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운동, 길을 묻다. · 2017-12-16 · 인권교육운동, 길을 묻다.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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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운동, 길을 묻다. 2017년 12월 14일(목) 이룸센터 인권교육센터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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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운동, 길을

묻다.

2017년 12월 14일(목) 이룸센터

인권교육센터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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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진행

✤ 사회> 우돌(인권교육센터 들)

[1부] 2:30 ~ 3:00 발제> 묘랑 (인권교육센터 들)3:00 ~ 3:10 토론1> 밍구 (장애인권교육 활동가)3:10 ~ 3:20 토론2>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3:20 ~ 3:30 토론3> 명인 (전남청소년노동인권교육 활동가)3:30 ~ 3:45 질의응답

[2부]3:45 ~ 4:00 모둠토론 방식 소개, 모둠 이동 / 쉬는 시간4:00 ~ 4:30 모둠토론4:30 ~ 5:30 모둠토론 공유 및 고민 나누기,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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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랑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교육운동, 길을 묻다

지금은 인권교육이 비교적 널리 보급됐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인권교육은 생경

한 말이었다. 인권교육은 어떤 맥락 속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한 걸까? 당시 인권교

육을 일구었던 류은숙 활동가의 이야기 속에서 그 출발을 짚어보자.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인권운동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전환

기를 맞이했다. 그 이전 민주화운동은 민권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군사독재정권

에 의한 통치 속에는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넘쳐났지만, 권리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국민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말이었다. 문민정부 시

대로 들어서면서 개인의 권리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어린이나 재소자 등 사회에

서 배제된 존재들의 권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당시로써는 굉장히 낯선 의제였고, 그 때문에 인권

운동은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로 인식의 전환을 위한 인권교육을 내걸었다. 그

러나 인권활동가들조차 인권이 무엇인지, 인권교육은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진

행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참고할만한 이론서 하나 없던 시절이었다. ‘인

권교육’은 시작됐지만, 기존의 교육 방식 그대로 변호사나 교수 등의 전문가를

통해 법 강의를 듣는 그 이상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90년대 중반 해외 인권교육과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교육가는 질문만 제시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듣기만 하던 참여자들

이 끊임없이 토론하고 움직여야 했다. 지금 많이 하는 ‘참여형’ 교육을 거기

에서 배웠다. 인권을 공통분모로 모였지만 참여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는 매우

컸고, 그 차이를 나누는 과정에서 다른 참여자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

다. 권리는 각자의 삶의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인권교육은 그 한 사

람 한 사람의 삶에 주목하는 과정임을 발견했다. 여기서 배운 것을 응용해서 인

권교육을 시도했는데, 하다 보니 이론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다른 활동가들

과 국제인권법을 소재로 조문을 읽고 토론해가면서 내용을 채우고 인권교육가

의 역량을 키워왔다. 살면서 '이런 거 필요한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미 권리로서 세계적 약속으로 선언되어 있었고, 이를 인권교육을 통해 확산시

켰다.”

우리가 지금 실천하고 있는 인권교육은 인권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

던 인권활동가들의 열망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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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우리의 마음을 지켜내는 일

인권운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권리의 주체, 변화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풀무질한

다. 인권운동이 인권침해가 발생한 곳에 영웅처럼 등장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

니라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말하고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북돋고, 동행

한다는 의미이다. 인권교육과 인권운동이 다르게 인식되지 않았고, 인식과 실천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인권교육 한다고 세상이 바뀝니까?”

활동가 중에는 인권교육과 인권운동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인간다움’과는 거리가 먼 이들의 삶을 마주하면서, 당장 구체적인 변화가 절실

했던 만큼, 효과적인 것은 시위나 농성, 집단행동이었고, 이러한 직접행동만을 운동

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인권교육은 인권의 역사나 세계인권선언을 비롯

한 각종 규약과 법, 제도에 대한 ‘수업’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식의 변화 없는 실

천은 공허하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인식의 변화는 무용하다.

나는 사실 교사들을 위한 ‘인권 직무연수’ 이런 건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진보적 교사운동과 인권교육 활동을 함께했지만, 인권교육 활동은 내 취미 생활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활동을 해볼수록 싸워서 무언가를 얻고 이기

는 것만이 운동은 아닌 것 같아. 인권연수 자리에서 우리가 우리의 상처에 관해

얘기하고 다시 힘을 얻는 것처럼 (우리를 억압하는) ‘그들’에 관계없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소중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마음이 단단

해야 현장에 가서 뭐라도 해볼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 조영선(교사 ‘인권직무연수’를 기획, 참여했던 교사)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일궈내는 크고 작은 도전들 모두가 운동이

라는 이야기 속에서 교육이 곧 운동이고, 운동이 곧 교육임을 확인하게 된다. 인권

교육은 ‘주눅 들지 않고 버티는 힘’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며 그래서 인권교육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큰 행동이자 실천이다. ‘교육’과 ‘운동’을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고 앎을 통한 행동과 실천을 북돋는 과정으로써 인권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

지난 30여 년간 인권운동은 생소했던 ‘인권’을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로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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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누구나 인권이 있다는 생각은 사회 전반의 인권감수성을 높였고, 어린이 청소

년, 장애인, 노숙인, 이주민 등 영역별 운동으로 성장해 왔다. 장애운동은 장애운동

대로, 어린이․청소년인권운동은 어린이․청소년인권운동대로 각자 필요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데 힘썼고, 관련 법률이나 조례는 사회적 인식전환을 위해 인권

교육 이수를 명시했다.

인권교육은 제도화를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 공부방과 같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있는 곳은 물론 그

동안 인권침해의 가해 당사자이기도 했던 공무원 사회와 군대로까지 확장되었다.

제도화는 많은 사람이 인권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고,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러한 변화들이 반갑지만 제도화 이후에 현장에서 연

출되는 풍경들은 인권교육이 본연의 가치와 지향을 실현하고 있는 것인지 우려스럽

기도 하다.

“인권은 배려입니다.”라고 인권을 설명하는 인권교육을 접할 때, 시설 원장이 인

권 강사로 활동하면서 자기 시설의 직원들 인권교육을 하는 경우나 시설종사자가

자신이 근무하는 시설의 거주인을 교육한다고 할 때, 장애인권교육에 몇 번 참여했

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만 계속해서 들었다는 이야기

를 접할 때, 학교가 학생인권교육은 꺼리면서 노동인권교육이나 보편적 인권교육은

환영하는 모습이나 가정통신문으로 인권교육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인권

교육가 양성과정이 아동, 장애인, 노숙인, 스포츠, 이주 분야 등 주제중심으로 분리

되어 진행되는 상황을 접할 때면 인권교육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인권

교육이 양적으로만 확대되었을 뿐 오히려 본래 지향했던 가치와 철학은 축소, 왜곡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겼다.

지금 우리가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 만드는데 필요한 인권교육의 가치와 지향을

짚어보려는 이유이다. 여러 인권교육가가 그동안의 교육 활동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인권교육이 인권교육답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몇 가지

키워드를 찾아보았다.

§ 모순이나 갈등을 얼버무리지 않는다

‘그러니까요~’학생이나 시설 거주 장애인, 이주민이나 이주 배경 아동 등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과 만남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일상 속에서 경

험하는 부당함과 억울함을 한껏 쏟아낸 후 이를 인권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과정에

서 나오는 맞장구라고 할 수 있다. 짧은 교육시간이지만 평소 겉으로 표현하지 못

했던 마음이나 말들을 표현해보면서 참여자들은 당당하게 자기 권리를 외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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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서 아이디어와 힘을 얻는 참여자 중에는 실제 생활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

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그럴 때 교사나 학부모들은 종종 이러한 행위를 이

기적인 태도나 무책임한 행동으로 간주하면서 당사자들의 권리 주장을 무력화하려

고 한다.

