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과거로 통하는 신비한 언어 · 세기 세종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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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인 2013 SPRING + Vol.22 휴(休) | 사투리, 과거로 통하는 신비한 언어 여 언어를 통일할 목적으로 하나의 어휘로 고착화시킨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우리의 사고와 표현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 02_ 사투리에서 받은 충격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논문을 쓸 때, 필자는 여러 지역을 다 니면서 사투리 조사를 하였다. 녹음기를 이용하여 나이가 많으 신 어른들의 말을 녹음하였다가 나중에 이를 듣고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을 하였다. 어느 날, 할아버님 친구 분들이 집에 놀러 오셨을 때, 많은 분 량의 대화체 언어를 녹음할 수 있었다. “아이, 아프담서 언지 벵원으 다녀왔대야?” (아니, 아프다면서 언제 병원에 다녀왔는가?) “내가 걍 아퍼가꼬 포도시 왔고만.” (내가 그냥 아퍼서 겨우 왔어.) 옮겨 적으면서 우리 할아버지가 쓰시던 말씀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필자가 배운 표준적인 말하고 다른가 하고 크게 놀랐다. 그냥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 사투리의 발화를 손으로 일일이 적어보니 표준어하고는 너무나 큰 차이가 느껴졌다. 우리가 학 교에서 배운 표준어하고 동네 어른들이 쓰시는 사투리하고는 하 늘과 땅만큼의 차이로 느껴졌다. 사람의 말하고 손으로 쓰는 글 하고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입에서 전해지면서 들을 때는 잘 몰랐던 언어 사실들이 손으 로 일일이 기록을 하면서 표준어와 대조하는 순간, 상당한 언어 의 차이가 존재함을 알고 신비스런 느낌까지 들었다. 필자는 이 런 사투리의 언어 구조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03_ 우리글과 우리말의 차이 우리말을 잘 해야 하고, 우리글을 잘 써야 한다. 우리말과 우 리글을 잘 하는 일은 모두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바르게 잘 표현 하는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은 중요하게 생각하 는 반면, 말을 하찮게 생각한다. 말은 그냥 하면 일단은 쉽게 서 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시대의 국가 운영에 대한 중요한 일을 기록한 『조선왕조 실록』은 손으로 일일이 기록하여 놓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기 록문화이다. 다행스럽게 임진왜란 당시 전라북도 전주에서 잘 보존되어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자랑스 러운 유형문화재이다. 그러나 같은 조선시대의 말은 구비 전승되는 비기록문화이 기 때문에 책처럼 오래 전승되지 못하고 소실되는 경우가 허 다하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를 무형문화라고 부른다. 지금이 야 녹음기를 이용하여 많은 공연을 녹음하고 있지만, 사람의 말을 녹음하는 일은 특정 행사에서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말이란 것은 기록되기 어려워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다가 소실 되기 쉬운 게 현실이고 타고난 운명이다. 우리 음악으로 예를 들면, 전라도에서 많이 불리는 판소리는 비기록문화이기 때문에 무형문화이지만, 이 판소리 음악의 내 용을 기록하여 소설로 만든 『열여춘향수절가』, 『심청전』과 같은 76 77 사투리, 과거로 통하는 신비한 언어 글. 이태영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01_ 표준어 ‘개구리’와 사투리 ‘개구락지’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개구리를 만나 면 대개는 ‘야! 청개구리다.’ 하면서 ‘개구리’라고 부른다. 농어촌, 산촌에 사는 사람들은 ‘개구리’라고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만 일 ‘개구리’라고 부른다면 생활 속에서 표준어를 배워서 사용하 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어촌이나 산촌에 사는 사람들은 ‘개구리’ 를 어떻게 부를까? 국립국어원에서 필자가 참여하여 만든 ‘한국 방언 검색 프로 그램’을 검색해 보면 지역에 따라 100가지가 넘는 개구리의 다 른 어형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보면 ‘가개비 (제주), 개구리(서울, 경기), 개구락지, 개고태기, 깨고락지, 깨오 락지(전라, 충청), 개고리, 깨고리(전 지역), 머구리, 먹장구, 멀 구락지, 메구래기, 메구리, 멕장구(이상 이북)’ 등등 아주 다양한 형태들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지역마다 이처럼 다른 사투리가 존재하는가? 원 래 하나의 어휘가 존재하였다고 가정하면, 이 어휘가 지역으로 퍼지면서 그 지역의 언어규칙에 맞게 어형이 바뀌고, 음이 바뀌 어서 그런 것이다. 물론 하나의 생물에 대하여 이미 여러 어휘가 존재할 수도 있다. ‘개구리’의 사투리가 이렇게 다양하다면 그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획일화된 하나의 어휘를 배운 셈이다. 수많은 지역문 화 속에서 탄생한 어휘는 전혀 쓰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하 열여춘향수절가판소리 음악의 내용을 기록하여 소설로 만든 열여춘향수절가와 같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들 은 기록문화이면서 유형문화이다. 구리 가개비 깨오락지 깨고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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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77휴(休) | 사투리, 과거로 통하는 신비한 언어76 77

