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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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elier Report 사비나미술관 겨울기획전 작업실 리포트 우110-2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02-736-4371, 736-4410 Fax 02-736-4372 #159, Anguk-Dong, Chongro-Gu, Seoul 110-240, Korea www.savinamuseum.com 백상 기념관 풍문여고 종로경찰서 낙원 상가 조계사↓ ←경북궁 원서동→ 크라운 베이커리 (사)사비나미술관 인사 동길 안국역● •우체국 걸스카 우트 회관 안국역●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출구 좌측 (종로경찰서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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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나미술관 기획전 작업실 리포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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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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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elier Report

사비나미술관 겨울기획전

작업실리포트

우110-2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02-736-4371, 736-4410 Fax 02-736-4372

#159, Anguk-Dong, Chongro-Gu, Seoul 110-240, Korea www.savinamuseum.com

백 상기념관

풍문여고•

•종로경찰서

낙원상가↓조계사↓

←경북궁 원서동→

•크라운베이커리

(사)사비나미술관

인사동길↓

안국역●

•우체국

걸스카우 트회 관안국역●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출구 좌측 (종로경찰서 맞은편)

Page 2: 작업실 리포트

김기현 김윤환 김현숙 노순석 드라마고 박경주 박불똥 박찬국 박홍순 방명주 배윤호

배준성 백기 사사 featur ing 윤정미 양주방 애희 오철헌 유근택 이상림 정보 한생곤

장소 : 사비나미술관 전관

기간 : 2004. 1. 7(수)-2004. 2. 25(수)

주최 : 공간그룹, 사비나미술관

후원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Atelier Report

사비나미술관 겨울기획전

작업실리포트

Page 3: 작업실 리포트

목 차

ⅠⅠ. 작업실리포트 9

ⅡⅡ. 작가와의대화 63

작가와의 화 1: 김윤환, 김현숙 64

작가와의 화 2: 유근택, 애 희 68

작가와의 화 3: 박찬국 72

작가와의 화 4: 배준성 74

작가와의 화 5: 노순석, 정보 81

작가와의 화 6: 배윤호 88

작가와의 화 7: 김기현, 박경주 100

작가와의 화 8: 박홍순, 한생곤 111

작가와의 화 9: 드라마고 122

작가와의 화 10: 백기 134

작가와의 화 11: 이상림 146

작가와의 화 12: 방명주, 오철헌 153

작가와의 화 13: 박불똥 166

ⅢⅢ. 심포지움 '한국의작업실현황연구와대안모색' 179

1. 주제발제 182

1. 안 아틀리에, 무단점거- 김기현 183

2. 작업실의변동과예술지평의확장적양상- 김준기 187

3. 창작스튜디오의새로운개념과정책적지향점- 박신의 189

2. 지정질의및토론 194

김윤환(작가) 195

백기 (작가, 미술인회의사무처장) 196

이병한(심 스페이스 표) 197

3. 자유토론 200

ⅣⅣ. 보도기사및리뷰 211

Page 4: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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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개념이나 예술생산의 폭은 모더니즘의 이분법적인 구도와는 다른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된다.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이

원화하는 작업실과 전시장의 구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들이 작업실 혹은 작업 개념은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문화생산의 장을 열어나가는 활동을 하려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지답사, 역사학습, 문화자료, 사

회적 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지역의 다양한 문화인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과 지역문화에 한 화'를 시도한다는

그의 프로그램 운용을 통해서 실체화한다. 이러한 예술개념은 문화의 생산과 향유의 장을 작업실 개념에 접목하거나 아예

작업실: 전시장 개념 자체를 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의 작업실 개념은 특정지역의 참여자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문화에 있어서 지역주의의 유

용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참여와 자치와 분권이라는 변화하는 시 의 요청은 이렇듯 서울이라는 중심과 여타의 지역, 뉴욕

이라는 중심과 서울이라는 변방과 같은 중심과 주변부를 가르는 글로벌리즘의 창궐을 체할 수 있는 시 담론이 될 수 있

다. 한 지역에서 나고 자라서 문화예술 전문가로 성장한 예술가가 그 지역의 역사, 지리, 환경, 인물들에 능통한 지역 전문가

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생활양식을 보다 현실 속에 뿌리내린 사회의 일 구성원으로 인정

하게 할 것이며, 예술을 사회의 정당한 일 구성기재로 확인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2) 유동성과 작업실

다음은 공간적 의미의 작업장에 관한 목인데, 김윤환 같은 이의 PMA(휴 형 개인 작업실, personal mobile atelier)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제안이다. 공기주입식 튜브텐트 소재로 제작해서 공기를 주입하면 공간이 형성되는 작업공간을 구

상한 것이다. 움직이는 작업실 또는 가지고 다니는 작업실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김윤환의 이 작업은 "예술은 움직이는 거야

"라는 패러디 문구를 성립가능하게 하는 노매딕한 발상이 아니겠는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기, 나아가 물리적 장소

에한정된건축공간으로서의작업실이아닌행위자에의해재규정되는작업실공간의의미란그시사성이매우크지않겠는가.

한생곤의 작업실은 한군데 정주해있는 다수의 작업실에 비해 늘 움직이며 떠돌아다닌다는 점에서 독특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매번 움직이는 아틀리에에서 다른 상상을 하며 다른 환경과 사람과 도시와 자연을 만나는데, 이때 발생하는 예술

적 유목이라는 발상은 요즘의 관념적인 탈주, 일탈 같은 허약한 예술게임과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3) 예술운동으로서의 불법점거 작업실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무단점거해서 작업실로 사용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작업실의 사회학으로 이어질 법

하다. 특히 점거 아틀리에 관한 두 작가의 다큐멘터리는 척박한 환경의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새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참신

한 것이었다. 김기현은 지난해에 청주에서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작가들의 아틀리에로 사용하는 것에 해 지역의 여론을 불

러일으켜 점거 직전까지 갔다가 한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이다. 그의 작업은 이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보여주는 설치작

업이다. 현재 파리에 유학하고 있는 김현숙은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점거 아틀리에(squats,스콰트)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선보인다. 한국에도 점거 아틀리에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화척도를 한 단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2002

년의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예술과 스콰트 페스티벌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파리는 바람구멍이 스물여덟개가 있는 바

람난 도시이다."

작업실과 작업실을 근거로 활동하는 작가의 삶과 예술의 문제, 그리고 현장성과 유동성, 그리고 목적의식적인 예술운동으로

서의 점거작업실의 문제 등을 토 로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을 살펴보는 일의 첫걸음을 가늠하고자 한다.

작업실의 변동과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

김 준 기(예술학,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제 작업실에 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작가나 작품에 해 얘기들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정작 작업실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었다. <작업실 리포트>전은 작업실을 매개로 안적인 미술담론을 찾아나서는 '움직이는 전시'이다. 나아가

그동안 사회학적, 미학적, 담론적 차원의 사각지 에 방치되어 있던 '작업실'에 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는 뜻에

서 만들어진 전시이다.

더불어 이 전시는 작업실에 관한 다각도의 담론 생산을 시도했다. 향후에 참여 작가들을 비롯해 작업실 전반의 문제에 한

텍스트와 이미지들을 모아서 단행본을 출판할 예정이다. 전시 진행 기간에 참여 작가들과 함께 하는 작가와의 화 프로그

램을 진행하여 작가의 출품작과 예술세계 전반에 관한 프레젠테이션 및 토론의 결과물들을 담을 것이다.

전시 마지막 날 열리는 이 심포지움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안모색>는 기획자, 평론가, 작가가 작업실에 한 발제와

토론을 진행함으로써, 작업실 담론을 열어나가는 자리이다. 노동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예술가에게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

기본권 같은 걸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제 작업실을 이야기하자. 이제 작업실은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

술가의 고독한 창작 혼을 불태우는 독립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을 생각한다. 이 발제는

이번 전시를 중심으로 작업실의 존재양식의 변동을 토 로 예술지평이 어떻게 넓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작가의 삶과 작업실 공간 재해석

그렇다면 왜 작업실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작업실은 작업을 매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작업은 예술작품

의 생산으로 직결되는데, 이 점을 두고 하는 일반적인 수사가 창작의 산실로서의 작업실의 지위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 전시는 작업실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간접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작업실을 둘러싼 여

러 가지 모습을 통해 삶과 예술의 현장을 살펴봄으로써, 작품생산과 작가의 삶을 담보하는 공간으로서의 작업실 공간의 의

미를 재해석 작업실은 예술가의 생활공간이자 작품을 생산 공장(Factory)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을 돌아봄으로써,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위자에 의해 재규정

되는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화가·조각가·건축가·사진가· 상설치작가 등 시각예술분야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한 회화 및 사진,

상, 설치 작품들이 창작의 산실로서의 작업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박홍순, 방명주, 사사, 오철헌 같은 이들이 사진

과 3D동 상 작업 등으로 보여준 작가와 작업실의 다큐멘터리는 말 그 로 '작업실 작업'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건축적인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배윤호, 백기 , 양주방 같은 이들은 전통적인 작업실의 개념을 벗

어나고 있다. 비어있는 공간, 모퉁이, 사이버공간 등 작업실 공간 개념을 확장 변형시킨다.

작업실의 사회학

우리 사회의 시각예술 시스템에 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예술 혹은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를 점검해 봄으로써 '작업실의 사

회학'이 필요하다. 또한 예술가의 삶을 담보하는 작업실의 문제를 전향적으로 제기하기 위해 휴 -이동식 작업실이나 점거

아틀리에와 같은 안적인 작업실을 모색해보는 것도 작업실의 사회학을 시작하는 마당에서의 중요한 작업이다.

1) 현장성과 작업실

박찬국이나 드라마고 같은 작가는 작업실을 도시 전체로 넓힘으로써 내 한 공간에서 열린 삶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예술개

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실이 여주 혹은 경기도, 인천과 같은 지역전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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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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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예술은국가가보호해야하는사회의공공 역이다반세계화(anti-globalization)의봉화(烽火)를올린다노동자와농민을보호하는것처럼예술가도보호하라21세기남한의예술가는 다수생활보호 상자다스스로를저항행위에구속시킴으로써자유를찾는다행위의현장과상황은언제나진실하다천민자본주의와신자유주의를추방하라

작가들에게있어서작업실은필연적창작의공간인동시에삶의공간으로의동시적역할을 한다. 작가는 공공의 예술 취미를 충족시켜 중 미술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로써의 예술활동은 당연히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공의 건물은 당연히 무단점거가되어야한다. 이전시는다섯단계의형식을가지고전시가진행된다. 점거를위한과정의일련으로진행되었던내용들을과거적시각으로표현한것이다.

Step 1. 화사했다학 졸업 후 화려한 작가로써의 등단은 만만치 않은 벽들이 존재하고 도시 속에서 왜

소한작가는시나브로매몰되어가고화사했던짧은시절을그렇게화사했다.Step 2. 접했다정보는우리에게가능성을시사해주고사고의전환을가져다주었다. 공간의필요성은무단점거를통해만들어낼수있다는것에 한사실을접했다.Step 3. 동의했다도시로 입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 부분이 가장 크다. 그들과의 내용합의는 점거에함께하는동의로가능성과힘을함께얻는것이었다.Step 4. 설득과협박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청과 정보경찰은 분주히 작업을시작했고 감시의 상이 되었다. 화의 수준과 협박의 수준이 동시에 부유하는 시간들이있었다.Step 5. 나를 외부에서보기스스로를 평가하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내 안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밖에서 나를 보는모습을가지고점거는곳곳에서행해져야한다.

김기현은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서원 와 경희 학원을 졸업했으며, 10회의 개인전과‘JAALA’전,‘한중교류’전 등 300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기현의 설치 작품 <대안 아뜰리에 "무단 점거">는 지난 해 여름 청주에서 점거 아뜰리에를 꾸릴 계획을 세워서 실행 직전의 단계까지 진행했던 작가의 개념과 경험을 토 로 다섯단계로 나누어 변동하는 작품이다. 다섯단계란 "화사했다 - 접했다 - 동의했다 - 설득과 협박 - 나를 외부에서 보기"로 이어지는 점거 프로젝트의 단계를은유적으로 담은 것이다.

점거아뜰리에에 관한 명상-화사했다, 오브제 설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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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

“작업실을들고다닌다?”“그많은그림들과조각들은어떻게하고?”“혹시자신의작업실을개인박물관처럼꾸며놓지는않았는가?”“비싸기때문에아뜰리에는외곽도시로간다?”

PMA는휴 성, 유연성, 자율성을기본개념으로하여건축되었다.

'PMA'라는 조어는 Personal Mobile Atelier 라는 용어 그 로‘휴 형 개인 아뜰리에’를 뜻한다. 이 기획은 기존 아뜰리에가 고정되어 있어 예술공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작업실 운 비용의 과다로 인한 작가들의 경제적 부담을 해결하기 위한 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또한 정보와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예술가들의 국제적인 활동이늘어나는 추세에 발맞추어 예술가의 창작공간의 다양성을 실험하며 관객과 능동적으로소통할수있는예술방법을개발하는데주안점을두었다. 이를위하여시 성의반, 휴 성, 기능성등이고려되었다.

PMA는거리와공원, 도심과농촌뿐만아니라까페, 전시장, 공공건물등의실내장소에도 머물면서 전시와 창작을 병행하며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다. 또 무선통신망을 이용하여다른지역의작가들, 시민들과커뮤니티를구성할수도있을것이다.또한예술가의배낭에실려자동차, 비행기, 수송선등의기존운송수단을이용하여이동하면서창작할수도있을것이다.작가는 작업실의 안과 밖을 이용하여 자신의 회화작품이나 드로잉을 전시할 수 있으며, 작가의 취향에 따라 멀티미디어 작업을 하거나 상을 튼다든지 하는 것이 가능할것이다.

김윤환은 홍익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3회의 개인전을 열었고,‘파리 스콰트 페스티벌(얼터나시옹, 파리,2003)’,‘이라크 전쟁 반 퍼포먼스[낙서](파리 뽕피두 센터 앞 광장, 2003)’등의 프로젝트와‘광주 비엔날레특별전’,‘조국의 산하전’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윤환의 개인휴 용아뜰리에는 유 성, 유연성, 자율성 개념을 가지고 안적 아뜰리에의 전형을 만들어나가는 설치 작업이다. 휴 형 아뜰리에(Personal Mobile Atelier 이하 PMA)는 점차 늘어가는 예술가들의 국제적인활동에 응하여 시공간의 구애 없이 창작할 수 있는 전천후 아뜰리에다.

Personal Mobile Aetlier, 혼합재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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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비디오 설치 : 9개의 큐브형 모니터를 설치하고, 그중 몇개의 모니터에서 프랑스에서활동 중인 스콰트예술가들의 다큐 비디오가 상 된다. 이 다큐들은 프랑스의 스콰트아티스트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큐브형 모니터 설치 의 옆에는 3 의 TV에서 김현숙의비디오아트“삶과예술의실험실-스콰트”이상 된다.

사진설치 :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찍은 100여장의 아티스트들의사진을 벽면에 부착설치한다. 이폴라로이드사진작업은김현숙이만나는작가들에게‘당신에게있어서작업실은어떤의미입니까?’라는질문을던진후, 사진을찍고작가자신이그사진위에질문에 한의견을적은예술적 화와소통의실험작업이다.

단순한사진작업이아닌, 사진과텍스트가함께하는작업으로써, 김현숙과작가들간에‘아뜰리에’라는 주제로 화를 나눈 기록이라고도 할수 있다. 이것은 완결된 하나의 작품으로써의‘전시’가 아닌‘만들어질 어떤 것’을 향해 가고 있는 예술적 실험이라 할수 있다. 2003년 9월부터 시작한 이 작업은 프랑스 파리와 베를린에서 진행되었고, 현재도서울에서진행중에있다. 김현숙은이전시를위하여프랑스에서일시귀국하여, 설치및전시를할것이다.

김현숙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신여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중이다. 2회의개인전을 열었고,‘유럽아트 퍼포먼스의 만남(유럽 사회 포럼, 파리, 2003)’,‘국제 예술퍼포먼스 콩크레(오픈스페이스, 베를린, 2003)’등 다수의 단체전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김현숙의 설치 상작업 <예술과 삶의 실험실, 스콰트>은 프랑스 파리의 스콰트 아티스트의 활동을 다큐형식의비디오와 설치, 사진등으로 돌아보면서 현 예술가에게 있어서의 작업실- 예술이 생산되는 곳-의 의미를 재조명 한다. 또한,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써의 스콰트보다는 그들이 가진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저항적인 예술정신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전시될 것이다. 현 예술에 있어서 작업실로 상징될수 있는 예술공간에 한 다양한 의견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이 설치된다.

예술과 삶의 실험실-squat, 상설치, 사진, 폴라로이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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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석

"나에게있어아뜰리에는

내속에살고있는천사의품속과도같다.

나는매일그녀의품속으로들어가

그녀에게달아줄날개를만든다.

날개를완성한날,

그녀가날아오르는걸보고기뻐하다가

이내다시는그녀가돌아오지않을거라는걸깨달고

슬픔에잠기는…공간이다."

노순석은 홍익 학교 회화과를 졸업했고, 파리 소르본 1 학에서 조형 예술학을 전공했으며, 4번의 개인전과‘혼돈요인전 (파리10 학 전시관, 낭테르, 프랑스, 2001)’,‘비트리살롱전(비트리 쉬르 쎈, 프랑스, 1995)’등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노순석의 회화설치작업 <내안의 천사>(캔버스에 아크릴릭)는 "160 x 70cm / 117 x 91cm"의 두 캔버스 작업을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 벽면 분위기를 재현하는 메모와 에스키스 등 부착해서 화가의 작업실을 간접 체험하게 한다.

내 안의 천사, 160×70cm, 117×91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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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작업과 아뜰리에의 관계기록되어진 장면들은 지금도 그 순간의 연속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다. 때론 계절이 달라져 밭 위의 식물들은 누렇게 누워있을 수도 있고, 노란 꽃은 씨를 내리고, 마른 가지만 새우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 겨울이고 보면 붉은 내복을 입고 언덕길에서 건너편 아파트가 새워진 이웃동네와 사람들이 오르는 좁은 길을 바라보는할머니는 이제 재개발로 얼마 남지 않은 집의 역사를 되새기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이 모든 소스 이미지들은 인천의 풍경들이다. 오랜 된‘부평삼거리역의 겨울아이’는 3년전 겨울 지하철역에서 해맑게 웃으며, 역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고, 가장최근의 사진인 송림동의 식물들은 지역공공문화 프로젝트인‘송림동 그림수필’의 과정에서 지역의 청소년들이 촬 한 것들이다. 인천은 내가살아가는 곳이기도 하고, 나의 성인기의 역사가 남겨져 있는 공간이며 또한, 함께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가 있는 공간이다. 여러 방식의 공동작업 속에서 기록된 이사진들은 단순한 기록 사진이 아닌 각기 개인과 지역의 역사와 감상이다양한 각도로 연결되고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표현물들이다.아뜰리에 안의 고독한 작업에 해 학시절 친구들과 토론을 버린 일이 있다. 지금시 에 스스로 고독한 작업자로 자신의 아뜰리에에서 고귀한 작품을 꿈꾸는 것이가능하거나 바람직한 일인가. 작업의 공간, 사고와 상상의 공간, 삶과 작업의 중첩된 공간이 아뜰리에라면 사회의 변화와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한 아뜰리에는 지역과 사람들이라는 현장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다시 재구성하고, 사고하는 작업실은 그 현장의 하나다. 작업과 사고, 삶의 중첩이 작업실에서만 만들어지지 않고, 지역의 다양한 의미와 사건의 현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이 성찰과표현의 형태는 평면이나 디지털로 불리지 않고, 각종 공동 활동 프로그램, 수집된물품과 기존의 다른 용도의 재료들로 만들어지는 생활과 작업공간 구성, 공동체성을 지닌 삶의 이해와 안적 사회에 한 구상 등으로 이루어진다.이 몽타주는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아닌 다른 수많은 지역과 사람들, 궁극적으로 개인의 삶과 사회의 연결성을 찾아보는 작업의 과정이며, 이에 동참한 시선들의 의미도 함께 존중되어야 하겠다. 안적 아뜰리에는 그곳이 작업실일 경우, 이런 공공성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독립성과 함께 공유된 공간(물품과 기술 등)이며, 그곳이지역현장일 경우, 각기 다른 개인들의 삶의 과정이 존중될 수 있는 자세를 중심으로지속가능한 표현활동의 시도와 자본에 왜곡된 삶의 환경에 해 주체적인 저항과개선을 의지하는 상호 이해된 일상의 공간이다.몽타주 제작에 동의하여 주지 않은 몇몇 분들께 미안하다. 이것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편집 : 드라마고소스 이미지 제공 : 소해진 (송림동 거주주민)‘붉은 옷의 아줌마’/ 김지선 (송림동거주 청소년)‘붉은 양동이에 노란 꽃’/ 지경 (퍼포먼스 반지하)‘만석동 골목 풍경’/ 조제연 (송림동 거주 청소년)‘자라고 있는 밭’/ 인천장애인이동권연 ‘이동권쟁취를 위한 투쟁’/ 드라마고 (퍼포먼스 반지하)‘빛 바랜 달력의 숫자들’,‘부평삼거리역의 겨울아이’,‘버려진 개구쟁이 할아버지 인형’,‘승기천을 나는 갈매기'

드라마고는 인하 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으며,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 <반지하> 활동을 하고 있다.‘카이홀맨 미술하자 캠프, 2001’,‘디지털 tool & jam camp, 2003',등의 문화기획과 ’낮은 공공미술전, 관훈갤러리,2002‘, ’몸으로 느끼고 놀이로 표현하는 미술, 연수문화원 갤러리,2003‘,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작은울림, 2003‘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드라마고는 <제8회 인천인권 화제> 디자인 제작을 위한 작업인 <벽을 눕혀 살아가는 길에서>라는 디지털 포토 몽타주 작업을 실사출력해서 전시장에 걸고, 그 작업에 쓰인 여러 가지 이미지 소스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드라마고

벽을 눕혀 살아가는 길에서, 디지털 포토몽타주 공간구성, 2004(소해진, 김지선, 지겸, 조제언, 인천장애인이동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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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주

'아름다운과일'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장기간에걸쳐제작된일종의프로젝트기록 화다. 이 화는 '1000와트 필름프로젝트' 로부터탄생했다. 1000와트 필름프로젝트의과정은아래와같다;1) 1995년 독일유학 중 잠시 한국에 방문할 때 내가 만났던 4명의 젊은 여성 작가- 송정임, 정 숙, 소윤경, 노석미-들의모습을수퍼에이트필름에기록하면서시작됐다.2) 이후파리를방문했을때프랑스에유학중인옛친구김선하의모습을기록했다.3) 1996년 베를린의 *악치온스 갤러리에 프로젝트를 응모했다. 프로젝트 내용은 위의작가들을베를린으로초 하는데전시회오프닝전에약한달간의시간을갖고만나서작품제작도 함께하는데 이 과정을 모두 필름에 기록하는 것이다. 즉 전시장이 다큐멘타리 화촬 장이자작품생산의만남의장이되는것이다.*악치온스 갤러리는 작가공동체로 이루어진 안공간이다. 전시장이 위치한 곳은 옛동베를린의 경계구역이다. 악치온스 갤러리에 적을 두고 있는 작가들이나 퍼포머들,인디음악가들 모두 치열하게 고민하 던 당사자들이다. 통독이된 상황에서 이들은 원래야채가게 던자리에행동주의미학을고민하는 안적공간을새롭게꾸려나갔다.그렇기 때문에 1000와트 필름 프로젝트로 응모했을 때도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실험성에주목해줬다.4) 베를린에 도착한 작가들 중 김선하는 기획의도에 맞게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그녀는 프랑스가 주 원산지인 살라미소시지를 가져와서 이것을 이용해 자궁을 상징하는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정 숙과 노석미는 여러 가지 제반사항을 고려, 한국에서 작품을완성했다. 전시회기간중에도김선하는작품을제작했는데그녀는살라미소시지를한개씩작품에매달았다. 이 행위는관객들에게일종의퍼포먼스로다가왔다. 이 모든과정은 16미리 화로기록됐다.5) 전시회가끝나고프로젝트전과정의촬 된필름은 화적으로재구성됐다. 편집된필름에맞춰실험음악작곡가볼프강인데어뷔쉐가 화음악을완성했다.6) 완성된필름은악치온스갤러리주최로열리는베를린청년실험예술페스티벌에서상 됐다.

그날삶의고통을이겨내며작품활동에전념하던그들은지금어디서무엇을할까? 이렇게묻기보다는그들이십여년전아우성치던그자리에는지금누가서있을까반문해보고싶다. 1995년젊은여성작가가처했던어려움은오늘의그것과별반다른것이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러나 아름다운 과일을 감상하면서 고통의 호소에 귀기울이지 말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어떤 '행동'의 아름다움에 주목해주면 좋겠다.그렇게해서낯설도록실험적인이 화가조금은재미있게다가올수있도록.

박경주는 1968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홍익 학교 미술 학 졸업, 독일 브라운슈바익 예술 학교 졸업 및 베를린 예술 학교를 수료했으며, 3회의 개인전과‘인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2003)’,‘Art Project Plug-In, Plug-In (바젤, 스위스, 2003), 이미지 엑트 (일주아트하우스, 서울, 2003)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경주는 <아름다운 과일>(16미리 실험 화, 컬러/흑백, 38분, 1998)에서 4인의 젊은 여성작가인 송정임, 정숙, 소윤경, 노석미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찍은 상작업을 소개한다.

아름다운 과일, 16미리 화, 컬러·흑백, 38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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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작업실

(이아니라그것에집착하는미망)

때문에십년넘도록허송세월한뒤,

마침내작업실을짓(기로결심하)다.

작업을해야작가이고작가라면작업실이있어야한다!

작업실이없(어서작업을못하)는자는작가가아니다?

아뿔싸,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

박불똥은 경남 하동에서 출생했고, 홍익 학교 미술 학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현실과 발언' 회원이었으며,여덟차레 개인전을 열었다. '20 의 힘'전, '민중미술15년전'을 비롯한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박불똥은 20여년의 작가생활 기간에 작업실을 짓고, 옮기고, 다시 짓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경험해온 작업실과작가, 작업의 관계에 한 소회를 작업실 건축 도면, 사진, 메모지 등의 오브제를 통해 보여준다.

100일 몽, 오브제 설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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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국

" 머리 미술학교는 여주군 점동면에 있는 폐교를 임 하여 스튜디오 겸 공공미술 프로젝트공간으로쓰고있다. 1년6개월째다.‘ 머리’는학교가있는동네이름으로‘미르’(辰)라는순우리말에서나왔다.‘별머리’혹은‘용머리’라고이해하면된다.주변에는 아름다운 강,산,계곡이 있고 넓은 텃밭도 있어서 도시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하지만 현재까지는비싼임 료에비해공간을낭비하고있는셈이다. 가슴이아프다.하지만 03년 1년동안아트캠프, 따뜻한왼손, 고구마프로젝트등지역과함께하는프로그램들을진행하느라정신적, 육체적으로에너지를많이소비하 다.'불필요하게바쁜세상에쉼표가되자’던계획도잘지켜지지않았다.새해부터는 공간을 낭비하지 않고 잘 놀 수도 있는 꿍꿍이를 짜느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있는데 린임 료독촉장이달뜬기분을깨놓는다.역시한국사회에서‘호모루덴스’로살아가려면 무모함을필요로하는것일까?아직도내공부족이다."

박찬국은 경기도 여주에 머리 미술학교를 열고, 공교육과 사회교육의 통합적 관점에서 본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왔으며, '서울 미디어 시티 2000 subway priject', '서울 지하철 6호선 월드컵 경기장 역' 외 다수의공공 공간 작품을 설치했다.

박찬국은 머리미술학교를 운 하면서 주변환경과 미술학교의 친화과정,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의 작업실과소통공간의 경계 허물기 등에 관한 이미지를 담은 스틸사진들을 슬라이드쇼 형식으로 선보인다. 슬라이드쇼에담긴 이미지들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따뜻한 왼손’(장애 비장애 어린이와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참여한 미술을통한 소통 프로그램으로 2003년 6월부터 3개월간 진행되었다)과 관련한 이미지를 비롯해 작업실 주변의 풍경과 일상을 담은 사진 등이 있다.

공간 머리미술학교, 상, 14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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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몇 장의 사진으로작가들의삶과 작업공간을보여준다는것은매우 힘든일이었다. 그렇다고더효율적이라고여겨지는 상으로보여줄문제도아닌것같았다. 응결된 사진 몇 장이나 흐르는 상 몇 분으로는 작가들의 은 한 삶과 작업공간을 오히려의식적으로은폐하거나신비화시킬수있는여지가있기때문이다.결국 작가들의 작업공간 구석구석을 포착하여 완성된 하나의 사진작품을 만들겠다는욕심은 포기하 다. 다만 작가들의 삶과 작업공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나의「퍼즐_puzzle」연작은 시작되었다.「퍼즐_puzzle」은 하나의 완결된상(像_image)을 아직구축하고있지않으며, 보는이에게강요하지도않는다. 파편화된사진 몇 장을 임의로 나열하여 보는 이 스스로가 상(像_image)을 조합할 수 있는 비교적 자유롭고 능동적인 환경을 연출하는 까닭이다. 이로부터 보는 이의 이해와 오해가복잡하게교차한다."

박명주는 1970년 부산에서 출생했고, 서울예술 학 사진과와 홍익 학교 산업미술 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전공했으며, 1회의 개인전과‘사물과 상상 (갤러리 룩스, 서울, 2003)’,‘Charity : 선물 (쌈지 스페이스, 서울,2003)’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방명주는 노석미 홍지연 두 젊은 여성 화가의 작업실을 상으로 구석구석 숨겨진 공간을 찍어 모자이크 방식으로 진열함으로써, 마치 퍼즐과도 같은 작가의 일상과 예술행위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명주

퍼즐 puzzle_노석미, 21×29.7cm(19), 디지털 프린트, 2004퍼즐 puzzle_홍지연, 21×29.7cm(19), 디지털 프린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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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박홍순은 1965년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했고, 홍익 산업미술 학원 사진다자인을 전공했으며, 1회의 개인전과‘동강별곡(가나아트, 1999)’,‘고요한 나라( 안공간, 1999), ’12월 풍경이다(갤러리 조흥 2003)‘ 등 다수의단체전에 참여했다.

박홍순은 요절한 조소예술가 류인과 구본주의 작업실 사진을 보여준다. 두 조소예술가는 서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이자 작업적 동반자로서의 관계 뿐만 아니라 요절이라는 기막힌 인연으로도 연관을 가지고 있는데, 박홍순은두 작가 사후에 이들 작업실을 담아 두 작고 작가간의 관계를 상기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류인 작업실, 27.5×18.5cm, 42.5×27cm, 디지털 프린트, 2001구본주 작업실, 82.5×34.5cm, 디지털 프린트, 2003

구본주그와 나는 친구이다.그것은 작품에서의 마음이다.그의 작업에 한 열정이 늘 내게 어떤 충동을 야기한다.때로는 감정으로 와 닿는 구본주를곁에서 보는 심정은 확신을 줄 수 있는 작가로 믿고 있을 뿐,별 할 이야기가 없다.단지 그의 작품에 한 순수함과 뜨거움은 명쾌한 나의 답일 뿐이다.

1996.6 류인

나는 행운아다.류인을 기억할 수 있는,나는...

나는 행운아다.조각가로서 그와 사제지간의 인연과그 기억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된,나는...

나는 참 행운아다.이제 진정 그가 내게 바랬고 내가 원한 길을같이 걸어갈 수 있게 된,나는...

나는 참 행운아다.

2003. 5. 구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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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몸삶이점점더복잡해져가는만큼사색과집중을위한공간, 나만의작업실이절실해진다. 이바람을충족시키기위해서는기본적으로물리적장소마련을위한재화, 작업실의모습을갖추기위한여러가지물건들이필요하게된다.하지만소유하면할수록쌓이게되는물질이주는무거움은자유롭게흐르는사유형식과늘새롭고자하는삶의방식을짓누르는장애요소가된다. 이러한위험성에서벗어나기 위해 소유의 개념을 반(反)소유, 무(無)소유로 전환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주변상황을 상호네트워크, 관계지향성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집 한 칸 마련하는 일이 요원한이 도시에서 오히려 도시 전체공간과 관계맺음으로써 나만의 흐르는 몸의 공간, 작업공간이 형성된다. 자유스럽게 공간을 넘나들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고,그들의모습을이해하려는행위들…이때, 작업이라는행위와작업실이라는물리적공간은무한히확장된다. 내게있어작업실이라는공간은팽창하고흐르는것이다.그리고 그 축소로서 내가 머무는 최소한의 작업실은 나의 피부를 둘러싼 하나의 껍질,즉 외피로서의 옷이다. 몸을 둘러싼 껍질인 옷은 나로 하여금 행위를 결정하는 출발점이된다. 이는내몸이라는현재의위치와동일한방향성을가지고움직인다. 나의몸이머무는 이 순간, 이 곳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껍질을 입고 움직이는 것은 수평 / 수직적기억의움직임들과함께하는욕망의행위들이다. 내 몸이자유스럽게이곳, 저곳에나의 의지와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사람과 사람, 몸과 몸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내고 그관계의범위와형태, 관심의집중과폭에따라작업실의크기가변화한다. 결국우리에게주어진인생시공간자체가작업실이될수있지않을까.

배윤호는 홍익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포츠담-바벨스베르크 화학교를 졸업했으며, <라네즈>, <ADSL>,<디오스>등 다수의 CF와 창작오페라,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을 연출했다.

배윤호

흐르는 몸, 22×22cm(1), 24×16cm(3), 디지털프린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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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성배준성은 서울 학교 미술 학 서양화과 및 동 학원을 졸업했고, 6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서양미술사 (공평아트센터, 서울, 2000), ’아를 포토페스티발 -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 (아를, 프랑스, 2000) 외 다수의 단체전에참여했다.

배준성은 학 작업실에서 누드 실습 시간의 풍경을 담은 사진 위에 비닐을 덮고 누드 모델에게 옷을 그려넣은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누드를 그리는 사람들과 모델간의 긴장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화가의 옷, 89×139cm, 비닐 위에 오일, 사진 위에 비닐 부착,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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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이작품은백기 이예술행위의기초개념혹은예술창작을둘러싼환경에관심을기울이기 시작한 첫 작품이다. 8 개월동안 한 평 남짓한 나무바닦이 놓여진 구석에서 생활하면서 뭍은 때와 낙서들로 이루어진 이 작업에는 작가가 등장 할때 마다 조금씩 상황이 변한다. 8개월이 지나면 온통 까맣게 가득찬 낙서들로 어떤 순서로 어떤 글이 씌여졌는지도분간하기어려운상황이된다. 이 낙서들은주로예술과삶에관한것들이고,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민거리들이 가득차 있다. 그는 이 공간에서 사유하고예술을창작했다. 어찌보면예술을창작할수있는최소한의공간은작가의몸을 담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아뜰리에에 관심을 집중하는것은 아뜰리에가 작가의 삶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며, 작가의 예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던우리의시각이작가의삶과일상으로옮겨갈수있는기회를허락해주기때문이다.

백기 은 1969년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했고, 홍익 학교 미술 학 회화과 졸업,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했으며, 4회의 개인전과‘흑백사진’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쾌테인스티튜트, 캅슈타트), 'Art Cologne2001 November' 퀼른 미술 메쎄 - WDR (독일 서부지역 방송국), 퀼른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구석, 8개월 동안 책 읽고, 생각하고, 먹고, 놀며 작업하기, 32×30cm, 행위기록사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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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사사는 2003년 쌈지 스페이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이머징 Ⅳ : 미나와 44 (쌈지 스페이스,2003)’,‘가족오락 (가나아트, 2003)’,‘아트스팩트럼 (삼성미술관, 2004)' 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사사는 자신이 입주해있는 쌈지스페이스 스튜디오를 작업 상으로 삼았다. 그는 일상 속에서 접한 물건들을 버리지않고 모아두는 수집광이다. 그의 사소한 또는 소중한 물건들로 가득찬 작업실은 수집한 물건들을 가득 쌓아놓은 편집증적인 수집 취미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의 정과 담당의사이며, 사진을 찍은 이는 작가 윤정미있다. 사사는 작가 윤정미를featuring 개념으로 공동작업작업자로 끌어들여 작가와 작가 사이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사사 featuring 윤정미, Things that make my life worth living. C·print, 193×151cm,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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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방양주방은 1966년생 동갑내기인 양석윤 주인숙 부부 작가의 이름이다. 양석윤은 홍익 회화과와 독일 뮌스터미술 학에서 수학했으며, 주인숙은 독일 뮌스터미술 학 및 동 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양주방이라는 이름으로독일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양주방의 사이버작업실은 3D작업으로 이루어진 인터랙티브 공간으로 관람객들은 마우스 클릭을 통해 구석구석 정교하고 기발하게 꾸며진 작업실 공간을 탐색한다. 부엌이나 침실과 같은 일상 생활공간은 물론 작업실과자료실 등에 비치된 각종 소도구들까지 정교하게 세팅함으로써 또 다른 환경이 작업실 체험을 만들어 준다.

사이버 작업실, 3D 컴퓨터 그래픽,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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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희

"작가가개인이가장오랜시간생활하며자유로운작업을하는곳.그곳은사회규범을떠나스스로하면안되는일이너무나많다.내작업에있어서의 Inspection은기존의검열제도와는조금다르다.법적, 윤리적, 사회규범적기준이통용되는것이아니라단지기분에따라 '해서는안되는것'가령학교에서는수위아저씨의기분에따라,작업실에서는작업실주인이나종종내자신의기분에따라행동양태가가려진다.각기개인적인 '벨꼬임' 정도에따른것으로써기존의 '강권적으로사전에검사하여통제하는'검열제도에 한희화적패러디이다."

애희는 1979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한성 회화과 졸업 및 동 학원 재학중이며,‘쪽’전 (관훈갤러리, 서울,2003), 'intersection'전 (갤러리 deep , 2003)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한성 학원에 재학중인 애희는 학교 작업실 공간과 개인 작업실 공간에서 벌어지는 각종의 금기와 검열에해 풍자적인 카메라샷을 구사한다. 야간작업, 취사금지, 전열기사용, 사행행위, 애정행각 등이 그 예이다. 작업실이라는 자유로운 공간과 학교작업실이라는 규제가 많은 공간의 차이 같은 것을 회화화 하는 작업니다.

Inspection, 60×42cm(8), photo work,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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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헌오철헌은 홍익 산업미술 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2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C&H photo 표이다.

오철헌은 중광스님, 이석주, 최진욱, 조은 등과 같은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작가의 잡업이미지와 작업실의 분위기를 제 로 연결하는 정통적인 사진작업을 선보인다. 이것은 오랜 시간동안 미술전문지 사진 기자로 일하면서 파악해온 작가의 특성과 공간의 특성을 전형적인 장면으로 끌어내는 오철헌 특유의 시각에서 나오는 어법들이다.

아뜰리에 에피소드- 최진욱, 38 49cm, RP인화, 1997아뜰리에 에피소드- 조은 , 48.5 37cm, RP인화, 2000아뜰리에 에피소드- 이석주, 38 49cm, RP인화, 1997아뜰리에 에피소드- 중광, 48.5 37cm, RP인화,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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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내가 살고있는공간속에서, 그것이매우낯설고기묘하게다가올때가있다. 아주일상적인 풍경이라도 어느덧 아이에 의해 어지럽혀진 공간을 할 때면 당황스러우면서도나를환기시키는힘이있음을본다. 그것은일상이라는나를둘러싸고있는삶의조건속에서일어나는현상이라도, 기묘하게도자연의힘의논리와닮아있다. 나는바로그러한 지점에 관심이 있다. 이 작업은 이러한 관심으로부터 오는 궁금증에서 비롯된작업이다."

유근택은 홍익 학교 미술 학 동양화과 및 동 학원을 졸업했고, 10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여기있음 (인사미술공간, 2002)’,‘한국현 미술 40개의 퍼즐 (갤러리라메르, 2002)’,‘화가는 그린다 (전갤러리, 2002)’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업은 작업공간과 일상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자신의 아파트 거실을 표현함으로써, 아이의 놀이공간으로변화한 생활-작업 공간을 감당해야 하는 자신의 아내인 여성화가를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작업실이자 생활공간이자 가족의 소통공간인 거실에 담긴 어지러운 편린들이 화면가득 등장한다.

어쩔 수 없는 난제들, 425×150cm, 종이에 수묵채색,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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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림이상림은 한양 공 건축과와 산업 학원 및 New South Wales 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공간그룹 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작으로 시민안전체험관, 구체육고등학교, 서울중앙우체국 등이 있다.

이상림은 설치작업 "Womb Space(자궁공간)"은 생명성의 소통 공간인 자궁에 빗댄 작업실 공간을 형상화하고있다. 골판지나 비닐튜브의 재질감을 살려 은폐와 내면의 공간으로 상징되는 작업실 공간을 개방과 소통, 생산의 공간으로 열어나가는 공간 변이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womb space, 220×160×160cm, 골판지, pvc비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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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영

"무 는자의적인규모의, 어느정도조명이비춰진빈공간이다.이공간의경예를짓는벽가운데하나는객석을향해하나는저멀리보이는풍경또하나의공간을향해열려있고, 이렇게경직된틀을형성한다.무 의공간은언제나개로운배열을기다리고,따라서지속적인변화를꿈꾼다.이공간은잠재적인힘으로서만존재한다."

정보 은 홍익 학교 회화과 및 동 학원을 졸업했고,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서양미술사(공평아트센터,2000)’,‘산.수.풍.경 (엘렌 킴 머피 갤러리, 1999)’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being in the path, 0000cm, oil on canvas, 2003정보 은 특유의 오일 페인팅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 한 질문들을 이어나간다. 그는 작업실이라는 공간 혹은 임의적으로 규정된 공간 속에서 촛불로 표상된 가치(작가가 믿고 있는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이것은 작가의 주체를 내세우기 보다는 소통의 통로로서의 작가의 위치를 드러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being in the path, 60×42cm, pencil on paper, 2003being in the path, 194×130.3cm, 캔버스 위에 오일,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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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생곤한생곤은 서울 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소형버스를 개조한 아뜰리에 작업실을 이용해 전국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한생곤의 아뜰리에는 그 자체로 삶의 현장이자 작가적 실존을 담고 있다. 미니버스를 개조한 그의 작업실에는기본적인 생활공간으로서의 조건들이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작업을 위한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비정주의 삶을 살기위한 매우 구체적인 수순을 밟았다. 그는 이 버스 작업실을 이용해 여러 곳을 다니면서 거기에서 만나는풍광과 삶을 담아내기도 하고 굳이 그림으로 옮기지 않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그곳의 땅과 사람들과 함께 있도록하는 것 자체로서 삶의 의미와 예술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한다.

바보의 일획, 77×57cm, 종이위에 갯벌진흙, 2003옥순이 누나, 77×56.5cm, 종이위에 갯벌진흙, 2003

아버지의 등, 56.5×76.5cm, 종이위에 갯벌진흙, 2003소금밭의 추억, 56.5×76.5cm, 종이위에 갯벌진흙, 2003

세상이 나에게 보낸 편지 1, 2, 3, 4, 오브제 설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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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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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1:김윤환,김현숙

2004.01.08 목요일 pm.04:00

김준기: 20명 작가의전시에작가와의 화를하겠다는것은이전시가보여지는것으로끝나는게아니라이야기되는것과같이진행이됐으면좋겠다

는욕심입니다. 이 전시의가장큰목표는 '자 이제우리작업실에관해이야기해보자'는 것입니다. 작업실을이야기하면작가의존재양식이나옵니다. '

예술은 움직이는것이다. 작업실은움직이는것이다'라는 이야기를끄집어내면시각예술의개념과 역이더넓어질것입니다. 이러한이유로작업실논

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윤환, 김현숙의 경우 이번 전시의 핵심 같은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작품에는 움직이는 작업실, 점거 하

여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작업실이라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작가와의 화를 통해 닫힌 미술이 아닌 열린 미술을 만들어 가는 데에 좋은 자

리가되었으면좋겠습니다.

김현숙: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제가전시한작품에 해간단히말씀드린후평소에작업했던것을슬라이드로보여드리면서말씀드릴게요.

실제로 저는 파리에서 스콰트라고 하는 불법점거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리포트 형태로 보여드

리는 것으로준비했고요. 스콰트운동은 70년 말에 준비하여 80년 초에 시작되어 20년이 되었어요. 실제로 파리에는 빈건물들이 굉장히많은데, 이

것을 기업이나 시에서 투기의 목적이나 여타의 목적으로 건물을 사용하지 않아요. 그러나 가난한 예술가들은 월세를 낼 수는 없고 작업은 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작당을 해서 불법으로 점거하여 작업을 하면서 '여기는 예술의 공간이고 문화의 공간이다'라고 선포를 하죠. 예술의 도시 파리라고 하

지만정말예술을위한곳인가, 예술을생산해내는작가들이필요한공간을제공해주지않는도시지않은가라는생각도들고요.

그래서 우리는이렇게할수밖에없었어요. 그리고 단순히이곳이닫힌공간이아니라, 콘서트, 퍼포먼스등예술의다양한장르들이이안에서펼쳐지면

서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지역주민도 행사를 같이 진행해요. 예를 들어 열린 어린이 연극 교실, 미술/무용 강좌를 열면서 지역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것으로다가가죠. 실제로보면, 허름하고우리식으로할렘가같은느낌이지만, 미술이화이트큐브안에들어있고, 흙 묻은발로들어가면안되듯멀다고

느끼는 것과는 달리 바로 우리 옆집에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고, 제작 중에 가서 볼 수 있는 굉장히 환 을 받고 있는 공간이에요. 물론 사회적인 문

제들은 있어요. 불법이기 때문에 강제 철거당하는 일은 있어요. 계속해서 이 친구들은 정부당국 언론 매체를 통해 싸우면서 작업을 해나가고 있죠. 뒤의

상은 1990년 파리시곳곳에 20여개의작업실이있었는데, 그 작업실에 한다큐멘터리에요.

우선 상작품에 해설명하자면, 그것은강제철거에 한기록을한 상으로, 그곳에서의강제철거는우리느낌처럼비장하지않고일종의페스티벌

처럼 이뤄져요. 레지스탕스 페스티벌 시위와 전시가 같이 이뤄지는 것, 단순한 작품생산 외에 예술가들이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죠. 직접 찍은 사진

및 폴라로이드의 경우 9월부터 파리 베를린 서울에서 만난 작가들과 아틀리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찍은 것으로 장시간에 걸쳐 이뤄진 작업이며

앞으로도계속진행할예정이에요. 벽면에붙여진지도는 2001년 파리현 미술관에서 26개의스콰트와페스티벌을여는데, 그때만들어졌던지도에요.

우리나라는이러한지도를만들수없는상황이죠. 제도와다양한예술공간이서로만날수있으면좋겠어요.

저는 서양화를 전공했고 프랑스로 간지 3년, 프랑스에서는 예술가들과 많이 어울리고 예술행정 전시기획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유학중이에요.

학을 졸업후 중미술운동에 해관심이있었고 94년 당시같은생각의작가들이있었으며늦바람이라는시민미술단체를만들어활동을같이한후

프랑스로 가게 되었죠. 현재는 퍼포먼스, 상, 사진작업을 주로 하고 있으며, 평소 작업에 관해서는 프랑스에서 작업했던 것을 보여드리면서 이야기할

게요.

유학 초기에는 '빈 벽을 공격하라'라는 프로젝트를 김윤환 선생님과 같이 진행했어요. '평화와 전쟁'에 관한 고민을 푸아티에 개인전에서 보여주기도 했

고. 2002년 아트 퍼포먼스 콩그레에서는 '테러'라는 주제로 108배 작업했어요. 다음으로 계속해서 머리카락, 쌀, 향으로 작업한 퍼포먼스의 한 장면이

고, 평화라는것을주제로쓰레기를가지고작업한것, 자동차와달리비폭력적성격의자전거를소재로한퍼포먼스, 미선이와효순이일이있을무렵에

펠탑에서촛불의식을행했던장면, 전쟁반 시위 '피 흘리는성조기' 제작하여시위했던장면이에요.

다음은파리시를돌아다니면서찍은사진들로, 파리 시에서만나게되는포스터들을찍었어요. 그냥 포스터가아니라시민들이낙서를한포스터를찍는

거죠. 거기엔 삶의 패러디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유럽 사람들은 광고에 해 공격적인 사람들도 있는데, 낙서인지 광고인지 모르게 광고를 공격하기

도 해요. 기존에 있는 이미지에 자기의 낙서, 스탬프를 찍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소재로 김윤환과 준비하고 있는 프로

젝트 소개해 드릴게요. 이것은 환경적, 비폭력적인 도구로서 자전거를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입니다.

김준기: 파리유학후 상을하게된계기는무엇인가요? 21세기시 분위기에편승하기위함인가요, 아니면깊은뜻이있어서인가요? 재정과같은현

실에 한위치 때문에빈벽에 한공격과같은작업을한것인가요? 과연 현실적위치가그렇지않았다고 하더라도그러한작업을했을것인가요? 조

건에서온작업변화인가요?

김현숙: 돈이 없다는 것은 농담이에요. 나는 이와 같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재밌어요. 이것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불구

하고 많이 못했던 것이라 생각이에요. 프랑스는 현실이 주는 것에서 예술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으며, 박스에서 그렸던 것은 개인적으로 매체

의변화를원하던상황이었어요.

관객: 예술이라고 이름 지어 지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어요. 현실문제에 해 의식이 있는 작업을 하는 분들이라 생각해

요. 그 때문에커뮤니케이션이 금방이뤄질수있기도하지만, 파리에서의작업도그곳사람들과의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한다고했을때, 예술가 '작업

을 하고도망간다.'라는 것을 즐거워서하는것에보는사람도즐거워야하는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하지않은가요? 과연 일회성벽보붙이기나퍼포

먼스를통해관객과의리액션(reaction)이 있는지, 또 그것을어떻게찾고있는지궁금해요.

김현숙: '빈 벽을 공격하라'에 해 더 말을 하자면, 전시를 보러 가려면 전시장을 찾아야 해요. 저는 그런 것이 아니라 관객의 삶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

는예술작품을원했던것이죠.

관객: 하지만 그것은예술가의입장이아닌가요? 관객의입장에서는그것이예술품인지낙서인지구분하기가어려워요. 그렇다면이것을다양한관객들

에게 어떻게 전달하는 것인가요? 전달에의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에요. 일반 시민들이 예술 행위를 인지해야 하는데 간혹 퍼포먼스가 사람들의 인지 행

위를약화시키는것같아서요.

김현숙: 포스트 모던의 개념을 말하고 싶어요. 예술의 권위가 없어지면서 예술의 위기를 맞았죠. 무엇이 예술이며 비예술인지 논의되고 있어요. 소수의

명망있는미술관계자들은당황했을거예요. 하지만나와같은예술가는그러한현상들이굉장히좋았어요. 다양한상상을할수있었고, 관객들역시누

구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그것을 예술인지 비예술인지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미술사가나 비평가의 작품 평에 끌려 다니는 비주체적인 상황이 아니

라 관객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사실 구분할 수 없는 아노미 상황을 주지만, 다양한 예술을 만들어 내고 다양한 예술 느

끼고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리오따르의 말을 빌리면, 이는 '모더니즘 이후 아방가르드적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빈 벽을 공격하라'의

경우, 무책임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식의 접근을 시도한 거예요. 이것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 시켰

는지에 해서는모르겠어요.

관객: 개인적으로건물에관심이많은터라, 스콰트라는것이굉장히신선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없다고생각하는데, 탄광촌철암처럼스콰트의개념을

우리나라에서살아날수있었던공간이라생각해요. 사비나미술관의경우합법적건물이라고했을때, 스콰트아티스트로서이곳에서직접과감하게스

콰트작업을할수있지않았나요? 그렇게함으로써스콰트에 한개념을더잘전달할수있지않았나요?

김현숙: 스콰트는굉장히다양한개념을가지고있어서제가하나의행위로보여주면스콰트가마치그것인양받아들이는한국적성향이있기때문에리

포트형식으로자제하여전시를하게되었어요. 처음에는이곳을점거하고, 오픈 식에도점거를하려했지만, 타인에게누가되지않으려했어요. 스콰트

의 본 개념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스콰트는 방치된 빈 건물을 점거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기에, 이곳에서의 점거가 이슈

화내지재밋거리가될수는있겠지만내용은그렇지않은것이라리포트형식을택했어요.

김준기: 로베르네집과알테나시옹(alternation)은 어떻게다른가요?

김현숙: 로베르네 집은 공동작업실이라는 개념이 커요. 작가 개인의 작업실들이 모여 있는 것이죠. 저항정신이 있는 진정한 의미의 스콰트는 아니라고

프랑스현지에서도이야기해요. 개인의생존을위한저항은있지만, 사회적저항의개념은부족하다고제가속한스콰트운동가들은이야기하죠. 알테나

시옹은 벨기에의 스콰트가 허물어진다고 하면, 연 투쟁도 가요. 스콰트에는 개인전을 며칠 앞두고 작업실이 없어서 온 친구들도 있고, 사회/정치적인

저항메시지를담은예술작업을하는사람들도있어요.

김준기: 그 공간에시민들이찾아가페스티벌도함께할수있는것인가요?

김현숙: 네. 페스티벌은굉장히일상적이에요. 큰 페스티벌은일년에한번열리고각스콰트마다적어도한달에한번씩은열고있죠.

김준기: 스콰트에도네트워킹이있어요? 뭐라고부르죠?

김현숙: 있어요. 인터넷홈페이지도있고요. 아틀리에스콰트, 거주스콰트, 스콰트운동가중작가주의로나가는스콰트집단등이있죠. 실제로알테나시

옹의 장은 작품 판매를 하지 않고 가명을 쓰는 등 철저하게 상업적인 것에 반기를 들죠. 왜냐하면 과거 메디치가처럼 후원자의 요구에 의해 작품이 종

속되는 시기는 지나 현재는 자본에 의해 예술이 종속되는 시기가 왔다고 하면서, 비록 가난하게 예술을 하지만 내 작품을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키고 싶

지않다는식의전위적인개념을가진작가가있어요. 또한 고분분투해서아주유명한작가가되고싶어하는사람도있고요. 자기 사는곳이따로있고,

작업하는곳이따로있는사람도있어요.

Page 35: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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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김기현작가의작품을보면청주시내스콰트계획이무산된경우를볼수있어요. 한국같은경우청주의실패사례가있지만, 서울에서그러

한스콰트계획을시도할계획이나의향이있으신가요?

김윤환: 일단 나는 한국에서 스콰트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허용치가 너무 없거든요. 다양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

죠. 예술 분야에서도 이러한 스콰트가 아주 단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 사회를 좀 더 풍요롭게 하고 한국사회에 여유를 줄

수있는바람구멍의요소로기능을했으면좋겠다는생각에서, 초반에는형편없이깨지더라도시도를한번해볼생각이에요.

김준기: 남은체류기간동안파리의스콰트의개념을어떻게접목하실거죠?

김현숙: 현재 스콰트에 한 논문을 쓰고 있어요. 스콰트친구들에게 바람을 넣고 있죠. 과거에는 개인의 재산으로 작업실의 유무를 따졌다면, 이제

는 집단으로 작업실 공간에 한 이슈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에 해 스콰트아티스트들의 조언을 듣고 있어요. 청주의 경우 합법적인

케이스이지만 안타까워요. 합법적인 시도와 불법적 시도도 같이 일어나 시민들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형성되었으면 하고, 이렇게 되었을 때

작가들도훨씬책임감있는작업을생산해낼수있을것이라고생각해요.

김준기: 정리하자면노동자에게공장이있다면예술가에겐작업실이있듯이노동자들의생산양식처럼, 예술가들의예술양식이있는것이죠. 예술

양식의개념화문제에있어서도작업실은아주중요한문제라고할수있습니다. 그러면계속해서김윤환선생님과의 화가이어지겠습니다.

김윤환: 안녕하세요, 김윤환입니다. 이번 전시에 해 먼저 말씀드리는 것으로시작하겠습니다. 저에겐 아틀리에가 굉장히부담스러워요. 공간적으

로 한정되어 답답했고, 큰 작업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울이라는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이번 작업을 준비했죠. 작가

가 움직이는 것이 따라 움직이는 작업실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으며, 휴 용을 위해서는 작고 가볍고, 부드러웠기에 휴 성, 유연성, 자율성의 세

가지기본컨셉으로작업했어요.

유연성에 해 말씀드리면 소재, 접었다 폈다하는 유연함은 사회적 추세와도 맞는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유동적인 직업, 사람들의 직업 활동 모습,

모바일 장비를 이용한 직업 활동의 확 경향이 있어요. 예술가의 작업실 또한 그러하리라는 예견, 희망을 담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자율성에 해

설명드리자면, 자본이나상품은전세계적으로현재이동이가능해요. 신자유주의라는이념속에서실제로가능하게되었으며, 저는예술가의한사

람으로써 부분의 사람들이 이동 가능한 것이 아니라 소수에 해당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어요. 체류를 위해선 까다로운 조건을 넘어야 하는 것

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데에 장벽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예술가로써 아틀리에를 독립적, 자율성을 가져야

가능할것같다고생각했죠.

외국에서작업을하는도중에는호텔에서숙식을하지못할상황이있을수도있어요. 그런경우이것을펼쳐서숙식을해결할수있으며, 작업도하

고작품발표도할수있죠. 아직실천은하지못했지만원래저의목표는어디든지가서실천을해보고싶은맘입니다.

김준기: 그러면평소엔어떤작업을주로하시나요?

김윤환: 최근 작업부터 과거 작업 순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보시는 것은 아트 스페이스 '휴'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성냥개비'의 한 장면, 카페 시월에

서진행한퍼포먼스 '레몬'과 스콰트에서진행한퍼포먼스 '블록게임'의 장면, 그리고김현숙선생님과함께게릴라전시를진행한모습이에요. 다음

은 빈 상자를 소재로 한 전시고, 다음은 과거에 했던 작업으로 자화상 유화 작품, 뚜껑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뇌'를 소재로 한 유화작품입니다.

이것은지구, 환경에관한문제를소재로한작업입니다. 요약하자면, 저는뚜렷한작업세계는없어요. 거기에관한질문을어려워하죠. 저는싫증을

잘내고많은것에기웃거리는편이에요. 저의작업은지금도현재진행중이라고할수있어요.

관객: 작품은쉽게접어지나요?

김윤환: 사실 이 작품은 샘플이에요. 원 개념의 재료인 PVC로 된 PMA는 제작 중에 있어요. 저렴한 가격으로 다른 작가에게도 보급할 수도 있고요.

공기주입방식이라일반텐트보다가볍고, 사용이쉽다는장점이있어요. 텐트 용으로도사용가능해요.

관객: 작가가생각하는아틀리에의개념에 한질문을드리자면, 평상시에예술가로서생각하는아틀리에에 한개념은무엇인가요?

김윤환: 작업실은 고충의 공간이에요. 전 가난하고 욕심만 많아서하고 싶은 것이 무지 많거든요. 서울 바닥에서 작업실을 운 하는 것은 어려워요.

저는 제가 가는 곳마다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무명작가이며 아직 서툰 작가이기에 많은 욕심을 현실화시키기에 어려움이 많죠. 그 중

하나가창작환경이아틀리에를생각하게된것이며, 아틀리에는고정된공간이아니라고생각하게되었어요. 작업실이제게준해서움직 으면좋

겠어요. 욕심부리지않는최소한의공간이있었으면좋겠다는생각이죠.

관객: 일반인이 예술가의 작업실을 놀러 갔을 때, 고정된 사고로 보자면, 작가의 기호품 등을 통해 작가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PMA를통해그러한것을보여줄수있나요?

김윤환: 저의 작업 맥락은 없어요. 다양한 작업을 했으며, 근래의 작업 경향은 상과 퍼포먼스를 주로 해요. 앞으로 저의 작업 방향은 기동력 있고

유연하면서컨텐츠에가까운작업이기때문에작가의기호품같은것은보기가힘들거예요.

제가 이것을 어떻게 운 할 것인지는 보여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PMA를 가지고 중들과 만날 거예요. 궁금한 사람들은 들어가 볼 수도

있을것이고요. 여기에그림을붙이거나 상을상 할수있죠. 그러면서시민들과서로가생각하는예술에 해 화할수있을거예요.

관객: (이전과 같은 질문) 예술이라고 이름 지어 지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어요. 현실문제에 해 의식이 있는 작업

을하는분들이라생각해요. 그 때문에커뮤니케이션이금방이뤄질수있기도하지만, 파리에서의작업도그곳사람들과의커뮤니케이션이있어야

한다고 했을 때, 예술가 '작업을 하고 도망간다.'라는 것을 즐거워서 하는 것에 보는 사람도 즐거워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하지 않은가

요? 과연일회성벽보붙이기나퍼포먼스를통해관객과의리액션(reaction)이 있는지, 또 그것을어떻게찾고있는지궁금해요.

김윤환: 그런것이있으면저또한알고싶어요. 하지만저의퍼포먼스를본사람들의반응에서제가오히려더반응하는경우가있었어요. 퍼포먼스

나 시민과 미술을 매개로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 할 때, 저는 사람들의 예민한 부분을 건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문화가 잘 발생 안한

다고 생각하여, 저는 사람들의 마음을 작은 것이라도 예민하게 만들어서 문화가 발생하게끔 만들고 싶었죠. 아니면 관객이 그 순간만 만족해도 좋

다고 생각했어요. 정치가는 '앞으로 어떻게 갑시다.'라고 안을 제시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예술가는 거기까지 책임지다

보면예술가가아니라고생각해요. 저는건들기만할뿐이며그건드림속에서사람들을알고싶고, 요즘사람들이어떤감수성을가지고있고, 나의

감수성은어떠한지, 그 감수성을가지고어떻게이야기가되는지를알고싶어요.

관객: 무엇으로 생계를유지하세요? 그리고 파리유학후 상을하게된계기는무엇인가요? 21세기 시 분위기에편승하기위함인가, 아니면 깊

은뜻이있어서인가요?

김준기: 같은맥락에서파리에가서바뀌게된작업성향, 변화이유에 한질문을드리자면, 무엇이한국에서화가의생활과파리에서의생활을바

뀌게했나요?

김윤환: 저는 파리에서 2년 반간체류하다가왔어요. 모든 것을털어서가서시원하게쓰고왔죠. 서울은여러분야에서빽빽한도시에요. 이에 프랑

스는 상 적으로 널널하게 느껴졌어요. 저도 심리적으로 아노미,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어요. 말도 못하면 못 먹는 상황에서

출발했죠. 무작정있다가뭐라도해보자는생각이있었어요.

비디오를 시작한것은사실시류에편승해보고싶었어요. 그림에 큰 진전도없다고느낀저는일단놀아보고, 시류에 편승하듯 상을시작했죠. 그

래서최초에만든 상이 '레몬'이라는 화에요. 무언가찍어서만들어보고싶었어요. 그리고퍼포먼스도정말우연한기회에하게되었어요. 몸이

근질거렸고, 한국에서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경험해 본 상황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었는데 그것이 무어냐고 물었을 때 퍼포먼스를 우연히 하게 된

거죠. 너무재밌었어요. 퍼포먼스의개념도모르는상황에서연이은퍼포먼스를하다가지금은퍼포먼스에 해서도공부하고있어요.

김준기: 상은특수한것이아니라누구나한번해보고싶은작업이아닌가생각합니다.

김윤환: 저는앞으로어디를가던지 PMA를 지참할계획이에요. 과태료까지는물지않을거라생각해요. 정치가는예술적으로무언가해보고싶고,

저 같은 예술가는 정치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요. 정치나 예술의 공통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있다고 생각해요. 능력 있는 정치가가 '사

회는이렇게가야합니다. 이렇게갑시다.' 라고제안하여국민적인공감 를바탕으로목표제시하고그것을향해이끈다면, 예술가는사람의마음을

미술이라는매체로움직여보고자하는데에서는공통적이지만, 정체성이너무다르다는점에차이가있어요. 예술가는제시하고이끌지않고, 사람

의 마음을건들기도하고, 문제제기를해보기도하는활동을하는것에서정치가와정체성이다르죠. 가까운 미래에저는모후보의선거참모로참

여하면서백여일동안준비과정, 고민, 재료, 자료들을이용하여전시로풀어내보고싶어요. 이것이상반기제모습이아닐까싶습니다.

Page 36: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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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2:유근택,애 희

2004.01.09 금요일 pm.04:00

김준기: 안녕하세요. 두 번째작가와의 화로들어가보도록하겠습니다. 먼저작가애희와의 화를시작하겠습니다.

애희: 저는 한성 학교 학원에 재학 중으로,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처럼 작업실을 가지고 있거나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작업실이 지정된 공간적 여유 없이 옮겨 다녀야 해서 작업이 단편적이고 중구난방 식이에요. 그래서 여기 가져온 작업도 일관성이 없어요. 다른

곳에서다른작업을하기때문에관련이없다고할수있죠. 간편하게단편적으로작업한것을보여주는거예요.

저는 작업하고 싶은 것이 많으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작품 제목이 검열이듯이, 제가 검열당하는 입장을 담아냈어요. 현재 얹혀 활동하는 작업실

에서당하는제제등을유머러스하게풀어내봤어요. 이번전시에는 2~3년 전작업한것들을선보 어요.

작업실이라고 이야기할때, 작업실은지금현재제가하는작업과많은연관을지니고있다고할수있어요. 이동이 잦은관계로, 작품의 주제역시무겁

지않은것이많은데, 단번에사진한컷으로담아내는작업이그것이에요.

평소작업에관해말씀드리면, 우선저는고무장갑으로만든장화, 축구공, 야구공, 전선등을가지고다양한것들을만드는즉흥적인작업들을해요. 처음

엔 고무 재료에서 시작하여 여러 재료를 이용했죠. 근데 드로잉을 가지고 물체를 만드는 것에는 한계점도 있었어요. 프로젝트성 작업도 해요. 서로 다른

프로젝트들을시도하는데, 예를들어동성애에관한교육프로그램을만든프로젝트, 분장/화장을통해매일사기를치는프로젝트등이있어요.

다음으로 사진 작업을 소개해드릴게요. 사진 작품에는 연출한 사진이 많아요. 교육제도의 무상함(화장실 화장지로 놓여진 법전)을 사진에 담아본 것, 연

애편지쓰레기를연출하여찍은사진, 만지면 독화살이나오는갑옷속옷등치한방지책을연출한사진, 신디 셔먼의작품을패러디한작업, 명품을선전

하는잡지사진을후배들과함께연출하여찍은사진이에요.

현재는 '핀 업 걸-글래머러스한여성'을 주제로작업을하고있어요. 과거의 '핀 업'은 예전 이성끼리의만남이어려웠던전쟁상황에의해형성된것이라

면, 지금의 '핀 업'은 중문화를많이흡수, 수용하는상황에서문화평론가들이말하는 중문화의천박한부분을적극수용, 편승하는입장에서제가핀

업걸이되기로했죠. 핀 업걸이될때에는단순한핀업걸이되는것이아니라, 지금 현 문화의아이콘이많이묻어있는존재가되는거예요. 저는 제

가모델이되고, 연출을하고, 사진을찍고그결과물을사진사이트에게릴라처럼유포를하고도망가고, 홈페이지를운 하는등의활동을하는것이죠.

이를통해 중문화의이미지확산, 분열을이야기하는거예요.

핀 업 걸과 같은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에 해 말씀드릴게요.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을 보면 저의 모습이 계속 변해요. 신디 셔먼과의 차별성을 말하자면

저는특정 상과특정지역의여성상을 변하는것이아니라, 제 모습도얄팍하고천박할수도있고이것이현실일수도있다는것이며저또한이것에

편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이를 통해 저는 이제야 제가 누구인지, 어떤 작업을 하는 것인지 연구하는 단계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제자신을찍는것입니다.

프로젝트팀을조성하여엔터테인먼트회사를차릴까하는데, 요새는유행도따로없는것같아요. 왜냐하면현재는객관적으로다양성을그 로수용하

는것이기때문에다양성이든, 유행이든흐름을파악하여같이공부하려는생각으로현재작업을오래진행할예정이에요.

제 작업을 요약하자면, 저는 연관성 없는 작업을 해오고, 짧은 작업 기간을 가졌지만, 저의 감수성, 관심사에 관한 질문을 한다면 저는 너무 많은 것들에

해관심이있으며, 그러한관심사를풀어내는데있어너무많은방법들을사용한다는것이에요.

관객: 현재는사진작업만하나요?

애희: 비디오 작업도 해요. 방법은 작업에 맞게 다양하게 하는 편이고요. 비디오 작업의 경우 길게 작업하지는 않아요. 작업 발표의 기회는 많이 갖지 못

했어요.

김준기: 작업실은언제확정되나요?

애희: 현재선배작가의작업실에하숙비를내고얹혀살고있어요. 하지만작업실없이유동성있는것이오히려도움이된다고생각해요. 젊은시절고정

된작업없이유동적이고변화무쌍한작업을해보는것은이제콤플렉스라고생각하지않아요. 학교를또다시가게된것도제가관심있는작업을찾기

위해 간 거예요. 이제는 힘들게 찾고 싶은 생각보다는 모르는 로 흘러가면서, 찾으면 찾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재밌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은 여유가 생

긴것같아요.

김준기: 작업실은움직이는공간입니다. 작업실이라는물리적공간을힘겹게짊어가는것이아니라형편이되지않더라도작업실없이이끌고가는것도

좋지않은가요? 이번전시를통해작가들을보면, 물리적공간에의구애가아닌, 개념적이고움직이는작업실로의사고의전환을생각해볼수있습니다.

그러면계속해서유근택선생님과의 화를시작해보도록하겠습니다.

유근택: 안녕하세요, 유근택입니다. 저에게작업실이라는것은마루바닥에장난감들이흩어져있는공간이에요.

동양화과를 졸업해서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동양화가 갖고 있는 내면 지향적인 것들, 이를 테면 모필, 먹이 갖고 있는 것들이 다분히 방안에서 이뤄지는

사건들이었어요. 그러다보니 다분히 정신적인 개념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어떻게 보면 동양 미술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이요. 제가 옛

날부터갖고있던그림에 한생각은조금더인간적인위치를찾을수있는방법이무엇인가에 해서굉장히많은관심을갖고있었다는거예요. 마침

작업실이라는주제를가지고전시를하려니까모필을가지고직접나가서현장속에서움직일수있는것들에초점을맞춰야하기때문에이야기거리가

되는것이있지않을까해서참여하게되었습니다.

김준기: 평소엔어떤작업을하시나요?

유근택: 고등학교시절의 작업부터 말씀드릴게요. 당시에도 제가 관심이 있었던 지점은 제가 느끼고 있는 것들에 한 집념이었어요. 이것은 고1때 야경

을표현한작품으로, 학교를다니다보니야경을많이그리게되었죠. 하교 후화실을가는중에느낀감성적인순간들을스케치하여화실에가서그리는

방법을취했어요. 지금생각해보면그때생각이나지금의생각이크게다를것같지않아요.

학교 시절에 그렸던 작품으로는 안동 하회마을 담장, 달, 풀, 나비와 의문을 갖고 있는 고양이를 테마로 작업한 것이 있습니다. 신화적인 언어를 갖고

작업을 했죠.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에요. 평면이라고 하는 것, 동양화 물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평면이 공간을 띄울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사물과 사물과의 관계, 교묘히 엉켜 서술적, 서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당시에는 저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들이많았어요. 이 작품을한후작업진행이잘안될정도 죠. 평면성이라는것과이야기라는것을어떻게풀어나갈것인가가작업의초점이었어요.

그 이후방위군복무기간도있었지만, 그림을계속그렸어요. 많은 작업을하 지만잘되지않았어요. 여기서고민하던것은그당시만해도동양화단이

라고하는것은물론현 미술을끌어들여서추상주의라는것이있었을지모르겠지만사실상본질적인회화는없었을때 죠. 지금 이야기하면, 그 당시

의 미술 사조라고 한다는 것이 물론 수묵운동이라는 것이 있고 서울 쪽에서 일어난 묵조회도 있었어요. 이는 추상표현주의를 어떻게 동양화에서 편입

할 수 있는가에 한 고민이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은 사실상 정신주의에요. '어떻게 하면 동양화라는 정신주의를 추상화화 연결시

킬 수 있을까'죠. 사실 저는 이것에 신물이 났어요.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은 제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 자체가 고민이었죠. 또 하나는 동양화에서 이뤄지

고 있는 화론이나 미학적인 접근이 거의 전무하다 시피하다고 할 수 있어요. 소위 말해 현실미학이 부족하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병자호란이나 조선 중

기나 후기 때, 물론 조선 후기는 철학과 그림이 연결되어 나타난 시기이지만 그 전후 때를 보면, 굉장히 우리가 생각해 볼 사항이 많아요. 만약 일제시

상황이라고하면, 그 시 를드러낼수있을만한동양적인회화가없어요. 이유 중에하나는교묘하게또하나의정신주의로숨어들어간다던지, 하나의

교묘하게 시 를 회귀하는 것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이 역사적으로 굉장히 부족한 부분이에요. 현실미학을 읽어낼 수 있을 만한 미학적인 기

재가 없다는 것이죠. 아무리 시 가 흘러도 옛날 700년 전 썼던 사역의 화역법, 기운생동을 이야기해야만 하고, 골법용필을 이야기해야만 하고, 시 는

엄청나게 변하지만 계속 그 시 의 미학을 거쳐야만 이야기되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이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관건이었는데, 아마 그 지점 때문에 제가

방위를제 하자마자그지점에엄청나게질문을던진것같아요. 도리어인간적인면, 이를테면인간의정서에초점을맞춰작업을했고계속망치는이

유는거기에있었던것같아요. 그것은미학의부재때문일수도있고저스스로에 한확신의부재일수도있어요.

그런데 교묘하게도 많은 것들이 저에게 확신과 답을 줬어요. 거기엔 소멸해가는 풀밭과 같은 자연이 있었죠. 여기서 꽃이 피어있는 것도 아름답지만 소

멸해있는것자체도너무나도아름다운것이에요. 자연이라고하는것과꼬마아이들의낙서의관계는제화론을정립해나가는중요한계기 어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화론을 걸어가는 것은 쉬워요. 하지만 그린다는 행위는 철저하게 앞을 보고 가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죽음과 항상 가까이

있는존재라는생각이들어요. 사실상작가라는존재는죽음과가장가까이있는존재라고할수있죠.

이 시기에는 학교 시절에 그린 어법인 나비, 인물 등이 3년 후 90년도가 되서야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학 때 질문을 던졌던 것들이 조직적으

로 만들어졌죠. 지금 보시는 작업은 40m에 달하는 작업으로, 학 졸업 후 저 자신과 할머니와 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역사, 시간에 해 생각하게 되

었어요. 사람이 살아나갈 수밖에 없는 시간적인 사건, 군중, 시간의 질주, 유적 개념으로 작업을 했죠. 걸프전시 학살당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고, 일제

시 신문이오버랩되는것을작업한것이에요.

재료에 해서도 고민했는데, 화선지라는 재료를 어떻게 에너지화 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물성 쪽으로의 접근, 마티에르에 실증을 느낀 저는 먹만

을통해표현해보고자했어요. 먹, 종이, 색 자체를중요시하고싶었죠.

아기를 그린 이 작품에 해 설명하자면, 아기는 순수한 폭력성과 광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에요. 살아있는 아기는 폭력적인 이미지로 표현해야 해요. 이

는순수성과연결되죠, 앞서언급한것처럼아이의낙서는완성이없지만점을찍는순간자연이며, 완성이에요. 제가작업한다는것과완성, 어린이의낙

서와같은것은폭력성, 순수성, 자연성과연결될수있어요.

Page 37: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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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93년까지진행된역사관련작품은소재주의적인느낌을받았어요. 저를 변하는느낌이들지않고공허했죠. 그래서다없애버리고저의주변, 저

와 맞닥뜨리는 장면과직면하고 싶었어요. 지하철을 그린 작품은 98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지하철의 속도개념을 극 화시킨 작업이에요. 주로 모

필로작업을하는데, 저는모필소묘를통해선으로읽고, 더듬어나가는작업을해요. 모필소묘라는더듬어나가는장치를통해 상을구체화하는것이

죠.

저는 세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생 빅투아르 산을 그리면 그릴수록 생 빅투아르 산이 '내 선을 타고 나를 관통하는 것 같다'는 말은 굉장히

동양적인 발상이죠. 지금은 일반적이지만, 모필 소묘는 굉장히 낯선 단어 어요. 제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동양적인 태도가 아니었어요. 물론 정선이 취

했던 지점과 연결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모필 소묘라는 것, 상에서 느낄 수 있는 호흡이라던가, 저와 상과의 관계성을 가지고 이야기하

는모필소묘라는지점은굉장히생소한것이었어요.

현재는목판작업을하고있어요. 한편저는작업하다답답함을느끼면자화상작업을많이해요. 먹을통해저를뚫고나가고싶을때자화상작업을하는

것이에요. 자화상이 전시된 방의 경우 자아의 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밖에도 창문 연작, 정원 연작, 길, 울타리 연작, 맹인 연작과 정원 속 최후의 만찬

을표현한작품, 6자 회담을표현한작업등이있습니다.

체적으로 이번 전시 작품도 이러한 흐름에서 연결될 수 있어요. 작가들에게 작업실은 각자 다를 것입니다. 저는 지하철에서 작업을 많이 했어요. 지하

철에서의작업을작업실로끌고와서증폭시킨것이라할수있습니다.

김준기: 작업실에 해서는어떤생각을가지고계세요?

유근택: 작업실이라는 개념으로 한정시키자면, 저는 작업실 자체를 상으로 삼기보다는 밖(외부)에서 작업을 한 후, 안(내부)에서 증폭시키는 작업을 합

니다. 작업실은일종의증폭장치죠. 예를들어지하철에서궁금증을찾다가, 작업실로들어와서증폭시키는것입니다.

김준기: 다시말씀드리자면, 작가유근택에있어서작업실의의미는작가가세상에 한경험, 수집된정보를가공하는공장, 아트팩토리, 예술가의공장

이라고할수있습니다. 그 작업실은세상과예술행위를이야기하는공간이며, 확장시켜생각하면버스로이곳저곳을여행하는동안먹과종이를가지고

다니면서작업을한후, 작업실로들어와큰화법으로증폭시키는것이죠. 강의를 시작한후작가의작업실을방문했을때그곳엔아무것도없었어요. 빈

방에혼자앉아있는작가의모습은불쌍해보 는데, 놀라웠던것은화판과종이가와있었다는것, 이는 작가가천생어디서나작업을해야하는사람이

라는것을느끼게해주었죠. 꼭 작업실에서만작업을해야하는것은아닌것이라는생각이들었습니다.

작업실이라는 주제로, 가부장 화가 유근택의 시각에 포착된 장면은 어지러운 방바닥과 주부화가인 아내와 아이, 아내의 작업실입니다. 그래서 기획자인

입장에서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난제>라는 작품이 가정의 일상을 주제로 포착한 것으로 아파트 일상도 작업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와

기획자의작업실에관한생각은다르거나새로울수있다고생각하는데이점에 해서어떻게생각하시나요?

유근택: (웃음)동의해요.

관객: 작업에 한 내용적인 이야기보다는 작업과정상의 의문점이 생기는데요, 그림 작업이 몸에 배어 있으신 것 같아요. 일상에서 생활 중에 무언가 생

각이나면즉흥적으로작업을하는것은매우어려운일이라고생각되는데, 이것이작가의몸에배어있는것이노력을통해생긴것인지, 아니면작가의

기질이나성격에서비롯된것인지궁금합니다.

유근택: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제가그림을많이그린다고생각하세요. 하지만 사실은그렇지도않아요. 제가 그림은그린다고할때는제가열심

히 그려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제가 드로잉을 한다고 할 때는 무언가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질문을 던진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을 하는 방법, 방법론에 의한 드로잉 일 뿐, 그림 자체의 목적은 아닌 것 같아요. 먹을 가지고 하는 작업도 흔해요. 이번 아트포

럼기재의글을보면, 연필로 드로잉을한후먹으로옮길때연필로그릴때의개념과먹으로그릴때의개념이완전히다르다는내용이실려있어요. 그

래서 시작한 것이 모필 소묘에요. 연필은 철저히 평면적인 도구이며 합리적인 계산이 필요해요. 하지만 모필이나 먹은 철저하게 공간적인 작업이에요.

연필로그린것을다시먹작업으로옮길때에는재해석의과정을거쳐요. 제가 먹을들고다니는이유는거기에있어요. 제가 처음에 상을해석한다거

나제가느낀것을해석하는방법에는모필로좀더더욱적극적으로작업하는것이필요했던것이죠.

관객: '먹'이라는 재료가 공간적인 재료라는 것에 해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셨으면 해요. 예를 들어 번지고 스며드는 것 때문인가요? 연필 소묘도 원근

법을통해공간적인표현은가능하지않은가요?

유근택: 공간적이라고 하는 것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먹은 스며드는 것이라는 개념, 먹 자체를 까맣게 발랐을 때와 유화물감을 까맣게 발랐을 때를

보면, 칸딘스키가 말하는 검정, 죽음을 의미하는 감정과 먹을 연결시킬 수 없거든요. 이는 다른 개념이에요. 그래서 해석 자체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죠. 연필로표현할수있는공간개념과먹으로표현되는공간의개념은다르며해석자체도달라요. 연필로드로잉을하다보면, 석고 데생에서처럼자신

도모르게평면적으로해석되게되요. 물론이는제가생각하는연필입니다.

먹은 사유의 그림이며 또한 산수화라는 것은 결국 미학적으로 좀더 들어가면 캔버스가 젯소로 발색 장치를 만든다면, 화선지에는 색이 기어들어가는 것

이라고할때스며들어가는색채의상태를더욱유도한다는것입니다. 제가 바라보는시각적인세계가아니라시각적인세계를뚫고들어가는작가의정

신적이고체험적인경계가묻어나오길바란다는것이동양화에서말하는사유의개념인것이죠. 이는 물성이갖고있는특성에서비롯될수있는미학이

라 생각해요. 즉 재료에서 비롯된 미학이라는 겁니다. 연필로도 분명히 공간개념을 불러낼 수 있어요. 하지만 물성이 가지고 있는 기본 개념에서는 이러

한물성적차이가있다는것이죠.

김준기: 예, 지금까지작가유근택과애희와의작가와의 화를가져보았습니다. 아직 학생의신분에서안정된작업실을찾아다니며활발한활동을펼치

고있는애희작가와작업실을일종의증폭장치로여기고, 꾸준히작업을하신유근택선생님을통해또다른작가의작업실에 한이야기를풀어본자

리 습니다. 함께해주신여러분들께감사의말씀을드리면서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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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3:박찬국

2004.01.14 수요일 pm.04:00

김준기: 오늘 작가와의 화에참가하신작가박찬국선생님은 80년 이래 다년간공공미술활동을 하셨고, 여주에 있는폐교에서 머리미술학교라는

작업실로 이용하고 계십니다. 그 작업실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라 공공미술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술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작업실

은작가내면의공간이기도하며더나아가소통의장, 열린교육의장이라는의미로생각될수있습니다.

화가의 역할, 예술가의 이 내 한 작업실 공간에서 작업실 사이로 단선적으로 오가는 관계가 아니라 그 관계를 뛰어 넘는 양수겸장으로 겸할 수 있는 지

위로변하는것이라생각합니다. 시민 중의미술교사로활동하고있는작가가앞으로도더욱좋은전시를해주길기 하면서세번째작가와의 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박찬국: 안녕하세요, 박찬국입니다. 저는 머리 미술학교를 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 작업의 중심 공간이며, 앞으로 어떻게 운 할 것인가 고민하

고있어요. 그러면우선평소작업에관한이야기로 화를시작하기로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이야기의핵심은제가 80년 부터 '어떠한관심을가져왔는가.'입니다. 제가 해온프로젝트를중심으로설명드리면, 우선 지금보시는것은

97년 창원에 있는 한 조그마한 아파트 프로젝트에요. 엘리베이터 없이 6층으로 된 아파트에서 이뤄진 작업인데, 이곳은 700세 가 살고 있는 곳으로,

엠조형 운 시절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여 이뤄진 작업이에요. 벽화 작업은 불가능하 기 때문에 아이들의 손을 흙으로 떠서 벽면에 붙여

서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아파트 공간에 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자 기획했어요. 아파트라는 공간은 체로 처음 입주하면 입주자는

그공간을자신이처음이용하는사람으로생각하게되는곳이죠. 우리나라의상황상, 이와같은작은아파트의경우부동산문제로인해금방떠날곳으

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획한 작업의 허가는 '주민이 전부 참여하는(만드는) 조건'아래서 내려졌어요. 시에서 지원을 받았고,

20 후반의여성현장소장의협조로진행될수있었어요.

흙을 직접 반죽하여 시범도 보이고 18세 이하의 어린이 청소년을 비롯한 1000명의 손을 찍었어요. 아파트의 세 는 개 30 중, 후반의 가장이 중심

이 되고 자녀들이 중학교 2학년이 제일 나이가 많을 정도의 가족 구성을 이루고 있었어요. 벽은 낮고 긴 형태 기 때문에, 벽화로 제작하기엔 무리가 있

었죠. 손바닥 도벽이완성된후, 아이들은 그공간을지날때마다자신의손바닥이아닌, 타인의 손바닥에 직접손을맞춰 보는경우가많았어요. 작업

은 동네 주민들과 한달 정도에 걸쳐 진행되었고, 작업과 주민들과 작업 외적으로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자리도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주민들의 작품 만족

도도굉장히높았죠. 이후여러곳에서이작품을모방한작업도많이이뤄졌어요.

아파트는 현 도시 생활의 주된 주거 공간이지만 아파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비해서 현재는 매개가 되는 문화적 코드 거의 없다는 것이 사

실이에요. 그래서이러한문화적코드를통해사람들이모일수있게되었으면좋겠어요. 이러한활동을전국아파트에서하자는것은아니고, 다만 이러

한것들이아파트사람들을모이게할수있고, 프로젝트를할수있지않은가생각해요. 이것은금전적인문제와관련이없는사업이에요.

두 번째로보시는것은공덕동삼성아파트프로젝트로, 이때재개발아파트공간을꾸며달라는제안이있었어요. 실제로가보니아파트건축에 1% 예술

장식품관련규정과함께선정된조각작품이있었지만공간과어울리지않았어요. 계약을했음에도불구하고다른미술작품을원한삼성건설측은조경

과어울릴만한작품을문의했고, 그들은방치상태에있던굴형태의건축물에작업을하길원했어요. 원래 밤나무골로유명했던지역이었기에작업

상공간에있던황량한콘크리트기둥과화단의나무를효과적으로이용한작업을해보기로했죠. 그 결과처음에오브제작품, 벽화등을주로예술장식

품으로 취급했던 건설회사 관계자는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심의에 통과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심의에 통과됨으로써 그 후 삼성은 조경에 미

술양식을 끼워 넣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어요. 따라서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작품은 이러한 방식이 불가능했고 화랑, 소수의 미술품 수집가들에게 유통되

었어요. 삼성의 이러한 움직임 이후 6개월 사이에 엘지, 현 등의 메이저 그룹들이 이러한 형식을 취하기에 이르 고, 심지어는 건설회사 측 내부에서

작가구성을하여제작하게되었어요. 현재 엠 조형에서는이러한작업을하고있죠. 참고로 예술장식품에 해고민하는점은청동, 화강암으로 된작업

이 주로 제작되는 작업인데, 가능하면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저렴한 가격의 재료를 사용하자는 것이에요. 본 작업의 경우도 인조석에 아크릴 물감을 이

용해발색시켜제작한것이며그밖에돌, 유리등의다양한재료를사용했어요.

세 번째로 연리동의 재개발 아파트 공사로 노출된 규모 절개지 프로젝트가 진행된 공간은 공룡 화석도 발견되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곳이에요. 때문에

화석, 지층을소재로한작업을구상, 진행중이었으나중간에공사담당자가바뀌고, 관계자의이해부족등으로인해원래의계획은무산되었죠. 그래서

안으로조각을세워달라는요청을했으나, 결국다른작업을시도했어요. 절개지에서나오는물(자연수)을 해결하기위해인공분수를제작했죠. 아이들

이 분수 에서 놀 수 있도록 놀이터 개념의 인공분수를 제작했어요. 나선형으로 된 분수 에서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요.

다음은 부평지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관리가 전혀 안되는 작업 중의 하나인데, 이 작품 역시 분수작품으로 인천 지하철역 개통 기념으로 제작된 작

품이에요. 조경 개념의 작품으로 제작된 것으로, 여러 개의 분수가 시간차에 의해 작동되는 오락적인 기능이 가미된 작품이죠. 지하철을 이용하는 회사

원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제작했어요. 일종의 놀이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프로젝트 죠. 그런데 아이들이 작품을 위해 설치된 센서

를 뽑아 버려서 분수가 작동이 되지 않던가, 이 곳에서 파업시위를 하던 노동자들이 작품을 파손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저는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에만

해도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거죠. 이 지역을 관리하는 담당부서에서 오는 문제도 있었는데, 그 지역일 의 조경을 관리하는 공원 녹

지 과와 작품이 소속되어 있는 문화관광부가 서로 다른 부서이기 때문에 공원 녹지 과에서 관리를 하지 않았던 측면이 그것이었어요. 심지어 작품이 파

손이되고있는데도신경을쓰지않았어요. 작가로서관리의측면을소홀히했다는것에서이이야기를하는것은부끄럽죠.

이것은시골분교작업으로, 김은석부부가아들이다니는학교가폐교가될위기에처하자일종의운동을벌 는데, 그에 지원의차원에서그곳학생들

과함께작업한겁니다. 작업은약 5년간진행되었으며, 학교 교정의계단에서이뤄졌어요. 이 작업과운동을계기로, 이 학교는정부로부터 '학부형이원

하지않으면폐교를하지 않아도된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1호로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당시 학생수가 37명에 이르던학교가이제는 (이론적으로라도)

본교가돼야한다고주장될정도로시설이좋아지고인원도늘어났죠.

관객: 음, 관련해서잠시질문드리면, 머리미술학교를하게된동기는무엇인가요?

박찬국: 오브제작업보다좀더사람들의생각과만나고생각이변화하는것을작업으로해보고싶었어요. 작업을통해더생각이확산될수있는것이무

엇인가고민하는과정에서, 학교를들어가서공교육과만날수있는것이무엇이가에 한고민으로생각이확장되었죠. 그곳은작가공간으로써도중요

한 공간이면서, 공유를 하는 지역문화 공간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임 료를 내고 있지만, 지역 문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했고, 이곳은

일방적인교육이이뤄지는공간이아니라, 교육이이야기될수있는공간이라고보았습니다.

그 지역에서 이뤄지는 공공생산, 예를 들어 다리를 놓는 것과 같은 공공시설 조성과정에 주민과의 소통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주민과의 소통이

이뤄지는 것에 관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그 관여하는 방법으로 아이들과 직접 만나서 어떤 공간에 무엇이 필요할 경우 아이들과 함께 그것

을만들어나가는작업을시작한것이죠. 그 공간의여러가지맥락을직접답사를하여알아보고, 이야기해보고, 안적인 것이무엇인지논의하면서지

역주민들과공유할수있는틀을만들자는생각을하게된거예요. 이렇게학교공간을쓰고자생각하게된것입니다.

김준기: 그럼다음작업도보면서계속이야기를진행하겠습니다.

박찬국: 네. 음, 이것은생활의발견이라고해서, 성북동달동네주민들의집밖을꾸민것인데, 이것은프로젝트가아니라, 학생들과함께매년성북동걷

기를 하던 중 발견하게 된 풍경이에요. 주민들은 작은 화단도 꾸미고, 텃밭도 일구면서 내 집 밖 꾸미기를 생활화 하는 반면, 같은 성북동에 위치한 이른

바 '부자동네'를 보면, 집 내부를 꾸미는 데는 공을 들이지만, 집 외부인 공공적 역에 한 서비스가 전혀 없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청담동 골목이 외

제차의주차로인해늘교통체증이일어나는것도생각해볼일이고요. 저는이것이우리나라사람들의일반적인 '공간'에 한인식이아닌가생각해요.

성북동 달동네에는 생활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재밌는 공간들이 많아요. 작은 언덕에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위해 마련된 돌계단, 계단 끝선에 계단을

헛딛지않도록그려진선들이그것이죠. 그래서저는이를모델삼아제가수업나가는학교아이들과거리미술동호회원들, 삼성봉사단과함께성북구일

6개의 '사랑의 계단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이 작업 이후 계속적인 작업을 제안할 정도로, 동장을 비롯한 주민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가장 반 했던

동사무소의경우도작업이후좋은반응을보 고요.

마지막으로 이 사진은 홍제동 소독차와 일본의 공공미술작품이 설치된 공원을 찍은 건데요, 소독약 연기를 따라다니던 추억을 작업 소재로 이용하고자

생각하던 중에, 소독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처럼, 연기를 이용한 공공미술작품이 설치된 일본의 놀이 공원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일본에는 공

원의개념으로사람들이즐겁게공공미술작품을즐길수있는곳이많이조성되어있거든요. 예, 제 작업이미지들은이것으로설명드릴수있겠습니다.

끝으로 제 작업을 정리해서 말씀드린다면, 저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해 고민하고, 이 공간에 예술가가 어떻게 관여하는가를 생각해왔다고 말씀드릴

수있습니다.

Page 39: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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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4:배준성

2004.01.15 목요일 pm.04:00

김준기: 안녕하세요, 작가와의 화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김준기라고 합니다. 오늘로 벌써 작가와의 화 프로그램 일정이 3분의 1정도 진행되었네요.

오늘도 작가의 작업실과 관련된 이야기를 비롯하여, 작품에 관한 작가 개인의 시각을 들어보고, 궁금한 점은 자유롭게 질문을 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럼, 작가 배준성과 함께 화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소작업에 관한 이야기, 작가가 고민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작품 전반에 관한 이

야기를부탁드립니다.

배준성: 안녕하세요, 배준성입니다. 먼저 제가 고민했던 문제들과 이제까지 가졌던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에 관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작업

의시작은어떤 상을보고, 그 상에접하는제작자, 그러니까화가의입장이에요. 그러한화가의입장과제작자가제작한이미지를접하는또하나의

감상자의 입장이 뚜렷이 구분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고민했었지요. 그렇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다른 역, 특히 음악과

화와같은다른매체와는다른그림만의문제라고생각했어요. 쉽게말씀드리면감상자가기분이안좋을때, 화를보면기분이좋아질수있는데, 그림

을 봐서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거든요. 그만큼 그림 자체로 보면 현 적으로 패쇄적이라고 본거죠. 그러면 그림성, 감수성다운 그런 작업을 가지고 출발

해야겠다고생각했어요.

96년도에 금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할 때 이러한 유의 일련의 작업을 할 때, 그 중의 하나가 이런 화가의 옷들이란 제목으로 시작한 작업들인데, 그

전에는단계를사진작업이나그림, 단면 A라는그림을그린다음에비록제가그린그림이지만, 그림을다시바라보는시간을가진이후에제가또그위

에제가얹고싶은이미지를레이어를통해서이중, 삼중으로얹히는그런방법을택했어요. 그러다가처음에는사진이란매체가아니었고, 그림 위에그

림위에그림위에점점이런식으로작업을했었어요. 그것이 정물화 던적도있고, 풍경화 던 적도있고, 어떤 추상적인어떤이미지위에제가또다

른 이미지를 가지고 이름 붙여지는 네이밍되는 과정들, 그것 때문에 전 이미지들이 이름이 붙여지고 명명되는, 그래서 화가의 옷이라는 제목 자체도 우

리가 입고 있는 물리적인 옷이 아니라, 사실은 작가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보고 감상자가 그걸 느끼고 자기 나름 로 해석하는 레이어들을, 그 레이어

들을옷이라고본것이거든요. 그래서화가의옷이라는개념도거기에서비롯된것입니다. 하여튼그러그러해서여기까지오게되었어요.

제가 방금말씀드린것은첫번째스테이지에 해말씀드린것이고, 그런 그림에 한관심에서출발한작업이절실하게와서걸리고, 자기가직접겪게

되다 보니까 저는 그런 레이어들을 하나하나씩 기존에 과거에 봐왔던 이미지들 위에 현재의 이미지들을 계속 쌓아올리는 작업 공정을 거쳤던데 반해서,

전시장에 걸렸을 때는 관람자들은 거꾸로 그것을 들춰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이게 들춰보는 그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

서그다음부터는그이미지와그전의이미지들의관계에 해, 관계에집중하게되었어요. 그게한 3년 정도되었어요. 그래서다음부터는이문제를어

떻게해결해야되나고민했죠.

그러니까처음에예상치못했던, 처음에초심과는다른문제에접하게된거죠. 첫 번째는그림에 한문제 다면, 두 번째는이미지의문제, 내러티브의

문제가제나름 로 두가되더라고요. 그래서그럼그런형식을어떻게취할까하다가올해부터지금보신것처럼배경, 풍경을넣었어요. 원래는배경,

풍경이 없었고, 어떤 A라는 인물에 맞는, 아니 맞는 게 아니라 입혀질 만한, 쓰일 만한 비닐이라는 물리적 망막을 통해 다시 한번 얹는 거 다면, 요즘에

하는작업은풍경을넣어서그풍경과그인물과의관계, 그리고그인물과옷과의관계그렇게해서구체적인레이어는아니지만겪는것을합성작업을

통해서작업하고있습니다.

이미지의문제가많이 두되다가보니까기자들이말할때혹은모잡지사의기자들이말할때, 그 안에누드와그위에옷과의관계는무어냐고물어요.

이 작업은그게없는데, 어떤작업은들춰보면앉아있는데들춰보면서있거나, 들춰보면그안에남자가있는작업이있거든요. 그게바로앞에얘기했던

이미지의 문제에 봉착해서 나름 로 표현하게 된 작업이에요. 그런데 그런 작업을 가지고 그렇게 묻는 거예요. 그럴 땐 판타지를 얘기하죠. 일반적으로

관음적이라고 생각하는 무심코 던진 말이, 그것이 저는 판타지하고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거고, 그 부분에 해 설명할 수 있어요. 판타지는 나름 로 자

기호자서암암리에즐기고, 즐기는속에서일종의쾌락적인부분이없을수는없지만, 그 쾌락이란개념과다른점은제가지금집중하고투자하는시간

이 계산적이고 계획적이라는 점이죠. 제 작업이 사실 어떻게 보면 관음적은 아니죠. 관음적인 거에 관심이 있다면 이렇게 드러내놓고 하겠어요? 오히려

수박하나의표면을그린다든가, 돌덩이하나를그리는것이오히려관음적이라면관음적이라고말씀드릴수있을거같아요. 질문이그러하기에설명하

기를이게어쩌다가이렇게됐네요. 하여간지금까지그런질문들을받았었기에, 이런 답을했다하는걸말씀드린것이에요.

그리고그다음에예상질문받았던것들에 한몇가지를해명을, 몇 가지질문들어오기전에하면, 왜 안에누드냐, 그리고누드와풍경과무슨관계냐

하는거예요. 왜 부분여자모델이고남자모델은없냐하는거, 남성중심적인시각아니냐하는그질문이가장많았어요. 그 설명을해드릴게요. 뭐냐

하면처음에는아까말씀드렸듯이, 모델을썼을때안에모델이그릴수있는 상, 활용할수있는 상으로서의이미지 다는거예요. 근데미술사에등

장하는 옷을 입히는 과정에 일련의 모델을 썼던, 인물을 썼던 게 그것의 연속선상에서 이 작업이 나왔던 건 틀림없죠. 맨 처음엔 옷 입고 있다가 또 다른

옷 입히고, 그러다 보니까 나름 로 들춰 보더라고요. 옷을 누드로 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입히지 말자고 결정했죠. 그러니까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는 거

죠. 입던벗던누드라는게상징적으로요즘에누드문제가여러가지로파장이크기도하고, 거기에의미부여같은것들이그층이너무나다양하기도하

잖아요. 제 작업을보는경향이있는것같아요. 그런데다들누드라는개념이그렇게중요한건아니고, 그저들춰보는와중에, 들춰보는과정과그리고

쌓아가는과정과두가지를겸해볼수있겠다는생각에누드를활용해보고, 그리고들춰보는맛도좀느끼게했다는점에서누드를사용했다는거예요.

그리고제작품의풍경과인물과의, 인물과인물과의관계, 사실은제작업의공정자체가전체를머릿속에딱두고작업을해나가는게아니라, 하나하나

씩해요. 처음에는장소들을찍어요. 그래서그자료가어느정도모이면, 그 장소에알맞은내지는어울리는, 얹히고싶은, 놓이게하고싶은인물을정하

는 게 두 번째 작업이거든요. 이 두 가지가 정해지면, 그거 가지고 컴퓨터 합성을 하게 되는 거예요. 합성은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고 싶지도 않기에

그냥러프하게해요. 그 작업이결정되면, 거기에 이번최근에한작업은 A라는 여자모델과 B라는 모델을같이만나게한것을한번더합성을해요. 그

게 끝나면이제야비로소거기에알맞은옷을정하는거죠. 사실은그런공정을아신다면처음에풍경에 해서, 인물의관계는저의중재에의해만나게

되는모델, 어떤특별한어떤내러티브가있는건아니고요. 어떤의미를부여하는, 제가계속덮게되는레이어들처럼평면적인것이지만, 그런레이어의

과정을 거쳤다는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비닐 위에 그리는 거, 그려서 그 안에 있는 이미지를 네이밍

하는 거, 명명하는 거. 이것은 최종적으로 여러분이 A라는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과 똑같죠. 제 작업은 제가 비록 제 작업을 해나가고 있지만 최종적이라

는단어라는지점도 B에얹는밑의풍경들을마지막에얹는것일뿐이죠. 그 이미지조차도약간은설치처럼디스플레이하게되는거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 모델 안 쓰고 여자 모델 쓴다는 질문에 한 해명을 하자면, 사실 남자 모델도 계속해서 같이 썼었어요. 최근의 작업이 이렇게

17, 18세기 명화에 등장하는 옷들이 아니라, 최근의 디자이너 옷을 가지고 시도를 해보려고 하니까, 그러다보니까 지금 제가 선택한 디자이너가 크리스

찬 라쿠르와 라는 사람인데, 국내에는 남성복이 안 들어왔어요. 그리고 제가 관람하면서 인터뷰하면서 조사했던 옷 중에서도 재작년 여름까지의 옷들이

죠. 그래서그것이여성복이었기에여성모델을쓴거지남성중심적인것이라는건아입니다. 질문 없으시면제작업에 한설명은여기까지이고요. 질

문있으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관객: 선생님작업에있어서완성의시점은어디인가요?

배준성: 이게완성이죠. 이게.

관객: 더 첨삭하거나, 이 위에계속진행해나가거나할의향은없으신가요?

배준성: 그런작업도있었어요. 그러니까이게뭐냐하면, 찍어서사진으로만들어서그위에또그리는것이죠. 그런데지금은이게완성일수있고요. 이

게완성이아니라면, 제가어떤생각이있어야할텐데. 지금여기에 한어떤생각이없어요. 만약있다면벌써했겠죠.

관객: 제가궁금한것은개인소장했을때작업을계속 'ing'할 수있으신지?

배준성: AS차원을말씀하시는건아니죠?(웃음)

관객: 작품의 AS라는 것이 완성된 다음의 얘기잖아요. 저는 그것이 저희가 완성된 다음의 작품을 갖고 있느냐, 아니면 작가가 계속 해나갈 의향이 있는

작품을갖고있는거냐하는거죠.

배준성: 작업에 따라틀린데, 분명히 그런점이있어요. 처음에는 그러그러하니까 작업자체가계속나름 로감상하고, 평가하고, 비평하는 감상자적위

치이고, 제작자에게도 있는 거거든요. 그것이 바로 제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작업을 시작한 거구요. 이게 연속적인 부분이죠. 그렇다면 연속적인 부분이

빈캔버스하나놓고, 계속연속적일수는없다고생각한거예요. 그래서제작자인제가결정을오히려내려야지연속적일수있는거죠. 이미지가오히려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이미지의 답답함이나 한정성 때문에 오히려 연속성이 아울러 등장한다는 것을 작업했던 거죠. 그래서 원래는 두 겹, 세 겹, 네

겹이었는데한겹으로정한거예요. 이제는한겹으로작업을하고, 웬만해서는한겹이에요. 그런데이제여러가지풍경들이있는경우에는두겹, 세 겹

인경우도간혹있는데원칙적으로는한겹으로하는데, 지금이시점에서는한겹으로정해야겠다는생각을하는거죠.

관객: 선생님께서모델을정하실때어떤이유가있으신가요? 그러니까예를들면미인인지와같은일반적인미적기준이있는지요?

배준성: 오히려 개성이 팍 튀면, 오히려 그 개성 때문에 그 위에 얹을 수 있는 이미지가 몇 가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작업하고 보니까, 얼굴

이특징이너무강해서감당하기힘들다거나, 제가별로안좋아했던거같아요. 그동안썼던남자모델의경우강했던친구가있었어요.

김준기: 출품작같은경우는어때요? 얼굴하고몸하고, 모델과옆에있는학생들하고, 저작권문제라든가, 뭐 그런거요.

배준성: 모델 몸 전체죠. 저 사진에 등장한 친구들에겐 아직 안 했지만, 사진을 한 장씩 주기로 했어요. 기념사진, 사진 정도로 말이죠. 작년에 제가 성신

여 실기실로수업갔을때입니다.

Page 40: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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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인위적인것을설정하신거죠?

