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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2012 지역커뮤니티가치실현 예향 남도 향기로운 평화 한모금 - 금강 스님 우리 결혼했어요! 남도 여행 남도 사람 해남 '미황사' 템플스테이 목포 갓바위/ 입암산 둘레길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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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kpo, namdo,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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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namdozine

21.2012

지역커뮤니티가치실현

예향 남도

향기로운 평화 한모금 - 금강 스님

우리 결혼했어요!

남도 여행

남도 사람

해남 '미황사' 템플스테이

목포 갓바위/ 입암산 둘레길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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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혼례 올렸어요!- 한옥 호텔 '영산재'

우리를 향해 보내는 산사 편지- 해남 '미황사' 템플스테이

향기로운 평화 한 모금- 금강스님

숲과 파도를 안은 아주 '특별한' 하루 - 목포 갓바위/ 압암산 둘레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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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 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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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호[제2권 제1호, 통권5호]

발행인

(CHAIRMAN & GROUP PUBLISHER)

이길찬 KILCHAN,LEE

편집장

(EDITOR IN CHIEF)

이길찬 KILCHAN,LEE

에디토리얼 디렉터

(EDITORIAL DIRECTOR)

박혜미 PARK HYE M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

한주연 HAN JU YEON

ISSN : 2234-1234

등록번호 : 전남 아 00149

http: //WWW.NAMDOZINE.COM

E-MAIL : [email protected]

TEL : +82 70-8600-1254

FAX : +82 61-283-1254

전남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 오룡3길-2(재)

전남문화산업진흥원 내 F-103

JCIA F-103, Namak-ri, Samhyang-eup,

Muan-gun, Jeollanam-do

Page 5: namdozine
Page 6: namdozine

해남 땅끝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할머니 품처럼 포근히 반기는 아름다운 절,

미황사로 향하는 길.

어느 시인이 영면에 든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 잠시 멈춰 섰다.

나무에 철사로 묶인 묘비명-나무 푯말로 된-을 이제 막 한글을 뗀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읽어 내린다.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 곁에서 행복하길 바랄게..’

누구나 언젠가 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후 만나게 될 죽음이라는 하드커버.

귓가를 쟁쟁하게 만드는 일상의 걱정과 근심,

불안으로 시끄러워진 작고 투명한 우리네 마음.

시간에 떠밀려 번잡한 일상에 꽁꽁 묶인 마음을 만나러 가는 길.

우연히 고 김태정 시인(1963-2011)의 새로운 생애와 마주 쳤다.

시인은 비록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났다지만 그녀의 또 다른 삶은 땅끝에 움텄기에,

이젠 그녀를 ‘땅끝 시인’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는지..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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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

시인 김태정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 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인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게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들이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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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February8

해남 ‘미황사’ 템플스테이

아주 먼 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나무는 바람과 만나는 순간 자신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잎들의 무수한 떨림에 하나의 일렁임으로 화답하는 나무. 도기 잔속에 고요히 내려앉은 찻잎들

의 새로운 생을, 숱한 떨림을 간직한 초록 숨결을 가만히 음미한다. 범종 소리가 시간의 단단한

씨방을 잘게 부순다. 봄 햇살에 덥혀진 물처럼 보드랍고 유순해지는 시간.. 바람이 잠든 나무를

일으켜 세우듯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일깨우는 땅끝 산사의 종소리. 깊고 아늑한 숲속에 자리한

‘미황사’에서 나무와 바람, 작은 돌멩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우리를 향해 보내는 산사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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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녹음처럼 짙은 안개 길을 헤치며 미황사로 향했다. 간척지로 변한 바다 위를 달리는

동안 이름 모를 산과 들이 펼쳐졌다. 안개를 이불 삼아 나른한 기지개를 켜는 인가들. 목포에서

출발한지 1시간 남짓. 이윽고 해남 송지면에 위치한 달마산에 도착했다. 달마산 입구에 차를 세

워두고 비탈진 숲길을 오른다. 가

쁜 숨을 내쉬며 말라붙은 야계사방

(산림내 황폐화된 계천인 ‘야계’를

보수해 흙*모래*자갈 등의 이동을

막는 구조물로 산사태나 홍수 피해

를 예방함.)을 지나 드디어 보합처

럼 감춰진 미황사에 도착! 경전과

불상을 실은 상서로운 검은 소가

영영 주저앉아버린 달마산 중턱.

그곳에 세워진 절, 미황사. 소의 울

음소리가 아름다워 미황으로 불리

게 되었다는 바다를 향한 땅 끝에

세워진 절.

쉿! 아름다운 소 울음소리가 들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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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 묵언’이라는 문구를 슬며시 비켜나 대웅전 앞뜰을 가로질렀다. 대웅보전 왼편으로

방문객을 맞는 종무소가 보인다. 방문객 안내소인 그곳에서 숙소를 배정받았다. 1박2일의 템플

스테이 일정 내내 머물 곳은 아늑

한 기운이 서린 청운당(靑雲堂). 자

신이 속한 익숙한 주변과 인에 박

힌 고민들을 잠시라도 벗어나고픈

마음들이 머물만한 고즈넉한 곳이

다. 청운당에 짐을 부린 시각은

오전 10시 쯤. 카메라를 들고 홀가

분하게 사찰 구경에 나섰다. 보물

제 947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안에

서 새어나오는 염불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진다. 오랜 세월에 씻겨 나

뭇결 그대로의 질감을 드러낸 고색

창연한 대웅보전은 꾸밈이 없어 더

욱 그윽하다. 미황사를 찾은 이들

보다 먼저 묵언 수행에 들어간 겨울

비가 산사의 맑은 공기를 촉촉하게

적신다. 돌계단을 총총히 걸어올라

가 대웅보전 뒤편에 있는 응진당으

로 향했다. 응진당을 둘러싼 외벽

위에 돌로 된 부처님 두상과 불상

이 놓여 있었다. 위로, 용기 후회,

슬픔, 감사, 사랑. 실타래처럼 얽인

감정들을 염원이라는 하나의 이름

으로 내려놓은 사람들. 보이지 않

는 손길들이 돌탑 위에 고스란히 머

물며 낯선 마음을 어루만진다.

응진당은 사찰 경내에서 가장 지

대가 높은 곳이다. 덕분에 응진당

마당에서는 노을빛으로 물드는 진

도와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다도해

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

도 템플스테이를 위해 미황사를 찾은 첫날. 하늘은 회색에 휩싸인 채 간간히 비를 뿌렸다. 결국

응진당의 자랑거리인 고운 노을 담은 다도해의 모습은 보질 못했다. 울적한 기분을 아는지 모르

는지 대웅전 처마의 풍경(경쇠에 추를 달아 늘어뜨린 물고기 모양의 종)이 가볍게 흔들린다. ‘땡

그랑~땡그랑’, ‘짤랑~ 짤랑~’. 풍경의 음향은 해변을 가장 가까이에서 어루만지는 잔파도처럼

섬세하게 밀려들었다.

2012. February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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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 중턱에 위치한 사찰 미황사는 740년 (경덕왕 8년)에 의조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한 때 12암자와 400여명의 스님들이 살

던 거찰이기도 했던 미황사에는 흥미로운 창건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1,260년 전 어느 날 달

마산 아래 포구에 우전국(지금의 ‘인도’)에서 떠나온 배 한 척이 당도한다. 배에서 울리는 범패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 소리를 들은 한 어부가 의조화상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이에

의조화상은 몸을 정갈히 씻고 스님과 동네 사람 100여명을 거느리고 포구로 나선다. 사람들은

우전국에서 가져온 경전과 불상을 어디에 모셔야 할지 의견을 나눈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 돌이

쩍- 갈라지면서 검은 소가 출연한다. 의조화상은 검은 소의 탄생을 기이하게 여겨 다음 날 소를

앞세우고 경전과 불상 모실 곳을 찾아 나섰다. 길을 가던 중 소가 처음으로 땅바닥에 앉더니 일

어나 다시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헌데 조금 가다 이번에는 달마산 중턱에 쓰러져 영영 일어서

질 못했다. 이후 검은 소가 첫 번째로 누운 곳에 통교사(通敎寺)가, 소가 마지막으로 쓰러진 곳

에 미황사(美黃寺)가 세워졌다.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황(黃)은 우전국

사람들의 화려한 금빛 의복을 상징한다고..

미황사에 대해...

창건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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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2: namdozine

| 정유재란(1597년) 당시 미황사는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이듬해부

터 스님들이 아침저녁으로 불경을 공부하면서 불사(佛事: 절을 짓는 일)를 시작했다. 낮에는 불

사를 하고, 밤에는 불경을 외며 4년 동안 미황사를 재건했다. 하지만 지난 역사 속에서 미황사

는 갖은 불운을 겪었다. 1887년 중창불사에 필요한 시주금을 구하러 완도 청산도로 떠난 40여명

의 고군단이 풍랑을 만나 몰사한 후, 6.25를 거치면서 완전한 폐사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다

행히 1989년 지운, 현공, 금강 스님 등이 아무도 돌보지 않던 미황사에 찾아와 오늘의 미황사를

일궈냈다. 1992년부터 주지

를 맡은 현공 스님은 2001

년 금강스님에게 주지 자리

를 넘겨주고 불사에만 전념

했다고. 그는 대웅보전, 명

부전, 부도암 등 전각 일곱

채와 세심당(수련원) 등 요

사채 아홉 채를 복원했다.

상실과 복원의 역사

2012. February12

Page 13: namdozine

| 현공 스

님이 미황사를 복원하는 사이 금강 스님은 초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선

수련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친숙한

미황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외에도 지

역주민이 일 년 농사의 수확물을 불전에 바치는

‘만물공양’과 산사음악회를 열어 지역의 전통문

화를 주민들과 함께 즐기고 외부에 선보이는데

힘쓰고 있다.

세상과 소통하는 미황사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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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4: namdozine

거대한 물방울처럼 맑고 투명한 ‘달마산’

2012. February14

Page 15: namdozine

오후 1시. 가볍게 점심 공양을 마치고 달마산 산행에 나섰다. 사찰 입구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불썬봉(봉대)까지 오르는 산행은 ‘느릿느릿’ 왕복 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달마산은 해남군 송지

면과 북평면 사이에 가로놓인 산으로 높이 489m에 달한다. 지난날 중국인들은 달마대사가 머문

해동이 바로 미황사를 품고 있는 이곳 달마산이라고 여겨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남도의 금

강산이라 불리며 서해를 관망할 수 있는 빼어난 비경을 간직한 산이다.

낙엽이 만들어낸 푹신한 오솔길 위를 걸으며 달마산에 오른다. 산을 오를수록 애정표현에 지나

치게 대담한 겨울바람과는 점점 소원해진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듯 바람의 손길에서 놓여나자

바야흐로, 선명해지는 ‘고요’와 만난다.

