육의 정체성? 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부분이다.

우리에 대한 우월감은 너희에 대한 비하로’ ‘ ’

국가와 마찬가지로 민족과 관련한 언급과 표현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국가발전의 필요조건으로 민족주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 , . …국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일 민족으로서 강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어서 국가 정체성을 가지는 일이 . 비교적 용이하다.

고등학교 시민윤리 쪽- , 207

역사적으로 전쟁도 많았고 외국인노동자와 국, 제결혼 등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만명100

이 넘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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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는 지금 우리나라를 단일민족국가로 규정하고 가르치는 것은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런 식. 의 민족개념은 단순히 타당성의 유무를 떠나 학습

하는 학생들에게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맹목적인 절대성을 부여한다.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은 농경을 위주로 한 생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제한된 농토. 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였고 두레 품앗이 등 공동 노동을 통해 농경에 필요한 노, , 동력 문제를 해결하였다 우리 민족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근면 협동 상부상조의 정신은 바로 농경 . , , 생활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농경 생활을 통하여 형성된 협동과 상부상조의 정신은 일생생활 . 전반으로 확산되어 여러 가지의 계와 향약 등 훌륭한 전통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민윤리 쪽- , 234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의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을 지배의 대상이 아닌 숭배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았고 농경사회라면 어디든 경천 생명존중 공, , , 동체 협동정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민족. 을 초월하여 나타났던 경천사상 생명존중사상, ,

공동체의식 등을 우리민족의 고유한 특성으로 설명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자민족 중심주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나라와 자신을 소개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 우리나라와 나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나라를 오천년의 역사를 지닌 유구한 ? 민족이며 예절 바르고 인정이 많으며 자연을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민족이라 하지 않을까 그, , ? 리고 근면성을 바탕으로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이룬 나라라고 자랑하지 않을까?

중학교 도덕 쪽- 2, 36

그리고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민족의 특성은 비교할 수 있는 성격의 것, 이 아니다 다양한 역사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 타나는 특성들은 다양성으로 존중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들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 ’

리고 있다 이는 우리가 우수한만큼 다른 민족의 . 특성을 상대적으로 비하하는 인종주의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사회의 축소와 함께 우리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인 향약 두레, , 계 품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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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등으로 대표되는 공동체 의식의 함양을 위한 제도와 문화가 사라지게 됨에 따라 서구의 합리주의와 개인주의의 왜곡된 형태인 이기주의 배금주의 향락주의 등이 만연하게 되었다, , .

고등학교 시민윤리 쪽- , 49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을 강조하던 전통적인 부부관이 무너지고 서양 문, 화의 영향을 받아 평등한 부부 관계가 강조되면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분담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기고 있다 이 밖에도 서양 문화의 영향으로 결혼관이 바뀌면서 이혼이 급속히 증가하는 문제도 발. … 생하고 있다.

중학교 도덕 쪽- 3, 138

자문화 중심주의는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배제한 채 문제의 원인을 다른 문화에서 찾기도 한다 급격한 도시화과정에서 생긴 . 문제의 원인을 서구의 문명에서 찾고 심지어 전, 통적인 가부장적 질서와 성역할 강조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그 원인을 서양문화에서 찾고 있다 이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서구의 문화에 .

비해 더 우월하다는 판단을 이미 내려놓고 교육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찾고 해. 결하는 능력은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타문. 화 타민족에 대한 배려없이 우리 것만 좋다고 한, 다면 그것을 도덕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가며

지금까지 살펴본 도덕과 윤리 교과서의 정체성은 첫 페이지의 태극기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여러차. 례 변화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국가민족 정체성을 끊임없이 반․

복하고 있다 오히려 가시적이고 폭력적인 형태의 . 국가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교육으로서의 국가주의는 더욱 세련되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자율성도 창의성도 없이 국가에 대해 맹. 목적인 충성을 배우고 체제에 순응하며 자라는 국

민들은 그 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군사적이고 집단적인 폭력에 수긍하고 동조하게 된다 더 나아가 . 전체주의 국수주의 자민족 중심주의로 인한 전, , 쟁에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렇게 반평화적인 도덕을 학생들 역시 재미없어하고 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인류와 모든 생명에 대한 관심. 과 애정 평화적 감수성을 가진 인간을 양성해내, 는 도덕 교육은 언제쯤이나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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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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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농활은 내게 새로운 체험이었다 모든 생명 안에 깃들어 있는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고. , 내 앞에 있는 음식들이 거쳐온 수많은 정성과 노력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햄버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다

