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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50주년을 넘어, 실험극장의 또 다른 실험 극단 실험극장의 백일흔한 번째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 해 창단 50주년을 맞은 실험극장은 우리 연 극계의 생생한 역사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황금시대라 일컬어지는‘운니동 시대’를 뒤로 하고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던 실험극장이 다시 한번 새롭게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 어서면서 부터다. 이한승 대표 체제로 극단을 정비한 실험극장은, 수준 높은 동시대 번역극을 소개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한편, 중견과 신진 극작가들의 창작극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 다. 그리고 2011년, 실험극장이 선택한 또 한 편의 창작 초연이 무대를 찾는다. 2003년 <서산에 해 지면은 달 떠온단다>로 처음 실험극장과 인연을 맺은 극작가 최창근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 독특한 변주를 꾀하는 작품이다. 작가 특유의 서정성이 짙게 묻어나는 이 야기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아득하기만 한 시공간을 부유하는 인물들은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고 죽어서도 죽은 것이 아니다. 소망이 간절한 만큼 언젠가는 반드시 만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의 인연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떠오르는 신예 연출가 류주연이 맡았다. 무대 위, 그들 이 읊조리는 기억은 돌이키고 싶은 시절과 그 너머의 아름다움에 대한 것들이다. 프리뷰 9 8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1. 6 극단 실험극장 <바람이 분다> 어쩌면 기억나지 않는 미래 봄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리창을 빗맞은 햇살이 눈을 찔러 시린 울음을 울었다. 애써 마음을 게워내 하여도 못내 지울 없는 여린 향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삶이 살아지는 저주스러웠고, 가끔은 웃을 줄도 아는 스스로가 가증스러웠다. 시간은 자꾸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기억의 매듭이 풀리고 생채기는 쉬이 아 물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구석을 베고 누워, 문득문득 심장을 저릿하게 하는 기억에도 종말은 있을까. 이것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기억나지 않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바람이 분다. 일시 : 6월10일~6월26일 평일8시, 토3시7시, 일3시, 월쉼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최창근 연출 : 류주연 출연 : 이승훈, 최광일, 조윤미 문의 : 889-3561 무대장치 및 미술: 이희순, 구은혜 / 의상: 최원 / 음악: 김태근 / 조명: 박성희 / 분장: 김선희 사진: 이동녕 / 그래픽디자인: 윤영준 / 조명오퍼: 오경선 / 조연출: 김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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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그대의상처를품어줄거대한우주ktheater.bravod.co.kr/filedown.html?up_file=3_54.pdf · 12The Korean Theatre Review 2011. 6 극단바람풀& 연극집단반

창단 50주년을 넘어, 실험극장의 또 다른 실험

극단 실험극장의 백일흔한 번째 공연이 무 에 오른다. 지난 해 창단 50주년을 맞은 실험극장은 우리 연

극계의 생생한 역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위 황금시 라 일컬어지는‘운니동 시 ’를 뒤로

하고 한동안 침체기를 맞았던 실험극장이 다시 한번 새롭게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에 들

어서면서 부터다. 이한승 표 체제로 극단을 정비한 후 실험극장은, 수준 높은 동시 번역극을 소개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한편, 중견과 신진 극작가들의 창작극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

다. 그리고 2011년, 실험극장이 선택한 또 한 편의 창작 초연이 무 를 찾는다.

2003년 <서산에 해 지면은 달 떠온단다>로 처음 실험극장과 인연을 맺은 극작가 최창근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 독특한 변주를 꾀하는 작품이다. 작가 특유의 서정성이 짙게 묻어나는 이

야기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아득하기만 한 시공간을 부유하는 인물들은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고 죽어서도 죽은 것이 아니다. 소망이 간절한 만큼 언젠가는 반드시 만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의 인연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떠오르는 신예 연출가 류주연이 맡았다. 무 위, 그들

이 읊조리는 기억은 돌이키고 싶은 시절과 그 너머의 아름다움에 한 것들이다.

프리뷰

98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1. 6

극단 실험극장

<바람이 분다>

어쩌면 기억나지 않는 미래

봄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리창을 빗맞은 햇살이 눈을 찔러 시린 울음을 울었다. 애써 마음을 게워내

려 하여도 못내 지울 수 없는 여린 향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삶이 살아지는 게 저주스러웠고, 가끔은 웃을 줄도

아는 스스로가 가증스러웠다. 시간은 자꾸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기억의 매듭이 풀리고 생채기는 쉬이 아

물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한 구석을 베고 누워, 문득문득 심장을 저릿하게 하는 기억에도 종말은 있을까. 이것

은 기억과 망각에 한 이야기다. 어쩌면 기억나지 않는 미래에 한 이야기다. 바람이 분다.