    여 언어를 통일할 목적으로 하나의 어휘로 고착화시킨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우리의 사고와 표현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

    02_ 사투리에서 받은 충격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논문을 쓸 때, 필자는 여러 지역을 다

    니면서 사투리 조사를 하였다. 녹음기를 이용하여 나이가 많으

    신 어른들의 말을 녹음하였다가 나중에 이를 듣고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을 하였다.

    어느 날, 할아버님 친구 분들이 집에 놀러 오셨을 때, 많은 분

    량의 대화체 언어를 녹음할 수 있었다.

    “아이, 아프담서 언지 벵원으 다녀왔대야?”

    (아니, 아프다면서 언제 병원에 다녀왔는가?)

    “내가 걍 아퍼가꼬 포도시 왔고만.”

    (내가 그냥 아퍼서 겨우 왔어.)

    옮겨 적으면서 우리 할아버지가 쓰시던 말씀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필자가 배운 표준적인 말하고 다른가 하고 크게 놀랐다.

    그냥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 사투리의 발화를 손으로 일일이

    적어보니 표준어하고는 너무나 큰 차이가 느껴졌다. 우리가 학

    교에서 배운 표준어하고 동네 어른들이 쓰시는 사투리하고는 하

    늘과 땅만큼의 차이로 느껴졌다. 사람의 말하고 손으로 쓰는 글

    하고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입에서 전해지면서 들을 때는 잘 몰랐던 언어 사실들이 손으

    로 일일이 기록을 하면서 표준어와 대조하는 순간, 상당한 언어

    의 차이가 존재함을 알고 신비스런 느낌까지 들었다. 필자는 이

    런 사투리의 언어 구조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03_ 우리글과 우리말의 차이

    우리말을 잘 해야 하고, 우리글을 잘 써야 한다. 우리말과 우

    리글을 잘 하는 일은 모두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바르게 잘 표현

    하는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은 중요하게 생각하

    는 반면, 말을 하찮게 생각한다. 말은 그냥 하면 일단은 쉽게 서

    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시대의 국가 운영에 대한 중요한 일을 기록한 『조선왕조

    실록』은 손으로 일일이 기록하여 놓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기

    록문화이다. 다행스럽게 임진왜란 당시 전라북도 전주에서 잘

    보존되어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자랑스

    러운 유형문화재이다.

    그러나 같은 조선시대의 말은 구비 전승되는 비기록문화이

    기 때문에 책처럼 오래 전승되지 못하고 소실되는 경우가 허

    다하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를 무형문화라고 부른다. 지금이

    야 녹음기를 이용하여 많은 공연을 녹음하고 있지만, 사람의

    말을 녹음하는 일은 특정 행사에서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말이란 것은 기록되기 어려워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다가 소실

    되기 쉬운 게 현실이고 타고난 운명이다.

