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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마켓과 문화재청 홈페이지(www.cha.go.kr)를 통해 <문회재 사랑>을 만나보세요 | 모바일앱진 | | 전자책 | 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 ISSN | 2005-3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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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우리가함께해요 - C.H.A우리가함께해요 하나 만주에펼친 한민족의기상 둘 실크로드에뿌린 신라인의열정 셋 무한경쟁시대가 요구하는 도전정신과

앱마켓과문화재청홈페이지(www.cha.go.kr)를통해<문회재사랑>을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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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등록번호 | 11-1550000-000370-06ISSN | 2005-3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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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함께해요

하나만주에펼친한민족의기상

둘실크로드에뿌린신라인의열정

셋무한경쟁시대가요구하는도전정신과역동성

MMAARRCCHH 22001155VVOOLL.. 112244한국인의

마음

진취進取

적극적인자세로뜻을이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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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마음 진취進取’

적극적인자세로뜻을이룩하다

시대를불문하고세상은두려움을극복하고적극적으로도전하는사람들을통해성장, 발전해왔다. 실력이나실적이부족하면살아남기힘든냉엄한현실속에서문화재를통해우리조상이지녔던진취적인기상과도전정신을발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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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진취進取’

적극적인자세로뜻을이룩하다

만주에펼친한민족의기상

박혁문

실크로드에뿌린신라인의열정

-왕오천축국전과혜초

고운기

무한경쟁시대가

요구하는

도전정신과역동성

김의식

한옥의중심공간, 마루

조전환

봄바다와봄나물의향기로운궁합

-도다리쑥국

한경심

동백의낙화와함께봄의중심으로…

-서천마량리동백나무숲신지선

토속민요에서발견한

현대인의삶의애환을노래하다-퓨전국악밴드고래야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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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재미노는재미, 수수깡안경

이상호

흥정을붙이고여 리餘利를챙기는여리꾼

박은숙

포니의신화이야기

안병하

변화에끊임없이적응하며존재하는

살아있는전통유산

-인도네시아바틱

김형준

할머니가들려주는옛날옛적이야기

-찾아가는공주전래이야기생생체험

성혜경

제4의 백제왕궁, 익산왕궁리유적

임영선

계유정난속에서꽃핀원수간의사랑

-금계필담

유환석

『 文化財』온라인논문투고시스템(jams2.0)

도입에따른논문투고및 회원가입안내

함께참여하고성실히실천하는문화재사랑

-라이엇게임즈성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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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년 3월 1일 창간일 2004년 10월 29일 발행처문화재청발행인 나선화 편집 대변인실 총괄기획안형순, 이선준, 김수현편집위원 김성도, 김지성, 방인아, 신동렬, 임은경, 장영기, 정규연, 조은경, 오춘영, 황경순주소 302-701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문화재청 대변인실전화 (042)481-4677 팩스 (042)481-4679 이메일 [email protected] 기획·디자인·제작 (주)홍커뮤니케이션즈 www.hongcom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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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초대학수업에서한교수가“우리민족의정서는무엇인가?”라는질문을던진적 이있다.

그는그때‘한恨’을정답으로제시했다. 청일·러일전쟁, 일제강점기, 한국전쟁등을겪으며역사의주인공이되지못하고

매번‘당하는’입장이었기에수긍할만 했다. 하지만그‘한’의 정서로는세계10대 경제대국인동시에기술강국, ‘ 한류’라는거대문화를

이끄는대한민국을더 이상설명할수가없으며미래를긍정적으로바라볼수도없을것이다. 흔히우리민족사는반만년역사라말하지만

실제우리국민들이체감하는역사는 명나라와청나라에종속되어살았던조선의역사다.

그종속된500년 의역사가만들어낸결과가‘한’이다. 그런데이것은우리민족정서의표상이될 수없다.

실상은우리가잊고사는4,500년 의역사, 특히만주지역에삶의터전을일구었던고조선, 고구려, 발해사속에오늘의대한민국을

설명할수있는우리민족의정서가뿌리내리고있는것이다. 그것은진취적이고도전적기상이다.

글. 박혁문 (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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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사의처음은BC 2333년 건국하여BC 108년 에멸망한

‘ 조선’이다. 그런데가장오랜역사를가진왕조임에도이 시기에

대한기록이없다. 『환단고기』라는책 이있으나위서로단정지어

져, 이를근거로섣불리말할수없다. 다만중국역사서인『한서漢

書』에 등장하는 우거대왕의 모습에서 고조선의 기상이 어떠했는

지 추측해볼수있다.

700년 간 분열된중국을진시황이통일했지만얼마가지않아혼

란기에접어들었다. 이 혼란기를평정하고중국의통일을이룬나

라가바로유방이세운한나라였다. 한무제는한나라최고의정복

군주였다. 그는타클라마칸너머까지영토를넓혀실크로드를개

척하였을뿐 아니라당시가장강한종족이었던흉노족마저공략

했다. 그런데 이 런 그의 팽창에 걸림돌이 된 것 이 바로 고조선이

었다. 한무제는전통적강국인고조선때문에쉬 이패권을완성할

수 없었다. 기회를엿보던한무제는고조선에사신으로파견되었

다가무례한행동을하여처형된섭하의죽음을트집잡아고조선

을 공격했다. 이 때고조선의임금이우거대왕이었다. 한나라장수

는 위청이었는데 그는 흉노족을 점령했던 백전노장이었다. 그러

나우거대왕은전혀위축됨이없 이오히려한나라군을기습공격

하여 바다와 육지에서 대승을 거뒀다. 한무제는 이 패배 이후 한

동안고조선에전혀대항못하였다. 그러나권토중래하던한무제는

만주에펼친한민족의기상

01. 백암산성. 고구려성의웅장한모습이가장잘 보존된성으로, 당태종이세민이침공했을때

성주손벌음은싸우지도않고항복한다. ⓒ연합콘텐츠 02. 압록강철교. 북한반도와중국둥베이

(東北) 지방을연결하는관문이다. ⓒ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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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는말갈기병대, 토착세력인 연나부의양만춘등은물론동돌

궐의진주가한과도연합하여사방에서당나라를압박하는작전을

펼쳤다.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 선봉에 세운 부대가 당시 지구상에

서 가장 강하다는 아사나사마가 이끄는 돌궐족 기병대였다. 그런

데 이상한 것은 중국 역사책에는 그들이 출전했다는 기록만 나올

뿐 그 이후의행적은보이지않는다. 돌궐기병대는연개소문이이

끄는 말갈기병대에게 전멸했는데 이를 숨긴 것이다. 또한 고구려

수군기지였던비사성을점령한당나라수군오만명또한평양성을

향해항해를했는데역 시그 이후의행적역 시알 수 없다. 이세민

또한백암산성과요동성을점령한후안시성을공략하다가양만춘

이 지휘하는고구려군의반격을받아결국은패배하여돌아간다.

중국 최고의 영웅인 이세민은 죽을 때 다시는 고구려를 침공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고구려와 수나라, 고구려와 당나라와의 이

두전쟁은오늘날로말하면 1, 2차 세계대전급의전쟁이었다. 중국

과 고구려가전력을기울여싸운큰 싸움이었기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게 되자, 이 런 영웅들

은 중국의 의도에 의해 폄하되고 왜곡되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런 영웅들을 바로 아는 것, 그것이 우리 민족의 진취적인

기상의뿌리를아는지름길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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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군사를모아고조선을재침공한다. 그는이번에는육전을포

기하고 바다를 건너 곧바로 평양성으로 들어와 성을 포위했다.

1년 동안 이어진공방전에서고조선군은한나라군을상대로계

속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속된 전쟁에 염증을 느낀 일부 권

신들에의해우거대왕은암살당하고만다. 이로인해평양성은함

락당하고고조선은망하게된다.

비록 실패했지만 우거대왕의 삶을 살펴볼 때 고조선 사람들의

기상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결코 굴복하거나 꼬리 내리지 않았고 도전적으로 맞섰

던 것이다.

고조선을멸망시켰던한나라도오래가지못해위·촉·오삼국으

로 분열된이후약 400년간위진남북조시대를거치며큰 혼란기

를 겪게 된다. 이 분열된 중국을 다시 통일한 나라가 수나라이다.

통일된 중국은 당시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지배하던 고구려에 큰

위협이었다. 수나라를세운문제와그의아들양제는고구려를제

압하기위해끊임없이군대를보냈다. 특히양제는당시로는상상

할 수 없는 100만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했는데 결

국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한 고구려의 육군과 고건무 장군이 이끄

는 수군에게참패를당하고이로인해결국은멸망의길로접어든

다. 을지문덕이수나라별동군을2,300여명만남기고몰살시킨전

투는세계전쟁사에길 이남은큰승리이다.

수나라의고구려원정실패이후혼란한중국을다시통일한영웅

이 등장하는데그가바로당나라를세운이연의아들이세민이다.

그는 당시 가장 강한 나라였던 돌궐을 점령했을 뿐 아니라 히말

라야산맥 동쪽, 고비사막 남쪽의 천하를 당나라의 영토에 편입시

켜 중국역사상가장넓은영토를개척한다. 이 런당나라가고구려

에 사대의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을 때 고수전쟁의 영웅이던

고구려의 영류왕 고건무마저 두려워했다. 이 때 당나라의 압박에

굴복하지않고고구려인의기상을보인사람이연개소문이다. 그는

정변을 일으켜 당나라의 압력에 굴복하는 고구려 내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런 후 당나라 이세민에게 대항하기

위해 고구려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훗날 금나라와 청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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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해동성국’이라는 말 정도 뿐

그 알맹이는대부분모른다. 이유는간단하다. 당시발해에대적할

나라가없었기에큰 전쟁없 이평화로운시대가이어졌기때문이

다. 이를가능하게한 인물이광개토대왕과더불어한민족최고의

정복군주인발해2대 임금인무왕대무예이다.

『구당서』에는발해를세운대조영을고구려별종으로, 『신당서』에

는 속말말갈인으로소개하고있다. 이로인해중국인들은발해를

여진역사로 분류한다. 하지만 발해가 세워진 지역은 백산부, 속말

부말갈족들이 사는 지역임에는 틀림 없으나 발해를 세운 지배세

력은분명고구려인들이다. 대무예가일본과국교를맺을때 보낸

『『일본서기』에 전해지는문서에따르면, 당시의사신들은대부분고

씨 성을 가진 고구려인이며 자신들은 고구려의 후손으로 발해는

고구려를계승한나라임을분명히밝히고있다.

아버지대조영의뒤를이 어대무예가발해의2대 왕으로즉위하자

당나라는발해를견제하기위해흑수부말갈을이용했다. 이들은단

한번도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본 적 이 없을 정도로 강한 부족인데,

당나라는추장아속리계를뒤에서조종하여발해를끊임없이공격

하여 대무예의 장안성 입조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대무예는 이 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흑산부말갈을 공격하여 끝내는 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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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백성으로삼았다. 그는이 에머무르지않고고구려의옛 영

토인 요동지역을 회복한 후 당나라 정벌군을 꾸려 장문휴로 하여

금 당나라 해군기지인 산동성의 봉래성을 공격, 산동성 일대를 점

령한다. 당나라에서는발해에맞서기위해총력을기울였지만이들

을 당해내지못하고산동성은발해의영지로남게된다. 이 전투의

후유증으로당나라각지에서는반란이일어나기시작했고끝내당

나라는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 역사책에는 장

문휴의공격을해적떼의약탈로묘사하여왜곡하고있다.

한편, 산동성대부분을뺏긴당나라는위기의식을느끼고신라로하

여금발해를공격하게한다. 이 에신라는김사란을지휘관으로삼아

삼만명을동원하여발해를공격하였지만이들은대무예에게전멸당

하고만다. 이 두전투이후발해는동북아시아의최강국이되어300

년간 평화를 누리게 되고 당나라로부터‘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받게된 것이다. 정복군주로잘 알려진광개토대왕때보다실은더

넓은 영토를 개척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의 대명사 대무예,

우리 민족의 진취적 기상의 뿌리로 당당히 존재하는 그가 해적의

일원으로폄훼되어우리에게알려지지않은것은참으로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라고 말해야 함에도 불

구하고그 전범이될 만한사건이나인물을찾기어려운것은, 우

리 의 역사관이 한반도와 근래의 역사에만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내세워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

시키고 대무예, 광개토대왕, 연개소문, 을지문덕 등 우리 민족의

진취적기상의뿌리가되는조상들이중국인이되어사라져가는

것에 무관심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 이들이 살았던 지역과 이들

의 활약상을 말하고 가르쳐야만 우리 민족의 진취적 기상이 날

개를펼 수있을것이다.

03. 장군총. 고구려장수왕의무덤으로서울의백제석총, 산청의구형왕릉무덤과형식이유사한

것으로동북공정을반박할수있는주요한유물이다. ⓒ박혁문 04. 두만강하류의북한과중

국훈춘지역을잇는다리. 이 다리를통해중국의물자가북한으로들어간다. ⓒ박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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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승려혜통惠通의 출가담은언제읽어도가슴을치게된다. 『삼국유사』의「신주」편에실린이야기다.

출신도잘 알려지지않은혜통은평범한사람으로지낼때 남산의서쪽기슭의은천동어귀에살았다.

하루는자기집 동쪽시냇가에서놀다가수달한마리를잡았다. 살을발라내고뼈는동산에다버렸다. 아침에보니그뼈가없어졌다.

