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이승정 마음을 이끄는 행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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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이승정 마음을 이끄는 행복한 발걸음 요차불피(樂此不疲),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는다는 사자성어다. 흔히 일러스트레이터는 수십 개의 직장에 수십 명의 상사를 모시며 작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프로젝트마다 각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범위 내에서 그들이 상상하는 이미지와 작가가 구현하고 싶은 작품과의 교집합을 찾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난한 조율 과정마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즐거움이라는 행복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승정을 만났다. 편집부 | 사진 최혜원 달보드레스냅스튜디오 Q.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고 괴로웠을 때를 뽑자면 언제인가? A. 최근 6개월 동안 진행해온 월간엽서를 쉬게 되었다. 특별한 주제 없이 진행해온 작업을 전체적으로 보충하고 제대로 된 컨 셉과 목표를 가지고 진행하고 싶어 잠깐의 휴식기를 갖기 시작 한 것이 여름이었는데 벌써 겨울이 되어버렸다. 매달 그려야 한 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잠깐은 여유로움을 만끽했지만, 곧 스스 로와의 약속을 어긴 것 같아 몹시 괴로운 6개월을 보냈다. 불편 한 마음이 큰 휴식 기간이었지만 더 좋은 작품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었다고다독이고있다. Q. 월간엽서란 어떤 프로젝트인가? A. 편집디자이너를 그만두면서 ‘내가 정말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자’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 달에 세 종류씩 ‘내가 생각한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보자’고 나와 약속했다. 판매 목적 도 아니고 전시 목적도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개인적인 목표로 시작한 작 업이었는데 좋아해주는 팬이 생기고 블로그를 통해 구매하는 사 람도 생겼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홍대 Object 매장에서도 판 매되기시작했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A.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위에서 이야기한 월간엽서 중 2014 년 9월 엽서 ‘하고싶은말’이다. 월간엽서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에 가면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존 재가 있다.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흥을 돋워주는 야시장의 마스코 트 밤도깨비가 그 주인공이다. 귀엽고 친근하면서 해맑아 보이기 까지 하는 이 도깨비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는데 페스티벌에 꼭 맞는 화려함과 낙천적인 작가의 색이 어우러져 탄 생한 것이었다. Q. 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나? A. 학창 시절 디자인을 전공해서 처음에는 디자이너로 일을 시 작했다. 디자인 회사에서 1년 반 정도 일하면서 일러스트 작업 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우연히 사보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디자인할 때와는 다른 재미를 스스 로도 느끼게 되었다. 디자인 작업보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점 점 늘어났고 그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그러는 사이 내 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사직을 결정한 뒤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 었다. 33 2016 01+02 32 Issue Insight Interview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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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일러스트레이터 이승정 마음을 이끄는 행복한 발걸음sitehomebos.kocca.kr/k_content/vol17/vol17_07.pdf · 2016-01-18 · 일러스트레이터 이승정 마음을

일러스트레이터 이승정

마음을 이끄는 행복한 발걸음요차불피(樂此不疲),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는다는

사자성어다. 흔히 일러스트레이터는 수십 개의 직장에 수십 명의 상사를

모시며 작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프로젝트마다 각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범위 내에서 그들이 상상하는 이미지와 작가가 구현하고 싶은

작품과의 교집합을 찾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난한 조율 과정마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즐거움이라는

행복한 일러스트레이터 이승정을 만났다.

글편집부|사진최혜원달보드레스냅스튜디오

Q.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고 괴로웠을 때를 뽑자면 언제인가?

A.최근6개월동안진행해온월간엽서를쉬게되었다.특별한

주제없이진행해온작업을전체적으로보충하고제대로된컨

셉과목표를가지고진행하고싶어잠깐의휴식기를갖기시작

한것이여름이었는데벌써겨울이되어버렸다.매달그려야한

다는압박에서벗어나잠깐은여유로움을만끽했지만,곧스스

로와의약속을어긴것같아몹시괴로운6개월을보냈다.불편

한마음이큰휴식기간이었지만더좋은작품을위한재충전의

시간이었다고다독이고있다.

