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적 관점에서 본 한국어의 혐오, 차별 표현33 법률적 관점에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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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법률적 관점에서 본 한국어의 혐오, 차별 표현 입법적 규제의 필요성 * 9) 박지원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겸임교수, 법학박사 1. 들어가며 홀로코스트는 가스실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이는 말에서 비롯된 것 이다.” 1) 홀로코스트, 아르메니아, 킬링필드, 그리고 르완다…. 이는 모두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비극적 집단 학살(genocide) 이다. 인간에게 발견되는 가장 비인간적인 속성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집단 학살은 의외로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종, 이성(異性) 또는 종교에 대한 비하적 농담 과 같은 사소한 언사로부터 시작되어, 그러한 표현의 반복 학습 속에서 그러한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혐오가 유발되고, 궁극적으로는 * 이 글은 박지원, “혐오표현의 제재 입법에 관한 소고 - 주요국 입법례와 시사점을 중심으로” 을 바탕으로“, 미국헌법연구 , 제27권 제3호, 2016. 12의 내용을 요약하고 이후의 연구내용을 추가보완한 것입니다. 1) 캐나다의 저명한 법학 교수이며 하원 의원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던 어윈 코틀러 교수가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 행사의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Professor Irwin Cotler, Canadian Member of Parliament, Keynote Address at the 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Day: Remembering the Holocaust: Lessons for Our Time(Jan. 27, 2009). 특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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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

    법률적 관점에서 본 한국어의 혐오, 차별 표현

    ― 입법적 규제의 필요성*9)

    박지원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겸임교수, 법학박사

    1. 들어가며

    “홀로코스트는 가스실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이는 말에서 비롯된 것

    이다.”1)

    홀로코스트, 아르메니아, 킬링필드, 그리고 르완다 … …. 이는 모두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비극적 집단 학살(genocide)이다. 인간에게 발견되는

    가장 비인간적인 속성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집단 학살은 의외로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종, 이성(異性) 또는 종교에 대한 비하적 농담

    과 같은 사소한 언사로부터 시작되어, 그러한 표현의 반복 학습 속에서

    그러한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혐오가 유발되고, 궁극적으로는

    * 이 글은 박지원, “혐오표현의 제재 입법에 관한 소고 - 주요국 입법례와 시사점을 중심으로”

    을 바탕으로“, 미국헌법연구, 제27권 제3호, 2016. 12의 내용을 요약하고 이후의 연구내용을 추가보완한 것입니다.

    1) 캐나다의 저명한 법학 교수이며 하원 의원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던 어윈 코틀러 교수가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 행사의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Professor Irwin Cotler,

    Canadian Member of Parliament, Keynote Address at the 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Day: Remembering the Holocaust: Lessons for Our Time(Jan. 27, 2009).

    특집 2

  • 34

    이들에 대한 차별적 취급으로 진화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적 취급의

    가장 악독한 형태가 바로 집단 학살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소하더라도 혐오

    표현이 미치는 사회적 해악은 간과할 수 없다.

    한편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충(蟲)’으로 대변되는 비하적·혐오적

    신조어들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매우 빨리 전파되고 생성되고 있다. 이러한

    혐오적 표현은 자신과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집단, 특정 지역 출신 집단,

    이성(異性)을 표적으로 하기도 하고 장애인, 이주 노동자나 이주 여성, 성적

    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은유의 카타르시스 뒤에 숨어서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하여 매우 단정적으로

    배척하도록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며, 반복과 확대‧재생산 그리고 학습에

    의하여 차별적 취급으로 진화될 우려도 매우 크다.