의아한생각이든혜통, 핏자국을따라찾아보자, 뼈는제 굴로돌아와새끼다섯마리를안고쭈그리고있었다.

이것이설마가능한일은아닐것이다. 혜통의눈에어떻게하여이 런모습이비추었는지알 수없으나,

멍하니바라보고오랫동안놀라워하다가, 혜통은문득속세를버리고출가하리라마음먹었다. 깊은탄식의끝이었다.

글. 고운기 (한양대학교문화콘텐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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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담도출가담이려니와그런혜통이었으니수행또한남달랐다.

혜통은 당나라로 가서 무외 삼장無畏 三藏을 뵙고 가르침을 청하였

다. 무외삼장은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 곧중인도에서태어나716년

에 당나라로 온 밀교의 시조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혜통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해가 665년이므로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밀

교의 대표적인 승려였으므로 기록자가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문

제는이 스승이혜통을쉽게받아주지않았다는것이다.

혜통은가벼이물러서지않고부지런히3년을수행했다. 그래도허

락하지 않았다. 이 에 혜통은 뜨락 앞에 서서 머리에 화로를 이 었

다. 잠깐 사이에 이마가 터지는 소리가 벼락처럼 났다. 스승이 듣

고와서이를보더니, 화로를치우고손가락으로찢어진곳을만지

며 주문을 외웠다. 상처가 이전처럼 아물었는데, ‘왕王’자 무늬 같

은자국이남았다. 그래서호를왕화상王和尙이라했다. 혜통의정진

精進이 목숨을건 것이었음을보여주는에피소드이다.

혜통이이 런사람이었다면또 한 사람우리가경의를다하지않을

수 없는사람이혜초(慧超, 704~787) 아닌가한다. 그 또한밀교를연구

하였고, 인도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겼다. 719년

중국의광주에서인도승려금강지에게배웠고, 723년경에4년 정

도 인도 여행을 한 뒤, 733년 에 장안의 천복사에 거주하였으며, 01. 『 왕오천축국전』. 신라승려혜초가지은인도여행기로, 당시인도와비단길지역의종교와

풍속, 문화를풍부하게기록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왕오천축국전과혜초

실크로드에뿌린신라인의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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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년에는산서성의오대산에서거주하였다. 필자는혜초가혜통

의 어떤연장선상에있는신라인의기개로환상될때가많다.

사실상 혜초는 어느 기록에도 보이지 않는다. 인도로 가는 그 길

이 얼마나 험했는지,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구체적으로 전해주는

사람이 혜초인데 말이다. 오직 『왕오천축국전』으로 남아 있을 따

름이다. ‘차디찬눈은얼음과엉기어붙었고 / 찬바람은땅을가르

도록 매섭다 / 넓은 바다 얼어서 단을 이루고 / 강은 낭떠러지를

깎아만간다’혜초가쓴시의일부이다. 『왕오천축국전』이 돈황敦煌

석굴의깊은곳에묻혔다가세상의빛을다시본것 이지금으로부

터 겨우 100여 년전, 그나마신라출신이라는사실말고는고향이

며 죽은곳도알 길 없지만, 719년 열다섯살의나이에중국에들어

가 5년 동안 수학한 다음 결행한 4년간의 인도 여행을 어렴풋이

전해준다.

겨울날투가라국에 있을때 눈을만나그 느낌을읊은위의 시에

서 우리는 무시무시한 고행의 한 단면을 읽을 뿐이다. 시는 다음

과 같이이어진다.

용문龍門엔 폭포조차 끊기고 말았으며 / 정구井口엔 뱀 이 서린 듯

얼음이얼었다 / 불을들고땅 끝에올라노래부르리 / 어떻게저

파밀고원넘어가리오’

뱀 이서린듯 얼어붙은얼음길을오르는그의가슴속에는불같은

열정이가득차 있다는뜻일까? 그럼에도파밀고원은멀기만하고

생사를오가는여행길은불안하기그지없었으리라. 그런데도두려

운 마음을때로기도하며때로노래하며풀어내고, 사막과얼음구

덩이로 발걸음을 옮긴 그에게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던

것일까? 같은길을따라거슬러왔던전도자들을생각하며걸었던

것일까? 이 런 여 러 의문에 대한 답으로 그의 진취적인 정신 밖에

댈 게 없다.

그러나 순례자의 마음인들 범인의 그것에 조금이나 가까운 것 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의 하나일까? 혜초

는다른시에서이렇게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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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타클라마칸사막의천산산맥. 혜초와같은수행승들은목숨을걸고불법을찾아이 사막

을 건넜다. ⓒ연합콘텐츠 03. 돈황의석굴을조사하는펠리오. 그는돈황석굴에보관되어

있던『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였다. ⓒ강병기 04. 만리장성의 서쪽 끝에 실크로드 통행을

감시하기위해쌓은가욕관성. ⓒ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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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서번이멀다한숨짓는가 / 나는탄식하네, 동쪽길 아득하여

/ 길은 거칠고설령雪嶺 높은데 / 험한골짝물가에도적떼소리치

네 / 새는날아가다벼랑보고놀라고 / 사람도가다길을잃는곳

/ 한 생애눈물닦을일 없더니 / 오늘은천 갈래쏟아지네’

「서번가는사신을만나」라는제목의시이다. 서번은서쪽오랑캐

나라인 토번이다. 지금은 서장이라 부르는데, 이때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서두나라의문물을교류하며번성하였다. 설 령雪嶺은눈쌓

인 봉우리이지만, 여기서는히말라야산맥을이른다. 한참인도여

행이무르익을무렵, 혜초는우연히서번으로가는중국사신을만

나게 된다. 설령은 도적떼 출몰하는 계곡이었기에 대국의 사신답

지 않게 코를 빼고 가고 있다. 처량한 모습이다.

그러나하늘나는새마저놀라는길을사람이무

슨 재주로 편히 지날 수 있겠는가. 승려인 혜초

마저 펑펑 눈물을 쏟는다. 그런 고행의 대가代價

였을까, 혜초는귀국하여스승의총애아래수행

정진하여, 중국 밀교의 정통으로 일컬어지는 금

강지불공不空법맥을잇는제자로우뚝섰다.

내 고향은하늘끝북쪽/ 땅 한모서리서쪽은남의나라/ 남천축

해 떠도기러기한마리없 어 / 누가내 집으로돌아가리’

기러 기 발목에 편지를 묶어 날렸다는 고사가 있거니와, 그런 기 러

기조차보이지않는곳에서의막막한심정이잘도그려져있다. 혜

초가언제어떤연유로중국을가게되었는지는자세하지않다. 기

록으로그가중국밀교의초조금강지(金剛智, 671~741)의 문하에들어간

것 이 719년, 곧 그의나이열다섯살때인것으로알려져있다. 금강

지는인도출신의승려이다. 스승의문하에서 5년을수학한혜초는

감연히인도여행을떠난다. 갈 때는해로로, 돌아올때는육로를이

용했으리라추정하고있다. 그가남긴『왕오천축국전』은 오늘날우

리에게 8세기경의 인도 풍경을 소략하게나마 전

해주는유일한기록이다. 물론그의존재는1908년

프랑스탐험가펠리오P. Pelliot의 돈황석굴발견과,

1909년 중국인 나진옥(羅振玉, 1866~1940)의 손을 거 쳐,

1915년 일본인다카쿠스준지로(高楠順次郞, 1856~1945)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천년 세월의 긴 잠을

잔책 이바로『왕오천축국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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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한국전쟁의폐허를딛고짧은기간에선진국대열에오를수있었던것은대외무역,

특히수출을통한경제성장에힘입은바가크다. 무역의존도는이 미103%(2013년 기준)로,

수출이국가경제의운명을좌우한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1970년대중화학공업육성전략을택한이후

가격, 기술, 품질, 수요기반의부단한혁신을바탕으로한철강산업및 조선산업을육성한결과

주요국가들가운데에서도경쟁력을갖추게되었다. 1964년 고작1억불이었던수출액은7년 후인1971년 십 억불에이르렀고,

1977년에는백억불, 1995년에는천억불, 2014년에는6천억불을달성해무려50년 동안6천배의성장을달성했다.

이러한경이적인기록은도전정신, 끈기, 진취성으로이뤄낸기적이었다.

글. 김의식 ((사)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교육원장)

현재 우리 경제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는 암울한 징표 중 하나인

청년실업자수가 38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취

업난에연 애, 결혼, 출산을포기한소위‘3포 세대’ 청년들의수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2014년 고용동향에 의하면 전체 실업자수

93만 7000명, 이중 15~29세의 실업률이 9%에 달해 청년실업의

심각성을말해주고있다.

이처럼청년취업난이장기화되면서학생도아니고취업자도아닌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니트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니트(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족’

은 일을하지않으면서교육이나직업훈련을받지않는사람을뜻

하며, 보통 15~34세 사이의 취업인구 중 미혼으로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서가사일도하지않는무업자無業者를지칭한다. 이 중 단지

시간만 보내고 있는 니트족도 56.2%에 달해 청년 고용률을 저하

시키는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또한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 의존

하는 사람, 즉‘캥거루족’도 많아지고 있다. 캥거루족이 늘어난다

는것은미혼자의증가와출산율의저하를의미하고이는노동인구

의 감소로이어져결국국가성장에막대한악영향을미치게된다.

무한경쟁시대가요구하는도전정신과역동성

01. 영국청년실업심각퍼포먼스. 영국런던의덴마크스트리트에있는취업지원센터앞에서

청년실업의심각성을알리기위해젊은이들이‘일할준비가됐다’라고적힌가방을들고대규

모줄서기퍼포먼스를벌이고있다. ⓒ연합콘텐츠 02. 한강일대서울의야경. 2015년은광복

70주년이자분단70주년을맞는해로, 지난70년간한국은국민들이가진엄청난잠재력에힘

입은수출주도성장전략을펼치면서‘ 한강의기적’을이뤄냈다.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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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청년실업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제도적인 방

안과더불어청년들의인식변화가필요하다.

지난해 10월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개최된

제7회 기업가정신주간 국제컨퍼런스를 통해 발굴된, 도전정신과

진취성으로 성공한 기업가 한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교 재학

중 창업하여 성공한 송성근 대표의 이야기이다. 그는 태양광시스

템과 LED조명 시스템, 친환경 제품 등을 개발해 제작·시공까지

통합 제공하는 회사를 창업한 청년사업가이다. 2010년 5월 ‘중소

기업인의날’청와대에초청돼대통령과정재계인사들앞에서창

업 성공사례를발표하기도했다. 한때 집 이 없 어컨테이너에서살

정도로힘든시절을보냈던송 대표는대학교입학전부터회사에

엔지니어로취직해자금관리, 조직관리등 여 러부분을익히는등

일찍부터꿈에대한장기적인준비를해왔다. “갈망하는것 이있다

면 지금 바로 도전해라, 고통도 있고 시련도 있겠지만 그 시련이

훗날돌아보면축복이었다는것을알게될 것이다”라는그의말은

오늘창업을꿈꾸는많은청년들에게산교훈이되리라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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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톤 덤프트럭한대로시작해 1조원규모의그룹을일군박주봉대

주·KC 회장은 또 한명의 도전정신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7남매

중 장남인 그는 어 린 시절 구두닦이, 떡볶이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성인이 된 그는

다른사람보다일감을더 받기위해트럭을끌고새벽 2시 에출근

했고, 3년 후 그가 소유한 트럭은 50대로 늘어났다. 그렇게 밑천

200만원으로시작한사업은점점성장했다. 부산낙동대교, 서울월

드컵경기장, 여의도 IFC몰 등이 박 회장의 손끝에서 이루어졌다.

현재는철강·화학·자동차·물류·건설·에너지등 10여개계 열

사를거느린중견기업으로성장했다.

문화, 예술, 스포츠경기등에서도도전정신으로역경을극복해낸

사례를수없이찾아볼 수 있다. 온갖힘겨운시기를이겨내고인

간승리의 드라마를 쓴 서건창 선수. 그가 긴 시련을 딛고 야구계

의‘ 영웅’이 된 스토리는끊임없는도전이 이루어낸진정한승리

를 보여준다. 서건창 선수는 광주일고 야구부 시절 왜소한 키와

팔꿈치부상으로인해프로야구신인드래프트에서구단들로부터

외면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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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그는신분이보장되지않는신고선수(프로야구에서구단의지명을받

지 못해계약금없 이프로팀에입단한선수)로 LG에 입단했다. 2008년 6월, 그

는 1군에서한 타석에들어서삼진을당하고물러난뒤 결국그해

8월 LG에서방출됐다. 갈 곳 없는그가선택할수 있는것은현역

입대뿐이었다. 육군소총수로군에입대한그는야구에대한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경계근무를 서면서도 자신이 타격, 주루,

수비하는모습을머릿속에상상하며‘이미지트레이닝’을했고, 왜

소한체격을보완하기위해웨이트트레이닝에더욱힘썼다. 전 역

후넥센의신고선수로다시프로무대를밟은그는2014년 시즌에

서 새로운타격폼으로‘안타제조기’로 거듭났고사상최초 200

안타를돌파하며전설을썼다. 그리고2014 프로야구MVP, 최우수

신인선수 및 타격 3관왕(안타, 타율, 득점)을 달성했고, 이 어 시즌 최고

의 선수에게주어지는영예의대상까지수상했다. 손에못이박히

도록 배트를 휘두르고 이를 악물고 뛰고 또 뛰며 이룬 결실이었

다. 불운을탓하고어려운상황을비관했다면, 최고의타자서건창

은없었을것이다.

