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과 제도권 언론의 안과 밖 · 2011-06-20 · -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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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과 제도권 언론의 안과 밖 정성욱 (미디어연구소 '봄' 대표/ 충남대학교 강사)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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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과 제도권 언론의 안과 밖 · 2011-06-20 · - 21 -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과 제도권 언론의 안과 밖 정성욱 (미디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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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과 제도권 언론의 안과 밖

정성욱 (미디어연구소 '봄' 대표/ 충남대학교 강사)

Ⅰ. 서론

텔레비전과 같은 전자 미디어의 등장이 심화한, 미디어 시장의 독점화 경향이 거

대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부각한 반면, 공론장 진입 비용을 현저히 낮춘 인터넷

은, 실명제를 둘러싼 논란에서 보는 것처럼, 더 많은 언론 자유를 구가하게 된 시민

각자의 사회적 책임을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예에서 보듯, 광고에 의존하는

독점적인 미디어 기업의 등장으로 더욱 재봉건화되었다고 평가되어 온 자유주의적

공론장이 인터넷의 전 지구적 확산을 계기로 또 한 번의 거대한 구조적 변화를 겪

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공론장의 재봉건화 과정에서 군중으로 격하되었으나 인

터넷을 통해 다시 기력을 회복한 시민의 등장이 그것이다.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변화도 자본주의와 함께 출

현한 자유주의적 공론장의 전 지구적 구조변동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더욱 분명하

게 파악되는 점들이 적지 않다. 보다 비근하게는 한국 시민 사회의 주요 의제로 부

각되어 있는 ‘케이블 텔레비전 종합편성채널’ 역시 전통적인 신문 미디어 기업의,

인터넷이 몰고 온 혁명적 변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디믹 등의 연구는 인터넷이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를 상당 부분 경쟁적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뉴미디어라는 점을

보여준다(Dimmick, Chen, & Li, 2004).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들로서는 새로운 사업

적 활로를 찾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본 연구는 인터넷의 가능성과 위협에 대한 이런 이해와 파악을 ‘땅의 속박으로부

터 해방된 개인’의 출현을 결정적 전제로 발생한 자유주의적 공론장이라는 역사적

구성물에 비추어봄으로써 인터넷이 초래한 언론 환경의 개변을 권력 감시 기능과

같은 언론의 기능에 생길 수 있는 변화라는 측면에서 분석해 보려는 시도이다. 결

론적으로 본 연구는 이런 변화를 언론의 제도적 경계에 대한 새로운 파악을 요구하

는 질적인 변화로 파악하였는데, 이런 변화를 선명히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작업

하나는 이런 변화가 생겨나기 이전의 언론을 기능적 관점에서 파악함으로써 변화의

기준을 분명히 해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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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하버마스(Habermas, 1990/2001)가 고안한 공론장 개념은 일반적인 민주주

의 이론이나 정치 이론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개념이다. 그래서 이상적

인 공론장 유형을 구분해 보려는 조항제와 박홍원, 그리고 페레 등의 논의를 포함하

여 다양한 민주주의 이론과의 연관에 대한 연구도 활발한 편이다(조항제․박홍원,

2010; Ferree, Gamson, Gerhards, & Rucht, 2002). 그러나 본 연구가 특히 주목한

것은 공론장 개념의, 민주주의 이론과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연관이 아니라, 구체적

이고도 역사적인 측면이다. 즉, 본 연구는 실증적 사회과학이 여론 연구에 흔히 채용

하고 있는 사회심리학적 척도로 환원될 수 없는 역사적 범주로서의 부르주아 공론장

에 대한 주목 없이는 근대적 공론장 맥락에서의 여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어렵

다는 점을 조명해 준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분석해 보려는 역사-철학적 시도이다(Habermas, 1990/2001, 특히, 361-378쪽).

Ⅱ. 근대 정치의 본원적 특징과 언론의 기능적 정의

근대 언론이 발생하는 역사적 과정을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를 대체한 자유주의

정치 체제의 등장과 관련하여 교과서적으로 기술한 언론학 고전이 시버트 등이 쓴

“언론의 4이론”이다(Siebert, Peterson, & Schramm, 1956/1991). 이 책이 그리는 근

대 언론사는, 공산주의 언론에 대한 기술을 논외로 하면, 두 개의 큰 변화로 요약된

다: 하나는 권위주의에서 자유주의로의 변화; 다른 하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기업화한 언론의 독과점화에 대응하기 위해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조가 필

요해진 변화다. 첫 번째 변화가 하버마스가 이야기하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성립 과

정이라면 두 번째 변화는 공론장의 재봉건화 과정과 겹치는 과정이다. 거칠기는 하

지만 역사적 변화의 대종을 잡아주는 이런 거시적 파악은 자유주의적 공론장의 발

생 과정에서 중요한 사회 제도로 등장한, 흔히 제4부라는 이름으로 요약하는 근대

언론의 본원적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봉건적 권위주의 체제를 뒷받침한

세계관과 근대 정치 체제를 뒷받침한 새로운 실천 철학 사이의 단절에 대한 파악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논의의 이런 맥락에 맞게 적절히 부각된다면 근대 언론의 본원적 기능