Q. 월간엽서란 어떤 프로젝트인가?

A.편집디자이너를그만두면서‘내가정말그리고싶은그림을

마음껏그리자’란생각을했다.그리고한달에세종류씩‘내가

생각한그림을엽서로만들어보자’고나와약속했다.판매목적

도아니고전시목적도아닌온전히나를위한,내가그리고싶은

것을그리는프로젝트였다.그렇게개인적인목표로시작한작

업이었는데좋아해주는팬이생기고블로그를통해구매하는사

람도생겼다.그리고얼마전부터는홍대Object매장에서도판

매되기시작했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A.가장애착이가는작품은위에서이야기한월간엽서중2014

년9월엽서‘하고싶은말’이다.월간엽서가운데가장처음으로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에 가면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존

재가 있다.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흥을 돋워주는 야시장의 마스코

트 밤도깨비가 그 주인공이다. 귀엽고 친근하면서 해맑아 보이기

까지 하는 이 도깨비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는데

페스티벌에 꼭 맞는 화려함과 낙천적인 작가의 색이 어우러져 탄

생한 것이었다.

Q. 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나?

A.학창시절디자인을전공해서처음에는디자이너로일을시

작했다.디자인회사에서1년반정도일하면서일러스트작업

에눈을뜨기시작했고,우연히사보에들어가는그림을그리게

되었는데반응이꽤좋았다.디자인할때와는다른재미를스스

로도느끼게되었다.디자인작업보다그림을그리는시간이점

점늘어났고그시간이더할나위없이즐거웠다.그러는사이내

가하고싶은일과잘할수있는일에대해고민하게되었고결국

사직을결정한뒤본격적으로그림그리는작업을시작하게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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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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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Insight Interview 1

Page 2: 일러스트레이터 이승정 마음을 이끄는 행복한 발걸음sitehomebos.kocca.kr/k_content/vol17/vol17_07.pdf · 2016-01-18 · 일러스트레이터 이승정 마음을

한국에서능력을인정받아도좋은대우를받기힘들다.클라이

언트가요구하는범위내에서작업을해야하고,텍스트의부속

품이라는인식이많아정당한대가를받기힘들다.더나아가“대

충하나그려줘!”라는말을쉽게듣기도한다.작가에게결코유

쾌할수없는말인거같다.이러한인식을심도있게바라볼때인

것같다.

Q. 다채로운 색감에 독특하고 기발한 작품이 많아 보인다. 특별

히 선호하는 작업 스타일이 있는지?

A.전체적으로따뜻한느낌을주는그림을그리고싶다.작가마

다다양한스타일이있겠지만나는현실을세밀하게표현하는

그림보다는공상의세계를재치있게그리는것을더좋아한다.

자유롭게상상하고표현할수있어서이기도하고정답이없으니

까정말무한대의시도를해볼수있어서좋다.나는정해진답이

나주제가너무분명할때오히려그리기가어려운것같다.이런

경우반짝떠오르는아이디어를넣고싶어도망설여지는부분이

생긴다.

Q.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하는 특별한 슬럼프 극복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가?

A.일정을정확하게지켜야하는작업인데시간의압박을느껴

작업이잘풀리지않을때가있다.그럴때면일단작업대에서멀

리나와아무것도하지않는다.뭘하려고하면더생각이엉키는

것같아서무념무상으로아무하고도이야기하지않고시간에날

맡긴채정말가만히있는다.그러다보면어느순간덜컥좋은아

이디어가떠오르거나어떻게푸는것이좋을지실마리가보이기

도한다.이번에6개월정도충전할수있는기간을가지면서여

행을많이다녔는데그러는동안아무생각도하지않으며다비

우고나니또하나씩채워지는느낌이들었다.