    우리 음악으로 예를 들면, 전라도에서 많이 불리는 판소리는

    비기록문화이기 때문에 무형문화이지만, 이 판소리 음악의 내

    용을 기록하여 소설로 만든 『열여춘향수절가』, 『심청전』과 같은

    ㄱ ㄹㄴㄷㅑ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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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투리, 과거로통하는 신비한 언어

    글. 이태영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01_ 표준어 ‘개구리’와 사투리 ‘개구락지’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개구리를 만나

    면 대개는 ‘야! 청개구리다.’ 하면서 ‘개구리’라고 부른다. 농어촌,

    산촌에 사는 사람들은 ‘개구리’라고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만

    일 ‘개구리’라고 부른다면 생활 속에서 표준어를 배워서 사용하

    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어촌이나 산촌에 사는 사람들은 ‘개구리’

    를 어떻게 부를까?

    국립국어원에서 필자가 참여하여 만든 ‘한국 방언 검색 프로

    그램’을 검색해 보면 지역에 따라 100가지가 넘는 개구리의 다

    른 어형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보면 ‘가개비

    (제주), 개구리(서울, 경기), 개구락지, 개고태기, 깨고락지, 깨오

    락지(전라, 충청), 개고리, 깨고리(전 지역), 머구리, 먹장구, 멀

    구락지, 메구래기, 메구리, 멕장구(이상 이북)’ 등등 아주 다양한

    형태들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지역마다 이처럼 다른 사투리가 존재하는가? 원

    래 하나의 어휘가 존재하였다고 가정하면, 이 어휘가 지역으로

    퍼지면서 그 지역의 언어규칙에 맞게 어형이 바뀌고, 음이 바뀌

    어서 그런 것이다. 물론 하나의 생물에 대하여 이미 여러 어휘가

    존재할 수도 있다.

    ‘개구리’의 사투리가 이렇게 다양하다면 그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획일화된 하나의 어휘를 배운 셈이다. 수많은 지역문

    화 속에서 탄생한 어휘는 전혀 쓰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하

    『열여춘향수절가』

    판소리 음악의 내용을 기록하여 소설로 만든 『열여춘향수절가』와 같은 완판본 한글고전소설들

    은 기록문화이면서 유형문화이다.

    개구리

    가개비

    깨오락지

    깨고락지

  • 78 79휴(休) | 78 7978 79

    구리를 잡던 기억, 개구리 잡다가 물에 빠진 추억 등은 사람마다 다르다. 바로 이러한 경험이나 추억

    은 ‘깨구락지’라는 말을 들을 때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투리는 과거로 통하는 신비스런 언어인

    것이다.

    05_ 사투리가 기록된 책

    이처럼 다양한 사투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은 드물다. 방언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만든 어휘 사

    전이 있다. 예를 들면, 『전남방언사전』, 『경북방언사전』, 『제주어사전』 등이다. 이는 지역에 따라 편찬

    되지 않은 지역도 많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사전으로는 『문학 속의 전라 방언』, 『문학 속의 경상 방

    언』, 『문학 속의 충청 방언』, 『문학 속의 제주 방언』, 『문학 속의 이북 방언』이 함께 출간된 바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한 ‘21세기 세종계획’(국어정보화 중장기 발전계획) 중 ‘한민족언어정보

    화분과’에서 수행한 작업 중에 ‘한국 방언 검색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남북한 및 해외 동포들의

    방언을 쉽게 검색하는 프로그램으로 약 20만 개의 방언 어휘가 포함되어 있다.

    1980년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한국구비문학대계』라는 책을 85권

    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전국 여러 지역의 옛날이야기와 민요를 조사한 책

    인데 여기에 쓰인 글들은 당시 현장에서 구술한 말들을 그대로 현지 언어로 옮겨 적은 것이어서 말

    그대로 각 지역의 사투리인 셈이다. 책 한 권에 3~4명의 전문가가 참여하였으니, 전체적으로는 수

    백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말을 조사하여 기록한 셈이다. 이처럼 말을 기록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사투리는 국가기관에서 연구를 위하여 기록하지 않는 한, 개인이 일일이 기록하는 일은 거의 불가

    능하다. 연구자가 논문을 쓰기 위해 조금씩 조사하여 기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록되지 않은 말을 연구하고 이해하려면 현지 동네에 가서 사투리를 조사해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동네 양노당에 가서 여러 시간 녹음을 해야 하고, 장터에 가서 다양한 대화를 녹음