• “인권교육 했더니 아이들이 자기 권리만 주장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

르는 것 같아요.”

• “학생인권만 강조하니까 교권이 침해되고 있어요.”

• “장애인 인권만 중요하고 종사들에게는 인권이 없나요?”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점했던 이들은 인권을 타인을 향한 배려나 윗사람에 대한 예

의와 동일시하면서 ‘네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권리도 배려하라.’라

고 충고한다. 그러나 인권은 타인의 호의에 따라 실현되거나 멈춰 서는 것이 아니

다. 오히려 인권교육은 배려나 예의가 갖는 일방성과 가변성을 짚고, 누구나 동등하

게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학생인권과 교권, 장애인 인권과 종사자 인권과 같이 인권을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관계로 만들어 버릴 때 사회적 약자들은 더는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인권교

육은 이러한 상황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로 얼버무리지 말고, 조목조목 관

계와 맥락을 따져 가치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여성, 장애인, 학생, 성소수자

등의 정체성에 인권이라는 말을 붙여 명명하는 이유는 각 정체성이 갖는 사회적 위

치와 관련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위계화 된 사회구조 안에서 자기권리

와 존엄을 실현하기 어려웠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바꿔내기 위함이

다. 모든 정체성에 인권을 붙여 호명하는 것은 인권의 의미를 희석하려는 시도거나

인권과 여타의 권리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오해에 불과하다. 인권의

원칙을 뒤로한 채 타인의 권리와 나의 권리를 뺏고 빼앗는 경쟁 구도로 만드는 것

은 오히려 인권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대결 구도가 아닌 존재에 대한 ‘이해’로 접근한다고 할 때도 긴장과 경계는 필요

해 보인다. 장애이해교육이나 다문화이해교육 등 해당 존재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특성이 있는지 접근할 때, 이미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로서의 ‘그들’과 일반

인으로서의 ‘우리’를 구분 짓고 있는 건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다. 장애 당사자

에게 장애이해교육을, 이주민에게 다문화이해교육을 혹은 장애 당사자에게 비장애

인이해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게 아닐까. 이해‘받아야’하는 존재

와 이해‘하는’ 혹은 이해‘해주는’ 사람들의 관계가 동등할 수 없다. 이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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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하는 사람들은 권리주체가 아닌 누군가의 관용과 보호가 필요한 약자로 규정되

는 것이 현재의 사회질서 속에서는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

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인권교육이 드러난 현상을 넘어 문제의 뿌리를 살

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평등한 관계와 이를 바탕으로 구성된 사회질서와 구조

에 대해 명확한 입장과 가치를 견지할 때 변화도 가능할 것 아닐까.

§ 일상을 ‘사건화’하다

우리의 감각은 우리가 속한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살면서 익숙해진

일들을 차별의 문제로 인식하기 쉽지 않은 이유이다. ‘여성들은 위험하니까 밤늦

은 시각에 외출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현명하다.’, ‘장애인이 장애편의시설과

의료지원시스템을 잘 갖춘 시설에 거주하는 것이 더 안전하죠.’,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다를 경우 가능하면 드러내지 않는 게 낫지 않나요?’ 구성원 사이에

서 자연스럽게 사회질서로 자리 잡은 어떤 규범들은 그것이 차별적이라고 해도, 반

복적으로 이야기되고 실천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고정된다.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분

리하여 시설에서만 살게 하는 것은 인권침해이지만,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살고

우리는 그것을 묵인해왔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장애인은 시설에서 살고

있다. 계속해서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이 일을 ‘정상적’인 일로 받아

들인다.

인권교육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상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만

일 당신이 남성/어른/관리자였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주어진 역할을 거부

했을 때 걱정되거나 염려되는 것들이 있었나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장

면이 떠오르나요?’, ‘우리 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누가 있

을까요?’ 등 참여자의 위치에 다른 사람을 대입하거나 서로 다른 경험들을 관통하

는 어떤 기준을 드러내고 분석하면서 이야기 속에 숨겨진 문제의 근원을 쫓는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거나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어떤 힘의 기획과

작동 속에서 고착된 문제임을 발견하게 된다. 가정 내 가부장적 질서의 문제가 교

사와 학생 사이,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서 어떻게 변주되는지, 능력 중심의 사

회질서가 학벌이나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뿐만 아니라 사람의 우열을 구분하는 인종

주의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주 사소하고 평범했던 일상이 그냥 지나

쳐서는 안 될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일상을 사건화한다는 것은 사적이면서 그야

말로 일상다반사였던 일을 모두의 문제로 사회화하고, 정치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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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수준에서 시작해야만-시작하는 것이지,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이 가능

합니다. (…) 민중은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지배자들과는 다른 언어

를 만들 권리가 있습니까? (…) 진정한 사회변혁 과정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확신합

니다.(파울로 프레이리)”라는 민중교육 사상과 인권교육의 지향이 다르지 않다. 인

권교육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삶을 다른 관점과 위치에서 되짚어보는 데서 출발한

다. 나아가 자신의 삶을 둘러싼 위계적 질서와 모호함을 인식하고, 이를 걷어낼 힘

을 갖도록 돕는다. 참여자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서 멈춘다면 울분과 분노를 쏟아

내는 성토대회에 지나지 않는다. 때에 따라 수용과 공감만으로도 참여자의 힘을 북

돋을 수 있지만 이후 똑같은 삶을 반복해야 한다면 무력감만 커질 수도 있음을 놓

쳐서는 안 된다.

때로 참여자들이 ‘현실적’인 조건이나 이유 속에서 인권을 위협하거나 침해한 경

험을 내놓는 일도 있다. 마음이야 ‘그래선 안 된다’는 분명한 경고를 전하고 싶

지만, 개인을 비난하거나 꾸짖는 태도는 참여자를 위축시키거나 인권에 대한 방어

적 태도만 높일 수 있다. 그렇다고 문제를 회피하거나 얼버무리는 것도 인권적인

방식은 아닐 것이다. 개인만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머무르는 순간 차별적이

고 폭력적인 구조에 복무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메시지는 전달되어야 하지 않을까.

§ 사회적 좌표를 읽다

한 국회의원이 학교급식노동자들이 파업을 선언하자 ‘급식 조리사들은 그냥 밥하

는 아줌마들’이라며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 왜 정규직이 돼야 하는 거냐.’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모두가 지탄한 망언이지만 한편 우울하게도 학교급식노동자

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이며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했다.

노동자이면서 나이가 많은 여성(아줌마)이면서 비정규직이면서 밥하는 일을 하는 사

람들… 웹툰 <송곳>은 비슷한 위치의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들의 삶을 다룬다.

• “비정규직이란 게 뭐요? 임금은 낮은데 일은 험해.

일은 험한데 산재 처리는 안 돼. 다치면 잘리고 잘리면 빌리고,

빚지면 또 아무 데나 받아주는 대로 비정규직으로 들어가야 돼.

남보다 못 사는데, 경기 나빠지면 남보다 먼저 잘려.

쉽게 잘리니까 잘릴까 무서워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벌벌 기어야 돼.”

“경쟁에서 져서 그런 걸 어쩌라구요. 본인이 책임져야죠!”

<송곳>(2016, 최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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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노동자지만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굴욕과 모욕, 그리고 언제 해

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힘들고 억울하지만, 남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할 때 열심

히 안 한 자기 탓이므로 불평해서는 안 된다. “경쟁에서 져서 그런 걸 어쩌라구요.

