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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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이 연구는 11세기부터 서유럽의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자본주의의 핵심인 제도, 정치경제 및 문화적 요소들이 발전하기 시작한다는 주장을 비 판적으로 검토한다. 첫째, 도시국가에서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의 기본 틀 로 발전하는 다양한 장치의 생성과 효과를 제도적 관점에서 검토한다. 둘째, 정치경제의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발전하는 과정을 세계체계 론이나 근대 국가건설 이론을 통해 분석한다. 셋째, 도시국가에서 상업 자본 주의의 발전을 유럽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 특히 개인주의와 연결하는 설명 을 살펴본다. 물론 중세 후반에 이미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 . 19세기 산업혁명 이전에 유럽의 경제는 여전히 농촌 중심 경제였으며, 탈리아 도시국가도 자본주의 실천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라고 볼 수는 없 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세 후반의 도시국가는 모델로서의 역할과 영향력의 차원에서 중요하며 이런 문화, 정치경제 및 제도가 향후 연속성과 연결성을 가지고 확대발전하여 유럽의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운동과 체계를 만들어냈 다 보아야 할 것이다. 주제어: 유럽, 자본주의, 도시국가, 베니스, 제노바 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비판적 고찰 조 홍 식* *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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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이 연구는 11세기부터 서유럽의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자본주의의 핵심인 제도, 정치경제 및 문화적 요소들이 발전하기 시작한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첫째, 도시국가에서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의 기본 틀로 발전하는 다양한 장치의 생성과 효과를 제도적 관점에서 검토한다. 둘째,

정치경제의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발전하는 과정을 세계체계론이나 근대 국가건설 이론을 통해 분석한다. 셋째, 도시국가에서 상업 자본주의의 발전을 유럽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 특히 개인주의와 연결하는 설명을 살펴본다. 물론 중세 후반에 이미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세기 산업혁명 이전에 유럽의 경제는 여전히 농촌 중심 경제였으며, 이탈리아 도시국가도 자본주의 실천이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세 후반의 도시국가는 모델로서의 역할과 영향력의 차원에서 중요하며 이런 문화, 정치경제 및 제도가 향후 연속성과 연결성을 가지고 확대발전하여 유럽의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운동과 체계를 만들어냈다 보아야 할 것이다.

주제어: 유럽, 자본주의, 도시국가, 베니스, 제노바

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비판적 고찰

조 홍 식*

*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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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9권 1집(통권 제16호, 2018년 3월)

차 례Ⅰ. 자본주의의 기원

Ⅱ. 도시국가와 자본주의 제도

1) ‘자유의 온실’로서 도시국가

2) 경제번영을 위한 정치

3) 시장경제 제도의 발전

Ⅲ. 세계체계와 국가건설

1) 세계체계론

2) ‘축적의 주기’와 체계변동

3) 국가 건설론

Ⅳ. 도시국가와 유럽의 문화

1) 개인주의와 최초의 제도

2) 전통, 종교, 교회

3) 기독교와 근대 이데올로기

Ⅴ. 연속과 단절

I. 자본주의의 기원

자본주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사회과학과 역사학이 공통으로 고민하는 이 질문은 현실적으로, 그리고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현실적으로 시간과 공간에서 자본주의의 기원은 그 정의나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핵심을 시장 메커니즘과 긴밀하게 연결한다면 상당히 이른 시기(중세 후반)에 여러 곳에서 자본주의(또는 자본주의 요소)의 등장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본주의를 대량생산과 소비의 체제라고 정의한다면 자본주의의 시작은 산업혁명 이후로 보아야 한다. 마르크스처럼 자본주의를 하나의 생산양식으로 보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이 자본주의의 기본 생산관계라는 시각이라면 역시 19세기에 와서야 자본주의는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1). 따라서 자본주의의 성격 규정은 자본주의에 대한 학술 및 이론적 성향과 긴밀하게 연결되며 그 결과로 시기나 지리에 대한 논의가 발전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지리적으로 유럽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학계의 일반적 합의가 존재한다. 특히 서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해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커다란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1) Maurice Dobb, Etudes sur le développement du capitalisme (Paris,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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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탄생’하여 발전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크게 보면 역사적으로 가장 가깝게 18세기에 시작한 영국의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보는 시각부터2), 1500년을 전후하여 대항해시대를 그 시작으로 보는 관점3), 그리고 11세기 서유럽의 도시의 발전부터 자본주의의 시작을 바라보는 접근이 있다4).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르크시즘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시작으로 본다. 반면 세계체계론자나 상업 자본주의를 중시하는 학자들은 1500년, 즉 서유럽이 세계를 대상으로 상업 네트워크를 확산하기 시작한 시기를 자본주의의 출발점으로 인식한다. 중세부터 자본주의의 ‘맹아’, ‘뿌리’, 제도 등이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시각은 제도주의나 거시 역사를 통해 사회과학적 사고를 하는 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연구는 중세 후기인 11세기부터 서유럽에서 향후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제도, 정치경제 및 문화적 요소들이 발전하기 시작한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국가에서 상업 자본주의의 기본 요소들이 발전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첫째, 도시국가에서 자본주의의 기본 틀로 발전하는 다양한 장치의 생성과 효과를 제도의 관점에서 검토한

2) 산업혁명이 가장 본질적인 자본주의의 특징이라고 보는 시각은 산업사회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발전하였으며 최근에는 서구 중심의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정주의에서도 이런 시간대를 공유한다: Patrick Verley, L'échelle du monde. Essai sur l'industrialisation de l'Occident (Paris, 2013); Jean Baechler, Le capitalisme. 1 Les origines (Paris, 1995); Kenneth Pomeranz, The Great Divergence: China, Europe,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Economy (Princeton, 2000).

3) Michel Beaud, Histoire du capitalisme 1500-2010 (Paris: Seuil, 2010); Charles P. Kindleberger, World Economic Primacy: 1500-1990 (Oxford, 1996);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 System. I Capitalist Agriculture and the Origins of the European World Economy in the Sixteenth Century (New York, 1974);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 System. II Mercantilism and the Consolidation of the European World Economy 1600-1750 (New York, 1980).