비록 지금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갖고, ‘발전할수 있는부분’과‘발전시킬수 있는방법’

을 고민해야한다. 그리고그것을포기하지않고꾸준히실천한다

면 신고선수에서MVP로 올라설수있다.

송성근대표나박주봉회장, 서건창선수는무한경쟁시대가요구

하는진취적인인간상을보여준다. 이들은긍정적인생각, 적극적

인 실천, 스스로판단하고행동하며책임지는자세를가졌다. 동시

에 지속적인자기계발로항상도전하는역동성을지녔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

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

다리는 사람이 되 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라며 무실역행務實力行 정신을 강조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여

움츠리는청년들에게들려주고싶은메시지다. 어 떤일이든성취

하기 위해서는 기회를 기다리기 전에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실

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밝지만은 않더라도

할수있는일은분명히있다.

03. 송성근대표가대학교재학중 창업한㈜솔라사이언스. 태양

광시스템과 LED조명시스템, 친환경제품등을개발해제작·시

공까지통합제공하고있다. ⓒ연합콘텐츠 04. 수많은슬럼프와

신고선수의설움을이겨내고‘안타제조기’로거듭난서건창선수.

ⓒ연합콘텐츠 05. 사회초년병인 20대와주축계층인 30대 취

업자수가감소하고있는가운데, 한 대학교에서학생들이취업관

련 정보를살펴보고있다. ⓒ연합콘텐츠 06. 도산안창호선생필

적. 도산선생은“ 기회를기다리는사람이되기전에기회를얻을

수있는실력을갖추어야한다”라며무실역행정신을강조했다. ⓒ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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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가변하면서마루공간은거실공간으로변하였다.

마루공간은나무로짜여지고외부로열 려있었는데, 문명의요구에맞게벽이나문이달리고바닥에는보일러를넣은것이다.

그러나거실공간이되었다고해도, 본래마루가가지고있는의미체계는그대로이다.

그의미체계는새로지어지는아파트공간에도이어져독특한한국형아파트가만들어진다.

거실을중심으로방들이배치되고남향으로열 린구조는한옥이가지는

문화복제자밈(meme: 유전적방법이아닌모방을통해습득되는문화요소)으로서의마루공간이현대적으로표현된것이다.

글. 조전환 (이연한옥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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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중심공간,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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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가장 높은 자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산꼭대기를‘산마루’

라고하고지붕의제일높은곳을‘용마루’라고한다. ‘마루’의 어

원 이되는알타이어‘말’은 꼭대기와종주宗主의 뜻을지닌우리의

옛말로서, 달리는말(馬), 말(言), 마을(理)과 관련있는뜻이었다. 즉 일

(事)과 만물萬物의 으뜸자리라는뜻이다.

한옥에 있어서 마루는 단지 나무판으로 된 물체를 뜻하기보다는

좀 더 풍부하고심오한의미를담고있다. 신라시대부족회의에서

가장높은위치에있는왕을‘마립간(마루한, 높은왕)’이라하고, 그가

앉은자리는‘마루’라고불리게된다. 이 뜻은한반도에만국한된

것 이 아니라 대륙까지도 이어진다. 몽골의 전통가옥인 게르Ger에

서 문과마주하는가장높은자리를‘허이마르’라고한다. 왼쪽구

역은 신 이 보호하는 남성의 구역이고 오른쪽은 태양이 보호하는

여성구역으로구분되는데가장성스러운허이마르지역은불상이

놓이거나악기마두금, 주인의개인무기등 귀중한것들이놓이게

된다. 여기서‘마르Шал’는‘마루’와 같은뜻을지니고있다.

기술과리듬을지닌말(馬)과 이념과사상을표현하는말(言), 그리고

커뮤니티의중심으로서‘아랫말’, ‘웃말’처 럼쓰이는말(里)이 한옥

을 결정하는 환경적인 중심코드라고 한다면, 실제로 한옥에 사는

한 집안의마루는가족들의모든일 이벌어지고중재되는중심공

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루에서는 집안의 가장 중요

한 행사인 제례의식이 행해지거나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는 신성

한장소로사용된다. 항상성주신을모시는자리고, 제례행사가진

행되는 경우 제삿날 2~3일 전부터는 제사음식을 준비하느라 분

주하다가당일에는도포를입은집안어르신들이도열하여제례를

행하는데, 새로집을짓 게되어대청을계획할때 그집안의형제의

수를 감안하여 짓는다. 즉 제사를 지낼 때 한 항렬이 일렬로 설 수

있도록계산측량하는것을보면‘마루’의 위상을알 수있다.

한옥의 주요한 특징으로 이야기되는 것 이 온돌과 마루의 복합구

조이다. 이 구조는마루널또는청판이라고하는나무널판으로구

성된 바닥과 땅을 파서 고래를 놓고 넙적한 돌판을 덮어 바닥을

구성한온돌이같은높이에서이루어진형태를말한다.

01. 누마루. 집주인이글을읽거나, 손님과차를마시며대화를나누는장소이다. 대개사랑방

에 이어서있으며마루주변을따라난간이설치되는것이일반적이다. ⓒ게티이미지 02. 성읍고평오가옥안거리상방의마루널. 우물마루는대청이나마루간의전후기둥에장귀틀을건

너지르고 그 사이에 동귀틀을 가로 걸어 사이사이에 마루널을 끼워서 만든다. ⓒ문화재청

03. 보은선병국가옥의사랑채툇마루. 선병국가옥의사랑채는찻집으로운영되고있다. 대청

앞뒤로미닫이창을달아독립성을꾀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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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는남방문화와북방문화의결합이낳은산물이다. 즉 고

온다습한 남방지역에서 습기를 피하기 위해 바닥을 지면에서 높

게 설치하던풍습과북방에서추위를피하기위한바닥난방시스

템이결합된것이다. 마루에사용하는목재는충분히건조가되어

야 하는데 2년 이상자연건조된목재를켜서마루판을짜맞춘다.

그런 뒤에도 3개월 뒤, 6개월 뒤, 그러고도 2년까지 살펴봐주어야

틈이벌어지지않고오래쓸수있다.

마루는 틀을 짜는 방식과 위치에 따라 여 러 가지로 분류된다. 장

마루나우물마루는마루틀을짜는방식에따른분류이고, 다락마

루, 대청마루, 누마루, 툇마루, 쪽마루등은위치에따른분류이다.

그밖에 방 안에 마루를 까는 청방이 있고, 여름이면 마당에 내어

놓고많이쓰는평상도마루의한종류라하겠다.

장마루는 판재를 귀틀에 올려놓고 잇는 방식으로 다락이나 수장

공간, 쪽마루에 이용되었다. 우물마루는 대청이나 마루간의 전후

기둥에장귀틀을건너지르고그 사이에동귀틀을가로걸어사이

사이에마루널을끼워서만든다. 이러한방식은 2층이나다락, 정

자 등에도널 리쓰이는데다른나라에서는유래를찾아보기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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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마루는집안의가장중요한행사인제례의식이행해지는등신성한장소로사용된다. ⓒ

이미지투데이 05. 해저만회고택의사랑채툇마루에서본누마루. 툇마루와누마루의고즈넉

한짜임새가아름답다. ⓒ문화재청 06. 예천의성김씨남악종택의사랑채마루. 마루널을넓힌

사랑채마루와기둥의만남이이채롭다. ⓒ문화재청 07. 화성정용채가옥의사랑채앞툇마루.

툇마루는통로구실도하고간단한가사도처리할수있는공간이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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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로 독특한 우리만의 방식이다. 짜임이 정교해서 우물마루를

잘 짜는목수는품값을많이받았다고한다.

나무는 우주의 시간을 담고 있다. 지구의 어떤 자리에 머물지만

황도를 따라 비춰지는 태양에너지를 받아 생장점을 틔워 자라면

서 그 시간들을 기억하게 된다. 자전축의 기울기에 따른 계절의

변화가 그 시간의 기억을 낳는다. 즉 봄에는 부름켜의 왕성한 세

포분열로 빠르게 성장하고, 가을에는 조밀하고 단단하게 성장한

다. 이 런과정에서우주의변화를제 몸에담고그것을우리는‘목

리木理’라고부른다.

목수의농담중에‘여자속과나무속은귀신도모른다’라는말이

있다. 목리, 즉 나무의이치를이해하고적재적소에사용하기가어

렵다는 이야기다. 특히 사계절이 분명하고 산악지형인 한국에서

자란나무는열대우림에서곧은결로자란이웃나라일본의나무

하고는 그 성질이 다르다. 서돌(기둥, 보, 도리 등 구조를 담당하는 한옥부재)은

지붕에흙과기와의짐을실어기둥이걸어나가지않게연하중으

로 눌러서나무의성질을잡지만, 문얼굴이나수장재는목리를감

안하여 방향과 배치를 잘 잡아야 한다.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것

이다.

특히우물마루를틈없 이짜맞추고오랜세월을견디게하려면신

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나무의 수축과 휨을 최소화하고 교정할

수 있는기술들이포함되어있다. 장귀틀을두르고동귀틀을끼워

그사이에 청판을 차례대로 끼워 넣음으로 우물마루를 완성하게

되는데, 동귀틀을 끼울 때 평행으로 하지 않고 사다리꼴로 끼워

넣음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축된 청판을 교정할 수 있 게 한

다. 이것은 시간을 다루는 기술이다. 즉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

간을대칭적으로마주하여배치하는것이다.

마루중에대청마루는집의중심이면서모든동선이거쳐가는허

브 같은 공간으로서 가장 넓은 공간이기도 하다. 안방과 건넌방,

사랑방과 누마루, 채와 마당 사이의 매개공간이자 완충공간이었

다. 집 의광장이라고할까.

날씨가 더워지면 안방에서 이루어지던 식사가 주로 대청에서 행

해졌으며 취침도 마루에서 하였다. 취 침, 노동, 여가, 독서활동 등

일상생활의 축이 되는 공간이자 접객, 연 회 등 비일상 생활이 필

요할때는비워진공간으로서사용되었다.

지역에 따라대청의문 설치 여부는달랐지만앞과뒤를모두터

놓으면뒷마당의찬 기운이대청으로밀려와더욱시원하게여름

을 날 수 있다. 바람이마루에들어오듯이사랑마루는외부인들도

자연스럽게 마루에 앉을 수 있다. 지나던 길손이 잠시 앉아 이야

기를나누며쉬어갈수 있도록자리를내어준다. 마루는전이공간

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방들을 분리하면서도 경계 짓고, 그러면

서도다시연결하기때문이다. 즉 방의확장으로사용되면서감각

되고, 내부를향한외부의확장으로도인식된다.

해 지는 서산의 기억이 마루라는 장치를 통해서 세월이 지날수

록선명하게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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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다와봄나물의향기로운궁합도다리쑥국

통영이나여수등지의남해안지방에서는봄이면흔히잡히는도다리와초봄에나는어 린쑥으로국을끓여먹는다.

도다리쑥국은쑥과잘 어울리는된장을풀되, 된장을조금만넣고말갛게끓여내어

쑥 향기와도다리의부드러운맛을한껏살려낸봄의별미다.

‘봄 도다리, 가을전 어’라는말이있지만사실도다리쑥국의주인공은쑥이다.

글. 한경심 (한국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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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쑥 향기와 함께 온다. 봄이 오면 겨울 동

안 먹어온‘묵은 나물’에서 벗어나 싱싱한 봄나물

을 즐기고자 하는 미각도 함께 깨어난다. 특히 봄나물은

향이좋아봄을느끼게하는진짜맛은혀끝보다코로먼저다가

온다. 봄나물가운데서도쑥은국에넣어먹어도좋지만그 향이

그윽하여 떡이나 차로도 즐길 수 있다. 그뿐인가. 이른 봄 쑥은

음식으로 해먹고 양기陽氣가 성한 삼월 삼짇날이나 오월 단오에

캔 쑥은말려약쑥으로쓴다. 3년 말린쑥은묵은병까지고친다

고 했다. 이처럼 쑥은 초봄의 어 린 쑥부터 해를 거듭한 묵은 쑥

까지 쓰임새가 다양하다. 게다가 쑥은 말려도 향기를 잃 지 않고

쑥뜸을 뜨거나 태워 해충까지 쫓으니, 봄나물 중에 쑥만큼 효능

과 쓰임새를내세울나물은없 지싶다. 사실한국처럼쑥을음식

으로약으로다양하게먹고이용하는나라는없다.

쑥은 이 땅 어디서나 잘 자라 아주 흔한, 가장 한국적인 나물이

기도하다. 사실쑥은우리민족에게특별한나물이다. 봄이오행

五行에서 초목[木]을 상징하며 새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의미하는

것처럼, 단군신화에서 쑥은 인간의 탄생을 돕는 약초로 등장한

다. 쑥을 뜻하는 한자는‘애艾’인 데, 『삼국유사』에서 쑥은 단순한

‘ 애艾’가 아니라‘ 영 애靈艾’, 즉‘ 신령스러운쑥’이라고표현했다.