본인이 책임져야죠!” 마치 경쟁을 둘러싼 모든 조건이 동등하고, 경쟁의 규칙 또한

정의로운 듯 이야기하면서 책임을 개인에게만 묻는다. 그럼으로써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의 부조리함과 불평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인권교육이 구조와 맥락에 대한 비

판적 분석, 각자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들로 구성되어 있고, 관계와 환경 속에서 사회적 좌표

는 달라진다. 한 인권교육가는 4, 50대의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교육에서 참여자들의

태도가 자신을 나이 어린/여성으로 대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교육가와 참

여자로 만나고 있지만, 참여자들은 사회적으로 더 우월한 지위(어른/남성)를 내세워

교육시간을 편하게 보내려고 시도한 게 아닐까. 우월하던 그렇지 않던 자신에게 유

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시도도 있다. 교육을 하다 보면 내용 중 일부를 문제 삼아

인권교육가를 훈계하거나 꾸짖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참여자들을 만난다. 대부분

인권교육가보다 나이가 많고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내세운다. 이에 나름의 논리

로 조목조목 반박을 하면, 참여자는 자신의 위치를 남자/어른/전문가에서 교육 참여

자/학생으로 이동시킨 후 ‘진행자가 무섭다’라거나 ‘친절하지 못하다’라며 약

자 코스프레를 한다. 자신의 사회적 좌표를 아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

는 일이고, 그 사회구조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힘이다. 『페미

니스트 모먼트』에서 한채윤은 “나에게 있어 페미니즘은 세상이 미리 짜 놓은 구

조를 파악하는 시각을, 그래서 그 각본대로 살지 않게 하는 힘을, 그 틀 밖으로 나

가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과 회유에 대처하는 태도를 알려주는 것이었다.”라고 이

야기한다. ‘페미니즘’의 자리에 ‘인권(교육)’을 넣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사회구

조를 자세히 파악하게 되면 자신을 억압하는 것에 대항할 수 있는 힘도 키울 수 있

다.

인권교육이 사회구조에 메스를 대려 할 때면 누군가는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이라며

변화를 저지하려 한다. 학교 내 벌점제가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지를 꺾고 교사나

학교규칙에 순응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살필라치면,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이

벌점제 없애는 것을 반대한다.’라는 논리를 들이민다. 학생으로서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명백하게 규정된 공간에서 벌점제는 질서유지수단으로 작동한

다. 학생다운 태도와 자세라는 것을 이미 체화한 경우 그것이 왜 문제인지 인식하

기 어려울 수도 있다. 혹은 육체적으로 직접적인 폭력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 나온 선택일 가능성도 크다. 당사자가 원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단정 짓

기 전에 당사자가 놓인 상황이나 그렇게 판단하게 된 배경을 살피는 것이 우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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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을까. 당사자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부정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안내하는 것이 인권교육의 역할이다.

§ ‘현장’을 담아내다

인권교육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인권운동이기 때문에 인권현장과

밀착한 교육을 꿈꾼다. 보통 현장이라고 하면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나

인권침해가 벌어지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공간을 먼저 떠올린다. 인권교육이 말하는

현장은 무엇일까? 인권교육에서 현장성을 구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첫째, 인권교육은 지금 여기(here and now)를 공통분모로 한다. 참여자의 삶으로부

터 멀리 떨어진 곳이나 과거의 어느 시점이 아닌 오늘이 인권교육의 무대이다. 현

재 쟁점이 되는 사건이나 이슈들은 내 삶과 구분될 수 없고, 우리 또한 각기 다양

한 방식으로 해당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삶에 무엇이 중요하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권리임에도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정

치적인 일 혹은 위험한 것으로 여겨 꺼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학교는 학생을 대상

으로 하는 인권교육이 학생인권이 아니라 역사 속 인권이나 학교 밖 이야기를 다루

길 원한다. 학교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학교를 바꿀 수 없다. 사회에서 진행되는 이

야기에 눈 감은 채 학생들의 삶을 바꿀 수는 없다.

둘째, 참여자의 삶이 곧 인권교육의 현장이다. 이는 인권교육은 참여자의 삶으로부

터 출발한다는 이야기와 궤를 같이 하며, 인권과 내 삶을 연결하는 과정이기도 하

다. 같은 노동인권교육이라고 할지라도 누가 노동을 하는지, 어떤 공간에서 노동하

는지,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체감하는 노동인권 문제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장애가 있는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겪는 문제는 비장애인

노동자와 같지 않다. 애초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일의 종류가 제한적일 수 있고,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노동환경으로 인해 구직 자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어

렵사리 일을 시작한다 할지라도 자신을 환대하지 않는 동료 노동자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체감할 수도 있다. 참여자들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공간이

자 관계로서의 현장이 교육 안에서 펼쳐질 때, 참여자들은 인권이 곧 나의 문제임

을 느낀다.

셋째, 서로 다른 참여자의 삶이 만나고 연결될 때 교육장은 또 하나의 현장이 된다.

당사자가 자기 차별의 경험이나 인권침해의 경험을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

다. 개인적으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딛고 발화하는 것이기에 그 과정 자체가 중요

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참여자들 간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겪은 일이 나에

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발견, 비슷한 경험을 한 우리가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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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가능성, 그 속에서 우리의 역량도 커진다. 서로 다른 현장과 현장이 만나 새

로운 시간성과 공간성을 부여하면서 실천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 ‘법’의 테두리를 뛰어넘다

인권은 종종 당위적 규범이나 의무와 동일시된다. 공동체의 질서나 규칙을 지켜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이를 지킨 사람만이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규범이나 약속에 어긋난 행위를 한 이들은 ‘네가 할 도리도 하지 않으면서

무슨 권리 타령이냐.’라는 비난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기 일쑤다. 문제적 인간이라

는 낙인과 함께 ‘제대로 된’ 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판정이 내려지기도 한다.

•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목표를 이

룰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학기 초에 다른 아이들을 놀리지 않는다는 규칙을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규칙을 어기고 다문화 학생을 따돌리는 일이 있었어요. 아이

들이 최소한 자기들이 정한 규칙은 지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도덕교육이 그렇듯 대부분의 규범과 규칙은 사람을 짜인 틀 안으로 가두는 효과가

있다. ‘~ 해야 한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나 금지목록의 나열은 사람

을 더욱 부자유하게 만든다. 이와 달리 인권교육은 자신을 얽매고 있는 불합리하고

모호한 것들을 자세히 살펴 새로운 질서를 재구성하고 실질적 변화를 추구한다.

법은 인권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장애인들의 ‘인간

답게 살고 싶다’라는 피 끓는 외침이 <장애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을 만들었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써

<근로기준법>을 만들었다. 인권교육을 통해 세계인권선언, 근로기준법, 장애인차별

금지법 등을 널리 알리려는 시도도 여기서 기인한다. 다만 인권교육가들이 주목해

야 할 것은 법 조항이 아니라 법 테두리 안에 담고자 했던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 예를 들어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생겨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활용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근로시간과

관련하여‘18세 미만인 자의 근로시간은 1일에 7시간,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 다만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1일에 1시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라

는 내용을 전하며 하루 최고 8시간 이상을 일하면 안 된다고 안내할 수 있다. 그러

나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삶은 법과는 거리가 있다. ‘선생님, 저 10시간 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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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에요?’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는데, 법은 나를 문제라고 규정하는 상황을 어

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법의 기계적 해석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단축되어온 배경과

취지는 무엇이며, 현재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해석이 필요한지 살펴야 법과 다른

자신의 삶을 설명할 언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법을 통한 인권보장은 중요하지

만, 인권을 법 테두리 안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인권침해 여부를 법을 위반했냐 아니냐 만을 기준으로 접근하는 것도 인권을 축소

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지난 2014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청소년노동자가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업주를 신고하자 임금을 10원짜리로 지급한 사건이 있었다.