에 대한 역사-철학적 이해를 도와줄 만한, 근대 정치 체제의 혁신적 특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한반도에서 최초로 성립한 민주공화정을 출범시킨 대한민국 제헌 헌

법의 전문에도 표현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근대 정치의 본원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민 개개인의 행복 추구에 방해가 되는 모든 전근대적 폐습을

청산하겠다는 결의에 있다. 즉, 지역적 지반 속에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동

체적 규범이라 할지라도 공화국 시민들의 행복 추구에 장애물이 된다면 청산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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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없다는 것이다. 칸트의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구분을 예로 들면, 봉건

규범은 이성의 검토를 거치지 않고 그냥 주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규범으로서 갖는

공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근대 정치의 역사적

임무 하나는 주어진 도덕 규범을 떠나 새로운 윤리적 전통을 형성해 내는 것이 될

수밖에 없고, 근대 국가의 법은 최소한의 도덕 규범이라기보다는 봉건 윤리를 대체

하는 새로운 규범적 체제의 근간이다. 봉건적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부르

주아 시민들이 모여 형성하게 된 자유주의적 공론장은 바로 이렇게, 역사적으로 주

어진 봉건 규범 하나하나를 행복 추구의 원점에서 재검토함으로써 새로운 법 규범

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질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정치적 의

지가 형성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봉건 질서를 뒤엎겠다는 이런 혁명적 의

지가 결집되어 결실한, 전혀 새로운 정치 질서가 근대 국가 체제인 것이다

(Habermas, 1990/2001; Oakeshott, 1975).

근대 국가의 주권은 방금 본 것처럼 자신의 영역 내부에 어떤 규범적 성역도 인

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도 절대적이다. 그리고 이를 뒤집어 보면, 국가의 주권적

권력은 근대적 질서를 생성해준 부르주아 도시민들의 자율 공간, 사적 자치의 영역

을 근본에서 뒤흔들 가능성이 농후한, 따라서, 위험한 권력이다. 즉, 그것이 절대적

이기 때문에, 국가 권력의 규제와 조절의 대상에는 시민 사회 내에서 자율적으로

형성한 규범적 관계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런 국가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사적 자치

의 자율성을 지켜줄 방어적 기본권이 특히 사생활 보호와 밀접하게 연관된 자유권

적 기본권이다. 한편, 이런 자유권적 기본권이 시민 사회의 자율성을 국가 권력의

침해 가능성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데 중점이 있다면, 다른 한편, 언론 자유에 관련된

기본권은 국가 권력의 침해 가능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근거가 되는 기

본권이라는 점에 그 큰 의의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근대 언론의 정치적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주권적

권력의 작용에 대한 공적이고도 철저한 검토다. 다시 말해, 언론이 언필칭 ‘제4부’의

권능을 가지게 된 것은 주권적 권력에 대한 강력한 공적 검토의 제도화가 신문과

같은 언론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의 제도적 안정을 위한 지원,

예컨대 신문 수송에 대한 우편 요금의 면제나 할인과 같은 지원이 근대 국가의 초

창기부터 시작된 것도(Cook, 2005, 38쪽), 근본적으로는, 이런 사정에서 기인한 것이

라 여겨진다. 언론을 통해 제도화된 언론 자유는 그것 없이는 제대로 된 민주공화

정이 불가능한, 민주적 기본 질서의 본질적 근간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버마스(Habermas, 1990/2001)의 논의는 자유주의적 헌정 질서 안에서

언론이 차지하는 위상에 관해, 지금까지의 논의가 강조한, 주권적 권력에 대한 사적

자치의 방어라는 측면과는 조금 다른 측면을 크게 부각하고 있다. 즉, 근대 언론의

주요 기능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논의가 주권적 국가 권력에 대한 가차없는 견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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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헌정 질서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제4부로서의 언

론을 부각했다면, 하버마스의 공론장 논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민주적 헌정

질서를 내용 면에서 채워나가는 정치 행위라고 할 입법 행위의 초를 잡고 그것을

정당화시켜 주는 근거가 되는 공적 여론의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 요

청되는 사회 제도가 바로 언론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언론 기능

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개념은 시민적 질서를 성립시킬 홉스적 권위가 아니

라 공론장의 논의와 입법을 매개함으로써 폭력적 지배를 종식할 칸트적 진리다. 그

리고 바로 여기가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이 홉스를 비조로 하는 자유주의 전통

과 구분되는 숙의적 전통을 새롭게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근대적 정치 질서를 홉스적인 시각에서 파악하는 경우에 권력 작용에 대한 언론