산행 길은 일부러 닦아놓은 등산로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몸과 마음을 수련해온 이들 덕분

에 반들반들하게 윤이 난 길. 지나치게 유하지도 강퍅하지 않은, 세상과 나 사이의 중용을 떠올

리게 하는 길이었다. 길 좌우로는 마치 정상에서 발원한 계천처럼 대나무 수림이 길게 이어져 내

려왔다. 그 광경이 고매한 선비를 닮은 달마산의 첫 느낌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섬세한 푸른

선들을 길러내 바람의 저항을 철저히 밀어낸 사색 깊은 산. 그래서 그곳을 오르는 이들에게도 불

안이 사라진 진공상태를 경험하게 만드는 산. 나뭇잎에 흐르는 엷은 잎맥처럼 섬세한 얼굴을 지

닌 달마산은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일체의 외부 세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바람이 멎은 청명한 공

간에 그저 가지런한 마음 한 가닥을 늘어뜨릴 수 있도록 도왔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큼직한 바위돌이 굴러 내려 형성된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산행 초반 단

아한 이목구비를 연상케 했던 첫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불썬봉을 향해 갈수록 달마산은 전쟁터

를 누빈 장수다운 풍모를 보였다. 하지만 날선 일상을 평온하게 잠재우는 맑은 기운만큼은 여전

했다. 임시 비행장을 지나 조금은 험준한 길을 따라 마침내 불썬봉에 올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차가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바람 너머에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다도해가 아

름답게 떠올랐다. 미황사는 달마산과 다도해 사이에 작게 웅크린 채 가깝고도 먼 땅끝과 바다를

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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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산행코스

1코스(종주코스 11km, 7시간 소요)

월송리(송촌마을)-안부-관음봉-불썬봉-달마산-떡봉-무선중계소-마봉리

2코스(종주코스 9km, 6시간 소요)

이진리(신기마을)-안부-관음봉-불썬봉- 달마산-떡봉- 도솔봉- 무선중계소- 영전리

3코스(일부코스 5km, 3시간 소요)

미황사-동백숲-달마산-문바위-동부도-미황사

4코스(일부코스 4km, 2시간 소요)

미황사-동백숲-달마산-미황사

산사(山寺)가 건네는 고요한 평화

2012. February16

Page 17: namdozine

본격적인 템플스테이 일정은 오후 4시부터 시작되었다.(템플스테이 일정은 연중 고정적이다.)

먼저 대웅보전에 모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템플스테이를 이끈 범진 스

님에게서 삼배 올리는 법과 사찰에서 사용하는 호칭에 대해 배웠다. 또한 미황사와 달마산에 얽

힌 간략한 전설을 들을 수 있었다.

오후 6시. 저녁예불 들릴 순서가 되었다. 참가자들은 부처님을 모신 대웅보전의 법당 안에 들

어서며 모두들 두 손을 합장하는 예를 갖췄다. 그런 다음 습의(사찰예절을 배우는 것)를 통해 익

힌 삼배를 올린 후 좌정했다.

불상 곁에서 고요히 눈을 감고 경을 외는 스님과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10여명의 참가자들이 부

처님을 향해 정성껏 절을 올리는 사이 스님 몇 분이 법당에 조용히 좌정하신다. 참가자들은 예불

에 참석한 스님들과 함께 법경을 읊조리는 시간을 가졌다. 한글로 번역된 법경을 스님들이 이끄

는 운율에 맞춰 소리 내어 읽었다.

예불시간이 끝나자 범진 스님이 조용히 대웅보전 뜰로 나섰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뒤를 따랐다. 범진 스님과 참가자들은 대웅전 앞뜰을 천천히 돌며 사찰의 유구한

생명력과 산이라는 대자연이 주는 고요한 기운을 받아들였다. 아빠엄마와 함께 온 나이 어린 초

등학생, 외국인 모자, 홀로 산사를 찾은 대도시의 젊은이 등 다양한 삶을 지닌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미황사의 한밤을 함께 맞았다. 대웅전 뜰에서 천년 고찰 미황사의 유구한 기운을 받

아들인 후 다담(茶談)을 위해 차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방에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 어두컴

컴한 곳을 빠져 나와 밝은 곳에서 마주한 그들이 왠지 낯설지 않고 친근하다.

수줍은 미소가 인상적인 범진 스님은 따뜻한 물을 부어 다기를 덥혔다. 종교, 국적, 지역, 나이

를 초월한 10여명의 사람들이 말없이 찻잎이 우려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또르르- 또르르- 찻

물이 영롱한 구슬처럼 도기 잔에 채워진다. 따뜻한 차방에 앉아 차를 음미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 발그레해진다. 유쾌하지만 조용한 웃음소리가 차방에 슬며시 고였다. 찻잎은 벌써 두 번

째로 우려지는 중.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돌아가며 커다란 원형 차 그릇에 담긴 찻물을 자신의

잔에 직접 따랐다. 일부러 잔을 가득 채우거나 억지로 마실 필요는 없었다. 각자가 원하는 만큼

만 취하면 되었다.

템플스테이를 담당한 범진 스님을 향해 질문들이 쏟아졌다. 어떤 계기로 스님이 되었느냐는 질

문에 범진 스님은 ‘어머님의 권유로 어린 시절, 절 생활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행복한 미소를 짓

는 주지스님을 뵙고 승려들의 삶이 궁금해졌다는 범진 스님. 승려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나눴다. 이날 템플스테이에는 외국인 모자가 자리를 함께 했

다. 어머니를 돌보는 젊은 아들의 효성이 지극했다. 미황사의 자재행 보살님이 그들 모자 곁에서

참가자들이 나누는 다담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음과 머리를 동시에 평온하게 어루

만지는 다담을 끝으로 미황사 템플스테이의 첫날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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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8: namdozine

둘째 날 새벽 4시. 소리 없는 추위가 몰려든 산사

에 추적추적 비까지 내렸다. 사위는 여전히 어둡기

만 하다.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 대웅전으로 향했

다. 산사에선 말소리, 발소리도 크게 내지 말아야 하

거늘 조급한 성미 덕분에 차분히 걷는 일이 쉽지 않

다. 얄궂은 새벽 비를 옷깃에서 털어내고 법당에 들

어섰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매서운 한기가 순식간

에 새벽 졸음을 물리친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삼

배를 올리며 땅끝 절에서 예불을 드리는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에 대해 묵상했다.

각기 다른 환경과 배경을 지닌 참가자들은 다들 경

건하게 예불을 드렸다.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108

배를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새벽 예불을 마친 후 청

운당의 참선실로 자리를 옮겨 단전 호흡법을 배웠

다. 이후 숨을 고르며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의 숨결이 손에 만져질 듯 또렷하게 들려왔

다. 숲이 새벽을 느끼며 싱싱하게 깨어나듯 나와 너,

우리를 만날 수 있었던 특별한 순간! 산사는 움직임

이 없었다.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유하고

유일무이한 숨결들만이 미황사가 선물한 묵언이라

는 산사의 언어로 아침을 새롭게 깨웠다. 사람들에

게 밀려 일상에 치여 산사를 찾아 온 이들이 아이러

니하게도 낯선 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 더 큰 고요와

평온을 맛보았다.

아침 공양 이후에 참여할 프로그램으로는 사찰 내

부를 단정하게 돌보는 운력과 달마산 산행을 통한

참선수행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빗방울이 굵어진

탓에 결국 남은 일정이 전부 취소되었다. 마지막 순

서인 점심공양까지는 3시간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

는 상황. 후드 점퍼를 걸치고 미황사 경내를 보물찾

기 하듯 돌아다녔다. 빗물에 젖은 미황사의 아담한

풍경이 정겨웠다. 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통과하

면서 화염에 휩싸이기를 숱 차례. 우뚝 솟은 달마산

에 포근히 안긴 미황사의 정경을 바라보며, 부드러

운 동시에 강인한 땅끝 사찰의 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2012. February18

Page 19: namdozine

‘남도진 삼총사’의 템플스테이체험 후기!

감동과 경건함을 동시에 안겨준 시간..

- 남도진 편집장 이길찬 -

맑고 강인한 기운의 달마산을 병풍 삼은 미황

사는 진도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한껏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미황사로 올라가는 길은 마음의 경

건함마저 물러 일으킬 만큼 유려한 곡선을 자랑

했습니다. 경사진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갈수록 가

깝게 들려오던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나뭇가지를

흔들었습니다. 미황사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기

위해 동행했던 한주연 씨, 박혜미 씨와 함께 올

랐던 달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경은 보는 이에

게 감동을 선물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음역

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산을 오른 터라 지난

일 년의 일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희망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황사에서 일박을 하는 동안 예불과 산사 생

활을 경험하면서 잠시나마 자신의 내면을 바라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너무

짧은 일정과 템플스테이 촬영이라는 숙제를 안

고 갔기에 충분히 누리는 일에는 아쉬움이 남았

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한 새

로운 기대감을 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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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0: namdozine

감기 기운을 달고 미황사를 찾았다. 템플스테이

가 진행될 시각보다 일찍 도착한터라 일행과 함

께 달마산을 등반하기로 했다. 등산이 초보인 내

겐 경사가 다소 심한 달마산이 무척이나 버거운 코

스였지만, 산을 오를 때마다 늘 그렇듯 정상이 주

는 기쁨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템플스테

이의 일정에 늦지 않게 하산하기 위해 본격적으

로 산행 속도를 높였다. 내리는 빗방울 덕분에 귀

에 들리는 거라곤 목탁소리와 이름 모를 산새의 지

저귐. 나뭇잎에서 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뿐이었

다. 덕분에 저절로 묵언이 되는 시간이었다.

한편,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기 전에 사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사찰음식이 떠올랐다.

그만큼 공양시간이 기대되었다. 영상매체나 사진

을 통해 머릿속에 익숙하게 그려지는 장면들은 주

지스님과 마주보고 앉아 나무그릇에 담긴 음식을

나무 수저로 공양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미황사

의 공양 시간은 달랐다. 상상하고 기대했던 건 스

님들만의 몫이었다. 가장 기대했던 부분인 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앞으로 미황사를 찾는 이

들을 위해 나무로 된 접시나 식판을 사용한다면 미

황사 템플스테이에 대한 추억은 더욱 특별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감기 기운 탓에 주지스님인 금강스님을 뵙는 기

회를 놓치고 말았지만 스님께서 직접 ‘땅끝마을 아

름다운 절’이라는 자신의 책에 ‘수류화계’라는 좋

은 글귀를 써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금강스님의 덕망과 자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템플스테이를

취재하기 위해 찾은 미황사였지만 무엇인가를 얻

어 가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곳을 바라본다면 다

시, 아니 거듭 찾고 싶은 사찰이라는 점만은 분명

했다.

특별한 템플스테이를 위한 작은

배려가 더해진다면..

- 그래픽 디자이너, 한주연 -

2012. February20

Page 21: namdozine

절, 불상, 탑.. 내가 믿고 있는 종교와 사찰이라는 공간

이 서로 충돌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미황사로 향하는 발

걸음은 다소 무거웠다. 중고등학교 시절. 반전체가 우르

르 몰려가는 수학여행, 소풍 이외에는 아주 오랫동안 사

찰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선입견은 한쪽으로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상태. 어느 산을 오르든지 산과 절은 서

로 공존했지만, 산을 찾되 절은 들리지 않을 만큼 거리

를 두었다. 헌데 남도의 전통문화에 관한 이야깃거리를

찾던 도중 이길찬 편집장님이 가볍게 흘린 ‘달마산, 미황

사’라는 단어에 왠지 모를 호기심이 생겨났다.

난생 처음으로 법당에 올라 삼배하는 법을 배우면서,

어색한 손놀림과 몸짓으로 옆 사람이 하는 양을 기웃거

리며 기도를 해야 할지 절을 더 올려야할지 남몰래 고민

하기도 했다. 새벽 네 시에 진행된 예불시간에는 처음

접하는 경전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붕어마냥 입을 뻐

금거렸다. 하지만 새벽을 가르며 차디찬 법당에 두 발을

딛고 서거나 무릎 꿇는 동안 내가 믿고 있는 신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물론 부처님 앞에서는 불경스러운 일일

지 모르나, 내가 마음을 단정히 하며 예를 올리는 동안

내가 믿는 신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벽장에 이불을 넣어

둔 지 너무 오래돼 이불의 존재를 모르고 불 꺼진 방안에

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아이. 추위에 질린 아이가 번뜩-

옷장에 넣어둔 이불을 떠올리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

는 것처럼 얼마동안 그친 믿음의 행보를 다시 이어 가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 결심이 절에서 불현

듯 떠올랐다니. 다소 황당하지만 내게 일어난 일이기에

솔직히 고백한다. 아마도 기대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

겠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가려고

마음먹지 않은 까닭에 오히려 무언가를 얻게 된 것인지

도. 미황사의 템플스테이를 체험한 덕분에 종교 차원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던 사찰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갖게 되

었다. 고즈넉하고 청아한 미황사, 그리고 달마산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의 신을 향해 안부를 묻다..

