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말레이시아 취재기 한국 언론의 동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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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신문과 방송 2017. 05 정민승 한국일보 베트남 특파원 ‘김정남 암살’ 말레이시아 취재기 한국 언론의 동남아 고군분투기 취재기·제작기 ‘김정은 이복형 김정남, 쿠알라룸푸르공항서 독살.’ 외교안보팀의 짤막한 문자메시지에 이어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가자마자 일거리가 생기네. 말레이로 바로 갈 수 있도록.” 국제부장이었다. 베트남 호찌민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꼭 2주가 되던, 2월 14일 저녁이었다. 누가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어떻게 죽였을까. 취재 방향을 여기에 맞추고 파고들어 가면 되는 것이건만, 가방을 챙기는 동안 머리는 자꾸 딴생각을 했다. ‘가서 과연 취재가 될까’ ‘현지 언론이 숱하게 많을 텐데 그들과 게임이 될까’, 언어도 언어지만 무엇보다 말레이시아에는 ‘파이프라인’이 없었다. 쿠알라룸푸르라는 도시도 낯설었다. 택시기사를 닦달해서 호찌민 떤선 국제공항으로 내달렸지만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코앞에서 놓쳤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첫 비행기를 김정일의 장남으로 한때 북한 권력 세습의 후계자로 떠올랐다가 이복동생 김정은으로 말미암아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자, 해외 망명 생활을 이어오던 김정남은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됐다. 현지 주요 신문들은 약속이나 한 듯 2월 18일자 조간에 일제히 김정남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사진 출처-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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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김정남 암살’ 말레이시아 취재기 한국 언론의 동남아 고군분투기116.125.124.10/kpf/no557/pdf/10.pdf · 소속의 한 직원은 “외교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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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방송 2017. 05

정민승 / 한국일보 베트남 특파원

‘김정남 암살’ 말레이시아 취재기

한국 언론의 동남아 고군분투기

취재기·제작기

‘김정은 이복형 김정남, 쿠알라룸푸르공항서 독살.’

외교안보팀의 짤막한 문자메시지에 이어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가자마자 일거리가 생기네. 말레이로

바로 갈 수 있도록.” 국제부장이었다. 베트남 호찌민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꼭 2주가 되던, 2월 14일

저녁이었다.

누가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어떻게 죽였을까.

취재 방향을 여기에 맞추고 파고들어 가면 되는

것이건만, 가방을 챙기는 동안 머리는 자꾸 딴생각을

했다. ‘가서 과연 취재가 될까’ ‘현지 언론이 숱하게

많을 텐데 그들과 게임이 될까’, 언어도 언어지만

무엇보다 말레이시아에는 ‘파이프라인’이 없었다.

쿠알라룸푸르라는 도시도 낯설었다.

택시기사를 닦달해서 호찌민 떤선 국제공항으로

내달렸지만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코앞에서 놓쳤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첫 비행기를

김정일의 장남으로 한때 북한 권력 세습의 후계자로 떠올랐다가 이복동생 김정은으로 말미암아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자, 해외 망명 생활을

이어오던 김정남은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됐다. 현지 주요 신문들은 약속이나 한 듯 2월 18일자 조간에 일제히 김정남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사진 출처-필자 제공>

Page 2: ‘김정남 암살’ 말레이시아 취재기 한국 언론의 동남아 고군분투기116.125.124.10/kpf/no557/pdf/10.pdf · 소속의 한 직원은 “외교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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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하고 발길을 돌렸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막막한 그 생각들은 잦아들지 않았다. 외신들을

훑어보고 수첩에 취재 포인트를 정리한 뒤에도 한참

동안 이어지던 불면은 이 대목에서야 사라졌다. ‘남의

나와바리서 단독이 어디 쉽나’ ‘남들 다 쓰는 것 물만

먹지 말자.’

이튿날 오전 쿠알라

룸푸르 국제공항에도착

하자마자 제2청사로

이동, 사건 현장 파악에 나섰다. 김정남이 이용한

키오스크, 공격받은 뒤 도움을 요청했다는 안내

데스크 그리고 이어 찾았다는 공항청사 의무실 등등.

