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살아온 한 평범한 작가의 삶의...

3
살기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살아온 한 평범한 작가의 삶의 이력 조형호 문화창작집단 바이닐랩 이사 지하실의 각본들 처음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국어선생님이 예뻤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관심을 한껏 받고 싶었던 나는 밤마다 조악한 습작을 하고 아침마다 숙제 검사라도 받듯 그녀에게 원고지를 건네곤 했다. 칭찬과 격려가 쌓인 후, 그에 힘입어 자랑스럽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 를처음꺼냈을때그녀의반응은예상외로차가웠다. “작가는하지않았으면좋겠구나.” 제자의 꿈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스승이 아닌, 그 자신이 문예의 꿈을 품고 살아온 선배로서 하 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 기했다. 그저 취미로 글을 쓰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수긍하는 대신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명 작과 위업을 이루는 위대한 작가가 아닐지언정, 그저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전업 작 가가되겠다고.오직자신의글로먹고사는삶.그게당시의내꿈이었다. 창작은 결국 생계와 만족감을 좌우에 둔 낭떠러지를 걷는 것과 같다. 만들기 위해 돈을 벌 것인 지, 돈을 벌기 위해 만들 것인지. 모든 창작자가 같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다만 나는, 남들과 달리 저열한 곳에서 출발했다. 오직 먹고살기 위해서만 글을 쓰고 싶었다. 치기로 가득했던 그 결정은 이 후의내삶을지배했다. 열여덟, 나는 빈손으로 무작정 집을 나왔다. 집을 나서 대학로로 향한 나는 당시 건물마다 하 나씩은 있던 소극장들을 돌며 일을 찾았다. 출신도 불분명한 가출 청소년을 받아줄 곳을 찾기가 쉽 진 않았지만, 결국 작은 극단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잡일과 청소를 도맡는 대신 틈틈이 각본과 연 출을배우는조건이었다.당연히급여는없었다. 대신 길거리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손님 한 명당 500원을 받았다. 무대 뒷정리나 청소가 주된 일이었고, 공연이 끝나면 지하실 창고에서 잤다. 보일러도 없는 창고 안엔 못해도 십수년은 되어 보 이는 눅눅한 각본이 가득했고, 누군가 쓰다 버린 군용 침낭 하나가 전부였다. 새벽이 되면 침낭 속에 들어가낡은각본들을읽는게그나마낙이었고,배움이었다. 꿈꾸던무대에닿았지만,그곳은무대위도앞도아닌밑바닥이었다. 사실 그곳의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나는 돈을 포기한 창작자들의 삶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생계보다 예술을 선택했지만, 그곳엔 유토피아도 걸작도 없었다. 더욱 괴로운 삶과, 더욱 갈 망하는돈의욕망을마주했다. 먹고살 만한 이류 나는 우선 충분한 돈을 벌어보고자 했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돈벌이에 목을 매게 되고, 어느덧 그 렇게 살아가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는 어떤 글도 쓰지 않고 읽지 않는 사람이 되어, 평범한 직장에서 평범한 일들을 해나갔다. 기를 쓰고 붙잡지 않으면 시나브로 사라진다, 처음부터 존재하지않았던것처럼.그런게창작열이다. 그렇게살아가던어느새벽,코인세탁소에서빨래를돌리다돌연펑펑울었다. 창작자라면, 창작자였다면 누구나 경험할 법한 그런 평범한 순간이었다. 한때 나는 내 글을 쓰 는 사람이었고, 그 글을 누군가 읽어주는 것에 행복해하던 사람이었다.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갈 수 없 을 것 같은 기분에 점령당한 나는 해가 뜰 때까지 울었다.그날 아침,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그 후, 나는 걸신들린 듯 게걸스럽게 글을 써냈다. 먹고살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그 순간에 감사했 다. 작품이 쌓이자 인터넷 연재 웹사이트를 찾아 글을 올려보았다. 반응이 전혀 없었다. 한 편당 조 회수는다섯건전후였다. 당시 인터넷 연재는 대부분 장르소설 일색이었다. 판타지나 무협, 로맨스 소설이 곧잘 읽히고 있었고, 그중 인기 작품은 출판으로 이어졌다. 자체 판매보단 대여점 시장 중심이었는데 벌이가 나 빠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장 분석과 기획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글로 먹고사는 작 가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몇 번의 실패 후, 한 작품이 결국 출판으로 이어졌다. 이후 필명을 바꿔 가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다. 압도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걸작에 도전하는 대신, 쉽게 쓸 수 있는 흥미 위주의 소설을 써나갔다. 한 달에 못해도 두 권 이상은 썼으니, 소위 ‘소설 공장’이나 다름없었 다. 시장이 그랬으니 그런 글만 써야 한다는 건 변명이다. 다만 나는 철저한 이류의 길을 고집했다. 하지만 대여점 시장은 저물어가고 있었고, 사람들도 자연스레 떠나고 있었다. 잠시나마 전업 작가 로 살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쓰고 싶은 글에 대한 욕망은 여전히 풀어낼 수 없었다. 새로운 활로 가 필요했다. 16 17 2016 01+02 Issue Insight Essay 1