현행법은 임금을 통화가 되는 돈으로 지급하면 위법으로 보지 않는다. 분명 합법적

인 행위였지만 당사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인권교육은 법・제도를 뛰어넘어 당사

자가 받은 모욕감과 분노를 인권의 언어로 해석하고 인간다운 삶에 대한 원칙과 상

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인권침해는 법률을 등에 업고 진행되기도 했음을 기억해야 한

다. 아파르트헤이트, 홀로코스트, 노예제도 등은 모두 법에 따른 인권침해였다. 법은

그것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힘의 문제이지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다

인권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종종 “자기결정권에 대해 알려주세요.”, “표현의 자유

에 대한 강의를 부탁드립니다.” 등 인권을 개별적인 항목으로 접근하는 경우를 만

난다. 각각의 개별적인 인권 목록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하

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장애인거주시설의 경

우 시설평가에서 인권침해로 지목된 경험이 있거나, 당사자들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권리’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어디까지를 자기 결정권으로 들어줘야 하

나?’하는 방어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이 경우 자기결정권을 당사자가 원

하는 대로 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당사자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의사 표현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러나 어렸을 때부터 시설에서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온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무엇

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하고 싶은 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자신을 발달시킬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하고 이를 도전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교육의 기회,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관계하고 교류할 기회와 이

동의 권리 등이 뒷받침될 때 개인의 의지와 결정도 발휘된다. 둘째, 제공되는 서비

스 안에서의 선택을 자기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시설이 이용인에게 필요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대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종사자이고,

책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것들이다. 프로그램 대부분이 참여하는 이들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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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나 관련 협회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장애 이해 교육, 장애인식 개선교육, 장애 예

방교육 등을 보면서 뭔가 아쉽고 찜찜했어. 장애를 ‘개인’이 겪는 어려움 차원으로만

살피는 건 아닌가? 장애 유형별 특성을 알려주면 정말 장애에 대해 깊은 이해가 생기

는 걸까? 자칫하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장애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어.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에티켓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볼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끝에 장애인권활동가들

구를 반영하지 않은 채 설계, 운영된다.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제

한된 채 주어진 것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권리를 볼품없이 축소할 뿐이

다. 각 권리항목은 고유한 의미와 내용을 지니지만 이러한 개별권리들은 다른 권리

들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빵과 장미가 모두 필요하듯이

개별권리들이 서로 연결되고 통합되어야 존엄한 삶,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

우리가 노동권교육을 노동인권교육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의 노동권교육은 노동법교육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

험보상법> 등 노동관련법에서 정한 권리가 중심이 된다. 그러나 법은 노동환경과

조건이 다른 노동자들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

자를 포괄하지 못한다. 임금노동자를 제외한, 사회적으로 노동이라고 하지만 법에서

는 인정하지 않는 특수고용, 사회적으로도 법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그림자 노

동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라고 일컫지만, 노동자 내

부의 차이는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특히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은 일터에서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한다. 노동법으로 접근할 때 노동자는 오로지 노동자로서 존재

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는 노동자이면서 시민이다. 노동자의 권리뿐만 아니

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직장 상사나 고객으로부

터 모욕을 당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일터에서도 정치적 권리를 비롯한 인간으로

서의 모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처럼 인권교육은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권리

와 삶을 총체적으로 조명해야 한다.

§ 서로 기대어 성장하다

장애, 노동, 이주, 청소년 등 영역별 운동은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 활동을

병행해왔다. 운동의 기반이 튼튼해지고 경험이 쌓일수록 내가 제대로 교육을 하고

있나 하는 자기 점검과 더 나은 교육을 상상하면서 인권교육 연대체가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어진 것이 장애인권교육네트워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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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인권교육가들이 만나 장애인권교육네트워크1)를 꾸리게 됐어.

- 장애인권교육네트워크 활동가

장애인권교육은 장애이해교육의 부정에서 출발했다. 장애인권운동의 내용이 깊어지

면서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해왔던 교육에 의문을 던지게 됐다. 그 전에는 어떤 사

람들을 장애인이라고 하는지 유형을 설명하고 놀리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 수동적인

존재라는 낙인을 더 강화하는 꼴이었다. 장애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이야기하

는 방식은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있었다. 어떻게 장애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교육 안

에서 잘 구현할 수 있을까. 관련법을 소개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감수

성을 건드리는 교육을 할 수는 없는 걸까? 우리 운동과 다른 영역의 운동이 만나는

접점은 뭘까?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볼 수 있진 않을까? 이와 같은 질문들

이 이어지면서 인권교육과 영역별 운동이 만남도 가능했다.

해당 영역의 현장/교육활동가들과 인권교육가들이 연대해 교육의 재구성을 함께 고

민했다. ‘장애이해교육에서 장애인권교육으로’, ‘다문화교육에서 다문화인권교

육’으로의 재편은 단순한 개명이 아니다. 교육의 지향과 가치, 내용, 접근방식 등

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에 바탕을 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권교육은 인권의 확산과 그로 인한 반란을 꿈꾸기에 운동 사회를 비롯한

사회 곳곳의 단체・개인들이 인권교육역량을 갖추어 나갈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해

왔다. 특정 단체가 인권교육을 독점하거나 독식하는 것은 오히려 인권에 반하는 일

이다. 인권교육가들이 서로 교육 활동 속에서 경험한 것들을 언어화하고, 이를 글이

나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노력을 함께할 때 인권교육 전

체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인권교육의 지형변화로 인한 과제들

인권교육은 우리 삶을 인권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권교육이 제도

화라는 지형변화 속에서 인권교육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인권교육가들 스스로

점검할 때라고 생각해 인권교육의 지향을 짚어보았다.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 하

는 몇 개의 키워드들은 지금까지 인권교육 활동을 이어온 이들의 고민 속에서 건져

낸 것들이다. 이는 하나의 원칙으로 완성되었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인권

1) 2008년에 결성해 2011년까지 집중적으로 활동했다. 수차례 장애인권교육 워크숍을 공동 개최했고, 워크숍의 결과물을 모아 장애인권교육 매뉴얼을 만들었다. 연대의 결실을 바탕으로 ‘나야 장애인권교육센터’가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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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가들이 논의를 덧대어 수정하고, 놓친 내용을 추가해 나가길 바란다.

더불어 이러한 내용을 어떤 과정을 거쳐 다른 인권교육가들과 함께 공유하고 확산

해 나갈 수 있을지 논의되었으면 좋겠다.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 만드는 데 있어 인권교육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빠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인권교육이 제도화되기 전, 인권교육가들은 인권운동 안에서 교

육내용을 생산, 공유하고 함께 평가하면서 성장해 왔다. 제도화로 인권교육의 수요

가 늘어나면서 인권교육가들의 구성도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인권교육의 수요

를 맞추기 위해 정부기관 및 지자체, 민간단체 차원의 인권교육 강사양성과정이 많

이 개설되었다. 지역의 일부 민간단체들의 경우, 이른바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

업이나 시니어 일자리 창출 및 소득 확보를 위한 차원으로 인권교육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권교육에 입문하는 교육가들이 늘고 있는

데, 각자 어떤 내용과 고민 속에서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

다. 각자 인권교육활동 속에서 여러 고민이나 어려움에 직면할 텐데 어떻게 풀어가

고 있을까? 인권교육가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역량을 키워가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을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지금, 우리가 인권교육운동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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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구 (노들/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활동가)

장애인권교육은 교육을 하는 주체와 참여자에 따라 교육의 형태가 다양하

다. 교육을 하는 주체가 장애인인가, 아니면 당사자성을 가진 비장애인인

가. 또는 교육을 받는 참여가 장애인인가, 비장애인인가. 장애인이라면 정

신적 장애인가 신체적 장애인인가. 중증인가 경증인가. 다양한 변수에 따

라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진행된다. 지금부터 쓰게 될 글은 장애인 당사자

강사가 중심이 되는 인권교육 이야기다.