곰을 여자로 만들어준 쑥은 여성의 생식력을 돕고 독을 없애주

며 해충과감염을막아주니과연신령스러운풀이다.

쑥을 가장 간편하게 먹는 방법은 국으로 먹는 것이다. 쑥국은

쇠고기로 육수를 낸 맑은 장국에다 끓일 수도

있고 된장국에 넣 어 끓일 수도 있다. 맑은 장국

에 끓이는 쑥국으로는 애탕이 있다. 애탕은 다진

쇠고기에 쑥을 섞어 완자를 만들고 달걀을 묻혀 끓는

육수에넣어만든다. 쇠고기를넣지않고쑥 잎 에녹말가루와달

걀흰자를씌워끓여내기도한다. 요즘은이 두가지요리법을섞

어 완자와 함께 쑥 잎까지 더해 끓이기도 하는데, 국에 쑥이 많

이 들어가면뻑뻑한느낌이들어보기가썩 좋지는않다.

쑥은 된장국과도 잘 어울린다. 된장국은 제철 채소라면 무엇이든

넣어도 맛나지만, 쑥을 날 것 그대로 넣는 쑥된장국은 입 안에서

씹히는 질감과 향이 더욱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쑥만 넣어도 훌

륭한봄 된장국이완성되지만, 도다리가많이잡히는봄철남해안

에서는쑥국에도다리를넣어독특한봄 된장국을즐겨왔다.

흔히‘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 어 가을에 전어가 맛있

듯 봄에는도다리가맛있다고생각하지만, 사실이 말은반만맞

는 말이다. 봄에많이잡혀쑥국에넣는도다리는정확히말하면

문치가자미다. 문치가자미는 전국적으로 도다리라 불리고 산지

인 통영에서는 참도다리로 통용되지만, 엄밀히 말해 진짜 도다

리와는 다르다. 진짜 도다리는 산지인 남해안에서 토종도다리

또는 담배도다리, 담배쟁이로 불린다. 이 토종도다리는 오늘날

보기힘들만큼귀한생선인데, 이 도다리는봄이제철이맞다. 여

기 서 제철이라고하는것은살이오르고지방함유가많아맛이

가장좋을때를가리킨다. 그런데도다리쑥국에넣는도다리(문치

가자미)는 봄에맛이가장좋은게 아니라봄이수확기일뿐이다.

문치가자미가 봄에 많이 잡히는 까닭은 겨울 동안 바다 깊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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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있다가 봄철산란기에남해안에모여들기때문이다. 생선은산란

기 전후 맛이 떨어진다. 영양이 알에 집중되므로 지방함량이 낮

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다리(문치가자미)는 먹이활동을 왕성

히 하며 영양을 비축하는 여름과 가을까지가 제철이고, 찬바람

이 불면알을배고깊은바다에머문다. 그러므로봄철은도다리

(문치가자미)의 수확기이지, 맛이뛰어난제철은아니라는말이다.

그런데 봄이 비록 맛난 제철은 아니어도 생선을 맛나게 먹는 방

법은 있다. 바로 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알배기 생선이나 산란을

끝낸 생선을 국으로 먹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다. 마침 제철을 맞

은 쑥국에넣은것은최고의선택이라고할 것이다. 쑥은이른봄

의 쑥이 여리고 맛있다. 이때는 쑥 향도 짙지 않고 은은하다(쑥은

향이 짙 지 않고 부드러운 것을 윗길로 친다). 더구나 바닷바람을 맞은 쑥은

더욱 맛과 향이 좋다. 그래서 쑥만으로도 맛나지만 봄철 많이

잡히는 도다리를 더해 쑥과 도다리 둘 다 맛이 상승하니, 도다

리쑥국은봄이맺어준시절인연의훌륭한결과라고할 수 있다.

다만이 인연은쑥이억세어지기전까지만지속될뿐이니, 안타

깝게도짧은인연이다.

봄철 전국 횟집에는 남해안에서 공수해온 도다리로 만들었다는

도다리쑥국을 한정메뉴로 올리는 가게가 꽤 되지만, 사실 도다

리쑥국을 제대로 맛보기가 쉽지는 않다. 문치가자미나 도다리

01. 도다리쑥국의주재료인도다리와쑥. 봄철산란을끝낸도다리와제철을맞은쑥을함께넣

고국으로끓이는것은최고의선택이라할수있다. ⓒ이미지투데이 02. 애탕. 맑은장국에끓

이는쑥국으로는애탕이있다. 애탕은다진쇠고기에쑥을섞어완자를만들고달걀을묻혀끓

는육수에넣어만든다. ⓒ전국향토음식용어사전 03. 밴댕이. 도다리쑥국은쌀뜨물에깔끔한

맛을내는밴댕이나무, 양파등을우려내어끓여낸다. ⓒ두피디아 04. 도다리회. 도다리를회

뜨는방식으로는흔히세꼬시라고하는뼈째썰기와뼈를제거하고살을약간두툼하게 회를뜨

는방식이있다.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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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가자미과에 속하는 어류로, 둘 다 양식이 불가능하고 수

확량이 많지 않다. 봄철이수확기인문치가자미조차전국수요

를 당해내지못해봄이수확기임에도비싸게 거래된다. 그래서

인 지 도다리보다는 가자미 맛에 가까운 도다리쑥국을 파는 곳

도 더러 있다. 실제로가자미과에속하는어류는도다리(토종도다

리)와 문치가자미를 비롯하여 돌가자미, 찰가자미, 갈가자미 등

다양하다. 하지만굽거나조려먹을때 맛있는가자미(갈가자미)와

쑥국에넣 어먹는도다리(문치가자미)의 맛은엄연히다르다.

운이좋아일찌감치 12월이나 1, 2월 에산란을끝내고먹이활동

을 어느정도시작한도다리(문치가자미)를 구해쑥국에넣어먹는

다면, 도다리쑥국의명성에걸맞은향긋하고부드러운맛을볼

수 있다. 특히 통영의 도다리쑥국은 도다리 살이 매우 부드러

워 몇번 씹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것 같다. 거기다 부드러운 쑥

향기가 더해져 생선을 넣은 국으론 보기 드물게 맛이 점잖은

편이다. 지방에 따라 도다리쑥국에 무를 썰어 넣고, 마늘, 심 지

어 청양고추를 넣어 꽤 자극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

개 통영의도다리쑥국은도다리와쑥 외에어떤양념이나향신

료도 잘 넣지 않는다. 부드러운 쑥 향기를 죽이는 향신료 사용

을 절제해서더욱맑은맛을내는것 이이 쑥국의비결이다.

된장국의 국물은 언제나 쌀뜨물이 제격이듯 도다리쑥국 역 시

쌀뜨물에남해안에서잘 잡히는멸치나깔끔한맛을내는밴댕

이, 무, 양파 등을 우려내어 끓여낸다. 통영에서는 멸치보다 산

뜻한맛을내는밴댕이를애용한다. 도다리자체에서우러나는

감칠맛도국물맛을조금은더해주겠지만, 도다리가국물을즐

기 기 위한 생선은 아니다. 도다리쑥국은 어디까지나 쑥된장국

의 맛과향을유지한채, 도다리살을건더기로먹는것이다. 된

장국의간을심심하게하여도다리의담백함과쑥 향기를죽이

지 않아야맛이더욱산다.

대개 해산물은 맑은 국으로 끓여 내거나 넙치아욱국처럼 고추

장을 풀면 맛있다. 된장국에 해산물을 넣는 것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남쪽 해안가 사람들은 사실 오래 전부터

쑥된장국에생굴이나쏙(갑각류)을 넣어먹곤했다. 해산물과된장

국이이렇듯잘 어울릴수 있는것은, 바로쑥이있기에가능한

것이다.

문치가자미를 본래부터 도다리라고 불렀던 남해안 지방, 특히

통영의대표적향토음식이었던도다리쑥국은이제전국적으로

인기를끌고있다. 수확량이한정돼있는까닭에도다리쑥국은

꽤 비싼 요리가 되었다. 그러나 짧은 봄날이 그렇듯 도다리도

어 린쑥도봄날한철우리곁에잠시머물다가니, 봄의 입맛을

일깨우는그맛은귀하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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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의낙화와함께봄의중심으로…

바람이한결가벼워지고흙이헐거워지는 3월. 봄이시작되는길목이라선지몸이한결가볍다.

마음이간질간질, 어디론가나서고싶은기분.

내 친김 에겨우내얼었던발걸음을풀고훌쩍서천으로향했다. 목적지는마량리동백나무숲.

가장아름다운시절, 온 몸으로낙화하며봄을깨우는동백의자태를보고싶었던까닭이다.

바다와숲, 그 가운데선명한핏빛으로몽우리를맺는동백꽃.

눈앞에바다와어우러지는동백나무숲을떠올리니자꾸만길을재촉하게된다.

글. 신지선 사진. 김병구

서천마량리동백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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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 500여 년 전 마량의 수군첨사가 꿈에 바닷가에 있는 꽃뭉치

를 심어키우면마을에항상웃음꽃이피고번영할것이라는계시

를 받았다는 것. 그 길로 바닷가에 가보니 정말 동백꽃이 있 어 이

것을숲 전체에심어키웠다는전설이다. 계시처럼마을에는늘 행

복한 웃음꽃이 피어났을까?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으나 매

년 음력정월에마을사람들이이곳에모여제를지낸다는설명을

읽으니어느정도는이루어졌을것이라추측해본다.

돌계단의 시작, 무성하게자란동백나무가계단사이로서로맞닿

아 터널을이루고있다. 가까이들여다본동백은과연사람의마음

을빼앗을만큼아름답다.

‘동백은봄의중심으로지면서빛을뿜어낸다. 목이잘리고서도꼿

꼿하게제 몸 함부로버리지않는사랑이다 (중략) 이 자리에서꽃

한 송이밀어내면그게내 사랑이다피 흘리면서목숨꺾여도봄볕

에 달아오르는내 전 생애다’어느시인이동백나무를묘사한구절

이다. 수많은꽃들중왜 하필동백은이토록많은시인들의소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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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나지막한언덕을따라이어진조붓한돌계단, 그리고언덕동쪽자락에80여 그루의군락

을이룬동백나무숲이어서오라는듯찾는이를반긴다. 02. 가까이들여다본동백꽃은과연

사람의마음을빼앗을만큼아름답다. 03. 마량포구는서해에서도일출과일몰을모두볼수

있는곳으로, 빨간등대와점점이서있는작은배들이눈을사로잡는다. 04. 서천끝자락에위

치한춘장대해수욕장. 이곳은푸른해송과아카시아숲이무성해서해안에서도절경으로손꼽

힌다.02

01

서해바다를낀 마량리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제169호)은 마을어디서나

보이는정겨운언덕을이루고있다. 가파르지않은언덕을따라끝

없 이이어지는조붓한돌계단, 그리고수령 500여년의동백숲. 바

닷바람을 피할 수 있는 언덕 동쪽 자락에 80여 그루의 군락을 이

룬 동백나무숲이 어서 오라는 듯 찾는 이를 반긴다. 비릿한 바다

내음, 아직은일러서일까? 동백꽃은수줍은꽃몽우리로사철푸른

동백나무에 선명한 붉은 점들을 흩뿌려놓았다. 가슴 깊숙이 숨을

한번들이쉬고천천히돌계단을오른다.

계단의끝에는중층누각, 동백정과마량당집이자리잡고있다. 바

다와맞닿은곳에숲을이룬동백꽃, 그 유래는재미난전설로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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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아왔을까? 피처럼붉은빛깔과자태가고와서도그렇겠지만

무엇보다가장아름다운순간에툭, 통째로떨어지는낙화가인상깊

어서였을 것이다. 어떤 시인들은 젊은 시절, 가장 아름다운 때에 툭

하고스러져간수많은청춘들을동백에비유하기도했으니말이다.

돌계단을따라오르며보니이 끼낀 동백나무밑둥이세월의무게

를 말해주는것 같다. 뒤틀리고엉키며살아낸 500여년의세월, 사

람의통찰로는감히뭐라말하지못할무게감이다.

마침내돌계단의끝, ‘동백정冬栢亭’이라가지런하게쓴현판의글씨

가 보인다. 이 글씨는 1965년 여름 동교 민태식(閔泰植, 1903~1981) 선 생

이 쓴 글씨라 한다. 다른 기교 없 이 담백하고 써내려간 글씨에서

선생의성정을느낄수 있다. 단숨에 2층 누각에올라시원하게열

린 서해바다를 바라본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 바다는 역 시 언제

보아도좋다. 싫증이날 때까지둘러본후 동백나무들사이세워진

마량당집을 둘러본다. 바로 여기서 매년 풍어제를 지낸다니 바다

를삶터로살아온어민들의고난과기원을살짝엿보는기분이다.

여행의백미는그 사람들의생활속으로들어가보는것이라했던

가? 어민들의 삶을 둘러보고 시끌벅적, 삶이 살아 숨 쉬는 수산시

장을 들러보기로 한다. 지형적 특성 때문에 서해에서도 일출과 일

몰을모두볼 수 있는마량포구. 계절마다제철해산물로넘쳐나는

곳으로마량포구는펄떡살아숨 쉬는생동감이가득하다. 눈길을

사로잡는빨간등대와점점이서있는작은배들, 갓 잡아올린싱싱

한 해산물들이 어민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이 제 3월이니

조금있으면쭈꾸미축제도시작되겠지? 손님맞을준비로분주해

질 마량포구를생각하니괜히흐뭇한미소가떠오른다.