    이러한 표현은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의

    최고 가치로 삼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인바, 민형사, 행정 등

    어떠한 형태로든지 법적인 규제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다. 그럼에도 현행법으로는 일부의 혐오 표현만을 규율할 수 있을

    뿐이며 이에 대한 법적 규제 수단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한편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는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사상과 의견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이에 대한 비판

    과 토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불가결의 필수적 요소로 취급된다. 따라서 비록 사회적‧도덕

    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있는 표현이라고 해도 이를 규제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어떤 범위의 표현을 혐오 표현으로 규제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하여 주요 선진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부여하는 가치와

    집단 학살 또는 각종 차별 사건에 대한 각국의 역사적‧사회적 입장에 따라서

  • 35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혐오 표현에 대한 일정한 규제 수단을 법률로 제정하

    고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형사적 제재로 한정하여 주요 선진국에서의

    혐오 표현의 규제 여부 및 그 방식에 대하여 다양한 입장을 검토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관련 입법 가능성에 대한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혐오 표현의 개념

    2.1. 의의

    ‘Hate Speech’는 국내에서는 ‘증오 표현’2), ‘혐오 표현’, ‘적의적 표현’,

    ‘증오 언론’3), ‘증오 연설’, ‘증오적 표현’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사전적으로

    ‘증오(憎惡)’란 ‘아주 사무치게 미워하는 것이나 그런 마음’을 말하며, ‘혐오

    (嫌惡)’란 ‘미워하고 꺼림’,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는데,

    ‘Hate Speech’의 경우 굳이 몹시 미워한다는 증오의 감정 상태에 이르지

    않은 경우를 포함할뿐더러, 구술에 의한 연설 이외의 언어적인 모든 표현

    행위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는 ‘혐오 표현’으로 칭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된다.4)

    혐오 표현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합의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

    서도 법률로 정의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학계에서도 합의된 정의가 있지 아니

    하다.5) 다만 대체적으로 국적, 인종, 종교 또는 민족을 이유로 개인 또는 집단에

    2) 박용숙(2014), “미국에서의 증오 표현 행위의 규제에 관한 판례 경향”, ≪강원법학≫ 제41권,

    강원대학교 비교법학연구소, 467쪽 이하.

    3) 심경수(2007), “증오 언론(Hate Speech)과 십자가 소각(Cross Burning)에 관한 판례 경향 -

    R.A.V. v. City of St. Paul 및 Virginia v. Black 사건을 중심으로”, ≪미국헌법연구≫ 제18권

    제1호, 미국헌법학회, 39쪽 이하.

    4) 김현경 외 2인(2012),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 그 옹호의 논리를 넘어서: 표현의 자유론

    비판과 시민권의 재구성”, ≪공익과 인권 통권≫ 제12호, 서울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 220-222

    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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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여 모욕적, 위협적이거나 폄하하는 표현을 하는 것을 말한다.6) 논자에

    따라서는 구별 가능한 소수 집단, 여성, 또는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을 이유로 한 모욕적 표현까지 포함하기도 한다.7) 표현은 광범위한 개념이

    므로 말이나 글 이외에 행위나 공연, 방송 등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표현

    행위를 망라한다.

    2.2. 구별 개념

    ‘혐오 표현(hate speech)’은 ‘혐오 범죄(hate crime)’와 구별된다. 혐오

    범죄란 일반적으로 타인의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국, 민족, 성 또는 성적

    지향에 근거한 혐오‧편견을 동기로 하는 범죄 행위를 말한다.8) 혐오 범죄는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범죄를 행할 것을 전제로 하므로(predicate offense),

    먼저 관련 제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의 구성 요건을 충족한 이후에,

    그 동기가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혐오에 근거한 것으로 인정되면 그 범죄

    에 대하여 가중 처벌(enhancement of punishment) 하도록 규정되어 있

    다.9) 이와는 달리 혐오 표현은 다른 범죄 행위를 할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단순히 그러한 표현을 한 것에 대하여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10)

    5) 혐오 표현에 대하여 합의된 정의가 없다는 것은 혐오 표현을 규제하고자 할 경우에 어떤

    행위가 혐오 표현에 해당될 것인지에 관하여 그 경계를 획정하기가 곤란함을 의미하게 된다.

    6) Onder Bakircioglu(2008), Freedom of Expression and Hate Speech, 16 Tulsa J. Comp. & Int'l

    L. 1, 4.

    7) Id.

    8) 15 Am. Jur. 2d, Civil Rights § 21.