자유를 통한 공적인 검토의 기준은 무엇보다도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가 시민 사회

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사태를 막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표적인 시민적 권리

보호 제도가 영장 제도다. 그리고 영장 제도에 체현된 이런 정치적 원리가 분화된

하위 체제로서의 경제에 적용된 결과가 자유방임형 경제 체제다. 나아가, 여기서 제

기된 난문 하나는 자유방임이 불러온 경제적 독과점 상태가 시민 사회 내부에 야기

한 불균형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특히 이런 경제적 불균형

은 비경합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재가 교환되는 미디어 시장에서 다른 경우보다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밖에 없고, 텔레비전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미디어 기업의 자본 투입 규모가 커지는 시기를 거치면서 더욱 큰 사회적 주목을

받게 마련이다. 시버트 등(Siebert et al., 1956/1991)이 세계 언론사의 흐름에서 추

출해 낸 두 번째 역사적 변화상은 바로 이런 사태에 관한 것이다. 한편, 칸트적인

진리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하버마스의 공론장 논의는 이런 변화를 공론장 재봉건

화 과정의 일부로 파악하고 있는데(Habermas, 1990/2001), 이런 두 번째 큰 변화에

대한 주목은 우리를 근대 언론에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에 관한 논의로 이끈다.

Ⅲ. 공론장의 재봉건화와 언론의 역할에 대한 윤리적 요청

하버마스(Habermas, 1990/2001)가 이야기하는 재봉건화 과정의 핵심은 사적 자

치의 자율적 영역으로 스며든 국가 권력과 국가의 권력 작용을 전유하려는 시민 사

회 내의 움직임들로 인해 국가와 사회 사이의 자유주의적 경계가 무너지게 되었다

는 데 있다. 다수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적 투쟁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담보하려는

계급적 움직임이나 자유주의적 헌정 질서의 복지국가로의 전환 움직임은 두드러진

예다. 공론장 구조변동에 대한 하버마스의 주장은 바로 이런 움직임들 때문에 봉건

적 질서가 강요한 무지로부터 깨어난 계몽된 참여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떠나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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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공론장의 경계가 무너지게 되었다는 데 그 요체가 있

다. 즉, 문예적 공론장을 통해 다듬어진 이성적 담론 실천을 공적인 문제에 적용하

는 과정에서 태어난 부르주아 공론장은 국가의 사회화와 사회의 국가화로 요약되는

이런 변화 때문에 보편적 이성을 결여한 사적인 이해들이 다수의 지지자 동원이라

는 매개를 통해 자신을 일반적인 보편 이해, 혹은 그것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인정

받기 위해 투쟁하고 경쟁하는 무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공론장 논의의 핵심은 결국 경쟁하는 사적인 이해 관계와 사회 일

반의 공적인 이해 사이의 단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하버마스는 이런 단절이 근대적으로 봉합된 역사적 지층을 한나 아렌트의

역사 해석을 따라 ‘사회’라고 파악하면서,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공화적인 사회

질서의 내적 붕괴를 칸트적 이성을 통해 막아낸 역사적 순간이 있었음을 이야기하

고 있다(Habermas, 1990/2001). 물론 이런 역사적 사례에서 사적 이해와 공적 이해

사이의 단절이 봉합된 방식은 이성적인 고담준론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였다기보

다는 유산 계급의 무산 계급에 대한 배제와 차별에 더욱 결정적으로 의존한 것이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자유주의적 헌정 질서가 배제와 차별의 기제만을 동

원하였다면 결국 폭력적 지배에 의존하는 방식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성적 담론 사이의 공적인 경쟁이라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이상이 단지 이데올로기적

분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해 버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 능력을

온전하게 갖추지는 못한 것으로 여겨졌음에도 일정한 정치적 권리를 확보한 피지배

계급의 등장으로 이런 차별과 배제가 더 이상 불가능해진 시기가 도래하면서 부르

주아 공론장의, 이성적 고담준론 사이의 공정한 공적 경쟁이라는 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시민 사회 내부에 발생한, 이성적 논의와 숙고의 공

백을 대중 동원을 위한 공허한 수사와 군중 심리학이 메웠다는 것이 하버마스가 이

야기하는 공론장 구조변동의 핵심적인 줄거리다.

다른 한편, 이렇게 적용되는 실체를 가진 역사적 범주로서의 부르주아 공론장이

제도화된 언론에 대해 요청하는 바는 국가와 시민 사이의, 책임성을 담보할 연계

없이는 자체 재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자유주의적 헌정 질서 안에서 여전히

유효한 요구로 살아남았는데, 하버마스는 이를 두 개의 규범적 요구로 집약하고 있

다: 하나는 독립성을 유지함으로써 당파적이거나 사사로운 이해 관계에 휘둘리지

않을 것; 또 다른 하나는 언론이 담당하고 있는, 국가와 시민 사회 사이의 매개가

권력의 책임성에 연결된 공표(publicity)의 원리를 담보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Habermas, 2006). 사실 이런 두 가지 요청은 모두 칸트가 근대 과학의 앎을 정당

화하는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측면을 이룬 전통적인 요구다. 즉, 이해 관계로부터 떠

난 학인들의 자율적인 탐구와 그들 사이의 공개적인 대화를 통해 체계적으로 축적

되어 가는 진리가 그것이다. 그리고 같은 원리가 입법 과정에 적용될 때 언론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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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국가의 주권적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입법 행위

를 이끌고 정당화할 공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핵심적 사회 제도로서 자리하게 된다.