어떤 사건이든 그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취재를 시작하는 게 기사 작성은 물론 후속 취재에도

도움이 된다는 경험이 작동했다. ‘피습 현장에서 한

층 아래 의무실까지는 약 300m. 에스컬레이터가

아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경우 이보다 100m 더

멀어진다. 동선상에 근접한 CCTV 카메라도 최소

6대, 입국장 홀 앞을 지나야 해서 수많은 사람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혼잡해 주의를 끌기

힘들었을 수 있다.’ 다시 위로 올라가 목격자를

찾는 데 집중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약속이나 한

듯 공항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른다” “난 그날

근무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잠 못 이루게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됐다.

택시를 타고 시신이 있는 쿠알라룸푸르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미 각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기자가

진을 치고 있었고, 한국 기자들도 눈에 띄었다.

갑갑해하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병원 주변에

무장한 경찰의 통제가 워낙 심해 병원 앞에 서서

드나드는 차량들과 사람들을 체크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온은 서울보다 30도

이상 높았다. 그 와중에 말레이 경찰이 베트남

국적의 여성 용의자 하나를 체포했다는 기사를 현지

매체가 띄웠다. 그 자리에서 그 기사들을 그대로

받아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건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무슨 일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부탁을 하고 병원 앞 대열에서

이탈했다. 김정남의 마지막 행적이 궁금했다.

알고 지내던 대북 사업가를 시작으로 북한 식당,

현지 교민, 그들이 소개해준 현지인들을 접촉했지만

모두들 회피하거나 김정남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과거에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 식당에도 가고,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병원 앞 취재진

들을 배경으로 셀카. 병원 안이 잘

들여다 보이는 그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있었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모자가 큰 도움이 됐다. <사진 출처-필자 제공>

물먹고, 받아쓰고…

치고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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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그들이 한국 식당을 찾기도 했다지만 그건

옛날 얘기였다. 한 한국 식당 사장이 김정남이 “우리

집에 자주 왔다”고 현지 매체와 인터뷰한 이후 그를

만나기 위해 기자들이 식당 앞에 진을 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사실 그것 말고는 한국 기자들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이튿날 말레이 현지의 한 중국어 신문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김정남 살해범은 북한의 공작원이 아닌

청부 암살단”이라는 기사를 냈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 또 이 기사를 비중 있게 받아 썼다.

한국에서였다면 최초 보도로 ‘물’은 한번 먹었어도,

악착같이 따라붙으면 한 건 건져 올릴 수 있었지만,

이번엔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말레이 경찰의

공보 라인은 불통이었고 어렵사리 접촉한 고위

공무원도 입이 무거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말레이

경찰이 ‘언제 어디서 기자회견을 한다’는 안내문이

‘단독’이라는 머리글을 달고 온라인으로 송출되기도

했다.

국내 매체가 김정남의 피살 소식을 최초로 전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던

한 교민은 사건 발생 1주일 뒤 “모두 얼굴 V선이

살아났다”고 평했을 정도로 다들 열심히 뛰었지만

최초 보도 이후 말레이 경찰의 사건 수사 흐름을

알려주는 기사를 쓴 적이 없다. 거의 유일하게

세계일보가 북한대사관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사전 모의를 뒷받침하는 기사를 냈지만, 용의자가

북한으로 간 뒤라 사건 수사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복원된 동영상에서는 대사관 관계자가

용의자 리정철에게 “정말 수고했다. 안 그래도

내가 일사불란하게끔 나간 동지들이 리정철 동무에

2월 13일 오전 9시,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에서 마카오행 항공편을 이용하려다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에 의해 독극물로 피살된 김정남. 피습

당시 그의 모습이 공항 CCTV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작권자 ©연합뉴스, 무단복제 및 무단사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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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서 걱정 많이 했다”고 나온다. 리정철을

풀어주기 전에 말레이 경찰이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사건 흐름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말레이 경찰이 공개적

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전적

으로 현지 언론이나 현지에 진출한 일본 언론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40여 명 규모로 파견됐다는

TBS를 비롯해 아사히, 후지TV 등도 현지 특파원을

중심으로 1개 소대급 취재진을 파견해 놓고 있었다.