마법의 주문, 장애인권교육

어렸을 적 재밌게 보던 만화 중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탐험하는 “시간 탐험대”

라는 만화가 있다. 거기서 소원 들어주는 주전자, ‘돈데크만’이 주문을 외치면 시

간여행이 가능하다.

발제문을 읽으며 옛날 생각이 났다. 그때의 고민과 그로인해 만들어진 원칙들이 있

다. 그리고 그 고민과 원칙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래서 돈데크만의 주문을 외우고

그때 흔적을 쫒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 돈데기리기리 돈데기리기리 돈데돈데돈데 돈데크만!

2008년, 노들야학에서 상근을 시작한지 일 년이 채 안된 나를 인권교육의 세계로

불러들인 마법의 주문이 있다. 밖에서 같이 담배를 피던 고장쌤이 무심히 던진 한

마디.

“니가 인권교육 뭐시긴가 해볼래?”

인권교육이 뭔지, 왜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 채 한국장애인재단의 지원을 받으며

『ADIDAS방법론을 통한 장애인권 교육전문강사&상담원 양성』이라는 무시무시하

게 제목이 긴 사업을 진행했다. (지금도 ‘ADIDAS방법론’이 뭔지 정확히 모른다.)

다른 선배에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 지면

서 장애인권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래서 강사를 양성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었다.

그렇게 ‘일’로써 내가 처음 한 일은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이었다. ‘쉽게 가자’

는 마음으로 당시 같이 수업하던 학생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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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인권강사 할래요?” / “그게 뭔데요?”

“학교 교실에 찾아가서 누나 살아온 얘기 하는 거예요” / “싫어요.”

“왜?” / “부끄럽게 어떻게 해”

“아니야. 할 수 있어. 누나 말씀 잘 하시잖아. 나한테 말하는 것처럼 하면돼” / 그

래도 싫어.”

“왜?” / “내가 뭐라고 학생들 앞에서 무슨 얘기를 해.”

“누나 이거하면 돈도 벌수 있다?!” / “응?......... 얼마나 버는데?”

“글쎄... 뭐라고 정확히 액수를 말할 순 없지만 강사비 받고 교육하는 거야.” /

“에이... 그래도 내가 뭐라고..”

쉽지 않았다. 학교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영애누나였다. ‘그런 내가 어떻게 학교

가서 강의 한다는 거냐.’ 항변하는 누나를 만날 때마다 설득했다. 강요인지 협박인

지 애원인지 모를 설득을 하는 동안 사실 나 스스로가 인권교육의 필요성에 설득돼

갔다. 학교에 다닌 적 없는 영애누나가 학교에 가서 자신의 삶과 인권을 이야기하

고 노동의 댓가를 받는다? 이건 분명 혁명적인 일이었다. 중증장애인에게 이건 꼭

필요한 노동이고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노동이었다. 그렇게 영애누나를 설득하며

내가 설득돼 갔다.

-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촉!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 보드”에서 손오공이 외치는 마법 주문이다. 주문을 외

치며 머리카락을 뽑아 ‘후~’ 불면 변신이 가능하다. 손오공의 마법주문처럼 나와

노들의 인권교육을 변화시킨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장애인인권교육네트워크(장

넷)’와 ‘인권교육센터 들’과의 만남 이었다.

내가 천둥벌거숭이던 시절, 아디다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참여자를 모으고 외부

에서 교수를 섭외해 ‘장애인차별금지법’,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등을 교육

했다. 한 여름의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참여자들은 눈부시게 졸았고 나도 같이 졸

았다. 그렇게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던 때, 누군가로부터 ‘장넷’과 ‘들’의 존재

를 알게 됐다. 당시 나에게 ‘장넷’과 ‘들’은 말 그대로 ‘사랑’이었다. 같이

고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먼저 고민하고 있는 선배가 있다는 건 참 마

음 든든한 일이었다. 천둥벌거숭이가 그들을 만나며 옷이라도 걸치기 시작한 것이

다.

- 장애인인권 VS 장애인권

‘노들장애인권교육팀’을 만들었다. 이름을 지으며 ‘장애인권’이냐 ‘장애인인

권’이냐 고민에 빠졌다. ‘장애인인권’이 우리의 성격을 더 명확히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었고 ‘장애인인권’이라고 하면 ‘장애인’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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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을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장애인권’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긴 토론 끝에 ‘장애인권’으로 정했다. 결정적 이유

는 말이 짧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짓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많은 고민의 웅덩이에 퐁당퐁당 빠졌고 웅덩이

를 헤쳐 나가는 사이에 우리 교육의 원칙이 만들어 졌다.

- 원칙 하나, 일 더하기 일

인권교육센터 ‘들’의 지원으로 장애인권강사를 양성하는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

고 그렇게 양성된 강사를 학교 현장에 파견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장애당사자 홀

로 교육을 진행하는데 어려움 있었다. 장애특성으로 인한 어려움(컴퓨터를 다루거나

마이크를 쥐는 등)은 활동보조인이 대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 강

사가 학교를 다녀 본 적도 없었고 한글을 모르는 강사도 많았다. 그리고 모르는 사

람 앞에서 길게 얘기를 해본 경험도 없었다. 문제는 그로인한 자신감 결여였다. 대

부분의 강사가 실전에 맞닥트리길 극도로 두려워했다. 결국 우리가 찾은 해법은

‘1+1’이었다. 장애강사+비장애강사 또는 장애강사+장애강사. 짝을 이뤄 나가다 보

니 나중에는 홀로 교육하는 장애강사가 만들어졌다. 여기서의 ‘홀로’는 ‘혼자’

를 의미하지 않는다. 활동보조인의 지원을 받는 ‘홀로’이다. 그리고 장애강사를

지원하던 활동보조인이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단계 방식으로

성장해 갔다.

- 원칙 둘, 우리는 요구한다.

학교에서 아침 첫 교시 수업으로 교육의뢰가 들어올 때가 있다. 장애당사자가 9시

까지 학교에 가는 건 무척 어려운 미션이다. 일단 대중교통으로 오는 게 불가능하

다. 무한 경쟁시대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출근시간대에 전철이나 버스를 타

는 건 말 그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콜택시 밖에 없는데 그마저

타는 게 쉽지 않다. 장콜이 많지 않아 출근시간에 부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우

리가 찾은 답은 합숙 이었다. 함께 자고 일어나는 것만이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

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합숙을 하다 보니 지각은 안하는데 대

신 우리가 지쳐갔다. 결국 불가능한 미션임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맞는 교육환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 1,2교시는 피할 것

2) 엘레베이터가 있거나 교육장이 1층 일 것

3) 최소한 두 교시의 수업 시간을 보장 할 것

4) 교실에서 학급 단위로 수업을 진행하고 방송교육이나 집체교육은 지양할 것

이런 적이 있었다. 담당교사와 전화로 통화 할 때는 교실까지 이동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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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교사는 덩치 좋은 남학생을 불러 모아 휠체어를 들어 올리고자 했지만 우리는

거부했다. 그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1층에 있는 과학실, 미

술실, 음악실 등으로 학생들이 내려오기로 했다. 우리의 교육은 이미 이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우리에게 맞는 교육환경을 요구하는 것은 비장애인 중심의 학교문

화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좀 과할까..)