- 에디터 박혜미 -

에디터 | 박혜미

NAMDOzine.com 21

Page 22: namdozine

아득히

우리는아득히

은빛 지느러미 이끌며

미지를 찾아

닿을 수 없는 계절을스치고 지나

경계짓지 않는 푸름을 좇아

우두커니 그리움 되어

보이지 않는그리움을 부르며

Namdo Gallery

글 | 박혜미

2012. February22

Page 23: namdozine

사진제공: 남도진 이길찬 편집장하의도

미련한고요 속에 고집스럽게

거울 반대편,너를꿈꾼다

퉁퉁 부은 얼굴로

아련히 먼곳을 꿈꾸는그대여

그대가 찾는 그리움은 처음부터

그대 곁이었다

마음이앞만 보아

깨닫지 못했을 뿐..

NAMDOzine.com 23

Page 24: namdozine

‘신랑, 신부, 초롱동이, 집례, 수모, 가마꾼, 구경꾼, 신랑신부 부

모..’ 한옥호텔 ‘영산재’의 전통혼례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

이들은 2012년 새해에 특별한 혼례식을 치러냈다. 신부가 오

르기도 전에 꽃가마에 올라 수줍은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

싼 장난스런 가마꾼. 긴 도포자락에 ‘에헴 -’ 위엄 있는 헛

기침을 하던 어설픈 집례(주례선생). 분주하게 상차림을

돕고 신부의 머릴 매만지는, 어리지만 야무진 수모(혼례

전문 미용사) 삼총사. 심드렁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신

랑신부로부터 큰절을 받은 나이 어린 신부 부모. 나무기

러기를 소중히 품은 채 묵묵히 앞서 걷는 기럭아범(신랑신

부의 복을 기원하는 이).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꼬마 신랑

과 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 찍은 귀여운 신부. 아이들은 한옥

호텔 영산재에서 흥미진진한 겨울방학을 보냈다!

2012. February24

Page 25: namdozine

지역에 대한 자긍심 키우기,‘교육기부’로부터 시작되다

온돌 바닥에 앉아 전통혼례의 의미에 대해 설

명을 듣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친구

와 장난치며 소음 제조기로 활약 중인 익살맞

은 악동과 길게 하품을 하며 슬며시 두 눈을 감

는 잠꾸러기, 턱을 괴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

하는 호기심 왕자. 그리고 전깃줄에 내려앉은

참새들 마냥 서로 팔짱을 끼고 일렬로 쪼르르

앉은 소녀들. 아직 아이들에게 전통혼례는 학

교 도서관 서가에나 꽂혀 있는 먼지 쌓인 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제비뽑

기로 전통혼례 역할극의 배역을 정하자, 아이

들의 눈빛에서 금세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났

다. 지난 1월 4일 영암에 위치한 한옥호텔 ‘영

산재’에서 흥미로운 체험 극이 연출됐다. ‘목포

사랑 체험캠프’라는 명칭으로 전라남도목포교

육지원청이 영산재로부터 ‘교육기부’를 받아

진행한 ‘전통혼례 체험’이 바로 그것이다. ‘교

육기부’란 기업·대학·공공기관·개인 등 사회

각계각층이 보유한 물적, 인적자원을 유아, 어

린이, 청소년들의 교육활동(교육과정, 방과후

학교, 주말, 방학)에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비

영리 차원으로 제공하는 기부 형태를 말한다.

3일과 4일에 이틀간 진행된 목포사랑 체험캠

프는 목포시 초중생(초등 5,6학년 31명, 중등

9명)을 대상으로 치러졌다. 목포교육지원청은

지역 청소년들이 목포의 역사, 인물, 문화, 예

술과 관련된 체험을 통해 지역에 대한 자긍심

을 갖도록 돕고자 이번 캠프를 준비했다. 첫째

날(3일)에는 목포의 역사가 숨 쉬는 공간을 탐

방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어린이들은 목포 근

현대사박물관를 비롯해 갓바위, 이난영 공원,

해양유물전시관, 옥공예 전시관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한편, 둘째 날(4일)에는 ‘목포 문화*

예술 캠프’라는 부제로 생활도자전시관의 공방

체험과 한옥호텔 영산재에서 진행된 ‘전통혼례

체험’ 등을 경험했다. 특히 한옥호텔 영산재의

교육기부로 실시된 전통혼례 체험은 역할극의

형식으로 진행돼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

을 선물했다.

NAMDOzine.com 25

Page 26: namdozine

‘전통’이라는 보물섬으로 모험을 떠난 아이들

한옥 호텔 ‘영산재’의 전통문화체험관

에 모인 아이들은 전통혼례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차례대로

돌아가며 제비를 뽑았다. 아이들은 슬

며시 눈을 감고 혼례에서 각자가 맡을

역할을 나누기 위해 투명한 유리 상자

에 담긴 종이를 하나씩 집었다. 누군가

종이를 펼치는 순간 일제히 웅성거림

이 쏟아져 나왔다.

“초롱동이(청사초롱을 들고 불을 밝히

는 이)가 뭐야?”

“난 신부 측 수모라는데?”

“집례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난 기럭아범이야. 기러기아빠도 아니

고 기럭아범?”

아이들의 궁금증이 일순간 비누거품

처럼 일어났다. 자신이 무슨 역할을 해

야 하는지 아직까지 어리둥절한 것이

다. 그 와중에 ‘신랑’이라는 문구가 적

힌 종이를 뽑은 최인호(목포 대연초 6

학년)군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보

물섬으로 향하는 유일한 보물지도를

1. 모험을 위한 무지개 티켓

찾은 작은 영웅처럼 만면에 의기양양

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주변으로 몰려든 또래 친구들은 인호의 손을 번쩍 치켜 올리며 “애가

신랑이에요!!” 소란스레 외쳤다.

다음은 신부를 찾을 순서. “신부는 누구야?” 아이들의 궁금증이 한동안 지속되다가 드디어 모든

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오늘의 ‘신부’가 공개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목포 대성초등학교 5

학년에 재학 중인 오효령 양. 신랑과 신부는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앞으로 나와 서로를 마주

보지도 못한 채 쭈뼛 거렸다. 한 숨을 길게 내쉬는 오효령 양과 달리 뭐가 좋은지 연신 엷은 미소

를 머금은 최인호 군. 귀여운 꼬마 신랑과 신부가 탄생한 설레는 순간이었다.

2012. February26

Page 27: namdozine

초례: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행하는 모든 의례로 ‘혼인식’을 말하며, 전안례ㆍ교배례ㆍ합근례

등의 순서로 진행됨.

제비뽑기를 마친 아이들 중 일꾼 역을 맡

은 남학생 셋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신랑

신부가 초례(혹은 ‘대례’라고도 부름)를 거

행할 초례청을 만들기 위해서다. 수모 역을

맡은 여학생들도 잰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

식장으로 향했다. 운동장 대신 식장을 가로

지르며 혼례식 준비를 하게 된 소년들은 서

툴지만 묵묵히 제 일을 해냈다. 아이들은 모

란이 그려진 병풍을 양손으로 맞잡아 옮긴

후, 화문석(꽃돗자리)을 홀 바닥에 최대한

반듯하고 구김살 없이 펼쳐놓았다. 혼례를

올리기 위한 공간. 일생을 약속할 특별한 공

간인 ‘초례청’을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사춘기 소년들. 조심조심 병풍을 옮기고, 의

자를 내려놓는 모습이 꽤나 듬직했다.

한편, 수모 역을 맡은 소녀들은 전통혼례

지도사와 함께 초례상 차리기에 여념이 없

었다. 교배상 위에 촛대를 올리고 소나무 화

병과 대나무 화병을 차례로 놓은 후, 두 나

뭇가지를 청실홍실로 잇는 소녀들의 분주한

손길. 밤과 팥, 대추 등을 진설하는 모습에서도 진지함이 배어 나왔다. 초례청을 오가는 소녀들

의 걸음걸이에서 경쾌한 리듬이 생겨났다.

이후 살아있는 암탉이 비단보자기에 싸여 교배상(전통혼례를 치를 때 차려놓는 상) 위에 등장

했다. 그러자 초례청에 몰려들기 시작한 아이들이 단번에 신기한 듯 암탉을 둘러쌌다. 자손을 상

징하는 닭은 비단보자기에 쌓인 채 어쩌다 한 번, 오래된 시계추처럼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교묘한 위장술에 불과했다. 암탉은 교배상 위에서 바닥으로 탈출을 시도해 순식간에 아

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날개를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몸의 반동만으로 탈

출을 시도한 암탉. 아이들은 이 강심장을 가진 닭의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신기한 듯 암탉을

관찰했다. 손가락으로 슬쩍 닭 벼슬을 건드려보거나 깃털을 어루만졌다. 암탉의 탈출이 실패로

끝나고, 마침내 교배상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어 갈 때 즈음. 하객 역을 맡은 소년들이 꽃가마에

올라 신부 흉내를 내며 장난스런 시간을 보냈다.

2. 첫 번째 항해를 시작한 다양한 표정의 모험가들

NAMDOzine.com 27

Page 28: namdozine

한옥호텔 영산재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하정하 이사는 아이들을 차례로 불러 전통의상을 입

혔다. 차례차례 초례청 한 편의 의상실로 불려온 아이들은 이제껏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전통

의상을 입으며 대부분 낯설어 했다. 이마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것이 싫어 한사코 앞머리를 내리

는 가마꾼 역의 남학생. 옥빛 포에 달린 널찍한 소매를 휘휘-돌리며 바람을 일으키는 개구쟁이

집례들. 풀어 헤쳐진 옷고름을 붙들고 씨름하는 소녀들. 아이들은 전통의상을 갖춰 입자마자 의

상실을 바삐 빠져나가 초례청 곳곳을 누볐다.

드디어 신랑과 신부가 단장할 차례! 신랑 최인호 군은 바지와 저고리를 입은 후 궁중 관료의 평

상복인 푸른빛이 감도는 단령포를 입었다. 또 머리에는 양 옆에 깃이 달린 ‘사모’를 썼다. 혼례복

이 다소 큰 탓에 인호 군의 영락없이 ‘꼬마 신랑’처럼 보였다. 다음은 신부 오효령 양이 전통혼례

복장을 갖춰 입을 순서. 효령 양은

우선 한복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후, 그 위에 푸른 비단으로 안감을

덧대고 붉은 비단으로 바깥 부분

을 완성한 원삼(손을 완전히 가릴

수 있도록 소매가 긴 겉옷)을 걸쳤

다. 또한 원삼 위에 대대(홍색공

단에 심을 박아 금박 무늬를 찍어

넣은 긴 천, 벨트 역할 함)를 착용

해 원삼을 잘 고정시켰다. 그 과정

이 끝나자 이번에는 머리를 하나

로 묶어 용잠(혼례 때 사용하는 긴

비녀로 한 쪽 끝부분에 용머리가

장식돼 있는 것이 특징)을 꽂았다.

이와 함께 머리를 단정히 쪽진 후

그 위에 작은 족두리를 얹었다. 도

투락댕기(화관이나 족두리에 맞춰

머리 뒤에 길게 늘어뜨리는 큰 댕

기)는 목선을 따고 어깨에서 허리

에 이르기까지 길게 드리워졌다.

세 명의 어린 수모들은 신부 곁에

머물며 신부의 의복과 머리를 정

돈해주었다. 신랑인 인호 군 역시

신부인 효령 양의 치장이 끝날 때

까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 곁

을 지켰다.

3. 출정 준비를 서두르는 두 번째 모험가들

2012. February28

Page 29: namdozine

4. 보물섬에 도착한 아이들, 바야흐로 ‘축제’의 시작!