마량진 앞바다는 최초의 성경 전래지로도 유명하다. 1816년 조선

서해안 해도 작성을 목적으로 마량진 앞바다에 도착한 영국 군함

이 마량진첨사조대복과현감에게성경을전달한것. 마량진포구

한 귀퉁이에는성경최초전래지표지석이자리잡고있다. 기념비

를둘러보고이번에는발길을춘장대해수욕장으로돌린다.

넓 게펼쳐진춘장대해수욕장은많은해송과아카시아로전국에서

도유명한해변이다. 수심이얕아서일까? 작게부서지는파도가찰

싹찰싹정겨운소리를낸다. 아름다운해안을따라걷고있으니바

다저편으로붉은노을이진다. 해안과노을을같이만나는철새나

그네길, 그중에서도1코스로조성된붉은낭만길은홍원항에서부

사호까지8km에 걸쳐이어진다.

붉은 동백부터 쭈꾸미, 해안을 따라 걸으며 봄을 맞는 기분, 거 기

에 검붉은노을이함께하니더할나위없는여행지다. 3월 말 동백

꽃, 쭈꾸미축제에다시한 번 들러야지. 그땐흐드러지게핀 동백

과 살이알맞게오른쭈꾸미가오감을가득채워주리라. 봄을맞을

기쁨에미 리설레며붉은노을을넋 놓고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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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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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노래의시작은인류의시작과시점이크게다르지않을것이다.

특히우리네사람들의흥과한의정서또한노래와뗄 수없는관계이기에노래는줄곧우리와함께세월을살아왔다.

옛 사람들은자신의상황이나같은처지에있는사람들과공유하는어떤감정들의틀에얽매이지않고흥얼거려왔으며

그것은구전을통해오늘날, 민요라는이름으로전해졌다. 하지만우리역사의특수성으로민요가단절된채적지않은시간이지났고

이 땅에는새로운음악들로채워졌다. 퓨전국악밴드고래야의여섯멤버들은민요의가치를보존하며그것이원래그러했듯이

이 시대에유행하는노래로만들기위해재해석하며대중음악계에새로운바람을일으키고있다.

글. 김진희 사진. 엄지민

퓨전국악밴드고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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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민요에서발견한현대인의삶의애환을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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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퓨전국악밴드 고래야. 데뷔 초부터 대중음악과 월드뮤직을 넘나드는 개성 있는 음악으로

국내외에서주목받았다. ⓒ고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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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만 모여 퓨전국악을 시도한 것 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음악을

하고있던사람들과함께새로움을창조했다는데 있다.

‘옛 것을전해사람들을끌어당긴다’는 뜻의고래야古來惹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간다. 고래야는 그 해 국립국악원에서‘21세 기

한국음악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 프로젝트성으로 결성되었다.

고래야는대회를준비하면서처음으로함께음악을맞춰본것이었

지만 생각보다 재치 있고 재미있는 결과물들이 나왔고‘장려상’을

수상하게되었다. 더 큰 상을받지못했지만 이것이오히려자극이

되었고더 재밌고좋은음악을할 수 있겠다는불씨가지펴졌다. 그

리하여대회이후확정된여섯명의멤버가의기투합하여밴드고래

야가탄생했다. 고래야의멤버구성은어렸을적부터판소리를해온

권아신과거문고연주자정하리, 국악타악을전공한김초롱이렇게

세명의전통국악전공자들에록밴드에서활동했던기타리스트옴브

레와 음악감독이지만 대금, 소금, 퉁소에 정통한 김동근, 브라질 음

악에심취했었던퍼커셔니스트경이가더해져독특한구성을이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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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어떤사람팔자좋아고대광실높은집에부귀영화누리건만이놈

팔자는무슨팔자’ 100여 년전 각 지방의나무꾼, 어부, 농사꾼들에

게서어렵지않게들을수 있었던노동요의한 구절이다. 노동에따

른 삶의애환과한탄을담은이 민요를잘 들어보면, 현대인들의애

환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퓨전국악밴드 고래야

는 이 노동요를‘상사놈아’라는이름의노래로재창조해시대를아

우르는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고래야의 2집 앨범 <불러온 노래>의

모든 수록곡이 이렇게 우리의 토속민요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그 속에서도 일, 사랑, 이 별, 시집살이 등

여 러관계들의어려움들은과거와맥락을같이한다. 고래야는이 것

에 착안했고, 오랫동안불려왔던이 땅의민요들을현대를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선보이며신명나는놀이판을벌이고있다. “모든음악은

만들어진당시에생명력이있어요. 고래야는다양한전통음악을통

해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악을 만들고자 해요.”

퓨전음악의 역사는 길지 않지만, 그 안에서도 유행이 있을 정도로

그동안다양한시도들이있어왔다. 고래야가특별한것은국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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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고래야는 퓨전국악밴드답게 거문고에 기타와 다양한 타악기가

더해지고더불어옛날에악기노릇을했던물허벅이나목화솜을탄

활 등을 이용하는 등 다채로운 악기들을 사용해 음악을 만들어 낸

다. 전통국악기가가지고있는개성들은어느하나묻힐수 없을만

큼 다 독보적인것이기때문에멤버들은한 곡을만들기위해모두

편곡에동참하고자신의파트를원하는대로구성한다. 이 때지키는

것은단 한 가지인데, 악기의본질적인부분은바꾸지않는다는것

이다. 신기한 것은이렇게구성한것들이하나의음악으로연주되

었을때, 디테일이살아있는근사한소리가된다는것이다. “사실특

별히 저희끼리 어떤 정신을 가지고 음악을 하자고 이야기 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저희들이다 모여 연주를시작하면그 순간동일한

빛 이나기 시작해요. 우리가모두한국인이기 때문에나올수 있는

그런느낌들이자동으로나오거든요.”

고래야는 2011년 데 뷔 싱글앨범 <물속으로>를 발표했고 2013년

정규1집‘웨 일오브어 타임Whale of a Time’과 2014년 정규2집‘불러

온노래’를발표했다. 1집에는국악과더불어다양한장르와민속음

악들을담았으며2집‘불러온노래’를통해서는과거와현재의닮은

꼴을찾아내어재해석한토속민요를담았다. “토속민요를들으면들

을수록현대에어울리는국악이라는느낌을지울수없었어요. 시대

는 달라도 본질적으로 삶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

것을찾아내서현대인들과공감하고자했습니다.”국악이가진어렵

고 지루하다는편견을없애고자누구나따라부를수 있고쉬운음

악을 만들려고 한 노력이 앨범 곳곳에서 발견된다. 더욱이 고 래야

의 노래에는국악이가진‘흥’의 요소가어느곳하나에도빠지질않

으니듣는이로하여금고개를까딱이고어깨를출썩거리게하는힘

이 있다. 이 런 힘을 바탕으로 2011년 ‘천차만별 콘서트’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최고 평점을 획득했으며

2014년 12월 KBS 국악대상에서단체상을받았다. 그리고해외공연을

통해국악을알리며문화의교두보역할을하고있다. “작년에방글

라데시에서 1시간짜리 공연을 했어요. 우리 국악기로 방글라데시의

곡을공연했는데반응이굉장히뜨거웠어요. 민족의음악이주는기

운들이이 런것인가싶더라고요.”음악을이론적으로다가가지않고

공감을얻는것이가장좋은음악이라는것 이것이고래야모든멤

버들의공통된생각이다. 세월이흐르면서사라지고잊히는것들이

있다. 어른들이불렀던어떤작은마을의이름이그렇고, 그 집들이

그렇고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담은 수많은 노래들이 그렇

다. 토속민요도그 옛날에는헤아릴수 없을만큼많이있었겠지만,

이제 남아있는 것들은 그 당시 것의 일부일 뿐이다. 이마저도 지켜

내지않는다면언젠가사라질지도모를일이다. 고래야는그들의노

래와공연을통해이 땅에잊혀가는소리들을현재에되살리는것

을목표로국악이사람들의애창곡이되고유행가가되는그날을꿈

꾼다. 삶이 묻어난 노래를 통해 사람들이 위로를 받기도 흥이 나가

도하듯그들의노래가이 시대의진정한민요가되길소망한다.

02. 연습실에서만난고래야의여섯멤버들. 국악과타 전공자들이합류한파격적인구성이오히

려 풍성하고대중적인국악음악을만들어낼 수있는요소로작용하고있다. 03. 고래야는활발

한공연을통해잊혀가는소리들을현재에되살리고있다. ⓒ고래야 04. 정규2집 앨범발매 콘

서트포스터. 콘서트에서고래야는‘물허벅’, ‘활방구’등각종향토악기로무대를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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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재미노는재미,

수수의줄기를수수깡이라고해야하나, 수숫대로불러야하나? 원고를쓰면서먼저막히는부분이었다.

그래서사전을찾아보니다음과같이정의되어있었다. ‘1. 수수의줄기. 2. 수수나옥수수줄기의껍질을벗긴심.

미술세공의재료로쓴다.’ 그럼수숫대로써도되고수수깡이라고써도된다는말이다.

같은의미인데왜 이렇게달리쓰게되었을까?

추측하건데수숫대는아직수확하지않고밭에서 있는수수의줄기를말할때 쓰이고수수깡은베어서말린대를뜻하지않을까싶다.

글. 이상호 ((사)놀이하는사람들대표) 일러스트. 박근홍

수수깡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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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는 조, 피, 기장과 함께 고대로부터 주요 식량의 하나였다. 특

히 수수는 생육 기간이 다른 작물에 비해 짧고 척박한 땅이나 가

뭄에강해서구황식물의하나로각광받았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다음과같이명절의풍습을노래했다. ‘종로거리를나서니 길은십

자로 통했고 / 밤을 알리는 종소리 뗑뗑 들리는구나 / 신년에 온

나라는화간을허옇게세고 / 풍속에따라집집마다약밥을먹는구

나 (중략)’ 여기에서 화간禾竿이란 정월 대보름날 풍년을 기원하면

서 수수깡으로 벼나 조 이삭의 모양을 만들어 다는 것을 말하는데

수수깡이주술에이용되고있음을보여주고있다. 그밖에김경선(金

景善, 1788~1853)이 중국동지사로중국을방문한후 북쪽지방에수수깡

이 지붕의 재료, 거름, 울타리, 온돌의 자리, 곡식이나 과일 바구니,

연료등으로다양하게쓰이고있음을기록으로남기고있다.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수수깡의 쓰임이 많았다. 연료로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집의 벽을 만들 때 엮 어 기둥으로 삼고 양

쪽에 흙을 발라 쓰기도 하고, 얇은 부분만 추려서 발을 만들어 사

용했다는기록도있다.

이렇듯알곡에서부터수수깡까지쓰임이많았기에주위에서쉽게

구할수 있었고이는아이들의놀이감으로활용하기가쉬웠다. 놀

이감의활용중에으뜸이수수깡안경이다. 필자가초등학교(당시국

민학교)에 다니던70년대미술공작시간에꼭수수깡안경을만들었

던 기억이난다. 그런데이 글을쓰려고문구점에갔더니플라스틱

으로만든수수깡을주면서 이것밖에 없단다. 그래서수수깡의껍

질도써야한다고하니그건구할수 없다고한다. 재배면적이줄

고 손이많이가는데비해값이헐해서더 이상만들지않아플라

스틱으로대체된것이다. 급기야 시골에가서빈 들판을돌아다니

며 어렵게 수수깡을 구해서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안경을 만들었

는데속은없어서어쩔수 없 이플라스틱을이용해만들게되었다.

수수깡안경에과거와현재가함께있 게된 셈이다.

수수깡 안경은 가을에 수확한 수숫대를 비가 맞지 않게 말려 잘

보관해 두었다가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아래쪽은 속이 비

어 있어서중간이상을사용해야하는데만드는방법은다음과같

다. 하나, 속이 꽉 찬 수수깡을 20~30cm 정도 자른다. 둘, 껍질과

속대 모두를 사용해야 하므로 껍질은 벗겨 따로 놓아둔다. 셋, 속

대는가볍고잘 부러지므로조심해서다루어야한다, 안경을만들

기 위해서는 2cm정도길이의속대 5개, 3cm정도 2개가필요하다.

넷, 안경 알 부분은 껍질을 둥그렇게 휘어서 위쪽 반원을 만들어

속대에 고정하고 같은 방법으로 아래쪽을 만든다. 이와 같이 2개

를 만들면 안경 알이 완성된다. 다섯, 완성된 안경알을 연결할 부

위에 속대를 놓고 그 사이를 껍질로 찔러 고정시킨다. 여 섯, 안경

알 바깥쪽의 속대를 껍질(7~9cm)로 찔 러 안경다리를 만든다. 일곱,

끝 부분은 속대를 약 30°정도 비스듬히 찔러 귀걸이를 만든다.

맞은편도 이와 같이 한다. 여덟, 안경이 완성되면 써보고 간격을

조정한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젊은이나 아이가 안경을 쓴 경우

는 거 의없다. 따라서안경은노인의상징이요이는어른, 권위, 존

경의뜻으로이해되었다. 아이들이수수깡으로다른것도아닌안

경을 만든 것은 써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대한‘반란’

이었을것이다. 안경을쓰고할아버지흉내를내면서느린팔자걸

음을걷고또 헛기침도하면서남은수수깡으로만든곰방대를물

고 주위아이들에게헛 호통을치면이 에뒤질세라집으로달려가

서로만들었기에다른것도아닌수수깡안경이오랜전승력을얻

게 된 것이다.