배준성: 작업하겠다고한건아니고요. 제가카메라를가지고다니면서수업시간에찍은거죠.

김준기: 작가로서의 작업실과 강사로서 학교 작업실에서 만나는 작업실 풍경에 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체로 예상 질문 세 가지 준비하셨

죠? 하나 더추가해드린건왜굳이동양인의신체에서양인의 17, 18세기의 의상을입히냐,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서구의의상을한국인의모

델에게, 그것도 낯선 풍경에서. 항상 서양 고전 이상을 한국 사람에게 입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아니면 오리엔탈리즘의 소산이 아니었겠느냐는

질문을드린적이있습니다.

배준성: 궁금하세요? 사실동양인에서양옷을입힌것은저도나중에알았어요. 알고보니까그렇더라고요. 이제그게아니라제주변에있는사람들, 이

모델들이제가전혀모르는사람이아닌,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 전에 모델수업을하면서알았든가아니면친구로지내든가 부분이지인들이고, 그 지

인들이 바쁠 때면 새로운 모델과 작업을 했었어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죠. 그랬던 거고. 그 작업 이미지, 최종적 이미지,

비닐에그려진이미지는서양에서제작된시작자체가서양옷에서부터출발했던거니까요.

그것도 제가 이 작업이 처음 시작된 것이 96년도에 금호에서‘독후감’이란 제목의 작업이었어요. 어떤 것을 읽거나 보고 나서 느낀 후감을 제작하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작업 중 하나가 이러한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내가 그 작업을 글이나 이미지를 내 느낌 로 옮겨가는 것이 감상문과 독후감이 다른데,

독후감은 감상 후의 자신의 느낌을 첨가되는 부분이 독후감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 독후감이라는 개념을 읽거나 보면서, 제 나름 로 비뚤어서, 내지는

비켜가면서 집중한 상태 때문에 발생하는 제 느낌 있잖아요. 그걸 독후감이라고 생각해서 제작을 시작한 거예요. 글 작업하고 이미지 작업 중의 하나가

이작업이었는데, 이것도 서양화집있죠? 우리나라에 있는현 미술에관한것을작업한게있었고, 이것은 제가서양화학도로서그동안 학을다니

면서 혹은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했던 서양 미술사라는 부분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투자를 하면서 겪었던 느낌들, 그런 느낌들을 얘기를 하려는 작업

중에 하나 던 거예요. 그러니까 동양인의 몸매에 서양인의 옷을 입히자는 그런 생각은 없었고요. 그냥 여러 작업을 하다가 이런 작업이 아나 나오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아무생각이없다가나온것임에틀림없죠.

굳이 어떤 얘기를 솔직한 제가 이런 작업을 하는 의지 중에는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80년 학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건데, 국내에서 제가서

양화과를 다니다 보니까, 서양에서 유입된 그리고 유행이 되는 패러다임이 되고 있는 학문적인 기초들이 되고 있는 그런 부분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한

편 국내에서 수묵화나 중국에서 들어온 아니면, 한국사나 제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중국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런 공부를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서로어쩔수없이서양미술을공부하든동양미술, 서양철학에관심을갖든동양철학에관심을갖든그림들이서로제자신내부에

서는 우열을 가늠하면서 공부를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예를 들면 노자를 읽으면서 데리다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데리다를 읽으

면서노자를평가하지않을수없는거구요. 그리고 그런공통부분도, 그걸 삼으면서공부를하고, 독서를 해야지만탄력도받고, 제 나름 로 뭘한거같

기도했어요. 지금와서, 최근와서돌이켜보면요즘에좀거창하게얘기하면서양의보편사하고동양의보편사가나란히갔다가, 얼마안되어서동양인

사람도자국공부도해야하고, 외국에서들어온공부도해야하는그런시점에놓여있다는거죠. 그러니까단순하지않죠. 상황자체가예전하고는. 예전

엔 주자, 양명학에집중해서공부하면되죠. 근데 요즘에는그런부분이아니라는거예요. 그래서 한편으로재밌기도하지만쉽지않다는거죠. 그렇지만

상황자체가문학이나철학쪽에만있는게아니라미술쪽에도똑같이있다는거죠. 그런 관심들이예전부터있었던거같다는생각이요즘최근작업을

하면서느낀거죠. 저와이미지의문제를말씀드리는데이런문제를그래서서양적인, 서양으로향하는제마음, 제가지금한국땅에살고있지만중국에

공부해야할이미지들, 학문들, 그런 것들에관심을가지고했다는거예요. 제가 그러한바탕속에서작업이이렇게드러나지않았다고말씀드릴수없는

거죠. 그런뭐랄까…….잠재된저의생각들, 한국적이미지와서양적인이미지를같이쓸수있었겠다. 그런관심때문에전혀무관하지않다는거예요.

김준기: 듣고 보니까 그런 거겠네요. 서양화과를 나오면서 익숙해진 의상들, 처음에 제가 기억하기로는 서양의 명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그리되, 그

안의인물들은실제한국사람을쓰자, 그게출발이죠?

배준성: 그렇죠.

관객: 옷 같은것도인물에따라설정하잖아요? 주어지는명암이나공간적인측면도생각하시는거예요? 아니면풍경에주어진빛의방향이나공간감등

을생각하시는지요?

배준성: 아뇨.

관객: 그럼그냥옷을따로생각하시나요?

배준성: 그런데 옷을그 로옮기는게아니라요, 사진인데, 예를 들면 모델이앉아있을때제가가지고있는옷의포즈가이런데, 모델 포즈가이렇다면

제가옷을변형시켜서마치서있는옷처럼보이게끔서서펼쳐져있는옷처럼그리기도하구요. 어쩔 때는포즈에맞추어서서있는옷을구부려서그리

기도해요.

관객: 모델및방향에맞추어의상도그렇게맞추나요?

배준성: 그렇지는않아요.

관객: 바뀔수도있다는거죠?

김준기: 저 옷 같은 경우에는 얼굴하고 몸하고 합성한 아녜요? 왜냐하면 얼굴이 되게 커요. 아까 누구랑 같이 얘기했는데, 합성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발

끝은여기인데신발은더내려와있어요. 그래서합성한거라고생각했어요.

배준성: 앉아있는데서있는사람으로보이게그린다든지, 그런거까지있는데, 빛 방향을맞춘다든가그런건안해요. 의외로.

관객: 옷을 위에 걸쳐 놓은 것 같아요. 인위적으로 그렇게 의도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왜 옛날에 가지고 노는 인형 중에 옷을 이렇게 걸쳐서 노는 놀이가

있었는데그런느낌을받았어요.

관객: 사진에 해서도개인적으로관심을가지고계시나요?

배준성: 네, 사진이 빠르니까요. 이 사진에 해서 그림을 제작한다는 것은 단한 거죠. 맨땅에 헤딩하는 거거든요. 생짜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음악하고 틀려요. 음악은 어떻게 보면 창작이 아니죠. 그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거고. 근데 이건 생짜로 만들어 내는 거죠. 역까지 만들어 내는 거예

요. 그게미술이아니라는거죠. 최근제가유일하게기댈수있는것이비닐하고사진이에요. 그렇게정한거라는거죠. 그게어떻게바뀔진모르죠.

관객: 사진 그 쪽에사진위에페인팅을한다든지, 사진하는분들이사진을디지털화되어합성작업을한다든지, 수작업을하면난이도가굉장히어려운

데, 사진쪽에서다중적으로겹쳐지는작업이많은데본적이있으신가요? 본적이있으시면거기서느꼈던것과자신의작업에 해느꼈던것을좀설명

해주세요.

배준성: 봤죠. 사실 제 작업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면 안 돼요. 부분 사진 작업을 가지고 이미지로 활용하려는 작가들은 의미에 집중하는 것이

90%이상이에요. 제가 볼땐그래요. 그림을그리기위한소재로서사진이던그림이던활용할수있는수단으로쓰는거죠. 그 포즈들이나내부를구성하

고 있는 것들에서 나타나는 의미를요. 그런 점에서 약간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합성을 요번에 처음 해봤는데, 잘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왜 이거 밖에 못하냐. 그런데 원래 이걸 콜라주로 했었어요. 칼로 이걸 오히려 붙여서 일부러허연 것도 보이고, 그랬다고요. 그런데 이걸 컴퓨

터로이걸한번해봐야겠다고해서포토샵으로한게이모양인건데. 근데 정교하게사실실력도안되지만약간아닌것도괜찮다는생각을하면서나름

로선을두는것도있어요.

관객: 정교하게를원한다면직접할필요가없죠. 맡기면되는거죠. 그런의도가아니었으니까요.

배준성: 알아주시니감사합니다.

김준기: 이렇게 보면 이제 작업실에 해 이야기해보자는 것이 남았어요. 작업실에 해 이야기 해보자고 하는 건 작업실의 주인인 작가가 작품에 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오죠. 또 하나는 물리적 기제인 작업실이 어떤 모양인가를 살펴봄으로써 현 미술이 어떻게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보

려는측면도있습니다. 이런학교작업실이나아파트작업공간, 여성주부화가의입장들, 작고한작가의작업실을본다든지, 아니면파리나베를린에있

는작업실, 공공공간을점거해서들어가작업하는점거아틀리에라든지, 인위적인공간자체가아닌거리자체를작업실로보고작업하는개념이라든지,

여러 가지 작업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 작업실은 창작의 산실이기도 하고,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작가의 고통스런 내 한 공간, 작업실은 움직이는

거라는 확장되고, 역이 넓어지는 거죠. 장소개념을 떠나고 움직이는 행위 개념이 강조되거나, 개념적인 작업실 등 탄생하는 거죠. 예술지향, 미술지향

을새로이볼수있지않느냐하는거죠.

배준성: 제 작업실은원래병원이었는데, 2, 3층이 입원실이었어요. 수술실이었는데, 1층 병원원장님이외래만하는바람에입원환자를안받게되었어

요. 그래서제가작업실을쓰게된거구요. 지금제가작업하는공간은두명이쓰는데, 방은옛날수술실로작업했던공간이에요.

관객: 수술 도그 로있어요?

배준성: 네, 다 있어요.

관객: 그거참흥미있네요. 작가의작업실을보는거에 해서. 수술도구도다있나요?

배준성: 네, 다 있죠.

김준기: 아, 그래요?

Page 41: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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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성: 수술할 때 쓰는 그 등 말씀이시죠? 그게 제 책상에 갖다 놓고 책 읽을 때 쓰고 있고, 그리고 수술할 때 도구들 얹는 통은 제 물감 담는 통으로 쓰

고있어요.

김준기: 이번 <작업실리포트>전에그런것을좀보여줬어야죠.

배준성: 출연료를줬으면아마했을거예요.(웃음)

김준기: 그러면작업실얘기좀더해보기로하겠습니다. 어때요? 작업실옮긴지가얼마나되셨죠? 4년, 5년? 학 졸업하고작업실이있었을거아니에

요?

배준성: 제가 작업을, 학교를 90년도에 학을 졸업했거든요. 그리고 군 다녀와서 한 그때까지 작업실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첫

개인전을 96년도에했었는데, 96년 1월에그때집같은거, 집이죠, 그 집방하나에서작업을했었는데, 방벽이 3m정도되는데서작업했었어요. 작업실

에서는전체의작업을보지못하고전시장에서가서처음딱펴놓고본적이있었어요. 작업실커서작품안좋은사람들이 부분아닌가?(웃음)

김준기: 나이 들어 돈 많이 번 분들이 작업실 호화찬란하게 지어놔요. 그리고 작업을 안 하시고. 아시는 일화겠지만 광화문 앞에 있는 이순신 장군, 이순

신장군이칼을들고있잖아요. (자세를흉내내며) 장군이늠름하게있는게아니라이러고있거든요. 김세중이라는작가의아틀리에가천장고가딱고만

큼모자랐던거예요. 딱 요러고. 이렇게봐야하는데, 이러고. 그렇게작업실공간이작품에 향을주기도한다는거죠. 8m짜리를작업실에서쫙펴본다

는 그런 작가도 있어요. 아마 부분 그럴 거예요. 그 자기 만의 공간을 꾸린다고 했을 때, 저는 어떤 자기만의 공간이 있었죠. 고등학교 때 저는 80년도

후반에 화실을다녔어요. 지금은 형화된 미술학원이죠. 부분 학원이죠. 근데 그때는 작가의작업실, 화실, 안창홍씨 화실을 다녔었는데, 거기엔 바깥

공간엔이젤이있고, 이렇게잘라서안쪽에는작가의작업실이있었죠. 그리고거기는신성한통제의구역, 그 양반의에스키스나작업들, 자료들이. 쉬면

서 들춰보고. 그 다음에 있던 작업실은 고등학교 선배 작업실이었는데, 거기에 김민기의 금지된 앨범이 있었어요. 아침이슬이 있는 보라색 표지의. 그런

것들을 몰래 들을 수 있는 공간. 그런 식으로 예민한 공간으로서의 이미지 죠. 학교 졸업하고 작업실 꾸려서 지금처럼 작업실과 얽힌 작가 나름 로의

얘기가있을거같은데. 노동자에게공장이있다면화가에게작업실이있어야하는, 거기에 해서좀말씀해주세요.

배준성: 첨에 병원의 수술실이니까 포르말린이나 화공약품, 그런 냄새가 묻어났죠. 게다가 수술하다가 튄 자국도 있고, 막 그러니까, 처음에는 작가들의

작업 시간이 부분 밤이잖아요, 밤. 처음엔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음악 크게 틀고, 그러니까 할머니가 시끄럽다고. 거의 후원개념이었어요. 후원이라기

보다는 싸게 있었던 거죠. 제가 예원학교 선생님을 할 때, 2층에 원장 선생님이 학부모 어요. 제 주변에 어떻게 의사 선생님들이 많은데, 의사선생님들

하고 비슷해요. 정서적으로 골방에서 매일 째고 있어봐요. 특히 외과 같은데, 내과도. 치과, 피부과 말고. 내과, 외과 같은 데는 감수성이 비슷해요. 그러

다가 친하게 되어가지고. 그게 좋은 거죠, 싸게. 7시면 퇴근을 하니까, 퇴근하면 혼자만 남으니까 무섭더라고요, 처음에는. 압구정에서 학원을 했었어요.

그게 북가좌동 집하고 압구정동 학원 옆에 방 하나를 내서 같이 썼어요. 그게 애들 가르치면서 그림 도저히 못 그리겠더라고요. 얼마 안 되어서 그만 뒀

죠. 그만 두고 얼마 안 되어서 학 시험 보는 애들 몇 명, 그리고 예고 시험 보는 애들 몇 명이서 또 와요. 아직도 오고 있어요. 그런데 제 작업을 펼쳐 놓

고할때, 누드잖아. 그러면 학부모들 보면처음에좀이상하게 생각하지, 꼬마 애들이보면변태라고난리가나지. 그것 문에 처음에좀그렇다가이젠

하도 많이 보여주니까 자유스러워져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자기도 그리고, 자기도 그리고 싶다고 그리고, 자유롭게 적응이 되고 하니까. 그런데 처음

에는 이 작업 할 때는 오해도 많이 사고 그랬죠. 그때, 압구정동에서 학원을 할 때는 문 딱 잠가 놓고, 학원 끝나면 와서 문 열고 혼자 들어와서 작업하다

가애들봐주고하니까더변태같았죠.(웃음) 그 작업하면안되겠다싶어서껍질말아서요렇게, 요렇게하는작업도있어요. 슬라이드크게확 해서정

리하고하는작업도있고. 애들있을때는그런작업하고, 애들집에가면또이런작업하고.

김준기: 여기서얘기하는애들이라면몇살까지죠?

배준성: 꼬마애들이었죠. 미술가들의삶이애들미술도가르쳤다가, 의사선생님한테사기도쳤다가. 그러다가…….

김준기: 어떻게, 어떻게해서작업실마련하고, 그런 거보면. 노동자들과비유해서얘기했는데, 여러 일화같은것도있고, 특히배작가님같은경우이젤

을 펼쳐 놓고 싶다라든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저기 있는 그림이 유근택이라는 홍 동양화학부, 학원을 나온 작가가 그린 그림이에요.

저기 있는 인물은 이진원이라고 하는 유근택씨의 부인, 역시 홍 동양학과 동문이에요. 저기 가운데 있는 인물요. 저 분도 역시 화가예요. 작업을 해야

돼요. 근데 남편은파주에있는작업실, 어떤 약사님들이후원하는곳이있어요. 파주에 그어떤약사님이후원을해서작가들여럿을작업실을마련해줬

어요. 근데 그 작업실에 있는 작가인데, 저 옆에 있는 그림은 아이를 키우면서 아파트 저 지구본 옆에 뒤에 있는 옆에가 이진원 화가의 작업실이에요. 아

파트 방, 제일 큰 방안방을작업실로쓰고있어요. 주부 여성화가인이진원과가부장적남성화가인유근택과의관계가이런거예요. 생활공간과작업공

간이뒤섞여있음으로해서발생되는어쩔수없는난제들, 제목이어쩔수없는난제들이에요. 지금이거는이렇게 <작업실리포트>전에와있으니까이

렇게있는것이지, 가부장남성화가유근택이보기에저장면은그냥자신의일상인거예요. 그냥일상을그린거예요. 원래일상을주제로작업하는화가

예요. 주부 여성화가 이진원에게는 달라지는 거죠. <작업실 리포트>전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저 그림을 보면 좀 곤란한 난제들이죠. 마찬가지의 문제들

이배작가에게도똑같이있어요. 한수정이라고부부가같이그림을그리시고, 동문이시잖아요. 주변에같이자리를하면, 제가그얘기를한번들었어요.

배작가님과부인이같이계신데괜히부인작가를위로하느라고선배가한수정작가를치켜올리면서, 배작가님께잘해야해, 잘 해줘야해, 구박해요. 잘

해줘야 해, 뭐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걸 듣고 같은 입장이 이진원 작가와 한수정 작가가 같은 입장일 수 있다는 거. 그런 생각이 겹치는 거죠. 또

다른 부부화가가 가지는 특성. 몰라요, 나중에 이진원 화가가 훨씬 잘 할 거예요. 왜냐하면 유근택 화가는 덕 교수로 갔기 때문에, 이상하게 교수로 가

면작업을잘못하더라고요. 바빠가지고. 어떻게될지는모르죠. 하여튼작업실과관련해서사모님화가한수정님은또어떤지요?

배준성: 같이써요.

김준기: 저 아파트작업실보다는훨씬좋은케이스네요. 작업실도그렇지만부부화가로서어떻게계속작가로서해야할지, 공개할수있는한, 구름같이

모인시민, 학생, 미술애호가여러분께들려주신다면어떤것들이있겠습니까?

배준성: 허허(웃음)

관객: 작가분들에게얘기를들으면굉장히당황하게만드는건지, 제가공개적으로드리기힘든거같은데, 작품이잘팔리세요?

배준성: 저요?

김준기: 잘 팔리죠. 해외에서? 개인이?

배준성: 네. 개인이소장하는.

김준기: 아까 말씀드렸듯이 오히려 한국에서는 비닐에 그렸다고, 그런데 해외에서는 거꾸로 생각하는 거예요. 앞 질문, 어떻게 답하기 곤란하시면 그

냥넘어갈까요?

배준성: 부분 재미없는이야기죠. 작업실이란공간이그렇게행복한공간만은아니에요. 아까 자 업이라고표현했는데, 자 업이라는것이만분의일

이 될까? 그야말로 자기 작품이 상품화되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바뀌는 경우, 그런 과정이 있어야 자 업이라는 말이 통할 텐데. 이건 무슨 딴

거가지고돈을벌고, 그걸가지고작업을한다면그건업이아니죠. 부분의작가들이그러고있거든요. 제 주변화가들도그렇고. 심란하고힘든데, 네,

그래서나름 로공부열심히하려고애쓰고있어요.

작업에 해서, 제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몇몇이 모여서 매달 만나 그 얘기를 해요. 서로의 작업에 해서 얘기하고, 그거 할 때 침통하리만큼 철저하게

얘기하려고 애쓰죠, 서로가. 그래서 그거 가지고 흩어져서 서로 작업하고, 그런 과정을 겪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한, 학교 졸업하고 나서, 처음 저 그

림 가르쳐주셨던 분이 정광홍 선생님이라고 철사에 나뭇잎 이렇게 하는 작업을 하시는 분인데, 그 분에게 처음 그림을 배웠어요. 해외 전시활동 같이 하

고, 그룹전에 같이 할 때 많고, 그래서 학 다니면서도 줄곧 일년에 한두 번 만나서 계속 작업 얘기하고, 그거 가지고 열나게 하죠. 서로 작업에 해 생

각나는 거 있으면 서로 얘기해주고, 그런데 그런 관계를 그런 모임들이 재미있는 거 같고요.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고요. 그런 전제 하에는 서로 얘기할

때, 공자님 말씀에 서로 허물이있으면 고치라고 하시잖아요. 작업도 그래야 한다고, 그런 거죠. 저는 애매한부분, 추상적인 부분 때문에안되는 부분이

참많거든요. 기본적으로타고나기를안되는사람들도 부분이지만, 그런부분때문에고치지못해서안되는부분도있거든요. 그렇기때문에서로그

런 관계를 통해서 가급적이면 냉정하게 혹은 보다 깊숙이 남의 작업에 해서 침투할 수 있는 범위까지는 그렇게 하고 있어요. 서로 작업실 오가면서 그

런부분이좋은거같아요.

김준기: 아까 고등학교때기억말씀드렸던것은저같은경우는낭만적으로접근한케이스고, 맨 땅에헤딩하는고통스런공간일수있다는사실을많이

잊을 것 같아요. 저로서는 작가 작업실 방문하면, 이야기 나누고 작업에 해 토론하는 곳이. 혼자 고독하게 맨 땅에 헤딩하는 괴로울 거 아니에요. 그거

에 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네요. 그러고 보니까 권진규 화가의 작업실이, 텅 빈 사진 있잖아요. 거기에 보면 지나간 난간에 쇠사슬이, 목을 맨

쇠사슬이자살할때. 지금도그 로동선동, 돈암동그쪽에그 로. 그런걸생각하면고독한공간일수있겠네요. 고독하고내 한공간일수있겠네요.

배준성: 그리고 '작업이 나온다.'라는 게, 좋은 생각을 해서 좋은 작업이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결국 그러니까 그게 뭐냐 하면 그런 말 있잖아요. 쌍방간

에텐션이걸려있는거예요. 작가가작품을만들어낸다는것은내가철저하게독이되어있어야약같은작업이나온다는거예요. 그게 맞는다는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그건예를들면, 외로움이라든지막말로공부의양이없으면좋은작업이나오기힘들어요. 그건 운이좋아서작업이떠서좋은작가가

된다는 그런 생각은 믿지 않아요. 그런 생각을 믿었다면 이런 작업을 하지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고. 제가 그 동안 살아왔던 것이 무너졌을 테고. 아까

제가 말했던 제 선생님 만나서 이렇게 막 얘기하고 서로 막 얘기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서로 작업에 해서 관여한다는 것은 그럴 필요가 있다는 거예

Page 42: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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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5:노순석,정보영

2004.01.16 금요일 pm.04:00

김준기: 오늘 작가의 화를 위해 모여주신 시민, 학생 분들께, 미술계 여러분께 감사의말씀드립니다. 크게 두 가지 틀로 진행되는 두작가의 작업, 전반

적인 작업 세계에 해서 작업슬라이드를 보면서 약 25분에 걸쳐서 경청해주시고, 거기에 한 질의응답 해야겠죠. 그 또 한편은주제가 직업실리포트

니까 작업실과 연관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얘기는 특히 정보 선생님의 경우는 저쪽에 있는 그림인데, <작업실 리포트>전이라고 붙인 제목으로

접근한작업치고추상도가굉장히높아요. 관객들이보면어떻게읽어내야할지생각들을많이해야하고, 노순석작가도그냥그림만그린게아니라시

를적어서. 부산사람이라시를쓴다고안하고시를적는다고합니다. 이 두분인데두분이야기를듣고토론하고, 알찬시간이되었으면좋겠습니다. 우

선인사하시고 화를시작하겠습니다.

정보 : 안녕하세요, 정보 입니다. 앉아서 하겠습니다. 저는 그 전시 주제에 맞추어서 제 작품을 골라보는 전반적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제 작업을 말하

고. 그렇게나누어서준비해오지않았고요. 그냥. 전시에 해간단하게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제 그림작업들의성향들을두가지로분류해보았는데요.

첫 번째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물, 그런 것들의 전형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사물 그 자체를 넘어서 다른 어떤 것을 암시하는 초현실적인

느낌을불러일으키고자하는의도에서이런사물들을재현합니다. 보시면 한가지형상의슬라이드를죽보실텐데요. 어두워서잘안보이실텐데. 이게

하나의공간안에모과라는과일이바닥에죽깔려있는사진입니다. 우리 주변에서흔히볼수있는풍경인데요. 가로등이바닥을비추고있고나무가저

기 있는 풍경입니다. 이것은 프리드리히를 좀 보고 만든 그림인데요. 정확하게 제가 묘사한 것은 브로콜리예요. 바위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하시는데 브

로콜리의 이미지를 크게 확 해서 몽환적인 느낌이 들게 한 작품이에요. 그리고 마찬가지구요. 제목은 <어두움 말리기> 라고요. 브로콜리 하나하나를

빛가운데올려놓았을때브로콜리그림자가생긴거구요. 다음. 마찬가지구요. 유리에 놓인것과물의흐름. 이것은 천장부분을다섯부분으로나누어서

점점밝아지는것과점점어두워지는것으로, 핀이좀잘안맞는거같은데, 그래서익숙한사물을재현함에있어서초현실적인느낌이한가지특징이구

요.

또 하나는 실내 공간의 구성인데, 실내 공간의 구성으로 알레고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런 그림들입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메니나스 그림을 트랩이라

고 하긴 좀 거창하고, 공간을 생각하게 하는데. 그런 공간에 캔버스가 놓여 있고, 큰 공간이 맘에 들어서. 다음, 이 작품을 보시면, 배금녀의 그림을 약산

설명을드리자면, 배금녀의 그림은실내공간이주로나오는데, 빛과 바닥이수평으로분할된얕은공간이나오거든요. 그런 얕은공간을양탄자를 3차원

의 화면으로 끌어들이는 굉장히 쉽게 보이면서도 양탄자와 해석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배금녀의 공간에 한 호기심, 그런데서 모티브를 얻었습

니다. 실내 공간을구성하는것은실제작업공간을구성하는것이고요. 실제 작업공간에어떤적절한사물을배치해서, 그것을사진으로촬 해서사진

을참조해서그림을그리는거죠.

주요 관심사가뭐냐하면요, 꽤 오래된질문인데그림을그리는주체와모호한 상, 그리고재현간의관계설정이거든요. 상을 재현하는과정에서의

미를찾을수있는가하는거에 한하나의그림그리는행위에 한반성에서. 그래서 상을재현하는하나의사건을암시하는최소단위들은이젤, 테

이블, 모과, 그런 것들의배치를통해서제가고민하는문제들을담아봤습니다. 다음, 두 개가세트로된그림. 다음, 실제 작업공간을거울이라는매개체

를가지고, 이때부터관심을가졌던것이자크라캉이라는정신분석학자인데, 라캉의 주체형성모델에많은 향을받았습니다. 다음, 뒤에 또 거울이하

나있어서제자화상이비치는데요. 계속보시면, 거울에비친상황이구요. 다음, 이건 좀다른데요. 실제작업공간으로문이열린그런상황인데요. 이때

부터는 이젠 제가 그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에 한 관심으로서 관찰자나 화가의 시선, 그런 것들에 한 관심으로서 원근법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

다. 다음, 네덜란드 17세기 동판화를 자료로 찾아서 작업한 거거든요. 그것을 재구성해서 이것의 제목이 뭐냐 하면 <일시점에 의해서 구현된 완벽한 공

간속에열린>인데, 하나의 소실점이하나의합리적인공간을구성하는데그공간, 소실점에의해시각공간안에놓인사물들이모든것이절제되고, 소

실점에의해통제되는상황을표현하고싶어서. 이런 원근법에의해어떻게보면약간폭력적인그런것에 해서시점을여러개로한그림안에시점을

여러 개 넣어 제작하거나, 시점의 이동을 통해서 여러 작품을 모아 제작함으로써 원근법의 일시점에 한 시간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했습니다. 다음, 하

나의 작업실 안에 시점의 이동이 있는 작업이구요. 다음, 이것도 제가 허구의 공간을 구성한 거거든요. 왼쪽의 창문과 오른쪽의 창문, 이것을 보면 시점,

원래 바라다보는 시점이 다르거든요. 두 개의 시점이. 다음, 이것도 창문이 두 개가 보이는데, 같은 풍경이지만 약간 다르게 설명하고 싶어서, 날씨가 틀

린 경우거든요. 다음, 이것도 마찬가지로 창문의 배치를 통해 시점이 다른, 두 가지 시점이 공존을 하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다음, 이거는 하나의 건축물

인데요. 하나의원근법에의해서견고하게구성된건축물로원근법에의해고안된건축물이허구를나타내고싶어서. 건축물을하얀종이로백지로남겨

놓았습니다. 이건 금호미술관에서 했던작업이구요. 이것은 좌우가뒤바뀐상황인데, 이것도 길이가되게길게제작되었는데. 이것도 역시 두개의공간,

두 개의 시점으로 합쳐진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이거는 이전 그림을 창문을 확 해서 그린 경우구요. 이것도 창문에 올려 그려진 것을 확 해

서, 세 개가 연작이고요. 이 다음, 이 작품은 제목이 방문 이라는 건데요. 제 그림의 출발점에 해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그림의 출발

요. 그게그만큼창작의고통이라는게막 한거예요.

그리고 내가 철저하게 외롭지 않으면 작업이 나오지도 않고, 그런 걸 버텨야하고, 그런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아까 제가 얘기했던 두

가지의상황에서있다는건, 내가작업을하면서작업과의싸워야하는부분과또하나는사람들과의인간과의관계에 한부분, 이 둘이다르거든요. 첫

번째는자폐적인부분이고, 두 번째는오히려개방적인부분이어야하니까. 그 두 가지를공유해야한다는게사실상거의불가능하다시피해요. 그게 쉽

지않고, 그걸또잘해야하거든요. 그거안되면안되는거거든요. 그게안되니까맨날당하는거거든요.

관객: 창작과거의동시에한사람이거의하루에도몇번씩전문적인전담매니지먼트시스템이있어야겠네요.

김준기: 아직미약하죠. 아직은.

배준성: 작업실에서의삶은아까첫번째에말씀드렸던그부분이거든요. 그러니까쉽지않죠.

김준기: 맨땅에헤딩하는것처럼요?

배준성: 네, 쉽지않죠.

김준기: 작업실에서의즐거움도좀말씀해주시죠?

배준성: 즐거움? 없어요.

김준기: 그러면 마무리말씀좀일분동안생각해서해주시고, 일분동안또제가말씀드리겠습니다. <작업실 리포트>전을 기화로이작업실이야기가 시

작되었습니다. 그래서앞으로 한민국서울에도다양한여러가지모습의작업실이있었으면좋겠고, 작업실이란것을통해서작가와작업, 예술작품에

해 종합적인 생각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나중에 출판의 형태든 심포지움이든 어떤 형태든 작업실에 관한 이야기들이 더욱 진행될 거

예요. 그리고내려가실때아래데스크에서성함하고이메일을적어주시면, 여러가지결과들작가와의 화계속진행한거, 심포지움또다음전시들그

런 거 계속 보내드릴 테니까. 사비나 미술관이 갤러리에서 미술관으로 바뀌고 나서, 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것이 작년 후반이고 올해 한

해동안그일을해야해요. 그래서잘자리잡을수있도록자주찾아주시고, 아껴주시면열심히좋은프로그램만들어서자주찾아뵈었으면좋겠습니다.

그러면마무리로한말씀해주세요.

배준성: 네, 허허. 아 저한테메일주소알려주시면제가전시할때엽서랑팸플릿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Page 43: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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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든요. 작업실이라는공간을제가가지고있는일반적인생각, 일반적인, 일반적으로생각해봤을때길거리위에공간, 작업 공간이있다는거는통로라

는느낌을주고싶어서이거든요. 작업공간이폐쇄된공간이아니라무언가스쳐지나가는자신의통로로서작업공간을생각하고있어요.

김준기: 마지막말씀해주시고요. 정리를해주시고요. 이어서노순석작가와의 화를계속진행하겠습니다.

정보 : 이렇게많이와주셔서감사하고요. 좋은시간이되셨으면좋겠습니다.

노순석: 예, 안녕하세요, 노순석입니다. 바로 작업에 해서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한그림안에여러가지이미지들이 하나로모으는과정

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이야기 같은 것을 제가 작업을 했거든요. 이거 같은 경우도 옛날 그림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오고요. 쉽게 해서 사람들이 보고

재밌고 상상을 하게 할 수 있게끔 그런 작업이고. 그리고 이거 같은 경우는 제목이 <내기사>인데, 이건 어떻게 보면 권력의 구조 같은 거를 코믹하게 권

력과성, 어떤 명령과복종과같은그런관계들을일단코믹하게다루면서웃는가운데, 다시 한번느낄수있게끔그렇게한작업이구요. 이거 같은 경우

도 지금 이렇게 보면 남자와 여자, 그런 관계들인데요. 여러 가지 상반된 이미지들을 화면 곳곳에 둬가지고 사람들이 보면서 자기 나름 로 이야기를 상

상할수있게끔그런식으로그림을그리고한것이고요. 이거는권투경기인데요. 지금 벽에보면서울역이라고적혀있는데요. 이게 서울이라고하는글

자를 적음으로써 전체의 장면이 서울에서 생기는 일들을 상징적 또는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고. 그런 장소를 정해둠으로써 우리가 좀 더 쉽게 그

림에접할수있지않을까그렇게해서이제어떤사건들을권투경기에비유를해서승자와패자, 그리고지고나갈때그런모습들을재밌게구성했고요.

이거같은경우도서울 200년 이라고해서그당시서울에서어떤일이생겼어요.

저 같은경우에그림을그릴때가장중시하는것이내가보고겪고느꼈던것을, 내 스스로중요하다고생각하는것을가지고와가지고내나름 로사건

들을하나하나씩따와서거기에어떤풍자를찾거나, 어떤 이야기를찾아가지고, 그것을 어떻게해체를시킨다음에다시조합을시키는데, 내가 볼 때는

해체를 시키기 전에 조합을 먼저 시키는데, 조합을 한다는 거 자체가 그런 해체를 한다는 의미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것은자연스럽게세계를해체하는것같아요.

이것도마찬가지로 2000년에서울의풍경인데, 이때어떤일이있었냐하면요, 요기보면김정일하고김 중이있거든요. 두 사람이만나는거고, 그 만남

을 위해 북한에 소주고 하는, 뭐 이렇게 했던 그런 사건들을 보면서 나름 로 이 사람이 북한에 가서 손을 흔드는 거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은 노력을 하고 있다거나, 못 만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들을 하나의 화면에 재미있게. 이거 같은 경우는 점인데요. 출품한 그림인데, 여기 보면

부적같은게있고, 점보는 사람이있고여러가지가있는데이게점을통해서점과부적을통해서우리가행복과불행을미리알고싶어하고, 그런 것들

을이야기그림비슷하게재구성해본거구요. 이렇게해서이게제가저번까지했던작업중에서괜찮은것들만골라서가져온거구요.

지금하고있는작업들은어떤작업인가하면은어떤특정한배우가있거든요. 그 배우가그특정한배우를두고, 배우를그리고그배우를등장시켜가지

고 단편 화도 만들고, 그리고 그 배우에 해서 글도 쓰고 하면서, 그 사람이 그리는 이상을 색을 섞어가지고 하나의 어떻게 보면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걸 하는 작업을 한 거거든요. 이건 그 작업이 하는 중이라서 이 작업에 해서 뭐라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잘 못 드리겠어요. 그리고 작업을 하

는과정에서그걸작업을정리하면서진행을못시키거든요. 그러니까작품을하고난다음에저작업속에어떤원리로내가저작업을했는지, 단편적으

로작업을보고난다음에다시한번생각하죠. 작업의원리라든지.

지금 제가하고있는작업을간단하게보여드린거구요. 이것은지금하고있는작업에등장하는중심인물들이거든요. 그리고이사람들가지고초상화를

많이그렸어요. 그건 초상화가 가지고있는 근본적인 거 있잖아요. 뭐랄까, 어떤 존재를보이게 하는. 이 배우가 지금 가까이 없거든요. 그래 가지고같이

보고싶다는의미에서초상화를많이그리고있거든요.

근데또중요한것은전작업과지금작업하고약간그림그리는방법에있어차이를보이고있는데, 이거같은경우는어떻게해석이가능한가하면은요,

전 거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바깥세상이 완전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바깥으로 간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는 그림에서 그림 형식은 제 안

에있는형식을많이따랐고요. 지금 같은경우에는기존에나와있던그림들을베껴서차용해서좀더예쁘게좀더보기좋게, 그런 식으로지금작업을

하고있어요. 그리고이사람이중심이되어서페인팅하는게이런식으로지금작업하고있고요.

그리고 글도 썼고요. '며칠째 낮에는 더웠다. 밤에는 비가…….'라는 것처럼, 글이 사람들한테 그림보다 직접적으로 오기 때문에 그림이 글에 종속될 수

있는거같아요. 그림을글하고동등한위치혹은그림이글보다위에있게하기위해서서로각자의이야기를다르게하면종속관계에서종속관계가성

립되지않을까해서그림하고글하고딴얘기를좀하고있어요. 그리고 또 상작업을 같이하는데, 상 작업은이런식으로. 이게 지금 상이구요. 거

기에그림하고글이동시에보여주면서요, 뭐랄까, 상이말할수있는것과글이말할수있는것과그리고그림이가져다줄수있는어떤작품같은것

을따로따로동시에이렇게. 이거 같은경우에지금사진이별로안좋은데요. 상 작업 때 같이들어갈그림인데요. 동화책의한페이지같은그런느낌

점이무엇인가에서생각에서제작했던거구요.

이건 지금전시하고있는작품이고요. 다른 것과다른게천장에놓이진않았지만, 나타나진않았지만천장이없는공간이었고요. 저쪽 깊은공간으로놓

여있는 저쪽에 별이 있어야만 자리하는, 없는 상태로, 저쪽 끝에 또 하나의 공간이 있거든요. 길거리로 끝없이 이어지는 길, 공간이 두 개가 비치는 그런

상황이에요. 이것으로저의작품들에 해 충설명을드려봤습니다.

관객: 일상성의재현에 해질문을드리겠는데요. 저희가너무익숙해서항상똑같이보이는브로콜리나모과라든지일상적인것이브로콜리 는데, 저

는 제가 재현을 통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하셨는데, 제가 받은 느낌은 초현실적인 느낌이라기보다는 글쎄 그게 포함되었는지는 모

르겠지만, 뭔가일상을낯설게하기그런걸많이느꼈습니다. 그거에 해서, 그래서하늘아래새로운것은없다. 아까어떤선생님처음에팬화도그리

시고, 이미 기존에 수세기 전에 그런 작가가 있었지만 선생님 나름 로 재해석하고 그것을 관람객이나 독자에게 낯설게 하기로 의미인지 여쭙고 싶습니

다. 작품 하시기전에그것이의도된건지, 아니면일상이라는것이항상익숙하니까사실브로콜리같은경우저는요리의재료일뿐이지선생님과같은

그런재료로는보지않는. 낯설게보기라는것이의도된것인지, 어느날생활속에서브로콜리가그렇게보여서작업을하는건지궁금합니다.

정보 : 그게 섞여있는 거 같아요. 일상을 지나치지, 일상 속에서 지나치지 않고 그런 부분도 있지만, 상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그런 게 좀 있다고 생각

하거든요. 제가의미있다고해서다선택할수있는건아닌거같고요. 소통이란의미에서제가 상을선택하게된계기는어떤정물을복숭아, 모과같

은것을많이그렸는데, 그것을클로즈업해서그리다보니까아까풍경화처럼풍경화같은숲속의이미지를좋아하고있다는거죠.

노성두: 제가 사실은 르네상스 전공하고 있고요. 원근법에 해 공부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수업도 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원근법에 해 작업을 하셔

서마지막에놀랐어요. 제가 눈꺼풀이확벗겨지고, 벼락을 맞는느낌이었어요. 굉장히 정교하고치 한접근에서. 제가 지금원근법에 해 책을내려고

하는데, 선생님작품의상당수가제가얘기하려는딱그부분이어서. 그러니까제가느낀부분은뉴욕타임스, 지난 레니엄최고의발명품 10가지중에

하나가첫번째가르네상스원근법이라고했는데. 그런데현 미술에서원근법은죽었다라고하거든요. 선생님께서는선원근법에 해회의를갖는데,

안원근법으로 선형원근법으로 공간과 사물 간의 관계, 체계에 해 다룬다는 데에, 공간 문제를 다룬다든가, 거울의 문제를 다룬다는 데에 궁금한 게

있다면, 선생님께서작업을주로진행하면서원근법을다루는데있어서오늘보듯, 벨라스케스, 르네상스원근법에 해다루시나요?

정보 : 저는 붓으로 계속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그리다가 보니까 자꾸 그림의 기본적인 요소로 회귀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첫 번째 재현

에 해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간단히 설명 드리자면 제가 그리고 있는 기본 요소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그리고 사진 이미지를 많이 참조하게

되는데사진이미지가가지는한계성때문이었어요.

관객: 선생님원근법작업중에보면아마예를들어공간의수직성문제라든가, 명암등공간의수직성같은경우에눈높이에따라서사실수직성을갖지

않아요. 높은 건물을밑에서보면건물이쏟아지는것처럼수직을유지하지않거든요. 그래서선생님작업에서직선이모순을갖는부분이있을텐데. 왜

곡되는 부분이라든가, 이런 것도 정면에서 보면, 한복판에서 보면 사각형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찌그러져 보여요. 마름모처럼 보이거든요. 이것처

럼 공간에서 수직선이라든지 수평선이 휘어 보이거나 기울어져 보이는데, 이런 것들을 선생님들의 작품 속에서는 시점 혹은 우리는 안구가 달걀껍데기

처럼 실제로 인식하는 것은 곡선이라는 거죠. 그걸 곡선을 직선으로 만약에 곡선으로 자연을 재현하는데 있어 자연과 충돌하는데.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정리할것인지, 그것은르네상스거장들도해결하지못한부분인데. 구체적으로 21세기에 500년 전문제를끌어들 을때. 궁금한데있다면앞으로어떻

게작업하실건지.

정보 : 글쎄,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안구의 곡면과 평면이라는 물리적인 문제에 해서 생각을 안 해 본 거 같고요. 그리고 제가 특별히 눈이 소실점과

나란히일치해서구체공간이있는데, 제가연구발전을못하고있는상태고요.

관객: 감사합니다. 그리고마지막으로자화상이있고커튼이있는, 그것은자기그림의출발점으로만말씀을하시고많이얘기를안하신거같은데, 그것

에 해서좀.

정보 : 제 그림의 출발점은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 출발점은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눕힌 의자

가있는데그의자를제가만난사람의이미지로, 그렇게봤거든요.

김준기: 지금까지 전시에 해, 작품 경위에 해 설명하셨다면, 이제 이번 전시의 작업실이란 것을 주제로 했을 때, 이번 전시에 한 이야기를 좀 부탁

드릴수있을까요?

정보 : 작업실이라는 공간은 제가 굉장히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었거든요. 주변에서 제가 제일 쉽게 접할 수 있는 항목들을 만나는 곳이고, 작업실이라

는 공간을 원근법에 한 관심이라든가, 허구의 공간을 구성해 가는 통로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제작한 제작품은 길거리 위에 실내 공간이 있는 형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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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은 12월 달에 세 명이 다른 전시를 했고요. 다른 곳에서 그래서 자료를 찾다 보니까 작업실을 소재로 한 작업이 있어서. 그래서 이것을 좀 풀어주면 좋

겠다는생각을했죠. 그런데오히려제가생각했던것과달리소재주의를많이탈피한방식이많았습니다.

정보 : (웃음) 저 같은경우엔작업실이란공간하면은작가자신의그림에 한생각을표현하는곳으로서그렇게설명하면될거같고요. 촛불이라는것

을 저기에 놓은 것은 잘 보시면 두 개의 상이한 공간이 있거든요. 정면에 보이는 하나의 공간하고, 하나의 공간 앞에 있는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에 있

는 공간이 겹쳐 있는 공간이거든요. 하나의 촛불은 앞에 있는 공간에 놓여있는 거구요. 하나의 공간은 저 뒤에 있는 공간에 놓여 있는 건데요. 저 의자에

앉아서 화가가, 제 자신이 저 촛불이라는 것을 하나의 가치로 봤을 때에 그 가치를 저의 그림에 한 생각을 상징하는 거로 보고, 하나의 가치 뒤에 따라

오는또다른가치가놓여지고, 그런상황을나타냈는데, 확고하게정리된거는여러가지움직임이있는그런공간, 뭐, 그런거요.

김준기: 제가 좀 전에질문드린것은다른분들도가질법한질문이다싶어서. 두 분 작가의작품을보면서어떻게매칭이되느냐하는것은기획자의기

획의도가작가들에게계기가되었을거라고. 작가들의몫이었다고생각합니다. 그래서어떤사람이든어떤작가는작가적문제자체를부각시키는작업

을한작가도있고, 어떤 작가는물리적공간으로서의아틀리에로접근하신분도있는거같고요. 또 어떤작가는소통의장으로활용되는아틀리에특히

파리나베를린에있는점거아틀리에같은다양하게좀양상이나타난거같은데. 그러저러한것에반해전시전체에 한것들, 부부작가에 한작품을

포함해 활발하게 얘기 좀 했으면 좋겠어요. 이응로 미술관에 계시다가 창동에 있는 창동 스튜디오로 옮겨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계신 조주연 선생님

께서 아틀리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계시니까 어떠신지. 작가들의 창작 환경에 해. 아틀리에와 직접 연관된 어떤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다든지 그러

신거아니죠. 이번에일을해보니까어떤생각이드시는지.

조주연: 지금 많이 부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작가 분들도 교류하시면서 그런 곳에서 작업하시면 향 받는 부분이 많은 거 같아요. 프로그램이

굉장히중요한거같아요.

김준기: 일산스튜디오가어디있어요? 좀외진데있어요? 분위기는창고같아요?

조주연: 고양, 덕양구요. 아뇨, 굉장히관공서적이에요.

김준기: 새로지어서, 문화부에서새로건물을지어서만든거예요?

조주연: 네, 새로지었어요.

김준기: 저는 그 파리에계시다오신분도있지만, 밑에 일층에는파리에있는점거아틀리에, 그냥 도시에비어있는공공건물들을작가들이우르르몰려

가 작가들이 모여 쓰기도 하고, 몇 년 쓰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계속 쓰기도 하고. 창동이나 고양에 있는 스튜디오가 관에서 운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되게 좀 작가들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한국적 상황이란 것이 그런 거잖아요. 작가들을 사육하듯이 가둬두고, 사료를 줘서 좋은 작품을 하게하고,

일년 동안 잘 키워서 그래서 전시시키고, 뭐 이렇게 하는 것 같은 것만 있잖아요. 서울에는 두 개 보통 쌈지도 있고, 가나도 있고, 은도 있고, 고 정도인

데. 개 점거 아틀리에와 같이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들, 사회적 저항도 포함된 그런 것들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파리에는 28개가 있고, 서울에는 하나

도없죠. 그러저러한문화적차이가있구나하는생각을좀했거든요.

조주연: 그건 좀 문화적차이라기보다는성격, 아틀리에나그런스튜디오가여러가지성격을띤스튜디오들이다양하게공존하는것이더좋은거고. 제

생각에는 외국 스튜디오 같은 경우에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폐교나 폐공장같은 우리 나리에도 지방에 많지만, 그런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있잖아

요. 프로그램을 운 할 수도 있고, 장단점이 있다고 해서 좋은 스튜디오라고 해서 꼭 프로그램이 많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없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성

격이 다른 거 같아요. 정말 근데 한 참은 그런 프로그램을 많이 하다가 가장 발전적인 형태는 아무런 프로그램 없이 작가들에게 편안한 작업실만을 제공

해주는것이가장이상적인형태인것같아요.

김준기: 그렇게심오한말씀을. 그게어제배준성작가와얘기하다보니까그작가는후원을받았어요. 작업실을. 근데외과병동으로쓰던건물이고자기

가처음입주했을때는외과수술하느라고피튀긴게벽에붙어있고, 수술도구, 수술조명. 수술조명은그냥자기책읽을때쓰고, 수술 에다가자기팔

레트랑물감이랑해서놓고쓴 요. 근데 그 얘기들을때처음엔무서웠다고그러더라고요. 지금은 적응이되었겠지만, 개 낭만적인아틀리에상, 파티

도 열리고 뭔가 작가 고유의 분위기도 나고 그런 아틀리에 상에 해 얘기하다가 나중에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진짜 맨땅에 헤딩하는 고독한 공간이

다. 왜냐하면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그래서 옛날 화가들이야 도제식으로 조수들도 좀 두고 공장 식으로 운 했겠죠. 근데 요즘 특히 젊은 화가들의

경우는되게고독할거같아요. 혼자, 어떻게해야하지, 뭘 해야되지. 그게아주침울한내 화된공간이될가능성도크겠다는생각도들어요. 아틀리에

의역사와의미의변동들에 해서노박사님께서서구와비교해서 5분간짧게, 5분이면너무짧겠지만, 8분 동안말씀을좀.

노성두: 작년에 관장님을 우연히 만나가지고 그런 얘기를 했어요. 화가의 작업실, 조각가의 작업실, 이런 작업실을 전체 주제로 하면 어떠냐, 이게 좀 큼

을주는데요. 이건그냥. 크게본것이고요. 그리고이게동 상을지금하나보여드릴게요. 동 상은그림하고같이그림의내용을도와줄수도있고, 딴

얘기를할수도있어요.(동 상관람) 이것은어떤내용인가하면, 그림을주고그그림을받아가지고자기방에걸어놓고그림을보면서옛날일을떠올리

는그런내용이구요.

저기 보면 여기에 다가 그 외에 종이 위에 간단한 그림이라든지 스케치, 글 같은 거 작업실에 평소에 해 가지고 그렇게 놓고 쓰는 것을 그 로 저기에 가

지고 왔는데, 제가 보기에 작업실이란 공간은요. 어떤 공간이냐 하면은요. 약간 편집적인 어떤 그런 성향하고요. 또는 정신분열적인 성향이 동시에 공존

하는그런공간같아요. 그래 가지고그공간을최 한산만하게보이게하기위해서저런식으로설치를했고요. 그래서작업실이란테마를처음받았을

때는 그런 거 좀 편집증과 분열증의 그런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그런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하고 그 작업에 글

이 들어가니까, 저기도 간단하게 제가 작업실에 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텍스트로 적어가지고, 관객들이 볼 때 작업실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라도

작가가어떤식으로작업을하는가를좀보여주고싶어서저런식으로작업했고요.

그리고딴거는뭐보여줄게없어요. 그리고이거같은경우는이제텍스트하고 상물두가지를섞어서보여주는거구요. 이런 식으로종이에다가텍스

트를적어놓고요. 텍스트에맞게끔여기에혹은딴 상이라도 상을두개를비춰서보여주는건데. 이것도이작업은현재계속하고있기때문에뭐라

고 드릴 말씀은 없고요. 현재 동 상 작업을 잠시 보여드릴게요.(동 상 관람) 이게 뭐냐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 같은 것들을 라디오에서 나오는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그 노래 가사하고 자신이 가진 기억을 설 입시키잖아요. 그런 것들을 하나의 형식을 빌려 가지고 한 번 만들어 본 거구요. 하여

튼지금작업은이게다입니다. 그럼, 질문이있으시면답변해드리겠습니다.

관객: 선생님 작업을 보니까 소위 말하는 구태의연한 멜로라는 작업을 하시고, 특히 사랑이라든지 연애라든지 관심 있는 상에 한 호기심이라든지,

발생하는이야기에 해서다루시는데, 다는아니지만사랑이란무엇이라고생각하는지.(웃음) 저는굉장히중요하다고생각하거든요. 제가밥먹고나서

굶주림이해결된다음에바로필요한거라고생각하기때문에, 제가 알기에글같은것도많이쓰시고그작업에추구하는것을보면자기에 해사랑에

해굉장히장시간생각하신거같은데요.

노순석: 사랑이굉장히중요한문제죠. 그리고만약에사랑이없으면어떤뭐예술이존재를못했을걸요. 그런데중요한만큼중요하니까사랑에 해함

부로 말못하겠어요.(웃음) 그래도 제가 할 수있는 건사랑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키는가는 관객들이 직접 보시고 판단을 했으면 좋겠고요. 선생님한테

정확한답을못해드려서죄송하게생각합니다.

관객: 선생님 최근 작업을 많이 봤었는데, 옛날 작업의 많이 설명을 못 들었었는데, 보니까 시점을 굉장히 민화에서 많은 향을 받으신 거 같은데, 민중

미술적이거나, 뭐 특별히 향받으신사조가있으신지요?

노순석: 네, 그거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 당시에 상당히 유행했던 80년 민중 미술 쪽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

가지고그런형식같은걸개그림을좀같이하면서그런문제들을알게모르게그쪽으로 향을받은거같고요. 그리고저같은경우그런것도있고요.

한국의 고지도 있잖아요. 그런 거 보면 재미있어요. 전체적인 거 보다는 작은 부분들이 모여서 하나의 전체의 큰 이야기를 이루는 거를 보고, 그런 거에

감을받아가지고차용해넣기도하고, 내 그림에넣기도하고, 단편적인지역성같은게우리나라고지도보면, 그게고지도의매력같아요. 그리고가

장 큰 매력은 고지도를 보면, 그 지도를 만든 사람이 걸어갔던 길들이 보여요. 저 사람이 가서 본 위치 로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로 바라본 관점 같

은 것들을 바꿔버리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인 재미있게 잘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양한 여러 관점이 한 지도에 같이 공존하는 것들은 많이 배워왔

어요.

김준기: 특히 정선생님 같은 경우, 아까 저 그림에 해 뭐 좀 따로 설명 좀 하셨어요? 오픈 하는 날 이 자리에 한 10여명 왔었는데, 질문이 들어왔는데,

다른 작품들이 작업실 장면 사진을 찍거나 자기 작업실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거나, 그런 방식인데. 그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작업실 리포트>전에 출품

하셨단말이에요. 그래서 이게 '촛불이라는 굉장히작가의존재를나타내는것과존재하는작가의위치, 뭐 이런 것을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말

씀드렸거든요. 저 그림에 해서 <작업실 리포트>전이라는 것과 그림을 풀어내시는 발상이나 방법, 뭐 이런 것들에 해서 중복이 안 된다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정보 : 아까얘기했는데요.(웃음)

김준기: 아, 그래요? 제가 본 것은 다분히 소재주의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작업실을 소재로 한작가와 작업실을 주제로 한 작가 모두가 <작업실

리포트>전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작업실을 소재로 드러났을 때 최초의 발상이 나왔을 때는 서구의 거장 화가들이 그림의 소재로 아틀리에를 많

이 그렸는데. 그래서 그런 그림에 익숙한 나머지 거기에서 출발해서 기획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 것들을 기 할 때, 여러 화가들이 있죠. 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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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하루 저녁의 전시, 파티 이런 걸 작가들이 하잖아요. 사실 그런 것들이 다 교류에 한 열병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업실이 어디

있으세요?

정보 : 홍 앞이요.

김준기: 몇 년째있으세요? 햇수로따지면? 10년?

정보 : 계속. 한 학교때는학교에서한 6년. 그리고계속이요.

김준기: 저는진짜기억이많이남는작업실이있는데, 차 한 빠듯이들어갈만한지하차고, 차고작업실. 근데그안에있을거다있잖아요. 이젤도있

고, 침 도있고, 심지어는개조해가지고개수 까지있고, 그런거학교앞작업실의전형적인특징인데. 지금있는곳은 체로어느정도크기이고, 어

떻게운 하고계신지. 그곳에는어느누구누구가다녀가고, 그런것좀소개좀해주세요.

정보 : 그냥집이예요. 집이구요. 뭐 여러분들이다녀가고요. 실제그림그리는공간은되게조그마하고요.

김준기: 아틀리에와관련한에피소드라든지고충이랄지, 계획이랄지뭐있으면좀들려줄래요?

정보 : 글쎄요. 저는 그림 공간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그림이 점점 늘어나다가 보니까 이사를 가면 다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보관공간도 따로 있고, 그림

그리는공간도작아도따로있는. 공간적인문제가제일고충이죠.

김준기: 그런 그림을지인들에게보관좀해라하고한점씩보관좀시키면어때요? 왜냐하면정보 화가의그림정도면애지중지잘보관할것같은데

요.

정보 : 작품이크니까요. 집에서도.

김준기: 지금몇점정도나쌓여있나요?

정보 : 엄청많이요.

김준기: 100까지넘어가겠죠. 그것도좋은거아니에요? 아진짜문제예요. 작업실이작업실공간이라는것이그안에예술의종합적인문제가다들어가

있어요. 그림은 쌓여가지, 팔리진 않지, 뭐 이런 거 작업실 갈 때마다 와 그림 많다, 이렇다가 이 짐을 어떡하지. 그래도 예전 그림 꾸준히 잘 보관해두면

나중에 언젠가는 재산이 되고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고, 잘 보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추운데 참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작가님께 박수치

면서마치겠습니다.

지막하게 해서 작업실 자체를 재현해보는 거예요. 2000년 전 500년 전 작업실을 그 로 복원시켜서 그렇게 해가지고, 20 , 30 , 70 작가들을 불러

모으는 그런 기획을 가지는 것을 한번 했어요. 그런데 몇몇 작가들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작품이 팔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마구 놓으면 누가 사가냐

는거예요. 그래서어떻게거기서처음얘기가나와서굴러가다가선생님께서떠맡아서.

조만간 그 말씀을, 처음 말씀을 드리는데.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옛날에 어떤 마술사가 있었어요. 근데 마술사가 자기의 마술의 비 을 자꾸 공개를

한거예요. 그런 사람있었죠. 그죠? 그래서화가들도그렇고, 조각가들도그렇고자기작품들의완성, 미완성작품으로꺼내기도하고. 머리통안은완전

히 쓰레기통 안 아닌가요? 굉장히 복잡한 거예요. 그런 관심, 땀, 수고, 이런 과정들을 갖다가 같이 노출하고 완성의 비 을 털어 놓고 하면 훨씬 더 우리

가예술과의거리를좁혀가지않을까. 그래서 우리가공방, 떠돌이 화가들, 레오나르도다빈치같은궁정화가벨라스케스같은. 그래서 그런것이아카데

미 공방, 아틀리에, 사실 어떤 신화적인 헤파이스토스가 장간에서 이상한 방패도 만들고 했던 그러한 것들에서부터 오늘 나온 시장 유통, 미술품 거래

되고, 아니면전시가되고사회적이슈가되는그러한구조중에한마디로서아틀리에, 그걸갖다가부각을시키고있는전시같습니다.

하여간 그러한것이있고. 오늘 선생님의작품을보니까작품들이개인적으로굉장히궁금한것도있고, 질문하고싶은것도있는데. 다음 분들도질문하

고 싶은 게 많을 테니까. 한두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우선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궁금한 것이 소재, 소재를 이루는 색, 면들 있잖아요. 색면 축이라든지,

짜임새의틀이라든지의관계, 또 한 가지는글과그림의관계에있어서그림이설명하는인터렉티브한관계를가지고있고, 또 글 자체가밖으로튕겨나

온 경우도 있더라고요. 또 이질적인 충돌이 있는 부분이 있고, 다음에 상은 설명을 하나 밖에 못했지만, 상이 아주 좋았어요. 아름답고 마치 아주 잘

정련된뮤직비디오랄까, 그런것들을보는듯한짜릿한느낌이들었어요. 그런데거기에서는왜글, 문자기호가그자체가선이굉장히자유롭고멋있어

요. 예를들어끌어안는팔이라든지, 그런것은정말옛날에무슨소설을하나읽었는데팔이하나잘렸어요. 팔이없는사람이연인을만나서끌어안으려

고, 그걸 보고 울었어요. 그 아까 남자와여자가서로, 여성들이 정말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을 위한멋진동화, 아까 삽화의선으로한것이얼마나좋을

까생각했어요. 저는맘잘통하고물길이통하고 '뻑' 갔어요.

김준기: 그럼, 답변을해주세요.

노순석: 아, 방금 그것이제질문이었나요?(웃음) 글하고그림하고는정말로너무나관계가복잡한거같아요. 그래서저같은경우에같이그렇게작업을

하면서가능하면정말서로의독자적인 역을갖다가유지를시키면서어떻게할수없을까해서, 하나의어떤이야기를할땐그림만을하고, 남들은그

림을배치할수있게끔그런식으로죽나가는것이맞는다고해서계속을작업을한다든지, 아니면글하고그림하고서로상반된이야기를하면서그사

이에보이는틈속으로사람들의상상력이들어갈수있게끔그렇게한다거나몇가지방법을써서하고있는데요. 지금 진행중이라서아직변변치않아

서.

김준기: 요즘작업실은 개현 미술가들에게있어서작업실이라고하는것이의미하는바, 뭐 이런거에 해서얘기를좀했으면좋겠거든요. 개 저

는그관심이많은게아틀리에의정치학뭐이런것도좀있는거같아요. 스튜디오의정치학, 쌈지를유심히보고있고요. 은도그렇고, 창동이나일산

같은 경우에 또 관심의 상이 되고요. 이렇게 보니까 프로그램을 가진 스튜디오들 여기가 어떻게 움직일까 앞으로 그런 거에 궁금증이 좀 많고요. 그런

점에서국내에들어온지얼마나되셨죠?

노순석: 이제 2년되었어요.

김준기: 2년째, 처음들어오셔서는어디계셨어요?

노순석: 처음들어와서는개인작업실을가지고있었어요.

김준기: 아, 어디? 집근처요?

노순석: 네, 홍 앞에. 홍 앞에개인작업실을가지고있었는데, 그게여차여차사정으로작업실이없어지고.

김준기: 창동으로들어가게된계기와목적, 들어가서의분위기라든지계획같은걸좀말씀해주시면.

노순석: 저 같은 경우에는 창동에 가게 된 계기가 딴 게 아니라 오로지 작업할 수 있는 공간 자체. 나머지는 없고, 정말 그래 가지고 가서 지금 작업을 한

반년정도했는데, 상당히 좋았어요. 좋고 그리고또그런프로그램에서 가장좋은점은뭔가하면요. 저 같은 경우는상당히권태상태를좋아하고요. 지

금까지 계속 그런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했는데, 지금 거기서 지금 보면 선생님들과 같은 훌륭한 작가들과 같이 모이고 서로서로 그림 같은 것도 보여주

고이야기듣고, 그런게가장큰장점같아요.

김준기: 그렇죠. 만약 창동에 있지 않았다면, 저 분들이 여기에 오늘 안 왔겠죠. 그런 거 같아요.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또래집단 같은

것도만들어지고, 서로교류할수있는장으로활용되고이런게되게좋은거같아요. 이렇게집단스튜디오가아닌곳에서도오픈스튜디오해서이렇게

Page 46: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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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6:배윤호

2004.02.04 수요일 pm.04:00

김준기: 작가와의 화를맞이해서헤어스타일을새로정리하시고, 배윤호선생님께서나오셨습니다. 배선생님은홍 시각디자인과에서시각디자인전

공하시고, 독일에서 다년간 머무르면서 상 쪽, 상, 화 이쪽 전공하시고 귀국해서 ADS, CF도 만들고, 여러 가지 최근에는 스페이스 디렉터라는 직

함을사용하시면서공간연출작업을하고계십니다. 이번에이작업실리포트참여하게된건, 생활공간, 자기집, 집에서딱히작업을하는건아니지만,

그 공간이 되게 미니멀한 아주 절제된 생활공간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과 작업실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보여주고 더불어서 오늘 배선생

님생각하시는여러가지것들, 자기 작업이야기, 작업실 예술가로서의삶, 이런 이야기를좀들어보는시간을갖도록하겠습니다. 각계각층에서구름과

같이몰려든, 운집하신여러분께서열화와같은환호성과박수로배선생님을모셔주시기바랍니다.

배윤호: 그 소개받은배윤호입니다. 뭐, 이제 저는 개인적으로작가라는생활이나작가생활, 아티스트라는 칭호를그렇게좋아하질않고요. 예전에 미술

관에서작가는아니라전시회를한번참여한적은있고요. 저 개인적으로 연극을하든, 오페라 연출을하든, 화를 하든, 건축을 하든여러가지장르를

통해 여러 가지 개인적으로 실험한다기보다 서울에서 돌아와 가지고 이것저것을 하면서, 제가 작업하는 것, 작업이라는 단어를 안 씁니다. 일을 하는 행

위가내가살고있는삶에어떤라이프사이트, 생활공간그것과항상관계가있는것같아서.

그거에 해서 아가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작가로 가져온 건 제가 최근에 끝냈던 청주 비엔날레 공간 연출하고, 그 동안 작업했던 스케치북이나 사진을

좀가져왔습니다. 말씀드리고싶은주제는제생활공간과작업공간에 해서정의를내리거나답을내리거나이런작업보다는개인이어떤일을맡아서

생활하는데, 어떤 게 문제가되고, 어떤 게 향을미치고, 어떤 게 작업, 자기가 하는프로젝트에 어떻게표현이되는가에 해서고민이되고 관심을많

이가졌습니다. 그 잠깐제가그동안했던것들을간단하게말씀드리겠는데. 우리나라 98년도인가, 99년도인가귀국해서, 그 당시부터제가했던일들은

CF한 50개, 미술감독으로도많이활동을했고요, 화도한번한적있고, 오페라연출도한번했었고, 전시설계같은것도했었어요.

저는 특별히 어떤 회사에 소속하거나 회사에서 어떤 직함을 갖지는 않았고, 그때그때 인연이 닿는 로, 프로젝트에 제가 순응해서 접근해 가서 일을 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식으로 쭉 진행을 해오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제 전공이 뭐냐, 어디가 뭘 스페셜리스트로 하느냐 하는 이런 질문들도 많이

하시는데, 저는 굳이 그런 거에 한 것이 없고요. 저의 역할과 어떤 한 프로세스에 관심 있고, 그것에 해 내 나름 로 목적의식이 생긴다면, 전시, 공

간, 연극, 연출, 기획안가리고저는다진행했습니다. 그런데그런게장점이되는면도있지만, 굉장히단점이되는점도있고여러가지가있습니다.

오늘말씀드리고싶은거는, 이제몇가지단순한스케치를집에서, 아래내려가면있지만사진찍은거있지만, 제 방에아무것도없습니다. 그 스케치가

단순한 집에서 그냥 스케치 하나를 가지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 예를 들면 화를 한다면 2,30명에서 2,300명까지 오페라를 할 때는 5,60명에서 400명

까지를 컨트롤 해가면서 같이 공동작업을 해 나가는데, 그런 것에 해 내가 항상 과연 답을 가지고 이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가 하는 그런 거를 항상

회의적으로보아왔습니다. 나에게예산집행권이있고, 나한테어떤결정권을가지고있지만은, 과연 내가공동작업으로서수많은사람을가지고같이작

업해 나가는데, 과연 내가 스케치해서 작업한 것들이 과연 이게 답을 가지고, 그것이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는가, 내가 설계한 스케치 하나가 과연 이런

사람들 다 설득할 근거가 되는가를, 이 점에서 많은 고민이 됐습니다. 그게 작업실이라고 앉아서 계약을 맺고 앉아서 돈을 준다니까 그것도 상당히 많은

돈을준다니까계약을해가지고앉아서, 테마에맞게, 주제에맞게, 내 업무에맞게, 스케치를하다보면그다음에이것이다른사람들한테의뢰를받았으

니까 팔려고 이것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제가 많이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면서, 내가 아직은 아니라 내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와중에 생기는 결

정적인 편견이 아닌가 하는 회의도 많이 했어요. 근데 이제 막상 진행하다 보면, 물러설 때 물러설 수 없으니까, 내가 주장하고 내가 생긴 편견을 가지고

그 로그것을맞는다고주장하고생각하고고민하고싸우는스타일이고, 몇 번 진행하다보면제가개인적으로아내가어떤작업실이란공간안에서생

각했던 편견이나 어떤 개인적 아집이 너무 일방적으로 스텝들과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는 모든 것들에 너무 향을 미치고, 너무 화 위주가 아닌 굉장

히직접적으로강요하지않나하는생각이요즘많이들어요.

요즘들어요번에는최근에제가하고있는신촌아트페스티벌전체공간연출겸기획겸, 전시설계겸, 같이전시설계만아니라공간이랑페스티벌까지

해 가지고, 설계를 하고 있는데, 설계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예전에는 다루는 소재가 이렇게 나무나 죽은 생명체일 경우에는 제가 결정적으로

제시를해줄수가있는데, 다루는게만약사람으로바뀌거나어떤연주자나지휘자나감정을가진여러가지육체가되면제가설계한게아주의미가없

는상황에많이빠져요. 그럴때내가이러한일을하는게맞나안맞나그런생각도하고, 고민에많이빠져요.

제가 아까보여드릴건, 오늘 가져온건, 가장 최근건데. 한 7번에서 8번에 현작업할때마다, 제 개인적스케치한거예요. 근데 이제제가청주비엔날레

일을 의뢰를 받고, 제가 두 가지의 공간에서 하나는 밤의 공간, 하나는 낮의 공간해서 두 가지의 스케치를 따로 진행했어요. 그래서 이 두 가지 스케치를

공간화해서조형화시켰는데, 물론 이거의과정에는 이거를할 때는 개인적으로 저는 빈방에서 혼자 아무 도움 없이 나 개인의 일기장처럼스케치를했는

데, 이거를관에가지고저는이과정에서이하나를가지고, 이거하나를보여드리면, 이게이제제가처음그렸던잘보이실지모르겠지만스케치입니다.

제가 연극, 드라마, 오페라 연출하듯이 소개할 때 무슨 공연이나 이미지나 그런 건 안 하고, 어떤 공간을 설명할 때 공간이 놓여지는 위치와 거기서 느껴

지는 개인적 감정들이 카메라처럼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가는데, 그 당시에 그리고 '만든 구조체가 어떻게 있을까'에서 스토리를 가지고, 놓여있는 느낌

이라든지 놓여있는 위치라든지, 들어가는 사람의 감정이라든가 보여 지는 방향의 느낌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표현했죠. 이것도 그것에 맞게 잘라 가지

고, 원래 책은한권짜리인데분할해서잘라서, 이만한 비례를가지는공간의느낌, 그래 가지고이런식으로스토리보드를가상으로만들었죠. 거기에서

느껴지는공간들이물론이거를작업할때는주로저혼자어떤책이나판타지나이런걸가지고작게나마스토리를완성합니다.

근데 저는 특별히 이게 작업이라기보다는 제가 받은 어떤 이번 프로젝트에 제가 어떤 상상력이나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해서 집안에서 혼자 많

은상상을하거나, 물론이거를완성하고난후에이제이거가지고하다보면문제가생기는데, 완성한후에저와관계된많은파트너, 설계사무실이나시

공하는 구성이나 시스템이나, 오페라일 때는 연주자나 기악부로 번역되고, CF일 때는 거기에 한 프로모션이나 집행으로 번역, 건축, 전시설계일 때는

시공업체나 구성으로 번역되어, 거기로 번역으로 들어가는 그때부터는 복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수정하기가 굉장히, 수정하려면 복잡한 과정

을다수정해야하기때문에주로저는이안에서이제가능성과판타지라든가, 새로운어떤걸가지고주로작업에또는사고형태를취하고이형태가이

제 어느 정도 저와 함께 하는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자와 화하면, 그 다음단계로 실행해 갈 수 있는 권력에 들어가는데, 근데 실행에 일단 딱 들어가면

컨트롤할수있는게많지않습니다.

그거는예산에의해서키를작게한다든지, 싼 재료를쓴다든지, 공기를줄인다든지, 물리적인어떤법칙으로전담되지판타지하고는상관없이진행되기

때문에, 그거는 저한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죠. 근데 이거는 물건일 때는 자를 수가 있는데, 사람일 때는 자를 수가 없거든요. 사람일 때는

목을 자를 수도 없고, 몸을 자를 수도 없고, 저 사람 직업을 자를 수도 없고, 이게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내가 오페라 무용단 하나 써야 하는데, 무용단

견적이 한 2000만원 나왔습니다. 무용단 한 두 꼭지 나오는데, 근데 무용단을 잘라 가지고 한 두 꼭지하면 그게 15분이 길어. 그러면 드라마는 늘릴 수

있는데, 그 드라마로늘리는데, 연습시간이길어. 그게마음 로되는게아니에요. 근데이런물리적인책은분명히자를수있어. 키를자를수있고, 평

을줄일수있고, 재료를바꿀수도있고, 수정이가능한데그런일을하면서느끼는건데, 이런거는가끔파트너랑커피숍에서스케치할수도있지만주

고제가혼자찾으려고노력합니다. 이거를완성된거를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게청주고요.

김준기: 좀 전에스케치보여주신게국제작가들의공간입니까?

배윤호: 아니죠. 생활문화관. 국제 작가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거는 두 가지로 공간을 봐야 했기 때문에 두 가지 같은 스토리로 안 썼고, 그건 어둔 걸로

따로 스토리로 만들었고, 저는 하나만 미션이 되었으니까 여기 많이 있거든요. 많이 찍고 테스팅하지 않아요. 비슷비슷한 사람 많으니까 창의력도 보지

않고, 내가 아무리 재료를 멋진 걸 써도 비싼 건 할 수 없으니까 예산이 나중에 욕심이 생기면 사장님을 만나서 구걸을 하던지 예술 한 번 합시다 꼬셔가

지고 싸게 사서, 주로 문화, 예술 쪽에 있으면 뻔뻔해져 가지고, 제 로 인건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떤 도덕적인 심리가 생기기 때문에 막 합니

다. 제가이거바닥까느라고고생많이했거든요. 저게바닥까는게별의미도없는데. 제 나름 로이제뭐여러가지마감재를이용한다든지, 사자수열

을 이용한다든지, 수치를 이용한다든지, 가운데 결로현상에 의해 물이 생긴다든지, 이런 거에 한 프로그램에 한 의미를 미션을 부여했기 때문에 끝

까지노력했습니다. 그런데이런거는나혼자의투쟁이지뭐보는사람은관심도없어요. 그건많이느꼈어요.

저는 많이느끼고, 그 신 제가어떤프로젝트든지그거를하기위해서이제이러다가공연설계하다가 화감독하든지, 뭐 이렇게하는이유는어떤프

로젝트나 어떤 과정은 인이 하는 거 같고. 나의 아티스트 친구들, 이런 데서 살죠. 이런 데. 이렇게 자기의 컬렉션을 주로 전시를 딱 하고, 이렇게 사는 건

데. 이런건데. 저는결벽증이아니라콤플렉스로더이상내사는개인적공간에컬렉션을하고싶지않아요. 다 버리고싶어요, 다 버리고설레는마음으

로 새로운 세계에 가보자. 과거에 있었던 이거 가지고 세팅해 가지고 어떻게 싸게 바겐세일로 리메이크해가지고, 좍 연결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고, 다음

프로젝트다음프로젝트에는전혀다른새로운모습으로진화하고변화하고싶어요.

근데 그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당치 않아요. 그거를 부분 저도 건축하는 친구도 있고, 화하는 친구도 있고, 공연하는 친구들도 있고, 여러 가지

역에 프렌드들이 있지만, 그 친구들을 자기를 구성하는 조건을 작업 공정이나 자기 시스템을 주고 공정과정을 통해서 자기를 인정받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전이되는것도상당히힘들다고요. 물론 저는개인적으로이런것들하면서뭔가고민이되지만, 정체성이흔들릴때도있고그렇지만, 제가 이제

한 번 고민해 보는 건 나이도 점점 먹어갈수록, 20이 있으니까 그걸 뛰어넘으면서 제가 느끼는 게 어떤 프로젝트든지 나를 설레게 하는 미션이 없고, 과

정이없고, 설렘이없으면도식화되는게너무많아요.

경험 치에 의해서 이 도식화는 결국 스케치를 하는 순간 완성이 돼요. 그리고 완성이 되서 나온 차 조표의 결과물은 이미 맞나 안 맞나 결론이 나요.

과정을 빨리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첫 아이디어서 결론까지 나와요. 근데 될 수 있는 로 그렇지 않는 방법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좀 더 독일어로 아이덴

Page 47: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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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 열정적으로 해나가기 위해선 그 과정의 새로운 만남이나 새로운 것들에 해서 굉장히 진지해지고,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저

는개인적으로그게상당히어렵다는거를많이느끼는데, 뭐 저는뭐제얘기만잔뜩떠들지만느끼는게요번거까지만보시다시피조그만스케치로, 요

스케치가 뭐 거의 완성이죠. 완성 이 완성을 남들이 보더라도 그냥 자세히 보시겠지만, 혼자 끄적이면서 그린 게, 이렇게 콘티를 그린 게 완성이 된 치수

가되고비례가되고뭐가되고, 결정적인건데. 그 제가 이걸만들고나서거기에않아있으면관객의반응이나뭐이런거에 해프로그램을해봤어요.

내부프로그램이나 과연 내가한게가능한가. 한 50%는 가능한거같고, 50%는 아니길 바라는거같습니다. 근데 이제 과연내가이런물질적인자리고

수정할 수 있는 상인데. 물질적이지 않은 심리니 인간이나 감성이나 어떤 살아있는 것을 가지고 계획한다는 건 어떤 거냐 하면은 이러한 방법은 적응

안 된다는 생각도 들고,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작업 공정을 완전히 가르면 화하는 거랑 프로세스나 내가 사고하는 사고 체계나 작업 공정 같

은걸완전히바꾸지않으면안된다고생각합니다.

물론 저기 나의 제자나 친구도 있는데, 저 친구를 데리고 완전히 전혀 새로운 팀으로 바꾸려고 해보려면 쉽지 않아요. 선례가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접근되든지되게어렵습니다. 그래서공연기획을하던친구를작곡가를맡겨서오페라작곡교향악곡작곡하듯이공연기획프로그램을해봐라. 제 공연

디자인하던애들을공간디자인하는애들과거꾸로해서네가공연하는시간에따라서공간기획시간을봐라. 이렇게뒤섞기를좀많이합니다. 물론헤

매고 다니는 건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러면서 그 안에서 어떤 판타지나 꿈을 계속 발굴해 낼 수 있으면 그 가능성의 진흥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내

작업이다'라고규정하는작가작업이나, 그 규정에 한프로그램이나이데올로기에는솔직히아닙니다.

작가, 작가가 사는 곳이 작업실, 라이프 사이트, 공간, 그들의 시 , 이것도 너무 포멀하고 너무 체계적이고 너무 고고학적인 어떤 루트로얘기하고, 스타

일주의 시 시스템 아니에요? 정형화하고, 그 안에서 명분을 찾고, 명분을 찾은 다음 그거를 포괄해서 그 시 를전부 다 포괄한다는 거는, 나 개인적으

로는활극, 그것이열정일까, 그것이설렘일까, 살인을한다고설렘이있었겠죠. 하지만그안에개인적인어떤자기생각이나그런것들에 해서는회의

적이에요. 그래서이런것들을건축과 화와섞든지, 도시와 화와섞든지, 텍스트와음악과섞든지하는이런것들을많이해보고싶은아직은욕망에

거의아직학생입니다.

저는 학생이란 표현을 좋아하는 데, 그건 책임 안 져도 되니까.(웃음) 근데 그게 우연한 기회에 김준기 실장님이 저한테 이렇게 작품을 전시에 참여해 달

라고 해서 땡땡이치다가 서로 안면도 있어서, 이렇게 도저히 땡땡이 못 치고 이제 하나 냈는데, 그때 제가 솔직히 고민한 건 뭔가 자꾸 설명하고 뭐 이런

것들이이런것들에의해서내가표현하는것들과괴리가굉장히크다는걸많이느꼈어요. 물론 저의라이프사이트에많은예술가를많다고, 주변에 많

이있습니다. 훌륭한 사람도많고굉장히뛰어난건축가도있고, 굉장히 뛰어난음악가도있고, 그들도 서로만나면서로 화가안돼요. 근데 같은 시

를 산다는 거죠. 허허(웃음) 근데 화가 안 돼. 화하는 척 하지만, 서로들 본질적으로 너무나 서로 다른 세계의 폼을 가지고, 다른 세계의 주제와 다른

세계의……. 그래서그런것들이오늘날유행하는노마드적현상인지모르겠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제개인적으로는어떻게든지그러한것들에서꿈과비전과가치관과생활태도와그런것들이발견할수있으면되지않을까하는아쉬움을가지

고, 그래서 요번에 서 문형무소와 신촌 아트페스티벌을 제가 맡아서 지금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이 주제, 작업실이란 주제가 있어서 저한테도 은연중

에 향을미쳐가지고, 여러가지육체, 본질, 껍질, 틀, 누적뭐이런거의 향을받아가지고, 한 달전쯤진행하고있지만, 결론적으로말씀드리면제가

이렇게여러가지행위를하는, 물론 저도나중에애널리스트가아닌스페셜리스트로어떤활동하겠지요. 하지만 부분스페셜리스트라고했을때학위

를뭘받았냐, 전공은뭘했느냐, 어떤 걸로 역을하냐, 할 줄 아는게뭐냐, 포트폴리오가뭐냐, 이런 식의결론적인결정을하는데, 저는 항상스페셜리

스트가 단점이 뭔가 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결론에 나는 경우가 되게 많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마추어의 열정이 좋은 게, 아마추어는 아는 게 없으

니까 물어봐야 해요. 그리고 관심이 많기 때문에 열정적이야. 모르기 때문에 뭔가 거기에 해 뭔가 자꾸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 근데 이런 걸 잘 섞어

서뭔가만들수있으면됐지않나. 그리고그런게난인간관계라든지의사소통관계가작업의형태로나오는게되지않을까. 난 그런 거에 한생각을

좀하고있습니다.

그런 거를 하고 있고, 무근 사냥꾼처럼 컬렉션해서 집에 걸어 놓고 보기 보다는, 될 수 있는 로 하면은 다 있고 다 휴지통에 버리고 새롭게 추구할 뭘,

자꾸새로워질자기코드로할수있고, 할 수있었으면좋겠다는거. 그리고출발은아마사람과사람의만남, 여러분과나와지금이러한조건지은상황

에만났지, 만나는그순간뭔가작업이이루어지지않을까. 그런생각을합니다. 그런것들이나는요즘제가생각하는고민하는문제중하나입니다.

제가 다행히 전공을 넘나들 수 있었던 건, 화과를 공부하고, 연극을 공부하고, 그 다음 디자인을 공부하고, 그래서 소정의 교육 과정에서 여러 장르를

했던거가기초가된건사실입니다. 그래서그게이제, 그리고 내가 화를하더라도특별한배우를한것도있지만, 그것보다는무 디자인이나프로덕

션 디자인, 미술 감독, 이런 식으로 베이직한 것들을 여럿 하다가 보니까 이거를 맵핑하듯이 도시공간과 화공간과 도시와 건축, 건축, 텍스트 뭐 이런

식으로. 저도 뭐 건축과 가서, 학원 가서 도시 공간 다큐멘터리를 강의한 적도, 그런 거에 관심 있어 가지고, 그런 거를 내러티브적으로 잘 아시잖아요.

춤이든 뭐 섞어서 화 몽타주 가지고 도시 공간 설계하듯이 그 사람도 일찍이 일종의 후발 주자니까. 춤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니까, 그런 텍스트나 그런

걸 쓰는 것은 여러 시안을 가지고 한 건데, 지금 하고 있는 거는 그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적용시키는 데는 문제도 많았습니다. 왜냐면 초짜로 막 하니까,

이제는여러경험치가있으니까조금은낫습니다. 조금. 이상마치겠습니다.

김준기: 그 저 배작가님이 되게 앞 뒤 정황파악, 문맥 맥락화, 뭐 이런 능력이 워낙에 탁월하다 보니까 오늘의 작가와의 화가 <작업실 리포트>전에 참

가한 출품작가로서, 작업실이라고 하는 것과 자신의 위치 뭐 이런 거에 해 아주 핵심만 딱 얘기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여느 작가들이 했던, 나는 어느

그림 그리고요. 중학교 땐 뭐 그렸고, 고등학교 땐 뭐 그렸고 학생 땐 뭐 그렸고, 초반기에 뭐 그렸고 지금 뭐 그리고 있다. 이렇게 작업실 리포트라는

맥락과는 다른 자기 작업 이야기만 막 늘어놓으면서 30분, 1시간 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자기 자신의 작업들

에 해서그동한 6분50초에걸쳐서죽스크랩을한번해주시는것도여기오신분들에게유익할거같아요.

배윤호: 그건 짧은 말이지만, 말로써 될 수 있죠. 저는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어요. 만화를. 자폐증 비슷하게. 오늘 안 가져왔는데, 제가 독일에서 한

만화책이 무언가 하면, 나의 일상 일기를 스토리보드로 많이 그려가지고, 매일 일기를 써서 100컷, 200컷. 처음엔 4컷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하루에

기억나는장면에수백개, 수천개씩되어가지고그래서상당히많은양이유학시절전체를스토리보드로만든만화책이있어요. 콘티물이.

그리고 저는 독학을 했어요. 근데 디자인이나 뭐 이런 부분에 선생이 없었기 때문에. 잡학하게 이것저것 독학하고, 그래서 우연히 무 디자인 하는 선생

님, 독일 분을 만나가지고 그 밑에서 오페라나 무 디자인 국립극장에서 10년 전 조연출 비슷하게 하다가 유학 가가지고 소정의 교육과정을 10년 밟았

죠.

연극을하기도하고, 다시도시공간다큐멘터리를좀찍다가아예때려치우고, 이거관심이생겨가지고, 그래서저는연극을할때는자폐증적인어떤자

기 세계관에 몰입해 있었어요. 뭐냐 하면 나는 창작에, 예술에 자기 세계를 만들어야겠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어요. 그러다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나 같은개인적고민들이다른사람들이나삶과시 에있다고생각하기때문에그다음부터작가적인정신에 해서회의적이에요. 그래서삶의다큐멘

터리거기서소정의스타일을느꼈죠.

뭐 무슨 기법적인 측면에서, 상이나 테크닉이나 편집이나 무슨 소정의 교육과정 무사하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죠. 그 졸업하고 나서 그걸

가지고 우리나라에 써 먹을라고 하니 써먹을 데가 없어요. (웃음) 와 가지고 할 데가 없어가지고, 몇 번의 과정을 거치다가 들어간 데가 CF프로덕션도 있

고, 화미술감독도있고, 그러다가미술무 디자인도그렇고, 그러다가또오페라연출도있고, 과정이있는데, 그 과정은일년에서이년단위로저를변

화시켰어요. 왜냐하면 새롭게자꾸 그걸갔기 때문에그런과정에서 전시설계도 하고, 공간연출도 하는과정에한 5년 지나간거예요. 물론 그 와중에여

러 학교에서도 소정의 이러한 일도 강의도 하고 했는데, 제가 저 개인적으로 항상 관심이 많아요. 다른 사람의 삶에 해서, 그리고 그 사람과 나와의 관

계는 항상, 여러분들과 나와의 관계는 이러한 긴장적 관계, 잘 몰랐을 때의 긴장 관계, 하지만 잘 알면서 뭔가 배워가는 것. 꼭 개인과 개인의 그런 관계

만에관심이있는게아니라나와시 , 나와그룹, 나와 역, 나와다른 상, 나와도시. 나는그런데에관심이있어요. 그래서나와나를긴장시키는

역이나공간이나시 나이런거에 해서는항상거리를두고관찰하고만들고표현하고그래요.

요번에맡은설계공간은돈도별로없지만신촌서부터서 문형무소까지전체공간은제가맡은 역중에가장큰물리학적토톨로지죠. 그 토톨로지는

저한테관심이많거든요. 저는저를한마디로정의하기힘들지만, 제 관심있는 역은토톨로지와원근법. 두 가지를가지고어떻게변형을시키고, 어떻

게 위치시키면서, 어떻게 구성할것인가요새그런게제일관심이많아요. 결국 특별한건저를드러내는거는잘안했어요. 소심하기도 하고, 근데 이제

백데이터 좀 있으니까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책으로도 내고 구성하고. 근데 아직 젊으니까 아직 학생이니까 다음 단계 들어가면 좀 더 많은 걸 할 수 있

고. 뭐 됐지않습니까?

김준기: 네. 얘기를 해도그냥안하고, 서 문에서신촌로터리까지막이렇게하니까, 훌륭하십니다. 이런 거좀배워야하는데. 우리. 허허. 그 수업도같

이들어보시고그랬어요, 제자분들? 어, 강의하실때도이렇게멋있게자세잡고?

관객: 네.

김준기: 그런 거 같아요. 벌써 자세가 딱 나오는데요. 아 그리고, 역시나 저 그 건축과 공간연출, 뭐 이쪽이 이야기꺼리들이 되게 많을 거 같아서 한은주

박사님이바로질문안받냐고, 긴장하시고. 고런 목이하나있고요. 또 하나는그, 저, 작품들, 작품해온것들에 한얘기가있을테고. 또 하나는이저

공간 그룹하고 사비나미술관 공동주체를 했거든요. 초기 계획 단계에 의논하면서 건축공간이나 작업실 공간을 얘기했더니, 아트파인 아트팩쳐 라는 개

념도얘기해주고해서, 건축도그렇게할수있겠구나.

Page 48: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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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맥락과도연결시켜서이배작가님의생활공간, 작업공간등등에관한이런이야기도좀할수있을거같고. 또 지금출품한작업있잖아요? 여기서

는일반관람객에게도얘기가좀되면길게얘기하지만. 그래서작업, 이번에출품한작품에 해서좀얘기를좀더붙여주셔야할거같고. 먼저그걸듣

고나서뭐신체가매개되는작업실, 작업공간등에 해얘기해보죠.

배윤호: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제 방을 찍은 거예요. 아무 것도 없는 생활공간에 필요 없는 거를 다 버리려고 노력하는 데, 아직도 못 버린 것이 있죠. 아

직, 될 수 있는 로 다 버리려고. 왜 버리느냐? 예전에 모으는 걸 좋아했어요. 근데 이제 앞으로 40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버리는 걸 좋아해요. 제가 절

실하기때문에이제다버려야겠다는생각이. 그래도소유욕자체는못버리겠더라고요. 14년 동안안경을잃어버려가지고가슴아프더라고요.

그게 이제 그작품에하나는제가살고 있는침 , 매일 저녁에자는. 세 개는 제가 처음일어나서입는옷입는행위를다른방향, 자세로 세 커트를찍었

는데. 물론그걸연출해가지고표현했는데, 미니멀하다는거는외형적인것이고, 저는이제저의아이디어를가지고다른사람과만났을때, 그것이형상

화되고 형상화되지 않는 순간의 첫 번째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을 옷이란 주제로 가죽옷은 메타포하고 다른 거구요. 창세기에서 나온 거구

요. 하느님이인간에게처음설명한게가죽옷을설명하시는데, 희생을 바탕으로한옷이에요. 그래서 메타포가있고, 인간이 만든도구적개념이아니라

신과 인간의 약속적 개념의 도구가 있고, 희생의 개념의 도구가 있고, 희생의 개념을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이런 메타포가 있는데, 그 메타

포는 설명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가죽옷을 택한 거는 아니고, 있는 것 중에 앵글을 잘 잡기 때문에 선택한 건데. 그 의미는 좀 있어요. 어떤 인간의 형

식을입고, 사람들과 만나서 화하는것자체, 우리 옷을 발가벗고 화하는특별한장기아니잖습니까? 나머지는 옷을입고, 화하는 커뮤니케이션인

데, 그 안에서는 예술도 지켜야할 열정도 만들기도, 클라이언트한테 열정을 가져야 내가 팔 수 있는 관계가 있는 거죠. 안 그러면 스케치북 보고 2500이

야? 이러면 이건 물리적 단가만 하면 2천원, 3천원도 안 되는데. 이거 뭐. 2억5천 되냐? 비싸지 않냐? 4억 드나? 넌센스같지만 이건 행위가 돼요. 이런

식으로 또 이루어지고, 공연을 한다고 해서 실제 모델해서 3D해 가지고 갖다 주면 매력이 없어요. 거기엔 혼의 커뮤니케이션이 없죠. 그래서 저는 될

수 있는 로 개인적인 것들에는 하고, 다만 물리적인 프레젠테이션에 해서는 뭐 그런 하지만, 뭐 저는 될 수 있는 로 이런 프로젝트가 크면 클수록

수많은사람을만나요. 그러면내가형상화할때는그들과 화하고공유하는게필요한거지, 나의생각의일방적강요가필요한게아니에요. 그건점점

더그런걸많이느껴요. 그래서작업을하든행위자체는개인의생각을표현하는것이아니라, 개인의꿈을나눌수있는사람을찾는거예요. 나는그거

를나눌수있는절 권력자나아니면나눌수있는절 집단이나, 나눌수있는절 어떤소기의나눌수있는순간, 형상화된다고생각해요. 거기에는

내나름 로의생각을표현한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을 가지고뭐설득하고, 이런 건 많이없어요. 내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커뮤니케이션 할 수있는일

차적인것을찾고, 그들과꿈을나눌수있는게뭔가가, 그런거가요즘은화두예요.

그리고 그공간이란것은거기서생성되고, 긴장하면서생산으로바뀔수있는거예요. 그 만남은어떤식으로든사건화될수있고, 그 만남에의해서만

들어질수있는거예요. 저는 앞으로도중요한몇번의중요한회의가있는데, 그 만남이긍정적으로작용할때나는또뭘형상화하고드라마화하고, 극

장에 서 문형무소, 오페라화 하고, 만들어질 수있는 거예요. 거기서 구성적으로 여기에 해서 많은 사람들이 꿈을 안가지면. 야, 돈도 없는데 또그걸

짓냐, 접고 그냥가자. 그럼 못하는거예요. 헌데, 거기서 한두명이라도설득이있으면, '아 예술 합시다.' 그러면 거기서예술이뭔데, 그러면 전할말이

없어요. 근데거기에뭔가매력이있으면하는거예요. 그게내가볼때는과학적지식, 이론적체계화하고는전혀다른이동네사람들이나예술, 문화생

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불확실한 모호함에 해서 애매모호하게 좋아하는 열정을 가지고 만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육체적으로 다 판 게

있느냐? 무책임한 놈들이에요. 다 팔은 게 없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그 열정이 뭔가 형상화하면 조그만 동네를 변하고, 그 조그만 시 를 바꿀

거고, 아니면사람들에게조금다른이미지를만들기도하고, 다른 인생의생활태도까지바꾸고, 결국에가서는다른세계관과인생관도바꿀수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가능성만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 가능성마저 배제한다 하면 힘들죠.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래

서 내가이작품을옷을입고이렇게한거라고요. 그거는뭐옛날 1910년 전부터매일했던다른거예요. 특별한 것도아니고, 포스트모던건축가들도

찍어서 왔다갔다 있고 있어요. 그거는 뭐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어떤 커뮤니케이션 그런데 그 커뮤니케이션도 자신을 드

러내는것이아니고, 자신을죽이고얘기할수있는 , 꿈을 공유할수있는그거, 아 그게요즘저의화두입니다. 그래서요걸냈어요. 근데 작업실에막컬

렉션작업실은옛날인상주의가좋아요. 쿠르베의아틀리에이런거, 이런게최고라고요.

김준기: 저 뒤에훌륭하신…….

배윤호: 컬렉션 아티스트. 아니면 흔히 유행하는 뭐벨라스케스 뭐이런 거는 왕정, 이런 게 형식주의예요. 알레고리도 있고. 근데 나는 그런 거보다는 터

치하는거, 그런거네뭐좀썰 하죠. 좀 더깊이있어야하는데, 내가안하면다른사람들썼을거예요.

김준기: 다른사람들모델로써서요?

배윤호: 참, 그런데, 그날카메라도없고해서집에서하는데, 친구작가불러가지고커트만찍어가지고몇개.

김준기: 음, 큐레이터로서, 참여 작가로서이런말을하는건참되게이율배반적이긴하지만, 이 전시에 21명의 참여작가중, 지뢰 중 한명인데, 어떤 지

뢰냐하면, 사람들이와서이게뭐냐하면이런작업실도있구나, 알아먹잖아요. 제가생각하는지뢰, 정보 화가의그림예요. 이게텅비어있는통로저

그림하고텍스트가없으니까소통이잘잘안되는게, 요 밑에층에있는사진작업, 김정일이라고하는정신과의사가사사라고하는정신과상담을하는

정신 주치의예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작업실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인데, 맥락을 관객들이 못 읽는 거예요. 왜냐하면 텍스트로 설명하거나 보드로 전달

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매 따라다니면서 설명할 수도 없는 거고. 그래서 설명을 붙여놓긴 했지만, 이거와 비슷한 경우처럼 그 배작가님의 작품이 관객

들에게작업실리포트라는것으로소통가능성, 이런것들이떨어졌다는일각의비판이있고, 저로서는알죠.

배윤호: 써 준거붙여놓으면되죠.

김준기: 알죠. 아, 네, 그랬을 때전시장에서관객들하고만나서자기작업으로프레임에규정된어떤이미지를가지고커뮤니케이션하는방식을그동안

안해오셨거나아니면별로중요하게생각하지않으셨거나, 별로익숙하지않으시거나뭐그런생각을좀했어요.

배윤호: 아, 네 비판적으로받아들이겠습니다. 근데그것도맞아요. 원래이제그것도맞고, 근데나는작품에서작가사진프레임에서하는완성형보다는

내삶과작업을작업전시하라는것과이런것들을넓게받아들이고, 전체 프로세스의텍스트를하나로연결해요. 그리고 내가전시, 오늘 가져온프로그

램하나가 퍼포먼스 하나이기 때문에 너무 전략적이에요. 허허(웃음) 그래서 이날 와서 이거하는 거를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퍼포먼스 하는 전략적인 뭐

이런거를하고. 나는 완성된결과에엔딩을찍어서완결된구조를갖는것보다는항상진행의흐름에서의 한어떤단선으로생각하고나의삶속에전

시관에저녁에가서강의도하고, 어디 가서는또뭐도하고그래요. 이 모든 행위가부조리하지만, 그걸 연결해가는것이삶이기때문에나는그거를중

히 여겨요. 그래서 나는 내 일 뭐라도 버릴 수 있어요. 건축, 문학 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거의 에너지를 찾는 것이 중요한 거지. 그 형태의 폼을

지키는게중요하진않잖아요.

나는 미술관이미술을 표한다고생각하지않는사람중의하나예요. 그리고어떤컬렉션이그아티스트의전부이고물론비엔날레가그컬렉션의전부

라고생각하지도않는다고요. 그건 로역사의관점에서보면관계없음의증명이미술사예요. 건축사도난그렇게생각하고, 다들 관계없음이라고요.

관계있음도구체적인거에서출발해요. 항상그구체적인것은가까운데서출발해요. 난 지극히그렇게컬렉션하고픈마음은없어요.

김준기: 역시 스케치 한 장 가지고 1억을 벌 수 있는 배작가님입니다. 아, 저도 이 저 배선생님을 출품해주십시오 했을 때 개 저 타블로를 하거나, 상

작업을 하거나, 설치 상작업을 하거나, 시각예술생산자로 좁은 의미의 미술활동을 하지 않은 분께 이렇게 출품을 의뢰했던 건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

와서 화이트큐브 안에 걸려 있는 거기서 어떤 혼의 울림, 감동, 뭐 이런 소통 상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고 나 자신도 그렇고, 이

지나간 역사시기가 규정한 마스터피스를 봤을 때의 느낌들이랑 동시 의 소통되는 어떤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역할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

그런 차원에서 일각의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고 말씀드린 거지만, 사실은 그 부분을 뛰어넘는 어떤 가능성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역시

나화려한설명으로커버를아주잘해주시고계십니다. 이러한것들이모두에게도말씀드렸지만, 작업실방문이라는것으로이어지고출판의형태로또

다른 형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배작가의 작가 섭외는 충분히 의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만 다음 기회에 화이트큐브 안에 들

어와서어떤작업을풀어주실때저랑앞으로도어떤형식으로도만날수있을거라고생각합니다.

전시장 아닌곳, 바깥에서도그렇고요. 그럴 때 보다더섬세한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겠다. 그건 저의책임이기도하고. 또 배작가님이배려해주셔야할

부분인거같아요. 분명히미술관, 화이트큐브의역할과기능이런것도있고요. 거기에서의게임의법칙같은것도있고요.

배윤호: 아, 네.

김준기: 앞으로그런말씀자주나누고요. 한 선생님, 가까이와주시죠.

한은주: 저는잘한다기보다는이제까지해온게건축이다보니까. 모르겠어요.

김준기: 뭐 하시는분인지소개좀해주세요.

한은주: 저는 공간건축에디자인기획팀에실장으로있습니다. 간략하게말씀드리면저도이제설계실에서계속있다가그건축에답답함때문에건축이

이래서는안된다. 건축이건축다운건축을하고싶어서, 제가 막 주장을해서팀을만들어가지고크로스디스플레이너리, 인터 디스플레이너리 뭐이런

걸로인해서, 그런거에관련해서기획하고인플러스북같은거기획하고진행하고그러고있어요. 도시공간에 해서도요.

배윤호: 요번에저와같이서 문형무소란프로젝트좀. 서 문형무소를잉여전시공간으로리노베이션하고.

한은주: 저는관심있는것이플러스디스플레이너리예요. 근데제가유연치않게프랑스나 국에서나오는라이프스타일전반에관한트랜드, 전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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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예측하는트랜드리서치를보니까, 그것도크로스인인터디스플레이너리, 크로스디스플레이너리가화두의트랜드더라고요. 보니까. 저는 상관안

하고봤었는데. 근데사실은건축의특성상이게굉장히독특한게뭐냐하면건축이다른사람의 역을빌리지않고는자기모습을드러내지못하는, 못

한다는표현이맞는지모르겠지만, 드러내지않거나드러내지못하는그런특성을가지고있어요.

배윤호: 네.

한은주: 그래 가지고 우리가 항상 얘기를 할 때 예를 들어서 뭐 이론이랍시고, 가지고 프렉탈 이론, 프렉탈 이론은 원래 다른 역에서 나온 이론이잖아

요? 그걸가지고도시공간을얘기하고공간을얘기하고, 뭐 예를들어서그 역이방 하고철학은기본이고, 그냥퐁티얘기매일얘기하고, 그런식으

로 그렇다 보니까 저희가 크로스 디스플레이너리를 폄하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그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건축가들이 그

리고이제아트쪽에많이접해야한다. 이런 거에 한강박관념같은걸가지고있고. 그런데 이제그것보다는저는그걸생활안으로끌어들여가지고

체화를해서다시생산해내는공간에 해서다시뭐랄까. 좀 되뇌어보는기회를삼는다든지하는그런식으로가야하지않을까해서, 이제 그런쪽으로

열심히찾아보고, 공부하고등등하고있는데. 딱 하고, 하시고있는일자체가건축가가하는일이예요. 저희가건축가라고하는일이예요.

배윤호: 엊그저께인가, FOA랑자하리에서이 지하설계, 네, 자하지구도서관설계.

한은주: 도서관때문에온사람되게많아요. 유명한사람들.

배윤호: 근데 뭐 트랜드 유행 많이 있는데, 저는 이제 아키텍이란 행위, 선망의 상, 작곡이라는 행위 거 한 교향악 작곡가, 뭐 어떤 아키텍, 거 , 이런

것들에 해나는절 나의삶을설계한다면과연뭐를할것인가, 나의 삶의설계에있어일단나의행위의판단은무엇으로할것인가, 나머지 나의인

생에서인생의에너지가 20년,25년 물리적 한계가있는데, 그 안에서내가무엇을설계하고, 나의 인생을설계할것인가, 뭐 이런 거랑연관성이있는거

같아요. 다만나는그만남이있을때퍼포먼스로서뭔가결과물을만들어낼수있는상황에처해있기때문에, 그 만남을소중하게여겨야된다는사고방

식도강하게서있죠.

근데 과거에내가가르쳤던교육방식은만남의소중함을가지고있는거같지만, 너는 무 디자인, 너는 화하려면셰익스피어, 에이젠슈타인얘기부터

통사적인 거 좍, 연극하려면 셰익스피어부터…….과연 그것과 나와의 관계보다는 너무나도 중압적인 틀이 많았던 게 사실인 거 같아요. 근데 저는 그 중

압적인 틀보다는 재가 할 수 있는 사건에 더 매력을 느끼고 그 사건으로 나는 종횡무진 옆으로 횡으로 달리는 걸로 하고, 그 횡으로 달리는 거 하다가 에

너지가떨어지면포기하는거죠. 그 전까지는계속그거를하고싶은욕망이있는거죠. 그게어떠한형태의아키텍이될지는저는뭐잘모르겠어요.

한은주: 에, 하시는 게 아키텍처예요. 그야말로. 서 문에서 신촌 로터리까지라고 하셨어요? 아웃파 플레이닝이예요. 그게. 그리고 이제 뭐 그 안에 모든

게있고, 그게사실은건축가만하는일도아니고, 건축을저도뭐그렇게연륜이쌓이도록열심히오래했다고는말못하는상황이지만, 어쨌거나이시간

까지해오다보니까느낀건뭐냐하면, '아, 인간을알아야지건축을잘할수있다'는 거예요. '뭐가 어쩌고이렇게거기서주로말하는이론적인것은고

시기에 지나가는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라는 생각에 동조하는 건축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그렇지만 건축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생각보다 경직되어

있기도해요.

