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 공동체에서 차별 없는 언어란 무엇인가 · 3. 차별 표현 교육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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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교육적 관점에서 본 혐오, 차별 표현 1) ― 담화 공동체에서 차별 없는 언어란 무엇인가 제민경 춘천교육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1. 들어가며 차별 없는 언어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언어가 지니는 힘과 언어 사용의 의미에 민감해 졌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나, 단순히 그러니 쓰지 말자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다음은 최근에 봤던 신문 기사의 한 부분이다. 지방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사인 A씨는 최근 한 여학생으로부터 같은 반 남학생 B군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쉬는 시간 이나 집에 갈 때 패드립(부모님을 욕하는 등의 패륜적 놀림 말)’이나 듣기 힘든 성적 표현, 여성 비하 표현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B군은 고위 1) 비슷한 부류의 대상을 두고도 일반적으로 어학적, 교육적 접근의 연구에서는 이들을 ‘차별 표현’ 혹은 ‘차별적 표현’이라고 칭하는 반면, 법률적 접근의 연구에서는 ‘Hate Speech’의 번역어인 ‘혐오 표현’이라 칭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구체적 사례에서는 차별 표현과 혐오 표현 사이에 차이점이 없지는 않으나, 이러한 명명을 통해 일군의 표현을 지칭하는 목적은 상통한다. 따라서 교육적 관점을 취하는 본고에서는 ‘차별 표현’이라는 명명을 택하되, 이 명명 안에서 ‘혐오 표현’과 관련한 논의들을 아우르고자 한다. 본고의 ‘차별 표현’이란 일차적으 로 ‘차별 없는 언어’를 일컫는다. 이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후의 논의에서 기술한다. 특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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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담화 공동체에서 차별 없는 언어란 무엇인가 · 3. 차별 표현 교육의 방향 3.1. ‘권고적’이 아니라 ‘논쟁적’으로 그렇다면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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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관점에서 본 혐오, 차별 표현1)

― 담화 공동체에서 차별 없는 언어란 무엇인가

제민경

춘천교육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1. 들어가며

차별 없는 언어에 한 사회적 요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언어가 지니는 힘과 언어 사용의 의미에 민감해

졌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나, 단순히 그러니 ‘쓰지 말자’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다음은 최근에 봤던 신문 기사의 한 부분이다.

지방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사인 A씨는 최근 한 여학생으로부터 같은 반

남학생 B군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쉬는 시간

이나 집에 갈 때 ‘패드립(부모님을 욕하는 등의 패륜적 놀림 말)’이나 듣기

힘든 성적 표현, 여성 비하 표현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B군은 고위

1) 비슷한 부류의 상을 두고도 일반 으로 어학 , 교육 근의 연구에서는 이들을 ‘차별

표 ’ 혹은 ‘차별 표 ’이라고 칭하는 반면, 법률 근의 연구에서는 ‘Hate Speech’의

번역어인 ‘ 오 표 ’이라 칭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구체 사례에서는 차별 표 과 오

표 사이에 차이 이 없지는 않으나, 이러한 명명을 통해 일군의 표 을 지칭하는 목 은

상통한다. 따라서 교육 을 취하는 본고에서는 ‘차별 표 ’이라는 명명을 택하되, 이

명명 안에서 ‘ 오 표 ’과 련한 논의들을 아우르고자 한다. 본고의 ‘차별 표 ’이란 일차 으

로 ‘차별 없는 언어’를 일컫는다. 이것의 의미에 해서는 이후의 논의에서 기술한다.

특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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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부모 밑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자란 아이였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

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단순하고도 놀라웠다. “내가 이길 것 같아서요.”

- 초등 교실에서 싹트는 ‘여성 혐오’, ≪한국일보≫(2017. 7. 22.)

초등학교 아이들조차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힘의 과시 목적으로 사용

하고,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교육(구체

적으로는 ‘국어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아이에게 “그런 표현을 써도 네가 이길 수 없고 상 방이 싫어하니 쓰지

마라.”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국어교육이 이러한 사태에 해 방관해 왔던 것은 아니다. 인성 교육을

표방했던 2012 개정 교육 과정2)뿐만 아니라, 그전의 2009 개정 교육 과정에

서도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으며, 2015 교육 과정에서도 다음과

같은 성취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9국01-12] 언어폭력의 문제 을 인식하고 상 를 배려하며 말하는

태도를 지닌다.