큰 잘못을해도‘놀다가그랬는데’하면왠지악의로그런것 이아

니라고 여겨지는 것은 놀이가 가진 비일상-환상-상상에 대한 공

감 때문이다. 놀이란 어쩌면 이 런곳에서숨 쉬고활개칠수 있다.

이를 가장 잘 구현한 것 이 수수깡 안경이 아닌가 싶다. 수수깡 안

경을끼면괜히헛기침이나온다.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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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을붙이고여 리餘利를챙기는

예나지금이나사람들은시장에서물건을살 때 상품을탐색하고흥정하는과정을거 쳐구입을결정한다.

여리꾼은바로상인과고객사이에서흥정을붙여거래를성사시키고, 여 리餘利를 취하는사람이다.

직업인으로서여리꾼은호객꾼·중간상인의성격을갖고있으며, 일터는종로시전일대이고전속되지않는프리랜서라고할 수 있을것이다.

조선시대판매자와소비자사이에서흥정을붙이는중간상인은여리꾼외에도싸전의미곡거간,

가옥거래를중개하는가쾌(家 : 집주름), 물화의매매를주선하는객주등 다양한종류가있었다.

글. 박은숙 (고려대학교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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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꾼은남는이 익餘利을 얻는다는뜻도있지만, 열립군列立軍에서

유래된 말이다. 열립군은 종로 거리에 열을 지어 서서 고객을 기

다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리꾼의 출현은 조선의 상거래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시전상인은 대개 한 평 남

짓한 좁은 공간에 최소한의 상품을 진열하고, 퇴 청 바닥에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또한 다닥다닥 붙은 전방들은 상호나 판매물품

을 알리는 간판도 없었고, 가격도 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소비

자는자신이원하는물건을찾지못해시전거리에서헤매는경우

가 적지않았다. 이러한상인과고객의틈새를파고든 것 이바로

여리꾼이다. 여리꾼은 종로 거리에 열 지어 서 있다가 손님이 나

타나면다가가서어떤물건을찾는지를묻고, 해당전방에데려가

흥정을붙이고가격을조정하여거래가성사되도록했다. 이 때여

리꾼은상품에대한설명을곁들여구입을권장하고, 가격을조정

하는중간상인의역할을했다.

여리꾼은상인이작정한값보다높은가격으로물건을팔아주고그

차액, 곧 ‘餘利’를 챙겼다. 예컨대 상인이 10냥을 받으려는 상품을

여리꾼이흥정하여 12냥에팔게되면, 2냥은여리꾼이갖는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리꾼은 일단 물건 값을 높이 부르고, 깎아주면서

흥정을했다. 이 때 얼마나‘ 말품’을 잘 파느냐에따라거래의성사

여부가결정되곤했다.

여리꾼이자기몫의여리를많이챙기려면, 가게주인이작정한가

격을알아내어그보다비싼값에팔아야했다. 이 에손님이알아들

을 수 없는암호를사용하여가격을조정했는데그 암호를‘변어’

라고했다. 여리꾼이사용한변어는여 러종류가있었지만대개한

자의파자破字 원리를이용하였다. 예컨대 1은 천불대天不大, 2는 인불

인仁不人, 3은 왕불주王不柱, 4는 죄불비罪不非, 5는 오불구吾不口, 6은 곤

불의袞不衣, 7은 조불백 不白, 8은 태불윤兌不允, 9는 욱불일旭不日 등으

로 했다. 그것은 천天에서 대大를 빼면 일一이 되고, 인仁에서 인人을

빼면이二가 되고, 왕王에서기둥(柱)을 빼면삼三이 되고, 죄罪에서비

非를 빼면 사四가 되는 식이었다. 여리꾼의 암호는 상인과 고객 사

이 의거래를원활하게하는윤활유역할을하기도했지만, 대체로

상인과 여리꾼의 이익을높이기위한수단으로이용되었다. 자칫하

면 손님은바가지를쓰는‘호갱님(호구고객)’으로전락하기십상이었다.

시장을무대로활동한여리꾼은특정가게에전속된것 이아니었으

며, 아직점포를갖지못한가난한자들이대부분이었다. 그들은손

님에게상품을소개·안내하는길잡이역할을했지만, 때로는손님

을희롱하거나애걸하기도했다. 『한산거사漢山居士』「한양가」에 나오

는 육의전 일대 여리꾼의 모양새를 들여다보자. ‘대광통교 넘어서

니육주비전六注比廛 여기로다. / 일 아는여리꾼列立軍과 물화맡은시

전주인은 대창옷에 갓을 쓰고 소창옷에 한삼汗衫 달고 / 사람 불러

흥정할제 경박하기한이없다.’ 당시한산거사가바라본여리꾼의

흥정은경박하기한이없는모양새였다. 의리를중시하는조선사회

에서 이익을 쫓는 여리꾼은 천시되었다. 개항 이후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편입되면서여리꾼은사회적지탄의대상이되었다. 근대적

상거래를 추구했던 지식인들은 여리꾼을‘거짓말품’을 파는 사람,

‘‘악습’의 대명사로비판하고, 척결의대상으로여겼다. 일제강점기

때에도잔존해있는여리꾼을‘일종의비극’이라고한탄했다.

상인과고객사이에서공생과기생의관계를넘나들었던여리꾼은

근대이후시장에간판과광고가등장하고, 상품진 열방식이바뀌

고, 서비스개념이도입되면서역사무대저편으로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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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제국신문』, 『별건곤』

박은숙, 2008, 『시장의역사-교양으로읽는시장과상인의변천사』역사비평사

01. 김준근의『기산풍속도첩』에 보이는시장에설치한여막의모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2.1904년 조지로스가찍은숭례문앞 시장. 조선시대시장의전방들은간판도없었고, 가격도표

시하지않았다. 따라서소비자는원하는물건을찾지못해헤매는경우가적지않았다. ⓒ곽재

식 03. 김학수가그린조선시대시장풍속도. 시장을무대로활동한여리꾼은아직점포를갖지

못한가난한자들이대부분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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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의신화이야기

현대자동차그룹의초석이된 국내최초의고유모델포니가올해로양산40년을맞는다.

포니는 1973년 에개발에착수하여 1년 6개월만인 1974년 10월 완성되었고

바로열 린55회 이탈리아토리노모터쇼에서첫 선을보이면서세계언론으로부터

‘선 흐름이수려한차’라는평판속에집중적인관심을끌었다. 이 런포니는조랑말이라는의미를지니는데,

당시 5만 8천 여통의응모를통해차명이결정됐다고한다.

글. 안병하 (경영컨설턴트)

포니가 탄생되기까지에는 현대자동차와 창업자 정주영 회장을

빼놓을수 없다. 정 회장은 1946년 4월 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정

비소로 시작하여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하였다. 현대차의 첫

기술제휴는 포드로 1968년 소형차인 코티나를 시작으로 1969년

에는 중형세단 포드20M 등의 부품을 조립하며 기술을 익히던

현대는 1973년 포드와 합작투자 계약이 결렬된다. 이 때 정부는

자동차육성계획을 발표하는데 73%의 국산화 계획을 제출하지

못하는 회사에게는 부품수입을 금지한 조치였다. 결국 현대자동

차는 독자적인 고유모델 개발을 추진하는 계획을 세운다. 사실

현대자동차의 고유모델 개발은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포드사

의 기술을빌 려 5년 동안자동차조립생산의경험이전부였던현

대자동차는 이전까지 부품 하나 스스로 설계해본 적 없는 초보

였던 것이다. 또한당시국내시장은연간승용차수요가 2만대 미

만인데다 400억원 이 넘는 개발과 공장 건설비용, 5만대는 팔아야

수지타산이맞는엔진공장건설, 기술력부족등누가봐도가망성

이 없는 무모한 계획으로 반대의견이 거셌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는 신차 디자인과 차량 설계는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이끄는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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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게 맡기고 엔진, 트랜스미션, 액슬 등은 일본 미쓰비시

와 기술제휴를맺게된다.

포니는 요즘 승용차의 대세인 세단형이 아닌 패스트백 형태로 엔

진도 1,238cc, 1,439cc로 두가지이고 초기에는 수동미션만 있는

후륜구동형이었다. 그러나 1976년부터 포니의 판매실적은 어마어

마했다. 1976년 포니가판매될당시가격이 2백27만원부터시작되

었다. 지금의 차 값을 생각하면 싼 가격이지만 당시 일반 봉급자

월급이 5만원정도였다고하니포니가결코저렴한가격은아니었

다. 그럼에도 시판 첫 해인 1976년, 포니는 1만726대가 판매되어

당시국내승용차판매의절반에가까운43.5%라는놀라운시장점

유율을차지했다. 해외에서도포니의인기는대단했다. 1976년 7월,

남미에콰도르에다섯대의포니수출을시작으로중동, 남미, 아프

리카 등으로 수출국이 늘어나 첫해 1019대, 1978년 1만 2195대를

수출하며물량도꾸준히늘어나는성과를거뒀다.

1982년에는 모델 체인지로 포니2가 나와 1985년 에 사실상의 후계

차량인전륜구동포니엑셀이출시된후에도병행생산하다가, 연료

효율이떨어진다는이유로 1988년 4월 포니2의 생산이중단되었고

영업용LPG 택시가마지막으로1990년 1월에완전히단종되었다.

국내본격적인자동차대중화시대가열리기전 1970년대탄생한국

산 고유모델포니는우리나라자동차공업의자립과도약의발판이

되어준차종으로, 자동차산업과기술발전에획기적인역할을하였

다. 동네앞 도로에자가용이지나가면온마을사람들이신기한듯

눈을들어바라보던시절, 아직은거리에자동차가흔치않던 시절

이 불과40여 년전 우리의모습이다.

현대자동차의진정한역사는최초의독자모델포니와함께시작되었

다. 포니는한국산자동차역사의첫 페이지를장식하였으며한국인에

게 자동차에대한추억을남겼다. 포니를통해‘ 우리아버지의첫 차’,

‘ 생애최초의내 차’등즐겁고아련한기억을더듬을수있다.

현대자동차는 1986년 포니 엑셀로 자동차산업의 본고장인 미국에

성공적으로진출했고 1989년, 승용차생산 100만대를돌파했다.

이어 90년대 수출확대와 국내 대중화보급의 붐을 타고 기아자동

차를 인수하여 전 세계에 공장을 건설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완

성하였다. 현대차그룹은 2014년 8백만대 생산을 돌파하며 도요타,

GM, VW과 어깨를나란히하는글로벌메이커로성장하였다. 이 런

신화의출발점은누가뭐래도바로포니라고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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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국내최초의고유모델포니1. 포니는 1973년에개발에착수하여 1년 6개월만인 1974년 10월

완성됐다. ⓒ안병하 02. 포니의디자인과차량설계는조르제토주지아로가이끄는이탈디자

인이맡았다. ⓒ국산자동차이것저것(블로그) 03. 해외에서도포니의인기는대단했다. 1976

년 남미에콰도르에다섯대의포니수출을시작으로중동, 남미, 아프리카등으로수출국이늘

어났다. ⓒ국산자동차이것저것(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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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틱은 인접국인 말레이시아와의 갈등 속에서 유네스코 인류무

형문화유산(이하 유네스코 유산) 등재가 진행되었다. 종족적, 언어적,

문화적 특징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두 국가는 네덜란드 식민지

역은인도네시아로, 영국식민지역은말레이시아로독립하게되

었다. 1960년대첫 국경분쟁을경험한후, 양국은경쟁적이며갈

등적인관계를계속이어왔는데, 2000년대들어 이는문화적영

역으까지확장되었다. 인도네시아의전통예술로보다널 리알려

진 춤이나 음악, 연 행, 의복, 음식 등을 말레이시아가 자신의 전

통으로 소개하는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인도

네시아의 불만이고조되던중 말레이시아측이바틱을유네스코

유산에 등재하려한다는소문이전해졌다. 곧바로이를저지하기

위한움직임이인도네시아에서가시화되었으며짧은준비기간을

거 쳐 시도된 2009년 등재 신청은 유네스코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따라서바틱의 유네스코등재는인도네시아인들에게자신들의문

화적 전통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로, 나아가

말레이시아와의 문화적 대결에서 승리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

로 해석되었다.

그러나유네스코의발표가바틱의기원이나소유권을결정한것

은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의 주장처럼 바틱은 말레이시아에서도

오랫동안 이용된 기술이며, 두 나라 이 외 지역에서도 유사한 이

용 사례가 보고되어왔다. 따라서 유네스코의 결정은 바틱을 기

술적으로발전시키는데가장크게기여하고가장광범위하게이

용하고있으며그 보호를위한노력이가장활발한곳이인도네

시아임을천명한것으로이해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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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같은디자인의바틱의상을입은여고생들의행렬. ⓒ김형준 02. 짠띵을이용하여바틱에

왁스를입히는과정. ⓒ김형준

변화에끊임없이적응하며존재하는살아있는전통유산

현재까지여섯종류의인도네시아문화유산이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에등재되었다.

이중사만(saman: 수마뜨라섬가요사람의전통춤)과 노껜(noken: 매듭이나직조방식으로만든빠뿌아지역의가방)은 긴급보호가필요한유산에속한다.