신랑과 신부, 기럭아범, 그리고

수모 등이 초례의 시작을 위해 초

례청 입구에 모였다. 잠시 후 신

부인 효령 양이 꽃가마에 올랐고,

오랫동안 신부의 등장을 기다려

온 가마꾼들은 다 함께 ‘이영차’

를 외치며 가마를 들어올렸다. 아

직 신부 역할이 쑥스러운 효령 양

은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열린 창

틈으로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

았다. 한 걸음, 두 걸음. 가마꾼

역의 소년들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꽃가마를 타고 오는 신

부의 재현이 끝나자 아이들이 길

게 줄을 늘어섰다. 가장 먼저 기

럭아범이 선두로 나섰다. 그 뒤

를 꼬마 신랑이, 또 그 뒤를 수모

들의 부축을 받으며 신부가 뒤따

랐다. 그러자 갓을 삐뚜름하게 쓴

두 집례(주례)가 번갈아가며 혼례

식의 홀기(혼례 의식의 순서를 적

은 글)를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3시 정각부터 신랑 최

인호 군과 신부 오효령 양의 혼례

식을 올리겠습니다. 양가 부모님

과 내빈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

아 주십시오. 지금부터 최충렬 씨

의 장남 최인호 군과 오금동 씨의

차녀 오효령 양의 혼례식을 거행

하겠습니다.”

NAMDOzine.com 29

Page 30: namdozine

“먼저 친영례를 올리겠습니다. 신랑

이 입장하겠습니다. 기럭아범은 기러

기(평생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암시)를

신랑에게 전하겠습니다. 신부 댁에서

는 나와서 신랑을 전안상(기러기를 전

하기 위해 마련된 상) 앞으로 인도하십

시오.” 국어책을 읽는 것처럼 또박또박

이어지는 집례들의 홀기 읊기로 전안례

(신랑이 신부 측에 기러기를 전달하는

예)가 진행됐다. 신랑 최인호 군은 긴

도포자락을 이끌며 천천히 전안상 위에

기러기를 내려놓은 후 그 앞에서 두 번

의 절을 올렸다. 그러자 신부의 어머니

가 환영의 의미로 기러기를 받아들였다. 신랑은 전안례를 마치고 나서 ‘양’을 상징하는 교배상의

동쪽에 가서 섰다. 다음으로 신부 효령 양이 수모들의 부축을 받으며 얼굴을 전부 가린 채 천천

히 걸어 나왔다. 족두리를 쓴 머리와 이마만 얼핏 보일 뿐 얼굴은 ‘일급비밀’에 부쳐졌다. 효령 양

은 교배상을 앞에 두고 ‘음’을 상징하는 서쪽에 가서 섰다. 신랑과 신부의 등장이 모두 끝나자 신

랑신부의 어머니가 나와 촛대에 불을 붙였다.

신랑과 신부는 혼례를 올리기 전에 수모들의 도움을 받아 손을 정갈히 씻는 의례를 치렀다. 신

랑 최인호 군은 대야에 담긴 물에 손을 말끔히 씻었고, 효령 양은 씻는 흉내만 낼 뿐 소매 자락

밖으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전안례: 신랑이 신부 측에 기러기를 전달하는 예식

교배례: 신랑신부가 처음으로 하는 상견례.

음양오행에 따라 신부는 ‘음’으로 서쪽에,

신랑은 ‘양’으로 동쪽에 서서 식을 올림.

“이제 교배례를 올리겠습니다. 신랑

은 읍하고 신랑신부는 화문석 위에 올

라서서 마주 보겠습니다. 신부가 먼저

절을 두 번 하겠습니다. 이제 신랑이 한

번 답배를 하겠습니다..” 집례는 종이

로 얼굴에 바짝 가져다 댄 채 교배례의

순서를 알렸다. 그러자 신랑신부가 번

갈아가며 서로를 향해 절을 올렸다. 최

인호 군은 어른도 울고 갈만한 능숙함

으로 신부에게 절을 올렸다. 비록 전통

혼례 체험이지만 역할극에 진지하게 몰

입하는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

하게 만들었다. 효령 양 역시 무겁고 불

편한 혼례복을 입고서도 신랑을 향해

정성껏 절을 올렸다.

2012. February30

Page 31: namdozine

합근례: 술잔과 표주박에 각각 술을 부어

마시는 예식. 술잔으로 마시는 첫 술은 부부로

서 인연 맺는 것을 의미하고, 표주박으로 마시

는 두 번째 술은 부부의 화합을 의미함.

“다음으로 합근례를 올리겠습니다. 수모는 신

랑신부를 향해 술을 따르고 찬을 차리겠습니다.

신랑은 잔을 높이 들어 하늘에 감사드리고 수모

는 안주를 제주해주십시오. 이제 신랑과 신부 수

모는 표주박에 술을 따르고 교환하겠습니다. 신

부는 신랑에게 잔을 올리고, 신랑은 신부에게 잔

을 올리십시오.” 합근례가 거행되는 동안 아이들

은 핸드폰을 꺼내 상황을 녹화하거나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무관심해 보이던 표

정 대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이기 시작한 아

이들은 전통혼례를 체험하는 낯선 시간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성혼례: 집례가 혼례를 통해 신랑신부가

부부로서 하나 됨을 알리는 의례

“두 사람은 서로 표주박에 있는 술을 마심으

로써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에 집례는 여러분

앞에서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음을 알리는 성

혼례를 선포합니다.” 집례는 수모들로부터 둘

로 쪼개진 표주박을 건네받아 하나로 합친 후,

기럭아범을 향해 고천문 낭송을 부탁했다. “기

럭아범은 앞으로 나와서 고천문을 낭독해 주시

기 바랍니다.” 목기러기를 안고 가장 먼저 초례

청에 등장해 신랑신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했던

기럭아범이 앞으로 나와 고천문(하늘에 기원하

는 글)을 낭독했다. 기럭아범은 고천문을 읊으

며 신랑신부의 행복을 기원한 후, 고천문이 적

힌 종이에 불을 붙여 하늘에 서원하는 마지막

의례를 행했다. 이로써 초례의 전과정이 끝나

고 신부 앞에 선 꼬마 신랑, 최인호 군이 신부

의 얼굴을 공개하는 순서를 가졌다. 인호 군은 신부 역할을 맡은 효령 양의 절 수건을 천천히

앞으로 끌어당겼다. 신부와 신랑의 주위를 둘러싼 아이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

았다. 효령 양의 미소 띤 얼굴이 공개되자 초례청 안에 모인 아이들이 다 함께 말간 웃음꽃을 터

트렸다. 즐거움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즐거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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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2: namdozine

전통 혼례의 마지막 순서로 퀴즈를 풀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아이들이 쇳소리에 가까운

함성을 지르며 “저요! 저요!”를 외쳤다. 자리에

서 먼저 일어나는 사람에게 질문에 답할 기회

가 주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번쩍 일어선 아이

들은 너무 많아 ‘가위바위보’로 질문에 답할 권

한을 정했다. 선물이 걸려 있는 퀴즈 게임인 만

큼 아이들은 역시나 열띤 경쟁을 벌였다. 첫

번째 문제는 ‘현대 혼례식장을 의미하는 곳으

로 전통혼례가 치러지는 공간을 무엇이라고 부

르는 가?’였다. 답은 ‘초례청’. 초례청에 감돌

던 전운이 일순간 쨍그랑 깨어지면서 일대의

소란이 일어났다. 두 번째 문제는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신랑과 신부가 혼례 때 서야 할 위

치’에 대한 질문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가위바

위보에서 최고의 승자로 살아남은 기럭아범이

“신랑은 ‘양’을 상징하는 동쪽에, 신부는 ‘음’을

상징하는 서쪽에 서야 해요”라는 답했다. 기럭

아범의 대답은 정답! 신부신랑, 가마꾼, 집례,

수모, 일꾼 등 아이들은 전통의상을 그대로 걸

친 채 퀴즈풀이에 열심히 도전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초례청에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의 웃음과 호기심, 도전의 몸짓이 유쾌하게 펼

쳐졌다.

5. 소년소녀, 퀴즈를 통해 보물을 간직하다

한옥 아래 움튼 전통의 향기

그야말로 흰눈이 ‘펑펑’ 내리는 날 한옥호텔 영산재에 도착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일정에

맞춰 영산재의 전통문화체험관에 들어서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정갈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하정하 이사가 아이들에게 혼례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혼례는 해가 저무는 시간에 올

렸는데, 그건 낮과 밤이 교차하는 해 저무는 때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시순간으로 적합하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에요.” 이론 수업과 역할극을 통한 체험 학습과정이 전부 마무리된 후, 그녀

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2012. February32

Page 33: namdozine

1. 한옥호텔 ‘영산재’를 지키는 파수꾼

남도진: 영산재에서 진행된 전통혼례 체험은

좀 특별해 보이는데요.

하정하 이사: (웃음) 저흰 아이들이 직접 역할

극을 통해 전통혼례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

도록 돕고 있어요. 단순히 전통의상을 입어보

는 것으로 끝이 나는 전통혼례 체험과는 성격

이 좀 달라요. 집례, 수모 등 다양한 역할놀이

를 통해 아이들이 보다 친숙하게 우리나라 전

통혼례의 예법을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남도진: 그렇군요. ‘한옥호텔’이라는 공간에 대

해 아직까지 궁금하게 많아요. 영산재는 언제

선을 보이신 거죠?

하정하 이사: F1대회를 준비하면서 이곳이 생

겨나게 됐죠. 아직까지 한옥호텔에 쏟아지는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일부에서

는 도 차원의 재정 낭비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하는 것 같구요. 물론 한옥호텔이 단순히

F1대회만을 겨냥한 숙박시설이라면 주변의 우

려도 지나친 건 아닐지 모르죠. 하지만 저희 문

화사업진흥회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서 지역의

전통을 잇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영산재’라는

공간을 통해 더욱 활발히 진행할 예정이에요.

한옥호텔이 지역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을 찾아

가는 과정인 만큼 주변에서 격려를 보내주셨으

면 합니다.

남도진: 이곳에 오기 전에 한옥호텔에서 경험

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에 대해 슬쩍 눈여겨

봤습니다. 이색적이고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많더라구요?

하정하 이사: 그런가요? 일본인 관광객이 다

도체험과 전통의상체험을 경험하기 위해 영산

재를 빈번하게 다녀가고 있어요. 물론 내국인

도 마찬가지구요. 물론 이러한 체험은 요즘 어

디서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죠. 그래서 차별

하정아 이사

NAMDOzine.com 33

Page 34: namdozine

성을 두기 위해 현재 전통 생활체험(전통의복

및 머리 체험/다식 만들기/산야초 음식체험),

공예체험(전통매듭공예체험/ 왕실화장품제조

체험/규방공예체험), 놀이체험(민화체험/전통

춤/풍물놀이/전통무예 체험 등), 건강체험(건

강요법), 생활체험(승마장 체험) 등으로 나눠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대외적인 홍보가 미흡한 편이라 널리 알

려진 건 아니지만, 현재까지 전통혼례 예식이

꾸준히 치러지고 있구요. 최근 호텔을 숙식을

해결하는 공간으로 여기는 단순한 인식이 변하

고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를 즐

길 수 있는 제 2의 공간으로서 한옥호텔을 경

험하길 원하는 관광객들이 증가하고 있어요.

따라서 앞으로 영산재를 휴식을 제공하는 호텔

로서만이 아닌, 남도의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발전시

켜 나갈 계획이에요.

남도진: ‘한옥호텔’이 주는 인상 역시 전통과

문화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혹은 어떤 향수를

자아내는데요..

하정하 이사: 그렇죠. 한옥이란 본래 한국 사람

들의 체질에 가장 잘 맞는 주거공간으로서 선

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곳이잖아요. 영산재

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남을 대표하는 명

소로 성장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전

통문화체험과 함께 민속공연, 전시마당 등을

한옥호텔 '영산재' 내

2012. February34

Page 35: namdozine

신설해 영산재 안에서 작은

축제를 열어볼까 합니다. 전

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되찾

고, 다 함께 우리의 것을 체험

하며 그 가치를 깨닫게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영산재’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전통

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선물하길

소망해요.