나름 착실하고 열심히 교육에 참여해서 선배들의 이쁨을 받았던 새내기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 게 접해보지 못했던 정치적이고 낯선 이야기들을 모두 받아들이기엔 조금 벅찼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도 년간 농활을 다녀오는 바람에 정확히 그때 뭐가 핵심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국적 기업5 , 과 음식문화에 대한 내용에서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에 대해 강조했었다 해단식 날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 한 동기녀석이 어떻게 햄버거를 안먹고 살 수가 있냐는 얘기를 했고 농활에서 제대로 삘받았던 나는 그 , 얘기에 발끈하여 한참을 티격태격했다 그 녀석은 나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안좋다는건 알겠지만 . 남들도 다 먹는데 뭐가 달라지며 반박했고 나는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안좋은걸 알면서도 먹는게 더 나쁜 , 거라면서 우리부터 안먹으면 되지 않냐고 설득하려고 무지 애를 썼다 마침내 그 친구가 정색을 하며 내. 게 물었다 그럼 넌 진짜 햄버거 안먹을 수 있어 응 그 이후로 난 진짜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예전엔 .“ ?” “ ” . 길들여진 입맛 때문에 종종 먹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먹고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누가 줘도 . 안먹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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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남기는 것은 너무 미안한 일

몇 년간 농활을 꾸준히 다녀오며 스스로 꼭 지켜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 음식을 남. 기지 않는 것이다 쉽게만 생각했던 내 밥상 앞의 . 음식들이 내가 지불한 돈 몇푼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가치들이 담겨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씨앗 하나가 싹을 틔워 자라나기까. 지 보듬어 키우는 땅 적당한 햇볕 비도 필요한 , , 시기에 알맞게 내려줘야 하고 잡초를 뽑아주고 .. 흙을 북돋아주고 가물 때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지지대도 세워주어야 하는 농부의 마음이

담긴 노동 가장 알맞게 자랐을 때 거두어진 작물을 시장까지 운반해주는 사람 시장에서 거치게 되는 상, , 인의 손 그걸 사서 정성을 담아 요리하는 손까지, .

아무리 내가 능력이 뛰어나도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수많은 존재들의 노력과 . 도움으로 여기까지 온 그런 음식을 버린다는 것은 그 안에 담겨진 노력과 정성을 저버리는 것과 마찬가, 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틱낫한 스님이 그러셨던가 종이 안에 구름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 야 한다고 구름 없이는 물이 없고 물 없이는 나무가 자랄 수 없으며 나무 없이는 종이를 만들 수 없기 . , , 때문이다 음식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음식. 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도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엄청난 음식쓰레기와 지구 한편. 에서는 여전히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불평등을 생각한다면 음식을 남기는 것은 더더욱 미안한 , 일이다.

내가 안먹은 고기가 쓰레기로

하지만 채식을 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나는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기로 다. 짐했는데 내가 먹어야하는 음식에 고기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아직 채식이 보편적이지 않기도 하고 , . 개인의 취향을 하나하나 고려하여 음식을 만들기에는 음식점의 상황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고기, 를 빼줄 수 있다는 메뉴에서 특별히 부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깜빡잊고 조리를 해주는 경우도 있고 다, 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마주하게 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때 참 난감하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감사히 먹어야 하는 거라고 농담처럼 말하. . (?) 기도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이상 그냥 먹을 수는 없는 일 고기를 못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 ! 나 같은 경우는 음식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

다년간의 농활 경험은 내 삶의 방식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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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대한 고기를 골라내고 먹는다 이런 식으로라도 자꾸 요구하고 자꾸 표현해야 고기사용량이 줄어들. 테고 먹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이 줄어들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편하더라도 일부러 고기를 꼼꼼하게 , 골라내어 잘 보이게 두곤 한다 하지만 골라내진 고기는 음식쓰레기가 되는 셈이다 내가 음식쓰레기를 . . 만들어야한다니 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스스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

먹기 위해 키워지고 죽임을 당하고도 결국엔 쓰레기가 되어버린 고기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밥을 . 굶고 있는 어떤 아이에게는 아주 귀한 음식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세계 곡물생산량의 약 는 오로지 먹.. 30-40%기 위한 동물을 키우는데 사용되고 그 동물들을 키우기 , 위해 열대우림의 를 불태우고 있으며 축산동물의 분50%뇨가 심각한 오염을 야기한다고 한다 그리고 유전자 조. 작된 사료와 농약 제초제를 뿌린 풀을 먹고 자란 동물, 의 몸에 쌓인 오염물질과 좁은 공간에 갇혀서 몸집을 키우기 위해 하루종일 먹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동물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자라도록 동물의 몸에 투여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는 그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최소비용으로 단기간에 고기를 생산하려는 . 육식산업은 많은 문제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고통을 느끼는 생명을 오로지 먹기위해 비상식적인 방법으. 로 키우고 죽이는 것이 보편화된 구조 육식산업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 일이라고는 그런 구조에 가담하지 않는 것 즉 나부터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 .