4) Philippe Norel, L'histoire économique globale (Paris, 2009); Charles Tilly, Coercion, Capital, and European States, AD 990-1992 (Cambridge, 1992), pp.143-151; Fernand Braudel, 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 XVe-XVIIe siècles. 3 tomes (Paris, 1979); Douglass C. North and Robert Paul Thomas, The Rise of the Western World. A New Economic History (Cambridge,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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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둘째, 정치경제의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발전하는 과정을 세계체계론이나 근대 국가 건설의 이론을 통해 분석한다. 셋째, 도시국가 상업 자본주의의 발전을 유럽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과 연결하는 설명을 살펴본다. 결론에서는 이상과 같은 유럽 도시국가에서 조기에 자본주의가 만들어져 발전한다는 시각이 내포하는 다양한 이론 및 현실적 의미를 짚어본다.

II. 도시국가와 자본주의 제도

역사적으로 서유럽의 도시국가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시각의 배경에는 우선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는 자유주의적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5). 서유럽은 5세기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게르만 민족의 이동에 따라 다양한 무력 집단이 서로 경쟁하면서 지배하는 시기를 겪었다. 또 이슬람 제국이 7세기부터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을 위협하였고, 바이킹 세력 역시 대서양과 지중해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면서 무력으로 영역을 넓혔다. 중세 후반은 이처럼 무력이 경쟁하고 지배하는 시기가 지나고 정치 세력이 분산되어 약화된 상황이었고, 11세기부터는 서유럽에서 도시의 발전이라는 현상이 상당히 일반적으로 나타났다.

1) ‘자유의 온실’로서 도시국가

유럽의 도시는 특수성을 가진다. 인류의 역사에서 도시의 형성은 대개 정치세력의 중심지로 주변의 농업지역에서 잉여 생산물을 착취함으로써 이뤄졌다6). 거대한 제국일수록 거대한 도시를 형성하면서 권력자를 중심으로 다

5) 정치학이나 사상 연구에서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마키아벨리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 도시국가가 하나의 철학적 기준을 제시하는데 그쳤다면 이탈리아의 경험은 시민의 정치를 통해 정치 계획이라는 모델이 서서히 부상하는 토양이 되었다: Pierre Manent, Les métamorphoses de la cité: Essai sur la dynamique de l’Occident (Paris, 2012); Pierre Manent. Naissance de la politque moderne: Machiavel-Hobbes-Rousseau (Pari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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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 계층이 도시라는 공간에 모여 삶을 영유했다. 군인, 관료, 상인, 수공업자 등이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서유럽에서 중세 후반 도시의 발전은 이런 정치세력 중심의 도시 형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유럽에서 도시란 무력을 바탕으로 지배하는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공간을 형성하면서 자율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는 곳이었다. 블록만스와 같은 학자는 중세 유럽의 도시에 대해 ‘자유의 온실’이라는 별칭을 붙일 정도로 무력의 전문가인 귀족이나 왕족으로부터 독립된 공간이라고 보았다7). 서유럽의 도시는 왕이나 귀족으로부터 자율성을 인정받는 헌장(Charter)을 지녔고 이것은 정치세력과 도시 간의 계약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왕과 귀족은 도시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대신 도시가 무력을 확장하여 이들에게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았던 셈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이렇게 전통 정치세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인정받고 스스로 안전과 질서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따라서 도시들은 영토에 기초한 귀족의 지배와는 다른 원칙에 따라 정치 기능을 발전시켰다. 유럽에서 도시국가라는 정치 양식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페니키아나 그리스, 로마 문명도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리스의 전통은 도시가 국가(polis)를 형성하여 자율적인 정치 단위로 기능하는 대표적인 모델이었다. 하지만 중세 유럽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도시국가는 로마 제국과 중세의 혼란을 뛰어넘어 새롭게 만들어진, 새로운 형식의 도시국가(city-state)였으며, 이들은 근대와 현대까지 연결되면서 정치를 새롭게 정의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2) 경제번영을 위한 정치

기본적으로 중세 후반 유럽에서 형성되는 도시국가는 상업을 중심으로

6) Ernest Gellner, Plough, Sword and Book: The Structure of Human History (Chicago, 1990).7) Wim Blockmans, A History of Power in Europe: Peoples, Markets, States (Antwerp, 1997),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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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졌고, 경제이익을 담당하는 계층이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하는 정치형태였다8). 물론 정치제도의 성격은 공화정이나 군주제 등 매우 다양했다. 하지만 형식의 성격을 떠나 대부분 도시국가의 특징은 도시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과 제도가 갖춰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력의 전형적인 영토의 논리가 아니라 경제 이익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단위로서 도시 국가는 분명 다른 대륙이나 문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럽만의 특징이다. 이처럼 중세 후반 유럽에서는 도시의 전반적인 발전과 함께 곳곳에 성당과 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북부부터 스위스 등의 알프스 지역, 라인 강을 따라 북쪽으로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 서부와 벨기에, 그리고 도버 해협을 건너 잉글랜드까지 도시의 통로가 생겼다. 특히 이탈리아 북부는 도시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경제학에서 역사를 분석하거나 경제의 제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세 후반부터 도시국가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9). 경제학의 기본 개념은 시장의 논리이고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의 형성과 자원의 배분이다. 경제학의 입장에서 시장의 형성이나 운영에 가장 커다란 피해를 미칠 수 있는 행위자가 국가 또는 강력한 정치권력이다. 정치권력이란 무력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전문가 집단이고 따라서 경제 행위를 방치하거나 시장이 기능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무력이나 폭력으로 부를 약탈할 능력을 갖고 있다. 정치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런 유혹과 가능성은 늘어난다. 이런 관점에서 유럽 중세 후반의 분산된 정치권력, 게다가 상업 또는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도시국가란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11세기부터 등장하여 발전한 이탈리아 도시국가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제노바와 베니스를 들 수 있다10). 이 두 도시는 공통적으로 무역을 통

8) Elisabeth Crouzet-Pavan, Renaissances italiennes 1380-1500 (Paris, 2013), pp.293-369.9) 정치경제학 연구에서 빈번하게 인용되는 힉스의 『경제사의 이론』은 심지어

그리스의 도시국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세에서 시장경제의 출발을 전제한다: John Hicks, A Theory of Economic History (Oxford, 1969), pp.42-58.