하버마스가 그려내고 있는, 공론장의 재봉건화라는 역사상은 제도 언론이 이런

규범적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기 어렵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Habermas,

1990/2001). 본 연구의 주제는 인터넷의 도래를 계기로 공론장 재봉건화의 역사적

조건을 혁파함으로써 이런 요구를 늘 충족시킬 수 있는 매체환경, 아니라면 최소한

자유주의적 헌정 질서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필수적인 정치적 균형을 왜곡하는

정치경제적 힘을 보다 쉽게 길들일 수 있는 매체 환경만이라도 창출할 수 있을 것

이냐에 관한 것이다.

Ⅳ. 공론장 논의의 숨은 문맥—시장 실패

보만은 공론장 개념이 매체의 측면에서는 인쇄 매체, 정치 체제의 측면에서는 근

대적 국가 체제라는 맥락을 전제하고 성립한 개념이라고 하면서, 인터넷의 등장이

공론장 개념에 대해 제기한 문제를 이런 맥락의 변경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

보고 있다(Bohman, 2004). 이런 논의에서도 분명하듯이 부르주아 공론장의 등장과

구조변동은 인쇄 매체의 등장이라는, 매체 기술의 혁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역

사적 사건이다. 더 나아가 공론장 개념의 전제에 관한 보만의 논의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맥락 하나가 미디어 상품 시장의 등장이다. 인쇄 기술로 찍어낸 서

적과 잡지, 신문과 같은 미디어 상품이 시장 기제를 통해 대량으로 광범위하게 유

통됨으로써 비판적 이성이 평가한 결과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공정한 경

쟁의 장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런 문예적 공론장의 출현을 거쳐 성숙한 부르주아

공론장이 출현한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예적 공론장은 부

르주아 공론장 논의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Habermas, 1990/2001).

문제는 이렇게 이상화된 문예적 공론장의 출현이 과도기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

다. 문예를 포함한 예술이 궁정과 교회의 지원에서 시장으로 경제적인 재생산 기반

을 옮기는 과정이 문예적 공론장의 성립 과정이기도 하였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시장 논리가 보다 철저하게 관철되는 쪽으로 미디어 시장의 흐름이 전개되자 거꾸

로 문예적 공론장이 붕괴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미디어 상품을 통해 이

윤을 창출하려면 대중적인 호소력을 가져야 하는데, 대중적 호소력을 갖춘 미디어

상품은 문예적 공론장의 이성적인 비평 척도에 비추어 우수작이라는 인증을 받기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편집의 독립

성을 보장한 후원자의 지원으로 자본을 잠식하는 손실을 메워가며 문예적 정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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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할 수 있었던, 서구 언론사의 한 단락을 마감한 값싼 대중지의 등장은 하버마

스가 주장하는, 공론장의 내적 붕괴를 본격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Habermas, 1990/2001, 293-300쪽).

자유롭게 방임된 사적 공간에서 관철된 시장 논리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출현하게 된 독점자본과 일반 시민 사이의 불

균형은 부르주아 공론장을 배태한 민주적 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중대한 위협

요소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정이 공론장의 재봉건화를 초래한 결정적 계기였다는 점

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즉, 공론장의 재봉건화 문제를 자유주의적 헌정의

문제로 바꾸어 말하면, 방임된 시장의 실패가 사적인 경제 영역에 대한 공적인 개

입 필요를 높인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민주적 시장경제 질서의 유지를 위해 요청되

는 공적 개입을 시민 개개인의 사적 자치에 대한 침해가 되지 않도록 적절한 수위

에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달리 말해서, 갈

등을 유발하기 쉬운 경쟁적인 사적 이해와 이를 봉합해내야 하는 공화적인 공적 이

해 사이의 단절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하버마스가 아렌트

의 ‘사회’ 개념을 빌어 제기한 문제고 공론장의 이성 회복을 통해 해결을 기대한,

근대 체제의 근본 문제 가운데 하나다(Habermas, 1990/2001).