- 원칙 셋, 우리는 ‘장애인권’의 관점으로 ‘장애인인권’을 이야기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자체가 장애를 신체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 관점으로 바라본

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은 문제적인 내 몸뚱이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사회 환경이 나

에게 맞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즉 사회환경이 변하면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해결

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은 장애의 사회적 관점으로 장애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

어내는 것이다. 장애인 각자가 다양하게 겪어온 부당함, 불리함, 불편함은 장애인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것은 학생이 겪는 부당함, 불리함, 불폄함과 같

은 맥락으로 구조화 되어있다. 그러므로 같이 연대해서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야!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사회환경의 변화는 저상버스와 엘

리베이터의 확충 등과 같은 물리적인 변화도 있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영애누나를 얼마 전 IL센터에서 주최하는 교육시간에 만난 적 있다.

교육 참여자는 장애당사자 10명 남짓. 나의 장애를 생각하면 드는 감정에 대해 물

어봤다. 대부분의 대답은 불편함, 답답함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달랐다. 그녀

는 장애가 편안하다고 말했다. 놀랍고 궁금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인권강사로 활동

하면서 장애가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묘한 감동이 밀려와서 눈물이 찔끔났다.

10년 동안 인권강사로 활동하면 장애를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구나 싶었다. 물론

지난 10년 동안 그녀에게 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고생 끝에 염원하

던 수급자가 됐고 지금은 자립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통장에 얼마 모았는지 큰 소리로 자랑했다.(쉿! 그런건 크게 말하면 안돼.) 이 모든

변화가 그녀의 장애를 편안하게 느껴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얘

기하면 그녀의 수많은 정체성 중 이제 ‘장애’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게 된 것

이다. 그녀를 둘러싼 사회환경이 변하면서 그녀의 장애도 변한 것이다.

- 우리는 무기

첫째, 비주얼 강사

우리 교육의 강점은 비주얼로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교실에 휠체어를 탄

강사가 스윽 들어가는 것만으로 환호성이 터질 때가 있다. 그렇다. 우리는 비주얼

강사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비주얼을 불편해 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있었다. 대기실에서 우

리를 처음 만났던 한 교사가 나를 따로 불러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중증이시네요. 아이들이 무서워할까 걱정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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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사자와 함께 얘기하자고 했고 교사의 말을 들은 강사는 교사의 무례함을 지

적하며 판단은 학생에게 맡기자 했다. 물론 학생들은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궁

금하고 신기해 할 뿐.

둘째, 중증이어도 괜찮아.

우리의 비주얼을 꺼려하는 교사를 만나면 더 오기가 생긴다. 나는 중증일수록 더

훌륭한 인권강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민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지 장

애가 아니었다. 그래서 언어장애가 심한 ‘섹시미녀’는 자음과 모음이 구분돼 있

는 글자판을 가지고 다니며 한자 한자 막대기로 짚어가며 소통했다. 그녀가 말하는

속도는 중요치 않다. 그녀는 느린 속도로 많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직 때문

에 온 몸을 흔들며 한자 한자 짚어 가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었

다. 당신이 나의 소통방식을 존중했을 때 나와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물론 이렇게 힘들게 온 몸으로 교육하고 나오는데 역설적이게도 뒤통수에 이런 힘

빠지는 말들이 꽂힐 때도 있다. “선생님, 힘내세요! 파이팅! 장애인도 할 수 있어

요!”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가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으로 얘기하고 왔나 싶어 뒤

통수가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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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요정 바람돌이”에 나오는 마법 주문이다. 바람돌이는 자신을 찾아오는 아

이들의 소원을 마법을 사용하여 하루에 한 가지씩 들어준다.

장애인권강사 양성과정이 전국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다. 강사가 많아지다 보니

강사의 자격을 따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격이라는 것이 여전히 장애인 차별적이

고 기득권 중심적인 경우가 많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고 기득권을 해체 하자는

장애인권교육의 주장이 무색해 진다. 장애인권교육은 장애이해교육 또는 장애예방

교육과 달리 구조적 모순을 짚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장애인권강사의

자격에 대한 논의도 평등하고 인권적으로 함께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모래요정 바

람돌이가 들어주는 하루짜리 소원 말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지속적인 소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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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들’다운 인권운동을 응원하며

✲ 토론을 시작하며 (서설은 늘 길더라)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을 시작하면서 붙든 의제는 주거권이었다. 그게 뭔지 우리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기획기사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시작했

다. 그러면서 관계를 맺게 된 홈리스행동(당시‘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

들’)과 ‘노숙당사자모임과 함께 하는 주거인권학교’를 추진하게 됐다. 그때 사랑

방에는 인권교육실이 있어 큰 도움을 받았고, 인권교육실 활동가들도 새로운 도전

이라며 응원해주던 기억이 난다. 이런 옛날이야기로 시작하는 건,

- ‘인권교육’에 매력을 느끼고 잘 하고 싶었던 시간으로부터, 내가 하는 인권교

육이 '인권교육'인지 잘 모르게 된 시간까지(많은 인권활동가들은 인권교육의 정체

성을 강연 대 참여형프로그램으로 이해하기도)의 변화.

- 인권교육운동의 길을 물으며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만들기 위한 지향을,

그간의 경륜을 보태 정리해준 발제문에 구체적인 의견을 내기보다는(‘모순이나 갈

등을 얼버무리지 않는다’의 내용이 흥미로웠음. <인권교육 오르락내리락 고개넘

기>에서 ‘존중’, ‘소통’과 미세한 변화) 전반적인 접근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은 마음.

- 들을 애정하는 마음을 굳이 드러내려고 ㅋㅋ 이제 토론 시작합니다.

✲ 인권교육은 인권교육다워야 하나? (다소 시비조로)

- 여자다운, 아이다운 같은 말들이 가진 위험처럼, ‘인권교육다운’이라는 말이 가

진 위험. 인권운동 안에서도 ‘인권교육’이 분화되면서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느

낌. 새로운 활동가들에게 다른 영역처럼 느껴지는 현재가 많이 아쉽다. 여기에는

‘인권교육답다’는 말이 주는 부담이 작용. 우리의 인권교육은 이러저러하다고 말

하는 방식과, 인권교육다운 인권교육은 이러저러하다고 말하는 방식 사이의 차이.

- ‘들’은 인권교육다운 인권교육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함. 괄호 안은 내가

이해한 요점. 모순이나 갈등을 얼버무리지 않는다 (아무 데나 인권을 갖다 붙이지

않는다), 일상을 ‘사건화’하다 (교육 참여자가 선 무대를 보여주다), 사회적 좌표

를 읽다(억압에 대항할 포지션 잡기), 현장을 담아내다(구체적인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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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테두리를 뛰어넘다(법에 담으려 했던 인간다운 삶을 기억하기), 삶을 전체

적으로 조망하다(여러 권리들의 연결을 지향), 서로 기대어 성장하다(교육/활동의 경

험 나누자) 굳이 따지자면, 인권운동답다, 인권영화답다, 인권기록답다고 꼽는 내용

이라 해도 크게 차이가 없음.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개인적으로

는, 10년 전의 이야기와 비교할 때, 교육자와 참여자를 같은 무대에 세운, 인권교육

론보다 인권론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느껴졌고, 이 변화가 매우 감동적이었음), ‘인

권교육다움’을 설명하려는 이유가 궁금함.