몇 개 팀으로 나눠 시간대별 주요 뉴스를 따로 맡고

있으며 그 팀 간에도 경쟁을 벌인다는 TBS 기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그러던 와중에 2월 19일 현지 소식통은 “일본

후지TV가 범행 장면과 김정남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통째로 입수했다, 곧 보도될

것”이라고 귀띔을 해줬다. 오후 9시쯤이었다. 신문

제작 상황을 감안하면 몇 줄 붙일 수 있을 것 같아

몰아세웠지만 “더 이상은 말해주기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방송을 주시하되, 보도를 보고

크게 놀라지 말라는, 예방주사 차원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물을 먹어도 물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당하고 있던 터,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날 밤 자정을 넘긴 시각. 김정남이 2.33초 만에

독극물 공격을 받는 장면, 그러고도 몇 분간은 멀쩡히

공항 직원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사건 현장으로부터 300m가량 되는 한 층 아래의

공항진료소까지 두 발로 걸어가는 장면이 보도됐다.

독극물로 추정되는 테러를 당하고도 상당 시간

멀쩡하게 활보한 게 확인되자, 한국 언론은 다음 날

일본 언론을 또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다 보니 오보를 그대로 받는 상황도 있었다.

20일 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말레이 입국

꽉 막힌 취재,

‘담을 넘은’ 기자

말레이시아에서 느낀 점을 떠올리면

남의 발뒤꿈치만 따라다녔다는 생각에

열패감이 짙다.

일본 기자들도 언어 소통 면에서는

한국 기자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본다면

이번 사건에서 일본 언론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오랜 시간 투자한

시간과 돈과 땀의 결실이다.

보도가 대표적이다. 북한의 시신 인도 요청에 대해

말레이 경찰은 줄곧 유족이 직접 와서 유전자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 한해서 시신을 넘길 수 있다고

주장하던 터라 유족의 움직임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김한솔이 마카오에서 출발하는 AK8321편에

탑승했으며 이날 저녁 7시 50분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할 것이란 보도였다. 병원과 북한대사관

앞에 뻗치고 있던 기자들이 60㎞가량 떨어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으로 일제히 내달렸다. 한두

시간 뒤 취재진들이 ‘놓친것 같다’며 탄식하고 있을

때 즈음 또 다른 소식이 들렸다. 김한솔이 병원에

도착했다는 외신이었다. 맞다, 틀리다 확인이 안되니

속은 더 타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국내 언론들은

김한솔이 아버지 김정남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 병원을 찾으면서 병원은 밤새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새벽 1시 40분에 완전 무장한 경찰 특공대를 태운

차량들이 속속 쿠알라룸푸르 병원으로 들어섰다는

기사였는데, 상당수는 복면을 하고 있어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적시하진 않았지만,

행간에는 ‘김한솔이 무장 경찰 차림을 하고 복면을

쓴 채 들어가 신원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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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하지만 이튿날 경찰청장은 “병원에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무장 경찰이 출동한

것”이라며 김한솔의 입국 사실을 공식 부인했다.

현장에서는 한국의 기자가 잠입을 시도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서울서 온 기자들 사이에서는 자조가

흘렀다. “오죽했으면 담을 넘었을까….”

애초부터 말레이에 특파원

하나 두고 있지 않던 한국

언론이 현지 언론은 물론

일본 언론과의 경쟁에서 이길 확률은 사실상

‘제로’였다. 반면 일본 언론들은 말레이 현지 언론들과

대등하게 경쟁했다. 기본적으로 북한 정보가

월등한 데서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해외에 특파원을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오랜 시간 뿌리를 내린

덕택이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베트남에서 일본은

‘사람들 가려서 만나는 외교관보다 종횡무진하는

기자 한 명 파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라’ ‘ODA(공적개발원조) 등을 통한

물량 공세와 함께 특파원들을 대량 파견해 이들이

본국으로 송출하는 기사를 적극 활용하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사건 취재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취재진들로 꽉 찬 쿠알라룸푸르 부킷