앙끌룽(angklung: 대나무악기), 와양(wayang: 그림자인형극), 끄리스(keris: 단도), 바틱(batik: 왁스의저항력을이용한염색기법) 등

대표목록에등재된나머지유산은2억5천여만명의인구중 2/3 정도가거주하는자바섬을중심으로발전했으며

대중에의해광범위하게이용되고있다.

글. 김형준 (강원대학교문화인류학과교수)

인도네시아바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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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 완성하기까지 한두달이 소요되는 경우가 보통이었고 정교

한 작업이 요구되는 바틱의 경우 6개월 이상이 소요됐다.‘바틱

짭’의 등장으로인해작업과정이짧아지고대량생산이가능해졌

지만, 여전히 힘들고 오랜 수작업을 거 친‘바틱 뚤리스’가 가장

완성된형태의바틱으로인정된다.

바틱의 디자인 속에는 전통의 고수와 외부 영향에 대한 개방성이

공존한다. 전통에 대한강조가가장뚜렷이드러나는지역은전통

왕국의영향력이강한중부자바로기하학적디자인, 동일한모티

브의반복, 단조로운색 이선호되며, 새로운디자인의유입이상대

적으로 제한적이다. 반면 자바 북쪽 해안지역에서는 화려한 색채

의 꽃과구름, 동식물을이용한디자인이선호되며, 다양한디자인

과 색 이실험되어왔다.

바틱을구분하는방식중의하나는외부로부터의영향에기초하는

데, 힌두불교식바틱, 이슬람식바틱, 중국식바틱, 인도-페르시아식

바틱, 유럽(네덜란드)식 바틱, 일본식바틱으로대별된다. 힌두불교의 영

향은신화에등장하는가루다(garuda), 연꽃, 용등으로표현된다.

바틱은 왁스(밀랍이나 파라핀)의 저항력을 이용한 염색방법, 그리고 이

러한방식으로만든천을일컫는다. 바틱제작의첫 단계는면이나

비단같은천을적당한크기로자르고왁스와염료가잘 스며들도

록식물성기름에담가건조한후 다듬이질을하는작업이다. 두번

째 단계는준비된천에원하는디자인을입히는과정이다. 숙련된

제작자의경우밑그림없 이천에직접작업을하기도하지만, 보통

은 천에 밑그림을 그려둔다. 이후 짠띵canting이라는 도구가 이용된

다. 짠띵은 나무로 된 손잡이, 왁스가 담긴 구리통, 왁스가 조금씩

흘러나오는부리로구성되며, 제작자는짠팅을손에쥔 채 점과선

의 형태로 밑그림 위에 왁스를 입힌다. 가장 완성도 높은 형태의

바틱은천의앞뒷면모두에동일한디자인을입힌것으로, 한쪽면

을 작업한 후 다른 면에도 동일한 작업을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는많은시간과노력이요구되기때문에그 결과물은가장훌륭

한 형태로 인정되며, 손으로 디자인을 그렸다 하여 ‘바틱 뚤리스

(tulis: 그리다)’라 불린다. 보다 효율적인 가공을 위해서는 짭(cap: 도장)

이라는동판이이용된다. 특정한디자인이새겨진동판을, 녹인왁

스에담근후 천에찍어누르면왁스를넓은면적에입 힐수 있다.

손으로 만든 바틱과 구분하여 이렇게 만들어진 바틱은‘바틱 짭’

이라 부른다. 세번째 단계는 염료를 푼 물에 왁스 작업이 끝난 천

을 넣어 염색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천연식물에서 나온 염료를

이용하여주로베이지색, 파란색, 갈색, 빨간색, 검은색등으로염색

했지만, 화학염료가이용된후다양한색의염색이가능해졌다. 염

색할물에담그는시간과횟수를통해색의농도를조절하는데, 짙

은 색으로 염색하기 위해서는 며칠 동안 천을 담가 놓는다. 염 색

작업이완료되면천을삶아왁스를제거한다.

한번의 작업으로 한가지 색을 입힐 수 있 기 때문에, 다양한 색으

로 된 바틱을 얻 기 위해서는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열가지

색채의 천을 얻고자 한다면 열번의 왁스 및 염색 작업이 필요하

다. 이러한 제작상의 특징으로 인해 바틱 생산에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요구된다. 전통사회에존재했던성별, 계층별, 지리적구

분은바틱생산을더욱비효율적으로만들었다. 보통바틱생산의

계획과관리는귀족집단의여성이, 왁스작업은일반인여성이, 염

색 작업은 이를 전문으로 하는 남성이 맡아 했다. 따라서 한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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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03. 특정한디자인이새겨진동판을녹인왁스에담근후천에찍어누르면왁스를넓은면적에

입힐수 있다. 이렇게만들어진바틱은‘바틱짭’이라불린다. ⓒ유네스코 04. 바틱에이용되는

재료와도구. ⓒ김형준 05. 밑그림이그려진천을손에쥐고점과선의형태로왁스를천 위에입

힌다.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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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이슬람의영향은아랍식캘리그래피와기하학적디자인으로,

인도-페르시아의 영향은 공작, 코끼리로 나타난다. 이후 네덜란드

의 영향을통해꽃다발, 동화, 집, 말, 자전거와같은디자인이유입

되었고, 중국으로부터 불사조, 용, 구름과 같은 모티브가 유입되었

다. 인도네시아를짧은기간식민지배했던일본은벚꽃, 국화, 나비

등의영향을남겼다.

수작업으로 디자인을 하는 제작방식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모든

형태의디자인이바틱소재로이용되고있다. 또한의복의영 역을

넘어서다른품목으로까지적용범위가확대됨에따라보다다양

한 디자인이수용될수 있었으며, 그림을그리듯바틱기법을이

용하는경우까지나타났다. 이러한변화에도불구하고전통디자

인은바틱문화를요약적으로보여주는상징으로서여전히대중

으로부터선호되고있다.

전통사회에서바틱은특정집단의전유물이아니었으며인도네시

아인, 특히자바인의생활에널 리녹아들어있었다. 하지만서구의

영향력이 확대된 20세기 초반부터 바틱의 위상은 약화되는 양상

을 보였다. 서구문화가 선호되고 전통이 경시되는 상황에서 서양

식 옷이득세했는데, 독립후 첫 대통령인수까로노는공식석상에

서 서구식복장을고집함으로써이러한경향을더욱강화시켰다.

이처럼 주변화되어 가던 바틱 전통은 1970년대 들어 부활의 날개

를펼쳤다. 전통에대해호의적태도를견지한수하르또정권하에

서 바틱을포함한전통예술은부흥의전기를마련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바틱은공식복장으로인정되어대통령을포함한정치인들

이 바틱셔츠를 착용한 모습이 매스컴을 통해 빈번하게 보도되었

고, 이는일반인에게도큰영향을미쳤다. 또한경제성장에따른구

매력증가는모든계층이바틱을소비할수있도록해주었다.

말레이시아와의갈등상황에서이루어진유네스코유산등재는바

틱에대한정부지원을강화시켰다. 매주금요일이공무원의바틱

착용일로지정되고일반사기업역 시이 정책을뒤따르게되자바

틱을 입고 근무하는 직장인을 찾아보기가 쉬워졌다. 전통적 바틱

디자인의활용역 시확대되어기차, 버스, 항공기의외관을바틱디

자인으로장식하기도했으며바틱천이나디자인을이용한생활용

품역 시확산되었다.

바틱을 장려하는 국가정책, 바틱 사용영역을 확대하려는 창의적

시도로인해오늘날바틱은인도네시아의문화적정체성을상징하

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와 함께 강조되어야 할 점은 바틱에 대

한 일반인들의선호도이다. 전통복장이면서동시에현대적복장으

로 바틱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일반인들은 바틱 옷과 생활용품을

일상에서 애용한다. 이 런 의미에서 바틱은 시대적 변화에 끊임없

이 적응하며존재하는살아있는전통유산으로기능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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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위례성에 이은 백제의 두 번째 도읍으로, 백제 제25대 무

령왕과 왕비의 무덤인 무령왕릉은 공주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무령왕은한강유역을고구려에빼앗긴뒤 혼란에빠져있던백제

를안정시키고, 찬란한문화를일궈냈다.

‘공주할머니이야기보따리인형극’은공주지역에전해내려오는

전설을재미있게구성한공연으로, 공주역사를빛낸무령왕의이

야기를인형극형태로꾸며흥미롭게배울수 있는프로그램이다.

특히 할머니가 들려주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달해,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무령왕의 업적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인

형과만나는시간도마련해아이들의호기심을이끌어내고있다.

또한 인형극의소재가된 현장을돌아보며문화재를생동감있 게

느껴보는‘해설이 있는 문화재 배움터’를 운영, 무령왕 이야기가

펼쳐진 현장을 직접 둘러봄으로써 더욱 생생한 역사학습이 이루

어지도록하고있다.

0201

공주는역사·문화적으로오랜전통을간직한고장이다.

지 역곳곳에는선사시대부터현재에이르기까지우리민족의역사와궤를함께한유적들이즐비하다.

이는조상이남긴문화유산을소중히아끼고잘 보존하는일 에대해지역민들의공감과실천이뒤따랐기때문이다.

글. 성혜경 사진. 공주시

찾아가는공주전래이야기생생체험

할머니가들려주는옛날옛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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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는향후에도다양한소재개발로인형극공연을더욱활성

화시키고, 문화재 모형만들기와 같은 새로운 체험활동을 새롭게

기획함으로써참가자들이흥미진진하게공주의역사와문화를이

해할 수 있도록 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공주 문화자원의 브

랜드를높이고나아가문화재에대한가치를널 리알리는데 기 여

하는것 이목표이다.

03 04

43

문화재를답사한뒤에는지역주민들과함께전통놀이를체험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어린이들은 쌍육, 참고누, 투호, 비석치기, 딱지

치 기, 제기차기, 죽방울 놀이 등 생소한 옛 놀이를 체험함으로써

전통문화를보다가깝게느낄수있다.

한편관내유치원, 초등학교등을직접방문해‘공주할머니 이야

기 보따리인형극’을 실시하는등‘찾아가는’공연을통해다양한

계층에대한문화체험기회를마련하고있다.

이와 같은 공주시의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은 지역의 문화유산과

전래 이야기를 결합한 창의적인 형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

고 있다. 즉 인형극이라는매체를통해참가자들의관심을이끌어

내고 있으며, 더불어 지역의 역사문화에 담긴 의미를 보다 알기

쉽게이해하고그가치를공감하고인식하도록돕고있다.

또한 공주시민들에게는 지역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정

체성을 갖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공주시민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형극지도사와 전통놀이지도사가 참여해 지역민들도 다

시 한 번 공주의 역사를 돌아보고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즉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하는‘참

여형 문화재 자원보존’이라는 긍정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01. ‘인형극의소재가된 현장을돌아보며문화재를생동감있게느껴보는‘해설이있는문화재

배움터’. 02. ‘공주할머니 이야기보따리인형극’ 공연후 배우들과어린이들이기념촬영을

하고있다. 03. 문화재를답사한뒤에는지역주민들과함께전통놀이를체험하는자리도마련

된다. 어린이들은옛놀이를체험함으로써전통문화를보다가깝게느낄수있다. 04. 공주지역

에전해내려오는전설을재미있게구성한‘ 공주할머니이야기보따리인형극’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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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국도를 타고 논산에서 익산시 왕궁면을 지나다 보면 오른쪽

으로외롭게서 있는석탑하나가눈에들어온다. 이 석탑이바로

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오층석탑이다. 탑의 모양은 부여 정 림

사지오층석탑과쌍둥이처럼닮아있다.

멀리서보면그저망한절에석탑만덩그러니남아있는것 같지

만 알고보면이곳이백제 왕궁터라고한다. 아니백제의수도는

한성, 웅진, 사비의 세군데로만 알고 있는데 백제의 왕궁터라니

새로운정보에고개를갸웃거렸다.

먼저석탑주변을살폈다. ‘왕궁리유적전경’이라는항공사진안

내판을 보니 왕궁 입구의 문터를 비롯한 왕궁터 구역과 석탑을

비롯한 사찰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아직 발굴이 끝나

지 않은 유적지를 둘러보고 왕궁리유적전시관으로 발길을 돌렸

다.

왕궁리유적전시관은유적남쪽에건립되어 2008년 에 개관한전시

관으로 이곳에서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소개하고

출토 유물을 전시하는 문화교육장으로, 박물관이라고 보기에는

규모가작았다. 둥근모양의건물과좌우에돌로쌓은건물은묵

직해보였다. 마치전시된출토유물의가치를상징하듯이.

전시관은상설전시관과기획전시관, 그리고체험학습을할 수 있

는 장소 등 세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시관에는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해 놓았고, 발굴 자료를 토대로 왕

궁에서의생활과왕궁에서사찰로변화된사실을설명해놓았다.

그리고무왕의천도이야기가소개되어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보니 익산 왕궁리 유적이 백제 왕궁터라는 사실이

자료를통해서자세히설명되어있었다. 먼저무왕이이곳에천도

하여정사를경영하였다는관세음응험기의내용을처음으로보여

주고있다. 그리고왕궁의부속시설로생산시설인공방지와대형

화장실 3기, 석축배수시설등 출토된유물과사진으로알기쉽게

설명해주고있다. 특히금제품, 유리제품, 동제품을제련하는과정

에서 나오는 찌꺼기인 슬레그, 도가니 등이 출토되어 귀한 물건을

제4의 백제왕궁, 익산왕궁리유적

백제의 30대 왕인무왕은익산에서태어나어 린시 절마를팔면서가난하게살았다.