남도진: 그렇게 말씀하시니

올 한해가 정말 기대되는군

요. 전통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한옥호텔이라.. 주변 관

광지들과 연계한다면 정말 풍

성한 볼거리, 먹을거리, 생각

거리를 전달하는 특별한 공간

이 되겠네요.

하정하 이사: (웃음) 영산재는

지난해 9월부터 일반 대중에

게 선을 보이고 있어요. 그만큼 현재 시작 단계

이라고 볼 수 있어요. 따라서 아직 그 가능성을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

간을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계획들

을 준비해 지역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도록 최

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역에 사시는 분들도 앞

으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합

니다!

남도진: 이전에 갑론을박이 얼마큼 치열했느냐

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결국 어떤 변

화를 맞게 됐다면, 그 변화를 주체적으로 맞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옥호텔이 이미 탄

생한 만큼 주변의 관심과 격려가 이 지역을 풍

요롭게 만들 것 같네요.

오늘 아이들의 전통혼례 체험만 보아도 정말

특별한 진풍경이었으니 말이죠. 아이들과 내내

함께 하면서 정말 유쾌한 추억거리를 만들었어

요. 선생님께선 아이들이 전통을 체험하는 광

경을 지켜보면 어떠신지..

하정하 이사: 전통혼례에 대한 이론교육을 진

행할 때만 해도 아이들은 수업에 잘 집중하기

못했어요. 헌데 전통혼례의 역할 분담 후 각자

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의젓한 모습

을 보면서 ‘역시 한국인의 DNA는 속일 수 없

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신랑 역을 맡은

남학생만 보아도 어쩌면 그렇게 속 깊게 신랑

역을 잘 해내는지 감탄할 정도였어요. 차분하

고 정중하게 신부를 향해 절을 올리는 모습이

정말 예쁘더라구요.(웃음)

남도진: 저 또한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

었어요. 오늘 이 자린 수박 겉핥기식의 전통 체

험이 아닌, 아이들의 뇌리 속에 깊게 자리할 추

억을 마련한 특별한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하정하 이사: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영산재를

통해 특별한 즐거움을 누리고 전통 문화에 대

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내려놓는 계기를 맞았

으면 해요.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공간, 바로

영산재가 그 몫을 부지런히 담당하도록 하겠습

니다!

NAMDOzine.com 35

Page 36: namdozine

2. 전통혼례체험 취재 후기

꼬마 신랑 최인호 군의 도포자락을 잡고 ‘보

이지 않는’ 수모로서 뜻하지 않게 전통혼례체

험에 참여하게 되었다. 꼬마신랑의 귓가에 간

혹 “신부가 마음에 드냐?”라는 다소 예민한 질

문을 던지는 당돌한(?) 수모 역할을 해냈다. 꼬

마 신랑 인호 군은 언제나 “좋긴 좋죠~!”와 “그

건 비공개에요.”라는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신

부 효령 양은 “처음엔 신부 역할을 하기 싫었

어요. 전통의상도 무겁고, 제 역할이 썩 마음

에 든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전통혼례

를 체험하다보니까 생각보다 재밌었어요.”라고

자신의 느낌을 말했다. ‘신랑이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효령 양. 효령

양에게 “신랑한테 신부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

었더니 ‘비공개’래요!” 살짝 인호 군의 말을 전

했더니 재밌는지 마냥 귀엽게 미소 짓는다.

인호 군과 효령 양 외에도 전통혼례에서 만

난 나이 어린 친구들은 모두들 제 역할을 톡톡

히 해냈다. 가마꾼은 가마꾼대로 늠름하게 가

마를 옮겼고, 수모는 수모대로 예식이 끝난 이

후에도 친구의 족두리를 벗겨주었다. 기럭아범

과 집례, 그리고 혼례 잔치를 지킨 동네 사람들

역의 장난스런 친구들 역시 각자의 역할을 충

실히 해냈다. 이날 영산재에서 아이들이 만들

어낸 전통 혼례의 풍경은 ‘어울림’이라는 하나

의 하모니가 되어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일정

이 끝내고 한옥 호텔을 거닐며 주변을 구경할

때쯤 하늘 가득 소담한 눈이 내렸다. 기왓장 위

에, 두루뭉술한 장독대 위에 내려앉은 눈을 보

며 영산재가 써내려갈 흥미로운 내일을 상상

해보았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여백이 더 많은

‘영산재’가 앞으로 아이들과 어른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로 풍성히 채워지길 바라며, ‘한옥호

텔 한 바퀴’를 마무리했다.

2012. February36

Page 37: namdozine

TO. 꼬마신랑, 최인호 군

전통 혼례체험 날 이 누나에게서 명함을 건네받은 후 참으로 오래도록 기다렸지? ‘이모에서 선

생님, 결국 누나’가 된 나에게 문자와 전화를 해서 기사가 언제 나오느냐고 거듭 물었던 인호야!

늦장을 부린 누나가 이제야 기사를 올린다. 사실 ‘인호가 기사를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는

상상을 너무 오래한 탓에 생각보다 원고가 늦게 마무리됐어. 누나는 사실 인호와 같은 아이들에

게 잘 보이고 싶은 우훗- 욕심쟁이거든, 하하. 누나에게 간간히 문자를 보내 ‘(기사 작성) 천천히

하세요!’를 가만히 속삭였던 인호야. 네가 건넨 ‘천천히’가 왜 그렇게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던지.

누나가 너와의 약속을 지키

기 위해 밤을 새우느라 다크

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다,

요 녀석아!

앞으로 학교생활 열심히 하

고, 2012년 겨울방학을 통해

네가 친구들과 경험했던 전

통혼례 체험을 인호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길! ‘누

나에게 기사 언제 나오느냐’

고 물었던 그 끈기와 집념이

라면 우리 인호는 앞으로 뭐

가 되도 될 것만 같다 ㅎㅎ

그러고 보니 갑자기 최인호

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꿈은 뭔지 이 누나가 무척 궁

금하네? 다음번에 누날 만나

면 ‘비공개’라고 하지 말고 꼭

알려주길~!!

에디터 | 박혜미신랑 | 최인호군

NAMDOzine.com 37

Page 38: namdozine

포미 아구찜. 전복 / 목포시 용해동 987-5번지 / 061-274-9494

포미 아구찜 . 전복

1,2월의 제철음식

구입요령: 살이 단단하고 몸의 색이 검으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고른다.

보관방법: 지느러미와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후

먹을 만큼 비닐팩에 넣어 냉동보관 한다.

손질법 : 칼등이나 칼로 체표의 점질물을 제거하고 씻은 다음 껍질, 간장, 난소, 위, 몸통 및 턱

으로 구분하여 분리한다.

궁합음식: 무 (함유되어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아귀의 소화를 돕고 비타민C를 보충해 준다.)

효능/질병: 눈건강 (비타민A가 풍부하여 눈건강과 어린이 발육을 돕고 껍질에는 콜라겐 성분

이 있어 피부건강에 탁월한 효능을 나타낸다. EPA, DHA가 풍부하여 성인병예방과 뇌학습발

달에 좋다.)

아귀

제철음식 맛집소개

http://www.namdozine.com/nd/namdo_mat

2012. February38

Page 39: namdozine

땅 끝에 위태롭게 선 이들을 향해 ‘지금, 그대의 이파리가 흔들릴 뿐 그대라는 나무는 여

전히 굳건합니다.’라고 고요히 일깨우는 금강 스님. 천년 고찰 미황사를 일으켜 세우듯 산

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정답게 일으켜 세우는 그를 만났다. 아득한 땅 끝에 머물면서도

언제나 열린 창이 되어 세상살이를 다감하게 들여다보는 금강스님. 스님과의 다담(茶談)

은 겨울바람을 헤치고 마침내 움터난 새싹처럼 부드러운 동시에 강인했다. 삶을 오직 하

나의 선택으로만 여기는 완고함, 타인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면 도태되고 만다는 불안감을

벗어 던지고 ‘오늘’을 그저 오늘로, 평화롭게 바라본 시간이었다.

NAMDOzine.com 39

Page 40: namdozine

박혜미: 스님이 바쁘셔서 미처 참석하시지 못

한 템플스테이 다담 시간에 많은 질문들이 쏟

아져 나왔습니다. 다담 시간을 이끄신 스님께

서는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씀

하셨어요. 템플스테이를 통해 절이라는 공간

과 불교를 처음 경험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교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요?

금강 스님 : 템플스테이는 말 그대로 산사 체험

이에요. 산사체험은 미황사처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한국의 사찰을 잠깐이나마 느끼는 일이

죠. 절은 단순히 종교차원의 공간에 머물지 않

습니다. 이제껏 기나긴 역사를 살아낸, 여전히

살아있는 공간이에요. 강인하고 유구한 생명력

을 간직한 공간으로서 우리의 정신문화를 형성

해왔죠. 산사체험은 현대인들이 그런 문화유산

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개

인의 종교문제는 조금 미뤄둬야 한다고 여겨집

니다. 오히려 1,300년이나 내려온 정신문화와

뜻 깊게 재회하고, 다양한 현재적인 문화들을

새롭게 접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산사체험에서는 종교문제

에 대해서는 깊이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죠. ‘정

말로 사찰의 정신 수행을 깊이 있게 해야겠다’

하는 분들은 7박 8일 동안 진행되는 참선집중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요, 수행을 통

해 스스로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바

로 불교의 수행정신이기에, 수행에 집중해보는

일도 필요하죠.

템플스테이에서는 각각의 종교를 그대로 인

정합니다. 종교에 대한 부분들은 이미 미황사

를 찾아오기 전부터 뒤로 미뤄둔 것이잖아요.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싶다’ 했을 때는

종교에 상관없이 산사체험을 통한 사찰의 정신

과 문화들을 체험해 보고자 마음먹은 것이니까

요. 아직까지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종교차원의

다른 시각들이 서로 대립하거나 찾아온 사람

들로 하여금 갈등을 겪게 만든 경우는 없었어

요.(웃음)

박혜미: 제가 템플스테이를 경험하면서 궁금

했던 부분은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이의 제기

는 아니었습니다. 산사체험이라지만 문화를 이

해하는 차원에서 불교의 핵심을 조금은 맛보고

싶다는 욕심이었죠. ‘불교는 신을 믿지 않는다’

라는 부분이 궁금증을 자아냈어요.

2012. February40

Page 41: namdozine

‘신과 인간,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에 대해..

금강 스님 : 종교라고 하는 것은 동서양에 따라 그 개념이 달라요. 동양의 종교는 마루 종(宗)자

에, 가르칠 교(敎)자를 쓰거든요. 기본적으로 ‘사람’ 중심이에요. 물론 서양의 종교도 마찬가지이

긴 하죠. 하지만 동양의 종교는 내가 삶을 사는 데 있어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주

목하죠. 종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 삶이

목적인 것이죠. 동양의 종교는 어떤 가르침을

통해 내 삶을 가꾸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합니

다. 이번 생을 부여받은 나의 삶이란 게 얼마나

귀해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잖아

요. 하지만 이렇게 귀중한 삶을 잘 가꾸는 일에

사람들은 부족한 부분들이 많아요. 삶을 일궈

가면서 부딪히는 부분도 많고요. 그렇기 때문

에 훌륭한 성인들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

을 수용하고, 또한 그 가르침에 의지해 내 삶을

살아내는 것이죠. 우리는 저마다 부모님으로

부터, 혹은 또래집단으로부터 배우기도 하고,

학교나 책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하지

만 그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은 ‘성인들

의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동양의 종교는 사람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음으로 동서양

종교 간의 차이점은 사람들이 겪는 다양한 문

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의 상이함을 들 수 있어

요. ‘이것은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다. 그

래서 절대자인 신에게 의지해야 한다.’ 라고 믿

는 시각이 바로 서양의 종교에요. 반면 동양의

종교는 좀 달라요. 동양에서는 성인들의 지혜

를 통해 삶의 갈등과 번뇌를 극복하려고 하죠.