특히 하버마스의 공론장 논의는 칸트적인 진리 발견 과정을 통해 국가의 간섭이

배제된 공간에서의 사익 추구와 이런 자유로운 사익 추구의 문맥이 되는 자유로운

민주공화정의 유지 발전 사이에 공론의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특히 이성의 사회 통합 능력에 대한 신뢰를 특징

으로 하는 계몽주의적 논의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Habermas, 1990/2001). 이에

반해 시버트 등(Siebert et al, 1956/1991)의 논의를 촉발한 사회 책임 이론은, 네론의

평가적 논의가 밝히고 있듯이(Nerone, 1995/1998, 156-158쪽), 독과점으로 흐른 언론

시장이 야기한 정치경제적 문제에 대해 문제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구조적인 차원에

서의 능동적 개입을 통해 시장 실패를 적극적으로 교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호하거

나 자기모순적인 입장을 취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에 비추어

우리는 이런 입장이, 특히 하버마스의 인간 이성에 대한 계몽주의적 낙관에 대조하

여, 인간 이성에 대한 자유주의적 회의, 특히 국가의 권력 작용에 대한 근본적인 우

려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해석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Ⅴ. 언론의 제도화와 자연독점의 문제

언론의 제도화는, 자유주의적 전통에 충실한 입장에서 볼 때, 국가의 권력 작용

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의 제도화를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론의 제도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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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의 사회 제도가 수행하는 기능과는 구분되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기능을 일상적

으로 수행하는 재생산 체제가 갖추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 제도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교환 및 분배를 통해 사회적 재생산 문제를

물질적 측면에서 해결하는 경제 제도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사회 제도다. 자신의 재

생산을 위해 경제 제도의 매개를 거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론 제도는 경

제 제도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는 이윤 극

대화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가치일 수밖에 없다. 그것의 존재 이유는 자유주의의

이념에 충실한 경우에는 권력 감시 기능의 추구이고, 숙의 민주주의 이론의 씨앗이

된 공론장 이념에 충실한 경우에는 공적인 진리의 확보이다. 같은 논리로, 언론 제

도의 가치는 정치 제도의 그것과는 다르다. 언론의 제도적 목표는 권력 추구가 아

니다. 오히려 권력에 대한 가차없는 견제를 통해 민주적 균형을 확보하는 것이 언

론 제도의 원초적인 기능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컨대 정부 기관에 대한 언론인의

자유로운 접근과 취재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셔드슨을 따라 역사적으로 보아도, 핼린과 만치니를 따라 비교론적으로 보아도,

다른 사회 제도의 가치와는 구분되는, 언론인과 언론기관이 독자적으로 추구하여야

할 제도적 가치는 객관보도라는 직업주의적 이념으로 수렴되었다고 할 수 있다

(Hallin & Mancini, 2004; Schudson, 1978). 예컨대 언론의 직업주의가 철저한 경우

라면 객관보도로 요약되는 언론계의 제도적 지향을 탐사보도와 같은 보다 어려운

직업적 과제를 통해 심화할 수 있는 능력이 언론인의 직업적 위계를 정당화하는 기

준이 될 것이다. 탐사보도의 모범적 사례를 소재로 객관보도의 가치를 대체하는 새

로운 제도적 가치로 연대를 부각한, 에트마와 글라써의 성찰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Ettema & Glasser, 1998), 당파적 언론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어 있는 요즘과 같은

현실에서 객관보도는 손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제도적 가치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

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정성욱, 2009).

핼린과 만치니의 주장대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분명히 하는 등의 제도적 차별화

를 통해 확보한 독자성에도 불구하고, 언론 제도는 정치 제도와의 연관, 그리고 경

제 제도와의 연관 속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Hallin &

Mancini, 2004). 예컨대 국가 권력에 의한 언론 자유의 보장 없이는, 그리고 시장을

통한 가치 교환 과정 없이는, 언론은 존립부터가 어렵다. 특별히 본 연구가 부각한,

공론장의 재봉건화나 사회적 책임 이론의 대두가 포착하고 제기해 준 정치경제적

문제는 언론이 편집의 자율성 침해를 불러올 수도 있는,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끊어

버리고 독립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그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미디어 시장에 내재

한 독점화 경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흔히 생

각되어 온 바와 같이 독점자본의 악 문제라기보다는 미디어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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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과 서비스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문제이다.

언론 상품이 비경합적인 공공재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

시장은 규모의 경제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지역 신문 시장

은 대부분 단 하나의 신문만을 남기는 쪽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제기되는 실천적 문제는 독점 미디어 기업이 언론 제도를 경제적으로 재생산하는

유일한 통로로 남게 되었을 때, 방금 논의된 바와 같은, 언론 제도의 독자성이 제대

로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행위 제

약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직업주의적 원칙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보도, 에

트마와 글라써가 객관보도의 기율이 살아있는 미국 언론의 탐사보도에 대한 사례연

구를 통해 보여준 성숙한 저널리즘이 가능할 것이냐의 문제다(Ettema & Glasser,

1998).