- 인권교육센터 ‘들’과 인권교육운동이 가지는 부담의 반영일 듯. (사실 이건 인

권운동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다만 인권교육운동이 커버해주겠지 하고 기대하

고 마는 듯. 부끄러운 고백임.) 인권운동이 열어놓은 인권교육의 장에, 인권운동을

수적으로 압도하는 인권교육가들이 등장하고, 인권교육이라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교육들이 퍼져나갈 때, ‘우리는 달라’보다 ‘저건 아닌데’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되는. ‘-답다’의 사회적 용례는 ‘-답지 않은’ 것을 규제하는 데에 본질이 있으

므로, 인권교육다운 인권교육을 모색하는 건, ‘인권교육답지 않은’ 인권교육에 대

항하고 개입하고 싶은 의지의 반영은 아닐런지. 그래서 다음 질문이 이어짐. (‘-답

다’가 긍정적 에너지를 발휘할 때는 '나답다'. 이번 토론회를 빌어 정리한 내용을

‘들’다운, 인권교육활동을 하는 ‘나’다운 인권교육의 내용으로 말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듯.)

✲ 인권교육운동은 인권교육에 대한 운동일까, 교육으로 하는 인권운동일까?

(평소처럼 진지하게)

- “인권교육은 제도화를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

리고 있다.” 많은 인권활동가들이 이런 추세를 우려한다. ‘인권교육’이라는 이름

을 달고 여기저기 알리바이만 만들어주거나 인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고착시키는

교육들이 있기 때문. 그러나 인권(교육)운동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차분하게 토

론되어본 적은 없는 듯함.

- 인권교육의 제도화 및 확산과 함께, 인권교육 자체가 인권운동의 한 현장이기도

함. 인권교육이 현장이라고 할 때, 교육의 내용이나 방식을 비롯하여 제도 안팎으로

인권교육다운 인권교육을 확립하는 것이 인권(교육)운동의 목표일 것. 여기에도 여

러 과제가 있을 텐데, 정작 잘 모르겠는 것은, 인권교육운동이 인권교육에 대한 운

동으로 자신을 정립하고 있는지다. 그게 아니라면 인권교육이 어떤 내용으로 어디

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든 조금 내버려두는 것은 어떨까. 인권교육이 안 그래

도 인권이 이미 그렇게 제멋대로 떠돌아다니고 있는 현실이니.

- 이렇게 생각하는 건, 결국 인권교육이 부딪친 현실은 인권교육의 영역 안에서 작

동하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임. 인권교육의 제도화는 전반적인 인권의 제도화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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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루어졌고, 제도를 움직이는 것은 제도 그 자체가 아님. 정부가 이주민정책을

분할하여 다문화로 일부 포섭, 고용허가제로 일부 배제하는 방식을 채택하였기 때

문에 다문화인권교육이 퍼지는 것처럼. 또는 다문화인권교육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인종차별적 시선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인종차별이 만연해있기 때문인 것처

럼. 그렇다면 오히려 필요한 건, 인권교육의 제도를 통해 접하게 되는 현실을 인권

교육에서의 대항으로 풀기보다 인권운동 안에 과제로 제시하며 큰 틀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지 않을까.

- 인권운동으로 인권교육이 시작되던 90년대에 ‘낯선’ 말이었던 ‘인권’이 이제

전혀 새롭지 않은 말이 되었음. (물론 여기에는 편차가 있음, 인권이 나의 말이 되

어야 할 사람들에게 오히려 남의 말로 익숙해져버린 것도 주목해야 할 현실) ‘인

권’을 설명하는 교육에서, ‘인권’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발전(?)해온 교

육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때는 아닐까?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그걸 교양처럼 과시하게 두지 않고, 삶의 구체적 문제나 사회적 쟁점을 집중해서

다루며 깊이를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한 때는 아닐까? 혹은 인권교육이 인권운동으로

서 사회적 쟁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내년에는

학교에서 요청 오는 인권교육의 내용을 반차별-특히 성소수자 인권을 강조- 주제로

정하고 학교마다 골치 아프게 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거나 하는. 이런 건 재정구조

와도 깊은 연관이 있으니 총체적인 전략 문제일 듯한데...)

✲ '들'다운 인권운동은 무엇일까? (자못 다정하게)

- ‘들’의 운동과 인권교육운동이 똑같지는 않다고 생각함. 인권교육운동 안에서

도 저마다의 역할이나 특징들이 있고 그게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로 네트워킹 될 때

힘이 되기도 할 것. 역사적으로 ‘들’이 인권교육이라는 영역에서 가져온 위치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 뭔가 궁금하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쳐다보게 되는 곳. 그래서

‘들’은 인권교육은 어때야 하고, 인권교육가는 어때야 한다는 등의 담론을 만들

어야 하는 부담을 느낄 법도 함. 그런데 그게 언제나 말로 설명되지는 않을 듯. 게

다가 지금은 한국 현대사에서 큰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말로 다 말할 수 없

는 것들이 더욱 많은 시기. ‘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더 탐색해보면

어떨지. ‘들’의 10년을 맞으며 수많은 인권활동가들, 인권교육가들이 궁금해 하는

것도 그것이지 않을까?

- 인권교육운동이 아니라 인권운동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다시 ‘들’이 교육으

로 하고 싶은 인권운동이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을 듯함. 인권

교육을 통해서도 인권현실을 엿보게 되지만 그렇게 만나는 현실에 대한 피드백은

인권교육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듯. 인권교육을 굳이 통하지 않고 인권현실을 조망

하면서 인권운동의 위치나 역할에 대한 고민과 함께 ‘들’의 두 번째 10년을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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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기를 기대. ‘들’이 최근 몽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지는 고민들이 새로운 전

략(예를 들어 청소년운동으로의 전면화)의 실마리일 수도 있고. 여튼… 87년 체제를

넘어선다는 시대에 새로운 인권교육운동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시작하지 않을까? ^-^

* 사소한 덧붙임. ‘의무나 금지목록의 나열’과는 다르게 인권을 말해야 한다는

의미야 충분히 동의하지만,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하다보면 이 말이 법의 필요성을

깎아내리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는 걸 발견. ‘사회적 합의’ 담론도 유사. 사람들

이 어느 정도 수긍하거나 교육을 통해 변화할 때 가능하다는 말. 그러나 금지 자체

가 교육이 되기도 한다는 점도 중요. 인권에 대한 감각은 인식의 전환이 아니라 일

상에서의 훈련을 통해 몸에 새겨질 수 있음. 뭘 하면 안되는지 분명히 알면 다른

방법을 찾게 되는 것. 법의 너머로 법이 담고자 했던 삶을 그려보라는 점에서 결국

같은 이야기일 텐데 표현에서 약간 고려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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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人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 하기 위한 몇 가지 추가적인 고민들

저는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에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주로 고민하며, 때로는

‘페미니즘’, ‘장애인권’ 등 다양하게 요청되는 인권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명인

이라고 합니다. 발제하신 내용에 이어 ‘인권교육을 인권교육 답게’ 하기 위한 몇

가지 제 고민들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의 교육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이것입니다. ‘당장에 진행되고 있는 교육의 질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강사들의 성장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언제나 동시

에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1년에 900학급 이상 진행되는 교육에 참여하는 청소년들

을 생각하면 앞의 질문에 조바심이 나고,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강사들을 생각하면 조금 느긋해지기도 하지요.