Upload: others

Post on 21-Aug-2020

0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Page 1: 살기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살아온 한 평범한 작가의 삶의 이력sitehomebos.kocca.kr/k_content/vol17/vol17_04.pdf · 한 평범한 작가의 삶의

살기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살아온 한 평범한 작가의 삶의 이력글조형호문화창작집단바이닐랩이사

지하실의 각본들

처음작가가되겠다고마음먹은건중학교2학년때만난국어선생님이예뻤기때문이었다.그녀의

관심을한껏받고싶었던나는밤마다조악한습작을하고아침마다숙제검사라도받듯그녀에게

원고지를건네곤했다.칭찬과격려가쌓인후,그에힘입어자랑스럽게작가가되고싶다는이야기

를처음꺼냈을때그녀의반응은예상외로차가웠다.

“작가는하지않았으면좋겠구나.”

제자의꿈을지지하고격려하는스승이아닌,그자신이문예의꿈을품고살아온선배로서하

는이야기였다.그녀는그길이얼마나험난한지,또얼마나많은것을포기해야하는지에대해이야

기했다.그저취미로글을쓰길바랐던것이다.나는수긍하는대신방향을조금바꾸기로했다.명

작과위업을이루는위대한작가가아닐지언정,그저글을써서먹고살수있는그런평범한전업작

가가되겠다고.오직자신의글로먹고사는삶.그게당시의내꿈이었다.

창작은결국생계와만족감을좌우에둔낭떠러지를걷는것과같다.만들기위해돈을벌것인

지,돈을벌기위해만들것인지.모든창작자가같은문제를안고살아간다.다만나는,남들과달리

저열한곳에서출발했다.오직먹고살기위해서만글을쓰고싶었다.치기로가득했던그결정은이

후의내삶을지배했다.

열여덟,나는빈손으로무작정집을나왔다.집을나서대학로로향한나는당시건물마다하

나씩은있던소극장들을돌며일을찾았다.출신도불분명한가출청소년을받아줄곳을찾기가쉽

진않았지만,결국작은극단에서일할기회가생겼다.잡일과청소를도맡는대신틈틈이각본과연

출을배우는조건이었다.당연히급여는없었다.

대신길거리에서호객행위를하고손님한명당500원을받았다.무대뒷정리나청소가주된

일이었고,공연이끝나면지하실창고에서잤다.보일러도없는창고안엔못해도십수년은되어보

이는눅눅한각본이가득했고,누군가쓰다버린군용침낭하나가전부였다.새벽이되면침낭속에

들어가낡은각본들을읽는게그나마낙이었고,배움이었다.

꿈꾸던무대에닿았지만,그곳은무대위도앞도아닌밑바닥이었다.

사실그곳의모두가그렇게살고있었다.나는돈을포기한창작자들의삶을똑똑히보았다.