시장 경쟁이라는 행위 제약은 한편으로는 대중의 취향에 맞춘 값싼 사탕발림의

창궐을 촉진하는 요인이라고 평가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막아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대중의 불신을 받는 언론이 시장 경쟁을

뚫고 살아남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 경쟁이 사라진다는 것은,

하버마스가 제도화된 언론에 대해 제기한 두 가지 규범적 요청 가운데 하나인 독립

성 유지에는 오히려 불리한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을 뜻한다(Habermas, 2006). 경쟁

의 압력이 사라진 만큼 자본의 구성을 포함한 언론 기업의 조직적 성격이 지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치열한 시

장 경쟁이야말로 객관보도를 중심으로 하는 언론인 직업주의의 비옥한 토양 역할을

해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대규모 신문 산업의 성장과 언론인 직업주의 확립

사이의 이런 관련은 핼린과 만치니의 비교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Hallin &

Mancini, 2004). 나아가 에트마와 글라써가 뽑아낸 탐사보도의 모범적 사례들은 하

버마스의 또 다른 요구, 공적인 양심으로서 권력의 불의에 대해 책임을 묻는 역할

을 해 달라는 요구도 언론인 직업주의를 통해 적절히 충족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

해주고 있다(Ettema & Glasser, 1998).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언론이 창출해낸 미디어 시장이 제기하는 시장

실패의 문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대답은 언론인 직업주의의 고수로 정리될 수 있다.

실제로도 언론인 직업주의는 대중지 시장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존립을 추구하게

된 근대 언론이 자신에게 부여된 제도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데 정신적 보루의 역할을 해 왔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독점화된 미디어

시장이 다시금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경쟁이 사라진 시장 환경에서도 직업주의가

지금까지 수행해 온 바와 같은 균형 추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다. 핼

린과 만치니의, 언론 제도와 경제 제도의 체제적 분화와 탈분화에 관한, 하버마스와

부르디외를 인용한 논의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Hallin & Mancini,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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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291쪽). 돌이켜 보면 미디어의 공론장 논리와 시장의 이윤 중심 논리가 무차별

적으로 서로를 섞어 가는 경향은 하버마스가 공론장 재봉건화 과정의 특징으로 뽑

아낸 변화상들 가운데서도 두드러져 보이는 모습이다(Habermas, 1990/2001).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이 그린, 근대 체제 내의 근본적인 대치선은 결국 민족국

가 내부의 대치선이고, 국가와 시민 사회 사이의 그것이다(Habermas, 1990/2001, 특

히 98쪽의 도표 참조). 이런 대치선을 기준으로 사적 자치의 영역에 속하는 부르주

아 공론장의 담론이 그것에 대해 일종의 메타 담론이 되는 시민 사회의 영역은 다

시 경제적 재생산과 가족 재생산의 하위 영역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런 구도에서

보면, 권력에 대한 감시 기능을 부여받은 언론이 자신의 재생산을 사적 자치의 영

역인 시장에 의존하게 된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버마

스의, 공론장 변화에 관한 역사적 서술에 따르면, 물리적 공간의 차원에서도 긴밀하

게 연결되어 있던 경제적 재생산 영역과 가족 재생산 영역이 서로에게서 소외되는

과정이 공론장 구조 변동의 또 다른 주요 측면이다. 이를 제도론의 관점에서 보자

면, 시민 사회 내에서 사적 자치를 보장받게 된 경제라는 제도가 그 자체로 체제

분화를 시작하면서 부르주아 공론장의 구조를 침식하게 되는 현상이 생겨나게 되었

고, 이것이 결국 공론장 자체의 구조변동에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논

의한 미디어 시장의 자연독점 문제도 경제가 가족 재생산의 인접 영역을 떠나 독자

적인 체제로 변모하여 자체만의 경제 논리로 움직여 감에 따라 생겨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 언론계가 현재 당면한 상황도 그 자체로 강력해진

경제 논리가 언론 제도의 미디어 논리를 압박함에 따라 언론 제도의 자유주의적 방

어 기제로 기능해 온 언론인 직업주의의 중핵을 이루는 객관보도의 원칙마저 위태

롭게 된 형국이라고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Ⅵ. ‘케이블 종편’과 ‘인터넷 실명제’

본 연구가 주목한 인터넷 혁명이 언론학에 제기하는 문제가 한둘에 그치지는 않

겠으나, 특별히 공론장 이론과 관련해서 이 글이 제기한 문제는 이 이론이 포착한

근대 체제 내부의 긴장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전제들에 관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크게 주목되는 전 지구적 공론장 현상이 둘 있는데: 하나는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론장의 출현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 제도에 자신의 재생산을 의

존하지 않는 아마추어 언론의 등장이다. 전자에 관해서는 보만의 논의가 근대 민족

국가의 성원이 공유하는 문화적 전통을 결여한 공론장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위시한 관련 쟁점들을, 후자에 관해서는 벵클러의 논의가 공론장의 파편화

와 상업화에 대한 우려를 비롯한 관련 쟁점들을 잘 정리해 주고 있는데(Boh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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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Benkler, 2006), 이런 논의를 종합해 보면, 이 글 서론에서 이야기한, 인터넷의