10) 방법론적으로 왜 베니스와 제노바를 대표적인 사례로 선택했는가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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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성장한 전형적 상업 중심의 도시국가로 경제이익을 대표하는 세력들이 국가권력을 독점하는 경우였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베니스가 경제이익의 대표들이 국가권력 제도화에 성공하여 ‘강한 국가’를 형성한 반면 제노바는 경제이익의 결합과 제도화가 베니스에는 미치지 못하여 반목과 분열이 반복되었다는 점이다11). 예를 들어 해외 무역에서 베니스는 공통의 국가 함대가 이를 보호하여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제노바는 이런 국가 함대를 형성하여 제도화하는데 실패했다. 제노바의 경우 민간 함대가 스스로 보호 기능을 담당해야 했으며, 전쟁을 치르는 경우에도 무장한 민간 함대의 연합이 제노바의 이름으로 전투를 벌이곤 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이유로 베니스의 경제체제를 ‘국가 자본주의’라고 부를 정도다.

왕이나 귀족이 지배하는 전통적 국가와 비교했을 때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는 상업과 금융을 위한 정부였고 국가였다12). 전자가 상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는데 주요 목적이 있었다면 이탈리아 도시국가는 상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역할이 존재이유였고, ‘국가이성’이었던 셈이다. 특히 당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경쟁을 벌이던 제노바와 베니스의 무역이란 기본으로 특혜 무역이었다. 달리 말해서 두 도시국가 정부의 역할이란 지중해 각 지역의 국가와 전쟁을 하거나 외교를 통해 자국 상인을 위한 특혜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특히 동 지중해의 비잔틴 제국과 십자군이 세운 근동의 왕국들로부터 특혜를 보장받는 것이 중요한 부의 근원이었다. 비잔틴이나 십자군 왕국의 입장에서는 제노바나 베니스의 해군력을 활용하여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

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두 도시국가에서 근대 자본주의적인 요소가 가장 광범위하게 발전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두 도시가 지중해를 중심으로 도시제국을 형성하여 지리적 범위가 넓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문헌연구에 의존하는 우리의 접근에서 이 두 도시에 대한 기존 연구의 축적이 풍성하여 조금 더 탄탄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11) “브로델은 베니스에서는 국가가 전부였다면 제노바에서는 자본이 전부였다”고 설명하며 두 도시국가의 특징을 요약한다: Giovanni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Our Times (London, 1994), p.145.

12) 로페즈는 제노바의 정부가 “상인에 의한, 상인을 위한, 상인의 정부”였다고 표현하였다: Robert S. Lopez, The Commercial Revolution of the Middle Ages, 950-1350 (Cambridge, 1976),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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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혜를 제공하는 이유였다. 왜냐하면 제노바와 베니스의 상업 함대는 동시에 전쟁을 벌일 수 있는 해군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학의 입장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는 시장을 개척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고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데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만큼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이었다. 물론 이들이 시장의 제도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는 시장에 크게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하더라도 재산을 몰수하는 등의 반시장적 행위에 앞장서지는 않았다. 물론 여기서도 제노바와 베니스의 차이는 존재한다. 제노바는 상인들이나 정치적 권력을 가진 가문들의 영향력이 강해 국가 조직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반면 베니스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형성에 더 성공적이었다13). 따라서 시장에 개입하는 정도와 효율성이 뛰어났고, 그 이유로 제노바보다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더 오랜 기간 지중해 무역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3) 시장경제 제도의 발전

경제학에서 제도주의의 중요한 기여는 거래 비용의 관점에서 경제 발전을 설명한 것이다. 조금 낮은 거래 비용은 단기적으로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이것이 누적되면 커다란 발전의 격차를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는 경제활동에 드는 수많은 거래 비용을 낮추는 다양한 제도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지․발전하였고, 주변의 네덜란드나 영국 등에서 모방의 대상이 되어 서유럽이 부상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동하였다.

이탈리아 도시국가가 자본주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시장의 제도에 기여하는 결정적인 장치들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 즉 자본의 축적과 유통에 필요한 요소들이 결정적이다. 무역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화폐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13) Elisabeth Crouzet-Pavan, Venise triomphante. Les horizons d'un mythe (Paris, 2004), pp.27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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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비판적 고찰 9

화폐 발행에 있어 신뢰할 만한 세력들이었다. 피렌체, 베니스나 제노바의 화폐는 유럽 전역에서 신뢰하고 사용하는 무역이나 금융 거래의 수단이었다.

또 이들 피렌체, 제노바, 베니스 등의 상인들은 유럽 전역에 걸쳐 정착하고 활동했기 때문에 실제로 화폐를 이동하지 않고도 송금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명성과 신뢰를 중심으로 근대적 신용 제도를 발전시키는데도 기여했다14). 어음제도를 이런 신뢰의 체계를 통해 발전시킬 수 있었고, 어음의 유통도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간 제도였다. 피렌체의 금융가들이 제일 먼저 유럽 전역을 지배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교황청의 자금을 관리하면서 영국이나 프랑스 왕실에도 자금을 빌려주는 입장이었다. 14세기에는 영국 왕에게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피렌체의 바르디(Bardi)와 페루치(Peruzzi) 은행이 파산한 유명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는 또 근대적 회계 방식이나 해상 보험 등을 도입하여 발전시켰다15). 회계 방식이란 인풋과 아웃풋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계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금융에서는 채권과 채무를 정확하게 관리하는 수단이었다. 또한 해상 보험이나 일반적으로 보험은 경제활동에서 위험천만의 ‘불확실성’을 관리 가능한 ‘리스크’로 변환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규정하고, 이익에 따라 정확하게 계산을 하며, 우선순위를 정해 목표를 추구하는 형식의 자본주의적 인간상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결정적으로 발전하였다.