그들은생계보다예술을선택했지만,그곳엔유토피아도걸작도없었다.더욱괴로운삶과,더욱갈

망하는돈의욕망을마주했다.

먹고살 만한 이류

나는우선충분한돈을벌어보고자했다.자연스럽게이런저런돈벌이에목을매게되고,어느덧그

렇게살아가는게당연하게느껴지기시작했다.더는어떤글도쓰지않고읽지않는사람이되어,

평범한직장에서평범한일들을해나갔다.기를쓰고붙잡지않으면시나브로사라진다,처음부터

존재하지않았던것처럼.그런게창작열이다.

그렇게살아가던어느새벽,코인세탁소에서빨래를돌리다돌연펑펑울었다.

창작자라면,창작자였다면누구나경험할법한그런평범한순간이었다.한때나는내글을쓰

는사람이었고,그글을누군가읽어주는것에행복해하던사람이었다.더이상그때로돌아갈수없

을것같은기분에점령당한나는해가뜰때까지울었다.그날아침,나는회사를그만두었다.그후,

나는걸신들린듯게걸스럽게글을써냈다.먹고살기위한것도아니었고,그저그순간에감사했

다.작품이쌓이자인터넷연재웹사이트를찾아글을올려보았다.반응이전혀없었다.한편당조

회수는다섯건전후였다.

당시인터넷연재는대부분장르소설일색이었다.판타지나무협,로맨스소설이곧잘읽히고

있었고,그중인기작품은출판으로이어졌다.자체판매보단대여점시장중심이었는데벌이가나

빠보이지않았다.무엇보다시장분석과기획력이필요하다는걸깨달았다.내글로먹고사는작

가가될수있는기회였다.몇번의실패후,한작품이결국출판으로이어졌다.이후필명을바꿔

가며다양한장르에도전했다.압도적인성과를낼수있는걸작에도전하는대신,쉽게쓸수있는

흥미위주의소설을써나갔다.한달에못해도두권이상은썼으니,소위‘소설공장’이나다름없었

다.시장이그랬으니그런글만써야한다는건변명이다.다만나는철저한이류의길을고집했다.

하지만대여점시장은저물어가고있었고,사람들도자연스레떠나고있었다.잠시나마전업작가

로살수있었지만,개인적으로쓰고싶은글에대한욕망은여전히풀어낼수없었다.새로운활로

가필요했다.

16 17

2016 01+02Issue Insight Essay 1

Page 2: 살기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살아온 한 평범한 작가의 삶의 이력sitehomebos.kocca.kr/k_content/vol17/vol17_04.pdf · 한 평범한 작가의 삶의

춤추게 하는 꿈

한동안삶을위해창작을해왔으니,다시금창작을위한삶에집중하고싶었다.나는당시살고있던

상수동의‘홍대앞인디문화’에주목했다.형용할수없는자유로운창작이도처에가득했다.작은

라이브클럽들에선매주새로운밴드들이얼굴을내밀고,골목길마다색짙은아티스트가작품을

선보였다.나는틈만나면회복과영감을위해각종공연이나전시회를보러다녔고,문득문학도그

런식으로풀어나가면재미있겠다는생각이들었다.

우선출판사에서거절당한기괴한단편을모아자비를들여책을만들었다.편집부터제본까

지직접해냈다.인근의유명한수많은카페를돌아다니며책을비치하고,그게팔리면가게와나눠

가졌다.낡은리어카한대를10만원에사놀이터근처골목에터를잡고책을팔기도했다.글을쓰

는시간이상으로발로뛰었지만,슬슬잡상인취급을받기시작했다.창작에대한열의만큼은조금

도꺾이지않았지만,이런방식은한계가있었다.인디밴드공연에서영감을얻은나는일종의퍼포

먼스가필요하다고생각했다.처음엔포크송위주의밴드들사이에등장해짧게시낭송을해보았

다.뮤지션과함께무대에올라즉흥연주와함께즉흥시를읊거나,내가만든시를바탕으로함께

새로운곡을만들기도했다.자연스럽게인디작사가가되어버린것이다.