더나은 채식을 위하여

결국 나의 고민은 더 많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나왔다 음식을 . 남기는 것과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어느 것이 우선일수는 없지 않을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고민들을 , ? 실천으로 이어가기 위한 노력일거다 채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육식보다 좋기만 한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다 고기대신 먹는 자주 먹는 음식들만 봐도 그렇다 발아촉진제 먹고 통통하게 자란 콩나물 농약 덕분에 . . , 벌레없이 깨끗한 배추 유전자조작된 콩으로 만든 된장과 두부 표백처리와 방부처리된 흰 밀가루로 만든 , , 부침개 어떻게 먹는 것이 나에게도 다른 생명에게도 더 좋은 건지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 더나은 채식.. , . 을 하기 위한 고민은 계속된다 쭈욱. -

생명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노. 력이 모두 필요하다 텃밭에서 무에 북을 주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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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똥 싸는 존재다.

장동건은 똥을 싼다 김태희도 변비가 없다면 거의 매일 똥을 싼다 부시도 싸고 달라이라마도 싸고. . , , 명박씨도 싸고 첫사랑도 싼다 나도 싸고 글을 읽는 당신도 싼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똥을 싼다 인간은 , . , . . 다 똥 싸는 존재다 이렇듯 인간은 살아가면서 늘 똥과 마주해야 한다 똥을 싸지 않는 인간은 살 수 없. . 다 공기 물 음식과 같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존재이듯이 똥 또한 인간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존. , , 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기 물 음식을 소중히 여기는 반면 똥만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 , . 누구나 거의 매일 접할 수밖에 없는 똥이지만 오히려 똥은 대단히 혐오스러운 존재로 인식된다.

똥은 금기다

어렸을 적부터 똥은 금기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아기였을 때에 똥은 지지의 대상으로 만지면 . ‘ ’

안 될 것으로 여겨졌고 학생 때에 똥은 똥이 무서워 피하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등 대, ‘ ’, ‘ .’부분 부정적인 언어로 학습되어졌다 욕의 상당수는 똥과 관련되었고 지나가다 똥을 밟으면 그날 하루가 . , 재수 없게 여겨졌다 수세식 화장실은 혐오스러운 똥을 순식간에 시야에서 없애줘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 ‘ ’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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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금기는 정당할까 똥은 정말 필연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일까 만약 이 혐오성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이. . 성적으로 똥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똥의 무엇이 혐오스러울까

똥의 혐오성이 정당한지 관찰하기 위해 오감을 동원해보자 시각적으로 똥은 대개 점성에 따라 카레. 형과 긴 원통형으로 나눠진다 황토색부터 검붉은 색까지 다양한 색상을 띤다 똥의 전반적으로 어두운 . . 색감 때문인지 구더기 이것도 바라보기에서 다룰 대상이지만 라도 나올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는 모르, ( )겠지만 눈에 보이는 그 자체가 혐오스럽게 여겨진다 촉각과 청각은 일반적으로 똥을 만지는 사람도 없고. , 소리도 나지 않기 때문에 패스하자 미각적인 것 또한 패스하자 똥맛을 어떻게 아는지 맛없는 음식을 먹. . 고 똥맛 같다고 표현하는 분들도 더러 있지만 일반적으로 똥을 맛보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각은 중. 요하게 관찰해야한다 어떻게 보면 똥의 후각적 느낌은 시각으로 느낄 수 있는 막연한 혐오성보다 더 구. 체적인 혐오감을 일으키는 감각이다 이건 확실히 구리다 이렇듯 똥의 혐오성은 강렬한 후각적 감각과 . . 약간은 막연한 시각적 이미지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감각에 의한 혐오성은 자연스. 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될 정도의 이 혐오성은 정말 정당한 것일지 후각적 감각과 시각. 적 감각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똥에 대한 인식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시각적으로 토끼똥에 대한 혐오성은 사람의 똥보다 적은 것 같다 오히려 동글동글한 토끼똥은 그 아. 기자기함에 귀엽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다 물론 크기면에서 혐오감을 일으키기에는 너무 조그맣기 때문일 . 수도 있다 손가락 마디만한 똥파리에는 기겁하면서 과일근처를 맴도는 초파리는 귀찮은 정도로 여기는 .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하지만 크기로 혐오성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똥보다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 . . 없는 소똥은 사람의 똥만큼 혐오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소. 똥에는 무심하다.