    9) Com. v. Anderson, 38 Mass. App. Ct. 707, 651 N.E.2d 1237(1995); 24 C.J.S. Criminal Law

    § 2107. 미국에서는 50개 주 모두에서 혐오 범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예를 들어

    Cal. Penal Code § 422.6, 422.7(캘리포니아주), Colo.Rev.Stat.Ann. § 18-9-121(콜로라도주),

    D.C.Code Ann. § 22-3112.2(워싱턴 DC), N.Y. Penal Law § 240.31(뉴욕주), Vt.Stat.Ann. tit.

    13, § 1455(버몬트주)]

    10) 15 Am. Jur. 2d Civil Rights § 21.

  • 37

    혐오 범죄에 관한 법률은 가중 처벌 하기 위한 동기의 문제이며 표현

    자체를 범죄로 하는 것은 아니므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나, 혐오 표현에 관한 제정법은 그 내용에 근거하여 표현 자체를 금지시키

    는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도 양자를 구별할

    실익이 있다.11)

    3. 혐오 표현 규제 현황 및 입법 필요성

    3.1. 혐오 표현에 대한 실정법의 규제 현황과 입법 필요성

    우리의 경우 현재 혐오 표현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률은 제정되어

    있지 않다. 다만 현행 「형법」상 의견의 표현에 의해 타인의 사회적 가치가

    저하되고 위법성이 인정되면 사실적시(형법 제307조 제1항) 또는 허위사

    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2항), 사자(死者)명예훼손죄(형법 제

    308조), 모욕죄(형법 제311조)로 처벌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공간에서의

    명예 훼손 행위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형법상 명예훼손죄보다 가중 처벌 하고 있다. 이에 의하여

    혐오 표현이 개인 또는 특정 가능한 소수의 집단에 대하여 행하여진 경우에

    는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문제는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의 경우이다.12)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집단 표시에 의한 명예 훼손은 그러한 방송 등이 그 집단에 속한 특정인에

    대한 것이라고는 해석되기 힘들고 집단 표시에 의한 비난이 개별 구성원에

    이르러서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어 구성원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11) 53 A.L.R.6th 569.

    12) 대표적인 예는 일본의 극우 단체인 ‘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하 재특회)’의

    집회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인을 상대로 한 인종 차별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 38

    정도에 이르지 않으므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명예 훼손은 성립되지 않는

    다고 봄이 원칙이지만, 다만 예외적으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하여 방송하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구성원 수가 적거나 방송 등 당시의 주위 정황 등으로

    보아 집단 내 개별 구성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때에는 집단

    내 개별 구성원이 피해자로서 특정된다고 보아야 하고, 그 구체적 기준으로

    는 집단의 크기, 집단의 성격과 집단 내에서의 피해자의 지위 등을 들 수

    있다.”라고 판시하고 있는바13), 혐오 표현이 특정한 인종이나 종교 집단,

    동성애자 전체에 대하여 이루어진 경우 즉, 대상의 확정이 불가능하거나

    집단 자체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그 조직화 및 결속력의 정도 또한 견고하다

    고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처벌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14)

    따라서 포괄적인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은 현행법으로 처벌하기 곤란하

    며, 이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혐오 표현금지법 또는 포괄적 차별금지

    법15)이 필요하다.

    3.2. 국제법에 의한 혐오 표현 규제 의무와 입법 필요성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이하 ‘ICCPR’이라고 함.)」은 혐오 표현에 대하

    여 명시적으로 규율하고 있다.16) 즉 ICCPR 제20조 제2항은 “차별, 적의

    13) 대법원 2003. 9. 2. 선고 2002다63558 판결 외 다수.

    14) 전 국회의원이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한 모욕적 언사를 하였다는 데 대하여 하급심에서

    모욕죄의 유죄를 인정한 하급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 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도15631

    판결 참조.

    15) 현재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을 뿐이며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32조에 의하여 장애를 이유로 한 혐오 표현은 금지되나 그 이외의 이유에 의한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률은 제정되어 있지 않다.