전 지구적 확산에 따른, 전 지구적인 규모의 공론장 구조변동이 재봉건화의 관성을

거슬러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는 판단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본 연구는 자본의 장마당으로 전락한데다 파편화가 여실한 인터넷이, 혁

신을 유발하는 창조적 익명성과 개방성에 관련된 기술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교

적 동질적인 정치 문화의 공유를 전제로 하는 전 지구적 공론장으로 발전할 가능성

이 얼마나 되느냐에 관한 기존 논의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기존 논의가 다루

어 온 이런 측면과는 다른 비교적 새로운 측면 하나를 강조함으로써 자유주의적 공

론장에 대한 짤막한 역사-철학적 탐구의 결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그런데 결론적

논의에 앞서, 지금껏 해온, 하버마스 공론장 개념의 재해석과 관련된 논의의 큰 흐

름을 살리자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하나 있다. 인터넷 공간의 아마추어 언

론이 그것인데, 이는 이들의 활발한 활동이 경제 제도와 언론 제도 사이의 탈분화

흐름에 대해 언론인 직업주의를 보강하는 새로운 방어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

각되기 때문이다.

사실 대중 매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업계의 진입 장벽을 창조적으로 무너뜨린 인

터넷이 불러낸 이 새로워 보이는 언론인 집단은 앞에서 언급한, 손해를 무릅쓰면서

까지 문예적 정론지를 지속한 낭만적 언론인들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경제적 계산이 아니라 시민적 자발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런 연유로 경제 논리가 침투해서 식민화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자율 공간을 형성해

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제도권 외곽의 이런 자율 공간이 언론인 직업

주의가 어렵게 지켜온, 제도권 내부의 자율 공간에 연결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된다면, 이상적인 형태의 자유주의적 공론장이 되살아 오는 새로운 역사도 어

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제도권 바깥의 언론과 제도권 언론 사이의 경쟁은 독점이 굳어진 언론

시장에서마저 언론 기업의 조직적 성격이 지면이나 화면에 고스란히 투사되는 현상

을 막아줌으로써 앞에서 거론한, 미디어 시장의 자연독점 경향이 제기한 문제를, 단

숨에 모두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크게 완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아가, 무시하

기 힘든 식견과 비판적 사유 능력에 필력까지 두루 갖춘, 사이버공간의 아마추어

언론이 제도 언론을 자극함으로써 저널리즘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

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계기들이 쌓여 언론의 제도적 존재 이유에 한층 더 충실한,

저널리즘 본연의 추구가 더욱 활발해 진다면, 그리하여 지면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

선된다면, 자신을 아마추어 언론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제도권 언론이 더 많아지고

더 튼튼해진다면, 사적 자치 영역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적 기본 질서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하버마스의 공론장 논의가 불을 지펴 밝힌, 숙의

민주주의의 이상도 현실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와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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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시민 사회의 언론 관련 현안 가운데 비교적 중대해

보이는 사안이 사이버공간의 언론 자유를 최대치로 보장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과제에 비교해 보면 케이블 텔레비전 종합편성채널의 허가와 영업을 둘러싼 갈등은

막간극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케이블 텔레비전도 올드 미디어다.

결정적 미래는 사이버공간에 있다.

네트워크에 접속하지 않고도 잘 해낼 수 있는 일이 거의 모두 사라지게 되는 세

상이 목전에 다가와 있다. 더구나 사이버공간이 컴퓨터와 함께 자라난 세대에 대해

가지는 형성적인 영향력까지 생각해 보면 방금 내린 단언이 그렇게 지나친 것이 아

니라는 사실을 운산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 여기 역사의 승자가 되겠다는 시민 사

회 내 정치 세력이 있다면, 이들이 언론 현상과 관련하여 크게 생각해 보아야 할

기회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말미암은 공론장 구조변동의 새로운 조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레식이 주장한 대로, 저작물의 폭넓은 이용,

사생활 보호, 언론 자유 등에 관한 논란들이 제기하는,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이버공간의 문제들이 어떤 가치 기준을 따라 어떻게 정리되느냐가 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숙의 민주주의 이상을 앞당겨 실현하는 데 결정적

으로 중요한, 따라서 미국의 시민 사회뿐 아니라 한국의 시민 사회도 현 시점에서

소화해내야 할 결정적인 정치 쟁점이라는 것이다(Lessig, 2006/2009).