동양에서 가장 발달한 불교는 사람들이 갈등하

는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냐고 묻죠. 그리고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만 극복한다면 정

말 자유롭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생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고

욕심을 버리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는 바로 수행을 통해서다, 그럼 또 수행의 방법으로

는 무엇이 있는가?’하는 물음에 대해 한국에서는 ‘참선’이라고 보는 겁니다.

NAMDOzine.com 41

Page 42: namdozine

‘욕망의 정점에 다다른 우리들..’

지금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굉장한 혼

란에 빠져 있어요. 요즘 시대를 ‘욕망의 시대’

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욕망이 그만큼

정점에 달해 있어요.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들

을 마음대로 하고자 하죠. 상상하는 모든 것들

을 현실로 실현코자 합니다. 요즘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을 통해 알고 싶은 정보를 모두들 손

쉽게 얻고 있잖아요? 내가 원하는 것, 알고 싶

은 것. 체험하고 싶고 가보고 싶은 곳 등을 간

편하게 검색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요즘 사람

들은 자신들의 기초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들

을 현실로 구현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흐

름에 과학과 물질, 집단력이 가세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언제든지 현실에서 가

능토록 돕고 있죠.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있어

서도 많은 사람들이 원해야만 비로소 그 일이

가능해지잖아요? 한 두 사람이 원해서는 쉽게

만들어질 기회를 얻을 수 없죠. 집단력과 물질,

과학 등이 인간의 욕망과 결합함으로 인해 우

리는 굉장히 발달한 사회 속에서 삶을 영위하

게 되었지만, 결국 무한 경쟁의 늪에 빠져들게

됐어요.

사람들은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가지기 위

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지나치게 골몰

하게 됐고, 그 질문의 답은 ‘경쟁’이라는 단어

로 이어졌죠. 사람들이 원하는 더 많은 돈과 높

은 지위는 한정되어 있어요. 그러다보니 무한

경쟁이 불가피해진 겁니다. 욕망을 극대화 시

킬수록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병리현상들

은 더욱 심각해진 것이죠.

2012. February42

Page 43: namdozine

“흔들리는 것은 나무가 아닌 이파리 뿐..” 사람들 간의 경쟁이 심화될수록 좌절하는 사

람들도 늘어나죠. 그럴수록 ‘마음에 숱하게 생

겨나는 상처들은 어떻게 해소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여기엔 두 가

지 방법이 있죠. 하나는 신에게 의지하는 방법

이고, 다른 하나는 나 스스로 상처받은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이에요. 후자를 선택할 경우 상

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불교에서

는 자기 안에 이미 평화로운 마음과 성품이 있

다고 여깁니다. 마치 평화롭게 서 있는 나무

와 같은. 그 나무는 본래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

유로운데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것이죠. 바람

이 이파리를 흔듦으로 인해서 작용들이 일어납

니다. 나무의 입장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 것

이 반가운 일이고 좋은 일이죠. 헌데 현대인들

은 나무 이파리의 흔들림만을 봅니다. 나무의

입장에서 바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이

렇게 흔들리지? 왜 바람이 불지?’하고 스스로

에게 묻게 되고 갈등하게 되죠. 이는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이파리에만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

이에요. 그렇게 이파리에만 주목한 채 모든 문

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것이죠.

“삶은 한 가지의 모습으로만 선택될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본래 평화로운 존재다, 본

래 행복한 존재다, 라고 여깁니다. 늘 지금 현

재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존재라고 믿는 것이

죠. (불안과 갈등은)우리가 마음에서 만들어 내

는 것이죠. 다른 대상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그러한 ‘비교’는 결국 좋은 것을 선택하게 만들

죠. 그러나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되면 나머지를

다 죽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허나 세

상을 사는 일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

다. 우리는 선택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지고 도

태된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것이죠.

한 중학생이 있다고 해보죠. 그 중학생의 모습

에는 공부 잘 하는 모습도 있고 오락을 좋아하

는 모습도 있을 거예요. 중학생은 어느 걸 더

좋아 할까요? 공부보다 게임하는 일을 더 좋아

할 수도 있죠. 그런데 부모들은 공부 잘하는 아

이의 모습을 선택하고, 다른 모습은 내 자식의

모습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거예요. 하지만 아

이는 그 안에 수 백 가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을

수 있어요.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하는 욕망도 있

을 것이고, 게임을 즐기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

고 싶어 하는 욕망도 있을 것이고. 헌데 부모가

오직 강요하는 모습은 다른 건 다 무시하고 공

부만 하는 아이의 모습인 거죠. 그렇게 한 가지

모습만 강요하고 다른 모습은 내 아이의 모습

이 아니야, 라고 부정한단 말이죠. (이렇게 한

가지만을 고집한다면) 내 아이의 내면을 제대

로 들여다볼 수 있을까요? 이건 제대로 된 관

계가 아니지요. 부모는 아이의 모든 모습을 받

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NAMDOzine.com 43

Page 44: namdozine

“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을 일단 미뤄두십시오. 그러고 나면 새로운 내가, 주변에 널려 있는 행복의 조건들이 보일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앞서 말했듯이 늘 이렇게 공부

하나로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친구들과 경

쟁하게 만듭니다. 한 인간 안에 있는 많은 장점

과 희망사항들을 획일화된 하나의 선택으로 전

부 죽여 놓아요. 그러고 나면 결국 삶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죠.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일단

뒤로 미뤄둬 보세요. 그럼 다른 모습까지 다 드

러나게 됩니다. 내가 감추고 있는 정말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죠.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

는 시각은 늘 경쟁에 치우쳐 있어요. 타인과의

경쟁 속에 있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 생각을 버리고 나면, 오히려 내가 찾

고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선명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행복의 조건들이 내 주변에 다

양하게 널려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죠. 그런

데 이런 이치를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곳이 없

어요. 그래서 무한경쟁 속에서 잠시 벗어나 자

신의 내면을 점령한 경쟁심과 욕망을 일단 내

려놓을 공간이 필요해요. 숲속 산사와 같은 공

간 말입니다.

“문을 열고 나와 네가 하나가 되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실제 사찰의 건축양식 하나하나마다 굉장히

지혜가 담겨 있어요. 산속에서 천년 넘게 내려

온 정신문화를 간직한 만큼 그 안에 담긴 지혜

들도 모두 소중한 것들입니다. 현대인들의 보

편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를 한번 생각해 보세

요. 겹겹이 잠금장치가 되어 있잖아요. 외부로

부터 방해받지 않기 위해 갖가지 장치를 만들

잖아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 자신이 마음을

닫고 스스로 갇힌 상태라고도 볼 수 있죠. 하지

만 사찰의 한옥은 문을 열면 바로 밖이에요. 문

만 열면 풍경과 내가 하나가 됩니다. 우리 마음

도 마찬가지에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문을 굳게 닫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어떻게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겠어요? 또

어떻게 평화로워 질 수 있겠어요? 문을 열고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기쁨.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잖아요?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은 바로 산사의 한옥에서 하룻밤이라도 지내

봐야 느껴지는 거랍니다. ‘아~ 내가 문을 여니

저 풍경과 공기와 하나가 되었구나!, 안팎이 없

어졌구나.’ 하고, 하룻밤만 자도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죠. 또한 세상의 그 어떤 음악보

다도 산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더 아름답다

는 사실에 눈 뜨게 되는 것이고요. (웃음)

2012. February44

Page 45: namdozine

“과거의 이파리를 떨어뜨려야 오늘의 성장을 일궈낼 수 있습니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는 겨울이 되면 스스로 자

신이 가진 기득권들을 버립니다. 봄에요~ 나무

가 새싹 하나를 내밀기 위해서 얼마나 부단한

노력이 기울이는 줄 아세요? 얼마나 애쓰는데

요. 새싹 하나를 밖으로 내밀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겨울이 되면 여름 내 푸르게 키워낸 나

무 이파리들을 떨어뜨리잖아요. 미련 없이 과

감하게. 그래야 다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에

요. 낙엽은 떨어져 바닥의 거름이 되고, 다시

나무를 푸르게 키워낼 자양분이 되어 새로운

이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한

그루의 나무도요? 굉장한 법문을 하고 있는 거

예요. 우리한테 큰 가르침을 주는 거예요. 매일

매일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성장을 하

는 것이죠.

사람들은 늘 그렇습니다. 지나가버린 과거를

가지고 늘 오늘을 살아갈 재산으로 삼죠. 항상

지나가버린 시간과 현재를 비교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에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죠. 우리는 현재에 존재합니다. 과거의 것들은

낙엽이 떨어지듯이 떨어뜨려놔야 지금을 생생

하게 살 수 있습니다. 숲속의 겨울나무들을 만

나고 한옥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우린 이

런 느낌과 깨달음들에 조금씩 다가설 수 있어

요. (이런 깨달음은) 책에서 얻어지거나 강의에

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죠.

핸드폰을 끄고, 내가 좋아하는 고기음식도 삼

가며 사찰에서 하루를 머무는 것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해요. 맑은 공기와 깨끗한 음

식.. 내 몸에 불어 넣는 선물이죠! 공부도 되지

만 정말 애쓴 자기 자신한테 주는 소중한 선물

말입니다.

이길찬 씨: 제가 선생님 오시면 질문 드리려고

질문거리를 하나 남겨뒀어요. 템플스테이에 오

기 전에 다양한 고민들이 있었는데, 오기 전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템플스테이를

통해 내 안에 담긴 고민들을 내려놓고, 조금은

멀찍이 바라보자..’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

다. 이런 마음들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NAMDOzine.com 45

Page 46: namdozine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엔 없는 것입니다.”

금강 스님: 내가 지금 생각하지 않는 것은 (세

상에 존재하지 않는) 없는 거예요. 내가 생각

을 일으키면 생각이 존재하는 것이고, 내가 생

각을 내려놓으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끝없이 지나간 것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한단 말이죠. 지나가버린 것을 가지고 현재를

붙잡으려 하죠. 하지만 그건 부질없는 노릇입

니다. 지금의 현재적인 마음이 중요합니다. 이

미 과거는 그대로 완성을 의미합니다. 좋은 것

이든, 싫은 것이든 이미 매듭이 생겨났어요. 현

재만 있다고 생각해야 해요. 미래도 있지 않고

현재만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건 다 놓을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늘 괴롭히는 사념들은

그런 것들이죠. 과거에 대한 생각.. 늘 후회하

잖아요? ‘아 그때 그렇게 할 걸..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이런 생각들이 현재의 나를 괴롭

히는 거예요. ‘내가 나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봐야 겠다’ 하는 생각을 일으킴과 동시에, 나

를 괴롭히는 생각은 무엇인지, 혹은 나를 지치

게 하는 생각들을 좀 내려놓고 싶다..‘라는 마

음들이 생겨나는 거잖아요? 세상 속에서는 정

신없이 살지만, 산사에서는 나와 일상을 되돌

아볼 여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매일매일 바쁘게 찾고, 자신

의 선택을 남과 비교하고, 그 속에서 욕심을 부

리는 그런 일상을 벗어나 ‘진정한 나는 어떤 모

습일까’ 고민하게 되는 곳이 절이잖아요. 절은

나를 다시 찾게 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곳입

니다. 우리 DNA에는 절이라는 공간이 주는 휴

식과 사색에 대한 향수가 담겨져 있어요. 때문

에 내 안에 엉킨 감정과 갈등의 덩어리들이 무

엇인지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템플

스테이를 통해 내 마음 속에서 나를 갈등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깨닫고 내려놓겠다’ 하

는 그 마음은, (본래부터 우리 안에 간직된) 좋

은 마음이에요.

이길찬 씨: (웃음) 결국엔 또 카메라를 들고 와

서 욕심껏 담아갑니다.

금강 스님: 본래 비워야 새로운 걸 담을 수 있

어요. 좋은 일입니다.(웃음)

박혜미: 일상생활에서 참선할 수 있는 방법이

2012. February46

Page 47: namdozine

없는 지 궁금합니다. 템플스테이를 경험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를 위해서요. 앞서 말

씀하셨듯이 욕망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각자의 마음속에 담긴 나무의 이파리가

흔들릴 때 그 흔들림이 위기가 아닌, 유익이라

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지 말입니다.