자본주의란 또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수의 협력을 통해 계획을 추진함으로써 발전하였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는 이런 자본주의 조직의 발전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예를 들어 베니스는 해상 무역의 불확실성에 대해 보험만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공통의 조직을 통해 위험을 분산시키는 제도도 고안했다. 제노바는 산 조르지오 은행(Casa di San Giorgio)을 통해 도시국가 자본을 한 곳에 모아 자본 투자 기금의 역할과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16). 이들은 특히 무한 책임을 유한 책임으로 전환함으14) Niall Ferguson, The Ascent of Money. A Financial History of the World (London, 2016)15) Avner Grief, Institutions and the Path to the Modern Economy: Lessons from Medieval Trade

(Cambridge, 2006), p.394.16)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pp.10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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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9권 1집(통권 제16호, 2018년 3월)

로써 분산 투자의 유인을 만들었고 이는 향후 자본주의 발전에서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이처럼 이탈리아 도시국가는 상인과 금융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를 형성하여 해외 무역을 활발하게 추진함으로써 자본의 축적에 기여한 것은 물론, 다양한 시장과 자본주의의 제도를 개발하여 이후 발전에 주춧돌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해석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의 사회체계로서 자본주의의 등장여부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할 핵심적 요소들이 중세 후반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이미 자본주의 사회체계에 돌입했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지적은 유효하다. 예를 들어 역사학에서는 이들 도시국가들이 해외무역에 의존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주변의 농촌을 지배함으로써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었다고 지적한다17). 달리 표현해서 자본주의의 기본 요소를 배태하고 있었지만 이들 도시국가조차 식량이나 안보와 같은 생존의 문제는 여전히 중세 봉건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역사학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이 시기에 이미 자본주의가 하나의 사회체계로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무리라고 본다. 다만 이 시기의 자본주의적 요소가 지속성을 가지고 이후 발전과정에 계승되었다는 점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이라는 점 또한 확실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들 도시 국가의 경험이 없이 대항해 시대 이후 자본주의의 세계확산과 심화가 이뤄지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III. 세계체계와 국가건설

위에서 살펴본 중세 유럽 도시국가란 아담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모두 자유를 보장하는 도시국가의 특징을 강조하였다. 물론 이 자유는 이미 보았듯이 근대적 의미의 포괄적 자유라기보다는 당시 봉건

17) Tom Scott, The City-State in Europe, 1000-1600: Hinterland-Territory-Region (Oxford,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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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상황을 감안한 상대적 자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럽 중세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또 다른 시각은 정치경제의 관점이다. 대표적인 관점으로 세계체계론과 국가 건설론을 들 수 있다.

1) 세계체계론

우선 세계체계론은 자본주의 체계의 형성에서 유럽의 중심성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경제 체계가 형성되었으며, 이 체계는 향후 점차 확대되어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계로 발전하였다는 주장이다. 체계라는 용어의 사용은 이론적으로 “체계를 형성하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구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에서 비롯된다. 이에 덧붙여 체계에는 중심부와 주변부가 존재하며, 학자마다 성향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중심의 발전이 주변의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이처럼 세계체계론의 시각은 도시 국가 자체나 그 내부의 정치경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도시국가가 보다 더 커다란 영역에서 수행하는 기능이나 역할에 주목한다. 중세 후반 도시의 발전과 무역의 팽창은 세계체계론의 입장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국제적 체계가 형성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18). 지중해에서 형성된 이런 체계는 제노바나 베니스와 같은 발전된 도시국가가 체계의 중심을 형성하며, 지중해를 촘촘하게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이들이 만들어 놓은 체계의 중심과 주변을 이룬다는 것이다. 베니스는 아드리아 해를 중심으로 그리스와 근동 지역에 다양한 식민도시 또는 무역거점을 갖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제노바도 코르시카와 사르디니아 등 지중해 서부의 섬은 물론 동부의 그리스나 근동, 그리고 흑해까지 식민도시와 무역거점을 보유하였다. 이들은 도시국가이면서 동시에 도시제국(city-empire)이었던 18) 일부 세계 체계론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체계론의 관점, 즉 중심과 주변이 존

재하고 이들의 상호관계가 체계의 성격을 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세계 체계론은 우리가 검토하는 자본주의의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Christopher Chase-Dunn and Thomas D. Hall, Rise and Demise: Comparing Word-Systems (Boulder,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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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이다.

세계체계론은 이런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국가들이 집단적으로 체계의 중심을 형성하며 지중해의 나머지 지역은 이런 체계의 주변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러시아 지역에서는 노예나 목재 등을 제공하고, 근동 지역에서는 향료나 멀리 중국으로부터 오는 비단 등을 구매하며, 이집트를 통해 파피루스나 인도의 직물 등을 공급받는 식이다. 무역이나 경제 네트워크의 중심을 형성하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자본을 축적하고 체계의 중심을 형성하면서 규칙과 권력을 독점한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브로델과 같은 역사학자는 이미 중세 후반이나 르네상스 시기에 서서히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부상과 지중해 세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월러스타인과 같은 학자는 16세기 이후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세계 체계가 등장했다고 본다19). 그 이전 시기 지중해의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아직 유럽 또는 이탈리아 북부가 세계체계의 중심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부 루고드와 같은 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13세기에 이미 몽골 제국을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무역망이 존재하였지만 그 어떤 지역이 중심을 형성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20). 다만 서로 느슨히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체계가 공존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유럽 말고 다른 지역에도 지중해 체계와 비슷한 체계들이 존재했고, 유럽이 이들을 지배하거나 포괄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월러스타인과 같은 접근법에서도 이탈리아 도시국가가 형성한 지중해 체계는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역사의 흐름을 주목하면 이들이 형성한 체계가 어느 정도의 지속성을 갖고 발전하고 팽창하여 최초의 세계체계를 잉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무역 지향, 자본 축적,

상업 기술 등이 결합하여 중심성을 형성하였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서유럽은 세계체계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19) Immanuel Wallerstein, The Capitalist World-Economy (Cambridge, 1979), p.6.20) Janet L. Abu-Lugod, Before European Hegemony. The World System A.D.1250-1350

(Oxford,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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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축적의 주기’와 체계변동