후각적 혐오성 또한 살펴볼 만하다 똥냄새가 구리다는 것은 분명하나 그것이 혐오감을 일으킬 만큼 . 구릴까 구리기로 따지면 똥냄새는 청국장냄새와도 비교할만하다 하지만 청국장냄새는 구수하다고 여겨. . 진다 구린것이 분명한 소똥냄새는 심지어 시골의 향기로 여겨진다 사람의 똥냄새와 청국장냄새 소똥냄. . , 새와 비교하는것은 무리라 할지라도 똥냄새의 주관성을 확인할 보편적 경험이 있다 매일같이 맡는 자신. 의 똥냄새이다 우리는 자신의 똥냄새에 관대하다 똥 쌀 때 내 똥냄새가 구리다며 코를 막고 싸는 사람. . 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공중변소에 들어갔을 때 타인의 똥냄새가 남아있으면 불쾌해하면서 똥을 싸며 . 직통으로 맡는 자신의 리얼한 똥냄새에 불쾌해하지 않는다 사람의 똥냄새가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왜 . 내 똥냄새는 혐오스럽지 않을까 밥 먹고 후식으로 페브리즈를 마시는 사람도 없을 텐데 희한할 다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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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에 대한 혐오성은 과장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기존 관념으로서의 똥을 떠올리지 않고 그 실체를 . ‘ ’

자세히 관찰해보면 똥은 생각보다 그렇게 혐오스럽지 않다 아기의 똥이 사랑스럽고 부모의 똥이 애틋하. , 고 소똥이 시골의 정겨움을 느끼게 해주듯이 똥에 대한 인식이 꼭 혐오스러울 필요 또한 없다, .

바라보기

우리는 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꿀 수 있다 똥을 바라보자 똥은 찰흙과 흡사하다 냄새 빼고는 . . . 색깔과 질감 등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어렸을 적 미술시간에 찰흙으로 똥을 만들어 장난친 사람들도 있. 을 것이다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찰흙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똥에 대한 시각적 혐오감이 한층 덜해질 . 것이다 똥이 말렸을 때에는 달팽이껍질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도 있겠다 똥은 도시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 . 달팽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똥을 맡아보자 구리다 정말 구리다 하지만 이 구림은 청국장의 구림처럼 구수하게 느껴질 수도 있. . . 다 시골의 정취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소똥냄새만이 아니다 시골집 푸세식 화장실의 그리움도 느낄 수 . . 있다 타인의 똥냄새도 내 똥냄새라 생각해보자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이상 내 똥이나 타인의 똥이나 . . 거기서 거기다 구별 짓지 말자 내 똥냄새가 지독하지 않은 것처럼 타인의 똥냄새 또한 지독하지 않다. . . 나와 소중한 이들의 똥냄새가 덜 지독하게 느껴질 수 있듯이 타인의 똥냄새 또한 애정을 갖고 맡아보자. 그렇다고 즐길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똥에 대한 과장된 혐오감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이다. .

얻을 수 있는 효과

물론 이미 강렬하게 각인된 똥에 대한 혐오성을 지우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실. 험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명백하다 공중변소를 내 집 화장실처럼 쓸 수 있다 길을 가다 똥을 밟거나. . , 우연히 보더라도 미소 지으며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수 있다 화장실에서 누군가 내리지 않은 똥. 을 보더라도 기겁을 하고 역겨워하지 않을 수 있다 내 똥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해 건강상태를 확인할 , . 수 있다 무엇보다 혐오의 대상이 하나 줄기 때문에 삶이 편안해진다. .

여전히 똥 싸고 물 안 내리는 사람 이해하기 어렵고 훈련병에게 인분을 먹이는 군인에게 분노가 느, 껴지지만 그것은 사람의 문제이지 똥의 혐오성 증가시킬 요인은 아닐 것이다 이제 똥에 대한 혐의를 놔. 주자 금기를 풀자 그리고 보내주자 정들었던 물건을 아쉬움을 갖고 버릴 때처럼 똥을 싸고 물을 내릴 . . . , 때 애정을 갖고 보내주자 잘 가거라 내 똥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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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만드는 사람,혹은 평화로운 사람

P.e.a.c.e.E.s.s.a.y

가해자의 이름으로‘ ’