[10국01-06] 언어 공동체의 담화 습을 성찰하고 바람직한 의사소통

문화 발 에 기여하는 태도를 지닌다.

그러나 부분의 교육 내용은 주로 중등학교 학습자를 상으로 한다.

2009 개정 교육 과정의 내용은 많은 부분 고등학교 심화 과정에 반영되어

있으며,3) 2015 개정 교육 과정의 내용 역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배정되어

2) 이 교육 과정의 공식 명칭은 총론이 개발된 2009년을 기 으로 하는 ‘2009 개정 교육 과정’이며,

국어과 교육 과정은 이 총론에 따라 2011년에 개발되었다. 단, 수시 개정을 표방하는 만큼

이후에도 약간의 수정 추가가 지속 으로 이루어졌고, ‘인성’과 련한 내용은 2012년에

거 반 되었다.

3) 이와 련된 구체 내용은 제민경‧박진희‧박재 (2016)이나 이 희‧조진수‧박재 (2016)에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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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언어폭력’의 범위가 무엇인지, ‘상 를 배려’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한 교육적 합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본고

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교육적 관점에서 취해야 할 차별 표현의 범주와

교육 방향에 해 고민하고자 한다.

2. 차별 표현이란 무엇인가

최근 들어 차별 표현에 한 논의가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에 한 연구 성과는 아직 많지 않다. 한국어를 상으로 한 연구로는

권영문(1996), 이춘아‧김이선(1996), 윤운영(1997), 김주연(2004), 윤석희

(2004), 김형배(2007), 이정복(2007), 이화연‧권인숙(2009) 등이 있고, 학위

논문 중에는 신윤주(2005), 주도(2015)와 같이 한국과 일본, 혹은 한국과 중국

의 언어 표현, 그중에서도 속담에 드러난 차별 표현을 분석한 연구들도 있다.

이들 중 연구 상으로 삼고 있는 ‘차별 표현’에 해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는 연구는 의외로 찾기 어렵다. 아마도 차별 표현이라는 것 자체가

담화 공동체 내에서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것인 만큼, 그 정의 역시 담화

공동체 내에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으로 통용되는 듯하다.

그러나 교육적 관점에서는 무엇을, 혹은 어디까지를 차별 표현으로 볼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 사항이 될 수 있다. 동일한 사례를 두고도 그 표현이

지니는 차별성에 한 인식은 화자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권순구

(2007), 박동근(2010), 제민경‧박진희‧박재현(2016), 이관희‧조진수‧박재

현(2016)은 차별 표현에 한 언중의 ‘인식’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접근에 하나의 토 를 마련해 주지만, 이들 연구 역시 차별 표현에 한

명확한 정의는 내리지 않고 있다.4)

차별 표현에 한 정의를 참고할 수 있는 연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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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적 언어 표현이란 받아들이는 입장과 말하는 입장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으로 문맥이나 의도, 단어의 의미에 멸시와 차별의 관념이 함축되어 있는

것(박정일, 2004:71)

한 사회의 개인 또는 특정 집단과 그에 관련한 사물 및 현상에 한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 말, 즉 편견과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특정 단어, 구, 문장으

로 이루어진 표현(박혜경, 2009:25)

성 역할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로 인하여 그들의 역할을 특징짓는 것이며

성 역할 고정 관념은 잘못된 사회문화적 요소로 인하여 남성과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역할을 특징짓는 것이다. 이것이 언어로 표현될 경우 성차별

언어가 된다.(박은하, 2009:11)

차별적 언어 표현이란 한 사회의 소수자 및 약자들에 한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 특정 단어, 구, 문장으로 이루어진 표현을 말한다.(조태린, 2011:

389)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차별 표현에는 ‘차별받는 상’이 존재하며, 이들

에 한 ‘차별적 인식’이 ‘단어, 구, 문장’과 같은 ‘언어적 장치’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특정 상, 곧 이 사회에서 성, 신체, 지역‧국적‧인종, 직업‧지위

등5)에서 상 적 약자로 분류되는 상에 한 특정 차별적 인식(관습적

또는 관념적으로 비하‧폄하하거나 또는 배제하거나)을 드러내는 특정 언어

표현(단어, 구, 문장, 문맥)’이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온 차별 표현의

정의이다.