Ⅶ. 결어

이 글이 시종일관 화두로 삼은 문제의 윤곽을 요약하면 국가가 자율성을 보장하

는 사적 자치의 영역을 분할하는 제도적 경계를 넘어서 언론 제도와 같은 인근 영

역으로 침투한 경제 시스템의 제도적 논리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

다. 여기에 대해 본 연구가 제시한 한 가지 대답은 언론 자유와 같은 문제가 인터

넷에서 제기될 때마다 이윤 동기로 환원되지 않는, 시민 개개인의 자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 시민 사회의 자율성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사이버공간의 설계와

구조를 바꾸어 나가려고 애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다

른 한편, 이 글이 이런 문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시민 사회 구석구석 스

며든 국가의 신경망과 근육을 적정한 선에서 제어하는 문제가 다 끝난 문제라는 뜻

은 물론 아니다.

한국처럼 국가가 경제 발전을 주도한 나라에서 민주적 기본 질서에 관련된 자유

주의적 정치 문제는 풀어도 풀어도 끝없이 나타나기 마련일 것이다. 말하자면 서구

가 순차적으로 풀어온 문제를 우리는 동시에 풀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의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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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문제를 푸는 기준은 보편적인 차원에서는 서로 통하는 것일 수 있다. 서구가

이런 보편적 기준을 육화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하버마스의 논의 일부를 인용해

보자(Habermas, 1990/2001).

핵가족의 사생활영역에서 사적 개인들은 그들의 경제활동의 사적 영역으로부터

아직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즉 서로 ‘순전히 인간적인’ 관계에 들어설 수 있는

인간들로 자신들을 이해한다. 이 관계의 문학적 형식이 그 당시 서신교환이

다……개인은 편지를 쓰면서 그 주체성을 발전시킨다. (124쪽)

사적인 것의 가장 내부에 있는 정원으로서의 이러한 주체성은 항시 독자와 이미

관계하고 있다……다른 이의 편지를 빌려주거나 그것을 베끼기도 하였다……많은

서신교환이 처음부터 출판을 예견하고 씌어졌다. 성공한 편지임을 확인해 주는

그 당시 일상적으로 쓰였던 어법은 그것이 “인쇄할 만큼 좋다”는 것이었다. (125

쪽)

한편으로 감정을 이입하는 독자는 문학에서 그 밑그림이 그려진 사적 관계들을

반복한다. 그는 허구의 친밀함을 현실의 친밀함의 경험으로 채우며, 허구의 친밀

함에서 현실의 친밀함을 시험해 본다. 다른 한편으로 처음부터 문학적으로 매개

된 친밀함, 문학능력을 갖춘 주체성은 실제로 폭넓은 독서공중의 문학이 되었다.

공중으로 결집한 사적 개인들은 또한 읽은 것에 대해 공적으로 토론하며, 그것에

대한 계몽을 공동으로 수행한다……독서클럽, 독서회, 도서예약 도서관이 우후죽

순처럼 생겨나고, 1750년 이후 영국에서와 같이 일간지와 잡지의 판매가 1분기에

두 배로 증가하는 시기에 소설 읽기는 부르주아 계층에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이들을 통해 공중이 형성되는데, 이들은 커피하우스, 살롱, 만찬회와 같은 초기의

제도들로부터 성장해서 신문과 신문의 전문적 비판의 중계망을 통해 결속된 공중

이다. 그리고 이로써 핵가족이라는 친밀한 원천을 갖는 주체성이 자기 자신에 대

해 자신과 의사소통하는 문예적 논의의 공론장이 형성된다. (126-127쪽)

편지가 면대면 소통과 다른 점은 그것이 자신의 주체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구

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하이퍼-퍼스널한 매체라는 점에 있는데, 익명성과

쓰기가 강조되는 인터넷을 통한 사귐도 바로 이 같은 특징을 갖는다(Whitty, 2007).

그리고 이렇게, 땅에 충실한 기준에서 볼 때는 터무니 없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

이는 하이퍼-퍼스널한 소통의 공간에서 땅에 얽힌 차이를 잊어 버리고 서로가 “순

전히 인간적인” 관계에 들어설 수 있다고 믿는 인간들의 자기 이해와 상호 이해가

공개적으로 증폭됨으로써, 예컨대, 어떤 사회적 규범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자유로

운 동시에 인권과 같은 보편 원칙에는 대단히 충실한 주체적 인간들이 거리낌 없이

어울리게 될 지상의 질서를 상상하고 또 그 결과를 서로 나누고 토의하기 시작하게

된 것 아닐까(Habermas, 1990/2001, 124쪽)? 올해의 이집트 시민 혁명도 이런 경로

로 시작된 것 아닐까? 사이버공간이 문예적 공론장에서 부르주아 공론장으로 이어

진 역사적 과정을 다시 한 번 전 지구적 수준에서 반복하게 해줄, 일종의 해방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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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라면, 이 공간도 결국은 재봉건화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땅의 속박을 벗어나

비상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세계 시민 자신의 주체적

선택에 달린 문제는 아닐까? 인간 이성의 한계 너머로 비약해 버리는 일은 삼가야

겠지만, 다양한 정치 문화들 사이의 영토적 경계 너머로 자주 엉킬 수 있을 만큼은

높이 날아올라도 좋은 세상이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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