Q. 나의 생각을 100% 담아낼 수 없는, 클라이언트와의 조율이

필요한 창작업이다. 그렇다고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한 환경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가는 이유

는 무엇인가?

A.질문에나와있는것처럼조율하는과정에서속상할때도있

고,일방적으로시간을정해서맞춰달라는경우도있다.하지만

타인의생각을이해하고내그림으로녹여내며다같이만들어

간다는느낌이있어좋다.그렇게해서하나의책이나작업이완

성되는거니까.나뿐만아니라작업에참여한사람들모두조금

씩포기하는부분이있지않을까싶다.그들과조율해나가는것

도재미있는과정이다.좋아서하는일이라서그런지보람과희

열이마음에큰안식을준다.

Q. 일러스트레이터로 살면서 꼭 지키고 있는 철학이 있다면 무

엇인가.

A.시간약속!마감은무슨일이있어도지키려고한다.일반직

장생활이라면당연한이야기겠지만작업특성상쉽게안풀리는

경우가있다.도와줄사람도없고대신할사람도없다.너무힘든

나와의싸움이지만오로지내능력이반영된그림의퀄리티만으

로신뢰감이결정되므로어떻게든시간내에최대한의완성도를

선보이고자한다.그리고삽화작업은의뢰한곳에대한정보와

텍스트에대한이해과정을거치지않으면좋은그림이나오질

않는다.그래서새로운작업을시작할때면내가작업해야하는

대상에대해꾸준히공부한다.

Q. 작가에게 창작의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A.나에게그림그리는작업은일이라는생각보다는어릴때하

던인형놀이를하는기분이다.인형을놓고뭘입힐까고민하고

집을만들어주고요리를해주던행동들이지금내가하는일러

스트작업과다를것없다는생각이다.어떤프로젝트라도주제

가있고내용이있다.나는거기에나의상상을더해꾸미고있

는것이다.어떻게꾸미냐는것은다내몫인데,어느공간에어

떤색을입히고어떻게보여주는것이좋을까생각하다보면인

형놀이를하던그때와다를바없이재미있다.내가상상하는것

들을자유롭게만들어낼수있어뿌듯하고행복하다.일러스트

레이터란자신의생각을선명하게담아보여줄수있는창작자

라고생각한다.한때그저‘남들눈에예뻐보이는그림을그리고

있는것은아닐까?’하는불안감에사로잡힌적이있다.내가그

리고자한세계가아니라보는사람들이좋아할만한취향을좇

아가고있다는느낌이들어괴로운적도있는데지금은그런고

민을끝내고흔들림없이온전히내생각을표현할수있는창작

자가되려고노력중이다.

그린작품이라별다른고민없이편하게작업했다.영화를보면

서,좋아하는노래를들으면서행복한기분으로임했다.그렇게

작업하는방법이나를잘표현할수있다고생각했다.

Q. 반대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작품이 있다면?

A.월간엽서도그렇고청탁에의한삽화나포스터작업도그렇지

만그릴때는항상최선이라고생각해서그리고작업을끝내는데

막상결과물이나오면만족스럽지못한부분이눈에보인다.‘색

은왜이렇게썼을까,이걸왜여기배치했을까,저기다그렸으면

더예뻤을텐데’하는아쉬움이남곤한다.완벽하게자신의마음

에드는작품을그린작가가있을까?매순간최선을다하고그렇

게최선을다한나자신에게만족할수밖에없는것같다.

Q. 일러스트레이터로 살기에 작업 환경은 어떠한가?

A.요즘열정페이라는말을많이쓰는데이일을시작하면서새

삼와닿을때가있다.직장생활과는다른차원으로나의열정

과노력을강요받는일이많다.특히열정페이를강요받는문화

예술인가운데일러스트레이터는유독다른영역보다갑이아닌

을로자리한다.글을쓰는작가,화가도아닌일러스트레이터는

서울밤도깨비

야시장에가면

이승정작가의손에서

탄생한캐릭터

밤도깨비를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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