배윤호: 아마도 다 그런 소재가 딱딱하기 때문에 사고도 딱딱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루는 소재가 말랑말랑한 사람 신체이면 다루는 사고

자체가 딱딱해질 수가 없거든요. 고금만 이래도 막 화내고, 조금만 해도 확 변하고, 그러니까 컨트롤이 안 되는데, 다루는 소재가 딱딱하다 보면 사고도

딱딱해질 수 있고, 화방식도 솔직히, 그런 걸 많이 느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건축하는 분을 통해 상당히 배우고 싶은데, 그분들 만나면 굉장

히딱딱함에도불구하고굉장히움직임에또는생명력에, 또는뭔가이거에사모하는그런얘기를많이들었어요.

한은주: 네, 맞아요.

김준기: 저 배작가의작업실에 해서건축가로서어떻게생각하시는지? 하하. 건축쪽일하는사람으로서또고 목을집어주시면좋을것같아요.

한은주: 아까 뭐, 버린다고 하셨잖아요. 드러내고, 최 한 없는 상태에서 뭐 그런 얘기를 하셨는데, 그거는 제가 김준기 실장님을 맨 처음 만나가지고도

그런말을제가작업실을가지고전시를하신다기에그런얘기를했었는데요. 공간이형성되는, 공간디렉터를자칭하신다고하셨잖아요. 그게 단순한건

물 안 공간도 마찬가지이고, 공간과 길 사이 공간도 마찬가지고, 길도 마찬가지고, 도시 공간도 마찬가지고, 이 공간이란 것이 그 의도한 사람 건축가나

스페이스디렉터등등의사람들이의도한바 로사용되거나그렇게사용되는게절 로아니거든요. 그러니까작가님이사용하시는작업실이라고표현

해서, 그곳이 거기에 들어가서 아키파잉 함으로써 새로운 아키텍처가 생기는 거예요. 그게 바로 아키텍처에요. 또 그래서 저는 그런 개념에 해서 굉장

히흥미롭게봤죠.

배윤호: 제가 다음번 작품은 옷을 안 찍고 샐러드를 찍을 거예요. 요새 식당에 가보는데, 녹색이 없잖아요. 그래서 식단을 바꿨는데, 아침에 샐러드로 바

꾸는거예요. 그래서아침에햇빛이딱비추는데, 녹색공간이딱생기더라고요. 아침마다.

한은주: 그게바로아키파잉, 아키텍처예요.

배윤호: 그게 보면 인터레스팅하다고요. 그러니까 나는 정원을 잃은 현 인인데, 콘크리트에 사는데, 그걸 퍼포먼스와 나의 음식과 구성에서 느낄 수 있

게하려면, 햇빛과, 물론선인장이있어요. 근데걔는에로틱하지가않아요. 근데샐러드는뭔가다르더라고요. 그래서라이프사이클과공간은항상있는

거같아요.

김준기: 역시 이어지는 이야기는 단합니다.(웃음) 먹고 살게 없어서 풀 갖다가 접시에 풀 좍 늘어놓고, 내가 이걸 먹어야 하나, 내가 소도 아니고. 뭐 그

러면서그 순간에무언가 에로틱한 뭔가를 느낀다고? 단합니다. 역시. 그 미술세계 김 민 기자님늦게 오셨는데. 뭐 앞에 어떤 얘기를했는지 아직 맥

락이감동이안되겠지만, 조금더들어보시고. 그 미술세계 2월호가배달해서왔기에습관적으로딱뒤져봤는데, <작업실리포트>전이야기가없더라고

요. 물론 프리뷰가나갔었어요. 아, 그런 것 때문에그랬나? 아니면전시가후졌나? 기획자로서그런거신경쓰죠. 신경 안 쓸수없죠. 그런 점에서어떻

게보셨는지, 전시오픈하실때도오고그랬는데, 뭐 아주일반적인얘기지만작업실리포트전시자체에 해여러가지전시를보고다니니까듣고싶네

요.

김 민: 일단 리뷰를 쓰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프리뷰 나갔는데, 뭐 하러 쓰냐고.(웃음) 전 처음 아틀리에 전이 준비된다고 했을 때 제가 기 했던 부

분은작가들의작업실공간이전시장에재현된다는측면에서기존전시하고많이다른완성되는과정이라든지뭔가를보여준다는측면에서는굉장히신

선한 전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 것들이 디스플레이 과정을 보면서 작품 설치하고 작업하는 모습 보면서, 그런 과정들이 전시기간 내내 보

여줄 수 있을까, 그런 거라면 참 좋은 전시라고 생각했어요. 중들이 작품을 보는 거, 완성된 작품, 그러니까 옷만 보는 거잖아요. 옷 입고 나온 모습만

보는건데. 작가들의아틀리에를보여준다는게자기의모든걸보여주는공간이고, 또 취재를하면서느끼는게, 전시장에서만나는작가하고그아틀리

에를 직접 찾아가서 만나는 작가들하고, 인간적인 부분은 굉장히 많이 다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전시장에서 그런 것들을 중들한테 보여준다는 건,

특별한같은미술인이아니라 중들에게보여준다는건, 기본적으로미술이, 미술을 중들에게이해하게하는데그동안에는언론매체에보도되는리

뷰나 기사를 통해서라든지,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줬다면,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서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획이다.

김준기실장님이 '또 터뜨렸구나!'라는생각을했었는데요.

김준기: 감사합니다. 아니뭐그런말씀을다.

김 민: 다소아쉬운점은, 제가매일와서본건아니지만, 전시장에서아틀리에의모습이변하는기존최초의디스플레이에서완료된게아니라, 전시기

간동안계속변화되고, 그 과정에서가능태의작품이나올수있는그런것까지좀예상을했었거든요.

배윤호: 프로세스까지, 네.

김 민: 그게 좀 그렇고요. 오늘 선생님 처음 봤는데요. 개인적으로 드리고 싶은 질문은 요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러브하우스 많이 하잖아요. 건축

하는분들이나오셔서리모델링도하고, 집도 지어주고, 뭐 그런건축가들이건축이란것이사회적역할을봤을때, 환경적측면에서환경과인간과호흡

할수있는가깝게다가올수있는, 예전에는콘크리트, 보드로만들어진건축물이아니라다양하게만들어질수있는데. 작업에서의그어떤.

배윤호: 사회적 의미나 어떤 뭐 그런 걸 찾는 것도 저는 지금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봐요. 지금 프로젝트, 서 문형무소를 더 이상

이제 형무소 일을 하지 않는 걸로 해서 문화 공연으로 바꾸어서 있는데, 거기에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들어가서 전시공간이 되고, 공연공간이 되가지고,

예전에 했던 인간의 육체를 억압했던 공간에서 인간의 육체를 다른 측면화되는 이런 거. 더 이상 도시에서 필요하지 않은 버려진 공간이 새로운 공간이

된다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축제를 만들어도 되고, 다만 앞으로 휴머니티를 가장해서 매스컴에서 프로그램화하는 자체는 저는 좀. 그렇게

많이 접하지 못한 방법이고, 다만 이제 사회적이란 의미 자체가 가지는 무게감이 상당히 있어가지고, 나는 좀 조심스럽게 접근해요. 다만 이제 공간연출

이나 아키텍 입장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그러한 도시에 버려진 그러한 공간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무언가. 그것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

는가거기에는사회적의미가충분히있다고생각하고그런면에관심이많습니다. 다른질문없어요? 하도많이떠들어가지고. 하하(웃음)

김 민: 이번에 이 뭐 있었잖아요. 그 과정에서 국내작가의 모습은 거의 안 보 었는데. 요즘 보면 백남준 미술관이나 서울 현 미술관이라든지, 여

타의프로젝트건축설계공모에서다외국작가들이휩쓸었거든요. 그런거에 해어떻게생각하시나요?

배윤호: 물론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 외엔 뭐. 뭐 그 분들이 작품이 좋으니까 되지 않았겠습니까? 뭐 특별하게 선발

위원회 자체가 가장 적합한 형태를 선정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참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말씀드리진 못

하겠고, 다만좋은작품을선정하기위해선그많은공정과정이있지않았나, 과정자체가공개적으로하고, 국제페스티벌같이. 최근에들어유행같이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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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니까. 그래도다양한형태가나오지않을까싶네요.

김 민: 유행이라고하면, 그거를못따라가는건가요? 아니면…….

배윤호: 아니 그거는잘모르겠습니다. 저는 국내에서도충분히할만한아이디어와좋은작가분들과건축가들이많이있고, 그거 가지고충분히가능하

다고생각합니다.

김 민: 구 벨기에 사관인가. 그게 시립미술관 분관으로 했다고 하잖아요. 원래 그 위치가 용산 쪽에 있던 거를 옮겼다고 하던데, 옮길 때 어떻게 옮긴

건가요. 그 로떼어서옮기나요, 아니면하나하나.

배윤호: 공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가 그 건물을 옮기는 공법 중에 제일 그나마 다르게 본 거는 베를린에 있는 코스탄 관장에 의해 소니 센터 자리에

빌헬름 2세 때 쓰던 커피 하우스가 하나 있었거든요. 그걸 부수고 다시 옮기자는 호응이 불었다가 옮기는 예전의 방식은 분해, 조립이었는데, 그걸 자체

를 들어서 옮기는 방법으로, 밑에다가 파고 들어가지고 기반에 콘크리트 벽을 쌓아요. 그래서 크레인을 불러가지고 크레인을 한 겁을 옮기면 무너지기

때문에 하루에 10cm씩 로딩을 해요. 그걸 옮겨가지고 100몇 m 옮겨서 그 소니 센터 안에다가 커피하우스를 그 로 유지하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에서

그 방법을 했을까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요 기반을 올리는 공법 기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그리고 그거 올리는 기간에 의해서 모든 공사 스케줄이

스톱되어야 해요. 왜냐하면 그거 막 하고 나면 무너지거든요. 그래 가지고 모르겠어요. 우리는 옛날에 옮기는 방법은 기와집이 건축법에서 조립, 분해가

가능하니까 요기 있다 요기 옮기는 게, 그래 옛날 유행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옛날 높은 사람들이 기와집 수집하는 게, 그래서 옮길 수가 있는데. 근데 유

럽건축은그렇게하면안되거든요.

김 민: 우리나라는아마도로가다가전선에걸려서무너지지않을까…….

배윤호: 제가그거옮기는그현장에있었는데, 아, 단하더라고요. 근데 그트레이너를주문해서만든거예요. 기계 가지고. 그래서그당시에많은사람

들이 그게 가능할지 안할지 고민했는데, 문화를 사랑하는 어떤 말 한마디에 예산이 아무리 들어도 옮기자는 결정이 났어요. 그래서 공기가 그거 옮기는

시간동안에작업을안하고옮긴다음에또작업을하는.

김 민: 아직까지는우리가통째로옮기지는못하죠?

배윤호: 아마그랬으면매스컴에서또퍼포먼스가있었겠죠. 여러가지로.

김준기: 이쪽에 계신 분들이 공간건축 쪽 이상림 선생님 팬클럽인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시네요. 어떻게 전시 보러 오셨다가 참가하신 거예요? 아니면

우연히 배윤호라는사람혹시알고있었어요?

배윤호: 내가뭐연예인인가? 하하.(웃음)

김준기: 전혀 모르고계셨어요? 아 그 단한. 저는 이런 선례 같은 게 있어요. 작가와의 화를 하다보니까 전혀 생소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이렇게 앉잖

아요. 그래서 컨셉이나 공간에 적으로 선전해서 강연회를 한다든지 퍼포먼스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늘 뭐 아는 듯 모르는 듯 와가자고 앉아서

이야기를나누다보면아주엉뚱한얘기가나오기도하고. 정확하게찌르는이야기가나오기도해서, 이런 화 상황이되게재미있어요. 그 그래서이런

화상황자체에관해서도저자체로는흥미진진하게보는부분인데. 뭐 이왕앉으셨으니이런저런감회나궁금한점있으시면, 편하게말씀한번해보

시는것도어떨까생각하는데.(웃음) 어떻게 작가, 작업실, 아틀리에, 예술가의 삶, 뭐 이런 거를용인, 인정하실 수있으시겠어요? 그냥 아주 노멀한잣

로보면뭐예술가, 작업실꾸리는사람으로는통용이안되는그런그냥작업을하시는분인데, 그런거어떻게생각하시는지.

관객: 처음에저사진만봤을때는솔직히말씀하신 로잘와닿지는않았거든요. 다른작가들직접아틀리에찍어서보여주시는데, 설명을들으니까에

너지가팍와닿고요. 되게알고싶어져서찾아봐야겠다는생각도들고, 작가와의 화를이렇게조금모여서해본건처음이거든요. 좋은경험인거같아

요.

배윤호: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허허.(웃음) 그 작업 때 하면 정신분열, 내가 떠들고, 내가 원고를 읽는 게 아니라 떠들다 보면 혼자 미친 놈 같지만 언어라

는 거나, 느끼고 표현이라는 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막 이런 거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생각이나 행위를 통해서 자신감 있게 자기가 하게 되면 금방 나아

질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또 석사학위 밟거나 학계에 발표나 다 똑같은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거기 틀, 업무에 맞추어서 그런 소정의 과정을 해서 귀

찮지만 날짜 잡으면 한 달 전부터 스트레스 받아요. 2월4일 4시 스트레스 받아요. 하지만 그 과정에 그까지 지향 점에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여러 가

지를고민하지만그퍼포먼스를즐기면서공유하는것도상당히즐거워요.

김준기: 평소에 후배 또는 제자 또는 작업 동료로서 같이 보아온 배윤호 오빠에 해서, 아저씨, 배윤호 아저씨에 해서 평소에 사적인 자리에서 뭐 못

하지만이런자리에서할수있는얘기가있다면? '열심히사세요.'랄지, 하하.(웃음)

관객: 저는 홍 공간디자인과 학원에서공간디자인과학생인데요. 선생님은수업중에만나면서, 선생님은 화를이것저것하면서많은얘기를하세

요.

저는 저 자신이굉장히스페셜하지않다고생각해요. 경력도 매우불충분하고, 아는 것도많이없는데. 그런데항상선생님은굉장히저희에게그런프로

페셔널하라는 말씀을 항상 하시면서, 그렇게 저희 말씀을 항상 귀담아 들어주시고, 항상 이렇게 되게 정열적으로 말하시는 거에 굉장히 저도 감동받고

있으면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거든요. 근데 선생님의 생활방식을 보면 그게 다 버린다고 했잖아요. 근데 저는 되게 진정한 컬렉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항상 모으는 거 좋아하고 항상 어디 가면 항상 빨리 내 걸로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에 뭔가를 사고 그러는데 그런 부분에 해서 굉장히 다른

사람과는다르다는생각을되게많이했고요. 그리고감동적이고요.

제가한가지묻고싶은거는저는에 씰로씨요낭의 '각질화되지않기위해서광란을원한다.'라는 그런좌우명을갖고살고있거든요. 왜냐하면그각

질화되기싫어서제자신이항상평소에그렇게광란이나광기를갖고있진못한거같아요. 근데노력은하는데사람들의시선이나그런거에익숙하다

보니까그게잘안되는데. 선생님께서는그런특별한좌우명을갖고살아가시는지.

배윤호: 저는좌우명이해마다바뀌어요. 그래서예전에는뭐성실버전, 성실, 군바리도아니고충성.

김준기: 열심히살자.

배윤호: 예, 열심히 살자 뭐 이런 거 하다가. 나중엔 범사에 만족하자는 성경글귀 뭐 그렇게 해마다 31일 끝날 때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할 때, 미션이랄까

화두를하나씩갖고가요. 화두를하나씩갖고인생전체를하나의아이덴티티를갖겠다. 그런 욕망은있지만그욕망에 한것을정의내려가지고하나

의문장으로서나를설명하는것이불가능한거같고. 상황에따라인생에따라흘러가기때문에해마다바꾸는편이예요. 열정을선택하죠. 내년에는또

뭘선택할지몰라요. 심심하다를할지뭘하나를선택하는데나에게선택의자유를갖고싶지, 어떤걸지키거나의무감으로살고싶지는않아요. 쉽지않

아요.

김준기: 체로 우리가 배윤호라는 사람을, 뭐 저야 홍 앞 동네에서 가끔 만나서 술도 마시고, 뭐 이런 동네 선배로 학교 선배로 후배의 애인이기도 하

면서, 이렇게 만나는사이지만, 이 넓은 의미의 시각 이미지, 그 시각예술 생산자거든요. 뭐 그런 배윤호 작가의삶이나 작업들, 이런 것들이 보다 광범위

하게시각문화를생산하고유통하고향유하는데에큰도움을줬으면, 좋은 예술가로그렇게자리를. 이미 잡으셨지만앞으로더잡으시길바라고 ,이제

마무리멘트를해주시기바랍니다.

배윤호: 이런작은만남이지만이런거가인생에서소중한거가될수있다는생각을해요. 그렇기때문에귀찮게느껴지는물리적인것보다, 작은만남과

작은순간순간, 이런상황, 상황들, 이런위치들을굉장히소중히생각하죠. 열정이란것은스펙터클을원하는게아니라, 작은것들로부터출발하기때문

에, 그 작은 것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 아침밥 먹는 것, 커피 한잔 마시는 거 이런 거예요. 오늘의 만남도 작지만, 그 끝은 창 하리라 생각하고 여러분

에게어떤 향이있을거라고전생각해요. 그렇기때문에이런것들에인터레스팅하고, 나한테설렘을주고, 깊이있게생각하게하는계기가되기도하

는거같고요, 감사합니다. 하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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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7:김기현,박경주

2004.02.05 목요일 pm.04:00

김준기: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김준기라고 합니다. 저번에도 화에 참여하신 분들이 많진 않았지만, 이렇게 숫자가 적을수록 알찬 이야기가 오갔어

요. 이렇게 된김에좌담을진행하고, 먼저 박경주씨가준비해온걸보여주고, 김기현 선생님한테프레젠테이션을 좀부탁하고. 그럼 박경주선생님모시

고 화를시작하겠습니다. 사실은저도박경주씨작업전체에 해서이야기를듣거나그의예술세계에 해서논의해본적이한번도없어서이런자

리가개인적으로굉장히소중한데. 한 번보고얘기해보죠.

박경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박경주고요. 여기지금 CD롬에는제목이, 여기제목이인터레이션이주보면아시겠지만 91년부터이주에관해서작업

들, 2001년까지모아놓은건데. 2002년 이후에는지금이주, 꼭 '이주'라는테마아니고다른전시들을좀하고있는중이고요. 일단이안에있는내용을

간단하게스피디하게보여드리겠습니다.

먼저제일먼저보여드릴거는여기파란하늘배경의사진인데요. 이 사진은 99년에제가베를린에있을때, 출입국관리소, 베를린에있는출입국관리소

에있는외국인들이비자를신청하는곳, 그런곳앞에이곳이다리거든요. 사람들이지하철역에서내려서이다리를꼭건너서거기를가야돼요. 저한테

는국경, 이런 거나비자라는것이국경과국경을넘기위해서는꼭필요한거잖아요. 그래서그런의미에서출입국관리소를방문하는사람들, 이 사람들

이다비자를신청하러온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을다리에서제가섭외를해서그자리에서사진을찍은작품들이에요. 여기 보시면아시겠지만여기베

를린에 있는 외국인들은 터키사람이나 동부권쪽 사람들이 많고요. 마침 이때가 제가 이 작업할 때는 제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나토가

유고를 공격할 때 어요. 그래서 그때 남미 문제, 이런 문제로 베를린이 떠들썩했었는데, 그때 제가 그 전까지는 이런 작업을 관심이 없었는데. 그때 이

작업을하게된계기가나토문제나이런평화라는이유로평화라는이름으로폭발하는전쟁을보면서제개인적으로충격을좀받았거든요. 그래서그런

걸 좀 많이 느껴서 이런 작업을 좀 하게 되었고요. 이 사진은 제가 스캔을 많이 안 해 놨는데, 여기 이 다리에서 찍은 사람은 한 300명 가까이 돼요. 지금

돈이없어서사진을다못뽑고있는중이고, 이런프레젠테이션할때는주로슬라이드쇼로하거든요. 돈이없기때문에.

그리고요다음에한작업이이다리위에한작업을할경우에한국사람이청탁하기가제일어렵더라고요. 왜 외국에가면한국사람오히려더커뮤니케

이션이안되는경우가되게많거든요. 그래서제가이다음아까그작업끝나고생각한것이베를린에있는한국분들을작품으로표현하고싶다생각해

서 베를린에 있는 한국 간호사나 광부 분들, 광부로 처음 오신 분들 이런 분들을 청탁하기 위해서 베를린에 사단법인 한인회라고 일종의 단체가 있는데,

거기가서사무장으로일을한다고하고, 월급을조금받고, 거기서봉사활동을하면서사람들을섭외를해서, 그러면서이제나에 해부담을갖지않고

거리낌이없을때이사진작업을했어요. 이 사진을찍은장소는매년연말에한인회주체로한인들끼리모여서크리스마스파티겸송별파티를하거든

요. 파티 장소 작은 구석, 되게 작은 구석인데, 제가 빽천을 사서 설치하고, 조명설치해서 거기 파티에 오신 분들을찍었어요. 그래서 파티 오신 분들이라

서의상이나그런게되게화려하거든요. 그래서여기사진찍히신분들은다한국간호사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제 2002년에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까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되게 많이 들어와 있고 되게 문제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가외국에서외국인으로서작품을하는건쉽지만한국에들어와서내가내국인으로서외국인을작업해야하지않을까하는생각이들어서, 아까 한작

업의연장선에서이작업을했거든요. 그래서한국에있는외국인노동자의포트레이트를, 그러니까베를린에서찍었던거의같은포맷으로작업을했어

요. 그리고우리나라같은경우에 부분비자없이여기서일하는사람들이기때문에컨택하는데제일어려웠고요. 그리고이름같은것도물을수가없

었고, 그런다른점들이많았어요. 그리고보시면아시겠지만, 부분동남아에서오신분들이에요. 사진작업은이걸로보여드리고요.

그 다음에 요거랑 관련 있는 건데, 이거는 이제 이것도 2000년에 한 건데, 파견광부와 관련된 작품이거든요. 여기에 있는 숫자는 독일에 파견광부들이

간해예요. 63년, 66년 이렇게 광부들이 간 해 거든요. 그래서 63년부터 77년까지 사람들이 갔고, 이래서 이 분들, 파견광부로 가신 분들 중 현재 독일에

게신분들을인터뷰해서, 이거를 4개의모니터에서사람들에게보여줬어요. 이 분같은경우에 64년에가셨거든요. 그러니까거의초창기에가신분이고

거기한인회회장님도하신분이고, 이 분은 72년, 74년에가신분이고, 거기서자기홈페이지같은것도운 하시면서되게열심히사시고. 뭐 그런얘기

고.

이 설치장면은이렇게바닥에갈린게석탄이거든요. 독일에서불때는석탄이에요. 그래서그독일에있는석탄을일부러가지고왔고요. 벽면에보면깨

알 같은 글씨들이 있는데, 저거는 파견광부들의 이름이에요. 그러니까 노동부에 현재 우리나라 노동부에 보관되어 있는 당시 파견되었던 사람들의 이름

이에요. 그래서파견된해와그때간사람들의이름이좍있는, 그걸자료를어렵게구해서그걸프린트해서벽에다벽지처럼발랐고요. 아까인터뷰한분

들이 5분정도되는데, 그 분들이모니터에서인터뷰한내용들이나옵니다.

김준기: 그러니까, 무슨얘길해요?

박경주: 독일에서외국인으로서사는게어떤지, 자기 개인적인경험들을이야기하죠. 그 다음에이작업은한국에서한작업인데요. 제가 베를린에있을

때한국이나이런데다시고향에있는부모님께전화할때전화기가갖고하는데, 되게 싼 전화카드같은걸가지고하잖아요. 혼선되게 많이되고, 감이

되게 멀고 한 이런 기억들이 있어서.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도 그런 카드를 팔더라고요. 그래서 외국인들이 그 카드를 사서 10000원짜리 이런 걸사서 고

향에 있는 가족들이랑 통화하는 걸 봤는데, 그래서 제가 이 작업을 한 건데, 외국인들이 자기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랑 통화하는 내용들을 혼선되는 듯한

느낌이나게편집을해서, 사운드편집을해서이거를듣는데, 수화기공중전화기수화기를통해듣게하는설치작업이구요.

이건 이제 광주비엔날레 때 이주라는 걸해서 작품한 건데, 이거는 서울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목동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제가 사람들을 찍은 사

진이랑 또 다른 장소에서 외국인,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을 놓고 모니터에서 화성 외국인 보호소가 있는데, 그건 뭐냐 하면 불법체류상태에 있다가 잡혀

가서추방당하기전까지머무는곳이거든요. 근데인권이랑거의거리가멀게거의죄수복입혀놓고, 감옥같이되어있어요. 마침거기에아는네팔친구

들이 갔다는 얘기를 듣고 몰래 카메라 들고 촬 한 화면이에요. 지금 화면 상태가 여기 불이 켜져서 잘 안 보이는데. 이런 그리고 그 다음에 보여드릴 거

는다른비디오작업하고, 그 다음에이거는제가이전까지는사진은요작품하기전까지는사진작업이랑사운드작업, 비디오작업뭐이런것들을했는

데. 그 외국에있을때는보통거기에있는외국인들그러니까뭐다른나라에서온예술가들이나이런사람들이굉장히활발하게활동을하고비자가없

더라도 작품 발표도 하고 이런 게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자기 자신에 해서 정체성을 보여주고 하는 이런 기회가 되게 많은데, 우리나라 같은 경

우는 주로 포커스가 인권이나 이런 거, 그러니까 노동에 관련된 문제만 있고, 문화적인 어떤 관점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이 없는. 그러니까 제가 여기

한국인의 인권단체에서 1년 동안 자원봉사하면서 그거를 느껴서 제가 이제 생각을 하게 된 프로젝트인데요.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한테 직접 자기 느낌

을쓰게하고. 그리고그가사에다가곡을작곡가가붙이고그만들어진곡을외국인노동자로만구성된밴드가연주를하고, 이 연주가음반으로나오는

그런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이 프로젝트가 완성이 될까도 많이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완성이 되어서 이제 녹음을 하고 직접 자신들이 녹

음하고, 연주도해요. 또 주로주중에는일하고주말에만연습을할수있기때문에연습량이딸려서그런보충할수있는부분을이제한국, 여기한국전

문가들세션을써서조금녹음한부분도있어요. 그리고시간이없어서횡설수설한데, 일단여기타이틀곡이거든요. '하디스라이프'. 요거를만든뮤직비

디오를보여드리고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친구들은미얀마에서온유레카라는밴드고요. 이 친구들은밴드가이프로젝트하기 5년전부터이미구성되어

가지고활동하고있는중인데, 자기곡이없었어요. 그래서음반만들면서곡을만들고그걸로연주활동을계속했습니다. 여기까지예요.

김준기: 그 다음에이번출품작에 해말씀해주시면?

박경주: 그건 여기 CD-ROM에없는데. 이번출품작은저기이번여기전시하는작품들을보셨는지모르겠는데, 95년에 한국에잠깐들어왔을때한국에

있는여성작가들, 그러니까 학을막졸업한작가들을 소개를해달라고그랬어요. 그래 가지고주변에있는사람들, 어찌어찌해서 노석미, 정은수, 손정

희이렇게아틀리에를찾아가서인터뷰한거에요.

그 친구들이 그때, 26,7 뭐 25 그랬거든요. 그때 사실 제일 어려운 게 학 막 졸업해서잖아요. 그 때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도모르고, 그 당시같은경우에는화랑이란것이나하는상황이지금보다별로좋지를않았잖아요. 전시를 하는데여러가지로어려움이많았잖아요. 그

래서 그런 부분들이나 특히 여자로서 힘든 부분 같은 이런 게 있을 거 같아서 그 친구들을 인터뷰도 좀 하고, 아틀리에도 좀 찍고 그리고 정임이 같은 경

우는 무 미술을 했었는데, 무 미술 제작하는 거 뭐 이런 거 따라다니면서 그 개 옛날에 아마추어 클렌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현상하려면 일본으로

보내야되고, 이런 되게 옛날필름인데, 그걸로 일단찍고그러고나서독일에돌아갔다가, 메인에 되게많이나오는선아란친구가있는데, 그 친구는 지

금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 친구는 한국에서 학을 안 나오고, 프랑스로 갔거든요. 그래서 마르세이유에서 학교 다니는 중에 파리에 올라와서 아르바이

트를 좀 해보겠다고 파리에서 초상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그게 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선아가 거기에 초상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파

리에왔다는소리를듣고파리로갔어요. 그래서이제파리에가서그친구가초상화그리는모습이라든가, 좀 촬 을아까말했던슈퍼알터재료로찍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 그 화를 편집하려고 생각했는데, 그거를 그렇게 끝나는 거보다 같이 전시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베를린에 있는 안 갤러리인데, 거기로 인제 작가들이 공동체로 운 하는 갤러리거든요. 그 갤러리에 찾아가서 이런 프로젝트가 있고, 다 여성작

가인데 한번 베를린에 불러서 작품을 좀 같이 하고 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쪽에서 얘기가 잘 되어서 자기들이 아틀리에 비슷하게 갤러리

위층에있는데로제공을해주고, 이제 그렇게하기로얘기가되어가지고, 한국에 있는작가중에다오지는못하고그중에노석미와정은수씨만오고,

파리에서만난그친구오게됐죠.

원래제의도는같이재료를완성된작품이아니라, 뭐가재료를가지고와서같이작업을한달정도하고그걸가지고전시를하면어떨까이런생각을했

었는데, 아무래도한국에있는분들은그런컨셉을이해하지못해서자기들은완성된작품을들고오고싶다고얘기하더라고요. 본인들이그렇게원하면

또할수없는거니까그렇게하라고했죠. 프랑스에있는제친구는여기서 학교육도안받고거기에갔기때문에그런거에있어서좀자유로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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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좀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마침 설치작업 같은 것도 많이 했었는데, 그러면 네가 그런 생각이면 내가 맞춰서 해보겠다고 했죠. 그래서 자기가 재료를

그냥 가져왔어요. 그래서 그걸 베를린에 가서 아틀리에로 받은 건물 위에 방에서 작품으로 만들고, 퍼포먼스 식으로 천을 전시장에 설치하고, 소시지를

프랑스 소시지를 갖고 왔는데. 소시지를 잘라 갖고 다 하나씩 하나씩 붙 거든요. 얇게 썰어서. 그 작업을 전시기간 중에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하고, 그

친구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계속 필름으로 다큐멘터리, 그러니까 계속 기록을 하고, 그러고 나서 그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서 그 베를린에서 찍은 필

름이나 그 전에 서울이랑 파리에서 찍은 재료들을 가지고 화를 완성을 해 가지고 갤러리 주체로 열리는 되게 큰 페스티벌이 있었거든요. 그 페스티벌

에서 상 을 했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그냥 단순하게 여성 작가들 인터뷰하고 그 아틀리에 모습 보여주는 걸로 하려고 시작을 했는데, 그

게 아니라그걸로끝나는게아니라같이서로모르는사이에, 특히 파리에있는프랑스에있는제친구랑한국에있는사람들이랑서로모르는사이인데

도 그런 사람들이 전시공간에서 같이 전시하고 작품도 하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도 만들고, 그런 걸 되면서 이제 단순히 그냥 찍고 그걸 트는 게

아니라, 서로만날수있는공간이생겼고, 그래서일종의제가프로듀서처럼그사람들을이렇게인터뷰하고전시공간을잡아서전시할수있게하고, 그

리고그것들을기록해서틀고이런식으로전체프로젝트하고진행되었던프로젝트예요. 사실은제가그때과감하게한 40분짜리만든다고돈을엄청들

여가지고만든건데, 일단은실험 화이기때문에좀그냥기본적인다큐멘터리하고는다르게접근했고요.

그리고그당시제가좋아했던감독이요나스엠파스라고뉴욕에있는소련계의되게실험적인 화작가인데, 그 감독은주로자기사적인것들을많이

촬 해요. 주변에인디아웃터나예술가들을촬 을해서기존의보통 화가갖고있는 화문법에맞추어서 화를편집해서보여주는것이아니라, 독

일말로하면 '되게편안하게' 그걸편집을해서마치홈비디오보듯이필름을해가지고보여주는데, 그런형식을제가많이따라가려고해서이렇게만든

거구요. 되게실험적으로요.

김준기: 뭘 실험했는지잘모르겠는데. 보여주시면서말씀해주세요.

박경주: 클럽 지하 창고 는데, 창고를 갤러리로써요. 근데 이 밑에공간이되게크거든요. 여기 먼저 천을달고여기다가아까제가말했던소시지를 다

는 장면을 병행적으로 계속 보여주고 있고, 일단 처음에 전체적인 맥을 이어가는 건 제 친구가 작품을 처음에 준비하고 완성하는 장면이고. 그리고 중간

중간에 제가 서울에서 인터뷰했던 사람들, 인터뷰 내용이 들어가는 식으로 편집했어요. 그리고 음악은 제 독일인 친구가 실험과학을 하는 친구가 있는

데, 그 친구가직접화면보면서만든거거든요.

김준기: 아 이게소시지 구먼.

박경주: 그리고 지금 이게 칼라와 흑백이 섞여있는 화인데, 지금 이게 인식을 못하고 전부 흑백으로 다 나오네요. 이게 프랑스 전통 소시지인데, 아까

이 천을만든모양이여자의자궁이고, 이 살라미소시지는 살이다, 피와 살 이런거다. 이래서 여기다붙이는작업을했거든요. 일부러 다 꿰매는식으로

요. 꿰매는작업은여성의작업으로보통인식되잖아요. 일부러그코드를이용해서일부러꿰맸어요.

김준기: 꼭 저런작가들집에선바느질하나도안하면서, 작업할때만열심히바느질한다고, 가증스럽게. 하하.(웃음) 저분은누구시죠?

박경주: 노석미, 노석미초창기작업이에요.

김준기: 에, 잠깐만. 저 안경낀작가가노석미씨예요? 전혀못알아보겠네. 이 사람은누구시죠?

박경주: 이 친구는 김선아. 교차편집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만들어 놓은 과정을 중간 중간에 보여주면서 사이사이에 사람들 인터뷰한 거를 넣었

어요. 이 분은정 숙씨라고.

김준기: 지금활동하고있어요?

박경주: 지금활동안하고있거든요.

김준기: 나는박작가한테궁금한게있어요. 실험 화라고했는데, 도 체뭘실험했는지너무보기불편한거예요. 그래서관람객들이와서보더라도, 도

체 뭘 하자는 상인가, 그러니까 나름 로 누구 작가 얘기했잖아요. 근데 그 작가의 실험적인 상들을 이런 것들을 많이 실험적으로 파용하고 그랬

다는데, 우리가일반적으로 화를전공하지않은이런사람들이보기에는불편할뿐이라는거죠. 그리고시각정보가적고그리고인터뷰다큐멘터리라

고는하지만, 인터뷰정보가와닿지않고. 그런 아주불편한 상이라는거죠. 그러면어떤것이실험 화로서의가치와가능성이있는 목들인지어떤

생각으로왜이런걸만들었는지설명해주실래요?

박경주: 이거는그러니까, 저 같은경우는 화를전공하고석사까지했지만, 일부러그코드를무시하고싶어하는편이예요. 그래서일반적으로보통사

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 쉽게 만든 화는 그 자리에서는 되게 좋고 감동적이지만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두 번 보면 질리

고, 세 번 보면 더 질리고. 물론 이게 완벽하다는 건 아니고, 이런 실험 화나 이런 걸 추구하는 이유는 그런 게 싫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한번 봐서

끝나고두번이나 세번볼 수없는 화, 그리고 처음 볼때나 두번째 볼 때나 똑같은걸보게 되는 것. 그런데 이런 화, 제가 하는 이런 스타일의 화

는처음봤을때랑두번째봤을때랑되게느낌이다르고, 또 세 번 보면또다르고처음에봤을때발견하지못했던거를발견할수도있고. 그러니까 되

게느슨한 화예요. 그런 의도에서만든 화구요. 그리고 일부러인터뷰내용은되게많이인터뷰했는데, 다 삭제를하고일부러음악으로 체를했어

요. 이 음악은 진짜 제가 얘기했듯이, 그 음악이 어떤 상을 코멘트할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그게 텍스트가 코멘트할 수도 있지만, 음악이 상을 코멘

트할수있는데여기서는음악이 상을코멘트하는게, 그렇게하기위해서일부러인터뷰를삭제했죠.

김준기: 이건일부러카메라를거칠게움직인건가요?

박경주: 음, 저거는또제가장난을친건데.

김준기: 어떤장난을쳤죠?

박경주: 사를시키면서또다시찍고되게여기안에서기법이좀많은데. 그리고이거는슈퍼에이트마떼리어인데.

김준기: 슈퍼뭐라고요?

박경주: 슈퍼에이트. 왜 옛날에장난감처럼작은, 그거예요. 이거는 16mm고요.

김준기: 슈퍼에이트라는게 8mm예요?

박경주: 8mm얘기하는거예요. 그리고제가여기촬 할때쓴카메라가보렉스카메라인데요. 보렉스카메라는애니메이션전문카메라예요. 그래서프

레임촬 이되게쉽고그런용도로만들어진카메라거든요. 그래서이런것들도다일부러애니메이션식으로촬 을했고, 또 그런의도로이렇게보여

주는.

김준기: 컬러흑백이면느낌이확달랐을거같아요. 계속흑백이니까좀그런데요.

박경주: 그거는 제 실수가 아니라, 기계가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이 친구가 이걸 완성을 하고 제가 중간 중간에 인터뷰했던 사람들 나오고,

그리고이거완성하고나서여기다프로젝션한것이고. 이거는칼라인데, 지금칼라가안나와요. 그 다음에천에있는소시지는빨간색이구요. 사람의살

뜯어낸거처럼그런느낌나는빨간색이구요. 여기 사가되고이 사된내용은고거를입에다넣었다가뺐다가하는장면이예요. 그래서되게이상한

데.

김준기: 이건다른작가들인가요?

박경주: 이거는제가파리에갔을때이친구랑고흐무덤에갔는데, 고호무덤에가면서촬 한내용이거든요. 이것도칼라인데흑백으로나와요. 나중에

묘비가나오는데, 반 고흐라고써있어요. 일부러이날바람이많이불어서흔들렸어요.

김준기: 엄청멋을부렸네요. 하하(웃음)

박경주: 그때는좀. 하하.(웃음)

김준기: 고호무덤이어디있습니까?

박경주: 파리근교작은도시에있어요.

김준기: 스틸사진좀보여주세요.

박경주: 일단은 뭐. 이 화의 장점이라 하면, 좀 지루하긴 하지만재미있는걸찾으려면볼수가있고요. 일단은 한 친구가작품을처음부터준비하고그

거를 완성하는 재미도 있고, 그 중간 중간에 그 인터뷰한 내용들이나 뭐 이런 것들. 다들 한국 작가들이거든요. 한국에서 여자로서 살아가는 게 힘들다,

구질구질하다. 특히 결혼을 안 하고 나이 들어서 혼자서 사는 게 더 구질구질하다. 그런 느낌들이 너무 괴롭다. 뭐 이런 인터뷰 내용들이 나오고요. 그냥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들이 접근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약간 놀이 식으로 접근을 하려고 한 화고, 그 사람들은 그냥 옆에서 친구가 찍는 것

처럼일부러찍어서되게, 아마추어적인느낌이나게찍어서그걸보여주는게제의도 어요. 일부러그렇게했고, 음악도일부러좀실험적으로 화면에

맞게해달라고해서그친구가 상을틀어놓고보면서기타줄이랑다해가지고만들었어요. 그러니까나름 로되게정성이많이들어간거예요. 베를

린에서 상 했을 때는 되게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하하.(웃음) 아직은 좀 코드가 안 맞는 거 같아요. 문화적 코드가 좀 안

맞는 거 같아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실험 화라고 해도, 그러니까 독립 화협회나 이런 데 가도 실험 화나 뭐 이런 걸 거의 없고요. 제가 좀 안타까

운 부분이 그런 부분인데, 주로 드라마 아니면, 다큐멘터리이고, 독립 화라고 하더라도 드라마 아니면 다큐멘터리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독립 화는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기존에 있는 아카데미즘이나 기존의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화적 코드를 극복하려고 하고, 좀 배반하려고 하는 노

력이 상에서도 나타나야 하고 형식, 그러니까 화가 가지는 상의 형식에서도 나타나야 하는 건데,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내용적인 것만 반체제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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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냥 그게 독립 화인 것처럼, 그리고 또 소자본으로만 만들면 무조건 독립 화인 것처럼 오해를 많이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저도 화진흥공사

같은 데 독립 화 지원하는 거 뭐 이런 거 내용, 나중에 뽑힌 사람 보면 다 드라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런 데 불만 있는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에

요. 조만간에그걸연구해서글도쓸생각이에요. 근데그게좀많이아직까지는우리나라가그런풍토가잘안된거같아요.

근데 실질적으로 제가 옛날에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한국 화감독 중 되게 유명하신 분을 레트로스펙티브했는데, 그분의 초창기 화들이 굉장히 실험

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거기에 있는 유럽 사람들이 너무너무 놀랄 정도로 너무 너무 실험적인 그런 화 는데, 그런 작업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런작품을하는사람들도있는데, 표면에드러나는게일반적인미국이나일본 화에많이물들어있어서그런지, 그런 것들이딱보면되게낯설게느

껴지는데. 여러번보면되게재미있는 화거든요. 저는제가만들었지만매일봐도되게달라요. 하하. 그러니까그렇게접근하면좋을거같아요. 쉽게,

재미없으면꺼도되는 화. 꼭 처음부터끝까지봐야되는건아닌 화. 그런 화예요. 질문있으시면받겠습니다. 하하하.(웃음) 몇 분안계시니까.

김준기: 자, 그럼이야기를끊어서, 끊어서할까요? 아니면김기현선생님말씀을듣고같이할까요?

박경주: 김기현선생님말씀듣고하죠. 너무오래기다리셨으니까.

김준기: 작업실 리포트라는 전시에 맞추어서 죽 작가들 작업 얘기, 작업실과 관련된 얘기들, 이렇게 좀 기록하고 나중에 이제 뭐 작업실이라는 게 뭐다.

작업실의의미라는게뭐고, 그 작업실은작가들에게어떻게변하고있는지, 작업실의사회학이나이런것들이렇게죽진행하고있어요. 그럼, 김기현선

생님 말씀 먼저 듣고 나서 토론하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김기현 선생님은 공주에서 작업하고 계시고 작업실 리포트 전시에 참여하신 건, 작년 청주에 점

거 아틀리에를 만드시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추진하신 바 있고, 지금 작업 내용도 거기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성격이 있는 그런 설치를 보여주셨어요. 그

런점은말씀을좀해주시고, 설치작업도하면서점거프로젝트에관한말씀을좀들려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2월25일 날세미나가있는데, 그날

거기에 한정책토론회같은것위주로발제를하나해주실거예요. 오늘은작업과관련해서 화해보겠습니다.

김기현: 네, 김기현입니다. 청주가 어딘지 잘 모르시죠. 전이나 충남, 충북 잘 구분 못 하시는 분들 계신 데, 충북 청주에 있거든요. 충북 도청 소재지이

기도한데, 소외되어있는도시이기때문에잘드러나지않았습니다. 거기 있는작가들도마찬가지고, 삶의 방식도마찬가지인데, 저희가 작년에점거아

틀리에를 준비하게 된 과정에 물론 25일에 세미나에서 자세하게, 미학적인 부분까지 포함해서 말씀드리겠지만, 접근하는 방식이 묘했어요. 의도적이지

않고우연적이었다고얘기할까요.

저희가단체에민묘, 분묘하면서무작위로회의도하고정기회의도하고했는데, 어느날무작위로회의를마치고술을먹게된자리가있었는데, 한 친구

가 신문을 가지고 와 가지고, 파리에서는 공공연하게 일어났던 점거의 과정에 해 우리나라에 사진을 가지고 와서 제 작업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소개된 것이 극히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에게도 이런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작업실이 있었으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안

공간으로서의 활동 방향까지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사실 저는 거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시시 덥잖게 반응했었는데, 그 젊은 친

구들은 그 자료를 집중적으로 모아서 수합하면서 한달을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청주에 있는 문학 동호회 게신 분이 점거 아틀리에와 우리의 움직임, 자

료를보고글을썼어요. 최초로공개되었던거고요. 그러한과정중에내용들을학습하는과정중에필요한것이무엇인가, 점거를하기위해 상이뭐가

필요한 게 무엇인가, 공공의 건물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일반 사용의 것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했어요. 근데 마침 그때 청주시 안에서 공공의 건물 몇

군데가 새로 지으면서 이사 가는 데가 몇 군데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안기부 건물이라든지, 농업자원기반공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그리고 하나가 동

이하나없어졌어요. 그래서그 상의건물을중심으로값도싸고해서, 날을 잡아서시에들어가자하고 D-Day를 잡아가지고했었죠. 근데 그 D-Day가

되기 전에아무튼냄새를잘맡는기자하나가그내용을보도해버렸어요. 갑자기 전혀우리자료를주지도않았는데, 어디선가흘려듣고요. 그것이보도

나간 뒤로 술 이고, 도하고 시, 보안 , 검찰서, 이런 데서 인장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미협 회장단이었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저한테 화살이

날아오기시작했는데, 수없이많이만나고, 설득당하고, 협박도당했고.

그런과정이었기때문에, 그 이유중에가장큰것이지금충북에서유일하게관사를가지고있는것이, 아니전국에서유일하게관사를가지고있는데가

충청북도고요. 충청북도 관사가 평수도 커다란 건물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현직 통령까지도 별장이라고 하는 청남 를 내놓은 상태에서, 도지사라고

관사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시민단체에서는 지속적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했고, 내 놓겠다 얘기해야지만, 미뤄져서 지켜지지 않았어요. 이

후에는동이두개가있는데, 하나는 문화공간으로사용하겠다고해서, 일반인에게공인했지만그건맛배기 고, 사실 가보면닫혀있습니다. 도지사 관

사를 점거하겠다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는 게 그쪽에서는 더욱 긴장해서서 도지사가 지시를 내려서, 문화예술과에 '막아라, 철저히 막아야 된다.'는 지시

를내려서, 문예총과저희도점거를실행하려했던그런코스들이집중포환을받았죠. 집중적으로저한테는매일확인전화가오고, 설득하기위해서저

녁에만나서밥과술을같이먹어줘야되고. '언젠가우리가점거한다. 근데언제라고는얘기하지못하겠다. 그것이올해도될수있고, 내년인될수도있

고, 어쩌면 10년후가될수도있다'라는말도하고, 이상한말을해서피해가기도하고, 내용적으로다지는부분도있었죠. 그러는중에우리전체행사가

많아가지고쫓기다보니까, 그 와중에점거프로젝트가조금루즈해졌습니다. 그 와중에김실장님한테전화도받고, 전화 받은내용을후배들과 충하고

해서, '한번참여를하자. 그러면뭔가새로운관점이있을테니까'라고결정하고전시에참여했어요.

지금도 지속적으로 그 내용을 가지고 사람이 자꾸 회의하는 점거를 하기 위해 그쪽에 살림을 차려야겠다는 젊은 친구들이 변하는 거예요. 8명이 되었다

가, 어느 순간 모여 보면 5명으로 줄었다가, 3명으로 줄었다가,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서 다시 7명이 되었다가,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까 기존에 그 3명으

로있던친구도변화에 해서민감하게반응하고두려움도느끼고스스로가지고있던커다란자신감도와해되는부분도많이생기고있었어요. 그러한

과정 중에 겨울이 와버린 거죠. 일단 점거를 하게 되면 그쪽에서는 단수, 단전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거를 지탱하기 좀 어려울 것 같아서 좀 보내는 방향

으로하자. 그래서겨울동안에는내용다지기, 그리고정확한스케치를다시한번물색하는방법과그리고프랑스나유럽쪽에서행해졌던내용들, 자료

들을 모아서 퍼포먼스 형식의 접근을 시작하고 그것이 여론화시키고 정당성 있게 이야기를 가능하도록, 그런 식으로 진행시켜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를 가지고 지금 아래층에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전시를 통해서 왜 점거를 하려 하는가에 한 정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예

술가도 노동자이고, 노동자 중에는 극빈자도 있고 극빈자는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된다 하는 내용으로 성립을 시켰어요. 그래서 생활보호 상자 라

고 해서 한달에 한 30만원씩 국가에서 지원해주죠. 고 상자들에게 보조비를 주는데, 그 정도의 생활도 안 되는 작가들에게는 당연히 보조비가 지급되

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우리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공공건물을 무단으로 점거를 해서, 그것에 상응하는 상충하는 우리 살림을 우리 스

스로찾아서하겠다는내용으로캐치프레이즈로걸었습니다.

그 내용에 맞게 차근차근 단계별로 실시할 텐데. 이 전시관 중에 공동참여를 해보고 있습니다만,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

이부딪치는경우도있어요. 그 이유는저는이미작업실을가지고있고생활을할수있는정도의생활경제능력이되지않느냐. 그렇기때문에내용적인

보강만 하지, 실질적인 점거에 있어서 그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어요. 그 부분에 있어선 이미 후배들에게 려있어요. 그 부분을 가지고 전시하고 전체

적인 전시의 내용을 자료를 모아서 가지고 와서 보내주면, 내용은 다져지지 않겠냐 해서 이번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혼자서 작품을 저기 들여와서 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청주시사진으로, 많은사람들모여서필요없이남아있는마지막한부분이되는것을뽑아가지고, 고부분만가지고그과정들을지

원하는형식, 그런류의회의를했던자료들, 문건나왔던것들, 점거 상사진찍었던그런것들로모아서구성했어요. 제 작업은어떻게보면좀단순하

고좀스스로봐서유치하다싶을정도까지인데. 그런데내용적인면에서는아무래도공감하는부분이있기때문에그 로해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가지고 좀 더 덧붙이고 말하고 싶은 네 번째가 자기 성찰로 들어가는 그러한 부분이 6개월이 지나고, 그거에 한 정확한 제시를 하지 못했

던 거에 한 가능성도 가지고, 가져보려고 전시를 했습니다. 근데 다녀간 후배들에게 글을 읽지 않으면 설치된 내용 부분은 너무 추상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받았습니다. 근데이점거프로젝트를가지고자꾸공공건물을내놓아라하는게커다란숙제예요. 하하.(웃음) 무엇을어떻게해야할지도모르겠

고, 동 상을 가지고 갔었기 때문에 막무가내죠. 점거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좀 안주를 갖지 않을까라는 것들도 스스로에게 변명꺼리

가 되지 않느냐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바로 이 전시 끝나고 돌아가면 이제 그 실질적인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해서, 오는 상반기 안에는 한 건물을 할 거

같은데, 이렇게 진행되니까 오히려 타협점을 가지고 나오는 관이 있어요. 물리적으로 하지 말고, 일정한 공간을 줄테니까 조용히 들어갈 수는 없느냐 하

는식으로요. 그런부분은후배들이원하지않더라고요. 그렇게될거같으면처음부터하지않았다고요. 나는그래줬으면좋겠는데, 그 친구들은그렇지

않더라고요.

관객: 실례지만, 활동하시는분들연령 가어떻게되세요?

김기현: 서른초반이에요.

김준기: 30 초반, 청주시에서활동하는작가들이에요? 한 3명에서 8명멤버가왔다, 갔다한다는거죠?

김기현: 서양화, 컴퓨터그래픽도있고, 인테리어, 뭐 여러가지.

김준기: 거기에큐레이터나프로듀서역할을할수있는사람도한명딱붙어있으면진짜좋겠네요.

김기현: 그런조건과환경이청주에안되어있기때문에.

김준기: 그래도청주에미술 학이되게많잖아요? 그렇게치면되게작가군이런게두텁지않나요?

김기현: 미술 학, 많죠. 근데 아쉬운 게, 많이 머물러 있지를 않아요. 그 친구들이 다른 지역에서 왔다가 공부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든지, 아니면

상경하니까 작가 층은 사실 두텁지 않습니다. 그쪽 출신들이 어쩔 수 없이 내려와 있는 경우도, 그 학을 나와서 직업을 가지는 사람이 부분 다 가있

죠. 특히 젊은층들이 쉽게, 위험부담을 가지는 부분에서 선뜻 받을 들여놓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죠. 그런 상태로 진행이 되고 있고. 음 지금 실장님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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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하던부분이나미학적부분들, 후배들이나와줘야하는데. 그걸어쩔수없이능력도안되는제가맡고있어요. 그래서그런걸만든다든지, 이론을구

성한다든지, 조율이안되는거있으면맞추어나간다든지하고있는데. 그러한 것들이얼마나가능할지는모르겠지만실현이될거같아요. 왜냐하면아

주 최근에 접한 것 중에 공단이 굉장히 크게 시내에 있는데, 한 2,30년 된 공단이 있습니다. 그 중 많은 공장들이 중국이나 베트남 쪽으로 공장을 옮기기

때문에 공동화 현상이 자꾸 일어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방치해두려니까. 시에서 매입해서 공원화하려는 건물들이 몇 개 있어요. 그래서 이 기

회에 이러한 안적 공간, 전시 공간, 작업 공간 또는 젊은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작업 공간으로 만들어 보는 방향, 그런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는. 개인

적인것입니다.

김준기: 조금 전에문예진흥원을미술위원회로전환하는것에관한세미나가있었는데, 여러 가지얘기가있었어요. 그 중에하나가문예진흥원미술회

관과 인사미술공간 여기 있는 거, 고것을 특성화된 안공간으로 미술문화 생산지의 거점으로 키워야하지 않겠느냐 독립해서. 그런 얘기를 한참 하더라

고요. 물론 바람직하죠. 바람직한데. 그 논의의 함정 같은 게 뭐냐 하면, 한민국 남한 사회의 중심가 인사동이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에 1억이든2억이

든이렇게관에서주도하는중심공간, 메인 공간이자리를잡음으로써미술문화에발전에기여하고, 시민의문화여건을신장시키리라는확신을하고있

는 거죠. 되게 엘리트주의에 의존하고 있는 방식인데, 국민의 세금으로 1억을 들여서 몇몇 작가의 전시를 유치하고 관람객들을 몇 만 유치했다 오게 했

다. 이것이과연바람직한예산집행인가생각해보면전혀 '아니올시다.'거든요. 몇몇문화권력자들이나노출증깊은작가들의노출욕망같은거를충족

시킬수는있겠지만, 균형있는문화지원, 이런거는아니라고요. 그랬을때훨씬더바람직한거는말씀하신청주하고하는지역에서그지역을바탕으로

활동하는작가들이활동을작할수있도록, 점거를했으면그점거를용인하고지원할수있는정부의마인드, 또 작가들이점거하기이전에그런공간들

을 제공하고, 어려운 여건이지만 조금씩 열린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안공간, 비 리문화공간을 만들어 내는 그런 정책들이 좀 아쉽죠. 마인드, 미술인

들의발상자체도그런중심주의에서탈피하지못하고있는거같아요. 그런 점에서저는청주에서그런시도를하셨고, 결과를어떤형식으로든낼수있

다는게고무적이지않느냐. 되게반가운거죠.

김기현: 예, 그 내용들이조금씩전파가되면서특히민중미술계열쪽에서, 제가아는친구들이그런쪽이다보니까. 자구적해석을하는거죠. 되어가느

냐, 되어 있느냐 진행정도 이런 것들도 얘기를 해가면서. 아직 못했다 하는 거에 해 그 뭐랄까, 소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한 사회적 책임감이랄

까, 뭐 이런 것들에 해 얘기하니까, 그건 아니에요. 이미 그런 사고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성공적으로 받아드린다 말씀하시니까 용기를 더 얻었습

니다.

김준기: 이리로오시죠. 이제본격적으로토론분위기로, 어디계시죠?

관객: 저는유럽, 프랑스, 국, 폴란드에도좀있었어요.

김준기: 거기서점거아틀리에좀보신적있으세요?

관객: 아 네. 경주언니비디오에나왔던선아언니그런곳에있어요.

김준기: 어디죠?

관객: 파리 근교인데, 공항 가는 쪽에. 근데 거기는이미너무나정착이되어서더이상이동될공간이없고, 거의 시에서작가들이있는곳이라고놔두고

있어요. 제가 들으면서한가지, 그게 정말우리문화와맞는것일까하는생각이좀났고요. 일단 거기는점거라고하면무조건말그 로점거로시작하

거든요. 어떤 준비상태나 그런 거보다는. 걔들은 정말 갈 데가 없다거나 집이 싫기 때문에 그냥 짐 싸들고 애 업고 가서 살기 시작하는 거거든요. 들어갈

준비가아니라. 걔네문화에이미워낙그런게들어가있으니까.

김준기: 18세기부터벌써그런걸시작했다고그러더라고요.

박경주: 유목민이죠.

김준기: 집이없어서생존을위해서그냥그렇게들.

관객: 지금 우리나라에 이민족 문화, 언니가 지금 다루고 있는 그런 것들. 굉장히 짧고 너무나 할 일이 많은. 갑자기 생긴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지금 이

부분에있어서도저는어떻게진행되실까굉장히궁금해요. 그러니까하나의결과물로서, 아마 정말그쪽방식이라도도입을하게되면점거가되면서부

터시작이되는지. 6개월의시간이준비기간이많은것이나쁘게말하면왜곡이나아니면타협, 설득, 협박되었기때문에. 이런것이더이상점거라는의

미가없을수도있다는생각이들어요. 그런데이제한쪽의생각이고, 또 한쪽의생각은어쨌든우리식의정말또필요하니까그런과정이필요할수도있

겠다는거죠. 그러니까지금말씀들으면서저도혼자서질의응답을하고있어요.

김준기: 그럼우리식이라면어떤방식이가능할수있을거같아요?

관객: 글쎄요. 제가 요즘 저는 청소년들하고 일을 하는데. 그래피티라고 하나요? 그 작업을 한 에피소드를 짧게 읽었는데요. 어느 한 청소년이 자기한테

새벽에 부산에 가서 그 관공서 벽에다가 그 태그를 하려고 딱 맘먹고 새벽차를 타고 갔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수위아저씨한테 딱 잡한 거예요. 그래 가

지고 시작을 한 거 열심히 신나로 닦고, 그 아저씨가 '네가 그러면 나만 죽는다.'고 그랬데요. 그런 것을 우스개처럼 자기 웹사이트에 올려놨더라고요. 자

기가 하고자 했던 태그를 하나도 못 하고, 아저씨하고 그냥 좋은, 하하.(웃음) 그런 새벽 담론이랄까요? 그런 거하고, 열심히 벽 닦아드리고 왔다고. 마치

그래피티란문화가정말거기서는마치이런점거처럼자연스럽게그냥이루어진다고요. 어떤타협이있는게아니고. 들키면끝장나고.

김준기: 그런데, 그렇게많아요? 그위험한게? 안들키고도그렇게했다는거죠?

박경주: 진짜위험하죠. 유럽에서도. 그래서그래피티작품으로좋은작품으로치는거는진짜가기어려운장소에진짜위험한건물에해놨어요.

김준기: 그래, 저기가서저걸어떻게해놨을까싶을정도로아슬아슬한높은장소에.

박경주: 그리고거기에자기네싸인이있어가지고, 누구건지알고, 아는사람은알고. 그게또들키면벌금을물던지, 감옥을가던지.

김준기: 아, 감옥까지가요?

박경주: 네, 벌금을못물면가는거죠. 벌금이그쪽물가기준으로엄청난액수에요.

관객: 그런 거를하는사람들은 부분우리나라젊은사람들이그걸가져왔을때그걸읽으면서이건한국식그래피티구나, 타협적인그래피티구나라고

생각하죠. 내가 알고 왔던 정말 폭력적이고, 그런 게 아니라 한국식의 어떤. 지금 그런 게 느껴졌어요. 하하.(웃음) 근데 어쨌든 그게 필요한 부분인 거는

같아요.

박경주: 근데그게정말관에서주도하는거랑아래서부터진짜필요에의해서올라오는거랑은천지차이니까요.

김기현: 저희는그런생각을하는부분만아니라이미정해주고돌려진상태에서의의식과사고수준하고, 절실했을때의들어가지고위험부담을가지고

들어갔을부분에는삶의방식과작업내용이달라질거라고생각했어요.

박경주: 그래서 오히려 저번에 그 연 석 선배님이라고, 그분이 노동현장에서 노래 많이 부르는데, 우리나라 그 뭐지 무주택자들이나 이런 데 철거민 지

역에사는사람들이랑점거운동준비하고있다고하더라고요. 그런 게우리나라사회에서는훨씬더바람직하다고보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은정말절실

하거든요. 이번에 상암동인가, 화염병 들고 두 달, 50여일을 싸웠잖아요. 그러면서 임 주택 얻어냈는데, 그런 절실함이 과연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한국

작가들에게 있는가 하는 질문을 먼저 하고 싶어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진짜 그런 게 필요하고, 그런 게 있는가. 그리고 내가 한국에 와서 한 3년 있으

면서 느낀 건, 오히려 한국작가들이 타협을 더 쉽게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근데 그런 것들이 미술문화 전반적인 풍토에서도 작품이나 이런 것에

서도 많이 나타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쉽게 타협하고 포기하고, 그런 것들이 많이 습성이 된 거 같아요. 그런 절실함이 없고, 그리고 일단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아카데미즘이 되게 자리를 잡고 있잖아요, 미술계통도. 미술은 특히 더 하고, 학력이니 학벌이니 이런 게 이미 다 풍토가 되어 있기 때문

에. 사실은 점거를 하는 사람들은 반아카데미즘 사람들이거든요. 학교에서 교육,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부분이고요. 그런 걸 반 하는 사람

들이에요. 그러니까정치적으로봤을때도진짜극좌라고할수있죠. 완전히아나키스트거나그런거에반 하는. 진짜 우익단체들이시위를했을때가

서걔네들이랑 싸울수있는애들이죠. 그런 애들은그런정신적인 틀이과연있는가. 우리나라 미술풍토는 그런게좀없는거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작가군이있는가하는생각도들고요.

관객: 그런데꼭그런위험부담을떠나서, 지금도보면선아언니가있는곳은굉장히유명한작가들도같이있어요. 거기는너무오래되고정착이되어서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에서는그렇게꼭그런식으로될수없다면우리만의방식을찾아서우리는특별한타협이나 화가필요한민족일수도있고. 그

러니까우리민족의성격에맞추어서그런게있을수도있다고생각해요. 꼭 위험부담, 좌익그런게있을수도있고, 또 지금하신이런작업처럼자연스

럽게. 두 가지다.

박경주: 그거는저기일을하기전에이렇다저렇다할상황이아니라고보고요. 누군가점거를원한다면해야한다고생각해요.

관객: 그렇죠.(웃음)

박경주: 그게사회적으로반향을불러일으킬수도있는거고. 진짜저몹쓸놈들하는말을듣더라도필요한부분이있다면필요할수있다고생각하기때

문에. 그리고그걸원하는사람은하는거고. 그런방식이싫으면나는어느정도는 화를통해서시간이오래걸리더라도그런걸모색해보겠다는사람

은또그렇게해야하는거고. 아까여기실장님이얘기하신 로, 문예진흥원이나이런데서하는것도있을수있지만, 또 만약그런데서지원하겠다면

하라 그러고, 그건 그거고. 왜냐하면 그런 데 들어갈 수 있는 수의의 작가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거기에 못 들어가는 진짜 거기 들어갈 수 없고, 그

런데속하지않고그런사람은그럼기회를받지않아야한다는건아니잖아요. 그러니까제가볼때는그거는생존을위한거라고보거든요. 작가의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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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위한거고. 그런차원에서그작가가좋은작업을하든, 나쁜작업을하든, 그 사람들이우익이든좌익이든, 그거를떠나서자기자신의생존을위한행

동이기때문에. 만약에그런아무리많은관에서그런건물을짓더라도. 지금 스튜디오프로그램우리나라에도되게많은데. 그게 다 레벨이있기때문에

아무나다들어갈수있는것도아니고, 그런차원에서봤을때그런데못들어가는사람들은가만히있어야하는건아니기때문에. 여러가지가.

김준기: 그 점거도 지금 얘기 로하면 점거가 생계형 점거가 있을 테고, 퍼포먼스로서의 점거, 그러니까 작업으로서의 점거. 이 두 가지가 있을 거 같아

요. 그래서물론두가지가완벽하게결합하면좋겠지만그둘중어느하나만선택하더라도충분히한국사회에서는의미가있지않을까하는생각이드

네요. 25일 세미나할 때는 관련된, 예를 들어서 상 건물의 이미지랄지, 이런 시각 자료들을 좀 CD로 구워 주셔서 보여주시면 좀 더 생생한 발제가 될

거 같아서. 부탁 좀. 어떤 건물들이 가능하고. 예를 들어서거기에 공간을 짜서이렇게 잘라보기도 하고 하셨을거 아니에요. 누구는 어디에 들어가고 한,

그런자료가좀있으면그런것도좀보여주시죠.

김기현: 내부공간은 아직, 답사는 했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어요. 화면을 준비하지 못 해가지고. 그거는 정말 건물이 새로 짓느라 없어지고. 재미는 있

었어요. 그동안에도건물쪽에안전하게들어갈정도로자문도구해보고했으니까. 사실적으로점거에 해서작가들이그런위험부담에 해서책임을

일부져줘야하지않겠느냐이런우리사회에가질수있는그런것에 해서이야기했기때문에무리가없다. 나가라면나가고, 그동안있었던거임 료

주고나오면그만이다해서문제가생기면자기가변론해주겠다해서힘이좀되지요. 이런것까지우린준비를해야하니까, 유럽적상황, 프랑스적상황

하고너무차이가나는환경이죠.

김준기: 유럽에서도점거했다가터지고, 얻어터지고쫓겨나고이런경우들많다고해요. 들어간다고다되는게아니라, 그러한 치열하게점거라는걸자

기의 예술적 생명이란 걸 걸고, 그걸 작업이라고 하는. 아까 얘기했던 형식의 그런 부류들. 또 어떤 데는 아주 평온한 그야말로 아틀리에, 작업실로서 사

용되는그런데도있다고그러고. 다양하다고얘기를들었습니다. 그 박경주씨, 작업얘기를우리가선생님한참하다보니까안했는데. 아까그실험 화

를 찍었을 때의 작가들의 인터뷰, 뭐 내용이 어떤 거 나요? 20 후반 여성작가들이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할 때에 그런 상황들, 그런 내용들이 포커스

는지, 아니면그냥 화실험을위해서그들을찍었는지.

박경주: 그런내용이에요. 주로처음에는그런포커스 죠.

김준기: 그렇죠. 그런것들을좀얘기를좀정리해주면, 본인의경우나입장, 아줌마작가로서의작업실이란것과연관지어서좀설명해주시겠어요?

박경주: 작업실, 글쎄. 요즘 들어드는생각은그때는결코안했을때고, 나이도어렸을때고한데, 그때는결혼도안할생각이었고, 한국에도안들어올

생각이었기 때문에.(웃음) 그때는 많이 달랐는데. 한국 사회는 역시 여자들이 뭔가를 하기에는 힘든 상황이라는 거. 여전히 변함이 없는 거 같고, 모든 게

남성위주로 다되기때문에. 내가 직장 생활을잠깐했는데, 거기서도 되게그런걸많이느끼고그런게있는거같고. 그때 처음에할때는왜유명한작

가는 남자인가 이런 질문부터 해가지고, 그런 작품을 하게 된 거 고. '그럼 나는 여성 작가를 찍을래.', 이렇게 해서 여성 작가를 찍겠다고 해서 한국에

와서한국에있는여자친구들찍고그렇게한거 고. 또 내가외국생활을하니까, 외국에있는여자들은또어떤가해서, 고등학교동창친구들또일부러

포트레이트하는 아르바이트 하는데 데려간다는데, 환 상수를 들면서 전화를 해서 나보고 그거 아르바이트 하는 거에 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

기도하고. 그래서내가적극찬성이라면서. 하하. 한 번 해보라고. 그래서거기거의 2주인가 3주인가를따라다니면서, 그리고그친구랑그거하면서에

피소드가되게많았는데. 그런 얘기도듣고, 진짜 되게예술가가여러가지삶의레벨이있는데. 사실 우리옛날 화나이런거보면프랑스가서그러고

있는장면나오잖아요.

김준기: 거기가어디예요?

박경주: 에펠탑앞이요.

김준기: 거리초상화?

박경주: 불법으로해서, 허가를받은사람들은돈을내요. 경찰한테. 그런사람들은증이있어요.

김기현: 자격증을주는거죠.

박경주: 증이 있어서요. 단속이와도안도망가는데. 제 친구는그거안했거든요. 그래서단속이한번뜨는데, 단속 오면그거다싸갖고도망을가는거

예요. 그리다 말고. 그래서 모델로 있던 사람도 같이 도망가야 하는 거야. 마저 다 그려야하니까. 그래서 되게 웃겼는데. 나는 따라다니면서 계속 재미있

다고그러고, 내 친구는스트레스받아가지고이래도계속해야되냐고하면서.(웃음)

김기현: 그것도시에서오디션받아서통과해야그렇게주는거아닌가요?

박경주: 그건아니고요. 그냥세금을내는거예요.

김기현: 세금만내면되는거예요?

박경주: 그러니까, 그게 자릿세죠, 일종의. 그래서 세금을 내는 건데, 그게 액수가 생각보다 높더라고요. 그리고 그게 억울한 거죠. 그거 내는 게. 왜 여기

거리는모두를위한거리고내가한자리에서만그리는것도아니고, 계속 옮겨다니면서그리는건데, 내가 돈을왜내. 그래서 제일많았던게중국에서

온친구들이었어요. 중국이딱문호가개방되면서그때가 95년 그때니까. 중국은이거를끝내주게잘그리거든요. 초상화를. 거기는한일년인가이년동

안초상화만그린다고하더라고요. 그래서그친구들이파리에입성하면서 (웃음) 기존에있던포트레이터들이기가팍죽어서, 값이떨어지는거예요. 너

무잘그리니까. 중국친구들이.

김준기: 그리고좋은친구들이많이왔겠죠, 수가많으니까.

박경주: 그런분위기고. 내가생각하기에는그런여러가지레벨이있는데, 그런레벨들이레벨들을구분짓는것중에여성이랑남성이런것이우리나라

사회에는되게두텁게그벽이있고. 그런걸내가지금더그때보다지금절실하게느끼는이유는그때예를들면여기내가찍었던작가중에활동안하

는 작가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니까 10년이 채 안 되었는데. 제가 그때 이걸 찍으면서 뭐라고 했냐 하면은 이 화는 10년 후에 같이 전시하면서 틀자고

제가얘기했었거든요. 그때까지아마다작업을하고있을거라고얘기를했었는데, 지금 10년이안됐거든요. 근데.

김준기: 지금노석미씨밖에없지않나요?

박경주: 인경이는좀하고있고요.

김준기: 가끔하죠.

박경주: 일러스트를 하고 있고. 그러니까 내 친구 선아 같은 경우는 되게 우수하게 졸업을 했는데, 외국인이기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비자를 못 받고, 그

래서계속학교에등록을해놓고다니고있어요.

김준기: 파리에있다고했어요? 지금도있어요?

박경주: 네, 파리에요. 지금은결혼을해서다해결이됐죠.

김준기: 현지인이랑? 역시지름길을선택했네요. 허허.

박경주: 그런게있고. 우리나라에도분명히그런벽이있는거같아요. 거기에 한증명은 개주변에보면다남자작가들이고, 전시그룹전같은데껴

도여자작가가별로없고그런거같아요. 일단은뭐그렇게마무리를하죠.

김준기: 마무리를. 지금박경주씨같은경우에는작업실을어떻게꾸리고있죠?

박경주: 집에서요. 이번에재개발지역으로이사를가서, 방이많은데로. 전세 3000에 방4개, 마당까지.(웃음)

김준기: 아현동이라고했나요?

박경주: 네. 제 작업실로살거고. 저 같은경우는주로밖에서하는작업이고. 집에서는편집하고이런거하니까.

김준기: 그런데 작업실많이들바뀐거같아요. 화가가 아닌경우, 화가나 조각가가아닌경우에많이들바뀌어서. 이젠 뭐 웹 컴퓨터하나만있으면되는

작가도되게많고. 양상들이많이바뀐거같아요.

박경주: 옛날이랑많이바뀌었죠.

김준기: 옛날이라고하면한 10년전?

박경주: 10년 전만해도많이바뀌었죠.

김준기: 이 작가들찍을때만해도죄다.

박경주: 다 아틀리에있었어요.

김준기: 죄다아틀리에를꾸미고.

박경주: 홍 근처에다이렇게. 거기 7번종점있는데, 그 근처요.

김준기: 망원동그쪽말씀이죠?

박경주: 그리고사무실자리인데, 아틀리에로쓰니까화장실도잘안되어있고, 막. 다 그렇게지냈었죠. 지금은뭐.

김준기: 작업실에뭐가있어요? 컴퓨터?

박경주: 컴퓨터랑촬 기구. 그리고창고가이만한방하나가짐으로꽉찼어요. 작품이팔리지, 우리나라작가들은작품이안팔리잖아요. 그러니까이게

다나중에는짐짝처럼되어가지고. 아무튼그런것도있고. 마무리를.

Page 57: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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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예예. 앞으로 계속좀협의하면서바깥에서멀리있는사람들이또도움줄수있는거있으면, 그리고 논의를공론화시킬내용이있으면또같이

협조해서하고. 모쪼록성공하시기를바랍니다.

김기현: 노력을하겠습니다. 허허허.

김준기: 오늘마치겠습니다.

김기현: 고맙습니다.

작가와의대화8:박홍순,한생곤

2004.02.06 금요일 pm.04:00

김준기: 안녕하세요. 사회를맡은김준기라고합니다. 오늘도이렇게작가와의 화에함께해주신관람객여러분들께감사드리며, 그러면바로작가와의

화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화가, 조각가들의 작업실이 지 일정 공간의 땅덩이 위에, 지 면적 위에, 건평을 올려서 물리적인 장소로서의 작업실

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작업실이에요. 그랬을 때 작품이미지와 작업실 공간들이 매치가 되고. 노동과 땀이 배어있는 조각가의 작업실, 또 화가

의이런것들, 이런 것들이우리가생각하는작업실의일반적인모습이고요. 그런 일반적이고정형화된아틀리에의상, 이런 것들이존재하는가 하면,

표적으로 한생곤 작가에게서처럼 움직이는 아틀리에, 이동식 아틀리에,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작가도 있어요. 예를 들면 뭐 저 밑에 아까 보셨겠지만 퍼

스널 모바일 아틀리에 해서 휴 용 개인 아틀리에를 보여준 분도 있고, 또 어떤 분은 그냥 작업실이 아니라 도시, 마을 이런 데 가서 아이들과 함께 주민

참여형 미술로 잠입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은 인천에 사는 드라마고 작가, 지하에서. 그런 사람은 인천 전역이 자기 작업실이다. 이렇게 얘기해요.

또 어떤 사람은 폐교를 작업실로 고치는데, 그냥 자기 혼자 작업하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 모셔다가, 아이들 데려다가 미술교육 프로그램 운 하는 공공

미술프로젝트를 운 하는 그런 작업실. 그렇게 보면 여기에서 보시는 작업실과 그 다음에 움직이는 아틀리에, 가지고 다니는 아틀리에 또는 교육장으로

서의아틀리에, 이런것들이가지는특성들이다른거죠.

우리가 모던하다, 근 적이다 하고하는게뭔가하면, 사회가 시스템이서로분리가되는거예요. 그래서 이공간은작업을하는공간, 너는 작업하는사

람. 자 여기는전시장, 여기는 관람객, 이런 식으로역할분담이딱딱되어있는거예요. 체계적인 역분할이완벽하게 이루어진것이바로우리가사는

모던한 사회라고 하는데, 포스트 모던한 사회라 하면 이러한 것들이 장르 간에 결합되는 방식이 드디어 나타나는 게, 소위 탈 모던하다고 그렇게 얘기하

잖아요. 그러면기존의작업실이뿌리가있는, 정주해있는작업실이라고하면, 한생곤작가처럼이동하고유 하고흘러다니는이런것들. 탈주, 유목민

적이라고 얘기하잖아요. 노마딕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이제 그런 거라고 얘기할 수 있고, 또 모던과 탈 모던의 모드로 얘기하면 탈 모던한,

포스트 모던한 작가다. 이렇게 얘기할수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사시는지, 사전정보를 가지고계신 분도 있고, 잘 모르시는 분도 있겠지만. 뭔 생각을 가

지고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어떤 과정에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과정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이런 얘기들을 좀 먼저 들어보고. 그 다음에

화를하는시간을갖겠습니다. 먼저한생곤선생님모시고말씀을듣겠습니다. 박수를우 차게.

한생곤: 만나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저는 정말 이게, 이런 자리 어색한데. 가깝게 교감할 수있도록하는 그런 거로, 뭐든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상도이렇게서로하나가되면될수록선명하게내면에어떤해상능력이높아진다고할수있고. 미술과미술보는사람, 만드는사람

가깝게좋은거라고생각합니다. 초 받아서 광으로생각합니다. 좀 오늘 보여주겠는데, 조금 있다가작업실을갖고왔는데, 버스 작업실한번구경하

시면사태파악이다되니까. 충 보는게제일좋은거같고.

저 같은 경우는 버스를 왜 사게 되었냐 하면 그걸 안 사면 죽을 거 같아서 샀어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재작년부터 출발했는데, 3년 전 여름에 제가 20

전체를 의식탐험을 하듯이 글쓰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냥 생각만해서는 힘드니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걸 하면서 계속 20 학교 들어와서 지

금까지 그러니까 제가 올해 서른아홉이니까 한 3년 전이니까 서른여섯 살까지 한 15년 정도, 계속 생각만 하고 있고 뭔가 골방에 와 있는 거 같고. 어쨌

든가간에자기자신에 한정 한이해기에도달하는건좋은데. 어쨌든간에별로움직임이없이그냥이렇게식물처럼한다는생각이들어가지고, 어

느 순간갑자기답답해지기시작한거예요. 그래서제가이제 학원을졸업했는데. 학원 졸업논문제목이 <깨달음의회화적수렴에관한논구>란 제

목으로제출했거든요. 근데그논문을쓰기위해서제가평소에노트를시작했는데, 그 노트가한 35권즈음되었을때그논문이끝났어요.

근데 제가 심심풀이로 노트에다가 앞에 제목을 달았거든요. 책을 흉내 낸 것처럼. 제일 첫 번째 시기 때 한 10권 때까지 제목이 뭔가 하면, '견자의 언덕'

이란 제목이었어요. 볼'견'자, 놈'자'자 해서. 세상에 참여하지 않고 구경하고 있는 느낌. 그래서 '견자'란 제목으로. 어떤 책에서 본 낱말을 쓰긴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조금 제목이 바뀌더니 '지구위의 여행'이란 제목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논문도 논문 장을 정할 때맨마지막 장이 '지구 위의 여행'이었

어요. 그래서 뭐 뚜렷뚜렷한 말이 많은데, 간단하게 압축하면 산다는 것은 우리별을 잠깐 여행하는 거 아니냐. 그 생각, 간단하게 압축해 가지고. 그리고

우리가도서관이나이런데서만나는수없이많은생각들은결국그사람의개인적여행담아니냐. 그런 간단한식의생각이들었는데. 그렇다면나도이

세상에 한 명의 소중한 생명으로 태어나 가지고 평생 다른 사람이 써놓은 여행담에 주를 단다거나 해석하면서 시간을 다 보낸다는 것도 좀 답답하다. 작

가라고 하는 문제는 그 여행담에 주를 다른 그런 것보다는 먼저 원고가 되는 뭔가 범본이 되는 그런 삶을 사는 게 작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

어요. 그래서 그렇다면나는원본으로서의 삶을살고있는가. 괜히 이제 복사물에주를달고사는건아닌가, 그런 등등. 그런 것들이들면서어느순간에

아 이제 좀 뭔가 제 로 내 속에서 나오는 내 삶에서 나오는 줄거리에서부터 출발하는 그런 삶을 좀 살아봐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이문제를해결할까.

사실 굳이 뭐 여행을 안 떠나도 왔다, 갔다하는 자체가 하나의 여행으로 보거든요. 그 다음에 그냥 일상으로 생각하는데, 가만 보면 여행이에요. 크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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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렇다면 그것도 다 여행이지만 어떻게 하면 좀 더 형태를 갖춘 삶, 그 로 되고 간접화되지 않고. 그냥 그 로 사는 게 여행이고 여행이 삶이 되는,

사는게작업하는거고, 뭐 이런식으로이렇게. 그런식의느낌으로살수있게된거죠. 처음에는조그만트럭을하나사가지고, 납권남자라는 화에나

오잖아요. 천막 뒤집어 씌워가지고. 그런 식의 모델부터 시작해 가지고, 오토바이, 삼륜오토바이도 생각하고, 여러 가지 생각하다가 그 버스로 낙찰되었

어요. 그 이유는 우리가 공간을 쓰다 보면 이 공간이 넓다고 하지만 물건이 들어서다 보면, 그 공간이 실제적인 공간이 좁잖아요. 처음에는 25인승 보통,

콤비 버스가 제일 좋은데. 그거 비싸요. 새로 나온 차라서. 그리고 이전 모델은 좀 낡고, 그걸 사면 공부하는 공간 밖에 못 쓴다. 그리고 일어설 수가 없어

요, 차 안에서. 그래가지고, 너무큰버스는좀힘들고그렇게해서버스작업실이이어졌어요.

저는아무튼 10년 정도기약해가지고, 어떤일이든한 10년은해봐야지산전수전을겪으면서좀자기나름 로의견해가나온다고생각하기때문에. 10

년 정도 기약을 해서 투자했고, 지금 이제 1년 8개월 되었어요. 그러니까 올 5월 달 되면 만 1년이라는 것은 보험료가 나가고, 돈을 준비해야 하는. 하

하.(웃음) 그리고 버스를 구입하면서 버스 값은 800만원, 50만원 깎아서 750만원에 구입했고. 뭐 등록비 등등 한 1000만원 정도. 그리고 실내 내부 정돈

하는데 한 350만원, 1300만원 들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보유한 집이 되었어요. 37세에 제가 처음으로 가진 집, 버스죠. 충 그런 정도. 궁금하신 거 있

으시면, 직접적으로좀물어보시면, 짧은시간에답해드릴게요.

김준기: 버스보여주시는걸먼저하고, 보고나서 화를하는건어떨까요? 나중에?

한생곤: 잠깐내려가서보면되니까.

김준기: 어디죠?

한생곤: 요렇게내려가서꺾이는데.

김준기: 네, 어떻게불편하시더라도잠깐함번보시고싶지않으세요? 함께보시죠.

* 미술관에서 도보로 5분정도 걸리는 곳에 한생곤의 노란버스가 주차해 있었고, 작가와의 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버스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시

간을 가짐. 버스 앞에서 모두 함께 기념 촬 도 함

관객: 저기있네요. 저기노란버스다. 신발벗고들어가야해요?

한생곤: 냄새가너무나가지고. 이 꼬마는제가수업하는꼬마예요. 4살 때부터봤는데, 많이컸죠.

관객: 데리고오신거예요?

한생곤: 엄마가 지금 놀러왔어요. 엄마랑 아빠랑. 지금 현재 제가 처음으로 그냥 이렇게 통째로 이랬는데. 1년 4개월 지나다가 보니까. 여기가 이쪽이 물

감장이예요. 이렇게 물감 사이즈가 들어가 가지고, 이중수납으로 그러니까 물감은 자주 안 쓰니까 이렇게 해서 크기에 맞추어서 칸막이 맞추면 되니까.

그리고잘쓰는거는이렇게호주머니수납을해가지고.

여기도 마찬가지로 똑같아요. 양쪽으로 문을 열면 잘 안 쓰는 미술재료는 이쪽에 넣고. 잘 쓰는 미술재료는 여기 넣고, 이런 식으로 작업실을 쓰는데, 아

직은이런. 여행하면서음악이되게중요한데, 아직음악까지는돈이없어가지고못하고. 이거하나들고다녀요.

관객: 겨울에춥지않아요?

한생곤: 춥죠. 그래도 노숙하는 아저씨들 생각하면 힘이 나요. 그리고 이 정도면 눈도 피하고 비도 피하고 하니까 충 어떻게. 어떻게 보내냐면 이 난방

기구, 이거하고, 그 다음이거. 물 끓여가지고이안에물넣어가지고이불속에서넣고이거안고자요. 그럼지낼만하더라고요.

관객: 그 안이침실이에요?

한생곤: 예, 여기가 침실이고, 여기는 수납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여기는 전지 사이즈의 종이가 들어갈 수 있어요. 여기 세토박이 나누어져 있는데, 가

운데 하고 양쪽에. 종이 자체, 종이 위에 그려서보완하면 되고, 여기는 서재 겸침실, 할 수만 있다면네스팟인지 뭐 이런 거가지고인터넷 같은걸하면

좋겠다는 정도. 옷장이고. 여기는 샤워실, 여기는 여름에 살다보니까, 정말 너무 비인간적이에요. 그래서 인제 여기 수납 통이고요. 양쪽 바퀴 뒤쪽에

100L 물탱크가있어요. 그래서 200L이니까 한드럼정도물을싣고다닐수있어요. 그러면은모터가되어가지고, 우리가 보통쓰는것처럼똑같은물을

쓸 수 있어요. 그리고 떨어지는 물은 60L정도 폐수 통이 있어가지고, 바로 물이 빠지는 게 아니고, 그 오수 통을 그 물을 버릴 수 있는 데에 가서 버릴 수

있게끔. 이걸 하는데인터넷이런캠핑동호회같은데들어가서알아보고, 제 나름 로친구가이루어졌어요. 그 친구도이걸되게좋아해가지고초등학

교 때부터 이걸 가지는 게 꿈이었데요. 학도 자동차 전공 무슨 과가 있어서 들어가서 학교 때부터 봉고 같은 거 뜯어고치고 막. 그런 마니아가 있어

요. 그런친구가나만뭐, 공장에서만들어진게아니라마감같은게좀문제가있는데.

관객: 식사는얼마나자주하세요?

한생곤: 밥은 주로 사먹는 편이고요. 여기는 컵라면 정도. 그리고 여기 열리고요. 아래층도 수납이 되고요.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기본생각은 뭐냐 하면,

여기는앉아서작업할수있는거. 이쪽면은여기는이쪽면은아직미완성인데, 화판을 가지고보통미 실기실처럼종이같은걸붙여놓게할수있

도록. 막아야될거같은생각이들어요. 제 생각엔여긴조금붙여놓고전시장에그림붙여놓는거처럼어느정도크기, 제가 실어보니까캔버스100호까

지는 실리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크게까지 여기서 뭘 한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크기라도 지내면서 할 수 있다는 그런 걸 하고 있어요. 여기는 앉아가지

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하면은 글쓰기하고 어린이 그림동화책에 관한 그런 작업을 하는 걸로 쓰면 될 거 같고. 여기는 평면 작업 같은 거 그런 정도.

그리고 다니면서 이번에도 제주도 잠깐 다녀왔는데. 우리나라 그 여러 가지 흙, 황토라든지 갯벌이라든지 또는 독특한 색깔 갖고 있는 그런 자연소재로

해서, 쇠절구같은데넣어서빻아서한번해보면어떨까하는그런생각도좀.

관객: 악기연주한번들려주시면안돼요?

한생곤: 악기는거의장식품으로생각할수있습니다. 허허.

관객: 배우셨잖아요.

한생곤: 네, 배웠는데. 말도 안 통하고 너무나 짧은 만남이어 가지고, 그게 힘들었어요. 그냥 저거는 유자가 탱자 되듯, 몽고식은 아니고 혼자서 뚱땅뚱땅

하는정도. 지금여기화실은그러니까여기서부터여기끝나는데까지 1평반. 이게화실이라고할수있습니다. 좀 지내보니까앞쪽엔의자를좀만들어

야 할 거 같아요. 어차피 여기 공간이 좀 애매모호해서 운전석도 이쪽으로 해서 두 사람 정도 앉을 수 있게 하고, 여기 한 명 해서 간혹 가다 여행도 같이

가고.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는데. 평소 때는 거기다짐 같은거 올리면되고. 혹시 여행을 할경우에는 사람들도 보고 싶어 하니까. 그런 정도로쓰고

있어요.

관객: 저 자전거로요번에제주도여행하신거예요?

한생곤: 예. 고 접는 자전거 가지고. 요즘 버스를 보면 옆에 화물함이 다 있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실으면 다 실리더라고요. 그래서 거기 놓고 다니고. 그

리고이번에처음해봤는데. 좀 노숙하면서자고싶다는생각이들었어요.

김준기: 밖에 기다리시는 분들 있으니까. 화는 들어가서 하죠. 이쪽으로 쭉 오시죠. 좀 더 이렇게 모여야지. 좀 더 멀리서 찍죠. 이걸 하나씩 돌려서 봐

도되죠?

한생곤: 네.

김준기: 저 이 리플렛에 보면한생곤작가의이름과이미지가 빠져있어요. 이게 이럴 수가없는일인데. 엄청난 비애가있었습니다. 워낙 이 머무르지않

고 떠도는 작가다 보니까 핸드폰 연락이 잘 안 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리플렛 원고를 마감을 즈음에 이미지를 받아서 작가와의 화도

잡고이래야하는데. 연락이 잘 안되었어요. 그래서 저희는계속발을동동구르며계속연락을했으나연락이되지않자, 어 제주도에가셨나보다. 그래

서이번전시에참여를못하실수도있겠다. 그래서못넣었습니다. 그런데리플렛마감을하고연락이왔습니다. 오신다고. 그래서저희로서는크나큰회

생인데. 다행이도. 나중에전시카탈로그를전시끝나고만들어요. 인쇄물로출판할것같은데. 지금준비하고있습니다. 지금여기에지금보면버스투어

했던 거랄지, 작품 낸 거랄지, 지금 말씀해 주신 것들, 이런 것들이 기록으로 잘 남게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 큐레이터 입장에서는 지뢰 같은 작가, 아

주위험요주의작가예요. 이런스타일이. 근데오늘도깜짝쇼를해주셨어요. 직접 보여주고, 이렇게해서, 되게좋네요. 직접작업실을보셨으니까또이

것도보시면서이러저러한 화를좀나눠주세요.

한생곤: 이게 그림일기 같은 거죠. 어렸을 때 숙제로서의 그림일기가 아니고, 좀 더 자기 삶을 기록하는 손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그런 의미가 되는 거고.

학원 논문때문에또나는뭐하는삶일까, 나는 어떤삶을사는삶일까, 나는 어떤생각을하는삶일까그런고민에빠뜨렸어요. 근데 그 고민들을 갖다

가, '선생님저앞으로어떤그림그려야할까요. 종답좀말씀해주세요'라든지그런게안되잖아요. 그러다보니까자기내부로파로들어갈수밖에없더

라고요. 보통말하는자아의심연을찾아서떠나는여행, 뭐 그런거죠.

근데 계속 뭐가나오는데, 이게 진짠지가짠지판단이안돼요. 헛생각인지 잡소리인지, 뭐 별의별생각인지 하여튼판단이안돼요. 아무튼 계속뭔가누

에가실뽑아내듯이계속하는데, 그렇게 계속하다가보니까, 지금 이 노트가 70권이 넘었어요. 10년 이상 계속했는데, 하다 보니까어떤 생각이드느냐

하면은결국은내가사는게이렇게하는외에어떤다른게뭐할게있지, 그런. 아침에일어났다. 배고프다. 밥을 먹는다. 심심하다. 이런 삶의기본적인

간단한 요구들. 생각이 났다. 까먹었다. 다음에 안 까먹어야겠다. 적어놔야지. 이런 어떤 되게 간단한 그런 운동에 반응한다고 할까요? 이게 제 작업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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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요.

여기 보면 엄청나게술이많이취해가지고한작업도있고요. 어떤 사람이놀러온것도있어요. 그러면은 노트에찾아온손님, 그런 정도로. 그리고 이번

전시같은경우엔전시를최근에참여를못했고, 초 하는것도없고, 저도별로하고싶어한거없고, 그랬는데. 아틀리에라는주제가제생활에는뭔가

맞는 부분이 있어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고. 개 여기 보면 다른 작가 분들께서 사진도 되게 잘 찍고, 뭔가 작업을 보면 되게 멋있잖아요. 하지만 실제적

으로 우리 삶에 자기 속에 진실하게 들어가다 보면 단하다, 멋있다는 느낌은 안 들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근데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하는

어떤걸이미지를원하는데서작업을많이했죠. 그래도아무래도다른사람에게자기를보여준다는그때문에생기는게있어요. 표현의거품이랄까, 그

런게있어요. 그런게그것말고사는그자체가어떻게전달되나, 느낌이있다든지, 울림이있다든지, 그런식으로. 작품을했어요.

김준기: 노트에보니까, 용문이는어떤듯하고, 정 는어쩌고저쩌고. 예술학과나온김정 , 이런사람이에요? 다?

한생곤: 네, 만나서 오늘 들었던 말들이상당히 멋있는표현이 있다하면 써놓고, 뭐. 어떨 때는 제가 생각나는데, 당사자는 자기가 그말을 했는지까먹고

그러더라고요.

김준기: 좀 곤란한 질문같기도한데. 하나. 노매드니 탈주니포스트모던이니 하는, 이런 얘기를했는데, 실질적으로붙박이작업실이아니라굴러다니는

작업실을 꾸리시면서, 생활하면서 작업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고 새로운 공간 만나고 그랬을 때 작업과 굴러다니기 이전의 작업이 어떻게 다른가, 이

목인데. 이거는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예를 들면 비평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붙박이 작업실의 정통적인 작업 방법, 그런 방식과 굴러다니는

작업실운 하는작가의작업은뭔가다르다고혹시나올수있지않겠냐는기 같은게있거든요. 예를 들면지하공간에있는드라마고같은작가같은

경우는인천도심에아니면변두리에가서아이들하고같이공동작업을하는방식을채택한다든지, 뭐 이런기존의작업실이아닌다른작업실을채택했

을때, 기존의방식이아닌다른방식의뭐가나올것같아요. 아마준비를하시거나생각을하실거같은데.

한생곤: 근데, 저는 거기에 해생각을안해요. 안 하고있고. 다만 제가버스가제일첫번째로산차고, 집이고그렇거든요. 근데 노래가나오더라고요.

운전하면서. 그게다르더라고요. 그래서집에서있을때는고함지르고그러면 '쟤 미쳤나' 그럴텐데, 운전하면은사람이아무도안들으니까혼자서괴성

도 내보고, 그런 식의 그러면서 뭐 소리에 관한 그런 생각도 좀 해보고. 왜 나는 목소리가 잘 안 나올까 하는 목소리에 관한 생각도 좀 해보고. 그 다음에

만나 가지고, 그 뭐랄까. 불교에서 어떤 그 유파 같은 걸 떠나 가지고, 성 안 내는 얼굴이 참 좋다. 성을 안 내는 얼굴,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탕이

다. 뭐 이런 말 있잖아요. 그러한 표현이 그림의 본질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 사람하고 내 전시해주세요. 사인하고, 그냥

그때그때,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 이야기 나눌 때, 되게 좋은 어떤 이야기 혹은 기분 좋은 화 그게 그 순간적으로 되게 이인용인 시각이 이루어진다고

나. 그리고붙박이라고하는것은결국은구축적인건데, 구축왕의논리를따르거든요. 누가더저축을많이하는가에.

김준기: 그러면 이런 말씀 좀. 사는 모습 이런 것들은 가서 봤고 알겠어요. 그럼 작업하는 방식, 어떤 방식으로 시각이미지를 축적해 나간다든지, 직품을

해나가는지, 사진이든, 드로잉이든, 페인팅이든아이들과의공공작업의유형, 방식도있을거같아요. 그런걸좀소개를좀해주시죠.

한생곤: 근데 저는 아직까지 작업방식에 해서철저하지못해요. 체계적으로 그것은마치저의버스여행이어떤출판이면출판, 어떤 뭐 이슈, 전시에

한그런뭐를가지고출발하는데, 저는그게아니거든요. 훨씬원초적으로출발하거든요. 그냥, 이게가령지금작가라는이개념으로초 받고있지만,

작가라고 하는 건 하나의 명사고, 화가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명사거든요. 저는 그 명사화되지 않는 상태로 가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이게 이해가 될 지

안될지모르겠지만. 그걸 어떻게보면한연기와같다고생각해요. 연기. 명사화된다는건배우들이 장금에서장금이로변신하잖아요. 그런 것처럼한

명사는산수가등장하거나장금이가되거나그런거죠. 저는 화가, 작가가 되는게똑같은식으로되는데. 우리들은거기서장금이한테삼수를제 로안

보고, 장금이를 보는 거죠. 마찬가지로 화가가 되는 순간에, 저한테는 화가만 보는 거예요. 저는 그것에 해서 그렇게 볼 게 뭐 있나. 그런 생각이. 저 같

은 경우는 삶을 연극놀이라는 하나의 룰로 정해 놓은 틀에 들어가 있지 않는 거죠. 저는 그것에 해서 야 우리 지금까지 이 놀이한다 해서 이 역할을 하

고사는데. 갑자기너무나무심하게지나가는거미가되는거예요. 제가열심히노트에다글을막쓰면서아이거내일까지숙제해야한다고막하고있는

데. 거기에무심하게지나가는작은거미한마리, 그 느낌. 나는갑자기뭘까. 그런느낌같은거. 아마저를보는느낌중에는그런느낌을가지고있는분

이 상당히 있을 거 같은. 아 오늘 저기 인사동인가 가야해, 우리 저저기 목동까지 가야해 이런 식으로 보통 우리의 언어 구조가 흘러가잖아요. 근데 저는

그냥. 어떤명사가있음으로인해서우리는명사에이르기위해서자기를긴장시키는데, 그냥명사라고하는자체가그냥모래위에쓴글자와같이, 모래

위에모래이런생각이드니까거기에별로그렇게많은의미를두지않습니다.

그래서그게포스트에보면바람부는 로, 거기에무슨작업을하기위해종을달아놓은게아니에요. 종을달아놨는데, 선물받았으니까종을달긴달아

야겠는데. 이게 뭔데 나한테 와서 소리 나면 어떡하지 해서 달았거든요. 근데 보니까 일본 글자로 막 써있어요. 무슨 글자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종

이를다시보게되었어요. 우리나라종이를편지지가있으니까편지한마디써야하는데. 뭐로슬까하다가, 종은바람이불면흔들리잖아요. 우리는바람

부는 로 살아. 내 마음가는 로 살래. 그냥 그렇게 한마디 쓴 거예요. 작업한 게 아니고 그 느낌 같은 거죠. 앞으로 제가 평소에 일 하다가 뭔가 안겨서

이렇게글발이팍선다든지, 그림발이막높아져가지고, 그림도많이그리고, 글도 많이썼겠죠. 하지만안그럴수도있는데. 그럴 수도있고, 안 그럴수

도있는데. 그럴수도있고, 안 그럴수도있고. 나는거기에 해서나는이거를해가지고해가지고, 그게안가지고있어요. 저는그러니까소탈하고.

김준기: 아 저기 미술평론하시고 전남 교수님이신 전주비엔날레 예술 감독으로 계신 장석원 선생님이세요. 그 오늘 한 작가님 오신다고 해서 미리 예

정해서오셨어요.

장석원: 아 제가 텔레비전에서 인간극장? 그거를 아마 며칠 나온 거 같은데, 두, 세 번 봤거든요. 버스를 가지고 유랑하듯이. 아무데나 내려서 작업을 하

고. 아 생각이 뭐랄까 흥미롭다고 할까, 이색적이랄까. 오늘 밑에도 보니까 흙으로 아버지의 글인가 하는 작업을 봤는데. 제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버

스로이렇게해서스튜디오나그런작업유형이기존의그런화가나보니까홍 교육을받았단말이에요. 그러면서그런방향으로가고있는게, 기존의

미술제도나 아니면 시스템에 한 거부를 나름 로 갖고 있는 것인지. 그런 점하고, 그것이 서구에서 말하는 노마딕이라는 그런 패턴을 한국 현실에서

그런방식으로찾은것인지, 그런점이좀궁금했고.

또 한 가지는그런생활속에서작업이또어떻게나타날까작업을안봤으니까, 그게 궁금했거든요. 허허. 근데 오늘 작업을아까봤는데, 우리 생활에서

보는의미나성격이예술작품으로서는이를테면분명하게말하면성격이구축되어있지않다는느낌을받았거든요. 뭐랄까그런생활을하지않아도나

올수있는그런작업이라든가, 그런애매한경우를발견했어요. 그런점을작가스스로는어떻게해석하고있고, 어떻게하고있는지를듣고싶어서.

한생곤: 어떤 마스트라는 부분에 한 이해가 정통한 사람들이 글을 쓰면 유목민의 어떤. 만약에 예술이라는 것의 본질을 획득했다고 한다면, 그 미술이

어떤식으로표현되는가는그사람의또배후에.

장석원: 본인은거기에 해꿰뚫고있다고생각하나요?

한생곤: 저는그부분을지났죠, 지났죠.

장석원: 지났다고?

한생곤: 그걸지났기때문에지금이러고있다고.

장석원: 어떤점에서지났다고생각하세요?

한생곤: 그러니까 미술에 관한 모든 담론, 우리 존재. 제가 간단한 그림을 하나 그려볼게요. 이 그림을 왜 그렸는지 아시겠어요? 그런 느낌 같은 거예요.

이 부분은우연히제가여기다그림을도형하나를그리는데, 이걸여기에먹을묻혀가지고동그라미를그렸다고요.

장석원: 그러니까 도형 같은 거는 나하고 아무런 상관없고, 그림을 혹은 글을 부쳤어요? 아무 상관없고, 나 말고는 다른 사람하고는 상관없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상관없다는 것이 그것을 꿰뚫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관있다면 뭔가 확실히 가는 그런 부분에 나이 드나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보

는데. 그런 점이내가객관적으로밑의작업을봤을때는그런생활에서나그런데서오는그런부분이미묘하게깃들어되거나, 내면화되있다거나하는

것을본인이지금들어보니까획득했기때문에상관없다. 그런식으로생각을갖고있는것인지.

한생곤: 네.

김준기: 예, 여기서모든분들이함께 화를나누기엔조금어려운주제도있는것같습니다. 일단, 한 선생님의버스투어가있었던관계로, 박홍순선생

님과의 화를 이쯤에서 시작을 하고 다시 자유로운 질의응답의 화로 들어가 보도록 하죠. 혹시나 더 질문을 하고 싶으시거나, 작가와 더 깊은 이야기

를 나누시고 싶으신 분들이 있으시면 이 시간 이후에 마련된 뒤풀이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으로 하죠. 예, 그럼 박홍순 선생님을 모시겠습

니다.

박홍순: 안녕하세요, 박홍순입니다. 음, 제가 작업을 하는 것은 주로, 제 주된 작업은 풍경입니다. 풍경이고, 사실은 풍경이나 월간미술에서 기자생활을

기자라고하기는좀그렇고. 한 4년 동안사진을찍고있고, 작가들을만나고있습니다. 미술행사들을보고, 그리고물론제가사진을찍으면서그건일로

서의사진이고, 그 전에제가그사진을처음시작하면서, 저의가장큰주된작업들은이런풍경사진으로했어요.

이 사진은제가지난번에개인전을했던, 백두 간이란제목의, 저의이백두 간을하고. 그러고나서지금은한강을찍고있어요. 그리고앞으로는제가

금강도 찍고, 낙동강을 찍고, 산강도 찍고, 제 계획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삼년에 한번씩 제 눈으로 본 산하가 되겠죠. 그래서 프로젝트가 큰 프로젝

트는한 20년 생각하고있고요. 그러고나서는뭐산과강을다찍고나서, 이제 그마지막에바다가되겠죠. 그래서그걸다모으면어제가본그산하가

될거같아요. 그 중간에혹시그통일이되면작업량이더많이늘어나겠죠.

Page 60: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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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기본적인시각은사진이사실은 1839년에공식적으로발명이됐다고하거든요. 그리고처음출발이자연의재현이었어요. 그리고한 150년

이 지나서 현재는 현 미술의 굉장히 많이 편입되고, 처음 시작되었던 기록의 의미와 다큐멘터리적인 어떤 의미들은 많이 상실되고, 현 미술에 와서는

굉장히 개인적인, 그리고 제가 미술 쪽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도 사실은 화가들의 생각들을 어떤 때는, 저 같은 경우는 매일 그림을 그리죠. 남의 작가들

이한작업을보고작업실을가서얘기를하고또듣고, 뭐 광주비엔날레, 작년같은경우베니스도갔다오고, 상해에도비엔날레갔다오고. 그러면서전

세계적인작가들이화가들이죠. 화가들이작업하는것들을옆에서보고있어요. 옆에서보고있으면서, 사진도현 미술에와서는굉장히주관적으로변

하고있어요. 거기에는아까도말씀드렸듯이어떤해석이필요하고, 작가의어떤얘기가필요하고. 얘기없으면안되는부분, 이해를못하는부분이굉장

히많다는것들을여러분들도아마느끼셨을거예요.