    해서 이것을 모두 기록해야 한다. 녹음하는 시간보다 다시 듣고 기록하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든다. 기

    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시간 분량의 테이프를 다시 기록하려면 열 배의 힘이 들고,

    다시 이것을 교정해야 하니 스무 배의 시간이 드는 셈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사투리 조사는 쉽지 않다. 답변을 해주시는 어르신을 만나서 여러 시

    간 함께 하면서 궁금한 내용을 일일이 자세히 물었을 때, 원하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또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조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조사를 하러 양노당에 가면 어르신들은 ‘머때미 이런 것을 조사한대요?’하고 묻는다. 당신들이 쓰

    는 말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처럼 자세히 조사를 하느냐며 궁금해 하신다. 일일이 설명하기 어렵지

    만 연구하기 위해 조사를 한다고 말씀드리면 자세히 응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사투리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경험과 체험이

    정서적으로 깊이 배어 있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들은 기록문화이면서 유형문화인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제주지방의 사투리를 ‘제주어’라 규정하고 사라져가는 제주

    어를 보존하기 위하여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제주어사전』을

    편찬하고, 제주의 민속과 관련된 언어 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제주도민들은 사투리가

    그 지역의 매우 독특한 문화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04_ 사투리, 기록되지 않는 말

    지역에서 사용하는 사투리, ‘겁나게 많다.’, ‘포도시 끝냈다.’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는

    쉽게 기록되지 않는다. 물론 표준어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엄마, 보고자퍼요. 엄마가 히주는 거시기, 머시냐? 그 거시기, 응 소고기 멀국을 조

    깨 먹고 싶은디 어찌야 쓴대요?”

    위의 예처럼, 어른에게 편지를 쓸 때나 친구에게 메일을 보낼 때, 일반적으로는 사

    투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투리는 입에서 입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과 말에서 왕성하게 사용되는 표준어에 밀려서 사투리가 차츰 사라지는

    경향이 높아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투리에는 특정 지역과 특정 시대의 문화가 그대

    로 자리하고 있어 사투리가 사라지면 문화가 사라지고, 문화가 사라지면 사투리가 사

    라진다.

    전라도 말에 ‘꾀벗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괴벗다’가 된소리화 되어 쓰인다. 이때

    ‘괴’는 ‘고의’의 준말이다. ‘고의’는 바지를 이르는 말이다. 전라도에서는 ‘꾀벗다’는 말을

    쓰면 원래는 ‘바지를 벗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꽤복쟁이 친구’라는 말이 생

    겨났다. 어렸을 때 바지를 벗고 함께 뛰어놀았던 오래된 친구를 일컫는 말이다. 이 말

    은 표준어 ‘발가벗다’와 일대일로 대응할 수 없다.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표준어

    ‘발가벗다’를 전라도에서는 ‘꾀를 활씬 벗다, 꾀를 활딱 벗다’로 표현한다. 이처럼 지역

    의 언어들은 조금씩 다르게 변하여 온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표준어 ‘개구리’와 사투리 ‘깨구락지’가 의미가 같다고 말할 수 없다.

    표준어 ‘개구리’는 ‘양서강 개구리목의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전에 올라 있다.

    이보다 더 자세한 해설이라 해도 일반적인 생물학적인 해설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사

    투리 ‘깨구락지’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경험과 체험이 정서적으로 깊이 배어 있다. 개

    개구리꾀벗다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 80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81휴(休) | 80 기록인 2013 SPRING + Vol.22 8180 81

    필자 소개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및 박물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21

    세기 세종계획 한민족언어정보화분과 연구책임자 역임, 문화체육관광부 『개방형 한국어 지식대사전』 편찬위원, 국어심의회 위원

    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문학 속의 전라 방언』(2010), 『전라북도 방언 연구』(2011), 『국어사와 방언사 연구』(2012) 등

    이 있다.