교육가는 누구이고, 참여자는 누구이며 그 두 주체는 어떤 관계인가?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른바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들은 누구인가?’ 하는 질

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 라는 주제에 대한 고민들이 인권교육의 제도화에 따

른 양적 확대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할 때, 이른바 ‘인권’이라는 이름이 붙은 교육

을 하는 강사들도 매우 늘어난 상황입니다.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의 경우도 ‘노동인권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강사들이 1

기부터 5기에 이르지요. 매년 초 ‘강사단 학교’를 통해 ‘청소년 노동인권 강

사’로 입문하는 사람들은 교육 경험, 운동 경험 등을 비롯한 삶의 경험이 저마다

다릅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약간은 의미있는 알바, 경력단절된 여성의 사회활

동 통로, 집중하는 본운동은 따로에 일종의 옵션으로 하는 운동(?), 청소년노동인권

운동가로 헌신하겠다는 결의 등 천차만별의 이유로 강사단 성원이 됩니다. 뿐만 아

니라 이 분들의 출발은 교육 철학, 교육 역량, 인권감수성 등 저마다 모두 다른 점

투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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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의 강사단 학교를 거쳐 함께 공부하

고 활동의 룰을 만들어가고 교육 활동을 하는 동안 시쳇말로 ‘이 산이 아닌가벼’

하고 중도 하차하는 경우도 흔하지만, 몇 년째 교육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강사들은 대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나는 누구인

가?’ 하는 질문과 마주치는 거지요.

전남 센터는 학교로 찾아가는 ‘노동인권 수업’을 하는 것이 주활동이지만 때로는

캠페인을, 때로는 청소년 노동상담에서 권리 지원활동까지, 때로는 조례 제정을 위

한 활동이나 기타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어떤 면에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령, 상담조차 해보지 않은 강사와 상담을 해본 강

사, 상담부터 권리지원까지 경험해 본 강사는 교실에서 수업을 할 때도 그 역량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인권교육 활동’이란 그에 걸맞는 감수성과 나름

의 이른바 ‘전문성’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청소년 노동 상담, 그리고 청소년 노

동 인권 지원 활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권교육을 인권교육답게 진행하려면 그

에 대한 공부만도 할 것이 넘쳐나고, 그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늘 시간

이 모자랍니다. 또한 노동 상담 및 권리지원 활동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나름

의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그에 따르는 공부와 노력, 그리고 지속적인 활동 경험이

당연히 요구되지요.

이러한 조건에서 전남센터 강사들은 이제 막 ‘인권 교육’에 대한 고민에 첫 발을

내딛기도 하고, 나는 전문강사인가 아니면 교육활동가인가, 이도 저도 아닌 채 나는

지금 왜 이 활동을 하고 있나 등등의 질문에 부딪힙니다.

특히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인권교육을 청소년 당사자들의 ‘삶’으로

부터 출발하고자 하기 시작한 강사들일수록 자기가 교육에서 만나는 ‘참여자들은

누구이고 자기자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왜 만나고 나는 참여자들을 만나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특히 3년째 만나는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과 노동인권 교육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

고 나면 이 질문을 만나는 사람도 늘어나고 이 고민이 더욱 깊어지기도 합니다. 불

과 1년에 두 시간밖에 만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3년째 만나는 청소년들의 변화

를 피부로 느끼면서 이제 무방비로 임노동의 현장에 던져질 청소년들을 만나는 마

지막 수업에서 ‘울컥’ 울음을 쏟고 나오는 강사들도 가끔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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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민들 속에서 무엇보다 늘 고려하게 되는 것은 저를 포함하여 어떤 이유로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있든 강사들 역시 저마다의 조건과 처지에서 ‘성장 중’이라

는 점입니다.

이는 결국 두 교육의 주체, ‘교육진행자와 참여자’는 누구이며 어떤 관계인가?

다시 말해 교육 주체들의 ‘주체화’란 무엇이고, 또한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 제 첫 번째 고민입니다.

각기 다른 존재의 교차성을 담보할 이론적 기반이나 합의는 가능한가? 인권교육을

통해 각기 다른 존재들 간의 연대의 감각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는가?

그리고 청소년노동인권교육 뿐 아니라 ‘페미니즘 교육’, ‘장애인권교육’ 등 다

른 교육을 진행하면서 역시 늘 따라붙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권교육이 발제하신 것처럼 ‘참여자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언제까지 페미니즘, 장애인권, 성소수자인권, 청소년인권 등 요청에 따라

백화점 식의 교육을 진행해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이 그것입니다.

강사들은 물론 어떤 교육에서든 우리가 만나는 참여자들은 다양합니다. 어떤 집단

에서 진행하는 교육이라 해도 참여자들 중에는 장애인/비장애인, 여성/남성, 시스젠

더/트랜스젠더, 이성애자/동성애자 등 다양한 존재들이 있을 수 있지요. 그리고 그렇

게 다양한 존재들과 만나면서 드러나는 모순과 갈등을 얼버무리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교육진행자와 참여자들 사이에, 또한 참여자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존

재하는 차이를 드러낼 수 있고 그럼에도 어떻게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피는

것 역시 저는 ‘인권교육’이 품어야 할 대단히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인권 교육’은 그저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존재들을 뭉뚱그린 ‘인권

감수성 교육’이 나 ‘반차별 교육’이어야 할까? 또 각각의 부문별 특성이나 당사

자성 등을 고려하여 지금처럼 필요나 요청에 따라 그때그때 앞에 붙은 이름만 달라

지는 ‘○○ 인권교육’이 되어야 할까?

이런 식의 교육이 만일 최선이 아니라면, ‘인권 교육’은 우리의 차이를 드러내면

서도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의 해방과 너의 해방이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이론적 기반이, 혹은 이론적 기반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있는가? 하는 것이 저의 두 번째 고민입니다.

이러한 두 번째 고민은 어쩌면 ‘인권교육의 두 주체는 누구이며 어떤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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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첫 번째 고민과도 만납니다. 또 한편, 이는 달리 말하면 각기 다른 존재들의

교차성을 우리는 교육에서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며 과연 우리는 인권교육을 통하여

과연 각기 다른 존재들의 연대의 감각을 키워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

다. 이러한 고민을 이어 가다보면 생각이 꼬리를 물어 심지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교육은 ‘인권’ 교육이라는 틀과 이름으로 충분한가? 하는 질문마저 만나게 됩니

다. 생태 환경의 여러 문제들조차 이러한 고민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로 떠오르니

까요.

한편, 이 고민은 각기 부문과 영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나름의 인권교육활동을 하

고 있는 활동가들이 어떻게 만나 개별적으로 각개 전투하듯 하고 있는 고민들을 함

께 하면서 고민의 진전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도 닿아있습니다. 가령,

최근에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쓰까페미’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본시

이 말은 이 단어를 만들어낸 분들의 맥락에 따르면 보지와 자궁을 갖고 태어난 '생

물학적 여성'만을 챙기지 않고 교차성이라든지 이런 말을 하면서 노동, 장애, 퀴어

등 온갖 주제를 '섞어(경상도 말로 '쓰까')'서 다 챙겨야 한다고 하는 페미니스트들

을 말하는 멸칭이었지만 자기를 ‘쓰까페미’라고 정체화하기 시작한 페미니스트들

에게는 일종의 자긍심의 칭호가 되고 있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을 ‘인

권교육’은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장애인권교육’ 등 각각 따로 진행하는 인권교육

안에서 어떻게 교차성을 담보할 것인가부터 백화점식으로 진행되는 인권교육에 한

계가 있다면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까지를 아우르는 고민이라 할 수 있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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