“이번 생은 한번 뿐입니다, 다신 오지 않습니

다.

소중한 오늘을 값지게 살도록 힘쓰세요!”

금강 스님: 수행은 그것 때문에 있는 거예요.

일상생활에 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산속에서

만 수행이 있고 내 삶에서는 수행이 없다고 하

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진정으로, 저는 사

람들이 늘 각자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길 바랍

니다. 지금 생은 다신 우릴 찾아오질 않아요.

오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

서 정말 오늘을 값지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늘 해야 하는 것이죠. ‘이번 생을 행복하게 살

아야겠다’라는 생각을 늘 첫 번째 다짐으로 가

지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오늘

을 참되게 살고자 할 때, 우리 각자가 어떤 삶

을 살아야 할 것인지도 눈에 보이게 됩니다. 우

리는 지나고 나면 항상 ‘아차, 그때 이렇게 할

걸 ’하고 후회하잖아요. 그건 지혜가 없기 때문

이에요. 당시 조금만 지혜로웠다면 후회하지

않고 만족하며 ‘그래 정말 내가 잘했어.’ 이렇

게 스스로를 향해 칭찬을 건넬 수 있을 텐데요.

헌데 그런 지혜는 쉽사리 만들어지는 것은 아

니죠. 왜? 그건 우리가 순간순간 욕심을 부리

기 때문이에요. 눈은 좋은 걸 보려고 욕심을 부

리고, 귀는 좋은 소리를 듣고자 늘 사리분별을

하잖아요, 코도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싶어 하

고, 입 역시 뛰어난 맛을 느끼

고 싶어 하다 보니, 눈코귀입이 전부 좋은 것을

향해 있는 거죠. 그래서 결국 다른 것들은 (더

욱 다양하게 존재하는 가능성들을) 다 죽이게

되는 거예요.

NAMDOzine.com 47

Page 48: namdozine

“일상 속 여백을 통해 날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세요.”

그래서 전 늘 사람들에게 이런 화두를 던져

줍니다. ‘송장을 이끌고 다니는 이것은 무엇인

가..’ 이 육신을 이끌고 다니는 나란 사람은 도

대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죠. 버

스를 타기 전에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우리에

겐 사실 생각의 공백이 많잖아요. 어떤 일을 하

지 않을 때는 늘 생각의 공백이 생겨나잖아요?

그럴 때마다 ‘이 송장을 끌고 다니는 이 눔은

도대체 무언인지’ 늘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우리 육체는 끝없이 변화합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훨씬

수월해지죠. ‘이 송장!’이라고 스스로에게 외

칠 때마다 (욕망에서 벗어나) 나란 사람이 어

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될 거예요. (지나버린

과거와 이별하고, 미래에 기대지 않은 채) 현

재의 나를 순간순간 되찾게 되는 것이죠. 현재

의 나를 향해 ‘도대체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

지?’ ‘욕망에 끌려가지 않는 진정한 나란 무엇

이지?’ 자꾸 물어보세요. 그렇게만 된다면 일

상생활 속에서도 늘 수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수행을 통해 욕망에 끌려가지 않고, 현재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살게 되는 것이죠.

버스를 기다리거나 잠시 무언가를 하다가 멈췄

을 때- 일상의 여백에- 늘 자기 자신을 찾으려

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계속 하다보면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이 생겨나겠죠? 하지만 이런 마음들을 품

는 일은 수행이 없이는 굉장히 어려워요. 우린

욕망을 품은 존재들이기이에 잠시잠깐이라도

눈을 돌리면 금방 타인과의 경쟁 속에 빠져들

고, 그러한 경쟁을 통해 하나를 선택해버리고

말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선택받지 못

한 나머지 가능성들을 모두 죽이게 되는 것입

니다. 이것은 ‘나’ 자신으로서 생생하게, 또한

지혜롭게 생을 살고자 하는 참다운 모습이라고

볼 수 없어요.

2012. February48

Page 49: namdozine

박혜미 : 저 역시 얼마 전까지 제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현재보다는 미래를 더

많이 생각했습니다. 현재보다 미래를 보며 지

치고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

씀은 없으신지요?

금강스님: 지금 화내는 마음이 있으면 그 안엔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어요. 지금 욕심 부리는

마음을 내면 어떤 것도 마음에 새롭게 담을 수

없어요. 실제로 무언가를 담으려고 한다면 오

히려 비워둬야 합니다. 늘 비워두면 뭐든 담을

수가 있어요. 헌데 우리는 종종 담으려고 하는

생각을 먼저 담아버리고 진정 담아야 할 것들

을 놓쳐 버리죠. 늘 비워둬야 합니다. 새롭게,

진정 원하는 걸 담기 위해선 말이죠.

박혜미: 남도진을 통해 템플스테이를 소개할

텐데 앞으로 미황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할 이들

에게 ‘그대들! 이런 마음 하나쯤은 품고 왔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으시다면요?

금강스님: 마음가짐에는.. 다른 건 필요 없어

요.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하는 마음? 비

우는 것은 여기 와서 비워도 되거든요? 욕심

을 가득 안고와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내가 여

기에 존재하는 것들을 담담히 받아들여봐야겠

다, 내 생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봐

야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천 삼백년

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 공간을 내 안에 들

여 보겠다’라는 마음이 있다면, 미황사의 유구

한 기운들이 내게 다가올 겁니다. 나무 한 그루

라도 내가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있을 때 내

눈에 띄는 거처럼 말이죠.

정말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필요해요. 비

교하고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

대로를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나머

지 것들은 저절로 비워져요.(웃음)

이길찬 씨: 마지막으로 남도진의 독자 분들께

한 말씀 하신다면..

금강스님: 제겐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소

중히 여겼으면 하고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

습니다. ‘일 년의 일주일쯤은 쉬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해요. 하루라도 쉬면 경쟁에서 밀려

날 것 같지만 오히려 훨씬 멀리 뛸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조급해 하지 말았음 합니

다. 요즘엔 대부분 스펙 쌓기에 골몰하죠. 그러

나 쉬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은 스펙

쌓기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저는 늘 이곳 땅 끝

에 머물며 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

을 심어줄 생각입니다~~.

금강 스님 - 금강스님은 전남 해남이 고향이다. 열일곱 살(1982)에 대흥사 지운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스무 살(1985)에는 해인사에서 행자생활을 보냈고, 스물세 살에는 범어사에

서 비구계를 받았다. 1991년 중앙승가대학교에 입학해 <승가대신문>편집장과 총학생회장을 역

임하였다. 또한, <전국불교운동연합> 부의장과 <범종단개혁추진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1994년

종단개혁을 도왔다. 이후 2000년부터 현재까지 미황사의 주지승으로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

선수행, 괘불재 등 다양한 수행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다. 한편, 인터넷신문 <미디어 붓

다> 회장 및 조계종 교육위원을 맡고 있다.

- 참고서적: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지은이: 금강 스님) 중 저자소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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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February50

Page 51: namdozine

---목포 갓바위 / 입암산 둘레길을 가다

손바닥 만 한 햇볕을 구경하며 길을 걸었

다. 두 발이 언 땅을 깨울 때마다 추위에

숨죽인 먼지들이 반가운 듯 기척을 낸다.

길은 곧지 않다.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

하다. 어린 시절 앓고 난 후 눈가에 희미한

흔적으로 남은 마마자국을 어루만지듯, 지

나온 시간을 천천히 되짚으며 걷는다. 숲

과 파도를 동시에 안을 수 있는 목포 입암

산 둘레길. 목포 도심에 잠겨 있는, 익숙하

지만 특별한 그 길을 따라 때론 황소걸음

으로, 때론 종종걸음으로 산과 바다를 누

볐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면 우리는 조금씩 경건해진다. 뜨겁게 달구어진 ‘일상’이라는 프라이

팬을 내려놓은 채 수도꼭지를 틀어 그 안에 물을 붓고, 비누거품 가득한 스펀지로 말끔히 마음을

닦아낸다. 한 해를 맞는 특별한 설거지를 위해 목포 입암산 둘레길을 찾았다. 굉음을 내며 무래

하게 달리는 자동차들을 향해 한바탕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며 갓바

위터널을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터널을 빠져나오니 하늘이 수상하다. 한바탕 눈을 퍼부을 것처

럼 잔뜩 흐리다. 무단횡단은 금물임에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눈앞에 둔 탓에 아스팔트 도로

를 날다람쥐처럼 잽싸게 건넜다. 단출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인가 몇 채와 한겨울에도 여전히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하는 억새 숲을 바라보며 갓바위로 향했다.

경건하지만 수상한 오늘, 갓바위를 지나 입암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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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갓바위를 정면에서 관망할 수 있는 해

상보행교(입암산 둘레길의 시작점과 평화광장

을 연결함)에 도착했다. 수면 위에 고요히 떠

있는 나무 테크 위에서 8미터와 6미터의 두 개

바위로 이루어진 갓바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규모는 기대보다 아담하다. 거대한 조형물

이나 자연경관을 올려다볼 때 느껴지는 중압감

같은, 지나치게 묵직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자

연이 일궈낸 조각품이라는 칭송만은 헛되지 않

은 느낌. 갓바위 곳곳에는 풍화혈(風化穴)이

엿보였다. 해풍과 파도 등의 침식작용으로 바

위 표면에 균열이 생기고, 그 틈새에 염분 섞인

물방울이 스며든 후 겨울이 찾아오면 물방울은

이내 냉각되어 팽창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생겨

난 구멍이 풍화혈이다. 치즈의 단면처럼 숭숭

구멍 뚫린 모습이 조금은 처연하다. 왠지 비스

킷처럼 한 입에 배어 무는 순간 바스라질 것만

같다.

갓바위는 지난 2009년 4월 27일 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갓을 쓴 두 사람이 다정스레 수평선을 바라보

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이색적이다. 효심 깊은

소금장수 아들과 병든 아버지의 기구한 전설이

깃든 바위이자 멋진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

는 명소로도 유명한 갓바위. 오후 5시쯤 카메

라를 들고 보행교 위를 어슬렁거리다보면 노을

이 두 남자의 얼굴과 만나는 순간을 감상할 수

있다.

갓바위 보행교는 총 길이 298미터, 폭

3.6~4.6미터에 이른다. 갓바위와 마주보는

수상다리로 평화광장과 입암산 둘레길을 잇

는다. 물 위에 떠 있는 나무 테크를 따라 바다

의 숨결을 은미하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보

행교에는 야간조명이 설치돼 색다른 밤바다

와 갓바위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연인 혹은 가

갓을 쓴 두 남자, 2012년에 도착하다

2012. February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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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 단위의 인파들이 자주 몰린다. 동절기에

는 05:00~23:00까지 개방되며, 하절기에는

05:00~24:00까지 출입을 허가한다. 다만, 태

풍이나 호우, 폭설, 안개 등의 원인으로 기상이

악화될 때는 잠시 출입이 통제된다.

------------------- 갓바위의 전설 1

일찍 어머님을 떠나보내고 소금을 팔아 아버

지를 돌보던 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날이 갈

수록 아버지의 병환이 악화되는 것을 걱정해

약값을 구하기 위해 멀리까지 소금 행상을 나

갔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소금은 잘 팔리지

않았다. 부친 걱정에 한걸음에 고향으로 돌아

가고 싶었지만 약값은커녕 여비조차 마련하지

못한 터라 내내 망설여졌다. 결국 한달 동안 어

느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청년이 품삯을 받을 때가 되자 욕심 많은 주인

은 시치미를 떼고 그를 빈손으로 내쫓았다. 억

울한 마음에 길가에 널 부러져 있던 청년에게

지나가던 스님이 다가와 그 사연을 물었다. 청

년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자 스님이 그를 책망하며 아버

지가 위독함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청년은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영

혼이라도 편히 모시고 싶은 마음에 명당을 찾

아 헤매던 청년은 우연히 바닷가 근처를 지나

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했다. 바다가 시원

하게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이 아버지의

영혼을 편한 곳으로 인도할거란 생각에 관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그만 실수로 바다 속에 관

을 빠뜨리고 말았다. 청년은 부친의 관을 잃어

버린 자신을 크게 책망하며 결국 스스로 목숨

을 끊었다. 그 후 그곳엔 아버지와 아들을 닮은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솟아올랐다.