서동요를지 어신라진평왕의셋째딸인선화공주를아내를맞아들이면서지혜로운인물로세상에알려졌다.

백제의왕으로옹립된무왕은무너진왕권을강화하고백제를부흥시키기위하여자신의고향인익산으로천도하고자했다.

그 역사적진실이지금익산시왕궁면왕궁리에유적으로남아있다

글·사진. 임영선 (충청남도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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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사랑과 만나다> 코너는 독자 여러분이 만드는 코너입니다. 여행에서

만난문화재, 내가가장사랑하는문화재, 우리역사의흐름을알 수있었던박

물관 등 문화재와 관련된 독자 여러분의 기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해진

주제는없으며문화재에관한소중한이야기, 나누고싶은이야기를언제든지

보내주시면, 기쁜마음으로지면에싣도록하겠습니다. 아래양식에맞는원고

와사진을연락가능한전화번호와함께보내주세요.

·원고분량 : A4용지기준 1장(10pt)

·사진 : 해당여행관련사진5매 이상

·보내실곳 : 문화재청대변인실김수현([email protected])

독자참여안내

01. 왕궁리유적전시관. 유적발굴·조사과정에서확인된내용을소개하고출토유물을전시하

는문화교육장으로활용되고있다. 02. 구릉정상부건물지의방형초석. 03. 익산왕궁리오

층석탑전경. 탑의모양은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과쌍둥이처럼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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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내는왕궁시설임을증명하고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에 대형 화장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형

화장실은땅을파고나무기둥을세우고분변이밖으로나가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지하수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벽에 방

수처리를했다니백제인의지혜에놀라움을금할수 없었다. 백

제시대때 지금과같은공동화장실이있다는새로운사실을알

게 되어‘유레카’라고외치고싶었다.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는 고유명절 민속놀이 체험, 시민과 함께

하는문화강좌등 다양한행사를연다고한다. 특히매월넷째

주 토요일 6개 코스의백제무왕관련유적을걸어서답사하는

‘‘무왕길을따라떠나는여행’은 가족끼리참가하면문화유적답

사를통해역사체험과동시에가족간에대화도할 수 있고건

강도 챙길 수 있어서 무척 좋은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 임

과 놀이 문화에 빠져 있는 청소년을 자녀로 둔 가정에서는 꼭

한번다녀가길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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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유환석

1452년 단종은12살이라는어린나이로왕위에오르고, 숙부수양대군은단종이나이가어려정사를잘돌볼수없다는이유를들어정권을장악한다.

3년 뒤, 수양대군은결국‘ 계유정난’을일으켜단종을보좌하던김종서와황보인을격살한다.

세희공주는아버지로인해죽음을맞은대신들을보며안타까움을감추지못했고, 이에세조는벌을주고자공주를궁에서내친다.

충격을 받은 세조는 지난날을 속죄하기 위해10년간불공을드리며참회한다.

얼마후세조는정희왕후에게세희공주가원인모를병으로갑자기죽었다는뜻밖의이야기를듣는다.

이제속이시원하십니까?흑흑

비나이다.비나이다......

다시말씀해보시오.정녕공주가죽었단말이오?

전하, 끝까지지켜드리지못한소신을용서하옵소서.

그러던어느날세조는불공을드리고궁궐로돌아가던길에세희공주의모습을빼닮은사내아이를발견한다.

수양대군은조카를밀어내고왕위에올라세조가됐고, 김종서의가문은산속에숨어사는신세가됐다.

?

감히나를책망하는것이냐? 공주가되고싶지않다면당장궁궐을나가거라.

멈추거라!...... 네 이름이무엇이냐? 아니, 네 어미의이름이무엇이냐?

제... 제 어머니의함자는...

아버님으로인해목숨을잃은대신들의한 맺힌통곡이들리지않으십니까?

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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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아이를따라간집에는놀랍게도죽은줄만알았던세희공주가있었다.

궁궐을빠져나온세희공주는길을헤매다그만산에서구르고마는데...

다행히도지나가던한남자가쓰러져있는공주를발견한다.

이게꿈이냐생시냐. 네가살아있었다니!

아버님이어찌여길......너는...

앗!이런곳에사람이쓰러져있다니!

누구시죠? 여긴어딘가요?

아버님의청을거절하고떠나는소녀를잊어주세요.

정신이좀드십니까?

남자의도움으로공주는목숨을구하고, 이 일을계기로두사람은혼인을올렸다.

너희두사람에게무슨죄가있겠느냐. 지난일은모두잊고이제궁에서함께살자꾸나.

운명의장난이었을까? 그남편은다름아닌김종서의손자였다. 원수의집안이혼인의연을맺게된 것이다.

모든사연을알게된세조는세희공주에게가족과함께궁으로들어와살라고말한다.

하지만세희공주는세조가알지못하는곳으로떠나세조에게평생짊어져야하는아픔을남긴다.

이 이야기는계유정난을배경으로 141편의설화가수록된『금계필담(錦溪筆談)』에 전하는야사로그진위여부를판명하기는어렵다.

한편저자인서유영은책의말미에자신에게이야기를들려준사람이철종때의승지박승휘라고밝히고있다.

알고보니정희황후가세조의진노를산공주가해를입을까걱정하여멀리도망치게했던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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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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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財』온라인논문투고시스템(jams2.0)

도입에따른논문투고및 회원가입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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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학술연구논문집『文化財』 제48권 제2호부터‘ 논문투고-접수-심사-게 재’에 이르는전 과정을온라

인으로진행합니다. 온라인투고를통해논문투고및 심사과정을실시간으로확인할수 있으며온라인원문서비스를

받을수있습니다.

가입방법

국립문화재연구소『文化財』온라인논문투고시스템 (http://nrich.jams.or.kr) 접속후회원가입

원고모집및발간일정

문의 담당자 | 김혜정 (042-860-9166), 조선영 (042-860-9139) / 이메일 | [email protected]

회원 일자 분야

원고모집 수시모집고고학, 미술문화재, 무형문화재, 건축문화재, 자연문화재,

보존과학등문화유산전분야

발간

2015. 3. 30 제48권 1호 자연/보존과학(특집) + 기타분야

2015. 6. 30 제48권 2호 건축/고고학(특집) + 기타분야

2015. 9. 30 제48권 3호 고고학(특집) + 기타분야

2015. 12. 30 제48권 4호 미술/무형(특집) + 기타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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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변국과의 역사분쟁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관심

이 높아진 가운데, 우리 문화재 보호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외국

계 기업이있 어눈길을끌고있다. 미국에본사를두고있는라이

엇게임즈가 그 주인공이다. 라이엇게임즈는 게 임 콘텐츠를 제작

하기위해여 러분야의문화를공부하면서우리문화유산의소중

함을인식하게됐으며, 게 임플레이어들에게그 가치를전해야겠

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라이엇게임즈는 2012년 6월 문

화재청과‘한 문화재한 지킴이’ 협약을맺고현재까지지속적인

문화재보호활동을전개해나가고있다.

최근에는국립고궁박물관소장조선왕실유물에대한보존처리를

성공적으로마무리했다. 이는조선시대국왕행차시 행렬주변에

세우는 의장물인‘노부鹵簿’에 대한 것으로, 지난 2012년부터 2년

여 에 걸 쳐 작년 12월 모든 작업이 완료됐다. 아울러 2014년 초에

는 조선시대 불화인 <석가 삼존도>를 미국 허미티지박물관에서

반환하는데소요된비용일체를지원했으며, 2013년 10월에착수한

서울문묘와성균관에대한 3D정밀측량사업과유적지안내판개

선작업도 2014년 7월 경 완료했다. 또한‘한양도성걷기’, ‘ 성균관

에서의전통예절교육’등플레이어를대상으로한역사교육프로

그램도꾸준히이어오고있다.

라이엇게임즈의 문화재 보호 활동의 키워드는‘지속’과‘참여’이

다. 단기적이고이벤트성의활동을지양하고임직원을비롯해게

임 플레이어들도함께참여할수있는활동을전개해나가고있다.

라이엇게임즈는2015년에도다양한프로젝트에대한지원을이 어

나갈예정으로, 해외문화재반환기금지원, 국내문화재구입 기

금 지원, 조선왕릉보호및 관리를위한차량지원, 청소년을위한

방송콘텐츠제작지원등을추진한다. 또한해외문화재반환기금

마련과 관련해서도 문화재청 및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꾸준히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활동

을 통해우리문화유산보호에이바지하고기업의사회적책임을

성실히실천해나갈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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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참여하고성실히실천하는문화재사랑

라이엇게임즈

글. 성혜경 사진. 라이엇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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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퍼즐 독자의소리•2015년 3월호문제입니다

•정답및 당첨자는다음달호에서확인하세요.

※2015년 2월호당첨자입니다.1. 수수의줄기. 또는수수나옥수수줄기의껍질을벗긴심. 미술세공의재료로쓴다.

3. 해안·강변등에살던선사시대인이버린조개·굴등의껍데기가쌓여서무덤처럼이

루어진조개무지.

5. 시우쇠를불려강철을만듦. 또는그강철.

8. 조선제7대 왕. 조카인어린단종을제거하고무력으로왕위를찬탈했다.

10. 누에고치에서뽑은가늘고고운실.

11. 충청북도제천시모산동에있는고대수리시설로명승제20호이다.

12. 유교의도덕에서기본이되는세가지강령.

14. 두사람이청·홍의장기짝을규칙에따라번갈아두면서겨루는놀이.

15. 남의아이에게그어머니대신젖을먹여주는여자.

16. 천막따위를치고훈련이나휴양을할수있도록만들어놓은야외의장소.

17. 글을읽고그뜻을밝힘. 또는그런과목.

20. 떼를지어돌아다니며재물을마구빼앗는사람들의무리.

21. 아내가멀리떠난남편을기다리다가죽어서화석이되었다는설화속의돌,

22. 중국북동부, 요동, 길림, 흑룡강성의3성으로이루어진지역.

23. 상대편에게눌려굽실거리는낮은자세.

1. 수돗물을사용한데 대한요금.

2. 폭력을쓰면서행패를부리고못된짓을일삼는무리를속되게이르는말.

4. 썩 영리하고재주가있음.

6. 강의하는데 쓰는방.

7. 우량목재를생산하기위하여나무하부의가지일부를잘라주는일.

9. 아침에세개, 저녁에네 개라는뜻으로, 잔술수를이용해상대방을현혹시키는모습을

뜻함.

13. 낮에는농사짓고밤에는공부한다는뜻으로, 바쁜틈을타서어렵게공부함을뜻함.

14. 분량이나시간상의길이따위가예상보다상당히많거나긺을나타내는말.

17. 강한적수. 또는만만찮은상대.

18. 석회동굴의천장에서종유석이바닥까지성장하여석순과맞닿은돌기둥.

19. 명성(名聲)과인망(人望)을아울러이르는말.

20. 지질시대의퇴적암안에퇴적물과함께퇴적된동식물의유해나흔적.

22. 바람이나경축, 환호따위를나타내기위하여두손을높이들면서외치는소리.

‘포용’이라는단어는지금우리가살아가고있는이 시대에가장필요하면서도아쉬운부

분임을일깨워주는좋은글이었습니다. ‘왕따’, ‘갑질’등다른이들을포용하지못하고배

려하지못하여생긴단어들이하루빨리우리곁에서빨리사라지길바랍니다.

마당에관한글을읽고서잊었던추억이새록새록되살아나고향집으로달려가게합니다.

사실마당은어린시절온종일뒹굴어도싫증이없던안식처와도같은공간이아닌가생각

합니다. 우리아이들에게도꼭필요한곳인데사라져가는모습에안타까움이앞섭니다.

초당두부기사를잘읽었습니다. 예전어머니께서직접만들어주신두부의고소한향이

기억에남습니다. 두부요리도여러종류가있지만, 제겐유부로만든초밥의맛이일품

이었습니다. 하지만두부의부산물인비지에대한이야기가없어조금은아쉬웠습니다.

배고팠던시절비지요리의기억이간절해집니다.

이야기로만들었던승경도를이해할수있었고자세히알게되어참좋았습니다. 놀이문

화속에서도조상들의지혜가스며들어있는듯합니다. 민족의명절인설을맞아스마트

폰과게임에빠진아이들에게설명해주고같이놀이할수있게승경도판을부록으로책

자에끼워주셨으면하는아쉬움이남습니다.

여러가지사유로주로집안에서지내는데, 비행기를타고해외나들이를할수있었던뱅슈

카니발을기쁘게읽었습니다. 매우생소한내용의기사라더욱즐거웠고우리와는많이다른

문화를만나는기쁨을누렸습니다. 긴 설 연휴를문화재사랑과함께기쁘게보낼수있어더

욱좋았습니다.

2015년 2월호 <옛 놀이의 즐거움>에서‘ 동쪽이 붉은색’을 ‘동쪽이 청색’으로, ‘남쪽이 파랑

색’을‘남쪽이붉은색’으로바로잡습니다.

“여러분의소중한의견에귀를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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