아리기와 같은 학자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축적의 주기’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하였는데 그 최초의 사례를 바로 제노바에서 찾는다21). 축적의 주기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처음에는 생산이나 무역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는 시기가 존재하고, 그 다음에는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금융을 통해 번영을 유지하는 시기가 따라온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세계체계론은 생산과 무역에만 관심을 갖고 중심-주변의 관계를 분석할 것이 아니라, 중심이 겪는 생산에서 금융으로의 전환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리기의 분석이 매우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지중해 체계에서 세계 체계로 발전하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고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지중해 체계에서 상기했듯이 제노바와 베니스는 서로 경쟁하는 중심의 행위자들이었다. 상대적으로 공고한 정치체제를 통해 안정과 효율적인 정치경제를 구관하던 베니스에 비해 제노바는 잦은 정치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제노바는 13세기 중반부터 15세기 중반 사이 60차례가 넘는 쿠데타나 반란, 정치 체제의 교체 등이 일어났을 정도다22). 이탈리아 북부 도시국가에서는 다수의 가문들이 서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이었고, 제노바의 정치제도는 이런 경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부적절했다는 뜻이다. 약간 도식적으로 해석하자면 국가 자본주의를 잘 운영하던 베니스와 민간 행위자들이 너무 강했던 혼란과 무질서의 제노바를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제노바의 자본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국내가 아닌 국제무대에 관심을 가졌고, 금융을 통한 지배의 단계로 발전하여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군사력과 결합하는 전략을 폈다23).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제노바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베리아 반도의 신흥 무력세력과 제노바 자본의 결합을 21)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pp.109-126.22) Christine Shaw, "To Dominate the Mediterranean: Genoa and Venice", James Lacey,

ed., Great Strategic Rivalries: From the Classical World to the Cold Wa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p.187.

23)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pp.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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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역과 생산의 초기 단계에서 베니스는 승리했을지 모르지만 금융의 단계에서는 제노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과 연결하는 전략으로 유럽과 세계의 자본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지중해의 중심은 세계의 중심으로 약간의 결합과 변화와 이동을 통해 발전하였다는 의미다.

아리기의 분석 틀에서 제노바의 축적 주기가 첫 번째 사례라면 두 번째는 네덜란드의 축적 주기다. 케네디의 강대국 연구에서는 제노바는 등장하지 않고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시작한다24). 그는 정치적 세력에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6세기 세계를 양분하는 제국을 형성한 강대국임에 틀림없다. 아리기는 반대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세계체계의 진정한 중심으로 보지는 않는다. 스페인․포르투갈의 정치․군사력과 제노바의 자본력의 결합이라고 보며, 매우 중요한 요소는 제노바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덜란드와의 복합적 연결을 담당했다는 점이다. 당시 스페인․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을 동시에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신세계에서 오는 은을 네덜란드에서 치르는 내전에 금화로 투입해야 했는데, 제노바 자본이 바로 그 연결고리였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제노바는 스페인․포르투갈의 정치군사력과 결합하여 그 다음 시대의 중심이 되는 네덜란드의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3) 국가 건설론

세계 체계론이 도시국가의 중심성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국가 건설론은 근대 국가의 형성이라는 거시적 흐름에서 도시국가의 단계에 주목한다.

특히 틸리는 유럽 천년의 역사를 검토하는 작업에서 자본과 무력의 상호 관계를 분석하였다. 틸리는 무력의 논리를 결집하는 것이 국가 건설이라면 도시는 자본의 논리와 집중을 대변하는 세력이라고 본다25). 그의 관심은 국가

24) Paul Kennedy,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Economic Change and Military Conflict from 1500 to 2000 (New York, 1987).

25) Charles Tilly, Coercion, Capital, and European States, pp.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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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비판적 고찰 15

건설과 자본주의 발전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역사를 만들어왔고 현재까지 연결되고 있는가에 있다.

유럽의 특징은 중세 후반부터 대략 16세기까지 자본의 도시와 무력의 국가가 서로 분립되어 발전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도시국가란 자본 축적의 논리를 대변하고 실천하는 도시에 최소한의 국가 기능을 추가한 형태다.

반면 무력의 국가는 군사력과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자신의 권력을 최대화하려는 성향을 갖는다. 물론 군대를 키우고 전쟁을 치르려면 자본을 동원해야 한다. 위에서 보았듯이 중세 유럽의 국가는 도시의 자본으로부터 자금을 동원하여 전쟁을 치르곤 했다. 틸리의 거시 역사관에서 중요한 질문은 왜 도시와 국가의 경쟁에서 결국은 영토에 기초한 무력 국가가 승리를 거두었는가에 있다.

틸리의 설명은 중세 후기에 기술 발전을 통해 전쟁의 비용이 올라갔고,

따라서 비용 동원에 유리한 규모를 가진 영토국가들이 결국은 도시국가를 누르고 생존하였다고 주장한다26). 기술 발전이란 대포나 성곽 건설의 필요성이고, 소총의 등장으로 더욱 많은 인력을 전쟁에 동원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바다에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더 큰 배와 더 많은 대포를 필요로 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런 거대한 투자를 수행할 수 있었던 행위자는 도시국가가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의 규모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는 주장이다.

틸리의 테제는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도시국가와 영토국가의 경쟁에서 결국 군사적 이유로 영토국가가 승리하고 생존하게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 비판적 지적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우선 영토국가의 승리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도시국가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즉 근대가 시작하는 시대까지 생존하였고 강력한 세력으로 존재했다27).