    16) ICCPR 제20조 제2항 이외에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철폐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 제4조 역시 혐오 표현을

    형사처벌할 것을 체약국에 요구하고 있다. 다만 이는 포괄적 차별 금지의 일환으로 다루어지

  • 39

    또는 폭력의 선동(Incitement to Discrimination, Hostility or Violence)이

    될 출신국, 인종적 또는 종교적 혐오(National, Racial, or Religious Hatred)

    에 대한 공개적 지지는 법률에 의하여 금지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각

    체약국들에게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에 이르는 혐오 표현에 대하여

    법률로 규율할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한편 ICCPR 제20조 제2항의 혐오 표현 금지 의무의 회피를 위해 일부

    국가들은 이를 유보하고 있다. 각국의 유보 이유는 상이한데, 예를 들어 호주의

    경우 이미 관련 입법을 두고 있는 상태이므로 혐오 표현에 관하여 추가적인

    입법을 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ICCPR 제20조를 유보하였다. 이와는 달리

    미국은 ICCPR에 의하여 미국이 미연방헌법에 의해 보호되는 표현의 자유

    를 제한하는 입법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제20조를 유보하였다.17)

    그러나 우리는 1990년 비준 당시에 제20조를 유보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ICCPR의 체약국으로서 국내적으로 법률을 제정하여 혐오 표

    현을 규율할 국제법적 의무를 부담한다. 한편 ICCPR은 체약국의 의무 이행

    을 점검하기 위하여 유엔인권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는데, ICCPR의 선택

    의정서를 추가적으로 비준한 국가에 대하여는 유엔인권위원회에 대한 개인

    의 청원권이 인정된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혐오 표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개인이 유엔인권위원회에 청원하게 될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는 것이며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서는 ICCPR이 좀 더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17) Elizabeth F. Defeis(1992), Freedom of Speech and International Norms: A Response to Hate

    Speech, 29 Stan. J. Int'l L. 57, 84.

  • 40

    4. 각국의 입법례

    4.1. 영국

    4.1.1. 인종 혐오

    영국에서 인종에 대한 혐오 표현에 대하여 규제하고 있는 현행법은 「1986년

    공공질서법(Public Order Act 1986)」이다. 이 법 제3장에 의하면 ‘인종

    혐오(racial hatred)’란 ‘피부색, 인종, 국적 또는 출신국에 의해 구별되는

    집단에 대한 혐오’18)를 말하며 문서, 말, 연극, 방송 등 다양한 표현 방식에

    관한 구체적 규정을 두고 있다.

    위협적(threatening), 모욕적(abusive or insulting)인 내용의 문서를

    게시하거나 위협적, 모욕적 단어를 사용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한 자가 (ⅰ)

    그러한 행위에 의해 인종 혐오를 선동할 의도가 있었거나 또는 (ⅱ) 모든

    정황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행위에 의해 인종 혐오가 선동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19)에는 혐오표현죄로 처벌받게 된다.20) (1) 문서의

    게시 또는 혐오적 단어의 사용 또는 행위뿐만 아니라 (2) 위협적‧모욕적인

    내용의 문서를 출판 또는 배포하는 행위21), (3) 위협적 또는 모욕적인 단어의

    사용 또는 행위가 포함된 연극 공연22), (4) 위협적 또는 모욕적인 영상

    또는 음(音)의 녹음‧녹화물을 배포‧상영‧재생하는 행위23)도 혐오 표현죄로

    처벌받게 된다.

    이 경우 정식기소에 의하는 경우(conviction on indictment)에는 7년

    18) Public Order Act 1986, s. 17.

    19) 모든 정황에 비추어 인종 혐오가 선동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란 행위자가 인종

    혐오가 선동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Thomas J. Webb(2011), Verbal Poison-

    Criminalizing Hate Speech: A Comparative Analysis and a Proposal for the American System,

    50 Washburn L.J. 445, 465.

    20) Public Order Act 1986, s. 18(1).

    21) Public Order Act 1986, s. 19(1).

    22) Public Order Act 1986, s. 20(1).

    23) Public Order Act 1986, s. 21(1).

  • 41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또는 양자를 병과하며, 약식기소에 의하는 경우

    (summary conviction)에는 5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또는 양자를

    병과한다.24)

    4.1.2. 종교 및 성적 지향 혐오

    영국에서 제정법에 의해 종교 혐오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것은 「2006년

    인종‧종교혐오금지법(Racial and Religious Hatred Act 2006)」이 최초이

    다. 한편 「2008년 형사사법 및 이민법(Criminal Justice and Immigration

    Act 2008)」에 의해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도 혐오의 정의에 포함시

    킴으로써 혐오 표현의 처벌 범위를 확대하였다.