그런데 사진, 현 에 와서의사진들은거의뭐, 우리나라를제외하고는거의미술이냐사진이냐에 한어떤그구분을하지않고있어요. 하지만사진도

처음에시작했던그런예를들면, 그 기록의의미, 기록과 물론기록이여러분이이제지금많은사진속에서. 지금 살고계신데본인여러가지입장들이

있어요. 신문에서 본 사진도 있고, 광고로서의 사진도 있고, 상품으로서의 사진도 있고, 뭐. 예술로서의 사진도 있고 여러 가지의 사진들이 있는데. 저는

거기에 기록이란 의미에 저의 시각을 포함시킨 거죠. 그래서 이 사진은 지금 제가 한 2년 동안 백두 간을 다니면서, 백두 간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어

요. 저기 그 김정호 선생님의 동여지도를 보면, 백두산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어떤 근간이 되는 산이죠. 백두산부터 시작해서 지리산까지 이어오

는. 그리고 그 지리적인 역사들은 사실은 아직, 지리 교과서에도 백두 간이란 것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있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거를 우습게 그거를

다시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은 지리학자들이 아니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등산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아마 백두 간이란 의

미를그말은굉장히많이들으셨을거예요. 그런데아직까지도학계에서는인정을하고있지는않거든요. 근데 이것이일제하에서우리가이제저도그

렇게배웠는데, 아직도아마그렇게배울거예요.

산맥들을잇는것, 태백산맥, 마식령, 마천령, 묘령산맥, 소백산맥. 이렇게. 그런데그것들은일본지리학자가지리학자도아니고지질학자가만든개념이

에요. 그러니까그런개념들은저같은경우는이뭐제목을백두 간이라고정한이유는그런어떤지리학적인얘기와우리산하를제가다니면서, 여기

는많은것들이있어요. 자연만있는것이아니라풍경과인간관계를본거죠. 여기에는지금여기보시면산꼭 기에있는헬기장이예요. 많이굉장히많

이있어요. 그거는우리가분단되어있기때문이죠. 이런것들. 어떤 비판적인시각이라기보다도, 현실을, 현실에있는산하를저의시각으로한 2년 동안

작업을한거예요. 그리고지금한강을찍고있고. 그리고그러니까거기에핵심이되고있는논설은자연과인간의관계죠.

네. 보시죠. 여기는고랭지채소를하는 관령지역밑에부분인데. 고랭지채소를했던곳이에요. 그러니까백두 간이란것이이어지는맥이거든요. 백

두산부터 이어지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계속. 어떤 데서는 평지 같은 데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산, 맥이란 것은 끊어지지 않는 거거든요. 처음

부터시작해서끝까지이어지는데. 물론 그것이평지처럼보이는것은뭐그런얘기가있어요. 물은 빗물이물방울이하늘에서떨어지면그사이에, 그러

니까그맥이있으면이쪽으로든, 이쪽으로든떨어져요. 흐르기시작하는거죠. 그러면재미나죠. 재미난것이이쪽으로떨어지면한강줄기가되고, 이쪽

으로떨어지면낙동강줄기가되고. 그게 이제태백산쪽으로가면황지못이라고있어요. 태백에. 그럼 그거는낙동강의발원지라고하죠. 그거는 태백산

에서 이쪽으로 떨어지면 한강이 되는 거고, 왼쪽으로 떨어지면 한강이 되고. 오른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이 되는, 그러니까 그런 줄기를 타고서 다니는

거죠.

그 다음에, 이거는 소백산인데요. 천문 가는데. 그 다음, 여기는 동해 쪽에 한화시멘트가, 그러니까 시멘트 광산으로 채적하는 곳인데. 어떻게 보면 환

경적인문제도얘기할수있는부분도있어요. 뭐냐 하면우리가지금산업화를외치면서 6.25 이후에굉장히많이발전을했고, 그러면서자연에는굉장

히무심했던거죠. 그것들지금우리가받고있어요. 외국 같은경우는어떤개발을해도거기에따른어떤치유나아니면나무를심는다든지광산개발을

해도그런어떤사후조치들이있는데. 우리나라는그런것이없이너무빨리달려온것이죠. 그러니까문명을위해서너무빨리달려와서, 그렇다고해서

제가 어떤 자연보호론자, 환경론자는 아니에요. 그런데 이 부분은 굉장히 여기를 환경론자들이 저것도 많고 서로 논쟁도 많았던 곳이에요. 근데 이곳도

간중에한곳이에요.

그 다음에여기는채석장인데, 여기는많이다녀요. 여기는이어지는 간인데. 다음보시죠. 여기는아까고랭지채소하는그런곳이고. 다음. 여기는삼

양목장이에요. 말로만듣던우리나라에처음으로목장을했던곳인데, 굉장히재미있어요. 그러니까이쪽넘어는동해안이에요. 그러니까 동해가보이고

강릉이 보이는 곳인데. 산꼭 기에 이르면서 평지예요. 그러니까 그걸 알고서도 우리나라 지형 중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곳이고, 지금은 들어가 볼 수 있

어요. 옛날에는 관광객들 출입을 엄금했었는데, 지금은 횡계 쪽으로 해서 가면 들어가서 관광을 할 수 있게끔 해놨더라고요. 제가 백두 간이란 전시를

하고나서, 한 세개정도가백두 간이란똑같은제목으로사진전이있었어요. 그렇다는거는관심이있다는얘기죠.

그리고 사진이 사실은 딜레마예요. 그러니까 소재가 소재에서 오는 힘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작가가 얘기하는 것들이 희석될 수가 있죠. 그리고 그 소

재의힘이예를들어, 백두 간그러면, 사실은뭐그렇게생각할수도있는거고. 이 장소에제가다녔던장소에내가가서찍으면다른사람이가서찍으

면똑같은게나오지않겠느냐, 이런 생각도있고. 그것이굉장히객관적이면서도굉장히주관성을어떻게의심받는문제인데. 제 백두 간이후에한세

개정도의사진전이있었는데, 그런것들도다다른시각이에요. 다 다른시각이고, 거기에서어떤그주관적인얘기들을할수있다는얘기죠.

다음. 이쪽은 계속. 여기는 재미난 게 있어요. 여기 산 이름이 봉화산인데, 여기서 산불이 세, 네 번이 났 요. 옛날부터 봉화산이었던 거예요. 이건 가십

같이 재미난 얘기로 혹시 이름 때문에 그렇게 난 게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들고. 어쨌거나 지금 여기 쓰러져 있는 나무들은 부분 불이 나서 이렇게 잘라

논 나무들이에요. 다음 볼까요. 그 강릉 쪽 그러니까 강릉에서 오른쪽으로 태백산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이렇게 고랭지 채소 하는 곳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니까 말로만 듣던 산꼭 기에 채소를 가꾸는 그런 곳이에요. 다음 볼까요. 여기는 남한 쪽에서, 여기는 알프스스키장이고, 꼭 기가 마산인데. 남한

쪽에서갈수있는최북단, 백두 간의끝이죠. 그러니까이다음은아마 TV나 이런데서많이본그다음봉우리는향로봉이에요. 그리고지금여기는알

프스스키장이예요. 다음. 태백산에서넘어오는매봉이란곳인데, 모르겠어요. 이거는제개인적인생각인데, 지금 여러분들이고속도로나그런데가시면

굉장히 편리하죠. 그러니까 고속도로가 중앙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 뚫린 거 보면, 거의 거침없이 이 그러니까 산과 강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거의 직

선으로뚫려요. 그러면서주변도거의보지못해요.

모르겠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이 인간의 어떤 그 필요에 의해서 너무 자연친화적인 어떤 생각들을 버리고, 너무 필요에 의해서만 개발이 되

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개인적으로는 해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는 예를 들어 국도나 지방도로나 이런 것들을 찾아가는 것들, 그런 도로로 다니

는 것들을 굉장히 좋아하죠. 그래서 지금 미시령 쪽에 가는 도로를 뚫고 있어요. 그리고 관령에서도 그 개통이 되었죠. 관령을 넘지 않는. 물론 그것

이나쁘다는생각은아니에요. 그렇게 도로를뚫고, 그렇지만저개인적으로는그것이 체우리후손들한테어떤 향을끼칠까, 그리고자연을글쎄너

무빨리가는것만좋아하는건아닌가하는생각들을하게끔하는거죠. 그래서 그런것들이없어지기전에저는기록을합니다. 다음 볼까요. 여기도 마

찬가지예요. 그러니까넘어오는줄기인데. 중간에채석장이있어서인간이필요한돌들을채굴하고있는거죠.

그 다음. 그 백두 간은요산에서요산으로이렇게이어져요. 근데이중간에끊겨버린거죠. 다음. 이것도이어져온것인데, 이 간으로이어져오는곳

인데. 물론 이런철책선이나아까보셨던그런헬기장이나아니면, 고무타이어로된방공호나이런것들이굉장히많이있어요. 그리고 예전같으면사실

은찍지도못하게했을거예요. 여기가군부 시설들이있고, 여기군인들이많이지키고있기때문에. 근데이제는많이제지를당하는일은적어졌어요.

다음. 이런 것들도. 간은이렇게이어지고. 다음. 여기는속리산이거든요. 속리산인데. 여기 끝에물론얼마크게보이지는않지만, 저 같은경우는이제

그런얘기들을들어요. 이제등산을하는사람들이그등산을진짜좋아하고사진을업으로하지않는, 사진은작업으로생각하지않고. 사진을취미로하

는분들은이 간을이렇게다니면서, 예를 들어서백몇십일을 간에있으면서찍으신분도있어요. 근데 사진의입장은약간틀려요. 뭐냐면 그자리

에있으면그현장에있으면보이지않아요. 만일에 여기를보기위해선반 산에가야해요. 올라가기도 하고, 아니면 밑에서보기도하고, 아니면 위에

서보기도해야하고. 그 자리에있는다고보이지는않거든요. 그러니까내가현장에있다고, 그러니까그옛날부터이어온어떤사진, 기록과어떤그현

사진하고는약간틀리죠.

다른 맥락으로서의사진은굉장히객관적인눈을중요시여겨요. 그렇다면거기에빠져들지않는거죠. 그래서얼마전에제작년즘에그런일도있었어

요. 그러니까우리는언제든지그런이야기를듣거든요. 예를들어서빠져죽는사람이있으면, 강물에서빠져죽는사람이있으면그사람을건져야하느

냐, 아니면사진찍어야하느냐. 이런윤리적인문제들. 그리고그렇죠. 언제나예전에메모를많이하고, 이런 현장에서거기에합류를해야하느냐, 아니

면지켜봐야하느냐. 이런문제들. 그것이아마일반인들, 취미로사진을하는사람들과다른입장일거라는생각을저는하는거죠. 그러니까이것도그런

비난 아닌 비난들을 많이 들었어요. '네가 간을 아냐', 뭐 이러면서, 백두 간을 종주했던 사람들이 '네가 백두 간을 다녀봤어?'. 그런데 다녀볼 필요

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그래서 여기 같은 경우는 저는 구간별로 다니는데, 물론 이 속리산 같은 경우는 이쪽으로 올라가서 여기까지 와서

한 장 찍은 거예요. 어떤 때는 한 장도 못 찍을 때도 있어요. 다녀보기도 하고, 아니면 반 편 산으로 가기도 하고, 뭐 이런 식으로 관찰하는 거죠. 그리고

보는거고.

내가보고자하는것들이거기있을때잘못하면소재주의에빠질수도있지만, 어쨌거나저는현장에있어야해요. 그래서지금제가한 3년넘게한강을

다니고있는데, 어떤때는한 3,4일 다니면서한장도못찍을때도많아요. 왜냐하면제가원하는날씨가있고, 그리고해가감응하기때문에그래서일단

고부분은촬 하고자하는포인트만잡고있죠. 남들이보면놀러다니는거예요. 물론저도그렇게생각해요. 그렇지만어쨌거나그이런작업들은현장

에 제가 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말로써 될 수 없는 거고. 그렇게 때문에 저는 이 작업, 물론 이 작업과 사실 여기 걸려 있는 작업은 의미가 좀 틀린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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쨌거나이작업이저한테는가장큰작업이에요. 계속되어야하는작업이고.

다음. 아까 얘기했던 방공호 같은 거. 다음. 이런 맥락으로 물론 일부인데, 이런 맥락으로 제가 한강을 찍고 있는. 이거는 지금 제 계획으로는 내년 초나

올해 말이나 개인전을 하려고 계속 찍고 있었던 부분이에요. 여기는 이제 한강인데요. 한강에, 한강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강이라고

얘기할수있는가장남한강에서가장상류죠. 여기가 말로는많이들으셨을거예요. 뭐냐 하면정선이에요. 아우라지가있는, 정선아리랑의어떤출발점

이라고할수있는, 옛날에는예전에는여기물이많았던곳이에요. 이쪽강과이쪽강이이제합쳐져서두강이합쳐져서아우라지가된. 여기는원칙적으

로 조금 가면 한줄기가 더 있는데. 그래서 여기서부터 시작을 해요. 남한강이 이 다음이 그 뭐 옛날에 예전에 신문에도 많이 나왔던 동강이죠. 그러니까

어떻게보면남한강의각부분들은또다른이름들을갖고있어요. 월강이라든지, 소양강이라든지, 송강이라든지, 남한강은여기서부터 시작해서동강

을 지나서 충주로 와서 여주로 와서 북한강과 합쳐져요. 그래서 양수리가 물 두 개가 합쳐지는 곳이란 듯이예요. 양평에 있는. 그런 곳을 저는 다니면서

찍고있는거죠. 다음볼까요. 여기는자세히보시면지금좀작아서그런데. 요기다리가있었어요. 그런데장마때문에다리가무너진거죠. 그러니까제

작년장마로여기가무너졌어요.

다음. 여기가 동강 중간 즈음인데. 오히려 지금 와서는 예전에 99년도인가요? 99년도 동강에 댐을 건설한다고 사회적인 이슈가 굉장히 많이 되었었죠.

그리고 사회적인 반 도 많이 하고. 그런데 오히려 그 이후로 댐은 건설이 안 되었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더 많이 더 많이 망가지기 시작했

죠. 사실은더많이. 오히려신문에나오기전에도아는사람들은다알고있었어요. 동강의아름다운비경들을다알고있었는데, 유명해지기시작하니까

망가지기시작한거죠. 여기보시면레프팅이라고배를타고내려오는거거든요. 사람들이. 그 다음은동강위에서본거고. 다음. 이게 다리고, 동강중간

에다리가세워지는건데. 끝에 보시면부유물들이있어요. 그러니까재작년장마에이거보다높이물이찼다는얘기예요. 그러니까마을이거의다잠겼

었던거죠. 그러니까 그런것들이한 1년이 지나서도거의치워지지않고있어요. 그리고 요즘은요즘동강에가면집들이다일층은철재로이렇게높이

올려놔 있어요. 장마 때문에 그런 거죠. 그전에 없던 건축 방식이 자연의 재해 때문에 새로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일년에 한번씩, 제가 이제 한달에

한번씩 가는 게 목표인데, 그렇게 자주는 못 가고, 가다보면 갈 때마다 굉장히 많이 변했어요. 매일매일 변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저는 보면서 기록으

로남기는거죠. 다음. 여기가져온건다는아니에요. 이건아직제가개인전을한게아니기때문에조금만가져왔습니다.

다음. 이거는 북한강 쪽에서 강촌 부근인데. 혹시 북한강에 최북단이 어딘지 모르시죠. 북한강의 남한에 최북단이 평화의 댐이에요. 그러니까 북한강 위

쪽으로 가다보면 춘천을 지나서 청평을 지나서, 춘천을 지나서 소양호를 지나 팔당호가 나오거든요. 팔당호의 가장 북단이 평화의 댐이에요. 아직도 건

설이 되고 있어요. 거기는 그 저기 저휴전선이죠. 바로 군인들이 바로 있고, 저도 몰랐었던 건데. 다니나 보니까 뭐굉장히 의미가남다르더라고요. 여기

까지저의앞으로계속하는작업들이고.

그리고 여기 냈던 작업들은 사실 제가 조금 전에도 제가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제 제 3자로서 월간미술에서 제가 사진을 하면서 작가들을 한달에도 새로

운 작가들을 최소10명 이상은 만나요. 그리고 아틀리에를 그러니까 작업실을 제가 가서 보죠. 일반인들은 잘 못 보는 작업실을, 왜냐하면 작가들이 자기

작업실을아주친한사람아니고는보여주지않죠. 근데저는매일봐요. 매일보고, 예를들면가서사진찍고물론그건월간미술에도나오고, 그렇지않

은 부분들이 더 많아요. 그래서 그 작업은 한 4년 되었으니까. 그러는 한 10년째 되었을 때 그 작업을 한 번 보이고 싶은 부분들이 있어서 계속 작업들을

해오고 있어요. 근데 사실 그 여기 아틀리에라는 제목으로 하자고 했을 때, 사실 저는 그런 작업들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작업이

예를 들어서 사진계에서 그러니까 사진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시체말로 굉장히 후진 작업이에요. 그 작업을 젊은 사람들은 안 해요. 왜냐하면

해봤자, 그러니까 별로 남의 눈에 띄는 작업은 아니니까. 작업실을 찍고 그 작가들을 찍고. 그 작가들의 어떤 초상사진을 찍고. 이런 것들은 굉장히 고전

적이기때문에. 왜냐하면그런작업이엄청나게많이쌓여서뭐그렇게생각하기쉬운거죠.

뭐냐 하면 기록의 의미 이외에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왜냐하면 여러분들 개 여기 오신 분들은 그림을 그리시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니까. 현

미술시장의어떤미술판도들을 부분아실거예요. 물론 뭐저도다니다보니까굉장히사진도외국에서는굉장히많이팔리고있고, 굉장히비싼값에

팔리고 있거든요. 근데 그것은 고전적인, 사진이 처음 시작되고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사진들은 아니에요. 뭐 얼마 전에 작년에 국제에서 세라뇨 라는 작

가의 전시도 있었고, 작년에 사진전 굉장히 많았었죠. 그런데 물론 그런 사진들과 지금 어떻게 보면 옛날서부터 했던 제가 지금 작가의 아틀리에라는 작

업들은제가앞으로한 6년동안더하고전시를할건데. 사실은차별이되기는하죠. 그리고그것이굉장히사회적으로커다란이슈가되거나커다란반

향을일으킨다고보지는않아요.

하지만 그런 작업들도 비근한 예로 미국 같은 경우도 그렇고, 일본 같은 경우도 사진의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사진의 흐름들도 여전히 있어요. 근데 우리

나라는 조금 안타까운 게. 굉장히 역사도 짧고,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도. 제가 사진을 배웠던 선생님들이나 우리의 사진의 역사는 굉장히 중구난방이에

요. 그래서어떤한가지흐름들이이렇게있지않아요. 그런데저는굉장히안타까움을느끼고. 저 같은경우는그런작업들을하는거죠. 그리고그런맥

락에서 아틀리에 그 사진 보시면 제가 이전 작업들과는 굉장히 틀려요. 뭐냐 하면 이전에 제가 풍경을 찍고 이런 것들은 굉장히 클래식한 부분들이에요.

그러니까사진기를굉장히큰사진기를 형카메라를들고찍고자하는고장소에, 고 시간에, 고 날씨에가서트라이포드를세워놓고, 그 시간을기다렸

다가한장을찍어요. 그러니까굉장히고전적이에요. 그리고고전적으로흑백이죠. 흑백은흑백의 4.5필름은 부분굉장히수작업이에요. 제가 혼자한

장씩현상하고한장씩뽑고. 이 작업과이작업은지금디지털이에요.

제가두분의돌아가신작가두분을찍은건데. 사실은작가를찍진않았어요. 작가를찍지않고작업실을취재한거죠. 작업실만, 아틀리에만보고. 제가

4년 동안다니다보니까작업실에작가의어떤생각들이담겨있어요. 그런 것들을 10년 앞으로 6년 정도를더해서사람들에게보여주고싶은것은거기

에 그냥 못 보니까, 다른 분들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고, 그래서 그리고 그 사람의 방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그 사람의 성격이라든지, 아니면 굉장히 궁

금하잖아요. 그러니까작가가그림을그리고, 그것을갤러리라는어떤한정된공간에걸어놓았을때랑, 작가의어떤이면들, 보이지않은부분들, 보지못

하는 부분들을 물론 뭐 저기 TV에 나오셔서 어떻게 보면 그거랑 비슷한 맥락이죠. 어떻게 보면. 그래서 제가 저 작업은 작업실을 아틀리에를 먼저 찍고

나중에, 그리고는새로운여태껏제가찍었던예를들어서여태껏찍어왔던작가들굉장히많으니까, 그런자료들이굉장히많아요.

그런데 그런 작업들로 내놓기보다 지금 현 에 와서 지금 여기 와 계신 분들도 카메라 폰이나 아니면 디지털카메라나 이런 것들 많이 가지고들 계실 거

예요. 이제지금어떻게보면우리나라가디지털강국이거든요. 인터넷도굉장히활성화되어있고, 디지털쪽도굉장히많이갖고있어요. 다른나라보다.

그랬을 때 사실은 사진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그 행위가 어떻게 보면 똑같아요. 디지털로 찍으나, 아날로그로 찍으나 결국 결과물을 어떻게 아웃풋을 내

놓는거냐는문제인데. 사실은그것이필름이되었건아니면디지털로되었건제개인적으로는별상관이없다고생각해요. 그것은시각적으로남들한테

다른사람들한테어떻게보여주느냐이게더큰문제지. 그랬을때지금이시점에서저도이제작년에디지털카메라를새로샀거든요. 그래서지금현재

그 쪽으로 작업할 건데. 아날로그와 그런 논쟁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문제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사진을 흑백사진을 하고 프

린트를하고. 저도 뭐그런입장이었는데. 그런데사진을했던사람들은디지털은좀사진같지않다. 뭐 이런얘기들을하고. 근데 사실그것이한 1년 사

이에굉장히많이발전을했어요. 디지털쪽이그래서한 1년전만해도사진만보고는금방알수가있었어요. 이것이디지털프린트인지, 아니면다른아

날로그프린트인지 금방알수있었는데. 이제는 거의구분할수가없어요. 거의 구분할수가없고. 그 문제는 재료를화가들이 재료를뭐로쓰느냐. 유화

로그리느냐아니면뭐먹으로하느냐뭐이런문제지그것이크게문제될거는없다고생각해요.

그래서작업실찍은거와그리고그작가들, 물론 그런생각들은있었어요. 만약 저분들이만일에오른쪽에계신분은작년에교통사고로갑자기돌아가

신 구본주 선생이신데, 물론 친분이 아주 친한 분은 아닌데. 만약 저 분이 계속 살아계셨다면 아마 제가 취재를 갔었을 거예요. 취재를 갔거나 아니면 다

른 식으로든 작업실을 찍었을 건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살아생전에 찍은 사진은 없어요. 제 앞에 없어서 그 유족들에게 사진을 받아서 디지털로

합성한 거예요. 그러니까 사진은 작업실, 아틀리에 사진은 아날로그로 찍은 거고. 작업실은 디지털로 한 거죠. 그리고 보시면 조금 비율이 조금 틀려요.

자세히 보면 언뜻 보면 잘 몰라요. 저것이 합성을 한 건지, 물론 이것이 시각 디자인 하신 분들, 컴퓨터로 작업하시는 분들에게는 별거 아닌 작업이에요.

이거쉬운작업인데. 단지있는사진에작가의사진을붙인건데. 그러니까크게기술적으로큰어려움이있는사진은아니에요.

근데제가의미를둔건디지털과아날로그의합성이시작된거죠. 아마 4,5년 뒤에는예를들어서아날로그는되게수공적인, 그러니까작가들이작업을

하는방법. 그리고나머지는. 5년은 너무짧고한 10년 안으로다디지털쪽으로바뀌지않을까이런생각도해요. 그런 의미에서저런작업을새로, 그러

니까물론예전에했던작업내는것보다저런것들을한번실험해본거예요. 거기까지가 강의제작업에 한얘기입니다.

김준기: 아까는디지털과아날로그말씀하셨는데, 결국 사진이라는게이미지를저장하는방식의문제인거같은데. 아날로그든디지털이든간에어떻게

저장하든 아웃풋은 비슷하게 나올 수 있다는 거죠. 공통점이 있다면 두 방식 다 렌즈를 통해서 사진작가의 눈과 렌즈를 투과한 이미지가 저장된다는 거

죠. 말씀하신 로, 큰 차이는 없을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렌즈 베이스트 아트' 그런 식으로 생각해도. 화든, 심지어는 그 컴퓨터 자체도 렌즈의 곡가

를 자체로 가지고 있다고 해요. 렌즈의 원리를. 그리고 스캔 받는 거 있잖아요. 드럼 스캔이든, 평판 스캔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죄다 렌즈의 원리를 차용

한거라고하더라고요. 여담이너무길어졌네요. 그렇고, 그 류인, 구본주작가작업실을갔을때느낌같은거간단하게소개해주세요. 아니면여러작가

들에비해서저조각가들의작업실에 한다른느낌들이있었다거나. 왜 저작가들을택해서작업했는지.

박홍순: 그냥 뭐. 시쳇말로 천재는 일찍 가시는지, 아니면 신이 조물주가 시기를 해서 그런지. 어쨌거나 조각하시는 분들의 작업실은 굉장히 좀 달라요.

사실은 그러니까 조각하시는 분들은 노동의 힘으로, 자기의 노동의 힘으로 작업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지저분하기도 하고 정리가 좀 안 되어

있죠. 그림그리시는분들하고좀다르게. 그리고제가주인이없는자리를갔기때문에더그럴수도있고. 뭐냐하면주인이없고지금은류인선생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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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이지금아직남아있는지는잘모르겠어요. 근데 저기유족들이사실은일반인들이지금살아있는우리들이나아니면관객들이관심을안가지면없어

지거든요. 왜냐하면유족들이계속관리를할수도없고. 그리고힘들죠. 굉장히. 그랬을때언제없어질지도모른다는생각들이약간지배적이었어요. 그

래서 그리고 또 두 분의 글도 있는데, 두 분이 관계가 있었고 똑같은 조각을 하시는 분들이었고. 뭐 그런 의미에서 두 분을 한 번 역어본 거예요. 같이 이

렇게.

김준기: 백두 간이나한강작업, 특히한강작업같은경우에세월이많이쌓인그런작업이라고하고. 아마올해전시를하시면반향이좀있을거같고,

특히 아까 말씀 중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사진가의 그 작업, 그 양 갈래 중에 하나가 예술성과 기록성 그런 건데. 저는 후자의 입장, 기록성이 훨씬

탁월한 예술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이를 테면 이런 사진들은 기록으로서의 가치인데, 이것은 그 누구도 저 시점으로 돌아가

서, 저기에서 저 장소에서 저 사람 앉혀놓고 저렇게 찍을 수 없는 기록성의 힘 같은 걸 가지고 있다 그거죠. 다큐멘터리로서의 힘 뭐 이런 점에서 아틀리

에작업도그렇고, 백두 간이나한강이나이런작업들계속해오시는것이좋다는생각입니다.

우리가 예를 들어서 화가 이 아틀리에 작업, 화가를 찍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요. 이거 있잖아요. 이거. 피카소 그랬을 때 이렇게 바라보는 거라든

지, 이중섭 그랬을 때의 긴 머리, 담배 피는 모습, 이런 훌륭한 작가의 그 작가를 표하는 이미지 같은 것이 강하게 각인되는 게 있어요. 이를 테면 그런

거누가남기냐면사진가가남겨주는거예요. 다른 사람이아니라. 그래서강우근선생님이찍은장욱진선생님툇마루에앉아성냥켜서담뱃불붙이는

사진같은거정말보면기가막혀요. 이를테면그런건마스터피스, 명품같은느낌마저갖게된다는거죠. 그래서박선생님도좋은작가의좋은작업실,

이런것도좀남겨주시길. 뭐 질문이나논평같은거하나말씀해주시면.

장석원: 뭐 슬라이드흑백, 그건아날로그죠? 그거랑작가들사진류나아까개인적으로중광스님을잘알았었는데, 불자까지찍은사진봐서굉장히반가

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진, 이게 백두 간 사진하고, 이거하고 굉장히달라 보이는데. 제가 이건 직업상 찍은 거고, 이건 아마 작업상 좋아서사진 작품

을해야겠다는의지를갖고하신거같은데.

근데 그 슬라이드를 보여주시면, 뭔가 매년 갈 때마다 변화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고 하는 그거를 예술가나 스튜디오 사진에서도 역시 그때, 그 시간

에그현장에서만가질수있는그런기록성이랄까, 그것을기억시키는사진으로서그런것을상당히중요하게생각하고있지않은가. 아, 그리고내가알

기로는 늘 우리가 책을 보고 상상을 할 때 하고, 실제 거기 가서 느꼈을 때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카메라 렌즈로 기억시키고

확인시키고 하는 것이 사진에서 느껴집니다. 저희 같으면 이제 예술작품이라고 하면 굉장히 다양한 세계를 갖고 있고, 어떤 경우는 눈에 보이지 않은 가

치가도있거든요. 눈에보이는가치도있지만눈에보이지않는가치도있기때문에, 그런것을다양한각도에서해석도하고, 그때그때얘기하는가치관

도 뭐랄까 달라지고, 그런 것이 더 우선하는 우선 순위 같은 것도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그런 여러 가지 측면들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말하면 서로 방

향은많이틀리지만, 그런측면에살고있고, 살고있진않은가하는.

김준기: 예, 질문은아니고평론을해주셨어요. 허허. 아까 한생곤작가처럼다그런거아닙니까, 사는 게다그렇지, 허허. 이런 분위기에서아주. 한생곤

작가님이쪽으로좀자리좀해주시고. 자 이렇게마무리 화를좀같이가지시고, 편하게두분말씀도좀하시고. 일단워낙많은분들이계시기때문에

정담을나누듯이이렇게진행되지는않을거같고요. 여력이닿으시는분들은이 화끝나고나서아마도두선생님도그렇고저녁식사를같이하실수

있는 분들이 계실 거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들 이렇게 좀 어울리시고, 그리고 또 오늘 박홍순 선생님 같은 경우 거 팬클럽을 동원하신 결과, 어디

꽃다발도 보이고 하는데요. 좀 있다가 꽃다발 증정식이 있겠습니다. 허허. 그래서 팬클럽에 보답하는 모임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하시면서 화를 계속

이어나가시고. 저기계속돌아다니시잖아요. 백두 간이나한강이나작가의작업실뭐이런거이런것중심으로. 어떻게생각하시는지.

한생곤: 힘드셨겠어요. 살아야해.

김준기: 허허. 역시. 재밌겠죠? 참재미있는분이세요. 허허.

한생곤: 그 되게 이전에어떤중 부 가산을등반한부 가있었는데, 넌 사진을한마디로뭐라고생각하니그랬더니, 그 어떻게생각하는데그래가지

고. 제일 긴 시간이 겁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제일 짧은 시간은 '찰나'다. 그러면 그걸 찰나라고 한마디로 하면 어떨까, 그렇게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가장 우리들이이땅을살면서한 60년, 70년 정도 쪼개다보면굉장히많은망점들처럼. 그런데그렇게많은것으로구성되어있는것중에어떤것을남

길것이냐. 그 문제가제일중요한거같고요.

박홍순: 저는아까도선생님말씀하셨듯이, 물론보이는거말고안보이는것들이굉장히중요하죠. 그래서그것들을어떻게시각적으로표현할것이냐,

이런문제에서제개인적으로너무어려워요. 그러니까예를들어현 미술쪽은제가만일관객의입장이라면너무어려운거야. 이게. 물론보고느끼는

로느낄수도있지만, 너무 제 생각인지는모르겠지만너무귀족화된거는아닌가. 그래서 갤러리라는공간이일반인들, 쉽게 접하고그런거에서점점

멀어져 가는 건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사진은 뭐 쉽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물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현 미술 쪽 와서는 사진들은

그렇지 않아요. 사실은 똑같이 어려운데. 물론 어려운 게 좋고 나쁘고, 뭐 쉬운 게 좋고 나쁘고 그런 문제가 아니고. 그건 어떤 기질의 문제인 거 같기도

해요. 근데 이제 저는 그런 게더좋기 때문에, 명확한 게 더 좋기 때문에. 그런 사진들을 하는 거고. 물론 저도 예를 들어서 정신적인 것들이 어떤 물질적

인것보다, 다른 것들이있으니까물질적인것도있고보이는것도있고안보이는것도있고. 안 보인다고해서존재하지않는건아니니까. 그건 해쳐가

야할미술쪽에서도해쳐가야할문제가아닌가. 그러니까점점멀어관객과어려워지는부분, 그런생각을매일화가들을만나고얘기를하면서그런것

들을느끼거든요. 그래서아마제작업은또그렇게.

장석원: 아까그세라뇨말씀하셨잖아요. 국제에서몇년전에보니까오줌통속에예수십자가를요렇게집어넣어서찍은사진이있는데, 우리는사진을

모르는데, 그 발상이 단하더라고요. 기독교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단적으로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서, 단적으로 어떤 측면에서 비판하고, 부분 종교

성이라고 하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하기 쉬운 부분을, 그런 세라뇨가 그런 어법을 쓰기 때문에 아마 사진 기법이란 측면을 넘어서 사진을 통해서 뭔가 문

화적인비판내지는예술적인창의성, 문제제기를보여주기때문에관심을집중적으로받았다생각이듭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거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서 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거거든요. 그냥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어떤

작가나 어떤 상을 가지고 그거를 찍어서 보여줘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서술이나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작가가 어떤 문제제기 하는 것을 만들

어서 이슈로 만들어서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측면의 작가가 드물지 않을까 그리고 단순히 어렵다고 말할 수도 없고, 상당히 관심을 불러 모으는

작가거든요. 그건어렵다거나쉽다거나그런걸떠나서이작가역할에서그런작가들이꽤있다고생각이듭니다.

박홍순: 저도 예를들어서뭐결국에가서는어떻게소통시키느냐의문제라고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요즘에는장르구분은없어졌잖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서양화, 어떤 사람이, 어떤 화가가 서양화했다고 해서 그림만 그리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뭐 조소과 나왔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어

떻게다른사람과소통을하느냐그런매체로서의도구들이지, 그러니까저는그런생각들을해요. 제가그사진어떤구별을짓는그자체가사실은별의

미가 없는데 제가 이제 말씀드리는 거는 그니까 그게 세라뇨 같은 경우는 모르는 사람이 만약에 그 사람의 이력이나 그 사람의 살아왔던 환경들을 몰라

도사진만보고도굉장히강하게오는힘들인거죠, 그런얘기를하는거죠. 그런거. 어떻게보면사진이갖고있는큰힘인지도모르겠어요. 강력하면서.

장석원: 그러니까 사진작가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인 통찰력이 있는 거. 고걸로 사진을 이용해서 반응하고 있는 거죠. 아까 한선생님 말이 나는 통했다 이

렇게말하는데. 허허. 거기에서세라뇨같은문화 21세기랄까 20세기의첨예한문화적인어떤흐름, 굉장히포괄적으로보잖아요. 중심. 그런사회적이랄

까예리하게비판할수있는힘이있지않나.

김준기: 좋은말씀들. 이제막본격적인얘기가시작된거같은데. '뒷 담화'라는게있죠. 허허. 나중에얘기하는거. 그래서시간이됐으니까뒷담화를나

눌 자리로 이동하셔서 말씀들 나누시기 바랍니다. 오늘 장시간 동안 오셔서 말씀을 들어주시고, 함께 해주신 관람객 여러분들 정말 감사드리고요. 이 두

분작가에게도감사의박수보내드리기바랍니다.

Page 63: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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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9:드라마고

2004.02.11 수요일 pm.04:00

김준기: 예, 사회를 맡은김준기라고합니다. 프로젝트문제로작업이미지관람이이뤄지지않은관계로, 드라마고작가의이야기를바로시작하도록하

겠습니다. 워낙말씀을잘하시는분이라오늘의작가와의 화가많이기 되네요. 그럼, 드라마고작가를소개합니다.

드라마고: 예, 안녕하세요. 드라마고입니다. 음…….저는 말이 많아요. 술자리 토론회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개인의 의견에서부터 우리나라 미술계에

한 비판, 새로운 작업에 이르기까지 한꺼번에 쏟아내게 돼요. 이런 병에 걸린 건 아마도 그동안 미술을 생각하고, 미술을 접근해오면서 미술을 포기하게

될정도로의견을개진할수없었기때문일거예요. 도 체 수업을받고이야기를듣는것외에제가생각하는미술이란어떤것인지를다른것을빌어서

설명하지않고순수하게제스스로표현하는것이어렵다는거예요. 그래서원래제가오늘사비나미술관에서지말아야한다고생각했죠. 이는 제가말

이많기때문이에요.

일상속에서 화하는사람들한테는말을많이하면안돼요. 저는삶의시간성들이각각나눠져있다고생각해요. 생활속에서어떤친구는말이많고, 한

친구는 말없이 가만히 있고, 한쪽은 주장만하고 한쪽은 듣기만하는 것은 일상 의사소통의 건강함이 제 로 안되어 있는 것이죠. 제가 말이 줄어들려면

사실은 누가 마이크를 주는 자리에 가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지역에 살아가시는 분들, 친구들 그리고 미술 이외에 생활 속에서 사회 복지, 노동운

동을하시는분들과이야기해야해요. 노동운동을하시는분들은노동운동을하시는 역에서자기의지와주장을하시고, 사회복지를하시는분들은사

회복지의 역에서또미술문화를하시는분들은미술문화 역에서어떻게서로연 되고도움줄수있는지이야기해야해요. 그러면말이많아지지않

죠.

그런데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미술에 해 공통적으로 비판하는 점은 "미술이 너무 오만해졌다"는 것이에요. 미술계에서 미술을 이야기 하면 우리나

라미술은 80년 현장미술에서 90년 담론의시 로변화하거든요. 다시 역사를재해석하고, 앞으로의미래를준비하는데에있어서수많은이론들과

주제들에 해 이야기 하고 점검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에요. 그 시 에는 너무 쫓아가기 어려웠어요.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 시 의 미술이론에

해기존화가들도이제는공부하지않으면미술을이해하기힘들정도로미술은이야기의시 , 논쟁의시 , 재조명의시 를맞이하게된것이죠. 90

년 를 돌아보면 후회스러워요. 세상이라는 커다란 덩어리는 미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여러 층위에 존재하거든요. 층위의

높고 낮음은 합의의 단계를 거쳐 결론을 도출해내는 피라미드 과정에 따른 것이에요. 정치적인 층위는 높은 것이 아니라 위 방향으로의 과정이죠. 하위

의 층위에서는 삶에 한 이야기, 넓은 층위는 문화예술에 있어 사회 곳곳에 향을 주는 디자인의 역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요. 중문화, 상품

곳곳에 디자인은 존재하며, 이에 한 저항을 위해서도 디자인은 필요해요. 여러 가지 미술에 한 논란 가운데에서도 세상의 다양한 층위와 범위 카테

고리에적용이되면서 '미술'이 사회의소통에도움이될수있다는가능성을보여주는장치인것이죠.

저의 이야기는크게두가지측면으로요약될수있는데, 하나는그동안한국미술에서다뤄지지않았던 역에 해서하고있는사람들중에하나, 미술

역에서쉽게결과로써정리되지않은부분에서활동하고있는한사람으로써의이야기, 또 하나는생활자로써가져야될마인드가무엇인지에 해밝

혀야될입장에있는사람의이야기에요.

먼저 미술을 이야기할 때 저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어요. 여러분과 같은 일상의 한 사람으로써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해야 하는가도

고민이었어요. 학시절에는 디자인 전공을 하 고, 동양화전공, 서양화전공으로 바꾸게 되었고. 저는 디자인을 할 때, 교수님으로부터 '이게 무슨 디자

인이냐?'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한 예로, 교육에 관한 공익 광고 디자인 과제가 있었는데,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 컬러 등의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되지

않았으며내용적으로도미완성되었다는이유로욕을먹기도했죠. 그리고인쇄라는메커니즘으로여러사람들에게유통될수없고, 저의 작품은써먹을

수 없다고 평했어요. 그 이유로 사람들의 반 를 무릅쓰고 동양화과로 과를 옮겼는데, 거기서 교수님들은 3학년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치고 있었던 거

예요. 저는학원도아닌곳에서데생을가르치는교수님이이상하다고생각했어요.

당시 저는지역을돌아다니면서사진찍는작업을했어요. 사진은제작업실근처에있는인천중구지역을담은것이었죠. 돈이 없어서아르바이트를하

고, 친구 집에 얹혀사는 시기 어요. 주변의 집들은 제가 알고 있는 서울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어요. 일단 주택의 나이가 꽤 오래되었는데 짧으면

2,30년에서 길면 4,50에 이르 고, 이 주택들에 해 궁금증이 생긴 거예요. 가난해보이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지역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담

았죠. 이러한 사진을 찍어서 나름 로 동양화를 하려고 맡겼더니, 옆에서 데생을 봐주시던 교수님은 그것이 동양화가 아니라며, 동양화의 여백, 먹선에

한공부를하라고말했어요. 그래서고민을하다가결국, 동양화를그만두고서양화로갔죠. 서양화로갔더니문제는해결되지못하고, 더 큰문제가있

었던 거예요. 한국 사회의 학부에서는 예술사나 미학이 아니라 작업과 관련된 매시간의 크리틱 시간이 엄청났어요.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고, 넓어진 예

술의 역만큼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하러 온 친구들도 많았죠. 교수님들도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준비하는 게 아니라 매시간 진행되는 이야기 중

에말씀하시는형식이었어요. 학교라는 테두리에서 전세계적인미술사적인 논의를하면서결국졸업을하면졸업생 50여 명 중에 한명도작가가될수

없는 현실에 빠져있는 것에 해 불합리한 생각이 들어서 학교 외에 인사동 일 세미나 등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돌아다니다 보니 더더욱 문제 던

것은처음에언급했던인간삶에서의유통, 배급, 인터렉티브한문제 던거예요. 여기서인터렉티브란터치스크린식의인터렉티브아트가아니라의사

소통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거고. 인간은 언어를 통해 발달했고 언어적 성장과 함께 오늘날의 인문학의 위기시 -무책임한 언어세계-를 맞이했으며, 말

하지 않는 것으로는 이미지와 감각을 통해 발달했어요. 이제는 현장에서 체화되고, 그곳에서 이미지를 생산, 유통시키고 이미지적 방법, 에너지의 방법,

만남과 화의 방법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를 끌어내주는 역할이 중요해진 거예요. 그래서 예술가만이 이미지를 다루는 것이 아

니라일상사람들도이언어폭력시 에자신이갖고있는다른문화적특징들-에너지, 이미지등-을 끄집어낼수있는것들이필요하지않은가생각했어

요. 어렸을때는몰랐지만, 학 4학년이되서일상의주변적사건들에 한은폐와의혹을만들어내는사회구조, 예를들어 학을졸업하면실패한인

생이될거라는사실에 한은폐, 작가라는나름 로의논리를지켜나가면서암합리에미술계를지탱하는학력, 학벌등을은폐가그것이에요.

미술을 지우지 않고서 도무지 저는 미술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 수 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제 친구들, 선후배들이 미술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어요.

미술을 포기했다고 하더라도 미술이라는 사회가 살아온 역사를 아무도 같이 짊어지지 않겠다고 해요. 미술을 가지고 미술직업-회화를 하고 디자인을 한

다던지-을하지않는한일상생활에서도가족, 친구들과만날때자신이할수있는디자인이라고하는것도포기하고가는거예요.

작가와의 화역시저에게는죄에요. 저는 개인작업을하지않고그룹활동을하기때문이죠. 저는 퍼포먼스 '반지하'라는 그룹속에서멤버들과 역학관

계, 즉 미술을 하는 친구 외에 음악, 상, 무용을 하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맺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친구들에 해 자세히 들어가면, 그들은 실제로

예술분야의 전공자들이 아니라 생활보장 상자, 장애운동가 등으로 다양한 구성원들이에요. 이들의 삶의 조건 속에는 학교를 그만 두는 문제에서부터

빈곤자의문제, 장애인의문제도있는거죠.

저의 작업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예쁜 그림, 잘되어 있는 그림이 아니라, 예를 들면 제가 한 달에 두 번씩 운 비정도만 받고 인천 지역 활동 단체들이 필

요로하는디자인으로, 컨셉회의등을거쳐나온제 로된디자인작업이아니에요. 난잡하게있는행사나, 지역의메시지, 인천지역에관련된반지하가

갖고 있는 텍스트나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제작하는 것이죠. 지역의 행사, 집들을 찍어 자료화하다보면 문화예술행사들이 요구하는 디자인에 맞는 텍스

트와이미지소스들을찾아하루만에디자인을뽑아낼수있는거예요. 이것은실로놀라운메커니즘이라할수있어요. 이렇게만들어진디자인이예쁘

진않지만자세히살펴보면거기에맞는이미지, 메시지, 지역의사진들, 동네주변의사진들을담고있는소스들이들어있어요. 이를통해사람들은제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이것은 어렵지 않고 일상적인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죠. 이런 식의 효과가 생기는 거예요.

(기존의)디자인에서이러한효과가없다는것이문제인거죠.

마지막으로 '지역'이라고 하는 문제에요. 저는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났어요. 지역의 문제에 접근하려면 한 개인이 어떻게 지역과 만나야하는지 설명해

야해요. 저는왕십리에살다가강동구마천동으로이사를가서그쪽에서어린시절을보냈고, 가락동으로이사를갔어요. 그때는자녀셋이학교를다녀

야 했기에 노동의 강도가 높아졌죠. 신체적 성숙과 육체적 성숙이 일어나면서 저 역시 부모님을 도와드리기 시작했어요. 중학교 때는 쌀 한 가마니도 들

정도 고, 오토바이를타고쌀배달을하기도했어요. 이런일상을보내면서자라온저는지금미술근처에있게되었죠. 저는가족을만나지않은지수년

이 되었어요.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는 활동을 할 수 없어요. 정치, 제도에 저항적인 세력들은 아버지를 '죽이지'않으면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인하

는데에는어려움이있어요. 자기정체성, '내가나인것'을 확인하기할수없다는거죠.

저는 인천에서학교를나왔어요. 학교라는울타리가저와의관계성에있어서제가족만큼이나죽여야할 상, 저항해야할 상이라생각했고요. 사회적

불균형이만들어낸피라미드의억압구조, 계층 구조, 경쟁적 구조에서도무지벗어날수없는데, 경쟁에서에너지가부족한하위, 열악한 환경에있는사

람들이 제도라 '아버지'의 향으로 자기가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리고 비슷하게 살면 그 당시는 '제도, 아버지와 화가 되니까 이

정도는만족할수있다…….'라는것이한순간에깨지는거예요.

제가 99년 졸업할때, 제 친구들도굉장한당혹감을느꼈어요. 회화를전공한친구들은어떻게하면전시장미술에들어갈수있을까고민하고, 학원에

진학한 친구들도 또 다시 이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거예요. 얼마나 제가 속하고 있는 세계에 해 얼마나 안일하게 처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는 거

죠.

다시 일상으로돌아오면, 지역이라고하는것은쉽게이야기하면한쪽에는개인의역사, 삶이 있는것이고한쪽엔제도라는것이있을때, 크게 글로벌리

즘을시작하여개인적인문제에까지그중간에있어야하는개념에 한이해를통해인식할수있어요. 커다란제도속에서미술 학을다니고있는친

구는 순간적인 착각을 하게 돼요. 학교라는 제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미술에 해 논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제도와의

고리가끊기면버려져서당황하게되는거죠. 하지만이사람이다른장치에관한이해가생기면훨씬상처를덜받고미술인구가많아져도각자할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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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기는게되는거예요. 그중하나가 '지역'이라는거죠.

서울에서는 지역이라는 것을 찾기 힘들어요. 서울은 중앙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각 지역에 너무 많은 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천의 경우,

나 개인도 사회에서 매장당할 삶을 살 뻔하다가-내 친구들처럼 사회현실에 전사하면서 살아갈 뻔하다가- 인천에서 그 친구들과 모여서 일을 하게 된 거

예요. 나는 예술가라기보다 활동가에요. 활동가에 해정의하자면, 인천에서 미술을공부하고, 삶의 조건이불리한사람이인천에살다가 어느순간 '처

지'에 관해 깨달은 거예요. 즉 인천이라는 역사 속에서는 인천에 살고 있는 상당 부분이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인천은 현재 인구의

50%밖에 없었던 조그만 항구 도시 어요. 간척사업을 하고, 60년 경인 공업지역을 건설하 고 현재 인천 땅의 6~70%는 실제 갯벌이었던 땅이에요.

공장을 짓기 위해 간척한 이 땅은 전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해 모여드는 곳으로 수도권에서는 가장 중압적인 곳으로 거듭난 것이죠. 지금도

인천의 문제에 해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인천 땅의 50%가 공장이라는 것을 몰라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일을 볼 뿐, 이것에 해 모르는

거죠. 사람들은쾌적한삶을살기위해인천으로오지않아요.

학교를 떠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안지역에서의 미술활동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하다보니 제도적인 미술의 논의 속에서는 '난 반드시 전사한다.'

고 생각했어요. 미술만 놓고 봤을 때, 그 친구들이 삶을 깨달아 가는 과정 속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 속에 미술이 그렇게 위 한가? 미술이 제도

를 만들만큼 위 한가? 미술이 제도를 만들어서 사람의 삶을 경쟁체계 속에서 결정지을 만큼 위 한가? 그렇지 않거든요. 이거 한 가지는 제가 욕을 하

고넘어간다면, 한마디로 '좆까라씨발!'이죠.

미술은 그럴만한권력을갖고있지않아요. 왜 이런 현상이생기냐면, 사회 체계라고하는것에서제도를끌고가야만하는현 자본주의…….그런데 그

정치가 사람들을 합의하고 하는 게 아니라 자본의 가치, 경쟁을 통해서 어떤 꼭짓점은 자본을 축적하고 어떤 꼭짓점의 나라는 다른 나라를 마음 로 구

워버리고 그럴 수 있는, 이 전 지구적인 사회실패에요. 그것은 인간들이 혼적이고 에너지적인 이런 것들이 아닌 언어를 통해서 자신을 가리고 이웃을

가리고언어적합의를통해서자본을만들어내고실제로거기서생기는노동력이라든지, 사고력, 문화는 활용이못돼요. 공장처럼. 그럼 빌 게이츠같은

사람 빼놓고 나서, 특히 우리나라 심한데 노동자들을 천민자들이라고 부르는데, 왜 천민이냐면 천민을 무시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 말자체도 문제가

있는거예요. 욕지거리같은말이죠. 누가천민이냐? 너희가우리를천민취급하는데아무리역사적으로봐도니들은그만한권력과제도를가질만한 못

한 사람들이 그것 갖고 나머지 갖지 못한 사람들은 개미떼처럼 몰려있고 인천 공장에선 하루에 8시간 10시간 12시간씩 좆 빠지게 막 하고 있고 가난한

청소년들은인천에서학교를 3000명 식그만두고있어요. 인천에강화도에국제공고라는이상한특수고등학교. 농어촌출신자와해외유학출신자를동

시에뽑는이상한학교, 이상하죠? 이 학교 때도일년에천명씩학교를그만두는데이친구들이다닐만한학교가없어요. 이 친구들은생계도감당해야

되고 학교도 다녀야 되고 문화도 누려야 되는데 어느 누구도 문화도 누리고 공부도 할 수 있는 학교를 지금껏 서울에 열 몇 개, 전국에 백여 개의 학이

생기는동안우선은아직안나오고있는게바로인천지역의현실이고요.

이제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하는데요. 지역이라는 부분을 저의 화에서 끌고 왔어요. 왜냐면 현장이라는 말도 있고 실천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다 같

이가야하는계급이에요. 같이가야해요. 현장이라고하는개념에서지역이라는개념을왜얘길하냐면가까이있으니까. 예를들면이런거죠. 내가미술

을 하고 싶은데 내 주변에 있는 사람과 미술에 한 얘기를 나누고 미술관을 찾아서 이사도 가야하고 미술작가도 돼야해. 그게 좀 이상하죠? 그거를 이

사람한테안물어보고멀리가. 차비내야하고 등록금내야하고밥값도내야하고. 그죠? 그런데사실은제생각에왜서양은우리나라와다르게역사적특

수성을 갖고 잇는데 왜 우리나라는 서양미술사책이 그렇게 많이 팔려요. 그담엔 보통 철학적 배경을 이론가들이 공부하는 건데, 왜 작가들이 그런 논란

에휩싸여야되요? 이게 제 개인적얘기가아니라여러분들도공감하실거예요. 비평이란 것은민중들을학습시키는거고, 글을 통해서이해시키고역사

적 문헌을 정리해내고 그리고 그것을 부분적으로 보충시켜주고 작가가 이해 못하고 있는 것을 이해시키고 설득해내는 거예요. 왜냐면 작가는 작업을 열

심히하니까역사적인거나주변의것을잘못볼수도있어요. 자기일은작업하는거니까. 그럼이론가가다른입장에서이야길친절하게해주는거예요.

관객들에게도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말해 주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의 입장에선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작가에게는 야, 너 이 작업하는데 좋은 생각

이 있는데 이거 챙겨야 되는데 이거 빠졌어. 하면서 갖다 보여주는 비평가의 역할인데 지금은 비평의 상위개념수준으로 올라온 부분들이 간혹 있고, 그

너무거리가떨어지다보니까작가는비평가들과 화하려면쫓아가야돼요. 그래서그런거말고인천의저희반지하는인천의순화에관한문화활동을

하고있어요. 지역의 사진을기록해서이기록물을공공적활동에얼마든지공유하고쓸수있는, 돈 받고 쓰는게아니라, 언제든지활용할수있는 그래

서초상권침해가되지않게하기위해서때로는집을짓고, 그런 과정에서출발한부분이구요. 현재 활동은지역의인권 화제라든지, 노동문화제라든지

저희아트프로젝트에서재개발지역에하고있는교육프로그램, 출판프로그램등이있죠.

그 다음에 서울활동에서는 장애인프로그램 이런 것들을 하면서 거기서의 메시지는 자신의 이야기, 자기 동네의 이야기가 기존 제도적 미술도 공격해서

까부실수있는정도의, 그러니까제도판이잘못됐으면제도개혁을하지않으면, 그런데이제도개혁을위해제도를발판으로제도싸움을하면사실웃

기는 짓이야. 아까 애기했듯이 비평의 계층이 작업가와 그 생활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왜곡된 구조가 생기듯이, 미술도 왜 피카소 얘기를 하고 그 사

람들은왜그랬을까요? 입장바꿔놓고생각해보세요.

김준기: 아니,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봅시다. 아니 그럼 마고씨는 왜 제도권인 사비나 미술관에 와서 서울에 와서 전시를 하셨어요? 그런 이율배반이 어

디있어요?

드라마고: 예, 이율배반이에요. 근데제가요즘제도판을자주만나느라고독서를안하고있어요. 그 독서는최근에미술인의회의에서준비한토론을준

비하면서많이깨졌어요. 전시만두고가는게아니라그것에 해많이고민하고 향을주고한사람의나비효과……. 그리고글쓰실게있으실텐데제

도 특히 왜 미술인의 회의가 나쁘냐면, 저희 그것 때문에 며칠째 지역에서 난리가 났거든요? 포괄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미술인의 회의가 지역문제를 다

룰 때 반드시 지역이 현장이라는 존중, 그리고 거기에 있는 활동가들 뿐 만 아니라 지역민들에 한 기본적 예의를 가지지 않고 서울에서 사례발표를 해

버린다던지, 서울 쪽루머로이해한다해버리던지그러면미술인의회의는가만두지않을거예요. 미술인의회의자체가나쁘다는게아니라자신들이모

르는부분에 해서정의하려고하고제도와의싸움이라고한다면지역이나민중들은버려지게되거든요. 저만의주장이아니에요.

의미는 있다고생각해요. 그런 식의 구분은안했으면좋겠어요. 제도에 있다고해서지역에있는어떤선배가 '너 맨 날 떨어지고나서어, 서울은 전시하

네? 너 나중에 봤더니 사비나 유료더라?'. 저는 유료인지 몰랐어요. 몰랐고요. 지역 활동가들이 서울을 버리고 가는 현상 때문에 사실 지역 활동가들에

한짜증도나고요. 그러니까너무자기식을설파하다보니까점점더에너지가떨어지고빈곤해져가지고파산할지경이에요, 지금. 노동운동을한다면

노동운동의 역사만 자꾸 얘기하면서 새로운 민중을 만나고 노동자를 만나는 활동을 잘 못해요. 기반도 약하고 돈도 없고요. 그런데 그걸 지키려고 고집

을 부리니까 자꾸 말라가는 거예요, 여위어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도판은 더러워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그 중간역할을 하는 단체를 하고

있어요. 저희는 연구 활동을 하구요, 비평도 쓰고요, 근데 돈 안받아요. 돈 안 받고요. 근데 제가 미술가라고 얘기 안 해요. 그냥 말장난으로 고문이나 비

평가. 그리고 제 지역에서도 그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민과 만나는 프로그램에 있어서 완벽하게 현지 활동을 하는 옛날 빈민운동을 하시는 분들

이 있습니다. 빈곤자들의 지역에 가서 그들과 10년 20년 살아야 구민운동을 한다, 그러나 저희는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요. 그렇게 하구서 망해서 다시

빈민들은 아파트 건설에 보상금 준다, 활동하는 지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절 적인 법칙은 아니거든요. 다만 한 사람으로써 한

단체로서 인간이 회복해야 될 가치들에 한 지악할 부분이 있다면 그게 미술인거죠. 때로는 서울에 가서 전시를 하든, 비판을 받든 지역단체에서 너희

가 빈곤자들과 활동하면서 너희가 빈민이냐 이런 논란을 만나던 저희는 갈 거예요. 그거는 무단히 고집스러워서 가는 게 아니라 제도와 싸우고 인류와

함께하는구조로갈려고생각하고있습니다.

그런 활동을통해서저희가또서울에서활동을하다보니까좋아진점은여러사람들이랑그런얘길할수있는기회가생겼다는거예요. 근데 그런기회

가저희입장에서확실하거든요? 저월급걱정안하시고자기명성좀버리겠다고생각하시면미술하시는분중에할분이엄청나게많아요. 교사같은경

우에는학교에가야교사가된다는생각을버리면미술교육을할데가얼마든지있다는거죠. 그죠? 전시할때인사동을개인적으로버리면전시할데가

엄청나게 많아요. 이해가 가시죠? 그런 거들을 좀 버리고 가면 다양한 활동의 미술문화활동가들, 자기가 작가가 아니라 지역적 문제의 화두와 연결시키

면우리스스로가자유로운삶을살면서도사회적문제점을지적할수있고개입할수있고또새로운예술적형태, 개념미술이란말장난, 죄송합니다, 원

래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어느 정도 개념미술이란 게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들은 백퍼센트 제가 봤을 땐 진짜 좆같았습니다. 왜 그러냐면 이유가 있겠

죠. 그쪽엔근거가있는데여기는없단말이죠. 겉에건먼저들어왔단말이죠. 1960년 부터아방가르드그룹이있을때부터이상스럽게들어왔거든요.

김준기: 잠깐만요! 이 목에서부터드라마고의미술사시간입니다.(웃음) 자, 인천에있는 학을나와서인천에있는사람들과인천의풍물, 이런 것들에

해서많은데이터를가지고있어요. 이 사람은인천에사는미술생산자로서의자격이있는거예요. 서울에와서어디살면어떤얘기할지모르지만인

천에 관한한. 그래서 이런 로컬리티에 관한 관심이 사실은 인사동이라고 하는 제도화된 공간에서의 방식들보다 훨씬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런 점은얼마전에이동기화가님, 암튼 전시장소에서열심히활동하고계신분들과논쟁적으로그런것들에 한관계를이야기해보는것도좋을것같

고그, 아트컨설팅서울의김연주선생님같은경우에에이씨에스가하는일이공공미술이런거예요. 그런데제도화된 역의공공미술이고제도시스템

을 이용해서 공공미술을 하겠단 사람이에요. 그랬을 때 아주 야생적인 방식으로 미술의 공공성을 부르짖고 있는 드라마고의 경우 어떤 짓거리를 하는

지, 왜 그가 사비나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때 이것이 '이율배반적이다'라고 스스로 제도권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보에 비해서 이율배반

적이라고생각을하는지, 일단한번들어보고그다음에질문들을받겠습니다.

드라마고: 화를하면서느꼈는데요, 그 미래의정보를찾아보고수업하고 화하고이란게다똑같은게정보가없이판단한다는게참힘들거든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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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를실시간으로보여준다는게사실은그다른이야기들을같이하기가어려워서어려운점이있는데요. 저희가하는활동, 아까 이론으로말씀드린여

러가지중에그중에하나가지역과현장의의민데, 미술이라고부를수없는상태에서함께가는문화적인행동들이어떤거가있는지살펴보기위해서,

출발점은 여기 책자가 있어요, 죄송합니다만 이 책이 제가 소개를 하면서 나눠드릴 수가 없는 게 지역주민하고 다 나눠가져서 남은 게 이거밖에 없거든

요.

관객: 저도지역주민인데주시면안돼요?

드라마고: 예 그럼…….

김준기: 지역주민이라고요?

관객: 예, 공감하고들었어요.

드라마고: 인천주민하고이런얘길하면공감을하는데이런얘기의출발점을만드는게참어려운거거든요. 얘기의출발점을만든다는데있어서얘기를

꺼내는 게 출발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거 컴퓨터 로 제가 아까 편집을 못했고 컴퓨터 세팅상태가 임의 로 깔려있지 않아서 준비상황이 어렵기 때

문에 보는데 적절치 않으실 것 같거든요. 좀 시도해보다가 불편하면 자료를 보면서 얘기를 그냥 하죠. 그담에 미리 준비되지 않으신 분들은 저의 홈페이

지가있거든요. 추후에홈페이지를확인해보시면좋지않을까생각이듭니다.

그럼 그냥 자료 보면서 설명 드릴게요. 이 책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게 만드는데 친구들이 팔아먹어가지고, 팔아먹는 건 아니지만 잘사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싶은데서울에서얘기하면노동이되더라고요. 소나무숲이라는거예요. 책이참촌스럽죠? 표지때문에욕을참많이먹었는데이동네는송림동

이라는 이름에서 소나무 숲이 돼야 정상인 동네에요. 옛날에 소나무 숲이었 요. 아까 말씀드린 로 기계공장노동자들이 소나무 몇 개를 치고 집을 지

어서 소나무들이 사라지는 역사가 시작된 거예요. 지금은 동네에 소나무가 한그루도 없어요. 이제는 소나무라는 것은 동네이름으로만 남아있지 거기에

있던나무들은다사라졌거든요. 뒤에있는소나무숲은인터넷서핑을통해서그냥하나차용해다썼습니다. 작품같은걸갖다쓰면저작권문제가있기

때문에 저작권이 없는 것을 가지고, 이 앞에 있는 친구들이 송림동 나눔의 집 친구들이에요. 저희는 송림동 나눔의 집이라는 거점이 반이라 일반 숨어있

는 청년들을 찾고 싶었는데 어려움이 많아요. 그렇게 찾는 데에는 그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퍼서날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그 직접적 만남, 직접적

화, 직접적관계가필요한데저희가사무실을인천서구가정동이라는곳에있고송림동이라는지역에서활동하는역사도가지고있긴하지만 나눔의

집 친구들을 다 알지 못하고 어려움이 있어서 나눔의 집 친구들과 같이 있고요. 이 나눔의 집의 모토는 빈곤의 세습을 막는다는 거예요. 근데 못 막고 있

어요.

그래서 충 보면 이 칼라사진에서 이 동네거든요? 이 동네! 지역주민이 찍어 놓으신 사진인데 아주 놀라운 사진이죠. 맨 처음에는 동네 역사를 실제 기

록해온 주민이 있을까 보통 역사는 역사가들이나 선생님들이나 반공소에서 하잖아요. 근데 아주,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건요 지역의 역사를 사진으

로 기록해온 사람이 무려 한명이 아니라 세 명을 만났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의 받는 충격은, 왜 그런데 문화예술은 이렇게 논의가 되고 있는 것일까. 여

기작은사진. 이게다른측면에서본송림동이에요. 여기에는인천의동구라는지역이구요 ,여기는그저의부인되시는분이오늘안오셨는데요, 혼인신

고를 안 한 사실혼 관계에 계시는 부인이신데요, 이 지역에서의 개인적인 출발은 빈곤이나 역사나 미술과 상관이 없어요. 예전에 사귀었던 애인이 여기

살아요.(웃음) 그런데그애인한테마지막에헤어지면서내가뭐라그랬냐면당신과관련된활동을하겠다. 나중에또만난적이있어요. 만났는데존댓말

서로쓰면서공공적활동에 해서토의몇시간하고헤어졌거든요그리고저한테는굉장히중요한사건이었어요. 예를 들어, 인천 용현동에서여기까지

가는 동안에 남구, 중구, 동구를 거쳐 가게 되거든요 옛날의 시가지들을 지나치게 되요 그런데 그냥 무심코 봤던 것들이 나중에 사고의 전환이 생기면서

다 중요한 삶의 근거들을 해주는 과정 같은 건데, 음 다른 멤버들은 저랑 같이 사는 부부는 상미디어 활동가와 장애여성운동을 하다가 만나게 됐거든

요. 그래서장애여성운동을할때장애인들을위한예술극장에서만나서된건데, 그분이인천에내려오면서저희가반지하를결성하게됐어요.

멤버모집들을 인터넷상에서 했고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퍼포먼스를 하다가 나중에 사회적 예술을 하는 게 원래 목적이었으니까

하게됐는데요, 다른 사람들은여기서어떤연기지향적이냐면직장월급 50만원밖에안주는직장에서청소년교육이나문화활동을하려고열심히노력

을 했는데, 제도적인 운 에 넘어가면서 다 해고당하고 이런 일들이 있었고요. 또 문화연 송수현씨라고 하는 분과 사업을 여러 개 같이 했는데 지금은

문화연 와 적 시하는 관계로 바뀌었거든요. 왜냐면 제도적인 발을 디디고 추진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데, 그런데 송수현씨라는 활동가가 있

어요. 이분되게 놀라운 분이거든요. 그 안에서 자기의 굉장한 노동력과 사고력을 바탕으로 서울에 있으면서도 지역민들을 만나는 끊임없는 디자인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서 논의하고 그러고 있어요. 그분의 제안을 통해서 인천에서 몇 가지 프로그램도 같이 하고 있어요. 그분이 아주 약간의 자원을 만

들어서 써포트 해준다거나 저희는 돈을 받는 목적으로 사업을 하질 않거든요.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고…….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빈곤하다고 볼 수 있

죠.

김준기: 송운동프로젝트는재원이어느정도규모 어요?

드라마고: 과정적프로세스는재원이한달에지역사업활동비 4만원받는……. 나머지책구성하고축제비, 마을축제비용은저희가너무어렵고프린트

해서책을묶으려고그랬는데, 사회적환급력에너무미약한거아니냐해서민간후원단체가있거든요. 소외된청소년들을지원하는단첸데, 그 기금운동

을하는단체거든요. 사회가얼마나복잡하냐면, 그 공공모금에들어오신분있으세요? 거 한단체가있는데일년에운 하는예산이몇백억정도가된

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규모가 크다보니까 이 예산을 어떻게 지역에 정확한 곳에 타계적으로 지원하느냐를 결정 못하는 거예요. 너무 등치가 커

서요. 이런 데반감을갖고낱낱이기금들을아주소중하게모아서정확한부분에정확하게쓰여서사회적 안을만들려고하는단체가있어요. 그 단체

에다 신청을 했고 지역연장활동을 통해서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600만원을 지원한다고 해서, 초기 과정이 아니라 마지막 마을 축제과정, 작가 출판과

정만…….

김준기: 그랬을때돈이 600이면사비나미술관에이전시가문예진흥기금 1500을 받았거든요.

드라마고: 저희는이전시를몇개는하죠.

김준기: 그 돈이면?

드라마고: 예, 그 돈이면요.

김준기: 딴 데로갑시다. 최근의문예진흥기금의상태에관해서어떻게생각을하는지약 3분 50초에거쳐서짧게.

드라마고: 그러면 조정을 해야 해요. 자료에 공감이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다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지나가거든요? 그냥 거두절미하구 나중에

홈페이지를통해서얘기하던지하고그냥여기서현장을만들어버리는걸로하죠. 이거 이친구들얘기에하면좋지만다인터넷자료를충실히올리려고

요. 저희홈페이지컨텐츠도저희가다만드는데노력많이하거든요. 게시판을어떻게배치하냐에따라컨텐츠가되려고하니까, 고급기술이아니라, 한

번 살펴 봐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냐면 딴 데서 얘기를 해놓으면 은근슬쩍 보게 되잖아요. 근데 안 보시더라고요. 결국에는 여기 오는 게 에너지의

손실을가져오는…….그래서지역에서지금거의일주일이넘도록굉장한스트레스를받는상태구요, 미술인회의에도 향을주고있고.

김준기: 아 잠깐만, 미술인의회의무슨일이있었어요?

드라마고: 예. 지난번 토론회도 그렇고 현재 인천 남구의 청소년 미디어 축제하고 관련돼서 일부 역을 지역의 사람들과 지역의 문제를 토론하는 게 바

람직하다고보는데, 그 팀이미술인회의일곱분하고지역민이배제된분들하고협의했거든요. 저희 입장에서는지역민들에게설명을드려야하기때문

에여러가지로드렸는데도접근이안되는거예요.

김준기: 그러면그얘기는논점은안되는것같네요. 왜냐면그건미술인의회의라는단체차원에서전혀논의된바가없기 때문에. 그냥사적으로개입된

몇몇사람들만그런것같은데. 그것보다아까문예진흥기금문제부터얘길해서풀어봅시다. 관객분들은미술인의회의에 해자세히모르시니까요.

드라마고: 아뇨. 죄송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게요, 제가 오늘 마음을 먹고 왔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는 게요, 그거보다 한 단계 미술인의 회의 정치와

향에 많은 것이 공공미술문화 토론회가 지난주에 있었어요. 저희가 그 사인발표회를 하고 공공문화위원장 정현석씨를 여러 번 만났었고 저희가 얘기하

려고 하는 것을 처음부터 질문지를 보내서 의도 로 얘기하도록 제안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입장에서는 지역의 문제 얘기가 안 되어 있는 거니

까 바닥부터 얘기해야 되는 데, 의도적 질문이 여러 번 나와서 나중에는 제가 토론회에 안가겠다고 했어요. 예의에도 벗어난 데다 자유성을 안주는데다

가당신들목적성을부각시키는거예요. 답사를내려왔는데홈페이지상에는 2차 답사까지되어있는데, 1차 밖에안왔어요. 1차 왔을때도지역의여러

가지 문제를얘기하는데 정연석씨가 '마고씨는 오래된 것에 향수가 많나봐요?'식의 얘기를 했거든요. 사실은 굉장히 화가 나는 일이에요. 보통 동양화가

들이작업실이나집에서그리고인사동에갖다놓거든요? 이것은그쪽으로다시가야돼요. 현장이란그런거예요. 현장에서나온것은다시현장으로가

줘야지그걸가지고서울을올라오면안되는거예요.

반지하가프랜시스로부터반사기를당한적이있어요. 재작년에전화가왔어요. 문예진흥기금을반지하에내고싶다고요. '저희는 당신을만난적도없고

무슨기금을내자고파트너를하자고합니까, 못 합니다'고 했더니여러가지로얘길하는거예요. 딱 한 가지루트는워크인성이라는문화연 의프로그

램 사례발표 때 저희는 그 때 프랜시스 작업보고 굉장히 놀랬던 게 폐허가 된 재개발지역에 가서 뭐하는 줄 알아요? 망가진 공장에 가서 버려진 물건을

부셔버리고다시찢어버리는 상을찍어서작품이라고내놓은거예요다른사람들은개념적으로뭔가하는거라고이해할지모르지만저의입장에서개

같은 짓거리거든요? 그걸 작품이라고 자막 넣고 어디 외국 미술제에서 발표했던 작품이라고 떠들고 있는데 그건 아마 그 뒤의 일이 을 거예요. 전화가

왔는데 정연석씨 만나기 전에. 그래서 제가 기획안 보내주십시오 그랬더니 한 페이지짜리 메모 같은 기획안을 보내주는 거예요. '그거 가지고 어떻게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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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안됩니다.'고 했죠. 또 전화가 왔어요. 저희는 프로의 근처에 있는 사람을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프랜시스는 약간 근처에 있는 거 같아요. '당신들

믿을 순 없는데 같이 하자면 같이 해야 될 일이긴 한 것 같다. 그러니까 기획안을 과정중심의 프로세스적인 전시를 하고 발표회를 한다든지가 아니라 토

의하고같이나누는프로그램으로기획을잡는다면같이할수있다'라고그렇게합의를봤거든요, 전화상으로. 그렇게제출이된걸로알고있어요. 원래

목적했던 1000만 원 이상이안되고그래서접게된걸로알고있는데, 됐거든요? 저희한테연락한번도안왔어요. 그건 명백한사기맞죠? 그런사람이

인천에공공미술발표한다고인천에내려온다고해서꾹참았어요. 아, 선입견을갖지말자. 그리고 같이밥먹고지역답사가고올라갔는데그런얘길한

거에요. '아, 마고씨도 오래된 것에 향수가 많나봐요?'그러면서……. 빈민지역에 가서 하는 말이 '저도 재개발지역에서 저거 해봐서 좀 아는데요.' 이런

식으로얘길하는거예요. 그 빈민단체는실패한입장이라굉장히괴로워하는입장인데그러고나서서울에와서토론을했더니질문지도그렇게보내는

데다어떻게또안한다고했다가사회자와약속때문에올라와서발표를했는데, 결론을어떻게내렸냐면결국은공공적활동은제도적공공과만나지않

으면안된다, 아니면제도적으로풀어내지않으면안된다는식으로얘기를했다고들었어요. 그런 식으로자꾸개인의삶을조작적으로하는것도기분

나쁜데다저희가그것을구분못하는사회적운동을더많이할거에요. 그런데사회적운동을하는것에 해서깝죽거리면이것은단순히주먹싸움문

제가아니라아까말씀드렸던듯이다여위어가고있단말이에요.

어제피디수첩보셨나요? 파워펠리스옆에역사로연결됐다는것을피디수첩팀이굉장히중요한것을했거든요. 다른지역도다그런식이에요. 다른빈

민가도다집짓고사는사람들반이조직적으로국가에서빈민들을내돌리기식, 강제 이주한역사가계속있어요. 그럼 지금우리가빈곤해지지않고그

렇다고 프랜시스같이 이런 좁은 시각으로 공장에서 물건 만들 듯이 미술을 생각하고 그러고 나서 어떻게든지 미술인이 회의가 정책적 싸움에 도움이 되

는 자료를 확보하기위한 노력은 이해를 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삶의 태도 이야기를 꺼내는 태도에 있어서 그런 식의 태도를 내가 한번도 얘길 안 할라

고그랬는데그토론회도그렇고요.

그렇게 향을줘가지고지역미디어운동을하시는모임이있어요. 어려운상태에서저희가미리준비를해오고있었어요. 퍼블릭에센스도재정적퍼블

릭 에센스가 아니라 정말사람들이 상을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는 것, 그거 어려운 일 아니에요. 첫째 매스미디어를 바꾸면 돼요. 강압적이고 일방적이

고비현실적인매스미디어. 사람들이아이티브이를바꾸고있어요. 학교에서하는교육프로그램미디어들이거잘못된거있으면고치면돼요. 카메라한

만 있으면 자기들이 찍으면서 자기들이 소통하는 도구로 쓰면 돼요. 미디어라고 해서 미디어 아트가 아니거든요. 아주 작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벌

써 고민하고 있는데 청소년들 미디어 축제한다고 했는데 근로청소년들도 있다, 공장도 있다 했더니, 거기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어떻게 미디어 아트를

해서 인천의 문화에 도움을 줘야 될 거 아니냐……. 어디다 고 미디어 아트를 하려고요. 인천의 지하철역 하나 건너가면 바로 공장지역이에요. 근로청

소년은엄청나게많아요. 그 친구들한테미디어아트를보여주겠다고요?

김준기: 저기, 논평을 들어보고 하죠. 독일에서 베를린미술 학에서 마고가 하는 작업 같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주민참여형식의 작업들. 여름에 베를

린을 들렸다가 허름한 작은 공원에서 시민들, 유색인종들이 많았어요. 거기서 껌을 나눠주고 그 껌을 좀 씹어봐라 해서 씹으면 뱉으라고 해서 통에 담아

서 서울의 남 문 같은 것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을 봤어요. 거기서 느낀 게 뭐냐면 베를린은 작고 아담하고 지역의 현실에 유착된 예술행위들이 일어

나고있는것같다는거죠. 베를린은참일상적으로이런작고아담하고지역의현실에 착된예술행위들이많이일어나고있는것같다. 그러면, 마고가

송림동 프로젝트를 위해 600만원을 받아 혼자 생산, 디자인마무리를 하고 육체적으로 피곤할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의미에서는 제도와 공공미술활

동이분명히연관이있겠죠. 류희동씨가이런독일의공공미술, 현장미술, 주민미술시스템이라든지, 마고에 한코멘트라든지코멘트를해주셨으면좋

겠어요.

류희동: 저는 지금독일베를린 학에재학중이에요. 저는 지금두가지를병행하고있는데, 제가 다니는학교는기존의방식처럼교수의스튜디오에서

그림을그리는것이아니라, 부분 주로하는일이베를린시에서나온돈을가지고프로젝트를만들어서나도돈을받고, 재료비를받고주민들과만나

는루트를찾는일이에요. 제가한프로젝트는 3개로양로원프로젝트, 거리미술프로젝트, 불량학생프로젝트에요. 제가한국에서학교다닐때, 데모를해

본적이거의없고, 어떤 제도권에 한반감도그리많지않았어요. 제 친구들은많이잡혀가고그러는데, 사실 전 부르주아가 아니었지만, 그런 것에 비

해제스스로거기에 해판단할수없었고, 그에 한관심도좀적었어요.

그런상태에서독일에서그런프로젝트를하는데, (한국 상을모르는상황이라고했을때)일단독일은반사회주의, 반 민주주의라고생각하면돼요. 독일

은 모든 시스템 구축을 단하게 해 놓았는데, 모든 것이 데이터 구축을 통해 이뤄져요. 사용자가 반론이 일어나지 않게끔 미리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그

중 하나가 문화정치인데, 문화정치는 재원이 정해 놓은 세금으로 여러 분야에 해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뤄지죠.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해

요. 그래서선생님과함께돈을구상하고시안을짜는데보통 4개월이걸려요. 돈을따는데에는진행방식에따라 6개월에서 1년이걸려요. 10회 이상의

토의와 진행, 끝난 후 다큐멘터리를 진행하고 또 10회 이상의 토론을 해요. 토론은 하루 종일 진행되는데, 저는 독일어를 잘 못하지만, 그들의 끝없는 토

론의힘은열정에서비롯되는것이라생각해요. 4일 동안토론을하면, 멍해져요. 중요한것은제도화된상태에서우리가손쉽게할수있는것인데, 이전

에누가프로젝트/다큐멘터리를진행했다면그에 한데이터를손쉽게구할수있어요. 모든데이터화는투명성을갖고있죠.

이와 더불어 좋았던 것은 미술이라는 것이 독일의 경우, 박물관의 종류가 정말 다양해요. 이런 박물관은 한국처럼 제도의 상징이라는 박물관 개념과 사

뭇 다르다는 거예요. 제가 최근에 느낀 것은 미술이 보다 현장성, 지역성을 가지고 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죠. 제가 회화를 전공하고

학에있으면서너무나충격을받아공공미술에 한관심이생기고, 공공미술이라는 것이축제로다가갈것인지, 역사적인맥락, 지역 발전적인것, 낙

후된 것의 발전으로 다갈 갈 것인지 편협하거나 단순하지 않고 방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저는 반지하라는 팀이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어요.

저는 플라잉시티정도만알고있었고, 사실 우리가알고있는공공미술이라고하면예전의색깔론으로만설명할수있는것이라고생각했기때문이에요.

저는 그래서 그렇지 않은 상태가 될수도 있다는것을 반 로 보게 된거죠. 이것(공공미술)이 정말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고 감히 말

하건 , 앞으로미술의가장큰방향이라고생각해요. 그렇다고기존의미술관이없어지는것은아니에요. 기존의미술관과공존해야한다는거죠.

김준기: 김연주씨는 ACS라는곳이자본주의라는시스템안에서미술의공공성을찾겠다고하는데살림살이는괜찮으세요?

김연주: 살림살이는 어려워지고 있죠. 아마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은 플라잉시티와 마고 선생님의 중간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은 마고 선생님과 같

은프로젝트와같지만, 리회사라는이유로중간자적역할만을하고있어요. 기본적으로저희가하는일은이런작업, 예를들어전시기획을할때, 보통

사람들이 즐겁게 참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행사에 꼭 참가해요. 어떤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작가들이 전시를 함과 동시에, 아

이들이그림을직접그리는등일반사람들이행사에꼭참석해요.

김준기: 참고로 ACS 표 박삼철은훌륭한사람이에요. 주민참여형프로젝트로 "십만의 꿈"이라는 프로젝트가있었어요. 파주의 비닐하우스에 공간구성

을 하고, 통일에 관한 주제로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 십만 장을 모으겠다는 야심에 찬 목표로 기획된 프로젝트죠. 국내외 아이들의 통일 관련 주제들이

수도 없이 날아왔어요. 박삼철은 일간 스포츠 기자, 서울 출신의 엘리트거든요. 그날 박삼철은 십만 장의 엽서종이를 종이 작두로 잘라 만드는 작업을

하고있었어요. 그래서 엽서의가장자리를자르고있는그전시기획자의비효율, 역으로 이야기하면성실함, 진심을 보았다는거죠. 하물며 돈벌겠다고

하는사람이그렇게하는데, 이렇게돈도안되는일을드라마고는지역에서엄청나게하고있는거예요. 계속이런식으로전시를할것을생각하니까가

슴이아프기도해요. 요는 아까부터제도와비제도이야기를계속하고있잖아요. 나는 마고를돕는사람, 마고의 서포터라는이야기를하고싶은거예요.

그래서제도를충분히활용하고제도와비제도, 현장과전시장, 현장과 담론공간등과같은경계를넘나들며계속잘해주길바라면서, 김연주씨에게마

이크를다시넘기고자합니다.

김연주: 그래서 이런 작업을 하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요. 우리는 리단체이지만 자금이 없는 관계로 아까 김준기 실장님이 말씀하신바와 같이

모든큐레이터가종이를자르는그런일들을하고있어요.(웃음)

드라마고: 지금 같은상황에서, 우리는 머릿속에그림을그려요. 이것이 자꾸몇가지로정리되는것이좋다고생각하진않아요. 열려있는것을공장방식

으로 정리하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실패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부터는 내가 간단하게 준비한 자료(프로젝트 홍보물)를 보면서 이야기했으

면해요.

김준기: 그전에아까 1층에서이상림작가의작품에소위 '시체놀이'라고해서직접몸으로체험한모습을보여준한학생의이야기를들어볼까요?

관객: 저는 이 전시를 오게 된 이유자체가 작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옛날처럼 전시장에 그려진 결과물 안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

에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오게 되었어요. 작업실을 공유한다는 것은 작가가 소통을 위해서 자신의 내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여기에 관심

이있어서왔는데, 마침관람객이참여할수있는작품이이상림작가와그룹반지하의작품이있었어요. 그래서저도한참동안앉아서작품을보고, 작품

의이미지를흙으로만들어봤죠. 저는그림에관심이있고그림을하는사람이기때문에그럴수도있어요. 저는사람들이같이한다는것이미술이나가

야 할 방향이라 생각했고 그런 점에서 작품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거기에 플러스알파로 사람들의 삶과 함께한다는 것에서 해 굉장히 깊이 인상을

받았던것같아요. 제가아직 학교 1학년이고, 하고싶은것도많지만, 이런분야가있다는것에 해굉장히인상이깊었어요.

드라마고: 짧게답변을할수있을것같아요. 혹시작업을하시다가참여적인형태의예술이아니라본인의개인적인작업을하더라도그런것에 한이

해, 염려를 갖고있으면그것만으로도같이살아가는구조가된다고생각해요. 때때로자기것을지키기위해다른것들을배척하는경우가있어요. 그렇

게하지만않는다면지금의말씀이정말감사한말씀이라생각해요.

김준기: 독일은 공공미술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요. 근데 한국엔 없거든요. 우리가 소위 선진국의 문화를 자꾸 보고 배우잖아요. 이유는 잘 되어 있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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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템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도입을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모델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유럽사

회의 공공시스템들을 앞으로 많이 도입하게 될 거예요. 참여정부가 제일 강조하고 있는 자치와 분권은 독일사회가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

요. 미술 시스템도공공적인시스템을앞으로만들어나갈거고. 또 이러한작가들도많아요. 미술을 공부하고있는학생들은제도권미술, 아카데미즘이

이러한 미술에 해 이야기 하지 않고, 또한 80년 민중미술에 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여러 경로로 가까운우리 과거에 어떤 일들이있었고, 동시

에 인사동이 아닌 지역에 어떤 미술이 있었는가,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여러 경로로 미술의 공공성과 그 시스템에 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관심 있게 봐

야할거에요. 또한가까운세 와함께공감 를만들어나가면서세 나름의공공성, 미술언어를만들어나가야할거구요. 마고는어떻게보면나이는

안 들었지만, 전시장미술, 현장미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80년 감수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마고는 앞으로 80년 의 감성을

현재형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작가로써, 기획자로써 계속 고민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일 형태든 심정적이든, 지역이든 이러한 각자의 커뮤니티에서

다양한공공미술의논의와실천이있을거예요.

미술을전공하지않은입장에서자신이생각했던미술과마고식의미술의차이라든지, 작업실리포트전시에관한점이라든지코멘트를부탁합니다.

관객: 솔직한 심정으로 감명 깊게 봤어요. 하지만 뒤돌아서 까먹게 돼요. 작품을 제작할 때 '왜 하게 되었는가?'와 같은 목적의식, 처음의 제작의도를 알

고 싶고, 또 하나는 이 작업을 통해 느끼게 된 무언가에 해 작품을 감상할 때는 느꼈지만, 지금 생각하면 과연 무엇이 변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거든요. 진행하신 프로젝트가 그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소통되고 있나요? 제도권, 비 제도권은 저도 어려워서 모르겠어요. 지역주민들도 모를 거예

요. 중요한건작가의식이라생각하는데, 이거하나만이라도뚜렷하게알고가고싶어요.

드라마고: 명료한 질문이에요. 사례적으로이야기하자면, 오늘의이야기는한정적인이야기만담고있는거예요. 저의 생각은굉장히광범위하지만정리

해서이야기하자면, 제가 살아가고있는사회에제가불만이있다는것이고, 그 사회에 한 안적사회를꿈꾸는거예요. '이 사회가 아닌다른사회가

있을지않을까'라는 꿈은나만꾸는것이아니며, 그런 꿈을실천해나가기위해서는혼자서는할수없었기때문에단체가필요했고, 그래서반지하라는

그룹이생기게되고또한지역주민이필요했던거죠. 그들은 상이아니라, 묶여져서해가는일들은 '제도비제도이야기를하면헷갈리게되는것이결

국그 상이주체냐'라는이런이야기가처음에도많이나왔는데, 그것에서벗어나는건그냥각기입장이다다르고, 다른역할을하고개인적으로살아

가면서공동적 안적사회를위한꿈을실천해나가는거예요. 그래서관련있는사람들과계속적으로만나면서후원회를구축해하고, 후속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주민들과도 만나면서 지금의 문제에 해 토의하고 재개발 문제관해 토의하고 재개발과 관련된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하고있어요.

개인을 놓고 보면, 저도 제도적인 부분에 먹고사는 문제로 여러 번 개입될 수밖에 없었어요. 저도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이번 달 집세를 막는 것도 시급

한 상황이에요. 주변사람들에게도 빌릴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들이 땅 보상 문제를 논의할 때 가서 앉아있는 이유는, 그 분들은 문화라

는기반이없다는거예요. 하지만실제로문화는있고, 동네 역사를기록하는사진을찍으시는분들이 3~4분 계세요. 그들이찍은이미지는그안에이미

텍스트가들어있기때문에역사가되는거죠. 쉽게 정리하면지난번에이야기했듯이정체성, 아이덴티티를여러의미로쓰지말자, 즉 저의 입장에서아

이덴티티는자기동일성으로생각해요. 다른 사람이다른사람인것은선명하게우리가이해하면되는것이아닌가요? 그러면의도적으로개념적으로제

도적으로 판단해버리는 이러한 거품들과 수많은 안개 정국을 벗어던지면, 무언가 길을 찾을 수 있는 출발점이라 생각하며, 그 출발점에서 만나는 모든

작업과생활은사실엄청나게많을수밖에없어요.

저는 지역에서 컴퓨터가 고장 나면 고쳐주러 가고, 포스터를 만들어야 하면 만들러 가야 해요. 이런 거거든요. 이렇게 살면서 내가 돈을 받고 그런 것은

아니에요. 지금도 제가 불편함을 느끼듯, 제도적인 부분은 관여할 거예요. 그런데 제도에서 예를 들어 비용을 선뜻 준다던지, 토론회 입장에서 당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한다던지 하는 것은 언뜻 보면 나누는 듯하지만 이것은 인력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우리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없는 입장에서 다른

장치들이그것을 신담는구조, 예를들어신문의기사등, 이것들을보면뭔가는꼭잘못나와있는것이있어요. 저는이것들을인정은해요. 그것들도

나름 로의삶, 그 결과물이기때문이죠. 하지만 무언가를놓치는부분은정말아쉬워요. 이것이 방금질문하신각각의생활의문제가아니라, 이것은 삶

을살아가는기본적인인간의태도이며, 제 생각에는원시적, 동시 적인구분, 종교적, 장르적구분도없는것이거든요. 그냥자신의삶에 한선명함을

찾아내가는 과정이 동시 에 이론이 많다는 점을 이해하고, 다양한 사람들과도 만나고, 회화의 드로잉, 스케치가 디자인도 활용할 수 있고, 사례발표를

통해 모델을 찾아내는 것(그 예로 미국식 위인, 정체성 없는 가들을 찬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에요. 우리나라는 위인들이 모델로 설정이 되어 예술가

들이 정체성 없이 살아가는 세상, 좀비들이 사는 세상 같아요.)이 조금 개선이 된다면 좋은 거죠.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은 두려운 일이에요. 직업도 버려

야하고, 교직과같은제도적장치도버려야하고, 돈이라는장치도세심하게조절해야해요. 교직을버린것은자랑거리가아니라바로실천인거예요. 주

체냐 상이냐를 논하는 것은 헛짓을 하는 거예요. 현장은 실천을 통해 가서 몸으로 부딪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겪어야 그것이 현장이 되는 것이지,

플라잉시티, 포럼A와같이갑론을박하는것이아니거든요.

관객: 저는 홍익 판화과에 다니는 학생인데요, 과 특성상은 좋은 학과는아니지만, 학교로 보면 좋다고하는 학교에요. 과 자체의 문제도있고, 다른 과

들과의교류문제도있어요. 저는 홍 라는틀에서벗어나지못하고있는것같아요. 3학년이 되면서삶과미술이떨어질수없다는것에 해고민을많

이 하게 되었어요. 제가 지금 궁금한 것은 제가 지향하는 것, 현장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과는 제가 지향하는 것과 완전히 틀리거든요. 그럼에

도제가여기있는상황은어떻게보면자의일수도있겠지만, 저는 그안에서라도담론이만들어져야한다고생각해요. 이런 부분에 해어떻게생각하

세요?

드라마고: 그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근데 이제 홍 를 다니시는 분들이 안적으로 만든 공간과 사실은 힘든 부분이거든요. 왜냐면 서울 같은 경

우에도 옛날에 서울 총 동문이라는 것을 발표를 하면서 서울 가 왜 문제인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가를 토론회에서 발

표한적이있었어요. 그러면서울 사람들이어떻게할까요? 홍 뿐 만아니라서울 사람들이다른현장으로가서활동한다는것은그런자기기반이

있으면 바로 가서 활동하는 거예요. 자기 공간이 있다든지 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엔 자기 독립선상에서 보면 저는 홍 다니시는 분들이 홍 나

서울 가만드는왜곡된미술역사를제자리로돌려놓는내부적운동들이필요하다고보고요. 자기의허울들. 그것을벗어던지고같이찾아가는그런게

필요한 것 같은데. 자기를 부정하고 긍정하는 것 사이에서 왔다, 갔다할게 아니라 현재의 조건에서 찾지 말고 자신의 태도 있잖아요, 불안하거나 고치고

싶은일들. 그것들을실천해가는과정. 자기작업속에포함시키는거죠.

관객: 그게 제가 고민안할 수가 없는 게, 이미 제가 홍 에 발을 들여놨다는 거. 예를 들면 과에 문제가 많아요. 판화라는 장르에 해서 1세 2세 가

잘못 받아들여왔고 교육이 그런 식으로 계속 돼서 문제가 커지고 있는데, 제가 여기서 그런 담론들을 만들거나 뜻이 같이 있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해도

결과적으로제가밖에나왔을때는홍 라는, 공감을하면서도어떻게해야할까고민이많이되는, 담론을형성하는것자체는문제가안되는데밖에나

왔을 때는 제가 거기 또 머물지 못한다는 상황에 한 생각이 들어요. '이거 아니다!' 라고 박차고 나온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이거뭔가만들자앞으로나가보자했을때걷다보면다시그자리에와있는…….그 부분은.

드라마고: 저한테 욕을 하시는 거 같은데요? 저는 학교에서 해결 못 했고요, 제도적인 거에서도 해결을 못했기에 비제도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요. 그럼

저도직무유기인가요? 그담에그 학을그렇게그만두신분이여기계시지만, 그 얘길해주시면좋을텐데, 어려운부탁이겠지만, 그거는사실은…….

관객: 그 부분에서 '직무유기다'라고판단할수없는게요, 저 같은경우는 '이게아니다'라고하지만계속가고있어요.

드라마고: 바로그지점이에요. 학교만홍 를다니는거지, 제가왜홍 사람으로살고있고홍 의역사에눌려있어야되냐는거예요. 아주쉽게생각하

면돼요. 저는 그냥여러개학교중에서제가선택한학교, 홍 가 잘났으면전지구에서얼마나잘났을거며홍 역사가얼마나중요하면제역사와맞

먹겠냐는거예요. 그렇진않다는거예요.

관객: 그 부분을 알지만 제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보면 제 역사와 같이 맞물려진다고 어우러진다고 보거든요. 이게 아니라고 버린다고 해서 버림받은 게

죽는다고생각하지않아요. 그건그나름 로갈거구요.

드라마고: 지금처럼 얘기하면 맞아요. 그게 우리 현실인데. 그런 걸 해결하려면 그런 고민들을 엮어서 관통하는 내 삶의 고민이 우선시 되는. 예를 들어

학교생활이나 술자리나 본인이 생각하는 홍 나 이걸 너무 안고 있어서 그런 거거든요. 저는 차라리 학교를 계속 다니냐, 그만 두냐의 문제가 아니라 거

기서좀벗어나야되지않냐. 다른 생각을많이해야되고다른걸많이공부해야되고더경험해야되는시간에그거보다는지금여길관통하는그걸못

하고있어요.

그렇다면 제안하고 싶은 건 인류문화가 그렇거든요? 주류적인 현상. 개인도 마찬가지에요. 제 삶에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있어요. 제 삶의 주류가 제

회사생활에만 있냐, 제 가족에게만 있냐, 여기 빠져 있잖아요? 제 사고의 비주류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거예요. 그럼 자신한테도 도움이 안돼요. 먹고 사

는덴도움이되겠지만, 문화나예술의사회적문제를해결하는데에는아무도움이안돼는거예요. 왜냐면사회체계자체가역학관계로구성되어있는데

나스스로는그역학관계속에서하나의소우주다. 나 자체도복잡하고사회자체도복잡하다. 그런데내가사회가주는어떤것에껴있으면서어떤걸사

고하고판단하고해보겠다는것은실제로사실은불가능해? 불가능하다는거는효과면에서, 접근면에서. 그래서다른생각을하고싶으면요, 홍 빼고

다른 안학교. 미술 빼고 다른 안 미술, 예를 들어 회화를 전공했으면 디자인이랄지 컴퓨터나 출판의 장치가 같이 있으면 전이돼서 출판미술이라고

하는 새로운 걸 만든다던지. 다른 자원이 있어야 되거든요. 내가 어떤 회화라는 장치나 그런 거에 빠져있으면 , 미술제도만 보면 내가 안적인 걸 하고

싶으면 다른 제도를 봐야 해요. 다른 제도.‘나는 화가이면서 가난한 사람의 문제에 공감한다.’그러면 그런…….‘나는 미술을 하면서도 음악을 좋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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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그러면 음악적 마인드를 같이 가져가는 거죠. 그 선택을 누가 하겠어요? 본인이 하는 거죠. 본인이 정체성 찾아가면서. 그런데 말씀하신 현상이 왜

생기냐면 홍 라는 장치가 충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향을 주고 있는 장치이기 때문에 개인이 벗어나기가 어

려운거예요. 차라리지방 출신들은더벗어나기가쉽죠. 자신의생각, 활동그런게너무좋았어요. 아 이게서울의 학생들과지방 학생들과의차이

점이구나! 어차피학교가나한테서비스를주지않기때문에어드밴티지를주지않기때문에.

김준기: 그 질문은홍 안에갇혀있는질문으로들리지만나중엔마고가고민하고있는제도와비제도같은걸로바뀌겠죠. 왜냐면아직학생이니까.

관객: 저도 밖에 한 고민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반지하라는 운동집단도 인천이라는 지역성에 맞물려 같이 움직이잖아요. 저 자신이 술자리나 선생님

이말한그런건이미벗었어요. 하지만그렇다고해서홍 생을벗어난건아직아니라는거죠. 인천이라는지역버릴수없잖아요. 인천제도가나쁘다고

해서버릴수없듯이저고학교를버린다는건직무유기라고생각하거든요. 제가 고민하는것은밖엘나왔을때저는맴돌았다는것밖에안된다는거예

요.

김준기: 직무는 누군가가 당신한테 주는 게 직무고, 스스로 홍 가 당신을 선택한 게 아니라 당신이 홍 를 선택한거니까 직무유기라는 말은 성립 불가

능하죠.

관객: 제가말한직무유기는자기자신에 한직무유기란말이에요.

김준기: 따라서적어도일년정도후는처절하게배신당하면서 H라는것이당신에게무슨의미가있는가를생각하게될거예요.

드라마고: 홍 를빼면뭐가남아요?

관객: 저는홍 를빼고도하고자하는것들이있기때문에그건걱정안해요.

드라마고: 거기서홍 다니는친구들빼고다하면?

관객: 그건상관없죠. 그 부분에서완전히버릴순없다는거죠.

김준기: 버리려고해서버려지는것도아니고아주자연스럽게물과공기처럼스스로원하지않아도이마에 H자를찍고다니게될거예요.

드라마고: 지금 말이에요. H라는 현장에서 놀고 계신 거예요. H상황이라고 볼 수 있죠. 고 지점을 존중하고 실천적 방법을 프로세스적으로 과정은 과정

으로써. 졸업하고나서홍 가무슨상관이있겠어요? 그때는다른삶을살고있는데.

관객: 현장미술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왔잖아요. 미술관 안으로 들어 왔을 때 지금 반지하 같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마고씨의 작품이 현장에 있어야 될

미술이어떻게여기로들어와서있는지궁금하고요, 또 하나기존의갤러리에있던작품이아까말씀하셨던데로소통에있어서작품의내용은바뀔지라

도이형식에있어서관객들과소통하기위해서는어떤방법이필요한지.

드라마고: 현장의 것의 아주 부분만 갖고 온 거예요. 축약하고 함축해서 표성을 띄는 게 아니라 그냥 부분만 와 있고 또 현장이란 게 장소, 사람, 시간

성, 운 시스템, 미술계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여기 전시 되어 있는 것은 부분이 와있으면서 반지하 이름을 빼고 저만 와 있는 것은 저만 혼자 했어요. 왜

냐면 평소엔 도와주거든요. 공동작업으로 해서 공공집단이기 때문에. 그런데 미술계라는 데에 다른 멤버들이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와서 한다는 게 옳

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맞닥뜨려서 논의해야 될게 너무 많고 개념이 안통하고 이해가 안 된 상탠데 그냥 도와주세요라고 해서 같이 디스플레이하고, '반

지하입니다.'고 해버리면감당이안되거든요. 하여간부분만온거구요, 작업실리포트전이라는것은분명히프로세스적인부분이담겨져있어야된다.

그런데그프로세스가계속부동적인운동성을보여주는작업을보여주고싶겠지만, 그것이안된다면그과정의부분은중간적인입장이나아니면참여

적인 부분이 더 진행이 되고 해야 되지 않겠냐 해서, 지금 기존에 있던 것들을 몇 가지 가져왔고 바닥에다 그림 그릴 수 있게끔 해놨고……. 갤러리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 보면 공공미술의 논란이 한 두 해는 아니에요. 적어도 삼, 사년 정도. 그것 때문에 저도 일년 반 정도 전에 인하 학교에서 수업특강을

했었는데, 그때 공공미술얘기를 했었는데 미술관의 문제는 미술시스템이나 미술관에 향을 주는 사람들의 사고, 공공미술을 하기에는 안 맞는 모양들.

19세기 교실에 20세기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어요. 모양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교육제도도 얘기하는 거죠. 20세기 선생님들은 동시 에

살면서아이들을어떻게가르칠까고민하는현장에있는사람들. 그런데그선생님이아이들한테현장을안가르쳐줘요. 그러니까현장의실천성은여러

가지를할수밖에없는게요. 저희 반지하의활동이여러가지가있다고했잖아요. 같이 갈수밖에없는게그중에어느거만하면이게 표성을띄거나

함축적이 돼버리거든요. 이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한국미술은 갤러리에서 어떤 짓들을 했냐면 맨 처음에는 회화중심의 전시, 요즘에도 그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실천성이 상실되어버리고 나머지 작품만 남아버리는 경우가 거기 있고요. 그 다음에 60년 말에 있었던 아방가르드의 설치적 개념, 퍼포먼

스…….그때도 그것은 미술관에서만 꼭 해결되지 않는데 작가들이 미술관에서 해결하려 했던 거죠. 지금으로 보면 왜 지역미술을 발표하는데 서울에서

발표를하느냐, 그것도왜풀갤러리에서하느냐, 그게적정하냐. 그리고전풀갤러리와연관이많이된사람인데졸업하고첫번째전시를하고. 근데발

표하기전날제가몸이안좋았어요. 밖에 나가서쉴데를찾아막길을헤맸거든요? 기본적으로얘기를충분히할수있는조건을만들어준다던지최소

한 몸이 아파서 나가버리지 않도록 관객들을 좀 따뜻하게 해준다던지 여러 가지 배려가 돼야하는데, 복사도 바로 직전에 하고 질문도 제약을 둬버리고

이건종합적으로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종합적인 목적의동원이거든요? 각각의 장소가결합돼서하나의일관성을 갖고있고사람과같거든요? 이 사

람이 술 먹을 때도 있고 주정부릴 때도 있고 착한 짓 할 때도 있고 나쁜 짓 할 때도 있거든요. 우리는 이 사람을 총체적으로 봐야 된단 말이에요. 이 사람

이 정말 다른 사람을 위해서 건설적으로 된단 얘기는 자신의 모습이 일반성속에서 총체적으로 안적인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다 학생이면 학만 나

오면되는게아니라학교가끝나고나도 안적생각을만들어가고 안적사회가미래를바꿀수있듯이미술관도마찬가지에요미술관은공간적인부

분이거든요. 공간적인 부분인데 공간적인 부분에만 너무 매몰이 되다보니까 시간적인 그쪽에 우리가 사람들의 삶에 시간이라는 역사성, 논픽션 드라마

이런것들에 한주변적인요구들.

'서울에 있으니까 공간적인 거야, 그냥 서울을 담으면 돼 아니면 전시공간이니까 회화가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리고 여기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모이니까토론하는게당연하지, 그래서여기는담론을생산하는지역이야, 그리고여기는서울제도와가까우니까여기서 안을만들면제도를바꿀수

있을거야' 라고 하는착각, 오만, 그리고 총체성이아니에요. 우리나라공공미술에 한총체성에는아주빈약한태도를갖고있으면서자신이공공미술

의 총체성을 옹위하고 있다는 태도 이런 것들이 실제로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보조, 디스플레이, 자료 수집. 그런데 이 기능들이 동시에 돼야 미술관이

기능할수있거든요. 그죠? 사람들이오는데뭣도모르고작품보고 '아, 좋네, 나쁘네.' 하고갖는미술관의무책임함. 그리고디스플레이할때그냥거는

게 아니라 참여하면서 앉아서 쉴 수 있는 구조, 그림을 물건처럼 사서 보관하는 보존이 아니라 이 작품의 방식을 적정하게 유통시키고……. 그래서 필요

한게소식지같은건데존중해주는태도로…….하여튼적정한장치를갖고있는미술관이어야되고, 그 미술관은작고힘이없으면힘이없는것과차원

이맞는것, 그죠? 그런데 미술관이 하나만관련돼서 회화가독보적이거나 언론이나 이론과 관련된 일을 해야 된다면, 그럼 나머지 애들이다 죽어요. 그

런현상을삼투압이라고해야되나. 공공적특성이없으면어느하나는부각되고어느하나는죽어요.

지금의 미술관들이 공공미술이라고 할 수 없는 게 현장에 해서 실천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 논의가 되거나 최소한 온 사람들에게 자료를 미리 챙겨

주거나 따뜻하게 해주는 개념, 디자인에 오류가 있으면 순간순간 바꾸는 융통성, 즉흥성. 시간이 부족해도 화를 더 하게 한다던지. 인사동에서는 사교

클럽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상당히 적용이 돼야 하고 그담에 지역의 문제에서도 저희가 왜 돈의 문제를 안 하냐면 이념적으로는 반자본주의고 사회주의

적노선이긴한데그것보다더중요한건그런태도를안갖고있으면활동을할수가없더라고요. 예를 들어돈을받아가면서당연히예술가는초조해있

어야 해요.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돈이 없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걸 안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제도적인 걸 해야 해! 하고 딱 엮이잖아요?