작가로선드물게무대위를경험하게되었다.그저담담하게시구를읊을뿐아니라,때론소

리치고춤을추며시를뿜어냈다.적은관객이었지만,내글을내목소리와내몸으로표현할수있

는의미있는시간이이어졌다.

이대로작사가가되는것도고민했다.이역시글을써서먹고살수있는작가의길이다.다만

터전이좋지않았다.대부분의인디밴드는자신의경험과이야기로노래를만들고,그것으로자신

의정체성을이룬다.그들에게나와의작업이란그저단편적인이벤트,그이상도그이하도아니

었다.

대신나는스스로음악의일부가되었다.연주를시작하고,밴드에참여했다.라틴타악기를

연주하는퍼커셔니스트로,물론작사도함께할수있었다.문학과마찬가지로이역시분명한창작

의길,예술의길이었다.무엇보다홀로글을써온내게음악과의협연은새로운지평이었다.동료

들과하나의작품을만들어가는과정속에서얼마나놀라운감동이있었는지,얼마나괴로운일들

이있었는진일일이언급할수없다.그저모든것이새롭고뜨거웠다.운이좋았던덕에많은밴드

와동료들을거치고,또많은곡을만들어냈다.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나자라섬재즈페스티벌같

은대형행사에도참여했다.

무엇보다작가로서해볼수없었던경험을직접마주했다.글은사람을움직인다.웃게하고

울게하며,생각하게한다.때로전쟁을일으키거나평화를이루기도한다.다만춤추게할순없었

다.나는무대위에서나로인해춤추는관객을보았다.그게음악이었다.음악은사람을모이게하

고,소리치게하고,춤추게했다.그게연주자로서내가느낀감동이었고,문학작가로서내가느낀

질투와경외였다.

문득그런글을쓰고싶다는꿈을품었다.

그 너머 미지에 닿아

한창음악을하는중이었다.아니,비슷한시기였을것이다.새로운기회가찾아왔다.게임산업이

었다.마침적지않은장르소설가들이업계에진출하던시기였다.온라인게임대부분은환상서사

를바탕으로한세계관을필요로하고있었고,장르소설가는이에적합했다.

내가만든세계를게임으로만든다는것은그만큼매력적인일이었다.음악을통해함께만드

는즐거움을알았고,더욱많은사람과함께새로운창작활동을경험해보고싶기도했다.

무엇보다가장기대되는건시장의크기였다.작가로서이보다많은대중과만날수있는기회

가또없었다.수백만,아니그이상의사람들에게내이야기를,내가만든세계를보여줄수있었다.

영화산업이상의규모였다.

다만게임시나리오작가에대한업계의인식이나,실제작가가게임제작에기여할수있는바

가넓거나깊진않았다.그도그럴것이탄탄한시나리오를기반으로게임이만들어지기보단,이미

만들어진게임위에작은이야기나설정을덧대는것이당시국내시장의보편적인방법론이었다.

의미없고뻔한이야기가난무하고있었다.장르시장과비슷했다.하지만진짜명작이라부를

수있는게임들은언제나매력적이고가치있는서사가함께하고있었다.나는반드시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뜻이맞는동료들을만나깊이있는서사와세계관에기반을둔게임프로젝트에도전

할수있었다.게임서사의가장큰가능성은바로양방향성이다.어떤영화나문학도그저작가가

그려놓은길을따라간다.시작과끝이정해져있다.하지만게임은그안에서플레이어가선택하고,

움직이게한다.선택과행위에따른경이적인체험.그것은오롯이게임서사와게임콘텐츠만이가

질수있는특별함이었다.

게임시나리오작가는좁은범주에선콘텐츠및연출제작자이지만,그영역을넓히면브랜딩

이나UX디자인의영역에다다른다.고유한세계관을강력한IP로구축해상품화할수있고,플레

이어의행위와동기를이끌어가는인지심리학적접근이필요하다.결국모두서사의힘이필요하

다.이토록대중에가까운,대중을사로잡을수있는창작이라니.작가인내겐최고의축복이자미

지의신대륙이나다름없었다.