아만의 말레이경찰청 강당. 경찰은 외국

기자들의 경우 여권과 프레스카드를

일일이 확인한 뒤 입장시켜줬다. 기자들이

입장하는 데에만 1시간이 걸렸다.<사진 출처-필자 제공>

동남아에 인색한

한국 언론

한국 언론은 말레이 경찰이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현지 언론이나 현지에 진출한

일본 언론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특파원

하나 두고 있지 않던 한국 언론이 현지

언론은 물론 일본 언론과의 경쟁에서

이길 확률은 사실상 ‘제로’였던 것.<저작권자 ©연합뉴스, 무단복제 및 무단사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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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경제, 사회 전반에서 특파원을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이곳 베트남만 해도 지난 1월 말 현재 일본은

아사히신문과 TV, NHK, 요미우리신문, 니혼게이자이

신문, 교도통신, 지지통신 등 10개 언론사가 지국을

설립해 놓고 있다. 전체 외신 30개 중 3분의 1이

일본 매체인 셈이다. 이어 중국이 CCTV·신화통신,

차이나데일리 등 5개, 미국이 AP·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다우존스 등 4개, 영국(로이터,

파이낸셜타임스)과 독일(DPA, EPA)이 각 2개,

싱가포르(채널뉴스아시아), 러시아(이타르타스),

호주(사우스이스트아시아타임스), 이탈리아

(레프레소), 쿠바(프렌사라티나) 등이 각 1개사를

진출시켰다. 한국도 연합뉴스에 이어 지난 2월

한국일보가 중앙일간지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

2개사를 기록하게 됐지만 부족한 감이 적지 않다.

2016년 한국은 베트남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

국가로, 규모 면에서는 2위인 일본보다 3배가량 크다.

2016년 한 해 동안 154만 명의 한국인이 베트남을

찾았다. 올해 1분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29% 늘어난

52만7,000명이 찾았다.

말레이시아에서 보름 이상 머물면서 느낀 점을

떠올리면 ‘길이 남을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느낌보다 그 현장에서 남의 발뒤꿈치만 따라

다녔다는 생각에 열패감 아닌 열패감이 짙다. 일본

기자들도 언어 소통 면에서는 한국 기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면 이번 사건에서 일본 언론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오랜 시간 투자한 시간과 돈과 땀의

결실이다. 말레이가 아닌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김정남 피살 사건이 일어났어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동남아 몇 개국에 나와 있는 연합뉴스와

태국 방콕에 방송사 몇 군데가 나와 있는 것을

제외하면 일간지 대부분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일간지 중에선 ‘베트남 최초’가 아니라 ‘동남아

최초’라는 이야기도 부임해서 처음 들었다.

물론 미중일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을 놓고 보면

해당 국가에 특파원을 우선 파견하는 일은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서

아세안이 사실상 유일하다는 점, 또 우리나라 같은

중진·중간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중일

강대국의 역할 외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동남아에 대한 한국 언론의 소홀 정도는

과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아세안 쟁탈전’에서도

중국과 일본에도 점점 밀리고 있다는 게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아우성이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국 가 들 에 대 한 일 반

한국인의 인식은 휴양지

정도에 그친다. 과도한 내부의 경쟁을 완화시켜 줄

블루오션으로, 새로운 일터와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이들이 드물다는 이야기다.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선거 시즌이 되면 유력 정치인들이 미국,

중국, 일본의 고위 관료들을 만나기 위해 뒤로 줄을

대고, 거기에 공무원(정부)이 보조를 맞추면서 특정

부서로 인적자원이 쏠린다는 어느 당국자의 분석이

설득력 있다. 나라 전체가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만 바라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외교부

소속의 한 직원은 “외교관이 아니라 동남아 여행사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을 정도다. 동남아의

잠재된 가치를 여전히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는 게 이유다.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이들에게, 복지부동한 이들에게, 살아 있지만 죽어

존재하려는 ‘생중사’ 삶을 사는 이들에게 우리 언론도

4월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앞으로 동남아에

주목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