4) 돌아보건 , 필자가 참여한 제민경‧박진희‧박재 (2016)에서도 차별 표 에 한 명확한

정의는 찾을 수 없다. 차별 표 과 련된 다수의 연구는 차별 표 의 사례를 제시하는

것으로 그 정의를 신하고 있다.

5) 차별 표 의 범주와 련해서는 ‘성, 신체(장애, 외모), 인종/국 /지역, 직업/사회’로 분류한

조태린(2006:28)이나 ‘성, 신체, 지역/국 /인종, 직업 지 ’로 분류한 박혜경(2009)를 참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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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별 표현 교육의 방향

3.1. ‘권고적’이 아니라 ‘논쟁적’으로

그렇다면 이와 같은 차별 표현에 한 교육적 접근은 어떠해야 하는가.

현재 국어과 교과서의 태도는 차별 표현을 알려 주고 이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쪽에 가깝다. 비교적 명시적인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 언어 표현을

사례로 제시하고, 이러한 표현은 차별적이니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제민경‧박진희‧박재현(2016)에서 역설했듯이, 차별 표현에 한 언중의

인식은 개별적이고 상 적이다. 특정인에게는 차별적이라고 인식되는 표현

이 다른 특정인에게는 전혀 차별적이지 않다고 인식될 수 있으며, 차별적이

라고 인식되는 경우에도 그 정도에 해서는 개별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교육적 접근에서 특정 표현을 제시하고 단순히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큰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필자가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차별적인지

모르고 쓰는 말을 차별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차별 표현에 한 인식 조사에 응한 이들의 다수

반응은 “이것도 차별 표현인가?”인데, 이후의 반응은 “처음 알았네. 앞으로

조심해야겠네.”보다는 “난 차별적으로 쓰지 않았는데?”가 부분이었다.

박혜경(2009)에서 차별 표현에 한 교육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차별성 판단

의 권한을 수신자에게 넘긴 이유는 여기에 있다.6) 물론 박동근(2010:64)의

비판처럼, 수신자가 차별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차별 표현의 차별

성은 여전히 존재한다.7) 그러나 박혜경(2009)에서 지적한 발신자와 수신자

6) 박혜경(2009)에서는 차별 언어 표 에 한 단은 해당 표 의 수신자의 ‘의미 수용’

‘사회‧문화 맥락’에 따른 해석이 발신자의 ‘표 의도’보다 먼 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7) 박동근(2010:64)에서는 ‘오른손’에 비되는 ‘왼손’의 를 들면서, 수신자가 차별성을 인지하지

못할 때는 “당신은 지 언어 으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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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관계는 일 일이라기보다는 담화 공동체와 또 다른 담화 공동체의 관계

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한 언어 표현은 한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속한 담화 공동체에서 관습적으로 습득된 것일 가능성이 크고, 이에

한 반응 역시 그러한 표현의 차별성을 인식하고 있는 또 다른 담화 공동체

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면에서 차별 표현에 한 교육적 접근은 교실에 있는 학습자들이

속한 주요 담화 공동체가 무엇인가를 점검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컨

, 제민경‧박진희‧박재현(2016)에서는 ‘스포츠맨’의 성차별성에 한 연

령 별 남녀 인식 차이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스포츠

맨’에 한 10 여성과 50 이상 남성의 인식은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8)

연령대인원(명) 평균 표준편차

t값남 여 남 여 남 여

10 206 200 1.95 2.80 1.19 1.37 -6.68**

20 51 56 1.80 2.59 1.08 1.09 -3.74**

30-40 59 66 2.00 2.60 1.17 1.38 -2.59**

50 이상 39 44 1.33 1.71 .66 1.00 -2.01*

*p<.05, **p<.01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 교실의 학습자들이 10 여성과 50 남성 중

어느 담화 공동체에 속해 있느냐 하는 점이다. 10 여학생이라고 해서

반드시 10 여성의 일반적 담화 공동체와 같은 인식을 드러내리라는 보장

하며, 스스로 악할 수 있도록 비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8) 해당 연구에서 일원 분산 분석을 실시한 결과, ‘스포츠맨’에 한 차별성을 다른 연령 보다