일시 : 6월10일~6월26일 평일8시, 토3시7시, 일3시, 월쉼

장소 : 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작 : 최창근 연출 : 류주연

출연 : 이승훈, 최광일, 조윤미

문의 : 889-3561

무 장치및미술: 이희순, 구은혜 / 의상: 최원 / 음악: 김태근 / 조명: 박성희 / 분장: 김선희

사진: 이동녕 / 그래픽디자인: 윤 준 / 조명오퍼: 오경선 / 조연출: 김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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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1. 6

그 의 상처를 품어줄 거 한 우주

기댈 곳이라곤 오로지 둘밖에 없었던 오라비와 어린 누이

가 있었다. 길 잃은 작은 짐승들 마냥 서로를 핥아주던 오

누이는 어쩌면 사랑을 했을까. 예상치 못한 이별 앞에 아

프단 말도 하지 못했던 오라비는 오래도록 누이를 가슴에

품었다. 그것은 속죄이면서 동시에 구원이었고, 함께이지

만 함께 할 수 없는 환희는 절망을 동반했다. 그런 오라비

와 나란히 길을 헤매이는 남자는 아름다웠던 생의 기억들

을 복원조차 할 수 없어 홀로 울음을 참는 이다. 때문에

그들은 반짝이던 시절에 침잠하는 아름다움을 갈망하 으

며, 차마 어쩌지 못하는 타나토스에의 유혹에 굴복하 다.

그리고 순간, 그들의 혼에는 원과도 같은 평온이 내려

앉는다.

한편의 시극과도 같은 이 작품에서 인물들의 사 사이사

이를 채우는 것은 몽환적인 이미지들이다. 달과 별, 꽃과

동물들, 아득히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리고 바람의 감촉.

오히려 문자 그 로에서 전해지는 잔상들을 떠올려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혹은 생생한 상 이미지라면 차라리

괜찮다. 하지만 인물들의 감성을 품어줄 이 거 한 우주를

무 위에 풀어내는 일은 결코 녹록지가 않다. 오로지 연

극 무 이기에 가능한 표현을 찾길 요구하는 <바람이 분다

>는 시각이 청각이 되고 다시 그것이 촉각이 되는 공감각

의 향연을 베푼다. 그곳에서 그들과 내가, 그리고 우리 모

두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술래에게 들키기 위한 숨바꼭

질을 시작한다.

어쩌면 이 작품은 애써 잊은 줄만 알았던 과거의 상처들을 끄집어낼지도 모른다. 깊숙한 곳에 토닥토닥 묻어둔

그 상처들에 풀풀 흙먼지가 날리고 한바탕 모래바람이 마음을 헤집어 놓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 서걱거리는

황량함 또한 견뎌내야 할 몫이거늘. 그러면 언젠가는 그 많던 모래 알갱이들도 하나 둘 줄어가지 않을까. 최창

근 작가는‘바람’을‘소망’이라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은 바람(風)이자, 바람(望)이다. 그러니 당신이 오랜 시간,

왜 그토록 아픈지 알 수가 없었다면, 그래서 마음에 깊은 굴 하나를 만들었다면, 이제, 조금은 다른 바람을 맞아

볼 일이다. 그 상처 난 마음 모두 닳고 닳아 없어지도록.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불어가니까.

_김슬기기자([email protected])& 사진_서동신 & 극단 실험극장 제공

바람을담은바람이분다

연출가류주연

극작가 최창근과 연출가 류주연은 처음 공연예술아카데미 선후배로 만나 지난 10년간 서로의 작업

을 지켜봐왔다고 한다. 연출가는 매일같이 연습실에 나오는 작가 덕분에 작품에 한 해석이 풍부

해졌다고 하고, 작가는 연습실에 올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는 연출가에게 놀랐

다고 하니, 연습엔 날로 생기가 넘친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이야기에는 바람이 담긴다.

“처음에 읽었을 땐 이해가 안 되고 어려웠어요. 무슨 얘기인지는 명확히 모르겠지만 어떤 느낌 같

은 게 있었죠. 정말 한 땀, 한 땀이 어려운 작업이에요. 그런데 쉽게 답이 나오는 작품보다 난해한

것들을 새롭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기니, 청년의 정신으로 만든다고 해야 하나요.