비제도적인게안돼요.

그래서 아까 무섭다고 얘기한 게 서울에 한 일년 동안 안 올라오다가 최근에 올라오면서 왜 지역과 여러 가지 말다툼이 생기냐면 총체적으로 안을 갖

고올라온게아니라요, 아까 전시부분만갖고올라왔는데요, 그런 것을 통해서는공공성이라는 말이제도랑같지않냐, 공공적 기금을갖고하냐, 공공

적 장소에서 하냐가 아니에요. 공공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총체성, 태도라든지, 철학이라든지, 돈이라는 장치라든지, 제도라는 장치라든지, 회화가 됐던,

설치가 됐던, 공간을 다루던 시간을 다루던 그런 거잖아요? 상도 미술이고 돈이 많이 있이 하면 좋은 미술이고 돈이 없이 하면 미술이 아니고. 인천에

서 무슨 얘기가 있었는지 아세요? 너희 반지하는 아마추어다, 당신 입장에서 아마추어라고 하는 건 맞을지모른다. 하지만 왜 싸워야하냐, 그게 왜 필요

하냐, 결국에는 당신하고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당신이 아마추어라고 한다고 당신한테 눌릴지 알아? 이런 거거든요? 우리는 미술만 걸치고 있는 게

아니기때문에…….

김준기: 카메라와언론이마고를소개를해요. 증폭시키는거죠. 여기 와서보는사람이 100명이라면매스미디어로보는사람은 1000명인 거죠. '마고이

즘'이 언로에 소개될 기회가 없었잖아요. 공공미술에 관한 공유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계기로 생각

한다면충분히전시장에온것도의미가있을것같고미술관을사교의장이라고얘기했죠. 저는되게좋아요. 자, 오늘함께자리해주신관객여러분께감

사드리고, 긴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 해주신 마고 작가에게도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리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좀더 나아간 논의는 이 후 시간에 들어

보도록하죠. 감사합니다.

Page 69: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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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10:백기영

2004.02.12 목요일 pm.04:00

김준기: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김준기라고 합니다. 오늘은 백기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미술인 회의 사무처장을 겸임

하시면서활발한작업활동을펼치고계시는분이에요. 그럼평소작업에 한이야기, 이번전시에관한이야기등으로 화를시작하겠습니다.

백기 : 예, 방금 소개받은백기 이라고 합니다. 작업을 하면서제가고민했던부분과현재작업에 한이야기를시작으로말씀드리겠습니다. 음. 저는

어떤 메타포들을 찾아내려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시작했던 게 이젠 '가든 엔 이미그레이션 프로젝트'라고 정원 이주의 프로젝트예요. 그러

니까 독일에서 30년 동안 생활하고 계신 독일에 광부로 가셔서, 1970년 독일에 광부로 가셔서 30년간 독일에 살면서 너무나 고향에 한 그리움, 그

런 것들을잊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시던 한광부가한국에 딱들어와 보니까.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보니까 고향은완전히 오염되어 가지고, 파괴되

어가지고, 다 사라지고. 옛것이라고는찾아볼수가없고, 모두그냥동네가파랑색기와집, 빨강색기와집으로다바뀌면서도새마을운동, 새로운것, 뭐

가 달라졌다, 좋아졌다, 개발이라는이름으로다바뀌면서옛것은다사라져버리는. 이젠 이런상황들을직면하면서이분이자기의고향을완전히잃어

버린 거죠.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고향을 이 분은 그냥 잃어버리고 허탈해 버리는 게 아니라, 독일 땅에다가 정원을 만듦으로써. 거기다 무궁화 꽃을 갖

다가심고, 한국에서씨앗을갖다가심고, 수십 종의꽃들로아름다운정원을꾸며놓고거기에서고향을생각하고상상하면서, 그 외로움을달래는적극

적인프로젝트를그작업으로삼았는데, 그 중에한장면이에요.

한 장면은그분과제가정원일을한제작년여름내내거의그분정원에서그분일을도와주면서지냈는데, 그때찍은거예요. 그 분이꽃을심으면어

떻게해야되고, 이쪽저기에서는무슨꽃이나오는데, 저거는바닥의부분이얼마나높게나오고, 올해는저쪽사과나무가과일이많이맺히고……. 되게

일상적인 얘기들인데, 그냥 농사지으면서 밭일 하면서 하는 얘기들을 담은 것이고요. 그 중에 한쪽 측면은 이제 비가 오는 날 그 분과 그 정원의 처마 끝

에 앉아서 그 분이 자기 얘기를 해요. 한 20분 동안. 되게 자기 독백적인 얘기를 하는데. 엄청나게 진실하면서도 정말 가슴 뭉클하게 하는 그런 디아스포

라의 정체성, 예를 들면 자기의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까만 머리 손자를 안아보는 것이라는 것. 자기 아들이 2세들이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한국 아이를

낳았으면좋겠다는고민을얘기를하는것으로이 상이끝나는데, 이제 이프로젝트처럼이프로젝트에등장하는꽃들같은것을보면되게예뻐요. 화

사하고, 나무들도보면화사한데, 사실그밑은주로자막으로처리, 전부다자막으로처리되었거든요. 그 분이하는얘기들, 육성을전부다자막으로만

처리하고, 그 분의 목소리, 애잔한 목소리. 독백이 담겨있는이야기들만잔잔하게흘러져나오는데. 꽃이 아름다운꽃을클로즈업시키면 시킬수록, 그 분

의 이야기는훨씬더어떻게보면애절한그사연들이담겨있는경우가있고. 또 뭐 이런 비되는구조들같은것들도맛볼수있게만든 상입니다. 이

것이조흥갤러리에서진행되었던 상작업들이고요.

이 슬라이드 인스톨레이션은 그 분 정원에서 바닥바닥 구석구석에서 자라는 풀들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상 슬라이드 작업입니다. 요 작업을 진행하는

시기에 같이 했던 작업 중 하나가 제가 거기에는 정원예술가협회라고 정원협회가 있는데. 협회에서 정원예술축제가 있어서 초 를 받았어요. 그래서 작

업을 했던 것이 독일 할머니 텃밭을빌렸어요. 텃밭을 빌려가지고, 할머니들한테 요청을한 게, 텃밭에 절 비료를 주지 마시고, 그냥 잡초가있는 로,

그 로 두세요. 그럼 제가 했었던 일이한국에서 씨앗 22종류를 갖다가 어떻게얻어다가 되는 로 파종을했어요. 그럼 이젠 거기에 자라고 있었던이미

자라고 있었던잡초들이 있을 거고. 거기 그러다 보니까씨가 떨어져 가지고, 그 사이에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자라나는 놈이 있고, 죽은 놈들이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할머니가 보더니 저기 싹이 나오고, 저기 싹이 나오고, 싹이 나오는 게 보아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에다 막 표시를 해놓는 거야. 내가 물

주러 가보면 막 표시해 놓은 거야.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 예술이라고 하는 컨셉을 들어보니까 재미있는 거 같고, 막 애써서 저보다 열심히 가꾸시더라고

요. 그런데저에게있어서그구분이라는게별로중요하지않았어요. 왜냐하면어떻게보면이건어떤메타포적인거거든요. 어떤 비유적인의미를가지

고있는거예요. 한국씨앗이가지고있는어떤문화가혼성된다는. 비록거기서식물이자라는거지만. 문화가혼성되는사람들의세계의변화, 사회의변

화를갖다가비유하는거거든요, 이 작품은. 그렇기때문에어떤인위적인부분이란것이필요없이그안에뿌려졌어요. 그랬더니옥수수같은비슷한것

들은 진짜 크기 커가지고 막 자라요. 또 상추 같은 뭐어떤 거는 그냥 막자라다가, 빨리 자라는 풀그늘 같은데있게 되면 죽어버려요. 거기서, 그래서 나

중에가보면뿌렸는데, 제가도 체뭘뿌렸는지도모르겠고, 어떤게한국씨앗인지도모를정도로다뒤섞여버린, 하나의그냥아름다운화원이되는거

예요. 그냥 모르는사람이 가서 꽃밭을 보기에는, '아이고' 이게 그냥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르겠어요. 단지 그 할머니와 제가 그예술행위를 한

제가 그리고 그 전시 중간에 왔던 사람들이 그 푯말을 읽었으면, '아, 여기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고, 그래서 나온 상황이구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

죠.

그러니까어떻게보면제가그다음부터관심을갖게된것은식물예술, 죽어버리는예술, 뭐 이작업해서제전시때도평론을쓰신한분글밑에리플이

달렸는데. 이 작업이, 예술이뭐냐는거죠. 뭐 사진작업이라고얘기를하면, 이게사진작업이라고사진찍는사람이에요. 저보고아까도인터뷰하는사람

이 '사진 찍는사람이에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요.‘내가 사진찍는사람인가?’근데사진찍는사람의일이뭔지를잘, 어떻게 보면하나의매체로구

분하면저는제게있어서작업은풀이예요. 풀 하나의왔다가그냥죽어버리는풀이예요. 그러니까제가그쪽에자꾸관심을갖기시작한것은어떤이런

변화가있었던거같아요.

제가 아까 그 종이로 만든 화분에서 죽어버린 화분에서 나타난 경우들 때문에 작업했겠지만, 왜 제가 거기에, 이런 거에 메타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가

하면 인간도 동시에 아까 나뭇잎에서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는 질문을 던졌었거든요. 인간도 동시에 풀처럼 한번 왔다가 사라져 가는 존재라고

요. 그런 거가 더 강하게저한테오기때문이라는 거죠. 이게 요번에다른기획사진이고요. 요것도 그 정원에서찍었던풀들이에요. 그 풀들을찍는데는

여러가지이유가있어요. 그러니까이게그다음부터는제가풀들을자주메타포적으로자꾸접근하게되는게, 어떤 장소를가지고보느냐에따라서풀

이 다르게 보여요. 예쁜 꽃을 보고 울 수도 있는 거고, 예쁜 꽃을 보고서 웃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정원에서 여러 가지를 찍을 수도 있지만 제가 관

심을 가졌던 건, 저렇게 막 움트는 싹들에 자꾸 관심을 갖게 되고요. 그리고 메말라 비틀어진 꽃들, 죽어서 시들어진 꽃들이란 게 어떤 양태를 가지고 있

더라고요. 왜. 제가그분의정원이어떤경과과정을통해서형성되었는지를알기때문에거기에서다른것들보다저런풀들이자꾸눈에들어와요. 그래

서 그런 사진이고, 어떻게 보면 뭐 단히 세련된 구도나 뭐 조형적으로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사진을 만들어 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그런 개인적인

경험. 내가보는어떤심성들이투 되어있는거같아요. 사진들이요.

이게 요 상에 등장하는 그 화면이고요. 요 세부타이틀은‘잃어버린 고향’이라는 테마로 붙 고요. 요 작품이 선보여진 거는 어디서 선을 보 냐 하면

독일의 루오 지역에 가면 '한' 이라는 데가 있는데, '한'이 전부 다가 엄청나게 독일에 엄청나게 탄광촌이 엄청나게 많았었고. 엄청나게 많은 그 에너지들

을 거기서 끄집어내서 공급해 주었던. 그러니까 독일이 2차 세계 전 이후에 새로운 발돋움을 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이 지역이

거든요. 근데 이제탄광촌들이다문을닫아버렸어요. 이제 파낼 로다파내가지고, 이제 거기탄광촌의건물들이다문을닫고폐광을하고문을닫게

되니까, 이거를 이제 어떻게 전용해야 할지가 사람들이 고민을 하다가. 그곳을 예술 공간으로 쓰자 해서 아이디어를 내서, 거기서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

는 제안들을 했고. 그래서 저희가 초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거기 가서 전시를 하다 보니까 이 공간에서 뭘 해야 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먼저 자

료를찾다가, 자료를찾다가보니까한국의 97%의광부들이전부다 '한'에서일을했고요. 저 탄광촌에서일을한거예요. 그 사실을나중에발견했어요.

그래서어떻게보면이광부프로젝트를시작하게된지도몰라요.

그래서처음에는광부분들이가지고있는, 하다못해뭐기록사진이좀있으면좀뒤적거려가지고, 그걸모아가지고뭘해볼까. 아니면그사람들을인터

뷰를 해서 뭘 좀 해 볼까. 뭐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접근하다가. 저의 동네 사는 광부 아저씨를 만나려고 계속 전화를 하니까 안 계시는 거예요. 또 '어디

가계시냐.' 그러면정원에가계신다고해요. 그래서정원에가보니까정원일하고계시거든요. 전화하면정원에가계신다고해요. 그래서자꾸가서물

어보기도좀그렇고하니까, 밭일 도와주러왔다고. 밭일만 도와주고이러다가 얘기를들어보니까 '아, 이 사람을 갖고무슨딴작업을해야하는 게아니

라, 이 정원 자체가 이 분의 정원 자체가 이 분의 역사고,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 한국 사람의 디아스포라의 역사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

요.

그런 경우가, 이것도그런. 계속해서. 이거는충정로에있는한거리인데요. 이런 빌딩숲밑으로, 서울에엄청나게많은집들이, 여러분들. 이 서울시내에

서가장많이소외되고있는그어떻게보면, 자기가있어야할과거에있었던자리들을다빼앗기고사라져버린것들중에많은수가저는잡초와풀들이

고, 그 나무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저희클때만해도, 부분의 집들이마당이꽤넓게있어서나무한두그루씩은있어가지고, 이렇게 공간이

있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건축법이 바뀌면서 그렇게 된 거 같아요. 뭐 건물 점유 공간 같은 게 확 줄어들면서, 그 공간이 전부 막 건물들로만 다 가득 찼

고, 풀 한포기 하나 남지 않았어요. 여기도 보면 한군데도 없어요. 딱 여기만 있고. 이 집이 지금 땅이 비어가지고 집이 무너지고 나서 딱 여기만풀이 있

는거예요. 이제 이런공간들을 해서저는어떻게보면 '식물들의혁명', 어떻게 보면도시공간에서새로운바이올로직한레볼루션이라는 것이일어나

야한다는생각을하게돼요. 서울 같은공간은도시계획이그렇게반 을해야되고요. 예술가들이어떤이런에너지를끄집어내는충동제역할을해야

한다는생각을해서이런프로젝트들을고안중이고요.

요즘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에 하나는 생명의 땅 프로젝트라고, 동여지도, 김정호 선생의 동여지도 위에, 저런 식으로 어떤 맵 메이킹을 시도하

면서 그곳에서 땅에 있는 흙만 퍼 와요. 어떻게 보면 지금 전국에 한 20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흙을 퍼서 작업실에서 계속 놓고서 물만 주고 있거든요.

어떤 거는 진짜 번식력이 강한지 어떤지 땅이 확 풀리면서 요 며칠 가봤더니 화분이 이만큼 무직하게 풀이 올라왔어요. 그러니까 그 지역에 있는 풀들이

고 올라오는 것 같아요. 이것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저런 어떤 지도들과 거기에서. 어떻게 보면 150년을 간격을 두고 계속 반복해서, 땅 속에서 숨어져

올라온풀들의힘이란것. 그것을 이제재발견하고, 그것이 가지고있는의미들을찾아내는작업들인데요. 이런 흙 사진하고, 흙이 위치했던 장소들을계

속 맵핑하면서, 이 동여지도에 해서 요즘 저도 계속 아직 스터디 중에 있기 때문에, 저게 가지는 역사적 가치, 또 그 의미, 그 또 제작하던 방식,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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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방식을다이해하지는못해서. 그래서계속스터디중인데.

근데 보면오늘날의지도와확연하게차이가나는것은 동여지도는자연중심적이었어요. 이 자연중심적이란말이좀애매할지도모르는데, 지도라는

것은개념으로되어있거든요. 땅을 이해하는개념이에요. 오늘날의지도를보면행정중심이에요. 여기서부터여기가경기도고, 여기서부터여기가뭐충

청도고라는그행정중심의지역표시가강하고. 그 다음모든지역명칭이란것이중요하게되어있는데. 여기는요. 지역명칭은거의찾아볼수가없어요.

거의 부분 산, 산들이에요. 산, 강 그러니까 자연에다가 만들어낸 그 명칭들, 그 명칭들, 그것들 위주로 그려져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지역은

제가 찾을 수가 없어요. 내가 분명히 여기 가서 도시 이름도 바뀌어버렸고, 바뀌어버려서 없어진 데도 있고, 또 과거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

고, 과거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존재하는. 그 지역들 뭐 좀 이런 것들이 되겠죠. 그리고 저런 보법 글씨 같은 게 있는데. 옛날에 그 거리를 측정하는 그 수

레차 같은 것들이 있어서 끌고 다니면서, 100 뭐 40리를 걸으면 한번씩 체크하는 어떻게 보면 거의 끌고 다니면서 거리를 다 측정해서 일일이 만들어낸

지도예요.

요거는 제 홈페이지인데요. 제가 앞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작업을 하거나 뭐 하게 될 경우 모든 게 여기에 업그레이드가 되고 여

기에서여러분들, 관심있으신분들은접속하셔서보실수있게끔되어있습니다. 그전에했었던설명안드린작업들도많이있는데. 그런것들도여기들

어가면보실수있게끔. 예, 여기까지제작업세계 습니다. 혹시뭐질문있으시면.

관객: 아까한국에도시내공간에도풀생명을이렇게좀더확장시키는풀로인한생명확장그부분을이제진행하는과정에있다고하셨는데. 어떤식으

로앞으로계획하고계신지.

백기 : 그건 이제 뭐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뭐도시계획플랜, 뭐 이런 것에관심을갖고있는상태는아직아니고요. 왜냐하면 그것이진행되기까지는

좀 더 어떻게 보면, 저변 확 도 좀 되어야 하고, 사실 이번에 문예진흥기금 신청을 위해서 양평이란 공간에 생태예술프로젝트를 올렸는데요. 그것을 접

수하는 과정에서 그 담당 직원이 근데 생태예술이 뭐예요? 아니 거기서 어떻게 설명하기가 되게, 그러니까 문예 진흥원의 담당직원이라고 하면, 상당히

그래도현 미술에박식하신분들이고, 모든 것을알고계신분들인데요, 생태예술은아직생소하게느끼시는분들이많고요. 그 다음에뭐풀을심는게

무슨 예술이 되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리고 그 다음에 상당수는 '예술의 공간이란 것은 갤러리이지, 그냥 밭에다가 무슨 뭐 씨 뿌리고 꽃이 뭐', 그

다음에 어떤 '예술은 돈 투자해서 뭘하면 보존 가능하거나, 매매 가능해야지 그게 무슨 예술이야', 이렇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제 거기에 한새로운

자리매김이란거가엄청나게필요한상황이고.

그 다음에우리같은경우, 저도 지금왜 동여지도라든가, 근 라는 것에자꾸관심을집중하게되느냐하면무언가가사라져버리고, 무언가가엄청난

고민하게하는근 를그렇게보는데. 우리의근 를그렇게보는게, 제 구속처럼어떤존재적인고민을끈덕지게뭔가를계속하던그시점에서일제점

령기가 되면서 우리가 스스로 자기 고민을 하기보다는, 생존의 투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려요. 그런 상황이 되면서 이 고민들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

는 계기가 되거든요. 그 전에까지의 어떤 살아있는 고민의 현장들을. 그래서 김정호의 동여지도를 끌어들이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만 봐

도, 그리고그당시에생태적개념들같은경우는최환기선생님의기이론이란것을보면, 생태론적입장이지금과상당히다르고요. 요즘현 미술쪽에

서들뢰즈의철학들을엄청나게막받아들이면서하는데, 사실 들뢰즈의철학은본질적으로유목주의적인사고를가지고있지만, 그 밑에바탕에는생태

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 생태주의를, 생태주의라는 것은 훨씬 더 노장사상의 향이라든가, 더 깊이 응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최환기

선생님의기이론과연관성이있다는생각이들어요. 제가지금껏들춰본바로는. 그래서이런담론적인구성들, 작업들이일단은절실하다고봐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왜 중요하고, 왜 가치를 가져야 하는지, 어떤 인문학적 배경들을 이제는 체계화시키면서 심포지움, 세미나 등이 같이 동반되면서

이제 어떤 식물들, 소외되어져 버린 식물들, 예를 들면 김주현씨 같은 경우, 저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그거를 사진을 남겼던 적이 있는데,

식물들이 존재해야 할 땅을 다 잃어버린 서울 공간. 이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식물들을 다시 가져오는지 아세요? 보면 화분이라는 형태

예요. 도시 공간 베란다에 보세요. 전부 화분들인데. 그 화분들이 뭐가 있는가. 어떤 경우에는 거의 황당한 경우가 화초가 풋고추, 상추, 그런 게 심겨져

있어요. 전 그걸보면서뭘느끼냐면, 우리의정체성이란게뭐냐. 그게상실된정체성일수도있지만, 또 한가지말해주는건뭐냐하면우리의정체성이

란 건. 한국 민족은 농경민족이에요. 우리 어머니들만 해도 농사짓는 거에 너무 익숙하세요. 그게 자기를 규정할수 있는 건데, 그거를 다 상실했어요. 뭐

가 상실시켰냐 하면, 산업화와 도시화가. 그러고 한편 더 집을 더 크게 지어서 그나마 전세금이라도 더 받아보려고 하는 황금만능주의가 이거를 다 잠식

시킨다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잠식되니까 소외가 느끼잖아요, 사람들이. 그러면 어떻게든 회복해야겠다는 향수가 생기니까 화분을 사다가 흙을 뿌리

고고추를심는거라고요. 그래어떤집같은데, 옥상같은데보면상추밭이야. 스티로폼박스있잖아요. 왜 그택배올때있잖아요. 그거거기에다다해

가지고상추잔뜩심어가지고는할머니올라가서는매거기물주고가꾸신다고요. 그거 보면서그런생각을해요. 예술이란것이과연어디에, 과연 어디

에관심을가져야하느냐에 한문젠데요. 그 할머니가상추를먹으려고그걸심으시겠어요? 물론요즘경제가어렵고하니까정말상추값도만만치않

으니까 상추 먹으려고 심을 수도 있는데. 저는 아니라는 거예요. 상추를 심고 가꾸는 것을 통해서 자기를 회복해 가는 거예요. 아까 그 독일의 광부가 자

기의고향을회복하기위해서독일땅에다가다시땅을일구는수고를했었던것처럼이할머니가상추를심는데는자기회복의과정이라는거죠. 그 예

술은저는그본질적으로자기회복, 정체를찾아주는것과연관이없으면그뿌리를잃어버린다는생각을해요. 그래서이게너무너무중요한일이예요.

관객: 생태예술, 그 쪽으로활동하시는분이.

백기 : 작가들이꽤돼요. 요즘몇몇분들이계시고, 지금사실다음주에전시를오픈하는덕원갤러리에산림의경계란전시가오픈하는데, 산림의경

계에 출품되는 작가들이 미디어와 실존과 관련된 작업을 하게 되지만, 그 중에 몇몇 작가들은 생태적 담론을 가지고 작업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아까 예

로 들었던 김주현 선생 같은 경우도 생태 작업을 하고 있고. 저도 실질적으로 상미디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상미디어란 기술을 통해서 생태를 다시

보여주는 형태로 접근하는 게 지금은 한계지만. 어떻게 보면 생태적인 담론이란 것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사람이고. 이제 그런 쪽에 관심 있는 작가들이

많이있어요. 그리고 뭐요근 에는지금안양에서도시도하고있는게, 안양천 프로젝트라던가, 작년에 광주천을주목한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해서 광주의 민물고기들을 연구하는 그런 프로젝트. 그러니까 미술이 어떻게 보면 요즘은 하나도 미술 같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환경단체에서

하는연구작업을 신하고있는것같기도하고. 또 뭐정치적선동을하고있는것같기도하고. 다분히어떤그렇기도하는데. 근데생태적관심사는점

점예술쪽에서중요한카테고리라고생각해요.

김준기: 작업얘기죽들었는데, 질문들을하나씩좀생각해보세요. 그리고그작업실얘기를개인사적으로어떤작업실을어떻게, 어떻게꾸려왔었다이

런얘기도좀들려주실래요?

백기 : 제 작업실은 이제 홍익 학교, 저는 회화과를 나왔는데, 회화과에서 작업할 때는 항상 문제가 뭐냐면. 학기 끝나고 나면 그 많은 그리고 열심히

했거든요. 그 많은캔버스와그작업들을어디다가갖다놓느냐가가장큰문제 어요. 보존하고하는, 그러니까예술가로산다는것은제가며칠전에일

톤트럭가득그캔버스들을다싣고이동하면서그렇게생각했어요. '야, 예술가로산다는것이이렇게쓰레기를만들어가지고쓰레기들과함께매일떠

돌다사는게아니냐.' 어떤 때는그런생각을하긴했는데. 그것 때문에저희부모님들, 가난하고돈없는데막졸랐죠. 그랬더니옥탑에집, 저희 집옥탑

에다가 칸을 막아가지고 공간을 하나 만들어주더니, 거기에다가 작업을 모아 놓기 위한 공간으로 제 작업실이란 게 처음 가지게 되었고요. 근데 거기서

꽤작업을하고지냈죠.

그리고독일로가서는아까말씀드린것처럼지금그구석작업실, 그것이일종의실기실공간이면서중요한작업공간이되었고. 그러고나서그다음에

부터는 아까 그 밑에 그 김윤환씨 작업에서 그 스콰트프로젝트 같은 경우. 제가 있었던 도시는 뮌스터라는 도시인데, 거기는 저렇게 일종의 점거라는 정

치적인어떤어떻게보면위험을무릅쓴행위보다는좀작가들이, 좀 어떻게보면정치적으로현명하고, 이런프로젝트같은걸잘만들어요. 그래가지고

거기는 국군이 2차 세계 전끝나고나면서독일이다시전쟁을발발시킬까봐독일을네군데로나눠가지고네나라가다점령하거든요. 하나는러시

아가점령하고, 하나는 국, 하나는미국, 또 하나는프랑스이렇게점령하게되는데. 저희가있었던도시는 국군점령지역이예요. 국군이지금도있

는데, 국군이점차, 우리나라미군이점차내려가면서가는것처럼, 걔네들도자꾸떠나게되거든요. 국군이쓰던막사하나가그도시에서비게되었

어요. 그러니까딱비자마자예술가들이딱안건을내서곧바로정부에다시에다요청을해가지고건물을걔네들이받았어요. 받아 가지고정부에요청

해 가지고, 한 공간 당 10마르크인가 되는 그런 지원을. 평당 돈을 받게 지원을 해 줘 가지고, 제가 5만원 정도를 내고, 한 10평 남짓한 공간을 쓰게 되었

어요.

근데 저에게는 그게 절실했던 게, 작업실이라는 거는 작업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작가들 간에 상호 네트워킹에서 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요. 그러

니까작가간에라도틀을구성하기때문에함께연 운동을할수가있었죠. 그러니까걔네들중에는걔네들이그런거를기가막히게하는데. 정말 허접

하거든요, 공간이. 막사로쓰던공간이기때문에정말낡았고, 허접한데. 그 공간안에, 그 중 하나는꼭전시공간으로두고, 또 밑에공간하나는요만정

도밖에안되는공간인데, 갤러리스트하나가들어왔어요. 그 안에자기갤러리로이름을딱내고, 엄청나게부지런히활동을하면서, 여기저기작업들을

모아다가 작업들을 팔고, 거기 위에서 작업한 작가들도 거래하는 형태로 가고. 그렇게 되니까 자기네들 허접한 공간 하나를 내서, 일종의 우리나라 식의

안공간형태가되는거예요. 그러니까작가공동체안에 안공간이되니까, 거기에일본작가들초 해서전시하기도하고. 또 프랑스작가들을교류

하기도 하고 하면서 1년에 6번 정도의 전시를 거기서 하게하고. 그런 거를 다 결정하는 회의를 하게 된 그런 그룹에 이제 제가 같이 소속되게 되었죠. 처

음에는 걔네들이 얼떨결에 그냥 준 거예요. 외국작가들한테 걔네들도 되게 폐쇄적인 게 있거든요. 얼떨결에 막 이렇게 되어 가지고, 제가 들어가게 됐어

요. 그래서제가나오면서다시한국작가에게주려고한국작가를초청했는데, 그때는배제되어버렸어요. 아무튼그런부분들이좀있어서. 해외에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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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들이 그 해외의 예술계에 끼어들기 위한 어떤 중요한 베이스가 있는데, 어떤 것들이 그런 베이스가 되느냐 하면,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라든가, 이런 틀

들안에처음들어가느냐마느냐와뭐좀관련이있어요.

그렇기때문에우리도어떻게보면지금그이후에는제가짐을싸들고들어와서어떻게운이좋게옥탑방에잠시머물다가창동스튜디오가돼서, 거길

들어가게됐는데. 창동스튜디오가공간은엄청나게기가막히게잘관리해서해서번지르르하게지어놓고. 가보세요. 아까보셨죠. 그리고하루에두, 세

번씩은청소를하는거같아요, 막. 그거 관리인원만 4명의아저씨가요막 24시간 문을지키고그렇게관리를해요. 그러니까우리나라의미술행정자체

가 너무 하드웨어에 집중하다 보니까, 소프트웨어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이 공간을 어떻게 운 할 건가, 이 안에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만들어 갈 건가,

어떤 예술가들을 끌어 들여서 어떤 쪽의 예술을 진흥할 건가, 이런 계획은 없고. 공간 하나를 어떻게 근사하게 지어 가지고 누가 뜨거나, 윗사람들 오면

얼마나근사하게보여줄까. 막 소파같은거번쩍번쩍하고, 거실에텔레비전끝내주는거가있고, 작가들보고는관리비내라고독촉하고. 이렇게, 이렇게

되는 사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국가에서 운 하는 그렇게 번듯한 레지던시에서 그런 관리비를 요청하는 거나, 그런 경우는 정말 유사 없는 일이지

만. 근데그런일들이생겨나는것도문제인거같아요.

결국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제 베이스 안에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제가 창동 스튜디오 같은 좋은 공간에 있으니까 좋아요. 여러 가지로 좋

아요. 하다못해 짐들도 좀 갖다 놓을 수 있고, 거기에서 이런저런 좋은 작가들과 교류가 있으니까 좋은데. 정말 계속 그 질문을 했어요. 본질적으로 작가

의 작업이라는 게 공간, 이런 거에 완전히 지배받지는 않는다는 거. 그리고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들도 있어요. 물론 그게

어떻게보면물리적인작품만들어내는데있어는아주필수불가결하죠. 나는매일톱질을해서뭔가를만들어야하고, 톱질할수있는공간이있어야되

고, 거기서먼지가나는데그거를빨아낼수있는그런환풍장치에서기타모든시설을해놓을수있어야작업이되는사람에게있어서는그런게안갖

춰지면, '넌 작업하지마라.'는 얘기가되기때문에. 이제 그런시설들이나뭐이런것들이자꾸좀더나아져야되겠죠. 그리고프랑스의스콰트처럼어디

든지빈공간이있을때, 예술가들이점유해서“아우리공간하겠다”고했을때좀 중적지지를좀해줄수도있고, 예술가들이그런거, 어떤창작공간

으로 사용하는 게 우리 사회와 전체에게 득이 되는 일이고, 그게 어떤 문화적인 재활용이 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는 것을 이해해줘야지 그것도 하는

거죠. 혼자 가서 작가라고 그러다가 다 잡혀가고, 허허.(웃음) 거의 우리 예술가가 있으나 마나한 존재고, 별로 존중받지 못하는 그런 환경이란 게, 이런

작업실환경이라든가이런작가를둘러싼삶의환경속에서더많이드러나는거같아요.

김준기: 창동나오면어디로가시게요?

백기 : 그래서 지금 고민인데요. 제가 지금 올해 갑자기 안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바닷가에 자주 나가게 되는데, 바닷가 쪽에 어디 허름한 데 하나

있으면그막사라도하나얻어가지고들어갈까, 지금생각중인데. 알아보고있습니다.

김준기: 좀 전에말씀해주셨지만조금압축해서요약해서말씀을한번더좀해주세요. 그 현 에예술가들, 특히미술가들에게있어서작업실이란무엇

인가, 무엇을하는곳인가를좀들려주세요.

백기 : 그러니까 그 작업실이란 개념도 작가마다 좀 서로 차이가 많이 있을 거 같아요. 작업실 공간이 어떤 면에서는 저 같이 아까 예를 들어 구석 작업

은 직접적으로 작업실이라고 말하기엔 뭐 하지만, 어쨌든 사유 공간이죠. 작업실이 사유공간이고, 또 한편으로는 제가 독일에서 간절히 필요로 해서 국

가에서 운 하는 그래서 작가들이 예술가 공동체를 구성했었던 그 작업실은 어떻게 보면 예술가들 상호 혹은 예술가와 사회와를 연결하는 사교 공간으

로서의중요한, 미술계를구성하는틀로서정치적으로중요한공간일수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 작업실에서 제가 그나마 또 좋았던 거는 1년에 한 번씩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서 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거요. 그러니

까 제가 지난번에 한 번 그 민예총에서 원고요청이 와서, '여러분 전시를 왜 하십니까.'라는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전시, 작가가 자기 작품을 소개

하고자기가세상에알려지는통로를우리나라같은경우는너무전시에만집중해요. 근데사실은그전시너무힘든일이거든요. 공간 여해야죠, 거기

다뭐, 뭐 초 장보내야죠, 뭐 팸플릿만들어야죠. 그것도계속보여줄수있는것도아니거든요. 그런데거기에그렇게사람들이목을매고, 투자를하는

데. 사실 엄 한 의미에서 아틀리에는 17세기, 18세기 아까도 예를 들었지만, 자기 작품의 발표 공간이면서, 자기 작품을 쉽게 연결시켜줄 수 있는 중요

한베이스거든요. 아주정치적으로활용할수있는좁은공간인데요. 그게제 로제기능을활용하지못한다는게큰문제인것이, 창동스튜디오의예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제가 저희 집 뒤, 저희 창동 스튜디오 뒤에 있는 자장면 집에 지금도 전화를 하면, 아 거기 미술학원이요? 알겠습니다. 그 자장면 집

아줌마는창동스튜디오가아직도미술학원이라고생각하고있어요. 그러니까그게뭐냐하면지역사회에전혀아무런 향을미치지못하고있는거예

요. 그러니까어떤지역에한예술가가들어와서작업을하고산다면, 작업실이오픈이되고사람들이드나들수있는통로가되어야하는데, 미술가들은

주로 지하실 어디에 습한 데 짱 박혀요. 하하.(웃음) 그러니까 매일 그 집에서는 계속 소주병만 나와. 이번에 뭐야 천국의 계단인가에 거기에도 보면 남자

애한애가예술가잖아요. 거기보면딱보면그런분위기의작업실, 항상닫혀져있고잠겨져있는허름한공간에, 좀 그런느낌입니다. 그리고거기엔사

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뭐 이런 느낌이라고. 몇몇 지인들만, 예술가들만 거기서 어울리는 이런 사교의 장인. 그런데 그렇지 않은. 보면 되게 일상적

으로사람들이드나들수있는좋은지역사회의문화공간이되어야지만, 그게 중들에게알려질거아닙니까. 작가가그렇게고뇌를해서만들었는데,

작가가 알리려는 의지가 없어. 그러면 중들이 알 기회가 없잖아요. 이게 자꾸 스스로 차단되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의

기능을회복해주어야한다고저는생각해요.

작업실이 그런 기능을 회복해줘서 우리도 스콰트같이 어떤 스콰트라고 이름 붙일 순 없지만, 서울 시내에 숱한 아틀리에들을 죄다 하루 어떻게 보면, 가

을이나 10월중에 오픈스튜디오를 터뜨리고, 아틀리에 맵을 만들면, 제 생각엔 모르긴 몰라도 거의 한 500 여 개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 시내에만. 그

런 행사를한번추진해서죄다그냥하루, 한 일주일은서울시내모든아틀리에들이오픈해서, 동네마다붙여줘가지고사람들이돌아다니면서여기저

기구경하는재미를좀. 왜 인사동에만 나와야되느냐. 어떻게 보면훨씬자연스럽잖아요. 진짜 술 좋아하는 작가작업실에 가면술병만있고, 아 이 사람

이 술 많이 먹으니까 그림이 이렇게 나오는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근데 완전히 화이트 큐브로 딱 정돈된 공간 안에다만 작품을. 자꾸 어떻게

보면치장한다는기분이들어요.

김준기: 그 과정에서 저는 요즘에 화두 같은 건데. 로컬리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해봐요. 그래서 로컬이 뭐냐. 지역이잖아요. 지역 사회. 그래서 저기 양현

정작가가여기길안쪽에작업실이있어요. 그래서얼핏한번한얘기인데. 우리오픈스튜디오한번묶어서동네주민들, 동네주민사람작가들묶어서

페스티벌같은거한번해보자. 이런 얘기를얼핏지나가면서한번했어요. 그게 뭘 의미하냐하면인사동을남한사회, 한민국의 미술중심지로만인

식했지, 인사동을 하나의 지역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홍 앞 하면, 젊은이 문화의 중심, 이렇게만 생각하는데. 홍 앞이라는 지

역, 이렇게생각해보면, 또 발상의전환같은게있잖아요. 그래서인천이나광주, 부산 이런데는지역이고, 인사동, 홍 앞 이런데는중심, 중앙이다이

런발상들이변화해나가는시발점으로그런페스티벌을한번해볼까생각을했었어요. 좀 전에말씀해주신 목이시사하는바가클것같고.

또 하나는 소위 모더니티, 모더니즘이란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있을 거같은데. 모더니티, 근 성이라고 하는 건, 어떤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했어요. 모

더니즘이란 건 무어냐, 모더니티가 무어냐, 현 성이다. 현 ? 늘 시간적으로 보면 자기가 살고 있는 당 가 현 을 꺼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가 특정

해서부르고있는현 라고하는것은모더니즘이라고하는건, '근 적인합리성, 이것이구현된게모더니티다.' 이렇게얘기하는데. 거기에서의합리성

이라는 것은 각 역이 자기만의 역을 특화시켜 나가면서, 체계적으로 역을 분할해 나갔다는 것이죠. 역할을 나눠서, 너는 곤충학자야, 너는 잠자리

날개를열심히연구해봐. 그거만평생공부해도너는너의가치가있고, 너의일을잘하는거야. 이런식으로 역이분화된거예요. 미술쪽으로돌려서

얘기하면, 그 이전근 이전에미술가들이했던역할에비해서, 모더니티이후에미술가들의역할은훨씬좁아져요. 그래서물감이뭐야, 캔버스가뭐지,

뭐 물감과캔버스의문제를가지고들입다파서그캔버스안에갇히는거죠. 결국미술이, 그래서뭐역사랄지, 내러티브, 서사랄지, 또 삶이랄지이런것

들을좀배제하고물감과캔버스이것만가지고계속연구해나가는게모더니즘의정점이에요. 미니멀리즘이라고 얘기하는것. 그것이 깨지면서 '아, 이

제는미술안에삶도들어오고, 역사도들어오고, 이야기도들어오자', 이게포스트모더니즘이거든요.

그러니까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그렇게 얘기할수있는데, 작업실의 역할도마찬가지로 여기는작업실, 여기는 전시장, 여기는 만드는곳, 여기는 보여

주는곳. 이렇게해서작업실에서는, 중들이여기있다고하면, 작업실에서는열심히그려요. 한 2년동안열라그려. 그래서한 2년쯤지나면전시장에

'짜잔'하고 보여주는. 그럼 관객들이 와서 이렇게 보고, 언론도 와서 집중해주고, 뭐 월간미술에 리뷰도 나가고, 신문에도 소개되고, 그러고 나면 뭐 이제

팔리는 건 팔리고, 안 팔리면 죄다 싸서 작업실. 그러면 생산하는 곳과 유통 또는 소비되는 곳이 말 그 로 분리, 차단되어 있잖아요. 이것이 모더니티가

만들어놓은 역분할이에요. 그걸 극복해나가겠다는것이포스트모던한미술또는포스트모던한미술행위뭐이런건데, 작업실도이젠그런식으로

바뀌어나가고있다는거죠. 그래서공장과전시장이, 작업실과보여주는곳이분리되어있던것이점점결합되고있다는것이. 여기 있는작가들의작업

실은 개개인적인작업실들이에요. 그냥작가가혼자만드는곳이에요. 공장이에요. 근데밑에층, 지하층, 이런데있는거보면섞여있어요. 그래서작

업실에 직접 주민이나 아이들이 와서 교육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자기 사는 집은 반지하 작업실인데, 거기서는 작업 별로 안 하고, 편

집, 이런 거나하고, 밖에 나가서주민들과함께삶의현장에서미술을가지고한다든지. 또 김윤환작가의경우에는가지고다니는휴 용아틀리에를만

들어서돌아다니면서작업을하겠다, 뭐 이렇고, 또 어떤사람들은스콰트처럼공공건물을점거해서거기서작업하고사람들불러서파티하고, 작가들끼

리교류도하고이런식의포스트모던한작업실이 나타나고있다고하는거죠. 탈 모던한, 그래서 근 성이명령한역할, 역분할, 이런 것들을저희가섞

어나가는작업들을하고있다는거죠. 그런점에서작업실이변하고있다. 이것이곧예술이변하고있다와연결이된다는거죠. 우리지역주민작가께서

Page 72: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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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전에얘기했던우리동네작업실의네트워킹프로젝트에 해서어떻게생각하시는지짧게라도. 좀 있나요? 이동네에작업실들이?

관객: 제가말로들은, 위층의오빠는절친한사람이고, 그 외에있는두셋정도있다고들었거든요. 근데제가여기에온지일년두달정도되었는데, 그

이전에 학을졸업하고뭔가작업할공간을간절히원했을때, 그때 찾으러다니고막그랬을때는정말진짜지하철에환승할때의넓은공간마저도되

게절실하게느껴졌었어요. 그러니까이런공간들도많은데, 왜 나한테는정말몇호짜리그림하나펴놓고작업할공간이없을까, 하면서굉장히 절실하

게내가작업할공간들을찾고했던적이있었는데. 그래도원하게되면뭔가좀이루어진다고쪼그마한지하방에서도해본적도있고, 뭐 친구들이랑모

여서 해본적도 있고. 근데 이제는그래도 어엿하게 작업실이라고 해서 딱자리를잡았는데. 그나마 그 공간조차도, 되게 좁은 공간이에요. 음. 좀만 가면

있는데, 좋은공간인데, 그만큼의좋은공간을지금은활용을못한다는생각을많이했어요. 많이했고요.

이 전시를보면서더어떤나에게내작업공간이어떤의미를가지고있나. 그래서위층에있는오빠가미디어아트를해요. 그리고그오빠도어떤공간,

자기의작업공간에 한선생님과같은생각을가지고있어서. 이렇게얘기를한적이있었어요. 그래가지고, 저희는그냥 2, 3층을 오픈을하자하는생

각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할 수 있는 이벤트,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는 거에 해

서는굉장히긍정적인생각을하고있어요.

김준기: 제가 지역주의자이기때문에지역주민들, 동네 사람들에 한관심을많이가지고있어요. 하하.(웃음) 그 옆에있는김선주작가가얼마전에전

시장에서 천장에다가 한 200몇 십 켤레의 신발들을 충 매달아 놨었어요. 소위 설치작업이죠. 그렇게 되면, 설치작업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작업실의

역할이달라요. 그래서작업실에서그전시를위해서작업실에서무슨신발공장처럼신발을만든건아니고, 작업실에서는좀전화하거나팩스보내거나

신발 모으는 일들이죠. 200몇 십 켤레가 다 사람들로부터 모은 거니까. 사람들로부터 신발들을. 그래서 그랬을 때의 작업실의 역할은 이런 작품 생산 공

장의작업실하고달라지죠. 1분 30초에걸쳐서그런설치작업과작업실의관계에 해서좀.

김선주: 예전에는평면작업같은걸할경우에는어떤공간이필요하기때문에, 그걸 펴놓고칠하고이런공간이필요했는데, 어느 날 그런공간을막찾

아야겠다는생각을하다보니까, 거기에얽매여서지금내가하고있는행위자체가거기에목적이주어지니까내것을 못찾고있는거예요. 그래서이런

생각이, 내가 막 걸어 다니면서 움직이면서,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퍼포먼스 하는 사람들도 어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작업실이

란생각을하는거예요. 내가작업실이고, 내가어떤공간을봤을때, 나로인해서어떤작품이나오고, 나로인해서어떤행위가이루어지고, 그 결과물이

또보이는것들도어떤. 내가움직이는거에따라달라지니까. 어떻게보면나는내가내스스로작업실이몸이라고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신발을 모으거나 이럴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가고, 어떤 그 과정 자체가 움직이는 자체가, 길이며 차를 타고 가는 것, 그 모든 게 나

의작업실이기때문에약간평면작업이나그어떤걸만들때하고랑은틀리죠. 생각 자체가. 공간이란작업실을생각했을때는공간이라고생각하지만,

어떻게역으로나처럼이런작업을하는사람에게는공간이아닌, 어떻게보면크게보면우주일수도있고, 지구일수도있고, 서울일수도있고. 그냥내

가 가는 모든 곳이 내 작업실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이 작업실이라고 딱 생각하면, 어떤 스페이스만

생각하게되죠. 거기에서좀여기있는것들이많이의존하는것들인데, 저는그렇게작업실을생각하고있어요.

김준기: 작년에 암스테르담에 갔다가 누구죠? 렘브란트인가? 거기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고 해서 열심히 좇아갔죠. 그런데 다리품

판 거에 비해서 별로 볼 것이 없어서 실망했지만, 그 작업실 자체가 하나의 의미 있는 소통 공간으로 바뀔 가능성도 다분히 많다는 거죠. 특히 구본주 작

가같은경우는작업공간이커요. 그리고저천장도되게높잖아요. 그래서큰덩치있는작업도있고. 작년에작년 9월 달에요절을했는데, 어 유족들은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저 공간이 경기도 포천에 있으니까 광릉에서 약간만 올라가면 있어요. 저 공간 자체를 뮤지엄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

고있어요. 물론 돈도 많이들고, 계획도 잘 세워야하는어려운부분이있지만. 예를 들어 저런공간이뮤지엄으로 바뀐다면 되게좋겠죠. 찾아가면 옛날

에쓰던작가의작업실, 도구가 있고, 또 미완성된작품들도자연스럽게 배치가될수있을것이고. 또 작가가쉬던공간, 생활공간들까지도 이렇게볼수

있게만들면좋겠다는생각도있어서. 사무실 기능을하는요즘작업실과는또다른그맛이있을거같아요. 그래서 지금백기 , 김선주 이런식의 프로

젝트성, 또는 미디어를 가지고 하는 작업들, 설치작업 이런 것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열린 가능성들이 있어요. 새로운 미술, 소통 공간으로서의 작업실,

이런 것들이있는데. 저렇게고전적인조각이나회화를하는작가들의공간도여전히유의미하고유효하죠. 그래서미술이아마두쪽으로계속갈거같

아요. 설치 상이 뜨니까 회화는 죽을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이, 이제 거꾸로 간단 말이죠. 트랜드가 바뀌어요. 그런 것처럼 미술이 어느 순간 싹 바뀌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저런 작업실의 맛, 의미, 기능, 이런 것들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그런 것들도 이 전시, 작업실 리포트에 충분히 반 이 되어 있다

고생각해요. 백선생님은이전시전반에관해서어떻게평가하시는지, 참여작가로서. 기획전이니까궁금하네요. 어떻게생각하세요?

백기 : 사실이전시기획하시면서그때, 그때조언을많이구했고, 같이고민을많이했었던전시거든요. 그러면서도저한테작가로직접참여요청을했

을 때, 내가 과연 어떤 작업을 줘야 될까를 되게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이 전시를 보면서, 마치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까 참 다양한 형태의 작업실에 한

조망을할수있는계기가되었다는면에서참긍정적으로느껴지고요. 이제또한편으로는이러한게일차적으로, 요러한형태가진행이될수있겠지만,

좀 더 이 부분은 더 많이 리서치 되면서 더 2탄, 3탄 좀 더 진행되어야 될, 그런 과제 중의 하나가 아닌가. 어떤 이 전시는 한 번 화두를 던지는 차원에서

중요한의미를가지고. 그 이후에더많은비슷한유의혹은좀더심화된형태들이더나오면서변화될수있는가능성이있는전시란생각이들고요. 좀

아쉬운부분들이있다면이제요거를기록하고전달하는전시만시키는과정에서아무래도사비나미술관자체가가지는전시공간의협소함, 이런 것들

도있고. 그 다음에좀저부터도기록사진이등장할수밖에없었던이런틀들인데. 실질적으로진짜작업실의체취와작업실의어떤이동하는작업실같

은경우에그래요. 실질적인좀더액티브한형태들이더많이보여줄수있었으면어떨까. 그런 게 좀 아쉽다는느낌이들어요. 그러니까다분히그런부

분들에액티비티가박제화되어있는느낌을좀받았어요. 좀 더여유있게확열어버릴수있는틀을좀생각해봤으면어떨까.

김준기: 그래서 예전에 박불똥 선생이 진행했던 토끼와 거북이 프로젝트인가 뭐 그래서, 이 작가가 처음 전시 오픈 할 때는 전시장에 아무 것도 없어요.

텅 빈 전시장에서 전시를오픈해요. 어, 뭐 하는 플레이지? 좀 있다 갔더니작가가그전시기간 동안계속그곳에있으면서 이것저것써서낙서도갖다가

붙이고, 왜 지하에다가 자기 작업실 새로 짓는 도면이랄지, 건축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서류들 붙여 놓은 작가이고. 그래서 그러면서 하나, 한 장, 두 장씩

뭔가붙고, 찾아온사람과 화하면서뭐끄적일거, 메모한거, 이런것들붙이면서진행형으로전시를가져갔던. 그래서박선생님한테그런부탁도해봤

어요. 음. 또 그리고 어떤페인터, 기름, 송진 냄새가물씬풍기는그런화가의작업실을 그 로미술관에옮겨다가 한번관람객들에게 그림그리는모습

이나이런 것들도 좀보여주고, 작업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좀보여주고, 이런 기획도 가지고있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한계들, 시간, 재정 등등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작업실 리포트 해서 사람들은 '작업실을 여기다 옮겨놨나 보다'하고, '작업실을 보러 가자'고 왔는데, 작업실은 안 보이

고 작품만 보여요. 그죠? 다 작품화된 거잖아요. 다 박제가 되었다는 게 정확한 지적인데. 그런 한계를 기획자들 또 어떻게 커버하면서 변명 하냐면, 이

전시가 작업실을 그 로 재현해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작업실에 해서 생각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그래서 작품 자체를 물질로 그 로

전시하고 투척하고 옮겨놓은 1:1의 관계가 아니라, 이것을 사진은 사진으로서, 설치는 설치로, 상은 상 로 각자의 매체나 방법으로 작업실에 관한

담론을끌어내는 그런 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2차, 3차 다른 변형의 기획들이 가능하겠지만 첫번째 이작업실 리포트전시는 그정도선에

서스타팅을하고있는것이라고봐주시면좋겠다는아쉬움에 한변명도좀있습니다.

관객: 저는 상상했던것보다는음…….정말작은공간인거같아서실망도조금했고요. 집에와서좀더많이찾아보고싶다는그런생각도좀. 지하의드

라마고씨작품은되게좋았고요.

그 분작품도사진이렇게보고계속웃었어요. 하하.(웃음) 마치제전생화를보는거같아서. 그런점이좋았어요.

김준기: 그 작업실에관해서, 노동자에게공장이있다면미술가에게는아트팩토리다. 그래 가지고사회적으로도노동자또는노동자의공장이런것들에

해서는시스템이뒷받침해주잖아요. 작업여건, 공장의위치, 교통, 환경과공장. 이런식으로여러가지배려와제도와염려들이있는데, 예술가의작업

에관해서는그런시스템에의한배려라든지가없어요. 미술연 사무처장이신백기 작가께서그런사례랄지앞으로또그런것들을위한논의과정에

한 25일 세미나가 있거든요. 그때 저랑 박신의 선생님이라고 프랑스에 오래 계셨던 분, 그리고 청주에서 점거 아틀리에를 만들려고 모의를 하고 계신

김기현이라는작가. 이렇게발제를하게되는데, 그때도논의가될거같습니다만, 백선생님은어떤생각이드시는지.

백기 : 사실그게어떤중간단계과정이란것이반드시있어야된다는생각이들고요. 그것이미술에 한인프라에 한문제와연관이있어요. 왜냐하

면그런제도를집행하려고할때일반 중들의입장에서이제, 저도 독일에서들었던얘기예요. 독일에서도한두사람괜찮고, 그 또 배울만큼배우고

한사람이고한데, 독일에서어떻게지내냐해서아독일너무좋다. 지원금도팍팍나오고막작가들지원해주는것도너무좋고. 그랬더니이친구가딱

정색을하면서하는소리가아나는그거이해할수가없다. 내가취미생활을하는데는한번도지원을안하는정부가예술가라고등록만되면걔네들은

돈을파주냐이런얘기를하더라고요.

김준기: 독일사람이요?

백기 : 일반인이요. 그 얘기를들으면서상당히일리가있는주장이란생각을했어요. 그래서저는오히려그런것들이어떤쪽으로더전향해야되냐하

면정말일반인들이그런것들의필요성을가지고자기스스로창작생활이나취미생활을할수있는동호회나, 그 어떤것들이확산되어야지그런게되

는계기가아니라면그런게쉽게연결되기가참쉽지가않아요. 어떤작가들만을특별보호하는거가. 그게시스템화되기에는참더어려움이있지않을

까하는생각이들어요. 그래서그런중간과정이라는게있어야될거같아요.

김준기: 그래서 그 작업실의 역할이 작가 혼자 쓰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소통이 되고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것이어야 되겠다는 하나의

Page 73: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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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가 좀 있어야겠죠. 어제는 드라마고라는 작가가 작가와의 화를 했어요. 여기서. 그때 인천 지역주민도 왔어요. 그리고 미술학생도 많았고, 작가도

있었는데. 그때 나온 얘기가 마고는 한참 지역주의 얘기를 했어요. 인천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작가가 삶을 살아가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어떤 이로운 점

을가져다줄것인가를계속고민하는거죠. 얘기를하다보니까이친구가인천얘기를막하고있어. 인천은원래어디가중심지 는데, 지 적으로어떻

게, 어떻게 확장이 되어 나갔고, 거기서 생겨나는 문제가 이런저런 문제고. 인천의 주민들의 몇 %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문

화적으로이런, 이런소외지역에살고있고등등. 인천에 해서막얘기하는거예요. 그래서드라마고는인천전문가야. 그리고인하 학교를나왔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지금 전업활동을 하고 있죠. 예술가라는 지위를 고집하지 않고, 이를 테면 빈민운동가로서의 정체성 같은 것도 가지고

있는 거 같고. 국내 사람의 정체성 같은 이런 것도 갖고 있어요. 그러면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예술가가 과연 뭘 하고 사는 사람이냐. 한 몇 년 동안 작업

실에혼자쳐박혀서작업하고전시장에갖다보여주고, '짜잔'하고나타났다가다시싹들어가고. 이런식의활동을하는것이근 적인예술가의활동이

었다면, 탈근 적인 예술가의 활동은 아주 로컬한 활동들, 이런 것들이 기본이 되어야겠다고 해서 삶의 역 속에서 예술 행위가 자연스럽게 매 칭될 수

있는그런삶을생각해봐야하지않겠느냐했을때. 그런 작업실시스템들아주개별화되고파편화된시스템들이공공 역속에서고민되어야겠다는그

런생각을가지고있는거죠. 합의 과정들은충분히있어야할거같아요. 그래서 화가필요하고, 세미나도 필요하고. 여기 두 분께서는어떤일을하시

는분이세요?

관객: 백기 선생님후배예요. 회화과. 이제 2학년이요.

김준기: 작업실언제가질거예요?

백기 : 학교졸업해야가지지.

김준기: 학교작업실얘기좀해주세요.

관객: 1학년 작업실은 열악하거든요. 2학년 때부터 자기 공간이 생겨요. 그러니까 1학년 때는 그냥 공동 실기실처럼 그냥 앉았다가 아무데나 앉았다가

가고. 2학년때부터우리가진짜내생각 로다만들수있는그런작업실이생겨요. 4학년때까지도.

김준기: 제 고등학교때작업실체험을좀잠깐얘기해드릴게요. 고등학교 2학년때미술반하다가미술학원다니면서화가가되어야겠다고생각하고학

원다니는데. 그때는학원이아니라화실이에요. 그래서어떤화가의화실. 처음다녔던곳은미술학원의형태 는데, 그 다음옮긴곳은 학원생아니면

학을 갓 졸업한 고등학교 선배의 작업실이었어요. 근데 안쪽은 작업실이고 바깥쪽은 화실. 그 공간은 저에게 금기를 넘어서는 비 의 공간 같은 곳이

었어요. 거기에 가면 눈치 안 보고 담배를 피울 수 있고, 그곳에서는 기타가 있었어요. 레드 제플린의 '스테이 어웨이 투 헤븐' 같은 노래들을 연주, 두드

리면서막열심히연습하고. 또 당시에아직판매금지되어있던김민기의 1집앨범, 보라색단색에청년김민기가이렇게측면으로딱이렇게있던앨범.

그거를아침이슬, 친구이런노래를들으면서금기시되었던어떤것들을해볼수있는공간으로서의아지트, 아늑함이런것들이있었어요.

그 다음 고3때 다닌 데는 안창홍이란 화가의 작업실인데. 역시 바깥에는 이젤과 석고상이 있는 미술학원과 같은 형태고. 안쪽에 내 한 화가의 방이 있

어. 거기 딱 열고들어가면그새가화살을맞고피를흘리며죽어가는그림들, 또 건물과건물사이에그네같은게있어서거기에서아이가그네를타는

위험한 놀이 라고 하는 그림. 뭐 이런 것들도 있고. 그 당시에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왜냐하면 고등학생의 시각으로 봐서 미술 같지 않은 미술이 거기 있

었던 거죠. 메모가 있어. 작가가 현실을 떠나서 그 어떤 의미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해서. 연필로, 스케치북에 쫙 해서, 딱 꽂아놓고. '아, 예술이 이런 거

구나. 아 얼른 예술가가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오늘날에 제가 가지고 있는 미술에 한 생각, 이런 것들은 아마 그 시기의 충격이 되게

컸던거같아요. 기회가닿으면많은사람들이작가의작업실을직접방문해서그향기를느껴보고 화도나눌수있었으면이럴수있었으면참좋겠어

요. 백기 씨도또김선주, 양현주이런작가들도가능하면지역주민들과많이만날수있는작업실형태를만들어주시면. 여러전시들을아마보고다니

실텐데, 이 작업실얘기어떠셨는지. 또 백기 작가의작업어땠는지들어보죠.

관객: 저는 제가 말할 자격이 되나 모르겠는데요. 저도 뭐 한동안 작업을 했고 미술 학 4년을 다녔기 때문에 여러 전시들을 다녀봤는데요. 이런 작업은

사실상처음접하지요. 작업실을이렇게드러내는, 그래서굉장히새롭고아까미처생각하지못했던부분인거같아요. 제가 미 를다닌동안에그렸던

그림은 단지 막 쥐어짜낸, 삶에서 나온 고민이 아니었던 데 반해서, 작업실을 드러냄으로써 자기 삶과 동시에 그 작업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게, 그게 정말

예술이아닌가하는생각을하게되었고. 백기 선생님작업도굉장히쉽게저한테다가올수있는. 아직은머리가좋지않아서모르는게많은데재미있

었어요. 그리고 굉장히좀신선하고, 어느 정도저는미술에서많이떨어져나왔다고생각했는데. 오늘 작업들을통해서저도이제아직은예술과가까이

할수있겠구나쉽게. 예술에다시돌아갈수있겠구나하는생각도많이들었습니다. 하하.(웃음)

김준기: 백선생작업은작업실을벗어난프로젝트성이되게많죠.

백기 : 요즘은 거의그렇게되었어요. 그러니까제가저로부터벗어나는시점들이아까말씀드렸는데, 그 어떤시점부터는아이게나안에머물러있어

서는안된다는생각이들어서. 그 다음부터는사회연구적, 사회, 연구, 학문적사회연구프로젝트라고그렇게부르는. 독일식으로말하면 '비셴샤프트소

숄 포시용 프로젝트'라고 하거든요. 아예 그런 명칭이 있어요. 프로젝트가 그냥 프로젝트가 아니고. 제가 진행하는 학문적 사회연구 프로젝트라는 형태

로. 그렇지만 어떤 예술적 방식으로. 작가가 시도하는 것은 미학적 결과물을 유추해내기 위한 예술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형태지만, 결국 연구되는 것은

학문적인방법으로사회를연구하는형태이죠. 아까 그이후에보여드렸던정원이주프로젝트나지금생명의땅프로젝트같은경우는저쪽으로그런방

식으로진행되고있는.

김준기: 그. 백선생의그런작품행태에 해서한말씀만더보태고싶은게있는데요. 뭐 사석에서얘기할수도있지만, 어차피지금백기 에 해얘기

하고있으니까아무래도. 어, 공공미술, 미술의공공성뭐이런얘기들이요즘화두같은건데. 로컬리즘이나공공성이런거얘기할때자주나오는게공

공미술이그냥작업실이나전시장을벗어난바깥에서의미술이냐, 예를 들면건물앞에조각이서있어. 이런 것들을 표적인공공미술이라고불러왔어

요. 그런데 '뉴 장르퍼블릭아트'라고, 새로운공공미술이라고부르고있는것은저런식의프로젝트성, 그러니까과정형, 주민참여형, 또 결과가남지않

는미술, 또 비주얼로결과물을뽑아내지않는미술이런것들을뉴장르형, 새로운유형의공공미술이다라고얘기하고있거든요. 그 공공미술의비평적

잣 중하나는이런거예요. 효율성, 효과.

아까 우리가어떤전시나작품을보면아이작품참미학적으로 아름답다내지는더러움, 추악함을 잘표현하고 있다. 표현적이다. 뭐 이렇게 하는데, 아

이 전시 참 효과적이네. 이 작품 참 효과적인 작품이야. 효율성이 높네. 이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공공미술 또는 뉴 장르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효율적이었냐, 작가 너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펴서 이런저런 걸해서 미학적 성취도를 높이는가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삶의 현실

속에 들어가서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그 프로젝트의 기획의도적인 것들 전시했느냐 이런 것들까지도 학문적 잣 로 제공된다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미

술은효율적인미술이무엇인가를또생각하게될것이고.

또 하나는수잔레이시라는사람이이야기하는모델인데. 공공미술이얘기되는건뭐냐하면그동안미술이공공적이진않았다는거, 아주 사적이었다는

거죠. 그래서사적인미술과공공적인미술이여기서부터여기까지이어져있다라고하면, 사적인미술의모델은어디에서출발하는가하면작가개인의

감수성, 개인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요. 개인의 감정, 개인이 느낀 것,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미학적 차원의 어떤 것으로부터 표현하는

것이 사적인 미술의 모델이에요. 근데 이것이 자기가 취한 정보를 가공하고, 이것을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공공성이 요만큼 더 다

가오는것이라고점을찍어요. 물론 완벽하게단절된단계는아니라, 선으로 연결되는것들이겠죠. 그리고 이것이공공성과만나는지점에와닿으면, 무

슨 항목이 들어가는가 하면 새로운 합의, 합의도출, 뭐 이런 거예요. 그래서 어떤 작가가 어떤 지역의 어떤 사안에 해서 예술적 프로젝트로 개입을 해

서, 이런, 이런 정보를 취합하고 그것을가공해서 정보를제공하고. 또 그 과정을통해서 어떤 현안사항, 이슈에 해서, 현상에 해서 새로운합의를 도

출하는거죠. 이게 이런게아니라이런거일수있다고주의를환기시킨다거나, 인식을전환시킨다거나, 시스템을바꾸는데에까지나아가게되는프로

젝트를통해서. 물론 예술적인방식이겠죠. 그래서사적인개인의감수성표현에서부터새로운합의의도출에이르기까지모든것이다예술적활동으로

연결이되겠지만. 예술의공공성등을좀더높게담보하려면, 합의도출뭐이런데까지나아가는과정들, 뭐 이런것들이있어야되겠고.

저는 백선생의 작업이 처음에 구석에 처박혀서 요러고 전시장 벽에다가 부딪치고 이러던 진짜 혼자 노는 거잖아요. 혼자, 그죠? 혼자 게임하는 거죠. 내

가 뭐지? 예술가란 뭐지? 아 이런 고민들로부터 점점 폭을 넓혀나가면서 공공성을 확보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아직까지 방식 자체 이런

것들은공공성을좀더강화시켜야될 목들이있어야할거같다. 방법적으로도그렇고, 최종목표같은것들도그렇고, 그런생각을좀해봤습니다.

백기 : 저는이제그말씀을들으면서, 전제에있어서는좀다른부분들을좀느끼거든요. 그러니까그거를공공미술을기존미술은사적인미술이고, 공

공미술은 좀 더 공공적인 형태의 예술이고, 효율적인 예술이라는 형태로 분류하려 하기에는 조금 무리한 부분들이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왜

냐하면공공미술도사적일수있어요. 그리고아주사적인미술도공공적일수있어요. 그러니까그거가공공이란것이단순한장소구분만도아니고, 효

율성의문제로접근하는것은더더욱아니어야하거든요. 왜냐하면효율성의문제로접근하면디자인보다더효율적인게없거든요. 공익성이란것을목

표로할때, 그렇기때문에예술이냐아니냐의문제로구분하는데있어서의기준은 '공공미술이거나, 아니거나'는 다같은상황이아니냐.

일례로 공공미술 중에는 어떤 공공미술들이 가능하냐 하면은 예를 들어 타다시 카바마다 같은 사람은 5km를 넘게 나무로 길을 만들어요. 나무로 길을

닦아놓는 일이라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무의미한 것이에요. 땅위에다가 왜 나무로 길을 만들었냐는 말이죠. 별도로. 그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그거예요.

어느 날한할머니가개를끌고서산책을하다가우연히나뭇길을발견했어요. 그래서그날은나뭇길을걸어서왔어요. 그리고집에돌아가서자기할아

버지한테말하기를. '아이고할아버지, 감. 나 오늘아침에나뭇길이있어서나뭇길로산책해왔어' 라는얘기를한단말이죠. 그러니까일상속에그냥

Page 74: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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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색다른경험을만들기위해서 5km의나뭇길을닦는사람이에요. 무지한거거든요. 거의어떻게보면저게뭐하는짓이냐저게. 그렇지만그길이의도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예술가가 아주 그 일상 속에서, 자기가 사소하지만 어떤 색다른 경험들. 예술가만이 느낄 수 있는 자기 섬세한 촉수를 가지고서

일상속에느낄수있는그경험을일상공간, 공공공간에서다시체험하게끔만드는예술프로젝트를진행하는거죠. 일종의미술테라피가될수도있는

거고. 어떤 다른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제 생각에는 그거를 오히려 공공미술이라고 하지만, 공공미술의 무목적성이라는 부분을 절 잊어서는 안 되

는부분들이있다는생각이드는게.

근데 아마 그런 비판에는 어떤 게 있냐하면, 재작년인가 있었던 공동묘지 프로젝트라던가. 무슨 공공미술이라고 해서 공동묘지에 가서 놀면 공공미술이

되는거야. 뭐 이런그어떻게보면이벤트적이면서, 전혀무가치한. 저는한국의공공미술의질적문제에 해, 저는계속생각을하고있거든요. 이게예

술이야 아니냐의 문제, 그러니까 공공성에, 효율성에 문제만 할 뿐이지, 한국 미술에 있어서는 그 예술의 질은 그냥 사진 작품 보거나, 그냥 평면작업 보

거나, 거기서 느끼는 예술적 감성이란 것이 있는 거고, 그게 가지는 작가의 그 어떤 전율 넘치는 고민의 결과물인데. 그게 공공적인 역에 나오는 거예

요. 그것이 나오는데. 어떤 형태로 연결되느냐의 문제지, 그게 그냥 고민하지 않은 것들을 그냥 공공으로만 가지고 나오니까 사람들이 보기에 완전 쓰레

기가되는거고. 아 없었으면좋겠는데자꾸길거리에서거치적거리는거고. 다들 울고있는그공동묘지에서진짜히히거리면서장난치고있는. 전혀 분

위기파악이안되는. 그렇기때문에제가어떻게보면왜학문적사회연구활동이란것이중요하다고하는가하면공공성중요하고, 지역성중요하지만,

학문적연구, 스터디를하는데. 어떤스터디냐. 예술적결과물을도출하기위한스터디여야하는거죠.

예를들면이런거라고할수있어요. 베를린에엄청난지금수도가되면서막폭발적으로건물이올라가고막변화되는환경에한작가가어떤황당한주

장을하냐하면, 그 지역에화산연구기구들을만들어요. 그래서화산연구회라는전문기구들같은거를자기는조형물같은걸로제작을해가지고가서

막보고관찰하고사진을찍고. 그래서전시를한단말이죠. 그래서베를린을화산폭발지구로이사람은연구를하는거야. 멍청하고아주황당한짓인데.

그래서 화산폭발위험 측정을 자기가 측정하는 방식으로 측정해요. 화산폭발지구가 아니죠, 베를린은. 그런데 이 사람은 심리적으로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거를 접근해서 공부하고, 공부한 결과들을 이거는 다분히 예술적인 방법이고, 전위적이면서 황당무계한 작가만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예

술적 카테고리에서 이해가 되지만 사회학적인 방법으로 그냥 연구한 것들을 그냥 예를 들어 무슨 생태적인 것들 연구한 결과들을 딱딱 사진만 찍어 놨

다. 아주 지루한그거는예술이라고인정할수없는부분들. 그런데우리가아직과도기적인부분에있지만, 예술적전향이라는것이시도되지않은공공

미술들이너무많이존재하는거같아요. 그 부분을저는지적하고싶은부분이에요.

김준기: 잠깐만, 80년 후반부터인가 겨울 성리라고 하는 프로젝트가 지금까지도 계속 열려요. 당시의 답답했던 미술계 현실, 이런 것들 벗어나려고

젊은 작가들이 성리로 간 거예요. 그것도 겨울에. 겨울에 성리가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황량하고. 그런데 거기서 뭔가 예술을 한 거야. 근데 그게 처

음에할때는뭔가시 적인정신과맞물려서의미있는어떤것이었겠죠. 그런데그게해마다반복되다보니까지금은의미가없는거야. 바깥으로나간

다고 그게 뭐. 왜 나가는데. 그 추운데. 그랬을 때 효율성이 떨어지는 바깥미술이다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효율성이란 비평적

잣 가운데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 기존에 그러지 않았으니. 앞으로 그것도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말씀드린 거 고. 충분히 예술적인 방식

으로 접근하는 것이 공공미술에. 왜냐하면 퍼블릭 아트니까 충분히 고려해야 될 것이고. 아까 디자인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디자인 역에서도 퍼블릭

디자인이란 말을 하잖아요. 그랬을 때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가 뭐냐 하면 클라이언트가 요청하는 그것을 생산하면 그것은 디자인이고. 예술가가 스스로

프로젝트를만들어서자기의창의력과상상력을불어넣어서만들면그것은아트라고이야기할수가있어요. 이 여러접근이가능하겠지만. 그랬을때디

자이너들이 할 수 있는 아트 행위도 분명 있을 거란 거예요.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이런저런 시각 이미지 생산을 하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지

고 있어도 충분히 퍼블릭 아트의 역으로 포함될 수 있겠다. 그래서 아트와 디자인이 경계를 허무는 작업들도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점에서는

백선생이생각하고있는것과제가생각하고있는것이중간지점에서앞으로좀더합의점같은게좀더있어야할거같아요. 또 질문사항같은거있으

세요?

관객: 좀 더작가와. 애들이미술을생각할때되게어렵게생각을하거든요. 미술관돌아다니다보면요. 그림이, 특히현 미술같은경우특히무제이렇

게딱써있고. 애들이 봤을때는하나도이해가안가거든요. 작가들 얘기를들으면아그래서그게그렇구나. 그렇게 항상재미를느껴가니까. 아까 선생

님말씀하신 로개방적이어서공공적으로되었으면좋겠어요.

김준기: 어디 전시장 갔다가 무제 이러고 써있고, 못 알아볼 도형이나 이런 거 가득 있는 작품 있잖아요. 그럼 저게 뭘까, 저기 뭐가 있을까 라고 절 생

각하고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작품들은 체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그림들이에요. 다만 뭐가 있냐하면, 참 물감들을 잘 발라놨어. 정교하게.

독특한방법으로. 창의적으로. 그래서그런것들은오래놓고, 거실같은데걸어놓고오랫동안보면, 처음볼때는별로안보이던것이다음에볼때는또

보인다거나 작가의 섬세한 붓질 같은 게 보인다거나, 이제 그런 게 묘미를 주는 예술이니까. 뭘 그린 걸까? 저 안에 무슨 의미가 있지? 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냥그건물건이야. 그런미술들에 해선또다른.

관객: 미술 같은 것도요. 모르잖아요. 보통 애들은. 그러니까 그런 거라도 쉽게 공부를 하는데요. 일단 전시를 하신 사람들도요 전시하는 사람 눈높이에

맞게국한돼서하지말고, 쉽게, 쉽게했으면좋겠어요.

김준기: 그래요. 미술이 잘 못 했어요. 허허.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왜 그랬을까. 미술가들이 뼈저리게 들어야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어, 벌써

6시가넘었네요. 그럼, 백작가가마무리발언좀하는걸로하고마치겠습니다.

백기 : 예,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제가 지금종이를준비하지못했는데. 혹시 밑에카운터에나가시기전에종이하나마련해드릴테니까이메일이나성

함 적어주시면 제 전시할 때 하다못해 광고 이메일이라도 보내드리겠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적어주시면 그때그때 제 활동상황 같은 거 좀 보내

드려서알려드릴수있게좀해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김준기: 예, 수고하셨습니다. 함께해주신관객여러분들께도감사드립니다.

Page 75: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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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11:이상림

2004.02.13 금요일 pm.04:00

김준기: 작가와의 화를 위해서 구름과 같이 운집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면서. 작가와의 화가 지금 11번째 접어드는데, 항상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참여 작가 선생님들이 쌓아 오신 작업세계에 해서 얘기를 하고, 화를 나누는 아주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상

림작가께서평소에는사장님이라고부르는데, 오늘은작가와의 화이니까. 공간그룹의 CEO세요. 근데작가로참여하셨으니, 이상림작가라고. 이상림

작가님을모시고좋은 화의시간마련했습니다. 그러니까공공주체로공간그룹과같이하게되어서사전에얘기된바도많지만. 특히나건축가의입장

에서 바라보는 아틀리에 공간과의 이야기라든지, 여러 가지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실 거예요. 자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사람이 적을수록 연사에게 작가

에게힘을보태줘야해요. 열화와같은박수로.

이상림: 아, 방금소개받은이상림입니다. 굉장히쑥스럽고그러네요. 지금이렇게얼굴이많이보이는앞에서 3m도안되는앞에서. 사실건축을하는사

람이 전시회를 한다는 거. 전시회의 일부로 참여한다는 거 참 힘든 일이죠. 그러다 보니 건축하는 사람들은 건축설계를 해서 매번 건축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거를또전시를한다고하는것은사실참어려운겁니다. 그래서건축전시를하게되면여러가지해야하는일도많고. 또 거기에서보여줘야

할부분도상당히다른데. 특히 요번주제를가지고작가들의작업실에 한얘기를한다는자체를또건축하는사람한테는두가지의의미가있죠. 그거

는 작업실, 작업하는 자체의 공간도 저한테는 흥미롭고. 또 그 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 자체가 또 건축가의 일이기 때문에. 결국 두 가지의 역할을 한 번

에 해야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더더군다나 건축을 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그 공간, 또는 작업실 뭐 이런 것은 일반 작가가 만드는 작업실의 공간과는 또

다른의미를가지고있어요.

그래서 작업실 리포트에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얘기를 들었을 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여기다가 무엇을 전시할 것인가. 어떻게 여기에 한쪽에 전시를 하

고 뭔가를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결국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모든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만드는 어떤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를 만

드는일자체가또건축가의일인데. 그렇다면건축가가만드는공간, 작업실이란것은꼭실질적인장소여야만하겠는가하는그런생각을해서. 그래서

처음생각했던작가에게작품을만드는것이꼭현실적인장소가아니어도좋겠다는데에서시작했습니다. 그래서생각하게된것이우리에게상상의공

간이있다면그공간을한번재현을해봤으면좋겠다. 그리고상상의공간이면서도우리에게뭔가를만들수있는그런창조의공간이었으면좋겠다. 근

데그공간은물론보여줄수도있을거고. 또 물론보이지않을수도있다고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제 여러분들께 그런 생각을 가지고 뭔가 공간이란 얘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제가 공간의 표를 맡고 있고, 공간이란 잡지

를 또 만들고 있고. 그러면서 공간이란 얘기를 할 때가 가장 힘들고 어렵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다 아는 공간의 얘기를 천천히 한 번 풀어가

면서, 아니면무엇을만들려고하는가하는얘기를조금해보려고합니다.

공간이라는 일반적인 용어는 건축에서뿐만 아니라,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공간이란 단어의 정의를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공간이란 것, 경계를 일

컫는 말로도 쓰일 수 있고, 우리도 건축에서 얘기하는 공간이란 것은 어떤 것의 틀 또는 관계 또는 그것의 비어지는 것으로도 얘기할 수 있지만. 그것 또

한 어떤 경계가 없이는 얘기되어질 수 없는 그런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기에서 공간이란 것이 어떤 형식이나 형상으로 정의되는 것 보

다는 어떤 집으로서 생각되어지고. 여기에는 어떤 장소라든지, 혹은 여러 가지 간극들이 포함하는 그런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그래서 이

제 공간을 한정하는 요소, 경계에 해 얘기를 하는데. 결국은 이 공간의 표면과의 사이에서 정의되는 게. 존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나왔던 로

잠시 동안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란 데에 공간에 한 정의가 있다고 되어 있지만. 결국 우리 건축에서 공간을 얘기할 때는 무엇인가 지각이 되어야지만

공간으로얘기를할수있겠다는생각을합니다.

그래서 이제 공간과 그 경계, 공간과 지각에 해 얘기를 하게 되는데. 오른쪽에 있는 것은 국에 솔즈베리에 있는 스톤 핸지이죠. 물론 돌기둥을 몇 개

를 로그해서 그 안과 바깥에 경계되어지고. 또 그 자체로서 공간이 한정되어지고. 그것을 우리가 인지를 할 수 있는 거고 그렇습니다. 왼쪽에 있는 것은

사막의 사진인데. 보면 여기는 별로 없고, 어떤 경계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한히 먼 지평선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는데. 그것은 이것을 평면

적으로만 보면 그렇지 그것을 다시 수직적으로 잘라보면 이 사막, 모래가 있는 위와 아래로서 우리가 다시 경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것은풀이나나무또멀리보이는구름등을가지고우리가인식을할수가있겠습니다. 그래서 이제공간, 건축적 공간, 우리가 얘기하는건축적공

간을 만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 무엇을 파내서 만드는 공간, 전체 덩어리에서 파서 만드는 스테오 테토닉 방법이 있고. 그리고

두번째는쌓아가는테토닉에 한방법이있겠죠. 그래서이제까지건축적인공간을만드는방법을 체적으로이두가지방법으로지금까지만들어왔

어요. 그래서고 에벽을파고, 땅을파고만들어서공간을만들었던방법과또무엇인가를쌓아서구축해서만드는그런방법들이있는데. 결국이밑에

있는 것은 일종의 외피는 테토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 공간, 그 장소는 스테오 테토닉도 아닌, 테토닉도 아닌 제3의 그런 방법이어야지 않나 이

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에 있어서 공간, 또는 물리적 의미에서의 공간.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우리에게 결국 공간이란 것이 공간을 만드는

방법상의문제, 그리고공간을느끼는자각, 지각하고느끼는문제로생각할수가있습니다.

결국 이제 공간이란 것이 특히 건축공간이란 것이 결국 이렇게 뭔가 둘러싸여 있는 위요 공간을 얘기하게 되는데. 결국 위요 공간이란 것은 꼭 벽으로만

둘러싸여져있는공간만을뜻하는것은아닙니다. 아니지만이위요공간이건축에서쓰는가장의미라고할수있습니다. 성 베드로성당앞에있는공간

이라든지, 또는 우리의 사찰에 있는 공간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결국은 우리에게 위요된 그런 공간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느끼는 공간이란 것은

이방안에서느끼는, 이 벽으로싸여진공간. 요 공간과저공간을연결하는이목부분에해당하는이런공간. 이 공간들은전부다폐쇄되어져있는내부

적인 공간들을 얘기한다면, 큰 의미에서 위요된 공간이란 것은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다 포함하는 그런 공간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까 탄생 또는

생명, 창조 뭐 이런 얘기를 하면서, 공간하고 결부해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어떤. 오른쪽에 있는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움', 해부

의그림이죠. 결국우리인간에게있어서생명을탄생을시키고, 그것을자라게하고, 바깥하고소통을하게하는것은결국작가가작품을만드는과정이

나거의흡사한그런것들이아닌가하는생각입니다. 그래서이 '움 스페이스'가 가지고있는어떤생명을창조하는단계, 이런공간. 그리고내부와외부

가소통을하는소통의관계. 뭐 이런크게두가지의개념을가지고움스페이스를지금만들어봤습니다.

여기에서보면외부에는골판지로죽쌓아가지고, 벽을 지금만들었죠. 어떻게 보면기존에있는벽에기 가지고이게만들어진것이죠. 그리고이것의

사이즈는결국사방 1m 정도밖에는안되는것이죠. 그 안에들어가있을때는투명하고부드러운비닐로그렇게싸여져있습니다. 물론 이것을조금더

우리가좀더잘느끼게하기위해서는그것이비닐보다더부드럽고, 이것이뭔가액체와같이되어있어서우리몸을그 로 착시킬수있으면더욱더

좋겠다는 생각했고. 또 저기에다가 어떤 조명이 되어서 그것이 변한다든지 또는 그 자체 텍스처가 변한다든지 한다면 더욱더 우리의 지각을 느낄 수 있

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오른쪽에 있는 저 계단은 결국 저기에는 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계단은 바깥하고 소통을 할 수 있었지만 결국

한 번 나오고 나면 들어갈 수 없는 그런 계단이 되어져 있습니다. 직접적인 어떤 작품에 한 설명이나 뭐 이런 것들을 말씀을 이제 드리고.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우리가 여러 가지 공간이란 것들에 한 정의도 있고. 또 공간을 구성하는 어떤 요소도 있고. 또 그런 것을 우리가 인식하는 단계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게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 사용하는 공간은 실질적으로 뭔가 여기서 생활하는 생활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생활과 창조에 필요한 이상의 공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우리가 편의상 제1

의 공간과 제2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것을 제3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여기에서 얘기하는 작업실이란 공간은

어떤의미에서는제2의공간에해당하는창작, 창조의공간이될수있지만, 우리가생각하고의미하는작업실의공간은실질적으로그장소에서보면뭔

가를 생산해 내는 생산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좀 더 창조적이고 또는 사회적인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 하는. 그럼 결국은 그러고 보면 제3의 공

간이 되고, 그 공간은 결국 유형의 공간이나 실질공간이 아니어도 사실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전시되어져 있는 다른 작품들을 봐도

실질적인어떤형태나장소를차지하고있는작업실도있지만, 어떻게보면그런것들이없는그런작업실도있습니다.

그래서 밑에있는박스, 움 스페이스라는 박스자체가갖고있는의미는어떻게보면, 여기 들어와서이작은공간에서내가새로운어떤체험도하고, 지

각도 한번해보기를원했지만, 저 자체가나타나있는우리눈에보이는형상, 재료, 저 속에서 느끼는그런것들을뛰어넘는어떤우리상상의공간이어

야되지않겠는가. 결국 그런상상과우리현실을뛰어넘는공간이어야지만우리가뭔가거기서새로운것을만들어낼수있는공간이되지않을까그런

생각을했었습니다. 그래서그런거를했는데. 그리고건축을하는사람이이런것을작품을낸다는것도사실굉장히어떻게보면우습기도하고. 내놓고

나서쑥스럽기도하고한게사실이었고. 더더군다나저런것을예술작품이라고과연볼수있는지하는것도참의문이었지만. 하지만제가저기에서보

여주고 싶었던 것은 저 자체가 갖고 있는 형태적인 의미보다는 저기에 나타내주려고 했던 공간 이상의 그런 공간의 의미가 전달이 되었으면 했는데. 결

국몇몇분들이여기를와서저기를들어가보려고했단말입니다. 그래서저안에가서앉아봤는데, 굉장히튼튼하게만들어지지않아가지고굉장히위

험할 뻔했다고 나한테 항변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결국 저기 들어가려고 했으면 옷을 입고 들어가면 안 되고, 옷을 다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을. 허허.(웃음) 결국 그 얘기하고자 했던 공간이란 것이 각자가 느끼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느끼고 하는 공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하고. 저 작품을한번여러분한테이런공간을보여줄수있는굉장히참좋은기회이지않았는지생각해봅니다. 얘기를여기까지하도록하겠습

니다.

김준기: 사무실에있다가밖으로우연히나왔는데, 이 걸들, 두 숙녀분들이움스페이스로들어가는거예요. 여기서중요한게뭔가하면들이예요. 들.

한 명이아니고두명이들어간거예요. '아니, 저런 엽기적인일이.' 그래서 관심이가잖아요. 그래서가서봤죠. 신발을벗고들어가려고하는데. 그냥 들

어가도 된다. 둘이 들어가는 거예요. 하도 신기해서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서 입구에 딱 갖다 고 저 찍어도 돼요? 그랬더니 잠깐만요. 그러더니 이 친구

가 포즈를 취하는데, 시체놀이를. 이 친구 옆에서. 그래서 그 사진을 나중에 꼭 보여 드릴게요. 하하.(웃음) 제가 본 움 스페이스 체험 관람객 중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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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나중에보니까이 서양학과 1학년에다니고있는학생이었어요.

그리고 요 지하공간에 아주머니가 앉아있는 걸개그림이 있죠. 포토몽타주. 거기 아주머니가 있는데, 사진에. 그걸 똑같이 고 앞에다가 찰흙으로 해서 색

깔도 칠하고 만들어놨어요. 그 학생이. 여기 지하에다가. 아 저렇게 적극적인 참여형 관람객이, 21세기형 관람객이 있구나. 에피소드고. 사람들이 꼭 한

번들어가보고싶어하는이전시중에몇안되는인터렉티브한작품이었다. 그런점을밝히기위해서제가에피소드를말씀드렸습니다. 전시다둘러보

시고 오셨어요? 다 못 보시고 오셨어요? 아까 그 이상림 선생님 작품 보셨어요? 1층에 있는. 여기 다 조소나 회화 이런 작가들인데. 건축가로서 이 전시

에참여하신것이나름 로특이했었고, 작품 자체도가장, 체로 작품들이뭐냐면작업실이어떻게생겼는지실존하는작업실이어떤건지를보여주는

건데. 개념적으로 풀어 가신 거죠. 저의 상상은 이런 거 어요. 일반적으로 건축전에서 보이는 모델하우스 같은 거, 모델하우스인데 기존의 아틀리에와

는 다른 어떤 아틀리에도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상상했었는데. 아주 세게. 셌어요.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를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걸로해주셔서. 그래서 그런의미에서이야기를좀들어보죠. 기존의 아틀리에라고하는공간들, 여기 다른공간들을많이보셨는데, 기존의 아틀리에공

간들이 체로어떤기능이나모양이나이런것들을갖고있다. 그래서새롭게좀현실공간, 실제공간에아틀리에에 해서생각해보신거나아니면제

안해주실거나그런제의있으면좀말씀풀어주시면좋겠습니다.

이상림: 제가 사실 그 아틀리에가 두 가지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직접적인 저런 작업을 하는 작업실이 될 것이고. 또 하나는 물론 저런 장소

를안가져도되겠다고생각을했는데. 저런 것을만들이위한어떤명상의장소일수도있고, 그런 것들을만들어낼수있는그런장소가또있지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흔히 나한테 다가오는 작업실하면 우리 건축 설계를 하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제 뭐 T자가 있고, I자가 있었고, 종이가 있

고뭐모형들이왔다, 갔다하고. 지금 같으면뭐컴퓨터모니터들이좍있고하는그런장소들이언뜻연상되고, 또 이렇게다른조형작업이나평면 작업

하시는 분들 작업하면 물감통 늘어져 있고, 뭐 이런 거지만 결국은 물론 거기에서 뭔가 다른 생각도 하고 작업도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거기에 뭔

가를 만들어 내는 장소 또는 곳이라는 것은 거기가 아니지 않을까. 잠자다가 꿈속에서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걸어가다가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좀 더 잘 나올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소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업공간이 아니겠는가라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 끝에 결국

명상의스페이스또는뭔가사유할수있는공간뭐이런것들이작업공간하고도이렇게맥이닿아있지않겠나하는생각을해봤어요.

김준기: 예술가들의 작업실이라는 것이 보통은, 특히 조소하는 사람들은 보시다시피 철공장이예요. 거의 철공소 같은. 그래서 저기 구본주 같은 작가는

뭐라고 하죠? 무거운 걸 들 수 있는 장치? 아 크레인 뭐 그런 거를 작업실 바깥에다가 몇 톤을 들어올릴 수 있는 그거를 설치해놓고는 자랑을 하더라고

요. 나도 이제떵떵거리면서작업할수있다. 그래서철공소차렸냐? 허허. 조소하는사람은저런게있어요. 떵떵거릴수있는작업실. 이런 류인같은작

가도마찬가지로쇠사슬같은게있어서무거운거들어올릴수있는저런게있죠. 이렇게하드웨어가튼튼한작업실이있는가하면. 여기화가들의작업

실은 체로 화구들, 그림 저장하는 저런 앵글로 된 선반들, 다 비슷한 유형의 물건 같은 것들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그런 작업실인데. 지금 이상림 선

생님이나 요 밑에 또 배윤호라는 작가가 작은 사진 몇 개를 걸어 놓은 게 있는데. 그게 자기 집이예요.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인데. 집에 아무 것도 없어

요. 화구나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고, 그냥 집에서 최소의 생활, 잠자고 먹고 이거만 하고. 작업은 그냥 스케치북 하나, 요거만 있고. 이렇게 명상하거나

하다가그리고, 그린걸가지고밖에나가서뭔가실현하는데쓰는그런거죠. 그렇게따지면이상림선생님말씀하신하드웨어로꽉찬작업실이아니라

텅비어있는작업실속에서명상들통해서뭔가생산해낼수있다. 그런점에서뭔가일맥상통하고. 사실은그래서그때같은시간으로그렇게작가와의

화를잡았던건데. 이렇게 따로말씀을나누는게된것도나름 로괜찮은또다른얘기가좀나올수있을거같아서. 이쪽에 앉아계신분은전공분야

나하시는일쪽이어느쪽이세요?

관객: 조소과인데요. 아직.

김준기: 아, 이제 입학할 예정이고. 저 조소작업실 잘 보세요. 떵떵거리는 작업실. 이런저런 질문을 좀 생각해 주시고. 먼저 저 한은주 실장님이 실장

사장이아닌. 하하. 건축가 설계사한은주와작가이상림의고도로허심탄회한. 과연 건축또는공간이라고하는것에 해서평소일로서얘기하는것이

아닌상황에질문같은것들이분명히있을거같아요. 더군다나작가에게질문하는거니까.

한은주: 근데 거 참. 말씀드리기가. 하하.(웃음) 근데 사실은 질문을 드리기보다도 항상 거의 어떻게 보면 비슷한 길을 나아가고 있는 상태에서의 선배고,

또 이런 관계도있고한데. 어떻게 보면지향하는바나사고하는바가이게상당히다르지않은게상당히많아요. 그리고 지난 번에말씀드렸던크로스

디스플레너리에 한탐구나모색도있지만. 그런 거에 한그걸추구하다보니까강박증같은것도사실은있기도한거구요. 특히나 저희사장님께서,

작가님께서. 하하. 워낙에 기본적인 마인드에서 그런 약간 근 적인 모습의 건축가의 어떤 모델, 거기서 벗어나 가지고. 실험적인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관심도많으시고, 지향하고있으세요, 실제로. 그래서그게아무래도예전에근 적공간, 공간건축, 우리나라에서디자인있거나한공간건축. 거기서이

제한단계또새로운현 적인공간건축으로업그레이드되는그런동기부여라든지, 색깔이라든지그런게또사장님통해서나온다고느끼고있는데요.

사장님께제가질문을드리라고하시니까.

김준기: 네. 지금까지는공간의홍보실장. 와, 홍보실장보직하나겸직하세요. 하하.(웃음)

한은주: 근데 사실 건축이 워낙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시는 거보다 방 한 부분에 걸쳐 가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는 주로 일반인들은 완성된

걸 생각하시는데. 저희는 그 완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미화를 시켜서 풀어서 다시 완성을 시킬까를 무지하게 고민하고. 또 설치 미술 하는 분들은 워낙에

풀어놓고 설치를 하시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그것을 구축해서 완성을 할까를 고민하시더라고요, 역으로. 그래서 이제 그런 과정에 있는데. 사장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작가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그런 공간 루트에 해서 시각을 어떻게 포함할 수 있을까, 시각을 담을 수 있는 공간들에 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상림: 우리나라에남아있는공간들을보면오래된내부공간들이이제없는데. 결국은그게중국이나일본이나우리나라도마찬가지로목조건축물들

이있으니까. 그리고 오랜시간을갖고있는건축물이없고. 결국 그러다보니까뭐외국에서미술관으로개조한다든가, 갤러리로개조해서쓰고 있는그

런시간이많이담겨져있는. 그럼으로해서또다른감흥을우리한테느껴줄수있는것은없다는얘기인거죠. 지금 보면뒤에있는북촌의아주오래된

집이라고해도, 100년이고, 그 100년의시간을느끼기에는왠지모르게시간의깊이를줄수없는건물들인데. 그럼에도불구하고우리가시간을느끼고

시간을차곡차곡쌓는듯한. 그래서 어떻게보면장난스런표현일지모르지만, 시간을 이렇게적층하는, 시적공간이다이렇게얘기할수있는데. 그런 공

간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결국 우리에게 멋진 공간을 상상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요. 근데 아주 불행하게도 건축가들 중에는 이렇게 본인의 작품

때문에정말너무고뇌를하다가스스로의목숨을끊는다든지, 또는 크게잘못됐다고해서그부분에 해가지고많은책임을지려고하는사람이많지

를않아요. 그 이유자체가왜냐하면다른작가들은굉장히좁고깊게들어가야하는반면, 건축을하는사람들은굉장히여러부분들을개재를해야한다

고할까, 관계를 해야한다할까.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특징적으로얘기하면, 그런 부분들때문에결국은한쪽방향의깊이보다는훨씬넓은부

분들을관여하다보니까상 적으로그런치열함이라든지, 또는 아주극한으로간다든지하는부분들이많이없지않나이렇게생각합니다. 그래서물론

우리가 얘기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 이런 사람들도 보면 굉장히 비즈니스맨이나 엔터테이너에 더 가까운 그런 사람들이지. 치열한 어떤 예술가적인 기

질을갖고있는사람은아니다하는거죠. 그것이결국은건축이갖고있는또다른속성이고, 결국거기에서만들어져있는결과물이공간이란것이나타

나는것은지금결국그렇게밖에나타나지않나하는개인적인생각을갖고있습니다. 물론이게이제모든사람에게다적용되는것은아니고, 부분이

그렇다는 얘기고. 그 개중에는 정말 본인만의 공간을 탐구하다가 지금 이제 어디선가 본인들을 억누르며 살고 있겠지만, 결국은 혼자서 하고 혼자서 끝

나는일이아니기때문에. 결국그것은거의불가능한일이될수밖에없는.

김준기: 네, 베니스 비엔날레한국관짓자는거있잖아요. 건축가들이생각하는미술작품뭐이런것들전시되는공간은상당히좀다르다는그런느낌을

많이느끼거든요. 그래서아틀리에건축이란것도하나의장르처럼작은부분이겠지만있을텐데. 그래서실제적으로월간미술이나뭐이런잡지에보면

어느작가의아틀리에에 해소개되는데요. 과연 그 작가의작품들을잘형성한걸까, 형성화 의지가있을까뭐이런생각이드는것도있고. 또 어떤 거

는박서보선생의작업실같은경우는서보파운데이션이렇게제목붙여놨던데. 나중에는작은미술관으로쓰일수도있을용도로생각한거같아요. 외

형도 작가의 작품 세계와 이렇게 맞닥뜨려져서 뭔가 생각한 거 같고. 그래서 그런 아틀리에 공간이 나중에 뮤지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그런 건축들

이좀많이생겨야할거같은데. 그러지를못하는거같아요, 요즘들은. 그래서한국에서벌어지고있는아틀리에집짓기에 한비평을좀. 비평과앞으

로의계획같은것들, 어떻게접근해야겠다같은것을말씀해주신다면.

이상림: 지금 미술하시는분들, 소위 말해서미술하시는분들이굉장히많은본인들의집내지는아틀리에를많이가지고있고, 지금도 계획도하고있고,

많이 이제 지었는데. 결국 그런 것들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지금은 아틀리에로 쓰다가도 나중에는 이제 갤러리로 바뀌는 그런 상황들일 텐데. 내가 많은

그 사람의 아틀리에를 보지는 못했는데. 지금까지 본 걸로는 그래도 성공적이지 않은가 저는 생각하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 지으려고 하는 분들의 생각

들도그런 로간다면뭐괜찮을거라고생각하는데. 아까 얘기했던 로작가의그어떤작품세계나공간이맞닥뜨렸다는얘기에서어떻게표현이되어

야지그것이나타나는가하는것에 해서는사실잘모르겠어요. 제가 이부분잘모르겠다는얘기는작가가구형하고자하는세계, 궁극적인목표가무

엇이었냐에따라달라지는데. 그것이바로건축공간으로변화되어질수있을때어떻게나타내질것인가는잘모르겠어요.

김준기: 그런상상같은거. 좀 엉뚱하지만. 예를들어김수근뮤지엄이생겨요. 그럼어떻게접근해야되죠?

한은주: 뮤지엄이되어가지고, 워크플레인플레이스이면서그런거죠.

김준기: 그건 알고 있죠. 그런데 나중에따로후 들이 뮤지엄으로 짓겠다고했을때, 어떤 상황이벌어질것인지그상상을하고있는거죠. 김수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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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직접한거말고, 나중에 다른사람들이건축가를기리는어떤건축을하겠다고했을때그게어떻게풀릴지. 예를 들면박수근그러면그의모노톤,

뭐 마티에르 뭐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 걸 가지고 풀어서 박수근 작업실을 짓는단 말이에요. 근데 건축가의 그런 것들이 어떻게 나올지. 그건 뭐냐 하면

한건축가가자기나름의독특한조형어법, 공간구성방법뭐이런거를나름 로상징처럼가지고있을수있을수있는가하는물음으로까지연결될텐

데. 미술가들은 그런 상징체계에 의존해요. 이거하면 누구. 물방울 김창렬, 뭐 한지 마티에르 박서보, 뭐 이런 식으로 상징에 의존한단 말이죠. 건축가는

상 적으로그런게적을텐데. 그럴때건축가의상징성을어떻게건축으로상징화시킬것인가, 이미지화시킬것인가뭐이런생각을했다는거죠.

이상림: 어떤 누군가가 그런 거를 만든다고 한다면, 사실은 이제 건축가들도 그런 상표 같은 것들이 있죠. 각자 어떤 작가들은 그리고 그런 것이 전연 보

이지않는작가들도있고, 계속변하는작가들도있어요. 그런데김수근선생의어떤뮤지엄을누군가가짓는다하면, 우선재료에 한얘기를해봤지만,

재료에 한 얘기도 한번 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가 즐겨 사용했던 소위 말하는 작은 공간들 만들기. 그리고 그 공간을 연결하는 부분들, 뭐 이런 걸 가

지고 오히려 얘기가 될 수 있겠죠. 그런데 지금 보면 그런 공간을 만들어 놓고 느끼게 하기가 사실상 쉽지는 않은데. 우리 지금 사옥에서 어떤 필로티가

만들어지고, 들어갔을때의높고낮은거에 한변화라든지, 이런 공간들을만들고거기에편안함을주면결국그것이그분을기리는뮤지엄이될수도

있겠죠.

김준기: 메타론적으로같은게될까요? 그러니까비평에 한비평이있듯이, 건축에 한건축메타론적, 이렇게.

한은주: 근데사실, 저희김수근선생님께서지으신검정색구관하고, 그 외에건너편에장세아소장님이지은유리신관, 그리고다시이제사장님께서최

근에작년에그전체를정비를하시면서어떤포인트를딱지적을해가지고, 거기를새롭게리노베이션하셨거든요. 어떻게보면그게시간을다타가지

고, 이렇게가가지고, 결국은전체공간사옥부지전체를갖다가완성시키는어떤그런행위와과정과또하나하나과정을완결시킬때마다무엇을, 그 전

에 있던 것들 중점적으로 생각해서 기려서, 말하자면 정리를 해서 들어가는.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이 건물 하나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전체가 어떻게

보면뮤지엄이죠. 지금 전체가. 그래서굉장히묘하게도저희사이트안에한옥이있었어요. 근데 사장님께서그한옥에 한거에의미부여를상당히하

셔가지고. 이게건축이란게제가볼때이런거같아요. 뭔가근사한오브제를갖다가근사한마티에르를가지고구현을시켜놓은것만이건축은아니거

든요. 그러니까 그 관계성을 갖다가 제 로 보여주는, 정립하는 그 자체가 오히려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운 차원의 건축일 수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어떤

새로운 한옥을 갖다가 어떻게 뭐 침투해 들어와 있는 거를 어떻게 정비를 할까 그 자체는 '그래서 뭘 지었단 말이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

는그전체로볼때는상당한의미가되는거죠. 그래서그자체로시간성을굉장히독특하게시간적아이덴티티를가지고완성이되어있는상태로꾸며

져있어요. 지금.

김준기: 여기우리비건축인들을위해아키텍처의어원을좀설명해주시죠. 흐흐. 건자하고축자하고. 축은쌓을축자고, 건은세울건. 세우고쌓는다.

한은주: 근데 어로 아키텍처 하면 아키가 이렇게 흩어져있고, 군도 뭐 이렇게 얘기할 때 앞에 쓰는 접두사 '아키', '텍처'는 텍스타일, 텍토닉 이렇게 할

때엮어서짜고하는거니까. 말하자면이렇게흩어져있고, 질서가없는것들을갖다가텍처시키는거죠.

김준기: 모아서짜준다.

한은주: 그러니까질서를부여하는. 그래서스톤핸지같은것도어떤나름 로어떤질서부여잖아요. 그것을아키텍처라고치거든요. 저희들은.

김준기: 이 저큐레이팅전공하고계신강안나씨께서좀.

강안나: 이렇게 보면 광범위할 수도 있는데요. 제가 아까 아틀리에를 아래층에 작업하신 걸 보니까. 아틀리에에서 예술가들이 작업을 산출하니까, 그게

어떤 모성적인 역, 신체 역, 자궁 그런 것과 의미가 일맥상통하는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모성공간이란 말을 잠깐 아까 저기서 봤거든요. 모성

공간. 그래서거기에 해서약간좀더설명을듣고싶고요. 그 아틀리에라는것때문에모성공간이란개념을접근을시키셨는지, 아니면기존에그냥일

반적인공간도여성적인면, 편안함을준다든지이런식으로정서적인작업때문에여성적으로보시는지. 그러니까성별을구별하자는게아니라어떻게

공간을바라보고계신지궁금해요.

이상림: 두 가지다맞는얘기죠. 두 가지다또그렇게됐고. 결과적으로어머니라고하는건편안하고아늑한느낌과결국은생명의탄생을두가지를다

가지고있는거죠. 결국그생명의탄생이다생명이다하는것은결국아까창조나작품과일맥상통하는얘기죠. 그래서그렇게얘기가나왔는데, 이 모성

공간이다 하는 얘기는 결국 우리가 넓게 한국의 건축을 점지의 묘라고 하는데. 결국 하나하나의 건물을 잘 짓는 것보다는 어디에다가 이렇게 턱 놓느냐,

놓은 것만으로도 사실은 다 끝이 날 정도로 중요한 일인데. 그래 우리가 제일 많이 보는 게 소위 말해서 편안함입니다. 편안함이고. 결국 우리가 지금 북

위 37도에위치하고있기때문에, 우리가여기서봤을때남쪽빛을남쪽을향하는자리가좋고, 뒤에산이있고, 물이흐르면좋다고하지만. 그것은결국

은 방위에 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편안함, 제 로 된, 그러니까 바른 방향이다 하는 얘기입니다. 결국 그런 방향에 있는 것이 모성의 공간과 같

은얘기죠. 외부적으로확 를해본다면, 그것이내부로들어오게되면모태의공간이되고. 모태공간을표현한것이움스페이스 고. 결국그것은생명

의창조하고연결이되었고. 뭐 그런연관이있습니다.