상 으로 높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10 인 반면, 다른 연령 보다 상 으로 차별성을

낮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5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결과는 사후분석이나 t-검정

에서도 유의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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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교실이 이러한 양상을 꺼내 보이고 이에 한

인식의 차이를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소통의 장은 때로 굉장히 ‘논쟁적’일 수 있다. 그러나 논쟁 역시 경험의

상이 되어야 한다. 학습자들은 논쟁을 통해, 차별 표현에 한 자신의

인식이 담화 공동체 내에서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또한 경험할 필요

가 있다. 현재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언어적 갈등은 오히려 이러한

경험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 있다.9)

3.2. ‘차별 표현’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언어’로

‘차별 표현’에 한 개념적 접근 또한 교육적으로 재점검되어야 한다.

먼저 차이어와의 비교를 통해 차별어의 개념을 정립하는 방식에 한 재고

가 필요하다. 최혜정(1998), 박은하(2008) 등에서는 차이어와 차별어의 비

교를 통해 차별어의 개념을 정립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이 언중이 차별

표현을 인식하는 데에 비교적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예컨 , 최근 배우 설경구는 후배 배우 설현에게 ‘백치미’라

는 단어를 썼다가 중의 뭇매를 맞고 곧장 사과를 한 바 있는데, 관련

기사에는 여전히 “백치미가 있는 것을 백치미라고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9) 제민경‧박진희‧박재 (2016)에서 인식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시한 논의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 자리에서는 인식 조사 결과를 제외하고 논의거리만 요약 으로 제시한다).

시 1) 다음의 항목에 한 나의 차별성 인식은 어떠한가? 왜 ‘약골남’은 ‘숫총각’이나 ‘아 씨’에

비해 높은 차별성 인식을 보일까?

시 2) ‘출가외인’, ‘고분고분하다’, ‘처녀작’, ‘집사람’에 한 남녀 인식의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시 3) ‘출가외인, (여자에게) 고분고분하다, 집사람, 시집가다, 처가, 처녀’의 공통 은 무엇인

가.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표 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자.

시 4) 다음은 10 딸과 50 아빠의 화이다. 아빠의 ‘스포츠맨’이라는 표 에 해 딸이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한 나의 생각은 어떠한지 얘기해 보자.

시 5) 다음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화이다. 시어머니의 ‘출가외인’이라는 표 에 해

며느리가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표 에 한 두 사람의 다른 을

정리해 보고, 우리 사회가 이에 해 어떻게 근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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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느냐.”라는 댓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발언 뒤에는 ‘차이가 있는

것을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자리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차이어와 차별어의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차이어가 해당 시점에서 존재하는 언어적 차이를 기술하는 명명이라면 차별

어는 언어에 내포된, 혹은 언어를 통해 발현될 수 있는 차별을 설명해 주는

명명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차이어는 차별의 근거 또는 고착된 차별의

결과일 수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의문문을 더 많이 사용한다는 차이어의

관점은 레이코프(2004)의 지적처럼, 실은 차별의 상이었던 여성의 억압된

표현 기제를 드러내는 현재의 양상일 수 있다. ‘백치미’라는 말에는 이 사회에

서 오랫동안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여자는 너무 똑똑하면 안 돼.’ 내지는

‘약간 비어 있는 것이 미덕이지.’와 같은)과 장애인에 한 그릇된 인식이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언어 표현은 공시태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시간의

흐름을 거친 여러 사람의 생각과 관습이 내포되어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관습을 벗어나고자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지 또한 담겨 있다.

따라서 차별 표현에는 모종의 담화적 의미가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내포될

수 있으며, 이는 오늘의 학습자가 차별 표현을 통해 배워야 할 언어의 중요한

특성이다.