18 19

2016 01+02Issue Insight Essay 1

Page 3: 살기 위해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살아온 한 평범한 작가의 삶의 이력sitehomebos.kocca.kr/k_content/vol17/vol17_04.pdf · 한 평범한 작가의 삶의

우리는게임이가진트랜스미디어로서의가능성에대해곧잘이야기하곤했다.하나의세계

관을공유하는다양한이야기가각기다른플랫폼에서펼쳐진다면어떨까?단일콘텐츠를기반으

로확장시키는OSMU(OneSourceMultiUse)와는전혀다른개념이었다.무수한작품으로확

장될수있는세계관.그게우리의꿈이었다.

몇개의회사와프로젝트를거친후,동료들과함께직접회사를차리게되었다.아무리높은

뜻,뜨거운열정을갖고있더라도기성기업의한계아래서꿈을이루기엔아쉬움이있었다.마침모

바일게임시장의활황에기대어스타트업창업이종교처럼번지기시작했지만,그건아무래도상

관없었다.그저우리가이야기해온그특별한세계를직접만들어보고싶었다.

이이야기는여기서현재진행형이다.하나의게임과몇개의앨범을만들고,이제야다음이야

기가담긴작품을선보일차례에와있다.물론나는여전히작가로서,창작자로서이길위에있다.

창작자로 살아간다는 건

오늘도우리는무수한이의성공담을엿듣는다.작은인디밴드에서일약스타로떠오른이들이나,

회당수천만원을번다는드라마작가의이야기,천만명이다운로드한게임이나해외수십개국에

팔린다는모만화같은.

다만그것만이비전이고,그것만이목표여야할진모르겠다.무언가를만들어성공하고싶은

게아니라,만드는것자체가좋아서시작했던건아닌지.많은지식인이저서와강연을통해성공의

방법에대해이야기한다.아프니까청춘인것도좋고,한없는긍정이성공을부르는황금열쇠가되

는것도좋다.TV오디션에나와이목을끄는것이마치뮤지션의정석이라도되는것처럼실용음악

학원에오디션반이우후죽순생겨나는것도,수많은스타트업기업이수천억매출을꿈꾸며비슷

비슷한게임을찍어내는것도좋다.결국그역시시대의모습이고,시대가말하는비전이다.

하지만그건그들의비전이지,내비전은아닐것이다.

창작자로서나는오랜시간방황해왔고,지금도그와중에있다.내가지금까지창작자이자작

가로,늘무언가를만드는사람으로살아올수있었던건오직내욕망을바로보았고,이에충실했

기때문이다.끊임없이도전해왔다는점에서스스로를칭찬할수있는부분은있겠지만,결국나는

절대다수의보편적이류였다.그러니여전히당당하게방황할수있다.나는오직나자신과내욕망

을위해살아가고있고,창작하고있다.

그나마좋아하지도않았다면버틸수없던삶이다.창작자대부분이그럴것이라믿는다.좋아

해서시작했고,좋아할수없어끝난다.그러니이유는스스로에게물을수밖에없다.틀릴수도있

고방황할수도있지만,당연한과정이다.세상은여전히내게하지말라는이야기나할테고,그럼

에도창작을포기할수없는이유는오직내안에있다.

거창한사유나철학을앞세울필요는없다.멋있는게좋아서,환호받고싶어서,혹여좋아하는

이성의관심을끌고싶어서시작한들뭐가문제가되겠는가.눈몇번깜박이면지나갈찰나,마치폭

죽과같은삶이다.그런데다창작자라니,세상에이것보다신나고멋진폭죽이또어디에있을까.

오늘도여전히찢기고있다.내일아물면,모레엔새상처가생기겠지.그럼에도이길위에있

다.지금까지,또앞으로도.

그래.그렇게길을걷고,나와의대화를이어가는일이전부다.내가창작자로살아간다는건.

20 21

2016 01+02Issue Insight Essay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