근데아까얘기를할때시간에 한얘기, 공간에 한얘기가나오면시간에 한얘기가따로떨어뜨려서보기가참어려운데. 이 공간이라는게. 이 집

이 이런 마감으로 이런 상황이연출되기 이전에도, 이 집은 지어져있었죠. 지어져 있었고, 또 많은 시간이흘러왔을 거고. 물론 껍질도 마찬가지예요. 변

화되지만은 또 언젠가는 이 집이 또 다른 형태로 바뀔 수도 있고. 또 결국 이 집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땅의 관계로 본다면 또 다른 형태로 바뀔 수도 있

어요. 그런데아주재미있게도뭐저만그런지몰라도, 파르테논신전을본다든지, 또는터키에있는유적을본다든지할때에그자체가굉장히강하다는

거죠. 강하게사람들한테주는데. 파르테논신전이착지붕이되어가지고있고, 그렇다면우리에게얼마만큼 향을줄까. 그래서항상저는그런데가서

보면 복원도를, 복원도를 잘 못 그려서 그런지 몰라도 복원도를 보면 굉장히 실망스러울 때가 많아요. 허허. 그냥 파르테논 신전 한쪽이 깨지고, 뭔가 남

아있고열주가서있고, 뭐 이런게강렬하지. 그게 뭐페디먼트가탁되어지붕탁되어있고, 박공으로가고. 별로 이렇고가슴에와닿는것도없고. 그런

데결국파괴가되었기때문에나에게더가슴깊게와닿는건지. 아니면파괴되었다고모습남아있는것은결국굉장한시간의연륜을얘기하는것인데.

그런 것 때문인지. 생각해보면결국두가지다가아닌가싶어요. 결국 굉장히오래된쌓여져왔던시간의기피이하고망가짐으로해서, 파괴됨으로해서

더우리에게다가오는그런것들이두가지가다있기때문에더우리한테와닿지않나그런생각을해봅니다.

김준기: 일산의미륵사지한 2/3 부서진거보다가, 그 옆에쌍탑이었죠, 원래. 새로하나는새것으로만들어놓은걸보니까좀깨더라고요. 그런거같아

요. 허허.

이상림: 그거는더더군다나또더잘못만들었으니까, 이제그렇죠.

김준기: 훌쩍 현 로 좀 넘어와서 그 말씀도 좀. 매일 경제가 그랬듯이 건축가가 CEO건축가가 현 미술 기획전에 테마기획전에 참여를 했다라고 하는

게되게다른 역의뭔가로비춰지는거같은데. 음 과연 그게그런가. 제가 학교에서배울때에건축과미술은그냥하나 는데. 옛날엔 그랬다는데. 뭐

그래서 유용성, 튼튼함, 아름다움, 이 세 가지가 고 건축에 원리 고, 그것은 미술에 있어서 마찬가지 죠. 조각도 그렇고, 회화도 그렇고 다 한 몸으로

움직 다는 거죠. 근데 현 사회는 모더니티가 구현된 모더니즘 아트, 건축, 이런 것들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이거죠. 근데 결정적으로 그것을

다르게만드는게뭔가. 가만히지금생각해보고, 늘 미술인이나다른사람만나면고민해보는게그런거예요. 그 중에건축과아트, 파인아트의가장큰

경계는 산업화와 산업화되지 않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를 가끔 하거든요. 사비나미술관의 이명옥 관장님은 이 갤러리 사비나를 차리시

고일찍이미술의 중화에기치를걸고, 근 10년간. 허허.(웃음)

이상림: 여기까지는홍보실장이예요. 허허.(웃음)

이명옥: 아니, 지금저기시간도다되었고, 서로다바쁘신분들같으니까, 내 얘기를굳이.(웃음)

김준기: 지금 말씀, 질문을드린게아니고, 잠깐만요. 그래서짧게할게요. 좀 있다말씀드리려고. 그래서미술의 중화라고하는것이건축처럼그미술

의 산업화로 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경계에서 늘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미술의 시스템, 이런 것들에 해서 늘 제 가까이에서 지켜보시고, 또 얼마 전에

동 상을옥션에서컬렉팅하시기도하신, 이런저런걸로봐서나름 로미술에관한많은생각들있으실거같아요. 그런논평을이기회에한번좀들어

보고싶네요.

이상림: 어떻게 보면, 이런 전시회가 20년 전 즈음에는 전시회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었지 않나 싶어요. 저는 화를 볼 그런 걸 느꼈는데, 화 이제

끝나고 나면 이름들이 죽 나오는데. 30년 전 화를 보면 뭐 예를 들어 한국 화를 본다고 한다면 신성일 나오고, 김지미 나오고, 뭐 신상옥 감독 해가지

고 나오는 사람이 다 합쳐봐야 이 손가락 몇 번만 하면 다 셀 수 있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내가 맨 마지막 본 화가 실미도 인데, 실미도를 볼 때 보니까

봐도, 봐도끝이없을만큼많은사람들이나온단말이죠. 그거는결국은아까이제건축과미술이결국한몸이었을텐데. 지금떨어져있고, 떨어져있는

간극이 뭐 엄청나게 먼 데, 그 멀다는 게 결국 정서적인 멂보다는 굉장히 다양하게 이렇게 잘라져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결국은 지금 보면 서로의 역할

들이다달라지고있는것이고. 결국한 100년 전즈음의건축가는화가이기도했고, 한 200년 전즈음의조각가는뭐건축가이기도했고그랬었는데. 지

금은 건축가 안에서도 서로 다 달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미술을 말하고 해도, 서로가 전혀 다르듯이, 어떻게 보면 하나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다양한

것이건축하는데에서도달라져있습니다. 그래서결국은그렇게그런다양성때문에무언가를그리고만들고하지않아도이렇게전시를할수있고. 그

자체로서새로운예술 역을또만들수있지않은가. 결국 지금많이우리가하는게, 시간의 변화에따라서뭔가를막덧붙이고바뀌고하는것자체가

하나의예술이될수있고, 그 자체가하나의뭐다른 역으로표현될수있다는거자체가결국은오늘날의우리의예술, 이런 거를 변하지않나싶어

요.

Page 78: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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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관례적인 얘기로 끝을 맺을까요? 저는 그냥 여담이에요. 몇 년 전에 미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투어를 하는 게 있거든요. 작가 작업실을

이제 한번씩 같이 가자는데. 부분이 환상을 가지고 접근을 해 가지고. 구본주 작가 작업실에 갔는데, 전부 다 정장 차림으로 나오신 거예요. 애호가 분

들이. 그러니까 그 분들이 생각하는 작업실이란 건 굉장히 깔끔하고, 작품처럼 생각했는데, 구본주 작가 작업실 보통 들어갈 때 입구부터 흙투성이이고,

들어가니까 한쪽은 용접을 해서 뭐 떨어지고 해서. 나올 때는 전부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와서. 그러니까 그 환상이 다 깨져버린 거. 그 다음에 저희가 이

번에 작업실 리포트 기획을 할 때 물론 지하층에 그런 경우도 있는데. 과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작업실과 작가들이 현장이라고 생

각하고 있잖아요. 심지어는 공장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고요. 그 안에서.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굉장히 괴리감이 들어서 빵모자 쓰고, 페인팅 하는 걸로

생각하는그런거에 한환상을좀깨보고, 아까도얘기했지만여러가지각도에서접근했지만, 그런의도가좀강했거든요. 실제현실의문제이지, 이게

창작의 산실이 어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상하고 우아하지 않다는 거. 그럼 우리가 어떻게 접근을 해서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고통이라든지, 어떤

실제적인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는가 거기에 한 어떤 문제를 담론을 형성해보자. 그렇게 해서 전시가 기획이 되었던 거구요. 어쨌든 방금 이상림 선생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세상은 뭐 전부가 역이 이거는 건축가다, 화가다 구획이 되어있지 않고 계속 크로스 오버하는 그런 시 이고. 그리고 저

역시도미술관관장하면서, 큐레이터하면서, 글 쓰는작가도하고. 물론다썩프로의식을가지고하지는못합니다마는그렇게하고있거든요. 그런의미

에서이 표께서이번에첫발을내딛으셨으니까, 계속 관여를하시는것도바람직하지않나하는게제개인적소견이고요. 자 이걸로오늘제가클로즈

해야되나?

김준기: 혹시 질문이 있는데. 허허. 그런 거 아니죠? 작가 선생님의 마무리 발언을 들으며 마치겠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좀 미술계랑 활발하게 교류

하는데 앞장 서 주시고. 직접 또 출품이나 여러 가지 역할도 좀 해주시고. 저희 미술계가 그래도 건축 쪽에서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쪽은 공간이거든요.

왜냐하면공간이란잡지가있었기때문에. 그 역사성이또엄청크잖아요. 지금도그렇고. 그래서그런쪽으로도더많은교류가있었으면하는바람을가

지면서, 마무리말씀좀해주세요.

이상림: 글쎄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공간에서 생각했던 미술계 혹은 미술 이런 쪽에 관여하고는 상당히 다르게 우리가 접근이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가

만히생각해보니까굉장히피상적으로미술계를 했고, 상당히피상적으로만나왔던게아닌가하는생각을가졌어요. 그래서요번에한발을직접이렇

게 고 보니까, 이게이게 아닌데 정말 좀 더 치열해야 되고, 달라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 해봤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많이 바뀌어져 가고 있는

이런 사회에서 본다면 결국 앞으로의 예술도 바뀌어 나갈 거고, 다양화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 나오고 있는 사이버에 한 문제 뭐 이런 것들이

좀 더 결부가 되고, 그런 쪽으로 접근이 더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까 얘기했던 미술계, 예술계하고 좀 더 착된 상태에서 관계를 하면서 해야

되겠다이런생각을해봤습니다.

김준기: 예, 좋은말씀감사하고, 그럼, 오늘의작가와의 화는여기서마치도록하죠. 박수로마치겠습니다.

작가와의대화12:방명주,오철헌

2004.02.18 수요일 pm.04:00

김준기: 미술 전공하세요? 건축과 미술 쪽에서 작업실이라고 하는 공간에 해서 관심 많이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오늘 많은 사람들이 모 을 때 얘기하

는패턴이있고, 또 이렇게작은사람들이앉아있을때패턴이있거든요. 근 한 10몇 살의차이가나다보니까, 그래서세미나하듯이알찬분위기로그렇

게 화가 진행되었으면 좋겠고요. 여기 지금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 나중에 녹취가 되어 가지고 다시 글로 꾸려지고 아마 책 형태로 나중에 결과물이 나

올겁니다. 그래서좋은얘기좀많이해주시고, 아 지금먼저준비된게방명주선생님이죠, 맞죠?

방명주: 근데천천히하죠.(웃음)

김준기: 그럼, 두 분소개를먼저할게요. 저 오철헌기자는제옛날가나아트기자할때직장선배로, 사진기자를오랫동안했었어요. 그래서예전부터 90

년 부터 계속수많은작가의작업실을찍었었고, 이걸로 전시도했었어요. 개인전도. 그래서 작가와작품과작업실이란공간, 이 세 가지를이걸로결합

해서 함께 묶음을 만드는 그런 작업들을 하셨고, 이런 걸 보면 되게 가증스럽게도 엄청 연출을 했어. 뭐 작가에게 옆으로 돌아앉으세요. 딱 이러고, 조명

도 일부러 여기서 때려 가지고, 캔버스에 아사모사하게 딱 떨어지게 하고. 최진욱 작가는 90년 초반 작업 주제가 작업실이에요. 작업실을 작업했어요.

그래서이작업실바깥에는공간들에는치열한삶의현장들이전개될거아니에요. 그런데이공간은작가의내 한작업공간이에요. 차단되어있고, 세

상의 바깥과 상관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아에 해서 성찰하고 있는 그림을 계속 그렸던 사람인데. 그러한 작가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 이렇게 뒤통

수를 찍어. 그런데 거울 속에 뭔가 응시하는 작가의 모습을 나타나도록 연출한다던가. 여기는 2000년 당시에 조은 작가의 개를 그리고 있을 때, 그 개

와함께담은다큐멘터리사진, 예를 들면이사진에심오한예술성이무엇이냐해서구도를잘잡고, 어쩌고저쩌고는하나도안중요하고뭐가중요하냐

하면 2000년 당시에조은 작가가개를한참그릴때, 이 개가 거기에있었고, 그 장면을포착한사람은오철헌밖에없어. 딴 사람은찍은바없단말이

에요. 이게 사진의 진미 아니겠어요? 기록성 같은 거. 또 이 양반은 중광스님이라고 기행을 많이 한 괴짜 스님 화가의 그 정도죠. 그 분의 이런 아틀리에

분위기들, 어느동네죠?

오철헌: 경기도어디.

김준기: 알아볼 수도 있는데, 이천인가 어디? 이천까지는 아니고, 그 초입인데. 돌아가신 분인데, 저 사진도 이상하게 찍은 거예요. 이런 것이 사진의 다

큐멘터리의 힘, 이런 거겠죠. 하여튼 그렇고. 나중에 슬라이드 몇 개를 보면서 그 얘기를 좀 나누도록 하시고. 방명주 작가는 화학을 전공한 사진가예요.

학부 때 화학을 전공하고 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는데. 이 디지털미술관에 아깝게도 촉박하게 섭외를 하다보니, 시간이 안 맞아서 직접 출연을 못 했

지만. 직접 출연했죠? TV 나올 수도있었는데. 저기 워낙재미있게구성해서편집진에서와서보고, 홍지연이란작가작업실에가보고싶다고해서, 주인

공으로.

오철헌: 저건 내가 얘기를. 디지털 미술관에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그 PD랑 얘기를 하면서, 저 홍지연 작가에 한 작업실에 해 재미있게 얘기했었어

요. 그래서거기서도되게관심을많이갖더라고요. 그런데시간이좀안됐었어요. 시간상으로안되어서, 그런얘기가좀있었어요.

김준기: 저 작업같은경우에아주컬러풀한작업실을이렇게아기자기하게여기저기구석구석아주잘잡았는데. 얘기거리도되게많고. 또 디지털카메

라로 그래서 디지털프린터로 컬러프린터로 뽑아내서 이렇게 압핀으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 '네오룩 닷컴'이라고 최금수 아저씨가 만든 건데. 최

금수 아저씨는 방명주 작가가 데리고 사는 남자예요. 그래서 직접 와서 최금수 아저씨가 수평 자를 가지고 와서. 전문 디스플레이어가 따로 있는 작가입

니다. 그래서디스플레이를했는데, 되게좀독특한방식이었고, 반응이되게좋았어요. 사람들이되게좋아했어요. 방명주작가의이야기를좀먼저들어

보고, 그 다음오철헌작가의이야기듣고, 같이이야기할때는이두사람의작업플러스작업실이란게뭐냐, 작업실이뭐냐에 해좀더얘기를하면서

두, 세 단계로그렇게얘기를진행합시다. 먼저방작가를모시겠습니다.(박수)

방명주: 안녕하세요. 저는 방명주라고 합니다. 방이에요. 박이 아니라.(웃음) 이렇게 작가와의 화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저는 사실 처음 되게 좀 부담스

럽다내지는그렇다고생각했었는데. 그래도이렇게속닥속닥한분위기에서여러분들을만나게되어서반갑고요. 아무튼김준기씨가아마 <작업실리포

트>전이라는걸기획하면서작년언제죠? 그때처음그얘기가진행된게?

김준기: 늦여름이요.

방명주: 예, 한 여름 이렇게 지나면서 던 거같아요. 근데 아마 그렇게섭외된 이유 중하나가되었던 게사진 쪽에 이렇게 전공을하고, 직업을 해 온지

는사실작년에첫개인전을하긴했었어요. 그 이전에는월간미술이라고거기서제가그쪽에서담당했기보다는, 그냥프리랜서비슷하게그쪽일을잠

깐했었던경험이있어요. 그때또김준기실장님이가나아트에계셨고, 그래서그런연유로만났었던거같은데. 그게한벌써, 7, 8년 되는거같고요.

근데 저는 작업을 하면서 그러니까 <작업실 리포트>전이라고 해서 부분 여러분들이 여기 작업을 보셨겠지만, 작업실이라고 하는 것들의 어떤 개념적

인 부분들, 다른 작가 분들 같은 경우 그걸 많이 건드렸던 거 같은데. 일단 저는 사진이란 걸 가지고 다른 사람의 작가 작업실을 새롭게 사진으로 보여주

Page 79: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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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작업이되는거죠. 그래서저는사실좀더아주편하게접근을했었어요. 그리고기본적으로제가가지고있는게제또래, 동년배, 제가 지금이제 30

중반이 되거든요. 그래서 제동년배의특히작업하는여자작가들에 해서항상관심을가지고있었어요. 그러니까그사람들이어떻게여성, 여자로

서자기삶을 위하면서, 작업을계속하느냐하는, 어떤 일상적이면서도자기삶에서어떻게작업을엮어나가느냐에 해서. 그 여자작가로서또비슷

한 한 측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리고 홍지연, 노석미씨 같은 경우는 한 몇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 는데. 그냥 친구, 가까운 친구라기보다

는서로알고지내는작가 는데, 아무튼 이전시를기회로해서그사람의작업을좀더내 하게한번보고싶다. 그러니까사진이라고지금하는것들

이 <작업실리포트>전에서다른작가들하곤다르게사진이란매체를통해서그사람들을좀더관찰할수있는지점이고, 그것이나의어떤개인적인작

가작업에서봤을때, 한편으로 향을줄수도있는부분이될수도있고요. 그리고컨텍을하게된주요이유중하나가동년배이지만, 자기색깔을되게

견지하고 있는, 한편으로 봤을 때는 그 사람의 작업 자체를 되게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고, 음 그리고 일상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작가로서전업작가라고하죠. 그러니까다른업을업이라고하나? 그런것들을아르바이트식으로가지고있지만, 결국은자기작업을통해서어떻게자

기삶을 위하며사는그런작가들인데. 사실그러한부분이되게부러운부분이기도했고요. 그래서작가작업실을가게됐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따로 작업실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래서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기 때문에, 한편 그러니까 자기 살면서 작업하는 공간이기도 하

지만, 그래도어떤일정한작업공간으로가지고있는분들이고. 그래서작업하는건되게재미있게했었어요. 그리고보시다시피저렇게그작업을하게

된 부분은 저렇게 사진을 찍고 나서, 그 컴퓨터를 통해서 보면서 어떻게 연출을 할 것인가 하고 봤을 때, 제목을 퍼즐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러니까 저

런식의어떤디스플레이가나오게되었는데. 일단 그 부분에있어서는한사람의작업내지는한사람의작업공간, 혹은 그 사람의삶이기도하고. 그런

것들을 한 장의 사진으로 어떻게 잡아서 보여준다고 하는 게 참 한계가 있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일단 그 사람들 작업실에 가서는 많이 찍어오자.

많이 찍어오자는거를일단먼저생각했고. 찍어오고나서그거를그러니까방명주라고하는작업으로환원시켜서보여줄수있겠다는생각을했었어요.

그러면제가그전에했던작업들을조금보면서얘기를해볼까요.

그러니까 사실 제가 작업에서 저런 식의 포맷을 하게 된 것은요. 그러니까 작년에 제가 <분홍신>이라고요. 한국여성사진가협회인가에서 기획전이 있었

어요. 기획전에 제가 참여를 하게 되면서, 그때 찍은 작품이 있는데. 그걸 아마 이후에도 보시게 될 텐데. 그때 제가 전반적인 작업에 한 장, 한 장 사이즈

를저렇게하고, 전반적인작업포맷을하게된게저전시에서부터 는데. 이번전시하고도잘맞겠다고생각을해서포맷을그렇게잡게되었고. 그때는

20장을 가득 채워가지고, 다른 하나의 어떤 한 장의 사진을 조금 더 확 작업해 가지고, 새로운 포맷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걸 하면서 하나

를뺐어요. 그래서일종의보여주는방식에서그러니까블록쌓기내지는그런식의느낌. 그러니까보는사람으로하여금, 저거를완결된형태의상이아

니라보면서뒤집으면서, 이렇게, 이렇게볼수있는그런식의맥락을잡았고. 그래서퍼즐이라고하는제목을붙이게되었고요.

결국은 사진이라고 하는 것이 담을 수 있는 현실, 혹은 사진이라고 하는 것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죠. 현실흡입력, 현실을 그 로 담아낼 수 있다고 하

는부분에서. 그런데그것이얼마만큼현실하고가까운가라고다시뒤집어서생각했을때는또다른부분들이있더라고요. 그러니까사진이가지고있는

힘이기도하지만, 그 어떤재현능력이라든가, 재현범위라든가, 그렇게놓고봤을때그것이정말진실인가라고는할수없는부분, 그거를조금생각하게

되었고. 그거에서 좀 다른 못 미치는 부분들, 제가 생각하는 사진이라고 하는 부분, 그 다음에 작가 작업실을 특히 작가라고 사람들을 보여줄 때 약간은

신비화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관객들이 가지게 되는 어떤 상상적인 어떤 부분들에 있어 그거를 저렇게 다른 사진들을 조합하는 힘으

로인해서조금은다르게상상하게할수있는부분, 그런것들을조금생각했었어요.

오른쪽에 보시면 노석미라고 제가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하는 작가예요. 딱 보시면 알겠지만, 고양이를 네 마리를 키우고 있고. 동두천이에요. 작업실이.

사실노석미씨가포천에작업실을가지고있었고, 그 전에 '설악'이라는곳에작업실을가지고있을때제가방문을했었는데, 지금약간개인적인경제적

인 이유로 해서 동두천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한 방을 작업실로 가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작가가 지금 작업실이 개인적으로 제가 봐서 사진 찍는 거에

해서 약간 우려를 했었어요. 왜냐하면 마음에 좀 안 든다고. 작업실이 너무 좁기 때문에. 그래도 상관없다. 그래서 제가 1박2일을 가서 그러니까 작가

하고이렇게얘기하고놀고이러면서아침에작가가자고있는동안에도제가깨어나서찍고, 그 다음에아파트주변돌아다니면서보기도하고. 그 다음

에작가하고같이동행을했었어요. 작가 작업실을. 왜냐하면제가아직운전을하지못하는관계로인해서. 하하.(웃음) 작가가직접우리집근처까지픽

업을하러와서. 그렇게해서가면서찍은사진이고요.

김준기: 아파트몇평이에요?

방명주: 방이두개고, 평수가그렇게넓지가않아요. 네. 지금그래가지고되게조금과도기적인단계의작업실인데.

김준기: 저 보따리같은건이불장에넣은거예요? 아니면저렇게쌓아놓은거예요?

방명주: 아 그. 노석미씨가 인형작업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캔버스 작업도하면서 인형을직접 만들어요. 저기 재봉틀, 고양이 있는 두번째 두번째 보면

재봉틀이있는데. 그런걸되게잘해요. 그러니까자기가직접인형작업을하고, 그 인형을팔기도해요. 그리고정말로전업작가로하고있는사람이죠.

네. 지금 거의비슷한연배이고. 근데고양이가네마리인데. 제가거기서하룻밤잤다고했잖아요. 근데 집안에온통고양이냄새, 고양이털이날리고. 그

래서 이불을 깔아 주는데, 고양이가 등이 이만해요. 8kg이래요. 하하. 이만한데. 걔가 제가 자는 잠자리가 따뜻하니까 제 다리 위에 올라와서 자는 거야.

밤에. 그래 가지고발을오므릴수도없고, 거의 쥐가날정도로. 그래서 거의이쪽노석미씨작업같은경우에는그고양이가상당히많이주제가되었었

고. 그 다음에캔버스작업을하면서, 되게 스타일이있는작가예요. 기본적으로옷차림이라든지, 아니면 자기의작업실이라든지 그런것들이참서로잘

맞는. 그리고 거기서천같은것도보면그걸천을사서인형을만들기도하고, 자기 옷 같은경우에도직접만들어서입기도하고그렇기때문에고런다

른부분을좀보여주고싶었어요.

김준기: 외박의즐거움뭐그런건가요? 일상탈출이잖아요.

방명주: 아 글쎄, 뭐 그렇게즐거웠다는거는잘모르겠고. 음......,그러니까뭐죠. 되게즐겁기는했던게저친구가워낙재미있기때문에. 그리고뭐그런

부분들, 밤늦게까지서로얘기하면서서로작업에 해서뭐작업얘기하고. 그 다음에되게느낌이남달라요. 1박2일을같이있었다라고하는거에서이

렇게결과물이나왔다는거에서되게개인적으로되게재미있게생각을하고.

다음에저중에맘에드는개인적으로좋아하는건두번째빨간색욕조거든요. 그러니까기본적으로이사람들이색깔이있어요. 그 색깔이라고하는게,

그러니까 여러 가지 개인적인 스타일이면서, 그 뭐라고 해야 되나, 컬러풀해요. 그러니까 작업실 자체가 작업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사실 저는 그거를

많이 고려를 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어떻게 칼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들을 생각했었고. 그래서 저 욕조부터 빨간색, 그 뭐라고 하죠? 욕조커튼 저거

같은경우는저는되게재밌게보고있어요. 하하.(웃음)

그리고왼편에보시면홍지연이라고하는작가인데. 이 사람은페인팅작업하고요. 그 다음에설치작업도많이해요. 그러니까설치. 그리고두사람이되

게색깔이비슷한거같은데도확연히작품세계는다르고요. 그리고왼쪽은경기도파주에있는작업실이고, 왼쪽에두번째같은경우는작업실을가다

가 중간에 찍었던 거거든요. 맨 위에 왼쪽 두 번째 있는 거 같은 경우에는. 왜냐하면 홍지연씨의 어떤 얼마 전에 보여줬던 설치작업, 꽃으로 작업했던 것

들이 있거든요. 되게 뭐라고 해야 하나, 정크아트 같은 분위기면서 되게 키치적인 그런 느낌의 설치작업이었는데. 가다보니까는 중간에 그 옆에 묘역이

에요. 되게 묘들이 많고, 거기에 이렇게선물하는 화환처럼 그런 것들을파는 조그마한 가게인데. 그 사람의 작업 느낌이 들어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가

면서 찍었던 거고요. 그리고 요새 최근에 꽃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어요. 그래 가지고 약간 그런 식의 느낌으로 조합된 거 같고. 그리고 아마 정말 디지털

미술관이라고 작업실을 보면 아마 저것보다 훨씬 상작업이기 때문에, 어떤 작업실의 홍지연이라는 작가 작업실의 디테일한 면은 아마 더 잘 보실 수

있지않을까란생각이들고. 그 다음에중간에비어있는공간옆에사진을가만히보면, 제가 사진찍고있는제모습이비치거든요. 촛 에 보면사진찍

고있는모습이비치는데. 그런 것도참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니까제가작업들이결과적으로관객들이봤을때는조금다르게보이는측면이있을텐데.

제가작업하는부분에서는그러니까제가개인적으로생각하고있는일상의어떤부분들을많이염두해두면서작업을하게되는거같고요.

아무튼 그 사람들하고의 공동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결과물이 이렇게 나왔다는 거고. 아무튼 그런 측면에서는 아주 흡족하게 작업이 되었던 거 같

아요. 그리고그작가작업실을가게되면서사실작업으로보면이사람들이훨씬저보다는연배가높다는느낌이기때문에. 왜냐하면더오랫동안작업

을 했었고, 절실했었고, 그래서 한번 같이 이렇게 하면서 그 사람들의 면면을 좀 더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이 매일같이 자기 작업에 해서 고민하고, 어떻

게 일상적인작업을계속할수있을까라고하는부분에 해서는되게많이자극을받아온부분이있고요. 해서 정말그래요. 작업을 하는사람들, 그러

니까이번에이작업실리포트전에관해서리뷰썼던다른선생님들글봤을때, 정말 작업공간도일종의팩토리. 그러니까 공장, 노동장하고다를바가

없지만, 조금다른맥락이긴하다라고하는부분에 해서되게공감을가는부분이이번이걸통해서사실저개인적으로는좀더생각을하게되었고요.

어떻게열심히매일매일을그러니까작업하는것으로써내가그좀더 위를할수있을까그런부분, 정말.

김준기: 두 분다전업작가시죠?

방명주: 네, 그렇죠. 그게정말현실적으로얼마나힘든지, 저는알잖아요. 그랬을때참그래도열심히한다하는생각을하게됐고. 그렇습니다.

김준기: 뭘 전공하세요?

관객: 회화요.

김준기: 회화 전공하세요? 네, 그러면 뭐 그림 그리는 사람의 이런 것들에 해서 여러 가지 생각하게 하겠네요. 근데 지금 말씀 들어보니까. 여느 작가

들, 그러니까다큐멘터리가아닌형태의작업을하는사람들, 다른 화가의작업실에가서다큐멘터리를한경우가아닌사람들인데비해서. 이 전시의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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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 부합하는 발언을 되게 많이 해서. 왜냐하면 관찰자적 시각에서 작업실이란 공간을 바라보고, 또 작가들의 삶을 돌아보는 이런 과정들이 하룻밤 사

이에 죽 일어난 거죠. 그래서 봤을 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물론 다큐멘터리 작업뿐만 아니라 다른 작업도 하는 분이지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

그어떤게있는거같아요. 그 작업실공간, 작가라고하는사람에관한탐구같은거, 탐구정신. 그래서구석구석다찍었잖아요. 그죠? 나더러찍으라면

저렇게못찍을거같은데. 저렇게찍어서컬러풀하게작가의특성을잘드러내주는그런. 아 역시작업을하겠다고하고서접근하는것과그냥난작업실

에가면어떤작업이있나이러고, 어떤 작업을고를까큐레이터는작업을선별하고작품방향에 해서얘기하고그러는데. 역시 삶에 해서공간의구

석구석의맛에 해서바라보는시각이저랑은사뭇다른거같아요. 그러니까또작가고. 그렇습니다. 다른작업도좀보여주시고, 마무리해주세요.

방명주: 아 네. 그러니까그이전작업들하고지금올해제가개인전이잡혀있어요. 그런 점을중심으로해서한번보여드리게될텐데. 예, 저의 삶의모

토이자 목표가 되는 게 행복하게 사진 찍기 고요. (웃음) 네. 그 작년에 제가 첫 개인전을 했던 게, 트릭이라고 하는 제목이었어요. 아까 얘기했던 부분에

서 사진이 가지고 있는 어떤 현실흡입력 내지는 현실핍진성이란 것이 사진의 얼마나 큰 힘인가를 익히 알고 있었고. 그거에 해서 저는 조금 다른 시각

을보여주고있었어요. 그렇게생각해서진행되었던거, 전시되었던거고요. 그냥편하게그냥한번보세요.

이건 제가 유일하게 제목을 붙인 작업인데. 7과 1/2이라고 하는 거고요. 왼쪽에 앞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거 같은 경우에는 사진이 되게 단단한 거죠. 두

번찍은거거든요. 한 필름에두번찍어서, 한 번은병을빼내고찍은거 는데. 정말로특히유리병이라고하는게투명하다고하는거. 그러니까사진이

투명하게 현실을 담아낸다고 하는 부분에서 되게 얘기가 많이 되었었는데. 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그리고 뒤에 배경이 사라짐으

로해서약간의무중력공간같은그런느낌들이좋았었어요. 그래서제가좋아하는것중에하나고요. 그리고 7과 1/2이라고하는건, 제가 그전에사진

을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화 쪽에 관심이 있어서 쭉 작업을 했었어요. 화공부는 16mm작업 뭐 이렇게 했을 때, 훼드리코 휄리니라는 이탈리아 감독

의 8과 1/2이라고 하는 작품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는 아홉 번째 가기 전에 약간의 시험 작이라고 해서 그런 제목을 붙 는데. 거기에서 약간 어떤

화적인 것의 맛을 잃지 않고 싶어서제목을 그렇게 붙이게되었고요. 흐흐. 이거는 뭘 찍었느냐는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었어요. 체 뭘 찍었느냐? 어

떤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뒤집은 거긴 해요. 이렇게 보면 더 편하게 아실 수 있으실 텐데. 원근감 때문에 올록, 볼록이 좀 다르게 보이는 건데. 국화빵

틀이거든요. 그러니까약간오묘한지점들이요. 그런. 그러니까그런느낌이죠.

김준기: 렌즈는뭘썼어요?

방명주: 렌즈는그냥 50mm렌즈그 로썼어요.

김준기: 50mm렌즈로그 로? 근데왜왜곡현상이나타났죠?

방명주: 왜냐하면이렇게해서보시면훨씬오목하게들어간느낌이어서그게더뭔지아실텐데. 어떤 사실카메라의시각하고, 사람의눈의시각하고는

사람의시선을따른거라고는하지만, 되게 틀리거든요. 그러니까그런부분들, 그리고요것같은경우는그냥어떤그런맥락하고비슷하게카메라의시

선이라든가, 어떤 시선의 교란이라든가 하는 부분들을 생각했었던 거 같고. 뭐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제가 일산에서 잠깐 선행 작업실이 있었던 적이 있었

는데. 버려진 냉장고에녹이쓴거예요. 그러니까 조금다른식의사진이지만, 어떤 다른 식의느낌들이그어떤유희적인느낌들, 사진 작업을통해서그

런걸보여주고싶다. 근데 이거같은경우는이런식으로한번재미있게작업을해보고싶다는계속생각은하고있어요. 아까 얘기했던 <분홍신>전에

서. 이게 했던 부분인데. 이걸 이렇게 전시가 됐었거든요. 그때 <분홍신>에 주제가 전반적인 주제가 에코페미니즘이라고 했었어요. 근데 에코페미니즘

하면막이즘이런거별로좋아하진않지만, 어떤자연과여성의어떤관계를, 이런것들통해서어떤여성적인시각을보여주려고했던전반적인카테고

리는그랬었는데. 콘돔이에요. 콘돔을불어서찍었거든요. 작업을. 근데아까그런트릭이란맥락에서비슷하게가는거지만, 근데사실다른식으로보이

긴하지만되게요상하다, 내지는 뭐라고해야하나조금야하다뭐이런식의반응들을좀많이받은거긴해요. 보고서는. 근데 소재가콘돔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뭐 젖꼭지 아니냐,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느낌으로 했었어요. 어떤 남성의 성기지만, 조금

다르게보일수있는부분. 그 다음에안과밖이한꺼번에저렇게보일수있다는거. 불어서 찍었기때문에풍선느낌이라고 보시면되는데. 그게 어떤내

부와외부의어떤맞닿는공간이라고하는느낌, 그런 것들이었기때문에그디스플레이했을때는이런식의포맷으로봤을때효과가되게괜찮았던거

같고요. 그래서이포맷에어떤좀다르게보여지는것이이번작품에도연결이되는지점에요.

올해제가개인전을앞두고있는데, 아직정확하게날짜나장소는정해지지않았고요. 아무튼올해안으로하반기에가을이후에전시를하게될텐데. 그

때또여러분들을뵐수있었으면좋겠고. 흐흐. 아직작업이다끝난거는아니고요. 이거그냥작업했던것들조금씩만보여드릴게요.

김준기: 마리오네트가무슨뜻인가요?

방명주: 마리오네트라는게서양인형, 특히프랑스쪽에서보면줄달아가지고이렇게, 이렇게하는거있잖아요. 그걸마리오네트라고하는데, 여자이름

으로도 쓰인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아까 보 던 트릭의 사진이라고 하는 것, 트릭이라고 하는 부분의 맥락에서 어떤 여성적

인부분을어떻게결합을시켜서보여줄수있을까. 그리고아까보 던트릭시리즈같은경우에는어떤현실적인측면, 아까현실이나존재라는그런측

면들을 어떻게 좀 틀어서 보여줬다라고 한다면, 이 작업을 하면서 전시를 끝내고는 얼마나 약간 향도 있기는 해요. 화 매트릭스를 보고서 어떤 전도

된 현실의 부분, 사실 내가 이 현실에서 바꾼다. 어떤 전환시킨다고 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세상에서 보이는 것들이 더 트릭처럼 보여 질 수 있는가라는

부분으로생각이가더라고요. 그래서그런것들을좀잡아보고싶다는생각이들고. 아마지금은그런측면을가지고, 조금어떻게보면여성이라고하는,

여성적이다, 여성화에 해서는아직뭐라고할수있는부분은아니고. 너무나넓고그러니까좀더얘기할부분이많다고생각하는데. 그런것들이얼마

나 더 현실 속에서는 트릭처럼 보이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하려고요. 이거는 어떤 씨앗을 안에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꾼 거고요. 이거는 최근에

그냥 재밌게 작업했던 것 중에 하나인데. 일부 작년 아니구나, 한 달 전 즈음에 효도관광 차원에서 일본에를 갔었는데. 일본 게임 방에서 찍은 거거든요.

되게재밌더라고요. 이렇게보이는것들. 자 작업보여드리는건여기까지고요. 올해아무튼마리오네트작업은아직진행중에있고, 지금얘기했던부분

들이어떻게조금더정리가되어서작업을통해서여러분들한테보여줬으면좋겠습니다. 여기까지할게요. 질문있으면뭐.

관객: <분홍신>이란의미가뭔지.

방명주: 아 그게. 아마보통신이라고할때, 여신이라고하지않으면신이라고하는존재는남성이라고알고있잖아요. 근데분홍이라고했을때색감, 색

이라고 했을 때 핑크라고 했을 때 훨씬 장식적이고, 어떻게 보면 여성의 맥락에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 그 다음에 핑크가 새로운 요새 뉴 제너레이션의

색깔이라고도 하더라고요. 핑크라고 하는 . 그래서 그걸 조합을 해서 그러니까 핑크 갓, '더 핑크 갓(the pink god)'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지의 여신,

지의 신 이름 중에, 그 여신 이름이 있는데 그건 제가 깜빡깜빡하다 보니까 잊어버렸는데. 그 지의 여신하고도 그런 맥락에서 <분홍신>이란 제목을

짓게되었던거같아요.

김준기: 그러고보니까우리들둘다시커먼옷만입고. 회색. 검은색.

관객: 이 작품을본래작가주인이그런생각을할거아니에요? 작품에서본인이닮고싶은부분과또객관적인입장에서담고싶은부분에서틀릴텐데.

이제좁고넓고의개념을떠나서이지금작업하신걸본소감을어떻게말씀을하셨는지. 작업실주인이. 본인들은어떻게반응하셨는지.

방명주: 아예. 그러니까 홍지연씨나 노석미씨가 어떻게 얘기를 하셨는지? 글쎄. 그건 저도 되게 궁금해요. 왜냐하면 노석미씨 같은 경우는 중간에 한 번

만났었어요. 그거 하고나서. 그래 가지고전시보러온다고그랬었거든요. 그랬었고. 홍지연씨는작업을실제로보고갔는지안봤는지는몰라서아마이

전시를 끝나고 나서 한 번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모르겠어요. 그 부분은. 어떻게 흡족 하는지, 아닌지는 사실 조금 다른 차원의 얘기이기

때문에. 예.

김준기: 저 무슨상회간판은아직도저렇게붙어있어요?

방명주: 아 예. 잠깐 자리를비운동안에잠깐얘기를했었는데. 그 홍지연씨작업실가는도중에미아리공동묘지처럼그런곳이있어요. 지나는길에. 거

기에그렇게있는구멍가게인데. 아까얘기했다시피홍지연씨가요새설치작업하는어떤그런맥락하고비슷하게생각해서.

오철헌: 저기 가는데 무서워요. 장승같이. 진짜 공동묘지가 있고. 겨울에는 얼음이 얼잖아요. 도로가 얼어 가지고 가는 길이 이쪽 아니면 이쪽인데. 여기

가얼어서차가못다녀요. 그러니까완전절벽으로되어있고, 완전히무슨요새같아요. 거기밤이되면불하나없고.

방명주: 아, 그날 촬 하러 간 날. 되게 추웠어요. 12월. 그래 가지고 사실은 그렇게 춥지 않았으면 좀 더 작업 뭐 이렇게.(웃음) 근데 그 날 너무 추웠었던

기억이있고요.

오철헌: 여기 여자 분들이많으신데. 저희 두 사람 빼고. 근데 거기 홍지연씨란 분이 여성분이시잖아요. 근데 두 분이 작업을 하는데, 기거를 하면서작업

을 하는 공간인데. 글쎄 제가 보기엔 처음 갔을 때 느낌은 여자 둘이서 저기서 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조금 환경적으로는 참 삭막한 곳이에요. 그러면서

도어떻게보면반 로극과극일수도있겠죠. 우리가일상적으로우리가보고있는그런도시적인생활에서오히려정반 의생활, 그런데에또있으면

또다른삶의생활방식이나그런것이자기삶의에너지가되지않을까그런생각도하긴했는데.

김준기: 두 작가작업실다가보셨어요?

오철헌: 저 분은안가봤어요. 고양이저분.(웃음) 먼저있죠. 슬라이드를이쪽사진은아까김준기씨가저기, 저보다훨씬설명을잘해주신거같아요. 하

하. 왜냐하면 저는저의시각적인거하고느낌하고, 또 김준기큐레이터가보는작가의느낌이란게또틀리다는걸또아까새삼느꼈는데. 저는 이 사람

들, 지금 요 네 분 관계라는 것은 사실 일로서 제가 개인적인 일이나 부탁이나, 아니면 저의 일, 취재 때문에 가서 찾아뵙고, 사실 일로서 사진 촬 한 것

의 일환인데. 그런 거로 보니까 이 분의 작가들을 물론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어떤 성향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 작가에 한 것은 큐레이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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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들이얘기하고, 그런적은사실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저는 여러 이런 작가 분들을 만나보면서 충 이제 한번의 만남으로서 교감이란 게 있잖아요. 저는 그걸 참 중요시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저 사진에서 보면 모든지 우선 사실 작가 아틀리에가 모든 게 다 조화롭고 잘 이루어진 건 사실상 많지는 않아요. 그리고 또 사진 빨이라고 하잖아요. 그

사진빨을잘좋게만든그런아틀리에도많진않거든요. 그렇다면그중에제가방법택하는게있어요. 이 사람을만났을때처음사진을찍는데, 아틀리

에 구성이 참 잘 되어 있는 데는 아틀리에를 맞춰서 제가 그거를 좀 예쁘게 포장을 하는 거고. 그 공간이 좀 그렇다 할 때는 사람을 좀 더 좀 더 교감하는

그런걸끌어내려는그런작업을좀하고요.

그 다음에 이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있어요. 그건 뭐냐, 아틀리에에서 만나지 않거나, 아니면 정 그런 아틀리에 장소에서 저기 저희랑 연락을 못

하고초청을못한경우가많거든요. 그런 작가들은그럴때는자기가만든그런작품들, 그런 앞에서 부분좀그런걸끌어내는데. 그런데 그게제일어

려워요. 그런 제 3의 공간에서그런작가들을소화해내기가. 뭐 그런세가지방법정도를쓰는데. 일단 한번슬라이드를좀보시죠. 일단 요느낌하고비

슷한느낌도있지만. 제 세 가지부분에서장소. 제가 제일길게얘기하고싶은게, 제가 사진을찍는주인공입장이지만그사람은제가포장하는빛으로

서그림을그리는, 나타내는사람은제느낌하고교감이맞는다고생각한다고요.

그 다음에 넘겨보세요. 그런 공간을 참 제가 중요시하거든요. 그 아틀리에 공간을 저는 물론 사람을 찍지만 사람 자체가 꼭 제일 주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그러니까 꼭 사람을 찍으면서 그 사람의 뭔가 윤곽이 뚜렷하게 나오고, 이런 게 아니고, 그 장소와 사람과의 그 주부가 없이 어느 정도의

서로간에좀잘어우러지는그런공간감을저는참중요시생각해요. 그거와플러스교감. 그렇게생각하면서봐주시기바랍니다.

김준기: 라이트를쓰시죠?

오철헌: 라이트를 씁니다. 라이트를 쓸 때가 거의 부분이죠. 이 분도 정원철씨란 분인데. 그림을 아주 섬세한 그림을 하시는 분이고, 판화를 전공하신

분이예요. 그래서 앞에 연장들이 보면 기존의 그림 그리시는 분들하고 좀틀릴 겁니다. 근데 아까 전에 하고, 전 잠깐만 틀어 보실래요? 이것도 작가하고

이 공간 배치를 공간을 좀 더 많이 크게 해서 한 상황이죠. 제가 특별히 좀 그 중에서도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진들이에요. 공간 배열을 중요시하는. 요것

도마찬가지로저는이제한쪽에어느정도 각선구도나, 여러가지그뭐그림그리시는분들은그런구도적인면은다아실거예요. 그래서기존베이

직은좀확실하게깔고, 저렇게사진을찍는걸추구하거든요.

그리고 이거는완전히정가운데놓고, 이런 식으로 칭적으로 배치를해서사진을찍은스타일이고요. 아, 디자이너인데, 좀 제가 느낀이사람은좀뭐

랄까, 아주강한스타일의사람이에요. 그러니까자기가하고자하는일이나, 여러가지그런것들자신감있게일도하는프로페셔널이면서. 그 나타내고

자 하는 그 뭔가도 뚜렷하게 강한 카리스마적인 그런 것도 있는 성격인데. 의외로 제가 이 사람을 만나서 사진을 찍는데, 자기 화장실, 사무실 있는데 화

장실이 아주 멋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막상 가봤죠. 가봤더니 뭐타일로 되고, 묘한 분위기더라고요. 화장실 안이에요. 남자화장실 안이요. 여자화장실

을찍을순없고, 남자화장실안인데. 그래서일단한번여기사진나온건한장이지만, 여기서도한수십장찍었을거예요. 조금씩앉아있기도하고, 뭐

히히거리고웃고있는것도있을거고. 한데, 사실그중에서하나는더보여주고싶은비슷한사진이있는데, 그러니까제가처음부터시작해서지금까지

이 사람의 느낌이라는 게 그거를 가장 저는 제 방식 로 그 느낌 그 로 표현해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스타일의 사진을 찍고자 하는 건데. 그 중의 하

나이사람, 화장실이지만뭔가가튀는그런걸좀보여주고싶었어요. 다음. 이게 같은사람인데, 어떠세요? 일부러두장을같이놨어요. 그런 사진하고,

이 두 가지 사진, 나중에 한 건. 이 사진하고 아까 그화장실에 있던 사진, 그게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또 자기가살고 있는 작업하고 있는 공간이지만, 찍

기에따라서저렇게분위기가저렇게달라지는거예요.

다음. 아, 이거는 얼마 전에 제가 가장 최근에 찍은 따끈따끈한 사진인데요. 최우람씨라고. 지금 일부분 저 위쪽으로 보이시죠? 이 사람이 저기 곤충이나

동물들 관련된 그런 거를 기계적으로 작은, 어떻게 보면 좀 정교한 거죠. 그런 조립품 같은 거를 자기 스스로 저기다 철제를 다 만들어서 저런 식으로 표

현을하는사람이에요. 그러니까설치작가도아니고, 저런작가는어떻게뭐라고해야돼요?

김준기: 미디어작가라고하죠.

오철헌: 미디어 작가요? 저기 사실 근데 아틀리에를 찾아갔는데. 그전에 이 사람을 찍은 적이 있었어요. 있었지만, 그때 작업실을 촬 을 안 하고, 이 사

람이 만들었던 작품 앞에서 이렇게 이 공간에서 오로지 사진을 찍다 보니까, 다시 한 번 작업실을 방문해서 얘기를 들었죠. 무슨 어떤 것을 만들겠다. 이

러면서. 제가 보기에는어떤것을만드는것이 충움직이는모양들을같이좀작가도어우러지게사진을찍고싶었어요. 근데 막상갔더니작업하고있

는 게 너무 작은 소규모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어 가지고. 그렇게 제가 생각했던 의도 로 작업실 가서 찍지를 못 하고. 그래서 생각한 게, 일단은 작업실

공간은배제하고. 이런경우그사람의모습하고여러가지구도적인거이런것들에치중하고촬 을했어요.

다음. 그래서 작업실의 구조가 어느 정도 사진이 예쁘게 나올만한 그런 좀 사람들에게 어필될 만한 사실 공간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때는 과감하게

저는 클로즈업을 하거나, 어떤 부분을 좀 더 확 포인트를 좀 많이 주거든요. 그래서 이럴 때는 그 사람의 포즈, 좀 젊은 친구라서 제가 좀 더 이 포즈, 이

사람이현재하고있는상황, 이런것을같이어우르는 사진을찍었습니다. 이런스타일이있고요.

다음, 이거는 박선미라는 분인데요. 사실 이 분은 저기 작업실이 우리나라에 지금 현재 없어요.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를 할 때, 제가 사진을 찍은 거고.

이 분이흑연으로석탄같은걸로작품을만들어서주 주 매달거든요, 근데이제제가일부러그림자를연출한겁니다. 라이트를써서. 그저이석탄이

란느낌이몰라요. 저는그걸좀더강하게보여주고싶었어요. 그래서일단은 칭구조로정가운데주저앉게만든다음에강한사진을떠나서이사람이

가지고 있는 작품성이란 것은 독특하면서도 좀 형태미가 나름 로. 저도 그런 데에 부합해서 같이 좀 그런 형태를 보여주려고 이런 식으로 연출해 본 거

고요.

다음. 이분은 동국 오원배교수님인데, 학교 안에 작업실이 있어요. 저는 공간감을많이, 어떤 것은 시원하게되어있고아주공간이잘되어있는곳은

이런식으로공간배치를제가많이하는스타일이예요. 위는아주천장이아주. 이 분은아주좋은아틀리에에서작업을하시더라고요. 학교에서준거지

만은. 아주공간이시원시원하게되어있고. 좋은아틀리에라고저는생각을했어요.

다음. 이것도 마찬가지로 그런 스타일인데. 이제 조금 비슷하게 한 거고요. 이 분은 정현규라는 분이십니다. 근데 이제 제가 마침 이 분을 촬 하러 갔을

때는요저뒤에걸려있는작품들이있어요. 근데이제이게침목인데요. 아시죠? 철길에깔아놓는옛날에그목, 침목, 그걸오래된건데. 그걸우연치않

게 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봐요. 그때. 그래서 그걸 작품을 표현하려고 왕창 들여놨 요. 그래서 막 도끼질도 하다가, 그런 상황을 오히려 저한테는 그

게아주현실감있게, 그 작가의그공간이풍부하게드러나는거같아서. 저렇게한번찍어봤죠.

이게 또 공간을 한 번 보시면, 다음. 위에서 한 번 찍어본 건데. 꼭 굳이 작가의 프로필 사진이 아니지만, 꼭 굳이 사람이 작가의 프로필 얼굴이 부각되고,

이렇게드러나고이런것보다는공간을좀더많이보여주고공간감을보여주는것을저는좋아하거든요.

다음. 이 분은고낙범선생님인데. 이 작업실안에가이렇게빨간소파와자기겨자색작품을배치를해놨었어요. 의도적으로놨겠죠. 물론. 자기 작업실

이니까. 좀 어두워요. 이건제가촬 할때좀어둡게했어요. 근데그제가만났을때, 이 분은제가자주못했지만, 첫 만남에서의이작가는기존의작가

들의얼굴, 그런이미지가아니고지금뭐옷이나뭐여러가지를보시면아시겠지만, 되게스타일리스트예요. 그래서일부러제가좀그런스타일로연예

인찍듯이그런스타일로연출해봤어요.

다음. 이 분은 이경호 선생님이신데. 아주 연세가 많은 분이시죠. 팔순이 넘으셨고. 다음. 두 가지를 일부러 갖고 왔어요. 그러니까 이 연세 많은 분들은

제가보는그런작가의이미지는아주이경호선생님의그동안의행로를보면좀위 할수도있고. 그런걸로제가스타일을일부러로우앵글로찍은거

예요. 그래서그리고좀더디테일이라든가이런거친거를이느낌을오히려사람을좀더좀더. 로우앵글로찍어보면, 사람이좀더거 하게거만하게

보이는거거든요. 제3자가 보기에는좀위축되어서보이는스타일이예요. 그래서 이런작가들은사실제개인적으로는그래도좀어느정도평가를하는

스타일이니까. 보세요. 이건 어떠세요? 그거랑 제가 말씀한 거 듣고 보시니까. 이렇게 찍은 거하고, 그렇게 찍은 거하고. 그런 부분이 생길 수가 있는 거

예요. 그래서 저는 사실 구도적인 거나, 뭐 그런 거 봤을 때는 이런 거는 뭐 프로필 사진으로만 끝나는 거죠. 더 이상은 재미가 없는 사진이죠. 이런 거는

또 하나의 연출 사진이 아닌, 보통 제가 사진을 찍은 작가들은 거의 다, 저기 돌아가신 중광스님을 보면, 찍을 때 의자가 저기 있지 않았어요. 더 왼쪽에

치우쳐서 있었는데, 그것을 제가 끌어당겨서 이 분을 거기에 앉히고, 위에 저기 나무 이상한 게 하나 붙어있을 거예요. 아마. 그거는 사실 공간으로 따지

면그게없어지면, 없애서 손으로해서한번보세요. 그러면 상당히또심심할겁니다. 그런데 일부러제가공간적인연출, 배치를 생각하고거기에앉히

는 장치를 한 다음에, 그 다음에 이제 맘 로 하는 거예요. 맘 로 웃는 거예요. 제가 웃으라고 한 것도 아니에요. 저 분의 나름 로의, 그 때 다른 분들하

고있으니까얘기하다가도웃고했는데. 요 공간하고배치문제가확실히잡혀있고그이후의얼굴표정이나그런거는그분한테맡기는거예요. 근데제

가 좀 있다 보여 줄 건데 그건 제가 나중에 설명해 줄게요. 그리고 이거는 우연성으로 트릭이 없는 우연성으로 찍은 겁니다. 여기는 자기 작품이 걸려 있

는어떤갤러리인데. 이 분이다른분과얘기하는장면을포착했어요. 나는이게아주이사람이프랑스에서작업하시는분인데.

김준기: 누구시죠?

오철헌: 나도, 아 지금. 하하. 그 부분은 배제합시다. 하도 많아서 나도 까먹었어. 하하. 그래서 얘기를 안 하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그때가 이게 좀 꽤 됐

어요. 이게한 96년도정도즈음. 지금아마우리나라에지금없을거예요. 파리에있을텐데. 느낌이딱파리에서작업하는사람의느낌이딱어우러져있

는것같았어요. 꽤 여러장찍은것중에이사진이좀이사람, 제가본이사람의.

다음. 이 분 아시는 분 계세요? 취화선 때 뒤에서 그림 그리신 분인데. 저는 이 분의 그림이 아주 차분하게 스타일이 아주 차분하게. 그리고 말씀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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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하시는 분인데. 그 사진을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어봤지만, 제가 제일 맘에 드는 이 분한테 걸 맞는 사진은 이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서. 개

인적으로잡지에도내본적이있고. 또 뭐. 가장뭐차분하고평온한느낌에 한작가의다가오는느낌이제일맞는거같아서. 네.

이 분은 권여현이란 분인데요. 저는 이 마스크, 가지고 있는 마스크가 상당히 좀 이렇게 성격적으로 투박하시고 그런 분이세요. 우러나오는 마스크도 참

저는재미있게생각했는데. 사실다른것도있어요. 막 찌그러지게찍은것도있고, 뭐 몇개있는데. 절 로안웃어요. 이 분은. 하하. 웃지않는스타일이

예요. 그 저 아틀리에화실에서짜다남은뭐여러가지배치를했는데, 그런 공간보다도그때는제가사실공간적인요소는사진찍고싶은그런여러가

지요소보다는, 이 분의지금방금말씀드린그분의얼굴, 마스크, 얼굴이미지에좀더중점을뒀어요.

다음. 이 분은 윤광조라는 도예가신데. 경주에서 근처 사시거든요. 아주 외딴 산골에 사시는데. 부부가 둘이서 살아요. 근데 이 분이 제가 뭐 이래도저래

도 찍어보고, 몇 번 찍어 봤지만, 그러니까 달랑 사진하나 놓고, 이 사람에 해 얘기하기가 상당히쉬운 게아니에요. 그런데 그 중에서 제가 왜 이런 사

진을내놓게되었는지, 이해시키는차원에서자꾸얘기를해드리는건데. 이런부분에이렇게현재연출한건아니에요. 그냥이제제가사진을찍을테니

까, 하고계신 로그냥계셔라. 이 분은제가그런스타일로제가찍은거예요. 앞에담배도널브러져있고, 주전자차마신그릇있고, 담배는손에있고.

그냥 뭐 저 지금 어떤 작업할 때 그 화가가 뭐 기록을 하시려고 하는 장면이에요. 오히려 저는 이런 스타일로 보여주는 프로필이 더 이 사람한테는 더 제

가맞지않겠나, 개인적으로그런교감을느꼈어요.

다음. 요거는고 훈선생인데요. 이 분이아주정 화를좀그리시잖아요. 좀 아시는분들좀계십니까? 고 훈선생? 저뒤에분이좀아시는거같은데.

이 그림을보면이분은어떤뒤에배경을고서화나뭐그런여러가지그림들을바탕베이스에깔고, 그 위에다가자기정 화를매달려있는거있죠. 자

기 그림그리는게있고, 거기 매달아놓고. 저런 식으로그거를사실적으로 딱그리는. 그것도 정 하게 돋보기이만한거갖다놓고. 이렇게 그림을하는

데. 그거를 다사용하고폐기처분안하고그렸던오브제들이다벽에저렇게걸려져있어요. 그러면 저는이제여러사진도있지만, 이 분은 그런오브제

를 매달아 놓고, 이렇게 그림 그리는. 저도 그래서 작가를 제가 사진을 찍는 하나의 오브제라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매달 순 없잖아요. 그래서 옆에 세워

서 이렇게 꼼짝 마라, 이렇게 있어라. 일부러. 되게 어색한 표정이지만 일부러 그렇게 제가 한 번 찍은 겁니다. 그러니까 제, 이 사람의 그림 성향이나 또

이작가의성격이라는게어느정도드러나도록, 더 맞지않을까. 그 중에제가고른사진이에요.

다음. 아 요건 아까 제가 그 세 가지 중에 아틀리에도 못 가고, 그 분의 작업했던, 설치되었던 장소에서 사진을 찍은 건데. 이 분이 좀 한 때 한 번 얼굴이

나그런데서 화도한번찍는바람에. 거짓말의남자주인공이시죠. 근데아주스타일이아주독특하시죠. 보기에도. 콧수염도.

방명주: 근데저분사진전공하셨잖아요.

오철헌: 네, 사진을 했어요. 근데 이제 설치미술로 많이 그쪽으로 갔죠. 이제 저기가 장항에 있는 지하철공사인가. 거기 앞에 자리 잡고 설치가 되어있어

요. 거기에 세웠는데, 조금 글쎄 노란 겨자색도 아니고, 색깔이 조금 그런 색깔인데. 이거를 그 앞에서 여러 사진을 찍게 했어요. 사진을 찍게 해서, 제가

일부러세워서뭐시선을저만안보면된다는식으로해서. 제가구도는일단이렇게잡고찍었는데. 바람이부니까자기가이렇게있다가도이렇게도하

고, 뭐 나름 로 시선을안 보면서도 뭐포즈를 다취한 것중에 하나가 저런 사진이나온 거거든요. 글쎄 콧수염을 기르고, 여러 가지 가죽 재킷, 자세 이

런 것들의 느낌이 아주 저는 뭐 독일군의 옛날 그런 느낌처럼 딱딱한 이미지, 작품도 경직되어 좍좍 서 있잖아요. 지금 그런 공통점하고, 이 사람이 갖고

있는우러나는스타일이매치가된다고생각했어요. 그래서제가그중에고른게이사진이고.

다음. 이 분은글쎄, 제 개인적으로독특한사람중한사람인데. 이 사진도그중에좀독특한거있어서하나. 그 동안은뭐이런사진은없거든요. 일부러

자기가 학교 때 그린 자기 자화상인데, 자기를 나타내는 자화상을 들고 있는 작가를 제가 한 번. 그것도 자기가 자기 작품들로만 꽉 찬 내부로 쓴다는

창고안에서쑥꺼내가지고. 이렇게 쑥 꺼내는장면이사실있어요. 있지만. 그런 거보다도그런건비디오로찍으면되지만, 사진은 하나만보여줘야되

기 때문에, 저렇게 초상화, 자기 그림을 꼭 무슨 정 사진 들고 있듯이, 느낌이 되게, 저는 오치훈 선생님이 지금하고 또 느낌이 다를 거예요. 나중에 보

신분계시겠지만, 헬스를한 2년동안열심히해서완전히막강파워가됐는데. 저 당시는참왜소해보이고, 성깔만막있는사람, 사실그렇거든요. 하하.

그래서저는이렇게자기초상화를 정사진처럼들고있는초창기모습의작가스타일이오히려저때의제가참잘매치가된다고생각했어요.

다음. 그 때 당시에찍은사진중에하난데, 느낌이 다르죠. 저거는 그 앞에작업실에아파트에서 작업을하는데. 이거는 저런식으로공간을저렇게해서

찍어본건데요. 설명이나말로서는재미가없지요. 사실아까제가자화상든그런식으로두가지사진을봐서, 같은시간에같은장소에찍었지만, 그 느

낌이나보는제 3자에게보여줄수있는단한장의사진은저런게좀틀릴거예요.

다음. 요거는 윤명로선생님의사진인데. 그렇게 썩 재미있는사진은아닌데, 이 분은 사실작업실을 뭐이렇게연출하거나뭐이런게별로없어요. 그냥

시원한공간만자기집에툭튀어나와서있는데. 그리고그린작품들이다만들어놓으면, 이제말리기도위한거지만, 쌓아놓기도하고. 재료들을저렇게

그림 그릴 때마다 그냥 밑에다 깔아놓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렇게 널브러져 있는 장면하고, 공간만 제가 일단 이렇게 상의를 해가지고, 작가분과

찍은 평이한 작품이에요. 다 됐네요. 자 그리고 이게 준비한 게 없어서 일단 이걸 한 번 나머지를 제가 어떤 스타일로, 스타일이 전부 다 틀릴 거예요. 하

나씩공간디자인적구성을한게있는가하면, 사람의얼굴표정을좀더살린게있고.

방명주: 저도 그렇지만. 사람을 찍는다는 게 힘들어요. 일을 하시니까 더 아시겠지만, 저는 항상 정말 일, job으로서의 사진 찍는 부분, 항상 저는 어렵더

라고요.

오철헌: 그게일이라고생각을하면사실더어려워지고.

방명주: 왜냐하면결과물로나올때, 어떻게클라이언트가있고, 중간편집자가있고, 거치는과정들이있잖아요. 그러니까참그거사람들모두를만족시

키기란얼마나힘든지.(웃음)

오철헌: 사실 저기 제 또 사담인데. 이런 개인적인 제가 좋아서 내놓는 사진들에 해서 이 찍힌 작가들은 사실 그 사진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또 아닌 경

우가많아요.

방명주: 음, 당연히그렇죠.

오철헌: 그래서전에한번은그렇게감히이렇게그런분, 저보다중년작가분인데, 부르기가참껄끄럽더라고요.

방명주: 그건 저희도 찍혀보면 항상 만족스럽지 않아요. 내가 찍힌 내 자신의 모습이. 그런 비슷한 거 같아요. 저도 사실 이거 작업하면서 홍지연씨나 노

석미씨 사람도 찍었었어요. 그래 가지고 계속적으로 저는 이런 작업을 한 편으로는 개인작업 일환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작

업을 이 사람들 작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알고, 확인이 되고, 그 다음에 가지는 이 사람의 작업적인 스타일이니 개인적인 성품, 그런 것까지 포함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아마 지금 계획으로는 매년, 이런 식의 작업들을 한편으로 하고 싶다. 그럼 사진이 가지고 있는 힘 중의 하나가 시간성이라고 하는

게. 시간이축적되면서가지는힘이상당히크기때문에, 한 편으로는그런생각들을하고있어요.

김준기: 시간이 축적되면서거기서오는다큐멘터리의힘같은거는 단한파워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 시기에거기에서그사진의그이미지를담

아놓은사람이누구냐에따라서저는이제.

오철헌: 기록성이죠. 그건.

김준기: 장욱진, 강운보 선생이 찍은 사진 중에서, 장욱진 화백 사진 잘못 썼다가 혼났던 작품 있잖아요. 한마디로 얘기해서 요러고 쪼그리고 앉아 갖고,

담뱃불을 켰는데, 이 성냥에 빨간불빛이쫙퍼져나가면서,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드는인물사진이있어요. 강운보 선생이찍은. 그런 게 예를 들면그사

진중에서명품으로쓰이는.

오철헌: 제가 생각했던, 지금 보면 제일 오른쪽에 중광스님, 돌아가신 분. 제가 어떤 작업으로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이런 식으로 지금 라이브 생중계가

되는데. 이 중에서 제가 고르는 겁니다. 이게 제가 이렇게 현지 가서 이렇게 찍어오는 건데. 찍어오면 거기서 제가 마지막으로 골라서 거는 거죠. 그런데

거는것중에어떻게사진이되는가한번직접한번제가보여주고싶었어요. 죽 한번보세요. 보시고. 보시고나서말씀을드리죠.

김준기: 그러니까두작가가방식이접근방식이완전히다른거예요. 그죠? 오철헌선생은인물을놓고찍었고, 여기방선생은인물없이찍겠다는것. 접

근이상반되는거죠.

오철헌: 왜냐하면이거의사용목적이있기때문에. 프로필사진이라는그런목적성때문에이제저는인물사진을. 그런데인물사진이라고하는데, 인물

이안들어가고, 물론내용도뭐말로써하긴하겠지만. 사진의일단계로인물이기본적으로좀들어가는구도로해서, 구성해야하는거니까.

김준기: 그럼요. 네. 몇 년쯤되었어요? 작가들찍은것이요? 95년부터?

오철헌: 94년부터.

김준기: 한 10년 간찍었네요.

오철헌: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그 분에 해서 뭐 여러 흔적들을 다시 제가 담아온 거잖아요. 담아온 것 중에 제가 보기에는 가장 그래도 저 분 그 때 당

시에느꼈던그경험은저사진이가장저한테는.

김준기: 다른상황은되게, 설명적이고. 요소도많고.

오철헌: 공간감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진도 이런 사진도 물론 이런 사진도 나올 수 있어요. 여기 전시에 관련되어서는 이런 사진들이 어울릴 수 있겠죠.

이런사진들. 근데저거는왜저사진을특히했냐하면, 저 분이지금돌아가셨지만, 그때노환이있었어요. 병이있어서어디서치료를받고나서요양을

퇴원을 하신 다음 집에서 마지막 요양을 하는데, 저 분이 기인이시지만 그 동안 그래도 작품을 많이 하셨어요. 도자기며, 그림을 그린 게 제법 많이 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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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요. 그래서마지막전시를하기위해서그런여러가지, 이제 그런큐레이터만나고할때, 제가 같이가서이제찍은건데. 그때 제가들은저분의그

런거보다는, 글쎄사람이거의마감을하려고, 그런사람의입장에서볼때는오히려나이가드신분이지만, 다시갓난애기같은그런해맑은웃음과그

다음 행동하고, 너무 애기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저렇게 해맑게 자연스럽게 웃고 계시는 표정이, 현재 이제 그런 걸 초월해서,

모든걸담고가는그런느낌이팍나타나더라고요.

김준기: 아까 사람 찍는 부분에 해 방작가 얘기를 했는데. 뭐냐 하면 특히 최광호 같은 사진가는 자기 부인, 어머니, 딸, 자기 죄다 벗겨요. 그리고 누드

로 찍는 거지. 그리고 또 누구랑 얘기를 했더라. 이렇게 작가들이 예를 들어 누드를 찍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벗기기 위해서 설득해야 되는 과정들, 김아

타라든지, 바로 다음 전시하는 권여현 작가나, 주변에 주인공들을 이거는 이러저러한 개념이고,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되니까 벗어 달라, 이렇게 얘기를

하면 거기에 해서 반응들이 올 거 아니에요. 김일 이란 조각가는 이렇게 직접 몸을 캐스팅해서 그거를 표현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은 어려운 과정

이죠. 그러니까예술가의일이란것이벗기는게일이예요. 그렇게 그작가가벗었더라도. 그랬을 때피사체가이렇게사물이거나풍경이거나일때와달

리, 사람일때그 상과작가와의어떤긴장이라든지이런것들이극심할거같아요. 특히사람을통해서뭘잡아낸다고했을때그냥군중들을찍겠다고

하는 이런 게 아니라, 찍히는 사람이 의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뭘 찍겠다고 했을 때, 되게 그런 긴장도 있을 거 같은데. 뭐 에피소드나, 벗겨 보신 적 있으

세요? 그런작업안하시죠? 하하.(웃음)

오철헌: 글쎄재미를느끼면할수있겠죠. (웃음)

김준기: 상자, 찍히는사람과의관계속에서주로어떤느낌같은것들, 그런것좀얘기해주세요.

오철헌: 저도 뭐 그렇게, 저기 작가 분들이 유명한 분도 있고, 진짜 언론이나 여러 가지 매스컴을 많이 타는 유명한 작가 분들도 있고. 그 다음에 정말 젊

은 작가들은 사실 그런 매스컴을 전혀 타보지 않은 작가들, 때 묻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찍으면요, 그 사람들마다의 다 성향이 있어요. 그러니까

사실저는찍기에는프로페셔널한사람들을찍기가더쉬워요. 물론 뭐연예인이나모델찍는것도알아서어느정도배치해놓고, 구성 뭐구도에서무

에서 어떤 포즈만 얘기만 하면 딱 알아서 나오잖아요. 근데 유명한 작가들, 그런 작가들도 매스컴에 나온 작가들도 그렇게 됩니다. 하하.(웃음) 나오게 돼

요. 그게왜냐하면사진을제가공간맞추어서어우러지게어느정도거기서세요. 아니면앉으세요. 일단해놓고나서는그다음부터셔터를찰칵찰칵하

면, 자기 스스로 포즈를 거기에 따라 변해줘요. 연예인들 찍듯이, 똑같이 그렇게 해주더라고요. 그거는 많이 찍었기 때문에 자기도 어느 정도 매스컴을

나왔기때문에어느정도몸에익은거같더라고요.

근데 사실 저도 언제 한 번 이번 KBS 디지털미술관에서 작가라는 분들도 물론 요즘에는 개인적으로 자기가 어필할 수 있을 때는 확실하게 어필을 해야

되고, 나타낼 때는 확실히 나타내야 되는 그게 프로페셔널 아닌가요? 그러니까 작가들도 어느 정도 그런 걸 할 때에는 프로는 아니더라고, 어느 정도 훌

륭하게자기를나타낼수있는, 어필되는그런부분은갖추어야한다고얘기한적이있어요. 그런유명한작가들은벌써그런게몸에익어졌는데, 오히려

그런정말때묻지않은젊은작가들이라든지, 물론나이가드셔도그런매스컴하고전혀관계가없이작업을하신분들도많겠는데. 그런분하고하면카

메라만 들이 면 그냥 주눅이 들어 가지고, 정말 그런 분들은 제가 나타내고자 할 때 그런 게 못 나타내요. 얼굴 자체가 그럴 때는 포기를 합니다. 하

하.(웃음) 포기를 하고. 오히려 어색한 분위기 있죠. 오히려 그 어색한 그거에 오히려 캐치를 잡아내는 게 훨씬 나아요. 그런 식으로 바로 제가 그걸 와 닿

아야하거든요. 그런게글쎄에피소드라고하기엔좀그렇고. 그 중에한분이여러분들중한분, 글쎄그건얘기하지맙시다. 작가와그런부분은.

김준기: 이름밝히지말고해주세요.

오철헌: 이름도당연히안하죠. 하하.(웃음)

김준기: 그 저 취재 때문에 작가 작업실 같이 몇 작가들 가본 적이 있거든요. 이런 저런 얘기하고 편하게 앉아 보세요. 이제 그러고 하나, 둘, 셋 과정들이

이렇게 보면 상을 편하게 풀어주려고, 코멘트를 한다거나. 예를 들어 아기 사진 찍으면 왜 피에로 모자 쓰고 호로로 짝꿍 하고 찍잖아요. 그런 식으로

그런 액션들을 좀 본 적이 있어요. 강 호씨는 보니까 그 화 포스터 많이 찍는 그 사람. 그 사람은 보니까 난리 난리를 치 요. 자기가 연예인 같이. 각

자다.

오철헌: 나는글쎄, 나는그뭐. 각자마다스타일이, 스타일이니까. 연예인들은뭐그렇게안해도알아서 90%는나오는사람들인데. 나는왜그렇게악을

쓰는지, 그걸이해못하겠어. 하하.(웃음)

방명주: 엔터네이너죠.

김준기: 네 그렇죠. 좀 그런기질이있죠.

오철헌: 그것도하나의자기과장된어필이에요.

김준기: 맞아요, 맞아요. 그런 거 좀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저런 거 있어요. 좀 전에 일부러 카메라를 갖다 들이 봤는데. 카메라를 들이 면 이것이 뭐

랄까딱갖다들이 면처음엔제가의식하지못했는데, 요즘점점깨닫고있거든요. 저도나름 로. 아트를한답니다. 뭘 하느냐하면, 이걸꼭가지고다

녀요. 그러다가내가만난중요한사람, 전시혹은기록해야할것들많잖아요. 이제전시를보면이걸강의할때애들한테보여줘야겠다. 또 이사람은참

담아두고 싶다. 이런 것들. 습관화되어 가지고, 처음에는 양해를 구했는데 요즘은 점점 시간이 지나고 그냥 찍게 됐어요. 그러다가 저항에 부딪혔어요. '

아우 찍지 마세요.' 부분 다 아는 사람들이니까 그냥 있었는데. 그 중에 생기더라고요. 요즘. '맞아, 이건 초상권침해야.'라는 생각도 점점 발생하게 되

는거죠. 우리가카메라를들이댄다는거에 해서우리가옛날사람그랬다고하잖아요. 혼이도망간다. 카메라에사진이찍히면. 그런게.

에피소드하나, 요 밑에보면골판지로만든공간있잖아요. 그 공간에보통한명씩들어가요. 사람이. 근데 두명이들어간거야. 말만한처녀둘이서. 들

어가는거를보고, 아니 저런엽기적인일이하고딱가서봤더니, 둘이 들어가서놀고있는거야. 그렇게. 카메라를갑자기들고나왔지. 찍어도돼요? 그

랬더니잠깐만요그러더니, 시체놀이를취하는거야. 지 친구한테어깨댓가지고, 갑자기. 그래서그걸찍은걸제홈페이지에올려놨어요. 아주능동적인

참여의식이 높은 그런 미술 전공한 학생인데. 그런 걸로 봐서 카메라 앞에서 '찍지 마세요.'와 '시체놀이'처럼 적극적인 포즈를 취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

아요. 그러니까 피사체로 등장하는 인물의 반응 같은 것들도 그런 차이들이 되게 큰 거 같아요. 어떤 반응들을 보이시는지, 어떠세요? 체로 카메라를

들이 면.

오철헌: 저렇게웃으시다가카메라를들이 면딱경직되거나아니면어쩔줄몰라하는표정이있어요. 근데 직업상어디매스컴이나그런데나가는경

우는그런어색한모습을보이면안되잖아요. 그 사람이어떻게주인공으로서보여지는가.

방명주: 비디오매스컴들이무지하게비싼겁니다.

오철헌: 근데 지금 한 거를 꺼낸 이유가 제가 직업의식으로 찍어야 하는, 강제로 얼굴을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제가 보여 줄라고, 연출을

제가보여줄라는거예요. 한 분, 한 분을한번모델로보세요.

김준기: 오우.

오철헌: 그거는바로디지털이니까그얼굴표정을보여줄수가있잖아요.

방명주: 우와, 아.

오철헌: 한번해보시겠어요? 표정관리를제가뭐아까말씀드렸잖아요.

김준기: 그렇지않아도안경, 선글라스를이렇게위에올려놓은걸로봐서뭔가좀자세가나올거같네요.(웃음) 뭔가좀있어.

오철헌: 아니 선글라스가 아니라. 기다려 보세요. 만약에 내가 빛 방향으로 찍을 때는 공간감이나 여러 가지를, 연출을 배제하고 얼굴 표정만. 일단은 해

볼테니까. 그 이거는꼭연출을해야되는상황이니까어려워지는그런문젠데. 보세요. 하하. 근데이분잘웃으시는데.

김준기: 진행하세요. 하하.

오철헌: 얼굴빨개지셨는데, 나름 로연출력이좀있으시네. 하하. 여기뭐하나좀묻으셨는데.

관객: 아 지금점빼고있어요. 하하하.

오철헌: 아 이거뭐지우면되니까그래서제가. 너무이렇게잘웃으신다.

관객: 근데 웃는 이유중하나가결점을커버하려고하는이유도있는게. 저 입이 약간돌출되었다고 제나름 로생각해서. 웃지 않으면약간화난듯한

이미지로. 자꾸웃게돼요. 사진찍으면.

오철헌: 뭐 자연스럽게해도, 얼굴이딱사진들이 니까좀많이찍어보신거같아요. 하하. 웃으시는게.(웃음)

관객: 많이찍었어요. 모델도해요.

오철헌: 아 그래요? 아 내가잘못했네. 하하. 잘못 잡았네. 아이 그러니까제가의도했던그런게안나오고. 너무 자연스럽게그냥딱찍어도나오잖아요.

이런 분이야사실어떻게찍어도얼굴, 웃는 모습이자연스럽게 나오잖아요. 이렇게 그냥. 아까 그냥 그중에서도찍은게. 하지만 이제다이렇게나오는

법이란게없잖아. 소위이런걸캐치를잡아야하는데. 하하. 그 다음부터딴분한테.

김준기: 저 같은경우에어땠어요? 저몇번찍어보셨잖아요.

오철헌: 아, 이 사람 워낙 사진 찍히기를 좋아해서, 하하. 그래서 한 예로 보통 가면 경직된 얼굴 풀어주기 위해서 제가 일부러 그걸 시켜요. 뭐 다른 사진

작가다그렇지만, 저는 몇 가지가있는데. '막걸리~' 하는 게 있어요. '막걸리~'라고 하면 일부러크게, 크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찍는거예요. 어쩔

수 없이 경직되었을 때는 그게 제가 어쨌든 그 사람 그 시간 안에 빨리 그걸 찍고, 그 원고에 맞는 사진을 해서 내 줘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이야 제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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쨌든가서그날은웃는얼굴이나, 제 의도 로 찍어야되니까. 그거를 따라하는사람이있는가하면, 그것도 전혀못하는사람도있어요. 그때는 어쩔수

없죠. 자기팔자인데. 뭐. 근데그거를강제적으로하는경향이많죠. 그렇게.

관객: 질문이요. 개 이제 찍으시는분은찍히는거를싫어한다고일반통설처럼얘기하잖아요. 나는 아 나는찍는사람이라찍히는걸싫어한다고하시

는데, 어떠신지. 어떻게잘찍히세요?

오철헌: 아, 저요? 아저는사진빨안받아요.(웃음)

김준기: 제가찍어드린사진있죠.

오철헌: 아예, 물론 있죠. 있어요. 갖고 있어. 그나마그래도좀나은편인데. 저는 그래서어디를가든간에일행중에같이가면물론저는사진하는사람

이라서 같이 사진 서로 찍어주고, 그러는 거 사실 귀찮아서 안 찍어줘요. 근데 다른 사람이 이제 사진 안 하는 사람이 가서 찍어주잖아요. 10장중에 제

로이렇게저한테찍혀진게한장도없어요. 핀트가가거나다그런경우없어요?

방명주: 저요? 저는 그래도 학교 다닐 때 수업 중에 실습하잖아요. 그러면 제가 모델을 많이 했었어요. 하하. 그래서 그 이후로 찍히는 걸 별로 안 싫어해

요. 근데 그런거있잖아요. 정말 사진하는사람들끼리어디간다고하면기념사진서로잘안찍거든요. 정말 그럴때카메라잘안하게되고, 아예 저같

은 경우엔 어디 여행을 간다고 하면, 제 소역에 닿는 사진을 찍게 되지, 그럴 때는 서로 분담을 해요. 특히 신랑하고 같이 가게 되면, 신랑이 기념사진을

찍고, 저는제가좋아하는필요에의한사진을찍고, 그렇게해서했을때는모델도잘하죠. 하하.(웃음)

오철헌: 그래도 그건 서로 간의 맡은 바 역할을 확실히, 충실히 하시는데. 웬만한 사람들 주변에 같이 있는 사람들, 같이 가 가지고, 나도 꼭 남기고 싶을

때가있잖아. 하하. 그래서중요한건제 로라도좀찍어주지. 나도뭐이런거밖에없지만. 그게참그게어렵더라고요.

김준기: 아 저방선생님은저디지털카메라작은거늘가지고다니잖아요. 그래서우리도사진가가아닌우리도전사진가가아니에요. 늘 가지고다닌다

는말씀아까드렸는데. 그.

방명주: 근데 디지털카메라가보급화되면서, 특히 뭐 휴 폰에내장되어있는, 그런 이후로젊은친구들은사진찍는거에 해너무나자연스럽게받아

들이는거같아요.

김준기: 그래서그런현상들이되게예전하고달랐던거같아요. 근데저는저의가족들을포함해서예를들어서저의누나나형들한테 4남5녀 중에막내

기때문에편차가커요. 그 위에분들한테사진찍어주세요. 그러면그랬던기억이나. 어떻게하면되냐, 누르면되냐이런질문이들어와요. 그런기억혹

시없으세요? 사진찍는거자체, 사진찍히는게아니라찍는거자체가어색했던시절이있었단말이에요. 카메라이게.

방명주: 그때는집안에카메라한 있으면뭐잘.

김준기: 자동카메라라도그랬단말이에요. 그런현실이있는가하면, 지금은이핸드폰찍는거포함해서.

오철헌: 핸드폰 자체에서 다 있고 하니까. 그리고 그게 핸드폰 전화에서부터 스티커 사진 찍는 거. 그런 게 보급화 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그 사진 찍히는

거, 거기에자기를나타내고표현하는거를각자좀안다고. 그런거를. 스스로가개성적인그런거를. 그러다보니까이제, 이런카메라도뻔히들고다니

니까서로간에이젠연출력이나그런게이제많이좋아졌어요.

방명주: 저는사실여기오면서도누가여기올까저는정말좀그랬었거든요. 그래서사실주변에전화해서 '오세요.', 이렇게하기도되게민망스럽고그

랬었는데. 여러분이이렇게자리를지켜주셔서얼마나감사한지. 하하하. 이렇게 여기메일주소를적어주셨는데. 다음에 올해저는아마올해아무튼전

시가잡혀있기때문에, 그 소식들을전해드리도록할게요. 고맙습니다.

김준기: 질문, 궁금하신거있으시면. 그러면마무리발언을좀해주시죠.

방명주: 마무리발언아니었었어요? 금방? 하하.(웃음)

김준기: 아 좀 전에 그랬어요? 아예. 그러면 오철헌씨가 잠깐 통화 중이니까 여담처럼 그 작업실 리포트 전시 진행하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예술가들이

참 그동안 작업실이란 공간이 되게 신비의 상 같은 거, 분위기 있는 거 작가답게 뭐 이런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뭐 저도 이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었

죠. 또는 직업적으로 가서 작업 얘기나 하고 그랬는데. 한편으로 돌아서서 작가 혼자 있을 때의 작업실이란 곳이 어떤 곳일까를 한 번 생각해 보니까. 아

이게공장인거예요. 공장.

방명주: 저도다른작가의작업실을아무튼어떤식으로든리포트를하게되었지만, 개인적으로저는집에서작업을해요. 하하. 그러고일단얘기를말씀

을드리면, 결혼을 했고, 그러니까집이라고하는곳이가끔씩제자신의정체성이무엇인가에 해서특히전업작가이면서, 주부이면서, 그러면서집에

서작업을하는특히예를들어누구, 저희시어머님이전화왔을때, 어, 너 집에있니? 라고했을때는그러니까 job, 일을하지않는어떤식의그집에서

머무르는, 그런 식의 자격지심도 갖게 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정말로 제가 기회가 되면 제 작업 공간을 따로 갖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어떤 제 일상

적인 공간이며, 삶의 공간이며 작업을 하는 공간을 같이 위를 할 수 있다면, 저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사실 하거든요. 그

래서 좀 더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아무튼 앞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개인적으로는 조금 넓은 공간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서.

김준기: 오히려저는옆에서보는사람입장이지만, 사는집은그냥작게사시더라도그신랑일하는공간넉넉하게갖고, 별도로생활공간과작업공간이

분리되어있는게.

방명주: 저는훨씬편해요. 그러니까여자들의작업공간, 작업성행들내지는그사람들하고전화를하면서. 참 남자랑여자랑참많이다르구나. 저는결

혼하기전보다, 결혼하고나서더많이느끼게돼요. 참 많이다르다. 정말 육체적으로많이다르고, 성향, 생각, 이런 게정말판이하게다르다는걸. 저는

훨씬일상적인거에더많이느끼게되거든요. 그러면서저는저지금과같은작업들이나오는거같고. 그래서 저는그런부분, 아까 얘기했던작업 공간

이면서어떤 여자의 공간, 내가 이렇게, 이렇게 삶을 꾸리고, 살림을 하는 공간. 그런 것들이랑 제작업이랑 합치되는 부분으로 갔으면좋겠기 때문에. 아

마 앞으로의작업도그런맥락으로가지않을까하고요. 조금 더 치열하게고민을좀해봐야겠다. 일상 속에서어떻게작업을이루어가는부분. 요새 그

런생각들을많이하고있어요.

김준기: 지금 마무리 발언하는 시간이에요, 오철헌 작가 마무리 해주시죠. 이 전시나 일상적인 작업실을 리포트 하는 거에 관한 거나, 이번 전시 얘기나

마무리발언해주시면서마감할게요.

오철헌: 음 에. 고맙고. 질문 없으시죠? 없길 바랍니다. 허허.(웃음) 마무리할 것까진 아니고, 어쨌든 제가 이번 전시를빌어서, 김준기 큐레이터님이 이런

기획을 했다는 게 참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뭐 저도 덕분에 그래서 저기 발표를 안 했던 그런 작품을 이번 기회에 한 번 내놓게 된 거고. 이런 사실 일반

사람들이느끼기에, 다가가기에, 접근하기가한정이되어있는데에서, 이런 기획을통해서그런접근성을조금이라도해제시켜주는공간을만들어주는

게, 그런 게 좀 의도가 좋지않았나. 나름 로 소화를 하신 분도계실 테고. 그걸 좀 다르게 해석하시는 분도 있고하실 테지만. 어쨌든 뭐 이런걸통해서

전체적인매스컴이나이런걸보면잘그런거를잘이해를해준거같아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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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대화13:박불똥

2004.02.19 목요일 pm.04:00

김준기: 오늘공식적으로마지막작가와의 화를하는데요. 그동안죽진행해오면서숫자가적으면적은 로, 많으면많은 로. 다른분위기의그런최

소 3명에서스텝포함해서 6명이 화를나눈적도있고. 거의심층 화가되더라고요. 그리고숫자가많으면많은 로또다른재미있는 화들이오갔

습니다. <작업실 리포트>라는 전시를 열고나서 가장 중요하게 목표했던 바는 작가와의 화에 작품에 한 얘기는 많았지만, 작업실 얘기는 많이 없었

어요. 작업실이라고 하는 곳이 현 미술 작가들에게 있어서 또는 관람객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 어떻게 변동되어가고 있는가. 이런 것들

을좀보면, 현 미술의지평을새롭게좀볼수있지않겠냐하는의도가딸려있고요. 박불똥선생님작업다보셨겠지만, 지금찍고있는작업실에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설치물하고, 텍스트 되게 재미있어요. 이야기꺼리 되게 많을 거 같아요. 자 박불똥 선생님을 힘찬 박수로 모시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박불똥 선생님의 작품, 그것과 엮인 작업실에 관한 이야기들, 그 다음 단계는 작업실이란 곳을 객관화시켜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크게 두 덩어

리로이야기를진행했으면좋겠습니다.

박불똥: 한 10여 년전에지금강남갤러리아백화점, 지금은뭐로바뀌었는지모르겠네요. 맞은편에박 덕화랑이라고있거든요. 박 덕화랑에서어떤

기획전을하면서출품을제가했는데, 그 전시 중에작가와의 화, 이런 게 있었어요. 그래 가지고그날일요일인가에저하고이종구라고하는화가하고

두사람이함께그날갔죠. 거기를갔는데. 이종구씨하고저하고둘이앉아있고. 그리고작가와의 화라고한그시간에잠깐와서어떻게참여를하겠다

고한분있었어요. 그래서셋이모여앉아있다가할말도없고해서, 그래서결국한두마디하다가그분보내고, 제가 박 덕씨한테좀따졌어요. 굉장

히. 뭐하는 짓이냐고. 근데 그걸 미안하다 이런 반응이 아니고, 왜 자기한테 따지느냐는 식이예요. 화랑 전시를 기획해서, 초 를 해줬고, 그리고 작가와

의 화시간있다고광고쳤는데, 사람이안모여졌고. 그걸어떡하나. 근데그게어느작가라서사람이안온게아니고, 다른작가들도마찬가지로결국

그랬더라고요. 앞으로 이런 짓 좀 하지 말라고. 하하.(웃음) 아무리 미술이 별 볼일 없어지고, 작가들이 호구로 보이지만, 그래도 이종구씨는 인천에서 평

일에교사하다가일요일에노는날인데, 요지부동마음먹고여기까지왔고. 근데 이게이럴수가있냐. 그렇다고해서작가한테최소한의차비를 주거나,

그런것도아니고. 이래서제가그때항의했던요지는그런거예요. 우리가늘 '미술판' 이러면작가중심이고, 그 자들의결과물을놓고서글쓰시는분들

이 어떤 역할을 하고, 그걸 도 지켜보고, 뭐 거기에 또 관련해서 장사가 판이 벌어지고, 이렇게 이해를 하는데요. 제가 그때 느낀 거는 돈을 들여서 그런

장치를 해놓고 작가를 불러서 쇼를 하고, 그리고 그 결과물들로 그러니까 말은 작가, 평론가 이러지만, '웃기지마라. 너희들도 다 내 손아귀 안에 있다.'

이런 느낌을강하게받아가지고항의를하고. 근데 항의가아까말씀하신 로안받아들여지고, 굉장히감정이얽혀버렸어요. 그래서그때박 덕화랑

이 생긴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그래 오늘 어디 갔다가 신문을 이렇게 보니까. 바로 세우는 뭐 거기에 박 덕 화랑에서 출품을 했더라고요. 출품 작가가

몇 분 있던데, 그 중에 신문기사에 타이틀에 찍힌 게 국내 작가 작품이 좋은 반응을 받고 팔렸다. 뭐 이러는데 그 작가 중에 함섭이란 작가의 한지작업 5

점나갔는데, 다 팔렸다고그래되어있더라고요. 함섭이란작가는제고등학교때은사님인데.

그래서 이런 사비나미술관도 어쨌든 사설 미술관이고, 이런 전시기획을, 작가와의 화를 좀 오라고 해서 사실 시큰둥했거든요. 그리고 뭐 저기서 몇 분

은사실어제같이다른일로해서술을먹고, 늦게까지있고집에못가고, 이랬던분이몇분계시고. 사실그야말로순수하게뭐이래된시간을내보겠다

고하신분몇분안되는거같아요. 요거보다는더험악한꼴도당했다하는거를제가미리말씀드린거예요. 하하.(웃음)

김준기: 오늘되게많이오신편이예요.(웃음)

박불똥: 저는 지금 작업실을 짓고 있는데요. 고 밑에 늘어놓은 거 유심히 보셨으면 감이 전달됐을 꺼라 보는데. 제가 올해 이제 우리 나이로 마흔 아홉입

니다. 어찌 보면예술을하는사람으로서는자기상표를개발해가지고, 그걸 갖고닦아서도통한경지까지가는걸목표로한다면모르지만, 그렇지않다

면한 50되었으면자기세계랄지, 자기 보일거라든지, 웬만큼다했어야되는거고. 뭐 죽으면그만이다그런나이인데. 없어요. 글에도써놨지만다분히

허명이고, '그래, 그림 그리는 사람이 뭐 다른 걸로 이름이 나면 뭐하고, 뭐 말 잘하면 뭐하냐. 좋은 작업을 해서 그렇게 결과, 물증으로 남아있어야 되니

까.' 그런점에서저스스로굉장히부족하다고생각을하고.

그런데 이때까지작업실을제가지어보기도하고, 또 빌려서써보기도했는데, 제가 원하는상태나수준의것을가져보지못했어요. 그래서 근데현실조

건이 작업실을 임 해서, 작업실 세를 내면서 쓰는 것조차도 어렵고, 그건 뭐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부분 다 그렇죠. 그래서 늘 그것 때문에 끙끙 면서

하면서. 사실아주중요한시기그러니까제가지금지난 10년, 10년도더되는데요. 30 말에서 40 의 전부를사실그문제때문에, 먹고사는것도해

결이 안 된 상태에서 작업실 공간을 갖는다는 부분은 더더욱 힘들고. 그러나 미 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이랍시고 하면서, 어떻게든 버텨야 되겠고. 그랬

을 때오는어려움같은게있거든요. 그래서 그지경을벗어나보자해가지고이제오래잔 가리뭐부분 가리다써가지고애를썼는데. 결국은 계속

가다가중단되고, 그래서한 10년 넘게어찌보면허송세월하고. 근데뭐어느분야에서어떤일을하든비슷할거라고봐요. 나이 50이 코앞에딱닥치면

자기가살아온삶에 해돌아보게되고, 앞으로어떤전개가가능한가를반성하지않을수가없잖아요. 그래서이러고제가어떤경향의작업을해왔던

지 간에 '야, 이러고 끝나는 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어떻게 하다가 한 번 마지막 발악을 한번을 해보자 이런 자기 정리를 했어요. 하고

서마지막발악을하는데서그럼가장기초단계로서작업공간에 한것좀확보를해야겠다. 그래서지금사실작업실지을수있는형편이전혀아닌데,

그걸어떻게든하고. 물론그런시도조차도할수없는사람들도더많다그렇다면저는굉장히행복한거고.

근데어쨌든그래서지금땅을마련하고있고, 짓고있어요. 거의다지어가는데. 그거짓는다고해서끝나는게아니고. 그 다음에작업에시간을투여할

수있도록또여러가지조건들이계속강구가되어야겠죠. 그러면서사비나미술관에서이런전시를기획하고, 김준기선생님이참여를해볼수있는얘

기를해 오고 하는 것, 생각, 개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사비나미술관이 기획한 것과 관계없이도 제가 생각하게 된게, 작업실, 작가가 작업을하는데 필

수적인 게 작업공간이다. 그럼 작업공간에서 그럼 뭘 하느냐, 일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농부들이 일하는 건 논밭에서, 바로 현장에서 일하는 거고. 장사

꾼들이일하는건시장에서, 화가가작업을한다, 작업실에서일을하고. 근데그일이제가여태까지한 20년활동을해왔는데. 하면서제가가진그미술

에 한혹은예술에 한관이라고하는게, 흔히 말하는민중미술뭐현실주의. 저는 뭐 미술적인어떤기초사항들, 요소들, 이런 것에 몰두하면서 그것

들을 가지고 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거는 저는 굉장히 뭐 아주 저 내려오는 거나, 기질적으로 보나 굉장히 거부감을 많이 갖고, 그런데

지금이지점에와서작업공간을무리를해서만들어가지고그안에틀어박혀서뭘해보겠다, 그러면 뭘해보겠다는거냐, 뭘 할 수 있는거냐는고민이

사실드는거죠.

저는한 20년 활동을해오면서제가어찌보면스스로무덤을팠다는생각이드는데요. 화가가그림을그려서물리적인어떤그무언가로남겨두어야했

는데. 그리고서 그 다음에 그거를 그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풀어 나갔어야 하는데. 제가 이때까지 활동해오면서 중요하게 손가락질했던 것 중 하나가

화가의, 예술가의정신세계는자기현실속에서파악하는어떤그집, 무형의어떤것이유형으로결과물로, 근데 유형으로결과된것이공동체적인어떤

이 사회에, 공동의 선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이 사회 구성원의 어느 일부, 어느 특정한 어떤 지조로 귀결되어 버리는 부분, 굉장히 아니라고 생각했거

든요. 근데 지금 제가작업실을짓고, 그림을 그린다면, 그래서 애써자꾸그림도안그리는쪽으로자꾸생각이가는데. 그림을 그린다면 결국그게어떻

게될수있을까, 그런 고민이되는데. 80년 미술이지금벌써한 10여년이지났는데, 뭐 미술관에작년에신학철선생님전시회고전같은전시도있었

고. 또 올해도 5월 달에민정기선생님그렇게한다고하는데. 그런 것들보면서저만그런생각을할게아니고, 비슷하게가야될거같아요. 그러니까그

림속에어떤소재나주제로누구를그렸다. 어떤 형식을그렸다. 무슨 이야기를 담았다하더라고. 그럼 그런 이야기로전달되는 것말고, 그 나머지부분

이 있잖아요. 화가의 삶의 부분이 있고, 그 작품의 여로부분 있는데, 그런 것들이 과연 거기에 담겨져, 그림 속에 담겨진 소재, 주제하고 일치될 수 있느

냐, 똑 떨어질수있느냐. 이를테면이종구가농촌현실을그렸다농민의초상화를그렸다. 그게 농촌현실을개선시키는데, 농민들의삶의질을높여나가

는데, 과연어떤작용을하느냐말이죠. 물론그렇죠. 그걸봄으로써우리도시생활에바쁘게돌아가다가, 아 그렇지내뿌리가뭐 다. 우리에게정작중

요한게무언가를자각할수도있겠죠. 근데그렇게해서그게실제적인어떤자기삶의개선을할수있느냐, 그랬을때는저는그게좀어렵지않느냐하

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미술가가 뭐 부가가치, 물건생산자로 둔갑하는. 이거를 적극 장려하는 이 지금 자본주의 방식에 한, 시스템에 한 굉장한

거부를 하면서. 그거에 나름 로 질타를 하면서 살아 왔는데, 작업실을 지어서 들어가서, 몰두해서 열심을 그림을 그린다. 그게 뭐가 될까 그 고민은 안

가져져요? 그럼그런데, 그럼그렇다고해서뭘어떻게할거냐. 50이 넘고 60이 넘고죽을때까지그럼계속그러고궁상떨고살거냐. 일단 하면서부닥

치면서한번풀어가자생각하는것하고다를수도있지않겠냐는그런생각을하고요.

그리고 지금 여기 다른 분들 작업에서 그게 여실히 드러나지만. 작업실이란 게 왜 꼭 우리가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아틀리에, 뭐 이런 것이 아니라. 이동

의, 동시 적인매체와연관되어생각해보면, 그것이아틀리에의어떤느낌이아니라, 비디오같은느낌도있고, 현장으로찾아가는그런부분이될수도

있고. 한데 작업실을 짓는다, 물리적인 어떤 규모가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하는 것은 이게 어찌 보면, 자승자박의 자기를 옭아매는, 자기의 틀 속에 자기

를집어넣는, 그래서 제가죽늘어놓은것중에모눈종이위에다이렇게그런게있는데요. 거기 땅을사서등기를내는데, 등기부 제일표지에빨갛게이

렇게해서왁구로찍어서기입을하는데, 그것을 딱보니까마치작업실의도면같은느낌이확오면서. 아 요게 이렇게해서갇히는구나. 그런 걸 느꼈습

니다. 그럼 이걸 일단 현재까지 어쩔 수없는 현실로 인정할때, 그 다음 그럼 거길들어가서 어떤 고민하고, 뭘 읽고 쓰고, 그려서 이 부분을 극복해나갈

수있는가. 그거는극복할수없는거라는것을결국확인하고말건가. 현재그런상태에있습니다. 허허허. 작업의이해는그렇고.

김준기: 박불똥선생님의약사를약 3분 50초에걸쳐서, 어떤작업실꾸려오셨는지소개를좀부탁드릴게요.

박불똥: 학 졸업하고, 한참동안은그냥신혼집에, 조그마한방에이렇게앉아가지고했고요. 거기서뭐판화도하고, 만화도그리고, 삽화도해보고등

등그렇게살았고요. 그렇게 살다가뭐이렇게그러니까 문을잘모르는거죠. 문을 모르고살다가, 아니 그러니까우리가저왜고등학교 과정에 '너

그림 잘그리는구나, 혹은 뭐 그런얘기를들으면서더그림에관심을갖고, 미 에 진학하게되는이런것처럼, 그냥 미 를졸업하고뭔가뭘해가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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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거아닌가. 그런소박한생각을했던겁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단칸방구해서살림살기도벅찬데, 무슨 작업실따로생각하고. 그래서 그러면없는채로지내다가, 최초의작업실이라는거를가져

본 게, 제가 지금 일산 신도시가 생기기 이전에, 거기가 군 면이었어요. 그쪽으로 이사를 서울에서 살다가. 좀 생활공간을 서울의 비용을 가지고 더 좋게

쓸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간 거죠. 그래서 조그만 연립 주택을 하나 구했는데, 그 연립주택에 지하가 있었어요. 차를 세우고, 그냥 창고인데. 거기 지하에.

여기 반만 하겠네요. 거기 한 5만원 들여서 밑에 장판 깔고, 뭐 방목 세우고 뭐 이렇게 했어요. 근데 그게 살림방의 한쪽 방을 쓰는 것보다 별개의 지하의

작업실을하게됐어요. 그래서그게 87년도, 88년도 그때입니다. 그때 25만원 들여서모양을만들고, 캔버스꽂아놓고하면서이게뿌듯했거든요. 5만원

들이는것도상당히마음을먹고들이고했는데. 그 즈음 해가지고, 어느 화랑의, 어느 화랑조합하고 이야기가되어가지고뭐약간지원을해줄테니까

그림그리는걸해보는게어떻겠느냐, 이런일이있었어요.

그때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를 그만 두고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리고 보니까 그 5만원 들여서 만들었던 그 조그마한 공간이 그

렇게뿌듯했는데. 이게그이제아닌가하는자각이들더라고요. 그래서세를얻었죠. 어디조그만건물에세를얻어가지고, 한 달에한 10만원씩내고생

활을 했고요. 그런 작업실 한 6년 쓰다가 그 다음에 시골로 가서, 작업실을 좀 이사를 아예 가서 살아볼까. 청주로 가기 전에 그래 가지고 사방으로 돌아

다니다가맨허탕만치고.

여러분들도 살면서 어떤 일이든지 간에 해 보시면 다 아시겠지만, 무슨 일을 요럴 거 같아서 해 보면 그게 그렇지가 않잖아요. 해결해야 할 일들이, 예상

치 못했던일들이생기기도하고. 규모가 크게감당이안되고, 그럼 손을놓게되는. 그렇게 해서시간많이보내고, 그래서 그러다가 나중에허허벌판에

있는 농가창고를 하나 임 해 가지고, 거기를 빌려서 쓰다가 2년 만에 집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그때 1200만원 전세로 있었는데. 그걸 1배반을 올려 달

라고해서, 한 3000만원으로무슨벌판에있는농가창고를어느정도올리는건이해되지만, 그게 말이되냐. 그래서 사실작업실짓는걸생각하게되었

죠. 3000만원올려줄돈있다면땅이여기있다면, 2000만원이면짓겠다고해서이렇게된거예요.

그래서 다시 또 몇 년 허탕치고, 그러다 주재현 선생님 말 로 망해 가지고, 시골로 가시오, 시골로 가서, 시골에 쳐 박혀서 한 3년 살고요. 그 가서 또 어

떻게해보려다가잘안되고, 그래서한 3년살다가지금마석으로이사를왔는데. 2년, 3년째또사는데. 아까말씀드렸듯이도저히분해서안되겠다싶

어가지고, 마지막발악을해서작업실을짓고있습니다.

김준기: 그 동안몇번하여튼그공장찾아서 업개업을했다가폐업을하기를여러차례반복을하시고, 이제새로준비를하시는.

박불똥: 아, 또 한번은 충주로 내려가기 전에 이제 몰리고, 몰리고, 몰려 가지고 해서 하나도 없어 가지고, 작업실 짐은 이만큼 늘어나 가지고, 짐은 사실

어떤때들어가보면다내분신이나다름없고애착이가고, 하나도버릴수없는것들인데. 또 한편으로보면이게다쓰레기예요. 쓰레기. 그러니까작업

도구들 작품이든, 아, 이게 작품을 만드는 건지, 정신 나간 짓 같아요. 하여튼 짐은 갈수록 늘어나고, 이건 주체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는데, 점점 아까

말씀드린 로, 어떤과정을겪으면서순탄치가못하다보니까, 가지고있는돈은전부줄어들고, 그러니까짐은커지는데, 자꾸공간은줄어드는그런이

상한. 막판에는안되어가지고지하실에다가짐을다들여다놓는식으로했죠. 지하실이라면제가서울와가지고지하실생활을좀해봤어요. 결혼하기

전에. 그러니까지금은그게없어졌다고하는데. 반 지하라는게있잖아요. 반 지하. 드라마고도반지하. 그 반지하가요, 자동차티코가누가가다가껌뱉

으면 가다가 안 간다고 하는 우스개로 하는데, 티코가 바라보면 내가 그랬잖아요. 김수환 추기경이 티코 타고 가는 거 뭐 포스터 찍어 가지고, 나중에 수

녀들이그게아니라고. 김수환추기경이티코타고간게아니고, 어떤일이있어가지고잠깐올랐던거라고. 그러니까잠깐올랐던데썼던거지, 김수환

추기경이 티코로 생활 중의 일부를 이동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것처럼 반 지하라고 하는 게 사실상 사람들 주거 공간으로 개발한

게 아니거든요. 아닌데, 주택난 문제도 있고 하니까, 그걸 건물주가 사람 사는 공간으로 개조를 하고, 또 돈이 없는 사람, 거기에 들어가 살 수 밖에 없고.