솔직히 연출로서 작업을 하다보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보다 명확한 것을 가지고 관

객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지가 않아요. 여전히 잘 모르겠죠. 한

편으로는 바람 같은 작품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정리했어요. 바람만 불었는데 눈물

이 나기도 하고, 기분이 상쾌해지기도 하고, 그런 게 바람이잖아요. 그래서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인간이나 세상에 한 깨달음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 왜 눈물이

나지, 마음이 가벼워졌어, 같은 한 줄기 바람을 맞은 듯 막연한 느낌을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누

군가의 마음속에 한 줄기 바람을 불어넣어 그로 인한 한 줄기 기분을 갖게 하는 것, 그래서 그것

이 주는 가치에 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것, 그런 것들이 제가 이 작품에서 하고 싶은 거예요.

전체적으로는 그림자놀이, 비눗방울 불기, 연 날리기 등 큰 그림을‘놀이’로 풀어가고 있어요. 이

작품이 회상, 기억, 그리움에 한 내용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린 시절을 돌아보기도 하거든요.

그 시절은 많고 많은 놀이들로 채워져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문학적인 텍스트를 무 에 형상화

하려고 고안해 낸 아이디어이기도 해요. 놀이라는 건 말이 필요 없이 움직임만으로 어떤 상황이

나 상태를 설명할 수 있잖아요.

이번 작품엔 일부러 상의 도움을 안 받기로 했어요. 그간 제가 해왔던 부분 작품에서 상을

썼는데, 스스로 배워보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표현의 폭을 넓힐 수 있어서 좋았거든요.

그런데 <바람이 분다>는 처음 작품을 접하는 순간부터 어떤 상 이미지들이 떠오르는데, 오히려

이런 작품일수록 연극성을 살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상이 다양한 표현을 가능케 하면서도

동시에 상상력을 제한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부딪쳐서 정말 연극 같은 연극으로 만들

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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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1. 6

극단 바람풀 & 연극집단 반

<저승(冥城)>

경계를 넘나들다

13

중국에서 문화 혁명을 거친 뒤 프랑스로 국적을 바꾼 작가 가오싱젠(高行健)의 희곡『저승(冥城)』이 아르코예술

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1987년 북경에서 쓴 초고가 1988년 홍콩에서 쟝칭(江靑) 연출의 무용극으로 무 에

오른 이래 연극으로서는 처음이다. 1990년 파리에서 재고가 나오고, 1991년 역시 파리에서 완성된 이 작품이

여태 공연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짐작할 수 있다. 모국에서는 망명한 작가의 작품이어서 배격했을

테고, 타국에서는 두 편의 경극(京劇)에 기초해 너무도 중국적인 작품이어서 쉽게 시도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다. 그런데 이를 극단 바람풀과 연극집단 반이 합심하여 20여 년 만에 무 에 올리기로 했다.

빈 무 에 펼쳐지는 배우의 다중적 자아

막이 오르면‘장주 역을 하는 이’가 나와“아주 오래된, 아주 해묵은, 지금 사람들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라

면서 앞으로 벌어질 연극을 안내한다. 그리고는 금세‘장주’가 되어 자신을 소개하고, 도를 닦으러 다니느라 집

을 비운 사이 독수공방하던 아내의 정조를 의심해 죽음을 가장하여 본인의 관을 보냈다고 설명한다. 곧이어 등

장한‘장주의 아내’역시 남편처럼 자신을 소개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까치가 우니 남편이 올 것 같다며 단장

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법사(法師)와 그의 조수들이 들고 왔던 상여를 보고는 통곡하게 된다. 이에 장주는 초

나라 공자로 변장하고 나타나 아내를 위로하는 척 유혹하는 간악함을 보이고, 무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던

코러스들이 그를 비난한다. 하지만 공자의 본색을 모르는 장주의 아내는 서서히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중병

에 걸렸다며 막 죽은 자의 뇌수를 마셔야 살 수 있다는 말에 또 한 번 속는다. 결국 남편의 관을 부수기로 결심

한 아내에게 장주는 비로소 정체를 밝히고, 놀란 아내는 들고 있던 도끼로 스스로를 내리친다. 망연자실해 꿈인

지 생시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장주 곁에서 아내의 시체는 입관(入棺)되고, 어느덧 장주의 장례 행렬이 장주 아내

의 장례 행렬로 바뀐다.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이야기 속 장주(莊周)가 아

내를 의심하고 희롱하는 경극 <관을 부수다>를 바탕으로 구성

된 위 단락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런데 희곡은 이것을 전적으

로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발화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공간을

형상화하고 그것을 관객에게 인식시키는 것도 모두 배우에게

위임했다. 이에 박정석 연출은 채워 넣기에 따라서 무한해지는

빈 무 를 선택한다. 그리고 역시 상상력에 의해 변형 가능한

천과 탈, 막 기 등으로 소품을 체하고, 장면 사이사이에 중

국 고유의 악기와 박자로 삽입하도록 되어 있는 풍악을 우리

악기와 박자로 변주해간다.