    ‘종교 혐오(Religious Hatred)’란 ‘종교적 신념의 유무에 의해 구별되는

    집단에 대한 혐오’를 말하며,25) ‘성적 지향에 근거한 혐오(hatred on the

    grounds of sexual orientation)’란 ‘성적 지향(동성 또는 이성 또는 양성에

    대한 것인지 여부를 불문함.)에 의해 구별되는 집단에 대한 혐오’를 말한

    다.26) 종교 혐오나 성적 지향에 근거한 혐오를 선동하기 위하여 (ⅰ) 위협적

    단어를 사용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하거나 그러한 내용의 문서를 게시하는

    행위,27) (ⅱ) 위협적 내용의 문서를 출판 또는 배포하는 행위,28) (ⅲ) 위협

    적 내용의 연극 공연,29) (ⅳ) 위협적 내용의 녹음‧녹화물의 배포‧상영‧재생,

    (ⅴ) 위협적 내용의 방송을 금지하고 있다.30)

    24) Public Order Act 1986, s. 27(3). 이 이외에 문서의 출판‧배포, 연극 공연, 녹화물의 상영

    등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처벌된다.

    25) Public Order Act 1986, s. 29A.

    26) Public Order Act 1986, s. 29AB.

    27) Public Order Act 1986, s. 29B(1).

    28) Public Order Act 1986, s. 29C(1).

    29) Public Order Act 1986, s. 29D(1).

    30) 형벌에 관하여는 Public Order Act 1986, s. 27(3) 참조.

  • 42

    4.2. 캐나다

    4.2.1. 집단학살옹호죄

    1960년대 이래로 캐나다는 연방 및 주법으로 혐오 표현을 규율하고 있다.

    「연방형법」 318조에 의하면 “집단 학살을 옹호(advocate)하거나 조장

    (promote)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31)

    여기서 집단 학살이란 ‘특정할 수 있는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말살할

    의도로 (ⅰ) 그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ⅱ) 고의로 집단의 육체적

    말살을 유발하여 그 집단의 삶의 조건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32) ‘특정할

    수 있는 집단’이란 ‘피부색, 인종, 종교, 출신국 또는 출신 민족, 연령, 성별,

    성적 지향 또는 정신적‧육체적 장애에 의해 구별될 수 있는 사회 집단’을

    말한다.33)

    4.2.2. 혐오선동죄

    「연방형법」 제319조는 제1항에서 “공공장소에서 연설(communicating

    statements)34)에 의하여 특정 가능한 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한 자는

    그러한 선동(incitement)이 치안 방해(breach of peach)를 유발할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대중에 대한

    혐오선동죄(public incitement of hatred)’를 규정하고 있으며,35) 제2항에

    서 “사적인 대화 이외의 대화(communicating statements, other than

    in private conversation)에 의하여 특정 가능한 집단에 대한 혐오를 고의로

    31) Criminal Code, RSC 1985, c C-46, s 318(1).

    32) Criminal Code, RSC 1985, c C-46, s 318(2).

    33) Criminal Code, RSC 1985, c C-46, s 318(4).

    34) ‘communicating’은 전화, 방송 또는 기타 청취 또는 시청 가능한 수단을 포함하며, ‘statements’

    란 구술, 서면, 전자적 또는 전자기적으로 녹음된 경우, 몸짓, 간판, 또는 기타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표현 방법을 포함한다. Criminal Code, RSC 1985, c C-46, s 319(7).

    35) Criminal Code, RSC 1985, c C-46, s 319(1).

  • 43

    (wilfully) 유발(promote)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함

    으로써 ‘고의에 의한 혐오유발죄(wilful promotion of hatred)’를 규정하고

    있다.