그게 서로 맞물려 가지고 반 지하 공간이 한동안 굉장히 중요한 가난뱅이들의 생활공간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거기 지하생활을 제법 해봤는데,

너무아니에요. 그거는굉장히비인간적이에요. 티코를만들어서, 아니다. 외국에서소형차를야무지게만들어가지고, 그야말로도로조건도좋고, 뭐 교

통법도, 준법정신도좋은풍토속에서소형차를이용하라장려하는건좋은데요. 아니 자기들은다큰차를타고다니면서서민들은요만한티코갖다들

이 박아보세요. 뭐가 되겠나. 그러니까 반 지하 공간이 제가 경험을 해 봤기 때문에 절 사람이 살아선 안 되는 데라고 생각하는데, 더구나 그림을 그리

고 환기나 수분이나 이런 게 문제가 되잖아요. 그림이, 작품이. 그래서 그거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뼈저리게 알고 있으면서도 할 수 없이 쳐

박아놓고충주로이사를갔다가그다음에짐을가지러왔더니, 그 건물 들어올땐괜찮았어요. 그 옆에 지하까지파서공사를하면서아마이쪽건물벽

에무리가갔나봐요. 물이 새어 가지고, 짐을 가지러왔더니발목까지잠기더라고요. 그래서 아까말씀드린 로어찌보면이게참보물단지고, 어찌 보

면 애물단지인데. 아이고, 잘 됐다 다 썩어서 내버렸어요. 사람들이 한 2년 했고, 허명으로라도 이렇게 좀 이름이 있으면 작품 어떻게 팔리는 거 아니냐,

뭐 있지않느냐하는데없어요. 사실없고요.

김준기: 옛날작업들은다있으세요?

박불똥: 다 없어요. 개 이 종이들은 이렇게 놓으니까 밑에서 습기 전부 밑에서 좍 빨아들여서, 아니 그래서 저는 아까 밑에서 써놓은 글에서 앞부분에

그런얘기했지만, 그림, 미술이거는사실은그래요 80년 민중미술은조금이해되는게있어요. '아, 그래미술이그렇게작용할수있고, 미술가가그런

생각도 할 수 있고, 중이 미술에 그래 접근할 수도 있고. 이렇다면 그럼 나도 미술을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민중미술 이제 뭐 기가 꺾이고, 지

금 아까도 얘기했지만, 미술은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예술 일반이 그렇긴 하겠지만, 굉장히 이게 감각도 있고, 생활의 여유도 있고, 뭐 이런 좀 여러

가지를누리는사람들이자기들이평상적인이생활속에서보지못하는부분들, 좀 더 차원이높다고해야되나, 뭐 그런 거에서로이런거말하고보여

주고. '아, 그렇구나. 하고 봐주고. 그래 이걸 , 이걸 하는건그런식의성질이아닌가생각이돼서, 그거는아트지에첫번에나갔던거랑, 두 번째나갔던

거에서는한 10년을 죽었다고하고해보자. 해보면저스스로생각할때 학졸업하고지금한 20년, 뭐 민중미술쪽 90년 초까지해서한 10년, 그러

고나서또한 10년, 저는크게안바뀌었다고생각하거든요.

근데 아까말씀드린 로, 제가 생각했던거가어찌보면스스로무덤을파게되는꼴이된것도같고. 그러면 이 생각을버리지못하면, 다시 말씀드려서

제가 저를 깨고 나가지 못하면 결국은 무덤이 깊어진다. 그럼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게임을 해 볼 필요도 없는 건데 해보자. 설마하니 10년이면 강

산도변한다는데. 지금 이지점까지와서어떤자각을하는상태로 10년 동안정말한번전력을다해보면깨지는부분이있지않겠나, 그렇게타협을하

는거죠. 단순히살길을위해서나를버리는이런식은아니어야할거같고, 그런상태예요.

김준기: 아까 공장 얘기 했는데, 작업실도 보니까 이같이 공장들이 인접해서 공단을 형성하듯이 작업실들도 군락을 짓는 경우들이 많은 거 같아요. 요즘

은도심에건물하나를짓거나빌려서집단스튜디오를운 하는경우도많이생기고. 그렇다면작업실이작가혼자서작품을만들어내는생산기지로작

용하는 것도 있지만, 주변의 작가들 또는 사람들과의 환경 속에서 만들어내는 생산 기지로 작용하는 것도 있지요. 주변의 작가들 또는 사람들과의 환경

속에서되게 향을많이받는거같은데. 누구와 교류를하느냐이런문제. 양평에 예를달면안창홍선생님을 비롯한누구, 누구, 누가 일군을 구성하고

있다고할지, 홍 앞 쌈지스튜디오에어떤유형의작가들이있다고할지등등은. 근데 선생님같은경우에일산쪽에있을때일군의작가들이아마있

었던걸로들었거든요. 그런저런작업실과작가가생활하고작업하는장소와주변의커뮤니티이런것들에관한경험들, 다분히뭔가목적의식적인논의

들이죽있었다는데, 아닌가요?

박불똥: 아, 일산에서 제가 11년을 살았는데요. 신도시 생기기 이전에 들어가 가지고, 99년도까지 11년을 살았는데. 일산 신도시 구역이 딱 있고요. 고

주변은 계속 개발이 되거나 아직 농지로 보존이 되거나 한 상태인데. 농지, 보존 농지 자체도 농가용 창고로 지었었어요. 60평 그 정도씩 지었었는데, 지

주들이 거기다 농가창고 짓는 거 돈 얼마 안 들어요. 조립식으로 지으면 평당 40만원, 심지어는 35만원, 30만원 정도면 지을 수 있으니까. 386. 18 한

2000만원이면짓죠. 짓는데. 그걸지어가지고그사람들이농사짓는게수지가안맞아요.

다들 아시겠지만저충주에가서살면서더더욱완전히실제로책을통해서우리가농촌의어떤문제를공부를했지만, 충주 가서실제로살면서주민들

하고 이야기 나누고, 눈으로 목격하고 하면서 더 확인이 됐는데. 수지가 안 맞아요. 뭐 제가 볼 때 저 같은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비교해 볼 수 있겠

지만, 또 시골에 가보면, 물론 또 잘해서 하는 사람들도 소수는 있죠. 다 하죠. 근데 일산 주변도, 신도시 주변도 농사를 지어 가지로는 수지가 안 맞는 거

죠. 바로선을그어가지고여기는평당몇백만원씩해가지고, 여기는농사짓는게내키겠어요? 그러니까거기다창고를짓더라고요. 지어가지고일정

기간이지나면그게활용가치가높은집으로변경이되는그런게있더라고요. 있고.

또 장차결국언젠가는거기도같이주거지랄지상업지로개발이넓혀질때, 그럴때에농지로있는상태에서보상을받는거하고는그게크게다른거거

든요. 그런 저런 현상 같아요. 그래서 그게 마치 화가들, 조각가들에게는 굉장히 그런 현상이 유효한 것이 그걸 작업실로 빌려 쓸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기게일산신도시주변하고쫙에워싸고있는게, 그런 큰 조립식창고형태들이에요. 그런데 그것의절반정도는허용되는공장같은것이고, 한 절

반정도는그런용도의창고인데. 그거를작가들이작업실로쓰는데, 그건불법이죠. 농가, 농업에관련한어떤기계를들여놓는다든지, 농산물을저장한

다든지, 뭐 그런 용도로만 쓰라는 거지 뭘 다른 용도로 임 를 하는 것은 불법이거든요. 근데 그 불법으로 이를테면. 근데 그런 불법도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가지않으면눈감아주는거고, 민원이 들어갈경우만조치가들어가는데, 처벌을 받아도돈몇푼물고나면남는장사고, 그 로 유지가되고. 그러

다 보니까 조금 현실적인 여력이 있는 친구들은 몇몇이 여섯명이 의논을 하더라고요. 의논을 해서 논밭은 비싸니까 임야 같은 거를 사자고 해서 몇 천

평 사가지고 개발을 해서, 거기다가 그런 창고를 몇 동 지어서, 지어 가지고 같이 작업들 하고. 그리고 요즘 신문에도 자주 나오잖아요. 뭐 오픈스튜디오

라고. 정기적으로 봄, 가을로 혹은 1년에 한 번 이런 식으로 그래서 굳이 열 때는 나와서. 이거보다 더 생생하게 작업현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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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 아까 제가 일산에 사는 동안에 뭐 그런 거는 창작스튜디오가 이렇게 소위 엮여져 가는 건 없고요. 없고. 그런 예를 봤을 뿐이

고. 그냥단순한미학에관한게아니라창작에관한게아니라, 세계관의문제에 해고민하고공유하고할수있는사람들간의, 선후배간의모임을갖

는, 그런. 근데그건넓은의미에서보면뭐창작자들의작업실교류로이해할수있을테고.

김준기: 임옥상선생님이나이중재작가나다그런식으로일산에다모여있다고얼핏들어거같아서아까여쭈어봤던거고.

박불똥: 그게 그 작가들 간의 다른 어떤 연관성 보다는, 뭐 요즘 어디 사나, 나 요즘 뭐 해야 하는데, 거기 뭐 어떻다 이런 정보 주고 받다보면, 와서 자리

잡고그러는거죠.

관객: 저기 작업실에 해서 여쭈어 보고 싶은데요. 사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품, 제목이 예를 들면 전부 다 work97-1식으로 제목을 썼거든요. 근데

작품이작품이라는 이름으로 work. 왜냐하면 이게산업사회에서는 하나의상품이되어야하고, 상품이 되기위해서는이게일이되어야하거든요. 그러

니까 작업실이라는 명칭도 사실은 산업 사회의 형태에서 나온 거죠. 왜냐하면 저것도 하나의 공장, 말씀하셨지만, 생산 형태이고, 작품들도 생산 결과라

는 말이죠. work라고 썼는데, 요즘 개념들이 일의 개념에서 룩킹(looking) 개념으로, 아까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요즘 작품들이 무슨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먹고살만한사람들이하는것이라고나는생각해. 이렇게서로그리고나심심하니까장난한번쳐보자. 사실이런개념으로지금작업이가

고있는게아닌가.' 전체적으로생각이들어요.

그렇다면 아까 저 같은 입장에서는 작업실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공장이 있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사용해 본 적이 없어요. 사실 방 안에서 작업했으니

까, 만화방에서. 근데 우선 첫 번째로 작업실이라는 게, 과연 필요한 지, 첫 번째는 그 문제이고요. 두 번째는요. 그 민중미술을 하셨기 때문에, 선생님이

민중 미술이란 것은 우선 제일 첫 번째가 일상생활과 예술을 구별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상 속에서의 예술입니다. 그거를 하는데, 작업실이라고

아까테두리쳤던공간이일상생활로부터분리되어떨어져나오는독립된공간인데. 그게 일상생활속에서예술과컨셉과맞아떨어지지않는거같아요.

쉽게 얘기하면, 전시공간도 마찬가지로. 왜냐하면 민중미술이 만약 걸려진다면 길거리에 걸려져야 맞는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게 현실 속에의 예술

이기때문에. 만약에액자로되어서는안된다고생각하거든요. 민중미술이걸개그림을그려야된다고. 왜냐하면액자라는저거는현실공간에서떨어져

나온 공간이거든요. 독립된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저기 지금 아까 작품과 작업실이란 개념에 해서 선생님 다시 한번 정리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나름 로.

박불똥: 한 인간이 60년, 50년, 60년 이상씩살게됐는데. 그럴때고한존재의, 개체의존재성을딱어떻게여기서여기까지선을그어서하겠어요. 겹쳐

지며계속하는거아니겠어요. 한 인간의생애라고하는건, 그래서저는지금현재 2000년 에펼쳐져있는미술판지형하고는전혀다른상태로, 뭐

상공부서부터미술 학을다니고, 학을나오고그래왔던거거든요. 그래서지금저로서는나라고하는사람이가진, 나라고하는개체가가진그런조

건속에서작업실이필요하기도하고.

또 그 속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해서 작업을 풀어나갈 건가 하는 걸,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고민이 되지만. 좀 권하게 되는, 저보다 늦게 시작하고 좀 젊은

미술가들에게 권할 때에는 그 작업실을 짓는 방식, 그런 사고를 과감하게 버리는 게 더. 아닌 거 같아요. 작가가 자기가 그냥 그야말로 미술도 아까 얘기

했던 로 공장에서도 공장으로 생각하거나, 물론 성질, 예술품이라는 것도 성질은 좀 다를지 모르지만 뭔가를 만들어서 거기에 한 가를 받고 챙기

고, 가를 지불한 자한테 만들어 낸 것을 나눈다 하는 점에서는 뭔가를 만들어서, 작업을 해서 뭔가 작품을 낸다고 하는 것은 시장에 내는 것과 같다고

봤을때, 그런거를아예작정을하고, 그걸로명확하게간다면모르지만. 그게아니고좀근 적인미술에관한, 예술에관한이상한거에서못벗어난상

태에서 작업실, 너무나 당연히 작업실, 작가의 작업실. 그거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게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지금 작업실을 짓고 있고, 지금 앞으로

어떻게해야할지하는게지금이순간에도고민에눌려서, 그걸명확하지는않아요.

작업실이그러니까무슨사람죽어서무덤만들어놓는것과비슷한것처럼교회당이엄청커지고, 그럼 진작교회당지어서목사가할일은그거아니에

요. 이렇게해서신도들많이모아야. 신도가많이모이려면교회당이더커져야하고, 또 새로운목사가나오면또그목사가또관리할예배당이또필요

한 거고. 결국 그런 식으로 따지면, 물론 계산상의 그런 거지만, 그럼 어느 때 되면 세상천지 교회만 들어설 거 아니에요. 사람 살 데는 다 줄어들어야 하

고. 그게화가작업실도그렇죠. 화가들마다저마다다생활형편이되어가지고작업실을다갖게하자고요. 그럼네식구, 다섯식구오두막에사는서민

들삶은어떠하고, 작가들 작업실은 최소한몇십평씩되지않겠어요? 한 해 미술인이얼마나많이배출돼요. 그러니까 그래서작업에 한화가의상에

한, 미술에 한 이해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변화가 와야 하지만. 맞물려서 작가해보면, 그러면 작업실, 그래서 이 기회에 어떤 문제점도 있고, 또 그 문

제점을 이해하는 노력도 있다고 저는 보는데. 아틀리에라고 했을 때 그 말에서 중이 떠올리는 혹은 미술인들이 자신 떠올리는 어떤 것, 그것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작가들이훨씬개방적인훨씬더가려진걸열고전위적으로자기일에접근해보이는모습준것은중요하다. 그러니까아틀리에작가

작업에뭐작업실의작가뭐이런식으로해서지면에소개되거나, 뭐 쇼기회가된것이있었거든요. 근데있어왔는데, 그런것들이 부분뭔가하면작

가의아우라, 작가의사생활공간, 사생활작업공간, 거기서나오는작품에 한이런미시적인어떤것들을강화시켜주는어떤역할을했었다고요. 그래

서여기서도일부러그런점이, 그런점을살짝건들면서. 그러나거기서그치지않고, 그걸깨는노력이있어서좀괜찮다고생각을하고.

그래서저는작업실에 한걸좀더용기가있고, 좀 더 저에게조건이, 어느 개체의조건이적나라하게뭔가하는건그사람이아무리까발려도사실은

어려워요. 제 생각엔. 그래서 제가 가진조건을 설명 드리고, 남들을 납득시켜드릴 순 없는 건데. 저는 어쨌든 저현재로서는 작업실을 지을 수밖에 없고,

지어서거기에들어가서뭔가를자기가내보겠다는상태에있지만. 작가가작업실을필수로해서그런걸짓는다, 만다 하는기본틀이깨져버렸으면좋

겠다는생각을합니다.

그리고 작업이라고 하는 것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반 공산품처럼 정확하게 생산하게 정확한 방법으로 취급하는 것도 있겠고. 그렇지

않다면 물건을 만들어서 작품의 형태로 고집하는. 거기서부터 벗어나는. 그러니까 미술이 음악하고 문학은 문학이야 뭐 언어로 백지에다 적어 나가면

되는거고, 음악이야어떤공간을차지하는게아니잖아요. 근데 미술은굉장히물리적인어떤토 위에서생산에서부터, 보여지고, 그 다음에소비되고

하는전과정이, 그리고그결과까지물리적인공간속에서토 속에서가능한거기때문에. 미술의어떤고유성, 특성이라고이해할수있겠지만그거는

그야말로 자본주의 방식에 맞춘, 다시 말해서 예술품도 공산품과 같이 왜 아트 샵을 해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인간들이 만든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그

미술가들의정신성의문제성같은거는좀다르게생각해야하지않나. 그랬을때는그런고형의고형질의어떤물을만들어내는역할, 그것이화가의어

떤본연이라고하는거를좀깨야하지않나.

관객: 이 작업실의개념은어떻게보면고정관념을깨버리면하나의보통명사거든요. 그러니까제가한 7년전즈음인가독일퍼포머한테물어봤어요. 너

도작업실이있냐, 매일하는짓이이지랄이고하니까. 퍼포머에게너도작업실, 아틀리에가있느냐그랬더니, 그 아틀리에의개념이우리가뭐신화화된

거, 또는아우라를가진장소가아니라, 자기로서도하나의도큐먼트를재어놓는데가필요한거예요. 사실은말하자면창고라고볼수도있어요. 자신의

기기도있고, 뭐 이런개념으로.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자기 나름 로의 사유공간이 필요하다. 뭐 글 쓰는 사람들 원고지 하나하고, 펜만 있으면 될 거 같은데, 뒤에서 애 뛰어다니고 그러

면 못 쓰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못 씁니다. 하하.(웃음) 그러니까 자기 나름 로 사유할 공간 같은 게 있는데, 그거를 우리가 보통명사화 해서 부를 때 작

업실이라는거고, 또 작업이란말이마침그생산한다는그뜻을함유하고있기때문에그런문제가생기는거예요. 그러니까과거형태와작업실이좀다

르겠죠. 신화화된 게 깨졌다든지, 예를 들면 최소한 작가가 퍼포먼스 하는 사람도 실제로 자기의 생각을 펼치려고 할 때 뭐 조그만 러프스케치라도 한다

든지, 또는어제송유경선생님같은체조같이. 그것도연습해야합니다. 별안간물구나무서고, 그런게안되거든요. 그러니까최소한의어떤준비공간이

라고 할까. 아니면 창고 개념의 그런 게 필수적으로 필요악일지는 모르겠지만, 필수적으로 따라야 할 거 같아요. 자기 집이지만 자기 집에서 한다, 그건

집이넓어서그렇죠.

저 같은 경우, 이거 개인적인 얘기를해서좀그렇지만, 저는 집이 좁아서낮에는아무일도못해요. 애가 친구들을 데리고와서뛰어다니니까. 결국은 야

밤에 올빼미 족이 될 수 밖에 없는데. 공간 문제죠. 자기가 집이라도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좀 자기 나름의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괜찮을 수도 있겠

지만, 필요악으로어쩔수없이창고개념으로라도필요한거같아요.

김준기: 요기 바로 밑에층에보면골판지쌓아가지고, 공간 만들어놓은게, 공간건축의 이상림 표예요. 워낙 건축가이기 때문에작가로참여를해주

십사 말씀을 드렸는데. 공간건축이면 나름 로 색다른 그런 게 있잖아요. 그래서 좋은 아틀리에 공간, 정말 그 사치스럽거나 그렇지 않고 새로운 전형의

아틀리에 같은 것들 모형을 하나 좀 만들어서 제시를 해주시지 않을까. 그러면 건축전 했을 때 그런 것처럼 개념도, 평면도, 건축 모형 이런 거까지 상상

도 그렇게 평이하게 했었는데. 의외로 작가 연하는 그런 분위기가 딱 나오더라고. 그래서 풀어낸 건 이거예요. 자궁공간이라고 해서, 움 스페이스. 그 안

에 들어가서 명상할 수있게. 지금은 좀 많이 망가졌는데. 이렇게 바람이 들어가 있는 비닐, 이 안에 이렇게 앉아서 생각좀 해봐라. 그런 것이 좀 전에 말

씀하신명상을통해서정신적인생산을끌어내는공간으로서의작업실의의미들, 해석을그렇게하신거같아요.

관객: 저기요. 그 작업실이사실은작업실의 문제는요. 물질이라는 것때문에왔잖아요. 과연 미술이물질인가에 한의문이생겨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물질, 모든 것을 물질로 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 산업혁명 이후라고 생각되는데요. 산업자본주의 사회가 물질로 보는, 그래서 작업이라는 개념이 아까 작

품이라든지, 이게 하나의 상품인데. 상품은 어떤 때 상품가치가 있냐 하면 소유할 때 가치가 있거든요. 그래서 오리지널이 필요하고요. 아우라를 가지기

위해서.

근데 기계복제시 가 되니까 작품을 소유하고 싶은 욕 자체가 안 생기잖아요. 아우라가 없어졌으니까. 사람들이. 그러니까 작품이란 게 팔리지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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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근데 우리가 작업이라는 개념이 산업혁명이라는 그 기간을 넘어서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립이 생겼단 말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공

산주의도 똑같은 개념으로 경제의 개념이에요. 경제를, 물질을 어떻게 재화를 나눌 것이냐 이런 문제의 개념이라고요. 그래서 모든 관심이 이 사람들이

물질에더관심이있었던거아닙니까.

그래서 작업실에 한 개념도 물질이라는 거, 작품이라는 개념도 물질에 한 관념인데. 사실은 이런 물질의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정보의 이야기라는

거죠. 물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가 되어 버리죠. 그러면 저는 작품이라고 보는 거를 사실은 어떤 장자 이야기처럼 초월적인 세계, 아까 유희, 소요

유 같은 마음껏 드넓은 세상을 마음껏 노닐다와 같은 소요유 같은. 붕 하늘을 나는 뭐 이런 것 같이. 저는 작품,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게 되면 작

품공간자체가없어지지않느냐. 판매자체도없어지지않느냐. 물질성자체도없어져버리니까요. 그래서지금현재그런추세로가고있다면굳이아까

작업실이란공간이필요할까.

두 번째는우리가작품에 해서생각하는게작품이라고얘기했을때는항상두가지방법밖에없었거든요. 예술이란게현실참여적인거냐, 현실과동

떨어진거냐. 예술을위한예술이냐, 현실참여적인예술이냐. 이 두가지인데, 두 가지방법에서도마찬가지입니다. 작업실이란공간은어차피현실속에

서동떨어진공간이거든요. 그건 현실공간이아니라고말할수도없고, 현실 공간이라고말할수도없습니다. 현실 사회가살아가는공간이아니기때문

에. 생활하는 그렇기도 하고, 또한 예술을 위한 예술 공간이란 데는 그게 현실 사회와는 전혀 무관한, 아무 사이가 아닌 무인도라는 얘기예요. 예를 들면

이런 공간일거예요. 현실적으로 그런 공간은 없다는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작업을 하는 이런 공간은 어차피 현실 속에서 떠난 공간이라면 사이버스

페이스라든지 뭐 인터넷이라든지 컴퓨터 안의 세계라든지 아니면 현실 속에서 막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세계 이 두 가지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

국에는이작업공간이.

그래서 결국에는 모든 이야기가 개념미술로 갈 수 밖에 없는데요. 지금 담론이란 게, 개념 미술로 밖에 없는 이야기가 아까 공간을, 공간 속에 우리가 현

실이, 예술이 현실이라고 생각할 때는 살아가는 거 전체가 예술이기 때문에 결국 이야기 밖에 안 남는 거죠. 결국엔 작업실이란 이 공간 개념을 전 세계,

내가살아가는세상으로확 를시키면반 로, 내가살아가는일생을, 일상모습전체가작업이되는거예요. 그래서아까사실은제가걱정하는거는, 우

리 사군자 치는 데로 돌아가자는 거죠. 아까 선생님 말씀 하셨듯이 직업 따로 있고. 다 관료도 있고, 사업해가면서, 심심하면 맞는 사람들끼리 사군자나

딱쳐가지고서로교환하고, 혼자즐기고뭐그거좋다고또하나시키고, 이렇게되어야하지않는가생각해요.

박불똥: 아주 드물잖아요. 현실적으로 어렵지. 학교수, 교사 또 다른 여타의 일들을 하죠. 삽화를 그려서 삽화 비를 받아서 생활을 충당할 수도 있지만,

그거는자기직업을하기위한하나의방편으로동원되는거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정확하게삽화를그려서먹고살고, 다시그먹고난힘으로또삽화

를 그리고 계속 그걸 반복하는 사람들 또 분리해서 일러스트레이터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그랬을 때 우리가 통상 이런 전시장에 와서 뭐가 갖다 걸어놓

고손님맞이를하고, 이렇게폼을잡고하는이런유의작가는자기가생산한작업한결과물을돈으로바꾸어서살아야될거아닙니까. 처자식도먹여살

리고, 다 해결할거아닙니까. 근데그게누가가능하냔말이죠. '몇 %가능하냐.' 고 그랬을때, 지금제기된이야기된것처럼다른방식으로생활을하고,

일종의 여기같이뭔가를, 그러니까 사회를위해서랄지, 자기 동인을위해서랄지, 자기 자신을위해서랄지, 헌신한 그러니까, 먹고 사는 것은다른방식으

로 동원을 하고, 그리고 먹고 사는 것과 관계없이 딴 것을 하고, 그 딴 것 한 결과물을 서로 여우처럼 나누어 먹는, 그런 것이 사실 이루어지고 있지 않냐

는거예요. 부분저거봐도그렇잖아요. 부모에게서뜯던, 마누라등을치든, 다 해놓고보여주고. 어제했지만오프닝때보면먹여주고, 술까지먹여주

고그러잖아. 그래서결국그런꼴도있지않는가. 의도한건아니지만.

최희석: 네네, 앞으로는제가생각할때는그렇게갈수밖에없다고생각해요. 모든예술활동이. 어떻게어차피 중을상 로돈벌이하는것이아니고는

어차피 그렇게 갈 수밖에. 왜냐하면 구매자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럼 누가 해프닝, 어제 퍼포먼스 하는 거, 퍼포먼스 저거 사겠다는 사람 누구 있습니까,

절 없겠죠. 앞으로갈수록그거는판매하거나, 그렇게될수밖에없다는거죠. 갈수록. 책이라고하는거는정부에서지원을해줘야죠. 정부지원금으

로작업을하고, 실생활이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농부가농사를짓듯이, 또 작업을 좋아하는사람은열심히일년내내작업을하고, 생활비는 그 신국

가가지원을해주고, 지금 프랑스같은경우는그렇게하고있는걸로알고있거든요. 프랑스도 그렇고, 미국 쪽도상당히많이그런쪽으로나가고있는

줄로알고있고. 지금 그게만약체계가많이안잡혀서그렇지전체적인체계가잡히면, 전업 작가들이완전히작업하고, 작업 하나도안팔고도생활충

분히하고,전시충분히하면서지낼수있는,다른데나라는그렇게되어있으니까그렇게될거라고생각해요.아직구성이안되어서그렇지.우리나라에.

박불똥: 그러니까미술에 한이해가지금공공미술도, 미술의공공성, 공공적인어떤효용에 한것은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변화를시켜가면, 제

로 마지막에그런것도될수있지않겠는가. 그러니까화가가그림을그려서, 그게 뭐 이런사설공간에와서전시를하는것이든, 또는 기획된국제적인

행사에 해서 각광을 받는 것이든 간데 그것들이 결국은 일반 중에게는 하나의 뉴스로, 하나의 정보로만 전해지는 것이고. 물론 현장에 가서 비용을 들

여서, 관광을해서감상을하는사람들도있겠지만, 그것은아주소수의어떤것이고. 한 인간이세상에태어나가지고, 사회생활을하는데는무수한어떤

지원이필요한거아닌가요? 그 지원이란것이내가가게가서돈을내고밥을한그릇먹고, 옷을 하나사입고있다고해서. 그래 그래서끝나는것은아

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옷 하나 만들어지기까지,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무수한 사람이 관련되어 있고, 그 관련되었던 사람들과 현실이나 이런

것들이우리전체현실속에서다이렇게얽혀있는건데. 그렇다면화가들이자기작업을해서평론가한테평을받고, 어디 시장에가서팔리고, 말고 이

거는 거기서 계산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잘못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 재능을 발휘하고, 내 발상을

하는것에그그치는것이아니라, 내가살면서무수하게지원되고, 관련되고무수한것을역으로돌려놓을수있는, 돌려놓기위한사고, 그런 노력, 이런

거하고같이이해가될때, 공공미술에 한, 미술에 한그런공공성으로갈수있지않나.

김준기: 좀 전에 얘기하신 목이 굉장히중요한 거같거든요. 미술 혹은 작업실, 작가의 삶, 작가들의 활동을 놓고, 시스템이 어떻게이런 것을 뒷받침할

거냐. 이런것들도모던한사회에서포스트모던한사회로옮겨가면서, 시스템도바뀔거라고생각하고요.

미술관이라고 하는 보여주는 장소와 작업실이라고 하는 만드는 장소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데, 그것이 점차 통합되는 방식의 양상이 일부 지하에는 드

라마고 같은 작가나 또는 박찬국 선생님의 머리 학교 이런 데서 나타나죠. 이제 그런 것들이 점차 교환되고, 교체 점거라는 예상들을 지금 하고 있고.

그걸 좀 앞당기기 위해 어떻게 논의를 끌어나가고 또 시스템, 제도화 시킬 것인가 법안을 만들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것이 산적한 숙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25일 공간 사옥에서 한국의 작업실 현황 연구가 안 뭐 이런 세미나를 해요. 심포지움에서 작업실에 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오갈것으로예상하고, 오늘은시간이다되어서, 더욱심도있는이야기는이후마련된뒤풀이자리에서계속이어가도록하겠습니다.

예, 오늘로써 <작업실리포트>전이 1월 7일오픈을하고 1월 8일부터오늘 2월 19일까지진행된작가와의 화 13번의만남이막을내렸습니다. 그동안

전시에참여해주신 19명의작가분들의작품을죽훑어보고, 나름 로의예술관에 해서도알아보고, 이번전시의핵심부분이었던작업실에관한작가

들의개념, 그와관련된솔직한심정등을소담한자리를통해들어볼수있었습니다. 또한, 작가와관련하여미술관련학생들이고민하는작업에관한문

제, 작업실에 관한 문제도 인생의 선, 후배라는 개념 속에서 함께 얘기 나눠볼 수 있는 자리도 있었고, 미술평론가, 이론가 분들의 간헐적인 참여로 간간

히 작가에 한 짧지만 소중한 논평들도 들을 수 있는 자리 던 것 같습니다. 매회 마다 이 화에 관심을 가져주신 관객여러분들께서도 작가와의 자유

로운 화를통해그들이고민하는문제, 감상자의입장에서느끼는문제를서로나눌수있는좋은기회 습니다.

이 모든 만남을통해이뤄진작업실에 한염원과이야기들을 25일 심포지움에서는 그부분에 해고민을하고계신분들과의자세한발제, 질의를 통

해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그때도 이제까지와 같은 변함없는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고, 예술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바람직한

작업실정책과문화가자리잡길바라며이모든프로그램을마치고자합니다. 지금까지함께해주신모든분들께감사드립니다.(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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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심포지움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대안모색'

심포지움 '한국의작업실현황연구와 안모색'

- 일시: 2004년 2월 25일(수) pm.3:00-6:00

- 장소: 공간건축소극장

- 발제: 김기현, 김준기, 박신의

- 질의: 김윤환, 백기 , 이병한

- 주최: 사비나미술관, 공간그룹

- 후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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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발제

1. 안 아틀리에, 무단점거- 김기현

2. 작업실의변동과예술지평의확장적양상- 김준기

3. 창작스튜디오의새로운개념과정책적지향점- 박신의

2. 지정질의응답

김윤환(작가)

백기 (작가, 미술인회의사무처장)

이병한(심 스페이스 표)

3. 자유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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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발제

1.대안아틀리에, 무단점거 (Alternative atelier, without permission occupation)

김기현(화가, 충북민족미술인협회)

1. 작업공간에 한 시원(始原)(Origin from work space)

이문열의 소설 들소의 배경은 원시 혈족사회이다. 이 사회가 단순한 의식주의 생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문명과 권력을 조율하며 표면적인

의미와이면적인의미를가지고이야기를구성하 다. Allegory 기법의 이소설은일차적으로는원시세계의이야기이지만, 이차적으로는현 인간세계

를우회적으로표현하고있다. 이 소설에서 '그'는 사회에서 소외된부적응자이지만 '그'를 하는 독자는스스로소외감을느끼고부족한자신의 모습을

보는듯한감정을느낄것이다. 함께 있지만그사람에게서온기를느낄수없고함께있지만왠지혼자인듯한느낌으로즉데이비드리스먼이이야기한

군중 속의 고독으로 보아진다. 주인공은 여러 사람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이고 자신은 자신일 뿐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무리에서 벗어

날수록 점점 더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일 뿐이다. 어쩌면 사람을 할 때 그의 성격이나 인품을 보기보다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모습이 요즘

의 시 와 일상적 모습이나 작가적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은 성인식을 통해 한 사람의 주체를 획득하려하고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하나 그것은 마

음뿐 몸(힘, 권력)은 거기에 없다. 그가 사냥에서 소외되어 어두운 동굴에서 들소를 그림으로서 자신을 방식을 회복하려는 것들은 그림에 마술의힘이 있

고 일원론의 사고는 그림과 사실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절 적 희망을 가지고 살기에는 그림이 가져 다는 주는

작가적소유가적을뿐만아니라그자체의의미가그에게는있지않기때문에권력의중심에서비켜서있는모습일것이다. 그저 잘그린다는말로위로

를받아야하는지금의작가들의현실과많이다르지않다는것이다. 들소만그려도그런 로고단한몸을비집고살만한곳이있고, 기름지지는않아도

다시그릴수있는에너지를보충할수있는힘과에너지는그렇게해결할수있었다. 그러나화가는단순히생계만을위해그림을그리는존재는아니었

다. 화가란 먼지가득한가슴을털어주고, 배보다가슴을기름지게해주는사람들이다. 화가들의행위에 한보상에 해서는아무도관심을갖지않는

다. 그림을그리고자신을이야기하고미술을공유해야할공간을스스로찾아야한다. 그러기위해서우리에게는삶의공간이아니라치열한예술행위

로서의작업공간인동굴이절실하게요구되고있는것이다.

2. 점거(占居)의 이론적 근거(Theoretical basis of the occupation)

현재 우리의 예술인들은 작업공간의 부족으로 인하여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예술의 생산과 소비는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만 해석될 수 없으며, 권력

이나 기능만으로 재단(裁斷)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가들은 정말 궁핍한 이 사회에서 예술이라는 혼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처절한 상황

에처해있다. 그렇기때문에어쩔수없이점거라는형식을통하여우리의의지를표명하게되었다. 개별 작업공간이부족하다는사실은이미알고있는

바와 같다. 집단 작업을 공동으로 할 경우와, 그 예술의 결과를 예술향유의 주체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현재의 방식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 예술이 무엇인가라는고전적인물음이있다. 점거프로젝트는 바로이원론에 한진지한물음의결과이다. 점거라는행위는그자체로예

술이면서동시에예술의존재에 한간절한물음이며이시 자본의횡포에 한예술적저항(抵抗)이다. 그리고 여기에참여한충북의젊은작가는민

족 민중의 정신을 가진 진정한 예술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창작공간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재인식했다. 예술적 상상력을 공유하고 서로 비평하는

열린 예술 공간은 예술가들의 꿈이며 현실이다. 집단창작과 공동창작이 가능한 공간을 예술가 자신들이 만들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청주를 중심으로 하

는 젊은 작가들은 결코 자본이나 명예에 집착하지 않는다. 단지 마음껏 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생산된 예술 작품을 중(multitude)에게

돌려주고자 할 뿐이다. 점거의 형식은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모순을 척결하는 매우 적극적인 사랑의 형식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는 비난과 고통을 무릅쓰고 건물을 점거하고 그 건물에 예술의 혼을 통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우리는 꼭 필요한 건물에 절 적으로 필요한

이유 때문에 건물을 점거하여 작가들이 집단 창작과 공동 창작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상 건축물을 탐구하고 학습하면서, 점거가 가져올 의미와 파장

을철저히분석하고조사하며, 비판의반동이예술의 혼을일깨우는하나의축제(festival)가 되도록할것이다.

3. 점거(占居)의 정당성(Propriety of the occupation)

작가들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필연적 창작의 공간인 동시에 삶의 공간으로의 동시적 역할을 한다. 작가는 공공의 예술 취미를 충족시켜 중 미술활동을

지원하는역할로써의예술활동은당연히지원을받아야하는것이다.

점거(occupation)란 어휘가지시하는것처럼강자나권력이할수있는일이아니다. 강자가패악자(悖惡者)들에게하는것은점령이다. 우리는점령을하

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점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예술적 테러라고 비판할 사람들도 계시겠지만 그것은 결코 테러가 아니다. 사랑

이다. 그것은 약자의 자기인정 투쟁인 것이다. 점거는 역사적으로 약자이면서 간절한 희망이 있을 때 가능한 다소 극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예술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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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규범을 뛰어 넘어야 하며 그 고정된 규범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이 존재해야 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점거는 행위의 결과다. 어떤 행위일지라

도행위의결과는반드시목적을내포해야하고그목적은 중들로부터지지와신뢰를받아야한다. 그리고법적인정당성이미약하더라도예술적정당

성과인간적타당성을아울러가지는그런점거여야하는것이다. 또한 점거는한국어에처럼단순한공간의점령식확보가아니라건축물자체의자기존

재를확인시키고, 예술가에게는직업적존재이유를보장해주는적극적인행위이다.

이미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점거라는 다소 극단적인 방식을 통하여 사회와 예술, 정부와 예술가 조직의 관계가 재정립된 바 있다. 문화의 선진국 프랑

스에서는 이미 이런 사례를 통하여 예술의 사회적 의미가 고양(高揚)되었고 예술의 가치를 국가가 공인하여 예술에 한 직접 투자를 늘렸다. 이 점거를

통해서자본의무자비한압제(壓制)에서 벗어나해방되고, 권력의눈먼오류를반복하는정치가, 자본가, 행정가들의저깊은마음을울릴것이다. 우리가

서구의예를모방하는것은아니지만, 예술사의오랜과정에서중첩된모순을해결하려는우리의처절한노력으로해석되어야할것이다.

4. 점거의 필연성(Inevitability of the Occupation)

점거는 작가에게 있어서 필연성이 필수적이다. 점거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면 점거는 폭력이며, 억지다. 필연성이 결여된 점거는 이벤트이며 해프닝이고

일회적이며과정중심이다. 과연작가에게있어서필연은무엇인가?

국가나 행정부는 이 나라 척박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국민들을 책임 질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21세기의 국민국가(nation state)는 생계

의 위협을 받고 있는 근로자의 생계 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서 근로자라 함은 육체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만을 가리키

는것은아니다. 예술가도근로자다. 그런데국가나사회가언제예술가들의생존에 해서관심을기울인적이있는가? 국가는또는지방정부는예술창

조와행위의절 성만은인정해야한다. 즉, 예술가는예술노동자이면서동시에예술창조자이고또한체제의유지에절 적으로필요한존재다. 예술가

들은 갈 곳이 없다. 예술가들은 쉴 곳도 없다. 이 점거의 상황적 행동주의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반 예술적 태도에 한 필살의 저항이다. 이 시 의 예술

가는 저 시 의 거 뱅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 같지만 예술가들이 이처럼 천 받고 이와 같이 냉 받는 시 는 일찍이 없었다. 자본은 말할 것이다, "예

술은다너희들이좋아서하는것이아니냐?"라고. 물론그렇지만또한그렇지않다. 예술이없으면생산의노동도없다. 예술은단순한유희가아니라인

간이라는종이생존하기위한절 적인요소이다. 그런데어찌하여이시 분단남한의예술가들은돈의노예가되기를거부했다는단하나의죄명으로

몸에는 사슬을, 가슴에는 시퍼런 멍을 지고 살아야 하는가. 점거는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분연히 일어난 예술가들의 투혼이다. 예술가들은 갈 곳이 없

다. 문화산업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신음하는 예술가들을 살릴 직접적인 정책을 실현이 우리가 아닌 문화와 함께 예술이 살아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예술가들이더이상천 의찬서린옥수수밥을먹더라도떳떳하게예술의언덕에서몸을쉬어죽을수있을것이다.

5. 점거의 자구적(自救的) 해석(Self-help interpretation of the occupation)

창작공간으로서 공공공간을 점유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점거'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런 행위는 이미 구미에서는 예술가들의 자구 적인 창작환경 확

보를 위한 생존방식으로 행해진 지 오랜 것으로서, 예술의 사회적 존재성에 한 공공적 가치 확보를 위한 예술적 실천의 하나이며, 또한 구미사회에서

는예술가들의예술적행위의일환으로받아들여지고있는것이다.

국내 최초의 시도인 종묘점거프로젝트는 소위 여성운동 쪽에서 2000년 가을에 시도했던 것인데, 이는 종묘에 상징화되어 있는 봉건 구조를 해체한다는

의미에서 기획된 공격적 예술행위 던 것이며, 봉건적 가부장제 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한국사회, 여성의 남성에 한 평등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운동

이기도 했다. 이러한 공간 점거와 그 점거 목적이 상징투쟁에 머무르는 원초적인 한계를 지닌 이벤트이긴 했지만 그것은 또한 첫 발걸음으로서의 중요

한의미를지니는것이기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직까지 실험되어보지 못한 공공 공간 점거를 통해 창작공간을 쟁취하려는 점거프로젝트를 충북 청주의 예술가들이 기획하고 실

행하려했다는것은한국사회지역예술의탄탄한논리와실천에이르는자생성의건실함을엿볼수있는것이다.

최근 문화정책과 제도와 관련하여 문화 복지에 한 문제가 정책논의의 중심에서 운위되고 있다. 물론 이는 문화 향수(享受)권을 중심에 둔 국민에 한

문화적복지에 한문제일것이나, 문화예술인복지역시더이상미룰수없는일이다.

우리나라 예술인들, 특히 미술인들의 다수는 전업 작가로서의 생활을 꿈꾸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술인들의 월수입

으로는작품창작에만매달린다는것자체가꿈같은일인것이다.

예술가들의 공공공간에 한 점거는 그 목적성에 있어서 단순히 극빈자의 생활공간 확보를 위한 점거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문제인데, 이는 곧 예술가의

사회적 존재성에 한 예술적 질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계층구조 속에서 예술가는 무엇인가에 한 질문이고,

그들은 왜 공공적 존재인가에 한 선언이며, 이러한 일련의 프로젝트를 통해‘예술 또는 예술가’를 넉넉한 삶,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공공재’로서 인식하기를 요구하는 강력한 프로퍼갠더이다. 그러므로 그 사회의 행정 망 또는 운 시스템이 그들을 보호하고 육성지원하기를 강

력히요구하는예술적데몬스트레이션이다.

최근 아이엠에프 환란과 신자유주의 세계무역질서에 의해 벼랑 끝으로 내몰려 노동할 권리, 인간다울 권리를 잃어버린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산업구조

조정과정에서사회안전망의그물밖으로내동댕이쳐진노숙자들등최저생계선밖에서생존해나가는다수의존재들이양산되고있음에도불구하고국

가가그들을위해구체적이고전면적인무엇을할수있으리라는기 감은생기지않는다.

그렇다면예술가들의사정은어떤가. 예술가들역시사회안전망밖의사람들과크게다르지않은게현실일것이다. 부분의예술가들은우리사회의어

떠한 안전망과도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 물론 문예 진흥 기금제도 등이 예술창작에 한 소규모적인 지원제도도 있지만 이는 예술가들의 사회안전망에

값하지못한다.

예술가들 그들은 처음부터 이윤을 추구하는 업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애초부터 벤처적이고 애초부터 가난과 곤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

의예술가이기에낙타가바늘구멍을통과하는것처럼, 같이 깨어난암벌을다죽이고나서야수많은일벌들의복종과사랑을받는여왕벌의운명처럼남

한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 속에서 자발적 의지의 발로로 들어선 예술가의 길은 보장받기 어려운 사각지 의 노숙자 다. 그러므로 성공한 몇몇 예술가들

을 제외한 다수 예술가들은 장애인, 여성, 노동자, 농민들과는 달리 사회안전망으로 보장해야 될 존재가 아니라 있거나 말거나 한 존재로서 소외되어

왔다.

그러나예술가들은미적생산을통해분명히이사회의문화를가꾸는자양분이되어왔고, 그것은지구환경을지탱하는물, 공기 등과마찬가지로한사

회를구성하는절 요소로작용하는것이다. 최근에생태보전과관련한각종환경문제가신문의머리기사를장식하는경우가많아지고있다. 이는 곧개

발의 상으로만 인식했던 자연환경을 이제는 인간 삶을 지탱 가능하게 하는 절 요소로서 사회화하 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예술, 예술가를 그

러한삶의저변으로인식하는경우는거의없다고보아도무방할것이다.

동시 사회주의국가의 예술가들은 국가의 생계와 지위보장에 의해 최소한 예술을 했다는 이유로 굶어죽지는 않는 생활을 위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당과 국가에 한 충성, 그리고 거기에서 요구하는 바를 그 가로 지불하는 관제성을 담보한 보장이었지만 말이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지금의 한국사

회의 예술인들에 한 사회적 지위와 예술창작의 지속성을 돕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는 다

시예술이란무엇인가? 한사회의예술의역할과예술가의삶은무엇인가를되묻지않을수없다.

점거 프로젝트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예술의 존재성에 한 근원적 질의이며, 이를 통한 예술 또는 예술가의 사회적 존재성에 한 성찰의 이벤트다. 그

러므로이프로젝트를통해점거한공간을예술인들의창작공간으로실제사용하는것이가장바람직한일일것이나, 이를 시도하는것으로이미성공한

예술적행위가되는것이다. 중요한것은이런점거-프로젝트를시도하기전후에이에 한사회적논의를얼마나생산적으로가져가게하는것인가? 또

는그러한논의결과가구체적으로어느정도의제도적인지위를획득하는가가더욱중요한일일것이다. 그런의미에서점거-프로젝트는청주를시작으

로 전국 곳곳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다음 세 의 한국사회 예술가들에게 예술을 통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밑거름이되어야할것이다.

6. 점거의 미학적(美學的) 해석(Aesthetical interpretation of the Occupation)

단지 사건을 위하여 주위를 환기시키고 중적 지지를 얻기 위한 단편적인 방식의 점거라면 굳이 어려운 방법을 택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점거는

앞에서 도 언급한바와 같이 공공의 역에 속하는 부분이 가장 크다. 예술적 사건은 하나의 과정이며 결과이고 역사로 기록된다. 행위는 당위성을 가져

야 하기에 내용을 이론적으로 보강할 미학적 요소가 필요하다. 화자는 이 부분에 하여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의 교조주의에 반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

든마르크스의동기를계승하고그것을프로이트의정신분석학과미국사회학의방법을결합시켜현 의경험을바탕으로한비판이론을전개한프랑크

푸르트학파의 한사람인 아도르노의 이론을 바탕으로 필요에 하여 보충해 보기로 하 다. 부분적으로 접근이 둔감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미학적 해

석을 위해 모방에 근원을 두어 평가해 보기로 하겠다. 아도르노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미메시스론이나 근세에 부활한 모방이론보다는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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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스의문화인류학자인로저카이유와와종교사회학자마르셀모스, 그리고프로이트와그의죽음본능의이론에서 향을받았다. 카이유와는주변세계

에동화되려는생물학적이고사회문화적태도이자동물학에서는 "의태(보호색)"라는 이름으로알려져있는이태도를 "미메티즘"이라고했다. 의태는자

연이고 자연에의 접근은 사회에의 내면에 동화하려는 것이다. 화가가 사회와 환경에 의태함으로서 작업이라는 환경을 중이라는 관객과 할 수 있는 소

통으로보아야할것이다. 그렇기때문에공간의점유는사실동물적본능의상상력으로보여진다. 이 태도는한편으로는보호의기능을갖지만다른한

편으로는 자연에 내재한 힘들에 마법을 걸고 그 힘들을 이용하는 기능도 갖는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주장이자 자연으로부터의 분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때 의태는 자연으로 침몰할 위험을 늘 안고 있다. 이 점에서 프로이트의 죽음본능과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즉 카이유와의 미메티즘은 죽음본능과 마

찬가지로 이중적이다. 이유는 있다. 자연의 유려함은 작가를 나태한 에덴으로 몰아갈 수 있는 위험부담이 있다. 긴장이 해소되면 이러한 함몰은 늘 기다

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전 상태의 미메시스적 반복이자 보호적인 품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동경, 긴장의 지양상태와 안식에 한 동경의 표

현인 것이 다른 한편으로 생명 없는 것으로의 퇴행, 자기를 방기하는 해체와 용해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스의 경우 미메시스는 마법적 사고에서 결정적

역할을 행하는데, 즉 그에게서 동종성이나 유사성의 원칙이 어떤 것에 해 다른 것을 통해 향을 미치는 가능성으로 간주된다. 모스의 마법적 근원을

미술의표현형식을빌어 80년 민중미술의선전과선동은다분히이러한성격을지닌미술의역할로해석을할수있다. 미술이게임이나스포츠, 레저

처럼 행동한다면 아도르노나 모스의 계몽적 접근에 의해 관객을 매료시키는 일은 적을 것이다. 산업의 파생으로 생겨나는 다변화된 레저는 미술의 힘을

이용한부분으로문화를형성하는복잡한자본속에생성된논리의놀이로존속할뿐이기때문이다.

이러한 인류학과 정신분석학의 작가들에서 향을 받은 아도르노는 호르크하이머와 함께『계몽의 변증법』,「반유태주의 요소들」에서 미메시스의 세 가

지 단계에 한 자신의 구상을 전개시킨다. 첫째 단계는 공포에 한 반응으로서, 죽은 자연에 의태를 행하는 태곳적 단계이다. 그 다음에는 미메시스를

의식적으로이용하고조직하는마법적단계가있다. 마지막단계는역사적단계로서미메시스가금기시된다. 첫째 단계인태곳적단계에서미메시스는

자아보존본능으로 작동한다. 미메시스는 생명 없는 자연으로의 변화를 가리키는데, 죽은 척(일종의 동물적 의태) 함으로써 죽음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의태는 아도르노가 보기에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최초로 거리를 두는 행위인데, 왜냐하면 인간이 의도적으로 자연에 동화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이 의태는죽음에 착하는행위이다. 거리를두고죽은것에 착하는태도로서의의태는수단에정향한도구적이성의초기형태이다. 의태가함축하는

이러한 거리 두기는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향한 첫 걸음이다. 주체는 자신을 사물화-스스로의 생명력을 포기한 상태로 존재는 있지만 본질이 왜곡된 상

태의 자아-시키고 스스로 죽은 척 하며, 이러한 자신의 객체화 속에 자연에 한 사물화된 관계의 전조가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곳적 미메시스"는

『계몽의변증법』의두저자가긍정적의미에서구상한, 도구적이아닌공감적인의미를띠는미메시스가아니다. 의태를그러한구상의미메시스와연결

시켜주는유일한점은, 둘 다 자신들이되고자하는것에결코완전히도달하지못한다는점이다. 유사하게되고자하는바로그노력속에 "모범"에 한

차이가놓여있는것이다. 화가가이미작업이라는행위를금기시한다면죽음이라는명제와의미를같이하게되는데이는사회현상에서소속되지못하는

현실을직시하 을때나타나는계통적소외로인하여절필과같은미술적사망을의미한다. 작업실은사망자의무덤이아니라사고하고있는생명체(화

가)에게 자양분을 보충해주는 자연인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자양분을 제공해줄 의무가 분명히 있고 이를 통하여 미술은 문화라는 포장으로 국가를 재

포장해줄것이다. 이는공생이고자생이다.

2작업실의변동과예술지평의확장적양상

김 준 기(예술학,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제 작업실에 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작가나 작품에 해 얘기들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정작 작업실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었

다. <작업실 리포트>전은 작업실을 매개로 안적인 미술담론을 찾아나서는 '움직이는 전시'이다. 나아가 그동안 사회학적, 미학적, 담론적

차원의 사각지 에 방치되어 있던 '작업실'에 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전시이다.

더불어 이 전시는 작업실에 관한 다각도의 담론 생산을 시도했다. 향후에 참여 작가들을 비롯해 작업실 전반의 문제에 한 텍스트와 이미지

들을 모아서 단행본을 출판할 예정이다. 전시 진행 기간에 참여 작가들과 함께 하는 작가와의 화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작가의 출품작과 예

술세계 전반에 관한 프레젠테이션 및 토론의 결과물들을 담을 것이다.

전시 마지막 날 열리는 이 심포지움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안모색>는 기획자, 평론가, 작가가 작업실에 한 발제와 토론을 진행함으

로써, 작업실 담론을 열어나가는 자리이다. 노동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예술가에게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 기본권 같은 걸 생각해 볼 수도 있

다. 이제 작업실을 이야기하자. 이제 작업실은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술가의 고독한 창작 혼을 불태우는 독립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을 생각한다. 이 발제는 이번 전시를 중심으로 작업실의 존재양식의 변동을 토 로 예술지평이

어떻게 넓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작가의 삶과 작업실 공간 재해석

그렇다면 왜 작업실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작업실은 작업을 매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작업은 예술작품의 생산으로 직결되

는데, 이 점을 두고 하는 일반적인 수사가 창작의 산실로서의 작업실의 지위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 전시는 작업

실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간접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작업실을 둘러싼 여러 가지 모습을 통해 삶과 예술의 현장을 살펴봄으로

써, 작품생산과 작가의 삶을 담보하는 공간으로서의 작업실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 작업실은 예술가의 생활공간이자 작품을 생산 공장

(Factory)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을 돌아봄으로써,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위자에 의해 재규정되는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화가·조각가·건축가·사진가· 상설치작가 등 시각예술분야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한 회화 및 사진, 상, 설치 작품들이

창작의 산실로서의 작업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박홍순, 방명주, 사사, 오철헌 같은 이들이 사진과 3D동 상 작업 등으로 보여준 작

가와 작업실의 다큐멘터리는 말 그 로 '작업실 작업'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건축적인 공간의 의미를 넘어서 예술가의 삶을 보여주기까지 한

다. 배윤호, 백기 , 양주방 같은 이들은 전통적인 작업실의 개념을 벗어나고 있다. 비어있는 공간, 모퉁이, 사이버공간 등 작업실 공간 개념을

확장 변형시킨다.

작업실의 사회학

우리 사회의 시각예술 시스템에 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예술 혹은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를 점검해 봄으로써 '작업실의 사회학'이 필요하다.

또한 예술가의 삶을 담보하는 작업실의 문제를 전향적으로 제기하기 위해 휴 -이동식 작업실이나 점거 아틀리에와 같은 안적인 작업실을

모색해보는 것도 작업실의 사회학을 시작하는 마당에서의 중요한 작업이다.

1) 현장성과 작업실

박찬국이나 드라마고 같은 작가는 작업실을 도시 전체로 넓힘으로써 내 한 공간에서 열린 삶의 공간으로 나아가는 예술개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실이 여주 혹은 경기도, 인천과 같은 지역전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작업 개념이나 예술생산의 폭은 모더

니즘의 이분법적인 구도와는 다른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된다.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이원화하는 작업실과 전시장의 구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들이 작업실 혹은 작업 개념은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문화생산의 장을 열어나가는 활동을 하려한

다. 이러한 태도는 '현지답사, 역사학습, 문화자료, 사회적 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지역의 다양한 문화인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과 지

역문화에 한 화'를 시도한다는 그의 프로그램 운용을 통해서 실체화한다. 이러한 예술개념은 문화의 생산과 향유의 장을 작업실 개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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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목하거나 아예 작업실: 전시장 개념 자체를 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의 작업실 개념은 특정지역의 참여자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문화에 있어서 지역주의의 유용성을 생

각해보게 한다. 참여와 자치와 분권이라는 변화하는 시 의 요청은 이렇듯 서울이라는 중심과 여타의 지역, 뉴욕이라는 중심과 서울

이라는 변방과 같은 중심과 주변부를 가르는 글로벌리즘의 창궐을 체할 수 있는 시 담론이 될 수 있다. 한 지역에서 나고 자라서

문화예술 전문가로 성장한 예술가가 그 지역의 역사, 지리, 환경, 인물들에 능통한 지역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

는 것이 예술가들의 생활양식을 보다 현실 속에 뿌리내린 사회의 일 구성원으로 인정하게 할 것이며, 예술을 사회의 정당한 일 구성

기재로 확인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2) 유동성과 작업실

다음은 공간적 의미의 작업장에 관한 목인데, 김윤환 같은 이의 PMA(휴 형 개인 작업실, personal mobile atelier)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제안이다. 공기주입식 튜브텐트 소재로 제작해서 공기를 주입하면 공간이 형성되는 작업공간을 구상한 것이다. 움

직이는 작업실 또는 가지고 다니는 작업실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김윤환의 이 작업은 "예술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패러디 문구를 성

립가능하게 하는 노매딕한 발상이 아니겠는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기, 나아가 물리적 장소에 한정된 건축공간으로서의 작

업실이아닌행위자에의해재규정되는작업실공간의의미란그시사성이매우크지않겠는가.

한생곤의 작업실은 한군데 정주해있는 다수의 작업실에 비해 늘 움직이며 떠돌아다닌다는 점에서 독특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

는 매번 움직이는 아틀리에에서 다른 상상을 하며 다른 환경과 사람과 도시와 자연을 만나는데, 이때 발생하는 예술적 유목이라는

발상은 요즘의 관념적인 탈주, 일탈 같은 허약한 예술게임과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3) 예술운동으로서의 불법점거 작업실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무단점거해서 작업실로 사용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작업실의 사회학으로 이어질 법하다. 특

히 점거 아틀리에 관한 두 작가의 다큐멘터리는 척박한 환경의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새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참신한 것이었다. 김기

현은 지난해에 청주에서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작가들의 아틀리에로 사용하는 것에 해 지역의 여론을 불러일으켜 점거 직전까지

갔다가 한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이다. 그의 작업은 이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보여주는 설치작업이다. 현재 파리에 유학하고 있

는 김현숙은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점거 아틀리에(squats,스콰트)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선보인다. 한국에도 점거 아틀리에

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화척도를 한 단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2002년의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열린 예술과 스콰트 페

스티벌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파리는 바람구멍이 스물여덟개가 있는 바람난 도시이다."

작업실과 작업실을 근거로 활동하는 작가의 삶과 예술의 문제, 그리고 현장성과 유동성, 그리고 목적의식적인 예술운동으로서의 점

거작업실의 문제 등을 토 로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을 살펴보는 일의 첫걸음을 가늠하고자 한다.

※ 전시서문으로 발제문을 신함.

3.창작스튜디오의새로운개념과정책적지향점

박신의(미술평론가, 경희 경 학원문화예술경 학과교수)

현황

한국에서스튜디오를일종의창작지원이라는개념으로공공지원을하기시작한것은 80년 시행된폐교활용에서다. 그러나어떤뚜렷한정책적기

조를먼저마련하고주어진사업이기보다는사업자체로시작한것이어서, 스튜디오의개념이나레지던시프로그램에 한이해가낮은수준에서진

행된것이라해도과언이아니다. 폐교를작업실로제공한다지만, 생활공간에서떨어져있어접근성의불편함을비롯한모든문제들을작가가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오히려 작가는 고립된 처지에 놓여지게 되고,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이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작업실 제공에만 지원

이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국립현 미술관 산하의 창동 스튜디오가 2002년 6월 문을 열었고, 이어서 고양시 창작스튜디오가 국제 레지

던시프로그램으로전환되기위한작업이진행중이다. 또한새예술정책에따르면, 2006년에서 2007년까지광주및부산창작스튜디오를조성하는

것을비롯하여, 지역에거주하는지역미술인을 상으로하는지역내공립창작스튜디오조성, 개인 및민간창작스튜디오지원등을중장기계획으

로설정하고있다.

그러나여전히왜창작스튜디오인가, 작가에게작업공간은무엇인가, 오늘날현 미술의확장과변화를통한작업개념을어떻게규정할것인가, 작

업실지원이어떤메커니즘속에서의미를갖는가등에 한질문을던지고답을말하며, 개념적정의와철학을마련하려는작업은아직충분하지않

은 상태이다. 물론 정부차원에서 정책적 사업으로 창작스튜디오 설치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현황에 한 분석은 그 나마의 문제의식이라 할

것이다. 이에 따라창작공간지원과아티스트레지던시프로그램을구분하자는제안은, 다시 말하면 '아티스트레지던시프로그램은작가들이자국

또는 외국의 사설/국공립 기관의 초청으로 생활비와 창작비를 보조받으며 숙식하는 장단기 체류 프로그램이며, 공간 지원 프로그램은 창작을 위해

작업공간만을적은비용에 여하거나무료 여하는프로그램'을 구분한것은전체적인스튜디오지원사업의큰테두리가된다. 그러나실제로무

엇이, 혹은 어떤 개념이 이런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그것의 효과는 어떤 가치규준에 따라 주어지는가에 한 전제를 분명하게 한 것은 아닌

듯싶다. 그래서결국사업의확장을말하는데서그치고있다는생각이든다. 그런점에서이번발제는적어도왜창작스튜디오인가에 한질문에서

시작하여작업실의의미를어떻게두느냐에따라얼마나다양한프로그램이가능한가를살펴보고자한다.

작업실 개념의변화

기본적으로창작스튜디오지원은창작지원의하나다. 실제로창작환경의문제가창작의무한한가능성을제공하는것이어서, 그개념적다양성을다

시한번고찰해볼만하다. 무엇보다도예술가에게작업실은무언가를생산한다는점에서공장과크게다를바없을것이다. 그러나공장처럼단일한

제품생산의의미는아니다. 앤디워홀이자신의작업실을 '공장'(factory)이라 말했을때, 그것은창작의특별한지위가갖는비생산성을극복하고생

산성을높임으로써작업의의미를현 화하겠다는의지의표현이었다. 물론 '비즈니스'라는 자본주의적맥락에서의현 화를말하는것이었지만말

이다. 또한 1920년 아방가르드예술을통해사회주의적삶을구현하려했던러시아구성주의자에게작업실은공장이고, 가게며, 사무실이었다. 예

술의창작행위가삶속에녹아나고, 삶속에서발견되며, 한사회를변화하는데기여하는것으로전환하려는그들의의지가이렇게작업실의의미를

역동적인개념으로바꾸게한것이다. 어떤의미에서보면작업실은세계로향한, 세계를바꾸기위한관문과도같은공간인셈이었다.

그런 관점을 계속해서 보면, 예술가의 작업실은 작업을 위한 공간이라는 조건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 공간은 사회로부터 단절된 순수예술의 공간

만이아니라, 창작의산물이사회적으로결합되고유통되며다시되돌아오는순환구조를갖는하나의 '튜브'이기도하다. 작업실은창작의장이기도

하지만, 전시장이기도 하고, 만남의 장이기도 하며, 개념적 사유를 위한 비물질적인 공간일 수도 있으며, 토론과 논쟁을 통해 비평적 담론을 생산하

는공간이기도하며, 프로젝트기획의산실이기도하다. 지독하게개인적인공간이면서공공의장이기도하며, 일상적인삶의공간이기도하면서꿈

꾸는자유가허용된공간이기도하다. 게다가전통적인의미에서의화가나조각가의작업의형태만이아니라, 종이 나부랭이나잡동사니, 무심히찍

은듯한사진, 쓰레기와고물더미, 일시적인설치물을제시하는현 미술의무수한개념적작업과뉴미디어를활용한 상작업의형태를위해작업

실의형태는물리적공간만이아니라어떤프로그램을생산한다는버추얼의개념까지포괄하면서확 되고있는중이기도하다. 어떤의미에서보면

작가의작업실은작가가있는모든사회적공간, 삶의공간일수도있다.

그래서예술가에게작업실은일차적으로삶의방식으로만나게된다. 그래서주거공간과아틀리에가함께설계되어있는형태의스튜디오지원이가

능한 것이다. 또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서 일정하게 프로그램을 가지고 일정기간을 두고 예술가들이 모이는 경우의 지원도 가능하다. 이럴 경우 기

본적으로관통하는개념은 '교류'가 된다. 그것은 작업실을매개로비평적교류, 미술시장의교류, 미술의 사회적가치를획득하는과정에서의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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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기능과역할을담아내는교류, 사회와의교류, 그리고국제적교류등이가능하다는논리가된다. 실제로창작이란물질적인작품을궁극의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 사유의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스튜디오는 고정된 공간개념이기보다는움직이는 공간으로 그 개념적진전

이가능하다.

또한파리를비롯한유럽에서마치노숙자들이철거될아파트를점거하여임시로주거공간을확보하듯, 작업실없는작가들이버려진건물에잠입하여그

들의 작업 공간을 점유하는 점거 아틀리에(스콰트, squats)의 형태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는 예술가들에게 주어져야 할 작업실 기본권 같은 것을 행

동주의적방식으로보여준작업실의사회학인셈이다. 이런행동을통해작업실은사회적문제와교통하는행동의장이된다. 물론이런행동으로인한공

간 점유가 하나의 지원의 형태로 되기는 어렵지만, 예술인들에 의해 작업실이 무엇인가를 드러내게 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고

본다. 이럴 경우 어떤 제도적 심의를 거치지 않은, 자발적인 예술인 집단이 형성되는 것이어서 문화적 의미도 크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

사회적이목과여론의흐름을타그 로작업실로변경되는행운도기 해볼만하다.

이에따라다음은작업실지원의다양한형태를제시한것인데, 그다양함에는작업의개념을어떻게보고, 작업실의기능과역할을어떻게보는지에 한

개념이 살아있음을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실제 정책에 반 되어있는 작업실개념의 다양성과새로운예술창작을 추동하는지원개념을유추

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업실 정책의 목표가 단순한 공간 지원을 통한 배분의 의미에 있기보다는 작업실의 개념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창작환경을개선하면서새로운예술이창출되는효과를갖는다는조건을말하는것이다.

공간지원형태의스튜디오개발과지원

기본적으로창작스튜디오는거주공간과함께장기적으로주어지는것이맞는말이다. 왜냐하면작가의삶이란일상생활공간이필요한만큼작업실공간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 시가 시립아파트를 건립할 경우, 설계단계에서부터 어느 층은 의무적으로 아틀리에가 딸린 형태로 지어작가

들에게낮은임 료를받고분양하는형태를볼수있다. 지역의경우도일정하게예술가들의창작촌을형성하여분양하는것도쉽게볼수있다. 또 폐쇄

하기로한공장건물이나철거 상건물들을리노베이션하여작가들에게장기임 하는경우도있다. 물론이경우 구적으로스튜디오지원이진행되기

도하지만, 때로는완전철거하기전의기간을두고임시로임 하는경우도있다. 이는국가가작가의작업실을생활공간의일부로본다는점에서작업실

에 한철학이읽히는경우이며, 실제로예술가복지문제와한데맞물려있는지원개념이기도하다.

프로젝트수행을목표로하는레지던시프로그램

: 프랑스 파리소재팔레드도쿄의레지던시프로그램 "르파비용"(Le Pavillon)

'현 적 창작의장소'(Site de Creation Contemporaine)라는 이름을가진팔레드도쿄는경계가유연하고, 현 미술의실험적확장의가능성을최 한열

어놓은공간으로잘알려져있다. 그가운데레지던시프로그램은팔레드도쿄의성격과연속성을가지며운 되고있으나, 실제로는독립된형태로존재

한다. 다시말하면레지던시프로그램운 은미술관의부설기관이자프로그램처럼진행된다는것이다. 따라서레지던시프로그램디렉터와진행큐레이

터가 따로 있는데, 이 디렉터를 중심으로 매년 프로젝트를 띄워 진행한다. 앙주 레시아(Ange Reccia)라는 설치미술작가가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

제안하여팔레드도쿄가합의를하여도입하게된것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장소는 팔레 드 도쿄의 다락방과 같은 공간에 있으며, 이 곳에는 독립된 스튜디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회의장과 컴퓨터가 있는

10여개의개인책상으로구성되어있다. 기본적으로작가들은여기서거주하며작업을하는것이아니라, 어떤 프로젝트를위해모여생각하고토론하며

결과를 위해 협동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곳의 레지던시 개념은 개인 작가의 물리적인 공간 개념이 아니라, 토론의 장으로서 제공된다. 이를

위해 디렉터는 수행하게 될 프로젝트를 주제로 하여 레지던시 작가를 공모한다. 그러면 파리에 거주하거나 외국에서 작가들이 신청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거주공간과스튜디오를제공하지는않는다. 특기할만한사안은평론가도 2명정도를함께포함하는데, 결국전시회로이어질경우주어진주제와의

연관성에비평적쟁점을부여하도록돕게된다. 지난해는 '일본문화'를 주제로하여프로그램에참여하는 15명 정도의작가와평론가가함께일본여행을

하고, 이를토 로토론하면서프로젝트를만들어간다.

작가의 문화적체험과창작의계기마련

: 프랑스 외무성소속라파(L'AFAA, 프랑스예술진흥협회)의레지던시프로그램

라파가행하는레지던시프로그램은매우큰사업이다. 기본적으로라파는국제교류를중심으로활동하는가운데, 특히레지던시의핵심개념을국제교류

로본다는점에서흥미롭다. 이에 따라이들이보는문화교류라는것도, 어떤 사업단위의개념이아니라기본적으로 '다른 문화의체험'을 중시하는점도

유념할만한부분이다. 창작에서다양한문화의교차와충돌이얼마나중요한가를새삼깨닫게된다. 문화적체험이축적되면서문화에 한이해와반성

이 제고되는 가운데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에 따라 라파는 매년 작가들을 선정하여 10,000유로(약 1,500만원)를 지급하

여 원하는 나라에 가서 문화적 체험을 쌓도록 한다. 이에 한 결과로 그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작가의 휴식과 자기 성찰, 문화에 한 이해

와체험만을위해지원할뿐이며, 작가가어떤기관에갈것인지, 어떤형태로거주할것인지는작가가자율적으로정하게된다.

자국의 현 미술을국제화하기위한목표에서의레지던시프로그램

: 스웨덴의 IASPIS 국제 레지던시프로그램

IASPIS는 스웨덴 정부가 스웨덴의 현 미술을 국제화하기 위해 1996년 설립한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90년 다른 유럽국가 작가들의 국제무

진출에비해스웨덴작가들이국제적인지도가상 적으로약한현실에서이를극복하기위한일환으로스톡홀름에본부를둔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을

설립한것이다. 기본적으로스웨덴작가들의창작활동지원과이들의국제미술계진출을육성하는것에일차목표를두고있다. 그러나스웨덴자국의작

가만을 상으로하는것이아니라, 국제적인작가들을초 하여스웨덴작가와의교류를활성화한다. 동시에큐레이터와평론가와의심포지움, 전시, 워

크숍등다양한프로그램이진행된다.

프로그램참여 상은스웨덴작가경우서류지원을통해심의를거쳐선정되고, 외국작가들은초 로만한정한다. 초청된외국작가들은 2개월에서 6개월

동안 거주하며, 이 기간 동안 개별적인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도 있으며, 그룹전에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만이 아니라 음악, 무용, 화 등 다양한

역의 작가들이 초 되기 때문에 장르 간 교류가 가능하다. 스튜디오는 스톡홀름에 11개를 두고 있고, 외국작가들이 스웨덴과 관련한 특별 프로젝트를

제안할 경우, 말뫼와 고텐버그, 우메아 등에 있는 별도의 스튜디오를 제공한다. IASPIS는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된 외국작가들에게 스튜디오와

체류비, 여행경비일체를지원하고있으며, 스웨덴작가들에게도스튜디오와프로젝트지원비등을제공하고있다.

지역문화발전을위한레지던시프로그램

: 일본의 Artists-in-Residence(AIR) 프로그램

1997년 일본 문화부가 지역문화 활성화를 목표로 AIR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지방정부가 지역문화를 활성화를 위한 주체로 나서게 된 경우를 볼 수 있

다. 이에따라일본전역에걸쳐약열곳정도에 AIR 프로그램을두고 3-5년간재정적지원을하면서지역과협력체제로시행하 다. 실제로이프로그램

은 지역의 전통과 특산물 등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여 도자기, 종이예술, 인쇄술, 텍스타일, 유리공예 등을 특화하여 지원한다. 이에 따라 AIR 프로그램에

종종 '예술마을'(Art Village)라는별명이붙여지면서예술가주도로커뮤니티형성에기여하며, 나아가문화산업과연계하여지역의재생과개발에큰역할

을하게된다. 또한 지역민과의교류활동역시새로운문화교육의역할로제시된다. 그 가운데가장 규모프로그램이라할 1993년의 <TAMA Life 21>

프로젝트는 석조와 판화 및 인쇄술, 텍스타일과 도자기를 위한 4개의 스튜디오를 히노데, 이츠카이치, 하치오지 지역에 건설하여 각각 4명씩 총 16명의

예술가를초 하여스튜디오를제공한경우다. 이어서미노의종이예술마을, 세토의도자기와유리예술센터, 국제예술문화교류를위한타케오프로그램

등이그사례가된다.

도시계획(Urban Planning) 구도 내에서의스튜디오

도시내사용하지않는건물을국가나지자체가매입하여이를다양한형태의문화예술기반시설로전환하는경우에서특히레지던시프로그램으로운

하는예를볼수있다. 여기에는도시재개발이라는점에서활용이가능하고, 심지어는우범지역등에창작촌을조성하여환경을개선하는데기여하기도

한다. 도시재개발이라는점은창작스튜디오를통해도시문화에새로운가치와힘을불어넣어준다는개념인데, 물론여기에는미술만이아니라공연예술,

건축, 화까지모두가능하다. 만일가능하다면청계천복원사업으로폐기될건물을국제적아티스트레지던시프로그램으로활용해볼만하다고본다.

Page 98: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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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교토 아트센터

1993년 폐교된구메이린초등학교를리노베이션하여레지던시프로그램을위한공간으로활용하고있다. 1996년 추진된교토예술문화진흥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공사를 거쳐 2000년에 개관하 다. 이 학교는 1869년 문을 열어 교육을 행한 역사적인 시설로서, 지역민들의 협조로 지어졌으며, 건

축적구조에서도고도의문화적가치를갖는것이다. 이를살려내면서스튜디오로활용한점이특기할만한사항이다. 이들이수용하는예술가들의장르는

미술만이아니라음악, 무용등에이르며, 원칙적으로 3개월이라는단기간의체류를제시하고있다. 국제적인작가들이지원하게되는동기에는일본문화

를이해하고이를주제로작품을할수있도록하려는의도를갖는데, 이에따라교토아트센터는프로젝트수행을위한비평가와큐레이터와의협업및전

시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체류비는 제공하지 않는다. 문화고도로서의 교토의 면모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교토 주민과의 교류를 통한 지역문화 인

식의기회를확 하며, 또 역사적건물을개조하여역사성을보존한다는의미에서좋은모델이되고있다. 시설로는스튜디오와강의실, 2개의갤러리, 강

당, 자료실, 카페등이제공된다.

미술이론및비평, 전시기획을위한레지던시프로그램

이 경우는 교육적 기능을 겸한 프로그램이다. 네덜란드의 데 아펠(De Appel)이나 프랑스 그르노블의 마가쟁(Magasin)은 미술관이나 아트센터 내에 단기

큐레이터교육프로그램을두고실시하는것인데, 국제적인교류를목적으로하며, 실제교육은전시기획안을가지고진행된다.

뉴미디어와창작개념변화에따른레지던시프로그램의변화

: 독일 칼스루헤의미디어아트센터 ZKM

세계 3 미디어랩인미국의MIT Media Lab과 일본의 ICC에이어독일의자존심으로내세우는시설로서, 이들랩간의네트워킹을통해기술및컨텐츠

교환이 용이하다. 건물은 기존 공장을 개조한 것으로,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미술개념에 따라 개조되고, 설계됨으로써 미술관 건축의 주목할 만한 유형으

로도유명하다. 기본적으로미디어아트전문전시장과현 미술컬렉션을보유하고있으나, 오히려미디어아트의비물질성과무한복제성을감안하여저

작권을 보유함으로써컬렉션개념을실천한다는점에서 새로운미술관의유형을 보여주고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도어떤 작업실의물리적인공간

을제공한다기보다는, 작가가프로젝트를가지고들어와미디어기술의연구와실험을할수있도록기자재및기술협조를통해이루어내는경우이다.

: 프랑스 투르쿠엥의르프레느와(Le Frenoy),국립현 미술스튜디오

프랑스문화부가엄청난투자로이루어낸뉴미디어시설을갖춘학교로서 2년제박사학위급의미디어아트교육기관이다. 박사학위급이라하지만, 실제

로이학교는프로그램과교육목표는기존미술 학의것과전혀다르다. 어떤 이론적성과로학위가주어지는것이아니라, 프로젝트를가지고 2년간다

양한 실험을 하여 결과물을 내는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학교 이름이 국립현 미술스튜디오(Studio National des Arts

Contemporains)로 지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일종의 창작스튜디오의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은 1년

차에서는전반적인시청각교육을받고, 2년 차에서는뉴미디어기술을통한교육을받는다. 여기에교수는학생들의각자의프로젝트를존중하면서이에

창작및기술적조언과토론을통해구체화하는과정에개입하는것이다. 이후졸업전은전시라는형태로존재하지만, 네트워킹과미디어활용을통한다

양한형태의작품발표와쟁점을제시하게된다.

마치며

물론사례연구는훨씬다양할수있다. 그러나여기서살펴본사례는작업실개념을다양하게바라본다는관점에서주어진것이지, 단순사례로제기한것

은아니다. 만일한국에서의작업실정책이주어진다면, 바로이런관점을염두에두고실제로지원이라는것이어떻게새로운창작의가능성을열어갈것

인지에 한목표로진행되어야한다는제안을던지고자한다. 자칫작업실지원이단순공간배분이나시혜개념이되지않도록하기위해서는그만큼의

작업실 개념의 다양성과 그것의 사회적 역할에 한 믿음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발제가 충분히 완성된 연구라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를토 로더발전된논의가제기되기를바라는마음이다.

Page 99: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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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정질의 및 토론질의자 : 김윤환(작가), 백기 (작가, 미술인회의 사무처장), 이병한(심 스페이스 표)

지정질의ⅠⅠ-김 윤 환

김윤환: 저는점거아틀리에라고했을때일련의실행, 결과를통틀어서하나의예술점거라고생각합니다. 제가볼때한국에서의예술점거라는것은비

주류이고아직있지않았으며가능성을타진하고있다고생각합니다. 또 다른말로표현하면틈새문화라고생각합니다. 이러한새로운각도의문화가한

국땅에시도되었을때, 과연한국적인정서, 사회상황, 법과제도, 관습과어떤식으로만나고부딪히거나혹은어떻게수용될것인지궁금하고, 만약한

국에서 점거가 실행된다면 그 이후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하나의 예술가들의 새로운 삶과 예술을 실험하

는 면에서 시장이라도 볼 수 있는데, 그러면 그 공간과 주변의 시민들, 공간을 운 하는 프로그램에 해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

고싶습니다.

김기현: 물론 창작의 공간이라는 것이 숨쉴 수 있는 생활공간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가 이러한 부분에 해서 시와 의논하는 과정 중에도 많은 프로

그램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결국은 시민 중과의 호흡을 통한 열린 스튜디오 프로그램으로, 이는 점거를 한 뒤 바로 실행된 것이 오픈 스

튜디오형식으로 중성을확보하고여론의수렴을얻어서정당화시키자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작가에게만활용되기위한공간으로서전부가아니라,

점거된공간안에서시민 중과함께어떠한방식으로호흡할수있는지에 해초점을더두었습니다. 박신의선생님께서말씀하신것에포함된내용이

겠지만, 지역정서와 맞는 현재까지 지역에서 이뤄내지 못한 중과 예술과의 만남, 열린 스튜디오에서의 적절성을 심도 있게 고민하 고 이것들이 가능

하다는것은우리충북민미협이 10년째진행해온거리미술제를통해알수있었습니다. 작가들이작업을가지고나와 중들과함께호흡하면서학습된

과정들을 일정한 공간에서 상시적이고 주기적으로, 그리고 시민과 함께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프로그램, 시민이 참여하여 자신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만들어내는일에 한계획성까지가지고있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가능하다고생각합니다.

김윤환: 점거는불법이라는전제가있습니다. 문화적인측면에서보자면비주류문화이며그에걸맞은저항성, 자체의자율적인성격이분명히존재할거

라고봅니다. 그에 한생각과점거예술가들의미학적입장이궁금합니다.

김기현: 저는지역에서비주류에속하지않습니다.(웃음) 나이가이것을이야기해주게되었습니다. 비주류로써의저항이아닙니다. 이것을준비한개인적

인생각에서저는비주류가아니지만계속생산되어나오는비주류젊은예술가들을위해제공될곳이먼저필요하다고생각합니다. 이것은기존에이미

자신의 터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보다는 생성되는 새로운 신진작가들에게 이러한 관계를 형성하여 엮어놓음으로 인해 그들에게 많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점에서더큰의미를지닐수있습니다. 이것이초기에는불법과관련된문제로정신적, 육체적으로어려움을겪을수있겠지만, 그런것들이정리

되고 나면 이러한 비주류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주류의 문화로 입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 작가들의 자율성, 불법이 합법화되어가는

옮아가는 과정 중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단단한 토 가 될 것입니다. 사실 먼저 가는 사람의 어려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 사람 스스로에게 돌아

오는혜택보다다음에있을사람들에게제공되어질것들에 한기 같은것들이크다고생각합니다.

김준기: 박신의선생님발제중에나온이야기이지만, 레지던시프로그램혹은오픈된형태의작업실들이지역거점의문화활동공간, 문화생산공간으

로활용돼야하지않겠느냐고말씀하셨는데, 관주도하에운 되지만창동스튜디오에입주해있는백기 작가가보기에그런가능성이있겠는지, 짧게

그단상에 해언급해주기바랍니다.

백기 : 김윤환선생님께서아주중요한질문을해주셨다고생각하고, 제가 이야기한진정성의문제도그와연관이있는질문이라고생각합니다. 관주도

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창동 스튜디오가 건립이 되었는데, 공간이 작가의 삶과 작품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에게 있어서 그 공간은 첫 느낌

처럼 '너무'좋은 공간입니다. 그 공간은 작업을위해망치질을하거나, 춤을 즐기고술도마시면서맘편히작업을할수있는공간이아니라매일같이청

소를 해야 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공간을 세팅한 사람들의 예술가에 한 개념은 돈 많은 사람들이 좋은 차를 몰고 와서 고상하게 작업을 하다가 나가면

되는것으로생각했던것입니다. 저는 제가그공간에적합하지않은사람이라생각합니다. 비주류나히피나그들에겐그들의삶이있습니다. 그 삶이 그

들의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저같이 호화 아틀리에에 들어가 고상한 붓질을 하면서 그러한 방랑하는 예술형태를 흉내 낼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김윤환씨의질문은충북민미협의프로젝트가어떤 안예술이되느냐, 그곳에서어떤예술작품, 행위가 나올것이냐,

어떤점거프로젝트를추진하는예술가들과그가만들어낸예술작품이무엇이냐를묻는것입니다. 이것을괴리시켜이야기하는것은곤란한것입니다.

Page 100: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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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질의ⅡⅡ-백 기영

백기 : 항상 전시가끝나고나면, 전시에 해이야기를하거나전시가다루고있는개념에 해서폭넓게이해하려고하는시도들이적은데, 이렇게 작

업실과관련된환경, 그리고작업실과관련된작가들의삶, 예술관에 해좀더깊이있게볼수있는자리가마련된데에 해서상당히고무적이라고생

각합니다.

(발제에서)전시를 기획하신김준기실장님이작품들과함께전시를소개해주셨는데, 그것을 보면서상당히작업실을이야기하는것자체는어떻게보면

작가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과 관련된 것보다는 작가의 삶의 태도와 관련된 부분에 해 이야기하려고 한다는 측면에 있어서

작가들의 삶의 유형이나 태도에 관심을 갖게 하는데, 특별히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 있어서 '작업실'이라는, 어떻게 보면 좀더 행동주의적이고 좀더 정

치적인 개념들이 들어있을 수 있는 내용들을 박제화 된 형태로 너무 작업을 전시장안에서만 보게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해주셨다고 발제자께서도 말

씀하셨는데, 사실 이번에 출품된 작가들을 보면 작업실을 들고 이동을 한다던지 이동하는 아틀리에라든지, 이런 노매디즘적인 개념들은 서구의 60년

히피적인 문화라던가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 해 상당히 저항적인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분히 소재적으로 서양에서 유행하는

경향에 한하나의차용하기형태에서고쳐버린작업이라는데에아쉬움을느끼면서, 이것을저자신도계속고민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진실성의 문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이 아주 거지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가 죽은 후 그가 자신의 전 재산을 주에 환원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워홀이 가짜 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주에다 기부를 한 것은 얼마나 좋은 행위입니까. 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작가의 진실

성을 묻는 문제의 형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삶이라는 형태, 작업실과 관련된 삶의 형태를 다루는 데에 있어 진실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당히

혼란이생기는부분이있을수있는데, 이에 해고려를하셨는지혹은이와관련된개인적인코멘트를해줄수있습니까?

김준기: 전시 준비 기간자체가 길지 못했습니다. 사비나 재직 이후 작업실에 한 소재주의적인 작업들을 상으로 물색을 하다가 점점 폭이 확 된 것

입니다. 사실 제시한 도표 같은 경우도 전시를 만들어 가고 작가들과 화를 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70년 부터 노매디즘적인 작업양상이

나타났다고말씀하셨는데, 한국의경우에부분적으로소개된적이있겠지만, 아직까지그런실정들이미약했고, 그런 정보들이부족했습니다. 작업실리

포트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게 한국미술계의 현상들과 역량들을 그 로 반 한 것이었다고 생각을 하고, 말씀해주신 부분들은 향후에 이런 논의들이 전

시의형태든, 담론의형태든더진행이되면소개와예술정책과예술가의진정성이결합된것들이많이나올수있을것이라고생각합니다.

지정질의ⅢⅢ-이 병 한

이병한: 예술 활동에 한 정부의 지원형태에 해 두 가지-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일반 창작환경 지원-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약간의 성격차

이가있는것같습니다. 레지던시는어찌보면선별된형태의지원형태라할수있고, 창작환경은생존권과같이창작환경의가장기본이되는단위의지

원이라는 것입니다. 앞의 내용을 떠나 저는 전에 혹자와 '정부가 왜 예술가를 지원해야 하느냐?'에 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정부는 개인 컬렉

터처럼 자기 취향에 따라 어떤 것을 수집하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국가 경쟁력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국민의 행위라던가 아니면 이러한 문화

활동 자체도 국가의 자산으로 보고 국가 경쟁력의 한 요소로 보는데, 전반적으로 별 경쟁력이 없는 개인의 창작행위에 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을 해

야하는것이냐에 한질문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지원을해야한다고생각했던반면, 그러한질문은약간의외의것이었습니다. 우선 이 부분에 해

말씀해주셨으면좋겠습니다. 왜 정부가창작스튜디오를지원해야합니까?

박신의: 저는 이번 새 예술정책만큼 창작 스튜디오에 해서 이렇게 엄청난 의무를 갖고 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진행하는 본인

들도 스스로 개념을 찾기 위해 말을 계속 반복했는데, '창작 스튜디오 지원은 곧 창작지원의 한 형태이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새 예술

정책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 말씀하신 로 가장 기본적인 공간 지원의 개념과 또 하나는 프로그램, 단기적으로 어떤 목적을 갖는 레지

던시의 개념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구분하자고 했지만 아직까지 정부에서는 두 가지 구분에 한 내적 필요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첫 번

째 언급한 기본권으로서의 창작 스튜디오는 개념을 갖기가 어렵겠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실천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

다고보았고, 그나마레지던시프로그램으로실행하게된것입니다. 이에 해 '국가가왜이것을지원해야하느냐'고 한다면그들의답은 '이것이창작지

원의한형태이기때문이다' 일 것입니다.

이병한: 우선은 당위가 이야기가 되어야 실행이 될 것입니다. 실행하는 방법은 다르게 나올 수 있는데,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왜 세금으로

하느냐' 아니면 '경쟁력이 있는 것만 지원을 하고 별로 경쟁력이 없는 일반적 예술 활동들은 알아서 해라'라는 태도의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면 기본적으

로이것을어떤식으로추진을해나가야하는지에 해예산을쓰기가어렵습니다. 예로 드신프랑스의경우환상적인예로, 당위라는것이형성이되면

실제 우리나라도 실행 할 수 있는 듯 보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같이 향유하고, 이것이 미래의 국가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에 한 토 를 마련해줍니다.

이를 시작으로 아파트를 지을 때 어느 정도의 층을 작가들을 위한 저렴한 임 용으로 짓는다면 세제혜택을 준다던가 아니면 어떤 식으로라도 제도의 혜

택을주는것이가능하다고생각하는데, 이런것을이야기할때, 당위성에 한설득이부족하 다고생각합니다.

백기 : 저도 이병한 선생님이 지적한 부분이 점검되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 유럽의 경우는 정말 자기의 아파트에 예술가가 들어와서 산다

는것을아파트관리인이반드시있어야하는것처럼생각합니다. 예를 들어학교기숙사에피아노를치는공간이반드시있고, 공작실이따로있는기숙

사를따로짓는서구유럽식의문화마인드에서는그것이가능하지만, 어떻게보면김기현선생님의불법점거움직임은거 한측면에서접근하면서무

리수를 두는 형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콰트의 어느 정도 부분이 불법 점거로 이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의 경우 한 지역의 공장이 더 이상 쓸모

가없을때에자연스럽게그것이어떻게전용될것인지를문화적전용에관한협상테이블로끌고가서예술가들이그것의활용 안을제시함으로서적

극적으로 시민사회와 같이 논의 테이블을 구성하고, 합리적인 합의에 의해서 정말로 그것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향될 수 있도록 합니다. 예

술가들만 점유를 하여 그것이 지역사회를 바꾼다는 개념은 상당히 웃기는 개념입니다. 시민사회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예술가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형태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에 제가 있었던 도시에서 모두 철수한 국군 막사를 예술가들이 시

와 협의를 하여 어느 정도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또 어느 정도의 유지와 관리를 위한 정부지원을 요청하여 합리적인 운 방안을 제시했을 때 프로젝트가

받아들여지고운 되는경우가있었습니다. 예술가는왕처럼행동하는식의접근방식은상당히위험한것입니다. 시민의권리로, 합리적인세금의사용

문제들이 이야기되는 요즘의 상황에서 '왜 유독 예술가들이 예산을 달라고 하느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느냐에 한 제안이 될 수 있다고 생

각합니다.

김준기: 그렇습니다. 빈민촌의철거반 주장을보면거의총알까지날아다닐정도로신랄하다고할수있습니다. 빈민촌의주거공간도확보도해결되지

않은상황에서예술가들의활동공간을보장해달라는주장이얼마만큼시민사회의합의를끌어낼수있느냐는요지로생각됩니다.

박신의: 이병한선생님과백기 선생님의이야기는약간큰테두리의이야기같습니다. 그러나청주시라는구체적인상황으로가면염려하시는것과달

리 실제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연 우리가 작업실 공간을 주장할 만큼 '미술인들이 한 것이 있느냐'라는 반성이 필요한 이야

기로들립니다. 저는 이것도가능하다고봅니다. 사실 미술인들이한것은없습니다. 만약 주민들이아파트에이러한것들이있으면 '저 건물은입시학원

이 되어 돈을 벌 것이다'라는 개념을 갖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과연 우리사회에서 작업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한 시민적 합의를 어떻게 받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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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야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던져져야 할 것이지만, 이것을 통해 미술인들이 스스로 그런 권리가 무엇인지에 해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

다. 그리고 스콰트의경우, 기본적으로이것이유럽사회에서가능한이유는유럽의아파트가거의투기가아니기때문입니다. 제가 유학하던 95.6,7년에

는거리의노숙자가버려진건물에점거한사건이먼저있었습니다. 그것은굉장히사회적이슈가되어, 언론을통해여론형성의큰힘을받았는데, 나름

로 노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노숙자문제의 제기가 얼마만큼 시민들의 문제의식 속에 파고들어 갔느냐의 측면이 더 큰 소득이라고 봅니다.

저는 진짜로 청주시가 안타깝습니다. 김기현 선생님의 점거운동은 일종의 의식을 깨우치는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점거이후의 활동을

묻는다는것은점거의미에 한충분한논의를걸친후에진행되어야할논의이고, 청주라는지역의특성속에서이러한사건이일어났다는것에서저는

그 자체가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것의 의미를 두 가지로 분리해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작업실에 한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받

아낼것인가라는문제와그러면서청주의경우, 오히려그런것에 한문제제기와행동으로서의의미, 지역에서이러한움직임의당당함과같은문제를

서로다른차원에서두고생각해봐야한다고봅니다.

이병한: 창작 공간지원의 문제지만,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것을 운 하는 시스템(Operating Syetem)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보기엔 레지던시를 설명하면서 얻은 단초는 프로그램에 한 제안을 외부에서 받는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혹은 현 미술관이 끙끙 앓으면서 전부 해결할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런 기획을 공모한다던지, 좋은 안을 맡던지, 컨설팅회사에 위탁을 하던지 등의

운 시스템의민간화부분에 해서는정책자문과같은일을많이맡고있는입장에서어떻게생각하십니까?

박신의: 실제로 프랑스 같은 경우 문광부 직원 자체가 다 전문가입니다. 공무원은 회계와 행정담당 2~3명이 있으며, 전부 전문인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문광부 자체가 전부 기획의 중심이 되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고, 더군다나 국립현 미술관의 경우도 어떤 경험이나 국제적

체험에 있어서 여전히 미숙한 사람들이 많다는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볼 때, 기획을 해야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기획을 받

아들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로 다시 되돌아 가보자면,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문화통치부에 전문 인력들이 있어서 기획이 끊

임없이 나오지만, 한편으로 프랑스라는 나라는 모든 문화 기반 시설이나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은 기획에서 나옵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기획안을 내고

프로젝트를 내서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실현되는 방식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면 너무나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약간

씩일어나고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다녀온구청문화재단회의에서경기개발연구원은무슨기획안이든지내라는의견을제시했습니다. 그리고문광부도

이제는 본인들이 행정고시를 보고 오는 공무원으로써는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들과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며, 새 예술정책이 그러한 예가

된다고 봅니다. 유례가 없이 민간전문인들이 들어가서 같이 머리를 짜 내어 나온 것이 새 예술정책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도 그러한 과정으로 가

게 되고, 시스템을 논하기 이전에 이미 정책자체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정책의 사업 단위들이 생겨나면서 운 시스템

이자연스럽게나오리라생각합니다. 그러면서우리사회에서도프로젝트개념또는기획의개념이안팎으로유연하게갈수있는가능성이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준기: 언급하신 목이새예술정책안에서의공공미술법안항목을보니까건축미술장식품법안을공공미술법안으로 체하겠다는 체입법의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좀 전에 말씀하신 프로그램으로서 공공미술, 기획으로서의 미술이 공공미술 법제도 틀 안으로 들어와서 지자체라든지 지역의 문

화예술후원단체, 기관들과유기적으로연관될수있는틀을넓혀서짜야할것같은데, 그냥 어떻게보면건물앞에세워둔예술작품이문제가되니까이

것을 '어떻게 좀 바꿔볼까'의 수준에서 논의가 된 것 같습니다. 공공미술센터를 세우겠다고 하지만 아직 그에 한 구체적인 응책들이 없어서 조각이

외의 미술, 프로그램으로써의 미술-주민 참여형, 과정 참여형 미술 등-이 어떻게 공공미술로 들어오고 이것이 어떻게 공공미술센터, 지자체와 연관될 것

인가에 한논의가더많이있었으면좋겠다는아쉬움이생깁니다.

Page 102: 작업실 리포트

3. 자유토론

201

김준기: 실제로창동스튜디오프로그램을진행하는사람으로써의생각은어떠하십니까?

조주현: 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현 미술에 있어 중요하게 다뤄지는 시점에서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어깨가 무겁고 이런 자리를

통해많은생각을하게되었습니다. 이러한프로그램도많이있지만, 성격은각각달라야한다고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생각하는국립현 미술관

의창작스튜디오는공공적인스튜디오로써입주작가들에게엘리트적인프로그램을제공하여운 한다기보다는전반적으로국내의미술관계자분들과

미술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서비스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기본프로그램을 준비, 추진하고 있습니

다. 프로그램 아웃소싱과 함께 전시의 경우, 외국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으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관한 국내외 정보를 총력을 기울여서 얻고 있습

니다. 수집된자료는자료실을만들어올해안으로오픈을할예정입니다. 국립현 미술관의창동스튜디오는 '서비스'로써의위치를가져한다는생각입

니다.

박신의: 창동 스튜디오는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사례이자 소중한 시작으로 보여 집니다. 이외 쌈지, 은 미술관, 광주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 창동 스튜디오는 소중한 시작이기 때문에 그에 걸려있는 쟁점들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해결방안의 실마리를 풀어야만 지금 확장될 스

튜디오사업들이잘못된절차를밟지않을것이라는생각입니다. 저는 쌈지, 은, 창동 스튜디오가거의같은시스템이라고보는데, 창동의 경우국립이

기때문에공정성을 따져서장르별로사람들을 배분해서 뽑게 되지만쌈지, 은처럼 사람들을 1년 단위로 뽑게 됩니다. 그러면 1년을 잠시 머무르기 위

해, 즉 1년 간 스튜디오를 지원 받기 위해서 가는 것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1년은 단기에 속하기 때문에, 저는 어떤 프로그램 없이 그곳에

간다는 것에 한 강력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어떤 작가가 창동에 있다는 이유로, 굉장히 좋은 조건의 작업실이 생겼음에도 불구하

고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많은 작가들이 어떤 경우 운이 좋아서 쌈지에 1년, 은에 1년, 창동에 1년을 거주하게 되었을 때, 작가들이 짐

만싸다가정신없이보낸 3년후에는정말아무런기약도없이다시또공간을찾아야한다고했을때, 우리는과연이것이무슨의미인가생각해봐야합

니다. 만약에국립이라는이유로창동같이스튜디오를운 을할경우, 작가에게 2년이나 3년을주던지, 또한이렇게되면프로그램없이 2~3년 거주작

가를 뽑을 경우 무슨 이유에서 선정을 하는지에 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심지어는 다른 작업실이 있는 경우에도 창동에 있었다는 것이 작가의 경력이

되는사태가일어난다면굉장히문제가될것이라고생각합니다. 창동을비롯한쌈지, 은에서진행하는스튜디오의가장큰쟁점은기본적으로프로젝

트를 가지고 작가를 공모하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튜디오는 작가의 프로모션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잠깐 빌려주는 것 외에

전시 기획이나 컨셉을 가지고 작가를 공모한 후 다음 해에 국립현 미술관에서 전시회로 엮어지는 등의 최소한의 프로젝트가 있지 않는 한, 정말 큰 문

제가될것입니다. 그리고자칫이것이모델이되어확 , 재생산되지않을까에 한우려도있습니다.

김준기: '작업실 리포트'전시의 작가와의 화프로그램과 관련하여얼마전에사사작가를방문한적이있었습니다. 사사를 비롯한정수진, 박미나 작가

들과이야기하면서, 스튜디오프로그램이실질적인도움이되었냐고물어보았습니다. 그에그들은스튜디오가상당한도움이되었다고하면서작가들과

공동스튜디오에서있었던에피소드를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이를아주부정적으로이야기한다면메뚜기떼처럼이렇게저렇게떠돌아다니며자신의상

품가치를 높일 수 있는 그러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되는데, 유동성을 가지고 작업실을 지켜나가겠다는 작가로써 한생곤 작가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한생곤: 무엇보다도저는작가에 한생각이없습니다. 저는미술에관한생각이없습니다. 저는그냥살아가는것입니다. 저 같은경우는미술이라는것

이 저에게 주는 혜택은 미술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술적 사고가 주는 자유입니다. 좀더 자유로운 상태만 주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빠삐용의 화에

비유한다면, 감옥 안에서 사는 이야기 같습니다. 절벽 끝에서 빠삐용이 드가와 나눈 화-드가: "나는 살만해", 빠삐용: "난 못 견디겠어."-에서처럼, 절벽

에서 뛰어내리느냐, 못 뛰어내리느냐의 문제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는 것에 한 답을 주었고, 이상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저

의 실존 자체가 낭떠러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낭떠러지 자체가 저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눈은 늘 발끝이나 낭떠러지 상태에서 움직이고 있고, 그

러한 움직임의 속성이결국저의동선을만들것이며, 한 아무개의관심이있건없건간에 '어떤 삶이다'라고 했을때저는삶을통해그에 한느낌을

내가받을수도있고안받을수도있는것입니다. 저는화가이기때문에활동하는것이아니라, 살면서갑자기기분이좋아콧노래를부르는것처럼갑자

기소위 '땡길' 때 잠깐화가로태어날까말까하다가금방죽는식의반복인것같습니다. 오늘의이야기가이미제가화가라는상태에서진행된다는점에

서저와는많이다릅니다.

김준기: 이를테면드라마고라는인천에사는작가가지역주민, 아이들, 미술가 뿐아니라여러장르에속한사람들과만나서어떤기획을하고행사를진

행해나갈때, 그의지위에 하여 '미술가인가아니면빈민운동가인가?'라는식의질문이쏟아지면드라마고는 '나는미술이라는것을중심으로활동하

고싶지않다. 나에게정작더중요한것은그직위에서의삶이다'라고답합니다. 한생곤선생님은이와같은식의답변이라고생각합니다. 이동식아틀리

에로이번에문예진흥기금신청에서떨어진후, 쌈지스페이스의스튜디오작가로입주하게될기회를갖게된김윤환작가의이야기를들어보겠습니다.

김윤환: 저는 한생곤 선생님의 말씀처럼 소위 작가의식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활동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 실내공간에서 페인팅과 같은 작업에서

출발하여 급기야는 그와 같은 작업을 버리고 상이나 퍼포먼스같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동하는 아틀리에를 제안하게 된 것

은 제 자신이 몸을 가볍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 현실적으로 풀어야할 또는 싸워야할 작업 과제가 복잡하고 굉장

히유동적인면을가지고있고, 특히나정보라는측면과인적교류의측면에서사실상세계화가되어있다고생각하기때문에저는실제로휴 형작업실

을 만들어서 앞으로 살아갈 계획입니다. 휴 형 아틀리에는 저의 창작환경으로써의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고안된 것입니다. 쌈지는 박신의 선생님께서

도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프로그래머로 들어간 공간이 아니라 1년이라는 단기동안의 한시적 공간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김기현 작가가 추

구하고자하는예술점거를같이해보고싶은차원에서이를위해쌈지라는준비공간이필요했습니다. 한국에있어서예술은하나의문화를실험하는것

이기 때문에, 점거가 실현되는 전반적인 과정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진행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쌈지로 들어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이와

다른것으로, 홍 앞걷고싶은거리와주변 안공간들을활용한국제예술퍼포먼스콩그레를준비하기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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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만, 뒷받침될수있는여러가지고민들을함께제시를한다면좋을것이라고생각합니다.

장경호: 김윤환씨께 질문하겠습니다. 유럽에서 점거에 참가한 예술가들이 지금과 같이 '우리는 공공적 존재다, 왜 정부는 우리를 지원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합니까? 스콰트는어떠합니까?

김윤환: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사회적 약자, 소수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주류철학과 미학에 반 하여 다른 철학과 미학

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행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체적인 삶과 예술의 실험 형태로 점거 아틀리에가 현재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소통,

수용의 측면에서 '과연 점거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를 생각할 것인데, 이러한 면에서 공공성이라고 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의 지점에

서는반드시짚어줘야한다고생각합니다.

백기 : 이런 측면에서 제가 진정성의 문제를 물었던 것은 문화생산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기반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예가 라

이츠니히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통독이 되고 나서 주민들은 라이츠니히를 다 떠났습니다. 국가가 모든 집들을 관리해버리는데 이들이 떠나고 집들이 다

비어버리니까, 예술가들이그곳에점유를하여스콰트형태와유사한공동체를만들어갔습니다. 라이츠니히시에서사회문제로여겨졌던공간에예술가

들은또다른문화의 안을만들어내는공동체가되는것입니다. 저는 이에 해한국적 안공간의문제, 즉 안문화가존재하지않는 안공간에

해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주류를 지향하는 비주류, 비주류인체 하는 주류인 것입니다. 이것이 가지는 문제는 상당히 큽니다. 안공간에서 맥주냄새

가나지않고, 히피적인그들의삶이묻어나지않는형식적 안공간인것입니다.

이병한: 프랑스는 모르겠지만, 독일의 경우는 점거의 근거가 되는 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3개월 정도 건물이 비어있으면 들어가서 살아도

되는것입니다. 집주인은강제로그들을쫓아낼수없습니다. 이러한 점들을이용한점거가있고, 또한 통독후에많아진빈집들에사람들이들어가서살

면서 이것이 관광지가 되기도 하니까 이를 놔두는 것입니다. 근데 이런 것과 지금 누군가가 쓰고 있는 공간을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성격이 다른 것이라

고생각합니다.

백기 : 무정부주의적 정신을 가지고 있는 유럽은 전 지역을 그래피티와 같은 예술 활동으로 초토화시킵니다. 로베르네집도 전면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

을 통해 '아!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점령했구나!'라는 점을 인식시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창작주체가가 할 수 있는 문화양산이라는 것과 관련

이있는것입니다.

이병한: 이것에 해 법적인 것을 따지면서 경찰에 한 체 등의 어떤 내적 필연성이 먼저 전제되지 않고 활동으로 들어가면 나중에는 틀림없이 다른

문제가생길수있다는것입니다.