이런 면에서 ‘차별 표현’이라는 명명 자체도 문제적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차별 표현의 개념에는 성, 신체, 지역‧국적‧인종, 직업‧지위

등에서 상 적 약자로 분류되는 차별 상이 중요한 의미를 점한다. 즉,

‘차별 표현’이라는 말에는 차별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라는 이분화된 시선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

다. 남자 고등학교의 한 교실에서 ‘여의사’라는 말은 차별적이니 쓰지 말자고

교과서 로 가르쳤다가, “그러면 남교사도 차별적인 말이냐?”에서 시작하

여 “여자들은 왜 군 에 가지 않느냐?”로 끝났다는 어떤 교사의 고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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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는 상과 차별하는 상을 특정 범주로 분류하는 방식은 교실 내에

서, 그리고 이 담화 공동체 안에서 또 다른 갈등을 조장하는, 오히려 ‘차별을

만들어 내는’ 방식일 수 있는 것이다. 차별 표현의 교육 목표가 ‘언어 공동체

의 의사소통 문화 발전과 상생’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러한 결과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조태린(2011)의 접근은 이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조태린(2011:398)에

서는 차별적 언어 표현이 사회 갈등을 일으킨다는 점에 주목하고, 차별적

언어 표현의 유형에 아래와 같이 ‘사회 갈등 요소로서의 기능 양상’을 부가하

고 있다.

유형 말하는 이의 의도 듣는 이의 인식 사회 갈등 요소로서의 기능 양상

공개형 ○ ○ 표출

발신형 ○ × 잠재

수신형 × ○ 표출

은폐형 × × 잠재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는 일 일의 관계를 지니지

는 않는다. 전술한 바와 같이, 말하는 이의 의도를 공유한 담화 공동체,

듣는 이의 인식을 공유한 담화 공동체 간의 소통으로 접근할 때, 교육적으로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발신형’과 ‘수신형’, ‘은폐형’이며, 이들 모두 사회

갈등 요소로서 ‘잠재적’이며 동시에 ‘표출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 실제

명시적으로 말하는 이의 의도나 듣는 이의 인식이 ‘공개형’인 사례는 많지

않으며, 오히려 다수의 차별 표현은 말하는 이의 의도나 듣는 이의 인식

면에서 ‘은폐형’이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역할은 이러한 사례를 발굴하여

그 갈등의 소지를 공유하고 경험하게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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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단어, 구, 문장’에서 ‘텍스트’로

이런 면에서 교육적 국면에서 차별 표현은 특정 단어나 구, 문장이 아닌

텍스트로 접근해야 한다. 예컨 , 조태린(2006)에서는 ‘강남’을 차별적 표현

의 한 예로 다루고 있는데, 이것이 차별 표현인 이유는 이 표현이 활용되는

텍스트가 갈등의 소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박동근(2010)에서는

“혼혈 가수 인순이 씨와 함께 부르는 노래 ‘거위의 꿈’이 클라이맥스에 이르

자 객석은 숨을 멎은 듯 조용해졌다.”라는 문장의 ‘혼혈 가수’를 인종 차별

표현의 예시로 들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혼혈 가수’라는 표현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맥락상 불필요한 정보를 ‘굳이’ 유표화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교육의 장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표현’들을 ‘논쟁적’

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차별 표현에 텍스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텍스트는 해당 언어 표현의 생성 과정이나 사용 과정에서 특정 상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삽입‧함의되어 있어 담화 공동체 내에서 소통상

갈등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텍스트, 나아가 그러한 갈등의 양상을 보여

주는 텍스트이다.

4. 나오며

얼마 전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생민이라는 연예인을 또 다른 연예인인

김구라가 ‘짠돌이’라는 이유로 조롱했다고 하여, 김생민과 김구라가 서로

그러한 의미와 의도가 없었다고 발표하고 담당 프로듀서까지 나서서 사과를

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쌍방 발표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여론은

식지 않는 추세이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의 담화 공동체에서 차별 표현이 생성되고 소통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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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에 해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다. ‘짠돌이’라는 표현은 단어 차원에서

보면 ‘남자답다-쩨쩨하다-쪼잔하다’와 비슷하게, 남성의 성 역할에 한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성차별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이러한 성차별을 문제 삼는 이는 없다. 문제는 언중들 사이에서 이 표현이

인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다수의 서민에 한 조롱 섞인 표현으로

여겨졌다는 점이며, 이는 말하는 이나 듣는 이가 그러한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러한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차별 표현이 낱낱의 표현이

아닌 하나의 텍스트로서, 어떻게 담화 공동체의 갈등을 생성하고 소통시키

는지 살펴볼 수 있는 한 사례라 여겨진다. 우리의 교실에서 차별 표현에

해 이야기할 때, 몇몇 단어를 분류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텍스트적 현상에 해 왜 문제적인지 공유하고 소통하며 논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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