    4.2.3. 혐오선전물(Hate Propaganda)의 압수 및 폐기

    법관은 혐오선동죄나 혐오유발죄의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온라인 및

    오프라인의 혐오 선전물에 대한 압수 및 폐기 조치를 취할 수 있다.36) 혐오선

    동죄나 혐오유발죄의 경우에는 고의를 요건으로 하나, 혐오선전물의 경우에

    는 이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37)

    4.3. 독일

    혐오 표현에 대한 독일의 법 정책은 나치 시대의 경험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경우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민감한 인식으로부터 비롯

    되었다. 이에 따라 「형법」 제130조 제1항은 구술 또는 간행물을 통해 치안

    방해가 되는 방식으로 ‘특정 인구 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거나 그들에

    대한 폭력적 또는 독단적 조치를 요구하는 행위’ 및 ‘특정 인구 집단을 모욕하

    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하여 타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

    하는 매우 광범위한 혐오 표현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형법」 제130조

    제2항은 치안 방해의 여부와 관계없이 혐오 표현 그 자체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은 혐오 표현을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38)

    36) Kathleen Mahoney(2009), Hate Speech, Equality, and the State of Canadian Law, 44 Wake

    Forest L. Rev. 321, 341.

    37) Id.

    38) Roni Cohen(2014), Regulating Hate Speech: Nothing Customary About It, 15 Chi. J. Int'l L.

    229, 240.

  • 44

    「형법」 제130조 제3항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표현 행위39)와 같이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historical revisionism)까지도 혐오 표현의 일환으

    로 처벌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조항은 특히 사실(fact)과 견해

    (opinion)의 구별의 경계에 관한 논쟁뿐만 아니라 학문적 자유의 제한과

    관련하여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제130조 제4항은 나치 찬양

    행위도 처벌하고 있다.

    4.4. 미국

    표현의 자유는 미국 「연방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 가장 중요한 것으

    로 취급된다. 이는 자유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미국적 전통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결과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연방헌법」

    수정 제1조는 정치적 표현뿐만 아니라 모욕적이거나 무례한 표현에 대해서

    도 마찬가지로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인종적 증오감

    의 표현 및 기타 혐오 표현도 「연방헌법」 수정 제1조(First Amendment)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그 결과 미합중국은 혐오 표현조차도 명시적으

    로 보호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연방 대법원도 「연방헌법」 수정 제1조가 혐오 표현도 보호하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40) ‘텍사스 대 존슨(Texas v. Johnson) 판결’에

    서 연방대법원은 “정부는 단순히 사회적으로 모욕적이거나 무례한 것으로

    39) 독일에서는 이를 ‘아우슈비츠 거짓말(Auschwitz Lie)’이라고 한다. 홀로코스트가 거짓이거나

    사망자 수가 과장되었다는 주장이다.

    40) 미국에서 혐오 표현에 대한 현대적 논의는 대학 캠퍼스에서 인종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많은 대학들이 인종 또는 종교적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학칙을 채택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학칙들은 그 내용만을 이유로 표현을 금지하는 것이므로 연방헌법 수정 제1조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것이 연방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University of Mich.,

    721 F.Supp. at 861-67; Comment, First Amendment-Racist and Sexist Expression on Campus-

    Court Strikes Down University Limits on Hate Speech: Doe v. University of Michigan, 103

    Harv.L.Rev. 1397(1990).

  • 45

    인정된 견해(idea)임을 이유로 그 표현을 금지할 수는 없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41)

    특히 ‘로버트 대 세인트폴시(R.A.V. v. City of Paul) 판결’42)에서 인종,

    피부색, 교리(creed), 종교 또는 성별에 근거하여 타인에게 불안 또는 분노를

    유발할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상징, 물건, 명칭, 묘사, 공공장소에서의

    낙서(graffiti)를 공공 재산 또는 자유 재산에 전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시의 혐오 표현 금지 조례43)가 위헌이라고 판시함으로

    써 실질적으로 혐오 표현에 관한 모든 제정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5. 혐오 표현 규제에 관한 입법론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필수 불가결적인 요소라고 한다면 혐오 표현

    은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혐오 표현은 우리 헌법 제10조가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혐오

    표현은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한 혐오의 선동을 통해 이들에 대한 혐오

    를 유발하며 궁극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차별적 취급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적 취급의 가장 악독한 형태는 집단 학살이다.