베니스 공화국이나 북유럽의 한자동맹, 신성로마제국의 도시국가들이 그 사례다. 그리고 독일지역의 쾰른, 아우크스부르크 등의 도시국가는 근대까지 자본의 중심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스위스에도 상당한 영토를 보유

26) Ibid., p.160.27) Scott, The City-State in Europe, 1000-1600,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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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베른이나 자본의 중심 생 갈렌, 취리히 등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하였다. 다음, 도시국가들 역시 영토국가와 경쟁할 수 있는 재정 자원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었고 실제로 무력 경쟁에 돌입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15세기에 이미 상비군을 두면서 다른 영토국가와 비교할만한 군사 경쟁에 돌입했었다.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관점에서 제일 중요한 사실은 엡스타인이 지적했듯이 도시국가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 이외에 영토의 확장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28). 실제로 이탈리아의 제노바나 베니스는 식민도시와 무역거점을 지중해 각지에 보유하는 도시제국(city-empire)의 형식을 띄었지만 이들은 무역을 위한 수단이었지 영토의 확장 자체가 그 목적은 아니었다. 심지어 제노바의 경우 모국과 식민도시의 관계가 정치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개 현지에 정착한 제노바 상인들이 자율적인 정치 단위 또는 자치 단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모국의 관리나 명령의 대상이라고 보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국가는 틸리의 지적처럼 규모나 자원의 문제도 있었지만 정치체제의 정체성 자체가 무력을 통한 영토 확장과 지배, 그리고 자원의 약탈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무력을 인식하였고, 바로 이런 성향이 영토국가와의 경쟁에서 열세에 놓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29). 물론 영토국가는 그 반대의 성향으로 경제적 손해를 보면서도 전쟁과 영토 확장에 몰두하였고, 이는 20세기까지 지속되어 유럽과 세계의 역사에서 거대한 비극을 초래하였다.

28) S.R. Epstein, Freedom and Growth. The Rise of States and Markets in Europe, 1300-1730 (London, 2000).

29)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지역에서 도시와 국가의 조합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사례의 연구로는 다음을 참고할 것: Hendrik Spruyt, The Sovereign State and Its Competitors. An Analysis of Systems Change (Princeton,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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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도시국가와 유럽의 문화

자본주의가 중세 후반 유럽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의 또 다른 부류는 유럽이 갖는 독특한 문화적 기반을 강조한다. 위에서 살펴본 제도주의의 입장에서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국가에서는 소유권의 보장이나 무역과 금융에서의 계약 관계, 이를 보장하거나 관리하기 위한 사법제도와 공권력 등을 자본주의 발전에서 중요하게 보았다면, 세계 체계론이나 국가 건설론 등 정치경제의 접근에서는 유럽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 형성 및 정치와 경제의 조합이라는 측면을 강조하였다. 세 번째 문화를 통한 설명은 도시국가라는 정치적 형태나 다양한 경제적 제도의 발전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탐색하고, 그곳에서 바로 문화적 요인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중세 이전으로까지 설명을 연결하는 거시 역사적 시도라고 하겠다.

1) 개인주의와 최초의 제도

그라이프는 원래 제도주의 경제학의 입장에서 거래 비용을 낮춤으로써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제도주의 경제학에서는 국가 또는 적어도 공권력이 경제 행위자들의 관계를 조정하거나 관리하는 제3자로서 등장하여 소유권을 보장하거나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역할을 담당할 경우 거래 비용이 낮아지고 장기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정치권력은 언제나 이런 중립적 입장에서 벗어나 폭력을 활용하여 경제적 부를 약탈하거나 탈취할 수 있다. 제도주의 경제학의 관심은 왜 일부 지역에서는 약탈적 정치권력이 등장하였고, 다른 지역에서는 중립적 권력이 존재했는가에 있다. 이들의 핵심 비교 대상은 스페인과 영국이며, 이런 본국의 차이가 식민지에까지 전파되어 북미(영국 식민지)와 남미(스페인 식민지)의 경제 발전의 차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30).

스페인과 영국의 비교는 주로 16세기부터 18세기가 중심이 된다. 서론에서 언급한 자본주의 기원의 시기를 1500년 이후로 잡는 쪽에 가깝다. 그라이30) North and Thomas, The Rise of the Western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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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의 관심은 시기적으로 중세 후반까지 본격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문제를 제기한다. 11세기부터 서유럽에서 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하고 국제적 무역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떻게 처음에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거래 비용을 낮추는 제도들이 형성되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31). 달리 말해서 국가나 정치권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중세 후반에 이미 유럽 내부는 물론 외부의 근동을 연결하는 상업의 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국가 뿐 아니라 다양한 제도와 문화에 관심을 나타낸다.

특히 서유럽에서 중세 후반에 만들어지는 다양한 사회의 조직화에 주목한다. 상공인들이 도시국가에서 만드는 길드나 친목회(fraternities), 상인이나 금융가들이 국제적으로 형성하는 신뢰에 기초한 모임과 조직, 그리고 더 나아가 중세에 형성되는 다양한 자율적 조직으로 대학이나 도시를 들고 있다.

대학의 기원을 보면 교수와 학생의 공동체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황과 황제와 도시국가의 사이에서 상호견제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32).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도시국가가 발전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도시를 지배하는 계층이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교황과 황제의 경쟁 상태를 활용하여 독립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서유럽의 중세는 자율적 조직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성화되는 시대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경제 행위자들의 자율적 조직 형성이 정치권력의 개입 이전에 이미 초기 자본주의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거래 비용을 낮추는 상업혁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장치들이 필요하며, 국가가 없다면 자율적인 조직이 이런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경제 활동을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비슷한 시기 지중해에서 활동하던 아랍 상인들과 비교를 통해 유의미한 결론 도출을 가능하게 한다. 그라이프의 연구에 따르면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조직과 아랍 상인 조직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전자가 혈통이나 가문, 종족 31) Avner Greif, Institutions and the Path to the Modern Economy: Lessons from Medieval Trade

(Cambridge, 2006), pp.25-26.32) Christophe Charle et Jacques Verger. Histoire des universités: XIIe-XXIe siècle (Pari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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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비판적 고찰 19