그런데 이 작품의 방점은 역시나 배우의 다층적 연기에 찍힌

다. ‘장주 역을 하는 이’와‘장주’를 맡은 박상종은 배우로서

의 자신과 장주를 연기하는 자신, 그리고 아내를 속이고 초나

라 공자를 연기하는 장주, 세 가지 자아를 갖는다. 방백과 독

백을 통해 드러나는 이것을 연출은 동양연극 연기자의 특징이

라 설명하며, 각기 다른 자아가 혼재하는 상태를 통해 관객의

생각을 깨우고 그것을 연극에 개입시키는 이화작용을 창출한

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때 코러스의 역할도 극 화하면서 연극

성은 강화하기 시작한다.

일시 : 6월1일�6월12일 평일8시, 토4시7시, 일공휴일4시, 월쉼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작 : 가오싱젠(高行健)

번역 : 오수경

연출 : 박정석

출연 : 박상종, 천정하, 김동 , 김수보, 이계 , 이 진

양승한, 남동진, 정종훈, 송현석, 문창완, 강학수

최수빈, 윤미애, 이선희, 정성우, 이승우, 김지희

이훈희, 박선혜, 정혜 , 최재승

문의 : 3668-0007 / 3676-3676

트레이너: 풍성호 / 무 : 최 환 / 조명: 류백희 / 의상: 박근여

음악: 이재진 / 분장: 한금주, 이민 , 우현주, 김명화, 김수지, 박민지

조연출: 권재근 / OP: 박정훈, 공시한 / 사진: 최지욱 / 홍보물디자인: 김솔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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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이면서도 같은 세계

명성(冥城)을 배경으로 한 경극 <저승으로 찾아가다>를 토

로 구성된 아래 단락은 자결한 장주의 아내가 쇠사슬로

두 손이 묶인 채 저승에 간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두

저승사자와 면하고 있을 즈음 분향객들과 순례 안내자

들이 모여 제사와 분향을 하고 있던 이승에서는 거지들의

아귀다툼과 계급갈등이 벌어진다. 이때 다시 장주의 아내

를 따라 저승으로 가보면 피의 강을 건너던 그녀가 곤경

에 처해있다. 이윽고 판관의 재판이 시작되자 떠돌이 혼령

들이 뇌물을 주고서 원을 푼다. 이에 우리는 다른 세계이

면서도 같은 세계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아주 오래된,

아주 해묵은, 지금 사람들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이나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느덧 장주의 아내도

재판을 받는다. 그런데 판관은 내막을 알고도 그녀의 혀를

잘라버린다. 북을 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장주의 아내 앞

에 염라 왕이 등장하지만 그녀는 끝내 구원받지 못한다.

잠시 남녀의 파편적인 화가 오갔을 때, 장주의 아내는

핏빛 창자를 끄집어낸다.

이처럼 아래 단락은 위 단락과 달리 이승과 저승을 오가

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때 이질적인 두 공간의 질감을 만드는 장치는 빈 무 가장자리에 위치한 정 짐 형태의

구조물이다. 앞서 코러스가 자리하고 있던 이곳은‘문’을 신하며 수평적인 등퇴장을 수직적으로 바꾸는 동시에

역동적으로 만들고, 코러스는 역할을 확장해 귀신이 되기도 하고 거지가 되기도 한다. 또 관객을 변하는 것에서

나아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각각 장주와 장주의 아내를 변한다.

“사는 것이 죽는 것이나 다름없고 죽어도 또 산다. 살고 또 죽는 것. 종내 알 수가 없지.”

미성(尾聲)에 나오는 장주의 노래이다.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간 아내가 고문당하는 모습을 통해 집단의 폭력성을

보여주며 망명 인생을 상기시키고 그에 따른 상처를 짐작케 했던 가오싱젠은, 그로써 성립된 자신의 관조적 세계관

을 이 노래로 설명한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연극은 장주 아내의 이야기이면서도 그녀가 아닌 그녀의 남편 장주가 막을 열고 닫았다. 부정

에 부정을 거듭하며 경계를 무너뜨리고 존재하는 장주는 어쩐지 프랑스에 살고 있으나 여전히 중국적인 작가와 닮

아있다.