    이러한 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혐오 표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의

    입법은 ICCPR의 의무 이행 필요성을 들지 않더라도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각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 첫 번째로 피부색, 인종, 출신국, 국적에 의해

    41) Texas v. Johnson, 491 U.S. 397, 414(1989).

    42) R.A.V. v. City of St. Paul, Minn., 505 U.S. 377(1992).

    43) St. Paul Bias-Motivated Crime Ordinance, St. Paul, Minn Legis Code § 292.02(1990).

  • 46

    구별되는 인종 혐오와 종교, 성 정체성, 성적 지향에 의해 구별되는 특징에

    근거한 혐오적 표현을 규제하고 있다.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더 나아가 신체

    적‧정신적 장애의 경우에도 이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ICCPR과

    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불변의 특징(immutable characteristic)44)에

    근거하여 집단 또는 개인에 대한 차별 또는 폭력 행위를 옹호하거나 선동하

    는 표현을 하는 것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45) 두 번째로 불변의 특징에

    근거한 것은 아니나 역사적 경험 등을 이유로 집단 학살을 옹호46)하거나

    부정47)하는 경우에까지 확대하여 혐오 표현으로 처벌하는 경우가 있다.

    결론적으로 ICCPR 및 주요국의 입법례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권을

    이유로 일정한 표현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불변의 특징에 근거

    한 혐오적 표현만을 문제 삼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관련 법률의 입법

    시에 표현의 자유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제한적으로 입법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점에서 그 대상을 ‘불변의 특징’에 의해 구별되는 집단 또는 개인에

    대한 혐오적 표현으로 한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생각된다.48) 변경할

    44)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특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인종 차별의 경우에 혐오 표현의 상대방은

    그가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집단과 공유하는 특징 때문에 그러한 표현의 상대방이 되나,

    그는 자신의 인종에 대하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biologically determined). 이러한 의미에

    서 변호사, 아나운서 등 특정한 직업군에 대한 언어적 공격(verbal attack)은 혐오 표현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이와 다른 견해로는 Thomas W.

    Overton(1995), Lawyers, Light Bulbs, and Dead Snakes: The Lawyer Joke as Societal Text,

    42 UCLA L. Rev. 1069, 1100-01가 있다.)

    45) ‘불변의 특징’을 공격하는 것을 혐오 표현의 규제 대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Jon B. Gould(2010), Speak No Evil: The Triumph of Hate Speech Regulation, at 67.(Gould는

    혐오 표현을 ‘불변의 특징에 근거하여 타인을 표적으로 하는 언어적 공격(verbal attacks)’으로

    정의하고 있다.)

    46) 이러한 입법례를 두고 있는 국가로는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이 있다.

    47) 이러한 입법례를 두고 있는 국가로는 독일이 있다.

    48) 문제가 되는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특정 집단에 대한 모욕적 표현’의 경우에도 규제의

    대상이 될 것인지를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표현별로 ‘불변의 특징’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규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홍어’, ‘과메기’와

    같이 특정 지역 출신을 비하하는 표현의 경우에는 자신의 출신을 선택할 수도 변경할 수도

    없는 것이므로 규제의 대상이 되는 혐오 표현의 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정치적

  • 47

    수 있는 자발적 행위 또는 개인적 성향에 대한 표현은 설사 부정적인 것이라

    고 하여도 구체적 정황에 따라서는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불변의 특징’ 때문에 타인에게 분노나 증오를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 변경할 수 없는 행위나 양심에 대한 변경을 강요하려는 것으로

    서 표현의 자유를 뛰어넘는 것으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

    하다.49)

    혐오 표현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가 부족한 ‘관용’의 문화를 성숙시키고 한층 성숙된 표현과 토론의 문화

    를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대한 입법부 차원의 심도

    있는 논의를 기대해 본다.

    성향이 다른 집단을 비하하는 표현의 경우에는 ‘불변의 특징’ 카테고리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종교에 대하여는 선택의 문제인지에 관하여 판단이 다소 곤란한 부분이

    있다.

    49) Alan E. Brownstein(1994), Hate Speech and Harassment: The Constitutionality of Campus Codes

    that Prohibit Racial Insults, 3 Wm. & Mary Bill Rts. J. 179,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