등의 관계가 비교적 약한 성격의 조직이었다면 후자는 혈통, 가문, 종족의 관계에 기초한 조직이었다는 사실이다33). 달리 표현하자면 유럽이 상대적으로 익명의 개인이 동참할 수 있는 이익 중심의 기능적 조직화를 통해 상업을 발전시켰다면 아랍은 전통적인 혈통과 종족성에 기초한 공동체를 통해 상업을 가능하게 했다는 말이다.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이런 새로운 양식의 조직화가 가능했던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 이 부분에서 역사의 유산과 문화 전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가 등장하는 것이다. 우선 로마 시대에 이미 콜레지움이라고 불리는 많은 기능적 조직이 존재했고 이런 전통이 자연스럽게 서유럽 특히 이탈리아에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로마 이외의 문명에도 직업과 관련된 다양한 조직화가 이뤄졌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직업 또는 기능적 조직화에 혈통이나 거기서 비롯된 종족의 역할이 있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종족적 공동체가 주요 기능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서유럽의 이익 중심 기능 조직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 전통이나 유산보다 더 중요한 설명은 서유럽의 개인주의가 기능적 조직화를 가능하게 하였고, 특히 이익과 익명성에 기초한 조직화를 통해 거래 비용을 대폭 낮추는데 성공했다는 주장이다34). 익명성이란 조직이 개인의 특징이나 과거를 중시하지 그 개인이 속해있는 종족이나 국가, 공동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렇게 개인을 중시하는 조직화가 일반적으로 확산되면 이는 거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데 기여할 것이다. 혈통이나 종족에 따른 배타적인 행위는 줄어들고 누구나 기능적 필요에 따라 교환과 거래에 참여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33) 그라이프는 혈통중심(kin-based)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실제 혈통뿐 아니라 형식적 혈통인 부족, 종족, 민족 등 더 큰 단위를 포함한다: Greif, Institutions and the Path to the Modern Economy, pp.397-400.

34) Ibid.,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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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통, 종교, 교회

그렇다면 왜 유독 서유럽 도시국가에서 이런 조직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달리 말해서 왜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개인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는가. 여기서 그라이프는 구디의 개인주의 기원에 대한 분석을 인용한다. 서유럽에서 개인주의가 활성화 된 것은 교회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가족 제도에 결정적인 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이다35). 가톨릭교회는 부유한 가문들이 후세를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경우 그 재산을 자신이 차지할 수 있었고, 이러한 유인에 따라 가족법이나 관습에서 후세를 반드시 보장하려는 요소들을 제거하였다. 첫째, 근친의 결혼을 강력하게 금지함으로써 재산을 가문 안에 두려는 전략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둘째, 미망인의 재혼을 역시 금지함으로써 상속된 재산이 새로운 후세에 전달되는 것을 막았다. 셋째, 양자를 들이는 제도를 금하여 재산의 상속 가능성을 또한 줄였다. 넷째,

이혼의 금지도 같은 원리를 따랐다. 구디의 이런 해석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서유럽에서 교회가 실시했던 가족법이 핵가족을 형성하는데 기여했고, 따라서 개인주의가 발전하는 중대한 토양이었다는 사실만은 뚜렷하다.

게다가 교회가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이전부터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특징은 일부일처제였으며, 이 제도야 말로 기독교와 결합하여 유럽 문화의 기본 특징으로 발전하였다. 일부일처제는 권력자나 부호의 후세를 제약하는 중대한 요소였고, 이런 제도나 문화가 혈통이나 가문, 종족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역으로 현대의 사회와 문화를 살펴보더라도 중근동이나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일부다처제가 여전히 남아있고, 근친결혼이 빈번하며, 그 주요 목표가 재산을 문중에 유지하려는 전략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 문화권에서 중대한 정치경제적 문제 가운데 하나가 종족주의나 부족주의라는 사실 또한 명확하다36).

35) Jack Goody, The development of the family and marriage in Europe (Cambridge, 1983).36) Greif, Institutions and the Path to the Modern Economy,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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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비판적 고찰 21

소위 근대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익명성에 기초한 조직의 형성은 중세 후반에 시작되었고 이것이 향후 근대 기업이나 국가로 발전하는 기초가 되었다는 가설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라이프는 이런 점에서 기존의 경제학이 가졌던 제도주의를 조금 더 넓게 확대하여 적용하는 학설을 제공하였다. 스스로 제도주의의 ‘사회학적 전환’(sociological turn)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37). 달리 말해 기존의 경제학의 제도주의가 직접 경제 활동과 관련된 소유권이나 계약, 사법 독립성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을 초월하여 경제가 보다 커다란 사회와 문화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분석한다는 의미다. 그 결과 중세 후반 제도가 부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익명성과 개인의 참여에 기초한 새로운 자율성의 조직들이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살펴본다38).

3) 기독교와 근대 이데올로기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에 대한 경제학자 그라이프의 설명은 매우 흥미롭게도 인류학자 뒤몽의 설명과 부합한다. 뒤몽은 원래 인도를 전공한 인류학자로 인도의 카스트 사회의 인간을 ‘위계 인간’(Homo hierarchicus)39)이라고 표현했다. 전체에서 하나의 부분을 형성하는 인간은 전체가 만들어 놓은 위계와 질서 속에 위치한 종속적 존재라는 것이다. 인류학의 거울 기능을 활용하여 뒤몽은 서구의 근대문명을 분석하였고 위계의 인간과 대립점에 서 있는 ‘평등 인간’(Homo aequalis)40)을 발견했다. 서구에서 발전한 민족국가라는 정치형태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경제체제는 모두 평등 인간에 기초한 근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서 평등 인간을 지탱하는 기본 사회 제도는 개인주의이다.

37) Ibid., p.xv.38) 그라이프는 경직된 제도관을 경계하면서 예를 들어 초기의 길드가 거래 비용

을 낮추는 역할을 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나중에는 길드가 오히려 독점권을 확보하여 거래 비용을 올리는 부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39) Louis Dumont, Homo hierarchicus. Essais sur les système des castes (Paris: Gallimard, 1970)40) Louis Dumont, Homo aequalis. I. Genèse et épanouissement de l'idéologie économique (Paris:

Gallimard, 2008); Louis Dumont, Homo aequalis. II. L'idéologie allemande: France-Allemagne et retour (Paris: Gallimard,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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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이프나 구디의 개인주의가 교회의 사회학적 전략과 밀접한 관계에서 발전했듯이 뒤몽의 개인주의 역시 종교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다만 뒤몽은 교회의 전략보다는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전환에 더 관심을 갖는다. 원래 모든 종교는 현세에서 고통 받는 인간을 해방하려는 목표를 갖는다. 따라서 불교건 기독교건 모두 ‘세상 밖의 개인’(individu-hors-du-monde)이라는 이상을 추구한다. 속세를 떠나 개인의 욕망을 버림으로써 해방에 도달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초기에 불교나 기독교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경우 역사적 부침을 거치면서 ‘세상 밖의 개인’을 ‘세상 속의 개인’(individu-dans-le-monde)으로 전환하였다는 점이다41).