NAMDOzine.com 53

Page 54: namdozine

---------------------------------------------------- 갓바위 전설 2

부처님과 아라한(번뇌를 끊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성자)이 영산강을 건너던 중 잠시 바닷가

에서 그들의 행로를 쉬었다. 그들은 잠시 후 자신들이 쓰고 있던 삿갓을 그대로 놓아둔 채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그 후 삿갓이 놓인 자리에 바위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이를 중바위(스님바위)

라고 불렀다.

갓바위는 이미 목포를 상징하는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갓바위의 등허리로부터 시작되

는 입암산은 아직까지 익히 알려지지는 않은 상황. 최근 5km에 달하는 입암산 둘레길이 조성돼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입암산은 목포 자연사박물관, 문화예술회관, 남농기념관 등을 비

호하듯 감싸고 있는 121m 높이의 산이다. 삿갓 립(笠) 자(字)를 써서 갓바위를 간직한 산임을

그 이름에서도 드러낸다. 지난해 입암산 둘레길이 공식적으로 개통되면서 갓바위를 비롯한 각종

문화예술공간과 함께 시민들의 새로운 쉼터로 떠오르고 있다.

갓바위를 간직한 ‘입암산(笠岩山)’에 대해

2012. February54

Page 55: namdozine

“생각의 냄비 속에 후회가 끓고 있다. 이제 그만‘어제'를 잠재워야 할 때”

누군가가 걷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의 뒷모습 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숨은 표

정과 만날 수 있다. 고요한 듯하지만 근심과 불안, 후회로 소란스러워진 두 어깨. 머뭇거리며 땅

위를 내딛는 발걸음. 시간을 기쁘게 유영하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는 몸짓. 사람들은 유독 새해가

되면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찾는다. 가볍거나 혹은 진지한 일탈을 시도하는 우

리. 어제라는 불꽃 위에서 지글지글 끓어올라 검은 연기를 내뿜는 생각의 냄비. 이젠 정말로 지

나치게 과열된 어제라는 불꽃을 잠재우고, 후회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생각의 냄비를 깨끗이 씻

을 때이다.

입암산, 꾸미지 않는 벗처럼 편안한..

갓바위를 둘러보고 계단을 올라 입암산 둘레

길을 밟기 시작했다. 바다가 보이는 갓바위 정

수리쯤에 서서 마음속으로 ‘출발!’을 외친 시

각은 오전 10시쯤. 드문드문 고집스런 돌덩이

를 얹고 있는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 요리조리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를 짚고 어기적 걷는 몸

이 불편한 노신사. 산에 오르면 언제나 만나게

되는 중년의 등산 마니아들. 그들을 살포시 재

치고 앞서 걸었다. 5분 정도 걷자 사람들 발길

에 잘 닦인 푸근한 흙길이 나왔다. 정상을 가리

키는 안내표지판을 따라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잘 닦인 흙길과 ‘이 길은 바위지역이므로 위

험하오니 우회 하십시오’라고 적힌 표지판 사

이에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위험’이라

는 단어가 주는 불안감을 누르고 호기심이 이

끄는 곳으로 향했다. 길을 걷는 내내 왼편으론

아파트 숲을 이룬 목포 도심이 나란히 평행선

을 그렸다. 어느덧 숲길로 들어서자 아직 숲에

동화되지 않은 나무의자가 생경하게 눈길을 끈

다. 한편, 문득 새로운 길을 발견한다. 길은 발

밑으로만 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무 표피에도

사람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수많은 길들이

지문처럼 흐르고 있었다. 입암산 산행은 산을

정복해야겠다는 각오를 갖게 하기 보다는 바다

와 도심을 번갈아 내려다보며 조금 긴 산책을

즐긴다는 느낌을 주었다. 오랜 만에 만난 벗과

조용한 수다, 조금 긴 산책을 즐기고 있다는 기

분에 가까웠다.

건강을 기원하는 ‘건강문’을 지날 때쯤 목포

도심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투박

한 바위와 바위의 틈을 통과하자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에 적힌 ‘건.강.문’ 이라는 단어가 새

삼 눈에 띄었다. 생후 6개월이 된, 아직 어린

새싹에 불과한 ‘남도진’과 그 안에서 날마다 꿈

꾸는 세 젊은이들(편집장: 이길찬, 에디터: 박

혜미, 그래픽디자이너: 한주연).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2012년 한 해 동안 건강

하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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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February56

Page 57: namdozine

목적지보다 흥미로운 길 위의 시간

편백나무 숲길을 걸으며 피톤치드(식물이 해

충이나 공기에 저항하려고 내뿜는 물질. 스트

레스 해소와 살균 작용에 탁월)를 천천히 들

이마셨다. 가야할 곳을 조용히 가리키는 나무

로 된 거대한 화살표. 나무와 흙과 돌로 만들어

진 반들반들한 계단. 입암산의 특징은 이정표

가 갈림길 위에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막상 어

느 한 지점에 도착하면 이곳이 내가 찾던 곳인

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

런 상황이다. 고양이바위를 찾아 바위를 헤치

고 길을 나섰는데 정작 고양이바위에 도착하

면 그곳이 내가 찾고자 한 곳인지 알 길이 없

다. 앞서 보았던 이정표에는 ‘고양이바위 5분

40kcal’라는 표시만 되어 있을 뿐 정작 목적지

에 도착하면 ‘이곳이 고양이바윈가?’라고 고개

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목적지를 찾

는 일은 모호해지고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

다. 오히려 길 위에 펼쳐진 사색거리가 더욱 흥

미롭다. 베어진 나무 위에 살짝 얹혀 진 작은

돌탑들. 길을 걷다 휴식이 필요하면 원하는 만

큼 쉬어갈 수 있는 나무의자. 숲속에 자생하고

있는 수종을 설명해주는 안내문. 입암산은 높

고 험준한 산으로서의 흡입력보다는 발을 부드

럽게 감싸는 흙길과 아기자기한 돌탑을 간직한

포근한 산. 산을 오르는 일이 무료해질 때면

운동기구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일상 속 쉼터로

서 낯선 방문객을 맞는다. 눅눅해진 일상을 조

급하지 않게 잘 말릴 수 있도록 볕 좋은 시간을

선물하는 사람과 가까운 산이다.

희망의 고리를 잡고 ‘내일’로 향하는 문을 열다

산과 바다는 인간의 좁아진 마음에 보다 넓은 ‘틈’을 허락한다. 내가 속해 있는 세계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인간과 달리 자연은 간결하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산에 오

르면 바다를 보고파 하고, 바다에 이르면 산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오로지 ‘산’만 좋아

하고 오로지 ‘바다’만을 좋아하는 이들은 드물다. 대부분 산과 바다를 모두 경험하길 원한다.

‘시간에 매듭을 지어 일 년을 만드는 일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고민을 해본 적 있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까지 ‘?(물음표)’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때때로 일

상 속에서 쉽게 권태로움을 느낀다는 사실.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많은 순간 감동을 의

미하지만, 시간에 대한 무뎌짐은 때때로 감동을 느끼는 내면의 감각을 마비시킨다는 것. 하

여 무뎌진 감동 센서로 인해 오늘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일과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은 일

이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질 수도 있다는 각성. 아마도 그래서 일 것이다. 우리에겐 자연의 숨

결을 통해 ‘감동’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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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March58

바다와 산, 다시 바다로 이어진 둥근 하루

산에 대한 고정관념은 둘레길 걷기의 여정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럴 때 습관이란 건 참 무

섭다는 느낌이 든다. 문득 걷다보니 입암산 둘

레길 걷기는 ‘오로지’ 산행이 되어 있었다. 산

을 대하는 낡은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정상에

오르려는 욕심을 흔들어 놓았다. 결국 로프를

잡고 정상에 오르는 ‘과감한 도전’을 감행했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니 왼편으로는 오밀조밀한

목포 도심이, 오른편으로는 목포의 바다가 파

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갓바위에서 멀지 않은

평화광장 인근에 정박한 배들이 한눈에 들어왔

다. 또한 목포문화예술회관과 자연사박물관,

도자전시관 등 예향 목포를 가능케 하는 문화

공간들이 반원을 그리며 입암산을 올려다보았

다.

정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본 후 다시 길을 되짚

어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내

려왔다. 그곳에서 길을 틀어 입암산 둘레길로

조성된 남은 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다듬

어지지 않은 천연의 곡선을 따라 길을 걷다보

니 아담한 누각이 나왔다. 아이들이 마치 놀이

터에 온 것처럼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

다. 동네 사랑방 같은 누각을 내려와 고양이바

위에서 숨을 고른 후 옥공예전시관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아스팔트 도로와 자동

차들. 문화예술관을 지나 둘레길 걷기의 출발

점이 되어준 갓바위보행교를 향해 갔다. 그러

던 중 개펄이 드러난 썰물 때의 해변-수변도로

밑-에서 굴을 채취하시는 어르신들을 뵙고 잠

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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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미: 꼭 눈이 올 것 같아요. 춥지 않으세요?

어르신1: 어디서 온 처자여? 방송국에서 왔

어?

박혜미: 아니요. 잡지사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뭐하세요?

어르신2: 굴 까고 있어. 그런디 우리 얼굴 나오

믄 자식들이 안 좋다고 할 것 인디. 다 늙어서

궁상떤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티고.

박혜미: 뭐가 그래요.. 이렇게 연세 드셔서도

열심히 일하시는데 좋은 일이죠.

어르신1: 그라고 좋게 생각해주믄 좋은 디 안

그런 사람들도 있당께.

박혜미: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얼굴 안

나오게 사진 찍을게요. 그런데 날마다 나오세

요?

어르신1: 찬밥 한 덩이 싸가지고 아침 일찍 나

오제. 7시 정도. 왠만해서는 매일 나와. 놀믄

뭐 하겄어.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게 약 값이라

도 벌어야제.

박혜미: 어디 사시는데요?

어르신1: 죽교동에 살우.

박혜미: 두 분이 친구세요?

어르신1: 저 사람은 나보다 두 살이 어려. 난

일흔여섯이고 쟈그(저 사람)는 일흔넷이제. 그

래서 형님동생하면서 둘이 꼭 붙어 다녀.

박혜미: 그럼 언제 집에 들어가세요?

어르신1: 해져야 들어가제. 여긴 물이 썼다 들

었다(밀려왔다 나갔다)해. 그래서 물이 쓰면(썰

물 때면) 얼른 개펄에 들어가 굴을 주워 나와.

그러곤 이렇게 물이 들어오믄(밀물 때면) 여그

앉아서 굴을 까는 것이제.

박혜미: 곧 눈이 내릴 것 같아요. 추우실 텐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어르신1: 이라고 불을

지펴놓으닌께 그라고(그렇게) 춥들 안 해. 큰

애기나 얼른 집에 가소~. 이라고 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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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채취하시는 두 분의 어르신

2012. February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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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가난으로 끝내 목숨을 잃었던 두 부자의 전설이 깃든 갓바위를

지나, 투박하지만 따뜻한 능선을 간직한 입암산 숲길을 따라 걸은 후 다시 바다를 만났다. 자

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추운 겨울날 자동차들이 요란스레 달리는 수변도로 아래서 굴

을 채취하시던 두 분의 어르신. 그분들이 살아내고 있는 오늘은 청춘들의 오늘보다 더 강인했

다. 숲과 파도를 동시에 안을 수 있었던 입암산 둘레길 걷기는 마음을 정갈히 하고 최선을 다

하라는 새하얀 눈의 충고와 함께 특별한 하루로 기록되었다.

에디터: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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