이 공연은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펼쳐지는 가오싱젠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첫 날 가오싱젠이 직접 관객과의

화에 나설 예정이다.

_김지현기자([email protected])

사진_서동신 &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1514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1. 6

형식이 곧 주제

가오싱젠은 이 작품의 내용이나 주제에 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건 연출가가 알아서 찾아야 할 일이라면서 당부

한 것은 연기죠. 그런데 중국의 색깔이 너무나 강해서 고민

이 됐어요. 중국이나 일본은 특정한 양식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요. 중국은 원잡극(元雜劇) 같은 데 연

기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게 나와 있어요. 일본도 <풍자화전

(風姿花傳)>에 노오(能)의 연기법이 다 설명돼 있죠. 관객과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거예요. 경극은 등장할 때 걸음걸이

나 손짓 등으로 인물과 상황을 설명해요. 모자를 벗으면 죽

은 사람을 상징한다거나 그런 식이죠.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방백과 독백이 많아서 언뜻 보면 브레히트의 서사극 같은데,

차분하게 사를 주고받으며 정서를 교류하는 게 아니라 노

래를 통하도록 되어 있죠. 배우들은 상 역의 말을 듣고 반

응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말을 할뿐이에요. 그리고 그 사이

마다 일정한 운율을 가진 노래가 있어요. 하지만 그걸 다 부

르면 이야기의 구조가 깨지거나 전체적인 리듬이 끊길까봐

조절하고 있어요.

중국의 전통극에는 무술, 창, 무용, 연기가 하나라는 논리가

있고, 그러한 토 위에 쓰여진 작품이에요. 경극학원을 나

온 중국인에게 동작을 배우고 있지만, 엄청나게 수련을 하고

그 안에 정서까지 집어넣지는 못 해요. 트레이너도 몇 십 년

을 해야 평이 나오는 걸 몇 달 만에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너

무 정확하게 흉내 내려 하지 말라고 하죠. 그 신 우리 식으

로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가면서 동양연극의 전통을 계승하

고‘놀이성’을 강조하고 있어요. 배우들이 얼마나 이 작품을

즐겁게 하고 있고, 관객과 에너지 있는 화를 나누려고

하는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또 이런 식으로 옛날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쩌면 형식 자체가 주제인 것 같기도 해요. 연출도 그쪽에 초

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연출가 박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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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1. 6

“넌 못생겼어!”

누군가의 시선으로 나는 발가벗겨진다. 조심스레 거울을 들여다본다. 초라해진 마음 탓인지 내 모습도 초라해 보인다.

못생겼다는 말이 귓속에서 윙윙거린다. 거울 속 나를 향해 거울 밖 내가 말을 건다. “내가 못생겼니?”

“그 얼굴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외모야!”

누군가의 시선으로 나는 또 발가벗겨진다. 더는 거울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상 의 언어가 내 혀끝에 매달린다. “난 못생겼어.”

획일화된 잔인한 시선에 내 존재는 무너져 내린다.

현실을 반 한 연극,

연극에서 발견한 현실

2011년 게릴라극장의 브레히트±하이너 뮐러 기획전 마지막

작품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독일작가 마리우스 폰 마

이엔부르크의 <못생긴 남자>다. 기획전을 잘 마무리하고 막

을 내려야 할 시점에 누군가는 기획전과 다른 엉뚱한 이의

작품이 올라간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

과 현실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색한 브레히트와 중사회 속

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하이너 뮐러의 정신

과 맞닿아있는 동시 작가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를 마

지막 카드로 내민 건 이번 기획의도와 꼭 맞아떨어지는 선

택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위치에서 과거의 가치를 돌아보고

미래를 향한 시선을 보여주는 건 연극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속 깊은 통찰이기 때문이다.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는 지난해 서울연극올림픽의 공식

초청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햄릿>을 제작한 베를린 샤우뷔

네 극장의 전속작가 및 드라마투르크로 활동하고 있다.

2007년 독일에서 초연된 <못생긴 남자>는 이후 국, 체코,

슬로베니아, 스웨덴,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프랑스, 불가

리아, 호주, 일본, 만 등 25개국에서 번역, 공연되었다. 세

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 <못생긴 남자>는 새로운 감각과 형

식으로 현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지극히 연극

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이 작품은 현실을 냉정한 시각으로

정확히 반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극적 실험에 성공한 작품

으로 보인다. 심각하고 진지한 독일연극 풍토와 전혀 다른

맛이 느껴지는 블랙코미디 <못생긴 남자>는 유쾌하면서도

잔인하게 관객의 마음을 헤집어 놓을 것이다.