획기적 전환의 주요 인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세상 밖의 개인’을 세상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기여했다. 우선 기독교를 통해 이성과 현실(삶)이 잠재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함으로써 종교와 속세를 가깝게 만들었다. 여기서 가톨릭교회 또한 세속적(secular) 권력과 종교적(religious) 권력이라는 구분을 하였는데, 이는 결국 종교도 권력의 주체로 발전시킴으로써 세상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역할을 했다. 800년 크리스마스에 가톨릭교회가 샤를마뉴 황제 즉위를 주관하는 행위는 이제 신의 세계를 현세에서 펴겠다는 선언이었다. 기독교의 개인은 이처럼 서서히 세상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종교에 따라 세계를 바꾸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뒤몽은 칼뱅에 와서 완벽하게 근대적인 의미의 기독교가 완성되었다고 분석한다42).

다시 우리의 주제인 자본주의와 도시국가로 돌아오면 뒤몽의 역사 해석에서 중세 후반의 시기는 11세기 동서 기독교의 분리가 확인되었고, 서유럽에서도 두 명의 교황이 서로 경쟁하는 시기가 상당히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16세기는 종교 개혁과 함께 칼뱅이 등장하여 개인중심의 근대 이데올로기의 세계관을 제안하는 시기다. 따라서 시간의 지평선에서 도시국가의 상업 자본주의는 ‘세상 속의 인간’이라는 근대 이데올로기의 완성기와 동시에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뒤몽은 역사적으로 이 시기를 특별히 다

41) Louis Dumont, Essais sur l'individualisme. Une perspective anthropologique sur l'idéologie moderne (Paris: Seuil, 1983), pp.35-81.

42) Ibid., pp.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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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비판적 고찰 23

루거나 설명하지는 않지만, 종교적 세계관의 변화가 유럽 자본주의 발전과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며 현재의 개인주의와 자본주의, 민족주의의 시대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43).

경제학의 제도주의에서 보는 중세 도시국가의 자본주의가 구체적인 제도의 발전으로 향후 유럽 자본주의 발전의 기원이라고 한다면, 정치경제적 접근에서는 유럽과 세계 다른 지역과의 관계 형성이나 유럽 내부에서 정치와 경제가 결합하는 형식에서 중요성을 지적한다. 이 장에서 우리가 살펴본 문화적 설명은 사실 시대적으로는 훨씬 거시적이다. 개인주의의 기원을 그리스-로마의 일부일처제와 고대 교회의 전략에서 보거나, 또는 고대 기독교의 교리 변화에서 찾기 때문이다. 또 이런 시간적 폭은 현대로까지 연결하는데 훨씬 넓게 적용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 사고가 자본주의의 발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은 현대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는데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자본주의라는 특수한 주제를 직접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에서 도시가 많이 발전하였고, 도시에서는 개인적 또는 익명적 삶이 상대적으로 발전하게 되며, 따라서 이에 기초한 제도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많은 단계의 논리적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단계가 많다고 개연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설명의 직접성이 떨어지는 것은 확실하다.

V. 연속과 단절

산업혁명(1800년)이나 대항해시대(1500년)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시작을 논하는 학설이 역사학과 사회과학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보다 500여년 정도 앞당겨 자본주의의 시대를

43) 뒤몽의 사고 전개에서는 우선 종교를 통한 개인주의가 발달한 다음, 17-18세기에 이르러 로크, 망드빌, 케네, 스미스 등으로 근대적 경제 이데올로기가 발전한다는 분석이다: Louis Dumont, Homo aequalis. I., pp.5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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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미하고 평가하는 것도 상당한 결과를 안겨준다. 도시국가는 경제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체제로 내부에서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하는 다양한 제도를 발전시켰고 외부로는 무역을 위한 무력 투영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행태를 통해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국가들은 유럽과 지중해를 무역과 금융의 네트워크로 묶으면서 체계의 중심으로 부흥했다. 도시국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영토국가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열세에 놓이게 되었지만, 도시 및 영토라는 두 형태의 국가가 유럽이라는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끝으로 문화의 넓은 관점을 도입하여 중세 후반과 르네상스의 도시국가를 바라보면 이들이 고대에 이미 기원을 두고 있는 개인주의의 씨앗이 발화하는 중요한 토양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제도, 정치경제, 문화의 세 가지 시각에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는 자본주의의 핵심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비판적 시각을 감안한다면 중세 후반에 이미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세기 산업혁명 이전에 유럽의 경제는 여전히 농업 중심의 식량 생산 경제였으며, 이탈리아 도시국가 자체만 보더라도 자본주의 실천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세 후반의 도시국가가 가지는 모델로서의 역할과 영향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문화와 정치경제와 제도가 연속성과 연결성을 가지고 유럽이라는 지역에서 확대․발전하여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운동과 체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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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비판적 고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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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제9권 1집(통권 제16호, 2018년 3월)

<Abstract>

European City-States in the Emergence of Capitalism:

Critical Assessment of Institutional, Political Economy,

and Cultural Factors

Hong-Sik Cho*

44)

This article critically analyzes and evaluates the central role of northern Italian

city-states in the emergence of capitalism. First, from the institutional perspective,

we examine, in those city-states, the various mechanisms and their effects which can

be considered as basic elements in the development of the coming capitalist and

market economy. Then, we analyze the Italian city-states from the world-system and

state-building perspectives. Finally, we consider the cultural explanation of

commercial capitalism for this early period, especially emphasizing the Western

European individualism. Capitalism was not dominant in the late Middle Ages,

because even in the Italian city-states, economy was largely dependent upon

agriculture and capitalist practices were rather limited in scope. But they form a

model and origin of European capitalism because their culture, political economy

and institutions have developed with continuity and direct linkage into later

full-blown capitalism.

Key words: Europe, Capitalism, City-states, Genoa, Venice

*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Relations, Soongsi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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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기원과 유럽의 도시국가: 제도, 정치경제, 문화요소의 비판적 고찰 29

원고접수일: 2018. 2. 15. 심사마감일: 2018. 3. 10.게재확정일: 2018.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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