평화를 만들고 싶다 에서 평화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로의 전환- ' ' ' 자주|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가해자 교육의 첫 시간 상담소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오는 이 남성의 긴장된 몸짓에서 오늘. 의 피교육자임을 눈치 챈다 상담실로 자리를 옮겨 마주 앉으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와 그를 . , 응시하고 있는 나 사이에 미묘한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그래 가해자라는 명패를 달고 성폭력상. , ‘ ’

담소라는 공간에 오는 것이 두렵기도 했겠지 그나저나 나는 앞으로 저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 어 나가며 무엇을 소통해야 할 것인가 나에게도 만만치 않은 과제가 던져졌다, . 피해자 상담 및 지원을 주로 하는 성폭력상담소에서 우리는 종종 가해자 교육을 의뢰 받곤 한다 주.

로 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징계 차원에서 교육명령이 내려지는가 하면 피해자의 요구로 , 가해자 교육을 관철시키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 상담을 하며 파렴치한 가해자들의 모습에 치를 떨곤 했던 . 나는 가해자 교육을 시작하면서 교육에서 만나게 될 가해자를 벼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가해자의 잘. 못을 낱낱이 까발려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인간인지를 되새겨주고 싶었다 성폭력을 가능케 만들었던 . 권력을 내동댕이치고 허울 좋은 위선을 맘껏 조롱하고도 싶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피해자를 만날 때와는 . 사뭇 단호한 표정과 어조로 가해자를 대하려 했고 혹시라도 가해자에게 온정적인 태도를 비치진 않을지 나를 단속하려 했다 심지어는 가해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 피해자를 배반하는 것 같은 느낌마. 저 들었다 이 상담소 문 밖만 나가면 성폭력 까짓거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당신을 옹호할 사람. ‘ ! ’

들이 천지인데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교육이 진행되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 교육을 . 왜 하는 것인가 나는 그에게 가해자라는 정체성을 못 박고 그것은 나쁜 짓이었음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 ‘ ’ ‘ ’

하는 것인가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잊지 말고 평생을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인가 물론 그. ‘ ’ .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조직의 분위기에 떠밀려 억지로 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 남성문화에서 일상적으로 용인되어왔던 일들이 뭐가 잘못인지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잘못은 , 인정하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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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내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항변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니 어쩌. 면 가해자 교육을 받으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들을 한꺼번에 가슴에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나는 무엇보다 그들이 변화하고 성찰하기를 바랐고 그것은 호통과 비판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반성의 제스처를 취하거나 잔뜩 주눅이 든 채 교육자가 원하는 답을 .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품었음직한 뻔뻔함이든 억울함이든 의구심이건 간에 내 앞에 솔직하게 꺼, , , 내 놓기를 바랐다 그렇게 날 것으로 꺼내놓아져야만 비로소 그 사람의 삶에 자리잡은 남성성과 성별 이. 데올로기가 드러나고 그 안에 존재하는 권력 구도를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그들과 . 진심으로 소통해야 했고 그들을 가해자라는 고정 불변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가능한 ‘ ’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했다 그것은 피해자 정체성을 고정시키지 않으며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 ‘ ’ 새로운 삶을 상상하고 기획하고자 하는 피해자 상담의 지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

피해자를 상담하고 가해자를 교육하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동시에 모순적인 상황에서 나는 피해자‘ ’ ‘ ’ , 와 가해자의 구도에서 절대적 거리감을 느끼곤 한다 피해자 가해자에 대한 보호 배제 공감 낙인의 정. , - , -치학은 설령 가해자와 피해자의 지위가 역전되어 피해자에게 배제와 낙인으로 가해자에게는 비호와 동정, 으로 돌아올지언정 그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이 간극이 위험한 것은 성폭력 문제를 본질화 타, . , 자화시킴으로서 어떤 소통 가능성도 차단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 일어날 수 있는 성폭력 문제를 둔감하게 만들고 성폭력의 다양한 맥락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일하고 고정적인 정답이 아니라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과 타인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이다 각자가 어떤 이데올로기 속에 살고 있고 그로 인, . 해 우리는 순간순간 어떤 피해가해 경험에 놓이게 되는지 그래서 구조를 체현하고 있는 개개인이 어떻/ , 게 싸우고 저항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양산해내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그저 속수무책이거나 내 안의 편견에 스스로 포획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혹시라도 이 글이 가해자를 문제 삼는 것은 편협하다거나 가해자를 무조건 동정 비호하자는 의미로 들리지는 않을지 마음 졸여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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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록 심 년 개월 형 선고 :: : 1 1 6육군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오승록씨가 월 일 여주교도소로 이감갔습니다 오승록씨에게 편지들 써주세요4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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