    06_ 사투리는 국어 역사의 창고

    『훈민정음 해례본』, 『용비어천가』와 같이 수많은 국어의 모습이 담긴 문헌 속에서 방

    언이 실린 자료를 찾는 일은 어렵다. 판본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나기는 하지만 주로

    손으로 쓴 필사된 책자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자료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여러 지역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는 중세국어, 근대국어는 물론 중세국어 이

    전의 언어도 포함하고 있어서, 국어의 역사를 연구하려면 필수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사투리이다. 예를 들면 ‘모래’를 사투리에서 ‘목새’라고도 하는데 ‘몰개>몰

    애>모래’의 변화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방언에서는 여전히 중세국어 이전 시대에

    쓰이던 ‘ㄱ’음이 살아 있는 경우가 있다. ‘만들다’를 여전히 사투리로 ‘맹글다’라고 쓴다

    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중세국어의 ‘ 다’(맹갈다)의 발음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

    다. 이처럼 8도 사투리가 후대에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중세국어나 그 이전의 언어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투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한국어라고 하면 대체로 표준어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어는 8도의

    방언이 모여서 한국어를 이루는 것이다. 표준어로 사용하는 중부 방언은 실제로 서울

    과 경기도의 방언을 말하는 것이어서 여러 방언이 모여 표준어가 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만일 한국의 문화라고 한다면, 서울의 문화만이 한국의 문화가 아니고 한국 전체 여

    러 지역의 문화를 한국의 문화라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07_ 왜 시인과 소설가들은 사투리를 많이 쓰는가?

    어느 지역 출신을 막론하고 시인과 소설가들은 사투리를 많이 사용한다. 왜 그럴

    까? 대체로 시와 소설은 작가의 경험에서 나오는 정서의 표현이거나 서사적인 기술이

    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어린 시절부터 성장할 때 경험한 내용에 바탕을 두는 경우가 많

    아서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도구나 수단이 필요한데 바로 사투리가 과거

    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山새는 왜우노, 시메山골 嶺넘어 갈라고 그래서 울지’, 김영

    랑의 시에 나오는 ‘오--매, 단풍 들것네.’, 서정주의 시에 나오는 ‘배암’을 비롯한 수많

    은 토속어가 이를 보여준다.

    채만식의 『태평천하』, 조정래의 『태백산맥』, 최명희의 『혼불』, 박경리의 『토지』, 이문

    구의 『우리동네』을 읽을 때 수없이 나오는 그 지역의 사투리를 모르고 어떻게 그 소

    설을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작가들이 자기 고향의 정서가 담긴 사투리를 사용

    하지 않고 어떻게 어린 시절과 자기가 겪은 고향의 체험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다행히 수많은 작가들이 자기의 글에 사용한 고향의 사투리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기록

    된 사투리’로 남아서 우리의 다양한 언어문화를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투리를

    써주시는 작가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혼불』을 쓴 소설가 최명희는 ‘모국어는 우리 삶의 토양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품

    고 길러 정신의 꽃으로 피워주는 씨앗이다.’라고 설파하였다. 여기서 모국어는 사투리를

    포함한 한국어를 말하는 것으로 한국어가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이고,

    이 문화를 가지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으면서 생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08_ 『개방형 한국어 지식대사전』에 9만 개의 방언 어휘가 오른다.

    그동안 정부의 언어정책은 주로 표준어에 치중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정부에서는 방언

    을 포함한 언어정책으로 방향을 바꾸어 시행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 결과,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들고 있는 『개방형 한국어 지식대사전』에서 총 100만 개의 어

    휘 중, 방언이 9만 개가 들어간다. 이는 방언을 한국어로 다루고 있는 정책에서 비롯된 것

    이다.

    방언은 지역의 소중한 무형문화 유산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투리에는

    그 지역의 역사, 전통, 문화가 소중하게 스며들어 있는 언어유산인 것이다. 비록 기록되지

    않는 특성으로 인하여 눈에 잘 띠지는 않지만 이 사투리를 통해 동네 사람들끼리, 지역사

    람들끼리 유대감, 연대감을 형성케 하여 지역 발전에 도움을 주는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고향의 사투리를 쓰자. 사투리는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우리의 한국어이기 때문이다.

    이태영 저, 『문학 속의 전라방언』

    이상규 저, 『문학 속의 경상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