박응주: 저는 요즘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에 해 생각합니다. 이 논의 전체가 '서구의 경우가 어떠했으며, 선진적이고 발전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에 우리

또한 정당성을 갖는다.'라는 순서보다는 이런 비유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승엽의 홈런 한 방값이 굉장하다고 합니다. 근데 문예진흥기금이 가지고 있는

논란이되었던것이었지만, 문예진흥기금은 이승엽의홈런한방값도안되는것입니다. 우리의 형평성에 한의식은도 체무엇입니까? '국민 총생산

이있고, 1년의국가예산이있고그간에배분됐던몫에 해이야기하는데, 민간이든관을통한지원이든간에미술을비롯한문화행위들이과연이승엽

홈런 한 방값도 안될까.'라는 것에 해 분노를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만 느낀 것입니까? 그곳에서 우리는 엄청 싸웠습니다. 싸움의 방향이 거인과

의싸움을놔두고우리끼리싸운다는생각이자꾸들었습니다. 오늘 논의의맥락은도덕적으로농민의농토를경작행위처럼우리가왜그러한특권을부

여받아야하는가에 한맥락과비슷한점이있다고봅니다. 물론 지난번에어떤잡지에서조사한바와같이문화생활에관한설문에서사람들은 화의

경우 한번쯤 극장을 간다고 합니다. (중략-tape교환) 이 부분은 방송 저지른 잘못입니다. 이런 속에서 점거보다는 점유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해본다면 꽤

호소력이생길수있다고생각합니다. 9시 뉴스의앵커가점거했다고보도를하겠지만, 우리자신은점유프로젝트라고이야기하는것처럼, 이런점에서

우리자신이용기를가져야한다고생각합니다. 이승엽의홈런을앞에두고그런자신감을가졌으면하고, 그런 의미라면우리들끼리지나치게위축될필

요는없다고생각합니다. 이 전시는헤밍웨이의빙산의일각논리처럼빙산, 즉 작업실아래깊은뜻이잠겨있는전시 다고봅니다.

장경호: 제가 스콰트에 해질문한것은점거점유와같은표현상의문제가아니라진지한것입니다. 예를 들어점거프로젝트가단순히서구에서 '이러

이러하게진행되었으니, 그 로 가자'라는 게 아니라, 어떤 정치성이있는가를토론해보자는것이아닙니까? 김윤환씨는진행토론자로참가해서단순히

이야기하시는것같고, 저는 실제로점거프로젝트에참가한김기현씨에게물어보는것입니다. 김기현씨는발제에서점거에 한이론적근거를시 자

본의 횡포에 한 저항이라고 하는데, 여기서의 자본의 횡포에 한 저항은 굳이 예술가들이 창작공간을 점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본업에서 내 놓아

야 할 실질적인 예술로서의 개념이 아닌 것입니다. 철학적, 정치적, 사회적 배경은 무엇이냔 말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당위성을 갖는지를 토론해

야하는것입니다.

김준기: 논의가광범위하게진행되는이유는, 과연 '점거를한다.'라고 했을때거기에서나오는상황이어떤정당성을갖는지생각하면서여러가지지역

주의적인입장, 지역속에서현장미술의정당성을확인해보기위해서입니다.

김기현: 총론을 다 드려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발제는 논의할 수 있는 부분만 추려서 원고에 실은 것입니다. 철학적 바탕은 만들어질 수 없고, 사회적

배경으로가능한것만모아봤습니다. 지방주의(regionalism)가 가지고있는문제중에서가장집약적으로시선을모아보는방법으로도이런것들이필요

하다는 생각도 부분적으로 했습니다. 지역적이라는 곳에서 아무리 해보려고 하지만 그 안의 법률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정치성입니다. 그리고이정치성은권력을가지고있는층과의 립적상황을유지시키자는뜻이있습니다. 그러나그것은작업실과관련된부분에서논

의되기는어렵다고생각하여본논의에서삭제했습니다.

박신의: 마무리를 했으면 합니다. 이번 논의의 가장 큰 쟁점은 과연 미술인이 작업실을 요구할만한 사회적 권리와 이를 사회로부터 이해받고 설득할 수

있는 작업실의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가입니다. 실제로 이번 전시의 의의가 주최 측의 의도와 상관없이, 저 자신도 박응주 선생님처럼 작업실에 한 논

의가 과연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에 해 궁금했는데 실제로 이 자리에 와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파리에서 늘 생각만 했던 '창작스튜디

김준기: 한국적인점거문화정책에관한장경호선생님의의견은어떠하십니까?

장경호: 저는 김윤환작가가말한두가지이유에 해이해할수가없습니다. 우선 김기현씨같은경우제가보기엔점거가작가의작업실을마련한다는

것보다는 점거자체의 투쟁적 측면에 의미를 두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작가는 국내 삶의 질을 높이는 공사자로서의 공공적 존재라는 전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작가만이 유독 왜 공공적 존재입니까? 노동으로 생산을 담보하는 것도 공공적 존재인 것입니다. 복지차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가 특정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복지 차원에서의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에 해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복지는 작가 뿐 만 아니라 노숙자에게도 당연

히 똑같이 지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박신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사례가 중요하며, 어반 프레이밍과 같은 프로그램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기현씨가 이야기하는 점거라는 것은 작가가 작업실 공간에 한 시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전제시

켜놓고 그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김윤환씨가 이야기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무실 기능

을 하려면 다른 곳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생곤씨의 경우, 작가이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작가인 것처럼, 우리가 '작가

다, 미술가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삶의 미술적 위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도사적 의미의 것이 아닙니다. 창동 스튜디오는 단순한 작업 공간지원입니다.

이것이레지던시로가려면예산이확보되어야합니다. 이 모든것에 해진지하게이야기되어야할것입니다.

김준기: 지역거점에 한이야기를했으면합니다. 안양에서 '스톤 앤 워터'를 운 하시는박찬응관장님의생각에, 안양 석수동을거점으로안양천프로

젝트와같은활동을하는지역성이나지역주의적입장, 관점에서이러한작업실논의가어떻게다가오십니까?

박찬응: 저는 세미나를 통해 미술계에서 논의될 수 있는 다양한 개념-점거 등-들을 접하면서 제가 하고 있는 활동과 많이 혼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순하게 이야기해서 미 졸업 후 생계를 위해 20년 간 미술을 포기하고 다른 활동을 하다가 45년을 살면서 제가 마지막으로 승부를 걸만한 일

즉, 미술을 통해 무언가 사회에 향을 끼치는 일의 개념을 미술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안양을 바꿔보겠다, 나라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여러가지활동을했었습니다. 그러다가저는마을만들기에서그개념을찾았는데, 제가살아온마을을찾아이곳을거점으로제가걸어다닐수있는정

도의 역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3년 간 여러 미술관들을 초 하여 분위기를 조성하고, 계속 홍보했습니다. 저는 지역사회에서 일을 하면

서 재개발 형태가 되지 않은 한 그 지역에서 10년, 20년 동안 이 일을 계속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100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될만

한사례가될수있는것입니다. 저는반경을 1KM로잡고엄청난시간을투자하면서변화를만들어가고있습니다.

백기 : 박관장님한테들은이야기로는재래시장이없어진장소를작가들의레지던시장소로변경한다는이야기도있었는데그에 한설명을부탁합니

다.

박찬응: 200개가 넘는재래시장의상점이실제로는 30여 개만운 되고있습니다. 재래시장은개인사유지라서땅주인은그곳에빨리아파트단지를조

성하고싶어합니다. 그 사람과레지던시장소를조성하고싶은저의생각은현실적으로완전히달랐던것입니다.

이병한: 저도 점거에 한 생각에는 찬성을 하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김기현씨가 말씀하신 것 중에 적법여부와 관련하여 결국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빠져나갔다고했다는것은실망스러운부분입니다. 점거의전례가결국엔 세민들이 안이없어사유지든지, 국유지든지들어가자는모델을

따르자는 것이었고 그것이 불법이던 합법이던 간에 빈민의 행동양식을, 같은 비슷한 빈민인 예술가들이 비슷한 형태를 따라가는 필연성이 있는 것인데,

이것이잘못하면미국의힙합문화가한국에서트렌드가되어버린것처럼순수한기획이나이벤트가되어버릴수있다는걱정이듭니다.

김기현: 지금 지적해주신 부분이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예술가도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글에서도 언급

하 듯이 미술은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예술 활동에 해 지방정부나 단체가 지원해 줄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는 논조를 피력한다면

안은 있습니다. 지금 질문하신 내용 로라면, 사실 지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청주라는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미술의 문화가 개

념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미술문화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앞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작가가 전시 공간 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를포기하지못하는데에서오는미술문화의편의성에 한도전이기도합니다. 이것이제일중요하며, 답변이된다고생각합니다.

박신의: 그렇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청주시가 생각하는 미술 개념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주시를 설득할 만

한 장치가 있다면, 청주시의 특산물, 전통문화와 현 미술이 만나는 창작 촌을 만들면 그 사업이 관광 상품이라고 이야기하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문제는 점거사태의 의미를어떻게얻어낼것인가입니다. 단순히 '너희들 좋아서하는게아니냐.'라는 식의 태도가오늘의수준이라면그것에

항해서작업실뿐만아니라미술이사회적가치가있다는것을설득시켜야하는사안의것이라생각합니다.

김기현: 박신의 선생님과 같이 사회적 지위를 갖고 계신 분이 던지는 파급효과와 미술가가 운동의 차원에서 20년간 벌여온 것의 효과는 확실히 다릅니

다. 제가 일하는 것은 운동 차원의 것으로, 지식인이 말하는 것은 안책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박관장님이 말씀하신 것

을이해할수있습니다.

백기 : 사실 현실에 해서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노숙자들에게 물어보면 노숙자의 80%가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유럽의노숙자의 90%는일을하기싫어합니다. 그들은본질적으로완전히다른사상을가지고있어서노숙을하는것이기에그들이점거프로젝트

를진행했다는것은그철학적경향이나순수문화의그룹핑으로의정치적성향을가지고있는것입니다. 그들은어떻게보면굉장히명석한사회분석을

하고있는것이고, 자기들이어떤행위를했을때그에따른파장을일고올수있다는것을분명히알고있는 '운동'차원으로써의차이가있는것같습니

다.

김윤환: 덧붙여서이야기하자면유럽의경우역사적인과정을거쳐사회적합의도도출하고정부로부터일정부분지원을받는점거아틀리에도생겼습니

다. 한국 같은 경우 점거를 한다고 하면 과거의 미 문화원 점거 정도의 의미거나 아니면 현 노조가 회사를 점거하고 농성하는 것이 연상된다는 것입니

다. 그런데 그 두 가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거라고 이야기 했을 때에는 중들 사이에서 한국식 점거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김기현 선생님의 3, 4월에 프로젝트 실행에 참조를 하셨으면 합니다. 행위 면에서도 호소력을 발휘해서 어느 정도의 허용치를 받아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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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책연구'와 같은 작업실에 한 논의를 직접 정책적으로 처음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인 근거를 찾아야 하며 또

한 시민들의 합의나 사회적 관행 속에서 어떤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해 저는 '어떤 식으로 풀까'를 생각했는데 그전에, 일단 이번

전시에통해우리가새롭게발견한것을보면김기현선생님의작품과관련된청주시공무원의이야기처럼미술인들스스로도미술개념을너무좁게갖

고 있어서 작업실을 스스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점거가 일어나고 예술가는 '그렇다면

내 작업은 개인 작업인가? 공공작업인가?'라는 질문도 다시하게 되며, '내 작업이 개인이지만 이것이 어떻게 공공과 연결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면

서오늘이자리가오게된것같습니다. 이 논의가여기서시작이되어개인의창작이어떻게공공의문화속과가장직결될수있는가라는문제속에서

우리가 학미술교육에서 배워온 좁은 미술 개념을 넘어서지 않으면, 창작 스튜디오의 점거 사태도 정당화될 수 없을뿐더러, 그 본래 의미를 찾을 수 없

거니와 정책에 있어서도 공무원들조차 그 개념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술개념을 넘어가는 것, 즉 학에서 배웠듯이

개인작가의 길만 가도록하는 미술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작가들의 행동, 사회적인 사고에 해 한생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제가

미술사를 전공했지만 문화 정책 전반에 관해 연구할 수 있는 것은 미술이 저에게 시각적 사고를 제공하기 때문이고, 그 시각적 사고가 세계를 보는데 많

은도움을주기때문입니다. 결국은미술이라는것에이러한사고력, 세계를보는것, 해석하는이모든것이창작개념이되도록우리가만들어야할것이

며, 정책적인 근거를 찾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정책에 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정책적 근거를 예술가의 노동이 무슨 개념인지에

관해다룬프랑스의책에서찾았습니다. 거기에서예술가는미술뿐아니라건축, 공예, 공연과함께하는것으로, 작가의창작개념이굉장히다릅니다. 책

은 예술가의 노동을 연구함에 따라서 기존의 노동 개념을 굉장히 확장시켜 놓았습니다. 우리가 노동이라고 하면 보통 입체 노동자라던가, 화이트칼라의

노동으로 보다가 예술가의 창작을 노동으로 보면서 그 개념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중에서도 공연의 연습시간은 창작이라기 보단 일종의 재생산과정으

로, 책은 이것을 일종의 '노동적'개념으로 환산된다고 보면서 예술가의 노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미술의 노동인

데, 이는 미술의 노동이 굉장히 개인적이고 전시회를 해야만 하며, 다시 경제적으로 환원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지원이 되는 이유는

모든작가가전업작가이기때문에가능한것입니다. 이에 비해우리나라는전업작가가아니라미술학원을운 하는등알아서먹고살아야하는구조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개인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라서 예술 행위를 'private'한 활동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는 미술

학도돈이들지않고, 졸업후협회에들어복지도받으며전업작가에 한개념이마련되어있어서지원도아주체계적으로받습니다. 우리같은경우는

미술관도 국립보다는 사립이 더 많고 화랑의 규모도 큰 것처럼 개별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노동의 개념을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

으로시민의합의를얻어내는지점은최소한공연처럼즉, 하루종일집단연습을통해공연을하고, 티켓을받고, 많은사람들이향유할수있어서공연활

동 자체가 직업의 개념이 되는 것처럼, 미술활동이 노동의 개념이라는 근거를 만드는 것이 정책의 근거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민

들이 화가가 작업실에서 그림을 안 그리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밥을 먹고 생활하는 것도 노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도리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그나마 '노동'이라는개념을풀어볼수있을것이라생각합니다.

김준기: 우리가 인사동이나, 갤러리, 미술관에서 자주 만나는 미술의 형식이 아니라 현장의 삶과 갤러리, 미술관이라고 하는 게임의 공간을 오가면서 살

아가고 있는 여러 훌륭한 삶들이 많습니다. 훌륭한 예술가이자,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써의 예술가들을 많이 만나고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생

겼으면좋겠습니다. 오늘심포지움에참여해주신모든분들께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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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보도기사 및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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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림 空間대표 예술가 데뷔?2004.1.9, 매일경제, 이지형 기자

서울안국동사비나미술관에서 7일시작한 '작업실리포트'전에는골판지와철골을이용한 '움(wombㆍ자궁) 스페이스'란 작품이등장한다. 작품이탄생

하는 예술가의 작업실을 여성 자궁에 비유한 설치물이다. 작가는 이상림. 미술관 또는 화랑 전시에는 처음으로 작품을 내놓는 이 작가는 바로 건축설계

전문회사공간그룹의이상림 표(49)다.

김수근 ㆍ장세양 표를 이은 공간그룹의 3세 건축전문 CEO. 사비나미술관 구석에 설치된 '움 스페이스'는 아직 미완성. 이 표는 전시 기간중 짬짬

이 미술관을 드나들며 작품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 전시가 관람객과의 교감을 통해 완성되어 감에 따라 작가의 작업실도 진정한 의미에서 '완성'된

다는뜻일까. 이 표는 "외국에서는건축이건축만이길고집하지않는다"고했다.

다른 예술 장르와의 벽을 허물고 소통을 꾀하는 전시가 꽤 있다고 설명 했다. 이 표는 "국내에서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해외 전시를 통해 문화간 장 벽

을 허무는 시도를 많이 해볼 요량"이라고 했다. 이 표 외에 김윤환, 노순석, 박불똥, 박찬국 등 화가ㆍ조각가ㆍ사진 가ㆍ 상설치작가 19명이 '작업실

리포트'에 참여했다. 2월 25일까지전시

그곳엔 찬란한 예혼이 있다..'작업실 보고서'展…사비나 미술관서2004.1.10, 한국경제, 이성구 부장

서울안국동사비나미술관에서열리고있는 "작업실보고서"전은작가의작업실을미술관으로옮겨예술행위의의미를되새겨보는이색전시다.

김기현김윤환드라마고박불똥유근택이상림등 20명의회화사진 상조각작가들의작업실이마련됐다.

김윤환의 "PMA"는 휴 용아틀리에다. 공기주입형비닐로돼있어가볍고휴 하기편하다. 설치장소에큰구애를받지않고자유자재로이동할수있

는전천후아틀리에로보면된다. 국내뿐아니라해외에서의프로젝트형작업이많아지는현실을반 한것이다.

파리에서 활동중인 김현숙의 "스콰트"는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불법 건물 점유"를 뜻한다. 오랜시간 비어있는 건물들을 예술가들이 점거해 기존의 상업

화랑이나미술관에반기를들며자율적으로작품활동을전개하고있는유럽형작업실을보여주는작업실이다.

유근택의 "어쩔수 없는 난제들"은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장난감이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는 아파트 거실을 보여준다. 작업공간이자 동시에 일상공간,아이

의놀이공간을감당해야하는작가의아내인여성화가를화면에담아냈다.

공간그룹 표이사로활동중인이상림의설치작업 "Womb Space(자궁 공간)"는 골판지와비닐튜브의재질감을살려생명성의소통공간인자궁에빗

어작업실을형상화했다.

박불똥은 20여년의작가생활기간중작업실을짓고옮기고다시짓는과정을반복하면서작가가경험한작가와작업작업실의관계를건축도면사진메

모지같은오브제를통해보여준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인 드라마고는 디지털 포토 몽타주 작업을 실사출력해서 전시장에 걸었다. 아틀리에보다는 지역과 사람들이라는 현장을 존중해

허름한옷차림의꽃파는아줌마, 부평삼거리전철역에배회하는정신지체소년,버려진인형,개천을나는갈매기등이등장한다.

예술가들 작업실 '세상 밖으로''예술가 작업실' 호기심 해결 전시회2004.1.10, 스포츠서울, 이경옥 기자([email protected])

재미난 기획전으로 이름 높은 사비나미술관이 새해 첫전시로 관람객들에게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을 엿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다음달 25일까지 계속되

는 '작업실보고서'전은기존의미술전시와는차별되는이색기획전이다.

타이틀 그 로 작업실 보고서전은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여주면서 최근 젊은 작가군에서 새롭게 일고 있는 작업실에 관한 새로운 단

상들을 관람객들에게 이야기한다. 20명의 작가가 다양한 작업실 풍경을 보여주면서 이제 예술가의 아틀리에가 더 이상 고독한 창착혼을 불태우는 작가

만의독립공간이아님을역설한다. 한 예로김기현의설치작품 ' 안 아뜰리에-무단점거'는 지난 20년간파리에서예술운동의하나로호응을얻고있는 '

점거 아틀리에 운동'을 국내에서 시도하려 했던 과정을 담고 있다. 예술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사회 공공의 역이라는 기본전제에서 출발한 점거 아틀

리에운동은 '도심에서예술을위한공간, 시민들의자유를위한공간은어떤식으로존재해야되는가'라는 문제제기를한다. 그래서 스콰아티스트라 불

리는점거예술가들은비어있는공공건물을불법으로점거하다시피하며그속에서삶의예술을엮어간다.

김윤환은 개인휴 용아틀리에(PMA)라는 새로운 안형 작업실의 모습을 실제 모형을 축소한 설치형 작품으로 보여준다. 최근 들어 예술가들의 국제적

인 활동이 점자 늘어감에 따라 실제로 휴 용아틀리에는 시공간의 구애없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전천후 아틀리에로 떠오르고 있다. 이외에도 자신의

편집증적인 수집 취미를 작업실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작업실 건축도면과 사진, 메모지 등의 오브제를 통해 메시지를 던지는 박불똥의 작품

등은작업실이작가에게어떤의미가있는지를느끼게한다.

미술가의 작업실 보고서2004.1.6, 연합뉴스, 김은주 부장([email protected])

작업실은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산실이자 생활공간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

을 돌아보는 전시가 열린다. 7일부터 2월25일까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작업실 보고서전에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상설

치작가등의작업실을소재나 주제로한회화및사진, 상, 설치작품들이출품돼작업공간과연관된예술가들의 정체성을탐색한다.

전시에는 김기현 김윤환 김현숙 드라마고 박불똥 유근택 이상림 등 2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김윤환은 PMA(개인 휴 용 아틀리에)를 보여준다. 가볍고

휴 하기좋은공기주입형비닐로돼있다. 설치 장소에큰구애를받지않으며사용인원은기본적으로 1인용이나더크게만들어그룹이사용할수도있

다. 작가들이 미디어 작업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과거처럼 큰 작업실을 요구하지 않게됐고 프로젝트형 작업이나 수행형 작업등을 위해 이동하며 작업하

는경우가 많은현실을반 한것.

기존아틀리에에 한또다른 안으로김현숙은유럽에서볼수있는 '스콰트'를 제시한다. '스콰트'는 불법건물점유를의미한다. 스콰트예술가들은공

공건물중방치돼오랜시간비어있는건물들을예술가들이점거해기존의상업화랑이나미술관에반기를들며자율적으로작품활동을전개하고있다. 김

현숙은 9개의 큐브형 모니터를 설치하고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스콰트예술가들의 다큐 비디오를 상 한다. 3 의 TV에서는 김현숙의 비디오 아트 '삶과

예술의 실험실-스콰트'가 상 된다. 또한폴라로이드로찍은아티스트들의사진 100여장이전시된다.

인천 지역에서공공미술프로젝트그룹 '반지하' 활동을 하고있는 드라마고는디지털포토몽타주작업을실사출력해서전시장에걸었다. 그는 폐쇄된

아틀리에 보다는 지역과 사람들이라는 현장을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현수막에는 현장이 재구성돼있다. 허름한 옷차림의 꽃파는 아줌마, 부평삼거

리전철역에배회하는정신지체소년, 버려진인형, 복개되지않고마지막으로남은개천위를나는갈매기, 빛바랜달력의숫자들이현수막에등장한다.

유근택의 '어쩔수 없는 난제들'은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장난감이 정신없이 어질러져있는 아파트 거실을 보여준다. 작업공간이자 동시에 일상공간, 아이

의 놀이공간을 감당해야하는 자신의 아내인 여성화가를 화면에 담아냈다. 공간그룹 표이사로 활동중인 이상림의 설치작업 'Womb Space(자궁 공

간)'는 골판지와비닐튜브의재질감을살려생명성의소통공간인자궁에빗 어 작업실을형상화하고있다. 전시 마지막날인 2월25일 오후 3시부터는

공간그룹소극장에서 '한국의작업실현황연구와 안모색'이라는주제로심포지움이개최된다.

창작의 비밀공간 문이 열리다사비나미술관 '작업실 보고서' 展

2004.1.6, 문화일보, 신세미 부장([email protected] )

미술가의 작업실은 들여다 보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만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내 한 공간이다. 닫힌 공간이었던 예술의 산실인 작업실을 공개하며

관람객과의만남을시도하는색다른기획전이열린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7일부터 2월25일까지 열리는 겨울기획전 '작업실 보고서'전은 국내 미술인들의 작업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별난 전시

다. 미술관의 3개층전시장속으로화가조각가건축가사진가 상설치작가등다양한장르미술가들의작업공간이들어선다.

사비나미술관 기획자 김준기씨는 "작가의 작업환경만 재현한 전시가 아니라 줄곧 닫힌 공간이었던 작업실의 이미지를 외부와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작업실 현장에서 작가의 삶과 예술을 공개하는 한편, 안적 형태의 작업실을 모색해보는 기획이다. 작가들은 작업실의

일부를그 로옮겨놓거나모형, 사진, 상 등의형태로보여주면서관람객과의 화시간도갖는다.

참여작가는김기현김윤환드라마고박불똥박찬국박홍순배윤호배준성백기 사사윤정미오철헌유근택이상림정보 씨등 30~50 의 작가 20명.

본격 작업실부터 반지하, 유아 장난감이 널려있는 살림집과 공유하는 형태, 그리고 국내외 공공의 작가지원스튜디오나 작가 또는 건축가가 제안하는

안적모형까지다양한작업실이전시장속으로옮아온다.

실제 작업실 현장을 담은 사진과 상도 다양하다. 사진작가 방명주씨는 홍지연 노석미씨등 여성작가들의 작업실 사진들을, 박홍순씨는 요절한 조각가

유인과 구본주씨의 텅빈 아틀리에 사진을 전시한다. 누드사진 위의 그림전을 림미술관에서 열고있는 배준성씨는 누드실기시간을 특유의 두겹 그림으

로재연한다.

반지하 아틀리에(드라마고)나 집에서 가사와 작업을 병행하는 여성화가의 작업공간(유근택)도 반듯한 별도의 작업공간을 따로 갖기 힘든 전업작가의 일

상을 드러낸다. 부부작가 양석윤 주인숙씨는 3차원 동 상을 빔프로젝트로 사해 사이버아틀리에를 차리며, 학원생 애희씨는 작업실에서 야간작업

이금지돼있는학교내작업실에서펼쳐지는일화까지공개한다.

국내외 작가지원시설 입주작가의 작품을 통해 공공아틀리에의 속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서울 창동 국립현 미술관 공공아틀리에에 입주한 노순석씨는

작업실한벽면을전시장에옮겨, 아이디어메모와스케치까지전시한다. 사사는홍익 앞쌈지아틀리에를, 김현숙씨는파리의공공건물속작업장을보여

준다.

화가 박불똥씨는 수차례 작업실을 지으면서 직접 썼던 평면도 도면과 모형등을 전시한다. 건축가 이상림씨의 작품은 골판지로 꾸며본 안적 아틀리에

모형이며, 김현숙씨는배낭속에넣고다니면서수시로꺼내활용하는휴 용미니작업장을보여준다.

미술관측은 전시기간 수搔畯금요일 오후4시 작가와의 화시간을 마련하는 한편 전시 마지막날인 2월25일 '한국의 작업실 현황연구와 안모색'을 주

제로한심포지움을열고연구자료를바탕으로작업실관련단행본도출간할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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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으로 나타난 작업실 풍경 '사비나 미술관 겨울기획전…' 작가정체성 탐색의 場으로2004.1.12, 서울경제, 박연우 차장

작업실은 예술가의 생활공간이자 작품을 생산해내는 창작의 산실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을

돌아보고, 건축적공간으로서의의미를재해석하는전시가열린다.

사비나미술관에서 7일부터열리는 '사비나미술관겨울기획전:작업실보고서(Atelier Report)'전이 그것. 참여작가는김기현, 김윤현, 노순석, 박불똥, 오철

헌, 정보 , 한은주등 20명이다.

유근택 '어쩔 수 없는난제들'(종이에 수묵채색) 이 전시에는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상설치작가 등작업실을소재나주제로한회화및사진,

상, 설치 작품들이 출품됐다. 작업공간과 연관한 예술가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품들을 통해 작품(생산)의 배경과 작가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우선 입구에는 현재 공간그룹 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림씨 설치작업 'Womb Space(자궁공간)'이 있다. 질감이 둔탁한 누런 골판지로 벽을 이룬

1평정도의공간속에는공기가가득한 형비닐튜브가안을꽉차지한다. 입구쪽에는 '비닐을비집고들어가앉아보세요'안내문이있다. 비닐특유의끈

적거리는재질감에폐쇄적인공간에서오는묘한느낌은설명이어렵다.

그 옆으로는지난해여름청주에서점거아틀리에프로젝트를진행해화제를모았던김기현의설치작품 ' 안 아틀리에"무단점거"'가 있다. 지난해경험

을토 로 '화사했다- 접했다-동의했다-설득과협박-나를외부에서보기'로 나눠점거프로젝트의단계를은유적으로담았다.

전시실 한 가운데는 야 장에서나 볼 수 있는 텐트가 있다. 홍익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파리에서 활동 후 최근 귀국한 김윤환씨의 작업실을 옮겨왔다.

요즘유행하는휴 형아틀리에(Personal Mobile Atelief 이하 PMA)를 상징한다. PMA는 휴 성, 유연성, 자율성을기본개념으로하여건축되었다. PMA

는거리와공원, 도심과농춘뿐아니라카페, 전시장, 공공건물등의실내장소에도머물면서전시와창작을병행하며시민들과소통할수있다.

이 전시에서가장눈에띄는것은지하전시실에붙여져있는박불똥씨의작품이다. 그는그는 20여년의작가생활기간에작업실을짓고옮기고, 다시짓

는과정을반복하면서경험해온작업실과작가, 그리고작업의관계에 한소회를각종서류와원고를벽에붙여보여줌으로써설명한다.

이밖에도 유근택씨의 '어쩔 수 없는 난제들', 드라마고의 '벽을 눕혀 살아가는 길에서', 백기 의 '구석', 배윤호의 '흐르는 몸'등 젊은 작가들이 생각하는

작업실에 한다각도의담론을그려내고있다.

이 전시를즐겁게느끼려면갤러리관계자들의도움이필요할것같다. 그냥 사전지식없이보게되면골판지가있고요즘흔히볼수있는소도시의풍광

을 그 로 찍어낸 사진이 있는가하면 부동산매매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서류들이 붙여져있고 설치된 비디오로는 알 수 없는 사람의 인터뷰가 끊임없이

돌아가는것들이낯설기만하기때문이다. 작가 의도와문화적배경을조금이나마알게되면전시의폭이그만큼넓어진다. 한편 때로는오후4시 작가한

두명씩과의 화시간도갖는다.

아틀리에는 소통과 만남의 공간2004.1.13, 세계일보, 편완식 차장

'내 안에 살고있는천사가/ 하얀 날개를펼치고/ 날아오르는하늘/ 푸른 하늘/ 문득 주어든깃털하나/ 벽에 걸고행복해하는/ 여기는 나의아뜰리에.' 작

가노순석의작업실메모다.

오는 2월 25일까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작업실 보고서'전은 작가들의 창작 공간을 들여다보는 자리다. 작업실 얘기를 통해 자연스럽

게현 미술의현주소와예술의역할을살펴보고자하는의도가깔려있다. 예술가의고독한창작혼을불태우는독립공간을넘어소통과만남을이어나

가는열린공간의작업실을모색해볼수있는기회다.

김윤환은 PMA(개인 휴 용 아틀리에)를 보여준다. 가볍고 휴 하기 좋은 공기주입형 비닐듀브로 돼 있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예술가들의 국제적인 활

동에 응하여현장작업등이동성을반 한것이다.

기존 아틀리에에 한 또 다른 안으로 김현숙은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스콰트'를 제시한다. 스콰트는 건물 불법점유를 의미한다. 스콰트 아티스트들은

오랜시간비어있는건물들을점거해기존의상업화랑이나미술관에반기를들며자율적으로작품활동을전개하고있다.

인천 지역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 '반지하' 활동을 하고 있는 드라마고는 사진이 붙여진 벽돌 모양의 상자로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만들었다. 그

는 폐쇄된아틀리에보다는지역과사람들이라는현장을존중해야한다고말한다. 사진에는현장이재구성돼있다. 허름한옷차림의꽃파는아줌마, 부평

삼거리전철역에배회하는정신지체소년, 버려진인형, 복개되지않고마지막으로남은개천위를나는갈매기, 빛 바랜달력의숫자들이등장한다.

유근택의 '어쩔 수 없는 난제들'은 종이에 수묵채색으로 장난감이 정신없이 어지러져 있는 아파트 거실을 보여준다. 작업공간이자 동시에 일상공간, 아

이의놀이공간을감당해야하는자신의아내인여성화가를화면에담아냈다.

공간그룹 표이사로 활동 중인 이상림의 설치작업 'Womb Space(자궁 공간)'는 골판지와 비닐 튜브의 재질감을 살려 생명성의 소통 공간인 자궁에 빗

어작업실을형상화하고있다.

화가들 작업실 궁금하시죠2004.1.14,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email protected])

제조업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미술가에게는 작업실이 있다. 물건이든 작품이든 생산을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래저래 서울 언저리에 살아야 활동

이편한한국작가들가운데작업실을제 로갖춘이는얼마나될까라는물음이자연스레떠오른다. 비싼 땅값때문이다. 어느 정도크기를요구하는작

업실을마련하는일은지금한국미술가들에게그림의떡이다. 전시기획자김준기씨가 "이제작업실을이야기하자"고나선까닭이다.

7일 개막해 2월 25일까지서울안국동사비나미술관에서열리고있는 '작업실리포트'전은 20명 작가들이각기작업실을꾸려가기위해벌인투쟁일지

이자 아이디어 모음이다. 1층부터 3층까지 작가들이 선보인 각양각색의 작업실은 작가의 삶을 체험하게 만들고 작업실에 한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

는다.

김윤환씨는접어가지고다닐수있는 '개인 휴 용아틀리에(PMA)'를 전시장바닥에펼쳐놓았다. 국제적인활동이늘어나는요즈음작가들에게지고다

니다가어디서든바로풀어작업을할수있는공간은 환 이다. 드라마고가발표한 '벽을 눕혀살아가는길에서'는 인천 전체를작업실로삼은작가의

현장미술성이돋보인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갑내기 부부 작가 양석윤.주인숙 부부는 '양주방'이란 이름으로 함께 작업한다. 이들이 내놓은 작품은 '사이버 작업실'로 컴퓨

터 마우스를 클릭하면 두 사람의 작업실 공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다. 명상을 위한 텅 빈 공간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배윤호씨, 자궁처럼

내 한공간을지은이상림씨, 프랑스 파리에서작가들이점거해작업실로쓰고있는 '스콰트'현장을 보여주는김현숙씨등작가들의상상력이놀랍다. '

궁하면통한다'는 옛말이실감나는현장이다.

매주 수~금요일 오후 4시에 전시장에서 '작가와의 화'가 이어져 작업실에 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다. 2월 25일 서울 원서동 공간 소극장에서 '한국의

작업실현황연구와 안모색'을 주제로한심포지움도열린다.

예술가들은 작업실도 예술이네2004.1.16, 한겨레, 노형석 기자([email protected])

미술가의 작업실은 작가만의 고독한 창작공간으로 받들어지는 게 보통이나 요즘 작가들 속셈은 다소 달라졌다. 미술유행을 종잡기 어렵고, 세상 흐름도

격변하는마당에작업실도작품이자소통공간으로변해야한다며희한한주문을거는경우가많다. 서울 안국동사비나미술관에서열리고있는 '작업실

보고서'전(2월25일까지)에 가면 작가들이 작업실에 선고하듯 새겨놓은 별의별 주문들의 요지경을 작업으로 보게 된다. 스포츠신문 이미지, 장난감 프라

모델로 뒤발한 작업실(사사), 수시로 설치가 가능한 텐트형 이동작업실(김윤환), 빈집에 다짜고짜 들어가 만든 스 작업실(김현숙, 김기현), 시골 폐교에서

현지 아이들의 미술놀이공간으로 개방되는 작업실(박찬국) 등 우리 통념과는 다른 작업공간, 혹은 해석들이 있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등 시각

을 다루는 예술가들이 자신 혹은 남의 작업실을 소재나 주제로 삼은 회화, 사진, 상, 설치 작품들이다. 한평도 안 되는 작은 나무바닥 방에서 8달 동안

뒹굴며글씨를적거나자거나먹거나하는백기 씨의작업실행위기록사진, 자신의독일작업실공간에숨은모든이야기와역사를사이버공간에고스

란히재현한작가부부양석윤주인숙씨의작업에숨은절실함은곧모두가소망하는열린이야기의욕망이다. 작가 21명이 참여했다. 2월19일까지매주

수~금요일오후 4시출품작가와의 화가, 2월25일 서울원서동공간그룹소극장에서작업실주제로심포지움도마련된다.

예술의 탄생을 보았는가…'작업실 보고서'전2004.1.19,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email protected])

사비나 미술관, 유근택 작 '어쩔 수 없는 난제들' 예술가의 창작 산실이자 생활공간인 작업실을 코드로 한 이색전시회가 열린다. 2월25일까지 서울 사비

나미술관에서열리는 '작업실보고서' 전.

작업공간과연관된예술가들의정체성을탐색하는전시회.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상 설치작가들이 '작업실'을 소재나주제로다룬작품들을보

여준다. 김기현김윤환김현숙드라마고박불똥유근택이상림씨등 20명의작가가참여했다. 창의성이번득이는다양한아틀리에가등장한다.

유근택씨는장난감이정신없이어질러진아파트거실을종이에수묵채색으로표현했다. 작업공간이자동시에생활공간, 아이의놀이공간까지감당해야

하는 여성화가인 아내의 작업실을 화면에 담아냈다. 김윤환씨는 공기 주입형 비닐로 만들어 설치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개인 휴 용 아틀리에를, 김현숙

씨는오랜시간방치된공공건물안에만든유럽식 '스3' 작업실을찍은다큐비디오를상 한다.

예술가의 작업실은 어떤 모습?2004.1.26, 매일경제, 이지형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간혹 관공서 건물이 이사를 가거나 하는 이유로 빌 때가 있다. 예술가들은 틈을 두지 않고 그 건물을 접수한다. 그리

고 빈 공간을 자신들 작업실로 쓴다. 무단 점거. 파리 아티스트들은 공공 건물은 당연히 무단 점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2002년에는 아예 그렇게

점거한공공건물 28곳을근거지로 규모전시회가열려화제가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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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김기현 작가는 지난해 여름 청주에서 빈 동 사무소 건물을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접수`를 시도했다. 물론 작업실로

쓰기위해서다. 그러나공권력의회유와협박에시달리다끝내공공건물무단점거를포기해야했다. 비록 실패로끝났지만김작가의색다른시도를서

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 `작업실 보고서`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월25일까지 계속되는 전시. 김 작가의 공공건물 무단 점거 프로젝트 외에도 작업실을

소재또는주제로한작가들의다양한창작을볼수있다.

전시에참여한작가 20명중에는화가도있고조각가도있고사진가 상작가설치미술가도있다.

한생곤작가는버스를작업실로이용하고있다. 버스를타고전국 `현장`을 돌 아다니며작업을한다. 전시장에는그가작업실로사용하고있는버스의사

진이등장하고, 버스에부과된과태료딱지도나와있다. 화가의작업실에붙은 `과태료부과 상차` 딱지? 공공미술프로젝트그룹 `반지하`에 속한작가

드라마고는 "인천전역이작업실"이라고주장하는사람이다. 그에게번듯한작업실은사치일뿐이다. 그는묻는다. "고독한작업자로자기아틀리에에서

고귀한 작품을 꿈꾸는 것이 가능 한가 또는 바람직한가?" 그는 지하철역에서 해맑게 웃는 아이 모습을, 붉은 내 복을 입고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

는할머니를 상에담는다. 그에게멋드러진작업실같은것은없다.

전시장구석에는희한한사진연작이등장한다. 백기 작가의 `구석`이다. 그는자기작업실구석에나무판을하나깔아놓고 8개월동안책읽고, 생각하

고, 먹고, 놀고, 작업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생활하는 구석의 벽은 낙서와 글씨로 덮인다. 예술과 삶에 관한 낙서이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고민거리를 적은

글들이다. 그는그좁은공간에서사유하고예술을창작했다. 작업실은그자체로작품이됐다.

박불똥 작가는 작업실을 보여주지 않았다. 신 전시장 벽면에 작업실 건축 도면을 등장시켰고, 건축과 관련된 각종 증빙서류들을 붙여 놓았다. 그 뿐이

다. 그의 단순한 작업은 예술을 창조한다는 고귀한 의미에서 작업실 신화를 일거에 무너뜨린다. 작업실은 그저 복잡한 행정절차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건물일뿐이다.

유근택 작가는 `어쩔 수 없는 난제들`이란 수묵 작품을 내놨다. 아파트 거실. 그 곳은 아이들 장난감과 학용품들로 난장판이다. 그리고 마루 한 쪽의 방은

역시화가인유작가아내의작업실이다. 유 작가는집과별도로어엿한작업실을갖고있지만아내는난장판인아파트의한쪽방이작업실이다.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실장은 "작업실은 이제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고 했다. 예술가가 고독한 창작혼을 불태우는 독립 공간을 넘어예

술의사회적위치를밝혀줄수있는 `작업실의사회학`을 생각해보자는게이번전시를기획한의도다. 2월 25일까지.

Working man's misery is bohemian artist's joy2004.1.29, 코리아헤럴드, 문혜연 기자([email protected])

So a decor in varying shade of gray, the occasional potted plant and some Dilvert cartoons is about as wild as your office cubicle gets. Imagine if

you could labor away in the comfort of a freewheeling, plush vehicle or in an apartment with enough space for the Bolshoi Circus.

While they may not have steady paychecks, artists definitely seem to have more fun working in their studios, as "Atelier Report," an exhibit on

artists' workplaces at Savina Museum shows.

Long a mysterious workshop the picture of a finished product hanging in the gallery, the artist's studio has becomeincreasingly visible to viewers.

Damien Hirst's 2001 installation of an artist's workplace, cigarette butts and all, infamously got swept out with the trash by an unsuspecting janitor.

Luckily (at least for the Savina Museum's cleaning staff),none of the artists here have gone so far as to trasplant their studio into the museum.

Instead, 20 artists and several collaborators have come up with ingenious vsions of redefining the notion of the artist's rea; and imaginary

workspace.

Photographs, movies, installations and paintings fill the museum in a haphazard atmosphere. A transitory quality seems to define many artists'

interpretations of the studio, such as Kim hyun-sook's "Squats-The Art and Life Laboratory," a documentary and installation piece of Paris's squats,

or empty, dilapidated multi-storied buildings illegally occupued by artists, Three television monitors and photographs show the artists' ramshackle

spaces throughout the districts of Paris, filles with graffiti, debris and artwork. There's a bohemian chic to these dreamers, where their studios

represent more a way of life than a simple workplace.

Mobility is another vision of redefining the studio. In Kim Youn-hoan's "PMA" or Personal Mobile Atelier, broke artists who can't afford the rent can

move around in a little space-age tent on wheels to take in the sights and sounds of the city. Although the green and purple atelier would give

artists plenty of sensory experience to work with, the tiny carrier doesn't leave much room for producing actual art. It's prebably intended for a

conceptual artist.

In more stationary studios, viewers can glimpse artists' creative laboratories and see the works in their embryonic stages. Park Hong-soon's

beautiful photographs of sculptor Ryu Ihn's studio shows a space infused with a warm, dreamy light. Ryu's work-in-progress is a green monster

with strange tentacles, which looks even more enchanting under Park's lens.

As an artist who works on collaborative projects, SaSa's work in this show features the photographer Yoon Jeong-mee. SaSa has places Yoon

amidst piles of beloved posters, trinkets and books in the photograph of his studio, "Things that Make My Life Worth Living." It's a sharp and

touching photograph suggesting that other artists are as much a part of the creative process as the finished work of art.

Peik Ki-young's documentary series of 18 photographs, "Reading Books, Thinking, Eating and Playing while Making Work in a corner for Eight

Month"(1998-1999), reveals that not all artists need a spacious loft to produce in teresting art. A corner that might ordinarily be served for a dunce

or a misbehaving kindergartner's time-out session trasforms into Peik's private space for contemplation. He sits on a small wooden platform in the

corner of a room, doing exactly what the title says, occasionally taking enigmatic notes on the wall. The difficulty of discerning whether he's

pretending to read the books or actually taking notes on the wall adds to the playfulness of his peice. We see his work in progress on his project,

and if it even exists somewhere beyond the photographs is uncertain.

The artists' studio is a protean creature, at times occupying abandoned buildings. Despite all its multiple manifestations, it's still hard to tell xactly

where, when and how the artwork gets made inside. Perhaps the artists at this show have left the best corners of their studios unexposed to the

prying eyes of viewers. For the atelier still remains a place full of mistery, and certainly leaves more room for the imagination than the dull environs of

a plastic cubicle.

"Atelier Report" runs until Feb. 25. Savina Museum is near Anguk Station, subway Line No, 3, Exit 1, next to the Anguk post office.

그들의 아지트를 엿보다2004년 2월호, 월간인테리어

신비로운작품이탄생하는예술가의작업실은과연어떤모습일까?

1월 17일 개막하여 2월 25일까지서울안국동사비나미술관에서열리는 '작업실보고서 Atelier Report'전은 예술가의 '작업실'을 테마로, 관람객이작가

의삶을체험할수있는기회를제공하고아울러예술가들의창작환경에 한진지한담론을이끌어내기위한전시이다.

그간 예술가의 독립공간으로만 인식되었던 작업실이 소통과 만남의 열린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이번 전시는 현 작업실 현황에 한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휴 이동식작업실'이나 '점거아뜰리에'와 같은 안적작업실의형태를제시하기도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기현 외 20인의 작가들은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상설치작가 등으로 구성된 시각예술분야의 예술가들로, 3층 규모의 전

시장을작업실에 한회화및사진, 상, 설치작품들로채워나가고있다.

김윤환이제안한 '개인휴 용아뜰리에 PMA(Personal Mobile Atelier)'는 시공간의제약없이손쉽게창작할수있는새로운개념의아뜰리에로, 점차늘어

가는 예술가들의 국제적인 활동에 응한 유 성, 유연성, 자율성의 개념을 담고 있다. 이밖에 이상림의 설치작업 '자궁공간(Womb Space)'은 생명성의

소통공간인 자궁에 빗댄 작업실 공간을 골판지와 비닐튜브의 재질감을 이용하여 형상화하 으며, 양주방의 '사이버 작업실'에서는 3D작업으로 이루어

진인터랙티브공간에서관람객들이마우스클릭을통해정교하고기발하게꾸며진작어실공간을탐색할수있다.

작업실 보고서 Atelier Report전2004년 2월호, 월간소프트, 김승문 기자

사비나미술관에서는 2월 25일까지 겨울기획전으로 <작업실 보고서 Atelier Report>전을 준비한다. 이번 기획전은 20인의 참여작가가 다종다양한 작업

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삶의 공간이자 예술행위의 장소인 작업실을 통해 예술 작품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화가, 조

각가, 건축가, 사진가, 상설치작가등시각예술분야작가들의작업실을소재나주제로한회화및사진 상, 설치작품들이출품되기때문에예술가혼

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술가의 독립적인 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이다. 이번 전시회는 그 안을 찾아 화를 시도

하는 '움직이는전시'라 할만하다.

이제는 작업실을 말한다. 소통과 만남을 이어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2004년 2월호, 시사포토뉴스, 조문주 기자

작업실은 예술가의 생활공간이자 작품을 생산해내는 창작의 산실이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예술행위를 이어나가는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돌아봄으로써 ,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위자에 의해 새롭게 규정되는 작업실 공간의 의미까지 재해석 할 수 있다. 삶과 예술

의현장을살펴보는관람객들에게있어작업실은미지와신비의공간이될것이다.

작업실 보고서는 작업실에 관해 다각도의 담론 생산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작업실은 이제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술가의 고독한 창

작혼을 불태우는 독립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의 작업실을 생각해내, 예술가의 삶을 담조하는 '작업실 기본권'을 위해 현황을

점검하고 안을찾고있다.

김기현은 < 안 아뜰리에 "무단 점거">란 작품을 통해서 도시내의 작업장 절 부족 해소의 절실정을 드러냈다. 작가들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필연적 창

작의 공간이 동시에 삶의 공간으로의 동시적 역할을 한다. 작가는 공공의 예술 취미를 충족시켜 중 미술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로써의 예술활동은 당연

히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의 건물은 무단 점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궁핍한 이 사회에서 예술이라는 혼

의힘만으로는더이상버틸수없는처절한상황에처해있다. 물론모두를지칭하는것은아니지만, '어쩔 수없는점거'라는형식을통하여그들의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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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표명한다. 그들은 필요한 건물에 절 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달고 건물을 점거하여 작가들이 집단 창작과 공동 창작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다.

김윤환의 PMA(Personal Mobile Atelier)는 휴 성, 유연성, 자율성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건축되었다. 작업실을 들고 다닌다. 고정되고 무거운 작업실에

서 작업하는 것보다는 가볍게 이동하면서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창작환경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기본속성인 자유로움, 결국 그 자유로움은

예술의 내적 자율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 많은 그림들과 조각들을 어떻게 가지고 다닐 것인지. 혹시 자신의 작업실을 개인박물관처럼 꾸며 놓지는

않았을지. 행여나비싸다는이유로아뜰리에가외곽도시로나가야만하는건아닌지이번전시를통해서확인해보기바란다.

김현숙의 상설치작업 <예술과 삶의 실험실, 스콰앗>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콰앗은 불법건물점유를 말한다. 비어있는 집, 거주지가 없는 사람들이 들

어가서살기도하는데, 불법으로건물을점유하여사용하는것이다. 김현숙은 9개의큐브형모니터를설치, 그 중며개의모니터에서프랑스에서활동중

인스콰앗예술가들의다큐비디오를상 한다. 그리고폴로라이드사진으로찍은 100여장의아티스트들의사진이벽면에부착. 설치되어있다.

이 사진 작업은 김현숙이 만나는 작가들에게 "당신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후, 사진을 찍고 작가 자신이 그 사진 위에

질문에 한의견을적은예술적 화와소통의실험작업이다.

단순한 사진 작업이 아닌 사진과 텍스트가 함께 하는 작업으로써, 김현숙과 작가들간에 "아뜰리에"라는 주제로 화를 나눈 기록이며 하나의 완결된 작

품으로써 '전시'가 아닌 '만들어질어떤것'을 향해가고있는예술적실험이라할수있다.

작업실은생산의장이고최소화하는과정이다.

절제시키고비어있는느낌.

떠돌아다니는공간.

단순히건물접지가아니다.

도시에서작가들이활동할수있는공간.

"작업실보다 중요한 건 작업의지야. 진정한 작가라면 도처가 작업실이지." 라고 말하는 박불똥 작가는 20여 년의 작가생활 기간에 작업실을 짓고, 옮기

고, 다시짓는과정을반복하면서경험해온작업실과작가, 작업의관계에 한소화를작업실건축도면, 사진, 메모지등의오브제를통해보여준다.

작가와 예술만을 중요시 여기던 우리의 시각이 작가의 삶과 일상으로 옮겨갈 수 있는 이번 기획전은 1월 7일부터 2월 25일까지 사비나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며, 작가별해당일오후 4시에가면작가와의 화에도참여할수있다.

<작업실 리포트>은밀한 공간의 노출2004.2.11, 세븐데이즈, 박환희 화가

김현숙의폴라로이드에는작가의작업공간에관해한마디씩적어놓았다.

"교환하는장소, 하라다이스, 혼이지나가는공간, 스레기재활용공간, 비 을갖는곳, 자유, 노는시간, 즐거움, 감정, 텅 빈공간, 부질서의공간, 살아

있는공간..."

당신은 작업실을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하는가? 작업실은 작품을 생산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예술가의 생각과 삶을 보여주는 창작의 공간이다. 사비나미

술과의 겨울기획전 <작업실 리포트>에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상설치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스무명의 작가들의 작업실 풍경을 통해 우리

는작가의삶이배어있는작업현장을살짝엿볼수있다.

백기 의 '구석'. 작가는 작은공간을정해 8개월동안책읽고, 생각하고, 먹고, 놀며 작업하는행위를사진으로기록했다. 그 공간을 쓰는사람이공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보면서 우리는 예술가에게 작업실이란 건축적인 의미 이상의 공간임을 느끼게 된다. 오철헌은 각각의 작업공간에 몸담고 있

는 4명의 작가를 사진에 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공간에 편히 자리잡고 있다. 인문이 아닌 공간 분위기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

인지짐작하게해준다. 반 로 노순석의작업은실질적인공간이아닌, 작가의생각을읽을수있는작품이다. 하나의작품을만들기위한작가의창작과

정이스크랩된기록을통해읽힌다. 이렇듯작업실은물리적공간임과동시에정신적공간이기도하다. 작가의생각들이작업으로표현되기전까지의과

정이머무르는공간이다.

한생곤의 노란 버스는 움직이는 작업실이다. 작가의 의도나 목적에 따라 이동하는 작업실에서 작가는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적응하며 작업한다 이런 의

미로 보면 작가의 작업실은 더 이상 개인의 공간이 아니다. 따라서 작업실은 사회로도 이어진다. 김기현의 '점거 아틀리에에 관한 명상'이 그 예. 김기현

은지난해청주에서빈공공건물을작가들의아틀리에로사용하는문제로지역여론을들끓게하여점거직전까지갔다가한걸음뒤로물러난상태.

과거에작가의작업실은예술가자신의신비스럽고은 한, 개인공간이었다. <작업실리포트>는 이사적인공간에 중을초 해그공간이주체에의해

재해석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이 전시는 작업실의 안을 찾고 작업실에 한 화를 시도하며, 작업실의 변화를 의도하는 전시다. 참여 작가의 작

업실을비롯해작업실전반의문제를토론하고또그내용을담은단행본도출판할예정, 그래서 <작업실리포트>는 '움직이는전시'기도하다.

예술가들 작업실 '눈'으로 체험 예술가들 20명, '작업실 보고서'展 열어2004년 3월호, 월간빅프린트, 유경미 기자( [email protected])

김기현, 노순석, 드라마고, 박불똥, 방명주, 박홍순, 배윤호, 백기 , 양주방, 유근택등예술가들 20명이 모여안국동사비나미술관에서 1월 7일부터 2월

25일까지 작가작업실을재현한 '작업실 보고서(Atelier Report)'라는 겨울기획전을열었다. 다양한 방법으로작가들의작업공간을이색적으로표현한이

번 전시회에 디지털 프린팅도 그 표현 기법 중에 하나로 사용했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 상설치작가 등 시각 예술 분야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소재로

회화와사진, 상, 설치작품들을출품했다.

방명주 '퍼즐 puzzle 홍지연' '퍼즐 puzzle 노석미', 박홍순 '구본주작업실' '류인 작업실', 배윤호 '흐르는몸' 등 디지털프린트작품을볼수있었다. 드라

마고는현수막에출력한디지털포토몽타주 '벽을눕혀살아가는길에서'라는작품을전시했다.

인천 지역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 '반지하' 활동을 하고 있는 드라마고의 현수막에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꽃을 파는 아줌마, 부평삼거리, 전철역을

배회하는 정신지체 소년, 버려진 인형, 개천위를 나는 갈매기 등이 등장한다. 그는 "현수막은 가격이 저렴하고 실물 느낌, 실제 공간과 같은 표현을 하는

데크기가적당해서사용했다."고 말했다. 가로 3m, 세로 3m 정도크기인이번자품은각각다른사람이촬 한이미지들을드라마고가포토숍으로편집

했다. 출력은 인천 신승광고에서 OJ-62를 이용해 작업했다. 출력소 관계자는 "현수막 작업은 발색도가 중요한데 OJ-62는 색감이 좋아서 사용했다."고

밝혔다.

직접 프린터 구입해 작업하는 작가도 있어

방명주작가는이번작품을데스크톱프린터인데스크젯(deskjet) 5652로 프린트했다. 사용한 소재는엡손장기보존매트지(Archival Matter Paper)이고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포토숍을 사용했다. 평소 디지털 카메라 촬 을 많이 한다며 "프린터를 이용하는 것이 기존 방법과는 다른 재미가 있어 직접 프린

터를 구입해서 작업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품 전반적인 컨셉트와 사이즈가 적절하게 어울려 새롭고 재밌게 표현 가능한 디지털 프린팅 작업에 만족

한다"고 덧붙 다. 앞으로 작품활동을 하는데 '디지털 프린팅'은 필연적인 수단이 되지 않을까 싶다는 작가의 말에서 다향한 디지털 프린팅 적용과 확산

을기 해본다.

박홍순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서 디지털 프린팅 기법을 이용한 작업이 필연적이었다."고 말했다. 작고한 작가의 사진과 작업실 모습을 합성해 제작했기

때문이다. 상충개념으로생각했던디지털과아날로그의교차점에있는이번작품제작은작가에게 "디지털프린팅작업을시작하는출발선상에있는의

미있는작업이었다"고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매우 다양한 관람객들이 다녀갔다고 미술관 관계자는 밝혔다. '작업실 보고서'展을 찾은 사람들은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작가들 작

업실 풍경을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만나 볼 수 있어 새롭고 좋다."며 "흔히 보기 어려운 내용인데다 작업 환경을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서 결과물로만

봤을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세계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 다."고 말했다. 미지와 신비 속 공간인 작업실 현장을 간접체험 할 수 있고 공간의미를

재해석할수있는전시회 다.

닫힘에서 열림으로 혹은 거꾸로2004년 3월호, 월간포토넷

1. 시골로 이사를 오면서 나도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앞마당이 넓고 앞마당 끝에 작은 언덕이 있고 그 언덕 위에 나의 작업실은 있다(나

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나는 책을 읽고글을쓰는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게작업실은 연구실이다.) 강의가 있거나특별한사람을만날일이아니면서울로

의 행보가 없는 나는 아침마다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와서 곧장 그 작업실로 올라간다. 아이들이 오후에 귀가하지 않고 아내를 따라서 서

울로 가는 날에는 하루종일 그 곳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물론 그곳에서 내가 졸 하는 일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다. 그러나 자주 나는 주변의 고적

함을 문득 발겨하고 몽상에 빠진다. 그럴때 나의 상상력은 흔히 공간 상상력과 접속하고 기억 안에 잠재되어 있던 몇 개의 공간들이(나의 공간 상상력에

한아키타입과연결되는특별한공간. 장소들)줄줄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기억의회로를따라서제일먼저도착하는건나의유년안에존재하는 몇개

의공간이다.

2.1 나의 유년 안에는 ㄷ자형 한옥이 서 있고 그 오래 된 한옥 안에는 세 개의 공간이 있다. 기억할 때마다 늘 일련의 순서를 지키며 되돌아 오는 그 공간

들중에제일앞장을서는건작은별채의앞마당이다. 이 공간은분명별채에속한사유공간이었지만문이없고길가로터져있어서골목안아이들의공

유공간이기도 했다. 악쓰며 놀던 골목 안 아이들도 어스름이 앉을 즈음에는 지쳐서 이 공간으로 모여 앉았다. 그러면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모두

들 귀를 기울 다. 어디선가 읽은 먼 전설, 삼촌을 따라가 구경했던 서부 화, 은 히 훔쳐 보았던 어른들의 이상한 세상...저녁 어스름은 점점 짙어 가는

데아이들의두눈은점점빛나곤했었다. 그리고부르는소리가들렸다. 아이들은하나씩일어나서집으로돌아가고나는혼자남았다. 아이들이다돌아

가고 난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 빈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건 쓸쓸함 때문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나는혼자남은그공간안에서행복했다.

2.2 두 번째 공간은 문과 중문 사이에 있었던 작은 사랑방이다. 친척이나 모르는 손님이 찾아오면 하루밤 묵어가던 그 방은 거의 비어 있었다. 나중에

가난한 학생이 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곳에 머물 때까지(그때는 중학교도 입시를 거쳐야 했었다.) 그곳은 아 혼자만의 놀이방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오래 된 책들을 찢어서 종이딱지를 접거나 갖가지 구슬들을 정리하다가 심심해지면 동화책을 읽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가 그 방에서 더 열중했던 건

책 읽기가 아니라 엿듣기 다. 사랑방은 길가에 면해 있었고 작은 들창으로는 거리의 소음이 쉬지 않고 흘러들어 왔다. 모르는 목소리들이 서로 엇갈리

면서이어지다끊어지고다시이어지는그거리의소음은늘나를편안하게만들었다. 하지만내가그방안에서동화책보다더행복했던건그거리의신

기한소음때문이아니었다. 그건그어지러운소름의거리로부터내가벽하나를사이에두고격리되어있다는안도감때문이었다.

2.3 마지막공간은내가 '뒷마루공간'이라고부르는이름없는공간이다. ㄷ자의한옥은또하나의ㄷ자담으로포위되어있었고그두ㄷ자사이에는나

무판을깔아놓은마루공간이있었다. 오래 된가구나잡동사니물건들이보관되어있던그집과담사이의공간은어린내가누워서겨우옆으로한번구

Page 112: 작업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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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수있을 만큼 좁았다. 그곳은 늘 어둡고 서늘했다. 나는 자주, 특히 아무도 없어 집안이 고요할 때면(지금도 주변이 적막해지면 나는 어디론가 이동하

고싶은공간에의유혹을받는다.), 그 뒷마루공간으로잠입해서천정을보고누워있었다.

나는그곳에서아무것도하지않았다. 그저서늘하고어두운공간의알수없는 기를숨쉬면서반듯이누워있기만했다. 그리고사건이있었다. 어느날

나는 그 곳에서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졌고 밤이 깊도록 깨어나지 않았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나를 찾아서 온 동네를 헤매던 어머니는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고 집으로 와서야 나를 찾아냈다(어머니가 나를 찾아낸 것이 아니다. 깜빡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 온 나를 어머니가 발견했을 뿐이다.) 이 놈아,

그 관 속 같은데는뭐하려기어들어간거야...어머니는 울면서매질을하다가(나는 울었다) 이번에는나를꼭껴안고말했다: 그런데 참이상도하지...분

명히 그 안을 찾아보았는데 왜 널 보지 못했을까? 나는 더 크게 소리네어 울기 시작했다. 그건 매질이 아파서도 어머니에게 미안해섣 아니었다. 어쩐지

나는결국들켜버린것만같았고그렇게들켜버리고만것이한없이억울했기때문이었다.

2.4 때로 유년의 공간들과 만날 때 내가 주목하는 건 그 공간들의 이동이다. 별채 앞마당(열린 공간)에서 사랑방(사이 공간)으로 그리고 뒷마루 공간(닫힌

공간)으로 - 나는기억속에서점점더깊은폐쇄공간으로이동한다. 그 공간이동은뿌리깊은나의 '숨기에의강박'을 말해준다. 하지만나의숨기에의강

박은 그 뒷마루의 폐쇄공간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서 실종되었고 그건 내가 또 하나의 닫힌 공간으로 이동해서 숨어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까? 어머니도나를찾아낼수없었던그공간은어디 을까?

2.5 이후 내가 실종 되었던 뒷마루 공간은 나의 공간 판타지의 원형이 되었다.나이들어 난장의 세상에서 생과 결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배우게 되고

그작업의공간을갖고싶어했을때그작업실의모델은언제나그뒷마루공간이었다. 작업은내게 '숨기' 고 작업실은 '숨을수있는장소' 다면 허무

일까? 그러나우리가예술이라고부르는 역에서는작업이숨기고숨기가열정이라는걸가르쳐준두사람을나는알고있다.

3. M.프루스트의 작업실은 유명하다. 서른 다섯이 되던 해 그는 스노비즘(snobbism: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 또는 출신이나 학식을 공개적으로 자랑하

는 일)의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침실 안으로 숨어들었다. 네 벽을 코르크로 도배하고 커튼을 세 겹으로 만들어 세상의 소음과 빛을 차단한 폐된 침실은

이후 14년의 남은 생 동안 그의 작업실이 되었다. 그는 자주 자신을 노아로, 자신의 작업실을 노아의 방주로 비유했다. 하지만 프루스트의 노아는 성경

속의노아가아니었다. 마침내 홍수가지나간세상에서비둘기가풀잎을물고돌아왔을때하나님의신실한종노아는세상으로다시돌아갈수있어서

기뻐한다.

그러나 프루스트의 노아는 오히려 이렇게 한탄한다: '비둘기가 풀잎을 물고 돌아 왔을때 노아는 한없이 슬펐다. 이제는 행복했던 방주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노아는 방주를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갔지만 프루스트는 죽을 때까지 방주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프루스트의

노아는 방주로 더 깊이 숨었다. 처음에는 살롱으로 외출도 하고 여름에는 휴가도 떠났지만 말년의 몇 년 동안 프루스트는 자신의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

다. 그리고그작업실에서그는무엇을했던가. 누구나알듯이그방주안에서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는 태어났다.

4. 까르띠에-브레송의 사진한장이있다. 죽기 몇 달 전의 A.자코메티를 찍은사진이다. 이슬비가내리는데그는지금정지선을밟으면서물젖은차도를

건너가는중이다. 사진공간울수직으로이분하는굵은가로수, 오래된건물과넓은차도를나누는수평분할, 그 수직과수평의접점에서사선으로그어

지는 차도 위의 정지선, 그리고 걸어가는 자코메티를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음 의 치-빛과 선의 기하학적 순간을 포착하는 이 사진은 브레송의 가

성(大 家 性)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건 '결정적 순간'의 미학이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건 두가지 사실이다. 하나는 비를 피

하기위해머리위에외투를뒤집어쓴자코메티의모습이고다른하나는지금그가찾아가고있는장소가길건너의작업실이라는사실이다.

자코메티의 작업실도유명하다. 그는 몽빠르나스의 작업실을 40년동안 떠나지않았다. 한때 초현실주의에 가담하기도했지만그는곧자신의현실로숨

어들었다. 그에게 현실은 그의 작업실이었다. 아라공, 브레통, 사르트르, 장 쥬네,,,그의 주변에 친구들은 많았어도 그의 작업실 안으로 초청된 사람들은

많지않았다. 그리고프루스트가그랬듯말년에자코메티는모든주변사람들과단절하고자신의작업실에만파묻혀살았다. 그런데그는작업실에서무

엇을했던가. 그는사람들을만들었다. 뼈만남은사람들, 고독과절망의소실점으로간ㄹ고길게최소한의공간으로축소된사람들...그런데그사람들은

모두가 서 있지 않고 걸어간다. 그의 거의 모든 조상들은 '걸어가는 사람들'l다. 그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허름한 코트를 머리부터 뒤집어 쓰고 길 건

너 작업실을 향해서 비 내리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브레송 사진 속의 자코메티 자신과 너무나 유사하다. 사진 속에서 자코메티는 작업실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그작업실안에서도자코메티의사람들은어디론가걸어가고있다. 그들은어디로가고있는것일까?

5. 프루스트와 자코메티에게서 내가 발견하는 건 숨기에의 강박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숨기에의 열정'이다. 숨기는 그들에게 작업에의 본능이 되고 작

업실은그들이도착하고자하는실존의시공간으로(프루스트는 <잃어버린시간>으로/자코메티는 '공유할수없는공간'으로) 이동하는베이스캠프가된

다. 그러나이숨기에의열정은프루스트보다자코메티에게서더강렬한것같다. 그 심도의차이는프루스트가 19세기적인간이었던반면에자코메티는

20세기적 인간이라는사실과 접하게연결된다고나는생각한다. 세상이 열린감옥이될수록아티스트들의숨기에의열정은더가열해진다고말한건

아도르노 다. 그렇다면 포스트 모던적 탈경계의 시 , 전 지구적 개방의 시 를 살고 잇는 21세기 아티스트들에게 이 숨기에의 열정은 어떤 식으로 나

타나는걸까?

6.1 사비나미술관의<작업실 리포트>전에서 20여명의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구성하는 21세기형 작업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실 안에서 프루

스트와 자코메티의 작업실에 한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작업실은 아파트 공간과 겹쳐지고(유근택, 어쩔수 없는 난제들), 교내 작업실로 치되고

(애희, 학교작업실/ 배준성, 화가의옷), 바퀴달린휴 이동형작업실이되고(김윤환, Personal Mobile Atelier), 공공 역을무단점거하고(김현숙, 김기현,

점거아뜰리에), 공공미술프로젝트의놀이공간이되고(박찬국, 공공미술프로젝트), 아예물질적공간을떠나사이버공간으로(양주방, 사이버작업실) 이

주하기도한다. 이들작업실은모두가닫힌공간이아니라열린공간이다. 이 열림의신드롬에는물론몇가지이유들이분명히있다. 그것은우선일상과

예술을 탈 이분화하고 작가와 관객 사이를 탈 경계화하면서 일사의 미학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아티스트들의 포스트 모더니스트적 의도를 확인시

켜준다. 반면 그것은역시포스트모던이라는이름으로행해지는시장자본주의적재 토화의세력에의해점점협소해지고위협당하는 '작업실의기본

권'을 지키려는 아티스트들의 사회적 저항으로도 읽힌다. 그리고 기술문명 발달에 의해 새롭게 창출되는 비물질적 가상 공간에 아방가르드적으로

응하면서 안작업실을 구축하려는 공간실험정신도 발견된다. 그러나 읽히는 코드는 다양해도 이들 작업실들은 다같이 이 시 의 아티스트들에게 작업

실은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라는 사실, "예술가의 고독한 창작혼을 불태우는 공간을 넘어 소통과 만남을 이어나가는 열린 공간"이라

는 사실(‘작업실 리포트’팜플렛 안에서)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작업실은 이제 광장에서 실로의 공간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역으로 실에서

광장으로공간이동을하고있다. 그렇다면예의숨기에의강박과열정은이시 의아티스트들의작업실안에서더이상찾아볼수없는것일까? 적어도

내게는그렇지않다.

6.2 노순석에게작업실은사라진 '내 안의천사'가 남겨놓은깃털하나가존재하는낭만적이지만고립된공간이다. 8개월 동안책읽고생각하고먹고놀

며작업하는백기 의작업실은광장이아니가 '코너'이며 배윤호의작업실은이미니멀코너의 실존적공간인자신의 '신체'다. 사사의 작업실은그의일

상을 살아있게 만드는 화배우와 만화 그리고 게임상자들로 빼곡하지만 그 한가운데 그의 정신과 의사로 상징되는 숨은 공간이 있다. 유근택은 아파트

거실안의작업실에서불연듯 '자연적힘의논리'가 살아있는 '낯선공간'을 목격하고오철헌의작업실사진안에서아티스트이석주가작업을멈추고무

연히떠나가있는곳도이낯선공간을연상시킨다. 학교라는제도권의작업실이애희에게위반의숨은욕망이발견되는공간인것처럼배준성에게는누

두모델에게 오히려 옷을 입히고자 하는 은폐의 욕망이 발견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상림이 구상하는 안작업실은 어머니의 캄캄한 자궁이 모델이고

박불똥은심지어아직지어지지않은미래의작업실을 '무덤'에 은유하기도한다. 이들의 작업실은열린공간이아니다. 이들의 작업실은오히려닫힌공

간을지향한다. 그리고닫힌공간안에는숨기와닫힘에의오래된욕망이여전히간직되어있다.

6.3 <작업실리포트>전을보는나의즐거움은 '열림'이라는시 적경향을재차확인하는데있지않다. 나의즐거움은오히려그열림속에서 '닫힘'의 흔

적을 채취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 시 아티스트들의 열린 작업실 안에서 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숨기에의 강박과 열정을 발견한다. 그 발

견은그런데즐거우면서도우울하다.

7. 세상은개방되고이시 의작업실도열리고있다. 하지만그열림속에는여전히숨기와닫힘에의욕망이숨어있다. 이 욕망을우리는어떻게읽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열림이라는 이 시 의 신드롬이 아직은 자유로운 작업을 허용하는 열림이 아니라는 사실인지 모른다. 열림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

들에 해 태생적으로 민감한 이 시 아티스트들의 작업실 리포느는 그래서 열림이 아직은 주장이 아니라 모색의 상이어야 함을 주지시켜 주는지 모

른다 . '열린작업실'에 한담론은아마도이열림과닫힘의불협화음을이해하는데에서시작되어야할것이다.

작업실의 사회학 혹은 작업실 작업2004년 2월호, 월간미술, 박신의 교수

예술가에게 작업실은 무엇일까. 작업실은 공장과도 같은 곳인가. 물론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점에서라면 작업실과 공장이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장처럼 단일한 제품 생산의 의미는 아니다.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factory)'이라 말했을 때, 그것은 창작의 특별한 지위가 갖는 비

생산성을 극복하고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작업의 의미를 현 화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물론 '비지니스'라는 자본주의적 맥락의 현 화를 말하는

것이었지만말이다.

또한 1920년 아방가르드예술울통해사회주의적삶을구현하려했던러시아구성주의자에게작업실은공장이고, 가게이며, 사무실이었다. 예술의창

작행위가 삶에 녹아나고, 삶에서 발견되며, 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전환하려는 그들의 의지가 이렇게 작업실의 의미를 역동적인 개념

으로바꾼것이다.

예술가의 작업도 노동이라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예술가의 노동은 어떻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또 그 가치는 어떻게 환산될 수 있을까. 예술

가에게도실업수당이가능할까. 카를마르크스에따르면예술가의창작행위는자신의능력을온전히완성해가는과정이라는점에서노동자의소외된노

동과는다르다고한다. 그러나중요한것은, 예술가의노동이얼마나효과적으로사회적으로환원되고, 문화로서공유되느냐에있다.

그런 점에서라면예술가의노동은다같지는않다. 음악인이나무용인에게노동의의미는미술에비하면훨씬합리적이다. 그들의연습은엄 한시간으

로 계산되고 산정되며, 또 공연시 집단으로 예술활동을 보여주기 때문에 공연활동은 월급으로 지급 가능하다. 프랑스에서 지불한다는 예술인 실업수당

의 경우 공연예술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미술은 기본적으로 개인작업이고, 그 성과물의 사회화 과정 역시 개인적이다. 누가 미술인의 작업

을시간 로계산할수있겠는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화가나 조각가라면 그나마 노동가치산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정성스럽게 수공작업을 한 그 결과물이 타블로나 청동조각작품으로

주어진다면, 얼마간은 미술시장이 이를 해결해주리라. 그너라 종이 나부랭이나 잡동사니, 무심히 찍은 듯한 사진, 스레가와 고물더미, 일시적인 설치물

을제시하는현 미술의무수한개념적작업으로는과연노동의 가를산출할수있겠는가. 분명 현 미술의모든작업은기존노동개념을변화, 확장시

킬수밖에없다. 다시말하면작업의범위가넓어지면서일상과작업간의경계가무너지는상황을만들기때문이다.

그래서 김윤환이 PMA(휴 용 개인작업실)를 들고나온 것이다. 공기주입식 튜브텐트 소재로 제작한 움직이는 작업실을 제안함으로써 어디에서나 작업

이이루어진다는개념을보여준다. 그래서라도미술인에게작업실은더욱중요하다. 그 산출하기힘든정신노동의공간은보장받아야하기때문이다. 청

주에 빈 공공건물을 작가들의 작업실로 사용하고자 일종의 점거사태를 벌인 김기현의 행동이 그래서 나왔다. 김기현에게 작업실은 노동의 공간이며, 그

것은근로자의의미와다르지않음을주장한다. 파리를비롯한유럽의점거아틀리에(squats)를 소개하는다큐멘터리작업을보여준김현숙역시작업실

공간의사회적의미를제시하는경우다. 작업실기본권같은것을행동주의적방식으로보여준매우신선하고도흥미로운작업이다.

작업실 공간을 넓혀가려는 시도는 많은 작가에게서 엿볼 수 있다. 사이버 공간으로(양주방), 빈 방 혹은 공부방으로(백기 ), 머리 학교 프로그램을 통

해 공동체 의식을 실천하는 참여공간으로(박찬국), 인천이라는 지역과 도시 공간으로(드라마고), 작가의 삶과 공동체의 경험을 기록한 기억의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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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주), 자신의 실제작업실공사로인해빚어진사건을개념적사유로만드는과정으로(박불똥) 이들은자신의작업실공간을확 해가는것이다. 이들

이보여주는작업실의공간전, 개념적확 는곧미술인의창작활동자체의사회적의미를넓히는실천적행동이기도하다.

한 전시회가비평적담론을쏟아낼수있다면그것은정말바람직한현상이다. 한 전시회가미술적제도적문제를담아낼수있다면, 그것은지극히의미

있는 일이다. 한 전시회가 미술의 정책적 배려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한다면, 그것은 썩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런 마음으로 전시회를 볼 일이다.

작업실보고서를통해미술인이생각하는작업의의미와작업실의기능, 그 사회적맥락과미학적가치, 나아가노동의의미를되새기며말이다.

작업실의 현실, 그리고 대안2004년 2월호, 월간아트인컬처, 고충환 미술평론가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가의 작품이 아닌 창작공간, 즉 작업실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주제전과는 구별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작가의 작업환

경과작가가처해있는현실을이슈화한다는사회학적의미와함께변화된작업환경을반 한전시다.

그러니까 미학적 상성을 갖는 오브제의 생산에 맞춰진 전통적인 작품 개념과는 다른, 특정 주체의 문제의식과 행위, 그리고 여기에 수반된 실천 논리

를 중시하는 변화된 창작 개념을 반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시는 창작공간과 창작환경 그리고 창작개념에 한 다양한 사색의 흔적이 드러나 있으며,

이는그 로다양한형태의 안공간과 안아틀리에를제시하는것으로나타난다.

먼저가상공간에꾸민사이버작업실(양석윤, 주인숙)을 보면, 지금까지의오프라인상의작업과전시관행에 한한 안으로힘을얻고있는온라인상

의작업과전시행태를보여준다. 이는 건축적이고물리적인작업실개념이갖는공간적제약으로부터자유로울뿐아니라, 무엇보다도실시간으로익명

적 주체와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그리고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간이 막사처럼 바람을 주입하여 부풀릴 수 있는 개인용 이동식 아틀리에

(김윤환)는 건축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이아닌행위자에의해서재규정되는작업실공간개념을반 한다. 장소를 마음 로옮겨다닐수있는탈장소성이

노마디즘(유목주의)을 반 하고있으며, 최근에전시의한관행으로서자리잡은오픈스튜디오(전)에 한 안적가능성이엿보인다.

또한 비어있는 공공건물을 작가들이 불법으로 점유하여 작업실로 전용한 점거 아틀리에(김현숙, 김기현)는 한시적이고 임시적인 작업실 개념을 보여주

며, 도시의 풍경 속에 개입해 들어가서 그 속에 일정한 변화의 계기를 심는 도시공학적인 실천논리가 느껴진다. 이때 작업환경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개

인과 관(官)이 부닥치는 상호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타자와의 소통에 맞춰진 예술관 관련한 한 중요한 실천 구실을 제공한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지금

까지의 지역을 중심으로 한 폐교를 스튜디오로 활용하는 방안과의 연 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전시에서는 임의적인 구석에 한 평 남짓

되는 임의적인 공간을 마련한 다음, 여기에서 책 읽고 생각하고 먹고 놀며 작업하는 사적 전유가 강한 작업실(백기 ) 개념도 있다. 이때 작가에 의해서

전유되는 공간이 불특정성과 무차별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사적공간과 공적공간, 사적행위와 공적행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런 사적 전유가 강한

작업실개념이있는가하면한편에서는지역을 상으로한공공미술프로젝트와같은실천행위를강조하는열린작업실(박찬국) 개념도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정(유근택)이나 창고(사사), 지역사회(드라마고)와 심지어 일상의 삶을 사는 개인의 캐릭터(배윤호)마저 작업실의 한 예로서 제

시된다. 이 가운데가정을작업실로전용한경우는상당수의주부작가들의당연한현실을반 하고있으며, 또한 창고로서의작업실개념을보면엄 하

게는작업을위한공간이기보다는단순히물건을쌓아두는공간에가깝다. 이 공간개념은특히자본주의에연유한물신주의와이에따른넘쳐나는상품

들에 한 반응, 소비와 소비심리, 그리고 디스플레이에 한 감수성과 관련이 깊다. 또한 지역사회나 개인의 캐릭터를 작업실로 상화한 경우는 그 자

체로받아들여지기보다는예술과관련한실천논리와행위를강조한것으로보여진다.

'개천에서 용 나고 창고에서 예술가 나다'2004년 1월호, 미술세계

창고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나? 뭘 만들기는 만드는 곳이다. 물론, 그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도 한다. 엄연히 따져보면 창고는 아니다. 빈집이다. 그들은 빈

집을접수했다. 사람이살아야할공간에사람은살지않고빈집으로두는꼴을그들은용납하지못한다. 이 세상엔무주택자들이얼마나많은데...

프랑스파리의 Squat은 이렇게시작되었다. 불법으로빈건물을점유하여그들만의아지트로탈바꿈시키기시작했다. 처음엔빈민과도시노동자들에의

해서, 다음엔 부정부주의자, 망명가, 학생, 예술가들에의해, 그리고 지금에와서는새로운예술창작공간으로써수많은아티스트들의 상상력이불꽃튀

는곳이되었다.

그 현장에서 그들과 '지지고 볶으며' 실험을 하고 있는 김현숙이 그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12개의 뮤브형 모니터를 통해 Squat예술가들의 예술

과삶을비디오설치로보여줄것이며, 폴라로이드사진으로찍은 100여장의아티스트들의사진을조형물의형태로설치한다. '당신에게작업실은어떤

의미입니까?'라는질문에 한각자의답변이사진에적혀있다. 아뜰리에라는주제로 화를나눈기록일고할수있다.

그리고 이번전시는완성된작품을전시하는것이아닌 '만들어질어떤것'에 한 재현방식이라고할수있다. 김현숙은이를통해스콰트의아티스트들

에게아뜰리에란어디놓여있는공간이아니라바로자신이아뜰리에라는예술정신의소유자라는것을보여주고자한다.

Squat은 이제 낡고, 허름하고, 외진 곳의 빈집을 점유하는 '무법행위'기 아니라 새로운 예술실험과 아티스트들이 탄생하는 '아뜰리에'로 거듭나고 있다.

그들의치열한 '삶과예술'이 정체속에있는우리의 '개천'을 소용돌이치게하는계기가되길기 해본다.

실존은 공간적이다.2004년 1월호, 공간지, 박성진 기자

주말이되면화랑가는분주해진다. 일상에쫓겨억눌러놓았던문화적허기가발기되고, 사람들은그욕망의배출구를찾아길섶의옹색한전시장이라도

찾아든다. 인사동이나 사간동, 평창동의 화랑가는 그래서 중의 응축된 욕구 해소를 위한 집단적 공간이다. 하지만 이런 공간 속에서 부분의 관람객

은 작품이라는 결과물에만 집착하고, 사로잡힌다. 주변의 내 한 환경들은 작품이라는 주요 피사체를 위해 아웃포커스된다. 순백의 벽면이 전시장의 필

수구성요소로보이는것도바로이런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전시공간'이란 무엇일까? 백색 벽면에, 적당한 조도로 색상을 살리는 조명들, 혼선없는 관람동선으로 구성된, 예각이나 둔각이 사라진 격자공

간일까? 하지만 모두들 이것만은 아니라고 고갯짓 한다. 오히려 이 모든 요소들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배제된 작가들의 작업실이 작품을 더욱 진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라고 답한다. 앞서 말한 조건들은 단지 인간의 행위와 공간 간의 관계를 위한 물리적 기본요소일 따름이다. '만들기(making)'

와 '보여주기(showing)'라는 행위를담는두공간에 한해석은그래서물리적인측면을기본으로삼고, 그 너머의문제를바라보아야하는것이다.

실존과 지각의 공간

작가라면 누구나자신만의 작업실을 꿈꾼다. 화가는 화실을, 음악가는 녹음실을, 공예가는 공방을... 물리적 공간에 한 필요성이 점차 사라지는 오늘날

에도작가들에게이런욕구는여전하다. 무엇이그토록그들에게작업공간에 한소유욕을불러일으키는것일까? 인간이전에동물로서의 역확보에

한 본능? 현실의 애로사항에서 벗어나 편한 작업환경을 갖고 싶다는 욕구?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은, '나(我)'라는 실존에

한자각이다. 내면적자아를탐구하고그것을발현해가는예술이라는분야의특성상자의식이강할수밖에없고, 그래서작가들은실존적공간을갈구

하는것이다. 동물은생존으로, 인간은실존으로서공간과반응한다.

설치작업과 구상적인 작업을 주로 하는 한 작가가 산속으로 작업실을 옮겼을 때, 주위 사람들이 "이제 풍경화 그리시겠네요"라는 반응을 보 다고 한다.

이를 말한사람도, 듣는 작가도이말을결코농담으로건넨것이아니다. 작가들은작업실이라는환경을통해자신의정체성을확립시켜나가는것이다.

그리고이것이다시공간에반 되어공간과작업의물리적인스케일, 도구, 재료등에 향을미친다. 작업실은응축되었던창작욕이발아되는제2의자

궁이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과정에서 작가들은 작업실만으로 작가적 정체성을 완전히 얻어내지 못한다. '만들기(making)'와 '보여주기(showing)'라는 것이 동일

선상에놓인양극의행위라고할때, 그 정립의역할은 '보여주기'에 있다. 작가의식의발현체인작품을낯선공간속에들여놓는행위는 '나(我)'를 바라볼

수있는제3의눈을갖는것을의미한다. 중적공간속에서작품은작가에게타자화되고, 작가는거리를두고자신을지각할수있게된다.

전시장이란 중과 작가와의 소통의 장소이기 이전에, 작가와 작품 사이의 소통을 위한 지각적 공간이다. 전시공간을 통해 작가는 작품 및 중과 소통

함으로써정체성을확립한다. 즉 거울이보여주는자신의 상을통해객체로서자아를파악하는공간인것이다.

창작과 그실천의 문제

2002년 우리는 몇 가지 사회적 이슈로 인해 새로운 공간적 체험을 맛볼 수 있었다. 시청 앞 광장은 그 해 여름 월드컵 열기로 달궈진 사람들의 함성소리

로 가득 찼고, 12월에는 여중생사망을 추모하는 애달픈 촛불들이 수놓아졌다. 이곳이 점유하는 사람들의 개체성과 목적, 시 상황 등과 같은 요소에 의

해새롭게표현되는것이다.

예술에있어창작과실천의문제도바로그렇다. 예술은한작가의창작과그에 한실천전반의과정을통틀은말이지, 전시장에놓여진그림이나조각

을 상으로만하는말이아니다. 작업실에서하는망치질이나, 전시장에서그림을걸기위한망치질이나같은맥락의과정이다. 단지 두 공간사이에놓

인, 개인성이나 사회성과 같은 간극을 어떤 방식으로 좁히는가는 작가의 몫이다. 작가는 작업실이라는 개인의 내 한 공간에서 벗어나 전시장에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공간을 점유해야 하는 의무성과 당위성을 갖는다. 환경을 자기의 목적에 동화시킴으로써 '보여주기'라는 궁극적 행위를 완성시키는 것이

다. 비단설치작가가아니더라도전시장안에서전시를한다는것은어떤면에서작가가장소와의의미작용을통해동화(同化)되어작가의개인적인차원

에서공간을실천하는행위이다.

건축가는 그 실천의 물리적 조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이고, 그 기반에 주체와 행위의 다양성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전시공간에서의 건축가의 실패는

이런 실천과 재현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이클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규정하려 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인사동 화랑가가 그간 나름 로 '보

여주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왔다지만, 지금은 만연된 상업주의로 그곳의 소프트웨어는 바이러스에 걸린 듯하고, 하드웨어까지 힘을 잃어가는 모습

이 그 예이다. 장소와의 의미작용에 빈곤을 느끼는 작가들과 그 부재를 경험하는 중들이 멀어지고 있다. 이에 장소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한 사간동과

평창동일 는차별화된전시장소로서거듭나기위해노력하고있다. 의상실지하의한평남짓한공간을이용한소격갤러리는계단도없어사다리를타

고내려가야하는공간이다. 이곳을전시공간으로봐도될지는의문이지만, 그것은그곳을점유하는작가의실천문제이다.

개념의 상실

현실의 문법 속에서 작업실과 전시장의 공간적 의미와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관계맺기와 방향에 있어선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작

업실과 전시장의 관계는 점차 허물어지고, 그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일부 개념의 상실이 불러온 또 다른 개념의 가능성에 중들은 민감하게 반응

한다.

가나아뜰리에, 창동고양 창작스튜디오, 쌈지스튜디오 등과 같은 공동작업실이 새로운 전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부 또한 현재의 빈약한 '작업실'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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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한 안으로공동창작스튜디오를통해네트워크를구축하겠다고나섰다. 예술가의개인적성역으로인식되던공간이열리면서새로운공동체가형

성되고있다. 헤이리예술마을도같은맥락으로이해할수있다.

또한 현 의 유목민적 성향이 이 두 공간에서도 보여진다. 개인휴 형아뜰리에(PMA)가 제안되고 작품들은 순백의 전시공간에서 탈피해 지하철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현 인들의 삶과 사이클을 같이하면서 변이된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공간적 '중심의 상실'이라는 실존에 의문이 제기되는 수준으

로까지발전되어선안된다. 피아제(Piaget)가 말했듯이구조화된세계는인간의지성을자유롭게해주는반면, 이동성의세계는인간을장소와의상호작

용이결핍된자기중심적인단계에머물게하기때문이다.

모던한 이분법적 구분은 차츰 통합이라는 탈모던의 공간으로 변이되어 예술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 '만들기(making)'와 '보여주기

(showing)'라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장소와 공간에 한 본질적인 개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why)? 하이데거의 말처럼 '실존은 공간적(Das

Dasein ist raumlich)'이기 때문이다.

exhibition · atelier report

현 예술의다양성만큼이나작가들이그들의작업공간에부여하는의미도다양하다. 지난 2월 25일까지사비나미술관에서열렸던 '작업실리포트전'은

작업실이라는물리적환경/공간에 한작가들의다양한사고를조명하고있다. 이 전시에서화가, 조각가, 건축가, 사진가, 설치작가등 21명의작가들은

그들의 개인적인기억을바탕으로작업실의 사회학을이야기하 다. 작가들은 작업실의모습을그 로 재현하기보다는작업실에 한 그들의개념을바

탕으로회화, 사진, 상, 설치작품들을전시하고있다. 이런과정을통해기획자의말 로작가의삶을체험하고, 그들의공간을재해석하여작업실을바

로이야기하자는것. 창작을넘어선소통의공간으로거듭나려는변화의시점에서우리는작품이아닌작가들의작업실에도눈을돌려야할것이다.

작업실의 정치학과 점거 퍼포먼스2004년 9월호, 문화예술, 김준기(예술학,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술 생산의 전초기지이자 예술가적 삶을 담보하는 최소의 공간이다. 오늘날 예술 개념과 예술가의 존재양식

이 탈근 적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작업실은 예술을 존재하게 하는 최소 단위 가운데 하나이다. 오히려 예술 개념의 확장에 따라서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의 역동성 아래 포섭되는 다층적인 공간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다. 요컨 예술개념의 확장에 따른 작업실 개념의 변동은 예술의

지평의확산에적극적으로기여하고있다. 최근에벌어진오아시스그룹의목동예술인회관예술점거프로젝트는작업실공간에 한적극적인이슈화에

성공하고 있다. 그동안 예술가들의 집단적인 사회적인 발언이 정치와 사회의 이슈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탈근 시 예술(가)의

존재양식을 캐묻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라는 차원에서 그들의 뜻을 차분하게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예술작품에 한 이야기나 예술가의 삶에 관한 이야

기들은 최종의 결과물에 방점을 둔 논의들이었다. 이제 예술작품과 예술 생산자들의 삶을 담아내는 공간, 작업실에 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시점이

된 것이다. 이 논의는 따라서 작업실 이야기를 통해서 안적인 예술개념을 찾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예술에 관한 논의들은 부분 꾸며진 곳에서

만 존재해왔다. 부분의 리뷰는 전시장과 무 위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 철저하게 가려져 조작된 문화정치의 장을 벗어나 날 것의 미학에 관심을 가져

볼필요가있다. 작업실의사회학, 작업실의정치학을통해서작업실담론을열어보자는얘기다. 다만 전제해둘것은이러한작업실담론이예술생산의

틀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전향적인 의미에서의 작업실 담론은 예술 생산의 장을 예술 소통의 장으로 확산 시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있기때문이다.

작업실의 정치학

다분히 선정적인 수사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말해보자. "노동자에게 공장이 있다면, 예술가에게 작업실이 있다". 상품 생산의 장소와 예술 작품 생산의

장소를 직접 비교 상으로 설정하는데 다소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예술가들이 공장에 고용된 임금 노동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예술가에게 있어 작업실은 절박한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예술 공장(art factory)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 터전을 확보하지 못한채 산업사회의 경쟁력

에서 려활동을접어야하는일이다반사이다. 예술가로서의기본권을생각해볼문제다. 작업실은예술가개별의독립공간일뿐만아니라예술계를뒷

받침하는사회적안전망이다. 나아가서열린공간으로서의가능성도가지고있다. 커뮤니티단위의예술소통공간으로활동할수있는열린작업실의상

은존재하지않는이상적인모습인것만은아니다. 작업실의변동이예술지평을확산할수있다는전제는유럽사회가적응시켜온점거작업실과집단창

작촌의성공모델을지켜보아온것으로충분하다.

작업실은 창작을 매개하는 최소의 공간이다. 이 창작의 산실은 예술가를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이 공간을 토 로

작가는자연과사회를체험하며채집된정보를분석하고가공해서새로운정보, 즉 예술적코드로재해석된예술작품으로토해내는것이다. 여기에는예

술생산의 장소로서의 작업실 또는 공장 개념이 강하게 부각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공장과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어떤 점에서 차별성을 가지는가. 작

업실은건축적공간개념보다는행위자의문화적생산의의미가더중요한요소로해석되는데, 우리가예술가의작업실을통해서그의작업전반을통괄

하는 예술적 아우라를 읽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만큼 작업실 공간의 중요성은 한 예술가와 작품을 매개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이다. 이러한 작업실의 내 한 미학적 감성은 이제 서서히 열린 공간의 사회학적 감성으로 전치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실의 사회학은 예술(가)의 지위와

역할을 점검하는 데 있어서 오늘날 변모의 양상을 파악하는 데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움직이는 아뜰리에나 점거 아뜰리에가 나타나는 것도 이

러한 변모의 한 양상이려니와 도시와 작업실의 관계에 한 새로운 접근도 눈에 띄고 있다. 작업실의 변동 양상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보면, "공간적 개

념을벗어난 역의확장, 특정장소에고정되지않는유동성, 점거작업실의생산과소통기능의공유" 등이그것이다.

우선 주목해볼 만한 것이 공간적 개념을벗어나 작업실의 개념을작업실 바깥으로 끌고 나가는현장성(in situ) 개념의 도입니다. 근 적 예술 생산과 소

통의 모델은 생산의 장소와 소통의 장소를 작업실과 전시장으로 엄격하게 구분해 놓았다. 따라서 작업실은 작가의 내 한 창작의 산실이라는 근 적 아

우라는 미적 감성을 자극하는 작업실의 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현장성 개념을 도입한 일군의 작가들은 도시 전체를 작업실로 삼아 현장미술의 지향을

보임으로써 근 적인 작업실 개념을 뒤집어 놓고 있다. 내 한 독립공간에서 벗어나 도시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가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과정으로서의

미술을 중요시 하는 새로운 공공미술의 지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찬국이나 드라마고 같은 작가들이 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실을

주변 작가들이나 시민들과 공유하는 쪽으로 공간개념을 바꿔놓았다. 이들의 작업은 '모더니즘의 이분법적인 구도와는 다른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며, '

예술의 생산과향유를이원화하는작업실과전시장의구도를넘어서는것'으로서, '작업실 혹은작업개념은문화예술분야의전문성을바탕으로지역사

회의여러사람들과문화생산의장을열어나가는활동'을 펼치고있다. 이러한태도는 '현지답사, 역사학습, 문화자료, 사회적자원등을종합적으로참고

하여 지역의 다양한 문화인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과 지역문화에 한 화를 시도'하는 프로그램 운용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이러한 예술개념은 문화의

생산과향유의장을작업실개념에접목하거나아예작업실과전시장의이분법적인분화개념자체를무화하는과정이기도하다.

이러한 유형의 작업실 개념은 지역주의 이슈와도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지역주의 이슈는 예술 생산의 폭과 깊이, 쓰임새 등을 철저하게 지역 공

동체(local community)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폭력적이고 일방주의적인 세계화 문화전략에 응하는 주요 이슈로 부각하고 있는 예술 흐름이다. 이들

의 작업은 '특정지역의 참여자들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활동'이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나고 자라서 문화예술 전문가로 성장한 예술가가 그 지역의 역

사, 지리, 환경, 인물들에능통한지역전문가로서의정체성을찾아갈수있도록하는것이예술가들의생활양식을보다현실속에뿌리내린사회의건상

한구성원으로인정하게할것이며, 예술을사회의정당한일구성기재로확인하게하는방법이될것이다. 이 경우작업실개념을내 한것에서열린것

으로변화할수밖에없다. 또한 예술생산의완제품생산공장이아니라새로운예술의공공성과지역주의이슈를가지고현장성을담보하기위해서소통

하고공유하는전초기지로서의효용성을갖는다.

둘째는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유동적인 작업실의 면모에 한 주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붙박이 작업실이 안정적인 예술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신, 특정 시간과 공간, 사회적 맥락에 얽매어 예술적 창의력을 소진할 가능성이 다분하므로 새로운 유형의 작업실은 정주개념을 포기한 경우가 있다. 개

념 작업 단계이기는 했지만, 김윤환의 PMA(휴 형 개인 작업실, personal mobile atelier)는 상당히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공기주입식 튜브텐트 소재로

제작해서공기를주입하면공간이형성되는작업공간을구상한것이다. 움직이는작업실또는가지고다니는작업실인셈이다. 김윤환의이작업은유목

적(nomadic) 자유로움과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기, 나아가 물리적 장소에 한정된 건축공간으로서의 작업실이 아닌 행위자에 의해 재규정되는 작

업실 공간의 의미를 일깨웠다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또한 한생곤의 버스 작업실이 가지고 있는 비정주개념도 주목해볼만하다. 그의 작업실은 한군

데정주해있는 다수의작업실에비해늘움직이며떠돌아다닌다는점에서독특한내용을가지고있다. 그는 매번움직이는작업실에서다른상상을하

며 다른 환경과 사람과 도시와 자연을 만나는데, 이때 발생하는 예술적 유목이라는 발상은 요즘의 관념적인 탈주, 일탈 같은 허약한 예술게임과는 다른

힘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

셋째는점거작업실의가능성에 한얘기다. 비어있는공공건물을무단점거해서작업실로사용한다는기본적인취지에 해아직한국사회는동의하고

있지않지만, 김기현, 신상웅등청주작가들몇몇과얼마전목동예술인회관을점거했던오아시스프로젝트등몇몇사례들은향후작업실에 한보다

열린 시각의 담론적, 실천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문화선진국 파리는 그런 점에서 한국에 비해 열린 사회임에 틀림없다. 2002년의 파리 팔레 드 도꾜

에서열린예술과스콰트페스티벌에서만든지도를보면, "파리는바람구멍이스물여덟개가있는바람난도시이다." 도시 곳곳에자리잡은스콰트(무단

점거, squat) 아뜰리에들은관용과포용에입각한사회적합의가얼마나열정적인예술적에너지를끌어내는지를잘보여주고있다.

오아시스의 점거 퍼포먼스

작업실과작업실을근거로활동하는작가의삶과예술의문제들, 나아가현장성과유동성과목적의식적인예술운동으로서의점거작업실의문제등을토

로 예술지평의 확장적 양상을 모색하는 일들은 담론적 차원이 아닌 실천적 차원의 따끈따끈한 이슈들이다. 특히 점거작업실의 문제는 한국사회의 문

화적 업그레이드와 직결된 관심사가 아닐 수없다. 오아시스 프로젝트 회원들이 감행한 8월 15일의 예총회관 점거 프로젝트는 한국 예술의 역사에 새로

운 방점 하나는 찍은 작지만 소중한 사건이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이 건축주가 되어 공사를 진행하다가 5년째 방치되어 있는 서울 목

동의예술인회관건물을예술인과시민들에게되돌려달라는이들의요청은실정법상위법의요소를가지고있음에도불구하고여러방송사와신문지상

에서 이들의 점거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단계와 당일의 상황을 소상하게 보도하고 있으며, 이들의 취지를 자세하게 알리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따라서

여론상으로는오아시스프로젝트그룹이목동을점거한것으로보는데큰무리는없을것이다. '오아시스프로젝트의목동예술인회관점거예술선언문'

은 예총의 독점적 소유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 삼 정권 때 시작된 예술인회관 건립 공사가 거듭되는 파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총의 독

점적 소유권이 인정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해 예술가들의 행동주의적 퍼포먼스로 맞서고 있는 이들의 요청은 그러나 곧이곧 로 먹힐리 없다. 점거

당일새벽에 20여명이먼저들어가공간을점거하고플랙카드를내거는등일시적인점거에는성공했으나경찰병력의투입이후이들은건물밖으로내

몰렸다.

이들의성공여부는앞으로남은여러가지문제들에의해더욱분명하게윤곽이드러나겠지만, 일단 지금까지의과정은 단히성공적인것으로보인다.

프로젝트 그룹 오아시스(www.squartist.org)는 '도심의 죽은 공간을 예술로 리모델링 하는 공간재생 전문회사'라는 슬로건에서 보이듯, 도시공간재활이

라는 행동주의적 강령에 입각한 적극적인 실천가 모델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들의 예술점거라는 방식은 프랑스 등 유럽에 널리 퍼져있는 스콰트(squ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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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그범본으로삼고있다는점에주목해볼만하다. 스콰트는 18세기 산업화이후급격하게도시로유입된농촌출신의가난한노동자들이 살곳을마련

하기위해비어있는공공건물을점거해서주거공간으로사용해온데서시작되었다. 이러한전통은사회적관용에의해의례히있을수있는일로받아들

여졌고, 20세기후반이후에는예술가들이작업실공간을확보하기위해빈공간을점유해서집단적인작업실을형성하면서전혀다른방식의예술적에

너지로 전환되고 있다. 점거 작업실은 예술생산의 근거지일 뿐만 아니라 각종 전시와 공연과 축제가 열리는 종합예술공간으로 변모함으로써 연간 수십

만의시민과관람객들이방문하는명소로유명세를떨치고있다.

오아시스 그룹이 바라는 것도 유럽의 선례와 비슷한 종합예술공간이다. '문화실험공간으로써 작가의 작업실, 공연장, 연습실, 소수문화 실험공간, 전시

장, 회의실, 장비실, 레지던시 프로그램, 숙소, 까페 등의 예술 활동에 필요한 모든 운 시스템'이 갖추어진 공간을 마련하려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죽

어있는 목동 예술인회관을 살려내서 예술 생산과 소통의 기지로 만드는 일에 뛰어든 김윤환, 김현숙, 노순택, 왕희정, 용해숙, 윤여관, 이병한, 조 아 등

많은 예술가들은 단지 작업실 공간이 필요해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문화예술적 소통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꿈은예술생산과소통이통합적절차를통해서시민과어울릴수있는이상적인공간을만드는데있다. 과연 이들의꿈이꿈으로끝날것인지아

니면새로운실험의열매를맺을수있을것인지는한국사회의문화적성숙도를가늠하는바로미터로작용할것이다.

문화부와 예총으로서는 현재상태로 봐서는 예총의 독점적 소유권을 회수할 어떠한 적법한 명분도 찾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합법과 비합법의 문제

는 늘 시민의 상식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현재가지 진행된 공사는 상식의 잣 로 보아서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랏돈으로 공사를 시작했

다가 부도가 나고 더 이상 공사를 재개할 수 없게 되었다면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공공의 것으로 되돌려놓고 다시 검토해야 하는 것이 시민의 상식이다.

그러나 문화부는 이 상식에 의해서는 움직일 수 없게 되어있다. 합법적인 절차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원된 국고를 환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다가, 환수 이후의 책도 감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합법이며 적법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힘을 쓴다면 이러한 비상식적인 적법이나 합법은 정

상적인방식의탈출구를찾을수있을것이다. 예총의독점적인사업권이라는것도새로운사업계획에따르면신축공간의 75%가임 사업공간으로할

당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의 본말이 전도된 경우다. 이것은 예술인들의 복지를 위한 공사가 아니라 특정 예술인 단체의 개발사업에 국민의 세

금이낭비되고있다는비판에직면해있다. 누가 봐도이러한사업계획을정당한예술인들의복지를위한사업이라고인정할수없다는것이반 론자들

의주장이다.

오늘날 소통 지향의 예술은 행동주의라는 참여의 미학에 입각해 강력한 실천적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행동주의 미학은 사회문화적 맥락화, 자발성과

창의력, 예술가의삶자체의진정성에서우러나는실천적사회운동이자예술운동이다. 오아시스프로젝트그룹의행동주의는예술운동을사회운동의지

평으로 확산시키는 야심찬 기획이다. 목동 프로젝트 뿐만이 아니라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벌어지는 '지속가능한 예술운동'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펼치고 있는 예술점거라는 퍼포먼스는 이제 한국에서도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에 관해 예술가 스스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집단적

인 움직임을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나아가 예술활동의 목표를 자폐적인 예술 내적 문제로 귀속시키거

나 그 반 급부로 예술가의 삶과 예술적 표현의 상을 이원화하여 자기헌신적인 참여주의에 매몰되는 엄숙주의에서 탈피하는 성숙한 자리매김이 시작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배가된다. 자폐적인 예술 생산을 열린 소통의 장으로 끌어내는 일, 비상식을 상식으로 돌려놓는 일, 자학적인 엄숙주의

로부터 벗어나 예술가 본연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일, 오아시스 그룹 예술가들의 즐거운 퍼포먼스 속에 담겨있는 의미심장한 논점들이다. 작업실의 정치

학, 점거퍼포먼스는한국사회에서아직아무도가보지않은길이다. 만만찮은싸움의출발선상에서있는이들의발걸음을기꺼이반겨줄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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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 7(수) - 2004. 2. 25(수)

사비나미술관

관 장│이명옥

학예연구실장│김준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신정민, 황정인

촬 │박홍순

녹취│조성지, 황정인

도록

발행처│사비나미술관

발행인│이명옥

편집인│김준기

디자인│K·C Communications

등 록│1996. 1. 20 제 1-1971호

ⓒ 2004 본 책자에 실린 작품사진에 한 저작권은 사비나미술관에 있습니다.

Printed by K·C Commun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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