프리뷰

공연제작센터<못생긴 남자>나를 잃어버리다

일시 : 6월15일~7월10일 평일8시, 토3시7시, 일3시, 월쉼

장소 : 게릴라극장

원작 :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

연출 : 윤광진

출연 : 이기봉, 이동근, 오동식, 이슬비, 김무형

문의 : 763-1268

번역: 이원양, 한은주 | 무 디자인: 윤시중 | 음악: shininchi | 조명디자인: 조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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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 에서 분열되는 자아

연극 <못생긴 남자>의 매력은 소품을 최소화한 빈 무 에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한 배우가 두세 명의 역할

을 소화해야 하는 극에서 빈 무 야말로 가장 적확하고 흥미로운 형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빈 무 는 관객의

상상력을 확장하거나 축소한다. 그러기에 배우의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호흡과

에너지로만 무 를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 연극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빈 무 는 존재감을 상실해 텅 비어버린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외모지상주의로 치

닫는 현 사회는 아름답지 않은 얼굴과 몸매를 유익한 존재로 받아주지 않는다. 있는 그 로의 모습으로 사랑받

고 존중받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않는 획일화된 시선은 결국 자아를 분열시킨다. 연극은 나를 찾으려다

나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_최성문(객원기자, [email protected])

사진_게릴라극장 제공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다

연극 <못생긴 남자>의 주인공 레테는 자신이 개발한 제품의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거부감

을 주는 외모 때문이다. 연구에만 골몰하던 시절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제품을 팔아야 하는 위치에

서자 그의 외모는 걸림돌이 된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못생긴 외모를 가졌다는 걸 사장의 눈을 통해 처음으로

자각한다. 레테는 자신이 못생겼다는 걸 다시 아내에게 확인 받는다. 레테는 성형수술을 하고 아름다운 외모

를 갖게 된다. 멋진 외모 덕에 레테는 사람들에게 주목 받고 성적인 자극을 주는 존재로까지 탈바꿈한다. 수

술에 성공한 의사는 같은 얼굴모형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술해 레테의 얼굴을 계속 만든다. 레테는 자신과 똑

같은 얼굴을 한 다른 사람을 보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는 위험한 시선이 담긴 연

극은 현 사회가 가진 규격화된 미의 기준을 비판하며 몰 개성화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본을 읽고 형식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이코드라마 느낌도 나고요. 마치 한

명의 환자를 두고 역할놀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레테는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 휘둘리

는 존재입니다. 레테가 자신이 못생겼다는 걸 알아가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성형

수술을 하고 난 뒤 그가 겪는 다양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세 한 심리를 잘 표현해야 하

는 작품이죠. 레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찾기 위해 성형을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이

들이 자신의 일을 신 하는 것을 보고 존재감을 잃어버려요. 레테는 어떤 배우가 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 점 때문에 레

테를 표현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오히려 연기를 하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를 비

우고 레테가 되려고 합니다. - 배우 오동식(레테 役)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는 십 년 정도 활동한 독일 신진작가입니다. 2002년 아비뇽

연극제에 공식 참가했던 가정 파괴를 담은 첫 작품 <불의 얼굴>이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

기를 끌면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작가죠. <못생긴 남자> 또한 세계 각국 무 에 올라

가고 있고요. 얼마 전 우연히, 방송국에서 아나운서 시험을 보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거

의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연습을 하는 모습에 섬뜩하고 그로테

스크한 느낌을 받았어요. <못생긴 남자>는 마치 우리나라 현실을 그 로 옮겨놓은 것 같

습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사회에 한 저의 연극적 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

다.

<못생긴 남자>에서는 짧게는 2~3분 길게는 5~6분 정도의 20여 개 장면이 끊어지지 않

고 계속 반복됩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세 명의 배우는 의상이나 분장 변화 없이 원래 자

신의 얼굴을 가지고 이름이 같은 다른 인물로 순간적인 역할변화를 합니다. 이런 방식은

역할과 장면변화가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작가의 의도처럼 보입니다. 한 인물이 가

진 고유한 개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형식에도 담고 있는 거죠. 연극은 목표 없이 흘러

가는 욕망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연출가 윤광진

1918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1. 6